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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련, 1963년 한국과 수교검토 왜

    옛 소련이 남한과의 수교·경제 교역 가능성을 검토한 1963년은 러·일 전쟁 패전(1904년)으로 소련이 한반도에서 발을 뺀 지 59년 되던 해다. 전문가들은 당시 공산주의 진영의 거두인 소련이 우리나라와 교류를 꾀하려 한 의도는 당시 국내외 정세를 들여다보면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소련이 핵미사일을 쿠바에 배치하려는 시도를 두고 미·소가 전쟁 직전까지 치달았던 상황)를 평화롭게 해결한 소련은 이듬해 미국 등과 ‘부분 핵실험 금지 조약’을 체결하고 한국 등 자본주의 진영 국가에 협력의 손길을 뻗었다. 우선 ‘수교·교역 검토’의 배경에는 당시 소련 1인자였던 니키타 흐루쇼프 공산당 서기장의 ‘평화공존’ 노선이 깔려있다. 1953년 권좌에 오른 흐루쇼프는 전임자였던 이오시프 스탈린의 ‘1인 독재’를 비판하며 ‘적대세력과의 화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자연스레 자본주의 진영과의 수교·교역 확대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으며 남한과의 수교 검토도 이 같은 대외정책의 연장선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박상철 전남대 교수는 4일 “흐루쇼프의 소련은 미국과의 ‘체제대결’이 아닌 ‘체제경쟁’을 원했다.”라면서 “이 때문에 소련은 핵무기 개발 등에는 힘썼지만 재래식 병력은 줄이려 했고 이를 위해 남한과의 평화협력이 필요했던 듯하다.”고 말했다. 급변하던 동북아 정세도 소련의 판단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된다. 당시 소련은 중국과 이념분쟁을 벌이며 사사건건 충돌했지만, 중국과 북한은 밀월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때문에 소련으로서는 극동 지역에 일종의 ‘안전판’을 만드는 것이 시급했다. 신종대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미국과 일본은 1960년 방위조약을 체결했는데 소련은 자신을 타깃으로 한 ‘반공 군사 동맹’으로 봤다. 그래서 남한에도 하나의 지렛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느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소련의 수교 움직임에는 당시 남한의 정세 변화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1963년은 2년 전 5·16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군정’이 남한의 실권을 쥐고 있을 때다. 소련은 좌익활동 전력이 있는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에 대해 친미파인 이승만 전 대통령과 달리 대화가 가능한 인물로 판단했다. 전문가들은 당시 한·소 수교가 실제 이뤄졌다면 한반도를 둘러싼 냉전이 급속도로 와해됐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박 교수는 “소련이 남한과 수교하고 미국도 북한과 국교를 맺어 교차수교를 했더라면 남북이 평화협정을 맺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면서 “우리나라도 동방정책(서독이 추진한 소련 등 동유럽국과의 관계정상화 정책)을 펼친 서독식 평화유지 방식을 따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당시 한·소 수교 논의는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흐루쇼프가 1964년 실각했고, 1963년 10월 선거를 통해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반공을 국시로 내걸면서 우리나라와 공산권의 관계가 급속도로 악화됐기 때문이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男400m] “조국을 대표해 달린게 金보다 값져”

    [男400m] “조국을 대표해 달린게 金보다 값져”

    열아홉살 청년을 달리게 한 것은 애국심이었다. 우승후보를 가장 예측하기 어려웠던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400m에서 극적인 막판 역전 레이스로 금메달을 딴 키라니 제임스(그레나다) 얘기다. 2일 서울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그는 “조국을 대표해 달릴 수 있었다는 게 내겐 어떤 세계기록이나 금메달보다 값지다.”고 했다. ●육상시작 1년만에 세계新 달성 결승전이 열렸던 지난달 30일로 돌아가 보자. 관중들의 눈은 5번 레인의 제임스보다 바로 옆에 있던 2009년 대회 우승자 라숀 메릿(25·미국)에게 쏠려 있었다. 약물 파동으로 인한 21개월의 공백을 깨고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할지 모두가 궁금해했다. 기대에 부응하듯 메릿이 경기를 주도했다. 결승선 직전까지 그랬다. 40초를 넘어갈 즈음 제임스가 치고 올라왔다. 무서운 막판 스퍼트였다. 44초 60으로 제임스가 가장 먼저 들어왔다. 메릿과 불과 0.03초 차이였다. 그렇게 메릿을 이기고 싶었느냐고 물어봤다. 예상과는 다른 답이 돌아왔다. “메릿을 비롯해 쟁쟁한 선수들이 많았지만 그들을 의식하진 않았다. 조국을 대표해 이곳에 왔으니 무조건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렇게 조국에 사상 첫 번째 세계선수권대회 금메달을 안겨 주고 나서 제임스는 고향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구 반대편에서 어머니는 울고 있었다. 인구 9만명의 섬나라, 그 안에서도 서쪽의 작은 어촌인 구야브가 그의 고향이다. 아들에게 “네가 자랑스럽다.”고 말해 주고 나서 어머니는 집 바깥에 커다란 국기를 내걸었다. 총리와 체육부 장관을 비롯해 집을 찾아온 손님들과 일일이 포옹을 했다. 그날만큼은 제임스의 날, 아니 그레나다의 날이라고 해도 좋았다. 베네수엘라에서 160㎞ 떨어진 그레나다는 강화도보다 크고 진도보다는 작은 나라다. 프랑스와 영국의 식민지배를 거쳐 1974년 독립했지만 1983년 친미 노선을 걷지 않은 인민혁명정부 때문에 미국의 침공을 받기도 한 힘 없는 나라이기도 하다. 제임스는 “이번 금메달로 한국인들에게 그레나다를 알릴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기쁘다.”고 했다. 지난달 6일 런던 다이아몬드리그 대회에서 44초 61로 우승하며 성인무대 신고식을 치른 제임스는 사실 육상 천재다. 좀 늦은 나이인 13살 동네 육상 클럽에 가입하며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한 제임스는 불과 1년 뒤 14세 기록으로는 세계 최고(47초 86)를 기록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2009년 세계유스챔피언십대회 금메달, 지난해 세계 주니어챔피언대회 금메달 등 각종 기록을 휩쓸었다. 2년 전부터는 미국 앨라배마대학에 체육장학생으로 선발돼 미국서 살며 훈련을 하고 있다. ●“다음 목표는 아닌 기록 단축” 다음 목표는 무조건 내년 런던올림픽일 거라고 생각하고 각오를 물어봤더니 또다시 예상 밖의 대답이 돌아온다. “나의 마음은 런던에 있는 게 아니라 앨라배마에 있다.”는 거다. “내 목표는 금메달을 따는 게 아니라 내가 뛰는 레이스마다 조금씩 기록을 단축시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라이벌이 누구냐고 물으니 “400m를 뛰는 선수들은 모두 훌륭하다. 심지어 5살짜리 어린애라도 과소평가할 수 없다.”고 진지하게 덧붙인다. 소년티도 채 벗지 못한 얼굴로 제임스는 그렇게 말했다. 그와 조국에 메이저대회 첫 금메달을 안겨준 대구가 특별하지 않을 수 없다. 제임스는 “대구 사람들이 육상을 이렇게 좋아하는지 몰랐다.”면서 “이곳에서의 환대와 금메달의 추억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우리도 제임스라는 영웅의 탄생을 지켜본 만큼, 그를 잊지 못할 것 같다. 대구 김민희·윤샘이나기자 haru@seoul.co.kr
  • [이제는 공공외교다] 이슬람의 마음을 사라:미국

