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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주영회장­고르바초프 요담 40분

    ◎“한­소­북한 한솥밥 먹을날 온다”/소경제 어려워 한국의 도움 필요 고르비/동북아 안정되게 소 협조를 바라 정회장 소련을 방문 중인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현지 시간으로 5일 하오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고르바초프대통령과 만나 40여분간 요담했다. 이날 두사람의 요담에는 메드베데프 소련대통령위원회 자문위원과 페트라코프 대통령경제특별보좌관 및 이명박 현대건설회장,양측 통역요원이 각각 한명씩 배석했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소련의 선진과학기술과 한국의 경제발전 능력을 합치면 양국의 성장ㆍ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제하고 소련은 현재 소비재 및 생필품 부족등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이와 관련해 한국의 협조가 크게 기대된다고 밝혔다. 그는 또 귀국 후 노태우대통령에게 한소간에 좋은 협조관계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이런 내용을 전해줄 것을 부탁했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한소경제협회가 오는 20일 「소련의 개방ㆍ개혁정책과 한소경제협력」이라는 주제로 서울에서 세미나를 갖는데 메드베데프 자문위원이 참석한다』고 말하고 그를 통해 노대통령에게 자신의 친서를 보내겠다고 밝혔다. 정회장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소련이 북한을 비롯한 관계국에 많은 조언과 협조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이에 대해 자신도 그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며 『한소 수교가 북한을 위시한 이 지역의 개방과 안정에 큰 도움이 될 것이고,한국과 소련ㆍ북한이 한 솥에 밥을 지어서 함께 나누어 먹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현대가 추진하는 시베리아 및 연해주지역 개발에 관심을 표명한 뒤 필요하다면 개발업체에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또 나홋카 경제특구설치와 관련해서 한국기업의 주도적인 역할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날의 면담은 페트라코프 보좌관의 주선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우리 정부의 북방외교 추진 이후 경제계 인사로 고르바초프를 만난 사람은 정회장이 처음이다. 페트라코프 보좌관은 정회장이 지난 6월 소련을 방문했을 때도 고르바초프와의 면담을 주선했으나 정회장과의일정이 맞지 않아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날 면담때 고르바초프는 타스통신등 취재진을 위해 정회장과 별도의 포즈를 잡아주고 친숙감을 표시하는등 상당히 우호적이고 화기애애했다는 것이 현대측의 설명이다. 타스통신과 소련TV도 이날 두사람의 면담을 보도했다. 한편 실라예프 러시아공화국총리는 이보다 앞서 현대그룹중역들의 예방을 받고 현대로부터 의류ㆍ신발류ㆍ가전제품ㆍ자동차 타이어ㆍ충전식 배터리 등을 대량 구입키로 했다. 대금은 원유 및 원자재로 지급할 예정이다.
  • 후세인,“다국적군과 결전준비 완료”/페만 다시 전쟁위기 고조

    ◎친서방 아랍국,긴급 외무회담 소집 【니코시아ㆍ워싱턴 외신 종합】 페르시아만 전역에 전쟁에 대한 논의가 또다시 확산되고 있다.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이라크군에 최고도의 경계태세 명령을 내린지 하루가 지난 31일 이라크는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페르시아만 다국적군과 일전을 벌일 준비가 돼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또 이라크 국영 알 타와라지도 이라크는 「중대한 결전」에 대비한 준비를 이미 끝냈으며 있을지 모를 적의 공격에 대해 최고도의 경계태세를 취하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적군은 이라크를 위협할 정도는 아니며 만일 그들이 침략키로 결정한다 하더라도 전쟁의 주도권이 그들손에 있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부시 미국 대통령도 31일 미국인 인질들에 대한 야만적인 처우를 『참을 만큼 참았다』면서 대 이라크 군사공격에 관한 구체적인 계획은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은 30일 미 의회 지도자들과 만나 페르시아만에서의 군사행동 가능성을 논의하는 가운데 전쟁발발에 앞서 의회지도자들과의 협의를 보장할 수 없다고 말했다. 페만파견 영국군 사령관인 패트릭 하인경은 『쿠웨이트에서 이라크를 축출하기 위한 영국군의 공격지원 준비가 11월 중순이면 완료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을 반대하는 아랍제국 동맹세력을 주도해온 이집트ㆍ시리아ㆍ사우디아라비아의 외무장관들은 이날 긴급소집된 페르시아만 위기사태에 관한 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사우디의 제다로 향했는데 이집트 외무장관은 공항을 떠나기 앞서 이번 회담에서는 최근의 사태진전에 대해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은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페만위기 자체해결을 위한 아랍권회의 개최제의에 대해 『뚜렷한 사태해결 전망도 없이 아랍정상회담을 개최한다면 욕지거리로 끝나게 될 것』이라며 거부했다. 한편 튀니스에 있던 아랍연맹본부가 31일 11년만에 이집트의 카이로로 되돌아 왔다.
  • 미ㆍ영,이라크 공격준비 박차

    ◎베이커,새달 사우디방문… 작전개시 타진/영 민간병원 비상돌입… 부상병 수용 준비/후세인,미테랑에 평화해결 촉구 서한/“쿠웨이트 유정 3백곳에 폭탄설치” 영지 【워싱턴 UPI 연합】 제임스 베이커 미 국무장관은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이라크에 대한 군사적 공격을 감행할 수 있도록 사우디아라비아의 허락을 받기 위해 앞으로 10일 안에 사우디를 방문할 것으로 보인다고 외교 소식통들이 25일 밝혔다. 이 소식통들은 이같은 결정이 이라크 군대의 무조건 철수라는 기존 입장을 미국이 철저히 고수하고 있음을 이라크에 알리는 강력한 신호라고 말했다. 베이커 장관은 29일 로스앤젤레스에서 페르시아만 사태 관련 주요정책에 관해 연설할 예정인데 관리들은 그의 연설이 협상을 통한 해결의 희망이 멀어지고 군사적 해결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내용일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커의 사우디 방문 일정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오는 11월 첫째주에 사우디로 떠날 것으로 보인다. 【런던 AFP 연합】 영국 국방부는 이라크와의 전쟁이 발발할 경우 민간병원들이 페르시아만으로부터 후송되는 부상병들을 수용할 준비태세를 갖추게 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26일 밝혔다. 한 대변인은 국방부가 국영 민간병원들에게 유사시 제공할 수 있는 시설에 관해 보고토록 요구했다면서 그같이 밝히고 그러나 이는 예방조치일 뿐 영국이 이라크를 공격키로 결정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보다 앞서 ITN­TV는 국방부가 남부 잉글랜드의 군항 포츠머스 부근의 몇몇 병원들에 대해 오는 11월15일부터 매일 화학무기공격 피해를 포함한 전상자 10명을 치료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도록 요청했다고 보도했으며 선지는 잉글랜드 남동부에 있는 최소한 10개의 병원이 비상태세에 들어갔다고 전했었다. 【런던ㆍ파리ㆍ바그다드ㆍ마나마 로이터 AP 연합 특약】 이라크 점령군은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다국적군의 공격에 대비해 1천여개의 쿠웨이트 유정 가운데 3백여개에 폭탄을 장치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지가 26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지난주까지 쿠웨이트 석유회사(KOC) 본부에서 감독으로 일하다 가족들과 함께 암만을 경유해 런던에 도착한 레바논출신의 기사 나빌 아켈의 말을 인용,일단 유사시 유정에 불이 붙을 경우 끄는데만도 수개월이 걸릴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28일 파리에서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과 회담할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를 통해 『쿠웨이트 문제를 포함한 모든 중동 현안들을 논의할 준비가 돼 있으며 이라크는 앞으로 공정하고 평화적인 해결책을 찾으려는 국제사회에 긍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말하고 『팔레스타인 문제를 포함한 모든 중동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하는데 노력을 아끼지 말아 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프랑스 민영 라생크TV가 26일 보도했다. 후세인 대통령은 또 이라크로부터 독립을 추구해오다 독가스공격까지 당했던 쿠르드족의 거주지역인 몬테이마냐지방을 방문,화해를 호소했다고 이라크의 알 주무리야지가 26일 보도했다.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은 페르시아만 위기가 해결되면 전아랍 방위체제를 구축할 것을 제의하고 비아랍국은 필요한 무기제공역할 외에 개입해서는 안된다고말했다.
  • “일은 대한출초 시정/산업기술 조속 이전”

