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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굿바이, 호나우두

    ‘축구황제’ 호나우두(35·브라질)의 마지막은 성대했다. 호나우두는 8일 브라질 상파울루 파카엥부 경기장에서 열린 루마니아와의 평가전에서 은퇴식을 갖고 그라운드와 작별을 고했다. 호나우두는 1-0으로 앞선 전반 30분 프레드와 교체돼 15분간 뛰었다. 현역선수로 그라운드를 누빈 마지막 순간이자, 2006년 독일월드컵 이후 5년 만에 브라질 대표팀 일원이 된 순간이었다. 브라질축구협회는 지난 2월 공식은퇴를 선언한 호나우두를 위해 이번 루마니아전에서 은퇴식을 준비했다. 등번호 9번을 달고 전반 종료 때까지 뛴 호나우두는 동료들의 몰아주기 패스와 루마니아의 느슨한 수비라인 덕에 결정적인 찬스를 세 번 잡았지만 골망을 흔들지는 못했다. 호나우두는 하프타임 때 브라질 국기를 등에 두르고 그라운드를 돌았다. 경기장 곳곳에는 ‘브라질은 호나우두에게 고마워하고 있어요’, ‘오직 호나우두뿐입니다’ 등의 플래카드가 걸려 뭉클함을 자아냈다. 팬들은 기립박수를 보냈고 호나우두는 계속 손을 흔들며 감사인사를 했다. 팬들은 경기 후 호나우두가 라커룸으로 들어갈 때까지 이름을 연호하며 ‘축구황제’와의 작별을 아쉬워했다. 호나우두는 “세 번 정도 찬스가 있었는데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마지막 경기에서 골을 넣지 못했다. 선수 생활 내내 함께 울고 웃어준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1993년 크루제이루(브라질)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한 호나우두는 이후 PSV에인트호벤(네덜란드), 바르셀로나(스페인), 인테르 밀란(이탈리아), 레알 마드리드(스페인), AC밀란(이탈리아) 등 유럽 명문클럽을 두루 거쳐 2009년 조국 코린치안스로 돌아왔다. 18년간 현역선수로 뛰며 월드컵에서 두 번 우승했고, 국제축구연맹(FIFA) 올해의 선수로 세 번 뽑혔다. 월드컵 본선무대 통산 15골로 이 부문 1위에 올라 있기도 하다. A매치에도 98경기에 출전 62골을 터뜨리며 ‘삼바축구의 전설’로 이름을 남겼다. 한편 브라질은 전반 20분 프레드의 결승골로 루마니아를 1-0으로 꺾었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시리아 무장괴한 매복 습격 시위진압 군경 120명 사망

    반정부 시위대를 탄압하고 있는 시리아와 예멘의 군경에 맞서 반정부 무장세력의 저항이 더욱 격화되고 있다. ●강경진압에 총 1200여명 사망 시리아 국영 TV는 6일(현지시간) “북부 지역인 지스르 알수구르에서 테러 상황에 몰린 주민들의 도움 요청을 받고 출동 군과 경찰이 무장 괴한들의 매복 공격을 받아 120명이 숨졌다.”면서 “화기와 수류탄으로 무장한 괴한들은 주택에 매복해 공격하고 우체국을 폭파해 인명피해를 냈다.”고 보도했다. 이브라힘 알샤아르 내무장관은 “국가 치안과 시민을 목표로 한 무장 공격에 침묵하지 않겠다.”면서 단호한 보복 의지를 천명했다. 하지만 아랍권 위성방송인 알자지라는 “시리아 정부가 외신의 접근이나 취재를 허용하지 않아 이 같은 상황을 확인할 방법은 없다.”고 전했다. 시리아 군경은 지난 4일부터 터키 국경과 가까운 지스르 알수구르 지역에서 반정부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한 군사작전을 벌여 왔다. 시리아 인권감시소는 지난 4~5일 이 지역에서 군경과 시위대가 충돌해 경찰 6명을 포함해 38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지난 3월 전국적인 반정부 시위가 벌어진 시리아에서는 군경의 강경 진압이 계속되고 있으며, 그간 숨진 사람이 1200여명이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프랑스는 반정부 시위를 탄압하는 시리아 정부 규탄 결의안의 표결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요청할 방침이라고 알랭 쥐페 외무장관이 말했다. 현재 러시아와 중국은 유럽 국가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는 이 결의안에 반대 의사를 밝히고 있다. ●예멘 제2도시 반정부 세력이 장악 한편 예멘의 제2도시 타에즈가 반정부 무장세력에게 장악됐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통신은 “이날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군과 무장세력이 치열한 교전을 벌인 뒤 무장세력의 통제에 놓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피해 상황은 나오지 않았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살레 대통령의 즉각적인 권력 이양이 예멘 국민의 최대 이익에 부합한다.”며 사임을 촉구했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경찰 10만명 돌파

    경찰 10만명 돌파

    우리나라의 경찰관 수가 처음으로 10만명을 넘어섰다. 이에 따라 경찰관 1인당 담당 인구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5일 통계청과 경찰청의 ‘경찰통계연보’에 따르면 순경 직급부터 경찰 총수인 치안총감 계급에 이르기까지 국내 직업 경찰관은 지난해 말 기준 10만 1108명으로, 전년도(9만 9554명)보다 1.6% 늘어 처음으로 10만명 선을 돌파했다. 경찰 인력 집계에서 경찰청에 근무하는 별정·일반·기능·계약직 공무원과 전·의경, 해양경찰은 제외됐다. 경찰 인력이 늘면서 경찰관 1인당 담당 인구는 사상 최저인 492명으로 줄었다. 경찰 1인당 담당 인구는 사회 안전과 치안 유지를 위한 기본 인프라 구비 정도를 측정할 수 있는 대표적 지표다. 우리나라의 경찰관 1인당 담당 인구는 2004년 519명, 2005년 513명, 2006년 510명, 2007년 509명, 2008년 504명, 2009년 498명 등으로 계속 줄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치안 인력은 여전히 부족한 수준이다. 현재 경찰관 1인당 담당 인구는 영국의 경우 381명, 미국 354명, 독일 310명, 프랑스 273명 등이다. 경찰 총인원 가운데 여성 경찰관이 차지하는 비중은 사상 최고다. 지난해 말 기준 여경 인력은 6830명으로 경찰 총인원 대비 6.8%다. 여성의 사회 참여와 공직 진출이 늘면서 경찰 총인원 대비 여경 비율은 2004년 4.1%, 2005년 4.3%, 2006년 5.3%, 2007년 5.6%, 2008년 6.2%, 2009년 6.6% 등으로 늘고 있으나 여전히 선진국보다는 낮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사개특위, 중수부 폐지 법제화 합의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검찰관계법 소위는 3일 전체회의를 열고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중수부)의 직접 수사 기능을 폐지하는 방안을 법제화하기로 합의했다. 검찰소위는 ▲검찰청법의 직제규정을 ‘대검에는 직접 수사하는 부(部)나 과(科) 등을 두지 않는다.’라고 고치거나 ▲검찰총장의 수사 명령 권한을 제한하는 규정을 신설하는 안 가운데 법제화 방안을 선택하기로 했다. 소위는 또 압수수색 요건을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수사에 필요하고, 피고인이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만한 정황이 있으며 해당 사건과 관계가 있다고 인정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만 압수수색을 할 수 있게끔 할 방침이다. 현행 형사소송법은 압수수색 요건을 ‘(수사나 재판에) 필요한 때’로 비교적 폭넓게 규정하고 있다. 압수물 반환 청구권도 보장하기로 했다. 소위는 압수수색 이후 적법성을 따질 수 있는 ‘압수수색 적부심사제’ 도입안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 소위는 수사기관의 출국 금지 남발을 막기 위해 재판 중인 경우 ‘6개월 이내’, 수사 단계에서는 ‘1개월 이내’로 기간을 제한하기로 했다. 법원의 영장 기각 결정에 검찰 등이 불복할 수 있도록 한 영장항고제도 시행도 합의 내용에 포함됐다. 보증금이나 주거 제한 등의 조건을 달아 피의자를 석방할 수 있는 조건부 석방제도 함께 도입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검찰소위는 검찰이 불기소한 사건을 심의해 재수사를 강제할 수 있는 검찰시민위원회 제도를 법제화하는 데도 의견을 모았다. 검찰소위는 오는 8일과 9일 전체회의를 열어 검·경 수사권 조정안, 특별수사청 설치안, 상설 특검제 도입안 등에 대한 합의를 시도할 계획이다. 검찰소위 위원장인 박영선 민주당 의원은 “한나라당의 반대에 부딪힌 특수수사청 설치안의 대안으로 논의될 상설 특검제는 단순히 제도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구화하는 방안에 대해서까지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강국진 순회특파원 중동을 가다] (1) ‘재스민혁명 150일’ 이집트 현지 르포

