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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보자 채점합시다-참여인사 릴레이제언]③최병모 민변회장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최병모 회장은 개별 언론과 인터뷰하지 않는 원칙으로 유명하다.그런 그가 17대 총선을 열흘 남짓 앞두고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 응했다.이번 총선의 역사적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 덕분이다. 지난 3일 서울 역삼동 법무법인 덕수사무실에서 만난 최 회장은 국가보안법 폐지에 동의하는지,국회의원 주민소환투표제 도입을 통한 대의민주주의 완성의 의지가 있는지,친일·독재권력 등 과거사 청산의 의지가 있는지 등을 자신의 투표 기준으로 삼겠다고 밝혔다.유권자들 또한 후보의 점수를 매길 때 이를 주요한 평가,판단의 기준으로 삼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17대 국회는 ‘진보적 국회’가 되어야 한다.17대 국회가 국가보안법만 폐지해도 우리 사회는 엄청나게 달라지며 역사는 이를 길이 기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이어 “사회·문화적 번영과 정치 자유가 보장되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 등 비틀린 과거사를 바로잡는 절차가 중요하다.”고 과거사 청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최근 송두율 교수에 대한 중형 구형과 ‘JSA’,‘실미도’ 등 영화 소재의 다양성 등을 대비되는 실례로 들며 “사문화돼 가면서도 여전히 엄존하는 국가보안법 아래 사회의 정치·사회·문화적 발전은 더디거나 퇴보할 수밖에 없다.”고 국가보안법 폐지가 필요함을 거듭 밝혔다. 최 회장이 바라보는 노무현 대통령은 ‘애증(愛憎)의 대상’이다. 최 회장이 지난 대선 때 노무현 후보를 공개지지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하지만 정부 출범 이후 대북송금특검법,이라크 파병,부안 핵폐기장 문제,집시법 개정,테러방지법 제정,FTA문제 등 각종 현안에서 노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며 반대편에 섰던 것 역시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어려운 상황에서도 우리 사회의 개혁과제를 끌고 나가리라 믿었기에 그 실망은 더욱 컸던 것이다.이는 4·15총선이 자칫 ‘친노 대 반노’ 또는 ‘탄핵지지 대 탄핵반대’로 단순화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로 나타났다.그는 가장 이상적인 17대 국회를 ‘진정한 보수정당’과 진보정당으로 나뉘어 정책과 이념,입장으로 경쟁하며 국민들로부터 평가받는 모습으로 그렸다. 최 회장은 “탄핵 찬성,반대보다는 정책과 이념을 통한 선택의 장이 되어야 할 것”이라면서 “이번 총선을 통해 무이념·무정책,지역주의,부정부패에 만연한 현 정당들을 정강·정책이 분명한 정당으로 탈바꿈시켜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
  • 시민단체서 명단 발표

    민족문제연구소·친일진상규명법 범국민추진위 등 4개 시민사회단체는 29일 서울 안국동 느티나무카페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친일진상규명법 등 과거사 관련 4대 법안 국회 심의과정에서 과거청산을 가로막은 의원과 청산에 기여한 의원을 선정,발표했다.총선을 보름 앞둔 데다 친일파 청산 등 사안이 민감해 정치권의 반발이 예상된다. 조문기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은 “국민적 열망을 무시하고 몰가치적이고 퇴행적인 역사 인식 속에 친일진상규명법 등 과거사 청산법을 개악한 의원들은 지탄받아 마땅하다.”면서 “17대 국회에는 역사를 바로잡을 수 있는 이들이 당선돼야 한다.”고 명단 공개 이유를 밝혔다. 과거사 청산을 가로막은 의원에는 박관용 국회의장과 한나라당의 최병렬·홍사덕·김광원·김용균·이강두·이병석·이상배·이원창 의원 등 8명,민주당 함승희·조재환 의원 등 2명으로 모두 11명이 선정됐다.선정 이유로는 이들 의원이 입법과정에서 ▲법안의 근본정신 훼손·왜곡 ▲지역감정 조장,색깔론 여론호도 ▲핵심조항 축소,입법 저지 ▲부적절한 발언 등으로 ‘걸림돌’ 노릇을 했다는 것. 반면 과거사 청산에 앞장선 의원에는 열린우리당 김희선·송영길·김원웅·이종걸·최용규 의원과 민주당의 설훈·이낙연·윤철상 의원,한나라당 서상섭 의원 등 9명이 선정됐다.법안 발의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관련법안 상정에 적극 협력한 것 등을 이유로 꼽았다. 유영규기자 whoami@˝
  • 50

    1950년대 장안의 화제를 모았던 국립극단(예술감독 이윤택)의 대표작 2편이 잇따라 공연된다.국립극단이 올들어 야심차게 기획한 연대별 대표 레퍼토리 복원작업의 첫번째 무대이다.해외극으로는 ‘뇌우’가,창작극으로는 ‘인생차압’이 각각 선정됐다. 공연시간 4시간30분의 원전 무삭제 연극으로 재탄생한 ‘뇌우’(4월1∼7일,국립극장 달오름극장)와 한국적 전통연희 양식으로 되살려낸 사회풍자극 ‘인생차압’(4월13∼19일)이 반세기의 세월을 뛰어넘어 오늘날의 관객과도 통할 수 있을지 관심을 모은다. ●50년대 흥행신화 ‘뇌우’ 6·25전쟁 발발 직전인 1950년 6월6일부터 23일까지 부민관에서 공연돼 7만 5000여명의 관객을 모았다.당시 서울 시민(40만명) 여섯명중에 한명꼴로 봤으니 요즘으로 치면 블록버스터 연극인 셈이다.중국 작가 차오위(曹禹)가 스물넷의 젊은 나이에 발표한 데뷔작으로 중국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는 레퍼토리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격동기 중국 사회를 배경으로 지주집안인 주씨 일가와 노동자계층을 대변하는 노씨 집안 사람 8명이 펼치는 비상식적인 애증의 드라마가 기둥 줄거리.계모와 아들의 불륜,의붓남매의 근친상간,부자지간의 패륜적 행동 등 선정적인 내용으로 초연 당시 공연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1950년(유치진 연출),1988년(이해랑)에 이어 세번째 공연인 이번 무대에는 이윤택 연출감독이 정통 리얼리즘 연극의 계보를 잇겠다며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원작의 앞뒤를 잘라내고 공연했던 전작들과 달리 전막(4막)을 그대로 살려낸 것이 특징.중간 휴식 30분을 포함해 총 공연시간이 무려 4시간30분에 달한다.“작품이 너무 아까워 한 부분도 잘라낼 수 없었다.”는 게 연출가의 변. 1막에서 조금씩 흩뿌리던 비바람이 극의 절정에 이르러 천둥번개와 함께 거세게 몰아치는 대목은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이다.권성덕(주복원) 오영수(노귀) 이혜경(주번의) 권복순(주시평)등 중량감 있는 국립극단 연기파 배우들이 총출동한다.휴식시간 로비에서 김밥과 우동을 즐기는 것도 새로운 관극 체험이 될 듯싶다. ●한국적 해학극의 원조 ‘인생차압’ 오영진의 희곡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를 제목만 바꿔 1957년 공연한 작품으로 연극의 인기에 힘입어 이듬해 영화화되기도 했다.일제때는 악질적인 친일행위를 하고,해방후에는 혼란기를 타 거부가 된 이중생이 수십년에 걸쳐 사기,배임,횡령,탈세 등 온갖 못된 짓을 골라 하다 결국 몰락한다는 이야기이다.천민자본주의의 속성을 신랄하게 꼬집는 해학성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민요,판소리 등 전통연희를 현대적으로 재창조한 형식적 측면에서도 주목받았다. 당시 이중생역을 맡았던 배우 장민호가 47년 만에 같은 배역으로 다시 무대에서 서는 것도 화제다.서른셋 나이에 파렴치범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 냈던 그가 그간의 연륜과 경험을 어떻게 무대위에 쏟아낼지 기대를 모은다.개성있는 배우 서희승이 번갈아 이중생역을 연기한다.연출은 ‘피고지고 피고지고’‘불 좀 꺼주세요’로 널리 알려진 강영걸. 한편 국립극단은 매년 순차적으로 연대별 대표작을 올린 뒤 향후 극단의 고정 레퍼토리로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산불’‘베니스의 상인’‘세자매’(60년대),‘달집’‘물보라’‘파우스트’(70년대)‘옛날옛적에 훠어이 훠어이’‘들오리’‘간계와 사랑’(80년대)‘맹진사댁 경사’‘피고지고 피고지고’(90년대) 등이 목록에 올라 있다.(02)2274-3507.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이상범 화실·홍난파 옛집 서울시 문화재 등록 추진

