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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000년 전 이집트 ‘절규하는 여성 미라’의 비밀…CT 검사로 밝혀졌다

    3000년 전 이집트 ‘절규하는 여성 미라’의 비밀…CT 검사로 밝혀졌다

    1881년 이집트 남부 유적도시 룩소르(고대도시 테베) 서쪽 다이르 알바흐리 근처에서 암굴 무덤이 발견됐었다. 이른바 ‘왕가의 은신처’(Royal Cache)라 불리는 이 비밀 무덤은 원래 21왕조 때 대사제 피네젬 2세와 그 가족들을 위한 것이었지만, 도굴 위험이 큰 피라미드나 왕가의 계곡에 있는 파라오, 왕비, 왕족 등의 미라 50여 구를 거둬들여 재매장한 곳이다.그중에는 외형 때문에 ‘절규하는 여성의 미라’라 불리는 기묘한 미라가 있다. 미라는 보통 내세의 부활을 위해 정성스럽게 안치하지만, 이 여성은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는 듯한 표정과 딱딱하게 뒤틀린 몸으로 미라화돼 있다. 왕족으로 보이는 이 여성이 왜 이런 상태로 안치됐는지는 그동안 학계에서도 의문이었다. 그런데 이집트 카이로대 연구진이 최신 연구로 이 여성 미라는 생전 심근경색에 따른 심한 경련을 일으켰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알아냈다.사실 이 무덤에서는 또 다른 절규하는 미라가 나왔었다. 2018년 연구에서 이 미라는 20왕조의 왕자인 펜타웨어(기원전 1173~1155년)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펜타웨어 왕자는 친부인 람세스 3세를 암살하는 계획을 세운 역모죄로 스스로 목을 맬 것을 강요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유해는 부정한 것으로 여겨져 왕족임에도 불구하고 정식으로 방부 처리가 되지 않았고 양 가죽으로 감겨졌을 뿐이었다. 그의 비참했던 최후는 미라에 남아있는 표정이 고스란히 보여준다. 반면 이번에 연구 대상이 된 절규하는 여성 미라는 펜타웨어 왕자보다 더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다. 얼굴은 오른쪽으로 기울었고 몸은 경직됐으며 다리는 교차하듯 뒤틀려 있다. 크게 벌어진 입가에는 고통스러운 표정이 역력하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자히 하와스 박사와 사하르 살림 박사는 이 여성 역시 펜타웨어 왕자와 똑같이 취급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조사를 시작했었다.유전자 본체(DNA) 분석 결과, 여성은 약 3000년 전 60대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펜타웨어 왕자와 달리 장기가 제거된 뒤 향료와 수지 등이 담겨 있고 방부 처리가 제대로 돼 있으며 값비싼 아마포에 감싸져 있었다. 전문가들은 이 여성의 이름이 메레트 아문(Meret Amun)으로 기록돼 있어 17왕조 파라오 세케넨레 타오 2세나 19왕조 파라오 람세스 2세의 딸인 공주로 보고 있지만, 특정할 수 없어 ‘알 수 없는 여성 A의 미라’로 분류했다.또 여성은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에서 생전 ‘아테롬성 동맥경화증’(죽상 동맥경화증)을 앓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병은 대동맥, 뇌동맥, 관상동맥과 같은 굵은 동맥에 생기는 경화증으로 동맥 내벽에 콜레스테롤 등으로 이뤄진 걸쭉한 지질(아테롬)이 쌓이고, 심해지면 협심증이나 심근경색, 뇌경색을 일으킨다. 아테롬성 동맥 경화증은 고혈압과 당뇨병, 비만, 흡연, 운동 부족 그리고 앉아있는 시간이 긴 생활 등이 주요 발병 원인이다. 이 여성의 경우 동맥경화에 의한 심근경색이 사인으로 보이고 죽음 직전에 심한 경련을 일으켜 그대로 경직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아마 사후 몇 시간 동안 발견되지 않고 방치돼 몸을 원래대로 돌릴 수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왕족 특유의 사치스러운 생활 습관 때문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여성 미라는 펜타웨어 왕자와 같은 죄인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탈북해 베트남인으로 살던 지혜… 6년 만에 한국인 됐다

    탈북해 베트남인으로 살던 지혜… 6년 만에 한국인 됐다

    탈북한 엄마, 美 목사 부부에게 딸 맡겨中 단속 피해 베트남인 허위 출생 신고한국서 5년 10개월… 마침내 국적 취득 탈북민의 딸로 태어나 아홉 살에야 비로소 한국 국적을 얻게 된 소녀가 있다. 2011년 8월 27일 중국 지린성에서 태어난 김지혜양은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를 거쳐 베트남 국적으로 2014년 9월 한국에 첫발을 디뎠다. 이후 5년 10개월을 ‘투명인간’처럼 살다가 최근 한국 국적을 최종적으로 인정받았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지난달 19일 김양이 법무부를 상대로 “한국 국적을 인정해 달라”며 제기한 국적비보유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확정했다. 탈북민이 국적비보유처분에 불복해 낸 소송에서 이긴 첫 사례다. 법무부 국적과도 지난 1일 김양의 국적보유판정 신청을 받아들였다. 김양은 한국에 입국한 이듬해 국적 판정을 신청했다. 헌법과 대법원 판례에 따라 북한 주민은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에 거주하는 사람으로서 한국 국민에 해당하고, 친부모 모두 북한 출신인 김양은 출생과 동시에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는 점을 근거로 내세웠다. 그러나 법무부가 김양의 친부모 관련 정보가 확인되지 않는다는 이유 등을 들어 2018년 3월 국적비보유판단을 내리면서 김양의 ‘국적 투쟁’은 법정으로 가게 됐다. 그동안 김양은 미국인 목사 어네스트 임산드(41) 부부의 보살핌을 받았다. 목사 부부는 김양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곁을 지켰다. 김양에게는 북한 장마당에서 물건을 팔다가 보위부에 끌려간 아버지나 임신한 몸으로 돈을 벌기 위해 압록강을 건너 탈북한 어머니 송모씨에 대한 기억이 없다. 지린성 옌볜조선족자치주 옌지시에서 탈북민을 돕는 일을 했던 목사 부부에게 송씨가 딸을 맡기며 말했다. “아이 이름은 ‘지혜’라고 해 주세요.” 그러나 김양은 부모가 유일하게 남겨 준 ‘지혜’라는 이름 대신 ‘뉴겐헝안’으로 살았다. 목사 부부는 중국 정부의 탈북민 단속을 피해 한국행을 결심하면서 김양의 베트남 국적과 여권을 구하기 위해 베트남인 부부의 딸로 허위 출생신고를 했다. 국적 취득 과정에서 법무부는 이 베트남 국적을 문제 삼았다. 그러나 재판부는 ‘김양이 베트남인으로 출생신고를 한 것은 스스로의 의지가 아니었다’며 애초부터 베트남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것으로 인정했다. ‘대한민국 국민’이 된 김양은 이제 초등학교에 갈 수 있다. 가족관계증명서도 새로 만들었고 건강보험과 사회복지 서비스도 받을 수 있다. 곧 정식으로 법원에 개명 신청을 할 계획이다. 김양의 소송을 대리한 하만영 변호사는 “김양은 미국인 목사 부부의 도움으로 북한 출신이라는 증거가 충분히 확보돼 승소할 수 있었다”며 “중국이나 베트남, 제3국을 거쳐 한국에 온 탈북민 대다수가 숨어 사느라 증거가 없어 국적을 인정받지 못하는 만큼 사회적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진선민 기자 jsm@seoul.co.kr
  • 추사와 다산, 김환기가 숨쉬는 곳… 현세의 ‘무릉도원’속으로

