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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관사 태극기’ 3·1절 맞아 공개

    ‘진관사 태극기’ 3·1절 맞아 공개

    지난해 5월 서울 은평구 진관사 칠성각을 해체 복원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진관사 태극기’와 항일독립신문이 3·1절을 맞아 일반에 공개된다. 서울역사박물관은 26일부터 다음달 14일까지 진관사 태극기와 ‘신대한’, ‘독립신문’ 등 항일신문 20여점을 전시한다고 24일 밝혔다. 태극기와 문건은 진관사측이 지난해 5월26일 경내 칠성각 건물을 수리하기 위해 불단과 기둥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 가로 89㎝, 세로 70㎝, 태극 지름 32㎝인 태극기는 사찰에서는 처음 발견된 태극기다. 당시 불교계를 중심으로 벌어지던 항일운동의 힘을 보여주는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일장기 위에 태극의 음(陰)과 4괘를 덧칠한 형태로 제작돼 일본에 대한 강한 저항의식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왼쪽 윗부분이 불에 타 약간 손상됐지만 형태가 완벽하게 남아 있다. 등록문화재 제458호다. 함께 전시되는 문건은 3·1운동 직후 발간된 지하신문인 ‘조선독립신문’ 5점, ‘자유신종보’ 6점, 상하이 임시정부의 기관지인 ‘독립신문’ 4점, 신채호 선생이 상하이에서 발행한 ‘신대한’ 3점과 친일파를 꾸짖고 항일운동에 나설 것을 촉구한 경고문 2점 등 20점이다. 이들 문건은 모두 1919년 제작됐으며 태극기와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다. 독립신문에는 시 ‘태극기’와 태극기의 의미와 제작법을 설명한 ‘태극국기신설’ 등이 실려 있고 경고문에도 태극기가 교차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학계에서는 당시 진관사를 근거지로 임시정부와 독립군 군자금을 모집하던 백초월(1878~1944) 스님이 이들 태극기와 문건을 숨겨 놓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한·일 100년 대기획] 일제 식민통치 도구들 美군정 그대로 대물림

    비록 비자주적 독립이었지만, 이후 건국과 정부 수립만이라도 우리 힘으로 이뤄냈다면 훗날 모습이 어떻게 바뀌었을까. 해방 이후 진행된 미 군정 3년은 이후 수십년 동안 한국 사회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미 군정은 일제가 효과적인 식민통치 도구로 삼았던 법과 제도 등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또한 친일관료, 일본군·만주군 출신, 경찰 조직 등 일제에 적극적으로 부역했던 이들이 고스란히 재등용되며 미 군정의 그늘 아래에서 사회정치적 생명을 연장하게 됐다. 언어생활, 법령, 교육, 학계 등 우리 사회 곳곳에 일본의 잔재가 지금까지도 남아 있게 된 배경이다. 미 군정은 1945년 9월7일 선포됐고, 1948년 8월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이르는 2년 11개월 동안 실시됐다. 미 군정청은 우선 전국적 치안권의 확립을 위하여 9월14일 군정 장관의 성명으로 일인 경찰관을 포함한 이전의 일제 경찰관을 그대로 존속시켜 치안유지의 책임을 맡겼다. 그때까지 자생적으로 치안 임무 등을 부분적으로 수행하던 건국준비위원회의 치안대 등은 경찰권 행사가 금지됐다. 그 근거는 조선 백성들이 독립의 보증수표로만 믿었던 포츠담 회담이었다. 1945년 7월26일 포츠담회담의 밀약은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설정, 한반도를 남북으로 분할점령하자는 것이었다. 독립의 보장이 아니라 민족 분단의 첫 단추였다. 그해 12월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나온 미·소의 남북 신탁통치 결의 역시 분단을 부채질하는 촉매가 됐다. 반면 건국준비위원회는 우파와 좌파 합작의 형태를 띠며 자체적인 국가 건설을 준비했지만 오히려 미국의 의구심을 자극하며 미 군정에 의해 부정됐다. 또한 환국을 서두르던 충칭 임시정부 요인들 역시 미 군정에 의해 입국이 지연됐고, 나중에야 ‘개인 자격’으로만 입국하도록 허용됐다.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 역시 이렇게 미국에 의해 부정됐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한·일 100년 대기획] 분단 떠안은 광복… 날선 이념대립이 전쟁 불러

    조국의 해방은 절실했고, 침략적 제국주의는 대를 이었다. 이념으로 재편된 국제 정세는 조국을 더 깊은 소용돌이 속으로 떠밀었다. 제국 간의 다툼과 이해관계의 공존 속에서 한민족의 평화에 대한 갈망은 깊어만 갈 뿐 아니라 요원하기까지 했다. 1945년 8월15일 오전 종로 거리 등 서울 곳곳에는 ‘정오에 중대한 방송이 있으니 국민들은 반드시 들어라.’라는 내용의 방이 붙었다. 그리고 낮 12시. 라디오 앞에 모여든 흰 옷 입은 백성들은 지직거리는 기계음 속에서 일왕 히로히토의 항복선언, 즉 무조건적 항복을 요구하는 포츠담 선언을 받아들인다는 느릿하고 기운 없는 목소리를 들었다. 훗날 시인 서정주가 자신의 친일 행위에 대한 변명처럼 “못 가도 100년은 가리라고 생각했던” 일본은 그렇게 패망했다. 8월6일과 9일 사흘 간격으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 두 발은 수십만명의 일본 국민을 죽음에 이르게 했고, 일본의 전의를 완전히 상실하게 했다. ‘각의’, ‘황족회의’, ‘어전회의’ 등을 거친 끝에 일왕은 직접 무조건 항복을 결정했다. 그리고 14일 밤 11시40분 항복선언 발표를 녹음했다. ●질곡의 씨앗이 된 비(非) 자주적 독립 광복(光復)이었다. 식민의 설움을 겪던 백성들은 라디오 방송을 들은 8월15일 그날은 감격을 애써 억눌렀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부터 일제히 광장으로, 거리로, 골목으로 쏟아져 나와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부르고, 환호성을 지르며 해방의 기쁨을 만끽했다. 그러나 일말의 불안감은 있었다. 일본의 항복과 조선의 독립에 ‘스스로’ ‘자주’가 빠져 있었다. 충칭 임시정부의 결정으로 광복군특공대가 1년 남짓 동안 준비해왔던 국내 진공작전을 불과 며칠 앞두고 자력이 아닌 상태로 일본의 항복이 나왔다는 점에서 독립은 ‘비자주적’인 측면이 강했다. 중국 시안(西安)에서 훈련하다가 일본의 항복선언을 듣고 무산된 계획에 오히려 땅을 치며 통곡한 특공대원들의 모습은 한반도에 드리워진 또 다른 불안한 미래를 상징했다. 일본의 항복 소식을 접한 김구는 “이번 전쟁에 우리가 한 일이 없기 때문에 국제적 발언권이 약해질 것이다.”라고 예견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한반도의 운명은 미국과 소련 등 강대국들의 손에 맡겨지게 됐다. 오로지 평화와 독립만을 간절히 바랐던 한반도의 백성들은 순진했고, 침략의 이해관계와 앙상한 이념의 대립을 앞세운 제국주의에게 약소국 백성들의 순수한 열정은 안중에 없었다. 갇힌 독립투사들의 석방, 강제 징용·징병으로 끌려간 청년들의 귀환, 임시정부가 아닌 제대로 된 민주공화국의 수립 등은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오히려 분단(分斷)이라는 업보만 덤으로 떠안겨졌다. 강대국들의 협상 결과 아프리카 대륙의 여느 나라들처럼 한반도에도 뜬금없는 38선이 직선으로 그어졌고, 그해 9월 남쪽에는 미 군정이, 북쪽에는 8월 말 소련의 군정이 들어섰다. 1948년 8월 비록 단독 정부였지만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될 때까지 모양과 주체만 바뀌었을 뿐 사실상 식민의 시간은 연장됐다. ●남북으로 갈라져 연장된 식민통치 국제연합(UN)은 공식적으로 남북 총선거를 결의했다. 그러나 1948년 1월 UN 한국위원단의 입북을 소련이 거부하면서 UN은 2월 남한에서만이라도 선거를 실시하도록 다시 결의했다. 김구·김규식 등 단독 선거, 단독 정부를 반대한 정치인들의 마음은 조급해졌다. UN 한국위원회에 남북협상을 제안하고, 북쪽에도 남북 요인회담을 제안했다. 그 결과 그해 4월19일 김구와 김규식은 삼팔선을 베고 쓰러지겠다는 의지를 밝히며 방북을 감행하고 남북 제 정당·사회단체대표자 연석회의, 남북요인 15인회담, 이른바 ‘4김’(김구, 김규식, 김일성, 김두봉) 회담 등을 진행했다. 그러나 남과 북이 각각 단독정부를 수립하며 이러한 안간힘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날 선 이념의 대립으로 민족이 서로 적대하는 속에서 한국 전쟁의 발발은 필연이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친일파 땅 사용한게 죄?

    친일파 땅에서 살거나 농사를 짓던 마을 주민들이 정부 환수 후 많은 임대료가 부과되자 좌불안석이다. 8일 충남 아산시 배방읍 회룡1리 주민들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이 마을 25가구에 지난해 4월16일~올 4월15일 사이 1년간 세금으로 모두 4000여만원을 부과하겠다고 예고했다. 국가보훈처와 한국자산관리공사는 지난해 4월 친일파 한상룡의 후손이 소유하던 이곳 땅 1만 2848㎡를 환수한 뒤 국유재산법을 적용해 관리하고 있다. 이번에 부과되는 임대료는 가구당 100만∼200만원대로 환수 전 한상룡의 후손에게 내던 임대료에 비해 10∼20배 많다. 매년 10만원씩 내던 마을 주민 조모(67·여)씨와 김모(55)씨에게 각각 217만원과 200만원의 세금이 부과됐다. 게다가 국가보훈처가 다음 달에 올해 연도분(2010년 4월16일∼2011년 4월15일) 임대료를 추가 부과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지자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마을 이장 최성식(41)씨는 “주민 대부분이 고령이고 생계가 어려운데 임대료를 어찌 감당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2007년 친일파의 재산환수를 시작한 이후로 주민 대부분이 살고있는 마을이 환수조치되기는 이곳이 처음이다. 한상룡은 일제강점기 때 이 마을 대지주로 한성은행장과 조선총력연맹장을 지냈고, 지난해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올라 있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소유자가 같은 마을 주민이어서 임대료를 적게 내다가 조세 관련법에 따라 처음 정상적으로 세금이 부과되니까 놀란 것 같다.”며 “뾰족한 구제방법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아산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평전은 시대의 인물을 되살리는 것”

    “평전은 시대의 인물을 되살리는 것”

