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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쓰레기 줄이자” 시군 묘안경쟁/요일별 수집일 표시 홍보달력 배포

    ◎주민 감시단 말들고 소각로도 설치/아파트에 생활쓰레기 퇴비화 시설 쓰레기종량제 실시가 본격화되면서 쓰레기감량을 위한 지방자치단체간의 아이디어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종량제달력」을 제작,배포하는가 하면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보직을 받지 못한 공무원을 종량제 현업부서에 긴급투입,조기정착을 유도하고 있다. 일선행정기관은 매일 발표되는 지역별 규격봉투사용비율과 쓰레기감량률로 「깨끗한 지역의 순위」가 평가되자 경쟁심리까지 발동돼 경쟁을 펼치고 있다. 동해시의 경우 7일 쓰레기종량제달력 3만부를 제작,관내 각급기관과 주민에게 배포하기 시작했다. 8절지크기의 1장으로 된 이 달력은 종이류·플라스틱·빈병·캔·고철등 재활용품과 대형폐기물 수집일인 목요일을 녹색으로,연탄재등 불연성쓰레기 수집일인 화·금·일요일을 붉은 색으로,일반쓰레기 수집일인 월·수·토요일을 청색으로 표시해 주민이 쉽게 알 수 있도록 했다. 또 창원시는 주민자치감시단을 구성,쓰레기 무단방출을 감시하고 반상회등을 통해 각가정에서 구독하는 신문과 잡지의 종류를 공개,얌채로 신문등을 몰래 버리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부산시는 영도구 일부지역에서 시범시행중인 생활쓰레기의 퇴비화작업이 효과를 거두자 이를 확대키로 했다.이들 지역에서는 생활쓰레기를 퇴비로 만들어 근교 농장에 공급,쓰레기발생률을 제로화하고 근교농장에도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또 부산시 영도구 봉래동 미광마린타운아파트와 조양비치아파트 주민은 자체 쓰레기소각장을 설치,운영하고 있으며 금정구 구서동 구서선경아파트는 생활쓰레기를 퇴비로 만들고 있다. 퇴비작업은 각 가정에서 배부받은 10ℓ짜리 용기에 생활쓰레기를 담은 뒤 미생물이 80여종으로 돼 있는 발효제를 섞어 1차발효시킨 뒤 라인마다 설치된 1백ℓ짜리 용기에 다시 수거하는데 매주 5t가량의 퇴비가 생산된다. 미광마린타운의 경우 지난해 6월 입주자 6백57가구가 가구당 8만∼9만원씩 갹출,시간당 24㎏을 소각할 수 있는 간이소각로를 5백60만원에 구입해 재활용쓰레기를 제외한 나무토막등 일반쓰레기를 태우고 있다. 이 아파트는 하루 7∼8시간가량 소각로를 가동,평균 1.6t가량을 소각함으로써 규격봉투구입량을 줄일 수 있어 그만큼 경제적인 이득까지 보고 있다. 춘천시는 시·군통합에 따라 보직을 받지 못한 계장급이상 공무원을 종량제부서에 배치,주민계도에 활용키로 했다. 삼척시도 통합시 출범으로 보직을 못받은 계장급 15명 가운데 10명을 종량제업무부서에 배치할 예정이다. 경기도 일산신도시의 경우 아파트단지가 밀집한 특성등을 고려,일선동사무소와 아파트관리사무소의 연계체제를 갖추고 주민에게 규격봉투위반사례등을 신고토록 하는 한편 별도의 포상제도 구상중이다. 또 농어촌지역 자치단체등에서는 농사절기와 어업정보등 생활정보를 함께 담은 달력등을 제작,주민에게 배포할 것을 추진중이다.
  • 한국의 발전이끈 50인

    1945년 광복 이후 지금까지 50년 동안 어떤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이끌어 왔는가.서울신문이 광복 50년을 이끌어온 각계인사 50인을 선정,소개한다.북한사람과 외국국적을 가진 사람은 선정대상에서 제외했다. ▷이승만◁ 1875.3.26∼1965.7.19.황해도 평산출신.배재학당졸업·미국 프린스턴대학 철학박사·초대∼3대 대통령,독립협회등의 간부로 개화운동.일제때 상해임시정부 대통령을 역임하는등 광복때까지 해외에서 독립운동.해방직후 미국에서 귀국해 민주진영 최고지도자로서 건국준비에 매진.48년 제헌의회의 국회의장에 이어 초대 대통령에 당선.장기집권을 위해 불법적 개헌을 감행한끝에 60년 4·19혁명으로 하야 한뒤 하와이로 망명했다. ▷김구◁ 1876.8.29∼1949.6.26.황해도 해주출신.대한민국 임시정부 경무국장 국무령 주석·한국독립당 집행위원·민주의원 총리·국민의회 부주석.일제때 신민회 황해도총감을 시작으로 평생을 독립운동에 몸바친 민족주의자.한인애국단을 조직해 이봉창의사 등으로 하여금 일본왕등에게 폭탄을 던지게 했다.임시정부 주석으로 광복군을 창설했으며 해방뒤 남북분단을 막기 위해 평양을 방문하기도 했다. ▷김병로◁ 1887∼1964.전남순창출신.1913년 일본메이지대졸업.일제시절 경성법전·보성전문교수 거쳐 변호사로 활약하면서 광주학생운동,6·10만세운동,원산파업사건 등 민족운동관련사건 무료변론.항일단체인 신간회중앙집행위원장역임.46년 남조선과도정부사법부장을 맡았고 건국후 초대·2대 대법원장을 거치며 우리나라의 사법제도의 기틀을 다졌다. ▷조병옥◁ 1894.3.21∼1960.2.15.충남 천안출신·미국 콜럼비아대 대학원 수료·1929년 광주학생사건으로 3년 복역·조선일보 전무·37년 수양동우회사건으로 복역.해방뒤 우익의 한국민주당을 창당하고 미군정아래서 경무부장을 역임했으나 이승만정권의 독주에 반발,52년 반독재구국선언을 주도.54년 보수야당을 묶은 민주당을 창당,60년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입후보했으나 신병으로 선거 한달전에 미국육군병원에서 사망했다. ▷신익희◁ 1894.6.9∼1956.5.5.경기도 광주출신.한성공립외국어학교졸·1919년 상해 망명·임정 내무총장·법무총장·48년 초대 국회의원·국회의장·대한국민당 위원장을 역임.54년 자유당정권이 4사5입 개헌등 횡포를 부리자 야당세력을 묶어 민주당을 창당.56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한강 백사장유세에 수십만 인파를 모으는등 지지를 받았으나 이틀뒤 전주유세장으로 가던 야간열차에서 사망했다. ▷최현배◁ 1894.10.19∼1970.3.23.호 외솔.경남 울산출신.일신학교·한성고등학교·일본 히로시마고등사범·경도제국대학졸업.연희전문 교수·문교부 편수국장·한글학회 이사장·학술원 회원역임.국어학 연구·국어정책의 수립·국어운동 추진에 공헌.「우리말본」으로 20세기 전반의 문법연구를 집대성.한글전용을 주창해 각종 교과서에 한글 가로쓰기 체제를 확립했다. ▷백낙준◁ 1895∼1985.평북 정주출신.22년 미국 파크대졸.27년 연희전문교수.46∼60년 연세대총장을 역임한 것을 비롯,대한소년단총재·문교부장관·국사편찬위원·국토통일자문회의장·외솔회이사장과 학술원 명예회원 역임.교육자로서 후진 양성에 헌신하면서 한국기독교 발전을 위해 「한국개신교사」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유일한◁ 1895∼1971.평양출신.19년 미미시건대 졸업.26년 제약회사인 유한양행 창설.42년 미육군성고문.44년 로스앤젤레스·뉴욕한미상공회의소회장을 역임.해방 이후에는 대한상공회의소회장을 맡아 우리나라의 산업부흥에 기여했다.또 전재산을 털어 한국고등기술학교를 설립한데 이어 유한학원을 설립,기업이윤을 사회에 환원하는 본보기가 됐다. ▷윤보선◁ 1897.8.26∼1990.7.18.충남 아산출신.영국 에딘버러대 졸업.대한임시의정원 의원·대한적십자사 총재·제4대 대통령·신민당 총재.이승만대통령 시절 비서실장·서울시장과 상공장관을 지냈으며 「4·19」로 60년 대통령에 취임.그러나 1년만에 「5·16」에 성공한 박정희에 의해 하야당했다.3대국회 이후 야당에 몸담으며 반독재·반군정투쟁을 벌였다. ▷최규남◁ 1898.1.26∼1992.4.27.황해 개성출신.연희전문 수물과·미웨슬리안대·미시건대학원졸.서울대교수·서울대총장·문교부장관·민의원·학술원회원 등 역임.국내 물리학계의태두이자 교육행정가로 큰 업적을 남김.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미시건대학에서 물리학 박사학위 취득.서구의 신물리학을 국내에 도입,한국 물리학계의 초석을 다졌고 원자력발전과 과학기술교육의 기초를 다졌다. ▷우장춘◁ 1898.4.8∼1959.8.10.일본 도쿄태생.동경제대 농학과졸(1919).세계적인 육종학자로 채소종자의 육종합성에 성공하고 씨없는 수박을 개발하는 등 해방후 국내 농업발전에 기여.대학졸업후 일본 농림성 농사시험장에서 18년간 근무하면서 육종학연구.36년 종의 합성설로 동경제대에서 박사학위 취득.50년 정부 초청으로 귀국.농업연구소장·학술원회원 등을 역임했다. ▷장면◁ 1899.8.28∼1966.5.14.인천출신.미국 맨해튼 가톨릭대 졸.제헌의원·초대 주미대사·60년 부통령입후보 낙선·60년 4·19로 제2공화국 국무총리·60년 당시 민주당 신파의 영수로 이승만정권의 부정선거결과로 촉발된 「4·19」로 총리에 취임.