    추사와 다산, 김환기가 숨쉬는 곳… 현세의 ‘무릉도원’속으로

    한양도성 순성이 도성 안팎으로 확대될 무렵 많은 사람들이 찾은 곳이 북악산과 인왕산, 북한산으로 둘러싸인 부암동이다. 인왕산 북벽 기슭 청계동천과 북악산 북벽 기슭 백석동천은 신선들이 사는 별천지, 동천복지(洞天福地)를 꿈꾼 곳이다. 그야말로 무릉도원이다. 어지러운 세상 잠시 잊고 꿈꾸듯 무릉도원을 걷는다. 광화문에서 버스를 타고 상명대 앞 삼거리에서 내렸다. 버스 정류장 앞 건널목을 지나면 석파랑(石坡廊)이 나온다. 대원군 이하응의 호 ‘석파’를 딴 이름이다. 1958년 소전 손재형이 석파정에 있던 일곱채 건물 중에서 별당 석파랑만을 현재 위치로 옮겨 지었다. 1819년 대과에 급제한 추사 김정희는 아버지 유당 김노경의 자제군관 자격으로 연행에 나선다. 1820년 1월 추사는 보소재 석묵서루에서 담계 옹방강(1733~1818)을 만난다. 스승 초정 박제가가 세 차례 연행하면서 옹방강과 교류했던 것에 비춰 보면 아마도 초정이 만나라고 권고한 듯하다.추사는 청나라 금석학의 대가 담계 옹방강을 깊이 흠모하면서 당호를 보담재(寶覃齋)라고 짓는다. 전국에 있는 비석을 탁본해 첩을 만든다. 원형을 간직한 우리나라와 중국 비석 글씨를 연구한다. 그 과정에서 북한산에 있는 비석이 진흥왕순수비라는 사실을 밝힌다. 스승 옹방강은 한나라 훈고학과 송나라 성리학을 서로 보완해 경학을 한다. 한송불분론(漢宋不分論)이다. 추사는 스승을 좇아 성리학과 청나라 고증학을 절충함으로써 북학의 틀을 확고히 하고 개화를 준비한다. 그러나 또 한 번 북청 유배길에 오르면서 모든 게 산산이 부서진다. 대신 유배지에서 붓 천 자루를 몽당붓을 만들고 벼루를 열 개나 밑창 내고서 추사체를 완성한다. 추사를 찾아 나룻배를 타고 서귀포까지 온 사람이 있다. 제자 이상적이다. 제자 이상적의 절개에 감복한 추사는 자신의 심경을 한 장 그림으로 표현한다. ‘세한도’다. 이 그림에 등장하는 집은 김흥근의 부암동 별서 삼계동산정 별당 월천정(三溪洞山亭 別堂 月泉亭), 즉 흥선대원군 석파 이하응의 석파정 석파랑(石坡亭 石坡廊)이다. 송백은 석파정 정원수다. 추사와 이상적이다. 서울미래유산인 석파랑의 주인 소전 손재형은 22세부터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연이어 7회나 입선 또는 특선을 한다. 1933년부터 선전 심사위원 연 3회, 광복 후 국전(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을 연 8회 역임한다. 홍익대 미대 교수를 지냈다. 1944년 미군의 공습이 연일 계속되는 도쿄로 가서 세한도를 되찾아 온다. 세한도에 등장하는 석파정 별당을 옮겨 짓고 석파랑이라 부른다.석파랑에서 다시 도로를 건너 직진하면 도롯가에 멋진 정자, 세검정이 나타난다. 광해군은 어머니 인목대비를 경운궁에 유폐시킨다. 또 인목대비의 아들 영창대군을 강화로 유배 보내고 사실상 살해한다. 폐모살제(廢母殺第)한 광해의 패륜을 응징하기 위해 1623년 인조반정을 단행한다. 김류·이귀·심기원·김경징 등 반정공신들은 세검정에 모여 반정을 모의한 후 칼을 씻으면서 결의를 다진다. 반정군은 모화관에서 심기원의 병사와 합류한 후 창의문을 부수고 창덕궁을 점령한다. 광해군은 역모의 기미를 알았지만 적극 대처하지 않았는데 이는 김개시라는 상궁 때문이다. 실록은 상궁 김개시를 다음과 같이 평한다. “김상궁은 이름이 개시(介屎)로 나이가 차서도 용모가 피지 않았는데, 흉악하고 약았으며 계교가 많았다. 춘궁의 옛 시녀로서 왕비를 통하여 나아가 잠자리를 모실 수 있었는데, 인하여 비방으로 갑자기 사랑을 얻었다.” 실록에서는 보기 드물게 여자의 용모와 잠자리 비방 등을 직접 거론한다. 김개시는 광해의 총애를 받는다. 그런데도 그냥 상궁으로 머물렀다. 세검정에는 남인 다산 정약용의 흔적도 남아 있다. 목멱산(남산) 아래 명례방(명동) 집에서 벗들과 술잔을 기울이던 1791년 신해년 여름 어느 날 다산이 말을 타고 창의문 밖으로 냅다 달린다.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세검정에 올라 자리를 벌이니 비바람이 크게 일어나 산골 물이 사납게 들이친다. 그날 다산이 세검정에서 벗들과 노닐었던 기록, ‘유세검정기’에서 세검정을 이렇게 즐기라고 일러 준다. “세검정의 빼어난 풍광은 오직 소낙비에 폭포를 볼 때뿐이다. 그러나 막 비가 내릴 때는 사람들이 옷을 적셔 가며 말에 안장을 얹고 성문 밖으로 나서기를 내켜 하지 않는다. 비가 개고 나면 산골 물도 수그러들어 버린다. 이 때문에 정자가 저편 푸른 숲 사이에 있는데도 성중의 사대부 중에 능히 이 정자의 빼어난 풍광을 다 맛본 자가 드물다.” 세검정에서 하천을 따라 걸어가다가 오른쪽 골목길로 접어들면 별서 터가 나온다. 그야말로 서울 시내에 있는 보물이다. 별서 터에는 사랑채와 안채 등 두 채 집터와 연못 두 개와 정자 한 개 그리고 우물 등이 있다. 처음 별서정원을 가꾼 사람은 연객 허필(1709~1768)이다. 표암 강세황과 절친했다. 두 사람 다 시서화에 능했기 때문에 연객이 그린 그림에 표암이 시를 짓기도 하고 표암이 그린 그림에 연객이 찬하기도 했다. 연객 허필이 이곳에 별서를 조영했을 때는 그저 소박한 띠집이었다. 사랑채와 안채, 연못과 정자를 조영한 사람은 추사의 생부 유당 김노경이다. 연객과 유당에 이어 이곳 백석동천에 별장을 소유했던 사람은 연암 박지원(1737~1805)의 아들 박종채(1780~1835)다. 한 가지 궁금하다. 1935년까지도 멀쩡하던 연못 정자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나?별서 터에서 산길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면 왼쪽 길가에 백석동천(白石洞天)이라 각자한 바위가 나온다. 백석동천에서 말하는 백석은 열선도(列仙圖)에 등장하는 신선 백석생(白石生)이 들어가 살았던 백석산(白石山)이다. 백석생은 백석을 삶아 식량 삼아 먹으면서 백석산에서 살았다. 하늘로 오르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하늘 위 신들의 세계라고 해서 인간세계보다 반드시 즐거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난해서 돼지 살 돈도 없었던 백석생은 양을 사서 십여 년 길렀다. 많은 돈을 벌어 내단약 금즙(金液)을 사서 먹고 백석산으로 들어갔다.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보다 오래 사는 것을 더 귀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불노불사의 신선이 노니는 동천복지(洞天福地)를 구현하고자 했기 때문에 동천이라 했다. 산속 깊은 곳에 있다고 믿었던 신선들이 사는 별천지를 일컬어 동천복지라 한다. 일반적으로 속세와 격리된 산속 살기 좋은 땅을 뜻한다. 백석과 동천을 서로 엮으면, 백석산 깊은 곳 백석생이 사는 동천복지와 같은 별천지가 된다. 그야말로 신선이 노니는 도교적 이상향, 백석동천이 바로 이곳이다. 백석동천의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커피프린스’를 촬영한 카페가 나온다. 북악산 성곽과 인왕산 성곽이 한눈에 들어온다. 다시 산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오른쪽 골목길 아래로 돌아들면 환기미술관이다. 김환기는 1913년 2월 27일 전남 신안군 기좌도에서 태어났다. 김환기에게 가장 중요한 시기는 광복부터 한국전쟁까지다. 1948년 서울대 미대 교수로 재직한다. 서울대 미술학부를 만든 동양미술사학자 근원 김용준과 교유하면서 우리 고미술과 한국미를 새롭게 발견한다. 산 중턱에 걸린 달, 길게 날아가는 학, 매화 긴 가지 등 한결같이 예서를 방불케 한다. 파리 시기를 통해 오히려 한국미를 확신한다. 김환기에게는 기좌도도, 서울도, 파리도 작았다.전환점은 1963년부터 1974년까지 뉴욕 시기다. 파리가 아닌 뉴욕에서 정점을 찍는다. 1969년 김환기는 뉴욕에서 절친 김광섭 시인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실의에 빠진다. 김광섭의 시 ‘저녁에’를 주제로 마지막 시구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제목으로 전면점화(全面點畵)를 그린다. 환기미술관에서 김환기 그림을 다시 본다. 김환기의 점화는 고구려 고분벽화를 가득 메운 고구려 사람들이 입은 땡땡이 옷이다. 도교사원 운주사를 가득 메운 석탑과 석상이다. 김광섭의 시를 가득 메운 별이다. 김환기, 그림, 별, 김광섭 그리고 시! 한양성곽 4소문 중 하나로 북소문 창의문을 만든 것은 1396년이다. 임진왜란 때 타고 없는 문루를 1741년 중수하기는 했으나 4소문 중에서 유일하게 원형 그대로 원래 위치를 지키는 문이다. 사람들이 창의문을 기억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인조반정 당시 반정군이 이 문을 지나 창덕궁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광해군 15년 1623년 세검정에서 결의를 다진 반정군과 능양군(훗날 인조)의 친정군이 합류해 창의문을 깨고 창덕궁으로 들어간다. 광해는 역모의 상소를 읽었지만 무시했다. 반정군이 창의문 밖에 모여 있다는 밀고까지 받았지만 반정군에 합세한 훈련대장 이흥립의 소극적인 대처로 이 또한 무효였다. 어머니 인목왕후를 폐위하고 동생 영창대군을 죽였다는 게 반정의 명분이었다. 그러나 광해의 가장 큰 실책은 ‘왕기(王氣)가 있다’는 이유로 동생 정원군(인조의 친부)의 아들 능창군(인조의 동생)을 유배 보낸 것이다. 유배지 강화에서 능창군은 목매 자결한다. 결국 광해가 능창군을 죽인 셈이다. 능창군의 형 능양군이 가만히 있다면 그게 패륜이다. 둘째는 이곳의 유명한 치킨집과 연관시켜 예사롭지 않게 보고 있는 아름다운 그림 때문이다. 분명 봉황인데 사람들은 자꾸만 닭이라고 한다. 봉황 모가지를 닭 모가지처럼 그리기도 했다. 창의문 밖에서 바라본 부암동 형상이 마치 지네와 같아 지네의 기운을 누르기 위해 지네의 천적인 닭을 길렀다. 그래서 부암동에는 독특한 맛으로 유명한 치킨집이 많다. 글 최석호 한국레저경영연구소 소장 사진 김학영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연구위원●그 외 부암동 일대의 서울미래유산 세이장 1974년 지어진 주택이며, 건축가 김수근이 직접 살기도 한 건물 체부동 성결교회 벽돌 쌓기 방식으로 1920년대 건립된 교회 서촌 한옥밀집지역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도시형 한옥들로 구성된 독특한 경관이 형성돼 있는 마을 통인시장 각 점포의 개성과 이야기를 담은 작품 전시 등 문화와 예술이 함께하는 재래시장 김봉수 작명소 1958년쯤 개업해 같은 지역에서 2대째 가업을 이어 오고 있는 작명소 이상의 집 시인 겸 소설가 이상이 1912년 백부의 양자로 들어가면서 기거했던 가옥의 터 ●다음 일정 : 제9회 잠실의 추억●출발 일시 : 25일 오전 10시 출발●신청(무료) :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문의 : 서울도시문화연구원(www.suci.kr)
  • 베트남인으로 살 뻔한 지혜, 5년 10개월 걸려 우리 국적 취득

