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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용훈 대법원장 지명] “또 탄핵대리인 챙기기” 한나라 반발

    대법원장 후보로 대법관 출신 이용훈 정부공직자윤리위원장이 지명되자 한나라당을 비롯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시민단체 등이 강한 우려감을 표명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사법개혁을 이끌 인물”이라면서 적임자임을 강조했다. 야당인 민주당은 ‘적합한 인물’이라면서 오랜만에 여권과 한목소리를 냈다. 한나라당은 이 지명자가 지난해 대통령 탄핵재판 대리인 출신인 점을 들어 “3권 분립을 훼손한 인사”라며 강력 비난했다. 전여옥 대변인은 18일 논평을 통해 “탄핵대리인은 대통령의 변호인인데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에 지명한 것은 공정성과 중립성을 저해하는 것”이라면서 “국민통합을 생각한다면 매우 신중하게 인사를 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 지명자에 대해서도 결단을 촉구했다. 전 대변인은 “명예로운 법률가로서 자신의 위치를 마무리하려면 고사를 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내정 사실이 알려진 이후 한나라당은 ‘정실인사’ ‘사법부의 정권 예속화’ 등으로 거세게 비난해 왔다. 당내에서는 지난달 임명된 조대현 헌법재판소 재판관에 이어 대법원장까지 탄핵 대리인 출신으로 채우자 해도해도 너무한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더욱이 지난해 대통령 탄핵 심판 변호인단 중 하경철 변호사는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 위원장에, 한승헌 변호사는 대통령 직속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됐다. 이외에도 양삼승 대통령 자문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초대 위원장과 김덕현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위원 등도 대통령 변호인단 출신이다. 대법관 출신이 아닌 참신한 인물 발탁을 주장해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시민단체도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참여연대는 한나라당이 문제삼고 있는 탄핵 대리인 출신인 점에 대해서는 차후 인사청문회를 통해 검증돼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열린우리당 서영교 부대변인은 “청렴, 강직 그리고 온화하고 소탈한 품성의 소유자로서 소외받는 자, 억울한 자를 위한 사법부로 거듭날 수 있도록 사법부의 역할을 해주시리라 믿는다.”면서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오랜 법조 경륜과 신뢰는 사법부의 위상을 강화하고 더 나은 사법부로 이끌어나갈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박준석 박경호기자 pjs@seoul.co.kr
  • 전향/쓰루미 스케 지음

    전향/쓰루미 스케 지음

    요즘 우리의 관심을 끌고 있는 사안 가운데 하나가 ‘일본 우경화’다. 그런데 일본 우경화의 원인은 뭘까, 어떤 역사적 계기가 있었던 것일까와 관련해선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다름아닌 이념의 족쇄 때문이다. 대개 학자들은 계기를 3가지로 본다. 하나는 메이지 유신 뒤 민권파를 물리친 천황파의 승리, 두번째는 1930년대 중·일전쟁이 발발한 뒤 좌익 지식인들의 대대적인 전향, 마지막으로는 1960∼70년대 일본 열도를 휩쓸었던 전학련·전공투·적군파의 패배다. 이들은 일본 우익의 구심점이랄 수 있는 ‘만세일계 천황제’를 유일하게 반대해온 흐름이다. 올해 초 연구공간 ‘수유+너머’가 번역해 낸 ‘삼취인경륜문답’(소화 펴냄)이 민권파 사상가 나카에 초민을 다뤘다면 ‘전향’(최영호 옮김, 논형 펴냄)은 두번째,1930년대 일본 좌파들의 전향 문제를 조명하고 있다. 지은이 쓰루미 스케는 이 주제에 대해 깊이 있게 연구해온 일본의 대표적 학자다. 캐나다의 한 대학에서 서양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한 내용이다 보니 말을 쉽게 풀어 써 이해하기도 좋다. ‘전향(轉向)’은 사실 일본제국주의와 한국의 군부독재정권에서나 통용될 수 있는 단어다. 물론 지식인의 사상을 바꾸기 위해 압력넣고 회유하는 것은 세상 어느 곳에서나 있었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전향’은 집단적인 회유와 압력, 집단적인 방향 전환을 뜻한다. 그래서 쓰루미는 묻는다. 왜 열성 좌파 지식인이 결국 ‘텐노 헤이카 반자이(천황 폐하 만세)’를 외칠 수밖에 없었는가. 그것도 한 두명이 아닌 수많은 열혈 좌파들이, 다른 때도 아닌 중·일전쟁이 발발한 1930년대에. 당시 상황을 보자면, 최고 이론가이자 일본 공산당의 핵심인사 사노 마사부 위원장과 나베야마 사다치카 중앙위 위원이 공동성명을 내고 전향을 선언하면서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일국사회주의 건설론을 내걸 정도였다. 이 성명 뒤 많은 공산주의자들의 전향에 동참했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까. 쓰루미는 원인을 ‘쇄국성’(Self-Containment)에서 찾았다. 쇄국성은 섬나라로서 자기 완결적인 어떤 것을 가지고 있다는 확신을 뜻한다. 그래서 백인 제국주의에 맞서 황인의 이익을 지키자는, 그러기 위해서는 한반도-만주-중국과 인도차이나반도가 일본의 영향력 아래 있어야 한다는 ‘대동아공영권’의 논리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 논리에 대해 쇄국성의 문화를 가지고 있던 일본 민중들은 열렬한 지지를 보낸다. 좌익들은 이런 민중들의 ‘배신’을 감당할 수 없었다. 이 책이 주목을 끄는 것은 일본 좌익의 전향은 한국 지식인들의 변절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동아공영권의 구호에 허무하게 넘어가기 시작하는 이광수 등 지식인들의 변절 등, 그래서 1930∼40년대 조선 지식인 연구자들은 쓰루미 스케의 연구를 많이 참조한다. 이 쯤이면 눈치챈 사람도 생길 것이다. 반공, 우익, 친일, 반민족이라는 벽돌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차곡 차곡 쌓였는지, 또 ‘일제의 식민지 지배는 축복’이라는 한승조 파문이 결코 한 개인의 해프닝만은 아니라는 점을.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사설] 국가범죄 시효배제 제안 주목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8·15경축사에서 국가권력 남용 범죄에 대해 민·형사 시효 적용을 배제하는 입법을 제안했다. 국가권력에 의한 인권 침해를 배상·보상하고 가해자를 단죄해야 한다는 기본취지는 옳다고 본다. 그러나 미래지향, 사회통합 분위기를 깨거나 정치보복이라는 인상을 주어선 안 된다. 입법논의 과정에서 절제와 분별이 요구된다. 2차대전 전범자를 처벌하면서 전쟁 범죄, 반인도적 범죄는 공소시효가 없음이 국제관습법으로 자리잡았다. 나치전범의 공소시효를 없애는 국내입법을 한 프랑스 사례가 있다. 나아가 국가권력에 의한 고문·살인 등 반인권 범죄의 공소시효를 없애려는 움직임이 여러 나라에서 나타난다. 한국에서도 5·18특별법을 제정해 12·12 및 5·18 관련자를 처벌한 전례가 있다. 개인간 범죄와 달리 국가기관이 저지른 범죄는 스스로 고백하지 않으면 은폐되기 쉽다. 조작과 억압으로 시간을 벌고, 일반범죄 시효에 따라 면죄부를 받는 일은 막아야 한다. 열린우리당은 ‘반인권적 국가범죄 공소시효 특례법안’과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환수 특별법안’을 국회에 제출해 놓고 있다. 이들 법안과 함께 과거사기본법 보완 여부를 여야가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한나라당은 공소시효 배제는 물론, 확정 판결자에 대한 재심 허용은 위헌이라면서 즉각 비판하고 나섰다. 야당의 반발은 형사처벌에 집중한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피해자 구제라는 민사 측면에서 보면 야당이 입법논의에 동참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형사처벌은 앞으로의 범죄행위에 주안점을 두고, 민사 배상·보상은 과거 행위까지 적극 적용하는 방식으로 절충해나갈 수 있다. 노 대통령의 공소시효 배제 언급은 국정원 도청사건에도 연결된다. 특별법·특검법으로 여야가 대립한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을까 우려된다. 노 대통령은 통합을 강조하면서 방법상의 오류로 분열·갈등을 오히려 키우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과거사 언급은 진상규명과 배상·보상에 분명한 초점을 맞추고, 광복 60주년의 미래 비전을 더욱 구체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었다.
  •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땅찾기 조명

