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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부모 연령기준 강화/25∼55세 사이로 제한/내년부터

    내년부터 입양아의 양친 부모연령이 국내는 25세이상 55세미만,해외는 25세이상 50세 미만으로 각각 제한된다. 또 입양할 가정에 대해서도 사전 조사를 실시해 입양적격 여부를 결정하고 입양후에도 사후관리를 하게 한다. 보건복지부는 17일 이같은 내용의 입양특례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고 관련기관의 의견을 수렴하는 등 절차를 거쳐 내년 1월 6일부터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이 개정안에 따르면 입양아 양친부모의 자격 요건을 신설,국내 입양은 양친의 연령을 26세이상 55세 미만으로,해외입양은 25세 이상 50세 미만으로 제한을 두되 다만 가정환경이 양자를 잘 양육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자격요건을 완화할 수 있도록 했다. 이와 함께 입양적격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사전조사 제도를 신설,입양기관에서 입양전에 2차례 이상 직접 방문해 조사를 실시토록 하고 1차례는 사전예고없이 방문해 정확한 조사를 하도록 했다. 또 입양에 대한 사후관리도 신설,입양후 6개월이내에 입양기관이 입양가정을 방문,양친과 양자간의 상호 적응상태를 관찰하고 상담창구를 개설해 전문상담사업을 실시한다.
  • 병실서 뒤바뀐 딸아이/3년만에 친부모 찾아(조약돌)

    ○…대학병원에서 출산한 딸이 같은 날·같은 병실에서 태어난 다른 아이와 뒤바뀐 사실이 3년4개월만에 가족건강 검진 과정에서 밝혀져 제 부모를 찾았다. 회사원 최재호씨(33·광주시 남구 월산 5동) 부부는 지난 5월 가족건강 검진중 딸의 혈액형이 남편(A형)과 부인(O형)사이에서 나올 수 없는 AB형으로 판명되자 고려대 법의학 연구소에 친생자 감정을 의뢰한 것. 조사결과 최씨의 딸은 지난 92년 5월9일 같은 병실에서 출산한 박원주씨(33·농업·전북 순창군 금과면 방축리) 부부의 딸과 바뀐 것으로 드러났다.
  • 여교사가 「시댁식구 4대」 봉양/아신효행상 받은 유필남씨

    ◎치매앓는 시조모 병수발 등 솔선수범/“시부모·친부모가 어디 따로 있습니까” 『자식된 도리에 시부모와 친부모가 따로 있을 수 있습니까』 부모를 해치는 패륜이 판을 치고 있는 가운데 16년동안 시조모와 시부모·시동생가족 등 4대에 걸친 시댁식구 11명을 부양해온 40대 국민교 여교사의 미담이 훈훈한 화제가 되고 있다. 대구황금국민교 유필남 교사(42·여·대구시 수성구 황금2동 796의6)는 지난 79년 4형제중 맏아들로 같은 교직에 몸담고 있는 손태식씨(47·성서공고교사)와 결혼하면서부터 결코 쉽지 않은 시부모봉양의 길을 걸어야 했다. 게다가 신혼의 단꿈도 잠깐,결혼 3년만에 남편이 구미로 발령받는 등 근무지를 옮겨다니는 바람에 10여년동안 주말부부생활을 하며 힘겨운 살림을 혼자 도맡아왔다. 그러나 시할머니(92)와 시아버지(71)·시어머니(67)·시동생들을 친가족처럼 여기며 한마디 군소리 없이 뒷바라지를 했고 노환으로 쓰러진 시삼촌(84년 사망)의 병간호도 마다 않고 3년동안 집에서 모시기도 했다. 또 지난 4월에는 결혼해 분가한 시동생(35)의 생활이 어려워지자 그 가족 4명도 불러들여 함께 생활하고 있다. 부부교사의 박봉으로 대가족의 생계를 이끌어가기가 어려워 제철에 맞는 옷 한벌 해입지 못하고 살아왔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억척같은 생활을 한 보람이 있어 결혼생활 4년만에 단칸 전셋방생활을 청산하고 23평 아파트로 옮겼고 다시 4년후에는 어른들을 더 잘 보살피기 위해 아담한 단독주택을 마련하게 됐다. 검소한 생활속에서도 퇴근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지난 6년동안 노인성치매와 폐질환을 앓아온 시할머니와 시어머니의 목욕·대소변수발을 했고 특히 최근 두달남짓은 병원에서 밤샘간호를 했다.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만해도 힘든 40대주부로서 어머니와 맏며느리의 역할까지 1인4역의 「고단한 삶」을 16년동안 부족함 없이 해온 유교사는 『솔직히 가끔씩 힘에 부칠 때가 없지 않았다』고 털어놓는다. 유교사는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연실(15·중학2)·연옥(13·중학1)양등 두 딸을 떠올리며 『내가 아니면 시댁어른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아이들이 보고배울 수 있는 어머니가 돼야겠다』는 생각으로 자신을 채찍질하곤 했다.친정어머니와 주위사람들의 격려도 큰 힘이 됐다. 묵묵히 효행의 길을 걸어온 유교사의 생활이 같은 학교 교사들의 입을 통해 알려져 그는 18일 아산사회복지사업재단이 주관하는 아산효행대상 시상식에서 효친부문대상을 수상했다.
  • 「지존파」의 경우(신세대범죄 왜 흉악해지나:상)

    ◎죄의식없이 살인·성폭행 자행/불만스런 현실,책임을 사회에 전가/수단·방법 안가리는 흉포함에 경악 지금 우리나라의 20대는 어디에 서 있는가.그들은 왜 「살인조직」까지 결성,무고한 사람들을 연쇄적으로 납치하여 끔찍한 살인행각까지 벌이게 되었는가.얼마전 돈때문에 친부모를 살인방화한 어느 20대 아들의 패륜을 보며 몸서리쳤던 시민들은 또한번 경악하고 있다.일부 청소년들이 범죄와 비행의 구렁텅이로 전락하고 전도된 가치관을 갖게된 근본 원인과 처방책을 긴급 시리즈(3회)를 통해 알아본다. 청소년문제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우리 사회 20대들의 전반적인 모습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라고 전제하면서도 이들이 공통적으로 지닌 나약함과 의지력 상실,확립되지 않은 가치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명화 YMCA청소년 상담실장은 『강력 범죄마저 서슴지 않는 20대의 행각은 학력과 출세위주의 사회에서 소외된 젊은이들이 현실을 부정,외면하고 순간적인 쾌락과 충동에만 매달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부 청년들사이에서는 이상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땀흘리며 노력하는 것보다는 눈앞의 물질적인 이익만을 추구하며 쉽게 살아가려는 성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일선 수사관들은 갈수록 늘어나는 20대의 강력범죄는 같은 세대사이의 상대적인 박탈감이나 사회와 가정에 대한 소외감에서 비롯된다고 분석한다. 서울 성북경찰서 강력2반장 정홍균경위(46)는 『최근들어 20대 청년들의 범죄가 더욱 흉포화하는 반면 죄의식은 갈수록 없어진다』면서 『오렌지족과 같은 일부 젊은이들의 파행적인 행태가 유행하면서 이들과 비슷한 또래들의 범죄를 부추기는 측면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또 동대문경찰서의 한 간부는 『최근 가정이나 사회에서 소외된 비슷한 처지의 청년들이 강령이나 행동방침을 정해 놓고 합숙을 하며 범죄행각을 벌이는 경우가 부쩍 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들은 자신들의 불만스런 처지를 사회의 책임이라고 잘못 인식하고 그에 대한 전도된 보상심리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죄의식이나 양심의 가책은 찾아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상상할 수 없이 잔인하고 포악한 범죄도 서슴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력을 상실한 채 강도·강간·살인 등을 예사로 저지르고 자기들의 행위에 대해서는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게 특징이다. 이들의 범행수법이나 행동강령,합숙생활 등은 살인과 폭력을 정당화하고 그 속에서 영웅을 탄생시키는 3류 폭력·범죄 영화와 흡사하며 실제로 폭력 비디오물·영화·소설·만화를 보고 그 수법을 그대로 모방하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 고려병원원장 이시형박사(60·신경정신과)는 『소외된 청년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그동안 우리 사회가 방치해온 가치관 교육을 강화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성균관장 최근덕교수(61·성균관대 유학과)도 『청소년의 일탈행동은 올바른 가정교육이 실종되고 학력과 출세만을 지향하는 사회 풍토에서 비롯된 것』이라면서 『현실에서 소외된 일부 청소년들을 포용해 그들의 고민과 문제점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박한상군 사건」관련 다큐멘터리를 보고(TV주평)

