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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행겸 駐EU대사 “한국, 高분배 유럽 따를 필요 없어”

    TEXT ♥“우유가 강이 되고 버터가 산이 되는데 개혁을 하지 않겠습니까. 유럽은 지금 비효율의 늪에서 벗어나 ‘EU합중국’으로 환골탈태하고 있습니다.” 기 베르호프스타트 벨기에 총리의 방한에 맞춰 서울에 온 오행겸(58) 주 벨기에대사관 겸 유럽연합(EU) 대사는 10일 “우리는 유럽을 제대로 모르는 것 같다.”면서 미국보다 유럽을 ‘벤치마킹’할 것을 주장했다. 오 대사는 이날 서울신문과의 특별 인터뷰에서 “배낭여행지로 유럽을 꼽지만 유럽에 관한 전문서적이 과연 몇권이나 되느냐.”면서 “50여년에 걸친 EU의 통합과정은 우리에게 ‘지식의 보고(寶庫)’와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국내 쌀 협상 비준안 문제를 꺼내자 오 대사는 유럽의 농업 현실을 소개하는 것으로 대신했다.“2차대전 이후 유럽 각국은 피폐한 농업을 살리기 위해 생산장려금과 수출보조금을 지급하고 역내를 보호하는 ‘공동농업정책(CAP)’을 채택했는데, 그러다보니 농산물이 과잉생산됐고 농업은 점차 경쟁력을 잃게 됐습니다.” 그러나 10여년 전부터 ‘우유의 강과 버터의 산’을 양산한 농산물 가격지지 정책을 줄이면서 경쟁적이고 친환경적인 시장을 전제로 한 ‘농가소득직불제’를 도입, 농업기반을 되살리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오 대사는 우리가 결코 배워서는 안 될 분야는 유럽의 노동시장이라고 했다.“직원을 해고하려면 1년 전에 통보해야 하는데, 그래서야 기업이 급변하는 환경에 대응하겠습니까.”특히 해고를 통보한 순간부터 다른 직장을 구하기 위해 별도의 휴가를 1주일에 하루씩 주는데 그 비효율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라고 했다. 주 34시간 근무제가 근로자의 복지증대에 기여하기보다 ‘오버타임’에 대한 수당지급으로 기업의 부담만 키운 측면이 크다고 했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떨어진 결과로 유럽의 실업률은 8∼10%에 이르는 반면 성장은 1%대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물론 유럽이라고 다 같은 것은 아니다. 부(富)의 분배와 효율성 측면에서 북유럽 국가는 우수하다. 해고가 되더라도 정부가 보조하기 때문에 노동시장의 유연성도 높지만 그만큼 세금을 더 거두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는 분배구조가 좋지만 효율성이 떨어지고, 영국은 효율성은 높은 반면 분배 측면에선 뒤떨어진다.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등 지중해 연안의 국가는 모두 뒤처진다는 것. 우리나라의 경우 유럽에 비하면 분배수준이 낮고 효율성은 중간선이지만 굳이 북유럽을 따를 필요는 없다고 했다. 예컨대 벨기에는 지역갈등과 양극화 문제가 있지만 그대로 안고 가면서 정치안정을 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 대사는 특히 화해를 바탕으로 한 EU의 평화구조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독일은 진정한 ‘참회’로 화해의 길을 열었고, 유럽은 강대국이 아닌 벨기에를 유럽통합의 무대로 삼은 점을 유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만약 ‘동북아공동체’가 논의된다면 출발점은 일본이 주변국에 용서를 구하는 것이고, 그 아이디어는 우리나라가 제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동북아균형론’과는 다른 차원으로 경쟁관계에 있는 중국이나 일본보다 벨기에처럼 과거 ‘전쟁터(battle field)’였던 한반도가 ‘화해의 장’으로서 적절하다는 주장이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첨단장비 동원 입체적 경호작전

    첨단장비 동원 입체적 경호작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정상회의 개최 기간동안 부산에는 육·해·공의 입체적인 대테러 작전이 전개된다. ●경호에 4만 6000여명 투입 부산 지역은 지난 10월 중순부터 경계 근무가 강화되는 등 사실상 ‘준전시상태’에 들어갔다. 경호안전실 관계자는 “완벽한 경호안전을 위해 대통령경호실, 군·경찰·국정원·소방방재청 등 4만 6000여명의 인력이 투입됐다.”고 밝혔다. 육지에서는 정상들의 숙소와 주요 행사장 등에 대한 경호안전통제단과 경찰 특공대의 물샐틈없는 근접경호가 이뤄진다. 부산 앞바다에는 해군 및 해양결찰청 경비정과 경찰·군부대 특수요원들이 경계 근무를 펴고 있다. 또 정상회의기간 동안 부산 상공에는 초계기와 경호헬기 등이 24시간 하늘 길을 지키는 등 육·해·공의 입체적이고도 빈틈없는 감시 및 통제 작전이 전개 된다. APEC 경호안전통제단은 지난 8월 초부터 이달 초까지 20여차례에 걸쳐 현장 점검을 실시했다. 정상 등 외빈들이 찾는 김해공항에는 탑승객은 물론 배웅 또는 환송 나온 일반인에 대해서도 검문 검색을 실시하고 있다. 또 X-레이를 통해 이상이 없으면 평소 그냥 통과되던 소지품도 육안으로 일일이 확인하고 있다. 회의기간 동안 정상회의장과 숙소 인근은 특별치안구역으로 지정돼 집회와 시위가 제한된다. 이 가운데 경찰 경호경비단 소속 인력 3만여명은 벡스코 정상회의장과 숙소 등을 중심으로 안전망을 1,2,3선으로 나눠 물샐틈없는 경계를 펼치고 있다. 경찰과 군은 지난달 말부터 부산역 김해공항 지하철 백화점 등 다중시설에 대한 경계 근무를 벌이고 있다. 특히 일본·중국·러시아 영사관 등 외국 공관 등 190여개 시설과 테러 발생 우려가 비교적 높은 부산진구 하얄리아 부대 등 미국 시설 14곳에 대해서는 경계 근무를 더욱 강화시켰다. ●초계기 날고 대잠함대 뜨고 해상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상황에 대해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해양경찰 특공대가 현장에 배치됐으며, 고속경비정이 포함된 전담 경비정 5∼6척이 동백섬 앞바다 경계근무를 하게 된다. 수중 침투에 대비, 대잠함대와 대잠항공기를 동원해 초계 활동을 벌이고 있다. 부산세관은 고성능 폐쇄회로 카메라 105대 등 첨단 감시시스템을 통해 24시간 동안 부산항 각 부두 감시에 나선다. 김해공항에는 인천공항으로부터 폭발물 탐지견 2마리를 공수 받아 수하물장에 투입했다. ●공항선 소지품 일일이 육안 검색 또 공항 입구에는 경찰을 배치, 검문검색을 강화하고, 국내선 및 국제선 청사 주 출입문 9곳을 제외한 나머지 7곳의 출입문은 폐쇄했다. 이밖에 정상회의 기간 정상들이 묵는 부산지역 7개 특급호텔은 오는 17일 오전 9시부터 정상들이 출국할 때까지 호텔직원, 임대사업장 근무자를 제외한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된다.18일 하루동안 부산지역 관공서와 초·중·고교 등이 임시 휴무에 들어간다. 한편 경찰청은 지난 7일부터 특별비상근무에 들어갔으며, 행사가 끝날 때까지 직원 및 전·의경의 휴가를 전면 중단시켰다. 또 행사가 임박한 12일부터는 현재 3부제인 지구대 근무를 2부제로 전환하는 등 비상근무를 더욱 강화할 방침이다. 허준영 경찰청장은 “경찰은 APEC 행사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요인경호, 행사장안전, 대 테러 대비, 집회시위, 교통관리 등 APEC 종합치안대책을 마련해 차질없이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부산청 경찰특공대 “안전 우리가 책임집니다.” APEC 개최일이 가까워질수록 테러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테러 퇴치의 최선봉에 ‘경찰특공대’가 만반의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다. 총원 33명인 부산경찰청 특공대원은 전술팀 3개팀과 폭파물 처리팀 등 4개팀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 대부분은 군 특수부대 출신으로 태권도, 유도 등 무술 유단자이다. 특공대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테러 진압과 주요 요인들이 인질로 붙잡혔을 때 이들을 빠른시간내에 무사히 구출하는 것. 이를 위해 이들은 올 초부터 인질구출작전, 폭발물 해체 작업, 테러진압 훈련 등 실전을 방불케 하는 고도의 훈련을 받았다. 저격수들은 레이저 조준경으로 400m거리의 사과를 정확히 맞힐 수 있는 사격 실력을 갖추고 있다. 폭발물 처리요원들은 폭발물 해체 훈련을 하루에도 수십차례 반복, 거의 눈을 감고도 폭발물을 처리하는 경지에 올랐다. 이들은 지난 1일부터 부산역과 김해공항, 정상회의가 열리는 해운대 동백섬내 누리마루APEC하우스 경계근무에 들어갔다. 11일부터는 전국 각 지방경찰청 특공대원들이 부산에 내려와 행사가 끝날 때까지 벡스코 회의장, 정상들의 숙소 등에 전진 배치된다. 특공대를 지휘하고 있는 김태경(41·경감) 대장은 “각국 정상들의 철통 경호를 위해 그 어느 때보다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으며 성공적인 APEC 개최를 위한 선봉에 서 있다는 자부심으로 근무에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부시에 대한 경고” 공화당 충격

    |워싱턴 이도운특파원|8일 실시된 미국 버지니아 및 뉴저지의 주지사 선거에서 모두 야당인 민주당 후보가 예상보다 큰 표 차이로 당선됨에 따라 미 정국에 큰 파장이 일 것으로 보인다. 뉴저지 주지사 선거에서 존 코자인 민주당 상원의원은 더그 포레스터 공화당 후보를 10% 차이로 가볍게 제쳤다. 뉴저지는 전통적으로 민주당이 강세를 보여왔다. 또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에서도 민주당 후보인 팀 케인 부지사가 주 검찰총장을 지낸 제리 킬고어 공화당 후보를 5% 차이로 눌렀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선거 전날인 7일 밤 남미 순방을 마친 직후 버지니아에서 킬고어 후보를 지원하는 유세를 벌였지만 유권자들은 민주당의 손을 들어줬다. 버지니아는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모두 부시에게 승리를 안겨준 바 있다. 이번 주지사 선거는 내년 의회 중간선거에 대한 표심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는 방향타로 정치권의 지대한 관심을 모아왔다. 그런 중요성 때문에 뉴저지에서는 주지사 선거 사상 유례없는 7000만달러(약 700억원)의 선거자금이 투입됐으며, 버지니아에서도 4200만달러가 상대 후보 비난 광고 등 이전투구식 선거운동에 사용됐다. 이번 선거 결과에 고무된 민주당은 내년의 상·하원 선거에서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이후 상실했던 다수당의 지위를 되찾기 위해 총력전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반면 공화당도 현재의 과반수 유지를 위한 대대적인 반격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버지니아 대학의 래리 사바토 교수는 “이번 선거는 누가 뭐래도 부시 대통령과 공화당의 패배라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AP통신과의 회견에서 말했다. 또 보수적 싱크탱크인 미국기업연구소(AEI)의 놈 온스타인 연구원은 “이라크전 장기화, 허리케인 카트리나 늑장 대처, 리크게이트로 인한 백악관 고위관리 기소 등이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 등 미국 언론은 이번 선거 결과로 부시 대통령의 영향력이 감소될 것으로 전망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입소스에 따르면 이날 주지사 선거에 참여한 대부분의 유권자는 부시 대통령에 대한 호불호가 투표의 기준은 아니었다고 밝혔지만,20%는 “부시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기 위해 투표했다.”고 답변했다. 뉴저지 선거에선 민주당의 코자인 후보가 공화당 후보를 부시 대통령과 연계시키는 선거전략을 채택하기도 했다. 이날 함께 치러진 뉴욕시장 선거에서는 공화당 후보인 마이클 블룸버그가 민주당의 페르난도 페러 후보를 꺾고 연임에 성공했다.블룸버그 시장은 이번 선거에 최대 1억달러를 사용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많은 자금을 사용해 ‘돈선거’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치안유지와 경제 활성화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선거 전부터 낙승이 예상돼왔다.dawn@seoul.co.kr
  • 경찰서 15곳 이름 바뀐다