그러나 구파출신 윤보선대통령과 권력암투를 벌인데다가 불안정한 정치로 5·16정권에 쫓겨났다. ▷김활란◁ 1899∼1970.인천출신.이화여전·미웨슬리언대학졸.25년 이화여전교수로 임용돼 해방직후부터 61년까지 이화여대총장을 역임.대학을 운영하면서도 한국여자기독교청년회 연합회재단이사장·공보처장·대한적십자사부총재 등을 역임하며 우리나라 개화기와 해방이후 신여성 교육에 헌신하고 기독교를 통한 사회운동에 일생을 바쳤다. ▷함석헌◁ 1901.3.13∼1989.2.4.평북 용천출신.동경고등사범졸.28∼38년 오산학교교사.74년 민주회복국민회의 대표위원.교육자·종교인·언론인등으로 활발하게 사회참여를 하며 성서와 노장철학을 바탕으로 비폭력 저항운동을 편 사상가.자유당 및 군사정권시대에는 반독재자유민권투쟁에 앞장.「뜻으로 본 한국역사」등 저서와 「씨알의 소리」등을 발간했고 민권운동에도 헌신했다. ▷한경직◁ 1902.12.29.평남 평원출신.숭실대·미국 프린스턴대졸.영락교회 목사·숭실대학장·기독교1백주년 기념사업협의회총재·대한예수교 잘로회 총회장 역임.종교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템플턴상 수상.한국 개신교 부흥에 불을 당긴 성직자.평생을 자신의 이름으로 된 집이나 저금통장 하나없이 청빈한 삶으로 일관하면서 세계적인 기독교 지도자로 활동해왔다. ▷이상백◁ 1904∼1966.서울출신.일본 와세다대학 사회철학과 졸업.서울 대학교 문과대교수(47).한국사회학회장(57).국제올림픽위원회(IOC)위원.서울신문사 체육공로상 수상.일제시대에 일본 농구협회를 창립하고 제11회 올림픽 때는 일본선수단 총무로 참가.광복직후 조선체육동지회를 결성해 대한체육회 발족에 디딤돌을 놓았으며 64년 대한올림픽 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64년 한국의 제2대 IOC위원으로 한국체육의 근대화를 이루었다. ▷유진산◁ 1905.10.18∼1974.4.28.충남금산 출신.보성고보졸.일본와세다대학 정경학부중퇴.만주에서 중경임정 연락원활동.46년 대한청년단 창립·자유당정권의 사사오입개헌파동뒤 민주당 창당에 참여.신파로 출발했으나 뒤에 구파로 변신,민주당 원내총무를 거쳐 분당뒤 신민당 간사장·대표위원을 지내는등 정통야당의 맥을 이었다.너무 타협적이라는 비판도 있었으나 현실을 감안한 정치력의 달인이었다는 평가가 높다. ▷이병철◁ 1910.2.12∼1987.11.19.경남 의령출신.중동 중학 4년 수료.일본 와세다 대학 정경과 2년 수료.38년 삼성상회 서립.삼성물산·제일제당·제일모직 설립.61년 한국경제인협회(전경련 전신)초대 회장.삼성그룹의 창업주로 해방 이후 궁핍했던 시절 소비재산업 중심으로 한국 경제를 일으킨 경제계의 선구자다. ▷이범석◁ 1900.10.20∼1972.5.11.서울 출신.운남육군강무학교기병과졸.만주 청산리전투사령관·한국광복군참모장·초대국무총리·주중국대사·원외자유당부당수·내무부장관·참의원·국민의당 최고위원.항일독립투사로서 해방이후에도 활발한 정치활동을 했다.초대 국무총리로서 국방부장관을 겸임하면서 건국과 건군에 큰공.52년에는 이승만대통령의 「러닝 메이트」로 부통령에 입후보하기도 했다. ▷윤석중◁ 1911.5.25∼.서울 출신.일본 상지대졸.새싹회 회장·난파기념사업회 이사장·한국문인협회 아동문학분과위원장·방송윤리위원회 회장·한국방송협회 회장 역임.예술원회원.일제하 소학교시절 일본말 노래가 싫어 우리말 동요에관심을 가진후 평생을 어린이 운동에 몸바친 아동문학가.「초생달」「굴렁쇠」「바람과 연」등 20여권의 동요·동시·동화집을 냈다. ▷성철스님◁ 1912.4.10∼1993.11.4.속명 이영주.경남 산청출신.진주중학 졸업.35년 지리산 대원사에서 수행.68년 해인사 초대방장,81년 조계종 종정 취임.수행의 깊이와 경전의 섭렵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지로 한국 불교계의 정신적 사표가 됨.16년간의 생식과 8년간의 눕지않는 수행자세,「중답게 산다」는 생활철학등으로 원효 이래 한국불교의 최대 거목이라고 칭송받고 있다. ▷김용기◁ 1912∼1988.경기도 양주출신.농촌계몽등을 통한 민족운동을 위해 40년 양주군에 봉안이상촌 건립.52년 광주군에 가나안 농장을 설립한데 이어 62년 가나안농군학교 설립.73년 강원도 원성군에 신림 가나안 농군학교설립,82년 가나안 농군사관학교설립 등을 통해 농촌의 젊은 일꾼을 양성하고 농촌발전에 큰 업적을 세웠다. ▷김동리◁ 1913.11.24∼.경북 경주출신.경신중 중퇴.청년문학가협회회장·예술원회장·한국문인협회 이사장·서라벌예술대학장·국정자문위원 역임.예술원회원.3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화랑의 후예」당선으로 등단.단편소설「무녀도」「바위」「황토기」「밀다원시대」「등신불」과 장편 「사반의 십자가」「을화」등 발표.신·인간·자연을 주제로 삼아 특유의 순수문학 세계를 가꾸어 온 한국문단의 대부(대부)이다. ▷김기창◁ 1914.2.18∼.호 운보·서울출신.1930년 승동보통학교 졸업 및 김은호 문하입문.31∼36년 선전 연입선.37∼40년 선전 연4회 특선.69년 국전 심사위원 부위원장.71년 3·1문화상.예술원 회원.근대 한국화의 추상화작업 선도,전통수묵산수를 뛰어 넘어 특유의 바보산수와 청록산수로 한국화의 새로운 미술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서정주◁ 1915.5.18∼.호 미당.전북 고창 출신.고창 고보 중퇴·중앙불교전문학교 명예졸업.동아일보 사회부장·문교부 예술과 초대과장·한국문학가협회 시분과위원장·동국대 부교수 역임.대한민국 예술원 회원.「귀촉도」「신라초」등 시집 14권,「서정주 문학전집」「서정주 시선집」등에 시8백수 수록.「동천」을 비롯,수많은 절창을 통해 민족어를 연마하고 민족심성을 계발한 한국 서정시의 대가이다. ▷정주영◁ 1915.11.25∼.강원도 통천 출신.송전소전학교 졸업.현대그룹 회장·명예회장·대한체육회장·전국경제인연합회장·명예회장·국회의원·국민당 대표.47년 맨손으로 출발,기발한 아이디어와 불도저같은 추진력으로 현대를 국내 최대의 기업군으로 키운 「현대신화」의 주역.92년 국민당을 창당,대통령선거에 나섰다 실패하고 그룹경영에서도 손을 뗐다. ▷장기영◁ 1916.5.2∼1977.4.11.서울출신.선린상고졸.한국은행 부총재·한국일보 사장·IOC위원·한국일보 회장·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남북조절위원회 위원장대리·국회의원.금융계 언론계 정계등 여러방면에서 활약,「불도저」로 불리기도 했다.54년 한국일보를 창간했으며 초창기 한국체육을 궤도에 올려 놓았다.경제기획원장관으로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워 고도 경제성장의 기반을 구축했다. ▷박정희◁ 1917.11.14∼1979.10.26.경북 구미 출신.대구사범·육사졸.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제5∼9대 대통령.61년 「5·16쿠데타」를 일으켜 제2공화국을 종식시키고 군사통치.64년 공화당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72년 10월 유신을 거쳐 79년 10·26으로 유명을 달리하기까지 18년동안 장기집권.몇차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한국경제의 기적」을 창출하고 자주국방의 기틀을 마련했다. ▷정일권◁ 1917.11.21∼1994.1.18.연해주 추풍출신.만주국 군관학교·일본 육사졸업.육군총참모장겸 육해공군 총사령관·육군대장·육군참모총장·국무총리·국회의장·해방직후 국방경비대 창설에 참여.경비대가 국군으로 개편된 뒤에는 군요직을 두루 역임했다.박정희대통령 시절 국무총리·국회의장으로 장기재직하면서 영향력을 발휘했으나 「얼굴마담」이라는 비난도 받았다. ▷김소희◁ 1917.12.1∼.본명 김순옥.전북고창출신.전남여고보 2년 수료.송만갑 정정렬 신호렬로부터 창악 가야금 서예 배움.한국국악협회 이사장 역임.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예능보유자.감성에만 치우치지 않는 품위있는 소리로 판소리의 격을 끌어올렸다고 평가받는 살아있는 최고의 명창.전통 국악의 맥을 오늘에 잇고 많은 해외공연으로 전통예술이 국제적으로평가받는데도 기여했다. ▷김승호◁ 1918.7.13∼1968.12.1.서울출신.보성고등보통학교졸.39년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로 영화배우 생활 시작.59년 서울시 문화상 수상.63년 제10회 아시아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시집가는 날」「박서방」「역마」「혈맥」등 2백50여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중년의 서민적 아버지상을 탁월하게 연기,한국영화 붐을 조성하는데 공헌했다. ▷장준하◁ 1918.8.27∼1975.8.17.