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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로사는 사회적 타살… 함께 해결해요”

    “과로사는 사회적 타살… 함께 해결해요”

    “과로사는 사회적 타살입니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예요. 그런데 유가족들은 가족의 죽음을 자꾸 숨기려고만 합니다. 자신이 가족을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과로사 유족분들께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요. 당신 혼자만의 일이 아니니까 용기를 내서 세상으로 나와 달라고요.”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한국과로사·과로자살유가족모임’을 만든 강민정(28)씨가 지난 13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강씨는 무엇보다 과로사 유가족들이 겪은 일을 숨기려 하는 점을 안타까워했다. 남편이 과로에 시달리다 사망한 것을 자신의 책임으로 여기거나, 가족의 자살 자체를 공개하는 것을 꺼리기에 사회적 문제가 개인적 문제로 변질한다는 것이다. 강씨는 2012년 초 과로사 개념이 처음 만들어진 일본으로 넘어가 리쓰메이칸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고, 일본 내 과로사 유가족 모임을 4년간 따라다니며 학습한 끝에 지난 7월 1일 한국과로사·과로자살유가족모임을 출범시켰다. 강씨는 현재 한국형사정책연구원 국제전략협력실에서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강씨 역시 과로사 유가족이다. 1999년 12월 31일 옆집에 살던 고모부(당시 51세)가 과로사로 유명을 달리했다. 당시 고모부는 제과기업 신상품 기획팀에서 근무했는데, 세 달가량 숙직실에서 생활하며 일주일에 한두 번밖에 집에 오지 않았다. 결국 그날도 숙직실에서 잠을 청하다 심근경색으로 망인이 됐다. 당시 강씨는 초등학교 4학년이었지만, 이 사건은 여전히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고 말한다. 해당 기업이 가족과 충분한 합의를 하지 않으려 했고, 이 일로 가족이 힘들어한 기억이 여전히 선명하다는 것이다. 강씨는 회사에서 아이스크림을 가져와 나눠 줬던 고모부를 친아버지처럼 따랐던 터라 충격은 더욱 컸다. 강씨가 과로사를 연구하게 된 계기도 이 때문이다. 잘 살아보자고 일을 하는데, 왜 죽을 때까지 일을 해야 하는지, 가족의 죽음을 왜 숨겨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됐다. 강씨는 2012년 2월 중앙대 경제학·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리쓰메이칸대학을 선택한 건 일본 내 과로사 연구자 모임의 핵심 회원인 사쿠라이 준리 교수가 재직하고 있어서다. 강씨는 사쿠라이 교수 밑에서 ‘과로사·과로자살에 대응하기 위한 사회적 지원시스템: 한일 비교’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강씨는 무엇보다 일본 내 과로사 유족회에 감명을 받았다. 1991년 꾸려진 이 모임은 현재 유가족 350여명이 활동하고 있는데 2014년 일본에서 ‘과로사 방지법’을 제정할 때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제 막 사고를 당한 유가족에게 심리적 지원을 제공하는 한편 선배 입장에서 앞으로 있을 소송 전략도 공유했다. 과로사를 자연스레 학습하다 보니 유가족들이 회사와의 소송에서 승소할 확률도 높아졌고, 과로사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라는 인식을 같이할 수 있었다. 2015년 9월 한국에 돌아온 강씨는 과로사 유가족 모임을 결성하고 싶었다. 변호사와 노무사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유가족들을 수소문했다. 그렇게 한두 명씩 모여 지난달 1일 첫 모임을 갖고 지금은 유가족 10명이 함께하고 있다. 오는 19일 두 번째 모임을 갖는다. 정주영 상담전문가가 심리치료를 해 주고, 김우탁 노무사가 산업재해 인정 과정 등을 지속적으로 알려줄 계획이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사건(5) 가짜 이강석 사건

    1957년 9월 대구 출신의 강성병(당시 22세)이란 청년이 이승만 대통령의 양자 이강석 행세를 하며 사흘 동안 경북도 내를 휘젓고 다닌 사건이 있었다. 아들이 없던 이승만은 민의원 의장으로 있던 이기붕의 장남 이강석을 그해 3월 양자로 들였다. 대통령을 양아버지로, 국회의장을 친아버지로 둔 이강석은 사실상의 ‘3인자’였다. 이강석은 대낮 파출소에서 헌병의 뺨을 갈기는 등 위세가 등등했다. 또 양자가 되자마자 서울대 법대에 부정 편입을 시도했다가 법대생들의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다. 대학 입시에 낙방한, 평범한 가정 출신의 청년으로 이강석과 닮았다는 말을 들었던 강씨는 이런 사실을 신문에서 보고 가짜 행세를 하기로 마음먹었다.강씨는 먼저 경주로 가 경찰서장을 만났다. 강씨가 “아버지의 비밀 분부로 풍수해 상황을 시찰하러 왔다”고 하자 서장은 깜짝 놀라며 “영감님, 귀하신 몸이 어찌 혼자 오셨습니까”라며 황송해했다. 경상도 말을 썼던 강씨는 말씨도 서울말 비슷하게 바꿨다. 이튿날 서장은 가짜 이강석을 모시고 가 불국사 관광도 시켜 주고 사진 촬영도 함께 했다. 그러면서 치안국 통신과장으로 영전을 부탁하기도 했다. 이강석이라고 하니 서장들이 쩔쩔매는 모습을 본 강씨는 이어서 경찰 지프를 얻어 타고 영천, 안동, 봉화로 옮겨 다니며 이강석 행세를 했다. 서장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극진한 대접을 했다. 안동에서는 강씨가 자고 나니 군수와 읍장이 연락을 받고 숙소로 찾아와 머리를 조아리기도 했다. 수재의연금과 여비 명목으로 강씨는 두둑한 돈도 챙겼다. 요구하기도 했지만 관리들이 알아서 준 돈도 있었다.강씨는 봉화를 떠나 경북도지사 관사로 갔다 결국 덜미가 잡혔다. 도지사는 실제 이강석의 얼굴을 알고 있었고 도지사의 아들은 이강석과 고교 동기였다. 어쨌든 ‘3일 천하’였다. 강씨의 재판에는 방청권을 나눠 줘야 할 정도로 방청객이 몰려들었다. 강씨는 법정에서 “경찰서장들이 극진한 대접을 함에 대한민국 관리들의 부패성을 테스트할 수 있었다”고 진술했다. 또 “할리우드 같았으면 60만 달러 정도의 연기료를 받을 수 있었을 터인데 나는 연기료 대신 벌을 받게 되었다”고 태연히 농담을 던졌다. 강씨가 받은 형은 징역 10개월이었다. ‘귀하신 몸’은 당시 유행어가 됐다.이승만의 하야 후 진짜 이강석은 아버지 이기붕과 어머니 박마리아, 남동생을 권총으로 살해하고 자신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로부터 3년 후인 1963년 8월 가짜 이강석 강씨도 대구 시내 ‘유림옥’이라는 술집에서 극약을 먹고 자살했다. 유서도 남기지 않았다. 진짜와 가짜의 기이한 인연이었다. 강씨도 그저 세상을 비관한 잡범에 불과했을까. 사진은 강씨의 죽음에 관한 당시 기사.
  • 사건(5) 가짜 이강석 사건

