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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일역사 공동연구 합의/과거사 문제 공통인식 높이게/양국 외무

    ◎전담위 설치… 교과서 개정 등 추진 【오사카=이도운 특파원】 공로명 외무부장관과 고노 요헤이(하야양평)외상은 15일 오사카 뉴오타니 호텔에서 회담을 갖고,일본 정치인들의 잇따른 망언으로 불편해진 양국관계를 수습하기 위한 방안을 집중 협의했다. 이날 회담에서 공장관과 고노 장관은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양국이 공통된 역사인식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보고,양국의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역사공동연구위원회를 발족하기로 의견을 모았다.양국정부는 위원회의 연구결과를 양국 정부가 교과서 개정 등의 방법으로 반영하기로 했다. 이날 회담에서 공장관은 『일본정부가 한일합병조약의 성격을 규정한 한일기본조약 2조의 해석을 재검토하라』고 거듭 촉구하고 『한반도 분단의 책임은 일본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고노 장관은 『2조의 해석을 법률적으로만 집착하면 아무런 진전이 없다』면서 『이는 정치적 판단에 따라 해결할 문제이며,무라야마 총리가 김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 천명한 대로의 역사인식을 갖기 위해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고노 장관은 일본 정치인들이 과거사 발언으로 잇따라 물의를 빚은데 대해 거듭 유감을 표명했으며,에토 다카미(강등륭미)총무청장관의 사임 배경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양국 장관은 이날 회담에서 과거사 문제 해결에 대한 의견이 좁혀짐에 따라 김영삼대통령과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총리간의 18일 정상회담은 예정대로 열기로 했다.
  • 일 총리,「망언」 사과 친서

    ◎김 대통령에 “합방조약 불평등 인정… 반성”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 일본총리는 14일 김영삼대통령 앞으로 친서를 보내,『19세기 후반부터 급속하게 발생한 커다란 힘의 차이를 배경으로 한 쌍방의 불평등한 관계 아래서 한일병합조약,그리고 이에 앞서 몇개의 조약이 체결됐다』면서 『이들 조약이 민족의 자결과 존엄을 인정하지 않은 제국주의 시대의 조약인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 무라야마 총리는 자신의 과거사 관련 문제발언을 해명하는 이 친서에서 『과거에 있어서의 일본 국책의 잘못을 인정하고,우리가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면서 『한일병합조약에 의해 식민지배하에서 한반도 지역의 사람들에게 견디기 힘든 고통과 슬픔을 준 것에 대해 깊은 반성과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사과를 표명한다』고 말했다. 야마시타 신타로(산하신태낭) 주한 일본대사를 통해 이날 하오 공로명 외무부 장관에게 전달된 이 친서에서 무라야마 총리는 대북한관계에 언급,『한국과의 긴밀한 연계 아래 대북정책을 수행하고,일·북관계는 남북관계의 진전과 조화의 원칙에 따라 추진하겠다』고 말하고 『북한에 대한 경제 협력은 일·북한 국교정상화 교섭의 타결이 전제돼야 하며,지난번 쌀 지원은 특수하고 예외적인 조치였다』고 해명했다.
  • “일의 과거사 왜곡 바로잡자”/한­중정상 「공동포문」

    ◎“이번기회 「잘못된 버릇」 고쳐줘야­김 대통령/“군국주의자들 똑바로 인식하게”­강 주석/일 총리는 친서보내 분위기 누그러뜨리기 14일은 일본의 그릇된 과거사 인식을 둘러싸고 한·중·일 3국의 정상과 외무부가 숨가쁘게 움직인 하루였다. 김영삼 대통령과 강택민 중국주석은 이날 상오 청와대에서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최근 잇따랐던 일본측의 망언을 바라보는 양국의 시각을 밝혔다.김대통령은 『이번에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기어이 고쳐놓겠다』고 단언했다.외교적 수사를 배제한 거칠고,직접적인 표현을 사용했다.마음을 단단히 먹고 한 말 같다. 강택민 주석도 이날 회견에서 우리정부의 기대를 넘는 수준으로 일본의 그릇된 역사관을 통박했다.강주석은 『일부 일본 인사와 정치가들이 아직도 완고하게 그릇된 역사관념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하고 『일본의 소수 군국주의자들이 역사를 똑바로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대통령과 강주석은 17일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간다.일본으로서는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두 나라의 정상으로부터,그것도 자기 집 앞마당에서 잔치를 열기전에 국가의 도덕성을 지적받은 셈이다.외교적인 수모가 아닐 수 없다. 그것이 직접 계기가 됐는지는 확실치 않지만,무라야마 총리는 이날 하오 김대통령 앞으로 친서를 보냈다. 『식민지배 시절 한국에 좋은 일도 했다』고 망언한 에토 다카미(강등륭미)총무청장관이 13일 자진사퇴했지만,그것이 김대통령의 비판적 대일 인식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김대통령의 이러한 인식은 18일로 예정된 한일 정상회담에까지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특히 무라야마 총리 자신이 『한일합방은 법적으로 유효했다』고 망언한 장본인이기도 하기 때문에,정상회담장에는 긴장감이 감돌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따라서 일본측으로서는 양국의 정상이 회동하기 전에,좀더 누그러진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무라야마 총리는 친서에서 『한일합방이 법적으로 유효했다』는 망언을 완전히 취소하지는 않았다.그러나 ▲불평등한 관계에서 맺어지고 ▲민족의 자결을 인정치않은 ▲제국주의 시대의 조약이라고 인정했다.이러한 세가지 조건 아래 체결된 조약은 국제법상으로 무효이다.1965년 유엔 총회에서도 제국주의 시대에 강제로 맺어진 모든 조약은 무효라고 결의한 바 있다.무라야마 총리는 지금 당장 한일합병의 무효성을 인정하지는 않았지만,일본이 그런 방향으로 움직여 갈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정부도 무라야마 총리의 친서가 담고있는 최소한의 성의는 인정하고 있다.정상회담은 예정대로 열릴 것으로 보인다.정상회담에 앞서 15일 공로명 외무부 장관과 고노 요헤이(하야양평)외무장관의 회담이 열린다.외무장관 회담이 끝나봐야 정상회담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쉬러갔을뿐 「특별구상」 없다/김 대통령 청남대서 2박3일 휴식

    ◎라빈총리 피격소식에 “조문예우” 특별지시 김영삼 대통령은 청남대에 머물고 있던 5일 새벽 조깅도중 라빈 이스라엘 총리의 피격·서거소식을 보고 받았다.김대통령은 오랜 친구를 잃은듯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고 청와대관계자는 전했다.김대통령은 바로 한승수 비서실장,유종하 외교안보수석에게 전화를 걸어 『최고의 조문예우를 갖추라』고 특별지시했다. 김대통령은 특히 직접 조문을 가겠다는 생각까지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결국 이홍구총리를 이날 낮 급거 이스라엘로 파견했다. 김대통령은 잠시의 휴식도 스스로 용납하지 않는 성격을 지녔다.라빈총리도 부지런한 지도자였다.지난달 말 열린 유엔 50주년 특별정상회의에 참석했던 세계 1백50개국 정상중 가장 바삐 움직였던 인사가 바로 김대통령과 라빈총리다.두사람은 이틀동안 10여개국 정상과 개별회담을 갖는 강행군을 했었다.한­이스라엘 정상회담 때 라빈총리는 김대통령의 일정을 물어본 뒤 『놀랍다.건강에 유의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김대통령이 주말을 맞아 4일부터 청남대를 찾은 것도 라빈총리의 충고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휴가철이나 명절이 아닌 시기에 청남대에 내려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대통령과 라빈총리 사이는 유엔 회동이외에도 각별했었다.라빈총리가 이스라엘총리로는 처음 우리나라를 방문한 것을 비롯해 전화통화 2회,친서교환 3회,각료급 인사파견 3회 등으로 교분을 쌓아왔다.비서진들에 의해 「등을 떠밀리다시피」 청남대에 왔음에도 김대통령이 휴식보다 라빈총리에 대한 조문을 더 신경쓴 데는 배경이 있다. 김대통령은 5일 하오로 예정됐던 귀경일정을 하루 늦춰 6일 상오 청와대로 돌아올 예정이다.2박3일로 일정이 늘어난 만큼 「청남대 구상」이 있는지에 관심이다.그러나 청와대 고위관계자들은 『김대통령은 어느 자리에 있건 항상 국정구상을 한다.별도의 청남대 구상은 없을 것이며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을 가진 것』이라고 강조한다.부인 손명순여사가 캐나다·유엔순방 당시 건강이 안좋아 지난달말부터 청남대에서 쉬고 있다는 사실도 김대통령의 청남대행의 한 이유가 됐다. 청와대 주치의는 60대후반인 김대통령이 「튼튼한 40대 체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그렇지만 보좌진들로서는 대통령이 조금이라도 편한 상황에서 국정 전반을 돌아볼 여유를 가지게 만들 의무를 느끼게 된다. 청와대비서실은 앞으로 김대통령의 공식일정을 대폭 줄일 계획이다.토요일에는 되도록 공식일정을 없게 하고 때때로 청남대행을 권유키로 했다. 청와대 관계자들의 설명에 따른다면 김대통령이 청남대를 다녀왔다해서 기존의 정책기조가 바뀔 부분은 없는 것 같다.노태우 전 대통령의 부정축재사건은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통해 모든 것을 규명한다는 방침이 유지될 것이다.일각에서 거론되는 정계개편,6공 단절설에 대해서도 『인위적인 개편은 없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 한국 전쟁의 평가(새로 쓰는 한국 현대사:40)