    [강국진 순회특파원 중동을 가다] (1) ‘재스민혁명 150일’ 이집트 현지 르포

    2일은 ‘재스민 혁명’으로 일컬어지는 중동의 민주화 운동이 시작된 지 150일이 되는 날이다. 1월 4일 튀니지 수도 튀니스에서 야채 행상을 하던 26세 청년 모하메드 부아지지의 분신 자살로 촉발된 중동의 민주 혁명은 이후 이집트와 시리아, 예멘, 리비아, 바레인 등으로 이어지면서 삽시간에 2011년을 중동 혁명의 해로 만들었다. 특히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의 30년 철권통치를 몰아낸 이집트의 민주 혁명은 중동 지역 전체에 일대 지각변동을 가져왔다. 혁명 150일. 지금 중동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집트 민주화의 성지 타흐리르 광장의 모습을 시작으로 민주화의 새 아침을 열고 있는 중동의 다양한 표정을 현지 르포와 전문가 진단 등을 통해 6회에 걸쳐 짚어 본다. 이집트 민주화 혁명의 성지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 이곳은 지금 두 얼굴이 공존한다. 아니 무슬림의 주일인 금요일과, 금요일이 아닌 나머지 6일의 그것으로 얼굴이 바뀐다.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의 철권독재는 사라졌지만, 민주화는 아직도 오고 있는 중이고, 그 자리를 혼돈이 눙치고 앉아 있었다. 지난 30일 기자가 찾은 타흐리르 광장은 불법주차 차량들로 넘쳐났다. 혁명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풍경이다. 경찰 한 명이 차를 빼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곧바로 그 경찰은 수십명의 군중에 둘러싸여 버렸다. 경찰이 노점상과 불법주차 차량을 단속하려 하자 군중들이 거세게 반발하는 모습이었다. 한참을 떠들어도 도저히 안 먹히자 경찰은 결국 지원을 요청했고 곧이어 경찰 서너 명이 더 나타났다. 그러나 경찰과 군중들의 실랑이는 그로부터 한참 더 이어졌다. 옥신각신 끝에 결국 불법주차했던 차 주인이 차를 다른 곳으로 옮기고, 노점상이 물건들을 주섬주섬 거둬들이는 것으로 실랑이는 끝이 났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바로 옆에 불법주차돼 있는 수십대의 차량을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던 듯 경찰은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 석달 전 타흐리르 광장을 뜨겁게 달궜던 민주화의 열기는 이렇게 표정을 바꿔 가고 있었다. 독재자를 몰아낸 이 시민의 힘을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하는지, 타흐리르 광장은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다. 독재는 몰아냈지만 그 자리를 메울 민주적 질서는 아직 찾아오지 않았다. 혁명의 발단이 됐던 식품가격 상승도 여전히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관광객이 줄면서 최대 수입원인 관광산업이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정권퇴진 운동이 정점으로 치닫던 1월 말보다는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치안 역시 불안하다. 관광객들을 다시 불러 모으려면 치안을 안정시켜야 하는데 정작 시민들은 불법주차 단속 같은 정당한 공무집행조차도 경찰 말이라면 일단 반발부터 한다.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의 퇴진과 함께 추락한 공권력의 권위는 이처럼 아직도 바닥을 기고 있었다. 지금 타흐리르 광장은 이집트의 무질서를 상징한다. 사람들은 뭔가 조급해 한다. 차선과 신호등도 없는 곳이 태반인 카이로 시내 도로에선 과속과 난폭운전이 부쩍 늘었다. ●페이스북으로 집회 참석한 학생들 그러나 이것이 타흐리르 광장의 모든 것은 아니다. 이보다 앞서 지난 27일, 즉 금요기도회가 열린 광장은 전혀 딴판이었다. 평소엔 귀청을 울리는 경적소리와 난폭운전으로 난리법석이지만 금요일만은 해방구로 변신했다. 무바라크 퇴진 운동과 함께 시작된 수십만명의 집회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었다. ‘타흐리르’는 아랍어로 ‘해방’이란 뜻이다. 금요일만은 이름값 제대로 하는 광장으로 변신하고 있는 것이다. 광장은 여전히 삼엄했다. 그러나 경비는 경찰이 아닌 시민들이 섰다. 기자가 광장에 들어설 때에도 시민들로 이뤄진 자율대원들의 검문을 받았다. 신분증을 보여주고 한국에서 온 기자라고 하자 환영한다며 길을 내줬다. 10m쯤 더 가자 이번에는 소지품 검사와 몸수색을 한다. 검색이라고 해 봐야 1~2분밖에 걸리지 않지만 이를 통해 위험한 물건이나 수상한 사람들이 광장에 섞여드는 걸 막고 있다. 타흐리르 광장 주변에 모여 있는 대학생들에게 집회에 어떻게 오게 됐는지 물었다. 페이스북을 통해 친구들과 함께 집회에 참가하기로 약속했다고 했다. 이들은 모두 혁명 당시 광장에서 노숙하며 농성을 했다. 한 학생은 당시 친정부 시위대가 휘두른 각목에 맞아 다리를 다치기도 했다. 이들에게 오늘 집회에 왜 나왔느냐고 물었다. “이집트의 미래를 걱정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한마디로 이렇다. “무바라크를 감옥에 보내야 한다.” 짧은 검문을 마치자 붓을 든 한 사람이 다가와 왼쪽 팔에 이집트 국기와 숫자 ‘25’를 그려 준다. 검문을 통과했다는 인증인 줄 알고 팔을 내맡기고 그림을 다 그린 뒤 ‘고맙다’고 했더니 “20파운드”라고 했다. 알고 보니 시위대와 무관한 장사꾼이다. 혁명을 상징하는 티셔츠, 국기, 그리고 국기를 팔에 그려 주는 노점상은 타흐리르 광장을 누비며 대목을 한껏 누리고 있었다. 타흐리르 광장 중심부에 들어섰다. 플래카드가 여럿 걸려 있었다. “국민들은 무바라크와 부패 정치인을 재판하길 원한다.” “국민들은 혁명과 언론 자유를 원한다.” “국민들은 군사재판을 원하지 않는다.” 광장 곳곳에 무대를 설치하고 있었다. 이날 집회는 주최 단체가 아예 없다. 자발적으로 모인 시민들로 타흐리르 광장은 금요일에는 언제나 붐빈다. 혁명이 낳은 새로운 풍속도다. 정당이나 단체들은 각자 알아서 무대를 설치하고 연설을 하며 청중들에게 호소한다. 그런 연단이 광장 주변에 다섯 곳이 넘는다. 사람들은 각자 광장 주변을 돌아보며 연설도 듣고 이런저런 피켓과 플래카드도 살펴본다. 그러다 정오가 되면 다같이 기도를 했다. 기도가 끝나고 나면 다시 오전과 똑같은 모습이 저녁까지 이어진다. 연단에서 한 연사가 “아직 혁명은 끝나지 않았다. 혁명은 여전히 원하는 게 많다.”며 열변을 토했다. 연설 뒤에는 구호와 노래가 뒤를 이었다. 2-2-3으로 박자를 맞추는 구호 역시 혁명 전에는 볼 수 없었던 것이라고 했다. 무대에서 울려퍼지는 경쾌한 노래 역시 혁명 와중에 나온 ‘민중가요’다. “이집트 사람이라면 손을 머리 위로 올려라”라는 노래가사에 맞춰 연단 주변에 있던 시민들은 국기를 흔들며 호응했다. ●여성들 ‘보수’ 벗고 화려한 옷차림 광장엔 온갖 사람들로 넘쳐 났다. 다섯 살도 안 된 어린이부터 지팡이를 짚고 있는 노인들까지 각양각색이다. 가족단위 참가자도 흔히 볼 수 있다. 특히 중동권에서 가장 개방적이라는 말이 실감나듯 다양한 복장을 한 여성 참가자들을 볼 수 있었다. 한 가족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히잡을 멋스럽게 머리에 두른 젊은 여성은 손사래를 치며 한사코 사진 찍는 걸 거부했다. 화장을 안 해 사진이 예쁘게 안 나올 것 같다는 게 이유였다. 그녀 말고도 광장 곳곳에서는 다양한 색깔을 한 히잡과 화려한 옷차림으로 멋을 낸 젊은 여성들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물론 부르카를 입은 여성, 머리를 드러낸 여성도 있다. 사실 이집트는 1960년대 이전까지 카이로 시내에선 히잡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이 넘쳐났던 카이로가 50년 가까운 보수화 뒤에 다시 기지개를 펴는 셈이다. 30년 독재를 이겨낸 혁명은 ‘이집트’를 호출하고 있다. 모두가 이집트의 미래를 이야기한다. 자신들의 손으로 독재자를 몰아냈다는 자부심과 결합하면서 ‘우리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쳤다. ‘나는 이집트를 사랑한다’거나 ‘1월 25일’이라고 쓴 티셔츠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몇 달 전만 해도 국기는 축구 국가대표팀 경기 응원물품에 불과했다. 국기를 파는 한 노점상은 20이집트파운드에 판매하는 국기가 잘 팔린다며 흡족한 표정이다. 오늘 얼마나 팔 수 있을 것 같으냐고 물었더니 70개 정도는 가능할 것 같단다. ●혁명 도화선 식품가격은 여전 콧수염을 멋스럽게 기른 한 중년 남성이 한 손엔 이집트 국기를 들고 젊은 여성과 어린이와 함께 광장으로 향하고 있는 게 보였다. 정부에서 일한다는 것 말고는 자세한 자기소개를 거부한 이 공무원은 시골에 사느라 그동안 집회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딸과 외손자에게 역사의 현장을 보여주기 위해 광장을 찾았다고 말했다. “이집트는 미래가 밝습니다. 우리에겐 우수한 인재도 많고 자원도 많습니다. 잘사는 나라를 만들 수 있습니다.” 광장에서 만난 한 시민은 마흔 살이 넘도록 지금까지 선거에 참여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독재정권을 지지할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지만 투표를 하더라도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으니까요.” 그랬던 그가 오는 9월 총선과 11월 대선을 손꼽아 기다린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는 선거인데 무척 설렙니다. 이집트를 이끌 지도자를 우리 손으로 뽑는 것이잖아요.” 혁명의 발단이 됐던 식품가격은 여전히 내릴 줄 모른다. 정치 격변 한편에선 극단주의 정당이 활동을 시작했다. 공권력은 무너졌지만 새로운 질서는 아직 자리를 잡지 못했다. 그런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기자 앞을 스쳐가는 한 승용차의 뒤쪽 유리창에 큼지막하게 써붙여진 문구는 이집트인들이 지금 중동의 새 역사를 직접 써가고 있음을 웅변했다. 뒷유리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난 이집트가 자랑스럽다.” 글 사진 카이로 강국진 순회특파원 betulo@seoul.co.kr
  • 리비아 韓대사관 튀니지 이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의 공습이 계속되는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 내 한국 대사관이 치안·경제상황 악화로 튀니지의 국경도시인 제르바로 임시 이전했다고 외교통상부가 30일 밝혔다. 조대식 주리비아 대사를 포함한 대사관 직원 및 가족 11명과 교민 4명 등 15명은 29일 오후 1시(현지시간) 트리폴리에서 육로로 3시간 거리인 제르바로 이동했다. 대사관 측은 제르바에 대우건설 트리폴리 지사와 함께 합동사무소를 설치, 정세 파악 등 업무를 수행할 예정이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中 네이멍구 민족갈등 초비상

