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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롯데그룹(1)-신격호 회장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롯데그룹(1)-신격호 회장家

    신격호 롯데 회장은 빚을 몸속의 열에 비유하곤 한다. “몸에 열이 오르면 병이 나고 심하면 목숨이 위태롭다. 과다한 차입금은 만병의 근원이다. 특히 잘하지도 못하는 업종에 빚을 내 사업을 벌이는 것은 사회적으로 죄를 짓는 일이다.”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의 과다한 차입경영이 논란이 되고 있는 요즘, 신 회장의 말은 울림이 크다. 일각에서는 “껌 팔아 부자됐다.”며 롯데의 국가경제 기여도를 얕잡아 보기도 하지만, 기여도가 높다는 삼성·현대·LG 등이 저마다 골칫덩이 자식 한두 개 때문에 국가경제에 고통을 줄 때도 롯데는 어느 계열사 하나 그런 곳이 없었다.“실패하더라도 빚을 돌려줄 수 있는 범위에서만 투자한다.”는 신 회장의 무차입 경영 덕분이다. 롯데그룹의 부채비율은 지난해 말 현재 70.3%. 삼성(50.0%) 다음으로 재무구조가 튼실하다. 단돈 83엔을 들고 일본땅에 건너가 ‘조센징 장사꾼’이라는 멸시를 받아가며 부(富)를 일군 신 회장. 그렇게해서 번 돈으로 고국에서 다시 기업을 일으킨 그는 한·일 양국에 사업체를 갖고 있지만 지금껏 과실송금을 한번도 한 적이 없다. 한국에서 번 돈은 고스란히 한국에 재투자하고 있다. 고(故) 정주영 현대 창업주가 중후장대 기간산업을,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경박단소 첨단산업을 일으켰다면, 신 회장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서비스산업을 개척한 선구자다. 몇 안되는 생존 창업주인 그는 여든을 훌쩍 넘긴 지금에도 여전히 서울과 도쿄를 오가며 ‘셔틀경영’을 하고 있다. ●또다른 이름 시게미쓰상 그는 홀수달에는 신격호, 짝수달에는 시게미쓰 다케오(重光武雄)가 된다. 홀수달에는 한국에서, 짝수달에는 일본에서 일한다. 그의 셔틀경영이 언제쯤 시작됐는지 정확히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주위에서는 모국 투자가 시작된 1960년대 말부터라고 짐작한다. 벌써 30년째다. 월말이 되면 수행원도 없이 혼자 공항에 나가 훌쩍 비행기를 탄다. 생활철학인 거화취실(去華就實·화려함을 멀리하고 실속을 추구)이 엿보이는 단면이다. 한국에 머무를 때면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34층을 쓴다. 집무실 겸 숙소다. 외출은 거의 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바로 옆의 롯데백화점 매장을 둘러보는 정도다. 올빼미족에게 반가운 얘기 한가지. 신 회장은 창업주 총수로는 드물게 ‘새벽형 인간’이 아니다. 오전 8시쯤 일어나 9시에 호텔방에서 아침식사를 한다. 그를 오랫동안 지켜본 임원들은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라고 입을 모은다. 우선, 말수가 적다. 칭찬에도 인색하다.“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이 지론”이라고 스스로 말할 만큼 완벽주의자다. 타고난 내성적 성격에 오랜 일본생활까지 겹쳐 웬만해서는 ‘혼네’(속내)를 내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때로 냉정하다는 얘기도 듣는다. 둘째아들인 신동빈 롯데 부회장이 “결단코 자상한 분은 아니다.”라고 했을 정도다. 언론에도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단돈 83엔 들고 일본으로 신 회장은 1922년-원래는 1921년생이지만 호적에 1년 늦게 올랐다-경남 울주군 삼남면 둔기리에서 5남5녀의 맏이로 태어났다. 울산농업보습학교를 나와 경남도립 종축장에 기수보로 취직했지만 “박봉의 삶이 싫어” 1941년 일본행 관부연락선을 탔다. 이 때가 열아홉살. 고향친구 자취방에 얹혀 살며 신문·우유 배달 등 닥치는 대로 잡일을 했다. 돈이 모이면 헌책방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작가 지망생의 꿈은 오래 가지 못했다. 문학으로는 먹고 살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기술을 배워야 했다. 와세다고등공업학교(현 와세다대 이학부) 화학과에 입학했다. 일본 패전의 기색이 짙어가던 1944년 어느날, 조선인 청년의 성실성을 평소 눈여겨보던 한 일본인 노인이 “커팅오일(기계를 갈고 자르는 선반용 기름) 사업을 해보라.”며 선뜻 6만엔을 내놓았다. 그러나 첫 사업체는 공습을 맞아 완전히 불타버렸다.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친구들은 “귀국선을 타자.”고 종용했지만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고는 살 수 없는 게 그였다. 빚을 갚으려면 돈을 벌어야 했다.1946년 5월 도쿄 스기나미구(區)의 낡은 창고에 가마솥을 내걸었다. 그럴 듯한 간판(히카리특수화학연구소)도 달았다. 커팅오일을 응용해 만든 비누와 크림이 불티나게 팔리면서 1년반만에 노인에게 진 빚을 모두 갚았다. 내친 김에 비누를 만들던 가마솥과 국수를 뽑아내던 기계로 껌을 만들었다. 또다시 대박. 신주쿠 허허벌판에 종업원 10명의 주식회사 롯데가 탄생했다. 껌회사에 소설 여주인공(‘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샬로테) 이름을 붙인 발상이 생뚱맞아 보이지만, 못다한 문학청년의 꿈은 그렇게 해서 다소 풀렸다.1948년 6월28일의 일이다. 신 회장은 훗날 “롯데라는 이름은 내 일생일대의 최대수확이자 최고의 선택”이라며 흡족해했다. 그가 1967년 한국에 롯데제과를 설립했을 때, 일각에서는 “고국에 대한 첫 투자가 겨우 소비재 사업이냐.”며 비판했다. 신 회장은 이렇게 항변한다.“한·일 수교로 모국 투자길이 열리자 당시 정부는 내게 종합제철소를 지어달라고 했다. 그래서 후지제철소(현 신일본제철)의 도움을 받아 설계도까지 만들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정부가 갑자기 태도를 바꿔 직접 제철소(포항제철)를 짓겠다고 했다.” 어찌됐든 그렇게 ‘성공한 재일교포 사업가’로 고국에 진출한 그는 한국롯데를 국내 재계서열 5위의 ‘유통 명가’로 키워냈다. 지난해 말 현재 자산 29조 7000억원, 계열사수 41개, 종업원수 3만 5000명이다. 일본롯데에 비교도 안됐던 매출액(26조원)은 7대3 규모로 역전됐다. ●일본인 아내와 재혼 신 회장은 조혼 풍습에 따라 1940년 둔기리의 고향처녀(노순화)와 결혼했다. 신혼생활은 신 회장의 일본행 가출로 1년여만에 끝났다. 노 여사는 남편의 금의환향을 끝내 보지 못하고 1951년 29살에 요절했다. 신주쿠 허허벌판에서 일본 1위의 껌업체 하리스와 10년 상전(商戰)을 벌이는 동안, 신 회장에게 큰 힘이 돼준 이는 1952년 재혼한 일본인 아내 다케모리 하쓰코(竹森初子·78)씨였다. 결혼후 남편성을 따 시게미쓰로 바꿨다. 당시 일본 외무성 대신의 여동생이었다. 경영에 일절 참여하지 않는 시게미쓰 여사는 성품이 온화하다는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 우리말을 잘 하지는 못하지만 알아듣기는 한다. 신 회장은 노 여사와의 사이에 맏딸 영자씨를, 시게미쓰 여사와의 사이에 동주·동빈 두 아들을 두었다. 롯데가의 한 인사는 “동주와 동빈이는 일본에서 나고 자라 집안에서는 히로유키, 아키오라는 일본이름으로 더 친숙하게 불렸다.”고 전했다. ●백화점 주역 신영자 부사장 모녀 신 회장의 맏딸 영자(63)씨는 롯데쇼핑 총괄 부사장 겸 호텔롯데 면세점 총괄 부사장을 맡고 있다. 부산여고와 이화여대 가정학과를 나왔다. 유통업계의 라이벌 이명희 신세계 회장과는 대학 동창이다. 지난해 말 롯데면세점 모델인 ‘욘사마’ 배용준씨의 사진전에 직접 참석했을 만큼 회사일에 적극적이다. 유통 사업가답게 의상과 화장이 화려하다. 다소 깐깐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새어머니인 시게미쓰 여사와는 팔짱을 끼고 다닐 정도로 사이가 좋다. 1967년 장오식 전 선학알미늄 회장과 결혼해 1남3녀를 두었으나 지금은 독신이다. 가장 눈에 띄는 자녀 혼사는 막내딸 정안(31)씨. 지난해 5월 영국계 로펌 클리포드&챈스의 이승환(37) 변호사와 결혼했다. 이 변호사는 한국케이블TV 대구방송 회장과 영남일보 주필을 지낸 이종명씨의 아들.‘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의 회원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외아들 지만씨의 변호를 맡기도 했다. 잡화 바이어(차장)로 일하던 정안씨는 결혼후 휴직, 남편과 함께 해외에 머무르고 있다. 친구 소개로 이 변호사를 만나 2년간 연애했다. 주례는 시아버지의 절친한 ‘지기’ 한완상 한성대 총장이 맡았다. 한 총장과 이 전 회장은 미국으로 정치적 망명을 함께 하기도 했다. 신 부사장이 사업적으로 가장 의지하는 이는 둘째딸 선윤(34)씨다.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과를 나와 97년 롯데쇼핑에 입사, 올해 초 이사로 승진했다. 명품관 ‘에비뉴엘’ 개관의 일등공신이다. 외할아버지를 닮아 키가 크고 호리호리하다. 성격도 소탈해 직원들 사이에 평이 좋다. 인테리어 회사 사장과 결혼했으나 지금은 독신이다. 외아들 재영(38)씨는 롯데에 포장지를 납품하는 인쇄업체 ‘재영상공’의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맏딸 혜선(36)씨는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 선윤씨처럼 독신이다. ●일본롯데 이끄는 큰아들 동주 동주(51)씨는 일본롯데 부사장이다. 결혼이 다소 늦었다. 서른여덟살이던 92년 3월 서울 잠실 롯데호텔에서 재미교포 사업가 조덕만씨의 둘째딸 은주(41)씨와 결혼식을 올렸다. 두 사람이 만난 것은 동주씨가 일본롯데의 미국법인 지사장으로 발령나면서. 아버지를 닮아 내성적인 그는 의외로 열살 연하의 거래처 여직원에게는 적극적으로 다가갔다. 남덕우 전 경제부총리가 주례를 본 두 사람의 결혼식은 이례적으로 언론에 공개됐다. 아들(정훈·12)만 하나다. 현재 일본에 살고 있는 동주씨는 아오야마(靑山)학원과 같은 대학원에서 경영공학을 전공했다. 롯데와 무관한 미쓰비시 상사에서 10년간 샐러리맨 생활을 하다 87년 한국롯데에 입사했다.“순수하고 학자 같다.”는 게 주위의 공통된 평가다. ●한국롯데 이끄는 둘째아들 동빈 동빈(50)씨는 형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 나고 자랐다. 역시 형이 다닌 아오야마학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미국 컬럼비아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MBA)를 받았다.88년 일본 롯데상사의 이사로 롯데에 합류하기까지,8년을 다른 회사(노무라증권)에서 일한 것도 형과 같다. 한국무대에 데뷔한 것은 90년 호남석유화학 상무를 맡으면서. 증권사에 오래 있어서인지 수치에 매우 밝다.97년 2월 한국롯데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이중국적자이던 그는 한국생활을 시작하면서 일본 국적을 정리했다. 처음엔 우리말이 서툴렀으나 지금은 발음이 조금 어색할 뿐, 대화를 주고받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와인을 즐기지만 폭탄주는 좋아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문학 기질을 이어받아 사석에서 가끔 괴테의 시를 영어로 읊기도 한다. 이승엽 프로야구 선수가 뛰고 있는 일본 롯데 지바 마린스의 구단주 대행도 맡고 있다. 세간에는 활달하고 적극적인 성격으로 알려져 있으나 집안 인사의 얘기는 다소 다르다.“형인 동주보다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실제 적극적인 성격은 아니다. 원래 신씨 집안 남자들이 활달한 편은 못된다.” ●한·일 넘나든 현해탄 혼맥 롯데가는 물론 재벌가를 통틀어 화려한 혼맥의 정수로 꼽히는 게 동빈씨의 결혼이다.85년 형보다 먼저 일본에서 다섯시간에 걸친 일본전통 혼례식을 치렀다. 신부는 일본의 대형 건설사 다이세이의 오고 요시마사 부회장의 둘째딸 마나미(眞奈美·46)씨. 일본 귀족학교인 가쿠슈잉(학습원)을 졸업한 재원이다. 일본황실의 며느리감 후보로도 거론됐다. 후쿠다 다케오 전 일본 총리가 중매를 서고 주례까지 맡았다. 결혼식에 나카소네 당시 총리를 비롯해 전·현직 일본 총리가 세 명이나 참석해 한·일 양국에서 떠들썩한 화제가 됐다. 마나미씨를 만나본 한 인사는 “평범하고 참한 인상”이라고 전했다. 아들 유열(19)군과 규미(17)·승은(13) 두 딸을 두고 있다. 부인과 자녀들은 일본에 살고 있다. 한달에 두세번 신 부회장이 일본으로 건너간다. 신 회장이 ‘셔틀 기업경영’을 하고 있다면, 신 부회장은 ‘셔틀 가족경영’인 셈. 수행원 없이 다니는 것은 부자(父子)가 똑같다. ●남다른 고향사랑과 초고층 건물에의 꿈 해마다 5월이면 신 회장은 울산시 울주군 둔기리 호숫가의 너른 잔디밭에서 사재를 들여 잔치를 벌인다.69년 대암댐 건설로 고향마을이 물에 잠기자 전국에 흩어진 고향사람들을 수소문,1971년 5월 돼지머리에 막걸리를 기울인 것이 시초가 됐다. 이후 지금껏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있다. 모임 이름도 고향에서 따 ‘둔기회’라고 지었다. 처음엔 수십명이던 회원수가 아들·며느리·손자의 가세로 지금은 수백명으로 불어났다. 고향 못지 않게 신 회장에게는 애틋한 대상이 있다. 파리 에펠탑 같은 세계 최고층 건물이다. 여든살이 되던 해인 2002년,112층 건물 청사진을 내보이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언제까지나 고궁만 보여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교통영향 평가 등에 걸려 지금껏 삽도 떠보지 못했다. 신 회장은 ‘건설통’ 서울시장에게 기대를 걸며 초고층 건물을 재추진하고 있다. ●유통명가 떠받치는 롯데맨들 롯데에는 사장단 회의가 따로 없다. 지난해 신설된 정책본부가 보이지 않는 손으로 계열사간 조정자 역할을 한다. 호텔롯데 소속의 김병일(62) 사장이 신동빈 부회장(본부장)을 도와 부본부장을 맡고 있다.73년 호텔롯데 경리부장으로 입사해 81년 그룹 기획조정실 이사를 시작으로 20년 이상 신 회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신 회장 부자의 심중을 가장 정확히 읽어낸다는 핵심참모다. 짧은 스포츠형 머리가 트레이드 마크. 그룹 내 손꼽히는 재무전무가로 말수가 적다. 그룹의 모태인 롯데제과는 경리분야에서 20년 잔뼈가 굵은 한수길(64) 사장이 맡고 있다. 자일리톨껌 등 ‘연타석 홈런’으로 경영성과를 끌어올렸다. 호텔롯데와 롯데쇼핑은 삼성 출신의 장경작(62) 사장과 ‘젊은’ 이인원(58) 사장이 각각 이끌고 있다. 신세계백화점과 조선호텔 사장을 지낸 장 사장은 올 2월 롯데맨으로 변신했다. 수익사업의 귀재라는 수식어를 달고다닌다. 평균 연령이 60대인 롯데 경영진 사이에 드물게 50대인 이 사장은 97년 CEO(최고경영자)로 파격 발탁돼 8년간 장수하고 있다. 관리·영업·매입 등 백화점 3대 요직을 모두 거쳤다. 의심나면 끝까지 파헤친다. 할인점 업계 최초로 중소기업 박람회를 연 롯데마트 이철우(62) 사장과 정통 엔지니어 출신으로 현대석유화학 인수 주역인 호남석유화학 이영일(64) 사장도 눈에 띈다. 신 회장의 가족 가운데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이는 친동생인 신준호(64) 롯데햄·우유 부회장과 5촌조카 신동인(59) 롯데자이언츠 구단주 대행이 있다. 두 사람 모두 지금의 롯데를 일구는데 일조했으나 지금은 한발 물러나 있다. 음료업계 최초로 순 매출액 1조원 돌파의 대기록을 세운 롯데칠성음료 이종원(61) 대표이사 부사장, 스피드 경영으로 유명한 롯데건설 이창배(58) 대표이사 부사장, 워커홀릭(일중독자)으로 불리는 롯데삼강 이광훈(57) 대표이사 전무 등도 빼놓을 수 없는 롯데맨이다. 황각규(51) 롯데쇼핑 상무와 강현구(45) 롯데닷컴 상무 등은 신 부회장의 관심사업을 보좌하고 있다. ●“평창면옥에 해답이 있다” 이철우 사장의 회고다. “잠실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의 일이다. 백화점을 짓기는 했는데 신세계의 세 배인 드넓은 매장을 채울 일이 걱정이었다. 회장님은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며 타박하시더니 평창면옥에서 해답을 찾으라고 했다.” 당시 서울 평창동에 있던 평창면옥은 5000원짜리 밥맛이 워낙 좋아 늘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사람들이 왜 굳이 시간과 비용을 들여 그곳까지 가겠는가. 이유는 단 하나다. 바로 상품이 훌륭하기 때문이다. 고객에게 꼭 필요하고 훌륭한 상품을 만들면 문제는 절로 해결되기 마련이다.” 신 회장의 이 얘기는 지금도 롯데 임직원들 사이에 자주 회자된다. hyun@seoul.co.kr ■ 절친했던 신격호·정주영 회장 신격호 회장은 생전의 정주영(왕회장) 현대 창업주와 절친했다. 왕회장이 세상을 떠났을 때는 직접 추도사를 쓰기도 했다. 신 회장이 일곱살 아래다. 흥미롭게도 두 사람의 인생 역정은 매우 닮았다. 우선 대가족의 장남이다. 신 회장은 동생이 9명, 왕회장은 7명이다. 중농·빈농의 아들로 농사규모는 달랐지만 식솔이 워낙 많아 삶이 퍽퍽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성공 신화의 시작이 가출이라는 것도 같다. 두 사람 모두 열아홉살 때 “앞이 안보인다.”며 집을 뛰쳐나왔다. 사업 시작후 최대의 시련도 ‘불’이었다. 신 회장은 처음 차린 커팅오일 공장이 불에 몽땅 타버려 빚더미에 올라 앉았다. 왕회장도 첫 사업인 자동차수리공장이 불에 타는 바람에 고초를 겪어야 했다. 신 회장은 이 때문에 지금도 임직원들에게 자나깨나 불조심을 외친다. 롯데호텔 준공 때 멀쩡한 새 건물의 복도 천장을 뜯게 한 뒤 손전등으로 직접 방화 장치를 확인한 일화는 유명하다. 공교롭게도 죽을 고비도 한차례씩 넘겼다. 여든이 다 될 때까지 직접 운전을 하고 다녔던 신 회장은 언젠가 밤길에 귀가하다가 트럭과 정면으로 부딪혀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왕회장도 새벽에 울산공장을 시찰하러 직접 운전하고 가다가 차가 바닷물에 빠져 죽을뻔 했다. 발상도 기발하다. 신 회장은 풍선껌에 대나무 대롱을 함께 포장해 장난감처럼 불 수 있게 했다. 왕회장은 겨울 골프에 빨간 골프공을 도입한 주인공이다. 이 유명한 빨간공 일화를 남긴 1970년 초봄 라운딩의 동반자가 바로 신 회장이었다. 신 회장은 훗날 “폭설이 내려 (하얀 골프공을 찾을 수 없는 만큼)의당 약속이 취소된 것으로 여겨 하마터면 큰 실수를 할 뻔했다.”고 회고했다. M&A(인수합병)보다는 직접 공장말뚝 박기를 즐겼던 것이나 귀향잔치(둔기회·소떼방북)를 벌인 점도 똑같다. 다만, 신 회장은 언제나 소리가 나지 않았고 왕회장은 늘 요란했다. 대선 출마 등 말년에 한눈을 판 왕회장과 달리 신 회장이 사업에만 전념하는 것도 결정적 차이다. hyun@seoul.co.kr ■ 신동빈 부회장 ‘큰어머니’ 제사 해마다 직접 지내 지난달 21일 저녁 서울 성북동 신영자 롯데쇼핑 부사장의 자택. 검정 옷차림의 신씨가문 후손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이 날은 종손인 신격호 회장의 첫 부인 노순화 여사의 기일이었다. 신동빈 부회장은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어머니’의 제사를 주관했다. 누나인 신 부사장은 말없이 ‘생모’의 제사를 지켜보고 있었다. 여느 재벌가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이다. 신 회장이 재혼한 아내와의 사이에서 얻은 동빈씨는 한국에 정착한 이후 노 여사의 제사를 꼬박꼬박 지내고 있다. 집안에서나, 그룹에서나,‘후계자’로서의 입지를 빠르게 굳혀가고 있는 모습이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후계구도와 관련해 “정해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며 언급을 회피하던 그룹측은 이제 공공연하게 “후계구도 작업은 끝났다.”고 단언한다. 신 부회장이 일본인 아내를 맞은 점 등을 들어 일본롯데를, 신동주 일본롯데 부사장이 장남인 점 등을 들어 한국롯데를 맡을 것이라는 분석이 한때 유력했지만 현재로서는 뒤집힌 셈이다. 신 부회장은 지난해 10월 신설된 정책본부의 장(長)을 맡으면서 후계자 논란을 확실하게 잠재웠다. 재계는 “그룹 대권을 둘째아들에게 넘기겠다.”는 신 회장의 의지로 해석했다. 신 부회장은 온라인쇼핑몰·편의점 사업 등에서 이렇다할 실적을 내지 못했지만,KP케피칼·현대석유화학 등을 성공적으로 인수함으로써 아버지의 신임을 굳혔다. 현장을 중시하는 것은 아버지의 영향을 그대로 받았다. 지난 4월에는 롯데마트 금천점에 불쑥 나타나 한 시간 동안 매장을 둘러보기도 했다. 현장에서 지시한 내용은 나중에 꼭 확인한다. 상장(6개사)에 인색한 기업 문화와 보수적인 토양을 어떻게 바꿔나갈지 주목된다. hyun@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그 영화 어때?]새영화 ‘안녕, 형아’