    ◎노 대통령,일 수입촉진단 맞아 강조/“교역확대로 양국협력 강화 희망” 가이후 친서 노태우 대통령은 23일 하오 청와대에서 방한중인 마쓰오 다이이치로(송미태일랑) 일한 시장협의회 회장을 단장으로 한 일본 수입촉진단 대표 4명을 접견하는 자리에서 대일 무역역조 개선과 대한산업기술 이전에 대해 일본측이 성의있는 자세를 가져줄 것을 촉구했다. 노 대통령은 한일 무역불균형 문제와 관련,우리의 대일 무역역조가 만성적으로 계속되고 있고 88,89년에는 매년 40억달러씩 적자를 보인 데 이어 금년에는 지난 8월까지 이미 40억달러에 육박하는 등 이런 추세라면 금년은 사상 최대의 대일 역조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한 뒤 『이는 우리 경제의 입장에서 뿐 아니라 양국 관계에도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양국 무역의 확대균형이야말로 양국 국민간의 건전한 우호,신뢰관계 수립의 관건인만큼 일본정부와 민간업계에서도 우리의 대일 수출노력을 지원해주고 우리 상품 수입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노 대통령은 산업기술협력 문제에 대해 『서울올림픽 이후 일본 민간업계의 대한 기술이전은 답보 내지 감수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하고 『21세기를 향한 미래지향적인 대일 관계를 정립하고 아태지역협력을 주도해나가기 위해서는 기술선진국인 일본이 보다 넓은 시야에서 한국에 대한 기술협력과 기술 이전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줘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쓰오 단장은 이 자리에서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 일본 총리가 일본 수입촉진단의 방한과 관련,노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를 전달했다. 가이후 총리는 이 친서에서 『사절단의 활동을 통해 한일 양국간의 교역확대와 발전을 위한 새로운 기회가 탐구되고 양국의 우호협력관계가 앞으로 더욱 강화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한·소 정상회담/내년초에 가능/모스크바방송 보도

    【내외】 소련 관영 모스크바방송은 17일 『노태우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대통령간의 한소정상회담이 내년초에 진행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모스크바방송은 이날 서울에서의 발표를 인용,고르바초프 대통령이 노 대통령에게 답신친서를 보냈다고 보도하면서 이와 같이 전망했다.
  • “한ㆍ소 정상회담 조기 실현”/노대통령 친서에 고르비 답신

    ◎내년초에 대좌 이뤄질 듯/“한반도 문제 평화적 해결에 협력 강화” 노태우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은 지난 1일 한소 수교 이후 친서교환을 통해 양국 외교관계 수립이 한반도의 평화정착 및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양국 정상의 교환방문을 실현한다는 데 합의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노 대통령이 지난 1일 한소 수교와 관련,친서를 보낸 데 대해 16일 답신 친서를 보내 한소 양국의 수교에 만족을 표하고 노 대통령이 제의한 양국 정상회담의 실현을 희망했다고 이수정 청와대 대변인이 이날 밝혔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이날 친서에서 『우리 양국간의 전반적이고 생산적인 접촉을 유지해가는 가운데 한소정상회담이 실현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힘으로써 노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가까운 장래에 실현되게 됐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이날 한소정상회담에 관해 『양국 정상간의 일정 등을 감안,금년내는 이루어지기 힘들며 내년초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그 시기를 전망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친서에서 『노 대통령의 친서를 접수하고 본인은 양국간의 외교관계 수립에 즈음하여 각하께서 표명한 만족을 같이 나누고자 한다』고 말하고 『이번의 중대한 결정이 통상ㆍ경제ㆍ문화 및 과학분야에서의 광범위한 한소 관계발전의 토대가 될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친서는 또 『오늘의 국제정세하에서 소련과 한국은 아시아ㆍ태평양지역 여러 나라와 힘을 합하여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이고 정당한 해결은 물론,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전보장 및 유익한 협력관계 강화를 지향해 나갈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지난 1일 보낸 친서에서 한소 양국간의 수교결정이 양국간의 협력을 증진시키는 데 크게 공헌할 것이라고 말하고 양국의 편의에 따라 양국 정상간의 교환방문이 가능한 한 조속히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뜻을 전달했었다. 지난 12일자로 된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친서는 이날 주한 소련영사처를 통해 우리 정부에 전달됐다.
  • 북한,일 후지산호 선원 2명 석방/억류 7년만에 귀국

    ◎자민ㆍ사회당선 평양에 “감사”표시 【도쿄=강수웅특파원】 7년간 북한에 억류되어 있던 일본의 냉동화물선 제18후지산(부사산)호의 베니코이사무(홍분용ㆍ60)선장과 구리우라 요시오(율포호웅ㆍ59)기관장이 11일 상오 11시40분 전일공 특별기 편으로 자민ㆍ사회 양당 북한 방문단과 함께 하네다(우전)공항에 도착,귀국했다. 이들 2명은 하네다 도착 직후 기내에서 가족들과 대면한 후 건강진단을 위해 도쿄 신주쿠(신숙)에 있는 국립병원 의료센터에 입원했다. 평양 출발에 앞서 자민ㆍ사회 양당 대표단은 이들의 석방에 감사한다는 취지를 기재한 「예장」을 조선로동당에 수교했다. 북한ㆍ일본 사이의 최대현안이었던 제18후지산호 문제가 해결됨에 따라 오는 11월부터 시작될 국교정상화 교섭도 한층 더 가속화할 것으로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북한측에 의해 간첩혐의로 15년 교화노동형을 선고 받았던 베니코선장과 구리우라 기관장은 이날 아침 북한당국에 의한 「대사령」형식으로 석방되어 상오 9시30분쯤 평양 순안공항 특별기 트랩 앞에서 자민ㆍ사회 양당 대표에 인도되어 그대로 기내로 들어갔다. 이들의 석방과 관련,북한측은 당초 각서를 써 줄 것을 요구했으나 일본측이 반발,철야협의 끝에 조선로동당이 북한 사법당국에 작용해 준 것에 감사한다는 내용의 「예장」형식으로 바뀌었다. 도이 다카코(토정다하자) 사회당 위원장과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랑) 자민당 간사장은 이날 상오 8시쯤 이 문서에 서명했다. 이 문서에는 『자민ㆍ사회 양당의 요청을 고려한 조선 로동당의 권고에 따라 공화국 정부는 공화국 법률을 침해한 죄로 형벌을 받고 복역중인 2명을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대사령을 실시,석방해 일본에 돌아가도록 했다』고 밝혔다. 이날 베니코선장은 기내에서 『일본에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감개무량하다. 비행기도 일본 것이라고 생각하니… 』라며 눈물을 흘렸으며,구리우라 기관장도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민홍구 하사 교환과 맞물려 난항/김일성,가네마루 방북때 “송환선심”(해설) 제18후지산(부사산)호 사건은 일본으로 탈출한 전북한군 하사 민홍구 망명사건과 직결되는 문제이다. 발단은 7년전인 83년 11월1일,오사카(대판)의 1백80t급 작은 냉동화물선 제18후지산호(승조원 5명)는 북한의 남포항을 출항했다. 이 배에는 민하사가 잠입해 있었다. 선원들이 민하사를 발견한 것은 출항 이틀뒤인 3일 이었으며,4일에는 후쿠오카켄(복강현) 도지(문사)항에 입항했다. 일본 해상보안청은 민하사를 체포했으나 그는 정치적 망명을 희망했다. 후쿠오카 출입국 관리국은 민하사에 대해 불법입국자로 규정,강제퇴거 판정을 내리고 요코하마(횡빈) 수용소로 이송했다. 이 사이 후지산호는 11월15일 남포항에 재입항했다. 베니코 이사무(홍분용)선장 등 선원 5명은 모두 스파이 혐의로 체포됐다. 조선중앙통신은 당시 『선장과 기관장이 북한수역에서 정찰행위를 했으며,일본의 지령으로 민하사를 데려갔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베니코 선장과 구리우라 요시오(율포호웅) 기관장을 제외한 선원 3명은 석방되어 84년 2월7일 귀국할 수 있었다. 공교롭게도 민하사가 망명하고 후지산호 선원들이 억류된 시점은 버마의 랑군폭파사건이 터진직후여서 일본은 대 북한 제재조치를 발표했다. 일본이 이 제재조치를 해제한 뒤 북한은 이들 2명의 석방에 대해 「민하사와의 교환」을 통고해 왔으나 일본정부는 민하사의 송환을 거부,교섭은 난항에 빠졌다. 그동안 일본 사회당 대표단은 84년 4월30일 처음으로 베니코 선장 등 2명과 면회하고 사진을 갖고 왔으며,86년 9월에는 일본 외무성 직원이 빈 등지에서 북한측과 비밀접촉을 벌였다. 그러나 87년 1월20일 북한의 의사 김만철씨 일가 11명이 배를 몰고 후쿠이(복정)해상에 도착,대만을 거쳐 한국에 망명하는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북한ㆍ일본 관계는 다시 냉각됐다. 일본 정부는 87년 11월2일 민하사에 대해 가석방 결정을 내려 사실상 망명을 인정했으며,북한측은 이에 대항해 12월24일 후지산호 선원 2명에게 15년의 교화노동형을 내렸다. 나아가 87년 11월29일 대한항공기 폭파사건이 터졌으며,일본은 88년 1월26일 대 북한 제재조치를 발표했다. 여기에 북한측은 2월2일 또다시 대항조치를 발표,선원석방 교섭은 단절상태에 들어갔다. 이 사건이 타개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부터였다. 지난해 3월 다케시타 노보루(죽하등) 당시 총리가 국회에서 대 북한 관계개선의 의향을 표명했으며,자민당의 실력자 가네마루 신(금환신) 전 부총리가 다나베 마코도(전변성) 사회당부위원장편에 김일성 주석 앞으로 친서를 보내는 등 접근을 꾀했다. 결정적인 계기는 지난 여름 사회당 대표단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북한측이 자민당과의 직접대화를 결정한 사실이며,9월 자민ㆍ사회 양당 대표단의 북한 방문때 김주석이 가네마루 전 부총리에게 관계개선을 위한 극적인 제안을 하는 바람에 이들 선원 2명이 7년만에 귀국할 수 있었다. 한편 이 사건의 당사자 민홍구씨(37)는 88년 12월16일 일본 법무성으로부터 특별체류허가를 받아 일본에 영주할 수 있게 되어 현재 우스노미야(우도궁)시에 살고 있다. 그는 11일 후지산호 선원 2명의 귀국에 대해 『정말로 기쁘다. 이들 2명과 가족은 물론,일본 국민들에게 폐를 끼쳤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다』고 말했다.
  • 통독이 한반도에 준 교훈(새 독일 탄생:5ㆍ끝)