    中 네이멍구 민족갈등 초비상

    2년여 만에 재연된 민족갈등으로 중국이 또다시 긴장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네이멍구(內蒙古) 자치구에서 몽골족들의 시위가 확산되면서 중국 당국은 일부 지역을 봉쇄하고, 인터넷 등의 관련 단어 검색을 차단하는 등 강경대응에 나섰다. 일부 지역에 무장 병력을 대거 배치하는 등 현지 상황은 사실상 계엄 상태를 방불케 하는 삼엄한 경계 태세가 펼쳐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외신기자들의 현지 취재도 당국에 의해 제지되고 있다. 30일 현재 중국 인터넷에서는 ‘네이멍구’ ‘집단시위’ 등의 검색이 철저하게 차단된 상태다. 하지만 일부 네티즌들은 중국판 트위터인 마이크로블로그에 네이멍구의 영어 발음인 ‘nmg’ 등을 이용해 조심스럽게 현지 소식 등을 외부로 전하는 등 몽골족 시위사태에 큰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미국에 본부를 둔 남몽골 인권정보센터는 몽골족 유목민을 한족 트럭 운전사가 치어 숨지게 한 사건으로 촉발된 몽골족들의 항의시위가 이날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고 전했다. 시위 사태는 지난 10일 네이멍구 북부 시린하오터(錫林浩特) 인근의 초원지대에서 발생한 몽골족 유목민과 한족 트럭 운전사의 충돌에서 비롯됐다. 석탄을 운송하는 대형 트럭들의 불법 운행으로 초원이 망가지자 유목민 30여명이 트럭 운행 저지에 나섰고, 트럭 운전사는 두 팔을 벌려 트럭의 주행을 막은 유목민 메르겐(34)을 그대로 치고 지나갔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메르겐은 트럭 앞바퀴에 끼인 채 150m를 끌려갔으며 현장에서 즉사했다. 사건 발생 5일 뒤에는 인근 석탄광산에서 항의시위에 나선 몽골족 근로자들이 한족이 대부분인 회사 측 직원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해 한 명이 숨지고, 7명이 부상하는 사건도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5일 시린하오터 정부청사 앞에서 학생 등 2000여명이 모여 당국의 미온적인 사건 처리 등에 항의하면서 시위사태는 절정으로 치달았고, 이때 민족갈등을 부채질하는 구호와 반정부 구호까지 등장했다. 네이멍구 자치구 공안당국은 28일부터 이틀동안 시린하오터 지역 2개 농촌 마을에 봉쇄 조치를 취했고 무장경찰들이 30일까지 삼엄한 경계를 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가 보도했다. 이번 시위는 1947년 네이멍구 자치구 설치 이후 가장 큰 규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티베트나 위구르족과는 달리 한족에 사실상 동화된 네이멍구에서 민족갈등이 불거지자 중국 당국이 크게 긴장하고 있다. 게다가 이번 시위는 갈수록 늘어나는 한족 유입과 탄광 등을 통해 축적된 지역경제의 상당 부분이 한족들에만 돌아가고 있다는 몽골족들의 불만이 바닥에 깔려 있어 2년 전 신장(新疆) 위구르자치구 우루무치 유혈시위의 재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사태 추이가 주목된다. 혼란이 계속되자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30일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중국은 중대한 사회적 모순을 겪는 시기에 진입했다.”면서 “이 때문에 사회를 감독하는 작업은 매우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위원회는 사회치안체계가 더욱 강화돼야 한다고 요구해 시위에 대한 엄격한 진압을 예고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서울 유대근기자 stinger@seoul.co.kr
  • 총격전 속 노래로 아이들 달래는 女교사 감동

    5명의 사망자를 낸 총격전이 발생하는 동안 공포에 질려있는 어린이들을 노래로 달래는 유치원 교사의 동영상이 화제다. 미국 MSNBC 뉴스가 보도한 동영상 속의 상황은 27일(현지시간) 멕시코 누에보레온주 몬터레이에서 발생했다. 알폰소 례예스 유치원 밖 택시정류장에서 조직폭력배들 간의 총격전이 시작됐다. 유치원의 교사 마르타 리베라 알라니스는 5세내지 6세 되는 15명의 어린이들을 바닥에 엎드리게 했다. 밖에서는 총소리가 들려오는 상황, 알라니스는 침착하게 휴대전화를 꺼내 동영상을 찍으며 아이들의 관심을 유도하고, 총소리가 계속해서 들리자 노래를 부르며 아이들을 진정시켰다. 동영상 속 해맑게 웃음을 짓는 아이들의 노랫소리와 밖에서 들리는 총소리가 안타까운 대조를 이룬다. 이날의 총격전으로 5명이 사망했다. 유투브에 올려진 그녀의 동영상은 17만의 조회수를 올리며 멕시코 치안에 대한 많은 염려의 글과 함께 그녀의 침착한 대처에 대한 찬사가 이어졌다. 그녀의 동영상은 멕시코 정부에까지 알려졌고 로드리고 크루즈 주지사는 그녀의 용기 있는 행동과 아이들을 위한 현명한 대처를 치하하여 감사의 상장을 수여했다. 크루즈 주지사는 “위험한 상황을 현명하게 대처한 그녀의 용기와 헌신을 치하한다.”고 말했다. 한편, 멕시코는 2006년 이후에만 마약관련 범죄로 3만7천명이 사망했다. 사진=MSNBC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통신원 김경태 tvbodaga@hanmail.net
  • [부고] 애국지사 박문 선생 별세