    베트남인으로 살 뻔한 지혜, 5년 10개월 걸려 우리 국적 취득

    무려 5년 10개월이 걸렸다. 중국에서 태어난 북한이탈주민(탈북민)의 딸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뒤 국적 취득에 걸린 오랜 시간이다. 법무부 국적과는 지난 1일 김지혜(9·베트남 이름 뉴겐 헝 안)양 측이 법무부를 상대로 낸 국적보유 판정 신청을 받아들였다. 법무부는 김양 측에 보낸 국적보유판정 통지서를 통해 “국적법 제20조에 따라 한국 국적을 보유하고 있음을 판정한다”며 “가족관계등록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가족관계등록부를 창설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양은 2014년 9월 12일 베트남 여권을 갖고 입국했다. 이듬해 5월 26일 국적 판정을 신청했지만, 법무부는 2018년 3월 14일 입증이 부족하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양 측은 같은 해 6월 4일 법무부를 상대로 “한국 국적을 인정해달라”며 소송을 냈고 1·2심을 거쳐 지난달 19일 대법원에서도 최종 승소 판결을 받았다. 탈북민이 국적 비보유 처분에 불복해 낸 소송에서 이긴 첫 사례로 알려졌다. 법무부도 대법원 확정판결에 따라 김양에게 한국 국적을 부여했다. 우리 헌법과 법률에 의하면 북한 주민은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에 거주하는 자로서 출생 당시 아버지나 어머니가 북한 주민이면 한국 국적을 취득한다. 탈북민은 원래 우리 국민으로 귀화나 국적 회복 절차 없이 국적이 인정된다. 중국과의 무역 일을 하던 김양 아버지는 2010년 말에서 2011년 초 북한 당국에 체포됐다. 임신 중이던 어머니 송모 씨는 압록강을 건너 중국 지린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옌지(延吉) 시로 탈북했다. 중국에서 탈북민을 돕던 미국인 목사 어네스트 임산드(41) 부부의 보살핌을 받던 송씨는 2011년 8월 27일 김양을 낳았다. 송씨는 딸을 잘 부탁한다는 말만 남기고 떠났고, 목사 부부가 김양을 친딸처럼 길렀다. 목사 부부는 2012년 초 중국 정부가 탈북민 단속을 심하게 하자 한국행을 결심했다. 우선 중국을 떠나 베트남 하노이로 이동했다. 송씨의 산후조리를 담당했던 탈북민 A(50)씨도 김양을 업고 동행했다. 하지만 김양이 한국에 오려면 베트남 국적이 필요했다. 목사 부부는 지인을 통해 소개받은 베트남인 부부 쪽으로 일단 김양의 출생 신고를 했다. 그 뒤 베트남 여권과 비자를 받아 2014년 9월 한국에 들어왔다. 김양 측은 친부모가 북한 출신인 점 등을 근거로 출생과 동시에 한국 국적이 주어진다며 정식 절차에 나섰다. 김양의 입국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베트남에서 출생 신고 서류를 위조했다는 사실도 고백했다. 법무부는 재판 과정에서 친부모 정보가 기록상 확인되지 않는다는 이유 등을 들어 반대 의견을 냈지만, 법원은 목사 진술의 구체성과 신빙성을 인정해 김양 측이 낸 각종 증거자료 등을 토대로 김양의 손을 들어줬다. 특히 법원은 베트남인으로 출생 신고가 된 것은 주변 사람들이 한국으로 보내려고 만든 것에 불과하며, 김양 스스로 베트남 국적을 얻고자 한 게 아니기 때문에 애초부터 베트남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것으로 인정했다. 김양은 초등학교 등 정규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건강보험과 사회복지 등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릴 수 있는 각종 권리도 얻었다. 김양은 ‘110827’로 시작하는 주민등록번호도 받았다. 또 김양을 본인으로 하는 가족관계증명서도 새롭게 창설했다. 김양 측은 또 임시후견인으로 선임된 A씨를 정식 후견인으로 선임하기 위한 절차도 밟고 있다. A씨가 후견인이 되면 김양이 성인이 될 때까지 법정대리인 역할을 하게 된다. 이 절차가 모두 마무리되면 법원에 정식으로 개명 신청을 할 계획이다. 법원도 김양의 베트남 국적 취득이 무효라고 판단했지만, 후속 절차가 남아 있어 베트남 이름을 유지하고 있다. 김양은 가장 고마운 사람으로 어머니 송씨가 떠난 뒤 자신에게 젖을 물려주고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오기까지, 국적을 취득하기까지 많은 도움을 준 리디아 임산드(34)를 “엄마”라고 부르며 첫손 꼽았다. 임신한 몸의 리디아는 “지혜에게 젖을 물린 보람이 있었다. 김양은 ”친척이 한 명도 없는데 고모 같은 존재“라고 말한 A씨는 곧 정식 후견인이 된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장난감 타고 도로 역주행 한 中 꼬마 커플… ‘해맑은 웃음’에 경찰도 당황 (영상)