    1957년 9월 대구 출신의 강성병(당시 22세)이란 청년이 이승만 대통령의 양자 이강석 행세를 하며 사흘 동안 경북도 내를 휘젓고 다닌 사건이 있었다. 아들이 없던 이승만은 민의원 의장으로 있던 이기붕의 장남 이강석을 그해 3월 양자로 들였다. 대통령을 양아버지로, 국회의장을 친아버지로 둔 이강석은 사실상의 ‘3인자’였다. 이강석은 대낮 파출소에서 헌병의 뺨을 갈기는 등 위세가 등등했다. 또 양자가 되자마자 서울대 법대에 부정 편입을 시도했다가 법대생들의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다. 대학 입시에 낙방한, 평범한 가정 출신의 청년으로 이강석과 닮았다는 말을 들었던 강씨는 이런 사실을 신문에서 보고 가짜 행세를 하기로 마음먹었다.강씨는 먼저 경주로 가 경찰서장을 만났다. 강씨가 “아버지의 비밀 분부로 풍수해 상황을 시찰하러 왔다”고 하자 서장은 깜짝 놀라며 “영감님, 귀하신 몸이 어찌 혼자 오셨습니까”라며 황송해했다. 경상도 말을 썼던 강씨는 말씨도 서울말 비슷하게 바꿨다. 이튿날 서장은 가짜 이강석을 모시고 가 불국사 관광도 시켜 주고 사진 촬영도 함께 했다. 그러면서 치안국 통신과장으로 영전을 부탁하기도 했다. 이강석이라고 하니 서장들이 쩔쩔매는 모습을 본 강씨는 이어서 경찰 지프를 얻어 타고 영천, 안동, 봉화로 옮겨 다니며 이강석 행세를 했다. 서장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극진한 대접을 했다. 안동에서는 강씨가 자고 나니 군수와 읍장이 연락을 받고 숙소로 찾아와 머리를 조아리기도 했다. 수재의연금과 여비 명목으로 강씨는 두둑한 돈도 챙겼다. 요구하기도 했지만 관리들이 알아서 준 돈도 있었다.강씨는 봉화를 떠나 경북도지사 관사로 갔다 결국 덜미가 잡혔다. 도지사는 실제 이강석의 얼굴을 알고 있었고 도지사의 아들은 이강석과 고교 동기였다. 어쨌든 ‘3일 천하’였다. 강씨의 재판에는 방청권을 나눠 줘야 할 정도로 방청객이 몰려들었다. 강씨는 법정에서 “경찰서장들이 극진한 대접을 함에 대한민국 관리들의 부패성을 테스트할 수 있었다”고 진술했다. 또 “할리우드 같았으면 60만 달러 정도의 연기료를 받을 수 있었을 터인데 나는 연기료 대신 벌을 받게 되었다”고 태연히 농담을 던졌다. 강씨가 받은 형은 징역 10개월이었다. ‘귀하신 몸’은 당시 유행어가 됐다.이승만의 하야 후 진짜 이강석은 아버지 이기붕과 어머니 박마리아, 남동생을 권총으로 살해하고 자신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로부터 3년 후인 1963년 8월 가짜 이강석 강씨도 대구 시내 ‘유림옥’이라는 술집에서 극약을 먹고 자살했다. 유서도 남기지 않았다. 진짜와 가짜의 기이한 인연이었다. 강씨도 그저 세상을 비관한 잡범에 불과했을까. 사진은 강씨의 죽음에 관한 당시 기사.
  • [그때의 사회면] 사건(5) 가짜 이강석 사건/손성진 논설주간

    [그때의 사회면] 사건(5) 가짜 이강석 사건/손성진 논설주간

    1957년 9월 대구 출신의 강성병(당시 22세)이란 청년이 이승만 대통령의 양자 이강석 행세를 하며 사흘 동안 경북도 내를 휘젓고 다닌 사건이 있었다. 아들이 없던 이승만은 민의원 의장으로 있던 이기붕의 장남 이강석을 그해 3월 양자로 들였다. 대통령을 양아버지로, 국회의장을 친아버지로 둔 이강석은 사실상의 ‘3인자’였다. 이강석은 대낮 파출소에서 헌병의 뺨을 갈기는 등 위세가 등등했다. 또 양자가 되자마자 서울대 법대에 부정 편입을 시도했다가 법대생들의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다. 대학 입시에 낙방한, 평범한 가정 출신의 청년으로 이강석과 닮았다는 말을 들었던 강씨는 이런 사실을 신문에서 보고 가짜 행세를 하기로 마음먹었다.강씨는 먼저 경주로 가 경찰서장을 만났다. 강씨가 “아버지의 비밀 분부로 풍수해 상황을 시찰하러 왔다”고 하자 서장은 깜짝 놀라며 “영감님, 귀하신 몸이 어찌 혼자 오셨습니까”라며 황송해했다. 경상도 말을 썼던 강씨는 말씨도 서울말 비슷하게 바꿨다. 이튿날 서장은 가짜 이강석을 모시고 가 불국사 관광도 시켜 주고 사진 촬영도 함께 했다. 그러면서 치안국 통신과장으로 영전을 부탁하기도 했다. 이강석이라고 하니 서장들이 쩔쩔매는 모습을 본 강씨는 이어서 경찰 지프를 얻어 타고 영천, 안동, 봉화로 옮겨 다니며 이강석 행세를 했다. 서장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극진한 대접을 했다. 안동에서는 강씨가 자고 나니 군수와 읍장이 연락을 받고 숙소로 찾아와 머리를 조아리기도 했다. 수재의연금과 여비 명목으로 강씨는 두둑한 돈도 챙겼다. 요구하기도 했지만 관리들이 알아서 준 돈도 있었다. 강씨는 봉화를 떠나 경북도지사 관사로 갔다 결국 덜미가 잡혔다. 도지사는 실제 이강석의 얼굴을 알고 있었고 도지사의 아들은 이강석과 고교 동기였다. 어쨌든 ‘3일 천하’였다. 강씨의 재판에는 방청권을 나눠 줘야 할 정도로 방청객이 몰려들었다. 강씨는 법정에서 “경찰서장들이 극진한 대접을 함에 대한민국 관리들의 부패성을 테스트할 수 있었다”고 진술했다. 또 “할리우드 같았으면 60만 달러 정도의 연기료를 받을 수 있었을 터인데 나는 연기료 대신 벌을 받게 되었다”고 태연히 농담을 던졌다. 강씨가 받은 형은 징역 10개월이었다. ‘귀하신 몸’은 당시 유행어가 됐다. 이승만의 하야 후 진짜 이강석은 아버지 이기붕과 어머니 박마리아, 남동생을 권총으로 살해하고 자신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로부터 3년 후인 1963년 8월 가짜 이강석 강씨도 대구 시내 ‘유림옥’이라는 술집에서 극약을 먹고 자살했다. 유서도 남기지 않았다. 진짜와 가짜의 기이한 인연이었다. 강씨도 그저 세상을 비관한 잡범에 불과했을까. 사진은 강씨의 죽음에 관한 당시 기사.
  • [특파원 칼럼] 미완의 인터뷰/이창구 베이징 특파원