    일장기 말소사건을 이끈 인물과 친일행적으로 도마에 오른 인물의 유적에 대해 서울시가 한꺼번에 기념물과 문화재 등록을 추진해 주목된다. 서울시는 동양화가 청전 이상범 화백(1897∼1972)이 작고하기 전까지 34년간 작품활동을 한 종로구 누하동 18 청전화숙(靑田畵塾)을 매입해 시 기념물로 지정할 계획이라고 25일 밝혔다. 또 가곡 ‘봄처녀’‘고향의 봄’ 등을 작곡한 음악가 홍난파(1897∼1941) 선생이 1935년부터 작고 전까지 6년간 기거했던 종로구 홍파동 2의 16 단층 양옥건물도 매입해 시 등록문화재로 등록,유품전시관과 문화공연장 등으로 활용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이 화백은 언론사 삽화가로 일하던 1936년 손기정(1912∼2002) 선생의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 시상식 장면을 담은 사진을 보도하면서 손 선생의 상의 왼쪽에 있던 일장기를 지워 감옥살이까지 한 인물이다. 반면 홍 선생은 일제 치하에서 경성방송 악단 지휘자,경성음악전문학교 교수 등을 지내며 ‘희망의 아침’‘태평양행진곡’ 등 일본을 찬양하는 곡들을 내놓았으며 친일단체인 ‘대동민우회’에서도 주도적 역할을 했다. 송한수기자˝
  • [씨줄날줄] 가짜 혈통서/강석진 논설위원

    개(犬) 들어간 말 치고 좋은 말이 별로 없다.‘개가 개 낳지.’,‘개 귀에 방울’,‘개 따라 가면 측간 간다.’,‘궂은 날 개하고 논 것 같다.’ 등등.예나 지금이나 개가 들어간 욕은 긴장감을 팍 높여준다.한 마디 더하자면 ‘개 장수도 올가미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바야흐로 애완견 인구 1000만명 시대를 맞아 이 말은 바뀌어야 할 것 같다.‘개 장수도 혈통서가 있어야 한다.’로. 경찰이 가짜 혈통서를 꾸며 잡종을 명견으로 속여 판 사람들을 붙잡았다.혐의는 160여 마리를 속여 팔아 4억여원을 챙겼다는 것인데 압수한 가짜 혈통서는 무려 6000여장에 달한다고 한다.여기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면 안 된다.사건이 터진 뒤 한 방송과 인터뷰한 애완견 판매업자는 “애완업계에선 관행입니다.새로운 일도 아닌데요.”라고 심드렁하게 말한다. 개 키우는 데 온갖 정성 쏟아 붓는 요즘이고 보면 혈통 갖고 장난칠 여지도 그만큼 커져 있는 셈이다.사단법인 한국애견협회는 “개 사랑이 빗나가고 있다.”면서 “소비자도 30여곳이 넘는 유사 사설단체의 혈통서를 주의하라.”고 당부한다.그래도 혈통서가 있는 놈과 없는 놈의 값이 10배는 벌어지는 개 거래시장에서 가짜 혈통서의 유혹은 뿌리치기 어렵겠다. 이 대목이 어렵다.슬슬 사람 혈통 이야기로 넘어가기 때문이다.목하 경제계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는 이헌재 부총리가 16일 부친의 독립운동 이력을 밝혀 눈길을 끌었다.지금까지 호남으로 알려졌던 출신배경에 대해서도 서울이라고 밝혔다.독립운동가 자손임을 내세우지 않고 지내온 마음자리가 도드라져 보이기도 하고 출신 배경이 이제야 바로잡히는 게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한다. 비슷한 시기 혈통으로 마음고생한 이도 있다.박관용 국회의장이다.지난 15일 열린우리당 김희선 의원이 “(박의장이) 친일파 후예로서 이중적 잣대를 고발한다.”며 탄핵 사회를 본 박 의장에 화살을 날렸다.박 의장의 해명과 친일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비판에 부담을 느낀 김 의원은 결국 사과의 뜻을 밝히고 물러섰다.박 의장 부친의 일제 시대 행적 규명과 이를 연좌제적 발상으로 정치공세 재료로 이용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말 못하는 짐승의 혈통도 함부로 다루는 게 아니거늘 하물며 사람이야….˝
  • [탄핵정국] 우리당-野 전방위 압박

    ‘발은 묶되 입은 푼다’.열린우리당의 탄핵정국 대응기조다.탄핵안 가결을 비판하는 장외집회는 하지 않는 대신 야당의 정략적 행태는 집중비판했다. 먼저 야당의 임시국회 소집 및 방송사 항의방문이 도마에 올랐다.신기남 상임중앙위원은 15일 “한나라당 소장파는 다 어디 갔느냐.의회 쿠데타에 침묵하고,차라리 탈당해라.”고 윽박질렀다.김근태 원내대표도 “임시국회를 열고 고건 권한대행 시정연설을 듣자는 것은 정략적 계산이자 양두구육적 발언”이라고 비판했다.이부영 상임중앙위원은 “탄핵안으로 불안을 조성하고 경제를 어렵게 해놓고 또 국회를 열자는 것은 병주고 약주는 격”이라며 가세했다. 야당이 탄핵 관련 방송보도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고 있는 데 대해서도 열린우리당측은 “야합세력의 언론협박”이라고 반박했다. 특히 민주당에 대한 비난도 이어졌다.신 의원은 “주역에 밝다는 민주당 황태연 국가전력연구소장이 179차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탄핵을 결의하려다 ‘숫자가 좋지 않다.’고 해서 두 차례 의총을 열어 181차 의총에서 결의했다고 한다.”고 전하고 “조 대표도 올해 괘가 ‘적장의 목을 베는 것’이라는 것을 듣고 밀어붙이다 이번 사태를 만든 것”이라고 주장했다.박관용 국회의장에 대한 불만도 터져 나왔다.김희선 의원은 오전에 박 의장 부친의 친일의혹을 제기했다가 박 의장측의 법적 대응 소식에 오후엔 유감을 표명하긴 했으나 탄핵안 가결을 당당히 선포한 박 의장에 대한 울분을 삭이지 못했다.김 의원은 일제 때 박 의장 부친이 순사를 지냈다면서 “박 의장이 친일파의 후예로서 본질을 드러낸 것”이라고 주장했다.그러나 의장실은 박 의장 부친이 고등계가 아니라 현재의 수사과에 해당하는 사법계 소속이라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오후 성명을 내고 “친일역사 청산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마음은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많은 분들께 오해를 사게 된 점에 대해 사과드린다.”고 물러섰다. 박현갑기자 eagleduo@˝
  • [盧탄핵안 가결-탄핵심판절차] 헌법재판관 구성·성향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안을 심리할 헌법재판관은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 3명과,대법원장이 지명한 3명,국회가 선출한 3명 등 9명이다.형식상 모든 재판관의 임명권자는 대통령이지만,6명은 내용상으로는 대통령과 무관한 셈이다. 재판관 가운데 7명은 판사 출신이고 주선회·송인준 재판관만이 검사 출신이다.윤영철·주선회·송인준 재판관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임명했다.최종영 대법원장은 법원장이나 고법부장판사를 역임한 김영일·김경일·전효숙 재판관을 지명했다.국회에서 선출된 권성 재판관은 한나라당이,이상경 재판관은 민주당이 추천했다.김효종 재판관은 한나라당·민주당 공동의 지명을 받았다.판례를 볼 때 국회 지명자는 상대적으로 정치적 성향이 뚜렷한 편이다. 재판관들은 대체로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편이지만 지명·선출자가 다르고 소수의견을 많이 내는 재판관도 많아 전체 성향을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법조계에서는 권성 재판관과 전효숙 재판관은 상대적으로 진보적 인물로 분류한다.대법원장 후보로도 거론됐던 윤영철 소장은 ‘무색무취’하다는 평을 듣는다.대법관 시절 소수의견을 많이 내지는 않았지만 경찰관에게 부당한 감금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시민이 경찰관을 상대로 낸 재정신청을 받아들인 적이 있다. 김영일 재판관은 이라크 파병결정의 위헌확인 소송에서 “파병결정은 고도의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문제이며 대통령과 국외의 의견을 사법적으로 심판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권성 재판관은 소수의견을 많이 낸 재판관으로 통한다.2001년 간통죄에 대해 헌재가 8대 1로 합헌 결정을 내렸을 때 혼자 위헌 의견을 낸 바 있다.송인준 재판관은 관행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경찰의 피의자 알몸 수색은 헌법에 보장된 인격권 및 신체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번 탄핵심판의 주심을 맡은 주선회 재판관은 ‘편법증여’ 논란을 빚었던 삼성 이건희 회장의 아들 재용씨 등에 대한 삼성SDS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저가 발행과 관련,검찰의 불기소 처분이 부당하다며 참여연대가 제기한 헌법소원 심판청구를 기각한 일이 있다. 전효숙 재판관은 노무현 대통령과 사시 동기로 이영애·전수안 부장판사와 함께 여성 판사의 리더격이었다가 헌재 재판관으로 발탁됐다.가혹행위가 없었더라도 무리한 구속수사로 피해를 입었다면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린 적이 있는 등 여성과 소수자 보호에 적극적이다. 가장 최근에 선임된 이상경 재판관은 국회청문회에서 일제 잔재 청산 관련 입법 추진과 관련해 “친일파나 반민족행위 처벌이 민족정기를 세우기 위해 필요한 일이지만 공익 목적에 한해야지 보복적 차원이나 후손의 명예를 훼손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한편 대통령 재신임 국민투표에 대한 지난해 결정에서 권성·김영일·김경일·송인준 재판관 등 4명은 위헌이라는 소수의견을 냈다.이들은 “재신임 국민투표가 악용된 사례가 많으므로 민주주의 발전에 해악을 끼친 신임 투표로 활용돼선 안 된다.”고 밝혔다. 지난 88년 헌법재판소가 설치된 이래 3·3·3원칙의 재판관 임명은 삼권분립의 상징이 됐다.대법관과 달리 헌재 재판관들은 정치적 성향에 따라 위헌 여부를 전혀 다르게 판단할 수 있기에 다양한 구성이 절실했다.헌법 체제 유지·중립·개혁 등 입장이 다른 재판관이 모여야 사건을 다각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는 취지다.그러나 이번 탄핵안처럼 정치적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사건에선 법률적 판단보다 정치 성향에 따라 최종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게 법조계 시각이다.노 대통령이 직접 선출한 재판관이 단 한 명도 없는 현 상태에서 헌재의 결정이 주목된다. 정은주기자 ejung@˝
  •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한반도 분단’ 피할 수 없었나