    ◎승자·패자 없는 싸움… 이념 대립속 갈등 심화/“삶의 공동체 파괴시킨 반민족적 사건” 규정 새로쓰는 한국현대사 한국전쟁은 3년하고도 32일을 더 끌었다.단일지역의 국지전 치고는 길고도 지루한 전쟁이었다.제2차세계대전 절반에 해당하는 기간의 전쟁이었지만 전비는 엄청났다.미국은 2차대전 당시 유럽에 투하한 분량보다 더 많은 폭탄을 좁은 한국땅에 쏟아부었다.그래서 한국전쟁은 1·2차세계대전 다음가는 전쟁으로 기록된다.끔찍한 전쟁이 분명했다. ○5백여만명 사상 그러나 전쟁은 휴전이라는 이름으로 너무 성급하게 미봉되었다.이는 1953년7월27일 판문점에서 휴전협정이 체결되었을 때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가 한 말에 잘 나타나 있다.이제 전쟁은 끝나고 내 아들은 돌아오게 되었다는 그의 말은 세상인심을 반영하는 것이었다.휴전은 영원한 평화를 위해 끝난 전쟁과는 거리가 멀었다.어떻든 휴전협정에 따라 한반도의 허리를 다시 가른 비무장지대가 설정되었다.제2분단기를 맞은 것이다. 한국전쟁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다.그 이상한 전쟁은양극화한 이데올로기 대립속에 골 깊은 갈등만을 표출했을 뿐이다.실리 없는 싸움으로 끝난 이 전쟁에서 2백10만∼2백50만명의 전투요원이 숨지거나 부상했다.이 가운데 공산군의 인적 피해가 1백42만명으로 유엔군에 비해 더 컸다.몰론 정확한 수치는 아니다.유엔군사령부의 유엔보고서,「군사정전위원회편람」 및 「조선전사」 등이 제시한 통계와는 차이가 있다.그러나 공산군 피해가 더 컸다는 사실은 여러가지 정황으로 보아 설득력을 갖는다. 한국전쟁의 비극성은 실제 전쟁을 치르는 전선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이념적 갈등이 빚어낸 더 크나 큰 비극은 전투와 직접 연관성이 없는 비전투지역에서 일어났다.그것은 남북 민간인의 희생이다.전쟁중에 3백1만∼3백67만명의 민간인이 피해를 보았다.이는 당시 전체인구의 10%정도에 버금하는 숫자다.전쟁의 장외에서 한국인의 희생이 얼마만큼 처절했는가를 다시 일깨우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민간인의 희생은 남북한이 상대방 지역을 점령 내지 장악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민간인의 희생유형은 사망·학살·부상·행방불명 등으로 되어 있다.이 가운데 학살은 전쟁으로 비롯된 비인도적 만행이었다.북한의 실상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남한에서는 12만8천9백여명이 학살되었다.행방불명자로 구분한 민간인 30만3천여명의 일부를 학살로 본다면 숫자는 더 늘어날 수도 있다.그리고 남한에서 8만4천5백여명이 납치되어 북한으로 끌려갔다. 한국전쟁은 직접적인 인명피해 말고도 수많은 이산가족을 만들어냈다.북한에서 남한으로 넘어온 피난민은 45만∼1백만명으로 어림된다.우리 민족이 혈연공동체를 중심으로 정서적 유대관계를 유지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들의 월남은 삶의 공동체를 무너뜨린 요인으로 작용했다.그러니까 한국전쟁은 민족의 생존을 위협하면서 삶의 공동체까지 파괴시킨 반민족적 사건으로 규정되어야 할 것이다. 전쟁은 모든 것을 앗아갔다.산업시설도 예외가 아니어서 1950년6월25일 이후 약 10개월간에 걸쳐 42%가 파괴되었다.그 피해액은 1953년7월 기준 4천1백12억환에 달했다.특히 경인지구와 삼척지역의 공업시설은 개전 3개월만에 회복불능상태의 피해를 입었다.여기에 5백72억환에 이르는 교통·전력시설의 파괴가 맞물려 돌아갔다. 전선은 전선대로 오래 버티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요요전쟁」이라 부를 만큼 오락가락을 거듭했다.전선이 이동할 때마다 한국민의 고향을 짓밟아버렸다.이에 따라 농업기반도 황폐화했다.휴전이 성립될 무렵 기아에 허덕이는 인구가 전체인구의 25%를 차지했다.바로 이런 이유로 해서 전쟁기간은 물론 전후에도 꽤나 오랜 기간을 비참한 생활고에 시달렸다.1인당 국민소득이 전쟁직전 90달러에서 60달러로 떨어졌으니 경제는 말이 아니었다. ○북측 소득 30%선 하락 북한의 피해 역시 심각했다.자업자득인 것이었지만 북한의 경제가 입은 피해액은 1949년도 국민소득의 6배에 이르렀다.이로 인해 북한의 경제발전은 5∼6년이 지연되었다.전쟁을 일으킨 북한은 3년의 전쟁을 치르면서 국민소득을 30%까지 떨어뜨려놓았다.이외에 5천개의 학교,1천1백68개의 병원과 휴양소,6백75개의 과학연구기관과 도서관이 파괴되었다.특히 전쟁말기에는 공산측을 휴전협상테이블로적극 끌어들이기 위한 유엔군의 집중폭격을 받았다. 한국전쟁은 북한의 남침에 의한 내전으로 시작되어 국제전으로 발전했다.그리고 한반도라는 제한된 지역에서 총력전성격으로 전쟁이 수행되어 많은 인적 희생과 물질적 손실을 가져왔다.그 원인은 북한이 선제공격을 통해 무력으로 남한 흡수를 시도한 데 있다.그러나 북한의 의도가 일단 수포로 돌아가면서 두 정치세력은 민족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잔인한 전쟁으로 치달은 까닭도 여기 있다. 그러니까 전쟁은 남북간에 고도의 적대감을 안겨주었을 뿐이다.전쟁을 통해 형성된 적대감은 이념대립을 보다 부추겨 정치·경제·군사·외교분야에서 비타협의 갈등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다.그 갈등은 타민족 국가간의 대결양상을 뛰어넘는 심각한 것이었다.그래서 평화공존의 틀을 마련하기는커녕 이산가족이 서로 만날 수 있는 최소한의 교류협력마저 실현을 보지 못했다. ○남북간 적대감 고조 남북 정치상황 역시 전쟁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남한에서 지지기반이 취약하던 이승만대통령은자신의 정권을 강화할 수 있었다.그는 적극적인 휴전반대운동을 주도하고 반공포로를 과감히 석방함으로써 이미지를 개선해나갔다.이는 장기집권의 기반이 되었다.특히 북한은 전쟁 중반기에 부수상 겸 외상 박헌영등 남로당계열 숙청에 나서 휴전이후 이를 실현했다.이와 더불어 연안파와 소련한인파를 숙청,일인독재체제를 갖추고 이른바 주체사상에 의한 우상화의 길을 재촉했다.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면 전쟁을 통해 새롭게 정립한 한·미관계다.물론 전쟁 내내 한·미간의 불협화음이 따라다니긴 했다.휴전회담이 막바지에 접어든 1953년6월17일 이승만대통령이 북한 출신 반공포로 2만6천명을 석방한 사건이 그 대표적 케이스다.이는 국제적으로 문제가 되어 미국은 이승만을 구금,한국을 미국 군사정부 아래 두고 휴전에 동의토록 한다는 작전까지 추진했다.이승만대통령의 모험은 그해 봄부터 요구해온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이끌어내는 계기가 되었다. 전쟁은 한국으로 하여금 미국을 핵으로 한 친서방화와 친국제연합화를 추구하는 길을 열어주었다.따라서 국내 정치와 경제에 오랫동안 영향력을 행사해온 미국 역시 한국전쟁을 기점으로 명실상부한 세계 제1의 군사대국자리를 굳혔다.또 미국을 정점으로 서방진영의 군사동맹을 강화시켜 냉전시대를 마감하는 데도 공헌했다.그럼에도 전쟁의 무대 한반도는 동서냉전의 유산을 떨쳐버리지 못한 채 아직도 분단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이승만­로버트슨 회담 문서/이 대통령,한·미 방위조약 체결 강력 요구/미측선 「유엔군이 한국군 관할」 동의얻어 한국과 미국은 한국전쟁을 끝내기 위한 휴전회담을 미끼로 심각한 줄다리기외교을 진행한 것으로 밝혀졌다.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이 워싱턴 미 국립공문서보존관리국에서 발굴한 국무성문서에 따르면 휴전회담을 놓고 한·미간에 상대방을 서로 윽박지를 만큼 팽팽히 맞섰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자료는 19 53년7월27일 휴전회담이 성사되기 이전인 6월25일 한국을 방문한 미 대통령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의 개인사절 월터 S 로버트슨과 이승만대통령과의 회담문서.당시 국무장관 덜레스의 서신을 휴대한 미 국무성 차관보 로버트슨은 이를 이승만대통령에게 전달했다. 회담은 로버트슨 도착 당일부터 시작했으나 아무 진전이 없었다.이때에 일부 미군 고위지휘관이 한국군에 대한 보급지연과 같은 압력수단을 제시했다는 기록이 나온다.그런데 7월1일 로버트슨이 이승만대통령으로부터 메모 한쪽을 받는 것으로 회담은 활로를 찾았다.이승만의 메모는 미국과 어떻게든 합의를 보겠다는 것이었지만 전제조건은 물론 배수진까지 치고 있다. 메모에는 이승만대통령의 요구사항을 담았다.정치회담이 실패할 경우 미국은 한국과 함께 통일이 이루어지기까지 싸울 것을 보장하라는 것이었다.이같은 보장이 없다면 휴전이후 전선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미국을 협박하면서 자신은 휴전을 결사반대하는 국민을 설득할 길이 없다는 내용을 덧붙였다. 미국은 이 회담에서 이승만대통령으로부터 휴전을 거부하지 않고 한국군을 유엔군 산하에 두겠다는 동의를 얻어냈다.한국은 3월4일 로버트슨으로부터 한·미상호방위조약 초안을 받았고 휴전 이후에 이를 성사시켰다.
  • “미 폐기탱크 한국 실전용 배치”/M48시리즈 물고기집으로 사용