    [특파원 칼럼] 미완의 인터뷰/이창구 베이징 특파원

    다이칭(戴晴·76·본명 푸닝)의 친아버지 푸다칭은 천두슈와 함께 중국 공산당을 창당했고 저우언라이와 난창봉기를 일으켰다. 1940년 일본헌병대에 암살된 항일투사이기도 하다. 다이칭의 양아버지 예젠잉은 마오쩌둥과 대장정을 이끈 홍군의 영웅이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10대 원수 중 한 명으로 추대됐다. 예젠잉은 절친이었던 푸다칭이 죽자 다이칭을 입양해 지극정성으로 키웠다.중국 인민의 존경을 한몸에 받는 두 아버지를 둔 다이칭은 베이징 중난하이에서 시진핑 등 혁명가 자제들과 유복하게 자랐다. 공산당 간부의 자녀들이 입학하는 하얼빈 군사공정학원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공부했다. 군 비리의 몸통으로 몰려 낙마한 쉬차이허우 전 군사위 부주석이 대학 친구다. 하지만 그녀는 1989년 톈안먼 민주화시위 때 시위대 편에 서면서 반체제의 길로 나섰다. 다이칭을 처음 만난 건 2015년 춘제(春節·설) 전날이었다. “마침 공안의 감시도 덜하니 만나서 세상 돌아가는 얘기나 하자”며 인터뷰 요청을 흔쾌히 허락했다. 손수 기른 유기농 쌀을 챙겨 주던 그녀의 얼굴에선 훙얼다이(紅二代·혁명 원로의 자손)의 권세도, 반체제 인사의 비장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고향집에 계신 어머니처럼 푸근했다. 다이칭을 다시 만나기로 마음먹은 것은 류샤오보(62)가 사망한 지난 13일이었다. 다이칭과 류샤오보는 1989년 톈안먼 광장에 함께 있었던 동지다. 광장이 유혈 진압된 직후 류샤오보와 함께 구속됐다. 이후 류샤오보는 공산당 체제 전복과 서구식 민주주의 도입을 주장했고 다이칭은 공산당 체제를 바탕으로 한 사민주의적 개혁을 외쳤다. 다이칭은 산샤댐 건설을 5년 이상 중단시킬 정도로 당국에는 눈엣가시였지만, 두 아버지 덕택에 다시 감옥에 가지는 않았다. 예상대로 다이칭과의 통화는 쉽지 않았다. “지금 연락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문자메시지만 왔다. 드디어 지난 17일 통화가 이뤄졌다. “내가 오늘 태국에 왔어. 아예 떠나 온 거야. 류샤오보 문제로 매우 긴장된 날을 보냈어. 추모도 제대로 못하고 온 게 못내 아쉬워.” 다이칭은 중국을 떠난 이유를 설명했다. “베이징은 물가가 너무 비싸고 공기도 안 좋잖아. 나 같은 늙은이가 살기엔 적당하지 않아. 태국에 오니 방세가 절반도 안 돼.” 정치적 이유 때문이라고는 굳이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래도 중국 공민이야. 언젠가는 다시 돌아가야지. 젊은이들을 가르쳐야 하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서면 인터뷰는 가능하다고 해서 이메일로 이런저런 질문을 보냈다. 다음날 문자가 왔다. “답변을 다 완성했는데 이상하게 메일 전송이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중국 통신사 이메일 계정을 쓰고 있었다. “당국이 보기엔 민감한 내용이라 중간에서 계속 걸러지는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검열이 없는 구글 이메일로 보내 달라고 말하려다가 참았다. 인터뷰 기사가 혹시 할머니의 이민 생활에 누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기자 친구, 중국에서 살아 보니 어때? 자유가 없다고, 공기가 나쁘다고 중국을 너무 미워하진 마. 나는 벌써 중국이 그리워. 류샤오보는 미국식 민주주의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했는데 나는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아. 중국 인민의 힘을 믿고 싶어. 나중에 만나서 못다한 얘기를 하자구.” 좀더 자유로워진 중국 땅에서 다이칭과 다시 만나길 고대한다. window2@seoul.co.kr
  • 3살 남아 개목줄에 매단 비정한 부부…“질식사 추정”

    3살 남아 개목줄에 매단 비정한 부부…“질식사 추정”

    지난 12일 낮 자기 집 침대 위에서 숨진 채 발견된 3살 남자 어린이는 개목줄을 목에 찬 채 침대에 묶여 있다가 질식사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14일 대구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이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C(3)군 시신 부검 결과 목이 졸려 사망한 것 같다는 1차 소견을 통보받았다. 경찰은 이를 토대로 C군 부모를 추궁해 “C군이 사망하기 전 목에 개목줄을 맨 뒤 침대 기둥에 묶어 놨다”는 진술을 받아냈다. A씨 부부는 한 달 전부터 C군이 침대에서 자거나 놀 때 개목줄을 목에 매고 침대에 묶어 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경찰에서 “평소에 아이가 침대를 많이 어질러 놓아서 그랬다”고 진술했다. 이들은 또 C군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음식을 주지 않거나 빗자루 등으로 매질을 했다. 이에 따라 경찰은 이날 아들을 상습적으로 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아동학대치사)로 친부 A(22·무직)씨와 계모 B(22)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대구지법 서부지원 영장전담 장윤선 판사는 이들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장 판사는 이날 오후 7시 30분쯤 구속영장을 발부하며 “피의자에 대한 범죄사실이 소명됐고 도주와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사유를 밝혔다. C군은 지난 12일 오후 2시쯤 자신의 침대에서 숨진 채 발견됐으며, 이를 발견한 계모 B씨가 소방당국에 신고했다. 신고 당시 B씨는 “아기가 침대 밑 줄에 걸려 숨졌다. 무서워서 지금 신고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C군이 숨진 현장에서는 핏방울이 발견됐고 몸 곳곳에 상처가 있었다. C군 친아버지인 A씨는 전처와의 사이에서 C군을 낳은 지 1년 만인 2015년 B씨와 재혼해 현재 8개월 된 딸이 있다. 경찰은 “딸아이는 별다른 상처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학대로 숨진 세 살… 주변 신고는 없었다

    발견 후 7시간 지나서야 신고, 질식사 추정… 경찰 부검 의뢰 3살짜리 어린이를 상습적으로 학대해 숨지게 한 부모가 경찰에 붙잡혔다. 부모들의 비정함과 잘못된 양육관도 문제지만 아동학대가 이뤄지는 동안 지인이나 이웃의 신고도 없었던 것으로 드러나 어린이의 안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과 경보 시스템 구축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구지방경찰청은 13일 대구 달서구 월성동의 한 아파트에 사는 남편 A(22)씨와 부인 B(22)씨에 대해 아동학대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A씨는 지난 4월부터 최근까지 ‘말을 듣지 않는다’, ‘주변을 어지럽힌다’ 등의 이유로 손으로 아들 C군의 머리, 다리 등을 마구 때린 혐의를 받고 있다. 또 B씨는 ‘방을 어지럽히고 말썽을 피운다’는 이유로 4주 전부터 플라스틱 빗자루, 쓰레받기 등으로 C군의 머리, 종아리 등을 수차례 폭행한 혐의다. A씨는 2013년 전처와의 사이에서 C군을 낳았고 2015년 B씨와 재혼했다. C군은 전날 오후 4시 20분쯤 집 침대 위에서 엎드려 숨진 채 발견됐다. 발견 당시 C군은 턱 부위가 찢어져 피를 흘리고 있었고 침대 곳곳에 핏자국이 있었다. 또 몸 여러 곳에 상처가 있는 게 확인됐다. 몸은 수척한 상태였다. A씨는 C군이 숨진 후 7시간이 지난 뒤 119에 신고했다. 그는 “오전 9시쯤 아이가 침대 밑의 줄에 걸려 숨져 있었고 무서워서 늦게 신고했다”고 경찰과 119에 진술했다. 경찰은 목 졸린 흔적이 있다는 점에서 C군이 질식사한 것으로 추정하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했다. A씨는 B씨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8개월)도 키우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C군과 달리 딸은 아동학대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A씨 부부는 뚜렷한 직업이 없으며 A씨가 자신의 아버지 일을 도와주고 받은 돈으로 생계를 꾸려 온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A씨 부부를 추궁해 학대 사실을 시인받았다. 경찰 관계자는 “A씨 부부는 평소 C군을 폭행한 사실만 인정할 뿐 사망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2월 경기 안산에서 8살 남자아이가 친아버지(35)의 방조 아래 의붓어머니(29)로부터 반년 동안 배를 발로 걷어차이는 등 학대를 받다 숨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로부터 3일 뒤에는 경기 이천에서 친어머니(26)와 외할머니(50)의 지속적인 학대로 3살 난 여아가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는 등 반인륜적 범죄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차승원 아들 차노아 근황. “헬스 강사 자격증 땄다” 프로게이머는?