    [이제는 공공외교다] 이슬람의 마음을 사라:미국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전의 가장 큰 교훈은 군사적 성공이 승리의 충분조건이 아니라는 것이다.”(로버트 게이츠 전 미국 국방장관)미국처럼 친구만큼 적이 많은 국가도 드물다. 냉전기 경쟁자였던 소련이 1991년 붕괴한 뒤 국제 사회의 독보적 패권을 쥐면서 세계 곳곳에서 반미 감정이 들끓기 시작했다. 미국을 향한 반감은 2001년 ‘9·11 테러 공격’으로 절정에 이르렀다. 미 행정부가 한동안 박물관에 넣어두었던 ‘공공외교’ 카드를 다시 꺼내 든 건 이때부터다. 특히 중동을 비롯한 ‘이슬람권 껴안기’에 전력을 다했다. 하지만 효과는 냉전 때만큼 커 보이지 않는다. 미국은 ‘소통’을 전제로 한 공공외교를 펼 때조차 “말하려고만 할 뿐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비아냥을 듣곤 한다. 로스앤젤레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미국의 공공외교는 역사적으로 눈앞에 ‘적’이 등장할 때 활발해졌다. 9·11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며 공공외교가 꽃을 피운 것도 이 때문이다. 9·11 테러는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공격 이후 미 본토에 행해진 최악의 외부 공격이었던 터라 미국인이 느낀 충격은 전란만큼 컸다. 스콧 스나이더 아시아재단 한·미 정책연구소장은 “당시는 미국이 패권을 독점한 ‘1극 체제’였던 탓에 세계에 어떤 문제가 터져도 비난이 미국을 향했다.”고 말했다. 그만큼 국제 사회의 반미 감정은 극에 달했고 그 중심에 아랍사회가 서 있었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등을 상대로 한 즉각적인 군사 작전에 돌입하면서 ‘제국의 독선’에 등을 돌린 아랍권 시민들의 마음 얻기에 힘을 기울였다. 바로 공공외교를 통해서다. ●학자 등 초청해 ‘미국가치’ 교육 냉전 때 공공외교의 통합 본부 역할을 했던 미국 해외공보처(USIA)는 1999년 국무부에 흡수 통합됐다. 공공외교를 미국의 중심 외교 정책으로 키우겠다는 취지에서였다. 그러나 외교가에서는 “소련의 해체로 ‘적’이 사라지자 국제 사회의 마음을 살 이유가 줄어들어 USIA를 없앴다.”는 풀이가 힘을 얻었다. 한 해 평균 9억 달러(약 9648억원)가 투입되는 ‘애물단지’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9·11 이후 아프간전을 개전하면서 얘기가 달라졌다. 미국은 ‘30세 이하 중동 지역 청년층’을 공공외교의 핵심 목표로 삼았다. 미국이 우선 신경 쓴 분야는 공보 프로그램이었다. 청년들의 귀에 박힐 만한 미국 팝송과 현지 음악을 적절히 섞어 틀어주며 사이사이에 뉴스를 끼워 넣었던 아랍어 라디오 방송 ‘알사와’가 9·11 이후 생겨난 대표적인 미국의 국제 방송이다. 또 알자지라 등 아랍권 방송에 맞서 미국 시각의 뉴스를 22개 중동국에 전하는 ‘알후라’ 방송도 이때 선보였다. 하지만 시청률은 대체로 저조하다. 필립 셉 남가주대(USC) 공공외교센터 소장은 “아랍권의 소식을 알자지라처럼 ‘아랍에서 아랍으로’ 전달하는 것과 ‘미국에서 아랍으로’ 전달하는 것은(근본적 신뢰도에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중동국과의 교류프로그램도 크게 늘려 나갔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교류 프로그램 운영에 강점을 보이며 ‘친미파 육성’의 주요 수단으로 활용해 왔다. 교류 제도는 공보 프로그램과 함께 공공외교의 한 축이다. 학자·학생을 중심으로 한 ‘풀브라이트 제도’와 전 세계 전문직 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국제 방문자 프로그램’ 등이 대표적이다. 오피니언 리더나 차기 지도자급 인재들을 자국으로 불러 미국의 가치를 익히도록 해 아랍인의 마음을 얻으려 애썼다. ●“아랍에 직접 가 무슬림 배워라” 지적도 2009년 취임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공공외교를 미국 외교의 전면으로 끌어냈다. 오바마 행정부가 공을 들이는 ‘스마트파워’(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의 결합) 정책의 5개 전략에 공공외교가 포함됐다. 무엇보다 중동지역 청년층에 미국의 이해관계와 가치를 알리려고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 등 뉴미디어를 적극 이용하기 시작했다. 알렉 로스 미 국무부 장관 혁신 담당 수석 자문관은 “미국이 중동 지역의 민주화를 유도하기 위한 IT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 쏟아부은 돈은 2800만 달러(약 300억원)에 이른다.”고 전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미국의 공공외교가 여전히 ‘대화’보다는 ‘독백’에 가깝다고 비판한다. 9·11 테러 직후 공공외교를 전담했던 샬럿 비어스 전 국무부 차관도 미국의 일방주의 외교를 경계하며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말하느냐’가 아니라 상대방이 ‘무엇을 듣느냐’이다.”라고 강조했다. 미국의 한 외교 전문가는 “아랍인은 미국이 자신들을 본토에 불러 가치를 설파하려고만 하지 말고 미국인이 아랍지역으로 연수를 와 무슬림의 문화와 입장을 이해하길 바란다.”고 꼬집었다. 많은 전문가들은 올해 초 본격화한 아랍의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반미 감정이 다시 고개를 드는 등 미국의 10년간 노력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도 여전히 일방주의가 해소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 한 핏줄이라서 반미 약화 vs 미국 편 든다면 반미 악화

    지난 2003년 4월 당시 토머스 허버드 주한 미국대사는 미군 차량에 치여 숨진 효순·미선양 사건에 대해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사과했다는 뜻을 대신 밝혔다. 허버드 대사는 이어 6월 효순양의 아버지를 만나 애도의 뜻을 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미감정’은 완전히 사그라지지 않았다. 만약 그때 한국계 미국 대사가 사과하고 애도를 표했다면 한국 국민 눈에 어떻게 비쳤을까. 아무래도 한국인과 똑같은 외모의 미 대사가 한국말로 사과를 했다면 더 진정성이 있는 것으로 느껴졌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 2008년 6월 당시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는 미국산 쇠고기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을 면담한 직후 기자들에게 “한국 국민이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과학적 사실에 대해 좀 더 배우길 희망한다.”고 ‘훈계’조로 말해 야권의 강한 비판을 초래한 바 있다. 앞서 그 전달 버시바우 대사는 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에게 항의했던 일이 공개돼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만약 그때 한국계 대사가 ‘훈계’하고 항의했다면 한국 국민의 귀엔 어떻게 들렸을까. 같은 핏줄이 다른 핏줄의 편을 드는 것으로 인식되면서 더 큰 적개심과 배신감을 촉발했을 가능성이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차기 주한 미국대사로 공식 지명한 성김 국무부 북핵 6자회담 특사는 한국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냈고 한국말을 상당 수준 구사할 줄 안다. 외모만 보면 한국인과 똑같기 때문에 한국 국민 눈에는 주한 미국대사에 대한 고정적 이미지가 크게 흔들릴 수 있다. 외교 소식통은 26일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계 대사를 지명한 것은 친미감정을 확산시킴으로써 궁극적으로 미국의 국익에 보탬이 되도록 하려는 계산”이라면서 “하지만 한·미 간에 무역 분쟁과 같은 제로섬 게임의 국익 충돌이 빚어질 경우 한국계 대사라도 미국의 이익을 대변할 수밖에 없는 만큼 더 큰 반감을 부를 우려도 있다.”고 내다봤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OPEC 증산 불발… 세계경제 먹구름

