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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운동 민족대표 길선주선생 ‘독립장’ 서훈

    3·1운동 민족대표 길선주선생 ‘독립장’ 서훈

    국가보훈처는 12일 제64주년 광복절(15일)을 맞아 3·1운동 민족대표 33명 중 한 사람인 고(故) 길선주 선생 등 독립유공자 192명을 포상한다고 밝혔다. 포상 대상인 독립유공자는 건국훈장 119명(독립장 2명, 애국장 57명, 애족장 60명), 건국포장 21명, 대통령 표창 52명이다. 건국훈장 독립장이 서훈된 길선주(1869~1935년) 선생은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명 중 유일하게 무죄를 받았다는 이유로 그동안 포상이 보류됐다. 올해 재심사를 통해 독립선언서 서명과 1년 7개월 동안 옥고를 치른 공적을 인정받았다. 이로써 민족대표 33인 중 친일행적 혹은 월북으로 포상에서 제외된 이는 김창준, 최린, 박희도, 정춘수 등 4명이다. 평양 출신인 길 선생은 1919년 3월 초 체포돼 1920년 10월 경성복심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나기까지 옥고를 치렀다. 1928년에는 민족 저항의식을 고취하는 연설을 했다가 29일 동안 구류됐다. 올해 포상자 192명 중 보훈처 전문사료발굴분석단이 발굴한 대상은 169명이다. 3·1운동 만세시위에서 두 아들을 잃은 윤석원(1861~사망 미상) 선생 등이 새롭게 발굴됐다. 건국훈장 애족장이 수여된 윤 선생은 1919년 3월 평남 대동에서 만세시위에 참가해 일본인 헌병 1명과 조선인 헌병보조원 1명을 살해해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일제 의병진압 잔혹사 낱낱이

    1905년 11월17일 대한제국(이하 한국)이 사실상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을사늑약이 체결된다. 평민 의병장 신돌석 등 의병으로 나선 백성들은 조약의 폐기와 친일내각 타도를 외치며 일본에 맞선다. 부패한 관료들과 싸움을 벌이다 고종의 퇴위와 군대해산 등 일제의 폭압이 극에 달할 즈음 아예 일본군과의 의병전쟁으로 확산된다. 그러자 일본은 총 1291명으로 꾸려진 본토의 정예부대인 일본군 보병 14연대를 한국으로 파견한다. 이후 2년 동안 항일 의병을 잔혹하게 진압한다. 한국토지공사 산하 토지박물관은 11일 치열하게 의병활동이 전개되던 1907년 7월~1909년 6월 일제가 벌인 항일의병 진압작전의 기록지인 ‘진중일지’(陣中日誌)를 입수, 공개했다. 박물관 측에서 자체 분석하고 외부 전문가에게 의뢰해 감정을 거친 결과 일본군 보병 12여단 산하 14연대가 한국에서 ‘적도토벌’(賊徒討伐·의병진압 일지의 원래 표기)을 벌인 작전 일지임을 확인했다. 지금까지 발견된 일본군의 작전 기록지로는 독립기념관 등에 동일한 표제(진중일지)의 자료가 있긴 하지만 한 권짜리이거나 광복시점에 가까운 종군위안부 관련 후기 것들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공개된 진중일지는 모두 14책 2400여쪽으로 이뤄져 있으며 진압작전 지도 50여점이 포함됐다. 의병운동의 활동 상황과 함께 일제의 진압작전 내용 등이 몇시 몇분 단위까지 적힐 정도로 상세하고 방대하게 적혀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일본군 14연대는 1907년 7월25일 일본 모지(門司)항을 출발한 뒤 부산항에 도착, 처음에는 대전에 본부를 두고 예하 중대를 전국 각지에 파견해 의병 진압 활동을 벌이는 한편 현지 약도, 물자, 교통, 위생, 토착민의 정태 등을 기록으로 만들어 보고하도록 했다. 이후 문경과 대구 등으로 본부를 옮기며 개성, 서울, 인천, 공주, 대전, 청주, 군산, 광주 등 전국 각지에서 진압 활동을 벌였다. 1907년 9월15일 문경 근처 전투 보고에서는 ‘적의 수괴’ 이강년(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대승사로 쫓겼다가 적성 방향으로 퇴각했다고 적은 뒤, ‘전투 후 의병이 점령하고 있는 해당 촌락을 소각했다.’는 내용과 ‘대승사가 의병의 소굴이어서 불태워 버리려 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또한 이강년 외에도 하동에서 의병 활동을 했던 임봉구(건국훈장 애국장) 등의 이름이 보인다. 특히 의병 3도 도원수 윤영수와 지리산 의병대장인 박동의 등 현재 독립유공에 추서되지 않은 사람의 이름과 나이, 본적 등 상세한 내용이 담겨 있다. 독립기념관 독립운동사연구소 김상기(충남대 교수) 소장은 “이 무렵 의병 진압작전에 대한 일본측 자료가 일부 공개되긴 했지만, 이 진중일지는 내용이 매우 사실적이고 구체적이라는 점에서 희귀한 기록이며, 아울러 독립유공자 등록을 위한 공훈자료로도 활용가치가 높다.”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국가귀속 친일파 땅 90% 소송중

    정부가 국가귀속으로 결정한 친일파 후손의 토지 90%가 법정싸움 중인 것으로 드러났다.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에 따르면 2006년 7월부터 3년간 환수 결정이 내려진 친일파 후손의 토지는 774만 4000여㎡(시가 1571억원)로 서울 여의도 크기 정도지만, 법적 절차가 마무리돼 환수가 확정된 토지는 전체의 9.5%인 73만 3000여㎡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재산 환수 결정에 후손들이 반발해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조사위는 출범 당시 을사오적, 정미칠적 등 1904년 러·일전쟁부터 1945년 광복 때까지 친일 반민족 행위를 한 것이 명백하고 그 대가로 토지 등을 획득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450여명의 후손이 보유한 재산을 추적해 국고로 환수하는 것을 목표로 정했다. 현재까지 친일행위자 177명에 대해 조사개시결정이 내려졌고, 친일재산이 확인돼 귀속 결정을 받은 이는 94명이다. 50여명의 조사인력이 전국에 흩어진 땅을 찾아 뛰어다닌 결과다. 그러나 친일파 후손 대다수는 국가 귀속 결정에 불복해 법적 대응에 나서고 있다. 조사위를 상대로 제기된 행정소송은 52건이며, 행정심판도 23건이나 청구됐다. 특별법이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친일파 후손들이 낸 헌법소원도 5건이다. 친일파 후손이 청구한 소송 중 판결이 난 1심 21건과 2심 4건에서 위원회는 사실상 모두 승소했다. 장완익 친일재산조사위 사무처장은 “법원이 친일재산은 헌법 정신에 비춰볼 때 보호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일치된 판단을 내렸다는 것은 큰 성과”라고 말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새 역사교과서 국가 정통성 강조