    [그 영화 어때?]새영화 ‘안녕, 형아’

    27일 개봉하는 임태형 감독의 데뷔작 ‘안녕 형아’(제작 MK픽처스)는 감독이 상투성에서 벗어나려 애쓴 흔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난치병을 다룬 영화 치고 ‘병원 다큐멘터리’처럼 환자나 그 부모의 시선으로 바라본 최루 드라마가 아닌 것이 드물다. 하지만 이 영화는 뇌종양에 걸린 형과 엄마를 바라보는 철부지 동생의 눈높이를 시종일관 좇는다. 안타까운 점은 상투성을 피하기 위해 집어넣은 ‘타잔아저씨’와 ‘신비의 물’ 등 팬터지적 요소가 병마와 싸우는 현실속 고통·눈물과 저만치 떨어져 있어 ‘과유불급’을 느끼게 하는 것.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라는 점을 고려할 땐 더욱 그렇다. 다만 TV 드라마 ‘완전한 사랑’ 등을 통해 눈에 익은 아역배우 박지빈의 인상적인 연기는 영화를 보는 충분한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영화의 미덕은 한 개인이 아닌 가족 구성원 모두의 ‘성장 드라마’라는데 있다. 어느날 열 두살짜리 큰 아들 ‘한별’(서대한)이 악성 뇌종양에 걸리면서 아홉 살 동생 ‘한이’(박지빈)와 엄마(배종옥)·아빠(박원상)등 한가족은 새로운 ‘성장’을 경험한다. 갑작스레 닥친 시련 앞에서 한이는 형과 또래의 다른 암투병 환자를 통해, 엄마는 한별이와 다른 환자의 부모의 시선을 통해 ‘나’라는 울타리를 넘어 타인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성숙해 간다. 관객들은 영화 보는 중간중간 ‘손수건’을 꺼내들어야 할 것 같다. 특히 한별이 엄마가 소리가 새어 나갈세라 화장실 세면대에 얼굴을 담그고 시원스레 펑펑 우는 장면에서 관객들은 대신 울음 소리를 내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영화속에는 ‘눈물’뿐 아니라 천진난만한 ‘동심’도 있다. 동생 한이가 인기 가수를 흉내내며 그동안 ‘괴롭힘의 대상’이었던 형을 보살피고, 또래 친구 환자 욱이(최우역)를 위로하기 위해 벌이는 재롱 연기는 관객들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자아내게 한다. 관객들도 동생 한이의 시선속으로 들어가 함께 한별이의 투병 생활에 동참하며 성숙해간다. 방송작가로 활동했던 김혜정씨의 2003년작 에세이집 ‘슬픔이 희망에게’가 원작. 김혜정씨의 친동생인 시나리오 작가 김은정씨가 조카의 투병생활을 지켜 보며 시나리오를 썼다. 관객들이 ‘손수건’과 ‘미소’ 사이에서 쉽사리 갈피를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면서 영화의 흡인력은 점점 떨어져 가는 것이 흠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상투적 신파에 매몰되지 않는 씩씩하고 건강한 영화임에는 틀림이 없다. 전체 관람가.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해외 인터넷도박 1만3000명 적발

    해외 인터넷 도박사이트를 통해 슬롯머신, 포커 등을 한 1만 3000명이 경찰에 적발됐다. 이들이 신용카드로 도박사이트에 지불한 돈은 120억원에 이르렀다. 경찰은 현직 외교관과 국립대 교수 등 33명을 사법처리했다.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신용카드를 이용해 50개 해외 도박사이트에서 상습도박을 한 1만 3000여명을 적발, 유모(49·무직)씨 등 7명에 대해 상습도박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김모(41·외교통상부 서기관)씨 등 26명을 입건했다고 1일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신용카드 회사의 결제내역 자료를 통해 도박사이트 이용자들을 확인했다.”면서 “카드결제액 2500만원 이상 또는 결제횟수 100회 이상인 사람들을 입건했으며 이 중 5000만원 초과인 경우는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인터넷 배너광고나 스팸메일 등을 통해 알게 된 해외 도박사이트에 회원으로 가입한 뒤 지난해 한해 동안 슬롯머신, 세븐포커 등 도박을 하고 신용카드로 총 5만 621차례에 걸쳐 120억원을 결제했다. 외교부 서기관 김씨는 해외공관에 근무하던 지난해 122차례에 걸쳐 3000만원을 사용했고, 모 국립대 교수 홍모(62)씨는 382차례에 걸쳐 2600만원을 카드로 결제한 혐의로 각각 입건됐다. 구속영장이 신청된 유씨는 3만5000여 차례에 걸쳐 1억원 이상을 도박으로 날렸고, 이모(36)씨는 개인카드 한도가 초과하자 회사 법인카드로 도박자금 2300만원을 결제한 것으로 밝혀졌다. 강모(32·여)씨는 친동생의 신용카드를 빌려 1억원을 결제하는 바람에 동생이 신용불량자가 될 처지에 놓여 있다. 경찰은 전자상거래 사이트로 위장한 도박사이트 숫자를 감안하면 지난 한해 동안 도박자금으로 해외로 나간 돈이 25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경찰은 이번에 적발된 50개 사이트에 대한 접속금지를 정보통신부에 요청했다. 경찰은 “최근 내국인들이 추적을 피하려고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자도 외국인 이름으로 등재해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면서 “서버가 해외에 있으면 단속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김준석기자 hermes@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④-현대그룹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④-현대그룹

