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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네수엘라, 콜롬비아와 단교

    베네수엘라, 콜롬비아와 단교

    “전쟁 수순? 아니면 새 대통령 길들이기?” 베네수엘라가 22일(현지시간) 콜롬비아와 외교관계 단절을 선언, 평온하던 남미 대륙이 긴장에 휩싸였다. 23일 BBC에 따르면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이날 국영TV 담화에서 콜롬비아와의 단교 결정을 발표했다. 차베스는 ‘베네수엘라가 콜롬비아 반군에 은신처를 제공하고 있다.’는 콜롬비아 정부의 주장을 부인하면서 알바로 우리베 대통령이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이런 주장을 만들어 냈다고 비난했다. 콜롬비아 측의 “좌익 반군게릴라, 콜롬비아 무장혁명군(FARC)을 비호하고 있다.”는 비난에 단교라는 초강수를 뽑아든 것이다. 차베스는 단교 조치와 함께 최고 경계태세를 발령하고 2300㎞에 이르는 콜롬비아 국경을 따라 군 병력을 배치, 긴장 수위를 높였다. 게다가 “다음달 7일 콜롬비아 새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후안 마누엘 산토스가 이 일을 알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기 어렵다. 앞날은 매우 위험해질 수 있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사태가 험악해지자 남미대륙 12개국을 회원으로 둔 남미국가연합은 두 나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중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남미국가연합 사무총장은 “두 나라 간 갈등 해소를 위한 중재 노력을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호세 가르시아 페루 외무장관도 “페루뿐만 아니라 남미, 라틴 아메리카가 양국간 협력과 대화가 이뤄지기를 바라고 있다.”고 강조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호세 미겔 인술사 미주기구(OAS) 사무총장도 양국간의 대화 재개를 촉구하고 나섰다. 남미 좌파의 수장격인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도 단교 발표 직후 차베스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하고 “위기 극복을 위해 가능한 노력을 다하겠다.”는 차베스의 약속을 얻어 냈다.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는 이날 차베스의 태도는 결연해 보이지만 엄포에 가깝다고 전문가 견해를 인용해 보도했다. 콜롬비아 내 미군 기지 건설을 막고, 차기 콜롬비아 정권이 친미 일변도로 기울어지는 것을 미리 차단하기 위해 선수를 친 성격이 크다는 것이다. 또 베네수엘라로 쫓겨 들어온 1500명 남짓한 콜롬비아 좌익 게릴라 문제에 대해 선을 그어 놓은 뒤 이와 관련한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볼 수 있다고도 분석했다. 콜롬비아 대통령 당선자인 마누엘 산토스가 두 나라 관계 정상화를 희망하고 있는 데다 차베스도 미국과 단단한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콜롬비아를 정면으로 건드리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를 반영하듯 차베스는 앙숙으로 지낸 우리베 현 콜롬비아 대통령을 맹렬히 비난하면서도 향후 콜롬비아의 선택에 따라 관계 회복이 가능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기기도 했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反美 이라크 아들 親美 아버지 살해

    “모두가 아버지를 미워했습니다. 아버지는 미군을 위해 일했거든요. 아버지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그냥 AK-47 소총을 아버지에게 겨누고는 방아쇠를 여섯 번인가 일곱 번 당겼어요.” 2003년 미군이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 하미드 아흐마드는 자신과 자기 가족이 독재에 시달리지 않고 자유로운 새 삶을 살 수 있는 날을 상상했다. 그는 이라크 공군에서 복무하다가 정부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혀 있던 자신을 풀어준 미군을 항상 고마운 존재로 생각했다. 7년이 지난 지금 아흐마드의 꿈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렸다. 뉴욕타임스는 20일(현지시간) “이라크 전쟁의 실상과 함께 왜 이 전쟁에서 미군이 승리하기 어려운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며 미군을 위해 일한 아버지, 그리고 그런 아버지를 친미주의자라는 이유로 살해한 아들 이야기를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던 아흐마드는 미군기지에서 일자리를 얻었다. 그는 미국을 신뢰했고 열심히 일하면 언젠가 미국으로 이민갈 수 있다고 믿었다. 미군기지에서 1년 가량 일하다가 기밀 정보를 반군에 제공했다는 이유로 1년 넘게 구치소에서 복역한 뒤에도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세 아들과 조카는 반미 저항조직에 가입했다. 가족들조차 미군을 위해 일하는 아흐마드를 미워했다. 아흐마드는 집안에서도 끊임없이 배신자, 미군 끄나풀이라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그가 기도하기보다 영화 보는 것을 더 좋아하고 미국의 상징이라는 생각으로 십자가 목걸이를 하고 다니는 동안 아들들은 미군들과 싸워 이길 날을 꿈꿨다. 아흐마드는 조카한테서 “머리를 벌레처럼 짓밟아 버리겠다.”는 협박편지도 받았다. 결국 아흐마드는 지난달 말 반미 저항조직의 지시를 받은 아들이 쏜 총에 목숨을 잃었다. 아버지를 죽인 아들 압둘은 뉴욕타임스와 인터뷰하면서 자신의 행동을 영웅적인 것으로 묘사했다. 아버지를 죽인 대가로 반군조직으로부터 5000달러를 받았다고 밝혔다. 가족들은 그러나 압둘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였을까. 인터뷰 말미에 그는 아버지를 “평화로운 분이었다.”고 회상하면서 아버지를 죽인 걸 후회한다고도 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행복했던 2010… 2014년을 꿈★ 꾼다

