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친미
    2026-08-11
    검색기록 지우기
  • 미스
    2026-08-11
    검색기록 지우기
  • 병역
    2026-08-11
    검색기록 지우기
  • 2026-08-11
    검색기록 지우기
  • 미생물
    2026-08-1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118
  • 미·소공동위 결렬 이후(새로 쓰는 한국 현대사:16)

    ◎미,한반도문제 유엔총회 상정/유엔 남북총선·한국임시위 설치 결의/소 「한국대표 불참」 이유 임시위 보이콧/남로당,북과 공조 유엔토의 반대 선동 미국은 제2차 미소공위가 정돈상태에 들어간 1947년 여름부터 회담자체에 기대를 걸지 않았다.그래서 팽창하는 공산주의 압력을 저지하기 위한 서구와의 협력문제,한국의 독립이 친미적 반공이념에 입각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문제등을 고려하게 되었다.특히 양극화 현상을 치닫는 동·서냉전의 구도속에서 한반도 문제의 해결은 유엔에 맡기는 것이 최상책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던 것이다.여기에는 당시 남한에 주둔한 2개사단을 철수시킬 수 있다는 군사전략도 맞물려 있었다. 1947년 9월 17일 미국대표는 한국독립문제를 제2차 유엔총회의 의사일정에 포함시킬 것을 전격적으로 요청했다.이날 미 국무장관 G C 마셜은 총회의 연설에서 미국정부가 한반도 문제를 유엔에 넘기지 않을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고 나섰다.마셜의 연설요지는 미 소협상에 의한 한반도 문제해결은 전혀 전망이 없기 때문에 유엔에 상정한것이며 비록 미국이 의안을 제출했을 지라도 회원들의 공정한 판단이 요구된다는 것이었다.그리고 미 소의 무능으로 한국인이 열망하는 한국의 독립을 더이상 연기시킬 수 없다는 입장을 덧붙였다(미국무성보·1947년). 소련 외상 그로미코는 한반도 문제의 총회 상정은 위법이라고 주장했다.이 문제는 전쟁과 연결된 사안으로 강대국들이 특별한 방법,다시 말하면 모스크바협정(3상회의 결정)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었다.그러나 운영위원회는 미국의 의안을 12대 2로 가결한데 이어 총회도 이를 동의했다.총회의 제1위원회가 10월 28일 한반도문제 토의를 시작하기전 소련대표는 다른 안건을 내놓았다.그것은 한국민들에게 자신들의 정부를 선택할 기회를 주도록 1948년초까지 미·소의 군대를 한반도에서 철수하자는 내용이었다. 소련의 이같은 안건을 주의깊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이무렵 한반도 북쪽에는 소련의 조종을 받는 자신들의 대리기구인 정부형태의 북조선인민위원회가 존재했기 때문이다.또 7월 제2차 미소공위에서 소련이 내놓았던 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남북한 정당 및 단체협의체 구성안과도 무관치 않은 것이다.소련은 제2차 미소공위에서 남한의 27개 정당을 우익계 및 중간계라는 이유로 배제시킨 극좌 우세의 지위를 차지하겠다는 의사를 보인 적이 있다(한국에서의 미군정 활동요약·1947년).소련의 이 제안은 제2차 미소공위가 결렬되는 요인의 하나로 작용했다. 어떻든 미국대표는 10월 17일 미국의 제안을 구체화한 결의안을 유엔 사무총장에게 전달했다.미국의 안은 되도록 빠른시기에 한국의 독립이 이루어져야 하고 점령군이 철수되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다시 말하면 점령국은 1948년 3월 31일까지 남북한 전지역에서 유엔위원단의 감시하에 총선거를 실시,국회나 중앙정부를 수립하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그 정부는 군대를 창설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었다.유엔위원단은 국회 및 정부조직,점령군 철수에 관한 협정체결에도 협의할 수 있다는 위원단의 역할도 제시했다. ○소 별도 결의안 제출 소련은 역시 미국안에 맞서는 2개의 결의안을 별도로 유엔에 내놓았다.그 하나는 남북한에서 선출된대표들을 초청,한국문제 토의에 참가시키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앞서 주장한 한국정부 수립은 한국민에게 맡기자는 요지였다.그러나 도대체 누구를 한국민의 대표로 하느냐는 벽에 부딪혔다.얼핏 매력적으로 보이는 한국대표 참가는 한국임시위원단을 설치하자는 미국의 수정안에 밀려나고 말았다.총회의 제1위원회는 11월 14일 35대 6으로 미국의 수정안을 최종 채택했다. 소련이 내놓은 안건은 미국에 의해 모두 봉쇄된 셈이었다.그로미코는 「총회가 한국민 대표를 참석시키지 않고 한국임시위원단을 설치한다면 소련은 불참하겠다」고 선언했다.이는 뒷날 소련과 소련이 전적으로 조정한 북한에 의해 실현되었다.유엔총회는 11월 14일 미국의 제안을 몇가지만 부분수정하고 최종적으로 채택했다.소련의 제안이 만약 수락되었을 경우 이미 기반을 닦은 북조선노동당과 인민위원회,남조선노동당을 주축으로 한 공산주의가 지배하는 정부가 수립되었을지도 모른다.이는 미국이 우려한 부분이기도 하다. 유엔총회는 11월 14일 채택한 결의안에 따라 한국독립을 위한 계획안을 발의하였는데 대부분 미국이 주장한 원칙을 따르는 것이었다.총회의 결의에 따라 설치된 한국임시위원단은 오스트레일리아,캐나다,중국,엘살바도르,인도,필리핀,시리아,우크라이나로 구성되었다.우크라이나는 대표파견을 거부,7개국이 참여했다.한국임시위원단에게는 선거감시의 임무가 부여되었다.선거는 늦어도 1948년 3월 31일까지 성년자 투표 및 비밀투표를 실시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1947년 11월 14일 미국측 제안이 유엔총회에 최종 채택되는 것을 계기로 국내에서는 좌우파의 양극화가 심화되었다.이승만은 미국이 남한에 독자적인 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자신에게 눈을 돌릴 것이라고 예측했다.남로당도 이른바 야산대라는 게릴라를 조직하고 경찰관서를 포함한 관공서를 습격하는 등 과격성을 띠었다.그리고 유엔에서 한국문제 토의를 끝까지 반대해야 한다는 선전선동을 강화했는데 이는 12월 중순부터 본격화되었다(극동사령부 정보철·1948년 2월). 남로당은 북로당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광범위한 세력과 공동전선을 펴는 지령을 받는다.서울신문이 입수한 한 자료에 따르면 남로당 요원의 북한파견은 아주 일찍부터 고정루트를 통해 이루어졌다(별도기사).지금까지 알려진 자료들을 종합하면 1947년말 당시 남한에 있었던 중도좌파 인물 홍명희는 평양의 북로당위원장 김두봉과 수시 연락을 가진 것으로 되어있다.홍명희는 1948년 2월초까지 실제 비밀리에 평양에 몇차례 다녀왔다. 그리하여 19 48년 1월 8일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은 서울에 첫발을 밟은데 이어 1월 12일 첫 회의를 열었다.하지만 앞으로 닥쳐올 한국에서 활동은 그리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남로당 북한과 수시접촉 했었다/당수 허헌,북에 밀령 전달/요원 4명 배로 평양 밀파/원산서장에 “동행을” 사신 해방정국에 엄청난 혼란을 불러일으킨 남조선노동당(남로당)이 북한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한 가운데 수시로 접촉한 사실을 입증하는 자료가 워싱턴에서 발굴됐다.1950년 미군이 평양에서 가져온 이른바 북한노획문서의 하나인 이 자료는 허헌이 함경남도 원산인민보안서장에게 보낸 소개장으로 4인의 공산당 요원을원산을 통해 평양에 밀파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 소개장은 1946년 당시 남로당위원장 직책을 맡고있던 허헌이 그해 12월 친필로 작성한 것이다.그는 소개장에 허인(당시 31세)등 4명의 이름을 적고 허인이 자신의 조카임을 밝혔다.소개한 4명의 인물은 모두가 희생적으로 투쟁하는 간부들이라고 전제하면서 이들이 평양까지 무사히 가도록 동행등 모든 편의를 보아주도록 당부한 내용을 담았다.그리고 동선했다는 대목이 보여 이들은 동해안에서 배를 타고 원산에 상륙한 것으로 보이는데 평양까지 가는 목적은 「모 용무」라고만 적어 상세히 밝혀지지 않았다.그러나 중요한 임무를 띠고 밀파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은 가능하다.왜냐하면 경찰서장에 해당하는 인민보안서장의 동행을 요청했다는 점이 그것이다.특히 이무렵 남한의 공산당은 10월폭동과 같은 과격한 투쟁을 벌이다 지하로 숨어든 시기여서 다급한 밀령을 가지고 입북했을 가능성이 크다. 허헌은 1885년 함북 북청출신의 변호사로 일찍 공산주의 운동에 가담했다.1946년 11월 해방정국에서 개편한 공산당인 남조선노동당 위원장을 맡았다가 월북,최고인민회의 의장을 비롯,김일성대학 총장과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의장 등을 지냈다.1951년 8월 병사했는데 허정숙은 그의 딸이다. 이 자료를 검토한 북한문제연구소 김창순 소장은 『개성과 서해안,철원등을 통한 월북루트는 널리 알려졌지만 동해를 통한 해상루트가 밝혀진 것은 처음』이라면서 「허헌 친필의 소개장 자체도 공산주의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특별취재반 ▲황규호 (문화부 부국장급) ▲이용원 ( 〃 기자) ▲김성호 ( 〃 〃 ) ▲김경운 (조사부 〃 )
  • 좌우합작 실패의 두안(새로쓰는 한국현대사:15)