    김삼웅(67) 전 독립기념관장의 필력은 무서울 정도다. 그의 이름으로 1년에 책 1~2권씩은 꼬박꼬박 나오고 있다. 하지만 ‘근거없는 출력’은 결코 아니다. “오래 숙성된 것을 이제서야 정리해 낸다.”는 그의 말처럼, 이를 위해 그는 30년이 넘는 시간을 준비해 왔다. 최근에도 ‘죽산 조봉암 평전’(시대의창 펴냄)과 ‘한국현대사 다이제스트100’(가람기획 펴냄)을 잇따라 펴낸 그를 지난 4일 경기 남양주 와부읍 자택에서 만났다. 사방이 책으로 빼곡히 들어찬 거실에서 그는 “좋은 포도주를 하나 담그려면 50~100년 전부터 숙성을 준비해야 하듯 이 책들을 위해 나는 오래 전부터 자료를 모으고 고민을 했다.”며 입을 열었다. ●저서 30여권 중 10권이 평전 서울신문(당시 대한매일) 주필, 독립기념관장 등에 이어 지난해말 친일파진상규명위원회 일이 끝나면서 그는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발목을 붙잡는 일이 없어졌으니, 이제는 군사독재-신군부에 맞섰던 야당 언론인 시절부터 역사의 정의를 위해 뛰어다녔던 때까지 보고 듣고 생각한 것들을 마음껏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김 전 관장의 표현을 빌리면 그는 ‘전업 평전 작가’다. 지금까지 펴낸 30여권의 책들 중에도 평전이 10권에 이른다. 식민지 조선의 아나키스트 박열부터 시작해, 안중근, 전봉준, 한용운, 김구, 신채호 등 그 이름들도 쟁쟁하다. 이렇게 평전에 몰두하는 이유는 뭘까. 그는 “평전은 시대를 가장 투철하게 살다간 사람들을 되살리는 작업이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그는 평전을 통해 “지난 100년간 식민지와 독재 아래서 치열하게 살았던 선각자들의 이상을 청년들에게 알리고 싶다.”고 한다. 그가 평전 작업에 뜻을 둔 건 30대 초반. 친일파가 독재자의 곁에서 전횡을 일삼는 것을 보고 “과연 역사에 정의라는 게 있는가.”하고 회의에 빠져있을 때였다. 그러던 중 E. H 카가 쓴 도스토옙스키 평전을 보고, “바른 사상을 가지고 또 이를 실천한 거대한 인물을 한 권 책에 오롯이 담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한다. ●DJ·리영희 평전도 준비 그때 그는 예순이 되기 전에 역사의 정의를 실천한 인물 20명의 평전을 쓰겠노라 다짐했다. 지난 10명도 그렇지만 앞으로의 10명도 모두 바른 생각을 바탕으로 올바른 실천을 추구한 인물들이다. 그는 “인권이 침탈 당하는데, 학문에만 몰두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지식인일지는 몰라도 지성인은 아니다.”고 꼬집는다. 그의 평전 릴레이는 이제 절반을 지났다. 앞으로도 쟁쟁한 인물이 기다리고 있다. 곧 6·15남북선언 10주년을 맞아 나올 것이 지난해 세상을 떠난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전. 지금은 한창 리영희 선생 평전을 준비하고 있다. 사실 그도 이들 인물들이 평가 불변의 영웅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훗날 시대 상황에 따라 다른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그는 “사람에 대한 평가는 변해도, 이들이 추구했던 가치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그가 마지막으로 평전을 쓰겠다는 인물은 다산 정약용이다. 그는 정약용을 “타락한 정치 속에서도 백성을 위한 민주주의를 투철히 실천했던 인물”이라면서 “사람은 170여년 전에 죽었지만 그의 목민(牧民) 사상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했다. 그의 거대한 책장 한편은 모두 다산의 자료다. 4000권에 이르는 장서 중 불이 나면 가장 먼저 가지고 나오고 싶은 것도 ‘목민심서’라고 한다. 또 그의 작업실 창밖으로는 한강이 보인다. 그 너머에는 다산 정약용 선생의 묘소가 있다. 글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한·일 100년 대기획]일제시대 경제사적 평가 팽팽

    일제시대에 대한 평가는 잣대에 따라 다양하지만, 경제사 영역에서는 ‘식민지 수탈론’과 ‘식민지 근대화론’이 팽팽히 대립한다. 자본주의 경제 발전이란 결과에 일제시대가 어떤 공과(功過)를 남겼는지를 두고 양 진영의 학자들은 여전히 날카롭게 각을 세운다. 1990년대 전까지는 일제시대를 ‘침략과 수탈의 시간’으로 보는 수탈론이 지배적이었다. 수탈론은 한국 자본주의의 맹아는 이미 조선시대에 싹 트기 시작했다는 ‘내재적 발전론’을 따른다. 그러면서 활발한 민족운동 등으로 자주적 근대화가 꽃피려 했으나 일제의 침략으로 그 가능성이 말살됐다고 주장한다. 고등학교 교과서도 기본적으로 수탈론을 바탕으로 한다. 그 역사적 사례로 드는 것이 토지조사사업·회사령·광업령·어업령 등이다. 정책의 옷을 입었지만 이는 결국 약탈의 방법이며, 일본 경제는 발전시키고 조선 경제는 몰락으로 내몰았다는 게 수탈론의 시각이다. 수탈론은 기본적으로 민족주의 지향의 성격이 있지만 단순히 반일 정서에 기대는 것은 아니다. 수탈론 이전 학계에는 일본 학자들이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든 ‘식민사관’이 팽배했었다. 이 역사를 왜곡하는 정체성론·타율성론·당파성론 등을 타파하고 바른 역사관 수립을 유도한 것이 바로 수탈론이었다. 이러한 수탈론에 다시 반발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일제시대를 평가하자며 나선 것이 ‘식민지 근대화론’이다. 1980년대 중반 일본 학계에서 ‘중진(中進) 자본주의’ 개념을 가져온 안병직 서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중진에서 선진(先進)으로 가기 위한 사회경제적 구조 마련이 일제시대에 이뤄졌다는 주장을 펼친다. 그는 선진 자본주의로 가기 위한 필수 조건인 ‘개방 체제’가 일본과의 각종 조약으로 마련됐으며, 이로써 조선으로의 자본과 기술 유입이 자유로워졌다고 주장한다. 또 후발 자본주의 사회일수록 정부 주도의 개혁이 필요한데 그 역할을 일본이 했다면서, 토지조사사업, 산미증식계획, 식민지공업화정책 등을 예로 든다. 이런 근대화론이 제시되자 학계는 비판을 쏟아냈다. 신용하 서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등은 토지조사사업을 포함해 일제 정책은 애초 본질이 ‘수탈’에 있었다면서 반발했다. 그후 수탈론과 근대화론의 논쟁은 지루하게 이어졌으나, 각자 자기 입장을 재확인하는 것 외에 발전적 결론은 내놓지 못했다. 2년 전에는 이 논란이 학계를 넘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기도 했다. 2008년 뉴라이트 계열 단체인 ‘교과서 포럼’은 금성출판사의 근현대사 교과서가 친북·좌경이라면서 근대화론에 입각한 대안교과서를 펴냈다. 안 교수와 이 교수가 그 중심에 있었다. 대안교과서가 출간되자 학계는 물론, 정치·사회 전반의 논란을 불러왔다. 교과서 포럼의 예도 그렇지만 최근 수탈론-근대화론 논쟁은 경제사 영역을 넘어 정치·사회적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해방 후 경제개발에 대한 평가와도 맞물리면서 친일·반공·독재·좌경·종북·진보·보수 등 이념색 강한 용어들이 섞여들게 됐다. 그러는 사이 두 주장에 대한 합의점이나 발전적 대안을 찾기가 전보다 더 어려워졌음은 물론이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한·일 100년 대기획]일제시대 어떻게 볼 것인가

    [한·일 100년 대기획]일제시대 어떻게 볼 것인가

    일제시대를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일제 이전과 광복 후의 역사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그동안 경제사가들 사이에는 이른바 ‘근대화론’과 ‘수탈론’이 대립해 왔지만, 이는 경제적 측면만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올바른 접근법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지적하고 싶다. 먼저 ‘근대화론’은 대한제국을 낙후된 ‘봉건국가’로 보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광복 후의 ‘대한민국 근대화’를 일제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한다. 따라서 이 견해는 일제시대를 긍정하는 이론인 동시에 일제 이전의 자생적 근대화를 완전히 부정하는 이론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 역사학계에서는 이 이론을 따르는 학자는 거의 없다. 18세기에서 대한제국에 이르는 시기에 이룩한 민주화와 산업화의 실적이 충분히 논증되었기 때문이다. ●수탈론·근대화론은 경제적 측면만 부각 더욱이 ‘근대화론’은 한국인의 치열한 항일운동을 설명하지 못한다. 극소수의 친일파를 제외한 대부분의 한국인이 일제시대를 ‘노예상태’로 이해하고 목숨을 던져 투쟁한 것은 ‘근대화’의 고마움을 모르는 무지한 행동이었던가? 또 광복후 대한민국이 ‘근대화’에 성공한 것은 망국의 수치를 씻으려는 자존심의 폭발이 응집력을 높였다는 것은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수탈론’은 틀린 말은 아니지만, 충분한 설명은 되지 못한다. 일제에 저항한 것은 수탈에 대한 저항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말 의병운동은 경제수탈에 대한 저항이라기보다는 국권 박탈에 대한 저항이었고, 일제시대의 항일운동도 마찬가지다. ‘근대화론’이나 ‘수탈론’이나 한국인의 드높은 ‘주권정신’과 ‘문화적 자존심’을 무시한 이론이기는 마찬가지다. 일본은 17세기 중엽부터 찾아온 서양과 직접 교류하면서 경제, 기술, 군사면에서 조선을 앞서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치와 인문문화의 수준은 조선보다 낙후되어 있어서 19세기 초까지도 조선에서 간 통신사(通信使)에 열광하면서 조선문화를 배우려고 애썼다. 조선은 쇄국을 하지 않았음에도 서양이 찾아오지 않아 경제와 군사에서 뒤지게 된 것이다. 망국의 원인은 ‘붓문화’가 ‘칼문화’에 꺾인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고대 일본을 건설한 주역이 한국인이고, 그 후로 수 천년간 선진문화를 건네준 것이 한국인이므로, 정신적으로 일본이 한국인을 압도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여기서 생긴 일본인의 열등의식이 우리의 민족문화를 압살하는 정책으로 나타나고, 그것이 역으로 일본을 마음 속으로 멸시하는 정서를 낳았던 것이다. ●양복·기차 등은 근대화 아닌 서양화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서양 제국주의와 식민지 관계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면이 있다. 이 점을 무시하고 서양이론을 끌어다가 한일관계를 설명하는 것은 그 시대의 국민정서와도 맞지 않는다. 일제시대 한국인은 ‘대한국인’(大韓國人)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 그래서 3·1운동에 표출된 국민여망은 ‘대한국’의 회복이었고, 그들의 손에 쥔 것도 대한제국의 국기인 태극기였다. 국외에 세워진 많은 독립단체들도 모두 ‘대한국’ 회복을 저항의 목표로 삼았다. 총독부가 정한 ‘조선’이라는 칭호는 국내에서만 강제로 사용될 뿐이었다. 그 ‘대한국’을 민주공화국 정부로 재건한 것이 ‘상해 임시정부’다. 임정은 태극기를 국기로 삼았고, ‘헌법’에 ‘구황실을 우대한다’는 조항을 넣어 대한제국의 정통성을 계승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광복 후의 ‘대한민국’이 ‘대한제국’과 ‘임정’의 국호를 그대로 계승하고, 태극기를 국기로 정한 것은 대한민국이 ‘조선총독부’ 체제를 전면으로 부정하고 역사적 정통성을 확실하게 계승했음을 말해준다. ‘제헌헌법’에서 ‘3·1운동의 독립정신을 계승한다’고 선언한 것이나, 1987년의 개정헌법에서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선언한 것도 그런 뜻을 함축한 것이다. ‘대한제국’은 만국공법(萬國公法)에 바탕을 둔 근대적 주권국가로서 산업화와 근대화의 삽질을 힘차게 시작했다. 정체(政體)는 제국이었으나, 정체의 목표는 민국(民國)이었다. 삼한(三韓), 즉 삼국(三國)의 영토를 모두 아우르는 거대한 민족국가 건설의 꿈을 국호에 담았고, 조선시대부터 국기처럼 사용하던 태극기(太極旗)를 국기와 어기(御旗)로 확정했다. 일제 36년의 침탈에도 불구하고, ‘대한국’의 ‘국권’과 ‘자존심’을 지키려고 집요한 사투를 벌인 것이 역사의 진실이라면, 일제시대를 경제에만 한정하여 바라보는 것은 역사의 본질을 외면하는 것이다. 양복을 입고, 기차를 타고, 영화를 보고, 서양문화를 접했다는 것은 ‘근대화’가 아니라, ‘일본화’나 ‘서양화’로 부르는 것이 옳다. 이런 따위의 ‘서양화’는 이미 1876년의 개항 이후로 우리 스스로 모두 시작한 일들이므로 하등 새로울 것도 없다. ●한국은 붓문화 재인식해야 한국의 정치문화가 일본보다 앞섰다는 것은 과거제도와 이를 뒷받침하는 높은 수준의 유교문화와 치열한 교육열, 그리고 고도로 세련된 민본정치와 관료정치에서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조선왕조는 봉건국가가 아니었다. 일본은 막부시대 말기까지 이런 정치문화를 갖지 못했다. 높은 인문문화와 교육열의 전통이 지금 대한민국이 ‘한강의 기적’을 가져온 원동력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한국의 발전은 ‘기적’이 아니라, 문화선진국의 전통이 되살아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붓과 칼이 부딪치면 당장은 붓이 꺾인다. 그러나 길게 보면, 붓의 위력이 칼을 이긴다는 것이 고금의 진리다. 일본은 이제 칼 문화의 한계를 철저히 반성해야 하고, 우리는 붓 문화의 전통을 한탄만 해서는 안될 것이다. 한영우 이화여대 석좌교수(역사학 전공)
  • 다모아 대표이사 정운현씨

