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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주목받는 정치인

    2013 주목받는 정치인

    2013년은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는 동시에 19대 국회도 본격 궤도에 오르는 해다. 여의도 정가에서 세력을 확장하거나 새롭게 자리매김할 여야 정치인들에게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집권 여당을 연장하게 된 새누리당은 우선 차세대 당대표 후보군으로 이목이 집중된다. 김무성 전 총괄선대본부장, 정몽준·이재오 의원, 김문수 경기도지사 등이 부각되고 있다. 김무성 전 총괄선대본부장은 지난 5월 출범한 황우여 대표 체제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당장 내년 4월 경북 포항 재보궐 선거 출마 가능성이 점쳐진다. 포항이 지역구인 김형태 무소속 의원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이 진행 중인 데다 그 역시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 연고를 갖고 있다. 정몽준 의원은 주특기인 외교·안보 분야에서 박근혜 정부에 힘을 보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공동선대위원장으로 보수표 결집에 힘을 보탠 그는 당 요직을 두루 거쳐 운신의 폭이 크지는 않지만 당선인의 4강외교 특사 등의 역할이 기대된다. 친이(친이명박)계 좌장격인 이재오 의원은 원내 활동 위주로 정중동 행보를 펼칠 것으로 보인다. 대선 과정에서 박 당선인과 대립했지만 막판 지지를 선언하며 정권 재창출을 도왔다. 이 의원 측은 입지가 좁아지지 않겠느냐는 관측에 대해 “소신인 분권형 4년 중임제 개헌 추진 등을 이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 지사는 8월 당내 경선에서 패한 뒤 지사직으로 돌아갔지만 언제든 차기 지도부에 출사표를 던질 가능성이 높다. 안대희 전 정치쇄신특위 위원장의 복귀 여부에도 이목이 쏠린다. “정치에는 뜻이 없다.”고 늘 밝혀온 안 전 위원장은 내년 초 미국으로 출국하는 등 대통령직인수위원회와 거리 두기를 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인수위나 정부 조각에서 정치쇄신 임무를 이어 갈 가능성과 함께 차기 감사원장 등의 하마평에도 오르내리고 있다. 고향인 경남 함안에서 내년 보궐선거가 있을 경우 출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친박(친박근혜) 핵심에서 다소 소원해진 유승민 의원, 최고위원이자 중앙선대위 부위원장으로 활약한 이혜훈 전 의원의 ‘마이 웨이’ 행보 여부도 관건이다. 차세대 그룹에선 경제민주화실천모임 간사로 쇄신파를 대변한 김세연 의원, 정치쇄신특위의 박민식 의원·정옥임 전 의원, 초선 박대출·민현주·강은희 의원, 친이계 재선 조해진·김희정 의원 등이 눈여겨볼 대상이다. 야권에서는 대선 때 문재인 전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와의 단일화 문제로 관심을 끌었던 안철수 전 무소속 대선 후보가 우선 주목을 끈다. 그는 지난 19일 미국으로 건너가 보도진에게 정치를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안 전 후보는 현재 휴식을 취하며 한국 정치 전반에 대한 구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거취를 놓고 2월 말 혹은 3월 초 귀국설 속에 4월 재·보선에 출마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안 전 후보 측은 급할 것이 없다는 기류다. 그래서 민주당 5월 전당대회 등 정비 과정을 보면서 10월 재·보선에 나설 가능성에 더 무게가 실린다. 설훈 민주당 의원의 주장처럼 신당보다는 민주당에 입당, 함께 개혁하자는 목소리가 크다. 그가 귀국 후 독자 신당 창당에 나서면 민주당은 분열 가능성이 커진다. 당내에서는 손학규 상임고문이 주목된다. 대선 후보 경선에서 고배를 든 손 고문은 1월 중순 독일로 가 국내 정치와 거리를 두고 자유베를린대학에서 연수하며 재충전할 계획이다. 민주당 재건이나 야권 재편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독일 체류 중 안 전 후보와의 해외 접촉 가능성도 관심사다.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는 5년이 결코 길지 않다며 벌써부터 기반을 다지고 있다. 당내 경선에서 고배를 들었던 그는 당 인사들은 물론 대학교수, 언론인 등 각계 인사들을 폭넓게 만나면서 권토중래를 노린다. 그 역시 내년 3월엔 독일 자유베를린대학에서 반년간 연수한다. 그는 “손 고문님과 한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부족한 점을 많이 채우고자 한다.”고 말했다. 비상대책위원장 후보로 거론되는 김한길·박영선·정세균·원혜영·박병석 의원 등도 관심 대상이다. 안경환 새정치위원회 위원장이나 윤여준 국민통합추진위원장 등도 비대위원장 후보다. 이인영·우상호·오영식 의원 등은 차세대 주자 시험대에 오를 것 같다. 이춘규 기자 taein@seoul.co.kr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사설] 대통합 저해할 인수위 밀실 인선 경계해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용인(用人)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됐다. 그제 당선인 비서실장과 대변인 3명을 선임했고, 연말까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주요 직책 인선 작업도 윤곽을 드러낼 전망이다. 지난 시절 새 정부의 첫 인사에 적지 않게 실망했던 국민들인 만큼 대통합과 탕평을 기치로 내세운 박 당선인의 인사에 대한 국민적 기대감도 날로 커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그제 내놓은 박 당선인의 첫 인사는 다소 아쉬움을 갖게 한다. 자신과 별다른 연고가 없는 새누리당 유일호 의원을 비서실장에 앉히고, 범친이계로 분류되는 박선규 전 청와대 대변인과 조윤선 전 의원을 대변인으로 발탁한 점은 계파를 가리지 않은 실무형 인선이라는 점에서 평가할 대목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지나치게 강경한 보수 논객으로 비쳐지는 윤창중씨를 수석대변인 자리에 앉힌 데 대해서는 다수 국민이 의구심을 갖는 듯하다. 지난 20여년간 정치권과 언론 사이를 오갔던 전력은 접어두더라도 대선 기간 극언을 동원해 야권을 공격했던 인물을 굳이 대통합을 강조하는 첫 인사에 자신의 ‘입’으로 삼아야 했느냐는 것이다. 민주당이 “국민 대통합의 진정성을 발견하기 어렵다.”며 극력 반발하고 나선 것만 보더라도, 대선에서 패한 야권과 그 지지자들의 상심을 한번 더 헤집는 일은 아닌지 당선인이 좀 더 숙고했어야 했다고 본다. 더 우려스러운 대목은 지금 진행되고 있는 박 당선인의 인선 작업 방식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사는 대상만 100~300명에 이르는 방대한 작업이다. 후보군을 3배로만 쳐도 많게는 1000명 가까이 들여다봐야 한다. 전문성을 따지고, 결격사유는 없는지 살펴야 하고, 출신 지역도 헤아려야 한다. 몇몇의 힘으로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그제 인사에서 보듯 이런 엄청난 작업을 박 당선인은 대체 누구와, 무슨 자료를 놓고 벌이고 있는지 일절 알려진 바가 없다. 지난 시절 당선자와 몇몇 측근들의 밀실 인사가 어떻게 권력 암투로 이어지고, 어떤 부실 인사를 낳았는지 그리고 그 결과가 새 정부 5년에 얼마나 깊은 주름을 안겼는지 박 당선인은 잘 알고 있으리라 여긴다. 측근들을 신뢰하되 그들의 전횡을 경계하고, 모쪼록 탕평에 걸맞게 인사에 앞서 좀 더 널리 뜻을 묻기를 바란다. 첫 단추를 잘 꿰려면 거울 앞에 서야 한다.
  • ‘대선 공신’ 새누리 여성 4인방 운명은

