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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완서의 살아가는 이야기] 운수 안 좋은 날

    상상력은 남에 대한 배려,존중,친절,겸손 등 우리가 남에게 바라는 심성의 원천이다.그리하여 좋은 상상력은 길바닥의 걸인도 함부로 능멸할 수 없게 한다. 아침 신문을 뒤적이다가 원로배우 백성희의 사진이 크게 난 것을 보았다.표정은 기사에서 밝히고 있는 연세를 믿을 수 없을 만큼 젊고 품위 있고 당당해 보였지만 손은 보통의 할머니처럼 거칠고 늙어보였다.나는 그 사진으로 그의 전체를 본 것처럼 느꼈고 존경하는 마음과 친밀감으로 흐뭇해졌다.인상적인 손 때문이었을까,달포도 넘게 전에 전철 안에서 당한 일이 생각났다.너무 창피해서 내 자식들한테도 안 하고 묻어 두었던 얘기다. 노약자 석에 앉아 있는 내 옆자리에 어린이를 손잡고 탄 엄마가 앉았다.네댓살 가량 돼 보이는 귀여운 아이가 내 얼굴은 쳐다보지 않고 내 손만 유심히 바라보았다.그러다가 마침내 말을 걸어왔다.‘할머니 손엔 왜 이렇게 주름이 많아?’ 당돌한 질문이지만 귀엽기도 해서 성의 있게 대답하려고 노력했다.‘넌 내가 할머니인 걸 어떻게 알았어?’ ‘이렇게 주름이 많으니까.’ ‘그래 맞았어.오래 살면 남들이 할머니라는 걸 알아보라고 주름이 생긴 거야.아줌마나 언니들하고 헷갈리지 말라고.’ 아이는 쉽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 다음에는 손등에 푸르게 내비치는 힘줄에 대해서 물었다.‘이건 힘줄인데 네 몸에도 있지만 예쁜 살 속에 숨어서 안 보이는 거야.주사 맞을 때나 필요한 건데 아이들은 주사 맞기 싫어하잖아.그래서 꼭꼭 숨어 있는데 늙으면 주사 맞을 일도 자주 생기고,주사 맞는 걸 좋아하니까 자꾸 겉으로 나오나봐.’ 말대꾸를 해주니까 아이는 계속해서 이것저것 묻고 또 물었다.나도 계속해서 그런 식으로 대답했다.우리는 어느 틈에 서로 죽이 잘 맞는다는 걸 느끼고 재미있어하고 있었다. 그쯤 되자 아이는 나하고 충분히 친해졌다고 믿은 것 같다.다시 내 손에 관심을 보이더니 내가 끼고 있는 반지의 알을 손가락으로 만져보면서 이 반지 나 주면 안돼? 하고 물었다.나는 웃으면서 반지를 빼려고 했다.물론 반지를 그 아이에게 주려고 그런 건 아니다.그런 어리광을 부려도 될 만큼 그 반지는 아이 눈에도 만만해 보이는 반지였고,실제로도 비싼 반지가 아니지만 나에게는 추억이 깃든 소중한 건데 아무리 귀엽더라도 오다가다 만난 아이에게 빼주겠는가.나는 일단 아이 손가락에 끼어보게 할 작정이었다.끼어보면 보나마나 헐렁할 테고 그러면 이건 네 손가락에 안 맞으니까 네 것이 아니잖니? 하면서 도로 빼 가지면 알아들을 아이지 그래도 막무가내 떼를 쓸 아이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서로 알아볼 만큼 우리는 친해져 있었다.또 그 반지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반지라는 걸 나는 벌써부터 알고 있었다. 우리 손녀도 어렸을 때 그 반지만 보면 할머니 그 반지 얼마짜리 뽑기에서 뽑았어?라고 물어보곤 했더랬다.그때만 해도 동네 문방구 앞에는 100원짜리나 500원짜리를 넣고 돌리면 내용물이 빙글빙글 돌다가 동그란 게 하나 굴러 떨어지는데,까보면 사탕이나 반지나 열쇠고리 같은 싸구려 장난감이 들어있곤 했다.그걸 뽑기라고 했다.그만큼 아이 눈에 만만해 보이는 반지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일단 끼어보게 하려고 했는데 뜻하지 않은 일이 생겼다.아이 엄마가 아이 팔을 거칠게 낚아채더니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정거장도 아닌데 출입문 쪽으로 아이를 끌고 가면서 중얼거렸다.보자보자 하니 나잇살이나 먹어가지고… 다음 말은 알아듣지 못했다.나잇살이나 처 먹어가지고였는지도 모르겠다.모욕감 때문에 더는 듣고 싶지 않았다.전동차가 멎자 모자는 황급히 내렸다.아이가 나를 자꾸 돌아보았지만 나는 그 아이를 웃는 얼굴로 배웅할 수 없었다.그 역은 실은 내가 내릴 역이었지만 내리지 못했다. 나이가 들면 기억력뿐 아니라 식성,취미 등에도 U턴 현상 같은 게 일어나 옛날 것만 다 좋은 것 같고 마음이 통하는 것도 우리가 길러낸 30,40대보다는 어린이가 편하다.특히 오늘의 주역인 30,40대의 본데없음과 상상력 결핍은 우리가 저들을 어떻게 길렀기에 저 모양이 되었나,죄책감마저 들게 한다.상상력은 남에 대한 배려,존중,친절,겸손 등 우리가 남에게 바라는 심성의 원천이다.그리하여 좋은 상상력은 길바닥의 걸인도 함부로 능멸할 수 없게 한다.
  • [기고] 터키를 새롭게 인식하자/김영기 주 터키대사

    레젭타입 에르도안 터키 총리가 8일 한국에 도착,9일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는다. 터키는 우리에게 어떤 나라인가.많은 사람들은 터키를 소아시아 반도에 위치하면서 한국전쟁 때 우리를 위해 용감하게 싸워준 나라,그래서 서로 형제국가라고 부르는,전통 우방국가 정도로만 알고 있다.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고 얽혀 있는 중요한 이해관계가 많지 않다 보니 반세기 전 우리가 입은 은혜에 대한 고마움과 그로 인해 가졌던 친밀감도 시간이 갈수록 점점 엷어져 가는 것을 어쩔 수 없는 추세로 받아들이고 말아야 할까. 지난해 6월 초 우리 국립극장의 우루왕 공연단과 함께 터키를 방문한 도올 김용옥 교수는 “터키는 우리의 영원한 우방,인간의 순수한 마음이 살아 숨쉬는 곳’이라는 찬사와 함께 “우리와 가까이 있는 중국,일본보다 오히려 멀리 떨어져 있는 터키야말로 자신을 던질 수 있는 친구”라고 감회를 표현한 바 있다. 우리 개개인도 단 한 사람의 진정한 친구를 가지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국익을 철저하게 추구해야 하는 국가간의 관계에서 진정한 우방을 가지기는 더욱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터키인들은 조상이 중앙아시아에서 기원하므로 우리와 친연성(親緣性)이 매우 강한 사람들이다. 같은 우랄 알타이어족으로 언어구조가 동일한 까닭에 사고방식이 유사하고 중앙 아시아에서 흉노족 돌궐족으로 살던 때부터 보존하고 있는 사회관습이 우리의 유교전통과 흡사하다. 또 감성적인 기질이 강한 것까지 같아서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이다.터키인 말고 또 누가 우리와 이렇게 비슷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면,우리가 터키와의 관계를 각별한 마음으로 가꾸어 나가야 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로도 느껴진다. 터키는 우리의 중요한 교역파트너이기도 하다.지난해 에르도안 총리의 집권을 계기로 터키가 정치적 안정을 이룩한 가운데 유럽연합(EU) 가입을 위한 법제 개혁을 가속화하면서 최근 경제위기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에 힘입어 우리의 지난해 수출이 종전 기록을 돌파,13억 달러대에 달했고,무역흑자 순위에서는 터키가 우리의 11번째 교역국이 되었다.터키의 대외 수출이 늘어날수록 우리의 대(對) 터키 수출도 늘어나는 면이 있지만 양국간의 무역 역조가 투자·관광 등 분야에서 보완될 수 있도록 우리가 성의있는 노력을 경주해야 양국 관계가 영원한 우방으로 계속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의 3.5배에 달하는 국토와 7000만명의 인구를 가진 터키는 히타이트 문화,트로이 목마,미다스왕의 신화,초기 기독교 성지와 함께 7000∼8000년전 유물이 남아 있는 인류문화의 보고이다. 최근 터키는 유럽과 중동 30여개국을 정복하여 대제국을 경영해본 경험과 자부심을 바탕으로 다시 국제사회의 주요 국가로 발돋움하려는 포부와 함께 터키 국민의 역동성을 재결집해 나가고 있다.우리는 이같은 터키의 정치적 경제적 잠재력에 주목해야 한다.우리 정부와 경제계,그리고 일반 국민들에게 터키와의 우호협력 증진에 많은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드린다. 에르도안 총리 방한을 계기로 2002년 월드컵 축구 경기 때 한국과 터키 양국 국민이 유감없이 보여준 서로에 대한 따뜻한 정을 더욱 두텁게 하고 정치 경제 문화 분야의 관계 증진은 물론 국민교류도 가일층 강화되기를 기대한다. 김영기 주 터키대사˝
  • [日열도에 뿌리내리는 신보수](3)새 한·일 관계를 위해

