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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강수타령’ 왈가닥 김민선은?

    ‘한강수타령’ 왈가닥 김민선은?

    ■ 누구나 비밀은 있다 “제가 하마터면 여러분앞에 서지 못할 뻔한 사실 아세요?” 김민선이 출생의 비밀(?)을 살짝 공개했다. 그녀는 1남 4녀 가운데 넷째 딸. 그녀가 태어날 당시엔 이미 위로 세명의 언니가 있었고, 부모님은 아들을 간절히 원하던 상태였다. 그러던 중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를 뱃속에 가진 뒤 병원에서 초음파 검사를 받게 됐고, 내심 ‘아들이 아니면 지울까?’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당시 뱃속에 있던 제가 다행히도 초음파 검사 내내 양손으로 몸의 중요 부분(?)을 가리고 있었기 때문에 딸인지 아들인지 구별이 불가능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며 멋쩍은 웃음을 보였다. 그녀는 또 “어머니께서 ‘꿈이 너무 좋아 마음을 되돌렸다.’고 알려주셨다.”면서 “어머니가 황금으로 된 산(山)을 안고 집으로 돌아오시는 꿈을 꾼뒤 곧 저를 낳으셨고, 장래에 큰 인물이 될 것을 예견하신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아무래도 저는 여러분들 앞에서 연기를 하며 기쁨을 전하라는 하늘의 계시로 태어난 것 같아요. 제 가족은 물론 여러분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김민선이 되겠습니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몸에 꼭 맞는 옷을 입은 듯 자연스러움이 묻어난다. 고기가 물을 만난 듯 생동감도 넘친다. 요즘 김민선(25)의 연기에 잔뜩 물이 올랐다. MBC 주말 드라마 ‘한강수 타령(극본 김정수, 연출 최종수)’에서 사고뭉치 ‘미운 둘째 딸’ 윤나영 역을 맡아 열연 중인 그녀가 ‘살아있는 연기’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휘어잡고 있다. 뽀글뽀글 파마를 한 채 남자를 향해 거침없이 육두문자를 쏟아내고,“너 잘났다.”며 큰언니에게 바득바득 대들기 일쑤지만, 전혀 어색하거나 밉게 느껴지지 않는다. 연기 같지 않은, 실감나는 연기로 오히려 시청자들의 공감과 쾌감을 이끌어낸다. 드라마 ‘유리구두’, 영화 ‘하류인생’ 등을 통해 탄탄한 연기력을 선보인 그녀지만, 유독 이번 드라마 연기에 혼이 실려있는 이유는 뭘까. #연기를 통해 어머니를 만나다 “영화 ‘하류인생’이 어머니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면, 드라마 ‘한강수 타령’은 어머니께 철들어가는 딸의 모습을 보여드리는 작품이에요.” 최근 어머니를 잃는 아픔을 겪은 그녀는 “나영의 연기를 통해 돌아가신 어머니께 그동안 못다한 말을 전하고 있다.”며 눈시울을 붉힌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드라마 ‘한강수 타령’의 출연으로 이어졌다고 말한다.“평소 어머니께 ‘사랑해요’라는 말을 마음에 담아 전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돌아가신 뒤 그저 ‘한’으로 남을 뿐이죠. 극중 나영의 입을 통해서나마 한마디 ‘사랑해요’라는 말을 전해 드리고 싶었어요.”극중 어머니인 고두심을 친어머니라고 여기며 연기하고 있단다. 연기를 연기로 느끼지 않아서일까. 주위에서는 그녀의 연기에 대한 호평이 쏟아진다. 하지만 그녀는 “기분좋다.”면서도 겸손한 답변을 내놓는다.“재첩국 같이 진한 맛은 없어도 담백한 맛이 있는 드라마여서 시청자들의 공감을 사는 것 같아요. 그 안에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둘째딸인 나영이 있죠. 어느 연기자가 맡았어도 칭찬을 받았을 거예요.” 그녀가 보는 자신의 ‘분신’인 나영은 어떤 인물일까. 그녀는 “갈피 못잡고 어디로 튈지 모르죠. 정형화되지 않은, 한마디로 ‘얌체공’같은 재미있는 구석이 있는 여자”라고 설명한다.“드라마속에서는 ‘감초’나 ‘양념’같은 역할이지만, 우리네 딸들에게는 주인공인 셈이죠.” #현실속 김민선을 만나다 고1때 안무를 담당하던 친언니를 따라 방송국에 놀러간 그녀는 뮤직비디오에 출연키로 한 여배우가 펑크를 내 안절부절하던 프로듀서의 눈에 띄어 ‘대타’로 기용, 연예계에 발을 들였다. 이후 잡지와 CF모델일을 하며 얼굴을 알렸고, 영화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를 통해 본격 연기자로 데뷔하면서 승승장구하고 있다.“여기까지 온 과정도 그러하지만, 앞으로도 급하게 잘 되길 바라지는 않아요.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희망적인 삶이 될 거라 생각해요.” 그녀의 평소 성격은 이중적인 모습이다. 일할 때는 붙임성 있고 활기차지만, 집에서는 말없이 혼자있기를 좋아한다. 그녀는 스스로를 ‘완벽주의자’라고 표현한다.“성장하면서는 ‘가족’안에서 그랬고, 지금은 ‘일’이라는 틀 속에서 제 스스로에게 인정받아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에요.‘연기’에 모든 힘을 쏟아부어야 하기에 일상에서는 에너지를 비축하려고 하죠.” 그녀는 생각이 많다. 스스로도 “단순해질 필요가 있다.”고 말할 정도. 연기 준비에 있어서도 그녀의 ‘생각많음’은 그대로 녹아 있다.“새 역할을 맡으면 그 인물의 과거사를 일기쓰듯 가공해 정리해요. 그것을 바탕으로 현재의 그를 연기하고 미래의 그를 예견하면 좀더 느낌있는 연기가 나오는것 같아요.” “저는 지금 ‘한강수 타령’을 통해 제 자신을 벗어나 여행을 떠나 온 사람이에요. 제 안에 있는 아픔 등 모든 것을 떨어내는 과정에 있죠. 차기 출연작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비워놓은 것도 같은 맥락이고요.”다음엔 어떤 작품, 역할이 김민선의 또 다른 매력을 끄집어낼까 궁금해진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사진 강성남기자 snk@seoul.co.kr
  • 또 에스컬레이터 사고