    차승원 아들 차노아 근황. “헬스 강사 자격증 땄다” 프로게이머는?

    ‘대마초+성폭행 논란’으로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차승원 아들 차노아의 근황이 공개됐다. 최근 방송된 TV조선 ‘별별톡쇼’에서는 지난 2013년 대마초 흡연 혐의로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 성폭행 무혐의 처분을 받은 배우 차승원의 아들인 전 프로게이머 차노아의 근황이 공개됐다. 이날 변호사는 “2014년 7월 차승원의 아내 이수진의 전남편 조 씨가 이들을 상대로 ‘내가 노아의 친아버지인데 차승원이 친부처럼 행동해 내 명예가 훼손됐다’면서 1억 1백 만 원 손해 배상 청구를 했다”고 밝혔다. 이에 시사문화평론가는 “이 사건이 언론에 공개가 되고 나서 차승원이 소속사를 통해서 공식 입장을 밝힌다. 2014년 10월 5일이었다. ‘22년 전 아내가 전남편과 사이에서 낳은 3살배기 아들도 함께 가족이 됐다. 하지만 나는 내 마음으로 낳은 아들이라고 굳게 믿고 있으며 지금도 단 한 번도 그때의 선택을 후회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고 전했다. 그러자 붐은 “아무래도 25년 동안 차승원을 친아버지라고 생각하고 살았던 차노아의 충격이 가장 컸을 텐데, 차승원은 한 매체를 통해 ‘노아와 처음으로 이런 얘기를 나눠봤다. 다행히 노아가 내가 아버지라고 했다. 담담하게 받아들였고, 되레 힘들었을 엄마, 아빠를 위로했다’고 밝혔다”고 추가했다. 이에 정선희는 “차승원과 차노아는 현재 근황이 어떻냐? 어떻게 지내냐?”고 물었고, 김태현은 “차노아가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게임에 흥미와 소질을 보였었다. 2012년 프로 팀에 소속이 돼서 프로게이머로 활동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에 차승원은 ‘아이가 원하는 일이고, 아내도 한 번 시켜보자고 했다’며 아들을 응원을 했었다”고 입을 열었다. 김태현은 이어 “이후에는 강남의 한 헬스클럽에서 부자가 함께 운동하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기도 했고. 차승원은 차노아의 남다른 운동실력을 보고 ‘헬스 트레이너를 해보지 않겠냐?’고 권유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차노아는 차승원의 전폭적인 지지로 전문 강사 자격증을 딴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한 연예계 관계자가 ‘차노아 역시 많이 방황했지만, 안정을 되찾았고, 지금은 잘 지내고 있다’고 전했다”고 답했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서로 존재조차 몰랐던 아빠와 딸…40년 만에 페북으로 만나

    서로 존재조차 몰랐던 아빠와 딸…40년 만에 페북으로 만나

    미국 콜로라도의 한 여성이 페이스북을 통해 무려 40년 만에 친아버지를 찾아내 화제에 올랐다. 최근 미국 ABC뉴스는 질 저스타몬드(40)와 알 안유지아타(63)의 믿기 힘든 만남의 사연을 전했다. 부녀 사이의 얽힌 사연은 출생의 비밀을 다룬 한 편의 드라마를 연상케 한다. 질이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것은 한창 감수성이 예민할 나이인 10세 때. 당시 그녀는 지금까지 자신을 키워 온 부모가 사실은 외조부모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다. 사연은 이렇다. 친어머니인 린다는 18세 때 딸 질을 낳았다. 그러나 아기를 키울 여건이 되지 못했던 그녀는 질을 양아버지와 친어머니에게 맡기게 된다. 이후 질은 조부모를 부모로, 심지어 친어머니 린다를 이복 언니로 알아왔다. 질은 "당시 출생의 비밀을 알고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다"면서 "친엄마는 나를 키울 준비도, 키울 마음도 없었다고 털어놨다"고 회상했다. 이후 그녀에게 남겨진 오랜 숙제는 친아버지를 찾는 것이었다. 그녀가 태어나게 된 계기도 한 편의 드라마였다. 친엄마인 린다는 40여년 전 뉴저지주의 한 바에서 일을 했는데 당시 이곳에서 이탈리아 남자를 만나 '하룻밤'을 보냈다. 이때 태어난 아기가 바로 질이었다. 문제는 '하룻밤'이었던 관계로 친엄마인 린다가 그 남자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유일하게 기억한 단서는 알(Al)이라는 이름을 쓰는 이탈리아 남자라는 것. 이렇게 몇 안되는 단서를 얻게 된 질은 지난 4월 3일 페이스북에 사연과 함께 아빠를 찾는다는 글을 올렸다. 그리고 이 글은 수많은 페이스북 사용자들 사이에 공유되면서 당시 바를 운영했던 사장에게까지 연결됐다. 그리고 다행히 사장은 알이라는 남자의 정체를 알려주면서 질과 친아버지와의 40년 간 끊어진 고리가 이어졌으며, DNA 검사를 통해 혈육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렇게 지난 11일 두 사람은 뉴저지주에서 40년 만에 처음으로 만났다. 그리고 지금은 체인점 '본죽'으로 바뀐 옛날의 바 앞에서 기념촬영도 했다. 아버지 알은 "40년 전 태어난 내 딸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안 순간 심장이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면서 "40년 간 한 번도 축하해주지 못한 생일을 위해 많은 카드와 선물을 준비했다"며 웃었다. 딸 질도 "오늘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라면서 "40년 간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떨어져 살았지만 우리가 매우 가깝다는 것이 느낌으로 온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삼국지로 풀어 보는 法이야기] 관우 아들로 입양 간 관평… 친부 사망하면 상속받을 수 있나

