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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회기넘겨 선거법처리 또 무산 ‘먹통’국회

    여야 정치권이 해도 너무 한다는 지적이다.17대 총선이 40여일 앞으로 다가왔는데도 선거법을 처리하지 못한 채 당리당략에만 몰두하고 있다. 국회는 2일 본회의를 열고 선거법,정치자금법,정당법 등 정치관계법을 일괄 처리할 예정이었으나 여야 의견차로 임시국회 회기 마지막날 자정을 넘겨 처리가 무산됐다. 이에 따라 정치관계법 처리를 위한 3월 임시국회 소집이 불가피해졌고,‘방탄국회’의 오명을 또다시 뒤집어 쓰게 됐다.특히 여야가 서로 네탓만 하면서 짜고 치는 인상이 짙어 강한 비난여론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는 이날 밤 11시23분 본회의를 속개,국회의원 정수를 299명으로 26명을 증원하는 것을 골자로 한 선거법 개정안을 상정했으나 민주당 양승부 의원 등 62명이 통폐합 대상인 무주·진안·장수 등의 선거구 획정을 재조정하는 수정안을 기습상정한 데 대해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반발,임시국회 회기를 넘김으로써 선거법을 처리하지 못했다. 박관용 의장은 3일 0시6분쯤 “임시국회 회기를 넘겨 이 상태로는 표결할 수 없다.”면서 “다시 임시국회를 소집해 선거법 등을 처리할 수밖에 없다.”고 산회를 선포했다.이에 따라 빨라야 6일 본회의를 다시 열어 선거관계법을 처리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국회는 오후 열린 본회의에서 일제 치하에서의 친일·반민족 행위에 대한 역사적 단죄를 위한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특별법’을 통과시켰다.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법 통과로 50여년 만에 친일 역사를 청산할 기틀이 마련됐다. 하지만 입법 과정에서 친일행위의 범위가 축소되면서 시민단체가 반발하는 등 논란이 일고 있어 17대 국회에서 개정 논의가 제기될 여지를 남겨 놓았다.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법은 찬성 151표,반대 2표,기권 10표로 가결됐다. 국회는 그러나 ‘한국전쟁 휴전이전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특별법’은 찬성 72표,반대 96표로 부결처리했다.또 의문사진상규명법 개정안은 아예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해 오는 6월이 활동시한인 의문사진상규명위의 활동 중단이 불가피해졌다. 한편 여야는 오후 정치개혁특위를 속개,막판 절충작업을 벌인 끝에 비례대표 정수를 현행 46명에서 56명으로 늘리는 데 가까스로 합의했다.특위는 또 선거법에 ‘시·도별 국회의원을 최소 3명으로 한다.’는 조항을 신설,2곳으로 줄어든 제주의 선거구를 제주·북제주갑,제주·북제주을,서귀포 등 3곳으로 늘렸다.이에 따라 전국 지역구는 243개로 16개가 늘어났다. 진경호 박록삼기자 jade@ ˝
  • 친일 반민족특별법 수정안 한나라, 2일 처리 검토

    한나라당이 ‘일제 강점하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규명 특별법안’을 둘러싸고 곤혹스러워하고 있다.지난달 27일 국회 본회의 상정을 보류시켰다가 비난여론이 거세기 때문이다.‘친일정당’,‘민족정기 정립을 외면하는 정당’으로 공격당하는 형국이다. 한나라당측은 1일 본질이 잘못 전달됐다고 항변했다.법안 제정 자체를 반대하는 게 아니라는 설명이다.다만 법 조문체계에 문제가 적지 않아 손질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임태희 대표비서실장은 “법 조문을 보면 처벌의 기준을 지위로 삼고 있으나 행위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이어 “당시 일제 때의 지위를 기준으로 처벌할 경우 지나치게 광범위하거나 무리하게 적용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이에 따라 한나라당은 수정안을 제출,2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이강두 정책위의장이 정책국을 통해 수정안을 마련하는 작업을 벌였다.한나라당은 본회의 직전 의총을 열어 수정 및 처리 여부에 대한 최종입장을 정리키로 했다.그럼에도 이 법안이 2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될 지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특히 시민단체 등에서는 법사위에서 수정,본회의에 올려진 법안도 알맹이가 없다고 비판하고 있다.한나라당이 이를 더 고친다면 오히려 17대 국회에서 법안을 처리하는 쪽이 낫다는 의견까지 나온다. 이지운기자 jj@˝
  • 盧 3·1절 기념사 파장 제2의 ‘역사 바로세우기’로 가나

    노무현 대통령이 1일 오전 10시 열린 3·1절 기념식 참석을 2시간여 남겨놓은 상황에서 직접 작성한 ‘기념사’가 외교적으로 미묘한 파장을 일으키는 가운데,발언의 의도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 일제잔재 청산 등 ‘제2의 역사바로세우기’라는 평가가 있는가 하면,다른 한편에선 4월 총선을 앞두고 반일감정이 거센 ‘젊은층 끌어안기’라는 분석도 나온다.평화헌법 개정 움직임과 대북제재법안 추진 등 최근 일본의 강경보수화 행보에 경고를 던진 것이란 해석도 있다. 노 대통령은 기념사 끝부분에서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매년 신사참배 강행’ 발언을 직접 겨냥한 것으로 보이는,간결하지만 강력한 메시지를 밝혔다.노 대통령은 “국가적 지도자가 우리 국민들의 가슴에 상처를 주는 발언을 해서는 안된다.”면서 “우리 국민들과 정부가 자제할 수 있도록 일본도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청와대가 이날 미리 배포한 기념사에는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이번 총선에서 국민들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이 중심 내용이었다.그러나 노 대통령은 현장에서 완전히 다른 기념사를 낭독했다.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이 어제 낮에 ‘일본에 대한 언급’ 등을 연설문에 반영하라고 지시를 했는데,연설문팀에서 이를 반영하지 못했던 것”이라며,“결국 대통령이 오늘 아침 기념사가 미흡하다고 판단해,오전 8시쯤부터 2시간 남짓한 시간에 메모형식의 연설문을 직접 작성,80% 정도 완성된 상태에서 연설에 임했다.”고 설명했다.청와대는 고이즈미를 겨냥했느냐는 질문에 “아니다.”면서 “있는 그대로 해석해달라.”고 주문했다. 윤 대변인은 차라리 “과거는 말끔히 청산되지 않았고,새로운 역사의 대의도 분명히 서지 못했다.”와 “국회에서 친일의 역사를 어떻게 밝힐 것인가를 놓고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는 대목에 주목해달라고 말했다.독립투사와 그의 후손,위안부 할머니 등의 문제를 과거 역사를 바로 세워나가는 차원에서 접근하겠다는 것이다.또 친일행위 진상을 밝히는 법조문 등이 대거 삭제된 친일규명특별법 등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이날 언급은 지난해 6월 일본 순방에서 “동북아의 미래를 위해 과거를 털고,감정적 대응은 자제해야 한다.”던 기본틀에서 확실히 벗어난 것이라는 지적이다.때문에 젊은 유권자들을 겨냥했다는 정치적 분석도 없지 않다. 올초 20∼30대 젊은이들을 후끈 달아오르게 한 것 중 하나가 ‘사이버 임진왜란’이었다.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과 ‘독도는 일본땅’ 발언,아소 다로 총무상의 ‘일본도 독도기념우표’발행 제안 등이 발단이었다.때문에 노 대통령의 이번 언급은 2002년 대선에서 ‘촛불시위’와 맞물려 나왔던 “반미면 어떠냐.”는 발언을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문소영기자 symun@˝
  • [기고] ‘친일 규명법’ 왜 머뭇거리나/박유철 전 독립기념관 관장