    친일파 후손들에 이어 독립운동가 후손들도 빼앗긴 땅을 되찾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MBC ‘PD수첩’은 16일 오후 11시5분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가제)’편을 통해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땅찾기 문제를 조명한다. 지난 1920년 항일독립운동 조직인 대한독립구국단 단장을 맡았던 독립운동가 정인호의 후손 정진한씨가 60여년간 벌이고 있는 땅찾기 노력이 소개된다.
  • 친일파 후손 또 땅찾기소송

    ‘친일파 재산환수 특별법’ 제정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친일파 후손이 또 국가를 상대로 땅 찾기 소송을 제기한 사실이 확인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5부(부장 김천흠)는 친일파 이재극의 손자며느리 김모(82)씨가 지난 8일 “시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경기 파주시 문산읍 1만 5000㎡가량의 토지(8억원 상당)를 돌려달라.”며 국가를 상대로 소유권보존등기말소 청구소송을 냈다고 14일 밝혔다.이재극은 조선 말기 문신이자 왕실 종친으로 1905년 을사늑약 체결 당시 궁내 동정을 다른 친일파에 알리는 등 늑약 체결에 협조한 인물이다.경술국치 이후 일왕으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기도 했다. 김씨는 소장에서 “국가가 1982년 소유권 보존등기를 마친 당동리 땅은 이미 일제시대에 시조부가 소유권을 확인받은 곳”이라면서 “1981년 후손들 사이에 협의를 거쳐 단독상속인이 된 본인이 땅을 돌려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홍지민기자 icrus@seoul.co.kr
  • [사설] 광복 60년, 한민족 공영시대를 열자

    광복 60돌의 아침이다.60년 전 오늘 우리 민족은 일제의 사슬에서 벗어났다. 광명을 되찾긴 했지만 초기 해방공간은 여전히 빛과 어둠이 공존했다. 외세의 개입과 내부의 분열은 국토의 분단을 초래했다. 주체적 역량의 미성숙은 우리 민족을 다시 전쟁과 가난의 질곡으로 몰아 넣었다. 그러나 우리는 강인한 민족성으로 다시 일어섰다. 모두가 열심히 배우고, 일하고, 뛰었다. 두 세대만에 1인당 국민소득 67달러의 최빈국에서 세계 11위의 경제부국을 건설했다. 전쟁의 폐허 속에 세계가 놀라워 하는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독재의 악순환을 끊고 정치 민주화도 이룩했다. 그러나 어둠이 모두 걷힌 것은 아니다. 분단과 이산의 고통은 60년이 지나도록 민족의 아픈 상처로 남아 있다. 이제 우리는 순국선열들이 그토록 갈망했던 통일조국 건설의 과업을 앞에 두고 새로운 60년의 출발선에 서 있다. 지금 남과 북 사이에는 민족화해와 평화의 상서로운 기운이 감돌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어제와 오늘 서울에서는 광복 60돌의 의미를 되새기는 다양한 8·15 기념행사들이 열리고 있다. 무엇보다 올해에는 남과 북, 그리고 해외의 동포들이 한자리에 모여 민족화해와 대동단결의 의지를 다짐하고 있다. 특히 북한 대표단은 국립현충원을 참배했다. 실로 얼마만인가. 분단 60년, 그리고 6·25전쟁 발발로부터 55년 만에 남과 북은 체제와 이념의 벽을 넘어 화해의 몸짓을 주고 받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5년전 민족의 화해와 협력을 다짐하는 6·15 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되는 모습을 가슴 뜨겁게 지켜 보았다.6·15 남북공동선언은 남과 북이 대립과 분열, 왜곡과 반목의 시대를 끝내고 21세기 화해와 공영의 시대를 열어갈 것임을 민족 앞에 약속한 것이다. 이 선언에 따라 남과 북 사이에는 하늘과 땅과 바닷길이 열리고 교류와 협력의 물꼬가 트였다. 금강산 관광이 가능해지고 개성에는 경제협력의 상징인 공단이 들어섰다. 머지 않아 백두산 길도 열릴 것이라고 한다. 이산가족 화상상봉센터도 문을 열어 보다 많은 사람들이 헤어진 가족들을 화상으로나마 만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분단의 극복을 위해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아직도 멀다. 그 가운데 북핵 문제는 남과 북이 함께 힘을 모아 넘어야 할 가장 큰 장애물이다. 이 문제의 해결 없이는 미국·일본·중국·러시아 등 주변 4강의 협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한반도의 오랜 군사적 대결 상태를 해소하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로 가기 위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결단을 촉구한다. 우리는 또한 5년전 평양을 방문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 국방위원장이 서로를 뜨겁게 포옹하던 장면을 생생히 기억한다. 그러나 김 국방위원장의 답방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김 위원장의 답방과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진다면 이는 남북간의 신뢰 구축과 화해·협력을 획기적으로 증진시킬 것이다. 우리는 김 국방위원장이 민족에게 다시 한번 희망과 감동을 안겨주기를 갈망한다. 올해는 을사조약으로 국권을 빼앗긴 지 100년, 그리고 일본과 다시 국교를 맺은 지 40년이 되는 해이다. 일제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나 광명을 되찾은 지 60년이 지났건만 일본의 역사인식은 갈수록 퇴보하고 양심을 저버린 망언들은 계속되고 있다.36년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고, 역사를 왜곡하는 교과서를 만들어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가르치며,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동북아의 평화는 물론, 일본의 장래를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다. 일본의 시대착오적인 일부 우익 정치인들의 망동에 단호하게 대처하되 양식 있는 지식인들과 연대해 상호 존중과 화해의 바탕 위에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의 발전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내부적으로는 친일 잔재를 청산하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것 또한 시급하다. 과거사를 정리함에 있어 진실은 규명하되 화해의 정신을 발휘해 민족화합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를 위해 대결의 정치를 지양하고 동서의 지역갈등과 빈부의 계층갈등을 치유하는 화합의 정치를 펼쳐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남과 북이 한자리에 모여 화해와 협력을 다짐하면서 새로운 60년을 시작한다. 한민족 특유의 강인함과 역동성으로 또 한번의 도약을 이룩해야 한다.21세기 세계의 중심에 우뚝 설 수 있도록 통일의 초석을 쌓아가야 한다. 세계와 미래를 향해 한민족 공영의 시대를 열어 나가자.
  • [광복60-한·일 국력 현주소] 日 GDP 7배·수출입 4배…선박·IT는 韓國 우위

