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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유치원 앞에 ‘이완용’ 친일행적 비석 세운 성남문화원

    [단독]유치원 앞에 ‘이완용’ 친일행적 비석 세운 성남문화원

    “아이들 다니는 곳에 친일파 기념비가 웬말인가요?” ‘을사오적(乙巳五賊)’ 이완용의 생가터를 알리는 비석이 경기 성남시에 있는 한 유치원 바로 앞에 들어서 논란이 일고 있다. 27일 찾은 백현동 소재 유치원 앞에는 이완용 생가터 비석(가로 75㎝, 세로 112.5㎝)이 서 있었다. 인근에는 행정복지센터와 어린이집, 초등학교도 있어 유동 인구가 적지 않았다. 주민들은 최근 생긴 비석이 신기한 듯 걸음을 멈추고 쳐다보기 일쑤였다. 한 주민은 ‘이완용’이라고 적힌 글자를 보자 펄쩍 뛰며 “이게 왜 여기에 있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성남문화원에 따르면 친일파의 행적을 알려 역사적 교훈을 전하기 위해 250만원을 들여 지난 22일 설치했다. 이완용 생가터에 설치된 이 비석에는 그의 일대기가 425자로 축약돼 있다. 주요 내용은 “이완용은 1858년 백현리에서 가난한 선비 이호석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9세 때 일가인 이호준에게 입양됐다” 등 개인사와 “이토 히로부미를 ‘영원한 스승’으로 떠받들었으며 을사늑약 후 내각총리대신이 돼 매국 내각의 수반이 됐다” 등 친일 행적에 관한 것이다. 문제는 이 비석이 겉보기에 일반적인 기념비와 큰 차이가 없어 오해를 부른다는 점이다. 학부모 A(46)씨는 “친일파를 마치 위인처럼 보이게 깔끔하고 큰 비석을 세웠다”며 “등교하는 아이조차 ‘이완용 비석이 왜 하필 우리 학교 앞에 있냐’고 물어볼 정도”라고 토로했다. 역사학자들도 우려를 제기했다. 교육 목적으로 세웠다면 친일 행적 일시 등 구체적인 정보가 들어가야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은 “부정적인 역사도 역사라는 점에서 친일파의 비석을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하지만 이 비석은 외관부터 과하고 내용도 구체적인 날짜 등이 빠져 있어 역사적 사실을 온전히 전달하는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비석을 세운 김대진 성남문화원장은 “이완용의 행적을 후대에 알려 다시는 매국노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며 “좋은 역사만 비석으로 세울 게 아니라 이완용 비석도 세워 경각심을 주자는 취지로 설치했다. 문화원은 역사를 있는 그대로 인식시켜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해명했다. 한편 성남문화원은 서울신문 취재가 들어가는 등 논란이 거세지자 비석을 철거키로 했다고 뒤늦게 알려왔다.
  • 정부, 친일파 이기용 후손 땅 부당이득금 소송 승소

    정부, 친일파 이기용 후손 땅 부당이득금 소송 승소

    정부가 친일파 이기용(1889~1961)의 손자들이 소유한 2억원 상당의 토지에 대한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에서 승소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6부(부장판사 이원석)는 22일 이기용의 손자 A씨 등 2명에게 각각 1억 466만원과 지연손해금을 정부에 반환하라고 판결했다. 이기용은 흥선대원군의 큰형인 흥녕군 이창응(1809~1828)의 장손으로 1911년 매일신보에 한일합병 1주년을 기념하는 축사를 게재하고 일본제국의회의 귀족원 의원으로 선출되는 등 친일행적을 펼쳤다. 2007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지정됐다. 법무부는 2021년 이기용과 이규원, 홍승목, 이해승 등 친일반민족행위자 4명의 후손이 소유한 27억원 상당 토지 11필지(8만 5094㎡)의 소유권이전등기 및 부당이득반환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기용 후손이 소유한 필지는 경기 남양주시 이패동 2필지다.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의국가귀속에관한특별법 제2조 2항에 따르면 친일반민족행위자가 국권침탈이 시작된 러일전쟁(1904년 2월) 개전시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일본제국주의에 협력한 대가로 취득하거나 이를 상속받은 재산 또는 친일재산임을 알면서 유증·증여 받은 재산은 국가에 귀속된다.
  • [사설] ‘최악의 국회’ 기록, 기어코 갈아치우는 민주당

    [사설] ‘최악의 국회’ 기록, 기어코 갈아치우는 민주당

    21대 국회 마지막 정기국회에 ‘유종의 미’라는 사치스러운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이 민생은 뒷전인 채 168석의 힘으로 법안을 밀어붙이는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법안 처리율 30%대에 시위·농성으로 점철됐던 20대 국회에는 ‘최악’이란 오명이 따라붙는다. 그런데 이 기록을 지금 민주당이 갈아치우고 있다. 민주당은 어제 노조의 집단파업 남발을 조장해 기업 활동을 심각하게 위축시킬 가능성이 농후한 노동관계법, 이른바 ‘노란봉투법’과 공영방송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훼손할 것으로 지적돼 온 ‘방송 3법’을 국민의힘의 반대 속에 국회 본회의에서 기어코 강행 처리했다. 그런가 하면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과 손준성 대구고검 차장검사, 이정섭 수원지검 2차장검사에 대한 탄핵소추안도 당론으로 발의했다. 노란봉투법은 노사와 여야 간 이견이 매우 커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큰 상황인데도 밀어붙였다. 법안 처리에 목적이 있다기보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유도하려는 정치적 목적이 더 크다고 하겠다. 이동관 위원장 탄핵안 역시 그가 불과 70일 남짓한 임기 동안 가시적인 불법행위를 한 사실이 드러난 바 없는데도 발의를 강행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방통위를 사실상 무력화함으로써 내년 총선에서의 방송 지형을 최대한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형성하려는 의도를 의심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지난해 5월 윤석열 정부가 발족한 이후 민주당에 의해 해임결의안이 의결된 국무위원으로 한덕수 총리, 박진 외교부 장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있다. 이 장관은 실제 탄핵소추까지 당했다가 헌재의 탄핵 기각 결정으로 복귀했으나 장관 공석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 됐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이동관 위원장으로도 모자라 한동훈 법무, 원희룡 국토교통, 김영호 통일부 장관의 탄핵·해임 카드도 만지작거리고 있다. 21대 국회에서 170석 안팎의 의석을 유지해 온 민주당은 자신들이 집권한 동안에는 적폐청산, 친일청산 등의 구호 아래 검찰 수사권 완전박탈 등의 개악 법안에 앞장섰고, 지난해 정권교체와 함께 야당이 된 뒤로는 민생법안은 외면한 채 국정을 가로막는 힘자랑만 이어 가고 있다. 민주당을 위한 민주당의 국회가 아니다. 총선에서의 심판 여론이 어디로 향할지 민주당은 숙고하고 자중해야 한다.
  • [사설] 반일 프레임에서 ‘학문의 자유’ 구해낸 대법

    [사설] 반일 프레임에서 ‘학문의 자유’ 구해낸 대법

    대법원이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제국의 위안부’ 저자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를 처벌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박 교수에게 벌금 10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원심이 유죄로 인정한 표현은 피고인의 학문적 주장 내지 의견의 표명으로 평가함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박 교수는 2013년 8월 출간한 책에서 ‘매춘’, ‘동지적 관계’ 등의 표현을 썼고 피해자들 고발로 2015년 12월 기소됐다. 기소된 지 8년, 2심 판결이 나온 지 6년 만에 ‘박유하 사건’은 무죄 취지로 매듭이 지어졌다. 너무나도 상식적인 ‘학문의 자유’, ‘사상의 자유’를 사법부가 확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것 자체가 사법부의 후진성을 드러낸 일이다.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싸고 ‘친일’과 ‘반일’이 격렬히 대립하자 대법원은 좌고우면하며 판단을 미뤘다. 문재인 정부 내내 침묵을 지키다 한일 관계를 개선한 윤석열 정부 들어서야 결론을 냈다. 대법원이 같은 날 일본에 반환 결정을 내린 도난 불상 사건도 마찬가지다. ‘박유하 사건’은 몇몇 위안부 피해자의 고발로 시작됐지만 사실상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현재 정의기억연대)와 박 교수의 다툼이었다. 정대협은 성역에 도전하는 박 교수의 저술에 사법의 메스를 가함으로써 박 교수에게 타격을 주고 시민단체의 선명성을 과시하고자 했다. 그러나 법원의 판결로 타격을 받는 쪽은 정의기억연대(정의연)가 됐다. 정의연은 그들이 말하는 위안부의 역사만이 진실인 것처럼 ‘제국의 위안부’를 부정하고 악마화했다. 법원 판결이 위안부의 역사적 사실의 진위를 가리는 것이 아닌 것처럼 정의연에 진실을 독점하고 재단할 권리는 없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으로 시작된 위안부 단체 활동은 반일 정치권과 연계돼 세력을 키워 왔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국제적으로 널리 알린 정의연의 공은 인정한다. 하지만 운동이 정치화하고 단체가 특정 개인의 사익을 꾀하는 구조가 되면서 폐해도 커졌다. 정의연의 줄을 타고 정계에 진출한 무소속 윤미향 의원은 박 교수 고발 당시에도 정대협 대표였다. 윤 의원은 정의연 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2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이번 판결은 학계나 정의연이 일본군 위안부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을 더욱 기울여야 한다고 간접적으로 촉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 박민식 “홍범도 관련 소모적 논란 좋지않아”...정무위 종합감사