    3·1절 85돌을 맞은 지금 우리가 가장 부끄러워할 일은,과거 일본의 식민지였기 때문이라기보다 광복 반세기를 훌쩍 넘긴 지금까지 잘못된 과거사에 책임을 물은 일도,물을 수도 없다는 점이다.당시 일제에 빌붙었던 당사자들에 대한 처벌은 고사하고,그들 스스로가 반성도 사죄도 없고,부끄러워할 줄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오만과 뻔뻔스러움을 대물림까지 하는 현실에 분노를 느끼게 된다.우리나라 꼴이 이 모양이니 잘못된 한·일 관계의 과거사야 들춰내 무엇하겠는가.친일파가 득세하는 세태에서 과거사가 청산될 리 없다.이 과거사를 정리하지 않고 어찌 이 나라에 건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할 수 있겠는가.과거사를 반드시 정리하고 청산해야 할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과거의 채권·채무 관계를 정리하지 않고 어찌 새로운 거래가 이루어지겠는가. 일본이 툭하면 제기하는 식민지 시혜론과 신사참배,교과서 왜곡 등의 행위도 따지고 보면 우리가 과거사를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한·일 관계와 비슷한 독·불 관계를 보면 독일의 적극적인 사죄와 반성으로 과거사를 깨끗하게 청산해 어느때보다 원만한 관계가 정립되었다.프랑스는 종전 60년이 가까운 지금도 나치 부역행위를 가차없이 처벌한다.부역행위를 숨기고 경찰국장과 장관까지 지낸 자가 90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법정에 끌려나와 10년 징역형을 받은 기사를 보았다.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프랑스 사회가 그것을 지극히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역사에 대해 경외심을 요구하는 프랑스의 사회적 환경이다.역사에 대해 경외심이 없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한다.나치 부역자에 대한 철저한 숙청이 오늘날 프랑스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프랑스에서는 진정한 과거 청산이 있었기에 그 바탕 위에 국가의 진로를 바르게 설정하고,건전하고 정의가 살아 있는 국가로 국제사회에서 떳떳하게 행세하고 있지 않는가. 16대 국회에서 과거청산 관련 4대 법안의 발의는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 역사의 진보를 확인하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비록 불법 정치자금 수사에 묻혀 일반은 물론 언론에서조차 큰 관심을 갖지 않았지만 이 법안이야말로 엄청난 역사의 변화요,사회환경의 변화였다.그런데 이 4대 법안 중 친일관련법과 6·25 전쟁 휴전 이전 민간인 희생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등에 관한 법률(안),이른바 6·25 통합 특별법은 국회 본회의에 상정하기가 어렵다고 한다.이로써 제16대 국회는 불법 정치자금 수수란 수치보다 더 부끄러운 모습을 민족과 역사 앞에 노출한 것이다. 더구나 친일규명 관련법은 국회 법사위에서 당초 법안에 수정을 거듭하여 친일행위의 죄상을 규명하고 단죄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있으나마나 한 법으로 변질되고 말았다.그것조차 본회의 상정이 보류된다니 민족정기와 사회정의가 통째로 사라지는 느낌이다.그런다고 친일행위를 한 그들의 과거가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결국 이를 계속 감춰 국민을 기만하고 역사를 경시하는 행위는 그 자신들을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다. 친일행위자들은 과거의 잘못된 역사에 대한 심판을 면했을는지 모르나 용서받을 기회까지 잃은 셈이다.우리는 민족의 정체성과 자존심을 또 한번 꺾이게 되었다.진정한 의미에서의 국민화합은 철저한 과거 청산의 토대 위에서만 가능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항일했던 사람,친일했던 사람,어쩔 수 없이 입을 다물었던 사람들 사이에 맺혀 있는 갈등,…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안목으로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고 용서하고 화해하는 지혜를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밝힌 것은 전적으로 옳다.국회의원들은 역사적 안목을 가져야 한다.그래야 16대 국회도 살고 우리 민족도 자존심을 찾게 될 것이다. 박유철 전 독립기념관 관장˝
  • 日간행 ‘조선공로자명감’ 최초 공개

    1일 ‘3·1 독립만세 85주년’을 맞아 당시 조선총독부가 공로자(친일자)를 낱낱이 밝혔던 책이 국내 처음으로 공개됐다. 이 책은 일본이 패망하면서 의도적으로 불살랐거나 본국으로 회수해 갔고 국내에 남아 있던 것도 친일파 후손들이 공개를 꺼려 그동안 복사본만 간혹 나돌았다. 금석문 권위자이자 고문서 수집가인 심정섭(61·광주 동구 학동)씨는 1960년 광주 헌책방에서 사들인 ‘조선공로자명감(朝鮮功勞者銘鑑·1808쪽)’을 소개했다.이 책은 조선총독부가 강점 25년째를 기념해 1935년 일어로 펴냈다.일제통치에 적극 가담한 일본인 2560명과 한국인 353명 등 민·관 공로자 2913명의 이름과 출생,직위,경력,친일행적 등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책은 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 등을 망라한 6부로 나눠져 있다.▲1부 조선통치 변천사▲2∼3부 친일파 명단▲4부 조선경제 발달사▲5부 조선금융조합 발달사▲6부 조선 13도지(道誌) 등이다. 명단에는 이완용과 그의 형인 이윤용을 필두로,‘건필(健筆)을 휘날렸다.’는 전무길 조선일보기자,김연수 경성방직사장,강우규의사 체포자인 김태석 고등계형사,민복기 대법원장의 부친인 민병석,장택상씨의 친형인 장직상,현준호 호남은행장의 부친 현기봉씨 등이 망라돼 있다. 광주 남기창기자 kcnam@˝
  • 盧, 고이즈미 야스쿠니 참배 비판

    노무현 대통령은 “일본에 대해 한마디 꼭 충고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서 “지각없는 국민이나 인기에 급급하는 한두 사람의 정치인과 달리 적어도 국가적 지도자는,우리 국민들의 가슴에 상처를 주는 발언들을 해선 안 된다.”고 1일 말했다. 노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매년 야스쿠니 신사참배 강행’ 발언을 직접 겨냥한 것으로 풀이돼 외교적 파장이 예상된다.이와 함께 야당측은 ‘총선용 애국심 고취’라고 비난하고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85회 3·1절 기념식에 참석,자신이 직접 작성한 연설에서 이같이 말하고 “한국의 정치 지도자가 굳이 역사적 사실을,오늘 일어나고 있는 일본의 법·제도 변화를,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소됐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특히 노 대통령은 “우리 국민과 정부는 절제하고 있다.”고 거듭 강조한뒤 “이는 미래를 위해서 마음의 상처를 주는 이야기를 절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이어 “우리 국민들이,우리 정부가 절제할 수 있게 일본도 최선을 다해서 노력해야 한다.”고 경고성 메시지를 덧붙였다. 노 대통령은 또 “과거는 말끔히 청산되지 않았고 새 역사의 대의도 분명히 서지 못했으며 역사적 사실과 진실은 아직 많은 것이 묻혀 있다.”며 “아직도 국회에서 친일 역사를 어떻게 밝힐 것인가를 놓고 혼란을 거듭 하고 있으며,지금도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은 한을 씻지 못하고 정리되지 못한 역사 앞에서 몸부림치고 있다.”고 말했다.특히 노 대통령은 “독립투사와 후손들의 오늘날 사회적 처지는 소외와 고통으로,독립투사들이 우리 역사를 주도하지 못해 아직도 역사에 대한 해석,오늘의 현실에 대한 인식에 있어 대립과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고 “이제 다시 한번 일어서 풀지 못한 숙제를 풀어나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편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노 대통령의 3·1절 기념사와 관련,“노 대통령이 최근 국민 사이에 일고 있는 반일 감정에 편승,총선에서 재미를 보려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18)조선족의 뿌리를 찾아서(하)