    [광복60-한·일 국력 현주소] 日 GDP 7배·수출입 4배…선박·IT는 韓國 우위

    ■1. 경제력은‘잃어버린 10년’을 겪은 일본이지만 세계 무대에서의 평가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높다. 실제 나타난 경제지표나 사회지표들도 그렇다. 한국이 일본을 앞선 부분은 선박과 정보기술(IT) 분야뿐이다. 인구 수는 우리나라가 4829만명으로 1억 2764만명인 일본의 절반을 밑돈다.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은 2004년 기준 4조 6734억달러로 한국(6801억달러)의 7배에 가깝다.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한국이 1만 2720달러로 일본(3만 4192달러)의 3분의1 수준이다. 외환보유액도 일본은 8435억 3700만달러로 우리나라(2049억 8600만달러)보다 4배 가까이 많다. 우리나라의 수출·수입이 크게 늘고 있지만 세계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일본에 뒤진다.2004년 우리나라의 수출·수입액은 각각 2538억 4500만달러,2244억 6300만달러로 세계 12위,13위다. 반면 일본은 수출·수입액 규모가 모두 세계 4위다. 세계경제포럼(WEF)과 스위스국제경영대학원(IMD)이 평가한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은 29위.IMD 평가에서는 일본(21)에 근접해 있으나 WEF 평가로는 일본(9)에 한참 뒤져 있다. 이는 국가신용등급에도 나타난다.S&P는 일본 신용등급을 위에서 4번째 등급인 AA-로 평가한 반면 우리는 이보다 2단계 더 낮은 A다. 그나마 최근 한 단계 올린 결과다. 무디스는 일본의 신용등급을 가장 높은 Aaa로 평가했고, 한국은 6단계나 낮은 A3다. 피치는 일본의 신용등급은 AA, 한국은 3단계 낮은 A로 평가했다. 산업별로도 여전히 주요 기간산업은 일본에 뒤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우리나라의 연간 자동차 생산량은 346만 9000대로 일본(1051만 2000대)의 3분의1 수준이다. 철강생산량(조강 기준)도 우리나라는 4750t으로 일본(1억 1270만t)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의 선박 건조량은 지난 2002년 일본을 추월한 뒤 계속 1위를 지키고 있다.2004년 선박 건조량은 831만 9000CG/T으로 전년보다 14.5% 증가했다. 이에 비해 일본은 17.1% 늘어나 격차가 좁혀지고 있다. 인구 100명당 인터넷 이용자 수나 이동전화가입자 수 등은 우리가 훨씬 앞선다. 삶의 질은 일본에 비해 훨씬 낮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1인당 보건지출액의 경우 한국은 577달러인 반면 일본은 2476달러로 한국의 4배 이상이다. 유엔이 평균수명, 교육수준 등 주요통계를 통해 인간개발성취 정도를 평가하는 인간개발지수는 한국이 28위, 일본이 9위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2. 군사력은광복 이후 한·일 양국은 군사력 측면에서 지속적인 신장세를 보여왔다. 1945년 패전(敗戰)으로 인해 군사력 측면에서 사실상 ‘잿더미’를 경험한 일본은 이미 군사 대국화(大國化)의 길로 들어섰다. 동족간 전쟁에 분단까지 겪은 한국도 군사력에서 적잖은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남북한이 군사적 대치 상황을 오랜 기간 지속해온 탓에 나름대로 군사력은 크게 확충됐다. 패전 이후 일본은 군은 물론 타국에 파괴적 피해를 주는 무기도 보유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여왔다.‘군대 아닌 군대’로도 불리는 자위대(自衛隊)의 이름도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자위대의 활동 영역은 이미 전 세계로 확대됐고, 보유 전력도 중국 러시아 남북한 등 주변국 어느 나라에도 밀리지 않을 정도가 됐기 때문이다. 육상·해상·공중으로 나뉘어진 자위대의 병력은 지난해 말 현재 23만 9000명. 중국이나 러시아 한국 등 주변국보다 적다. 하지만 보유 장비 등 전력을 보면 사정은 달라진다. 해상 자위대는 한국이 단 한 척도 없는 이지스함을 4척이나 보유하고 있다. 이지스함은 건조 비용만 해도 1조 2000억원에 달하는 최신예 함정. 또 잠수함 16척 이외에 구축함과 순양함, 호위함 50여척을 갖고 있다. 항공 자위대 역시 공중전에 강한 최첨단의 F-15J 전투기는 200대가 넘는다. 이에 비해 한국은 일제시대 의병과 독립군, 광복군 등으로 활동하다가 광복 당시 ‘국방사령부’로 출범했으며, 정부 수립과 함께 국군으로 정식 발족했다. 정부 수립 당시 5개 여단 5만여명에 불과하던 남한의 병력은 현재 13개 군단,49개 사단에 68만여명으로 늘었다. 물론 북한의 경우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남한보다 훨씬 많은 117만명의 정규 병력을 보유하고 있다. 또 재래식 무기이긴 하지만 야포 8700여문, 전차 3700여대 등 만만찮은 육상 전력과 남한보다 우위로 평가받고 있는 해상 전력도 보유하고 있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15일은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국권을 되찾은 지 1갑자(甲子)가 되는 제60주년 광복절이다.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일본이나 당시 독립을 쟁취한 한국은 이후 여러 분야에서 엄청난 변화를 겪어 왔다. 광복 60주년을 맞아 한·일 양국간 국력 변화의 추이를 군사력과 경제력 측면에서 조명해 본다. ■ 민족문제硏 조문기이사장의 ‘광복60년 直言’ 1945년 7월24일. 거물 친일파 박춘금 주최로 ‘아세아민족분격대회’가 열린 부민관(현 서울시의회 건물)에서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렸던 그다. 해방 뒤 남한 단독정부가 수립되려 하자 여기에 반대해 삼각산(현 북한산)에서 봉화를 올리고 폭탄을 터뜨리려 했던 이른바 ‘인민청년군 사건’의 주역이기도 하다. 이리저리 떠돌던 그는 한때 광복회 경기지부장을 맡았지만 90년대 초 민족문제연구소가 출범하자 미련없이 이 자리를 내던졌다. 함께 항일운동을 했던 동지들은 빠짐없이 독립유공자 명단에 올렸으면서도 자신의 이름은 끝내 올리지 않았다. 보다 못해 딸과 사위가 몰래 독립유공자로 등록했다. 그는 그런 사람이다. 민족문제연구소 조문기 이사장. 이런 그였기에 약속 장소인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사업회 사무실을 찾아가는 발길이 그리 가볍지만은 않았다. 습기를 잔뜩 머금은 날씨 때문만은 아니다.8·15를 앞두고 몇 마디 얻어 들을 양으로 찾아가 ‘아이고∼, 그러세요∼.’라고 맞장구치는 것으로 마무리하기엔 우리 같은 후대의 역할이 너무 부끄럽고 자괴스러워서다. 예전 사진으로 봤을 때보다 몸이 많이 축나 보였다. 그래도 힘주어 말할 때마다 눈빛이 형형하게 되살아 난다. 건강을 묻자 최근 다리에 이상이 와서 거동이 불편하다고 했다. 질문을 이어가려 하자 “급해?” 그런다. 숨 좀 돌리자는 뜻이다. 옆에 있던 기념사업회 차영조 상임이사와 셋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광복절 행사 때문에 청와대 등에서 초청을 받았는데 별로 내키지 않는다고도 말했다. 참석 안할 거냐고 물었더니 노한 목청의 대답이 돌아온다.“해방은 무슨 해방, 해방된 건 친일파 놈들이지. 일본 사람들 눈치나 보던 친일파나 일본 사람들한테서 해방된 거지. 해방이란 게 나라를 몽땅 들어다 친일파한테 바친 거요.” 예상대로다.“친일파들이 득세했다는 거, 사실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아.‘반공’과 ‘친미’ 기치 아래에서 기생해 왔다는 것도 다 알아. 그런데 이들이 후계자를 양성해서 각계 요직에 다 앉혀 놨어. 그러니 어쩔 수가 없어. 지하에 계신 선열들이 대로하실 일이지.”손자뻘 되는 기자가 8·15의 의미에 대해 묻자 카랑한 목소리의 대답이 돌아왔다.“8·15라는 게, 그것 때문에 남북이 분단됐잖아요. 그런데 무얼 기념하고 무얼 경축해. 차라리 분단의 날로 정하고 그 날의 의미를 되살리고 각오를 다지도록 해야지.” 그가 광복절만 되면 차고 넘치는 태극기와 ‘경축’‘기념’ 따위의 문구를 피해 산사나 절에 들어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도 비판 대상이다.“독립운동을 했다는 사람이 더 어쭙잖아. 대통령이 불러주면 밥 한 끼 먹고 그걸 가문의 영광으로 여기는 게 말이 돼? 친일파 청산과 분단에 무관심한 사람들이 ‘민족국가’를 꿈꿨던 독립운동가일 수가 있느냐고?” 매섭게 내려치는 말투, 그러나 이내 누그러든다.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전부 어림잡아 200만명, 만주나 이런 곳에서 활동하신 분들이 최소한 70만명 정도야. 그런데 우리가 이제껏 유공자로 인정했다는 사람이 고작 1만명 정도야. 나머지는 다 잃어버린 거지. 이게 광복하고, 해방된 나라냐고.” 사무실을 빠져나올 때쯤 기온이 다소 내려앉았다. 시원할 만도 한데 등줄기로 땀이 더 흐른다. 후텁지근한 날씨 탓만은 아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조문기씨가 걸어온 길 ▲1926년 경기도 화성 출생 ▲일본강관주식회사 파업주도(42년) ▲부민관 폭파사건 주도(45년) ▲단정반대 시위로 투옥(48년) ▲이승만 암살 조작 사건으로 투옥(59년) ▲광복회 경기지부장(85년) ▲건국훈장 애국장 수상(90년) ▲민족문제연구소 2대 이사장 취임(99년)
  • [책꽂이]