    “믿겨지지 않았다.” 2003년 8월 4일 새벽. 그룹 비서실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을 받아든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훗날 지인에게 “처음엔 얘 아빠(정몽헌 회장)의 죽음을 믿을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그러나 남편의 죽음을 제대로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시숙(정상영 KCC그룹 명예회장)에게서 그룹을 지켜야 했다. 경영 전면에 나섰다. 스물한살에 현대가로 시집와 30년 가까이 살림만 했는데 세상에 나오는 것이, 그것도 시아버지(고 정주영 명예회장)가 평생을 일군 그룹을 덜컥 떠맡는 게 두렵지 않았을까. 지인의 얘기다.“나도 그 점이 궁금해 언젠가 한번 물어봤었다. 그랬더니 그 때는 (경영권 분쟁으로) 상황이 너무 다급해 두려워할 겨를조차 없었다고 하더라.” 그렇게 현대가의 ‘조용한’ 며느리에서 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때가 2003년 10월 21일. 그로부터 1년여. 주력 계열사인 현대상선은 ‘관리종목’의 악몽에서 벗어나 지난해 사상 최대 순익(4279억원)을 올렸다. 금강산 관광사업을 주도하는 현대아산 역시 소폭이나마 첫 흑자(8억원)를 기록했다. 현대엘리베이터(839억원), 현대증권(580억원 추정치), 현대택배(74억원), 현대경제연구원(3억원)도 지난해 흑자로 돌아섰거나 흑자를 지켰다. 그룹 경영을 맡은 지 불과 1년 만에 6개 계열사 모두를 흑자로 돌려놓은 것이다.2010년까지 그룹 매출을 20조원(지난해 말 6조 6400억원)으로 끌어올려 재계 10위권(현재 19위)에 입성하겠다는 현 회장의 ‘2010 프로젝트’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 것은 그래서다. 어떤 이는 이를 두고 ‘운’이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왕회장(정주영 명예회장) 시절부터 현대에 몸담아온 한 임원의 해석은 다르다. “운이 좋았던 것도 사실이다.(현 회장 취임후) 해운 경기가 살아나면서 그룹의 주축인 현대상선이 살아났으니까….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되는 부분이 있다. 전에 비해 그룹의 방향이 매우 뚜렷해졌다. 현 회장은 한번 결정을 내리면 단호하다. 흔들리지 않는다. 배포와 결단력은 오히려 몽헌 회장(MH)을 능가한다는 게 임원들의 공통된 평가다.” 이와 관련해 또다른 임원의 말이 재미있다.“현 회장을 보고 있으면 사업가 유전자라는게 따로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사업가 집안의 둘째딸 현 회장은 1955년 딸만 넷을 둔 사업가 집안의 둘째로 태어났다. 훗날 현대상선에 흡수된 당시 신한해운의 현영원(78) 회장이 아버지다. 일제때 ‘호남의 거부(巨富)’로 이름을 날렸던 현준호씨의 후손이다. 어머니는 김용주 전남방직 창업주의 외동딸인 김문희(77) 현 용문학원 이사장이다. 김창성 전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과 김무성 한나라당 의원의 친누나이기도 하다. 현 회장에게는 외삼촌들이다. 현대가의 며느리 가운데 손아래 동서 김영명(정몽준 현대중공업 대주주의 부인·김동조 전 외무장관의 딸)씨와 더불어 친정이 가장 화려한 편이다. 현 회장은 그룹 홈페이지에 올린 ‘나의 삶 현대의 길’에서 “기업가 집안의 엄격한 가정교육 속에서 세상의 흐름과 변화에 대한 시각을 조금씩 키워나갔다.”고 어린 시절을 회고했다. 임원의 해석처럼 ‘유전자’까지는 아니더라도 사업가 집안의 가풍이 자연스럽게 몸에 밴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흥미로운 점은 현 회장의 자매들 이름이다. 언니가 일선씨, 여동생이 지선씨다. 현 회장의 시조카들과 이름이 똑같다.“정씨 집안과의 혼사는 숙명”이라는 우스갯말이 나올 만도 하다. 언니 일선씨는 수입 침장(沈臧) ‘쉐르단’으로 유명한 홈텍스타일코리아 유승지 회장과 결혼했다. 유 회장은 유일한 유한양행 창업주의 친동생이자 유유산업 창업주인 고 유특한씨의 아들. 현 유유산업 유승필 회장의 친동생이다. 동서지간인 유 회장과 생전의 MH는 나이가 같아 유난히 친했다고 한다.MH가 죽기 직전 가족들과 외식을 할 때도 유 회장이 함께 했었다. ●‘군인’ MH와의 첫 만남 대학(이화여대 사회학과) 4학년때인 1975년 1월 어느날. 현 회장은 아버지를 따라 울산의 현대중공업 선박 명명식에 갔다. 당시 아버지는 사업관계로 잘 알고 지내던 홍콩 행정 장관(C.Y. 퉁)이 방한하자 때마침 열린 선박 명명식에 ‘모시고’ 갔다. 애초 맏딸만 데려갈 생각이었지만 둘째딸의 성화에 딸 둘을 대동하고 나섰다. 몇달 뒤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쪽에서 넌지시 연락이 왔다.“군대간 아들이 마침 휴가 나왔는데 한번 만나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선박 명명식에서 ‘참한 인상의 늘씬한 재원’을 처음 본 정 회장이 단박에 며느릿감으로 점지한 것이다. 이 때가 75년 5,6월께. 현 회장과 MH와의 첫 만남은 그렇게 이뤄졌다. 언젠가 현 회장이 사석에서 털어놓았다는 MH의 첫인상이다.“요샛말로 필이 꽂히거나 그렇진 않았다. 군인이라 머리도 짧았고…그래도 듬직해 보였다.” 첫 데이트 장소는 ‘군인 커플’답게 서울 태릉사격장. 이듬해 7월 두사람은 결혼했다. ●“나도 내게 이런 속배짱이 있는 줄 몰랐다” 현 회장은 결혼 후 첫딸을 낳고도 남편과 함께 미국 유학길에 올라 페어리 디킨슨 대학원에서 인간개발론을 전공했다. 귀국해서 얘들 키우고 살림하는 동안에도 짬짬이 걸스카우트연맹(이사)·대한적십자사(여성봉사 특별자문위원) 등에서 ‘표 안나게’ 사회활동을 했지만 사업가로 나서게 되리라고는 그 자신 상상도 못했다. 현 회장을 가까이서 지켜본 임원의 얘기다.“그룹 경영을 맡은 지 1년여밖에 지나지 않아 아직 평가를 내리기에는 이르지만 확실한 것은 배포가 여간 아니라는 점이다. 경영 참여를 결심한 것도,8개월에 걸친 경영권 분쟁을 버텨낸 것도 이같은 배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겉으로 보면 전형적인 현대가의 조용한 며느리인데 어디에 그런 배포가 숨겨져 있는지 모르겠다. 본인 스스로도 ‘내게 이런 속배짱이 있는 줄 몰랐다.’며 웃더라. 지금이야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경영권 분쟁때의)그 지독했던 마음 고생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의지력도 대단하다. 더러 확신이 서기까지 결단을 늦추는 경향이 있어 답답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일단 확신이 서면 무섭게 밀어붙인다. 번복하는 일도 없다.”결단을 내려놓고도 마음이 여려 ‘가신’들의 주장에 흔들리곤 했던 MH와는 대조되는 면모다. 현 회장의 단호함을 보여주는 일화 한가지. 지난해 8월 그룹 비전을 선포할 때의 일이다. 당시는 경영권 분쟁을 매듭짓고 새로운 도약을 다짐하던 때라 사내외에 선언할 ‘비전’이 매우 중요했다. 현 회장은 ‘용기와 자부심의 현대’라고 직접 쓴 쪽지를 내밀었다. 임원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살림만 하던 사람이 기업 경영과 직원 심리를 얼마나 알겠느냐.”는 냉소도 은근히 깔려 있었다. 그러나 현 회장은 지금이야말로 창업주 정주영 회장의 용기와 ‘재계 1위 현대’에 대한 자부심이 절실한 때라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결국 선언문에는 이 문구가 그대로 들어갔다. 시간을 지체해 물건너갔다고 생각했던 가신그룹(김재수 당시 경영전략팀 사장 등)에 대한 인사도 그 해말 전격 단행해 임직원들을 다시한번 놀래켰다. ●떠올리기 싫은 기억, 숙부의 난 현 회장은 취임하자마자 다른 사람도 아닌 시삼촌과 길고 지루한 싸움을 벌여야 했다. 정상영 명예회장이 2003년 8월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을 사들이면서 본격화된 경영권 분쟁은 이듬해 3월 30일 현대엘리베이터 주총에서 현 회장이 승리할 때까지 8개월 가까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현 회장은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등 집안의 어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비즈니스가 얽혀있어 개입할 수 없다.”는 말만 들어야 했다. 결과적으로 이들의 중립이 현 회장을 도왔다. 현 회장측은 분쟁의 단초가 된 금호생명 대출 200억원에 대한 정상영 회장의 보증과 관련,“정 명예회장은 조카(MH)에 대한 의리라고 주장하지만 처음부터 경영권을 뺏기 위해 치밀하게 계산된 행보였다.”고 주장한다. 한 측근은 MH가 정상영 명예회장을 인간적으로 따랐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그는 “왕자의 난이 일어나기 이전부터 정상영 회장이 MH의 자금줄을 교묘하게 막았다.”면서 “이 때문에 MH가 ‘그룹을 위해 (내가) 이렇게 희생했는데 상영 삼촌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며 언젠가 몹시 화를 낸 적도 있다.”고 털어놓았다.KCC측에서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을 여전히 팔지 않고 있어 경영권 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싸움이다. ●경영수업 받는 큰딸…‘코디’ 둘째딸… 사격 좋아하는 외아들 시어머니(변중석)가 아이 잘 낳는 보약을 하루가 멀다하고 들이미는 바람에 얼떨결에 일찍 가졌다는 큰딸. 딸을 낳자 시댁보다 딸만 넷인 친정의 실망이 더 컸다고 한다. 그 딸이 지금은 현 회장의 든든한 친구이자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지이(28)씨다. 서울대 고고미술학과와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대학원을 나온 그는 외국계 광고회사에 다니다 아버지의 급작스러운 죽음으로 지난해 1월 3일 현대상선 재정부에 경력사원으로 입사했다. 올 1월 1일 대리로 승진했다. 회사 흐름을 가장 빨리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재정부에 배치한 것을 보면, 제대로 경영수업을 받게 하려는 현 회장의 의지가 읽혀진다. 경영권 분쟁때도 현 회장은 정상영 명예회장 등 시댁 어른들과의 대면 자리에 반드시 지이씨를 데리고 나갔다. 맏이답게 찬찬하고 침착해 현 회장에게는 큰 의지가 된다고 한다. 직장 동료들 사이에서도 평이 매우 좋다. 지난해 10월 그룹 해체후 처음 가진 신입사원 수련회때는 다른 ‘신참’들과 똑같이 텐트에서 잠을 자고 장기자랑도 마다하지 않아 주위의 경계심을 녹였다.‘싼타페’를 직접 몰고 출퇴근한다. 아직 사귀는 사람은 없다는 게 주변의 전언이다. “터울이 크면 아들일 확률이 높다.”는 집안 어른들의 압력에 6년 7개월만에 가졌다는 둘째딸 영이(21)씨는 서울 상명여고 1학년때 혼자서 미국 유학을 떠났을 만큼 당차다. 보스턴에서 한시간 거리인 사립 고등학교 ‘쿠싱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현재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경영학부에 재학중이다. 언니와 달리 성격이 매우 활달하다. 방학을 맞아 귀국하면 엄마의 의상을 열심히 조언해준다. 막내 외아들인 영선(20)씨는 모 대학 경영학과를 다니다 지금은 휴학한 상태다. 군대를 먼저 다녀온 뒤 미국 유학을 떠날 예정이다. 아버지 장례식때 고3(경복고) 수험생이었는데도 어찌나 많은 친구들이 빈소로 몰려왔던지 조문객들 사이에 화제가 됐었다. 아버지를 닮아 총쏘는 것을 좋아한다. ●옛 영광 재현 꿈꾸는 핵심 브레인들 경영전략팀이 그룹의 ‘싱크 탱크’다. 다른 그룹으로 치면 구조조정본부에 해당한다. 현 회장 사람들로 전부 세대교체가 이뤄진 점이 가장 눈에 띈다. 최용묵(57) 사장을 사령탑으로 이기승(55) 전무-하명호(47) 상무로 수직 연결된다. 현대엘리베이터 사장도 맡고 있는 최 사장은 경영권 방어전략을 촘촘히 짜 현 회장의 리더십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급진적 개혁보다는 점진적 개선파로, 조직 안정이 최우선 과제인 현 회장 체제에서는 적임이라는 평을 듣는다.76년 현대건설 평사원으로 입사,84년 현대엘리베이터 창립과 함께 관리부장을 맡으면서 조직관리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지금도 임직원들과 회사 앞마당에서 족구를 하고 삼겹살 소주 뒤풀이를 즐긴다. 이 전무는 경영권 분쟁을 겪으면서 금융전문가의 보완을 절실하게 느낀 현 회장이 지난해 6월 외환은행에서 영입해온 이다.KS(경기고-서울대 법대) 출신답게 머리회전이 빠르면서도 친화력이 뛰어나 핵심인맥의 자리를 굳혔다. 미국 디킨스대 MBA(경영학석사) 출신인 하 상무도 재무 전문가다. 현대석유화학에서 지난해 말 그룹 심장부로 옮겨왔다. 그룹의 정신적 뿌리인 대북사업은 ‘서울대 트리오’가 이끌고 있다.“대북사업에 인생을 걸었다.”는 김윤규(61) 현대아산 부회장이 단연 첫 손에 꼽힌다. 왕 회장때부터 ‘소떼 방북’ 등을 성사시키며 현대와 동고동락해 온 김 부회장은 MH가 그 앞으로 남긴 별도 유서를 통해 “자주 윙크하는 버릇 고치라.”고 농담을 던졌을 만큼 2대에 걸쳐 각별한 신임을 얻었다. 얼마전 부회장으로 승진해 대북 라인 접촉 등 대외 업무에만 힘을 쏟고 있다. 대내 업무를 떼준 것은 과중한 업무 부담을 덜어주려는 배려이자 ‘거리 두기’라는 해석도 있다. 대내 업무는 윤만준(60) 현대아산 사장의 몫이다. 고문으로 물러나 있다가 김 부회장의 승진과 함께 대표이사 사장으로 발탁된 그는 남북경제협력사업에 초창기부터 관여해 실무에 밝다. 서울법대를 나와 74년 현대중공업에 입사,MH와 함께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반도체)를 일궜다. 김 부회장의 서울대 공대 직속 후배인 심재원(58) 현대아산 부사장은 개성공단 프로젝트를 총괄하고 있다. 업무처리가 치밀하다. 그룹의 ‘캐시 카우’(돈버는 계열사)인 현대상선은 노정익(52) 사장이 이끌고 있다. 유동성 위기로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던 2002년 9월 사장에 취임해 1000원대이던 주가를 2만원 가까이 끌어올린 것으로 유명하다. 자동차 운반선 매각 등 뚝심으로 구조조정을 밀어붙여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 때 들어온 1조원대의 현금이 없었다면 뒤이어 터진 대북송금·분식회계 등의 악재를 버텨내지 못했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얘기다. 취임하자마자 승선 체험을 자청, 선원들과 거센 파도와 싸우며 하나가 된 덕분에 ‘캡틴’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안살림을 꼼꼼하게 챙기는 안홍환(55·부사장) 지원본부장, 회사 매출의 70%를 책임지고 있는 이재현(54·전무) 컨테이너본부장, 일반화물 영업을 이끄는 이동렬(56·전무) 벌크선영업본부장, 해양대 항해학과를 나와 선장으로도 근무한 ‘마도로스’ 신용호(56·전무) 해사본부장 등도 상선의 중추 세력이다. 2003년 6월 부국증권에서 스카우트돼 온 김지완(59) 현대증권 사장은 ‘현투(현대투자신탁증권) 책임분담금’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지어 그룹의 고민을 덜어주었다.‘숙부의 난’때는 오랜 증권업계 경험을 바탕으로 경영권 방어 전략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과 부산상고 동문이어서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하마평에 자주 오르기도 한다. 김 사장을 떠받치고 있는 노치용(53·전무) 도매영업본부장은 그룹 홍보도 겸하고 있어 여의도와 광화문을 오가며 ‘셔틀 업무’를 보고 있다. 경영권 분쟁때 설득력있는 논리로 여론을 유리하게 이끌었다. 숙부의 난 당시 격전지(경영전략팀) 한복판에 있었던 현기춘(51) 현 현대엘리베이터 전무도 눈에 띈다. 현대엘리베이터의 또다른 한 축인 한승준(51) 전무와는 춘천고 같은반 친구이다. 기획·관리 전문가로 ‘선 굵은 CEO’로 불리는 김병훈(55) 현대택배 사장, 경제연구원 최초로 수익모델 창출에 도전한 재무관료 출신의 김중웅(64) 현대경제연구원 회장, 미국 애리조나주립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은 김주현(53) 현대경제연구원장 등도 그룹의 핵심 브레인들이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가 있다.“경영권 분쟁이 오히려 약이 됐다. 몽헌 회장의 죽음으로 흔들리던 임직원들이 경영권이 위협받자 현 회장을 중심으로 차돌처럼 뭉쳤다. 이번 기회에 전열을 확실하게 정비해 그룹의 모태로서 옛 현대의 영광을 반드시 재현하겠다.” hyun@seoul.co.kr ■ ‘비운의 황태자’ 정몽헌 현대가 사정을 소상히 알고 있는 한 현대맨은 “90년대 들어 언론에서 빅3(MK,MH, MJ) 운운했지만 그 때는 이미 왕회장이 MH를 후계자로 형제들에게 선언한 뒤였다.”면서 “좀체 칭찬을 하지 않는 왕회장이었지만 MH에 대해서는 심지가 깊은 아이라며 믿음을 내보였다.”고 전했다. 보성고와 연세대를 나와 미국 페어리 디킨슨 대학에서 MBA(경영학 석사학위)를 딴 MH는 귀국후 1983년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반도체)를 세워 4년 만에 흑자로 돌려놓았다. 급기야 2000년에는 그룹 단독 회장에 취임했다. ‘왕자의 난’의 상처를 털고 MH시대를 여는 듯했다. 하지만 2003년 8월 4일 계동사옥 12층 집무실에서 몸을 던지고 만다.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그저 유서를 통해 “어리석은 사람이 어리석은 행동을 했다.”고만 했을 따름이다. 대북송금 특검 등에 따른 중압감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그러나 한 측근은 당시 “극심한 중압감 때문이었다면 가족들이 낌새를 알아챘을 텐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며 일축했었다. 투신하기 직전, 가족과 식사한 것을 두고 미리 자살을 준비했다는 분석도 나왔지만 이 역시 MH가 일요일에는 가족들과의 외식을 즐겼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MH는 바깥일을 집에 와 자상하게 털어놓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가급적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등 가정적인 편이었다. 한 측근의 얘기다.“(대북송금·비자금 수사 등이 진행되자) 나 혼자 책임지겠다는 말씀을 여러번 하셨다. 그때는 혼자 감옥가겠다는 뜻인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살을 염두에 뒀던 것 같다. 그렇더라도 투신하기 두달 전에 받은 건강검진에서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게 나오자 부인(현 회장)에게 매일 순두부를 끓이라고 했던 점으로 미뤄보아 투신 결심은 순간적으로 이뤄졌던 것 같다.” 소탈하면서도 합리적이고 머리도 좋아 따르는 이가 많았던 MH. 그는 그러나 끝내 아버지의 꿈(대북사업)을 완성하지 못하고 삶을 접었다. 이 때가 그의 나이 55살때였다. hyun@seoul.co.kr ■ 현대家 며느리들 현대가의 며느리들은 4월을 ‘제사의 달’이라고 부른다. 시아버지(정주영 회장)가 생전에 워낙 제사를 중시한 데다 온갖 제사가 몰려있어 4월에는 아예 청운동 시댁 부엌에서 살다시피 했다. 시아버지의 독특한 ‘밥상머리 교육’ 때문에 새벽마다 시댁으로 가 아침식사도 직접 준비해야 했다. 한 며느리는 “새벽 3시반에 갔다는 항간의 얘기는 다소 과장이고 이를 때는 4시반, 보통때는 5시나 5시반쯤 갔다. 시아버님이 대선에 출마했을 때 새벽마다 수행원들 몫까지 김밥을 엄청나게 쌌던 기억이 난다.”고 털어놓았다. 언젠가 한번은 아들들이 꾀가 나 아침식사 회동에 몇번 빠졌다. 대로한 왕회장이 “모두 들어와 살라.”고 불호령을 내려 1년간 청운동 시댁 주변에 모두 모여산 적도 있다고 한다. 여자들이 나서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던 왕회장이지만 말년에는 겸상 식사도 허용했다고 한다. 맏며느리 이양자씨는 수도여대를 나와 한때 아나운서로 활동했다. 이씨가 91년 암으로 세상을 뜨면서 실질적 맏며느리 역할을 해온 둘째며느리 이정화(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부인)씨는 당시 명문으로 꼽히던 숙명여고를 나왔다. 빼어난 미모로 유명했던 넷째며느리 이행자씨는 한양대 출신으로 세간에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숙명여대를 졸업했다. 유난히 여대 출신이 많은 데는 이유가 있다.“여자는 여대를 가야 한다.”는 왕회장의 보수성 때문이었다. 이화여대에 수석 입학해 화제가 됐던 손녀 유희씨(고 몽필씨 딸)도 원래는 연세대 원서를 다 써놓은 상태에서 할아버지에게 ‘보고’했다가 된통 혼이 난 뒤 여대로 틀었다고 한다. 며느리든 딸이든 해외유학까지 다녀오고도 회사 경영이나 사회활동에 참여하는 이가 거의 없는 것도 유교적 가풍 탓이다. 왕회장은 “살림에만 신경쓰라.”며 며느리들에게 골프도 치지 못하게 했다. 현정은 회장은 이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골프장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세월이 훨씬 흐르고서야 뒤늦게 골프를 배웠지만 영 재미가 붙지 않아 골프장에 딱 세번 나가본 뒤 관뒀다고. 오는 10월 ‘금강산 골프장’ 개관에 맞춰 상징 티샷을 날리라는 임원들의 압력이 많아 여간 고민이 아니라고 한다. 한때 기체조를 배웠으며 ‘걷기’ 가 취미다. hyun@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오랜만에 듣는 ‘대장간의 합창’

    오랜만에 듣는 ‘대장간의 합창’

    올봄 오페라 무대는 ‘골라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해마다 반복되는 고정 레퍼토리에서 벗어나 오랫동안 만나볼 수 없었던 명작무대들이 속속 선보이고 있다. 국립오페라단이 38년만에 ‘마탄의 사수’를 국내 공연하더니 이번에는 ‘일 트로바토레’가 관객들을 설레게 한다. 서울시오페라단(단장 신경욱)이 창단 20주년을 기념해 베르디의 ‘일 트로바토레’를 새달 7일부터 10일까지 오후 7시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 올린다.1960년 5월 고려오페라단이 국립극장에서 초연한 이후 지금까지 국내 공연된 적이 몇 차례 없었던 드문 무대다. 베르디의 대표작이면서도 국내 무대가 드물었던 가장 큰 배경은, 노래가 유달리 많은데다 여러모로 스케일이 방대해 제작을 엄두내기가 어렵다는 점. 노래를 무리없이 소화해낼 가수를 물색하는 작업 자체가 국내 형편으로는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이 공연계의 해설이다. 거기에 비극으로 점철되는 내용도 쉽게 대중들을 포섭하기에 버거워 제작자들을 주저하게 만든 요인으로 꼽혀왔다. 영주는 자신의 아들에게 마법을 씌운 죄로 집시 노파를 화형에 처하고, 집시의 딸은 다시 영주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의 아들을 유괴하면서 빚어지는 비극이 주요 줄거리. 집시 노파의 화형이 끝난 잿더미 속에서 아이의 유골이 섞여 나오기도 하고, 마지막 대목에 이르면 형이 친동생을 무참히 살해하게 되는 끔찍한 비극이 재연되기도 한다. 그러나 ‘대장간의 합창’‘저 타는 불꽃을 보라’ 등 이 작품만큼 유명한 합창과 아리아를 많이 내놓은 오페라도 드물다. 이번 공연은 이탈리아 라 스칼라 극장에서 활약해온 노장 안토넬로 마다우 디아즈가 연출을 맡았다.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그는 “대단히 어려운 오페라이지만, 이 작품을 연출한 경험이 여덟차례나 되는 만큼 역동적이면서도 흥미롭게 무대를 꾸며볼 것”이라고 말했다. KBS교향악단 수석객원지휘자, 대구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를 지낸 박탕 조르다니아가 지휘한다. 테너 김남두, 카멘 치아니, 소프라노 폴라 델리가티, 김인혜, 메조 소프라노 양송미, 가브리엘라 포페스쿠, 바리톤 양효용, 김승철, 베이스 임철민, 김요한 등이 출연한다.3만∼15만원.(02)399-1723.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조중건 KAL 前부회장 자서전 출간

    국내 민간항공 역사의 산증인인 조중건(72) 대한항공 전 부회장이 30년 항공 인생을 회고하는 자서전 ‘창공에 꿈을 싣고’를 펴냈다. 20일 대한항공에 따르면 조 전 부회장은 오는 25일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출판기념회를 갖는다. 자서전에는 한진그룹의 태동에서부터 대한항공의 성장과정, 개인적인 가족사까지 담겨 있다. 특히 베트남에서 군수물자를 수송하면서 미군과 하역 계약시 계약을 어길 경우 100배로 보상하겠다고 다짐하고, 일본 항구 요율보다 3배나 높은 가격을 받아낸 일화 등이 눈에 띈다. 한진그룹의 창업주 고 조중훈 회장의 친동생인 조 전 부회장은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에서 수송학을 전공했다. 지난 1959년 한진그룹의 모태인 한진상사에 입사해 97년 대한항공 부회장 자리에서 물러나기까지 형을 도와 한진그룹을 세계적인 수송물류 전문기업으로 키워냈다. 조 전 부회장은 “‘꿈이 없는 삶은 단 1초도 살지 마라.’는 좌우명으로 지구촌 구석구석을 쉼없이 달렸다.”면서 “사랑하는 젊은이들에게 미래를 향한 진취적인 기상을 심어주기 위해 책 출간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조 전 부회장은 현재 화암장학회를 운영하고 있다. 김경두기자 golgers@seoul.co.kr
  • [결혼이야기]강성구(28·ATS무역 해외마케팅부)·신현영(28·에르도스 디자인팀)

    [결혼이야기]강성구(28·ATS무역 해외마케팅부)·신현영(28·에르도스 디자인팀)

