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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野, 김희선 ‘민족정기’ 회장 사퇴 촉구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의원들이 열린우리당 김희선 의원에 대해 정무위원장과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 모임’ 회장직의 사퇴를 공식 촉구하고 나섰다. ●“선친 친일시절 계속 거짓말” 김무성 유승민 김정훈 나경원 의원 등 한나라당 정무위원들은 현충일인 6일 국립묘지 참배를 마친 뒤 “김 의원이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는 거짓말로 유권자를 속였고, 진실이 백일하에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거짓과 위선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퇴 촉구 이유로는 ▲일제 고문경찰의 딸이 보훈정책을 맡고 있는 국회 정무위원장 자리에 앉은 점 ▲열린우리당은 모든 과정을 알고서도 진실을 은폐하려 하고 어떤 징계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는 점 ▲청와대가 5월31일 공식 출범한 친일반민족 진상규명위의 사무실 현판식에 김 의원을 버젓이 참여케 한 점 등을 적시했다. 이들은 “김 의원과 열린우리당이 중국전문여행사 대표인 양모씨에게 조사를 의뢰한 결과 김 의원의 할아버지는 김학규 장군이 아니고, 아버지 김일련(가나이 에이이치)은 독립군을 고문 탄압한 만주국 유하경찰서 특무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김의원 “한나라 친일 원죄 희석용 공세” 이에 대해 김 의원은 보도자료를 내고 “친일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한나라당이 원죄를 희석시키고, 반역사적이고 추악한 정치공세로 과거청산 물줄기를 바꾸려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같은 당 오영식 원내 공보부대표도 논평에서 “규명되지 않은 가족사로 국회의 현직 상임위원장을 인신공격하는 것은 무책임하고 정략적인 정치 공세”라며 한나라당과 강재섭 원내대표의 즉각 사과와 발언 취소를 촉구했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박태준 前총리 “한·중·일 안정시스템 필요”

    박태준 전 국무총리가 최근 서울 그랜드호텔에서 열린 한·일 국교 정상화 40돌 국제학술대회에서 “한·중·일간에 파생되는 문제를 보다 짧은 시간에 해결하기 위해 ‘한·중·일 안정 시스템’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박 전 총리는 기조연설에서 “언제쯤 한국인이 ‘친일’의 ‘친(親)’을 ‘친구’의 ‘친’처럼 ‘사이좋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라고 질문한 뒤 “양국의 돈독한 신뢰를 형성하기 위한 제1의 조건은 불행한 과거에 대한 진정한 반성과 실천, 그리고 용서와 화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한국인과 중국인은 일본이 머리카락만 건드려도 민족의식의 중추신경을 곤두세우게 되는데, 이는 일본과의 불행한 과거사에서 생겨난 후천적 방어본능 같은 것”이라면서 “한·중·일 3국간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최단기간 내 대화를 시작할 수 있도록 ‘한·중·일 안정 시스템’을 만들자.”고 말했다.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 윤리특위, 與 단독 중징계 논란

    국회 윤리특위(위원장 김원웅)는 3일 징계심사소위를 열어 열린우리당 위원들만 참석한 가운데 한나라당 김문수·주성영 의원에 대해 각각 15일간 모든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하는 출석정지안을 단독 처리했다. 그러나 김 의원 등은 “이성적인 판단이 아닌 것 같다”,“적반하장”이라며 각각 반발하는 데다가 한나라당도 물러서지 않을 태세여서 오는 3일의 전체회의와 이후 본회의 처리 과정에서 거센 논란이 예상된다. 징계안이 본회의를 통과하면 국회법 163조에 따라 두 의원은 한달 세비 가운데 절반을 삭감당하게 된다. 소위의 이번 결정은 지난 1991년 윤리위 출범 이래 가장 높은 수위다. 김 의원은 지난 4월 행정중심도시특별법 처리 과정에서 의사진행 방해행위로, 주 의원은 지난해 열린우리당 이철우 의원에 대한 ‘간첩’ 발언으로 각각 제소됐다. 앞서 소위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한나라당 이재오 박계동 김기현 박승환 배일도 의원에 대해서도 무더기 ‘경고’ 결정을 내렸다. 한편 한나라당은 부친의 친일행적과 관련해 논란을 빚고 있는 열린우리당 김희선 의원에 대해 국회 정무위원장직 사퇴를 촉구했다. 정무위 한나라당 간사인 김정훈 의원은 “호국·보훈의 달에 열리는 이번 임시국회에서 김 위원장의 거취가 논란이 될 것”이라며 강경 대응 방침을 시사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측은 “확인되지 않은 보도를 두고 한나라당이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고 일축했다.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균형자론 日도 겨냥한 것”

    청와대가 31일 노무현 대통령의 동북아 균형자론에 ‘일본’을 추가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들에게 임명장을 준 뒤 균형자론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들면서 “동북아 균형자론은 군비를 합법화·강화하는 일본의 논의가 한창 진행 중일 때 준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태영 청와대 부속실장도 이날 국정일기에서 동북아 균형자론은 100년전 우리 역사에 대한 처절한 반성과, 역사를 거꾸로 가는 일본에 대한 심각한 우려라는 두가지 축에서 나왔다고 전했다. 그는 노 대통령의 독립기념관 방문(2월27일), 시마네현 의회의 조례제정안 제출(2월22일), 주한 일본대사의 망언 등을 동북아균형자론 구상의 출발점으로 소개했다. 6월 말 한·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굳이 동북아균형자론이 일본을 겨냥하고 있다고 밝힌 배경에 관심이 집중된다.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논술이 술술] 광장/최인훈

    문학작품이 특정한 역사적 사건이나 시대적 상황과 연관돼 사람들에게 길이 기억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적 사건 안에 담겨 있는 ‘시대정신’, 즉 당시 사람들이 추구했던 가치와 고뇌를 온전하고 명료하게 표현했을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프랑스에서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이 위대한 혁명기의 정신과 인간관의 변화를 상징하는 작품으로 존경받는다면, 최인훈의 ‘광장’과 그 주인공 이명훈은 분단시대에서 4·19혁명으로 나타난 역사적 전환기의 민족의 사상과 고뇌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 민족사에서 4·19혁명의 의미는 단지 부패한 독재 정권을 국민의 힘으로 무너뜨린 민주적 정변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해방과 동시에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받아들여야 했던 분단과 그 체제가 강요했던 비민주적 억압을 뚫고 민중 스스로 이 사회의 주인임을 선언하며 나섰던 주체성의 회복을 의미한다. 그로부터 1960년의 위대한 4월은 시인 신동엽의 표현대로 ‘껍데기들’, 곧 분단으로 대표되는 이념적 대립과 갈등, 그에 기생하는 억압적 사회체제와 정치구조를 이 땅에서 ‘쓸어버리고’, 민중 자신이 이 땅의 주인으로서 자신의 권리를 당당히 회복해야 한다는 방향을 부여해 주었다. 이 때문에 우리는 4·19를 여전히 ‘미완의 혁명’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최인훈의 ‘광장’은 4·19혁명이 일어난 1960년 10월 ‘새벽’이라는 잡지에 처음 발표됐다. 이념에 의한 남북 분단과 그로 인한 비극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이 작품은 민족분단의 비극을 이데올로기와 인간 존재의 근본적 문제와 결합시키고 있다. 이 작품의 문제의식은 4·19혁명으로 드러난 의식의 전환과 시대정신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은 우리에게 ‘이념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주인공인 이명준의 행적과 심리적 자의식을 통해 작가는 남과 북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와 사회현실을 비판한다. 이명준은 나름의 방식으로 남북의 현실에 적응하려고 노력한다. 그는 현실에 순응하지도, 현실을 무작정 거부하지도 않는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속한 사회와 현실을 논리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에게는 친일파가 해방 후 고위직에 오르고 타락과 부조리, 방종에 가득 찬 ‘남’이나 경색된 이데올로기, 허위, 부자유가 만연한 ‘북’ 모두 환멸의 대상일 뿐이다. 모두 진정한 인간 삶을 충족시키기 어려운데, 그것은 애당초 남과 북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가 모두 사회 성원들의 자생적인 욕구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동무는 어느 쪽으로 가겠소?”“중립국.”…“동무, 중립국도, 마찬가지 자본주의 나라요. 굶주림과 범죄가 우글대는 낯선 곳에 가서 어쩌자는 거요?”“중립국.”… “…대한민국엔 자유가 있습니다. 인간은 무엇보다도 자유가 소중한 것입니다. 당신은 북한 생활과 포로 생활을 통해서 이중으로 그걸 느꼈을 겁니다. 인간은….”“중립국.” 이명준이 포로수용소에서 나누는 인상적인 이 대화에는 민족의 현실에 대한 작가의 고뇌, 나아가 우리 민족의 고뇌가 응축돼 있다. 이명준이 선택한 ‘중립국’은 현실에 존재하는 어떤 나라가 아니라, 남과 북의 현실에 대한 비판적 대립항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명준이 제3국으로 향하는 배 위에서 자살하는 것으로 작품이 마치는 것은 민족의 현실을 벗어난 제3의 길이란 있을 수 없음을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유니드림 대학입시연구소(www.unidream.co.kr) ●독서 지도시 참고사항 -대상학년:중2∼고3 -관련교과:고등 국어, 고등 사회, 윤리와 사상, 정치, 한국근현대사, 사회문화, 한국지리 -함께 읽어 볼 책과 고전:태백산맥(조정래), 당신들의 천국(이청준), 회색인(최인훈), 신동엽 전집(신동엽),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기출논제:고려대 1998학년도 인문계 정시 논술, 가톨릭대 2000학년도 정시 논술, 연세대 2000학년도 인문계 정시 논술, 서울대 2000학년도 인문계 수시 지필고사, 서강대 2000학년도 1차 모의논술, 경북대 2000학년도 정시 논술 ●생각해보기 -이 작품에서 ‘밀실’과 ‘광장’은 무엇을 상징할까. -이데올로기란 무엇인가.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역사적 현실에서 지식인이 해야 할 역할과 자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써보자. -우리 민족의 현실에서 ‘분단’과 ‘통일’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자신의 생각을 써보자.
  • 딸과 함께 가는 당일치기 논개축제

