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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韓·美 ‘환경갈등’ 위험수위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 정부가 주한미군 기지 환경오염 문제 처리와 관련, 지난달 안보정책구상(SPI) 회의 당시 한국 정부의 태도를 강력히 비난한 데 이어 최근에는 ‘최후통첩’ 형식의 공식서한을 우리측에 전달하는 등 기지 이전 문제를 둘러싼 한·미간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워싱턴의 고위 소식통은 13일 “지난달 21일 서울에서 열린 SPI 회의 때 미국 국방부의 한반도 담당 핵심 관계자가 ‘지난해 기지 이전 협상에서 한국측이 오염 처리와 관련한 미측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해놓고는 나중에 청와대가 반대한다는 이유로 합의를 번복했다. 한국이 미국을 기만(Cheat)하는 것 아니냐.’고 거칠게 비난했다.”고 말했다. 미 국방부 관계자는 이어 한국측의 환경부 담당자까지 참석했던 회의에서 합의됐던 사항을 청와대가 번복하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겠느냐며 “이런 식으로 한다면 주한미군은 결국 공군과 해군만 남을 수밖에 없다.”고 주한미군 지상군 추가철수 가능성도 강력하게 시사했다고 이 소식통은 전했다.이와 함께 리처드 롤리스 미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차관은 지난 7일 기지 이전 문제와 관련한 미 정부의 최종 입장을 밝히는 서한을 권안도 국방부 정책홍보관에게 전달했다고 다른 소식통은 전했다. 이 서한에서 롤리스 부차관은 미측이 환경오염 처리 문제와 관련해 지난해 내놓은 제안은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규정보다도 더 많이 양보한 것이라며 더 이상 양보할 수 없는 최종안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했다고 소식통은 말했다. 미국측의 최종안은 오염된 지하수의 경우 파이프를 박아 기름띠를 제거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우리측의 주장은 미군측이 오염된 지하수 전체를 파내서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롤리스 부차관은 또 서한에서 다음달에 열리는 SPI 회의에서 한국의 최종안을 가져올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이에 따라 다음 SPI 회의에서 미군 기지 환경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한·미 관계는 최악의 국면에 빠질 것으로 우려된다.이와 관련, 소식통은 “한국 정부는 주한미군 환경오염 문제에 대해 입장을 갖고 있지만 결국 양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견했다. 한편 버웰 벨 주한미군사령관도 지난 10일 예비역 장성 단체인 성우회 초청 오찬에서 미군기지 환경 문제와 관련, “(한국이)일방적으로 처리를 강행한다면 동맹에 저해 요소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해 합의된 주한미군 재배치 계획에 따라 한국 정부는 미군기지 20여개를 지난해 말까지 반환받기로 돼 있었지만 환경오염 치유 비용을 둘러싼 협상이 지연되면서 반환이 계속 늦어지고 있다.dawn@seoul.co.kr
  • 공포물 ‘엑소시즘~’ 13일 개봉

    13일 개봉하는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The Exorcism of Emily Rose)는 올들어 처음 찾아온 공포물. 몸에 실린 악령을 쫓아내는 종교의식(엑소시즘)을 소재로 삼았으되 이를 법정드라마 형식에 담았다는 점에서 감상의 묘미가 색다른 작품이다. 생기발랄했던 여대생 로즈(제니퍼 카펜터)의 몸에 이유를 알 수 없는 이상현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매일 새벽 3시면 끔찍한 환영에 시달리고 온몸이 비틀리는 그녀에게 의사가 내린 진단은 간질. 그러나 현대의학으로 병이 치유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다급해진 에밀리의 가족은 무어 신부(톰 윌킨슨)에게 엑소시즘 의식을 부탁하기에 이른다. 1976년 독일에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사실을 알고 보면 공포의 감도가 한결 더 생생해질 듯하다. 이 작품의 최대 매력은 심리 공포물의 태생적 단점인 비현실성이 법정 드라마 얼개를 통해 무리 없이 보완되고 있다는 대목이다. 엑소시즘 의식 도중 로즈가 죽자 무어 신부는 과실치사 혐의로 내몰리고, 여변호사 에린(로라 리니)이 그의 변론을 맡아 치열한 법정공방에 들어간다. 논리로 무장한 현대의학과 주술적 신비주의의 맞대결이 균형을 잃지 않고 신경줄을 조여나간다. 스콧 데릭슨 감독의 데뷔작.12세 이상 관람가.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이경형칼럼] 실패한 신문시장

    [이경형칼럼] 실패한 신문시장

    지난 6일 저녁 제50회 ‘신문의 날’ 기념 행사장엔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쓸쓸했다. 노 대통령은 김명곤 문화관광부장관이 대독한 축하 메시지에서 “참여정부와 일부 신문 사이에 비정상적인 대립관계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은 심히 걱정스럽다.”며 소회의 일단을 피력했다. 같은 날 오후 헌법재판소에서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제기한 신문법 등에 대한 헌법소원과 관련하여 공개 변론이 진행됐다. 특히 신문시장의 시장지배적 사업자 규정과 관련하여 청구인측은 “조선·중앙·동아일보 등 특정 신문사의 점유율을 규제하기 위한 표적입법”이라고 주장한 반면, 문화부측은 “공익 성격이 강한 신문 시장에서 여론의 다양성을 높이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고 반박했다. 최근 신문산업의 위기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다.7∼8년 전만 해도 가구당 구독률이 60%를 웃돌았으나, 지금은 40%로 뚝 떨어졌다. 이는 뉴미디어의 등장과 같은 급격한 언론 환경 변화 탓도 있겠지만, 메이저 신문사들의 무차별 경품 공세로 신문시장을 황폐화시킨 데도 원인이 있다. 일부 신문들의 이전투구식 판촉 경쟁은 절대 독자 수의 파이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신문의 독자를 빼앗는 악순환만 불러왔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다양한 여론의 자양분을 먹고 자라는 나무와 같다.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려면 여러 계층을 대변하는 여론 형성이 필수적이고, 그 역할의 일부를 신문시장이 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신문이든 기업으로서 신문사는 해당 ‘상품’이 겨냥하는 ‘주독자 타깃’을 설정하고 있다. 특정 신문의 시장 지배는 그 신문사, 구체적으로는 신문사 소유주·광고주가 지향하는 이념과 가치를 수용자에게 집중적으로 전달하고 전파하기 마련이다. 이는 결국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이데올로기가 여론 시장도 지배함으로써 민주주의의 전제가 되는 여론의 다양성을 크게 위축시킨다는 뜻이다. 현재 한국사회가 겪고 있는 갈등과 분열을 치유하고 통합할 수 있는 대안의 하나도 여론의 다양성 촉진에서 찾을 수 있다. 가진 사람, 기득권자, 현상 유지를 갈망하는 계층의 목소리만 증폭해서는 통합이 이뤄질 수 없다. 덜 가진 사람, 사회적 약자, 현상을 타파하려는 계층의 작은 소리도 공론의 장에서 걸러 어떤 형태로든 국가 의사결정에 반영시켜야 한다. 이른바 조·중·동이라는 메이저 신문이 과점하고 있는 한국의 신문 시장은 여론 다양성이나, 새 독자 증대라는 면에서 이미 실패한 시장이다. 마이너 신문들은 취약한 재무 구조로 생존한계선을 넘나들고 있거나, 종교 자본의 뒷받침으로 겨우 하루하루를 지탱하고 있는 실정이다. 과거 군사정권의 강압과 회유로 언론이 정권의 하위 기구로 전락했던 시절과는 달리, 지금은 언론의 권력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문민정부 이후 국가 권력이 정당, 자본가, 시민사회로 분산되면서 언론사, 특히 메이저 신문들도 신문 시장의 과점을 바탕으로 사회적 의제 설정의 선점을 통해 권력화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메이저 신문들은 마이너 신문들도 신문시장의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스스로 절제해야 하며, 신문이 공산품과는 다른 ‘공익적 상품’임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마이너 신문들은 변화된 신문 환경을 정면으로 받아들여 규모의 경제를 이룰 수 있는 구조조정의 고통을 감내할 준비를 갖춰야 한다. khlee@seoul.co.kr
  • “美기지 오염 일방처리땐 동맹 저해”

    한국과 미국이 협의중인 반환 미군기지의 환경오염 치유 문제가 한국의 입장에 따라 일방적으로 처리된다면 한·미동맹에 지장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버웰 벨 한미연합사령관이 밝혔다. 벨 사령관은 지난 10일 예비역 장성 모임인 성우회 초청 연설을 통해 앞으로 한·미관계에서는 장·단기적으로 두가지 도전이 예상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성우회가 12일 전했다. 성우회에 따르면 벨 사령관은 전시작전통제권의 한국군 단독행사 문제를 장기적 도전 과제로, 한·미간 협상 중인 반환 예정기지의 환경오염 치유문제를 단기적 과제로 꼽았다. 벨 사령관은 “(한국측의) 환경평가 및 원상복구 요청으로 미군 기지의 반환 문제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있다.”며 “신속한 해결방안 마련이 요구되지만 상호 입장이 다른 이 문제에 대해 (한국측이) 일방적으로 처리를 강행한다면 오히려 한·미동맹에 저해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부작용 설명않고 수술 과실없어도 의사 배상”

