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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회·내각 장악”… 「차르」 버금가는 옐친

    ◎「비상대권」 부여 이후의 위상 점검/향후 1년 모든 법기관 임의개폐/“고르비도 실패한 정책” 일부선 부정적/가격자유화뒤 내란 직면 가능성 보리스 옐친러시아대통령에게 경제개혁과 관련,비상권한이 주어짐으로써 소련은 전례없이 급진적인 개혁실험기를 맞게 됐다.하지만 이 비상권한을 엄존하는 연방법률 및 연방대통령의 권한보다 우위에 둠으로써 경우에 따라 소련은 「새로운 독재」의 출현과 함께 권력구조상의 일대 혼란을 겪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1일 러시아최고회의는 연말까지 일부 생필품을 제외한 전면적인 가격자유화,국영기업의 대폭 민영화를 골자로하는 옐친의 경제개혁안을 승인하고 아울러 그에게 초법적인 권한을 부여하는 3개의 결의안을 채택했다.이에따라 옐친은 최소한 향후1년간 ▲대통령령을 발동해 어떤 법률도 효력을 정지시킬수 있고 ▲러시아공화국내 모든 행정기관을 임의로 개편할수있는 행정,인사권을 확보했다. 아울러 개혁시행중 정치안정을 위해 내년 12월1일까지 러시아공내에서 모든 선거를 중지,지방단체장을 옐친이 직접임명토록했다. 대단히 급진적인 내용들이고 옐친자신도 『이 개혁프로그램이 실패할 경우 대통력직을 내놓겠다』며 의욕을 보이고 있다.그러나 일부에서는 현재 소련이 처한 경제·사회 제반사정이 이러한 급진안이 먹혀들 상황이 아니라는 지적과 함께 초법적 권한을 확보한 옐친의 「정치적 의도」에 대해서도 부정적이 시각을 제기하고 있다. 가격자유화가 시행될 경우 당장 예상되는 게 생필품·서비스값의 폭등과 대규모 실업사태이다.소련전역의 금년 곡물수확량이 전년도에 비해 30% 감소한데다 공화국간 물자공급 중단으로 모스크바를 비롯,대도시 곳곳에서 벌써 식량폭동의 조짐이 일고있다.단적인 예로 평균임금이 4백루블인데 소시지1㎏ 값이 1백60루블이고 옐친 개혁안이 시작되면 몇배가 더 뛸지 모르는 상황이다. 여기서 예상되는 시민들의 저항등을 비상권한으로 다스리겠다는 뜻인데 이는 이미 지난해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시도했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다.옐친은 『6개월만 참아달라』며 시민의 협조를 당부하고 있으나 그보다는 폭동·내란의 우려만 높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다음으로는 옐친의 정치적 의도에 대한 의혹이다.비상권한의 내용만 가지고 보면 러시아에서 옐친은 내각·의회(최고회의)까지 자신의 수중에 장악,거의 「차르(황제)」의 권한을 갖게됐다.러시아국민들은 공산독재가 물러난지 불과 2개월 남짓만에 또다른 독재를 맞이하게 된 셈이다.서방이 경제원조를 무기로 개입할 수도 있겠으나 현재로서는 옐친의 독재에 대해 마땅한 제어장치도 없는 상태이다.경제난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은 강권으로도 억누르기 힘든 지경에 와있다.이에따라 모스크바에서는 내년 1∼3월 위기설이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러시아민족주의의 등장에 대한 우려도 높다.지난달 18일 공화국간 경제협정이 체결될 당시만해도 옐친은 소련방을 유지하자는 쪽이었다.그러나 경제협정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새 연방구상에 상충되는 조치를 계속 취하고 있다.러시아 독자중앙은행을 창설해 연방중앙은행(고스방크)에 예치된 금·경화의 러시아지분을 모두 인출해가겠다,독자화폐·독자군을 만들겠다,다른공화국은 러시아 자원을 경화로 사가라는 등의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러시아정부내에서는 루츠코이총리,하즈블라토프최고회의의장등 러시아민족주의를 주장하는 인사들이 계속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현지전문가들은 현권력균형상 옐친이 대러시아지분을 빼내가려 할 경우 고르바초프로서는 「무장해제」당할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을 하고있다. 그러나 소련국민들이 옐친을 지지한 큰이유중 하나가 반공산독재·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신념 때문이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않된다.많은 전문가들은 옐친이 경제개혁을 구실로 초법적인 독재를 추구한다면 엄청난 국민적 저항에 부딪칠 것이고 무르익고 있는 서방의 대소지원분위기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국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보다 합리적이고 합법적인 개혁을 추구하는 게 중요하다는 지적들이 많다.
  • 공화국의 소 연방 이탈 가속화/우크라이나공 독자군 창설 파장

    ◎「농업대국」 우크라이나 “득볼게 없다”/백러시아선 「핵카드」로 「지분따내기」 식료품부족과 임금인상등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항의시위로 소련전역이 어수선한 가운데 소련 제2공화국 우크라이나의 독자군창설결정을 계기로 소련방의 존속여부가 다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 8월 쿠데타 직후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소련방을 발트3국을 제외한 나머지 12개 공화국이 참여하는 「느슨한 형태의」주권국연방으로 전환시킨다는 구상을 세웠었다. 18일 경제협정 서명직전까지만해도 러시아·우크라이나·백러시아·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과 중앙아시아 5개 회교공화국등 10개공화국이 연방 잔류를 희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와 아제르바이잔이 서명직전 태도를 바꿔 경제협정에 불참하면서 분위기가 일변했다.더구나 우크라이나는 새연방에서 중추역할을 맡아야될 입장인데 독자군창설까지 발표한 것이다. 물론 경제협정참여 8개국은 아직 연방잔류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중에서 백러시아(금년 8월25일),아르메니아(90년8월)는 이미 독립선언을 했고 중앙아5국의 대표격인 카자흐도 완전히 동등한 입장의「주권국연합」형태를 요구하고 있어 언제 뛰쳐나갈지 모를 상황이다.만약 고르바초프의 구상대로 군·외교권과 경제권 일부를 중앙정부가 갖는 형태의 연방이 된다면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몇개 소공화국만 남게될 가능성이 높다. 경제협정에 불참한 우크라이나(금년 8월25일),그루지야(금년 4월),몰다비아(금년 8월27일)등은 모두 독립선언을 했다.고르바초프는 당초 러시아·백러시아·우크라이나등 범슬라브세력과 회교세의 대표격인 카자흐만 뭉치면 기존국력을 거의 존속시킬수 있다는 판단을 한듯하다.이 4개공만 해도 소련영토의 80%,인구도 전체인구 2억9천만 중 2억1천만을 차지하는 거대국가가 된다.따라서 우크라이나와 백러시아가 빠진다면 새연방 구성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런 현상의 주범은 역시 악화일로를 걷는 경제사정을 들 수 있다.소련식량과 석탄의 4분의1을 공급하는 거대농·공업국인 우크라이나는 연방에 남아 덕볼게 없다는 판단을 한듯하다. 새연방에서러시아의 특수지분에 대한 우려도 이러한 이탈을 가속시킨 큰 요인으로 지적된다.쿠데타 직후 옐친러시아대통령이 러시아와 접경공화국들에 대해 국경선 변경의사를 비췄을 때 우크라이나·카자흐등은 러시아제국주의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면서 엄청난 반발을 보였다. 우크라이나·백러시아·카자흐의 연방참여 여부는 이들이 러시아와 함께 핵이 배치된 지역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관심을 모은다.소련이 보유중인 전략핵탄두 1만2천3백여개,전술핵탄두 1만2천2백여개 중 80%는 러시아에 배치돼있으나 나머지 수천개는 이들 3개공화국에 배치돼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만약 이들이 자기영토내 핵에 대한 보유권을 주장하거나 핵무기일부를 제3국에 유출시킬 경우 끔찍한 결과가 초래될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물론 이들 3공화국은 현재 자공영토의 비핵화를 일관되게 주장하며 해당공화국과 중앙정부 공동책임하에 핵을 안전하게 폐기 내지 러시아로 이전시키자는 입장이다. 어쨌든 크렘린이 개별공화국의 독자군창설을 받아들이는등 당초 연방안을 대폭수정할 경우 연방유지를 놓고 협상의 여지는 아직 남아있다고 할수있다.특히 우크라이나등은 정치적으로 완전독립을 이룬 연후에 경제공동체 참여를 재고하겠다는 입장까지 보이고 있다. 개별공화국이 독자군대까지 가질 경우 당초 새연방구상과는 큰 차이가 있고 사실상 소련방은 사라지는 셈이 된다.
  • “소 경제 내년봄 대공황 직면”/IMF총회에 보고된 실상