    딸과 함께 가는 당일치기 논개축제

    경남 진주는 문화예술에 목말라하는 현대인들의 정서를 촉촉하게 적셔줄 단비와 같은 여행지다. 무색무취한 일상에서 벗어나 ‘느낌’ 있는 여행을 원하는 사람에게 제격이다. 예로부터 ‘북평양 남진주’로 불릴 정도로 전통 문화가 융성한 고장이자 방년 19세의 나이로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뛰어든 논개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곳이다. 작은 도시에 ‘진주 8경’이 숨어있을 정도로 아름답다. 초여름의 푸름 속에서 27∼29일 열리는 논개축제를 비롯해 한달에 두차례 열리는 소싸움, 조선 기생의 맥을 잇는 교방문화체험, 실크밸리 탐방, 유등축제 등 일년내내 문화 축제가 마련돼 있다. 특히 ‘양귀비 꽃보다 더 붉은’ 논개의 영혼이 녹아 있는 남강과 진양호의 석양은 일상의 답답함을 시원스레 날려준다. 진주(眞珠)처럼 작지만 아름답고 커다란 빛을 뿜어내는 도시 진주로 안내한다. ●푸른 강바람에 가슴이 활짝 가슴이 활짝 열린다. 진주 IC를 빠져 나오자 진주 시내를 휘감고 흘러가는 남강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강가의 아찔한 바위절벽에 우뚝 서 있는 진주성의 풍광은 한폭의 수채화다. 임진왜란(1592년) 당시 논개가 왜장을 껴안고 강물에 뛰어들어 충절을 다했던 그 강물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유유히 흘러가는 물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도착한 곳은 진주성(사적 118호). 진주성은 임진왜란 당시 3800여명의 적은 군사로 2만여명의 왜군을 물리친 3대 대첩지 가운데 하나다. 입장료는 어른 1000원이며, 주차료는 30분에 500원, 추가 10분당 200원이다. 진주성 관광안내센터(055-749-2485). 논개의 기상이 서려 있는 촉석루에 올랐다. 녹음이 우거진 촉석루는 남원 광한루, 밀양 영남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누각의 하나이자 진주 8경중 제 1경이다. 초여름 햇살에 비친 남강은 어딘가에 논개의 넋이 흐르는 듯했다. 촉석루 아래에 있는 의암은 원래 ‘위험한 바위’라는 뜻의 ‘위암’이라고 불렸으나 논개의 의로운 행동을 기리기 위해 ‘의암’으로 불리게 됐다.11m 높이의 절벽위에 서면 ‘19세의 어린 나이로 어떻게 죽음의 고통을 견뎌냈을까.’하는 생각에 마음이 저려온다. 진주성 안에 있는 논개사당 의기사에 있는 ‘논개 영정’은 이 지역 시민단체가 친일파 화가가 영정을 그렸다는 이유로 지난 10일 강제로 뜯어내는 등 논란을 빚기도 했다. 촉석루를 나와 1760m 길이의 성벽을 따라 걸으면 멋진 산책로가 펼쳐진다. 서장대와 북장대 등 누각과 임진왜란을 주제로 꾸민 진주박물관, 김시민 장군 전공비, 호국사 등을 둘러볼 수 있다. 진주는 특히 남강의 야경이 일품이다. 논개축제를 앞두고 최근 성벽을 오렌지색으로 밝히는 야간 조명공사가 끝나 남강에 비친 진주성의 멋진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 전체적인 야경을 감상하려면 진주성 맞은편의 남강 둔치나 진주교, 천수교가 좋다. 남강을 거슬러 서쪽으로 올라가면 석양이 아름다운 진양호가 나온다. 덕유산과 지리산 계곡에서 내려온 남강물이 잠시 머무는 낭만의 호수. 저녁 노을이 질 무렵 황금물살을 가르는 보트의 모습은 마치 달력의 그림처럼 환상적이다. 진양호 내 시원하게 트인 널찍한 진양호반과 지리산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휴게전망대는 일년 계단과 연결돼 연인들의 데이트 명소다. 남인수 광장에는 진주 출신 대중가수인 고 남인수씨의 ‘애수의 소야곡’이 구성지게 울려퍼져 호반의 정취를 더해준다. 백두산 호랑이와 사자, 기린 등 40여종 300여마리 야생동물을 볼 수 있는 동물원은 어린이들의 인기 명소다. 진양호공원관리사업소(749-2510). ●흉내낼 수 없는 독특한 문화 진주는 전통 예술의 도시답게 진주만의 독특한 문화행사가 즐비하다. 대표적인 축제는 27∼29일 열리는 제4회 논개제로 어느 지역에서도 흉내낼 수 없는 진주만이 가지고 있는 소재로 구성됐다. 여성들만이 제관이 될 수 있는 제례인 의암별제와 진주오광대, 교방굿거리춤, 화포발사시연, 기생사진전 등이 펼쳐진다.27일 오후 9시와 28일 오후 7시30분에는 의암 주변에서 ‘논개 투신장면’이 재현된다. 논개축제준비위원회(755-9111). 논개를 정점으로 한 진주 기생의 맥을 잇는 교방문화는 일제시대 천한 기녀들의 생산물로 치부되면서 사라졌다가 복원된 전통문화. 교방춤 따라 배우기와 악기다루기 등 다양한 교방문화 체험도 가능하다. 비용은 1만원, 진주민속예술보존회(746-6282). 천수교 다리 아래 남강 백사장의 ‘상설투우장’에서는 한달에 두차례 소싸움이 열린다. 진주 소싸움은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전통 지역 축제다. 첫째, 셋째 토요일이면 머리를 맞대고 거친 숨소리를 내며 맞부딪치는 소들의 혈투를 즐길 수 있다. 서로를 향해 돌진하는 싸움소의 불끈대는 근육은 생명의 약동을 느끼게 한다. 입장료는 무료. 진주투우협회(742-6150). 진주성 서쪽 공북문에서 서문까지 600m에 이르는 인사동 골동품 거리는 꼭 들러 봐야 할 곳. 자연발생적으로 조성된 거리에는 20여개 업소가 몰려 있는데 고문서와 전적, 서화, 탁본류, 민속자료, 도자기, 조각품, 공예품, 석물 등 종류가 다양하고 가격이 저렴해 일반관광객도 부담없이 구입할 수 있다. 진주는 또한 우리나라 실크산업의 중심지이기도 하다.130여개의 견사업체에서 국내 생산량의 80%를 생산하고 있다. 올 10월에는 세계의상페스티벌을 개최하는 등 선진국형 성장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다채로운 행사를 준비중이다. 한국견직연구원(www.ksri.re.kr)의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견직업체 현황 등 진주 견직산업의 현주소를 볼 수 있다. 진주성 앞 실키안(747-9841)과 진주시청사내 특산품 판매점에서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진주의 먹을거리 진주 비빔밥과 진주장어구이가 유명하다. 진주성 전투때 처음으로 선보였다는 진주비빔밥은 진주에서만 맛볼 수 있는 향토음식이다. 동황색의 둥근 놋그릇과 쌀밥, 그리고 다섯가지의 나물이 어우러져 칠보화반으로도 불린다. 천황식당(741-2646)과 설야(762-0585)가 유명하다. 진주 장어는 비린내가 없고 담백하며 깻잎에 싸 먹는 맛이 일품이다. 유정장어본점(746-9235)과 남강장어(747-0888)가 맛있다. ■ 이렇게 가세요 ●수도권에서 당일 여행도 충분 진주를 제대로 돌아보려면 1박 2일 일정이 적당하지만 대전~통영고속도로를 타면 수도권에서 당일 여행도 충분히 가능하다. 대전~통영속도로를 타면 대전에서 서진주IC까지 1시간30분 정도로 길이 막히지 않으면 서울에서 3시간30분이면 갈 수 있다.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는 오전 6시부터 20∼50분 간격으로 진주행 고속버스가 있으며,3시간50분 정도 소요된다. 요금은 일반 1만 56000원, 우등 2만 3200원. 항공편은 김포~사천 공항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항공이 하루 6차례 왕복 운항하며, 도착시간에 맞춰 시내까지 공항버스가 운행된다. 전남·경남 부산 등지에서는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진주 IC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진주시 문화관광과(749-2055). 진주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논술이 술술] 시사키워드/박정희 평가