    제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그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가만히 눈감고 그녀를 떠올리면 두 눈 사이로 눈물이 배어나올 만큼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합니다. 인연은 지금부터 6년 전, 저의 대학시절에 시작됐습니다. 어려서부터 프로야구선수가 되고 싶었던 저는 비록 부모님의 반대로 그 뜻은 접어야만 했지만 대학 야구동아리에서 숨겨뒀던 열정을 마구 펼쳤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운동장에서 땀을 흘렸고, 대학아마 야구리그에서 결승에 오르는 등 야구에 대한 저의 사랑은 식을 줄 몰랐습니다. 팀의 주장을 맡고 있었던 1999년 봄, 제 인생에 커다란 변화가 생겼습니다. 대학 선배 누나가 자신의 친동생을 소개해 줬고 그때부터 제 삶엔 야구 외에 또 다른 ‘애인’이 생겼습니다. 야구에 미쳐서 항상 몸에는 흙과 땀냄새가 밴 칙칙한 야구부원들과 동고동락하던 제게 그녀는 삶의 또 다른 이면을 보여줬습니다. 극장과 커피숍이란 곳도 가보게 됐고, 손 잡고 강남역 일대를 걷기도 했습니다. 동대문 야시장에서 용돈을 쪼개 서로 옷도 사주고 포장마차에서 떡볶이도 먹었습니다. 비 내리는 날이면 작은 우산 하나를 나누어 쓰고 서로 많이 덮어 주려고 실랑이하기도 했습니다. 그때마다 저의 한쪽 어깨는 비로 흠뻑 젖고 춥기도했지만 그래도 마냥 행복했습니다. 1년 뒤 저희에게도 커다란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대한민국 젊은 커플의 최대 이별요인의 하나인 군입대 영장이 그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어렵다는 군시절을 놀랄 만큼 잘 견뎌냈습니다. 오히려 저희는 그 기간을 통해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더욱 굳건히 다져나갔습니다. 그녀는 훈련소 6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편지를 보냈고, 자대배치 뒤에도 매일같이 편지를 보내며 최소 2주일에 한번씩은 맛난 음식을 양손에 들고 면회를 와주었습니다. 저희 부대에서 그녀가 가져온 치킨이나 과자 등을 먹지 못했거나 그녀를 모른다면 간첩일 만큼 저희는 부대의 명물 커플이었습니다. 이제 6년 동안의 교제를 뒤로하고 드디어 3월19일에 화촉을 밝힙니다. 반년이 넘도록 저희들의 결혼준비에 애쓰신 부모님과 장인어른, 장모님께 감사 드리며 착하고 예쁜 동생을 소개해준 처형에게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그녀를 알기 전까지 제게 가장 가까웠던 여성이었고 지금은 해외에서 항공사 승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누나에게도 먼저 장가가는 남동생의 미안함을 표합니다. 마지막으로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그녀, 현영아∼. 나를 믿고 따르기로 한 너의 결심에 후회 없도록 최선을 다할게. 만인들에게 곧 하게 될 나의 혼인서약처럼.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①-창업주 故정주영회장 일가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①-창업주 故정주영회장 일가