    OPEC 증산 불발… 세계경제 먹구름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석유 증산 합의에 실패, 상당기간 고유가가 지속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올해 유가가 배럴당 130달러까지 치솟을 것이란 최악의 시나리오도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회복세에 접어든 세계 경제에 악재가 생긴 셈이다. OPEC 12개 회원국은 8일(현지시각) 오스트리아 빈에서 개최된 정례회의를 갖고 석유 증산을 논의했지만 일부 회원국들의 반대로 증산이 무산됐다. 증산을 추진했던 사우디아라비아의 알리 알나이미 석유장관은 “합의에 도달할 수 없었다. 이번 회의는 사상 최악의 회의 가운데 하나였다.”고 말했다. 사우디는 이번 회의에서 하루 석유 생산량 쿼터를 150만 배럴 추가한 3030만 배럴로 늘리는 방안을 제안했다. 쿠웨이트, 카타르,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은 사우디와 함께 이 같은 방안에 찬성 입장을 나타냈다. 하지만 이란과 에콰도르, 베네수엘라, 알제리, 앙골라, 이라크, 리비아 등 7개국이 반대 의사를 나타냈다. 나이지리아는 “OPEC의 결정을 따르겠다.”면서 한발 물러났다. 상대적으로 경제 상황이 안정된 친미 성향의 4개국과 분쟁과 테러, 시위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다른 회원국들간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얽힌 셈이다. 합의 무산의 가장 큰 이유는 중동 지역의 정치적 긴장 때문이다. 가령, 카타르는 리비아 반군을 지지하고 있다. 사우디는 시아파 반정부 시위대를 강경 진압한 수니파 바레인 정권을 지지, 시아파 국가의 맹주인 이란과 악감정이 생겼다. 이들 국가들이 일관된 합의를 도출하기엔 감정의 골이 너무 깊어져 버렸다. 로이터는 “과거 중동 지역에 정치적 긴장이 고조되면 OPEC에서 사우디의 영향력이 약화된 선례가 많았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유가다. 지난 1년간 배럴당 30~40달러 가까이 치솟은 유가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OPEC을 중심으로 한 석유 생산국들의 증산이 불가피했다. 국제사회의 요구도 거셌다. 지난달 국제에너지기구(IEA)도 “최근 고유가 행진으로 가계와 기업의 소득이 감소되고 인플레이션이 심화, 증산이 협의돼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합의 실패로 우려는 더 커졌다. 당장 이날 7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유(WTI)는 전날 종가보다 1.65달러(1.6%) 오른 배럴당 100.74 달러에 거래를 마감했다. 지난달 31일 이후 최고치다. 5월 이후 배럴당 100달러 수준으로 겨우 안정세에 접어든 유가가 다시 요동칠 기미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더구나 OPEC의 다음 정례회가 12월로 예상돼 있어 올해 안에 유가가 하락될 것이란 기대감마저 무너진 상황이다. JP 모건 체이스의 애널리스트들은 “올해 유가가 배럴당 130달러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압둘라 알바드리 OPEC 사무총장은 “이번 회의에서 실질적인 변화는 없었지만, 다음 회의가 3개월 뒤에 열리길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사우디는 이번 합의와 별도로 석유 생산량을 늘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우디는 6월에도 산유량을 하루 최소 50만배럴씩 추가, 매일 950만∼970만 배럴을 생산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번 합의를 등지고 사우디가 증산을 하겠다는 것은 OPEC 생산량 쿼터제의 종식을 의미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기고] 고엽제 논란, 정치적 악용 말아야/한기호 국회의원

    [기고] 고엽제 논란, 정치적 악용 말아야/한기호 국회의원

    경북 칠곡의 미군기지 캠프 캐럴에 고엽제를 매몰했다는 전역 미군의 증언으로 우리 사회에 충격이 확산되고 있다. 기지 내 다른 2곳에 독극물을 묻었다는 증언도 나오고 있고, 이 물질이 인천 부평의 미군기지 캠프 마켓으로 옮겨져 처리됐을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고엽제는 흔히 미군이 베트남전쟁 당시 밀림에 다량 살포한 2·4·5T계와 2·4D계를 혼합한 제초제를 가리킨다. 2·4·5T는 제조 과정에서 미량의 다이옥신을 함유하고 있고, 이것이 인체에 들어가면 각종 암과 신경계 마비를 일으킬 수 있다. 이번 의혹은 무엇보다도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것으로 한 점 의혹이 없도록 투명하게 조사해야 하며 결과도 마땅히 공개해야 한다. 잘못 처리된 부분이 있더라도 사실 그대로 알리고, 문제점이 있다면 철저히 해결해야 하며, 오염된 곳은 완벽히 복구하고, 피해자가 있다면 최선을 다해 보상해야 한다. 다행히 미국은 과거와 달리 고엽제 의혹 조사에 대해 전향적이고 적극적인 해결 의지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 26일 서울 용산 미군기지에서 열린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환경분과위원회에서는 미국 측이 우리 쪽의 요구를 거의 다 수용했다고 한다. 월터 샤프 주한 미군사령관도 ‘적극적이고 투명한 규명’을 약속했고, 미8군사령부도 같은 달 25일 소속 대령 2명을 미국으로 파견해 전역 미군의 증언을 채록했다. 기지 외곽 지하수 관정 두 곳의 시료를 채취했으며, 조만간 기지 내부 고엽제 매몰 의심 지역에 대한 탐색도 시작된다. 다행스러운 건 국립암센터 조사 결과 칠곡군 지역주민의 발암률은 경북지역 평균과 비슷한 수준이며, 암 사망률은 경북과 비교하면 오히려 낮은 것으로 나타나는 등 아직 심각한 증상은 없다고 한다. 아무튼, 우리 정부와 미군 당국은 고엽제 매몰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국민에게 알려야 할 의무가 있는 만큼, 이번 사태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가 하루빨리 이뤄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환경 피해만큼이나 우려되는 것은 이 문제로 말미암아 우리 사회가 또다시 반미 대 친미의 이분법적 구도로 분열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어떤 이들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의도적으로 이슈화에 매달릴 수도 있을 것이다. 언론 보도를 보면 이미 캠프 캐럴 앞에서는 연일 촛불문화제가 열리고 있고, 다양한 정치적 퍼포먼스도 진행되고 있다. 또 일부 단체들은 조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벌써 SOFA 전면 재개정,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직접 사과도 요구한다. 과연 이들이 한·미 당국의 합동 조사결과에 대해 순순히 인정할지도 걱정스럽다. 전문가들이 “우려할 수준이 아니다.”, “근거 없다.”고 외쳐봐야 소용없을 것이다. 우리는 지난 2008년 광우병 사태와 지난해 천안함 폭침 당시 근거 없는 의혹 제기로 국력이 얼마나 소모되었는지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미국의 체면을 봐서 덮고 가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철저하고 투명한 진상조사를 통해 온 국민이 공감하고 이해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핵심이다. 다만, 지나치게 과민 반응하거나 이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려는 이들이 있다면 경계하는 것이 마땅하다.
  • “한국, 경주에 핵 재처리시설 건설 가능성”