    정운현 전 태터앤미디어 대표가 최근 농자재 판매 회사인 ㈜다모아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정 대표는 오마이뉴스 편집국장, 한국언론재단 이사를 지냈으며,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사무처장을 역임했다.
  • [한·일 100년 대기획] 출렁이는 과거사·인적 청산 문제

    [한·일 100년 대기획] 출렁이는 과거사·인적 청산 문제

    지난해 11월8일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발간을 계기로 그동안 잠복해 있던 친일파 논쟁이 다시 불거졌다. 특히 기존에 독립유공자로 분류됐던 장지연 등 20여명의 이름이 이 사전에 올랐지만, 국가보훈처가 이에 대한 입장표명을 보류하면서 논란은 더 커졌다. 보훈처 관계자는 19일 “친일인명사전의 관련 내용을 검토하고 공적 자료 등과 비교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기본적으로 보훈처는 보훈대상 후보의 공적 사항만을 검토하는 곳이어서 친일행위를 평가할 권한이 없다.”고 말해, 논란에 휩싸이고 싶지 않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강점기역사 체계적 극복 실패 친일파 처벌을 둘러싼 최근의 논란은 ‘친일’에 대한 명확한 기준점을 제시하지 못한 광복 이후 우리 역사의 한계 때문이다. 우리 역사는 1910년 한·일병탄 이후 36년간의 암흑기를 체계적으로 극복해내는 데 실패했다. 일제는 한·일병탄 후 한국인의 동화를 표방하며 ‘내선일체’를 강조했다. 내지(일본)인과 반도인을 차별하면서도 황국신민으로서 국민적 일체감을 강조했다. 근대화라는 미명 아래 교육률이 급등하면서 동화도 가속화됐다. 1930년대 후반부터는 한국인 출신 교사, 보통문관시험을 거친 하급행정관료·경찰의 비율도 급격하게 올라갔다. 지원병·징병 형태로 군국주의 침략전쟁에 참전한 한국인만도 20만명이었다. 참전을 독려해 친일파로 지목된 춘원 이광수도 “조선 민족을 멸망에서 구하기 위한 행위였다.”라고 했다. 이런 현실은 광복 이후 민족주의자가 주도한 인적 청산에 장애가 됐다. 친일파·민족반역자·부일협력자·반민족행위자 등을 인적 청산의 대상으로 개념화했지만, 객관적인 잣대를 들이대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더구나 친일청산 문제는 미군정 지배와 근대화 시대를 거치며 경제성장에 떠밀려 제대로 된 논의나 통합과정을 거치지 못했다. 간간이 학계를 중심으로 친일청산 문제가 거론됐지만, 민족주의 관점에서 시작된 인적청산 과정은 “역사학적 영역에 속한 부분을 정치적 논리로 재단할 수 없다.”는 반대 논리에 부닥쳤다. 최근 ‘시일야방성대곡’을 쓴 장지연이나 박정희 전 대통령 등의 친일인명사전 등재 문제도 이런 논쟁에서 자유롭지 못한 측면이 있다. 양승함 연세대 정치외교학 교수는 “광복 직후 객관적 사실에 따라 어떤 수준까지를 친일로 할 것인지 하는 잣대를 마련하지 못한 한계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면서 “시대상황을 감안하지 못한 엄격한 잣대가 민족을 둘로 갈라놓을 수 있다.”고 했다. ●“인적청산 정치논리로 재단 안돼” 친일청산의 한계는 정권마다 출렁인 한·일 관계에도 원인이 있다. 제헌국회는 1948년 10월 친일파 처벌에 대한 의지를 최초의 특별검사로 불리는 반민특위 조직으로 구체화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동안 사회 주류층을 형성해온 친일파를 흡수한 이승만 정권이 그들을 처벌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반민특위는 출범 1년만에 공소시효 단축과 특위 폐지의 외압에 시달렸다. 친일세력의 특위위원 암살 음모, 김구 선생 암살 등으로 특위는 사실상 와해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조사대상 7000여건 중 221건만 기소하고 12건에 대해 유죄판결을 이끌어냈지만, 그나마도 모두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5·16을 통해 장기집권에 돌입한 박정희 정권은 민족적인 반일 감정을 토대로 1965년 6월22일 한·일기본조약(한·일협정)을 이끌어내며, 한·일병탄의 무효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일본의 진정성이 담기지 않은 조약 문구로 ‘실패작’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박정희 정권은 반공과 미국의 지원을 정권 유지의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해 미국에 의해 동북아시아의 중심으로 지목된 일본과의 친선이 필요했다. 군 출신인 전두환·노태우 정권 역시 과거사 청산에는 큰 결실을 맺지 못했다. 각각 일본 역사교과서,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한·일관계의 최대 이슈로 떠올랐지만 과거사 청산, 한·일 관계 개선보다는 경제 개발 자금 조달 창구인 일본을 압박하는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됐다. 방일을 통해 아키히토 일왕에게서 각각 “진심으로 유감”, “통석의 염(念)”이라는 사과를 받아냈지만 외교적 수사에 불과했다는 비판이 따랐다. ●“한·일 미래지향적 신뢰구축을” 문민정부인 김영삼 정부는 한·일 간 최대 이슈였던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관련, 1993년 호소카와 모리히로 총리에게서 처음으로 식민지배 인정과 과거사에 대한 반성의 뜻을 받아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과거사 청산 문제에서 새로운 물줄기를 열었다. 시민 중심의 과거사 청산 운동에 불을 댕겼다.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가 발족하면서 군사정권을 거치며 정치·경제 논리에 파묻혔던 친일반민족 행위에 대한 도덕적 평가와 논쟁이 벌어졌다. 이명박 정부는 54년만에 정권교체에 성공한 하토야마 내각의 전향적인 과거사 인식 전향에 기대를 걸고 있다. 하지만 과거사 청산문제가 보·혁 갈등으로 비화하면서 또다른 한계에 직면해 있다. 양 교수는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선 과거사에 결부해 미래에 영향을 끼치는 사이가 되어선 안 되고, 그렇다고 과거를 잊어버리고 진실을 왜곡한 채 이뤄지는 것도 옳지 않다.”면서 “양국 모두 대내외적으로 진실된 인식을 바탕으로 서로 신뢰할 수 있는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말했다. 홍성규 김정은기자 cool@seoul.co.kr
  • 출퇴근 대리체크 수당 꿀꺽… 한시위원회도 구태 답습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친일재산조사위)’ 직원 20명이 서로 출퇴근을 대리 체크해주는 방식으로 초과근무 수당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발굴한 유해 1594점은 현재 모 대학교에 임시보관 중이지만 위원회 활동이 끝나는 4월 이후의 대책은 마련되지 않았다. 감사원은 진실화해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친일행위규명위)’ 등 6개 한시 위원회의 주요 사업 추진과 예산집행 등을 점검한 결과를 19일 발표했다. 역사적 소명 의식으로 출발했으나 위원회 폐지 등을 앞두고 예산 낭비나 도덕적 해이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고, 폐지 이후에는 감사 자체가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감사원에 따르면 친일재산조사위 두 개과 직원 20명은 일찍 출근한 사람이 대리 출근 체크, 가장 늦게 퇴근한 사람이 대리 퇴근 체크 등을 해왔다. 감사원은 실제 초과근무 시간과 근무 여부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2008년 한 해 동안 체크된 초과근무 시간은 5598시간이라고 밝혔다. 한 사람이 한 달에 23시간씩 초과근무한 셈이다. 일각에선 “한시적 조직이라고는 하지만 역사적 소명을 지닌 기관이 일반 공무원의 그릇된 관행을 답습했다.”는 비난도 제기되고 있다. 진실화해위는 또 유해 발굴 용역비 정산 업무를 제대로 하지 않아 모 대학 산학협력단에 2000만원을 과다 지급했다. ‘태평양전쟁 전후 국외 강제동원희생자 지원위원회’는 독립유공자 또는 국가유공자로 결정된 3명을 강제동원피해자로 인정해 위로금과 의료지원금 2400여만원을 지급했다. 국가보훈처 등 다른 행정기관의 기록을 조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친일행위규명위 소속 공무원 8명은 겸직허가를 받지 않고 강의하거나 허용된 겸직시간 이상으로 강의를 하면서 외부강의 시간에 해당하는 연가보상비 191만원을 더 받았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한·일 100년 대기획]을사오적은 누구인가