    ◎물가 90% 상승… GNP는 13% 감소/외채 6백50억불… 자력갱생 때 놓쳐/불만 더이상 누적땐 「핵통제권」에 영향 줄둣 소련경제가 위기를 맞고있다.생필품의 품귀현상은 더욱 심해지고 있고 물가는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다.게다가 연료마저 구하기 힘들어 겨울을 앞두고 있는 소련국민들의 불만은 폭발직전에 놓여있는 실정이다. 태국 방콕에서 열리고 있는 국제통화기금(IMF)연차총회에 소련 수석대표로 참석중인 그리고리 야블린스키는 이같은 경제위기로 소련이 내년봄 대혼란에 직면할 가능성이 많다고 16일 경고했다.소련의 경제개혁을 담당하고 있는 공화국간위원회의 부위원장이기도 한 야블린스키는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공화국간 경제협정이 체결되지 않은 채 현재와 같은 상황이 지속될 경우 각 공화국들은 경제 뿐만 아니라 정치·사회적으로도 매우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그는 소련이 핵을 보유한 초강대국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는 대단히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고 지적하고 소련의 혼란상황을 막기위해서는 서방 선진7개국을 포함한 IMF등 국제금융기관들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또 국제적십자사는 극심한 의약품및 식량부족으로 올 겨울에 1백50만명이 사망할 지도 모른다고 이날 경고해 소련경제의 위기감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 현재 소련경제는 생산과 교역량 감소·치솟는 물가·엄청난 재정적자등 3중고에 시달리고 있다.야블린스키가 IMF총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밝힌 소련경제의 실상은 너무 심각하다. 올해 소련의 국민총생산(GNP)은 지난해에 비해 13% 떨어지고 공업생산은 9%,농업생산은 10∼11%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올들어 8월까지의 수입은 작년동기보다 45%가 줄었고 수출도 27%나 감소했다.소련 국민들의 올해 명목상 임금은 증가했으나 물가상승률이 90%에 달해 실질임금은 오히려 크게 줄어들었다.이와관련,소련 중앙통계국은 올해 9개월동안 국민소득이 13%나 감소하는등 소련경제가 붕괴되어가고 있다고 우려했다.곡물 수확역시 지난해에 비해 4분의 1이나 감소한 1억6천만t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돼 올 겨울은 지난 89년 이후 소련 국민들에게 가장 춥고 배고픈 계절이 될 것 같다. 이처럼 군사적으로 초강대국인 소련의 경제상황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것은 지난 8월에 있었던 불발쿠데타이후 연방정부의 통제력상실로 연방정부가 허수아비가 된채 각공화국들의 독자적인 경제시책 수행으로 연방정부차원의 경제가 운용되지 못하고있는데 큰 원인이 있다. 소련경제는 사실상 자력에 의한 회복은 거의 불가능한 상태에 놓여있다. 더욱이 6백50억달러의 외채를 안고있는 소련의 입장에선 서방국가들의 원조와 지원은 필수적이다. 이제 불발쿠데타로 권좌에 복귀한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과 쿠데타저지의 선봉장에 섰던 옐친 러시아공대통령은 어쩌면 쿠데타보다 더 무서운 「경제위기」에 직면해 있다.올 겨울은 이들 두 지도자에게 통치능력을 시험하는 무대가 될 것이며,잘못할 경우 분노한 국민들은 다시 거리로 뛰쳐나올지 모른다.현재와 같은 상황이 지속될 경우 대혼란이 야기될 것이란 야블린스키의 경고는 더많은 서방의 원조를 얻어내기 위한 정략적인 발언으로도 볼 수 있지만 이같은우려가 현실로 나타날만큼 실제로 소련경제가 위기에 놓여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소 경제개혁의 기수”/야블린스키/옐친 보좌관때 5백일 급진계획 입안/고르비의 대서방 창구로 IMF 참석 IMF총회에 소련 수석대표로 참석중인 그리고리 야블린스키는 소련경제개혁을 이끌어가고 있는 핵심인물(39). 그는 2년전까지만 해도 서방선진 7개국(G7)경제각료들에게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무명인사였으나 자신의 은사인 아발킨씨가 소연방정부의 경제담당부총리로 취임하자 소련각료회의 경제담당 개혁부장으로 발탁돼 소장 개혁파의 기수로 등장했다. 이듬해 6월에는 러시아공화국 경제담당 부총리에 취임,급진적인 시장경제 도입을 주장하는 「5백일 계획」을 입안해 단숨에 각광을 받았다.그러나 이 계획은 보수파들의 반대에 부딪쳤다. 그후 야블린스키는 옐친러시아공대통령의 개인적인 보좌관으로 경제문제를 자문해왔다.그러다가 지난 4월 소련이 강력한 재정및 통화정책을 실시하고 가격자유화및 사유화를 추진하는 대가로 G7이 소련에대한 채무를 탕감하고 IMF에 가입하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주장,세계적인 관심을 모았다. 곧이어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이같이 야블린스키의 경제개혁안을 채택하면서 그는 소련의 경제개혁에 관한 대서방 창구역할을 맡게됐다. 지난 8월 보수파 공산당원들의 쿠데타가 분쇄된 후에는 명실공히 소련의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최고의 브레인으로 떠올랐다.
  • 소콜로프 주한 소 대사 인터뷰

    ◎“유엔 동시가입은 한·소 협력의 성과”/경협차원 넘어 교류분야 확대를/핵금원칙 북한도 예외될 수 없다 올레그 M 스콜로프 주한소련대사(사진)는 한소수교1주년을 맞은 30일 『양국수교가 남북한관계개선및 한반도주변정세안정에 큰 기여를 했으며 특히 남북한유엔동시가입은 한소수교가 아니었으면 어려웠을 것』이라며 자신의 소감을 밝혔다. 소콜로프대사는 북한의 핵사찰거부에 대해 『핵의 비확산원칙에는 어떤 국가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소련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라고 말해 북한이 핵사찰에 조속히 임할 것을 촉구했다. ­한소 수교1주년을 맞은 소감은. 『양국수교는 지난 1년간 몇가지 분야에서 뚜렷한 기여를 했다.첫째,남북한유엔동시가입을 도왔고 둘째,남북한의 관계개선 그리고 한소양국간 경협등 여러분야에서의 교류를 본격화시켰다』 ­양국관계 전망은. 『경제협력도 중요하지만 앞으로는 문화·정보분야·과학기술등 교류분야를 넓혀나가야 한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안보·정치면에서도 양국수교는 한반도정세안정과 소의극동지역국경안정화 등에 큰 기여를 했다』 ­부시 미대통령의 단거리핵무기 폐기조치에 대한 소정부의 입장은. 『부시대통령의 이번제의는 세계적인 핵군축무드에 새로운 자극제가 됐다고 생각한다.고르바초프대통령,옐친러시아대통령이 이미 환영의사를 밝혔지만 정부차원에서도 곧 이에 상응하는 긍정적이고 구체적인 대응이 있을 것이다』 ­지난 8월 쿠데타 이후 소련경제사정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는것 같은데. 『쿠데타는 소련의 경제난을 더욱 심화시켰다.이번겨울 식량사정이 당장 시급한 문제로 대두됐다.소련은 한국이 이미 약속한 대소지원방안을 차질없이 이행해주기 바란다.이런 도움은 소국민들 사이에 한국민에 대한 이미지를 더욱 좋게 해줄 것이다』 ­한반도 핵과 북한의 핵사찰거부에 대한 입장은. 『소련은 핵확산금지조약에 서명한 순간부터 이 문제에 관한한 어떤 예외국도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해오고 있다』 ­안보면에서 소련이 경제난·군축등으로 동북아에서 물러나는 틈을 타 일본이 다시 재무장을 시도할 것이라는 우려가있는데. 『소련을 비롯,남북한국민들이 이를 용납지 않을 것이다.그것은 평화를 바라는 세계조류에도 역행하는 것이다』 ­가까이서 지켜본 한국민에 대한 느낌은. 『대다수 국민들이 근면하고 친절한데 대해 깊은 감명을 받았다.이런 점에서 한국의 앞날은 밝다고 확신한다.다만 일부 국민들 사이의 과소비는 전통적인 한국민의 정서를 해치지 않는 수준으로 자제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 일 북방4도 반환/경협­명분 갈등 묘수 찾는 소련