    새 역사교과서 국가 정통성 강조

    2011년부터 전국 중·고교에서 사용할 역사교과서에는 이전보다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을 한층 강조한 내용이 실릴 전망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근·현대사 기술의 객관성을 높이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 이같은 내용을 담은 역사교과서 집필 기준을 최근 확정했다고 4일 밝혔다. 교과부 관계자는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이념 논쟁을 끝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기준이 발표된 직후 학계는 이념 성향에 따라 상반된 입장을 보였다. 새로운 이념논쟁이 시작될 가능성도 크다는 얘기다. 이날 발표된 기준에는 교과서포럼 등 보수단체들의 주장이 대부분 반영됐다. 대한민국 정부는 3·1운동과 임시정부의 역사로 정통성을 인정받고 있다는 내용을 명시했다. 특히 ‘대한민국은 농지개혁을 추진하고 친일파 청산에 노력했음을 서술한다.’는 문장도 포함했다. 그러나 농지개혁과 친일파 청산 노력과 관련해선 학계에서 논란이 분분한 상태다. 이승만 정부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면을 강화하도록 했다. 현재 교과서에는 ‘발췌 개헌, 사사오입 개헌을 통해 독재화 과정을 설명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그러나 새 기준은 ‘이승만 정부가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기여한 긍정적인 면과 독재와 관련한 비판적인 점을 모두 서술한다.’라고 했다. 6·25 전쟁에 대해선 북한의 남침 사실을 명확히 기술하도록 했다. 박정희 정권에 대해서도 지금보다 ‘객관적’인 단어 선택을 하도록 했다. 현재 교과서에는 ‘장기집권에 따른 유신체제로 한국 민주주의는 큰 시련에 직면했다.’로 돼 있지만 ‘두 차례 헌법개정으로 1인 장기집권 체제가 성립되었음을 다룬다.’로 명시했다. 당장 학계 반응은 둘로 갈렸다. 교과서포럼 박효종 공동대표는 “근·현대사를 바라보는 좌우 시각을 잘 아우른 것으로 보인다. 논란과 시비를 잠재울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현행 교과서 집필자 홍순권 동아대 교수는 “정부가 구체적 집필 기준을 제시한 건 집필자에게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오히려 우편향 시각의 교과서가 제작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객원칼럼] 한국 언론의 태생적 굴레/정인학 한국수력원자력 감사

    [객원칼럼] 한국 언론의 태생적 굴레/정인학 한국수력원자력 감사

    한국 언론의 태생적 이력은 ‘이유 없는 반항’을 연출한 드라마 한 편을 연상케 한다. 한국 언론은 1883년 9월 박문국에서 한성순보를 발간하며 새로운 장을 열었다. 그러나 한성순보는 정치적 격동에 휘말려 1년3개월 만에 비운을 맞았고, 한성순보의 비운은 일제강점기를 예고하는 먹구름이었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일제의 한반도 침탈이 노골화되자 구국의 지성인과 지식인들은 언론에서 길을 찾았다. 숱한 신문들이 밤하늘 별처럼 빛났다가 스러졌다. 민족의 선각자들은 언론 활동에 매진하면서 당시 정치권력을 거부하고 일제에 항거했다. 일제는 조국을 강탈한 반민족적 외세로 절대 악(惡)이었고 따라서 정치권력을 매도하는 언론 활동은 절대적 선(善)이었다. 정치권력에 다가서면 어용(御用)이고 반민족적 변절(變節)이었다. 일제강점기라는 뒤틀린 세월은 40년이나 이어졌고, 어둠의 40년은 이유 없는 반항의 언론관을 만들어 냈다. 한국 언론의 태생적 굴레는 다른 나라 언론 발달사와 겹쳐 보면 뚜렷하게 도드라진다. 정부 정책을 지지하는 게 애국이요, 역사적 가치였다. 각국의 언론들이 저마다 국익을 최우선하는 논조를 펴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 일제의 어둠은 한국 언론을 뒤틀어 놨다. 광복 이후 권위주의 정권이 잇달아 들어서며 정부 정책이라면 허물부터 끄집어내 비판해야 언론의 정도를 걷는 것처럼 오해되었다. 한국 언론의 ‘비판 지상주의’는 국익에 역행하거나 국가적 불이익이 우려되는 경우에도 그대로 관통한다. 미국 언론의 징고이즘(Jingoism)을 비롯해 일본 등 선진 외국 언론의 비이성적 애국주의가 도마에 오르는 현실과 크게 대비된다. 언론의 비판 기능은 물론 핵심적인 역할이다. 그러나 비판 기능이 기형적으로 강조될 경우 자칫 사회적 분란을 조장하고 사회적 갈등을 확산시키기 십상이다. 언론도 국가 공동체의 생산성을 강화하고 건전성을 높이기 위한 사회제도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선진 언론일수록 국가 사회를 발전시키고 구성원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사회적 의제를 발굴해서 공론화하는 의제설정(Agenda Setting)에 악센트를 두고 있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일제강점기 구석구석에 똬리를 틀었던 역사적·정신적 독소를 거둬 내야 한다. 일제에 기생하여 축적한 재산을 몰수하고 몇몇의 친일 행각을 들춰내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이제는 떨쳐내야 한다. 반항의 언론관을 극복해야 한다. 7개월이 넘게 우리 사회를 흔들고 있는 미디어법 논란을 보자. 언론은 간 데 없고 정치의 깃발들이 펄럭이고 있다. 비판은 없고 구호성 주장과 선전성 예단들이 넘쳐난다. 정보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동일한 인터넷 시대에 언론 매체를 어떻게 해서 여론을 장악한다는 주장은 적어도 억지다. 백보를 양보한다 해도 지금 한국에는 미디어 문제가 국정의 전부란 말인가. 2009년을 온통 미디어법 논쟁으로 지새워야 하겠는가. 언론이 정치에 편승하는 시기는 지났다. 언론이 이념적 성향으로 패거리를 지어 이리저리 우르르 몰려 다녀서는 안 된다. 언론은 국가 사회의 건전성을 신장시키고 생산성을 향상시켜야 한다. 누가 주장했느냐가 아니라 무슨 내용이냐를 보고 옳고 그름을 따져야 한다. 누구에게 유리한지를 계산하기 이전에 국가 발전에 어떻게 밑거름이 되느냐를 새겨야 한다. 한국 언론은 지금쯤은 태생적 굴레를 벗어던지고 정론(正論)의 길로 나가야 한다. 정인학 한국수력원자력 감사
  • [책꽂이]

    ●엘리트보다는 사람이 되어라(전혜성 지음, 중앙북스 펴냄) 오바마 미국 행정부의 차관보급에 나란히 임명된 고경주·홍주 형제를 비롯해 두 딸과 네 아들을 남부럽지 않게 키워낸 전혜성 동암문화연구소 이사장이 풀어놓는 자녀교육. ‘사람 구실’ 제대로 하는 아이를 만들기 위해 부모가 먼저 바로서야 한다고 따끔하게 충고한다. 1996년 출간본을 개정·보완했다. 1만 5000원. ●톨레랑스가 필요한 기독교(이우근 지음, 포이에마 펴냄) 서울중앙지법원장을 지낸 이우근 변호사가 한국 교회의 병폐와 기독교인들의 비뚤어진 신앙을 꼬집는다. 법조인이자 개신교 장로로서 보고 느낀 것을 정리하며 ‘톨레랑스(관용)’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1만 3000원. ●전쟁하는 세상(앤서니 파그덴 지음, 추미란 옮김, 살림 펴냄) 지속된 동서양 문명의 격돌과 뿌리를 알기 쉽게 설명했다. 동양은 주로 중동권으로, 페르시아 황제 크세르크세스의 정복전쟁으로 시작해 2500년 간 이어진 다양한 전쟁을 그리며 세계화한 세상에서도 싸움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3만원. ●탐욕의 자본주의(김용관 지음, 인물과사상사 펴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주식거래소가 생긴 1609년부터 400년 간 이어진 자본주의의 역사를 풀었다. 자본주의 사상가들뿐 아니라 근대인들의 다양한 일화로 자본주의로 변해온 역사의 풍경을 훑어본다. 1만 2000원. ●풀어서 본 반민특위 재판기록(정운현 편역, 선인 펴냄) 1949년 1~8월 반민족행위자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남긴 성과와 영욕을 모았다. 당시 친일행적으로 조사받은 인원은 668명이었으나, 증거를 없애기 위한 그들의 ‘꾸준한 노력’으로 기록이 남은 것은 64명뿐이다. 그나마도 손으로 휘갈겨쓴 한문이 대부분이라 일반의 접근이 쉽지 않다. 정운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 전 사무처장은 10년 동안 이 기록들을 쉽게 풀어냈다. 전 4권. 8만원. ●여학생이라면 꼭 배워야 할 힐러리 파워(데니스 에이브럼스 지음, 정경옥 옮김, 명진출판 펴냄) 세계 여학생들이 역할모델로 삼는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의 인생 전략.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삶을 살피며 어떤 점을 배워야 할지 전한다. 이화여대, 도쿄대를 연설 전문도 실려있다. 1만 3000원.
  • “역사 바로세우기에 모든 것 바칠래요”