    서울고법 민사9부(부장 이인복)는 12일 턱 성형수술을 받은 뒤 부작용으로 재수술을 받은 김모씨가 “부작용을 설명하지 않고 수술을 했다.”며 B성형외과측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고는 원고에게 위자료 2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원고가 첫 수술 직후 턱선이 울퉁불퉁해진 것이나 근육 이상을 느끼는 것은 치유가 가능하고 두 차례의 재수술 과정에도 의사의 과실은 인정되지 않는다. 하지만 치료 후 징후나 일시적 부작용 등도 환자가 알고 있어야 하는데 피고측은 사전에 이를 설명하지 않은 만큼 설명 의무를 위반한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다. 2001년 10월 B성형외과 의사는 사각 턱 등을 교정하기 위해 병원을 찾은 김씨에게 별다른 상담 없이 곧바로 성형수술을 해 줬으며 김씨는 수술 후 턱선이 매끈하지 못하고 입 주변 근육이 고정되지 않는 느낌을 받는 등 부작용이 있어 재수술을 받았다.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기고] 학생지도 방식 바뀌어야/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학교교육에서 수업지도와 생활지도는 양대 축에 해당한다. 이 중 생활지도는 사회가 복잡다단화되어감에 따라 더욱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이런 어려움은 빠르게 변화하는 학생들의 의식에 비해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교사들의 ‘의식지체’가 충돌하는 데서 빚어지는 문제들이다. 얼마 전 사회적 문제가 되었던 강제 두발단속 등은 이런 문제점들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학생들의 생활지도는 분명 강화할 필요가 있음은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문제는 대다수의 교사들이 환경변화를 읽지 못함에 따라 효과적인 교육지도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환경은 과거와 달리 정적인 환경에서 감각적 환경으로, 아날로그 환경에서 디지털 환경으로 변화되었다. 그럼에도 교사들의 의식은 아직도 과거의 아날로그 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디지털 환경 속에서 아날로그 방식의 사고는 근본적으로 맥락적 일치성을 지닐 수 없다. 따라서 교사들의 지도방식도 네거티브 방식에서 포지티브 쪽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학생들의 외모문제만 해도 그렇다. 두발 길이나 모양과 같은 외적인 부분에 집중되는 현재의 생활지도가 포스트 모던사회에서 교육적 진정성을 지닐 수 있는 것인지, 오히려 학생들의 개성과 창의성을 약화시키는 것은 아닌지 등등을 진지하게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런 맥락에서 오히려 학생들의 내면적 문제들 즉 삶의 가치, 바른 인생관의 정립, 사적 고민 등, 보이지 않는 문제들을 어루만질 수 있는 치유적 활동으로 전환하는 것이 훨씬 교육적이라는 생각이다. 어떤 의미로 보면 외모 등과 같은 외적부분들에 대한 단속지도를 강화할수록 얻는 것보다 잃는 것들이 더 많을 수도 있다. 단정한 것이 학생다운 모습이고 학생다운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이런 사고로는 학생들과 원활한 의사소통을 기대하기 어렵다. 털어놓고 보면 비행의 문제는 외적인 것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내적인 문제와 관련된 의사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것이 아니던가. 오히려 이들의 외모개성을 더욱 존중해주면서 내적 소통의 통로를 개척하는 것이 강제단속보다 분명 교육적이다. 요즘 기업들의 경우 자유로운 외모를 오히려 장려한다는 소식이다. 이런 현상들은 외모와개성이 내적사고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좋은 예이고 실제 교육적으로도 증명된 사실이다. 말로는 창의성 교육을 부르짖으면서도 의식은 중세시대에 머물러 있는 한 교육혁신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생활지도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단속 일변도의 지도를 좀더 사회변화에 맞는 쪽으로 강화시켜 가자는 것이다. 마치 의사가 대증요법만을 고집하다 속병으로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처럼 오히려 학교가 문제아들을 만들어 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관성적인 지도의 결과 변화된 환경 속에서 의도하지 않은 문제아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개연성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최근 경기도 교육청은 그동안 일률적으로 규제해 오던 비인격적인 두발검사, 획일적인 복장착용 강요, 체벌 및 욕설 등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는 학교생활규정을 일체 금하기로 결정했다. 이런 변화는 위에서 지적한 위험성을 줄이면서도 미래지향적 교육으로 나가는 환영할 만한 조치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 [이슬람 문명과 도시] (7) 레바논 베이루트

    [이슬람 문명과 도시] (7) 레바논 베이루트

    내전의 총상으로 곰보가 되었거나 불구가 되었던 건물들이 이젠 꽤나 많이 단장되고 치워졌다. 막상 복구는 해놨지만 입주가 이루어지지 않아 불과 4∼5년 전만 해도 유령마을 같았던 시내 중심가도 이젠 저녁 마실 나온 시민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 내전이 일어나기 전 베이루트를 자주 찾았던 어느 사진작가는 “최신 유행으로 치장한 베이루트의 멋진 청년들 틈에서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다.”고 했는데, 가끔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아름다운 청년들을 보면 지금도 온전히 들어맞는 말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랍 남성들 사이에 회자되는 말 가운데 ‘연애는 베이루트 여인과’라는 게 있는 터이고 아랍세계 연예계를 주름잡는 미남미녀들의 태반이 레바논 출신이니 말이다. 내전 끝나고 지금까지 16년이 지나며 베이루트 시민들의 마음도 도시의 겉모습이 단장되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많이 치유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깊은 상처는 아직도 고통스럽게 남아 이들을 괴롭히고 있다. # 수년전 유령같던 도심 시민들 북적 베이루트 중심가 사하트 슈하다(순교자광장) 한쪽, 지중해를 바라보며 우뚝 서있는 인터콘티넨탈 페니시아 호텔 앞 바닷가 길을 지나는 것이 이제 나에겐 고통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사랑하는 아내와 딸아이 그리고 내가 이 길을 거닐며 남긴 추억이 참 많았다. 마땅히 찾아갈 만한 공원이 없는 베이루트에서 바닷가 길(코르니시)은 모든 시민들이 찾아드는 휴식의 공간이다. 산보하는 사람들, 조깅하는 사람들,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요리조리 사람들 사이를 빠져 지나는 젊은이들, 정겨운 연인들…. 그들 사이에서 우리 가족은 참으로 편안하고 즐거운 기억을 이곳에 남길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곳에선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두 모습을 볼 수밖에 없다. 폭탄테러로 온통 망가져버린 빌딩들이 바로 앞에 보이는데 그 아래 요트장에선 흥겨운 음악이 흐르고 많은 사람들이 지중해의 풍성한 햇볕을 즐기고 있다. 고작 1년 전 저 건물들 사이에서 엄청난 폭발과 함께 라피크 하리리 전 총리와 수행원들 그리고 길을 가던 시민들이 죽어가지 않았던가. 그 충격은 얼마나 컸던가. 하루를 빼놓지 않고 벌어진 규탄시위, 그때 얼마나 많은 눈물이 흘러내렸나. 그뿐인가 하리리 총리 암살 이후 이어진 폭탄테러가 몇 번이고 그때마다 거리로 뛰쳐나온 사람들의 수가 얼마인가. 그런데 다른 곳도 아닌 그 기억이 너무나 선명한 이곳에서 희희낙락 음악과 햇볕을 즐기고 있는 저 사람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그렇게 쉽게 잊을 수 있는 건가. 그러나 이들의 마음 속에 숨어있는 불안감은 쉽게 드러나고야 만다. 어느 점성술사의 말 한마디에 레바논이 들썩였던 거다. 이 점성술사가 한 말은 ‘크리스마스날 300명을 겨냥한 테러가 있을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었고, 이 말이 순식간에 온 나라에 퍼지자 점성술사 스스로가 놀라 일간신문에 ‘그런 뜻이 아니었음’을 밝혀야 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에 다녀온 한 한국인 친구가 전해준 말을 떠올리게 하는 일들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이 친구가 겪은 일은 이런 거다.“예루살렘에 있는 찻집에 들어가서 주스 한 잔 마신 다음 빨대를 갖고 놀고 있었지요. 빨대 끝을 잡고 둥글게 공기가 빠져나가지 않게 감은 다음에 손가락으로 탁 튕겨 ‘딱’ 소리가 나게 하는 거요. 그런데 주변 이스라엘 사람들이 얼마나 놀라던지…. 여기가 어떤 곳인데 그런 장난을 하느냐는 타박을 받았답니다.” # 하리리 총리 암살이후 테러공포 몸살 어느 날 저녁 베이루트 시민들이 많이 모인 상품전시장을 둘러보고 나왔을 때다. 갑자기 무언가 터지는 커다란 소리가 전시장 입구 쪽에서 들려왔고 곧 주변의 시민들이 혼비백산해서는 마구 뛰어 달아나는 거였다. 한순간 입구 쪽을 바라봤지만 어떤 연기나 먼지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고 잠시 뒤 그저 트럭의 타이어가 터진 소리였다는 것이 알려졌다. 그제서야 사람들의 얼굴엔 약간 민망해하는 듯한 웃음이 떠올랐는데 이 모습을 바라보며 참으로 마음이 쓰라릴 수밖에 없었다. 16∼17년에 걸친 내전을 가까스로 끝낸 지 이제 겨우 16년, 아직도 피냄새 나는 테러가 일어나고 있다는 게 그저 가슴 아플 뿐인데 베이루트 시민들은 그동안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아 와서 그런가 어디에서 폭탄이 터지고 폭격이 일어나도 바로 다음날이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일상을 살아간다. 하지만 친절하면서도 정도가 지나치지 않은 베이루트 시민을 만나는 것은 무척이나 편안한 일이다. 아랍세계에서 물가가 가장 비싸다는 베이루트지만 평범한 우리나라 사람이 살아가기에 이보다 더 알맞은 생활환경은 아랍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울 것 같다. 가끔 시리아의 다마스쿠스라도 다녀올라치면 베이루트의 비할 데 없이 자유로운 공기를 새삼 느끼곤 한다. 다마스쿠스가 답답하다기보다는 베이루트가 너무나 우리 삶의 모습과 닮아있기 때문이다. 아내가 민소매티셔츠를 즐겨 입고 다니기 시작한 것은 베이루트에서 첫 여름을 보낼 때였고 나는 서울에서 늘 그러했듯 샌들에 반바지차림을 줄곧 고수했다. 아무런 부담없이 공공연하게 대통령이니 총리의 욕을 해대는 것을 보면 아랍세계에서 언론의 자유도가 가장 높다는 말이 분명한 사실이지 싶다. 다마스쿠스의 개가 마음껏 짖고 싶어 레바논으로 넘어왔다는 우스개까지 있으니 말이다. # 기독교인들 영화 ‘그리스도…´ 에 열광 근래 영화 두편을 통해 베이루트 시민의 마음을 살짝 들여다 볼 수 있었다. 하나는 ‘그리스도의 수난(The Passion of Christ)’이고 또 하나는 지난 크리스마스 즈음 베이루트 극장가에 개봉된 ‘메리 크리스마스(Joyeux Noel)’이다. 이슬람과 기독교의 다양한 종교종파가 공존하는 베이루트는 한때 다원주의의 성공모델이었고 한순간 그 균형이 깨지며 모자이크사회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기도 했다는 데서 알 수 있듯 베이루트 시민의 많은 부분을 기독교인이 차지하고 있다.‘그리스도의 수난’은 워낙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화라 꼭 보고자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좌석을 예매하지 않으면 며칠을 기다려야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언제든 자리가 남아돌던 베이루트에서 영화표를 예매하다니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자신들의 정체성을 기독교에서 찾고 있는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이 영화를 기다려왔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메리 크리스마스’는 베이루트 시민들 마음 속 깊은 곳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내전의 상처를 감싸주기에 너무나 적절한 영화였던 것 같다. 영화가 끝나자 터져 나온 벅찬 감동의 박수가 그것을 증명한다. 배경은 세계 제1차대전이 발발한 해인 1914년의 크리스마스 즈음으로 실제 일어난 일을 소재로 한 영화다. 참혹한 살육전을 펼치며 대치하던 프랑스군, 독일군, 스코틀랜드군이 크리스마스 이브에 찬송가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함께 연주하게 되는 우연한 사건을 계기로 나름의 휴전을 선언하고 적이 아닌 친구의 정을 쌓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들이 애초에 적이 아닌 친구였지만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서로 적이 되어 만나게 되었음을 베이루트 시민들은 온몸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화해하고 상생하는 다원의 문화를 희구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 베이루트에는 폭탄이 터지고 있고 사람이 죽어간다. 그럴 때마다 분기에 찬 사람들이 모여 구호를 외친다.“빗담 비루흐 아프디카 야 루브난(레바논아, 너를 위해 피와 영혼으로 나를 희생하리).” 이제는 더 이상 이런 구호를 듣고 싶지 않다. 안정국 명지대 교수 (이슬람문화연구소)
  • 박상진 교수가 본 ‘지중해의 역사’