    ◎「통일준비」는 빠를 수록 좋다/서독,69년 동방정책 이후 꾸준히 접촉/물적ㆍ인적 교류 늘려 갈등해소 노력을/한민족 공감대 형성… 북한 개방분위기 조성 도와야 독일 통일은 동독국민들의 「대탈출」이 절정에 달했던 지난해 11월이후 불과 1년도 못되는 사이 ▲2월6일 동독내의 비공산당연립정부 출범 ▲6월17일 동독국가 해체작업 시작 ▲7월1일 동서독 경제ㆍ사회 통합 ▲9월14일 통독조약 조인 등 급템포로 이루어졌지만 내부적으로는 이미 분단과 동시에 통일작업이 추진되어 왔다고 보아야할 것 같다. 패전의 페허에서 49년 출범한 서독 기민당(CDU)의 아데나워 정권은 자유민주정치제도와 친서방 보안정책으로 서방진영의 일원으로서의 지위를 확고히하면서 경제 재건과 번영을 바탕으로 착실한 분배정책을 펴 내부적인 안정을 다졌다. 이어 69년에 출범한 사민당(SPD)의 브란트 정권은 CDU 정권의 업적을 토대로 이른바 동방정책을 추진,소련을 비롯한 동구권과의 관계개선을 이룩했으며, 「일민족 이국가」론에 기초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면서도 동독과의 기본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양독관계를 안정시키고 인적ㆍ물적 교류 확대의 물꼬를 텄다. 82년에 다시 집권하게 된 CDU의 콜 정권은 SPD의 동방정책을 계승발전시키고 탄탄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대동독 교류의 폭을 넓히면서 동독국민들 가슴 속에 개방과 민주화의 씨앗을 묻었다. 그 씨앗이 때마침 불어닥친 소련 개혁정책의 화풍 속에 발화,마침내 통일의 계기를 맞게 된 것이 저간의 과정이다. 이같이 치밀하고 장기간에 걸친 통일작업에도 불구하고 이제껏 서로 다른 체제 속에서 숨쉬던 조직들이 하나로 묶이기까지에는 겪어야 할 많은 후유증을 안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지난 4일 독일 통일 후 베를린 제국의회 건물에서 가진 첫번째 전독의회에서 통일독일의 첫 총리가 된 헬무트 콜 총리는 『이제 독일이 통일되었으나 우리들이 극복해야 할 과제는 모든 분야에 내재되어 있는 내부적인 분단을 공동의 목표에 맞게 조정해나가는 일』이라고 말하고 『앞으로 수년간 정신적ㆍ문화적ㆍ경제적ㆍ사회적인 분단 후유증을 치유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독일통일 작업은 이처럼 역대 정권들의 장기간에 걸친 꾸준한 노력의 결실로 얻어진 것이지만 막상 통일이 이루어진 오늘 독일 사회에서는 내부적 갈등의 해소가 가장 핵심적인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동서분단 이후에도 경제적인 교류와 인적왕래가 이루어지고 TV시청 등을 통해 양 체제 속에 사는 국민들이 서로를 잘알고 지내왔음에도 불구하고 제반분야에 남아 있는 갈등과 후유증 극소화가 통일독일이 시급히 해결하여야 할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남북한은 분단 이후 동서독과 같은 인적ㆍ물적 교류가 전혀 없었으며 양체제의 국민들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통일이 되더라도 문화적ㆍ사회적 갈등과 충격이 심각하리라는 것은 짐작하고도 남는 일이다. 독일 통일과정에서 볼 때 같은 냉전의 결과로 빚어진 한반도의 분단과 독일분단은 「지리적인 분단」이라는 점을 빼 놓고는 서로 비교할 만한 것이 없을 정도로 독일은 하나의 게르만민족이라는 정신 아래 상호신뢰의 기틀을 다져 왔으나 우리의경우는 적개심의 심화만이 가속화되었다고 하겠다.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한민족이라는 인식 아래 북한의 개방과 상호교류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급선무이며 이와 함께 통일에 대비한 힘의 축적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서독은 시장경제에 뿌리내린 경제력을 바탕으로 동독과의 경제교류를 의도적으로 손해를 보면서 추진해왔다. 서독은 동독과의 무역거래에 있어 동독이 제15위의 교역상대국이지만 동독의 입장에서 볼 때 서독은 소련 다음의 교역상대국이어서 동독경제가 서독경제에 예속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동독은 통일될 때까지 대서독 무역거래에 있어 매년 20억달러 이상의 이익을 보았으며 서독으로부터 지난 10여년간 1백억달러의 무이자 신용대출을 받아 그 결과 서독의 경제지원을 받지 않을 경우 언제라도 파산될 취약구조로 바뀌로 말았다. 특히 서독은 지난 83년 동독이 외화부족으로 외채지불 불능상태에 빠졌을 때 7억달러의 현금차관을 제공했고 그 대가로 동독의 개방과 양독간의 교류증대를 요구하는 등 동독의 개방을 계속해서 유도했다.이와 함께 독일통일이 대중매체인 TV의 상호시청으로 가속화되었다는 지적도 있다. 동서독간에는 TV시청에 관한 합의는 없었지만 동독국민들은 당국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서독 TV를 시청하고 있어 서독국민들의 생활수준을 구석구석까지 알고 있을 정도였다. 동독국민들은 TV를 통해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우열을 가늠하게 되었으며 결국 트라비승용차 한대를 구입하는데 신청 후 13년이 걸리고,냉장고나 TV를 구입하려면 3∼5년이 걸리는 사회주의의 고질적인 물자부족에 염증을 느껴 대탈출을 결행했던 것이다. 통독으로 독일이 하나의 국가가 되었지만 독일이 안고 있는 문제는 그동안 침체 속에서 헤어나지 못한 동독지역을 얼마나 빨리 서독지역 수준으로 끌어 올리느냐는 것이다. 통일독일정부는 앞으로 10년 안에 가장 시급한 도로ㆍ상하수도ㆍ주택 문제를 서독수준으로 끌어 올린다는 목표 아래 이미 복구작업에 착수했다. 독일의 통일 뒷마무리 작업이 이같이 순조로울 것으로 여겨지는 이유로는 단단한 내실과 이해득실을 떠난 한민족이라는공감대가 강하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독일의 상황과 한반도의 상황이 다르기는 하지만 통일에 대비한 노력과 준비는 빠를 수록 좋다는 것이 독일 통일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이라 하겠다.
  • 「일ㆍ북한 수교」 한ㆍ일 사전협의로/정부