    [한·일 100년 대기획]을사오적은 누구인가

    을사오적은 1905년 을사늑약 체결을 찬성했던 학부대신 이완용, 군부대신 이근택, 내부대신 이지용, 외부대신 박제순, 농상공부대신 권중현 다섯 사람을 말한다. 이른바 을사조약으로도 표현하지만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일방적으로 박탈한 불평등 조약이기 때문에 굴레 ‘늑(勒)’을 써 을사늑약이라 불린다. 을사년에 체결됐다. 어찌나 일제의 무자비한 강압 속에 이루어졌던지 ‘을씨년스럽다’는 말의 어원이 되기도 했다. 을사늑약이 체결될 당시 대한제국 황궁은 공포 분위기였다. 일본은 군을 추가 파병해 황궁 전체를 물샐틈없이 포위하고 대한제국을 압박했다. 늑약 체결 8일 전에 서울에 온 이토 히로부미는 고종을 위협했지만 황제는 늑약에 서명하는 것을 거부했다. 일본은 전략을 바꾸어 대신들에게 일일이 가부를 물었고 한규설 참정대신이 소리 높여 통곡하자 이토는 “너무 떼를 쓰거든 죽여 버리라.”라고 고함을 질렀다. 한규설을 비롯해 탁지부대신 민영기, 법무대신 이하영만이 을사늑약 불가(不可)를 썼고, 을사오적인 이완용·이근택·이지용·박제순·권중현은 책임을 황제에게 전가하면서 찬의를 표시했다. 을사오적 가운데 이근택은 피란 시절의 명성황후에게 생선을 바쳐 요직으로 진출했지만 돈에 매수돼 일본의 첩자로 변신했다. 을사늑약을 체결한 날 그는 가족들에게 “내가 오늘 을사5조약에 찬성을 했으니 이제 권위와 봉록이 종신토록 혁혁(赫赫)할 거요.”라고 자랑했다. 을사오적은 숱한 암살 시도에 시달렸고 칼을 맞기도 했지만 끈질기게 살아남아 일본강점기 전반에 걸쳐 각종 협약과 합의를 체결하는 등 갖은 악행을 저지른다. 게다가 이완용과 이근택의 후손들은 국가에 귀속된 재산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수십 차례에 걸쳐 내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조선에서 제일가는 부자’로 군림했던 이완용의 후손은 재산 소송에서 일부 승소해 땅을 되찾았으나 주변의 비난에 땅을 팔고 국외로 도피했다. 을사오적 가운데 이지용은 도박에 빠져 재산을 탕진했고, 박제순의 상속자 박부양은 10대의 나이에 일본에서 자작 작위를 받고 당시에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다. 을사오적을 비롯한 친일파에 대한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것은 우리나라 선진화의 굴레이자 사회 구조적 불평등의 근간으로 여전히 작용하고 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씨줄날줄] 열석발언권/육철수 논설위원

    2004년 4월 어느 날, 재경부(현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고위 간부들이 회식자리를 가졌다. 덕담이 오가고 폭탄주를 돌리며 주흥이 무르익을 즈음 이헌재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은 박승 한은 총재에게 “잘하고 계신데, 한은에 가끔 과격한 탈레반이 있어 문제”라고 말했다. 순간 분위기가 냉랭해졌다. 회식이 끝날 때쯤 마침내 일이 터졌다. 자중하던 어느 한은 간부가 폭탄 발언을 내뱉었다. “한은이 탈레반이면 재경부는 알카에다 아닌가….” 양측은 졸지에 이슬람 무장세력이 됐다. 재무부처와 한은은 정부 수립 이후 줄곧 견원지간이나 다름없었다. ‘남대문출장소’도 양측의 관계를 보여 주는 단골 단어다. 한은이 정부가 시키는 대로만 움직인다 해서 붙여진 한은 직원들의 자조 섞인 말이다. 이 말은 1970년대 말 한은 총재를 지낸 신병현씨가 박정희 대통령에게 올리는 공문서에 사용해 더 유명해졌다. 당시 한은 독립을 추진하던 신 총재는 부하 직원이 올린 초안에 빨간줄을 좍좍 긋고 재무부의 전횡을 하나하나 들추어 내면서 한은의 처지를 이런 말로 표현했다고 한다. 흥미롭게도 1948년 정부 수립 무렵엔 거꾸로 재무부처가 한은의 ‘세종로출장소’란 소리를 들었던 시절도 있었다. 광복 후 친일파로 몰린 조선총독부 재무국 출신 인사들이 대거 잠적했는데, 이때 조선은행(한은의 전신) 직원들이 건국 정부의 재무국으로 대거 자리를 옮기는 바람에 생긴 말이다. 양측의 뿌리 깊은 불편한 관계는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어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 허경욱 기획재정부 1차관이 참석한 것을 두고 벌어지는 신경전이 그 증거다. 거의 11년 만에 정부가 ‘열석(列席) 발언권’을 행사하자 일각에서는 정부가 금리 결정에 영향을 주려는 행위로, 한은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관치 부활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열석이란 의결권은 없지만 재정부 차관이 금통위원들과 나란히 앉아 발언하는 것이어서 영향력이 있다. 법(한은법 91조)에 따른 정당한 권한 행사인데 의혹의 눈길을 받는 것은 안타깝다. 여기에는 정부가 그동안 이 권한을 스스로 사장화(死藏化)한 탓이 크다. 일본·영국은 정부 관계자가 중앙은행의 금융·통화 정례회의에 꼬박꼬박 참석한다. 이번 일은 정부의 태만과 불찰로 오해를 자초한 측면이 있다. ‘관치금융’과 ‘정책공조’는 두부 자르듯 딱 갈라놓기가 쉽지 않다. 결국 관점의 차이 아닌가. 경제가 겨우 회복기에 접어든 만큼 주요 경제부처들은 불신을 접고 적극 협조했으면 한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한·일 100년 대기획] “큰 고통받은 위안부·강제징용 문제 반드시 털고 가야”

    [한·일 100년 대기획] “큰 고통받은 위안부·강제징용 문제 반드시 털고 가야”