    ◎한국 지난달 미와 합의각서 체결 【워싱턴 연합】 한국군이 주한미군으로부터 상위 기종으로 인수하는 미제 M48 시리즈 탱크가 미연안 해역에 인공 물고기집을 만들려는 미정부 계획에 따라 바다에 버려지는 폐기 전투 장비 대상에 포함돼 있는 것으로 25일 알려졌다. 미육군물자사령부(USAMC)는 환경 문제에 관심이 큰 앨 고어 미부통령이 격려 친서를 보낸 가운데 실행해온 「인공 물고기집 구축작전」에 투입되는 폐기 전투 장비 대상에 M48 시리즈 탱크가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사령부 관계자들은 그러나 M48 시리즈 탱크중 구체적으로 어떤 기종들이 인공물고기집 구축작전에 투입되는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국방부는 지난달 17일 주한미군으로부터 M48 A5 탱크 2백75대와 8인치 자주포 13문 및 탄약 4만여t을 넘겨받는 대신 우리 군이 미군 장비를 관리하는데 드는 비용 중 미측으로부터 받아야 하는 6천7백만달러를 면제키로 하는 「한미 장비·보급품 일괄처리 합의각서」를 체결했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국방부는 1개월 안에 M48 A5 탱크를 넘겨받아 곧 실전 배치할 것이라면서 이 기종의 주포가 1백5㎜로 우리 군이 일부 보유하고 있는 주포 90㎜의 M48 A3 탱크보다 신형이기 때문에 군전력 증강에 보탬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었다.
  • 원유·가스 안정공급 논의/박 통산,사우디 방문

    박재윤 통상산업부 장관은 2일(현지시간) 민·관합동 자원외교사절단을 이끌고 사우디를 방문,알 안카리 석유장관대행과 회담을 갖고 원유 및 가스의 안정적 공급 및 한국 기업들의 플랜트 사업 진출 확대 방안 등을 논의했다. 박장관은 이 자리에서 김영삼 대통령이 파드 국왕에게 보내는 친서를 전달했다.
  • 일본 총리의 「침략전쟁」론(사설)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일본총리가 「종전50주년 기념일 총리담화」를 통해 일본이 일으킨 「대동아전쟁」을 「식민지배와 침략」이라 규정하고 그들의 침략에 의해 피해를 입은 아시아 각국인들에게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마음으로부터 사과』한 것은 진실을 인정하는 역사적 반성이란 점에서 평가할만하다.무라야마 총리는 16일 김영삼대통령에게도 담화내용을 친서로 보내왔다.일본총리가 과거사 사과문제로 한국의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온 것도 사상 처음 있는 일로 하나의 변화다. 이번 총리담화는 특히 일본내각의 의결을 거쳤기 때문에 일본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따지고 보면 너무나 당연한 「침략전쟁」을 인정하는데 50년이 걸렸다는 일이 되레 우습고 공식적인 사과 한마디 듣는데 반세기가 걸렸다는 것이 쑥스럽기까지 하다.그러나 그동안 일본이 보여온 역사왜곡과 사실은폐 집념이 너무나 집요했기 때문에 비록 때는 늦었지만 그나마의 변화도 하나의 「진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무라야마 총리는 16일종군위안부문제에도 언급,사과했다.일본총리의 이런 발언은 분명히 과거에는 없었던 일로 진일보한 역사인식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번 총리담화가 비록 내각의 의결을 거쳤다고는 하나 말만으로 끝나서는 안된다는 것이다.총리가 사과담화를 내놓은 날에도 다른 한편에서는 『대동아전쟁은 해방을 위한 전쟁』이었다는 우익단체들의 집회가 도쿄 곳곳에서 열렸다는 보도를 우리는 접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은 철저히 왜곡된 역사교과서의 개편에서부터 시작해서 대국민 교육을 통해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지 않으면 앞에서는 사과하고 뒤에서는 망언하는 일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우리는 확신한다.무라야마 총리담화의 구체화가 중요한 것이다.일본 국민 모두가 역사를 바로 알고 잘못된 과거를 바로 인식하지 않으면 일본은 아시아 이웃들과의 참다운 화해나 선린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 김 대통령에 일총리 「침략사죄 친서」

    ◎“전후50년 맞아 과거 반성… 관계발전 노력”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 일본 총리는 15일 하오 김영삼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 『일본이 과거 식민지지배를 통해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귀국에 끼쳤다』고 시인하고 『귀국과의 관계발전은 과거에 대한 깊은 반성이 기초가 돼야 한다』고 밝혔다고 청와대가 16일 발표했다. 무라야마 총리는 친서에서 자신이 전후 50년을 계기로 과거를 반성하고 미래를 향해 평화를 서약하는 담화를 발표했음을 김대통령에게 전하면서 『자유와 민주주의,시장경제라는 기본적 가치관을 공유하는 양국이 우호협력관계를 더욱 발전시켜 나갈 것을 마음으로부터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무라야마 총리는 또 『저는 과거를 직시하고 귀국을 포함한 아시아 근린제국과의 상호이해를 심화시켜 나가지 않으면 안되는 마음을 소중하게 여기면서 앞으로도 귀국과의 관계를 미래를 향해 일층 공고히 해나가고자 생각하며 이를 위해 더욱 노력을 아끼지 않을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 일총리 사과내용 진전/김 대통령 밝혀

    김영삼 대통령은 16일 무라야마 일본 총리의 과거사 사과발언과 관련,『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과거에 비해 많이 진전된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외거주 독립유공자 초청다과회에서 『어제 무라야마 총리가 사과발언과 관련한 친서를 보내왔다』고 밝히고 『일본총리가 과거사 사과문제와 관련해 한국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온 것도 역대 일본 총리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날 다과회에는 애국지사인 1백1세의 김경하 선생(미국),임정 국무총리를 역임하신 이동휘 선생의 손녀인 리 류드밀라씨(카자흐스탄),전명운의사의 딸 경영씨(미국),헤이그 밀사 이위종 선생의 외손녀 예피모바 류드밀라씨(러시아),헤이그밀사를 지원한 헐버트 선생의 자제 리처드 K 헐버트씨(미국)등 2백15명이 참석했다.
  • 휴정협정 서명(6·25 내막/모스크바 새 증언:30)