    경찰서 15곳 이름 바뀐다

    서울 동대문경찰서의 이름이 혜화경찰서로, 청량리경찰서는 동대문경찰서로 각각 바뀐다. 이처럼 내년 3월부터 전국 15개 경찰서의 명칭이 ‘1구(區)1경찰서’ 원칙에 따라 대대적으로 개편된다. 이번 조치는 자치경찰제 시행의 준비단계로 ‘경찰서 관할구역 조정 및 명칭변경을 위한 경찰청 직제개정안’이 지난 1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데 따른 것이다. 직제개정안에 따르면 전국 233개 경찰서 가운데 행정구역과 경찰서 관할지역이 일치하지 않는 41개 경찰서의 관할지역이 구에 맞게 조정된다. 변경 안에 따르면 25개구에 31개 경찰서가 있는 서울시는 서대문구 등 19개 구가 ‘1구 1경찰서’로, 강남구 등 나머지 6개 구가 ‘1구 2경찰서’로 관할지역이 바뀐다. 개정안에 따라 관할지역이 구에 맞게 바뀌면 현재 구 행정구역과 일선서의 관할구역이 달라 발생했던 피의자나 사건 자료가 다른 서로 보내지는 문제점이 고쳐지게 된다. 경찰청은 “개정안에 따라 서별로 치안수요,112신고건수, 관할 주민 수 등 치안수요 증감을 감안해 인력조정도 병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유럽최저학비 프랑스로”

    “불어를 한 마디 못 해도 프랑스에서 유학할 수 있습니다.” 오는 11∼12일 서울 일원동 래미안 갤러리에서 제1회 프랑스 유학 박람회를 개최하는 장-뤽 말랭(51) 주한프랑스대사관 문화·과학·교육 참사관겸 문화원장은 8일 변화한 프랑스의 교육환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프랑스는 문화예술뿐 아니라 과학기술에서도 강국”이라며 “학비도 유럽에서 가장 싸고 장학금 혜택에 있어 외국인 차별이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프랑스에 가는 한국 유학생은 해마다 줄어 지난해에는 호주·캐나다보다 낮은 2.9%로 내려 앉았다. 언어의 장벽 탓이다. 때문에 프랑스는 자국민의 최대 자부심인 불어도 포기했다. 경영학 과정은 예전부터 영어로 수업해 왔지만 최근에는 이공계도 이에 가세해 현재 310개 이상 학·석사 프로그램이 영어로 진행된다. 더욱이 한국 유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해 올해 장학금 제도를 신설했다. 올 여름 9명이 왕복항공권과 학·석사과정 생활비로 매달 1700유로(약 200만원)를 지원하는 파스칼 장학생으로 선발됐다. 말랭 원장은 최근 무슬림 이민자 소요사태로 치안 불안을 염려하는 데 대해서도 “지속적인 교육과 평등 정책을 통해 통합 노력을 펴고 있다.”고 설명했다.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佛폭동 獨·벨기에 확산 조짐

    |파리 함혜리특파원|파리 교외의 무슬림 빈민 거주지역에서 시작된 소요사태가 11일째 계속되면서 더욱 악화되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강력한 처벌 의지를 밝히고 있으나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전국 300여개 도시로 확대된 차량 방화가 유럽 일부 지역에서도 발생했다.7일에는 이번 소요 사태로 인한 첫 사망자가 발생했다. 파리 북부 교외지역에서 지난 4일 두건을 쓴 젊은이들로부터 집단 구타를 당한 60대 남자가 병원에서 사망했다. 장 자크 르 슈나덱(61)은 이웃과 대화를 나누다 두건을 쓴 젊은이들에게 얻어맞은 뒤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었다. 사망자의 미망인은 강력한 처벌을 요구했다. 유럽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모방범죄가 발생, 이번 소요사태가 전 유럽으로 확산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독일 베를린의 터키계 주민 밀집 지역과 벨기에의 이민자 거주 지역에서 7일 새벽 차량이 불탔다. 프랑스에서는 파리 교외를 비롯, 전국적으로 차량, 학교, 교회, 탁아소, 경찰소 등이 방화 범죄 대상이 됐다. 파리 남서부 교외 그리니에서는 청소년들이 경찰을 향해 엽총을 발사, 경찰관 2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들 경찰은 청년들로부터 매복 공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6일 밤부터 7일 새벽까지 소요사태로 불탄 차량만도 1408대에 이르렀고, 체포된 사람은 395명이다. 프랑스 경찰은 청소년들이 휴대전화로 경찰의 움직임을 확인하고, 문자메시지로 폭력에 동참할 것을 서로 부추긴다고 설명했다. 무기력한 대응으로 비판받는 프랑스 정부는 비상 치안대책회의를 소집하고 시급한 질서 회복과 범법자에 대한 단호한 대처를 천명했다. 지난달 27일 시작된 소요 사태로 지금까지 차량 5000대 이상이 불타고 1200명 이상이 체포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1968년 5월 학생 시위 이래 최대 규모다. lotus@seoul.co.kr
  • [발언대] 무분별 ‘反APEC 시위’ 자제를/박용만 서울경찰청 수사과 경감

    요즘 집회·시위 일정을 정리하다 보면 의아한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각종 이익단체들이 앞다퉈 ‘반(反)APEC 집회’를 열겠다며 신고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절박한 심정이야 이해하지만 정작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관련없는 사람들까지 이때다 싶어 ‘반 APEC’의 기치를 걸고 단체행동을 하려는 걸 보면 한숨이 나온다. 며칠 앞으로 다가온 APEC 정상회의(11월12∼19일)는 설명할 필요없이 중요한 행사다.APEC 21개 회원국은 우리나라 무역의 70.3%를 차지하고 있으며 국내 외국인 투자액 비중도 63.7%에 이른다. 이번에 21개국 정상과 정부대표, 기업대표와 기자단을 포함한 1만 5000여명가량이 우리나라를 찾을 전망이다. 이들에게 우리나라의 경제적 저력을 과시하며 국제적인 신인도를 향상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여러 나라들이 APEC 정상회의 유치를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경찰은 지난 7·7 런던테러 참사 이후 APEC 정상회의의 안전을 위해 경호 안전점검과 전담요원의 현장훈련, 다중이용시설 순찰을 강화하고 있다. 또 국내 주재 외교관을 초청해 특공대 테러진압을 선보였고 외신기자들을 초청해 APEC 대비 대 테러대책 홍보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아무리 작은 테러설 하나에도 초긴장 상태를 유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지금 상황이다. 경찰력을 최대한 외부로부터의 위해에 집중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럴 때 국내에서 내국인에 의해 벌어지는 집회·시위에 소중한 경찰력이 낭비된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자칫 민생치안의 부실로 이어질 수도 있다. 최근 덤프연대와 화물연대가 파업을 자제하고 정부와 협상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들의 절실함이 다른 사람들보다 뒤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절박한 투쟁가치가 있더라도 공동선을 한 번쯤 고려해보지 않는다면 모두의 이해를 구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성숙한 시민의식을 기대해 본다. 박용만 서울경찰청 수사과 경감
  • 불타오르는 파리

    TEXT |파리 함혜리특파원|프랑스 소요사태가 열흘째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파리 시내 중심가에까지 차량 방화가 발생해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양상이다.●화염병 제조 공장 급습 그동안 비교적 치안이 확립된 것으로 평가받던 파리 중심가에서도 5일 밤과 6일 새벽 사이 32대의 차량에 방화가 일어났다. 범행 후 도주하는 스쿠터 운전자를 추적하기 위해 경찰 헬기가 밤새 서치라이트와 카메라를 비추었다. 파리 동부와 북부를 오가는 야간버스도 방화를 우려해 운행을 중단했다. 파리 서쪽 100㎞의 에브뢰에서는 청년들이 쇼핑센터 주차장에 불을 질러 차량 50대가 한꺼번에 탔으며 우체국과 보육학교 등 대형 건물도 표적이 되고 있다. 프랑스 북부 릴, 북서부의 루앙, 남서부의 툴루즈 등 모방 폭동이 잇따르면서 이날 밤에만 전국의 차량 1300여대가 화염병 투척 등에 불탔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이로써 지난달 27일 촉발된 파리 교외의 무슬림 소요사태로 인해 지금까지 차량 3500여대가 불타고 800여명이 경찰에 검거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경찰은 에브뢰 지역에서 화염병 제조 공장을 발견해 150개의 완성된 화염병과 100개의 빈병, 수십 ℓ의 휘발유, 폭동자들이 쓰는 복면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현장에서 미성년자 6명을 체포한 경찰은 “꼬마들이 화장실에서 만든 게 아니다.”며 ‘조직적 범죄’임을 강조했다. 아직까지 프랑스 거주 한국 교민의 피해는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지만 주프랑스 대사관은 교민들에게 안전에 각별히 주의할 것을 당부했다. 한편 이번 사태가 무슬림(이슬람 교도) 빈민 거주지가 있는 다른 유럽 국가들로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각국에서 제기되고 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을 지낸 이탈리아 야당 지도자 로마노 프로디는 5일 “우리가 파리와 다르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면서 “사회 및 주택 문제에 진지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파리와 같은 많은 소란이 야기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럽 각국 신문들도 무슬림 폭동이 국경을 넘어 확산될 것을 우려하면서 프랑스의 무슬림 통합정책 실패를 지적했다. 스페인의 자유주의 성향 일간지인 라 반구아르디아는 “프랑스의 ‘가을 폭풍우’가 ‘유럽의 겨울’을 예고하는 전주곡이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프랑스는 대외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사태가 격화되자 프랑스 주재 미국 대사관과 러시아 대사관은 자국 여행객들에게 소요 지역에 가지 말라고 당부했다.●시라크 대통령 특별 안보회의 소집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 이번 소요사태와 관련해 특별 안보 회의를 소집했다. 앞서 도미니크 드 빌팽 총리는 5일 정부 비상회의를 소집해 단호히 대처한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검찰은 폭동 참가자들이 휴대전화 문자메시지와 인터넷을 통해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것으로 보고 있다. 최악의 폭동 지역 중 하나인 올네-수-부아에서는 5일 아침 1000여명이 거리로 몰려 나와 ‘폭력은 그만’을 외치며 침묵 시위를 벌였다.lotus@seoul.co.kr
  • [씨줄날줄] ‘톨레랑스 제로’/ 이목희 논설위원