    한완상 전 부총리와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는 서울신문과의 신년특집 인터뷰에서 “한·일 관계의 새로운 미래를 위해 서로 알고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교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전 부총리는 정부 차원에서 청소년 교류를 적극 추진하기를 희망했다. 와다 명예교수는 일왕의 방한 문제에 대해 “방한한다면 방문 자체로 그쳐서는 안 되며 역사적이어야 한다.”면서 “고종황제와 명성황후, 순종의 묘에 참배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한 전 부총리는 일왕의 방안을 전제로 “100년 전 병탄의 부당성 등 일본의 잘못을 정중하고 솔직히 인정하고 사죄해야 한다.” 고 말했다. 다음은 대담 형식으로 구성한 두 원로의 인터뷰다. │도쿄 박홍기특파원·서울 홍지민·강병철기자│ →한국(일본)에게 일본(한국)은 무엇인가. 한완상 전 부총리 일본은 20세기 초부터 36년간 한국을 식민지로 삼아 억압·수탈·차별한 나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런 데다 아시아에 속하면서도 서구 열강에 속해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나라다. 와다 하루키 명예교수 일본과 한국은 무척 깊은 역사적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일본은 한국을 침략, 식민지화했다. 반성해야만 하는 역사를 갖고 있다. 세계적인 흐름에 맞춰 봐도 한국은 일본에게 대단히 중요한 이웃 나라다. →지난 100년간 한·일 관계는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가. 한 전 부총리 1905년 11월 을사늑약이 있었다. 1910년 한일병탄이 이뤄졌다. 늑약의 1조는 ‘통치권을 완전히 영구히 일본 황제에게 이양한다.’이다. 519년 조선 왕조가 끝나는 순간이다. 1936년 일본은 내선일체를 외쳤다. 창씨개명, 한글사용 금지 등도 강요했다. 문화와 민족혼마저 빼앗는 통치를 시도했다. 태평양전쟁에 패전한 일본은 승전국인 미국과 함께 한반도의 분단에 간접적인 책임이 있다. 전범국인 일본은 통일된 자유 국가로 남고, 식민지로 질곡의 세월을 겪어야 했던 한반도는 갈라져 있다. 100년을 되돌아보면 결코 잊을 수 없는 일이다. 와다 명예교수 단적인 예로 조선은 식민지였기에 일본에 저항하지 못하고 침략전쟁에 말려들었다. 일본이 한국에 저지른 가장 큰 죄다. 1945년 한국은 독립을 맞았지만 일본은 침략과 식민 지배에 사과하지 않았다. 역사 자체를 내동댕이쳤다. 때문에 일본은 그때의 역사를 잊고 살아오게 됐다. 1965년 한·일 기본조약을 맺었는데 그 당시에도 과거의 반성 없이 조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한국은 엄청난 노력을 통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일제 강점이 현재 한국인이나 일본인에게 미친 영향은. 한 전 부총리 한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정신적인 상처, 충격을 줬다. 씻기 힘든 수치심과 분노다. 백색(서구) 제국주의의 흐름을 타고 등장한 황색(아시아) 제국주의의 제물이 된 사실에 대한 울분과 함께 민족자주의식이 형성됐다. 해방됐을 때 ‘소련에 속지 말고, 미국을 믿지 말자. 일본이 일어난다. 조선은 조심해라.’라는 민담을 들었다. 백색·황색 제국주의자들에 대한 두려움과 경계심이 바탕에 깔려 있었다. 일본을 향한 불신과 거부감이 한국인의 성격 속에 내면화된 것이다. 와다 명예교수 일본은 한국에 대한 병합(와다 명예교수의 표현대로)한 사실을 태평양전쟁이 끝난 뒤 잊으려 했고, 실제 잊어버렸다. 그런 탓에 일본 젊은이들은 일본이 한국을 지배했었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여길 정도다. 반면 한국의 입장에서는 용서할 수도, 잊을 수도 없는 역사다. 상처를 준 사람은 상처를 받은 사람의 고통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또 지나쳐 버리고 싶어 한다. 한국을 병합했다는 사실 자체가 일본의 생활 속에서는 별로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일본인은 분명하게 한국인의 감정을 읽어야 한다. 한 전 부총리 너무 억울하게 희생당한 사람에게 감정적인 대응을 자제하라는 건 정말 잔인한 일이다. 울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가장 큰 고통을 받은 두 부류가 위안부와 강제 노동자다. 합리적으로 털고 가야 한다. 경제적 보상 이전에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잘못했다는 것을 확실하게 시인 받아야 한다. 또 최소한의 경제적 보상도 있어야 한다. →한국과 일본 사이의 바람직한 미래는 가능한가. 한 전 부총리 가능하다. 19~20세기는 서세(西勢)의시대였다. 19세기는 팍스브리태니카 시대, 20세기는 팍스아메리카나 시대였다. 21세기는 동세(東勢)의 시대다. 동세의 기운을 정보기술(IT) 혁명이 활성화시키고 있다. 줄씨알(네티즌)이 국경을 초월하고 있다.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는 데다 연대 강화도 쉬워졌다. 동세의 기운이 솟구치고 있다. 21세기에 일본과 한국, 중국까지 평화의 중심세력으로 힘을 합칠 수만 있다면 글로벌 이슈, 즉 기후나 테러 등 어떤 문제에서든지 굉장한 발언권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한·일간 평화 강화에 반하는 열악한 조건의 존재가 냉전벨트다. 한국 정부의 힘만으로 해체할 수 없다. 미국과 일본의 지원이 필요하다. 북한 경제에 대한 대국적인 지원은 한반도 냉전을 해체하는 출발점이다. 그렇게 되면 남·북, 북·일, 북·미 관계 정상화가 쉬워질 것이다. 한국, 미국, 일본 정부가 함께 한반도 냉전 체제를 확실히 깨 21세기에 세계에서 냉전체제가 종식됐다는 선언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와다 명예교수 미래를 생각하면 일본과 한국은 자국의 테두리만이 아니라 지역적인 공동 번영, 공생을 위해 협력해 나가야만 한다. 동아시아공동체 구축에서도 한국은 중심에 서서 추진자, 대안자의 역할을 맡아야 한다. 일본도 성심성의껏 힘을 보태는 게 한·일의 미래지향적인 모습이 아닐까 싶다. 일본은 섬나라다. 한국은 반도국으로 대륙과 맞닿아 있는 만큼 지리적으로 핵심 역할을 할 수 있다. 중요한 위치에 있다. 과감하게 말하면 한국과의 협력 없이 일본의 미래는 없다. →국제 사회에서 한·일의 경쟁과 협력은 필연적이다. 한 전 부총리 정보기술(IT), 생명공학(BT), 문화 기술(CT) 분야는 일본과 격차가 없다. 서로 협력하며 경쟁할 수 있다. 협력 없는 경쟁은 금물이다. 21세기는 협력을 통한 경쟁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과거처럼 서로 먹고 먹히던 때로 돌아갈 수 있다. 실제 엇비슷한 수준의 IT, 동물 복제 등에서 강한 BT, 특히 한류로 대변되는 CT는 일본에 자극을 줄 수 있다. 또 제조업, 조선, 자동차 분야 등도 한국이 도움을 줄 수 있는 단계에 올라섰다. 와다 명예교수 잘할 수 있는 분야는 서로 이끌고 격려해야 한다. 뒤처진 부분은 서로 배우면서 따라가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서로 돕고 협력하면서 앞으로 나가길 바란다. 달리 말해 모든 것은 한 가지 사안 속에 경쟁, 협력이라는 두 측면이 있다. 어떤 것은 경쟁, 어떤 것은 협력이라는 식으로 이분화할 게 아니다. 조화시키며 동시에 추진해 나가야 한다. 한국의 에너지는 일본을 압도하고 있다. →바람직한 미래를 위해 한·일 양국의 국민들에게 바라고 싶은 것은. 와다 명예교수 과거 역사에 대해 반성하도록 한국인들이 일본인들에게 지속적으로 알렸으면 한다. 인내심을 갖고 말이다. 한국의 노력 덕에 일본에도 여러 변화가 가능했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한국인의 입장에서 흘린 땀에 비해 일본 전체적으로는 크게 변하지 않는 점도 알고 있다. 초조하기도 하고, 불만이 있는 줄도 잘 안다. 일본인들의 한국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한국을 여러 면에서 좋아하는 사람들도 크게 늘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일본인은 과거의 역사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역사는 역사대로 놓아두고 미래로 나갈 수는 없다. 미래를 위해 더더욱 과거 문제를 인식하려고 힘써야 한다. 한 전 부총리 일본은 한반도에서 저지른 부당한 조치들을, 최소한 독일이 연합국에 보여줬던 수준으로 시인했으면 좋겠다. 독일 정부는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에 대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수시로 고개를 숙인다. 나치 전범에 대해서는 시효가 없다. 일본이 왜 못하는지 안타깝다. 일본 지식인들의 말처럼 늘 아시아를 넘어 서구를 좇는다면 적어도 독일 수준으로는 가야 한다. 불행한 역사는 청산해야 한다. 양국에는 이를 거부하는 세력이 있다. 한국 쪽에도 식민지는 한국을 근대화시킨 시기라고 긍정하는 일부 지식인·정치인들이 있다. 일본에도 이 같은 사고방식을 가진 우파들이 있다. 친일 세력과 일본의 보수적 민족주의 세력의 냉전적 연대와 연계를 어떻게 성숙하게 극복해 나갈 수 있는가가 중요한 과제다. 이런 것을 위해 한·일간 여러 차원에서 교류·협력이 필요하다. 와다 명예교수 1995년 무라야마 담화를 뛰어넘는 ‘하토야마 담화’가 발표되기를 희망한다. 무라야마 담화는 침략과 조선지배에 대해 사죄하고 반성하는 내용으로 발표됐다. 담화가 나온 이후 일본 국회에서는 논란이 일었다. 병합을 강제적인 것으로 볼 것인지, 대등한 입장에서 체결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인지 등에 대해서다. 담화로부터 15년이 지났다. 적잖게 훼손됐다. 그러나 식민지화가 왜 일어나게 되었는가 등에 대한 역사연구는 꾸준히 진행됐다. 병합은 한민족의 의지와 상관없이 힘에 의해 강제됐다. 따라서 ‘하토야마 담화’에는 진정한 의미의 역사적 판단을 담아야 한다. 전향적이고 획기적인 결단이 필요하다. 병합 100년은 상징적으로 아주 좋은 계기다. →한·일 양국의 젊은이들이 바른 역사관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는. 한 전 부총리 젊은 세대는 조부모·부모 세대가 이룬 성취, 즉 독립운동, 민주화, 인권운동, 평화운동 등의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젊은이들이 관심을 가지는 주요 문제는 좋은 직장과 안정된 삶 등 개인 중심적인 복지다. 어느 나라나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지금은 인터넷 시대다. 분단의 아픔, 억울함에 대해 체계화되고 설득력 있는 지식을 인터넷에서 자유롭게 볼 수 있게 됐으면 한다. 젊은이들은 지식을 획득하는 속도나 양에서 엄청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런 걸 보면 인터넷 시대에 새로 깨우쳐 줄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 와다 명예교수 젊은이들이 옛일에 대해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어느 사회에 있어서든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잊지 않도록 노력하는 일이다. 태평양전쟁을 잊지 않도록 젊은 세대에게 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로운 사람들이 역사의 연구, 조사를 계속해야 한다. 역사란 건망증이 심하다. 방치해 두면 잊혀진다. 따라서 자국만이 아닌 넓은 범위에서 지역적 협력을 통해 건망증을 방지해야 한다. 한 전 부총리 일본 젊은이들은 조상들이 제국주의적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다. 10여년 전 중국 창춘(長春)에서 겪은 일인데 일본 청년이 위화관에서 인체실험인 마루타 전시를 보고 기절한 일이 있었다. 자기 조상들의 만행을 믿지 못해서다. 일본 교육이 문제다. 불과 할아버지 세대에 있었던 반인류 범죄인데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서대문 역사박물관에 있는 독립투사의 고문받는 모형을 보고도 충격을 받는다. 양국 청년들이 서로 불행했던 과거 역사를 정확하게 알고 서로 용서해 주는 두 민족 간의 정신적 트라우마(충격)를 극복하는 치유 과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한·일 청년들의 교류를 정부 차원에서 적극 추진했으면 한다. 비정부기구(NGO)나 종교단체도 앞장서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일왕을 한국에 초청하겠다고 했는데. 한 전 부총리 일왕 초청엔 두 가지 조건이 전제돼야 한다. 100년 전 병탄의 부당성 등 일본의 잘못을 정중하고 솔직히 인정하고 사죄해야 한다. 그래야 한·일, 북·일 관계 모두에 도움이 된다. 동아시아공동체에도 힘을 불어넣어 줄 수 있다. 일왕의 가계는 한민족의 조상에 닿는다. 종묘에서 경의를 표하고, 특히 100년 전 병탄과 105년 전 늑약 때 가졌던 고종황제, 명성황후, 순종의 아픔 등을 되새기고 참배했으면 한다. 대학생들과 자유로운 간담회를 갖는 것도 좋다.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일왕 초청은 전적으로 찬성한다. 