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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한이 침공’ 北 “6·25 침략전쟁 벌인 美역적에 감사라니”

    ‘남한이 침공’ 北 “6·25 침략전쟁 벌인 美역적에 감사라니”

    노동신문 “북남 관계, 더는 논할 수 없다 결론”대북전단 살포 문제를 빌미로 대남 비난전을 이어가고 있는 북한 매체들이 북한의 침공으로 시작됐던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 전쟁’ 70주년과 관련, 남한과 미국이 북한을 침략해 전쟁이 난 것처럼 역사를 왜곡 언급하며 한국이 ‘친미사대주의’ 행보를 고수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북한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22일 6·25 전쟁 70주년을 기념하는 남측의 동향에 대해 “미제와 매국역적들이 우리 민족에게 커다란 희생과 불행을 들씌운 침략전쟁을 ‘기념’한다는 것이 과연 제정신이냐”면서 “어떻게 침략자들과 매국노 무리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시하느냐”고 비난했다. 수백만명의 민간인과 군인들이 목숨을 잃은 6·25 전쟁의 책임이 미국에 편승한 남한의 북한 침략에서 시작됐는데 왜 미국에 감사의 뜻을 표하느냐는 전형적인 역사 왜곡을 통한 남측에 책임 떠넘기기로 보인다.北 “南, 운명 경각인데 상전 바지자락 매달려” 한국전쟁으로 불리는 6·25 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 공산군이 남북군사분계선이던 38선 전역에 걸쳐 불법 남침함으로써 일어난 전쟁으로 3년간 이어졌다. 당시 수도 서울은 3일 만에 북한 공산군에 함락됐다. 전쟁으로 인해 남북한 민간인과 16개국 유엔국제연합군 등을 포함 공식적으로만 300만명이 넘는 희생자를 냈고 500만명이 행방불명되는 아픔을 겪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날 ‘고질적인 사대와 굴종의 필연적 산물’ 제목의 정세론해설에서 남북관계가 최악의 파국으로 치닫는 상황에서도 남측 당국이 ‘친미사대주의’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며 더는 논할 가치가 없다고 주장했다. 신문은 “최근 남조선 당국자들은 미국의 결단이 ‘적대관계 해결의 열쇠’라느니, 미국의 설득이 필요하다느니 하는 따위의 엉뚱한 나발을 늘어놓고 있다”면서 “참으로 괴이하기 짝이 없는 소리”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남조선 당국은 저들의 운명이 경각에 달한 오늘까지도 상전의 바지자락에 매달려 지지와 방조를 구걸하고 있다”면서 “이토록 비굴하고 굴종적인 상대와 더이상 민족의 운명과 미래가 걸린 북남관계를 논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가 다시금 내리게 된 결론”이라고 밝혔다. 北, 美겨냥 “南, 제집 난도질한 강도에 구걸”“사대·굴종에 쩌들대로 쩌든 자들의 망동” 앞서 지난 15일 문재인 대통령의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기념식 영상축사도 겨냥, “며칠 전에는 북남(남북)합의를 운운하던 끝에 국제사회의 동의를 얻어가는 노력을 꾸준히 하겠다는 황당한 소리까지 쏟아냈다”고 힐난했다. 신문은 이어 “북남관계가 오늘과 같은 파국에 이른 마당에 와서까지 제집을 난도질한 강도에게 구걸의 손길을 내민단 말인가”라면서 “그야말로 사대와 굴종에 쩌들대로 쩌든자들만이 벌여놓을 수 있는 망동”이라고 주장했다. 신문은 한미워킹그룹 등을 언급하며 “벼랑 끝에 몰린 현 북남관계는 남조선 당국의 고질적인 사대와 굴종의 필연적 산물”이라면서 “미국의 반공화국 압살 책동과 그에 추종하는 남조선당국의 사대굴종정책이 지속되는 속에서 북남 사이에 해결될 것이란 아무 것도 없다”고 강조했다. 북 선전매체 ‘조선의 오늘’도 “8000만 겨레가 보는 앞에서 북남(남북)군사분야합의서에 도장을 찍고도 돌아앉아 동족을 해칠 군사장비들을 끌어들이며, 평화의 흐름에 역행한 자들이 바로 남조선 군부호전광들”이라고 비난했다. 북한 매체들은 2018년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 합의문에 따른 ‘판문점 선언’ 후속 조치로 그해 9월 19일 일체의 군사적 적대 행위를 중단하는 남북 군사 합의를 체결했지만 그 뒤 자신들의 숱한 미사일 시험 발사와 한반도 위기 고조 행위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막말 걷어내니 보이는 ‘김여정 청구서’

    막말 걷어내니 보이는 ‘김여정 청구서’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지난 17일 발표한 담화문은 문재인 대통령을 향한 비난으로 점철됐으나 원색적인 표현들을 걷어내면 한국 정부에 요구하는 ‘청구서’의 핵심 내용이 드러난다. 김 부부장은 긴장 국면의 시발점이 된 대북 전단 문제의 반성을 요구하고 한미 워킹그룹에 대한 불만을 토로해 앞으로 정부의 상황관리 전략에서 주요 포인트가 될지 주목된다. ●한미 공조 흔들어 제재 틈 노리는 듯 김 부부장은 4800자에 달한 담화문에서 “남조선 당국자의 연설은 (대북 전단에 대한) 사죄와 반성, 재발 방지에 대한 확고한 다짐이 있어야 한다”며 명시적인 반성을 요구했다. 또 “남북 합의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상전이 강박하는 ‘한미실무그룹’이라는 것을 덥썩 받아 물고 백악관을 섬겨 바쳐왔다”며 한미 워킹그룹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의 ‘독자적 남북협력’에는 “제재의 틀 안에서라는 전제 조건을 덧붙였다”며 “친미사대가 낳은 비극”이라고 했다. 한미 보조를 벗어나 남북 간 합의를 이행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이 대북 전단을 빌미로 공세를 시작했으나 결국 한미 공조를 흔들어 청와대로 하여금 대북제재의 틈을 만들도록 하려는 목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세현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은 “긴밀한 한미 간 협력이라는 명분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한국 정부를 상대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 요즘 북한이 쏟아내고 있는 불평”이라고 했다. ●여권 일각 ‘족쇄 워킹그룹’ 중지론 제기도 이에 한미 워킹그룹에 대한 정부의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여권 일각에서도 중지론이 제기된다. 2018년 11월 출범한 한미 워킹그룹은 한미 간 비핵화와 대북제재, 남북협력을 조율하는 협의체로 작동했다. 그러나 지난해 ‘하노이 노딜’ 이후 남북 관계가 경색되면서 워킹그룹은 협력사업의 발목을 묶는 ‘족쇄’일 뿐이라는 여론이 비등했다. 정부도 올해 초 알렉스 웡 국무부 대북특별부대표가 방한했을 당시 ‘한미 워킹그룹’이란 표현 대신 국장급 협의로 명명하기로 하는 등 대안을 모색해왔다. ●강경화 “워킹그룹으로 제재 신속해제 가능” 그러나 유엔 안보리 등의 대북 제재 속에서 한미가 조율하는 창구가 필요하다는 시각은 여전하다. 문 대통령이 지난 17일 외교안보 분야 원로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 청와대 관계자는 “최근 바람직한 방향으로 잘 진행되고 있다”고 하기도 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18일 더불어민주당 외교안보통일자문회의에서 “미국과 워킹그룹을 하게 되면 제재를 빨리 푸는 방식도 된다”며 긍정적 측면을 이야기했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통일부 “대북전단 살포 규제 필요 입장, 변함 없다”

    통일부 “대북전단 살포 규제 필요 입장, 변함 없다”

    통일부가 4·27 판문점선언에 위배되는 대북전단 살포 행위를 규제해야 한다는 정부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18일 통일부 당국자는 기자들과 만나 북한이 최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청사를 폭파하고 대남 군사행동을 예고하는 등 상황변경이 생김에 따라 대북전단 관련 정부 입장에도 변화가 있느냐는 질문에 “대북전단 살포를 막자고 하는 입장은 변함이 없다”고 답했다. 그는 “물론 진전되는 상황을 고려할 수는 있지만, 이 문제에 대한 정부 입장은 변함이 없다”고 확인했다. 이 당국자는 북한이 예고한 대로 대남전단을 살포할 경우 정부가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해 묻자 “대남전단 살포는 판문점 선언에 위반된 것”이라며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정진을 위해서는 상호비방 하는 전단 문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판문점선언 국회 비준 동의 문제에 대해선 “그 문제는 여러 가지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에 이를 고려해 종합적으로 검토해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워킹그룹이 남북관계를 주도적으로 개선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으며 통일부는 워킹그룹에서 빠져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큰 변화가 있어야 할 이유는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한미워킹그룹에 대해서는 북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도 전날 담화에서 “남측이 스스로 제 목에 걸어놓은 친미사대의 올가미”라고 비난했다. 한편, 연락사무소 청사를 폭파하고 금강산 관광지구와 개성공단 지역에 군부대 재주둔 계획을 밝혔던 북한의 동향에 대해서는 “국방부에 따르면 현재 북한군의 특이 동향은 없다”고 덧붙였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특사 거부·막말 폭탄·군사 행동… 北, 3종세트로 끝내 ‘단절 쐐기’

    특사 거부·막말 폭탄·군사 행동… 北, 3종세트로 끝내 ‘단절 쐐기’

    남북 경색에 대해 “후회·한탄뿐” 비난 개성공단 등 대남 군사행동 계획 알려 통전부·총참모부 이례적 동시 입장 밝혀북한은 4·27 판문점선언의 상징인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다음날인 17일 노동신문 지면에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과 장금철 통일전선부장, 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의 ‘대남 말폭탄’을 총동원해 문재인 정부와의 결별과 대결을 선언했다. 청와대가 특사 파견을 타진한 사실도 북측은 “불순한 제의를 불허한다”며 조롱하듯 일방적으로 공개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인 김 부부장이 지난 4일 탈북자들 대북 전단(삐라) 살포와 남한 정부의 대응에 불만을 표출한 이후 순차적으로 입장을 밝혀온 통전부와 총참모부가 이례적으로 동시에 입장을 밝히면서 북측은 완전한 단절에 쐐기를 박은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이날 ‘남조선 당국이 특사파견을 간청’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청와대가 지난 15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을 특사로 제안한 사실을 일방적으로 공개하며 “서푼짜리 광대극을 연출했다”고 비아냥댔다. 특히 김 부부장은 직접 거부결정을 내리고 “정세도 분간하지 못하고 타는 불에 기름 끼얹는 격”이라고 경고했다. 김 부부장은 더 나아가 문재인 대통령의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기념사를 겨냥한 담화문도 발표했다. 김 부부장이 지난 3월 첫 실명 담화를 발표한 이후 문 대통령을 직접 거론하고 비난한 것은 처음이다. 그는 문 대통령이 대북 전단 사태의 책임을 회피하고 지금의 남북 경색에 대해 ‘남의 탓’만 하고 있다며 “앞으로 남조선 당국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후회와 한탄뿐”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의 ‘독자적 남북협력론’에 대해서도 대북 제재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며 “고질적인 친미주의”라고 비난했다. 특히 김 부부장은 “꼴불견을 혼자 보기 아까워 인민에게 알리려고 말폭탄을 터뜨린다”며 내부 주민들에게 전달될 것임을 알렸다. 동시에 인민군 총참모부는 대변인 발표문을 통해 금강산관광지구와 개성공업지구의 군 배치와 대남 전단 살포 등이 포함된 대남 군사행동 계획을 공개했다. 중앙군사위원회의 비준 절차를 남겨뒀으나 전날 공개보도에 이어 군의 도발 행동 프로세스를 재차 확인한 것이다. 장 통일전선부장도 담화문에서 “혐오스러운 남측 당국과 더는 마주 앉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단절 의지를 밝혔다. 노동신문은 폭파로 연기에 휩싸인 연락사무소의 처참한 모습이 담긴 컬러사진 6장도 실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북한이 특사 파견을 거절하고 통전부장의 메시지를 통해 대화 단절 의사를 밝힌 동시에 총참모부 대변인 담화를 통해 앞으로의 시행 절차를 예고했다”고 평가했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말폭탄에 군사행동 플랜까지… 北, 文정부와 결별·대결 선언

    말폭탄에 군사행동 플랜까지… 北, 文정부와 결별·대결 선언

    개성공단 등 대남 군사행동 계획 알려 통전부장 “남북 일장춘몽” 단절 의지 통전부·총참모부 이례적 동시 입장 밝혀 특사 제안도 조롱하듯 “불순한 제의 불허”북한은 4·27 판문점선언의 상징인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다음날인 17일 노동신문에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과 장금철 통일전선부장, 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의 ‘대남 말폭탄’을 총동원해 문재인 정부와의 결별과 대결을 선언했다. 청와대가 특사 파견을 타진한 사실도 북측은 “불순한 제의를 불허한다”며 조롱하듯 일방적으로 공개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인 김 부부장이 지난 4일 탈북자들의 대북 전단(삐라) 살포와 남한 정부의 대응에 불만을 표출한 이후 순차적으로 입장을 내놨던 통전부와 총참모부는 이날 이례적으로 동시에 말폭탄을 던졌다. 남측과의 완전한 단절에 쐐기를 박은 것이다. 북한은 이날 ‘남조선 당국이 특사 파견을 간청’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청와대가 지난 15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을 특사로 제안한 사실을 일방적으로 공개하며 “서 푼짜리 광대극을 연출했다”고 비아냥댔다. 특히 김 부부장은 “정세도 분간하지 못하고 타는 불에 기름 끼얹는 격”이라고 경고했다. 김 부부장은 더 나아가 문재인 대통령의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기념사를 겨냥한 담화문도 발표했다. 김 부부장이 지난 3월 첫 실명 담화를 발표한 이후 문 대통령을 직접 거론하고 비난한 것은 처음이다. 그는 문 대통령이 대북 전단 사태의 책임을 회피하고 지금의 남북 경색에 대해 ‘남의 탓’만 하고 있다며 “앞으로 남조선 당국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후회와 한탄뿐”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의 ‘독자적 남북 협력론’에 대해서도 대북 제재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며 “고질적인 친미주의”라고 비난했다. 특히 김 부부장은 “꼴불견을 혼자 보기 아까워 인민에게 알리려고 말폭탄을 터뜨린다”고까지 했다. 동시에 인민군 총참모부는 대변인 발표문을 통해 금강산관광지구와 개성공업지구의 군 배치와 대남 전단 살포 등이 포함된 대남 군사행동 계획을 공개했다. 중앙군사위원회의 비준 절차를 남겨 뒀으나 전날 공개 보도에 이어 군의 도발 행동 프로세스를 재차 확인한 것이다. 장 통전부장도 담화문에서 “지금까지 북남 사이에 있었던 모든 일은 일장춘몽으로 여기면 그만”이라며 단절 의지를 밝혔다. 노동신문은 폭파로 연기에 휩싸인 연락사무소의 처참한 모습이 담긴 컬러 사진 6장도 실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북한이 특사 파견을 거절하고 통전부장의 메시지를 통해 대화 단절 의사를 밝힌 동시에 총참모부 대변인 담화를 통해 앞으로의 시행 절차를 예고했다”고 했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수위 높아진 김여정 ‘독설’…‘미국’ 향한 불만 남한에 쏟아내