    장난감 타고 도로 역주행 한 中 꼬마 커플… ‘해맑은 웃음’에 경찰도 당황 (영상)

    빠르게 오가는 도심 도로에 위험한 역주행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한 운전자가 ‘체포’됐다. 현장에서 체포된 이들은 다름 아닌 ‘꼬마 커플’이었다. 중국 후베이성 경찰 측이 공개한 영상은 허베이성 쭌화시의 한 4차선 도로에서 촬영됐다. 수많은 차가 오가는 차도에 등장한 것은 SUV 차량을 본따 만든 장난감 자동차였고, 자동차에 탑승한 ‘운전자’는 5~6세로 추정되는 어린아이 두 명이었다. 현지시간으로 지난 12일, 당시 도로를 지나던 한 여성 운전자는 두 아이의 역주행을 본 뒤 황급히 차를 멈추고 신고했다. 비슷한 시각 경찰도 순찰을 돌던 중 ‘이상한 움직임’의 장난감 자동차를 본 뒤 곧바로 현장으로 달려갔다.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차량 운전석에 탄 남자아이와 조수석에 탄 여자아이는 자신들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으로 해맑게 웃었다. 경찰도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채 아이들을 보며 황당한 웃음을 지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의 부모가 현장에 도착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 아이들은 이웃에 사는 친구 사이였으며, 장난감 자동차에 탄 채 동네를 돌아다니다 큰 도로까지 나온 것으로 파악됐다. 당시 운전자들이 역주행하는 장난감 자동차를 유유히 피해 지나간 덕분에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고, 두 아이는 다친 곳 없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아이들이나 아이들 부모에 대한 특별한 법적 처벌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아이들이 자동차 장난감을 몰고 큰 도로로 나와 어른들을 놀라게 한 사건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8년에는 중국 저장성 융캉시의 한 도로에서 장난감 자동차를 탄 채 실제 거리로 나와 2㎞가량 주행한 5세 아이가 ‘적발’됐었다. 이번 사건과 다른 점이 있다면 당시 위험한 주행을 펼친 아이 옆에는 아이와 함께 도로를 달렸던 친부모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이 부부는 아이에게 담력을 심어주기 위해 목숨 건 모험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고, 이후 부부는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5살 아들 학대해 숨지게 한 싱가포르 부부, 27년형 선고 받아

    5살 아들 학대해 숨지게 한 싱가포르 부부, 27년형 선고 받아

    5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 아들에게 뜨거운 물을 붓고, 치료는커녕 동물 우리에 가둬 숨지게 한 파렴치한 싱가포르 부모가 징역 27년 형을 선고받았다. 현지 유력 영자 언론인 더 스트레이츠 타임스의 보도에 따르면 28세 동갑내기 부부는 4년 전인 2016년 10월, 당시 5살이었던 아들에게 온도가 92℃에 달하는 뜨거운 물을 붓는 등 학대했다. 이 일로 아이는 전신 75%에 심각한 화상을 입었지만 적절한 치료는 이뤄지지 않았다. 부부가 아이에게 뜨거운 물을 붓는 학대는 일주일간 4차례나 발생했다. 경찰 조사 결과 화상의 고통으로 울부짖는 아이를 본 부부는 더욱 화를 내며 여러 차례 뜨거운 물을 이용한 학대를 저지른 것으로 확인됐다. 이후 부부는 화상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아들을 병원으로 데려가기는커녕 도리어 좁디 좁은 고양이 우리에 가두고 방치했다. 또 고양이 우리에 갇힌 아이가 움직이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도 무려 6시간을 이를 무시하다가, 이후에야 병원으로 옮겼다. 하지만 아이는 2016년 10월 22일,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현지 의료진은 숨진 아이가 머리에 큰 충격을 받았고, 온몸에 입은 화상으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는 결론을 내렸다. 수 개월간 지속된 학대로 코뼈에 금이 가고 갈비뼈가 부러져 있었으며, 입술과 피부 곳곳이 찢어져 있었다는 소견도 나왔다. 경찰에 체포된 아이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목욕을 하라고 했지만 이를 거부했다. 적절한 훈육을 위해 아이에게 뜨거운 물을 부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몇 차례 열린 재판에서는 부모에게 학대당하면서 생긴 몸 곳곳의 흉터가 공개돼 재판 참석자들을 놀라게 했다. 게다가 숨진 아이의 짧은 인생이 굴곡으로 가득 차 있었다는 사연까지 소개되면서 안타까움을 더했다. 재판부에 따르면 아이는 2011년 출생 직후 친부모에게 버려져 양부모에게 입양됐다가, 2015년 친부모에게 다시 돌아갔다. 아이를 버렸다가 데려온 친부모는 그 사이 다른 자녀들을 낳아 키우고 있었지만 모두 무직이었다. 아이를 키울 능력도, 자격도 없었던 이 부부는 아동학대 및 살인죄로 기소됐다. 최근 열린 재판에서 재판부는 부부에게 각각 징역 27년 형을 선고했다. 더불어 아이의 아버지에게는 추가로 회초리 24대를 명령했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우리 정말 사랑해요” 7살 때 입양한 아들과 결혼한 30대 여성

    “우리 정말 사랑해요” 7살 때 입양한 아들과 결혼한 30대 여성

    러시아의 30대 여성이 입양한 아들과 결혼을 발표한 것도 모자라 임신한 사실까지 공개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14일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에 사는 마리나 발마세바(35)는 지난 5월,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입양한 아들인 블라드미르 샤비린(20)과 다정한 모습을 담은 사진을 SNS에 올리며 공개 연애를 선언했다. 마리나는 전 남편과 이혼하기 전, 함께 샤비린을 입양해 키웠다. 당시 마리나의 나이는 22세, 입양한 아들의 나이는 7세였다. 마리나는 어린 아들의 성장 과정을 모두 지켜봤고, 입양된 샤비린은 양부모를 친부모처럼 따르며 10여 년을 보냈다. 두 사람이 언제부터 부모와 자녀 이상의 관계로 발전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현재 매우 행복한 결혼생활을 보내고 있다고 강조했다. 마리나는 최근 SNS에 올린 게시물을 통해 “샤비린과 혼인 신고를 마쳤다. 당시 나는 머리도 빗지 않은 상태로 혼인 신고 사무소를 찾았는데, 샤비린이 깜짝 선물로 반지를 준비해 기분이 매우 좋았다”고 자랑스럽게 밝혔다. 이어 “혼인신고가 끝난 뒤 우리는 웨딩 파티를 즐겼고, 몇몇 하객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면서 “나는 현재 임신 상태이며, 조만간 큰 도시로 이사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또 “전 남편에게 입양한 아들과의 결혼 소식을 알리진 않았다. 하지만 아마도 그는 우리의 선택을 별로 기뻐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누군가는 우리를 비난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우리를 지지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미 우리는 행복하고, 당신도 함께 행복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현지 언론은 두 사람이 법적인 부부가 됨에 따라, 마리나와 전 남편 사이의 자녀들이자 자신의 형제였던 다섯 아이를 함께 양육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힌 가운데, 네티즌들은 “본인 손으로 키운 아이와 이성적인 관계를 시작하는 것은 매우 부도덕하다”며 비난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죽일 의도 없었다” 살인 혐의 부인한 천안 계모, 숨진 의붓아들 남동생도 학대