    미 국무부 비밀 전문에서 ‘한국이 경북 경주에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시설을 건설할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의 기자로서 2008년부터 위키리크스와 줄리언 어산지를 취재해온 마르셀 로젠바흐가 26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 앞서 밝힌 내용이다. 그는 3월 ‘위키리크스-권력에 속하지 않을 권리’(21세기북스 펴냄)를 내놓았고 재판 발행을 앞두고 한국을 찾았다. 그는 “외교전문의 내용을 보면 양국관계를 바라보는 미국의 시각에는 별다른 문제나 혼선이 있는 것 같지 않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핵 재처리를 둘러싼 문제에 갈등의 소지가 있음을 암시하는 전문의 어조는 분명한 경고의 목소리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2010년 2월 22일 자 보고서는 천영우 당시 외교통상부 2차관의 말을 직접 인용했다. 지난해 2월 17일 미국 외교당국자를 만난 천 차관은 한국의 핵연료 재처리 문제가 한·미관계에서 중요한 사안이 될 수 있음을 암시했다고 전했다. 천 차관은 한국이 이제 세계 5대 핵에너지 생산국이며, 일본 같은 다른 핵에너지 생산국들은 재처리 시설을 갖추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또한 “천 차관은 이 문제에서 한국이 일본과 차별대우를 받는다는 인상을 한국의 여론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임을 강조했다.”고 기록했다. 미 대사관 측은 천 차관의 발언에 대해 “미국에 대해 높은 친화력을 지닌 유능하고 노련한 외교관이 보여준 이례적으로 강력한 태도”라고 평가했다. 이 밖에도 지난해 11월 주요20개국(G20)정상회의 개최와 관련해서 “한국이 ‘세계무대에서 선도적 국가로서의 빛나는 역할’에 도취되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로젠바흐는 “이명박 대통령은 그의 친미정책을 위해 국내 정치적인 문제들과 리스크들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서 “일례로 이 대통령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위해 한국 시장을 다시 개방할 때 미국에 굴복했다는 엄청난 비난을 야권으로부터 들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대통령은 언제나 미국과의 강력한 양자관계를 추구한다.”고 덧붙였다. 로젠바흐에 따르면 주한 미대사관에서 작성한 외교전문은 모두 1980건이다. 현재 위키리크스 홈페이지에 공개된 서울발 전문은 16건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오바마 중동플랜] ‘친아랍’ 굴레벗은 오바마, 중동민심 껴안기 승부수 던졌다

    [오바마 중동플랜] ‘친아랍’ 굴레벗은 오바마, 중동민심 껴안기 승부수 던졌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19일 밝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 해법은 역대 미국 대통령이 내놓은 구상 중 가장 담대하다고 평할 만하다. 이·팔의 국경을 1967년 이전으로 되돌리자는 것은 팔레스타인의 손을 일방적으로 들어 주는 격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지역에서 끝도 없는 테러와 보복의 악순환을 끊는 유일한 방법은 오바마식 해법밖에는 없을지 모른다. 이스라엘이 1948년 텔아비브에서 건국을 선언한 것 자체가 마른 하늘의 날벼락이라고 여기는 팔레스타인 입장에서는, 1967년 3차 중동전쟁에서 추가로 빼앗긴 땅을 돌려받는 정도가 아니고서는 불만을 삭이기 힘들기 때문이다. 오바마 이전의 미국 대통령들도 속으로는 오바마식 해법밖에 마땅한 답이 없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다만 그들은 미국 내 유대계의 막강한 영향력에 감히 도전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미국 권력의 요소요소에 포진한 유대인 인맥과 공식 이스라엘 로비단체인 미·이스라엘 공공문제위원회(AIPAC)의 파워는 미국을 들었다 놓았다 할 정도다. 오바마가 과감하게 이런 한계에 도전하고 나선 것은 국내외적으로 특수한 환경이 겹쳤기 때문으로 보인다. 국내적으로 오바마는 미국 국민의 숙원이었던 오사마 빈라덴을 제거함으로써 친(親)아랍이란 의구심을 말끔히 불식시켰다. 대외적으로는 중동에서 불고 있는 민주화 바람이 오바마에게 과감성을 부여했을 법하다. 미국은 그동안 중동의 친미 독재정권과 결탁하는 것만으로 국익을 지킬 수 있었지만, 민주정권이 들어서면 상황은 복잡해진다. 미국이 중동의 민심을 얻지 못하면 반미정권 출현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바마는 팔레스타인이 원하는 영토를 되돌려줌으로써 민심을 얻는 것이 이 지역에서 새롭게 직면한 도전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길이라고 계산했을 법하다. 물론 영토 반환은 이스라엘의 국익에도 도움이 된다는 게 오바마의 판단일 것이다. 이스라엘 입장에서 사방에 반미정권이 출현하는 것은 적에게 포위당한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오바마로서는 이스라엘의 이런 딜레마를 간파하고 승부수를 던진 셈이다. 이날 오바마가 유엔으로부터 독자적 국가로 승인받으려는 팔레스타인의 목표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것도 팔레스타인이 ‘예뻐서’ 영토 반환 얘기를 꺼낸 게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다. 오바마식 해법의 분수령은 20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의 정상회담이 될 전망이다. 미국 공화당은 즉각 양측을 ‘이간질’하고 나섰다. 공화당의 선두 대선주자인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오바마가 이스라엘을 버스 밑에 던져버렸다.”고 비난하는 등 공화당 인사들은 일제히 오바마가 이스라엘을 배신했다고 성토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오바마가 이스라엘과의 사전 물밑조율 없이 이런 구상을 발표하긴 힘들었을 것이란 관측도 없지 않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용어 클릭] ●6일 전쟁 1967년 6월 5일 이스라엘과 시리아·이집트·요르단 간에 발발한 제3차 중동전쟁을 말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현재 국경선은 이 전쟁의 결과로 획정됐다. 제1차 중동전쟁의 정전협정으로 비무장 지대가 된 시리아 국경 골란고원 일대에 이스라엘이 농작물을 경작하겠다고 그해 4월 일방적으로 선언한 뒤, 이스라엘과 시리아 간 긴장이 고조되면서 전쟁이 일어났다. 이스라엘이 막강한 전투력을 바탕으로 전쟁 시작 4일 만에 가자지구와 옛 예루살렘 지역, 시나이반도, 요르단강 서안지역, 골란고원의 8600㎢를 새로 차지했다. 유엔이 중재에 나서 6일 만에 전쟁이 끝났다고 해서 ‘6일 전쟁’이라 불린다.
  • [오바마 중동플랜] 이집트에 20억弗… 親美 ‘민주정부’ 육성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발표한 새로운 중동정책의 핵심은 민주화된 국가에 대대적인 경제지원을 하겠다는 것이다. 오바마는 기존의 친미 독재정권에 계속 미련을 둘 것이냐, 아니면 결별하고 새롭게 민주화된 친미 정부 수립을 유도할 것이냐의 고통스러운 저울질 끝에 후자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민주화 이후의 반미정권을 용인하겠다는 뜻으로 볼 수는 없다. ●반미세력 발호 막을 ‘돈풀기’ 본격화 오바마는 연설에서 민주혁명을 달성한 중동 국가들에 수십억 달러의 재정 지원을 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이집트에는 20억 달러가 넘는 지원이 이뤄진다. ▲10억 달러의 이집트 채무 탕감 ▲해외민간투자공사(OPIC)를 통한 10억 달러 대출 지원 ▲투자증진을 위한 미·이집트 기업펀드 조성 등이 포함돼 있다. 이 밖에도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등을 통한 재정 지원과 대출을 유도할 방침이며, 공산주의 붕괴 후 동유럽 재건을 위해 활약했던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의 이집트에서의 역할도 내용에 담겨 있다. 미국은 또 ▲차기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에서 튀니지와 이집트의 경제 안정 및 현대화 논의 ▲중동 지역의 무역투자파트너십 계획(TIPI) 출범 등을 제시했다. 이는 독재자가 사라진 상태에서 경제 재건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정권이 이슬람 급진세력 등 반미 세력에 넘어갈 가능성을 미연에 차단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2차 세계대전 직후 경제 황폐화로 공산화 위험이 있었던 유럽에 대폭적인 경제지원을 했던 ‘마셜플랜’의 중동판이라 할 수 있다. 이집트의 연간 경제성장률은 1%에 불과하며, 민주화 이후 오히려 외국 자본이 이탈하는 등 외부의 지원이 없으면 경제적 공황이 도래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시리아 등 反민주정권엔 채찍 반면 오바마는 민주화를 억압하는 정권에는 ‘채찍’을 가하겠다는 투트랙 메시지를 내놓았다. 민주화를 유혈 진압한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을 겨냥해 직접 제재 방침을 천명한 게 대표적이다. 오바마는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뿐 아니라 알리 압둘라 살레 예멘 대통령에 대해서도 “퇴진함으로써 정정불안을 종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바레인 정부와 반정부 세력에 대해 “바레인 국민의 미래를 위해 실질적인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돈 풀어 ‘親美’ 심는다… 오바마 중동구상 주목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9일(현지시간) 국무부 연설을 통해 민주주의로 전환하는 중동·북아프리카 국가에 대한 대대적인 경제적 지원 약속을 골자로 한 ‘신(新)중동구상’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오바마 대통령의 이 같은 구상은 이 지역 친미 독재정권들의 잇단 몰락에 따른 영향력 상실을 타개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종전에는 독재자와의 결탁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앞으로는 경제적 지원으로 미국식 시스템을 주입시킴으로써 국가의 체제와 민심을 친미적으로 변형시키려 하는 대담한 구상이라 할 수 있다. 18일 블룸버그와 유에스에이투데이 등 미 언론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에서 최근 민주혁명이 성공한 튀니지와 이집트에 경제적 지원을 제안함으로써 다른 중동국가에 모델을 제시한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이집트가 미국에 빚진 돈의 3분의1에 해당하는 10억 달러의 빚을 탕감해 주고 새로 10억 달러를 대출해 준다는 것이다. 또 이집트의 민간 투자 활성화를 위해 해외민간투자공사(OPIC)를 통해 20억 달러를 지원하고 6000만 달러 규모의 ‘미국-이집트 기업펀드’를 조성할 계획이다. 아울러 다양한 개발은행들을 통해 이집트와 튀니지에 수십억 달러를 추가 지원해 주기로 했다. 또 이들 국가의 비정부기구(NGO)와 대학을 적극 지원함으로써 이들 기관이 글로벌화된 경제 정책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반면 오바마 대통령은 국민들의 민주주의 열망을 억압하며 유혈 사태를 부른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 등에게는 ‘채찍’을 들 것임을 천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 예멘과 바레인 등의 독재자들에게는 주의를 환기시키는 발언을 할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백악관은 18일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과 그의 측근 6명에 대해 자산 동결 등의 경제 제재를 단행했다.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 내용과 관련, “지난 10년간 미국의 초점은 주로 이라크에 대한 군사적 노력과 오사마 빈라덴 추적, 알카에다와의 싸움 등에 맞춰졌다.”면서 “앞으로도 알카에다와의 싸움은 계속되겠지만, 한편으로 우리는 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가치를 진전시키는 데 주력한다는 취지의 연설을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중동 문제 중 하나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구체적 해결 방안은 포함될 가능성이 낮아 절름발이 중동 구상이 될 것이란 지적도 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탈레반도 ‘트위터’ 한다…팔로워는 5천명