    수위 높아진 김여정 ‘독설’…‘미국’ 향한 불만 남한에 쏟아내

    올 초부터 “저능하다” “쓰레기” 막말“더는 남측에 기대할 것이 없다” 비난‘대북제재’에 대한 비판 남한에 쏟아내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은 17일 문재인 대통령의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기념행사 발언을 “철면피한 궤변”이라고 혹평했다. 북한이 2인자라는 위치에 어울리지 않게 “철면피함과 뻔뻔함” 등 독설을 그치지 않았다. 겉으로 드러낸 형식은 그동안 누적된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을 향한 불만을 쏟아내는 모양이지만, 내용을 자세히 보면 미국을 향한 강한 불만이 포함돼 있다. 김 제1부부장은 이날 ‘철면피한 감언이설을 듣자니 역스럽다’는 제목의 담화에서 문 대통령의 15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 발언과 6·15선언 20주년 행사 영상 메시지를 두고 “자기변명과 책임회피, 뿌리 깊은 사대주의로 점철됐다”고 주장했다. 김 제1부부장은 표면적으로는 남북 갈등의 직접적인 단초가 된 것이 탈북민 대북전단 살포와 남한 정부의 ‘묵인’이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문 대통령 연설에서 이에 대한 “사죄와 반성, 재발 방지에 대한 다짐”이 아닌 “변명과 술수로 범벅된 미사여구”만 있었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신뢰가 밑뿌리까지 허물어지고 혐오심은 극도에 달했는데 기름 발린 말 몇 마디로 북남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겠는가”고 되물었다. 특히 문 대통령이 남북관계 교착의 원인을 외부로 돌렸다면서 “과거 그토록 입에 자주 올리던 ‘운전자론’이 무색해지는 변명이 아닐 수 없다”면서 “철면피함과 뻔뻔함이 묻어나오는 궤변”이라고 비판했다. 김 제1부부장은 또 남측이 4·27 판문점 선언과 9·19평양공동선언 등 남북 합의를 이행하지 않은 채 미측에 굴종했다는 비판을 이어가면서, 더는 남측에 기대할 것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남한에 대한 불만의 핵심이 미국의 대북제재임을 시사한 것이다. 그는 남북 합의가 ‘한 걸음’도 이행되지 못한 것에 대해 “남측이 스스로 제 목에 걸어놓은 친미사대의 올가미 때문”이라면서 ‘남북합의에 대한 난폭한 위반’으로 이어진 예로 한미워킹그룹 출범, 한미연합훈련 등을 열거했다. 그는 이어 “뿌리 깊은 사대주의 근성에 시달리며 오욕과 자멸로 줄달음치는 이토록 비굴하고 굴종적인 상대와 더이상 북남관계를 논할 수 없다는 것이 굳어질 대로 굳어진 우리의 판단”이라고 못 박았다.마지막으로 “어쨌든 이제는 남조선당국자들이 우리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나앉게 됐다. 남조선 당국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후회와 한탄뿐일 것”이라는 기존 경고를 반복했다. 남한과의 대화를 진전시키는 것으로는 미국의 대북제재를 풀 수 없을 것이라는 뜻이 녹아있다. 불과 2년 전 평창동계올림픽 때만 해도 남북 정상 간 평화의 메신저로 활약했던 김 제1부부장이 이처럼 ‘독설’을 내뱉기 시작한 건 올해 초부터다. 그는 지난 3월 3일 북한의 합동타격훈련에 대한 청와대의 우려 표명에 즉각 담화를 내고 “저능하다”, “적반하장의 극치” 등 거친 언사로 맞대응했다. 지난 4일 담화에서는 대북전단을 살포하는 탈북민을 ‘쓰레기’, ‘똥개’ 등 거친 표현으로 난타하며 강공모드를 이어갔다. 지난 13일에는 남측을 ‘남조선 것들’, ‘말귀가 무딘 것들’이라고 비하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김여정, 문 대통령 6·15 연설에 “역스럽다…뻔뻔한 궤변”(종합)

    김여정, 문 대통령 6·15 연설에 “역스럽다…뻔뻔한 궤변”(종합)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최근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연설을 두고 “철면피한 궤변”이라며 “역스럽다”고 비난했다. 특히 남측이 판문점합의 이후 2년간 한미동맹만을 우선시해왔다며 문 대통령의 6·15 공동선언 20주년 발언을 꼬투리 잡아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김여정 제1부부장은 17일 ‘철면피한 감언이설을 듣자니 역스럽다’는 제목의 담화에서 문 대통령의 지난 15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 발언과 6·15선언 20주년 행사 영상 메시지를 두고 “자기변명과 책임 회피, 뿌리 깊은 사대주의로 점철됐다”고 혹평했다. 그러면서 “명색은 ‘대통령’의 연설이지만 저도 모르게 속이 메슥메슥해지는 것을 느꼈다”며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김여정 제1부부장은 남북 갈등의 직접적인 단초로 삼은 대북전단 살포를 비난하고, 이를 남측 정부가 묵인했다고 재차 주장하면서 문 대통령 연설이 “사죄와 반성, 재발 방지에 대한 다짐”이 아닌 “변명과 술수로 범벅된 미사여구”만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신뢰가 밑뿌리까지 허물어지고 혐오심은 극도에 달했는데 기름 발린 말 몇 마디로 북남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겠는가”고 되물었다. “구접스럽다”, “잘난 척”, “꼴불견”…원색적 비난 그는 남측이 4·27 판문점 선언과 9·19 평양공동선언 등 남북 합의를 이행하지 않았으며 “외세의 바짓가랑이를 놓을 수 없다고 구접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문 대통령이 6·15 공동선언 20주년 축사 당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넥타이를 빌려 착용한 것까지 거론하며 “상징성을 애써 부여하려 했다는데 내용을 들어보면 새삼 혐오감을 금할 수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다.담화 말미에는 “항상 연단 앞에만 나서면 어린애같이 천진하고 희망에 부푼 꿈 같은 소리만 토사하고 온갖 잘난 척, 정의로운 척, 원칙적인 척하며 평화의 사도처럼 채신머리 역겹게 하고 돌아간다”며 “그 꼴불견 혼자 보기 아까워 우리 인민들에게도 좀 알리자고 내가 오늘 또 말 폭탄을 터뜨리게 된 것”이라고 최근 쏟아낸 비난을 합리화했다. 특히 문 대통령의 남북 관계 교착의 원인을 외부로 돌렸다면서 “과거 그토록 입에 자주 올리던 ‘운전자론’이 무색해지는 변명이 아닐 수 없다”면서 “철면피함과 뻔뻔함이 묻어나오는 궤변”이라고 비판했다. 김여정 제1부부장은 또 남측이 4·27 판문점 선언과 9·19평양공동선언 등 남북 합의를 이행하지 않은 채 미국에 굴종했다는 비판도 더하면서, 더는 남측에 기대할 것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남조선 당국자, 이제 우리와 아무것도 못해” 그는 남북 합의가 ‘한 걸음’도 이행되지 못한 것에 대해 “남측이 스스로 제 목에 걸어놓은 친미사대의 올가미 때문”이라고 규정하면서 ‘남북 합의에 대한 난폭한 위반’으로 이어진 예로 한미워킹그룹 출범, 한미연합훈련 등을 열거했다. 그는 이어 “뿌리 깊은 사대주의 근성에 시달리며 오욕과 자멸로 줄달음치는 이토록 비굴하고 굴종적인 상대와 더 이상 북남 관계를 논할 수 없다는 것이 굳어질 대로 굳어진 우리의 판단”이라고 향후 대화 가능성을 차단했다.이날 조선중앙통신이 “남측이 지난 15일 특사 파견을 간청했지만 김여정 제1부부장이 불허했다”고 전한 것처럼 남측의 대화 시도를 북측은 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어쨌든 이제는 남조선 당국자들이 우리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나앉게 됐다. 남조선 당국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후회와 한탄뿐일 것”이라는 기존 경고를 반복했다. 통일전선부장 “손해볼 것 없다…앞으로 남측과 교류 없어” 우리의 통일부 격으로 대남사업을 담당하는 장금철 당 통일전선부장도 이날 별도 담화에서 전날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에 대한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회의 발언을 겨냥해 “북남 관계가 총파산된 데 대한 책임을 진다고 하여 눈썹 하나 까딱할 우리가 아니다”라면서 “득실 관계를 따져보아도 우리에게는 아무런 실도 없다”고 밝혔다. 장 부장은 “지금까지 북남 사이에 있었던 모든 일은 일장춘몽으로 여기면 그만”이라면서 “앞으로 남조선 당국과 무슨 교류나 협력이란 있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날 조선중앙통신은 ‘파렴치의 극치’ 제목의 논평에서 전날 통일부의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장의 성명을 거론하며 “입 건사를 잘못하면 그에 상응하여 이제는 삭막하게 잊혀져가던 서울불바다설이 다시 떠오를 수도 있고 그보다 더 끔찍한 위협이 가해질 수도 있겠는데 그 뒷감당을 할 준비는 되어 있어야 하리라고 본다”고 지적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씨줄날줄] ‘세계의 경찰’ 미국/박록삼 논설위원

    [씨줄날줄] ‘세계의 경찰’ 미국/박록삼 논설위원

    미국은 2003년 3월 20일 이라크를 침략했다. 미군 12만명이 ‘충격과 공포’ 전술을 사용했다. 침략의 가장 큰 명분은 ‘대량살상무기 제거’였다. 하지만 유엔사찰단이 이라크 전역을 샅샅이 뒤졌지만 존재하지 않았다. 미군 전사자 2000여명, 최대 10만명의 이라크 사망자를 쏟아낸 불필요한 전쟁이었다. 2011년 철군 전까지 이라크 전후 복구사업에 600억 달러(약 72조 1800억원)가 투입됐지만, 미국의 이라크 재건사업 특별감사팀이 조사해 보니 친미적인 이라크 시아파 정치가들에게 흘러갔을 뿐이다. 중동평화는 여전히 오지 않았다. 이뿐 아니다. ‘6일 전쟁’으로 부르는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예상과 달리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등 아랍연합군을 속전속결로 격파한 성과 뒤에도 미국의 막대한 지원이 있었다. 1989년 2만 5000명의 미군을 동원해 파나마를 침공한 뒤 노리에가를 마약 밀매 혐의로 체포했다. 재미있는 점은 노리에가가 1970년대부터 CIA의 돈을 받으며 미국 하수인 노릇을 해 왔다는 사실이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역시 무기 제공, 석유 파이프라인 건설 등 297억 달러에 달할 만큼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온 인물이었다. 미국은 제3세계 국가의 지도자를 지원했더라도, 쓰임이 다하거나 입맛대로 굴지 않으면 언제든 폐기처분했다. 냉전시대부터 미국은 중남미,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내정간섭, 개전 등을 일상다반사처럼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미 육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먼 나라에서 벌어지는 오랜 갈등을 해결하는 건 미군의 책무가 아니다”라며 “우리는 세계 경찰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재외 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 협상을 위해 내놓은 ‘장사꾼 발언’ 성격이 짙다. 오로지 미국의 이익을 위해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며 세계 곳곳의 분쟁에 개입해 친미정부를 세워 온 역사를 떠올리면 쓴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는 지난 3월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타이베이 법안’과 상충한다. 1979년 미중 수교 이후 채택된 ‘하나의 중국’ 원칙을 폐기한 타이베이 법안은 ‘세계의 경찰’ 노릇의 일환이다. 심지어 지난해 5월 미 국방부 전략보고서에서는 ‘중국 인민해방군의 대만 위협으로부터 미국이 대만을 보호할 필요성’까지 거론했다. 미국은 대만에 수상함 공격이 가능한 중어뢰를 비롯해 대만형 에이브럼스 전차와 스팅어 미사일, 최신 개량형 F16V 66대도 판매했다. 대만을 앞세운 ‘미중 전쟁’이 언제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세계의 경찰’을 자처해 온 미국이지만, 트럼프 대통령 말처럼 그 역할을 내려놓을 시기가 됐다.
  • 통신 단절한 북한, 남한에 적개심 폭발 “얼빠진 자들”

    통신 단절한 북한, 남한에 적개심 폭발 “얼빠진 자들”