    문:중국의 노예로 살아야 했던 조선인들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徐:당시 청나라는 계속된 전쟁으로 만주족의 인구가 크게 감소되었지요.대부분 남자들이 전쟁터에서 살다 보니 농사 지을 일손이 부족하여 토지가 황폐해졌지요.전쟁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무기만큼이나 양식이 필요했는데,그 농사를 짓기 위해 포로가 필요했지요. 그 포로들을 농장 노예로 만들어 중노동을 시켰는데,조선인들은 주로 심양 부근인 동주보(東州保),둔소(屯所),안산(鞍山),흥경,청룡,풍윤(豊閏) 지역에 집중배치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문:조선인 노예들은 뒷날 어떻게 처리되었을까요? 徐:민족동화 과정을 거쳐 만주적(滿洲籍)에 편입되어 귀화인이 되었는데,만주씨족통보(滿洲氏族通譜)에 올라 만주인이 되어 버렸습니다. 문:청나라 포로가 된 조선인은 모두 노예가 되었을까요? 徐:소수지만 군인,지도층에 편입된 흔적도 있지만 대개는 농장노예,만주족 귀족의 노비가 되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문:조선인 포로를 분산시키거나 나누어 가졌다는 말인데,혹 인신매매도 있었을까요? 徐:‘심관록’에 그런 기록이 남아 있어요.이 문헌은 심양으로 끌려 온 조선의 두 왕자가 청나라 군인들에게 포위된 채 살았던 처소에서 일어난 일들을 기록한 것입니다.조선인들이 노예로 매매되었거나 포로 가족이 돈을 가져 와서 주고 데려가는 속환(贖還)이 있었음을 알 수 있지요. 문:노예라면 상품으로 매매,양도의 대상이 되는 사람을 말합니다.고대 오리엔트,고대 그리스·로마,식민지시대 아메리카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났지요.노예무역선,노예사냥,미국의 흑인노예라는 말이 그 증거지요.그런데 조선인 전쟁포로가 노예로 매매되었으며,그들이 조선족의 원류이고,오늘날 한국에 노동자로 와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피 속에 그런 비극의 역사가 흐르고 있다는 것은 퍽 충격적인 일입니다. 徐:심관록 기록을 그대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청나라 사람들은 포로가 된 사람들을 매매하려고 모여들었다.성문 밖에는 포로가 된 남녀 수만 명이 있었다.어머니와 아들이 서로 상봉하였거나 형제끼리 서로 만나 끌어 안고 통곡하는 데 울음 소리가 하늘을 울렸다. …잡혀간 사람을 돈을 주고 찾아가기 위하여 날마다 성문 밖에 모였다.포로가 되어 있는 자의 부모나 아내 또는 자식들이 와서 얼마면 데려갈 수 있겠느냐고 가격을 흥정하는데,값이 비싼 경우는 백냥 또는 천냥을 요구하는 일도 있었다.값이 너무 높아 어이없어 통곡하면서 돌아가는 사람도 있었다. 자신을 데리러 올 친척이 없어 홀로 있는 사람은 세자(世子) 관소(館所)에 찾아와서 속환시켜 달라고 울고 있으니 비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고 쓰여 있습니다. 문:세자라면 누구를 말합니까? 徐:조선 인조대왕의 큰아들 이조(소현세자),둘째아들 이호(봉림대군,효종)입니다.병자호란 때 치욕적인 패배를 한 조선의 두 왕자를 인질로 데려왔거든요.노예로 매매당할 가혹한 운명에 놓여진 조선인들이 왕자들의 처소 울타리 밖에서 살려 달라고 호소했지요.두 왕자는 노예로 팔려가는 조선인들의 절규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아무 도움도 못주는 자신들의 처지를 아파하면서 엉엉 울었다고 합니다.오늘날 중국 조선족 역사에는 이같은 노예 역사의 슬픔이 숨겨져 있습니다. 문:그렇다면 조선인의 중국 이민사를 18세기 후반∼19세기 초반으로 여기는 견해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徐:18세기 후반 이전에 중국으로 온 조선인들 대부분이 중국으로 귀화해 버렸기 때문에 조선인으로 부를 수 있는 구체적인 사람이 없었다는 이유일 것입니다. 문:귀화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徐:앞에서 잠시 말씀드렸듯이 오랫동안 전쟁을 치르느라 만주족이 급격하게 감소되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인구를 증가시키고,군인이 될 인원을 보충하며,노예 농장을 확대하기 위해서였습니다.그런 나머지 만주인 호적에 편입될 사람을 모집하는 정책을 발표하며,편입자 숫자대로 상을 주는 제도가 큰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초기에는 조선인들에게 강압적으로 귀화를 시켰지요.그런 연후에 조선인들은 비참한 처지를 벗어나 보다 나은 생활을 위하여 스스로 귀화하고 만주호적자 모집에 순응하는 자연적 귀화과정을 밟았지요. 헤이룽장조선민족이란 문헌에는 청나라 초기에 만주적에 가입한 조선인의 성씨가 42개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이들의 선조는 대부분 천총(天聰) 연간인 1627∼1635년에 청나라로 온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문:그러니까 17세기 초·중엽에 이미 조선인들은 국적을 바꾸어 청나라 사람이 되고 만주 씨족에 올라 만주인이 되었다는 말씀이군요. 徐:설혹 그런 식으로 귀화를 하지 않고 버틴다 하더라도 오래 가지는 못했을 것입니다.조선인이 다른 민족과 결혼하여 가정을 꾸릴 수밖에 없는 형편이고,이같은 통혼을 기초로 하여 혈연관계와 친척관계를 맺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민족에게 겹겹으로 포위되어 살 수밖에 없는 것이 중국 조선족의 처지임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하북성 청룡현 박씨(朴氏) 조선족에 대한 조사’에 의하면 이 박씨들의 조상은 명나라 말 청나라 초에 중국으로 왔는데 동성동본 불혼 제도를 대대로 이어받았다 합니다. 문:한족,몽골족,만주족으로 국적을 바꾼 사람들은 그 뒤로 조선족으로의 회복이 영영 이뤄지지 않았습니까? 徐:아닙니다.심리적으로는 자신들이 조선인이라는 민족의식이 매우 강하게 존속되어 왔습니다.그러다가 1982년부터 조선족으로 고쳐서 조상이 남겨 둔 민족성을 회복한 사람이 많습니다. 조선 말에서 20세기 일제 때 중국으로 와서 조선족으로 분류된 이들에게 조선은 아직도 그리운 고향입니다.참,마음이 아픕니다. 문:일제 때 두만강,압록강을 건너 만주로 올 수밖에 없었던 한국인들 중에서도 해방 후 고향으로 가지 못한 채 조선족이 된 사람도 있습니까? 徐:아주 많습니다.우리 민족을 갈라 놓은 것은 공산주의자들보다 먼저 일왕(日王)정권이었지요.한반도의 남과 북은 통일이 되면 그날로 하나가 되겠지만 중국 조선족은 다르겠지요.그러니 일제의 식민통치는 중국 조선족에게는 치유될 수 없는 원한의 상처지요. 문:저는 이곳에 오기 전에 러시아에서 살고 있는 한인들인 카레이츠들의 삶을 둘러 볼 기회가 여러번 있었습니다.특히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러시아의 지방 도시인 블라디보스토크,우수리스크,하바로프스크 같은 도시의 장마당이라 부르는 난전에서 조선족 장사꾼을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그들은 국경의 세관에서 비자를 받고 러시아로 오는데,주로 옷장사를 하더군요.하지만 한달간씩 머물며 장사를 해도 체재비를 빼면 남는 것이 없거나 손해를 보기 십상이라 했습니다.그런 그들이 한결같이 꿈꾸는 것은 한국에 가서 돈을 버는 것이었습니다만,요즘 한국에 온 조선족들의 처지가 참 어렵습니다. 러시아의 카레이츠들보다 중국의 조선족 운명이 더 암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둘 다 우리 민족이 안고 사는 슬픔의 뿌리인데…. 徐:한국이 잘 살게 되어야 합니다.경제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잘 살게 되어야만 이 아픔의 역사가 통한과 비극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중국의 조선족,러시아의 카레이츠,일본의 조센징은 모두 350만명 정도라고 한다.이들의 삶을 생각하기 위하여 ‘동북아평화연대’등의 모임이 생겨나고 있지만 중국과 러시아의 조선족,고려인들은 사는 데 어려움이 크다. 그 어려움의 한 원인이 일본의 식민통치가 저지른 잘못이며,식민통치가 옳았다는 발언을 하는 일본의 정치지도자가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여전히 친일파 지식인들이 숭배되기도 한다.˝
  • 친일청산 ‘온라인’ 대장정

    친일청산 및 친일인명사전 편찬기금모금을 위한 ‘온라인 봉화 대장정’이 시작됐다.국회에서 친일진상규명특별법을 통과를 미루고 있는 데 대해 네티즌들이 반발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29일 “1일부터 100일 동안 홈페이지(minjok.or.kr)에서 한반도 지도에 김구,이육사,윤봉길,유관순 등 애국지사의 이름이 명명된 100개의 봉수대를 설치하고 100명의 봉수꾼을 모집한다.”고 밝혔다. ‘이육사 봉수대’는 시인 김지하,‘윤봉길 봉수대’는 양수철 서천문화원장이 봉수장으로 이미 결정되어 있으며,함세웅 신부,소설가 조정래·황석영 등도 참여할 예정이다.서우영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과거 전란이 났을 때 봉수대를 밝혀 위기를 알렸듯이 친일 과거사 문제 등 ‘역사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이번 행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한편 국회에서 ‘일제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이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하면서 사실상 입법이 무산되자 시민단체와 네티즌 등은 “역사적 진실규명에 찬물을 끼얹는 꼴”이라며 정치권을 성토했다.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윤미향 사무처장은 “위안부 문제 등 역사적으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겠다는 국회의 의도가 무엇인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네티즌도 분노하고 있다.한 네티즌은 국회 홈페이지에 “국회의원 숫자 늘리는 데는 번개 같은 사람들이 민족문제는 ‘나 몰라라’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물었다. 민족 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 소속 의원 등 70여명은 이날 오전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앞에서 ‘국회의원과 네티즌이 함께 하는 민족 정기 번개’ 행사를 갖고 친일진상규명특별법의 국회 본회의 상정을 촉구했다.참석자들은 서대문 형무소를 관람하고 순국선열 위패봉안소에 국화를 바쳤다. 김효섭기자 newworld@˝
  • [조정래의 세상보기] 역사의 빛과 그늘

