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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러 공동선언,2년전 기본조약과의 차이

    ◎“동반관계 진입”… 형식·내용 모두 큰 진전/러,「선언」은 미·일과만 발표 “열강대접”/북핵 우리입장 전폭지지 예상밖 성과 김영삼대통령과 옐친러시아대통령이 1일 모스크바에서 발표한 「한국과 러시아 공동선언」은 형식면에서나 내용면에서 모두 두나라가 지난 92년11월 체결한 기본조약 보다 월등히 성숙된 것이다. 형식으로 볼때 기본조약은 두나라가 공식관계를 갖기 시작했다는 정도를 의미한다.바꾸어 말하면 적대관계의 해소라고 풀이된다.우리와 일본,우리와 러시아등 오랫동안 국교가 단절되었거나 전쟁을 치른 나라가 화해하면서 체결하는 것이 기본조약이다.따라서 그 안에 우호선린을 다지는 내용이 있더라도 낮은 수준일 수 밖에 없다.이에 비해 「공동선언」은 조약이나 협정에 담기 어려운 정치적 합의를 밝힐 때 사용한다.그만큼 긴밀한 나라들끼리 이용되는 형식이다. 「공동선언」은 「공동성명」「공동발표문」보다도 한단계 격이 높다고 볼수 있다.특히 러시아측에서 보면 「공동선언」은 현 시점에서 상대국에 줄수 있는 최상의 우호조치이다.러시아가 최근 공동선언을 함께 발표한 나라는 미국과 일본 뿐이다.우리를 미국이나 일본과 비견되는 국가로 「대접」했다는 해석도 크게 빗나간 것은 아니다.92년 옐친대통령의 서울방문에서는 한국과 러시아 두나라가 기본조약의 체결과 함께 「공동성명」의 형식으로 정치적 합의를 발표했었다. 내용에서도 이번 공동선언은 알차다고 평가된다.러시아는 가끔 돌출행동으로 국제적 비난을 사기도 하지만 마음만 맞으면 「화끈하게」 표현해준다.공동선언 8항의 북한핵문제 부분이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북한이 절대 핵을 가지지 않아야 된다는 점에 있어 우리와 똑같은 보조를 취할 것임을 천명했다.92년 공동성명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된다.13항의 청와대와 크렘린 사이의 핫라인 설치도 매우 의미있는 대목이다. 북한의 정전협정 일방파기의 부당성 지적,유엔에서의 한국과 러시아의 협력,러시아의 APEC가입 지원등도 92년 공동선언에 없던 진일보한 내용들이다. 이러한 실질적 합의도 중요하지만 이번 공동선언은 두나라 관계에 대한 좌표설정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공동선언은 두나라의 관계를 「건설적이고 상호보완적인 동반자」라고 규정했다. 90년9월 수교이후 92년의 기본조약과 공동성명을 거치면서 두나라의 협력을 위한 법적,제도적 기반을 다지는 관계발전의 초기단계가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다.이번 공동선언은 그 초기단계를 지나 두나라의 관계가 한·미,한·일 수준의 성숙한 동반자관계로 넘어가고 있다는 선언 바로 그것이다. ◎한·러시아 공동선언 전문 ①대한민국 김영삼대통령과 러시아연방 보리스 니콜라예비치 옐친대통령은 1994년6월1일부터 3일까지 모스크바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국제정세 전반과 양국 관계의 현황및 전망에 관해 심도있는 의견을 교환하였다. 양국 대통령은 한·러 양국간의 관계가 1992년에 체결된 「대한민국과 러시아 연방간의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을 바탕으로 정치·경제·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착실히 발전해온데 대해 만족을 표명하고 양국관계가 자유민주주의,법의 지배,인권존중및 시장경제라는 공동의 가치를 바탕으로 『건설적이고 상호 보완적인 동반자 관계』로 접어들었음을 선언하였다. ②양국 대통령은 개혁을 통해서 국가의 발전과 번영이 보장될 수 있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양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개혁과정에 대해 상호의견을 교환하였다.양국대통령은 러시아 정치·경제개혁의 성공이 전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동북아및 아태지역에서의 안정을 위해서도 중요하다는데 인식을 같이 하였으며 김영삼대통령은 러시아에서 진행되고 있는 개혁과정에 대한 한국의 지지와 협력을 옐친대통령에게 재확인하였다. ③양국 대통령은 반목과 대립으로 특정지어졌던 국제정치체제가 종식되고 화해와 개방,그리고 국제안보및 안정에 대한 새로운 도전을 극복함에 있어 협력과 동반을 추구하는 새로운 국제질서가 정착되고 있음에 만족을 표명하고 향후 범세계적인 문제해결을 위하여 양국이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로 합의하였다. 양국 대통령은 특히 전세계적으로 인권의 보편성에 대한 인식이 강화되고 있음을 환영하며 세계인권선언의 원칙과 양국이 가입한 인권에 관한 국제협정의 원칙을 준수하고 이를 증진시키기 위해 공동노력하기로 하였으며 인권에 관한 활동에서 양국간의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하였다. ④양국대통령은 국제연합 활동의 적응성과 효율성을 증대시키고 시급한 국제문제의 해결을 위한 국제연합의 개입을 강화하기 위하여 취해진 제반조치들에 만족을 표명하였다.양국대통령은 국제정치의 중심이 되어가고 있는 국제연합의 평화조성과 인도적 외교활동에 더욱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데 대하여 의견을 같이 하였다. 옐친대통령은 독립국가연합 지역내에서의 분쟁상태 해결및 러시아의 개혁 진전과 관련한 러시아와 국제연합의 협력 필요성을 설명하였으며 김영삼대통령은 이에 이해를 표명하였다.김영삼대통령은 대한민국이 보다 능동적으로 국제연합활동에 참여하기 위해 1996∼97 임기의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에 입후보할 것임을 천명하였으며 옐친대통령은 이를 호의적으로 고려하기로 약속하였다. ⑤양국대통령은 아태지역의 역동적인 발전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고 아태지역을 평화와 번영을 위한 공동의 장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상호 노력하기로 하였다. 양국대통령은 금년 7월 방콕에서 개최되는 안보관련 제1차 아세안지역포럼이 모든 참가국들의 공동노력을 통하여 아태지역의 안보·상호신뢰및 호혜적인 협력구조의 형성에 기여해야 할 것이라고 천명하였다. 김영삼대통령은 아태지역 협력에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고자 하는 러시아의 의도를 환영하였으며 러시아의 아태경제협력체(APEC) 가입문제가 동 경제협력체 회의에서 논의되는 경우 대한민국은 이를 호의적으로 고려할 것이라고 하였다. ⑥양국 대통령은 동북아지역 국가들이 양자및 다자간의 협력을 증진시키고 안정과 번영을 확보하기 위하여 역내 국가들간의 안보문제에 관한 대화와 협력이 필요하다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동북아지역 안보대화 문제에 관하여 한·러 양국간에 협의채널을 유지하기로 합의하였다. ⑦한반도정세 토의과정에서 양국대통령은 한반도에서의 긴장완화,평화구축 및 안보와 안정을 위하여 남북대화의 지속이 필요 불가결함을 강조하고 한반도의 통일은 당사자간의 직접적인 대화를 통하여 평화적이고 민주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하였다. 옐친대통령은 남북한간의 상호신뢰 회복,경제·문화및 사회교류를 촉진할 수있는 대화의 진전에 대한 기대를 표명하고 1991년12월13일 남북한간에 체결된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의 이행이 보장되어야 함을 재확인하였다.양국대통령은 남북한간 체결된 상기 합의서에 따라 남북한간에 새로운 평화체제가 구축될 때까지 현 정전체제가 유지되어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 하였다. ⑧양국 대통령은 한반도에서 핵무기를 생산하려는 어떠한 기도도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 뿐 아니라 동북아지역,나아가 세계평화와 안전의 유지를 위태롭게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양국 대통령은 한반도의 비핵화와 이를 위한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의 이행이 긴요하다는데 의견을 같이 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핵무기의 비확산에 관한 조약의 당사국으로서 동 조약의 의무를 엄격히,그리고 지속적으로 이행하여야 하며 국제원자력기구와 체결한 안전조치협정에 따라 사찰의무를 이행할 것을 촉구하였다.옐친대통령은 러시아가 관련국가들과 함께 한반도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국제적 노력에 적극 동참할 것임을 확인하였다.김영삼대통령은 「한반도의 안보및 비핵지위에 관한 다자회의」 소집에 관한 러시아의 제의를 평가,유의하였다. ⑨김영삼대통령은 옐친대통령의 주도에 의해 러시아거주 한인들의 명예가 회복되고 대한항공기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문서가 공개된데 이어 한국전쟁의 진상을 밝히는 문서사본을 한국측에 인도함으로써 불행했던 양국간의 과거사를 극복하고자 하는 러시아정부의 노력을 환영하였다. ⑩양국대통령은 과학기술·에너지·어업·건설등의 분야에서 양국간의 실질적인 협력이 증진되고 이를 위한 제도적 기반이 착실히 마련되고 있음에 만족을 표명하였으며 특히 환경분야에서의 양국간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⑪양국대통령은 러시아의 첨단 기초과학기술과 한국의 응용및 산업기술을 상호 연관시켜 발전시키고 러시아가 보유하는 천연자원을 개발하기 위한 공동노력을 계속해 나가기로 하였으며 한국과 러시아 극동지역간의 직접적인 접촉 증대를 장려하기로 하였다.양국 대통령은 최근 양국간의 교역이 크게 증대하고 있는데 대하여 만족을 표명하고 양국간의 교역과 투자를 증대시키기 위한 운송·세관·산업표준등 분야에서의 법적·제도적 기반을 확충하기 위해 양국정부가 노력할 것을 합의하였다. ⑫양국 대통령은 양국간의 『건설적이고 상호 보완적인 동반자 관계』로 나아가기 위하여 정상간의 대화를 포함하여 총리,의회지도자,정부각료등의 여러 수준에서의 정치대화를 더욱 활성화시키고 문화·학술·관광 등의 분야에서도 교류를 적극 장려해 나가기로 합의하였다. ⑬양국 대통령은 정상간의 긴밀한 대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청와대와 크렘린간에 직통전화(Hot Line)를 설치키로 합의하였다.
  • 경제공동위 연기 사과/옐친,김 대통령에 친서