    일제 강점기 때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애국지사 박문 선생이 29일 새벽 4시 10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98세. 1913년 강원도 고성에서 태어났다. 1938년 9월 독립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민족문학잡지사를 설립, 경영하기로 하고 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돼 1940년 6월 28일 당시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그 후 민족문학지인 ‘문장’(文章)이 경영난에 처해 있을 때 운영 자금을 제공하고 1941년 9월 폐간될 때까지 종사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86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각각 수여했다. 유족으로는 1남 1녀가 있다. 발인은 31일 오전 6시 30분, 장지는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4묘역, 빈소는 서울보훈병원. (02)478-2899.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탈레반 테러로 아프간 경찰사령관 사망

    28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타카르주에서 탈레반이 자폭 테러를 감행해 북부 아프간 최고 경찰 지휘관이 숨지고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사령관이 부상했다. 이날 타카르주 주정부 청사 사무실에 경찰복을 입은 남자가 들어와 자살 폭탄을 터뜨려 북부 지역 경찰 사령관 모하메드 다우드 다우드 장군을 비롯해 독일 병사 2명과 아프간 경찰 2명 등 6명이 사망했다고 BBC가 29일 보도했다. 또 북부 지역 나토 사령관인 마르쿠스 크나이프 국제안보지원군(ISAF) 독일 장군과 압둘 자바르 다크와 타카르주 주지사 등 10여명이 다쳤다. dpa통신은 나토의 아프간전 개입 이후 탈레반 공격으로 부상한 나토 관리로는 크나이프 장군이 가장 고위급 인사라고 전했다. 자비울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이번 테러는 아프간군이 계획하고 있는 북부 지역 작전을 약화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다우드 장군은 타카르·쿤두즈주에 준동하는 반군을 몰아내기 위한 ‘희망 작전’의 개시를 알리는 기자회견을 연 참이었다. 아프간 정부 고위급 인사인 다우드 장군은 올해 ISAF로부터 주요 도시의 치안 권한을 넘겨받기 위해 준비 중이던 아프간군·경찰 내에서 핵심 역할을 맡고 있었다. 이달 탈레반은 외국군과 아프간군·정부 당국자에 대한 ‘춘계공세’를 벌이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이번 공격은 타카르주와 인접한 쿤두즈주에 주둔 중인 독일군의 장악으로 상대적으로 치안이 안전한 북부 지역에서 이뤄진 것이라 더 심각하게 여겨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아프간 남부 헬만드주에서는 28일 두 채의 민간인 가옥이 나토군의 공습을 받아 소년·소녀 12명과 여성 2명이 숨지고 6명이 다쳤다.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아이들과 여성들에 대한 살인”이라면서 “미국에 마지막 경고를 한다.”고 밝혔다. 공습은 근처 미군 해병 기지가 무장 세력의 공격을 받은 직후 이뤄졌다. 지난 26일에는 북동부 누리스탄주에서 나토군의 공습으로 민간인 18명과 경찰관 20명이 숨졌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사개특위, 소리만 요란했다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가 사법개혁의 일환으로 검토했던 대법관 증원안과 대검 특별수사청 설치안을 사실상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개특위 소속 한나라당 의원들은 지난 25일 이주영 정책위의장의 주도로 비공개 간담회를 갖고 두 개혁안과 관련, ‘6월 임시국회에서 야당과 마지막 합의를 시도한 뒤 접점을 찾지 못할 경우 더 이상 논의하지 않는다.’는 데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여당은 또 오는 6월 30일까지로 예정된 사개특위 활동 시한을 더 이상 연장하지 않기로 의견을 모았다. 여야 모두 사법개혁의 핵심 쟁점으로 꼽았던 두 개혁안을 폐기 처분함에 따라 ‘용두사미 개혁’에 그쳤다는 비판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여당은 두 개혁안을 폐기하는 대신 대법원에 상고심 심사를 담당하는 별도의 대법원 판사를 두는 방안과 특임검사제를 상설화하는 방안을 법원과 검찰 쪽에 최종 협상안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법원·검찰 모두 부정적 입장이 강해 이마저도 무용지물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대법관 증원안과 특별수사청 설치는 여야 간 입장차가 워낙 크고 여론의 호응도 적어 원래 구상대로 관철시키기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현재까지 여야 간 의견 조율이 이뤄진 쟁점들만 처리하는 수준에서 사개특위 활동이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개특위는 다만 지금까지 여야 간 의견 접근을 이룬 대검 중앙수사부의 수사기능 폐지안은 통과시킬 가능성이 높다. 이와 함께 경찰의 독자적인 수사개시권 인정, 복종의무 삭제도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강화하는 조건으로 6월 국회에서 통과가 예상된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돈 없으면 죄수 석방하라”

    “돈 없으면 죄수 석방하라”

    ‘죄수의 인권’과 ‘시민의 안전권’ 사이에서 가치의 무게를 저울질하던 미국 대법원이 결국 인권의 손을 들어줬다. 가용인원을 넘어선 재소자를 받아들인 캘리포니아주 교도소에 “수감 인원을 줄이라.”고 명령한 것이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형기를 채우지 않은 흉악범이 대거 풀려난다면 치안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파산 직전의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캘리포니아에서 정의의 지향점을 둘러싼 논란이 불붙고 있다. 미 연방대법원은 23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법원이 재소자 과밀문제를 해소하려고 주 정부에 “교도소 수감자 4만 6000명을 줄이라.”고 명령한 것은 합헌이라고 판결했다. 주 정부가 교정시설의 포화현상을 방치해 ‘잔혹하고 비상식적인 형벌 부과 금지’를 규정한 미 수정헌법 8조를 위반했다고 해석한 것이다. 이번 판결에 따라 캘리포니아 주는 현재 14만~16만명가량인 교도소 수감 인원을 2년 안에 11만명으로 줄여야 한다.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수용자 감축이다. 9명의 대법관 중 5명이 합헌 판결을 내렸고 보수성향인 4명은 반대의견을 냈다. 다수 의견을 낸 대법관들은 취약한 교정시설 환경을 비판했다.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은 “(캘리포니아 교도소 수감자들이) 공중전화 부스만 한 감방에서 화장실도 없이 생활한다. 이 때문에 이 교도소 수감자의 자살률이 다른 지역 교도소보다 80%나 높다.”고 지적했다. 캘리포니아 주 교도소에서는 수감자들이 먹고 잘 공간이 부족하다 보니 체육관 등에서 살을 부딪치며 생활하는 일까지 생겼고 50여명이 화장실 한칸을 함께 쓰기도 한다. 또 인력과 시설 부족으로 신체적·정신적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하지만 소수의견을 낸 대법관들은 “다수의 대법관들이 캘리포니아 시민의 안전을 걸고 도박을 하는 꼴”이라며 이번 판결에 반기를 들었다. 보수성향인 앤토닌 스칼리아 대법관은 “이번 결정은 미국 역사상 가장 급진적인 명령일 것”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임명한 새뮤얼 얼리토 대법관도 “(감축 예정인) 4만 6000명은 3개 사단급 병력과 맞먹는 숫자”라며 이들이 풀려나면 심각한 위협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법원으로부터 공을 넘겨받은 캘리포니아 주 정부는 수용 인원 감축 방법을 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케네디 대법관은 “캘리포니아 주 정부는 수감자를 조기 석방하는 것 외에 새 교도소를 짓거나 국영 교도소로 일부를 옮기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주 정부가 재정위기를 겪는 탓에) 스스로 수감시설을 짓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제리 브라운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올해 초 주의회에 수감자 일부를 연방 교도소로 옮기거나 조기석방하는 내용을 담은 감축안을 제출했다. 주 정부 측은 “폭력적인 수감자는 조기석방시키지 않을 것이며 이들을 제외한 수천명이 석방 대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우리 관할 아냐” 나몰라라 경찰