    ◎“미군정을 인민위 넘기라” 「민전」 일방발표/방헌영,우익 수용못할 「5원칙」 내세워 결렬/미군정고문 버치 개입… 친미세력구축 노력/중도우 김규식·여운형 「합작의 꿈」 무산 미·소공동위원회 1차회담이 1946년5월 무기휴회에 들어간 뒤 미국과 소련,그리고 그를 추종하는 남북의 정치세력은 단독정부수립을 향해 나아갔다.비록 2차회담이 19 47년 열리긴 했지만 그 회의는 예정된 수순을 확인하는 절차에 불과했다.이처럼 남북분단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우리민족의 대응은 어떠했나. 외세에 영합해 정파이익 찾기에 앞장선 무리가 있었는가 하면 민족통일과 독립을 추구하는 세력도 등장했다.남쪽에서 가시화한 통일독립시도가 바로 좌우합작운동이다.좌우합작운동은 제1차 미·소공위가 결렬돼 남북분단이 민족 앞에 현실로 대두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1차공위 결렬후 손잡아 좌우합작운동을 이끈 양날개는 우파의 김규식,좌파의 여운형이다.김규식은 미·소공위 휴회 직후 열린 「독립쟁취국민대회」에서 『남의 손에 정부가 수립되기를 기다릴 것 없이 이제 우리가 자율적으로 정부를 세우자』고 역설한다(한성일보 1946년5월14일자).그리고 그 방안으로 ▲남쪽에서 먼저 좌우파간에 합작하고 ▲이를 바탕으로 남과 북의 정파가 통합해 통일정부를 이루자는 「좌우합작론」을 내세웠다.당시 김규식은 우익의 집결체이자 미군정 자문기관인 「남조선대한국민대표민주의원(민주의원)」의 의장이었다. 김규식의 제안에 좌파모임인 「민주주의민족전선(민전)」의장단의 한 사람 여운형(조선인민당위원장)이 대뜸 지지하고 나섰다.이들은 「좌우합작위원회」회의가 정식으로 열리기까지 때로는 단둘이서,때로는 좌우파 각 정당·사회단체대표와 함께 만나 좌우합작을 성사시키려고 애썼다. 김규식과 여운형이 합작운동에 쉽게 동의한 것은 무엇보다 민족통일이 최우선이라는 공감대를 가졌기 때문이다.두 사람은 모스크바삼상회의에서 결정한 「임시정부수립」계획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는 데도 뜻을 같이했다.민족이 우선 힘을 합쳐 「임시정부」를 구성하면 신탁통치문제,일제잔재청산등은 자연스럽게 해결된다고 보았다. 이들이 이데올로기상에서 색깔이 희미했던 사실도 도움이 됐다.당시 미군정의 정보보고서는 김규식을 중도우파,여운형을 중도좌파로 일단 구분한 뒤 『근본은 민족주의자들』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19 46년7월25일 덕수궁에서 열린 좌우합작위 1차회담에는 우파의 김규식·원세훈·안재홍·최동오·김붕준등 5명,좌파에서 여운형·성주식·정노식·이강국등 4명이 참석했고 김규식이 사회를 맡았다.또 미군정측 연락장교로 정치고문인 L 버취중위가 출석했다.1차회담에서 양측은 합작의 기본원칙으로 3개 항을 합의했다.곧 ▲진정한 대의에 의한 민주공화국수립 ▲진정한 애국자,혁명가,나라를 사랑하는 모든 세력이 단결하여 민족통일달성 ▲북한에서도 진정한 민주적인 언론출판의 자유,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기초 위에서 남북이 합작해야 한다는 것들이다. 그러나 좌우합작운동은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친다.합작위의 좌파 파트너인 민전은 1차회의 다음날에 양쪽 합의사항을 무시한 새로운 「합작5원칙」을 일방적으로 발표했다.그 내용은 「미군정의 정권을 인민위원회에게 넘기라」는 등 미군정과 우파에서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이었다.이 5원칙은 박헌영이 제안한 것으로,그 목적은 좌파내 지도권이 여운형에게 넘어가지 않도록 견제하는 데 있었다.좌파는 이어 7월29일 열린 2차회담에 불참했다. 그리고 나서 8월에 접어들어 정국이 일대격변에 휩싸이는 바람에 좌우합작은 뒷전으로 밀린다.조선공산당이 「신전술」을 채택해 「9월총파업」「10월폭동」이 잇따라 벌어졌으며 이에 따른 견해차이로 남쪽의 좌파세력이 4분5열돼 합작운동에 눈돌린 겨를이 없었다. ○기본원칙 3개항 합의 더욱이 미군정이 그해 9월 좌우합작위원회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속셈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좌우합작운동은 위기를 맞는다.미군정은 김규식이 처음 좌우합작에 나설 때부터 적극적으로 지원한 것은 물론 어떤 때는 운동을 주도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열의를 쏟았다.정치고문 버취중위는 매번 회의에 참석해 회의진척상황을 평가하는 보고서를 군정측에 냈다.이같은 사실은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이 워싱턴 미국립공문서보존관리국(NARA)에서 최근 입수한 문서로 확인됐다(별도기사 참고). 이 문서에서 드러나듯 미군정은 자체 필요에 의해 좌우합작을 지원했으며 합작방향을 원하는 쪽으로 이끌기 위해 배후조종을 시도했다.미군정의 목적은 「남조선과도입법의원(입법의원)」에 좌파를 참여시키는 데 있었다.미군정은 친미세력기반을 안정시킬 의도로 과도입법기구인 「입법의원」을 구성하려고 했다.선출방식은 지역유지들을 통한 간접선거였다.미군정은 이에 관한 법령을 46년8월 제정하지만 여건이 무르익을 때까지 숨겨왔다. 그러나 9월 언론에 관련보도가 나가자 미군사령관 하지중장은 버취중위를 통해 좌우합작위에 눈길을 보낸다.합작위에서 입법위원의 절반을 선출하도록 해주겠다는 것이다.이는 합작위의 위상을 높여주는 제의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합작위 자체를 입법의원으로 수렴하려는 시도였다.미군정의 제의는 거센 찬반논쟁 끝에 좌우합작위에 받아들여진다.하지만 이 과정에서 합작운동에 참여한 숱한 정파가 떨어져나갔다. ○「남 단독정부」로 기울어좌파대표 여운형은 9월23∼30일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와 기자회견을 가졌다.그는 『좌우합작에 쌍방이 매우 접근하다가 여러 사정으로 중지된 것은 유감』이라면서 『민족공동의 이익을 위하여는 좌우협의가 절대필요하다』고 소신을 밝혔다. 여운형과 김규식은 계속 접촉을 가져 10월7일 「좌우합작의 7대원칙」을 공동명의로 발표했다.그 주요내용은 ▲모스크바삼상회의에서 결정한 「선임시정부수립,후신탁통치해결」을 적극 지지하며 ▲친일파숙청은 임시정부의 입법에 따른다는 것이었다.이들은 입법의원에 대한 합작위원회의 입장을 정리,하지에게 통보했다. 두 사람이 발표한 합작원칙에 대해 김구 주도의 한독당 등 대부분의 정파는 크게 환영했지만 좌우의 대표정당격인 조선공산당과 한민당,그리고 이승만 진영은 분명하게 거부했다. 좌우합작위는 입법의원구성에 참여함으로써 결국 성격이 변질된다.간접선거를 통해 선출된 의원은 거의 우파들이었고,합작운동보다는 「남한 단독정부수립」에 기울어졌다.입법의원은 1947년1월 「신탁통치반대 긴급결의안」을 채택해 단정수립을 촉구하고 나섰다.입법의원을 좌우합작에 활용하려던 좌우합작파는 오히려 그 터전을 잃고 물러나야 했다. 미·소공위 2차회담이 6월25일 열리자 합작파는 「시국대책협의회」를 구성하는등 안간힘을 쓰지만 단정으로 흐르는 거센 물결을 막지는 못했다.그리고 7월19일 합작운동의 좌파지도자인 여운형이 서울 혜화동로터리에서 총격을 받아 숨졌다.좌우합작운동은 막을 내리는 듯하다가 1948년 봄 김구·김규식이 주도하는 「남북 정당·사회단체대표 연석회의」로 마지막 불꽃을 되사른다. 좌우합작운동은 실패한 운동이었다. 그 원인은 ▲미·소의 한반도 제패전략 ▲정파이익추구에 몰두한 극우·극좌파의 견제 등에 있었다. 그러나 실패한 운동이었다고 해서 이를 무시할 수는 없다. 좌우합작파가 외세의 개입을 차단하고 어떻게든 통일자주정부를 세우려 애쓴 점은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 더욱이 남북통일의 기운이 무르익는 현시점에서는 해방정국에서 벌어진 좌우합작운동의 실상을 정확히 이해하고 이를 이 시대에 활용하려는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 ◎박헌영·여운형 갈등… 회담 깨졌다/버치보고서 내용/박헌영,“좌파대표에 회의참석 말라”/버치,좌우양쪽 움직임 낱낱이 파악 미군정 공보국 소속 레너드 버치중위는 하지사령관과 아놀드군정장관의 정치고문이었다.1946년 5월 전임자인 굿펠로의 귀국후 정치고문을 맡았지만 그해 1월5일 박헌영과 존 스톤(뉴욕타임스 서울특파원)의 기자회견에 간여해 그 내용을 왜곡시키는 등 일찌감치 정치공작에 뛰어들었다.그는 『스스로를 마키아벨리처럼 착각,남한 정계를 마음껏 주무를 수 있다는 환상을 갖고 정치적 책략에 부심한』(마크 게인 저 「해방과 미군정」속에서)인물이었다. 좌우합작에 대한 버치의 공작은 미군정측에 보낸 보고서에서 그대로 드러난다.다음은 좌우합작위원회 2차회담이 예정된 1946년 7월29일 작성된 「좌우합작회의에 관한 버치의 4번째 보고서」내용이다. 『일요일인 7월28일 저녁 박헌영이 합작위 좌파대표들에게 회의 불참을 지시했고 이 문제로 박과 여운형이 논쟁을 벌였다.다음날 상오 10시 김규식은 여운형으로부터 「몸이 아파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며 며칠동안 입원해야겠다」는 사신을 받았다』 버치는 이어 2차회담 연기가 박헌영과 여운형의 갈등 때문에 비롯되었다고 분석했다.또 김규식으로부터 좌파 대표인 김원봉·허헌등을 만나 설득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이 보고서에서 보듯 버치는 좌우 양쪽의 움직임을 낱낱이 파악하고 있었으며,양쪽의 이견을 조정하거나 한쪽을 설득하는 일도 맡았음을 알 수 있다.미군정의 지원은 초기 좌우합작운동을 활성화하는데 도움이 되긴 했지만 이는 합작운동을 이끈 지도자들에게 끝내 족쇄로 작용하게 된다.
  • 미북합의 이후의 정책과제/오코노기 마사오(해외기고)