    옐친러시아대통령은 김영삼대통령에게 쇼힌부총리의 갑작스런 방한취소로 제1차 한·러경제공동위가 무기연기된데 대해 사과와 유감의 뜻을 표하는 친서를 보내왔다고 외무부가 21일 밝혔다. 이 친서는 게오르그 쿠나제 주한러시아대사가 20일 홍순순외무부차관을 방문해 전달했다. 옐친대통령은 친서에서 『러시아 국내사정으로 쇼힌부총리의 방한이 취소된데 대해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하며 이해를 구한다』고 말했다. 옐친대통령은 『우리 대표단의 서울방문을 방해했던 불의의 상황에 대해 각하의 이해를 구하며 첫 공동위를 각하의 모스크바 방문전 편리한 시기에 모스크바에서 개최할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 친러 크림자치공에 파병/우크라,직할통치 모색

    【키예프 심페로폴(우크라이나) AFP 로이터 연합】 러시아에 접근하고 있는 크림자치공화국에 병력을 급파한 우크라이나정부는 19일 미국과 러시아,크림자치공화국측 관리들과 크림지역에서 우크라이나 대통령 직할통치를 실시하는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했다고 레오니트 크라프추크 우크라이아 대통령의 한 보좌관이 밝혔다. 이 보좌관은 이날 최소한 1천명의 우크라이나 내무부 소속 특수부대원과 국가방위군 병력이 크림지역 공권력을 접수하기 위해 배치된 직후 이 문제에 대한 논의가 개시됐다고 전했다. 이에앞서 발레리 쿠즈네초프 크림자치공내무장관대행은 이날 지역의회에서 최소한 1천여명에 이르는 우크라이나 내무부 소속 병력과 국가방위군이 18일 밤에서 19일 새벽사이에 급파됐다고 밝히면서 『일종의 군사쿠데타가 진행되고 있다』고 비난했다.
  • 흑해함대 협상 지연/러­우크라 전쟁위험/발틴사령관 경고

    【세바스토폴(우크라이나)·모스크바 AFP 연합】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흑해함대분할을 둘러싼 이견을 해소하지 못할 경우 양국간에 전쟁이 일어날 우려가 있다고 에두아르트 발틴 흑해함대 사령관과 우크라이나내 친러시아 크림 자치공화국의 유리메슈코프 대통령이 26일 경고했다. 이들은 공동성명에서 최근 함대분할 협상이 결렬 지경에 이르게 된데 깊은 우려를 표시하면서 「또 다른 유고슬라비아 사태」를 막으려면 시급히 조치를 취해야 할것이라고 촉구하고 지금까지 우크라이나가 참여를 배제한 크림 자치공화국 지도자들도 함대분할 협상에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보스니아 사태 논의/미·EU정상과 회담/옐친대변인 밝혀

    【모스크바·워싱턴·사라예보 로이터 AP AFP 연합】 보리스 옐친러시아대통령과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은 보스니아사태에 관한 국제적인 공동정책을 마련하기 위한 미­러시아­유럽연합(EU) 정상회담 개최 원칙에 합의했다고 비야체슬라프 코스티코프 러시아대통령 대변인이 21일 전했다.
  • 양기탁선생/대한매일신보 창간… 항일의식 고취(이달의 독립운동가)