    |도쿄 황성기특파원|시즈오카 현립대학의 조교수인 고하리 스스무(41)는 작년 11월 부산에서 값진 경험을 했다.자신의 제자들과 동서대 학생들이 한·일 두 나라의 내셔널리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토론하는 자리였다. 10여명의 양국 학생이 원탁에 둘러앉아 시작된 토론은 금세 열기를 띠어갔다.일본 학생이 한국의 내셔널리즘을 “폐쇄적·배타적”이라고 비난하자,한국 학생은 “군사국가로의 회귀”,“동해를 ‘일본해’라고 하는 것이야말로 배타적”이라고 맞받아쳤다.다른 일본 학생은 “반일(反日)은 한국에서 ‘힘의 원천’”이라며 “역사교과서,야스쿠니 신사참배,종군위안부 문제가 나오면 한국은 ‘과거’를 꺼내 일본을 때림으로써 민족적 우위의 쾌감을 얻어왔다.”고 주장했다.이를 듣던 한국 학생은 “힘의 원천이라든가,쾌감이라는 표현은 웃긴다.사실을 지적했을 뿐”이라고 응수했다. 토론은 갈수록 과열돼 분위기가 한때 험악해지기도 했다.하지만 토론이 끝난 뒤 어떤 일본 학생은 “서로 가슴 속에서 생각하고 있는 문제였기 때문에 공개된자리에서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 소중하다.”고 감상을 털어놓았다.뒤풀이에 간 이들은 뜨거웠던 토론은 깡그리 잊은 듯 얘기꽃을 피웠다. 고하리 교수는 “두 나라의 20대들이 역사망언을 일삼는 일본 정치인이나 반일감정을 때에 따라 이용하는 한국 수구파 정치인들보다는 훨씬 세련돼 있었다.”고 당시의 느낌을 들려준다.그는 “독도(일본명 竹島·다케시마)나 동해(일본해)의 명칭,일본의 우경화,교과서 문제 등 우호나 교류의 장에서는 터부시해 온 얘기를 앞으로는 거부하지 않고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美·中 양대국 틈서 공동이익 추구해야 한국과 일본의 주역인 3040세대,그들은 전쟁경험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똑같다.그러나 한국쪽이 민주화를 이룬 성공체험이 있다면,일본쪽은 70년대 파산한 학생운동을 보고 자라며 좌파적·진보적 활동의 무의미함을 실감한 세대이다. 한국쪽이 사회에 진출한 90년대 들어서 가까스로 성장의 과실을 누리기 시작했다면,일본쪽은 정점에 달했던 80년대 중반의 ‘재팬 넘버 원’을 맛보다,거품경제가 붕괴되고 ‘잃어버린 10년’,좌절의 90년대를 보냈다. 반일감정이 옅어지는 대신 북한을 의식하고,반미를 비롯한 민족주의 성향이 짙어진 한국의 3040,이전 세대와 달리 식민지배에 ‘빚’이 없고,싹트는 내셔널리즘 속에서 국가를 인식하기 시작한 일본의 3040이 어떻게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면 좋을까. 한국의 386세대 국회의원들과 교류가 두터운 고바야시 유타카(39·참의원) 의원은 이렇게 제시한다. “정치도 경제도 글로벌화해 가는 시대에서 두 나라가 반목하면 어떤 손해가 있는지를 인식해야 한다.FTA(자유무역협정)문제만 해도,중국과 맞설 때 양국이 제각기 싸우는 것과 공동운명체로 싸우는 것,어느 쪽이 합리적인가를 생각하면 해답은 보일 것이다.” 중국의 위협에 한·일이 공동대처해야 한다는 인식은 평론가 미야자키 데쓰야(41)도 마찬가지다.“일본이 영토확장에 야심이 있다거나,전쟁국가가 된다는 것은 망상이다.한국이 따뜻한 눈길로 봐줬으면 한다.미·중 양대국에 낀 일본과 한국이 파트너로서 협력관계를 구축해 가야 한다.”(미야자키) 그러나 새 한·일관계 구축이라는 이상과 목표에도 불구하고,신보수 일본인들의 역사인식,대 한국관에는 적지 않은 거리와 괴리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일본 주재원인 한국인 A(40)씨는 술친구인 일본 신문기자(38)에게서 들은 얘기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김치나 감자탕은 물론 한국 영화도 좋아하는 그 친구와 한·일관계에 대해 가볍게 토론하던 중의 일이었다.“1910년의 한일합방은 힘이 있는 나라가 힘이 없는 나라를 식민지 지배하던 당시 역사의 필연이었다.” 친구의 이런 말에 A씨는 취기가 달아났다. “‘창씨개명은 조선인이 원했다.’(아소 타로 전 자민당 간사장)거나 ‘조선인이 한일합방을 바랐다.’(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 지사)는 망언은 비난하면서도 그들 망언의 주인공과 비슷한 역사인식을 갖고 있는 일본인 친구에게 벽을 느꼈다.”(A씨) 지난해 한국인 무비자 특구를 일본 정부에 신청한 기쿠치(菊池)시는 한동안 곤욕을 치렀다.“무비자가 실시되면 일본에서의 한국인 범죄가 급증할 것”이라는 밑도끝도 없는 음해성 메일이 쏟아져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일본인도 A씨와 비슷한 경험을 하기는 마찬가지다.경찰 공무원인 가와무라(37·가명)는 지난해 11월 어학연수를 하던 한국에서 난처한 체험을 했다.첫 대면한 한국인으로부터 “당신이 한국사람인지,일본사람인지를 가리는 좋은 방법이 있다.”면서 “독도는 어느나라 땅이냐”는 질문을 받았다.“독도는 일본땅”이라고 대답했던 그는 “역시 일본사람”이라며 그 한국인에게서 무안을 당했다. 한국쪽이 내셔널리즘이 심하다고 생각하는 일본인도 적지 않다.도요가쿠엔대학 전임강사인 사쿠라다 준(38)은 “지금 한국이야말로 전전의 일본 같은 내셔널리즘 과잉이 아닌가.”고 주장한다.“한국인이 일본에 대항의식을 갖고 접해 올 때 어색한 감정을 갖는 일본인이 많다.”(사쿠라다) ●젊은세대 한·일관계 큰 굴절 없어 생각의 골을 메우기 위해서도 고바야시 의원은 두 나라 젊은 세대의 역할을 강조한다.“먼저 (망언 같은)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만일 야스쿠니 참배나 역사교과서 문제로 마찰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원만히해결할 수 있는 신뢰조치를 한·일의 젊은 세대가 만들어가야 한다.”(고바야시) 그 조치의 좋은 사례로 한·일 역사공동연구위원회나,한·일 FTA교섭을 꼽는다. 일본 팝음악에 빠진 한국의 젊은이들을 취재해 ‘좋아해서는 안되는 나라’라는 책을 써낸 간노 도모코(40)는 한·일관계가 ‘제2의 단계’에 들어갔다고 본다.그 증거로 일본 언론에 한국 386세대와 관련된 기사가 늘어난 점을 꼽는다.“한국의 중추가 새 세대로 자리잡았다고 일본의 동세대가 의식하기 시작했다.”(간노) “2002년 월드컵,영화,드라마,음악 같은 양국문화의 유입으로 젊은 세대의 한·일관계에는 큰 굴절이 없다.”고 분석하는 그는 “사고방식이 다른 점을 피부로 느끼는 세대가 늘어나는 것은 양국관계가 바뀌어갈 전조”라고 내다봤다. marry04@ ■이종원 릿쿄大 교수 진단 |도쿄 황성기특파원|릿쿄대학의 이종원(李鍾元) 교수는 “일본의 내셔널리즘은 당장은 위험하지 않더라도 지금의 추세대로라면 위험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그는 “반드시 과거회귀는 아니지만 젊은세대들은 체계적 논리나 언어를 갖고 있지 않은 탈역사적 내셔널리즘이어서 낡은 역사,낡은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일부 정치적 의도에 쉽게 동원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일본 젊은 세대들에게서 내셔널리즘을 찾는다면. -과거 세대가 역사 대 반역사의 구도라면,젊은 세대는 한 마디로 탈역사이다.역사의 맥락을 생각하지 않고,한일합방을 ‘힘의 정치’에 의한 역사라고 쉽게 말해버린다.그렇다고 역사를 미화한다는 의식도 없다.일종의 중립적 태도다.이전 세대처럼 한국을 깔본다거나 전전으로 돌아간다는 생각도 없다. 한국을 역사적 구조에서 보지 않고,평면적·단락적으로 보는 세대가 늘었다.분명한 시대변화이지만 그래서 혼란스럽게 한다. 신·구 내셔널리즘의 관계는. -얽혀 있다.신 내셔널리즘이 명확한 사고구조나 언어표현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실체와 반드시 일치하지 않지만 표현은 히노마루(국기),기미가요(국가) 같은 옛것을 쓴다.보수정치가 전략적·정치적 동기 때문에 새로운 세대들의 내셔널리즘에 낡은 옷을 입히려고 하고 있다.때문에 새롭게 등장하는 내셔널리즘에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객관적 대응을 해야 한다. 이것들은 위험하고 공격적이고,배타적이고,우파적인 대내외 정책과 맞물려 있다. 새 세대에도 양면이 있을 텐데. -긍정·부정 양면이 있다.한국,한국문화에 대해 편견이 없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일관된 체계가 없으니까 일관된 체계를 갖고 있는 전전회귀형 내셔널리즘에 쉽게 끌려갈 가능성이 있다.30∼50대,특히 40대 이후는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 지사를 좋아한다.언론·학계도 그렇다.젊은 세대들은 다나카 야스히로 나가노 지사 같은 혁신파를 지지하면서도 이시하라에게도 친밀감을 표시한다. 한국 젊은세대의 내셔널리즘이라면. -월드컵에서의 붉은 악마를 한국의 내셔널리즘이라고 흔히 예로 들면서 더불어 반미를 꼽는다.그것은 일본의 현상과도 연관이 있다.단순화시키면 아시아가 1945년 이후 정치·경제적 성장,민주화를 이루면서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발견했다.미국·유럽·일본에 대해 열등의식을 갖지 않는 세대가 중국이건,한국이건 나오고 있다. 한·일 내셔널리즘의 틀린 점이라면. -아시아 전체가 유럽과 미국에 대해 자신감을 회복하고 그 속에서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추세인데,과도적인 현상이긴 하지만 일본만 1990년대 경제침체로 좌절했다.그래서 과민해졌다.내셔널리즘은 자신감이 넘칠 때는 개방적이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배타적이고,히스테리컬해지고,병리적이 된다. 한국도 세계화라든가,고구려붐이라는 국토회복운동 같은 내셔널리즘적인 현상들이 있었지만 지금의 젊은 세대는 반드시 그렇지 않은 것 같다.한국쪽은 자기정체성은 강하지만,반면 글로벌하고 동아시아를 얘기한다.젊은이들의 국가별 호감도 조사에서 1위 일본,2위 북한,3위 중국 순으로 나타나는 것은 바로 그같은 이유에서인 것 같다. ●이종원 교수는 1953년 대구출생.민청학련 사건으로 서울대를 중퇴한 뒤 일본으로 건너와 도쿄대서 법학박사.도호쿠대학 조교수를 거쳐 현직(법학부).저서로는 ‘동아시아 냉전과 한미일 관계’ 등.
  • 국회 이라크조사단 보고서/“치안안정 키르쿠크로 파병을”

    국회 이라크 조사단(단장 강창희 한나라당 의원)은 2일 이라크 추가파병 부대를 전투병과 의료 및 공병 등 비전투병이 포함된 혼성군으로 구성,특정지역을 맡아 다른 나라 군대와 분리된 독립부대로 편성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종합보고서를 채택,박관용 국회의장에게 제출했다.조사단은 3일 아침 청와대로 노무현 대통령을 예방,보고서를 전달할 예정이다. 보고서는 파병지역은 북부 키르쿠크와 니나와 등 치안이 안정돼 있고 한국에 우호적이며 발전가능성이 높은 지역으로 선택할 것을 제안했다.또 한국부대 지휘관이 독자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자금의 규모를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치안상황에 대해서는 남부 및 북부는 안정화되고 있으나 바그다드를 중심으로 한 ‘수니 삼각지대’에서 저항세력의 공격은 강화되는 추세라면서 한국군이 공격대상이 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보고서는 이와 함께 ‘이라크 민심’을 적시해 눈길을 끌었다.우선 “이라크인들이 한국인에 대해 우호적 감정을 갖고 있다.”는 의견과 함께,5가지를 근거로 들었다.(1)1차걸프전 당시 우리 건설회사들이 전쟁기간에도 철수하지 않고 공사를 완료한 데 대한 신뢰감 (2)한국제품에 대한 높은 평가 (3)스스로 동양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이라크인의 의식 (4)한국이 이라크에 영토적 야심이 없다는 믿음 (5)월드컵 등 스포츠를 통한 친밀감 형성 등이다. 보고서는 “이라크인들은 기본적으로 외국군의 파병은 원하지 않고 있다.”며 “불가피하게 파병될 경우 터키 등 이라크 주변 국가와 달리 영토적 욕심이 없는 한국군이 치안을 도와주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상연기자 carlos@
  • 한국학생 학교소속감 OECD국가중 최하위

    우리나라 학생들은 전세계 43개국 가운데 일본에 이어 두번째로 결석이나 지각을 하지 않고 학교에 열심히 다니지만 ‘우리 학교’라는 식의 친밀감은 폴란드와 함께 최하위를 기록,특이한 성향을 보이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 2000∼2001년 28개 회원국과 15개 비회원국을 대상으로 15세 이상의 학업 성취도 등을 조사한 PISA2000 결과를 분석,23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밝혀졌다. ‘학생의 학교연대감·소속감과 참여도’라는 제목의 보고서에 따르면 과거 2주 동안 최소 결석이 3∼4차례,또는 결석·지각·수업불참이 3차례 이상인 학생의 비율은 OECD 평균이 20.0%인데 우리나라는 8.4%로 4.2%인 일본 다음으로 낮았다. 반면 자신이 다니는 학교에 대한 친밀감을 뜻하는 학교 소속감은 461로 폴란드와 함께 최하위를 기록했다.이같은 친밀감 수치는 OECD 평균을 500으로 기준점으로 삼은 것이다.학교 소속감이 높은 나라(515이상)는 스웨덴의 527과 독일의 518 등 4개국이었으며,우리나라와 일본(465),프랑스(486) 등 3개국은 최하위권을 형성했다. 학교 소속감이 낮은 학생 비율도 우리나라가 41.4%로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았다.폴란드는 41.2%를,일본은 37.6%를,프랑스는 30.2%를 나타내 OECD 평균인 24.5%에 비해 매우 높았다. 학교활동 참여도는 과거 2주 동안 결석이나 수업불참,지각 등의 횟수에 따라 평가했다.학교 소속감은 ‘학교에서 외부인같은 느낌이 든다.’ 등 학교생활 관련 문항 8개를 제시하고 이에 동의하는 정도에 따라 1∼4점을 매기는 방식으로 이뤄졌다.둘 다 수치가 높을수록 바람직하다. 보고서는 “학교소속감과 학교활동 참여도가 학업성취도와 직접 관련성은 크지 않지만 한국처럼 둘의 결과가 반대로 나타나는 국가에서는 학생들의 학교에 대한 연대감을 높이는 정책을 펼 때 두 요소를 분리해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재천기자 patrick@
  •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하여 / (上)부부 애정계좌 확인하라