    박상진 교수가 본 ‘지중해의 역사’

    ‘역사’의 어원이 이야기라는 사실을 이렇게 잘 보여주는 책도 흔치 않으리라.‘지중해의 역사´(한길사 펴냄) 오랜 세월에 걸쳐 다양한 무늬로 새겨진 지중해의 역사를 쉽고 찬찬하게 들려준다. 어쩌면 처음부터 무리한 작업이었다. 얇지 않지만, 지중해가 살아온 긴 얘기를 담아내려면 훨씬 더 많은 지면이 필요할 터였다. 그러나 이야기를 풀어내는 다섯 명의 프랑스 사학자들의 솜씨를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곳곳에 보석들처럼 박혀 반짝이는 참고 자료들이나 정보들을 발견하는 재미도 적지 않다. 지도와 연표, 통계자료, 용어사전, 참고자료, 색인 등의 부록도 유익하다. 인류 문명 치고 지중해에 관련되지 않은 예는 별로 없는 것 같다. 육지에 둘러싸인 바다라는 특성에 더해 그 육지들이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라는 사실은 지중해가 인류 문명들을 배고 낳고 키운 자궁이자 둥지일 수밖에 없었던 연유를 말해준다. 지브롤터의 좁은 여울을 통해서만 외부와 연결되는 고인 물이었지만, 역사적으로 지중해가 담당한 역할은 결코 고이지 않았다. 고대 오리엔트부터 시작하여 그리스와 로마, 비잔티움을 거쳐 오스만까지, 대서양의 거친 물결을 넘어 라틴아메리카까지, 그리고 실크로드를 통하여 동양의 끝까지 팽창하고 변용하면서 지중해는 교류라는 문명의 속성을 구현했다. 이 책은 이전에 국가나 민족, 언어, 종교 등의 단위로 분할하여 측량하던 지중해의 역사를 한데 버무려 우리 눈앞에 드러내준다. 지중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여러 문명들이 나타나고 사라져간 곳이었다. 그 모든 것들의 기억을 담고 서로 이어주는 지중해는 관계 그 자체로 하나의 문명이 되었다. 지중해의 진정한 얼굴을 보기 위해서는 관계라는 추상적 개념이 역사의 구체적인 사건과 인물들에 어떻게 연결되었는지 상상하는 힘이 필요하다. 이 책은 그런 상상을 잘 도와준다. 이 책은 지중해가 과거에 공생의 무대였다고 말한다. 지중해를 ‘우리의 바다’라고 부른 로마가 그렇게 만들었고 비잔티움의 기독교 군주들이나 오스만의 이슬람교 군주들이 지배했던 때가 그러했다. 낭만주의 시대에 지중해는 영감의 샘이었다. 수많은 작가와 예술가에게 지중해는 동경의 대상이었고, 그들의 여행기는 유럽 독자들에게 이국 취향을 불러일으켰다. 이어서 유럽의 자본과 문화가 지중해를 장악했으며, 그와 함께 제국과 식민지, 그리고 민족주의로 얼룩진 갈등의 관계가 펼쳐졌다. 그 결과 지난 세기 두 차례의 큰 전쟁은 사실상 지중해에서 일어났고 전개되었다. 전쟁이 끝난 뒤 지금까지 지중해는 분열되어왔다. 인종과 민족, 젠더를 둘러싼 갈등, 테러리즘, 국지적 분쟁, 종교 분쟁, 디아스포라, 환경오염과 같은 근대 문명의 문제들을 고스란히 껴안고 있다. 이 책의 특징은 과거에 주인이 있었던 지중해보다는 현재 그 누구의 것도 아닌 지중해를 더 집중적으로 들여다본다는 점이다. 비교적 단일의 세계를 이루었던 고대와 중세보다 복잡한 문제를 일으킨 근대 이후에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그래서 현재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문명의 차원에서 총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 해준다. 서구 지식인들이 지중해를 하나의 문제 단위로 다시 인식하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이런 번역서가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것은 지중해를 겉모습으로나 짐작하던 처지에서 비로소 서구와 발을 맞춰 그 실체를 알아나가는 근대적 인식의 확장이란 면에서 획기적이다. 추억의 대상이든 반성의 계기든, 지중해는 과거에 그랬듯이 지금도 인류 문명의 화두로 자리하고 있다. 근대가 세계의 인식과 함께 출발했음을 생각할 때, 지중해의 인식은 근대적 작업이면서 또한 근대를 치유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부산외대 이탈리아어과 교수 (지중해연구소 소장)
  • 힐러리 연설도 ‘부창부수’

    “어쩐지,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더라.” 2008년 미국 대통령선거의 민주당 후보 물망에 오르내리는 힐러리 클린턴(사진 오른쪽) 뉴욕주 상원의원이 5일(현지시간) 한 모임 연설에서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취임사를 거의 그대로 베껴 눈길을 끌었다. 힐러리 의원은 이날 히스패닉 상공회의소가 주최한 입법 콘퍼런스에 참석, 연설 말미를 “미국에 대하여 선(善)으로 치유되지 못할 악(惡)은 없습니다.”라고 장식했다.1993년 1월 클린턴 전 대통령 취임사의 유명한 구절 ‘미국과 더불어’ 선(善)으로 치유되지 못할 악(惡)은 없습니다.’를 빌려와 전치사 하나만 살짝 바꾼 것이다. 의도했건 안 했건 간에 힐러리 의원의 이같은 재치(?)는 ‘클린턴 데자뷔’의 한 사례로 받아들여진다고 AP통신은 지적했다. 데자뷔란 전에 본 적이 없는 것을 이미 어디선가 본 것처럼 느끼는 기시(旣視)효과를 의미한다. 힐러리 의원측이 남편의 후광을 활용하려는 전략짜기에 골몰하고 있다는 추측이 나도는 상황에서 두 사람의 정치적 동반은 흥미로운 관심을 유도하고 있다고 통신은 짚었다. 마침 그녀가 연설한 시각, 남편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열린 ‘글로벌 박애 포럼’ 연단에 서 있었다. 공화당 인사들도 놀랄 정도로 유연한 클린턴의 말 솜씨는 이날도 돋보였다. 한 손을 주머니에 찔러넣은 채 연설한 그는 “골프나 색소폰 실력도 변변찮은데 일해야 한다는 욕심은 많으니 재단을 만들어 세계문제를 다뤄볼 수밖에 없다.”고 말해 좌중을 웃겼다. 이어 “전직 대통령은 뭘하든 불쌍해 보이지 않는다.”면서 퇴임 후에도 의원으로 일했던 존 퀸시 애덤스 전 대통령을 빗대 “우리 가족은 의회에서 일하는 한명으로 충분하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연설 시각에 제때 도착한 남편과 달리 힐러리 의원은 20분이나 늦었고 연단 모서리를 손으로 움켜쥐는 등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었다고 통신은 전했다. 연설 중반을 넘기며 안정을 되찾은 그녀는 청중에게 모두 연단으로 올라오라는 듯 두 팔을 펼쳐 보이기도 했다. 그녀는 이민자들이 미국 법을 준수하며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말해 박수 갈채를 받았다.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책꽂이]