    1990년대 중반 당시 루돌프 줄리아니 미국 뉴욕시장은 ‘깨진 유리창 이론’을 중시했다. 사회학자 제임스 윌슨, 조지 켈링이 내놓은 주장이었다. 건물 유리창 하나가 깨진 사건을 방치하면 불량배들이 다른 유리창을 잇달아 깬다는 것이다. 이어 페인트 낙서가 뒤덮이고 그 지역 전체가 슬럼으로 변한다는 범죄발생이론이다. 줄리아니는 사소한 범죄를 일벌백계로 다스려 치안을 강화해 나갔다. 이른바 ‘톨레랑스 제로’(무관용주의) 정책이다. 톨레랑스의 나라 프랑스가 뒤늦게 줄리아니를 모방했다. 대표적 우익지도자 니콜라 사르코지가 2002년 내무장관에 취임한 후 범죄자를 향해 ‘톨레랑스 제로’를 외쳤다.1차 범죄와의 전쟁에서 성과를 거둔 그의 인기는 치솟았다. 올 6월 내무장관으로 다시 기용된 사르코지는 차기 대권후보 인기도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사르코지가 지금 시험대에 올랐다. 파리 교외에서 발생한 소요사태가 10여일째 계속되면서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달 27일 아프리카계 소년 2명이 경찰의 검문을 피해 달아나다가 감전사하면서 사태는 시작됐다. 과잉단속 논란이 일었지만 사르코지는 “인간쓰레기와 건달들을 청소해버리겠다.”는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 프랑스는 유럽에서 다민족 국가의 대표격이다. 로마, 갈리아, 프랑크, 노르만 등 라틴·게르만족이 혼합되어 주류가 만들어졌다. 아직 켈트, 알자스·로렌, 플라망족 등은 독자영역을 확보하고 있다. 인종 포용과 함께 프랑스대혁명을 거치면서 ‘자유·평등·박애’의 선도국가가 되었다. 냉전시대 동서 양진영의 망명객, 심지어 독재자들도 프랑스는 너그럽게 받아줬다. 사르코지는 톨레랑스 개념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다른 종교, 인종, 이념을 가진 이들의 권리와 처지를 용인·이해하는 것이 톨레랑스다. 차별없이 섞여 사는 지혜인 셈이다. 근래 부쩍 늘어난 무슬림 이민자들이 차별대우를 심각하게 느낀다면 톨레랑스의 작동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근본의 톨레랑스가 깨지는 상황에서 방화·폭동의 범죄 요소만 부각시켜 ‘톨레랑스 제로’라고 위협해선 안 된다. 이민자·외국인취업자 갈등은 한국을 포함, 대부분 국가들에도 발등의 불이다. 프랑스가 과거의 톨레랑스를 회복, 모범사례를 만들어내길 바란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자이툰 철군해야” “단계적인 감축을”

    여야는 4일 국회 국방위원회를 열고 ‘이라크파견 자이툰부대 철군결의안’을 놓고 공방을 벌였다. ‘철군결의안’은 여야 의원 30명이 서명해 지난 7월 국회에 제출됐다. 유재건 국방위원장도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 토론시간을 제한하지 않았다. 그러나 의결정족수가 모자라 본회의 상정 여부는 오는 10일 전체회의에서 표결로 결정하기로 했다. ‘결의안’에 서명한 열린우리당 임종인 의원이 철군 주장의 선봉에 섰다. 임 의원은 “최대 파병국인 미국을 비롯, 다른 나라들이 감군이나 철군 방침을 밝혔다.”며 “외교·경제적 실익도 없고 미국의 요구도 없는데 우리나라가 자발적으로 파병을 연장하려는 것은 주권국가로서 문제가 있다.”며 16일 본회의 상정을 촉구했다. 그러나 같은 당 김성곤 의원은 “모두 철군하면 이라크는 99% 내란에 빠질 것이기에 일단 파병은 연장하되 단계적으로 주둔 병력을 감축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국방부 입장도 이에 가까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국방부의 설득 노력이 부족했다고 꼬집으면서도 철군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박세환 의원은 “파병은 예산이 많이 들고 장병들 생명이 걸린 중대 사안임에도 불구, 국방부는 국민과 야당에 대한 설득작업이 없었다.”며 “이는 철군을 검토한 것이나 진배없다.”고 꼬집었다. 권경석 의원도 “시한이 촉박한데도 정부·여당이 입장을 밝히지 않은 것은 무책임하다.”고 가세했다. 윤종웅 국방장관은 “15일 이전에 관계부처의 의견을 수렴해 입장을 공표할 것”이라며 “정확한 평가는 어렵지만 내년 말까지는 이라크가 스스로 치안유지를 할 수 있다고 보기에 철군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답변했다.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시론] 자치경찰제, 시행착오 대상 아니다/한견우 연세대 법학과 교수

    [시론] 자치경찰제, 시행착오 대상 아니다/한견우 연세대 법학과 교수

    이제 우리는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를 넘어 반드시 해야만 하는 과제로서 자치경찰의 실시를 눈앞에 두고 있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필자의 눈에는 새로운 시작에 대한 설렘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자치경찰에 대한 기본개념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단 시행부터 해놓고 보자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듯하기 때문이다. 치안의 문제는 그것을 국가가 수행하든 지방자치단체가 수행하든 시험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처음 실시되는 자치경찰제가 시행착오를 줄이고 효율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기본원리에 충실해야 한다. 첫째, 자치경찰제는 ‘주민 생활주변 치안수요에 대한 주민의 만족’을 높이는 것이 핵심적이고 궁극적인 목적이다. 즉, 자치경찰제의 현실적인 필요성은 주민의 가려운 부분을 가장 가까운 데서 해결해 줄 수 있다는 데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의 역할분담 역시 어떻게 하면 주민의 치안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주민 근접성’을 살리기 위해 자치경찰 실시단위를 시·군·구로 한 것은 지극히 정당하다. 둘째로 지적할 부분은 현재 자치경찰법안을 만드는 실무자도, 자치경찰 업무를 수행할 지방자치단체도, 현재 치안업무를 맡고 있는 경찰관도 자치경찰의 개념을 혼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명확한 개념정립이 필요하다. 자치경찰의 개념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국가경찰의 권한을 일정부분 잘라서 자치경찰에게 넘겨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경찰의 권한을 그대로 두면서 지역특성에 맞는 부가적 치안서비스를 자치경찰이 덤으로 행하는 것’이란 개념이다. 국가의 권한 중에는 나눌 수 있는 것이 있는 반면 나누지 못할 것도 있다. 국방과 치안은 나눌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나라 자치경찰은 국가 전체적인 치안역량의 강화를 위해 부가적 치안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자치경찰은 현재 국가경찰이 수행하고 있는 업무를 국가경찰과 자치경찰간 80대20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100대20으로 분담하는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자치경찰’은 언어적으로는 ‘자치’와 ‘경찰’의 결합일지 모르지만, 실질적인 의미는 그렇지 않다.‘자치경찰’은 경찰업무 중에서 일부분을 지방자치단체에 맡긴다는 뜻이다.‘자치’에 중점을 두어서는 안 되고 ‘경찰’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셋째, 자치경찰 사무는 ‘특수한 지방자치사무’이기 때문에 그 특수성을 반영할 수 있는 방향으로 관장·감독기관이 결정돼야 한다. 자치경찰사무의 관장·감독기관은 일반적 자치사무를 관장·감독하는 행정자치부가 아니라, 치안사무를 전문적으로 관장하는 경찰청으로 하는 것이 현행법 해석으로 타당하다. 또한 자치경찰조직은 현행 국가경찰과는 별도로 시장·군수·구청장 소속의 보조기관으로 창설되는 것으로 자치행정의 일부이기는 하지만 일반적 자치행정의 일부가 아니라 국가경찰과 병렬적으로 인정되는 특수한 자치행정이라고 할 것이다. 따라서 일반적 자치행정의 일부로 보고 행정자치부의 관장·감독으로 하려는 논리는 자치경찰사무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형식논리로서, 타당하지 않다. 끝으로 자치경찰제는 ‘경찰행정 시스템의 대변화’가 되어서는 안 되고, 기본적으로 현재의 국가경찰에 의한 치안서비스를 보다 높이는 방향으로 실시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자치경찰의 성공여부는 주민들의 관심이 가장 크고 중요한 치안문제가 무엇인가를 제대로 파악하는 지혜에 달렸다고 할 것이다. 한견우 연세대 법학과 교수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양그룹(2)-대잇는 가족경영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양그룹(2)-대잇는 가족경영