    보는 이마다 다르겠지만 현대를 삼성보다 앞세우는 사람들은 현대의 창업 정신을 강조한다. 현대는 남이 일궈놓은 기업을 인수하기보다는 밑바닥에서부터 하나하나 주춧돌을 올렸다. 건설이 그랬고, 자동차가 그랬으며, 중공업이 그랬다. 창업주인 고(故) 정주영 회장은 이를 평생의 긍지요, 자랑으로 여겼다. 서슬 퍼렇던 군사정권 시절, 국보위(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에 끌려가서도 “사정상 어쩔 수 없었던 인천제철만 제외하고는 어느 하나 내 손으로 말뚝을 박고 길을 닦아 시작하지 않은 공장이 없다.”며 기업 강제 통·폐합에 맞섰을 정도였다. 1947년 5월25일 서울 중구 초동의 허름한 자동차 수리공장 한 귀퉁이에 ‘현대토건사’라는 간판을 내건 지 60여년. 삼성보다 10년 가까이 늦은 출발이었지만 현대는 이내 1위 기업으로 우뚝 섰고,‘경영권 다툼’이 일어났던 2000년까지 그 지위는 차돌만큼이나 단단했다. 이때 현대그룹의 자산규모가 87조여원. 계열사 수만 40개가 넘었다. 비록 그룹이 쪼개지면서 외형상의 규모가 작아지고 재계 서열은 떨어졌지만, 경제 전문가들은 ‘전화위복’이라고 입을 모은다. 자동차(현대차그룹), 유통(현대백화점), 해운·제조(현대그룹), 조선(현대중공업), 금융(현대해상·현대기업금융) 등 각자 전문그룹의 길로 나서면서 경쟁력은 더 강화되고 동반 부실의 위험은 현격히 줄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다른 그룹들이 이제서야 계열분리 등으로 홍역을 앓는 동안 현대의 대표주자들은 세계를 상대로 싸우고 있다. 현대산업개발,KCC, 한라, 성우 등 창업주의 형제들이 이끄는 그룹들도 각자 독자영역을 굳혀가고 있다. 언뜻 봐도 느껴질 만큼 현대에 뿌리를 대고 있는 기업들은 유난히 굴뚝업종이 많다. 고용된 인원과 딸린 부품·협력업체가 많다는 얘기다. 국민경제 기여도로 따지면 현대가 여전히 1위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또 한 가지, 현대를 얘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현대정신’이다. 현대에는 일단 해보자며 덤비는 정신, 밀어붙이는 힘이 있다. 때로는 비합리성을 낳기도 하지만 현대맨들은 이를 “맨바닥에서부터 기업을 일군 현대만의 저력”이라고 자부한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는 이를 “진정한 기업가(起業家) 정신”이라고 불렀다. 제각각 ‘마이 웨이’를 걷고 있는 오늘날의 현대가를 묶는 보이지 않는 끈이기도 하다. ●담(淡)한 혼맥… 후한 연애결혼 다른 재벌가에 비해 현대의 혼맥은 의외로 소박하다. 낭만을 즐겼던 고 정 회장이 자식들의 연애에도 너그러웠던 영향이 가장 크다.‘왕 회장’이라는 별칭으로 더 자주 불렸던 그 자신, 강원도 통천의 평범한 고향처녀(변중석)와 결혼해 평생을 함께했다. 슬하에 9남매(8남1녀)를 두고 동생이 일곱(한명은 어려서 사망)이나 됐지만 눈에 띄는 혼사는 손가락을 꼽는다. 직계가족 중에 굳이 꼽자면 다섯째아들 고 몽헌(MH)씨와 여섯째아들 몽준(MJ)씨를 들 수 있다. 몽헌씨는 신한해운 현영원 회장의 딸 정은씨와, 몽준씨는 김동조 전 외무장관의 막내딸 영명씨와 각각 결혼했다. 오랜 세월 재계를 주름잡았던 현대의 위상에 견줘 혼맥이 조촐한 데는 창업주의 성공과정과도 무관치 않다.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 태어나 부두 막노동꾼을 거쳐 대기업 총수에 오른 그는 살아생전 “세상에 공짜란 없다.”며 담(淡)한 마음을 갖자고 입버릇처럼 강조하곤 했다. 권력이나 부(富)를 결코 싫어하지 않았지만 굳이 혼사줄까지 대가며 공짜를 탐할 이유 또한 없었던 것이다. 정략결혼의 흔적이 적은 대신에 유난히 많은 손(孫)과 맞닥뜨리는 게 현대라는 집안이다. 이런 현대가 대(代)를 건너뛰면서 LG, 롯데, 한진, 이건, 비비안 등 내로라하는 그룹들과 사돈을 맺은 점은 흥미롭다. 현대가의 2세들이 ‘몽(夢)’자 돌림이라면 3세들은 딸이 ‘이(伊)’, 아들은 ‘선(宣)’자 돌림을 쓴다.4세는 ‘진’자(딸),‘창’자(아들) 돌림이다. ■ 현대의 핵심축 아들들 ●장남 몽필… 쌍용가와 인연 큰아들 몽필씨는 나이 50도 안돼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국영 적자기업 인천제철을 인수해 정상화에 여념이 없던 1982년 4월 어느날, 울산에서 서울로 올라오던 고속도로에서 그가 탄 승용차가 트레일러를 들이받았다. 이 때가 마흔아홉살. 수도여대 출신의 부인 이양자씨와 두 딸 은희·유희씨는 망연자실했다. 몽필씨가 떠난 지 한달 뒤, 정주영 회장은 동서산업 공장장이던 이영복씨를 사장으로 파격 승진시켰다. 이씨는 몽필씨의 처남, 즉 이양자씨의 친동생. 졸지에 가장을 잃은 장남 가족에 대한 배려였다. 하지만 이양자씨마저 91년 위암으로 눈을 감고 말았다. 큰딸 은희씨는 최근 미국에서 귀국했다. 둘째딸 유희씨는 김석원 쌍용양회 명예회장의 장남 지용씨와 결혼해 두 아들(진석·진하)을 두었다. 지용씨는 현재 용평리조트 상무를 맡고 있다. ●2남 몽구… 글로벌 현대차그룹 리더 몽필씨의 죽음으로 사실상 집안의 장남 역할을 도맡아 한 이는 둘째아들 몽구(MK)씨였다. 유희씨가 결혼할 때 부모 역할을 대신 한 사람도 몽구씨 부부였다.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 사장 시절,‘갤로퍼 신화’를 만들어낸 그는 기아차마저 인수해 지금의 현대·기아차 그룹을 이끌고 있다.2000년 자동차전문 그룹으로 출범한 지 몇 년도 안돼 그룹을 세계 6위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출범 당시 10개였던 계열사 수는 28개로 불어났다. 그룹의 올해 매출 목표액은 지난해보다 17% 늘어난 85조원.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미국의 ‘소비자 보고서(컨슈머 리포트)’는 최근 현대차의 뉴쏘나타를 세계에서 가장 결함이 적은 차로 선정했다. 갤로퍼 신화 때부터 MK가 강조해온 ‘품질 경영’의 힘이다. MK는 평범한 집안의 딸 이정화씨와 결혼해 3녀1남을 두었다. 큰딸 성이씨는 저명한 정형외과 의사이자 영훈의료재단을 설립한 고 선호영 박사의 아들 두훈씨와 결혼했다. 둘째딸 명이씨는 정경진 종로학원장의 아들 태영씨와, 셋째딸 윤이씨는 미국 MBA(경영학석사) 출신인 신성재씨와 결혼했다. 둘째사위와 셋째사위는 그룹 계열사인 현대카드·캐피탈 사장, 현대하이스코 사장을 각각 맡고 있다. 막내이자 외아들인 의선씨는 지난 11일 기아차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다. 그룹내 직함은 현대·기아차기획총괄본부 담당 사장으로 기아차의 기획, 재무, 수출, 연구·개발(R&D) 등 핵심 업무를 관장하고 있다. 일찍 결혼해 슬하에 1남 2녀를 두고 있다. 부인은 정도원 강원산업 부회장의 큰딸 지선씨다. ●3남 몽근… 소리없이 유통명가 키워 셋째아들 몽근씨는 일찌감치 유통을 넘겨받아 현대백화점 그룹을 이끌고 있다.‘빅3’(MK·MH·MJ)에 가려 조명은 덜 받았지만, 묵묵히 외길을 걸으면서 소리없이 유통 명가로 키워낸 주인공이다. 현대백화점, 현대H&S(非 백화점 계열), 현대홈쇼핑 등 주력 계열사를 토대로 지난해 5조 5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전문 최고경영자(CEO)들이 소신있게 일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면서도 거의 매일같이 매장을 둘러봐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바로 위 형 몽구씨와는 고등학교(경복고)-대학교(한양대) 동문인 데다 선굵은 외모까지 비슷하다. 옛 현대그룹에서 고문을 지낸 우호식씨의 딸 경숙씨가 부인이다. 두 아들은 각각 부회장, 기획담당 이사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큰아들 지선씨는 고 황산덕 전 법무장관의 손녀인 서림씨와 결혼했다. 둘째아들 교선씨는 자동차부품 전문기업인 대원강업 허재철 부회장의 큰딸 승원씨와 지난해 말 깜짝 결혼식을 올렸다. 교선씨의 결혼식에는 큰아버지인 정몽구 회장을 비롯해 집안 어른들이 대거 참석해 모처럼 우애를 다지기도 했다. 현대가는 한때 딸만 남기고 떠난 몽필씨의 대를 잇기 위해 지선씨를 양자로 입양하는 방안을 의논했었다. 유교식 법도대로라면 바로 아래 동생인 몽구씨의 아들을 입양해야 했으나 의선씨가 외아들인 탓에 지선씨가 선택된 것. 하지만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실제 입적은 이뤄지지 않았다. 정주영 회장의 장례식때 의선씨가 ‘종손’ 자격으로 고인의 영정을 든 것은 이 때문이었다. ●외사위 희영… 천마산스키장 운영, 이건·비비안과 사돈 현대가는 자손이 많은데도 딸은 귀한 편이다. 외동딸 경희씨는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재원. 그러나 바깥 활동은 없다. 대신 남편(정희영)이 선진종합㈜ 회장이다. 공교롭게 고 정주영 회장의 여동생 희영씨와 이름이 똑같다. 서울대 상대 출신으로 1965년 현대건설 공채로 입사했다. 이명박 서울시장이 입사 동기다. 조선 수주에서 뛰어난 수완을 발휘, 창업주의 눈에 들어 사위가 됐다. 정주영 회장은 딸 경희씨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자 희영씨를 도쿄법인 이사로 발령내 자연스러운 교제를 유도했다고 한다. 이후 희영씨는 조그만 해운회사(선진해운) 하나를 갖고 독립, 장인의 그늘에서 벗어났다. 천마산 스키장은 오롯이 그가 독립해 만든 회사다. 외아들 재윤씨가 선진종합㈜ 상무다. 두 딸은 각각 이건그룹과 비비안그룹으로 시집갔다. 큰딸 윤미씨의 남편이 이건창호 박승준 상무, 둘째딸 윤선씨의 남편이 비비안 남석우 부회장이다. ●4남 몽우… BNG스틸 통해 부활 넷째아들 몽우씨는 숙명여대를 떠들썩하게 했던 ‘미인’ 이행자씨와 연애결혼했다.40대에 현대알루미늄 회장을 맡은 그는 그러나 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결국 1990년 4월 45세의 젊은 나이에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남겨진 유족을 돌보는 일도 사실상의 장남 몽구씨의 몫이었다. 조카 셋을 모두 현대차그룹의 계열사인 BNG스틸(전 삼미특수강)에 입사시켰다. 큰조카, 즉 몽우씨의 장남인 일선씨는 경영능력을 인정받아 최근 BNG스틸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다. 일선씨에 이르러 비로소 현대는 내로라하는 재벌가와 사돈관계를 맺는다. 일선씨의 부인은 구자엽 희성전선 부회장의 딸 은희씨다. 구 부회장은 구태회 LG전선 명예회장의 아들이자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조카이다. 일선씨의 동생 문선씨는 김영무 김&장 법무법인 대표변호사의 딸 선희씨와 결혼했다. ●5남 몽헌… 못다 이룬 꿈, 현 회장이 힘찬 날갯짓 ‘비운의 황태자’ 몽헌씨는 1998년 그룹 공동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화려한 비상을 시작했다.1983년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반도체)를 설립해 4년 만에 흑자로 돌려놓으면서 아버지 정주영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끌어냈다.2000년에는 형들을 제치고 그룹 단독 회장에 추대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북 송금’ 사건에 연루돼 검찰 조사를 받던 중, 극심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2003년 8월4일 서울 계동사옥에서 몸을 던지고 말았다. 그렇다고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부인 현정은씨가 경영에 뛰어들었다. 급작스러운 남편의 죽음으로 황망히 그룹을 물려받았지만 사업가 집안의 딸답게 배포와 합리적 리더십으로 1년 만에 그룹을 정상궤도에 올려놓았다. 사상 최대 호황을 누리고 있는 현대상선, 올해 첫 흑자를 넘보고 있는 현대아산, 주가 1000시대의 수혜주 현대증권 등을 축으로 재계 10위권 진입(현재 19위)을 눈앞에 두고 있다.2010년까지 매출 20조원을 달성해 10위권에 진입한다는 ‘2010’ 프로젝트를 가동중이다. 현 회장은 고 정주영 회장이 직접 ‘점지한’ 며느리로도 유명하다. 현 회장이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결혼 뒷얘기는 이렇다.“당시 현대상선 회장이던 아버지(현원영)를 따라 선박 명명식차 울산에 내려갔다가 남편을 처음 만났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명예회장(정주영)께서 나를 선보러 미리 내려오셨었다. 명예회장께서 중매를 서신 셈이다.” 큰딸 지이씨는 현대상선 재정부 대리로 근무 중이다. 아버지를 잃었을 때 고3 수험생이었던 외아들 영선씨는 졸업후 미국 유학을 준비중이다. ●6남 몽준… 세계1위 현대중공업 ‘건조’ 지금은 정치인의 이미지가 더 강하지만 세계 일류 현대중공업의 뒤에는 기업인 몽준씨가 있다. 형제중에 학벌(서울대-미국 MIT 경영대학원)이 가장 좋아 ‘신문대학’(소학교만 졸업한 정주영 회장은 신문을 통해 지식의 대부분을 얻었다며 자신을 신문대학 출신이라고 소개하곤 했다) 출신인 왕 회장이 유난히 예뻐했다는 몽준씨는 31세에 현대중공업 사장으로 전격 발탁되면서 집중 조명을 받았다.1988년 금배지를 처음 달면서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시도했다. 경영은 CEO에게 맡기고 자신은 대주주로서 회사의 중요한 의사결정만 내리고 있는 것. 지금도 현대중공업의 어떤 직함도 갖고 있지 않다. 공식 직함은 5선의 국회의원이자 축구협회 회장. 아버지의 뒤를 이어 200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현대중공업의 올해 매출 목표액은 10조원. 웬만한 그룹과 맞먹는다. 부인 김영명씨와는 미국 유학시절에 만나 결혼했다. 큰아들 기선씨는 연세대 경제학과를 나와 올해 학사장교(ROTC)로 임관했다. 이로써 부자(父子)가 ROTC 선후배가 됐다. 두 딸 남이씨와 선이씨는 미국 유학 중이다.‘월드컵 베이비’로 유명한 늦둥이 아들 예선씨는 초등학교 4학년이다. 우리나라가 98년 프랑스 월드컵 예선전을 최종 통과한 것을 기념해 이름을 ‘예선’으로 지었다고 한다. ●7남 몽윤… 현대해상으로 컴백 몽윤씨는 지난해 말 업계 2위의 손해보험회사인 현대해상의 등기이사 겸 이사회 의장으로 돌아왔다.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지 8년 만의 전격 복귀였다. 방카슈랑스(은행상품과 보험상품의 교차판매) 확대 시행 등 변화하는 금융환경에 맞춰 공격적인 경영 행보를 보이고 있다.1981년 김진형 부국물산 회장의 딸 혜영씨와 연애결혼해 정이양과 경선군을 두었다. ●8남 몽일… 할부금융으로 내실 막내아들인 몽일씨는 미국 조지워싱턴대학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마친 뒤 현대상사 등에서 근무하다가 2000년 현대기업금융을 차려 독립했다. 기업대출 등을 주로 취급하는 회사다. 권영찬 현대파이낸스 회장의 딸 준희씨와 결혼해 고등학생인 현선(영국 유학중)군과 중학생인 문이양을 두고 있다. ■ 현대의 또 다른 축 형제들 고 정주영 회장의 형제들은 동생이기 이전에 창업 동지요, 사업 동료였다.6·25전쟁 직후 고령교(대구와 거창을 잇는 교량) 복구 공사를 덜컥 떠맡았다가 부도 직전까지 내몰렸을 때, 내남없이 살던 집을 팔아 돈을 내놓은 것도 동생들과 매제였다. 이 때문에 20명이 넘는 대식구가 한 집(돈암동)에 모여 살아야 했지만 누구 한 사람 불평하지 않았다. 지금은 모두 독립해 각자의 그룹을 이끌고 있다. ●옛 영화 꿈꾸는 한라·성우 동아일보 외신부 기자로 활동하던 첫째 동생 인영씨는 1953년 현대건설 전무로 입사하면서 경영에 본격 합류했다.75년 말 중동 진출 때 신중론을 펴 형과 이견을 빚을 때까지 그룹의 초석을 닦았다. 당시 독립해 만든 한라그룹은 한라건설·한라시멘트·한라중공업·만도기계 등을 거느리며 재계 서열 12위로까지 도약했다. 그러나 외환위기 때 자금난이 가중되면서 그룹이 부도나는 시련을 겪었다. 지금은 둘째 아들 몽원씨가 한라건설 회장을 맡아 재기를 꿈꾸고 있다. 큰 아들 몽국씨는 94년 아버지가 동생을 그룹 후계자로 지목하자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한때 배달학원 이사장을 맡았으나 지금은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 부인 이광희씨는 배달학원 계열인 한라대 총장을 지내기도 했다. 현대시멘트·성우종합건설·성우리조트·현대종합금속 등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성우그룹은 둘째 동생 순영씨 일가가 이끌고 있다. 순영씨는 명예회장으로 물러앉고 2세 경영을 정착시켰다. 큰아들 몽선씨가 현대시멘트와 성우종합건설을, 둘째아들 몽석씨가 현대종합금속, 셋째아들 몽훈씨가 성우전자, 넷째아들 몽용씨가 성우오토모티브를 각각 맡고 있다. 몽선씨는 사촌인 정몽윤 현대해상 이사회 의장과 함께 정몽헌 회장의 부검을 임관하기도 했다. ●‘기계박사’가 일군 한국프랜지 자동차부품회사인 한국프랜지공업의 김영주 명예회장은 고 정주영 회장의 유일한 매제다. 정주영 회장은 ‘이 땅에 태어나서’라는 두 번째 자서전에서 “그가 다가가기만 해도 기계가 저절로 고쳐졌다.”며 매제를 ‘기계박사’라고 불렀다.1946년 정주영 회장이 미 군정에서 불하받은 토지에 ‘현대’(현대자동차공업사)라는 상호를 처음 내걸었을 때, 감격적으로 지켜본 이도 영주씨였다. 두 사람의 인연은 이로부터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인기직종이던 운전기사 출신의 영주씨는 황해도 홀동광산에서 역시 운수업을 하던 정주영 회장과 뜻이 맞아 사업을 같이 도모했고, 매제까지 됐다. 부인 정희영씨는 2001년 정주영 회장이 노환으로 세상을 떴을 때 “대통령 한번 못해보고… 우리 오빠 불쌍해서 어쩔거나.”하며 가장 서글프게 울었던 동생이다. 장남 윤수씨가 회사를 물려받아 한국프랜지공업 회장으로 있다. 둘째아들 근수씨는 독립해 울산화학·퍼스텍 등의 계열사를 거느린 후성그룹 회장을 맡고 있다. 윤수씨의 장남 용석씨가 프랜지공업 계열사인 서한산업(자동차부품회사) 대표이사 사장이어서 3세 경영체제를 갖춰 가고 있다. 둘째아들 용범씨는 이름을 용태로 바꿨다. ●‘포니 정’ 부자(父子)의 변신 ‘포니 정’이라는 별칭으로 유명한 넷째 동생 세영씨는 외아들 몽규씨와 함께 1999년 3월 현대그룹에서 독립해 건설시장에서 영역을 확실하게 굳혔다. 꼼꼼한 시공과 치밀한 분양으로 현대산업개발을 국내 도급순위 4위 업체로 키워놓았다.‘포니 정’이라는 별명은 1976년 누구나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국산 고유모델 자동차 1호 ‘포니’를 만들어낸 데서 붙여졌다. 이같은 열정과 헌신을 인정받아 87년 형에게서 현대그룹 회장직을 물려받기도 했다. 분가한 뒤로는 현대산업개발 경영에만 매달렸다. 몇 년 전 폐암수술을 받았지만 지난해 희수연을 치렀을 만큼 건강을 되찾았다. 회사 경영은 아들 몽규(회장)씨가 책임지고 있다. 지금의 서울 삼성동 사옥은 몽규씨가 직접 지었다. 지나칠 정도로 꼼꼼하다는 게 주위의 평가다. 현대가 맺은 최고위층 사돈도 세영씨 집안에서 나왔다. 큰딸 숙영씨가 노신영 전 국무총리의 장남 경수(서울대 교수)씨와 결혼한 것. ●“아… 신영아”-교통사고 아닌 병으로 요절 다섯째 동생 신영씨는 고 정주영 회장이 가장 자랑스러워했던 동생이다. 서울대를 나와 동아일보 기자로 있다가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함부르크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과정을 밟던 중 병으로 세상을 떠난 것이 1962년. 처음에 어떤 기자가 교통사고사로 쓰면서 오랜 세월 세상에 잘못 알려졌지만 정확한 사인은 지병이라고 유족은 본지에 밝혔다. 당시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잠시도 일에서 떠나본 적이 없는 정주영 회장이 일주일을 손놓았을 만큼 가족의 슬픔은 컸다. 서울대 음대 출신의 첼리스트였던 미망인 제수씨(장정자)에게 현대학원(현대고)을 경영토록 했다. 지금도 현대학원 이사장을 맡고 있는 장정자씨는 남북이산가족 상봉때 대한적십자사 부총재로 남한측 방문단장을 맡았었다. 장홍선 전 극동도시가스 회장의 누나다. 신영씨는 1남1녀를 두었다. 아들 몽혁씨는 32살의 젊은 나이에 현대정유(현 현대오일뱅크) 대표이사로 취임해 인천정유(구 한화에너지)를 인수하고 오일뱅크라는 브랜드를 만드는 등 두각을 드러냈다. 그러나 외자유치와 함께 2002년 전문경영인에서 물러나 그 해 건축자재 유통회사 ‘에이치애비뉴앤컴퍼니’를 설립해 돌아왔다. 부인 이문희씨는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은 동원 이홍근 선생의 손녀이다. 사업가이자 문화재 수집가였던 동원 선생은 평생 모은 문화재 4941점을 1980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딸 일경씨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블룸버그대학 회계학과 교수인 남편 임광수씨와 함께 미국에서 살고 있다. ●‘리틀 정주영’이 이끄는 KCC 막내동생인 상영씨는 ‘불에 타지 않는 바닥재’ 등으로 유명한 자재 전문그룹 KCC를 이끌고 있다. 불도저 같은 추진력과 성격 등이 고 정주영 회장을 가장 많이 닮아 ‘리틀 정주영’으로 불린다. 큰형과 나이 차이가 21살이나 나 아버지처럼 따랐다. 장조카 몽구씨와도 2살밖에 차이나지 않는다. 또 다른 조카인 고 정몽헌 회장이 자금난에 몰렸을 때 200억원을 선뜻 내놓았을 만큼 의리도 강하다. 그러나 조카의 죽음 이후 현정은 회장과 경영권 다툼을 벌이면서 다소 빛이 바랬다. 그룹 경영은 두 아들에게 맡긴 상태다. 큰아들 몽진씨가 대표이사 회장, 둘째아들 몽익씨가 대표이사 부사장이다. 셋째아들 몽열씨는 계열사인 금강종합건설 사장을 맡고 있다.KCC는 몽익씨를 통해 롯데·한진그룹과 사돈으로 연결된다. 몽익씨의 부인 은정씨가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외조카(신 회장의 여동생인 정숙씨의 딸)이다. 은정씨의 언니 은영씨는 한진해운 조수호 회장의 부인이다. 몽익씨와 조 회장이 동서지간인 셈이다. ●현대가의 여자들 현대가의 딸이나 며느리들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 이화여대(정경희-이양자-현정은-김혜영-정유희 등) 출신에 해외유학(김영명-정지선-황서림-허승원 등)까지 다녀온 재원들이 적지 않지만 경영에 참여하거나 대외활동에 나서는 사람이 거의 없다. 하다못해 남편을 따라 공식행사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도 드물다. 유일한 경영자인 현정은씨도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는 ‘전업주부’였다. 오너 일가를 가까이서 들여다본 한 관계자는 “지금도 명절 때면 청운동 집(정주영 회장이 생전에 오랫동안 살던 집)에 몇 대에 걸친 며느리들이 모두 모여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음식을 직접 장만한다.”면서 “옷차림들도 수수하고 인상이 소박해 언뜻 봐서는 재벌가 며느리란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한결같이 미인들이다. 어떤 이는 그 이유를 ‘유난히 많은 연애결혼’에서 찾는다. ●그룹분리 가속화시킨 ‘경영권 분쟁’ 2000년 ‘형제간 다툼’은 현대가를 정신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핵분열시킨 결정적 계기였다.99년 12월 마지막 날, 고 정몽헌(MH) 회장쪽 인사로 분류되던 박세용 당시 그룹 구조조정본부장이 정몽구(MK) 회장 계열의 현대차 회장으로 전격 발령나면서 시작된 형제간의 경영권 갈등은 그룹 후계자로 MH를 지목한 고 정주영 회장의 육성 테이프가 공개되기까지 석달여에 걸쳐 숨막히게 전개됐다. 효심이 남달랐던 MK는 아버지의 육성이 공개되자 깨끗이 승복하고 자동차 계열사를 이끌고 그룹에서 나왔다. 이 과정에서 아픔도 적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현대의 지배구조를 선진화시키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오는 21일 왕 회장의 4주기에 모처럼 형제들 모두가 함께 제사를 지낼 예정이다. 이날은 공식적으로 가족화합이 됐음을 안팎에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현대가에 정통한 소식통은 전했다. hyun@seoul.co.kr ■ 정주영 회장의 ‘빈대론’ 창업주인 고 정주영 회장은 ‘해당화가 찬란하고 눈(雪)이 많은’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에서 1915년 6남 2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죽어라고 일해도 콩죽을 면할 길이 없는 농군이 진절머리나게 싫고 지겨워”(첫번째 자서전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에서) 소학교를 졸업한 열네살 무렵부터 줄기차게 가출을 시도했다. 무작정 길을 나서 보기도 하고, 아버지의 소 판 돈을 훔쳐도 봤다. 그러기를 네번째. 열아홉살 마지막 가출에 성공해 인천부두 막노동꾼으로 새 삶을 시작했다. 한 푼이 아까워 몸을 기댔던 곳이 노동자 합숙소. 뼈가 으스러지는 중노동으로 누가 떠메고 가도 모를 만큼 고단했지만 좀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빈대들의 공격 때문이었다. 궁리 끝에 밥상 위에 올라가 잠을 잤다. 빈대들의 공격이 잠시 뜸해지는 듯싶었다. 하지만 이내 밥상다리를 타고 기어올라와 온 몸을 물어 뜯었다. 다시 머리를 써야 했다. 무릎을 탁 칠 만한 묘안이 떠올랐다. 밥상다리 네 개를 물 담은 양재기 넷에 하나씩 담근 뒤 그 위에 올라가 잔 것이다. 빈대를 밥상다리로 유도해 양재기 물에 익사시키자는 계략이었다. 쾌재를 부른 것도 이틀여. 빈대들은 또다시 물어뜯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떻게 양재기 물을 건넌 것일까. 자다 말고 벌떡 일어나 불을 켜본 젊은 정주영 회장은 기겁을 하고 말았다. 빈대들이 밥상다리 대신 벽을 타고 천장으로 올라가 사람을 겨냥해 뚝 떨어져 목적 달성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 역경에 부딪칠 때마다 정주영 회장은 ‘빈대의 노력’을 떠올렸다.“난관은 극복하라고 있는 것이지, 걸려 넘어지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든지 “빈대만도 못한 놈”이라는 단골 지청구는 모두 여기서 비롯됐다. 아무것도 없는 백사장(울산 염포리) 사진 한 장 달랑 들고 조선소 투자금액을 유치할 때나,20세기 최대 역사(役事)로 꼽히던 중동 주베일 공사 입찰전에 뛰어들 때나, 직원들이 불가능하다고 도리질칠 때면 “이봐, 해봤어?”라고 불호령을 쳤던 것도 빈대의 집요한 노력을 떠올리면서였다. “자본가가 아니라 부유한 노동자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정의했던 정주영 회장은 근검과 노력을 평생의 신조로 삼았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평등한 자본금” “한강에 기적은 없다. 성실하고 지혜로운 노동이 있을 뿐” “고선지부지설(苦蟬之不知雪;여름철 서늘한 나무 그늘에 앉아 노래만 하다 겨울이 오기 전에 없어지는 매미는 한겨울 펑펑 쏟아지는 눈을 알 수 없다)” ‘아산 정주영 어록’에 실려있는 그의 유명한 말들이다. hyun@seoul.co.kr ■ ‘현대家 대모’ 변중석 여사 열여섯살에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여섯살 연상의 고향총각 정주영에게 시집온 변중석씨는 현대가의 산 증인이다. 올해로 84세. 젊어서 남편이 사준 재봉틀 하나를 자신 소유의 유일한 재산으로 여기며 한결같은 근검과 후덕함으로 ‘현대가의 여자’라는 상징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고 정주영 회장이 매일 새벽 5시의 ‘밥상머리 교육’을 통해 동생들과 자식들에게 근검을 가르쳤다면, 변씨는 새벽 3시반부터 손아래 동서·며느리들과 아침 준비를 함께 하면서 “언제나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겸손하라.”고 일렀다. 가혹하리만치 자식 교육에 엄격했던 정주영 회장이 아이들을 자가용으로 등교시키는 며느리들을 보고 “젊었을 때 콩나물 버스에 시달려봐야 나중에 자가용을 샀을 때의 기쁨을 안다.”며 역정을 내자 “손주녀석들 키우는 문제에까지 시아버지가 잔소리를 할 거냐.”며 막아준 이도 변씨였다. 칭찬에 인색했던 정주영 회장도 아내를 가리켜 “늘 통바지 차림에 무뚝뚝하지만 60년을 한결같고 변함이 없어 존경한다.”고 자서전에서 고백했을 정도다.“아내를 보며 현명한 내조는 조용한 내조라는 생각을 굳혔다.”고도 했다. 그러나 자식을 먼저 땅에 묻는 참척의 고통과 여자로서의 마음고생을 거치면서 ‘살아있는 보살’도 탈이 났다. 거동이 불편해 10년 가까이 병원(현대아산병원) 생활을 하고 있다. 사실상 맏며느리인 이정화씨 등 며느리들이 틈날 때마다 병실을 들여다보고 있다. hyun@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스포츠 라운지] 프로배구 실업초청팀 한국전력 공정배 감독

    [스포츠 라운지] 프로배구 실업초청팀 한국전력 공정배 감독

    프로배구 V-리그 구미대회가 한창이던 지난 3일. 코트에 작은 반란이 일어났다. 만년 꼴찌이자 유일한 아마팀인 한국전력이 겨울리그 8연패에 빛나는 남자배구 최강 삼성화재를 혼쭐내고 있던 것. 초반 두 세트를 무기력하게 내준 한전은 다 진 경기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역전승 일보직전까지 몰고갔다. 결과는 2-3패. 그러나 한전은 창단 10년을 맞는 삼성화재와의 대결에서 사상 처음으로 두 세트를 빼앗는 ‘쾌거’를 일궈냈다. 반란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이틀 뒤에는 대한항공을 퍼펙트 세트스코어로 완파하며 당당히 ‘프로팀의 천적’으로 떠올랐고, 다른 팀 감독들로 하여금 “남의 일 같지 않다.”는 근심을 자아내게 했다. 서른 줄 노병들의 투혼과 막내들의 오기가 한데 뭉쳐진 결과였다. 그러나 예전 모래알 같던 이들을 한데 끌어모으고 투지를 북돋운 주인공은 털털한 ‘맏형’이나 다름없는 공정배(43) 감독이었다. ●“갈 곳 없는 사람 다 모여라.” 그는 ‘마이너리티’다. 만년 꼴찌에다 초청팀이라는 옹색한 명찰을 달고 프로배구 코트에 뛰어든 국내 유일의 남자 실업팀 감독. 게다가 선수 시절 국가대표 태극마크는커녕 중뿔난 성적 하나 없는 사령탑이다. 하지만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배구팀의 지휘봉을 8년이나 잡고 있다. 스스로를 ‘억세게 복도 많은 촌놈’이라고 깎아내리는 이유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흥부네 집’마냥 줄줄이 자신에게 매달려 있는, 친동생과도 같은 14명 선수들 때문이다.“이기는 경기보다 최선을 다하는 경기를 해 달라는 주문에 성실하게 답해주니 더 바랄 것이 없다.”고 털어놓는다. 지난 1945년 국내 최초의 실업배구팀으로 출발한 한국전력은 공기업이라는 이유 때문에 다른 팀들처럼 ‘돈질’로 선수를 끌어모으는 것은 엄두도 못낸다. 선수 수급도 ‘이삭줍기’나 다름없다. 팀 해체나 방출 등으로 갈 곳 없는 선수들을 끌어모으는 것이 고작. 하지만 공 감독은 굴러다니던 진주들을 하나씩 모아 보석목걸이를 만들었다. 한 때 둥지를 잃었던 이병희 한대섭(이상 전 고려증권)과 김상기 강성민(이상 전 시청), 올시즌 직전 샐러리캡의 희생양으로 삼성화재를 떠난 정평호와 김철수 차승훈 등 플레잉코치들까지 엮어 일약 ‘도깨비팀’으로 변모시켰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고아원 원장’이다. ●“승리는 예스, 악역은 노” 진주 동명고 2학년 때 본격적으로 배구공을 만지기 시작한 공 감독은 ‘대기만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창원대를 거쳐 1984년 한전 입사 이후에도 그의 포지션은 따로 없었다. 이른바 빈 자리 메우기 전문.‘한전맨’으로서 20년 넘게 한 자리를 묵묵히 지켜온 자존심이 그의 유일한 재산이다. 그러나 팀의 사령탑으로서 승리에 목마르기는 다른 감독들과 마찬가지. 그의 올시즌 목표는 소박하게도 4강 진입에 꼭 필요한 단 5승이다. 지난 5일 4연패 끝에 꿈 같은 첫 승을 올려 ‘시작이 반’임을 실감한 공 감독이지만 속은 개운치 않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악역’을 짊어졌기 때문.10일 대한항공 차주현 감독은 최근 성적 부진에 따른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이전부터 퇴진설이 설왕설래했지만 5일 한전과의 경기 패배가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 지난해 2월 V-투어 때에도 공 감독은 ‘장신군단’ LG화재를 꺾는 돌풍을 일으키며 당시 노진수(현 베이징시 남자대표팀) 감독 퇴진에 방아쇠 역할을 한 장본인이 돼버렸다. 그는 “승수는 쌓아야 하는데 또 악역을 맡게 될지 걱정”이라면서 “더 이상 한전이 상대팀 성적의 잣대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글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걸어온 길 ●1962년 경남 진주 출생 ●고교 2년 때부터 배구 시작 ●186㎝,92㎏, 혈액형 A ●진주 남산초-반성중-동명고-창원대 ●부인 이희경(교사)씨와 1남1녀 ●1984∼92년 한국전력 선수 1993∼96년 〃 주무 1996∼98년 〃 코치 1998∼현재 〃 감독
  • 기아車 노조지부장 1억8000만원 수뢰확인

