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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플 인 포커스] 3선 성공 루카셴코 벨로루시 대통령

    벨로루시 대선에서 3선 연임에 성공한 알렉산드르 루카셴코(51) 대통령은 서방 세계에선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로 통한다. 그러나 옛 소련의 잔영에서 허덕이는 다른 독립국가연합(CIS) 국가와 달리 러시아와 긴밀한 관계 속에 경제 안정을 이루면서 철권통치가 ‘먹히고´ 있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20일 최종 개표 결과 82.6%의 압도적 득표를 기록,2001년 재선 때 75.6%를 훨씬 웃돌았다. 제1야당 후보인 알렉산드르 밀린케비치(58) 전 민스크 시장은 6%를 얻는 데 그쳤다. 우크라이나(오렌지 혁명)와 그루지야(장미 혁명) 등 이웃 나라의 시민혁명 피로감이 더해가면서 예견된 결과였다. 야당을 조직적으로 탄압한 것도 주효했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도 또다른 야당 후보인 알렉산드르 코줄린 사민당 대표와 운동원들을 체포했다.1999∼2000년 4명의 반체제 인사가 ‘사라졌다´고 AP통신이 전했다. 루카셴코는 이날 민스크 10월광장에 모인 1만명의 민주화 시위대를 겨냥,“오리 목을 꺾듯이 시위자의 목을 부러뜨릴 것”이라고 험악한 말까지 늘어놨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에 대해선 “지구상 제1의 테러리스트”라고 규정했다. 지난주 백악관의 ‘국가안보전략´ 보고서에서 벨로루시가 폭정체제로 포함된 데 따른 반발이라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1994년 첫 민선 대통령에 오른 루카셴코는 초대 대통령에 한해 3선 연임이 가능하도록 헌법을 고쳐 국민투표에서 통과시켰다. 초대 대통령의 임기를 7년으로 늘려 이미 12년을 집권해 온 터였다. 슈클로프의 홀어머니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1982년 집단농장 관리인을 맡아 농업 경영에 수완을 발휘했다.1993년 부패척결위원장으로 강력한 활동을 펼쳐 국민 뇌리에 각인됐다. 1996년엔 러시아와의 경제통합, 러시아어 지위 격상, 연금 및 사회안전망 확충을 단행했다. 벨로루시는 지금도 신문 제호에 ‘소비에트´란 단어가 들어가며 국가정보기관은 ‘KGB´로 불린다. 벨로루시 경제는 러시아의 저가 천연가스로 굴러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옛 소련 동맹국에 제공하는 1000㎥당 55달러의 가스값은 친서구로 돌아선 우크라이나나 그루지야에 공급되는 가격의 3분의 1 수준이다.2차대전 때 인구의 3분의 1을 잃은 벨로루시 국민은 내전가능성을 가장 두려워한다고 BBC는 분석했다. 안정희구세력이 루카셴코의 두터운 지지층이다. 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남북 장성급회담 결과 보고 김정일 “국방회담 개최 결정”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남북 장성급 회담 결과를 보고 남북 국방장관회담을 개최하는 방향으로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6일 김원기 국회의장과 함께 인도네시아를 공식 방문 중인 열린우리당 정의용 의원은 “유도요노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김 의장에게 최근 김정일 위원장으로부터 받은 친서를 소개하면서 김 위원장이 판문점에서 진행중인 장성급회담 결과를 보고 남북 국방장관회담이 개최되는 방향으로 기대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설명했다.
  • 힘빠진 시민혁명…힘얻는 러시아

    힘빠진 시민혁명…힘얻는 러시아

    ‘피로한 시민혁명에 러시아는 즐겁다?’ 러시아가 옛 소련 연방에 속했던 독립국가연합(CIS)에 대한 영향력을 되찾고 있다고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가 7일 전했다. 지난해까지 러시아 접경의 CIS국가들을 휩쓸던 시민혁명이 이를 주도한 민주세력의 무능력과 내분, 경제침체로 시들면서 친러적인 보수세력이 고개를 들고 있는 까닭이다. ●시민혁명결과에 실망감 확산 이달로 예정된 우크라이나 총선과 벨로루시 대통령선거에선 보수적인 친러세력의 승리가 유력시되고 있다. 2004년 12월 대선 부정을 규탄하며 정권교체를 이뤄냈던 우크라이나 집권당은 오는 26일 총선을 앞두고 친러적인 야당에 밀리고 있다. 키예프 사회·정치심리연구소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시민혁명을 주도했던 빅토르 유셴코 대통령의 집권당 지지율은 17%로 친러적인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총리의 ‘우크라이나 지역당’의 지지율 27%에 뒤처졌다. 시민혁명의 집권세력에 실망한 탓이다. 게다가 민주세력은 자중지란으로 핵 분열을 거듭하면서 군소정당으로 난립하고 있다. ●목소리 커진 친러세력 어려워진 경제에다 지난 1월 러시아의 가스공급 중단으로 야당 입지는 더욱 탄탄해졌다. 친미·친서방 정책의 약효가 나타나지 않는데다 러시아와의 불화로 가스공급 단절 등 정치·경제적 압력까지 받으면서 민심도 동요하고 있다. 러시아 세계경제·국제문제연구소도 “보수 친러세력을 권좌에서 끌어내렸던 오렌지혁명의 주체들이 이제 정반대의 결과를 맞게 됐다.”고 평했다. 19일로 다가온 벨로루시 대선에서도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로 불리는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이 러시아의 지원속에 민주세력을 가볍게 누르고 무난히 3선을 달성할 전망이다. 루카셴코의 10년 독재로 벨로루시는 ‘폭정의 전초기지’라는 비난을 받고 있지만 그 자신은 러시아인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CIS지도자로 지지를 받고 있다. ●더이상 시민혁명은 없다? 지속적인 성장과 낮은 실업률 등 안정된 경제운용에 철권통치로 민주세력의 도전을 잠재우고 있는 루카셴코는 러시아의 지원으로 “더 이상 시민혁명은 없다.”며 민주화 물결의 파고를 차단하고 있다. 루카셴코는 올 1월말 러시아와 거주이전 자유 및 사회보장혜택 공유를 위한 협정을 체결, 사회통합을 가속화했다. 발전과 안정이란 ‘당근’으로 국민들의 마음을 흔들어대고 있는 것이다. 통합 야당후보인 알렉산드르 밀린케비치 등은 지난 5일 “선택을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와달라.”고 호소했지만 불법집회 강경대응이란 정부 엄포에 반응은 시들하다.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는 “장미혁명(그루지야·2003년 11월), 오렌지혁명(우크라이나), 레몬혁명(키르기스스탄·2005년 3월) 등으로 친러정권들이 잇따라 무너지고 친미·친서방적 정권들로 대체되어 위기감을 느꼈던 러시아는 이달 선거를 앞두고 예전과 달리 느긋한 입장”이라고 전했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北선교 염두 정대주교 낙점한듯