    사랑은 움직이는 것이라 했던가. 이혼율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혼은 더 이상 뒤에서 쑤군거릴 특별한 일이 아니다.그렇다면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잘 맞지 않으면 이혼하고 ‘새 생활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살아도 좋을까.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해야 할 이유는 많지만 ‘이기적으로’ 나 자신만을 위해서 생각해보자. 미국의 임상심리학자들에 따르면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병에 걸릴 확률이 35%나 높고 수명도 4년 단축된다.반면 행복한 결혼은 면역시스템의 능력을 높여줘 행복한 부부생활을 하는 부부의 백혈구는 외부로부터 공격받았을 때 잘 증식하고,암 세포 등을 파괴하는 건강한 ‘킬러 세포’도 많이 갖고 있다.즉 스포츠 클럽에서 1∼2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그중 20분만 결혼 생활에 쏟아붓는다면 운동보다 3배 이상의 면역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결혼생활은 갈등의 연속이다.누군가는 말하지 않았던가.배우자를 선택하는 것은 한 세트의 갈등을 선택하는 것이라고.그러나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고,상·하로 나눠 결혼에서의 행복비법을 찾아본다. 흔히 결혼은 99%의 화학작용과 1%의 노력으로 이뤄진다고 한다. 분명 ‘그에겐 확 끌리는 무언가가 있었다.’거나 ‘서글서글한 성격’,‘마치 아이같이 맑은 눈빛’‘편안한 남자’라는 둥 이유가 있다.‘그냥 좋았다.’는 비논리도 사랑에서만은 통한다.더욱이 어떤 부인은 ‘향긋한 땀냄새가 좋다.’며 남편의 샤워를 말릴 정도로 체취에 호감을 느끼기도 하고,남들이 비난하는 이상한 성격마저 ‘멋지다.’고 생각해서 결혼에 이른다. 이런 현상은 본능적인 ‘번식 명령’에 따라 짝을 찾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화학작용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 마음을 뒤흔들었던 사람이 그렇게 미워질까. ●‘깡통계좌' 되면 이혼? 정신과전문의 김준기(결혼지능연구소 부소장) 박사는 부부간의 갈등은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일방이 참기만 하면 유지되던 지난날의 결혼은 없어졌으며,복잡한 사회에서 부부간이 함께 나눌 시간은 부족하지만 오히려 상대방이 이해하고 받아주기를 기대하는 것이 불행을 부른다.더욱이 수명이길어져서 서로 뭔지 모르면서 싸우다 50대가 되면 더욱 틈새가 벌어지게 마련이다.”고 말하며 “행복하게 살려면 애정계좌를 늘 확인하고,잔고가 부족하면 새롭게 채워넣는 1%의 노력,긍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노력만 있으면 된다.”고 충고한다.이미 우리는 99%의 화학작용으로 만난 짝이기 때문이다. 흔히 부부 사이를 원만하게 만드는 비결을 촛불이 켜진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거나 해변에서 부부가 함께 휴가를 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짜 비결은 ‘일상의 평범한 일을 상대방과 진지하게 마주보는 것’이다.사실 사이 좋은 부부라면 촛불켜진 식탁이 무드를 더하겠지만,사이 나쁜 부부가 촛불을 켜고 마주 앉으면 “왜 이리 어두컴컴해.”라고 불평이나 쏟아놓게 되기 때문이다.어른거리는 촛불에 상대의 얼굴이 ‘유령처럼’보인다는 사람들도 있다.즉 평소 서로에게 긍정적인 감정을 쌓아두지 않으면 어떤 좋은 환경이나,고급 선물도 그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이렇게 쌓인 긍정적인 감정을 ‘애정계좌’라 말한다.서로 신뢰가 쌓인 부부 즉 애정계좌가 두둑한 부부라면 어쩌다 큰 문제가 생겨도 애정계좌는 충격을 완화시켜주는 쿠션역할을 한다.잔고가 많기 때문에 나쁜 감정(마이너스 감정)으로 적잖이 애정이 없어져도 아직 애정잔고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반면 애정잔고가 거의 없는 부부에게는 작은 문제 하나만 생겨도 ‘깡통계좌’가 될 수밖에 없고 그러면 ‘이혼’은 당연하게 따라붙는다. ●애정계좌 어떻게 채울까 애정계좌의 잔고는 ‘돈’이 아닌 ‘애정’이다.그렇다면 두 사람 사이의 애정은 어떻게 생길까.낭만적인 저녁식사나 휴가보다는 ‘긍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대화’,그것이 바로 잔고를 늘린다. 대화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들은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말만 하면 싸우게 되는데 무슨 말을 해?”라고 고개를 흔든다.“차라리 우리집 강아지랑 이야기하는 게 나아.꼬리라도 흔들어주면 얼마나 위로가 되는데….”라고 말하는 부인도 있다. 미국 부부 심리의 권위자 존 M 고트맨 박사는 부부가 단 3분간 대화를 나누는 모습만으로도 부부의 앞날을 알 수있다 한다.부부 상담을 통해 지금 행복한 부부라도 언젠가는 헤어지겠다고 예견하거나,때로는 별로 사이가 좋아 보이지 않는 상황임에도 이혼하지 않을 것임을 96%의 정확도로 알아맞힌다는 고트맨 박사는 저서 ‘행복한 부부, 이혼하는 부부'에서 “행복한 부부는 10분간 눈빛이나 표정 등 정서적으로 다가가는 반응을 100번 이상 보인다.”고 말한다.결혼은 긍정적인 감정에서 출발하지만 함께 살아가면서 겪는 갈등은 차츰 부정적인 감정을 높이게 마련이다. 행복한 부부가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의 비율이 5:1이라면,이혼을 앞둔 부부는 1:1.25정도라고 한다.긍정적인 감정이란 애정과 친밀감,우정,성적인 이끌림,이해와 인정,관심 등이라면 부정적인 감정은 미움과 서운함,불평불만,화,무시,비난,경멸,모욕 등의 감정이다. ●다가가기·외면하기·시비걸기 김영진(38·서울 서대문구 홍은동)씨는 남편과 대화를 하지 않은 지 벌써 보름이 지났다.“친정 형제들이랑 문제가 좀 있었어요.그래서 이야기를 했더니 나를 위로하기는 커녕 마치 자신이 재판장인양 내 잘못을 조목조목 따지는 바람에 나는 상처받았어요.결혼초부터 시댁이야기라면 어떤 것도 듣지 않으려는 통에 내심 분노가 쌓였었는데 그 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았어요.그런 남편이 참 야속했거든요.아이들과의 문제나 동네 일이나 친구들 사이의 문제에서도 남편은 단 한번도 내 편이 되어준 적이 없어요.” 부부간의 대화는 세 가지 유형이다.다가가기,외면하기,시비걸기. 예를 들면,명절 전 아내가 “명절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하다.”고 말할 때 세 유형은 극명하게 차이나는 반응을 한다.다가가기를 잘 하는 남편은 “명절날이 더 힘드니 어떻게 하지? 내가 조용조용 운전 할테니 고향가는 차안에서만이라도 좀 쉬어.”라고 말하지만 외면하는 남편은 “당신,아버님 용돈 챙겨.”라고 엉뚱한 소리를 하거나,시비걸기를 하는 남편은 “일년에 한번밖에 없는 명절인데 그것도 못해? 당신만 명절에 일하는 거야? 다른 여자들도 다 해!”라고 윽박지른다. 다가가기에는 “나는 당신에게 관심있다.”“이해한다.”“돕고싶다.”“당신을 믿는다.”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반면 외면하기는 상대방의 감정적인 연결시도에 반응을 안보이고 얼른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이는 가장 빨리 이혼에 이르는 반응이다.대개 남편들의 경우 무심해서 이런 반응을 보이지만 아내는 이때 마음이 상하고,상처를 받는다. 시비걸기는 감정적인 연결을 갖고자 하는 상대에게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호전적이고 논쟁적이며 때로는 비꼬고 비웃는 반응을 보인다.대개 상대방에게 화가 나 있거나 상대방을 이기려 할 때 이런 반응을 보인다.많은 부부들이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는 전형적인 대화법은 시비걸기다. 남편:야 저기 지나가는 차 멋지다.내년에는 꼭 사자. 아내:당신 월급을 생각해서 꿈 깨셔. 긍정적인 대화와 관심으로 애정계좌를 두둑하게 해놓는 1%의 노력이 없다면 99%의 화학작용은 형체도 없이 소멸하고 마는 것,그것이 사랑과 결혼의 불가해성이라고 한다. 허남주 기자 hhj@ 다가서는 부부인가 테스트 해 보세요 평소 외면하거나 시비거는 부부는 불행할 수밖에 없다.과연 우리는 서로에게 다가가는 부부인가 한번 테스트 해보자. 나는 아내(혹은 남편)에게 정서적으로 잘 다가가는 스타일인가?(‘예’는 1점,‘아니오’는 0점) 1.나는 아내(남편)의 기분이 어떤지를 알려고 애쓴다. 2.나는 종종 우리 관계가 어떤지에 대해서 아내에게 물어본다. 3.나는 아내의 요구를 만족시켜주는 것이 대체로 즐겁다. 4.나는 아내의 말에 귀기울인다. 5.아내를 위해 그 자리에 함께하는 것이 내게는 중요하다. 6.내 아내가 내 시간과 관심을 필요로 할 때 나는 대부분 그에 반응해준다. 7.나는 아내가 혼란스러워하는 일이 있을 때 말을 걸어 대화를 나눈다. 8.아내가 걱정하거나 두려워할 때 나는 대개 격려해준다. 9.아내가 힘들어할 때 나는 그것을 이해하고 도움을 줄 수 있다. 10.아내가 이야기하기를 원하면 나는 바쁜 일이 있어도 대개는 응할 수 있다. *풀이:6점 이상이면 다가가기를 제대로 하는 것이며 5점 이하라면 아내(혹은 남편)에게 잘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
  • 송두율 파문 / ‘송두율 주장’ 전문가 진단

    송두율 교수가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인지를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6일 송 교수측이 “김 주석 장례식 장의위원 23위가 서열 23위 정치국 후보위원은 아니다.”라는 변호인 의견서를 검찰에 제출한 데 따른 것이다.반면 국정원측은 검찰 송치자료에서 지난 91년 망명한 베를린주재 북한이익대표부 서기관 김경필씨의 언급 등을 토대로 “송 교수는 후보위원이 맞다.”고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이에 따라 ‘송 교수 미스터리’는 검찰이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로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 전문가들은 별도의 물증이 제시되지 않는 한,일단 송 교수의 언급도 나름대로 설득력을 갖고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어 주목된다. ●국정원 주장에 의문 제기 전문가들은 ‘김철수가 지난 94년 김일성 주석 장의위원회 참석 명단에 23번째로 올라 있다는 게 송 교수가 북한 서열 23위 정치국 후보위원이라는 증거’라는 국정원 주장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장의위원 순위와 정치국 서열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 이교덕 선임연구위원은 “장의위원 순위는 권력 서열이 아닌 행사호명 순서”라면서 “행사에 따라 호명 순서가 달라지기 때문에 장의의식 호명 순서만 놓고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밝혔다.동국대 북한학과 고유환 교수도 “행사 때마다 서열을 따로 정하기 때문에 장의위원 순위와 권력서열은 같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김일성과의 사진도 증거 못돼 전문가들은 김일성과 송 교수가 찍은 사진 역시 송 교수의 혐의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노동신문에 실릴 정도라면 북한의 ‘비밀 핵심수뇌부’라기 보다는 ‘체제홍보용’일 가능성이 높다는 해석이다. 세종연구소 남북한관계연구실 백학순 실장은 “고 문익환 목사나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 등 중요 인사가 오면 김 주석은 사진을 찍는다.”면서 “북쪽에서는 송 교수와의 친밀감을 과시,해외 교포 사회에 대한 체제선전에 이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외적으로 공개된 북한 서열에 김철수라는 이름이 빠져 있다는 것도 ‘송두율=정치국 비밀후보위원’이라는 등식을성립하게 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고 교수는 “내부 서열과 외부공개 서열은 다를 수 있으나 외부 서열이 어느 정도 공식적인 자료”라고 말해 송 교수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비밀 후보위원 가능성은 남아 하지만 이들 전문가는 송 교수측의 변호인 의견서에도 의문스러운 점이 있다고 말했다.매년 집계되는 북한 서열은 공식적인 행사의 호명 순서를 종합한 자료인 만큼,북측이 공개하지 않는 비밀 후보위원에 김철수가 들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게다가 노동당 당 대회가 80년 이후 한 번도 열리지 않아 정치국 위원 명단을 파악할 수 없다는 점도 송 교수에게 불리한 대목이다. 고 교수는 “정치국은 비밀 조직인 만큼,당 대회가 열리지 않으면 명단이나 순위를 파악할 수가 없다.”며 송 교수가 내부 비밀서열에 포함될 수 있는 가능성까지 부정할 수 없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두걸기자 douzirl@
  • 한미동맹 50주년 만찬/盧 “美측 도움 갚을것”