평북 의주출신.44년 학도병으로 끌려갔다가 중국에서 탈영한뒤 광복군에 가담.45년 김구 비서로 귀국.53년 「사상계」창간.67년 국가원수모독죄로 투옥.제7대 국회의원에 옥중당선.독재정권에 대한 비판적 논조의 「사상계」가 폐간된 뒤 75년 등산중 의문의 실족사.62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막사이사이상(언론부문)을 받았다. ▷김수환◁ 1922.5.8∼.대구출신.일본 상지대 철학과·성신대학 신학부졸.51년 천주교 신부서품,69년 47세로 최연소 추기경에 서임.아시아주교회의 상임위원장·서강대 재단이사장 역임.천주교 서울대교구장·70년대 유신독재체제하에서는 민주화와 인권운동,80년대에는 인간성회복과 제도의 민주화를 외치면서 양심의 대변자 역할을 맡아 명동성당을 「한국민주화의 성지」로 만듦.천주교는 물론 한국사회의 정신적 지도자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조남철◁ 1923.11.30∼.전북 부안출신.국수 9연패·패왕 4연패·최고위 7연패등 50∼60년대 각종 기전 석권.83년 9단·37년 도일,바둑수업을 받은 뒤 43년 귀국해 걸음마단계의 현대바둑 보급에 힘쓴 한국바둑의 선구자.84년 일본 대창상,89년 은관문화훈장수상.현재 한국기원 명예이사장으로 후진을 양성하고 있다. ▷남덕우◁ 1924.10.10∼.경기 광주출신.국민대 정치학과.미국 오클라호마 주립대(경제학박사)졸.서강대 교수·재무장관·부총리겸 경제기획원 장관·국무총리·무역협회 회장.69년부터 10년간 경제각료로 일하며 부가가치세를 신설하는 등 경제개발정책의 기틀을 다짐.71년의 외환위기와 74년의 오일쇼크를 극복,연10%의 고도성장을 이룬 주역이다. ▷김대중◁ 1925.12.3∼.전남 신안출신.목포상고졸업.6선 의원.신민당 대통령후보.80년 내란혐의로 사형선고.87·92년 야당 대통령후보.아시아 태평양평화재단 이사장.70년대와 80년대 20년동안 낙선과 투옥을 거듭한 강력한 반정부운동 지도자.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으며 92년 대통령선거에서 패한뒤 정계를 은퇴.아태재단을 통해 평화·통일을 연구하며 「야당의 후견인」역할을 하고 있다. ▷김종필◁ 1926.1·7∼.충남 부여출신.육사 졸.초대 중앙정보부장·6대 국회의원·공화당 의장·국무총리·공화당 총재·민자당 대표최고위원.「5·16」의 막후 실력자로 중앙정보부및 공화당의 산파역할과 한·일 회담의 주역을 맡았다.박정희의 장기집권을 위한 3선개헌에 반대해 공직을 사퇴하고 외유에 나서면서 「자의반·타의반」이란 말을 남겼으며 반대세력에 밀려 실각도 했지만 결국 박정희의 18년 장기집권을 도왔다. ▷김준◁ 1926.4.25∼.전남 영광출신.49년 서울대농대졸.전남대 농대교수를 역임,62년 재건국민운동 경북지부장,64년 농협대교수 등을 맡으며 새마을 운동의 선구자로 활약.입법회의의원·새마을운동중앙본부회장·명예회장 등을 역임.건국이래 최대의 국민운동을 이끌며 「잘살아 보자」는 기치아래 피폐된 농촌 부흥과 사회발전에 기여했다. ▷박경리◁ 1926.10.28∼.경남 충무출신.진주고등여학교 졸.56년 현대문학에 단편 「흑흑백백」이 추천완료돼 등단.작품집 「불신시대」「환상의 시기」,장편 「시장과 전장」「김약국의 딸들」등.69년 「현대문학」에 연재하기 시작한 5부16권의 대하소설 「토지」를 26년만인 지난해 완결.치열한 작가정신으로 격동기 우리민족의 삶을 다양한 인물묘사와 섬세한 필치로 표현한 이 작품으로 한국문학사에 한 획을 그었다. ▷박태준◁ 1927.9.29∼.경남 양산 출신.일본 와세다대.육사졸.최고회의 비서실장.대한중석 사장.포항제철 사장·회장·명예회장.민정당 대표위원.민자당 최고위원.황량한 모래벌판이었던 포항에 세계 2위의 조강능력을 지닌 포항제철을 건설한 「포철 신화」의 주인공으로 「철의 사나이」로 불린다.민자당의 민정계 관리자로 정계에 나섰다가 실패,포철에서도 손을 뗐다. ▷김영삼◁ 1927.12.20∼.경남 거제출신.서울대 철학과 졸.3대 국회의원에 당선된뒤 9선·신민당 원내총무·신민당 총재·제14대 대통령.최연소·최다선 의원이며 최연소 제1야당 총재.93년 31년만의 문민 출신 대통령으로 취임.한때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와 정계에 파문을 일으켰고 84년 전두환대통령시절 4주일동안 민주화를 요구하며 단식투쟁.대통령취임후 특유의 결단력과 정면돌파로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전두환◁ 1931.1.18∼.경남 합천출신.육사졸.예비역 육군대장.국보위상임위원장.제12대 대통령.79년 국군 보안사령관으로 「12·12 사태」를 주도.박정희대통령 서거이후 공백상태이던 권력의 중심부를 장악.80년 「5·18」로 권력의 정상으로 등장한 뒤 그해말 대통령에 취임.재임 7년동안 엄격한 물가관리로 경제안정성장 주도.1인당 국민소득 2배이상 상승.평화적 정권교체 실현. ▷김운용◁ 1931.3.19∼.서울출신.미국 텍사스웨스턴대·연세대 정치외교과 졸.미국 메리빌대 법학박사.주미대사관 참사관(63),IOC부위원장·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세계태권도연맹 총재·국제경기연맹 총연합회 회장.국제 스포츠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세계 스포츠계의 제2인자.태권도를 2000년 시드니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도록 막후 조정해 한국 스포츠의 이미지를 세계 정상으로 끌어올렸다.현 사마란치 IOC 위원장의 유력한 후임후보로 꼽히고 있다. ▷노태우◁ 1932.12.4∼.대구출신.육사졸.예비역육군대장.제13대 대통령.「12·12」를 주도.권력핵심부에 진입.제5공화국 때 체육·내무부장관 역임.87년 「6·29선언」으로 민주화의 물줄기를 텄고 그해말 제13대 대통령으로 당선.88년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렀고 「북방외교」로 공산권국가들과 국교수립.지방자치제 일부 실현.90년 여소야대 국면에서 3당통합으로 안정기반 구축. ▷임권택◁ 1936.5.2∼.전남 장성출신.광주 숭일고 중퇴.61년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영화감독 데뷔.「만다라」「씨받이」「길소뜸」등 90여편 연출.89년 대한민국 문화훈장 보관장.93년 「서편제」로 제1회 상해국제영화제 최우수감독상.94년 「태백산맥」을 베를린 영화제 본선에 진출시킴.우리영화의 세계화와 한국영화 중흥에 크게 공헌했다. ▷김우중◁ 1936.12.19∼.서울출신.연세대졸.축구협회 회장·한국기원총재·대우그룹 회장·전경련 부회장.샐러리맨(한성실업)에서 연간 매출 35조원의 재벌 총수로 성장.기업인의 노벨상인 국제 기업인상(84년)수상.발로 뛰는 비즈니스로 아프리카등 수출 사각지대를 개척.기업 인수와 부실기업 재건의 명수로 알려져 있다. ▷김지하◁ 1941.2.4∼.전남 목포출신.서울대졸.64년 「서울대한일굴욕회담반대투쟁위원회」일원으로 학생운동에 참여.6·3사태 관련 첫구속자가 됨.이후 80년대 초반까지 정치적 억압과 사회적 질곡에 맞서 「오적」「타는 목마름으로」등 문제 시를 잇따라 발표하며 투사 시인으로 활동.최근엔 생명의 본질에 대한 통찰과 함께 생명왜곡 현상을 염려하며 「생명사상」에 몰두하고 있다. ▷이미자◁ 1941.10.30∼.서울출신.문성여고졸.67년 무궁화훈장 받음.대중가수로는 최초로 세종문화회관 공연.59년 데뷔이래 1천6백여곡을 부르고 이 가운데 4백여곡을 히트시켜 「엘레지의 여왕」으로불림.왜색시비에도 불구하고 60년대부터 30년 가까이 대중의 정서를 트로트 노래로 대변하며 한국 가요계를 대표해 왔다. ▷김수현◁ 1943.3.10∼.본명 김순옥.충북 청주출신.고려대 국문과졸.한국방송작가협회 이사장(87년∼).67년 라디오 드라마 「저 눈밭에 사슴이」로 데뷔한 이후 「새엄마」「사랑과 야망」「배반의 장미」「사랑이 뭐길래」「작별」등 수많은 TV드라마 집필.솔직담백한 표현과 인간심리를 꿰뚫는 듯한 대사처리로 안방극장을 휘어잡은 「언어의 마술사」이자 대중문화시대의 선두주자였다. ▷황영조◁ 1970.3.22∼.강원도 삼척출신.삼척 근덕중·강릉 명륜고·고려대.91유니버시아드(쉐필드).92바르셀로나 올림픽대회.94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마라톤 1위.한국 마라톤을 세계 정상으로 끌어올린 주인공.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씨의 우승 이후 56년만인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우리 국민들에게 큰 자긍심을 심어주고 마라톤 재건의 계기를 만들었다.