    北선교 염두 정대주교 낙점한듯

    정진석(75) 대주교의 추기경 임명은 지난해 새 교황 즉위 이후 로마교황청 주변과 국내 천주교계에서 꾸준히 거론돼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천주교는 지난해 서거한 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재위 시절 추기경 임명 때마다 번번이 고배를 들었던 것에 비춰 새 교황 즉위 이후 첫 추기경 인사인 이번 발표에 특별히 주목했으며 마침내 ‘37년 만의 새 추기경 탄생’이란 낭보를 들을 수 있었다. 천주교계는 당초 새 추기경단 발표 시기를 겨울 절기를 피해 여름 휴가 이전인 6월쯤으로 관측했으나 이날 교황청의 발표로 미루어 볼 때 그동안 새 정책집행을 미뤄오던 교황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으로 풀이한다. 추기경 임명은 철저하게 교황의 재량에 달려 있는 만큼 이날 정 대주교의 낙점은 전적으로 교황의 결정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우선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지난해 성탄절 메시지에서 ‘한반도에 대화의 분위기가 지속되기를 바란다.’는 내용을 특별히 담을 만큼 한국과 한국의 천주교에 각별한 관심을 가진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공산권 사목에 대한 기대가 커 분단상황에 있는 한국 천주교에 기대가 클 수밖에 없고 따라서 자연스럽게 평양교구장을 겸하는 정 대주교를 낙점했을 것으로 천주교계는 보고 있다. 국내 천주교계와 정부 당국의 노력도 한국 추기경 추가 탄생에 한몫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 나와 있는 역대 주한 교황청 대사들은 줄곧 한국 천주교의 상황을 보고하면서 추기경 추가 임명의 필요성을 교황청에 건의해 왔다. 여기에 새 교황 즉위 이후 수차례에 걸친 김수환 추기경의 추가 임명 탄원, 지난해 4월 정동채 문화관광부장관의 교황 알현, 최근의 노무현 대통령 친서 등이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마음을 결정적으로 움직인 것으로 보인다. 한편 천주교계는 정진석 대주교의 추기경 임명이 나라 안팎으로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우선 천주교계는 현재 한국 유일의 추기경인 김수환(84) 추기경이 80세를 넘어 교황 선출권이 없고 서울대교구장 은퇴 이후 활동 폭이 좁아진 상황에 주목한다. 이와는 다른 입장에 있는 정진석 새 추기경의 경우 추기경회의에서 활발하게 의견을 낼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을 바탕으로 퇴조 분위기의 교세확장에도 은근히 기대를 걸고 있다. 한국 천주교는 450만명에 이르는 신도들을 효율적으로 이끌어 가기 위해 새 추기경 탄생을 애타게 기다려 왔다. 여기에 한반도의 통일과 북한 선교를 위해서도 평양교구장을 겸한 새 추기경의 역할이 크며 한국 정부도 새 추기경을 통해 국제사회의 힘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같은 사실로 미루어 정진석 대주교는 올해 말로 정년 퇴임이 예정돼 있으나 추기경 임명에 따라 교구장 임기가 3∼4년가량 연장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 “교황 한국 방문·새추기경 임명 긍정적”

    “교황 한국 방문·새추기경 임명 긍정적”

    지난해 요한 바오로2세 서거후 베네딕토 16세가 교황에 취임한 지 10개월여가 지났지만 로마교황청은 눈에 띌 만한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례적으로 행정체제와 교시 등에 있어서 전 교황때의 것을 그대로 유지한 채 추기경을 비롯한 요직 인사도 미루고 있어 세계 천주교계의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교황을 비롯한 교황청의 고위 인사들은 한국의 천주교를 주의깊게 바라보고 있으며 세계, 특히 아시아권에서 한국 천주교의 역할에 큰 기대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외공관장회의 참석차 일시 귀국한 성염(64) 주(駐)로마교황청 대사를 만나 바티칸 분위기와 한국천주교에 대한 로마교황청의 입장을 들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 체제의 교황청 분위기와 한국 천주교에 대한 입장변화가 있다면. -예전 같으면 벌써 새 교황의 통치철학이나 기조정책 발표가 나왔어야 한다. 교황이 지난달 25일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제목으로 가톨릭의 일반적인 원칙을 담은 첫 회칙을 낸 게 전부일 만큼 전 교황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런 분위기에서 교황이 성탄절 메시지에 “한반도에 대화의 분위기가 지속되길 바란다.”는 내용을 포함시킨 것은 한국과 한국 천주교에 대한 관심이 큼을 보여준 것이다. ▶교황청이 이처럼 한국에 대해 갖는 각별한 관심과 기대는 무엇 때문인가. -우선 신자 수를 볼 때 다종교국가인 한국에서 천주교의 위상은 바티칸으로서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각계각층에서 신자들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고, 인권 등 사회발전 측면에서 한국천주교가 해온 역할에 특히 주목한다. ▶교황의 한국 방문과 한국에서의 새 추기경 임명이 자주 거론되는데. -세계 30여개국에서 새 교황을 초청해놓고 있지만 금년 상반기 핀란드와 올해말 터키 방문 정도만 확정되었다. 지난해 11월 바티칸에서 열린 각국 주교 대표들의 모임인 주교 시노드 폐막때 노무현 대통령이 친서를 전달, 교황의 한국 방문 요청과 새 추기경 임명에 대한 희망의 뜻을 밝혔지만 아직까지 이 부분에 대한 공식적인 언급은 없다. 하지만 고위 인사들의 우호적인 발언과 관심으로 미루어 볼 때 양쪽 모두 낙관적이다. ▶바티칸에서 대사로 재임하면서 바라본 한국 천주교는 어떤 모습인가. -전통적으로 한국 천주교와 바티칸의 관계는 아주 좋은 편이다. 무엇보다 지난 30∼40년간 한국 천주교가 우리 사회에서 앞장서온 진보적 노력을 바티칸에서 높이 평가하고 있어 흐뭇하다. 천주교 신자가 전체 인구의 9∼10%를 차지하는 한편 불교·개신교세가 만만치 않게 강한 다종교국가인데도 불구하고 종교분쟁 없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한마디로 신기한 나라다. ▶황우석 교수 파문에 대한 교황청의 입장은 어떤 것인가. -공식 논평은 없었지만 지난해말 수요알현 때 교황이 광장에 모인 신도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면서 “배아가 생명으로 발전한다.”고 언급한 것은 바로 황 교수 사태에 대한 윤리적 차원의 발언으로 해석된다. 바티칸은 “과학의 문제는 과학의 영역에서 풀어야 한다.”는 기본 입장을 갖고 있고 한국의 과학자들이 자체검증을 통해 스스로 문제를 풀어 나가려는 노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기독교 퇴조는 일반적인 흐름으로 한국에서도 냉담자가 증가하는 등 크게 다르지 않은데. -국내외 모두 ‘신앙의 사사화’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 성당이나 교회에 나가지 않아도 신앙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과, 평소 정치·경제논리에 지배받지만 신앙은 나름대로 유지하는 이원화의 문제랄 수 있다. 현대의 바쁜 삶에서 당연한 현상이다. 그러나 신앙은 사사로운 것이 아니라 공동사회의 것이라는 전통의 공동체적 신앙생활을 무시할 수 없다. 바티칸에서도 신앙생활이 삶의 원동력을 끌어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신앙과 삶의 통합 사목을 강조하고 있다. 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 儒林(539)-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29)

    儒林(539)-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29)