    대북전단 문제를 내세워 남북한 간 모든 통신연락선을 끊은 북한이 10일에도 남측을 규탄하는 여론몰이를 계속하고 있다. 북한 관영·선전매체들은 10일 각지에서 각계각층 인사들의 비난 목소리를 앞다퉈 소개하면서 남한 당국을 향한 강한 적개심과 불만을 드러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전날 황해남도 신천박물관 앞에서 진행된 조선사회주의민주여성동맹의 항의 군중집회와 규탄모임 소식을 실었다. 6·25전쟁 때의 미군 만행을 전시했다는 신천박물관은 ‘반미 교양’ 거점으로 알려져 있다. 신문은 “어머니들은 쓰레기들의 망동을 묵인하는 남조선 당국자들의 행태가 더 역겹다. 북남관계를 총파산시켜야 한다고 하며 격분을 누를 길을 없어 하고 있다”면서 남측 정부를 겨냥했다. 야외에서도 빠짐없이 마스크를 낀 여성들이 “자멸을 재촉하는 역적무리들을 송두리째 불태워 버리자!” “민족반역자이며 인간쓰레기인 탈북자들을 찢어 죽여라” 등의 구호와 함께 선 집회 모습이 사진으로도 공개됐다. 노동신문은 군에 입대하면서 최전방 초소 배치를 희망하는 고급중학교(고등학교) 졸업반 학생들, 저속한 표현으로 남측을 비난하는 시를 지은 김형직사범대 어문학부의 최남순 강좌장 등의 인터뷰도 소개했다. 그러면서 “온 나라가 분노의 불길로 활활 타 번지는 때”, “어디를 가나 폭발 직전의 긴박한 공기” 등의 표현을 통해 남측을 적대시하는 분위기가 북한 사회 전반을 뒤덮고 있음을 드러냈다. 항의 집회를 촉발한 김여정 당 제1부부장의 지난 4일자 담화를 최고지도자 교시처럼 떠받드는 모습도 곳곳에서 목격됐다. 또 대외 선전매체들은 남한 당국이 미국에 굴종하면서 매국 행각을 벌이고 있다고 일제히 비판했다. ‘조선의오늘’은 남한 당국의 남북협력사업 추진을 “얼빠진 자들의 부질없는 몸부림”이라고 폄하하면서 “친미사대와 동족대결 책동으로 북남관계는 날이 갈수록 개선이 아니라 파국의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지고 있다”고 했다. 별도 기사에서도 “오늘 긴장 격화의 주된 원인은 친미사대행위에 매달리는 남조선 당국과 그에 맞장구를 치며 돌아가는 집권여당에 있다”면서 남북관계 악화 책임을 남측에 돌렸다. ‘우리민족끼리’는 “남조선 당국이 앞에서는 ‘평화의 악수’를 하고 뒤돌아 앉아서는 외세와 작당질하여 무력으로 동족을 압살하려는 야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면서 “동족대결의 흉심이 더 교활·악랄해졌다”고 일갈했다. 앞서 조선중앙통신은 9일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과 김영철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배신자들과 쓰레기들이 저지른 죗값을 정확히 계산하기 위한 단계별 대적 사업 계획들을 심의했다”며 통신선 차단을 ‘첫 단계’로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날부터 연락사무소 통신선, 동·서해 군 통신선, 통신시험연락선(기계실 간 시험 통신),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와 청와대 사이의 핫라인이 모두 끊겼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박기석의 외교 통일 수첩] 미중 양자택일할 수 없는 한국…대외 정책 모순 관리 나서야

    [박기석의 외교 통일 수첩] 미중 양자택일할 수 없는 한국…대외 정책 모순 관리 나서야

    중국은 지난 28일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미국이 반대하던 ‘홍콩 국가안전 수호에 관한 법률’(홍콩 보안법)을 통과시켰고,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날 보복 조치로 홍콩에 부여한 특별 지위를 철폐하는 절차를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미국과 영국, 캐나다, 호주의 외교장관은 공동성명을 통해 홍콩 보안법 통과를 비판했고 독일과 프랑스, 일본은 우려를 표명했다. 반면 북한 외무성은 30일 중국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세계 주요국과 동북아시아의 국가들이 홍콩 보안법을 계기로 미중 양극으로 재편되는 모습이다. 홍콩 보안법발 세계 양극화 현상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미중 양국이 이미 홍콩 보안법뿐만 아니라 무역·통상, 기술표준, 코로나19 책임 소재 등에서 전선을 형성하고 있고, 세계 각국을 자신의 편으로 줄 세우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도 비슷한 압박을 받고 있다. 특히 중국이 29일 한미가 경북 성주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기지에 노후화된 미사일을 교체한 데 대해 반발하면서 사드 갈등도 재점화되는 모습이다. 미중 갈등의 전선이 사드로 인해 한반도로 확장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중 갈등이 제로섬의 패권 경쟁으로 심화될 것인지, 세계가 양국 중심 체제로 재편될 것인지에 대해서 전문가들은 상반된 전망을 내놓고 있다. 다만 한국이 섣불리 양자택일을 하기도 어렵고, 해서도 안 된다는 데는 대체로 공감하고 있다. 미중 모두에 경제적으로 밀착돼 있는 한국은 미국과는 안보 동맹을 유지해야 하고, 중국과는 북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를 위해 정치·외교적 협력을 강화해야 하는 이중 과제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양자택일의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해 전문가들은 한국의 국익과 원칙을 규정하고 중견국으로서 전략적 지위를 제고하며 유사한 딜레마에 직면한 타국과의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지난 2월 ‘INSS 전략보고’에서 “국가이익을 중심으로 하는 외교적 원칙과 기준의 부재는 한국으로 하여금 임기응변식 대응의 유혹을 불러일으킬 것이며, 이는 강대국 사이의 제로섬 게임에 깊숙이 연루되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비핵화, 자유무역과 시장경제, 개방된 세계화, 다자협력 등 한국의 안보와 번영을 보장해 준 원칙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미중 간 선택의 딜레마를 피하려 할 때 친미와 친중이라는 상호 모순되는 대외 정책을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미중 갈등이 격화될수록 친미·친중 정책 간 모순은 증대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사안별로 친미·친중 정책 중 하나를 선택해 모순을 제거하려 할 수 있지만, 이는 오히려 재앙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영평 고려대 행정학과 명예교수는 2008년 발표한 ‘정책이론에서 합리성의 한계와 모순의 관리’ 논문에서 정책 수립·집행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선택의 딜레마를, ‘모순 관리’ 개념으로 극복할 것을 제안한다. 김 교수는 “합리적 선택이 불가능하면서도 합리적 선택을 지향해야 한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도는 모순적 상황을 관리해 건설적 귀결을 유도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김 교수는 모순 관리의 필요성은 사전에 특정 정책이 최적이라고 판단할 수 없다는 한계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한다. 모순 관계에 놓인 정책들은 다양한 이익과 관심이 걸려 있어 하나의 기준으로 선택할 수 없다는 말이다. 안보에서 친미·친중 간 모순을 감안하지 않고 친미 정책이 최적이라고 판단해 추진했을 때의 재앙은 중국의 사드 보복이었다. 김 교수는 모순 관리를 위해서는 정책 수립·집행 과정을 분산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강력한 리더와 소수 집단이 수많은 이해관계를 고려할 수 없기에 독립되고 상호 연결된 이해 집단들이 정책을 분산적으로 수립·집행하고, 중앙의 관리자는 각 정책의 오류를 시정하는 데 머무르며 정책을 사후적으로 최적화해야 한다. 대외 정책의 모순 관리를 위해서도 리더는 강력한 추진가보다는 섬세한 조정자가 돼야 한다. kisukpark@seoul.co.kr
  • 中 연구소 검증 못하는데 폼페이오도 “우한서 유출”…재선 앞둔 트럼프 구하기

    中 연구소 검증 못하는데 폼페이오도 “우한서 유출”…재선 앞둔 트럼프 구하기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중국 우한의 연구소에서 퍼졌다”는 일각의 주장을 공식 제기하면서 미중 갈등이 격화될 양상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이어 중앙정보국(CIA) 국장 출신인 폼페이오 장관까지 ‘중국 연구소 유출설’을 거듭 주장하면서 이 문제는 ‘가짜뉴스’에서 ‘진실 공방’의 대상으로 격상됐다. ●폼페이오 “사람이 만든 것 아니라는 건 동의” 폼페이오 장관은 3일(현지시간) ABC방송 인터뷰에서 “코로나19가 중국 우한의 바이러스연구소에서 시작됐다는 거대한 증거가 있다”면서 “중국은 과거에도 세계를 감염시킨 전력이 있고 지금도 수준 이하의 연구소를 운영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사회자가 ‘과학계의 합의는 이 바이러스가 사람이 만든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라고 하자 “맞다. 나도 그것에 동의한다”면서 “정보기관들이 밝힌 것을 봤다. 그들이 틀렸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다”고 모순적인 대답을 했다. ●英 등 친미언론도 “우한연구소 유출설” 이날 영국과 호주 언론들도 일제히 “중국 우한의 한 연구소에서 비밀리에 코로나19 실험이 진행됐으며 알 수 없는 경로로 이 바이러스가 연구소 밖으로 유출됐다는 의혹이 있다”고 전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정보동맹체 ‘파이브 아이스’(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국가들이 함께 연구소 유출설을 제시하는 모양새다. 전 세계 과학자들은 지난 2월 세계적 의학저널 ‘랜싯’에 공동 성명을 내고 “코로나19가 자연에서 유래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모든 음모론을 비난한다”고 발표했다. 이들은 “코로나19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여느 바이러스와 마찬가지로 야생동물에서 나온 것으로 결론 났다”면서 “(연구소 유출설 등) 음모론은 바이러스와 싸우는 국제사회의 협력을 훼손하고 공포와 편견을 조장한다”고 비판했다. ●美, 우한 연구소 공개 안 할 것 알고 이슈화 이렇게 ‘가짜뉴스’로 판명돼 폐기된 듯 보였던 연구소 유출설은 최근 트럼프 행정부의 잇따른 문제 제기로 미 대선 이슈로 되살아났다. 현재 미국은 코로나19 확진환자 116만명, 사망자 7만명으로 전 세계에서 피해가 가장 크다. 이 때문에 11월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은 경합주 지지율 조사에서 민주당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에게 밀리고 있다. 대선가도에 ‘빨간불’이 켜지자 감염병 초기대응 실패 여론을 희석시키고 보수 지지층을 결집하고자 트럼프 대통령 측이 ‘연구소 유출설’을 꺼내 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중국 입장에서 해당 의혹의 진위 여부에 관계없이 주권 침해를 감수해 가며 우한 연구소를 미국에 공개할 리 만무하고 트럼프 행정부도 이를 잘 알고 있다. 결국 연구소 유출설은 미국 측이 대선 기간 내내 검증 없이 쓸 수 있는 ‘중국 때리기’ 소재가 될 전망이다. ●中 “증거없이 거짓말… 냉전시대 발상” 중국공산당 기관지 환구시보는 4일 사평에서 “폼페이오 장관은 아무런 증거를 제시하지 않고 코로나19 연구소 발원설을 반복하고 있다”면서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그 자신이 가장 잘 알 것”이라고 비판했다. 인민일보도 논평에서 “미국이 코로나19와 관련해 중국 책임론을 펴는 것은 냉전시대의 발상”이라고 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고난의 역사에서 부러움의 대상으로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고난의 역사에서 부러움의 대상으로

    함석헌(1901~1989)은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조선말 우리의 처지를 ‘늙은 갈보’에 비유했다. “스스로 제 운명을 개척하고 사람 노릇 하자는 생각이 없고 오늘은 이놈에게, 내일은 저놈에게 붙어 그때그때 구차한 안락을 탐했다.” 수구·개화, 친일·친청, 친러·친미로 갈라져 서로 싸우던 상황을 빗댄 표현이다. 그러다 결국 이놈에게도 사랑을 잃고 저놈에게도 미움을 사 몰락해 버렸다. 일부 먼저 깬 사람들이 힘을 써서 갑신정변, 갑오경장 하는 운동이 없지 않았으나 소용없었고, 끝내 1910년 일본에 의해 나라가 망했다. 함석헌은 왜 하필이면 일본이냐고 묻는다. 일본을 기르고 가르친 것은 우리였다. 고대 일본에 문화를 처음 일으킨 것은 반도에서 규슈로 건너간 우리 민족의 한 물결이었다. 그들에게 처음으로 한자를 가르치고 유교, 불교를 전해준 것도 우리였다. 그들은 우리와의 교류가 없었더라면 발전할 수 없었다. “우리가 주권을 튼튼히 하고 완벽히 교통을 제어했다면 일본의 운명은 우리 손에 있었다.” 그리하여 “서양문명이 밀어닥쳤을 때 우리가 만일 만주를 뒷마당 삼고 일본열도를 방파제로 삼았다면 역사는 달리 흘러갔을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길러내고 업신여기던 일본에 나라를 몽땅 빼앗겼다. 함석헌은 이를 “마치 안주인이 행랑 머슴에게 실절(失節)한 셈”이라고 표현한다. 그는 우리 역사를 ‘고난의 역사’라고 부른다. “우리 역사는 눈물과 피로, 걸었다기보다는 기었고, 기었다기보다는 굴러왔고, 발길에 차여 왔다.” 광복 후에도 사정은 바뀌지 않았다. 함석헌은 “우리나라는 역대로 정치한다는 놈마다 민중 생각을 아니 하였기 때문에 백성이 정치의 따뜻한 혜택을 입어 본 일이 없다”고 말한다. “이 백성은 이때껏 임금도 없었고, 지도자도 없었다. 도둑한테 끌려왔고, 이리한테 몰려왔다. 저들은 나라 없는 백성이다.” 2016년 4월, 한 네티즌은 이렇게 탄식한다. “이 나라는 거대한 세월호다. 배를 움직이는 사람들은 여차하면 배를 버리고 달아날 채비가 되어 있는데도, 배에 탄 사람들은 배가 흔들리고 뒤집혀도 그들의 말만 믿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이랬던 한국이 2020년 봄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우리의 앞선 의료체계와 민주적 리더십이 결합해 세계 각국의 부러움의 대상이 된 것이다. 5월의 장미가 뭇 행인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우석대 역사교육과 명예교수
  • [이동구 칼럼] ‘이 풍진 세상을…’