    우리에게 식민지 역사는 잊어도 좋은 옛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피흘리고 있는 현실이다.친일파 청산의 문제가 세월이 갈수록 더욱 솟아오르는 것은 그 좋은 반응이다. 한반도를 집어삼킬 모든 계획을 완료한 이토히로부미는 “우리 일본인 300만명만 이주시키면 조선 반도는 영원히 일본이 지배할 수 있다.”고 공언했다.그리하여 그는 청년 안중근의 총탄을 맞지 않을 수 없었다.그는 죽었으나 그가 세운 계획은 착착 진행되었다.한반도를 병합했으며,곧바로 토지조사 사업을 시작했고,그 8년 동안에 이땅의 농지 45%를 강탈했다.조선 농민 절반 이상을 소작농으로 몰락시킨 그 토지조사사업은 일본 농민들을 집단으로 이주시키는 데 필요한 농토 확보 방법이었다. 우리가 광복되었을 때 이땅에 살고 있었던 일본인들은 모두 얼마였을까.대략 80만명 정도였다.그런데 거기에 기생한 친일파 민족반역자들은 얼마였을까.줄잡아 150만명이 넘었다.일본인들보다 두 배나 많은 수가 그들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어느 집에 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까지 샅샅이 알게 해주었다.독립투사들이 만주 어느 지역에서 잡히든 이틀이면 신원 파악을 완료할 수 있다고 큰소리쳤던 조선총독부의 정보망도 결국 그 친일파들의 충성 덕분이었다.그런데,일본인 300만 이주를 계획했던 이토히로부미의 구상은 실패한 것일까.그렇지 않다.일본은 친일파 150여만명을 자기네 충복으로 거느림으로써 복잡한 이주책을 쓰지 않고도 그 계획을 달성한 것이었다.어느 시인은 광복된 조국에서 친일의 변을 지치지도 않고 이렇게 되풀이했다.“일본이 200년을 갈 줄 알았다.인도에서 영국이 그랬듯이.” 그래서 평생 그늘에서 살다 죽을 수 없어 양지를 찾아 친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일본은 조선사람들의 이런 심리상태까지 꿰뚫고 있었다.일본의 지배가 길어질수록 친일파들은 늘어날 텐데 굳이 자기네 국민들에게 이주를 강압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럼 독립투사들은 얼마나 되었을까.식민지배 36년에 걸쳐서 줄기차게 투쟁을 전개했지만 그 수는 미처 10만명에 이르지 못했다.이것이 우리의 비극이다. 우리는 일본의 폭압이 두려워 집단적인 적극 저항을 하지 못한 비겁을 저질러 결국 36년 동안 400여만명이나 죽어가야 했다.그런 참극을 막기 위해 적극 저항을 선택한 지도자가 있었다.의열단을 이끌었던 김원봉 선생이다.의열단은 한마디로 ‘너 죽고 나 죽자’는 투쟁방법을 실행한,요즘 말로 자살폭탄테러를 감행했다.그래서 총독부가 내건 현상금 중에 김원봉 선생이 김구 선생을 능가해 으뜸이었다.일본 ‘천황’의 목숨까지 위협했던 의열단은 그러나 해산되어야 했다.참 슬프고 어이없게도 활동자금의 고갈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김원봉 선생의 뜻을 따라 10만명,아니 5만명만 뭉쳐서 전국 도처에서 날마다 일본인을 몇 십명,몇 백명씩 죽이고 우리 조선사람들도 자결하는 일이 벌어졌더라면 조선총독부는 일본인 5만명이 죽기 전에 줄행랑을 쳤을 것이다.그랬으면 우리의 광복은 25년쯤은 더 빨리 왔을 것이고,우리 동포가 400만명씩이나 희생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이런 말을 그때 상황을 무시한 허황된 공리공론이라고 지탄할 사람이 많을지도 모른다.그런데,10여년 전에 남미 어느 나라의 군부독재 폭압을 그린 ‘로메로’라는 영화가 있었다.그 마지막 자막은 ‘그들은 뭉치지 못해 결국 7만명이나 죽어 갔다.’고 쓰고 있었다. 흔히 역사에서 배운다고 말한다.특히 우리의 참혹한 식민지 역사에서는 배울 것이 많다.군위안부 비극도 그 중의 하나다.그 쓰라린 슬픔을 상업화하려다가 큰 말썽이 일어났다.그 원인은 역사의식 부재와 황금만능주의에서 비롯되었다.그들이 역사의 진실을 캐려는 진정성으로 군위안부를 다룬 영화를 만들었더라면 그 누드 사진들보다 훨씬 더 야한 장면들이 나왔더라도 전혀 말썽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오히려 ‘실미도’ 못지않은 감동을 불러일으키고,돈벌이에도 성공했을 것이다.그 사건을 향해 삽시간에 일어난 뜨거운 지탄은 역사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진지성과 건강성을 입증하는 것이다.우리에게 식민지 역사는 잊어도 좋은 옛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피흘리고 있는 현실이다.친일파 청산의 문제가 세월이 갈수록 더욱 솟아오르는 것은 그 좋은 반응이다. 작가·동국대 석좌교수
  • [조정래의 세상보기] 역사의 빛과 그늘

    우리에게 식민지 역사는 잊어도 좋은 옛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피흘리고 있는 현실이다.친일파 청산의 문제가 세월이 갈수록 더욱 솟아오르는 것은 그 좋은 반응이다. 한반도를 집어삼킬 모든 계획을 완료한 이토히로부미는 “우리 일본인 300만명만 이주시키면 조선 반도는 영원히 일본이 지배할 수 있다.”고 공언했다.그리하여 그는 청년 안중근의 총탄을 맞지 않을 수 없었다.그는 죽었으나 그가 세운 계획은 착착 진행되었다.한반도를 병합했으며,곧바로 토지조사 사업을 시작했고,그 8년 동안에 이땅의 농지 45%를 강탈했다.조선 농민 절반 이상을 소작농으로 몰락시킨 그 토지조사사업은 일본 농민들을 집단으로 이주시키는 데 필요한 농토 확보 방법이었다. 우리가 광복되었을 때 이땅에 살고 있었던 일본인들은 모두 얼마였을까.대략 80만명 정도였다.그런데 거기에 기생한 친일파 민족반역자들은 얼마였을까.줄잡아 150만명이 넘었다.일본인들보다 두 배나 많은 수가 그들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어느 집에 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까지 샅샅이 알게 해주었다.독립투사들이 만주 어느 지역에서 잡히든 이틀이면 신원 파악을 완료할 수 있다고 큰소리쳤던 조선총독부의 정보망도 결국 그 친일파들의 충성 덕분이었다.그런데,일본인 300만 이주를 계획했던 이토히로부미의 구상은 실패한 것일까.그렇지 않다.일본은 친일파 150여만명을 자기네 충복으로 거느림으로써 복잡한 이주책을 쓰지 않고도 그 계획을 달성한 것이었다.어느 시인은 광복된 조국에서 친일의 변을 지치지도 않고 이렇게 되풀이했다.“일본이 200년을 갈 줄 알았다.인도에서 영국이 그랬듯이.” 그래서 평생 그늘에서 살다 죽을 수 없어 양지를 찾아 친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일본은 조선사람들의 이런 심리상태까지 꿰뚫고 있었다.일본의 지배가 길어질수록 친일파들은 늘어날 텐데 굳이 자기네 국민들에게 이주를 강압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럼 독립투사들은 얼마나 되었을까.식민지배 36년에 걸쳐서 줄기차게 투쟁을 전개했지만 그 수는 미처 10만명에 이르지 못했다.이것이 우리의 비극이다. 우리는 일본의 폭압이 두려워 집단적인 적극 저항을 하지 못한 비겁을 저질러 결국 36년 동안 400여만명이나 죽어가야 했다.그런 참극을 막기 위해 적극 저항을 선택한 지도자가 있었다.의열단을 이끌었던 김원봉 선생이다.의열단은 한마디로 ‘너 죽고 나 죽자’는 투쟁방법을 실행한,요즘 말로 자살폭탄테러를 감행했다.그래서 총독부가 내건 현상금 중에 김원봉 선생이 김구 선생을 능가해 으뜸이었다.일본 ‘천황’의 목숨까지 위협했던 의열단은 그러나 해산되어야 했다.참 슬프고 어이없게도 활동자금의 고갈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김원봉 선생의 뜻을 따라 10만명,아니 5만명만 뭉쳐서 전국 도처에서 날마다 일본인을 몇 십명,몇 백명씩 죽이고 우리 조선사람들도 자결하는 일이 벌어졌더라면 조선총독부는 일본인 5만명이 죽기 전에 줄행랑을 쳤을 것이다.그랬으면 우리의 광복은 25년쯤은 더 빨리 왔을 것이고,우리 동포가 400만명씩이나 희생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이런 말을 그때 상황을 무시한 허황된 공리공론이라고 지탄할 사람이 많을지도 모른다.그런데,10여년 전에 남미 어느 나라의 군부독재 폭압을 그린 ‘로메로’라는 영화가 있었다.그 마지막 자막은 ‘그들은 뭉치지 못해 결국 7만명이나 죽어 갔다.’고 쓰고 있었다. 흔히 역사에서 배운다고 말한다.특히 우리의 참혹한 식민지 역사에서는 배울 것이 많다.군위안부 비극도 그 중의 하나다.그 쓰라린 슬픔을 상업화하려다가 큰 말썽이 일어났다.그 원인은 역사의식 부재와 황금만능주의에서 비롯되었다.그들이 역사의 진실을 캐려는 진정성으로 군위안부를 다룬 영화를 만들었더라면 그 누드 사진들보다 훨씬 더 야한 장면들이 나왔더라도 전혀 말썽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오히려 ‘실미도’ 못지않은 감동을 불러일으키고,돈벌이에도 성공했을 것이다.그 사건을 향해 삽시간에 일어난 뜨거운 지탄은 역사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진지성과 건강성을 입증하는 것이다.우리에게 식민지 역사는 잊어도 좋은 옛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피흘리고 있는 현실이다.친일파 청산의 문제가 세월이 갈수록 더욱 솟아오르는 것은 그 좋은 반응이다. 작가·동국대 석좌교수˝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18)조선족의 뿌리를 찾아서(하)