    행복했던 2010… 2014년을 꿈★ 꾼다

    기자가 되기 전에는 마음 편히 월드컵을 볼 수 있었다. 빨간 유니폼을 입고 광장으로 뛰어나가 목청껏 ‘대~한민국’을 부르짖었다. 푸른 그라운드에서 거침없이 뛰는 선수들은 싱그러웠고, 자유로웠다.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는 그라운드는 세상보다 정직했다. ‘매일 월드컵만 했으면 좋겠다.’ 싶었다. 하지만 스포츠 기자로 맞는 첫 번째 월드컵은 혹독했다. 국가대표 선수들과 눈을 마주치고 말을 섞는 설렘도 잠시, 선수들은 남아공으로 떠났고 기자는 한국을 지켰다. 월드컵 기간 내내 스트레스로 피부병도 생기고, 밤낮이 바뀌어 다크써클도 진하게 내려앉았다. 우루과이와의 16강전을 앞두고는 너무 지쳐 ‘이제 그만했으면….’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박주영의 프리킥이 골대를 맞고 튕겨 나왔을 때, 이동국의 슈팅이 골라인에서 뱅글뱅글 돌 때, 기자는 절규했다. 월드컵은 끝났지만, 여운은 진하게 남았다. 5000만 국민이 느낀 5000만개의 월드컵은 어떤 모습일까. 조은지기자·체육부 종합 zone4@seoul.co.kr 한준희(40·KBS 해설위원) - 새로운 경험 놀랍고 짜릿했죠 이번 월드컵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새로운 경험’이었다. 항상 중계석이나 스튜디오에서 경기를 봤었는데 이번엔 응원단 한복판에서 봤다. 그것도 ‘남자의 자격’이라는 예능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봤다. 거의 보름간 예능팀과 함께 생활하면서 축구를 본 것도 신선했다. 한국에 들어왔을 때 공항에 기자들이 몰려와 ‘한준희의 예언’이 화제라고 전해줬다. 당시 내가 예상한 월드컵 전망이 인터넷 검색어 1위를 차지했다고 하더라. 현지에서 인터넷을 안 해 한국 사정을 잘 몰랐는데 놀랍고 짜릿했다. 사실 아무나 할 수 있는 건데. 예전부터 예측은 참 많이 했었다. 2008년 유럽축구선수권 때도 결승에 독일-스페인이 올라가서 스페인이 우승한다고까지 맞혔는데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엔, 문어부터 시작해서 예언이 큰 관심을 끌었다. 반향이 커서 놀랐고, 이 중심에 서 있어서 영광이었다. 이제 월드컵은 끝났고, 주말부터 K-리그에서 다시 뛴다. 박일기(33·대표팀 미디어담당) - 무한한 발전 꿈꿀 수 있는 축제 아프리카에서 처음 열리는 월드컵을 두고 많은 사람이 가졌던 불안감을 나 역시 어느 정도는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그랬다. 대표팀의 지원 스태프로서 훈련장과 경기장 등으로 이동할 때 차창 밖으로 간간이 보이는 빈민촌과 황무지 등을 지나치다 보면 화려하고 웅장한 규모의 월드컵경기장과는 극히 대조적이었다. 하지만 연초에 있었던 10여일간의 남아공 전지훈련, 월드컵 현지 최종훈련 그리고 본선경기들을 통해 남아공이란 나라는 월드컵을 통해 축구 종목 하나만의 인프라가 아닌 사회 전반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냈다는 사실들을 목격하게 됐다. 지구촌 최대의 스포츠 제전인 월드컵. 그건 단순한 축구 국가대항전 이상의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남아공월드컵은 스포츠를 통해 가능한 변화들을 직접 보여줬다. 한국이 또 다시 2022년에 월드컵을 유치하게 된다면 2002년 대회를 뛰어넘어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느낀 한 달이었다. 이상윤(41·전 국가대표) - 훗날 대표팀 감독으로 뛰고파 코칭스태프와 선수들 모두 정말 잘해줬다. 다 만나서 어깨를 두들겨주고 싶은 마음이다. 16강에 올라간 것만으로도 굉장히 잘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이상의 성적이 가능했다고 생각하기에 살짝 아쉬움은 남는다. 결과적으로 우루과이가 4강까지 가긴 했지만 대진운도 좋은 편이었고, 우리 선수들의 경기력도 좋았다. 월드컵에서 그치지 말고 K-리그에도 붐을 일으키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사실 난 월드컵에 한(恨)이 많은 사람이다. 월드컵만 보면 한구석에 ‘그 때 내가 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을까.’하는 생각 때문에 아내와 부모 보기가 속상했다. 이번에만 봐도 황선홍, 김태영, 최진철 등은 CF도 찍고 방송도 많이 나왔다. 그러나 월드컵에서 활약이 미미했던 나 같은 사람들은 묻혀 있다. 월드컵 무대에서 채우지 못한 부분을 평생 안고 가는 거다. 이번 월드컵을 보면서 먼 훗날 대표팀 코치나 감독으로 한을 풀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김영후(27·강원FC) - 더 큰 꿈을 꾸게 한 무대 아직 심장이 두근거린다. 이번 남아공월드컵은 ‘더 큰 꿈을 꾸게 한 무대’였다. 선수생활을 하면서 꼭 뛰어보고 싶은 대회가 월드컵이다. 우리 한국 선수들이, 리그에서 함께 부딪쳤던 동료들이 너무나 잘하는 것을 보면서 ‘4년 뒤 브라질에서는 나도 꼭 저 자리에 있겠다.’고 다짐했다. ‘꿈의 무대’에서 뛰는 선수들이 부럽기도 했지만, 부러운 마음보다는 자랑스럽고 멋있고 뿌듯한 마음이 훨씬 컸다. 아직은 내가 부족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고, 더 잘해야겠다는 의욕도 샘솟았다. ‘축구선수 김영후’의 목표와 가능성은 더 커졌다. K-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 태극마크를 달 기회도 있을 거라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리그에서 더욱 열심히 뛰겠다. 난 ‘땀 흘린 만큼 반드시 결과가 돌아온다.’고 굳게 믿는다. 태극전사 여러분,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진형(43·KBO 홍보팀장) - 국민들의 스포츠 사랑 재확인 아무래도 월드컵 시작하기 전에는 야구 관중이 줄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 월드컵을 지나면서 보니 야구와 축구의 역할분담이 확실히 이뤄진 것 같더라. 월드컵은 국민 모두가 즐기는 대사이고, 야구는 생활 속에 자리를 잡은 듯한 느낌이다. 실제로 월드컵 기간 야구 관중은 거의 안 줄었다. 조금 줄어든 것도 KIA의 연패와 날씨 때문으로 보인다. 그만큼 우리 국민들은 야구와 축구 등 모든 스포츠를 골고루 사랑할 줄 안다. 나부터도 월드컵 기간 내내 우리나라 응원하느라 밤에 한숨도 못 잤다. 밤새 축구보고 새벽에 조금 자고 나와서 저녁에는 야구보고. 그게 내 일과였다. 많은 사람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새벽에는 축구보고 저녁에는 생활의 한 부분처럼 야구를 보고. 월드컵은 특정 한 종목의 잔치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인 것 같다. 권진욱(35·회사원·서울 당산동) - 소중한 사람과 응원 더 각별 나에게 가장 특별한 월드컵은 역시 2002년 한·일월드컵이다. 안정환, 황선홍, 박지성 등 쟁쟁한 스타들의 골 장면이나 거스 히딩크 감독의 어퍼컷 세리머니는 아직도 하이라이트 필름의 한 장면처럼 생생하다. 이번 남아공월드컵은 TV중계를 통해서 볼 수밖에 없었던 게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이번 월드컵도 내겐 만만치 않은 즐거움이었다. 물론 한국대표팀의 선전이 즐거움이었지만 이번에는 소중한 사람과 둘이서 함께 봤기에 더욱 각별하다. 1986년, 1990년은 부모님과 함께 봤었고 그 이후는 대학, 대학원 친구들과 시청했다. 주기적으로 나의 월드컵은 시커먼 친구 녀석들과 함께하는 아드레날린의 향연이었지만 이번만은 달콤한 보랏빛 월드컵이었다. 역시 온 사회가 즐거운 것도 좋지만 내가 즐거워야 하지 않겠는가. 박용철(45·축구연맹 홍보부장) - 재미있는 축구만이 살 길 1998년 프랑스로부터 시작된 나의 월드컵 기행은 결국 남아공까지 계속됐다. 신분은 대회 때마다 달랐지만 특히 이번 월드컵은 부담감 없이 응원하며 마음껏 즐겼다. 아시아권을 대표하는 한국의 축구 수준이 세계와의 격차를 훨씬 줄인 건 물론, 넘어설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확인한 대회였다. 하지만 연맹 종사자로서 월드컵을 즐기기만 할 수는 없었다. ‘포스트 월드컵’에 대한 부담이다. 대표팀이 호성적을 낸 만큼 그 기초가 되는 K-리그의 운영에도 더욱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지금 전 구단 프런트와 함께 하는 워크숍으로 포스트 월드컵에 대비하고 있다. 그동안 준비했던 K-리그 소비자만족도 등 각종 경기 관련 자료들은 친미디어 정책 등을 재차 확인하고 있다. 재미있는 축구. 이것이 남아공월드컵이 남긴, 그리고 K-리그가 추구해야 할 포스트 월드컵의 핵심이다.
  • 콜롬비아 대선 與압승