    “역사 바로세우기에 모든 것 바칠래요”

    “살아 있는 동안 ‘역사 바로 세우기’에 모든 것을 바칠 겁니다.” 아버지 의친왕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 ‘의친왕 이강’(박종윤 지음, 하이비전 펴냄)의 출간에 즈음해 23일 서울 운현궁에서 기자들과 만난 황실문화재단 이석(68) 총재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아버지 의친왕은 다정하셨던 분”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손인 이 총재는 “우리 전통문화의 중요성이 점점 잊혀 가는 때에 이런 작품이 나와 아직 조선의 역사가 살아 있음을 이야기해 반갑다.”면서 입을 열었다. 작품은 일제의 계략으로 왕위를 잇지 못했지만 황족 중 유일하게 일제와 맞섰던 의친왕의 독립운동을 소재로 했다. 소설가 박종윤이 8년 동안의 자료수집을 거쳐 썼다. 그 과정에서 이 총재도 작가를 만나 아버지의 생전 모습을 증언했다고 한다. 작품 속 의친왕은 강인한 모습이지만 이 총재는 다정한 아버지로서의 의친왕을 기억하고 있다. “아침에 문안을 드리면 제 볼을 만지며 다정히 말을 건네곤 하셨죠.” 해방의 순간까지 의친왕은 탄식으로 살았지만, 해방이 되고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친일파를 등에 업은 이승만 정부는 황실 재산을 국고에 환속시키고 황족을 핍박했다. 헌법이 바뀌고 정부가 새로 생길 때마다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1980년대에는 정권의 강압으로 미국으로 떠나야만 했다. 현재 남은 10명의 황족 중 한국에 있는 건 이 총재뿐이다. ●“명성황후·대원군 갈등 심하지 않았다” 미국 영주권을 버리고 한국에 온 지 20년. 그는 역사 바로 세우기, 역사의식 형성에 모든 힘을 쏟으며 강의를 나가고 있다. 주요 내용은 이렇다. 명성황후와 대원군의 갈등은 심하지 않았다. 당파싸움이 조선을 망하게 하지 않았다. 대한제국의 고종은 무능한 임금이 아니었다. 근대사와 관련해 왜곡된 역사의식은 일본의 식민지 정책이었다는 것 등이다. 그는 현재 우리 사회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일침을 가한다. “이 나라는 지금 황금만능주의에 경도돼 있다.”는 이 총재는 “돈을 너무 밝히면서 정신이 피폐해져 자신들의 행동이 얼마나 부끄러운지도 모르게 됐다.”고 한탄했다. 그러면서 최근 국회를 겨냥해 “국민들이 뽑은 사람들이 이런 짓을 하는 건 상놈의 짓”이라고 강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앞으로 역사 바로 세우기와 더불어 왕실문화 재건을 위해서도 힘쓴다는 계획이다. 왕실품위유지를 위한 대책마련을 정부에 요구하고, 왕실문화와 정신이 이어지도록 역사강의도 꾸준히 진행한다. 글 사진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임정 90주년 발자취 되밟다] (상) ‘독립정신 답사단’ 동행기

    [임정 90주년 발자취 되밟다] (상) ‘독립정신 답사단’ 동행기

    꼬박 90년이 흘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직후인 4월 독립운동에 나선 이들은 중국 상하이(上海)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차렸다. 1945년 충칭(重慶)에서 광복을 맞을 때까지 26년에 걸친 대장정(大長征)의 시작이었다. 임시정부는 총 5000㎞를 이동하며 세계 피식민지 민중의 저항운동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운 활동을 펼쳤다. 좌·우 이념적 갈등을 아울러 가며 일제에 맞서 싸울 수 있는 군대를 양성했고, 세계 양심세력들의 찬사를 받은 영웅적 투쟁을 펼치는 한편 외교적 노력 또한 아끼지 않았다. 더불어 현재 우리 헌법의 토대가 되는 법과 제도를 체계적으로 마련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9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의 씩씩한 청년들 54명을 포함한 독립유공자 후손, 학자 등 70여명으로 꾸려진 ‘독립정신 답사단’이 지난 11일부터 19일까지 중국 땅에서 선대의 발자취를 되밟았다.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주관, 서울신문 후원 사업이다. 그들을 따라, 그들의 곁에서 목도했던, 90년의 세월과 중국과 한국의 공간을 뛰어넘는 의미를 두 차례에 걸쳐 되새겨 본다. │충칭(중국) 박록삼특파원│#장면 1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라. 네가 만일 뼈가 있고 피가 있다면 조선의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1932년 4월29일 중국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열린 일왕 생일 축하식장에 도시락 폭탄을 던진 스물다섯 살의 윤봉길 의사가 두 아들에게 남긴 처연한 말이다. 그의 의거는 일본육군사령관, 일본 상하이거류민단장을 죽게 했고, 일본 열도를 경악시켰다. #장면 2 1945년 11월3일 충칭 임시정부 청사 계단 앞. 백범 김구 등 임시정부 요인들은 조국으로 돌아가기 이틀 앞서 태극기를 들고 마지막 기념사진을 찍는다. 하지만 어느 누구의 눈매에도 웃음기는 보이지 않는다. 수십 년 동안 피흘려 싸웠건만 돌아온 것은 ‘또 다른 제국’의 그늘이었기 때문이다. 광복 이후 점령군으로 들어온 미 군정은 임시정부 자격이 아닌, 개인 자격의 환국만을 허락했다. 이역만리에서 조국 광복을 위해 피를 흘렸던 임시정부의 투쟁과 꿈, 좌절을 상징하는 두 장면이다. 나라 빼앗긴 백성들 앞에 놓인 길의 갈래는 많지 않았다. 길가에 굴러다니는 개똥처럼 굴종의 삶을 살든지, 일본에 빌붙어 개인만의 영달을 꾀하든지, 아니면 빼앗긴 것을 되찾기 위해 분연히 한 목숨을 바치든지 말이다. ●90년전 임정이 꿈꾼 나라를 찾아나서다 지난 11일 오전 8시 무렵 인천국제공항. 전국 각지의 대학생 54명이 모였다. ‘독립정신 답사단’이다. 이들은 이미 ‘장강일기’와 ‘백범일지’를 읽고 임시정부의 수난과 고통, 절절한 바람을 익혔다. 답사단에 주어진 과제는 간명하면서도 묵직하다. 항일독립운동의 역사를 박제화된 교과서에서 우리네 현실의 문제로 끄집어내야 한다. 중국 상하이~난징(南京)~자싱(嘉興)~항저우(杭州)~창사(長沙)~구이린(桂林)~류저우(柳州)~치장~충칭(重慶)에 이르기까지 숨가쁘게 이동하며 ‘임시정부가 꿈꾼 나라’의 구체적인 모습을 잡아내야 한다.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과도한 비장함 따위는 청년들의 몫이 아니다. 재미난 여행을 앞둔 듯 끼리끼리 재잘거리기 바쁘다. 40도를 넘나드는 후덥지근한 7월의 상하이에 도착했고 곧바로 임시정부청사 옛터에 이어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있었던 루신공원(옛 훙커우 공원)을 찾았다. 이내 숙연해진다. 발대식부터 결연하다. 책으로 본 지식은 뇌에 남지만, 눈으로 본 감동은 심장에 남을 수밖에 없다. 모두의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감동과 배움이 넘쳐나다 12일 뙤약볕 속에 난징 대학살기념관을 방문한다. 일제의 만행을 적나라하게 남겨놓은 이곳에서 답사단은 새삼스러운 충격을 받았다. 관련 기록물들을 둘러본 뒤 다시 쳐다본 정문 맞은편 벽에 쓰여진 ‘300000’이라는 학살된 사람들의 숫자는 이제 더이상 역사 속의 지식, 정보가 아니었다. 후난성(湖南省) 창사 난무팅(楠木聽)에서 백범은 1938년 5월6일 한국독립당, 조선혁명당 등 우익 3당 대표들과 모여 3당 통합을 논의한다. 그리고 이곳에서 이운환이 쏜 총에 맞아 상아의원으로 긴급하게 후송된다. 답사단은 15일 창사 시내 낡은 골목길로 들어선 뒤 몇 차례 왼쪽, 오른쪽으로 꺾다가 어렵사리 난무팅 현장을 찾았다. 그리고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을 올라가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두리번거렸다. 17일 치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치장에는 이동녕 임정 주석 등이 머물던 옛집터(상승가 107호)와 임정청사 구지(임강가 43호) 등이 있다. 그러나 현지인들조차 정확한 위치를 알지 못했다. 당시 열두 살이었던 김자동 임정기념사업회장의 “한국 정부에서 중국 시정부 등과 협조해서 정확한 위치를 파악해야 한다.”는 설명에 함께 안타까워했다. 더이상 교과서 속의 역사가 아님을 심장이 먼저 느낀다. ●2009년, 새로운 나라를 꿈꾸다 답사단은 가는 곳마다 사진을 찍고, 꼼꼼히 메모를 한다. 또한 민족문제연구소 신명식 이사, 곽태원 한국노동경제연구원장 등 전문가의 강연을 듣고, 조별로 정한 과제를 발표한다. 그리고 1942년 제정한 건국강령에서 ▲대규모 생산기관 국유화 ▲노동자 의료비 면제 정책 ▲친일세력 귀속재산 몰수 ▲최저임금제 ▲노동조합 경영참여권 등을 명문화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또한 항일이라는 지상 과제를 앞두고 1938년 좌·우익 7당 통일회의를 여는 등 백범과 좌익의 약산 김원봉을 중심으로 좌우 갈등을 아우르고 통합하기 위해 기울였던 끈질긴 노력도 오늘의 상황과 맞물려 고개를 주억거리게 만든다. 답사단 김태균(24·한양대 4학년)씨는 “현재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복지국가의 원형을 이미 임정에서 천명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라면서 “이번 답사를 통해 젊은 세대가 역사를 지나간 과거로 치부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또한 역사를 지식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글ㆍ사진 youngtan@seoul.co.kr 임정기념사업회 주관 서울신문 후원
  • [씨줄날줄] 네이밍 vs 라벨링/진경호 논설위원