    탈레반도 ‘트위터’ 한다…팔로워는 5천명

    탈레반도 트위터로 전세계인들과 소통한다? 지난 13일 영국 일간 가디언은 “아프간 탈레반이 @alemarahweb이라는 트위터 계정으로 전세계에 메시지를 내보내고 있다.”고 소개했다. 서구문물을 배척해 현대적인 기술에 등을 돌린 탈레반이 그들이 증오하는 나라의 언어와 서비스로 인터넷상에서 트위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 작년 말에 개설된 이 트위터에는 현재(16일) 5천명이 넘는 팔로워가 있으며 800여개의 트윗이 올라있다. 또 소개(Bio)란에는 영어로 ‘The official website of islamic emirat of afghanistan’ (아프가니스탄 공화국 공식 웹 사이트)라고 쓰여져 있다. 탈레반은 이 트위터를 통해 매일 여러 건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으며 파슈툰어(아랍어)를 사용하다 최근에는 영어 트윗을 추가했다. 트윗은 주로 ‘7 US-NATO invaders killed, 5 wounded in Paktika battle’ 과 같이 그들의 테러 활동의 내용이 담겨있다. 이같은 트위터 개설에 대해 아프칸 전문가들은 “탈레반이 트위터를 통해 국제사회의 이해도를 높이고 미국과 친미 국가로부터 핍박을 받고 있음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美, 주적 ‘빈라덴’ 제거에 10년간 430조원 쏟아부어

    美, 주적 ‘빈라덴’ 제거에 10년간 430조원 쏟아부어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이 사살됐다는 소식이 1일 전해지자 미국인들은 환호하며 밤을 하얗게 지새웠다. 미국인들이 9·11테러의 주범을 쫓아온 지난 10년 동안 얼마나 깊은 속앓이를 했는지 보여 주는 대목이다. ‘명분 잃은 싸움’이라는 비아냥까지 들어가며 지속해온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은 10년 만에 최대 성과를 얻었다. 미국의 대테러전은 2001년 9월 11일 알카에다 대원들이 미 본토를 공격하면서 시작됐다. 테러범들은 이날 아침 미국 민간항공기 4대를 납치,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와 워싱턴의 국방부 청사 ‘펜타곤’을 잇달아 들이받았다. 세계인의 눈을 의심하게 한 충격적 범행으로 모두 3000명 가까운 시민이 목숨을 잃었다. 미국의 조지 W 부시 당시 대통령은 9·11테러 직후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용어를 처음 꺼내들며 이슬람 무장세력 등 테러단체를 향해 ‘전면전’을 선포했다. 특히 빈라덴을 숨겨 주던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이 테러 주모자를 넘겨 달라는 요구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자 같은 해 10월 7일 아프간을 공습했다. 전쟁의 최우선 목표물은 당연히 빈라덴이었다. 미 의회 산하 정책연구기관인 의회조사국(CRS)에 따르면 미국은 아프간전 개전 이후 2010년까지 4006억 달러(약 430조원)를 전비로 쏟아부으며 주적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백악관은 특히 아프가니스탄 등 테러와의 전쟁을 위해 한 해에 1593억 달러를 쓰겠다는 ‘2011년 회계예산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2003년 3월에는 대량살상무기와 테러 확산 방지를 명분 삼아 이라크 침공도 감행했다. 그러나 빈라덴을 중심으로 한 테러 세력들은 미국의 노력을 비웃듯 대규모 테러를 기획해 성공했다. 9·11테러 이듬해인 2002년 10월 인도네시아 발리 쿠타 해변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해 모두 202명이 숨졌다. 또 2004년 3월과 2006년 7월에는 스페인 마드리드와 인도 뭄바이에서 통근 열차를 겨냥한 폭탄 테러가 터져 각각 191명과 200여명이 사망했다. 아프간 공습 초기 주춤하던 탈레반도 다시 고개를 들었다. 2008년에는 탈레반 무장 반군의 역습이 극에 달해 미군 등 연합군 200여명이 사망하는 최악의 한 해를 보냈다. ‘대테러전이 명분을 잃었다.’는 국제적 비판 역시 미국으로서는 부담이었다. 미군이 9·11 이후 테러 용의자를 수용해온 관타나모 수용소는 ‘인권의 무덤’이라는 조롱까지 받았다. 특히 폭로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가 최근 관타나모 수용소의 기밀 보고서를 공개하면서 ‘인권 수호자’로서의 미국 이미지는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미국이 테러 용의자에게 소변을 자신의 몸에 싸도록 강요했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아프간에서 미군 무인 공격기의 폭격 등으로 민간인 사망자가 늘어간 것도 부담이었다. 또 올해 재스민혁명 이후 아랍 지역의 반정부 시위가 불붙으면서 이 지역 친미 정권이 물러나거나 위기를 맞은 것도 미국에는 큰 고민거리였다. 특히 테러 조직의 거점인 예멘에서 정정 불안이 이어지자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이 대대적인 역공을 위한 기지개를 펴 왔다. 올해부터 아프간 전력을 철군시키겠다고 공언한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는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빈라덴 사살 소식은 미국의 위기상황에서 들려왔고 이 때문에 미 대륙은 더욱 들뜰 수밖에 없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미군 철수엔 희소식… 자생 테러조직과 전쟁은 지속될 듯