    노무현 대통령이 29일 “(미국측으로부터) 받았던 많은 도움에 대해 갚을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이라크 추가 파병과 관련된 구구한 해석을 낳았다.다음달 1일 한·미동맹 50주년을 앞두고 주한미군 고위 장성 및 장병,주한 미국대사관원,주한 미상공회의소(AMCHAM) 회원 등 각계 인사 130여명을 청와대로 초청한 자리에서였다. 노 대통령은 “지난 50년간 한국이 지속적으로 도움을 받은 것은 한국민이 잘 알고 있다.”면서 “한국은 세계평화발전에 기여함으로써 도움을 갚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그러나 청와대는 “이라크 파병을 염두에 둔 발언은 아닐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 대통령은 “한·미동맹은 우리 안보는 물론 동북아 평화와 번영을 지키는 든든한 버팀목이 돼왔으며 앞으로도 변치 않을 것”이라며 “한·미 양국은 세계평화의 한 축을 맡아 왔고 우리는 6·25 전쟁에서 함께 피땀 흘려 싸운 미군 장병들의 헌신을 결코 잊지 않고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주한미군 재조정 문제와 관련해서는 “한반도에서 전쟁 억지력을 약화시키지 않는가운데 공동이익을 증진할 수 있도록 긴밀히 협의해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 대통령은 특히 “토머스 허버드 주한 미대사가 최근 미국에서 한국경제에 대해 좋은 전망을 해준 데 감사하다.”고 밝혔다.앞서 허버드 대사는 인사말에서 “향후 50년간의 한·미동맹관계는 양국 공동의 가치를 발전시켜 나가는 힘이 될 것”이라고 했다.리언 러포트 주한미군 사령관은 건배사에서 “한·미 양국은 평화와 번영을 같이 추구하는 친구 사이”라고 말해 양국간 친밀감을 부각시켰다.또 랜스 스미스 주한미군 부사령관은 “한·미 양국은 지난 50년간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 왔으며 앞으로도 계속 자유와 번영을 위해 함께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티모시 도노반 한미연합사 기획참모부장은 “지난 50년간 우리가 번영을 이룩했던 것은 국방력을 높여 왔기 때문”이라며 “한반도에서 평화의 꿈을 이룩할 것을 확신한다.”고 밝혔다. 문소영기자 symun@
  • [씨줄날줄] 애견 압류

    부인과 함께 골프를 치러 다니면서도 수중의 돈이라고는 은행예금 29만 1000원밖에 없다고 주장해 공분을 자아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의 가재도구 일체가 경매에 오른다고 한다.전씨가 7년간 키웠다는 진돗개 한쌍을 비롯해 냉장고,소파,피아노,그림 등 감정가로 총 1790만원 상당의 동산(動産)이 법원에 의해 압류됐다.전씨의 범죄 내용과 뉘우침 없는 행태를 생각하면 마지막 숨은 재산 하나까지도 철저히 찾아내 국가와 국민에게 되돌려주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의 이의가 제기되었다.한 지인이 “아무리 20만원 이상 나가는 물품은 침구류와 의류,식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압류하도록 법률로 돼 있다지만 사람과 정이 든 개를 물건 취급해서야 되겠는가.”고 문제를 지적해 온 것이다.최근 순간의 부주의로 자신의 눈앞에서 애견의 교통사고사를 목도해야 했던 그는 “얼른 다른 강아지 한마리를 사들이도록 하라.”는 위로를 겸한 제언에도 “당분간 다른 개는 키우지 않기로 했다.”며 비통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던 터였다.그러기에 그의 지적은 인간과 동물에 대한 여러 생각을 불러 일으키게 했다.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전씨의 진돗개 ‘송이’와 ‘설이’는 소나 돼지와 같이 ‘재산’임이 분명하다.전직 대통령이 키운 개라는 화제성까지 합해져 경매에서는 감정가 40만원을 훌쩍 뛰어넘어 몇백만원까지도 갈 수 있으리라는 예상마저 나온다.그러나 동물과 친밀감을 형성한 사람들은 애완동물을 반려동물(companion animal)이라 부르며 가족처럼 여긴다.경제적 관점만으로 본다면 20만원짜리 애견을 키우면서 1회 병원 수술비로 30만원을 쓰고,간질을 가진 애견을 위해 매일 아침 저녁 지극 정성으로 약을 먹이는 행위는 설명될 수가 없는 것이다. 사람 살기도 어렵다는 때,일부 애견인들의 과소비 등 과도한 동물사랑은 눈살을 찌푸리게 할 때도 있다.그러나 애완용 개를 가진 집이 300만가구에 이른다는 통계이고 보면 동물애호가들의 정서도 무시할 수만은 없는 때가 된 것이 아닐까.그런 측면에서 ‘애완견 압류’는 우리의 척박한 애견 문화의 한 단면을 엿보게 한다고 할 수 있다.그나마 ‘송이’와 ‘설이’ 한 쌍을 한 ‘품목'으로 처리한 것은 다행이라고나 해야 할까. 신연숙 논설위원
  • [수평사회를 만들자]제3부 경찰과 시민 (9)외국에서는-프랑스

    |파리 함혜리특파원|‘국민의 안전은 자유를 위한 최우선의 조건’프랑스의 중도우파 정부가 지난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지 1년 넘게 지나면서 민생치안 범죄가 현저히 줄어드는 등 효과가 가시화되고 있다.이는 지난해 총·대선으로 장 피에르 라파랭 총리를 내각 수반으로 하는 중도우파 정부가 들어선 이후 대대적인 범죄 소탕 및 예방책을 전개했기 때문이다.중산층 이하를 위한 정책을 폈던 사회당 정부와 달리 중도우파 정부의 치안강화책이 기득권층의 권리를 강조하면서 사회 기층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비난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하지만 강력한 치안정책으로 민생을 위협하는 범죄가 줄어들면서 대다수 국민들로부터 호응을 받고 있다.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관료적 중심의 중앙집권 정치와 강력한 국가경찰제도를 유지,대체로 치안이 잘 유지되고 있는 편이었다.그러나 최근 4∼5년 동안 불법이민이 증가하고,도시인구가 늘어나면서 범죄 발생이 늘어나 파리 등 대도시의 경우 소매치기와 자동차 내 물품 절도,강도 등 노상범죄가 증가해시민들을 불안하게 했다. ●사회당 정부에 패배 안겨준 치안불안 해소 내무부 통계에 따르면 2001년의 경우 국가 경찰과 군 경찰이 접수한 범죄 건수는 사상 최초로 400만건을 넘어섰다.이는 1998년보다 14% 가량 늘어난 것이며,프랑스 제2의 도시인 리용을 기준으로 했을 때 48만 7000여명의 피해자가 새로 발생한 셈이라는 설명이다. 범죄는 양적으로 늘어났을 뿐 아니라 도시화·정보화 등으로 질적으로도 다양해지는 양상을 보였다.특히 미성년 범죄율은 1995년 28%에서 2001년 36%로 늘어났다. 우파 정치인들은 지난해 총선과 대선에서 이같은 치안불안이 사회당 정부의 최대 실책이라며 사회당을 공격,결국 리오넬 조스팽 전 총리가 극우파의 르펜 후보에게 패하고 총선에서도 중도우파가 다수를 차지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재선에 성공한 자크 시라크 대통령과 중도우파 내각은 지난해 5월 출범과 동시에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치안강화를 위한 법 제정 작업에 착수했다. 내무부 집계에 따르면 올해 1·4분기 중 범죄 발생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69%(7만 7143건) 줄었다.특히 시민들을 불안하게 했던 자동차 도난,소매치기,강도 등 노상범죄는 10.2%나 줄었다. 총 1만 7624명의 경찰이 활동하고 있는 파리시의 경우 올해 1·4분기 중 범죄 발생 건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4% 감소했으며 소매치기나 차량 도난 등 노상범죄는 15.5% 줄어들었다. ●보다 강력해진 경찰권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은 지난해 10월 의회의 법안 최종심사를 요구하면서 “안전은 국민의 기본적인 권리이며 프랑스가 가장 중시하는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제1의 조건”이라며 “국민들의 불안 요소를 없애기 위한 선결과제로 강력한 치안정책을 펴기 위해서는 새로운 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명 ‘사르코지 법’이라고 불리는 ‘국가치안을 위한 법(LSI·이하 치안관계법)’은 2002년 8월 제정돼 2003년 초 발효됐다.이 법은 ▲치안예산 강화 ▲경찰 인력 증강 및 장비 현대화 ▲치안 관련 조직의 재정비 ▲범죄 처벌 강화 등을 골자로 하는데 이중에서도 핵심은 다원화돼 있던 치안 관련 조직을 일사불란하게 재정비한 것이다. 프랑스는 지금까지 치안업무를 인구 1만명 이상의 도시지역은 내무부 산하 국가경찰(Police Nationale)이 담당하고,인구 1만명 이하의 도시 주변 및 군·면 단위 지역은 국방부 산하 군 경찰(Gendarmerie Nationale)이 분담해 왔다.치안관계법은 여전히 이런 2원화된 체계를 유지하되 군 경찰의 통제권을 국방부에서 내무부로 이관했다. 2003년 통계에 따르면 국가 경찰인력은 14만 5000명으로 전체 프랑스 인구의 52.5%를 담당하고,나머지(47.5%)는 9만명의 군 경찰이 치안을 책임지고 있다. 이 법은 또 시위진압 기동대(CRS)를 경찰의 지원요청이 있을 경우 언제든지 범죄 다발지역의 방범 업무에 투입하도록 했다.이와 함께 국가 경찰조직 내 공공안전국(DCSP)의 기능과 인력을 강화하고 대통령 직속으로 국가치안위원회를 두도록 했다. 치안관계법에 보장된 2003∼2007년의 치안관련 예산은 56억유로.이 기간 중 국가 경찰 및 군 경찰 인력을 1만 3500명 늘릴 예정이다. 치안관계법은 또 지금까지 소극적인 매춘행위,포주업,구걸 행위에어린이를 이용하는 행위 등을 처벌 대상에 포함시켰다.범죄 발생을 근원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의도에서다. 사르코지 장관은 여기에 머물지 않고 최근에는 아동 성추행,성폭행,강간 등 성 범죄자 목록을 별도로 만들어 특별 관리할 것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성 범죄자 목록에 이름이 오른 전과자는 출소한 뒤 거주지가 바뀔 때마다 경찰이나 헌병대에 이를 신고하도록 하겠다는 계획이다. 내무부 공공안전국 엘리자베스 후이유 경정은 “1996년 이후 처음으로 범죄 발생이 감소하는 등 국내 치안은 확실히 안정되고 있다.”면서 “치안관계법의 제정으로 경찰력이 강화되고 범죄를 원천 봉쇄할 수 있도록 처벌 대상 범죄가 추가되면서 각종 범죄의 예방 효과가 가시화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권위적 경찰 이미지 불식시켜 프랑스 경찰의 민생치안 활동을 일컬어 ‘국민 가까이에 있는 경찰(Police de Proximite)’이라고 한다.사회당 정부 시절인 1999년 말 권위적인 경찰의 이미지를 불식시키고 국민 편익 위주의 서비스를 하기 위해 도입된 개념으로 방범 활동을 다양화하고,경찰관 수를 증원하면서 큰 효과를 거두자 중도우파 정부에서도 지속적으로 채택해 민생치안에 적용하고 있다. 파리 제1구 방범파출소의 레널드 빌뇌브 경위(부소장)는 “거리의 순찰활동은 노상에서 발생하는 각종 범죄 행위를 통제하는 효과도 있지만 경찰이 범죄 현장에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사전에 예방하는 효과가 크다.”고 설명했다. lotus@ |파리 함혜리특파원|파리 시내를 다니다 보면 산악 자전거를 타고 복잡한 도심을 순찰하며 무전으로 동료들에게 연락을 취하는 경찰,롤러블레이드를 타고 좁은 골목을 쏜살처럼 누비는 경찰들을 볼 수 있다.딱딱한 일반 경관의 복장이 아니라 티셔츠에 운동모자나 보호 헬멧을 쓰고 있지만 이들은 엄연한 경찰관이다. 허리에 권총과 보호봉,무전기,수갑,범칙금 수첩 등을 차고 일반 경찰과 같이 순찰을 돌며 범죄 예방 활동을 벌인다. 지난 2001년 6월 창설된 VTT(산악자전거) 순찰대와 롤러블레이드 순찰대의 강점은 순발력과 친밀감. “파리는 교통이 혼잡하고,곳곳에 일방 통행로가많아 순찰차나 경찰 오토바이가 사건·사고 현장에 신속하게 도착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자전거와 롤러블레이드는 어디든지 갈 수 있기 때문에 훨씬 효과적으로 범죄에 대응할 수 있습니다.” 파리의 최고 중심구역인 제1구의 VTT 순찰대 소속 벤자민(26) 경관의 자랑이다.모두 9명인 VTT 순찰대원 중 한명인 그는 동료들과 조를 이뤄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6시30분까지 콩코드 광장부터 루브르와 샤틀레에 이르는 관할 구역을 자전거를 타고 순찰한다.하루 이동 거리는 약 25㎞ 정도. 롤러블레이드 순찰대 소속의 프랑크(28) 경관은 “제1구는 루브르박물관과 샤틀레와 같은 관광지가 많아 외국관광객을 노리는 소매치기범이 기승을 부린다.”면서 “많은 사람들 속을 뚫고 범인을 뒤아가는데 롤러블레이드는 특히 효과적”이라고 말했다.1구에는 총 13명의 롤러블레이드 순찰대원이 있다. 파리에 비해 범죄 발생이 상대적으로 적은 불로뉴비양쿠르의 경우 자전거 순찰대의 성격이 좀 다르다.불로뉴비양쿠르 파출소 소속의 오렐리아(26) 경관은 “정기적으로 관할구역을 자전거로 돌면서 주민들과 직접 만나 대화를 하고,그들의 즐거움이나 어려움을 함께 나누기도 한다.”고 말했다. 스포츠와 경찰 활동을 동시에 할 수 있다는 점을 자전거 순찰의 큰 장점이라고 소개한 다미앙(27) 경관은 “순찰을 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동안 치안활동에 관련된 여러가지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씻김굿 보고 큰 충격 ‘다큐 무당’ 되고 싶다”/‘영매 - 산 자와 죽은 자의 화해’ 박기복 감독