    14일 오후 6시50분쯤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센트럴시티에서 지하철 3호선으로 이어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던 박모(26·여)씨가 에스컬레이터에 발목이 끼여 10㎝ 정도 찢어지는 부상을 입었다.또 박씨의 앞뒤에 서 있던 어머니 안모(59)씨와 친언니(31)도 바지가 끼여 2∼3m를 그대로 끌려내려갔다. 박씨는 “앞 계단에서 내려가던 어머니의 바지가 에스컬레이터 계단 틈에 끼자 틈이 순식간에 더욱 벌어져 내 발목이 빠진 채 에스컬레이터가 계속 움직였다.”면서 “지하철공사 직원은 다쳤다는데도 ‘사람이 지나가는데 비키라.’며 응급치료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주장했다.박씨는 인근 병원에서 발목 봉합수술을 받았다. 에스컬레이터 정비업체측은 에스컬레이터와 손잡이 사이의 틈을 메워 주는 ‘몰딩’ 부품을 고정하는 나사가 빠져 틈이 생긴 것으로 보고 있다.정비업체 관계자는 “한달에 두 차례 정비를 하는데 지금까지 아무 이상이 없었다.”면서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중”이라고 말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
  • 조규찬 - 해이 6월 결혼

    가수 조규찬(33)과 ‘해이’(Hey·본명 김혜원·25)가 오는 6월4일 오후 5시 서울 JW메리어트호텔 그랜드볼룸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둘은 지난해 말 발표한 해이의 2집에 조규찬이 작곡가로 참여하고 조규찬의 앨범에 해이가 듀엣곡을 부르는 등 음악을 통해 연인으로 발전했다. 조규찬은 지난 1989년 데뷔해 현재 7집 ‘싱글 노트’로 활동 중이며,해이는 2001년 ‘쥬뗌므’ 발표 후 최근 2집 ‘Piece of My wish’를 발표한 가수로,그룹 TTMA 출신 가수 소이의 친언니이기도 하다. 연합˝
  •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도쿄서민 애환 달래는 ‘골덴가이’