    [삼국지로 풀어 보는 法이야기] 관우 아들로 입양 간 관평… 친부 사망하면 상속받을 수 있나

    관우는 조조의 다섯 관문을 돌파해 기주에 도착한다. 그러곤 원술에게 의탁해 있는 유비를 기다리는 동안 관정의 집에 유숙하며 많은 신세를 진다. 관정은 관우에게 방과 음식을 기꺼이 내주며 호의를 베푼다. 마침내 관정의 집에서 유비와 관우는 재회한다. 현장에는 관정의 아들 관녕과 관평도 입회한다. 늠름한 표정의 관녕과 관평이 마음에 든 유비는 관우에게 이들을 양자로 삼을 것을 권유한다. 관정은 둘째인 관평을 관우의 양자로 보내는 데 흔쾌히 동의한다. 자식이 없는 관우 역시 기쁜 마음으로 관평을 아들로 삼는다. 관평이 친아버지인 관정의 곁을 떠나 관우와 함께 역사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 원저 : 요코야마 미쓰테루(橫山光輝) ※ 참고 : 만화 삼국지 30, 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역자 이길진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는 조조의 공격을 받아 서로의 생사를 알지도 못한 채 뿔뿔이 흩어진다. 그 후 각자 몸을 숨긴 채 후일을 도모하다 기주에서 극적으로 재회한다. 그리고 기주에서 관우는 유비의 권유로 같은 성을 가진 관평을 아들로 삼는다. 또 훗날 조인으로부터 번성을 빼앗은 유비는 현령인 유필의 조카 유봉이 한눈에 마음에 든다. 유봉에게 마음을 빼앗긴 유비는 미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두(유선)가 있는데도 유봉을 양자로 들인다. 이처럼 입양을 통해 양자로 삼는 것은 당사자의 합의만 있으면 되는 것일까. 혹시 다른 요건을 갖추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관우에게 아들이 없는 이유가 미혼이었기 때문이라면 미혼자가 입양을 하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을까. 입양에 의해서는 어떤 법적인 효과가 생길까. ●관우와 관정, 둘 다 관평의 아버지 입양은 혼인과 함께 가족 관계가 새로 만들어지는 대표적인 가족법상의 법률행위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아도 입양에 의해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가 생긴다. 부양의무와 상속권도 생긴다. 이처럼 매우 중요한 효과가 있는 만큼 입양을 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요건이 필요하다. 먼저 관우가 입양에 의해 양친(養親)이 되려면 어떤 요건을 갖추어야 할까. 일단 성년이어야 한다(민법 제866조). 성년이기만 하면 결혼을 하지 않았어도 입양할 수 있다. 다만 결혼을 했다면 부인과 공동으로 입양해야 한다(제874조). 관우가 부인을 제외하고 관평과의 관계에서만 양친이 될 수는 없다. 반대로 양자가 되려는 관평에게도 갖춰야 할 요건이 있다. 관평은 성년이든 미성년이든 상관없이 양자가 될 수 있다. 다만 관우보다 나이가 많아서는 안 된다. 또 동성동본인 경우 관우보다 항렬이 높아서는 안 된다(제877조). 즉 관평이 관우보다 나이도 적고, 손아래 항렬이라야만 관우의 양자가 될 수 있다. 입양이 이뤄진 후 친부(親父)인 관정, 양부(養父)인 관우는 관평과 어떤 관계에 놓이게 될까. 먼저 관평이 미성년자라면 관평에 대한 친권과 양육권은 양부인 관우가 갖는다. 반대로 친부인 관정의 친권과 양육권은 입양에 의해 없어진다. 하지만 관정은 친권과 양육권 이외에는 여전히 관평의 아버지로서 지위를 갖는다. 즉 관평이 입양됐더라도 관평과 관정의 부자관계는 유지된다. 따라서 입양 이후에도 여전히 관평은 관정을 부양할 의무가 있고, 관정이 사망한 경우에는 관평도 상속인이 된다. 관평의 입장에서 보면 관우와 관정을 둘 다 부양할 의무가 생기는 동시에 관우와 관정의 상속권도 갖게 된다. 관평에게는 두 명의 아버지가 생기는 셈이다. 만일 관평의 성과 본이 처음부터 관우와 같지 않았다면 입양에 의해 저절로 같아지게 될까. 그렇지는 않다. 우리 민법은 성(姓) 불변의 원칙을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관평이 관우의 성과 본을 따르려면 별도로 성본변경허가 절차(제781조 제6항)를 거쳐야 한다. ●관우, 관평의 유일한 아버지 될 수도 관우의 입장에서 보면 관정과 관평의 부자 관계가 계속 유지되는 것이 껄끄러울 수도 있다. 가족관계증명서에 친자관계 발생 원인이 ‘2017. 6. 16.자 입양’ 등으로 표기돼 입양 사실이 쉽게 공개될 수도 있다.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2008년 1월 1일부터 친양자(親養子) 제도가 도입됐다. 관평이 관우의 친양자가 되면 관평과 관정의 친자 관계가 단절된다. 동시에 관평은 관우의 친자식이 된다. 이처럼 친양자 관계가 되면 직접 출산한 것처럼 강한 효과가 생기기 때문에 친양자 입양을 하기 위한 요건은 상당히 까다롭다. 먼저 관우가 관평을 친양자로 입양하기 위해서는 3년 이상 혼인 관계에 있는 부인이 있어야 한다. 또 부인과 공동으로 입양해야 한다. 나아가 친양자가 되려는 관평은 반드시 미성년자라야 한다(제908조의 2 제1항). 따라서 관우가 결혼을 하지 않았다거나 관평이 성년자라면 친양자로 입양할 수는 없다. 다만 재혼한 부부 사이에서는 친양자를 입양하기 위해 필요한 혼인 기간이 1년으로 짧아진다. 재혼하기 전 혼인 관계에서 출생한 자녀를 친양자로 입양하는 길을 수월하게 열어 줘 재혼 가정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여기에 가정법원에서 양육 상황, 입양의 동기, 양육 능력 등을 심의해 허가를 해 주어야 한다(제908조의 2 제3항). ●유비에게 유봉은 친양자가 될 수 있나 유비가 유봉을 입양한 사례에는 조금 다른 문제가 있다. 유봉의 원래 이름은 구봉(寇封)이었다. 성이 다른 아이를 유필이 성을 유(劉)로 바꾸어 아들처럼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유필과 유봉이 양자관계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유비에게는 이미 미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두가 있다. 두 가지 의문이 생긴다. 양자관계에 놓여 있던 유봉을 유비가 친양자로 삼을 수 있을까. 나아가 아두라는 아들이 있는 유비가 유봉을 친양자로 맞을 수 있을까. 먼저 유필이 미성년인 유봉을 일반 입양했다고 치자. 이 경우 유비가 유봉을 양자로 입양하려면 양친인 유필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또 유봉의 친부모가 살아 있었다면 친부모의 동의도 함께 받아야 한다. 만일 유필이 미성년인 유봉을 친양자로 입양한 상태라면 어떻게 될까. 이 경우에는 친부모의 동의 없이 양친인 유필의 동의만 받으면 된다. 유비가 유봉을 친양자로 입양하면 유봉은 유비와 미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인 중의 출생자가 된다(제908조의 3 제1항). 따라서 유봉은 유비 또는 미부인의 성과 본을 쓰게 된다. 유비가 유봉을 친양자로 입양할 때 유비에게 다른 자녀가 있는지 여부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유비가 유봉을 입양할 때 결정적인 문제는 ‘과연 미부인이 동의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자신의 아들 아두가 후계자가 될 수 있는데, 입양으로 유봉을 얻으면 왕위 계승 경쟁을 해야 할 가능성도 생긴다. 유봉이 유비의 마음에 들어 입양됐으니 유봉이 왕위 계승 1순위자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관우와 장비가 유비의 성급한 결정에 대해 훗날 화근이 되지 않을지 걱정한 것도 무리가 전혀 아닌 것이다. 양중진 법무부 법질서선진화과장(부장검사)
  • 친딸 7살 때부터 12년 동안…짐승만도 못한 30대男