    박민식 “홍범도 관련 소모적 논란 좋지않아”...정무위 종합감사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홍범도 장군을 독립유공자로서 예우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며 홍 장군과 관련해 소모적 논란이 더 이상 진행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했다. 육군사관학교 교내에 있는 홍 장군 흉상 이전 논란에 대해서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박 장관은 전날엔 일정을 바꿔 홍 장군 순국 80주기 추모식에 직접 참석했다. ‘이중서훈’ 문제를 제기하는 등 홍 장군 관련 논란의 중심에 서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행보여서 일종의 ‘출구전략’을 모색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26일 국무조정실, 국가보훈부와 공정거래위원회 등을 상대로 종합감사를 실시했다. 이날 박 장관은 홍범도 장군에 대해 “국가보훈부장관으로서 홍범도 장군은 독립유족임이 명명백백하다”며 “그 부분에 대해 최고의 예우를 다하겠다는 게 초지일관된 입장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육사 내 홍범도 장군의 흉상 이전을 반대하는 것으로 해석해도 되겠냐”라고 묻자 박 장관은 “그 일은 국방부에서 하고 있다. 국방부가 홍 장군 흉상 이전을 공식 요청한 것은 없다”며 말을 아꼈다. 박 장관은 야당 의원들이 계속해서 흉상 이전과 관련된 찬반 입장을 묻자 “독립유공자를 최고로 예우하는 것이 국가 책무”라며 “장관으로서 독립유공자에 대해 최고 예우로 끝까지 책임을 지겠다. 그러니 한치 의심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답했다.박 장관은 고 백선엽 장군과 관련해 ‘친일반민족행위자’ 규정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재차 밝히기도 했다. 박 장관은 강성희 진보당 의원이 “백선엽 장군이 친일파가 아니라는 데 장관직을 걸겠다는 발언이 지금도 유효하냐”고 질의하자 “진실을 겁박한다고 (거짓이) 되는 거냐. 법도 잘못됐으면 개정하지 않느냐. 역사적 평가는 국민이 할 것”이라 말했다 한편, 이날 여야는 해외 투자설명회(IR)를 이유로 국정감사에 불출석한 윤종규 KB 금융지주 회장에 대해 고발 조치를 예고했다.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은 “불출석 사유서 내용과 달리 윤 증인의 최초 해외 일정은 10월 9일에서 18일까지였는데, 정무위에서 증인을 채택한 다음날인 10월 27일까지로 비행기 티켓을 바꿨다”면서 여야 간사를 향해 윤 회장을 고발할 수 있도록 의결해달라고 요청했다. 민병덕 민주당 의원도 “윤 증인은 출장 일정을 변경해서 오늘 안 들어온다는 거 아니냐”며 “열심히 일하고 있는 국민은행 구성원들에게, 국민은행에 지원했던 이 땅의 모든 청년들에게 죄송한 마음은 있나”고 지적했다. 이에 정무위원회 위원장인 백혜련 민주당 의원은 “(여야) 간사가 상의해 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 “연예인 마약으로 이슈 덮는다고?”… 민주당 인사 ‘음모론’ 제기

    “연예인 마약으로 이슈 덮는다고?”… 민주당 인사 ‘음모론’ 제기

    친명(친이재명)계 한 인사가 배우 이선균의 마약 혐의 사건이 윤석열 정부의 실정을 덮기 위한 ‘공작’이라는 음모론을 제기했다. 다만 여러 정황만 예시로 들었을 뿐, 구체적 근거나 사실은 제시하지 못했다. 24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경 더불어민주당 상근부대변인은 지난 21일 페이스북에 “연예인 마약 기사로 덮어보려고요?”라며 “이상합니다”라고 했다. 이 부대변인은 “김승희 비서관 딸이 학교폭력 가해자로 전치 9주 상해를 입혔다. 사면·복권해 김태우를 강서구청장 선거에 내보낸 윤석열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고 있다”며 “이러한 기사가 ‘이선균 배우의 마약 투약 의혹’으로 덮여가고 있다”고 했다. 이 부대변인은 “유아인 마약 혐의 기사로 시끄러웠던 시기는 지난 3월”이라며 “친일파 수준으로 망언한 윤석열 대통령의 3·1절 기념사, 세종시 아파트 일장기 게양, 김건희씨 코바나콘텐츠 전시회 협찬금에 대한 ‘검찰이 문제없음 결론’ 등이 있었다”고 했다. 그는 “국민을 개돼지로 보는 윤 정권다운 구태의연한 발상을 더 이상 보고 있을 수 없다. 탄핵이 답”이라고 했다. 이 부대변인은 이재명 캠프 대변인 출신으로 강성 친명으로 분류된다. 내년 총선에서 비명(비이재명)계 5선 중진 이상민 의원 지역구인 대전 유성구을 출마가 예상된다. 앞서 인천경찰청 마약범죄수사계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상 대마 등 투약 혐의로 지난 23일 이선균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또 같은 혐의로 유흥업소 실장 A(29·여)씨를 구속하고, 나머지 유흥업소 종사자 B씨 등 1명은 불구속 입건했다. 이씨는 올 초부터 최근까지 서울 소재 A씨의 자택 등에서 대마 등을 투약한 혐의를 받고 있다.
  • ‘신세계’,‘암살’ 지금 보면 좋은 이유는? AI가 추천한 가을영화 4편

    ‘신세계’,‘암살’ 지금 보면 좋은 이유는? AI가 추천한 가을영화 4편

    ‘그녀’, ‘라라랜드’, ‘신세계’, ‘암살’. AI가 가을을 맞아 관객 호응이 가장 좋을 것으로 예상되는 영화 4편이다. CGV는 CJ AI센터와 협업해 4편의 영화를 상영하는 ‘AI 추천 명작 기획전’을 오는 25일부터 31일까지 진행한다고 밝혔다. ‘그녀’는 다른 사람의 편지를 대신 써주는 일을 하는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와 인공지능 운영체제 사만다의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 ‘라라랜드’는 재즈 피아니스트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과 배우 지망생 미아(엠마 스톤)의 꿈과 사랑을 그린 뮤지컬 영화다. 공감을 자아내는 스토리와 아름다운 OST로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범죄영화 ‘신세계’는 대한민국 최대 범죄조직 골드문에 잠입한 형사 자성(이정재)과 조직의 목을 조이는 형사(최민식), 자성을 친형제처럼 아끼는 조직의 2인자 정청(황정민)의 의리와 배신, 음모를 그렸다. ‘암살’은 전지현, 이정재, 하정우 등 유명 배우들이 총출동한 영화다. 1933년 상하이와 경성을 배경으로 친일파 암살 작전을 둘러싼 이들의 엇갈린 선택과 예측할 수 없는 운명을 그렸다. CGV 측은 AI가 관객의 관람 패턴, 계절과 지역 특성, 작품별 데이터를 고려해 추천 영화를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2006년 이후 개봉한 5300여편의 관람 패턴, 지역 특성, 작품 데이터 등을 분석한 결과다. 사랑을 소재로 한 ‘그녀’, ‘라라랜드’ 등과 달리 ‘신세계’, ‘암살’은 다소 이색적인 결과다. CGV 측은 “‘신세계’나 ‘암살’ 등과 유사한 장르의 영화가 이맘때쯤 반응이 많았거나, 기획전, 재개봉 등 이벤트로 인기를 얻으면서 AI가 이를 인지해 추천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기획전 예매 방법과 자세한 내용은 CGV 모바일 앱이나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최보기의 책보기] 삼천만 부르는 소리에 젊은 가슴 붉은 피 펄펄 뛰고