    지난해 4월 중앙대 재학생 두 명이 한강대교 남단 첫 번째 아치 난간 위로 올라갔다. 이들은 이곳에서 학내 구조조정 철회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이들의 위치는 행정구역상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이었다. 하지만 강 건너에 위치한 용산서 경찰이 출동해 이들을 연행했다. 현장 도착까지 걸린 시간은 순찰차로 10여분. 그동안 학생들의 목숨을 건 시위는 계속됐다. 불과 1분 거리에 동작서에는 책임이 없었다. 이유는 시위가 ‘다리 위’에서 벌어졌기 때문. 서울경찰청 훈령 ‘경찰서 관할 책임에 관한 규칙’ 등에 따르면 한강 교량에서 발생한 사건·사고는 북측 지역 경찰서가 맡는다. 1991년 만들어진 이 규정은 20년째 그대로다. 경찰의 ‘관할지역 규정’을 보완·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실과 동떨어진 점이 많아 사건·사고 해결에 지장을 주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다. 18일 경찰청 등에 따르면 경찰은 관할지역이 아닌 곳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는 검거, 진압 등 관련 업무를 처리할 의무가 없다. 이 때문에 경찰서 바로 앞에서 발생하는 각종 위반사항도 관할이 아니라는 이유로 외면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강남서는 대치동에 있다. 그런데 대치동은 수서서 관할지역으로 정해져 있다. 이 때문에 강남서 정문 앞에서 불법 시위가 벌어지면 차로 10분 걸리는 수서서(개포동)에서 출동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다. 불법 주차 단속도 마찬가지. 강남서 앞 견인지역은 평소 불법 주차 차량이 많다. 바로 옆 강남운전면허시험장 앞 편도 1차선 도로는 견인지역임에도 택시들이 차선의 절반을 차지한 채 줄지어 서 있어 차량 통행에 불편을 주고 있다. 하지만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있는’ 강남서는 방치하고 있다. 단속 권한은 있지만 의무는 없는 셈. 강남서 관계자는 “이곳은 주로 강남구 도시관리공단이 단속한다.”면서 “강남서 앞에서 사고가 나면 초동조치 후 수서서에 인계한다.”고 밝혔다. 서울의 관광 명소인 청계천과 교통량이 많은 남산터널 등도 마찬가지. 청계천은 종로구와 중구, 동대문구와 성동구의 경계선에 위치해 있다. 하지만 청계천에서 사건·사고가 발생하면 일률적으로 북쪽에 있는 종로서와 혜화서가 책임을 진다. 입구는 중구, 출구는 용산구에 위치한 남산터널에 대한 관할 책임은 모두 중부서에 있다. 이와 관련, 경찰 관계자는 “경찰서의 책임 한계를 명확히해 사건·사고 등을 분쟁없이 신속히 처리하기 위해 이처럼 경계지역을 중간지점으로 나누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표창원 경찰대 교수는 “행정구역 등을 기준으로 한 현재의 경찰 관할구역 규정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도 “경찰서가 늘어나면서 거리상으로 관할구역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늘어나는데, 최근 치안 수요나 행정 여건에 따라 관할 책임을 재조정해야 한다.”고 짚었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경제성장·민주화 선배 한국의 도움 절실”

    “경제성장·민주화 선배 한국의 도움 절실”

    무바라크 독재정권을 몰아낸 이집트 시민혁명이 22일로 100일을 맞는다. 그러나 이집트는 여전히 폭풍의 한복판에 위태롭게 서 있다. 심각한 경제난에 이슬람 신도와 콥트 기독교인 간 유혈충돌로 최근 10여명이 숨지는 등 치안마저 불안하다. 이집트 시민혁명의 도화선으로, 타임이 정한 ‘2011년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중 첫번째로 선정됐던 와엘 고님(31)은 걸음마 단계의 이집트 민주화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그는 18일 서울신문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무바라크 독재정권에 30년 넘게 억압받아 온 이집트 국민에게 민주화 과정의 홀로서기 연습은 쉽지 않은 일”이라면서도 “우리는 민주주의를 차근차근 배우고 있다.”며 상황을 낙관했다. 고님은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모두 이룩한) 한국을 존경한다.”면서 “한국과 서방국가들의 도움을 통해 이집트 사회가 안정화될 수 있으며 옳은 방향으로 나아갈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현재 자국 내 빈곤과 교육제도 개선을 위해 비정부기구(NGO) 설립을 추진 중인 고님에게 혁명 이후의 민주주의에 대해 물었다. “문제는 역시 경제다.” 고님은 ‘경제난’을 독재정권이 물러난 이집트 사회가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았다. 먹고사는 문제가 이집트 반정부 시위의 도화선이 됐지만 혁명 성공 이후에는 반대로 민주개혁 작업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걸림돌이라고 걱정했다. 고님은 특히 “이집트 국민 중 관광업에 종사하는 가구 구성원이 100만명 이상인데 이들 중 상당수가 혁명 이후 직업을 잃거나 관광객 감소로 생계유지에 어려움을 겪는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집트는 반정부 시위가 처음 발생한 지난 1월 25일 이후 석 달 동안 관광수입이 22억 7000만 달러(약 2조 4740억원)나 감소, 관광대국 이미지에 타격을 입었다. 이 때문에 지난 12일 국제통화기금(IMF)에 100억~120억 달러의 재정 지원을 해 달라고 요청했다. 고님은 “아랍혁명의 이정표가 된 이집트 사회가 혁명 이후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면서 “시민들에게 (민주주의에 대한) 확신을 주려면 경제성장이 지속돼야 하고 이를 위해 한국과 서방국가들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집트에 혼란이 계속될 경우 북아프리카 및 중동의 독재자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더불어 치안문제와 민주적 정부 운영방식 및 반부패제도 확립을 둘러싼 혼란도 이집트가 직면한 중대한 도전이라고 강조했다. 고님은 또 알카에다 지도자였던 오사마 빈라덴의 피살 이후 아랍권역에 극단주의세력의 입김이 세질 것이라는 우려를 부정했다. 특히 ‘아랍권의 민중 봉기가 빈라덴이 이끈 성전의 일부였다.’는 알카에다의 주장에 대해 고님은 “그렇지 않다.”고 일축했다. 그는 “우리의 시위는 평화혁명이었다. 지난 1월 이집트인들이 거리에 모여 처음 외친 구호 역시 ‘평화’였다.”면서 “무바라크 반대 시위가 이집트인 수백만명의 공감을 살 수 있었던 건 철저히 평화적으로 진행됐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고님은 ‘아랍의 봄’이 어느 지역까지 확산될지 묻자 “‘아랍의 봄’이라는 표현에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이 같은 움직임은 우연적이거나 일시적인 현상에 그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독재자들은 자신들이 현재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국민으로부터) 공경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려야 한다.”고 말했다. 역설적인 표현 안에는 ‘물러날 시기를 놓치면 시위대는 걷잡을 수 없이 공격적으로 변할 것’이라는 경고의 메시지가 담겼다. 그는 “독재자들은 이집트와 튀니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봐야 한다. 이곳의 낡은 독재자들은 감옥에 갇힐 위기에 처했다.”고 덧붙였다. 또 고님은 아랍권역의 젊은 세대가 자유를 얻기 위해 모든 것을 내줄 각오를 하고 있기 때문에 혁명의 불길이 쉽게 꺼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한국에 대한 존경과 경의의 뜻을 가지고 있다.”며 민주화 선배 국가로서 더 나은 이집트를 위해 도움을 달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이집트의 한국대사관이 한국 기업의 투자를 이끌어 이집트의 기업가 정신을 끌어올려 줬으면 좋겠다.”면서 “또 해외여행을 계획 중인 한국 국민이 있다면 다음 관광지로 이집트는 어떻겠느냐.”고 부탁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단독]이집트 혁명영웅 “한국에 무한한 존경과 경의”