    문:중국의 노예로 살아야 했던 조선인들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徐:당시 청나라는 계속된 전쟁으로 만주족의 인구가 크게 감소되었지요.대부분 남자들이 전쟁터에서 살다 보니 농사 지을 일손이 부족하여 토지가 황폐해졌지요.전쟁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무기만큼이나 양식이 필요했는데,그 농사를 짓기 위해 포로가 필요했지요. 그 포로들을 농장 노예로 만들어 중노동을 시켰는데,조선인들은 주로 심양 부근인 동주보(東州保),둔소(屯所),안산(鞍山),흥경,청룡,풍윤(豊閏) 지역에 집중배치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문:조선인 노예들은 뒷날 어떻게 처리되었을까요? 徐:민족동화 과정을 거쳐 만주적(滿洲籍)에 편입되어 귀화인이 되었는데,만주씨족통보(滿洲氏族通譜)에 올라 만주인이 되어 버렸습니다. 문:청나라 포로가 된 조선인은 모두 노예가 되었을까요? 徐:소수지만 군인,지도층에 편입된 흔적도 있지만 대개는 농장노예,만주족 귀족의 노비가 되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문:조선인 포로를 분산시키거나 나누어 가졌다는 말인데,혹 인신매매도 있었을까요? 徐:‘심관록’에 그런 기록이 남아 있어요.이 문헌은 심양으로 끌려 온 조선의 두 왕자가 청나라 군인들에게 포위된 채 살았던 처소에서 일어난 일들을 기록한 것입니다.조선인들이 노예로 매매되었거나 포로 가족이 돈을 가져 와서 주고 데려가는 속환(贖還)이 있었음을 알 수 있지요. 문:노예라면 상품으로 매매,양도의 대상이 되는 사람을 말합니다.고대 오리엔트,고대 그리스·로마,식민지시대 아메리카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났지요.노예무역선,노예사냥,미국의 흑인노예라는 말이 그 증거지요.그런데 조선인 전쟁포로가 노예로 매매되었으며,그들이 조선족의 원류이고,오늘날 한국에 노동자로 와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피 속에 그런 비극의 역사가 흐르고 있다는 것은 퍽 충격적인 일입니다. 徐:심관록 기록을 그대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청나라 사람들은 포로가 된 사람들을 매매하려고 모여들었다.성문 밖에는 포로가 된 남녀 수만 명이 있었다.어머니와 아들이 서로 상봉하였거나 형제끼리 서로 만나 끌어 안고 통곡하는 데 울음 소리가 하늘을 울렸다. …잡혀간 사람을 돈을 주고 찾아가기 위하여 날마다 성문 밖에 모였다.포로가 되어 있는 자의 부모나 아내 또는 자식들이 와서 얼마면 데려갈 수 있겠느냐고 가격을 흥정하는데,값이 비싼 경우는 백냥 또는 천냥을 요구하는 일도 있었다.값이 너무 높아 어이없어 통곡하면서 돌아가는 사람도 있었다. 자신을 데리러 올 친척이 없어 홀로 있는 사람은 세자(世子) 관소(館所)에 찾아와서 속환시켜 달라고 울고 있으니 비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고 쓰여 있습니다. 문:세자라면 누구를 말합니까? 徐:조선 인조대왕의 큰아들 이조(소현세자),둘째아들 이호(봉림대군,효종)입니다.병자호란 때 치욕적인 패배를 한 조선의 두 왕자를 인질로 데려왔거든요.노예로 매매당할 가혹한 운명에 놓여진 조선인들이 왕자들의 처소 울타리 밖에서 살려 달라고 호소했지요.두 왕자는 노예로 팔려가는 조선인들의 절규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아무 도움도 못주는 자신들의 처지를 아파하면서 엉엉 울었다고 합니다.오늘날 중국 조선족 역사에는 이같은 노예 역사의 슬픔이 숨겨져 있습니다. 문:그렇다면 조선인의 중국 이민사를 18세기 후반∼19세기 초반으로 여기는 견해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徐:18세기 후반 이전에 중국으로 온 조선인들 대부분이 중국으로 귀화해 버렸기 때문에 조선인으로 부를 수 있는 구체적인 사람이 없었다는 이유일 것입니다. 문:귀화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徐:앞에서 잠시 말씀드렸듯이 오랫동안 전쟁을 치르느라 만주족이 급격하게 감소되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인구를 증가시키고,군인이 될 인원을 보충하며,노예 농장을 확대하기 위해서였습니다.그런 나머지 만주인 호적에 편입될 사람을 모집하는 정책을 발표하며,편입자 숫자대로 상을 주는 제도가 큰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초기에는 조선인들에게 강압적으로 귀화를 시켰지요.그런 연후에 조선인들은 비참한 처지를 벗어나 보다 나은 생활을 위하여 스스로 귀화하고 만주호적자 모집에 순응하는 자연적 귀화과정을 밟았지요. 헤이룽장조선민족이란 문헌에는 청나라 초기에 만주적에 가입한 조선인의 성씨가 42개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이들의 선조는 대부분 천총(天聰) 연간인 1627∼1635년에 청나라로 온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문:그러니까 17세기 초·중엽에 이미 조선인들은 국적을 바꾸어 청나라 사람이 되고 만주 씨족에 올라 만주인이 되었다는 말씀이군요. 徐:설혹 그런 식으로 귀화를 하지 않고 버틴다 하더라도 오래 가지는 못했을 것입니다.조선인이 다른 민족과 결혼하여 가정을 꾸릴 수밖에 없는 형편이고,이같은 통혼을 기초로 하여 혈연관계와 친척관계를 맺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민족에게 겹겹으로 포위되어 살 수밖에 없는 것이 중국 조선족의 처지임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하북성 청룡현 박씨(朴氏) 조선족에 대한 조사’에 의하면 이 박씨들의 조상은 명나라 말 청나라 초에 중국으로 왔는데 동성동본 불혼 제도를 대대로 이어받았다 합니다. 문:한족,몽골족,만주족으로 국적을 바꾼 사람들은 그 뒤로 조선족으로의 회복이 영영 이뤄지지 않았습니까? 徐:아닙니다.심리적으로는 자신들이 조선인이라는 민족의식이 매우 강하게 존속되어 왔습니다.그러다가 1982년부터 조선족으로 고쳐서 조상이 남겨 둔 민족성을 회복한 사람이 많습니다. 조선 말에서 20세기 일제 때 중국으로 와서 조선족으로 분류된 이들에게 조선은 아직도 그리운 고향입니다.참,마음이 아픕니다. 문:일제 때 두만강,압록강을 건너 만주로 올 수밖에 없었던 한국인들 중에서도 해방 후 고향으로 가지 못한 채 조선족이 된 사람도 있습니까? 徐:아주 많습니다.우리 민족을 갈라 놓은 것은 공산주의자들보다 먼저 일왕(日王)정권이었지요.한반도의 남과 북은 통일이 되면 그날로 하나가 되겠지만 중국 조선족은 다르겠지요.그러니 일제의 식민통치는 중국 조선족에게는 치유될 수 없는 원한의 상처지요. 문:저는 이곳에 오기 전에 러시아에서 살고 있는 한인들인 카레이츠들의 삶을 둘러 볼 기회가 여러번 있었습니다.특히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러시아의 지방 도시인 블라디보스토크,우수리스크,하바로프스크 같은 도시의 장마당이라 부르는 난전에서 조선족 장사꾼을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그들은 국경의 세관에서 비자를 받고 러시아로 오는데,주로 옷장사를 하더군요.하지만 한달간씩 머물며 장사를 해도 체재비를 빼면 남는 것이 없거나 손해를 보기 십상이라 했습니다.그런 그들이 한결같이 꿈꾸는 것은 한국에 가서 돈을 버는 것이었습니다만,요즘 한국에 온 조선족들의 처지가 참 어렵습니다. 러시아의 카레이츠들보다 중국의 조선족 운명이 더 암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둘 다 우리 민족이 안고 사는 슬픔의 뿌리인데…. 徐:한국이 잘 살게 되어야 합니다.경제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잘 살게 되어야만 이 아픔의 역사가 통한과 비극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중국의 조선족,러시아의 카레이츠,일본의 조센징은 모두 350만명 정도라고 한다.이들의 삶을 생각하기 위하여 ‘동북아평화연대’등의 모임이 생겨나고 있지만 중국과 러시아의 조선족,고려인들은 사는 데 어려움이 크다. 그 어려움의 한 원인이 일본의 식민통치가 저지른 잘못이며,식민통치가 옳았다는 발언을 하는 일본의 정치지도자가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여전히 친일파 지식인들이 숭배되기도 한다.
  • [사설] 3·1정신으로 친일규명법 처리를