    [최보기의 책보기] 삼천만 부르는 소리에 젊은 가슴 붉은 피 펄펄 뛰고

    1943년 10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중 태평양 미드웨이 해전 참패로 전세가 기운 일제는 ‘반도인 학도 특별지원병제’를 감행했다. 이전까지는 ‘불령선인’에게 총을 주는 것은 위험하다며 징집에서 배제했었는데 정책 선회로 전쟁터로 끌려간 한국 청년 학생들이 20만 명에 달했다. 평안북도 강계 출신으로 신의주동중을 졸업, 도쿄 게이오대학 동양사학과에 유학 중이던 ‘김준엽 학생’도 여기에 포함됐다. 최남수, 이광수 등 변절자들이 일본과 천황폐하께 충성을 강조하는 연설회를 하며 전국을 돌던 때였다. 1944년 1월, 일본군 39여단에 입대한 21세 청년 김준엽은 고향 강계를 출발, 평양역에서 기차로 중국 쉬저우에 주둔 중이던 츠카다 부대에 도착, 다슈자역 경비중대에 배치됐다. 강계를 출발할 때부터 독립군 부대로 탈출을 결심했던 김준엽은 ‘중국어 교본, 중국 지도, 나침반, 현금, 단검’ 등을 배낭에 챙겼다. 아버지의 유품인 단검은 탈출 실패 때 사용할 계획이었다. 1944년 3월 29일, 부대 운영과 주변 지형지물을 미리 익혀 두었던 김준엽은 새벽 2시 분대장 사물함에서 훔친 자살용 수류탄 1개를 몸에 지닌 채 철조망과 해자를 뚫는 탈출을 감행했다. 29일은 달이 없는 그믐밤으로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꿈에 나타나 점지해준 날이었고, 고향에 탈출을 의미하는 암호 ‘草草(초초)’를 쓴 편지를 보낸 후였다. 40km 밖 중국군 유격대가 있는 수양으로 향하던 중 정체불명 중국군 무리에게 체포됐는데 친일 괴뢰군으로 위장한 중국군 유격대였다. 생과 사를 가르는 천운이었고, ‘학병 탈출 1호’가 되는 순간이었다. 이곳에서 ‘중국 국민 정부군 유격대원’이 된 김준엽은 뒤이어 일본군 부대를 탈출한 ‘장준하, 윤경빈, 홍석훈, 김영록 학병’을 만났다. 다섯 청년은 강변에서 몸을 씻은 후 동북쪽을 향해 머리를 깊이 숙여 ‘조국 배례’를 했다. 그리고 함께 애국가를 불렀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을 목이 메도록 몇 번이나 불렀다. 김준엽은 1절 가사만 알고 있었는데 장준하는 2절까지 똑똑히 알고 있었다. 망국 10년 후에 태어나 일제하 20년을 산 까닭에 민족교육을 받지 못한 청년들이었다. 다섯 청년은 유격대 책임자에게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한국 광복군 사령부가 있는 충칭(重慶)으로 가겠다는 뜻을 밝힌 후 길을 떠났다. 장장 2,400km에 이르는 험로였다. 1945년 1월, 충칭의 임시정부 청사에 무사히 도착한 이들은 난생처음 보는 태극기를 향해 경례했고, 김구 주석의 환영사에 장준하 청년이 답사하는 와중에 조소앙, 이시영, 김원봉 등 백전노장 독립투사들이 비통의 눈물을 터트렸다. 일제 학도병에서 한국 광복군이 된 김준엽은 800km 떨어진 시안(西安)으로 가 한국 본토 진공 작전을 위해 미군 OSS에서 특수훈련을 받았으나 일본의 갑작스러운 항복으로 광복군 진공의 꿈은 무산됐고, 역사는 한반도를 분단과 내전이라는 뼈아픔으로 내몰고 말았다. 김준엽 선생은 『장정(長征)』, 장준하 선생은 『돌베개』로 이때의 역사를 기록했다. 님웨일즈가 쓴 한국 독립투사 이야기 『아리랑』에는 주인공 김산(장지락)이 무일푼으로 하얼빈에 내려 남만주에 있는 민족주의 계열 군사학교로 가기 위한 700리, 30일간의 대장정을 감행하는 대목이 나온다. “나는 겨우 열한 살에 집을 나와 혼자 힘으로 살아왔다. 주린 배 옆구리에 3개 나라 사전을 끌어안고 일본, 만주, 중국을 떠돌아다니던 초라하나 열정적인 학생이었다. 울음소리가 함성으로 바뀔 때까지 돌아오지 않겠다.” 했던 김산의 당시 나이가 14살, 지금으로 치면 잘해야 중2였다. 저자 윤영수는 <불멸의 이순신>을 비롯해 수많은 드라마와 다큐멘터리 대본 작업에 참여해온 드라마 작가다. 고 김준엽 고려대 총장의 3,200km 장정 이야기와 80년 후 저자가 그 길을 따라가며 쓰는 현대 중국 이야기가 교차하며 전개되는데 드라마 작가답게 경쾌한 문체로 재미있게 잘 썼다.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 ‘학력, 춘향영정 논란’ 최경식 남원시장 주민소환투표 진행되나

    ‘학력, 춘향영정 논란’ 최경식 남원시장 주민소환투표 진행되나

    최경식 전북 남원시장에 대한 주민소환투표 신청서가 선거관리위원회에 접수됐다. 16일 남원시 선관위에 따르면 최근 시민 A씨가 ‘주민소환투표 청구인 대표자 증명서 교부 신청서’를 제출했다. A씨는 최 시장의 학위 문제와 논문 표절 의혹, 춘향 영정 친일 논란 등을 배경으로 설명했다. 앞서 남원지역 시민단체는 올해 초부터 최 시장의 허위 이력 공표와 인사 전횡, 소통 부재 등을 이유로 주민소환 추진을 협의해 왔다. 따라서 A씨는 추후 남원지역 시민단체들과 함께 주민소환 운동을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선관위는 결격 사유가 없으면 조만간 주민 서명을 받을 수 있는 서명부를 전달하고 주민소환 절차를 공고할 예정이다. 소환 투표가 이뤄지려면 60일 이내 남원시 전체 유권자 15%인 1만 100여 명의 서명이 필요하다. 또 전체 유권자의 3분의 1 이상이 투표에 참여해야 개표할 수 있다. 투표자의 과반수가 찬성하면 시장직을 잃게 된다.
  • 인하대서 끌어내려진 이승만 동상…40년만에 빛 볼까

    인하대서 끌어내려진 이승만 동상…40년만에 빛 볼까

    인하대학교 교내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의 동상이 철거된 지 약 40년 만에 동상 복원을 둘러싼 찬반 논란이 가열될 조짐이다. 15일 인하대 총동창회에 따르면 이승만 동상은 1979년 교내 인경호 인근 정원에 높이 6.3m(좌대 3m 포함) 규모로 건립됐다. 인하대에 이승만 동상이 건립된 것은 학교 설립에 그의 역할이 컸기 때문이다. 인하대는 1952년 하와이 동포 이주 5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이 전 대통령이 발의해 출범했다. 인천시가 기증한 교지에다가 이승만이 하와이에 세운 한인기독학원 매각 대금, 하와이 동포들의 성금 등을 합쳐 1954년 인하공과대학이란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인하대라는 이름도 인천의 인(仁), 하와이의 하(荷)에서 따온 것이다. 그러나 이승만 동상은 건립 5년 만인 1984년 학생들에 의해 철거되는 수모를 겪었다. 당시 인하대 학생들은 독재와 친일 행적을 문제 삼아 민주화 시위 중 그의 동상을 밧줄로 묶어 끌어내렸다. 철거된 동상은 처음에는 교내 창고에 보관되다가 이전 과정을 거쳐 지금은 경기 파주에 있는 ㈜한진 소유의 자재 창고에 있다. 40년 가까이 창고에 잠들어 있는 그의 동상이 다시 관심을 받게 된 것은 최근 국가보훈부가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면서부터다. 그의 업적을 재조명하자는 움직임이 본격화하자 인하대 졸업생 중 일부는 내년 개교 70주년을 맞아 동상을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안길원(81) 전 인하대 총동창회 회장(개교 70주년 기념사업 준비위원장)은 “인하대는 이 전 대통령이 ‘공업입국’ 정신으로 설립한 학교”라며 “국민 성금으로 이 전 대통령의 기념관까지 짓는 시대에 인하대도 창학자의 뜻을 기려 교내에 동상을 복원해야 한다”고 했다. 졸업생 중에서는 인하대를 인수해 발전시킨 고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의 동상도 함께 건립해 교내에 ‘메모리얼 파크’를 조성하자는 의견도 있다. 반면 철거된 동상을 굳이 다시 세워야 할 필요성이 있느냐는 의견도 적지 않다. 변한오(53) 인하대 총학생회 동문회 부회장은 “인하대 창학의 뿌리는 사탕수수밭에서 고된 노동을 하면서 성금을 보낸 미국 하와이 이주 동포”라며 “동상을 세운다면 이분들의 고귀한 정신을 표상화해야 한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승만 동상 복원을 둘러싼 논란이 제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0년 인하대 총동창회와 이본수 전 인하대 총장 주도로 동상 재건이 추진됐으나 반대 의견이 만만치 않아 무산됐다. 신한용 인하대 총동창회 회장은 “동상 복원 의견은 전에도 있었지만 실현되지 않은 채 지금까지 왔다”며 “내년 개교 70주년을 앞두고 여러 의견이 있어 조율하고 있는 단계로 학교·재단·재학생·교수회 등과도 계속해 논의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인하대 관계자는 연합뉴스에 “현재로선 동상 복원을 추진하고 있지 않고 관련한 입장을 말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 여야, 정무위 국감서 역사관 논쟁…정율성·홍범도·백선엽 놓고 공방