     무바라크 독재정권을 몰아낸 이집트 시민혁명이 22일로 100일을 맞는다. 그러나 이집트는 여전히 폭풍의 한복판에 위태롭게 서 있다. 심각한 경제난에 이슬람 신도와 콥트 기독교인 간 유혈충돌로 최근 10여명이 숨지는 등 치안마저 불안하다.  이집트 시민혁명의 도화선으로, 타임이 정한 ‘2011년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중 첫번째로 선정됐던 와엘 고님(31)은 걸음마 단계의 이집트 민주화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그는 18일 서울신문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무바라크 독재정권에 30년 넘게 억압 받아 온 이집트 국민에게 민주화 과정의 홀로서기 연습은 쉽지 않은 일”이라면서도 “우리는 민주주의를 차근차근 배우고 있다.“며 상황을 낙관했다. 그러면서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모두 이룩한) 한국을 존경한다.”면서 “한국과 서방국가들의 도움을 통해 이집트 사회가 안정화될 수 있으며 옳은 방향으로 나아갈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현재 자국 내 빈곤과 교육제도 개선을 위해 비정부기구(NGO) 설립을 추진 중인 고님에게 혁명 이후의 민주주의에 대해 물었다.  “경제난이 혁명 이후 최대 걸림돌”  “문제는 역시 경제다.”  고님은 ‘경제난’을 독재정권이 물러난 이집트 사회가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았다. 먹고사는 문제가 이집트 반정부 시위의 도화선이 됐지만 혁명 성공 이후에는 반대로 민주개혁 작업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걸림돌이라고 걱정했다. 고님은 특히 “이집트 국민 중 관광업에 종사하는 가구 구성원이 100만명 이상인데 이들 중 상당수가 혁명 이후 직업을 잃거나 관광객 감소로 생계유지에 어려움을 겪는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집트는 반정부 시위가 처음 발생한 지난 1월 25일 이후 석 달 동안 관광수입이 22억 70000만 달러(약 2조 4740억원)나 감소, 관광대국 이미지에 타격을 입었다. 이 때문에 지난 12일 국제통화기금(IMF)에 100억~120억 달러의 재정 지원을 해 달라고 요청했다. 고님은 “아랍혁명의 이정표가 된 이집트 사회가 혁명 이후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면서 “시민들에게 (민주주의에 대한) 확신을 주려면 경제성장이 지속돼야 하고 이를 위해 한국과 서방국가들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집트 혼란이 계속될 경우 북아프리카 및 중동의 독재자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더불어 치안문제와 민주적 정부 운영방식 및 반부패제도 확립을 둘러싼 혼란도 이집트가 직면한 중대한 도전이라고 강조했다.  “민주화시위로 과격세력 준동 없어한국 도움이 절실”  고님은 또 알카에다 지도자였던 오사마 빈라덴의 피살 이후 아랍권역에 극단주의세력의 입김이 세질 것이라는 우려를 부정했다. 특히 ‘아랍권의 민중 봉기가 빈라덴이 이끈 성전의 일부였다.’는 알카에다의 주장에 대해 고님은 “그렇지 않다.”고 일축했다. 그는 “우리의 시위는 평화혁명이었다. 지난 1월 이집트인들이 거리에 모여 처음 외친 구호 역시 ‘평화’였다.”면서 “무바라크 반대 시위가 이집트인 수백만명의 공감을 살 수 있었던 건 철저히 평화적으로 진행됐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고님은 ‘아랍의 봄’이 어느 지역까지 확산될지 묻자 “‘아랍의 봄’이라는 표현에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이 같은 움직임은 우연적이거나 일시적인 현상에 그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독재자들은 자신들이 현재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국민으로부터) 공경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려야 한다.”고 말했다. 역설적인 표현 안에는 ‘물러날 시기를 놓치면 시위대는 걷잡을 수 없이 공격적으로 변할 것’이라는 경고의 메시지가 담겼다. 그는 “독재자들은 이집트와 튀니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봐야 한다. 이곳의 낡은 독재자들은 감옥에 갇힐 위기에 처했다.”고 덧붙였다. 또 고님은 아랍권역의 젊은 세대가 자유를 얻기 위해 모든 것을 내줄 각오를 하고 있기 때문에 혁명의 불길이 쉽게 꺼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한국에 대한 존경과 경의의 뜻을 가지고 있다.”며 민주화 선배 국가로서 더 나은 이집트를 위해 도움을 달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이집트의 한국대사관이 한국 기업의 투자를 이끌어 이집트의 기업가 정신을 끌어올려 줬으면 좋겠다.”면서 “또 해외여행을 계획 중인 한국 국민이 있다면 다음 관광지로 이집트는 어떻겠느냐.”고 부탁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5·18민주화운동 31주년] “아직도 술 마셔야 잠… 5월 트라우마에 관심을”

    [5·18민주화운동 31주년] “아직도 술 마셔야 잠… 5월 트라우마에 관심을”

    “악몽을 꾸지 않고, 편안히 잠들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김공휴(52)씨는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지 30년이 넘은 지금도 ‘5월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잇다. 그는 “매년 이맘때가 되면 괜히 가슴이 뛰고 불안증에 시달린다.”면서 “요즘도 독한 술을 마신 뒤에야 겨우 잠을 청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고문을 당한 후유증 탓이다. 군화 소리 속에 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목을 짓누르고, 그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면 전신마비 증세가 오면서 병원 응급실로 실려가기 일쑤라고 한다. 김씨는 “가장으로서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으나 잦은 실직과 두 차례의 이혼을 반복하면서 ‘사회 부적응자’로 낙인 찍혔다.”며 “잠을 이루기 위해 과하게 마신 술과 신경질적으로 변한 성격 때문에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가곤 했다.”고 털어놨다. 최근엔 성년이 된 아들과도 함께 생활하지 못하고 셋방을 얻어 홀로 지내고 있다. 그는 “이런 상황을 이기지 못한 상당수 피해자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안타까운 현실이 계속되고 있다.”며 “우리 사회가 5월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를 겪는 피해자들에게 따뜻한 관심을 쏟아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그의 불행은 1980년 5월 18일 우연히 시내에 나왔다가 ‘역사적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시작됐다. 그는 당시 수창초등학교 주변(금남로)에서 군중과 계엄군의 대치상황을 구경하다가 군인들에게 붙들려 소총 개머리판 등으로 무차별 구타를 당했다. 주민의 도움으로 겨우 집으로 피신한 그는 “왜 내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맞아야 했을까. 그것도 나라를 지키는 우리 군인들한테…” 이런 생각에 잠긴 그는 시민들이 탈취해 운행 중인 트럭에 올라 탔다. 평범한 나전칠기공이 목숨을 내건 ‘투사’로 변신하는 순간이다. 같은 날 오후 전남도청 앞에서는 첫 총성이 울리면서 시위 중인 시민들이 쓰러졌다. 그는 22일부터 26일까지 시민군 기동타격대로 편성돼 외곽 순찰과 도심 치안을 맡았다. 계엄군의 도청 재진입을 앞둔 26일 시민 50여명은 도청을 사수하기로 했다. 그 역시 운명을 함께하기로 결심했다. 27일 새벽 요란한 총소리와 함께 계엄군이 도청에 재진입하면서 일주일간의 ‘항쟁’은 막을 내렸다. 민원실 앞마당엔 주검이 쌓이고, 생존자는 밧줄로 묶였다. 그는 트럭에 태워져 상무대(현재의 광주 상무신도시) 영창으로 향했다. 고통의 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김씨는 “총기 휴대와 내란 혐의는 인정했으나 강도·강간 혐의까지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어서 버텼더니 무자비한 몽둥이세례가 이어졌다.”며 치를 떨었다. 혼절을 거듭하면서도 이런 혐의를 인정치 않자 수사관들이 막사 밖의 포플러 나무 근처로 끌고 가 손발이 묶이고 옷이 벗겨진 채 개미집에 던져졌다. “개미들이 온몸을 기어다니는 상황은 도저히 참을 수 없어 그들이 요구한 모든 혐의를 인정했다.”는 그는 결국 5개여월의 수감생활을 끝내고 같은 해 10월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 그러나 몸은 만신창이가 된 뒤였다. 김씨는 “허리 통증을 덜기 위해 인분과 견분까지 먹었다.”고 했다. 김씨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피해자를 돕기 위해 최근 ‘5·18민주유공자회 설립추진위원회’ 대변인을 맡았다. 5월 단체(구속부상자회, 부상자회, 유족회)를 하나의 공법단체로 통합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행안부 유동정원제 정착