    미군 철수엔 희소식… 자생 테러조직과 전쟁은 지속될 듯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직접 발표한 오사마 빈라덴 사살 소식은 오는 7월 아프가니스탄 철군 개시를 앞둔 미군에겐 상당한 호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미군이 철군을 시작하면 알카에다 활동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다. 게다가 주요 친미국가인 이집트, 예멘, 바레인 등에서 민주화 시위가 이어지면서 골치를 앓아 왔던 미국 정부에 빈라덴 사살은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소식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오사마 빈라덴이 알카에다를 움직이는 유일한 우두머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동안 알카에다의 영향을 받아 자생적으로 생겨난 뒤 알카에다와 연계해 활동하는 급진 테러조직이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더구나 탈레반에 미치는 알카에다의 영향력도 극히 제한적이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오바마 대통령이 중대 발표를 한 이날은 공교롭게도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정부와 미군이 주도하는 다국적군을 겨냥한 춘계 대공세를 개시하겠다고 공언해 온 날이었다. 이날 12살 소년이 아프간과 파키스탄 국경지역인 팍티카에 있는 한 시장에서 폭탄조끼를 터뜨려 4명이 숨지고 12명이 다쳤다. AP통신은 이날 벌어진 자살폭탄테러 소식을 전하면서 관타나모 수용소 심문기록을 인용해 탈레반이 조직적으로 모스크와 이슬람 종교학교 등에서 소년들을 모집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 육군사관학교 소속 대테러전센터가 지난해 낸 보고서에서도 탈레반은 미성년자를 위한 별도 테러훈련소를 운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역대 최연소 자살폭탄테러범’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테러조직 수괴’ 처단이 향후 아프간 정세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우려한다. 이와 관련, 미국 일간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오바마 대통령의 발표 직후 아프간 전장에서 다리를 잃고 군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해병대 소속 캐머런 웨스트 소위가 “아프간에서 복무했던 모든 전우들의 승리”라고 기뻐하면서도 “그는 단지 한 명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고 전했다. 웨스트 소위는 “(아프간에는) 우리가 처치해야 할 적들이 엄청나게 많이 있다. 우리는 반군 전체를 파괴해야만 한다.”면서 “오사마 빈라덴은 뱀의 머리였지만 그 뱀의 머리는 셀 수 없이 많다. 우리는 그걸 모두 죽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랍권 위성방송 알자지라 역시 “테러리즘의 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시리아는 ‘당근’ 바레인은 ‘채찍’

    “반미적인 시리아는 유화책, 친미적인 바레인은 강경책” 재스민 혁명의 여파로 사상 최대의 민중 시위를 겪고 있는 시리아와 바레인이 대조적인 처방책을 내놓고 시위 차단에 부심하고 있다. 시리아의 철권 통치자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은 14일(현지시간) 개각과 함께 시위 사태 구속자 및 일부 정치범에 대한 사면조치를 내리며 유화적인 입장으로 반정부 세력에 대한 무마를 시도했다고 BBC 등 외신들이 전했다. 아버지 하페즈 아사드 전 대통령의 30년 통치에 이어 2000년부터 11년째 집권하고 있는 그는 지난달 29일 농업장관이던 아델 사파르를 신임 총리로 발탁한 뒤, 이날 새 내각을 구성하도록 했다. 뉴욕타임스도 이날 알아사드가 항구도시 바니야스 등에서 악명 높은 국가안전부대를 철수시키고 대신 정규군을 배치했다면서 이는 유화책의 하나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또 이 같은 일련의 조치는 무슬림의 금요기도회가 열리는 15일을 앞두고 시위 확산을 막기 위한 무마책이라고 풀이했다. 그러나 시위대 3000여명은 정부의 유화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날 다라지역 중심부에 모여 거리행진을 벌이며 “자유를 보장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시아파로 이란과 긴밀한 관계에 있는 알아사드 집안은 미국과는 불편한 관계다. 마크 토너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란이 시리아 정부의 시위 진압을 지원하고 있다는 정보가 있다.”며 “사실이라면 개혁 조치에 진정성이 있다고 볼 수 없다.”는 우려를 전했다. 한편 바레인은 이번에는 반정부 시위를 주도한 시아파 최대 야당인 알 웨파크와 이슬람행동연합 등 2개 야당을 해체하기 위한 소송을 제기했다고 국영 뉴스통신사 BNA가 이날 보도했다. 미해군 5함대의 기항지이자 미국의 우방인 수니파 왕정국가 바레인은 지난달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연합 군대까지 끌어들여 자국 시위대를 철저하게 진압했다. 알 웨파크는 바레인 의회 40석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18석을 보유한 정당으로 수니파의 권력 독점 혁파를 촉구하며 바레인의 반정부 시위를 주도해 왔다. 하지만 셰이크 칼레드 빈 아흐메드 알칼리파 외무장관은 “정부는 정당 해체를 추진하고 있지 않다.”면서 “관련 보도는 틀린 것”이라고 부인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바레인 정부가 두달간의 시위 사태 기간 동안 수백명을 체포하고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방법으로 대중들의 입을 막고 있지만 오바마 정부는 못 본 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석우 전문기자 jun88@seoul.co.kr
  • 이집트-이란, 31년만에 외교관계 복원 시동