    [논술이 술술] 시사키워드/박정희 평가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평가 문제가 다시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계간 ‘창작과 비평’은 이번 여름호에서 박정희 재평가를 쟁점 기획으로 다뤘다. 여기서 과거 반독재 지식인 진영의 중심에 섰던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민주개혁 없는 경제개발의 추구는 현실사회주의 나라들에서처럼 결국 경제의 장기적 침체와 쇠퇴를 낳거나 이란의 이슬람혁명에서처럼 원리주의적인 신정(神政) 체제로 귀결하기 십상”이라면서 “오늘의 정치 지도자들에게 어떤 문제점이 있건 제2의 박정희가 해결책이 못 되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백 교수는 그러나 박정희의 공과를 따져 경제개발의 업적을 인정해 줘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최근 명지대 국제한국학연구소는 ‘박정희와 그의 시대’를 주제로 매월 한 차례 콜로키엄(전문가 토론회)을 열고 있다. 또 박 전 대통령의 친일행위를 부각한 만화 ‘박정희’가 지난 16일 출간되자 박정희 추종 세력이 반발하고 있다. 박정희는 ‘경제개발의 영웅’이면서 ‘독재자’다. 양면성을 가진 박정희를 제대로 평가하려면 그의 본 모습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박정희가 비난받을 점 박정희의 허물로 지적되는 점들은 대통령이 되기전의 친일 행각과 좌익활동, 대통령이 된 다음의 장기집권과 독재정치, 인권탄압 등이다. 반(反) 박정희 진영에서는 박정희가 교사에서 일본군 장교로, 다시 대한민국 장교로,‘빨갱이’에서 반공의 기수로, 충성을 다하는 장군에서 쿠데타의 수괴로 변신을 거듭하며 조국 민족도, 적과 동지도, 양심과 이념도 버린 것은 오로지 권력욕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다음은 반 박정희 진영의 친일에 관한 주장. ▲친일행각=문경보통학교 교사로 일하던 박정희는 1940년 23세의 나이에 만주군관학교 2기생으로 자원 입대, 일본군 장교가 됐다.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로 창씨개명도 했다. 졸업식에서 박정희는 대표로 “대동아 공영권을 이룩하기 위한 성전(聖戰)에서 나는 목숨을 바쳐 사쿠라와 같이 휼륭하게 죽겠습니다.”라고 선서를 했다.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박정희는 ‘盡忠報國 滅私奉公(진충보국 멸사봉공)’이라는 충성을 맹세하는 혈서를 썼다. 다시 일본 육사에 들어가 3등으로 졸업한 박정희는 ‘천황에게 바치는 충성심이라는 점에서 일본인보다 훨씬 일본인다운 데가 있다.’는 평을 들었다. 박정희는 만주 제8연대의 소대장을 거쳐 제8군단에 배속돼 독립군 토벌에 출정했다. 독립군 토벌에 나갈 때 “조센진 토벌이다. 요오시(좋다)”라고 말했다는 내용이 문명자씨의 ‘내가 본 박정희와 김대중-워싱턴에서 벌어진 일들’이라는 책에 나온다. ▲좌익활동=해방후 군 창설에 참여한 박정희는 조선경비사관학교(육군사관학교의 전신)를 2기로 졸업하고 대위로 임관한 뒤 좌익활동에 빠진다. 육군본부 정보국 작전과장으로 근무하다 1948년 여수 순천 사건을 계기로 군내 ‘남로당 조직책’임이 드러나 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는다. 그러나 박정희는 자신이 참회했으며 사면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증거로 자신이 맡고 있던 조직망을 폭로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뒤 박정희는 수사에 협력해 공모자들을 수사대에 알려주기도 했고 공모자들의 집으로 수사대를 직접 이끌고 가기도 했다. 동료 장교들의 감형운동으로 석방되어 문관으로 육군본부 정보국에 근무하다가 6·25전쟁 이후 소령으로 복귀했다. ▲독재정치·인권탄압=3선 개헌으로 장기집권에 들어간 박정희는 1972년 유신으로 종신 대통령이 되고자 했다. 유신 반대세력에게는 가차없는 탄압이 가해졌다. 수백명의 언론인을 쫓아냈고 수많은 사람을 체포하고 고문했다.1973년 최종길 서울대 교수를 간첩으로 몰아 고문을 해 숨지게 했고 같은 해 일본 도쿄에서 김대중씨를 납치했다.1975년에는 인혁당 사건을 조작해 8명을 사형시켰다. 언론인 장준하도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18년 집권기간에 100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계엄령, 위수령, 비상령이 발동됐고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1만여명이 검거됐다. ●박정희의 경제적 업적 대통령 취임 이후 박정희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행하고 수출드라이브 정책을 추진하는 등 경제성장에 힘을 쏟은 것은 사실이다. 매월 수출진흥확대회의를 열고 해외공관을 통해 수출 확대에 주력했다. 포항제철, 울산 중화학공업 단지 등 사회간접자본 확충에도 힘썼다.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는 등 산업교통망을 늘렸다.‘잘살아 보세’라는 기치 아래 농어촌을 중심으로 새마을운동이라는 개혁 운동을 펼쳤다. 이런 성장정책으로 박정희는 한국을 절대빈곤에서 탈피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1인당 국민소득을 실질소득이 아닌 명목소득으로 계산할 때 박정희가 집권했던 1961년 82달러였는데 죽을 때인 1979년 1636달러를 기록해 외형상 연평균 18%의 고도성장을 달성했다. 특히 수출은 연평균 38% 증가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박정희의 이런 경제적 치적을 깎아내리는 사람들은 60년대의 고도성장은 다른 개도국에도 나타난 현상이었으며 수출도 늘었지만 수입도 엄청나게 늘어 대규모 적자를 기록한 이면을 간과하고 있다고 말한다. ●박정희, 어떻게 볼 것인가 어떤 인물이든 공(功)과 과(過)가 있기 마련이다. 공 때문에 과가 묻혀서도 안되고 그 반대가 돼서도 안된다. 특히 잘못은 시간이 지나면 묻혀지고 미화될 가능성이 높다. 그 인물과 동시대에 살지 않은 후손들에게 어떤 한 면만 부각돼 인물 평가가 잘못될 수 있다. 따라서 박정희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과를 분명히 따져 객관적인 역사적 평가를 내려놓는 일이다. 경제난이 지속되는 요즈음 박정희에 대한 향수가 살아나고 있다. 그러나 단지 그의 한 쪽면만 보고 무턱대고 추종하는 것은 잘못이고 허물 때문에 공적을 폄하해서도 곤란하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비판할 것은 비판해야 한다. 다만 박 전 대통령이 이룬 경제성장의 업적은 노동자의 희생과 인권침해, 천민자본주의 등의 폐단과 부작용을 낳은 것은 사실이다. 한국의 단기간 성장을 박 전 대통령이나 집권·지도층의 공만으로 돌릴 수 없다. 박정희가 경제적 리더십을 발휘했다면 열악한 조건 속에서 묵묵히 일한 노동자들이 있었다는 점도 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또한 박정희가 닦은 경제적 기반 위에 1인당 GDP(국내 총생산) 1만달러를 넘는 중진국이 된 한국이 겪고 있는 심각한 빈부격차와 지역갈등은 박정희가 추구한 성장지상주의와 개발편향주의가 한 원인임을 부정할 수 없다. 손성진기자 sonsj@seoul.co.kr
  • 延大 친일청산 공론화

    대학들이 학내 친일(親日) 청산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연세대가 대학 차원으로는 처음으로 관련 학술심포지엄을 열기로 했다. 연세대 국가관리연구원은 오는 27일 교내 대우관에서 ‘학원 친일문제,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연다고 19일 밝혔다. 숭실대 기독교학과 박정신 교수가 주제발표를 하고 연세대 학교본부, 총학생회,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의 대표들이 토론자로 나선다. 양승함 국가관리연구원장은 “총학생회와 민주노동당 학생위원 등 재학생들의 친일 청산 요구가 이어진 것과 관련, 학교측이 지난달 초 우리 연구원에 관련 토론회 추진을 요청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번 심포지엄에서 주제발표를 맡은 숭실대 박 교수는 “이번 심포지엄이 연세대는 물론 서울대와 고려대 등 주요 대학들의 친일 청산 문제를 공론화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면서 “친일 청산의 방법적인 문제에 대한 발표문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연세대는 백낙준 초대총장을 비롯해 친일 의혹이 있는 학내 인사들의 과거 행적을 역사 앞에 고백하고 기록으로 남겨야 하며 어두웠던 과거를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일제 식민통치의 속박에서 자유로웠던 교육계 지도자는 없었던 만큼 친일 행적은 물론 그들이 한국 교육 발전에 헌신한 점도 함께 평가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백 초대총장의 동상을 철거하는 것이 친일을 청산하는 것은 결코 아니며 과격한 행동은 또 다른 역사 왜곡을 불러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 총학생회 관계자는 “심포지엄 한번으로 교내 친일 역사를 청산할 수는 없겠지만 어두운 과거를 처음으로 공개석상에 끄집어낸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4월 연세대 민노당 학생위원회는 백 초대총장과 유억겸 연희전문학교 5대 교장 등 일제시대에 친일단체에서 활동했던 교직원 7명의 명단을 발표한 바 있다.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19) 1923년 일본인들의 정감록 처형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19) 1923년 일본인들의 정감록 처형