    [이동구 칼럼] ‘이 풍진 세상을…’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중략)~세상만사를 잊었으니 희망이 족할까.” 최근 한 종편TV 프로그램에서 4명의 경연자들이 함께 불러 방청객과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렸던 ‘희망가’의 노랫말이다. 방청객뿐 아니라 기성 가수들조차 눈물을 훔치기도 했고 관련 소셜미디어 접속 조회수가 족히 200만회를 넘었다. 100여년 전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대중가요에 많은 사람이 뜨겁게 공감한 이유는 무엇일까. 대중문화는 시대상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가요뿐 아니라 아카데미상 4개 부문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도 마찬가지다. ‘희망가’가 일제강점기 민족의 애환이 담겼다면 ‘기생충’은 빈부의 차는 존재해도 가족 사랑은 인간 본성이라는 것으로 공감을 이끌어 냈다. 100년 전의 대중가요가 다시 사랑을 받고, 영화 ‘기생충’이 다른 인종과 지구 반대편의 먼 나라에서조차 사랑받는 이유는 대중문화가 자신들의 처지를 잘 이해해 주고 달래 준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온 세상이 뒤죽박죽이다.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19가 아시아권을 넘어 유럽, 미국, 남미 등 전 세계로 번졌다. 이란과 이탈리아 등지에서는 사망자가 이미 1000명을 넘어섰다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뒤늦게 팬데믹을 선언했지만 코로나19의 확산세는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덩달아 각국은 국경을 봉쇄해 왕래를 막고 있다. 세계 경제가 곤두박질치는 것은 당연하다. 코로나19가 세계와의 교감을 중요치 않게 여겨 왔던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나 EU를 탈퇴한 영국의 고립주의 등을 더 견고히 하는 계기가 될까 걱정이다. 코로나19는 조만간 사라지거나 통제 가능한 날이 올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우리 국민들이 겪은 고통과 상처는 쉬 아물지 않을 것 같다. 환자나 희생자 가족뿐 아니라 자영업자 등 전 국민이 큰 고충을 겪었다. 여전히 말 그대로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이런 시민들을 두고 자신들의 공치사를 먼저 내세우는 정치인들과 진영 논리나 포퓰리즘에만 혈안이 된 위정자들이 막말들을 쏟아냈다. 특히 “대구 봉쇄, 대구는 손절해도 된다, 코로나 사태는 대구 사태, 대구 폐렴, 지역민들의 무능과 특정 정당을 광신하기 때문에 집단 발병했다”는 등의 발언은 대구·경북 시민들에게 비수를 꽂았다. 공감 능력이 상실된 행위로 관련 주민들에게 큰 상처를 남긴 것이나 다름없다. 평소엔 입을 열 때마다 ‘국민’, ‘소통’, ‘정의’ 등을 외치던 사람들이다. “대구·경북 힘내라”라는 격려의 말 백마디보다 더 아픈 상처를 안겼다. 정의는 선언이나 이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이어야 한다. 그 첫 시작은 이웃이나 약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이다. 이런 배려 없이 자신만이 정의로운 듯 외쳐 댄다면 대중들의 마음에 지워지지 않을 흉터가 되기 마련이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사회·경제·정치적인 큰 이슈 때마다 ‘국민의 뜻, 국민적 공감대’라는 명분으로 희생양을 찾는 게 문제 해결보다 더 중요한 과정이 되고 있다. 대통령이나 좋아하는 정치인, 연예인이 비난받거나 궁지에 몰린다고 생각되면, 실체적 진실을 가리기도 전에 소셜미디어 등으로 테러에 가까운 공격을 퍼붓는다. 지난해 조국 전 장관 일가족을 둘러싼 논란이 대표적이다. 사실관계를 정치적인 명분으로 희석시키려다 사회정의의 혼란을 일으킨 사례다. 최근엔 한 외신기자가 코로나19 대응을 자화자찬하는 우리 정부를 꼬집는 동영상을 트위터에 올렸다가 댓글테러를 당했다. 성차별적 발언부터 ‘토착왜구’, ‘매국노’ 등의 반일 감정을 부추기는 막말까지 마구 쏟아졌다. 다른 의견을 인정하지 않는 도 넘은 혐오와 분노가 표출된 것이다. 그는 “정부를 비판했다가는 ‘친일’, ‘친미’ 딱지가 붙으며 배신자·반역자 취급을 당한다”고 토로한다. 정치적 이해관계나 이념, 지역주의 등으로 형성된 거대 집단의 특징 중 하나는 골치 아픈 사회문제에 대해 원인 규명과 근본 치유보다 ‘희생양’을 찾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이다. 중세의 마녀사냥이나 나치의 유대인 학살 등이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희생양으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면 당장은 편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모두가 사회정의에 눈감게 돼 결국 그 사회는 큰 혼란에 빠지거나 붕괴한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100년 전 그 어지럽고 모진 세상을 한탄했던 심경에 지금의 대중들이 공감하는 이유가 아닐까.
  • [이해영의 쿠이 보노] 한중일 코로나19 삼국지

    [이해영의 쿠이 보노] 한중일 코로나19 삼국지

    정치적인, 너무나 정치적인 바이러스! 코로나19 말이다. 지난 2월 23일자 중국의 ‘인민일보’는 이렇게 보도했다. “아마도 우한에서 열린 세계 군인 체육대회의 미국대표들이 코로나바이러스를 우한으로 가져 왔고, 바이러스에 약간의 돌연변이가 발생해 더 치명적이고 전염성이 강한 특성을 가지게 됐으며, 올해 광범위한 확산을 일으켰다.” 실제로 작년 10월 18일부터 27일까지 세계 109개 국가에서 9308명이 참가한 가운데 세계 군인 체육대회 혹은 군인올림픽이 우한에서 개최됐다. ‘환구시보’ 역시 중국 연구자들의 새로운 연구 결과를 소개하면서 최초 감염자(patient zero)가 우한의 수산시장 근로자나 상인들에게 바이러스를 전염시켰고 인파가 붐비는 시장이라는 조건과 맞물려 바이러스가 대창궐했다고 보도했다. 그래서 중국의 ‘정보기관’까지 가세한 중국의학계는 코로나19의 중국 유래설이 아니라 외부 유입설을 강하게 시사한다. 논리적 귀결은 인플루엔자로 대략 2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미국이 코로나19의 발원지일 수 있다는 말이다. 최초 감염자야 언젠가는 밝혀질 것으로 기대하지만 당장은 주요 2개국(G2)의 무역전쟁이 아니라 바이러스전쟁으로 비화할지 지켜볼 일이다. 중미뿐만 아니라 한중일 사이에도 코로나 삼국지가 한창이다. 특히 중국인 입국을 둘러싼 국내 논란이다. 일부 언론은 사태를 재앙으로 키운 것은 현 정부의 초기 대응에서의 방심과 오판 때문이란다. “미국을 배워야 할 한국이 중국과 ‘운명공동체’ 운운하다 하향평준화를 초래해 국민 자존심에 큰 상처를 줬다.”(‘중앙일보’, 3월 3일자) 돈 없으면 진단조차 받지 못하는 미국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지 모를 일이지만, 특히나 코로나 사태 초기부터 중국 여행자 입국 제한을 하지 않았다고 집중 공격한다. 일각에서는 모든 중국인 유학생을 ‘강제’ 수용하라는 요구도 등장했다. 대통령 주변의 비선 전문가들의 ‘의료사회주의’라는 객쩍은 색깔론도 가세했다. 여기에다 대구ㆍ경북(TK) ‘봉쇄’니, ‘손절’이니 하는 진영 논리에다 지역주의까지 더해서 자칫하면 코로나19가 ‘빨간’ 색이 될 판이다. 코로나19는 친중일까, 친미일까. 물론 그 와중에 정부의 목소리도 한결같진 않다. 외교부는 중국 공항의 방역 허술을 지적하는데, 청와대는 “중국 14개성은 현재 코로나 확진자가 거의 없고 내부 방역이 철저히 이뤄지고 있어 최근 확진자가 늘고 있는 우리나라에 대한 입국 제한을 이해할 수 있다”고 밝히는 식이다. 그런데 70만 인구에서 중국인이 6만 5000명이나 되는 경기 안산시에선 확진자가 나오지 않았고 차이나타운이 있는 인천이나 서울 가리봉동도 오히려 안전하다. 용인시에 입국한 중국인 유학생 1134명 중 확진자는 0명이다. 나아가 국내 입국한 수만명의 중국인 유학생 중 확진자는 강릉에서 1명 나왔다. 오히려 불법체류 중인 중국인들이 자수까지 하며 위험한 한국을 ‘탈출’하고 있다지 않은가. 이처럼 확증된 경험적 현실은 언제나 편견에 적대적이다. 중국인 입국 금지를 놓고 국내에서 난타전을 벌이는 사이 일본이 옆구리를 치고 들어왔다. 일본 정부는 바이러스 대책회의를 열어 9일부터 한국과 중국에서 오는 입국자에 대해 2주간 격리조치를 시행하고 한국 전역의 감염위험 경보를 레벨2로 상향해 일본인의 한국 여행 자제를 요청했다. 얼핏 보기에도 한중 여행자를 볼모로 삼아 도쿄올림픽의 성공을 담보하기 위한 일종의 화이트리스트 재판이라 할 만한 것이었다. 우리 정부 역시 여기에 대한 상응조치로 9일을 기해 90일 비자면제 조치와 이미 발급된 비자의 효력을 정지하고 일본 전역에 걸친 여행경보도 2단계로 상향시켰다. 검역은 제2의 국방이라고 했던가. 단 한 명의 감염자도 없어야 했지만, 우리의 바이러스 대응은 아직은 체계적이고 투명하며 또 ‘민주적’이다. 세계 유수 언론의 평가가 그저 허투루 하는 소린 아닌 게다. 감염병의 진앙지 곧 ‘그곳’이 아니라 특정 국적과 인종에 대한 공포와 분노를 조장하는 대책은 바른 방향이 아니다. 분명 감염병(epidemic)도 문제지만 그 못지않게 인포데믹(infodemic)이 문제라는 것이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이런 불필요한 국내 정치용 신경전이 아니라 한중일의 반바이러스 국제 공조다. 지금처럼 글로벌화 조건에선 모든 인수공통 전염병의 글로벌화 또한 필연적이다. 글로벌 바이러스에 개별 국가만의 일국적 대응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지금 글로벌 위험사회에 살고 있다.
  • 北 매체들, 남쪽 드라마와 영화 “민족 분열의 비극으로 돈벌이”

    北 매체들, 남쪽 드라마와 영화 “민족 분열의 비극으로 돈벌이”

    기자는 케이블 채널 tvN ‘사랑의 불시착’ 첫 회를 시청하다 15분쯤 만에 채널을 돌려버린 일이 있었다. 분단의 현실을 이렇게 코미디로 만들 수 있나 싶어서였다. 두 번 다시 보지 않았다. 늦었다 싶긴 한데 북한의 대외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가 4일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극악무도한 도발 행위’ 제목의 논평을 내 “최근 남조선 당국과 영화 제작사들이 허위와 날조로 가득 찬 허황하고 불순하기 그지없는 반공화국 영화와 TV 극들을 내돌리며 모략 선전에 적극 매달리고 있다”고 꾸짖었다. 작품 이름을 대지 않았지만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사랑의 불시착’과 영화 ‘백두산’을 가리킨 것이 분명해 보인다. 손예진과 현빈이 주연으로 나온 ‘사랑의 불시착’은 방영 초기 북한 미화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북한을 남한보다 경제적으로 낙후한 곳으로 묘사하며 상당히 황당한 극 전개로 북한 당국의 심기를 건드린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2월 개봉한 ‘백두산’에서는 화산 폭발로 한반도가 쑥대밭이 되고, 북한 노동당 당사로 추정되는 건물이 무너지기도 한다. 우리민족끼리는 “친미굴종 정책과 군사적 대결 망동으로 북남관계를 다 말아먹고 돌아앉아서는 조선반도 평화 파괴의 책임을 남에게 넘겨씌우려고 이따위 혐오스러운 반북 대결 영화를 찬미하며 유포시키는 남조선 당국의 처사에 내외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가슴 치며 통탄해야 할 민족 분열의 비극을 돈벌잇감으로 삼고 여기서 쾌락을 느끼고 있는 자들이야말로 한 조각의 양심도 없는 너절한 수전노, 패륜아들”이라고 비난했다. 다른 선전매체 ‘메아리’ 역시 이날 ‘예술적 허구와 상상이 아니라 병적인 동족 대결 의식의 산물’ 제목의 논평을 내 “최근 남조선에서 우리 공화국을 헐뜯는 내용으로 일관된 영화와 TV극을 비롯한 반공화국 선전물들이 방영되고 있어 우리 인민의 격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메아리는 “남조선 당국은 이따위 모략 영화나 만들어 내돌린다고 해서 썩고 병든 남조선 사회의 부패상이 다소 가리워지거나 우리 공화국의 존엄과 권위를 깎아내리고 조선반도 평화 파괴의 책임을 남에게 넘겨씌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되물었다. 또 “민족분열의 비극을 흥행거리로 삼고 쾌재를 부르는 영화인의 감투를 쓴 어중이떠중이들도 동족을 모해한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될 것”이라고 지청구했다. 우리 당국이 뒤에서 조종했다는 식의 북한 매체 지적에는 동의할 수 없다. 하지만 기자 개인적으로는 ‘사랑의 불시착’이 냉엄한 분단 현실에 ‘불시착’ 했다는 불편하고 불쾌한 느낌을 감출 수가 없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북한, 북남남녀 사랑 그린 ‘사랑의 불시착’은 동족 모독

    북한, 북남남녀 사랑 그린 ‘사랑의 불시착’은 동족 모독

    북한이 최근 ‘사랑의 불시착’ ‘백두산’ 등 북한을 소재로 한 영화와 드라마에 대해 반공화국TV극과 영화라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북한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4일 ‘절대로 용납할수 없는 극악무도한 도발행위’란 제목의 기사를 통해 한국이 “허위와 날조로 가득찬 허황하고 불순하기 그지없는 반공화국영화와 TV극들을 내돌리며 모략선전에 적극 매달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러한 영화와 TV극들을 만들어 방영하고 있는 것은 동족에 대한 참을수 없는 모독이며 용납할수 없는 극악무도한 도발행위라고 분노했다. 기사에서는 특정 드라마나 영화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북한 군인과 한국 재벌의 사랑을 그린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백두산이 폭발한다는 가상의 상황을 그린 영화 ‘백두산’에 대한 비난임을 유추할 수 있다. 우리민족끼리는 북한 소재 영상물의 제작을 ‘망동’으로 규정하며 “온갖 사회악과 고질적 병페로 썩고 병든 남조선사회를 미화분식하고 인민대중중심의 우리 식 사회주의사회의 영상에 먹칠해보려는 불순한 기도”라고 지적했다. 또 문재인 정부의 남북관계 정책도 친미굴종정책과 군사적 대결망동으로 북남관계를 다 말아먹었다고 비난했다. 북한 소재 영화는 돌아앉아서 조선반도 평화파괴의 책임을 남에게 넘겨씌우려는 처사라며 경악스럽다고 표현했다. 109상무 조직으로 한류 시청 단속 또 다른 북한 선전매체 메아리도 북한 소재 영상물에 대해 ‘예술적 허구와 상상이 아니라 병적인 동족대결의식의 산물’이라고 강조했다. 메아리는 “남조선에서는 아무런 사실적 근거도 없이 그 누군가를 의도적으로 헐뜯고 모해할 목적밑에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모략과 음모, 거짓과 날조로 일관된 영화아닌 영화가 공공연히 만들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사랑의 불시착’은 비교적 북한 군인의 생활상에 대한 고증이 정확하며, 번화한 평양 거리도 잘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북한과 한국의 생활상의 차이가 어쩔수없이 그려졌다. 드라마 남녀 주인공은 결국 북한도 한국도 아닌 스위스에서 사랑을 이루는 것이 결말이었다. 북한에서도 한국 드라마나 영화의 인기가 높아 2004년 2월 109상무란 사상, 미디어 통제검열조직을 설립해 영상물과 불법 출판물, 라디오와 녹화기 등을 단속하고 있다. 노동당 선전선동부가 책임지고 검찰소와 보위부, 보안성이 합류하여 중앙과 지방에 조직된 비상설기구로 북한에서 한국 드라마를 시청하면 109상무의 단속 대상이 된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곽병찬의 역사앞에서 묻다] 초강대국 틈에 끼여 있는 한반도… 선택지는 ‘화친’뿐, ‘척화’란 없다