    ◎새달 각료회담때 「협상조건」 구체화/「경협자금 군비사용 불가」 등 요구/「하나의 조선」ㆍ「전후 45년간 배상」/일 정부 “공식입장 아니다” 통보 정부는 일ㆍ북한간의 「8개항 공동선언」과 관련,일본정부가 「하나의 조선」 「전후 45년간 배상」은 일본정부의 의견과 다르다고 공식통보해옴에 따라 수교 전 배상 불가,경제협력자금의 군비증강 사용불가 입장을 분명히 밝히는 한편 앞으로의 일ㆍ북한 수교협상은 한일 양국의 긴밀한 사전협의 아래 진행시킬 것을 강력히 요구할 방침이다. 정부는 또 일ㆍ북한간의 수교협의가 11월부터 착수되는 점을 감안,오는 11월 하순에 열릴 제15차 한일각료회담에서 일ㆍ북한 관계개선 문제를 정식 의제로 채택,이같은 사전협의를 제도화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한 외교당국자는 6일 일본정부는 우리측이 문제를 제기한 「하나의 조선」 「전후 45년간 배상」 「총리대신 친서」 등 3개항에 대해 외교채널을 통해 공식입장을 전달해왔다고 밝히고 『「하나의 조선」 문제는 가네마루 신(김환신)전 부총리 등이 정치인이기 때문에 그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작성된 것이며 일본정부의 입장과는 다르다고 해명해왔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또 「전후 45년간 배상」 문제에 대해서도 일본정부의 의견과는 다를 뿐 아니라 그에 따른 배상은 하기가 어렵다는 게 일본정부의 생각이라고 전달해왔다고 말하고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 정부가 일단 일본정부측의 해명을 수용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당국자는 가이후 자민당총재의 친서부분에 대해 일본측은 과거사의 유감표명이 총리대신 자격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지만 비록 친서명의는 자민당 총재 자격이라 할지라도 유감표명 관련 본문에는 내각 총리대신 자격임을 밝히고 있어 우리는 일본측의 해명을 수용하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당국자는 또 공동선언문의 배상부분에 대해서는 일본어본과 조선어본간에 표현상 차이가 있다고 지적,일본어본에는 「수교시 배상」이라고 명시되어 있는 반면 조선어본에는 「수교와 관련하여 배상」이라고 표시되어 있어 배상의 시기문제에 대해 일ㆍ북한간에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설명하고 『우리 정부는 수교전 배상은 있을 수 없으며 배상금 성격의 경협자금이 북한의 군비증강에 결코 쓰여서는 안된다는 점을 일본측에 분명히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국자는 오는 11월부터 일ㆍ북한간에 수교협상이 시작된다고는 하나 오는 11월12일 아키히토(명인) 일왕 즉위식,22일의 대상제(일왕 즉위 후 처음 맞는 추수감사제) 등 일정에 비추어 하순께나 논의에 착수될 것으로 본다고 전망하고 『오는 11월26일 전후로 열릴 한일각료회담시 일ㆍ북한 관계개선 문제를 주요 현안으로 거론,한일 양국의 사전협의를 확실히 보장받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가네마루 전 부총리의 오는 8일 하오 청와대 방문 희망을 수락한다는 사실을 6일 하오 일본정부에 통보하는 한편 그의 방한이 일본정부나 자민당의 특사가 아니라 개인자격임을 감안,우리 정부의 공식입장을 전달하지는 않을 방침이다. 이에 따라 노태우 대통령도 가네마루 전 부총리로부터 「공동선언」 합의의 당사자로서의 경위와 배경설명을 듣는 입장을 취할 예정이며 다만 그동안 일ㆍ북한 관계 문제에 대해서는 한일 양국이 긴밀한 협의를 잘 진행해왔는데 이번 가네마루 전 부총리의 방북활동에서는 너무 앞서가는 느낌을 받았다는 수준에서 주의를 환기시킬 것으로 알려졌다.
  • 소 군사고문단 2백명/이라크서 곧 철수

    【바그다드 로이터 연합】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친서를 휴대하고 이라크를 방문한 예프게니 프리마코프 특사는 6일 이라크 지도자들과의 회담결과에 만족감을 표시하고 페르시아만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보다 낙관하고 있다고 밝혔다. 소련 대통령 자문위의 위원으로 있는 프리마코프특사는 이틀간의 방문일정을 마치고 귀국하기에 앞서 바그다드공항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말했다. 한편 미하일 모이셰프 소련 참모총장은 5일 워싱턴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소련은 이라크에 있는 2백여 군사고문들을 곧 철수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 “유엔서 만나자” 셰바르드나제 언질로 급진전

    ◎크렘린의 문 열리기까지/“두 외상에 달렸다” 소,연내 수교 암시/「상항대좌」 이후 꾸준한 접촉이 주효한 셈 ○…한소 양국간의 첫번째 외무장관회담에서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하기까지에는 지난 6월4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렸던 노태우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간의 사상 첫 한소정상회담이 결정적 계기로 작용. 양국 정상은 샌프란시스코회담에서 국교수립 원칙에 합의했고 그후 상호 친서교환을 통해 이같은 정신을 거듭 확인함으로써 한소간 수교교섭이 훨씬 빠른 속도로 진행될 수 있었다는 것이 정부관계자들의 설명. 특히 샌프란시스코정상회담 때 처음 인사를 나눈 공로명 주소 영사처장과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외교담당 고문인 도브리닌 전 주미 대사가 정상회담 이후 수차례 접촉을 가졌던 것이 주효해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결심을 앞당길 수 있었다는 후문. 이에 따라 한소 수교에 비교적 소극적이었던 소련 외무부도 태도를 일변해 수교 준비작업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는 것. 최호중 외무장관도 1일 셰바르드나제 장관과의 공동기자회견을 끝내고 국내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에서 『양국간 정식 외교관계 수립은 지난 6월4일 샌프란시스코정상회담에서 합의한 기본원칙을 바탕으로 오늘 공식화에 합의하게 된 것』이라면서 수교의 결정적 계기가 샌프란시스코정상회담이었음을 거듭 강조. 최 장관은 『노태우 대통령께서 긴 안목을 갖고 북방정책을 적극 추진한 결과 오늘 또 하나의 전환점을 맞았다』고 언급. ○…한소 수교에 대한 소련측의 확고한 의중은 지난 8월초 김종휘 대통령외교안보 보좌관과 이정빈 외무부 제1차관보 등 정부대표단이 제1차 한소정부대표회담을 위해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당시 우리측에 전달됐다는 후문. 소련 외무부내에서 실력자로 알려진 겐리크 키레예프 아시아 사회주의제국 담당국장이 우리 대표의 숙소를 비밀리에 찾아와 양국 수교문제에 대해 『그것은 시간적인 문제』라고 확실한 언질을 주었다는 것. 당시 우리 대표단이 소련측의 비상한 관심사인 경협규모에 대해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않았는 데도 불구하고 소련정부의 고위관리가 이처럼 확언할 수 있었던 것은 소련정부가 이미 한국과의 수교 자체를 기정사실화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겠냐는 분석. ○…소련측의 이같은 입장은 지난달 3일 셰바르드나제 장관이 평양을 방문한 직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렸던 제2차 아태지역 대화·평화·협력 국제회의에 참석한 모스크바 주재 외교사절들과의 회동석상에서 표면화. 셰바르드나제 장관은 이 자리에 참석한 공 처장과 박철언 전 정무장관과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자신이 제의한 「93년 아태지역 외무장관회담」을 공 처장이 지칭해 『93년까지 기다릴 것없이 이번 유엔총회에서 만나는 것이 어떠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내가 최 장관의 회담제의(2월15일)를 잊은 줄 아느냐. 유엔에서 만나자』고 수락의사를 밝히며 연내수교 합의의 가능성을 강력히 시사. 또 키레예프 국장은 9월 중순쯤 공 처장을 소련 외무부로 초치,유엔에서의 한소외무장관회담을 정식 통보하면서 『양국 외무장관이 수교에 바로 합의할 수 있으며 시기는 문제될 것 없다』고 적극성을 보이면서 『두 장관이 하기에 달려있다』고 소련측의 최종입장을 전달. ○…이같은 적극적인 입장과는 달리 셰바르드나제 장관은 최 장관과의 회담에서는 수교날짜 문제에 있어 여러가지 일정을 이유로 내년 1월1일부터 발효하는 것이 좋겠다는 입장을 표명,『정식국교를 수립함에 있어 유예를 두는 것은 부자연스럽다』고 즉시 발효를 주장하는 최 장관과 잠시 실랑이. 이때 최 장관이 이날 유엔에 세계 78개국의 총리급 이상 정상이 참석하는 「아동정상회담」이 열리는 것을 빗대 『미래의 동량인 아동들을 위해 정상회담이 열린 뜻깊은 이날로 정식국교를 맺도록 하자』고 거듭제의하자 셰바르드나제 장관도 『좋다. 미래를 책임질 어린이들을 위한 정상회담이 열린 이날 국교를 맺는 것으로 하자』고 선뜻 응해 즉시 발효가 이뤄졌다고. 소련측은 이날 준비해온 러시아로 된 코뮈니케에 수교일자를 91년 1월1일로 명기했는데 양국 장관은 그 위에 검은 글씨로 90년 9월30일이라고 고쳐쓴 후 서명. 우리측은 회담시작 때까지 소련측이 수교일자를 내년 1월1일을 고집하는 바람에 공동코뮈니케 문안의 수교일자를 내년 1월1일로 된 것과 빈칸으로 남겨놓은 것 등 2가지를 준비. 양국 장관 공동기자회견에서 소련 타스통신기자가 『수교일을 내년 1월1일이라고 해놓고 왜 바꿨느냐』고 러시아어로 질문하자 셰바르드나제 장관이 최 장관에게 귓속말로 이를 설명해주었고 최 장관은 이에 『그것은 우리 두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여기있는 사람들(배석한 회담 실무대표들)의 잘못』이라고 웃으면서 답변해 좌중은 한동안 폭소. 최 장관은 코뮈니케에 서명한 후 배석한 공로명 영사처장을 셰바르드나제 장관과 폐트로프스키 차관에게 소개하면서 『미스터 앰버서더(대사)』라고 격을 높여 호칭했는데 이는 대사관개설과 대사파견을 서두르자는 의사표시였다는 해석. ○…이번 회담의 우리측 실무진들은 소련측 실무진들과 하루에 1차례씩 유엔 건물내나 뉴욕시내 식당에서 만나 사전협의 절차를 가졌는데 한 실무관계자는 『의사소통이 이상스러울 정도로 잘돼 이심전심의 심정으로 일을 추진했다』고 소개. 그는 『협의과정에서 우리측이 하고 싶은 말을 소련측이먼저하는 등 손발이 맞았다』고 설명. 이같은 분위기는 양국 외무장관회담 석상까지 이어져 셰바르드나제 장관이 최 장관에게 커피와 크림을 직접 따라주는 등 회담이 시종 친근하고 부드러운 분위기속에 진행.〈뉴욕=한종태 특파원〉
  • 수교까지의 협상 일지