    민족상잔의 비극을 낳은 한반도 분단과 좌·우 대립.그 기원은 무엇이며,왜 피할 수 없었던 것일까. MBC 다큐멘터리 ‘이제는 말할 수 있다-분단의 기원’은 14일 밤 11시30분 미국과 소련의 기밀문서와 증언을 통해 해방 이후 분단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집중 조명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8월15일 한반도는 해방되지만,허리에 38선이 그어지고 미국과 소련에 의해 분할점령된다.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위한 잠정적 군사분할선이었던 38선을 사이에 두고 미·소,좌·우익의 또다른 전쟁이 시작됐다. 제작진은 2차 대전에서 일본이 소련의 참전을 막는 것을 골자로 하여 펼쳤던 ‘화평공작’의 전모,해방 당시 소련군이 서울까지 들어와 일부 시민들의 환영을 받았던 사실 등을 방송 최초로 공개한다.김일성과 함께 소련군 88여단 소속이었던 바실리 이바노프의 증언을 통해 스탈린이 1946년 김일성을 북한 지도자로 직접 지명했다는 사실을 새롭게 공개한다. 또 미 군정의 실상과 실책을 비판한 ‘미국의 배반’의 저자 리처드 로빈슨과도 독점 인터뷰했다.로빈슨은 미 군정이 친일파와 우익에 의존하는 바람에 점령 정책을 제대로 펼치지 못했다는 주장을 편다.그는 “당시 미국의 최고 목표는 한국의 민주적 통일정부 수립이 아닌,소련의 세력과 공산주의를 막는 것”이었다고 말한다.이 때문에 미국은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 계획을 세우고 ‘트루먼 독트린’을 발표했다는 것이다. 결국 1947년 9월 미국이 한반도 문제를 유엔에 상정키로 결정한 가운데 통일된 한반도를 주장하던 민족주의자들은 하나둘 암살되고,1948년 단독정부가 수립되면서 분단 상황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제작진은 설명한다. 이영표기자 tomcat@˝
  • [CEO칼럼] 소박한 한국적 민주주의를 위해/오상현 대한손해보험협회 회장

    이제 사회지도층은 공적 의무를 도외시한 소모적 논쟁과 분열을 그만두고 자기희생적 노력을 통해 공동선에만 오로지 헌신해야 한다. 천지기운을 보니 기어이 봄이 오려나 보다.섭리인즉슨 진정한 봄은 꽃샘추위를 거치고서야 온다.최근 불법 정치자금 때문에 사회 전체가 시끄럽다.이것을 혹자는 사회불안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거듭나기 위해 꽃샘추위처럼 피할 수 없는 과정을 겪고 있다는 견해가 맞는 듯하다. 정치자금의 예에서 보듯 과거에는 알게 모르게 용인되던 도덕률이 점점 투명하고도 엄격한 형태로 진보하고 있다.선진국일수록 이러한 도덕률은 더욱 철저한데,미국 공직자의 경우 20달러 이상의 접대만 받아도 법으로 처벌받는다고 알고 있다. 또 이러한 도덕률을 바탕으로 하는 사회적 책무는 영향력이 큰 국가 엘리트 혹은 사회지도층에게 더 엄격히 적용되는 게 당연하다.왜냐하면 사회지도층이야말로 국가로부터 가장 많은 혜택을 받고 있는 계층이기 때문이다.이들은 지대한 권력이나 명예,혹은 부를 누리며 그만큼의 사회적 대우도 받는다. 영국만 보더라도 웰링턴 국립묘지의 묘비에는 일반 서민들의 이름보다는 작위를 받은 귀족들의 이름이 훨씬 더 많이 새겨져 있다.포클랜드 전쟁 때 앤드루 왕자가 전투헬기 조종사로 참전해 최전방에서 싸운 일화는 유명하다.그래서 일반 영국 국민은 위난시에 목숨을 버리며 앞장선 사회지도층에 대해 기꺼이 존경하고 흔쾌히 대우하는 것이다.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떠한가.1950,1960년대에는 소를 팔아야 대학을 보낸다고 하여 우골탑(牛骨塔)이라는 말이 유행했다.6·25전쟁 때에는 대학생이면 병역연기로 전쟁터에 나가지 않아도 되었는데 소 한마리 값이 없어서 대학에 못 보내는 대신 전쟁터로 보낸 멀쩡한 자식을 한 줌 뼛가루로 돌려받는 일도 많았다. 얼마 전까지도 자랑스러워야 할 병역의무가 공평하게 부과되지 않아서,누릴 것은 다 누리면서 자기희생적 의무는 이행하지 않는 사회지도층을 지켜보는 많은 민초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킨 적도 있다. 양반과 상놈으로 차별해 서민대중을 무시하고 핍박하던 섣부른 선민의식 탓인지,친일을 하던 반민족주의자들이 적반하장격으로 득세하던 탓인지 모르겠으되,사회갈등을 야기하고 국민평등에 위배되는 이러한 악습은 앞으로는 결코 용납될 수 없을 것이다. 16세기 조선조에 퇴계 이황은 선비의 역할로 사회적 공의정신(公儀精神)을 강조한 바도 있다.이러한 선비정신은 나라가 위태로울 때 대의를 위해 목숨까지 버릴 수 있는 지조의식으로 서양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이런 면에서 현대적 의미의 선비정신이란 자기만족의 고루한 이념이 아니라 몸을 낮춘 채 배운 자는 배움으로,힘 있는 자는 힘으로,돈 있는 자는 돈으로 서민대중 속에서 고통과 즐거움을 같이 나누려는 소명의식의 적극적 실천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 인간배아 줄기세포의 배양성공으로 세계적 찬사를 한몸에 받은 서울대 황우석 교수가 특허로 생기는 수입은 사회에 헌납하고 오직 조국과 인류의 공동선에만 기여하겠다고 밝힌 각오는 선비정신의 현대적 응용으로 혼탁한 세상에 던진 신선한 충격이 됐다. 이제 사회지도층은 공적 의무를 도외시한 소모적 논쟁과 분열을 그만두고 자기희생적 노력을 통해 공동선에만 오로지 헌신해야 한다.그런 후에만 비로소 지도층으로서의 권리를 당당히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지도층이 거듭남으로써 부여받은 소명을 다하고 진정으로 존경받게 되는 사회야말로 국민 대통합의 토대가 될 것이며,이것은 그대로 한국적 민주주의의 소박하지만,아름다운 화원(花園)이 될 것이다. 오상현 대한손해보험협회 회장˝
  • 회기넘겨 선거법처리 또 무산 ‘먹통’국회