    이미지로 먹고 사는 정치에서 상대를 누를 가장 위력적인 무기는 라벨링(labeling), 딱지 붙이기다. 한 번 가슴에 주홍글씨가 찍히면 제아무리 용을 써도 지워지지 않는다. 주차위반 스티커처럼 갖다 붙이긴 쉽지만, 이걸 떼려면 수십배의 노력을 쏟아부어야 한다.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등장한 ‘차떼기당’은 ‘보수세력=부패집단’이라는 공식을 낳은 대표적 낙인이다. 지하주차장에서 불법 대선자금을 차로 실어나른 한나라당을 향해 열린우리당이 붙인 ‘차떼기당’이라는 이 오명은 전시(戰時)도 아니건만 한나라당으로 하여금 천막당사로 달려가게 만들었다. 광복 직후의 ‘친일파’나 ‘빨갱이’에서 보듯 사실 우리 정치는 차떼기당 말고도 오랜 낙인정치의 뿌리를 지니고 있다. 좌파 진영이 ‘좌익’ 대신에 ‘진보’라는 모자를 쓰고 있는 것도 남북 분단의 대치 구도에서 ‘좌익=친북=척결대상’이라는 낙인으로부터 비켜서려는 몸짓이라고 할 수 있다. 낙인의 저주는 정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미국산 쇠고기가 단적인 예다. 소비자들이 미국산 쇠고기를 기피하면서 한때 100여개에 이르던 수입업체들이 줄줄이 도산하고, 해외로 덤핑 역수출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검찰이 MBC PD수첩의 보도가 과장·왜곡됐다는 수사 결과를 내놓았으나 한 번 각인된 ‘미 쇠고기=광우병’이라는 일반의 부정적 인식까지 말끔히 해소하지는 못한 듯하다. 이명박 정부 들어 라벨정치가 더욱 기승을 부린다. ‘강부자 내각’ ‘고소영 내각’으로 시작해 ‘MB 5대 악법’ 등 갖가지 딱지들이 난무한다. 대부분 집권세력을 공격하기 위해 야권이 동원한 라벨들이다. 한나라당도 이에 질세라 비정규직 해고사태를 ‘추미애 실업’으로 명명하며 딱지 붙이기에 여념이 없다. 이 같은 정치판의 라벨링은 언뜻 마케팅의 네이밍(naming)과 비슷해 보인다. 하나 정반대다. 네이밍은 자기 제품의 핵심을 내보이려는 노력, 즉 자기를 부각시키려는 노력인 반면 정치판의 라벨링은 거짓과 왜곡으로 상대를 죽이려는 노력이다. 상대 얼굴에 침 뱉는 라벨링 정치 말고, 좀 짙더라도 제 얼굴에 화장하는 네이밍 정치를 보고 싶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친일 군인·경찰·예술인 재산도 환수

    10일 친일·반민족행위재산조사위원회는 친일 행위를 한 재산환수 대상자를 확대 선정해 다음달 15일 발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재산환수 대상자는 을사늑약 등 국권 침탈 조약에 관여한 대신과 조선총독부 고위 관계자, 중추원 의원 등 450여명의 일제치하 정부 고위직으로만 한정됐지만 이번에는 친일 활동을 한 군인과 경찰, 예술인 등도 대거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위는 “친일 정도가 중대한 이들을 별도로 선정하는 작업을 진행해 전원위원회 회의를 앞두고 있으며 각계각층의 인사가 포함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사위는 “인물 선정과 규모는 전원위가 결정할 사안”이라면서 “독립운동을 억압한 군인과 경찰, 위안부 모집을 선동·주도한 인물 등 반민족 인사가 주를 이룰 것”이라고 말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테마 스토리 서울] (3) 경교장