    ‘대일본제국의 애국적 지식인’ 호소이 하지메(細井肇). 호소이 하지메란 일본인이 있었다. 그는 한일합병(1910년)을 전후해 ‘동경아사히신문’과 ‘한일전보통신사’ 기자로 다년간 한국에 체류했다. 갓 일본제국의 식민지로 편입된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호소이는 흥미를 느꼈고 나름대로 많은 ‘연구’도 했다. 그런 호소이에게 1919년의 기미독립운동은 전혀 뜻밖의 사태였다. 무지렁이로 보였던 한국인들이 수백만 명씩이나 길거리로 뛰쳐나와 독립을 요구할 줄 그는 미처 몰랐다. 한낱 정치군인에 지나지 않는 조선총독이 그걸 짐작 못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당당한 한국전문가 호소이 자신도 사태를 전혀 예견하지 못했다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독립만세운동이 좌절되자 한국엔 예언서 ‘정감록’이 더욱 인기를 끌었다. 대한독립이 박두했다는 둥, 신천지가 열릴 거라는 둥 갖가지 소문과 예언이 한반도를 뒤덮을 지경이었다. 특히 1921년부터는 계룡산을 중심으로 숱한 신흥종교단체들이 등장해 위세를 떨쳤다. 겉으론 종교를 표방했지만 은연중 독립을 향한 열망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런 사정을 파악한 조선총독부는 정감록 비상이 걸렸다. 1922년 겨울, 호소이는 비공식적인 통로를 통해 조선총독부의 부탁을 받았다. 예언서 정감록을 죽이라는 것이었다. 동경의 자택 서재에 틀어박혀 호소이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한반도는 우리 대일본제국에 무엇인가. 제국의 용맹스러운 장졸(將卒)들이 목숨 바쳐 강적 청나라도, 러시아도 연달아 무찌른 다음 어렵게 얻어낸 제국의 새 영토가 아닌가. 저 버러지 같은 한국 놈들은 천황폐하의 신민이 된 영광을 모른다. 놈들은 감히 독립을 바라고 있다. 훈련된 군대도 총칼도 없이 맨주먹으로 일어서려는 무지막지한 저들의 맨주먹을 쇠뭉치로 둔갑시키는 것은 독립에 대한 부질없는 열망이다. 거기 불 붙이는 부싯돌이 바로 정감록이다. 그렇다면 나는 무슨 수를 써서든 정감록을 처단할 것이다. 나 호소이로 말하면 천황폐하의 뜻에 언제나 기꺼이 순종하고 순수한 대일본제국 신민의 고귀한 혈통에 무한한 자긍심을 느끼는 위대한 제국의 충량한 신민이 아닌가. 우리 대일본제국으로 말하면 단일하고 순수한 혈통이 천만대를 두고 이어져온 아름다운 나라. 그에 비할 때 이른바 저 한국 놈들은 어떤가. 놈들은 우선 생리학적으로 열등하다. 혈액만 하더라도 한국 놈들의 피는 ‘거무칙칙하고 더럽다.’ 그렇기 때문에 이조 500년 동안 피비린내 나는 당쟁이 일어나 수많은 인명이 살상됐지만 나라꼴은 늘 엉망이었다. 당연한 일이다. 한국 놈들은 유전인자 자체가 불순하고 열등하다. 따라서 놈들에게 밝은 미래란 있을 수가 없다. 오직 천황폐하의 자애로운 품속에 있을 때만 그들은 행복을 바랄 수 있다. 이런 점들을 나는 이미 두 권의 저서에서 명확히 입증했다.‘조선문화사론(朝鮮文化史論)’과 ‘조선 문제의 근본적 해결(朝鮮問題の根本的解決)’이 그것이다. 한국에 대한 나의 전문적인 연구는 대일본제국의 영광을 위해 바쳐질 것이다. 실용성이 없는 학문은 어떤 이유로도 합리화될 수 없다. 대일본제국의 발전을 위해, 무지하고 악랄한 한국 놈들의 순화를 위해 나의 저술은 두고두고 쓰일 만한 것이다. 탁상공론으로 걸핏하면 양심을 들먹이는 비겁하고 위선적인 놈들이 있어 훗날 나 호소이를 대일본제국의 어용학자(御用學者)라고 불러도 좋다. 제국의 영예를 위한 나의 일편단심은 그럴수록 더욱 밝게 드러날 것이다. ●정감록을 죽이는 묘책 호소이는 묘안을 찾기 위해 좀더 생각했다.‘도무지 정감록이란 무슨 책이냐. 조선시대 위정자들도 몹시 두려워했던 책이 아니냐. 위정자들은 정감록을 소지하거나 퍼뜨리는 일체의 행위를 범법 행위로 간주했다. 그런데 혹독한 금압 조치에도 불구하고 정감록은 널리 퍼져나갔다. 지금 반도의 덜떨어진 한국 놈들이 감히 독립을 바라는 것도 다 그놈의 정감록 때문이다. 막으려 해도 막을 수 없다면 차라리 공개하라. 그렇다, 금단의 예언서 정감록을 죽이는 방법은 공개하는 것이다. 그러면 정감록은 신비함을 잃게 된다. 신비성을 잃어버린 정감록이라면 이미 반쯤은 죽은 거나 다름없다. 또 하나. 기왕에 공개할 바엔 정감록의 정본(正本)을 만드는 거다. 바로 이 호소이가 대일본제국의 정치적 이익에 봉사할 정감록의 정본을 결정한단 말이다. 총독부에서 수집해 놓은 정감록의 이본들을 자세히 살펴 그 가운데서도 정치적 선동성이 별로 없는 텍스트를 골라 공개하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그 텍스트에 살짝 손을 댈 수도 있다. 아주 심하게 손을 대면 조작했다는 소리를 듣는다. 영악하고 의심 많은 한국 놈들을 상대로 하는 일인 만큼 더욱 주도면밀해야 한다. 나는 정감록을 순화시킬 뿐이다. 이것은 변조나 개작이 아니다. 나는 대일본제국과 천황폐하를 위해, 한반도와 한국 놈들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 정감록을 편집하는 것이다. 정말이지 잊지 말아야 될 일이 또 있다. 이렇게 교묘한 수단을 부려 김을 빼놓더라도 한국 놈들은 순화된 나의 정감록을 다시 개악하거나 제멋대로 해석할 우려가 있다. 놈들은 워낙 피가 더럽기 때문에 제멋대로니까. 그들의 망령된 행위를 막기 위해 내가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없을까. 그래, 예방주사를 놓자! 정감록은 이래서 진짜 믿을 것이 못 된다. 이런 식으로 계몽적인 비평을 잔뜩 써 가지고 독자 놈들의 배를 채우는 것이다. 정감록의 대가 호소이가 만든 정감록 정본의 맨 앞에 실린 비판을 읽게 하자. ●동경판 정감록에 대한 불만 대일본제국의 충량한 신민 호소이는 이미 수집된 정감록 이본들을 널따란 책상 위에 펼쳐놓고 수술을 시작했다. 일제는 이미 오래 전에 광개토대왕비문까지도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변조했다. 정본이 따로 존재할 리도 없던 정감록을 개작하는 것쯤이야 호소이에겐 식은 죽 먹기였다. 그의 솜씨와 애국심은 참으로 대단해 불과 몇 달 만에 ‘정감록비결 집록’이란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한국인들에겐 억압의 상징인 일본의 수도 도쿄에서 정감록을 죽이기 위한 음모가 결실을 맺은 날은 1923년 2월15일이었다. 이것이 사상 최초의 정감록 인쇄본이다. 도쿄판 정감록은 인기가 대단했다. 초판으로 몇 부를 찍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출간된 지 약 보름 만에 제3판을 제작할 정도였다. 도쿄판은 아마 일본에서도 상당히 팔렸겠지만 주로는 ‘식민지 조선’에서 소비됐을 것이 뻔한 이치였다. 호소이가 바란 것도 바로 그 점이었다. 도쿄에서 만든 정감록으로 한국의 정감록 세계를 평정한다는 목표는 어쩌면 단시일 내에 달성될 듯도 하였다. 도쿄서 들어온 정감록이 잘 팔려 나가자 한국의 출판계도 들썩이기 시작했다. 정감록을 찍어내면 돈이 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일각에선 호소이의 민족성 비판에 강한 불만이 제기되었다. 내놓고 맞싸울 형편은 안 되었지만 정감록까지도 ‘그 잘난’ 일본인의 손으로 다듬어진 책을 봐야 되는가 하는 강력한 반발이 없지 않았다. 동경판의 뚜껑을 열어본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경악했다. 호소이는 무지한 한국 사람을 계몽한답시고 무려 50쪽이나 되는 정감록 비평을 썼다. 정감록의 허구를 낱낱이 파헤치고 나아가 한국 사람의 타고난 ‘야만성’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그 논지는 대개 이런 식이었다. 한국인들은 태초부터 불합리한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가련한 한국 민족의 정신적 미성숙은 그들이 정감록과 같은 미신에 맹목적으로 빠져 있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증명된다. 이렇게 유치하고 야만적인 성격이 한국민족의 본성이다. 국제적으로 저열한 한국의 민족성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한반도의 역사 및 지리적 조건이 빚어놓은 결과다. 당시 유행하던 지리적 결정론을 빌려 호소이는 ‘미개한’ 한국인을 질타했다. 귀신을 숭배하고 점치기를 좋아하는 풍습은 당시 일본사회에서 더욱 성행했다. 그러나 일본민족의 위대성을 맹신한 호소이의 눈에는 그런 현상이 들어올 리가 없었다. ‘야만적’인 한국인까지도 호소이는 마음속 깊이 사랑했던 것일까. 그는 하루바삐 정감록 신앙에서 한국인을 구출하여야만 된다고 믿었다. 합리적이고 발달된 현대 일본사회의 참된 구성원이 되기 위해서 한국인은 정감록 신앙을 포기해야 된다. 이것이 호소이의 변(辯)이었다. 그러나 1923년 동경판 정감록을 간행한 진짜 목적은 다른 데 있었다. 대일본제국의 번영을 위해 정감록이라는 정치적 폭탄에서 뇌관(雷管)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동경판이 제3판에 돌입한 지 보름 정도 지난 1923년 3월19일 김용주가 편찬한 정감록이 독자들에게 선을 보였다. 편찬에 나선 김용주는 호소이와는 전혀 다른 태도였다. 그는 정감록의 내용에 대해 아무런 비평도 보태지 않았다. 딱히 정감록을 옹호하지는 않았으나 이것은 호소이에 대한 무언의 항변이었다. 굳이 김용주가 정감록을 신앙하였다거나, 민족주의자였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가 정감록에 대해 아무런 비평을 가하지 않은 데는 호소이의 지나친 악평에 대한 반발심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그밖에도 김용주에게는 정감록을 비판하지 말아야 할 두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첫째, 당시 많은 한국인들은 정감록의 내용을 틀림없는 예언으로 믿고 있었다. 식민지의 힘없는 지식인에 불과했던 김용주로서는 대중의 그러한 열망에 굳이 찬물을 끼얹을 이유가 없었다. 설사 그가 남다른 애국심의 소유자는 아니었다 하더라도 대한독립이 된다고 믿고 있는 동포들의 기대심리를 비난할 필요는 없었다. 둘째, 단순히 책을 많이 팔기 위해서라도 잠재적인 독자들의 희망을 꺾어서는 안 됐다. 김용주의 편집 태도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이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호소이에 대한 반감을 비롯해, 독립에 대한 기대와 상업적 목적이 골고루 다 작용했을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김용주는 정감록의 신빙성에 대하여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또 하나의 정감록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것은 한성판이라 불릴 만했다. 한성판엔 매우 흥미로운 점이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동경판과 공통되는 부분도 상당하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이 적지 않았다. 두 판본이 내용 면에서 차이를 보이게 된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매사를 곧이곧대로 순진하게 받아들이는 입장에선 민간에 퍼져 있던 허다한 비결 가운데 어느 것은 호소이만, 또 다른 것은 김용주만 수집해서 자연히 그렇게 됐다고 할 것이다. 실제 정감록은 수백 년 동안 필사본으로 암암리에 전파되었기 때문에 각자의 수집본이 서로 다를 수가 있다. 그렇다면 동경판과 한성판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비결들은 어떻게 된 것인가. 그야 물론 좀 더 널리 퍼져 있던 유명한 예언서로 보아야 옳을 것이다. 전국 어디에나 광범위하게 퍼져 있어 누구나 손쉽게 수중에 넣을 수 있는 그런 대표적인 예언서 말이다. 나는 이런 입장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동경판을 편집한 호소이가 매우 국수주의적이었단 점을 다시 한 번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수집된 정감록을 모두 출판하는 데 목적을 두지 않았다. 일본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 것, 달리 말해 진인출현이나 대한독립의 메시지가 약한 ‘순화된’ 비결만을 선별적으로 알리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었다. 그는 ‘고약한’ 내용의 예언까지 인쇄에 부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김용주는 달랐다. 그는 도쿄본의 상당수를 답습하면서도 도쿄본에 실리지 못한 다른 비결들을 많이 포함시켰다. 김용주는 호소이가 정감록의 정본을 만들려고 한 의도를 정확히 꿰뚫어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도쿄판이 정감록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했다. 진짜 정감록은 훨씬 더 위험한, 폭발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을 암시하고자 했다. 그러나 가장 ‘위험한’ 정감록을 출간하지는 못했다. 총독부의 검열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결국 호소이의 뜻대로 되다 당연히 김용주의 정감록을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것은 조선총독부의 의도와 배치된다. 일본인들이 보기에 김용주의 한성본이 딱히 위험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눈에 거슬리는 점이 없지 않아 조만간 도태되어야만 될 책이었다. 1937년 중·일전쟁이 터지자 식민지 한국의 정세는 한결 경색됐다. 이른바 전시총동원체제가 작동돼 비상시국이었다. 엄격한 사상통제와 감시가 일상화되는 가운데 정감록에 대한 통제도 한 단계 더 나갔다. 그 무렵 새로운 정감록이 나왔다. 현병주의 ‘비난정감록진본’이었다. 마침 경성에서 나왔기 때문에 이를테면 경성본이라 부를 만하다. 그런데 해명돼야 할 문제가 있는 책자였다. 우선 표면상 출간연도가 미상이란 점이 문제다. 책의 간행지를 ‘경성(京城)’이라고 표기해 놓은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식민지시기 서울에서 나온 것은 틀림없다. 경성본이 나온 시기를 좀더 구체적으로 알아내기 위해 나는 본문의 표기법을 자세히 분석했다. 문장의 구조와 맞춤법이 현대의 격식에 가깝다. 그런 이유로 나는 경성본의 간행시기를 1930년대 중반 이후로 확신한다. 경성본은 내용면에서도 앞서 간행된 한성본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경성본은 정감록이 사실무근의 허망한 책자라는 논설을 싣고 있다. 편자 현병주는 정감록의 가치에 대해 직접적인 판단을 보류한 김용주와는 달랐다. 하지만 현병주가 단순히 일본인 국수주의자 호소이를 추종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그는 정감록의 허구성을 비판하였을 뿐 문제의 궁극적인 원인을 한국인의 저열한 민족성에서 찾지는 않았다. 또 하나 언급하고 싶은 점은 현병주가 비결의 내용 중에서 자신이 동의하지 못하는 대목에 대해 일일이 비판을 가했다는 점이다. 예컨대 비결의 본문에 길지(吉地)에 피난을 가더라도 피난 시기에 따라 생명을 건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는 부분이 있다. 현병주는 바로 그 구절의 끝에 괄호를 치고는 “생명을 건지는 땅 중에도 종종 생명을 건지지 못하는 곳이 있다.”고 비꼬는 투로 주석을 붙였다. 이와 같이 조목조목 정감록의 내용을 비판함으로써 현병주는 정감록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려 했다. 호소이의 정감록 말살 의도는 현병주에 이르러 더욱 공교해졌다. 나는 현병주가 친일파였는지 여부를 알지 못한다. 다만 정감록에 대한 총체적 불신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정감록을 출간했다는 점에서 현병주는 호소이의 완벽한 후배다. 현병주는 좀더 중요한 점에 있어서도 호소이의 전통을 계승했다. 나는 지금 경성본에 실린 비결의 내용을 문제로 삼고 있다. 구체적으로 말해 호소이는 35종의 선별된 비결을 공개했다. 김용주는 그보다 16종이 더 많은 51종을 간행했다. 그런데 경성본에는 25종만 실려 있다. 현병주는 호소이의 동경본과 김용주의 한성본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비결로 한정했다. 결과적으로 말해 그는 호소이가 간행한 비결의 일부만이 정감록의 정본이라는 인식을 심는 데 기여했다. 호소이가 공개한 35개의 비결 가운데 25종은 광복 이후 간행된 여러 정감록에도 빠짐없이 등장한다.20세기 후반부터 한국사회에서 정감록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호소이의 비결을 정본으로 대접하게 됐다. 그렇게 된 줄이나 제대로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푸른역사연구소 소장)
  • [정치플러스] 김희선의원에 공직사퇴 촉구