    콜롬비아 대선 與압승

    콜롬비아 집권당인 우(U)당의 후안 마누엘 산토스(59) 후보가 20일(현지시간) 대선 결선투표에서 당선됐다. 이로써 콜롬비아는 현재 알바로 우리베 대통령에 이어 중남미 가운데 유일하게 우파정권이 재집권한 국가가 됐다. 때문에 현행 친미노선도 유지될 전망이다. 콜롬비아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이날 오후 6시30분 현재 99.7%를 개표한 결과 산토스 당선자는 69%의 득표율로 28%에 그친 녹색당의 안타나스 모쿠스 후보를 큰 차이로 따돌렸다. 예상을 뛰어넘는 압승이다. 현 정권에서 지난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국방장관을 지낸 산토스 당선자는 지난달 30일 실시된 1차투표에서 46.6%의 지지를 얻었지만 과반 득표에 실패, 결선 투표를 치렀다. 선거법은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상위 득표 2명만을 대상으로 결선 투표를 시행토록 규정하고 있다. 산토스의 당선은 강력한 치안 정책과 경제성장 정책을 내세운 공약이 야당인 모쿠스 후보의 복지·인권정책보다 유권자의 표심을 사로잡았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특히 국방장관 시절인 2008년 반군에 6년간 인질로 잡혀 있던 여성 정치인 잉그리드 베탕쿠르를 비롯, 20여명을 구출하는 등 콜롬비아 무장혁명군(FARC)으로 대변되는 반군 소탕 작전을 성공시킨 데다 살인 및 납치 등 강력 범죄를 줄인 것도 결정적인 승리 요인으로 작용했다. 최대 과제 역시 치안과 빈곤문제다. 산토스 당선자는 공약에서 밝혔듯 반군 소탕작전과 친미 외교노선에는 큰 변화를 주지 않을 것 같다. 빈곤층과 실업률, 재정 적자 해소를 위한 경제 정책의 경우 한층 속도를 낼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산토스 당선자는 명문가 출신이다. 할아버지 에두아르도 산토스는 1938~1942년 대통령을 지냈으며, 아버지 엔리케 산토스는 국내 유일 전국일간지 ‘엘 티엠포’를 50여년간 이끌어 왔다. 대통령 취임식은 오는 8월7일 열릴 예정이며, “콜롬비아가 남미국가연합 강화에 기여하기를 바란다.”는 당부를 포함한 당선 축하 메시지를 전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도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러, 키르기스 군사 개입 초읽기

    러, 키르기스 군사 개입 초읽기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 남부에서 시작된 민족 분규 사태가 계속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키르기스 과도 정부의 군 지원 요청을 거절했던 러시아가 개입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가 구소련 연방국가들의 안보모임인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회의를 소집하는 등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자 미국도 “국제적으로 조율된 대응을 추진 중”이라고 밝히는 등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AFP통신은 러시아 언론을 인용,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14일(현지시간) “두 번째 CSTO 가입국 안보장관회의는 물론 정상회의가 열릴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그는 이날 CSTO 사무총장과의 회의에서 “현 상황은 참기 어려운 수준이며, 이는 (CSTO)지역에 매우 위험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친미 성향의 쿠르만베크 바키예프 전 정권과 달리 현재 과도 정부는 러시아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러시아가 단독으로 개입하기에는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 시선이 부담스럽다. 하지만 역내 안전을 내세울 경우 개입할 명분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CSTO 차원에서 지원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로자 오툰바예바 키르기스 과도정부 대통령은 러시아가 주도하는 CSTO의 평화유지군 도입에 대해 “현재로선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필립 크롤리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키르기스 과도정부, 유엔,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러시아 등과 긴밀한 접촉을 유지하고 있다.”면서 “OSCE 틀 안에서, 국제적인 차원에서 우리가 어떻게 행동할지를 주시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미국은 당초 “키르기스 과도 정부로부터 지원 요청을 받은 바 없다.”며 말을 아껴왔다. 하지만 사태가 확산되는 데다, 러시아까지 개입 초읽기에 들어가자 적극적으로 입장을 내놓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키르기스 정부의 공식 집계에 따르면 지금까지 최소 170명이 숨지고 1762명이 다쳤다. 폭력 사태는 다소 진정되고 있으나 목숨을 건진 사람들은 물과 식량 부족에 시달리는 등 또 다른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이미 10만명이 우즈베키스탄 국경을 넘었고 추가로 10만명이 대기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우즈베크 정부가 국경을 폐쇄하면서 목숨을 걸고 국경까지 간 우즈베크계 주민들의 발이 묶였다. 이에 나비 필레이 유엔인권고등판무관은 국경을 계속 개방하라고 촉구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최악 치닫는 키르기스 민족분규

    최악 치닫는 키르기스 민족분규

    키르기스스탄 남부 지역의 민족 간 유혈 충돌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과도정부가 오시에 이어 13일(현지시간) 인근 잘랄라바드 지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러시아가 키르기스 내 자국 공군 기지에 공수 부대를 추가로 보내면서 미국과 러시아 간의 긴장도 한층 고조될 전망이다. ●폭도들 경찰서 장악 무기탈취 오시에서 지난 10일 시작된 민족 분규는 인근 지역으로 확대됐다. 잘랄라바드에 살고 있는 세르게이 김은 AFP 통신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거리에서 총성이 계속 울리고 있다.”고 말했고 또 다른 시민은 시내 곳곳의 건물들이 불타고 있다고 전했다. 폭도들은 경찰서를 장악하고 지역 군부대에서 장갑차와 무기류를 탈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키르기스 정부와 군 발표를 종합하면 지금까지 최소 116명이 숨지고 1247명이 다쳤다. 여기에는 잘랄라바드의 수자크 마을에서 사망한 우즈베크계 주민 30명이 포함돼 있다. 이런 가운데 파키스탄 학생 1명이 살해됐으며 15명이 인질로 잡혀 있다고 파키스탄 외무부가 밝힘에 따라 이번 사태는 키르기스 내부 문제를 넘어서게 됐다. 여성과 어린이 등 수천명의 우즈베크 소수민족이 총격을 받으며 국경으로 피신했고, 국경으로 향하는 길에는 어린이들의 주검 등이 나뒹굴고 있다고 AP통신 등 외신은 전했다. 우즈베크 정부는 지금까지 7만 5000명이 국경을 넘어왔다고 밝혔다. 사태가 확산되자 키르기스 과도정부는 이날 오시와 인근 카라수, 아라반 지역에 통행금지 조치를 내리는 한편 잘랄라바드 등지에 비상사태를 선포, 예비군을 동원하고 특수부대원들을 급파했다. 또 정부군과 경찰에 필요할 경우 폭도를 사살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로자 오툰바예바 키르기스 과도정부 대통령은 축출된 쿠르만베크 바키예프 전 대통령의 세력들이 27일 실시될 새 헌법에 대한 국민투표를 방해하기 위해 오시에서 이번 소요를 부추겼다고 비난하고 나섰다. 하지만 바키예프 전 대통령은 배후설에 대해 “파렴치한 거짓말”이라고 부인했다. 지난 11일 오툰바예바 대통령의 군사 지원 요청을 거절한 러시아가 이날 키르기스 주재 러시아 공군기지의 보안 강화를 위해 낙하산부대 1개 대대를 추가로 파견했다고 러시아 인테르팍스 통신이 보도했다. 키르기스 칸트에 있는 러시아 공군기지는 수도 비슈케크에서 20㎞ 떨어져 있으며 미군 기지와는 30㎞ 거리에 있다. 앞서 미 국방부는 키르기스 과도정부로부터 지원 요청을 받은 바 없다며 추가 언급을 자제했으나 시위 향배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미국·러시아 긴장 고조 미·러 간 각축은 지난 4월 친미 성향의 바키예프 전 대통령을 유혈시위로 몰아낸 뒤 집권한 오툰바예바 과도정부 대통령이 ‘러시아 접근 카드’를 흔들면서 두드러지고 있다. 키르기스스탄의 마나스 공군기지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물류 수송 등 전략적으로 빼놓을 수 없는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간 총리 체제 첫 관문 새달 참의원 선거