    “다큐 무당이 되고 싶습니다.” 다큐멘터리에 대한 열정을 이보다 더 뜨겁게 보여줄 수 있을까. 5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영매(靈媒)-산 자와 죽은 자의 화해’의 박기복(38)감독은 시사회가 끝난 뒤 약간 흥분한 표정으로 거의 “반 무당이 된” 심정을 털어놓았다.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전사가 아니다’(94년)를 비롯, 서울 다큐멘터리 영상제 대상을 받은 ‘냅둬’(99년) 등 10년 동안 걸출한 다큐를 만들었지만 이 작품에 쏟은 애정은 남다르다.2년여의 작업기간 중 주무대인 전남 진도에는 1년을 내리 살았고 앵글에 담을 영매를 찾아 서해와 동해를 훑었다. 하필이면 왜 영매를 골랐는지 궁금했다.“대학(연세대 철학과)시절 정신·영적 현상에 취미가 많았다.다큐 감독이 된 뒤 성철 스님 일대기를 만들 생각도 했었다.그러다 2000년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본 씻김굿 기록영화에 충격받았고 묘한 전율을 느껴 내친김에 작품에 도전했다.끝 부분 20분가량을 씻김굿으로 배치한 것도 그런 배경이다.” 신과 인간의 중간에서 작업하는 그들이 카메라와 조명등 ‘어수선한 개입’을 반기지 않았을 것이다.그 고충에 대해 박감독은 “처음부터 카메라를 들이대지 않았다.예컨대 작두를 갈 때 부정타지 말라고 천을 물고 작업하는 장면 등을 찍을 땐 얼씬도 하지 않고 망원렌즈를 이용했다.그렇게 기다리는 자세로 신중하게 접근하니 마음의 문을 열고 촬영을 허락했다.” 그러나 주무대인 진도에서는 그마저 여의치 않았다.“현지인들의 차가운 시선이 견디기 힘들었다.”는 박감독은 이렇게 회상한다. “무당과 친밀감을 형성하려고 주로 여자 스태프를 내세웠지만 촬영은 쉽지 않았다.내내 몰리는 느낌이 들었고 중간에 진도에서 쫓기듯 서울로 올라오기도 했다.그때는 작품이고 뭐고 다 치운 채 신내림 장면이나 보고 말 생각으로 이곳저곳 다녔는데 인천에서 박미정 보살을 만난 뒤 위안을 얻었다.” 작업기간이 길고 일이 힘들다 보니 스태프들이 열흘을 넘기지 못하고 현장을 떠나기 일쑤였다.연속성이 깨지는 것을 막으려고 직접 현장 작업을 많이 했다고 한다.소감을 묻는 말에 “설렌다.”고 짤막하게 말했다.그러나 표정은 만감이 교차하는 듯하다.말을 풀어보라고 재촉하니 막혔던 응어리가 터져나온다.“기록영화가 극영화에 영향을 줄 수 있고 어떨 땐 더 극적이지만 다큐를 영화로 여기지 않는 풍토가 원망스럽다.이제 작품은 나를 떠났다.” 영매가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잇는 다리라면,박기복 감독은 관객과 작품 사이에 있는 또 다른 영매다.작업이 꼬이자 당나무에 빌다가 신기(神氣)를 경험했다는 그는 해남 한 무당의 말을 들려주었다.“당신 신기가 장난이 아니오.헌데 당신은 그걸 당신 스스로가 이겨 내고 있잖여.아니면 당신도 우리 밥 먹을 거인데.” 이종수기자 vielee@
  • 고총리·미군지휘관 만찬 / 포도주 건배하며 화기애애 “한미동맹 굳건히” 다시 확인

    고건 국무총리가 11일 주한미군 지휘관들을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으로 초청,한총련 학생들의 미군 사격훈련장 장갑차 점거시위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시한 것은 ‘안정총리’로서 한·미 양국의 우호협력 관계를 공고히 하는 역할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여중생 사망사건 이후 양국관계가 껄끄러워진 마당에 이번 한총련 시위로 양국간 안정적 공조를 흔들리게 하는 것은 물론 미국내 반한(反韓) 분위기가 또다시 제기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이를 조기 차단하려는 행보로 읽혀진다. 현직 총리가 미군 고위관계자를 공관으로 초청한 것은 주한미군이 국내에 주둔한 이래 처음이다.주한미군 문제에 대한 고 총리의 ‘각별한’ 관심을 반영한다. 그런 탓인지 이날 만찬은 어느 때보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고 총리는 개인적으로도 지난 5월 의정부 미2사단 방문 이후 주한미군 지휘부를 두 번째 만난 것이다. 고 총리는 총리공관(삼청당)에 도착한 리언 러포트 주한미군사령관 등에게 “이 곳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등나무로 900년 된 것”이라며 삼청당 곳곳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며 반갑게 맞이했다. 이어 만찬장에 들어선 고 총리는 영어로 만찬사를 읽으며 친밀감을 표시했다.러포트 사령관도 “총리의 한·미동맹 노력에 감사한다.”며 화답하면서 직접 한국말로 “같이 갑시다.”“위하여”를 외치며 건배를 제의하기도 했다. 강금실 법무부장관이 “한총련의 범법행위에 대해 예외없이 엄정 대처하겠다.”고 말하자 러포트 사령관은 “학생 처벌문제에 대해 주한미군이 간여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며 말을 아꼈다. 스미스 주한미군부사령관은 “만찬장소가 마음에 든다.이런 자리가 오산(미군기지)에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농담을 건네자 고 총리는 의정부 미군부대의 오산 재배치를 의식한 듯 “의정부에 만들어주겠다.오래 있어라.”하고 받았다. 만찬에서는 포도주로 건배를 했으나 만찬이 끝날 무렵 고 총리가 ‘발렌타인 17년’ 양주를 꺼내 참석자들에게 한잔씩 따르며 분위기를 돋우었고,러포트 사령관도 술을 따르며 분위기를 이끌었다.러포트 사령관은 “향후 50년도 한·미동맹 관계를 굳건하게 이어가자.”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총리실 관계자는 “안정 총리를 지향해 온 고 총리가 북핵문제·주한미군 재배치가 논의되고,한총련의 미군부대 기습 반미시위가 발생하는 작금의 상황을 조기에 진정시키려는 뜻에서 만찬을 마련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현석기자 hyun68@
  • 아내강간 / (상)“사랑이라고? 맞는것보다 더 비참해”