    한나라당은 18일 친일진상규명특별법의 대표발의자인 열린우리당 김희선 의원이 부친의 ‘친일 행적’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한 월간지 보도와 관련, 공직 사퇴 촉구 등 고강도 공세를 펼쳤다.
  • 친일규명위등에 68억 지원

    정부는 17일 오전 정부중앙청사에서 이해찬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친일반민족 진상규명위원회’와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의 운영경비 등에 총 68억 548만원을 예비비로 지원하는 내용의 2005년도 일반회계 예비비 지출안을 의결했다. 정부는 이달 중 공식 발족할 친일반민족 진상규명위 운영경비로 4억 6420만원을, 지난해 11월 발족해 활동 중인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피해진상규명위 운영경비로 49억 7132만원을 각각 지원할 예정이다. 진경호기자 jade@seoul.co.kr
  • 친일·군부독재 비판 ‘만화 박정희’ 나왔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 행각과 군부 독재 의혹을 다룬 ‘만화 박정희’가 5·16 쿠데타 44주년을 맞아 16일 출간됐다. 민족문제연구소와 뉴스툰(전국시사만화 작가모임), 도서출판 ‘시대의 창’이 공동 기획해 제작한 두 권 분량의 이 만화는 박 전 대통령의 출생에서 만주군관학교 시절,5·16 군사쿠데타, 유신을 비롯해 10·26에 이르는 일생을 통해 그의 친일행각과 군부독재 의혹을 주로 다루는 등 비판적 내용을 담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만화 출간에 맞춰 이날 오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교육장에서 열린 출판기념 기자회견에서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은 “지금은 악마와 천사도 구분 못하는 가치혼란의 시대”라며 “우리 민족의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도 영향을 미치는 인물에 대해 국민들이 냉철하게 판단하는 근거를 제공해야 한다는 생각에 책을 내게 됐다.”며 기획 취지를 밝혔다. 만화는 박 전 대통령이 ‘진충보국 멸사봉공’이라는 혈서를 쓰고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했던 과정과 군관학교를 수석 졸업하며 “목숨을 바쳐 사쿠라와 같이 훌륭하게 죽겠다.”고 선서하는 모습, 박 전 대통령이 다른 여자와 호텔방에 함께 있는 장면을 보고 육영수 여사가 눈물을 흘리며 치를 떠는 모습 등 상당히 자극적이면서도 그동안 금기시돼왔던 의혹들을 비판적 시각에서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만화의 그림은 시사만화작가 박순찬 화백이, 글은 서울신문에 시사만평을 싣고 있는 백무현 화백이 각각 맡아 집필했다. 이와 관련,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팬클럽인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는 14∼15일 충북 충주호리조트에서 열린 워크숍에서 민족문제연구소의 ‘만화 박정희’가 ‘박근혜 죽이기’의 일환이라고 보고 이에 대응하는 ‘인간 박정희’ 만화를 출판키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논술이 술술] 시사키워드/과거사 청산