    ▲88.1=소련 서울올림픽 참가 공식 발표. ▲88.8=서울올림픽 관련 소련영사단 방한. ▲88.4=소 연방 상공회의소 서울사무소 및 대한무역진흥공사(KOTRA) 모스크바사무소 상호 개설 ▲88.6=김영삼 민주당 총재 방소. ▲88.11=한소 영사처 교환설치 합의. 사실상의 영사관계 수립. ▲90.2=주모스크바 영사처 개설. 최호중 외무 한·소외무장관회담 제의. ▲90.3=주한 소련 영사처 개설. ▲90.3=한소 정기항공노선 개설 합의. ▲90.3=김영삼 민자당대표 최고위원·박철언 정부 제1장관 등 고위당정대표단 방소. 김 대표와 고르바초프 소 대통령 면담. ▲90.6.4=노태우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 대통령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한·소정상회담. ▲90.7=한·소 정상간 친서 교환. 정부대표단 교섭에 합의. ▲90.8.2=제1차 한·소 정부대표간 공식회담 개최(모스크바) 제2차 서울회담 개최에 합의. ▲90.10.1=한·소 수교 발표.
  • 「전후 45년」 대북 배상/「북한­일 공동선언」의 파문

    ◎새로운 외교분쟁의 불씨로/「배상의미」 싸고 일 정계 논란/“한국과 균형 상실”… 대책 고심/중국·대만·필리핀과도 마찰 불가피 「가네마루 대표단」이 북한측에 약속하고 돌아온 「전후 45년의 손실보상」이 일본 국내외에 새로운 외교적 분쟁의 불씨로 등장하고 있다. 이와 함께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 총리가 김일성 주석 앞으로 보낸 「자민당 총재 명의」의 사죄서한도 형식상 명의만 당 총재 명의였을 뿐,그 내용은 「내각총리 대신으로서」 사죄한 것이 밝혀져 문제가 되고 있다. 28일 북한의 조선 로동당과 일본의 자민·사회 3당간에 조인된 공동선언 제1항은 이같은 사실을 명기했다. 『3당은 과거에 일본이 36년간 조선인민에 끼친 불행과 재난,전후 45년간 조선인민이 받은 손실에 대해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에 대해 충분히 공식적으로 사죄하고 보상해야 할 것이라고 인정한다. 자민당 가이후 총재는 김일성 주석에게 전달한 친서에서 일찍이 조선에 대해 일본이 끼친 불행한 과거가 존재했던 것에 언급,「그같은 불행한 과거에 대해서는 다케시타(죽하) 전 총리가 지난해 3월 국회에서 깊은 반성과 유감의 뜻을 표명하고 있는데,나도 내각 총리대신으로서 그와 전적으로 동감이다」라는 것을 명백히 해 일·조 양국간의 관계를 개선하겠다는 희망을 표명했다』 일본이 36년간 식민지 지배에 대해 사죄하고 보상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공동선언에 나타난 「전후 45년의 손실」은 무엇을 뜻하는가,일본정부는 이의 해석과 대응방법을 놓고 골머리를 앓고 있다. 자민당 간부들과 야당 인사들도 『전후의 보상이란 무엇인지 도대체 모르겠다』며 의혹의 빛을 감추지 않는다. 공동선언에는 그 의미가 밝혀져 있지 않다. 그러나 북한측의 종래의 주장으로 미루어 보아 『일본의 한국일변도,적시정책이 북한과는 45년간의 소원한 공백상태를 빚었으며,그 결과 손해를 입혔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당초 28일 상오중에 발표될 예정이었던 이 공동선언이 이날 하오 늦게 나온 경위도 바로 「전후 45년간」이란 대목 때문이었다. 공동선언문 작성은 27일 심야부터 시작돼 잠시 동안의 아침 휴식시간을제외하고 28일 하오 3시쯤까지 장장 16시간에 걸친 난항을 겪었다. 북한측의 논리는 전후 일본의 대북한정책이 적시정책이었으며,사죄와 보상은 식민지 통치시대는 물론 현재까지도 그 대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북한측의 이같은 주장에 대해 사회당측은 동조했으나 자민당은 강력히 반발했다. 그러나 이 문제가 난항을 겪자 28일 상오 김용순 로동당 서기를 비롯한 3당대표자회담에서 가네마루 신(김환신) 전 부총리가 『내 책임으로 넣겠다』고 결단을 내려 사실상 해결을 보았다. 지난 26일 하오 사회당측 단장인 다나베 마코도(전변성) 부위원장과 함께 김일성 주석과의 회담을 마치고 나온 가네마루 전 부총리는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동행의원들 앞에 모습을 나타냈다. 『우리측의 제안에도 충분히 이해해주었다. 나는 울고 싶은 심정으로 보고하겠다』고 말했다. 다나베 사회당 부위원장도 『김 주석의 발언에 따라 북한·일본 관계는 새로운 밝음을 맞았다』며 27일의 답례연에서 흥분을 억누르지 못했다. 제18후지산마루(부사산환) 문제를 인도적 견지에서 해결하고 45년간 닫혀있던 양국관계에 「바람구멍을 뚫기 위해」 평양을 방문했던 가네마루·다나베 양단장이 김일성 주석으로부터 직접 선원석방의 언질을 받아내고 새로운 우호관계 수립을 원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북한방문단이 큰 성과를 올렸다고 판단했을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게다가 국교정상화교섭 제의를 하게 한 「국제적 빅 뉴스」(자민대표단)까지 만들어냈다. 그런 의미에서는 『만점에 가까운 합격점을 받았다』고 대표단이 자찬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지만,이들을 맞은 북한측의 「계산」에는 미쳐 눈을 돌리지 못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김일성 스타디움에서의 10만 관객과 5만 군중에 의한 매스게임은 「김환 선생 환영」을 카드섹션으로 연출,일행을 감격시켰다. 김일성 주석과의 회담을 위해 묘향산으로 가는 열차는 특별히 꾸며진 침대열차였다. 이러한 환대의 뒤에 「전후 45년간의 손실보상」이라는 계산이 깔려있을 줄은 아무도 몰랐던 것이다. 이 「전후 45년」 문제는 일본정부 자체에는 물론 여야 각 정당에도 큰 파문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자민당의 파벌회장인 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 회장은 『45년간 일본이 무엇을 했단 말인가. 도대체 말도 안되는 소리. 논평할 수 없다』고 말하고 『이번 북한방문단의 성과는 전체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밝혔다. 야당쪽에서도 반론은 심하다. 스카모토 사부로(총본삼랑) 전 민사당 위원장은 『전후 45년간도 사죄와 보상의 대상으로 한다는 것은 외교상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이것은 어휘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양국이 민주적으로 선린관계를 구축해나갈 수 있을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문제에 대해 일본 외무성측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북한과의 정부간 교섭을 벌여나가는 과정에서 일본정부의 입장을 주장할 때 식민지통치시대의 보상은 당연하지만 전후 45년간의 보상에는 응할 수 없다는 취지를 명확히 밝히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 이유를 외무성 당국자는 이렇게 들고 있다. 『북한은 일본이 적친정책을 취했다는 것을 보상의 근거로 보는 모양이지만 그런 근거는 없다. 그렇게 주장한다면 북한도 마찬가지로 일본에 대해 적친정책을 취해오지 않았는가라고 반론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일본정부가 무엇보다도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은 대한국 관계이다. 한국에는 36년 만을 대상으로 보상했기 때문에 균형감각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뿐만 아니라 중국·대만·필리핀 등 아시아주변 제국에 대해서도 선례가 되며 외교적 분쟁의 소지가 되지 않을까 우려한다. 북한측이 「45년간의 손실」을 정신적 손실이라고 주장한다면 다른 피해국들도 마찬가지 주장을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어쨌든 이번 「가네마루 방문단」은 정당차원의 관계개선을 급진시켜 정부를 곤혹하게 하고 있으며 가네마루 전 부총리가 북한에 남긴 「가네마루 수표」는 일본정부에 너무 무거운 짐을 지웠다는 것이 도쿄의 시각이다.〈도쿄=강수웅 특파원〉
  • 「8개항 공동선언」/「가네마루 합의」에 강력대응 저변