    ◎논리전개 미흡… 모방심리 자극 우려 재산상속을 노리고 친부모를 살해한 「박한상군 사건」을 계기로 지난주말 시사 다큐멘터리 프로들은 취재진을 미국에 급파,일부 부유층 자녀들의 도피·향락성 유학의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K­2TV 『추적 60분』은 5일 밤 9시부터 미국 현지취재와 국내 취재를 통해 도피성 유학의 문제점과 이들이 국내 신세대들의 하위문화에 미치는 부정적인 측면들을 조명했다.로스앤젤레스의 유흥가,라스베이거스 도박장 등을 찾아 도박과 마약 등으로 얼룩진 도피·향락성 유학실태를 파헤쳤다.또 귀국해 「수입 오렌지족」으로 변신한 도피·향락성 유학생들이 서울의 유명 디스코텍과 강남일대를 누비며 젊은 층의 밤 문화에 미국의 저질 향락문화를 이식시키는 과정도 고발했다. MBC 「시사매거진 2580」도 같은 날 9시50분부터 일부 도피성 유학생들의 방탕한 미국 유학생활을 현지에서 취재한 「유학간 탕아들의 24시」를 첫번째 아이템으로 다루었다. 유학생 도박 실태를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주변에서 잠입 취재했으며 한국인들이 많이 다니는 어학연수원을 비롯해 나이트클럽,한인 상대 룸살롱 등을 소개해 일부 도피성 유학생들의 방탕한 미국생활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이들 프로들은 패륜살인이 던져 주는 사회적 의미를 조명,시청자들과 생각해 본다는 의미에서 마련됐다.그러나 같은날 같은 시간대에 내보낸 이들 프로들은 취재장소나 내용이 대동소이 했을뿐 아니라 어느 프로도 문제의 본질을 꿰뚫지 못하고 있다. 이미 인쇄매체를 통해 보도된 향락성 유학실태와 탈선 현장을 보기에 짜증스러울 정도로 모자이크처리된 화면과 변조된 음성으로 우리 안방에 중계하는데 그쳤다.「추적 60분」에서 취재진이 관광객을 가장해 파트타임 관광파트너로 일하는 여학생을 인터뷰한 것이나 「시사매거진…」에서 10대초반의 현지 거주 한인 청소년들의 마약복용과 혼숙 등 충격적이긴 하지만 주제를 벗어난 내용도 많았다. 더욱이 어두운 사회의 일면을 고발하는 것외에 시사 다큐멘터리가 반드시 지녀야 할 요소,즉 차분한 논리전개가 미흡했다. 문제에 대한 충분한 분석을 하지 않고 급하게 제작돼 충격적인 장면들로 가득한 고발 프로는 시청자들에게 상대적 박탈감만 안겨주고,모방심리를 자극하는 등 심각한 역효과를 낳는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겠다.
  • 우리를 훈훈하게하는 효심/어버이날을 더욱 값지게한 사람들

    ◎경로당 운영 이병수씨 부부/외로운노인 2년째 뒷바라지/작은식당 수입 쪼개 80명 돌봐 『비록 작은 공간이지만 외롭게 지내던 할머니들이 기쁜 마음으로 함께 지내는 것을 보면 힘이 절로 솟아 납니다』 서울 성동구 성수2가 1동에 할머니들을 위한 무료 경로당인 「신라 경로정」을 마련,2년째 동네 할머니들을 돌보고 있는 이병수(57)·박녀순씨(49)부부. 동네 한켠에서 조그마한 식당을 경영하는 이씨부부는 식당 수익금으로 80여명이 모이는 노인정 경비까지 대느라 언제나 빠듯한 생활을 하면서도 노인들을 마치 친부모처럼 정성껏 뒷바라지하고 있다. 전북 장수군 산서면이 고향인 이씨부부는 77년 상경,성동구 성수2가에서 조그만 구멍가게를 내고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이들은 집근처에 있는 가게에 나갈때면 동네 골목어귀나 공터에 모여 종일 할일없이 무료하게 앉아있는 노인들을 보기가 안타까웠다.궁리끝에 매일 따뜻한 점심식사를 지어 노인들에게 갖다드렸다. 그러나 노인들이 함께 모여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마땅한 장소가 없는 것이 못내 박씨부부의 가슴에 걸렸다. 그러다 92년 10월 1천만원을 빌리고 이 돈에다 월세 30만원을 얹어 25평짜리 2층을 임대해 지금의 노인정을 마련했다. 이씨부부의 생활은 이후 더욱 바빠졌다.한달에 1백여만원쯤되는 노인정유지비를 마련해야 함은 물론 명절이나 어버이 날 행사등 각종행사도 챙겨야 했기때문이다. 올해도 어버이 날을 앞두고 6일 뚝섬 고수부지 잔디밭에서 신라경로정을 비롯,인근 구립·중앙·정안경로정등 모두 4개 경로정 할아버지 할머니 3백여명을 모시고 「경로잔치」를 열었다. 『비좁은 노인정에서 답답해하시던 노인들이 활짝 트인 고수부지 잔디밭 위에서 달리기를 하고 덩실덩실 춤추는 것을 보니 참으로 좋다』며 즐거워하는 이씨부부의 모습에서 잊혀져가는 「효자효부」의 모습을 되찾는 듯 했다. 이씨부부는 『어버이 날 하루 부모님께 반짝 효도하는 것보다 평소 노인들을 위하고 보살피는 미풍이 생겨나야 한다』면서 『앞으로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함께 지내실 수 있는 더 큰 경로정을 마련하는게 소원』이라고 말했다. ◎동백장 받는 효부 기분도씨/고령의 시어머니 40여년 수발/남편 병사후 가장역 꿋굿하게 40여년간 가장 노릇을 하며 고령의 시어머니를 수발해온 시골아낙네가 가정의 달을 맞아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는다. 경북 상주군 함창읍 척동리24에 사는 기분도씨(56)는 「효부」일 뿐만아니라 남편 병구완에 헌신하고 온갖 역경 속에서도 아들 2명을 훌륭한 사회인으로 키운 모범 어머니이기도 하다. 재산이라곤 논 3마지기(6백평)가 고작인 장영철씨(91년 사망)와 17세 되던 해 결혼한 기씨는 시어머니 김은이씨(1백5세·결혼당시 65세)를 모시며 새살림을 시작했으나 남편이 결혼 2년뒤에 결핵을 앓게 됐다. 이때부터 그는 농사일은 물론,과일 노점상·옷가지 행상등 돈벌이가 되는 일이라면 밤잠을 설쳐가며 일해 집안을 이끌어 왔다. 그러던중 지난 85년 시어머니 김씨가 중풍으로 자리에 눕자 전 재산인 논 3마지기마저 팔아 병 치료비에 털어 넣었으며 4년동안 대·소변을 받아내는등 지극한 정성으로 간호해 시어머니의 건강을 회복시켜 1백세를 넘도록 봉양하고 있다. 남편 장씨는 발병초기 약을 제대로 쓰지 못한데다 그 이후는 몸이 너무 쇠약해져 30여년간의 간호에도 불구,91년 사망했다. 기씨는 남편과 시어머니 병간호의 와중에서도 아들 2명을 고등학교까지 졸업시켜 맞아들 세훈씨(29·서울 거주)는 중소기업체의 기능공으로,둘째아들 석훈씨(26)는 함창농협에서 맡은바 직분을 충실히 다하는 사회의 일꾼으로 키워냈다. 『사람으로 당연히 할일을 했을뿐인데 과분한 상을 주시고 대통령께서 격려해 주시니 정말로 고맙다』며 지난날의 고생을 떨쳐내는듯 기씨는 모처럼 깊게 파인 주름살위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 미에 손자·손녀 키우는 「노부모」 급증/뉴욕타임즈지 최근실태 보도

    ◎청소년들 마약중독·혼전출산 날로 늘어/「동병상련」 노인들 모여 정보단체 조직도 최근 미국에서는 자신의 자녀들이 낳은 아이를 대신 양육하고 있는 「조부모­손자손녀」 세대 가정이 급증, 큰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딸애가 처음엔 자기가 키우겠다고 우기더니 갓난애가 며칠 앓는 것을 보더니 떠나버렸어요』미국 미시간주 닐시시에 사는 올해 45살의 간호사 메리 프론씨(여)부부는 자녀들을 어느정도 키우고 자신들의 생활을 즐기길 기대하고 있던 5년전,미혼모 상태로 임신한 딸(16세)이 남자아이를 낳은뒤 다른 주로 떠나버려 꼼짝없이 늦둥이 자식에 매인 부모가 돼버렸다. 뉴욕 타임스 최근호에 따르면 약물남용,AIDS(후천성면역결핍증),폭력등으로 자신이 낳은 갓난아이를 부모들에게 맡겨버리는 젊은이들이 늘면서 엉겹결에 비공식적으로 손자손녀를 기르다 양육비보조 문제로 결국에는 입양등 법적 경로를 통해 정식 자녀로 거두게 되는 조부모들이 늘고 있다고 전한다. 미국의 90년도 인구센서스 보고에 따르면 할아버지 할머니,다른 친척에 의해 길러지는 어린이 3백20만명(80년도 대비 40%증가)중 3분의1 이상이 부모가 집에 없는 어린이.이수치는 실제보다 훨씬 낮게 파악된 것으로 조사담당자들은 보고 있다.캘리포니아 버클리대의 공공보건연구팀은 오클랜드시의 경우 조부모를 부모로 둔 학생이 절반이 넘는 초중고교가 상당수 있다고 밝힌다. 손자 손녀를 키우는 조부모들의 어려움은 한두가지가 아니다.퇴직후 고정된 연금으로 생활을 해나가는 형편인 사람들이 많아 각종 양육기금을 타내고 정보를 얻기위한 라킹「ROCKING」(Raising Our Children’s Kids·자식의 아이들 기르기)모임을 발족,같은 처지의 조부모들을 지역의 단체등에 연계하는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또 법적인 양육권과 공공기금 지원등의 문제가 결부되는등 퇴직 노부모들이 해결해야할 고민들이 생겨나면서 미국 퇴직자협회(AARP)등도 워싱턴에「아이를 기르는 조부모를 위한 정보센터」를 설립,각종 상담을 해주고 있다. 경제적 문제와 함께 대두되는 것이 아이들이 비행청소년으로 자라지 않도록 하는 정서적 양육문제.AARP 「아이를 기르는 조부모정보센터」,버클리대 건강교육센터및 심리학자들은 조부모와 피양육어린이 1.3세대가 모두 2세대로부터 버림받았다는 비애를 느낄 수 있다면서 이를 방지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조치들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아이들이 부모로부터 버림받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해주면서 친부모의 얘기를 숨기지 말고 해줄것 ▲「우리는 너희들을 끝까지 사랑하고 돌봐줄 것」이라며 안아 주고 아이들의 부모가 전혀 돌아올 가능성이 전혀 없더라도 이들의 관계를 유지하는 끈을 계속 남겨둘 것등을 제안했다.
  • 북미 친부교민들 「친선협회」를 결성