    간 총리 체제 첫 관문 새달 참의원 선거

    일본의 간 나오토 신임총리가 6일 관방장관에 센고쿠 요시토(64) 국가전략상, 재무상에 노다 요시히코(53) 재무 부대신을 각각 내정했다. 행정쇄신상에는 초선인 렌호(42) 참의원 의원을, 국가전략상에는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의 측근인 아라이 사토시(64) 총리보좌관을 기용하기로 했다. ●친미 노선 선회, 소비세 인상할 듯 간 총리는 특히 당 간사장에 반(反)오자와 전 간사장의 선봉인 에다노 유키오(46) 행정쇄신상을 발탁했다. 당정의 핵심 요직을 반오자와 계열의 인물들로 채운 셈이다. 다음달 11일 치러질 참의원 선거의 승리를 위해 탈오자와 색깔을 분명히 했다. 나머지 각료 11명은 국정의 연속성 차원에서 유임시켰다. 간 총리는 7일 열리는 민주당 중의원·참의원 양원 총회에서 인사 방침에 대한 동의를 얻은 뒤 8일 아키히토 일왕의 재가를 받아 공식발표할 예정이다. 간 총리는 당과 내각을 한 손에 장악함으로써 당정 일체의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오자와 그룹을 적으로 돌려놓고는 국정운영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게 간 총리의 고민이다. 오자와 그룹에 속한 중의원·참의원 의원은 150여명으로, 이는 민주당 전체 의원 423명의 3분의1이 넘는다. 여차하면 당을 쪼개 새 정당을 창당하거나 다른 당과 합당, 새로운 정권을 탄생시킬 수도 있을 만큼 막강하기 때문이다. 오자와 전 간사장은 지난 1993년 “일본의 미래는 없다.”며 자민당에서 탈당한 이래 네 차례나 창당과 합당을 반복했다. 실제로 오자와 그룹은 간 총리가 반오자와 그룹 일색으로 조각과 당직인선을 추진하자 강력 반발하고 있다. 오자와 전 간사장은 지난 4일 당 대표 경선 때 자신에 대한 좋지 않은 여론을 고려, 후보를 내지 않았지만 오는 9월 말 대표 선출에서는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을 정도다. 간 총리는 당 대표 경선에서 오자와 그룹의 지원을 받은 다루토코 신지 중의원 환경위원장을 국회대책위원장에 내정하고, 친오자와 계열의 하라구치 가즈히로 총무상을 유임하는 방식으로 ‘화합인사’의 모양을 갖췄지만 오자와 그룹의 불만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간 총리는 하토야마 전 총리의 사임을 불러일으킨 오키나와현의 후텐마 비행장 이전 문제와 관련해 미·일 정부의 합의안을 준수할 것으로 보인다. 간 총리는 이날 새벽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양국) 합의를 기본으로 확실히 대처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오카다 가쓰야 외상의 유임으로 한·일 외교관계도 기존 기조에서 변화가 없을 것 같다. 소비세 인상론자들이 대거 중용된 것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간 총리를 비롯해 센고쿠 관방장관 내정자, 노다 재무상 내정자는 심각한 국가재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비세 인상을 요구해 왔다. ●간 총리 지지 여론 60%대 여론은 일단 간 총리체제에 우호적이다. 교도통신이 4일과 5일 실시한 전국 긴급전화 여론조사에서 간 총리에게 ‘기대한다.’는 응답자는 57.6%에 달했다. 아사히신문은 59%, 마이니치신문 63%, 도쿄신문 조사에서는 57%를 기록했다. 하토야마 유키오 내각 지지율의 20%선과 비교, 큰 변화다. 민주당 지지율도 지난달에 비해 무려 15.6% 포인트 오른 36.1%로 상승, 자민당의 20.8%와 차이를 벌렸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갈수록 틀어지는 이스라엘-터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인 가자지구로 들어가려던 국제 구호선단을 저지하는 과정에서 터키인 4명을 포함한 9명이 희생되면서 이스라엘과 터키의 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이번 사태를 “피의 대학살”로 규정했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가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유일한 친구를 잃을 수 있다.”면서 “이스라엘이 앞으로 며칠 내 취할 조치들이 향후 중동에서의 이스라엘 입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터키 총리실이 2일(현지시간) 밝혔다. 터키 의회는 이날 표결을 통해 이스라엘과의 정치·군사적 동맹관계 재검토를 정부에 요청하는 선언문을 채택하고 데다 이스라엘의 사과와 희생자에 대한 보상을 요구했다. 터키는 1950년대 미국의 주선으로 이스라엘과 평화 협약을 체결한 이후 이스라엘을 둘러싼 중동 갈등 문제의 중재자를 자임해 왔다. 그러나 이슬람주의 운동에 뿌리를 둔 정의개발당(AKP)이 지난 2002년에 이어 2007년 총선에서 재집권에 성공한 뒤 노선이 바뀌었다. 중동에서 가장 친미적인 국가에서 반미 성향이 강한 나라로 돌변한 것이다. 에르도안 총리는 지난해 12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의 워싱턴 회동에서 테러와의 전쟁이 한창인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추가 파병 요청을 거절한 적이 있다. 이 같은 상황은 터키와 이스라엘과의 관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2008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공습, 전면전을 펼치자 터키는 강도높게 비난했다. 이후 양국 관계도 조금씩 틀어졌다. 특히 에르도안 총리는 지난해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총회에서 이스라엘 대통령을 향해 “살인자”라고 퍼부은 뒤 회의장을 박차고 나가기도 했다. 또 터키에서 지난해 10월과 지난 1월, 각각 이스라엘군을 잔혹한 살인자로, 정보기관 모사드의 요원을 유아 유괴범으로 표현한 드라마가 방영되면서 양국의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이런 가운데 발생한 구호선단의 유혈사태는 그동안 터키와 이스라엘 모두 최악의 상황을 피할 것이라는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한편 유엔 인권위원회는 이날 이스라엘에 대한 규탄 성명과 가자지구의 봉쇄 해제, 조사단 파견 등을 결의했다. 표결에서는 32개국이 찬성, 미국·이탈리아·네덜란드 등 3개국이 반대, 한국·일본·영국·프랑스 등 9개국이 기권했다. 미 국무성 측은 결의 반대와 관련, “결의는 모든 책임을 이스라엘에게 묻고 있다.”면서 사실 관계의 우선 규명을 강조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한나라당, 지방선거 참패…외신 반응은?

    한나라당, 지방선거 참패…외신 반응은?

    KBS, MBC, SBS 등 공중파 3사를 비롯한 각 방송사가 지난 2일 열린 제 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결과에 대한 외국 언론들의 관심을 보도했다.KBS 1TV ‘뉴스광장’은 4일 오전 방송을 통해 “외신들은 선거결과를 천안함 사건과 연관지어 보도하면서 집권당인 한나라당에 유리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고 전했다”고 보도했다.이어 ‘뉴스광장’은 “한국의 지방선거 결과는 전 세계 언론들의 관심이었다”며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월스트리트 저널, BBC, AFP통신 등 주요 외신들의 반응을 차례로 전했다.이날 보도에 따르면 뉴욕 타임스는 한나라당에 대해 “뜻밖의 좌절을 겪었다”고 전했으며 “천안함 사건에 대한 국민적 분노로 보수진영의 낙승이 예상됐지만 야당이 압승을 했고 심지어 사건발생 지역인 인천에서도 민주당 송영길 후보가 승리했다”고 덧붙였다.또한 워싱턴 포스트는 “천안함 사건이 오히려 친미 성향인 이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을 약화시켰다”고 평가했다.사진 = KBS 1TV ‘뉴스광장’ 방송화면 캡처서울신문NTN 뉴스팀 ntn@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中 목소리 너무 컸나…亞국가, 미국 곁으로