    “재계 랭킹 몇 위 어쩌구 하는 언어의 마술에 홀려 방만한 기업경영을 해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고 도리어 나라 발전에 걸림돌이 되는 그런 기업은 되지 않았다.” 김상홍 삼양그룹 명예회장의 자서전 ‘늘 한결 같은 마음으로’에 나오는 글이다. 김 명예회장의 심정은 삼양그룹 경영의 핵심을 그대로 드러낸 말이기도 하다. 올해로 81년째를 맞는 삼양그룹은 흔히 ‘돌다리도 수없이 두드려 본 뒤 건너가는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우보(牛步)경영’ ‘내실경영’ ‘보수경영’ ‘정도경영’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세계적으로 기업 평균 수명이 30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저력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수식어의 이면에는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지 못해 성장동력을 놓쳐 재계 50위권으로 처져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함께 담겨져 있다. ●역대 정권과 긴장관계, 성장경영 꿈도 못 꿔 삼성석유화학 허태학 사장은 강연때마다 삼양사의 사례를 들곤 한다. 허 사장은 “삼양사가 일제시대와 해방 이후 국내 최고의 기업 중에 하나였지만 적극적인 경영을 하지 못해 중견기업으로 뒤처졌다.”며 삼양식의 경영방식에 부정적 평가를 내린다는 게 주위의 전언이다. 그러나 삼양그룹의 시각은 이와는 다르다. 삼양사는 역대 정권과 갈등 관계를 유지하느라 회사를 크게 키울 수 없었다고 반박한다. 실제로 삼양사는 이승만 대통령 재직시 창업주 김연수 회장의 형인 ‘인촌’ 김성수씨가 부통령까지 지내며 이 대통령의 라이벌로 활동해 집중 견제를 받았다. 김 창업주는 1951년 제당공장을 짓기 위해 울산에 부지를 확보했지만 정부가 공장 공사대금으로 활용할 외화 사용 승인을 3년이나 늦게 내줘 고초를 겪기도 했다.3공화국때도 인촌이 창간한 ‘야당지’ 동아일보를 지원하느라 정부의 눈 밖에 나 있었다. 정부의 금융지원 같은 특혜는 꿈도 꾸지 못했다는 게 삼양그룹측의 주장이다. 삼양사 문성환 부사장은 “60∼70년대 급성장한 기업들의 성장동력은 정치권과 야합해 무차별적인 차입경영에 있었다.”며 “그러나 삼양사는 역대 정권과 긴장관계를 유지해 정경유착에 나설 형편이 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전통기업을 묵묵히 지켜온 2세 기업인 이런 안정 지향적인 기업 경영은 외환위기(IMF)때 빛을 발했다. 부채비율이 높았던 대부분의 기업은 무너졌지만 삼양그룹은 그때나 지금이나 탄탄한 재무구조를 유지하고 있다.2004년 12월 현재 삼양그룹의 매출액은 2조 7180억원에 머물러 있지만 부채는 8537억원으로 부채비율 60%를 유지하고 있다. 같은 기간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삼양사는 매출 8902억원, 부채 2799억원, 부채비율 40%다. 이런 이유로 삼양그룹은 지난 9월 재정경제부와 신산업경영원이 주최하는 재무경영종합대상을 수상했다. 삼양그룹이 튼실한 경영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데는 김상홍(83) 명예회장의 공이 크다. 김 명예회장은 1956년 34세에 삼양사 사장에 취임했다. 부친 김연수 회장으로부터 회사를 물려받은 것이지만 80년이나 넘게 기업을 온전히 지켜온 ‘수성’(守城)이 그의 최대 업적이다. 김 명예회장이 우리나라 대표 기업을 지켜온 데는 어렸을 때부터 부친으로부터 철저하게 받은 경영수업 덕이 컸다. 창업주는 1944년 일본 와세다대에 재학 중이던 김 명예회장을 만주로 불러 삼양사가 운영하던 매하구 농장에서 일을 시켰다. 사장 아들이라고 특혜를 베풀지 않고 농장 직원들과 똑같이 숙식하고 생활하도록 지시했다. 그는 해방 이후 고국으로 돌아와서는 호텔 경영인의 꿈을 꾸기도 했다. 이때 창업주는 “무슨 일이든 성공해 맨 윗사람이 되려면 우선 그 분야의 제일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하면서 기초를 익혀야 된다.”며 조선호텔에서 접시닦기와 객실담당(벨보이)부터 맡도록 권했다. 이후 1947년 제헌의원이던 나용균씨의 추천으로 수도경찰청(내무부 치안국) 경위로 특채돼 경찰에 입문했다. 그는 4년간 경찰관으로 복무하다 1952년 큰아버지인 김성수씨가 부통령직에서 사임하자 총경직에서 퇴직했다. 이때부터 김 명예회장은 경영인으로서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당시 창업주는 장남 상준씨를 비롯해 둘째 상엽, 넷째 상돈씨에게는 해리염전을 포함한 ‘삼양염업사’를 맡겼다. 김 창업주가 직접 경영하는 삼양사는 셋째인 김 명예회장과 다섯째 상하씨가 일을 하도록 교통정리를 했다. ●밑바닥부터 배워라 김 명예회장은 부친에게 받았던 경영수업이 혹독하리만큼 철저했다고 회고한다. 회사의 맨 밑바닥 일부터 배우라고 지시했는데 주산, 부기, 기장은 물론 고용노무작업, 구매자금조달 등 실무 업무부터 맡아야 했다. 김 명예회장은 일본 와세다대, 상하 회장은 서울대를 졸업했지만 상업고교 출신처럼 주산을 열심해 배워야 했다. 이런 전통으로 인해 삼양그룹은 사무직 신입사원이 입사하면 우선 공장에서 현장 연수를 하는 것으로 회사생활을 시작한다. 김 명예회장은 50세가 넘어서도 창업주 앞에서는 의자에 마주 앉는 일조차 삼갔다고 한다. 부친을 지근 거리에서 모셨지만 “아버지 그림자도 안 밟겠다.”며 어려워했다. 지금도 사무실에 부친의 흉상을 두고 ‘무언의 조언’을 듣고 있다고 말할 정도다. 이처럼 혹독한 ‘문하생’ 생활을 보낸 김 명예회장은 1950년대 제당사업을 전개할 때는 부친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설탕 영업의 골간을 만들었다.70년대 제당업이 정상에 오르자 경영 다각화의 일환으로 금융업에 진출, 삼양종합금융을 인수했다. 그러나 그는 삼양종합금융은 물론 1대 주주였던 전북은행에도 삼양사 직원을 단 한명도 파견하지 않는 등 자율과 원칙을 지킨 경영인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김 명예회장은 삼양그룹의 장수비결에 대해 “욕심내지 않고 우리가 잘하는 것만, 그것도 능력이 닿는 범위내에서만 사업을 해왔다.”며 “정말 힘든 일이긴 했지만 우리가 잘하는 제조업체에만 집중하면서 넘치지도 않고 부족함도 없는 중용정신을 지켜왔다.”고 말했다. 이처럼 그의 경영철학은 ‘제조업을 통해 건전하게 돈을 벌어야 하고, 수익성이 좋다고 아무 사업이나 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집약된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맡았던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부회장을 함께 맡았던 김 명예회장에 대해 “과묵 침착하며 절제를 아는 선비, 중용의 참뜻을 실천해온 외유내강형의 단아한 신사”라고 평가했다. 김 명예회장은 1996년 동생인 상하씨에게 그룹회장직을 넘겨주고 자신은 명예회장으로 물러 났다. ●삼양의 제2탄생을 마무리 김상하(80) 그룹회장은 상홍 명예회장과 함께 창업주로부터 물려받은 회사를 성장 궤도에 정착시킨 주역이다.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김 그룹회장은 1949년 삼양사에 몸 담은 뒤 줄곧 부친과 상홍 회장을 도왔다.1952년 일본 도쿄사무소 첫 주재원으로 파견돼 삼양사 공장설계와 전문가 채용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경영일선에 뛰어들었다. 상홍 명예회장과 상하 회장은 형제간이긴 해도 서로 닮은 점보다는 다른 점이 더 많았다. 상홍 회장이 조용히 지내기를 좋아하는 반면 상하 회장은 적극적인 사회활동을 했다. 상홍 회장이 사람을 가려서 만난다면 상하 회장은 이런저런 사람을 폭넓게 사귀는 성격이다. 취미도 상홍 회장은 단조로움을 즐겼던 반면 상하 회장은 스포츠와 여행을 좋아했다. 때문에 그룹 경영에 있어서는 꼼꼼한 상홍 명예회장이 관리를 맡고, 활동적인 상하 그룹회장이 영업전선에 나서는 등 형제간 역할분담을 이뤘다. 실제로 상하 회장은 유창한 일어 실력과 깨끗한 인품으로 재계에서는 국제 감각이 뛰어난 대표적인 일본통으로 꼽혔다. 특히 1988년부터 12년간 최장수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역임하는 등 많게는 100여개의 대외 직함을 수행할 정도로 전방위 활동을 벌였다. 상하 회장은 이런 왕성한 대외활동을 바탕으로 제조업 중심으로 삼양의 성장을 진두지휘했다. 폴리에스테르 사업의 경우 10년에 걸친 증설을 이끌어 국내 최대 폴리에스테르 업체로 위상을 높였다.1980년대에 집중된 화학, 의약 등의 사업 다변화에도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다. 또한 폭넓은 대외 교분을 토대로 미쓰이, 미쓰비시화학과의 각종 기술제휴 및 합작이 추진돼 삼양화성, 삼남석유화학을 설립했다. ●외유내강의 기업인 상하 그룹회장은 소탈하면서 모가 없는 성품이지만 그룹경영에 있어서는 진퇴를 명확히 제시하는 ‘외유내강형’의 기업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90년대 국내 폴리에스테르 업체들이 신·증설을 활발하게 진행했지만 그는 화학섬유 사업의 한계를 감안해 대규모 증설 프로젝트를 중단했다. 또한 섬유본부에서 신사업으로 오랫동안 검토해 샘플 제작까지 끝낸 폴리에스테르 필름 사업도 사업의 구조적인 경쟁력과 취약성을 들어 사업을 중단하는 어려운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그는 상홍 명예회장을 모시는 데도 깍듯했다. 상홍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는 물러났지만 세세한 부분까지 수시로 의견을 구했다. 상하 회장은 서울 성북동에 형집과 담장 하나 사이를 두고 함께 살고 있다. 담장 중간에 쪽문을 해놓고 수시로 오갈 수 있는 ‘핫라인’까지 설치해 놓고 있다. 상홍 명예회장은 자서전에서 “동생과 집을 나란히 짓고 살게 된 것은 동생이 스스로 땅을 함께 사고 집도 순서대로 나란히 짓고 살아온 덕”이라며 “아우는 본래 2층집을 짓고 싶었는데 순전히 나 때문에 일조권을 염두에 두고 단층집을 짓고 산다.”며 돈독한 형제애를 소개했다. 상하 회장은 2004년 3월 상홍 회장의 장남이자 조카인 김윤 삼양그룹 부회장에게 ‘대권’을 물려줬다. 아들인 원씨는 삼양사 사장에 나란히 취임했다. 이로써 1975년부터 30년간 지속된 2세 형제경영에 이어 3세 사촌 형제간 공동경영 시대의 막이 올랐다. ●숨은 주역들 김 명예회장과 그룹회장은 삼양그룹이 81년의 전통을 이어온 데는 동생들과 매제의 역할히 컸다고 회고한다. 김 명예회장은 “나는 아우들과 함께 회사를 경영하면서 크고 작은 일에 신중을 거듭했다. 아우들과 수시로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선친께서 잡아놓은 틀을 잡는 데 힘썼다.”고 말했다. 김 명예회장은 회사 발전에 공을 세운 일등공신으로 지난 2002년 작고한 김상응 막내 동생을 손꼽는다. 서울대 외교학과와 미국 유타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상응씨는 96년부터 삼양사 회장으로 재직하며 외환위기 등 창업 이래 최고의 시련기를 뚝심으로 돌파하는 경영 수완을 발휘했다고 떠올린다. 부인 권명자(53)씨와 4남 1녀인 자식들은 남편이 죽은 뒤 미국으로 이주해 살고 있다. 김 명예회장은 또 막내 여동생 희경(66)씨의 남편 김성완(66)씨의 공헌도 높이 평가했다. 김씨는 미국 유타대 교수로 생체고분자 및 약물전달시스템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김 교수는 김 명예회장에게 “기업이 발전하려면 연구개발에 많은 투자를 해야 하는데 장래성이 좋은 분야는 의약계통에서 찾아야 한다.”는 점을 수차례 강조했다. 결국 김 명예회장은 김 교수의 의견에 따라 1993년 충남 대덕 연구단지에 ‘삼양그룹연구소’를 설립했다. 이 연구소는 삼양그룹이 중점사업으로 키우고 있는 화학, 식품, 의약부문의 성장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이제는 공격경영 김윤(53) 회장은 부친 상홍 명예회장, 상하 그룹회장과 같이 바닥부터 경영수업을 받았다.1979년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LG그룹 계열인 반도상사에 취직했다. 자신의 회사를 경영하기에 앞서 다른 회사 직원으로 영업전선을 두루 체험해 보라는 부친의 의도였다. 이를 두고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은 “김상홍 회장님의 큰자제가 2년간 반도상사에 근무한 일이 있었는데 내게는 그런 사실을 전혀 귀띔도 해주지 않았다.”며 “나는 훗날에야 그 사실을 알고 한쪽으로는 좀 서운하면서도 또 한편으론 상홍 회장님의 인품을 새삼 느꼈다.”고 회고했다. 김 회장은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MIIS(Monterey Institute of International Studies)에서 MBA 석사를 취득한 뒤 곡물회사인 루이스 드레푸스에서 2년간 근무하며 국제적인 경영감각을 익혔다. 또 삼촌인 상하 그룹회장처럼 도쿄지점에서 2년간 주재하며 삼양그룹의 해외진출 사업을 손수 챙기며 경영인으로서의 자질을 다져 나갔다. 고국에 귀국한 뒤에는 울산공장 기술수출팀을 시작으로 이사(90년)-상무(91년)-대표이사 전무(93년), 대표이사 사장(96년)-대표이사 부회장(2000년) 등을 거치며 착실히 경영수업을 쌓았다. 2004년 삼양사 회장에 취임한 김 회장은 차분하고 안정적인 경영 스타일로 삼양의 전통을 중시하는 한편 보수적인 관행을 하나씩 제거해 나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회장은 취임 일성으로 “삼양그룹은 보수적이고 안정 위주의 경영전략을 구사해 성장이 정체돼 있었다.”며 “앞으론 사고방식을 진취적으로 전환해 그룹의 성장을 도모하겠다.”는 포부를 밝혀 재계의 주목을 받았다.2010년까지 2조원을 투자해 매출액 6조원을 달성하고 자본수익률 20%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청사진도 제시했다. 이를 위해 화학, 식품, 의약, 신사업 등 4대 부문을 핵심 성장 사업군으로 설정했다. ●다시 세계로 진출 2004년에는 중국 상하이에 전기전자, 부품소재 등을 생산하는 삼양공정소료 유한공사를 설립, 창업주인 할아버지가 만주에 진출한 데 이어 68년 만에 중국에 현지법인 형태로 재진출했다. 향후 중국을 기점으로 인도, 중남미 등 생산기지를 다각화해 글로벌 네트워크를 형성, 세계적인 전문 화학회사로 육성한다는 복안이다. 또한 식품부문을 총괄하는 통합 브랜드로 ‘큐원’(Qulity No.1)을 출범시켰다.47년간 사용해 오던 대표 브랜드 ‘삼양설탕’을 과감히 버리고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식품소재기업으로 성장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김윤 회장의 이런 자신감은 1996년부터 삼양사 사장과 부회장을 거치며 길러졌다. 과감한 추진력은 외환위기를 거치며 발휘됐다. 사장 시절이던 1998년 사업실적이 저조한 금융업과 무선통신사업을 포기하고 계열사를 섬유·식품·화학 등을 핵심 사업군으로 재편했다. 특히 삼양사의 주축이었던 폴리에스테르 사업부문을 과감히 정리,2000년 SK케미칼과 통합법인 휴비스를 설립했다. 이후 삼양그룹 직원들은 단 한명의 구조조정과 한 푼의 임금삭감 없이 경영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김 회장은 이런 경영능력을 인정받아 지난 19일 서울대 산학협력재단이 주최한 ‘제1회 한국을 빛낸 CEO’에 이명박 서울시장, 정운찬 서울대 총장,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 허동수 GS칼텍스 회장, 이지송 현대건설 사장 등과 함께 뽑혔다. 또 2001년 전경련 부회장에 선임됐고 한·일경제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3세에도 공동경영 상하 그룹회장의 장남인 김원(48) 사장은 선대 회장들처럼 사촌 형인 김윤 회장을 도와 삼양그룹을 이끌고 있다. 그러나 3대 경영의 주역들은 선대 회장들과는 달리 서로 상반된 성격을 지녔다. 윤 회장은 부친인 상홍 명예회장이 내성적인데 반해 활발한 활동으로 재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반면 원 사장은 전방위 대외활동을 펼친 부친 상하 그룹 회장과는 달리 묵묵히 사촌형을 챙기고 있다. 원 사장은 연세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유타대에서 재료공학과 산업공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윤 회장처럼 도쿄지점 부장을 거쳐 삼양이 의약부문으로 사업을 확장하던 1993년 개발부장으로 자리를 옮겨 의약사업의 기초를 닦았다. 이후 연구개발 부문을 관장하면서 이사, 상무로 승진한 뒤 1997년 연구개발본부장(전무)에 오르는 등 ‘테크노 경영인’으로 각인되고 있다.1999년 부사장 승진에 이어,2000년 8월 대표이사 사장에 선임됐다. 이공계 출신으로 매사에 치밀하며 경영분석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외 영업에 치중했던 부친과 달리 관리쪽에 무게가 실리는 경영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 ●결혼도 자식 뜻대로 상홍 명예회장과 상하 그룹회장은 창업주처럼 자식들의 결혼과 관련해 정략 결혼을 요구하기보다는 본인들의 의사를 최대한 들어주는 스타일을 지켰다. 상홍 명예회장의 장남 김윤 회장은 친구들 모임에서 부인 김유희(46)씨를 처음 만났다. 김 회장은 이화여대를 졸업한 김씨를 보고 첫눈에 반해 데이트를 신청했다고 한다. 김 회장은 김씨가 상당한 미모를 갖추고 있는데다 집안 대대로 친척들이 이대 출신이 많다는 점도 맘에 들었다고 고백한다. 김 회장은 부인을 웬만한 행사에는 동행할 정도로 ‘부인사랑’이 남다르다. 지금도 사석에서 김 회장의 18번인 ‘만남’을 두 부부가 함께 부른다고 한다. 김원 사장도 친구들끼리의 모임에서 부인 배주연(41)씨를 만나 열애끝에 결혼에 성공했다. 반면 김량(51) 삼양제넥스 사장과 김정(46) 삼남석유화학부사장은 중매로 배필을 만났다. 김량 사장은 김정렬 전 국방부 장관의 중매로 부인 장영은(46)씨와 혼인했다. 상홍 명예회장과 김 전 장관의 집안이 오래전부터 친해 자연스레 연결됐다. 김 전 장관은 영은씨의 부친인 장지량 전 공군참모총장과 막역한 사이어서 혼인을 주선했다. 김정 부사장은 어머니 박상례(75)씨가 자영업을 하는 친구의 소개로 안혜원(39)씨를 만났다. 안씨 부친이 안상영 전 부산시장이어서 흔쾌히 혼담이 오갔다. jrlee@seoul.co.kr ■ 막강한 손녀사위들 김연수 삼양사 창업주는 부인 박하진씨와의 사이에 7남6녀 13명의 자녀를 두었다. 김 창업주는 2세들보다 3세들의 혼사를 통해 혼맥을 이뤘다. 재계, 정계, 언론계, 법조계 등 매우 다양하다. 이 가운데 손녀사위들은 대학교수, 의사, 경영인 등의 전문 직업군을 이루며 삼양가(家)의 명망을 잇고 있다. 둘째아들인 김상협 전 국무총리는 1남3녀를 두었는데 3명의 사위가 모두 교수인 것이 이채롭다. 김 전 총리는 형제 중에서 공부를 가장 잘했다고 한다.5년제였던 경복중학교를 4년 만에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대(당시는 도쿄제대) 법학부 정치학과를 나올 정도의 수재였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김 전 총리는 학자 사위들을 좋아했다. 김 전 총리의 장녀 명신(58)씨 남편 송상현(65)씨는 서울대 법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송씨는 송진우 전 동아일보 사장의 손자다. 둘째딸 영신(56)씨는 정성진(58) 서울대 공대 교수와 결혼했다. 정씨는 정태섭 전 변호사의 아들이다. 막내딸 양순(52)씨의 부군 이양팔(59)씨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다. 또 상홍(83) 명예회장의 장녀 유주(56)씨도 윤영섭(59)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와 혼인했다. 창업주의 넷째딸인 정유(73)씨는 외동딸인 원경(43)씨를 한정수(48) 전 충남대 교수와 결혼시켰다. 손녀사위들의 ‘의사 파워’도 만만치 않다. 김 창업주의 둘째딸 상민(78)씨는 둘째딸인 이정현(41)씨를 백완기(47) 인하대병원 흉부외과 의사와 인연을 맺어 줬다. 김 창업주의 셋째딸 정애(75)씨 장녀 조경미(47)씨의 부군 주춘희(47)씨도 캐나다에서 병원을 운영 중이다. 그러나 삼양가가 전문 경영인 집안이어서인지 손녀사위들도 전문 경영인이 많다. 김 창업주의 장남 상준씨의 장녀 정원(62)씨의 남편 김선휘(68)씨는 삼양염업사 부회장으로 재직하며 처가의 가업을 잇고 있다. 둘째딸 정희(58)씨는 김준기(62) 동부그룹 회장과 결혼했다. 또 셋째딸 정림(57)씨도 윤대근(59) 동부아남반도체 대표이사 부회장이자 동부그룹 소재분야 부회장과 결혼해 유달리 ‘동부그룹’과 인연이 많다. 창업주의 둘째 김상협 전 총리가 교육자 집안으로 꾸렸던 것에 비해 장남 상준씨는 전형적인 경영인 가족을 형성한 셈이다. 넷째 상돈(81) 삼양염업사회장은 외동딸 희진(45)씨를 오광희(49) 전 나이스 정보통신 전무와 결혼시켰다. 다섯째 상하(80) 그룹회장도 외동딸 영난(44)씨를 송하철(45) ㈜ 항소 사장과 혼인시켰다. 송씨는 송삼석 모나미 회장의 막내다. jrlee@seoul.co.kr ■ 계열사 사장들 ‘전문적 경험’ 풍부 삼양그룹의 현 계열사 사장들은 경영전면에 나선 창업주의 3세들을 지원하는 것에 역할이 주로 맞춰져 있다. 분야별로 전문적 경험이 풍부해 경영 승계가 무리없이 이뤄지도록 돕고 있다. 박종헌(66) 삼양사 사장은 40년동안 영업, 해외업무, 인사, 재무, 기획분야를 두루 거쳤다. 광주제일고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한 박 사장은 법학도답게 매사 논리적이고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그룹을 이끌고 있다. 이영훈 대법원장과 서울법대 동기동창이다. 김량(51) 삼양제넥스 사장은 김상홍 명예회장의 차남으로 경방유통에서 16년간 재직하며 사장으로 퇴임할 때까지 유통부문의 핵심 역량을 쌓아왔다.2002년 삼양제넥스에 입사해 제조업 유통부문의 경영 노하우를 성공적으로 접목시키고 있다. 김 사장은 창업주의 손자이지만 직원들과 자주 소주잔을 기울이며 대화를 즐기는 소탈한 성격의 소유자다. 김경원(62) 삼남석유화학 사장은 전주 폴리에스테르 공장 설립때부터 중앙연구소 소장, 화성본부장, 삼양화성 사장 등 화학, 섬유, 폴리카보네이트 등을 두루 지낸 전문 경영인이다. 폴리에스테르 부문의 대가로 ‘폴리머 김’ 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김 사장은 엔지니어 출신으로 ‘연구통’이다. 송창기(63) 삼양중기 사장은 인사관리분야에서 15년간 일해온 ‘인사통’이다. 총무부장, 인사부장, 관리본부장을 지냈다. 송 사장은 삼양중기에서 기계부문 4개사로의 분사와 주물사업부문 합작사 설립을 성공리에 추진했다. 박호진(59) 삼양화성 대표는 도쿄지점을 거쳐 전주공장에서 20년 동안 현장 경험을 쌓았다. 지난 3월 대표로 선임돼 사원간에 가족적인 유대감을 높이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이규한(58) ㈜삼양밀맥스 대표는 판매와 현장을 두루 거친 식품부문 전문가다. 경영과 마케팅 감각을 두루 갖췄고 비전팀을 만들어 내부 혁신활동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변수식(55) 삼양데이타시스템 대표는 전사적자원관리(ERP)팀장,IT전략팀장, 경영혁신(PI)팀장 등 프로세스 이노베이션 업무를 주로 맡았다. 변 대표는 IT부문의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한 ‘IT통’이다. 김상익(59) 삼양웰푸드 대표는 경리부, 삼양제넥스 경영지원팀장을 거치는 등 25년 동안 경리와 관리를 맡았다.2004년 대표로 선임돼 원칙과 현장을 중시하는 현장 밀착형 경영을 중시한다. jrlee@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고침 서울신문 17일자 15면에 게재된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양그룹편에서‘송진우 전 동아일보사장의 아들인 상현 서울대 법대교수’는 ‘송 전 사장의 손자’이기에 바로잡습니다.
  • 60년선배·햇병아리 경관의 만남