    앨리스가 사는 이상한 나라에 들어온 기분이다.휘황찬란한 네온사인에 몸을 휘감은 도쿄 최대의 환락가,신주쿠(新宿).그 신주쿠 구청 앞 골목에서 길을 잘못 들었나 싶더니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2층짜리 낡은 목조건물군(群)이 눈앞에 나타난다.“도쿄에 이런 곳이 있었나.” 고층건물에 익숙해진 눈에는 너무나 낯선 키작은 건물이 빽빽하다.적어도 30년은 거슬러 올라간 듯하다.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21세기에서 20세기로의 시간이동을 경험하게 해주는 이색지대이다. |도쿄 황성기특파원|도쿄시민들조차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골덴가이(ゴ-ルデン街)’.서울로 치면 옛 종로 뒷골목 분위기라고 할까.두 사람이 지나면 꽉 차는 좁디좁은 골목 양쪽에 가방 크기만한 조그만 간판들이 삐춤히 얼굴을 내밀고 있는 형국이 수상쩍기 짝이 없다.동행 없이 처음 가는 사람이라면 “무섭다.”고 뒷걸음질칠 법하다.골덴가이 동쪽 끝 1층에 자리잡은 ‘돌꽃(石の花)’이라는 가게의 육중한 흙색 나무문을 열었다.컴컴한 조명 아래에서 손님 4명이 카운터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테이블이 놓인 안쪽의 1평짜리 유일한 방에서는 5명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보드카를 놓고 담소를 나누고 있다.시간은 새벽 1시를 넘어섰다. “우리 가게는 신문기자들이 주고객이고 나머지가 샐러리맨들입니다.” 이곳 주인 모리타 고이치(51)는 가게라고 해봐야 7평도 채 안되는 비좁은 공간에서 29년6개월째 장사를 하고 있다며 웃는다. ●모르는 손님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려 모리타에게 이곳 골덴가이는 인생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그저 사람과 얘기하는 게 재미있고,함께 술을 마시며 밤을 새우는 것이 즐거워 가게를 열었다. 이곳에 자리잡고 지금까지 30년 가까이 밤 9시에 출근해 새벽 5시에 퇴근하는 생활을 해오고 있다.“다른 일은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는 모리타는 손님들에게 술을 따라주고 말 상대를 해주는 지금의 일을 죽을 때까지 하고 싶다고 한다. 10년 단골인 기타오카 쓰네오(37)는 한 두달에 한 차례쯤 이곳을 찾는다.신문사 사회부 기자인 그는 밤 취재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이곳에 들러 한잔하며 지친 마음을 달랜다.“뭐랄까,탁 트인 공간보다 이런 좁은 공간에 오면 마음이 놓입니다.” 기타오카의 말처럼 결코 화려한 유흥가가 아닌 골덴가이의 매력은 혼자서나,혹은 동료들과 어울려 마음 편하게 마시고 얘기할 수 있다는 데 있다.손님의 절반 이상이 ‘나 홀로’이다.특히 “모르는 사람끼리라도 금세 어울려 세상 얘기를 할 수 있는 분위기 때문에”(기타오카) 이곳을 찾는 단골이 많다.두 사람 이상이 어울려야 술을 마시는 한국인과는 달리 일본인은 혼자 술을 즐기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일본인들은 술을 많이 마시지 않는다.”는 고정관념은 이곳 골덴가이에 와보면 여지없이 깨진다.절대음주량으로 치면 한국인에 다소 뒤질지 몰라도 음주시간으로 따지면 일본인이 앞서지 않을까 싶을 만큼 천천히 오랫동안 마시는 일본인들의 음주법을 관찰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골덴가이의 손님들 직업은 천차만별이다.신문·주간지·방송 같은 언론사 기자,프로듀서,정보 관계자(경찰),출판사 편집자,프리랜서,외국대사관 직원이 주류이다.굳이 이들의공통분모를 찾는다면 ‘정보’이다.공안관계의 경찰인 사토노 요시노리(35·가명)는 “정보 교환을 위해 골덴가이를 찾는 일이 가끔씩 있다.”고 말했다.특히 주간지 기자들에게는 골덴가이는 중요한 정보수집의 장소이자 기사거리를 찾는 사랑방이기도 하다. ‘심야 플러스1’이라는 가게는 일본 모험소설가협회 회원들이 밤이 이슥해지면 ‘출근’하는 공식 사랑방이다.어떤 가게에서는 우익들이,어떤 가게에서는 좌익들이 모여 세상을 논하고 우익은 좌익을,좌익은 우익을 비판하며 밤을 새우기도 한다. 골덴가이가 생겨난 것은 2차대전 패전 후인 1940년대 말.신주쿠 역을 건설하면서 그곳에 있던 가게들이 한꺼번에 가부키초로 ‘집단이주’한 뒤로 개발의 손길이 전혀 미치지 않았다.한때 250곳이던 크고 작은 점포들이 거품경제 붕괴를 거치고 100곳이나 줄어들었다가 최근 다시 늘어 190개 점포가 영업하고 있다. ●60~70년대엔 ‘낭만의 거리'로 유명 어느 곳이나 가벼운 안주에 가볍게 마실 수 있다.점포의 대부분은 밤 9시가 되어서야 가게 문을 연다.빨라야 밤 8시이다.밤 8시에 문을 열어봤자 찾는 손님도 거의 없다.“밤 12시에서 새벽 2시 사이에 가장 손님이 많다.”(모리타)고 한다.보통 새벽 4시면 문을 닫지만 손님에 따라서는 오전 7시쯤에서야 가게를 나서기도 한다. 손님 4명이 들어가면 꽉차는 3평짜리 가게에서부터 커봐야 8평 정도인 이 곳 골덴가이는 1960∼70년대 연극,영화,문학,정치에 뜻을 품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낭만의 거리’로 사랑을 받았다.이곳의 매력은 시간의 흐름에도 모습을 바꾸지 않는 고집스러움 때문일지도 모른다. 일본의 학생운동이 치열하던 60∼70년대 초반,경찰의 수사를 피해 이곳에 몸을 숨기는 학생들도 적지 않았다.지금이야 일본에서는 학생운동을 찾아볼 수 없지만 당시 운동세대들이 제도권에 진입해 기성세대가 되어 이곳을 찾으면서 활기를 더했다.이런 골덴가이이지만 일부 손님 사이에서는 불평도 없지 않다.프리랜서 기자인 나카야마 메구미(39·가명)는 “단골들끼리의 동류의식이 강해 처음 찾는 손님이라면 배타적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처음 가면 배타적 인상에 ‘서먹' 어떤 가게는 단골의 소개 없이 불쑥 찾아오는 ‘이치겐상(처음 온 손님)’을 사절하기도 한다.일본인들의 폐쇄성을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지만 가게 주인들로서는 어떤 손님인지 알 수 없는 ‘위험’을 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한다. 최근 2∼3년 사이에는 입소문이 퍼지고 복고 붐이 일면서 젊은이들도 꽤 찾는다.이곳의 임대도 한결 수월해져 80만엔(한화 800만원)만 가지면 보증금 없이 5평짜리 가게를 얻어 당장 영업을 시작할 수 있다.그래서 대학생 몇 명이 돈을 추렴해 시작한 가게도 생겨나고 있으나 역시 골덴가이의 주류는 50∼60대 입담좋은 주인들과 30∼50대 고객들이다. 가게가 좁고 매상이 적은 만큼 종업원을 두는 가게는 없다.주인 혼자서 밤 9시부터 새벽 4∼5시까지 안주도 만들고 술도 따라낸다.“아무리 손님이 많아 북적거려도 점원이 들어갈 자리도 없을 뿐더러,고용할 경우 채산도 맞지 않는다.”는 게 돌꽃의 주인 모리타의 설명. 도쿄에 간다면 골덴가이에 들러 생맥주 한 잔(700엔 정도) 놓고 가게주인이나 손님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시도하며 ‘일본’과 만나는 것도 즐거움의 하나일 것 같다. marry01@ ◈‘골덴가이' 유일한 한국인업주 김용주씨 |도쿄 황성기특파원|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골덴가이에서 바 ‘파인트리’를 운영하고 있는 김용주(金容珠·사진·53)씨. 파인트리는 그녀의 중년 인생이 시작된 출발점이다.이곳에 둥지를 튼 것이 1994년 2월이니 만 9년이 좀 넘었다.돈 한푼 없이 사진촬영을 배우러 온 도쿄에서 3년간을 방황하다 신주쿠에서 가게를 하고 있는 친언니의 도움을 받아 가게를 차렸다. 당시만 해도 폐쇄적인 골덴가이에 한국인이 가게를 차린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게다가 가게 주인이 한국사람을 싫어해 평소 친분이 있던 일본 기자의 명의를 빌려 가게를 얻어야만 했다.“몇년 전 돌아가신 할머니(가게 주인)가 집을 빌려준 뒤 한국사람이라는 걸 알고는 반발도 했지만 곧 사이좋게 돼 돈이 필요할 때 이자없이 급전도 마련해주고 잘해줬다.”고 김씨는 말했다. 파인트리의 주 고객은 신문·주간지 기자이다.더러 기업홍보관계자,대학 교수,대사관 직원,경찰이 오기는 하지만 역시 오랜 단골은 언론인이 가장 많다.“여기를 찾은 손님들 명함만 5000장은 족히 될 것 같다.”고 할 만큼 발이 넓다. 지금이야 일본인 뺨칠 정도로 일본어가 능숙하지만 처음에는 말이 서툴러 애를 먹었다. 손님들과 얘기를 하다 모르는 얘기가 나오면 한글로 적어서 집에 돌아가 사전을 뒤져 공부하곤 했다.호·불호가 뚜렷한 그녀는 싫은 손님은 내쫓을 만큼 기가 세다.그렇지만 일단 단골이 되면 내 식구처럼 따뜻이 받아준다.그녀의 호칭은 ‘욘상’이다.성이 아닌 이름을 애칭으로 부르기 좋아하는 일본인들이 용주의 용을 따 ‘용상’하던 것이 욘상이 돼버렸다. 그녀 가게는 골덴가이에서 비교적 넓은 편이다.카운터에 빽빽이 앉으면 8명,털썩 앉아야 하는 테이블 방에 다리를 모으고 앉으면 8명 정도 들어간다.그렇지만 그녀가 서서 일하는 주방을 빼면 손님이 앉을 수 있는 공간은 불과 5평도 채 되지 않아 붐비는 날이면 옆자리 손님과 어깨를 붙이고 앉아야 할 정도로 비좁다. 낮과 밤을 거꾸로 하는 생활이 가장 힘들다고 한다.다른 가게처럼 그녀 역시 밤 8시쯤 가게 문을 열고 새벽 4시쯤 문을 닫고 집에 들어가면 동틀 무렵인 5시쯤이 된다. “9년 장사해 모은 돈은 한푼도 없지만 그래도 이 가게를 하면서 아이 둘을 후회없이 가르쳤다.”고 자랑한다.딸(26)은 일본의 사립명문 게이오대 문학부를 졸업했고,아들(23)은 홍익대 미대를 다니고 있다.
  • 새영화/ ‘웨이트 오브 워터’