  • 지구촌 수놓을 95빅 이벤트

    ◎1월/세계무역기구 새출발 세계무역기구(WTO)의 닻이 올랐다.미국을 비롯,1백여개국이 참여해 1일 출범한 WTO는 지난 47년간 세계무역자유화를 이끌어온 관세무역일반협정(가트)으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음으로써 21세기 세계경제를 자유무역의 기치아래 더욱 철저하게 재편할 것으로 예상된다. WTO는 93년 12월 타결된 우르과이라운드협정을 통해 만들어진 무역관련 국제규범을 실제로 관장하는 기구이다.WTO가 가트와 다른 점은 가트가 강제집행력이 없는 국가간의 무역협정임에 반해 WTO는 법인격을 갖춘 독립적 국제기구로서 국제무역제판소의 기능을 갖추고 나라간 무역분쟁을 해결한다는 점이다. ◎1월/EU15국 체제로 확대 유럽연합(EU)의 땅이 또 커졌다.유럽자유무역지대(EFTA)에 속했던 핀란드·스웨덴·오스트리아 3국이 1월 1일자로 EU에 합류함으로써 EU는 과거 12개국 체제에서 15개국 체제로 확대개편됐다.이로써 EU는 북미자유무역지대를 제치고 명실상부하게 세계최대의 경제블록으로 자리잡았다. 새 회원국이 생김에 따라 EU의 영토는 약 3분의 1이늘어났으며 인구는 6.2%가 늘어 3억7천만명을 넘어섰다.역내총생산도 7%가 증가해 7천4백억달러에 이름으로써 미국보다 10%,일본보다는 64%가 각각 많아지게 됐다. ◎3월/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개관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개관 세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국제미술전인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한국전시관이 3월 하순 준공될 예정이다. 세계의 미술올림픽이라고 불리는 베네치아 비엔날레는 18 95년 당시 이탈리아국왕이던 움베르토 1세에 의해 창설되어 1백년 가까이 수많은 화가와 조각가들을 배출했다. 베네치아에 독립전시관을 갖고 있는 나라는 24개국밖에 되지 않으며 동양에서는 유일하게 일본만이 전시관을 갖고 있다.한국은 25번째 독립전시관을 갖게되고 아시아에서는 두번째이다. 미술관계자들은 한국관의 개관으로 유럽에 한국미술의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하고 우리 미술의 국제화를 50년이나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5월/APEC 대전테크노마트 개최 아·태경제협력체(APEC) 18개 회원국간의 기술거래를 위한 「제1차 APEC테크노 마트」가 5월22일부터 27일까지 대전 엑스포전시장에서 열린다. 회원국의 기업체와 연구소·컨설팅회사·대학·개인 등 1천여명이 참가해 기술설명회와 기술전시 및 상담을 하는 이른바 「기술거래시장」이다.참가업체는 국내 1백개,국외 1백개이고 상담 참가업체는 국내 2백개,국외 2백50개다. APEC 테크노 마트는 아·태지역의 기술협력차원에서 지난해 11월 시애틀 APEC 각료회의에서 우리 정부가 제안해 성사된 지역협력사업이다.현재 통상산업부 주관 아래 관련기관들이 준비하고 있다. ◎8월/일 패전50돌 평화축제 일본은 패전이라는 말보다는 종전이라는 표현을 선호한다.그 종전 50주년을 맞아 일본정부는 과거 침략사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과거청산작업」을 서두르고 있다.대표적인 청산작업으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는 종군위안부문제,사할린동포귀환문제,대만 주민등에 대한 확정채무의 변제등을 들 수 있으며 1천억엔규모의 각종 평화우호교류계획도 추진되고 있다. 일본은 침략전쟁기간의 잔학한 행위보다는 원자탄 피해국이라는 점을 크게 부각시키기 위해 원자탄 폭격을 받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다양한 행사를 열고 「평화이미지」 심기에 열을 올릴 계획이다. ◎3월/러 국립미술관 재개관 러시아 최대 국립미술관인 트레챠코프 미술관이 10년간에 걸친 대대적인 수리를 마치고 올해 3월쯤 다시 문을 연다.모스크바 시내의 유서깊은 라브루신스키 거리에 위치한 이 미술관은 제정 러시아때부터 볼셰비키혁명 이후 러시아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회화·조각·데생·러시아 정교회 성상조각 등 모두 6만여점의 작품을 소장,러시아문화계의 최대 명소로 등장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여름/바그너축제 120년 결산 올해도 바이로이트에서는 1백여년 전통의 「바그너 음악제」가 여름 한달간 펼쳐진다. 19세기 독일 최고의 가극 작곡가 바그너는 말년의 대작 「니벨룽겐의 반지」를 상연하려고 18 76년 바이로이트에다 자신만의 오페라극장을 세웠다.「니벨룽겐…」이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에서 초연된지 1백20여년,이 작은 도시는 이제 매년 열리는 「바그너 음악제」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바그너가 죽은뒤 그의 아내·아들·며느리가 차례로 운영을 맡아 맥을 이어온 음악제는 1,2차대전으로 인한 몇년간을 제외하고 지난 1백20년간 한해도 빠짐없이 문을 열어왔다. ◎8월/U대회 후쿠오카 개막 올해 스포츠계의 국제 종합규모 대회는 올림픽,아시안게임이 모두 휴식기에 들어가 오는 8월23일부터 9월3일까지 일본 후쿠오카에서 열릴 「대학생들의 제전」 하계 유니버시아드대회가 유일하다. 이번이 19회째인 유니버시아드는 1백30개국,6천여명의 선수단이 참가하게 돼 역대 사상 최대 규모가 될 전망이다. 한국은 전종목에 걸쳐 지난 93년 미국 버펄로대회의 1백41명보다 60여명이 늘어난 2백여명이 출전할 예정이며 종합 10위권 진입을 목표로 삼고 있다. ◎10월/유엔 50주년 축하행사 인류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창설된 유엔의 50주년 기념행사는 업적 치하와 회고 뿐만 아니라 21세기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맞게될 다음 반세기의 준비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유엔헌장 정식 발효 50주년이 되는 올 10월24일을 전후해 3년가까이 계속되는 기념행사는 「유엔50주년 기념사업위」(사무총장 길리안 소렌슨 유엔사무차장)가 총괄,사무국 자체프로그램과 산하기구별 프로그램,각종 문화행사등으로 나뉘어 지구촌 한마당 잔치로 펼쳐진다. 이들 모든 행사는 특히 기념사업위 총괄국장인 한국인 구삼열씨(53)에 의해 기획,진행되고 있어 더욱 뜻깊다. ◎4월/NPT 연장 논의 지난 70년 발효된 핵확산금지체제를 평가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의 연장 여부를 결정하는 국제회의가 4월17일부터 5월12일까지 미국 뉴욕에서 열린다.이번 회의에서는 어떤 형식으로든 NPT조약의 연장이 결정될 전망이다. 그러나 연장의 방법에 대해서는 NPT에 가입한 1백69개국의 입장이 각각 다르다.NPT 체제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선진국들과 러시아 등 동구국가들은 NPT조약이 국제평화와 안전유지에 기여해온 점을 감안,무조건 무기한 연장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이에 반해 이집트와 나이지리아,멕시코 등과 같은 비동맹 국가들은 이 조약이 핵 보유국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불평등·차별적조약이라는 점을 들어 시정과 보완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현 체제의 존속에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9월/여성대회 북경서 올해는 유엔이 19 75년을 「세계여성의 해」로 제정하고 평등·발전·평화를 주제로 멕시코시티에서 첫 세계여성대회를 개최한이래 20년이 되는 해이다.유엔은 이를 기념하여 9월4일부터 15일까지 중국 북경에서 1백84개 유엔 회원국 대표들이 참여하는 제4차 세계여성대회를 열고 유엔 여성사업 20년을 평가하는 한편 남녀의 균형적 역할과 관계정립을 골자로 2천년대의 여성지위 향상을 위한 행동강령을 채택키로 했다. 이번 북경 세계여성대회는 유엔 회원국과 유엔기구의 정부간 대표 및 비정부기구(NGO)대표에 이르기까지 2만∼3만명의 각국 대표들이 참가,80년 코펜하겐과 85년 나이로비에서 가졌던 제2·3차 대회때보다 훨씬 규모가 큰 국제행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따라서 우리 정부에서도 정무제2장관실이 주관부서가 되어 한국여성단체협의회 등 60여 여성단체로 구성된 한국NGO와 함께 자카르타와 뉴욕 등에서 열리는 세계여성대회 준비회의에 참석,각국의 관련정보를 수집하는 동시에 한국여성들의 현황을 정리한 자료집 발간을 서두르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11월/APEC 오사카회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APEC) 지도자 및 각료회의가 11월 일본 오사카에서 개최된다.지난해 인도네시아의 보고르에서 정상들이 합의한 무역자유화의 대명제를 구체화하는 것이 18개 APEC 참가 국가들이 안고있는 가장 큰 과제이다.주요 쟁점은 ▲무역자유화의 대상을 공산품·농산품·서비스를 포함한 모든 부문으로 할 것인가,아니면 특정분야에 따라 어느정도 예외를 부여할 것인가 ▲무역자유화의 정도를 관세철폐로 할 것인가,또는 일정수준으로 관세를 인하하는 방향으로 추진할 것인가,또 인하한다면 어느 정도까지 할 것인가 등이다.