    ●북한 문학의 사적 탐구(박태상 지음, 깊은샘 펴냄)‘북한의 문화와 예술’‘현대북한연구’‘북한문학의 동향’등 북한 문학 관련 저서를 꾸준히 출간해온 저자의 신작. 최근 북한에서 가장 많이 창작되고 있는 ‘비전향장기수’소설들을 연구한 논문과 이태준과 홍석중의 ‘황진이’를 비교한 글 등을 실었다.1만 9000원. ●생일(장영희 글·김점선 그림, 비채 펴냄)일간지에 ‘장영희의 영미시 산책’이란 제목으로 연재했던 칼럼 49편에 화가 김점선의 밝고 따뜻한 그림을 곁들였다. 셰익스피어, 예이츠,T.S. 엘리어트, 에밀리 디킨슨 등 영미문학 거장들의 작품중 사랑과 인생에 대한 속깊은 통찰을 담은 시들을 고른 영시 원문과 한글 번역문, 저자의 감상을 실었다.9500원. ●의사와 간호사(루시 엘먼 지음, 정영문 옮김, 휴먼앤북스 펴냄)영국 시골병원의 미남 의사와 뚱보 간호사가 벌이는 엽기적인 로맨스를 통해 몸에 대한 자본주의적 물신성을 비판한다. 국내 처음 소개되는 영국 여성 작가 루시 엘먼의 최신작으로 황당하고 엉뚱한 스토리와 낯선 소설 기법들속에 독특한 매력을 감춘 블랙 코미디다.9000원. ●날아라 금빛 날개를 타고(고혜정 지음, 소명출판 펴냄)한국정신대연구소 소장으로 지난 10여년간 중국, 필리핀, 일본 등지를 방문하면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을 축적한 저자가 이를 바탕으로 쓴 장편소설. 전쟁과 죽음, 성적 착취라는 험난한 시대를 온몸으로 견뎌내고서도 사회로부터 소외된 이들에게 치유의 손길을 건넨다.1만 2500원. ●모국어의 속살(고종석 지음, 마음산책 펴냄)소설가이자 언론인인 저자가 우리말을 가장 아름다운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 시인 50명의 시 세계를 소개한 책.1902년생 김소월에서 1971년 강정에 이르기까지 우리 시문학사에 기록될 만한 독창적인 시인들의 대표 시집을 골랐다.1만 6000원.
  • 철도공사직원 봉사팀 운영 서울역 노숙자 크게 줄여

    “억지로 내보내도 늘어나기만 하던 노숙인들이 말 상대도 돼 주고, 치료도 받게 해주니 오히려 줄어드네요.” 한국철도공사 직원들의 ‘발상의 전환’이 서울역의 ‘골칫거리’인 노숙인들을 줄이는 효과를 낳았다. 서울지역 철도공사 직원들은 지난해 11월 ‘아웃리치(Out-reach)’라는 봉사팀을 만들었다.2003년 달려오는 기차로부터 어린이를 구하고 자신은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아름다운 철도인’ 김행균(45·서울지역본부 화물사령)씨 등 60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하루 2명씩 일과를 마친 오후 8시부터 자정까지 서울역 주변의 노숙인들로부터 애로를 듣고, 아픈 사람은 병원에 데려가는 활동을 펼쳤다. 서울역을 이용하는 시민들을 불편케 했던 노숙인을 ‘단속 대상’에서 노숙인을 도움이 필요한 ‘사회적 약자’로 인식을 바꾼 것이다.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skpark@seoul.co.kr
  • 盧대통령 “국가권력 의한 잘못 꼭 정리해야”

    盧대통령 “국가권력 의한 잘못 꼭 정리해야”

    노무현 대통령이 3일 제주 4·3사건 희생자 위령제에 참석, 무고하게 희생된 양민들의 넋을 위로했다. 또 국가권력에 의한 희생에 거듭 사과했다.1948년 사태 발생 이후 국가원수로서 위령제를 찾기는 처음이다. 노 대통령은 추도사에서 “국가권력이 불법하게 행사됐던 잘못에 대해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 2003년 10월 4·3사건을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으로 규정, 정부 차원에서 공식 사과했었다. 노 대통령은 “자랑스러운 역사든 부끄러운 역사든, 역사는 있는 그대로 밝히고 정리해야 한다.”면서 “국가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잘못은 반드시 정리하고 넘어가야 한다.”고 밝혔다. 또 “국가권력은 어떠한 경우에도 합법적으로 행사돼야 하고, 일탈에 대한 책임은 특별히 무섭게 다뤄져야 한다.”면서 “용서와 화해를 말하기 전에 억울하게 고통받은 분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명예를 회복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과거사가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갈등의 걸림돌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면서 “누구를 벌하고, 무엇을 빼앗자는 것이 아니고,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억울한 누명과 맺힌 한을 풀어주고,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다짐하자는 것”이라며 과거사 정리 작업의 정당성을 설명했다. 이어 “역사를 하나하나 매듭지어갈 때, 그 매듭은 미래를 향해 내딛는 디딤돌이 된다.”고 말했다. 박홍기기자 hkpark@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 주한미군 재배치 종합분석 아쉬워/진정회 성균관대 경제학과 4학년

    올해 초, 한·미간 ‘전략적 유연성’ 합의를 담은 양국의 공동성명이 발표되었다. 양국 협의에 따라 2011년까지 34개 이상의 기지가 반환되고 주한미군은 수원, 평택, 오산, 군산, 광주 등 한반도 서남부로 재배치된다. 정부는 “민족적 자존심을 회복하게 되었다.”고 홍보하고 있지만, 반환기지의 환경오염 문제와 미군기지 확장 반대 논란 등 주한미군 재배치에 따른 사회 갈등도 불거지고 있다. 서울신문은 반환기지 환경오염,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 운동 등 미군 재배치와 관련된 사안들을 대체로 성실하게 보도하였다. 3월27일자 (미군기지 환경오염 ‘이중잣대’ 빈축)기사는 “‘미국 내 군기지는 57% 오염, 주한미군기지는 2∼5%오염’이라는 차이는 양국간 서로 다른 환경오염 기준이 적용됐기 때문”이라며 허술한 국내 환경기준을 지적했다. 또 국내 기준은 미 정부가 자국 내에 적용하는 기준보다 훨씬 미흡한데도 “‘인체에 해로울 정도의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험’일 경우에만 오염치유 책임을 지겠다.”는 미 당국의 책임 회피 태도를 꼬집었다. 미군기지 확장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는 평택 문제에 대해서도 서울신문은 3월21일자 (‘총성없는 전쟁’ 평택 미군기지터 르포- “세번째 강제이주…이젠 못나가” 긴장의 대추리)에서 현장감 있는 기사로 그 논란의 원인을 자세하게 다뤘다. 기사에는 “1942년 일본군과 1952년 미군에 의해 이미 두 번 쫓겨난 농민들이 소금기 가득하던 농토를 30년간 개간하여 옥토로 만들어 놓은 땅” 대추리의 사연이 자세히 담겨있다. 평택 문제를 다룬 서울신문의 이전 기사들이 논란을 단순 전달하는 데 그치거나 ‘미군기지 확장 반대’주장을 ‘평화 시위’로 대체함으로써 의제를 왜곡하는 결과를 낳았던 것을 생각하면 주민들의 입장을 직접 듣고 논란의 원인을 심층 분석한 이 기사는 더욱 돋보였다. 서울신문은 각 사안을 충실히 보도하긴 했지만 ‘전략적 유연성’은 국방·외교의 사안으로, 반환 미군기지 오염 문제는 환경 문제로, 또 평택 시위는 집회·시위 보도의 틀로 다루는 등 사안들 간의 연관성에 주목하기보다는 각각을 별개의 사안으로 취급해 아쉬움을 남겼다. 환경오염과 평택 문제는 모두 ‘전략적 유연성’에 따른 미군 재배치로부터 나온 것으로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우리 땅을 심하게 오염시켜 놓고도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를 미군이 이미 보이고 있는 이상, 미군기지 확장은 대추리 주민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문제를 제기해야 할 사안이다.‘오염자 부담 원칙’도 지키지 않는 미군에게 왜 이미 두 번이나 쫓겨났던 농민들의 땅을 내줘야 하는지,‘전략적 유연성’이 대체 무엇이며 이것은 과연 우리를 위한 것인지에 대해 꼼꼼히 짚어보는 언론의 노력이 필요하다. 리언 러포트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은… “전략적 유연성은 미군과 관계있고 한국군과는 무관하다.”고 말한 바 있다(1월27일자 (작전권 군사능력 갖춰야 이양)). 한국군의 분쟁지역 투입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발언이다. 그러나 한국군이 주한미군과 함께 출격하지 않는다 해서 전략적 유연성이 한국의 안보와 무관하다고 할 수 있을까? 만약 미국과 중국간에 전쟁이 일어나 주한미군이 중국에 출격한다면 한국은 미국에 대중국 출격기지를 제공하여 미국을 돕는 셈이 될 텐데, 그런 상황에서 중국이 한국을 공격할 가능성은 ‘없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세계전략에 따른 ‘전략적 유연성’에 한국의 안보가 위협받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왜 우리 정부는 오염비용도 요구하지 못하면서 자국민을 희생시키면서까지 땅을 내준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언론은 이제부터라도 주한미군 재배치에 따른 문제들을 종합적으로 파악하여 ‘전략적 유연성’의 득실을 따지고 국민에게 알려지지 않은 외교 당국의 2년간의 협상 과정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밝혀주길 기대한다. 진정회 성균관대 경제학과 4학년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15년째 소나무사랑 전파 전영우 국민대교수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15년째 소나무사랑 전파 전영우 국민대교수