    ‘웨이트 오브 워터’(The Weight of Water·29일 개봉)는논리나 이성이 아닌,직감이나 감성으로 이해해야 할 심리 스릴러물이다.순간순간 주인공의 심리변화나 곳곳에 깔린 복선을 주의깊게 봐두지 않았다가는 감상의 뒷맛이 썩 명쾌하지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외딴섬의 한 집에서 두 여인이 도끼로 잔인하게 살해된 채발견된다.유일한 생존자인 마렌(사라 폴리)은 하숙하던 남자 와그너를 범인으로 지목한다.죽은 여자들은 마렌의 친언니이자 올케.영화는 다짜고짜 여러 의문표를 찍게 만든다.그들은 왜 살해됐을까.와그너가 진짜 범인이었을까.혹시 마렌이진범은 아닐까. 곧 카메라는 100년 뒤 자유분방한 4명의 남녀에게로 시선을 옮긴다.사진기자인 제인(캐서린 매코맥)은 100년전의 살인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남편 토머스(숀 펜)와 섬을 찾아 그의 동생 리치 커플과 함께 지내게 된다. 의문을 남긴 채 와그너의 사형으로 매듭됐던 사건을 새삼파헤치는 데 감독은 독특한 전개법을 활용했다.제인의 무의식은 보이지 않는 존재로부터 끊임없이 암시를 받는듯하다. 그리고 그것은 살인사건의 미스터리를 푸는 유일한 열쇠다. 남편과 리치의 애인 애덜라인(엘리자베스 헐리)사이에 연애감정이 싹트는 걸 지켜보며 제인은 질투심을 느끼고 100년전 마렌의 상황과 심정에 거짓말처럼 동감해간다. 과거와 현재를 부지런히 오가며 영화는 마렌이 인적없는 섬으로 피신해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 등 살인사건의 수수께끼들을 하나씩 벗긴다.과거와 현재,실화와 허구를 이리저리 짜맞춘 시도는 일면 독특한 감상의 맛을 준다.하지만 그것은줄거리의 투명성을 해치는 치명적인 약점이기도 하다.미스터리극에 걸맞은 반전이 없는 것도 흠이다.‘블루 스틸’,‘폭풍속으로’를 연출한 여성 감독 캐서린 비글로 작품. 황수정기자
  • [허윤주기자의 교육일기] “강남 8학군 알고보면 거품이야”

    지난 몇주 동안 서울 강남 대치동이 화제였다.‘강남 특별구’‘대치동 교육특구’등 학원가 르포에서부터 소비문화까지 파헤친 시리즈가 연일 신문 지면을 장식했다. ‘뒤틀린 교육특구,강남’이라는 제목으로 대치동 일대 사교육의 실태와 부작용을 소개한 후배기자에게 “진짜로 그정도냐.”고 물었더니 “정말 큰 일”이라고 했다. 그같은 떠들썩한 언론 보도를 지켜본 학부모들은 심경이 복잡했으리라. 내가 사는 곳은 강남에 비하면 ‘오지’이다.강북에서도 북단에 위치한 중계동이다.최근에는 이곳에도 신흥 학원가가생겨나고 있지만 대치동에 비해서는 한참 뒤진다. 얼마 전 한동네에 사는 친언니를 만났는데 한숨부터 내쉬었다.공무원인 형부의 월급을 쪼개 쓰다보니 생활이 빠듯할 수 밖에 없다. 언니:요즘 신문을 보면 비애를 느껴.나도 강남에 갈 수만있다면 가고 싶어.딸(중3)친구들도 벌써 세명이 겨울방학 때 강남으로 떠났댄다. 나:근데 거기 부작용도 많다잖아.공부 너무 시켜 정신질환까지 생기고…. 언니:그래도 잃는거 보다 얻는게 많지않겠냐.대학이 모든걸 좌우하는 나라니까….하지만 어차피 갈 형편이 안되니 있는 데서 잘하자고 결론을 내렸지 뭐. 강북에 사는 남자 선배도 비슷한 푸념을 털어놓았다.“월급 200만∼300만원을 받아 가지고 그런 곳에 살 형편이 되나. 나중에 자식들이 아비가 무능하다고 원망하지나 않을런지…. ” 예비 학부모인 나 역시 대치동 이야기가 남의 일 같지만은않다.맹모삼천(孟母三遷)이라는데 ‘학원의 천국’‘최고의교육환경’이란 말에 솔깃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8학군 출신으로 지금은 일산에 살고 있는 주부 Y씨의 이야기가 내 마음을 붙들어맨다. “그곳 사정 내가 잘 알아.거기 간다고 대학 잘 들어가는것도 아니야.성적좋은 애들이 몰리니까 잘 가는거야.공부 못하는 애들은 조기 유학으로 ‘도태’되거나 다른 지역 학교로 빠져나오지.그곳 엄마들,애들한테 열성이다보니 속은 얼마나 골병이 들었다구.다 거품이야.맘 편하게 저 사는 곳에서 열심인게 최고라니까.” “맞아,대학이 대수냐.우리 아이들 시대는 밥 굶을 걱정은안해도 되잖아.저 좋아하는 일 하며 살면 되지.” 허윤주기자 rara@
  • 박지윤 ‘남장차림’ 컴백