    [테마 스토리 서울] (3) 경교장

    1949년 6월26일 ‘탕,탕,탕,탕’ 네발의 총소리와 함께 우리는 민족지도자 한 명을 떠나 보내고 말았다. 해방과 함께 찾아온 이데올로기의 혼란 속에 민족애를 실천했던 백범(白凡) 김구(金九). 그의 집무실이자 치열한 삶을 마감한 비극의 현장인 경교장(京橋莊)을 찾았다. 경교장은 백범의 거처였다. 이곳은 이화장(梨花莊)·삼청장(三淸莊)과 함께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 건국활동 3대 명소 중 하나다. 이 집은 광화문과 서대문 사이에 있던 동양극장 건너편에 자리잡고 있었다. ●해방후 백범 건국활동의 근거지 지금은 강북삼성병원의 신관과 본관 사이에 초라한 모습으로 웅크리고 있다. 경교장의 대부분은 삼성병원이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고 집무실만 예전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다. 집무실 가운데 책상에는 자전적 일기인 ‘백범 일지’가 놓여 있고, 바로 옆에는 발자국이 있다. 바로 그 자리가 당시 육군 소위였던 안두희가 총을 쏘았던 곳이다. 안두희가 쏜 네발 중 두발은 창가 책상에 앉아 있던 백범에게 치명상을 입혔으며 두 발은 빗나갔다. 창문에는 빗나간 두 발의 총알이 지난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날카롭게 뚫린 구멍 두개와 금이 간 유리창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비극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다. 집무실을 돌아 보고 나니 “네 소원이 무엇이냐고 하느님이 내게 물으시면/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오’하고 대답할 것이다.”라는 백범의 절절한 외침이 들려오는 듯했다. 경교장은 당시 금광업으로 많은 돈을 번 최창학이 1938년에 지은 양옥집이었다. 대지 5236㎡(1584평)에 2층 건물로 지어진 이 집은 당시만 해도 당구대와 이발실, 온수난방시설까지 갖춘 초호화 저택이었다. 최창학은 이 집을 1945년 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귀국한 백범 김구에게 무상으로 빌려 줬다. 친일파의 전력을 씻으려는 발 빠른 변신이었다. 오랜 망명 생활로 국내에 오갈 곳 없던 백범은 이 집을 집무실 겸 거처로 사용했다. 이곳에서 임정 국무회의를 열어 반탁 포고령을 발표하고, 자전적 일기인 백범일지를 썼다. ●내년4월 복원시작…2011년 완공 백범이 죽은 뒤 이 곳은 최창학에게 반환됐고, 타이완·베트남 대사관 등으로 사용되다가 1968년 삼성그룹으로 넘어가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의 건물로 사용돼 왔다. 한때 철거당할 뻔한 위기도 맞았지만 가까스로 모면했다. 최근 서울시와 삼성병원 측이 합의해 경교장 전체를 복원하기로 했다. 박철규 서울시문화재과 정책팀장은 “풍상 많은 경교장의 운명을 돌아 보니 굴곡진 한국 현대사의 축소판을 보는 듯해 안쓰럽다.”면서 “내년 4월부터 복원공사를 시작해 2011년 말에 임시정부청사로 완벽하게 변신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ㆍ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인사]

    ■교육과학기술부 ◇승진 △제주특별자치도 부교육감 박표진△경기도교육청 기획관리실장 김원찬◇전출△경기도교육청 지방공무원 이운선◇부이사관△한밭대 사무국장 박주헌△한국방송통신대 〃 한승일◇서기관△국외훈련파견(영국 버밍엄대학) 김우정■국가보훈처 ◇전보 △국립대전현충원장 정계웅△인천보훈지청장 하정우△국립대전현충원 관리과장 남창수△보훈심사위원회 사무국 공상심사과장 박노진△서울북부보훈지청장 손용호△수원〃 권영봉△국립이천호국원장 김의행△충주보훈지청장 윤건용△안동〃 김지권 ■제주특별자치도 ◇지방부이사관 승진 △감사위원회 사무국장 양광호 ■친일재산조사위 △조사단 조사2과장 모종률 ■코레일 △기술본부 고속철도운영준비팀장(T/F) 강규현 ■환경관리공단 △환경시설본부장 김영조 ■머니투데이 ◇승진 △부동산부 겸 전국사회부 부장직대 문성일◇전보△통합뉴스룸 1부장 겸 시장총괄데스크 이기형△정치경제부장 채원배◇승진 및 파견△머니투데이방송(MTN) 경제증권부장 권성희
  • 日, 태평양 섬 껴안기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이 태평양상에 있는 섬나라를 끌어안기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일본은 지난 22일부터 23일까지 이틀 동안 홋카이도에서 ‘제5회 태평양·섬 서밋’을 개최, ‘태평양 환경공동체’를 결성키로 합의하는 등 관계 강화를 약속했다. 회의에는 호주를 비롯해 뉴질랜드, 솔로몬제도, 사모아, 파푸아뉴기니, 피지, 팔라우, 마셜제도 등 16개국 및 지역이 참가했다. 회의의 공식명칭은 일본과 태평양도서국가 포럼(PIF)이다. 일본이 크고 작은 태평양 섬 국가들과의 연대와 발전을 꾀하기 위한 취지에서 1997년부터 3년마다 독자적으로 여는 국제회의체다. 일본은 환경과 기후변동 문제를 다룰 태평양 환경공동체의 창설과 함께 3년 동안 회원국에 500억엔(약 650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지원금 가운데 68억엔은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해 태양광발전과 해수의 담수화 설비 등에 투자할 방침이다. 또 폐기물 처리 등 기술에 1500명, 보건·위생·교육 분야에 200명의 인재를 육성하기로 했다. 3년간 1000명 이상의 청소년 교류도 실시한다. 일본의 이같은 행보는 2006년부터 중국이 별도로 태평양 섬나라들을 겨냥해 주최하는 ‘중국판 ’ 섬 정상회의에 대한 경계이기도 하다. 또 섬나라들을 ‘친일’ 국가로 끌어들여 유엔안전보장 상임이사국의 진출을 위한 기반으로 활용하려는 외교적 전략이다. 아소 다로 총리는 23일 폐막식에서 중국의 태평양 영향력에 대한 확대를 의식한 듯, “일본은 태평양 지역과 오랫동안 깊은 인연을 맺어왔다.”면서 “환경기술 등 일본의 특색을 살린 협력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어 “강력한 메시지를 세계에 발신하고 싶다.”며 연대 강화를 강조했다. hkpark@seoul.co.kr
  • [인사]

    ■기획재정부 ◇파견 △경제·인문사회연구회 미래전략연구센터 소장 정택환 ■행정안전부 ◇승진△과천청사관리소장 곽임근△중앙공무원교육원 파견 박동훈△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 〃 이희봉△한국지역진흥재단 〃 이인재◇전보△지역경제과장 문연호△정보화인력개발〃 이경환 ■농촌진흥청 △연구정책국장 양창범 ■식품의약품안전청 △식품안전국 식품기준부장 오혜영△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독성평가연구부장 한순영 ■인천국제공항공사 ◇승진 △1급 강판석 김종서△2급 지희수 여태수 정황용△3급 이왈문 박수연 권순원 김창구 임시호 장기욱△4급 임훈 김주희◇이동△정보화전략실장 이호진△운송시설처장 김종서△에너지관리팀장 이진근△상황관리〃 김윤진 ■한국경제신문 △채권관리부장(부국장대우) 정원조△광고지원〃 장선복△광고마케팅총괄〃(광고마케팅1부장 겸직) 송광림
  • “우리 역사 제대로 알지 못하면 나라가 거꾸로 갈 수 밖에 없어”