    ◎고르비·옐친 둘다 지원조건으로 반환 원해/국민들에 “돈 받고 팔았다” 인식 안주려 고민/제주도 3배 크기의 전략 요충… 주변은 황금어장 ▷반환 가능성 진단◁ 반세기를 끌어온 일본과 소련간의 북방4개도서 영토문제가 최근의 정세변화와 경제난국등 일련의 소련 국내사정에 의해 협상테이블로 올려질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일본을 방문중인 루스란 카스블라토프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의장서리가 9일 가이후 도시키일본총리를 만나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대통령의 북방4개도서 협상용의를 표명한 친서를 전달한데 이어 같은날 옐친의 경제분야 핵심참모인 게오르기 야블린스키 국민경제관리위부의장이 일본 교도통신과의 서면인터뷰에서 북방4개도서가 일본에 귀속된다고 밝히는등 소련 실력자들이 잇따라 이문제의 협상가능성을 언급하고 나섰다. 옐친은 친서에서 이 영토문제를 앞으로는 러시아공화국이 전담할 것이며 지난해 1월 자신이 일본방문때 밝힌 북방영토문제에 대한 5단계해결책의 단계를 줄여 조기해결할 방침임을 전달했다.또 그같은 방침이연방정부와도 이미 의견조정을 끝냈음을 명백히 하고 있다. 이 친서는 또 앞으로 일본과의 관계에서 2차대전이후 존속해왔던 전승국과 패전국 구분을 없애고 진정으로 국제법상의 평등과 정의에 기초해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옐친의 5단계해결책은 ①소련의 영토문제의 존재 인정 ②4도서의 자유경제지역화 ③4도서의 비군사화 ④평화조약체결 ⑤4도서 귀속문제의 다음세대 해결등으로 4단계까지 15∼20년 소요가 예상됨에 따라 경제원조는 먼저받고 반환은 다음세대로 미룬다는 것으로 간주돼 일본측에는 현실성이 없는것으로 인식돼왔다. 일본은 이같은 최근 소련측 실력자들의 북방도서 협상용의 표명을 일단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소련방의 권한 약화로 이문제 해결에 있어서 사실상의 협상상대인 러시아공화국과의 새로운 관계정립을 모색하고 있다.그 일환으로 가이후총리는 옐친러시아공대통령이 가능한한 빠른 시일내 일본을 방문해줄것을 요청했다.또 나카야마 다로일외상은 10일 러시아공화국측의 전향적 의사표명에 대해환영을 표시하고 협상절차를 앞당길것을 요청했다. 한편 이문제에 임하는 소련측의 태도는 국민감정을 바탕으로한 지도자의 정치적 입지와도 관계가 있기 때문에 대내외적으로 북방도서를 돈을 받고 팔았다는 인상을 주지않기 위해 정경분리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지난 4월 고르바초프소련대통령의 일본방문때 북방도서 반환을 조건으로 2백80억달러의 경제협력을 요청했을때 반환하면 실각할 것이라는 강한 반발을 받기도 했다.옐친 역시 최근까지도 『미국이 러시아로부터 돈으로 알래스카를 산것처럼 일본이 북방도서를 돈으로 살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한바 있다. 또한 전략적 가치로 볼때 북방도서는 소련함대의 태평양 통로이자 오호츠크해를 내해화시키는 중요한 요충이기 때문에 군부를 비롯한 보수진영에서는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카스블라토프의장서리가 북방도서문제의 조기해결을 위해서는 러시아공화국내의 여론조성이 필요하다고 밝힌것은 문제해결의 명분을 찾기 위한것으로 분석된다.즉 먼저 경제원조를 받은뒤 점차적으로 북방도서반환문제를 여론화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측은 이문제에 있어서 북방도서반환의 보장을 받지않고는 경협에 응할수 없다는 입장이다.또한 제임스 베이커 미국무장관도 지난주 소련지도부에 일본과 분쟁을 낳고 있는 북방도서문제의 해결을 촉구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양국이 돌파구마련을 위해 1956년 국교정상화 공동선언에서 밝힌바 있는 시코탄 하보마이 2개 도서의 선반환문제로부터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할 가능성이 있다는 견해도 제기되고 있다. 이는 일본측이 「4개도서 일괄반환」입장에서 「4개도서 주권인정,2개도서 선반환」입장으로 다소 후퇴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문제는 일본과 소련 양국의 감정과 명분이 얽혀 있기 때문에 어떤 형태의 대화가 시작된다 하더라도 가시적인 결과를 도출하기 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것으로 보인다. ▷북방4도의 개요◁ 북방영토란 일본 홋카이도북부에 있는 에토로후(택착) 구나시리(국후) 시코탄(색단) 하보마이(치무)군도등 4개의 섬을 말한다.또 하보마이군도는 다라쿠,가이초,시보쓰,유리,아카유리,스이쇼,가이가라등 7개의 조그만 섬들로 이뤄져 있다. 이들 4섬은 총면적 4천9백96㎦(에토로후 3천1백39,구나시리 1천5백,시코탄 2백55,하보마이군도 1백2㎦)로 제주도의 약3배 정도에 달하며 2만4천여명의 러시아인들이 이주해 살고 있다. 이처럼 넓이나 인구수 측면에선 별것 아닌 것처럼 생각되는 이들 4섬은 그러나 경제적·군사적 측면에서 볼땐 대단한 가치를 지닌다.이는 이들 4개섬 주변의 해역에서 난류와 한류가 합쳐져 황금어장을 형성하고 있는데다 에토로후와 구나시리 두개섬엔 소련군및 KGB부대가 배치돼 있어 소련의 아시아·태평양 전략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유권 분쟁 역사◁ 북방4개섬을 소련영토로 편입시킨 것은 1945년 얄타협정.그 이전까지 4개섬은 일본령,사할린은 노일양국민 혼재지역,쿠릴열도는 러시아령으로 분류돼 있었다. 일본이 4개섬을 일본령이라고 주장하는 역사적인 근거는 1855년에 체결된 노일통상수호조약.이 조약에 따라 양국국경은 에토로후섬과 에토로후섬 북쪽에 위치한 우루푸섬의중간지점 사이로 잡혀 4개섬은 일본령에 속해 있었다. 이후 1875년 사할린·쿠릴열도 교환조약을 통해 사할린은 러시아영토가 된 대신 쿠릴열도는 일본령으로 편입됐다.당시 쿠릴열도는 우루푸섬과 시무시르섬에 이르는 18개섬으로 규정됐다.그러나 1905년 노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함에 따라 일본은 사할린 남부를 다시 할양받았다. 소련은 노일전쟁은 일본이 도발한 것이므로 노일전쟁 이전의 조약은 무효라고 주장,2차대전후 사할린남부와 쿠릴열도는 물론 4개 도서까지 소련령에 편입시켰다. 전후 1951년 미국등과 체결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일본은 쿠릴열도·사할린남부를 포기하는 대신 4개섬은 일본령임을 보장받았다.그러나 소련은 이 조약에 서명을 거부,지금껏 반환을 거부해왔다. 일본역사에 북방4개섬이 처음 언급된 것은 1615년의 일로 당시 원주민인 아이누족이 일본정부에 공물을 바친 기록이 있다. 이들 섬에 대한 반환교섭이 본격시작된 것은 1955년 양국국교회복 교섭이 시작되면서부터. 소련은 국교정상화 직후 시코탄·하보마이 2개섬의 반환을 약속했으나 일본이 2개섬만 반환에는 반대했고 소련도 60년 미일안보조약에 반발,일본에서 외국군대의 철수를 2개섬 반환의 전제조건으로 내걸어 이마저 실패로 끝났다. 이후 73년 다나카(전중)전일본총리가 방소,브레즈네프당시소련당서기장과 회담,영토문제를 의제로 삼는데는 성공했으나 소련은 78년부터 4개섬에 병력을 증강배치하는등 강경입장을 고수. ◎북방4개 도서 일지/2차대전 일 패전으로 얄타협정때 소 편입 ▲1856 일로 수호조약에서 4개도서일본령인정 ▲1857 사할린전체는 러시아영,쿠릴열도전체는 일본영으로함 ▲1905 일로전쟁의 일승리로 사할린남부 할양받음 ▲1945 2차대전후 전승국 소련이 사할린남부·쿠릴열도·4개도서 모두 편입 ▲1947 소,4개도서의 일본인 1만7천명 추방 ▲1951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일에 대한 4개도서 영유권보장(소,조인거부) ▲1956 일소국교정상화 공동선언,시코탄·하보마이 2개도서 반환약속(일본국민 반발) ▲1960 미일안보조약개정후 소,영토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강경입장선회 ▲1973 다나카·브레즈네프 회담,영토문제를 「미해결의 문제」로 인정함 ▲1978 소,4개도서에 군대배치등 방어강화 ▲1988 세바르드나제소외무 일방문,평화조약체결 실무위원회의 주의제로 4개도서문제 제기 ▲1990.1 보리스 옐친(소인민대의원)방일,북방4개도서 5단계해결책 제시 ▲1991.4 고르바초프방일,56년의 양국선언 재확인
  • 옐친의 소련/공산독재 막 내리다:8

    ◎본사 해외특파원 다각 진단/“국제공산주의운동 이젠 소멸 단계”/친소 국가들 약화,미의 신질서 주도 가속/소 권력 주체 모호… 시장경제 정착 미지수 소련공산당의 몰락은 사필귀정이라는 말로 대신된다.74년동안을 국민위에 군림하며 1당독재를 펴온 공산당은 당초부터 허물어질 수 밖에 없는 허망한 이론의 모래성에 불과했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종주국 소련에서 까지 공산주의가 몰락해가는 현상은 바로 구시대를 마감하고 인류의 새시대를 여는 역사적인 사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서울신문사특파원들의 다각전화대담을 통해 소련공산당의 종언에 대한 세계각지의 분석과 전망을 종합해 본다. ▲이기동모스크바특파원=쿠데타 다음날인 20일 상오부터 러시아공화국의사당 주변에 몰려들기 시작한 시민들의 표정을 보고 공산당의 운명은 이미 끝났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소련 국민들에게 있어서 공산당은 부정 부패 무능 억압 경제난등 모든 재앙을 가져온 주범으로 인식돼있으며 공산당의 해체는 곧 어두운 과거와의 결별을 뜻합니다.공산주의라는 74년에 걸친 실험의 실패선언을 하지않을 수 없었던 거죠. ▲최두삼홍콩특파원=중국에서도 소련 쿠데타의 실패로 이제 국제공산주의운동이 단순한 퇴조기가 아닌 소멸단계로 접어들었음을 감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하지만 중국지도층은 공산주의의 몰락원인이 체제자체의 모순이라기 보다는 서방측의 집요한 파괴공작 때문으로 보고 중국공산당만이라도 보존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김영만모스크바특파원=이제 소련 정국의 주도권은 옐친러시아공대통령이 쥐고 고르바초프연방대통령은 그저 옐친이 하는대로 따라가는 양상입니다.그러나 고르바초프가 다시 기력을 회복한뒤 두사람이 계속 협조관계를 유지할지는 의문입니다.이번 쿠데타에서 드러났듯이 군 KGB내 사람들의 의식도 크게 달라졌기 때문에 설사 제2의 쿠데타가 일어나더라도 성공하기는 어렵다고 보여집니다. ▲김호준워싱턴특파원=부시 미대통령은 공적으로 소련의 지도자와 정책은 소련국민이 선택할 일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적으로는 소련을 민주주의의 길로 이끈 고르바초프를 선호하고 있는 반면 옐친에 대해서는 지도자로서의 자질이 국제적으로 입증되지 않은데다가 사적인 친분관계가 없다는 점등을 들어 탐탁치않게 여기고 있다고 합니다. ▲이기=소련의 경제문제는 정치문제보다 훨씬 심각합니다.실제로 이번 겨울 기아와 혹한피해의 우려가 도처에 나타나고 있습니다.새경제프로그램이 마련되고 있지만 묘안이 있을 수 없습니다.시장경제화라는 대전제는 서있지만 금융 기술 인력등 하부구조가 전혀 없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계획도 실행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남보다 더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는 사회에서 70여년을 살아온 소련국민들의 소위 사회주의의식 청산도 큰 과제입니다. ▲임춘웅뉴욕특파원=그같은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미정부는 소련에 현금지원을 않기로 한 지난 7월 G7 정상회담의 결정사항에 관한 변경논의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입니다.부시대통령은 식량과 같은 인도적인 원조의 즉각증대에도 반대하고 있습니다.그러나 미의회의 민주당 지도부는 미국방예산에서 10억달러를 떼어내 이번 겨울소련에 대한 식량·의약품및 기타 인도적 원조에 전용하자고 주장하고나서 워싱턴의 대소원조정책이 어떻게 변화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변우형도쿄특파원=일본은 소련국내가 여전히 유동적인데다가 북방영토문제마저 걸려있기 때문에 대소원조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기백베를린특파원=소련의 올 국민총생산이 15% 감소하고 인플레가 2백50%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6백40억달러나 되는 외채를 상환할 능력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박강문파리특파원=서방측이 새로운 차관보다는 식량·육류등 소비재 위주의 긴급처방에 중점을 두면서 소련의 개혁조치의 진행상황에 따라 지원하겠다는 기본자세를 취하는 것은 대소지원을 「밑빠진 독에 물붓기」라고 보는 시각때문입니다. ▲김영=소련에서 당장 해결해야 할 현안은 신연방조약 체결인 것 같습니다.국가의 틀이 빨리 잡혀져야 공화국간 경제협력과 서방세계의 대소지원등 제반조치들이 뒤따를 수 있는데 지금은 국가의 주체가 모호한 상태입니다. ▲김호=부시미행정부관리들은 『소련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문제는 무엇이 그자리를 메우느냐』라고 말합니다. ▲최=소련의 격변을 계기로 중국 북한 베트남 쿠바 등 잔존공산국들이 어떤 변화를 보일 것인지도 관심거리입니다.이들 국가는 주민들의 의식과 경제수준이 낮고 혁명1세대가 집권하고 있는게 특징입니다.이 3가지가 개선될 때까지는 집안단속만으로도 현체제를 유지해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역사의 흐름이 타게될 것 같습니다.아마도 북한이 이 지구상 최후의 공산국가가 될 것이라는 흥미로운 전망도 나오고 있어요. ▲김호=소련의 붕괴는 모스크바가 지난 50년대부터 전세계에 구축해온 친소정권망의 최종해체를 가져올 것이고 이에따라 미국을 비롯한 서방측이 냉전이후 공산주의의 위협에 대처한다는 구실로 추진해온 군비증강의 정당성이나 군사동맹·해외기지유지등의 논거는 파괴될 것입니다.미국은 소련이 배제된 세계유일의 초강대국으로서 신세계질서를 주도해 나갈 것이 확실시됩니다. ▲변=한반도정세에 있어서도 소련사태는 궁극적으로 북한의 개방을 통한 긴장완화에 이어 통일로 나가게 하는 중요한 촉매역할을 할 것으로 여겨집니다.
  • 소 새 대통령 곧 직선/고르비 연설