    ◎신민회 결성… 만주서 독립군 양성 주도/의용군 국내에 파견,일제기관 등 습격 양기탁선생은 국운이 꺼져가던 대한제국말기에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항일의식과 애국계몽의식을 고취한 언론인이자 신민회등 비밀결사를 통해 무장항일운동을 벌인 독립운동가이다. 1871년 4월2일 출생한 선생은 1938년 4월19일에 운명,이달로서 서거 56주기와 탄신 123주년을 맞게 됐다. 평양 출신인 선생은 소년 시절 영어를 배워 1895년 미국인 게일박사의 한영자전 편찬작업에 참여했다.사전인쇄를 하러 일본으로 건너간 길에 근대화된 일본을 보고 감명받은 선생은 귀국후 개화파들이 모인 독립협회에 가입했다. 1898년 독립협회가 친러 수구파에 의해 해산되는 과정에서 체포돼 조사를 받고 나온 선생은 게일박사의 도움으로 도미,3년뒤인 1901년 귀국했다. 노일전쟁이 일어난 1904년에는 대한제국 황실 외교담당부서인 궁내부 예식원 직원으로 임명돼 영어통역 일을 했다. 선생은 노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가 조선의 황무지개척권을 요구하는 등 침략을 본격화하자 이를 막기 위해서는 신문운영이 필요하다고 판단,고종으로부터 황실판공비인 내탕금을 지원받아 신문사 시설을 마련했다. 대한매일신보는 일본헌병대의 출판물 검열을 피하기 위해 당시 영국 데일리 뉴스 임시특파원이던 영국인 배설(Earnest Bethell·1872∼1909)을 사장으로 1904년 창간됐다. 이 신문에는 박은식선생을 비롯,신채호·최익·장도빈등이 제작진으로 참여했다.외국인 명의로 발행돼던 이 신문은 일제 통감부의 검열을 피하면서 「일인입불가」를 출입문에 써붙였을 정도로 강한 반일감정을 나타냈다. 국한문혼용인 국내용 신문과 별도로 영문판을 발행한 이 신문은 통감부의 신문지법에 다른 신문들이 얽매여 의병활동을 폭도라고 표현할 당시 의병활동을 높이 평가하는 등 국권회복운동의 대변지역할을 수행,1만3천여부의 부수를 자랑했다. 일제는 눈엣가시 같은 이 신문을 폐간하기 위해 우선 사장인 배설을 영국영사재판소에 치안방해죄로 고소,중국 상해로 추방했다.배설은 형을 마친뒤 서울로 돌아와 옥고 후유증으로 숨졌다. 선생은 이런 가운데 안창호선생을 비롯한 이동휘·이동령·노백린·이시영·김구선생등과 함께 신민회를 창립,해외독립기지 건설등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신민회본부는 대한매일신문안에 두었으며 지방지국은 연락망으로 활용됐다. 전국 8백여명의 애국세력이 집결한 신민회는 1909년 독립군 창건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위해 선생의 집에서 전국대회를 열었다. 이날 대회는 해외에 독립군기지를 세우고 무관학교를 설립해 독립군을 양성하는 한편 국내진입작전을 펼쳐 독립을 쟁취한다는 「독립전쟁 전략」을 채택했다. 선생은 이 계획에 따라 군관학교를 세울 적당한 장소물색을 위해 만주를 답사했으며 1910년 이동령등이 만주에서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했다. 이처럼 신민회의 활동이 뚜렷해지자 일제는 1911년 양기탁보안법위반사건을 꾸며 신민회 중앙간부 16명을 모두 체포,투옥시켰다. 이어 일제총독 암살사건(일명 105인 사건)을 날조해 신민회원 8백명을 전원 체포,선생은 징역 10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4년만에 석방된 선생은 평남 강남군 쌍용면 신경리에 유배됐다. 선생은 다음해인 1906년 유배지를 탈출해 만주신흥무관학교와 광복회에서 활동중 다시 일제에 체포,국내로 압송돼 전남 거금도에서 2년동안 유배생활을 했다.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 유배에서 풀려난 선생은 동양을 순방중인 미국의원단이 서울역에 도착하자 독립만세운동을 펼쳐 또 투옥됐다. 모친 사망으로 일시 방면된 틈을 타 만주로 도피한 선생은 무장항일단체인 의성단을 결성,봉천의 만철병원 습격사건을 일으키기도 했다. 1924년에는 이청천·김동삼등과 함께 대한군정서·통의부등 만주내 무장항일단체를 통합,정의부를 결성하고 의용군을 국내에 파견해 일제기관을 공격하게 했다. 선생은 또 중국내 한국독립운동단체들의 통합도 추진,김규식선생등과 함께 1932년 한국대일전선 통일동맹을 구성했다. 1934년 임시정부 의정원 회의에서 국무위원으로 선임된 선생은 국무회의가 자신을 국무령으로 추대하자 이를 수락한뒤 한국독립당·대한독립단·의열단·조선혁명당·신한독립당등 여럿으로 갈라진 독립세력을 규합해 민족혁명당을 결성하는등 독립세력의 분열을 막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선생은 1937년 중일전쟁이 벌어지자 미국과 중국내 독립세력의 재규합을 추진,남경에서 한국광복전선을 결성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선생은 이 과정에서 과로로 병을 얻어 1938년 68세를 일기로 숨졌다. 정부는 선생에게 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 “구소공화국들 연방구성 하자”/루츠코이,국민투표 제안

    【모스크바 로이터 연합】 알렉산데르 루츠코이 전러시아 부통령은 16일 구소련소속 공화국들이 뭉쳐 다시 연방을 구성하는 것만이 러시아가 살아남는 길이며 이 연방구성안에 대해 국민투표를 실시할 것을 제안했다. 러시아 강경 보수파로 보리스 옐친러시아 대통령의 정적이었던 루츠코이는 구소련 존속 여부에 관한 국민투표 실시 3주년을 맞은 이날 현재의 독립국가연합(CIS)은 살아남을 수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우리는 한 가족,한 국가,한 정부로 살아야 할 운명』이라며 『굳건한 의지,동포애,공존의 바람과 함께 국민투표로 이를 달성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루츠코이는 지난 91년의 소련 붕괴는 비참한 생활 이외에는 아무것도 가져다주지 않았다며 평화,상호이해,끈기 등 비폭력적 방법으로 연방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오는 96년 대선 출마 의사를 밝히고 있는 루츠코이는 국민투표의 형식,연방 국가의 형태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 갑오경장 1백주년… 그 개혁운동 재평가와 역사적 교훈

