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T와 정치개혁(김호준 정치평론)
○구조조정·체질개선 불가피
정치권의 구조조정과 체질개선이 불가피해졌다.아니 강요당하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야당에 의한 정권교체로 여야의 위상이 뒤바뀐데다가 ‘IMF 한파’가 몰아닥치면서 정치권이 예전만한 ‘경기’를 기대할 수 없게 된 때문이다.“돈 백만원 만들기가 이렇게 힘든지 몰랐다”는 한 유력 정치인의 토로는 요즘 정치권의 썰렁한 자금사정을 잘 말해주고 있다.
헌정사상 최초로 이룩한 정권교체의 여파도 간단치 않다.정권이란 주고 받는 것,이제는 영원한 여당도 영원한 야당도 없다는 인식이 폭넓게 확산되고 있다.공동집권에 성공한 소수파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책임있는 여당으로 변신해야 하고,야당으로 전락한 다수파 한나라당은 조직과 자금에서 엄청난 감량을 요구받고 있다.정권교체가 여야의 위상뿐 아니라 체질까지도 변하게 만들었다면 IMF 한파는 ‘저비용 정치’의 구현을 앞당기도록 정치권을 압박하고 있다고 하겠다.
차기정권을 이끌 트로이카,DJT(김대중 김종필 박태준)가 지방선거 이전에 정치구조를 개혁키로 단안을 내린 것은 시의적절했다고 본다.만일 이 결단이 없었다면 ‘게으른 정치권’은 아마 지금까지도 “구조조정은 우리와 무관하다”는 식으로 팔짱을 끼고 있었을 것이다.
DJT의 정치개혁 선언은 과거정치에 대한 ‘정치 9단’들의 자기반성이자 신여권의 세 불리기를 겨냥한 정계개편의 신호일 수 있다.원내 안정의석의 확보가 절실한 과제인 소수 여당으로서는 개혁의 궤도 위에서 세를 늘리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명분있는 방법일 것이다.정계개편이 이루어진다면 대선 패배후 사실상 표류중인 거대야당 한나라당이 ‘대패질’의 표적이 될 것은 자명하다.‘정치권 구조개혁’ 소리가 나오자 한나라당이 바싹 긴장하고 있는 까닭을 이해할 법하다.
우리는 과거에도 정권이 바뀌거나 선거를 앞두고 정치개혁이 외쳐지는 것을 숱하게 보아왔다.또 그때마다 제도개선이 이루어진 사실도 기억하고 있다.바로 지난 11월에도 여야는 국회에서 일련의 정치개혁법을 통과시켰다.그런데 불과 2,3개월만에 또 정치개혁을 논하고 있다.이유는 간단하다.개혁이철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대선을 목전에 두고 시간에 쫓긴 정치협상에서 개혁안을 마련했기 때문에 정파간 이해가 일치하는 범위내의 땜질식 보완에 그쳤던 것이다.지금은 6월 지방선거를 제외한다면 총선·대선이 모두 멀리 떨어져 있다.정치적 이해관계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시간적 여유속에 합리적 개혁안을 만들기에 적기라는 이야기다.
○합리적 개혁안 창출에 적기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정치권 구조개혁의 최우선 과제로 △국회의원 및 지방의원 정수 축소 △선거구제 개편 △중앙당 축소 및 지구당 폐지 등을 제시하고 있다.모두 우리가 공략해야 할 과제들이다.사실 돈 안드는 선거·깨끗한 정치를 구현하자면 정당살림과 의원 수부터 줄이는 것이 손쉬운 방안일 것이다.또 현행 소선거구 대신에 중대선거구의 도입도 고려해 봄직하다.그러나 제도는 운영이 중요하지 절대선이 없다는 것도 아울러 유념할 필요가 있다.공연히 제도만 탓하며 이리저리 뜯어고치기 보다는 정치권의 의식개혁,즉 잘못된 관행과 행태를 고치는 노력을 더 중시해야 한다.문제는누가 이를 선도하느냐다.
정치권의 의식개혁은 보스들이 수범해야 한다.정치자금을 만져도 보스들이 더 큰 뭉치를 만졌고 영향력을 행사해도 보스들이 더 막강하게 행사했기 때문이다.한국정치의 왜곡과 비리는 사실 이들에게서 기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그들의 독선과 패거리주의가 발전을 방해했던 것이 한국정치의 이면사다.그들을 놔둔채 다른 정치인에게만 개혁을 요구하는 것은 “나는 ‘바담 풍’하지만 너는 ‘바람 풍’하라”는 억지와 다를 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정치개혁이 성공하려면 무엇보다도 DJT가 담당해야 할 몫이 커야 한다고 본다.우선 핵심과제인 정당운영의 감량문제부터 보자.지금까지의 표적은 비대한 여당이었지 찬밥 먹는 야당이 아니었다.이번도 마찬가지다.국민회의와 자민련이 여당으로의 구조조정을 어떻게 하느냐가 관건인 것이다.DJT의 구상과 결단이 ‘저비용 여당형’이냐 아니냐에 따라 개혁의 물길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정당 민주화도 DJT 몫이다.국민회의 자민련은 하의상달의 당내민주주의보다는 가부장적 상의하달이 많았고,당총재가 국민과의 대화는 가져도 당원과의 진지한 대화는 없었던 정당이었다.DJT는 이제 집권의 꿈을 이뤘으니 마음을 비우고 후진에게 선진 정치기반을 남겨 주는데 힘써야 한다.그것이 바로 개혁이다.국민회의와 자민련을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공당으로 거듭나게 해야 한다.지명권·공천권을 과감하게 당원에게 넘겨주어 당내 민주주의를 활성화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보스들 수범이 성공 관건
끝으로,정치개혁을 정착시키려면 정치권에 대한 감시와 관리가 필수적이다.대통령 혼자 칼국수를 먹는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은 김영삼정부가 잘 보여 주었다.지도자가 챙겨야 한다.정치권 비리를 사법처리에만 맡겨 사후에 법석을 떨 일이 아니라 사전 검색·차단장치를 강구해야 한다.과거 박정희 대통령이 정치인과 고위관료를 상대로 사용했던 ‘경고친서’ 같은 것은 다시 살릴만 하다.‘777 DJT’의 정치개혁은 신선하지는 않더라도 그 경륜만큼이나 원숙하고 치밀한 것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