    ◎중국,휴전 앞두고 “마지막 진격” 주장/소선 “미군 상륙작전 감행 두렵다” 반대/해리슨 중장­남일,7월27일 역사적 조인 중국당국은 스탈린앞으로 휴전협상 진행에 관한 상세한 현황보고를 하면서 그에 덧붙여 협상대책까지 건의했다.즉 협상속도를 싸고 미국과 이승만정부 사이에 이견이 있지만 앞으로 미국이 어느 시점에 이르면 이승만에게 더 큰 압력을 행사할 것이기 때문에 휴전성사 가능성은 높다는 게 중국당국의 기본 시각이었다.53년 7월3일자 북경주재 소련대사관이 모스크바에 보고한 전문에 나타난 중국의 협상대책은 다음과 같다.(N17286) ○“미­이승만 불화 조장을” 『이같은 상황에 비추어 다음과 같은 대책을 제시하는 바임.이는 휴전문제를 놓고 이견을 보이는 미·이승만간의 불화를 더 조장하고,미국의 내외여론을 분열시키고 미국으로 하여금 이승만정권에 더 많은 압력을 행사토록 하기 위함임. (1)7월5일자로 클라크앞으로 김일성·팽덕회동지의 답신을 보낼 것.협상재개에 앞서 미국의 입장을 비난하고 앞으로 미국의 유화정책이다시 바뀔 가능성에 대해 경고할 것. (2)휴전협정 서명 전 작전을 전개해 이승만 괴뢰군에게 일격을 가할 것.이는 전선을 조금이라도 더 남쪽으로 내려보내기 위함임.그뒤 휴전협상이 재개되면 이승만정권의 잘못으로 협정체결이 지연됐다고 비난할 것.그리고 상황이 바뀌었으니 휴전개시점을 재조정하자고 요구할 것.미국도 이 요구에 응할 것임.왜냐하면 현재 미국과 이정권과의 관계가 복잡하기 때문임.반대로 상대가 양보 대신 새로운 선전차원의 술책을 펼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음.그럴 경우에는 우리가 적당한 시기를 택해 양보하고 현전선에서 휴전하는 데 동의할 것. ○“최후가지 투쟁은 엄포” …중략…휴전협정체결은 7월15일에 해야한다고 생각함.중국대표단은 다음과 같은 입장을 추가로 밝힐 것.즉,중국정부는 최근 이승만정권의 잦은 도발이 한편으로는 미국으로부터 원조를 한푼이라도 더 받아내고 또다른 한편으로는 중국의용군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나온 것으로 생각함.이런 이유로 이승만은 미국과 상호원조조약 체결을 고집하고 있음.이는 만약 미국이 이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전병력이 최후까지 싸우겠다고 말하나 우리는 이것이 엄포라고 생각함. 중국정부는 미국의 이승만정권에 대한 지원이 매우 제한적일 것으로 생각함.미국은 이에게 대규모 지원을 할 경우 그가 심각한 모험을 전개해 미국을 끌어들이려할 것을 우려함.미국은 극동지역에서 더이상 대규모 모험에 끌려들려 하지 않고있음. 앞으로 개최될 정치협상 대책에서도 미·이승만간 이견이 있음.이는 이 정치협상 대신 북한에 대한 대규모 공세를 전개,중·조 국경인 압록강까지 진격하려고 함.위 상황을 종합할 때 중국정부는 휴전협정 조인이 평화에 유익하다고 판단함. 당시 중국외무차관은 이 말을 듣고 농담조로 「중국과 미국이 이승만에 반대해 공동전선을 펴고있다」고 말했음.그는 또한 중국정부는 이가 소규모 발악적인 도발을 할 가능성이 있지만 심각한 도발을 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음』 한편 소련측은 휴전협정 서명을 눈앞에 두고 공산군측 서명당사자의 인선에까지 일일이 간섭했다.유엔군 대표단의 김일성직접서명 요구에 절대 응하지 말 것을 누누히 강조했다.남한정부가 김일성의 신변에 위해를 가할 우려가 있다는 점을 그 이유로 내세웠다. 53년 7월24일 소련공산당중앙위 간부회의는 김일성의 서명식 참석여부에 대한 결의안을 채택해 직접 김일성 앞으로 내려보냈다.(소련공산당중앙위 간부회의 결의안 NP19/9) 『김일성을 위시한 조선동지들에게 다음과 같이 통보함.소련공산당 중앙위는 판문점 휴전협정서명에 북조선대표로 부수상 1명이,중국대표로는 팽덕회동지가 참석할 것을 권고함.누가 참석할지 여부의 결정은 전적으로 중·조 정부에 속하는 사항이기 때문에 절대 미국의 압력에 이끌려가서는 안됨. 현상황에서 김일성의 판문점 여행은 위험부담이 큼.이승만 진영이 김일성에게 어떤 종류의 위해를 가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임.미국의 김일성 참석요구를 거절하는 것이 휴전협정일정에 지장을 초래하지는 않을 것임.팽덕회장군이 참석하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을 것임.만약 미국이 김의 불참을 이유로 협정서명을 거부한다면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을 것임』 ○김일성 위해 우려 이유 북한측 대표는 이렇게 해서 부수상 남일로 결정됐다.53년 7월27일 남일은 유엔군 대표인 해리슨중장과 판문점에서 휴전협정에 서명했다.휴전협정이 정식조인되기 불과 하루 전인 53년 7월26일 북경주재 소련대사는 모스크바로 다음과 같이 휴전협상 관련 보고서를 보냈다.모스크바에서 7월3일자로 보낸 중국정부의 한국전 상황평가에 대한 답신이었다.(N8019) 『본인은 모택동에게 소련정부가 한국전 상황평가에 대한 중국정부의 분석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말했음.이제 한국에서 적대행위를 끝낼 시기가 됐다는데 상호동의한다고 말했음.적도 군사적 이유로 전쟁을 계속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고 말했음.모택동은 이와 관련,깊은 사의를 소련정부에 보낸다고 말했음.그러면서 모는 적이 군사적 이유뿐 아니라 정치적·경제적 이유에서도 휴전협정체결에 동의했다고 말했음. 군사적으로 볼때 적은 지난해동안 지상에서 진격은 물론 전선사수조차 여의치 않았다고 모는 말했음.반면 중국군은 현위치 사수는 물론 진격작전 수행에도 자신을 가졌다고 했음.정치적인 면에서는 적들이 제국주의 진영내 내분을 겪고있고 전세계 여론이 전쟁에 반대하고있기 때문에 휴전에 동의한 것으로 모택동은 설명했음.경제적으로도 제국주의진영이 전쟁으로 어려움을 겪고있다고 모는 말했음.즉 전쟁초기 2년간 미국의 독점 군수업체들이 엄청난 수입을 올렸지만 이후 휴전협상이 시작되고 반전여론이 강화되면서 이들의 수익이 격감했다는 것임』 이 보고서 내용중 흥미있는 것은 모택동이 순수 군사적인 면에서 볼때 적이 수세에 있기 때문에 군사작전을 1년 정도 더 계속해 한강주변에 보다 많은 전략거점을 확보하는게 협상에 유리하다고 주장한 점이다.반면 이 보고서를 보낸 중국 주재 소련대사는 남쪽으로의 추가진격이 매우 위험하다는 견해를 덧붙였다.추가 진격을 감행할 경우 동서 해안에까지 전력을 배치해야하는데,그러면 중·조군 후방에 미군이 상륙작전을 감행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였다. ○전후복구 소도움 요청 이렇게 해서 7월27일 판문점에서 휴전협정이 정식조인됐다.휴전이 성사되자 김일성은 즉각 전후복구작업에 들어갔다.김일성은 전후복구 역시 소련의 지원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협정조인 며칠 뒤인 8월5일 김일성은 소련지도부 앞으로 다음과 같은 친서전문을 보냈다.(N20609)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전후 복구·건설계획과 관련 소련 전문가 여단을 초빙키로 결정했음.이들이 조선의 기간 산업체들의 복구,건설에 관한 계획을 수립해주기를 원함』 이틀 뒤인 8월7일 평양주재 소련대사는 다음과 같이 본부에 보고했다.(N20779) 『우리는 소련 전문가들에게 조선의 복구계획을 짜면서 가장 긴급한 문제부터 시작하되 가능한한 조선국내의 자원을 활용토록 지시했음.…중략…그러나 이미 입안된 계획을 보니 조선내부 자원활용에 큰 역점이 주어져있지 않고 대신 소련을 비롯한 여타 인민민주주의국가들로부터의 원조를 극대화하는 데 주관심을 두고있음. ○김일성 다시 모스크바로 또한 경제복구계획의 주안점이 경공업·농업부문 대신 중공업 분야에 주어져있음.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북조선 정부는 정부부처에서 우리 전문가들을 활용치 않고 대신 산업체에다 이들의 파견수자를 늘리고있음.이런 제문제를 협의키 위해 김일성을 모스크바로 초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함』 이같은 소련의 요청에 따라 김일성은 53년 9월초 전후복구문제를 협의키 위해 모스크바를 다시 방문했다. ◎연재를 마치면서/관련문서 계속 발굴… 속편 준비 이번 30회를 끝으로 「모스크바 새증언」 연재를 일단 마무리합니다.이번 시리즈는 주로 6·25를 둘러싼 스탈린·모택동·김일성 3인의 행적,협조관계등에 초점을 맞추어 기술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하지만 이밖에도 전쟁기간중 중·소·북한 정권 내부의 주요정책 결정과정등 밝혀져야할 「연결고리」는 너무나 많이 남아 있는게 사실입니다.앞으로 관련문서를 더 찾아내 추가집필의 기회가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그렇게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그동안 애독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 미 온건­중 강경/“관계풀기” 대조적