  • 멕시코 경제 “NAFTA 몸살”/“부러움속 출발” 1년후의 모습

    ◎대미적자 눈덩이… 페소화 급락/물가상승… 인플레 불안도 고조/잇단 정치적 암살사건 겹쳐 나라 “흔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출범한 94년은 멕시코로서는 약속과 번영의 한해로 여겨졌다.이 나라는 세계 최대의 자유무역협정을 운영하는 관계로 전세계 투자가들의 부러움을 받는 처지에 있었다. 그러나 북미자유무역협정 출범 1년을 맞는 멕시코는 엄청난 정치 및 경제적 변동으로 얼룩졌다.인디언의 반란,일련의 암살사태,마약 및 페소화의 하락 등의 사태를 겪었다.그런가하면 외국투자가들은 수백만 달러를 잃었다.또 멕시코 증시는 44%나 하락했다. 고위인사에 대한 일련의 암살사건은 이 나라를 흔들어 놓았다.지난 3월에는 여당 대통령 후보에 이어 9월에는 사무총장이 살해됐다.마약거래자들은 미국과 멕시코의 사법당국자를 비웃기라도 하듯 멕시코 북서부를 배회했다.이처럼 올해는 불확실성 속에서 출발해 불확실성 속에서 끝났다. 전임 카를로스 살리나스 데 고르타리 대통령은 지난달 1일 멕시코는 시장경제이행계획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자평했다.물론 NAFTA는 수백개의 국영기업을 민영화하고 인플레율을 한자리 숫자로 만들어버린 살리나스 전대통령의 주요업적 가운데 하나였다.그는 그간 멕시코가 많이 변했다고 전제한 뒤 인플레·만성적자·실업률 증가 같은 현상은 이제 더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다시 일어나고 있다.치아파스주의 인디언 반란에 뒤이어 나타난 페소화의 하락은 다시 임금상승 및 인플레의 우려를 일으켰다.소설가 겸 사회평론가인 오메로 아리드히스씨는 멕시코의 번영이라는 이미지가 잔혹한 현실하에서 사라져버렸다고 말했다. 2주전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린 미주정상회담에서 라틴 아메리카 지도자들과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오는 2005년을 서반구의 무역장벽을 철거하는 해로 결정한 바있다.NAFTA는 이 계획의 주춧돌이다.이 무역협정은 미국·캐나다 및 멕시코를 연결하는 자유무역지대를 창설했다.그 규모는 3억6천만 소비자와 연간 6조달러의 생산물 산출이다. 확실히 NAFTA는 약속의 조짐은 보였다.올해 첫 6개월간 미국의 대멕시코 수출은 지난해 수준보다 16% 늘어나 2백45억달러에 이르렀다.또 멕시코의 전체수입은 21%늘어 2백34억달러에 달했다. 그러나 수출이 수입과 발을 맞추지 못해 무역적자폭은 커져갔다.이는 멕시코가 버는 돈보다 쓰는 돈이 많다는 사실을 의미한다.이 결과로 나타난 현상이 페소화의 약세였다. NAFTA 지지자들은 이 조약의 장기목표가 단기간의 위기로 가려져서는 안된다고 역설한다.관세가 15년간에 걸쳐 없어지기 때문에 적극적인 이익은 점차적으로 느껴볼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다.주멕시코 미국대사관의 대니얼 돌란 경제참사관은 『멕시코는 가망성 있는 곳』이라고 전제한 뒤 『미국은 멕시코의 후퇴를 방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국제통화기금 관계자들은 29일 멕시코에서 경제안정화 방안에 관해 논의했다.세디요 대통령은 내년도 경제성장률을 4%,인플레율을 4%로 각각 내다본 바있다.그러나 이런 전망은 페소화의 하락으로 바뀌어야할 전망이다. 수백만의 가난한 멕시코인들은 이 자유무역협정의 영향이나 혜택을 받지못하고 있다.아무도 NAFTA의 발효로 미국이나 멕시코 양쪽에 얼마나 많은 직업이 창출됐는지를 모른다.멕시코 정부는 실업률이 20년만의 최저치인 6.9%까지 떨어졌다고 말한다.그러나 이는 불완전 고용과 미국 내의 멕시코 불법노동자 3백만을 감안하지 않은 숫자다.
  • “김정일 권력승계 못할 가능성”/성균관대 이명영교수 특별기고

    ◎계엄통치 장기화는 군력암투 증거/일부서 정치국 집단지도체제 요구/당중앙위·최고인민 회의도 못열려 북한은 지금 계엄통치아래 있으며 내부 권력투쟁이 치열한 나머지 김정일의 국가주석및 당총서기 승계가 지연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칫 승계자체가 이뤄지지 못할 가능성도 엿보인다는 분석이 나왔다.이는 북한문제 권위자인 성균관대 명예교수 이명영박사(정치학)가 28일 서울신문에 보낸 특별기고의 내용이다.이박사는 이 기고에서 지난 23일 평양에서 열린 「김정일 군최고사령관 추대3돌 중앙보고대회」에서 군총참모장 최광이 밝힌 「전투동원태세」가 바로 계엄상태를 뜻하는 것이며 김정일은 계엄하의 군최고사령관으로 지난달 9일 평상시 같았으면 공식명령권이 없었을 정무원에 건설공사의 자재조달을 맡기는 명령을 내렸다고 풀이했다.이박사는 이어 지난 10일전후에 열려 김정일을 최고권력자로 공식선출했어야 할 북한의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와 최고인민회의가 열리지 못한 사실등을 김정일유일지도체제를 요구하는 김정일파와 정치국의 집단지도체제를 바라는 반금정일파의 권력암투가 극에 달해있는 증거로 제시했다.이박사의 기고내용은 다음과 같다. 김일성이 죽은지 다섯달이 넘었다.일당독재의 전체주의국가에서 당과 국가의 최고책임자가 궐석이라는 사태는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그래서 관측자들은 늦어도 예년의 경우대로 12월에 있을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와 최고인민회의에서는 모종의 결론이 날 것으로 보고 있었다.그러나 괴이하게도 올해같은 중요한 때에 전원회의도 최고인민회의도 열리지 않았다.최고책임자 자리는 빈 채로인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북한에서는 서정백반을 지휘 조정하는 권한은 어떤 형식으로 누구에게 주어져 있는 것일까.북한의 보도기관들은 「당과 인민의 지도자」는 「김정일동지」라고 쉴새없이 광고하고 있기는 하다.그러나 당의 대외발송 문건은 당중앙위원회 명의로 되어 있고 외국 사절의 접견은 부주석이 맡고 있으며 정부의 대외발송 문건은 중앙인민위원회 명의로 되어 있다.통치권 담당의 주체가 잘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 애매 모호한 평양정국을 투시하는데 중요한 길잡이로 되는 것이 실은 지난 11월9일자로 발표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정일」의 「명령 제51호」였다.청류다리 2단계와 금릉 2동굴 건설을 당 창건 50돌이 되는 내년 10월10일까지 마치라는 내용인데 그 명령속에 정무원에 대한 지시가 포함되어 있었다.건설공사는 인민무력부에서 담당하되 거기에 필요한 설비와 자재는 정무원에서 책임지라는 것이었다. 북한 헌법에 보면 각종 건설업무는 정무원 소관사항으로 되어 있다.정무원은 주석과 중앙인민위원회의 지도를 받게 되어 있다.그런데 주석도 중앙인민위원회도 아닌 군 최고사령관이 정무원에 명령을 내리고 있다.국가 질서를 문란케 하는 월권도 이만저만이 아니다.이것이 불법월권이 아니라면 북한은 일종의 계엄통치하에 있는 것이다.계엄통치라면 군 최고사령관에게 명령권이 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절접견 부주석이… 김 신병설 유포 갈등 은폐 이 계엄통치하에 있다는 이 분석을 뒷받침해주는 확실한 증거가 지난 23일에 열린 「김정일 군 최고사령관추대 3돌 중앙보고대회」에서 나타났다.