    3·1운동 85주년을 맞았다.세계 만방 피압박민족의 독립자결 운동사에 한 획을 그은 자랑스러운 3·1운동이건만,우리는 오히려 착잡한 마음으로 오늘을 맞고 있다.아직도 친일청산이라는 기본과업조차 제대로 넘어서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민특위의 무산으로 나라의 정기가 흐트러진 지 60년 가까이 지난 이제야 겨우 ‘일제 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 특별법’이 마련됐지만,당초 입법취지를 퇴색시킬 만큼 누더기가 된 데다 그나마 한나라당 반대로 본회의 상정이 유보되고 말았다.16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가 열리는 2일 법안이 통과되지 못하면 법안은 자동 폐기되고 만다.친일규명법이 법사위를 통과할 때도 ‘진풍경’이 벌어졌다.조사대상인 ‘일제 협력 장교’를 규정함에 있어 ‘일반 장교’로 할 것인지 ‘중좌(중령) 이상의 장교’로 할지를 놓고 표결,결국 중좌 이상 장교로 처리됐다.‘통상 군대에서 장교가 정치적 행위를 할 수 있는 계급은 중령’이라는 해괴한 이유를 댔지만 속내는 ‘일본 육사를 나와 일왕에게 충성맹세를 하고 관동군 소좌까지 오른 박정희 전 대통령’ 등을 제외하기 위한 것이었다.언론 예술 교육 분야의 친일행위가 제외된 것도 문제다.친일진상을 제대로 밝혀내기 위해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부분이다. 작금 나라의 사정은 어떠한가.정치권은 싸움박질로 일을 삼고,국민 또한 갈등요소가 생기면 대화와 타협을 거쳐 발전의 밑거름으로 승화시키기보다는 툭하면 소모전을 일삼고 있다.지도층이 백성은 돌보지 않고 권력과 이익 추구에 골몰하는 게 국권을 잃던 무렵과 비슷하다는 지적도 무성하다. 16대 국회는 정쟁으로 허송하다가,선거구 증설 등 자기 밥그릇은 챙기면서도 친일규명법은 물론 농어업인지원특별법,성매매방지 및 처벌법 등 민생법안 20여 건은 내동댕이쳐 놓은 채 본회의 하루를 남겨 두고 있다.정치권은 숭고한 삼일정신을 되새기면서 친일규명법 등을 처리,마지막 역할을 다해주기 바란다.˝
  • 한나라, 친일반민족·의문사규명 특별법 상정 막아

    정치권이 지역구 증원 등 밥그릇 지키기에만 골몰하며 과거사 규명 및 민생 관련 법안을 또다시 뒷전으로 내몰았다.특히 일제 식민지 친일행위,군사정권시절 의문사 등 한국현대사의 아픔을 치유하는 법안들은 한나라당의 거부로 법사위를 통과하고도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했다. 국회는 27일 본회의를 열었으나 지역구증원만 표결로 통과시켰을 뿐 이미 법사위를 통과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특별법’,‘의문사진상규명특별법 개정안’,‘한국전쟁 민간인희생 진상규명법’ 등 4개 법안은 한나라당이 상정보류를 요청해 처리되지 못했다.‘개인채무자회생법안’과 ‘미아발생예방법률안’은 상임위 처리가 보류됐다.이날 국회에서는 민주당 전갑길 의원 등이 의사일정변경안을 제기해 애초 안건에 없던 ‘한국전쟁 민간인희생 진상규명법안’을 상정시켰으나,한나라당 의원들이 정회를 요청한 뒤 퇴장해 버려 통과되지 못했다.이와 함께 소방방재청 신설을 골자로 한 정부조직법 개정안 등 민생관련 법안 20건을 처리하지 못한 채 본회의는 의결 정족수 미달로 산회했다. 박관용 국회의장은 “중요한 민생법안들이 처리가 되지 않고 있는데 통과시킬 것은 통과시키며 당당하게 임해달라.”며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 의장으로서 부끄럽다.”고 말했다. 임시국회 마지막날인 3월2일에도 이들 법안이 본회의에서 처리되지 않을 경우,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이 늦어지고,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는 법정 활동시한인 오는 6월을 끝으로 없어지게 된다. 박록삼기자 youngtan@˝
  • ‘친일 반민족’ 실체 밝힌다

    국회 법사위는 26일 전체회의를 열고 일제강점하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을 통과시켰다.27일 본회의에서 처리될지 주목된다. 그러나 관련자나 후손들의 반발로 사회적 논란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법안에 따르면 국회의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하는 9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친일 반민족 진상규명위원회가 설치되며,위원회는 친일 반민족행위에 대한 자료 수집 및 조사보고서를 작성하고,사료를 편찬할 수 있도록 했다.위원회의 활동시한은 3년이다. 법안은 국권을 지키기 위해 일본제국주의와 싸우는 부대를 토벌하거나 토벌하도록 명령한 행위와 독립운동을 방해할 목적으로 독립운동가 및 그 가족을 살상·처형·학대 또는 체포하거나 이를 지시 또는 명령한 행위 등을 친일 반민족행위로 규정했다.또한 독립운동을 방해하기 위해 일본제국주의에 고용돼 행한 밀정행위와 을사조약·한일합병조약,국권을 침해한 조약을 체결 또는 조인하거나 이를 모의한 행위,한일합병의 공으로 작위를 받거나 이를 계승한 행위도 포함시켰다. 특히 학병·지원병·징병 또는 징용을 전국적 차원에서 주도적으로 선전·선동하거나 강요한 행위와 중앙의 문화기관이나 단체를 통해 일본제국주의의 내선융화 또는 황민화 운동을 주도함으로써 일본제국주의의 식민통치 및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행위도 친일 반민족행위로 간주했다. 이와 함께 일본제국주의의 전쟁수행을 전국적 차원에서 돕기 위해 군수품 제조업체를 운영하거나 대통령령이 정하는 규모 이상의 금품을 자발적으로 헌납한 행위도 포함시켰다. 그러나 법사위는 당초 원안에 있었던 일본제국주의 군대의 ‘장교로서’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행위 부분에 대해서는 위원들의 극렬한 논란 끝에 ‘중좌 이상으로서’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행위로 수정해 통과시켰다.이 부분은 친일행위 여부와 관련,박정희 전 대통령을 조사할 것인지의 여부를 결정짓는 조항이랄 수 있다. 열린우리당 김희선 의원은 “당시 일본군대에서 중좌 이상의 계급을 가진 우리나라 사람은 없었다.”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제시대 육군사관학교를 나와 장교로 복무한 자체는 친일 행적행위가 짙다.”고 반대했다. 이에 민주당 조재환 의원은 “민족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당리당략적 의도가 있다.”면서 “박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의원이 한나라당의 주자로 부상하니까 공격하기 위해 그렇게 주장하는 것 아니냐.”고 몰아붙였다. 법사위는 결국 ‘중좌 이상’을 놓고 표결을 한 끝에 찬성 5명(한나라당),반대 2명(열린우리당),기권 1명(조재환)으로 수정했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 친일인명사전 모금운동 조문기 민족문제硏 이사장

    “국내외를 망라하고 열심히 자료를 챙기고 있습니다.기존의 백과사전 스타일로 20권짜리 친일인명사전을 2006년에 우선 선보일 예정입니다.최근 벌어진 이승연 누드파문도 친일청산이 안됐기 때문이지요.” 지난 연말 ‘2004년 예산안’ 심의과정에서 국회가 ‘친일인명사전편찬비용’을 전액 삭감하자 민족문제연구소 조문기(74) 이사장은 반신반의하면서 모금운동을 벌였다.혹 ‘친일’ 운운하면서 모금한다는 오해의 두려움도 없지 않았다.목표액(5억원) 달성 시점도 올 8월15일로 멀찌감치 잡았다. 그러나 모금운동이 시작된 지 10일 만에 5억원을 넘더니 두 달도 채 안 된 20일 현재 7억여원에 이르렀다.일반시민과 네티즌이 십시일반으로 모금운동에 적극 동참한 결과였다.모금운동에는 모두 3만여명이 참여했고 회원수도 1000여명에서 3000여명으로 3배나 늘었다. 조 이사장은 21일 오후 5시 들뜬 마음으로 이들과 첫 대면한다.장소는 서울 용산구민회관에서다.모임 명칭이 ‘2004년 신년회 겸 회원총회’이지만 성공적인 모금운동에 대한 평가와 친일인명사전편찬을 위한 새로운 결의를 다지는 의미에서 조 이사장의 감회는 그 어느때보다도 남다르다. “부산에서 고교 선생님으로 계신 김호령(40)씨가 인터넷을 통해 모금운동에 불을 붙였습니다.친일사전 편찬에 이렇게 뜨거운 호응을 얻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지요.” 당초보다 편찬사업을 앞당길 수 있어 의욕이 더욱 커졌다는 그는 “친일파와 그 자손들에 대해 피해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만 아직도 청산되지 못한 과거의 역사를 바로잡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고 편찬의 의미를 부여했다. 김문기자 km@
  • [14일 TV 하이라이트]