    중국의 커진 목소리와 거침없는 행보에 아시아국가들의 친미(親美) 성향이 확산, 강화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26일 중국의 외교적, 군사적 자기 주장이 커지면서 이에 대한 우려로 아시아 주변국가들이 미국에 접근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천안함 사태로 중국의 북한 감싸기가 부각되면서 한국, 일본 등에서 중국에 대한 섭섭함과 경계 심리가 커지는 반면 미국과의 군사 동맹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분위기다. WSJ는 “한국의 중국과의 유대관계가 천안함 사태에 대한 중국의 (북한을 두둔하는) 대응으로 시험대에 놓였다.”고 전했다. 미국과의 대등한 관계를 외쳐온 일본 하토야마 정부도 최근 미·일 동맹강화에 신경쓰는 분위기다. 일본 정부는 지난 3일 중국 함정들이 해상보안청 소속 해양 조사선들의 해양 측량조사활동을 중단시켰다며 지난 6일 중국 정부에 공식항의했다. 문제 지점은 일본 가고시마현 아오미오시마 북서쪽 320㎞지역의 동중국해. 배타적 경제수역(EEZ)에 대한 입장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중국이 처음 일본 선박에 대해 실력행사에 나서자 일본이 공식 항의라는 카드로 맞불을 놓은 것이다. 잠복해 있던 동중국해 중·일간 영토분쟁이 표면화할 가능성이 한층 높아진 셈이다. 베트남과 말레이시아 등도 커가는 중국의 영향력과 비례해 대미 관계 개선 속도를 높이고 있다. 토착민과 화교들간의 유혈충돌 사태를 경험했던 말레이시아는 자국내 커가는 중국 바람을 차단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미국에 접근하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베트남은 남중국해 주변에서 영토 분쟁으로 중국의 압박을 받아 왔다. 중국은 지난 1일부터 남중국해상의 난샤(南沙·스트래틀리)군도 주변에서 자국 어민 보호를 상시화하기 위해 순시선 순찰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 앞서 지난해 말 남중국해 6900여개 도서를 대상으로 한 환경보호법을 통과시켜 베트남 정부 등 주변국가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 지역은 중국이 필리핀,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과 서로 상대국가의 어선을 나포, 억류하는 등 분쟁이 끊이지 않은 곳이다. 중국의 적극적인 영토 주장은 갈등의 불씨를 키우고 있다. 중국 해군은 타이완과의 전쟁과 자국 해안 방위에 주력하던 기존 입장에서 벗어나 태평양과 중동으로 작전 영역을 넓히는 원양 방위 전략을 도입, 항공모함 건설 등 활동 범위를 넓혀 주변국가들의 경계심을 더하고 있다. 근년 들어 급속하게 커진 외교적 영향력과 군사적 완력을 배경으로 영토 문제에 있어서 눈에 띄게 자기 주장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 주변국가들의 대미 접근의 요소가 되고 있다. 중국 외교부 장위(姜瑜) 대변인은 지난달 “중국 해군은 공해상에서 정기 훈련을 하고 있다.”며 “일본 등은 중국 군함이 먼바다에 빈번하게 출현하는 데 대해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고 중국의 달라진 모습을 당당하게 대변했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월드이슈] 英총선이 유럽정치 지형에 미치는 영향

    [월드이슈] 英총선이 유럽정치 지형에 미치는 영향

    영국 노동당이 4기 연속 집권에 실패하거나 자유민주당과 연정을 꾸릴 경우 유럽연합(EU) 국가 가운데 좌파가 단독으로 정권을 잡고 있는 국가는 스페인을 포함해 4개국으로 줄어든다. 유럽 내 우파의 선전은 지난해 6월 유럽의회 선거, 9월 독일 총선 그리고 최근 헝가리 총선에서 이미 확인한 바 있다. 아프가니스탄 파병을 둘러싼 갈등으로 연정이 붕괴돼 오는 6월 조기 총선을 치를 예정인 네덜란드의 경우 좌파는 물론 중도 우파 성향의 집권 기민당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가운데 극우 정당이 급부상 중이다. 9·11테러로 수면 위로 올라온 기독교와 이슬람 간의 종교적 대립, 이민자의 급속한 유입과 높은 실업률이 맞물리면서 빚어진 사회 불안 등이 그 배경으로 꼽힌다. 특히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경제가 어려워지자 유권자들은 그동안 정권을 잡고 있었던 좌파에 책임을 돌리는 것이다. 2008년 재집권에 성공한 스페인의 중도 좌파 사회당이 최근 일부 여론 조사에서 보수 야당인 대중당에 밀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우파 정권이 승승장구 하고 있지만은 않다. 프랑스의 경우 최근 치러진 지방의회 선거에서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이끄는 집권 대중운동연합(UMP)이 참패했다. 오는 9월 총선을 앞둔 스웨덴의 경우, 지난 2006년 총선에서 중도우파연합이 근소한 차이로 좌파연합을 눌러 12년 만에 집권에 성공했으나 최근 여론조사 결과에서는 좌파 적록연합에게 뒤지고 있다. 보수당이 승리, 데이비드 캐머런 당수가 총리 자리에 오를 경우 EU의 미래를 사실상 좌지우지하는 영국·독일·프랑스 3국 모두 중도 우파가 정권을 잡게 된다. 대표적인 EU 회의론자인 캐머런 당수는 그동안 나머지 두 나라 정상들과 거리를 유지해왔다. 독일과 프랑스 역시 ‘전략적 동거’를 통해 국제 사회에서 영향력 확대에 주력하고 있고, 이 과정에서 지난해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유력한 후보였던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를 낙마시켰다. 그럼에도 프랑스와 독일 입장에서는 보수당 총리를 선호할 수 밖에 없다. 이 때문에 최근 사르코지 대통령은 영국 방문 중 캐머런 당수와 회동을 갖는 등 관계 개선에 나서고 있다. 보수당은 전통적으로 친미 성향이 강하다. 노동당의 블레어 전 총리, 고든 브라운 총리 역시 친미 노선을 걸었지만 캐머런 당수는 노동당 정권의 대미 정책을 비판해왔다. 하지만 지지층을 의식, 반미를 외치기에는 역부족이다. 따라서 집권할 경우, 전 정권과 차별화를 꾀하면서도 미국과의 동반적 관계를 포기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나길회 신진호기자 kkirina@seoul.co.kr
  • [이슈 Q&A]키르기스스탄 사태 의미와 전망

    중앙아시아의 군사 요충지인 키르기스스탄에서 ‘제2의 튤립 혁명’이 발생, 쿠르만베크 바키예프 대통령이 수도를 떠나고 야당이 과도정부를 수립하면서 국제사회의 이목이 키르기스스탄을 향하고 있다. 중앙아시아 전문가인 한국외대 중앙아시아연구소 김상철 박사로부터 이번 사태의 원인과 국제적 영향에 대해 들어봤다. Q: 이번 사태의 원인은? A: 현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 바키예프 대통령은 2005년 튤립(레몬) 혁명을 통해 정권을 잡았다. 바키예프 정부는 민주화 개혁과 경제적 발전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을 안고 출범했다. 그러나 이들 또한 선거 부정 의혹을 받고 야당을 탄압하는 등 이전 정부의 행태를 반복했다. 치솟는 물가와 대폭적인 공공요금 인상 등 경제 상황도 개선하지 못했다. 이미 민주화 운동을 경험했던 국민들로선 바키예프 정부의 퇴행적 행태를 용납할 수 없었다. Q: 국제 사회가 키르기스스탄 사태를 주시하는 이유는? A: 미국과 러시아의 군사기지. 미국과 러시아는 30~40㎞의 거리를 두고 각각 군사기지를 운영하고 있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미군의 보급을 위한 공군기지를 두고 있다. 아프간 전쟁을 수행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러시아는 미국의 기지를 견제하기 위해 공군기지를 세웠다. Q: 중앙아 정세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A: 주변국들로 민주주의 확산 가능성. 중국도 키르기스스탄과 직접 국경을 맞대고 있는 데다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이 지역이 중요하다. 투르크메니스탄으로부터 중국으로 이어지는 천연가스관이 키르기스스탄을 통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장 지역과 맞닿아 있기 때문에 키르기스스탄의 소요 사태가 신장위구르 지역에 영향을 줄까봐 예의주시하고 있다.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도 이번 사태의 영향을 차단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키르기스스탄의 민주화 시위 여파가 자신들에게 미칠까봐 우려하고 있다. Q: 관련국들은 이번 사태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까? A: 섣불리 개입 못할 것. 다들 예의주시하고 있지만 섣불리 개입하지도 못한다. 개입한다는 인상을 함부로 보였다가 키르기스스탄 국민들의 반감을 살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바키예프 대통령은 친미 성향이었음에도 한때 미군 기지 폐쇄를 결정하기도 했다. 역내 균형이 깨지는 것도 달갑지 않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가 러시아 개입설을 적극적으로 반박하고 나선 것은 그 때문이다.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의 경우 민주화 시위 여파를 차단하기 위해 방송을 통해 “일부 야당 세력의 반정부시위”라고 보도하거나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다. 모두들 키르기스스탄이 빨리 안정되기를 바라고 있다. Q: 이번 사태가 한국에 미치는 영향은? A: 큰 영향 없어. 양국 교역 규모가 크지 않고, 현지 고려인들이 정계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크지 않아 큰 피해를 입지 않을 것이다. 다만 현지에 진출해 있는 사업체들로서는 하루빨리 상황이 안정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신진호기자 sayho@seoul.co.kr
  • [이슈 Q&A] 아프간 카르자이 反美발언 왜