    ‘대선 공신’ 새누리 여성 4인방 운명은

    새누리당 대선 승리 이후 당내 여성 4인방의 행보에도 관심이 쏠린다. 김성주 공동선대위원장과 조윤선 당 대변인, 이혜훈 최고위원, 정옥임 선대위 대변인이 주인공이다. 박근혜 당선인의 측근이기도 했던 이들은 대선 이후 각자의 길을 걷고 있다. 김 선대위원장은 선거가 끝나자마자 본업인 성주그룹 회장직으로 복귀했다. 그는 대선일 다음 날인 20일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에 참석한 뒤 21일 선대위 사무실에서 짐을 뺐다. 애초 지난 10월 공동선대위원장직 임명 때부터 “저의 역할이 끝나면 정치권을 떠나 경영인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수차례 강조했던 약속을 실천한 셈이다. 튀는 발언으로 시선을 끌어모은 그는 박 당선인의 딱딱한 이미지를 상쇄하고 당의 외연을 넓히는 데 기여했다. 선거기간 내내 그림자 수행을 맡았던 조 대변인은 지난 24일 여성 대변인으로 인수위원회행이 확정됐다. 7월 경선 캠프 출범 이후 반년 가까이 박 당선인을 지근거리에서 수행하며 속정이 깊이 들었다는 게 주변의 전언이다. 문화 분야에 조예가 깊은 그는 김지하 시인, 이외수 소설가 등 문화계 인사들과 접촉면을 넓히면서 박 당선인을 보좌했다. 문화재정 2% 확보 등의 공약도 조 대변인의 남다른 관심 덕분이었다. 인수위 이후 입각 가능성을 조심스레 점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 최고위원, 정 대변인도 박근혜 정부에서의 중용이 점쳐진다. 박 당선인이 인사의 제1원칙으로 전문성을 천명한 만큼 각각 주전공 분야인 경제·정치개혁 분야에서 날개를 펼칠 것이라는 분석이다. UCLA 경제학 박사 출신인 이 최고위원은 이한구 원내대표, 당선인 비서실장에 임명된 유일호 의원 등과 더불어 당내 대표적 경제통이다. 당내 경제민주화실천모임에서 활동하면서 보수적인 이 원내대표와 각을 세우며 경제민주화와 동반성장 가능성을 설파하기도 했다. 친이계였던 정 대변인은 선거국면에서 정치쇄신특위 위원이자 선대위 대변인으로 영입된 이후 외교·안보, 정치개혁 분야에서 특유의 논리력과 언변을 인정받았다. 선거 막판엔 하루에도 수차례 방송 인터뷰에 불려다니며 지원사격을 자청했다. 박 당선인이 강조하는 대탕평인사의 일환으로 등용 가능성이 높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대선 이후 정국] (중)與 주류 세력 재편 전망

    대선의 후폭풍은 여권에도 어김없이 불어닥칠 것으로 전망된다. 관심의 초점은 ‘세력 재편’에 모일 수밖에 없다. 핵심은 누가 ‘포스트 박근혜’의 자리를 차지하느냐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게 안갯속이다. 새누리당의 현재 인물 지형은 ‘풍요 속 빈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해 12월 비상대책위원장에 오른 뒤 1년여 동안 당의 구심점 역할을 해 온 영향이 크다. 적잖은 인재를 당으로 영입하는 과정에서 박 당선인을 돕는 ‘조력자’는 늘어났지만 중량감 있는 ‘리더’는 상대적으로 눈에 띄지 않는다. ●황우여 등 중심축으로 신주류 형성 ‘무게’ 지난여름 당내 대선 후보 경선 당시 정몽준 전 대표와 김문수 경기도지사, 이재오·김태호 의원,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 등이 박 당선인의 경쟁자로 나섰지만 존재감을 드러내는 데는 모두 한계를 나타냈다. 오히려 박 당선인이 직접 영입한 안대희 정치쇄신특별위원장과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 등 외부 인사들이 ‘이슈 메이커’ 역할을 해왔다. 박 당선인이 떠난 빈자리가 당장은 커 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역으로 얘기하면 그만큼 그 공간을 메울 대체자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당 지도 체제에 변화를 만들어 낼 압력 요인도 이렇다 할 게 없는 상황이다. 지난 5월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황우여 대표의 임기 역시 2014년 5월까지 1년 5개월여 남은 상태다. 당분간은 황 대표 등 대선 승리에 기여도가 높았던 인사들에게 힘이 쏠리고 이들이 중심축이 돼 정권 초기 신주류를 형성할 가능성이 크다. 같은 맥락에서 김무성 전 원내대표와 서병수 사무총장, 이주영·최경환 의원 등 대선 승리의 ‘1등 공신’으로 평가받는 친박(친박근혜)계 인사들의 행보가 주목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조기 전당대회 개최 가능성을 전면 배제하기도 어렵다. 집권 초기의 원만한 국정 운영을 뒷받침해야 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지도부 교체 바람이 거세질 수도 있다. 이 경우 원희룡 전 의원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 차기 대선 주자 그룹이 당권 경쟁에 뛰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대선 과정에서 친이(친이명박)와 친박 등 계파 구분이 무의미해질 정도가 됐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앞으로도 한 묶음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나갈 가능성은 낮다. 박 당선인이 약속한 정책 공약이나 정치 개혁안을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추진 세력 또는 저항 세력 등으로 분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선거 기여도 따라 세분화… 조기 全大 가능성도 친박계 내부적으로도 선거 기여도에 따라 주류와 비주류,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한 소계파 등으로 세분화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친목 단체 형태의 소모임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날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 출범 초창기에도 친이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함께 내일로’와 같은 모임들이 쏟아진 바 있다. 이 과정에서 당내 중진 의원들의 물밑 경쟁은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남경필, 유승민, 김세연 의원 등 소장·쇄신파 의원들의 움직임도 관심 대상이다. 세력 재편의 한 축을 형성할 가능성도 있다. 당 관계자는 21일 “내년 4월 재·보궐 선거, 5월 원내대표 선거 등이 당내 권력 지형의 변화 여부를 가늠할 1차 분수령이 될 수 있다.”면서 “박 당선인의 뒤를 이을 이렇다 할 후계자가 없는 상황에서 차기 주자들의 등장은 빨라질 수밖에 없고 이는 여권발(發) 정계 개편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민생과 안정’ 전략 주효… 보수대결집으로 완승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의 18대 대선 승리는 그가 걸어온 길 만큼이나 드라마틱했다. 19일 방송 3사 출구조사에서 박빙의 오차범위 내 우세(1.2%)로 출발한 박 당선자는 문재인 후보의 추격을 뿌리치고 100만표가 넘는 표차로 승리했다. 국민들은 ‘변화’를 기대하면서도 ‘민생’과 ‘안정’을 선택한 것으로 분석된다. 여당의 승리 요인은 가장 먼저 박 당선자의 개인적 역량을 빼놓을 수 없다. ‘선거의 여왕’이라는 애칭에서 알 수 있듯 박 당선자는 새누리당 대선 전략의 ‘알파’이자 ‘오메가’였다. 박 당선자는 선거 초반 새누리당이 불안과 내홍에 휩싸였을 때 “나를 믿고 따라와 달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문재인·안철수 연대’에 짓눌린 당 분위기를 추스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민생과 대국민통합을 강조한 선거 전략도 유효했고 보수층을 결집한 리더십도 돋보였다. 여기에 정책 공약의 큰 줄기였던 경제민주화와 정치쇄신 이슈를 선점해 야권의 칼날을 무디게 한 것도 적절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대선을 일주일 남짓 앞두고 우후죽순 터져 나온 야권발 각종 네거티브 공세에 맞불을 놓으며 ‘강(强) 대 강(强)’ 대결로 몰고 간 것도 결국 승리의 요인이 됐다. 박 당선자는 대선 출마 이후 줄곧 민생과 국민대통합을 얘기해 왔다. 양극화의 확대로 팍팍해진 살림살이와 1000조원에 이르는 가계부채 등 어느 때보다 힘든 생활을 하고 있는 서민들에게 거창한 구호 대신 민생을 내걸고 소통했다는 점이 주효했다. 캠프 관계자는 19일 “우리는 선거 기간 동안 민생 정부를 외치며 국민만을 보고 뚜벅뚜벅 걸어가겠다는 전략을 구사했다.”고 말했다. 박 당선자가 지난 8월 20일 새누리당 대선 후보 수락 연설에서 ‘100% 국민대통합’을 선언한 이후 보수와 진보를 넘나드는 ‘광폭 행보’도 참신했다는 평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가신그룹인 동교동계의 참여와 지지도 큰 힘이 됐다. 박 후보가 호남에서 선전한 배경이기도 하다. ‘여성 대통령론’도 예상외의 파급력을 보여 줬다. 여론조사 내내 박 후보는 여성 유권자의 지지율이 남성 유권자의 지지율을 웃돌았다. 역대 대선에서 볼 수 없었던 ‘보수 대결집’도 승리의 일등 공신이다. 선진통일당과의 합당으로 보수 대결집의 물꼬를 튼 박 당선자 진영은 이후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와 박세일 전 국민생각 대표, 김영삼 전 대통령, 막까지 애를 태웠던 친이계의 좌장인 이재오 의원이 합류하면서 보수 대결집을 완성했다. 역대 대선에서는 1992년 박찬종, 1997년 이인제, 2002년 이한동, 2007년 이회창 등 제2, 제3의 보수 후보들이 출마해 보수층의 지지표를 잠식했다. 이번 대선과 같은 초박빙 승부에서 보수 성향의 유력 후보가 출마했다면 승부의 추는 야권으로 기울었을 것이라는 진단이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박 당선자는 국민대통합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보수와 중도세력 결집에 성공했다.”면서 “역대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이 집권당을 탈당하지 않은 것도 야권으로부터 ‘이명박근혜’라는 비판을 받았어도 전통 보수층으로부터 지지를 이끌어 내는 데 도움이 됐다.”고 분석했다. 박 당선자의 또 다른 승리 요인으로는 이슈 선점을 꼽을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실정에도 불구하고 야권의 정권교체 공세를 무력화한 배경에는 경제민주화와 정치쇄신이라는 시대적 어젠다를 발 빠르게 선점한 것을 꼽을 수 있다. 경제민주화의 ‘저작권자’인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을 영입해 야권의 가장 큰 무기가 될 수 있었던 경제민주화 공약을 약화시켰으며 ‘스타 검사’ 출신인 안대희 정치쇄신특별위원장을 ‘삼고초려’로 영입해 야권의 정치개혁 공세를 막았다. 물론 김 위원장과의 갈등으로 박 당선자의 경제민주화에 대한 의지가 후퇴한 것이 아니냐는 논란도 있었지만 2차 TV토론회를 앞두고 전격 ‘구원 투수’로 등장해 이 같은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윤성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박 후보가 경제민주화 등의 정책에서 ‘좌(左) 클릭’했다는 점이 당선에 큰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과거사를 비롯해 야권 후보의 단일화, 막판 네거티브 공세를 잘 넘긴 것도 승리의 요인이다. 과거사 문제는 선거 초반 분위기를 야권에 넘겨 주는 계기가 됐다. 박 당선자는 인혁당 사건을 놓고 “두 개의 판결”로 곤욕을 치렀고, 정수장학회와 관련해 법원의 강탈 판결을 놓고 야권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다. 하지만 야권이 후보 단일화에 나서면서 과거사 이슈가 묻혔고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아름다운 단일화’를 보여 주지 못하면서 사실상 승기를 잡았다. 안 전 후보가 선거 막판에 문 후보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로 돌아섰지만 대세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또 ‘억대 굿판’, ‘신천지 연루설’, ‘국정원 여직원 불법 댓글 논란’ 등 야권발(發) 네거티브 공세는 청와대로 가는 마지막 고비였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헌정 사상 첫 부녀대통령… 34년만에 청와대 재입성