    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29) 선조로부터 친서를 받은 퇴계는 어쩔 수 없이 그해 6월 한양으로 출발한다. 그러나 워낙 건강이 좋지 않았던 터라 도중에 쓰러진다. 이 소식을 들은 선조는 전의를 보내 치료토록 하였으며, 간신히 건강을 회복한 퇴계는 한양에 올라와 홍문관과 예문관에 대제학을 제수받는다. 그리고 경연에 나아가 선조에게 경서를 가르치기 시작하였는데, 이때 선조를 위해서 쓴 글이 바로 ‘무진육조소’인 것이다. ‘신 이황은 삼가 재배하고 두 손 모아 머리를 조아리며 주상전하께 아뢰나이다.’로 시작되는 이 ‘무진육조소’에는 선조가 임금으로서 반드시 지켜야 할 여섯 가지의 도리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상소하고 있다. “첫째, 임금으로서 계통(繼統)을 중요하게 여겨 ‘어짐과 효도(仁孝)’를 잘 지켜나가야 합니다. 둘째, 간악한 말로 남을 모함하며 이간질시키는 것을 막아 양궁(兩宮:선조와 인순황후 심씨)이 친하게 지내야 합니다. 셋째, 성학(聖學:유교)을 돈독히 하여 임금으로서 학문을 충실히 닦아 정치에 근본을 세워 나가야 합니다. 넷째, 바른 도덕으로써 인심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다섯째, 공정하고 능력 있는 사람들을 뽑아 널리 인재를 등용하는 한편 백성들의 소리를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여섯 번째, 수양과 반성을 성실히 함으로써 하늘의 권애(眷愛)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퇴계로부터 받은 ‘무진육조소’를 선조는 크게 기뻐하며 그림으로 그려 병풍으로 만들고 항상 나랏일을 살피는 지침으로 삼았는데, 퇴계는 ‘바른 도덕으로써 민심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넷째 조항의 세부사항으로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순자가 말하기를 ‘임금은 그릇과 같으니 그릇이 모나면 그 속에 담긴 물도 모나고, 또 임금은 푯대와 같으니 푯대가 바르면 그림자도 곧다.’고 하였습니다. 어찌 참으로 그렇지 않겠사옵니까. 비록 그러하오나 보잘것없는 신의 삿된 근심과 지나친 생각으로는 인심을 방황케 하고 미혹되게 하는 학설에 대하여 느낀 바가 있습니다.” 퇴계는 특히 ‘인심을 방황케 하고 미혹되게 하는 학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상세하게 부연설명하고 있다. “신이 감히 보건대 동방이단의 가장 심한 폐단은 불교이니, 고려는 이 때문에 나라가 망하는 데에까지 이르렀사옵니다. 비록 아조(我朝)의 융성한 다스림으로도 오히려 능히 그 불교의 밑뿌리를 끊지 못하여 때때로 틈타서 침투하여 퍼지니, 비록 선왕께서는 곧 불교의 그른 것을 깨달으시고 빨리 씻어버리실 것을 힘쓰셨으나 그 여파와 유산이 아직도 남아 있사옵니다. 그리고 노장학(老莊學)의 허망한 망발을 혹 깊이 숭상하여 성인을 업신여기고 예법을 멸시하는 풍습이 더러 일어나고 관중(管中)과 상앙(商)의 학술과 사업은 다행히 전술하는 자는 없으나 공리를 계획하고 이익을 꾀하는 폐단은 오히려 고질이 되고 있습니다.”
  • [월드이슈] 우크라-러 흑해분쟁

    [월드이슈] 우크라-러 흑해분쟁

    2004년 ‘오렌지 혁명’으로 촉발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갈등이 악화되고 있다. 천연가스 분쟁에 이어 이번엔 크림반도에 주둔하고 있는 러시아 해군의 임대료 문제가 불거졌다. 서방언론들은 최근 두 나라의 갈등을 19세기 러시아와 서방연합군이 벌인 전쟁에 빗대 ‘제2의 크림전쟁’이라고 부른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의 분쟁을 크림반도와 흑해의 지배권을 둘러싼 ‘러시아 대 서방’의 대결로 보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세바스토폴에 대한 1997년 협약을 파기한다면 치명적인 결과가 빚어질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크림전쟁’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천연가스 분쟁이 한창이던 지난해말 세르게이 이바노프 러시아 국방장관의 폭탄발언이 양국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그의 발언은 크림반도의 세바스토폴 항구에 주둔중인 러시아 흑해함대의 기지 임대료를 4배로 올려 받겠다는 우크라이나 정부의 방침이 보도된 직후 터져나왔다. 크림전쟁은 1854년 크림반도와 흑해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동방제국’ 러시아와 영국·프랑스·터키의 ‘서방 연합군’이 벌인 전쟁이다. 러시아는 가스값 인상요구에 기지임대료 카드로 맞선 우크라이나를 향해 ‘전쟁위협’에 가까운 최후통첩을 날린 셈이다. ●‘가스분쟁’ 이어 ‘흑해분쟁’ 그러나 우크라이나도 물러서지 않았다. 지난 14일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해군과 공동으로 사용하던 얄타 해변의 등대를 실력으로 ‘접수’했다. 러시아는 “등대를 강탈당했다.”면서 맹비난했고,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크림반도의 항해시설을 불법으로 쓰고 있다.”고 맞섰다. 다음달 중순 양국간 회담이 예정돼 있기 때문에 갈등은 물리적 충돌로까지 번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두 나라 모두 이번 기회에 ‘세바스토폴 문제’를 담판 짓고 가겠다며 벼르고 있다. 인구 40만의 항구도시 세바스토폴에는 현재 30척이 넘는 러시아 군함이 정박해 있다. 주둔중인 러시아 해군만 1만 4000명이 넘는다. 1991년 소련이 무너지고 흑해함대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분할 배속된 뒤에도 러시아 해군의 주둔엔 별 문제가 없었다. 두 나라는 1997년 러시아가 1년에 9800만달러(약 980억원)의 임대료를 지불하는 조건으로 20년 동안 세바스토폴 항구를 사용키로 협정을 맺었다. 하지만 2004년 ‘오렌지혁명’을 통해 집권한 빅토르 유시첸코 대통령이 친(親)서방 정책을 펼치며 러시아와 거리를 두자 갈등이 표면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미국 중심의 군사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려는 유시첸코 정부에 세바스토폴의 러시아 함대는 가장 큰 걸림돌이었기 때문이다. ●“러시아함대가 나토 가입 최대 걸림돌” 러시아군을 축출해야 한다는 민족주의 세력의 지원을 업고 유시첸코 정부는 지난해 임대료 인상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흑해의 군사시설을 미국에도 개방하겠다는 계획을 흘리더니 7월엔 우크라이나 학생들이 러시아군이 통제하는 등대를 습격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연말 가스분쟁에서 최고조에 달한 두 나라의 갈등은 결국 이바노프의 ‘크림전쟁’ 발언으로까지 치달았다. 세바스토폴에서 밀려나면 러시아에는 치명적이다. 흑해 연안에서 그만한 천혜의 군항은 찾기 힘든 데다 200년 넘게 사령부가 주둔해 왔다는 상징성도 크다. 만일 미군이 주둔한다면 그야말로 송곳을 든 상대에게 턱밑을 내주는 형국이 된다. ●러시아 ‘세바스토폴 지키기’총력전 러시아는 3월의 우크라이나 총선에서 흑해함대 이슈가 전면에 부각될 것으로 보고 있다. 영국의 인디펜던트지는 최근 “크렘린의 고위급 인사가 이 지역의 친러시아 세력을 규합하기 위해 현지에 급파됐다.”고 전했다. 러시아는 함대시설 유치지역에 대한 특별지원금도 약속했다. 러시아가 내심 기대하는 것은 이 지역의 친러시아 정서다.2세기 넘게 함대 사령부가 주둔했기 때문에 주민들 대부분은 스스로를 러시아인으로 여긴다.2004년 대통령선거 당시 유시첸코가 이 지역에서 얻은 득표율은 7%에 불과했다. 지역 공산당의 한 간부는 인디펜던트와 인터뷰에서 “주민투표로 국가귀속을 결정한다면 크림반도는 당장 러시아에 편입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BBC는 러시아가 본토의 흑해연안에 세바스토폴의 대체지 물색에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과거의 군사적 영광을 되찾으려 안간힘을 쓰는 러시아가 제정러시아와 소비에트 시대의 자랑거리인 이 ‘영웅적 도시´를 쉽게 포기할 것으로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총선 앞둔 우크라 정국 2004년 12월 ‘오렌지 혁명’으로 우크라이나 정치사를 갈랐던 승자와 패자의 희비가 오는 3월 총선을 앞두고 교차하고 있다. 러시아와의 천연가스 분쟁에 이어 ‘흑해 갈등’이 친(親)서방파를 제치고 친러시아파의 내각 장악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기 때문이다.‘천연가스-흑해분쟁’으로 이어진 두 사건의 핵심에는 정치적 앙숙 관계인 두 인물이 있다. 그 주인공은 친서방파인 빅토르 유시첸코(사진 왼쪽) 대통령과 그와 맞붙었던 친러파 대선후보 빅토르 야누코비치(오른쪽). 두 라이벌의 정치적 지형은 1년여만에 역전됐다는 평가가 많다. 현재 유시첸코 대통령은 한마디로 사면초가다. 부패 스캔들, 경제 악화에 이어 러시아와의 천연가스 협상에서 실패한 책임마저 제기되자 지난 10일 의회는 내각해임안을 가결했다. 국민들도 협상결과에 분노하고 있다. 유시첸코 대통령에게 비수를 꽂은 해임안의 주인공도 정치적 동지였던 율리야 티모셴코 전 총리. 친서방 노선에 함께 섰던 그가 등을 돌리자 유시첸코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반면 2004년 선거에서 패배한 야누코비치는 러시아지역당을 이끌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야누코비치가 총선 이후 구성될 새 내각의 총리를 임명하거나 그 자신이 총리에 오를 정도로 정치적 영향력이 커졌다고 보고 있다. 우크라이나 여론조사에서 야누코비치의 러시아지역당은 31%의 지지율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유시첸코의 우리우크라이나당은 13%에 불과하다. 우크라이나 총선은 3월26일. 전체 450개 의석을 놓고 45개 정당이 맞붙지만 여소야대 상황이 유력하게 점쳐진다. 우크라이나는 올해 1월부터 의원내각제 국가가 됐다. 친러시아파가 오렌지 혁명을 누르고 재집권할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 셈이다. 이럴 경우 우크라이나의 급격한 ‘서구화’노선엔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러시아와의 가스·흑해분쟁 역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역(逆)으로 우크라이나를 자국의 영향력에 두려는 러시아의 의도가 관철될지, 우크라이나가 탈(脫)러시아라는 정치적 독립을 이룰지는 여전히 불씨가 남은 가스분쟁과 흑해분쟁이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러시아와의 분쟁이 우크라이나 민족주의를 자극, 의외의 결과를 낳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세바스토폴 어떤곳 “세바스토폴 요새의 모든 전선은 수개월 동안 비범하고 힘찬 생명들로 들끓었고, 수개월 동안 죽음이 교차됐다…. 그 세바스토폴 요새엔 더 이상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세바스토폴이란 지명이 익숙한 건 러시아 문호 레오 톨스토이 덕분이다. 그는 크림전쟁이 한창이던 1854년 세바스토폴 공방전에 참전한 뒤 불후의 단편 ‘세바스토폴 연작’을 남겼다. 원래 타타르인들의 근거지였으나 18세기 후반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2세가 군항을 건설한 뒤 세바스토폴이란 지명을 붙였다.1804년 러시아 흑해함대의 수비대가 설치됐다.1854년 크림전쟁 당시 러시아군은 영국·프랑스 연합군에 맞서 유명한 349일간의 농성전을 벌였다. 영국에서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이 파견된 것도 이 즈음이었다. 러시아혁명 직후 내전기에는 독일, 프랑스, 반혁명군에 점령됐다가 1920년 소련군에 탈환됐다.2차 세계대전 때는 250일간의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러시아 해군에겐 지중해로 진출할 수 있는 천혜의 부동항인 까닭에 소비에트 시절부터 민간인 출입이 통제됐다.1954년 우크라이나로 넘어왔지만 러시아인들이 4분의3을 차지하는 주민들은 아직도 러시아에 대한 귀속감이 강하다.1991년 우크라이나 독립 이후 러시아에서는 이 지역을 되찾아와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주민들 다수가 과거 러시아 수병 출신이다. 따라서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대한 적대감도 강하다. 지난해 독일과 미국 전함이 정박했을 당시 주민들은 “세바스토폴, 세바스토폴, 러시아의 자랑스러운 수병들이여”란 노래를 부르며 항의시위를 벌였을 정도다. 우크라이나의 철수압력이 강화되면서 러시아에선 대체항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여론이 대두되기도 했다. 흑해 동쪽연안의 노보로시스크가 유력한 후보지로 떠오르고 있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6월 ‘세계평화포럼’ 무산 위기