    2002년과 함께 가수 박지윤(21)이 돌아왔다. 박지윤은 지난 11일 5집 앨범을 발매하고 13일 SBS ‘인기가요’에 등장,1년여만에 활동을 재개했다. 청순함과 섹시함을 오고가면서 뭇 남성팬의 가슴을 설레이게 했던 그는 5집 앨범에서 새로운 변신을 시도했다. 타이틀 곡인 ‘난 남자야’에서 짙은 양복에 중절모로 남장을 하고 성숙한 이미지로 거듭났다.짙게 그린 구렛나루,눈썹,수염 등은 그의 뚜렷한 이목구비와 어우러져 묘한 매력을 뿜어낸다. 2000년 8월 ‘성인식’의 고혹적인 춤과 뮤직비디오로 섹시한 이미지를 만들어냈던 박지윤에게 남장여인은 의외의선택처럼 느껴진다. 많은 영화에서 남장으로 출연, 남성팬들을 더 설레게 했던 홍콩배우 임청하의 분위기를 살려보겠다는 의도. 캐나다에서 디자인 공부 중인 친언니와 6개월 동안 함께고민하며 창조해낸 이미지.또 박지윤의 얼굴이 담배연기속에 파묻힌 듯한 앨범 자켓은 직접 디자인한 것이다. 엉덩이와 손의 다양한 동작을 이용한 재즈풍의 춤은 마치 브로드웨이 뮤지컬에서 보여주는 그것처럼화려하고 박진감이 있다. 5집에는 성인식의 리믹스 곡을 비롯해 총 12곡이 삽입되어 있다. 뮤직비디오는 약 3억원을 투자해 제작됐으며 다양한 특수효과를 선보여 SF영화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박지윤은 이번 앨범은 통해 해외진출도 노리고 있다.‘Santa Baby’라는 곡으로 미국MTV 방송 차트에서 2위까지 올라갔던 팝스타 ‘윌라 포드’와 듀엣곡도 부르는 등 본격적으로 미국 팝시장에 진입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지난 97년 솔로 여가수 기근 속에서 데뷔한 박지윤은 음반마다 40만장정도의 판매기록을 세웠다.지난해 6월의 베스트 앨범까지 포함해 총 6장의 앨범을 내놓은 박지윤의해외진출이 주목된다.
  • [여성일기] 배우자 선택 눈높이 낮춰라

    누구나 인생에 있어 한번은 큰 고비를 겪는다고 한다. 내겐 서른 살 무렵이 그랬다.슬슬 노처녀 소리를 듣기 시작한 때라 결혼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고,설상가상으로 어머니가 폐암에 걸려 난 5년간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병간호에 매달려야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서른 셋.아기자기한 가정을 꾸리지도,번듯한 직업을 가지지도 못한 상태였다.서서히 자신감을 잃어가면서 정신적 고립감을 느꼈다. 이런 내가 안쓰러웠는지 오빠가 한 결혼정보회사의 안내책자를 가져왔고 난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그 곳을 찾았다. ‘학벌은 명문대졸 이상,키는 180cm 이상,단순사무직은 싫고 경제력을 갖춘 전문직 종사자여야 함’ 이것이 내가 내세운 남편감의 조건이었다.커플매니저는 조용히 다 듣고 나더니 한마디로 내 기를 꺾었다. “현주씨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여자 나이 서른 셋에 그런것들을 모두 갖춘 남자 만나기 쉽지 않아요.가입하기 전에다시 한번 생각해 보세요” 난 도대체 어떤 곳이길래 날 홀대하나 싶어 대뜸 일자리없냐고 물었다.지금 근무하고있는 결혼정보회사와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평소에도 남의 고민을 잘 들어주던 터라 커플매니저라는직업이 적성에 맞았다.1995년 취업 당시 단 7명이었던 직원이 170명으로 늘고 성혼 커플수도 수천명으로 늘면서 일에대한 보람은 컸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노처녀면서 일년 내내 남들의 짝을 맺어줘야 하는 슬픈 딜레마에 빠졌고 급기야 퇴사까지 고려했다. 그러나 늦었지만 나에게도 사랑의 전령이 왔다.서른 일곱살이 되던 해 봄에 친언니의 소개로 1년 연하인 공무원과맞선을 보게 됐다. 어색한 첫 만남 후 뜻밖에 애프터 신청을 받았고 마음이따뜻한 그에게 끌리기 시작했다. 우린 만난 지 몇 달 만에초 스피드로 결혼식을 올렸고 작년엔 내 보물 1호인 딸까지낳았다. 결혼정보회사에서 일하다 보니 어떻게 하면 좋은 짝을 만날 수 있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나는 개인적 경험과 직업적 노하우를 토대로 두 가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라고 조언한다. ‘배우자감으로 나는 어떠한가’,‘배우자를 선택할 때 어떤 점을 우선시하는가’. 참된 결혼은자신의 환경을 이해하고 만남을 위해 노력하는 데서 시작된다.누구나 욕심이 있어서 모든 것을 만족시키는 상대를 찾기 마련인데 눈높이를 맞추지 않으면 결혼은정말 힘들다. 10가지 조건 중에 5∼6가지만 맞으면 화창한 가을을 맞아우선 만나보라고 권하고 싶다. 서현주/ 결혼정보회사 듀오 종로지사장
  • 귀화 1년만에 외출 세계적 무용가 로이 토비아스