    [곽병찬의 역사앞에서 묻다] 초강대국 틈에 끼여 있는 한반도… 선택지는 ‘화친’뿐, ‘척화’란 없다

    오늘은 음력 1월 17일이다. 1637년 오늘 청태종은 이런 조서를 보냈다. 엿새 전 조선의 인조가 보낸 상서에 대한 답이었다. “운명이 아침저녁에 달려 있는데도 오히려 부끄러운 줄을 모르고 헛소리만 하니 무엇이 유익하겠는가.” “이제 네가 살고자 하느냐. 마땅히 빨리 성에서 나와 항복하라. 아니면 싸우고자 하느냐. 그러면 빨리 나와서 한 번 싸워 보자.” 이 치욕적인 내용 앞에서 인조는 그저 안절부절, 목숨 부지에 골몰했다. “(너희는) 왕왕 우리 군사를 오랑캐 도적이라 하지 않았느냐. …어찌하여 나를 잡지 아니하고, 내버려두느냐.” “양의 바탕에 호랑이 껍질이라는 속담이 참으로 너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더냐.” 청태종의 지적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청을 오랑캐라고 욕하고, 정묘조약을 파기하고, 오랑캐 정벌을 공언한 것도 척화파가 장악한 조정이었고 인조였다. 이튿날(음력 1월 18일) 인조는 항복의 뜻을 밝히되 다만 ‘출성 요구를 거두어 달라’고 애걸하는 내용의 국서를 쓰도록 했다. 출성은 곧 포로라고 여긴 인조는 두려웠다. 이조판서 최명길이 국서를 쓰자, 예조판서 김상헌이 찢었고, 최명길은 다시 붙였다. 그 모습을 본 병조판서 이성구는 분노했다. “화의를 배척하여 나랏일을 이 지경에 이르게 했으니 대감이 적에게 가시오.” 김상헌은 울면서 뛰쳐나갔다. 그해 2월(음력 1월)은 조선 역사상 가장 참혹했다. 남한산성에선 병사와 백성은 추위와 굶주림에 죽어갔고 성 밖에선 수십만 백성이 죽임을 당하거나 노예로 끌려갔다. 조선은 삶은 닭 털 뽑히듯 산 채로 벗겨지고 있었다. 1637년 2월 24일(음력 1월 30일·산성 도피 47일째) 인조가 땅바닥에 엎드려 항복의식을 한 뒤 도성으로 갈 때였다. 포로가 된 1만여 백성이 울부짖었다. “임금이시여, 우리를 버리고 가십니까?” 절규를 외면한 채 돌아온 한양 도성은 “시체가 길거리에 이리저리 널려 있”(인조실록 음력 1637년 2월 1일 자)는 거대한 무덤이었다.“경성에 사는 백성이 가장 혹독하게 화를 당해 남아 있는 자라고는 단지 10세 미만의 어린이와 나이 70이 넘은 사람들뿐인데, 대부분 굶주리고 얼어서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2월 3일 호조의 보고였다. 한성부는 이렇게 요청했다. “백골(白骨)을 묻어 주는 일이야말로 왕정(王政)의 급선무입니다. 적에게 죽은 도성 백성들이 길가에 버려져 있는데, 참혹해서 차마 볼 수가 없습니다. …남정(男丁)을 징발해서 시체를 매장하게 하소서.” 병자호란의 참화는 미물조차 일찍이 예감했던 것이었다. 2월 인조 비인 인열왕후 상에 조문 사절로 찾아온 청의 사신을 사실상 내쫓고, 오랑캐 토벌을 공식화한 뒤였다. 당시 사헌부 장령 홍익한은 “황제를 참칭한 청의 사신을 참수하고 문서를 불살라 버리라”고 요구하고, 청과의 화친을 주장한 “최명길 등의 목을 베라”고 상소했다. 그 서슬에 마부태와 용골대 등 청 사신은 말을 훔쳐 타고 야반도주했다. 청은 이를 갈았다. “…부평 안산의 돌이 옮겨져 놓이고, 영남과 관서지방에서는 물오리가 서로 싸우고, 대구에서는 황새가 진을 치고, 죽령에서는 두꺼비가 행렬을 지어 나가고, 예안의 강물이 끊어졌다. 능에 벼락이 떨어지고, 서울의 땅이 붉게 변했으며, 하루 스물일곱 곳이 벼락을 맞았고, 큰물이 들이닥쳐 동대문이 막혔다. 무지개가 해를 꿰뚫고, 별이 변괴를 일으켰다.” 인조는 불안했다. 그래도 ‘전쟁 불사’를 외치던 자존심은 남아, 직급 낮은 역관을 청에 보내 분위기를 탐색했다. 청태종이 그를 통해 보내온 것은 최후통첩. “지금 척화를 주장하는 자들은 모두 유학자들인데 그들의 붓끝이 어찌 나의 군사를 막을 수 있다는 말인가.” “11월 25일(음력)까지 왕자와 대신을 보내 화의를 요청하지 않으면 조선을 칠 것이다.”청태종은 병자년 11월 말 환구단에 고한 뒤 군사를 이끌고 남진했다. 마부태가 이끄는 선발대가 압록강을 건넌 것은 12월 9일(양력 1637년 1월 4일)이었다. 불과 나흘 뒤 선발대는 한양 초입인 홍제원까지 밀고 내려왔다. 조선 조정은 14일(양력 1637년 1월 9일) 강화도로 피하려다 길이 차단된 걸 알고 허겁지겁 남한산성으로 도주했다. 산성에 갇혀서도 ‘척화파’는 연일 ‘화친’을 죽이려 했다. 남한산성 도피 5일째였다. “한 사람의 목을 베어 화의를 끊고, 백성에게 사과를 해야 합니다.”(심광길) “그게 누구냐.”(인조) “최명길입니다.” 21일째 인조실록은 이렇게 시작한다. “오늘도 김상헌은 화친에 대해 불만을 제기했다!” 김상헌을 따르는 사간 이명웅, 교리 윤집, 정언 김중일, 수찬 이상형 등이 상소했다. “최명길의 죄를 다스려 군사들의 마음을 진정시키소서.” 윤집은 “최명길이 화친을 주장하여 나라를 그르친 죄는 머리털을 뽑아 세어도 속죄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남한산성의 조정은 독 안에 든 쥐였다. 11일째 겨울비가 내리고 기온이 뚝 떨어져 병사들이 얼어 죽었다. 왕은 대전 뜰에서 헤픈 눈물을 뿌렸다. “죄를 주려거든 병사들이 아니라 저에게 주십시오.” 17일째였다. 왕의 수라상에 닭다리 하나가 올라왔다. “처음 산성엔 새벽닭 우는 소리가 제법 들렸는데, 요즘 닭 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더니 이게 마지막인가.” 정약용은 훗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먹을 것도 땔감도 떨어져 곤궁하기 이를 데 없다. 남은 소와 말도 굶주림이 심해 서로 꼬리를 물어뜯어 먹을 지경이었다.” “장수와 군사들이 추위에 얼어붙어 얼굴빛이 푸르고 검어 사람 같지가 않았다. 살갗이 찢어지고 동상에 걸린 손가락이 떨어져 나가 그 참혹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 당시 조정은 식량 배급량을 병졸 하루 3홉으로 줄였다. 맥주컵 한 잔 분량이다. 입으로만 결사항전을 하던 대신들에게는 5홉이 배급됐다.35일째 사실상 항복을 결정하고도 청이 요구한 척화 주동자 압송 문제로 조정은 뭉그적거렸다. 40일째 참다못한 병사들이 무장한 채 행궁 앞에서 시위했다. 그래도 주저하자 43일째 대전 앞까지 밀고 들어왔다. 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했던 자들은 등골이 서늘했다. 서둘러 ‘주동자의 자수’를 받았다. 김상헌·정온 등 우두머리는 빠지고 자청한 윤집(36), 오달제(28)가 선택됐다. 47일째(양력 1637년 2월 24일) 인조는 곤룡포를 벗고 신하의 복장인 남색 옷을 입고, 죄인이 드나드는 서문을 빠져나와 삼전도의 수항단으로 향했다. 인조는 훗날 김상헌과 척화파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세상을 속이고 명예를 훔치기란 쉽다.” 그러나 오늘의 사서는 그들의 충절을 한결같이 칭송한다. 불과 40여년 전 임진왜란의 참화도 망각하고, 9년 전 정묘호란의 치욕도 잊고, 대책은 없이 대륙의 패자에 대한 정벌을 부르짖다가 사직의 유린을 자초했다. 참극은 예견됐고, 피해자는 백성이었다. 호란 이후 그들은 ‘숭명’(존주대의)과 ‘복수설치’를 이념화했다. 자신의 무능과 죄과를 숨기고 권력을 유지하며, 착취구조를 온존하려는 것이었다. 승객을 죽인 만취운전자의 만용과 무지를 용기요 절의라 칭송할 순 없는 일이다. 통상 2월이면 한반도는 긴장 속으로 빠진다. 2월 말부터 한미연합훈련이 시작되면서, 북한은 미사일과 핵실험으로 맞섰다. 북미와 남북은 경쟁적으로 비난하며 군사적 대치를 강화했다. 이런 악순환은 불과 2년 전에야 잠복했다. 통일연구원은 그런 한반도 리스크가 올해 재현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북핵 문제를 순전히 선거용으로 이용한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앞으로 대선 판세에 따라 어떤 돌출 카드를 내밀지 알 수 없다. 국내에서도 4월 총선을 앞두고 다시 ‘척화’의 목소리가 기승을 부린다. 심지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에 기대, ‘친북’의 외연을 ‘친중’으로 확대하고 여론을 ‘친미인가, 친중인가’의 택일로 끌고 가려 한다. 오로지 선거 승리를 위해 곤경에 처한 이웃을 조롱하고 배척하는 부도덕과 파렴치가 놀랍다. 저 참혹했던 ‘겨울 전쟁’의 기억까지 지우는 만용은 더 놀랍다. 경쟁하는 초강대국 틈에 끼여 있는 우리에게 선택지란 없다. ‘화친’뿐이다. ‘척화’란 없다. 미국과도 중국과도, 북한과도 러시아, 일본과도 화친해야 한다. 논설고문 kbc@seoul.co.kr
  • ‘총독인가 동반자인가’… 주한 미국대사 70년사