와다 명예교수 천황은 일본 국민의 상징으로 일본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전쟁이 끝날 당시 지금의 아키히토 천황은 초등학교 6학년이었는데 신춘 휘호로 평화를 염원하는 글자를 썼었다. 마음이 깃든 휘호라고 본다. 천황은 히로히토 전 천황이 방문할 수 없었던 중국도 찾았다.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를 방문했다. 한국을 방문하는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 단 한국 방문 자체에 그쳐서는 안 된다. 역사적이어야 한다. 고종황제와 명성황후, 순종의 묘에 참배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2010년에 실행된다면 매우 뜻깊을 것이다. 2010년은 100년이라는 역사 속에서 마지막 기회의 해다. →북한과 일본의 국교정상화 문제도 병탄 100년을 맞는 시점에서 중요한 문제다. 한 전 부총리 하토야마 정권이 동아시아공동체를 만들려면 대북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방북 의사가 있다고 했다. 북한 지도자와 허심탄회하게 한반도 안정과 평화를 위한 환경 조성에 앞장섰으면 한다.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를 위한 하토야마 정권의 노력은 긴요하다. 역사적인 성취를 하려면 대북 관계를 전향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북한과 대화를 통해 두 나라 관계를 개선하면 불가피하게 거쳐야 할 부분이 식민지 청산문제다. 과감한 사죄와 적절한 보상조치를 해야 한다고 본다. 그렇게 되면 1965년 한·일 기본조약보다 훨씬 평가받는 북·일 기본조약이 나오고, 하토야마 정권이 주창하는 동아시아공동체가 구축될 것이다. 하토야마 정권은 동아시아의 비핵화도 강조해야 한다. 동아시아 비핵화와 한반도 비핵화는 함께 해야 할 과제다. 와다 명예교수 일본과 북한의 국교 정상화는 실현돼야 한다. 일본이 한국을 병합하고 100년이 된 이때 피해를 입은 국가의 반쪽과 아무것도 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커다란 문제다. 어떻게 해서든 국교를 정상화해야 하는 것이 옳다. 교섭을 통해 해결해 나가야 한다. 불행하게도 북한의 핵개발이 국제적인 이슈가 됐다. 그러나 국교 정상화를 절차적으로 본다면 북한의 핵포기와 국교 정상화 추진을 동시에 진행시켜야 한다. 병합 100년이라는 측면에서 절호의 타이밍이다. 일본은 국교 정상화를 한 뒤 과거에 대한 반성의 의미로 경제협력을 약속할 수 있다. 경제 원조를 갑자기 추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국교정상화 뒤라면 자연스럽다. 그러면 남북대화에도 긍정적인 면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본다. 통일은 필연적인 것이며 머지않은 일이기도 하다. 중요한 전제는 모든 과정이 완전히 평화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전 부총리 북·일 관계에서 한국의 역할은 분명하다. 일본이 6자회담 밖에서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문제를 꺼낼 경우, 북한이 전향적으로 검토할 수 있도록 부드럽게 권고할 수 있다고 본다. 또 일본에 대해서도 납치문제가 한반도 평화 정착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6자회담에서 납치문제를 거론하지 않고 새로운 채널을 가동할 수 있도록 협조해야 한다. hkpark@seoul.co.kr ●한 前부총리는 1980년대 초까지 저항적 지식인의 대표적 인물이다. 제5공화국이 끝나도록 금서였던 저서 ‘민중과 지식인’은 운동권뿐만 아니라 대학생들의 필독서였다. 사회과학자이면서 교육, 정치, 종교계 등을 넘나들었다. 시민단체인 경실련에도 관여했다. 교수 시절 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두 차례 해직과 복직을 거듭한 데다 수형 생활을 하기도 했다. 문민 정부와 국민의 정부 등 2대 정권에서 통일부총리, 교육부총리를 역임했다. 대한적십자사 총재와 한성대 등 3개 대학의 총장도 지냈다. 최근에는 언론, 논객, 시민과 대화한 내용을 묶으며 YS(김영삼 전 대통령)부터 MB(이명박 대통령)까지 돌아보는 대담집 ‘우아한 패배’를 출간했다. ●와다 하루키는 일본을 대표하는 진보학자이자 한반도 전문가다. 1960년 도쿄대 문학부를 졸업, 66년부터 도쿄대 강단에 섰다. 소련사와 북한 현대사가 전공이다. 1970~80년대 일본 지식인으로서 민주화 운동 때문에 투옥된 김대중·김지하씨 등의 구명운동에 앞장섰다. 1980년 김대중씨 사형 선고와 관련, 교수 신분으로 주일 한국대사관 앞에서 매일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조만간 러·일전쟁을 중심으로 1875~1904년의 역사를 다룬 저서를 상·하권으로 출판할 계획이다. 그는 “최근 틈나는 대로 대장금, 태왕사신기, 주몽 등 한국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혁명 1991’, ‘역사로서 사회주의’, ‘조선전쟁’ 등 30권 이상의 저서를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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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장△감사 정영숙△대외협력 진경애△연구기획조정 박소영△경영기획 김정훈△교육정보분석 이상하△교육과정기초·정책연구 박순경△교과교육과정연구 이경언△학교학습연구 박선화△수업개선연구 홍미영△학업성취도기획분석 김성숙△학업성취도평가출제연구 정은영△국제학업성취도연구 김경희△교과서평가연구 진재관△기획분석 조지민△출제연구 신일용△문제은행연구 조윤동△영어교육개선연구 임찬빈△영어능력시험연구 이병천◇팀장△대외홍보 피교철△△채점 황철현△시스템 관리 전윤산◇처장△기획 신성균◇본부장△교육과정연구 조난심△교수학습연구 이화진△교육평가연구 남명호△교과서연구 이인제△수능연구관리 이양락△영어교육특임연구 이의갑△인재선발관리 조용웅◇부장△교육평가행정지원 김도균△교과서검정운영 김창환△수능운영 연근필△출제관리 경영호△인재선발관리1 이병문△인재선발관리2 왕미선△총무 최종교△재무운영 심재목◇국·센터장△사무국 박종덕△전산정보센터 최정호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승진 △창원지원장 진덕희△급여조사실 조사관리부장 오병록◇전보 <실장>△고객지원 이병일△의료자원 김남수△심사기획 최명례△심사 고선혜△평가 변성애△정책지원 김충렬<단장>△약제비관리개발 정춘혜<지원장>△부산 최철수△대전 송응복△수원 박혜숙 ■국민연금 ◇실장△경영지원 배성훈△기금운용본부 운용지원 임진우◇지역본부장△서울북부 서강봉△경인 이수민△대전 전근철△대구 김은경△부산 박익수◇센터장△장애심사 오판술△서울콜 김제균△대전콜 박상택△대구콜 이철희△광주콜 장선주◇지사장△동대문중랑 이용백△마포 함현규△의정부 이수형△구리남양주 우호승△강남역삼 윤용선△강동하남 곽세창△서초 김민수△구로금천 김남익△용인 이상만△안양 박덕수△성남 김선규△안산 남은진△북대전 장홍순△청주 송휘식△천안 윤성수△북광주 한명덕△동광주 노대우△전주 노주순△순천 이재현△제주 박상길△구미 백관수△문경 문규연△남부산 신종기△김해 박희대△고양 윤우용△남동연수 최성백△포항 김용국△창원 김승환△진주 신동학△성북강북 손남식△용산 양광호△포천 박희곤△강서 이창언△강릉 이은상△삼척 김철호△원주 신옥철△군포의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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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보△여수 이조순△충남남부 송상호△충남중부 윤덕량△서산태안 신용주△경기중부 정해권△안산시흥 권용주△평택안성 김만건△이천여주 김우섭△부천 차경식△김포 류인희△강원동부 박창수△원주횡성 염진근△충주음성 윤종식△남원순창 윤병협△경남서부 김태섭△통영거제 모성엽△경남북부 국갑표△밀양창녕 설원수 ■한국생산성본부 ◇승진 △부회장 박우건△상무 여상철△본부장 김형범 황인호 이정훈 임하욱△부본부장 노환표 김익택△센터장 김근수 김천수 이용운 최규형 백상민 백인기◇전보△인적자본개발본부장 강기영△자격개발·인증〃 최상록△뉴생산성향상운동본부 제1부〃 김익균△경영교육센터장 이기영△직무교육〃 최태영 ■중소기업중앙회 ◇승진 △이사대우 정성모 이종목△1급 서석태 이근국 이남희△2급 김종환 류재범 정재기△3급 오진균 윤현욱 이찬민 임춘호 정경은 최경영◇전보△인력개발원장 유영호△안산지부장 황재규<실장>△노란우산공제사업단 정성모△감사 이종목△전략경영 강성근△비서 이재원<지역본부장>△인천 전석봉△경기 김철기△경남 서석태 ■현대그룹 ◇승진 <현대상선>△상무 이영준△상무보 유민행 한명동 김종하 손용찬 정동진<현대증권>△전무 정태욱△상무 최철규 오빈영 김용회 정항기△상무보 박재만 박선무 김진영 장윤현 임인혁 최인섭 이봉기△상무보대우 전복용 이현기 김찬백<현대아산>△상무보 전영인 김영수<현대엘리베이터>△상무 신민영△상무보 주청규 김형문 박영기△상무보대우 정동용 박종갑<현대택배>△상무 홍원흥△상무보 이성재 김지말<현대유엔아이>△상무 안경진<현대경제연구원>△전무 윤봉락◇전보 <현대증권>△전무 공현무 <현대자산운용>△부사장 정성수 ■한라그룹 ◇수석부사장 승진△㈜만도 수석부사장 신사현◇부사장 승진△한라건설 부사장 김병란 이은시 김철환△㈜만도 〃 김주신 황인용 성일모△㈜마이스터 〃 박준열◇부사장 선임△㈜만도 부사장 프랭크 정(Frank Chung)◇전무 승진△한라건설 전무 홍석화 김문섭 이장근△㈜만도 〃 김영승 손정원 정경호 심창섭 ■나이스그룹 ◇승진 <그룹 사장>△한국신용정보 이장훈△한국신용평가정보 박종인<전무>△한국신용평가정보 남욱△나이스알앤씨 이상호△나이스채권평가 김종현△KIS정보통신 박세진<상무>△한국신용정보 홍춘기△나이스정보통신 이은대△나이스디앤비 조성태△나이스채권평가 신동훈△에스이티아이 김용수<상무보>△한국신용평가정보 이호제 박현섭 송경수△한국신용정보 김명수△한신정평가 김승훈△나이스정보통신 황우양△나이스디앤비 강용구◇전보△한국전자금융 사장 박상태△〃 상무 노영훈△한국신용평가정보 상무보 황윤경 ■동국제강그룹 ◇승진 <동국제강>△전무 신정환 김두호△이사 서영태 차영덕 고광덕 엄세용 제국환 이삼익<유니온스틸>△상무 노양준△이사 최종철 김갑태<국제종합기계>△대표이사 사장 유제선△이사 홍재덕 윤기호△이사대우 성장용△대표이사 부사장 변명섭△상무 김광선<인터지스>△대표이사 사장 정표화 ■노루그룹 ◇승진 <디피아이홀딩스>△전무 송윤빈 이주길△상무 이상철<노루페인트>△전무 장형석△이사 정성헌 우경현 이경재 이명희<노루케미칼>△대표이사 전무 강석규△전무 백성빈△상무 신동훈 ■미래에셋그룹 <미래에셋증권> ◇승진 [상무]△경영서비스부문 대표 김신△HR본부장 박형규△서울사업〃 이만희△WM센터장 강길환△자산운용컨설팅본부장 이재호△기업금융2〃 조효승[상무보]△경영지원본부장 황유원△기업금융1〃 박희재△프로젝트금융2〃 안종균△퇴직연금C&A〃 맹민재△마케팅〃 이종필△북경사무소장 정이훈[이사]△전략상품추진본부장 강효식△대전지점장 임인수△수원〃 조봉식△영남사업본부 퇴직연금컨설팅1팀장 박기관△채권본부 채권영업팀장 송창섭△프로젝트금융1본부 PF2팀장 전태욱△프로젝트금융2본부 PF2팀장 김찬일△퇴직연금컨설팅2부문 1본부 1팀장 정중근△〃 1본부 2팀장 이남곤△IT사업부 IT기획팀장 김우정△IT개발본부 정보관리팀장 한원돈<미래에셋자산운용> ◇승진 [상무]△연금마케팅본부장 장부연△미래에셋자산운용 홍콩 CEO 이덕청[이사]△운용기획본부장 이정훈△On-Line마케팅〃 구필희△리테일2〃 성태경△홍보실장 임명재△IT본부장 김완규△미래에셋자산운용 브라질 CIO 김영환◇승격△리스크/컴플라이언스부문 CRO 박진수<미래에셋맵스자산운용> ◇승진 [상무보]△컴플라이언스2본부장 홍성기[이사]△마케팅2본부장 류경식△주식운용〃 이태윤<미래에셋캐피탈> ◇승진△이사 서래호<브랜드무브> ◇승진 [이사]△광고팀 국장 김은령 ■대우건설 ◇승진 △전무 구임식 김경수 남기혁 강우신△상무 강승구 김근영 김남철 성현주 소경용 신희식 윤기종 이광윤 이찬빈 임순주 최규명 하익환 허경필△상무보 김창환 민경복 박종혁 서복남 서영근 신익수 심우근 오진균 윤완섭 이정한 정익권 정재학 정훈 조재덕◇보직 <전무>△기술연구원장 조성태[본부장]△플랜트사업 조응수△토목사업 구임식△국내영업 김경수△경영지원 남기혁△해외영업 강우신 ■한미약품 <한미약품>△총괄대표이사 사장 임선민△R&D본부 〃 이관순△R&D본부 상무이사 김맹섭(연구소장 겸임) 권세창(부소장)△〃 연구위원 김영훈△경영지원본부 부사장 한창희△〃 상무이사 고민섭 임종호△공장·생산본부 전무이사 우종수△〃 이사대우 최성철 <한미IT>△상무이사 정정희 ■LIG투자증권 ◇보임 △법인사업부장 서영석△기획관리부문장 박용희△경영기획팀장 박종인△인사총무〃 김진호△리스크관리〃 박장석 ■하이마트 ◇승진 <하이마트>△부사장 박철균 김효주△전무 한병희△상무 장대종 이민균△상무보 한동일 최영석<하이마트쇼핑몰>△부사장 박무열<하이마트로지텍>△전무 이병기△상무 선현석 ■정·식품 ◇선임 △감사 곽호병◇승진 [전무]△총괄 손헌수[상무]△청주공장장 이순구[이사대우]△청주공장 관리부문 김희준<자연과사람들> ◇승진 [전무]△담양공장장 김석민 ■한일시멘트그룹 ◇승진 <한일시멘트>△부사장 원인상△전무 유황찬 곽의영△상무 양승권 최덕근 전근식<한일산업>△전무 이용우△상무 이덕우△상무보 선우석훈<한일건설>△전무 경지선△상무 허순도 이동열<오늘과내일>△전무 박지훈 최항기△상무 전효식 ■순천향대병원 △서울병원장 신병준△천안〃 이문수△부천〃 홍대식△구미〃 오천환 ■청호나이스 △대표이사 이석호△상무이사 최병준△이사 김대영 박재익<마이크로필터>△대표이사 이기형△대표이사 고상영△대표이사 김완영 ■그랜드코리아레저 ◇승진 <1급>△기획조정실장 박황숙△부산롯데점장 김형직◇전보 <1급>△교육팀 자문위원 홍은미△모니터실장 송덕종△감사〃 조용담<2급>△홍보팀장 김도곤△마케팅기획〃 김홍래△밀레니엄서울힐튼점장 민춘기
  • [새해 달라지는 것들] 취업후 학자금상환제 도입·교원평가제 전면 실시