    오는 6월 역대 노벨 평화상 수상자들이 광주에 모이는 ‘세계평화 포럼’이 국비 예산 삭감으로 좌초 위기를 맞고 있다. 2일 광주시에 따르면 이 행사를 위해 국비 7억원의 예산 반영을 요구했으나 최근 열린 국회 예결특위에서 예산이 전액 삭감됐다. 예산 삭감은 열린우리당 소속 광주지역 국회의원들이 반대한 데 따른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 광주시당은 보도자료에서 “정세균 열린우리당 의장과 이낙연 민주당 원내대표가 이 행사를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국비지원에 합의한 사항”이라며 “열린우리당 광주지역 의원들이 선거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이를 삭감한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광주시 관계자는 “세계평화포럼은 국제적으로 약속한 사항인 만큼 국비지원과 상관없이 개최해야 한다.”며 “국비 예산이 지원되지 않는다면 그만큼 시비 부담이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오는 6월15일 광주에서 열릴 예정인 ‘세계평화포럼’은 박광태 시장이 최근 이탈리아 로마에서 개최된 ‘노벨평화상 수상자 정상회의에 참석, 김대중 전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하면서 ‘광주개최’를 성사시켰다. 이 행사에는 고르바초프 옛 소련 대통령, 바웬사 전 폴란드 대통령,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 리고베타 멘추 툼 과테말라 인권 운동가, 파올로 코타 라무시노 ‘퍼그워시 콘퍼런스’(반핵단체)사무총장 등이 참석을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러, 우크라이나 가스공급 중단

    러시아 국영 가스공사 가즈프롬이 1일부터 우크라이나에 가스 공급을 중단, 새해 벽두부터 자원 전쟁의 포문을 열었다. 가즈프롬은 이날 오전 10시(현지시간)부터 우크라이나로 가는 가스 공급량을 하루 1억 2000만㎥씩 줄였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간의 ‘천연 가스 줄다리기’는 가즈프롬이 현재 1000㎥당 50달러인 가스값을 230달러로 올려달라고 요구하면서 시작됐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4월부터 시장 가격 수준으로 가스 가격을 올리는 데 동의한다면 3월 말까지는 가스값을 동결한다.”는 협상안을 31일 자정까지 받아들이라고 제시했다. 하지만 가즈프롬 대변인은 인테르팍스 통신을 통해 “우크라이나로부터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공식 답변을 받았다.”고 밝혔다. 빅로트 유시첸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모든 우크라이나인은 경제적 독립을 위해 함께 나아가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가스 협상에서 1000㎥당 80달러 이상은 올릴 수 없다고 주장했었다.●우크라이나 친서방정책으로 관계 악화 1년 전 오렌지 혁명을 통해 권력을 잡은 유시첸코 대통령은 친 서방정책을 펴고 유럽연합(EU) 가입을 추진하면서 러시아와의 관계가 악화됐다.가즈프롬은 그루지야, 아르메니아, 몰도바, 벨로루시 등 옛 소련 국가에 대해서는 할인된 가격으로 가스를 제공하면서 자원을 무기로 활용해 왔다. 우크라이나는 가스 수요의 3분의1을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수도인 키예프의 관리는 “산업 분야의 가스 공급은 줄어들겠지만, 겨울을 대비한 보유량이 충분해 국민들의 생활에는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이번 가스 공급 중단 조치와 관련,EU는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면서 오는 4일 에너지 장관 긴급 회의를 소집했다.EU는 가스 수요의 절반을 러시아에 의존하는데 이중 80%가 우크라이나를 지나는 가스관을 통해 공급받기 때문이다.●폴란드 “가스관 압력 낮아져” 가즈프름은 이미 이들 유럽 국가에 대해 가스 공급이 중단되면, 우크라이나 수도인 키예프에서 가스를 빨아들일 수도 있어 유럽으로 가스를 수출하는 게 제한될 것이라고 알렸다. 폴란드 가스 회사 PCNiG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로 수송되는 가스관의 압력을 낮춘 지 3시간만에 러시아에서 폴란드로 오는 가스관의 압력이 낮아졌다며, 위기감을 표시했다. 오스트리아 등 서유럽 국가들은 가스 공급이 중단되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란 경고 편지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보냈다.‘믿을 만한 에너지 파트너’임을 내세웠던 러시아는 오는 6월 열리는 선진 8개국(G8) 정상회의 의장국의 위상도 위협받고 있다.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올해의 인물] (2)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