    [이슈 Q&A] 아프간 카르자이 反美발언 왜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이 연합군을 파견한 미국과 서방을 계속 ‘건드리고’ 있다. “나를 더 압박하면 탈레반에 합류하겠다.”라거나 “칸다하르 지도자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군사작전을 펴지 않겠다.”는 말을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낸다. 미국의 지지 덕분에 대통령이 된 카르자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이 분야 전문가인 유달승 한국외대 이란어과 교수와 인남식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로부터 아프간 정세의 향방을 들어 봤다. Q: 카르자이가 민감한 발언을 계속하는 배경은. 유: 생존을 위한 게임이다. 카르자이가 미국에 보내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나를 자꾸 흔들면 탈레반과 손잡을 수도 있다.’ 작년부터 미국이 전쟁 목표를 두고 탈레반 축출과 알카에다 축출 사이에서 모호한 입장을 나타냈다. 카르자이에겐 미국이 탈레반과 화해하는 것도 위험하지만 반대로 탈레반을 완전히 소탕하면 그 다음 차례는 자신이 될 수도 있다는 것도 불안요소다. 인: 미국은 내년에 철군하겠다고 공언한 데다가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부패 해결과 부족 간 화합 등 강한 조건을 전제로 카르자이를 지지했다. 카르자이로서는 미국과 손을 잡아야 하면서도 어차피 재선에 성공한 마당에 미국의 ‘괴뢰’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날을 세우는 게 필요했다. 그런 점에서 국내정치용이다. Q: 아프간에서 카르자이 위상은. 유: 수도인 카불도 제대로 통치하지 못할 정도로 권력기반이 취약하다. 특히 치안악화와 부정부패 때문에 국민들의 불만이 많다. 의회도 겉으로는 장악하고 있다지만 미국의 협상 파트너 지위를 상실하면 의회도 다른 입장을 취할 가능성이 있다. 인: 파슈툰족 출신으로 친미 반탈레반 입장인 카르자이는 아프간 국민들에겐 대안이 없어서 인정하는 ‘차악’일 뿐이다. Q: 서방이 카르자이를 통제할 수단과 대안은 무엇인가. 유: 미국에 뚜렷한 대안이 없다는 게 문제다. 미국은 파키스탄 정보부에 공을 들여 다른 인물을 물색하고 있지만 일부 거론되는 군벌들도 대부분 이란과 연계되어 있는 북부동맹 출신이라서 미국이 꺼린다. 인: ‘치킨게임’이다. 미국과 카르자이는 서로 상대방의 약점을 잡고 있다. 미국은 탈레반과 벌이는 전쟁 승리를 위해 카르자이 협조가 필요하다. 미국은 무력과 경제지원이라는 수단을 쥐고 있다. 그러면서도 상대방을 필요로 한다. Q: 미국과 유럽이 아프간에서 추구하는 최종목표는. 유: 미국에 아프간 전쟁은 송유관 전쟁이다. 카스피해의 석유를 유럽과 아시아로 보내는 송유관을 통해 중국과 인도를 견제하고 러시아의 유가 정책에 대항할 수 있으며 경제 파트너인 유럽에 자원을 제공할 수 있다. 카르자이는 아프간 송유관을 건설한 석유회사 고문을 지냈다. 카르자이가 집권한 이후 송유관 건설은 빠르게 진행돼 거의 완성 단계다. 그런데 송유관이 지나는 아프간 남부에서 탈레반의 영향력이 확대된것이 최근 대규모 군사작전의 배경이 됐다. 인: 미국과 유럽이 아프간에서 추구하는 기본 전략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미국이 군사안보 중심이라면 유럽은 인권과 마약문제를 더 중시한다. 안정화라는 목표는 같지만 미국은 군사적 성과를 통해, 유럽은 지방재건팀(PRT) 등을 통한 장기적 체질개선으로 목표를 이루려 한다. 비유하자면 수술치료와 방사선치료다. Q: 파병 예정인 한국군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유: 다른 나라는 군대를 철수하는 마당에 한국은 재파병을 해 더욱 주목받고 있다. 외세에 반감을 가진 세력들의 공격 목표가 될 수 있다. 인: 개인적으론 미국의 접근법보단 유럽의 접근법이 더 효과적이라고 본다. 한국군이 현지에서 민심을 얻고 대민활동을 통해 희망을 보여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러기 위해선 목표와 임무를 명확히 해야 한다. 아프간에서 안전한 지역은 없기 때문에 교전수칙도 세밀하게 준비해야 한다. 강국진 신진호기자 betulo@seoul.co.kr
  • 친미도 반미도 아닌 통섭의 미국史

    친미도 반미도 아닌 통섭의 미국史

    1990년대 한국 사회에서 금기시되던 실명 비판을 들고 나와 논쟁의 한복판에 우뚝 섰던 이가 있었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다. 정치, 경제, 교육, 역사 등 분야를 가리지 않은 그의 비판에는 성역이 따로 없었다. 제도권 안에 머물던 학술적 의제들이 사실상 처음으로 대중들과 접점을 만들어 나간 셈이다. 대중들이 열광적으로 호응했고, 그로 인해 ‘지식 대중’의 씨가 뿌려졌다고 볼 수 있다. 한국 사회의 치부 또는 관성의 영역에 머물러 있던 문제를 피부에 와 닿는 언어로 의제화하는 비판적 사유나, 어마어마한 자료 수집과 폭넓은 독서, 그리고 이를 하나로 꿰뚫어 내는 통찰력 등이 어우러져 그는 ‘토론과 논쟁의 지존’ 자리에서 한동안 머물렀다. 쉼 없이 현실 정치 등에 대한 발언을 거듭하던 그는 2002년 이후 홀연히 논쟁의 테이블을 떠난다. 그러나 대중적 글쓰기 자체를 떠난 것은 아니었다. ‘한국 현대사 산책’(전 18권), ‘한국 근대사 산책’(전 10권) 등 더욱 정력적인 저술 활동을 계속해 왔다. 강 교수가 다시 한 번 대역사(大役事)에 나섰다. 이번에는 미국의 역사를 예의 비판적 사유와 통찰력을 앞세워 관통시켰다. ‘미국사 산책’(인물과사상사 펴냄)은 일단 5권까지 나왔고, 앞으로 모두 15권으로 정리할 계획이다. ‘미국사 산책’은 1492년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 또는 정복’에서 영국에 대항해 벌인 독립전쟁까지를 다룬 1권 ‘신대륙 이주와 독립전쟁’부터 시작해 미국의 역사를 통사(通史)적으로 풀어 나간다. 그리고 2~5권에서는 미국의 건국, 노예제, 남북전쟁, 서부개척, 자본 권력의 대두, 1차 세계대전, 할리우드·미키마우스로 상징되는 문화권력의 탄생 등까지 이어진다. 특히 이번 미국사편에서 그가 강조하고 있는 것은 세계사적 흐름 속에서 정치, 경제, 군사, 외교, 사회, 문화, 언론, 영화, 방송, 학술, 과학, 기술, 문학, 언어 등 전체 분야를 아우르는 통섭(統攝)적 고찰이다. 또 잰걸음으로 시간적 월경(越境)도 서슴지 않는다. 예컨대 초기 미국사를 거론하며 쉼 없이 당대 유럽의 상황을 함께 살펴보는 식으로 풀어 나간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뿌리는 영국의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온 유럽 이주민들에 있기 때문이다. 지루할 정도로 유럽의 상황이 거론되는 이유다. 또한 그가 자신의 미국사 시리즈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사’ 또는 ‘미국사 비빔밥 요리’라고 자칭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 하나, 그가 힘줘 얘기하는 부분이면서 미국사 시리즈를 쓰고자 했던 가장 결정적인 부분이 있다. 바로 반미(反美)도, 친미(親美)도 아닌 미국에 대한 객관적 시각의 정립이다. 한국 사회에서 지혜롭게 사는 어지간한 이들이라면 미국의 장점과 단점을 적절히 섞어서 짚어주는 안전 노선을 추구하게 마련이지만 이들 역시 미국에 대한 근본 입장은 반미 또는 친미, 한 편에 가 닿는다. 반미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하고, 친미로부터도 버림받을 것임이 분명하지만 ‘강준만의 뚝심’은 다시 한 번 우직하게 걸음을 내딛는다. 하워드 진, 노엄 촘스키 등 미국 내 대표적인 진보학자들의 시각과 견해는 물론 새뮤얼 헌팅턴, 대니얼 부어스틴 등 오른쪽에 있는 또 다른 이들 역시 치우침 없이 각자의 논거를 갖고 등장한다. 일상에 대한 미시사, 잘못 알려진 상식 등을 짚어 가며 읽다 보면 아주 재미있다. 다만 정치, 경제, 군사, 외교, 사회, 문화, 언론 등 전방위적으로 샅샅이 훑고 있으니 자칫 흐름을 놓칠 수 있다. 예컨대 ‘종교가 미국 사회 정립에 미친 영향’ 등 구체적인 키워드를 움켜쥐어야 한다. 1~5권 각 1만 4000원.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유럽, 美 무기 보호무역에 뿔났다