    ●단재 신채호 평전(김삼웅 지음, 시대의창 펴냄) 일제와 싸운 혁명가이자 역사학자, 언론인이었던 단재 선생 평전. 대한매일신보 주필로서 일제 침략을 통렬히 비판하고, 민족사학의 이름으로 우리 고대사를 복원하는 등 각 분야에서 항일의 삶을 실천한 참지식인으로서의 삶을 그렸다.1만 6500원.●중세 최대의 연애사건(에버하르트 호르스트 지음, 모명숙 옮김, 생각의나무 펴냄) 중세 프랑스의 저명한 신학자였던 피에르 아벨라르와 수녀원장이었던 엘로이즈의 금단의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 이들 이야기는 12세기 이래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며 시, 소설, 연극 등 예술작품의 모태가 되었다.●분단의 두 얼굴(김승렬 등 지음, 역사비평사 펴냄) 지구 유일의 분단국가로 남아 있는 한반도 역사를, 먼저 통일을 이룬 독일과의 비교사적 측면에서 다룬 책. 서로 대립하지만, 서로에게 의존하는 독특한 남북 분단구조에 대해 19명의 전문 연구자들이 연구한 결과를 담았다.1만 8000원.●8·15의 기억-해방공간의 풍경,40인의 역사체험(서정주·이항녕 등 지음, 한길사 펴냄) 반일과 친일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첨예하게 대립했던 해방공간에서 다양한 삶을 살아온 각기 다른 성향의 40인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특정한 가치판단을 배제한 채 있는 그대로 담았다.1만 5000원.●다이애나, 사랑을 찾아서(앤드루 모튼 지음, 유향란 옮김, 이너북 펴냄) 비운의 왕세자비 다이애나의 삶을 조명한 책. 영국 데일리메일지의 왕실 출입기자였던 저자의 다이애나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화려함 뒤에 숨겨져 있던 내밀한 모습들을 살펴본다.1만 5000원.●위성으로 보는 한국 아트라스(호영 펴냄) 위성에 찍힌 한반도 구석구석의 모습을 담은 한반도 지리백과사전. 한국의 위성 ‘아리랑’, 미국의 ‘랜드샛’, 프랑스의 ‘Spot-4’ 등에서 5만분의 1의 척도로 촬영된 남북한의 각 도·시·군별 사진을 해설과 함께 담았다.15만원.●디지털 스토리텔링(이인화 등 지음, 살림 펴냄) ‘살림지식총서’ 200호 돌파 기념특집으로, 디지털 이야기를 6권(196∼201호)에 나눠 담았다. 게임과 애니메이션을 중심으로 상상력과 미학적 측면의 디지털, 산업으로서의 디지털, 디지털 에듀테인먼트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각권 3300원.
  • [인사]