    올해는 갑오경장 1백주년을 맞는 해다.갑오경장은 1894년7월부터 1896년2월까지 약 1년반동안 지속된 제도개혁운동이었다.이 기간동안 우리나라는 구시대의 질서에서 신시대의 질서로 편입되는 엄청난 변혁을 겪었다.지난해 새정부 출범 이후 우리는 또다른 개혁의 시대를 숨가쁘게 달려왔다.1백년만에 다시 변혁의 기회를 맞이한 것은 우연의 일치만은 아닐 것이다.갑오경장이 제도의 변혁이었다면 지금은 당시의 엄청난 변화에 비견될 의식의 개혁이다.올해는 새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개혁의 성패를 가늠할수 있는 중요한 시점.「외세에 의존한 정권탈취 및 유지책」이라는 시각에서 「기반이 확보될 때까지 시한부로 일본의 후원을 기대한 자율적인 개혁운동」으로 재정립된 갑오경장을 재조명하고 지금 추진되고 있는 개혁을 성공으로 이끌 역사적 교훈을 찾아본다. ◎재평가 작업/민중지지 못얻은 미완의 제도개혁/농민 염원 수용… 국정에 새바람/민주·자립 등 근대적 이념 표명/“일제 등에 업고 권위주의적 추진으로 실패” 갑오경장은 조선조를거치며 쌓인 민중들의 원성이 1894년 동학농민봉기로 나타나자 새로 들어선 정권이 그 불만을 아우르기 위해 시도한 제도개혁운동이었다.그로부터 1백년뒤,제3공화국 이후 국민의 민주화에 대한 염원이 문민정부의 등장을 가져오고 그들의 요구를 수용해 개혁이 이루어지고 있는 오늘날의 상황과 크게 다를바 없다. 다만 갑오개혁의 주체들은 일본이라는 외세의 무력의 도움을 받아 집권했고 「잠정적」이라는 단서는 달았지만 그들의 지원으로 개혁을 추진하려 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었다.여기에 갑오경장 주역들의 「개혁은 곧 서구화 내지 일본화」라는 소신은 그것이 비록 역사적 관점에서 옳은 판단이었다 할지라도 구성원들의 폭넓은 지지를 얻지 못했다.갑오경장이 미완의 개혁으로 끝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또 갑오경장이 그동안 그 역사적 비중에 상응하는 평가를 받지 못해왔던 것도 여기에 이유가 있을 것이다. ○혁명적 이상추구 그러나 갑오경장이 재평가되고 있는 시점에서 되돌아 본 갑오개혁파의 개혁정책은 당시로서는 가히 혁명적 이상의 변혁을 추구했음을 알수있게 해준다. 갑오경장을 주도한 개화파 관료들은 집권하자마자 외무아문을 신설해 근대적 자주외교를 펼칠 준비를 갖추었다.이어 국호를 대조선제국으로,국왕을 대조선황제로 부르고 1896년부터 건양이라는 독자적 연호를 채택해 국가적 자주 독립을 내세웠다. 이들은 민주주의적 발상에 입각한 몇가지 참신한 정치제도개혁도 실시했다.개혁추진의 핵심인 군국기무처를 입법·자문기관인 「의사부」로 만들어 행정부에 대치시키는 의회설립안을 만들었던 것도 이 가운데 하나이다.또 조선협회라는 일종의 정당을 발족시키기도 했다. ○지방제도 일원화 이들은 8도·5유수부로 대표되는 종래의 지방행정체제도 23부·3백37군으로 개편했다.지방제도를 일원화함으로써 행정의 합리화를 기함과 동시에 지방관으로부터 사법권과 군사권을 박탈해 근대관료적 색채가 농후해졌다.또 「향회조규」와 「향약변무규정」을 발포해 초보적인 지방자치제를 실시코자 했다. 경제분야에도 힘을 기울였다.개혁파는 일본으로부터 차관을 도입해 재정정리와 민간산업 진흥을 도모하고 근대적 자립경제의 기초를 다지는 경제개발 계획을 세웠다.이 계획은 경인철도 건설을 통해 수입을 늘리는 외에 왕실재정을 정리해 정부수입을 늘리는 한편 새로운 세원을 발굴하고 세수의 결손을 줄이며 민간상공업을 진흥한다는 내용까지를 포함한다. 이미 잘 알려진 대로 능력본위의 평등사회를 실현하겠다는 개화파의 사회개혁 의지도 중요한 대목이다.이들은 집권하자마자 「사민동등지법」을 확립해 전통적 신분제도의 철폐에 착수했다.양반과 상민을 구별하지 않고 인재를 등용하고 같은 양반에서도 문반과 무반의 차별을 없앴다.공사노비를 풀어주고 인신매매를 금했으며 역정 광대 백정도 모두 면천케 했다.이밖에 죄인에 대한 고문이나 연좌법을 폐지하고 너무 이른 결혼과 과부의 재가를 허용하는등 여성의 지위를 향상시키는데도 관심을 기울였다. ○해외유학 적극적 개화파는 과거제도 중심의 교육제도가 조선을 쇠퇴케 한 근본원인이라 생각해 합리성과 실용 위주로 교육제도를 개선코자 했다.이에 곳곳에 학교를 세우고 본국문,즉 한글의 사용을 장려해 정부의 공문과 관보도 국한문 혼용체나 순한글로 쓰도록 했다.또 적극적인 유학정책을 펴 1895년에는 약2백명을 국비로 도쿄에 유학시켰고 미국인 선교사가 경영하는 배재학당에 2백명의 관비장학생을 입학시켜 신학문을 배우게 할 계획도 마련했었다. 갑오개화파의 이 모든 정책 대부분은 물론 일본과 관련한 부정적인 해석이 있어왔다.또 대부분이 민중의 의사를 도외시한 위로부터의 개혁이었다는 점만으로도 그동안 권위주의 시대에 대항해 온 일군의 학자들에 의해 비판받아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다양한 시각의 존재가 필요해졌다.권위주의 시대에 역사에서 필요한 교훈이 한방향으로 귀결되었다면 문민시대에 필요한 역사적 교훈은 다양하기 때문이다.갑오경장에서 현재 행해지고 있는 개혁의 교훈을 찾으려 하는 것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또 갑오경장을 일방적인 예속의 역사로 해석하는 것은 자존심을 위해서도 이제는 벗어나야 할 대목이다. ◎발단·경과/대원군추대,친일내각 수립/20개월간 전반적 혁신 단행 민씨정권은 1884년 갑신정변을 수습하고 나름대로 서구의 기술을 도입하는등 근대적 개혁을 추구하고 있었지만 열강의 침투에 속수무책이었다.또 지배층 위주의 개혁이었기에 농민층과의 충돌은 불기피했다.1894년 동학농민봉기가 일어나자 자력진압이 불가능한 민씨정권은 청에 응원군을 요청하는 한편 농민군의 요구를 일정수준으로 받아들이는 선에서 협상을 시도했다.그러나 민씨정권의 요청에 따라 청군이 아산만에 들어오자 일본은 천진조약을 빌미로 곧 이어 군대를 인천에 상륙시켰다. 민씨정권은 청·일양군공동철병론을 주장했으나 일본은 조선의 개혁에 대한 청·일공동지도론을 제의했다.이에 청이 내정간섭이라며 이를 거부하자 일본은 침략을 위한 독자적인 개혁의 원칙을 제시했다. 민씨정권은 이 요구를 거절하고 농민군의 폐정개혁요구를 반영하는 선에서 정권의 위기를 넘기려 했으나 일본은 7월23일 경복궁을 기습하여 민씨정권을 무너뜨리고 대원군을 추대했다.이어 김홍집을 수반으로 하는 친일계와 중립계로 정부를 개편했다. 1894년7월에서 1896년2월에 이르는 갑오경장기간 정계에서 부침하던 정파는 다섯 그룹으로 대별된다.김홍집 김윤식 어윤중 유길준등 갑오경장파와 박영효 서광범등 갑신정변파,박정양 이완용 윤치호등 미국·러시아등 외국공관을 배경으로 하던 정동파,대원군 이준용 이태용등 대원군파,그리고 고종과 명성황후를 둘러싼 홍계훈 이도철 이학균등 궁정파등이었다. 이 가운데 갑오경장 전기간에 걸쳐 가장 오래 정권을 장악하고,따라서 개혁운동에서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한 세력은 갑오경장파였다. 이들은 처음에 대원군파와의 제휴로 집권해 제1개혁기(1894년7월27일∼12월17일)에 군국기무처를 중심으로 개혁을 주도했다.이어 제2개혁기(12월17일∼1895년5월21일)에는 갑신정변파와 연립내각을 구성해 공동으로 개혁을 추진했다.제3개혁기(5월31일∼7월6일)에 갑오파는 갑신파와의 알력으로 김홍집과 조희연이 내각에서 사퇴했지만 다른 멤버는 남아 박영효가 주도하는 개혁에 동참했다.갑오파는 제4개혁기(7월6일∼8월28일)와 제5개혁기에는 정동파와 궁정파의 합세로거세될 위기를 맞았으나 제6개혁기(10월8일∼1896년2월11일)에 궁정파가 실권하자 다시 득세,집권하여 개혁운동을 재개했다. 갑오경장은 그러나 과격한 개혁조치에 불만을 품어오던 고종이 명성황후가 시해되는 을미사변이 일어나 대일감정이 극도로 악화된 사이 1896년2월에 러시아공사관으로의 망명(아관파천)으로 개혁정권이 붕괴되고 친러정권이 들어섬에 따라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역사적 교훈/“민의따른 개력이 최상의 통치”/폭넓은 지지속 군사·재정 뒷받침 필수/“외세의존땐 성공 못한다” 역사의 명제 갑오경장이란 지금으로부터 1백년전 1894년에 동학농민봉기와 청일전쟁을 배경으로 추진되었던 획기적인 근대화운동을 뜻한다.이 개혁운동을 통해 종래의 중국적인 우리나라 통치·행정구조 및 외교·재정·군사·경찰·사법제도 등이 일본 내지 서구식으로 크게 바뀌었다. 갑오경장때 추진된 일련의 「혁명적」개혁조치는 그후 많은 수정을 거치면서도 보존되어 오늘날 한국 사회 및 문화의 일각을 이루고 있다. 갑오경장은 1894년 봄의 제1차동학농민봉기를 계기로 서울에 불법적으로 침략해온 일본군이 7월23일 경복궁을 강점한 상황하에서 개시되었다.이때 (흥선)대원군을 받든 일군의 친일개혁관료들이 신정부를 구성하고 군국기무처라는 초정부적 입법기구를 만들어 그 곳에서 2백여개의 개혁안을 심의,채택함으로써 역사적인 「대경장」의 막을 올렸던 것이다. 이 개혁운동에는 처음부터 일본의 입김이 작용하였다.즉,갑오경장에는 「타율적」인 측면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그러나 갑오경장을 전적으로 일본의 지도와 후원에 힘입은 개혁운동으로 간주하는 것은 잘못이다. 개혁운동 초반에 개혁을 주도했던 김홍집 김윤식 어윤중 박정양 유길준등 20여명의 군국기무처 의원들은 1880년대 초반에 외교사절단원 혹은 유학생으로서 일본·청국·미국 등에 건너가 세계정세를 파악하고,특히 명치일본의 「문명개화」운동과 청국의 양무운동 등을 조사,연구한 끝에 조선의 자주독립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개화,자강의 방안을 고안하여 이를 실천에 옮겼던,나름대로 애국심이 강한 개명관료들이었다.그들은임오군란(1882)과 갑신정변(1884)을 거치면서 청국이 종주권을 내세워 대한간섭을 강화하자 정치적으로 실세하여 국내외에서 망명내지 유배생활을 강요당하가나 정부요직에서 소외당하였다.따라서 그들은 반청·독립사상이 강한 반면에 친일적 성향을 띠었으며 또 친청보수세력인 민씨척주에 대해 비판적이면서 대원군에게 호의적인 세력이었다. 그들은 오랫동안 개화·자강정책을 연구·실천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제도개혁을 스스로 추진할 능력과 의욕이 있었다.과연 초기 갑오경장을 담당했던 군국기무처 의원들은 대원군의 지도하에 동학농민군이 요구한 폐정개혁안을 수렴하면서 제도개혁을 거의 완전히 자율적으로 추진했다.갑오경장 중반에 내각 대신 혹은 협판으로서 개혁운동에 참여하였던 박영효·서광범·윤치호 등은 갑신정변(1884)때 자신들이 겪은 일본정부의 배신을 귀감으로 삼되 미국·일본에서의 망명생활,유학에서 스스로 터득한 개혁사상을 기초로 자율적 개혁추진을 도모했다.이러한 점에서 갑오경장은 조선인 개화파 관료들의 「자율적」 개혁운동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갑오경장을 담당했던 조선의 개혁관료들은 우선 국민 상하의 존경과 지지를 얻는데 필요한 위신이 부족한 데다,자기들의 권력을 뒷받침해 줄 독자적인 군사력과 개혁의 실현에 필요한 자긍력이 없었다.따라서 그들은 이러한 기반을 확보할 때까지 잠정적으로 일본의 후원 내지 지원을 받으려 하였다.결국 이러한 그들의 대일본 의존정략이 갑오경장을 중도반계의 실패작으로 만든 요인이 되었다. 갑오경장은 왕조의 유신과 중흥을 도모했던 조선왕조 최후의 개혁운동이었다.이 운동에서 원래 기대되었던 목적이 달성되었다면 조선왕조는 중흥되었을 것이고,1910년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민족적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근원적으로 따져 볼 때,갑오경장은 오랫동안 축적된 조선민중들의 불만이 동학농민봉기라는 과격한 형태로 표출된 다음 정부가 서둘러서 개시한 개혁운동이다.만약 조선정부가 민중들의 불만요인을 미리 파악하여 적시에 필요한 개혁을 축적해 나갔더라면 외세의 간섭도 면하고 또 갑오경장 같은진통도 겪지 않았을 것이다.여기에서 우리는 집권자가 국민들의 요망을 미리 미리 알아차려 시의적절하게 작은 규모의 개혁들을 하나 하나 펼쳐나가는 것이 최상의 국가경영 철학임을 깨닫게 된다.이것이 갑오경장에서 우리가 얻는 최대의 역사적 교훈이다.아울러서 우리는 개혁사업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개혁세력을 뒷받침해 줄 튼튼한 군사력과 재정이 필수라는 사실을 확인하며,나아가 민중을 도외시한 외세의존적인 개혁운동은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는 역사적 교훈을 얻는다.
  • 러,대북 벌목협정 연장 않을듯/방한 러공민권위장