    지난해 미국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에 귀화한 전 유니버설발레단 예술감독 로이 토비아스(74·한국명 이용재).인생의 종착역으로 한국을 택해 지난 95년부터 경기도 여주 북내면 외룡리에서 살고있는 그가 최근 한국귀화 1년여만에 첫외출길에 올랐다.이웃 이천 도자기엑스포를 둘러보러 나선 것이다. 고향인 미국 발레계에서 초청해도 마다하던 그로서는 이례적인 행보다.이천에 가기로 한 지난 19일 아침,이씨는 연신 대문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수제자인 서울발레시어터 김인희(38) 단장과,상임안무가인 김씨의 남편 제임스 전(42)을 기다리는 것이다.이씨는 틈날 때마다 찾아오는 이들이 “이천까지 모시고 가겠다”고 하자,고맙기만 하다.점심 직전인 11시쯤 김씨 부부가 마침내 대문을 밀치고 들어왔다.“안녕하세요.어디 불편한데는 없으시구요?”“괜찮아 길이 많이 막혔지?” 어눌한 한국말로 두 사람을 맞는 이씨의 몸짓은 영락없는 아버지다. 그는 엑스포에서 전시품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작가며작품이름을 연신 물었다.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슬며시귀띔했다.“안내 팜플렛이 외국인이 보기에 너무 서툴고 허술해요.이것만 봐도 한국인들은 우수한 인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이런 부분을 보면 절로 화가 나지요.”국립발레단과 함께 한국 발레의 쌍축을 이루는 유니버설발레단 예술감독을 맡아 숱한 제자들을 키워내며 한국발레를 해외무대에 진출시키는 데 디딤돌 역할을 했던 세계적인 인물이지만 지금은 한낱 촌로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 이씨가 이곳에 정착한 데는 김씨의 따뜻한 마음이 큰 몫을했다.88년부터 95년까지 유니버설발레단 예술감독으로 일하다 퇴임한뒤 김씨의 부탁으로 서울발레시어터 예술감독을 맡았다.이씨가 한국에서 살 뜻을 비추자,김씨가 이곳을 물색해주었다.허름한 한 칸짜리 한옥을 조금 개조해 거실이며 사랑방,부엌을 새로 들였다.안방 침대며 보료,등잔 등 가구는 모두 한국의 전통적인 것들이다.옷도 서울 인사동에서 산 개량한복을 즐겨 입는다.이주하면서 마당에 손수 심은 묘목이 어느새 키를 훌쩍 넘어설 정도로 자랐다.이들 나무며 화초에쏟는애정이 보통이 아니다.TV며 신문이며 모두 끊고 사색과 독서로 소일한다.세상 돌아가는 소식이래야 이웃에 살면서하루 한차례씩 들러 식사며 빨래거리를 챙기는 김씨의 친언니와 마을 주민들이 들려주는 게 고작이다. 전설적인 미국 뉴욕시티발레단 창단멤버로 현대무용계의 거장인 조지 발란신(작고)에 의해 수석 무용수로 발탁돼 세계무용계를 깜짝 놀라게 했고,프랑스 테아트르 드 아트 발레수석무용수겸 상임안무가·일본 도쿄발레극장 창단 예술감독겸 상임안무가·미국 필라델피아 오페라발레단 창단감독 등화려한 춤인생을 살았지만 이제는 초야에 묻혔다. 실제로 그는 얼마전 미국 발레계의 초청을 거절했다.내년 5월 미국 라스베이거스 네바다발레시어터가 그의 90년 안무작 ‘모차르트’를 무대에 올리겠다며 “미국으로 와 조언해달라”고 했으나 “이미 은퇴했는데 이러쿵 저러쿵하기 싫다”고 답했다. 미국 국적을 버리고 한국에 귀화한 이유에 대해 “차를 타고 정처없이 달리다가 기름이 바닥나 차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보니 그곳에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이 다 있었다”고 돌려답한다.또 한국이름을 이용재로 정한 데 대해서는 “용을 좋아하는데다,미들네임이 ‘제이’여서 ‘용재’로 한 것”이라고 덧붙인뒤 “일본에서 30년이 넘게 살았지만 일본보다는 한국이 정서에 더 맞는다”고 했다. 그러나 한국 춤에 대한 애정은 변함이 없다.서울발레시어터가 10월 LG아트센터에 올릴 공연에 대해 묻는다.“안무는 마쳤나”“무대는 어떻게 할 계획인가”“걱정하지 마세요.무리없이 순조롭게 돼가고 있어요.” 제임스 전이 내년 라스베이거스 공연을 부추기지만 로이는 말문을 돌려 요즘 한·일관계에 대해 묻는다.“듣자하니 양국 관계 때문에 일본인들의 한국공연이 적잖이 취소됐다는데.어쨌든간에 문화예술이정치적 상황에 좌우돼선 안될 것이야.한국인들도 지나친 감정대응은 자제해야 하고…”한국의 문화예술계에 대한 관심도 예사롭지가 않다.“한국엔 빼어난 인재가 많아요.세계 유수 오케스트라엔 어김없이 한국인들이 들어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요.기량은 충분한데 문제는 한국 문화예술인들이 예술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이 미흡해요.예술보다는 다른 부수적인 데 시간과 힘을 빼앗기다보니 자연 결과가 부실할 수 밖에 없어.”한국인이 되고보니 한국의 이런저런 상황들이 자신을 화나게 한다고 웃으며 말했다.20여년전 한 외국인 작가의 글을 통해 명성황후의 생가가 여주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10여년전 생가를 찾아가보니 너무 보잘것 없게 방치돼 있어 몹시실망했다고 했다.한국의 역사에 관심이 많아 자료를 찾기 위해 여러 곳을 뒤졌지만 만족할 만한 것을 찾지못한 적이 많아 안타까울 때가 많다고 덧붙였다.며칠전 이웃 목아박물관에 도둑이 들어 문화재급 유물들을 대량 훔쳐갔다는 소식에“너무 안타까웠다”고 했다. “요즘 해외이민이 유행이라고 들었어요.물론 한국보다는 그곳이 기회가 많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숙고할 필요가 있어요.순간의 감정적인 결단은 아주 멀리볼때 돌이킬 수 없는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니까.” 세계적인 무용가로 이름을 날렸지만 평생 한번도 결혼하지않고,모은 재산도 없이 살아가는 그의 모습은 “진정한 예술가란구도자와 다름없구나” 하는 생각을 주기에 충분했다. 글 여주 김성호기자 kimus@
  • EMI 판소리 음반낸 조주선씨