    【워싱턴=이경형특파원】 미국 워싱턴에 친북한계 교포들로 구성된 북미주지역조직인 「노스아메리카­코리아친선협회」가 결성됐다. 이 단체는 지난 27일 워싱턴DC의 홀리데이인호텔에서 창립총회를 가지고 수석의장에 최도식씨(필라델피아거주 내과의)를 추대했다.
  • 미 밀튼 허시스쿨/불우청소년 “교육낙원”

    ◎유치원서 고교까지 독특한 운영/전교생 1천1백명… 숙식·의료 등 무료로/대리부모 붙여 정상적 가정생활 꾸리게 먹여주고 재워주고 입혀주기까지 하는 학교,집 떠난 어린 학생들이 외로움에 빠지거나 애정에 굶주리지 않도록 대리부모까지 대 주는 학교.미국 동북부 펜실베이니아주의 해리스버그에 있는 밀튼 허시 스쿨의 독특한 운영 방식이다. 세계적인 초콜릿 제조회사인 허시식품회사의 창업주인 밀튼 허시가 1918년 평생 모은 7천만달러(허시사의 지분 44%)의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이 학교는 불우한 환경의 학생들에게 가장 이상적인 교육과정과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유치원 과정부터 고등학교 과정까지 전교생이 1천1백명에 불과하지만 연간 예산은 무려 4천3백만달러(약 3백50억원)에 이른다.캠퍼스 넓이가 서울대 관악캠퍼스의 4배에 해당하는 3백84만평이며,각종 놀이시설과 야영장·밀림 등으로 엮어진 부설농장도 7백20만평이다.학생들은 이처럼 광활한 시설에서 기본적인 학습과 기술습득은 물론 캠핑과 탐험을 통한 자연학습을 한다.또 수영·테니스·아이스하키 등 각종 스포츠도 배운다.개인의 소양에 따라 합창단·밴드·연극·댄스 등 사회생활에 필요한 예능도 익힌다.우리나라에서는 비싼 과외비를 들여야 가능한 일들이다. 부설병원에서 모든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며 쇼핑센터는 의복 등 필요한 물건을 무료로 지급한다.본인이 원하면 학교 주변 마을이나 사회단체의 활동에도 참여할 수 있다.한 학급당 인원은 12∼15명으로 철저한 개인교습으로 수업이 진행된다. 창업자의 설립정신인 전인교육을 실현하기 위해 학교생활 못지 않게 가정교육도 중요시한다.캠퍼스 외곽 부설농장에 지어진 89개의 단독주택에 학년 별로 1∼2명씩,10∼14명 단위로 기숙시키면서 학교가 고용한 대리부모를 붙여 준다.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가정과 똑같은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려는 배려이다. 대리부모는 학생들이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하도록 도와주고 개인적인 어려움도 덜어주는 역할을 한다.또 가정이라는 공동체 생활을 통해 상호간의 연대의식을 강화시키고 집안 청소나 허드렛일 등 각자에 알맞는 일을 주어 독립심을 길러 준다.주말이나 방학에는 친부모가 이들을 면회하거나 함께 생활할 수 있다. 학생선발은 매년 8월 학기 시작 전이다.가정환경이 어려운 4∼15세의 어린이와 청소년이 대상이다.결원이 생기면 1월에도 뽑는다.국적과 인종의 차별은 없다.지난 1월초 송모양(16)이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들어왔다.1909년 4명의 학생으로 출발했으며 지금까지 7천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졸업생 중 크게 이름을 떨친 인물은 없으나 미국의 평균인 이상의 생활을 영위한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졸업생 중 약 85%가 대학이나 기술학교 등 상급학교로 진학하며,이들에게는 졸업 때까지 매년 최고 4천달러의 장학금이 지급된다. 학교 관계자들은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어린이들을 지나치게 호사스런 시설에서 가르침으로써 생기는 부작용과 대리부모 지정에 따른 친부모와의 혼란 가능성 때문에 미국의 교육학계에서도 밀튼 허시 스쿨의 운영방식에 대해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고 털어놓고 『그러나 우리 학교가 없었더라면 현 재학생은 대부분이 불우한 환경에서 문제아로 자랐을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 주방용 칼/칼날·손잡이 상태 우선 확인(알고삽시다)

    ◎17개제품중 톱니형이 절삭­내구성 우수 음식재료를 썰고 다듬고 다지는데 쓰이는 주방용 칼.요리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도구이지만 절삭성능이 낮거나 쉬 무뎌지는 제품도 있어 조리때 힘이들고 짜증이 나기 쉽다.또 칼날과 손잡이 사이에 틈새가 있으면 음식물 찌꺼기가 끼어 주방을 비위생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한국 소비자보호원은 최근 가정에서 사용하고 있는 스테인리스강으로된 주방용 칼중 길이가 비교적 대형인 것으로 칼날 모양이 일반형인 15개 제품(수입품 1개 포함)과 톱니형인 제품2개(수입품 1개 포함)에 대해 절삭성(칼이 잘드는 정도)등의 항목에 관해 품질비교 시험을 했다. 신문지를 폭 7.5㎜로 잘라 여러장 겹친후 칼위에 5백g의 하중을 가하고 칼을 20㎜ 왕복 시켜 신문용지가 몇장 잘리는지 알아보는 절삭성 실험을 한 결과 톱니형인 도루코 산업의 동백식도와 영국의 셰필드제품이 매우 우수한 것으로 밝혀져 잘 잘려지지 않는 김밥이나 육류를 자르는데 유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톱니형제품의 경우 내구성실험에서도 일반형보다단연 우수했는데 도마에 흠집을 내는 단점이 발견됐다.일반형중에서는 세신실업제품이 절삭성이 좋았으며 경동산업의 키친아트 식도,리빙스타의 리빙스타 특제식도,영창금속,유일스텐레스상사 제품은 상대적으로 미흡했다. 칼은 크게 칼날과 손잡이로 구분된다.칼날에는 구멍·갈라짐·이빠짐등이 없고 손잡이에 거친부분이 없어야 사용하는데 불편함이 없다.조사대상 제품이 모두 이상이 없었으나 칼날과 손잡이의 조립 부위에서 금화종합상사·동은금속·리빙스타의 리빙스타킹·세신실업·영창금속·유일스텐레스상사·독일의 헹켈스·영국 셰필드제품은 약간의 틈새가 있었다. 한편 칼날은 적당한 두께로 예리하게 연마되고 구부러짐이 없어야 자르는데 힘이 덜든다.칼날의 두께와 구부러짐을 측정한 결과 영국의 셰필드 제품의 구부러짐이 0.8㎜로 기준치(0.5㎜)를 초과하여 미흡하였고 그 외 제품은 양호하였다. ◎사용·보관법/고기는 끝으로 야채는 자루쪽으로 썰도록/장기간 보관할땐 식용유 엷게 발라 두어야 주방용칼을 사용하다 보면 칼자루가 빠져 애를 먹는 경우가 종종있다.이럴때는 헝겊에 소금물을 적셔 칼자루에 감아 끼우면 염분성분으로 자루에 박힌 부분에서 녹이 끼어 잘 빠지지 않는다. 무디어진 칼날을 갈때는 도자기로 만든 사발을 도마위에 뒤집어 놓고 사발 밑면의 둥근테에 칼날을 몇번 문지른다.또 고운 샌드페이퍼를 구해 문질러 주면 더 정밀하게 갈 수있다. 날을 오래 사용하려면 고기나 생선과 같이 밀고 당기면서 써는 것은 칼 끝에 가까운 앞부분으로 썰고 무나 당근과 같이 눌러서 써는 것은 자루에 가까운 부분으로 썰도록 한다.그러면 평소보다 두배이상은 날을 갈지않고도 오래 사용할 수있다. 장기간 보관할때는 식용유를 엷게 발라 보관하면 녹슬지 않고 오래 사용할 수있다.
  • 「세종 캠프」(뉴욕에서/임춘웅칼럼)