    [올해의 인물] (2)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

    “부시 정부를 전범재판에 회부해야 한다.”(11월 26일) “이스라엘은 지도에서 사라져야 한다.”(10월 26일) 지난 6월 24일 실시된 이란 대선 결선투표에서 마무드 아마디네자드(49) 후보가 당선되자 서방 언론들은 “이란이 ‘극단적 보수주의’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그 우려는 현실화되고 있다. ●극적인 역전승 당시 외신들은 하셰미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이 앞서가는 가운데 보수파인 모하마드 바르크 칼리바프와 개혁파 무스타파 모인이 뒤를 쫓는 것으로 판세를 분석했다. 아마디네자드의 이름은 거의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하지만 결과는 뜻밖이었다. 아마디네자드는 1차 투표에서 라프산자니에 이어 2위를 기록하더니 결선투표에서는 61.7%의 압도적 득표율로 당선됐다. 빈곤층과 보수주의자의 지지, 최고지도자 아야툴라 알리 하메네이의 후원이 승리의 요인이 됐다.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난 아마디네자드는 유세 과정에서 “석유판매 수익을 서민들에게 돌려주겠다.”고 약속했고 뚜렷한 반미 정책과 이슬람 근본주의를 내세웠다. 테헤란 시장 재직 시절 관공서에서 엘리베이터를 남녀별로 나눠 타게 하고, 빈민들에게 무료로 수프를 배급한 것은 이러한 그의 정치성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당선 이후 국영기업의 주식을 빈곤층 가구에 할당해주는 계획을 승인했고, 청년실업과 주택난 해결을 위해 석유판매수입으로 13억달러 규모의 펀드를 설립하는 등 자신의 공약을 지켜나가고 있다. ●거침없는 반미 외교 아마디네자드는 핵과 석유를 양 손에 쥐고 미국과 대립하고 있다. 그는 당선 뒤 “이란에 적대정책을 견지하는 한 미국과 관계를 개선할 생각이 없다.”면서 ‘평화적 핵 기술 이용 권리’를 강조했다. 이는 대화를 중시했던 모하메드 하타미 전 대통령의 정책과는 상반된 것이다. 이어 이스파한 핵 시설 재가동을 선언하면서 공세의 수위를 높였다. 한편으로는 석유를 발판으로 러시아·중국·시리아 등과의 외교관계를 강화하고 친서방파로 분류된 외교관 40명을 경질했다. 미국은 이란 핵 문제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하겠다고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이란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어겼다는 확증이 없는데다 러시아·중국이 안보리 회부에 반대하고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부시와 닮은 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아마디네자드는 틈만 나면 서로를 비난하고 있지만 두 정상에게는 의외로 닮은 점이 많다. 종교적 보수파를 지지기반으로 하고 있고, 지나친 외교적 일방주의로 국내외의 반발을 사고 있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또 두 사람은 최근 인사 문제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부시는 측근 변호사였던 해리엇 마이어스를 대법관 후보로 지명했다가 한바탕 논란 끝에 후보 지명을 철회했다. 아마디네자드 역시 요직 중의 요직인 석유장관을 세 번이나 지명했지만 의회가 모두 거부했다. 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 노벨평화상 수상자들 ‘광주로’

    미하일 고르바초프, 만델라 등 역대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이 내년 6월 광주에 모인다. 박광태 광주시장은 29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내년 6월15일부터 3일 동안 광주에서 ‘노벨평화상 수상자 정상회의’를 열기로 했다.”고 밝혔다. ‘광주 정상회의’는 박 시장이 최근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노벨평화상 수상자 정상회의’에 참석, 김대중 전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하면서 결정됐다. 광주 회의에는 고르바초프 옛 소련 대통령, 바웬사 전 폴란드 대통령,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 리고베타 멘추 툼 과테말라 인권 운동가, 파올로 코타 라무시노 ‘퍼그워시 콘퍼런스’(반핵단체)사무총장 등이 참석을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시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 엘바라데이 IAEA 사무총장 등 노벨평화상 수상자에 대해서도 사무국을 통해 회의참석을 협의 중이다. 시는 다음달 ‘실무추진 기획단’을 꾸려 정·관·학계와 민주인권 운동가 등이 참여하는 ‘광주정상회의 준비위원회’를 구성, 행사계획과 초청인사 섭외 등을 추진한다. 이번 회의는 광주시와 김대중도서관이 공동 주최하고, 고르바초프 전 옛 소련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공동의장을 맡는다. 의제는 5·18민주화 운동정신의 세계화와 동아시아의 민주화 확대 및 평화증진으로 결정됐다.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씨줄날줄] 엘 하지 오마르 봉고/진경호 논설위원

    정·관계 인사와 합창단 등 1400여명이 김포공항에 몰려 나갔고, 거리엔 시민과 학생 수십만명이 동원됐다. 경복궁 경회루에서는 박정희 대통령과 정일권 국회의장, 민복기 대법원장, 김종필 국무총리 등 3부 요인 등이 참석한 리셉션이 열렸다. 중앙청 만찬에는 각계 인사 800여명이 참석했다. 그를 영접하려고 정부는 김 총리를 위원장으로 한 ‘국빈영접준비위원회’를 구성했다. 그의 얼굴을 담은 기념우표가 발행됐고 서울대는 그에게 명예법학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엘 하지 오마르 봉고 가봉 대통령, 그가 온 것이다. 1975년 여름, 아프리카 서부의 인구 100만명(현재 140만명)이 채 안 되는 작은 나라 가봉의 대통령을 맞이하느라 ‘남한’은 야단법석이었다.3박4일간 신문들은 그와 관련한 특집기사로 도배됐고, 그에겐 조선호텔 숙소를 비롯해 최고 수준의 접대가 이어졌다. 정부 기록에는 없지만 적지 않은 향응도 있었다고 한다. 왜 이 난리였던가. 모두가 아프리카 신생독립국, 즉 비동맹국가들을 상대로 북한과 벌인 외교전쟁의 산물이었다.1972년 미·중 수교와 이에 따른 주한 미7군 철수 등 한반도 정세가 급변하면서 남북은 유엔에 가입한 25개 비동맹국가들을 상대로 치열한 외교전을 펼쳤다. 급기야 북한이 봉고 대통령을 통해 미국에 김일성 주석의 친서를 전달한 사실이 확인되자, 남측은 북·미 관계개선을 막으려 부랴부랴 봉고 대통령을 초청, 엄청난 환대를 불사했던 것이다. 그를 통한 ‘물귀신 작전’은 어느 정도 성공했고, 이후 유엔을 상대로 한 남북간 외교전도 소강국면에 접어들게 된다. 30년이 흘렀건만 69세의 봉고 대통령은 지금도 건재(?)한 모양이다.38년의 장기집권도 모자라 27일 실시된 대선에서도 승리가 확실하다고 한다. 종신집권 가능성마저 제기된다. 쿠바의 카스트로(46년째 집권)에 이어 지구상에서 두번째 장기집권이다. 그런 그가 최근 ‘제2의 박동선 사건’으로 불리며 미 의회를 뒤흔들고 있는 로비스트 잭 아브라모프 스캔들에 휘말렸다.2003년 부시 대통령과의 면담을 위해 아브라모프에게 900만달러를 쥐어줬다는 것이다. 먼 기억 속 박제로 남아 있던,70년대 우리 외교사의 한 자락이 그로 인해 되살아난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한국추기경 2명 된다