    여야 정치권이 해도 너무 한다는 지적이다.17대 총선이 40여일 앞으로 다가왔는데도 선거법을 처리하지 못한 채 당리당략에만 몰두하고 있다. 국회는 2일 본회의를 열고 선거법,정치자금법,정당법 등 정치관계법을 일괄 처리할 예정이었으나 여야 의견차로 임시국회 회기 마지막날 자정을 넘겨 처리가 무산됐다. 이에 따라 정치관계법 처리를 위한 3월 임시국회 소집이 불가피해졌고,‘방탄국회’의 오명을 또다시 뒤집어 쓰게 됐다.특히 여야가 서로 네탓만 하면서 짜고 치는 인상이 짙어 강한 비난여론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는 이날 밤 11시23분 본회의를 속개,국회의원 정수를 299명으로 26명을 증원하는 것을 골자로 한 선거법 개정안을 상정했으나 민주당 양승부 의원 등 62명이 통폐합 대상인 무주·진안·장수 등의 선거구 획정을 재조정하는 수정안을 기습상정한 데 대해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반발,임시국회 회기를 넘김으로써 선거법을 처리하지 못했다. 박관용 의장은 3일 0시6분쯤 “임시국회 회기를 넘겨 이 상태로는 표결할 수 없다.”면서 “다시 임시국회를 소집해 선거법 등을 처리할 수밖에 없다.”고 산회를 선포했다.이에 따라 빨라야 6일 본회의를 다시 열어 선거관계법을 처리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국회는 오후 열린 본회의에서 일제 치하에서의 친일·반민족 행위에 대한 역사적 단죄를 위한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특별법’을 통과시켰다.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법 통과로 50여년 만에 친일 역사를 청산할 기틀이 마련됐다. 하지만 입법 과정에서 친일행위의 범위가 축소되면서 시민단체가 반발하는 등 논란이 일고 있어 17대 국회에서 개정 논의가 제기될 여지를 남겨 놓았다.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법은 찬성 151표,반대 2표,기권 10표로 가결됐다. 국회는 그러나 ‘한국전쟁 휴전이전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특별법’은 찬성 72표,반대 96표로 부결처리했다.또 의문사진상규명법 개정안은 아예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해 오는 6월이 활동시한인 의문사진상규명위의 활동 중단이 불가피해졌다. 한편 여야는 오후 정치개혁특위를 속개,막판 절충작업을 벌인 끝에 비례대표 정수를 현행 46명에서 56명으로 늘리는 데 가까스로 합의했다.특위는 또 선거법에 ‘시·도별 국회의원을 최소 3명으로 한다.’는 조항을 신설,2곳으로 줄어든 제주의 선거구를 제주·북제주갑,제주·북제주을,서귀포 등 3곳으로 늘렸다.이에 따라 전국 지역구는 243개로 16개가 늘어났다. 진경호 박록삼기자 jade@ ˝
  • 친일규명법 통과 의미

    광복 이후 처음으로 친일행위 진상 규명,친일잔재 청산 등 ‘역사바로세우기’의 길이 열리게 됐다. ‘일제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은 지난해 12월 국회 과거사진상규명특별위에서 법안을 만든 뒤 법사위,특위를 오가는 과정에서 의원들간에 격론을 거친 끝에 상정된 어려움에 비해 2일 국회 본회의에서 반대표는 고작 두 표에 불과할 정도로 쉽게 통과됐다. 특별법은 대통령 소속으로 ‘친일반민족 진상규명위원회’를 설치해 3년동안 친일인사 등을 대상으로 조사활동을 벌인 뒤 그들의 친일반민족 행위에 대해 자료수집 및 조사보고서 작성,사료 편찬 등 ‘역사적 단죄’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친일반민족행위란? 특별법이 규정한 ‘친일반민족행위’는 ▲일본군과 싸우는 부대를 토벌하거나 이를 명령한 행위 ▲독립운동을 방해할 목적으로 독립운동가 및 가족을 살상·처형·학대 또는 체포하거나 지시·명령한 행위 ▲을사조약·한일합병조약 등 국권을 침해한 조약을 체결·조인하거나 모의한 행위 ▲징병,징용을 전국 차원에서 주도적으로 선전·선동하거나 강요한 행위 ▲중앙의 문화기관 등을 통해 일본제국주의의 내선융화 또는 황민화 운동을 주도함으로써 일본제국주의의 식민통치 및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행위 등 19개 항에 이른다. 이밖에 친일행위 대상자로는 ▲일제 귀족원·중의원 의원 ▲총독부 중추원 부의장·고문·참의 ▲중좌 이상 일본군 장교 ▲위안부 전국적 강제 동원자 ▲민족탄압 판·검사 ▲민족탄압 고등문관 이상 관리·헌병·분대장·경찰간부 ▲일제통치기구 중앙·외곽단체 수뇌부 ▲동양척식회사,식산은행 중앙조직 간부 등을 포함하고 있다. ●친일파 면죄부법(?) 하지만 특별법안은 애초 원안이 많이 훼손돼 민족문제연구소 등 시민단체들로부터 ‘누더기 법안’이라는 평가까지 받으며 나아가 ‘친일·반민족행위자 면죄부 법안’이라는 비아냥까지 듣고 있다.가장 큰 이유는 조사대상자를 대폭 축소시킨 반면 조사대상자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조항을 대거 신설한 점때문이다.이밖에도 위원회 조사권과 활동기간의 축소,위원추천권을 국회에서 행사하는 문제 등도 민간단체에서 법안 통과를 반대하는 배경이 됐다.반면 일각에서는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하고 있는 범주가 광범위한데다 ‘마녀사냥식’으로 친일파로 내몰 수 있어 사회분열 나아가 국론분열까지 우려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박록삼기자 youngtan@˝
  • 친일 반민족특별법 수정안 한나라, 2일 처리 검토

    한나라당이 ‘일제 강점하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규명 특별법안’을 둘러싸고 곤혹스러워하고 있다.지난달 27일 국회 본회의 상정을 보류시켰다가 비난여론이 거세기 때문이다.‘친일정당’,‘민족정기 정립을 외면하는 정당’으로 공격당하는 형국이다. 한나라당측은 1일 본질이 잘못 전달됐다고 항변했다.법안 제정 자체를 반대하는 게 아니라는 설명이다.다만 법 조문체계에 문제가 적지 않아 손질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임태희 대표비서실장은 “법 조문을 보면 처벌의 기준을 지위로 삼고 있으나 행위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이어 “당시 일제 때의 지위를 기준으로 처벌할 경우 지나치게 광범위하거나 무리하게 적용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이에 따라 한나라당은 수정안을 제출,2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이강두 정책위의장이 정책국을 통해 수정안을 마련하는 작업을 벌였다.한나라당은 본회의 직전 의총을 열어 수정 및 처리 여부에 대한 최종입장을 정리키로 했다.그럼에도 이 법안이 2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될 지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특히 시민단체 등에서는 법사위에서 수정,본회의에 올려진 법안도 알맹이가 없다고 비판하고 있다.한나라당이 이를 더 고친다면 오히려 17대 국회에서 법안을 처리하는 쪽이 낫다는 의견까지 나온다. 이지운기자 jj@˝
  • 日간행 ‘조선공로자명감’ 최초 공개