    ◎신 연방조약 체결후… “쿠데타 내게도 책임있다”/9월2일 인민대표회의 소집/대통령·최고회의 대의원 선거일정 확정/공화국 독립,개별공화국과 협상/고르비 연설 내용/군은 연방 관할아래 계속 유지방침/KGB국경수비 지휘권 국방부로/경제정책 결정,연방서 공화국으로/공산체제 청산,시장경제 개혁 지속/토지개혁·사유재산제 도입등 확대 【모스크바=이기동특파원】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26일 쿠데타 실패후 처음으로 소집된 소련 최고회의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 신연방조약이 체결되는 대로 대통령및 최고회의 대의원선거를 위한 준비작업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특히 연방대통령선거와 관련,연방의 붕괴를 막기위해 전체 국민이 참여하는 보통선거에 의한 대통령선출방식을 제안했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이날 TV중계된 35분간의 연설에서 탈소독립을 추구하고 있는 각 공화국들과도 독립협상을 시작할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자신에게도 쿠데타를 사전에 막지못한 일단의 책임이 있다고 시인했다. 이에 앞서 소련최고회의는 새로운 연방대통령 선출과 헌법개정 권한을 가진 인민대표회의를 오는 11월 개최예정에서 내달 2일로 앞당겨 개최키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새지도자가 선출되기까지는 지난번 쿠데타실패이후 고르바초프대통령과 보리스 옐친러시아공대통령간에 합의된 권력공유형태의 과도체제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고르바초프는 이날 연설에서 또 KGB의 전면개편 필요성을 강조하고 반헌법적 목적에의 이용을 배제하기 위해 지난 봄 통과된 KGB관련 법률을 폐지하고 새로운 법률이 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이와함께 국경수비대의 관할권을 KGB에서 국방부로 이관할것을 촉구하면서 군기관에 대해서는 현재의 연방 관할체계가 그대로 유지될 것임을 밝혔다. 그는 이어 6년전부터 추진돼온 자신의 개혁정책은 계속될 것임을 밝히고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을 가로막고 있는 모든 걸림돌은 제거되고 새로운 시장기구가 창설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르비는 또 앞으로 경제정책 결정의 중심이 연방정부에서 공화국으로 이관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공화국간 경제위원회를 설립하는 한편 토지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에앞서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는 25일 성명을 발표,쿠데타사태에 책임을 지고 공산당을 해체하며 모든 공산당 자산을 국민에게 반환한다고 선언했다. 또 이 성명은 자유·민주주의 강령에 근거한 새로운 정당창설 작업을 서둘것을 촉구하면서 그 당원이 사회의 지도적 역할을 수행하지 않는다는 원칙에서 출발하는 새로운 정당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소 공화국과 관계 강화/정부/자원개발·합작 직접협상

    정부는 소련의 쿠데타실패 이후 소련연방내 각 공화국의 위상이 격상되는 추이를 보임에 따라 소연방과의 관계강화와 병행해 각 공화국과의 협력관계도 증진시켜 나갈 방침이다. 정부는 특히 고르바초프소연방대통령과 옐친러시아공화국대통령이 사실상 연정형태로 소련의 대내외정책을 수행해 나갈 것으로 보고 러시아 공화국과의 관계강화를 위해 옐친대통령의 방한을 적극 추진키로 하는 한편 민간부문에서 러시아공화국과 경제협력을 증진시켜나가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25일 『소련사태를 계기로 각지방공화국정부의 독자성강화가 예상되므로 기존 30억달러 대소경협은 연방정부와 계획대로 이행하되 자원개발및 합작투자사업 등은 해당공화국들과의 협력을 통해 모색해 나갈 것』이라고 말하고 『특히 시베리아지역을 관할하는 러시아공화국과의 협력관계를 우선 염두에 두게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 옐친에 사실상 대권 이양/“공산당 해체” 무엇을 의미하나

    ◎반공 대세에 고르비 “정치적 패배”/개혁발걸음·공화국독립 가속화 고르바초프소련대통령이 공산당서기장직 사임을 선언하고 공산당 중앙위의 해체를 촉구하면서 공산당 재산 몰수를 선언한 것은 이미 몰락의 길로 접어든 공산당이 최후의 보루마저 상실하는 동시에 고르바초프의 입장에서도 앞으로의 어떤 상황도 감수하겠다는 정치적 패배선언을 의미한다. 고르바초프는 쿠데타가 실패로 끝난 뒤 공산당 반대 분위기가 팽배한 가운데 대통령직에 복귀하면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보수반동세력을 제거해 공산당으로 하며금 페레스트로이카의 중추역할을 맡도록 하겠다고 서슴없이 밝혔었다.공산당이 민주적인 국민정당으로 변모할 수 있는 가능성이 아직까지 남아있다고 믿었고 이제 개혁의 대세가 옐친러시아공화국대통령에게 넘어가 버린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그의 유일한 지지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공산당에 대한 애착과 미련을 버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그가 불과 이틀만에 사실상 공산당과의 결별쪽으로 방향을 급선회할 수 밖에 없었던 데는 급격히 확산되는 공산당에 대한 소련국민들의 거부감과,특히 이같은 기류를 등에 업은 옐친의 거센 압력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핵심각료 인선과정에서 옐친에게 끌려다니며 그의 요구에 전적으로 따를 수 밖에 없었고 러시아공화국의회에서 연설을 마치고 나오다 군중들에게 야유를 받는 등 수모를 겪고있는 고르바초프로서는 더이상 버티기에 한계를 느꼈을 것이다. 고르바초프는 『공산당원 전체가 무차별적으로 비난받아서는 안된다』고 말해 여운을 남기기는 했으나 그의 의도에 관계없이 공산당은 이미 붕괴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따라서 이제 소련 공산당은 더이상 집권당이 아닐 뿐 아니라 일부 동구권국가에서 처럼 불법화될 위기에 직면해있으며 소련의 실질적인 대권행사는 사실상 옐친의 손으로 넘어간 셈이다. 칼자루를 손아귀에 쥔 옐친은 시장경제로의 점진적인 전환을 추진해오던 고르바초프와는 달리 급진적인 전환을 추진하고있다.옐친의 측근인 실라예프현러시아공화국총리가 연방총리로 임명돼 정부구성위원회와 경제계획위원회를 이끌고 확고한 시장경제 신봉자들이 경제계획위원에 포함된 것은 향후 소련경제개혁의 가속화를 짐작케한다.소련의 보수회귀 가능성을 우려해 대소경제지원을 머뭇거려오던 서방세계의 태도도 적극적인 방향으로 돌아설 것으로 보인다.개혁 이외의 다른 대안도 없지만 그렇다고 소련경제의 앞날이 장미빛만은 아니다. 경제보다도 당장 더욱 큰 혼란에 휘말리게 되는 문제는 연방체제의 변화이다.과거 고르바초프의 연방정부는 발트3국 등 산하 공화국들의 독립추진에 대해 어떻게 해서든지 연방으로부터의 이탈을 저지하려는 입장을 취해왔다.그러나 옐친은 실세로 부상한 뒤 발트3국의 독립을 승인한다고 입장을 밝혔다.일부 공화국들의 탈소독립이 기정사실화단계에 들어간 것이다.이에 자극받아 2번째로 규모가 큰 우크라이나공화국도 24일 독립을 선언하는 등 소연방에서의 독립이 유행처럼 번질 전망이다.옐친이 이같이 여유있는 자세를 보이는 것은 자신이 이끄는 러시아공화국이 소련전체면적의 3분의2를 차지하는 등 대세를 좌우하고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된다.그러나 독립열기가 군소자치주로까지 파급돼 걷잡을 수 없는 연쇄반응을 일으킬 경우 이 또한 만만치않은 문제로 대두될 수 밖에 없다. 소련은 비공산정권시대를 맞음으로써 개혁에의 최대장애물을 일단 제거하기는 했으나 개혁의 앞날은 아직도 험난하기만 하다. □소 공산당 약사 ▲1898년=러시아 사회­민주 노동당(RSLDP),민스크에서 1차 당대회 개최. ▲1903년=RSLDP 2차 당대회.레닌당이 직업적 혁명가로 철저하게 구성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자신이 소속한 볼셰비키(다수파)와 멘셰비키(소수파)의 분열을 주도. ▲1917년=RSLDP,11월7일의 혁명에서 볼셰비키가 페테르스부르크에서 임시정부를 타도하고 권력을 장악함. ▲1918년=RSDLP,러시아 공산당으로 개칭. ▲1921년=레닌,10차 당대회에서 민간기업을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신경제정책(NEP) 제안. ▲1924년=레닌 사망.이후 수년간 당내투쟁이 전개되나 스탈린이 당권을 장악,트로츠키는 망명길에 오름. ▲1929년=스탈린,신경제정책 폐지.공업화및 농업의 집단화 운동에 착수함. ▲1934년=스탈린,17차 당대회에서 독재통치 강화. ▲1964년= 흐루시초프가 실각.레오니드 브레즈네프와 알렉세이 코시긴의 집단지도 체제 시작. ▲1982년=브레즈네프 사망.유리 안드로포프가 권력승계. ▲1984년=안드로포프 사망.브레즈네프의 측근이었던 콘스탄틴 체르넨코가 권력승계. ▲1985년=체르넨코 사망.미하일 고르바초프가 권력 승계. ▲1986년=고르바초프,27차 당대회에서 조심스런 개혁과 당지도부 개편 시작함. 보리스 옐친,정치국 후보위원에 오름. ▲1987년=옐친,고르바초프및 정치국원들과의 불화끝에 당직 사임. ▲1990년=대통령제가 신설돼 고르바초프 인민대표대회에서 새로운 대통령에 선출됨.
  • 러시아공,사실상 연방정부 기능/「정변」이후 입지강화의 안팎