    ◎일은 대북교섭 서두르지 말라/최소한 6개월은 「이행」 지켜봐야 미국과 북한은 지난달 21일 핵문제에 관한 합의를 발표했다.시작에서 끝까지 약 10년간의 상호적인 과정을 설정해 3단계(첫 6개월,약 5년 후,약 9년 후)로 북한의 핵개발을 「일시동결」에서 「완전포기」로 바꾸어 놓기 위한 것이다. 흑연원자로와 관련 시설의 동결은 1개월 안에 이행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감시하에 두게 되지만 과거 의혹의 해명(특별사찰)에는 약 5년의 유예기간이 주어졌다. 한편 미국은 북한의 흑연감속로와 관련시설을 경수로 발전소로 대체할 수 있도록 협력하게 된다.이를 위해 국제 공동사업체(컨소시엄)를 구성하고 그 대표로서 6개월 안에 북한과 공급계약을 체결한다.그리고 최초의 경수로가 완공될 때까지 대체에너지(중유)를 공급한다.미국과 북한관계 정상화에 관해서는 3개월 안의 무역·투자 제한의 완화,쌍방의 수도에 연락사무소 개설(6개월 후?),사태의 진전에 따른 대사급으로의 승격 등이 합의됐다. 이외에도 남북 「비핵화」 공동선언의 이행과 남북대화의 재개문제도 언급한 합의문서이기도 하다.이것에 대한 불만이 한·미·일 3국에 적지않게 존재한다.찬반 양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합의 성립은 환영하지만 조금 더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것이 평균적인 의견이고 「특별사찰 실시까지 5년간이라는 유예기간을 준 것은 이해 안된다」든가 「북한이 합의사항을 성실하게 실행할지 모르겠다」고 하는 것이 반대론의 중심일 것이다. 나는 이번 합의의 특징을 다음 두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고 본다. 우선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이번 합의는 약 10년에 걸친 「상호적인 과정」을 상정하고 있다는 점이다.말하자면 경수로 건설을 위해 필요한 10년간을 잘 이용해 상호불신을 단계적으로 상호신뢰로 바꿔 보려고 하는데 이번 합의의 최대의 특징이 있다.그것은 아마 프래그머티즘에 기인하는 것이겠지만 냉전종결 후의 세계에서 그것이 가능하게 됐다고 믿는 것에 클린턴류의 외교철학이 있다.그것이 부시 정권과 크게 다른 점이다. 그래도 조금 더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비판이 있을 것이다.틀림없이 김일성은 클린턴보다 한수 위일지 모른다.하지만 그래도 미국이 잘만 했으면 북한은 유예기간 없이도 합의하지 않았을까 하고 묻는다면 그 질문에 대해서는 부정적일 수 밖에 없다.김일성이 카터씨와의 회담에서 받아들인 것은 핵무기 개발의 「동결」이었고 「포기」가 아니었다.특별사찰의 조기실시와 사용한 핵연료봉의 해외반출은 사실상 포기라고 아니할 수 없다.결국 우리에게는 화평이냐 대결이냐 둘 중에 하나를 택할 수 밖에 없었다. 합의의 두번째 특징은 북한이 최후까지 미국만을 교섭상대로 해 경수로건설 그외의 이행에 관해서도 철저하게 미국에 의존하려고 하는 점이다.틀림없이 이번 합의의 「남의 머리 뛰어넘기」 충격을 대남·대일 외교를 위해 최대한 이용하려는 숨겨진 목적이 있을 것이다.앞으로 북한은 대미관계와 대남·대일 관계의 차별화에 노력해 양자를 적절히 이용하려 할지도 모른다.그 정도의 전술은 구사하는 나라다. 그래서 「북한이 합의사항을 성실하게 실행할지 모르겠다」는 질문에 대해 나는비교적 낙관적으로 본다.문자 그대로 「성실」할 것인지 아닐 것인지와는 별개로 앞으로 북한은 미국의 정책에 될 수 있는 한 동조해 한국과 대등한 지위를 요구할 것 같다.이것은 「친미」노선이 될 수 밖에 없다.북한은 이번 합의문에서 핵확산금지조약 잔류에 동의하면서 「국제적인 핵확산 방지체제의 강화를 위해 (미국과) 함께 노력한다」고 맹세한 것이다. 현재 북한의 지도부가 시도하고 있는 것은 불필요해진 냉전시대의 유물 즉 핵무기 개발,험악한 대남·대일관계 등을 될 수 있는 한 비싸게,조금씩,나누어 팔면서 새로운 시대에 적응해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는 것이다.남북관계의 개선과 북·일 관계개선 어느쪽을 선행시킬 것인지에 대해서는 조금 더 시간을 갖고 판단할 필요가 있지만 그들이 교차승인의 실현쪽으로 움직여 올 것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남북 정상회담이 최대의 무기가 되겠고 그러한 외교전술을 보면 일본의 경거망동은 북한이 노리는 함정에 걸려드는 일일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국제적인 지원은 어찌되든 간에 일본과 북한의 교섭 재개는 주의깊게 해야 할 것이다.일본 여당 3당 대표단의 북한 방문이 검토되고 있는 것 같은데 핵의혹의 해명을 강하게 요구해 온 일본으로서는 적어도 앞으로 6개월 동안은 북·미 합의 제1단계의 이행을 지켜보는 것이 온당하지 않을까.남북대화 이전에 일본과 북한의 교섭이 재개된다면 이중으로 「머리 타넘기」를 당하는 한국의 대일 불신감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그리고 김정일 서기는 아직 노동당 총서기에도 국가주석에도 취임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 일 10억$ 부담의 숨은 뜻(북핵타결 이후:5)

    ◎“신질서에 동승” 대북수교 큰 기대/경제력 바탕 동북아 발언권 확대 겨냥/“미주도 화해기류에 북도 따를것” 판단 제네바합의로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시아의 질서가 재편될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은 일본도 마찬가지다. 미국과 북한이 연락사무소를 개설하고 경수로가 건설되기 시작하는 것과 함께 남북한 대화와 북한·일본의 국교정상화 교섭이 재개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동서냉전 최후의 잔류지였던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질서는 일거에 새롭게 형성되게 된다.이번 합의는 단순히 핵문제의 해결뿐만 아니라 한국전이후 계속돼온 한반도의 적대 관계에도 변화가 나타날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80년대 들어 꾸준하게 제기돼 온 4강에 의한 남북교차승인은 이제 시간문제인 셈이다. 그동안 이 지역에서 일본의 행동에 가장 큰 제약의 하나였던 북한 핵문제가 이제 일거에 풀려 나가는 문턱에 서게 된 것이다. 그 때문에 일본은 최소 10억달러 이상의 부담을 지게 되면서도 수용의 자세를 분명히 하고 있다.자국의 안보와 직결된 문제를 미국의 협상에 맡겨 놓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기도 하지만 일본 경제 규모로 본다면 부담은 그다지 큰 편도 아니다. 각국의 사정도 변화의 와중에 놓여 있다.일본은 정계가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놓여 있다.한반도에서는 냉전의 벽이 서서히 허물어지고 있다.중국도 등소평의 사후 상당한 변화가 불가피하다.북한도 권력의 승계절차를 밟고 있다.동북아 각국은 국내외에서 변화의 바람을 맞고 있다. 일본은 이번 합의로 미국이 동북아에서 한미·미일·미북한의 대화 채널을 구축,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협력체제를 구축한 것으로 보고 있다. 오코노기교수(게이오대)와 같은 전문가들은 북한이 합의를 지킬 것인가라는 의문에 대해 『북한의 대외자세는 변화하고 있다.북한은 한국과 경쟁적으로 미국과의 거리를 좁히려 할 것이다.친미노선을 걷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까지 전망하고 있다.이 지역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신질서가 구축될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경제력을 바탕으로 동북아 신 국제질서에 빠르게 승차하려 하고 있다.이 때문에 벌써부터 북한에무조건 교섭재개의 뜻이 있음을 표명하고 있다.북한과 중국 러시아등 모두 일본의 「자금」을 필요로 하고 있다. 일본은 북한이 한국과의 관계보다는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서두를 것이라는 전망을 하고 있다. 북한 국적을 가진 「국민」이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는 곳이 일본이다.유치원부터 대학까지 각종 교육기관이 있고 금융기관도 있다.이러한 의미에서는 한국보다 일본과의 관계가 깊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최근 일본은 중국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대만 각료들의 잇다른 입국을 허용하고 있다.각료간 공식접촉도 시도하고 있다.또 걸프전 이후 제기되기는 했지만 미국의 CIA 국가안전보장회의같은 정보기구도 세울 것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북한 김일성주석의 사망등 주요 정보를 미국에 의존하는 현실에서는 독자적인 걸음을 걷기 어렵다는 반성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동북아에서의 영향력 행사를 앞두고 최대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려는 듯하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신중론도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다.아직 동북아 질서가 유동적이라는 것이다.이번 합의에 대한 한국내부의 불만,등소평 사후 중국이 어디로 나아갈지의 불투명성은 차치하고라도 김정일체제의 안정여부,김일성사후 악화일로를 걸어온 남북한 관계등 복병은 여전히 많다는 지적들이다.
  • 미,파나마주둔군 철수/99년 운하인계 앞두고 1차 천5백명

    【파나마시티 로이터 연합】 미국은 오는 99년말로 예정된 파나마운하 인도를 앞두고 2일 거의 1세기만에 파나마주둔 병력의 공식철수를 시작했다. 미남부군은 이날 파나마시티에 위치한 본부에서 전체주둔병력 1만명 가운데 올해 예정된 1천5백명의 철수병력 제1진 환송식을 가졌다.이들 1진 철수병력은 수일내로 파나마를 떠나게 된다. 고위 미군관리들과 파나마 정부관리들은 지난 77년 당시 지미 카터 미대통령과 오마르 토리호스 파나마지도자가 서명한 파나마운하 조약에 따라 진행되는 미군철수가 앞으로 차질없이 이뤄 질 것이라고 말했다. 배리 매카페리 남부군사령관은 환송식에서 『오늘은 한 시대의 마지막을 기록하는 날』이라고 말했으며 기예르모 엔다라 파나마대통령은 『이 환송식은 미국정부가 그 의무를 이행하겠다는 의지의 명백한 표시』라고 강조했다. 미국은 조약에 의거,파나마운하를 보호할 권리를 보유하고 있으며 양국 관리들은 사적으로 미군의 계속주둔 문제에 관한 논의는 재협상의 여지가 있음을 시인하고 있다. ◎대중남미 영향력감소의 상징/미,파나마운하 운영 손뗄까 미국이 2일 파나마 주둔병력을 공식철수하기 시작함으로써 미·파나마관계는 새 전기를 맞게 됐다.이는 지난 77년 카터미대통령이 99년말까지 파나마운하 소유권을 반환하기로 약속한데 따른 것이긴 하지만 미국이 중남미에 대해 과거와 같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시대는 이제 끝나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은 1903년 파나마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을 지원하는 대가로 파나마운하의 운영권을 획득,1만명의 군대를 주둔시킨 이래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파나마운하에 강한 애착을 보여왔다. 이는 지난 89년 미국의 파나마침공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미국은 니카라과의 콘트라반군과 엘살바도르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파나마를 전진기지로 삼으려던 미국의 의도에 소련으로부터 무기지원을 약속받은 파나마의 노리에가가 반발하고 나서자 89년12월20일 파나마를 침공,노리에가를 축출했다.그결과 들어선 것이 기예르모 엔다라대통령의 현친미정권이다. 그러나 이번 병력철수로 양국관계가 새로운 단계로 발전할 가능성을 찾은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이 약속대로 파나마운하 운영에서 완전히 손을 뗀다고 보기에는 아직도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미군의 주둔연장 문제를 재협상할 의사가 있다는 미·파나마 양국관리들의 시사가 그같은 사정을 짐작케 하고 있다.
  • “6·25는 조국 해방전쟁” 주장/한총련출범식 유인물 파장