    친딸 7살 때부터 12년 동안…짐승만도 못한 30대男

    친딸을 상습적으로 성관계를 갖고 3번이나 임신시킨 인면수심의 남자가 교도소 신세를 지게 됐다. 2일 현지 언론에 따르면 아르헨티나 경찰은 부에노스 아이레스주 돈보스코에 사는 36살 남자를 성폭행 혐의로 긴급 체포했다. 남자는 10대에 동거를 시작해 일찍이 아빠가 됐다. 17살에 난 첫 아이는 딸이었다. 하지만 딸에게 인생은 악몽과 같았다. 남자는 딸이 7살 된 해부터 상습적인 성관계를 갖기 시작했다. 딸은 올해 19살이 됐다. 친아버지의 성폭행은 12년간 계속됐다. 이 과정에서 딸은 3번이나 임신을 했다. 하지만 살아남은 아기는 1명 뿐이다. 친딸이 낳은 첫 아기는 9개월 만에 심장질환으로 사망했다. 두 번째 임신에선 아빠는 할아버지(성폭행범), 엄마는 아버지의 딸(성폭행 피해자)로 잔뜩 꼬인 가족관계를 가진 아들이 태어났다. 남자는 이런 아기가 더 태어나는 게 부담스러웠는지 세 번째 아기를 임신한 딸에게 낙태를 강요했다. 견디다 못한 딸이 사건을 경찰에 신고한 건 최근이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딸은 지난달 30일 “아버지의 성폭행으로 여러 차례 임신했다”고 아버지의 상습적인 성폭행 사실을 경찰에 알렸다. 경찰은 자택 주변 농장에서 일하던 남자를 체포했다. 경찰 관계자는 “남자가 딸과 관계를 가진 사실은 인정하고 있지만 강제성은 없었다고 뻔뻔한 주장을 펴고 있다”고 말했다.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 성폭행 피해 여성, 오히려 ‘돌팔매 사형’ 선고 받아

    성폭행 피해 여성, 오히려 ‘돌팔매 사형’ 선고 받아

    파키스탄의 한 10대 소녀가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사형선고를 받았다. 파키스탄 일간지 익스프레스트리뷴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19살의 파키스탄 여성은 펀자브주 라잔푸르에 있는 친척집을 방문했다가 잠을 자는 동안 들이닥친 친척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이 여성은 곧바로 마을의 공공안전 등을 책임지는 자치기관에 이를 신고했고, 마을 원로들이 모여 만든 ‘자치법원’이 해당 사건을 조사했다. 피해 여성은 사촌이 자신에게 총구를 겨누기까지 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는데, 놀랍게도 이 마을 법원은 소녀에게 일명 ‘돌팔매 사형’이라 부르는 투석형을 선고했다. 해당 마을의 자치법원은 이 여성이 먼저 자신의 친척을 유혹했으며, 이는 전통적인 질서와 규범을 어긴 간통이라고 판단해 사형을 선고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 판결을 내린 자치기관 내에 성폭행 혐의가 있는 가해 남성의 친아버지가 포함돼 있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문제의 가해 남성에 대해서는 어떠한 처벌도 내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결과적으로 이 성폭행 피해 여성은 돌팔매 사형을 당하거나 이를 피하고자 한다면 다른 남성에게 매매되어야 하는 어이없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부족 원로들의 판결에 승복할 수 없던 피해 여성의 아버지 등 가족은 경찰서를 찾아가 해당 사건을 정식 사법 절차로 다뤄달라고 의뢰했다. 한편 파키스탄의 일부 농촌 지방에서는 부족원로들로 구성된 이들의 유사 재판은 몇 년째 정부의 골칫거리로 꼽히고 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남성원로들로 구성된 자치기구가 근대 사법체계와 맞지 않는 황당 판결을 내리는 사례가 잇따르자 정부는 법원 중심의 분쟁해결 체제를 갖추려 애쓰고 있다. 사진=포토리아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1살 인생’ 마지막 길은 따뜻했네

    ‘1살 인생’ 마지막 길은 따뜻했네

    친아버지의 폭행으로 숨진 한 살배기 아기의 마지막 길은 외롭지 않았다. 아기의 장례를 치러줄 가족이 없고 영정 하나 없었지만 경찰이 대신 장례를 치러준 것이다. A군은 지난 4일 오전 5시 50분쯤 경기도 시흥시 한 병원에서 갑자기 숨졌다. 경찰 조사 결과 A군은 지난달 30일 친부(31)의 무자비한 폭행으로 복부 장기가 파열돼 5일간 앓다가 숨진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친아버지에 대해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친어머니(22)에 대해선 아동복지법 위반(방임) 혐의로 불구속 입건해 수사하고 있다. A군은 숨질 당시 체중이 6.1㎏으로 정상아기 체중의 60%에 불과했다. 경찰은 A군의 형과 누나도 발육상태가 좋지 못하다고 판단해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인계했다. 피의자인 친모도 정신적 충격이 심해 여성보호기관에 인계했다. A군의 부모는 모두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 가족들과 인연을 끊고 살아온 터라 장례를 치를 가족이 없었다. 이에 경찰은 숨진 아기의 딱한 사정이 안타까워 마지막을 지켰다. 경찰은 범죄피해자지원센터의 협조를 얻어 아기의 장례비 200여만원으로 6일 오전 시흥 한 병원에서 시신을 입관하고,인천 한 화장장에서 화장했다. 운구는 형사기동대 차량으로 했다. 이날 장례식에는 친모 C씨도 자리했으며,화장된 아기의 유골은 시흥 시립묘지에 안장됐다. 한광규 시흥서 형사과장은“관내에서 발생한 안타까운 사건이 다신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형사들이 동행해 장례를 치러줬다”라고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혼 후 300일 내 태어난 아이 소송 없이 친아버지 찾는다

    전남편 아이 ‘자동 등재’ 안 돼 이혼 후 300일 안에 출생한 자녀는 전남편의 아이로 추정해 재혼한 남편이 친아버지로 인정받으려면 소송을 거쳐야 했지만 이제는 간단한 허가 청구를 통해 이를 바로잡을 수 있게 된다. 정부는 28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러한 내용을 담은 민법 개정안 등 법률안 4건, 대통령령안 9건, 일반안건 4건, 보고안건 1건을 심의·의결했다. 현행 민법에선 이혼 후 300일 안에 태어난 아이는 무조건 전남편의 아이로 가족관계등록부에 기재해야 한다. 이를 피하려면 2년 내에 자신의 아이가 전남편의 아이가 아니라는 ‘친생부인(親生否認)의 소’를 제기해 판결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민법을 개정하면서 이혼 후 300일 내에 태어난 자녀에 대해 소송보다 훨씬 간단한 허가 청구를 통해 전남편의 아이가 아니라는 결정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재혼한 남편인 친아버지도 허가 청구를 통해 자신이 친아버지란 사실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했다. 기존에는 전남편과 부인 중 한 사람만이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었다. 허가 청구가 들어오면 가정법원은 혈액형 검사, 유전인자의 검사, 장기간 별거 여부 등의 사정을 고려해 허가 여부를 결정하도록 했다. 이는 헌법재판소가 2015년 5월 이러한 민법 조항이 양성평등에 기초한 혼인 등 헌법에서 보장하는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에 따른 것이다. 정부는 또 검역 공무원과 감염병 방역관, 역학조사관, 동물보호감시원으로 임명된 공무원, 고용보험 지원금 부정 수급에 대한 조사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 등에게 사법경찰권을 부여할 수 있도록 사법경찰관리의 직무를 수행할 자와 그 직무 범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심의·의결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영국 최연소 엄마’ 된 11세 소녀…아이 父도 10대