    기품이 당당하다. 스스로 길지(吉地)에서 생기와 절개를 묵묵히 뿌리내린다. 천년 세월, 어떤 모진 비바람도 견딘다.‘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그랬다. 거친 우리 민족사를 도도히 지켜왔다. 문득 성삼문의 시조가 생각난다.‘이 몸이 죽어 가서 무엇이 될꼬하니 봉래산(蓬萊山) 제일봉에 낙락장송(落落長松)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滿乾坤)할 제 독야청청(獨也靑靑)하리라.’ 태종실록(1411년)이다.‘(서울)남산과 태평로 북쪽 산지에 경기도 출신 장정 3000여명을 동원해 20일동안 100만그루의 소나무를 심었다.’ 한양을 도읍지로 정한 직후였다. 정조실록에도 ‘경기도 화성에 도읍을 정하기 위해 소나무를 많이 심었다.’는 기록이 있다. 세월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지난 3월25일 서울 국민대 114호 강의실. 전국 각지의 남녀노소 70여명이 조촐하게 모였다. 강원도 원주, 전남 광주 등 멀리에서 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람도 있었다. 이날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소나무 교실’을 열었던 것. 사라져가는 소나무에 대한 관심을 새삼 고취시키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첫째 소나무 앞에서 경배를 드리고, 둘째 소나무를 가까이서뿐만 아니라 멀리 떨어져서도 보고, 셋째 나무 주위를 천천히 돌면서도 보고, 넷째 앉아서도 누워서도 엎드린 자세로도 보고, 다섯째 오관을 활짝 열고 눈과 귀와 코와 입과 손끝으로도 접하며….” 소나무 박사로 유명한 전영우(55·국민대 산림자원학과) 교수의 흥미진진한 강의에 참석자들은 숨소리조차 조용해진다. 이들은 1회용컵에 흙을 넣고 직접 소나무씨앗을 심어보는 소중한 경험까지 했다. 모처럼 ‘소나무와의 대화’ 시간을 가졌다. “3주후면 싹이 틉니다. 돌아가서 식구들끼리 직접 심어보세요. 서로 비교를 해보는 겁니다. 어느정도 자라면 할아버지나 부모님 산소에 옮겨 심어 100년을 키워보세요. 집안과 가문의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이날 참석자들은 처음 만져보는 대관령 금강소나무의 씨앗을 신기하게 바라보며 머리를 연방 끄덕인다. 늘 가까이 있는 소나무였지만 이날처럼 새삼 소나무의 중요성을 느껴보긴 처음이다. 예상보다 반응이 좋아 오는 15일에도 ‘소나무교실’을 한 차례 더 열기로 했다. 이 소식이 알려져 식목일 하루 뒤인 6일 배재대학교에서 ‘소나무야 놀자’라는 주제로 초청특강을 한다. “소나무는 한민족의 문명발달에 숨은 원동력입니다. 소나무 없이 궁궐을 비롯한 옛 건축물의 축조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지요. 왜적을 무찌른 거북선과 전함은 물론이고 쌀과 소금을 실어날랐던 조운선도 모두 소나무로 만들었습니다. 세계에 자랑하는 조선백자도 영사라고 불리는 소나무 장작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오죽하면 ‘소나무와 함께 태어나고, 소나무 속에서 살다가 뒷산 솔밭에 묻힌다.’고 했을까요.” 하기야 소나무로 만든 집, 가구와 농기구, 관재로 사용하는 송판을 생각하면 금방 와닿는다. 우리 문화를 ‘소나무 문화’로 얘기하는 것도, 오늘날 산업사회에서 여전히 소나무를 사랑하는 이유도 소나무가 바로 한국인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문화코드이기 때문이라고 전 교수는 강조한다. 이처럼 소나무가 생명문화 유산의 상징임에도 언제부터인가 소나무는 우리와 점점 멀어지는 현실을 안타까워한다.“요즘 식목일조차 소나무를 심는 사람이 있을까요.”라고 반문한 뒤,50년전 우리 국토 산림면적의 60%가 소나무숲으로 덮였으나 지금은 25%에 불과하단다. 지난 10년동안만 서울 면적의 4.2배에 달하는 소나무숲이 사라졌다는 것. 이유에 대해서는 농촌인구의 감소와 재선충, 산불 등의 자연적인 요인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무관심’이라고 강조한다. 적어도 애국가에 나오는 ‘소나무’가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어 “우리 사회가 갈기갈기 찢겨져 있다. 소나무는 단절된 관계를 복원시켜주는 치유제 역할을 한다.”고 전제한 뒤,“우리나라 남녀노소는 나무를 싫어하는 사람이 없으며 나무 이야기의 종착점은 결국 소나무로 귀결되기 때문”이라고 역설한다. “소나무 한그루가 집값보다 비싼 것도 있다.”고 귀띔하면서 이번 식목일에는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소나무 한그루만이라도 심어볼 것을 권유한다. 방법을 물었더니 산림조합중앙회에서 2년생 묘목을 한그루당 200∼500원을 주고 구입하면 된다고 했다. 이처럼 전 교수의 소나무 사랑은 각별하다. 올해로 15년째 소나무 사랑 전도에 나서고 있는 것.1992년 ‘숲과 문화연구회’를 처음 결성, 숲문화 연구에 물꼬를 텄다.99년에는 국내 최초 숲 해설가 양성교육을 실시했다. 이후 전국 각지의 숲 해설가 단체가 100여곳으로 늘어났다.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던, 천지사방에 널려 있는 숲이 문화산업의 소중한 출처가 된다는 인식을 깨우쳤다. 또한 국내 많은 산림학과 교수가 있지만 전국 방방곡곡의 소나무숲을 찾아다니며 직접 촬영과 취재를 통해 사진도록(한국의 명품 소나무,2005년)을 발간한 경우는 전 교수가 거의 유일하다. 아울러 지난해 제정된 ‘산림문화 휴양에 관한 법률’ 역시 전 교수의 숨은 공로로 이루어졌다. 현재 국회에서 발의되는 ‘소나무를 국목(國木)으로 정하자’는 관련법 제정 주장도 전 교수의 발품에서 비롯된다. 외국의 경우 국목이나 국화(國花)를 법으로 지정한 곳이 많지만 우리나라는 이에 대한 관심조차 없다는 것. 예를 들어 사탕단풍나무(캐나다), 배화나무(러시아), 반야나무(인도), 올리브나무(이스라엘) 등 각 나라별로 법을 제정, 국목으로 삼고 있다. 전 교수는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바로 앞에도 소나무가 심어져 있다.”는 예를 들면서 조선시대에는 소나무를 병들게 하면 나라가 위태롭다고 해 소나무를 숭배했으며 임금이 죽은 뒤에도 능 주변에 소나무를 심어 영혼을 지켜주는 나무로 여겼다고 했다. 고려가 송도(松都)에, 태조가 한양에 도읍지를 정해 소나무를 심게 한 것도 천년왕국을 기리기 위해서라는 설명이다. 이밖에도 시민을 위한 녹색체험, 자녀와 함께 숲 찾아가기, 숲속의 작은 음악회, 시 낭송회, 숲속 문화제, 사진전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소나무와 함께 살아오고 있다. 이러는 동안 ‘산림문화’‘숲과 한국문화’‘우리가 알아야 할 우리 소나무’ 등 10여권의 저서를 펴냈다.2년전에는 ‘솔바람모임’을 결성, 틈만 나면 전국의 소나무숲을 찾아간다. 여기에는 엄호열 시사일본어사 사장, 박희진 시인 등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홈페이지를 통해 ‘소나무 살리기 100만인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또 매월 소식지 1000부씩을 발간, 회원들에게 발송한다. 전 교수는 몇해 전 암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이상하리만치 소나무와 호흡을 하는 동안 완치됐다. 오히려 같은 연배보다 훨씬 젊다는 인사까지 받을 정도.“수술환자가 숲을 바라보면 훨씬 빨리 치유된다는 얘기가 있다.”며 활짝 웃는다. 전 교수는 요즘 독특한 강의방법으로 인기를 모은다. 예를 들어 교양과목 수강생들에게 교정의 나무 한 그루를 임의로 선정하게 한 후 3개월동안 나무와 대화를 나눈 소감을 써내라고 한다. 처음에는 다들 의아해 했지만 녹색 생명체인 나무와의 소통으로 자연·생명·친화본능을 일깨우게 했다는 결과를 얻어냈다. 또한 이번 학기부터 북한산 등산과목(자연학습)을 신설했다. 국민대를 출발하는 8자형 코스를 개발한 뒤 요소요소에 번호를 매겨 현장의 소감을 과제물로 제출토록 했다. 어느 지점에 가면 몇년생 소나무, 산수유 등이 있으니 보고 느낀 소감을 발표하는 것이다. “소나무는 이 땅의 풍토와 절묘하게 결합해 한국인의 정신과 정서를 살찌우는 자양분이 됐지요. 하루빨리 국목으로 지정해 자손만대에 이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오는 6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열리는 국제 산림문화 세미나에 참석, 우리나라 소나무의 우수성을 알릴 예정이다. 전 교수의 연구실에는 ‘독자청청(獨自靑靑)이라는 글귀가 걸려 있다. 한 서예가가 ‘소나무 같은’ 전 교수를 위해 써 준 것이라고 했다. 주말매거진 We팀장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51년 경남 마산 출생 ▲70년 마산고 졸업 ▲78년 고려대 임학과 졸업, 동대학 석사(81년) ▲84년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 석사, 동대학 박사(87년) ▲88년∼현재 국민대 산림자원학과 교수. 삼림대 학장, 도서관장, 전산정보원장 역임 ▲92∼02년 숲과 문화연구회 결성, 발행인, 편집인, 대표 역임 ▲96년∼현재 재단법인 동숭학술재단 사무국장 ▲98∼02년 생명의 숲 운영위원, 공동운영위원장, 이사 역임 ▲99년 국내 최초 숲 해설가 양성교육 실시, 숲 해설가 협회 공동대표(04) 역임 ▲04년∼현재 한국녹색문화재단 이사, 한국산지보전협회 이사, 솔바람 모임 대표 ▲05년 소나무 지키기 국민연대 공동대표 ■ 상훈 홍조근정훈장(04) ■ 저서 산림문화론(국민대학교 출판부,97), 숲과 한국문화(수문출판사,99), 나무와 숲이 있었네(학고재,99),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소나무(현암사,04), 숲과 문화(북스힐,05), 한국의 명품 소나무(시사일본어사,05)외 다수
  • 불임, 음지에서 양지로