정무원 총리,부주석 등 당과 정부와 군의 고위간부들이 참석한 이 자리에서 군 총참모장 최광이 기념보고를 했는데 김정일에 대한 충성과 더불어 「전투동원태세」의 견지를 역설했던 것이다.즉 북한이 「전투동원태세」속에 있으며 그것을 더욱 견지해야 한다고 최광은 말한 것이다. 전투동원태세란 무엇인가.우리 말로 한다면 계엄의 한 종류인 것이다.어느 나라에나 비상사태에 대비하는 장치가 있다.북한은 그것을 여섯단계로 나누어 놓고 있다.가장 경미한 「경계태세」에서부터 「전투경계태세」.「전투동원준비태세」,「전투동원태세」,「준전시상태」,「전시상태」까지가 그것이다.앞의 두가지는 인민무력부에서 발령하지만 뒤의 4가지는 군 최고사령관이 발령하는 것이다. 이들 비상사태는 공개적으로 발령되기도 하고 비공개로 하기도 한다.북한이 김일성의 사망을 비상사태로 보고 대처했을 것은 남한에서 박정희대통령의 사망을 비상사태로 보고 계엄을 선포했던 것과 견주어보면 쉬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지금 북한에서 실시되고 있는 전투동원태세에서는 당 중앙위원회나 정무원이나 인민부력부가 모두 그 업무체제를 최고사령관 중심으로 전환시키고 있는 태세이다.그래서 김정일은 최고사령관 명의로 정무원에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북한이 김일성의 사망으로 돌입한 전투동원태세는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대개의 경우 최고통치자의 유고로 실시되는 비상사태는 늦어도 후계자가 결정되면 해체되게 마련이다.지금 북한을 둘러싼 군사적 위험은 없다.후계자만 결정되면 비상사태도 필요없다.그런데 그 후계자는 김정일로 20년전부터 결정되어 있고 금상첨화로 비상사태로 권력이 그에게로 집중되어 있다.빨리 전원회의와 최고인민회의를 열고 선출절차만 밟으면 된다. 그런데 왜 그것을 못하고 있는가.지난 11월27일자 서울신문을 통해 지적했듯이 당 정치국 안팎에서 김정일의 유일지도체제이냐,당 정치국 집단지도체제이냐를 놓고 당론이 일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당론 불일치의 원인은 김일성이 생전에 김정일의 정치국상무위원 자리를 박탈한 데 있었다.물론 일부 관측통은 김정일의 신병 때문에 선출이 늦어진다고들 보고 있지만 비상사태에서 정권을 잡고 있을 정도라면 신병은 신병이로되 결정적인 원인은 아닐 것으로도 보인다. 북한으로서는 내부 갈등으로 김정일이 최고통치자의 자리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노출시키고 싶지 않을 것이다.그래서 신병설을 유포시키고 있을지도 모른다.과거에 그가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됐다고 허위 정보를 유포시켰을 때를 생각한다면 저간의 사정에 통찰력이 생길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정말로 신병이 문제라면 과거에도 최고의 의료를 받았을 터이므로 이제는 그의 시대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징조이다.
  • 멕시코 물가 폭등/페소화 하락 영향… 이번주 60%

    【멕시코시 AP AFP 연합】 멕시코의 페소화 시세가 23일 외환시장에서 연 4일째 떨어졌으며 이같은 하락으로 일부 소비재 가격이 금주에 60%나 상승했다. 페소화의 대 달러 시세는 계속되는 투기와 투매로 22일 전일보다 16% 떨어진 달러당 4.60 페소였으나 23일에는 소폭 하락하는데 그쳐 4.70페소로 거래됐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소폭 하락이 정상으로 다소 돌아가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멕시코 금융시장을 뒤덮은 불안이 완화되어 가고 있는 징조라고 말했다. 멕시코는 올해 1월1일의 북미자유무역협정 발효후 유망한 새 투자대상으로 부상했으나 금년초 동남부의 치아파스주에서 발생한 반란사건,계속되는 정치적 암살사건및 페소화가 과대평과됐다는 생각 등이 투자자들에게 악영향을 미쳐 12월 한달동안에만 약 60억달러의 자본이 해외로 도피된 것으로 전문가들이 추정했다. 금주의 금융시장 위기는 이같은 이유외에도 지난 20일 정부가 페소화의 환율 변동폭을 확대한다고 발표,페소화가 15% 평가절화됨으로써 촉발됐다. 이밖에 22일 정부는 페소화의대달러 환율 변동폭을 60일간 자유화하는 비상계획을 발표했으며 이때문에 페소화의 평가가 30% 더 떨어졌다.
  • 멕시코정부군·경찰/농민반란 거점 점령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카사스 AP 연합 특약】 수백명의 멕시코 경찰과 군병력이 20일 원주민 농민소요의 거점인 남부 치아파스주 시모조벨을 점령했다. 멕시코 정부군은 이날 경무장한 18대의 장갑차를 앞세워 시모조벨로 통하는 주도로를 따라 진입했으며 농민반란군들은 정부군의 공격을 피해 인근 산악지대로 숨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 미 유선TV/만화영화 인기 급상승

    ◎카툰네트워크 시청률 5위 기록/뉴스전문 CNN 처음으로 추월 최근 폭발적 인기를 모으고 있는 미국 유선방송 만화채널인 카툰네트워크가 드디어 뉴스전문 방송인 CNN보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시청자들이 골치아픈 뉴스보다 재미있는 만화를 좋아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지난 3·4분기에 집계된 미국의 50개 유선방송채널의 가입자 순위에 따르면 카툰네트워크가 5위를 차지,개국 2년만에 처음으로 7위를 기록한 CNN을 앞질렀다.이 두회사는 같은 방송재벌 터너브로드캐스팅사의 소유로 최근 CNN의 인기하락과 카툰네트워크의 인기상승으로 순위가 뒤바뀐 것이다.카툰네트워크는 그밖에도 연예오락채널인 A&E,스포츠종합채널인 ESPN 등도 따라잡았으며 상위의 TBS,NICK,USA,TNT 등 4개채널을 따라잡는 것도 시간문제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지난달 창립 2주년을 맞은 카툰네트워크는 주7일 하루24시간씩의 완전한 만화방송 운영이 가능하겠느냐는 우려를 깨고 올들어서만 거의 두배의 신장세를 기록,현재 1천1백60만 가입자를 확보하고 있으며 전체 텔레비전수상기의 2.8% 셰어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만화채널은 다른 채널에 비해 경비가 적게 들면서도 흑자 전환이 빨라 유선방송 채널 가운데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되고 있다.카툰네트워크는 보통 1억달러 이상이 드는 다른 채널과는 달리 터너사측은 2천만달러의 투자로 시작했으며 흑자로 돌아선 시점도 사상 유례가 없는 18개월만이었다. 카툰네트워크가 급성장 할 수 있었던 것은 인기있는 오락채널인 NICK채널 출신의 38세 맹렬 여성사장 베티 코헨의 뛰어난 창의력 덕분임을 아무도 부인하지 않는다.1988년 터너사로 옮겨 종합오락방송인 TNT 채널의 창설에 관여한 그녀는 세계에서 상영된 모든 만화영화를 사모으기 시작했다. 터너사는 1940년대 초창기 만화영화부터 시작,닥치는대로 사모았고 그후에 창립된 카툰네트워크가 오늘날 보유하고 있는 8천5백편의 만화영화는 급성장의 비결이 됐다. 그러나 만화영화의 성장에도 몇가지 장애가 놓여 있다.가장 큰 장애는 광고주 문제.시청자의 3분의 1이 18세 이상의 어른들인데도 성인대상 광고의 수주는 어렵다는 것이다.