    60년선배·햇병아리 경관의 만남

    “든든한 후배 모습을 보니 이렇게 귀엽고 자랑스러울 수가 없네.” “경찰의 산 역사라고 할 수 있는 선배님을 이렇게 뵙게 돼 영광입니다.” 경찰의 날(21일)을 이틀 앞둔 19일 오전 서울 중구 신당동 대한민국참전경찰유공자회 사무실에서는 60년 경찰 선후배의 ‘특별한 만남’이 있었다.1945년 창설 때부터 경찰에 몸담았던 유공자회 문학동(83) 회장과 올 7월 임용된 새내기 나영삼(29·남부경찰서 독산지구대) 순경. 할아버지와 손자뻘인 두 사람은 다정하게 마주앉아 1시간 이상 경찰의 과거와 미래를 이야기했다. 햇병아리 후배를 본 소감을 묻자 문 회장은 44년 일제 학도병으로 끌려갔다 해방 직후 벅찬 가슴을 안고 부산에 돌아왔던 기억을 떠올렸다. 문 회장은 “나는 나 순경보다도 어린 스물셋 나이에 왜정의 순사가 아닌,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경찰이 되겠다는 포부로 경찰에 자원했다.”고 했다. “6·25 전쟁 때 화랑부대에 뽑혀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했지. 하지만 일부 군인과 경찰이 월북을 한다며 미군이 한국사람에게는 무기도 안 주더라고. 결국 수통 하나 없이 척후병으로 뛰어야 했어.” “경찰 역사를 배웠어도 이런 세세한 부분까지는 전혀 몰랐습니다. 생생한 경험담을 들으니 초기 선배님들이 겪었던 어려움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문 회장이 “요즘 가장 힘든 게 무엇이냐.”고 묻자 나 순경은 “지구대 근무를 하다 보면 경찰에게 욕을 하며 난동 피우는 취객들을 안정시키느라 치안능력이 낭비돼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문 회장은 “6·25 때 지리산에서는 유엔군, 중공군은 전혀 없이 북한과 남한 군경끼리만 서로 죽이는 상잔의 참상이 벌어졌다.”면서 “요즘 집회 현장에서 시위대와 경찰이 대치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 때가 떠올라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에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문 회장은 대화를 마치며 “경찰에 대한 국민 인식이 아직도 좋지만은 않기 때문에 심적 부담이 있겠지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민중의 지팡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60년 후배를 다독였다. 나 순경은 “후배들이 노력해 큰 결실을 거두는 과정을 지켜 보시고 잘못하는 일이 있으면 따끔하게 충고해 달라.”고 말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부산은 지금 ‘준 전시상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업체(APEC) 정상회의를 한달 앞두고 주요 시설물에 대한 출입이 통제되고 경계 태세가 강화되는 사실상 부산지역이 ‘준 전시 상태’에 들어갔다. 19일 부산지방경찰청 등에 따르면 이날부터 종합상황실 운영과 회의장, 숙소, 공항 등 행사장에 대한 24시간 특별 근무체제에 돌입했다. 또 부산시내 주요 지하철 31곳과 철도역 2곳에는 이 날부터 군병력이 배치됐고, 제1차 정상회의가 열리는 해운대 컨벤션센터인 벡스코는 지난 17일부터 외부 행사가 전면금지됐다. 제2차 정상회의장인 동백섬 누리마루 APEC 하우스 앞 해상에는 28일부터 해군함정과 해경함, 해상초계기 등이 경계근무에 들어간다. 다음 달 1일부터는 정상회의장과 각국정상들의 숙소가 있는 해운대권과 롯데호텔을 중심으로 한 서면권, 농심호텔주변의 동래권, 김해공항주변 등 4개권역이 특별치안 강화구역으로 지정돼 반경 1.5㎞ 내에서 행사안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모든 행위가 금지된다. 롯데백화점 부산본점과 홈플러스 해운대점은 다음 달 18일, 해운대 대형 수족관 아쿠아리움도 다음 달 17,18일 양일간 각각 휴업에 들어간다.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수사권 독립·과거사 규명등 과제