    ◎양국 외교마찰 대응의 배경/미­「화해」위해 노코멘트 일관/중­내부 갈등표출… 계속 강수 중국 군당국이 남동부 해안 군사제한 시설에 대한 스파이 활동 혐의로 홍콩주재 미총영사관 소속 공군 무관 2명을 4일 동안 억류했다 추방한 사건은 크리스토퍼 미국무장관과 전기침 중국 외교부장의 외무장관 회담으로 정상화의 실마리를 찾을 듯하던 양국관계를 다시 뒤틀리게 하고 있다. 지난 6월 이등휘 대만총통에 대한 미국방문 허용과 중국의 미국시민 해리 우 억류로 빚어진 양국간의 외교 마찰을 해소하기 위해 미국은 그동안 기회있을 때마다 「하나의 중국」정책을 강조해왔으며 이번 외무장관회담에서도 클린턴 대통령이 친서를 통해 미국의 정책 불변을 강조했다. 한편 중국은 그동안 거부해왔던 양국간 현안문제 해결을 위한 차관급회의를 갖기로 하고 올가을 양국 정상회담과 그때까지의 해리 우 석방 등에 의견접근을 이루는 등 우호적인 분위기를 이뤘다. 이같은 분위기 유지를 위해 양국 외무장관들은 회담 개시 이전에 미국 공군장교 억류 소식을접하고서도 90분 동안의 회담중에 전혀 언급하지 않고 넘어갔다.양국의 관계정상화 노력에 행여나 걸림돌이 될까 하는 우려에서였다. 따라서 이같은 시점에 중국 군당국이 미군 장교 억류라는 새 쟁점을 만들어낸 것은 외교부의 미국과의 관계 개선 노력에 대한 반발에서 나온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이는 공산당에 대한 군부의 전통적인 복종 관계에 모종의 변화가 오고 있는 신호로 중국지도부 내 갈등의 표출이라는 것이다. 특히 외교관에 대한 간첩 혐의의 경우 즉시 추방이라는 관례를 깨고 4일씩이나 억류하고 있었으며 그 사실도 사흘 뒤에 발표하는 등 비상식적 조치는 해리 우 구금에 이어 미국으로선 용납하기 어려운 사건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에 대한 미국측의 반응은 예상 외로 조용하다.진상이 파악되지 않았고 아직 당사자들과의 면담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날 있은 백악관이나 국무부 브리핑은 노코멘트로 일관했다. 데이비드 존슨 국무부 대변인은 『미국은 이번 일이 미·중 관계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않기를 희망한다』고 말해 이 사건과 관련,미국의 보복적 대응 조치가 뒤따를 가능성이 별로 없음을 시사했으며 이들이 간첩 행위를 했다는 중국측 주장에 대해 논평을 거부했다. 더욱이 이날 미국은 내달 북경에서 개최될 유엔여성대회에 올브라이트 주유엔대사를 단장으로 하는 대표단을 파견할 것임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그러나 이같은 미행정부의 대중국 「인내 외교」는 의회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로부터 반발을 부르고 있어 79년 국교정상화 이후 최악의 관계라는 현재의 미·중관계의 원만한 해결은 클린턴행정부의 차기 대선에서의 승부수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최대의 관건이 되고 있다.
  • 미­중,2차례 고위급회담 합의/양국 외무 회담

    ◎클린턴, 강택민에 「관계회복」 친서 【반다르 세리 베가완(브루나이) 로이터 AFP 연합특약】 워런 크리스토퍼 미국무장관과 전기침 중국 외교부장은 1일 브루나이 수도 반다르 세리 베가완에서 가진 회담에서 가능하면 정상회담을 비롯 2차례의 고위급 회담을 계속 갖기로 합의하는등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회담을 가졌다고 밝혔다.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참석중 이날 1시간30분간의 회담을 가진후 양국 외무장관은 『우호적인 분위기의 매우 건설적이고 긍정적인 회담이었다』고 밝혀 최근 계속 악화돼온 양국관계 회복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미국관리들은 전외교부장이 피터 타노프 국무차관보와 중국의 카운터 파트가 가능하면 빠른 시일내에 접촉을 재개하고 양국장관도 오는 9월 뉴욕의 유엔총회때 다시 만난다는데 동의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등휘 대만총통의 미국 재방문을 허용하지말라는 중국측의 요구에 대해 크리스토퍼 장관은 『중국은 이총통이 다시 미국을 방문할수 있음을 인정해야한다』고 밝혔다고 미국관리들이 말했다. 이에앞서 전부장은 『우리는 물론 (최근 「하나의중국」 원칙을 확인하는 미국의) 성명에 상당한 중요성을 부여하지만 말이란 것은 행동이 뒤따를 때만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다르 세리 베가완(브루나이) 로이터 연합】 빌 클린턴 미대통령은 강택민 중국국가주석에 보내는 서한에서 미국의 「하나의 중국」정책이 불변임을 중국측에 직접 확약할 것이라고 미국의 한 고위관리가 1일 말했다.
  • 평양/대동남아 외교공세 강화

    ◎베트남·라오스 등 잇달아 방문… 유력인사 초청/당면 경제난 타개·비동맹권 지지확보 등 노려 북한이 올 상반기중 동남아 국가들에 대한 방문 및 초청외교에 열을 올리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 5월 한달 동안에만도 라오스의 사만위나켄 민족회의 의장과 캄보디아 인민당 대표단등 동남아 3개국 5개 단체가 방북한 시실이 이를 말해준다.북한 철도부부부장 박용석의 베트남 방문등 북한 요인들의 동남아 순방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이해된다. 북한은 이외에도 올 상반기중 태국·필리핀·호주·방글라데시·말레이시아·대만등 여타 아시아·태평양 국가들과의 적극적인 협력확대를 하고 있다.이를테면 북측이 지난 2월 태국측과 총 30만t의 저급미를 외상 및 구상무역 방식으로 도입키로 잠정 합의한 사실이 단적인 사례다.또 국제담당 당비서 황장엽이 최근 네팔을 방문,수력발전등에 대한 지원을 약속한 사실도 있다. 이처럼 북한이 동남아 지역에 손을 뻗치고 있는 주된 이유는 정치적 동맹관계 강화라기보다는 당면한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한 실리를 얻는데 있다는 분석이다.그동안 북한의 대외교류는 중국·러시아·동구·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이뤄져 왔으나 중국을 제외한 러시아등 여타지역의 경제적 피폐로 한계를 느껴 왔다. 바로 이같은 상황을 감안해 북측은 올 상반기부터 쌀·고무·원유등 전략물자가 풍부한 이들 동남아 국가들 쪽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는 셈이다.더욱이 이들 아태지역 국가들은 정치적으로는 비동맹권,사회주의권,친서방권이 혼재해 있어 북한정권으로선 동구권 붕괴에 따른 외교적 손실을 보전한다는 측면도 있다. 특히 북측은 동남아 국가 중 라오스와 캄보디아에 대한 초청외교에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이는 동남아국가 중 한국과 미수교국인 양국과 우리측과의 수교를 견제하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물론 동남아 개발도상국들에 대한 북측의 실리외교 강화는 군수산업제품 수출 확대도 겨냥하고 있다.
  • 예브게니 바자노프 러 외교아카데미 부원장(지구촌 칼럼)