  • 보스니아/「대세르비아」 인정 시사/크로아 주재대사

    ◎영토·소수족 지위 보장 전제로 【자그레브 로이터 연합】 보스니아 회교도 정부는 보스니아내 세르비아계와 세르비아 주도의 유고슬라비아간 연방관계를 일정조건이 충족될 경우 수용할 것을 고려할 것이라고 카심 트른카 크로아티아 주재 보스니아 대사가 11일 말했다. 이같은 언급은 양자간의 어떠한 공식연결도 거부한다는 이르판 류비안키치 보스니아 외무장관의 분명한 다짐과는 상반되는 것이다. 트른카 대사는 크로아티아 일간지인 네젤리나 달마치아와의 회견에서 보스니아정부는 중요한 조건들이 실현된다면 지난 92년 소수인종인 세르비아계의 반대를 무릅쓰고 떨어져 나왔던 유고에 대해 세르비아계가 연방형태의 관계를 맺을 경우 이의 승인을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만일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현 유고)가 보스니아의 국경과 영토를 인정하고 그들이 보스니아내 세르비아계에 대해 요구하는 것과 동일하게 그들내의 비세르비아계 소수민족에게 민족공동체를 보장하는 등 일체의 법적 지위 문제를 해결한다면』 이를 승인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 「정부 개편안」 신경전/행경위(의정초점)

    ◎“심의 충분히”… 야,우보전술/“15일 공포” 여선 조속 처리 강조 9일 국회 행정경제위에서는 서로 다른 3건의 정부조직개편안이 상정돼 여야의원들사이에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졌다.「작고 효율적인 정부」의 기치아래 정부가 제출한 법안과 민주당이 지난해 2월과 이달초에 제출한 것들이다. 민자당은 개정안을 오는 15일 처리한다는 목표아래 속공전략으로 나왔고 민주당은 「충분한 심의」를 내세워 지연전을 폈다.민자당의원들은 회의진행을 서두르려고 했지만 김덕규위원장을 비롯한 민주당의원들의 「우보」전술에는 속수무책으로 애만 태웠다. 민주당의원들의 지연작전은 공청회요구로부터 시작됐다.먼저 유준상·채영석의원등이 정부의 개편안에 대해 『졸속,즉흥적,밀실적』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따라서 『국회 심의과정에서나마 국민의 의사를 수렴하고 전문가의 견해를 들어 졸속입법을 막아야 한다』고 공청회를 요구했다.민주당이 공청회를 들고 나온데는 다른 「속셈」이 있었다.「공청회를 열때는 청문회의 개최기준을 준용한다」는 국회법제64조의 규정에 따라 5일전에 이를 공고해야 하므로 적어도 그 만큼의 시간동안 민자당의 발목을 잡겠다는 것이다. 이어 정부조직개편에 대한 민주당안을 놓고 민주당의원들은 김덕규위원장의 적극적인 지원속에 「시간끌기」작전을 구사했다.이때문에 이날 상오10시에 열린 회의는 하오4시가 넘어서야 민주당의 첫 법안을 상정할 수 있었다.민자당의 조용직·차화준의원등이 나머지 두 안건을 일괄상정하자고 재촉했지만 민주당의원들은 특위를 구성해 논의하자고 맞서 또다시 논란이 벌어졌다.결국 민주당의 두번째 안건과 정부안은 저녁무렵이 되어서야 겨우 상정됐다. 여야의 실랑이가 지루하게 이어지자 조용직의원은 『혁명으로까지 불리는 행정개편안을 국회가 끌어안고 주저앉아 있을 이유가 없다』면서 『민주당이 공청회 요구등으로 지연전술을 펴고 있는 것을 국민들은 알 것』이라고 경고했다.민자당의 이승윤의원은 『시간을 끌면 끌수록 손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민주당의원들은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하고 싶은 얘기를 「마음껏」하면서 좀처럼본격적인 토론에는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채영석의원은 『공보처가 언론자유를 상당부분 침해,「폐지 0순위」가 되어야 하는데 이번에 개편되지 않는 이유가 뭐냐』고 묻기도 했다. 민주당의원들은 지난 2일 새해예산안을 민자당이 단독처리한뒤 이를 호도하기 위한 「카드」가 바로 정부조직개편안이라고 몰아붙였다.이에 대해 민자당의 이승윤의원은 『정치가라서 그런 주장도 할 수도 있겠지만 정부의 뜻을 순수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민주당의 유준상의원은 『개편안을 이번 정기국회 회기안에 꼭 처리해야 할 절박한 이유가 뭐냐』고 묻고 내년 1월초 임시국회를 열어 처리할 것을 주장했다. 황영하 총무처장관은 『이번 개편안이 완전무결하지는 않지만 현단계에서 가장 중요하며 시의적절하다는 판단에서 이뤄졌다』고 말하고 『앞으로 나머지 필요한 사안에 대해서도 꾸준히 개편작업을 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 멕시코 치아파스주 유혈폭동 우려

    【멕시코시티·툭스틀라 구티에레스 AFP 로이터 연합】 지난 1월 대규모 폭력사태를 일으켰던 멕시코 남부 치아파스주의 사파티스타 농민반군은 7일 지난 8월 선거에서 당선된 집권당의 에두아르도 로브레도가 주지사에 취임하는데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8일로 예정된 그의 취임을 무력으로 막겠다고 경고함으로써 폭력사태 재발이 우려되고 있다. 1천5백여명의 치아파스주 농민들은 툭스틀라 구티에레스의 대광장에서 7일상오 사파티스타 농민반군을 지지하고 정부를 비난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와함께 반군지도자인 「수브코만단테」 마르코스는 기자회견을 통해 로브레도가 취임하면 지난 1월말 합의한 휴전협정을 깨고 즉각 군사행동에 들어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 유아용품 미거버사/한국시장 선출

    세계 최대의 유아식 및 유아용품 업체인 미국 거버사가 국내 시장에 진출했다. 거버사는 2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한국거버 유아용품 주식회사를 설립하고 『각종 수유용품을 들여와 국내 백화점과 편의점 등에 직접 공급키로 했다』고 밝혔다. 치아 발육기,노리개 젖꼭지,턱받이,장난감을 비롯해 식기류,기저귀,내의 등을 판매할 예정이라 국내 업체들과의 경쟁이 불가피해졌다.
  • 베니스 전통문화 상품(유럽문화산업 현장:하)

    ◎유리세공 1천년동안 세계 제일/무라노섬 전체가 수공업형태 유리세공공장/가면 3백년전과 같은방법으로 수백종 제작/스테인드글라스·모자이크세공 유럽 각국 궁전·성당 장식 인구 20여만명의 베니스시에는 해마다 3백60여만명의 외국인 관광객들이 몰려든다.하루 평균 1만여명의 관광객들이 이 도시로 들어오는 셈인데 한사람이 3일만 묵어도 연인원은 연간 1천만명이 넘게된다.작은 도시규모에 비해 엄청나개 많은 관광객들을 끌어 들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연간 관광객이 3백만명을 조금넘는 것과 비교하면 베니스가 얼마나 대단한 관광도시인가를 알 수 있다. 관광도시 베니스의 명성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서기 4백50년에 건설된 베니스는 1천5백년동안 한번도 전쟁이나 약탈 혹은 화재로 문화재가 손상되지 않고 원형대로 남아 있는 행운의 도시다.베니스의 상인들은 무역으로 돈을 벌어 아름다운 교회와 궁전을 짓고 티치아노 벨리니 틴토레토 지오네등의 거장들을 동원해서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해 도시 전체를 미술관으로 만들었다.그 결과 베니스는 13세기에 이미 호텔을 전담하는 특수 경찰이 존재할 만큼 관광 선진도시가 됐다. 그렇다고 베니스가 과거의 건축물과 미술품 만으로 관광객을 유혹하는 것은 아니다.관광객을 불러 들이기 위해 베니스 시당국은 다채로운 문화행사를 기획하여 개최하고 있다.부활절축제와 사육제·곤돌라대회·베니스 비엔날레와 영화제등이 그 대표적인 행사다.7월에는 심지어 흑사병의 종식을 기념하는 축제까지 열린다. 축제 때에는 매일 10만여명의 인파가 몰려들어 나폴레옹이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이라고 감탄한 산 마르코 광장을 가득 메운다. 그 인파의 대부분은 산 마르코 광장의 비둘기와 광장주변의 미술관을 둘러 보고 유명한 베니스 운하와 곤돌라의 낭만을 즐기고 돌아 가지만 눈이 밝은 관광객들은 오래된 운하 주변과 인근 섬들에서 숙련된 장인들이 만들어 내는 전통적인 문화상품들을 찾는다. 스테인드 글라스와 유리세공,베네치안 블라인드,모자이크 세공,도금,가면,벨벳,레이스등이 관광도시 베니스를 더욱 빛나게 하는 보석같은 상품들이다.그중에서도 유리세공과 스테인드 글라스는 중세이후부터 1천년 동안 세계제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산 마르코광장에서 수상버스를 타고 20여분쯤 달리면 유리세공으로 유명한 무라노섬이 나온다.섬 전체가 유리세공 공장인 무라노섬을 찾았을 때 장인들은 11월의 차가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짧은 반팔 셔츠를 입고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그들은 뜨거운 용광로가 있는 건물에서 유리를 불에 녹여 입으로 부는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무라노섬의 유리세공은 전통적인 수공업 형태로 이루어 지고 있다. 건물 2층으로 올라 가자 이 공장에서 만든 작품을 진열한 대형 전시실이 있었다.찬란하게 채색된 유리잔에 햇볕이 들자 신비한 광채를 낸다.작은 유리 병과 컵 6개가 2백∼3백달러를 호가한다. 『우리가 만든 샹들리에가 영국과 러시아·프랑스·스페인황실에 걸려 있습니다.유럽 각국의 궁전치고 이곳에서 만든 거울이 걸리지 않은곳은 없을 겁니다』 그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베니스 당국은 무라노섬 장인들의 긍지를 인정하여 독자적인 의회를 구성하는 것을 허용해주고 화폐주조권까지 주었다. 무라노섬장인들은 유리세공기술을 외부인에게 누설할 경우 사형에 처할 만큼 제조기술을 비밀리에 전수해왔다.그러나 17세기에는 이 기술이 나폴리로 전해지고 보헤미아까지 건너가서 유럽 전체로 퍼져가게 되었다.베니스의 유리제품도 워낙은 아라비아의 대상들이 중국에서 꽃 병을 가져온 것을 베니스 사람들이 모방해서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공장을 떠날 때 안내원은 기자에게 한국의 대우 힐튼호텔이 이곳에서 1개에 1만달러짜리 대형 샹들리에를 여러개 사갔다고 귀띔해 주었다. 유리세공보다 한단계복잡한 공정을 거치는 것이 모자이크 세공이다. 18 88년에 설립된 안젤로 오르소니사에는 이회사에서 제작한 6천여개의 모자이크 판들이 보관되어있다.오르소니사의 모자이크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과 방콕 왕실사원의 황금탑과 파리근교 라데팡스의 거대한 분수를 장식하는 데도 사용되었다. 또한 베니스에서 도금과 칠기제작의 명장으로 꼽히는 자니 카발리에르의 작업장에는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프랑스 전대통령 부인 안­에이몬 지스카르 데스탱이 보내 편지가 자랑스럽게 전시돼 있다.그가 가면에 도금을 해 준데 대해 감사하는 편지다. 49년째 도금 작업을 해 왔다는 자니 카발리에르는 액자를 도금하는 일부터 시작해서 나선형의 조명 스탠드,꼼꼼한 미술품 복원,목상제작에 이르기까지 뛰어난 솜씨를 지닌 것으로 이름이 높다. 베니스의 상점에는 3백여가지가 넘는 가면들이 상품으로 전시돼 있다.이 가면들은 아를레키노(고대 로마의 희극이나 현대판토마임의 어릿광대)와 판탈로네(이탈리아 가면극의 어리석고 빼빼 마른 노인)에서 부터 고양이 피노키오 악어 꽃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베니스의 장인들은 가죽으로 본을 떠서 3백년전과 같은 방법으로 만든 베니스판지로 가면을 제작한다.베니스 가면은 80년대에 베니스 카니발과 연극,베니스 비엔날레와 영화제덕분에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밖에 레이스와 벨벳등 전기 동력 기계를 사용하지않고 만들어진 전통적인 수공예품들이 장인의 숨결과 영혼을 전하면서 문화 상품으로 자리잡고 있는 모습은 참으로 부러웠다.문화산업이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백년에 걸친 장인들의 땀과 정성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그러한 문화상품이 있기에 관광도시 베니스의 명성이 시들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었다.