    ◎한·일 기본관계 이탈/북의 대남전략 전폭 수용 간주/미도 일 접근속도 조절에 압력/전후 배상문제·사과문제도 추궁 방침 정부는 29일 일·북한간 공동선언문 가운데 일부 내용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이 부분에 대한 일본측의 공식 해명을 요구할 방침이어서 일본의 입장 여하에 따라 한일간 외교적인 마찰을 일으킬 가능성도 없지 않다. 정부가 일본의 자민당·사회당과 북한의 조선 노동당이 합의한 정당 차원의 공동선언문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은 「조선은 하나」라는 등의 선언문의 일부 내용이 북한의 정책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8개항의 공동선언문 가운데 5항의 「조선은 하나」라는 구절은 북한이 그동안 고집해온 남한의 실체 부인과 남북한 단일의석 유엔공동가입 주장을 수용하는 것일 뿐 아니라 대남적화통일노선마저 수용하는 것이라고 외무부 당국은 지적하고 있다. 선언문 1항 가운데 일제 36년 및 「전후 45년」에 대해서 일본이 사죄 및 배상을 해야 한다고 밝힌 부분은 65년 한일 국교정상화 과정을 상기할 때 형평을 잃은 것일 뿐 아니라 우리 국민의 대일 감정을 크게 자극할 수도 있는 것이다. 특히 정부가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은 가이후(해부) 총리가 자민당 총재 자격으로 김일성 주석에게 전한 사죄친서에서 「총리로서 유감을 표명한다」고 언급한 부분으로 우리 정부와의 신의를 저버린 표현이라는 외무당국자의 지적이다. 일·북한간 정식 국교가 수립되어 있지 않은 마당에 「총리자격으로 유감」 운운한 것은 일측의 진의를 의심케 하는 것으로 정부는 이를 좌시할 수 없다는 단호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일본측은 가네마루 전 부총리 일행의 발언과 합의사항에 대해 그의 개인 생각일 뿐이라고 해명을 할 수는 있으나 친서내용중 「총리자격」 부분에 대해서는 도의적인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가네마루 전 부총리가 일본 정계에 미치는 영향력과 비중을 감안할 때 그가 합의한 공동선언문 내용이 일본의 외교정책과 전혀 무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정부가 선언문 내용을 추인하기에는 내·외부의 압력으로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관측된다. 미국을 비롯한 주변국들로부터 받는 압력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으로서도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에 대한 영향력을 일본에 빼앗기려 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미국은 일·북한 관계개선에 대해 한국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기본입장을 외교경로를 통해 일정부에 곧 전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은 결국 한국카드와 북한카드를 놓고 손익을 저울질할 것으로 관측된다. 일본은 가네마루 전 부총리 일행의 방북을 계기로 대북 관계개선에 대한 주변국 및 우리측의 반응을 살펴본 뒤 이를 추진해나간다는 속셈을 갖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방일에서 일 총리와 일 왕을 초청했으며 오는 11월 3년 만에 양국각료회담이 열리는 등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가네마루 전 부총리가 갖고 돌아온 북한과의 합의 보따리를 선택할 가능성은 희박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우리 정부는 일·북한 관계개선에 반대하지는 않지만 공동선언문 내용에 대해서는 일본정부의 입장이 아니라는 해명을 받아내 일·북한 관계개선 급진전에 대해서 쐐기를 박아두자는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부는 일·북한간의 관계개선이 결과적으로 남북한 관계개선에 긍정적으로 기여하는 측면도 있다고 판단,이를 계기로 북한의 개방과 개혁을 적극 유도하는 데 외교적인 노력을 기울인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일본정부에 「해명」을 요구하려는 것은 일본측의 대북 접근속도를 조절하고 관계개선의 시점과 단계마다 우리 정부와 긴밀한 사전협의를 다짐받아 두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정부는 이왕 일본이 북한에 대해 배상금을 지불한다면 그 배상금 지급의 완급조절이 남북대화 촉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일본측에 요청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도 일본측에 대북 접근속도에 대한 「상당한 압력」을 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실 일본은 그들의 법규상 국교정상화 이전에 배상을 할 수 없도록 규정되어 있어 빠른 시일내에 대북 배상을 할 수 없는 실정이다. 한소 수교가 임박해지자 국제적으로 궁지에 몰린 북한은 가네마루 전 부총리 일행의 방북을 계기로 기존의 폐쇄정책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의 김용순 국제부장은 가네마루 전 부총리 일행에게 일본과의 국교정상화를 제의하면서 『기존의 「두개의 조선」 반대정책의 변화를 의미한다』면서 대미 관계개선의 의사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북한측이 실제 정책을 변화시켰는지는 오는 10월5일 유엔 가입문제협의를 위한 남북 실무대표 접촉에서 우선적으로 드러날 것으로 예측된다. 만일 접촉과정에서 북한의 1개의 조선정책 철회방침이 감지된다면 문제는 변화의 방향과 시기 및 그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박정현 기자〉
  • 북한ㆍ일 공동선언 전문