    여야, 정무위 국감서 역사관 논쟁…정율성·홍범도·백선엽 놓고 공방

    국회 정무위원회가 13일 국가보훈부와 독립기념관 등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정감사에서 광주 정율성 공원 등 기념사업 중단,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등을 두고 여야 간 역사관 공방이 벌어졌다. 국민의힘은 항일운동가 정율성이 6·25 전쟁 당시 북한 인민군과 중공군 군가를 작곡한 점 등을 들어 보훈부가 광주시에 요구한 기념사업 중단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라고 주문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정율성 기념사업 철회 추진이 이념 편향적이라고 반박하는 한편 육사의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방침을 비판했다. 송석준 국민의힘 의원은 “중공군의 침략을 정당화한 사람을 대한민국 한가운데에 공원을 조성해 의인인 양 기리는 게 말이 되나”라며 “더욱 강력하게 (사업을) 중단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최종윤 민주당 의원은 “보훈부는 국가 유공자 예우가 본연의 업무인데 정율성 기념사업 중단 등 장관이 이념 논쟁에 나서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여야는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방침을 두고도 충돌했다.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은 “홍범도 장군은 1927년에 소련 공산당 입당 후 독립운동을 한 적이 없다”며 “소련·중국·북한 공산군이 대한민국을 공산화하려 일으킨 6·25 전쟁을 막아낸 군인들이 공산군 흉상 보고 존경해야 하나”라고 반문했다. 반면 진보당 강성희 의원은 “(흉상이 이전 장소로 거론되는) 독립기념관으로 옮겨지면 ‘육사에서 쫓겨났다’는 딱지가 붙지 않겠나”라고 비판했다. 한시준 독립기념관장은 사견임을 전제로 “육사에 홍범도 장군을 모신 것은 군인 정신이나 군의 지도자를 양성하는 사람들이 본받아야 할 대상이라는 취지”라며 “흉상은 육사에 두는 게 좋다”고 했다. 이에 윤봉길 의사의 손녀로 독립기념관장을 지낸 윤주경 국민의힘 의원은 “홍범도 장군을 육사와 군에서 어떻게 예우해야 하는지 명확히 말씀해주셔서 감사하다”고 해 눈길을 끌었다. 야당 의원들과 박 장관은 보훈부가 고 백선엽 장군의 국립현충원 안장 기록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문구를 삭제하기로 한 것을 놓고도 충돌했다. 강훈식 민주당 의원은 “법적 권한을 부여받은 친일 반민족 행위 진상규명 특위가 친일파로 규정한 백 장군에 대해 보훈부 장관이 ‘친일파가 아니다’라고 할 법적 권한이 어디 있나”라고 따져 물었다. 이에 박 장관은 “누구도 그런 권한은 없다”면서도 “국립묘지 안장대상심의위원회 총괄자로서 (백 장군이) 친일파가 아니라고 생각해 (문구를) 빼기로 한 것”이라고 답했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공법단체로 전환된 광주 5·18 단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김희곤 의원은 “최근 임원진과 관련자들의 내부 고발로 5·18 공법단체의 비위가 알려졌다”며 “보훈단체의 비위는 보훈가족 전체의 명예를 실추시킬 수 있음을 명심하고 강력히 조치해달라”고 보훈부에 촉구했다.
  • “친일파×들, 日오염수 다 ×먹어라”…與 시의원, 괴한에 폭행당해

    “친일파×들, 日오염수 다 ×먹어라”…與 시의원, 괴한에 폭행당해

    경기 고양시의회 국민의힘 소속 한 시의원이 일산 호수공원에서 열린 행사에 참가했다가 괴한에게 폭행을 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10일 국민의힘 고양병 당원협의회에 따르면 당협은 매주 토요일 일산 호수공원에서 ‘일산사랑, 토요걷기’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7일에도 김종혁 당협위원장과 손동숙 시의원, 당원 등 8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행사가 열렸다. 행사 참여자들은 호수공원을 걸으며 쓰레기 줍기 등 봉사활동을 했다. 이 과정에서 한 남성이 뒤를 따라와 “일본 오염수는 너희가 다 ×먹어라, 친일파 ×들아 선거비용 물어내라”고 소리치며 돌을 던진 것으로 전해졌다. 남성의 행동을 본 손 시의원은 “어떻게 생각하든 자유지만 폭력은 안된다”며 “봉사하는 사람들을 괴롭히지 말라”고 제지했다. 그러자 이 남성은 주먹으로 손 시의원의 머리를 때리며 달려들었다. 남성은 주변에 말리는 이들까지 폭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에 있던 당원과 시민들이 남성을 제압하고 경찰에 신고하자 남성은 돌연 “흥분해서 그랬다”며 용서를 구했다. 이어 당원들이 폭행당한 사람들을 챙기는 사이 남성은 현장을 떠났다. 손 시의원은 “항의 후 앞서 걷던 중 무방비 상태에서 머리를 가격 당했다”며 “처음엔 속이 안 좋고 머리 부분이 아팠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꺾인 손목과 목 등에 고통이 점점 심해졌다”고 했다. 그는 두피손상, 경추 및 손목의 염좌로 2주간의 상해 진단을 받고 현재 병원 치료 중이다. 김종혁 국민의힘 고양병 당협위원장은 “많은 시민들이 이용하는 일산 호수공원에서 이런 사람들을 직접 마주 대하게 되니 한탄스럽다”며 “향후 같은 사건의 재발을 막는 목적에서라도 당협 차원에서 강력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당협은 당원들이 현장에서 찍은 남성의 사진과 상해 진단서 등을 토대로 가해 남성을 경찰에 고소하는 한편, 당협 차원에서 강력하게 대응할 방침이다.
  • 친일파 후손 땅 8400평 국고환수 실패…국가가 진 이유

    친일파 후손 땅 8400평 국고환수 실패…국가가 진 이유

    정부, 친일파 이해승 후손 땅 국고 환수소송 최종 패소 친일파 이해승의 후손이 소유한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땅을 국고로 환수하기 위해 소송을 제기한 정부가 최종 패소했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는 정부가 이해승의 손자인 이우영 그랜드힐튼호텔 회장을 상대로 낸 소유권이전등기 소송 상고심에서 원심의 원고패소 판결을 지난달 21일 확정했다. 정부는 과거 이해승의 소유였다가 이 회장의 소유가 된 홍은동 임야 2만 7905㎡(축구장 4개 면적)를 환수하려 2021년 2월 소유권이전등기를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철종의 아버지 전계대원군의 5대손인 이해승은 일제로부터 조선 귀족 중 최고 지위인 후작 작위 등을 받았고 일제 패망 때까지 귀족의 지위와 특권을 누렸다. 2007년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는 이해승을 친일재산귀속법이 규정한 ‘한일합병의 공으로 작위를 받은 자’로 보고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지목했다. 서대문구는 2019년 공원 조성 사업을 진행하던 중 이해승의 친일 재산으로 의심되는 토지를 발견하고 법무부에 국가 귀속 대상 여부를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다. 광복회도 2020년 법무부에 해당 토지 등의 친일재산 환수를 신청했다. 친일 행위자가 국권 침탈이 시작된 1904년 2월 러일전쟁 발발부터 광복까지 일제에 협력한 대가로 취득한 재산은 친일재산귀속법에 따라 국가에 귀속된다. 이해승이 홍은동 임야를 최초 취득한 시점은 1917년이었다. 정부는 이를 근거로 “홍은동 임야의 진정명의 회복을 위한 소유권이전등기 절차를 이행하라”며 소송을 냈다. 그러나 법원은 이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친일재산귀속법에 따라 친일재산은 취득·증여한 때를 기준으로 국가의 소유가 된다. 다만 ‘제3자가 선의로 취득하거나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고 취득한 경우’에는 귀속 대상에서 제외된다. 홍은동 땅 소유권은 1957년 이해승의 손자인 이우영 그랜드힐튼호텔 회장에게 넘어갔다. 근저당권이 설정돼 있던 이 땅은 1966년 경매에 넘겨져 제일은행(SC제일은행의 전신)의 소유로 바뀌었다가 이듬해 이 회장이 땅을 도로 사들였다. 법원은 제일은행이 친일재산임을 모르고 경매를 통해 땅을 취득했으므로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고 취득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봤다. 현재 이 회장의 소유인 땅을 정부가 환수하면 이 회장과 제일은행의 과거 소유권이전등기가 순차적으로 말소되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는 제일은행의 정당한 권리를 해치는 것이어서 법적으로 허용할 수 없다는 게 법원 판단이다. 정부는 판결에 불복했지만 대법원은 “원심판결 이유를 관련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판단은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며 상고를 기각했다.
  • [황수정의 인터뷰 진심]“‘기정아, 우리가 같이 이념 덧칠했잖아’ 이런 말 하겠다는 것”/수석논설위원