    1일 ‘3·1 독립만세 85주년’을 맞아 당시 조선총독부가 공로자(친일자)를 낱낱이 밝혔던 책이 국내 처음으로 공개됐다. 이 책은 일본이 패망하면서 의도적으로 불살랐거나 본국으로 회수해 갔고 국내에 남아 있던 것도 친일파 후손들이 공개를 꺼려 그동안 복사본만 간혹 나돌았다. 금석문 권위자이자 고문서 수집가인 심정섭(61·광주 동구 학동)씨는 1960년 광주 헌책방에서 사들인 ‘조선공로자명감(朝鮮功勞者銘鑑·1808쪽)’을 소개했다.이 책은 조선총독부가 강점 25년째를 기념해 1935년 일어로 펴냈다.일제통치에 적극 가담한 일본인 2560명과 한국인 353명 등 민·관 공로자 2913명의 이름과 출생,직위,경력,친일행적 등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책은 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 등을 망라한 6부로 나눠져 있다.▲1부 조선통치 변천사▲2∼3부 친일파 명단▲4부 조선경제 발달사▲5부 조선금융조합 발달사▲6부 조선 13도지(道誌) 등이다. 명단에는 이완용과 그의 형인 이윤용을 필두로,‘건필(健筆)을 휘날렸다.’는 전무길 조선일보기자,김연수 경성방직사장,강우규의사 체포자인 김태석 고등계형사,민복기 대법원장의 부친인 민병석,장택상씨의 친형인 장직상,현준호 호남은행장의 부친 현기봉씨 등이 망라돼 있다. 광주 남기창기자 kcnam@˝
  • 盧, 고이즈미 야스쿠니 참배 비판

    노무현 대통령은 “일본에 대해 한마디 꼭 충고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서 “지각없는 국민이나 인기에 급급하는 한두 사람의 정치인과 달리 적어도 국가적 지도자는,우리 국민들의 가슴에 상처를 주는 발언들을 해선 안 된다.”고 1일 말했다. 노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매년 야스쿠니 신사참배 강행’ 발언을 직접 겨냥한 것으로 풀이돼 외교적 파장이 예상된다.이와 함께 야당측은 ‘총선용 애국심 고취’라고 비난하고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85회 3·1절 기념식에 참석,자신이 직접 작성한 연설에서 이같이 말하고 “한국의 정치 지도자가 굳이 역사적 사실을,오늘 일어나고 있는 일본의 법·제도 변화를,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소됐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특히 노 대통령은 “우리 국민과 정부는 절제하고 있다.”고 거듭 강조한뒤 “이는 미래를 위해서 마음의 상처를 주는 이야기를 절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이어 “우리 국민들이,우리 정부가 절제할 수 있게 일본도 최선을 다해서 노력해야 한다.”고 경고성 메시지를 덧붙였다. 노 대통령은 또 “과거는 말끔히 청산되지 않았고 새 역사의 대의도 분명히 서지 못했으며 역사적 사실과 진실은 아직 많은 것이 묻혀 있다.”며 “아직도 국회에서 친일 역사를 어떻게 밝힐 것인가를 놓고 혼란을 거듭 하고 있으며,지금도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은 한을 씻지 못하고 정리되지 못한 역사 앞에서 몸부림치고 있다.”고 말했다.특히 노 대통령은 “독립투사와 후손들의 오늘날 사회적 처지는 소외와 고통으로,독립투사들이 우리 역사를 주도하지 못해 아직도 역사에 대한 해석,오늘의 현실에 대한 인식에 있어 대립과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고 “이제 다시 한번 일어서 풀지 못한 숙제를 풀어나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편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노 대통령의 3·1절 기념사와 관련,“노 대통령이 최근 국민 사이에 일고 있는 반일 감정에 편승,총선에서 재미를 보려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기고] ‘친일 규명법’ 왜 머뭇거리나/박유철 전 독립기념관 관장

    3·1절 85돌을 맞은 지금 우리가 가장 부끄러워할 일은,과거 일본의 식민지였기 때문이라기보다 광복 반세기를 훌쩍 넘긴 지금까지 잘못된 과거사에 책임을 물은 일도,물을 수도 없다는 점이다.당시 일제에 빌붙었던 당사자들에 대한 처벌은 고사하고,그들 스스로가 반성도 사죄도 없고,부끄러워할 줄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오만과 뻔뻔스러움을 대물림까지 하는 현실에 분노를 느끼게 된다.우리나라 꼴이 이 모양이니 잘못된 한·일 관계의 과거사야 들춰내 무엇하겠는가.친일파가 득세하는 세태에서 과거사가 청산될 리 없다.이 과거사를 정리하지 않고 어찌 이 나라에 건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할 수 있겠는가.과거사를 반드시 정리하고 청산해야 할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과거의 채권·채무 관계를 정리하지 않고 어찌 새로운 거래가 이루어지겠는가. 일본이 툭하면 제기하는 식민지 시혜론과 신사참배,교과서 왜곡 등의 행위도 따지고 보면 우리가 과거사를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한·일 관계와 비슷한 독·불 관계를 보면 독일의 적극적인 사죄와 반성으로 과거사를 깨끗하게 청산해 어느때보다 원만한 관계가 정립되었다.프랑스는 종전 60년이 가까운 지금도 나치 부역행위를 가차없이 처벌한다.부역행위를 숨기고 경찰국장과 장관까지 지낸 자가 90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법정에 끌려나와 10년 징역형을 받은 기사를 보았다.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프랑스 사회가 그것을 지극히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역사에 대해 경외심을 요구하는 프랑스의 사회적 환경이다.역사에 대해 경외심이 없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한다.나치 부역자에 대한 철저한 숙청이 오늘날 프랑스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프랑스에서는 진정한 과거 청산이 있었기에 그 바탕 위에 국가의 진로를 바르게 설정하고,건전하고 정의가 살아 있는 국가로 국제사회에서 떳떳하게 행세하고 있지 않는가. 16대 국회에서 과거청산 관련 4대 법안의 발의는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 역사의 진보를 확인하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비록 불법 정치자금 수사에 묻혀 일반은 물론 언론에서조차 큰 관심을 갖지 않았지만 이 법안이야말로 엄청난 역사의 변화요,사회환경의 변화였다.그런데 이 4대 법안 중 친일관련법과 6·25 전쟁 휴전 이전 민간인 희생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등에 관한 법률(안),이른바 6·25 통합 특별법은 국회 본회의에 상정하기가 어렵다고 한다.이로써 제16대 국회는 불법 정치자금 수수란 수치보다 더 부끄러운 모습을 민족과 역사 앞에 노출한 것이다. 더구나 친일규명 관련법은 국회 법사위에서 당초 법안에 수정을 거듭하여 친일행위의 죄상을 규명하고 단죄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있으나마나 한 법으로 변질되고 말았다.그것조차 본회의 상정이 보류된다니 민족정기와 사회정의가 통째로 사라지는 느낌이다.그런다고 친일행위를 한 그들의 과거가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결국 이를 계속 감춰 국민을 기만하고 역사를 경시하는 행위는 그 자신들을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다. 친일행위자들은 과거의 잘못된 역사에 대한 심판을 면했을는지 모르나 용서받을 기회까지 잃은 셈이다.우리는 민족의 정체성과 자존심을 또 한번 꺾이게 되었다.진정한 의미에서의 국민화합은 철저한 과거 청산의 토대 위에서만 가능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항일했던 사람,친일했던 사람,어쩔 수 없이 입을 다물었던 사람들 사이에 맺혀 있는 갈등,…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안목으로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고 용서하고 화해하는 지혜를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밝힌 것은 전적으로 옳다.국회의원들은 역사적 안목을 가져야 한다.그래야 16대 국회도 살고 우리 민족도 자존심을 찾게 될 것이다. 박유철 전 독립기념관 관장˝
  • 盧 3·1절 기념사 파장 제2의 ‘역사 바로세우기’로 가나