    아무리 성(性)이 개방된 시대라 해도 부부간의 내밀한 이야기는 덮어두는 게 옳을지 모른다.그러나 남편이 아내를 폭행한 후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성관계는 어떻게 할 것인가.‘성폭행’이라고 할 것인가,그렇지 않다고 할 것인가.‘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란 말로 일방적 성관계가 폭력 후의 ‘화해’로 생각되기도 했던 때도 있었다.그러나 폭력으로 인해 온몸이 멍든 채 가슴에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으며 ‘어쩔 수 없이’ 성관계를 하게 될 경우,아내는 영원히 치유할 수 없는 응어리를 껴안게 된다고 한다.그래서 일방적으로 폭력을 당한 후 이어지는 성행위를 ‘부부 강간’ 혹은 ‘아내 강간’이라고 부른다.아내가 원하지 않는 성관계를 갖지 않을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남편에게 마음을 열 수 없다는 아내들의 속내를 들어보고 그 처방과 대책을 상,하로 나누어 싣는다. 김영선(가명·36)씨는 “7년간의 결혼생활을 파경에 이르게 한 것은 외견상으로는 ‘남편의 폭력’이었지만 사실은 폭력 후에 지긋지긋하게 이어진 성행위였다.”고 털어놨다. “남편이 때릴 것 같으면 동네사람들이 알까봐 내가 먼저 문을 닫았다.몸이 성한 곳이 없도록 두들겨 패고난 후 성관계가 어떻게 가능하며,더욱이 그렇게 하면 화해가 된다는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성행위를 거절하면 했던 이야기를 되풀이하면서 다시 때리기 시작했기 때문에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차라리 성격이 나빠서 아내에게 폭력을 썼다면 며칠 간 미안한 마음을 갖고,천천히 노력하면서 화해했다면 내가 그를 ‘동물’로 정의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부부싸움이 칼로 물베기라고? 가정폭력 피해여성들의 피난처인 한 ‘쉼터’에서 만난 48세의 여성 역시 이렇게 토로했다.“아이들이 들을까봐 이불을 덮어놓고 나를 때렸어요.때때로 숨이 막힐 것 같았고 때로는 이렇게 해도 죽지 않는 나 자신을 스스로 저주할 정도로 괴로웠어요.폭력 앞에서 무방비 상태로 부들부들 떨고 있는 내게 행해지던 성행위는 분명 강간이었습니다.차라리 폭력이 나았다면 믿으시겠어요? 그렇게 행해지던 성행위는 폭력보다 더 두렵고,더 더럽고,부끄러웠어요.남편도 인간 같지 않았고,나 자신도 경멸스러웠으니까요.” 외국계 기업에 근무하는 성미란(가명·34)씨는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육아까지 겹쳐 성생활에 흥미를 잃게 된 후 남편의 폭력과 성행위 요구로 괴로워하다 이혼수속 중이다.“아이를 데리고 별거를 시작한 후 어느날 밤늦게 술을 먹고 찾아와서는 성관계를 요구했어요.내가 거절하자 욕을 하면서 ‘다른 남자가 생긴 게 분명하다.’고 단정짓기도 했지요.정말 결혼하면 여성의 몸은 남편의 것인가요?” 전업주부 정혜원(47)씨는 “결혼한 후 성관계를 거절하면 이혼사유가 된다.”거나 “성관계를 거부하는 것은 남편을 무시하는 것이다.”는 남편의 말에 속아 살았다고 말했다.“그전에는 남편이 나를 사랑하니까 성관계를 원한다고 생각했다.또 이렇게 거절하면 바람을 피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있었다.하지만 이렇게 폭력적인 성행위는 사랑일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성관계란 ‘몸으로 표현하는 신뢰’ 친정아버지의 상중에 남편의 부부관계 요구를 거절한 후 폭언을 당했고 강제로 성관계를 가져야만 했던 김정아(가명· 43)씨는 “남편에게 강간 당했다.”며 치를 떤다. “성이란 ‘몸으로 표현하는 가장 깊은 신뢰’라고 생각한다.내 아버지가 그렇게 갑자기 돌아가셔서 슬픔에 젖어 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남편은 회사 동료들이 모아준 조의금도 한푼 내놓지 않고 혼자 써버렸다.결혼생활이란 여자에게는 불리한 제도라고 생각하고 그동안 참아왔다.하지만 내가 시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남편처럼 성행위를 요구했다면 그게 용서됐겠느냐.” 그는 성이 “역겹다.”고 말하길 주저하지 않았다. 이렇게 여성들은 교감없는 일방적인 남편의 ‘성충동’은 ‘부부관계’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이를 여성과 남성의 성에 대한 생물학적인 차이나 인식 차이로만 생각할 수는 없을 것 같다.그래서 여성들은 아이들 때문에,또한 사회적인 통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결혼생활을 유지하면서도 ‘부부관계만은 하지 않겠다.’는 식으로 자신을 지키기도 한단다. 이유정(가명·37)씨는 7년간 연애결혼한 남편이 싫어진 이유에 대해 아내를 전혀 생각하지 않는 성생활 때문이라고 말했다.“몸이 아프거나 기분이 안좋아서 거절하면 ‘하늘 같은 남편이 요구하는데 어떻게 여자가 거절하느냐.’고 화를 내요.지난 시대의 사람도 아닌데 어떻게 그런 말이 나오는지 모르겠어요.” 이씨는 “정력이 센 남자를 여자들이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분명 오해다.내 주위의 사람들과 이야기해 봐도 그렇게 일방적으로 ‘너는 내것이니까 내 요구에 응해야 한다.’는 식의 남편과는 대부분 가정생활이 원만할 수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 30대 여성은 남편으로부터의 폭력은 없어도 ‘강간’이란 기분이 들기는 마찬가지라고 말했다.“감정표현이 없는 것은 내가 이미 접고 살기로 했기 때문에 별로 문제될 게 없다.그러나 내가 잠들어 있을 때만 남편이 성관계를 하는 것은 참을 수가 없다.정말 기분이 나쁘다.”고 말했다. 음이 통하지 않은 성관계에 대해 ‘폭력’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젊은 여성들뿐만이 아니었다. 김경란(가명·52)씨는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아이들이 독립할때까지는 이혼할 생각은 없다.젊었을 때에는 당장이라도 헤어지고 싶었지만,딸애들 결혼에 괜한 손해를 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그러나 성생활만은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7년째 남편의 요구를 거절하고 있다는 그는 “차라리 욕을 먹고,주먹으로 맞아도 그게 낫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정옥란(가명·67)씨는 지금도 부부생활만 돌이켜보면 “입이 쓰다.”고 했다.“방앗간을 하느라,아이 6명을 키우느라 참 힘들게 살았는데도 남편은 늘 꼬투리를 잡아서 밤마다 나를 때렸지.밤새워 때리고는 새벽녘에 요구하는 성관계는 사람을 비참하게 했어.요즘 세상이었다면 정말 안 살았을 거야.내 마음이 서늘해진다고나 할까,나는 많이 배우지도 못했고 돌아갈 친정도 없어서 그냥 살았지만 남편이 시앗을 본 것보다,때린 것보다 더 괴롭고 힘들었거든.” ●왜곡된 속담,아내는 3일에 한 번씩 북어패듯… 이혼상담 중 폭력과 함께 일방적인 성관계 요구에 지친 여성을 발견한다는 대한가정법률복지상담원 양정자 원장은 “흔히 아내를 북어패듯 사흘에 한 번씩 때리라는 말을 잘못 이해하고 있어서 생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속담은 아내에 대한 폭력이 아니라,서로를 잘 모른 채 결혼하고 오늘날처럼 서로 얼굴을 마주 대할 시간이 없었던 지난 시대 부부들에게 서로의 친밀감을 위해 자주 부부관계를 할 것을 권유하며,이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양 원장은 일방적 부부관계를 ‘강간’이라 표현하는 것은 30대 이하 젊은 층이라고 했다.40대 이상에서는 아직도 ‘칼로 물베기’식의 ‘화해법’이 어쩔 수 없는 하나의 ‘처방’으로 받아들여지는 예가 많지만 젊은층에서는 오히려 문제를 더욱 악화시킨다고 했다. “서로를 존중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성관계를 거부할 수 있다고 젊은 여성들은 생각한다.다만 남성들은 아직도 생각이 달라지고 있지 않아서 문제가 크다.여성들이 남에게 당했다면 ‘어쩔 수 없는 사고’라고 생각하겠지만 남편에게 존중받지 못한 것은 더욱 모욕감이 크다고 말한다.” 한국여성의 전화연합 신연숙 인권국장은 “폭력 전후,혹은 아내의 의지와 무관하게 이뤄진 부부관계는 ‘성학대’라는 사실을 남자들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허남주기자 hhj@ ■아내강간이란 아직 국내에서는 그 개념조차 모호하지만 서구의 여성학자들은 아내가 거절하는데도 남편이 어떤 형태로든 힘을 동원해 강압적인 방법으로 성행위를 하는 것을 ‘아내강간’으로 규정하고 있다. 남편은 ‘성관계’라고 생각하지만 여성입장에서는 ‘강간’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이유는 첫째,합법적인 제도 안에서의 성행위는 남성에게는 권한,아내에게는 의무로 받아들이는 사회에 기인한다고 한다. 또 성관계를 통해 아내를 벌주거나,괴롭히려는 의도를 갖고 있거나 통제하려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더욱이 대부분(87.4%)의 남편들은 자신이 원할 때 언제나 성관계를 할 권리를 갖고 있는 것으로 한국여성의 전화연합의 조사결과 밝혀졌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서울시 거주 기혼여성 1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25.5%가 아내가 강간을 경험했고,그중 8.7%는 강간직전 남편으로부터 심한 폭행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여성의 전화연합의 설문조사에 의하면 구타 직후 성관계를 요구하는 남편이 16.63%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났다. 경북대 신성자 교수의 2000년,‘아내강간 실태’연구에 의하면 남성들 중 42.4%가 지난 2년간 실제로 어떤 유형이든지 아내강간을 행했다고 답했다. 유형별로는 강압에 의한 강간은 35.4%,구타동반 강간 12%,가학적 강간이 10.4%로 보고됐다. 허남주 기자
  • ‘동계올림픽 실패’ 파문 / 김위원 프라하행보·뒷얘기 / ‘유치’ 훼방설 진실은 뭘까

    ‘김운용 책임론’은 유치 대표단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가 열린 체코 프라하로 떠나기 전부터 물밑에서 잉태되고 있었다. 김운용 IOC 위원은 “IOC 위원과 커피나 마시고,홍보행사를 하는 것으로는 표를 모을 수 없다.”면서 “만일 우리가 20표를 갓 넘길 경우 20표는 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준 것이고,나머지는 유치위에서 모은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고 단언했다.자신을 중심으로 득표활동을 해야 하며,한 번에 성공하기는 힘들기 때문에 다음을 기약해야 한다는 것이었다.반면 유치위원회는 “김 위원이 유치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의 IOC 부위원장 선거에만 열을 올린다.”면서 “유치를 방해하는 것 아니냐.”며 의혹의 시선을 보냈다. 총회 기간 IOC 위원들을 자유롭게 만난 사람은 김 위원 뿐이다.공로명 유치위원장과 김진선 강원지사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 응하는 정도였지만 김 위원은 유치위와 별도로 움직이며 IOC 위원들을 만났다.일부 위원들은 김 위원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워 보이며 친밀감을 과시하기도 했다. 예상 밖(?)의 투표 결과가 나오자 갈등은 분출됐고,김 위원의 부위원장 당선은 마른 장작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유치위 고위 관계자는 투표가 끝난 뒤 만찬에서 “한명의 역적 때문에 졌다.”고 흥분했다.김진선 지사도 “많은 얘기는 하기 싫지만 김 위원에게 분노를 느낀다.”고 말했다.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는 “유치 실패의 책임을 김 위원에게 묻기로 했다.”는 얘기도 들렸고,“그나마 김 위원 때문에 선전했다.”는 말도 나돌았다. 비교적 객관적인 인사들은 “어떤 주장도 확인할 수는 없는 것들이며 당사자들만이 진실을 알 것”이라면서 “김 위원의 석연치 않은 현지 행보와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유치위 관계자들이 사태를 악화시켰고,지역구민을 설득해야 하는 정치인들까지 가세하면서 엉뚱한 쪽으로 번졌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 “깨끗하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얻은 평창이 2014년 개최지 선정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도 이번 사건으로 타격을 받지 않을까 걱정스럽다.한국인들이 지고 가서 자기들 끼리 싸운다고 할 것이 아닌가.”라고 덧붙였다. 이창구기자 window2@
  • “우미관 다리가 최고의 놀이터였지”‘청계천 토박이’ 이순형 서울대 명예교수

    “내가 만일 화가라 ‘황혼의 청계천을 뒤로하고 귀가하는 지게꾼’을 묘사한다면 밀레의 ‘만종’(晩鍾)에 뒤질 것인가?”(1954.7.18) 고가도로 철거와 함께 청계천을 서울시민의 품으로 되돌려 주려는 복원공사를 하루 앞둔 30일,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동문회관 ‘함춘원’(含春苑)에서 이순형(李純炯·68) 전 서울대의대 학장을 만났다.그는 인터뷰 도중 어언 반세기가 지나 샛노랗게 바랜 경기고 시절 학교신문 한 쪽을 감회 어린 눈으로 읽어나갔다.2학년 때 문예반원으로 수필란에 실은 ‘청계천송’(淸溪川頌)이란 제목의 글이다. ●‘서울의 하수구' 원흉은 빗나간 시민정신 소년 순형은 이 글을 통해 당시만 해도 아낙네들의 빨래터로,인근 빈곤층 가정에서 흘려보낸 구정물 등으로 더러워져 ‘서울의 하수구’로 불렸던 청계천의 원흉(?)은 빗나간 시민정신에 있다고 보고 목청껏 비난했다.자연이 인간에게 베푸는 선물을 예로 들며 청계천의 소중함을 일깨운 뒤,아침 일찍 청계천에 나가 보면 나라의 혼을 불어넣어주기 때문에 (세련됐지만 친밀감을 찾아볼 수 없는) 명동거리보다 훨씬 낫다고 했다. 이 박사는 60년대부터 불모지였던 국내 기생충학에 몸을 던져 후학을 길러낸 뒤 지난해 은퇴해 명예교수로 있다.청계천을 화두로 꺼내자 금방 옛 추억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얘기 보따리를 술술 풀어놨다.낡은 볼펜을 꺼내 청계천 주변 지도까지 그려가며 어린아이처럼 신이 난 표정이었다. “한 차례 큰 비가 지나간 뒤엔 장대 끝에 줄을 매단 볼품없는 낚싯대로 가물치를 건져 올리기도 했지요.그럴 때면 웃통을 벗어젖힌 아이들이 너나없이 환호성을 질러대고….” ‘서울 토박이회’ 부회장 직함도 갖고 있는 그는 할아버지 세대 이전부터 청계천 근처에 살아온 토박이.본적이 청계천변에 자리한 장교동 56번지다.지금은 없어진 종로구 수하동의 청계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이 박사는 “어릴 적 청계천 수표교 쪽에는 부드러운 모래밭이 멋지게 깔려 나이에 따라 높낮이를 달리 정한 뒤 둔치에서 뛰어내리는 놀이를 즐겼다.”고 회고했다.아치형으로 만들어 모양 자체만으로도 인기를 얻은,현재 삼일빌딩앞 우미관 다리는 변변한 놀이시설이 없던 당시엔 손꼽히는 놀이터였다.주민들이 철봉,역기 등 운동기구를 하나 둘씩 들여놓아 요즘 드라마로 더욱 유명한 김두한도 힘자랑을 했단다. “나이 든 사람들 중에는 청계천 하면 탁류를 떠올릴 지 모르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잠시 피란 떠났다가 1·4후퇴 무렵 서울로 돌아와 다시 바라본 청계천은 글자 그대로 푸르디 푸른 맑은 물이 출렁이고 있어 감탄한 적이 있습니다.” 전쟁 중에는 너나없이 가정형편이 나빠지는 바람에 집집마다 청계천변으로 나와 떡이나 부침개를 만들어 팔아 연명한 삶의 터전이기도 했다.이 박사 자신도 열다섯살이던 9·28수복 때에는 담배,껌을 팔아 돈을 벌었다.아직도 국산 ‘공작’이나 미제 ‘러키 스트라이크’ 등 담배 이름을 잊지 못했다. ●‘나이애가라' 막걸리집의 어원은 전쟁이 끝난 50년대 중반,가난을 벗어날 생각에 서울로 인구가 몰려들면서 청계천 주변에는 판잣집이 늘어 갔다.판자로 얽은 막걸리집을 ‘나이애가라’라고 불렀다.화장실이 없어 취객들이 청계천 둑 위에서 소변을 봤는데 아이들의 눈에는 그 물줄기가 거세게 느껴졌다는 얘기다. “5월 단오,8월 한가위 때면 장사교 위에서 동네마다 대표를 뽑아 연날리기 대회가 열리곤 했지요.” 중·고교생들이 정동 등 시내 학교로 통학하는 길이었던 청계천 10리 뚝방길은 사춘기 청소년들의 분홍빛 사연을 실어나르는 길이기도 했다.자동차 한 대가 겨우 빠져나갈까 말까 할 정도로 비좁은 길에 학생들이 넘쳐나 남녀끼리 자연스레 어깨가 마주쳤다며 이 박사는 씩 웃었다. 흔히 서울에서 태어난 사람에게는 고향이 없다고 하지만 이는 한 나라의 수도(首都)라는 이유로 많은 것을 타지인들에게 내준 탓이라고 했다.팔도 사람이 모인 서울을 그는 ‘공설운동장’으로 비유한다.한강도 서울의 하천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커서 대부분 사대문 안에서 둥지를 틀었던 서울 사람에게는 ‘고향’ 하면 떠오르는 게 청계천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청계천 복원은 고향 찾아주는 일 “청계천 복원은 서울토박이는 물론 고향을 잃고 살아가기 쉬운 미래 서울시민들에게 고향을 찾아주는 일로 반기지 않을 수 없지요.” 최근 서울토박이회 회원들과 청계천 복원의 성공을 염원하는 홍보 캠페인을 벌이던 중 광교 조흥은행 옆으로 난 뒷골목에서 50여년 전의 여염집 담장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고향의 흔적을 찾았다는 감격으로 가슴이 뭉클했다고 한다. “중산층 서민들의 애환이 서린 청계천 쪽에 살면서 상대적으로 외면당해온 북촌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때로는 청계천 주변을 떠나기 싫어했던 부모님을 원망한 적도 있다.”는 이 박사.조상 대대로 무교동·수하동·삼각동 등 청계천 주변을 내내 떠나지 못하다가 60년 모두 의학도였던 4형제의 학비 마련 등을 위해 당시 신도시로 개발된 불광동으로 보금자리를 옮겨 청계천과 약간은 멀어져야만 했다. “개발에 떠밀려 청계천이 복개될 때는 안타깝기 그지 없었는데….”라며 말끝을 맺지 못하는 이 박사.2년 후에 다시 드러날 청계천의 새 모습을 꿈꾸며 옛 추억에 잠긴 듯 지그시 두 눈을 감았다. 글 송한수기자 onekor@ 사진 손원천기자 angler@
  • 이기명씨 땅 1차계약 부산기업인 강금원씨 “盧대통령 권유로 계약”