    ‘총독인가 동반자인가’… 주한 미국대사 70년사

    해리스 대사, 호르무즈파병 압박 등으로 ‘총독’ 비난받아역대 23명 대사 중 유일 직업군인 출신, 국민에게 낯설어결례 논란 전임 대사도 자유롭지 않아…현대사에 영향력미국대사 과거 막후 외교관이었지만 지금은 공공 외교관변화된 역할 조정 과정서 시행착오 겪으며 논란 불거져 ●한국민에게 낯선 미국대사, 해리스 “해리스 대사는 한국 총독처럼 행세하지 않느냐. 자기가 무슨 총독인 줄 안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지난 17일 공개된 재단 유튜브 채널 ‘유시민의 알릴레오’에서 해리 해리스 주한 미대사에 대해 이같이 언급했다. 해리스 대사가 지난 7일 KBS와 인터뷰에서 “한국이 그곳에(호르무즈해협)에 병력을 보내길 희망한다”며 정부에 파병을 압박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을 ‘총독 행세’라고 비판한 것이다.해리스 대사가 16일 외신 기자 간담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같은 날 신년기자회견에서 남북 협력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 “향후 제재를 촉발할 수 있는 오해를 피하려면 한미 워킹그룹을 통해서 다루는 것이 낫다”고 하면서 당정청은 일제히 반발했다. 다음 날 “의견 표명은 좋지만 우리가 대사가 한 말대로 따라 한다면 대사가 무슨 조선 총독인가”(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 “내정간섭 같은 발언은 동맹 관계에도 도움이 안 된다”(민주당 설훈 최고위원), “대북정책은 대한민국의 주권에 해당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통일부 이상민 대변인), “대사가 주재국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언론에 공개적으로 언급한 부분은 대단히 부적절하다”(청와대 관계자)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앞서 해리스 대사는 호르무즈해협 파병과 남북 협력 사업뿐만 아니라 한미 방위비분담협상,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과 관련 미국 정부의 입장을 직설적으로 표명하면서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해리스 대사는 지난해 11월 당시 국회 정보위원장인 바른미래당 이혜훈 의원을 관저로 불러 방위비분담금을 50억 달러 내라는 요구만 20번 정도 반복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외교적 결례라는 비난을 받았다. 해리스 대사는 같은 달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가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에 맞서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내린 데 대해 “한국이 한일 과거사 문제를 안보 영역으로 확대한 데 대해 실망했다”며 종료 결정을 번복할 것을 압박했다. 해리스 대사를 둘러싼 논란은 우선 대사의 개인적 성향에 기인한다는 분석이다. 해리스 대사는 첫 직업군인 출신 주한 미국대사다. 1949년 부임한 1대 존 무초 대사부터 해리스 대사까지 23명 대사 중 6명을 제외하면 모두 직업 외교관 출신이다. 비외교관 출신 6명 중 해리스 대사를 제외하고는 외교를 전공한 교수이거나 한국과 인연이 깊은 목사, 외교에 익숙한 중앙정보부(CIA) 출신 요원, 국회와 국방부에서 외교를 담당한 정치인이었다. 군인 출신으로 외교적 수사보다 직설 화법에 익숙한 해리스 대사가 한국민에겐 ‘낯선 대사’라는 것이다.외교 소식통은 “한국어에 능숙한 캐슬린 스티븐스 대사와 한국민과 스킨십을 즐겼던 마크 리퍼트 대사에 익숙했던 한국민에게 4성 장군으로 태평양사령관을 역임한 해리스 대사의 야전군 사령관 스타일이 낯설어 보일 것”이라고 했다. 다만 주한 미국대사의 행보와 발언이 논란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승만 정권 당시 윌리엄 레이시 대사는 한미 관계 현안에 대해 이승만 대통령에게 직접 서한을 보내 불만을 표출하는 등 거만한 태도를 보여 이 대통령의 반감을 샀다. 박정희 정권에 베트남 파병을 압박했던 윈스럽 브라운 대사는 카운터파트인 이동원 외무부 장관을 ‘패싱’하고 정일권 국무총리, 박정희 대통령과 직접 담판을 짓는 오만함을 보이기도 했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대사는 진보적인 노무현 정부와 보수적인 조지 W 부시 정부가 마찰을 빚던 당시 노무현 정부의 남북 화해협력 정책과 어긋나는 발언을 해 정부로부터 경고를 받기도 했다. 주한 미국대사가 ‘한국의 총독’이라는 논란은 한국 현대사에서 미국 정부와 그의 입장을 대변하는 주한 미국대사가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했기 때문에 불거졌다는 해석이다. 미국대사는 한국 현대사의 분기점마다 주·조연으로 등장하며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데 영향을 미쳤다. 미국대사는 한국 현대사와 한국 정치에서 한복판에 서 있을 수밖에 없는 존재다. ●국가원수급 대우 받은 초대 미국대사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첫 주한 미국대사는 존 무초 대사다. 무초 대사는 1948년 8월 13일 주한 최고대표로 임명돼 사흘 후 부임했다. 미국은 이듬해 1월 1일 한국을 정부로 승인하고 4월 7일 무초 최고대표를 주한 미국대사로 임명했다.1년 전 남북에 각각 단독정부가 수립되고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미국의 지원이 절실했던 이승만 대통령은 무초 대사의 신임장 제정식을 ‘장엄하게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1949년 4월 20일 무초 대사의 신임장 제정식에는 이 대통령과 이시영 부통령, 이범석 국무총리, 신익희 국회의장, 김병로 대법원장 등 삼부 요인이 모두 참석했고, 무초 대사는 중앙청에 육해군 의장대의 사열을 받으며 입장했다. 국가원수급 대우를 받은 무초 대사는 1950년 이 대통령과 6·25 전쟁 첫 2년을 함께 겪었다. 무초 대사는 전쟁 발발 직전인 6월 초 미국 의회에 북한의 침공 가능성을 경고했다. 그는 전쟁 당일인 25일 워싱턴 국무부에 “북한군의 전면 공격이 시작됐다”고 보고했고 이 대통령의 관저인 경무대로 들어갔다. 무초 대사는 피난가겠다는 이 대통령을 말렸지만, 이 대통령은 무초 대사에게 알리지 않고 27일 서울을 떠나 수원으로 갔다. 무초 대사는 이 대통령의 행동에 분노했지만 이후 한국 정부를 따라 수원·대전·대구·부산으로 피난가던 도중 이 대통령을 자신의 차에 태워 피신시키기도 했다. ●이승만 하야 작전의 선봉장? 이 대통령은 미국에서 교육을 받고 독립운동을 한 친미주의자였지만, 집권기에는 미국과 갈등을 빚었다. 이 대통령은 6·25 전쟁 기간 휴전 반대, 반공포로 석방 등으로 휴전을 원하던 미국과 틀어지기 시작했다. 전쟁 후에 미국은 냉전 전략의 일환으로 한일 관계를 정상화하라고 요구했지만 이 대통령은 이를 뿌리쳤고, 미국의 우려에도 독재의 길을 걸어가면서 양측의 갈등은 악화됐다. 미국 정부는 이 대통령을 끌어내리기 위한 계획도 세운 것으로 알려졌는데, 일각에서는 미국대사들이 야당 인사들과 접촉하며 최전선에서 하야 계획을 수행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 대통령은 당연히 미국대사와의 관계도 좋지 않았다. 1955년 5월 취임한 3대 윌리엄 레이시 대사는 재한 미국인 상사에 세금을 물리는 문제를 둘러싸고 한국 정부와 충돌하자 이 대통령에게 직접 서한을 보내 불만을 토로했다. 이 대통령은 반감을 느껴 이례적으로 미국 정부에 대사 교체를 요청했고, 취임 다섯 달 만에 레이시 대사는 사임했다. 후임인 4대 월터 다울링 대사는 진보당 사건, 보안법 파동 등 이승만 정권의 정치 탄압을 두고 이 대통령과 부딪쳤다. 다울링 대사는 이승만 정권이 1958년 야당 진보당의 조봉암 당수 등을 간첩 혐의로 체포해 사형을 구형하자 정권 2인자인 이기붕 국회의장을 두 차례 만나 조봉암을 구명하려 했으나 조봉암은 1년 후 사형당한다. 1958년 12월에는 이승만 정권이 야당과 언론을 탄압하기 위한 국가보안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일방 통과시키자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다울링 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하며 항의의 뜻을 표했다.1959년 12월 부임한 5대 월터 매카너기 대사는 이승만 정권의 종말에 일조했다. 매카너기 대사는 1960년 4·19 혁명 당일 “시위자들과 당국이 폭력을 자제하고 법과 질서를 되찾아 정당한 불만이 해결되기를 바란다”며 시위대에 우호적인 성명을 발표했다. 19일과 21일 경무대에 이 대통령을 찾아가 미국 정부의 우려를 전달했다. 26일 서울에서 대규모 시위가 열리자 매카너기 대사는 “전국적으로 퍼진 정당한 국민의 불만 표시에 한국 정부는 즉각적인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하고 미봉책을 취할 시기가 아니다”며 이 대통령의 하야 요구를 시사하는 성명을 냈다. 직후 경무대로 가 이 대통령으로부터 하야 의사를 전달 받았다. 경무대 앞에 있던 시위대는 매카너기 대사의 차가 경무대에서 나오자 그가 이 대통령의 하야를 이끌어냈다고 생각하며 ‘매카너기 만세’, ‘미국 만세’를 외쳤다고 한다. ●박정희 인정하되 미국 요구 관철시킨 대사들 박정희·전두환 독재 정권 하에서 미국대사들은 미국의 국익을 위해 반공의 최전선에 서 있는 이들을 돕기도 하고,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미국의 가치에 반하는 이들을 견제하기도 했으며, 국익과 가치의 딜레마에서 이들의 독재를 방관하기도 했다. 1961년 5·16 쿠데타가 발발하고 한 달여 후 취임한 6대 새뮤얼 버거 대사는 박정희의 쿠데타 세력을 사실상 인정하되 미국의 정책을 따르도록 설득하는 전략을 취했다. 쿠데타 발발 당일 마셜 그린 주한 미국대사대리와 카터 매그루더 주한미군사령관이 쿠데타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것을 뒤집은 것이다. 버거 대사는 박정희에게 민정 이양을 위한 선거를 실시하고 한일 국교정상화를 추진할 것을 요구했다. 박정희는 전역하고 1963년 10월 대선에서 승리했으며, 2년 후 한일 국교정상화를 위한 한일기본조약 등을 체결했다.7대 윈스럽 브라운 대사는 박정희 정권에 미국이 수행하던 베트남전 참전을 압박했다. 박정희 정권은 1964년 미국이 베트남전에 본격 개입하자 그 해 9월 베트남에 의무 요원과 태권도 교관을 파견했는데, 브라운 대사는 12월 박정희 대통령에게 증파를 요청했다. 박정희 정권은 1965년 10월부터 전투부대를 파병하기 시작했고, 브라운 대사는 이듬해 3월 한국의 추가 파병에 대한 미국의 보상을 담은 ‘브라운 각서’를 전달했다. 브라운 각서와 월남 특수로 한국은 경제·군사적 성장을 이루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지만, 국군 장병의 피를 돈을 받고 팔았다는 비난도 제기됐다. ●유신 정권과 대립했던 대사들 1970년대 미국에 닉슨·포드·카터 정부가 차례로 들어서고, 박정희 정권이 1972년 유신헌법 개정으로 독재의 길을 걸으며 양국은 충돌하기 시작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1969년 냉전 완화(데탕트)를 이유로 아시아에서의 개입을 줄이고 아시아 국가들의 자력 방위를 요구하는 ‘닉슨 독트린’을 발표했다. 닉슨 독트린에 따라 8대 윌리엄 포터 대사는 1970년 박 대통령에게 주한미군을 6만 명에서 4만 명으로 감축한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박 대통령이 감축에 불만을 갖고 미국의 주한미군 주둔비용 지원 요구를 거부하자 포터 대사는 “(박 대통령은) 엉클 샘(미국)의 큰 젖통에 달라붙어서 떨어지질 않으려 한다”며 독설을 하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 등 동맹국이 미국을 벗겨 먹는다며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을 대폭 인상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주한미군 감축까지 고려할 수 있다고 시사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닌 셈이다.1971년 10월 취임한 9대 필립 하비브 대사는 ‘미국 당대의 가장 걸출한 전문 외교관’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 내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을 구명한 인물로 유명하다. 하비브 대사는 1973년 8월 박정희 정권이 야권 정치인 김대중을 납치하자 조용하지만 적극적으로 사건에 개입했다. 하비브 대사는 박 대통령에게 “김대중 납치 사실을 알고 있으며 김대중이 죽는다면 미국과 한국의 관계는 끝장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고 당시 미국 중앙정보국(CIA) 서울지부장이자 후일 주한 미국대사로 부임하는 도널드 그레그가 회고했다. 김대중은 납치 닷새 후 서울 자택에서 풀려났다. 후임 10대 리처드 스나이더 대사는 박정희 정권이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을 추진한 사실을 알아채고 박정희 정권에 경고해 핵무기 개발 계획을 무마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독재 정권의 견제자인가 방관자인가 11대 윌리엄 글라이스틴 대사는 1978년 7월 취임, 이듬해 10·26 사태와 12·12 쿠데타,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등 한국사의 주요 변곡점을 겪은 인물이다. 1977년 출범한 카터 정부는 도덕주의 외교 노선을 앞세우며 박정희 정권의 독재 정치를 비판하고 주한미군 철군을 추진함에 따라 한미 관계가 악화됐다. 이 과정에서 글라이스틴 대사는 카터 대통령을 설득해 주한미군 철군 계획을 철회하는 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박정희 정권이 1979년 10월 국회에서 여당 공화당과 유신정우회를 동원해 야당 신민당의 김영삼 총재를 의원직에서 제명하자 카터 정부는 항의의 뜻으로 글라이스틴 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하기도 했다.전두환 신군부 세력이 1979년 12·12 쿠데타를 일으키고 이듬해 5월 광주민주화운동을 탄압할 당시 글라이스틴 대사와 미국 정부는 이를 묵인하거나 최소 방관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전두환과 그의 참모들을 만나 광주에서의 군사 작전을 항의하기도 했으나, 1980년 5월 27일 계엄군이 전남도청 진압작전을 수행하기 하루 전 글라이스틴 대사는 ‘(신군부에) 군사작전을 포기하라고 말하지 않았다”고 백악관에 보고한 것으로 기밀해제 문서를 통해 드러났다. 신군부의 진압작전을 묵인했다고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1999년 발간한 회고록에서 “신군부의 행동에 미국이 공모자는 아니었으나 무력했던 건 사실”이라고 밝혔다. 12대 리처드 워커 대사는 1981년 8월부터 1989년 1월까지 약 7년 5개월간 재임해 현재까지 최장수 대사 기록을 갖고 있다. 1대 무초 대사부터 11대 글라이스틴 대사까지 모두 직업 외교관이었으나, 워커 대사는 학자로서 첫 비외교관 출신 주한 미국대사이기도 하다. 