    노무현 대통령이 1일 오전 10시 열린 3·1절 기념식 참석을 2시간여 남겨놓은 상황에서 직접 작성한 ‘기념사’가 외교적으로 미묘한 파장을 일으키는 가운데,발언의 의도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 일제잔재 청산 등 ‘제2의 역사바로세우기’라는 평가가 있는가 하면,다른 한편에선 4월 총선을 앞두고 반일감정이 거센 ‘젊은층 끌어안기’라는 분석도 나온다.평화헌법 개정 움직임과 대북제재법안 추진 등 최근 일본의 강경보수화 행보에 경고를 던진 것이란 해석도 있다. 노 대통령은 기념사 끝부분에서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매년 신사참배 강행’ 발언을 직접 겨냥한 것으로 보이는,간결하지만 강력한 메시지를 밝혔다.노 대통령은 “국가적 지도자가 우리 국민들의 가슴에 상처를 주는 발언을 해서는 안된다.”면서 “우리 국민들과 정부가 자제할 수 있도록 일본도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청와대가 이날 미리 배포한 기념사에는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이번 총선에서 국민들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이 중심 내용이었다.그러나 노 대통령은 현장에서 완전히 다른 기념사를 낭독했다.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이 어제 낮에 ‘일본에 대한 언급’ 등을 연설문에 반영하라고 지시를 했는데,연설문팀에서 이를 반영하지 못했던 것”이라며,“결국 대통령이 오늘 아침 기념사가 미흡하다고 판단해,오전 8시쯤부터 2시간 남짓한 시간에 메모형식의 연설문을 직접 작성,80% 정도 완성된 상태에서 연설에 임했다.”고 설명했다.청와대는 고이즈미를 겨냥했느냐는 질문에 “아니다.”면서 “있는 그대로 해석해달라.”고 주문했다. 윤 대변인은 차라리 “과거는 말끔히 청산되지 않았고,새로운 역사의 대의도 분명히 서지 못했다.”와 “국회에서 친일의 역사를 어떻게 밝힐 것인가를 놓고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는 대목에 주목해달라고 말했다.독립투사와 그의 후손,위안부 할머니 등의 문제를 과거 역사를 바로 세워나가는 차원에서 접근하겠다는 것이다.또 친일행위 진상을 밝히는 법조문 등이 대거 삭제된 친일규명특별법 등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이날 언급은 지난해 6월 일본 순방에서 “동북아의 미래를 위해 과거를 털고,감정적 대응은 자제해야 한다.”던 기본틀에서 확실히 벗어난 것이라는 지적이다.때문에 젊은 유권자들을 겨냥했다는 정치적 분석도 없지 않다. 올초 20∼30대 젊은이들을 후끈 달아오르게 한 것 중 하나가 ‘사이버 임진왜란’이었다.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과 ‘독도는 일본땅’ 발언,아소 다로 총무상의 ‘일본도 독도기념우표’발행 제안 등이 발단이었다.때문에 노 대통령의 이번 언급은 2002년 대선에서 ‘촛불시위’와 맞물려 나왔던 “반미면 어떠냐.”는 발언을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문소영기자 symun@˝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18)조선족의 뿌리를 찾아서(하)

    문:중국의 노예로 살아야 했던 조선인들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徐:당시 청나라는 계속된 전쟁으로 만주족의 인구가 크게 감소되었지요.대부분 남자들이 전쟁터에서 살다 보니 농사 지을 일손이 부족하여 토지가 황폐해졌지요.전쟁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무기만큼이나 양식이 필요했는데,그 농사를 짓기 위해 포로가 필요했지요. 그 포로들을 농장 노예로 만들어 중노동을 시켰는데,조선인들은 주로 심양 부근인 동주보(東州保),둔소(屯所),안산(鞍山),흥경,청룡,풍윤(豊閏) 지역에 집중배치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문:조선인 노예들은 뒷날 어떻게 처리되었을까요? 徐:민족동화 과정을 거쳐 만주적(滿洲籍)에 편입되어 귀화인이 되었는데,만주씨족통보(滿洲氏族通譜)에 올라 만주인이 되어 버렸습니다. 문:청나라 포로가 된 조선인은 모두 노예가 되었을까요? 徐:소수지만 군인,지도층에 편입된 흔적도 있지만 대개는 농장노예,만주족 귀족의 노비가 되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문:조선인 포로를 분산시키거나 나누어 가졌다는 말인데,혹 인신매매도 있었을까요? 徐:‘심관록’에 그런 기록이 남아 있어요.이 문헌은 심양으로 끌려 온 조선의 두 왕자가 청나라 군인들에게 포위된 채 살았던 처소에서 일어난 일들을 기록한 것입니다.조선인들이 노예로 매매되었거나 포로 가족이 돈을 가져 와서 주고 데려가는 속환(贖還)이 있었음을 알 수 있지요. 문:노예라면 상품으로 매매,양도의 대상이 되는 사람을 말합니다.고대 오리엔트,고대 그리스·로마,식민지시대 아메리카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났지요.노예무역선,노예사냥,미국의 흑인노예라는 말이 그 증거지요.그런데 조선인 전쟁포로가 노예로 매매되었으며,그들이 조선족의 원류이고,오늘날 한국에 노동자로 와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피 속에 그런 비극의 역사가 흐르고 있다는 것은 퍽 충격적인 일입니다. 徐:심관록 기록을 그대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청나라 사람들은 포로가 된 사람들을 매매하려고 모여들었다.성문 밖에는 포로가 된 남녀 수만 명이 있었다.어머니와 아들이 서로 상봉하였거나 형제끼리 서로 만나 끌어 안고 통곡하는 데 울음 소리가 하늘을 울렸다. …잡혀간 사람을 돈을 주고 찾아가기 위하여 날마다 성문 밖에 모였다.포로가 되어 있는 자의 부모나 아내 또는 자식들이 와서 얼마면 데려갈 수 있겠느냐고 가격을 흥정하는데,값이 비싼 경우는 백냥 또는 천냥을 요구하는 일도 있었다.값이 너무 높아 어이없어 통곡하면서 돌아가는 사람도 있었다. 자신을 데리러 올 친척이 없어 홀로 있는 사람은 세자(世子) 관소(館所)에 찾아와서 속환시켜 달라고 울고 있으니 비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고 쓰여 있습니다. 문:세자라면 누구를 말합니까? 徐:조선 인조대왕의 큰아들 이조(소현세자),둘째아들 이호(봉림대군,효종)입니다.병자호란 때 치욕적인 패배를 한 조선의 두 왕자를 인질로 데려왔거든요.노예로 매매당할 가혹한 운명에 놓여진 조선인들이 왕자들의 처소 울타리 밖에서 살려 달라고 호소했지요.두 왕자는 노예로 팔려가는 조선인들의 절규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아무 도움도 못주는 자신들의 처지를 아파하면서 엉엉 울었다고 합니다.오늘날 중국 조선족 역사에는 이같은 노예 역사의 슬픔이 숨겨져 있습니다. 문:그렇다면 조선인의 중국 이민사를 18세기 후반∼19세기 초반으로 여기는 견해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徐:18세기 후반 이전에 중국으로 온 조선인들 대부분이 중국으로 귀화해 버렸기 때문에 조선인으로 부를 수 있는 구체적인 사람이 없었다는 이유일 것입니다. 문:귀화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徐:앞에서 잠시 말씀드렸듯이 오랫동안 전쟁을 치르느라 만주족이 급격하게 감소되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인구를 증가시키고,군인이 될 인원을 보충하며,노예 농장을 확대하기 위해서였습니다.그런 나머지 만주인 호적에 편입될 사람을 모집하는 정책을 발표하며,편입자 숫자대로 상을 주는 제도가 큰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초기에는 조선인들에게 강압적으로 귀화를 시켰지요.그런 연후에 조선인들은 비참한 처지를 벗어나 보다 나은 생활을 위하여 스스로 귀화하고 만주호적자 모집에 순응하는 자연적 귀화과정을 밟았지요. 헤이룽장조선민족이란 문헌에는 청나라 초기에 만주적에 가입한 조선인의 성씨가 42개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이들의 선조는 대부분 천총(天聰) 연간인 1627∼1635년에 청나라로 온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문:그러니까 17세기 초·중엽에 이미 조선인들은 국적을 바꾸어 청나라 사람이 되고 만주 씨족에 올라 만주인이 되었다는 말씀이군요. 徐:설혹 그런 식으로 귀화를 하지 않고 버틴다 하더라도 오래 가지는 못했을 것입니다.조선인이 다른 민족과 결혼하여 가정을 꾸릴 수밖에 없는 형편이고,이같은 통혼을 기초로 하여 혈연관계와 친척관계를 맺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민족에게 겹겹으로 포위되어 살 수밖에 없는 것이 중국 조선족의 처지임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하북성 청룡현 박씨(朴氏) 조선족에 대한 조사’에 의하면 이 박씨들의 조상은 명나라 말 청나라 초에 중국으로 왔는데 동성동본 불혼 제도를 대대로 이어받았다 합니다. 문:한족,몽골족,만주족으로 국적을 바꾼 사람들은 그 뒤로 조선족으로의 회복이 영영 이뤄지지 않았습니까? 徐:아닙니다.심리적으로는 자신들이 조선인이라는 민족의식이 매우 강하게 존속되어 왔습니다.그러다가 1982년부터 조선족으로 고쳐서 조상이 남겨 둔 민족성을 회복한 사람이 많습니다. 조선 말에서 20세기 일제 때 중국으로 와서 조선족으로 분류된 이들에게 조선은 아직도 그리운 고향입니다.참,마음이 아픕니다. 문:일제 때 두만강,압록강을 건너 만주로 올 수밖에 없었던 한국인들 중에서도 해방 후 고향으로 가지 못한 채 조선족이 된 사람도 있습니까? 徐:아주 많습니다.우리 민족을 갈라 놓은 것은 공산주의자들보다 먼저 일왕(日王)정권이었지요.한반도의 남과 북은 통일이 되면 그날로 하나가 되겠지만 중국 조선족은 다르겠지요.그러니 일제의 식민통치는 중국 조선족에게는 치유될 수 없는 원한의 상처지요. 문:저는 이곳에 오기 전에 러시아에서 살고 있는 한인들인 카레이츠들의 삶을 둘러 볼 기회가 여러번 있었습니다.특히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러시아의 지방 도시인 블라디보스토크,우수리스크,하바로프스크 같은 도시의 장마당이라 부르는 난전에서 조선족 장사꾼을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그들은 국경의 세관에서 비자를 받고 러시아로 오는데,주로 옷장사를 하더군요.하지만 한달간씩 머물며 장사를 해도 체재비를 빼면 남는 것이 없거나 손해를 보기 십상이라 했습니다.그런 그들이 한결같이 꿈꾸는 것은 한국에 가서 돈을 버는 것이었습니다만,요즘 한국에 온 조선족들의 처지가 참 어렵습니다. 러시아의 카레이츠들보다 중국의 조선족 운명이 더 암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둘 다 우리 민족이 안고 사는 슬픔의 뿌리인데…. 徐:한국이 잘 살게 되어야 합니다.경제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잘 살게 되어야만 이 아픔의 역사가 통한과 비극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중국의 조선족,러시아의 카레이츠,일본의 조센징은 모두 350만명 정도라고 한다.이들의 삶을 생각하기 위하여 ‘동북아평화연대’등의 모임이 생겨나고 있지만 중국과 러시아의 조선족,고려인들은 사는 데 어려움이 크다. 그 어려움의 한 원인이 일본의 식민통치가 저지른 잘못이며,식민통치가 옳았다는 발언을 하는 일본의 정치지도자가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여전히 친일파 지식인들이 숭배되기도 한다.˝
  • 친일청산 ‘온라인’ 대장정