    헌정 사상 첫 부녀대통령… 34년만에 청와대 재입성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남은 생을 모두 바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넘어야 할 산이 아무리 험난하고 가파르다 할지라도 쉽게 주저앉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박근혜 당선자가 1997년 정치에 입문할 당시의 마음가짐을 자서전에 남긴 내용이다. 이러한 각오를 시험이라도 하듯 박 당선자의 15년 정치여정은 그야말로 험난했다. 정치를 시작하기 이전의 40여년 삶만큼 파고가 높았다. 박 당선자의 측근들은 그에 대해 “진일보하는 정치인”이라고 입을 모은다. 당장 눈에 띄는 변화를 보여 주지는 않지만 정치 여정의 전체를 놓고 보면 한 단계씩 발전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박 당선자는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정치에 입문했다. 국가 부도 위기, 대량 실업사태와 생활고에 대한 기사를 접하며 박 당선자는 “가슴 밑바닥까지 분노가 일었다.”고 했다. 수많은 국민들이 피땀을 흘린 결과로 세운 나라인데 이렇게 한순간에 무너진다는 데 대한 허탈함과 위기감이었다. 그는 1997년 12월 10일 대선을 8일 앞두고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1996년 총선 직전 자유민주연합(자민련)에서 경북 구미에 출마할 것을 제의했으나 정치에 별 뜻이 없다며 거절했다. ●“국민과 아픔 함께” 국회 본회의장 첫 발언 당선자는 이어 1998년 4월 대구 달성군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나섰다.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 정권이 교체된 직후 김 전 대통령의 지지율이 90%가 넘는 상황에서 막강한 조직력을 갖춘 여당 국민회의 엄삼탁 후보와 맞붙어야 했다. 이른바 ‘달성대첩’이다. 조직과 자금이 없었던 박 당선자는 지역 구석구석을 다니며 유권자들과 만났다. 그는 “어느 후보보다 가난한 선거를 치르고 있었지만 내게는 깨끗한 정치를 하겠다는 꿈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리고 예상과는 달리 큰 차이로 이겨 15대 국회에 입성했다. “나라가 어려운 때 정치에 입문하게 되어 더욱 어깨가 무겁다. 앞으로 깨끗하고 바른 정치, 국민과 아픔을 함께하는 정치가 구현되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 본회의장 발언대에 처음 선 박 당선자는 이렇게 밝혔다. 2000년 총선을 통해 16대 국회의원이 된 뒤 박 당선자는 전당대회 부총재 경선에 도전장을 냈다. 여성 몫 부총재 자리를 당연직으로 얻을 수 있었지만 거부했다. 경선을 통해 2위로 부총재에 당선된 뒤 박 당선자는 정치개혁, 정당개혁을 주요 과제로 삼았다. 정당의 구조에서 비롯된 잘못된 정치시스템을 바로잡자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당내 분란을 일으키고 종종 왕따가 됐고 비주류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고 한다. 박 당선자는 정치개혁의 핵심으로 상향식 공천을 제안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한나라당을 탈당했다. 이후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해 이끌다가 같은 해 11월 한나라당이 자신의 개혁안을 받아들이자 합당했다. 한국미래연합 창당을 준비하던 2002년 5월 박 당선자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기도 했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두 번째 대권 도전에 실패한 뒤 한나라당은 침몰하기 시작했다. 2004년 4·15 총선을 앞두고 차떼기, 탄핵역풍 등으로 위기에 놓였다. 박 당선자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3월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가 됐다. 이 자리에서 박 당선자는 “‘신에게는 아직도 열두 척의 배가 남아 있다’고 한 충무공의 비장한 각오를 되새기며 이 자리에 섰다.”면서 “저는 부모님도 없고 더 이상 얻을 것도 잃을 것도 없는 사람이다. 당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호소했다. ●대표때 정당 사상 첫 ‘대국민 약속 실천 백서’ 발간 침몰 위기의 한나라당 선장이 된 박 당선자는 우선 당사에서 나와 여의도 공터에 천막당사를 열었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으로 개혁의 참모습을 보여 드리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명동성당, 조계사, 영락교회 등 종교계를 다니며 사죄의 뜻을 보였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비관적인 예상을 뒤엎고 121석을 얻었다. 이후 서울 강서구 염창동에 둥지를 튼 뒤에도 천안의 연수원을 사회에 환원했고, 비리 등의 혐의로 당원권이 정지된 당원, 중진의원들을 직접 검찰에 고발하는 등 개혁 의지를 강조했다. 박 당선자는 또 원내 정당, 정책 정당, 디지털 정당을 목표로 내세워 실천했다. 당 대표가 의원들과 같은 자리에 앉아 함께 토론을 하도록 의원총회 형식을 바꿨고 정책이나 민원 관련 내용을 꼼꼼히 메모한 뒤 모두 실현에 옮겨 정당 사상 처음으로 ‘대국민 약속실천백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당 홈페이지를 개편하고 스스로도 미니홈피를 통해 온라인상에서 소통을 활발히 했다.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는 그동안 당 대표가 휘둘렀던 공천권을 시·도당에 돌려보냈다. “박근혜 실험정치 기로에 섰다.”는 평가가 나왔다. 박 당선자가 2년 3개월 동안 대표직에 있으면서 네 번의 보궐선거를 비롯한 모든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고 당 대표 임기를 모두 채운 유일한 대표였다.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명도 당 대표 때부터 생겼다. 2006년 5·31 지방선거를 열흘 남짓 앞두고 5월 20일 박 당선자는 서울시장 후보 지원 유세를 위해 신촌사거리를 찾았다가 피습을 당했다. 죽음의 문턱에 갔던 박 당선자는 “남은 인생은 하늘이 내게 주신 덤이라고 생각했다.”면서 “아직 나에게 할 일이 남았기에 거둬 갈 수 있었던 생명을 남겨 둔 것”이라고 말했다. 병상에서 눈을 뜨자마자 “대전은요?”라며 당시 지방선거의 판세를 걱정했다는 일화도 유명하고, 한나라당은 지방선거에서 압승을 거뒀다. 박 당선자는 2006년 6월 당 대표에서 물러난 뒤 17대 대선 경선을 준비했다. 그는 이임식에서 “국민 여러분께서 보내 주신 사랑을 큰 빚으로 생각하고 평생 갚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선거에서도 모든 유세현장에서 했던 이 말은 박 당선자 스스로도 “평생 안고 가야 할 숙제이며 다짐”이라고 했다. ●17대 땐 MB에 당내 경선 져 대권 재도전 2007년 이명박 대통령과의 경선은 어느 때보다 치열했다. 한나라당 내 친이명박계, 친박근혜계의 계파가 나뉘고 갈등이 심화됐다. BBK를 비롯해 이 대통령을 둘러싼 의혹을 친박 진영에서 대거 제기하고 친이계가 이에 맞서면서 본선을 능가하는 경쟁을 펼쳤다. 그러나 박 당선자는 2007년 8월 경선에서 일반 당원, 대의원, 국민선거인단 경선에서는 모두 승리했지만 국민여론조사의 벽에 부딪혀 석패했다. 흰색 상의를 입은 박 당선자가 담담한 목소리로 경선 결과에 승복한다고 밝힌 연설은 ‘아름다운 승복’으로 여겨져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2008년 4월 총선에서 박 당선자는 4선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그러나 총선 공천을 두고 친이계와 정면으로 부딪쳤다. 친박계 인사들이 공천에 대거 탈락해 무소속으로 출마하거나 친박연대를 창당했다. 이후 복당 문제도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해 박 당선자는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후 몇몇 정책에 대해 박 당선자가 이 대통령과 반대되는 의견을 내세우며 당내 계파 갈등은 4년 내내 골이 깊었다. 박 당선자는 이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지 않겠다며 최대한 드러나지 않은 행보를 하고 입장 밝히기를 꺼렸지만 박 당선자는 내내 가장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였고 야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지녔다. 박 당선자는 2009년 4월 이상득 전 의원의 정치개입 논란이 일자 “이번 사건은 정치의 수치”라고 했고 같은 해 7월 미디어법 논란 당시 “(여당) 개정안에 반대표를 던질 것”이라며 수정 조건을 제시하기도 했다. 2009년 이후 이 대통령이 내놓은 세종시 수정안을 두고 두 사람의 갈등은 최고조에 다다랐다. 박 당선자는 세종시 수정안이 평소 정치 신념인 원칙과 신뢰에 어긋난다며 반대했다. 청와대와 ‘강도’라는 비유까지 써가며 거침없이 설전을 주고받았고 2010년 6월 세종시 수정안이 본회의에 상정됐을 때에는 직접 발언대에 서서 반대토론에 나섰다. 18대 국회에서 유일한 경우였고 결국 세종시 수정안은 무산됐다. 박 당선자는 2010년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을 발족하는 등 비공식적인 활동을 하며 대선을 차근차근 준비했다. 2011년 12월 한나라당이 또다시 큰 위기에 닥쳤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중앙선관위 홈페이지에 대한 디도스 공격이 불거지면서 민심을 잃고 추락했다. 또 한 번 박 당선자에게 구원 요청이 쇄도했다. 박 당선자는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고 당 쇄신을 진두지휘했다. 정강정책에서 보수를 과감히 삭제하고 경제민주화의 가치를 넣었다. “국민만 바라보고 가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그 결과 100석 안팎에 그칠 것이라던 지난 4·11 총선에서 152석을 획득하며 제1당을 유지하며 박 당선자의 위력이 또 한번 발휘됐다. 8월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박 당선자는 “이번 대선이 저의 마지막 정치 여정”이라며 국회의원직까지 내던지고 마지막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다. 그리고 12월 19일 박 당선자의 15년 정치 여정은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라는 새 기록을 남기며 새롭게 시작됐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MB, 친이 20여명과 회동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친이(친이명박)계 전현직 의원들의 산행 후 저녁식사 자리에 참석해 이들과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의 한 친이계 전 의원은 2일 “지난달 27일 산행 후 청와대 인근 식당에서 뒤풀이 하는 자리에 이 대통령이 잠시 참석해 이런저런 덕담을 나누는 자리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는 이재오 의원과 진수희 전 의원을 비롯한 친이계 전현직 의원 20여명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5년 전인 2007년 대선 때 함께 고생한 기억 등을 돌아보고 “나를 만들어 주느라 고생했다.”며 참석자들에게 덕담을 건넨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 문재인 대선 후보측 박광온 대변인은 “이 대통령이 당시 ‘정권 재창출에 힘써 주세요’라고 말했다는 보도가 있다. 선거법상 공무원의 선거 중립의무 위반 논란을 부를 수 있는 만큼 자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 참석자는 “밥 먹는 자리에서 한마디씩 하는 과정에서 누군가가 정권 재창출을 하자는 말이 나왔지만, 이 대통령이 이와 관련해 말한 적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부분 전직 의원들이라 최근 안부를 묻고 가벼운 얘기를 나눴을 뿐 정치적인 얘기는 없었다.”고 말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MB는 與협조 필요… 朴은 대통합 강조