    ◎벌목장내 인권보호법 제정중/탈출 북 노동자 러시아 거주 허용/구소한인 러 이주·이중국적도 인정 옐친러시아대통령이 북한과 체결한 시베리아 벌목협정의 기간연장을 재검토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22일 밝혀졌다. 방한중인 미키타예프 러시아연방공민권위원장은 이날 프레스센터에서 가진 강연회에서 『러시아공화국의 인권위원회는 시베리아 북한 벌목장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법안을 제정하고 있다』고 밝히고 『옐친대통령이 현재 러시아와 북한이 체결하고 있는 벌목협정을 재검토하라는 명령을 최근 내린 바 있다』고 밝혔다. 미키타예프위원장은 『시베리아 벌목장을 탈출한 북한 노동자를 러시아 영토내에 거주하도록 허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키타예프위원장은 이와 함께 『옛소련 영토내의 한인이 러시아에 들어와 살기를 원하면 이를 허가하고 러시아 국적을 취득할 수 있도록 신헌법에 이중국적의 인정을 규정할 계획』이라면서 『한국을 포함,다른 국가들과 이중국적을 인정하는 협약을 맺도록 제안할 것』이라고 밝혔다.
  • 외국원수 간소 접대 “정착”

    ◎1인 평균 6,100만원… 6공의 절반으로/정부행사도 책정예산의 35% 절감/현판·꽃탑·불꽃놀이 등 생략/민간행사 지원도 7억 절약 정부의 각종 행사비용이 지난해보다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총무처는 26일 새정부출범후 지금까지 각종 정부행사에 1백2억3천만원이 소요돼 당초 책정된 1백56억6천만원의 예산중 35%인 54억3천만원이 절감됐다고 밝혔다. 정부행사비용의 이같은 감소는 지난 4월이후 근검절약하는 사회기풍을 조성한다는 방침아래 각종 정부행사를 간소화한데 따른 것이다. 특히 모두 4차례 있었던 외국원수의 방한행사에는 2천5백여만원이 소요돼 지난해 7차례의 국빈방한과 2차례의 해외순방을 통해 2억1천여만원이 소요된 것에 비해 8분의1수준으로 크게 줄었다. 특히 새정부 출범이후 외국정상의 방한에 소요되는 정부 경비지출액이 과거정권에 비해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외무부가 26일 국회외무통일위에 제출한 국정감사자료에 따르면 지난 2월 김영삼대통령 취임후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정상을 위해 정부가 사용한 1인당평균경비는 6천1백여만원인 것으로 집계됐다.이에 반해 노태우전대통령 재임기간인 지난 92년 정부가 외국정상을 위한 1인당 평균 예산집행액은 1억1천4백여만원에 달해 5천여만원 정도가 더 소요된 것으로 드러났다. 방한 인사별 예산집행내역을 보면 노전대통령은 하벨 체코대통령(9천1백80만원),카리모프 우즈베크공화국대통령(9천1백40만원),옐친러시아대통령(9천46만원)을 제외한 나머지 5개국 정상에 대해서는 모두 1억원을 넘는 비용을 사용했으며 지난해 10월12일부터 19일까지 내한했던 보두앵 벨기에 국왕에 대해서는 가장 많은 1억8천3백83만원의 예산이 소요됐다. 이에 반해 김영삼정부출범후에는 첫 외국손님인 콜 독일총리의 방한에 가장 많은 9천8백65만1천원이 들었을 뿐 나머지 외국정상 8명에 대해서는 6천만원이하의 경비가 지출됐다. 광복절등 지금까지 3차례 치른 국경일 경축행사도 행사장시설을 축소하고 광화문 현판등을 없애 지난해에 비해 21%가 절감된 2억원이 소요됐다.지난해에는 2억5천7백만원의 경비가 소요됐다. 이와함께 민간단체가 주관하는 행사에 대한 정부지원도 축소해 「새마을지도자대회」와 「저축의 날」등 16개 행사에 대한 지원예산 26억6천만원가운데 11%인 7억7천만원을 절감했다.
  • 한­러,「오호츠크해 어로」 마찰/옐친,조업중단 요청… 외교문제화