    친일청산 및 친일인명사전 편찬기금모금을 위한 ‘온라인 봉화 대장정’이 시작됐다.국회에서 친일진상규명특별법을 통과를 미루고 있는 데 대해 네티즌들이 반발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29일 “1일부터 100일 동안 홈페이지(minjok.or.kr)에서 한반도 지도에 김구,이육사,윤봉길,유관순 등 애국지사의 이름이 명명된 100개의 봉수대를 설치하고 100명의 봉수꾼을 모집한다.”고 밝혔다. ‘이육사 봉수대’는 시인 김지하,‘윤봉길 봉수대’는 양수철 서천문화원장이 봉수장으로 이미 결정되어 있으며,함세웅 신부,소설가 조정래·황석영 등도 참여할 예정이다.서우영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과거 전란이 났을 때 봉수대를 밝혀 위기를 알렸듯이 친일 과거사 문제 등 ‘역사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이번 행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한편 국회에서 ‘일제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이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하면서 사실상 입법이 무산되자 시민단체와 네티즌 등은 “역사적 진실규명에 찬물을 끼얹는 꼴”이라며 정치권을 성토했다.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윤미향 사무처장은 “위안부 문제 등 역사적으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겠다는 국회의 의도가 무엇인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네티즌도 분노하고 있다.한 네티즌은 국회 홈페이지에 “국회의원 숫자 늘리는 데는 번개 같은 사람들이 민족문제는 ‘나 몰라라’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물었다. 민족 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 소속 의원 등 70여명은 이날 오전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앞에서 ‘국회의원과 네티즌이 함께 하는 민족 정기 번개’ 행사를 갖고 친일진상규명특별법의 국회 본회의 상정을 촉구했다.참석자들은 서대문 형무소를 관람하고 순국선열 위패봉안소에 국화를 바쳤다. 김효섭기자 newworld@˝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18)조선족의 뿌리를 찾아서(하)