    2일로 예정된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 간 회동은 서로의 ‘필요’와 ‘이해’가 일치해 성사된 것으로 보인다. 회동을 제안한 박 후보로서는 우선 이명박 정부 내내 드러난 친이명박계와 친박근혜계 간의 대립을 해소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대통합’의 메시지를 강조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대선후보 경선 과정 이래 줄곧 비우호적 태도를 보여온 이재오·정몽준 의원 등 친이계 인사들을 아우르는 실질적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현직 대통령이 당선은 못 시켜 줘도 떨어뜨릴 수는 있다.’는 정치권의 금언을 고려한다면, 회동의 필요성은 더 높아질 수 있다. 이 대통령으로서는 여당의 협조를 확보함으로써 레임덕 현상을 늦출 수 있다. 또한 일본과의 외교 문제, 북한 문제 등에 대해 국민에게 자세히 설명하는 기회도 갖게 됐다. 두 사람은 우선 태풍 피해와 민생 문제 등을 놓고 대화를 나눌 것으로 예상된다. 박 후보는 수해 재난 지역 선포 등 정부의 지원 약속을 이끌어 냄으로써 수권 후보로서의 이미지를 분명하게 할 수 있다. 기타 복지 분야에서 정부에 협조를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공개될 회담 내용은 이 정도 수준으로 예상된다. 야당으로서는 두 사람이 대통령 사저 관련 특검 문제와 검찰 수사 문제 등에 대해 협의했을 것이라는 공세가 가능하다. 박 후보 측은 31일 “인사 차원에서 만나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非朴 집단불참… 박근혜, 첫 상견례 ‘반쪽 스킨십’

    非朴 집단불참… 박근혜, 첫 상견례 ‘반쪽 스킨십’

    31일 경기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새누리당 국회의원·당협위원장 연찬회는 박근혜 대선 후보의 대선 필승을 다짐하는 취지로 마련됐다. 박 후보는 대선 후보 선출 이후 가진 당원과의 첫 상견례에서 스킨십에 주력하며 당내 화합과 소통을 시도했다. 점심 식사 시간에는 박 후보가 직접 의원들과 당협위원장에게 커피를 따라 주기도 했다. 그는 “보통 커피보다 나으실 거예요.”라는 농담을 곁들이며 분위기를 띄웠다. 하지만 ‘유신 논쟁’이 당내에서도 쟁점으로 떠오르고 비박(비박근혜) 진영이 행사에 대거 불참하면서 국민 대통합 행보와 당내 화합이 쉽지 않음을 예고했다. 박 후보는 “통합을 위해서는 마음의 벽을 허무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지만 대통합 행보가 위기에 봉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날 연찬회에서 눈길이 가는 대목은 비박 진영의 대거 불참이다. 정몽준, 이재오, 김태호, 김용태 의원을 포함해 ‘비박 의원’ 10여명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박 후보에 대한 불편한 마음을 우회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여겨진다. 2007년 8월 30일 당시 이명박 대선 후보 선출 직후 열린 지리산 연찬회에 박 후보는 물론 친박(친박근혜)계 의원들이 대거 불참한 것을 떠올리게 한다. 박 후보는 “정 의원, 이 의원과의 만남을 계속 추진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오늘은 연찬회가 있기 때문에 연찬회 중심으로 해야지….”라고만 했다. 한 재선 의원은 “국민 대통합을 말하는 만큼 이 의원과 정 의원도 같이 가야 한다.”면서 “(이 의원과 정 의원은) 자기들 신경을 안 써 주니까 나도 봐 달라고 그러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친이(친이명박)계 핵심인 조해진 의원은 “친이계 입장에서도 정권 재창출 이상으로 중요한 과제는 없다.”면서 “당 밖에서도 삼고초려하는데 당내에서도 (삼고초려를) 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런 가운데 “유신은 경제 발전을 위한 조치”라는 홍사덕 전 의원의 발언에 대한 당내 논란도 확산되고 있다. 당 비상대책위원을 지낸 이준석 클라세스튜디오 대표는 라디오 방송에서 “많은 사람이 유신에 대해 박 후보가 전향적 표현을 하지 않을까 기대한다.”면서 “저도 5·16, 유신에 대해 명확한 역사관을 요구하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상돈 정치쇄신특위 위원도 “유신 때 긴급 조치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인권 침해를 당했는데 홍 전 의원이 유신을 그렇게 말한 것은 엉뚱한 발언이고 실언 중에서도 심한 실언”이라고 지적했다. 박 후보가 초반 대통합 행보를 이어 가려면 유신 논쟁을 그냥 덮고 넘어갈 수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반면 친박계의 한 의원은 “나는 홍 전 의원의 발언이 괜찮다고 본다.”면서 “캠프 내에서 이런 말도 나오고 저런 말도 나와 다양한 의견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어 오히려 더 떠들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경두·이재연기자 golders@seoul.co.kr
  • [이상득·정두언 구속영장] 새누리 대선자금 수사여부 촉각