    ◎공당 불법화­쿠데타세력 처리 관장/「신연방조약」에 특수지분 요구나서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이 주도한 반쿠데타운동이 성공함에 따라 향후 소연방에서 차지하는 러시아공화국의 위상이 강화됨에 따라 고르바초프대통령의 지도력은 이번 사건으로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되었다.따라서 향후 고르바초프의 연방정부와 발언권이 강화된 러시아공화국과의 관계가 어떤 식으로 정리될 것이냐에 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고르바초프가 쿠데타군의 동향을 일체 보고받지 못하고 구금되기직전까지 휴가를 즐겼다는 사실은 지도자로서의 그의 이미지에 치명적인 흠이 될것으로 지적한다.반면 러시아공화국은 쿠데타 기간동안 갖가지 포고령을 발표하며 사실상 연방정부의 기능을 대신했다. 지난21일부터 열리고있는 러시아공화국 의회는 이런 투쟁에 대한 대가로 벌써 갖가지 요구사항을 내놓고있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23일부터 단행하고 있는 내각개편및 요직인선을 모두 옐친러시아대통령과 협의하에 결정하고있다.고르바초프는 또 앞으로연방정부의 총리를 러시아정부인사로 임명하기로 약속함으로써 러시아정부의 연정요구를 사실상 받아들였다. 대통령 궐위기간중 러시아공화국 의회가 채택한 제포고령에 대해서도 이들의 요구대로 추후 별도의 포고령을 통해 이를 공식 추인하겠다고 약속했다. 연방정부가 쿠데타의 후유증에서 벗어나 정상을 되찾기까지 시간이 걸리겠지만 현재 러시아정부가 거의 연방정부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형국이다.공산당 불법화·공산당 재산몰수·쿠데타 주도세력에 대한 처리문제 등 거의 모든 현안들이 러시아정부의 의사에 따라 결정되고 있다. 신연방조약이 당초 안대로 처리될 경우 연방정부는 국방·외교·교통·조세·화폐관리 등을 관장하고 나머지 권리는 연방공화국들에 대폭 이양토록 돼 있다. 즉 경제생활면 등에서 사실상 독자 권리를 인정해주되 연방정부의 권위만은 유지토록 돼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는 23일부터 시작된 신연방조약 지지 9개 공화국 모임에서 러시아의 특수지위를 요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6월 옐친을 민선대통령으로 선출한뒤부터 러시아공화국은 사실상 외교·경제면에서 독자노선을 거의 걷고 있고,독자군대창설 계획까지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러시아 외무부는 옐친대통령에 대해 국가원수의 예우를 해줄것을 외국에 요구하고 있다.러시아는 이번 사태가 일어나기 전부터 여타 연방공화국들과 독자적으로 경제·우호조약들을 맺어왔고 극동지방의 석유개발 등 에너지 관할권도 모두 러시아정부로 이양했다. 독립요구중인 발트해 3국 등은 연방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고 러시아와 독자적으로 각종 조약을 맺어왔다.적어도 경제적으로 연방정부의 존재는 이미 모호해진 상태이다.러시아정부는 여기에 덧붙여 연방정부총리를 러시아정부출신이 맡는다는 등 사실상의 연정약속을 고르바초프로부터 받아냈다. 지난해말 고르바초프가 보수파들과 손을 잡기 시작한 이래 개혁파인사들이 대거 옐친 진영으로 넘어감으로써 인재면에서도 러시아정부가 연방정부에 뒤지지 않는다는 지적들이 있다. 지금까지 러시아는 연방과 거의 같은 개념으로 통했다.예를들어 다른 공화국들은 형식적이나마 자체 수도·자체 공산당·자체 대학들이 있었지만 러시아공화국은 모든게 연방정부에 소속돼 있었다. 러시아공화국 주민들에게는 이점이 불만이었고 신연방조약이 추진되면서 자기들도 지분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러시아에서도 독자공산당이 조직됐고 독자 국기,심지어 KGB까지 독자적으로 만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번 쿠데타 세력을 몰아내는데 결정적 역할을 함으로써 러시아정부와 주민들은 신연방을 구성하되 그 안에서 대러시아국으로서의 당연한 지분을 요구하게 된 것이다.요구의 상당부분은 러시아 민족주의의 성격을 띠고있다.러시아가 새연방조약에서 특수지위를 고집할 경우 여타 조약참가 공화국들이 반발,자칫 조약참여 공화국수가 줄어들 가능성도 일부에서는 제기되고 있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23일 러시아의회에서 러시아의 특수지위를 요구하는 대의원들에게 『모든 공화국들의 의견이 중요하다』며 일단 거부의사를 밝혔다.이에대해 한대의원은 고르바초프에게 『우리는 당신이 필요없지만 당신은 우리가 필요할 것』이라고 반박,러시아공화국 사람들이 갖고있는 인식의 한단면을 극명히 보여주었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가능한한 이른 시일내에 신연방조약을 체결하겠다고 밝혔다.신연방조약이 체결되기전 연방정부의 위상등에 관해 어떤 수정이 가해질지에 일차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러나 신연방조약의 내용과 관계없이 앞으로 러시아정부의 입김은 연방정부 및 다른 연방공화국들을 압도할 것이라는게 이곳 관측통들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 옐친 연내 방한 추진/소 사태따라 시기 유동적

    ◎박 체육청소년장관 밝혀 박철언 체육청소년부장관은 24일 소련강경보수세력의 쿠데타를 무산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보리스 옐친러시아공화국대통령의 연내 방한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장관은 이날 『옐친대통령이 지난해 9월 북방정책연구소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었으나 당시 여러가지 사정등으로 방한이 이뤄지지 못했다』고 설명하고 『올들어서도 옐친의 방한을 위해 꾸준하게 접촉하고있다』고 말했다. 박장관은 『최근의 소련사태로 그의 방한시기가 다소 유동적일 것으로 생각되나 여하튼 연내 방한을 적극 추진중에 있다』고 말했다. 박방관은 또 『옐친이 연방대통령이 아니라 공화국대통령인만큼 의전상 초청주체는 서울시장이나 국회의장이 될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 외교소식통은 이와관련,『쿠데타실패이후 정치적인 입지가 크게 강화되고있는 옐친의 방한이 이뤄지게 되면 한소관계는 더욱 더 내실화될 수 있는 계기가 될것』이라고 전망했다.
  • 새 권력구조 어떻게 짜여질까(크렘린 대지진:5)

    ◎개혁파가 권부 전면에 등장한다/의회등 요직에 신진학자등 대거 등용/군부·KGB의 권한 대폭 제한할듯 실패로 끝난 쿠데타의 여파로 대규모 숙청과 함께 소련 권력구조의 대대적인 개편이 불가피하게됐다.쿠데타 주도세력인 연방총리와 KGB의장 및 국방·내무장관의 해임은 엄청난 개편작업의 신호탄에 불과하다. 이 권력구조개편은 KGB와 군부 등 과거 냉전시대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핵심기구의 입지를 약화시키고 파블로프전총리를 중심으로 했던 경제팀도 시장경제로의 신속한 전환을 주장했던 학자와 관료들로 교체되는 등 신진 개혁파인사들을 대거 등용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수 밖에 없다.공산당의 위상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이러한 개편과정에서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을 비롯한 각공화국들의 입김이 크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집무복귀 직후 쿠데타 주도세력인 3개부서의 책임자를 해임,잠정적인 후임자를 임명했다.그러나 하루만에 또다시 이들 3개부처의 책임자를 온건개혁파로 교체하면서 옐친의 의견을 따랐다.무소불위의 힘을 행사했던 KGB와 군부의 권한과 역할을 법률에 의해 명백히 제한하는 입법도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고르바초프는 후임자 인선과정에서 옐친러시아공화국대통령과 상의한 것으로 알려졌다.옐친은 고르바초프와 23일 회담을 갖고 KGB의장과 국방장관 등 요직의 정식인선문제를 논의했다.옐친은 이자리에서 「연정」을 제의,쿠데타 저지에 공로가 큰 러시아공화국의 인사들을 연방정부에 많이 참여시켜줄 것을 요구,고르바초프의 수락을 얻어냈다. 요직인선의 주도권을 잡기위해 밀고 당기는 과정에서 고르바초프연방대통령과 옐친을 비롯한 각공화국 지도자들간에 어느정도 갈등이 예상됐으나 의외로 수월하게 해결됐다.오히려 연방과 공화국간의 위상정립과정에 더 큰 마찰요인이 도사리고있다.지난 20일 조인할 예정이었던 신연방조약이 조만간 정식으로 조인되면 그렇지않아도 공화국들의 권한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옐친이 독자적인 러시아공화국 군대를 창설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있기 때문에 연방정부가 그야말로 껍데기만 남게되는데 대해고르바초프의 반발이 예상된다. 어쨌든 물갈이는 대폭이 될 수 밖에 없다.루키아노프최고회의의장이 이번 쿠데타의 배후인물로 지목됨에 따라 인사태풍은 연방정부에 국한되지않고 의회를 포함한 전역으로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개편의 바람은 공산당에도 밀어닥칠 수 밖에 없다.이번 쿠데타에 동조한 인사들이 상당수 숙청되고 온건 개혁파 인사들이 대거 요직에 기용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공산당의 향후 위상정립방향은 아직도 불확실한 상황이다.대부분의 소련국민들은 공산당이 이번 쿠데타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의심하며 격분하고있고 일부에서는 공산당 폐기론까지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공산당의 입지가 약화될 것만은 분명하다.그러나 공산당이 개혁정당으로 변모할지 아니면 개혁파 인사들이 모두 빠져나가 버리는 가운데 유명무실한 3류정당으로 전락하게 될지는 알 수 없다. 개혁신당 합류 가능성이 반반으로 예측돼오던 고르바초프는 복귀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제1의 과제는 보수반동세력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밝혔으나 『나는 아직도 공산주의자이며 공산당은 앞으로 페레스트로이카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아야한다』고 말해 혁신적인 메스를 가하면서 공산당과 운명을 같이 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셰바르드나제전외무장관과 야코블레프전보좌관 등 개혁파 핵심인사들이 이미 상당수 공산당을 떠나 민주적인 개혁신당창당작업에 열을 올리고있는 가운데 이들에 대한 국민들의 인기가 앞으로 더해갈 것으로 보여 공산당이 환골탈태를 거쳐 국민정당으로 변모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이번 사태를 거치면서 나자르바예프 카자흐공화국대통령도 겸직하고있던 공화국공산당 제1서기직을 포기하는 등 연방전역에 걸쳐 반공산당 분위기는 확산일로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르바초프가 공산당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데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다.공산당이 아직도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있는데다 그의 유일한 지지기반이며 이제와서 공산당을 버리고 민주신당으로 당적을 옮길 경우 남들이 차려놓은 잔치에 손님으로 끼어드는 결과밖에 안돼 결국 스스로 정치생명의 목줄을 끊는 셈이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대대적인 권력구조개편이 이뤄진다 하더라도 과거 70여년간 권력주변에서 맴돌던 보수파들을 완전히 거세시키기는 어렵다.극심한 경제난이 지속될 경우에는 또다시 극적인 상황변화가 이뤄질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결국 소련은 이제 본격적인 다원화사회로 접어드는 셈이다.새로운 다원화시대로 전환하는 혁명은 아직도 진행중이며 최후의 승자가 누가 될지를 단정짓기에는 아직도 이른 시점이다.
  • 고르비­옐친 연정구성의 의미