    [논술이 술술] 시사키워드/과거사 청산

    이른바 ‘과거사법’으로 불리는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안’이 지난 3일 국회에서 통과됐다. 과거사법은 일제 강점기 이후 권위주의 정권 시절의 주요 과거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법안이다.4대 개혁법안의 하나로 지난해말 타결 직전까기 갔다가 조사범위와 조사위원회 구성, 조사위원 자격조건 등을 놓고 여야가 대립하는 바람에 국회 통과가 미루어져 오다 극적인 타결을 보게 된 것이다. 이 법이 암울했던 과거의 의혹들을 풀어줄 수 있는 점에서 기대를 모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권위주의 정권 때 국민들을 탄압했던 인권침해 사건들의 진상이 규명될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 법이 여야의 타협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반쪽자리 법안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따라서 일부 강경파 의원들은 인혁당 사건 등 중요한 사건의 진실을 파헤칠 수 없는 법이라며 발효도 되기전에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거사법의 내용 과거사법이 규정하고 있는 진실규명의 범위는 다음과 같다.▲일제 강점기 또는 그 직전의 항일독립운동 ▲일제 강점기 이후 우리나라의 주권을 지키고 국력을 신장시키는 등의 해외동포사 ▲광복 이후 한국전쟁 전후의 불법 민간인 집단 희생사건 ▲광복 이후의 헌정질서 파괴행위나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발생한 사망·상해·실종사건, 그 밖의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과 조작의혹 사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거나 대한민국을 적대시하는 세력에 의한 테러·인권유린·폭력·학살·의문사 ▲위원회가 진실규명이 필요하다고 인정한 사건 ▲진실규명 범위에 해당하는 사건이라도 법원의 확정판결을 받은 사건은 제외하되, 위원회가 의결한 재심의 사유가 있는 사건 등이다. 이와는 별도로 지난해 말 통과된 ‘반민족행위 진상규명특별법’에 따른 친일진상조사위 활동과 국가정보원 등이 자체적으로 진행중인 진실규명위원회 활동도 본격화할 전망이다. 이번에 국회에서 과거사법이 통과됨으로써 ‘올바른 과거사 되찾기’가 궤도에 오르는 셈이다. 하지만, 얼핏 조사 대상이 광범위해 보여도 여야의 생각이 달라 대상 선정을 놓고 대립하고 다투는 일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조사 과정에서 좌우 대립 또는 색깔 논쟁이 불거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여당은 좌익의 독립운동에 대한 재조명과 발굴, 김구 선생 암살사건, 장준하 선생 의문사, 유서대필 등을 재조사해야 한다는 주장하고 있는 반면 한나라당은 김신조 간첩 사건이나 이승복 어린이 사건, 이한영 피살사건 등을 조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편, 국가정보원과 경찰, 검찰 등 국가기관의 과거사건 조사활동과 중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염두에 둬야 한다. ●뒷탈 많은 과거사법 특히 여당과 민주노동당의 일부 의원들은 이 법안이 지도부의 막판 타협으로 ‘누더기 법안’이 되었다고 비판하고 제정 철회, 또는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국가공권력에 의한 부당한 인권 침해 사건의 진실을 규명한다는 입법 취지에 어긋난다는 주장이다. 이들이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있는 부분은 법원의 확정 판결이 난 경우는 조사대상에서 제외하되, 조사위원회가 재심사유에 해당한다고 인정할 때에만 재조사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한 규정이다. 민·형사소송법의 재심 조건이 매우 엄격해 사실상 확정판결이 난 사건은 재조사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혁당 사건이나 5·18 민주항쟁 등은 재조사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또 조사 범위에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거나 적대시하는 세력에 의한 테러 등’을 포함한 조항은 국가보안법이 애매한 규정으로 민주화운동가를 탄압했던 것과 같은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이와 함께 위증을 검증하고 처벌할 제도적 장치인 청문회와 진상규명을 위해 필수적인 압수·수색 규정이 빠진 점, 위원 자격을 변호사·공무원·교수·성직자로 못을 박은 점, 교수의 경우 ‘전임 10년 이상’이라고 제한해 특별법을 마련하는 데 기여한 교수 대부분이 배제된 점 등도 문제점으로 꼽고 있다. 강경파 의원들은 이에 따라 이번 법이 ‘당리당략의 산물’‘밀실 논의로 만든 법’‘민주인사를 부관참시하려는 입법’이라고 강력히 비난하고 있다. 실제로 표결에서도 여당 의원 122명 중 59명만이 찬성한 반면, 한나라당은 109명 참석에 92명이 찬성 표를 던지는 기묘한 상황이 벌어졌다. 여당 지도부들 사이에서도 찬반표가 엇갈리는 등 여당의 당론이 분열됐다. ●과거사 청산 어떻게 볼 것인가 원점으로 돌아가서 과거사 청산은 왜 필요한가. 과거사를 정리하지 않고서는 공공질서를 올바르게 작동시킬 수 없다. 역사는 한번 묻어버리면 시간이 흐를수록 진실을 밝히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과거를 밝히는 것은 미래를 위한 역사 바로세우기인 것이다. 일본의 과거사 망언과 교과서 왜곡을 볼 때 과거를 올바로 정립하지 않으면 현재와 미래가 큰 제약을 받는다. 잘못된 과거를 덮어두는 사회는 정의가 없는 사회로서 구성원 통합이 어려워진다. 또 역사적 책임을 물음으로써 사회적 규범을 확립하고 재발을 방지한다. 가해자의 책임을 밝혀 침해받은 인권을 회복하고 피해자와의 진정한 화해를 유도하는 것도 목적이다. 그러나 조사활동을 하는 동안 우리 사회가 과거사를 놓고 갈등을 겪고 대립할 개연성이 매우 높다는 점에서 현실적인 문제점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다. 과거에 연연함으로써 정치적 공방을 확대시키는 것의 폐해 또한 분명하다. 실제 과거청산이 독재세력에 의한 반대파의 숙청 수단으로 쓰였던 예도 적지 않았다. 과거에 대한 부정적이고 왜곡된 시각을 국민들이 갖게 된다는 점, 초법적인 여론재판을 부른다는 점도 과거청산 작업이 초래할 수 있는 폐단으로 지적된다. 그러나 이같은 폐단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오로지 과거의 진실을 밝히려는 신념 아래 과거사법을 제대로 운용해야 한다. 당리당략의 도구로 정쟁의 소용돌이로 몰아서는 목적을 달성하기도 전에 국민을 통합하기보다는 분열을 조장하고, 과거를 청산하기보다는 현재와 미래의 발전을 저해할 뿐이다. 손성진 기자 sonsj@seoul.co.kr
  • 검찰 ‘이준·최대교 검사상’ 제정

    검찰은 9일 특별수사 담당부서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검찰의 표상으로 추앙하는 ‘이준 검사상’과 ‘최대교 검사상’을 제정하기로 했다. 또 고위공직자ㆍ정치인 등 권력형 비리 외에도 지역 세력화된 공무원과 유착한 지역토착 비리, 민간기업의 구조적 비리 등을 척결 대상으로 삼아 전국적인 단속활동을 펴기로 했다. 대검은 이날 김종빈 검찰총장 취임 후 처음으로 전국 특별수사부장검사 회의를 열어 이같은 내용을 결정했다. 이준(1859∼1907) 검사는 조선말기 친일파 법무대신 이하영을 탄핵하다 면직당했다. 또 1907년 고종의 밀사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파견됐으나 일본의 방해로 참석하지 못하자 현지에서 순국했다. 최대교(1901∼1992) 검사는 제1공화국 당시 초대 서울지검 검사장으로 재직하면서 임영신 상공부장관을 수뢰 등의 혐의로 기소했으며 3·15부정선거사범과 4·19 당시 발포 책임자를 기소했다. 검찰은 이밖에도 공정하고 투명한 수사 시스템을 확립하기 위해 수사 과정의 녹음ㆍ녹화제도와 변호인 참여제도를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아울러 ‘특별수사 평가위원회’를 구성해 수사절차 및 처리결과를 평가하기로 했으며 외부인사가 참여하는 ‘부정부패사건 처리기준 심의위원회’를 운영하기로 했다.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법안표결서 ‘反개혁’ 고집한 의원의 속내는?

    법안표결서 ‘反개혁’ 고집한 의원의 속내는?