    ◎남한을 「미국의 식민지·파쇼정권」 규정/“대북 핵사찰압력 방관않겠다” 위협도 경찰이 한총련출범식과 관련,용공·이적행위 주동자및 연계·배후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에 나선 것은 학생들의 노골적인 반국가적 불법행위를 더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에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경찰은 제2기 한총련출범식행사에서 화염병을 던지거나 쇠파이프를 사용하는 등의 폭력시위는 줄고 참가학생수도 지난해 5만명에서 2만5천여명으로 감소했으나 국가보안법위반 유인물및 전시물은 예년보다 훨씬 늘어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한총련출범식에서 드러난 ▲출범식선언문등 6종의 유인물내용 ▲북한정권의 성립과정등을 정당화하는 사진및 모형물전시 ▲범청학련과 통신을 통한 북한과의 연계활동시도등은 명백히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경찰은 이에따라 국가보안법상 찬양및 고무·이적표현물제작및 배포,회합통신,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등을 적용이 불가피하다고 밝히고 있다. 이들은 한총련출범식선언문에서 『한총련 백만청년은 현정권을 매국정권·대결정권으로 낙인찍어버리고 새롭게 자주적 민주정부수립투쟁에 다시 일어섰다…』등의 내용을 통해 남한을 미국의 식민지,친미 파쇼정권으로 규정한 것을 비롯,6·25를 조국해방전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한총련의 핵심조직중 하나인 조국통일위원회의 출범선언문에는 『주한 미군철수와 미군기지철폐를 위한 투쟁에 나서자』면서 이미 이적단체로 규정된 「범청학련」조직을 강화,95년까지 연방제통일을 이루겠다는 주장도 담고 있다. 이 선언문은 이와 함께 『이북에 대한 부당한 핵사찰압력을 방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위협까지 하고 있다. 또 한총련명의로 나온 유인물 「조국통일위원회에 새 돛을 달기 위하여」에는 『연공연북의식에 기반한 민족대단결의식을 확고히 다지는 장이 되어야 한다』면서 출범식에 참가한 학생들을 선동하고 있다. 전남대 민족사랑학생연합의 「민족의 길 제8호」,「자주적 평화통일 원문」등에도 북한이 평소 주장해오고 있는 연방제통일안과 핵사찰의 부당성,주체사상 등의 내용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경찰은 출범식장내에 「조선인민해방군창설」 「타도 제국주의동맹결성」등 북한정권의 성립과정을 정당화하는 사진과 설명을 게시하고 북한이 대외선전용으로 만든 인민문화궁전등 각종 건물모형을 제작해 전시하며 북한체제와 사회의 우월성을 선전한 부분도 용공·이적행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 한총련간부 전원 검거령/경찰/“출범식서 보안법저촉 유인물 배포”

    ◎「주체사상·연방제통일」 주장/최소 30명선 사법처리 방침 경찰은 30일 제2기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출범식에서 한총련선언문등 6종류의 유인물과 전시물등이 국가보안법에 명백히 저촉된다고 밝히고 이 유인물등의 채택및 제작·배포·전시에 관여한 한총련과 전남대총학생회등 간부,외부 배후세력등을 전원 검거,사법처리하기로 했다.사법처리대상은 최소 30여명에 이른다. 김화남경찰청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지난 27일부터 29일까지 광주 조선대에서 열린 한총련출범식에서 북한이 주장해오고 있는 주체사상선전,핵사찰부당성,연방제통일안등이 출범선언문과 조국통일위원회의 선동·주장을 담은 선언문등을 통해 각각 그대로 수용됐다』고 밝혔다. 한총련은 이 기간에 김일성·김책등 북한 주요인물 사진및 약력을 게시하고 「타도제국주의 동맹결성」,「조선인민해방군 창설」등 북한의 성립과정과 정통성을 부각시키는 해설문까지 전시했다는 것이다. 한총련출범식 선언문에는 「미제의 식민지 사슬을 끊고 반미 자주·조국통일로 나서는조국청년들」등의 내용과 조국통일위원회선언문에는 「민족분열공작을 획책하는 미제국주의와 친미매판세력인 파쇼도당의 죄악을 철저히 까발리는」등의 이적내용이 실려있다. 김청장은 『특히 한총련은 출범식에 앞서 이달초 북한의 김책공대,재일본 조선대등과 불법통신으로 자매결연을 맺은뒤 이 기간에 자매결연 채택선언문을 발표했다』고 밝혔다. 한총련은 출범식에서 북한이 제작한 「북한주민 생활상」「임꺽정」등의 비디오를 상영했으며 북한이 대외선전용으로 만든 1백5층짜리 유경호텔·인공기가 게양된 만수대의사당·인민문화궁전등을 모형으로 제작,전시했다. 한편 서울 경찰청은 이날 김재용(25·전 한총련의장),김병삼(25·전 한총련 조통위원장),김기헌씨(25·전 서총련의장)등 한총련1기 집행부 간부 3명에 대해 국가보안법위반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발부받아 검거에 나섰다.
  • 가 집권 자유당 장미빛 포부/고용창출 최우선/친미 일변도 탈피

    ◎공공사업·경기부양에 총45억불 투입/대미 안보협정·「나프타」 개정 요구할듯 캐나다의 「10·25총선」은 가히 선거혁명이라고 할만하다. 제1야당이었던 중도 좌파의 자유당이 전체 의석 2백95석중 과반수를 30석이나 넘는 1백78석을 차지함으로써 새로운 정권을 창출하게 됐다.반면 9년동안 집권해온 킴 캠벨총리의 진보보수당은 지금까지의 의석 1백54석을 거의 다 잃고 단지 2석만을 건지는 참패를 당했다. 캐나다 역사상 집권당이 하루 아침에 이렇게 궤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캐나다국민들이 진보보수당을 철저히 거부하고 장 크레티엥이 이끄는 자유당에 정권을 맡기게 된 배경은 대충 3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11.2%의 높은 실업률에서 볼수 있듯이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점차 수렁으로 빠지는 경제에 대한 불안감과 이에 대응하는 집권 보수당정권의 무력감을 들 수 있다.캐나다국민들은 이로 인해 정부에 대한 불만이 거의 폭발직전에 와있었다. 둘째는 경제처방을 둘러싸고 자유당의 장 크레티엥 당수가 정책의 최우선 순위로 제시한 고용창출 캐치 프레이즈가 유권자들의 마음을 끌었기 때문이다.이에 비해 킴 캠벨총리의 보수당은 재정적자의 과감한 감축을 통해 캐나다경제의 병을 치유해나가겠다고 했으나 이같은 접근이 결과적으로 득표에는 감표요소로 나타났다. 캠벨총리의 전임자인 멀로니총리시절 보수당정권은 11%나 되는 기존의 판매세 외에 연방세수 증대를 위해 7%의 부가세를 신설했는데 이같은 증세에 대한 국민들의 반발이 투표로 나타난 셈이다.캠벨총리가 향후 5년안에 연간 2백60억달러에 달하는 연방재정적자를 줄여나가겠다고 다짐한 공약도 유권자들에게는 의료보호를 포함한 각종 사회복지혜택을 줄여나가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져 감표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셋째는 친미일변도의 보수당정권이 추진한 북미자유무역지대가 캐나다인의 일자리를 미국에 넘겨주었다는 비판을 들은데 비해 자유당은 캐나다의 독자성을 강조함으로써 더 많은 표를 몰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장 크레티엥의 자유당정부가 풀어야할 과제도 결코 만만치는 않다. 무엇보다 단기적 경기부양,고용창출을 위해 45억달러 규모의 공공사업을 벌여야 한다.그러나 이같은 「반짝처방」으로 캐나다경제의 근본적인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데 문제가 있다. 그리고 이번 선거에서 불어사용권인 퀘벡의 분리·독립을 추구하는 퀘벡인당이 기존의 8석에서 54석의 제2당으로 급부상한데서도 나타나듯이 앞으로 분리주의자들의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이는 곧 캐나다의 국가단합이 불안해지고 연방주의자와 분리주의자들간의 대립이 격화될 조짐을 예고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로 출범할 자유당정권의 대외정책은 선거공약에 따라 대미추종외교를 지양,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및 미국과의 안보협정 개정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자유당정권의 등장이 한·캐나다 관계에는 특별히 영향을 주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박건우 주캐나다대사는 『크레티엥 당수가 지난 83년 에너지장관시절 월성1호 원자력발전소의 캔두원자로 설치와 관련,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 말하고 그가 한국에 대한 이해와 함께 태평양지역국가간의 경제협력을 중요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 아르헨티나:상(세계의 개혁현장:19)