    자유무역을 선도한다는 미국이 정작 자국 기업에 대해 철저히 감싸고 돈다는 이유로 비난을 사고 있다. 친미 성향의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최근 공식석상에서 “다른 국가로부터 보호무역을 철폐하겠다는 소리를 듣고 싶다면 미국이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한다.”며 이례적으로 미국의 보호주의 정책을 꼬집었다. 문제의 발단은 미 국방부 펜타곤의 공중급유기 공개입찰이다. 17일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펜타곤은 400억달러(약 45조 1600억원)에 달하는 공중급유기 179대를 미 공군에 공급할 업체를 물색하고 있었다. 미국의 보잉사와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EADS)·노스롭 그루먼 컨소시엄이 치열한 경쟁을 벌인 끝에 2008년 2월 EADS 컨소시엄이 계약을 땄다. 보잉은 “노스롭 그루먼의 강한 로비가 작용한 불공정 경쟁이었다.”며 즉각 반발했다. 미국 회계감사원(GAO)도 계약을 무효화하도록 지시했다. 펜타곤 측은 이에 따라 다시 입찰에 나섰다. 노스롭 그루먼은 지난 주에 돌연 입찰 포기를 선언했다. 펜타곤이 업체선정방법론, 즉 계약조건을 바꾸는 바람에 보잉 767처럼 작은 기종의 급유기에 유리한 경쟁이 됐다는 이유에서다. EADS의 공중급유기는 대형 항공기인 에어버스 300에 기반하기 때문에 동체가 크고 제작비용이 다소 비싸다. 그러나 실용적인 데다 공군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ADS 미국지사의 션 오키프 대표는 “입찰 가격이 고정된 경쟁에서는 우리가 밀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결국 보잉은 단독으로 입찰에 뛰어들어 유리한 조건에서 계약을 성사시킬 가능성이 커졌다. 프랑스 의회 재정위원회 소속 베르나르 카라용 의원은 “이 사태가 미국 보호무역의 단적인 사례”라고 비판했다. 또 “충격적인 사실은 워싱턴 행정부가 자유무역 신장과 보호무역 철폐에 대한 연설을 끊임없이 하면서 정작 자국의 문제에 있어서는 반대의 선택을 했다는 것”이라고도 목소리를 높였다. 프랑스 의원 36명은 유럽연합(EU) 무역당국에 미국 시장에서 유럽 기업들이 더 나은 처우를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해 달라는 청원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이달 말 워싱턴에서 가질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유럽의 ‘불편한 심기’를 전달할 예정이다.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도 펜타곤의 결정에 대해 “상당히 실망했다.”면서 “자유시장과 자유경쟁 철학이 지켜져야 한다고 믿는다.”고 거들었다. 한편 미국은 브라질에 전투기를 판매하려는 프랑스의 계획을 훼방놓고 있어 더욱 미움을 사고 있다. 지난해 9월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사르코지 대통령과 만나 프랑스 다소항공이 생산하는 라팔 다목적 전투기를 매입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F18 슈퍼 호넷을 생산하는 보잉과 계약을 체결하도록 브라질 정부에 압력을 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 [월드 뉴스라인] 이라크 野지도자 영장 재발부

    오는 7일 총선을 앞두고 이라크 사법당국이 주요 시아파 정당 지도자에 대해 7년 전 암살사건을 문제삼아 체포영장을 재발부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정치탄압 논란이 커지고 있다고 AFP통신이 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라크 최고사법위원회는 2003년 친미 성향의 성직자 마지드 알 코이를 암살한 사건에 개입한 혐의로 강경 반미 성향을 지닌 무크타다 알 사드르에 대한 체포영장을 재발부했다. 이에 대해 알 사드르가 이끄는 이라크국민연맹(INA) 측은 정치 탄압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 아메리카대륙 美·加 빼고 뭉치기

    한때 ‘미국의 뒷마당’ 취급을 받던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 국가들 사이에서 독자적인 목소리를 높이려는 움직임이 갈수록 활발해지고 있다. 멕시코 칸쿤에 모인 이 지역 32개 국가 정상들은 이틀에 걸친 정상회담을 마친 뒤 미국과 캐나다를 배제한 새로운 중남미 국제기구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고 주요 외신들이 23일(현지시간) 일제히 보도했다. 이번 회담을 주최한 펠리페 칼데론 멕시코 대통령은 새 국제기구가 민주주의와 인권을 옹호하고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 국가들 사이의 협력 증진에 이바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중남미 국제기구가 출범할 경우 기존에 아메리카 대륙을 대표하는 국제기구였던 미주기구(OAS)는 위상 약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32개국 정상회의에서도 미국이 좌지우지하는 OAS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게 등장했다. 1962년 반미국가라는 이유로 OAS에서 퇴출당했던 쿠바의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은 미국을 의식한 듯 “순수한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 국가들의 국제기구”라는 원칙을 강조했다.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새로운 국제기구를 창설한다는 원칙에 합의하긴 했지만 앞길이 순탄치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새 국제기구가 OAS를 대체할 것인지, 보완할 것인지부터 첨예한 논쟁거리였다. 볼리비아·에콰도르 등 좌파 성향 지도자들은 새 국제기구가 OAS를 대신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콜롬비아·칠레 등 친미성향 지도자들은 OAS 존속 입장을 고수했다. 새 국제기구의 구체적인 모습은 실무작업을 거쳐 2011년 베네수엘라 회의에서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열린세상]뺄셈의 사회, 덧셈의 사회/주창윤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