    [황수정의 인터뷰 진심]“‘기정아, 우리가 같이 이념 덧칠했잖아’ 이런 말 하겠다는 것”/수석논설위원

    ‘운동권 정치’ 설거지. 아무나 이 무시무시한 일의 주체가 될 수는 없다. “우리가 만든 쓰레기는 우리가 치우자”는 언표를 앞세우고 지난달 ‘민주화운동 동지회’가 발족했다. 반지성의 진영 정치, 괴담이 난무하는 극단의 사회 분열에 586 세력의 책임이 크다는 자기반성이기도 했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주도한 얼굴들이 간판으로 나섰지만 가장 든든한 ‘배후’는 주대환(69) 조봉암기념사업회 부회장이다. 민주화·노동 운동, 진보정당 활동으로 평생을 보낸 ‘골수 좌파’. “감옥 세 번 다녀오면서 문학청년은 투사가 됐다”는 그를 지난 2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만났다. ‘586 쓰레기 설거지’라는 뜨끔하고 과격한 말을 “내가 우겨서 만들었다”며 운을 뗐다.“내가 운동권의 선배니까 ‘걔들’(586 운동권 세대)이라 부르겠다(웃음). 걔들이 어느덧 환갑 세대다. 노동, 연금, 교육 개혁에 전부 걸림돌이 되고 있다. 민주화운동의 이름으로 잔치판을 벌여 먹고 마시다 쓰레기를 만들어 놨다. 미래세대를 위해 이제 우리 손으로 치우자는 거다. 무엇보다 86세대의 독특한 태도, 그런 것들을 정리하자는 것이다.” -독특한 태도란 어떤 건가. “오만하고 건방지고 무식하다. 지적(知的)으로 게으른 채 기득권 세력이 됐다. 나는 그들 면전에서도 그렇게 말한다.” -동지회 발족에 반발이나 비판은 없었나. “누가 누구를 설거지하겠다는 거냐고 반발도 했다. 특히 주사파 출신들의 반발이 거셌다. 윤석열 정부를 편들어 더불어민주당을 공격하려는 거냐고 따졌다. 이 모임이 무슨 정치적 목적이 있는 줄 오해부터 했다.” -기득권이 된 86세대에게는 어떤 잘못이 컸다고 보나. “노동운동만 봐도 그렇다. 오히려 기득권 노조를 지키는 운동으로 변질시켜 버렸다. 젊은 시절 우리의 노동운동을 통해 민주노총이 태어났다. 그런데 하위 노동자들의 권익 대변은커녕 기득권과의 격차를 되레 벌리는 짓을 한다. 또 하나 큰 잘못은 운동을 빌미로 역사에 멋대로 덧칠을 했다는 것이다.” -이념을 덧입혔다는 말인가. “그때는 전두환만 몰아낸다면 뭐든 다 해도 된다, 오버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5·18 민주화운동 현장에 반미, 친북 이런 것 전혀 없었다. 우리가 덧칠했다. 함운경, 민경우 얘네들이 맨 앞줄에 서서 그때 그런 일을 했다(웃음).” 80년대 학생 운동권의 핵심이었던 함운경(59·전 서울대 삼민투위원장), 민경우(58·전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총장)씨는 지금 주 부회장과 뜻을 같이하며 민주화운동 동지회를 만들었다. 함씨가 동지회 회장, 민씨가 동지회 사무총장이다. -함씨는 최근 인터뷰에서 남파 간첩과 커피를 마시고도 신고하지 않았다는 고백을 했다. “실제 그랬다. 아무 짓이나 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87년 민주화 항쟁 이후 주사파가 쏟아져 나왔다. 수만 명의 주사파가 그때 했던 일은 민주화운동이 아니었다. 친북 통일운동이었다. 대학가에 그 엄청났던 주사파는 지금 다 어디 가 있나. 대부분 50대가 됐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이 주축인 지식인층이 정직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느닷없이 ‘윤석열 독재’를 외치기도 한다. 아직도 민주화운동 중이라는 착각에 빠져 산다. 한 세대가 통째로 자신을 속이며 살고 있다.” -동지회는 구체적으로 어떤 운동을 하려 하나. “강기정 광주시장이 정율성 공원을 무리하게 밀어붙이고 있지 않나. 그걸 5·18 정신 운운하면서. 이럴 때 나서려 한다. 함운경과 강기정은 똑같이 82학번으로 함께 학생운동을 했다. 1985년에 함운경은 서울대 삼민투위원장, 강기정은 전남대 삼민투위원장. 둘이 너무 잘 아는 사이다. 함운경이 이렇게 짚겠다는 거다. ‘기정아, 정율성 공원에 5·18 정신이라니. 5·18에 이념의 색깔을 덧칠한 것이 나였고 너였잖아. 우리가 일부러 했던 짓이잖아’라고.” -동지회가 후쿠시마 오염수 괴담을 잡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의도는 아니었다. 함운경이 하필 횟집을 운영하고 민경우도 골수 주사파였다. 광우병 파동 때 괴담으로 어떻게 선동했는지 양심선언한 것이 도움이 된 듯하다.” -진영 간 이념전이 또 벌어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념편향을 바로잡겠다는 생각이 강해 보인다. 그러나 장기적이고 전략적이어야 하는 일이다. ‘갑자기 왜 이래?’ 이런 생각이 들게 하면 곤란하다. 문재인 정부가 김원봉, 홍범도를 선양한 과정은 너무 인위적이었다. 김원봉을 띄우려다 북한 정권 참여 행적 등으로 논란이 되자 홍범도로 바꿨다. 북한과의 접점을 만들려고 공유할 영웅들을 찾았다고 본다. 인위적이긴 했어도 전 정권은 인물을 영화로 먼저 띄운다든지 준비작업을 반복했다. 현 정부는 그런 뜸마저 들이지 않는 성급함이 보인다.” -‘뉴 레프트 사관’을 주창한 지 거의 10년이다.(2014년 ‘뉴 레프트 대한민국사관을 약술하다’라는 글을 썼다.) “진정한 좌파의 가치관으로 세상과 역사를 본다면 대한민국은 이미 진보적 가치로 세워진 나라다. 성공적 토지 개혁을 통해 유례없이 평등한 자영농의 나라로 출발했다. 해방 당시의 좌파 또는 진보라면 조선공산당이 중심이었다. 그때 박헌영의 이름으로 내놓은 ‘8월 테제’의 강령 가운데 실현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8월 테제는 민중의 요구를 집약한 것이었고 제헌헌법에까지 적용됐다. 대한민국의 뿌리와 현재를 똑바로 본다면 우리 역사를 긍정하지 않을 수 없다.”(대한민국의 역사를 긍정하는 자신의 사관을 ‘뉴 레프트’라 이름 붙였다.) -86세대는 세계 유례가 없는 ‘변종 좌파’라 규정한 적 있다. ‘뉴 레프트’ 운동이 확산했다면 정치도 진보했을까. “우리 좌파는 후진국형 좌파다. 식민지 종속국의 좌파는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숙명이기도 하다. 독립운동밖에는 못 한다. 이제 우리는 선진국이다. 올바른 형태의 진보, 선진국들이 하는 진보를 해야 한다. 그게 왜 이리 어렵나.” -이승만기념관 건립위원회 위원을 맡았는데. “4·19혁명으로 쫓겨나기까지 이승만은 ‘국부’였다. 그를 다시 국부로 되돌린다면 용납할 수 없겠지만 재정립 작업은 해야 한다. 대한민국 건국에는 누구보다 중요한 인물이다.” -조봉암 재평가 작업도 꾸준히 진행하는 건가. “조봉암이 건국훈장을 못 받는 이유가 친일 행적이다. 확인도 제대로 안 되는 성금을 일제에 냈다는 것이다. 해방 직후 반민특위는 당시 주요 인사들의 행적을 속속들이 알고서 재판하고 처벌했다. 그때 거론조차 안 됐던 이들을 기어이 후벼파서 친일 딱지를 붙인 게 좌파다. 나는 이런 좌파의 행태를 정신병이라고 본다. 조봉암, 김성수는 재평가돼야 한다.”-민주화운동 세력이 주축인 민주당의 지금 모습을 어떻게 보나. “민주화운동의 맥을 잇는 정당에서 민주화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을 대통령 후보까지 만들었다. 그러더니 저러고 있다. 저 모습이 민주화운동의 말기적 현상 아닌가 싶다. 민주화운동의 전통을 팔아서 정치적으로 뭔가 모색하는 일은 이제 끝났다.” ■주대환은 1954년 경남 함안 출생. 마산고·서울대 종교학과. 1979년 부마항쟁 등 3차례 투옥. 1987년 전후 김철순이라는 가명으로 혁명 선동 글. ‘살인·강간·고문 정권 타도를 위한 인천노동자투쟁위원회’ 조직. 1992년 한국노동당 창당준비위원장. 2004년 민주노동당 정책위의장. 2008년 사회민주주의연합 공동대표. 조봉암기념사업회 부회장. 2023년 이승만대통령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 추진위원. 저서 ‘좌파논어’, ‘시민을 위한 한국현대사’ 등.
  • [마감 후] 바르샤바의 동상들/안석 정치부 차장