    저축은행 비리를 캐던 검찰 수사의 칼끝이 대선자금으로 향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정치권의 관심도 집중되고 있다. 특히 여권에서는 이번 수사가 2007년 대선은 물론 오는 12월 대선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다만 대선자금 수사로의 확대 해석은 경계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새누리당 이상득 전 의원과 정두언 의원이 각각 임석 솔로몬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것으로 의심되는 시점 가운데는 2007년 대선 직전도 포함돼 있다. 만약 돈을 받았다면 그 돈이 대선자금으로 쓰였을 가능성도 엿보이는 대목이다. 실제 검찰 안팎에서는 이 전 의원이 임 회장에게서 받은 3억원을 이명박 대선캠프에서 유세단장을 맡았던 권오을 전 의원에게 전달했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권 전 의원은 “전혀 사실무근”이라면서 “2007년 대선 당시 유세단장으로서 내가 쓴 돈은 100%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했다.”면서 강하게 부인했다. 권 전 의원은 이어 “검찰에서 수사한다면 얘기할 것이고, 숨기고 할 것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현재로선 검찰 수사가 어디로 튈지 모를 럭비공에 가깝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드러날 관련자들의 진술 여부에 따라 대선자금 관련성이 드러날 가능성도 전면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정치권 전반에 메가톤급 파장을 불러올 수 있다. 실제 새누리당의 한 친이(친이명박)계 의원은 “대선을 앞두고 지난 대선자금을 수사할 경우 대통령은 물론 여권 전체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다만 이 의원은 “(2007년 당시) 대선캠프에서는 주요 인사들이 개인적으로 돈을 마련해 알아서 쓰는 구조였다.”면서 “자금책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고, 대선자금을 불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고 선을 그었다. 또 다른 친이계 의원은 “기업가 출신인 이 대통령은 적어도 대선자금 문제에서는 노이로제에 가까울 정도로 엄격히 관리했다.”면서 불법 대선자금 가능성을 일축했다. 친박(친박근혜)계도 검찰의 수사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친박계 핵심 인사는 “대선자금을 본격적으로 수사하기는 어려운 것 아니냐.”면서도 “일단 검찰 수사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신중론을 폈다. 장세훈·황비웅기자 shjang@seoul.co.kr
  • 새누리 “경선 예정대로”… 8월19일 투표·20일 전당대회

    새누리 “경선 예정대로”… 8월19일 투표·20일 전당대회

    새누리당은 25일 대선 후보 경선을 예정대로 8월 20일까지 확정하기로 했다. 경선 방식을 확정하는 절차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당 지도부가 사실상 완전국민경선제(오픈프라이머리)에 반대하는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손을 들어 준 것으로 해석된다. 반대로 정몽준 전 대표와 이재오 의원, 김문수 경기도지사 등 비박(비박근혜) 대선 주자들은 경선 자체를 ‘보이콧’할 가능성이 커졌다. 새누리당은 이날 오후 국회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8월 19일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투표를 실시하고, 다음 날인 20일 전당대회를 열어 후보를 확정하기로 했다. 이는 당헌·당규에서 규정하고 있는 것이자 지난 20일 당내 대선후보경선관리위가 제안한 내용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이러한 경선 일정은 ‘당헌·당규가 변경되지 않는 현 상황’을 전제로 한 것이다. 그러나 8·20 전대까지 채 두 달이 남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경선 일정은 물론 방식도 현행의 국민참여경선, 즉 대의원 20%, 당원 30%, 일반국민 30%, 여론조사 20%로 구성된 선거인단 투표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는 기존 경선 규칙을 따르려는 박 전 위원장의 확고한 뜻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비박 주자들이 처음 오픈프라이머리를 주장했을 때부터 박 전 위원장은 현행 경선 규칙대로 해야 한다는 입장이 강했다. “당의 대통령 후보를 뽑는데 당원들의 뜻이 전혀 반영되지 않아서는 안 되고, 민심과 괴리가 커서도 안 된다.”는 이유로 현재의 당원과 국민의 비율이 50대50인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는 생각이었다. 친박계 내부에서는 오픈프라이머리를 할 경우 동원 선거가 불가피하고 이 과정에서 돈 선거가 이뤄질 경우 또다시 돈봉투 전당대회의 악몽이 되살아날 수 있다는 우려도 팽배했다. 박 전 위원장이 비박 주자들의 요구를 일부 받아들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분분했다. 그러나 ‘민생’을 최우선으로 내걸고 있는 박 전 위원장으로서는 오픈프라이머리를 두고 논쟁을 벌이는 것 자체가 소모적으로 비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런던올림픽을 피해 경선 시기를 뒤로 늦춰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박 전 위원장은 “올림픽도 중요한 국제행사지만 당의 대선 후보를 뽑는 것도 중요하다.”는 의견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박 전 위원장의 의지가 확고하자 당 지도부도 서둘러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한 최고위원은 “경선 규칙 문제는 처음부터 협상이나 양보의 문제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분위기 때문에 이날 오후 최고위원회의에서는 별다른 이견 없이 당헌·당규대로 일정을 확정 지을 수 있었다. 친이계인 심재철 최고위원만 올림픽을 감안해 한 달 정도 미뤄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며 동의하지 않고 회의장을 빠져나왔다. 다만 지도부는 “경선 규칙 및 당헌·당규를 바꾸는 문제는 지도부가 예비 주자들과 논의한다.”며 가능성을 남겨 뒀다. 장세훈·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첫 충청출신 의장… 의장은 親朴·부의장 親李 안배

    첫 충청출신 의장… 의장은 親朴·부의장 親李 안배

    2014년 상반기까지 2년간 19대 전반기 국회 운영을 책임질 국회의장과 여당 몫 부의장에 친박(친박근혜)계 강창희 의원, 친이(친이명박)계 이병석 의원이 내정됐다. 계파·지역 배분을 고려한 새누리당 의원들의 전략적 선택이 작용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날 국회에서 열린 의장단 후보 선출을 위한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친박계인 강 의원은 비주류 친이계인 정의화(부산 중동) 의원을 눌렀다. 헌정 사상 64년 만에 첫 충청권 출신 국회의장이 확실시된다. 그는 앞서 출마의 변에서 “헌정 사상 64년간 유독 충청권과 제주도 출신 의장만 배출하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충청인의 염원으로 정권 재창출에 기여하겠다.”며 한 표를 호소했다. 당선 소감으로는 경청을 강조하면서 ‘123 기법’을 소개했다. “한 번 말하고 두 번 듣고 세 번 맞창구치는 123 기법을 좋아한다.”면서 “여당에는 한 번, 야당에는 두 번, 국민에게는 세 번 물어 의견을 듣겠다. 훗날 19대 국회에 강창희 의장이 있어서 좋았다는 평가를 들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통합진보당 이석기·김재연 의원에 대한 국회 차원의 제명 움직임에 대해서는 “(의원 자격심사) 법 조항이 있더라도 여야 원내대표들끼리 합의가 돼야 한다.”며 말을 아꼈다. 의장 당선 전까지는 관련 입장을 유보할 뜻을 내비쳤다. 당 대표와 원내대표, 사무총장에 이어 차기 국회의장에도 친박계가 지명되면서 한쪽에선 ‘친박 독식’ 논란도 예상된다. 정 후보가 48표를 얻으며 선전한 것도 비주류계와 76명이나 되는 초선 의원들의 견제 심리가 어느 정도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민주통합당은 아쉬움을 토로했다. 우원식 원내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우리 국회가 언제까지 과거 회귀형이어야 하는가의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면서 “강창희라는 이름 앞에는 ‘육사25기 하나회 멤버’, ‘신군부 막내’, ‘민정당’이라는 과거형 수식어가 붙어 있다.”고 지적했다. 부의장 자리 역시 친박계와 비박계의 대결이었다. 친이계인 4선 이병석(포항 북구) 의원이 총 130표 중 76표를 얻어 54표에 그친 친박 4선 정갑윤(울산 중구) 의원을 누르고 여당 몫 부의장 후보로 선출됐다. 이 의원은 친이 핵심이라는 이유로 현 정부에서 오히려 비중 있는 역할을 맡지 못하는 등 역차별도 받았다. 18대 국회에서 원내대표직에 2차례 도전했지만 모두 뜻을 이루지 못했다. 2010년 원내대표 경선에선 주류인 친이계의 당 화합론 속에 친박 김무성 의원에게 원내대표직을 양보했고, 지난해 경선에도 출마했으나 고배를 마셨다. 이 의원은 인사말에서 “풍부한 원내 경험을 바탕으로 강창희 의장이 펼칠 19대 의정 전반기에 대한민국 국회를 선진국회로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해 보필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총회에 이재오, 정몽준 등 비박 대선주자들은 민생투어 등 개인일정을 이유로 불참했다. 김용태, 권성동, 정두언 의원 등 비박계 의원들의 불참도 눈에 띄었다.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총회 시간에 맞춰 의총장에 도착해 맨 뒷좌석에서 투표 진행을 지켜봤다. 이재연·최지숙기자 oscal@seoul.co.kr
  • 상임위·소위통해 충분한 협의… 투표때 당론 강요 말아야