    ◎10월 서울서 실무대책회의 한·러시아 양국은 러시아측의 캄차카반도 부근 오호츠크공해 조업중단 조치와 관련,오호츠크해 경제수역 입어료문제등 양국간 이견조정을 위해 오는 10월초 서울에서 양국 고위실무대책회의를 갖기로 했다. 외무부의 한 당국자는 6일 『현재 러시아측은 오호츠크해 어족 자원보존을 위해 공해상 조업 중단조치를 내려놓고 있으나 우리측은 25%를 감축하는 조건의 조업재개를 통보해 놓은 상태』라고 전하고 『지난 1일 부터 감축조업을 재개하려했으나 러시아측이 폴란드어선 두척을 나포하는등 강경대응으로 나와 아직 관망중』이라고 밝혔다. 이에앞서 보리스 옐친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6월29일 김영삼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 『오호츠크해의 무절제한 어획으로 어족이 고갈되고 있을 뿐더러 러시아 극동지역 어민들의 반발이 심해져 정치문제가 되고 있다』면서 우리측의 자율적 조업중단을 요청해왔다고 외무부 한 관계자가 전했다. 김대통령은 이에 대해 지난달 14일 답신을 보내 『지난번 모스크회의 때 각국이 합의대로 관계국들이 과학적 자원조사를 근거로 합리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 입장』고 지적하고 『우리 어민의 피해도 크기때문에 조만간 규모를 줄여서라도 조업을 재개할 수밖에 없음을 이해해달라』는 내용의 답신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오호츠크공해에서 그동안 조업을 해왔던 우리 원양어선은 총 30척으로 매년 명태 20만t의 어획고를 기록해왔다.
  • 옐친 10월 방일중에 영토문제 논의용의

    한편 일본을 방문중인 보리스 옐친러시아 대통령은 8일 저녁 총리관저에서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총리와 35분간 회담을 갖고 두나라 관심사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옐친대통령은 두나라 현안인 자신의 공식 방일문제와 관련,오는 10월 중순 일본을 방문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명하고 앞으로 양국의 외교 경로를 통해 구체적인 방문시기를 결정하기로 합의했다. 그는 또 공식 방문때에 영토문제를 놓고 대화를 나눌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 북침론·남침유도론 논거 상실/러 극비목록 전달 의미와 전망

    ◎49년부터 중공군 개입전까지 기록/구소군 투입·지원무기 등 밝혀질듯 냉전시대의 산물인 한국전쟁은 어떻게 해서 일어났고 누구에 의해 저질러졌는지가 멀지않아 역사적 확인 절차를 거칠 것 같다. 정부가 러시아로부터 앞으로 우리에게 건네줄 6·25관련 외교문서들의 목록을 전달 받은 것이다. 우선은 목록만을 전달받았으나 옐친러시아대통령은 김영삼대통령의 러시아방문때 문서사본을 모두 건네주겠다고 지난 8일 러시아를 방문한 한승주외무장관에게 약속했다.향후 문서가 공개되면 6·25를 둘러싼 모든 논쟁들이 종지부를 찍게되고 실상이 보다 분명해질 것으로 점쳐진다. 현재까지 전해진 바에 의하면 문서목록은 49년 1월부터 중공군이 개입하기 전인 50년 10월까지의 기록이다.약 40페이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과 북한과의 관계를 의식한 러시아측의「비밀요청」으로 정부는 받았다는 사실외에는 내용 일체를 비밀에 부치고 있다.한외무장관도『내용은 너무 앞서가지 않는 것이 양국관계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무척 조심스런 반응이다.한장관이 옐친대통령에게 목록을 건네받은뒤 직접 챙겨 귀국후 김대통령에게 단독 보고한 것도 이때문이다. 따라서 현상황에선 외교문서의 내용을 파악하기는 아직 이르다.다만 이 자료 정리 책임자인 볼코고노프대통령보좌관이 그동안 언론등을 통해 밝힌 사실로 미뤄보면 한국전쟁 개전부터 정전협상이 시작된 배경까지의 모든 과정이 포함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특히 김일성이 모스크바를 방문,스탈린을 만난 자리에서 『2년안에 전쟁을 끝낼수 있으니 지원해 달라』는 부분,50년 5월 김과 스탈린이 개전일자를 결정한 부분,김이 북한주재 소련대사에게 남침동의 요청대목등이 들어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러한 문서들은 상투적인 북침론이나 일부 소장학자들의 남침유도론이 더이상 자리할수 없게 만들 것이라는 게 외무부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여기에 그 기간으로 보면 전쟁직전 소련이 「북침설」을 위한 국제 여론 조성과정,전쟁계획 수립과정,소련군 투입상황등도 포함된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볼코고노프보좌관은 『스탈린은 북한군이 궤멸적타격을 받게되자 2개 항공사단과 2개 고사포사단으로 특별 편성된 소련군을 투입했다』고 밝힌바 있다.이를 감안하면 49년 9월부터 50년 4월까지 소련이 북한에 지원한 무기내용과 군투입상황도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구체적인 내용을 아직 파악할수는 없지만 이번 외교문서가 우리에겐 「현대사의 확실한 정립」이라는 측면에서,러시아와의 관계증진 차원에서 커다란 외교적 성과라 할수 있다.그러나 중국으로부터도 관련 서류를 전달받아야 한다는 점이 여전히 외교적 숙제로 남아있다.
  • 러,6·25관련 문서목록 전달/외무부 인수