    ◎메넴개력 4년… 기적의 경제회생/인플레 년4천9백%서 5.8%로 「희망과 도약의 90년대」를 넘어 「21세기의 소망」을 가장 자신감 넘치게 준비하고 있는 남미 국가로는 단연 아르헨티나가 꼽힌다. 불과 몇년전까지만 해도 세계로부터 버림받았던 아르헨티나가 지금 제1세계로 진입하기 위해 온 국민과 함께 다시 뛰고 있다. 이른바 「아르헨티나 기적」의 산실이며 시카고 보이들이 포진하고 있는 부에노스 아이레스 후오리거리의 경제부건물은 밤 10시가 넘어도 불이 꺼질줄 모른다.밤새 불을 밝히고 있는 곳은 또 있다.주문이 쇄도하고 있는 자동차공장의 노동자들은 한달에 28일,하루 11시간 이상 생산라인에 매달리고 있다. 모든 작업공정이 컴퓨터에 의해 자동으로 이뤄지고 있는 소(오)도축장마다에서는 「쇠고기만큼은 우리 것이 최고」라는 자부심까지 담아 세계시장으로 포장육을 실어 나르기에 바쁘다.몇년째 중단됐던 거리마다의 신축건물 공사장에서는 해머소리가 다시 요란하게 들리고 있고 부에노스 아이레스 동쪽 공단의 굴뚝에선 밤낮없이 연기가뿜어지고 있다. 요즘 대부분의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들떠 있다.모두가 잃어버린 지난 세월을 한꺼번에 되찾기라도 하려는듯 누구 하나 불평없이 허리띠를 졸라맨채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지난 30년 시작된 군사 쿠데타가 반세기에 걸쳐 계속된 나라,이른바 페론주의로 경제가 침체할대로 침체한 나라,포클랜드전쟁 패배에 따른 주요 서방국들과의 외교단절로 외채가 눈덩이처럼 쌓였던 나라. 한마디로 구제불능의 나라로 낙인 찍혀 세계가 거들떠 보지 않았던 아르헨티나의 모습은 이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지난 89년 4천9백%,90년 1천3백%에 달했던 인플레가 91년 86%,92년 13.6%,그리고 올들어서는 5.8%선으로 잠재워졌다. 뒷걸음질 치던 경제도 90년 0.4%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선 뒤 91년 8%,92년 9%에 이어 올해는 10%의 고도성장을 이룩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런 기적은 바로 지난 89년 7월8일 취임한 카를로스 사울 메넴대통령의 개혁정책에서 비롯된 것이다. 『과거 부패한 정권 때문에 잃어버린 국부를 되찾기 위해서는 바른 사람,바른 정책이 필요하다』며 거세게 몰아붙인 메넴의 개혁정책이 아르헨티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있는 것이다. 메넴 개혁의 가장 큰 줄기는 경제개혁으로 미하버드대 출신의 경제학박사 도밍고 카발로 경제부장관이 이끌고 있다. 그는 91년 4월1일 이른바 「카발로 플랜」이라고도 불리는 유명한 신경제정책인 오톰 플랜(Autumn Plan)을 발표했다. 「마법의 손」이라는 찬사를 듣고 있는 이 신경제정책은 금융체계를 다시 세우는 작업으로부터 출발했다.주위의 부정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획기적인 태환정책을 도입,당시 화폐단위였던 아우스트랄을 무제한으로 미달러화로 교환해주면서 1달러 대 1만 아우스트랄로 화폐가치를 안정시켰다.이어 92년 1월1일에는 화폐개혁을 단행,아우스트랄을 페소로 바꿔 달러 대 페소의 환율을 1대1로 고정시켰다.이미 85년 화폐개혁때 페소에서 아우트랄로 바꾸면서 1대1로 정했으나 5년도 채 안돼 1만배로 뛰어 오른 환율을 다시 끌어내린 것이다.지금은 1달러에 0.98페소로 오히려 페소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신경제 「오텀 플랜」 추진 자율화로 기업 활기 신경제정책의 또다른 가닥은 인플레의 주범이었던 임금과 물가의 연동제를 폐지하고 물가도 90년 11월 30일 수준으로 묶어버린 것이다. 물가와 임금의 상승을 원천봉쇄하고 이제껏 아르헨티나 경제의 숨통을 조여왔던 상호상승작용이란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 버린 것이다. 카발로장관은 이 조치 후 스키아레트 상공청장 등과 함께 현장에 뛰어들어 자동차·철강·전자·섬유 등 주요 업계와 3개월에 걸친 길고 지루한 협상을 벌인 끝에 이 조치를 받아들이도록 설복시켰다. 당초 강경하게 반발하던 업계도 빈사상태에 빠진 아르헨티나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이같은 혁명적인 수단을 강구할 수밖에 없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따라 주었다. 수입의 대폭 개방과 그해 10월말에 취해진 혁신적인 경제자율화조치도 카발로의 신경제정책의 중요한 대목이다. 신경제정책의 성공으로 얻어진 가장 괄목할만한 성과는 대외신용도가 크게 높아져 만성적 재정적자의 뿌리였던 외채문제가 해결된것이다. 전통적인 중립노선을 버리고 친미인사들로 진용이 짜진 외무·경제장관팀은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서방국들과의 외채경감협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지었고 지난해에는 대기성차관 10억2천만달러등 40억2천만달러의 국제통화기금(IMF)차관을 도입하는 개가를 올렸다. 이어 지난 4월에는 브래디 플랜(브시행정부가 들어선 후 미국의 재무장관이 된 브래디가 1989년 3월 제3세계국가들의 외채를 경감시켜주기 위해 마련한 경제계획안)가입에 성공,6백20억달러에 이르는 전체 외채 가운데 1백억달러를 탕감받았다.경제에 이렇게 숨통이 트이게 되자 아르헨티나는 지난 1988년 이후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외채상환를 재개,91년 2월 이후 매달 6천만달러씩 갚아 나가고 있다. 국영기업의 민영화는 메넴의 약속대로 지난해 말까지 완료되지는 못했으나 항공 전화 철강 철도 지하철 수도 가스 석유 등 전 분야에 걸쳐 3백여업체를 매각,1백25억달러의 재정흑자를 이루어냈다. 그러나 메넴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개혁정책의 가장 값진 결실은 이같은 외형적인 성과보다는 『이제 일 해야겠다』는 국민의식을 일깨운 점에서 찾아진다.아르헨티나는 이제 경제안정이란 1단계 목표 달성에 이어 도약의 발판에 올라서고 있다.
  • 미테랑 불대통령에 기대한다(사설)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대통령이 오늘 한국을 공식방문한다.프랑스 국가정상으로선 처음이다.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의미가 깊고 중요한 방한이다.한불관계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며 새로운 발전을 예고하는 것이다.환영하고 기대한다. 양국관계의 역사나 전통적 우호에 비추어 프랑스정상의 첫 방한이 이제야 이루어진 것은 때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어쨌든 시작은 좋은 것이다.프랑스는 서방진영이면서도 대미 독자의 외교를 지향해 왔으며 친미일변도의 한국에대해 일정한 거리를 두어온것이 사실이다.과거 한국의 오랜 권위주의시대가 그것을 촉진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은 크게 바뀌었다.세계는 경제제일주의의 탈냉전시대이며 경제뿐아니라 정치에서도 한국이 이룩해 가고있는 변화와 발전은 프랑스는 물론 세계의 주목을 받고있다.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기초로 하는 정통문민정부의 출범과 부정부패의 척결및 개혁추진은 세계의 귀감이 되고있기도 하다.경제적으로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우리의 국제적 위상이 크게 향상되고 있음을 보여주는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주로 선진국을 찾아 다니는 정상외교를 해야했다.그러나 문민정부 출범 6개월에 독일의 콜총리,클린턴미국대통령,라오인도총리등 거물급 외국지도자들이 다녀갔으며 이제 미테랑대통령의 방한인 것이다.우연이라면 우연일수 있다.그러나 그것은 한국의 정치·경제적 발전과 김영삼대통령의 문민정부출범및 개혁이 있고서야 가능할 수 있는 것이다. 프랑스가 미테랑의 방한등 한국에 지대한 관심을 표시하며 접근하는것이 스스로의 필요에 따른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프랑스의 국책사업인 고속전철 테제베(TGV) 대한수출등 당장의 이해관계뿐 아니라 아시아태평양경제시대를 내다본 장기적 포석의 일환이라 할수있다.그 아태지역의 가장 이상적인 협력상대로 한국을 지목하고 있는것이다. 프랑스는 정치적으로 유럽통합을 이끌고있는 중심국의 하나다.외교적 영향력도 막강하다.경제적으로도 유럽시장을 주도하고 있다.기술 하면 우리는 독일을 생각하나 우주 항공 미사일 원자로등 첨단기술 분야에선 독일과 일본을 앞지르고 있는 기술대국이기도 하다.그 프랑스가 TGV를 계기로 다가오고 있다. 우리입장에서 그것은 환영하고 기대할 일이다.프랑스에게 동아시아 태평양의 경제·외교적 교두보가 필요하다면 솔직히 말해 우리에게는 프랑스의 기술과 유럽의 시장등이 필요한 것이다.그러한 필요의 상호보완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공동의 관심사일 것이다.미테랑의 방한은 좋은 출발점이 되리라 믿는다.우리의 국민적 관심사인 문화재반환까지 이루어진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 CIA,해외공작 비밀문서 내년 공개/쿠바침공 등 포함

    【뉴욕 연합】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냉전시대에 이뤄졌던 주요한 해외 정치공작에 관한 비밀문서들을 공개키로 결정했다고 뉴욕타임스지가 29일 미정부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CIA가 내년에 공개할 자료는 1950년부터 63년사이에 이뤄진 비밀공작들로 이중에는 61년 쿠바 피그스만침공과 피델 카스트로 축출기도를 비롯,친미 팔레비정권 등장을 가져온 53년 이란쿠데타,54년의 과테말라 대통령 축출등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3·1운동을 김일성가 우상화 도구로(오늘의 북한)

    ◎74돌 기념일 계기로 본 왜곡실태/“김형직이 키운 애국청년회가 주도” 각색/대미적개심 고취·통일투쟁 강화에 악용/“평양서 발원” 주장… 33인 배신자로 매도 북한은 올해에도 어김없이 2월28일 평양에서 이른바 「3·1인민봉기기념보고회」를 열고 김일성가계의 항일투쟁업적을 부각시키는 한편 대한·대미 적개심을 고취시키는 종래의 책동을 되풀이했다.북한은 3·1독립운동의 발발과정,민족대표성,평가및 영향 등에 있어 우리와 큰 시각차이를 보이고 있다. 북한은 3·1독립운동의 주동세력을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의 지도·육성을 받은 평양의 「애국청년학생」으로 규정하고 있다.즉 3·1독립운동은 『1919년 3월1일 평양에서 김형직선생께서 몸소 키우신 애국적인 청년학생들을 선두로 하여 10여만 각계각층 군중이 대중적인 반일시위에 떨쳐 나선 것을 시발로 전국 각지에 퍼진 항일운동』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3·1독립운동이 당시 서울의 파고다공원에서 손병희선생을 비롯한 33인의 민족지도자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것을 계기로 확산된 전국적인 독립운동이란 것은 주지의 사실.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3·1독립운동의 발원지를 서울이 아닌 평양으로,33인의 역할을 김형직으로 왜곡시키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이에 그치지 않고 33인의 민족지도자들을 격렬히 비난하고 있다.북한은 이들을 친미사대주의자,무저항·비폭력주의자,타협적인 독립청원운동및 위임통치운동을 벌인 기회주의자 등으로 매도하면서 33인 어느 누구에게도 포상을 하지 않고 있다.북한의 이같은 태도는 오직 김형직을 3·1운동의 유일한 지도자로 부각시키기 위한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다. 북한은 3·1독립운동이 실패한 인민봉기라는 점을 특히 강조하고 있다.북한은 실패 원인을 인민대중을 이끌만한 탁월한 지도자가 없었기 때문이라면서 『3·1운동후 지도자의 출현을 목마르게 기다리던 인민들의 「간절한 염원」을 받들어 김일성이 민족앞에 나서게 됐다』고 선전하고 있다.김일성이 「위대한 수령」으로 탄생될 수 밖에 없었던 원인을 엉뚱하게도 3·1운동의 실패에서 찾아내 이를 체제옹호 논리의 원천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최근들어 이같은 「김일성출현의 불가피성」에 그치지 않고 김정일 등장에도 3·1운동을 연결시켜 왜곡하고 있다.북한은 3·1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끈 김일성은 물론 김정일에게도 충성,사회주의의 완전승리와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을 벌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90년 3·1독립운동 72주에 즈음,북한선전기관들은 『사회주의의 완전승리와 조국통일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주체혁명위업을 빛나게 계승·완성해 나가는 김정일에게 조선인민의 열화와 같은 흠모와 다함없는 충성의 한마음을 담아…』 운운하며 충성을 호소했었다. 북한은 3·1독립운동 실패의 또다른 이유로 혁명역량의 미숙성을 들고 있다.당시에는 혁명적 노동자 계급이 존재하지 않았고 농민도 혁명적으로 동원하는데 불충분했기 때문에 3·1독립운동이 성공할 수 없었다는 주장이다. 북한은 이같은 3·1독립운동에 관한 역사인식을 기정사실화 하기 위해 「조선전사」(72년)와 「근대조선역사」(84년)같은 역사기술서를 통해 이 운동에 관한 역사적 사실들을 변조·기술하고 있다.예컨대 「조선전사」는 33인 민족대표에 대해 『무저항주의적 배신행위의 굴욕적 행동을 했다』면서 이들을 「배신자」로 비난하고 이 운동의 발원지조차 평양으로 변조·기술하고 있다.이들 역사기술서들은 김일성유일지배체제가 확립된 이후에 쓰여진 것들이서 한결같이 사회주의 혁명의 틀속에 복종하고 기여해야 된다는 역사인식과 김일성의 혁명정통성을 미화하는 내용에 초점을 맞추어 기술된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북한은 또 3·1독립운동의 의의를 인용,대남·대미비난을 계속 하고 있다.3·1독립운동이 일어난지 어언 74년이 흘렀지만 민족독립이 실현되지 못했다는 전제 아래 이는 미제의 강점으로 남한이 식민지적 예속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따라서 3·1독립운동의 뜻을 받들어 미제의 식민투쟁을 끝장내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특히 북한은 팀스피리트 훈련시기가 3·1절을 끼고 있는 점에 착안,한미 양측이 이 훈련을 실시한 후부터는 이를 3·1절과 결부시켜 비난해 오고 있다. 지난 91년의 경우 북한의 신문·방송들은 3·1독립운동의 뜻을 받들어 『남한에서 미제의 식민통치를 끝장내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면서 팀스피리트훈련을 구실삼아 일방적으로 중단시켰던 남북고위급회담에 대한 책임전가와 함께 북한의 통일방안에 대한 합리화선전을 적극 전개했었다. 북한은 3·1독립운동외에도 6·10만세사건 등 일제때의 모든 항일독립투쟁에 관한 역사적 사건들도 모조리 김일성가계의 혁명전통차원으로 변조·각색해 놓고 있다.
  • 반정부세력 제거가 목적/후세인,왜 자꾸 도박하나