    정치권은 4월 임시국회에서 공직자윤리법 등 주요 법안들을 통과시켰다. 대부분이 여야 합의를 이뤄 무사통과됐지만 이 과정에서 끝까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은 ‘소신파 의원’들이 있었다. ●“평소 반대하던 의원 투표땐 찬성” 지난달 26일 본회의를 통과한 공직자윤리법은 국회의원을 포함한 고위 공직자의 직무관련 보유주식에 대한 매각 및 백지신탁을 의무화하는 내용이다. 따라서 이 법안에 반대하는 것은 자칫 ‘깨끗한 정치인’이 되기를 거부하는 것처럼 보일 소지가 있다.‘너무 심하다.’는 의견도 없진 않았지만 압도적으로 가결됐다. 공개투표였다는 점도 의원들에게 부담을 줬다. 그러나 한나라당 김태환·김영선 의원은 반대했다.‘너무하다.’는 게 이유다. 김태환 의원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도 아니고 남의 재산을 다른 사람이 마음대로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면서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김 의원은 “평소 반대하던 동료들이 적지 않았지만 막상 투표할 때는 이상하게 보일까봐 찬성표를 던졌다.”고 말했다. 김영선 의원도 “자유민주주의에서 어느 정도 주식을 갖고 있는 게 정상 아니냐.”면서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보수대열에 새로 합류?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이 ‘보수대열’에 새로 합류했다. 반면 ‘원조보수’ 김용갑 의원은 물러섰다. 북한 주민 접촉에 대한 승인제를 신고제로 완화하는 것을 골자로하는 남북교류협력법에 전 의원을 포함해 이방호·이상배 의원 등 3명이 반대했다. 반대 이유는 ‘시기상조’이다. 전 의원의 반대와 김 의원의 찬성 모두 의외로 받아들여진다. 김 의원은 “생각의 차이”라고 전제한 뒤 “신고제를 하되 관리를 체계적으로 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어 “처음엔 반대할 생각을 했지만 접촉까지 막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찬성했다.”고 부연 설명했다. 그러나 김 의원은 반대이유 첫 머리에 “깊은 내용을 몰라서…”라고 답해 법안의 내용을 확실하게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냥 찬성표를 던진 것 아니냐는 의혹도 사고 있다. 반면 전 의원의 “인적 교류를 활발하게 하는 원칙에는 반대하지 않는다.”면서 “그러나 탈북자들을 만나 보니 인적교류에 신중하지 않으면 충분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를 반개혁적으로 봐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독도 이용만이 능사가 아니다 독도를 체계적으로 이용·보존하자는 독도의 지속가능 이용법안에 214명 의원 가운데 제종길 의원만 기권했다. 이 법안은 일본과 독도영유권과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별다른 이견은 없었다. 반대나 기권 자체가 ‘친일’로 보일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그러나 해양생태학 박사 출신으로 독도전문가임을 자임하는 제 의원은 기권표를 던졌다. 물론 법안을 만드는 데 반대하는 것은 아닌다. 우리나라가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는 상황에선 국제여론 조성 등이 더 시급하다는 게 제 의원측의 설명이다. 박준석기자 pjs@seoul.co.kr
  • ‘북한 중징계’ 日로비 통했다?

    ‘국제축구연맹(FIFA)의 친일 행각인가, 정상적인 징계인가.’ FIFA가 지난달 29일 징계위원회를 열어 3월30일 평양에서 열린 북한과 이란의 2006독일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경기에서 발생한 관중 난동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물어 오는 6월8일 열리는 북한과 일본의 평양 경기를 ‘제3국에서 관중 없이’ 치르도록 결정한데 대해 “예상 외의 강한 징계”라는 의견이 지배적인 가운데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북한에 내린 ‘제3국 무관중 경기’ 징계는 FIFA사상 전례가 없는 최고 중징계에 속한다. 이는 FIFA규율규정(FDC) 24조와 25조를 복합적으로 적용한 징계다. 여기에 16조를 근거로 2만 스위스프랑(약 1680만원)의 벌금을 매겼다. FIFA는 지난 2월 관중난동이 발생한 알바니아와 코스타리카에 대해 ‘무관중 경기’를 치르도록 징계한 바 있다. 또한 지난해 6월 케냐에 대해 국제경기 출전 금지 조치를 내렸으며 지난 2001년 페루에 대해서는 관중 난동을 이유로 경기 개최권 박탈 징계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그간 일본이 안전 보장을 이유로 아시아축구연맹(AFC)과 FIFA에 집요하게 제3국 개최를 요구하며 로비해왔던 점을 상기시키며 ‘재팬 머니의 힘’,‘화끈하게 일본 손을 들어준 친일 FIFA’라는 비아냥을 쏟아내고 있다. FIFA 결정 전 ‘관중 난동의 원인은 심판의 오심’이라고 항변했던 북한측은 아직까지 공식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FIFA는 징계결정이 내려진 뒤 사흘 이내인 2일 밤 11시(한국 시간)까지 북한축구협회에서 이의를 제기해올 경우 재심위원회를 열어 이를 다루게 된다. 일각에선 북한이 남은 세 경기를 보이코트할 가능성도 점친다. 이 경우 이미 치러진 예선 3경기 결과는 무효처리되며, 북한에 대해서는 4만 스위스프랑(약 3400만원)의 벌금과 함께 FIFA 주최 대회 출전금지 등의 후속 징계도 불가피해 실제로 이뤄질지는 미지수. 한편 FIFA 부회장인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은 1일 “북한에 대한 징계가 예상외로 강하다.”면서 “북한의 재심요구가 있을 경우 FIFA와 AFC(아시아축구연맹) 고위 관계자들에게 북한의 입장이 반영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親日규명위원장 강만길씨

    親日규명위원장 강만길씨

    노무현 대통령은 28일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에 강만길 전 상지대 총장을 임명했다. 강 위원장은 광복 6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도 맡고 있다. 진상규명위원회 상임위원에는 노경채 수원대 사학과 교수, 비상임 위원에는 정근식 서울대 사회학과 부교수와 성대경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지도위원을 임명했다. 국회 선출을 거친 비상임위원에는 정창렬 한양대 사학과 명예교수, 김정기 서원대 교수, 정장현 법무법인 바른법률 변호사, 제성호 중앙대 법대 교수를 임명했다. 또 대법원장 지명을 거친 박연철 법무법인 정평 대표, 김덕현 법무법인 호민 대표, 최병조 서울대 법대 교수를 비상임위원으로 임명했다.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식민지 근대화론 발끈만 할 일인가