    ‘영국 최연소 엄마’ 된 11세 소녀…아이 父도 10대

    영국의 한 소녀가 불과 11세의 나이에 임신하면서 ‘영국 최연소 엄마’로 기록됐다. 현지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16일자 보도에 따르면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이 소녀는 현재 임신 중이며, 몇 주 안에 아이를 출산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확한 예정일은 공개되지 않았다. 사건을 조사 중인 현지 경찰에 따르면 11세 소녀의 뱃속에서 자라는 아기의 아버지는 이 소녀와 불과 몇 살 차이나지 않는 10대 소년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충격을 더했다. 이번 사건으로 지금까지 ‘영국 최연소 엄마’로 불렸던 여성들의 사연이 다시 한 번 화제가 되고 있다. 그 중 한명인 트레사 미들턴(23)은 12살이었던 2005년, 5살 많은 친오빠에게 성폭행당한 뒤 아이를 임신했다. DNA검사를 통해 미들턴의 딸 애니의 친부가 미들턴의 친오빠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그는 2009년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다. 미들턴은 현재 약혼자와 결혼을 앞두고 있으며, 애니에 이어 둘째 아이를 임신 중이다. 애니는 "아직 딸이 자신의 외삼촌이 사실은 친아버지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알게 되면 큰 충격을 받을 것"이라면서 "언젠가 딸이 이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나를 이해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미들턴에 이어 2014년 ‘영국 최연소 엄마’가 된 소녀는 영국 북런던에 살던 12세 A였다. 2014년 A는 한 살 많은 소년 B와의 사이에서 체중 3.28㎏의 딸을 출산했다. A는 미들턴이 딸을 출산했을 때와 같은 나이였지만 출산 시기가 미들턴에 비해 5개월 더 빨라 ‘최연소 엄마’ 타이틀을 달게 됐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양승태 대법원장, 이정미 권한대행 후임에 이선애 변호사 지명

    양승태 대법원장, 이정미 권한대행 후임에 이선애 변호사 지명

    오는 13일 퇴임하는 이정미(55·사법연수원 16기)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후임으로 이선애(50·연수원 21기) 변호사가 지명됐다. 대법원은 양승태 대법원장이 이 변호사를 이 재판관 후임으로 지명했다고 6일 밝혔다. 현재 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위원을 맡고 있는 이 변호사는 서울민사지법 판사로 임관해 대전지법, 서울행정법원, 서울고등법원을 거쳤고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을 지내기도 했다. 또 법무부 차별금지법 특별분과위원회 위원, 법제처 법령해석심의위원회 위원으로도 참여했다. 이정미 재판관이 퇴임하기 전에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헌재의 탄핵심판 결정이 나오지 않고, 후임으로 지명된 이선애 변호사가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헌재 재판관으로 임명된다면 탄핵심판 절차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돼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재판관이 평결에 참여하지 않은 채 퇴임하면 후임자를 위해서 다시 변론을 해야 하는 까닭이다. 그렇지 않으면 탄핵심판 변론에 참여하지 않은 이 변호사는 재판관이 되더라도 탄핵심판 결정에 참여할 수 없다. 그럴 경우 7인의 재판관이 탄핵심판 선고를 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 이와 관련해 이선애 변호사의 경력이 논란이 되고 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의 변호인단인 유영하 변호사와 함께 인권위원회에서 활동했던 것이다. 이선애 변호사가 2014년 1월부터 2017년 1월까지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할 당시 유영하 변호사도 2014년 3월부터 2016년 1월까지 상임위원으로 근무했다. 이들이 함께 근무한 시기는 22개월 정도된다. 이에 대해 네티즌들과 정치권은 우려를 표하는 의견과 인권위와 헌재는 상관이 없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이 변호사의 특징을 보여주는 헌재 관련 사건이 있다.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이 여성에게만 입학을 허용해 평등권과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2011년 헌법소원 사건에 대해 당시 학교 측의 법률 대리인으로 나선 이 변호사의 변론이 유명하다. 당시 헌법 재판관들이 “이화여대가 125년간 유지한 ’재학 중 결혼 불가‘라는 학칙을 바꾼 바 있는데, 여성만 입학할 수 있는 전통 역시 시대의 흐름에 따라 바꿀 수 있지 않느냐”라고 묻자 이 변호사는 “여대로서의 전통과 정체성, 그에 맞춘 교육법은 이화여대가 꼭 지키고 싶은 부분으로 국가의 강제로 변경된다면 이는 사학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헌재는 이화여대 로스쿨의 ‘여성만 입학 허용’이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 변호사 지명에 대해 대법원은 “헌법재판관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적 자질에 더해 국민을 위한 봉사 자세, 도덕성 등을 철저히 심사했다”면서 “특히 헌재의 기능과 역할을 중시해 소수자 보호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등을 적절히 대변하고 조화시킬 수 있는 인물인지를 주요 인선 기준으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또 이 변호사가 “학창시절 친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의류노점을 하는 의붓아버지와 어머니 슬하에서 사실상 가장 역할을 하며 어렵게 생활하였음에도 좌절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학업에 매진에 제31회 사법시험에(1989년) 수석으로 합격했다는 것이다. 사법연수원은 3등으로 마쳤다. 2004년 서울고법 판사를 끝으로 법원을 떠난 이 변호사는 법무법인 화우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말 못할 경제적 사정”으로 법원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여성변호사회 이사도 맡고 있다. 이선애 변호사는 중도 보수 성향으로 분류된다. 남편은 김현룡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다. 국회 인사청문회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임명 절차를 거쳐야 해서 적어도 재판관 임명까지는 한 달 이상 소요될 전망이다. 따라서 이 재판관 퇴임 이후 한동안 헌재는 7인 체제로 운영될 것으로 보인다. 이 재판관이 퇴임하면 남아있는 헌재 재판관 중 최선임인 김이수(64·연수원 9기) 재판관이 헌재소장 권한대행을 이어받을 예정이다. 한편 헌재는 오는 10일 전후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선고를 할 것으로 전해졌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초·중생, 이틀 무단결석하면 가정방문

    다음 달부터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이 이틀만 결석해도 학교에서 가정방문을 할 수 있게 된다. 교육부와 법제처는 26일 이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초중등 교육법 시행령이 다음달 1일부터 시행된다고 밝혔다. 이에 따르면 학교장은 학생이 입학이나 전학일 이후 이틀 이상 학교에 나오지 않으면 보호자에게 학생 출석을 독촉하거나 가정을 찾아 소재나 안전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시행령은 독촉이나 경고를 했는데도 상황 변화가 없으면 아동이나 학생 거주지를 관할하는 읍·면·동장, 그리고 교육장에게 상황을 통보해야 한다. 또 고등학교장은 학생이 이틀 이상 무단결석하는 경우 해당 학생과 보호자에게 결석 사유를 확인해야 하고, 일주일 이상 무단결석한 학생의 성명 등을 교육감에게 통보해야 한다. 이같은 시행령은 지난해 2월 발생한 ‘원영이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한 조치다. 신원영 군은 지난해 1월 초등학교에 입학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해 2월에 친아버지와 의붓어머니의 학대로 숨진 뒤, 개학 후 뒤늦게 이런 사실이 파악되어 충격을 주었다. 정부는 보호 사각지대에 놓인 결석 아동과 초·중학생의 소재와 안전을 확인하고 제2의 원영이 사건을 막기 위해 관련 법령을 마련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마돈나가 입양한 쌍둥이 父, “친부 권리 포기 안했다”