    “죽일 의도 없었다” 살인 혐의 부인한 천안 계모, 숨진 의붓아들 남동생도 학대

    어린 의붓아들을 여행용 가방에 7시간 동안 감금해 숨지게 한 충남 천안 계모 성모(41)씨는 15일 열린 첫 공판에서 범행을 인정하면서도 “죽일 의도는 없었다”며 살인 혐의에 대해서는 강력 부인했다. 국민참여재판도 거부했다. 성씨는 이날 숨진 의붓아들의 남동생도 학대했다는 추가 고발도 당했다. 대전지법 천안지원 형사1부(채대원 부장)는 이날 살인·상습 아동학대·특수상해 혐의로 구속 기소된 성씨에 대한 첫 재판을 열었다. 성씨가 참석한 가운데 변호인은 “다른 혐의는 인정하지만, 살인 혐의는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성씨 측 변호인은 “가방 위에서 떨어질 만큼 높이 뛰지 않았고, 뜨거운 바람도 가방 안이 아니라 밖으로 나온 손에 쬐었다”며 “죽음에 이르게 할 정도는 아니고, 그럴 의도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검찰은 “(살인 혐의를 증거할) 영상녹화가 있다”고 즉각 반박했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성씨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간간히 변호사와 귓속말로 대화를 나눴다. 성씨는 재판부가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하겠느냐’고 묻자 “하지 않겠다”고 답변했다.재판이 끝난 뒤에는 방청석의 피해자 가족들이 법정을 빠져나가는 성씨에게 거칠게 욕설을 쏟아내다 법정 경위의 제지를 받기도 했다. 한편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와 경남여성변호사회는 이날 성씨를 아동복지법상 상습학대 혐의로 검찰에 추가 고발했다. 이들은 고발장에서 “성씨는 숨진 의붓아들 A(9)군의 남동생 B군도 막대기 등으로 상습 학대했다”며 “성씨의 학대로 B군의 새끼발가락에 멍이 들었고 휘두른 매가 허공을 갈라 벽에 구멍을 낸 적도 있다”고 주장했다. B군은 친아버지가 문제의 계모와 재혼하면서 2018년 11월부터 형 A군과 함께 친부, 계모, 계모의 10대 아들·딸이 있는 집에서 모여 살았으나 계모의 학대가 끊이지 않자 6개월쯤 지난 지난해 4월 혼자만 친모한테 돌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성씨는 지난달 1일 의붓아들 A군이 거짓말을 한다는 이유로 가로 50㎝, 세로 71.5㎝, 폭 29㎝의 여행용 가방에 가두고 3시간 동안 외출한 뒤 돌아왔고, 가방 밖으로 용변이 흘러나온 것을 보고 가로 44㎝, 세로 60㎝, 폭 24㎝의 더 작은 가방에 감금해 심정지로 숨지게 한 혐의다. 이 과정에서 A군이 “숨이 안 쉬어진다”고 호소했으나 성씨는 가방 위에서 뜀을 뛰고 뜨거운 헤어드라이어 바람을 불어넣기도 했다. 검찰은 이 사실을 추가로 밝혀내고 아동학대에 살인 혐의까지 추가해 성씨를 기소했다. 다음 재판은 8월 19일 오전 10시에 열린다. 천안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계모 잔혹하게 폭행”...중년 자매, 항소심서 징역형 집행유예

    “계모 잔혹하게 폭행”...중년 자매, 항소심서 징역형 집행유예

    계모를 잔혹하게 폭행한 중년 자매가 항소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나란히 선고받았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2부(이관용 부장판사)는 폭행, 특수상해 등 혐의로 기소된 A(41)씨와 B(55)씨에게 각각 징역 1년과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평소 계모 C(52)씨와 사이가 좋지 않던 A씨 자매는 2017년 C씨 자택에서 폭언과 함께 팔을 잡아끄는 식으로 C씨를 폭행한 혐의를 받는다. 이들은 같은해 9월 다시 다툼이 벌어지자 함께 C씨를 약 4시간 동안 마구 폭행하고 죽여버리겠다며 흉기로 위협한 혐의도 받는다. 이 과정에서 자매는 가학적인 수단을 동원해 C씨의 전신에 골절상과 항문에 상해를 입히기도 했다. 1심 법원은 “범행의 수단과 방법, 피해자가 입은 상해의 정도 등에 비춰 그 죄책이 가볍지 않다. 그런데도 피고인들은 자신의 잘못은 축소하고 그 잘못을 피해자에게 전가하려는 등 진정으로 반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다”며 A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가담 정도가 상대적으로 가벼웠던 B씨에게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 또한 “A씨는 친부의 부재를 틈타 계모를 상대로 가학적 성향이 발현된 범행을 주도했고, B씨는 이에 가세해 피해자가 신체적으로 심각한 피해를 보았고 정신적 후유증 또한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다만 항소심 재판부는 “2심에서 피해자와 합의한 점, 이 사건 이후로 피고인들의 친부와 피해자가 이혼해 신분 관계가 종식되고 위자료 및 재산분할도 정산돼 분쟁의 재발이나 재범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을 고려했다”며 감형 이유를 설명했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딸 “성폭행 거짓 신고했다” 말 바꿨지만… 친부 중형, 왜?

    딸을 때리고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친부에게 중형이 최종 확정됐다. 딸이 ‘피해 신고는 거짓이었다’는 탄원을 제출했지만 인정되지 않았다. 친족에 의해 성범죄를 당한 미성년자 피해자가 진술을 번복할 경우 가족들의 회유나 압박 가능성을 감안해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해야 한다는 기존 판례를 재확인했다. 대법원 3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강간)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2일 밝혔다. A씨는 2018년 1월 자신의 딸이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때리고 성폭행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의 딸은 그해 3월 친구에게 피해사실을 털어놨고, A씨를 경찰에 신고했다. 1심은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되고 구체적인 데다 친구에게 성폭행 사실을 털어놓은 온라인 메신저 내용 등을 근거로 A씨에게 징역 6년을 선고했다. 2심도 A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A씨는 판결에 불복해 상고하면서 딸 명의의 탄원서를 제출했다. 딸 탄원서에 “거짓말을 한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대법원은 상고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피해자 진술은 A씨에 대한 이중적 감정, 가족들의 계속되는 회유와 협박 등으로 번복될 수 있는 특수성을 감안해야 한다”면서 “탄원서는 무죄를 인정할 명백한 증거가 된다고 볼 수 없어 상고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 5월 친딸을 성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40대 남성에 대해 딸의 진술 번복에도 불구하고 실형을 확정했다. 친족 성범죄 피해자가 수사기관에서 한 진술을 법정에서 번복하더라도 동기나 이유 등을 충분히 감안해 판단해야 한다는 첫 판례였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친딸 때리고 성폭행” 친부에 징역 6년 선고

    “친딸 때리고 성폭행” 친부에 징역 6년 선고

    딸을 때리고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친부에게 중형이 최종 확정됐다. 12일 대법원 3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강간)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A씨는 지난 2018년 1월 자신의 딸이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때리고 성폭행까지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의 딸은 피해 사실을 남자친구에게 털어놓았고 남자친구의 권유에 따라 A씨를 경찰에 신고한 것으로 조사됐다. 1심은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되고 구체적이라는 점, 남자친구에게 성폭행 사실을 털어놓은 온라인 메신저 내용 등을 근거로 A씨에게 징역 6년을 선고했다. 2심도 “죄질이 무겁고 비난 가능성도 크다”라며 A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A씨는 판결에 불복해 상고하면서 딸 명의의 탄원서를 제출했다. 딸의 탄원서에는 A씨가 자신을 강간한 사실이 없는데 거짓말을 한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대법원은 상고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미성년자의 피해자 진술은 A씨에 대한 이중적 감정, 가족들의 계속되는 회유와 협박 등으로 번복될 수 있는 특수성이 있다”며 유죄 판결을 유지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여기는 중국] 간호사 가장해 신생아 유괴…범죄 상당수 산부인과서 발생