    올해부터 전체 중앙행정기관으로 확대 시행된 유동정원제가 새로운 공무원 인력운영 제도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17일 지난해 유동정원제가 시범실시된 지 1년여 만인 3월 말 현재 40개 중앙행정기관에서 복수직 4급 이하 정원의 5.8%인 총 1만 752명이 유동정원으로 지정됐다고 밝혔다. 유동정원제는 각 부처 실·국의 일정 정원을 유동정원으로 지정하고, 이를 주요 국정과제나 신규 업무 등에 탄력적으로 재배치하는 인력운영 방식이다. 행안부에 따르면, 전체 유동정원 가운데 97%인 1만 410명은 범죄예방, 재난 및 생활안전, 민원서비스 강화 부문 등에 집중배치됐다. 행안부 관계자는 “유동정원제를 통해 기관장들이 긴급현안에 대해 신속하게 인력을 투입, 가시적인 업무효과를 보고 있다.”고 평가했다. 검찰청은 기술유출, 사이버 범죄 등에 대한 수사력을 강화하기 위해 전산·방송통신직 45명을 유동정원으로 지정해 사기 게임도박 조직 적발, 농협서버 공격범죄자 추적 등에 활용하고 있다. 병무청은 불법 병역면제 감시활동을 강화하는 데 5명, 교과부는 교육현장 비리 근절을 위한 상시감찰에 4명을 재배치했다. 인력증원 억제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국세청은 국외소득 탈세 방지 등 역외탈세 관리 담당인력으로 20명을, 해양경찰청은 해양치안 강화를 위해 신설된 기구 등에 필요한 인력으로 100명을 각각 투입했다. 대민 행정서비스 지원인력으로 활용된 사례도 많다. 국세청은 지방청 정보기술(IT) 서비스데스크 등에 535명, 경찰청은 신도시 개발에 따른 현장 치안수요 급증에 대응해 6469명의 유동정원을 투입했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전관예우 관행 끝내자] “로비·보수액 상한 규제 필요”

    [전관예우 관행 끝내자] “로비·보수액 상한 규제 필요”

    ‘퇴직공무원 취업제한 기준을 강화하고 필요하면 보수액 기준도 추가하라.’ 한국행정연구원이 17일 정부중앙청사 별관에서 개최한 ‘공직자 윤리성 확보를 위한 전관예우 관행 개선방안’ 세미나에선 실효성이 떨어지는 현행 공직자윤리법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문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공직사회 내부가 국민 여론을 제대로 감지하지 못한 채 자신들의 회전문 인사에 대해 너그럽다는 질타도 이어졌다. 발제자와 토론자들의 요지를 정리했다. 윤태범 한국방송통신대 교수는 ‘공직자의 윤리 확보와 이해충돌의 방지’ 주제발표에서 “이해 충돌은 공직 전 생애(입직 전-재직 당시-퇴직 후)에 걸쳐 발생하는데 특히 퇴직 후 발생하는 전관예우가 문제”라고 전제한 뒤 “미국의 정부윤리법을 차용한 우리 공직자윤리법은 첫단추부터 잘못 꿰어졌다.”고 비판했다. ●유관업종 취업제한 2년→4년 미국은 이해충돌 방지에 초점을 맞췄지만 우리는 이를 외면하고 취업으로만 국한시켰다는 것이다. 미국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1993년 취임 후 처음 서명한 법안은 정무직 고위 공직자에 대해 퇴임 후 5년간 해당 기관을 위한 로비활동을 금지시킨 연방집행명령이었다. 또 미국 의회 스스로 20세기 가장 훌륭한 법률이라고 자평하는 뇌물 및 이해충돌법률(1962년 제정)은 전직 공무원·의원들이 특정 문제와 관련해 연방기관에 대해 특정한 정당을 대변하는 행위, 연방 공무원이 연방정부 일처리와 관련해 특정인을 대변하거나 재정적 이해관계를 갖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나카무라 도라아키 우송대 솔브리지 국제대학 교수는 일본의 전관예우 실태와 방지제도를 소개했다. 일본에도 낙하산 인사는 있다. 이른바 ‘아마쿠다리’ 혹은 ‘와타리’로 상급기관의 공직경험을 토대로 유관기관에 재취직하는 ‘특권적 신분보장’이다. 그러나 나카무라 교수는 “전관예우가 사회적인 골칫거리는 아니다. 사법부의 경우 정년퇴직이 당연시되는 분위기에다 전관변호사에 대한 각 지역 변호사회 감시가 매섭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본은 2008년 12월 개정된 국가공무원법을 통해 민간기업에 재취업한 퇴직 공무원의 현직에 대한 의뢰·요구를 금지하고 있다. 공무원이 다른 임직원이나 전 임직원의 재취직을 알선해서도 안 된다. 대상기관은 지방공공단체, 국가·국제기구를 제외한 모든 영리기업, 주요 비영리법인이다. 특히 일본은 공무원 취업제한은 물론 이해관계가 있는 행위도 제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직원이 이해관계가 있는 기업에 대해 구직활동을 할 수 없다. 이환성 한국행정연구원 수석연구원은 공직자윤리법 강화를 통한 제도적 보완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현재 공직자윤리법 제2조의 2에 명시된 이해충돌 방지 의무 대상자를 현 공직자는 물론 퇴직자로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퇴직자의 취업제한 기간도 확대하라고 요구했다. 이해충돌 가능성이 높은 특정업무는 제한기간을 4년까지 확대하고, 고의적인 경력 세탁 방지를 위해 업무관련성 기준 기간도 ‘퇴직 전 3년 이내’에서 5년으로 확대하는 안을 내놓았다. 업무관련성 적용범위도 ‘퇴직 전 3년간 소속부서’로 지나치게 좁게 해석하고 있는데 과장 이하는 소속 과, 국장 이하는 국, 기관장은 기관 전체업무로 확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소속부서 업무와 관련 있는 영리 사기업체’ 범위도 현재보다 넓게 해석해 간접적으로 관련되는 업무도 포함시킬 것을 제안했다. 이 연구원은 특히 “영리 사기업체 기준이 자본금 50억원 이상이고 연간 외형거래액 150억원 이상인 업체로 한정돼 있다.”면서 “둘 중 한 가지 요건만 충족시키도록 하고 법무·회계·세무법인을 취업제한업체로 명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거의 100% 취업승인률 낮춰야” 이 밖에 공직자 윤리위원회 역할을 강화해 행정심판권을 주는 대신 남발되는 취업승인권을 대폭 축소해야 한다는 언급도 눈길을 끌었다. 이 연구원은 “취업 후 2년간 연간 보수액을 신고토록 해 기준액을 초과하면 윤리위가 별도로 심사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토론자로 나선 오승호 서울신문 편집국 정치에디터는 “전관예우 당사자인 법조인, 금융인들의 인식이 일반 시민들과 괴리가 크다.”고 지적했다. 오 에디터는 “한 은행 지점장은 ‘금감원 출신이 시중 은행 감사로 오는 관행은 필요악’이라고 하더라.”면서 “변호사협회의 한 회원은 판검사 출신 전관예우에 대해 ‘오히려 중앙부처 공무원들의 대형 로펌행이 더 심각한 게 아니냐.”고 반문하는 등 아예 딴생각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오 에디터는 “로펌의 수익구조 절반 이상이 용역서비스인데 이 곳에 중앙부처 출신들이 몰린다는 건 그만큼 현직 때 인맥을 동원한 로비 가능성을 내포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상수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 선임연구관은 “보수액 규정으로 취업제한을 하거나 장·차관 등 고위공직자는 아예 퇴직 후 1~2년간 취업을 못 하도록 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전문성·직업자유 훼손 없어야” 그러면서 “재취업은 보장해야 하지만 법의 잣대를 엄격히 들이대고 ‘행위 제한 제도’를 재산등록의무자 전체를 대상으로 도입하는 공직자윤리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못 박았다. 퇴직공무원의 법률대리 행위나 고문 역할 등 간접적인 압력행사까지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재근 참여연대 시민감시팀장은 “한승수 전 총리가 부총리·총리를 거치면서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왔다 갔다 했다.”면서 “이런 분들의 청탁이나 알선을 무시할 수 있는 공직자가 과연 얼마나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직업공무원제의 의미는 공직에만 전념한 뒤 명예롭게 퇴직해 연금생활을 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중간퇴직하고 고액 연봉의 직장으로 옮기는 걸 당연시하는 풍토는 개선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반면 박재하 한국금융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부산저축은행 사태를 예로 들면서 “건전한 규제는 강화되어야 하지만 규제권을 가진 공무원의 재량을 과도하게 거둬들이는 게 능사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박 연구위원은 “자칫하면 평생 쌓은 공무원의 전문성을 무시하거나 직업선택의 자유를 저해할 수 있으므로 현재 시행 중인 공직자윤리법의 운영의 묘를 찾아야 한다.”면서 “현재 거의 100%에 이르는 취업승인율을 대폭 낮추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시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생명의 窓] 위대한 문화혁명/차동엽 인천가톨릭대 교수·신부