    기아車 노조지부장 1억8000만원 수뢰확인

    검찰은 24일 출두한 기아차 노조 광주지부장 정모(44)씨를 상대로 인사비리 규모와 노·사측의 개입 여부 등을 캐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 인사비리가 정씨의 단독범행이 아닌 광주지부나 노조본부의 관련 여부가 드러날 경우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광주지검 수사전담반(반장 이광형 형사2부장)은 이날 “기아차 광주지부장 정 모씨의 금융계좌뿐만 아니라 관련 혐의가 있는 노·사에 대해서도 원칙대로 조사한다.”고 수사 원칙을 밝혔다. 검찰은 광명 소하리 노조본부 간부들에 대해서도 참고인 조사를 하고 있다고 밝혀 정 지부장과의 인사비리 관련성 혐의가 드러날지 주목된다. 또한 2002년 이후 광주공장 생산계약직원들의 입사경위에 대해서도 관련서류를 확인중이다. ●광주시 고위관계자도 청탁의혹 검찰은 “정씨가 지난해 기아차 광주공장 생산계약직 채용 때 입사희망자 부모 등 8명으로부터 현금 1억 8000만원을 직접 받아 친동생에게 건네줬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밤늦게 정씨에 대해 근로기준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지난해 광주공장에 생산계약직으로 들어온 김모(32)씨는 이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5월 노조 광주지부 간부의 조카에게 1300만원을 줬다고 털어놨다. 이 같은 발언은 광주지부 노조간부들의 인사비리 개입설을 방증하는 것이어서 수사 확대가 불가피해졌다. 광주시 고위 관계자가 청탁을 받고 근로자 2명을 기아차 광주공장에 취직시켜 줬다는 일부의 진술에 대해, 광주시 관계자는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 한편 부산지검 동부지청 형사3부는 이날 돈을 받고 다른 사업장에 노무원 등으로 취업시켜 준 부산항운노조 모 냉동창고 반장 정모(49)씨를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현대차도 채용비리 의혹 기아차 채용비리 불똥이 울산의 현대자동차로 튀는 분위기다. 이 회사 노동조합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지난 23일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지난해 봄 현대차에서는 노조간부와 회사 인사담당, 브로커가 50여명의 신입사원으로부터 3000만원씩 15억원을 받았다.”는 글이 올랐다. 또 ‘평조합원’은 “한 사람 입사시키는데 3000만원이 든다는 게 사실이다.”라고 적었다. 이에 대해 노·사는 모두 근거없는 유언비어라고 일축했다. 부산 김정한·광주 남기창·울산 강원식기자 jhkim@seoul.co.kr
  • “기아車 채용추천 정치권등에 할당했다”

    기아차 광주공장 노조지부장이 생산계약직원 채용을 미끼로 억대의 금품을 받은 것으로 23일 확인되면서 검찰수사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광주지검은 이날 기아차 노조 광주지부장 정모(44)씨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신병확보에 나섰다. 이처럼 노조지부장의 금품수수설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계약직원 30%의 추천권을 갖고 있는 기아차 노조에 대한 전면수사가 불가피해 졌다. 또 당시 인사선상에 있던 회사 임직원들의 재소환 조사가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정치권과 회사와 관련 있는 기관이나 단체 등 외부 몫으로도 20%가량을 할당했다는 진술이 나와 사실 여부를 확인 중이다. 광주공장 노조지부장 정씨는 22일 기아차 노조 박홍귀 위원장을 만나 “지난해 광주공장 생산계약직원 채용 때 취업 희망자 부모와 지인 등 청탁자 6∼7명으로부터 1억 8000여만원을 사례비로 받았다.”고 실토했다. 정씨는 “취업 희망자 부모가 찾아와 2시간여 동안 무릎을 꿇고 청탁을 했고 신문지로 싼 돈다발을 놓고 가 어쩔 수 없이 받았으며 이 같은 일이 반복되면서 도덕적 불감증에 빠졌다.”고 말했다. 광주지검은 23일 정씨에게 채용 대가로 금품을 건넨 광주공장 생산직원 4명으로부터 “친지를 통해 금품을 제공했다.”는 진술을 확보했고 노조간부의 친동생인 K씨가 근무하고 있는 사실도 확인했다. 이에 따라 정씨 이외에도 다른 노조간부들이 금품을 받거나 친·인척을 입사시키기 위해 회사측과 거래를 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앞서 검찰은 이미 기아차 광주공장의 전 임직원 6명을 참고인 자격으로 소환해 노조가 행사한 추천권 범위 등을 확인했다. 특히 기아차 노조는 2003년 10월 회사측에 인사청탁 근절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내고, 노조 대의원대회에서 노조 추천에 의한 입사 청탁금지를 결의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더해주고 있다. 이와 함께 검찰은 현대차그룹 감사팀이 지난해 광주공장 채용비리설에 따라 자체 조사한 관련 자료 일체를 넘겨 받아 확인작업에 들어갔다. 한편 기아차는 검찰조사와는 별도로 자체 감사에서 채용과정의 비위 사실이 적발되는 임직원도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사규에 따라 중징계키로 했다. 광주 남기창 박경호 서울 김경두기자 cbchoi@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성그룹 ③-삼성전자를 이끄는 CEO들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성그룹 ③-삼성전자를 이끄는 CEO들

    삼성전자의 지난 2004년 연간 매출은 57조 6324억원, 영업이익 12조 169억원, 순이익은 10조 7867억원으로(103억달러) 1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순수 제조업체로는 도요타에 이어 두번째다. 일본의 요미우리(讀賣)신문,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 등은 삼성전자의 실적을 경제면 머리기사와 사설 등으로 취급하며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삼성전자의 지난해 이익은 마쓰시타(松下)전기, 히타치(日立),NEC, 도시바(東芝), 후지쓰(富士通), 미쓰비시(三菱), 오키(沖)전기 등 일본 10대 메이커의 지난해 순이익 합계 5370억엔(약 5조 3700억원)의 2배에 달하는 것이었다. ●이병철 회장,37년전 “전자사업하겠다” 삼성전자의 이같은 고속 성장은 69년 전자업계의 후발주자로 출발할 당시 ‘중복투자’ 등의 비난에 휘말렸던 것에 비하면 격세지감이다. 고 이병철 회장은 68년 사돈인 고 구인회 LG회장(이 회장의 차녀 숙희씨가 구 회장의 삼남 자학씨의 부인)과 안양골프장에서 라운딩 도중 전자사업 진출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68년 12월30일 창립 발기인은 조우동 동방생명 사장, 손영기(이병철 회장 장남 맹희씨의 장인)안국화재 사장, 이병철 회장, 정상희(이병철 회장 5녀인 이명희 신세계 회장의 시아버지)씨, 이맹희(당시 삼성물산 부사장)씨, 김재명(삼성 창업공신으로 이후 동서식품을 설립, 당시 제일제당 사장)씨, 정수창(당시 삼성물산 사장)씨였다. ●윤종용 부회장,“초밥이든 휴대전화든 속도가 생명” 삼성전자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삼성전자의 주요 경영진들에 대한 관심도 점점 커지고 있다. 96년말부터 9년째 삼성전자를 이끌고 있는 윤종용(61) 부회장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하다. 그동안 숱한 상을 받았던 윤 부회장은 올 초에도 비즈니스위크가 선정한 세계 최고경영자상을 받았다. 그것도 한번이 아니라 2004년에 이어 두번째 선정(Repeat Perfomer)으로 조 후지 도요타 사장, 스티브 잡스 애플컴퓨터 사장, 카를로스 곤 니산 회장 등이 윤 부회장과 함께 연속 선정됐다. 경북 영천 출신으로 경북사대부고와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66년 삼성에 입사했다. 윤 부회장은 상무시절인 80년대 중반 잠시 네덜란드 필립스 본사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지만 이건희 회장의 부름을 받고 88년 삼성으로 돌아왔다.VCR와 DVD를 더해 빅 히트를 친 ‘콤보’제품을 탄생시킨 주역이다. 윤 부회장은 오늘날 삼성전자를 대표하는 반도체나, 휴대전화 등을 한번도 맡아본 적 없고 가전부문에서 잔뼈가 굵었다. 스스로도 “나는 비전문가요 ‘사이비’”라고 털어놓은 적도 있다. 하지만 98년 7월 한달에만 무려 1700억원의 적자를 냈던 삼성전자를 오늘날 10조원대 이익을 내는 회사로 만든 데 윤 부회장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윤 부회장은 컬러TV의 재고를 줄이기 위해 수없이 공장 가동을 중단시키던 삼성전자의 고질적인 문제를 과감히 혁파했다.97년말 8조 7000억원에 달하던 재고와 채권을 99년말 5조 2000억원으로 40%나 줄인 것이다.97년 국내 5만 8000명, 해외 2만 5000명이었던 인력은 각각 30%(1만 7400명),40%(1만명)나 회사를 떠나야 했다.120개가 넘는 사업과 제품을 매각하거나, 철수, 분사, 합작했다. 그래서 ‘진정한 혁신가’,‘기술 마법사’ 등 그에게 따라다니는 수많은 별명 가운데서도 ‘구조조정의 달인’을 빼놓을 수 없다. 지난해 삼성전자 주주총회때 회의 진행을 방해하는 참여연대 관계자들에게 “당신 주식 몇 주나 가졌어? 나도 주주야.”라며 호통을 칠 정도로 솔직하고 거침없는 화법으로 유명하다. 강한 경상도 사투리 억양까지 겹쳐 투박하게 들리지만 간결하다. 윤 부회장을 대표하는 경영 키워드는 ‘스피드’인데 그는 “초밥이든 휴대전화든 모든 부패하기 쉬운 것은 속도가 생명이다.”는 말로 핵심을 잘 설명한다. 스피드에 대한 윤 부회장의 애착은 “돌다리를 두드려 보고도 남이 건너간 뒤에야 건넌다.”던 이병철 회장과 달리 “돌다리가 아니라 흙다리라도 있으면 건넌다.”는 지론에서 잘 드러난다. 윤 부회장은 “우리는 지금 초일류로 가느냐, 추락하느냐의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며 직원들을 다그치는 등 기회 있을 때마다 ‘위기’를 강조한다.1993년 3월 이건희 회장의 제2창업 5주년 기념식사인 “21세기를 앞두고 남은 7년은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살아남느냐 주저앉고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결단의 순간이 될 것이다.”란 말에서 모티브를 빌려 왔다. 이 회장의 ‘선문답’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는 윤 부회장다운 벤치마킹이다. 아들 태영(31)씨는 탤런트로 활동 중이다. ●황창규 사장, ‘황의 법칙’은 계속된다 경북 월성 출생으로 경북고와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마친 이윤우(59) 부회장은 기흥공장장으로 일하던 80년대 중반 일본업체의 덤핑공세와 반도체 경기침체기에도 과감하게 256KD램과 1메가D램 양산 체제를 갖춰 삼성반도체의 신화를 이뤄냈다.68년 삼성전관(삼성SDI)으로 입사했다가 76년 삼성반도체 생산과장으로 반도체와 인연을 맺었다. 지난해 황창규 사장에게 반도체총괄사장 자리를 물려주고 신설된 대외협력담당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올해 인사에서는 삼성전자 기술총괄(CTO)을 맡았다. 삼성 기술의 총아인 삼성종합기술원도 관장한다. 최형인(56) 한양대 연극영화과 교수가 부인이다. 황창규(52) 반도체총괄 사장은 아직 50대 초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삼성전자 대표 사장으로 거론된다. 황 사장이 총괄사장을 맡은 지난해 삼성반도체는 매출 18조 2200억원, 영업이익 7조 4800억원으로 41%라는 기록적인 영업이익률을 달성했다. 삼성전자 전체 이익의 62%가 반도체의 몫이었다. 16메가D램 개발팀장을 맡았고 세계최초로 256메가D램 개발에 성공하는 등 탁월한 연구개발 능력에 언변까지 화려하다. 엔지니어 출신 사장들이 커뮤니케이션에 약한 것과 대조된다. 딱딱한 주제인 반도체로 강연을 하면서도 5분 간격으로 수강생들의 웃음보를 터뜨릴 정도로 센스가 좋다. 삼성전자 사장 출신인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과 마찬가지로 핵심을 정리하는 브리핑 능력도 탁월한 것으로 알려졌다.2001년 당시 난드플래시의 강자였던 도시바가 전략적 제휴를 제의해 온 것에 대해 그룹의 의견이 반반으로 갈리자 이건희 회장에게 반대 논리를 펼쳐 결국 제휴를 무마시켰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난드플래시 세계 점유율 65%로 독보적인 1위를 달렸다. 부산 출생으로 부산고와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매사추세츠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반도체의 집적도는 1년반 만에 2배로 증가한다.”는 인텔 창업자 고든 무어의 법칙을 깬 ‘황의 법칙’(반도체의 집적도는 1년에 2배씩 증가한다)으로도 유명하다. ●이기태 사장, 승부욕이 휴대전화 성공신화로 이기태(57) 정보통신총괄 사장은 세계에서 가장 감각적인 디자인을 자랑하는 삼성 휴대전화를 책임지는 사령관답지 않게 ‘불도저’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휴대전화를 벽에 집어 던져 삼성 제품의 튼튼함을 확인시키는 것으로 해외 바이어와의 협상을 시작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95년 3월 구미사업장에서 벌어진 무선전화, 팩시밀리 등 15만대의 ‘불량제품 화형식’을 지켜보면서 다져진 오기 덕분이다. 대전 출생으로 보문고와 인하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했다.73년 삼성전자 라디오과에 입사한 뒤 줄곧 제조쪽에서 일하다가 90년 화상무선기기사업부로 옮기면서 휴대전화와 인연을 맺었다. 승부욕 강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며 사표도 두어차례 냈지만 이건희 회장의 돈독한 신임을 받고 있다. 선비 같은 용모의 최지성(54) 디지털미디어총괄 사장은 강원도 삼척 태생으로 서울고와 서울대 무역학과를 거쳐 77년 삼성물산에 입사했다.85∼91년 반도체 구주법인장을 지냈는데 당시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던 삼성반도체를 ‘007가방’에 가득 싣고 험한 알프스 산맥을 자가 운전으로 넘어 다니며 애걸하다시피 영업을 했다고 한다. 삼성전자 사장단 가운데 유일하게 비서실에서 2차례(81∼85년,93∼94년) 근무해 시야가 넓은 편이다. 이상완(55) LCD총괄 사장은 서울고와 한양대 전자공학과를 마치고 76년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반도체분야에서 생산기술·마케팅 등을 담당하다가 93년 걸음마를 뗀 LCD사업을 맡았다. 초창기 아직 세계적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던 삼성 LCD를 팔기 위해 도시바, 소니, 미쓰비시 등 일본업체들을 일일이 직접 만나는 등 개발부터 판매, 품질까지 책임진 ‘톱 세일즈’로 유명하다. 천안공장, 세계 최대 LCD단지인 충남 아산 탕정공장 준공 등으로 LCD사업을 삼성전자의 ‘수종사업’으로 키워 놓았다. 경쟁사 대표의 ‘배신자’라는 비난에 유난히 속상해 하는 등 자부심이 대단하다. 이상운(53) ㈜효성 사장이 친동생이다. 지난해 윤종용 부회장이 직접 맡았던 생활가전총괄 사장으로 최근 부임한 이현봉(56) 사장은 경남 함안출생으로 진주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마치고 76년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이상현 전 삼성전자 중국본사 사장, 제진훈 제일모직 사장, 박양규 삼성네트웍스 사장의 진주고 1년 후배다. 인사부장, 인사팀장 등 주로 인사부문에서 일한 때문인지 중앙인사위원회 자문위원, 중앙노동위원회 사용자 위원 등 외부활동이 많았다.2001년부터 2년간 국내영업사업부장을 맡으며 까다롭기로 유명한 내수시장 공략에 공을 들여왔다. ●최도석 사장, ‘안방살림’ 꼼꼼히 챙겨 인사, 재무, 기획, 홍보 등 스태프 기능을 총괄하는 최도석(56) 경영총괄 사장(CFO)은 마산고와 연세대 경영학과를 마치고 75년 삼성 재무인력의 양성소인 제일모직 경리과로 입사했다. 이학수 부회장이 당시 관리본부장이었다.80년 삼성전자로 옮긴 뒤에도 줄곧 경리·관리·재경·경영지원 등 ‘안방살림’을 도맡아 왔다. 삼성 사장단 가운데 가장 술이 셀 정도로 화통한 스타일이지만 연 매출 70조원(연결기준)이 넘는 회사의 재무를 총괄하고 있는 만큼 일에 있어서는 누구보다도 꼼꼼한 편이다. 삼성은 전자-SDI-전기-코닝-코닝정밀유리-테크윈으로 이어지는 ‘전자소그룹’을 유지하고 있다. 전자소그룹의 지난해 본사 매출(코닝·코닝정밀유리는 2003년)은 무려 69조 8897억원, 순이익은 11조 9618억원원에 달했다. 전자를 제외하고 가장 중량감 있는 CEO는 삼성SDI 김순택(56) 사장이다. 72년 그룹 공채로 입사해 제일합섬 소속으로 회장 비서실에서 주로 일했다.92∼94년 삼성전관 기획관리본부장을 지낸 인연으로 96년말 비서실을 떠나 삼성전관에 둥지를 틀었다.2000년부터 5년째 삼성SDI 대표이사를 맡으며 사업구조를 브라운관에서 PDP,OLED,2차전지, 모바일LCD 등으로 바꿔놓았다. ●김순택 사장, 작년 해외출장 거리만 27만㎞ 무슨일이 있어도 신입사원 교육에는 빠지지 않는 데다 신입사원이 부서에 배치된 후에는 직접 이메일을 보내 안부를 묻는다.“기업의 가장 위대한 자산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매년 110일 이상을 현장에서 보낸다. 중국, 말레이시아, 독일, 헝가리, 멕시코, 브라질의 10개 공장을 방문한 지난해 해외 출장거리가 27만㎞에 달했다. 삼성전기 강호문(55) 사장은 경기 부천 출생으로 서울고와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했다. 이석재(57) 삼성코닝정밀유리 사장이 전기공학과 68학번 동기다. 황창규 사장은 72학번, 권오현 사장(시스템LSI사업부장)은 71학번이다. 첫 사회생활은 금성전선에서 출발했지만 곧바로 삼성전자로 옮겨와 반도체, 컴퓨터, 네트워크 등을 담당했다.2002년부터 삼성전기 사장을 맡으며 삼성전기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큰 키(180㎝)에 미소가 인상적이다. 성균관대 예술학부장인 임학선(55) 교수가 부인이다. 브라운관 유리를 생산하는 삼성코닝은 충북 보은 출생으로 용산고와 성균관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송용로(60)사장이, 세계 최대 LCD유리기판 업체인 삼성코닝정밀유리는 이석재 사장이 맡고 있다. 디지털카메라와 항공기 엔진 등을 담당하는 삼성테크윈은 삼성물산·영상사업단·삼성생명 대표를 역임한 이중구(59) 사장이 책임지고 있다. 삼성그룹의 ‘IT축’인 삼성SDS 김인(56) 사장은 경남 창녕, 대구고와 고려대 경영학과 출신으로 그룹 비서실 인사팀장, 호텔신라 총지배인 등을 역임했다. 네트워크, 인터넷전화·국제전화 등을 영위하는 삼성네트워크 박양규(57) 사장은 삼성SDS, 삼성자동차의 설립 작업에 관여했다. ukelvin@seoul.co.kr ■ 삼성반도체 ‘30년 비화’ 삼성은 지난해 12월6일 반도체사업 30주년 기념식을 갖고 2010년까지 25조원을 투자해 누적매출 200조원, 신규 일자리 1만개를 창출키로 했다.12월6일은 이건희 회장이 1974년 사비를 들여 한국반도체 지분 50%를 인수한 날이다. 삼성전자뿐 아니라 한국경제를 먹여 살린다는 평을 받는 반도체지만 출발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본지가 입수한 1992년 삼성그룹 비서실의 보고서 ‘삼성의 반도체 사업’에 따르면 사업 초기 삼성은 기술확보에 애를 먹다 해외업체에 지분을 양보하고서라도 기술을 도입하려 했었다. 이 보고서는 91년 4월 반도체 사업의 어제와 오늘, 문제점 등을 파악하라는 이건희 회장의 지시에 의해 작성됐다. 삼성반도체의 시련은 고 이병철 회장이 일본 NEC의 고바야시 사장을 초빙, 기술지원을 요청했지만 76년 방한한 NEC 엔지니어들이 기술이전을 기피하면서 시작됐다. 선진국과의 기술격차 등으로 반도체가 적자를 면치 못하자 이번에는 이건희(당시 부회장)회장이 미 페어차일드 본사를 수차례 직접 방문, 기술이전을 요청했고 마침내 승낙을 받아냈다. 페어차일드의 요구조건은 삼성반도체 지분의 30%를 내놓으라는 것. 이 회장은 지분을 양보하더라도 기술 이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지만 협상을 위해 미국에 파견된 이모 상무 등 실무진은 “삼성의 기술수준으로는 신기술(당시 페어차일드는 64KD램 개발에 성공)에 도전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려 기술도입이 좌절됐다.79년 더 이상 반도체사업을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한 이병철 회장은 당시 가전·TV생산담당이었던 김광호(이후 삼성전자 회장을 역임)이사를 반도체로 보내 사업정상화 특명을 내렸다. 당시 강진구 반도체사장은 직원들에게 김 이사를 소개하면서 “만약 김 이사로도 삼성반도체를 살리지 못한다면 더 이상 반도체사업을 계속할 수 없다.”며 배수진을 쳤다. 강진구 회장은 삼성전자 사장(73∼82년), 삼성전자 회장(88∼92년,93∼98년)은 물론 한국반도체 사장(75∼79년), 삼성반도체통신 사장(81∼88년), 삼성GTE통신 사장(77∼80년) 등을 역임하며 오늘날 삼성전자가 있기까지 많은 공헌을 했다. 김 이사는 대방동과 부천으로 나눠졌던 공장을 부천으로 통합하고 80년말 삼성반도체를 삼성전자에 인수합병시키는 한편 홍콩 시계칩 시장을 집중공략, 전세계 시계칩 시장의 50%를 차지하던 홍콩 시장 점유율을 60%로 끌어 올리며 흑자회사로 변신시켰다. 82년 2월8일 유명한 ‘도쿄선언’으로 반도체 사업 본격화를 선언한 이병철 회장은 부천공장을 대체할 대규모 반도체공장 부지를 물색했는데 후보지로 수원, 신갈저수지 부근, 관악골프장 부근, 판교 부근, 기흥이 선정됐다. 국내외 지질·수질 전문가들과 이 회장이 직접 헬기를 타고 조사한 끝에 12월18일 기흥지역이 최종 낙점됐다. 하지만 당시 기흥은 절대농지에다 산림보존지역으로 공장 설립이 불가능했다. 이에 이 회장과 내무부장관을 역임했던 최치환 반도체부문 사장 등이 정부를 끈질기게 설득,1차로 10만평에 대한 허가를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수도권 공장 억제 정책과 땅값 문제 등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의 고민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4월 재보선 전망도] 수도권 4곳 유력… 후보 ‘난립’