    [여기는 중국] 간호사 가장해 신생아 유괴…범죄 상당수 산부인과서 발생

    간호사를 가장해 자고 있던 신생아를 유괴한 여성이 붙잡혔다. 관할 법원은 이 여성에게 1년 10개월의 징역을 판결했다. 중국 구이저우(贵州) 고등인민법원은 지난해 12월 8일 후이수이현(惠水县) 련장병원(涟江医院)에서 간호사 복장을 한 채 병실로 진입, 신생아를 유괴한 20대 여성에게 초범이라는 점을 고려해 이같은 판결을 내렸다고 8일 밝혔다. 아수이(가명) 씨는 당시 출생 24시간 미만의 신생아를 대상으로 유괴를 계획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현지 언론을 통해 공개된 내용에 따르면, 가해자 아 씨는 최근 연인 관계였던 남성과의 사이에서 임신한 아이를 유산하고 이같은 짓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가해 여성 아 씨가 자신의 아이가 유산된 후 연인이었던 남성으로부터 이별 통보를 받을 것이 두려워 신생아 유괴를 계획했던 것. 이 여성은 간호사 복장을 한 채 여성전문병원에 진입, 생후 24시간 미만의 아이를 물색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아 씨는 공안 수사 과정에서 “간호사 옷은 아무도 없는 새벽 시간대에 해당 병원에서 훔쳤다”면서 “병동 내의 사람들이 잠이 든 틈을 타서 범행을 저지르면 발각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면서 “출생 후 24시간 미만의 신생아는 친부모를 기억할 확률이 적다는 점에서 이런 일을 벌였다”고 덧붙였다. 특히 아 씨가 범행을 저지른 당일은 앞서 유산된 자신의 아이의 출산 예정일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유산 사실을 감춘 아 씨가 신생아 유괴를 통해 완벽 범죄를 계획했던 것이다. 이와 관련 해당 사건을 관할한 담당 판사는 “사건의 범죄 사실이 명백하고 증거가 확실하다”면서 “다만 아 씨가 범죄 사실을 순순히 자백하고 자신의 죄를 인정했다는 점과 초범이라는 점을 고려해 비교적 가벼운 처벌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중국 내 신생아 유괴 사건의 상당수가 산부인과 등 병원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지난 2014년 중국 산시성(山西省) 웨이난(渭南) 중급인민법은 자신이 받아 낸 신생아를 인신매매조직에 팔아넘긴 중국 산부인과 여의사에게 사형을 판결한 바 있다. 당시 논란이 됐던 산부인과 의사는 신생아 출생 후 부모에게 아이가 사망했다는 거짓 통보 후 아이 한 명당 약 2만 위안(약 340만 원)을 받아 챙긴 혐의다. 한편, 이번 사건과 관련해 가해자 아 씨에게 내려진 판결에 대해 지나치게 가벼운 처벌이라는 목소리다. 아 씨의 판결에 대해 누리꾼들은 “매년 비공식적인 집계로 알려진 수치만 해도 수 천명의 아이들이 유괴되는 상황에서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지나치게 가볍다”면서 “실제로 아이를 잃은 부모의 입장에서 아 씨는 죽어 마땅하다. 그는 자신의 아이가 유산됐다는 이유로 타인의 아이를 도둑질하려 했다.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중국 정부는 지난 2016년 이후 신생아 유괴 사건 내역에 대한 내용을 비공개해오고 있다. 다만, 지난 2015년 기준 약 2만 4000명의 신생아가 유괴 후 구조된 바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당시 공개된 구조 어린이 수는 전체 유괴 아동의 극히 일부에 불과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임지연 베이징(중국) 통신원 cci2006@naver.com 
  • “양육비 안 준 아빠 처벌을” 벼랑끝 13세 소년의 호소

    “양육비 안 준 아빠 처벌을” 벼랑끝 13세 소년의 호소

    폭행·폭언 일삼던 친부, 4년간 남매 외면외제차 몰고 골프 치며 새 가정 아이 양육생활고에 모친과 찾아가자 주거침입 고소“제가 오늘 이 자리에 선 이유는 친아버지를 고소하기 위해서입니다.” 7일 오후 서울중앙지검 현관 앞. 열세 살 소년 김모군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4년 전 집을 나간 김군의 아버지(45)는 지금껏 아들, 딸(8)을 찾아온 적도, 전 부인(43)에게 양육비를 준 적도 없다. 이혼 후 새 가정을 꾸린 아버지 김씨는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가족을 외면하기 급급했다. 결국 어린 아들은 부모의 의무를 저버린 아버지를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하기로 했다. 김군은 이날 직접 작성한 고소장을 접수했다. “부모가 이혼했더라도 부모 자식 간 친족관계는 변함이 없기 때문에 성인이 되기 전까지 부모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봅니다. 의무를 저버리고 본인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아버지가 처벌받기를 바랍니다.” 김군은 상기된 얼굴로 준비한 원고를 읽었다. 아버지에게 적용한 혐의는 아동에 대한 정서적 학대를 금하는 ‘아동복지법 17조 5항’과 아동에 대한 방임을 금하는 ‘17조 6항’이다. 9년을 함께 살았지만 김군에게 아버지는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존재’다. 아버지는 늘 ‘하숙생’ 같았다. 일주일에 한두 번 집에 들어와 잠만 자고 나갔다. 부부 싸움은 기본이고, 자식들이 보는 앞에서 아내를 폭행했다. 2016년 집을 나간 아버지의 소식을 접한 건 올 초였다. 황당하게도 재혼 후 새 가정에서 번듯하게 그는 아버지 노릇을 하고 있었다. “(재혼해서 낳은) 한 아이에게는 부모로서 양육의 의무를 다하고 있더군요. 외제 차를 몰고 골프를 치는 등 편한 생활을 한다는 것에 너무 화가 났습니다. 나와 동생의 존재는 친부에게 무엇이었는지 서러운 감정마저 들었습니다.” 김군의 어머니는 홀로 두 아이를 키우느라 경제적 어려움이 컸지만, 아버지 김씨는 양육비 요구를 묵살했다. 김군은 “집에 컴퓨터가 없는데 우리 집 사정상 엄마에게 사 달라고 할 수가 없어 매주 주말이면 컴퓨터가 있는 외삼촌 집에 간다”고 말했다. 지난 3월 김군은 어머니와 함께 양육비를 달라며 아버지를 찾아갔다. 하지만 집 앞에서 몇 시간을 기다려도 아버지란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기다리다 못해 현관 벨을 눌렀다는 이유로 오히려 아버지는 주거침입 혐의로 전 부인을 고소했다. 김군은 “돈이 없으면 학원에 다닐 수도, 먹는 것도 할 수 없는 현실에서 자식들에게 양육비를 주지 않는 행위는 아동 유기·방임이며 신체적·정신적 학대”라며 “더는 어리다는 이유로 어른(부모)들이 함부로 대하고 상처받아서는 안 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2015년 3월부터 지난해까지 김군처럼 법정 싸움을 통해 양육비 이행 의무가 확정된 건 총 1만 6073건이다. 하지만 이 중 실제 양육비를 건넨 부모는 35.6%(5715건)에 그쳤다. 김군을 도와주는 양육비 해결모임(양해모) 강민서 대표는 “양육비 문제에 무관심한 사회가 어린 남학생 스스로 아동복지법을 검색하고 고소장까지 쓰게 만들었다”면서 “(김씨와 같은) 비양육자도 아이의 부모이기 때문에 공동의 책임 의무를 이행하도록 법 개정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양해모는 지난달 15일 아동범죄에 양육비 미지급을 넣는 법 조항 개정 혹은 추가를 요구하는 취지의 국회 국민동의 청원을 시작했다. 진선민 기자 jsm@seoul.co.kr이혜리 기자 hyerily@seoul.co.kr
  • [서울포토]‘양육비 미지급은 아동학대’

    [서울포토]‘양육비 미지급은 아동학대’

    7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현관에서 양육비 피해 당사자인 중학교 1학년 남학생 김 군과 강민서 양육비해결모임 대표, 고소 대리인인 이준영 변호사를 비롯한 양해모 회원들이 양육비 미지급자인 친부를 상대로 고소장을 제출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2020.7.7 오장환 기자 5zzang@seoul.co.kr
  • “인터넷 보고 직접 썼다”…양육비 안준 아빠 고소한 중1

    “인터넷 보고 직접 썼다”…양육비 안준 아빠 고소한 중1

    이혼 뒤 4년 동안 양육비 지급 안 해찾아가자 되레 ‘주거침입’이라며 신고 이혼한 뒤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은 친아버지를 아들이 고소하기로 했다. 6일 양육비 해결모임은 오는 7일 중학교 1학년 A(13)군이 친부 B(45)씨의 아동학대 혐의를 수사해 달라는 고소장을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고소장은 A군이 직접 작성했다. 양해모에 따르면 B씨는 4년여 전 가출한 뒤 이혼했다. 그 뒤 A군은 어머니가 돌봐 왔다. 하지만 B씨는 이혼 후 양육비를 전혀 지급하지 않았다. 연락이 끊긴 것은 물론 면접 교섭 의무도 지키지 않았다. 견디다 못한 A군과 어머니는 지난 3월 양육비를 달라며 아버지를 찾아갔지만, 오히려 주거 침입이라며 신고를 당했다. A군은 이 일을 계기로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아동복지법을 찾아보고 스스로 고소장을 작성했다. 양해모 강민서 대표는 “양육은 부모 공동의 책임이며, 비 양육자라도 양육비를 안정적으로 지급해 양육에 힘쓰는 한편 아이가 안정적으로 잘 자랄 수 있도록 직접 만나면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해모는 2018년 11월부터 양육책임을 지지 않는 ‘나쁜 엄마·아빠’를 대상으로 총 7차례 집단 고소를 진행했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베이비박스’로 만난 딸 24년간 키운 中왜소증 남성의 사연