    ◎미­러 밀월관계 깨지고 있/러­“경제개혁 실패는 미국탓”/미­국제문제 독자행보는 배신” 미국과 러시아 두나라간의 밀월관계는 확실히 끝났다.그리고 갖가지 크고 작은 문제들이 이 두 나라의 밀월을 해치고 있다.관계를 해치는 요인들은 무엇인가.그리고 앞으로 이 두나라 관계는 어떻게 발전될 것인가. 이 문제를 따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들의 국내정치적 요인들을 체크해봐야한다.러시아에서는 소위 「쇼크요법」식 급진경제개혁이 실패함에 따라 크렘린내 권력핵심에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보수주의,전통주의 정치인들이 진출해있다.물론 이들은 과격 반대파 정치세력에 의해 점차 많은 압력을 받고 있다.극단주의자들은 소연방의 해체,강대국 지위의 상실,그리고 친서방 일변도의 정책에 대해 크렘린내 민주세력을 거세게 비난하고 있다.이들은 지난 10년간 러시아가 겪은 재난들이 모두 미국에 의해 계획되고 저질러진 것으로 믿는다.사회,경제,민족문제등에 시달리는 국민들은 이러한 선동에 쉽게 휘말린다.이런 분위기에 과감히 제동을 거는 정치인도 없고 대외정책도 점차 보수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미국 역시 러시아에 대해 점차 덜 우호적으로 돼간다.이는 부분적으로는 러시아국내 문제 탓이지만 크게는 미국내 사정 탓이다.차기 대통령 선거를 앞둔 민주·공화 두 세력간 경쟁관계가 첨예화된데서 파생되는 현상이다. 두나라 관계를 해치는 또다른 요인으로는 수년에 걸친 협력관계 모색이 별 결과를 낳지 못했다는 실망을 들 수 있다.처음 러시아 민주세력들은 미국을 러시아의 개혁을 도와줄 이념,정치적 동맹관계로 보았다.미국 지도자들 역시 러시아의 개혁을 지지했다.그러나 최근 러시아의 대내외 정책 기조가 변하면서 미국의 관심은 급격히 퇴조했다.그러자 러시아 정치인들은 이를 미국의 배신으로 받아들였다.양측 모두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원조문제만 해도 그렇다.1992년에 미국은 러시아를 주 원조대상국으로 간주했다.새 러시아에 필요한 물품,재정적 지원을 베풀 태세가 돼있는 듯했다.하지만 지금 러시아는 미국의 차관,원조가 불충분하다고 욕한다.투자 역시 미미하다.필요한 투자 대신 미국은 쓸데없고 유해한 물품(예를들면 껌·담배등)들만 러시아에 실어나른다.법적 제약 때문에 기술이전도 되지 않고 미국은 러시아가 제3국에 기술을 팔아 돈을 버는 길마저 막고 나선다.러시아와 이란간 핵기술 판매협정 건이 바로 그런 예이다. 러시아가 미국에 대해 쏟아내는 이런 불평불만이나 미국이 러시아에 대해 갖는 불만들 모두 합당한 논리를 갖지 못한다.러시아에 주는 차관·물품은 관료,범죄조직의 주머니로 사라진다.러시아의 투자환경은 너무 열악하다.그리고 러시아 수입업자들 스스로가 그런 무익한 물품들만 골라서 사간다.그리고 극단적인 나라들에 대한 러시아의 기술판매는 세계의 평화와 안보에 위험을 초래한다. 러시아 역시 미국 모델을 따라 보겠다고 한 개혁이 실패로 끝난 데 대해 실망감을 느낀다.이들은 미국인 경제학자들이 자기들에게 잘못된 처방을 해주었다고 욕한다.물론 미국학자들은 이에 대해 러시아가 새로운 개발모델을 소화할 능력을 못 갖추었기 때문이라고 반박한다. 양자 관계를 해치는 또하나의요인은 국제무대에서 양국의 이해관계가 서로 충돌한다는 점이다.시간이 갈수록 러시아는 안보·경제·민족문제등 여러 면에서 옛소련방 공화국들이 반드시 다시 뭉쳐야한다고 믿는다.러시아는 소위 「가까운 외국」으로 일컫는 옛연방 공화국들도 이에 동감한다고 말한다.하지만 미국은 이를 러시아제국주의의 재등장 조짐으로 해석한다.그래서 미국은 이들 옛소련 공화국들에게 소련의 영향권을 벗어난 독자적인 정책을 펴고 다른 외국과의 관계강화를 추구하라고 부추긴다. 동구에서도 양국간 이해는 충돌한다.러시아가 보기에 과거 자기의 동맹국들이 나토에 가입한다면 이는 유럽대륙에서 자기들만 고립돼 러시아의 평화,안보를 위협할 것이라고 말한다.하지만 미·러 관계가 악화되고 러시아의 장래가 불안해질수록 미국은 동유럽국들의 희망대로 이곳에 강력한 방어선을 구축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또 한가지.지금 러시아에서는 미국이 자기들을 2등 파트너로 대한다는 불만이 높아간다.주요 국제문제들을 독단적으로 처리하면서도 러시아의 대내외 문제에사사건건 간섭한다.그리고 러시아국민들의 미국여행에 온갖 제약을 다 가하면서 저질 팝 문화로 러시아를 오염시키고 또한 러시아의 언론들을 마음대로 주무른다.강대국 러시아의 옛영광을 되찾자고 주장하는 정치인들은 미국의 이러한 횡포를 도저히 참지 못한다.이제 더이상 미국의 입장을 무조건 추종하지 말자고 이들은 주장한다.그래서 이들은 최근 들어 모든 주요 국제분쟁에 개입해 독자적 입장을 제시하려고 한다. 미국은 러시아의 이런 태도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미국은 러시아를 손 아래 파트너로 취급하는데 익숙해 있다.우선 크렘린은 국내정적과의 투쟁에서 번번히 미국의 지원에 신세를 졌다.그리고 미국은 경제원조를 제공했고 러시아는 사회,교육,행정,환경등 거의 모든 문제에서 미국의 도움과 자문을 구하고 있기 때문이다.이런 상황에서 러시아가 국제무대에서 독자 목소리를 내려고 하는 것은 미국이 볼 때는 일종의 배은망덕이다. 이런 여러 문제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양국 관계가 완전 회복불능은 아니다.최악의 시나리오로 설사 러시아에극우 민족주의 독재정권이 등장하더라도 양국관계가 완전 끝장나지는 않을 것이다.우선 러시아가 군사적,지정학적으로 그런 대결을 감당할 힘이 없다.그리고 아무리 독재정권이라도 군사력,나아가 국민생활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경제협력이 필수적이다.그리고 무엇보다 양국관계를 떼놓을 이념대결이 없다.러시아가 현대사회를 건설하는데 미국·서유럽 모델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그리고 어떤 독재자가 나와 세계강대국이 되겠다고 호언해봤자 러시아국민들이 이를 지지할 리가 없다.러시아국민들은 이미 그런 슬로건에 식상해있고 그들의 관심사는 오직 보다 나은 삶뿐이다.미국 역시 오랜 냉전대결로 힘이 소진돼 새로운 냉전대결을 벌일 입장이 아니다.따라서 미·러 관계는 우여곡절을 겪지만 완전히 판이 깨지지는 않는 미묘한 관계가 계속될 것이다.
  • 합의의 성실이행이 관건이다(사설)

    미·북한간 경수로협상이 북한의 한국형및 한국주도역할의 사실상 수용으로 타결된 이상 다시 한번 우리의 관심은 제네바 합의때와 마찬가지로 합의의 성실한 이행여부로 쏠리게 된다. 우리가 그동안 한국형과 한국주도역할의 합의문 명기를 강력하게 요구한 것도 실은 북한이 제네바합의의 경우처럼 이행과정에서 딴소리를 하지않을까 우려한 때문이었다.이번 회담 자체도,명확하지 못했던 제네바합의에 대한 북한의 트집때문에 해야 했던 불필요한 회담이었다.따지고 보면 이번 합의는 제네바합의에 대한 재확인에 불과한 것이다. 이번 합의문에서는 한반도 에너지개발기구(KEDO)가 북한에 제공할 경수로 노형을 결정키로 하고있고 KEDO는 설립협정문에서 한국형을 보장하고있으므로 「한국형·한국주도」가 구두가 아닌 문서로 사실상 보장된 셈이다.뿐만아니라 미국의 클린턴대통령도 김영삼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서 주계약자가 한국회사가 될것임을 확인하고 있다. 따라서 이제 문제는 북한이 얼마나 성실하게 건설적으로 이 합의를 이행할 것인가 하는 것뿐이다.그런 의미에서 이번 회담에서처럼 한·미·일이 철저하고 효과적인 공조체제를 유지하면서 북한으로 하여금 합의내용을 충실히 이행하도록 감시·유도해가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다.싫어도 이행하지 않으면 안될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일이 긴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철저한 상호주의를 관철할 필요가 있다.북한이 내키지 않았을 이번합의에 응하면서 가장 기대하는 것은 10만t의 중유공급,그리고 미·일과의 관계개선이라고 보아야할 것이다.특히 그렇게 함으로써 심각한 식량난의 완화에도 도움이 될 분위기를 조성하자는 계산도 했을것이 틀림없다.그렇다면 우리는 상호주의로 그러한 북의 기대를 합의 이행에 철저히 활용할 필요가 있다. 아무튼 이제부터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이번 합의도 결국은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한 것이다.더 어렵고 복잡한 시작인 것이다.그리고 그 성패의 많은 부분은 북한은 물론 우리가 이제부터 하기에 달려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 중·러,경수로 합의 긍정평가/남북대화 재개전망 등에 촉각

    【내외】 중국과 러시아는 13일 미·북 콸라룸푸르 경수로 협상이 완전 타결된 사실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대북 경수로 제공에 있어서의 한국의 중심적 역할과 남북대화 재개 전망 등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나타냈다. 중국은 이날 저녁 관영 북경방송을 통해 『미국과 북한 양측이 핵문제와 관련한 총체적 합의를 달성했다』며 회담 타결 소식을 즉각 보도,대체로 환영의 뜻을 표하고 한국과 미국등 관련국들이 『반드시 한국이 북한에 경수로를 제공해야 하며 동시에 한국이 경수로 제공 문제에서 중심역할을 발휘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 방송은 특히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김영삼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 한국의 중심적 역할을 보장한데 대해 각별한 관심을 나타내고 『미국이 남북한 쌍방의 대화회복을 위해 노력할 것을 밝혔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국영 러시아방송도 이날 저녁 『어렵게 진행돼 오던 미·북 회담에서 마침내 긍정적인 결과를 보였다』고 논평하고 공동 보도문 내용을 상세하게 소개했다. 러시아방송은 특히 그동안 기회있을 때마다 강조해 오던 『북한의 러시아형 경수로 선호』주장에 대해 언급없이 『평양당국이 마침내 한국형 경수로를 받아들일 것을 승인했다』고 말했다.
  • 클린턴 “한국형경수로 보장”/김 대통령에 친서

    ◎“모든분야 한국이 중심역”/“주계약자 한전 선정”/KEDO 발표/북­미 합의문/울진 3·4호기 사실상 결정/정부 “2대원칙 관철 돼 북미합의 수용” 한·미·일 3국은 콸라룸푸르회담에서 북한에 제공될 경수로 노형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선정키로 합의된데 따라 13일 하오 종합청사 외무부회의실에서 KEDO 집행이사회를 열어 KEDO 설립협정에 명기된 대로 한국표준형 경수로를 북한에 제공키로 결정했다.또한 참조발전소 모델로는 울진3·4호기를 선정했다. 우리측 최동진 경수로기획단장,미국의 갈루치 핵대사,일본의 엔도 데쓰야 경수로대사등이 참석한 KEDO 집행이사회는 또 결의를 통해 한전을 대북 경수로 사업의 설계·제작·시공 및 사업관리를 담당할 주계약자로 선정하기 위한 협의를 시작토록 KEDO 사무국에 지시했다. 집행이사회는 또 북한내 부지조사와 북한과의 경수로 공급협정 협상에 필요한 제반조치를 취하기로 결의했다.빠르면 이달안에 이러한 조치들이 완료될 것으로 예상된다. 클린턴 미국대통령도 이날 북한경수로 지원사업과관련,김영삼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 『북한에 제공될 경수로는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설립협정에 명기된 한국표준형 원자력발전소 모델이 될 것이며 참조발전소는 울진 3·4호기가 될 것』이라고 확인했다고 윤여전청와대대변인이 발표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친서에서 『주계약자는 한국회사가 될 것이며 이 회사는 경수로 설계·제작·시공·사업관리를 포함한 모든 분야에서 전반적인 책임을 지고 경수로 사업을 수행하게 될 것』이라고 확인하고 『미국회사는 주계약자인 한국기업의 하청을 맡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클린턴 대통령은 이어 『핵문제의 완전한 해결과 제네바합의의 충실한 이행을 위해서는 남북대화의 재개가 필수불가결하기 때문에 이를 위해 최대한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한편 정부는 이날 외무부 성명을 통해 『북한과 미국이 제네바 합의에 따른 대북 경수로 지원 사업을 이행하기 위한 중요한 원칙에 합의했다』고 확인하고 『이 합의가 향후 경수로사업 진행을 위한 기본토대를 마련한 것으로 보고 이를 의미있는 진전으로 평가하며 지지한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공노명 외무부장관은 이날 『한국형 제공 및 한국의 중심적 역할이라는 정부의 대북 경수로 지원사업과 관련한 2대원칙이 사실상 관철됐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 「경수로 타결」을 보고/전인영 서울대교수·국제정치학(기고)