    수사권 독립·과거사 규명등 과제

    해방과 함께 시작된 경찰의 역사는 민생치안과 시국치안이라는 빛과 그림자의 공존으로 요약된다. 현재 경찰은 60년 공과(功過)를 바탕으로 새로운 미래 청사진을 준비하고 있다. 그 성패는 선진경찰의 이상을 얼마나 현실에 녹여낼 수 있느냐에 달렸다. ●정권의 하수인에서 민중의 지팡이로 경찰은 1945년 10월21일 미 군정 산하 경무국으로 출발했다. 앞서 같은해 9월16일 처음으로 한국인 경찰관을 뽑긴 했지만 일제경찰 잔재를 물려받아 태생적 한계를 지닌 채 출발했다. 이는 이승만 정권 시절부터 ‘정권의 하수인’으로 기능하는 중요한 요인이 됐다.1991년 8월 대통령령에 의해 치안본부가 내무부 외청인 경찰청으로 형식적인 독립의 모양새를 갖추게 됐다. 오랜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경찰은 ‘민중의 지팡이’ 역할만을 할 수는 없었다. 박종철 고문치사, 권인숙 성고문, 이한열 최루탄 사망 등은 어두운 과거의 대명사가 됐다. ●수사권 독립…풀어야 할 매듭 산재 현재 경찰의 최대 화두는 수사권 독립이다. 초기 일시적으로 수사권을 가졌던 경찰은 48년 이후 검찰과 상명하복 관계에 놓였다. 이후 경찰은 여러 차례 수사권 조정을 요구했고 지난해 9월에는 검ㆍ경이 ‘수사권 조정 협의체’를 발족하기에 이르렀으나 큰 성과는 없었다. ●“인권 경찰돼야” 한 목소리 최근 들어 경찰은 인권을 강조하고 있다. 그동안 ‘민중의 지팡이’가 아닌 ‘민중의 몽둥이’이라는 평가를 불식시키겠다는 각오다. 경찰에 바라는 외부 목소리도 여기에 초점이 맞춰진다. 조영황 인권위원장은 “인권보호에 적극적일수록 경찰과 일반국민간의 거리는 좁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오종렬 올바른과거청산을위한범국민위원회 공동상임대표는 “민주경찰로 거듭나고자 하지만 아직은 몸이 마음을 따라주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남영동 보안분실을 인권센터로 바꾸는 형식적인 노력보다는 환골탈태하는 진정한 인권 지킴이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내년 경주문화엑스포 앙코르와트서 열린다

    내년에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서 열리는 ‘앙코르-경주세계문화엑스포 2006’이 한국과 캄보디아 수교 10주년을 기념하는 사업으로 추진된다. 19일 경북도에 따르면 캄보디아를 순방 중인 이의근 경북도지사가 이날 캄보디아 속안 부총리를 만나 ‘앙코르-경주세계엑스포’ 공동 개최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 자리에서 이 지사와 속안 부총리는 ‘앙코르-경주세계엑스포’를 양국 수교 10주년 기념사업으로 추진한다는 데 합의하고 시기는 내년 11월쯤 앙코르와트 일원에서 50일 이내의 기간동안 열기로 했다. 경주엑스포조직위가 행사운영을 맡고 캄보디아정부는 행사장 부지제공과 주변 치안 및 질서유지를 하며 행사 예산은 양측이 공동 부담키로 했다. 속안 부총리는 환영사를 통해 “‘앙코르-경주세계엑스포’ 성공을 위해 정부지원위원회를 구성하고 국가상공회의소를 비롯한 민간 차원에서도 적극 참여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의근 지사는 “앙코르-경주엑스포는 1000년을 넘게 인도차이나 반도를 지배했던 앙코르제국 문화와 한국의 신라 1000년의 문화가 만나 세계에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되는 것은 물론 두 나라사이의 우호 증진에도 기여할 것이다.”라고 말했다.대구 한찬규기자cghan@seoul.co.kr
  • “고교평준화 정책 손질해야” 87%

    우리 국민들의 87%는 고교 평준화 정책에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선진국 대비 경쟁력·선진화 지수는 모두 ‘낙제점’이며 정치권, 정부, 대학, 노동조합, 금융기관 등의 순으로 경쟁력이 뒤처지는 것으로 지적됐다. 선진국으로 생각하는 첫번째 나라를 미국으로 꼽으면서도 본받아야 할 나라로는 일본을 삼았다. 선진화를 위한 국가적 과제로는 부정부패척결, 정치안정, 국민의식개혁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한국선진화포럼이 한국갤럽에 의뢰해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상대로 조사,18일 공개한 ‘선진화에 대한 국민의식’에 따르면 고교 평준화 정책을 계속 추진해야 한다는 대답은 12.4%에 불과했다. 반면 61.9%는 평준화를 기본으로 하되 부분적인 경쟁체제를 도입해야 하며 25.2%는 평준화 정책을 폐지해야 한다고 밝혔다.87.1%가 고교 평준화에 반대한 셈이다. 교육 선진화를 위한 해결 과제로는 입시위주의 교육(33.4%), 과외 등 교육비 부담(22.6%), 학교 자율성 부족(16.3%), 교육계 부조리(14.7%) 등을 꼽았다. 정치권과 정부, 대기업, 대학, 시민단체 등 분야별 점수를 100점 만점으로 합산해 평균한 선진국 대비 경쟁력 지수는 35.35점으로 나타났다. 우리 사회의 투명성과 합리성, 법준수, 남녀평등, 부패통제력 등에 대한 선진화 지수도 32.16%에 불과했다. 두 지수에서 60점 이상의 비율은 모두 2.1%에 그쳤다. 반면 선진국을 100점으로 볼 때 우리나라의 선진화 점수는 58.6점으로 조사됐다.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양그룹(1)-창업주 김연수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양그룹(1)-창업주 김연수家