    [마감 후] 바르샤바의 동상들/안석 정치부 차장

    드골, 레이건, 파데레프스키, 쇼팽, 리스트…. 지난 7월 윤석열 대통령의 해외 순방 일정을 따라 찾은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본 역사적 인물들의 동상이다. 당시 윤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 일정이 전격 공개되고 갑작스레 2박을 더 하게 된 후 방문 사실을 공식적으로 보도하기 전까지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바르샤바 시내 한 바퀴를 돌아보는 것 정도뿐이었다. 덕분에 바르샤바 곳곳에 있는 이들 조형물을 좀더 여유 있게 살펴볼 수 있었다. ‘구글링’을 통해 알아본 얕은 수준의 지식이긴 하지만 수도 곳곳에 있는 드골, 레이건과 같은 다른 나라 지도자의 동상을 통해 폴란드의 현대사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파데레프스키 동상은 레이건 흉상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었는데, 하이페리온 레이블의 ‘낭만주의 협주곡 시리즈’에서나 처음 이름을 접했던 파데레프스키가 폴란드의 초대 총리였다는 사실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와지엔키 공원에 함께 설치된 쇼팽과 리스트의 조형물이었다. 압도적 크기의 쇼팽 동상과 비교해 사람 상반신 크기의 리스트 흉상은 너무도 초라해 보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폴란드가 ‘쇼팽의 나라’라고는 하지만 헝가리 출신인 리스트가 이웃 나라에서 이런 푸대접을 받아야 하나. 차라리 다른 장소로 흉상을 이전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한 도시에 설치된 동상을 보면 그 도시, 그 나라, 그 국민들을 조금이나마 더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얼마 전 방문한 뉴욕 타임스스퀘어 한복판에서는 ‘파더 더피’의 동상이 눈에 띄었다. 파더 더피는 남북전쟁 당시 많은 미국인의 목숨을 구한 군인이자 성직자였다고 하는데, 국가를 위한 헌신에 대한 미국인의 인식을 엿볼 수 있었다. 이들 도시의 동상들을 보며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홍범도 장군 흉상을 둘러싼 논란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과거 민주당 정권에서는 동랑 유치진과 같은 친일 전력의 인물들이 동상 철거의 수모를 당하더니 정권이 바뀌자 이제는 공산당 전력을 가진 인물들의 동상이 있던 자리에서 쫓겨나는 처지가 됐다. 물론 유명인들의 조형물이 수모를 당하는 사례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몇 해 전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촉발된 인종차별 반대 운동의 여파로 콜럼버스 동상은 목이 잘렸고, 처칠 동상엔 낙서가 그려졌다. 심지어 노예해방의 상징인 링컨 동상까지 철거되는 수난을 겪지 않았는가. 하지만 정치적 양극화가 일상이 된 시대에 정권마다 반복되는 동상을 둘러싼 논란은 위와 같은 ‘반달리즘’과는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홍 장군 흉상이 애초에 육사 교내로 들어오면 안 됐을 존재인지, 역사학계와 제대로 된 토론도 없이 흉상을 이전하는 게 맞는 일인지 어느 쪽 손을 들어 줘야 하는지 판단은 어렵지만, 이런 식이면 정권마다 철거 또는 이전될 동상의 리스트를 만들어야 할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홍 장군 흉상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육사와 독립기념관을 오가야 하는 처지가 되는 것일까. 바르샤바, 뉴욕에서 본 동상들처럼 도시 생활의 갑갑한 마음은 잠시나마 내려놓고 서울의 동상들을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세종로의 아침] ‘Two Koreas’… 적개심 왜 돋우는가/송한수 국제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Two Koreas’… 적개심 왜 돋우는가/송한수 국제부 선임기자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원한이야 피에 맺힌/ 적군을 무~찌르고서/ 꽃잎~처럼 떨어져 간/ 전우야 잘 자라’ 6ㆍ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0월에 발표된 진중가요인 ‘전우야 잘 자라’의 1절이다. 리듬은 그야말로 박력을 내뿜는다. 진군 나팔을 불면서 매섭게 공격을 독려하는 가사를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황국신민으로서 영광’ 운운하는 친일파의 글이 선동엔 제법 힘을 쓴 것처럼 패거리에겐 진짜로 그럴싸하게 보인다. 최근 리비아를 통해 어렴풋이 남북한을 떠올렸다. 옛 아프리카 최고 부국 리비아는 대홍수를 그저 흘려보내기만 했다. 대비할 시간이 많았는데도, 그럴 의지는 무참히 꺾여 있었다. 동부를 지배하는 ‘국가안정정부’(GNS), 서부를 통치하는 ‘국가통합정부’(GNU)로 쪼개져 아귀다툼을 벌이는 마당에 숱한 국민이 깊고도 거친 물살에 휘말려 스러질 때까지 아예 손을 놓은 채였다. 사후에도 그대로였다. 원인을 놓고 서로 머리끄덩이를 잡는 덴 잽쌌다. ‘통일 리비아’로 걸음할 미래 설계는 한갓 남의 꿈에 그쳤다. 적개심 앞에서 대의를 향한 건설적 접근은 길을 헤맨다. 관계를 발전시킬 장기적인 청사진도 있는 둥 없는 둥 시답잖기 마련이다. 상대방을 없애고야 말 대상으로 여기니 빤하지 않은가. 결국 두 쪽은 ‘내로남불’ 행태를 번갈아 드러내며 쏙 빼닮게 된다. 그래서 무섭다. 대한민국 국방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싸고 걱정하는 소리가 퍽이나 높다. 예비역 중장인 그는 ‘북진통일’을 소신이라며 줄곧 맨 앞에 내세운 인물로 알려졌다. 안타까움을 넘어 딱하다. 영웅심리도 이쯤이면 이승만(1875~1965) 전 대통령조차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켜 세울 만하지 않겠나. 진보냐 보수냐 하는 이념을 떠나 사회 지도층이라면 갖춰야 할 자격 요건, 즉 역량의 문제라고 믿는다. 1950년과 2023년은 다르고 또 다르다. 한 발짝 물러나 얘기해도 자신의 퇴역 전 군복을 입었을 때와 명색이 국민을 섬긴다며 정치인 완장을 두른 지금은 사뭇 달라야 한다. 후보자는 자칭 소신에 걸맞게 낡아빠진 군복을 다시 주워서 입기라도 하려는 모양새로 각오를 새겼는지 모른다. 하지만 국민을 불안의 바다에 빠뜨리기 시작한 그에겐 내무반장 자리도 아깝다. 적개심은 마음속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심은 것이라고 한다. 보통 사람에게도 위험할 터인데 굵직굵직한 정책 결정으로 국민 삶을 가름하는 각료에게는 어떻겠는가. 게다가 신중에 신중을 더해도 시원찮을 남북한 문제와 관련해 까딱 잘못했다간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빚을 수 있다. 그는 예컨대 70년이나 묵은 ‘전우야 잘 자라’를 목청껏 부르며 적개심을 퍼뜨릴 셈인가. 슬프고 불행한 역사를 돌아보는 게 옳다. 우리 아이들에게 적개심을 유산으로 넘길 순 없다. 오늘은 마침 지구를 날릴 뻔했던 1983년 ‘9ㆍ26 핵 위기’ 40주년을 맞는다. 역시 적개심이 부른 넘치는 긴장과 몰이해 탓이었다. 옛 소련 조기경보위성이 일출을 미국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신호로 착각한 결과다. 작은 실수가 참담한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아찔한 교훈을 남겼다. 남북한을 대하는 일그러진 시각만큼 나라와 민족을 위협하진 않겠지만, 오히려 더 적개심이 꺼지지 않는 사이가 있다. 대화를 통한 협상을 허공에 내던지고 서로 죽이려는 몹쓸 여야 정치판이다. 사흘 뒤 추석 명절엔 지인, 이웃끼리 정치로 얘기꽃을 피우다 덩달아 마음을 다치지 않기 바란다.
  • 파랑새가 되어 돌아올 녹두장군 전봉준의 생가터 [한ZOOM]