    ◎“민족적 큰 이익 확보했다” 미국과 북한은 6월13일 콸라룸푸르에서 그동안 난항을 거듭해온 「경수로협상」에 일단 종지부를 찍고 절충적 합의에 도달했다.양국은 지난 4월 18∼20일 사이 베를린에서 개최된 제3차 경수로전문가회담이 결렬되자 5월20일부터 장소를 콸라룸푸르로 옮겨 김계관과 허바드간 북·미준고위급회담을 열어 합의점을 찾으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비록 한국측의 불만과 비판의 여지는 아직도 남아 있지만 콸라룸푸르 경수로협상타결은 북·미관계와 남북한관계 및 일·북한관계의 변화를 촉진시키는 긍정적 계기를 마련했다. 이번 대북경수로지원문제가 타결됨으로써 미국과 북한은 제네바기본합의문 이행의지를 재확인했으며 한국은 KEDO(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가 선정하는 경수로모델(울진 3·4호기)을 북한이 수락한다는 간접적인 표현방식으로 경수로제공의 중심역할을 인정받았다.클린턴 미국대통령 또한 김영삼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 KEDO가 선정하는 노형이 「한국형」이 될 것임을 확인했다. 콸라룸푸르 대북경수로지원문제 타결은 미국과 남북한 3국의 상충되는 실리와 명분 및 체면을 북·미 양자회담에서 감안하고 절충하여 산출된 것으로서 무엇보다 세나라 모두에게 공통이익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미국과 남북한 3국의 득실을 비교적으로 평가할 때 단기적으로 북한의 득이 가장 크다고 말할 수 있다.비록 북한이 원자로 모의작동장치와 송배전설비 등 10억달러상당의 추가부담 요구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불확실한 「핵카드」를 사용해 1천㎿ 용량의 한국표준형 원자로 2기와 대체에너지 중유를 확보했다는 것은 여하튼 큰 외교적 성과가 아닐 수 없다.체제 및 정권유지를 위해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며,심각한 식량 및 물자난 등의 경제적 난제를 해결해야 하고,국제적 고립상태를 하루빨리 청산해야 할 북한으로서는 섣불리 북·미 제네바합의문을 파기할 수 없는 상태에 처해 있었다. 미국은 북한의 핵과거를 덮어둔 채 현수준에서 핵개발을 동결함으로써 세계적으로 핵확산금지조약체제를 유지하고 한반도긴장완화 및 동북아안정을 도모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성과에 만족할 수 있게 되었다.더구나 클린턴 행정부는 경수로건설비용의 대부분을 한국과 일본에 떠맡길 수 있게 되었으며 북한의 추가부담요구를 기술적으로 회피하는 데 성공했다. 한국은 북·미회담에서 소외되고만 현실을 우려하고 그로 인해 심한 좌절감을 느껴왔다.한국민은 지난번 제네바회담에서 나타난 기본합의문이 미국과 북한의 입장 및 이익을 서둘러 절충한 결과였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고 한국의 이익이 계속 희생될 수 있다는 현실에 분노와 두려움을 느껴야 했다.따라서 한국은 콸라룸푸르회담에 대해서 민감할 수밖에 없었고 경수로건설비용의 대부분을 분담하는 대신 우리가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기를 바랐다. 합의문에 한국형이라는 확고한 표현을 삽입하지는 못했으나 한국은 실질적인 주계약자가 되었다는 사실에서 위안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한국은 단기적 이익을 양보하였지만 서서히 나타날 장기적이고 민족적 차원의 보다 크고 중요한 이익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번 타결을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경수로타결은 경색되어 있는 남북한관계를 풀어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며 인적·물적 교류의 불가피한 증대는 분단의 고통을 줄이고 북한의 변화를 촉진시키는 동시에 통일기반을 조성하는 데 기여하게 될 것으로 믿는다. 콸라룸푸르에서의 북·미간 경수로협상타결은 우리에게 탈냉전시대의 엄청난 변화를 실감시켜주었으며 북한의 변화,특히 실용주의 대외노선의 추구를 확인시켜주었고 북한의 정책결정과정과 대외협상행태가 불합리하지만은 않다는 특징들을 보여주었다. 특히 콸라룸푸르 타결이 김일성 사망 1주기가 다가오는 시점과 대북 쌀지원문제가 한창 논의되는 시점에서 이뤄졌다는 사실은 조심스럽게나마 멀지 않아 남북한 경제교류및 협력이 활성화될 수 있다는 예측도 가능케 한다.
  • 한·미·일 시각/남북한 관계 진전의 단초 열리다(경수로 타결)