    ◎“옐친 공로 인정”… 개혁가속화 동반/「온건개혁」새 포장… 이미지 회복 도모/고르비­외교·옐친­내정 “신역할 분담”/고르비,“정부사퇴 마땅”「연루설」에 배수진 고르바초프소련대통령이 23일 옐친러시아공화국대통령과 연립정부를 구성키로 합의하고 내무·국방장관과 KGB의장등 3개핵심권력부서의 책임자를 옐친과의 협의를 거쳐 온건개혁파인사로 교체한 것은 신속한 사태수습및 개혁가속화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와함께 쿠데타를 실패로 끝나게 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수행해「떠오르는 별」로 각광받고 있는 옐친의 위상 강화를 입증하는 의미로도 풀이된다. 고르바초프가 이번사태를 통해 옐친에게 빚을 졌기 때문에 연정제의 수락은 충분히 예견됐고 불가피하기도 했다. 그러나 밀고 당기는 과정을 완전히 생략한채 집무복귀 하루만에 첫회동에서 고르바초프가 연정을 받아들이기로 양보하고 더군다나 요직인 내무장관자리를 러시아공화국내무장관을 지냈던 옐친의 측근에게 넘겨준 것은 다소 의외라 하지 않을수 없다.그만큼 고르바초프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통치력에 손상을 입힌 쿠데타 국면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고 「쿠데타자작설」의 구설수를 불식시킨 뒤 새로운 개혁정국으로 전환시켜 이미지회복을 꾀하려는 욕구가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이끄는 현소련정부가 쿠데타를 일으킨 보수강경파들을 저지하는데 최선을 다하지 못한데 책임을 지고 전체가 사퇴해야 한다는 고르바초프의 말도 쿠데타연루설에 대응하는 일종의 배수진이자 대폭적인 개편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번 연정구성합의로 앞으로 신연방조약체결과 함께 공화국에 대한 권력이양작업도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다.고르바초프가 내정부문에서 상당부분 실권을 넘겨주고 외교에 주력하는 반면 옐친이 내정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역할분담이 이뤄졌다. 바카틴 신임 KGB의장은 독립을 추진하던 발트3국을 강경진압하라는 보수강경파의 요구를 거부해 지난해 12월 해임된 관료출신 온건개혁파인물로 지난 3월 개혁인사로는 유일하게 8인 국가보안위원에 지명됐으며 샤포스니코프 신임국방장관은 국방차관과공군사령관을 지냈으며 쿠데타가 발생하자 쿠데타 주도세력들의 명령을 거부한 온건파이다. 이번 연정구성합의는 대체로 소련개혁의 밝은 앞날을 예고하는 호조의 스타트인 것임에는 틀림없다.
  • 고르비·옐친,연정구성 합의

    ◎국방·내무·KGB의장 하룻만에 또 경질/러시아공,공산당건물 봉쇄령 【모스크바=이기동특파원】 소련의 쿠데타 가담자 및 보수반동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이 진행되고있는 가운데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집무복귀 이틀째인 23일 옐친러시아공화국대통령과 권력을 나눠 갖는 연립정부 구성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고르바초프대통령은 또 자신들 두사람중 어느 한명이 직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되는 경우 자동적으로 상대방의 직무를 승계키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이날 러시아 등 9개 공화국지도자들과 쿠데타 이후 첫회담을 가진 자리에서 이같이 합의한 뒤 옐친의 의견에 따라 신임내무장관에 빅토르 바라니코프 전러시아공화국내무장관을,국방장관에 예프게니 샤포슈니코프 공군사령관,KGB의장에 바딤 바카틴 전내무장관을 각각 임명했다.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또 쿠데타에 단호한 반대입장을 취하지 못했던 베스메르트니흐 외무장관을 해임하는 한편 블라디미르 로보프 국방차관을 소련군 참모총장에 임명했다. 이와 함께 수천명의 모스크바시민들이 공산당 중앙위 건물앞에 모여 공산당간부들이 비밀서류를 불태우고있다는 소문에 대해 항의시위를 벌인 가운데 모스크바시당국은 이날 하오3시(한국시간 하오9시)를 기해 공산당 중앙당과 러시아공화국내 각급지구당 산하의 모든 건물이 쿠데타에서의 공산당 역할에 대한 수사가 끝날 때까지 봉쇄될 것이라는 포고령을 내렸으며 고르바초프대통령도 이에 동의했다고 옐친 러시아공대통령이 밝혔다. 옐친은 러시아공내에서의 공산당활동을 전면중단조치를 내리고 공산당기관지 프라우다를 비롯한 6개일간지를 쿠데타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정간시켰으며 공산당 소속의 출판사와 타스 및 노보스티통신을 국유화했다.쿠데타활동에 협력했거나 공산당활동을 적극적으로 해온 언론인에 대한 숙청도 조만간 단행될 것으로 알려졌다.전날 잠정적인 KGB의장에 임명됐던 셰바르신도 이날 KGB내에서의 공산당활동을 중지시켰다.키르기스공화국도 공화국내 공산당 중앙위건물을 국유화하는 등 공산당에 대한 각공화국의 제재조치가 확산일로에 있다. 옐친의 러시아공화국에 이어 우크라이나공화국도 독자적인 공화국군 창설을 추진하고 나섰다. 옐친은 또 뵈르너 나토사무총장 앞으로 보낸 서한에서 고르바초프가 완전히 정상적인 대통령업무에 복귀할 때까지 자신이 국가최고통제권을 행사할 것이며 빠른 시일내에 고르바초프와 함께 소련법률에 따라 쿠데타 주동자들에 대해 엄격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이날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 옐친에게 공개적으로 감사의 뜻을 표하면서 자신이 이끄는 현소련정부가 『쿠데타를 일으킨 보수강경파를 저지하는데 최선을 다하지 못한데 대한 책임을 지고 정부전체가 사임하는 것이 올바른 접근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남북대화 진전에 도움됐으면…”/소 쿠데타실패 각계 반응

    ◎“개방·개혁의 확산계기 되길”/“한·소관계도 더 돈독 기대/유보했던 상담 즉각 재개하겠다” 소련 강경보수파의 쿠데타가 실패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국민들은 「평화와 자유를 지향하는 인류의 위대한 승리」라고 기뻐하며 세계평화와 한소관계 및 남북관계도 더욱 발전될 것으로 기대했다.우리 국민들은 특히 소련국민들의 총칼과 탱크앞에서도 굴하지 않는 민주화와 개혁의 의지에 대해 깊은 찬사를 보냈다. 소련에 진출한 대부분의 국내기업들도 지난 3일동안 유보했던 대소업무를 재개하며 그전보다 더욱 돈독한 경제협력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했다. ▲김재광 국회부의장=평화를 지향하는 인류의 위대한 승리라고 본다.이제 계급투쟁포기를 정식으로 고할 때가 됐다.앞으로 동서간 화해무드가 가속화되고 한소는 물론 세계각국간의 경제협력도 더욱 강화될 것이다.특히 소련국민들과 옐친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이 보여준 민주주의를 향한 정열에 깊은 찬사를 보낸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소련사회는 체제 민주화에 박차를 가할 것이고 따라서 남북관계도 기대이상으로 잘 풀려나갈 것으로 생각된다.소련을 살리는 것이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길인만큼 우리나라도 여기에 적극 동참했으면 한다. ▲이재훈 변호사=이번 쿠데타가 실패한 것을 보고 소련국민들의 민주화 의식에 무척 고무적인 인상을 받았다.이를 계기로 미국 등 서방 제국들의 소련에 대한 원조와 탈공산화 지원작업이 더욱 적극적으로 전개 되고 한소관계도 전보다 더 돈독해 지기를 기대한다. ▲송충원 삼선해운사장=다행스런 일이다.우리 회사는 직원들의 사할린 출장등 그동안 유보했던 소련과의 업무를 다시 추진하고 있다.물론 전화와 팩시밀리등을 통한 그쪽 회사들과의 상담도 재개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가 옛날과 같은 힘을 발휘할지는 의문이다.앞으로의 사태 진전 역시 섣불리 짐작하기 어렵다. ▲김지연씨(소설가)=소련에서 쿠데타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접하고 내내 마음을 졸여왔는데 이제야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을 것 같다.무엇보다 무력에 굴하지 않고 당당히 자유를 지켜낸 용기있는 소련시민들에게 찬사를 보낸다.그들은 자존심있는 나라 국민답게 스스로 구제해야 한다는 의식을 갖고 그같은 일을 이뤄냈다. ▲김동성교수(중앙대 정치외교학과)=이번 쿠데타는 지난 5∼6년동안의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에 대한 반동이었으며 개혁의 과도기에 혼란이나 일시적 어려움을 빙자해 소련의 헌정질서를 전복시키려는 행위로 국제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이번 쿠데타의 실패로 고르바초프­옐친의 관계가 앞으로의 소련 권력구조의 향방을 결정지을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최원표 대한항공 상무=소련정세가 다시 안정기미를 보여 무엇보다 다행이다. 처음 고르비실각소실이 전해진 뒤 소련으로의 단체관광객등 항공기예약자들이 크게 줄어 무척 당황했었다. 서울∼모스크바간 항공기 운항은 정상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소련상황이 더 이상 악화되지는 않으리라 예상한 것이 맞아 떨어졌다. ▲민인식 털보네식품 부사장=고르비가 실각했다는 소식을 듣고 소련진출을 서둘렀던 입장에서 충격이 컸다. 현재 소련 알마아타에 국수공장과 식당 3곳을 건설중인데 모스크바의 정국변화소식을 듣고 대소투자가 헛일이 될까봐 많은 우려를 했으며 현지 직원들과 하루 1∼2차례의 전화통화를 하며 소련상황을 지켜보았었다. 고르비의 재등장으로 개혁정책이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여 기업들의 소련진출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자이코프스키 올레그 한국외국어대 교환교수(소련 모스크바 룸바대)=보수파의 집권시도는 충격이었지만 이번 기회로 소련국민들은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해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을 것이다. 만약 보수파가 집권했다면 소련은 상황이 더욱 악화됐을 것이다.
  • 소 쿠데타 실패… 그후의 세계정세/긴급대담