    “우리 역사 제대로 알지 못하면 나라가 거꾸로 갈 수 밖에 없어”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90주년을 기념하는 학술대회가 열린 지난 10일 오후 서울역사박물관 강당. 주제발표가 한창이었지만, 청중은 아무리 넉넉하게 헤아려도 50명이 넘을 것 같지 않았다. 행사를 준비한 김자동(81)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장은 “그래도 90주년인데 하는 기대도 없지 않았다.”면서 “특히 젊은이들이 많이 와서 들었으면 했는데….”라고 섭섭함을 숨기지 않았다. 김 회장은 “젊은이들에게 임시정부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지를 물으면 대부분 김구 선생이 주석이었다는 것 정도”라면서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은 교육이 문제”라고 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정의로운 선조들에 관한 교육을 아주 안 하는 것은 아닌데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예를 들어 사법시험은 법률 조목과 판례를 다 외워야 한다지만 컴퓨터로 검색하면 금방 알 수 있는 시대 아니냐.”면서 “민족의식과 역사의식이 있는 사람이 제대로 재판도 할 수 있는데, 법조인의 태반이 그걸 모르니 출세와 돈만을 지향하고, 현실에 아첨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 회장의 가족사는 임시정부의 역사이다. 그의 할아버지 동농 김가진 선생은 한일합병 이후 국내에서 항일비밀결사인 조선민족대동단을 이끌다 임정이 있던 중국 상하이로 망명했다. 대한제국 시절 병조참판과 공조판서를 지낸 동농 같은 거물이 임정에 참여함에 따라 일제는 커다란 타격을 받았다. 동농은 당시 맏아들인 김의한 선생을 데리고 망명했고, 김 회장은 1928년 상하이의 프랑스 조계에서 태어나 김구·이동녕·이시영 선생 등 독립운동가의 품에서 자랐다. 김 회장은 2006년부터 임시정부기념관 건립 사업을 벌이고 있다. 그는 “중국여행을 해보니 남경학살박물관이 있더라.”면서 “일인들이 중국 사람 수십만명을 학살한 사건을 설명해놓았는데, 가장 열심히 박물관을 돌아보는 사람들은 일본 관광객들이었다. 우리도 그런 장소를 만들어 일본의 후세들이 보고 반성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일본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지금도 임시정부기념관 건립에 써달라고 적지 않은 국민들이 성금을 보내주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은 기념관 건립과는 거리가 먼 액수라고 했다. 이제는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1946년 국내에 들어온 뒤 조선일보와 민족일보 기자 등 언론인으로 일했다. 임시정부기념사업회로 범위가 넓어지기 이전에는 무려 50~60명이 일제에 붙잡혀 징역살이를 한 조선민족대동단을 기념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그는 그때 ‘항일투쟁하면 3대가 못살고, 친일하면 대대로 잘 산다.’는 말을 실감했다고 한다. 일년에 한 차례쯤 모여 식사라도 같이하는 조촐한 모임을 생각했지만, 대동단의 후손 가운데 회비라도 낼 수 있는 중산층으로 분류할만한 후손은 단 한 사람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13일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90주년 기념일. 지난해 이른바 뉴라이트 진영과의 ‘건국 60주년’ 논쟁과 관련해 김 회장에게 정부에 가장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역대 정부도 마찬가지지만 이번 정부도 첫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 같다.”면서 “정부의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우리나라의 역사쯤은 알아야 한다. 잘된 점이든, 잘못된 점이든 자기 과거의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거꾸로 가는 나라가 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과거사 청산은 우리 모두의 몫 아픈 기억과 끊임없이 대면해야”

    “과거사 청산은 우리 모두의 몫 아픈 기억과 끊임없이 대면해야”

    “과거사 청산은 과거의 아픈 기억과 계속 대면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한양대 연구중심대학(WCU) 석학교수로 초빙받아 방한한 일상사 연구의 대가 알프 뤼트케 교수가 10일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임지현 교수와 대담을 가졌다. 이날 ‘트랜스내셔널 일상사’라는 주제로 한양대 백남학술정보관에서 열린 강연에 앞서 가진 대담에서 두 학자는 “과거사 청산은 소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반성하고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99년부터 독일 에르푸르트대에서 강의하고 있는 뤼트케 교수는 거대담론 위주의 역사학을 비판하며 개인의 일상에 초점을 맞춘 ‘일상사’ 분야에서 저명한 석학이다. ●독일 과거사 청산은 현재진행형 →독일에서의 과거사 청산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한국과 비교한다면. 뤼트케 과거사 청산은 파시즘이 무너진 후 20~30년에 걸쳐 이뤄졌다. 동독의 경우 “파시스트였던 적이 없다.”며 과거를 외면했지만 1970년대 들어 유대인 학살에 가담했던 것은 많은 무명씨였다는 시각이 생겨났다. 대도시뿐 아니라 작은 마을에서 유대인을 약탈하고 강제노동을 강요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독일은 과거사 청산의 선구자인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 과거사 청산은 현재진행형이다. 옛 동독의 비밀경찰인 슈타지를 둘러싼 논란만 해도 그렇다. 임지현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북한은 김일성 주석이 만주에서 제국주의와 싸웠다는 정통성을 내세우며 친일파가 청산됐다고 주장한다. 남한도 일제나 독재시대에 대해 소수의 권력자만 책임이 있을 뿐 나머지는 피해자라는 생각을 한다. 그럼에도 독재시대에 대한 향수가 만연하는 것은 일반인들에게 그 시대의 사회적 가치가 박혀있기 때문이다. 이와 싸우려면 인적 청산으론 안 된다. 일반인들이 그 시대의 가치와 대면하는 것이 진정한 과거사 청산이다. →최근 한국에서는 과거사 청산을 위한 국가위원회들이 통폐합될 처지다. 임지현 그런 위원회들이 없어지면 과거사 청산이 안 된다는 것인가. 과거와 대면하는 것은 국가적 차원이 아니라 시민사회 성원들이 해야 하는 몫이다. 뤼트케 과거청산에서 중요한 것은 다원주의 원칙이다. 정부, 역사가, 소시민, 시민단체들이 나서야 한다. 1970년대 영국에서 ‘역사 작업장’이라는 운동이 시작돼 독일로 옮겨왔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그 지역의 역사를 공부하고 반성한다. 정부가 주도한 게 아니었다. ●시민들 스스로 역사 공부하고 반성을 →과거사 청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뤼트케 ‘네트워킹’이다. 모여서 공부하고, 과거와 대면해야 한다. 20세기의 슬로건이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였다면 지금은 “만국의 노동자여 네트워킹하라.”다. 과거를 이해하고 반성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글 사진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공직자 재산공개-청와대·행정부] 주식·펀드는 반토막… 부동산 쏠쏠한 증식

    [공직자 재산공개-청와대·행정부] 주식·펀드는 반토막… 부동산 쏠쏠한 증식

    주식·펀드 투자자는 울고, 부동산 재력가는 웃었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27일 공개한 ‘2009년도 고위공직자 정기 재산변동 현황’에 따르면 펀드나 주식 등에 투자했던 공직자는 재산손실을 입은 경우가 대다수였다. 반면 부동산을 소유한 공직자는 재산이 늘었거나, 줄더라도 소폭에 그쳤다. 류철호 한국도로공사 사장은 지난해 주가하락에 따른 매각손실 등으로 인해 112억원이었던 재산이 56억원으로 절반이나 줄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펀드 평가액이 하락하면서 재산이 24억원 감소했다.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도 펀드 평가액 손실로 20억원의 손해를 봤으며, 김태효 대통령실 대외전략비서관도 같은 이유로 15억원의 손실을 입었다. 이인선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원장은 수익증권 평가액이 하락해 9억 6000만원 재산이 줄었다. 이 밖에 조청원 과학기술인공제회 이사장은 주식가액이 22억 6000만원에서 12억 9000만원으로 반토막났고, 민유성 한국산업은행 총재는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본인과 가족 보유 주식 15억원 상당을 날렸다. 금융 불안이 계속되자 주식을 팔아 예금을 늘린 공직자도 있었다. 주로 금융계 관련 기관에 근무하는 공직자가 ‘재테크’ 실력을 과시했다.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은 지난해 주식 15억 7000만원어치를 매각해 예금을 5억 4000만원에서 17억 9000만원으로 크게 늘렸다. 박해춘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7억 4000만원 상당의 유가증권 매각대금에 급여저축 등을 보태 예금을 17억원에서 27억원으로 불렸다. 이수화 한국예탁결제원 사장 역시 주식 매도대금 등으로 예금을 5억 6000만원 늘렸다.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공직자는 재산이 증가한 경우가 많았다. 김일수 여수세계박람회조직위원회 본부장은 소유 아파트의 공시가격이 상승하면서 총 재산이 8억 5000만원 증가했다. 송영중 노동부 기획조정실장도 분양받은 아파트의 가액이 변동하면서 7억여원의 재산이 늘었고, 김용환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의 재산은 건물 재건축 등으로 인해 5억 7000만원 증가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부동산 재산도 4억여원 불었다. 권영건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은 역삼동 병원의 평가가액이 종전 53억 3000만원에서 62억 1000만원으로 뛰어 재산이 늘었고, 김창국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장의 경우 평택의 임야가격이 22억원에서 26억원으로 올랐다. 행정안전부 윤리담당관실은 공직자의 재산이 줄어든 주요 요인으로 ‘금융위기에 따른 펀드·주식 등의 평가액 하락’ ‘자녀 결혼·교육비 등 생활비 증가’ 등을 꼽았고, 늘어난 이유는 ‘부동산 공시가격 상승’ ‘급여저축’ ‘상속’ 등을 짚었다. 한편 김신호 대전시교육청 교육감은 지난해 선거자금 등을 마련하기 위해 7억여원의 빚을 지는 바람에 재산 총액이 ‘-1억 4000만원’으로 나타났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산수유 활짝 핀 전남 구례 3색 매력