    ◎경제난 따른 국민불만 해소 시급/클린턴과 화해… 민생고해결 속셈 서방측에 의한 3차례의 공격을 스스로 유발한 것으로 돼있는 이라크의 실상은 어떤 것인가에 대해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후세인의 「도발행위」에 대해 서방 언론들은 대체로 그가 국내의 민생고에서 비롯된 불만을 외부로 돌리려 했다고 풀이한다. 이라크국민들은 2년전 걸프전때부터 시작된 전비부담과 2년6개월이나 계속돼온 서방의 경제봉쇄조치로 고통을 받아온게 사실이다.이것은 반후세인 세력을 키우는 요인이 됐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후세인은 「반미카드」를 뽑았다는 것이다. 지난 걸프전때와 지금의 상황이 많이 다르다는 점을 후세인이 충분히 이용한다는 견해도 있다.현재 서방국가들은 세계적인 불황으로 집안단속에 바쁘고 특히 미국은 내치문제가 발등의 불인 상태다. 게다가 온건아랍국들도 후세인이 더이상 만신창이가 되는 것을 원치 않는 분위기다.이들은 후세인보다 오히려 이란의 급진적인 회교근본주의를 경계해 왔다.친미적인 사우디 아라비아조차도 유엔결의의 공정한 적용을 강조하고 나선것은 이런 이유에서라 할 수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미국이 이라크와 전면전을 벌이다간 명분에 밀려 유고와 소말리아 문제에까지 빠져드는 우를 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입장이다.미국의 공격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풀이가 된다. 후세인은 이를 교묘히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함둔 유엔주재 이라크대사는 3차공격이 끝난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번 사태를 「두 지도자의 충돌」로 묘사하고 『새로운 환경은 새로운 생각을 가져온다』고 말함으로써 부시를 비난하는 동시에 클린턴 행정부에 유화제스처를 보냈다.부시가 물러난뒤 자신만이 승자로 남았다는 인식을 자국민들에게 심어주고 클린턴과 화해,민생문제도 해결해 보겠다는 후세인의 속셈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서방측의 이라크 공격은 후세인을 오히려 이롭게 할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미국의 차기행정부와 이라크의 화해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 후세인의 도발은 고도의 전략행위(해외사설)

    사담 후세인이 저지른 것은 미친짓인가 전략전인가.걸프전쟁 2주년을 앞두고 1991년1월에 일어났던 똑같은 문제에 대한 응수도 그때와 똑같다.즉 미국의 군사적 개입이다. 한달전부터 거듭되어 온 이라크 독재자의 도발은 조지 부시에 대한 적개심이 가장 큰 이유다.바그다드에서 볼 때 부시의 선거 패배는 신의 심판이 었다.사담 후세인은 임기말의 부시가 반격할 힘이 없으리라고 보았기 때문에 쿠웨이트를 빼앗아간 인물을 모욕하는 즐거움을 뿌리치기 어려웠을 것이다.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다.정치적 계산과 개인적 감정을 구분하지 않는 그는 결코 속죄하는 일이 없으며 오로지 복수에 몰두했다. 사담 후세인은 광신자인 듯하다.그는 자신을 마호메트의 직계로 만든 가승을 공표했고 걸프전쟁 동안에는 꿈에 마호메트가 나타났다고 발표했다.그는 자신을 같은 고향 출신으로 십자군 전쟁때의 영웅이던 살라딘과 동일시했다.그는 기원전 6세기의 바빌로니아 왕이며 위대한 정복자인 나부쇼도노소르의 후계자로 자처했다.이 왕이 후세인의 손을 잡은 모습을 보이는 거대한 그림이 바그다드 성벽들에 있다. 지난 몇주의 사태 진전에 대해 설명하자면 길어진다.우선,대외적인 동기가 있다.사담 후세인은 조지 부시를 벌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빌 클린턴을 시험하려고 했을 것이다.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이라크 언론들은 미국의 새대통령을 줄곧 헐뜯어 왔다.임박한 클린턴의 대통령 취임을 바그다드­워싱턴 관계의 새로운 출발점으로 본 것이었다. 친미 아랍 세력들이 군대 파견을 내켜하지 않는 상황도 이라크에는 좋은 기회로 보였을 것이다.특히 사우디 아라비아와 이집트의 정부는 서방측의 군사 보복이 무엇보다도 결과적으로 회교 교조주의자들을 고무하게 될것을 겁내고 있다.오늘날 진실로 위협적인 존재는 이란이기 때문이다. 내부적 동기는 다음과 같다.사담 후세인은 외적의 힘입이라는 유령을 흔들어 군을 장악하고 있다.그는 군의 전선을 외적 쪽으로 돌려 놓아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과녁이 될 수 있다. 또한 그는 경제 제재로 점점 고통이 심해지는 국민들에게 그 책임이 자신에 있지 않고 아랍 세계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이라크를 해치는 서방의 악마에게 있다는 것을 보이려 했다.그는 미국이 새로운 전쟁에 빠져들지 않을 것이므로 자신을 뒤엎지 못할 것은 뻔하고 단순한 보복 폭격 정도라면 자신의 권력을 더 튼튼히 해준다는 역설적 결과를 계산했다.이라크 국민의 저주 대상은 그들의 대통령이 아니라 미국이 되니까. 사담 후세인에게 딱 맞는 앵글로색슨의 속담이 있다.『그는 미쳤지만 여우같다』
  • 대선맞춰 대남비방 공세강화(오늘의 북한)

    ◎언론통해 중립내각 공명의지 연일 성토/재야·학생 등에 공개서한… 혼란 부추겨/특정후보 낙선투쟁 등은 남북 화해기본합의서 성면위배 20여일 앞으로 다가온 대선과 관련한 북한의 「선거투쟁」선동이 강화되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최근들어 북한은 관변 언론매체들을 총동원,우리 정부의 공명선거 의지를 「기만」으로 모략하면서 반정부및 민자당후보 낙선을 겨냥한 선동투쟁을 강화함으로써 대선정국을 혼란으로 몰고 가려는 저의를 드러내고 있다. 북한이 이른바 대선투쟁에 나서기 시작한 것은 지난 10월4일 평양방송을 통해 그들이 한국내 지하당으로 날조하고 있는 한국민족민주전선(민민전)중앙위 명의의 『남조선 인민들에게 보내는 공개서한』(9월30일자)을 인용·발표하면서 부터다. 『친미파쇼정권을 허물고 민주연합정권을 세울 것』을 강조한 민민전공개서한은 이를 위해 반민자당세력이 민주대연합,범민주 단일후보를 내세우고 이미 결성된 「전국연합」을 구심점으로 똘똘 뭉쳐 연대공동행동으로 나갈 것을 강조하고 있다. 민민전의 서한에서도 드러났듯이 북한은 우리의 이번 대선을 대권을 향한 여야의 각축으로 보지 않고 있다.이번 대선은 「파쇼와 민주세력간의 치열한 대결전이며 역사의 전진이냐 굴절이냐 하는 격변기의 정국향배를 좌우하는 하나의 분수령」이라는게 그들의 해석이다. 북한은 지금까지 우리의 대통령선거나 총선시 통상 40여일 전에 대남전위기구인 조평통이나 민민전명의로 호소문·투쟁구호등을 발표,반정부투쟁을 적극 선동(87년 12월 13대 대선시에도 31개항의 투쟁구호 발표)해 왔었다.그러나 12월 대선을 앞둔 최근의 북한 움직임은 과거와 궤를 달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북한은 이번 대선에서 특정정당­민자당의 재집권 저지를 최우선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다.북한이 민자당을 「미국의 조종을 받는 반민족,반통일의 군부 파쇼집단」으로 매도하고 있는데서도 북한의 그같은 의도는 명백하게 읽혀지고 있다.북한은 민자당이 이번 대선에서 재야세력을 탄압하고 있으며 부정협잡을 통해 독재정권을 연장하려 한다고 비난하고 있다.한마디로 『김영삼에게표를 주면 친미독재가 연장』되기 때문에 민자당이 승리하면 안된다는게 북한의 주장이다.그러기 위해 『너도 나도 기권말고 민자당후보 낙선투쟁에 동참』할 것을 북한은 선동하고 있다. 앞서의 민민전이 지난 8일 반민자당투쟁을 선동하면서 발표한 31개항의 대선투쟁구호 속에 총22개항이 민자당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도 이와 맥을 같이하는 일이다. 북한은 이와 더불어 노태우대통령의 민자당탈당과 현승종총리가 이끄는 중립내각의 공명선거의지에 대해서도 시비를 걸고 있다.북한의 노동당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14일자 논설을 통해 노대통령의 민자당탈당과 중립선거관리내각구성을 싸잡아 『관권과 부정협잡으로 민자당의 재집권을 실현하려는 정치 기만극』이라고 주장했다.그러면서 『인민대중의 단합된 투쟁으로 군사파쇼세력의 재집권을 막고 민주연합정권을 수립하는 여기에 남조선사회의 민주주의적 발전의 길이 있다』고 강변했다. 이 신문은 이어 한국정부가 최근 반공모략극을 조장,야권과 통일민주세력을 탄압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남조선의민주세력은 공정하고 자유로운 선거를 위해 각계 각층의 의사를 대표하는 거국적인 중립선거관리내각의 구성과 지방자치단체장선거의 연내 실시,폭압기구의 해체와 파쇼악법의 철폐투쟁을 완강하게 벌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가운데서도 중립선거관리내각과 지방자치단체장선거 연내실시투쟁은 민자당 재집권의 발판을 허물어 버리기 위한 「보검」이라고 말했다.또 민자당의 관권부정선거에 대한 진상규명투쟁 역시 민자당의 재현을 막고 공명선거를 쟁취하기 위한 중요 요건임을 강조했다.즉 이 두가지 이슈를 반민자당투쟁의 수단으로 적시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이처럼 적극적으로 대선투쟁에 나서고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북한은 현금의 정권교체기를 우리 체제의 가장 취약한 시기로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따라서 우리 사회가 온통 선거열풍에 휘말여 있는 틈을 타 일부 재야및 운동권 학생들을 충동,사회갈등을 조장하고 그들의 불만에 불을 댕겨 우리 사회의 혼란을 가중시키겠다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북한은 이른바 대선정국이 혼란으로 빠져들 경우 그들이 기대하는 친북한성향의 민주연합정권이 들어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는게 관계 당국의 분석이다.북한이 이번 대선을 격변기 정국의 향배를 좌우할 「분수령」으로 보는 것은 결코 그들이 우리의 장래를 걱정해서가 아님은 물론이다.친공정부가 들어설 수 있을 것인가의 여부가 이번 대선으로 판가름날 것이라는 점에서 역사의 분수령 운운할 따름인 것이다. 남북한은 지난 9월 제8차 고위급회담을 통해 남북기본합의서 실천의 틀인 3개 부속합의서를 채택·발효시킨 바 있다.그 가운데 「남북화해의 이행과 준수를 위한 부속합의서」는 「상대방의 법질서와 당국의 시책에 대한 불간섭」과 「상대방에 대한 파괴·전복을 목적으로 하는 선전 선동행위 금지」를 명시하고 있다.따라서 최근 북한이 박차를 가하고 있는 대선투쟁은 이같은 기본합의서 정신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북한의 일방적 파기에 의한 지난 5일의 화해공동위 1차회의 무산과 최근의 대선투쟁은 남북간의 약속이행이 얼마나 지켜지기 어려운가를 극명하게보여준 단적인 예라 할 것이다.
  • “동면 남북대화” 새봄엔 깨어날듯/화해무드 복원은 언제쯤…