워커 대사는 1980년 7월 내란음모죄로 사형 선고를 받은 김대중을 석방시키는 데 역할을 했지만, 김대중 석방 대가로 전두환 대통령의 조기 방미를 성사시켜 12·12 쿠데타와 광주 학살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에 정통성을 부여하는 데 일조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민주화 이행기의 CIA 출신 대사들 13대 제임스 릴리 대사와 14대 도널드 그레그 대사는 CIA 요원 출신으로, 1987년 6·10 항쟁과 대통령 직선제 개헌, 1993년 문민정부 출범까지 한국의 민주화 과정을 목격했으며 민주화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의 광주 학살 개입, 방조 의혹으로 반미 정서가 고조됐던 1980년대 말 부임했던 릴리 대사와 그레그 대사는 한국민의 거센 반감에 직면해야 했다. 릴리 대사는 반미 시위대로부터 수차례 인형 화형식을 당했으며, 그레그 대사는 시위대의 관저 침입을 겪기도 했다. 특히 릴리 대사의 후임으로 연이어 CIA 출신인 그레그 대사가 미국대사로 임명되자 야당과 언론은 ‘미국이 한국을 외교 대상이 아닌 정보·공작 대상으로 본다’며 반발하기도 했다.하지만 1987년 6·10 항쟁 당시 전두환 정권이 명동성당에 강제 진입해 학생들을 연행하려 하자 릴리 대사는 13일 최광수 외무부 장관을 만나 “전 세계가 떠들썩해질 것”이라며 진입을 저지했다. 그는 전두환 정권이 계엄령을 검토하자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게 시위를 평화롭게 해결해야 한다는 내용의 친서를 요청해 받았다. 릴리 대사는 전 대통령 면담을 요청했으나 청와대는 18일 거절 의사를 밝혔다. 릴리 대사는 결국 다음 날 전 대통령을 찾아가 친서를 전달하고 “무력을 절대 사용하지 마라”고 경고했으며 전두환 정권은 계엄령 선포 계획을 백지화했다. 그레그 대사는 취임 약 4개월 후인 1990년 1월 광주를 찾아 미국의 광주 학살 개입 책임을 묻는광주민주화운동 참가자들과 대화를 나눴다. 그는 “레이건 대통령이 전 대통령을 취임 후 첫 외국 정상으로 초청한 것은 김대중을 사형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기 때문”이라며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레그 대사는 노태우 정권의 남북화해정책과 북방정책을 지지했으며 미군 전술핵무기의 한반도 철수를 추진하며 1992년 남북 한반도비핵화선언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레그 대사는 1992년 남북화해를 위해 한미연합훈련인 팀스피리트 훈련을 취소하도록 이끌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듬해 한미 정부는 그레그 대사와 상의 없이 훈련을 재개하면서 북한은 준선시상태를 선언했고 핵확산방지조약(NPT)에서 탈퇴했다. 그레그 대사는 2015년 발간한 회고록에서 “내가 대사로 봉직하던 기간 중에 미국이 결정한 유일한 최악의 실수”라고 했다. ●북핵 전문 외교관 전성시대 1993년 북한의 NPT 탈퇴로 1차 북핵 위기가 촉발되자 미국의 대한국 외교는 물론 주한 미국대사의 역할도 북핵 문제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1993년 11월 취임한 15대 제임스 레이니 대사는 목사 출신으로 직업 외교관은 아니었으나, 1947~1950년 서울에서 정보장교로 근무했고 1959~1964년 연세대에서 신학을 가르친 ‘지한파’였다. 레이니 대사는 1994년 북한이 영변의 핵연료봉 추출을 강행하고 미국은 영변 핵시설 정밀 타격을 시행하려 하면서 한반도 긴장이 최고조에 오르자 카터 전 대통령을 만나 대북 특사로 방북해 중재할 것을 요청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그 해 6월 김일성 주석을 만나 남북정상회담을 이끌어냈으나, 7월 김 주석이 사망하면서 남북정상회담은 무산됐다. 하지만 북미는 9월 제네바합의를 타결하며 1차 북핵 위기를 종식시켰다.레이니 대사의 후임인 16대 스티븐 보즈워스 대사, 17대 토머스 허버드 대사, 18대 크리스토퍼 힐 대사는 모두 북핵 전문 외교관이다. 보즈워스 대사는 1995~1997년 제네바합의로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대신 북한에 경수로를 건설하는 역할을 맡은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사무총장을 역임하고 주한 미국대사로 자리를 옮겼다. 보즈워스 대사는 2001년 주한 미국대사에서 퇴임한 이후에도 2009~2011년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 대북특별대표를 맡아 북미 협상을 총괄했다. 그는 미국 대북 협상파의 상징적 인물로 꼽힌다. 허버드 대사 역시 1994년 북미 제네바협상에 실무급으로 참여한 대북 협상 전문가다. 2001년 9월 취임한 허버드 대사는 이듬해 2차 북핵 위기를 맞게 된다. 아울러 2002년 6월 주한미군 장갑차의 여중생 압사 사건, 이듬해 정부의 이라크 파병 결정, 2004년 주한미군 기지 평택 이전 반대 시위 등으로 반미 감정이 고조되고 한미 동맹의 균열 우려가 심화되자 이를 해결하는 데 임기를 보냈다.후임인 힐 대사는 2004년 9월 취임해 이듬해 2월 북핵 문제를 논의하는 6자회담의 미국 측 수석대표로 지명됐으며, 두 달 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에 취임하면서 대사직을 내려놓았다. 힐 대사는 인터넷을 통해 한국민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반미 감정을 누그러트리는 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힐 대사는 2005년 9월 6자회담에서 북한 비핵화의 이정표로 평가받는 9·19 공동성명을 이끌어냈다. ●‘리코드 브레이커’ 대사들의 명과 암 19대 알렉산더 버시바우 대사부터 23대 해리 해리스 대사까지 다섯 명의 대사는 주한 미국대사 역사의 ‘신기록 보유자’들이다. 버시바우 대사는 직전에 주러시아 미국대사를 역임하고 주한 미국대사 중 역대 최고위급 인사로 부임했다. 캐슬린 스티븐스 대사는 최초의 여성이자 최초의 한국어 구사 대사, 성 김 대사는 최초의 한국계 대사였으며 마크 리퍼트 대사는 현재까지 최연소 대사 기록을 갖고 있다. 해리스 대사도 최초의 직업군인 출신 대사 기록을 세웠다. 2005년 10월 취임한 버시바우 대사는 역대 주한 미국대사 중 최고위급 인사로 부임하면서 북핵 문제 해결에 주도적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버시바우 대사는 부임 초기 북한의 인권과 위조지폐 문제를 거론하고 김정일 정권을 ‘범죄 정권’이라고 칭하며 대북 강경 기조를 보였고 당시 노무현 정부는 버시바우 대사에게 북한 비난을 자제하라고 요청하기도 했다.버시바우 대사는 2008년 5월 이명박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협상에 반대하는 촛불 시위가 한창이던 때에 손학규 민주당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실망스럽다”고 해 외교적 결례 논란을 빚었다. 버시바우 대사는 손 대표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 수입 금지를 주장한 데 대해 “과학적 근거도 없이 불안을 야기한 것에 대해 실망스럽다”고 했으며, 민주당 측은 이를 공개하며 반발했다. 다만 버시바우 대사는 힐 대사와 마찬가지로 인터넷을 통해 한국민과 소통하며 국민을 상대로 한 공공 외교를 이어나갔다. 스티븐스 대사는 유창한 한국어로 한국 국민과 접촉면을 늘리면서 공공 외교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대사로 평가받는다. 스티븐스 대사는 미국 평화봉사단에 들어가 한국 복무를 자원, 1975~1977년 충남 예산군 예산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고, ‘심은경’이라는 한국 이름을 지었다. 그는 1978년 국무부에 입부한 후 1983~1989년 한국에 다시 와 서울 대사관과 부산 영사관에서 근무했다. 스티븐스 대사는 2008년 10월 취임하자마자 33년 전 봉사한 예산중학교를 방문, “예산은 내가 외교관으로 필요한 자질을 배웠던 곳”이라며 한국 국민의 마음을 샀으며, 블로그도 개설해 글을 연재하며 ‘파워 블로거’로서의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후임 성 김 대사는 2008년부터 2011년까지 6자회담 특별대표를 역임하다 그 해 11월 주한 미국대사로 취임했다. 김 대사는 2017년 주필리핀 미국대사로 자리를 옮겼으나 이듬해 6월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판문점에서 최선희 당시 외무성 부상과 정상회담 조율을 위한 실무협상을 했다. ●‘같이 갑시다’ 한미 동맹 캐치프레이즈 만든 리퍼트 리퍼트 대사는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 보좌관을 지내다 2008년 오바마 정부 인수팀에 합류했다. 정부 출범 후 국방장관 수석보좌관,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안보담당 차관보, 국방장관 비서실장을 역임하고 2014년 11월 주한 미국대사로 취임했다. 이전 직업 외교관 출신 대사들이 ‘늘공’(늘 공무원)이었다면 리퍼트 대사는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 참모로서 관직을 맡은 ‘어공’(어쩌다 공무원)인 셈이었다.리퍼트 대사는 2015년 3월 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김기종 씨에 의해 습격을 당했을 때 의연하게 대처함으로써 자신은 물론 미국의 이미지를 제고하고 나아가 한미 동맹 강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습격 소식이 전해지자 리퍼트 대사의 수술은 물론 한미 관계에 대한 우려의 여론이 높아졌다. 리퍼트 대사는 사건 당일 수술을 마치고 트위터에 “한미 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최대한 빨리 복귀합시다. 같이 갑시다!”라고 올리며 우려의 여론을 신속히 잠재울 수 있었다. 이후 ‘같이 갑시다’(Go together)는 한미 동맹의 캐치프레이즈가 돼 한미 동맹을 기념하는 행사에서 인사말이나 건배사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문구가 됐다. 리퍼트 대사는 대사 부임 전 한국과 인연이 별로 없었지만, 부임 후 빠르게 한국의 문화와 정서를 익히며 한국민과의 거리를 좁혀나갔다. 리퍼트 대사는 한국 부임 후 갖게 된 첫째 아들에게 ‘세준’이라는 한국식 이름을 미들 네임으로 줬고, 딸에게도 ‘세희’라는 미들 네임을 붙였다. 야구팀 두산 베어스의 팬으로 유명한 리퍼트 대사는 대사 재임 기간은 물론 퇴임 후에도 야구장을 찾아 두산을 응원하면서 ‘야구 외교’를 선보이고 있다. ●막후 외교서 공공 외교로 대사의 역할 변화했지만 해리스 대사는 2018년 2월 주호주 미국대사로 지명됐다가 세 달 후 주한 미국대사로 재지명된 뒤 7월 취임했다. 전임 리퍼트 대사가 퇴임하고 1년 6개월여 만에 공석을 메운 터라 기대도 높았던 반면, 그가 대북·대중 강경파라는 점에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추진하는 문재인 정부와 마찰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도 교차했다. 하지만 해리스 대사는 2018년 6월 상원 외교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실제 협상에 진지한지 가늠하는 차원에서 주요 (한미연합)훈련을 일시 중단할 필요가 있다”며 트럼프 정부의 대북 협상 기조에 보조를 맞췄다. 해리스 대사가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우려를 표하고 문 대통령의 남북 협력 사업 추진에 한미 협의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은 개인의 신념이라기보다 트럼프 정부의 기조를 대변한 것이다. 해리스 대사뿐만 아니라 전임 대사들도 한국 정부와 이견이 있는 이슈에서 항상 미국 정부의 입장을 대변해왔다. 버시바우 대사도 재임 기간 당시 조지 W 부시 정부의 기조대로 ‘남북 경제협력의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고 말해 해리스 대사처럼 외교적 결례라는 비판을 받았다. 스티븐스 대사도 2010년 한미의 핵심 현안이자 2000년대 한국 내 반미 정서의 주요인이었던 한국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관련 “(한국의) 시장이 완전히 개방되기를 바라지만 이 사안의 민감성을 잘 알고 있다”며 비록 정제된 톤이었지만 미국 정부의 입장을 명확히 전달했다.그럼에도 해리스 대사의 발언이 더욱 논란이 되는 것은 트럼프 정부가 방위비분담협상 등 한미 관계의 현안에 대해 한국 정부를 전례 없이 강하게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뉴욕타임스(NYT)는 공교롭게 한일관계가 악화 일로를 걷는 중에 해리스 대사가 부임하고, 그의 취임 후 트럼프 대통령이 방위비 분담금 인상 요구를 계속해서 밀어붙였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가 한국 정부에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번복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며 해리스 대사에게는 ‘고압적인 미국 외교관’이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졌다고 진단했다. 아울러 한미 관계가 과도기를 겪는 상황에서 한국과 미국 모두 주한 미국대사의 역할을 변화한 상황에 맞게 조정하는 데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이같은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한미일과 북중러가 대립하는 냉전 구도가 해체되고 한국의 국력이 급성장하면서 한미 관계가 상호 호혜적 관계로 재조정되는 가운데 주한 미국대사의 역할도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닌 대국민 공공 외교를 통해 한미 관계를 증진시키는 것으로 변화할 필요가 생겼다. 하지만 과거 미국대사의 한 마디에 한국 정부의 기조가 흔들렸던 경험을 겪었던 한국민은 미국대사의 발언을 정부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도로 간주하며 의심의 눈초리로 볼 수밖에 없다. 미국대사들도 한국과 미국이 불평등한 관계에 있었던 역사와 한국민의 의심을 고려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발언함으로써 오해를 자초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1990년대 초반까지 주한 미국대사는 주한미군사령관과 함께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었지만, 냉전 이후 한국의 국력이 강화되면서 미국대사는 한미 관계를 부드럽게 하는 역할로 변화했다”고 했다. 이어 “해리스 대사를 둘러싼 논란은 대사 개인의 성향에 기인한 것도 있겠지만, 한미 정부가 변화된 양자 관계 속에서 이견을 조율하고 자신의 입장을 정제된 톤으로 발표하는 데 서툰 모습을 보이는 탓도 있다”고 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미·이란 증오의 70년, 새 핵협정과 제재 해제 갈림길에 서다