    ■ 서울신문 △고충처리인 겸무 유상덕△베이징특파원 준비 이지운■ 법무부 ◇서기관 승진 △부산소년원 교무과장 金基榮△대구〃 〃 姜洪大△대구〃 분류보호과장 金榮綠△광주〃 교무과장 朴英柱△전주〃 〃 高奉龍◇서기관 전보△부산소년분류심사원장 尹在鍊△광주〃 宋花淑△서울소년원 교무과장 金滿坤△대전〃 〃 尹光遠△청주〃 〃 沈在述△서울소년분류심사원 〃 金壯洙■ 행정자치부 ◇이사관 승진 △안전정책관 韓奉璣 △자치인력개발원 기획부장 李相福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朴光鎬◇부이사관 승진△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柳金烈 △균형발전팀장 金振英 ◇과장급 전보△조직기획팀장 金日載 ■ 문화관광부 ◇이사관 승진 △국립중앙박물관 교육문화교류단장 郭濚鎭◇국장 △문화산업국장 朴良雨△국립중앙도서관 자료관리부장 李治周◇과장 △정책홍보관리실 성과전략팀장 韓民鎬△문화정책국 국제문화협력과장 盧泰剛△〃 공간문화과장 禹相一△문화산업국 게임산업과장 金相旭△체육국 생활체육과장 朴成基△〃 국제체육과장 吳泳雨△한국예술종합학교 총무과장 全興斗△〃 교무과장 金龍三△〃 기획과장 李炳國△국립중앙박물관 사업기획팀장 朴周煥△〃 교육홍보팀장 徐英愛△국립중앙도서관 사서능력발전과장 黃寅寬△〃 자료기획과장 申鉉泰△〃 어린이청소년도서관설립기획단장 李淑鉉△〃 정보화담당관 呂渭淑△〃 주제정보과장 宣明順△국립디지털도서관건립추진단장 愼仁鏞△국립국악원 국악진흥과장 丁安植■ 관세청 △인천세관 통관심사국장 金鍾雄■ 소방방재청 ◇부이사관 승진 △재난종합상황실장 徐鍾振
  • 민법조항 위헌심판 제청

    대한불교 조계종 내원암은 10일 ‘한일합방’ 당시 후작 작위를 받는 등 친일파로 거론되는 이해창의 후손들이 절터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소송을 낸 것과 관련, 소송근거가 되는 민법 제211∼214조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제청신청을 서울중앙지법에 냈다고 밝혔다. 내원암은 “원소유자가 점유자에게 땅 반환을 청구할 수 있도록 재산권 보호 등을 규정한 민법 조항들은 반민족 행위자 후손들의 땅 찾기 소송확대에 근거가 되고 있으나 대한민국임시정부 법통을 계승한 헌법의 가치에 위배되는 데다 국민적 법감정에도 정면 충돌된다.”고 주장했다.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뚝딱 입법’ 17대 133건 처리 분석

    17대 국회 들어 일부 상임위의 법안 심의시간이 1건당 고작 16분에 그치는 등 ‘졸속 입법’이 우려된다는 지적이 9일 제기됐다. 국회의원 보좌관을 지낸 이경태(서울대 행정대학원)씨는 ‘국회 입법과정에서 상임위원회의 갈등 조정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의 석사 논문에서 17대 국회 처리의안 통계분석을 근거로 이같이 밝혔다. 논문에 따르면 행정자치위의 경우 17대 들어 지난 6월20일까지 법안소위에서 심사한 법률안 133건의 처리 시간이 모두 4246분으로 법안 한 건당 31분이 걸렸다. 그러나 지난 1년간 여야간 첨예한 대립을 불러일으켰던 ‘친일진상규명법’ 2건과 ‘과거사법’ 3건을 심의하는 데 투입된 2071분을 제외하면 128건의 법률안을 심의하는 데 2175분이 소요돼 법안 한 건당 심사시간이 16분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각종 행사 참여 등으로 시간에 쫓기는 의원들의 입법 및 정책 기능을 보좌진이 대신해야 하지만 보좌진의 잦은 교체로 입법 보좌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16대 국회에서 4년간 보좌직원의 정원 대비 퇴직률이 176.8%로 국회의원 임기 4년간 보좌직원 전원이 거의 두번씩 교체된 셈이다. 이씨는 “보좌관의 잦은 교체는 곧바로 국회의원의 위상과 능력 약화로 이어지고 국민 세금의 낭비로 귀결된다.”고 주장했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단가로 日열도 울린 손호연 여사

    올해로 60주년을 맞는 8·15가 성큼 다가오면서 방송사마다 내놓는 이런 저런 특집물들이 눈에 띈다. 우선 아리랑국제방송이 마련한 ‘일본 열도를 울린 무궁화’가 시선을 끈다.15일 오전 9시에 전파를 타는 이 방송은 ‘단가(短歌)’라는 일본 전통 정형시를 통해 일본인들을 울린 한국인 손호연(1922∼2003) 여사를 다룬다. 어느 때보다 일본에 대한 분노가 높은 이 시점에 한·일관계의 긍정적인 측면을 다룬다는 점이 이색적이다. 손 여사는 일본어에 익숙했기에 일본 전통시인 단가의 형식을 빌려 시심을 쏟아냈다. 단가는 31자의 응축된 단어로 표현하는 시. 그렇기에 일본인들조차도 잘한다고 평가받는 사람이 50여명에 불과할 정도로 어려운 시다.그럼에도 손 여사는 단가의 대가 나카니시 스스무로부터 극찬을 받았고, 그녀의 단가는 일본근대사를 단가로 정리한 ‘쇼와 만엽집’에 5수나 실렸다. 그러나 광복 뒤의 극심한 반일감정은 손 여사를 죄인으로 만들었다.‘조센징’이어서 일본이 내친 게 아니라, 일본시를 했다며 한국인들이 그를 내친 것이다. 제작진은 단가가 백제의 시가였다는 사실을 들어 손 여사 구출에 나선다. 일본인들에게 문자와 표기법을 전해주면서 백제의 단가가 그대로 넘어갔다는 것이다.4000여수의 단가가 실린 고대 일본의 ‘만엽집’ 자체가 백제인들의 시가집이었다는 것이다. 아직 판독이 어려운 대목이 곳곳에 있는데 이는 고대 한국어로 풀어내면 쉽게 읽을 수 있다고 한다.구출방식이 꼭 이래야 하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손 여사는 이제 한·일 문화교류의 상징으로 거듭 태어나고 있다. 히스토리 채널은 아직도 곳곳에 엉겨붙어 있는 일제의 흔적을 들추어내는 ‘전통적’인 방식의 특집을 마련했다.15일부터 매주 월요일 저녁 8시에 방영되는 ‘일제 문화잔재 60년’이 그것. 올해에는 4부까지만 제작·방영하고 내년에 6부를 추가, 모두 10부작으로 구성할 예정이다. 이번에 제작된 4부의 주제는 각각 음악·건축·미술·생활문화이다. 익숙하게 듣고, 봐왔던 노래와 건축물과 위인 영정 등에서 일제의 흔적을 찾아낸다.“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로 시작하는 동요에서도, 지난 5월 ‘친일파가 그린 논개 영정’으로 불붙은 논란에서도, 우리가 쓰는 일상용어와 학술용어에도 일제의 흔적은 짙게 배어 있다. 그러나 이런 청산론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일본은 침략자인 동시에 근대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새로 선보이는 프로그램들이 이 두 측면을 어떻게 구분지을 수 있을까. 넘쳐나는 일본 관련 프로그램을 조망하는 또 다른 관점으로 참고할 만하다.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부고]