    [생명의 窓] 위대한 문화혁명/차동엽 인천가톨릭대 교수·신부

    지난 4월 초 필자는 경찰청 직원 및 가족을 대상으로 한, K문고 독서경영연구소 주관 ‘독서토론회-저자와의 만남’에 초대되어 강의를 했다. 경찰청 내 ‘POLICE 열정 아카데미’ 프로그램 사업 중 하나인 독서토론회는 2009년에 신설돼 점차 조직 내 독서 붐 조성 및 독서모임 구성 등 새로운 조직문화를 창출해 나가는 데 목적이 있다고 한다. 그곳에서 필자는 뜻밖의 신선한 문화 충격을 경험했다. ‘책 읽는 경찰’이라는 이미지가 왠지 낯설고 머릿속에 쉬이 그려지지도 않았던 초기 데이터가 강의를 마친 후 대폭 수정되는 정도를 넘어 진한 감동까지 한 가슴 안겨주고 돌아오게 했으니 말이다. 강의를 시작하기 전 주최 측 관계자들과 가진 차 나눔에서부터 필자의 선입견은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 늘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아 긴장을 늦출 수 없기에 그야말로 책 읽을 여유란 ‘반 짬’도 찾아볼 수 없을 것 같았던 그들의 일터에서 이런 학습 프로그램이 성공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들어 보니 긍정적인 변화의 산물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선 삭막해지기 쉬운 직장생활에 활력이 되는 한편, 인간애도 살아나 동료들과의 관계가 좋아졌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다양한 주제의 책을 읽음으로써 경직되기 쉬운 사고가 유연해져 수사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경찰 서비스 업무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시민에 대한 봉사의 질도 한층 높아졌다는 것이다. 하나의 예로 그 자리에 동석했던 K문고의 대표는 필자에게 어느 경찰서장이 보낸 편지 한 통을 보여 주었다. 내용 중 몇 대목을 독자들에게도 잠깐 소개하면 이렇다(편의상 부임지는 ○○으로 표기했다). “…저는 지난 1월 11일 ○○으로 내려와 근무하고 있습니다. 강·절도 사범 검거 등 그간 몇 건의 성과가 있었으나 그보다도 주민과의 소통 및 화합을 통한 공감 치안의 필요성에 긍정적인 분위기가 잡혀 가고 있다는 사실에 더 큰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 ○○경찰은 책 읽는 경찰상 구현과 책을 통해 주민과 만나는 문화 공간의 역할을 하게 될 작은 도서관을 만들었습니다. 도서관 명칭은 주민과 경찰이 공감하는 장소라는 뜻의 ‘공감마루’로 정했습니다. 국전 초대 작가로 이곳에 사시는 최고의 서예가가 쓰신 ‘지금 잠을 자면 꿈을 꾸지만 지금 책을 읽으면 꿈을 이룬다’는 하버드대 도서관의 명언도 액자로 만들어 걸었습니다. … 행여 기회가 되신다면 ‘공감마루’에 들러 차 한 잔 드시고 가시기 바랍니다.…” 필자는 이 짧은 편지글에서 대한민국의 희망찬 미래를 보았다. 무슨 거창한 이념이나 철학이 아니라 하나의 작은 실천이 가져 올 ‘나비효과’를 예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책을 통한 인간애의 나눔! ‘공감 치안’, ‘공감마루’라는 아이디어가 표방하듯 대한민국 경찰의 임무가 소극적 치안에서 적극적 대민 봉사의 차원으로 진화하고 있고 그 매개가 책이라고 하니 어찌 아니 반가운 일이겠는가. 대한민국 어느 한 고장 사람들과 그곳을 관할하는 경찰관, 그리고 책 유통업자, 이들이 책으로 인연을 맺은 이 묘한 앙상블에는 피해자나 가해자 또는 재판관이 없다. 소비자와 판매자도 없다. 오직 훈훈한 휴머니즘만이 공존한다. 그날의 강의 분위기는 더 언급할 필요 없이 좋았다. 언뜻 보기에 경찰 공무원이라고 식별하기에는 너무도 부드럽고 민간인스러운(?) 표정들이었다. 지적 호기심에 가득 찬 경청의 태도, 그리고 강의 후 질문은 한마디로 책 읽는 문화가 얼마나 사람과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웅변적으로 보여 주었다. 요즘 여러 매체들에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독서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또한 여러 형태의 독서 동아리들이 왕성하게 독서 문화를 이끌어 가고 있음을 익히 보아 왔다. 필자는 독서문화의 부흥이야말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먹여 살릴 확실한 성장 동력이요, 가장 폭발력 있는 문화혁명이라고 여기기에 이와 관련한 문화 선구자들에게 유감 없는 응원을 보낸다.
  • 식민지 조선의 강요된 ‘명랑화 운동’

    대략 2년 전쯤의 일이다. 소래섭 울산대 국어국문학부 교수는 1930년대 작가인 박태원과 김기림의 작품 속에 ‘명랑’(明朗)이라는 단어가 유독 많이 등장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소 교수는 이후 일제강점기 신문과 잡지를 탐색해 ‘명랑’의 문화사적 의미 변화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명랑’의 끝자락에 1930년대 식민지 조선의 암울한 현실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유쾌하고 활발하다.’는 뜻의 평범한 단어 하나에 놀라운 역사적 역설이 숨겨져 있었던 것. ‘불온한 경성은 명랑하라’(웅진지식하우스 펴냄)는 명랑이란 단어에 주목해 우울한 근대를 읽어낸다. 총독부와 근대 자본주의가 강요한 명랑의 홍수 속에서 1930년대는 웃음이 넘쳐난 시대였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대다수 지식인과 예술가, 학생, 노동자들은 우울에 젖어갔다. 저자는 일제가 당시 조선에선 잘 쓰이지 않던 ‘명랑’이란 단어를 의도적으로 앞세우기 시작했다고 지적한다. 총독부가 벌인 ‘대경성 명랑화 프로젝트’가 단적인 예다. 경성이 급속하게 팽창하면서 보건 위생과 치안 등 여러 문제점을 드러내자, 총독부는 이를 바로잡겠다며 도시 명랑화 정책을 펴기 시작한다. 하지만 실제 목적은 체제에 저항하는 세력을 억압하고 체제순응형 인간을 양성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때부터 경성에 ‘명랑’이란 감정이 이식되기 시작했다. 학교는 ‘언행일치의 명랑한 인격’을 양성하라는 지침에 따라 ‘모범 인간’ 양성에 나섰고, 주류 언론들은 퇴폐적이고 저속한 유행가 대신 명랑한 유행가를 현상 공모하기도 했다. 산책 즐기는 남자를 부축해주는 ‘스틱 걸’과 당구장에서 손님과 함께 게임을 하는 ‘빌리어드 걸’, 주유소의 ‘가솔린 걸’ 등 화려한 용모와 미소로 명랑을 꽃피우는 온갖 ‘걸’들이 출현한 것도 이 시기였다. 이러한 ‘강요된 명랑’의 잔재는 ‘명랑화 운동’이나 ‘사회 명랑화 캠페인’ 등을 통해 1980년대까지 이어졌다. 저자는 1990년대 이후 ‘명랑화’라는 말은 자취를 감췄지만 자신의 감정이나 의지와 상관없이 순응만을 강요하는 명랑화는 ‘행복화’나 ‘쿨’ 등의 레토릭으로 대체된 채 여전히 살아있다고 꼬집는다. 88만원 세대의 ‘쿨’ 또한 1930년대 ‘명랑 가면’의 21세기 버전에 불과하다는 것. 저자는 만화 명랑소녀 캔디를 통해 ‘외로워도 슬퍼도’식 명랑화로부터 벗어나라고 충고한다. “진정한 명랑이란 자신의 진실한 감정과 대면하고 슬픔까지 껴안을 수 있을 때만 찾아오는 것이니, 바늘로 허벅지 찔러가며 쿨한 척 애쓰지 말고 자기 감정의 주인이 되라.”고 말이다. 1만 3800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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