    노무현 대통령의 전 후원회장 이기명씨의 용인 땅 매매 의혹과 관련해 그동안 밝혀지지 않았던 1차 매매계약자는 부산지역 섬유업체인 창신섬유의 강금원(53) 회장인 것으로 확인됐다. ▶관련기사 4면 강씨는 4일 기자들과 만나 “노 대통령의 권유로 이씨 땅 계약을 하게 됐다.”고 밝히고 “노 대통령이 당선된 뒤 사람은 분수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데다 계약한 땅에 철탑 등이 있고 대통령에 당선돼 특혜시비 등이 일 것 같아 부동산 해약을 했을 뿐 다른 의도는 추호도 없었다.”고 말했다.그는 “노 대통령이 생수회사 보증을 선 이기명씨의 땅이 경매에 넘어갈 처지여서 도와줄 것을 권유했다.”며 “지난해 여름 서울의 한 장소에서 이야기가 오고 갔으며,이후 이기명씨와 만나 구체적인 매매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그는 이어 “노 대통령과는 7∼8년 전 부산에서의 한 모임에서 알게 됐다.”며 “노 대통령이 참신하고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어서 친밀감이 가 자주 만나고 했다.”고 말했다. 해지를 요청한 뒤에도 잔금을 지급한 이유에 대해서는“이씨가 근저당 및 압류 등 서류상 깨끗한 상태에서 팔아야 제값을 받고 팔 수 있다고 해 그렇게 했다.”고 설명하고 “평소 친하게 지냈기 때문에 믿고 계약서 파기 등의 서류를 작성하지 않고 잔금을 지급했다.”고 덧붙였다.그는 “이씨와의 계약은 정상적인 상거래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서 “다만 (의혹이 불거진 뒤)문재인 민정수석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한나라당은 ▲매도자 이씨가 물어야 할 위약금 2억원을 원매자가 물은 점 ▲지난 2월 계약을 파기한 뒤 지금까지 17억원을 돌려받지 않은 이유 등을 들어 단순히 이 돈이 부동산 매매가 아닌 정치자금일 가능성에 의혹을 집중하고 있다. 부산 김정한·진경호기자 jade@
  • 라이스 美안보보좌관 前 미식축구선수와 열애

    |런던 연합|콘돌리자 라이스(48)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이 대학 교수 시절 알게 된 전직 미식축구 선수와 사랑에 빠진 것 같다고 영국의 더타임스가 2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열렬한 미식축구 팬인 라이스 보좌관이 프로선수 출신의 원로 체육인 진 워싱턴(57)을 두 번이나 백악관 만찬에 초청해 데이트를 즐기는 모습이 목격됐다면서 어쩌면 라이스 보좌관이 ‘프로축구 선수와 결혼하겠다.’던 소녀 시절의 꿈을 이루게 될지도 모른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라이스 보좌관은 샌프란시스코에서 프로선수로 뛰었던 워싱턴을 지난해 여름 폴란드 대통령 공식만찬에 초청한 데 이어 일주일 전에 열린 필리핀 대통령 만찬에도 초청해 ‘깊은 친밀감’을 표시했다는 것. 라이스 보좌관은 미프로풋볼리그(NFL) 이사로 활동 중인 워싱턴의 초청으로 귀빈석에서 미식축구 경기를 관람하곤 해 워싱턴 정가에서 “라이스가 사랑에 빠졌다.”는 소문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워싱턴은 더 타임스 인터뷰에서 라이스 보좌관과 연인 관계라는 소문은부인했지만 “콘디(콘돌리자 라이스의 애칭)는 너무나 정확하고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침착함을 잃지 않는 놀라운 여인”이라며 “이 세상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인상적인 사람”이라고 찬사를 늘어놓았다. 라이스 보좌관과 워싱턴은 모두 미식축구 열기가 높은 앨라배마 출신.라이스 보좌관은 은퇴한 뒤에는 “NFL을 위해 일하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축구 사랑이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 “盧·부시 알고보면 비슷합니다”/ 對美관계 지원 나선 오버린 주한미상의 회장

    윌리엄 오버린(59·보잉코리아 지사장) 주한미상공회의소(AMCHAM) 회장의 친한(親韓) 행보에 정·재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지난 1월 취임 이래 한 달에 두 차례씩 뉴욕·워싱턴 등 지역의 미국 지도급 인사와 만나 한국의 상황을 적극 설명하는 등 노무현 정부에 대한 측면 지원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기업의 시각에서만 한국 시장을 평가하고 한국 정부에 정책을 일방적으로 건의했던 자신의 종전 태도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그는 오는 11일 노 대통령의 첫 미국 방문때 경제사절단의 일원으로 동참한다. 노 대통령의 방미를 앞두고 오버린 회장을 만나 암참의 활동 방향과 새 정부에 대한 평가,대통령의 방미 과제 등에 관해 얘기를 나눴다. ●“정부 경제정책,베리 굿!” 새 정부의 지난 2개월 활동에 대해 후한 점수를 줬다.정부가 외국인 문호 개방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암참과 재정경제부 등이 정례적으로 분과간담회를 갖고 한·미 통상 전반에 관한 대화 창구를 만든 점을 높이 산다.”면서 “올들어 미국 기업의 입장을 담은 암참 무역연례보고서를 언론에 배포하지 않고 양국간 대화에 치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특히 한국을 아시아의 경제허브로 만들겠다는 정부의 목표는 무척 반길 만한 것이라고 강조했다.아시아 경제허브의 전제 조건인 법인세 인하,노동시장 유연성 확보,외환규제 간략화 등은 암참이 지향하는 목표와 일치한다는 것이다. 그는 “한·미 양자투자협정(BIT) 체결을 위한 대화의 장을 조속히 마련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라면서 투자협정이 가시화되면 한국이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우호적이라는 신호를 세계에 알리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자신했다. ●‘노무현은 어떤 사람이냐’는 질문 가장 많아 받아 오버린 회장은 “내가 마치 한국의 전도사로 뛰는 것처럼 알려져 쑥스럽다.”며 “노 대통령과 임기 시작 시기가 비슷하기 때문에 그같은 평을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혼미했던 대선정국과 촛불시위에 따른 반미감정 등이 미국 언론을 통해 크게 부각되면서 한국에 대한 불안한 인상이 아직 많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당시 미국의 정·재계 인사들은 이회창 후보가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는 소식을 들은 반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는 비교적 긍정적이지 못한 정보를 접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에도 ‘노무현 대통령은 과연 어떤 사람인가.’를 묻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는다고 했다.그때마다 미국 정·재계 인사들에게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은 외국인에게 문호를 개방했던 이전 정부와 차이가 없다는 점과 촛불시위는 반미감정의 발로가 아니었음을 강조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노-부시 금세 친해질 것” “현재 한국내 외국인 투자가 점점 줄어드는 것은 북핵 탓입니다.이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미국의 정부기관은 물론 무디스 등 각종 신용평가기관들도 한국 경제를 긍정적으로 전망하기를 망설일 것입니다.” 따라서 노 대통령은 우선 오는 11일부터 17일까지 예정된 방미길에서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초석을 쌓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남한과 미국의 대북 정책 방향이 같다는 점을 확인하고 동맹관계가 유지될 것임을 대외에 널리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두 사람간에 인간적인 친밀감이 형성되길 바란다고 밝혔다.양국간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한 지름길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두 사람 성격이 비슷해 금세 친해질 것 같습니다.각 부문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논쟁을 좋아하지만 일단 결정된 사안에 대해서는 강력한 추진력을 바탕으로 밀고 나가는 문제해결 방식이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딸 영어 교육에 관심 많아” 그는 개인적으로도 한국을 무척 좋아한다고 말했다.공군 장교 출신으로 1985년 보잉에 입사한 이래 3년씩 세 차례 한국에서 근무한 경력을 갖고 있다.부인도 한국 사람이다.이 덕분에 집에서 먹는 식단의 50%가 한식이며,가장 좋아하는 음식도 수제비와 냉면이라고 한다. 그는 또 “골프와 라켓볼을 즐겨 친다.”면서 “운동 상대는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지만 어떤 때는 팀에서 나 혼자만 외국인으로 남을 때가 많다.”며 한국 인맥이 넓다는 사실을 은근히 과시했다. 자녀 교육과 관련,특별한 지침은 없지만 일단 영어 학습에 신경쓰고 싶다고 밝혔다.“이제 겨우 만 세살인 딸 아이 마리가 엄마 하고만 시간을 보내다 보니 영어를 잘 못알아 들어 대화가 잘 안된다.”면서 “마리와 의사소통하기 위해 벌써 한국어를 배운 지 1년이 넘었다.”며 웃었다. 주현진기자 jhj@
  • 우리區 議政이렇게/김열호 서초구의장