    ‘베이비박스’로 만난 딸 24년간 키운 中왜소증 남성의 사연

    키 1m의 왜소증을 앓는 50대 남성이 24년간 구두 수선을 하며 딸을 홀로 양육해온 사연이 알려져 이목이 쏠렸다. 올해 55세의 천젠화 씨는 지금으로부터 약 24년 전 밤 11시쯤 자신의 집 앞에 버려진 베이비박스 속에 담겨있던 딸 샤오난을 발견한 뒤 지금껏 키워왔다. 현지 유력언론 텅쉰왕(腾讯网) 등을 통해 보도되면서 일약 화제가 된 천 씨 부녀의 사연은 곧장 SNS 등을 통해 공유되고 있다. 현지언론에 공개된 천 씨는 후난성(湖南) 샹샹(湘乡) 농촌 출신으로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창사(长沙) 소재한 모 여대 앞에서 구두와 열쇠 수리기사로 일하고 있다. 천 씨의 딸 샤오난 양은 올해 25세로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있다.그는 딸 샤오난관의 첫 만남에 대해 “집 밖에서 소곤거리는 말소리가 들려서 현관문을 열어보니 박스 속에 작은 아이가 담겨 있었다”면서 “서둘러 골목 밖으로 쫓아갔으나 젊은 남녀가 급히 도망가는 것을 보았을 뿐 그 후로 단 한 차례도 샤오난 친부모로부터의 연락을 받지는 못했다”고 기억했다. 이들 부녀의 사연이 알려진 직후 알리바바 그룹 측은 총 1만 위안(약 172만 원)의 장려금을 지급, 샤오난 양의 교육을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특히 알리바바 그룹이 공개한 천 씨 부녀의 사연은 곧장 현지 온라인 SNS 등을 통해 큰 화제가 되고 있다.이들 부녀의 사연 가운데 올해 55세의 천 씨가 딸 샤오난 양을 양육하기 위해 평생 결혼을 하지 않은 채 구두 수선점을 운영, 수익의 상당수를 샤오난 양 교육비로 지원해왔다는 것에 응원의 목소리가 전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더욱이 천 씨는 고향에 거주 중인 80대 모친의 생활비도 홀로 부담해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현지언론 인터뷰를 통해 알려진 바에 따르면 구두와 열쇠 수선으로 생계를 이어왔던 천 씨의 연평균 수익은 3만 위안(약 540만 원) 남짓이다. 그는 이 수익의 일부를 고향에 거주 중인 모친에 송금, 나머지는 샤오난 양의 대학 등록금과 생활비로 송금했다. 창사시에 소재한 대학 졸업반인 샤오난 양의 1년 학비 및 생활비는 약 2만 6천 위안(약 442만 원) 수준이기 때문이다.이 돈을 마련하기 위해 천 씨는 7평 남짓의 작은 지하 방에서 거주해오고 있는 형편이다. 더욱이 올해 대학원 진학을 앞둔 샤오난 양을 위해 천 씨는 지난해 자신이 입점해 있었던 상점에서 나와 노점상 일을 시작했다. 연간 임대료 1만 위안(약 172만 원)을 절약해 딸 샤오난 양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천 씨는 “그동안 줄곧 임대료가 부담됐었는데 노점상 운영을 선택하기 잘 한 것 같다”면서 “비록 매일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거리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힘겨운 것이지만 딸의 교육을 위해서라면 즐거운 마음으로 감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딸이 대학원을 마치면 좋은 교사로 평생을 일하고 싶어 한다”면서 “딸이 졸업 후 좋은 선생님이 되면 나도 좋은 것 아니겠느냐. 이것이 나의 가장 소박하면서도 가장 큰 꿈이다”고 말했다. 한편, 천 씨의 이런 모습에 대해 딸 샤오난 양은 “어릴 적부터 아버지를 가리켜 사람들은 종종 난쟁이라고 부르곤 했다. 하지만 내 마음속의 아버지는 항상 당당하고 멋진 사람”이라면서 “눈에 보이는 아버지의 몸은 작지만 비굴하게 일하거나 거만하게 사람을 무시하는 일 없이 평생을 성실하게 살아온 누구보다 큰 사람”이라고 했다. 임지연 베이징(중국) 통신원 cci2006@naver.com
  • 청계천, 얼마나 알고 계시나요?...백운동천·삼청동천 등 5개 지천 보고서

    청계천, 얼마나 알고 계시나요?...백운동천·삼청동천 등 5개 지천 보고서

    빽빽이 들어선 건물 숲을 가로지르며 시원하게 흐르는 청계천. 잠시 짬을 내 물가를 걷다 보면 운 좋게 피라미와 잉어를 비롯해 왜가리와 청둥오리, 중대백로 등을 만날 수 있다. 청계천은 조선 왕조가 한양에 도성을 건립하기 전까지 이름 없는 자연 하천이었다. 태종대에 정비를 시작했지만, 해마다 범람해 물관리를 겪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와 현대의 복개과정, 그리고 2005년 복원사업으로 지금에 이르렀다. 한양은 예로부터 ‘물의 도시’라고 불렸다. 그렇다면, 어떤 물길들이 모여 청계천을 이루었을까. 서울역사박물관 청계천박물관은 2015~2019년 5년 동안 청계천으로 흐르는 주요 지천에 관한 연구 성과를 종합한 ‘청계천 지천 연구 보고서’를 최근 발간했다고 4일 밝혔다. 연구 대상 지천은 백운동천(白雲洞川), 삼청동천(三淸洞川), 남소문동천(南小門洞川), 흥덕동천(興德洞川), 창동천(倉洞川)의 청계천을 이루는 주요 5개 지천이다. 보고서는 주요 지천 지형과 수계, 주요 공간의 역사와 공간 변천 등을 기록했다. ●‘본류’ 백운동천, 크게 바뀐 삼청동천과 남소문동천 보고서에 따르면, 백운동천은 청계천 지류 중 가장 길어 청계천의 본류로 간주한다. 백악산 창의문 기슭에서 발원해 인왕산과 경복궁 서쪽 지역을 따라 흐른다. 근처 골짜기인 백운동을 지나 백운동천으로 불렸다. 신교, 자수궁교, 금청교, 종침교 등 이름난 다리들이 있었다. 백운동천 일대 공간은 조선시대 국가권력의 중심이던 궁궐, 사직, 사당, 관청인 육상궁과 사직단, 경희궁이 자리한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를 비롯한 통치시설들이 자리 잡았다. 해방 이후 상류지역에 시민아파트, 중류지역에는 소규모 주택이 밀집했다. 현재 하류지역은 도심 재개발에 따라 업무지구로 변모했다.삼청동천은 백악산 동쪽 삼청동 계곡에서 발원해 경복궁 동쪽과 조선시대 사학의 하나인 ‘중학’ 앞을 흘러 혜정교를 지나서 모전교 위에서 청계천으로 합류한다. 삼청동천 주변에 왕실 기관인 소격서와 종친부, 사간원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에는 행정기관, 교육기관, 의료시설, 회사 등이 집중적으로 자리했다. 신흥 자본가가 근대식 도시형 한옥을 지었고, 해방 이후에도 전통적 주거 지역으로 개발을 억제했다. 이에 따라 1990년대부터 전통적 특징을 유지하면서도 관광과 문화가 공존하는 지역으로 발돋움했다. 남소문동천은 남산 기슭 남소영 부근에서 발원해 장충단을 지나 광희동 사거리 부근에서 두 갈래로 갈라진다. 한쪽은 국립의료원 방면에서 청계천으로 합류하고, 다른 한쪽은 동쪽으로 흘러 이간수문을 통해 성 밖에서 청계천 본류와 합류했다. 조선시대 한양도성과 군사시설인 남소문과 훈련원, 하도감이 위치했다. 대한제국기에는 애국선열 추모공간인 장충단이 들어섰는데, 일제강점기에는 역사적 의미를 훼손하기 위한 다양한 근대시설이 자리 잡았다. 해방 이후에는 군부정권이 정치적 당위성을 강조하고자 반공과 호국, 민족과 세계화라는 키워드로 기념비, 동상, 국립극장, 자유센터 등을 세웠다. 1980년대 이후 하류에는 동대문시장, 이어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가 생겨났다. ●교육의 중심 흥덕동천, 소공로 조성된 창동천 흥덕동천은 도성 동북부를 흐르는 지천이다. 서울국제고와 서울과학고에서 발원한 두 물줄기가 혜화로터리 부근에서 성균관을 감싸 흐르는 서반수와 동반수와 합쳐졌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 물이 대학로, 효제동 일대를 거쳐 청계천으로 흘렀다. 조선시대 교육의 중심지인 성균관이 있었다. 해방 이후 낙산 일대에 생성된 토막촌이 한국전쟁을 이후 국민주택으로 재개발됐다. 1975년 서울대 이전으로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들어오면서 마로니에 공원이 조성됐고 소극장들이 많이 생겨났다.창동천은 남산 서쪽 백범광장 인근에서 발원해 남대문시장과 시청 동쪽을 흘러 청계천으로 합류한다. 대한제국 때에는 경운궁과 함께 환구단, 대관정이 건립됐다. 소공로가 이에 따라 조성됐다. 일제강점기에는 환구단이 철도호텔로, 대관정이 하세가와 관저와 경성부립도서관으로 바뀌었다. 이번 조사 보고서에는 이처럼 5개 주요 지류의 변화상을 꼼꼼히 살폈다. 송인호 서울역사박물관장은 “도성 내 곳곳에 흐르며 청계천 본류를 구성한 주요 지천에 대한 관심을 두는 계기가 되길 바한다”면서 “청계천과 주변 지역에 대한 조사연구사업으로 청계천 기획연구 시리즈를 지속적으로 발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보고서는 서울역사박물관 홈페이지(museum.seoul.go.kr) 또는 서울역사자료실에서 열람할 수 있다. 서울책방 홈페이지(store.seoul.go.kr)에서 책 형태로 구입도 가능하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부모 학대로 두 다리 잃은 英 꼬마, 16억원 의족챌린지 모금액 기부