    일반인들에게 ‘삼양설탕’(현 ‘큐원설탕’)으로 익숙한 삼양사는 한국 근대경제사를 주도한 명문 기업이다. 호남 거부의 후예인 김연수(金秊洙) 창업주는 일제하인 1924년 순수 민족자본으로 기업을 설립, 한국기업의 명맥을 이었다. 김 창업주는 형인 인촌(仁村) 김성수씨가 동아일보를 설립하고 꾸려가도록 뒷받침했고, 여러 차례 재산을 털어 고려대와 고려중앙학원의 기틀을 마련하도록 뒤에서 도왔다. 그러나 김 창업주는 일제하에 기업을 경영함으로써 최근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사인명사전을 편찬하면서 친일인사로 선정하는 등 사후에 ‘친일’ 시비에 휘말리고 있기도 하다. 때문에 근대 한국경제의 산증인인 김 창업주의 삶은 굴곡 많은 우리 근대사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병약했던 어린 시절 김 창업주는 1896년 10월1일 전라도 고부군 부안면 인촌리에서 부친 김경중씨와 모친 장흥 고씨 사이에서 2남으로 태어났다. 형의 호인 인촌은 바로 두 형제가 태어난 동네 이름을 따온 것이다. 김 창업주의 부친은 1만 5000석 지기의 호남 최대 거부였고 학문에도 조예가 깊었다. 부친은 일제하에서 나라가 영영 없어지는 것으로 알고 당시 저명한 사학자들을 몰래 불러 ‘조선사’를 17권이나 엮을 정도로 민족애가 투철했다는 게 삼양그룹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김 창업주는 어린 시절 외롭게 지냈다. 김 창업주의 부모는 그가 태어나기 전 세 명의 아들과 한 명의 딸을 일찍 잃었다. 여기에다 한 명뿐인 형인 인촌이 큰아버지인 김기중씨가 대를 이을 아들이 없자 양자로 보내졌기 때문이다. 어릴 적 김 창업주는 몸이 허약했다. 폐가 약했으며 위도 튼튼하지 못해 일찍이 폐와 소화기 계통의 질병으로 자식을 잃은 경험이 있는 부모의 애를 끓게 했다. 이런 이유로 개구쟁이처럼 장난이 심하고 활발했던 인촌과는 달리 김 창업주는 조용한 것을 좋아했고, 과묵하고 내성적인 성품을 지녔다. ●27세에 경영인으로 출발 김 창업주는 15세 되던 1910년 12월8일 자신보다 두 살 위인 박하진씨와 혼인을 맺었다. 결혼 이후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쳐 한국인 최초로 교토제대 경제학부를 졸업했다. 그는 고국으로 돌아온 이듬해인 1922년 형의 권유로 경성직뉴와 경성방직의 전무와 상무에 취임, 경영인의 삶을 시작했다. 김 창업주는 고무신과 ‘태극성표’ 광목을 대히트시킴으로써 일본자본과 맞서는 최대의 민족회사를 일궜다. 집안 내력을 잘 아는 김재억 삼양사 상임감사는 “30년대 경성방직은 우리나라 금융거래 절반을 담당할 정도의 민족 최대 기업이었다.”고 말했다. 김 창업주는 또한 농촌재건을 위해 소작농을 협동농업 형태로 결합한 근대영농을 시작했다. 이를 발판으로 1924년 삼수사(三水社)를 설립해 호남 일대의 소유농토에 대한 근대화 작업에 나섰다. 장성, 줄포, 고창, 명고, 신태인, 법성, 영광농장을 차례로 개설해 기업형 농장으로 탈바꿈시켰다. 간척사업에도 눈을 돌려 손불농장과 해리농장의 2개 지역에 1070정보의 농토를 만들었다. 이 시기에 상호가 삼양사(三養社)로 바뀌었다. 어느 날 한 작명가가 찾아와 ‘물 수’(水)를 ‘만인의 양식’이라는 뜻인 ‘기를 양’(養)으로 바꿀 것을 권했다고 한다. 김 창업주는 만주벌 개척에도 나섰다.5개 협동농장을 개설한 데 이어 봉천에 남만방적을 설립했다. 남만방적은 한국기업 최초의 해외생산법인이다. 그러나 1945년 해방으로 만주의 사업장들을 고스란히 놓고 철수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제당업으로 재기에 나서 해방공간을 겪으면서 반민특위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김 창업주는 한국 전쟁 이후 해체상태에 놓였던 삼양사 재건에 나섰다. 그는 재기의 발판으로 제당업과 한천제조업을 선택했다. 당시 설탕은 수입에 의존해온 대표적인 외화소비 품목이었기 때문이다. 울산 바닷가를 메워 그곳에 제당공장과 한천공장을 건설했다. 그는 1956년 삼양을 제당으로 키우면서 주식회사 삼양사를 출범시켰다. 자신이 대표이사 회장에 취임했고, 사장에 3남인 상홍(83), 상무에 5남 상하(80)를 앉혔다.3남과 5남이 삼양사를 맡는 전통은 3세에도 그대로 이어져 삼양그룹은 현재 상홍씨의 장남 윤(53)씨와 상하씨의 장남 원(48)씨가 삼양사 회장과 사장을 맡고 있다. 둘째 아들들인 량(51)씨와 정(46)씨도 각각 삼양제넥스 사장과 삼남석유화학 부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당시 삼양사보다 수익률이 높았던 해리염전을 삼양염업사라는 별개의 회사로 독립시키고 맏아들 상준(작고)을 사장에 임명해 경영을 맡겼다.3공화국때 문교부장관과 5공화국에서 국무총리를 역임한 차남 상협(작고)에게도 삼양염전의 지분 25%를 떼어주어 형제간 경영권을 일찌감치 교통정리했다. ●재계의 거목으로 김 창업주는 1962년 설립한 삼양수산을 통해 다양한 어종을 가공, 수출하는 등 한때 냉동선만 21척을 보유할 정도로 수산업에도 주력했다. 이처럼 제당과 수산업으로 재기에 성공한 그는 4·19혁명으로 자유당 정권이 무너지자 한국경제협의회(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에 취임, 한국 재계의 얼굴이 되었다. 경영이 본 궤도에 오르자 김 창업주는 전주방직을 인수, 삼양모방(주)을 설립했다. 이어 1969년 전주에 대단위 폴리에스테르 공장을 건설했다. 이로써 70년대 들어 삼양은 국내 초창기 산업의 중심이었던 제당으로 확고한 제조업체로의 변신을 이룩했다. 이 당시 삼양은 매출액에서나 기업선호도에서 상위를 차지하는 국내 정상급 기업으로 우뚝 섰다. 김 창업주는 사업에 투신한 지 만 53년이 되던 1975년 회장을 상홍에게, 사장에 상하를 임명하는 등 ‘2세경영’을 출범시키고 은퇴했다. 그의 나이 80세일 때였다. 그는 은퇴 후 농촌으로 돌아가 마지막 열정을 쏟다가 1979년 84세의 일기로 생애를 마감했다. ●교육사업도 아낌없는 지원 그는 기업경영에만 몰두하지 않았다. 고려대와 고려중앙학원의 운영기금을 출연한 것을 비롯해 양영회와 수당장학회를 설립, 교육사업에도 힘썼다. 문성환 삼양사 부사장은 “창업주는 두 재단을 통해 대학생 2만여명에게 대학등록금을 비롯해 하숙비, 책값, 소정의 용돈까지 장학금으로 대줬다.”고 회고했다. 이런 김 창업주의 혜택을 받은 대표적인 인물로는 한덕수 경제부총리, 오세철 연세대 교수 등이 꼽힌다. 경성방직의 회계를 맡아 김 창업주를 도왔던 국어학자 이희승 박사는 “수당(秀堂·김 창업주의 호)은 돈 쓰는 데도 일가견을 가진 사람으로 만금을 쓰면서도 기업경영에는 한 푼을 아꼈다.”고 그의 용전(用錢)철학을 전했다. 김 창업주는 경쟁회사에도 관대했던 묵묵한 성격의 경영인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1966년 삼양의 경쟁회사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운영하던 한국비료가 이른바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곤혹을 치렀다. 임원들이 ‘사카린 없는 삼양설탕’이라는 문구로 대대적인 광고전을 벌이자고 수차례 건의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은 사례는 그의 성품을 읽는 일화로 경영인들에게 지금껏 회자되고 있다. ●방대한 혼맥…사회 각 분야와 사통팔달 김 창업주는 부인 박씨와의 사이에 7남6녀 13명의 자녀들을 두었다. 아들로는 장남 상준(작고), 차남 상협(작고),3남 상홍(83),4남 상돈(81),5남 상하(80),6남 상철(70),7남 상응(작고) 등 7남과 장녀 상경(79), 차녀 상민(78),3녀 정애(75),4녀 정유(73),5녀 영숙(72), 막내 희경(66) 등 6녀를 두었다. 김 창업주 가문의 혼맥은 정계·관계·학계·언론계·재계·교육계 등과 거미줄처럼 얽힌 방대한 혼맥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김 창업주의 성격이 소탈해 자식들에게 정략 결혼을 요구하기보다는 평범하고 무난한 결혼을 시켰다는 게 대체적인 평이다. 김재억 감사는 “창업주의 생활철학이 권세를 배격하는 것이어서 자식들이나 3세들의 결혼에도 사돈 될 집안의 내력과 상대방의 성실성을 먼저 봤다.”고 회고했다. 김 창업주는 특히 자녀들의 대부분은 중매결혼으로 짝지웠지만 사위와 며느리를 맞는 데서는 당시로는 상당히 진보적인 입장이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는 사위를 고를 때는 가문을 따지지 않고 사람됨됨이와 능력을 위주로 보았고, 며느리는 후덕한 집안 출신으로 신식교육을 받은 신여성이기를 원했다. 특히 사돈가의 위치를 보고 정혼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해 그의 직접 사돈 가운데는 정관재계의 거물은 눈에 띄지 않는다. 김 창업주의 며느리들 가운데 위로 세 명은 이화여전 출신 등으로 당시의 김 창업주가 원했던 신여성들의 표본이 많았다. 반면 창업주의 형인 인촌 성수씨도 9남4녀를 두어 대가를 이뤘는데 장남인 상만(작고) 전 동아일보 명예회장의 직계 자손들은 화려한 혼맥을 자랑하고 있다. 고려대 이사장이자 동아일보 전 회장인 장손 병관씨는 장남 재호(41·동아일보 대표이사 전무)씨를 이한동 전 총리의 차녀인 정원(38)씨와 결혼시켰고,2남 재열(37·제일모직 상무)씨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차녀인 서현(32·제일모직 상무보)씨와 결혼했다. 김연수 창업주 자녀들의 혼맥을 살펴보면 장남 상준씨는 당시 집안과 각별하게 지내던 이화여대 총장 김활란 박사의 소개로 이뤄져 1943년 구영숙씨의 맏딸 연성(85)씨를 부인으로 맞았다. 상준씨는 보성전문 상과를 나와 조흥은행에 근무할 때였고 연성씨는 이화여전 음대를 졸업한 직후였다. 상준씨는 3명의 딸을 출가시켜 정·관·재계 인맥을 형성했다. 장녀 정원(62)씨의 부군은 고려대와 국가대표팀에서 축구선수로 활약했던 김선휘(68·삼양염업사부회장)씨다. 축구를 좋아하던 상준씨는 모교인 고려대 축구팀을 지원했는데, 이 일로 선휘씨가 상준씨 집에 드나들면서 자연스럽게 혼사가 맺어졌다. 차녀 정희(58)씨는 5공시절 당시 거물 정치인이었던 김진만씨의 맏며느리로 보내 동부그룹 회장인 김준기(64)씨를 사위로 맞았다.3녀 정림(57)씨는 전 문교장관 윤천주씨의 장남 대근(59)씨와 결혼했다. 대근씨는 현재 동부아남반도체 대표이사 부회장과 동부그룹 소재분야 부회장을 맡고 있다. 상준씨의 장남 병휘(60)씨는 한양대 자연과학대 자연과학부 수학전공 교수로 재직하고 있고, 차남 범(52)씨는 독신으로 지내며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 차남 상협씨는 해방 직후 고려대 부교수 시절, 의사 김준형씨의 2남3녀 가운데 맏딸 인숙(82)씨와 연애결혼에 성공했다. 인숙씨도 니혼조시 대학을 나온 당시 보기 드문 일본 유학 신여성이었는데 상협씨의 도쿄제대 동창 부인의 소개로 만나 연애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장녀 명신(58)씨를 송진우 전 동아일보사장의 아들인 상현(65) 서울대 법대교수와 혼인시켰다.2녀 영신(56)씨는 정태섭 전 변호사의 아들 성진(58)씨와 결혼했다. 외아들 한(52)씨는 메리츠증권 부회장으로 있다. 3남 상홍(83)씨는 구 치안본부 재직시절 수원갑부 차준담씨의 2남2녀 가운데 맏딸 부영(79)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부영씨는 이화여고와 이화여전을 나온 재원이었다. 상홍씨는 2남2녀 가운데 장남 윤씨를 전 서울신문사 김종규 사장의 딸 유희(46)씨와 혼인시켜 벽산그룹 김인득 회장과 한 다리 건너 사돈이 됐다. 또 차남 량씨는 장지량 전 공군참모총장의 막내딸 영은(46)씨와 백년 가약을 맺었다. 영은씨의 오빠 장대환씨는 매일경제 신문 창업주 정진기씨의 사위로, 현재 매일경제신문 대표이사회장 인쇄인 겸 발행인과 현 매일경제TV 대표이사 회장이다. 장녀인 유주(56)씨를 사업가 윤주탁씨의 2남 영섭(59·고려대 상대교수)씨에게 시집 보내 윤주탁씨와 직접 사돈간인 박태준 전 민자당 최고위원과 연결되고 있다. 영섭씨의 남동생인 영식씨가 박 전 위원의 장녀 진아(48)씨와 결혼했다. 4남 상돈씨는 6·25 직후 김유황 전 광장㈜ 부사장의 딸 용옥(73)씨와 결혼했다. 상돈씨는 맏형인 상준씨의 중매로 장남 병진(52)씨를 축구협회 부회장과 축구대표팀 감독을 지낸 한흥기씨의 딸인 혜승(45)씨와 맺어줬다. 차남 영로(50)씨는 사업을 하던 정형식씨의 딸 은미(46)씨와 혼인했다. 외동딸 희진(45)씨는 전 대한항공 이사 오명석씨의 외아들 광희(49)씨에게 시집갔다. 광희씨는 전 나이스정보통신 전무이사를 역임했다. 5남 상하씨는 삼양사 설탕공장 설립관계로 일본에서 일하고 있던 1953년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귀국, 바로 박상례(75)씨와 혼인을 맺었다. 상례씨는 공무원 출신인 박규원씨의 딸로 김 창업주의 친구가 중매를 섰다. 외동딸인 영난(44)씨를 송하철(45·주식회사 항소 사장)씨와 결혼시켜 송남석 모나미 회장의 막내며느리로 보냈다. 장남 원씨를 배영화 경희어망 회장 딸인 주연(45)씨와 맺어 줬다. 차남 정씨는 안상영 전 부산시장의 딸인 혜원(39)씨와 결혼했다. 6남 상철(70)씨는 사업을 하던 우근호 씨의 딸 정명(63)씨를 부인으로 맞았다. 7남 상응(작고)씨는 공무원 생활을 했던 권오경씨의 5녀중 셋째딸 명자(53)씨와 결혼했다. 장녀 상경(79)씨는 아폴로박사 조경철씨와 결혼 후 이혼해 조서봉(필립), 조서만(조지) 등 두 아들을 두고 있다. 차녀 상민(78)씨의 남편은 이두종(작고)씨로 활발하게 삼양사의 경영에 참여했다. 온양 지주의 아들로 자란 두종씨는 1956년 삼양사 과장으로 입사해 이 회사의 대표이사 부사장까지 올랐다.1984년 회사를 떠난 뒤에도 삼양그룹이 운영하는 재단법인 양영회와 수당장학회 이사장을 역임했다. 3녀 정애(75)씨는 교육계에 몸담았던 조종립씨의 아들 석(작고)씨와 결혼했다. 석씨는 서울대 상대 출신으로 결혼 후인 57년 삼양사에 사원으로 입사, 총무부장·경리부장·이사·상무·대표이사 부사장을 거쳐 전 삼양제넥스 상임고문까지 역임했다. 4녀 정유(73)씨의 남편은 전 서울대 부총장인 김영국(작고)씨다. 그는 인천에서 사업을 하던 김덕창씨의 8남매 가운데 3남으로 인천이 낳은 천재로 불리었다. 이들은 김 창업주 친구의 소개로 결혼했다. 영국씨는 서울대 정치학과 총동창회장을 지낸 상하씨의 후배이자 매제인 셈이다. 5녀 영숙(72)씨는 미국인 스테푸친과 결혼, 딸 페기, 아들 프랭크를 두고 미국에서 살고 있다. 막내딸 희경(66)씨도 교육자였던 김종규씨의 아들 성완(68·삼양사 의약사업 고문)씨와 결혼,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성완씨는 미국 유타대학 석좌교수로 인공심장 분야의 권위자다. jrlee@seoul.co.kr ■ 창업주의 친일논란 민족문제연구소는 지난 8월29일 친일인사인명사전 편찬을 앞두고 수록예정자 명단 3090명의 이름을 공개했다. 이 명단에는 삼양사의 창업주 김연수씨도 포함됐다. 김씨는 전쟁협력 분야에서 ▲1939년 만주국 명예 총영사 ▲1940년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 이사 ▲조선방적 이사장 ▲1940∼1945년 중추원 참의(자문위원)를 지냈다는 이유로 선정됐다. 이에 대해 삼양그룹측은 대응을 일절 자제한 채 구체적인 언급을 회피하고 있다. 다만 그룹의 한 관계자는 “창업주가 일제의 압제에 죽음으로 항거하는 등 깜짝 놀랄 만하게 대항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나름대로 일제의 폭거에 맞서 민족자본을 형성했다.”며 “후세에 역사가들이 올바른 평가를 내릴 것”이라고 비교적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보다 반일 감정이 팽배했던 1949년 반민특위 재판에서도 창업주는 무죄를 받았다.”고 해명했다. 또 창업주는 창씨 개명도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김 창업주의 일대기인 ‘한국 근대기업의 선구자’에는 일제시대 그의 행적이 상세히 수록돼 있다.6부로 구성된 전기에는 4부 ‘고난의 시절’ 편에 일제에 협조할 수도, 항거할 수도 없었던 고심의 일단들이 실려 있다. 김씨는 중추원 참의 임명과 관련해 1940년 5월 조간신문에 자신이 칙임참의에 임명됐다는 기사를 보고 내무국장 우에다키에게 항의하러 갔지만 결국 그의 완력에 굴복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그는 이후 ‘설사 내가 지녔던 일제치하의 모든 공직이나 명예직이 스스로 원했던 것이 아니고 위협과 강제에 의한 것이었다고 할지라도 일단 그런 직함을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조국과 민족앞에 송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며 통렬한 자기반성의 글을 실었다. 김 창업주는 반민특위에 검거돼 7개월간 수감됐지만 이런 반성의 자세가 참작됐는지 재판에서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는 경성방직을 경영함에 강력히 일본자본과 싸웠고, 항상 한민족을 위한 경제적 기반확립에 노력했고, 경성방직의 상표를 태극기에서 모방한 것으로 보아 피고의 행위는 많이 참작할 곳이 있으며, 그 외의 관직 및 명예직은 일제의 압력에 못이겨 피동적으로 맡은 것이라고 증명되며, 또 피고는 한국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많은 학생에게 원조를 해 그의 혜택을 본 자의 수는 현재 수백명에 달하는 것이니 이 점으로 피고가 남긴 공적은 크다고 할 것이며, 기타 증인의 증언을 통해 볼 때 피고를 단순히 친일 및 반민족행위자라고 규정할 수 없을 것”이라고 판시했다. jrlee@seoul.co.kr ■ 형 김성수와 동생 김연수 ‘한 배에서 태어난 형제가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인촌(仁村) 김성수와 수당(秀堂) 김연수를 아는 주위 사람들의 한결같은 평가다. 인촌과 수당은 호남갑부 김경중씨의 두 아들이었지만 성격은 딴판이었다. 수당은 어릴 때부터 말수가 적고 침착하고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반면 형 인촌은 활달하고 외향적이었다. 여기에 형제는 다섯살이나 터울이 져 어린 시절엔 서로 어울리는 일이 적었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평생을 친한 형제로 지냈다. 인촌은 수당이 근대적 교육을 받도록 인도했다.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동생을 일본으로 가게 해 중·고등학교와 교토제대 경제학부를 졸업하도록 도왔다. 수당은 일본에서 유학생활을 하며 일찍이 ‘기업인’이 될 것을 결심했다. 오사카의 공장지대에서 받았던 강렬한 인상이 결단의 계기였다. 이처럼 수당의 행적은 형 인촌의 행적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실제로 수당이 기업가로서 길을 걷는 데는 인촌이 설립하고 인수한 기업의 경영을 맡음으로써 시작됐다. 수당이 경영인으로 첫 발을 내디딘 것도 1922년 형이 운영하던 경성직뉴와 경성방직의 경영인을 맡고부터다. 이후 수당은 경영인으로서 성공하자 인촌을 적극 도왔다. 생전에 인촌은 수당이 없었으면 교육사업을 비롯한 자신의 활동이 어려웠을 것이라고 곧잘 술회했다. 수당은 언제나 인촌에게 돈 걱정은 하지 말고 마음껏 뜻을 펼치라고 말했다. 인촌이 설립한 고려중앙학원이나 고려대, 경성방직과 동아일보 등 모두 동생의 재정적인 지원을 받지 않은 것이 없었다. 특히 수당은 1940년대까지 고려중앙학원과 고려대에 기부한 재산이 연 평균 250만원에 이르렀는데, 이를 현 시가로 어림잡아 환산하면 1000억원(쌀값 기준)을 훨씬 넘는 액수다. 그러면서도 동생은 형이 하는 일을 뒤에서 묵묵히 돕기만 했다. 그는 “모든 것을 형님이 알아서 하시니까 나는 재정적인 지원만 하면 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형을 만날 때마다 “형님은 교육과 문화사업을 하세요. 저는 뒤에서 돈을 대리다.”라며 든든한 후원자를 자임했다. jrlee@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유영규 특파원 르포] 파키스탄 지진 참사