    지난달 22일부터 1주일동안 뉴욕주 하버스토로에서는 우리의 관심을 모으는 하나의 이색 캠프가 열렸다. 노란 머리의 미국인과 검은 머리의 한국계 청소년들이 한데 어울려 한국말을 배우고 농악을 익히며 한국역사와 한국의 풍습을 공부하는 그런 캠프였다.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꽉짜인 스케줄에도 참가자들은 늘 진지했고 조금이라도 지루해 보이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다.한국계 어린이들은 처음엔 자기와 비슷한 처지의 어린이가 자기말고도 또 많다는 사실에 놀라는듯 했으나 금방 호기심으로 충만했고 미국인들은 그들의 어린이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며 어떻게 적응해 나가는지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세종캠프」라는 이름의 이 모임은 한국어린이들을 입양해 키우는 70여 미국가정이 입양아들에게 그들의 뿌리를 찾아주기 위해 마련한 캠프였다.뉴욕 뉴저지 코네티컷 펜실베이니아 일대에서 참가한 이들 입양가족들은 한국어린이를 입양했다는 공통점으로 해서 한국에 대한 관심과 또 어떻게 해야 이 애들을 잘 키울수 있는지에 대해 공통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미국 가정에 입양돼 천진난만하게 자라던 어린이들은 사춘기를 맞으면서 자신이 부모들과 생김새가 다르고 친부모들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충격으로 해서 대부분이 심한 정신적 갈등을 겪게된다고 한다.이렇게 고통을 받는 입양아들에게 이를 극복케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그들에게 뿌리를 찾게해주는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세종캠프」를 준비하는데는 무려 1년여의 시간이 소요됐다고 한다.뉴저지주 한국어린이 입양가족 모임인 레인보 클럽은 그동안 수백통의 편지와 협조문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우선 지리적으로 가까운 뉴욕 일원에 얼마나 많은 한국인 입양가족이 있는지를 파악하고 캠프에 참가할 의향이 있는지를 알아보았으며 캠프에 드는 비용을 지원할 수 있는 자선단체나 기타 관련단체에도 협조문을 보냈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KIM(Korean Identity Matters)에는 캠프의 프로그램 작성과 지도요원을 보내 주도록 요청했다.KIM은 지난 10년동안 미서부지역을 중심으로 한국입양아들을 집단지도해온 한국계 1.5세와 2세들의 모임이다. 이번 캠프동안 이들 양부모들이 보인 열의와 정성은 실로 눈물겹기까지 했다.한국의 역사와 풍물에 관한 책 몇권 안읽은 사람이 없는듯 했고 한국말을 배우려는 열성이며 윷놀이·한국연의 특징까지 알아두려는 철저함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그들은 이번 캠프에 후원금외에 한집에 3백50달러씩을 내고 참가했다. 6·25이후 미국에 입양된 한국어린이의 숫자는 무려 35만여명이라고 한다.이들 입양가족들이 「세종캠프」에 참가한 가정들처럼 모두가 모범인 것은 물론 아니다.학대받고 버려둔 부모도 있다.왜 한국어린이를 입양하는가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없지 않다.그러나 「세종캠프」는 우리를 숙연케 한다. 이번 캠프를 후원해달라는 협조문을 받은 뉴욕일원의 수많은 한국회사와 단체중 응답을 해온 곳은 L사와 D사 단 두곳 뿐이었다는 사실이며 성장한 입양아들이 참으로 차별을 받는 것은 미국인들로부터라기보다 한국사람들로부터라는 얘기는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 타박상의 생리현상/정양기 성모재활의학과의원 원장(건강한 삶)

    일상생활은 향상 움직임의 연속이고 그러한 움직임 속에서 조금만 부주의하면 쉽게 몸을 가구나 책상의 모서리등 딱딱한 부분에 부딪치게 된다. 충돌하는 힘이 어느정도 이상만 되면,즉 연부조직을 손상시킬정도 이상만 되면 부딪친부분은 부어오르면서 푸른색으로 변색되고 우리는 그것을 타박상,혹은 멍들었다고 한다.인체의 연조직에 기계적 충격이 가해지면 조직내의 가느다란 혈관들이 파열되고 주위에 부종이 생긴다.이것이 눈에 보이는 변색과 붓는 현상으로 나타난다.변색은 체내의 색소에의해 생기는데 최초에 손상된혈관을 빠져나온 적혈구의 헤모글로빈은 적색이지만 혈관밖에서는 응고되면서 암적색으로변하는데 이것이 피부 아래 있기때문에 피부밖의 우리눈에는 푸른색으로 보여 우리는 이것을 일컬어 「시퍼렇게 멍들었다」고 표현한다그리고 이와함께 생긴 부종은 빠르면 수분혹은 수시간만에 타박상 부위가 퉁퉁 부어오르게 한다.이와같은 조직내의 변화들이 피하에 흩어져있는 신경 말단의 자극수용체들을 자극하여 통증이 동반되게 한다.따라서 타박상 부위를 자극하면 자극수용체에 대한 자극이 더욱 많이 일어나므로 통증이 더 심해진다.혈관밖으로 유출된 적색의 헤모글로빈 색소는 우리 몸의 분해작용에 의해 다른 종류의 색소로 변화된다. 타박상의 이러한 일련의 경과는 그순서에 있어서는 항상 마찬가지이지만 경과 시간에 있어서는 타박상의 충격의 심한정도,부위의 크기등에 따라 출혈량,부종의 정도등이 다르므로 통증의 소멸,부종의 소멸,피부 색깔의 회복에 걸리는 시간에 차이가 있다.이러한 타박상에 대한 치료로는 통증과 국소 조직 반응인 염증을 감소시킬 목적으로 진통소염제를 복용할 수 있으며 물리치료를 통해 통증감소효과,부종감소효과,색소의 변화과정 촉진에 의한 피부색깔회복 촉진효과등을 기대할 수 있다.
  • 여류명창 김명하씨(이세기의 인물탐구:28)