    최근 세계적인 음반사인 EMI에서 판소리 음반을 낸 조주선(29).그의 이름 앞에는 항상 ‘신세대 소리꾼’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전남 목포 태생으로 초등학교때 한국무용과 가야금을 배우고,국악예고 시절명창 성창순의 제자로 ‘심청가’를 이수하는 등 정통 국악인의 길을 걸어온 그녀지만 기회만 되면 판소리 대신 국악가요를 부르고,양악기에 맞춰 소리를 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기 때문.국악실내악단 ‘오느름’의 멤버로 활동하며 TV국악프로그램에도 자주 출연했다. 그를 귀여워하는 ‘선생님’들은 이같은 ‘외도’를 못마땅해 하지만 그는개의치 않는다.‘튀고 싶어서’가 아니라 또래의 젊은이들에게 전통을 쉽게전달하겠다는 뚜렷한 목표의식을 갖고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이번 음반은 의미가 크다.제 이름을 걸고 낸 첫 음반인데다 EMI가 세계시장을 겨냥해 기획한,세계 민속음악 전문레이블 ‘헤미스피어’시리즈로출반된 것.지난해말 친언니처럼 따르는 가수 최연제가 제작자로 나서 녹음한 음반이 EMI측 눈에 들어 시리즈에 포함됐다. “처음엔 국악가요 음반을 낼까 했어요.그런데 첫 음반부터 그쪽으로 가면이미지가 굳어지지 않을까 싶어 정통 판소리를 먼저 내기로 했지요.”음반에는 단가 ‘사철가’를 비롯해 ‘춘향가’중에서 ‘사랑가’‘이별가’‘쑥대머리’,‘심청가’의 ‘주과포해’들을 담았다.‘쑥대머리’는 그가가장 좋아하는 곡이다.지난해 한양대 국악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국악예고 육군사관학교 등에서 강의하는 그의 수제자(?)는 지난달 파리로 부임한오쿠라 가즈오 전 주한일본대사.2년간 판소리를 배운 오쿠라대사는 요즘도테이프에 그녀의 소리를 녹음해 배울 정도로 열성적인 제자이다.그 인연으로 일주일에 한번씩 일본대사관 직원들에게 판소리를 가르친다. “35살까지는 정통 판소리와 실험 국악을 병행할 생각이예요.어느 한쪽만 고집하기에는 아직 국악 무대가 넓지 않잖아요.”국악에 어울릴 것같아 첼로를 배우고 있다는 그는 여름쯤 국악가요로 2집을낼 계획이다. 이순녀기자
  • 대한광장-교편의 비운

    조선조 영조 때의 대학자 도암(陶菴) 이재(李縡·1680∼1746)는 5세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읜다.진사로 20대에 요절한 남편의 혈육 하나를 과부의몸으로 제대로 키워낸 도암의 어머니는 누구일까.바로 숙종대왕의 왕후이던인현왕후 민씨의 친언니였다.친정아버지는 여양부원군이요 친정아우들이 정승과 판서들인데다가,시가의 시아버지도 정승이요,시동생 역시 이조판서였다. 이러한 배경의 외아들이었다면 도암은 오만방자한 과부의 외동아들로 잘못된 길을 걸어갈 가능성이 농후했다.그러나 어머니 민씨의 탁월한 지혜와 인내심으로 외아들 도암은 끝내 대제학에 이조판서라는 높은 벼슬에 오르기도했지만, 당대를 대표하는 대학자로,만인의 존경을 받는 현인으로 우뚝 서 있다.어진 어머니의 어진 아들이라는 평범한 진리가 통한 경우이지만 여기에는 가르치는 데는 매가 필요하다는 간과하기 쉬운 진리가 담겨 있었다. 옛날부터 선생의 대변은 개도 안 먹는다는 말이 있어 왔다.또 선생님의 그림자도 밟아서는 안된다는 말도 전해오고 있다.가르치는 일이 그렇게 힘들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어렵게 가르치는 일에 종사하는 선생님은 그만큼 높고 크게 존경해야 한다는 의미도 담겨 있는 말이다.매로 닦달하고 말로타이르면서 온갖 수고를 바쳐야만 학동들이 가르쳐지는 것쯤이야 모를 사람이 어디 있으랴. 다시 도암의 이야기로 돌아가자.어린 시절 도암은 개구쟁이였나보다.뒤에이조판서를 지낸 삼촌이 아버지를 잃은 어린 조카를 가르치면서 무척 애를먹으며 혹독한 매질을 하지 않을 수 없도록 도암은 개구쟁이였다고 한다.땅에 놓으면 꺼질까,손에 들면 깨질까 두렵도록 애지중지하던 아비 없는 외아들을 그처럼 혹독하게 매질하는 시동생의 태도에 말 한마디 못하며 참고 견딜 줄 알던 어머니 민씨의 덕택으로 도암의 버릇은 잡혀 그만한 인물로 성장했다는 이야기는 세상에서 전설처럼 전해지는 이야기였다. 가르치는 일에는 매가 없어서는 안된다는 의미로,가르치는 일에는 채찍(鞭)을 결부시켜 교편(敎鞭)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졌다.교편을 잡고 있다는 말은바로 선생노릇을 하는 것으로 통하게 되고 말았다.그런데 어찌 된 일인가.선생님이 가르치느라 매질을 하면 그냥 112 범죄신고센터로 전화를 거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으니.그처럼 고생하면서,애를 태우면서 가르치는 선생님을고발이나 하는 학생들,아니 그림자도 밟아서는 안된다는 존경심은커녕 선생님을 고발해야 하는 심사는 어디서 나왔을까. 가르쳐주는 선생님을 존경하지 않고서 어떤 교육이 이루어지고,존경받는 선생님이 없고서야 무슨 교육이 제대로 되어지겠는가.나라님처럼,부모님처럼스승을 존경하지는 못하더라도 스승의 가르침에는 따라야지 고발이나 하고있다면 이 세상은 어디로 갈 것인가. 우리가 학생이던 시절 선생님이 가지고 다니시던 회초리매,그 권위를 우리들은 지금도 존경하고 무섭게 여긴다.귄위 있고 존경받는 선생님들일수록 회초리가 멋있고 좋게만 보이던 그 교편들은 이제 비운의 운명에 처하고 말았다.손찌검 한번 할 수 없도록 학생들의 권위만 높아지고,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을 정도로 선생님들의 권위는 떨어지고만 있으니,슬픈지고,비운의 교편이여!
  • 55년만에 부른 “순이야” “언니”/훈할머니,동생 상봉