    산수유 활짝 핀 전남 구례 3색 매력

    소설가 정지아(44)는 전남 구례에서 나고 자랐다. 그는 1990년 부모의 뜨거웠던 청춘을 고스란히 옮겨 지리산을 배경으로 한 소설 ‘빨치산의 딸’을 쓴 뒤 공안당국에 오랫동안 수배됐고, 책은 판금되는 등 모진 고초를 겪어야 했다.섬진강을 끼고 있는 지리산 자락의 전남 구례가 이렇듯 아픈 현대사의 한복판 무대에서 내려와 단지 뛰어난 자연의 아름다움만으로 칭송받기까지는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까마득해진 50여년 전, 골골마다 조심스럽게 서려있는 빨치산 혹은 토벌군을 애써 기억하기 위해 구례를 찾는 이는 이제 거의 없다. 그저 봄이면 온 산하에 만발하는 노란 산수유와 분홍빛 벚꽃의 향연을 만끽하기 위해, 가을이면 붉은 피아골의 단풍과 함께 루비처럼 점점이 맺힌 산수유 열매를 보기 위해 몰려드는 관광객이 있을 뿐이다. 이렇듯 잊혀짐으로써 구례와 지리산에 얽힌 역사의 화해가 이뤄지고 있다. 1. 산수유 - 현천·상위 마을 꽃천지…오늘부터 축제 지난 13일 지리산 자락 일대에는 비가 흩뿌렸다. 귀한 비다. 지리산은 더욱 푸르러졌고, 섬진강은 촉촉함을 더했다. 사람들에게는 더욱 반갑다. 서기동 군수는 “올 들어 20㎜, 10㎜, 3㎜ 온 것에 이어 고작 네 번째로, 지난해 강수량과 비교하면 3분의1도 안 된다.”면서 심각한 봄가뭄을 걱정했다. 그러면서도 “아주 조금이지만 비 맞은 뒤 더욱 풍성해진 산수유를 보니 훨씬 아름답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산수유 마을로 더 잘 알려진 구례군 산동면 위안리 상위마을과 현천마을의 산수유는 수줍게 움을 틔웠다. 두 번 꽃을 피운다는 엄지손톱만 한 산수유는 이달 초순 수줍게 첫 노랑 방울을 내밀었다. 이달 하순, 4월 초순이면 꽃받침에서 왕관처럼 튀어나온 20여개의 꽃봉오리가 활짝 벌어지고 5~6개 수술까지 모두 아우성을 치며 피어날 것이다. 그리고 한 달 남짓, 시들지도 않고 지리산 자락에 노란색의 향연을 펼칠 것이다. 이 마을에는 중국 산둥지방에서 시집온 처녀가 산수유를 가져온 것으로 전해진다. 지리산 온천지구를 내려와 19번 국도를 타고 남원쪽으로 5분 남짓 가다 보면 산동면 위안리 계척마을에 산수유 시목지(始木地)가 있다. 약간 생뚱맞다는 생각도 없지 않지만 만리장성의 동쪽 끝인 산둥성 산해관의 모형까지 만들어 놓아 그 뜻을 기리고 있다. 산수유는 익히 알려졌듯 신장기능을 좋게 한다. 남정네들이 의미심장한 웃음 지으며 내밀히 찾아올 수밖에 없는 곳이다. 물론 마음만은 여전히 10대인 여인네들 역시 노란색의 더미 앞에서 연방 감탄사를 쏟아낸다. 산수유 축제 기간은 19일부터 22일까지다. 2. 문학의 향기 - 소설가 황석영 등 문인들 즐겨 찾는 곳 광의면, 문척면, 마산면, 반내골, 질매재, 피아골 등 구례의 골골이 실명으로 등장하는 ‘빨치산의 딸’과 같은 아픈 한국 현대사의 흔적 외에도 지리산의 맑은 정기와 섬진강의 유려함은 많은 시와 소설을 쏟아냈다. 구한말의 애국지사 매천 황현(1855~1910년)은 굳은 의기와 대쪽같은 선비혼을 ‘매천야록’, ‘오하기문’ 등 작품집에 고스란히 남겼다. 친일파, 부패한 왕실과 고위관료, 백성을 수탈하는 지방 수령 등이 그의 준엄한 꾸짖음의 대상이었다. 황현은 1910년 한일합병 이후 절명시(絶命詩) 4수를 남기고 자결했다. 구례는 넉넉함과 불꽃같음을 함께 품고 있기에 문인들이 절로 찾아든다. 소설가 황석영은 ‘문인마을’을 만들겠다며 지난해 구례군 산동면 둔기마을에 4만 5000여평의 널찍한 땅을 샀다. 아직은 제대로 된 진입로도 없는 두메산골이지만 직접 찾아보면 옛시절 ‘산사람들’이 누비고 다녔을 반야봉과 노고단, 만복대까지 지리산 능선이 한눈에 쏙 들어오는 곳이다. 3. 화엄사 - 구층암 수백년된 나무 기둥 숨은 볼거리 구례를 찾는 이들이 빼놓지 않는 곳의 하나가 화엄사다. 불교에서는 ‘불(佛)·법(法)·승(僧)’을 삼보(三寶)라고 하여 통도사, 해인사, 송광사를 각각 대표 사찰로 꼽고 있다. 구례군 문화관광해설가 박미연(36)씨는 “화엄사는 부처의 진신사리를 갖고 있어 불보, 80권의 대방광불 화엄경을 갖고 있어 법보, 수행하는 스님이 100명을 넘어서니 승보 등 삼보를 모두 아우른 사찰로도 손색이 없다.”고 자랑했다. 이른 아침의 화엄사는 고즈넉하다. 댓잎들이 서로 비벼대며 사그락거리는 바람소리는 간간이 울리는 풍경 소리와 어우러져 산문에 들어선 객의 마음을 정화시켜주는 듯하다. 국보 67호인 각황전은 물론, 국내에서 가장 큰 각황전 앞 석등, 그리고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셔 적멸보궁이 된 4사자삼층석탑 등 문화재를 찬찬히 둘러보려면 한두 시간은 벅차다. 대웅전 오른쪽으로 돌아가 100m 남짓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면 수백년 된 아름드리 모과나무 두 그루를 다듬거나 가공하지 않고 기둥으로 쓴 구층암을 만날 수 있다. 이 곳을 봐야 한다. 천불전을 왼쪽으로 둔 구층암의 기둥 2주는 훤칠하게 뻗어오르는가 싶더니 군살없는 근육처럼 굵직하게 뒤틀려서 버티고 있다. 찾는 이 누구나 남북으로 시원하게 뚫린 차방에 앉아 암주(庵主)인 덕제스님이 직접 가꾸고 만든 발효차를 맛보며 지리산의 주인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천불(千佛)’이 있으니 삼배(三拜)만 해도 삼천배의 효과가 있다는 너스레도 함께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내친걸음을 여기에서 멈출 수 없다. 50m쯤 더 올라가면 만나는 봉천암도 반갑다. 세월에 허물어진 석탑이 애써 손대지 않은 채 암자 앞에 그대로 놓여 있다. 아궁이에 장작불을 지피며, 옛 그대로인 해우소, 장독 항아리 등을 엿볼 수 있어 수행하는 스님들의 질박한 삶을 엿보는 듯 하다. 글 사진 구례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가는 길 서울 남부고속버스터미널에서 2시간 간격으로 있는 구례행 버스를 타면 3시간40분 걸린다. 첫차 7시30분. 기차는 서울역에서 구례구역까지 새마을호(하루 2회)와 무궁화호(하루 12회)가 운행한다. 승용차로는 천안~논산고속도로를 이용하면 빠르다. 부산에서는 고속버스로 구례까지 2시간 정도 걸린다. 대구에서는 남원을 지나오면 2시간20분에 닿는다. 구례터미널에서 군내버스가 어지간한 구례군 여행 명소를 다 데려다준다. ▲맛집 구례는 웰빙 맛여행의 천국이다. 전라도 하고도 구례니 밑반찬만으로도 80점 이상 먹고 들어간다. 어느 식당문을 열고 들어서도 지리산에서 나는 더덕, 곤드레, 고사리, 두릅, 도라지 등이 풍성하다. 이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자연산 송이와 섬진강 참게, 그리고 흑염소다. 1만원에 향긋한 자연산 송이전골 정식을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강남가든(061-782-7644)은 정갈한 밑반찬이 특히 인상적이다. 산동면 좌사리 산골짜기에 있는 양미한옥가든(061-783-7079)은 산닭과 흑염소, 멧돼지 구이를 낸다. 놓아먹인 것들이라 무엇을 골라도 인공 아닌, 자연의 맛을 느끼게 한다. 참게와 보리새우, 지리산 바람에 말린 시래기가 어우러진 참게매운탕은 큰 것(5만원)을 시키면 4~5명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 천수식당(061-782-7738)은 섬진강 바로 곁에 붙어있어 눈의 호강은 덤이다. ▲묵을 곳 화엄사에서 1㎞도 떨어지지 않은 지리산 한화리조트(061-782-2171)가 있다. 1984년에 지어져서 시설은 조금 낡았다. 하지만 고즈넉하게 아침 구름 걸어놓고있는 지리산과 화엄사의 새소리, 바람소리, 계곡소리를 들으며 아이들 손잡고 아침 산책 하기에 딱 제격인 곳이다. 송원리조트(061-783-8200)는 산수유마을 바로 곁이면서도 지리산 온천지구에 있어 몸과 눈이 모두 호강할 수 있다. 봄이면 송원리조트나 한화리조트 모두 고로쇠 수액을 판매한다.
  • 靑비서관 ‘식민지 근대화론’ 옹호 발언 논란