    ◎청류의 음색·유창한 성조… “타고난 소리꾼”/12가사·시조 등 정가 두루 통달… 명인 경지에/장려한 성색·거침없는 음역엔 감탄사 절로/“한의 세월 노래로 용해”… 사재로 문화재단 설립,후학 길러 /모란은 화중왕이요 향일화는 충신이로다.연화는 군자요 행화소인이라,국화는 은일화요 매화한사로다­/ 두 손을 무릎위에 가지런히 얹고 단정하게 노래부르는 월하의 편수대엽은 세파에 시달린 흔적없이 계류처럼 맑고 청아하게 흘러내린다. 특히나 그의 세청은 비단실을 뽑아내는듯한 명가의 격조와 경제특유의 화려하고 힘있는 성색을 지닌것이 특징이다. 처음을 높이 질러부르는 언롱은 쉽사리 달아오르거나 쉽사리 자지러들지 않는다.넘어가고 이어지고 휘어지고 늘어지는 가락마다에 인생의 희로애락을 굽이굽이 드리우면서도 풍류를 생략하거나 정가특유의 기품을 손상시키지 않는다. ○명주 명주 명주 비유 원로국악인 성경린씨는 일찍이 월하의 노래를 일컬어 「무늬없이 짠 치렁치렁한 비단」이란 의미의 명주,또 현란한 구슬을 끝없이 꿴듯한 명주,그 깊고 유창한 성조에 취하지 않고는 배길수 없는 명주에 비유했고 「월하의 정가를 들을수 있는것은 우리로서는 얼마나 경행스러운 일인가」를 찬탄해 마지않았다. 관현악반주에 맞춘 가곡12가사를 비롯,시조·한시·칠언절구에 뛰어나고 양금·거문고 연주솜씨도 수준급이다. 평시조 엇시조·사설시조·지름시조,가곡의 우락·계락등 어느 대목에 이르러도 구구절절 막힘이 없고 중간에서 곡조를 잠깐 변조시켜 질러부르는 계면조(중거)는 시의 참맛을 살려 시절가다운 흥취를 능란하게 펼쳐나간다. 아련한 피리소리 전주에 실린 피리소리 못지않은 그의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재능은 과연 타고나는 것이라는 감탄이 절로 나올수밖에 없다.만약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면 어떻게 저런 청추의 음조를 끝없이 울릴수 있을 것인가. 집안대대로 소리를 하거나 춤을 추거나 어릴때부터 유랑극단을 쫓아 일찍이 자신의 기량을 갈고닦아온 다른 국악인들과는 달리 월하의 국악계 입신은 참으로 극적이고 의외의 예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가 지금까지의 본명 김덕순대신 여창 김월하로 다시 태어나기까지는 마치 백락천의 비파타는 여인을 연상케하는 참담하고 기구한 사연이 오뇌의 흐느낌처럼 얼룩져있다. 그는 본래 경기도 고양군 한진면 보광리,지금의 이태원부근에서 평범한 가정의 2남3녀중 막내로 태어 났다.그러나 나이 세살때 전국에 창궐하던 호열자에 걸려 어머니와 두 오빠가 죽고 부친 김희문씨가 실성하다시피 집을 뛰쳐나가자 세자매는 뿔뿔이 흩어져 남의 집 양녀로 키워지게 되었다. 그가 양녀로 간집은 종로구 사간동 모녀이대가 사는 전통있는 가문으로 그는 조모와 양모밑에서 절도있는 여성이 갖춰야할 모든 덕목과 예절을 배우며 자라났다. 재동보통학교에 다녔으나 15살때부터 혼인말이 나오더니 16살되던해 경기도 양주출신으로 서울에서 회사에 다니던 김용복씨와 결혼,부군은 부인을 끔찍히 사랑하여 묘동학원 속성고등과에 보내주는등 자녀는 없었지만 부부의 금실은 유난히 좋았던 추억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6·25때 부군이 납북되자 그는 손재봉틀 하나를 들고 부산 피란길에 나섰고 그때부터 이루 말할수 없는 가난과 고초를 겪는 나날을 보내야 했다.낮에는 낙동강 하구 하단에서 푸성귀를 받아다가 동대신동 시장에 나가 팔고 밤에는 삯바느질,착실하게 돈을 모아 집한채를 마련했으나 먹고 자는것 잊어 버린채 건밤샘으로 일거리에 쫓기다보니 영양실조에 걸려 덜컥 몸져 눕게 되었다. ○시조 동호모임 가입 그때 동네노인의 권유로 지금은 없어진 구덕수원지쪽에 산책을 나가기 시작했고 새벽마다 그곳에서 시조연습을 하던 시조동호인들을 만난 것이 그의 운명을 바꾼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멀찌감치 비켜앉아 그들의 연습을 구경이나 하는 입장이었으나 입속에서 조금씩 따라부른것이 차츰 시조에 빠져들어 그 모임에 자연스럽게 끼어들수 있었다. 그때까지도 그는 자신의 목소리를 모르고 있었고 어디서 노래부른적도 없어 그저 남이 하는 대로 따라부를수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느리고 길게 뽑는 호흡도 그렇지만 노래의 맛을 깊이 알아 우조를 부르고 계면우를 부르는 툭 터진 소리는 「마치 통나무를 끌고 산에서 내려오는 것처럼 화미하면서도 시원하다」하여 당장에 시조하는 사람들의 눈에 띄고 말았다. 마침 동호인의 한사람이던 두봉 이병성이 두세번씩 그의 노래를 따로 청해 듣고는 「성색의 단아함과 장려함」에 무릎을 치며 기뻐해 마지 않았다.두봉은 이왕직 아악부에서 하규일의 지도를 받은 성악의 큰 봉우리로 그는 모처럼 만난 이 재능있는 여성에게 시조와 12가사 완창지도를 자청하고 나섰다.그때 얻은 아호가 달을 지고 있다는 뜻의 월하였다. 그는 장사를 때려치우고 낮에는 두봉 밑에서 배우고 또는 동네유지들을 모아 가르치거나 여기저기 불려나가 가곡을 부르게 되었다. ○소남 이주환에 사사 또 절색의 미모탓에 그를 바라보는 뭇시선이 많았으나 깔끔하고 쌀쌀한 성품은 한눈파는법 없이 오로지 시조에만 매달렸고 밤에는 여전히 삯바느질을 해냈다. 『어릴때 친부모 형제를 잃고 양녀로 키워지던 소년시절과 남편과 행복했던 결혼생활,피란지에서의 가난과 슬픔』을 마감하고 시조수업 3년만 59년 서울 중앙방송국이 주최한 이승만대통령 탄신기념명창대회에서시조부문 1등 수상,당대최고 율객으로 손꼽히던 소남 이주환역시 「정려하나 격발이 없는,이처럼 가곡을 위해 태어난 청류의 음색」은 결코 흔치않음을 심사평에서 지적했다. 그는 이를 계기로 피란길 10년만에 다시 서울로 올라와 국립국악원에서 본격적인 소남의 가곡수업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그때 나이가 43세. 일장월취로 시존의 모든 갈래를 꿰뚫었고 한시도 세갈래로 섭렵하여 그의 이름은 널리 회자되기 시작했고 정부행사나 모든 축하모임에서 당당히 가곡독창자로 출연하는 화려한 월하시대를 개막했다. ○검약실천,저축상받아 국악원과 국악예술고를 비롯,서울대 한양대 추계예술대 정신문화원 강사로 하루 5∼6시간 강의가 있을때도 그는 바느질만은 손에서 놓지 않는다.마포와 낙원동에 각 5층짜리 빌딩 주인에다 저축상을 받기도 한 재산가지만 단칸방에서 손수 밥을 지어먹고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다닌다.아무리 배가 고파도 국수한그릇 사먹기위해 혼자서 식당에 들어가본일도 없다.화투짝 한번 만져 본적도 없고 술잔한 담배 한모금도 입에 대지 않았다.그는 찬밥에 물을 말아 내손으로 담근 김치로 식사를 때우고 새벽에 일어나면 그가 사는 낙원동 골목길을 일일이 청소한다. 수없이 길러낸 자녀들의 미국유학도 하고 박사나 교수가 되기도 했지만 공부를 시키고 나면 독립시킬뿐 은혜에 보답받기 위해 그들을 공부시킨 것은 아니다. 지난 90년 50억 재산을 몽땅 털어 월하문화재단을 설립,마포에 있는 연구소에 나가 학생들을 가르치고 지금도 집에는 대학 국악과에 보내고 있는 서너명의 양녀를 데리고 있다. 『나는 그저 평범한 아녀자에 불과할뿐,다행히 시조를 좋아하여 이 세계에 빠질수 있었고 나의 모든 시름과 외로움을 덮어준것을 늘 감사하고 있다』그래서 특별한 사명감이나 포부때문은 아니지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속요와는 달리 김천택의 청구영언 박효관·안치영의 가곡원류 김수장의 해동가요등 바둑판처럼 또렷한 정간보에 의해 비교적 체계있게 전수된 우리의 가곡을 후대까지 잇게하기 위해 국악에 뜻을 둔 젊은이들을 한명이라도 더 가르치고 싶다는 일념이다. 시조강의할때가가장 행복한 그는 그의 소리를 원하는 곳은 부산이든 대전이든 마다않고 달려간다.그리고 어떤 무대에서도 「어전에서 부르던 정갈하고 깔끔한 노래답게 소리에 한도 싣지않고 흥도 치우치지 않게」몸가짐·마음가짐을 흐트리지 않는다.두성과 비음을 다 쓰면서도 잡소리가 섞이지않은 그의 노래가 곧잘 범패에 비유되는 것은 불교신자로서의 그만의 독특한 득도의 경지때문일 것이다./바람은 지동치듯 불고 궂은비는 붓듯이 온다.눈 정에 거른 님은 오늘밤 서로 만나자고 판접쳐서 맹서 받았더니 이 풍우중에 제 어이오리,진실로 오기 곳 오량이면 연분인가 하노라­. 이 짧은 우락이 10여분.그는 부군을 잃은대신 「가곡」으로 꽃피운 그의 세월속에서 도무지 오지않을 님을 한시도 기다리지 않은적이 없는듯,그 높고 긴 가락속에 임그리운 여운을 절절히 끌고있다. 웅려 정대한 스케일과 함께 옥쟁반에 쏟아붓는 은구슬 금구슬의 그 현란한 사연은 아마도 「나이나 세월은 사랑을 멈추게 하지않는다」는 단 한마디,그래서 그 끝없는 마음속의 계류는 어쩌면 눈물일지도 모른다. □연보 ▲1917년(양력 19 18년2월8일)경기도 고양군 한진면 보광리 출생(본명 김덕순) ▲1932년 서울재동보통학교졸업 ▲1936년 서울묘동교회 부설 묘동학원 야간부고등과 졸업 ▲6·25 부산피란시절 부산 시조동호인 국립국악원 부산지원 두봉 이병성선생(이왕직아악부출신)사사 ▲1958년 서울중앙방송국주최 이승만대통령 탄신기념 명창대회 시조부문 1등 수상,소남 이주환선생(초대국립국악원장)사사를 비롯,전라도 임석윤·이창배·정운산 선생 사사 ▲1959년 「월하시조」(오아시스레코드 출반) ▲1961년 서울귀환(종로구 낙원동 정착) ▲1968년부터 국악고교 졸업식장서 장학생선발(장학생육성시작) ▲1969년 국악협 시조분과위원장 ▲1970년 전국시우단체 총연합회 발족 초대 회장취임 ▲1973년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여창가곡 예능보유자지정 ▲1974∼92년 국립국악원·국악예술고강사 ▲1975∼92년 서울대·한양대·추계예술대강사 ▲1981년부터 해마다 조선일보사주최 국락대공연 참가 ▲1983년 「김월하시조(1집·2집)」(아시아레코드출반) ▲1984년9월 문예진흥원주최 가곡발표회(문예회관대극장) 10월 가곡보존협회주최 가곡발표회(세종문화회관대강당) ▲1986년 「김월하가곡집」(LP3장,문화재보호협서출반) ▲1987년 국립국악원주최 중요무형문화재 발표 해마다 참가 ▲1990년 월하예술단및 월하어린이 예술단창단(KBS­TV출연및 해마다 지방공연) ▲1991년 뮤지컬 「콩쥐팥쥐」(월하 어린이 예술단공연) ▲1991년 재단법인 월하문화재단 발족(월하국악상 제정및 국악경연대회 국악연구발표및 관련단체지원,장학생 선발 등의 사업) ▲1992년 월하문화재단설립1주년기념 전통음악발표회(예술의전당)주한외국인초청 공연(워커힐서)월하예술단공연(세종문화회관대강당)수십차례의 국내공연및 해외공연등 ▲1976년∼현재 법원연수원·서울교육원·정신문화연구원·한국표준공업학회 국립국악원 출강(현재)월하문화재단이사장,월하예술단및 월하어린이예술단대표,국악협회고문 84’국악대상·세종문화대상·88’저축의날 국민목련장
  • 「어린이집」 운영 처녀4인(봉사하는 삶:3)