    ●무인시대(오후 10시10분) 최충헌은 3년전 조원정에게 밀정혐의로 추포된 적이 있음을 고하며 이의민에게 목숨을 사정하고,지영과 지광 형제에게 모진 수모를 겪는다.최충수는 형이 치욕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 이의민을 찾아간다.그러나 그 기개에 반한 이의민은 오히려 충성 맹세를 받은 뒤 최충수를 돌려보낸다. ●진주목걸이(오후 7시50분) 갑수에게 끌려가는 난주는 격렬히 저항하지만 역부족이고,난주를 찾아 춘천으로 달려온 기남은 끝내 만나지 못한다.난주는 인숙에게 왜 거짓말을 했느냐며 분노하고,인숙은 난주 앞에 무릎을 꿇으며 자신을 떠나지 말라고 애원한다.춘천에서 돌아온 기남은 동생을 내놓으라며 인숙을 찾아간다. ●찾아라!맛있는 TV(오전 11시5분) ‘정원관의 기(氣)찬 요리’는 다이어트와 건강에 좋은 감자로 만든 요리들을 알아보고,‘음식 대 격돌 맛 7’은 영화 속의 맛집을 탐방한다.‘스타의 맛집’은 가수 박미경 부부의 단골집을 찾아간다.‘대동맛지도’는 경남 김해의 달팽이 요리와 갈치요리를 맛본다. ●발리에서 생긴 일(오후 10시30분) 재민은 수정과 연락이 되지 않자 갤러리로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찾아가겠다며 끊는다.수정은 재민의 행동에 당황스러워한다.재민이 갤러리로 찾아와 수정을 데리고 나가는 순간 송여사와 마주친다.송여사는 수정에게 달려들고,재민이 막는 과정에서 송여사는 모욕감을 느낀다. ●성인가요 베스트 30(오후 10시20분) 이택림과 노래 ‘톡톡 쏘는 남자’의 강민주가 일일 MC로 나선다.‘영원한 애창곡’에서는 이수미,방주연이 학창시절 즐겨 불렀던 ‘여고시절’과 ‘자주색 가방’을 들려주고,김범룡 박상철 배일호 등 출연진들이 학창시절 잊을 수 없었던 에피소드를 이야기한다. ●여론광장(오후 7시20분) 일제강점시대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 특별법 통과가 어려워짐에 따라 친일청산 작업을 벌여온 단체들이 반발하고 있다.특별법은 무엇이 문제인지,또 친일청산을 둘러싼 논란은 무엇인지 논의해본다.더불어 독도 망언 등으로 반일 감정이 높아진 상황에서 역사를 바로 세우는 방안을 모색해본다. ●인사이드 월드(오후 1시20분) 로빈 섬은 아프리카의 세번째로 큰 펭귄 서식지이나 유조선에서 기름이 흘러나와 펭귄의 목숨이 위협받고 있다.기름에 무방비로 노출된 펭귄과 오염된 서식지를 복구하는 사람들.기름유출 사고로 환경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한 아프리카 펭귄 구조작업 현장을 찾아간다. ˝
  • [12일 TV 하이라이트]

    ●찔레꽃(오전 8시5분) 전화를 받던 성희는 배명숙이란 이름을 듣고 의아해한다.명욱을 찾아가 배명숙을 아냐고 묻지만 명욱은 모른다고 한다.준서는 유경에게 마음을 접으라고 하지만 유경은 더욱 준서에 집착한다.준서와 수옥이 걱정돼 집을 찾은 민규는 다시 한번 수옥의 이별 결심을 듣는다. ●달려라 울 엄마(오후 9시20분) 시나리오 공모에 당선돼 영화사를 찾아간 석재는 사장이 ‘서태지와 아이들’의 전 멤버 이주노라는 사실에 놀란다.또 초호화 캐스팅을 약속하자 기대에 부푼다.하지만 갈수록 허술한 제작 여건으로 주인공은 신인으로 바뀌고,석재에게 공모전에서 받은 상금을 빌려달라고 하는데…. ●사과나무(오후 7시20분) 독일,일본에 이어 이번엔 한국의 모유 수유 탐방에 나선다.방송가에선 이미 모유 수유 예찬가로 유명한 이다도시씨를 찾아가 모유 수유 체험기를 들어본다.또 대장암 말기로 시한부 인생 판정을 받은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어릴 때 집을 나간 누나를 찾는 이호윤씨의 사연을 소개한다. ●압구정 종갓집(오후 8시50분) 윤식은 말썽만 피우는 아들 켠의 졸업식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말한다.가족들은 켠을 달래며 윤식이 꼭 졸업식에 갈 거라고 위로한다.마침내 졸업식 날이 다가오고 윤식은 손님 때문에 바빠 졸업식을 잊는다.문희와 자옥은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느라 켠의 졸업식을 잊는다. ●1050 정면승부(오후 10시50분) 3명의 MC가 패션의 거리 동대문에서 구리 시민들을 만나 귀가를 빨리 하도록 권한다. 주변을 깨끗하게 해주는 부부 청소미화원과 참다운 봉사의 의미를 일깨워주는 적십자회 봉사자의 사랑,경쾌한 커플 등 숱한 이야기들을 싣고 구리로 출발한다. ●PD리포트(오후 10시50분) 친일파 송병준의 후손이 부평 미군기지 땅의 소유권 소송에 승소하자,친일파 가족들이 속속 재산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국민들은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위해 거금을 모금하고 친일파 청산을 주장하고 있는데,법은 국민정서도 무시한 채 친일파의 손을 들어줬다. ●세계 세계인(오후 1시30분) 터키에서 카페는 시민들의 일상생활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16세기 터키의 카페는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최근에 등장한 여성 전용 카페는 집에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는 대신에 카페에서 친구와 게임을 즐기고 수다도 떨 수 있다.터키에서 인기를 끄는 여성만을 위한 카페를 찾아간다. ˝
  • [사회플러스] “친일파 재산환수법 국회제출”

    열린우리당 최용규 의원은 10일 일제하에서 친일활동을 한 대가로 얻은 친일파 및 그 후손의 재산을 국가가 환수토록 하는 내용의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 환수에 관한 특별법을 여야 의원 40여명의 서명을 받아 11일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법안은 일제 식민통치에 협력,일본정부로부터 훈작을 받았거나 을사보호조약 또는 정미7조약의 체결을 주창한 대신 등 고위공직자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자들이 친일행위 대가로 취득했거나 상속·증여해준 재산을 국가가 환수토록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가난한 富國’ 일본속 외국인들