    식민지 근대화론 발끈만 할 일인가

    일본 역사·공민교과서 왜곡 파동과 한승조·지만원·조갑제 같은 인사들의 극우 발언 퍼레이드 등 뒤에는 ‘식민지근대화론’이 똬리를 틀고 있다. 일제 식민지 기간 동안 착취·수탈당했다는 것은 허구이자 신화이며 외려 그 기간 동안 오늘날과 같은 경제발전과 근대화의 토대를 닦았다는 이론이다. 우리로서는 발끈하지 않을 수 없지만 이론의 세계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기본적으로 ‘근대’에 경도된 물량주의적 접근이라는 비판이 가능하지만 이 비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물량주의와 수치화·계량화는 기본적으로 ‘과학’의 방법론이기 때문이다. 과학에는 과학으로 대응해야 한다. 그래서 충남대 허수열 교수가 수치화·계량화라는 ‘과학적 방법론’으로 식민지근대화론을 반박했지만 온전한 반박이라 하기에는 이르다. 근대화란 단순히 경제개발뿐 아니라 법·제도·문화 등 상부구조적 요소까지 포함하기 때문이다.‘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는 유의, 서구 미시사의 영향을 받아 최근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1930년대 식민지조선에 대한 연구 결과들은 일제시대임에도 ‘불구하고’ 근대화가 먹물처럼 한반도를 물들여나가고 있었음을 찬찬히 보여준다. 식민지근대화론이 만만치 않은 것은 또 하나의 버팀목이 있어서다. 바로 ‘자본주의체제 이행논쟁’이다. 이 주제는 1930년대 모리스 돕과 폴 스위지의 역사적 대논쟁에서 보듯 좌파 경제학의 핵심 쟁점 가운데 하나다. 알려졌다시피 모리스 돕은 ‘경영형 부농의 등장’을, 폴 스위지는 ‘시장관계로의 편입’을 중세봉건에서 자본주의로 넘어가는 체제 이행의 원인으로 꼽았다. 흔히 전자는 내부동력을 원인으로 본다는 점에서 내인론, 후자는 외부로부터의 충격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외인론으로 불린다. 아주 단순화하자면 식민지근대화론은 ‘일본 근대화=모리스 돕 논리’로,‘한국·중국 근대화=폴 스위지 논리’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이론적 배경이 이렇기에 한국 식민지근대화론자의 대부로 꼽히는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의 원래 학문적 출발점은 종속이론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배경 때문에 식민지근대화론을 ‘친일파의 논리’로만 치부하는 것은 그야말로 ‘국내용 립서비스’로 전락할 위험을 안고 있다. 우리 학자들이 해외 학술대회에 참가했을 때 부딪히는 벽도 여기에 있다. 한국식 민족주의적 접근법을 펼치면 외국학자들은 ‘학술논리’로 받아들이기보다 ‘제3세계 정치운동’쯤으로 이해하면서 “아직도 저런 철 지난 소리를 하느냐.”는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서양사학자들을 중심으로 국제학술계에서 인정받기 위해서라면 민족주의를 과감히 버려야 한다는 주장도 여기에 근거한다. 그런 의미에서 찬반을 떠나 식민지근대화론의 실체를 들여다보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작업이다. 때마침 적합한 책이 나왔다. 일본의 경제사학자 나카무라 사토루 명예교수가 쓰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정안기 연구교수가 번역한 ‘근대 동아시아 역사상의 재구성’(혜안 펴냄)이다. 안병직 명예교수가 식민지근대화론자로 변신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 사토루 명예교수라는 점도 또 하나의 주목거리다. 일단 1992년에서 2000년 사이 발표한 논문을 모아놓은 이 책의 기획은 야심차다.‘서구 중심의 자본주의 발전사’에 맞서 ‘동아시아 자본주의 발전사’를 정립하겠다는 것이다. 사토루 명예교수의 출발점은 경영형 부농이 서양에서 가장 뚜렷했고 일본이 그 다음이었고 그 외 동아시아지역이 뒤를 잇는다는 데 있다. 이 차이점이 향후 동아시아 근대화의 방향을 결정한다. 일본은 서구의 충격과 내부의 동력이 동시에 작용한, 이를테면 외인론(폴 스위지)에 내인론(모리스 돕)을 더한 복선적 발전모델을 걷는 반면, 그외 동아시아 국가는 서구의 충격이라는 외인론적 모델에 더 가깝다. 전체적인 그림이 이렇게 그려지면 일본제국주의가 무조건 부정적이었던 것만은 아니다. 외려 급격한 봉건잔재 청산으로 근대화가 더 빨리 자리잡을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됐다고 본다. 이는 마르크스가 말하는 ‘본원적 축적’에 가깝다. 이제 민족의 문제로 파악했던 식민통치의 폭력성은 자본주의 근대화의 일반적 폭력성으로 대치된다. 본원적 축적이라는 점에서 ‘개발독재시대’ 역시 도덕적으로 재단해서는 안되는, 어떤 의미에서는 피할 수 없는 단계로 설정된다. 식민시대와 박정희시대에 대한 한국과 일본 우익의 시각이 비슷한 까닭이다.‘그 때는 먹고 사는 게 급했다.’,‘그래도 그 덕에 이만큼 먹고 살게 됐다.’는 화법을 떠올리면 된다. 사토루 명예교수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일본 경제성장을 연구했을 때 경영형 부농층에 이어 형성된 100인 미만의 중소규모 기업이 경제성장의 핵심동력이었다고 평가한 것이다.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성장도 마찬가지였다. 또 서양 자본주의 발달사에도 일부 이런 대목이 보인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아예 중소규모기업보다 대규모 공장제 생산을 강조했던 서양경제사의 통설을 실증적으로 재검토해보자고 제안한다. 이론적인 측면에서 일본의 ‘역공’이 시작된 셈이다. 사토루 명예교수의 논의는 경제발전과 근대화에 관한 일반이론이지만 일본에는 근대화의 내재적인 싹이 있었다는 일본 중심적인 관점이 전제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고려대 아세아硏 정안기교수 “우리는 미시적인 경제사회학 연구를 얼마나 축적했나.” 나카무라 사토루 명예교수의 저서를 번역한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정안기 연구교수는 사토루 교수의 논의를 ‘친일 대 반일’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로 바라보는 것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나타냈다. 정 교수는 “사토루가 기본적으로 일본 중심의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는 데는 비판의 여지가 있을지 모르겠다.”면서도 “그러나 식민지근대화론이라는 좁은 틀로만 해석하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원래 남미와 아프리카는 동아시아보다 높은 수준의 발전단계를 보였으나 지금은 완전히 뒤바뀌어 있다.”면서 “그렇다면 후발 주자들의 성공적인 근대화에 기여한, 뛰어난 흡수능력은 무엇이냐라는 게 바로 사토루의 주된 관심사”라고 말했다. 그렇기에 사토루의 연구는 “세계사적 전망 속에서 동아시아의 성장을 서구의 경제발전론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경제발전론으로 설명하려는 것”이라는 평가다.‘개발 없는 개발’이라는 저서를 통해 일제시대 경제성장은 신기루라고 주장한 충남대 허수열 교수의 논의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입장이었다. 정 교수는 “경제사적 연구에서 ‘민족’이라는 키워드를 개입시킬 수 있는지는 의문”이라면서 “이해는 하지만 역사라는 것은 현재와 미래의 전망에 필요하다는 점에서 그 주장이 학술적으로 얼마나 유효한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안병직·이영훈 교수로 대표되는 낙성대경제연구소의 연구성과에 대해서는 “평가는 한다.”면서도 “그게 전부는 아니다.”고 말했다. 전부가 아닌 이유로는 두 가지를 들었다. 기본적으로 경제사학계만의 논점을 제공하기보다 기존 역사학계와 논란을 벌이는 것 자체가 비효율적이고 경제사에 대한 기본 연구성과도 없이 한 연구자가 조선후기·식민지·근대 모두 연구하는 것은 난센스라고 비판했다. 학문적 결론에 대한 찬반 논쟁 자체보다, 제대로 된 논쟁에 이를 만한 경제사적 연구 기반조차 없다는 게 더 심각한 문제라는 지적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씨줄날줄] 야스쿠니 신사/이용원 논설위원

    ‘국민 가수’로 불리는 조영남 씨가 며칠전 일본 신문과 인터뷰한 내용이 국내에 알려지면서 큰 곤욕을 치르고 있다. 그는 연초 발간한 저서 ‘맞아 죽을 각오로 쓴 친일선언’의 일본어판 출간을 계기로 우익 성향인 산케이신문과 인터뷰를 했는데, 그 가운데 몇 대목은 평소 ‘튀는’ 그의 언행을 감안하더라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특히 일본 전범들의 집합소인 야스쿠니(靖國)신사를 두고 “가 보았더니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 신사와 다르지 않았다. 한국·중국에서 신사 참배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 세뇌됐다.”라고 한 부분은 그의 낮은 역사의식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야스쿠니 신사의 정체를 알아본 뒤 조씨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 순서일 듯하다. 도쿄 지요다구에 위치한 야스쿠니 신사의 전신은 초혼사(招魂社)이다. 메이지 유신을 이루는 과정에서 희생된 3500여명을 제사 지내고자 1869년 설립했으나,10년만에 야스쿠니 신사로 이름을 바꾸면서 제사 대상을 확대했다. 이 신사가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서 자리잡은 시기는 1905년 러·일전쟁이 끝난 직후였다. 일본은 비록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국제사회의 압력에 밀려 러시아에게서 배상금을 받아내지 못한 채 서둘러 강화조약을 맺었다. 이는 일본 국민의 큰 반발을 불러와 도쿄 일대에 계엄령을 선포할 지경이었다. 그러자 일 정부는 청·일전쟁 때와는 달리 전쟁 희생자 전원을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했다. 이어 이곳에서 개선 관병식(觀兵式)을 열고 참전 부대에 신사 참배를 시켰다.‘영광된 죽음’을 조작한 것이다. 이후 야스쿠니 신사는 육군성·해군성의 관할에 속하면서 전쟁 희생자의 영혼을 제사 지내는 신사로서 위상을 확고히 했다. 메이지유신 후 일본은 제국주의로 치달으면서 국민통합의 상징으로 ‘천황’을 내세웠다.‘천황’이 갖는 지위는 신의 자손으로서 제사를 주관하는 종교지도자인 천자(天子), 군을 친히 통솔하는 대원수, 그리고 정치적 지도자로서의 ‘천황’이었다. 이 가운데 종교지도자와 대원수의 이미지를 복합적으로 창출해낸 수단이 야스쿠니 신사였다. 따라서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군국주의의 부활로 보는 주변국의 우려는 비논리적인 것이 아니다. 조영남씨는 그를 ‘속이고’‘세뇌시킨’ 세력이 한국·중국 국민인지, 아니면 일본 극우 세력인지 대답해야 한다. 이용원 논설위원 ywyi@seoul.co.kr
  • ‘친일발언’ 조영남, 방송퇴출위기

    잇따라 수위 높은 ‘친일 발언’을 해 물의를 빚고 있는 가수 조영남에 대한 네티즌들의 분노가 ‘방송계 퇴출 운동’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방송사에서는 진행자 교체를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 문제의 결정적인 발단은 대표적 극우 신문인 ‘산케이(産經) 신문’ 24일자에 게재된 조영남의 인터뷰 기사가 나오면서부터. 자신이 쓴 책 ‘맞아 죽을 각오로 쓴 친일선언’의 일본어 발간에 맞춰 일본을 찾은 조영남은 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독도 영유권과 교과서 문제에 대해)냉정히 대처하는 일본을 보면 일본쪽이 한 수 위라고 생각한다.”고 말해 국민적 분노를 사고 있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네티즌들은 조영남이 진행하고 있는 프로그램 KBS 1TV ‘체험 삶의 현장’ 홈페이지 게시판 등에 MC 퇴출을 요구하는 항의성 글을 속속 올리고 있다. 네티즌들은 “역사인식이 결여된 친일발언을 일삼는 등 대한민국의 국민이 될 자격이 없는 조영남씨가 어떻게 공영방송인 KBS의 진행자로 국민 앞에 설 수 있는가?”라며 프로그램 제작진에게 진행자 교체를 요구하고 있다. 특히 각종 포털 사이트 등에서는 ‘조영남 방송계 퇴출 서명 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다. 앞서 조영남은 지난 4일 EBS ‘토론 카페’에 출연해 “산케이신문 서울 특파원인 구로다 기자와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발언을 해 안티카페까지 생기기도 했다. KBS 외주제작팀 길환영 팀장은 “시청자들의 분노가 워낙 엄청나 진행자인 조영남씨의 교체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면서 “새달 2일 봄개편이 맞물려 있기 때문에 그때까지는 결정이 날 것”이라고 밝혔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조영남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앞에 했던 말은 쏙 빼고 뒷 문장만 게재되는 등 내 말뜻이 왜곡됐다.”면서 “일본에서 쓴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 발언한 게 오히려 반대로 전해졌다.”고 해명했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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