    ◎저소득층 부담더는 탁아봉사 3년째/모두 이대출신 20대 “아이들의 대모”/하루 11시간씩 15명 돌보는데 큰 보람/“시설넓혀 아이들에 보다 양질의 교육시키는게 소망” 심선경·박금희·남성옥·서현경씨등 20대 중반의 네 처녀에겐 아이가 아주 많다.지훈이 예슬이 호용이 새롬이 규홍이 세미 지영이 미림이 등 이름만도 예쁜 아이가 모두 열다섯이나 된다.물론 직접 낳은 아이는 아니고 낮동안만 돌보아주는 남의 아이이긴 하지만 아이들에 대한 사랑은 결코 친부모에 못잖다. 이화여대를 졸업한 이들 네 처녀는 반월·시화공단의 배후도시인 경기도 안산에서 비영리탁아소인 「꿈나무 어린이네 어린이집」을 3년째 운영하고 있다.대부분 인근공단에서 맞벌이하는 아이들의 부모가 일찍 출근하면 네 처녀는 온전히 아이들의 대모가 된다.아침 7시30분부터 저녁 6시30분까지 11시간동안 아이들과 계속 말하고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관절과 허리 등에 가벼운 신경통까지 얻었지만 이들에게 아이를 돌보는 일은 다른 어떤일보다 즐겁고 보람있다. 꿈나무 어린이네에는 부모가 생산직에 근무하거나 전월셋집에 사는 생후30개월에서 6살까지의 어린이들이 있다. 대학시절 여성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이들이 처녀의 몸으로 탁아사업에 뛰어든 것은 지난 91년.같은 여성으로서 일하는 저소득층 여성의 부담을 덜어주자는 순수한 동기에서였다.그러나 지금은 여성문제만큼 양육문제 또한 중요한 문제라는 사실을 새롭게 깨닫게 됐다. 사회사업,가정관리,신문방송학등을 전공한 이들은 졸업후 1년간 여성·탁아·양육 등에 대한 공부를 하고 아르바이트와 서울의 부모님 도움으로 구한 1천2백만원으로 안산에 15평의 전셋집을 얻어 탁아방의 문을 열었다.매달 적자를 면치 못하는 탁아방의 운영을 위해 네사람은 가난한 살림 꾸려가는 억척어멈처럼 온갖 일을 다한다.이들이 탁아방의 운영을 위해 이제까지 해온 부업은 1일찻집,달력 만들어팔기,꿀판매,대학축제때 음식 만들어팔기 등 다양하다.우리나라 사회복지수준의 열악함을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생각했던것보다 상황은 훨씬 어려워 이들은 때때로 심한 좌절감을 느끼기도 한다.『시골구석에서 공도 없다는 애보는 일을 한다고 부모님이 핀잔하실때나 정부에서 비협조적일때면 우리가 여기서 무얼 하고있나 하는 좌절감이 들때도 없지 않아요.또 94년부터 발효되는 영유아보육법은 탁아시설의 시설규정을 까다롭게 정해 영세한 탁아소의 부담만 가중시킬것같아 걱정입니다』 인간적인 나약함조차 숨기지 않는 이들은 그러나 모든 악조건을 꿋꿋이 헤쳐나가는 또순이역할을 잘해나가고 있다.처음 이들을 경원시했던 주위 주민들을 협조자로 만들고 탁아정책에 대한 청원과 요구대회를 열어 조그만 성과를 이끌어내기도 했다.또 아이들의 어머니로 자모회를 구성하고 아버지까지 탁아운영에 참여시키는등 탁아에 대한 사회인식의 교정에도 힘쓰고 있다.앞으로 시설을 넓히고 아이들에게 보다 양질의 교육을 시키는게 소망인 이들은 주위의 격려와 후원으로 이같은 소망이 결코 불가능하지만은 않을것이라며 희망찬 내일을 꿈꾼다.
  • 3살때 스웨덴 입양청년/의대생돼 귀국,부모찾아(조약돌)

    ○…지난 69년 3살때 스웨덴에 입양된 고아가 의젓한 의대생이 되어 고국 연수길에 친부모를 찾고 있다. 스웨덴 할손의대3년 박경화씨(26·사진·스웨덴명 요한 날손)는 30일 한국기독교 의료선교협회의 주선으로 23년만에 꿈에 그리던 고국땅에 도착,『부모를 찾을 수 없겠느냐』고 서울신문사에 호소. 자신의 생일(66년 1월20일)과 함께 입양된 여동생 뱍금순씨(67년 1월6일생)의 생일만 알뿐 전혀 아는 것이 없다는 박씨는 69년 대한양연회를 통해 스웨덴인 아케프리티오 프라로슨씨 가정에 입양됐다고.전화 653­5561.
  • “64MD램 세계최초개발 놀랐다”/옐친부부,삼성전자 공장 방문

    ◎나이나여사,호암미술관 전시품 등 관람 ○…‥옐친 러시아연방대통령은 방한 3일째인 20일 상오 삼성전자 수원공장을 방문,약 2시간동안 제품 조립과정과 전시장등을 견학. 옐친대통령 일행은 이날 예정보다 다소 이른 상오10시37분쯤 수원공장에 도착,이건희 삼성그룹회장의 안내로 삼성전자의 첨단전자기기 전시장인 「휴먼테크 플라자」에 들러 반도체 64메가D램의 샘플과 제조공정모형,홈오토메이션시스템을 갖춘 리빙 갤러리,CD롬의 작동시험을 차례로 관람. 옐친대통령은 특히 오디오와 비디오를 결합시킨 AV시스템을 손수 작동해 보는가 하면 삼성전자가 최근 세게최초로 시제품개발에 성공한 반도체 64메가D램의 제조 공정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등 한국 전자산업의 발전상에 큰 관심을 표명. 옐친대통령은 이회장이 『삼성전자의 VCR공장은 연산 4백만대 규모로 단일 공장으로는 세계최대』라고 설명하자 놀랍다는 표정을 짓고 『삼성전자는 러시아의 브르네스공장과 노브고로드공장에 각각 25만대 규모의 VCR플랜트를 수출했으며,현재 이 공장들이 삼성의 기술지원을 받아 성공적으로 가동중』이라는 이회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옐친대통령 일행은 이어 본관2층 임원회의실에서 이회장을 비롯한 삼성측 관계자들과 함께 1시간 가까이 오찬을 함게하며 삼성측 관계자들과 10여건의 대러시아 경협사업을 협의했으며,야쿠트가스전 공동개발에 관한 의견을 교환. ○…옐친대통령이 삼성전자 수원공장을 둘러보는 동안 영부인 나이나여사는 인근의 용인 자연농원에 있는 호암미술관과 삼성인력개발원을 방문. 나이나여사는 이건희삼성회장의부인인 홍라희여사의 안내로 이조백자등 86점의 국보·보물급 전시품들을 주로 감상했는데 미술관정원에 마련된 1만여평 규모의 야외조각전시장에도 깊은 관심을 표출. 이날 나이나여사는 어머니로부터 20년전에 물려받은 목걸이를 감사의 표시로 홍여사에게 선물해 친절한 안내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
  • 21세기 한국의 문을 여는 “이어령과의 대화:4