    ◎빠른 시일내 양국관계 정상화/국교 수립할때 식민지배 배상/재일 조선인의 법적지위 존중/통신위성 공용ㆍ직항공로 개설/핵위협 제거ㆍ아주평화 공동노력 일본 자민당과 사회당 대표단이 24일부터 28일까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방문했다. 조선노동당중앙위원회총서기 김일성주석은 가네마루 신(금환신) 일본 중위원의원을 단장으로 한 자민당 대표단과 다나베 마코토(전변성) 중위원의원을 단장으로 한 사회당 대표단과 회견했다. 회견석상에서 가네마루단장과 다나베단장은 조선 노동당중앙위원회총서기 김일성주석에게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 자민당총재와 도이 다카코(토정다하자) 사회당중앙집행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했다. 방문기간중 자민ㆍ사회 양당 대표단과 조선노동당 사이에 몇차례에 걸쳐 3당 공동회담이 이뤄졌다. 3당은 자주ㆍ평화ㆍ친선의 이념에 입각,북한과 일본 양국관계를 정상화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양국국민의 이익에 합치되며 새로운 아시아 및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함을 인식,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①3당은 과거에일본이 36년간 조선인민에 끼친 불행과 재난 및 전후 45년간 조선인민이 입은 손실과 관련,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죄하고 배상해야 한다고 인정한다. 가이후 자민당총재는 김일성주석에게 전한 친서에서 조선에 대해 일본이 끼친 불행한 과거가 존재함에 대해 언급,『그같은 불행한 과거에 대해 다케시타(죽하) 전 총리가 지난해 3월 국회에서 심심한 반성과 유감의 뜻을 표명한 바 있는데 총리로서 나자신도 그와 똑같이 생각하고 있다』는 말을 분명히 해 일본과 북한 양국관계 개선에 대한 희망을 표명했다. 자민당 대표단장인 가네마루의원도 조선인민에 대한 과거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해 깊이 반성하는 사죄의 뜻을 표명했다. 3당 대표단은 일본정부가 국교관계를 수립하는 것과 동시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에 끼친 손해에 대해 충분히 배상할 것을 인정한다. ②3당은 일본과 북한 양국간에 존재하는 비정상적인 상태를 해소하고 가능한한 빠른 시일내에 국교관계를 수립해야 한다고 인정한다. ③3당은 일본과 북한 양국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정치ㆍ경제ㆍ문화 등 각 분야에서 교류를 발전시키며 우선 통신위성의 이용과 양국간에 직행항로를 개설하는 것이 필요함을 인정한다. ④3당은 재일 조선인이 차별받지 않고 그 인권과 민족적 제권리 및 법적지위가 존중돼야 하며 일본정부는 이를 법적으로 보증해야 한다고 인정한다. 3당은 또 일본당국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관련,일본여권에 기재한 사항을 삭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⑤3당은 조선은 하나이며 북과 남이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루는 것이 조선인민의 민족적 이익에 합치됨을 인정한다. ⑥3당은 평화롭고 자유로운 아시아를 건설하기 위해 공동노력하며 앞으로 지구상의 모든 지역에서 핵의 위협을 없애는 것이 필요함을 인정한다. ⑦3당은 일본과 북한 양국간의 국교수립을 실현하고 현안인 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간 교섭이 올해 11월중에 개시되도록 정부에 강력하게 촉구하기로 합의했다. ⑧3당은 양국 국민의 염원과 아시아와 세계의 평화와 이익을 위해 자민당과 조선노동당,사회당과 조선노동당간의 관계를 강화하고 상호협력을 한층 더 발전시킨다는 데 합의했다.
  • 페만 군사비 지원 관련/부시,노대통령에 친서

    부시 미국 대통령은 28일 페르시아만사태와 관련한 한국 정부의 지원결정에 감사의 뜻을 표시하는 친서를 노태우 대통령 앞으로 보내왔다고 청와대당국이 밝혔다. 부시 미 대통령은 이날 친서에서 『한국 정부가 9·24 다국적군 및 전선국가에 대한 종합대책을 발표했고 응분의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어 매우 기쁘다』고 지적하고 『최근 한국이 막심한 홍수피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이런 점에서 각하께서 친히 페르시아만 지원결정을 해준 데 대해 더욱 감사한다』고 말했다.
  • 묘향산회담 마친 일 대표단 1문1답

    ◎“일­북한 현안 충분히 이야기했다”/「가이후친서」 내용 김일성 주석도 납득/「보상」 문제 원칙합의… 규모는 결정안해 북한의 김일성 주석과 회담을 마친 일본 자민당대표단 단장 가네마루 신(김환신) 전 부총리는 26일 하오 묘향산초대소에서 동행기자단과 회견을 갖고 회담내용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내일도 김 주석과 만나는 목적은 무엇인가. 오늘 회담의 감상은. ▲목적은 모르겠으나 다시한번 주석이 만나고 싶어한다고 김용순 서기가 전해왔다. 단둘이 대화하고 싶다는 것이다. 내용은 이야기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오늘 나는 사죄와 보상 문제로 여러가지 이야기를 했는데,사죄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했다고 본다. 보상은,오늘 여기서 금액을 결정하는 것 등은 일본의 관례ㆍ법률 등이 있기 때문에 창구를 정해 처리할 수밖에 없다는 말을 했다. 금액은 저쪽에 언급하지 않았다. 지금은 한가지,핵 문제로 일본에서도 여러가지로 말이 있는데,핵은 있는가. 그런 공장도 있는가를 확실히 물어보았다. 김 주석은 핵병기의 제조는 하고 있지 않다. 정찰위성에서 보고 만들고 있다는 말을 듣고 있는데 그것은 소련이 이전에 만든 원자력연구소다. 개발할 능력도 없고 의사도 없다. 조사해보고 싶다는 경향이 있는데,그렇다면 동시에 남쪽 핵의 존재에 대해서도 조사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 주석은 세부적인 것은 노동당 서기와 이야기해 달라,법률은 인간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법률이 있더라도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나는 모든 것이 합의됐다고 생각한다. ­김 주석은 보상에 대해 무슨 말을 했는가. ▲김 주석은 금액도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선발대와 김용순 서기가 충분히 이야기했기 때문에 주석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연락사무소의 이야기는 있었는가. ▲3당이 합의하고 있는 일이다. 연락사무소는 양쪽에 둔다. ­정부간 교섭에 주석도 합의했는가. ▲총체적으로 합의하고 있다. 한편 사회당측 단장인 타나베 마코도(전변성) 부위원장도 묘향산에서 평양으로 돌아가는 특별열 차안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김 주석과의 대화내용을 전했다. ▲김일성 주석=두분의 방문을 환영한다. 북한ㆍ일본 관계는 개선되지 않으면 안된다. 이번 자민당과의 교류가 가능하게된 것을 대단히 기쁘게 생각한다. 가이후 총리의 친서를 받았는데,노동당과 자민당과의 관계개선을 확인하고 싶다. 3당이 협력해서 북한ㆍ일본 관계개선과 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전력해 나가자. 가이후 총재의 친서를 높이 평가한다. 가이후 총리에게 잘 전해주기 바란다. 도이(토정) 사회당 위원장으로부터도 친서를 받았다. 자민당과 긴밀한 관계가 됐기 때문에 10월10일의 노동당 창당 45주년 기념식에는 자민당 대표를 초청하겠다. 나는 지금 일본의 현상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일본은 경제대국이지만 정치대국도 되어있다. 여기에서까지 이른 것은 일본의 정책이 옳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은 채권국이다. 미국은 채무국이다. 스타워즈 계획으로 빚이 다시 늘고 있다. 일본은 헌법에 군사대국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규정,실행해왔다. 그것이 오늘날 일본의 좋은 상태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 일­북한,「사죄ㆍ보상」의견접근/일정당ㆍ북한노동당대표 어제 1차회담

    ◎일선 연락사무소 설치 공식제안/김일성­가네마루 오늘 연풍서 회담/가이후 친서도 전달할 듯 【도쿄=강수웅특파원】 북한을 방문중인 일본의 자민ㆍ사회 양당 대표단과 북한의 김일성주석과의 26일 회담은 평양을 떠난 별개의 장소에서 이루어질 것으로 전해졌다. 대표단을 수행취재중인 보도진에 따르면 북한측은 25일 하오 대표단에게 『모처로 간다. 일박할 각오를 하라』고 요청해 왔다는 것이다. 이같은 상황으로 볼때 현재 김일성은 지방을 순시중이며,회담장소는 연풍호반의 김일성별장이 될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대표단과 기자들은 이날 하오 9시가 지나 열차편으로 묘향산 방면으로 30분 정도 간 것으로 확인됐다. 한편 가네마루신(금환신) 전 부총리,다나베 마코토(전변성) 사회당 부위원장은 25일 상오 10시15분부터 약 2시간30분동안 평양시내 만수대 의사당에서 북한 조선노동당 서기 김용순 국제부장과 제1차 3당 정치회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가네마루 자민당측 단장은 과거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배상ㆍ경제협력 등 보상문제에 관해 『성의를 갖고 교섭에 임함으로써 착실하고 신속히 실시되는 방향으로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가네마루 단장은 또 김일성주석 앞으로 보내는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 자민당 총재명의의 사죄서한을 26일 전달한다는 뜻을 밝혔다. 북한측도 사죄와 보상이 선결되어야 한다는 인식에 일치,가네마루 단장의 발언을 평가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처럼 제1차회담이 순조롭게 진행됨에 따라 26일 김일성주석과의 회담에서도 일ㆍ북한 관계개선이 더 한층 진전될 것으로 일본측은 기대하고 있다. 이날 회담에는 일본측에서 양단장 이외에 이시이 하지메(석정일) 자민당 외교조사회장대리,구보 와타루(구보선) 사회당 부위원장이,북한측에서는 김양건 조선노동당 국방부 부부장 등이 동석했다. 이날 회담에서 일본측은 연락사무소 설치를 정식으로 제안했으며,제18차 후지산마루(부사산환)문제는 직접 거론되지는 않았으나 『기본적 문제에 합의가 이루어지면 개별적 문제는 저절로 해결된다』는 선에서 호의적인 반응을 받아냈다.
  • 일 정당대표단 오늘 평양에/가이후총리 사과친서 휴대