    불임, 음지에서 양지로

    쉬쉬했던 불임문제가 양지에서 사회적 관심을 받고 있다. 정부가 저출산 해소대책의 일환으로 올해 처음 불임가정을 위한 지원책을 내놓은 데 이어 민간에서도 불임가정에 관심을 쏟고 있다. 저출산으로 인한 위기의식과 더불어 불임이 더 이상 개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책임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덕분이다. ●출산친화기업 불임치료비 지원 민간에서는 인구보건복지협회의 활동이 대표적이다. 인구협회에서는 협회 공식 홈페이지 외에 불임부부를 위한 온라인 커뮤니티인 ‘아기모(www.agimo.org)’를 별도로 운영하며, 불임부부 지원사업과 심리상담사업을 벌이고 있다. 지난 연말부터 시작한 불임부부 지원사업은 특히 호응이 높다. 불임가정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불임시술 비용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백관수 불임대책사업팀장은 “출산친화기업의 후원을 받아 인공수정 시술비용을 직접 지원하고 있다.”면서 “신청자를 접수받아 나이와 소득, 불임기간, 임상심사 등을 종합해 지원대상자를 선발하는데 경쟁률이 4대1에 이를 정도로 반응이 좋다.”고 전했다. 현재 출산친화기업으로서 지원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기업은 ㈜쌍방울, 삼성코닝정밀유리, 한국 오가논㈜ 등 3개 기업이다.㈜쌍방울은 ‘인공수정 의료비 지원캠페인’을 통해 이미 불임여성 5명에게 불임검사비와 인공수정 시술비를 지원했고, 현재 2차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삼성코닝정밀유리 역시 ‘새 생명, 새 희망 불임치료 지원사업’을 통해 4차례에 걸처 총 200가구를 선정해 인공수정 시술비를 지원키로 했다. 한국 오가논㈜도 오는 2008년까지 총 8400만원을 지원한다. 백 팀장은 “참여기업이 한정돼 있다보니 지원자 모두에게 혜택을 드리지 못하고, 막상 혜택을 받지 못하면 섭섭해 하는 분들이 많다. 그래서 2008년까지 100개 기업으로부터 22억원의 후원금을 모금한다는 게 목표지만 쉽지가 않다.”고 말했다. 불임치료 지원사업 외에 인구협회에서 적극 추진하는 사업은 ‘불임 심리상담실’운영이다. 오는 4월3일부터 문을 여는 불임 심리상담실은 불임부부, 특히 정신적 고통이 큰 불임여성을 위해 마련됐다. 전화(1644-7382)로 상담을 의뢰하면 전문심리상담사의 상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불임부부를 위한 온라인 커뮤니티로는 최대 규모인 아기모 사이트 역시 인구협회에서 운영을 맡고 있다. 협회측은 “아기모 사이트는 원래 불임여성의 개인홈페이지로 시작돼 회원 수가 1만명이 넘는 커뮤니티로 자리를 잡았는데, 운영자의 개인사정으로 폐쇄될 위기에 있는 것을 협회에서 인수해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기모에서는 불임 관련 각종 정보와 전문의상담 코너 등을 제공하고 있는데, 최근 들어서는 각 지역의 오프라인 모임도 지원하면서 불임여성들의 목소리를 끌어내고 있다. 아기모 회원인 서울 마천동의 이승숙(39)씨는 “아기모를 통해 인공수정시술비 지원사업에 대한 정보로 접하게 됐고, 무엇보다 불임여성들은 심리적으로 고통을 받게 되는데 모임을 통해 서로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좋다.”고 말했다. ●“불임치료비 건강보험 적용돼야” 늦은 감이 있지만 정부에서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1만 6000쌍의 불임부부를 선정해 시험관아기 시술비 150만원을 지원키로 한 것. 지원대상이 도시근로자가구 평균 소득의 80%이하, 나이 44세 이하 여성으로 제한되기는 했지만 정부에서 책임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불임부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봤더니 60% 넘는 불임가정에서 경제적 부담 때문에 불임시술을 포기했다는 응답이 나와 우선 저소득층을 위주로 시술비를 지원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140만쌍에 이르는 전국 불임부부들에게 정부가 내놓은 지원책은 턱없이 부족하다. 당사자들은 이벤트성 지원책보다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정부에서 제시해야 한다고 아쉬움을 나타내고 있다. 불임여성들은 “시험관아기 시술비는 300만원을 육박하고, 인공수정수정 시술도 한 번에 30만원이 넘게 드는데, 많게는 6차례씩 시술을 받게 된다. 여기에 각종 약값, 주사값 등을 포함하면 웬만한 가정에서 부담하기 힘든 액수”라고 경제적 부담을 호소한다. 불임여성 동호회 ‘아가야(agaya.org)’의 박춘선 대표는 “불임치료가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된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면서 “지난해부터 끊임없이 정부와 국회에 보험적용을 해달라고 건의하고 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의료보험 적용 촉구 서명캠페인을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 샤론정신건강硏 박상희 소장 불임 여성들은 정신적인 고통도 상당하다.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불임으로 고생하는 여성들의 가장 힘든 점은 첫째가 치료비에 따른 경제적 부담, 둘째가 정신적 고통이다. 이들의 말 못하는 고민은 우울증으로 이어지고 최악의 경우 자살을 부르기도 한다.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샤론정신건강연구소와 손을 잡고 마련한 불임 심리상담실(1644-7382)은 그래서 의미가 크다. 샤론정신건강연구소의 박상희 소장은 “불임 여성들은 우울증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은데, 불임을 여성의 결함으로 인식하는 분위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또 “불임의 원인은 사회적, 환경적인 영향도 크고 남성에게 원인이 있는 경우도 많지만 유독 여성에게 그 책임 돌아간다.”면서 “특히 불임문제를 터놓고 얘기할 수 없는 분위기다 보니 고통을 나누지 못하고 혼자서 앓다가 마음의 병을 키우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문을 여는 심리상담실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 여성들이 고민을 털어놓고, 전문가와 함께 해결책을 찾아볼 수 있는 창구가 마련됐다는 점이다. 사실 아직까지 심리상담이 보편화되지 않았고 만만치 않은 비용 때문에 전문상담사를 찾기가 어렵지만, 이번 전화 심리상담소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 접근성에서 장점이 있다. 게다가 무료 상담이지만 시간당 상담비가 4만원이 넘는 전문 심리상담사의 상담을 직접 받을 수 있고, 현장의 상담사들이 박사급 이상의 슈퍼바이저들에게 지도를 받아가며 상담을 하기 때문에 체계적인 상담도 기대할 수 있는 이점도 있다. 박 소장은 “불임여성들을 상담하다 보면 불임 때문에 스스로의 존재에 회의를 가지고 죄책감을 느끼는 사례를 많이 볼 수 있고, 심할 경우 남편의 폭력이나 가족들의 불합리한 대우에도 당당하지 못한 경우가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번에 무료 상담을 하게 된 것도 같은 여성으로서 책임감을 느껴 동참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그는 “불임은 여성 혼자만의 책임이 아닌 부부의 공동의 책임이자 사회적 문제라는 점을 인식하고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울음이 많아지거나 감정조절이 힘들게 되면 우울증을 의심해보고 전문가의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또 “불임 여성들은 특히 외로움을 많이 느끼기 때문에 남편의 사랑과 가족들의 배려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 스페인 카탈루냐 독립하나

    스페인 카탈루냐 독립하나

    스페인의 카탈루냐 지방이 사실상의 ‘독립’을 향한 큰 걸음을 내디뎠다. 스페인 하원은 30일(현지시간) 카탈루냐를 ‘국가적 존재’로 규정한 법안을 격론 끝에 189대 154로 통과시켰다. 상원과 카탈루냐 지방의회의 심의, 주민투표 등의 절차가 남았지만 큰 변수가 없는 한 올해 하반기 최종 비준을 거쳐 발효될 것으로 보인다. 법안에 따르면 카탈루냐 자치정부는 각종 세수입 가운데 지금보다 많은 부분을 가져가게 된다. 또 공용어로 카탈루냐어를 사용하고 독자적인 사법권 행사도 보장받아 ‘주권국가’에 준하는 지위를 얻게된다. 뉴욕타임스는 현지 헌법학자의 말을 인용,“법안에는 카탈루냐의 권력이 카탈루냐 주민에게서 나온다는 조항이 명시돼 있다.”면서 “사실상 스페인 헌법의 테두리 바깥에서 ‘민족자결권’을 행사하겠다는 카탈루냐의 의지를 담고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변수는 야당의 반발이다. 대중당의 마리아노 라조이 당수는 “1978년 헌법에 의해 합의된 스페인의 정체(政體)를 부인하는 것”이라며 헌법재판소에 소송을 냈다. 분리주의 세력의 불만도 크다. 자치권이 너무 적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안 통과를 주도한 마리아 테레사 페르난데스 델 라 베가 부총리는 “법안은 스페인을 괴롭혀온 지역 갈등을 치유하기 위한 새로운 해결책”이라며 “통일되고 더 강한 스페인의 건설은 무엇보다 이 나라에 존재하는 다양성의 인정을 통해 가능하다.”고 말했다. 스페인 제 2의 도시 바르셀로나가 속해있는 카탈루냐 지방은 근대국가 수립 이전부터 마드리드 중심의 중앙권력과 마찰을 빚어왔다. 최근까지도 바스크 지방과 함께 스페인으로부터의 분리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져온 대표적인 곳이다. 문화적 전통도 다른데다 종족과 언어도 다르다.19세기부터 자치공화국 수립과 카탈루냐어의 공용화를 요구했지만 중앙정부의 탄압을 받았다.1936년 프랑코 총통에 의해 자치권을 박탈당했다가 1977년에야 회복됐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책꽂이]