    ◎가족의 붕괴/구성원의 역할 사라진 빈 둥지/집돼지 내쫓아버린 산업화/명치이전 일본에선 「자식 솎아내기」/이혼천국 미서는 친부가 아들 「유괴」/「낳기」와 「먹기」 두 기둥으로 만들어진 가정은/이제 출산아닌 산아제한의 공간으로 변천/전통적인 혈연중심의 한국 가족제도까지/산업사회로 이행따라 해체 위기에 직면 □황규호문화부장=지난번에 「21세기 정보화사회는 태내환경으로부터 시작된다」는 말씀을 듣고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특히 초음파 스크린에 비친 태아의 집을 통해서 생명과 커뮤니케이션의 신비성을 알게 된 점 감동적이었습니다.오늘은 태아가 태어나 신생아로 자라나게 되는 집,이를테면 가족이란 문제를 놓고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싶습니다.우선 집,가족에 대한 한국인의 전통적인 의식이 무엇인지 듣고 싶습니다. ■이어령전문화부장관=우리는 한국인이지만 동시에 한자문화권이라고 하는 아시아적 질서에서 살아왔다고 할수가 있습니다.그래서 한자를 분석해 보면 우리 생각의 씨앗들을 얻을 수가 있는데­ ○가의 두가지해석 □한자의 집가자 말씀이시군요.저도 평소에 이상하다고 생각하였는데 한자의 집가에는 사람이 사는 집인데도 사람인자는 없고 엉뚱한 돼지시(시)자가 들어 있단말이지요.왜 그렇게 된 걸까요. ■그래요.한자의 글자뜻대로 읽어보면 사람은 집이 아니라 돼지 울간속에서 사는 격이 됩니다.(웃음) 이 글자 풀이는 두가지인데 어느 것이 맞든 우리에게는 귀중한 의미를 던져주고 있어요.집이란 자손을 번식시키는 공간이라고 생각한 것이지요.돼지는 짐승가운데 새끼를 많이 낳지요.그래서 저금통은 동서고금 할것없이 돼지모양을 한 것이 많지요.돈이 돼지새끼처럼 많이 불어나라고 말이지요.즉 한자의 집가는 다산성을 상징한 글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가족을 종족 번식의 측면에서 본 것이군요.또하나의 다른 해석은 무엇인지요. 또다른 자해를 보면 집가자는 문자 그대로 돼지집에서 온것이라는 겁니다.옛날 수렵생활을 하던 사람들은 집이 아니라 동굴에서 살았잖습니까.그러다가 사람들은 돼지를 잡아다 울안에 가두어 기르는 목축생활을 하기시작하였지요.그러니까 사람은 동굴에서 살고 돼지는 집에서 산셈이지요.수렵생활에서 목축생활로 점차 라이프 스타일이 바뀌어가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동굴을 버리고 돼지울안으로 옮겨와서 살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돼지울이 사람집 보다 앞서 있었다는 말씀이시군요. ■돼지집에 사람이 들어와 살게 되었느냐,혹은 사람집에 돼지를 데려다 키웠느냐 그 선후야 어떻든 집은 사람만이 살고 있는 공간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나타내고 있는 글자풀이이지요.사람은 먹고 살아가기 위해서 집이라는 경제적 기반이 필요했고 그 때문에 소와 돼지같은 가축과 함께 한집에서 살아야만 했던 것입니다.그래서 가족을 우리는 식구 즉 먹는 입이라고도 부릅니다.가족의 구성원이란 바로 먹는 입으로 계산되는 집단이지요.가축을 키우려면 사람처럼 그것도 먹여 살려야 하기 때문에 소나 돼지는 반식구라고 불렀습니다.적어도 한자를 통해서 본 가족의 개념이란 이렇게 「낳기」와 「먹기」의 두 기본과제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낳기로서의 그 집가자는 혈연공동체로서의 가족을 상징하는 것이고 후자의 먹기로서의 그 집가는 가업과 같은 경제공동체로서의 가족을 상징한다고 하면 되겠습니까. ■그렇습니다.한국인은 이 지상에서 「낳기」와 「먹기」의 두 기둥으로 가장 튼튼한 집을 만들어간 민족이 아닌가 싶습니다. ○민족마다 특이성 □두 돼지의 이미지로 상징되는 집은 본능같은 것이어서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요. ■그렇게 생각하기 쉽지요.그러나 조금만 주의깊게 보면 가족은 그 민족문화의 기본을 이루는 것으로 그 색깔이 다 다릅니다.서구사회와 문화를 분석하는데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것은 에디푸스 컴플렉스라는 거지요.희랍신화에서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에 오르는 에디푸스왕의 비극처럼 서구의 가족은 자식이 아버지를 죽이는 즉 아버지와 아들의 경쟁관계,그리고 그러한 심리의 억압이 이루어지는 장소이지요.이것을 아버지­어머니­아들의 가정 삼각형이라고도 부르는데 그것은 바로 갈등의 삼각형이기도 한 것입니다.그런데 한국 가정과 문화에는이 에디푸스 컴플렉스라는 것이 거의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약합니다.프로이트의 분석방법은 한국사회에 잘 적용되지 않습니다.모리스 반게의 말을 이용해 보지요.서양에서는 아이가 어머니와 하께 자고 싶어서 울면 아버지가 이렇게 말한다는 겁니다.『얘야 너의 어머니는 내 색시란 말이야.색시는 남편과 자야 하는 거야.너도 어른이 되면 색시를 얻어서 자게 되는 거란다』(웃음)동양의 아버지에게서는 이런 말이 나올수가 없지요. □일본은 어떤가요. ■일본의 경우에는 낳기와 먹기라는 즉 혈연성과 경제성은(가업) 서로 모순하는 것으로 갈등을 빚는 일이 많았지요.우리의 가족하고는 아주 다릅니다.상상못하실 거예요.일본에는 「마비키」(채소같은 것을 솎는다는 뜻)또는 「고가에시」라는 말이 있지요.문자 그대로 아이가 많으면 솎아낸다는 무시무시한 말입니다.그리고 고가에시란 하늘이 자기에게 준 아이를 반환한다는 즉 신에게 다시 돌려보낸다는 말입니다.요즈음 말로하면 반품을 시킨다는 말이지요. □애를 솎아내고 반품을 하다니요.즉 자식을버린다는 말입니다. ■버리는 것은 스데코라고 했고 마비키나 고가에시라는 것은 자식을 죽이는 것을 일컬은 말이지요.어찌나 그런 일이 성행했던지 에도의 막부에서는 자식을 죽이지 못하도록 엄한 금지령을 내렸지요.아이들은 쌀을 생산하는 미래의 노동력이기 때문에 나라에서는 나라대로 경제적 이유때문에 그런 조치를 취한 것이지요.마비키를 하는 부모나 이것을 말리는 나라나 다같이 경제적 이유에서였지요. □낳은 부모가 직접 제 손으로 자식을 죽였나요. ■아버지가 아니라 낳은 어머니가 그런 짓을 했지요.명치유신무렵까지 그랬지요.들키면 벌을 받게 됨으로 네가지 방법으로 아이들을 죽였다고 합니다.압살은 아이를 어머니가 직접 몸으로 깔아 죽이거나 맷돌로 누르거나 해서 죽이는 것이고 질식사는 창호지에 물을 적셔 코와 입에 대거나 유방으로 숨구멍을 막거나 해서 죽이는 것입니다.그리고 아주 잔인한 것은 한달가량 젖을 조금씩 주어 굶겨죽이는 아사법이 있었는데 이 방법을 쓰면 자연사처럼 보여서 마비키로 처벌을 당할 염려가 없었다는겁니다. 에도때의 일본인구는 2천5백만명에서 3천만명을 오갔는데 가령 1780년에서 6년뒤의 인구를 비교해보면 1백40만명이나 감소되어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흉년으로 굶어 죽기도 했지만 마비키처럼 아이를 죽인 것이 그 원인이라고 합니다. □우리도 가난했지만 마비키니 고가에시라는 말은 없지않습니까. ■일본은 우리와 같은 동 아시아국가요 그리고 한자문화권에 속해 있는 유교국가이지만 그 가족관이나 제도는 우리와는 아주 다릅니다.서구사회와 그 문화의 근저에는 에디푸스같이 자식이 아버지를 죽이는 가족의 어두운 지하실에서 생겨난 것이라면 일본의 그것은 특히 그 경제는 부모가 자식을 죽이는 가족의 음산한 뒤안길에서 태어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가업을 더욱 중시 □서양의 가족이 수평적인 것이고 부부중심적이라면 우리는 수직적이고 부자 중심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일본도 우리와 같은 수직사회가 아닙니까. ■일본도 우리에 비하면 수평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우리는 몇대조 위의 선조 제사를 지내고 또 족보를 보아도 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분명한 혈통을 지니고 있지만 일본 사람들은 바로 윗대의 조상밖에는 모시지 않습니다.그리고 자식이라 해도 가업을 이을 만한 능력이 없다싶으면 딸에게 데릴사위를 시켜서 상속을 합니다. 오사카의 상인중에는 삼대를 계속 데릴사위로만 가업을 이어 내려오는 집들이 많습니다.우리는 혈연을 이으려고 했지만 그들은 가업을 잇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 것입니다.그들은 가족에서 「낳기」의 그 핏줄보다 「먹기」의 경제적 공동체로서의 역할을 더 소중히 한 것입니다.그래서 일본사회의 특징을 의사가주주의로 설명하고 있는 학자도 있습니다.우리가 집이라고 할 때의 그 가족개념과 일본에서 이에(집)라고 할때의 그 개념은 전연 다릅니다.그들에게 있어 「이에」는 것은 자기가 속해 있는 집단을 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회사가 바로 「이에」인 셈입니다. □그러면 그 무능한 아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심하면 「간토」라하여 부모자식간의 인연을 끊고 내쫓습니다.뿐만 아닙니다.자기 아이라해서 자기 집에서 기르는 경우는 드뭅니다.구미(조)니 슈쿠(숙)이니 하는데 들어가서 마을 아이들과 공동생활을 하게 됩니다.또는 절간에 보내져 거기에서 시중을 들면서 먹고 배우기도 하고 상점 데치로 보내져 남의 집살이를 합니다.이렇게 집을 떠나 사는 아이들은 야부이레라고 하여 일년에 정월과 추석 단 이틀밖에는 외출이 허락되지 않지요.이 때 자기 집을 찾아가는 것이 뎃지고소(정치소승)의 유일한 낙이고 희망입니다. □여자애들은요. ■여자애도 마찬가지예요.지방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아오모리겐의 경우를 예로들자면 딸아이가 15세이상이 되면 메라니구미(조)의 조직에 들어가게 되고 그 집단은 마을 젊은이들의 구미(공동체)에 예속되게 됩니다.규약에 의하면 가족은 일절 그 딸에 대해 간섭할 수 없게 되며 성관계도 남자들 구미에 맡겨집니다.그래서 결혼전에 성의 트레이닝을 하게 되고 두세사람과 혼전 성경험을 한끝에 상대를 고르게 된다는 겁니다.우리 상식과는 너무나 다르지요.쉽게 말해서 아이는 가가 아니라 조,즉 마을의 공동체에 속해 있는 것이라고 할수 있지요. □한국의 가족제도가 얼마나 철저하고 뿌리깊은지 일본예를 들어보니 정말 알것 같군요.그러고 보면 산업사회의 가정붕괴 이전에 이미 인류는 가정의 해체에 대한 징후를 보여왔다고 할 수 있겠군요. ■산업사회를 쉽게 정의하자면 그것이 번식을 뜻하는 상징적인 돼지든 혹은 먹이로서의 돼지든 집에서 돼지가 나가버린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이제는 누구도 어느 나라에서도 새끼를 많이 낳는 돼지를 가족의 상징으로 보지는 않습니다.그 반대지요.가족은 낳는 장소가 아니라 자식을 없애는 이른바 산아제한을 이상으로 삼는 공간이 되어 버렸습니다.먹기도 그렇지요.먹기 위해서는 가족이 아니라 가족밖으로 나가야 합니다.농촌의 가출 형상을 보면 알지요.프로이트는 20세기 초에 이미 가족의 붕괴를 예고했습니다.인류의 가장 오래된 공동체인 「가족」은 그 뒤에 태어난 문화적 공동체인 「사회」와 대립하게 되고 나날이 그 대립은 심해져 결국 가족은 붕괴되고 말 것이라고 말입니다. 가족은 인간의 유일한 그리고 기본적인 공동체였으나 산업사회가 나타나면 그 힘은 가족보다도 강력해질 것이라는 예언이었지요.산아제한으로 형제가 없는 아이들은 가족밖에 있는 제 또래들과의 생활에서 그 동질성을 구하게 됩니다.아버지들은 아버지들대로 가족이외의 집단에 의존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게 되는 거지요.그래서 남편이나 아버지로서의 역할에서 멀어지게 됩니다.남편에게서 그리고 자식으로부터 외토리가 된 여자들은 여자들대로 가정 밖으로 눈을 돌리게 되고 아내와 어머니의 의무에서 멀어지게 됩니다.그렇게 되면 집안은 빈둥지가 되고 말지요. 그러나 제 생각으로는 산업사회가 가족을 붕괴시켰다기보다는 오히려 가족의 붕괴가 산업사회를 불러들였다고 하는 편이 옳을지도 모릅니다.가족 기반이 약한 사회일수록 산업화가 빠르다는 것은 바로 서구와 일본의 예를 두고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지 않아요.피는 물보다 짙다고 하지만 산업사회에서는 물질이나 자유 그리고 개인이 피보다 짙은 사회인 것입니다. □닭이 먼저든 달걀이 먼저든 산업사회와 가정붕괴는 손등과 손바닥의 관계처럼 밀접한것 같은데 그렇다면 21세기에 나타나게 될 후기 산업사회에서는 어떻게 될는지요. ■작은 가족이야 말로 커다란 인간의 문명을 비쳐볼 수 있는 신비한 거울이지요.가정의 붕괴는 산업사회의 붕괴이기도 한 것입니다.서로가 서로를 무너뜨렸다고 할까요.보십시오.개인주의에 기반을 둔 산업사회가 미국이라면 집단주의에 뿌리를 둔 산업사회가 소련이었습니다.그런데 세계의 양극을 이루어온 이 두 초강대국은 이혼에 있어서도 단연코 세계 정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애들은 어떻게 되지요. ■주말 아버지(위크엔드 파더)니 디즈니랜드 아버지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는 것처럼 면회에 의해서 부자간 또는 모자간의 관계가 이어지고 있는 셈입니다.그것은 그래도 괜찮은 편입니다.미국에서는 연간 15만명의 아이가 유괴되고 있는데 이중 10만건은 친부모 특히 친부에 의해 납치되는 경우라고 해요.이혼한 남편이 자기 자식이 보고싶고 함께 살고 싶어도 법이 허락지 않으므로 몰래 납치해서 도망쳐버리는 것이지요. □아버지가 아들의 납치범이 되다니요? 아무리법적으로 그렇다 해도 제 자식인데 납치범으로 처벌될 수는 없지 않아요. ■미국에서는 린드버그법이라고 해서 아이를 납치하면 살인과 동일한 중형을 내리게 됩니다.그러나 제자식을 납치해 간 것이고 또 하도 그런 경우가 많기 때문에 별도로 친자 납치법이라는 별도 법을 만들기도 했지요(웃음). □가족주의 전통이 가장 강하다는 우리도 지금 급속한 산업화로 가족붕괴현상이 벌어지고 있지요.이런 상태에서 이제는 또 새로운 사회 21세기의 후기산업사회를 맞게 되는데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지요? 저런,시간이 다 됐네요.머리도 좀 시킬겸 다음 회로 이야기를 미루지요.(차항 미완)
  • 이상적인 집/최재필 명지대교수·건축학(굄돌)