    ◎김일성­스탈린 외교전문 포함 수백건/사전 남침준비·중개입경위 밝혀질듯/“김 대통령 방러때 문서사본 제공” 러시아정부는 6·25한국전쟁 발발 43주년을 맞아 당시 소련의 스탈린과 북한 김일성 사이에 주고받은 전문을 비롯해 러시아 정부가 보관하고 있는 한국전쟁 관련문서의 목록을 우리 정부에 전달해왔다고 홍순영외무부차관이 24일 발표했다. 이 목록에 들어있는 문서들은 북한이 전쟁발발 전해인 49년1월부터 전쟁준비를 위해 구소련과 주고받은 전문을 포함,중공군이 참전한 50년 10월까지 소련의 군투입및 무기제공 내용을 밝혀주는 것들이라고 홍차관은 말했다. 이들 문서 내용 자체가 공개되면 한국전쟁이 한국군과 미군의 북침에 의한 것이라는 북한측의 주장에 결정적인 쐐기를 박고 북한측이 일찍부터 남침준비를 해왔다는 사실과 아직 완전히 규명되지 않은 중공군의 개입경위가 밝혀지는 등 한국전쟁의 진상이 드러날 것으로 기대된다. 40페이지 분량의 이 목록은 한승주외무장관이 유럽을 순방하면서 러시아를 방문중이던지난 7일 옐친러시아대통령을 예방했을 때 옐친대통령이 직접 한장관에게 건네준 것이다. 옐친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러시아정부는 한국전쟁 관련 문서의 발굴과 수집및 정리작업을 하고 있으나 워낙 방대한 분량이어서 우선 목록을 전달한다』면서 『목록외의 문서 사본은 김영삼대통령이 러시아를 방문하면 직접 전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문서목록은 러시아정부 문서보관소와 국방부,구KGB등에 산재해 있는 한국전쟁 관련 문서 수백건의 제목과 이에대한 간단한 요약설명이 첨부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이 문서목록은 물론 앞으로 러시아측으로부터 전달받을 문서사본도 일단 국사편찬위에 넘겨준 뒤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정부는 한국전쟁의 진상규명 차원에서 중국 정부측에도 보관중인 관련 문서 사본의 공개와 인도를 요청할 방침이다.
  • 보스니아 인종청소위기 일단 모면/“안전지대 선포”새국면 맞은 유고

    ◎세르비아,영토욕심에 언제든 또 도발/강대국 이견… 체면치레 공습도 못할듯 보스니아 동부 회교세력의 전략거점인 스레브레니차가 결정적인 함락위기에 놓인 가운데 유엔안보리가 16일 스레브레니차를 안전지대로 선포,세르비아민병대의 공격중지와 철군을 요구함에 따라 유고사태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스레브레니차에서 전투가 계속되고 있고 세르비아민병대가 이미 시내로 진입했다는 미확인보도가 나돌고는 있지만 세르비아민병대가 철군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유엔이 세르비아민병대와 신유고연방에 대한 즉각적인 제재강화에 나설 움직임이어서 대량 인종청소위기의 급박한 상황은 일단 모면한 셈이다.그러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 크로아티아내 세르비아계 점령지역까지 연결하는 대세르비아주의를 꿈꾸는 세르비아계가 수송요충지인 스레브레니차를 끝내 포기할 것 같지는 않아 사태추이를 점치기는 쉽지 않다. 밀로세비치 세르비아대통령이 스레브레니차를 점령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16일 전해진 것처럼 세르비아가 당장 무리한 욕심을 부리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이제까지 엄포에 그쳐온 유엔의 요구에 마냥 순순히 따를 것으로 기대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결국은 시간이 좀 흐른뒤 국제사회의 관심이 가라앉으면 어떤 형태로든 세르비아측의 도발이 있지 않겠나 하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럴 경우 유엔주둔군이 인계철선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는 좀더 두고 볼 일이나 현재 강대국 분위기로는 몇차례의 체면유지용 공습정도마저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 오는 25일 불신임여부 국민투표를 앞두고 있는 옐친러시아대통령은 같은 그리스정교도이자 슬라브주인 세르비아계와의 범국민적인 유대감을 고려해 유엔에서의 극단적인 추가제재에 반대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영국 등은 자칫하면 유럽전체로의 확전을 초래할지 모를 세르비아에 대한 공습이나 회교도에 대한 무기금수 해제를 효율성이 적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클린턴미국대통령도 16일 지상군파병을 제외한 모든 방안을 고려하겠다면서 우방국들의 협력을 전제조건으로 내세움으로써 걸프전이나 소말리아 파병때와는 달리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있다. 유고내전은 솔로몬식 해결방안이나 국제사회의 직접적인 군사개입없이 지루할 정도로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같다.
  • 안보리의 북핵논의에 큰 영향/미·러,탈퇴철회 촉구 의미

    ◎NPT회원 아닌 구소연방국 의식/“핵확산금지” 국제과제로 부각시켜 벤쿠버선언이 북한에 대해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철회를 촉구한 것은 이번 선언이 갖는 국제정치적 의의나 시기면에서 비추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있다. 빌 클린턴미대통령과 보리스 옐친러시아대통령이 이틀간에 걸친 양국정상회담을 총결산하여 4일 발표한 이 선언은 북한핵문제에 관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안전협정 의무준수 ▲NPT탈퇴선언철회를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북한핵문제는 대량살상무기와 그 운반수단의 확산방지가 대단히 중요하며 NPT의 강화,범세계적 비확산체제확립,NPT시한의 무한연장을 재확인하고 NPT회원이 아닌 구소련연방은 핵무기비보유국으로서 NPT에 가입해야 한다는 입장을 천명한데 이어 중요한 대목으로 적시되고 있다. 이는 곧 북한의 핵문제는 국제적으로 더욱 강화해야하는 핵확산금지체제의 기본틀을 위협하는 것이며 우크라이나,벨로루시,카자흐스탄의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비준및 비핵보유국으로서 NPT가입문제와 함께 당면 핵확산문제의 가장 시급한 과제임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번 미­러시아정상회담은 미국에서 12년만에 출현한 민주당정권의 클린턴대통령이 러시아개혁의 선구자 옐친을 처음 만나는 자리이며 동시에 냉전의 종식을 확인하고 탈냉전시대의 세계질서를 정착시켜나가는 시발점이라고 할수있다. 러시아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을 촉진할 수 있도록 미국을 포함한 7개 선진산업국가(G­7)가 대러시아경제지원을 강화시켜 나가는 계기가 될 이 회담에서 북한핵문제를 논의한 것은 결국 세계인들에게 이의 위험성과 긴박성을 알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시기면에서 IAEA가 북한의 특별핵사찰거부와 관련,지난 1일 북한을 「협정불이행국」으로 지목하여 이에 대한 논의를 공식으로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한후 33만에 이같은 밴쿠버선언이 나온 것이다.유엔안보리가 빠르면 이번주부터 북한의 핵사찰거부에 따른 제재조치등 대책을 논의하게되면 NPT의 수탁국인 미국과 러시아의 정상이 합의,발표한 이 공동성명이 회의분위기등에 상당한 영향을 줄것으로보인다. 비록 러시아가 북한에 대해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여지는 거의 없다하더라도 세계의 핵강대국으로서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력효과로는 상당히 클것으로 분석된다.
  • 민족분쟁 해결사/코사크족,옐친에 충성맹세