    ● 독립운동가 이규창선생 독립운동가로 활동한 애국지사 이규창선생이 2일 오후 숙환으로 별세했다.92세. 이 선생은 독립운동가 이회영 선생의 아들이며, 초대 부통령을 지낸 이시영 선생의 조카이다.1933년 흑색공포단을 조직, 항일투쟁을 펼쳤으며,35년 친일파 이용로를 사살해 징역 13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 45년 광복으로 출옥했다.68년에는 건국훈장 국민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정운경 여사와 3남1녀. 발인은 5일 오전 11시 서울보훈병원, 장지는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역.(02)478-7899. ●이석행(전 한국토지공사 고객지원처장)의행(목사)수행(사업가)씨 부친상 김성남(서울시 공무원)씨 빙부상 4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6일 오전 7시(02)3410-6915,6927 ●김종웅(사업)종준(서울대학교 반도체공동연구소 장비실장)씨 부친상 박종민(재미교포)윤태인(교보자동차보험 IT팀장)씨 빙부상 4일 서울대병원, 발인 6일 오전 5시30분 (02)2072-2022 ●김갑(전 여수시교육청 교육장)씨 별세 걸(서울시교육연수원장)인(동일하이빌 상무)광(세방해운 이사)경(영산대 교수)성은(혜원여중 교사)씨 부친상 이승복(박영장학문화재단 상무이사)차상훈(뉴질랜드 거주·사업)씨 빙부상 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6일 오전 6시 (02)3010-2295 ●김선홍(광주 서구청 시설관리기장)선관(광주 동구청)선태(완도경찰서)씨 모친상 한봉수(광주은행 차장)박상구(건축사)씨 빙모상 4일 광주 한진장례식장, 발인 6일 오전 8시 (062)956-4440 ●이문철(베스티안병원 부원장)유철(이유철치과 원장)은석(스프링팜 농장 대표)씨 부친상 강명숙(부산 천마초등학교 교사)씨 시부상 박순오(부산 신남초등학교 교사)서경덕(연암대학 학장)김성근(건축사)씨 빙부상 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6일 오전 2시 (02)3010-2240 ●박성식(에어로스타 구매과장)정식(딜루이앤투씨)씨 부친상 박일영(뉴욕 PS94Q 교사)씨 시부상 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6일 오전 8시 (02)3010-2291 ●안한수(시드인 대표)노현우(마니스튜디오 대표)씨 빙부상 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6일 오전 9시 (02)3010-2253 ●고동진(청주삼보한의원장)양진(삼성전자 상무)응진(옥천경찰서 수사지원팀장)씨 모친상 4일 청주 하나노인전문병원, 발인 6일 오전 11시 (043)270-8300 ●이창수(현대모비스 프로농구선수)씨 빙부상 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6일 오전 8시 (02)3010-2263 ●김용범(린바텍코리아 전무)씨 부친상 김종주(전 나미화장품 상무)김갑동(경남 사천중 교감)김현석(KBS 취재1팀 기자)씨 빙부상 4일 경남 진주의료원, 발인 6일 오전 6시30분 (055)747-8149 ●김원찬(교육인적자원부 교육복지정책과장)씨 부친상 4일 광주 그린장례식장, 발인 6일 오전 8시 (062)250-4407
  • EBS 해방60주년 ‘도올이 본 독립운동사’ 제작 김용옥씨

    “레닌의 볼셰비키 혁명과 중국의 신해혁명을 도운 조선 사람에 대한 얘기를 들어본 적 있습니까?우리는 왜 풍부한 독립운동사를 잃어버렸습니까?” 도올 김용옥이 이번에는 한국독립운동사에 도전한다.EBS가 해방 60주년을 맞아 준비한 특별 다큐멘터리 ‘도올이 본 한국독립운동사’가 그것.8일부터 19일까지 2주간 토·일요일을 빼고 매일 밤 10시부터 1시간 동안 진행되는 10부작이다. ●출연·연출·편집·내레이션까지 ‘원맨쇼´ 방영을 앞두고 2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는 ‘도올스러움’으로 넘쳐났다. 이런저런 욕지거리를 섞어가며 열변을 토하는, 낯설지 않은 모습도 연출됐다.1000여권의 각종 자료를 뒤적인 뒤 6개월여 동안 타이완, 러시아 연해주, 중국의 북부지역을 휩쓸고 다니며 촬영했다는 엄살 역시 도올답다. 다큐 형식도 마찬가지.‘1인칭’ 다큐다. 도올이 출연하고, 연출하고, 편집하고 내레이션까지 도올이 맡았다. 이러다 보니 기존 전문 PD들의 컷과는 다른 방식으로 편집돼 파격적인 형식이 꽤 눈에 띌 것이라는 게 제작진의 장담이다. ●“좌·우파 떠나 항일운동사 재조명” 그런데 내용까지 도올스러울 수 있을까. 애초 프로그램 기획취지는 좌·우파를 떠나 민족주의 관점에서 해방운동을 다루어 보자는 것이다.“누가 친일을 했다더라라는 식의 폭로 위주의 접근법은 과거사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립니다. 차라리 찬란하게 빛나는 항일운동의 역사를 써야 합니다.”한데 그 ‘찬란하게 빛나는 항일운동’을 다루려면 좌파 인사가 빠질 수 없다. 도올은 “있는 사실 그대로를 다루면 되지 거기다 왜 이념을 집어넣느냐.”고 강조했다. 그러나 김일성의 항일운동을 여전히 인정하지 않고,‘아리랑’의 주인공 김산에게 서훈한다는 소식에 대한민국의 건국이념과 정체성을 들먹이며 발끈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게 한국의 현실이다. 그래서 프로그램 제목에 ‘도올이 본’이라는 구절을 일부러 집어넣었다.“도올의 ‘구라’라면 그래도 조금 봐주는 그런 측면이 있지 않습니까.”라는 게 도올 스스로의 생각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는 문제, 즉 해방 뒤 북한에서 활동한 사람들까지 다룰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열변을 토하던 도올도 즉답을 피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기고] ‘한미동맹’ 다시 생각해보자/강종일 한반도중립화연구소장