    [새해 달라지는 것들] 취업후 학자금상환제 도입·교원평가제 전면 실시

    ■복지 ▲치매 어르신 지원 강화 치매조기검진사업이 전국 모든 보건소로 확대된다. 60세 이상 노인은 관할보건소 치매상담센터를 통해 치매조기검진을 받을 수 있고 저소득 치매노인에게는 월 3만원까지 치료관리비가 지원된다. ▲햄버거·피자 등 고열량·저영양 어린이 기호식품 TV광고 제한 패스트푸드·피자·과자 등 고열량·저영양 어린이 기호식품의 TV광고가 오후 5시부터 8시까지 제한된다. ▲영양표시 대상 식품 확대, 인증 또는 보증 등의 문구 사용 금지 열량·포화지방·나트륨 등 영양표시 대상 식품이 어린이들이 즐겨 먹는 빙과류·어육소시지·김밥·햄버거·샌드위치 등 기호식품까지 확대된다. ▲건강보험 적용 확대 심장 및 뇌혈관 질환자의 본인부담률이 10%에서 5%로, 결핵환자 본인부담률이 입원 20%, 외래 30∼60%에서 10%로 내린다. 7월부터는 중증화상환자의 본인부담률이 입원 20%, 외래 30∼60%에서 5%로 낮아지며 10월부터 다발성 골수종, 유방암 치료제 등의 항암제와 B형간염치료제 등 희귀난치성 치료약제의 보험급여 범위가 확대된다. ▲사회복지통합관리망 운영 각종 사회복지 급여·서비스 지원 대상자의 자격 및 이력정보를 통합 관리하는 ‘사회복지통합관리망’이 본격 운영된다. ▲기초수급자 근로능력판정 체계 개선 의사 진단서의 치료기간에만 의존하던 기초수급자 근로능력 판정방식이 의사의 진단서와 지자체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의 활동능력평가를 병행하는 방식으로 개선되고 재평가 주기가 3개월에서 1년으로 늘어난다. ▲난임부부 지원 확대 1월부터 인공수정시술비가 1회당 50만원 범위 안에서 3차례까지 지원된다. 4월부터 임신·출산 관련 진료비를 전자바우처로 제공하는 ‘임신·출산진료비(고운맘카드)’ 지원액이 현행 20만원에서 30만원으로 늘어난다. ■교육 ▲교원평가제 실시 일부 학교에서 시범운영 중인 교원평가제가 내년 3월부터 전국 모든 초·중·고교로 확대 시행된다. 학생·학부모가 평가에 참여한다.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 도입 대학 등록금을 정부로부터 대출받아 공부하고 졸업한 뒤 소득이 생길 때부터 갚아 나가는 장학제도가 도입된다. 소득 7분위 이상 대학생 80만여명이 대상이 된다. ▲유아학비 지원 확대 소득 하위 70% 이하 가정의 모든 둘째아이에게 유아 학비 100%를 지원한다. 국립은 월 5만 9000원, 사립은 19만 1000원씩 지원된다. ▲야간 돌봄 유치원 운영 시도별 수요조사를 거쳐 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5~10개 공·사립 유치원을 연계한 ‘야간 돌봄 전담 유치원’이 3월부터 운영된다. ■국방 ▲입영부대 본인선택제 폐지 입대 대상자가 입영부대를 선택할 수 있었던 본인선택제가 전면 폐지되고, 전산처리로 결정된다. 입영일자 선택제는 현행대로 유지된다. ▲장병 A형간염 첫 접종 취사병과 충성클럽(PX) 근무병 등 식품취급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장병 3만여명이 처음으로 A형간염 예방접종을 받는다. 국방부의 예산 확보 추이에 따라 일반병으로까지 접종 대상이 확대된다. ▲장병 체력검정 강화 군 체력 검정 기준이 대폭 강화된다. 기존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 1.5㎞ 달리기 등 3개 종목 중 1.5㎞ 달리기를 3㎞로 늘리고, 특급~4급의 3개 종목 합격선을 특급~3급으로 한 단계 줄인다. ▲현역병 국제대회 입상시 공익요원 편입 지정 국제대회에 입상한 현역병이 본인 희망에 따라 예술·체육분야 공익요원으로 편입할 수 있게 된다. ■법무 ▲사회·경제적 약자 과태료 경감 기초생활수급자, 한부모가족 중 보호대상자, 3급 이상 장애인, 상이등급 3급 이상 국가유공자, 미성년자에 대해서는 과태료 금액의 최대 50%까지 감경된다. ▲점수제에 의한 거주·영주자격 부여 국내에서 합법적으로 체류하는 전문인력(E1~E5, E7) 중 점수제에 따른 평가를 거쳐 우수한 역량을 보유한 자에게는 거주자격(F2)으로 체류자격 변경을 허용하고, 영주자격(F5) 신청 시 우대한다. ▲부동산투자이민제도 도입 국내 특정부동산에 일정금액 이상을 투자한 외국인에게 거주자격을 부여하고 국내 체류기간이 5년 이상일 경우 영주자격을 부여한다.(제주특별자치도에서 우선 시행) ■문화·여성 ▲한국언론진흥재단 출범 한국언론재단, 신문발전위원회, 신문유통원 등 현행 3개 신문지원기관을 통합한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새해 1월 출범한다. ▲동영상에도 ICOP 확대 적용 ICOPⅠ은 온라인 콘텐츠를 검색, 불법 복제물에 대해 자동으로 전송을 중단하도록 요청하는 프로그램으로 개인간(P2P) 파일공유 사이트나 웹하드 등 폐쇄형 서비스의 음원에만 적용됐다. ICOPⅡ가 가동되는 새해 1월부터는 포털, 블로그 등 개방형 온라인 서비스의 음원은 물론 동영상에도 적용된다. ▲국립현대무용단·국립어린이인형극단 창단 새해 6월쯤 국립단체로 현대무용단과 어린이인형극단이 창단된다. 발레나 한국무용과는 달리 국립단체가 없던 현대무용 분야에 대해서도 정부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한국방문의 해 시작 새해부터 2012년까지 ‘한국 방문의 해’ 캠페인이 본격 시작된다. 코리아그랜드 세일, 체류기간 하루 더 늘리기(One Night More) 등 다양한 인센티브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종합편성채널 선정 방송통신위원회는 언론관계법 개정을 토대로 종합편성채널(종편)을 선정·도입해 방송통신서비스의 경쟁을 유도하고 시장을 확대할 방침이다. 종편 사업자 선정 등 구체적 일정은 하반기쯤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방송광고판매시장 경쟁체제 도입 한국방송광고공사를 통한 독점적 방송광고 판매 체제에서 민영 미디어렙 도입을 통한 경쟁체제가 이르면 새해 하반기부터 도입된다. ▲여성새로일하기센터 운영 ‘경력단절여성등의 경제활동촉진법’에 따라 육아나 출산 등의 부담으로 직장을 중단했던 여성들에게 직업상담 등 원스톱 취업지원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센터가 전국 50곳에 마련, 운영된다. ■환경 ▲수도권 대기총량관리제 확대 수도권 대기질 개선을 위해 수도권 대기관리권역으로 설정된 서울시, 경기도 등 24개 시를 대상으로 사업장 대기오염물질 총량관리제가 확대 시행된다. 해당 사업장은 대기 1~2종 사업장 중 질소산화물이나 황산화물을 연간 4t 이상 배출하는 350개 사업장이다. ▲순환골재 재활용제품 의무사용 6월부터 순환골재 의무사용 대상기관에 민간투자법에 따른 사회기반사업(SOC)이 포함된다. 국가·지방자치단체·민간투자 사업자가 건설공사를 할 때 재생 아스콘 등과 같은 순환골재 재활용제품을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보훈 ▲보훈대상자 보상금 인상 국가유공자 보상금이 5% 올라 2009년보다 1100억원 늘어난 2조 6000억원이 50만여명에게 지급된다. 참전명예수당 인상도 추진되고 명예형 소액 수당이 기초수급자 소득산정기준에서 제외된다. ▲무주택 보훈대상자 지원 강화 무주택 보훈대상자를 위한 주택마련 자금 대부액이 기존 23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오른다. 임차대부 지원자에 대한 재대부 기간도 종전 3년에서 통상 계약기간인 2년으로 줄여 전세금 인상 등에 유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된다. ▲독립유공자 등 지원 강화 친일귀속재산 753억원(공시지가 기준)어치의 부동산 중 100억원어치를 팔아 영주귀국 후손 정착지원과 독립유공자 유족 장학사업 등에 지원한다. ▲국립묘지 안장능력 확충 현재 5만여기에 불과한 국립묘지의 안장 여력과 근접성 등을 고려해 이천호국원에 1만기, 영천호국원에 2만 5000기를 각각 추가 조성한다. ■외교·통일 ▲여권발급수수료 신용카드 납부 민원인이 여권발급수수료를 현금뿐 아니라 신용카드 또는 체크카드로 결제할 수 있다. 사용가능한 신용카드는 BC·신한·국민·삼성·현대·롯데·외환 등이다. ▲여권사무대행기관 확대 전국 248개 지방자치단체의 여권 사무 대행기관이 종전 168개에서 새해부터는 232개 기관으로 늘어나 전국 거의 모든 곳에서 신청 여권을 4~5일 내에 발급받을 수 있게 됐다. ▲러시아 비자 유효기간 확대 한·러 단기복수사증협정 발효에 따라 새해 1·4분기부터 러시아 비자 발급 기간이 현행 ‘14일 이내’에서 ‘10일 이내’로 줄어든다. 비자 유효기간은 ‘최대 5년’으로 확대된다. ▲북한이탈주민 취업장려금 인상 북한이탈주민의 정착을 돕기 위해 지급되는 취업장려금이 기존 1500만원에서 1800만원으로 오른다. 1년차 북한이탈주민 직장인에게 450만원, 2년차 500만원, 3년차 550만원 지급되던 취업장려금은 각각 550만원, 600만원, 650만원씩 지원된다. ■행정 ▲고위공직자 쳥렴도 평가 도입 국민권익위원회는 국장급 이상 고위공직자 청렴도 평가제도를 도입한다. 고위공무원단 1500명, 지방자치단체장 등 선출직 공무원 262명, 600여 공공기관 임원 등이 포함될 예정이다. 인허가·지도단속을 하는 일선 공무원도 평가받는다. 평가결과는 인사·보수·교부세 등에 차등 반영된다. ▲인·허가 ‘사후규제’ 방식 도입 기업투자 등을 활성화하기 위해 인·허가 법령에 대해 사전규제가 아닌 ‘원칙적 허용, 예외적 금지’ 방식의 사후규제(네거티브 방식)가 도입된다. ▲온라인 생활민원 일괄서비스 확대 여러 기관에 걸친 다수의 민원 업무를 정부민원포털 G4C에 접속해 한 번에 처리하는 온라인 생활민원 일괄서비스가 확대된다. 2009년 12월 말 이사, 사망 민원을 시작으로 올해 1월부터 장애인, 보훈, 개명 등 3종, 7월에 출생, 교육 등 5종, 12월에 자동차, 혼인 등 5종이 추가 서비스 된다. ▲지방세 납부 종이고지서 폐지 하반기부터 지방세 납세자들은 광학적문자인식(OCR) 방식의 종이 고지서 없이 은행 예금통장과 신용카드로 세금을 낼 수 있다. 은행의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서 자신에게 부과된 세금 내역을 확인한 뒤 세금을 내면 된다. ▲가능한 모든 민원에 온라인 서비스 제공 행정기관을 직접 방문하지 않고 온라인으로 민원을 처리하는 서비스가 확대된다. 신청 민원 3000종, 발급 민원 1000종이 올해 안에 순차적으로 온라인화된다. 부처 종합 ※ 일부 제도는 국회·정부 논의 과정에서 달라질 수 있음
  • ‘절친노트2’ 폐지, ‘시즌3’로 새 단장