    【도쿄=강수웅특파원】 가네마루 신(김환신) 전부총리와 다나베 마코도(전변성) 부위원장을 각각 단장으로 하는 일본의 자민ㆍ사회 양당 북한방문단이 24일 하오 일항 전세기편으로 하네다(우전)공항을 출발,평양으로 직행한다. 가네마루 전부총리는 과거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문제와 관련,가이후(해부)총리가 자민당 총재자격으로 보낸 친서를 휴대함과 동시에 자신으로서도 사죄의 뜻을 표명할 생각인데 가이후총리는 이 친서내용에 다케시타(죽하) 전총리가 『깊은 반성과 유감의 뜻을 표명한다』고 말한 지난해 3월의 국회답변을 인용,솔직한 사죄의 뜻을 표명키로 결정했다. 그 결과 가네마루 전총리의 방북의 최대 초점인 사죄문제는 ▲가이후총리의 김일성주석 앞으로의 서한 ▲가네마루 자신에 의한 구두사죄 ▲가을 임시국회에서의 가이후총리 답변 등 3단계로 대응키로 방침을 굳혔다. 또 북한에의 「사죄와 배상」문제와 관련,일ㆍ북한 관계개선의 장애가 되어 있는 제18후지산마루(부사산환)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선발대와 조선노동당과의 대화 결과승무원 2명의 조기석방의 방향으로 굳혀지고 있는데 자민ㆍ사회 방북대표단은 22일 이들 2명이 대표단과 같은 직행편으로 귀국할 수 있도록 교섭할 방침임을 확인했다. 이번 북한방문단이 조선노동당과 논의할 사항은 ▲식민지 지배에의 사죄 ▲배상 ▲위성통신 ▲직행편 개설 ▲일본여권상의 기재사항 변경 ▲제18후지산마루문제 ▲연락사무소 개설 ▲경제ㆍ기술교류 등 8개 항목이다. 한편 일본의 소식통은 일본대표단과 북한 노동당과의 공동성명이 방북단이 귀국하기 전에 발표될 것이라고 밝혔다.
  • 평양으로 달리는 일본「전방위 외교」/자민ㆍ사회당대표 방북의 함축

    ◎총리친서 휴대,경협 돌파구 모색/연락사무소ㆍ직항로 개설등 타진/북한,식민통치 사죄ㆍ「교차승인」 반대 요구할 듯 일본 집권당의 「최고실력자」 가네마루 신(금환신) 전 부총리의 북한방문은 「역사적」인 것으로 일본정계에서는 평가하고 있다. 그것은 전후 45년간 국교가 없이 외교적 공백기간을 거쳤던 일ㆍ북한관계를 개선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일ㆍ북한 사이에는 이데올로기의 차이라는 깊은 간격이 있으며,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와 배상 등 현안도 많다. 지금 한반도의 기류는 변하고 있다. 한국의 폭넓은 북방정책과 미ㆍ일ㆍ중ㆍ소의 활발한 접근에 따라 한반도에는 새로운 질서가 태동하려 한다. 이러한 움직임 속에 가네마루 전 부총리와 다나베 마코도(전변성) 부위원장을 각각 단장으로 하는 자민ㆍ사회 양당 대표단의 24일 북한방문의 뜻은 크다. 일ㆍ북한 양측 실력정치가들은 어떤 결실을 맺을 것인가,이점에 대해 일본 정계는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가네마루 전 부총리는 지난 20일 『평양에 도착하면 곧바로 김일성주석과 만나고 싶다』는 희망을 표시했다. 일ㆍ북한 쌍방이 과거 현재의 관계 및 남북한문제 등 서로 양보할 수 없는 원칙론만을 고집한다면 교섭은 정체되어 버린다. 따라서 교섭이 미로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선 톱 클라스의 회담에서 대강의 방침을 결정하자는 계산이다. 북한은 이번 교섭에서 ▲일제에 의한 36년간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와 배상,전후 45년간에 걸친 적시정책에의 사죄 ▲한반도의 자주적 통일을 위해 남북분단을 고착화시키는 교차승인등에 개입하지 말 것등을 주요 요구항목으로 정해 놓고 있다. 이 가운데 「배상」은 교전국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며,한국에 대해서도 「대일 청구권」이라는 형식으로 결말을 보았다. 그러나 북한측은 독립을 위해 대일투쟁을 했기 때문에 「배상」이라고 주장해 왔다. 이 점에 대해 가네마루 전 부총리는 『한국과 같은 관점에서 대처하겠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북한은 기술혁신의 낙후등으로 경제정체가 계속되고 있는 상태이다. 이 때문에 가네마루 전 부총리는 식민지 지배에 대해 자신이 사죄하는 것 뿐만 아니라 「가이후(해부) 자민당총재」의 친서를 휴대,제협력의 돌파구를 만드는 것으로 일ㆍ북한 관계를 한층 진전시키겠다는 의향으로 교섭에 임할 자세이다. 일본정부 내에는 『국가관계를 인정하지 않는 상대에 국민의 세금을 쓰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강한 반발도 있다. 그러나 가네마루 전 부총리를 중심으로 한 대표단은 이런 원칙은 일단 제쳐두고 대 북한 경제협력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대표단에 있어서는 이같은 국교문제와 직결되는 한반도통일문제가 또하나의 짐으로 되어 있다. 현재 한국과 국교를 맺고 있는 국가는 1백40여개국이며,북한과는 1백개 전후의 국가가 국교를 수립했다. 이 가운데 남북한 양쪽과 국교를 맺는 소위 「교차 승인국」은 80여개국에 이른다. 그러면서도 북한은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는 미ㆍ소ㆍ중ㆍ일 등 4개국의 교차승인에만 『2개의 조선을 고착화시킨다』는 입장을 고수하려 한다.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에게 비망록을 들이대며 한소 국교수립 에 반발했던 북한은 그 메모 내용을 기관지「민주조선」을 통해 공표함으로써 적의를 보였다. 북한에 의한 이같은 최초의 대소 공개비난에는 교차승인을 막으려는 저의가 담겨있는 것이다. 한편 한국정부로서는 긴장완화를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서 교차승인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처럼 타협점을 찾기가 어려운 원칙문제를 『단숨에 처리』(가네마루 주변)해 하나의 매듭을 지어보려는 것이 톱레벨과의 회담목적이다. 그러나 「정부승인」 문제가 김일성과의 회담이라고 해서 당장 결론이 날 것 같지는 않다. 이번 북한방문에서 자민ㆍ사회 양당의 「공동작업」으로 펼치는 대 북한 외교는 일본의 36년간의 식민지 지배,전후 동서대립의 상황속에 서로 적대시하지 않을 수 없었던 쌍방사이에 직접 대화를 가짐으로써 적어도 제1차 정부간 교섭을 주선,궤도를 깔아 놓자는 것에 최대의 목표를 두고 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도쿄ㆍ평양에의 연락사무소 설치이다. 북한은 지난번 자민ㆍ사회 양당 선발대에 일본 여권상의 『이 여권은 북한을 제외한 모든 국가 및 지역에 유효하다』는 적용제외조항을 삭제할 것을 요구했다. 일본정부는 『자국민 보호가 가능한 상태가 전제』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북한방문단은 일본과 대만사이의 형식을 모델로 일부 영사업무가 가능한 사무소 개설을 제안할 방침이다. 북한은 「2개의 조선」을 배제하기 위해 일본과의 국교는 바라지 않고 있으며 일본측의 연락사무소 제안을 수락한다면 점차로 「2개의 조선」을 스스로 인정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북한측이 일본여권의 제한조항 삭제,대일 경제교류의 확대를 요구하려면 어떤 형태로든 연락사무소 설치에 응할 필요가 있으며 이런 면에서의 실무적 협의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또 가네마루 전 부총리가 북한방문을 결심하게 된 제18 후지산마루(부사산환)의 선장등 2명의 석방에 대해 그는 『이미 해결이 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인식을 나타내고 있으며 10월중에는 귀국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이밖에 통신위성의 이용,직행항공로 개설,청소년교류 등에 대해서는 자민ㆍ사회 양당과 조선노동당측이 분과위원회에서 결정할 예정이어서 쌍방이 원하는 방향에서 해결될 전망이다. 이번 일본 대표단의 방북은 여야 공동대표단이란 전례드문 형식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일본의 총력외교라는 점에서,또 그 완고한 북한의 벽에 일단 틈이 생겼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북한은 일본에 있어서는 미지의 부분이 많은 곳이다. 따라서 가네마루 전 부총리를 비롯한 이번 방문단의 앞길에는 기대와 불안이 교차할 것으로 이곳 정가에서는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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