    [열린세상]뺄셈의 사회, 덧셈의 사회/주창윤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

    돌이켜 보면 우리 현대사는 뺄셈의 논리에 의해 지배되어 온 것이 아닌가 싶다. 뺄셈의 사회가 상대에 대한 배제와 소통 부재로 난장(場)의 형태를 보여준다면, 덧셈의 사회에서는 중재와 합의 도출 그리고 공론 영역이 확대된다. 해방 이후 김구와 여운형의 암살은 뺄셈의 논리가 극단적으로 표출된 사건이었다. 중도우파와 중도좌파였던 김구와 여운형은 극우와 극좌가 지배하는 해방공간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다.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갔던 배제의 논리는 이후 한국 사회에서도 지배적 코드로 굳어져 왔다. 이승만의 국가만들기 프로젝트는 극우, 친미, 정권유지 외에 어떤 가치판단도 수용하지 않았다. 박정희의 경제건설 프로젝트에는 경제와 성장 외에 다른 생각과 이념이 들어갈 공간이 거의 없었다. 뺄셈의 논리는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정권에서도 이어졌다.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은 뺄셈의 공식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러나 더불어 사는 세상이라는 정치목표가 달성된 것은 아니었다. 갈등은 더욱 더 표면화되었고, 진영과 진영 사이 논쟁은 논쟁으로 끝났으며 합의가 도출되지 못했다. 뺄셈의 논리는 소통하지 않으려는 태도다. 자신의 정당성에 대한 확신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것이다. 뺄셈의 사회는 강퍅해질 수밖에 없다. 뺄셈의 논리가 지배하면 사회의 다양한 제도와 주체들 사이에 소통의 단절이 오고 공론 영역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대의 민주주의의 외양은 유지하되 본질은 사라지는 것이다. 소통되지 않는 사회, 소통하려는 의지를 잃어버린 사회에서 민주주의의 이념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국민들은 다양한 사회제도들에 대하여 정당성을 부여하지 않으려 한다.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논란이 되었던 것은 소통의 문제였다. 촛불집회는 소통의 부재가 낳은 산물이었다. 촛불집회는 마무리되었지만, 이후에 계속되는 정치 상황을 보면 변화된 것은 거의 없다. 용산참사, 미디어 관계법, 세종시를 둘러싼 갈등관계가 대표적인 예다. 철거민과 경찰관 등 6명의 목숨을 앗아간 용산참사가 부분적으로나마 타협점을 찾은 것은 345일 만이었다. 국회에서 미디어 법은 통과되었지만 정당하다고 판단되는 논리는 없었다. 세종시 문제는 더욱 더 복잡하게 진행되고 있다. 정부는 세종시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함으로써 세종시 수정절차에 착수했다.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해서 세종시법이 수정되어야 한다는 논리와 국민과의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논리 사이에 접점을 찾기란 매우 힘들어 보인다. 세종시와 관련해서 어떤 절차가 합의되고 논의될지 알 수 없다. 현재 진행되는 상황을 보면 합리적인 절차와 합의의 과정은 난망해 보인다. 사회적으로 긴요한 쟁점들과 관련된 논의와 주장이 생산되고 부딪치면서 합의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배수의 진을 치고 맞붙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사회는 덧셈의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다. 합리적 소통과 공론의 영역이 넓어지고 활성화되는 열린 사회다. 지양은 소통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과정과 상대에 대한 관용으로부터 나온다. 지양은 기계적 중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중도나 지양은 둘 사이 산술적 통합이 아니라 의미와 관점의 공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양까지 나아가는 것은 아니더라도 중도가 되는 일조차 우리 사회에서는 너무 힘겨워 보인다. 서로에 대해서 관용하지 않고, 극단의 논리가 지배하기 때문이다. 때로 중도나 지양은 비굴하게 보여지기도 한다. 나의 관점을 따르면 우리 편이고 아니면 상대 편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당대의 현실 앞에서 합리적인 소통과 공론 영역을 말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회의마저 든다. 지금 우리 사회 열차의 목적지는 ‘열린’ 종착역이 아니라 ‘닫힌’ 종착역을 향하고 있다. 블랙홀 안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어떤 사회적 희생을 초래할 것인지는 모두 다 알고 있다. 우리의 현대사가 증언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 사회 열차는 질주하고 있다.
  • 오바마-사르코지 등 돌리나

    프랑스에서 지난 반세기 동안 가장 친미적인 대통령으로 평가 받는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프랑스에서 역대 미국 대통령 중 가장 유명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우호적인 관계가 냉각 기류로 돌아섰다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2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사르코지는 오바마를 단 한번 만나고도 ‘나의 친구(My friend)’라고 말하는 등 오바마 미 대통령에 대한 친밀감을 표시해 왔다. 하지만 프랑스와 미국이 몇 가지 현안을 두고 맞부딪치면서 사르코지가 반미 주의자였던 자크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과 같은 ‘드골주의자(비동맹 외교 정책을 강조한 드골 전 대통령의 정치 사상)’가 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오바마 미 대통령은 지난 6월 프랑스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기념식 참석을 위해 파리를 방문했으나 바쁜 일정을 이유로 엘리제궁의 환영 행사를 거절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이후 프랑스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병력 증파 요청을 거부했다. 현안 대립 외에도 두 사람의 성향 차이도 이들의 관계 냉각에 한몫을 하고 있다는 평가다. 사르코지가 직관적이고 직설적인 반면 오바마는 신중하기 때문이다. 프랑스 측 전문가에 따르면 사르코지는 오바마의 신중함을 우유부단으로 보고 이러한 점에 실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파리 싱크탱크인 전략연구재단의 프랑수아 에이스부르는 “사르코지는 미국을 비판하더라도 시라크 대통령과는 다른 입장에서 비판을 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월드이슈] 무대뒤 통일 주역 ‘그때 그 사람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세계는 베를린의 한 극장을 주목했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를 이끌어낸 3인방이 한자리에 모였던 까닭이다. 조지 H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가 그 주인공이었다. 이들은 한동안 깊은 대화를 나누며 ‘통일의 추억(?)’을 나눴다. 하지만 통일의 공이 이들에게 있지만은 않다. 1871년 독일 통일을 이뤄낸 빌헬름 1세의 뒤에 명재상 비스마르크가 있듯 통일을 위해 숨가쁘게 뛰어다닌 외교부의 수장들이 있었다. 지도자의 후광에 가려진 주역들을 알아봤다. ●베이커 전 미 국무장관 제임스 베이커는 1989년부터 1992년까지 미 국무장관을 역임하면서 독일 통일과 탈냉전의 한복판에 서 있던 인물이다.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과 함께 독일 통일 이후의 전략을 세우고 소련의 붕괴를 준비했다. 당시 러시아 전문가였던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과 더불어 최고의 전략가로 통했다. 1989년 12월 부시와 고르바초프가 냉전체제 종식을 선언한 몰타회담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낸 것도 그였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자리에서 물러난 뒤 학계로 돌아갔지만, 풍부한 외교 경험을 바탕으로 유엔 및 이라크특사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2000년에는 아들 부시의 선거 캠프에서 고문직을 맡는 등 현실 정치에도 가끔씩 얼굴을 내보이고 있다. ●셰바르드나제 전 소련 외무장관 그루지야 출신의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는 1985~19 90년 소련 외무장관을 역임했다. 고르바초프에 의해 외무장관으로 발탁,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를 최전선에서 지휘했다. 고르바초프보다 더 급진적인 개혁을 추구, 마찰을 빚기도 했다. 특히 소련의 해체를 진두지휘했다. 일각에서는 그를 ‘소련 덕에 컸지만 소련을 해체시킨 이중적 인물’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소련이 해체된 뒤 그루지야로 건너간 셰바르드나제는 친미노선을 추구하며 미국의 원조와 지원을 이끌어 냈다. 1995년 그루지야 대통령에 당선, 다시 권력의 최정점에 섰다. 하지만 부패 문제로 2003년 장미혁명에 의해 대통령직을 하야하는 치욕을 당했다. ●겐셔 전 독일 외무장관 ‘20세기의 비스마르크’라고 불리는 한스 디트리히 겐셔가 독일 통일에 가장 큰 공이 있다는 주장에는 이견이 없다. 1974년부터 1992년까지 무려 18년간 외무장관을 지낸 그는 셰바르드나제, 베이커와의 두터운 신뢰와 친분을 쌓아 통일을 앞당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서방 일변도의 독일외교를 동쪽으로 확대, 동서 균형과 화해를 추구한 ‘탈서구적’ 외교노선은 ‘겐셔리즘’이라는 독트린으로 발전됐다. 통일에 대한 기여도와 국민적 인기를 바탕으로 독일 대통령 후보로도 거론됐지만 소수당 출신이라는 장벽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1992년 정계에서 물러났다. 현재 저작 활동을 하며 남은 여생을 보내고 있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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