    “퇴직하면 일본을 떠나고 싶다.” 일본의 한 대학에서 영미 비교문학을 가르치는 폴(60)은 자칭 ‘아시아를 사랑하는 미국인’이다.6년쯤 남은 정년 때까지 일하고,그후에는 동남아쯤으로 거주지를 옮길까 생각 중이다.청춘 때부터 맺은 아시아와의 인연을 끊을 생각은 없다.두 차례의 유학,대학교수 생활을 합쳐 25년간 일본에 체재중이지만 정년 이후는 다른 나라에서 살고 싶다는 게 솔직한 마음이다. 이처럼 외국인이 일본에 살기란 그리 쉽지 않다고 한다.살면 살수록 어려운 것이 일본 사회라는 말이 실감난다는 게 일본 속의 외국인들의 말이다.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일본인,일본 사회는 어떨까. |도쿄 황성기특파원|2001년 일본에 특파원으로 온 베이징일보의 리유촨(34) 기자도 임기는 4년이지만 “임기를 다 채울 생각은 없다.”고 한다.그는 일본에 체류하는 중국인 주재원의 상당수가 “나와 비슷한 생각”이라고 덧붙인다. 일본에서 MBA를 따고 외국계인 시티그룹에서 일하는 터키인 구비라이(30)도 일본에 온 지 7년이 넘었지만 일본생활에 젖어 들었다고 생각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소득은 높아도 생활수준은 낮아 얼마전 휴가를 이용해 베이징에 다녀 온 리유촨은 오랜만에 싸고 맛있고 푸짐한 중국 요리를 실컷 먹고 돌아왔다고 자랑한다.“물가가 도쿄의 7분의 1정도인 베이징에서 모처럼 해방감을 느꼈다.”는 그는 엔을 위안으로 환산하는 버릇이 도쿄 체재 3년인데도 아직도 남아 있다고 빙긋 웃는다. 베이징에 방 3칸짜리 아파트(70㎡)를 소유하고 있는 그는 방 1∼2칸짜리의 좁은 집에서 외식도 자주 즐기지 못하는 일본인들이 전혀 부럽지 않다.“의식주란 게 인간의 기본인데 그런 점에서 도쿄 사람보다 베이징,상하이 사람이 훨씬 생활의 질이 높은 것 같다.” 도쿄의 월 9만 5000엔짜리 원룸(25㎡)에 살고 있는 구비라이는 “고향에 돌아가고 싶지만 터키 경제가 별로 좋지 않아서 고민 중”이다.그렇지만 “터키에 가면 인생이 더 즐거울 것은 분명하다.”고 못박는다. 도쿄에 놀러온 여동생으로부터 비좁은 집에서 사는 자신의 모습에 “불쌍하다.”는 말을 들었다는 구비라이의 고향집은 서민층인데도 거실 하나만 해도 지금의 도쿄 월세집보다 넓다. ●이해하기 힘든 일본인,일본 사회 외국인들에게 일본,그리고 도쿄는 불가사의한 일 투성이다. “거리에서 어린이 목소리를 듣기가 어렵다.”는 구비라이.“터키는 물론이고 잠시 일한 적이 있는 싱가포르에서도 어린이들로 시끄러울 정도인데 도쿄에서는 통학시간 말고는 전차는 물론 거리에서조차 어린이 보기가 힘들다.”고 말한다. 그는 “일본 어린이들이 워낙 조용해서인지,가정교육을 엄하게 시켜서인지,아이 덜 낳기로 어린이 숫자가 줄어들어서인지,7년이 지난 지금도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술과 음식을 즐기는 리유촨에게 일본인의 음주습관은 도통 이해가 안된다.“술이 사람과 사람을 친해지도록 하는 촉매제라는 점은 중국과 같지만 오후 6시부터 이튿날까지 몇집을 돌며 마시는 일본인 친구들과 어울리기에는 내 몸이 일단 견뎌나지 않는다.”고 말한다.“중국인이라면 한 가게에서 맛있는 음식과 좋은 술을 시켜 놓고 느긋하게 먹고 마시고 얘기하다 대개 밤 9시,10시면 집에 돌아간다.” 그런 그에게는 부인이 잠들 때까지 집 근처 선술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고 돌아가는 어느 일본인 친구가 이해하기 힘든 존재다.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따고 미네소타 대학 조교수로 근무하다 일본의 A대학으로 1981년 이직한 폴은 일본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A대학의 교수회에 들어갈 수 없었던 일이 못내 서운하다. “일본인 교수들은 나에게 ‘당신은 교수회에 들어갈 의무가 없다.’고 말했는데,그 말이 ‘교수회에 들어갈 의무도 없지만 들어갈 권리도 없다.’는 뜻이라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그는 A대학의 복잡한 파벌,인간관계,외국인 차별을 견디기 힘들어 6년 뒤 신생 B대학으로 옮겼다. 영국 유학경험이 있는 미국계 통신사의 일본인 여기자 가오리(30)는 “장관을 취재하러 남자 카메라맨과 함께 가면 남자를 먼저 소개하고 나를 소개하는 경우가 많다.남성중심 사회라 어쩔 수 없다.”고 씁쓸히 웃는다. ●정확하지만 효율과 속도는 떨어져 일본사회가 친절하고,정확하지만 생각보다 효율이 낮은 것 같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리유촨은 “서비스가 좋지만 사람을 많이 기다리게 하는 일본인,일본사회가 답답하다.은행에 돈을 바꾸러 가면 바쁜 시간에는 기다리는 것은 당연하다.” 면서 “그러나 일본의 은행직원들은 기다리는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전혀 서두르는 기색도 없다.중국에서 그랬다가는 ‘빨리 하라.’고 욕을 얻어먹기 십상이다.”고 말한다 한국에서 5년간 외교관 생활을 마치고 재작년 일본에 귀국한 스즈키(30·가명)도 “한 동안은 ‘문화 충격’에 짜증을 낸 적이 한두차례가 아니었다.”고 털어놓는다. “새 집에 놓을 가재도구를 장만하러 백화점에서 쇼핑하고 배달을 부탁했더니 한국 같으면 당일이나 이튿날 배달해줄 것을 ‘1주일쯤 걸린다.’는 얘기를 듣고 화가 치밀어 견딜 수 없었다.” ●곳곳에 스며든 미의식·서비스 이해하기 힘든 사회구조,파고들기 힘든 인간관계이지만 “칭찬을 하고 싶은 것도 많다.”(구비라이)는 것이 외국인들의 속내이기도 하다. 4년전 도쿄 시내에 튀니지 요리점을 연 제리비 몬디르(33)도 “일정한 거리를 지켜주면 내 생활을 침범하지 않는 일본인들이 쌀쌀하게 생각될 지 모르지만 난 오히려 그런 점이 편하다.”고 말한다. 구비라이는 “터키에서는 규칙이 있어도 잘 지키지 않는데 일본사람은 잘 지킨다.학교에서 배운다기보다 집에서부터 버릇이 든 것 같다.”고 나름대로 풀이한다. 규칙을 잘 지키는 일본인들을 치켜세우기는 리유촨도 마찬가지.“운전하면 언제 어디서 사람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베이징과는 달리 마음 편하게 운전할 수 있어 좋다.” 일본에서 오래 산 폴의 생각은 보다 깊다.“룰을 중시하는 일본 사회에는 집단을 소중히 한다든가,버릇없이 굴면 안된다든가,표면적인 화(和)를 어겨서는 안된다든가 하는 그런 이면의 룰이 있다.”는 분석. 처음은 친일(親日)이었다가,시간이 지나 지일(知日)로,지금은 일본에 대해 “무덤덤하게 변했다.”는 폴은 그래도 “조그만 것에 마음을 쓰고,패션감각이나 눈을 즐겁게 해주는 일상생활의 미적 감각은 여전히 좋아한다.”고 덧붙인다. marry04@˝
  • 네티즌 낙선·당선운동 제안 봇물

    오는 4월 17대 총선을 앞두고 시민·사회단체들의 당선·낙선운동 대상자 명단발표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시민·사회단체에는 이에 대한 시민과 네티즌들의 다양한 제안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9일 시민·사회단체들에 따르면 낙선운동과 당선운동을 벌이는 양대 산맥인 ‘2004총선시민연대(총선연대·www.redcard2004.net)’와 ‘2004총선물갈이국민연대(물갈이연대·www.mulgari.com)’의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하루 수백가지의 글이 쇄도하고 있다. 이들의 의견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낙선운동을 이렇게 하라는 ‘제안·주장형’에서부터 누구를 대상에서 넣거나 빼야 한다는 ‘민원·읍소형’,‘시민단체는 정권의 홍위병’이라고 주장하는 ‘비난·항의형’ 등으로 크게 나뉜다. ●제안·주장형 시민단체의 당선·낙선 대상자 발표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는 형태로 네티즌들의 주장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이 중에는 시민연대가 간과한 날카로운 지적들도 적지 않다는 게 관계자들의 말이다.총선연대 게시판에 글을 쓴 ‘미국에서’라는 네티즌은 “총선연대의 활동을 지지하지만 대상자 선정에 있어 형평성을 잃었다.”면서 “당적 이탈 등 애매한 사유보다는 정치자금법 위반자 등을 철저하게 가려 대상자로 꼽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네티즌 ‘역사바로잡기’는 “친일잔재 청산법이 아직도 국회를 통과 못하고 있다.”면서 “그 내막을 가리고 친일파 후손 국회의원 후보 명단도 공개해 달라.”고 제안했다.‘한의견’은 “낙선 대상자를 시민단체가 지명하지 않으면 국민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오만한 자세”라면서 “국민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객관적 정보만을 제공하고 국민이 스스로 판단해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쓴소리를 했다. 이밖에 네티즌 ‘올바른’은 “정치청산을 위해서는 현재 의원의 3분의2 이상을 걸러내야 한다.”는 의견을 냈고,‘대찬성’은 “부패·무능,반인권,철새,반민주 인사들은 이땅에 발붙이지 못하게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민원·읍소형 물갈이연대 홈페이지에 글을 올린 한 네티즌은 “우리 지역 P의원은 청년들이 고향을 등지고 떠나는 가난한 농촌을 변화시킨 분”이라면서 “무소속으로 어렵게 당선돼 핍박받고 있는데 시민단체들이 낙선대상자 명단에 올려 지역 주민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고 하소연했다. 총선연대 홈페이지에 네티즌 ‘한심’은 “S의원은 시민단체의 의정활동 평가에서 각종 개혁을 위한 노력과 활동으로 인해 우수 의원으로 선정된 사람”이라면서 “하루빨리 S의원의 선정이 잘못되었다는 점을 시인하고 명단에서 제외시켜줄 것을 국민의 이름으로 요구한다.”고 밝혔다. ‘대전사랑시민’은 “L의원은 전형적인 철새 정치인으로 다음번 낙선대상자에 꼭 포함시켜 달라.”고 밝혔고,‘나그네’는 “S의원은 지난 대선 때 수억원의 수수의혹을 제기했다가 유죄판결을 받았는데 빠졌다.”고 밝혔다.‘수호천사’는 “지난 2000년 5월17일 5·18전야제때 고급 술집에서 술 먹은 10여명의 386의원들도 낙선대상에 포함해야 한다.”고 밝혔다. ●비난·항의형 낙선대상자와 관련이 있는 사람들의 화풀이성 글도 적지 않다. 물갈이연대에 글을 쓴 네티즌 ‘날개’는 “권력을 비판하고 감시하는 시민단체가 정권의 ‘홍위병’으로 전락했다.”고 비난했다. 총선연대의 네티즌 ‘낭만자객’은 “철새정치인중 특정 정당의 사람들만 낙선대상에 올린 것은 중립성을 잃은 것”이라면서 “특히 호주제 폐지에 반대했다고 낙선 대상에 올리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는 글을 올렸다. ‘막가파’는 “시민단체 입맛에 맞는 사람들만 골라 국회로 보내려는 의도는 옳지 못하다.”고 말했다.‘over man’은 “총선연대는 시민 연대라는 이름하에 시민을 팔아서 여당편들기나 해서 뭔가 반대급부를 받기라도 할 것처럼 편파적인 기준을 의도적으로 적용하는 것 같다.”면서 “선정 기준과 절차를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물갈이연대 정대화 교수는 “낙선운동과 당선운동은 청산해야 할 인사들을 낙선시키고,보다 깨끗하고 능력있는 후보를 당선시키는 운동”이라면서 “정치권이 시민·사회단체의 당연한 운동에 시비를 걸기보다는 스스로 반성하는 모습을 먼저 보여주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총선연대 김기식 공동집행위원장은 “일부 선정절차의 사소한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의혹을 제기하고 있지만 시민단체의 역할은 여기까지이며 결국 심판은 유권자들의 몫이다.”면서 “1차 발표에 선정된 대상자 외에 보류된 숫자가 상당수 있는 만큼 앞으로 문제가 있는 의원들은 낙선 대상자에 포함시켜 계속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현석기자 hyun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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