    [4월 재보선 전망도] 수도권 4곳 유력… 후보 ‘난립’

    4·30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금배지를 향해 뛰는 예비 후보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19일 현재 선거 실시가 확정된 곳은 열린우리당 이상락 전 의원의 지역구인 경기도 성남 중원 한 곳뿐이지만 2심에서 당선무효에 해당하는 형을 받고 대법원 확정판결을 남겨두고 있는 현역의원 8명의 지역구가 유력한 재선거 대상지역이다. 열린우리당은 서울 성북갑(신계륜), 경기 부천원미갑(김기석)과 포천·연천(이철우), 충청 공주·연기(오시덕)와 아산(복기왕), 경남 김해 갑(김맹곤) 등 6곳, 한나라당은 경북 영천(이덕모) 1곳, 민주노동당도 경남 창원을(권영길) 1곳이다. 이밖에 1∼2심에서 당선무효형량을 선고받은 의정부을(열린우리당 강성종), 익산시갑(열린우리당 한병도)도 눈여겨봐야 할 지역이다. 선거법상 3월31일 전까지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으면 선거가 치러진다. ●중부권은 후보 난립 재·보선이 확정된 경기 성남 중원 지역의 경우 우리당 정소앙씨, 한나라당 이윤희(국회의원 비서관 출신)씨, 신상진(대한의협회장 출신)씨, 민주당 김태식 전 의원, 민주노동당 정형주씨, 무소속 양동기씨 등 6명이 예비 후보자로 등록했다. 우리당 조성준 전 의원, 장전형 민주당 대변인 등 3∼4명도 공천경쟁에 뛰어들 것으로 보인다. 강성종 의원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의정부을 지역구의 경우 한나라당에서 홍문종 전 의원, 정승우 전 경기행정 2부지사(현 경기도체육회 사무처장) 등의 출마가 점쳐진다. 열린우리당에선 손광운 변호사, 민노당에선 목영대씨의 출마가 예상된다. 연천·포천은 이철우 의원이 의원직을 잃으면 한나라당으로 출마했던 고조흥 변호사의 재출마가 점쳐진다. 장명재 한국 디지털정치학회 정책실장, 회계사인 차상규씨도 뛰고 있다.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형을 받고 2심에서 항소기각된 열린우리당 김기석 의원의 부천 원미갑은 열린우리당의 경우 신철영 전 경실련 사무총장, 김경협 전 부천노총 의장, 이평수 열린우리당 부대변인, 원종섭 전 제일제당 사장 등이 경선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에서는 지난 총선에 출마했던 임해규씨, 정수천 전 경기도의원 등의 지역인사와 함께 조명구 전 한국일보 논설위원도 거론되고 있다. 민주당에서는 4선의 안동선 전 의원이 출마의사를 밝힌 가운데 추미애 전 대표와 김경재·함승희 전 의원 등의 이름도 오르내린다. ●충남, 자민련 바람불까 2심에서 1500만원 벌금형을 선고받은 열린우리당 오시덕 의원의 충남 공주·연기에선 한나라당 박상일씨가, 자민련 정진석 전 의원이 다시 나설 것으로 보인다. 공주시장에 당선됐다가 선거법 위반으로 중도하차한 윤완중씨도 출마를 검토중이라는 소문이다. 역시 2심에서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은 열린우리당 복기왕 의원의 아산에선 이진구씨와 서울지하철공사 간부인 김기천씨가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자민련으로 나와 복 의원에게 근소한 차이로 떨어진 이명수 건양대 부총장이 재도전할지도 관심거리다. 충남지역은 수도이전 무산으로 프리미엄이 사라진 열린우리당의 틈바구니를 자민련이 노리고 있다. ●대구·경북은 그래도 한나라당 2심에서 당선 무효형인 벌금 1500만원을 선고받은 한나라당 이덕모 의원의 선거구인 경북 영천에서는 10여명의 예비후보들이 자천타천으로 거론되고 있으며, 이중 일부는 지난해 말부터 지역에 상주하면서 표밭갈이를 하고 있다.‘한나라당 공천=당선’이라는 지역정서 탓에 한나라당 공천 경쟁이 치열하다. 최기문 전 경찰청장을 비롯해 권순대 전 인도대사, 이덕모 의원의 친동생인 이창주 콜스톤 투자은행 한국대표 등이 유력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경남·전북지역 지난 94년 민주노총위원장 재직시 제3자개입 혐의로 1심에서 징역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민노당 권영길 의원의 창원을에선 이주영 전 의원 등이 움직이고 있다. 벌금 300만원 형을 선고받고 2심에서 항소기각판결을 받은 열린우리당 김맹곤 의원의 경남 김해에선 김정권 도의원, 송은복 김해시장이 꼽히고 있다. 2심에서 상실형을 선고받은 한병도 의원의 전북 익산갑의 경우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싸움. 민주당 이협 전 의원이 유력후보로 거론되고 열린우리당에는 강익현 전 도의원이 도전장을 낼 예정이다. 지역종합
  • [우영희의 출동!요리구조대] 닭강정

    [우영희의 출동!요리구조대] 닭강정

    저는 결혼한 지 2년된 주부입니다. 시댁식구는 낯설다지만 전 손윗동서인 형님덕분에 결혼생활에 어렵지 않게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추석때는 형님이 서울에 남아 추석준비를 하셨고, 전 경북 포항의 친정에 다녀올 수도 있었습니다. 모두 형님의 배려덕분이었지요. 평소에도 저를 친동생처럼 챙겨주시는 형님에게 좋은 선물을 하고 싶습니다. 마침 다음달에 아주버님 생신이 돌아옵니다. 그때에 맞춰 맛있는 요리를 직접 만들어 드리면 좋을 것같아요. 두 분은 닭요리를 무척 좋아하십니다. 선생님, 도와주세요! -신림동에서 임정아 올림. “임정아 주부님의 사연이 너무 예뻐서 찾아왔어요. 부모님이나 남편이 아니라 형님을 위해서 요리를 만들고 싶으시다구요?” 우영희씨는 감탄의 말을 건넸다. “형님이 저를 엄청 챙겨주시거든요. 닭요리를 좋아하시는데 음식으로 감사의 마음이 전해질까요?” 정아씨의 얼굴엔 함박웃음이 피었다. “쉬우면서도 화려한 요리로 닭강정이 좋아요. 아이와 어른들 모두 잘 먹거든요. 우선 카레와 녹말가루를 1:1의 비율로 섞는 것이 제일 중요해요.” “카레를 넣어요? 처음 듣는데….” 정아씨는 ‘초보’주부의 티를 냈다. “카레는 닭 특유의 누린내를 없애지요. 또 닭고기와 궁합이 잘 맞아요.” 우씨의 자세한 답변이다.“어른들은 카레맛 중에서도 매운 맛을 좋아하지요.” “선생님이 텔레비전에서 튀김 요리를 할 때 녹말가루로 옷을 입히시던데, 튀김가루보다 더 좋은가요?” 열혈 팬으로 자처하는 정아씨의 질문이다. “튀김가루는 첨가물이 들어 있어 열에 쉽게 타는 반면 녹말가루는 열에 강해 쉽게 타지 않아요. 카레 가루도 쉽게 타기 때문에 녹말가루를 섞어 써야된답니다.” 성급한 정아씨,“아하! 이젠 튀기기만 하면 되겠네요.” “바로 튀기면 가루가 떨어지기 때문에 5분 정도 두었다가 튀기는 것이 더 좋아요. 한 10분 정도 노릇하게 튀겨내면 맛이 기가 막히답니다.” 기름보다 튀김양이 많으면 튀김이 눅눅해지기 때문에 작은 냄비에서 튀길 땐 나눠서 튀기는 것이 좋다는 게 우씨의 설명이다. 닭튀김을 호호 불며 맛보던 정아씨. “그냥 먹어도 너무 맛있어요. 선생님의 소스는 쉬워보이던데요.” “요리가 어려우면 안돼요. 쉬워야 누구나 하지요. 소스는 비율이 정말 중요해요. 다진 양파와 마늘·생강을 함께 넣고 기름에 볶으세요.” 우씨의 요리 소신을 내비쳤다.“양파의 매운 맛이 단 맛으로 바뀌는 순간이 올거예요. 그때까지 볶으세요.” 우씨는 그릇에 간장·고추장·설탕·케첩·물엿을 부어 섞었다.“저을 필요는 없어요. 기름에 넣으면 자연스럽게 녹거든요.” 그리고 소스 팬에다 튀긴 닭봉을 넣었다.“닭을 넣으면 바로 불을 꺼야 해요.” 우씨의 마지막 주문이었다. 닭강정 하나를 맛보던 정아씨. “어머 맵지도 않고 너무 맛있네요, 은채야∼.”라며 딸을 불러 닭강정을 먹였다. 감사의 표현으로 닭강정 요리를 아주버님 생신상에 올리겠다는 정아씨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 닭 강 정 재료 닭봉 400g(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녹말가루 2큰술과 카레가루 1큰술에 버무려 놓는다),소스(간장·다진 양파·다진 마늘 ½큰술씩, 고추장·케첩 1큰술씩, 설탕·물엿 2큰술씩, 다진 생강 ½작은술), 식용유 적당량 1. 카레와 녹말가루에 버무려 놓은 닭을 170도에서 5∼7분간 튀겨낸다. 2. 팬을 준비하여 소스양념을 넣고 끓으면(1분 정도) 튀겨낸 닭을 넣고 잘 버무려낸다. 3. 카레는 고기의 비린 맛을 제거하고 향이 은은하게 나서 감칠맛을 더 한다. 팁 - 카레는 고기의 비린 맛을 제거하고 향이 은은하게 나서 감칠맛을 더 한다. ●푸드채널 ‘우영희의 아름부엌’에서 복습하세요.1월24일 오전 10시20분 방송됩니다.
  • YS비서관 출신 3選 중진

    ●김무성(53) 신임 사무총장 김영삼 전 대통령 비서관 출신으로 부산에서 3선을 기록한 중진. 전방 명예회장인 김창성씨와 현정은 현대 회장의 모친인 김문희씨의 친동생. 포용력과 친화력을 겸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부인 최양옥(47)씨와 1남 2녀.▲포항 태생▲한양대 경영학과▲대통령 민정·사정 1 비서관▲15·16·17대 의원 ▲국회 재경위원장
  • [재계 인사이드] 재벌 2·3세 ‘경영일선으로’