    ◎맹목적 애국심 유명… 독립운동 진압 선봉/영화 「대장 부리바」서 용맹 과시한 유목민 러시안의 코사크족이 보수파의 공격으로 정치적 위기에 몰려있는 보리스 옐친 대통령에게 충성을 다짐하고 나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코사크족은 옐친대통령이 원할때를 대비하여 그를 도울 군대조직을 뒷받침하는 「코사크 임시 행정부」까지 설치했다. 이같은 코사크족의 중앙정부에 대한 충성다짐은 옐친대통령이 최근들어 이들에게 토지소유권을 되돌려주고 자치권 확대를 허용해준 것에 대한 보답인 것으로 보인다. 영화 「대장 부리바」를 통해 우리에게 잘 알려진 용맹스런 코사크족은 독립국가연합(CIS)내 각종 민족분규를 진압하는 선봉대로 나서는가 하면 때로는 분쟁의 「해결사」로서 활약하고 있어 다른 종족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코사크족은 루마니아와의 합병에 반대하는 몰도바내 소수 러시아민족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몰도바에도 파견돼 몰도바의 독립운동을 진압하고 있다.이들은 또 지금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러시아­그루지야 전투에도 참여,그루지야 북부를 장악하는등 그루지야내 친러시아 분리주의자들의 투쟁을 돕고 있다. 최근 사할린정부는 쿠릴열도 반환을 요구하는 일본세력에 대한 대항세력으로 코사크족을 불러들였다.쿠릴열도를 개발하는데 일본의 자금이 필수적이라고 느끼면서도 그곳의 많은 관리들은 일본을 경계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사크가 방랑자·모험자라는 뜻을 갖고 있는 것처럼 유목생활을 했던 이들은 카자흐를 중심으로 구소련령을 통틀어 6백50만명을 헤아린다.이들은 기마술이 뛰어나고 호전적인 전통을 갖고 있어 소수종족집단 뿐아니라 CIS인구의 반이상을 차지하는 러시아인들조차 이들의 부활을 두려워하고 있다. 코사크족은 1917년 러시아 혁명이후 소련초기에 심한 탄압을 받았으나 지난 90년 코사크 민족운동이 다시 일어나 현재 1백만명이 넘는 청년들이 군대에 입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오늘날의 코사크족의 움직임은 많은 CIS국민들로 하여금 60여년에 걸친 치열한 민족분규였던 카프카스 전쟁의 망령을 되살리게 하고 있다.중앙정부에 대한 코사크의 맹목적인 애국심이 과거 그들이 차르왕실에 바쳤던 충성심과 너무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 미­러 정상,모스크바회담 추진/옐친 도와주려 밴쿠버서 변경 검토

    ◎러 보수파 “내정간섭” 반발이 걸림돌 러시아사태가 긴박하게 변화하는데 따라 오는 4월3일과 4일 캐나다의 뱅쿠버에서 열리기로 돼있는 미국과 러시아의 정상회담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미국이나 러시아정부는 아직까지 클린턴 미국대통령과 옐친러시아대통령의 뱅쿠버회담이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많은 관측통들은 옐친이 자신에 대한 의회의 탄핵절차가 진행되면 쉽게 러시아를 떠날수 없을 것이라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이에따라 공화당의 상원 원내총무인 보브 돌은 『클린턴대통령은 미국의 옐친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러시아 국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뱅쿠버가 아니라 모스크바로 가서 정상회담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돌총무는 『모스크바에 직접 가서 서방국가의 경제지원방안과 옐친지지를 발표하면 효과가 훨씬 클 것』이라고 말하고 『옐친이 러시아를 떠나게되면 쿠데타등 돌발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모스크바현지로부터 상황보고를 받은 국무성관리들은 사태가너무나도 유동적이어서 과연 양국정상회담이 예정대로 열릴 것인가에 대해 확신을 할수없다고 실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상회담의 장소등에 대해 미국은 옐친이 어떻게 희망하느냐에 따라 조정할수 있다는 입장이다.장인이 위독해 아칸소의 리틀록에 가있는 클린턴대통령은 회담의 일자,장소변경등에 관해 『현재로서는 그러한 계획이 없다』고 말했지만 디 디 마이어즈백악관대변인은 『옐친이 요청하면 재고해 볼수 있을것』이라고 여운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회담장소를 모스크바로 옮기는데도 상당한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클린턴이 모스크바에서 옐친의 손을 번쩍 들어주는 것은 확실히 옐친에게 도움을 줄수 있겠지만 옐친의 수많은 정적들은 이를 내정간섭으로 몰아붙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따라서 클린턴행정부의 핵심부와 의회의 일각에서는 『미국의 국가이익을 옐친이라는 특정인물에 모두 거는 것은 잘못』이라는 인식이 대두되고 있다.조지 스테파노플러스 백악관공보국장도 『옐친이 러시아의 유일한 개혁지도자라곤할수 없다』면서 『다른 개혁자들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언급은 클린턴행정부가 옐친을 적극 지지하는 이유가 러시아의 민주화와 시장경제로의 전환등 옐친이 추구하는 개혁정책을 지지하는데 있다는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
  • 미테랑의 “대외영향력 지키기”/불 대통령,러시아방문 의미

    ◎“총선이후의 동거정부” 정치구도 염두/러정국 불안 느끼는 미 등에 건재 과시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대통령이 16일 모스크바를 전격 방문,보리스 옐친러시아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것은 대외과시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미테랑대통령의 이번 방문은 국내 정치에서 궁지에 몰려있는 옐친대통령에게 서방측의 지지가 확고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임에 틀림없다. 오는 21일 실시될 국회의원 총선에서 집권 사회당의 참패를 눈앞에 두고 있는 미테랑으로서는 꽤나 「여유」를 보인 셈이다. 현재 2백70석의 국회의석을 확보하고 있는 미테랑대통령의 사회당은 총선이 끝나면 80여석의 제3당으로 전락할 위기에 놓여 있다. 이에 반해 우파야당연합은 2백55석에서 4백50여석으로 늘어나 내각을 장악하게 될 전망이다.즉 좌파대통령에 우파내각이 들어서는 제2의 「코아비타시옹」(동거정부)이 성립되는 것이다. 이러한 위기를 맞아 지금 사회당에서는 총선뒤 군소정당들과 대거 연합해 새로운 중도좌파연합을 구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이는 곧 미테랑대통령의 사회당을 해체해야 한다는 것과 마찬가지 주장이다.대통령임기를 2년이나 남겨놓고 있는 미테랑에게 총선뒤 물러가라는 소리까지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프랑스의 국내정치상황에서 미테랑은 총선뒤에 그려질 국내정치구도를 염두에 두고 러시아행을 택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즉 불가피하게 내각을 현재의 우파야당에게 넘겨줄 지라도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대외적 관계에 있어서 만큼은 계속 영향력을 확보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정국을 불안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 미국과 유럽의 여러나라에 프랑스의 외교력을 한껏 펴보이는 계기로 활용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러시아 정국이 뒷짐지고 볼만큼 낙관적이지 않다는 판단에 따른 것임도 물론이다. 이번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의 직접적이고도 조속한 경제지원방안이 마련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다만 러시아에 대한 경제지원문제는 국제적으로 한층 활발하게 논의하도록 하는 계기는 될 것 같다.오는 7월로 예정된 서방선진7개국정상회담도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앞당겨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 “UR 조기 매듭”/미­영 정상 공동회견

    【워싱턴 AP 로이터 연합】 클린턴 미대통령과 메이저 영국총리는 24일 교착상태에 빠진 세계무역협상을 조기 타결토록 노력하기로 합의했으며 아울러 보리스 옐친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거듭 확인했다. 유럽국가 지도자로 클린턴 행정부 취임후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한 메이저총리는 이날 약 1시간동안 클린턴대통령과 회담을 가진후 공동회견을 통해 『우루과이 라운드 협정을 가능한한 빨리 타결하는것이 중요하다는데 양자가 의견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또 클린턴 대통령도 자신과 메이저총리가 세계 경제의 위축을 막고 성장을 촉진시키기 위해 미국과 유럽,일본이 현재의 어려운 시기를 맞아 합심 노력해야할 『절대적 필요성』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메이저총리는 이어 보스니아에 구호품을 공중 투하하려는 미국의 계획을 환영했으며 두 정상은 구 유고 사태의 협상에 의한 해결을 지지한다고 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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