    |실용| ●요리사가 말하는 요리사(한영용 등 지음, 부키 펴냄) 디저트의 종류로는 달콤한 것과 치즈 및 치즈 요리가 주가 된 세보리, 바바루아·블랑망제·샤를로트·무스 등 찬 후식, 베니에·크레페·푸딩 등 더운 후식이 있다. 이밖에 과일이나 건과, 건포도를 내놓기도 한다. 요리사의 세계는 디저트만큼이나 다양하다. 책에 나오는 14명의 현직 요리사들은 “눈은 선배의 요리를 훔쳐 배우고, 귀는 선배의 이야기를 듣고, 코는 냄새를 맡고, 입은 모르는 것을 물어보라.”는 요리계의 격언을 새내기 요리사들에게 들려준다.9500원. ●이솝경영학(데이비드 누난 지음, 김광수 옮김, 세종서적 펴냄) 기원전 620년경 노예의 아들로 태어난 이솝은 곱사등이에 말더듬이였지만 타고난 지성과 재치있는 말솜씨로 그리스 시민들 사이에서 현자로 추앙받았다. 그는 동서양 무역으로 국민들에게 황금을 뿌려줄 만큼 부유했던 도시국가 리디아의 ‘CEO’ 크로이소스 왕의 보좌관으로 활약하면서 인도와 중국까지 아우르는 동서양의 지혜를 집대성, 이솝우화로 알려진 ‘인간학의 바이블’을 썼다. 책은 이솝의 이야기에서 비즈니스 교훈을 하나씩 들춰낸다.1만원. ●만달라스 그리기(요하네스 로젠가르텐 지음, 최외선 감수, 이지북 펴냄) 불교 수행자가 깨달음의 경지를 표현한 그림인 ‘만달라스’. 그러나 만달라스를 유심히 살펴보면 이 그림에는 특별히 종교적인 색채랄 게 없다. 우리 주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원과 선, 사물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단순한 만달라스가 인간 심리에 미치는 영향을 최초로 탐구한 사람이 바로 심리학자 융이다. 우리가 그리는 원 그림이 무의식의 표현이며 무의식에 갇힌 창조적 에너지를 끌어내는 치유의 힘이 있다는 게 그의 주장. 누구나 쉽게 따라 그릴 수 있는 만달라스 도안집. 전2권. 각권 6000원. ●연인끼리 함께 보는 별자리 비밀(겐 에니시 지음, 김현남 옮김, 아카데미북 펴냄) 그리스신화의 농업의 여신 데메테르는 왼손에 보리의 이삭을 들고 있다. 그 이삭 앞에서 빛나는 별이 스피카다. 보리 이삭이 물들기 시작할 무렵 하늘 높이 빛을 발한다. 푸른 기운을 띠고 하얗게 빛나기 때문에 ‘진주성’으로도 불린다. 신비로운 별들의 세계.50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서양의 점성술은 고대 바빌로니아의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시작됐다. 책은 흔히 아는 12별자리가 아닌 24개 별자리를 다룬다.8000원. ●깨진 유리창 법칙(마이클 레빈 지음, 김민주ㆍ이영숙 옮김, 흐름출판 펴냄) 전설적인 야구선수 조 디마지오는 항상 최선을 다해 경기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늘 관중석에 자신의 플레이를 처음으로 직접 보는 팬이 앉아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했다. 그 결과 디마지오는 56게임 연속 안타의 신화를 세울 수 있었다.‘깨진 유리창 법칙’이란 기업의 실수로 고객이 겪은 불쾌한 경험이 결국 기업의 앞날을 뒤흔든다는 것. 디마지오는 작은 것에도 강박적으로 최선을 다했다. 범죄학에 도입해 큰 성과를 거둔 ‘깨진 유리창 이론’을 비즈니스세계에 접목한 책.1만원.
  •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13) 진리의 보편성과 특수성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13) 진리의 보편성과 특수성

