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칼날 어디로
검찰이 17대 대선을 몇 개월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대선정국’을 ‘수사정국’으로 휘감고 있다. 정치권의 잇따른 고소·고발 사건에 ‘법대로’를 선택한 검찰의 행보가 그래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검찰의 속내는 무엇이고, 향후 수사 전망은 어떻게 될까.
정치권의 무모한 고소·고발이 빚은 자충수라는 지적도 있고, 대선 때마다 갈림길에 섰던 검찰이 이번에도 정치권의 블랙홀에 빠져들어 부메랑을 맞을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검찰은 고소사건에 따른 당연한 수사일 뿐 다른 의도는 있을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檢, 자칫 정치권 블랙홀 빠져 부메랑 맞을 수도
검찰은 한나라당 경선 후보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고소 사건 수사를 ‘숙명적’으로 받아들인다. 눈덩이처럼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공정한 법집행’의 보루인 검찰이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지 않으냐는 설명이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고소는 수사를 전제로 하는 것”이라면서 “수사는 이쪽저쪽의 유·불리를 따지고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민감한 시점에 검찰의 이같은 판단을 정치적인 행위로 보는 시각도 있다. 검찰 관계자는 “대선 때마다 검찰이 중립을 표명해 왔지만, 이를 무시할 수 없는 것은 검찰이 권력집단이라는 한계 때문”이라고 말했다. 검찰이 가만히 있어도 정치 외곽의 압박을 버텨내기란 쉽지 않다는 얘기다.
1997년 김대중 후보의 비자금 의혹과 관련해 당시 김태정 총장은 “국가 전체에 대혼란이 올 것이 분명해 보이고, 수사 기술상 대선 전에 수사를 완결하기도 불가능하다.”며 수사를 대선 이후로 유보하기로 했었다.2002년엔 이회창 후보의 병역비리 의혹에 대해 당시 이명재 검찰총장이 그해 8월 초 수사에 착수했고, 이 후보가 고배를 마신 뒤 무혐의 처리했다. 현재 검찰 내에서는 이 두 가지를 대비시키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 총장의 수사 착수 결심에 대해 “정치역학적인 관계를 고려한, 불가피한 선택일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李후보 의혹 시점 70~80년대로 계좌 추적 한계
검찰 수사는 이 후보에 대한 고소 사건, 즉 부동산 투기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했는지, 자신의 자산을 친인척 등의 이름으로 숨겨 왔는지가 핵심이다. 그러나 이 후보와 관련된 의혹들이 생긴 시점이 70∼80년대로 계좌추적의 한계가 있는 데다, 관련자들의 진술 확보도 쉽지 않아 한나라당 경선 이전에 마무리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여기다 박근혜 후보는 물론 범여권 후보들간 고소·고발이 잇따를 경우 수사는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 그럴 경우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고, 검찰 수사 결과를 국민이 믿지 못하는 상황도 상정해 볼 수 있다.
검찰 주변에서는 이 후보에 대한 고소 사건은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더라도 범법 행위로 규정하기는 어렵다고 보는 쪽과 개인의 사생활에 관한 대목이어서 ‘도덕적 논란’을 가중시키는 데 그칠 것이란 시각으로 엇갈린다.
하지만 검찰 수사가 당장 중단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한나라당측이 고소 사건을 취하하려는 움직임과 관련,“고소를 취하하면 명예훼손 부분은 수사가 중단될 것이지만, 개인정보 불법 유출 부분에 대한 혐의가 포함돼 있어 처벌 의사와 상관없이 검찰이 인지해 수사를 진행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고위 관계자는 “1차적인 수사결과에 따라 의혹별로 사안이 분류되면 정밀 수사 여부가 결정될 뿐”이라면서 “고소 취하와 수사 중단은 별개의 사안”이라고 못을 박았다.
따라서 검찰의 칼날은 의혹 사건이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나야만 향방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주병철 홍성규기자 bcjo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