    부모 학대로 두 다리 잃은 英 꼬마, 16억원 의족챌린지 모금액 기부

    부모의 끔찍한 학대로 두 다리를 잃은 영국 꼬마가 모금 활동을 벌여 16억 원이 넘는 기부금을 끌어모았다. BBC와 로이터통신 등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영국 켄트주 출신 토니 허드젤(5)이 소아병원 기부금 모금을 위한 30일간의 대장정을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보도했다. 양쪽 다리가 없는 토니는 6월 한 달간 의족을 신고 10㎞ 걷기에 도전했다. 2017년 수술받은 병원의 다른 소아환자를 위한 일이었다. 언뜻 쉬운 일처럼 보이지만, 지난해 처음 의족을 달고 걸음마를 내디딘 토니에게는 거대한 산을 오르는 것과 같은 어려운 여정이었다.의족을 단 채 목발을 짚고 30일 동안 매일같이 조금씩 걸어 목표거리를 채운 토니는 결승선을 통과하며 길러준 부모를 꼭 끌어안았다. 양어머니 폴라 허드젤(52)은 “처음 챌린지를 시작할 때만 해도 토니가 해낼 거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강하고 결단력있는 아들이 매우 자랑스럽다”고 기뻐했다. 이어 “후원해준 모든 분께 감사한다. 모금액이 소중한 곳에 사용될 거란 사실에 더없이 행복하다. 솔직히 아직 실감이 안 난다. 그저 아들이 자랑스럽고 놀라울 따름”이라고 말했다.토니는 태어난 지 41일 만에 친부모의 끔찍한 학대로 병원 신세를 졌다. 다발성 골절 및 탈구, 둔기로 인한 다발성 외상으로 장기부전과 독성쇼크, 패혈증을 앓았다. 산소호흡기에 사경을 헤매던 아기는 2017년 두 다리마저 절단해야 했다. 한쪽 손을 제대로 쓸 수 없으며 오른쪽 귀는 아예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새 가족의 아낌없는 지원 속에 토니는 누구보다 자신감 넘치고 밝은 아이로 자랐다. 얼마 전 코로나19 환자를 돕기 위해 매일 보행기를 밀며 집 정원을 돌아 497억 원이라는 엄청난 돈을 모금한 톰 무어(100) 할아버지를 보고서는 모금 활동도 기획했다.친부모의 학대와 다리 절단이라는 아픔을 겪고도 남을 돕겠다고 나선 토니의 모습에 수만 명이 힘을 보탰다. 그 결과 107만 3400파운드(약 16억 원)의 성금이 모였다. 모금에는 프로축구 스타 프랭크램파드를 비롯해 5만 5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동참했다. 이제 챌린지는 끝났지만 도움의 손길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2일 현재 모금액은 122만 7914파운드, 약 18억 5000만 원까지 늘어났다. 목표액 509파운드(약 76만 원)는 이미 훌쩍 넘겼다. 토니의 도전에 영감을 준 톰 무어 할아버지는 축하를 건넸으며, 정부도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명의의 표창을 수여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친부모 대신 속죄”… 30년째 해외 입양 청소년 상처 치유

    “친부모 대신 속죄”… 30년째 해외 입양 청소년 상처 치유

    매년 美 입양 청소년 한국 초청 행사 참전 16개국 20여명에 재난지원금“국가와 친부모가 품어 주지 못한 해외 입양청소년들의 상처를 모른 체할 수 있나요.” 국제라이온스협회 354-D지구(서울 강남)와 산하단체인 서서울라이온스클럽이 한국전쟁 참전 16개국으로 입양됐다가 유학 오거나 취업한 20여명을 초청해 재난지원금 50만원씩을 전달했다고 29일 밝혔다. 두 봉사단체는 약 30년 전부터 미국 가정에 입양된 청소년 20여명을 매년 한국으로 초청해 가족을 찾아 주고 문화유적지 답사 등 ‘모국 체험’을 돕고 있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초청이 불가능하자 ‘외국인’으로 분류돼 재난지원금을 받지 못한 파양 후 국내 거주자, 국내 유학생, 국내 취업 청소년들을 초청했다. 해외 입양청소년 초청은 36년 전 354-D지구 총재이면서 연희치과원장을 지낸 이대원(84) 박사가 시카고 아리랑라이온스클럽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했다가 한 입양인 청년을 우연히 만나면서 시작됐다. 이 전 총재는 당시 한 커피숍에서 동양인 같아 보이는 청년에게 반가운 마음에 말을 걸었는데 입양인이었다. 그는 한국에서 출생했지만 한국인을 증오하고 경멸했다. 청년은 버클리대를 졸업하고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근무하는 엘리트였지만 “조국이 나를 두 번 버렸다”고 했다. “한 번은 입양을 보내면서 버렸고, 또 한 번은 조국이 찾지 않아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교포사회가 이용만 하니 대한민국의 ‘대’ 자도 싫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 전 총재는 귀국길에 입양청소년들의 상처를 어떻게 치유할까 고민한 끝에 클럽 회원들을 설득해 1987년부터 ‘해외 입양청소년 모국애 찾아 주기 행사’를 매년 하고 있다. 초청된 청소년들은 문화유적지 탐방은 물론 한국어와 한국 요리 배우기 등을 하며 마음의 상처를 치유한다. 이 전 총재는 “친부모 대신 속죄하는 마음으로 계속 해외 입양청소년 초청 행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여행용 가방서 숨진 아이 친부도 기소의견 검찰 송치

    여행용 가방 속에 갇혔다가 숨진 9살 아동의 친부가 검찰에 송치됐다. 충남지방경찰청은 아버지 A(42)씨에게 아동복지법상 아동학대 혐의를 적용,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26일 밝혔다. A씨는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아들 B군을 때리는 등 학대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B군이 여행용 가방에 갇혔다가 숨진 것과 관련해서는 A씨가 범행에 가담하지 않은 것으로 결론내렸다. 당시 그가 집에 없었기 때문이다. B군은 지난 1일 오후 7시 25분쯤 천안시 서북구 자신의 집에 있던 가로 44㎝·세로 60㎝ 여행용 가방 안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병원으로 옮겨진 뒤에도 의식을 찾지 못했던 B군은 이틀만인 3일 오후 6시 30분쯤 숨졌다. 이 아동을 가방에 7시간 동안 가둬 숨지게 한 A씨 동거녀(41)는 아동학대치사혐의로 구속 송치돼 현재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천안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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