    ◎북서 군사훈련 등 트집,교착 줄달음/새 정부 출범때까진 추이 관망할듯/“경색장기화 모두에 부담”… 의외의 돌파구 가능성도 「남북기본합의서」의 기조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지난 9월 제8차 평양고위급회담에서 합의했던 공동위가 출범도 하기 전에 빠그라졌는가 하면 북한측이 모든 남북대화의 중단을 엄포놓고 있기 때문이다.지난 90년 고위급회담이 시작된 이래 최악의 국면을 맞고 있는 남북관계의 경색은 과연 언제까지 계속될 것이며 그 「해법」은 무엇인가를 진단해 본다. 남북관계가 전례없는 경색국면을 맞고 있다.지금 돌아가는 기류로 보아선 화해공동위등 4개 공동위는 물론 오는 제9차 남북고위급회담(12·21∼24·서울)조차 예정대로 열릴지 극히 불투명한 상태다. 남북한은 지난 9월 평양고위급회담에서 화해,군사,경제,교류협력 4개 공동위를 가동시키는데 필요한 부속합의서를 발효시켰다.이 부속합의서의 발효에 따라 양측은 지난 5일의 화해공동위등 4개 공동위를 차례로 열어 남북사이의 평화체제 구축과 군비축소등 긴장완화조치와 경제적 인적교류를 포함한 구체적인 협력방안을 논의해가기로 합의한 바 있다.그런데 이들 공동위가 출범하기도 전에 좌초하고만 것이다.북측이 화랑훈련(11·2∼7)과 독수리훈련(11·3∼9)등 한미합동군사훈련을 빌미로 남한과 마주앉기를 거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특히 북측은 내년도 팀스피리트훈련의 재개방침을 취소하지 않을 경우 고위급회담의 중지를 포함한 모든 남북대화를 거부할 것이라는 경고를 계속 발하고 있다. 이같은 남북관계의 급냉은 핵사찰문제,이인모씨 송환,이산가족고향방문 문제등이 숙제로 남아 있는터에 10월 들어 남한조선노동당간첩사건,팀스피리트훈련재개문제가 겹치면서 남북간 긴장상태가 더욱 격화된데 기인한 것이다. 현재 북측이 내세우고 있는 남북대화거부의 명분은 남한에 의한 이른바 「북침전쟁준비」다.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표면상의 이유일뿐 정작 북측이 남한과 대화의 테이블에 앉기를 꺼리는 이유는 딴데 있다는게 북한전문가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즉 북측은 ▲남한조선노동당간첩사건의 시인및 사과 ▲이산가족상호방문문제의 교착 ▲핵통제공동위의 공전등으로 어차피 4개 공동위의 정상가동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대화거부라는 카드를 들고 나왔다는 설명이다.그러면서 공동위 파국의 책임을 남한측에 전가하기 위해 남한의 군사훈련을 그 구실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북측의 공세적 자세로의 전환에도 불구,그들이 처한 상황과 고위급회담에서의 합의사항을 파기함으로써 안게 될 부담등으로 대화 자체를 전면중단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 외교안보연구원의 유석렬교수도 북측이 남북대화를 전면중단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하면서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었다.즉 ▲북한이 현재 대미·대일관계개선및 수교에 쫓기고 있고 ▲그에 앞서 남북관계 개선의 압박을 받고 있으며 ▲심각한 경제난 탈피를 위한 남한과의 경협의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북측이 대화의 통로를 전면봉쇄하지는 않더라도 현금의 냉각국면이 풀리지 않는 한 향후 남북대화의 생산성은 보잘게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좀처럼대화의 접점이 찾아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북측이 줄기차게 중지를 요구하고 있는 팀스피리트훈련에 대한 남한의 입장은 확고하다.남북핵상호사찰이 실시돼야만 훈련의 중단문제를 검토할 수 있다는 것이다.반면 북측은 대화를 위해서는 이달말까지 팀스피리트훈련의 재개결정을 철회해야한다고 주장,합일점에서 멀리 물러나 있는 상황이다. 북측이 연례적인 한미 양국의 방어훈련인 팀스피리트훈련을 다시 남북대화와 연계시키고 나온 것과 관련,분석가들은 그 목적을 다음과 같이 분석하고 있다.첫째는 핵개발의혹에 대한 국제적인 압력으로부터의 탈피이고 둘째는 남한을 반대화,반통일적이라고 매도함으로써 대화와 남북합의서 이행부진의 책임을 몽땅 떠넘기기 위해서이며 셋째는 반한·반미의식 고취및 긴장분위기 조성등을 통해 주민결속을 강화,이를 체제유지에 이용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이같은 전반적인 분위기로 보아 남북관계는 오는 12월의 대통령선거가 끝나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까지는 「동면」이 불가피할 것이라는게 대체적인 시각이다.물론 그 어간에도 대화중단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을 면하기 위해 극적으로 돌파구를 열 가능성도 전혀 없지는 않다. 유석렬교수는 남북대화의 재개전망시기와 관련,『내년 봄 남한에 새 정부가 들어선 뒤』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남북대화의 조기 정상화에 비관적이기는 민족통일연구원의 박영규연구실장도 마찬가지다.그는 북측이 지난번 8차 고위급회담을 끝으로 5공정부와의 대화를 끝내고 추이를 관망한다는 시간계획을 갖고 있었던게 분명하다고 말하고 남북대화의 재개시기는 새 정부 출범이후가 될 것으로 내다보았다. 현 시점에서 향후 남북관계의 진전방향을 정확히 점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그럼에도 한가지 분명하게 짚이는 것은 있다.북측이 당분간 대화는 제쳐놓고 공작차원에서 남한의 대선정국을 이용하려들 것이란 점이다.즉 대선기간동안 북측은 공명선거 분위기 훼손은 물론 한국정치권에 대한 각종 모략선전과 유언비어 유포등 혼란을 증폭시키는 대남공세에 더욱 열을 올릴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북측은 대남공작의 초점을 한국사회의 안정기조 파괴와 연공정부의 수립에 모으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북측은 「대선투쟁」의 목표가 『친미정권에 종지부를 찍고 친북성향의 민주연합정권을 창출하는데 있다』고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이같은 연장선상에서 북측이 남한의 대선정국속에서 대화를 지속하는 것이 저들의 대선투쟁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고의적으로 회피하고 있다는 해석은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따라서 북측은 대선이 끝나고 새 정부가 들어설 때가지 이같은 대남공세에 초점을 맞추어 남북관계의 수위를 조절하는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보일 것으이라는게 북한관측통들의 전망이다. 화해와 공존의 문턱에서 시작된 남북관계의 「동면」.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깊은 잠이 엄동이 예보된 올 겨울의 자락만큼 오래갈 경우 남과 북 모두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 「보조금」 둘러싼 30년분쟁 폭발/미­EC 무역대결… 양쪽의 입장