    파랑새가 되어 돌아올 녹두장군 전봉준의 생가터 [한ZOOM]

    전북 고창에는 동학농민혁명을 이끌었던 ‘녹두장군’ 전봉준(全琫準, 1855~1895년) 장군의 생가터가 있다. 2001년 고창군은 동학농민혁명 당시 파괴된 전봉준 장군 생가를 복원했지만 복원 직후부터 고증실패 논란에 휩싸였다. 몰락한 양반집안의 후손이었던 전봉준은 당시 농민들이 살던 초가삼간에서 가난하게 살았다. 그런데 복원된 생가는 양반이나 지주가 살았을 법한 모습이었던 것이다. 결국 2019년 고창군은 복원한 생가를 허물었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는 고(故) 신영복 교수가 쓴 전래민요 ‘새야새야 파랑새야’가 새겨진 비석만 남아있다. 현재 고창군은 고창군 일대 동학농민혁명 성지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향후 이곳 생가터에는 ‘전봉준 기념공원’이 세워질 예정이라고 한다. 평등한 세상을 추구한 ‘동학’의 탄생 19세기 중반 청나라는 아편전쟁과 같은 서구열강의 침략과 태평천국의 난과 같은 내부의 분열로 무너져가고 있었다. 이를 바라보는 조선에서도 서구열강에 대한 두려움이 커져가고 있었다.  최제우(崔濟愚,1824~1863)는 서양의 학문과 종교를 말하는 서학(西學)에는 서구열강이 조선을 침략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으므로, 서학에 대항할 수 있는 새로운 민족신앙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1860년 서학의 장점은 받아들이고 유교, 불교, 선교 등을 종합한 동학(東學)을 창시했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동학은 지독한 가난과 양반들의 핍박 속에 살던 농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지금의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로 퍼져 나갔다.  그러나 동학의 인본주의와 평등주의는 조선의 신분제 사회질서를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었다. 결국 최제우는 세상을 어지럽힌다는 죄로 1864년 처형됐다. 하지만 동학의 맥은 끊어지지 않았고, 1905년 3대 교주 손병희가 천도교로 이름을 바꾸어 계승되고 있다.  동학농민혁명의 불씨, 탐관오리 조병갑 1893년 지금의 전북 정읍인 고부에 신임군수 조병갑이 부임했다. 고부는 전라도 내에서도 유명한 곡창지대였다. 부패한 탐관오리였던 조병갑도 그 사실을 알고 농민들을 수탈하기 위해 고부군수로 온 것이었다.  예상대로 조병갑은 부임하자마자 각종 세금으로 농민들을 수탈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았다는 ‘불효죄’, 형제자매 간에 화목하지 않았다는 ‘불목죄’ 등 없던 죄를 만들어 농민들을 수탈했다. 심지어 자신 아버지의 업적을 기리는 공적비를 세운다고 세금을 뜯어갔다. 흉년으로 굶어 죽은 백성들은 늘어가는 만큼 조병갑의 곳간에는 쌀이 쌓여갔다. 어느 날 조병갑은 새로운 저수지, 만석보(萬石洑)를 짓는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농민들은 당황했다. 이미 멀쩡한 저수지가 있는데도 새로운 저수지를 짓는다는 것이었다. 조병갑은 농사일에 바쁜 농민들을 강제로 동원했다. 심지어 임금도 주지 않았다. 그리고 만석보가 다 지어지자 조병갑은 만석보의 물을 사용하는 대가를 지불하라며 농민들에게 또 세금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조병갑의 횡포를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농민들은 몰락한 양반 전창혁(全彰赫)을 찾아가 탄원서를 써달라고 부탁했다. 전창혁이 쓴 탄원서를 받은 조병갑은 그 자리에서 탄원서를 들고 온 농민들을 무참히 짓밟았다. 탄원서를 쓴 전창혁도 붙잡아와 곤장을 때렸다. 곤장을 맞은 전창혁은 후유증을 견디다가 결국 숨을 거두었다.  동학농민혁명의 전개 1894년 음력 1월 10일 전창혁의 아들 전봉준은 1000여명의 농민들을 이끌고 고부관아로 향했고, 조병갑은 도망쳤다. 전봉준은 죄 없이 갇힌 사람들을 풀어주고, 조병갑이 수탈한 쌀을 농민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한편 조정에서는 민심을 달래기 위해 조병갑을 파직하고 완도로 유배를 보냈다. 그리고 진상파악과 상황수습을 위해 안핵사 이용태를 파견했다. 그러나 이용태는 민심을 달래지 않았다. 고부에 도착한 이용태는 농민들을 모두 동학교도로 몰아 체포했다. 심지어 반항하는 이들은 집을 불태우고 죽였다. 이는 민심수습보다는 신분제 사회질서를 뒤흔드는 동학을 뿌리뽑아 다시는 봉기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려는 당시 조정과 양반들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전봉준은 부패한 탐관오리와 양반들로 썩어버린 세상을 바로잡고자 사람들을 모아 한양으로 향했다. 4000여 명이던 동학농민군도 어느덧 1만여 명으로 늘어나 있었다.  한양으로 가기 위해 전주성을 향하던 동학농민군은 ‘황토현 전투’에 이어 ‘황룡촌 전투’에서 관군에게 승리했다. 전주에 있던 전라감사와 관군들은 동학농민군이 온다는 소식에 도망쳤고, 동학농민군은 백성들의 환호를 받으며 전주성을 접수했다.  한편 위기를 느낀 고종은 청나라를 끌어들이는 최악의 선택을 했다. 음력 5월 5일 청나라 군대가 충청남도 아산에 도착했다. 그런데 다음 날 일본군이 인천에 도착했다. 1884년 청나라와 일본이 맺은 ‘텐진조약’ 때문이었다. 텐진조약은 청나라와 일본 중에 한 나라가 조선에 군대를 보내면 다른 나라도 군대를 보낼 수 있도록 한 조약이다.  두 나라의 군대가 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은 전봉준은 동학농민군 자진 해산을 결단했다. 혁명도 중요하지만 만약 청나라와 일본이 조선에서 전쟁을 벌인다면 백성들이 위험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신 전봉준은 조정에 자진해산 후에도 동학농민군을 탄압하지 않을 것, 농민들이 지방행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구인 집강소(執綱所)를 설치할 것을 요구했다.  동학농민군이 자진해산 했는데도 일본군은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오히려 경복궁을 점거하고 친일내각을 구성했다. 일본군은 애초부터 동학농민군이 아닌 조선장악을 목적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그리고 ‘청일전쟁’이 일어났다.  1894년 음력 9월, 전봉준은 전라북도 완주에 있는 삼례지역을 중심으로 동학농민군을 다시 모았다. 처음에는 탐관오리가 목표였지만 이제는 조선을 침략하려는 일본군이 목표였다. 처음 4천여 명이었던 동학농민군은 어느덧 4만여 명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일본군은 조선관군과 너무도 달랐다. 공주를 지나던 동학농민군은 최신식 소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의 화력 앞에 무참히 무너졌다.  1894년 음력 11월 9일, 동학농민군은 공주 우금치 고개에서 일본군과 최후의 결전을 벌였다. 이미 동학농민군을 모조리 살육하라는 일본군 총지휘관 명령이 떨어진 상황이었다. 동학농민군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하지만 평생 농사만 짓던 동학농민군은 최신식 무기와 군사훈련을 받은 일본군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2만여 명의 동학농민군은 500명도 남지 않았다. 전봉준은 남아있는 농민들이라도 살리기 위해 동학농민군 해산을 결정했다. 그리고 일본군을 피해 숨어 지내다가 부하의 밀고로 체포되어 1895년 음력 3월 30일 교수형에 처해졌다.  결코 실패하지 않은 혁명의 계승 동학농민혁명은 결과만 놓고 보면 실패한 혁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이 혁명을 실패로 기록하지 않았다. 조선후기에 일어난 갑신정변, 갑오개혁 등은 대부분 지배계층이 주도한 개혁이었다. 그러나 동학농민혁명은 피지배계층이었던 농민들이 중심이 된 민중항쟁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은 신분체 철폐와 같은 조선의 근대화와, 의병활동을 통한 자주국권 회복운동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학농민혁명은 여전히 평가절하되어 있다. 심지어 전라도 농민봉기로 기억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동학농민혁명의 의미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퍼져 나갈 수 있도록 고창군에서 추진하고 있는 동학농민혁명 성지화 사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기를 기대해본다.
  • [김별아의 세상구경] 또 다른 마광수가 나타난다면/소설가