    내년 2월쯤 한국천주교에 김수환 추기경에 이어 새로운 추기경이 탄생할 전망이다. 평화방송(PBC) 시사프로그램 ‘열린 세상 오늘, 장성민입니다’의 오동선 PD는 24일 “한국천주교 고위관계자가 최근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측근으로부터 내년 2월쯤 새 교황을 보좌할 신임 추기경단 명단에 한국인 추기경 1명이 포함돼 있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해왔다.”고 밝혔다. 오 PD는 “교황청 고위관계자가 밝힌 만큼 어느 때보다 새로운 한국인 추기경이 탄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한국 추기경의 추가임명은 지난해 8월에도 거론됐으나 이뤄지지 못했다. 이와 관련, 노무현 대통령은 최근 열린 세계주교대의원대회의 성공을 축하하는 내용의 친서를 이달 초 외교부 바티칸대사를 통해 교황 앞으로 보내면서 ‘한국천주교의 추기경 추가임명이 한국민의 염원이며 교황의 방한을 바란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계에서는 추기경 추가 임명 가능성이 잇따라 거론되면서 조심스럽게 후보들이 거론되고 있다.추기경이 될 수 있는 한국 주교 23명 중 교구장급으로 정진석(74) 서울대교구장과 최창무(69) 광주대교구장, 이문희(70) 대구대교구장, 장익(72) 춘천교구장, 강우일(60) 제주교구장 등이 물망에 오른다.그러나 김수환(83) 추기경이 47세에 추기경으로 임명된 것을 감안하면 예상 밖의 젊은 인물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자크 로게 IOC위원장 10일 방한

    자크 로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부인 안네 보빈 여사와 함께 오는 10일 한국을 방문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초청으로 방한하는 로게 위원장은 당일 청와대 만찬에 참석해 스포츠 교류를 통한 남북 화해 분위기 조성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앞서 지난 7월 노 대통령은 싱가포르에서 열린 IOC총회에서 당시 김정길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위원장을 통해 태권도의 올림픽 종목 유지와 강원도 평창의 2014동계올림픽 유치에 대한 협조 친서를 전달한 적이 있다.
  • 中부총리 새달 8일 방북 6자 공동성명 이행 논의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중국의 우이(吳儀) 부총리가 10월8일부터 나흘간 북한을 방문한다고 친강(秦剛) 외교부 대변인이 29일 밝혔다. 친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우 부총리가 10월10일 북한 노동당 창건 60주년 기념행사와 중국의 지원으로 평안북도 대안군에 건설된 대안친선유리공장 준공식에 각각 참석하기 위해 북한을 방문한다고 말했다.우 부총리는 방북 기간 북한의 지도자들과 만나 공통관심사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제4차 6자회담에서 채택된 공동성명의 이행 방안 등에 대해서도 논의할 예정이라고 친 대변인은 밝혔다. 우 부총리가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의 친서를 소지할 것인지와 후 주석의 방북 시기를 논의할 것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면서 “구체적인 일정은 북한측과 협의중”이라고 말했다. 친 대변인은 6자회담 후 북한의 곤란한 경제사정을 고려해 힘닿는 범위 안에서 원조를 제공했고 이런 형태의 원조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oilman@seoul.co.kr
  • 北 “금강산 관광 중단없다”

    현대 아산과 북측의 갈등으로 중단 위기에 처했던 금강산 관광사업 문제가 일단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됐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16차 남북장관급회담 종료 하루 전인 15일 평양 고려호텔에서 기자들과 만나 “북측 관계자들로부터 금강산 관광은 중단되는 일이 없을 것이며, 막을 뜻도 없다. 앞으로 잘될 것이란 답을 받았다.”고 밝혔다. 정 장관은 14일 임동옥 노동당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을 만나 금강산 관광 문제를 논의하고 미·일측의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강산 관광사업은 국민의 세금이 들어간 사업”이라면서 정부의 적극 개입 의지를 밝혔던 정 장관은 15일 묘향산 참관을 오가는 4시간 동안 권호웅 내각책임참사와도 ‘벤츠’ 승용차 안에서 밀도 높은 협의를 했다. 현대 금강산 관광 이슈의 부각으로, 이번 회담은 장관급회담이 아닌 ‘금강산 관광 회담’으로 바뀐 듯한 분위기다. 장성급회담 재개 및 남북상주연락대표부 설치 등 한반도 평화문제와 관련한 주 의제는 북측의 주한미군 철수 및 한·미군사훈련 중지 선결 주장으로 15일 밤 늦게까지 난항을 겪었다.●“북 조치, 남측 여론 나쁘게” 정 장관은 “사태 조기 수습을 위해 남북 사업자간 직접 만날 것을 북측에 제안했고 북측이 동의했다.”며 현정은 현대회장과 이종혁 북측 아태평화위부위원장이 곧 만나 사태 해결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이 만남에서 금강산 관광사업의 정상화 계기가 찾아질지 여부가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정 장관은 “북측이 금강산 사업을 앞으로도 현대와 하겠다는 의미냐.”는 질문엔 “상식 아니겠느냐.”고 답했다. 정 장관이 북측에 강조한 논점은 “북측조치가 남측 여론을 나쁘게 만들고, 국민과 대북 사업자들이 사태 추이를 보면서 우려하고 있다.”는 것이었다.●“김윤규 공 크다. 현대엔 실망” 이에 대해 북측은 “금강산 관광사업은 정주영·정몽헌 회장이 오랜 과정을 거쳐 어렵게 개척한 사업이고 그 과정에서 김윤규 부회장의 공로가 컸다.”면서 “현대 내부 문제로 실망했고 이 사업을 계속하는 데 대한 현대측의 의지마저 의심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북측도 금강산사업은 남북 경협의 대표사업이고, 남북관계 밑거름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고 한다. 한편 정 장관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친서를 전달해 달라는 요청을 현 회장이 했지만, 장관급 회담 수석대표로서 부적절하다고 판단해 현대측에 직접 전달할 것을 권유했다.”고 설명했다.평양공동취재단 서울 김수정기자crystal@seoul.co.kr
  • [외교문서 공개-베트남戰] “한국군 김치통조림 먹을수 있게”

    [외교문서 공개-베트남戰] “한국군 김치통조림 먹을수 있게”