    “조례·규칙 심의 때 사안별로 찬반 실명제를 도입해 의원들이 정실에 흐르지 않고 소신있게 의정을 펴도록 돕겠습니다.” 서초구의회 김열호(58) 의장은 올해 의정의 기치를 ‘짜임새 있는 활동,집행부와의 조화,정보화 마무리’로 요약해 설명했다.이런 의정목표를 향해 가는데 특히 여성의원들의 맹활약이 돋보인다고 자랑이 대단하다. 구의회에는 전문분야에 경험이 풍부한 장영화(57) 부의장과 정길자(50) 총무·재무위원장,김옥자(61)·허명화(56)·이신옥(55) 의원 등 5명의 여성의원이 활동중이다.전체 의원이 18명인데,보기에 따라서는 적다고도 하겠지만 다른 구에 비해서는 많은 편이다. 여성의원들은 특유의 ‘꼼꼼함’이 의정활동으로 이어져 각종 발의안이나 행정업무를 검토할 때 남성의원이라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문제들을 곧잘 잡아낸다. 김 의장은 “초대부터 현 4기까지 4차례 모두 연임한 의원이 6명,3선 5명,재선 3명 등 다선의원이 18명 가운데 14명”이라면서 “다선의원들의 풍부한 의정 경험과 장점을 살리는 데 최선을 다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다선의원이 많다는 것은 의회가 주민들의 신뢰를 폭넓게 받고 있다는 뜻이며,이런 점을 십분 활용해 여론수렴이 끝난 계획은 과감하게 추진하겠다고 했다. 자체 홈페이지 구축 등 정보화사업에도 힘을 쏟고 있다.오는 7월까지 7000여만원을 들여 사이트를 개설할 방침이다. 속기록이나 조례 소개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인터넷방송을 통한 회의 생중계 등 주민들이 친밀감을 갖고 대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행정사무 감사를 포함,방대한 자료를 집대성하는 코너도 만들어 집행부의 업무부담과 예산낭비를 최대한 줄이고,주민들 편에서 궁금증을 남기지 않도록 애쓸 생각이다. 육군 감찰관과 별정직 서초1·2동장을 거쳐 1995년 의정에 뛰어든 3선 구의원이다. 송한수기자 onekor@
  • [Look! 아시아]1부 新장보고 루트르포 (8) 日 시미즈社CEO 탐방

    *노벨상 사원 배출한 기초기술 투자 |교토 황성기특파원| “달걀과 닭 중에 무엇이 먼저”라는 논쟁은 다나카 고이치의 2002년 노벨화학상과 시마즈(島津)제작소에도 맞춰봄직하다. “다나카 개인의 독창성인가,시마즈의 비옥한 토양 덕분인가.” 개인이 뛰어났기 때문에 노벨상이 가능했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그 역(逆)의 주장도 만만치 않다.“기초연구에 유달리 집착하는 시마즈의 사풍(社風)이 없었다면 다나카의 노벨상이 있었을까.”라는 의문은 그래서 제기된다.시마즈의 야지마 히데토시 사장을 만나 궁금증을 풀어본다. ●노벨상으로 달라진 것이라면. 브랜드 이미지랄까,네임밸류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시마즈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어도,교토(京都)의 오래된 회사인 것은 알아도 뭐하는 회사인지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주가(도쿄증시 1부시장에 상장)도 별로 움직이지 않는 매력이 없는 회사였다.그러던 시마즈가 일반에 널리 알려졌다.사원들도 힘이 생겨났다. ●개인적으로는. 나도 바빠졌다(웃음).매출의 75%를 담당하고 있는 국내외대리점의 고충은 제너럴 일렉트릭(GE)이나 필립스에 비해서 브랜드 이미지가 약한 점이었다.그러나 이제 사람들이 나를 만나면 “노벨상을 낳은 시마즈의 사장님이냐.”고 기대감을 갖는다.교토의 시마즈가 일본의 시마즈,나아가 세계의 시마즈로 도약하는 계기가 됐다. ●시마즈의 유전자가 노벨상을 낳았다고 할 만큼 독특한 사풍을 자랑하는데. 1875년 시마즈 겐조가 창업한 시마즈는 출발부터 벤처기업이었다.독일의 뢴트겐 박사가 X선을 발견한 이듬해인 1896년 X선 사진촬영에 성공했다.일본 ‘첫 발명’,‘첫 제품’이 수두룩하다. 다나카의 노벨상도 마찬가지이다.분자량을 측정해 어디다 쓰겠냐는 분위기가 그가 질량분석기를 발명했을 당시(1983년)에도 있었다.하나의 예를 더 들어보겠다.35년 전 교토대에 누마 교수란 분이 간암에 걸렸는데 사후에도 연구를 계승했으면 한다는 얘기를 듣고 시마즈 사장이 5억엔을 쾌척했다.당시 60인승 비행기 1대가 1억 5000만엔 정도였으니 대단한 돈이다.한 자리 숫자 이익밖에 내지 못하면서도 5억엔을 아무런 대가없이 낼 줄 아는 그런 회사이다.경기가 나쁘고 적자를 낸다고 해서 연구비를 줄이는 일은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도 연구비를 120억엔 정도로 고정투자하고 있는데. 그렇다.70%는 오늘,내일의 밥이 될 사업에 쓰고 30%는 뭐가 될지는 모르지만,하지 않으면 안 되는 기초연구에 쓰라고 지시하고 있다.매출의 8∼10%는 연구에 쓴다. ●연구자의 연구기간에 제한이 있나. 될 때까지 하라고 한다.아직 성공 못했지만 피부를 찌르지 않고도 혈당치를 잴 수 있는 기계를 개발하고 있다.5명이 팀을 이뤄 연구했는데 현재 중단상태이다.불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연구자를 교체해서라도 다시 시도할 것이다.세상에 없는 것에 대한 도전이 중요하다.‘온리 원(only one) 정신’이다. ●연구비 투자의 기준이라면. 무엇이 사업이 될까를 사장이 공부해서 아래에 지시하는 톱다운(top down)으로 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이다.물론 이거 하라,저거 하라고 할 때 연구의 자유가 없으면 안된다.그건 안돼,그걸 그만두라고 하든가 쓸데없는 것까지 따지면 성장이 없다.나처럼 문학자(독문학 전공) 같은 문외한이라고 해도 큰 부분은 사장이 고민하고 고민해서 결정해야 한다. ●사장에 취임해 2년 연속 적자를 낸 시련도 있었다. 2000년도 적자는 회계제도가 바뀌어 불가피했다.2001년도는 매출이 줄어 대리점 재고가 크게 늘었다.3개월반분 155억엔의 재고가 쌓였다.이것을 한꺼번에 처리하기 위해 공장제조를 중지했다.그래서 적자가 생겼다.천천히 재고를 정리하는 방법도 있었으나 과감히 처리했다.명예퇴직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128명 받았다.인원정리는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올 3월 결산(2002년도) 전망은. 작년은 100억엔 적자였지만 올해에는 매출 1400억엔,경상이익 40억엔을 예상하고 있다.나는 낙관주의를 좋아한다.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비관만 하는 사람을 매우 싫어한다. ●시마즈를 어떤 회사로 만들고 싶었나. 시마즈가 가진 기초기술을 응용할 수 있는 분야를 골라 키우는 ‘선택과 집중’이었다.자기공명장치(MRI)는 우리가 첫 국산제품을 냈지만 과감히 포기했다.MRI의 기술을 유지하고 업그레이드하려면 40명의 기술자가 필요하다.GE,필립스 같은 회사는 의료기기 기술자만 6000명이다.150명의 기술자밖에 가지지 못한 우리로서는 경쟁할 수 없다.포기할 것은 포기해야 한다.예를 들겠다.X선은 시장성이 크지 않아 대기업이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그 틈새를 노려 제대로 된 물건을 만들면 된다.X선을 특화해 노렸던 400억엔 시장을 4분의3으로 줄여 300억엔으로 하고 적자가 없는 체제로 가자는 것이 내 경영목표이다. ●시마즈 특유의 ‘오프사이트 미팅’이 평판이 좋은데. 회사 밖 후생시설에서 중견간부 10∼15명과 찌개 안주에 술을 마시면서 대화를 나눈다.대화를 통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얘기하면 얼굴도 기억되고 친밀감도 생겨난다.20차례 했다. ●다나카를 최근 만난 적 있나. 오늘도 사원식당에서 봤다.그는 그러나 먼저 말을 거는 사람이 아니고,누구한테 들은 얘기로는 나를 만나면 긴장한다고 했다(웃음). marry01@kdaily.com ■야지마 사장은. 68세.게이오대 출신.뉴스위크 일본지사에 합격했으나 아버지 권유로 방위청에 들어가 2년간 조달업무를 배운 뒤 일본최초의 국산 항공기를 제작한 일본항공기제조로 옮겨 영업외길을 걸었다.1977년 시마즈로 옮겨 1998년 사장에 취임했다.혈색 좋은 그는 술을 즐기지만 밤 10시면 꼭 자고 아침 6시면 일어나는 건강법을 유지하고 있다. ■노벨상 수상이후 근황-‘스케줄 비서' 둔 다나카 *강연 요청만해도 300건 육박 이달들어 겨우 안정감 되찾아 |교토 황성기특파원|지난해 10월 노벨상 발표 후 5개월간 이곳저곳 불려다니랴,논문쓰랴 정신 없었던 다나카 고이치(43)는 이달들어 겨우 안정감을 찾았다.지난 1월 말 노벨상위원회에 논문을 제출하고 가까스로 소원대로 현장에도 복귀했다. 100여건이 넘는 일본 국내외 언론의 인터뷰 신청이 밀려 있지만 일절 응하지 않았다.시마즈 제작소는 최근 인터뷰를 신청한 대한매일 등 언론사에 “연구개발업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시간을 확보해줬으면 한다.”고 일일이 연락을 취했다.“다나카에게 가장 서툰 분야가 매스컴”(야지마 히데토시 사장)이란 점도 작용한 듯하다. 300건 가까운 강연요청에는 와세다 대학(3월20일)을 시작으로 응할 생각이다.쓰쿠바 대학에서는 4월부터 객원교수로 학생도 가르칠 계획. 눈코 뜰새 없이 바빠지면서 스케줄을 관리하는 직원이 따라붙었다.1월에는 ‘다나카 고이치 기념연구소’도 문을 열었다.주임에 불과하던 그의 직책은 ‘부장급 펠로’로 몇 단계 올랐다.700만엔이던 연봉도 1000만엔으로 껑충 뛰었다.회사의 임원 승진 제안,미국 모회사의 연봉 6000만엔 제의는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어눌하고 우스꽝스러운 언변,촌스러운 헤어스타일,유행을 모르는 옷차림이지만 일본 여성들에게 ‘다나카형 기술자’는 최고의 신랑감 모델로 우뚝 섰다. 다나카가 30살 좀 넘어서 그와 같이 영업을 나간 적이 있다는 하나타니 다헤이 홍보부장의 말.콧대가 너무 높거나 허풍을 떨거나 고지식한 3가지 기술자 타입 중 그는 세번째 유형이다.“중요한 고객 앞에서도 되는 것은 되고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분명히 말하는 타입”이라는 하나타니 부장은 “그래서 누가 뭐라건 한 곳에 집중이 가능한 것 같다.”고 풀이한다. ‘다나카 효과’로 시마즈 제작소는 광고선전 등 유형무형의 이득을 보고 있다.“돈으로 헤아릴 수 없다.10억엔을 쓴다고 해서 그런 효과를 거둘 수 있을까.”(하나타니 부장) 노벨상 발표 전 261엔이던 주가도 한때 475엔까지 갔다. 도호쿠 대학 졸업 전 소니에 입사시험을 치렀으나 깨끗이 낙방했던 다나카.그때 소니에 들어갔더라면 노벨상의 영광이 있었을까.그는 단언한다.“결과론이지만 떨어져서 잘됐다고 생각한다.”고.노벨상의 유전자는 시마즈에서 비롯됐다는 애정을 담뿍 담은 한마디이다. ■다나카 재직 시마즈社-교토 대표기업…벤처 원조 1875년 발명가 시마즈 겐조가 교토에서 창업한 벤처기업의 원조.소형축전지,X선 사진촬영기,의료용 뢴트겐장치 등 ‘세계 최초’,‘일본 최초’ 제품을 다량 내놓았다.그러나 대량 생산을 통한 돈벌이보다는 기초연구에 전념하는 독특한 사풍으로 사세를 크게 늘리지 않았다. 일본 고도성장기에도 기술력으로 승부하는 ‘다품종 소량주의’를 내세워 틈새시장을 공략하며 착실히 내실을 다져온 ‘괴짜 기업’. 자본금 168억엔,종업원 3216명,2001년도결산 매출 1266억엔으로 일본에서는 그리 크지 않은 중견기업이다.사세는 그렇지만 기술력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해 일본의 기술개발형 회사의 대표격이다. 뿐만 아니라 교세라,무라타 제작소,닌텐도,로무 등 교토를 기반으로 하는 기업의 원류에는 시마즈가 있다고 할 정도로 시마즈는 개발한 기술을 공유하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다나카의 단백질 질량분석기도 특허를 제출하지 않을 정도.택시를 탄 뒤 운전수에게 “교토를 대표하는 기업이 어디냐.”고 묻자 주저없이 “시마즈”라고 대답할 만큼 교토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다만 2년 전에는 창업 이후 처음으로 적자를 내는 시련을 딛고 올 3월 2002년도 결산 때부터 흑자로 돌아선다.2003년도에는 매출 2100억엔에 경상이익 90억엔,2005년도 매출 2300억엔에 경상이익 125억엔을 각각 목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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