    재벌총수의 2·3세들이 연말연시 인사철을 맞아 속속 경영 전면에 포진하고 있다. 대학교수를 그만두고 경영에 합류하는가 하면 몇년간의 공백끝에 복귀하거나 초고속 승진을 하고 있다. 나름대로 전문지식과 경험을 쌓은 이도 적지 않지만, 무책임한 ‘경영권 상습’이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때마침 공정거래위원회의 재벌 친인척 ‘지분 족보’가 공개돼 이같은 논란이 당분간 가열될 전망이다.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장남 이맹희씨의 큰딸인 이미경(46)씨는 27일 부회장 직함을 달고 CJ그룹에 전격 승진했다. 공식직함은 CJ엔터테인먼트·CJ CGV·CJ미디어·CJ아메리카 담당 부회장. 지난 1995년 다국적 엔터테인먼트 회사 ‘드림웍스’ 설립을 주도하며 왕성하게 활동하던 그는 그러나 이후 해외파견(CJ엔터테인먼트 상무) 형태로 미국에 머물며 사실상 그룹 경영에서는 물러나 있었다.CJ측은 “엔터테인먼트 사업 등에 대한 전문 식견과 해외 네트워크를 가진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친동생인 이재현 그룹 회장이 직접 (경영 합류를)요청했다.”고 설명했다. 구평회 LG 창업고문(E1 명예회장)의 셋째아들인 구자균씨도 이날 교수직을 완전히 그만두고 LG산전 관리담당 부사장으로 변신했다.LG산전은 LG전선그룹의 핵심계열사이다. 미국 텍사스대에서 재정학 박사학위를 받은 구 교수는 국민대 경영학과 교수를 거쳐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다 휴직한 상태다. 구 고문의 큰아들인 자열씨는 LG전선 부회장, 자용씨는 E1 부사장이다. 구두회(구 고문의 동생) 극동도시가스 명예회장의 외아들 구자은 LG전선 이사도 이날 1년만에 상무로 승진했다. 이에 앞서 ‘본가’인 LG그룹에서도 구인회 창업주의 둘째동생 고 구정회씨의 아들인 구자민 상무가 LG전자 부사장으로,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사촌인 구본진 부장이 LG상사 상무로 각각 승진했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아들인 정몽윤씨는 이달초 현대해상 등기이사로 복귀했다.8년만의 컴백이다. 정몽근 현대백화점 회장의 아들인 지선씨와 교선씨도 얼마전 아버지로부터 지분을 넘겨받아 후계구도를 굳혔다.1997년 과장으로 입사한 지선씨는 5년만에 부회장으로 승진했고, 교선씨는 기획이사로 승진했다. 현대그룹의 장손인 정의선(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아들) 부사장도 기아차 유럽시장 공략을 책임지는 등 경영전면에 나서고 있다. 안미현 류길상기자 hyun@seoul.co.kr
  • [삶과 경영 이야기] (35) 에이스침대 2세 경영인 안성호 사장

    [삶과 경영 이야기] (35) 에이스침대 2세 경영인 안성호 사장

    안성호(37) 사장은 앳된 얼굴에 소박함이 엿보이는 최고경영인(CEO)이다. 그러나 늘 점퍼를 걸치고 공장에서 기계에 고개를 들이밀고 일하는 모습은 창업주인 아버지 안유수(71) 회장을 빼닮았다는 말을 듣는다. 그는 ‘침대는 과학’이라는 안 회장의 경영철학을 이어받아 최첨단 자동화공정을 완성한 데 이어 신기술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내 1등 침대기업은 안 회장이 만들었으나 세계 5등 기업은 경영권을 물려받은 지 3년째 되는 안 사장이 달성했다. 그는 온돌 문화권인 한국에서 세계 최고의 침대전문기업을 꿈꾸고 있다. 안 사장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가업을 잘 키워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지만 제 자신이 제일 잘 아는 게 침대고, 그래서 침대 일을 하는 것이 가장 즐겁다.”고 말했다. 에이스침대 안성호 사장은 세계에서 다섯손가락 안에 꼽히는 침대전문기업을 이끄는 2세 경영인이다. 그는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기 위해 생산현장에서 몸이 부서져라 일에 몰두하는 과학자와 다를 바 없다. 이는 아버지 안유수 회장으로부터 장인 정신을 물려받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자랑이 쑥스럽다.”는 안 사장으로부터 ‘에이스만의 정신’을 들어봤다. ●공장은 나의 놀이터 아버지의 고향은 북한 황해도 사리원이다. 지금도 고모 등이 북한에 살고 있다. 아버지는 학생시절 혼자 남쪽으로 내려와 독학으로 대학까지 마쳤다. 그리고 창업을 해서 회사를 정상에 올려놓았다. 말 그대로 자수성가한 분이다. 아버지가 침대사업에 뛰어든 것은 1963년이다. 서울 인사동의 가구골목에서 미군들이 침대를 구하러 다니는 것을 보고 출발했다고 한다. 성동구 금호동에 작은 공장을 마련했다. 말이 공장이지 조금 큰 집이라고 보면 된다고 했다.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집 근처에 있는 공장에서 매일 살다시피했다. 아버지 손을 잡고 공장을 돌아다니는 것이 좋았다. 공장 아저씨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면서 스프링을 갖고 노는 것도 재미있었다.TV에 방영되는 외국영화에서 본 침대를 연필로 그려 아버지께 보여드렸더니 아버지께서 칭찬하신 뒤 진짜 침대로 만들었다. 그런데 잘 팔리지는 않았다. 당시엔 침대 제작이란 게 사람이 손으로 매트리스에 헝겊을 씌우는 식으로 공정이 엉성했다. 공장에 불이 났을 때 아버지가 허겁지겁 불을 끄시던 모습도 떠오른다. 장사가 잘 되었는지 1975년쯤 성동구 성수동의 제법 넓은 곳으로 공장을 옮겼다. 이때부터 설비도 들여놓았다. 나는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일주일에 한두번씩은 꼭 공장에 들러 직원들의 일을 거들었다. 아버지는 78년 성남에 큰 공장을 짓고, 최초로 한국공업규격(KS)을 받은 뒤 어머니와 무척 기뻐했다. 어릴 적부터 공장을 돌아다닌 일이 지금 공장을 운영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처음 회사에 입사했을 때 따로 생산공정에 대한 설명을 들을 필요도 없이 금방 이해했다. 학교 다닐 때 나는 모범생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말썽을 부리는 학생도 아니었다. 공부는 수학과 과학 과목을 잘 했다.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담임교사가 “집에서 알파벳을 배우고 온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했을 때 나를 포함해 단 두명만이 손을 들었다. 부모님께서는 “자신의 일은 스스로 하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대학에 들어와서 용돈은 주급으로 3만원씩 받았다. 책값은 어머니께서 영수증으로 처리해주었다. 그때도 틈틈이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등짐을 지는 등의 허드렛일이 대부분이었다. 직원들에게 혼이 난 적도 있다. 대학 졸업 후 광고회사에 입사했다. 통계분석과 시장조사 일을 했는데 역시 지금 회사를 운영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신제품을 개발할 때 어떤 제품을 만들어 어떻게 시장에 접근할 것인가를 연구하는 법을 배웠다.1년 정도 경험을 쌓았는데, 아버지가 “어차피 네가 할 일이라면 빨리 일을 배우라.”고 권해 에이스침대로 옮겼다. ●침대는 과학이다 기획이사를 맡으면서 원가와 외주(外注)관리를 했다.25살이라는 어린 나이 때문에 부담이 컸다. 무조건 열심히 일했다. 원가관리는 신제품을 생산했을 때 마진을 어떻게 산정하는지를 결정하는 일이다. 시장의 상황과 회사의 재정운영 등을 꿰뚫고 있어야 한다. 생산공정도 잘 알고 있어야 제품의 수요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 수요예측은 판매 추이 등에 대한 통계처리로 한다. 나는 원래 숫자에 강하다. 침대산업은 인건비 싸움이다.1990년대에 우리나라는 임금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경쟁력이 약한 기업들이 도태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자동화를 서둘렀다. 기계는 사람에 비해 오차가 적고 정확하다. 침대는 스프링 등의 균일화가 중요하기 때문에 침대산업은 자동화가 가장 필요한 업종이다.92년 업계 최초로 침대공학연구소를 만들었다. 인체공학 전문가 등 17명이 뇌파시험기 등 14종의 첨단장비를 동원해 가장 편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 연구하고 있다. 척추곡선 등을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도록 실험 로봇인 ‘컴퓨맨’도 만들었다. 충북 음성에 침대 단일공장으로는 세계최대 규모인 14만평의 부지에 본사 공장을 지었다. 세계에서 두번째로 무인생산시스템을 채택했다. 컨베이어벨트가 천장에 깔려 매트리스가 공중에 떠다닌다.19종의 특허기술도 개발했다. 신기술 개발과 공장자동화를 내가 혼자 한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많은 설계에는 직접 참여했다. 침대속까지 항균처리를 하는 기술, 스프링의 이중 열처리 기술은 부끄럽지만 내가 만들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얼른 메모하고 이를 제품으로 연결하려고 노력했다. 프랑스, 독일 전문가들이 공장을 둘러본 뒤 놀라면서도 “과잉투자가 아니냐.”고 묻곤 한다.“그렇게 생각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침대산업은 과학이다. 철저하고 완벽한 인간중심의 제품을 만드는 일이다. 사람이 옷장을 쓰는 시간은 하루에 10분도 안 되겠지만 침대는 일생의 3분의1을 함께 보내는 가구다. 이는 아버지의 정신이기도 하다. ●탁월한 1등이 되라 에이스(ACE)는 고객을 위한 ‘예술적이고 편안한 환경(Artistic Comfortable Environment)’에서 따온 말이다. 아버지는 평소 “최고가 아니면 만들지도 말라. 남의 비교 대상조차 되지 말라. 탁월한 1등이 되라.”고 강조하신다. 아버지는 젊었을 때 해외출장을 가면 투숙한 호텔의 침대 매트리스를 칼로 뜯어 샘플을 가져오는 바람에 호텔에서 곤욕을 치른 일도 많은 분이다.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에도 공장에 남아 일하다 12시가 다 돼서야 귀가하는 분이다.1980년에는 국내 가구업체들이 납품하는 목물(木物)이 마음에 안 든다며 가구전문인 ‘리오가구’를 설립한 분이다. 지난 1993년 중국 광저우(廣州)에 현지 법인을 설립했다.10년 동안 시장적응을 마친 만큼 올해부터 3배 이상의 투자를 한다. 하루 300개의 침대를 만들어 5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베이징 올림픽이 열리는 2008년까지 공장 2곳을 더 늘릴 예정이다.10년 안에 공장 8∼9곳이 더 있어야 한다. 성(省)단위에 1개씩의 공장을 짓는 게 꿈이다. 북한 사리원에도 곧 대규모 침대공장이 들어설 예정이다. 국내 침대시장은 완숙기에 접어들었다. 수요확대가 어렵다는 말이다. 그래서 중국 진출이 절대적인 대안이다. 국내엔 200여개 영세업체가 난립하고 있으나 3개 대형 업체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에이스침대는 지난해 1200억원의 매출을 올려 시장점유율 35%를 달성했다. 시몬스침대가 400억원의 매출로 2위 업체다.(미국계 회사인 시몬스침대는 에이스침대가 국내 독점 생산·판매권을 지닌 회사로 안 사장의 친동생인 안정호 사장이 경영하고 있다. 형제가 국내 침대시장의 1·2위업체를 장악하고 있는 셈이다. 성장 과정이 비슷해 우애가 돈독한 안 사장 형제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 전화통화를 하며 자재구입 문제 등을 상의하지만 디자인 개발 등에서도 서로 감춘다고 한다. 안 사장은 형제가 시장을 독식하고 있다는 구설이 싫어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말하길 꺼렸다.) 내가 회사에 처음 입사했을 때보다 지금은 매출이 3배로 늘었다.2002년부터는 무차입경영을 하고 있다. 생산자동화 덕분에 직원 한 사람이 하루에 20개의 매트리스를 생산한다. 프랑스 등에서도 아직 1인당 10개를 생산하지 못한다. 매출 등은 아직 세계 최고가 아니지만 생산설비와 연구력은 이미 세계 1등인 셈이다. ●베푸는 기업철학 ‘기업은 이익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게 아버지의 지론이다. 그래서 지난 1994년 경기도 성남에 5억원을 들여 경로회관을 지었다. 모든 위락시설과 건강검진 등이 무료다. 매년 근육병재단을 후원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멀었다는 것이 아버지의 생각이다. 창업주들 중에는 훌륭한 분들이 많다. 고생을 많이 한 만큼 뚜렷한 국가관과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이 강하다.2세 경영인들도 요즘은 다르다. 직원들보다 2배,3배 일하지 않으면 무시당한다. 열심히 하지 않으면 회사가 망한다. 다른 회사의 2세 경영인들과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있다. 주제를 정해놓고 토론하고 정보교환도 한다. 언젠가 에이스침대를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은 뒤 나도 ‘돌려주는 일’을 하고 싶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약탈문화재 찾으러 日원정” 절도범? 애국자?

    “약탈문화재 찾으러 日원정” 절도범? 애국자?

    일본 사찰에 보관돼 있던 고려불화 ‘아미타삼존상’ 등 우리 고서화 5점이 국내로 반입됐다.외교적 노력이 아닌 절도범들의 손에 의해서다. 우리 문화재를 훔쳐온 절도범들은 “일본이 강탈해간 사실을 알게 된 뒤 이를 되찾아오기 위해 훔쳤다.”고 주장하고 있다.포털사이트의 게시판 등에는 “절도범들에게 1억원의 벌금을 물리고,포상금으로 10억원을 줘야 한다.”며 이들을 옹호하는 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부장 이홍훈)는 13일 일본 현지에서 사찰을 돌며 일본 국가지정 중요문화재인 아미타삼존상(감정가 10억여원) 등 고서화 47점(감정가 31억여원)을 훔친 김모(55)씨와 황모(53)씨를 특수절도 혐의로 구속기소했다.이들은 김씨의 친동생(48·일본에서 복역중)과 함께 1998년부터 2002년까지 일본 효고현(兵庫縣)에 있는 가쿠린지(鶴林寺) 등 사찰 3곳을 돌며 고려불화인 아미타삼존상과 관경만다라도 등 47점의 고서화를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무속인인 김씨가 이웃 황씨와 마지막으로 일본에 ‘고서화 원정절도’를 떠난 것은 2002년 7월초.이에 앞서 김씨 친동생은 10여차례의 사전답사를 통해 가쿠린지에 아미타삼존상이 보존돼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이들은 같은 달 9일 새벽 렌터카를 타고 가쿠린지에 도착,현지에서 구입한 노루발장도리(속칭 빠루) 등으로 문을 따고 아미타삼존상 등 감정가 17억 5000만원 상당의 일본 중요문화재 8점을 훔쳤다.일본 문화재는 김씨 동생이 현지에서 처분을 맡고,김씨와 황씨는 아미타삼존상만을 가방에 넣어 다음날 국내에 들어왔다.아미타삼존상은 가로 100㎝ 세로 170㎝로 현재 호암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아미타삼존도(국보 218호)보다 크며,아미타여래가 그림의 중앙에 앉아 있어 화면 구성도 다르다.정우택 동국대학교 미술대학원 교수는 “고려시대의 일반 회화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고려불화는 고려시대에 그려진 그림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가치가 있다.”면서 “일본의 아미타삼존상은 우리나라에서도 국보급의 가치가 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지난해 3월 김씨의 동생을 검거한 일본 경찰이 수사 끝에 김씨와 황씨가 공범이라는 사실을 알게 돼 지난 6월 외교통상부에 수사공조를 요청해 오면서 수사에 착수,지난 4일과 5일 이들을 차례로 검거했다. 검찰은 또 아미타삼존상 등 이들이 반입한 고서화 5점의 행방을 추적하고 있다.아미타삼존상은 1억 1000만원을 받고,국내 중개상에 판매한 것으로 확인됐다. 수사 결과에 따라서는 이들이 반입한 고려불화 등을 일본에 되돌려주지 않아도 될 가능성이 있어 주목된다. 최종 소유자가 장물인 사실을 모르고 대금을 지급하는 등 ‘정상적인 거래’를 통해 구입했다면 민법 249조 ‘선의취득’ 조항에 따라 소유권이 인정돼 일본에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이는 일본 민법도 마찬가지다.임진왜란이나 일제 때 일본으로 건너갔을 것으로 추정되는 고서화들이 절도범의 도둑질 덕(?)에 고향으로 돌아올 수도 있는 셈이다.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3대째 병역이행 명문가 시상식

    3대째 병역이행 명문가 시상식

    “군대는 왜 안 갑니까.가족 중 군대 가서 죽고 다친 사람도 있지만 한번도 원망한 적은 없어요.” 최근 일부 운동선수와 유명 탤런트들의 병역 면탈사건이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빚고 있는 가운데 이와는 대조적으로 집안 대대로 병역 의무를 성실하게 마친 ‘병역 이행 명문가’들이 10일 탄생해 눈길을 끌고 있다. 병무청은 올해 처음으로 3대(代)가 현역으로 병역의무를 마친 40개 가문을 ‘대한민국 병역이행 명문가’로 선발,10일 대방동 공군회관에서 윤광웅 국방장관과 김두성 병무청장 등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시상식을 가졌다. 대상인 대통령상은 고(故) 류기태씨 가문의 장손인 범열(31·회사원·대구시 동구 율하동)씨가 수상했다.범열씨의 조부인 기태씨는 6·25전쟁 때 육군에 자진 입대했다가 두 달만에 전사했다.선친인 근영씨는 21살 때 육군에 입대,월남전에 참전하기도 했으나 고엽제 후유증으로 2002년 6월 사망했다. 특히 범열씨 본인도 대학에서 경영학도의 꿈을 키우던 중 95년 9월 육군에 입대,최전방에서 운전병으로 근무했으나 차량 배터리 폭발사고로 한쪽 시력을 잃어 의병전역할 만큼 군과 관련된 범열씨의 가족사는 파란만장하다. 범열씨는 “시력을 잃어 1종 면허마저 취소되고 삶은 고달팠지만 결코 군 입대를 후회하거나 원망한 적이 없었다.”면서 “할아버지와 아버지,그리고 병든 아버지를 평생 지켜온 어머니 등 모두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범열씨의 친동생 승보(29)씨와 사촌동생 2명,숙부도 모두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전역,이 가족 7명의 전체 복무기간은 무려 162개월인 것으로 집계됐다. 한편 이날 시상식에서는 신체검사에서 거듭된 불합격 판정에도 불구하고,끝내 해병대에 입대한 이정석 일병과 외국 영주권으로 병역이 면제되는데도 고국으로 돌아와 병역의무를 수행 중인 이민석·이재민 이병 등 15명이 ‘2004 모범장병’에 선발돼 병무청장 표창을 받았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김정일 처제 2001년 美망명”

    |도쿄 연합|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부인 고영희의 친동생인 고영숙씨가 2001년 10월께 미국에 망명했으며 현재 미국에서 특별보호를 받고 있다고 도쿄신문이 8일 소식통의 말을 빌려 서울발로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고영숙씨는 일본 위조여권으로 미국에 입국했다 당국에 구속됐으며 최종적으로 망명을 신청했다. 그녀는 1990년대 후반부터 미국에 입국할 때까지 스위스 등지에 체재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올해 46세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영숙씨는 현재 미국에서 특별보호를 받으면서 언니를 통해 파악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북한 내부 사정에 관해 미국측에 정보를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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