    ‘절친노트2’ 폐지, ‘시즌3’로 새 단장

    SBS ‘절친노트2’가 크리스마스 특집을 끝으로 폐지되고 ’절친노트3’로 새롭게 돌아온다. 김국진, 김구라, 문희준을 내세워 ‘절친하우스’, ‘절친일기’로 시작한 ‘절친노트1’에 이어 지난 6월 김국진이 빠진 자리에 이경규, 은지원이 합류했던 ‘절친노트2’는 실제로 ‘절친’한 연예인 친구들이 나와 서로에 대한 우정과 숨겨진 에피소드를 털어놔 숱한 화제를 낳은 바 있다. 새롭게 단장하는 ‘절친노트3’에는 사이가 좋지 않던 스타들의 관계회복을 돕던 ‘절친노트1’과 절친한 스타들이 그들만의 에피소드를 털어놓았던 ‘절친노트2’를 절충한 컨셉트의 프로그램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절친노트3’는 윤종신, 신정환, 박미선 등이 새로운 MC로 기용될 것으로 알려졌으며 2010년 1월 첫 전파를 탄다. 사진=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김진욱 기자 action@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4개부처 새해 업무보고] 유공자보상금 5%↑… 50만명 혜택

    국가보훈처가 14일 새해 국가유공자 보상금을 5% 인상하기로 하면서 올해보다 1100억원 늘어난 2조 6000억원이 50만명에게 지급될 전망이다. 국가유공자 중 최저 상이등급인 7급 대상자는 올해보다 매월 1만 5000원 많은 30만 9000원, 최고 등급인 1급 대상자는 올해보다 매월 9만 9000원 많은 399만 6000원을 받게 된다. 보훈처는 내년 6·25전쟁 60주년을 맞아 참전유공자 등 참전명예수당을 현재 월 8만원에서 10만원으로 2만원 인상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무주택 보훈대상자 지원을 위해 주택마련 자금을 위한 대부액을 현행 23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높이기로 했다. 고령 보훈대상자의 안정적인 노후생활을 지원하기 위해 2011년 개원 예정인 600병상의 보훈중앙병원 신축병동을 차질없이 추진하고 노후된 800병상에 대해선 2013년까지 리모델링을 끝내기로 했다. 지금까지 전입한 친일귀속재산 753억원(공시지가 기준) 어치의 부동산 중 100억원어치를 올해 자산관리공사를 통해 매각, 영주귀국 후손 정착지원과 독립유공자 유족 장학사업 등에 사용할 계획이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할아버지의 친일재산도 돈주고 샀다면 환수못해”

    할아버지의 친일재산을 손자가 대가를 지불하고 매입했다면 국가가 환수할 수 없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부장 이경구)는 친조부인 현준호씨의 친일재산 국가귀속결정을 취소해 달라며 현씨의 친손자가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했다고 13일 밝혔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에 의해 피살당한 현준호씨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친조부다. 재판부는 “원고는 해당 토지를 할아버지로부터 상속받은 큰아버지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적법한 절차를 거쳐 산 것으로 인정되는 만큼 원고는 법에 따라 보호되는 제3자에 해당한다.”고 밝혔다.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한양→경성→대경성’ 역동성을 파헤치다

    얼마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으로 한국 사회가 진통을 겪었다. 지금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형국이지만 언제든 다시 터져 나올 수 있는 ‘휘발성’을 가진 화두다. 근 100년 전의 망령이 여전히 한국 사회를 관통하며 다양한 시각과 의견의 충돌을 야기하고 있는 셈. 그런 점에서 ‘문학과 지성사’가 사회사 연구총서 시리즈 중 9번째로 펴낸 ‘지배와 공간’은 일제 강점기를 이해하는 새로운 인식의 틀을 제공하고 있어 반갑다. 저자인 김백영 광운대 교수는 책을 통해 그 시대를 보다 잘 이해하는 방법으로 현대 국민국가와의 시간적 연속성에서 접근하기 보다 과거 실존했던 ‘식민지의 지리적 판도’라는 공간적 연속성에 우선 순위를 두고 접근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왕조의 수도였던 ‘한양’이 식민지 도시 ‘경성’으로, 다시 ‘대경성’으로 변화하는 과정의 역동성을 당시 기층 민중을 포함한 여러 계층들의 관점에서 추적하고 해부해 보자는 것이다. 김 교수는 “민족사적 트라우마가 분단과 냉전시대의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와 결합되면서 민족과 국가에 대한 지나친 신성화(神性化)를 초래했다.”며 “일제 식민통치와 그에 맞선 항일 독립영웅들의 굵직한 실천들만이 민족사적 사실로 공식화되는 과정에서 당시 암흑같던 사회의 밑바닥에서 설익은 근대문명을 체화하고 있던 사회 주체들의 다양성은 충분한 조명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유관순과 윤봉길의 투쟁사이자, 이광수와 염상섭의 번민의 시기로만 서술됐을 뿐, 대다수 민중들의 삶은 무채색 화면으로 처리됐다는 것. 따라서 친일과 항일이라는 흑백논리로는 포착되지 않는 식민지 주체들의 광범위한 삶의 공간을 정확히 이해해야 일제강점기에 대한 올바른 인식의 틀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판단이다. 다만 “‘풍수단맥설’이 한국의 전통적 공간질서를 부정하고 말살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다거나, 우리의 전통 문화 유산을 침탈하고 훼손한 것이 일제의 일관된 계획과 의도라고 단언하기는 곤란하다.”는 등의 접근 방식은 다소 껄끄럽게 받아들여 질 수도 있겠다. 3만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연극 ‘운현궁 오라버니’ 12일까지

    연극 ‘운현궁 오라버니’ 12일까지

    1930년대는 동·서양이 교차하고 봉건과 현대가 공존하는 ‘문화적 점이지대’다. 지난해 영화계에 ‘라듸오 데이즈’, ‘모던보이’ 등 1930년대를 조명한 작품들이 쏟아진 데 이어 연극계에서도 1930년대를 소재로 한 작품이 무대에 오른다. 남산예술센터에서 4일부터 13일까지 공연하는 ‘운현궁 오라버니’는 쇠락한 황실의 일상과 혼재된 시대에 고여 있는 역사적 흐름을 서정적이고 간결한 언어로 풀어낸다. 일제강점기 조선의 마지막 황족으로 불운한 삶을 살다간 주인공 이우(김영민)가 이야기의 중심 축이다. 2009 옥랑희곡상을 받은 신은수 작가의 동명 희곡이 원작이다. 역사적 사실과 작가의 픽션(허구)을 오가며 캐릭터와 사건보다는 정서와 심리적 갈등에 무게를 두었다는 점에서 기존의 퓨전사극이나 1930년대를 다룬 시대극과는 거리를 둔다. 연극은 1930년대 초 일본에서 육군사관학교에 다니던 이우가 방학을 맞아 운현궁을 찾으면서 시작된다. 권위를 잃은 황실에 거주하는 이우의 동생 해원(김란희), 비운의 역사에 휘말려 정체성을 잃어가는 형 이건(이남희), 시대 정세에 발맞춰 권력을 잡으려는 친일파 박영효(이호재) 등 등장인물의 심리 상태에 초점이 맞춰졌다. 혼기가 찬 이우가 내선일체 정책에 따라 억지로 일본 여자와 혼사를 치러야 할 상황에 이르면서 극의 갈등은 최고조에 이른다.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에서 고종 역을 맡아 서글픈 왕족의 이미지를 표현했던 이우 역의 김영민(앞줄 오른쪽)은 극중에서 ‘황성옛터’를 부르며 나라 잃은 백성의 황망한 심정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운현궁을 황성옛터의 이미지이자 ‘망자(亡者)들의 공간’으로 해석한 연출가 이성열씨는 “운현궁은 지나가 버린 역사의 잊혀진 사람들의 공간이면서 ‘기억의 집’이기도 하다. 내년 한·일 강제합병 100년을 맞아 이 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에게 우리의 정체성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제공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5일부터 11일까지 같은 장소에서 ‘1930년대 특강 시리즈’도 열린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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