    오랜 앙숙이었던 이집트와 이란이 31년 만에 외교관계 복원에 시동을 걸면서 중동 정세에 미묘한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나빌 엘라라비 이집트 외무장관은 4일(현지시간) 알리 아크바르 살레히 이란 외무장관의 메시지를 갖고 수도 카이로를 방문한 이란 대표 묵타비 아마니와 회담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 집권 당시 미국·이스라엘과 밀월 관계를 유지하며 이란 봉쇄의 선봉에 섰던 이집트 외교노선이 극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신호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흐름이 본 궤도에 오를 경우 미국은 중동전략 수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엘라라비 장관은 이날 “역사와 문화를 생각해 본다면 이집트와 이란 양국 국민들이 상호 교류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면서 “이집트는 이란과 새로운 장을 열게 되는 것을 환영한다. 이집트는 상호 공동의 관심사를 추구하기 위해 모든 나라에 문을 열어두고 있다”고 말했다. 양국 정부가 이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한 것은 1980년 국교 단절 이후 사실상 처음이다. 이집트 외무부도 이날 성명을 통해 “살레히 장관이 테헤란이나 카이로에서 양국 외무장관 회담을 시작으로 양국간 협력관계를 구축하자고 요청했다.”고 전했다. 이집트는 1979년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체결한 뒤 줄곧 미국·이스라엘과 밀월관계를 유지했다. 반면 그해 이란은 이슬람혁명을 통해 친미 왕정을 타도하고 강경 반미노선으로 선회했다. 무바라크 정권은 미국의 군사지원을 받는 대신 이란 견제의 최선봉에 섰다. 하지만 그가 지난 2월 11일 물러나면서 모든 것이 변했다. 2월 20일 이집트 임시정부가 1979년 이후 처음으로 이란 군함 두 척에 대해 수에즈 운하 통과를 허용한 것은 변화의 신호탄이었다. 과거 수에즈 운하를 통해 핵잠수함과 전함들을 페르시아만으로 보내 이란을 위협하곤 했던 이스라엘이 이제는 정반대 상황에 놓이게 됐다. 이집트와 이란은 모두 만만찮은 무력을 갖고 있는 데다 각각 남쪽과 동쪽에서 이스라엘을 압박하는 위치에 있다. 거기다 서쪽 바다까지 틀어막을 경우 이스라엘은 고립을 면할 수 없게 된다. 이집트는 이스라엘을 빼고는 아랍권과 아프리카를 통틀어 최강 전력이자 세계 10위 군사력을 자랑한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중동 민주화 혼란 틈타 알카에다 세력 키우나

    중동 민주화 혼란 틈타 알카에다 세력 키우나

    지난달 22일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는 반정부 시위 이후 처음으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뒤 정권 퇴진 운동의 배후로 알카에다를 지목했다. 이후 그는 같은 주장을 반복했지만 시위의 발단을 지켜본 국제사회는 이를 비웃었다. 하지만 리비아와 마찬가지로 반정부 운동이 계속되고 있는 예멘에서 알카에다 조직이 정부군과 잇따라 충돌하면서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의 테러 조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9일(현지시간) 미 상원 청문회에서 공화당 소속 제임스 이노프(오클라호마) 의원이 리비아에서도 알카에다가 활동할 가능성에 대해 질문을 던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자리에서 제임스 스타브리디스 나토군 사령관은 “미 정보당국이 리비아 반군 내에 알카에다가 있다는 징후들을 포착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현재로서는 반군 사이에 상당한 수의 알카에다 혹은 다른 테러 조직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자세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며 그 규모에 대해서는 즉답을 피했다. 반면 미국 정부는 리비아 반군 내 알카에다 존재에 대해 의미를 두지 않고 있다. 한 정부 관리는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대규모의 알카에다 테러리스트들이 리비아 반정부 운동을 이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골초로 유명했던) 윈스턴 처칠이 평생 단 한 개비의 담배도 피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며 테러 조직 배후설을 일축했다. 진 크레츠 리비아 주재 미국대사는 카다피의 주장은 반군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기 위한 것이라면서 “진짜로 터무니없는 얘기”라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반군도 (카다피의 의도를) 다 파악하고 있다.”며 시위 초반에 알제리의 알카에다 연계 조직원 3, 4명이 잠입을 시도했다가 결국 들통났다고 전했다. 반군으로 활동하고 있는 전직 항공사 엔지니어는 USA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카다피, (알카에다의 수장인) 빈 라덴, 히틀러 모두 같다.”면서 “우리는 평범한 시민이지 알카에다가 아니다.”라며 테러조직의 배후설을 부인했다. 하지만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반군에 대해 알아가는 중”이라고 밝힌 것처럼 미 정부도 확실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 또 리비아 반정부 시위 역사에 비춰볼 때 알카에다가 전면에 나서지 않았을 뿐 현재 추정하는 것 이상의 규모로 활동하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전문가들은 이슬람 원리주의 무장단체인 리비아이슬람전사그룹(LIFG)이 이번에도 활동하고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LIFG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군과 싸우고 돌아온 이들이 1995년 가을 구성한 조직으로 카다피 정권에 강하게 저항해 왔다. 이들은 알카에다와 연관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유엔이 활동을 금지한 조직 중 하나다. 예멘은 리비아와 상황이 다르다. 아라비아반도 알카에다(AQAP)는 테러 조직과의 전쟁을 선포한 정부를 비웃기라도 하듯 반정부 시위 이전부터 활발하게 활동해왔다. 친미 성향의 알리 압둘라 살레 예멘 대통령이 물러날 경우 미국의 대테러 작전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열린세상] FTA, 번역오류 논쟁을 넘어야/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열린세상] FTA, 번역오류 논쟁을 넘어야/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EU 자유무역협정(FTA)의 번역 오류 문제가 불거져 우리 FTA 정책 일정 전반이 차질을 빚고 있다. 한·EU FTA에 대한 비준을 상반기에 완료하고, 한·미 FTA 비준 모드로 전환해야 할 바쁜 시기에 번역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애초 문제의 발단은 정부의 부주의 탓이다. 서명, 확정된 국문본에 원산지 기준의 숫자(number)가 잘못 기재되어 있고, ‘초과’로 할 것을 ‘이하’로 번역해 놓는 등 명백한 오류가 포함됐기 때문이다. 가장 기본적인 외교기능인 영사업무에 대한 경시 풍토로 인해 호된 국민적 질타를 받고 뒤늦게 영사 기능을 대폭 강화했던 외교부로서는 또 기본적 업무인 조약문 번역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질타 받는 셈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우리가 최근 맺고 있는 FTA는 영문본과 더불어 국문본이 동일한 효력을 지닌다고 규정한 데 있다. 특히 한·EU FTA는 23개 언어로 서명되었는데, 각 언어본이 모두 동일한 효력을 지니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므로 단순히 영문 번역의 실수 여부를 떠나, 한번 서명된 국문본은 독립적 효력을 지니기 때문에 자칫하면 당사국이 의도한 바가 왜곡 적용될 가능성도 있다. 번역 오류 문제가 발생한 뒤 정부는 대국민 의견수렴 창구를 개설하고, 민간기관에 번역 감수를 의뢰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 조약 번역 문제와 같은 전문 이슈에 대해 대국민 의견 제시 홈피를 개설한 것은 유례가 없다. 민간기관에 번역 감수를 의뢰하는 것은 책임을 민간기관에 넘기는 데는 효과적이나, 우리 현실상 통상조약에 대한 최고의 전문성과 실무경험은 정부부문에 있음을 고려할 때 난센스다. 한글본에 대한 의견수렴 및 감수절차가 끝난 뒤 다른 언어(불어·독어·이태리어·스페인어·폴란드어·몰타어 등 21개 언어) 각각에 대해서도 의견수렴과 감수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면, 정부가 어떻게 답변할지 묻고 싶다. 시민단체가 불어·스페인어 등의 전문가를 동원해 협정문 오류를 연쇄적으로 지적하는 사태가 발생할 것이 우려된다. 언어가 상이한 국가 간 협정을 맺을 때 완전무결한 번역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일반적으로는 하나의 언어를 사용해 협정 문안을 협상하게 된다. 국제협상에서 영어가 기본 문안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한·EU, 한·미 FTA는 물론 우리가 맺은 모든 FTA가 영어를 사용하여 입장조율이 이루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당사국의 협상 의도를 가장 잘 반영하는 문안은 영문본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해당 조약 자체에 영문본·타 언어본이 상충할 때 영문본이 우선한다는 원칙을 명시하는 게 일반적이다. 칠레, 싱가포르 등과 우리가 체결한 초기 FTA에도 이러한 원칙이 규정되어 있다. 그런데 한·미 FTA 협상과정에서 일부 시민단체가 협상문안에 대한 한글 번역본을 제공할 것을 요구했고, 한글본이 적어도 영문과 동일한 효력을 지녀야 함을 주장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조약 적용에 있어서의 영문본 우선원칙이 친미주의나 한글 경시 풍조와 연결되는 것인 양 오해한 데서 비롯된 촌극이다. 문제는 당시 정부가 정치적 이유로 이런 주장을 수용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 결과, 한·미 FTA에 영문본 우선원칙을 규정하지 않았고, 그런 태도가 한·EU FTA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정부가 한·EU FTA의 23개 언어에 대한 번역 오류를 끝까지 검토할 책임을 스스로 떠안은 대가를 혹독히 치르고 있는 셈이다. 기왕 시작했으니, 시한을 정해 문안을 검토한 후 명백한 번역 오류가 발견되면 수정해야 한다. 그러나 명백한 오류가 아닌 사항은 의역과 직역 문제 등 끊임없는 논쟁 속에서 시간을 무한정 소비하기보다는, 지금이라도 한·EU, 한·미 간 추가 문서 합의를 통해 영문본 우선원칙을 규정해 넣음으로써 문제를 일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시민단체들도 한·EU FTA 번역 문제를 물고 늘어짐으로써 한·미 FTA 비준과정을 내년으로 넘겨 국내 선거일정과 접목시켜 좌초시키려는 전략 구사를 중지해야 한다. 이미 무수한 소모적 논쟁을 통해 미국과의 FTA가 바람직하다는 국민적 합의는 형성되었다. 더 이상의 지연은 국가 전체의 기회비용으로 귀결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 리비아전 이끄는 정상 3인 속내는