    [유영규 특파원 르포] 파키스탄 지진 참사

    |무자파라바드 유영규특파원|“아저씨 용답동 알아요? 나 거기서 오래 일했는데.” 인구 12만 5000여명 중 1만 5000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최대의 지진 피해지역 무자파라바드.13일 오후 5시(현지시각) 국내 민간봉사단체 ‘선한사람들’ 구호팀과 기자를 안내하러 나온 모하메드 아리프(38)는 유창한 한국말로 인사를 건넸다. 올 5월까지 3년간 한국의 공장에서 일했다는 그는 “여기 온 한국 사람들은 모두 마음씨 좋은 사장님들 같다.”며 미소를 지었다. 그의 기억 속에 한국인은 딱 두 종류였다. 좋은 사장님과 나쁜 사장님.“안 좋은 기억도 있었지만 그리움도 많지요. 자원봉사자들을 생각해서라도 한국에 대한 기억 중 좋은 것만 떠올리려고 애쓰고 있어요.” 파키스탄 북쪽 끝에 자리한 카슈미르 지역의 산간 오지에서도 한국에 살았거나 한국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현지 주민 요제프(19)도 기회가 되면 한국에 가고 싶다고 했다. 그는 “사촌이 한국에 2년간 있었는데 돈을 많이 벌었다.”면서 “구타와 임금체불 등 안 좋은 얘기도 많지만 여기 온 사람들만 같으면 별 걱정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국내 봉사단체들의 헌신적인 활동에 파키스탄 사람들은 감동을 받고 있는 듯했다. 한국인들은 다른 어느 나라 활동가들보다 헌신적이라고 말했다. 무섭고 폭력적이라는 한국인들에 대한 인식이 구호 활동을 통해 짧은 시간이지만 바뀌고 있다. 특히 무자파라바드는 물론 굿네이버스와 한국국제협력단이 각각 활동하는 가리하비불라와 아보타바드는 치안이 극히 열악한 곳이다. 한국 봉사단은 일부러 이런 환경이 나쁜 곳을 찾아갔다. 터키 구호팀의 길잡이를 맡은 현지인 케반(35)은 “아침에 가장 일찍 일어나고 구조현장을 가장 늦게까지 지키는 것은 한국인”이라면서 “이런 열성과 성실함 때문에 한국이 전쟁을 딛고 빨리 일어선 것 같다.”고 말했다. 현지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전염병. 이 때문에 이날 오후 8시 유엔은 각국 구조대에 공식적으로 철수명령을 내렸다. 몇 명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살아남은 주민과 구조대의 생명을 위험에 노출시킬 수 없다는 이유였다. 선한사람들 구조팀 30여명은 오후 9시까지 스페인 구조팀과 함께 무너진 산림청과 학교를 중심으로 최종 수색작업에 나섰다. 14일에는 새벽부터 독일, 캐나다, 러시아, 터키, 영국 등 각국 구조대원들의 철수 준비가 시작됐다. 새벽 5시 예배당에서 라마단(금식월)을 알리는 우르드어(語) 기도소리가 들려온다. 방송시설을 대신해 트럭들이 경적을 울려댔다. 일출과 함께 성스러운 라마단의 예를 올리라는 신호다. 참사 속에서도 희망의 기도는 계속됐다. whoami@seoul.co.kr
  • “하리리 암살 희생양” 피살설

    지난 1980년부터 2003년까지 레바논 주둔 치안 책임자로 일해 내정 개입 문제를 속속들이 꿰뚫고 있는 가지 카난(63) 시리아 내무장관이 12일(현지시간) 변사체로 발견돼 자살이냐 타살이냐를 놓고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라피크 하리리 레바논 전 총리 암살 사건을 조사해온 유엔의 보고서 제출 시한인 25일을 앞두고 그가 사망했기 때문에 의혹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카난 장관은 지난 2월 하리리 전 총리 암살 이후 유엔에 의해 신문받은 7명의 시리아 인사 중 한 명이었다. 시리아 당국은 카난 장관이 이날 정오 사무실에서 머리에 총을 쏴 목숨을 끊었다고 발표했지만 구체적인 정황이나 자살 동기, 유서 발견 여부 등을 밝히지 않았다. 언론인 출신 게르반 투에니 레바논 의회 의원은 “카난 장관이 정말 자살했는지, 아니면 자살한 것처럼 꾸민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며 “사실이 알려지기를 원치 않고 시리아의 레바논 점령 시절의 일을 숨기고 싶어하는 이들이 있다.”고 ‘타살설’을 주장했다. 시리아 반체제 인사인 알리 사드렐디네 알 베야누니는 알 자지라 방송과 인터뷰에서 카난 장관이 숨지기 직전 레바논의 라디오 방송과 접촉해 자신에게 닥친 위험을 암시했다고 지적하면서 “시리아 정권이 정부 지도자 가운데 일부를 희생시킬 수 있다는 소문이 현실화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영국의 더 타임스 인터넷판은 13일 카난 장관의 죽음에 정치적 음모가 게재돼 있다고 보도했다. 그가 죽음으로써 하리리 암살의 희생양으로 삼을 수 있는 데다 정권에 위협이 되는 거물 정치인을 제거하는 ‘일석이조’를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신문은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선친인 하페즈 전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카난 장군이 구세력을 축출하고 싶어하는 알 아사드에게 얼마 남지 않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고 전했다.신문은 또 1970년대 레바논 내전과 80년대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등 수많은 위기를 헤쳐온 노회한 정치인인 카난 장관이 보고서 공개를 두려워해 자살했다는 설명은 설득력이 약하다고 강조했다.임병선기자 외신종합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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