    당대에 여론을 뜨겁게 달궜던 베트남전 참전과 한일협정 체결 등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의중 대로 밀어붙이고 결정하고 주관한 것으로 26일 공개된 외교문서에서 확인됐다. 박 전 대통령은 당시 명실상부한 최고권력자로서 총체적인 그림을 그린 ‘지휘자’이자 실무적인 문제까지 일일이 챙긴 사실상의 ‘연주자’였다. 베트남전 외교문서에 따르면,1967년 9월 박 대통령은 미국으로부터 한국군 증파 요청을 받고 외무장관한테는 “미국에는 일단 대통령이 신중히 검토하라고 했다는 취지로 말해 둬라.”고 ‘전략적 지시’를 내린다. 나중에 박 대통령 자신이 미국 대통령을 만날 기회가 되면 직접 의사를 밝히겠다는 심산이었다. 박 대통령은 실제 클리포드 테일러 미 대통령 특사로부터 한국군 증파 요청을 받고 “전투병력 증파는 곤란하다.”고 일단 난색을 표명한다. 앞서 같은 해 3월8일 정일권 당시 국무총리가 방미할 때 박 대통령은 린든 존슨 대통령에게 보내는 친서를 쥐어줬는데, 편지의 내용은 뜻밖에도 ‘김치’ 얘기였다. 실무적인 현안까지 챙긴 대표적 사례다. 친서에서 박 대통령은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나 매일 매식 빼놓을 수 없는 특이한 고유의 전통 부식 김치만이라도 하루바삐 월남에 있는 우리 군인들이 먹을 수 있게만 하더라도 사기는 훨씬 앙양될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만일 한국군에 한국음식의 야전식량을 공급하게만 된다면 사기와 전투력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증가할 것으로 확신한다. 각하께서 이 특별한 사정을 양찰하시고 월남의 한국군인들이 한국음식을 먹을 수 있게 하는 방안에 대해 특별한 관심과 조치를 바란다.”고 했다. 이어 “한국 정부는 한국음식을 먹고 싶어하는 월남에 있는 한국 군인들의 소원을 풀어 주기 위해 통조림으로 된 야전식량의 연구, 생산을 이미 9개월 전부터 착수해 성과는 매우 만족스러운 상태”라며 “그 제품의 일부는 미 국방부의 식품연구소에 보내 시험 중인데 중간검사 결과가 매우 좋은 것으로 듣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편지를 받아본 존슨 대통령은 국방장관에게 즉각 ‘조치’를 지시하고, 정 총리는 박 대통령에게 “김치문제는 머지않아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는 ‘낭보’를 띄운다. 5·16 직후인 1962년 당시 권력 2인자로서 거의 독자적으로 오히라 일본 외상과 담판을 벌인 것으로 지금껏 알려져 왔던 김종필(JP) 중앙정보부장도 알고 보니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으로부터 일일이 지시를 받고 움직인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다.JP는 도쿄에서 ‘의장 각하’에게 친서를 띄워 자신의 동선(動線)과 회담경과를 상세히 보고하는 등 수시로 박 의장의 가이드라인을 구했다. 이에 박 의장은 JP를 ‘귀하’로 칭하는 자필 서신과 훈령 등을 통해 “청구권 명목을 독립축하금 또는 경제협력으로 한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등의 지침을 하달했다. 나아가 “일측에서 독도문제를 다시 제기하는 경우에는 한국민에게 일본의 대한 침략의 경과를 상기시킴으로써 회담의 분위기를 경화시킬 우려가 있음을 지적할 것”이라는 등의 협상전략을 하달하는가 하면 “혁명정부라고 해도 6억불 이하로 하강하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며 청구권 액수를 구체적으로 지시하기도 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아웅산 보복 北폭격’ 소문…워커가 저지했다

    ‘아웅산 보복 北폭격’ 소문…워커가 저지했다

    ●아웅산 보복 막은 리처드 워커 글라이스틴의 후임자인 워커는 직업 외교관이 아니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출신의 아시아 전공 학자였다. 남부 출신인 그에게는 ‘딕시’라는 별명이 따라다녔다.(미국에서는 남부 주들을 ‘딕시 랜드’라고 부른다.) 워커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당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공화당 중진인 서몬드 스트롬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상원의원의 추천으로 임명됐다. 선거 공신인 스트롬 의원은 출신지역의 인물을 주요 포스트에 앉히고 싶어 친구인 워커에게 “어느 자리를 원하느냐.”고 물었고, 워커는 “한국 대사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워커 대사 재임기간인 1983년 미얀마 양곤을 방문 중이던 전두환 대통령을 겨냥한 북한 정권의 아웅산 테러가 발생했다. 워커는 전 대통령이 아시아 순방을 중단하고 서울로 돌아오자마자 그를 만났다. 당시 전 대통령이 아웅산 테러에 대한 보복으로 북한을 폭격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고 오버도퍼 교수는 말했다. 워커 대사는 전 대통령에게 “북한에 대한 보복 공격은 동북아 전쟁을 불러올 수 있다.”면서 “그러지 말아달라.”고 설득했다고 한다. 이에 전 대통령은 “이미 보복 공격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고 오버도퍼 교수는 전했다. ●6월 항쟁 때 군 출동 경고한 제임스 릴리 릴리 대사는 중앙정보부(CIA) 출신이었다. 릴리는 글라이스틴과 마찬가지로 중국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의 부모는 선교사가 아니라 사업가였다. 릴리 대사의 재임 중 한국의 민주화 운동이 절정에 달했다. 대학생뿐만 아니라 수십만명의 시민이 거리로 나서 민주화를 요구했다. 당시 전 대통령은 군을 동원해 민주화 운동을 진압하려 했다고 오버도퍼 교수는 말했다. 그러나 군이 나서면 파국에 이를 것이란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었다. 이를 막기 위해 당시 김경원 주미대사가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전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달라고 백악관에 요청했다고 오버도퍼 교수는 전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여 전 대통령에게 “진압보다는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하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메시지는 분명했지만 표현은 매우 정중했다고 오버도퍼 교수는 말했다. 그러나 레이건 대통령의 친서를 갖고 전 대통령을 만난 릴리 대사는 편지 내용보다 훨씬 강력한 어조로 전 대통령에게 경고했다고 오버도퍼 교수는 전했다. 릴리 대사는 미군 지도부도 레이건 대통령과 같은 생각이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어떤 이유에서건 결국 전 대통령은 군을 투입하지 않았다. 그 직후 노태우 민정당 대표의 6·29 선언이 나왔고,87년 대선에서 야당 지도자인 김대중·김영삼의 분열로 결국 노태우가 당선됐다. ●한반도 비핵화 추진한 도널드 그레그 그레그 대사도 CIA출신이다. 그는 1970년대 하비브 대사 시절 CIA한국지부장을 지내며 김대중 납치 사건 때 김대중을 살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오버도퍼 교수는 설명했다. 중국 및 러시아 전문가인 그레그는 1980년대 조지 H W 부시가 부통령일 때 그의 안보보좌관을 지내며 부시와 매우 가까웠다고 한다. 그레그 대사의 주요 임무는 한국에 배치된 전술 핵무기를 철수시키는 것이었다고 오버도퍼 교수는 말했다. 그레그 대사 본인이 한국에서의 핵 철수 정책을 강력히 지지했다는 것이다. 오버도퍼 교수는 그것이 노태우 대통령이 추진한 남북협상의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었고, 그 바탕에서 남북기본합의서가 나왔다고 평가했다. 당시 미국 정부는 노 대통령의 ‘북방정책’을 지지했다. 그러나 그 정책은 기본적으로 노 대통령이 주도한 것이며, 미국은 작은 도우미 역할에 지나지 않았다고 오버도퍼 교수는 진단했다. 북한과 화해하고 중국, 러시아와 수교한 노태우 대통령의 북방정책과 노무현 현 대통령의 대북정책이 비슷한 점이 있지만 ▲시기와 주변 상황이 다르고 ▲지금은 북핵 문제가 걸려 있는 점이 다르다고 오버도퍼 교수는 말했다. 물론 그레그 대사 시절에도 북한의 핵 문제는 잠재해 있었지만 실제로 표면화된 것은 93,94년이다. ●워싱턴 고위당국자들의 책상을 내려친 제임스 레이니 민주당 출신의 빌 클린턴 대통령이 임명한 레이니 대사는 외교관이 아니라 대학교수였다.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에머리 대학에서 강의하던 그는 같은 주 출신인 카터 전 대통령과 아주 가까웠다. 젊은 시절 주한미군에서 근무했고 연세대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다. 그 때문에 한국 친구가 많았다고 한다. 레이니 대사 시절 북핵 문제가 터졌다. 그러나 당시 워싱턴에서는 북핵 문제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레이니 대사는 미 정부의 주요 정책결정자들을 만나 북핵 문제가 매우 심각한 사안임을 강조하는 데 주력했다고 오버도퍼 교수는 전했다. 레이니는 당시 미 정부 고위 당국자들의 인식이 기대에 못 미치자 주먹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심각성을 설파했다고 오버도퍼 교수는 말했다. 94년 들어 북핵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항공모함을 포함한 대규모 미군이 한반도로 향했다. 북한이 유엔 제재에 반발, 군사적 도발을 할지도 모를 상황에 대한 대비였다고 한다. 레이니는 비행기와 선박을 이용, 한국내 모든 미국인을 피신시키려 했다. 일단 무력충돌이 일어날 경우 매우 위험한 전쟁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었다고 오버도퍼 교수는 말했다. 그러나 카터 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 김일성 북한 주석을 만나면서 문제가 해결됐다. 카터는 레이건 행정부 시절부터 평양을 방문해달라는 북한 당국의 초청을 받아왔다. 카터가 대통령 재임시 김일성, 박정희와 비무장지대(DMZ) 3자회담을 추진하는 등 북한을 포용하려는 태도를 보인 것 등이 원인인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레이건과 H W 부시 정부는 “미국의 외교정책 방향과 맞지 않는다.”면서 카터의 평양행을 원하지 않았다. 북핵 위기의 한복판에서 카터가 평양을 방문한 것은 레이니 대사의 권유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고 오버도퍼 교수는 말했다. ●목소리 낮았던 스티븐 보스워스 보스워스 대사는 외교관이면서 경제 전문가였다. 주한 미국대사 가운데 실질적으로 경제문제에 관심을 기울인 인물은 보스워스가 처음일 것이라고 오버도퍼 교수는 평가했다. 경제 전문가인 보스워스 대사 시절 한국이 금융위기를 맞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상황에 들어간 것은 흥미롭다. 보스워스 대사는 외부에 큰 목소리를 내지 않는 ‘로 키’를 유지했다고 오버도퍼 교수는 말했다. 그러나 그는 재임 당시 누구보다 한국의 현실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보스워스 재임기간인 2000년 6월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이 평양에서 열렸다. 보스워스를 비롯한 미 당국자들은 공식적으로 남북 정상회담에 반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워싱턴에서의 평가와 입장은 사람에 따라 달랐다고 오버도퍼 교수는 말했다. 그러나 미 정부가 남북 정상회담을 막으려 하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다고 그는 전했다. 보스워스 대사는 미국이 클린턴 정부에서 조지 부시 정부로 넘어가면서 대북 정책이 바뀌는 과정도 겪었다. ●부시가 지명한 3명의 주한대사 외교관 출신인 토머스 허버드 대사는 북한과 많은 협상을 벌여온 북한 전문가였다. 허버드는 제네바 협상 당시 미국 대표단에 포함돼 있었고,95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후속 경수로 협상에선 미국 대표단을 이끌었다. 이후 다른 협상으로 평양을 자주 방문했다. 오버도퍼 교수는 부시 대통령이 남북관계 전문가인 허버드를 자신의 첫 주한대사로 지명한 것은 논리적인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평양 당국과의 협상이 주요한 한반도정책이었기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은 허버드 대사를 포함, 최소한 3명의 주한대사를 지명하는 대통령이 됐다. 오버도퍼 교수는 크리스토퍼 힐 대사와 알렉산더 버슈보 대사 내정자의 인선은 허버드 대사와 달리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의 입김이 많이 작용한 것으로 평가했다. 힐과 버슈보 모두 유럽 전문가들이다. 힐은 한국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지만 폴란드와 발칸반도 등 유럽에서 능력을 발휘했고, 버슈보는 라이스처럼 소비에트 전문가로 나토와 러시아 대사를 지냈다. 오버도퍼 교수는 힐 대사에 대해서는 “너무 짧은 기간 대사로 일했기 때문에” 구체적인 코멘트를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오버도퍼 교수는 한국에서 힐 차관보의 인기가 높은 것과 관련,“힐 대사의 인기는 대북 협상이 성공적일 경우 계속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또 힐 차관보는 전임자인 제임스 켈리보다 정부 내에서 힘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오버도퍼 교수는 부시 대통령이 버슈보 같은 거물을 차기 주한대사에 지명하려는 것은 한국에 대한 관심을 보이는 측면도 있다고 평가했다. 오버도퍼 교수는 버슈보가 유능한 외교관이며 그의 역할은 한·미 정부간의 ‘복잡한’ 상황 때문에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오버도퍼 교수는 17년간 미국 ‘워싱턴포스트’의 국제관계 전문 기자로 활동하면서 1970년대 이래 모든 주한 미국대사와 한국 대통령·외교부 장관·주미 한국대사를 인터뷰한 경험을 갖고 있다. 포병장교로 한국전쟁에도 참전했으며 1993년 기자를 그만둔 뒤 ‘두 개의 한국’이란 책을 쓰기도 했다. 이 책은 미 정부 한국 담당 관료들의 필독서로 꼽힌다. 현재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국제관계학을 가르치고 있다. 워싱턴 이도운특파원 dawn@seoul.co.kr
  • 헌화·분향없이 추모 묵념