    리비아전 이끄는 정상 3인 속내는

    19일 ‘오디세이의 새벽’을 가장 먼저 열어젖힌 정상은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다. 그는 대(對)리비아 군사행동 관련 주요국 회의를 주재했고 개전 선언을 했다. 프랑스 전투기들은 앞장서 리비아 영공 안으로 진입했다. 2003년 이라크전 때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전쟁에 반대하며 뒤로 빠져 있었던 그림과 확연히 대조된다. 반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앞장서지 않으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는 개전 사실을 워싱턴이 아닌 브라질에서 발표했다. 전례를 찾기 힘든 경우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사르코지의 발표가 있은 지 한참 뒤에 따로 카메라 앞에 섰다. 이라크전 선언을 당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나란히 서서 했던 모습과 대비된다. 사르코지 대통령이 팔을 걷어붙인 데는 북아프리카에서 프랑스가 전통적으로 유지해온 영향력을 지키기 위한 의도가 담겨 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튀니지와 이집트 민주화 시위 때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다 스타일만 구겼다는 비판을 면치 못했다. 그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이번 전쟁을 연임을 위한 지지율 견인의 기회로 삼았을 법하다. 사르코지 개인의 친미적 성향이 반영됐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해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국 외교문서에 따르면 사르코지 대통령은 이라크전에서 미국 병력을 대체할 국제 연합군의 파병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르코지가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미국에 우호적인 대통령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오바마는 일리노이주 상원의원 시절 ‘과감하게’ 이라크전에 반대하면서부터 전국적 정치인으로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또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아랍권에 우호적 메시지를 보냈다. 개인적으로 반전(反戰)과 반미(反美) 정서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미국 정부 차원에서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이어 ‘제3의 전선’까지 도맡기는 벅차다. 그래서인지 미국 정부는 리비아 공습이 정식 전쟁은 아니라는 인상을 주기 위해 애쓰는 느낌이다. 오바마가 워싱턴을 비운 것도 그렇고, 1991년 걸프전 개전 때 미 국방부 건물이 북새통을 이룬 데 반해 지금은 썰렁한 것도 미국이 이번 전쟁에 거리를 두려는 기류로 읽힌다. 실제 미 정부 당국자들은 “미군의 개입은 초기 며칠 동안만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고 미 언론들은 보도하고 있다. 브리핑에 나선 미군 관계자도 ‘미군’이라는 말대신 ‘연합군’이라는 단어를 애써 사용하는 모습이다. 캐머런 영국 총리가 ‘조연’을 자처하는 것은 그동안 영국이 미국에 군사적으로 너무 퍼준 것 아니냐는 여론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안 그래도 지난 1월 토니 블레어 전 총리가 이라크전 진상조사위원회에 불려나가 곤욕을 치른 바 있다. 미 언론들은 “그래도 캐머런으로서는 참전을 안 하는 것보다는 하는 것이 덜 잃는 게임이었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리비아 내전 사태] 카다피, 무바라크와 다른 점

    리비아 정부의 초강경 진압에도 불구하고 민주화 시위가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리비아의 향배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무아마르 알 카다피 국가원수의 무자비한 성향과 원유를 둘러싼 국제관계 등으로 볼 때 리비아 정세는 튀니지나 이집트와 달리 극단적인 유혈 사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커지고 있다. 민주화 세력의 중심지가 된 벵가지 등 동부와 카다피 정권의 서부가 충돌하는 내전 양상을 띨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영국 BBC 방송은 카다피 국가원수가 권력을 유지해 온 방식이 이집트와 매우 다르다는 점을 주목했다. 먼저 카다피 정권은 철저하게 12만명에 이르는 군대를 장악하고 있다. 특히 주력부대는 대부분 아들이나 핵심 측근이 장악하고 있어 일부 부대가 이탈하더라도 큰 힘을 발휘하기는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카다피는 그동안 정권안보를 위협하는 조짐이 있을 때마다 600만 국민들을 주저 없이 무력으로 억압해 왔다. 리비아 정부는 이집트 무바라크 정권과 달리 정보를 철저히 차단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나아가 친미 성향의 무바라크 정권과 달리 카다피 정권은 2006년까지 미국 등 서방과 20년 넘도록 대립하면서 내부적으로 통치권력을 강화해 온 점도 차이로 꼽힌다. 서방이 카다피 정권에 영향력을 행사할 여지도 적을 뿐 아니라 세계 10대 원유생산국이라는 점 때문에 섣불리 리비아 문제에 개입하기도 쉽지 않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北 고위간부 신문 이집트 시위 보도”

    북한이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 퇴진과 관련해 최근 시위 상황을 간부들에게 부분적으로 알린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18일 한 대북소식통의 말을 인용, “북한 간부들에게 배포되는 ‘참고신문’(소식)에 이집트 시위 소식이 실렸으며, 이 신문은 무바라크 대통령 체제를 무너뜨린 이번 사태의 동기를 이집트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와 정부 관리들의 부정부패로 설명했다.”고 보도했다. 또 “무바라크 대통령이 중동에서 친미 외교정책을 펴면서 장기집권을 했지만, 오히려 무바라크가 축출될 위험에 처하자 미국이 손을 떼고 배반했다는 내용”이라고 전했다. 이번 시위의 촉매제 중 하나인 무바라크 대통령의 권력세습 기도 내용은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참고신문’은 북한 내 고위 간부들에게 국제정세를 알려주기 위해 외국 언론을 취합해 배포하는 것으로 당 간부와 군 당급 책임비서, 조직비서 이상 간부들만 볼 수 있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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