    ◎합천 이순이씨와 유전자 일치/어제 인천 길병원서 감격의 포옹 찾았다.열여덟 꽃다운 나이에 일본 순사의 손에 이끌려 정신대로 끌려간 뒤 이국 땅 민들레 삶을 살아온 훈 할머니가 55년만에 마침내 혈육과 상봉했다. 훈 할머니는 29일 상오 동생이라고 주장해 온 이순이씨(61·여·경남 합천군 가회면 외사리)를 만나 고향과 가족관계 등을 확인,친자매의 뜨거운 정을 나눴다. 대검도 이날 하오 유전자 감식을 통해 이들이 친자매임을 확인했다. 이날 상오 8시 훈 할머니가 입원중인 인천 중앙길병원 9층 VIP병실을 찾은 이 할머니는 훈할머니를 만나자마자 언니가 확실하다며 훈 할머니를 끌어안은채 울음을 터뜨렸다. “우리 언니 맞지.남이 언니 맞지.엄마가 죽었다고 했던 우리 언니 맞지” 함께 온 올케 조선애씨(63)에게 훈 할머니가 언니라고 울부짖는 이씨를 바라보던 훈 할머니의 눈에서도 눈물이 쏟아졌다.말이 통하지는 않았지만 핏줄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내 동생이 틀림없다.남동생의 사진을 보니 아버지의 얼굴과 같다.여동생과 나는어머니를 닮았지만 남동생은 아버지를 닮았었다” 훈 할머니는 이씨가 가져 온 남동생 사진을 보고 그토록 찾았던 동생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떨어질줄 몰랐다. 이씨에 의해 밝혀진 훈 할머니의 본명은 이남이.나이는 73세 가량에 고향은 경남 합천군 가야면이고 지난 39년쯤 경남 마산시 진동이다. 이씨는 어머니로부터 1남3녀 가운데 둘째인 남이가 18살 나던 해 일본군에 끌려갔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그러나 이들 자매의 부모와 형제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훈 할머니는 이씨가 가져온 마산시 진동 풍경이 담긴 대형사진을 보고 절이 있던 곳과 자신이 자주 가던 동산,바다가 있는 곳을 정확히 기억해 냈다.옆에 있던 이씨도 “언니가 틀림없다”고 확인했다. ◎“두사람 염기서열 일치”/대검 유전자 감식 대검찰청 과학수사 지도과는 29일 캄보디아 ‘훈 할머니’가 자신의 친언니라고 주장한 이순이씨(61·경남 합천군 가회면 외사리)의 혈액을 채취,유전자 감식을 한 결과 “두사람이 친자매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대검 유전자 감식실 이승환 실장은 “이씨의 부모가 사망한 상태에서 유일한 감식 방법인 미토콘드리아 염기서열 분석기법을 활용해 감식을 한 결과,두 사람의 염기서열이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모계 혈족의 친자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설명했다. 미토콘드리아 염기서열 분석기법은 부모가 사망해 부모의 핵유전자형을 추정할 수 없는 경우에 모계로부터 유전되는 미토콘드리아 DNA의 염기서열의 동일성 여부를 가림으로써 혈족인지를 가리는 방법이다.
  • 5공때 「사채시장 대모」 부상/장영자는 누구

    ◎이혼위자료 5억원 굴려 거액 치부/이철희씨 만나 정계고위층과 교분 지난 82년 5월 최대의 어음사기사건으로 구속될 당시 「사채시장의 대모」 「큰손」으로 불렸던 장영자씨(49)는 전남 강진에서 사업가이자 문필가인 장모(작고)씨의 2남3녀중 차녀로 태어났다.할아버지는 고향에서 대지주로 소문이 났었으며 가족들은 모두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다. 카톨릭계통인 목포의 J여중과 서울의 K여고를 거쳐 서울S여대를 졸업한 장씨는 대학시절에는 메이퀸에 뽑힐 정도로 미모가 뛰어났다. 고교시절에는 다소 도의성과 준법성이 결여됐으나 대인관계는 남달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장씨는 대학 졸업 직후인 69년 K대 학생회장출신인 김모씨와 결혼,77년 이혼한 뒤 곧바로 사업가인 홍모씨와 재혼했다가 1년뒤 다시 헤어지고 20년 연상의 현 남편 이철희씨(71)와 82년 2월 서울 장충동 사파리클럽에서 3번째 결혼식을 초호화판으로 올렸다. 남편 이씨는 육사2기생으로 일제때 정보학교를 나와 첩보 및 방첩부대에서 잔뼈가 굵었으며 중앙정보부 차장까지지내다 79년 10월 유정회 국회의원이 됐다. 장씨는 남편 이씨와 전두환전대통령의 처숙이며 친언니의 남편인 이규광씨등의 후광을 업고 금융계·정계의 고위층들과 친분을 쌓으며 활동영역을 넓혔다. 두번째 남편 홍씨와 살며 「돈 굴리는 법」을 터득한 장씨는 홍씨로부터 받은 위자료 5억원을 사채놀이와 증권에 투자,거금을 벌고 일약 「사채시장의 대모」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장씨는 72년 꿈에서 부처님의 계시를 받고 불교로 개종한 뒤 장보각행이라는 법명으로 81년에는 전남 백양사 범종을 복원,기증하는등 불교에 큰 관심을 기울이기도 했다. 장씨부부의 사랑은 너무도 각별해 어음사기사건으로 함께 구속됐다가 91년 6월 먼저 가석방된 이씨는 거의 매일 장씨를 면회하면서 옥바라지를 했을 정도였다.
  • 국교생조카 유괴/돈뜯으려다 잡혀

    서울 성북경찰서는 27일 최양순씨(32·여·서울 성동구 금호동4가519)를 미성년자 약취유인및 강도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최씨는 지난22일 하오2시쯤 친언니인 최모씨(34)의 딸 이모양(6·서울D국교1년)을 『놀러가자』며 집에서 데리고 나간뒤 언니 최씨에게 전화를 걸어 『조흥은행 남대문지점에 9백만원을 입금하지 않으면 아이에게 일이 생길것』이라고 협박,27일 상오11시 40분쯤 언니 최씨가 상업은행에 입금시킨 6백만원을 빼내 가로 채려한 혐의를 받고 있다.
  • 월북여우 문정복 사망

    월북여배우 문정복이 지난1일 「뜻하지 않은 사고」로 사망했다고 평양방송이 보도했다. 금년 69세. 문정복은 배우 문정숙씨의 친언니이기도 한데 현재 남한에는 연극연출가겸 배우였던 양백명씨(극단 「아랑」대표ㆍ작고)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양택조씨(52ㆍTV탤런트)가 유일한 혈육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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