    ◎서울/미흡 하지만 대체로 받아들일만 『항복문서가 아니라 외교협상의 산물임을 이해해 달라』.콸라룸푸르 북­미 준고위급회담에서 타결된 합의문안에 대한 13일 공노명 외무장관의 솔직한 토로였다. 이같은 언급 속에는 타결 결과가 우리 입장에서는 다소 미흡하지만 대체로 수용할 만한 수준이라는 정부의 시각이 함축되어 있다. 정부로선 당초부터 대북 경수로 공급시 계약협상과 설계·건설은 물론 사후관리등 전과정에서 주도적 역할확보가 최상의 목표였다.이는 북한핵문제 해결 뿐만 아니라 민족공동발전계획이라는 명분에 따라 우리측이 경수로지원 비용의 대부분을 부담하는 만큼 당연한 원칙이었다. 우리측이 이번 콸라룸푸르 회담에 나선 미국측에 한국형과 한국의 중심적 역할을 합의문에 명기토록 강력히 주문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물론 이번 합의문에서는 한국표준형원자력발전소(KSNP)라는 용어나 울진 3,4호기를 참조발전소로 한다는 등 직접적 표현으로 이를 문서화하지는 못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제네바 북­미 합의에 대한 북한의 계속적 이행의지를 확인했다는데서 애써 상당한 의의를 찾고 있다. 특히 북한이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권능과 역할을 인정함으로써 한국형 경수로와 한국의 중심적 역할을 「사실상」 인정했고,이를 보장하는 장치를 확보했다고 평가하고 있다.이를테면 비록 한국형을 합의문에 명기하지는 못했지만 「2개의 냉각제 유로를 가진 가압 경수로 2기」,「현재 건설중에 있는 것」등의 기술적 표현으로 이를 보완했다는 것이다.이 두가지 조건을 충족시키는 원자로는 한국형 밖에 없다는 얘기다. 더욱이 한국이 집행이사국으로 참여하는 KEDO가 경수로 노형과 주계약자를 선정토록 합의한 사실이야말로 한국형을 보장하는 가장 확실한 담보라는게 정부측의 대체적 시각이다.KEDO 설립협정은 1천Mw급 한국표준형원자로 2기를 북한에 제공하는 것을 설립목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탓이다.정부는 이날 하오 한·미·일 3국이 참여하는 KEDO 집행이사회를 열어 이같은 설립규약을 재확인하는 등 발빠른 대응을 선보였다. 그러나 정부내 일부 전문가들이 이번 합의에대해 내심 상당한 아쉬움을 표시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예컨대 한국형을 명백히 못박지 않은데다 경수로 공급시 KEDO의 역할과 함께 미국의 주접촉선 역할을 인정하는 이중적 합의를 함으로써 북측이 한국형과 한국의 역할을 배제하려는 기도를 계속할 여지가 남아있다는 지적이다. ◎워싱턴/모든 당사자 득준 국무부의 개가 경수로공급에 관한 미국과 북한간의 콸라룸푸르 합의는 한국의 입장을 최대한 수용하면서 북한의 체면도 손상시키지 않는 선에서 일단락지었다는 점에서 미국내에서는 일단 이 회담을 주도해온 국무부의 개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동안 경수로의 한국형 명기와 한국업체의 주도적 건설참여를 줄기차게 주장해온 한국에 대해서는 클린턴 대통령이 김영삼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 한국 주장의 수용을 확약하는 한편 북한에 대해서는 기설립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역할을 인정토록 함으로써 합의문에 「한국형」이라는 표기는 없지만 실제로는 한국형을 채택토록하는 묘수를 찾아낸 것이다. 이번 합의로 북한이 KEDO가 선정하는 경수로모델를 수용하고 KEDO가 선정하는 주계약자와 공급계약을 맺게됨으로써 앞으로 KEDO가 경수로문제를 주도적으로 풀어가게 됐다.또한 북한의 경수로 건설이 국가대 국가의 국제안보적 차원보다는 민간차원 혹은 기술적 차원으로 포커스가 전환되는 결과도 가져올수 있게 됐다. 또한 클린턴 대통령도 친서에서 앞으로 한반도 핵문제의 완전해결을 위해서는 남북대화의 재개가 필수불가결이라고 밝힌바와 같이 앞으로 남북대화의 필요성이 더욱 강력하게 대두될 것으로 분석된다. 당초 1주일 예정에서 3주를 끌어온 북·미간의 콸라룸푸르 접촉은 최종합의에 이를때까지 몇차례의 결렬 고비를 넘기며 밀고 당기기를 계속해온 끝에 극적으로 이뤄졌다.그러나 북한과의 협상이 비상식적이고 상궤를 벗어나는 경우를 자주 겪어온 미국무부 관리들은 이번 합의가 KEDO와 북한 대외경제위원회간에 올해안에 체결키로한 경수로공급협정으로 순탄하게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반신반의 하고 있는 형편이다. 어쨌든 이번 합의는 그동안 미·북한관계의 진전을 가로막고 있던 가장 큰 장애가 제거된 것으로 앞으로 미·북한간의 관계개선 또한 상당한 진전을 보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낳고 있다. 우선 대북한 중유제공문제는 앞으로 미기술진이 방북,중유전용방지를 위한 장치에 합의할 경우 예정대로 추가공급분 5만t의 제공이 이행될 예정이다.또한 폐연료봉 안전처리문제 역시 미전문가팀의 6월중 방북합의로 빠른 시일내 장기안전보관방법이 강구될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평양간 연락사무소 개설문제와 미국의 북한에 대한 추가적인 경제규제완화 조치등도 KEDO와 북한간의 경수로공급협정 추이와 남북대화재개 여부등에 따라 큰 진전을 가져올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도쿄/최종 계약까진 먼 산… 더 지켜보자 일본정부는 북한과 미국이 경수로지원문제에 대해 합의에 이른데 대해 일단 환영했다. 이번 합의로 일본정부의 대북한 접근에 속도가 붙을 것은 분명하다.일본의 대북한 접근에 장애가 돼왔던 커다란 암초가 하나 제거됐기 때문이다. 일본정부는 지난주 북한과 미국의 협상진전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시사한 바 있다.또 회담이 막바지에 이르러 「한국형」의 명시 여부로 한국정부가 미국과 긴급협의를 가질때 일본정부는 타결여부와 관련,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한국정부라는 점을 충분히 인정하면서도 결국 회담이 타결될 것으로 보고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체제정비를 요청하는 「한수 먼저 두는」대응을 보여왔다.핵문제가 KEDO로 넘어오는 만큼 경수로 공급의 범위,공급사업비의 변제방법등을 빨리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일본정부는 12일 한국방문을 마친 갈루치대사를 맞아 이같은 입장을 전달했다. 일본정부는 대북한접촉에서도 발빠른 대응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일본은 지난 4월을 전후해 경수로지원문제가 난국을 맞이하고 있을 때도 북한에 여당대표단을 보내 국교정상화 교섭재개에 합의한 바 있다.그 뒤 정부차원에서는 경수로협상 진척상황을 고려해 공식적인 재개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지만 물밑 접촉은 지속해 왔다.최근 비공식 접촉을 통해 북한측으로부터 「평양과 도쿄를 오가며 교섭하자」는 전향적인 제의를받아두고 있기도 하다. 일본은 또 북한이 요청한 쌀원조문제에 대해서도 분위기가 좋아졌기 때문에 보다 적극적인 입장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현재 쌀문제는 한국이 제의한 조건없는 쌀제공의사를 북한이 먼저 받아들여야 한다는 한국정부의 강력한 견제로 진전이 되지 않고 있지만 최근 연립여당과 농림수산성등의 당정협의에서는 북한에 대한 쌀제공이 인도적인 문제이므로 한국정부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제공하자는 강경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여하튼 일본은 10억달러 가량의 경수로지원금을 내놓으면서도 북한과 대화통로를 닫힌 상태로 놔둘수 없다는 점을 내세워 북한에 대한 접근속도를 가속화시킬 것으로 보인다.북한도 외교와 경제측면에서 일본접근이 실익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양자간에는 「함께 춤을 출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는 것이다. 다만 경수로지원까지는 구체적인 계약단계에 들어가서도 넘어야 할 산과 강이 많이 가로놓여 있기 때문에 일본정부는 경수로지원 추진상황을 조금은 더 지켜 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동진 단장·갈루치 대사 공동회견/“중유전용­폐연료봉 감시 등 난제”/대북관계개선 「휴전선병력」 등 해결돼야 13일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집행이사회를 마친뒤 갈루치 미핵대사는 『경수로 제공에 있어 한국의 주도적 역할에는 아무런 의문이 없다』고 강조했다.다음은 갈루치 대사와 최동진 경수로기획단장의 공동회견 일문일답. ­지금까지 경수로 노형 선정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앞으로도 장애가 많을 것으로 보인다.제네바합의 이행을 위해 극복해야 할 장벽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갈루치)미·북간 연락사무소 개설,중유 제공,중유를 다른 용도로 전용하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일,폐연료봉의 안전한 보관및 다른 나라로 반출하지 못하도록 지속적으로 감시하는 일,계약을 실질적으로 이행하는 일등 모두가 어려운 일이다.지난 7개월동안의 노력보다 더 애써야만 할것으로 본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한국의 기업인과 기술자들이 북한을 방문하게 될 것으로 보는가.또 남북간의 경제관계 전망은. ▲(최동진)때에 따라 수십에서 수백명의 기술자와 전문가가 북한을 방문하게 될 것이다.더불어 물자 왕래도 필요하게 된다.인적·물적 교류를 통해 관계를 개선하고 이런 바탕 위에서 경제협력이 점차 확대될 수 있을 것이다. ­협상 타결에 따라 미국과 북한간 연락사무소 개설이 가능해졌다.외교관계 정상화도 가능하다고 보는가. ▲(갈루치)연락사무소 개설을 위해 일련의 회담이 열렸었고 앞으로도 개최될 것이다.북한과의 관계개선은 탄도미사일과 엄청난 재래식 군사력의 휴전선 전진배치등 우려되는 여러 문제들이 해결되어야 비로소 가능하다. ◎북­미 합의문 전문 미국대표단과 북한대표단은 콸라룸푸르에서 95년5월19일부터 6월12일까지 94년10월21일의 북­미 기본합의문의 이행과 관련한 회담을 가졌다. 양측은 북­미 기본합의문 이행에 관한 정치적 약속을 재확인 했으며 특히 동합의문에 입각한 경수로 사업의 원활한 이행에 관하여 아래와 같이 결정하였다. Ⅰ,미국은 경수로 및 대체에너지 제공에 관한 94년10월20일자 미대통령의 보장서한이 계속유효함을 재확인한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는 미국 주도하에 북­미 기본합의문에 입각,북한에 제공될 경수로 사업의 재정조달 및 공급을 담당한다.합의문에 명기되어 있는 바에 따라 미국은 경수로 사업에 있어서 북한과의 주접촉선 역할을 수행한다. 이와 관련,미국 국민이 필요에 따라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KEDO 대표단 및 작업반의 대표가 된다. Ⅱ,경수로 사업은 각각 두개의 냉각재 유로를 가진 약 1천㎽(e) 발전용량의 가압 경수로 2기로 구성된다.KEDO가 선정하는 경수로 노형은 미국의 원설계와 기술로부터 개발되어 현재 생산중인 개량형으로 한다. Ⅲ,북한정부를 대표한 대외경제위원회와 KEDO가 북한에 경수로를 턴키베이스로 제공하기 위한 공급협정을 가능한 최단시일내에 체결한다.이 발표문에 기초하여 북한은 경수로 공급협정에 관한 현안을 협의하기 위하여 가능한 조속한 시일내에 KEDO와 회동한다. KEDO는 경수로 사업의 건설과 운전에 필요한 요건들을 확인하기 위해 부지조사를 실시한다.동 부지조사와 부지준비에 소요되는경비는 경수로 사업의 공급범위에 포함된다. KEDO는 경수로 사업을 수행할 주계약자를 선정한다.경수로사업의 전반적 이행에 관하여 KEDO의 감리업무를 보조할 프로그램 코디네이터의 역할을 미국기업이 담당하며 KEDO는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를 선정한다.북한기업은 경수로사업의 추진을 위해 필요에 따라 이행에 관련된 계약에 참여한다. Ⅳ,경수로 사업에 추가하여 양측은 기본합의문의 이행을 위해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하였다. 양측의 전문가들은 기본합의문에 따른 중유의 단계적 공급을 위한 일정과 제반협력조치에 합의하기 위해 6월중 가능한 조속한 시일내에 북한에서 만난다.KEDO는 그러한 합의가 이루어짐에 따라 중유의 1차분 공급을 위한 조치를 즉시 취한다. 1995년 1월20일자 사용후 연료봉의 안전한 보관에 관한 북­미간 회담기록은 신속하게 실천에 옮겨진다.이와 관련,동이행을 위해 미국 전문가들이 6월중 가능한 조속한 시일내에 북한을 방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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