    미·이란 증오의 70년, 새 핵협정과 제재 해제 갈림길에 서다

    새해 벽두부터 중동에 전운이 뒤덮였다. 지난 3일(현지시간) 이란 군 최고사령관인 가셈 솔레이마니가 이라크에서 미국 드론의 폭격을 받고 사망했다. 미군 전투기에 기지를 폭격당한 친이란계 민병대 지지 세력이 3일 전 이라크에 있는 미 대사관 점거를 시도한 데 대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보복이었다. 이란 종교도시 곰에 있는 잠카런 사원 꼭대기에 붉은 깃발이 올랐다. 순교의 피가 흐를 격렬한 전투가 임박했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란의 ‘복수’ 의지 표명으로 치솟은 긴장감은 엉뚱하게 무고한 176명이 타고 있던 우크라이나 항공 소속 여객기가 피격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반정부 시위로 가득했던 이란은 솔레이마니 사망으로 반미 시위가 휩쓸었다가, 여객기 피격으로 다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는 등 난장판이 됐다. 양국 간 긴장의 근본 원인은 미국의 이란 핵합의 탈퇴다. 2018년 트럼프 대통령은 2015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주도로 국제사회가 체결한 핵협상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했다. 이어 이란에 가혹한 경제 제재를 가했고, 최악의 경제 궁핍에 처한 이란은 중동 곳곳에 구축한 시아파 민병대를 통해 미국과 동맹에 군사 압박을 가했다. CNN과 BBC의 보도에 따르면 증오의 역사는 약 70년 전부터 뿌리를 내리고 있다. 미국이 1953년 본격적으로 이란 내정에 깊숙이 개입했기 때문이다. 페르시아 제국의 후예인 이란은 수백년간 수니파 이슬람 세력의 침략과 영국 소련의 수탈로 쇠약해져 갔다. 영국은 1900년대 초부터 ‘앵글로 이란 석유회사’를 통해 이란 석유 비축량을 통제해 왔다. 1951년 반외세 민족주의를 내세운 모하마드 모사데크가 민주적 지지를 통해 총리로 임명됐다. 그는 취임과 동시에 석유 국유화 조치로 앵글로 이란 석유회사를 국가에 귀속시켰다. 이 조치는 중동 석유 의존도가 절대적이었던 영국과 미국에 큰 타격을 줬다. 이에 영국과 미국은 이란에서 움튼 민주주의 싹을 밟았다. 영국은 이란 자금을 차단했고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1953년 영국 첩보기관과 함께 이란 쿠데타를 부추겼다. 모사데크는 반역 혐의로 체포돼 3년을 복역하고 가택연금 상태로 여생을 보냈다.1909년 제헌 혁명으로 도입된 입헌정치는 쿠데타로 끌어 내려지고, 이란은 샤(페르시아의 왕)가 통치하는 왕정으로 되돌아갔다. 미국 덕분에 다시 정치 권력을 얻은 무함마드 리자 팔레비는 이란을 친미국가로 만들어 갔다. 현재 서방국가와 이란의 갈등 중심엔 ‘핵’이 있다. 그런데 이란 핵 기술을 처음 지원한 것은 미국이었다. 미국과 이란은 1957년 민간 핵 협력에 합의한다. 미국이 이란에 기술과 자원을 지원하는 게 합의 골자다. 1970년대 미국 지원을 받은 이란은 핵 개발을 시작했고, 오늘날 논란이 되고 있는 핵 프로그램의 토대가 됐다. 이란이 언제까지나 친미 노선을 가게 될 거란 미국 예상은 빗나갔다. 미국을 등에 업은 팔레비 국왕이 반대파와 국민을 탄압했다. 모사데크 계열의 민족주의 노선, 아야톨라 호메이니의 이슬람 노선, 무자헤딘 등 무장노선이 모두 반 왕정 전선에 뛰어들었다.결국 1979년 1월 팔레비 국왕은 미국 보호를 받으며 이란을 떠났다. 1964년 체포됐다 추방돼 터키, 이라크, 프랑스 등을 떠돌던 호메이니가 2월 귀국했다. 4월 1일 국민투표에 이어 그는 이슬람 공화국을 선포한다. 미국과 이란이 다신 돌아올 수 없는 역사의 선을 넘게 되는 사건은 1979년 11월에 일어났다. 이란 학생들은 테헤란 미국 대사관을 습격해 인질 52명을 444일 동안 억류하며, 암 치료를 구실로 미국에 입국한 팔레비 왕을 이란으로 송환하라고 요구했다. 대사관 점거 사건으로 미국과 이란의 국교는 단절됐고 이후 공식적으로 결코 복원되지 않았다. 양국 사이 증오는 미국이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이라크를 지원하면서 더 깊어졌다. 이라크에서 집권한 수니파 사담 후세인은 자국민 65%에 해당하는 시아파가 옆 나라 이란의 혁명에 휩쓸릴 것을 두려워해 선제공격했다. 미국이 이라크를 지원했음에도 8년에 걸친 전쟁은 이란 승리로 끝났다. 당시 이란 혁명수비대(IRGC)에 입대한 솔레이마니는 이 전쟁에서 커다란 전공을 세워 국민 영웅이 됐다.미국은 수십년째 이란을 ‘테러 지원국’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이는 1984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처음 선포한 것이다. 그런데 이란-이라크 전쟁 중이던 1986년 레이건 대통령은 앞에선 이라크를 지원하며 뒤로는 이란에 무기를 판매한 사실이 드러났다. 레바논 친이란 무장단체 헤즈볼라에 붙잡힌 미국인 석방에 이란이 도움을 줄 거라 기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이란이 실수로 미사일을 발사해 우크라이나항공 소속 여객기를 격추했다는 사실에 세계가 황망함을 금하지 못하고 있지만, 1988년엔 미국이 이란에 똑같은 실수를 한 적이 있다. 당시 호르무즈해협에서 이란 선박과 무력을 주고받던 미국 군함 빈센호는 290명이 타고 있던 이란 항공 소속 에어버스 A300 여객기를 전투기로 오인해 격추시켰다. 미국은 실수라고 했지만 이란은 지금도 고의로 보고 있다. 솔레이마니는 1997년 IRGC 내에서 해외 작전을 주도하는 엘리트 쿠드스 부대 사령관으로 임명됐다. 그는 이때부터 이라크, 레바논, 시리아 등 시아파 지역에 국가 자산을 투입해 민병대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이란 용병 역할을 하는 준군사조직들을 만들어 지원했다. 민병대들은 현재 10만여명 규모로 성장했으며 중동에서 이란 대리군으로 미국에 대항하는 비대칭전력(상대가 보유하지 못하거나 상대보다 월등히 많은 전력)이 됐다. 2002년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새해 국정연설에서 이란을 북한과 함께 ‘악의 축’으로 표현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공동의 적’인 탈레반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한 미국을 뒤에서 은밀히 도와주던 이란은 부시 전 대통령의 연설에 분노했다. 다음해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이란에서 고농축 우라늄 흔적을 발견했다. 2005년 강경파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취임한 뒤 이란은 국제사회와 핵 문제로 빈번하게 충돌했다. 수많은 제재로 이란은 경제에 큰 타격을 받았다. 수십년간 갈등 일로를 걸었던 두 국가 사이에 극적으로 온기가 돌던 때가 있었다. 2013년 취임한 하산 로하니 대통령은 취임 한 달 뒤인 9월 오바마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했다. 양국 정상의 통화는 30여년 만에 처음이었다. 당시 두 정상의 합의를 바탕으로 미국, 이란,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독일 등은 2015년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을 체결했다. 이란이 민감한 핵 활동을 자제하고 이를 국제사회가 점검할 수 있도록 하는 대가로 미국 등은 제재 일부를 해제하는 게 골자다. 그러나 2017년 당선된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해 5월 JCPOA에서 미국을 탈퇴시키고 이란에 다시 전면적 제재를 가했다. 양국 간 긴장의 골은 계속 깊어져 갔다. 특히 지난해 5~6월 호르무즈해협에서 이란은 외국 유조선 6척을 나포했다. 6월 이란은 호르무즈 상공에서 미국 드론을 격추시켰고 트럼프는 공습 명령을 내렸다 취소하기도 했다. 9월엔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시설이 드론 공격으로 파괴됐는데 국제사회는 이 역시 이란의 공격이라고 보고 있다. 최근 일련의 갈등과 긴장 고조는 자신의 서명으로 새 핵합의를 체결하려는 트럼프와 미국 제재로 경제 위기에 몰린 이란의 적대 행위로 요약된다. 지난 8일 이란의 우크라니아 여객기를 오인 격추한 뒤로, 유럽이 이란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미국 탈퇴와 이란의 협의 이행 축소 조치로 흔들리는 핵합의 틀 안에서 트럼프를 비판하고 합의 보존을 위해 분투하던 유럽이었다. 유럽 JCPOA 서명국들은 지난 14일 합의 유효성을 논의하는 분쟁조정절차 착수를 선언했다. 19일 영국과 프랑스 정상은 핵합의 계속 준수 의지를 재확인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국을 연일 압박하는 가운데, 국내 비판에 몰린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내릴 결정에 세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보혁갈등에 권력투쟁 들어간 이란… “로하니, 차기 최고지도자에 가까워”

    보혁갈등에 권력투쟁 들어간 이란… “로하니, 차기 최고지도자에 가까워”

    #이란국민 “거짓말에 속았다”… 최고지도자 퇴진 시위이란의 사상 유례없는 보혁 갈등이 권력 투쟁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당장 다음 달 21일 실시될 총선(290석)이 보수와 혁신의 대결 무대다. 특히 신성불가침으로 여겨진 최고통치자 아야툴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를 향해 이란 국민이 “거짓말에 속았다”고 격분하며 벌이는 퇴진 시위가 예사롭지 않다. 이란 이전 나라인 팔레비 왕조 후계자는 이란 정권이 수개월 내 무너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정부 시위가 계속되는 가운데 최고지도자 하메네이가 17일 금요 대예배를 8년 만에 집전할 것으로 알려지면 그가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지 세계가 주목한다. #헌법수호위, 총선 후보 사상 검열… 개혁파 대거 탈락온건파인 하산 로하니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내각회의에서 자신을 지지하는 온건·개혁 성향의 현역 의원 90명이 헌법수호위원회의 총선 예비 후보자 심사에서 탈락한 데 대해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출했다. 로하니는 “국민은 다양성을 원한다”며 “한 정파 후보자만 나오는 선거는 선거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후보자를 ‘검열’하는 헌법수호위원회는 대통령보다 상위인 최고지도자 하메네이가 장악하고 있다. #로하니, 우크라 여객기 격추 책임자 처벌 요구앞서 로하니는 14일 최고지도자 직속 이란혁명수비대(IRGC)가 우크라이나 민항기를 전투기로 오인 격추한 이후 신속한 처리와 특별법정 설치를 요구했다. 긴장 분위기를 조성한 미국에 책임이 있다는 것도 상기시켰다. 우크라이나 여객기 격추 이후 로하니가 최대 치적으로 내세웠던 서방과의 핵합의에서 영국·독일·프랑스가 탈퇴하겠다고 밝히면서 입지가 약해진 것에 대해 대응 차원에서 로하니는 최고지도자 대신 혁명수비대와 헌법수호위원회를 겨냥해 반격에 나선 것이다. 로하니는 또 급진적 구호를 외치는 시위대에 ‘국가적 단합’을 요구했다. 뚜렷한 지도자가 없는 시대와 야권에 자신이 그 중심에 서겠다는 의미로 분석된다. 여객기 격추 일주일이 지난 15일에도 테헤란에서는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시위가 이어졌다. 시위에는 이란에서 해외 여행이 가능한 대학생과 중산층이 주로 참여한다고 BBC가 전했다. #팔레비 왕조 前후계자 “몇달 뒤 이란 붕괴할 것”모하마드 레자 팔레비 전 국왕의 장남이자 팔레비 왕조의 ‘마지막 왕세자’는 이날 미국 워싱턴DC의 허드슨 연구소 강연에서 “지금은 (이란이) 최종 붕괴를 바로 몇 주 또는 몇 달 앞둔 시점으로, 이슬람 혁명이 발발하기 전인 1978년의 마지막 3개월과 유사하다”고 주장했다. 쿠데타로 집권한 레자 칸이 1925년 창건한 팔레비 왕조는 친미 노선을 추구하다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무너졌다. #8년 만의 금요 대예배서 하메네이 메시지는?퇴진 시위로 정통성 위기에 처한 최고지도자 하메네이가 17일 테헤란 모살라(예배장소)에서 열리는 금요 대예배를 직접 집전한다고 이란 국영 IRNA통신이 보도했다. 그가 금요 대예배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2012년 이후 처음이다. 이번 금요 대예배에서 나올 그의 메시지가 향후 이란과 국제 관계의 방향타여서 관심이 집중된다. 하메네이는 말 그대로 이란 최고지도자이다. 이슬람공화국의 수반이며, 군 최고사령관이다. 사법부와 국영방송 수장을 임명하고, 선거에 나설 후보의 절반을 선택한다. 최정예군인 혁명수비대를 비롯한 군부는 최고지도자 직속이다. 또 경제를 포함한 국정과 국내외 주요 문제의 최종 결정권자로서, 대통령이나 의회의 권력을 능가한다. 월급은 없다. 하메네이는 1989년부터 40년간 권좌를 지키고 있다. 1979년 이슬람혁명 동지였던 루홀라 호메이니에 이어 두 번째로 등극했다. #고령 하메네이 건강 의구심… 유고시 어떻게올해 80세인 하메네이는 과거 전립선암 수술을 받았다. 2007년 그가 대중의 시야에서 오랫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도 건강 문제에 대한 의구심을 증폭시켰다. 그러나 최근 대중 연설에 자주 등장하고, 거의 2시간 가까이 연설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건강이 호전됐다는 관측과 환자가 분투하는 것이라는 의견이 엇갈린다. 최고지도자는 한번 선정되면 ‘사실상’ 종신직이다. 반정부 시위대의 퇴진요구에도 그를 견제할 기관이 딱히 없어 사퇴 압박이 먹히지 않는다. 최고지도자의 유고시 후임을 어떻게 선정할까. 이란 핵심 권력 내부의 일로, 일반인은 입에 담는 것이 금기시된다. 그러나 최고지도자를 뽑는 ‘전문가 회의’ 위원은 다르다. 전문가 회의 위원인 모센 아라키는 지난해 6월 반관영 뉴스통신사 파르스와 인터뷰에서 “전문가 회의는 필요시 언제든지 최고지도자 후보 이름 3명을 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 가운데 하메네이가 후계자를 결정한다는 의미이지만 전문가 회의에서는 그의 건강에 대해 의구심을 품은 것이라고 미국 정부 지원을 받는 라디오 파르다가 전했다. #‘전문가 회의’서 최고지도자 선정… 현직 대통령 유리최고지도자 선정 과정은 하메네이가 최고지도자로 오를 당시를 복기하면 엿볼 수 있다. 하메네이는 1989년 최고지도자로 등극할 당시 대통령이었다. 이로 미뤄 현직 대통령이 최고지도자로 뽑힐 가능성이 더 있다고 관측된다. 당시 49세였던 그보다 이슬람 율법과 지식이 뛰어난 ‘시니어’ 성직자도 다수 있었지만 모두 제쳤다. 특히 대통령 시절 이란-이라크 전쟁(1980~1988년)이 벌어졌다. 강경하게 나선 모습이 당시 강경파 최고지도자인 호메이니이 눈에 든 결정적 이유였다고 미국 외교전문 매체 내셔널이 분석했다. 하메네이 유고시 로하니가 유리하다고는 하지만 현직 대통령 자리를 지킨다는 전제가 깔렸다. 로하니 역시 올해 71세로 고령인데다 내년에 두 번째 임기가 끝난다. 3연임은 금지돼 있다. 1989년 호메이니 사후 이란 최고 성직자 회의인 ‘전문가 회의’가 열렸다. 전문가 회의는 필요하면 최고지도자를 임명하고 감시하고, 파면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 기구이다. 전문가 회의는 남성 성직자 88명으로 구성돼 있다. 여기에 로하니 대통령도 포함돼 있다. 현재 의장은 하메네이의 최측근 아야툴라 아흐마드 잔나티(92)다. 전문가 회의는 보수 강경파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전문가 회의 위원은 국민의 직접 선거로 선출된다. 하지만, 출마하려면 ‘헌법수호위원회’의 후보 자격 심사를 거쳐 최고지도자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임기는 8년이다. #헌법수호위원회, 출마 후보자 종교·사상 ‘검열’ 국회나 대통령, 전문가 회의 출마 여부를 결정하는 헌법수호위원회는 모두 12명으로 구성된다. 최고지도자가 이슬람 율법 전문가 6명을 임명하고, 사법부 수장이 추천하는 법학자 6명이 의회에서 선출된다. 사법부 수장은 최고지도자가 임명해 결국 헌법수호위원회도 최고지도자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다. 이들이 후보의 법적 문제와 함께 종교와 사상, 도덕 등 자격까지 심사한다. 실제로는 강경파의 출마와 당선을 위해 친서방파를 제거하는 검열 기구이다. 로하니는 중도 및 실용주의 성직자와는 관계가 좋지만, 강경파에겐 인기가 떨어진다. 2016년 전문가 위원 후보들을 검열할 때 하메네이는 혁명동지이자 강경파인 잔나티를 의장으로 선택, 로하니가 원하는 개혁을 약화시키려는 반격을 가했다고 이 매체가 분석했다. #보수파에선 하메네이 ‘아들’ 후계자로 거론강경 보수파가 장악한 전문가 회의 몇 석은 위원 사망 등으로 비어 있어 로하니에겐 기회다. 특히 일반 국민 60% 이상이 혁명 이후 태어난 세대이다. 젊은 청년층의 관심과 요구에 다가서는 것이 관건이다. 현재 강경파 가운데 최고지도자를 향한 두드러진 후보가 없다. 이런 연유로 하메네이가 아들 모시타바(50)를 후계자로 선정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한 전문가 회의 위원은 “최고지도자는 소수가 아니라 모두 적어도 다수의 대표여야 한다”고 에둘러 모시타바를 반대했다고 라디오 파르다가 전했다. 하메네이 사망 등 유고시 이란의 미래 방향에 대한 내부 토론이 촉발될 것이고, 개혁주의자와 강경파들 간의 치열한 전쟁이 재개될 것으로 예측된다. 그 시금석이 다음 달 21일 열리는 총선이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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