    ‘태프트-가쓰라 각서’(Taft-Katsura Memorandum)가 미국과 일본간에 체결된 지 지난달 29일로 100년을 맞았다. 태프트-가쓰라 각서는 미국이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우월권을 인정함으로써 한반도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단초를 제공했다. 미국은 1904년 2월10일 러·일전쟁이 발발했을 때, 중국에서 미국의 국가이익을 유지하고 러시아의 만주지배를 방지하기 위해 일본을 지원했으나, 일본의 계속된 러·일전쟁의 승전으로 인하여 미국의 식민지 필리핀에 대한 일본의 침략을 우려하게 되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1905년 7월27일 태프트 육군 장관(Secretary of War)을 일본에 보내 필리핀에 대한 일본의 의향을 타진하고 대응책을 마련토록 지시했다. 1925년 드네트(Tyler Dennette)에 의해 최초로 알려진 태프트-가쓰라 각서의 주요 내용은 ▲일본은 필리핀에 대해 침략적 의도가 없으며, 미국의 지배권을 인정하고 ▲극동지역의 평화유지를 위해 미국, 영국, 일본은 협력하며 ▲미국은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종주권을 인정하는 3개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본은 태프트-가쓰라 비밀각서 체결을 시작으로,1905년 9월5일 포츠머스 조약으로 러시아로부터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우월권을 인정받았다. 이어 9월27일 제2차 영·일동맹으로 한반도의 지배권을 확보한 후,11월17일 조선(이하 한국)과 을사조약을 강제로 체결했으며,1910년 한반도를 식민지로 병합했다. 태프트-가쓰라 각서가 체결된 직접적 요인은 루스벨트의 친일 성향과 반한 감정의 결과였다. 루스벨트가 친일성향을 갖게 된 계기는 1900년 8월 중국 베이징에서 발생한 의화단(義和團) 사건으로 포위된 외교관을 일본 군대가 구출함으로써 싹트기 시작했다. 그후 일본 정부가 1904년 2월 루스벨트와 하버드 법대 동기인 가네코 겐타로를 미국에 보내 루스벨트가 친일정책을 전개하도록 설득했고,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해야 중국에서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외교조언자인 스프링 라이스(Spring Rice)의 건의를 받은 것이다. 루스벨트가 반한감정을 갖게 된 것은 그의 친구이자 아웃 룩(The Outlook) 신문 기자인 조지 케난이 러·일전쟁의 종군기자로 취재한 한국에 대한 나쁜 기사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케난은 1904년 10월22일자 기사에서 “일본의 농촌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깨끗했으나, 한국의 농촌은 부패한 쓰레기통 같이 더럽고, 사람들은 게으르며, 하수구 물은 인도로 넘쳐나 썩은 냄새가 코를 찌르고 머리가 아플 정도다.”라고 혹평했다. 미국의 반한 정책은 1882년 5월22일 제물포에서 체결된 한·미수호통상조약에 위배된 처사였다. 조약 제1조는 “만약 제3국이 조약국의 일방에 부당한 대우를 할 경우, 타방은 이를 통보받은 즉시 개입하거나 거중조정(good offices)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 정부로부터 일본의 한국 침략에 대해 수차례나 통보받았으나, 한국을 돕지 않고 반대로 일본을 지원했다. 한국 정부는 일본의 침략을 저지하기 위해 일곱 차례나 루스벨트에게 특사를 파견하여 미국의 지원을 요청했으나, 루스벨트는 한국의 특사가 정식 외교문서를 소지하지 않았다는 구실로 접견조차 거절했다. 루스벨트는 한국 문제에 철저한 중립과 비개입정책으로 한국과의 신의를 무시함으로써 국가이익은 국가친선에 우선되는 교훈을 주고 있어 우리에게 한·미동맹을 다시 한번 생각케 하는 대목이다. 강종일 한반도중립화연구소장
  • [인사]

    ■ 서울신문 (논설위원실) △수석논설위원 廉周英△논설위원 李商一 朴弘基 陳璟鎬(편집국)△수석부국장 朴宰範△부국장 曺明煥△지방자치뉴스부장 朴先和△경제부장 직무대행 吳承鎬(경영기획실)△기획위원 金仁善■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대변인 鄭雲鉉(사무처장 겸임)◇4급 상당 △기획총괄과장 金敏喆△기록조사과장 趙宰坤△중앙조사과장 卞恩眞△지역조사과장 金日洙■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 학장 李銓濟△약학대학 학장 李承基■ 노동부 ◇국장급 전보 △감사관 羅長白△정책홍보관리실 재정기획관 曺在正△중앙노동위원회 사무국장 全云基△대전지방노동청장 金東會■ 헤럴드미디어 △인쇄제작국장 김영남■ 한국조폐공사 △경산조폐창장 鄭光日△부여〃 姜理求△기술연구소장 鄭志一■ 조흥은행 (본점 부서장) △수탁업무 盧成宇△홍보 尹容珍△인사 崔永洙 (영업점장)△가락동 李丙喆△강남역 李大魯△개포남 王太郁△구로동 趙德紀△남가좌동 鄭聖薰△답십리 安鍾旭△당산동 金康植△대방역 崔珌壽△등촌동 金周五△망우동 朴海德△면목남 任圭爀△미아 李相淵△방배 崔宗浩△상계 姜鎬錫△서초 朴寅述△수락 李承權△수색 李福濬△수유 權赫晨△시흥남 朴龍吉△신림 李承日△신사남 韓永澤△신사동 朴賢泰△신촌 金圭俊△암사역 金明寬△압구정서 鄭玟基△역삼 鄭啓容△영동 文京泰△응암 鄭永祚△이대역 李基俊△이촌동 趙晟湖△잠실 郭魯明△잠원 張春姬△장위 韓駿熙△종로 張玹植△종로5가 宋周鏞△중계 崔敬植△중화 尹泰光△타워팰리스 韓在薰△강화 朴馥祿△경안 韓成柱△과천 趙盛喆△광명 李璘△금촌 馬在贊△덕소 吳炳吉△도농 李榮國△모란역 朴存夏△성남 朴南培△수지 周永培△안양 洪承淏△원당 金賢中△일산 金奭浩△주안 朴哲元△중동 金世起△호계동 金奉鎬△화도 韓昭淳△화정 兪承牧△후곡마을 李相昊△광안동 金鍾大△구포 姜仁錫△당리동 李聖現△범일동 金聖龍△충무동 李斗山△마산 黃京鎭△울산남 趙柄宇△진영 金根培△반월당 鄭得植△성서 金宇永△신천동 金龍泰△칠곡 秋昌松△경주 鄭東률△구미 李鉉大△광산 韓載度△동광양 宋泰植△목포 李光淵△당진 康熙泰△대전 許玟△둔산 李桓洙△북문로 宋鎭煥△진천 金正錄△충북영업부 金權會△영월 洪性錄△중앙로 朴東均△태백 金明鍾 (기업금융 지점장(SRM))△강남중앙 金潤壽△서초동 李椿煥△시흥남 金有泰△중앙 朴興緖△신갈 崔澈壽△안양 崔炳玉△웅상 兪相百△창원 李斗容△대구 禹衡九△순천 洪承旭△신부동 權泰善△충주 丁海潤△계동종합금융 崔炳徹△현대모터타운〃 李乙基△여의도남〃 金性洙 ■ 하나은행 (팀장) △경영컨설팅 金東完△사업자금융 金佑起△부동산금융 閔泰興△영남경영지원 吳奎煥△업무지원 李官松△직원만족센터 李都成△방카슈랑스 李明薰 (지점장)△반포서래 姜起求△수유 姜泰原△시지 金石萬△화정 金義哲△중앙기업센터 柳承善△서초로 文洛鉉△행당역 朴承信△서면역 粱文錫△종암동 嚴源幹△서대신동 李在煥△가좌 任龍鎬△성남공단 鄭聖官△을지로6가 崔順九△중앙일보 閔馨槻△수안동 朴大興△돈암동 梁孝珉△신길4동 余東基△경희의료원 吳熙煥△석수 趙鏞烈△탄현 河東勳(개설준비위원장)△분당정자 金億萬(RM(기업금융전담역))△대기업금융1본부 高永泰 丁劾鎭△〃2본부 裵基柱△인천 沈相碩△평촌역 조남진△중기업금융3본부 金炳浩△대전기업금융본부 兪重根△중앙중기업금융본부 全遇洪△SK센터 趙章行■ 조달청 ◇국장급 전보 △정책홍보본부장 朴東植△국제물자본부장 千 龍■ 산재의료관리원 △태백중앙병원장 李鍵源△정선병원장 太 晳△관리국장 吳圭眞(동해병원장 직무대리 겸직)
  • “일제 훈장받은 3300명 명단공개”