    청와대 비서관이 3·1절을 앞두고 독립기념관을 방문한 자리에서 ‘식민지 근대화론’을 옹호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1일 독립유공자 단체 회원들에 따르면 청와대 이상목 민원제도개선비서관은 지난달 26일 충남 천안의 독립기념관을 방문, 일제시대의 행적을 놓고 무조건 친일로 몰아붙이거나 문제를 삼아서 갈등을 조장해서는 안 되며, 독립운동가뿐 아니라 친일 논란 인사들의 행적도 당시 상황을 감안해 평가해야 하고 역사 편가르기를 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언급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이에 대해 민족문제연구소 조세열 사무총장은 “우리 역사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항일정신이 계승되지 못하고 친일세력이 미화되는 현실이 문제”라고 말했다. 이 비서관은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을 잘 살려내 기리는 것이 중요하지만 친일 문제를 갖고 계속 문제를 만들면 그것도 바른 방향이 아니라는 뜻”이라고 해명했다. 한편 정정길 대통령실장은 이 비서관의 발언 경위를 보고 받고 경고조치했다.이종락 김승훈기자 jrlee@seoul.co.kr
  • ‘시베리아 삭풍회’ 아물지 않는 상처

    ‘시베리아 삭풍회’ 아물지 않는 상처

    “일본으로, 소련으로 끌려다니며 죽도록 고생만 하다 5년 만에 돌아왔는데…. 양친이 다 돌아가셨더라고.” 백발이 성성한 황희성(85)옹은 65년 전 1944년 1월을 잊지 못한다.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출신인 황씨는 초등학교 졸업 후 부모님의 농사를 거들던 열여덟살 청년이었다. 그해 강제징집 대상이 됐다는 통지를 받은 황옹은 “이듬해까지 만주와 쿠릴열도에서 철도관리와 섬 경비업무를 하면서 보냈제. 그러다 8월15일 일왕이 항복했다면서 우리를 배에 태우더라고. 귀향길이라 철석같이 믿고 올라탔건만….” 그러나 그를 비롯한 전쟁포로들이 도착한 곳은 고향이 아닌 차디찬 바람이 부는 소련 하바롭스크항이었다. 그후 4년간 시베리아 밀공장에서 돈 한 푼 받지 못한 채 강제노역에 시달렸다. 49년 옛 소련이 한반도에서 철수하면서 고국 땅을 밟았지만 고난은 계속됐다. 부모님은 이미 세상을 떴고 고향 사람들은 “일본군에 협력한 친일파”, “소련에 머물렀던 빨갱이”라며 손가락질했다. 결국 고향을 떠나 전국을 전전하며 평생을 연탄장수로 보냈다. 황옹은 “일생이 끔찍혀. 그렇다고 국가가 변변하게 보상해 준 것도 없어.”라며 눈물을 삼켰다. 황옹처럼 일본과 옛 소련으로부터 강제징용과 강제노역 등 이중 착취에 시달린 ‘시베리아 억류 조선인’은 1만여명. 60여년이 지난 지금 남한 내 생존자는 고작 18명뿐이다. 당초 남한 생존자 56명은 91년 ‘시베리아 삭풍회’라는 단체를 만들고 억울한 세월에 대한 보상을 요구했다. 2003년 일본 정부를 상대로 도쿄지방재판소에 미지불 임금반환 및 손해배상소송을 냈지만 기각됐다. 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보상이 이뤄졌다는 게 이유였다. 반면 일본은 삭풍회 회원들과 동일한 피해를 당한 일본인 시베리아 억류자 지원을 위한 ‘전후 강제억류자 특별 조치법안’을 마련해 국회에 상정을 준비 중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한국인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같은 전범국인 독일이 2007년 강제노역자 167만명에게 모두 43억 7000만유로(약 5조 4250억원)의 보상을 완료한 것과 대비된다. 우리 정부 역시 냉대로 일관했다. 문민정부 이후 여러 차례 문제제기를 했지만 보상은 없었다. 지난해 일제 강점하 강제동원 피해진상규명위원회가 생존자들에게 각각 80만원을 지급한 것이 전부다. 삭풍회 이병주(84) 회장은 “보상은커녕 숨진 원혼을 달랠 위령탑 하나 세우지 못한 형편”이라고 말했다. 생존자들은 현재 미지불 임금반환 항소 소송을 진행 중이지만 힘이 부친다. 모두 80세를 넘긴 생존자들에게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이 회장은 “피해자들이 한을 풀고 눈감는 게 간절한 소원”이라고 하소연했다. 삭풍회와 민족문제연구소는 27일부터 다음달 15일까지 시베리아 억류자 귀환 60주년 기념 전시회를 국회도서관 2층에서 연다. 이번 전시회에는 시베리아 억류 당시의 상황을 담은 자료 75여점이 전시된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용어클릭 ●시베리아 삭풍회 일제의 조선인 징병 방침에 따라 1944~45년 강제동원돼 만주(중국의 동북 3성) 북부나 쿠릴열도에 배치됐다가 소련군에 일본군 포로로 잡혀 3~4년씩 억류됐던 사람들의 모임. 1990년 12월 노태우-고르바초프의 샌프란시스코 정상회담을 거쳐 그해 9월 한국과 소련이 정식수교를 하자 6명이 모임을 결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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