    상임위·소위통해 충분한 협의… 투표때 당론 강요 말아야

    ‘파행·폭력·불량’…18대 국회가 남긴 많은 오명 뒤에는 여야의 ‘당론’이 자리 잡고 있었다. 쟁점 법안을 두고 여야가 강제적 당론을 고집하다 보니 충돌은 늘 예정된 수순이었다. 2008년 12월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서 시작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갈등은 지난해 11월에야 종지부를 찍었다. 4년 가까이 시간을 끌었지만 결과는 새누리당의 강행처리였고 야당은 이를 막기 위해 해머·전기톱·최루탄까지 들고 나왔다. 여야 당론의 ‘중간’은 없었다. 극한 대립을 막아 보자며 여야 의원들 일부가 모여 한·미 FTA가 발효되는 즉시 투자자국가소송제(ISD) 존치 여부를 협상하자는 내용의 중재안을 제시했지만 각당 지도부가 용납하지 않았다. 비준안이 통과되자 민주당은 한·미 FTA 무효화 결의안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2009년 초 미디어법이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에 상정된 뒤부터 문방위는 여야 의원들의 전장이 됐다. 상임위 회의장에서 점거농성이 벌어졌고 그나마 회의가 열리면 신문·대기업의 방송지분 소유 문제를 두고 의원들은 각당의 입장만 되풀이했다. 7월 본회의를 일주일 앞두고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당론에 반대되는 의사를 내세우자 한나라당은 그제서야 급히 수정안을 만들었다. 이어 7월 22일 박 전 대표의 입장이 반영된 미디어법을 날치기 통과했다. 세종시 수정안은 17대 국회에서 정해졌던 당론이 여당 내 분열을 심화시킨 계기가 됐다. 2005년 17대 국회에서 정해진 세종시법을 2010년 정부가 백지화하려 하자 친이계와 친박계가 첨예하게 대립했다. 17대 국회의 당론을 변경하는 절차를 밟을 것인지, 세종시 수정안 자체로 새로운 당론을 채택할 건지를 두고 4개월 남짓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이 같은 국정현안뿐 아니라 교육·복지 등 사회분야에도 어김없이 당론이 정해졌다. 민주당에서 전 계층 100% 무상보육, 반값등록금 등을 당론으로 정하면 한나라당에서는 이와 배치되는 입장을 냈다. 6·2 지방선거에서 교육의원을 어떻게 선출할지를 두고도 여야 당론이 어긋나 교과위가 파행하기도 했다. 전문가들도 독립된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이 당 지도부의 의견에 휩쓸리는 강제적 당론은 지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조정관 전남대 교수는 29일 “우리 국회에서 당론이라는 것은 당 지도부와 여당에서는 대통령, 야당은 다음 대권 주자들의 일방적인 의견에 휘둘리는 경우가 많다.”면서 “국회 상임위나 소위원회를 통해 여야가 충분히 토론을 거쳐 합의를 이루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각당에서도 투표에 한해서는 당론을 강요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시사평론가 김종배씨는 “당 지도부의 의견을 두려워하는 것은 결국 공천이 걸려 있기 때문이고, 자유투표는 제도의 문제이기 이전에 의지의 문제”라면서 “당의 정체성과 직결된 문제는 당론을 정하되 나머지는 자유롭게 열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허백윤·송수연·최지숙기자 baikyoon@seoul.co.kr
  • 국회의장 강창희·정의화 2파전

    국회의장 강창희·정의화 2파전

    새누리당이 다음 달 1일 국회의장과 여당 몫 국회부의장 후보를 당내 경선을 통해 선출한다. 신의진 원내대변인은 25일 브리핑에서 “6월 1일 국회에서 국회의장과 부의장 후보 선출을 위한 당내 경선을 실시한다.”면서 “후보자 접수는 30일까지 받는다.”고 밝혔다. 현재 국회의장 자리를 놓고는 친박(친박근혜)계 강창희(왼쪽·6선) 당선자와 친이(친이명박)계 정의화(오른쪽·5선) 국회의장 직무대행이 경쟁을 벌이고 있다. 강 당선자와 정 의장 직무대행은 이날 오전 만나 조율을 시도했으나 두 사람 모두 출마 의지가 강해 표 대결로 가게 됐다. 또 여당 몫 국회부의장 자리를 놓고는 친박계 정갑윤(4선) 의원과 친이계 이병석(4선) 의원이 맞붙은 상태다. 친박계가 당을 장악한 상황에서 국회의장단 역시 친박계가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있다는 관측이 있는 반면 ‘친박계 독식’ 논란 속에 계파·지역 안배 요구도 적지 않다는 게 변수로 꼽히고 있다. 국회의장과 부의장 모두 계파 대결 구도라는 점에서 계파를 고려한 전략적 선택이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국회의장과 부의장은 국회 본회의에서 무기명 투표로 최종 확정되는 만큼 원내 제1당인 새누리당 몫으로 분류된다. 새누리당은 원 구성 협상이 난항을 겪더라도 다음 달 5일 본회의를 열어 국회의장단 구성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오세훈·원희룡 영국 유학길… 與 친이계 각자도생 모드로

    오세훈·원희룡 영국 유학길… 與 친이계 각자도생 모드로

    19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새누리당의 구주류인 친이(친이명박)계 의원들이 각자도생에 나서고 있다. 유학길, 해외여행에 오르거나 본업으로 돌아가는 등 야인 채비를 서두르는 모습이다. 대선을 전후해 새로운 정치적 역할을 모색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는 관측이 나온다. ●안상수 서초동에 변호사사무실 6월 초 영국으로 떠나는 원희룡(오른쪽) 의원은 11월 말까지 약 6개월간 현지에 체류할 계획이다. 최근 케임브리지대학의 아시아중동연구소와 다윈칼리지 2곳으로부터 방문연구원 승인을 받았다. 원 의원은 이곳에 적을 두면서 독일 아데나워재단, 노르웨이 노르딕아시아연구소 등 유럽의 싱크탱크, 유럽 정부·정당들이 운영하는 각종 프로그램에 참여한다는 구상이다. 올해 대선까지 불출마를 선언한 상황에서 당장 당 내 역할에 연연하기보다 사회 양극화, 보수의 사회적 가치 등을 재점검하는 시간을 가질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최근 트위터에 방문연구원 승인 소식을 올리며 “총선 불출마 후 인생 하프타임의 재충전 시간”이라고 기대감도 드러냈다. 오세훈(왼쪽) 전 서울 시장도 26일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출국할 예정이다. 현지에서 영국의 국제관계 등 각종 포럼에 참석하며 학문적 기반을 다진 후 중국 유학의 뜻을 내비치고 있다. 그는 지난해 8월 무상급식 주민투표 패배 이후 시장직에서 물러나 외부 행보를 끊은 채 조용히 칩거해 왔다. 지난 총선 때 자신의 지역구(경기 의왕·과천)에서 낙천한 안상수 전 대표는 최근 서울 서초동에 변호사 사무실을 냈다. 안 전 대표 측 관계자는 “당분간 본업에 충실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낙선의원들 美서부 버스투어 김무성 의원을 필두로 한 안경률·조전혁·정옥임·안형환 의원 등은 6월 초 미국 버스투어를 떠날 계획이다. 로스앤젤레스 등 미국 서부를 보름 정도 여행하며 18대 국회 임기를 정리한다는 복안이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親李직계서 ‘박근혜당’ 입으로… 김영우의 힘

    親李직계서 ‘박근혜당’ 입으로… 김영우의 힘

    21일 새누리당 대변인으로 임명된 재선의 김영우(경기 연천·포천)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의 친위그룹 역할을 했던 ‘안국포럼’ 출신으로 친이(친이명박) 직계로 분류된다. 그럼에도 사실상 ‘박근혜 친위 체제’가 완성된 새누리당에서 입 역할을 맡게 됐다. 김 신임 대변인은 2007년 이명박 당시 대선 후보의 싱크탱크 역할을 했던 국제정책연구원(GSI)에서 정책국장으로 활동했다. 이명박 정권 초기에는 ‘개국 공신’으로 친이 직계 그룹의 한 명이었다. 하지만 박근혜 비상대책위원회 체제가 출범하면서 제1사무부총장으로 임명돼 4·11 총선과 당 쇄신 작업을 도왔다. 그러면서 친박(친박근혜)계와도 가까워졌고 관계도 원만하게 이끌어 왔다는 점이 고려 대상이 됐다는 후문이다. 2010년 8월에는 박 전 비대위원장이 이 대통령과의 회동에 이어 친이계 의원들과 잇따라 가진 오찬 회동에서 김 의원을 가장 먼저 만나기도 했다. 친박계 중진인 서병수 의원이 사무총장에 낙점되면서 ‘계파 안배’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친박 일색이라는 부담을 덜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당 관계자는 “박 위원장을 도와 제1사무부총장직을 무리 없이 소화해낸 점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당에서는 그가 원만한 성품을 바탕으로 당 화합에도 일조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 신임 대변인은 “대변인이라고 하면 당의 입도 돼야 하지만 당이 추구하는 가치와 비전을 국민들에게 잘 전달할 수 있는 새누리당의 가슴이 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45세·경기 포천 ▲경희고등학교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YTN 기자 ▲국제정책연구원(GSI) 정책국장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정책자문위원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 ▲새누리당 제1사무부총장 ▲18·19대 국회의원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범친박 73·중립 63·非朴 11… 새누리 ‘계파의 재구성’