    지나온 세월동안 진리의 보편성과 특수성의 인식을 위한 세미나들이 과거에 종종 있었다. 나도 거기에 참석해 본 적이 있었다. 보편성의 실재를 강력히 주장하는 분들은 보편성이 문화적 선진국들에서 전파된 것처럼 여기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거기에 반대의견을 개진하면, 특수성을 보호막처럼 고집하는 국수주의자인 양 취급하려는 사고관행을 보았다. 그 경우에 내가 가장 자주 언급한 철학사상이 율곡의 이통기국론(理通氣局論=보편적인 理는 특수적인 氣의 제약과 같이 실존함)이었다. 나는 유가적인 율곡의 저 말이 진리를 하나로 회통시키는 본질사상과 다양한 사실들을 살리려는 실존사상을 아울러 융합시킨 이사상자(理事相資=진리와 사실이 서로 의지함)나 이사무애(理事無碍=진리와 사실이 서로 장애없이 교환됨)라는 불가적인 화엄사상과 별로 다르지 않다고 늘 생각해 왔었다. 나는 사상의 보편성을 늘 선진외국으로부터 수입하는 사고방식을 관행으로 여기는 한, 우리가 세계사에 우뚝 솟은 좋은 나라의 성공사례를 역사에 결코 남길 수 없고, 늘 아류국의 후진성을 면치 못하리라 생각한다. 옛날에 보편성이 중국에 있다고 여기는 것이나, 지금 그것이 서양 선진국에 있다고 여기는 것이나 전혀 다르지 않다. 중국 본토와의 교류가 터진 이후 별로 사상적으로 대단찮은 현대 중국의 책들이 번역되어 인기물이 되고, 그 주인공들을 불러 엄청나게 후대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옛 사대주의의 업보를 언제 벗게될지 절망을 느낀 적이 있었다. 율곡의 ‘이통기국론’이나 화엄의 ‘이사무애론’이나 다 보편적인 진리는 구체적으로 실존하는 ‘여기와 지금’의 특수한 사실이나 기질의 제약을 떠나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다산 정약용이 우리 조선을 늘 동국이라 칭하는 관행을 비웃으면서, 조선입장에서 보면 조선이 중국이고 중국은 서국이라는 말을 개진했다. 이런 생각을 국수주의로 매도해서는 안된다. 국수주의는 자존망대의 배타적인 사고관행이다. 이것은 황당한 코미디다. 모든 문화는 잡종의 만남이다. 문화적 순종을 찬양하는 일은 근친교배처럼 문화적 허약체질을 만들고 시들어 죽을 뿐이다. 그런데 그 잡종의 만남에 어떤 중심이 따로 없고, 다양한 기국(氣局)의 사실들이 곧 중심이 될 뿐이다. 보편성의 중심은 사실상 어디에도 없다. 모든 기국의 사실에 보편성이 이미 녹아 있다는 것이다. 보편성은 실재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그냥 인간의 본성이 좋아하는 기호일 뿐이다. 그런데 그 본성이 사람들에게 개성과 함께 동거해 있다. 개성과 본성은 이원적인 것이 아니고, 불일이불이(不一而不二=하나도 둘도 아님)나 부잡불리(不雜不離=섞인 것도 분리된 것도 아님)의 방식으로 실존할 뿐이다. 원효나 율곡이 다 이 점을 아주 강조했다. 이것을 우리는 진지하게 사유해야 한다. 김치나 비빔밥이나 된장찌개는 다 한국음식이다. 이 음식이 동시에 국제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맛있는 한국음식을 개발하는 길 이외에 우리가 음식문화에서 어떻게 국제적인 경쟁력을 얻을 것인가? 누구나 다 외국음식들을 좋아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좋아하는 보편성이 그들의 특수성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전통음식을 수구적으로만 지키려는 순수주의적 자세는 경쟁력에서 이기지 못한다. 왜냐하면 기(氣)의 특수성 속에 이(理)의 보편성이 이미 함축되어 있다 하여도, 그 기의 특수성도 역시 고착적인 것이 아니라, 어떤 습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습관은 어떤 일정한 경향성을 지니고 있지만 불변적인 것은 아니다. 혀의 미각은 인간의 오감의 느낌 가운데 가장 변화에 둔감하다. 그러나 그것도 불변적인 것은 아니다. 기국의 제약성은 기국의 독자적인 폐쇄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의 미각의 기가 다른 나라의 미각의 기와의 차이의 변별성에 불과하다. 문화는 본디 잡종의 혼융이므로 순수한 것의 독존은 성립안된다. 한국인의 미각도 다른 나라의 것과의 교류관계 속에서 섞이는 혼융이다. 그런 한에서 관계의 차이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상관적 관계의 함수가 다르면, 자기의 맛도 조금씩 달라진다. 그러므로 기국은 자기문화의 어떤 습관화된 기호를 말하지만, 그 기호가 다른 문화와 맺는 상관관계의 함수에 따라 늘 변화를 빚는다. 기국도 시대의 인연에 따라 변한다. 김치도 임란 이후에 고추가 들어와서 맵게 변했다 한다. 그러나 기국은 늘 우리가 살아가는 실존적 살(肉)이다. 이 살을 떠나서 한국인이 성립하지 않는다. 살의 의미를 철학에 처음으로 도입한 이가 20세기 프랑스의 현상학자 메를로-퐁티다. 살을 통하여 내가 느끼고 생각한다. 사실상 살이란 객관적 도구를 통하여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살이 느끼고 생각한다고 말해야 하리라. 왜냐하면 나의 느낌과 생각이 살과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고, 살과 함께 생활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살은 주관적인 것인가? 그것은 주관적인 것도 객관적인 것도 아닌 상호주관적인 공통성을 띠고 있다. 살은 물론 내 몸이지만, 그 몸의 영역이 고착적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다. 내 몸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나는 모든 인연이 다 살이다. 내가 만나는 사람만 살일 뿐만 아니라,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현상과 사건도 다 살로서 연장된다. 살은 생활세계의 분위기다. 그래서 우리는 생활세계의 분위기와 함께 느끼고 생각한다. 이것이 문화다. 우리는 우리의 문화가 느끼고 생각하고 말하는 속에서 함께 느끼고 생각하고 말한다. 그래서 기국으로서의 한국문화는 한국인을 낳고 자라게 하는 집단습관의 태반과 같다. 이 집단습관의 태반을 불교식으로 표현하면 무의식의 공동업(共同業)이다. 모든 인간은 다 살로서 생활하고 실존한다. 살의 실존과 관념의 사상이 따로 놀지 않아야 살이 건강하고 행복을 노래한다. 살의 실존과 관념의 사상이 따로 헛도는 경우에, 살은 자신의 공동업이 인간본성의 본질에로 접근되는 해방과 행복의 길을 얻지 못하고 자신의 하고싶은 말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무의미로 천대받는다. 그것은 삼국시대의 무속신앙이 외래 관념사상의 권위에 밀려 천대받아 온 것과 유사하다 하겠다. 살의 실존은 무의식적 공동업의 생활인데, 그 생활이 보편적 의미로 향하여 접목되려는 욕망을 가진다. 그 욕망의 표현이 곧 각 문화권의 관념적 사상이다. 기국이라는 무의식의 공동업은 율곡의 생각처럼 내용을 담는 특수한 기질(氣質)이기도 하고, 또 발현하는 기운(氣運)이기도 하다. 기질과 기운이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기실 같은 의미를 달리 전하는 것이다. 몸은 제약의 기질이지만, 동시에 그 기질을 통하여 우리가 기운을 낸다. 기질이 머금고 있는 특수한 기운이 보편적 의미의 옷을 입고 솟아야 우리의 마음이 유의미해진다. 보편적 의미의 옷이 바로 율곡이 말한 이통(理通)이겠다. 그 의미의 보편적 옷이 다른 곳에서 수입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몸 안에 이미 주어져 있는 인간의 본성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율곡의 이통기국론은 보편적 이(理)가 기국의 살밖에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살의 기질과 기운 속에 함께 동거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화엄학처럼 해석하면,개성의 사실 속에 진여의 진리가 함께 동거하고 있다는 것과 같다하겠다. 개성이 곧 진여인 것은 아니지만, 개성의 발현을 떠나서 진여의 꽃이 피는 것도 아니다. 이 말은 개성의 업(業) 속에 진여의 출현을 가로막는 장애가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 말을 좀 더 확대하면, 한국인의 상호주관적 공동업의 살 속에 본성인 보편성의 출현을 방해하는 악업이 깃들어 있다는 것과 같다. 한국적 관념의 사상이 한국의 정신문화인데, 이 정신문화가 실존적 살의 분위기와 어긋나 헛돌지 않으려면, 실존의 살이 안고 있는 업장의 병을 고치려는 구원의 사상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관념의 사상이 살이 아파하는 병을 치유할 수 있게 되면, 그 살은 자신의 의미를 말하는 통로를 얻어 세상을 향하여 풍요하고 다양한 삶의 잔치에 높은 대우를 받으면서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마치 우리 음식이 자신의 기국을 통하여 세상이 다 좋아하는 세계적 음식으로 통하게 되는 것과 같겠다. 그러기 위하여 좋은 요리사의 창조가 선행되어야 한다. 살의 업은 장애이기도 하고, 동시에 물결이나 나무결과 같은 결이기도 하다. 장애와 결의 차이가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활용(11회 글)에 따라 구분된다. 즉 마음의 활용에 따라 우리를 방해하던 그 업이 오히려 우리를 생기나게 하는 결로 되살아난다. 그러므로 한국의 정신문화는 우리의 공통적인 마음을 잘 활용하는 법을 익히는 이치와 다르지 않겠다. 그렇게 되면 우리 속에 깃든 특수성이 본성의 보편성과 접목하여 각자가 자기의 타고난 결대로 꽃을 피워 이타행을 하며 즐거워하는 찬란한 정신문화의 금물결을 세상에 반짝이게 하리라. 보편성은 밖에서 수입해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있는 본성인데, 이것이 특수성과 함께 살아나는 길을 창조해야 한다. 그러면 왜 외국학을 공부해야 하는가? 외국을 공부해야 한국의 병과 결을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를 알기 위해서 자기를 떠나는 법을 알아야 한다. 자기는 타자와의 인연에서 생기지, 홀로 독생(獨生)하는 것이 아니다. 보편성이 선진국에 있는 것이 아니듯, 특수성도 자기 것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독일에서만 나오고, 베르그송도 프랑스에서만 생긴다. 듀이는 미국에서만 탄생되며, 도스토예프스키는 러시아적 신비를 풍긴다. 왜 그럴까? 이 물음에 이통기국의 비밀이 있겠다. 성철스님, 청화스님, 숭산스님 등은 한국이 낳은 자랑스러운 고승들이다. 이 고승들의 실존을 한국문화의 이념형(Ideal type=사회문화의 특수성을 인식하기 위하여 경험적 현상들을 개념적 준거의 틀로 유형화하는 막스 베버의 사회학이론)으로 삼을 수 있을까?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철학)
  • 강릉 ‘온천병원’ 생긴다

    강릉에 온천수를 이용한 국내 첫 치료온천이 생긴다. 27일 강릉시에 따르면 JD레저앤 스파㈜가 지난 2004년 옥계면 금진리 일대 87만평을 온천원 보호지구로 지정한 뒤 국내외 연구기관의 검증을 받아 수치료 온천을 개발한다고 밝혔다. 회사측은 먼저 온천공 주변에 중규모의 수치료센터를 건립한다는 계획 아래 다음달 착공해 연내 완공할 예정이다. 수치료센터는 피부질환 및 관절 등의 국소적인 치료시스템과 온천수에 녹아있는 미네랄(게르마늄 셀레늄 등)을 인체에 공급해 질환치료를 돕는 시스템이 주류를 이룬다. 회사측은 2단계로 대단위 헬스케어단지를 구축해 퇴행성질환과 난치병을 앓는 사람들이 요양할 수 있도록 꾸민다는 계획이다. 이 온천수는 독성실험 결과 미국 FDA로부터 생체독성이 전혀 없고 일본후생성으로부터는 미네랄워터로 적격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특히 온천수에 녹아있는 미네랄이 활성산소 제거와 혈압강하, 혈당조절, 간기능 개선에 치유능력을 가진 것으로 연세대 연구결과 나타나기도 했다. 정동온천 김정득 사장은 “온천원 보호지구의 난개발을 막고 계획적인 개발을 위해 강원도와 협력해 민자 및 외자유치를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강릉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메디컬 라운지] 다이어트와 돌연사

    이 시대, 개그계의 한 축이었던 김형곤씨가 젊은 나이에 돌연사해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그는 고도비만을 극복하기 위해 30㎏ 가까이 몸무게를 줄여 제법 날씬한 몸매를 되찾았다. 그렇게 의욕적으로 일을 하며, 건강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던 그가 변을 당한 것이다. 왜 그런 문제가 생겼을까. 과도한 체중감량 때문일까, 아니면 옛날의 비만했던 몸 때문일까? 김씨의 경우 꾸준한 운동과 식이요법으로 몸무게를 잘 줄여왔지만, 그렇다고 비만시에 생긴 동맥경화증이나 산화된 혈관벽까지 튼튼해진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비만 환자의 경우 혈관 속 지질함량이 높은 데다, 특히 김씨처럼 스트레스나 불규칙한 생활 등으로 활성산소가 많은 경우 이 활성산소가 혈관속 지질을 산화지질로 만들고, 그게 혈관벽에 엉겨붙어 동맥경화를 부르거나 혈관벽을 손상시키게 된다. 게다가 몸무게를 줄이는 다이어트 자체도 스트레스로 작용하기 때문에 이때 생기는 활성산소까지 제거해야 혈관의 동맥경화나 손상된 혈관벽을 치유할 수 있는데, 김씨는 이걸 소홀히 하지 않았나 여겨진다. 불균형한 식사와 비타민 섭취체계 및 영양상태는 심장근의 약화를 불러오고, 여기에 무리한 운동이 더해지면 심장 이상을 불러오기 쉽다. 따라서 비타민이나 미네랄을 균형있게 섭취하는 게 중요하다. 필자의 비만클리닉에서 27㎏이나 감량한 환자는 새우나 오징어, 고기, 계란 등을 가리지 않고도 비타민과 미네랄을 적절하게 보충하는 방법으로 살이 빠졌음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이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사우나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한다. 운동 전에 사우나로 땀을 빼면 혈액 속 수분이 줄어 혈액의 점도가 높아진다. 끈끈한 혈액은 혈행 장애를 일으켜 심장혈관에서 뭉치면 심장마비가, 뇌혈관에서 뭉치면 뇌졸중이 된다. 따라서 운동 30분 전에 미리 생수를 한 컵 정도 마셔주고, 운동 중에도 조금씩 수분을 섭취해주는 것이 좋다. 또 다이어트 중에는 최소한 1일 2ℓ 이상의 수분을 섭취해야만 한다. 이승남 강남베스트클리닉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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