    헌화·분향없이 추모 묵념

    광복 60돌 기념 ‘자주평화통일을 위한 8·15 민족대축전’에 참가하기 위해 14일 서울에 온 북측 당국 및 민간 대표단이 오후 3시 동작동 서울 국립현충원을 공식 참배했다. 북한측 인사가 현충원을 참배한 것은 처음이다. 북측 대표단장인 김기남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 등은 또 오는 17일쯤 청와대로 노무현 대통령을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특사’ 자격 여부와 함께 친서를 전달할지가 주목된다. 북측 대표단은 16일에는 분단 사상 처음으로 국회를 방문, 남북 국회회담 개최방안 등을 협의할 예정이다. 남북 국회간 교류가 급물살을 탈 조짐이다. 이날 현충원 참배에는 김기남 당 비서와 임동옥 노동당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 최성익 조선적십자회 중앙위 부위원장 등 14명의 당국 대표단과 안경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장, 김정호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중앙위원장, 성자립 김일성종합대 총장 등 13명의 민간대표단, 기자 3명 등 모두 30명이 참석했다. 북측 대표단은 6·25 전사자 위패와 무명용사 유골이 봉안된 현충탑 앞에 도열,“순국선열 및 호국 영령에 대해 묵념”이라는 집전관의 구호에 따라 약 5∼6초간 묵념했다. 그러나 헌화와 분향 순서는 생략했으며, 방명록에 서명을 하진 않았다. 김기남 비서는 이에 앞서 숙소인 서울 워커힐호텔에 도착한 직후 정동영 통일부장관 등 우리측 대표단과의 환담에서 “조국 광복을 위해 생을 바친 분이 있어 방문하겠다는 의견을 제기한 것”이라고 말해 6·25 전몰 군경이 아닌 광복 유공자를 위한 추모 차원에서 방문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북측 자문위원인 임동옥 제1부부장은 이 자리에서 “현충원 (참배) 결정은 어려운 것이었고 언젠가는 넘어야 할 관문”이라며 “6·15 시대에는 모든 것을 초월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앞서 북측 당국대표 17명, 남녀축구선수단 65명, 민간 대표 100여명 등 180여명은 이날 오전 10시5분과 10시20분 고려항공 전세기 2편에 나눠 타고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김수정 김상연기자 crystal@seoul.co.kr
  • 김정일“한반도 비핵화 위해 6자회담은 중요한 장”

    김정일“한반도 비핵화 위해 6자회담은 중요한 장”

    |베이징 오일만특파원|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6자회담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중요한 장’이라고 말했다고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13일 보도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이날 오후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의 특사로 평양을 방문 중인 탕자쉬안(唐家璇) 국무위원을 만난 자리에서 “한반도 비핵화 실현은 북한의 목표”라며 “6자회담이 한반도 비핵화 실현을 위한 중요한 장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고 신화통신이 전했다. 탕자쉬안 국무위원은 이 자리에서 ‘이번 6자회담에서 실질적인 진전이 이뤄지길 바란다.’는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구두친서’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탕 국무위원의 방북은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의 중국 방문 직후 이뤄진 것이어서 미국측의 대북 메시지를 북한에 전달했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탕 국무위원은 평양에 도착한 첫날인 12일 박봉주 북한 내각총리, 백남순 외무상과 각각 회담했으며 13일에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 위원장과도 면담했다. 이와 관련, 알렉산드르 알렉세예프 러시아 외무차관은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환영한다고 밝힌 뒤 “북한에 대한 안전보장이 한반도 핵문제 해결의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고 13일 이타르타스통신은 보도했다. oilm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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