    ◎“미국주도 동·서 협력관계 강화된다”/개혁·민주화는 이젠 역류할 수 없는 대세/북한,「핵사찰 수용」등 남북대화 나설 것/부시,대소경협에 박차… 고르비 입지 제고 시켜야 소련 강경보수파의 쿠데타 실패는 소련의 개혁과 민주화가 결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대세임을 전세계인에게 일깨워 주었다.이제 세계는 종전보다 더욱 굳건한 협력과 공존의 바탕위에서 평화시대를 구가해 나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또 쿠데타가 성공했을 경우 한동안 정체될 것으로 우려됐던 남북한관계도 국제적 화해 분위기에 발맞춰 대화와 교류를 가속화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이용필서울대교수와 서병철외교안보연구원교수의 긴급대담을 통해 쿠데타실패의 배경과 소련정국의 향배,국제질서및 동북아정세,남북한관계의 전망등을 진단해 본다. ▲이용필교수=소련의 쿠데타가 실패한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소련정치체제의 특성을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소련에 있어 정권교체는 평화적인 모양새는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권력투쟁이라는 노골적 행태는 벗어나지 못했습니다.권력의 계승과 교체가 제도화되지 못했던 것입니다.이번의 쿠데타도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에 대해 그동안 기득권을 누려왔던 사람들이 위협을 느꼈다는 점을 구체적 배경으로 지적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쿠데타 실패의 원인을 서너가지 요소로 분석할 수 있겠습니다.우선 쿠데타주동세력들이 국민들로부터 호응을 얻을만한 명분을 갖지 못했다는 점입니다.그들은 거사후 발표한 성명에서 어떻게 소련을 이끌어가겠다는 방안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둘째로 쿠데타 주동세력들이 완전한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는 점도 중요한 실패원인으로 꼽을 수 있겠습니다.그동안 보도에서도 나왔습니다만 혁명결행 몇시간 후에야 군이 투입됐다는 사실등이 이를 반영합니다.셋째로는 옐 친러시아공화국대통령의 용감하고도 단호한 저항의지와 모스크바시민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미국을 비롯한 서방 정상들의 쿠데타에 대한 비난과 옐친등 개혁지도자들에 대한 확고한 지지태도도 중요한 실패원인이 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서병철교수=이미 시작된 민주화나 평화정착의 큰 흐름이 일부 강경보수세력에 의해서 쉽게 저지될 수 없었다는 데서 이번 소련의 쿠데타실패의 대국적 원인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소련내부의 엄청난 변화,즉 역사의 큰 흐름을 억지로 막으려는 시도는 처음부터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했다고 보면 정확하겠지요. 물론 쿠데타추진세력등 강경보수세력이 준비를 허술하게 한 점도 실패의 근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즉 옐친등 개혁세력을 그대로 둔 채 형식적 쿠데타를 시도한 것 자체가 안이한 발상이었다고 지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소련 국민들이 개혁및 평화정착에 엄청난 지지를 보냈지만 쿠데타세력엔 전혀 지지를 보내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이미 실패가 예견됐다고 볼 수 있겠지요. ▲이교수=이와함께 쿠데타의 주도세력들이 모든 통신망을 완전히 봉쇄하지 못한 점을 꼽아야할 것입니다.그만큼 소련의 통신시설이 방대했던 것이죠.주요 매체들은 장악됐지만 모스크바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외부세계에 그대로 전해졌고,외부세계의 반응이 역으로 전파됐던 것입니다.쿠데타 주도세력들은 경제적 제재를 가하겠다는 서방의 압력이 전해졌음에도 불구,이에 대응할 만한 묘책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스스로 경제적 수렁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자인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서교수=이번 쿠데타가 결과적으로 실패로 끝남에 따라 비온 뒤에 땅이 더욱 굳어지듯이 고르바초프의 입지는 더욱 강화될 전망입니다.고르비는 자신의 위치가 확고해진 만큼 이제는 급진파와 보수파의 가운데에서 추진해온 개혁정책을 더욱 자신있게 추진할 수 있게 됐습니다.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도 기왕의 높은 국민적 지지에다 반쿠데타투쟁의 선봉에 나서 탱크 위에서 대중연설을 하는등 커다란 용기를 보여줘 고르바초프를 능가할 정도로 정치적 기반을 구축했다고 보여집니다. 그렇다고 해서 옐친과 고르바초프가 즉시 권력투쟁을 개시하리라고는 보지 않습니다.오히려 개혁추진이라는 같은배를 탄 두사람이 힘을 합치면 지지부진했던 개혁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마련될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교수=고르바초프가 즉시 착수해야할문제는 이번 사태의 직접 원인이 됐던 신연방조약의 마무리가 될 것입니다.여기에는 독립을 선언한 발틱연안의 3개 공화국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지가 우선적인 관심사항입니다.적정 수준의 타협이 이뤄지지 않으면 와해가 불가피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이밖에도 어려운 문제들은 산적해 있습니다.식량난등 경제적 위기를 쉽게 극복할수는 없을 것입니다.서방의 지원에 의한 해결방안을 모색하겠지만 말입니다.비록 거사에는 실패했지만 특권적 위치에서 혜택을 받아온 사람들의 반발을 어느 정도 상쇄시키느냐도 숙제입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가 군과 KGB등 쿠데타관련 세력들을 일시에 도려내기는 어려울 것으로 여겨집니다.주요인물들은 물론 거세하겠지요.반대세력들의 감정을 진정시키면서 그들을 자기편으로 부분흡수하는 식으로 세력을 약화시켜 나가는 방법을 택할 것입니다. 소련권력 속성상 최고권력자가 주변에 자기사람을 포진시키기 위해서는 10년정도의 시간이 필요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브레즈네프가 대표적인 경우죠.그러나 고르바초프는 지금까지 그럴만한 시간을 갖지 못했습니다. ▲서교수=고르바초프가 세계역사의 흐름을 바꿀 정도로 동서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에 기여한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이제 고르바초프가 시련을 극복하고 권좌에 복귀할 경우 동서 화해무드가 더욱 고조될 것으로 예상됩니다.지난해 11월 체결된 재래식무기감축협정이라든가 금년초에 본격협상에 들어가 7월말 조인된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을 이행하는데도 아무런 장애가 없다고 하겠습니다. 이번 쿠데타에 의해 고르바초프가 한때 실각 위기에 빠졌을 때 서방진영 지도자들이 「고르바초프를 좀더 도와줬어야 했는데…」라고 후회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이제는 고르바초프의 국내적 위치가 불안할 때 소극적인 자세를 견지했던 일본및 일부 서방국가들도 적극적으로 고르바초프를 도와서 대소경협을 강화하리라 예상됩니다. ▲이교수=이번 소련사태에 직면해 미국과 유럽선진국들은 생각보다 민첩하고 강도높은 조치들을 취했습니다.특히 미국의 역할이 컸다고 할 수 있습니다.이런 맥락에서 앞으로의 세계질서는 미국의 헤게모니를 주축으로해서 구축되어 나갈 것으로 보입니다.미소간의 우호관계도 더욱 돈독히 유지될 것으로 전망됩니다.소련의 입장에서는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개혁·개방·민주화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서교수=고르바초프가 한때 권좌에서 밀려났을 때 우리 입장에서는 고르비가 건재하고 있는 동안 국교수립 등 대소접근의 기본틀이 마련된데 대해 안도감을 가졌던 것은 사실입니다. 이제 고르바초프가 다시 권력을 장악하게 됨으로써 북방정책을 통해 설정해 놓은 우리 외교노선에 일단 유리한 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교수=만약 쿠데타가 성공했더라면 동북아의 세력균형은 미묘하게 변화됐을 것입니다.우선적으로 일본이 재무장하는 데 촉진적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입니다. 북한의 지도자에게는 쿠데타의 실패가 큰 경종이 됐을 것입니다.북한의 기자들이 쿠데타주역들의 비상위원회 회견장에 대거 몰려갔다는 보도등에 비추어 볼 때 대세역전에 따른 북한의 곤혹스런 입장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서교수=이제 고르바초프가 더욱 힘을 갖고 재등장했으므로 북한은 좋든 싫든 과거보다 개방화에 더욱 적극적 태도를 보이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북측이 당장 태도를 바꿔 남북고위급회담을 열자고 하지는 못하겠지만 시기를 봐가며 남북대화와 핵사찰수용문제 등에 있어 보다 유연성 있는 태도를 보일 것입니다. 이용필 ▷약력◁ ▲1933년생 ▲미국 시카고대(정치학박사) ▲자유아카데미 교수부장 ▲서울대교수(현) 서병철 ▷약력◁ ▲1939년생 ▲독일 본대학교(정치학박사) ▲한독사회과학회 회장 ▲외교안보연구원 교수(현)
  • 고르비,지도부 개편/옐친 연정제의… 오늘 요직인선

    ◎새국방·KGB의장·내무 임명/“공산당도 개혁세력으로 교체”/고르비 회견 【모스크바=이기동특파원】 모스크바로 돌아와 집무를 시작한 고르바초프소련대통령은 22일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과 함께 공석이 된 지도부의 요직인선에 착수,1차로 국방장관에 미하일 모이세예프참모총장을 임명했다.또 국가보안위원회(KGB)의장에 레오니드 셰바르신을,내무장관엔 바실리 투르신을 발령했다.이에앞서 고르바초프대통령은 국방차관에 보리스 파안코프대장을 임명했는데 타스통신은 쿠데타 주동자의 체포로 자리가 빈 일부 핵심요직의 임명이 「임시적」인 것이라고 전했다. 고르바초프는 이날 모스크바로 귀환한 뒤 처음으로 가진 기자회견에서 공산당안의 반동세력을 몰아내고 개혁지지세력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정변을 계기로 급부상한 옐친러시아공대통령은 보수파 제거에 본격 착수함으로써 자신의 세력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옐친대통령은 그와 고르바초프대통령이 23일 만나 정부구성문제를 비롯한 「대단히중요한」사안들을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그는 3인의 요직인사와 관련,『앞으로 러시아공화국이 연방정부구성에 보다 많이 대표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그 이유는 어려운 시기에 민주주의를 수호한 것이 러시아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옐친은 또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연금돼있었던 크리미아휴양지에서 모스크바로 돌아온 직후 그에게 자신의 지지세력들과 연정을 구성할 것을 제의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모스크바 라디오방송이 보도했다. 이에앞서 고르바초프대통령은 모스크바공항에서 크렘린관저로 돌아온 직후 발표한 첫 성명에서 『나를 축출하려던 쿠데타가 실패한 것은 페레스트로이카(개혁)의 승리』라고 강조하고 『쿠데타가 성공했더라면 소련은 큰 재난을 겪게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부시 미국대통령은 그동안 주저해왔던 대소직접경제원조 제공 가능성을 처음으로 시사했고 유럽공동체(EC)와 일본등도 소련에 대한 지원을 재개하겠다고 발표했다.
  • 소 쿠데타 실패/고르비 대통령직 복귀