    [김별아의 세상구경] 또 다른 마광수가 나타난다면/소설가

    지난 5일은 2017년 세상을 떠난 마광수 선생님의 6주기였다. 현대문학 전공과 학부 졸업 논문 지도 교수였던 그를 나는 그리고 우리 과 학생들은 교수님이라고 부르는 대신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평소 태도는 물론 수업 중에도 강단과 학계의 해묵은 권위주의가 없었다. 하이힐을 신고 손톱을 기를 줄 모르는 제자들의 지나친 수수함에 혀를 차긴 했지만, 우리가 가파른 삶의 경사지에서 비틀거릴 때는 피붙이처럼 안타까워했다. 마광수 선생님이 주장한 야한 상상과 야한 문화, 야한 삶을 한마디로 말하면 ‘자유’였다. 모교의 교훈은 성경의 한 구절을 빌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였는데 선생님은 항시 이렇게 말했다.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 내가 졸업한 직후 선생님은 ‘외설 논란’의 필화 사건 피의자로 강의실에서 수업을 하던 도중 잡혀 갔다. 포승줄에 묶인 채 재판을 받고 감옥에 갇혔다 돌아온 예술가는 더이상 예전 같을 수 없었다. 수치심과 자기 검열로 파리해졌고 투옥만큼이나 고통스러운 해임과 복직 과정을 거치면서 우울증이 깊어졌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위험한 동시에 취약한 사람은 좌파도 우파도 아닌 자유주의자다. 생래적으로 패거리를 짓지 못하기에 배후지도 동조자도 없기 때문이다. 야만의 시절 희생 제물이 된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스스로 세상을 저버리기까지 고통 속에 고독했던 선생님과 함께하지 못한 회한은 지금까지 내 마음에 고스란하다. 6주기를 앞두고 반성문 쓰듯 선생님 이야기를 SNS에 올렸는데 반향이 생각보다 훨씬 더 뜨거웠다. 수백여 개의 공감과 댓글을 살펴 읽노라니 평소 예민하게 날을 세우던 소위 ‘좌와 우’의 편가르기도 의미가 없었다. 설령 비난하는 편에 서지 않았다 할지라도 무관심했던 사람들까지 모두 같은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한국 사회가 마광수 선생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거나 한국 사회의 위선과 이중성, 도덕적 엄숙주의에 경종을 울린 선구자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었다. 그 시절이야말로 후일 ‘미투’(me too)로 터져 나온 성폭력과 성희롱이 비일비재한 때였는데, 마광수 선생님이 통렬하게 비판한 것이 바로 말과 행동이 다른 지식인들의 위선이었다. 하지만 뒤늦은 후회와 반성, 애도와 명예 회복을 말하는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의심한다. 지금 또 다른 마광수가 나타난다면…. 우리는 그를 죽이지 않을 수 있을까. 주제적으로 직접 연관된 위안부 쉼터에서의 철거는 십분 이해하지만,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화가가 만든 200여개(숫자 자체가 놀랍긴 하다)의 공공미술 작품을 모두 철거한다는 것도 그렇다. 그런데 그것이 ‘친일파’로 낙인찍힌 작가가 그린 고소설의 주인공 영정까지 철거하고 재제작한 일의 백래시(backlash)라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잘못한 만큼은 사과를 하고, 잘못한 만큼만 비판을 하는 일이 그리도 어려운 것일까? 좌우 진영 논리를 떠나 예술가의 행위와 작품은 분리돼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행위에 대한 처벌을 넘어 존재와 작품까지 지우는 것은 무법의 응보주의나 다름없다. ‘캔슬 컬처’(cancel culture)에 대한 문제의식과 최소한의 합의조차 없는 상태에서는 마광수 선생님이 다시 돌아온다 해도 결말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 ‘조센징’쓴 욱일기 들고 다니던 60대 폭행 탈북자 징역형

    ‘조센징’쓴 욱일기 들고 다니던 60대 폭행 탈북자 징역형

    욱일기를 본 뜬 그림에 ‘조센징’ 등 한국인을 비하 하는 글을 쓴 깃발을 들고 다니던 남성을 폭행한 탈북자가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의정부지법 형사13부(부장 박주영)는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된 40대 탈북자 A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 했다고 24일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벽돌과 돌멩이로 피해자를 수차례 때려 상해를 가한 것은 불법성의 정도가 중하다”면서도 “배심원은 공소사실(살인미수)을 무죄로 인정하는 평결을 제시했고,재판부의 심증에도 부합한다”며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A씨는 살인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들은 ‘특수상해’로 평결했다. 탈북자인 A씨는 3월 2일 오후 파주 금촌시장에서 욱일기를 들고 돌아다니며 1인 시위를 한 60대 B씨를 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조센징’, ‘아리가또’ 등의 단어가 쓰인 욱일기 그림을 들고 다니 던 B씨에게 “친일파냐,뭐 하는 짓이냐?”고 화를 냈다. 이에 B씨가 “조센징 놈들”이라고 받아치자, 격분한 A씨가 벽돌 등으로 B씨를 폭행했다. 경찰은 A씨에게 살인 의도가 있다고 보고 살인미수죄를 적용해 기소했지만,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들은 살인의 고의성이 명확하지 않다며 살인미수는 무죄로 평결하고,대신 축소 사실인 특수상해는 인정했다.
  • [지방시대] 충북지사 주민소환과 성장통/남인우 전국부 기자

    [지방시대] 충북지사 주민소환과 성장통/남인우 전국부 기자

    친일파 발언과 오송 참사 부 실대응 등으로 논란이 끊이지 않은 김영환 충북지사 주민소환이 추진되자 찬반 논쟁이 뜨겁다. 도민들은 어느 쪽을 더 지지할까. 무조건 한쪽을 선택해야 한다고 하면 필자는 찬성에 한 표를 던질 것 같다. 김 지사가 주민소환 대상이 될 정도로 큰 잘못은 안 했다고 가정하자. 김 지사가 속한 국민의힘과 보수단체들 주장대로 주민소환을 주도하는 A씨가 총선 출마를 앞두고 이름을 알리려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고 하자. 주민소환 반대 측의 이런 주장은 사실일지 모른다. 실제 A씨는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총선 출마 경력이 있고 내년 총선 후보로도 거론된다. 하지만 김 지사가 그동안 언론과 시민단체의 수많은 지적을 외면하고 마이웨이를 고집한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강력한 경고 메시지가 필요하다는 말들이 적지 않았던 것 또한 팩트다. 한 번의 큰 재해가 있기 전에, 그와 관련된 작은 사고들이 먼저 일어난다는 하인리히 법칙이 있다. 인생사도 마찬가지다. 친일파가 되겠다는 김 지사의 황당한 발언과 재공모까지 동원된 무리한 도립대 총장 코드인사 등 주민소환이 있기까지 사고와 징후들이 여러 번 있었다. 안타깝게도 지난 7월 충북 청주 오송 지하차도가 물에 잠겨 14명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고, 사고 발생 4시간이 지나 현장에 도착한 김 지사는 “내가 빨리 갔어도 바뀔 것은 없었다”는 발언으로 도민들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주민소환 추진의 순수성이 의심돼도 혼란으로 얼룩진 현 상황에 대한 모든 책임을 주민소환운동본부 준비위원회 탓으로 돌릴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고 주민소환을 통해 김 지사가 탄핵되기를 진정 바라는 것은 아니다. 간절히 원해도 까다로운 절차 탓에 성공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런데도 주민소환 추진에 찬성표를 던지는 것은 주민소환 시도 자체가 충북을 변화시킬 외부 충격이 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좋은 약이 되려면 많은 사람의 반성이 동반돼야 한다. 김 지사의 뼈를 깎는 참회는 가장 바라는 일이다. 제 역할을 못한 지사 참모들과 국민의힘 지방의원들도 달라져야 한다. 직언을 두려워하는 참모와 견제와 감시를 소홀히 하는 지방의원은 존재할 필요가 없다. 경기지사 선거 출마를 선언한 김 지사를 찾아가 충북지사 선거 출마를 종용한 국민의힘 의원들도 주민소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선거 직전 준비되지 않은 사람을 모셔 오는 촌극을 기획한 그들의 오판이 충북도정의 잘못된 첫 단추가 아닐까. 많은 사람이 충북을 바로 세우겠다고 다짐한다면 주민소환 시도는 분명 성숙한 충북을 만드는 과정에서 겪는 성장통이 될 수 있다.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은 이런 말을 남겼다. ‘바람이 강하게 불수록 연은 더 높게 뜰 수 있다’고. ‘주민소환’이라는 위기를 도약의 계기로 삼아 ‘충북’이라는 연이 높게 뜨는 민선 8기의 해피엔딩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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