    일제로부터 훈장을 받은 조선인 수훈(受勳)자 명단이 공개된다. KBS탐사보도팀은 지난 4월부터 3개월 동안 일본 국립공문서관에 보관된 일본 내각 상훈국의 서훈 문서 1000여권을 분석해 이를 찾아냈다. 명단뿐만 아니라, 친일행각과 친일파로 성장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기록한 공적조서까지 포함됐다. 일제로부터 훈장을 받은 조선인 명단 전체가 입수된 것은 처음. 1897년 당시 특명전권대사로 일본에 갔던 외무대신 이하영을 시작으로 광복까지 모두 3300여명이 일제로부터 훈장을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교장 등 교육자가 684명으로 가장 많았고, 군수 499명, 군 공무원 268명, 육군 192명, 경찰 154명, 조선총독부 공무원 141명, 판사 55명, 검사 18명, 재판소 직원 55명 등의 순이었다. 고종·순종과 이완용 등은 일본 최고 훈장 ‘대훈위 국화장목식’ 다음으로 권위가 있는 ‘국화대수장’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KBS는 24일 오후 8시 1TV KBS스페셜 ‘최초공개, 누가 일제의 훈장을 받았나’를 통해 이 같은 내용을 공개한다.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김희선 의원 선친 친일행적 확인”

    “김희선 의원 선친 친일행적 확인”

    한나라당 ‘김희선 의원 부친 친일행적 진상규명조사단’은 열린우리당 김 의원의 부친인 김일련씨의 친일 행적을 보도한 월간조선 기사를 토대로 자체조사를 벌인 결과 김씨가 일제하 만주국 특무경찰로 재직하며 독립군을 탄압했음을 입증했다고 20일 주장했다. 조사단장인 고정균 당 법률지원단 조사위원은 기자회견에서 “지난 6일부터 13일까지 중국 현지조사 결과 1942년판 지린(吉林)성 퉁화(通化)시 류허(柳河)현의 ‘만주관공리일람표’ 사본과 현지 독립군 후손들의 증언을 통해 김씨가 당시 류허현 경찰서 경무과 특무로 재직하며 독립군을 체포하고 고문했던 가나이에이치(金井英一)와 동일인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김 의원은 부친의 행적이 담긴 사본을 공개하는 데 협조하고, 모든 공직에서 사퇴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조사단은 이날 공개한 자료를 21일 서울고법에 제출키로 했다. 그러나 김희선 의원은 이에 대해 “이날 한나라당의 기자회견은 월간조선이 지난해 8월부터 다섯 차례에 걸쳐 보도했던 내용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으로 친일 족벌언론과 결탁한 파렴치한 정치공세”라고 일축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강만길위원장 재산 32억

    강만길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이 부인과 장남 명의의 재산을 포함해 현금 18억 6587만원 등 32억 3817만원의 재산을 공직자윤리위원회에 신고한 것으로 19일 확인됐다. 공직자윤리위가 15일자 관보에 게재한 고위공직자 재산등록 신고내역에 따르면 강 위원장은 본인 명의로 경기 화성시 비봉면과 경남 창원 북면의 임야 9346평, 서울 강북구 수유6동의 48평 아파트, 서울 강남구 역삼동 14평형 오피스텔 등 부동산 10억 3380만원과 예금 6억 7971만원을 포함,17억 352만원의 재산을 등록했다.
  • “국정서 가장 어려운건 지역분할구도 타도와 배제의 문화 반드시 극복해야”

    노무현 대통령은 15일 “국정의 여러가지 과제 가운데 가장 어려운 것은 정치적인 지역분할구도가 지역주의를 확대 재생산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역사와 미래를 위한 범국민자문위원회’ 위원들과 청와대에서 오찬을 함께 한 자리에서 “우리 역사에서 국난을 겪을 당시의 공통점은 지도층이 분열하고 국론이 분열돼 국가의 위협에 제대로 대비를 못했기 때문”이라면서 이같이 밝혔다. 위원회는 친일진상규명위 등 과거사 관련 위원회의 통합 회의체 성격을 띠고 있으며 대통령 훈령에 따라 신설된 기구다. 강만길 친일진상규명위원장을 간사로 23명의 위원으로 구성됐다. 노 대통령은 “오랜 역사를 돌이켜보면서 아쉬운 것은 극단의 한편에서 깃발 들고 타도, 배제를 외친 사람이 현실에서 권력을 잡고 성공했다.”면서 이런 문화적 잔재를 극복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한국이 세계 10위 경제력에 걸맞은 문명국가, 거기에 걸맞은 미래를 가지려면 어려운 문제에 감정적으로, 극단적으로, 습관적으로 부닥쳐 나가는 게 아니라 서로 합리성, 이성을 가지고 극복하는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대통령이 대화와 타협의 문화정착을 위해 나서는 데 대해 “국론이 분열돼 겪었던 우리 민족의 아픈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강원룡 목사는 인사말에서 “미래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아프더라도 과거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면서 “해방 후 일제시대부터 오늘까지 역사에 대해 잘못된 것을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픔이 미래로 계속 이어간다.”고 말했다.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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