    미국 팝가수 마돈나(58)가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4세 쌍둥이 여아를 입양한 소식이 알려지면서 찬사가 쏟아진 가운데, 이 쌍둥이 여아의 아버지가 충격적인 폭로를 해 눈길이 쏠리고 있다. 마돈나는 이달 초, 현지 법원으로부터 에스터와 스텔라라는 이름의 4세 쌍둥이 여아 입양 승인을 얻었다. 이후 자신의 SNS에 두 쌍둥이의 사진을 올리며 입양을 공개적으로 확정했다. 마돈나는 이미 2006년 데이비드 반다, 2009년 머시 제임스 등 두 아이를 말라위에서 입양한 바 있다. 이번에 입양한 두 여아는 잠비아 국경 인근 마을에 살다 보육원으로 보내졌다. 말라위 사법부 관계자에 따르면 아이들의 엄마는 이들을 낳고 일주일 만에 사망했고, 이후 형편이 어려워지자 아버지가 직접 쌍둥이 딸들을 보육원에 맡겼다. 아프리카 지역 아이들의 잇따른 입양이 이어지면서 마돈나는 ‘선행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는데, 최근 에스터·스텔라 쌍둥이 자매의 친아버지라고 밝힌 남성이 영국 언론에 “아이들의 입양을 승인하지 않았다”고 밝혀 논란이 예상된다. 그는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일요판인 ‘더 메일 온 선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유명하고 돈 많은 여성이 쌍둥이 딸들을 데려가 좋은 교육을 시켜주고, 그 이후에 다시 딸들이 내 곁으로, 우리 가족 곁으로 돌아오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하지만 지금 사람들은 내게 ‘딸들을 영원히 입양 보낸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나는 이것이 사실이라고 믿고 싶지 않다. 나는 현재도 그 아이들의 아버지이고, 미래에도 그럴 것”이라고 밝혔다. 아내가 사망한 뒤 두 쌍둥이를 버렸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강하게 부인했다. 그는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환경에 있길 바라는 마음에 직접 보육원에 데려다 준 것 뿐”이라면서 “법원의 입양 판결로 내 딸들을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말했다. 이 남성은 자신이 사인한 문서가 영원히 딸들을 볼 수 없다는 것에 동의하는 것인줄은 몰랐다며, 자신이 쌍둥이들의 아빠인 이상 아이들이 언젠가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와 관련해 마돈나 측은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32년 간 키운 아들, TV쇼에서 친자식 아님이 밝혀져

    32년 간 키운 아들, TV쇼에서 친자식 아님이 밝혀져

    한 남성이 32년 동안 키운 아들이 자신의 핏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비통에 잠겼다. 지난 14일(현지시간) 영국 더썬의 보도에 따르면, 영국 ITV유명 프로그램 ‘제레미 카일쇼(Jeremy Kyle Show)’에서 이 같은 모습이 방송됐다. 아빠 오스카와 그의 아들 발렌타인은 혈연관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스튜디오에 출연했다. 한 달 전쯤 발렌타인의 엄마는 오스카가 아들의 친아버지가 아닐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고 진실을 알아보기로 결심한 부자는 DNA검사를 의뢰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 결과가 TV쇼에서 공개됐다. TV쇼 호스트인 제레미 카일은 "DNA조사 결과, 오스카는 발렌타인의 생부가 아니다"고 말했다. 절망에 빠져 통곡하던 오스카는 제레미에게 "이 애가 내 아들이 아니라구요?"라고 되물었다. 이에 제레미는 "그가 당신의 아들일 가능성이 없다"고 대답했고, 아들 발렌타인 또한 말문이 막혀 아무 말을 못했다. 맹목적인 아빠였던 오스카는 아들을 나이지리아에서 영국으로 데려오기 위해 많은 경비를 지원했고 그를 영국 학교에 진학시켰다. 아들 바보였던 그의 실망감과 절망감은 형언할 수 없는 정도였다. 쇼의 뒷부분에서 제레미는 "아빠가 된다는 것은 핏줄이 같다는 의미가 아니다. 한 남자가 아이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어떤 것도 아빠와 아들 사이의 특별한 유대감을 끊을 수 없다"면서 오스카를 위로했다. 한편 검사를 시행한 기관 측도 큰 충격을 받았고, 프로그램 시청자들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당혹스러운 분위기를 전했다. 일부는 '자신이 경험한 일 중 가장 슬픈 결말' 이라며 이번 에피소드를 설명했다. 트위터에서도 "두 남자의 삶을 바꾸는 폭탄이 날아들어 그들을 비탄에 빠뜨렸다"며 "내 가슴이 아프다"는 반응을 보였다. 사진=더썬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인도주의·남북 화합 정신 남기고 떠난 ‘큰어른’

    인도주의·남북 화합 정신 남기고 떠난 ‘큰어른’

    서영훈 전 대한적십자사(한적) 총재가 지난 4일 오전 9시쯤 입원 중이던 서울적십자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94세.1923년 평남 덕천에서 태어난 고인은 남북적십자회담 대표와 흥사단 이사장, 민주평통 정책심의분과위원장, KBS 사장, 정의사회구현협의회 상임공동대표, 시민의신문 대표이사, 김대중 대통령 통일 고문, 새천년민주당 대표 최고위원과 16대 국회의원 등을 역임했다. 고인은 1953년 한적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청소년국장으로 부임한 그는 청소년 적십자를 설립해 중고생들에게 해외 연수 기회를 제공하는 등 인재 양성에 힘썼다. 1972년에는 한적 사무총장에 올라 10년간 한적의 살림을 돌봤다. 이후 언론과 정계 등 다양한 곳에서 활약한 뒤 2001년 제22대 한적 총재 자리에 올랐다. 한적은 “고인은 5·18민주화운동 당시에는 직접 앰뷸런스에 탑승해 광주 시민들을 구호하는 생명 구호 활동에도 앞장섰다”면서 “인도주의 발전에 큰 업적을 남겼다”고 평가했다. 고인은 남북 교류·화합 등에도 힘을 쏟았다. 1972년 8월 평양에서 열린 제1차 남북적십자회담을 비롯해 수차례 회담에 남측 대표로 참석해 남북 화해와 협력에 애썼다. 당시 외부 강연에서 “북한을 통해 배울 건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1996년에는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대표를 맡아 대북 지원 활동을 벌였다. 국내에 매혈 대신 헌혈이 자리잡게 한 공로도 인정받았다.이날 오후 2시쯤 빈소를 찾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1962년 제가 적십자 대표로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을 만나러 미국에 갔을 때 서 전 총재가 청소년부장이셨다. 친아버지처럼 지도해 주셨다”며 “적십자 덕택에 유엔 사무총장까지 할 수 있었다”고 말한 뒤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쳤다. 부인 어귀선씨와의 사이에 아들 홍석·유석·경석씨, 딸 희경씨 등 3남 1녀를 두고 있다. 발인은 7일 오전 9시, 빈소는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3호실. (02)3410-6903.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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