    필자가 아주 어렸을 때 할머니 등에 업혀 「달아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라는 구전민요를 들으며 잠이 들던 적이 많이 있었다.그때 어린마음에도 계수나무로 초가삼간을 지어 양친부모 모셔다가 천년만년 살고싶다는 노래 구절이 참 푸근하고 좋게 느껴졌었다. 그런데 소위 전후 재건세대인 필자는 60년대 들어 외치기 시작한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세」라는 슬로건을 들으며 성장하게 되었고,70년대 초반에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사랑하는 우리님과 한백년 살고싶어」라는 가사로 된 대중가요를 신이 나서 따라 부르게 되었다. 이상적인 집을 그리고 있는 이 두 노래를 비교해 보면 참 재미있다.할머니 세대의 가치관과 필자 세대의 가치관의 차이가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우선 집터가 다르다.현실에서 이루지 못하는 꿈을 「달」나라에서나 이루겠다는 소극적 자세가 바뀌어서,산이 많은 우리나라에는 흔히 볼 수는 없지만 미국 영화에서 볼 수 있었던 「저 푸른 초원」을 찾아서 거기 살겠다는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게 된다(이 당시 미국이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집의 규모도 「초가삼간」에서 「그림같은 집」으로 바뀐다.할머니 세대가 안빈락도를 추구한다면 우리 세대는 부귀영화를 추구한다.「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는 것이다.게다가 집의 식구도 달라진다.「양친부모」모시고 사는 옛날의 대가족제도가 아니라 「사랑하는 우리 님과」함께 오붓하게 사는 핵가족제도가 좋다는 것이다.또 「천년만년」살고 싶다는 허황된 꿈은 이제 버리고 「백년」정도의 야무진(?)꿈을 꾸기도 한다. 시대가 변하면 그 사회의 가치관도 변한다.이에 따라 이상적인 집의 개념도 또한 바뀐다.우리 다음 세대인 「샴페인」세대가 꿈꾸는 이상적인 집은 어떤 집이 될는지 궁금하다.
  • 병원서 뒤바뀐 신생아/6일만에 친부모 찾아(조약돌)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화서동 채산부인과(원장 채원병)에서 남자아이 2명이 뒤바뀌었다가 6일만에 진짜부모 품으로 되돌아간 촉극이 발생. 지난 22일 같은 동네에 있는 이 병원에서 아들을 낳은 송정석(30) 이명옥씨(29) 부부는 27일 병원측에서 건네준 아이를 집으로 데려갔으나 아무래도 이상해 보여 28일 병원에 다시 찾아와 혈액형검사등을 한 결과 신생아실에 남아있던 아이와 뒤바뀐 사실을 알게돼 병원측으로부터 진짜 아들을 되돌려 받았다. 이에 대해 병원측은 『같은 날에 이름이 비슷한 2명의 산모가 출산하는 바람에 착오가 있었던것 같다』고 해명했다.
  • 외로운 노인 80여명에 점심도시락 대접 7년(이사람)

    ◎독립문공원서 남다른 경노 김종은씨/“셋방살아도 나누는 기쁨 더 크죠”/양복 원단 행상… 수입 60% 떼어 선행/고아원서 불우한 성장… 노모 굶주렸던 사연듣고 결심/보증 잘못으로 전재산 날리고도 돕기 계속해와 넉넉하게 가진 것도 없고 벌이도 시원찮은 한 소상인이 7년째 하루도 거르지않고 외로운 노인들에게 정성을 다해 점심을 대접하고 있다. 양복원단을 마이크로버스에 싣고 다니며 기성복제조업체에 납품해 버는 수입으로 그날 그날 살아가는 김종은씨(44·서울 중구 순화동1의97). 그는 고달픈 떠돌이 장사를 하면서도 매일 낮12시면 어김없이 하던 일을 멈추고 서울 독립문공원을 찾아 이곳에 나와있는 할머니 할아버지 80여명에게 김밥이며 빵등을 담은 도시락을 대접한다. 행여 도시락사정이 여의치않아 음식을 미처 장만하지 못하는 날일지라도 어김없이 나타나 7백원씩의 음식값을 노인들의 손에 쥐어주며 마치 큰 죄라도 지은듯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그날그날 형편에따라 수입이 다르지만 김씨의 한달평균 벌이는 2백50만원 정도. 이가운데 하루 5만∼6만원씩의 도시락값 1백50만∼1백80만원을 빼면 80만∼90만원정도가 8순노모와 부인(43),고등학교에 다니는 두아들등 다섯식구의 생활비가 된다. 그나마 두칸짜리 셋방의 방세 20만원을 제하고 나면 김씨의 생활비는 5인가족 도시근로자의 평균가계지출비 1백만원수준에도 훨씬 못미치는 형편이다. 김씨가 이처럼 어려운 생활속에서도 남달리 노인공양에 온힘을 기울이는 것은 어린시절의 불우했던 경험때문. 그는 충남부여에서 태어나 네살때 부모의 가정불화로 고아원에 보내졌다.그리고는 국민학교 6학년1학기만 마치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수색근처의 농가굴뚝을 껴안고 잠을 자기도 하고 개천옆의 공중변소 한켠에 판자를 깔고 새우잠을 자기도 했다. 풍선장사·신문팔이등을 하며 겨우겨우 끼니를 이었다.그러다 61년 남대문시장의 한 봉제공장에 들어가 일을 배우기 시작했고 16살이 되던 67년부터는 재단사가 됐다. 마침내 79년에는 18년동안 누구보다 열심히 일한 대가로 미싱 10대를 받아 독립했다.어엿한 「사장님」이 된 것이다.그리고 그의 이름은 자수성가의 대표적인물로 남대문시장 일대에 짜하게 알려졌다. 그러다보니 경사가 겹쳐 어머니도 찾게 됐다. 성공한 아들의 소문을 듣고 찾아온 칠순의 백발노모를 반갑게 맞은 김씨는 어머니 또한 수도없이 배를 굶주리며 서러움을 겪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며칠이고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김씨는 이때부터 「기본생활비」만 떼고는 모든 수입을 털어 양로원과 고아원등을 찾아 김씨 모자처럼 서러운 사람들에게 옷과 음식을 선물하고 오는게 습관화됐다. 지난 85년말부터는 날마다 집에서 가까운 서소문공원을 찾아 외로운 노인들의 찬손을 어루만지며 김밥이나 떡 빵등을 대접하기 시작했다.그리고 서소문공원의 지하주차장 건설공사로 이 노인들이 독립문공원으로 옮겨가자 함께 따라가게 됐다. 그러나 시련은 또 닥쳤다.지난해말 공장직원이 부탁한 한문투성이의 은행융자보증서에 흔쾌히 도장을 찍어줬다가 5천만원을 날린 것이다. 그는 이때 1천만원짜리 전세방마저 비워야 하는 빈털터이 신세가 됐지만 그래도 노인을 돌보는 일은 멈추지 않았다. 요즈음엔 고아원시절 이웃 불량배에게 돌로 얻어맞은 왼쪽다리가 부쩍 쑤셔 절뚝거리기까지 하는 김씨는 『부모같은 노인들에게 좀더 나은 음식을 대접하고 싶은데 수입이 크게 늘지않아 늘 안타깝다』고 오히려 미안해하고 있다. 김씨에게 한달째 점심신세를 지고 있다는 진모씨(66·서대문구 천연동)는 『친부모도 나몰라라 하는 요즘 세상에 콘크리트숲사이에 버려진 늙은이들을 이처럼 보살펴주는 김씨같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더없이 고맙다』고 대견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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