    범친박 73·중립 63·非朴 11… 새누리 ‘계파의 재구성’

    새누리당 내 계파 지형이 재구성되고 있다. 18대 국회에서 첨예하게 대립했던 친이명박계와 친박근혜계 등의 계파색이 모호해지는 양상이다. ‘친박’ 일색으로 당 지도부가 꾸려졌지만 19대 국회 내 친박 성향 분포는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신 중립 지대의 비중이 커졌다. 서울신문이 19대 당선자 150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초선의원)와 기존 계파 분류 등을 바탕으로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에 대한 지지 성향을 분석한 결과 범친박 성향은 모두 73명에 달했다. 과거부터 뚜렷한 친박 성향을 드러냈던 당선자가 60명, 쇄신파 등 박 전 위원장에게 우호적인 성향(우박)이 13명이었다. 특정한 지지 성향을 드러내지 않은 중립파가 63명이었고 비박계는 11명에 불과했다. 국회에 갓 입성한 초선 당선자들은 특정 지지 색채를 드러내는 데 상당한 부담감을 보였다. 전체 76명의 초선 당선자 가운데 과반수인 42명이 중립파에 포함됐다. 지난 2007년 대선 직후에 선출된 18대 국회의원들은 초반부터 친이계와 친박계로 뚜렷하게 나뉘었다. 무엇보다 대선 경선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정치적인 활동 공간이 변화할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권은희(대구 북갑) 당선자는 “아직 다른 의원들과의 관계 등에서 경험하고 느낀 게 없다.”면서 “의원 생활을 하고 대선 경선을 거치면서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신동우(서울 강동갑) 당선자도 “각자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 판단해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지금 내 입으로 얘기하기는 곤란하다.”며 난색을 표했다. 특히 비례대표 당선자들은 소수만 제외하고 중립으로 파악됐다. 이들은 공천을 받은 것에 대해 박 전 위원장과의 연관성보다는 자신의 전문성에 방점을 찍었다. 강은희(비례 5번) 당선자는 “저는 정보기술(IT)업계 및 소프트웨어 부문에서 상징성이 있어서 여러 곳에서 추천을 받았다.”면서 “제 일을 하러 들어왔기 때문에 계파란 게 없다.”고 말했다. 중립파에 속한 재선 이상 의원 상당수는 18대 국회에서 친이계로 분류됐던 의원들이었다. 박 전 위원장 체제를 거치며 계파색이 옅어지면서 옮겨진 양상이다. 친이 직계였던 김영우·조해진 의원도 모두 중립 성향을 자처했다. 한편 73명의 친박계 비중은 18대 국회에 비해 조금 늘어난 규모다. 친박계가 크게 세를 불리지는 않았다는 방증이다. 친박계의 규모는 18대 국회에서부터 50~60명 선으로 유지됐다. 2008년 18대 총선 직후 당내 친박 당선자 35명과 친박 연대 및 친박 무소속 당선자 26명 등 60여명에서 출발한 친박계는 이후 한나라당으로 복당한 인사들 50여명으로 이어졌다. 계파 갈등이 첨예했던 2010년 6월 세종시 수정안 표결에서는 친박 50여명과 중립 10여명이 반대표를 던졌다. 지난해 원내대표 경선에서는 친박 성향 의원들이 더욱 많아졌다. 친박계와 쇄신파의 지원을 받았던 황우여 대표가 1차 투표에서 얻은 64표가 친박 성향으로 분류됐다. 이처럼 친박계의 ‘총량’이 크게 변하지 않은 데 대해 일부 친박계 관계자들은 “박 전 위원장이 공천이나 인사에 직접 개입을 안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 전 위원장이 인위적으로 자기 사람을 심는다거나 친박계 인사들을 ‘관리’하는 경우가 없다는 것이다. 박 전 위원장은 “친이, 친박은 없다.”면서 계파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지난 4·11 총선에서도 박 전 위원장은 시스템 공천을 내세웠고 이 때문에 당선자들은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아 공천을 받았다고 생각한 경우가 많았다. 황비웅·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박근혜 친정체제 구축… ‘非朴 3인방’ 경선룰·개헌 공세 예고

    박근혜 친정체제 구축… ‘非朴 3인방’ 경선룰·개헌 공세 예고

    새누리당은 5·15 전당대회를 계기로 명실상부한 박근혜 친정체제를 구축했다. 사실상 ‘박근혜당’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9일 선출된 원내지도부가 친박을 주축으로 꾸려진 데 이어 당 지도부도 친박계가 장악했다. 당 살림살이를 책임지는 사무총장까지 친박계가 예상된다. ‘박근혜 대세론’에 힘이 더해지는 한편으로 정몽준·이재오·김문수 등 비박(비박근혜) 진영 대선주자 3인방의 공세도 이에 비례해 거세질 전망이다. 이들은 이미 완전국민경선제(오픈프라이머리)와 개헌론 등을 놓고 연일 박 전 비상대책위원장을 공격하고 있다. 이번 지도부는 대선 후보 경선을 공정하게 관리하고 본선에서 야당의 공세를 차단해야 하는 책임을 요구받고 있다. 공정성을 둘러싸고 비박 주자들의 공세가 강화되면 당 지도부의 위상이 흔들릴 개연성도 없지 않다. ●이혜훈, 박근혜 경호실장 역할 그런 점에서 2위에 오른 이혜훈 최고위원은 박근혜 전 대표의 ‘정치적 경호실장’ 역할을 맡을 수도 있다. 황우여 당 대표는 ‘공정’의 지대에 남아 있어야 한다. 이 최고위원은 4·11 총선 공천에서 낙천하며 잠시 위기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총선 선대위 상황실장으로 선거를 승리로 이끈 데 이어 2위를 차지하면서 당 내 입지를 확고히 했다. 앞서 컷오프 여론조사에서도 2위에 오르는 저력을 과시했다. 원외 최고위원이지만 총선 실전을 치른 내공을 바탕 삼아 경제 민주화 등 대선 공약에서 주도적 목소리를 낼 것으로 보인다. ●친이 심재철은 지도부 견제 3위 심재철 최고위원은 유일한 친이(친이명박)계로 당 지도부에 입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원유철 후보와 친이계 표를 나눠 가지며 선거인단 투표에선 5위 안에 들지 못했다. 그러나 여론조사 2위(19.39%)로 전체 개표 결과 3위를 기록하며 지도부에 입성했다. 심 의원의 당선으로 새누리당은 친박계 일색이라는 비판을 일정부분 탈색시킬 수 있을 전망이다. 대선 국면에서 비박 대선주자를 비롯해 친이계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당 지도부를 견제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충청 정우택·영남 유기준도 입성 정우택 최고위원은 충청을 대표하고 있다. 15·16대 의원 이후 8년 만에 3선 고지를 밟으며 최고위원에도 올랐다. 같은 충청 출신인 김태흠 후보와 단일화를 이뤄내진 못했지만 충청·강원, 수도권 일부에서 표를 끌어모았다. 유기준 의원은 유일한 영남권 후보로 전체 선거인단의 30% 가까이 되는 부산·경남(PK)표, 친박계의 지지에 힘입어 선거인단 투표 3위(7742표)로 무난히 당선됐다. 18대 총선 ‘친박무소속연대’ 출신으로 “당내 적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홍문종 후보는 경기도 조직표의 여세를 몰아 선거인단 투표에서 당선권에 들었지만 여론조사 결과를 뒤집지 못했다. 계파 간 화합을 강조했던 원유철 후보는 경기도 출신 심·홍 최고위원과 표가 갈리면서 4700여표에 그쳤다. 유일한 호남권 후보였던 김경안 후보는 3800여표를 얻으며 선전했다. 이재연·황비웅·최지숙기자 oscal@seoul.co.kr
  • 허백윤 기자 ‘배낭여행’ 김무성 의원 동행 취재기