    ◎비상위 8인 체포,곧 재판회부/군 철수… 통금등 포고령 무효화/모스크바 이기동특파원/옐친 급부상… 오늘 긴급간부회의 소집 유혈사태까지 빚으며 내란위기로 치닫던 소련의 반개혁 쿠데타가 실패로 끝났다.이에따라 크리미아휴양지에서 연금상태에 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이날하오 모스크바로 돌아왔으며 연방최고회의는 그의 대통령직을 복권시켰다고 타스통신이 보도했다. 쿠데타 주도세력인 8인국가비상사태위원회는 20일 해산됐고 8인위원들도 대부분 체포되거나 도피한 것으로 전해졌다.이들은 모두 재판에 회부될 것으로 보인다. 모스크바와 발트3국을 비롯한 비상사태선포지역에 배치됐던 모든 연방군 병력도 이날 철수를 시작했으며 모스크바를 비롯한 소련 전역은 축제분위기를 이뤘다. 연방간부회의는 22일 긴급회의를 열고 향후 정치일정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이번 쿠데타의 실패에 따라 반쿠데타 선봉에 섰던 옐친대통령의 정치적 입지가 크게 강화됐다. 【모스크바 AP 연합 특약】 고르바초프는 21일 모스크바로귀경길에 올랐다고옐친러시아공화국대통령의 보좌관이 말했다. 고르바초프는 연금상태에 있던 크리미아반도의 휴양지로부터 루키야노프 연방최고회의 의장등과 함께 모스크바로 떠났다. 【모스크바 AP 연합】 소련 연방최고회의 지도자들은 21일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 축출기도 쿠데타를 비난했으며 쿠데타 지도자들에 의해 내려진 모든 포고령을무효화했다고 연방최고회의의 유리 카리아트킨 대의원이 말했다. 그는 연방최고회의가 모스크바의 야간통행금지령과 독립적인 언론매체의 보도금지령 등 쿠데타 주도세력들이 내렸던 모든 포고령을 무효화했다고 덧붙였다. 【모스크바 타스 AFP 연합】 소련 국방부는 모스크바를 비롯,비상사태가 선포된지역에 배치된 모든 연방군 병력에 대해 철수를 명령했다고 소련관영 타스통신이 21일 보도했다. 타스통신은 국방부가 비상사태 선포 지역으로부터 모든 부대와 분견대 병력의철수를 이행토록 하는 결정을 채택했다고 전했다. ◎TV 정규방송/언론검열 해제 【모스크바 AP 연합】 쿠데타 세력들이 모스크바를 떠남에 따라 쿠데타발생이후 방송이 중단됐던 소련의 TV와 라디오가 21일 방송을 재개했으며 관영 타스통신은 독립적인 출판물에 대해 내려졌던 출판금지령이 해제되고 있다고 전했다.
  • 빗속의 모스크바 온통 환호물결/이기동특파원 「대반전 현장」서 급전

    ◎“시민의 승리… 동조세력 처벌 안해”/옐친/검열중단에 “고르비 축출항의”기사/프라우다/수㎞ 탱크행렬 사라지자 시민들 안도 ○…소련군 탱크들이 물러가고 쿠데타를 주도한 8인이 비행기로 도주 혹은 체포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21일 하오 러시아공화국 정부청사앞 광장에는 여전히 10여만명의 시민들이 운집. 정문앞에 모인 사람들은 현관위에 설치된 대형확성기를 통해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대의원들의 연설에 귀를 기울였다. 소련군 탱크에 깔려 죽은 사람들을 국가유공자로 간주해 그 가족들에게 공화국 정부에서 연금을 주기로 결정했다는 발표가 나오자 수많은 관중들이 일제히 환호. 또 쿠데타 세력들의 명령에 따라 모스크바에 진주했던 군인들을 비롯,KGB·경찰 등 모든 쿠데타 동조세력들에 대해 일체의 처벌도 하지 않겠다는 옐친의 포고령도 발표. ○…정부청사안 프레스센터로 들어가는 정문입구에서는 군복을 차려입고 각목들을 든 러시아시민군들이 출입자들을 일일이 체크했다.기자가 프레스 카드를 내보이고 출입을 요청하자 가방을 열어소지품을 일일이 검사한 뒤에야 들여보내 주었다.이런 절차를 3번이나 거친뒤에야 프레스센터내 공보책임자에게 안내됐다. 그러나 이 공보책임자는 『모든 상황이 아직 유동적이어서 2∼3일 뒤에나 정리된 정보들을 내놓을 수 있다』면서 일체의 코멘트를 피했다. 청사구내와 뒷마당에는 간밤의 긴장을 말해주는 잔해들이 곳곳에 널려 있었다.수백개가 됨직한 보드카 빈병들이 흩어져 있고 천막·음식찌꺼기들이 곳곳에 널려 있었다. ○…21일 하오2시쯤 모스크바 남서쪽 외곽도로에는 병영으로 복귀하는 탱크 수백대가 수㎞에 걸쳐 목격됐다.하오4시가 되자 철수가 완료된듯 시가지에서 쿠데타군의 탱크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러시아공 정부청사로 가는 칼리닌가 주변에는 옐친지지 탱크들이 백·청·적 3색의 러시아국기를 당당히 내걸고 서 있었다.탱크병들은 시민들이 건네준 화환들에 싸여 모두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하오들어 비도 그치고 칼리닌 다리위에는 바리케이드도 많이 치워졌으며 사람들의 표정에서도 긴장감이 말끔히 사라져 있었다. ○…소련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는 21일 쿠데타 발생 이후 처음으로 언론검열을 중단하라는 호소문과 함께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축출에 항의하는 상당량의 기사를 게재하는등 크렘린 당국과의 전통적인 유대를 단절하는 등 이례적인 태도를 취해 눈길. 쿠데타 지도부에 의해 발행이 허용된 7개 매체들 가운데 하나인 프라우다지는 1면에는 쿠데타 지도부가 발표한 통금령과 보리스 옐친 러시아 공화국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민들의 시위에 대한 기사를 동시에 게재. 프라우다는 이와함께 강경파들의 권력장악에 대한 항의를 호소하는 옐친의 발언을 인용하면서 공정부대 요원들이 러시아 정부청사에 집결하고 있다고 전언. 프라우다는 이어 고르바초프의 축출과 관련,런던과 파리,본,워싱턴등의 부정적인 반응을 게재해 외국의 비난을 무시한 관영 타스통신과는 대조적인 모습. ◎철수군인들 “우린 영원히 떠난다” ○…성바실대성당과 시청 등 모스크바 시내 중심가에 배치돼있던 소련군탱크 및 병력이 21일 대부분 철수해 고리키가의 차량통행이 재개되는 등 모스크바 시내가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연도에 나온 시민들은 철수하는 군인들에게 박수갈채를 보냈고 군인들도 『우리는 영원히 떠난다』고 말했다. ○…보리스 옐친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을 중심으로한 쿠데타반대세력들은 이들 「비상위」8인을 국법질서문란을 이유로 적법절차에 따라 재판에 회부할 것이 확실하다.옐친등 개혁주의자들은 이들이 일으킨 쿠데타를 「초헌법적이며 불법적인 것」으로 간주해온 이상 8인을 재판에 회부,장갑차와 탱크를 앞세운 「강제명령」만으로는 산적한 소련문제를 해결할수 없음을 전세계에 알릴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쿠데타반대세력의 중추역할을 한 러시아공의회 건물을 에워싼 채 시위군중들과 충돌,4명의 소련시민의 목숨을 앗아간 소련군병사들에 대한 처벌은 없을 것 같다. 옐친은 이와관련,『이들은 상관의 명령에 복중했을 뿐』이라고 지적,『소련헌법을 준수한다면 처벌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소련 발트해연안의 에스토니아 공화국에 이어 라트비아 공화국도 21일 소련 연방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했다고 인근 리투아니아 공화국 대변인이 말했다. 이 대변인은 현재 라트비아 공화국과 연결되는 모든 전화통화가 두절됐으며 라트비아 공화국 의회에 의해 의결된 이 독립선언은 리투아니아 공화국 자체의 통신망을 통해 전해졌다고 밝혔다.
  • 서방국들 “경원중단”압력 본격화

    ◎부시,“고르비 복귀시켜라”/EC정상 23일 긴급회담/일서도 서방과 공동보조 취하기로 【워싱턴·런던·파리·도쿄 외신 종합】 미국및 유럽공동체(EC)등 서방국가들은 20일 소련의 강경보수파들이 고르바초프대통령을 축출한데 대한 보복으로 대소 경제·외교적 제재를 강화하고 있다. 부시 미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통해 쿠데타 지도자들을 인정하기를 거부하고 그들에게 고르바초프를 대통령직에 복귀시키라고 촉구했다. 부시대통령은 또 옐친러시아공화국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그의 고르바초프 복권움직임을 적극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와의 전화통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부시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유럽공동체도 고르바초프 축출에 대한 항의표시로 대소경제원조의 대부분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허드 영국외무장관이 밝혔다. EC는 13억5천만달러의 대소원조를 승인해 놓은 상태다. EC외무장관들은 이에앞서 헤이그에서 회동,대소 경제지원과 소련상황등에 대해 논의했다.허드장관은 대소경제지원 중단에 대해 프랑스·벨기에·네덜란드등이 신중한 태도를 보였지만 결국 대소경제지원중단에 동의했다고 말했다. 허드장관은 또 소련상황과 향후 대소정책을 논의하기 위해 EC정상회담이 23일 개최될 것이라고 밝혔다.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외무장관들도 21일 브뤼셀에서 특별회의를 갖는다. EC는 대소경제제재와 함께 실각한 고르바초프대통령을 만날 장관급 대표단을 소련에 파견할 계획이라고 프랑스정부대변인이 말했다. 이 대변인은 23일로 예정된 EC정상회담직후 EC대표단이 소련으로 떠날 것이라고 말했다.그러나 그는 대표단이 고르바초프와 만나기위해 새로운 지도자들과 접촉을 해야한다 하더라도 이같은 접촉이 새로운 정권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한편 가이후(해부준수)일본총리도 『소련의 현재 상황은 헌법절차에 따라 이루어진 정당한 것』이 아니라고 밝혀 소련의 새 지도부를 인정하지 않고 있음을 시사했다.이에따라 일본은 대소경제지원을 중단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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