    문:중국의 노예로 살아야 했던 조선인들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徐:당시 청나라는 계속된 전쟁으로 만주족의 인구가 크게 감소되었지요.대부분 남자들이 전쟁터에서 살다 보니 농사 지을 일손이 부족하여 토지가 황폐해졌지요.전쟁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무기만큼이나 양식이 필요했는데,그 농사를 짓기 위해 포로가 필요했지요. 그 포로들을 농장 노예로 만들어 중노동을 시켰는데,조선인들은 주로 심양 부근인 동주보(東州保),둔소(屯所),안산(鞍山),흥경,청룡,풍윤(豊閏) 지역에 집중배치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문:조선인 노예들은 뒷날 어떻게 처리되었을까요? 徐:민족동화 과정을 거쳐 만주적(滿洲籍)에 편입되어 귀화인이 되었는데,만주씨족통보(滿洲氏族通譜)에 올라 만주인이 되어 버렸습니다. 문:청나라 포로가 된 조선인은 모두 노예가 되었을까요? 徐:소수지만 군인,지도층에 편입된 흔적도 있지만 대개는 농장노예,만주족 귀족의 노비가 되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문:조선인 포로를 분산시키거나 나누어 가졌다는 말인데,혹 인신매매도 있었을까요? 徐:‘심관록’에 그런 기록이 남아 있어요.이 문헌은 심양으로 끌려 온 조선의 두 왕자가 청나라 군인들에게 포위된 채 살았던 처소에서 일어난 일들을 기록한 것입니다.조선인들이 노예로 매매되었거나 포로 가족이 돈을 가져 와서 주고 데려가는 속환(贖還)이 있었음을 알 수 있지요. 문:노예라면 상품으로 매매,양도의 대상이 되는 사람을 말합니다.고대 오리엔트,고대 그리스·로마,식민지시대 아메리카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났지요.노예무역선,노예사냥,미국의 흑인노예라는 말이 그 증거지요.그런데 조선인 전쟁포로가 노예로 매매되었으며,그들이 조선족의 원류이고,오늘날 한국에 노동자로 와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피 속에 그런 비극의 역사가 흐르고 있다는 것은 퍽 충격적인 일입니다. 徐:심관록 기록을 그대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청나라 사람들은 포로가 된 사람들을 매매하려고 모여들었다.성문 밖에는 포로가 된 남녀 수만 명이 있었다.어머니와 아들이 서로 상봉하였거나 형제끼리 서로 만나 끌어 안고 통곡하는 데 울음 소리가 하늘을 울렸다. …잡혀간 사람을 돈을 주고 찾아가기 위하여 날마다 성문 밖에 모였다.포로가 되어 있는 자의 부모나 아내 또는 자식들이 와서 얼마면 데려갈 수 있겠느냐고 가격을 흥정하는데,값이 비싼 경우는 백냥 또는 천냥을 요구하는 일도 있었다.값이 너무 높아 어이없어 통곡하면서 돌아가는 사람도 있었다. 자신을 데리러 올 친척이 없어 홀로 있는 사람은 세자(世子) 관소(館所)에 찾아와서 속환시켜 달라고 울고 있으니 비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고 쓰여 있습니다. 문:세자라면 누구를 말합니까? 徐:조선 인조대왕의 큰아들 이조(소현세자),둘째아들 이호(봉림대군,효종)입니다.병자호란 때 치욕적인 패배를 한 조선의 두 왕자를 인질로 데려왔거든요.노예로 매매당할 가혹한 운명에 놓여진 조선인들이 왕자들의 처소 울타리 밖에서 살려 달라고 호소했지요.두 왕자는 노예로 팔려가는 조선인들의 절규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아무 도움도 못주는 자신들의 처지를 아파하면서 엉엉 울었다고 합니다.오늘날 중국 조선족 역사에는 이같은 노예 역사의 슬픔이 숨겨져 있습니다. 문:그렇다면 조선인의 중국 이민사를 18세기 후반∼19세기 초반으로 여기는 견해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徐:18세기 후반 이전에 중국으로 온 조선인들 대부분이 중국으로 귀화해 버렸기 때문에 조선인으로 부를 수 있는 구체적인 사람이 없었다는 이유일 것입니다. 문:귀화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徐:앞에서 잠시 말씀드렸듯이 오랫동안 전쟁을 치르느라 만주족이 급격하게 감소되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인구를 증가시키고,군인이 될 인원을 보충하며,노예 농장을 확대하기 위해서였습니다.그런 나머지 만주인 호적에 편입될 사람을 모집하는 정책을 발표하며,편입자 숫자대로 상을 주는 제도가 큰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초기에는 조선인들에게 강압적으로 귀화를 시켰지요.그런 연후에 조선인들은 비참한 처지를 벗어나 보다 나은 생활을 위하여 스스로 귀화하고 만주호적자 모집에 순응하는 자연적 귀화과정을 밟았지요. 헤이룽장조선민족이란 문헌에는 청나라 초기에 만주적에 가입한 조선인의 성씨가 42개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이들의 선조는 대부분 천총(天聰) 연간인 1627∼1635년에 청나라로 온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문:그러니까 17세기 초·중엽에 이미 조선인들은 국적을 바꾸어 청나라 사람이 되고 만주 씨족에 올라 만주인이 되었다는 말씀이군요. 徐:설혹 그런 식으로 귀화를 하지 않고 버틴다 하더라도 오래 가지는 못했을 것입니다.조선인이 다른 민족과 결혼하여 가정을 꾸릴 수밖에 없는 형편이고,이같은 통혼을 기초로 하여 혈연관계와 친척관계를 맺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민족에게 겹겹으로 포위되어 살 수밖에 없는 것이 중국 조선족의 처지임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하북성 청룡현 박씨(朴氏) 조선족에 대한 조사’에 의하면 이 박씨들의 조상은 명나라 말 청나라 초에 중국으로 왔는데 동성동본 불혼 제도를 대대로 이어받았다 합니다. 문:한족,몽골족,만주족으로 국적을 바꾼 사람들은 그 뒤로 조선족으로의 회복이 영영 이뤄지지 않았습니까? 徐:아닙니다.심리적으로는 자신들이 조선인이라는 민족의식이 매우 강하게 존속되어 왔습니다.그러다가 1982년부터 조선족으로 고쳐서 조상이 남겨 둔 민족성을 회복한 사람이 많습니다. 조선 말에서 20세기 일제 때 중국으로 와서 조선족으로 분류된 이들에게 조선은 아직도 그리운 고향입니다.참,마음이 아픕니다. 문:일제 때 두만강,압록강을 건너 만주로 올 수밖에 없었던 한국인들 중에서도 해방 후 고향으로 가지 못한 채 조선족이 된 사람도 있습니까? 徐:아주 많습니다.우리 민족을 갈라 놓은 것은 공산주의자들보다 먼저 일왕(日王)정권이었지요.한반도의 남과 북은 통일이 되면 그날로 하나가 되겠지만 중국 조선족은 다르겠지요.그러니 일제의 식민통치는 중국 조선족에게는 치유될 수 없는 원한의 상처지요. 문:저는 이곳에 오기 전에 러시아에서 살고 있는 한인들인 카레이츠들의 삶을 둘러 볼 기회가 여러번 있었습니다.특히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러시아의 지방 도시인 블라디보스토크,우수리스크,하바로프스크 같은 도시의 장마당이라 부르는 난전에서 조선족 장사꾼을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그들은 국경의 세관에서 비자를 받고 러시아로 오는데,주로 옷장사를 하더군요.하지만 한달간씩 머물며 장사를 해도 체재비를 빼면 남는 것이 없거나 손해를 보기 십상이라 했습니다.그런 그들이 한결같이 꿈꾸는 것은 한국에 가서 돈을 버는 것이었습니다만,요즘 한국에 온 조선족들의 처지가 참 어렵습니다. 러시아의 카레이츠들보다 중국의 조선족 운명이 더 암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둘 다 우리 민족이 안고 사는 슬픔의 뿌리인데…. 徐:한국이 잘 살게 되어야 합니다.경제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잘 살게 되어야만 이 아픔의 역사가 통한과 비극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중국의 조선족,러시아의 카레이츠,일본의 조센징은 모두 350만명 정도라고 한다.이들의 삶을 생각하기 위하여 ‘동북아평화연대’등의 모임이 생겨나고 있지만 중국과 러시아의 조선족,고려인들은 사는 데 어려움이 크다. 그 어려움의 한 원인이 일본의 식민통치가 저지른 잘못이며,식민통치가 옳았다는 발언을 하는 일본의 정치지도자가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여전히 친일파 지식인들이 숭배되기도 한다.
  • [사설] 3·1정신으로 친일규명법 처리를

    3·1운동 85주년을 맞았다.세계 만방 피압박민족의 독립자결 운동사에 한 획을 그은 자랑스러운 3·1운동이건만,우리는 오히려 착잡한 마음으로 오늘을 맞고 있다.아직도 친일청산이라는 기본과업조차 제대로 넘어서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민특위의 무산으로 나라의 정기가 흐트러진 지 60년 가까이 지난 이제야 겨우 ‘일제 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 특별법’이 마련됐지만,당초 입법취지를 퇴색시킬 만큼 누더기가 된 데다 그나마 한나라당 반대로 본회의 상정이 유보되고 말았다.16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가 열리는 2일 법안이 통과되지 못하면 법안은 자동 폐기되고 만다.친일규명법이 법사위를 통과할 때도 ‘진풍경’이 벌어졌다.조사대상인 ‘일제 협력 장교’를 규정함에 있어 ‘일반 장교’로 할 것인지 ‘중좌(중령) 이상의 장교’로 할지를 놓고 표결,결국 중좌 이상 장교로 처리됐다.‘통상 군대에서 장교가 정치적 행위를 할 수 있는 계급은 중령’이라는 해괴한 이유를 댔지만 속내는 ‘일본 육사를 나와 일왕에게 충성맹세를 하고 관동군 소좌까지 오른 박정희 전 대통령’ 등을 제외하기 위한 것이었다.언론 예술 교육 분야의 친일행위가 제외된 것도 문제다.친일진상을 제대로 밝혀내기 위해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부분이다. 작금 나라의 사정은 어떠한가.정치권은 싸움박질로 일을 삼고,국민 또한 갈등요소가 생기면 대화와 타협을 거쳐 발전의 밑거름으로 승화시키기보다는 툭하면 소모전을 일삼고 있다.지도층이 백성은 돌보지 않고 권력과 이익 추구에 골몰하는 게 국권을 잃던 무렵과 비슷하다는 지적도 무성하다. 16대 국회는 정쟁으로 허송하다가,선거구 증설 등 자기 밥그릇은 챙기면서도 친일규명법은 물론 농어업인지원특별법,성매매방지 및 처벌법 등 민생법안 20여 건은 내동댕이쳐 놓은 채 본회의 하루를 남겨 두고 있다.정치권은 숭고한 삼일정신을 되새기면서 친일규명법 등을 처리,마지막 역할을 다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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