    허백윤 기자 ‘배낭여행’ 김무성 의원 동행 취재기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허리춤에 수건까지 매달았다. 넥타이를 풀고 면바지를 입었다. 호남 지역을 배낭여행 중인 ‘부산 사나이’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을 만나기 위해 지난 9일 저녁 전남 장흥을 기습 방문했다. 이어 10일에는 김 의원과 보성과 순천 일대를 함께 누볐다. 보성 녹차영농조합,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 준비 현장 등을 방문했다. 김 의원은 총선 당시 공천을 놓고 논란이 일자 한 발 앞서 백의종군을 선언한 뒤 5선 도전의 꿈을 스스로 접었다. 총선 승리에 기여한 뒤에도 “묵언 수행 중”이라며 언론에 일절 나오지 않고 있다. 1박 2일 동안 나눈 취중 진담, 노상 대화 등을 인터뷰 형식으로 엮었다. →공천이 결정되기 전에 한 발 앞서 ‘백의종군’을 선언한 이유는. -그때 당 공직후보자추천위원회가 결정을 계속 뒤로 미루는 상황이었다. 기자회견을 언제 할지 시점을 저울질하고 있었다. →기자회견의 내용은 무엇이었나. -세 가지 안을 준비했다. 첫째는 신당 창당이었다. 둘째는 혼자 탈당해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뒤 복당하는 것이었다. 마지막이 백의종군이었다. →신당을 창당하려는 생각이 강했다는 뜻인가. -당시 수도권에서 공천을 받지 못한 친이(친이명박)계 의원들이 15명 이상 됐다. 친박(친박근혜)계는 다 공천을 받았다. 기자회견 전날 밤 국회의원회관에서 회견문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오후 9시쯤 한 의원이 전화를 했다. 모처에 모여 있으니 오라고 하더라. 갔더니 낙천한 친이계 의원 10여명이 있었다. 그 사람들은 박세일씨의 ‘국민생각’으로 갈 생각이길래 “그러지 말고 나한테 다 생각이 있으니 기다려라. 나랑 같이하자.”고 했다. →신당 창당의 명분은 뭐였나. -신당을 만들면 우리가 20석 정도 나오고, 그 다음 자유선진당 5석 정도 합치면 국회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어느 쪽도 과반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도록 하고 중간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겠다는 거였다. 선진당과도 물밑 대화가 어느정도 있었다. →그런데 왜 백의종군을 택했나. -다시 돌아와서 기자회견 준비를 하다 보니 내가 그렇게 하면 ‘새누리당은 박살나고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도 날아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전부 야권이 차지하는 것 아니겠나. 다시 생각하니 역사적 죄인이 될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백의종군하겠다고 최종 결정했다. →후회는 없나. -잘한 것 같다. 기자회견을 하고 나니까 ‘애국심이라는 게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와 전혀 관련 없는 사람들, 해외 교포들까지 어떻게 전화번호를 알았는지 전화를 해서 잘했다고 하더라. 정갑윤 의원은 전화해서 울음을 터뜨리더라. 많은 야당 의원들도 격려 전화를 했다. →‘김무성 역할론’이 나왔다. 왜 5·15 전당대회에 나오지 않았나. -지금 이 시점에 당 대표를 하겠다는 것은 개인의 경력을 쌓을 생각으로 해서는 안 되고 대선 승리를 이끌어야 하는 역사적 사명이 필요한 자리다. →친이계로 돌아섰다가 다시 친박계로 복귀했다는 뜻에서 김 의원을 ‘복박’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크게 웃은 뒤) 아직 ‘복’은 안 했다. 그런데 그게 뭐가 중요한가. 계파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할 거다. →김 의원은 지난달 25일 박 위원장이 당내 낙천자들과 점심을 할 때 “배낭여행자를 모집한다.”고 얘기한 것으로 안다. 왜 호남인가. -오래 전부터 호남에 관심을 가져 왔다. 지역감정을 해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 아버지는 호남에 큰 기업을 세우셨고 나도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하면서 지역감정 해결에 관심이 많았다. 민주당은 호남당, 새누리당은 영남당 이렇게 돼 있는데 이걸 뿌리 뽑아야 한다. →지역감정을 어떻게 풀겠다는 것인가. -DJ(김대중 전 대통령)와 YS(김영삼 전 대통령)가 돌아가시기 전에 화해해서 지역감정을 풀어야겠다고 하고 동교동계와 노력을 많이 했지만 안 됐고 결국 DJ는 돌아가셨다. YS에게 돌아가시기 전에 호남과 화해하고 지역감정을 풀고 가셔야 한다고 얘기했다. 내가 자유로운 처지가 됐으니 이렇게 여행 다니면서 교류를 하다 보면 결국 둑이 무너지지 않겠나. →지역감정을 푸는 열쇠가 있나. -핵심은 인사다. 인사에 제대로 안배를 안 하면 거기서 불만이 나오고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 YS 때 청와대 민정비서관실에 60여명이 있었는데 그중 호남 출신은 한 명도 없었다. 다음 정권 잡는 사람은 반드시 탕평책을 써서 공정한 인사를 해야 한다. →지난 6일부터 벌써 5일째다. 호남을 돌아본 소감은. -가는 곳곳마다 감동이다. 그동안 개인시간도 없이 너무 아등바등 살았다. 돼지가 사육당하듯 그렇게 살았던 것 같다. 이렇게 좋은데…. →지역대결 구도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나. -이제는 좌우 대결이 될 것이다. 세계적인 추세도 그렇다. →19대 국회 첫 원내대표로 이한구 의원이 당선됐다. -새누리당 이한구, 민주당 박지원 둘 다 성격이 강해서 협상하기 쉽지 않겠다. 19대 국회 개원 조건으로 야당에서는 이명박 대통령 비리진상조사특위, 청문회, 국정조사, 특검 등을 들고 나올 것이다. 쉽지 않아 보인다.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는 누가 유력한가. -박 위원장이 제일 유력하지. →향후 계획은. -당분간 계속 여행을 다닐 거다. 다음에 시간이 나면 전북 지역도 다닐 계획이다. 이번 배낭여행에는 4·11 총선에서 낙마한 김선동·김성수 의원과 2007년 대선 경선 당시 김무성 의원이 이끌었던 호남 지역 당협위원장들이 동행했다. 지난 6일부터 6박 7일 동안 함평 나비축제, 무안공항, 여수세계박람회 등 전남 지역의 현안이 있는 곳마다 발길이 닿는 빽빽한 일정이 짜여 있었다. 장흥·보성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19대 국회 민생경제 회복에 최우선”

    새누리당 새 원내대표로 선출된 이한구 의원의 러닝메이트로 나선 3선의 진영(서울 용산) 의원은 두 번째 도전 끝에 새 정책위의장에 당선됐다. 2004~2005년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비서실장을 지내며 측근으로 자리했으나 이후 2010년 7·28 서울 은평을 재선거에서 친이(친이명박)계 좌장 격인 이재오 의원을 도우면서 ‘탈박(박근혜)’으로 자리를 바꿔 앉았다. 그러나 이번에 이한구 의원과 짝을 이뤄 새 원내 사령탑으로 선출되면서 소원해졌던 친박계 의원들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계기가 마련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박 위원장이 전날 어버이날 행사로 그의 지역구인 용산을 방문하면서 ‘박심’(朴心)이 실렸다는 해석을 낳기도 했다. 진 정책위의장은 온화하고 합리적인 성품이 강점이다. 특히 친박이면서도 친이계와 가까워 친이·친박 간의 화합 카드로 많이 거론되고 있다. →당선 소감은. -이번 지도부는 대선을 준비하는 지도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구성이나 여러 활동에 있어 대선 승리를 위한 준비를 철저히 하고 충분히 응답할 수 있도록 인적구성이나 정책이나 열심히 하겠다. 대표님이 정책을 워낙 잘 아시니까 배우면서 국민들의 뜻을 받들어 가면서 하겠다. →앞으로 정책위의장으로서 어떤 정책(또는 역할)을 펼쳐 나갈 예정인가. -대선 공약은 총선 공약과는 다르다. 국가적 차원의 일이기 때문에 국정 철학도 준비해 가면서 큰 그림 속에서 마련해야 한다. 구체적인 실천도 뒤따라야 한다. 또한 그에 앞서 총선 공약을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빠른 시일 내에 지킬 것이다. →19대 국회가 개원하면 가장 시급히 추진하고자 하는 정책은. -민생 현안이 아무래도 가장 중요하지 않겠나. 민생 경제를 일으켜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서민들을 돕는 일이 우선이다. →장기적인 차원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책은. -거시적인 문제로는 남북통일, 국제 외교 등을 포함한 국가 발전 전략을 따로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약속을 실천하는 일이 장기적으로도 중요한 과제다. 북핵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그리고 현 정권에서 진전이 없었던 남북 관계도 진전되도록 해야 한다. 저출산 문제 해결도 중요하다. 또 국제경제가 침체되는 상황에서 닥치는 쓰나미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의 문제도 남아 있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진영 정책위의장 ▲62·서울 ▲서울대 법학과 ▲사법시험 합격(17회) ▲서울지법 남부지원 판사 ▲변호사 ▲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후보 정책특별보좌역 ▲한나라당 기획위원장 ▲17, 18, 19대 국회의원(서울 용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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