    ◎미의 입장/강경책 뒤엔 세계무역회담 유도 속셈 부시행정부가 백포도주를 비롯한 일부 유럽산 농산물에 2백%의 보복관세를 부과하겠다고 5일 발표한 것은 공정무역을 특별히 강조하는 새행정부의 출범을 앞둔 시점과 관련,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유럽국가들이 농민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며 미국농산물의 접근을 막아온 일은 지난 30년동안 미국이 꾸준히 불신을 가져왔던 부분이다.미국은 그동안 이에대해 여러차례 행정부고위관리들의 입을 통해 「보복」을 예고해왔다. 이번 발표는 그동안 시카고에서 열렸던 미농무장관 에드워드 R·매디건과 유럽공동체 농무장관 레이 맥셔리 간의 협상이 최종 결렬된지 이틀만에 나온 것이다. 칼라힐스 미통상대표는 『유럽국가들이 농민보조금지급을 계속하는것은 옳지 않다고 GATT(무역·관세에 관한 일반협정)측에서도 이미 수차례 지적한바 있다』고 밝히고 『미국도 EC측에 30일동안 협상을 할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고 주장했다. 유예기간인 30일동안 협상이 되지 않아 예정대로 보복관세가 부과되면 오는 12월5일 이후 수입되는 프랑스산 포도주 1병값은 미국시장에서 소매 9달러50센트 하던것이 28달러25센트로 껑충 뛰게 된다. 부시행정부가 유예기간을 두긴했으나 협상대신 보복을 선택한것은 미국상품에 시장을 개방하지 않는 나라는 어느나라를 불문하고 응징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국제경제문제연구소 무역경제 전문가인 개리 후ㅂ바우어씨는 미국의 이번 결정이 백포도주나 나아가 농산물 따위가 목표가 아니라 고도의 무역외교 측면이 고려된 것이라면서 이번 조치와 관련,미국의 궁극적인 목표는 세계무역회담을 유도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또 미국경제가 더이상 양보할 형편이 아니라는 인식이 미국민들 사이에 보편화 돼있고 물러나는 행정부의 강공책이 새행정부에 유리한 협상카드를 줄수 있다는 계산도 깔려 있을법 하다. 빌 클린턴 차기 대통령은 선거기간중 불공정 무역은 용납치 않겠다는 입장을 누차 밝혀왔다.클린턴 행정부의 가장 유력한 통상대표의 한사람인 폴라 스턴 전국제무역위원회(ITC)위원장도 6일 『클린턴 행정부는 미국상품을 불공정하게 배제하는 시장이 있다면 강력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유럽에 대한 무역공세는 앞으로 미국이 전개하게될 세계무역전쟁의 신호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EC 입장/불­영·독 이해관계 달라 공동대응 한계 미국이 유럽공동체(EC)를 상대로 무역전쟁의 칼을 빼어들자 유럽,특히 프랑스는 분노를 나타내며 대응책을 궁리하고 있다. 미국은 유럽공동체 국가 생산품 가운데 백포도주,소맥 글루텐,유채기름 3가지 품목에 대해 12월5일부터 2백%의 관세를 매기겠다고 했다.이 세품목의 대미거래량은 약3억달러이며 앞쪽 두가지의 최대수출국은 프랑스이고 마지막 것은 독일이 최대수출국이다.그 가운데서도 백포도주는 3억달러의 절반 가까운 1억2천7백만 달러 어치의 물량이다. 이것은 미국의 주된 응징 표적이 프랑스임을 나타내고 있다.프랑스는 그동안 우루과이 라운드(UR)협상에서 미국이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농업보조금의 삭감에 가장 완강히 반대해 왔다.시카고 협상의 결렬도 미국측에서 볼때는 프랑스의 완강함 때문으로 비쳤다. 미국의 보복조치 예고에 대해 프랑스의 장피에르 농업장관은 『다음 열리는 유럽공동체 각료이사회에서 대응조치가 결정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으며 프랑스 야당 지도자인 자크 시락도 『「맞받아치기」가 필요하다』고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유럽공동체 집행위측에서는 프란스 안드리센 농업담당이 미국의 조치가 「불법적」이라고 성토했다. 유럽공동체 12개 회원국 각료들은 오는 16일 브뤼셀에서의 모임에 앞서 6일부터 이 문제를 논의,약간의 유화적 제스처를 비치고는 있지만 프랑스가 원하는 공동대응조치를 마련할지는 의문이다.농산품이 문제가 되고 있는 미국과의 무역협상에 대한 유럽공동체 회원국들의 이해득실 관계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국은 원래 전통적인 친미 성향의 국가이고 독일 또한 어지간하면 타협하자는 자세다.프랑스는 농산품의 대수출국이며 농민들의 압력이 거세다.상대적으로 영·독 두나라는 크게 잃을 것이 별로 없는 농업부문을 양보하더라도 대신 딴 부문에서 벌충할 수 있다는생각을 품고 있다. 유럽공동체측 협상대표인 레이 멕셔리가 4일 시카고 협상회의의 결렬에 책임을 지고 그 자리를 사임하면서 자크 들로르 유럽공동체 집행위원장의 간섭을 비난한 것은 유럽공동체 내부의 분열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 “중국개혁에 한반도안정 긴요”/마중가교수,「한­중수교」에 새 시각

    ◎남북분단 고착화 유도/사회주의 굳히며 평양개방 지원 8·24 한중수교로 통일분위기의 진작,대륙시장 확보를 통한 경제부흥 등 한반도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부를 것이라는 기대가 쏟아지는 가운데 중국의 전략·전술적 차원에서 한중수교를 조명한 시각이 나와 관심을 끌었다. 지난 2일 타워호텔에서 개최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총장 송한호)주최 「한중수교와 통일전망」주제의 정례강연회서 연사로 참석한 중국문제 전문가 마중가교수(한림대)는 『중국은 향후 1백년간 그들의 개혁·개방정책을 무리없이 추진하기 위해 한반도의 안정을 원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번 한중수교 이면에도 그같은 발상에 뿌리를 박은 남북한분단 고착화 구도가 깔려있다』고 주장했다. 마교수는 49년 공산정권 수립이후 「순망치한」「항미원조,보가위국」의 2대구호로 북한을 무조건 지지하는 이념일변도의 외교를 펼쳤던 중국은 79년 등소평의 개혁개방정책실시 이후 북한에 대해서는 이념,남한에 대해서는 정·경분리 위주의 양다리 외교를 펴왔다고 밝혔다. 그는 또 지난 2월 등소평의 남순강화이후 강화된 중국의 개혁계획은 2100년 국민소득 3천달러 달성을 목표로 강력히 추진되고 있으며 이를 위해 한반도의 안정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은 한반도의 통일이 현실적으로 남한의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나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 이외는 어렵다고 인식,이를 최대한 저지하기 위해 한중수교를 택했다고 마교수는 분석했다. 대신 중국은 북한과 미·일과의 관계개선을 측면지원함과 아울러 김일성정권에 「중국식 사회주의」를 전수시켜 경제개혁·개방에로의 정책전환을 촉구할 복안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마교수는 중국의 이같은 북한 부양정책은 바로「선몰인망」(배가 뒤집히면 사람도 물에 빠진다는 논리)즉,남한체제에 의한 한반도 통일로 친일·친미·반공국가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맞서게 되는 국면전개에 대한 우려에서 나오고 있다고 풀이했다. 한편 북한은 한소수교와 남북유엔동시가입에 이은 한중수교로 가장 강력한 충격타를 맞았음에도 불구, 나름대로의 소화능력을 갖추고 있어 큰변화없이 대내정치를 풀어나갈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지난해 한소수교가 성사되자 5일동안 대대적인 사상교양학습을 통해 주민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도록 한 다음 고르바초프를 「돈 20만달러에 영혼을 팔아먹은 CIA의 첩자」로 매도한 사실,또 지난 72년 닉슨 미대통령의 방중때 중국에 대해서는 비난하지 않고 「흰 깃발을 들고 북경에 투항하러온 닉슨」으로 표현,주민들을 무마시킨 사실등을 그 예로 들었다. 따라서 이번 한중수교의 경우도 예의 각 세포별 사상교양작업을 마친 다음 로동신문등 북한의 언론을 통해 뒤늦게 「각색한」 보도를 내보낼 것이 분명하다고 마교수는 밝혔다. 그는 이어 북한이 대외적으로는 미국과 일본뿐아니라 남북관계에 있어서도 유화적인 자세를 취할 것으로 내다봤다.
  • 쿠웨이트·바레인에 패트리어트 배치

    ◎미,미사일·발사대 모두 72기 훈련 【쿠웨이트시티 AFP 연합】 걸프전에서 이라크의 스커드미사일을 요격해 명성을 떨친 패트리어트미사일 포대가 30일 쿠웨이트 남쪽 20㎞ 떨어진 사막에 배치됐다고 한 미군 소식통이 밝혔다. 지난 28일 쿠웨이트에 도착한 8개의 패트리어트미사일 발사장치와 64기의 미사일은 작년에 서명된 미국­쿠웨이트간 방위협력협정에 따라 오는 8월3일∼19일 실시될 양국 합동군사훈련에 사용된다고 이 소식통은 전했다. 쿠웨이트에 주재하는 한 서방 외교관은 패트리어트미사일이 쿠웨이트의 요청에 따라 배치됐다고 말했다. 【워싱턴 로이터 연합】 미국은 걸프지역의 친미국가들을 이라크의 미사일공격에서 보호하기 위해 이번주중으로 바레인에 패트리어트미사일과 그 발사대를 보낼 것이라고 국방부 관계자가 29일 밝혔다. 이같은 조치는 이번주 들어 패트리어트미사일 및 발사대 8기가 쿠웨이트를 향해 선적된데 뒤이어 나온 것으로 현지에 도착하면 미군이 직접 관리할 이 패트리어트 미사일들은 걸프전중 이라크의 스커드미사일 파괴용으로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이 사용했던 것과 비슷한 것이다.
  • 걸핏하면 점거/화염병·각목…/「전대협」 시위악순환 언제까지

    ◎「연방제통일」 주장은 위험한 발상/인공기자극등 탈법 호응 못얻어/과격투쟁 자제,안정된 남북대화 지원을 1천만 시민의 생활터전인 서울 도심에 걸핏하면 화염병과 돌멩이가 날고 학생들이 휘두르는 쇠파이프와 각목에 경찰이 쫓겨다니는 악순환이 좀처럼 그치지 않고 있다. 그동안 우리사회의 민주발전에 나름대로 기여해온 공적은 인정된다 해도 과연 이와같은 격렬한 투쟁양상이 이제는 재고돼야 하지 않느냐는 목소리들이 갈수록 높아가고 있다. 지난 29일 「전야제」부터 3일동안 한양대에서 이른바 「제6기 출범식」을 가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는 마지막날인 31일 하오 기어이 서울 도심 곳곳을 점거,도시교통을 마비시키는등 휴일나들이 시민들에게 엄청난 불편과 불안을 안겨줬다. 「전대협」이 이처럼 과격폭력시위를 일삼고 수만명의 학생들을 동원해 대규모 집회를 갖는 것은 현정부를 「친미사대주의 세력」으로 보고 현재로서는 「민중이 중심이 되는 통일」을 달성하기 어려우므로 이른바 「민주정부」를 수립하자는 것이다.이어 북한이 주장하는 통일방안인 「연방제통일」을 달성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이에 따라 「전대협」은 지난달 8일 부산 동아대와 광주 전남대,13일 서울 건국대에서 있은 「조통위 출범식」집회에서 북한의 「인공기」를 게양해 시민들의 관심을 끌려다 여론의 비난에 부딪히자 이를 스스로 철회했다. 「전대협」은 동유럽의 공산주의 붕괴와 소련의 공산주의포기 등에 따라 위축된 세력을 만회하고 일반의 관심을 끌기위해 「제6기출범식」이라는 대규모 세과시에 나섰던 것으로 여져지고 있다. 이들은 5만여명에 이르는 많은 학생을 동원하기 위해 전국의 각대학에 참석을 독려,지난 29일엔 「광주·전남지역총학생회연합」소속 대학생 9백여명이 철로에 불을 지르고 열차를 강제정차시키는 탈법을 저질렀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투쟁방법설정에 골몰하고 있는 「전대협」은 시민은 물론 운동권그룹 자체에서도 내부 분열상을 보이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기도하다. 이같은 학생들의 과격집회에 이은 도심폭력시위에 대해 관악구 봉천1동에 사는 주부 오수옥씨(59)는 『민주화가 진전되고 있고 남북고위급회담에 따라 고향방문단교환이 예정돼 있는등 정치·경제·사회적 안정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에서 시민들에게 불편만 주는 과격시위를 중지하고 쇠파이프대신 펜을 들고 장차 나라를 이끌고 갈 학문연구에 힘써야 할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이용필교수(59·정치학)는 『과격한 구호와 폭력시위는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학생운동권의 고립을 자초할수 있다』면서 『정치는 정치인에게 맡기고 사회에 진출한뒤 국가·사회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소양을 닦는 것이 사회변혁의 한부분을 담당할 학생의 본분』이라고 말했다. 조영황변호사(53)는 『평화적 시위문화가 정착되어야 할때에 폭력시위가 또다시 발생해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 『이유야 어쨌든 최루탄과 쇠파이프가 난무하는 불행한 사태로 시민들이 도심지를 몽땅 뺏겨버리는 불행한 일을 방지하고 생업에 안심하고 종사할 수 있도록 시위문화가 하루빨리 개선돼야 할것』이라고 말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