  • 일 기업들/대미투자 실패 적자누적 “몸살”

    ◎「컬럼비아」 인수 소니 27억$ 손실/할리우드 드림 파탄… 재매각 소문/미쓰비시등도 혼쭐… 경영마찰·부동산값 하락이 원인 거품경제가 한창 전성기를 달리던 80년대말 미국의 부동산과 기업을 닥치는대로 사들였던 일본기업들이 엄청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89년 미 할리우드의 컬럼비아영화사를 50억달러에 매입,일본기업의 미국에 대한 투자에 앞장섰던 소니사는 17일 금년들어 9월말까지 32억달러의 영업손실을 냈다고 발표했다. 소니는 이처럼 엄청난 손실을 낸 원인이 컬럼비아사의 흥행실패와 부실경영에 있다면서 컬럼비아사의 자산가치를 일시에 27억달러 상각한다고 밝혔다.불과 5년사이에 27억달러를 앉아서 손해본 꼴이다.황금알을 낳을 것으로 기대했던 할리우드의 스튜디오는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돈을 퍼부어야 할지 짐작하기도 어려운 상황에 몰렸다. 컬럼비아사에 대한 소니의 자산가치 평가절하가 발표되자 뉴욕주식시장에서는소니의 주식예탁증서 가격이 크게 떨어졌고 신용평가회사인 스탠더드&푸어사는 소니가 발행한 70억달러어치의 채권에 대한 신용등급의 인하를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소니측은 부인하고 있으나 컬럼비아사를 매각처분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그러나 컬럼비아사를 팔려고 내놓더라도 헐값이 아니고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을 것이 분명한 만큼 본전 생각과 회사위신 때문에라도 매각은 어려운 형편이다. 그렇다고 경영회복이 난망한 상황에서 언제까지 컬럼비아사를 끌어안고 있어야 할지 소니로서는 여간 골치아픈 문제가 아닌 것이다. 미국투자의 실패로 혼쭐이 난 일본기업들은 소니 뿐만이 아니다.맨해턴 중심가에 있는 록펠러센터를 사들였던 미쓰비시사는 계속되는 적자로 인해 이번 주 초 빌딩 매입 융자금 상환의무 불이행 위기에 처해 있다고 밝혔다. 유니버설영화사의 소유사인 미 MCA사를 매입했던 마쓰시다사는 수주일전 미국인 중역진이 자율적 경영권을 보장하지 않으면 회사를 떠나겠다고 위협하고 나서는 바람에 이들의 요구를 수용하거나 회사를 매각해야 할 판이다. 지난 90년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고급 페블비치 골프장을 8억4천1백만달러에사들였던 일본 부동산업체 미노루 이스타니그룹은 2년만에 절반에도 훨씬 못미치는 값에 되팔았다. 이밖에도 다이세건설이 미국에서 1억달러를 손해봤는가 하면 도비시마건설도 미서부의 부동산을 40건 넘게 팔아치웠고 앞으로 더 매각할 계획이다. 그렇다고 일본기업들의 해외기업 합병붐이 줄어들고 있는 것은 아니다.9월까지 해외합병 건수는 1백19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나 늘었다. 대신 문어발식 합병보다는 특정 사업분야를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고 있다. 혼다나 도요타자동차의 미국 현지공장이 이에 속한다.바야흐로 해외합병의 전환기에 들어선 것이다.
  • 베니스 비엔날레/베니스 영화제(유럽 문화산업 현장:중)

    ◎관광진층·경제활성화 동시 추구/현대미술·영화흐름 주도… 세계적인 축제로/권위에 안주 않고 끊임없는 개혁정신 발휘/비엔날레 한국관 기공계기,기업의 현지 투자 요청 베니스 비엔날레의 한국관 기공식이 열렸던 지난 8일 이민섭 문화체육부장관은 베니스시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한국은 5천년의 역사를 가진 문화국이며 중국이나 일본과 다른 독자적인 문화가 있으나 이를 세계에 선전하지 못해왔다.이런 기회를 베니스 시민들이 갖게 해주어 감사한다』 이에 대해 베니스의 시장인 마치모 카치아리씨는 『한국이 상설 전시관만 지을 것이 아니라 공단에 기업이 투자하고 현지인을 고용하며 많은 관광객을 보내 경제활동을 활발하게 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 대화는 베니스 비엔날레의 세계적 권위와 그 권위를 단순한 문화행사 차원에 국한시키지 않고 관광진흥과 경제활성화에까지 연결시키는 이탈리아의 적극적인 문화정책을 동시에 보여주는 상징적인 것이었다. 베니스 비엔날레와 베니스 영화제는 세계의 수많은 미술제전과 영화제중에서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한다.베니스 비엔날레에 독일관이 개관했을 때에는 히틀러가 참석했으며 일본관이 개관할 때는 국왕이 참석,개관 테이프를 끊었다. 1895년 이탈리아왕국과 베니스시는 베니스의 귀중한 문화유산을 전세계에 과시하고 미래에도 예술을 주도하기 위해 베니스 비엔날레를 창설했다.그해는 국왕인 움베르토1세와 사보이왕가의 마그리타왕비의 결혼 25주년 기념식이 있는 해였다. 베니스는 당시 세계최고의 예술도시로 프랑스·스페인·이탈리아·영국·미국등의 젊은 화가들이 그림을 배우기 위해 유학을 오던 곳이었다. 제1회 대회는 주로 라틴국가들의 화가 4백71명이 참가했으며 그후 1백년동안 베니스 비엔날레는 현대 미술의 흐름을 주도해 왔다. 2년에 한번씩 6월에 시작되는 베니스 비엔날레는 세계 각국의 화가·조각가·건축가·평론가·저널리스트·화상등 1만여명의 전문가들이 참석하는 세계의 미술 올림픽.미술인이라면 누구나 이곳에 자신의 작품이 전시되기를 꿈꾼다. 그러나 실제로는 자르디니 공원에 상설전시관을가진 24개국,주로 선진유럽국가들의 국제잔치로 치러져 왔다.따라서 이곳에 상설전시관,즉 국가관을 갖지 못한 나라들은 이탈리아관의 한쪽을 비좁게 빌려 쓰면서 국가관을 마련하기 위해 치열한 국제 로비전을 펼쳐 왔다. 선진국의 문화패권주의가 날카롭게 대결하는 이곳의 한정된 공간에서 마지막 국가관을 지을 수 있는 부지를 확보하고 건물 기공식을 올린 우리 정부는 「문민정부 최대의 문화외교 성과」로 이를 자부하고 있다.한국관이 들어서는 부지는 지난 20여년동안 중국과 아르헨티나 등이 상설전시관을 짓기 위해 탐내왔던 곳이다. 베니스 비엔날레의 권위는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미술관이자 박물관인 베니스의 미술전통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니다.귀족적 권위에 안주하지 않는 끊임없는 개혁의 정신이 베니스 비엔날레의 명성을 지켜왔다. 이탈리아의 전위미술가였던 필리포 마리네티는 베니스를 20세기 미술운동의 하나인 미래파의 발상지로 만들었고 그의 미래파선언은 베니스 비엔날레에 전위적인 성격을 가미했다.그는 19 07년 『박물관과미술관은 수백년 전에 죽은 화가와 조각가들의 공동묘지이기 때문에 때려 부셔야 한다.운하의 물길을 터서 박물관과 미술관을 물에 잠기게 하라.오!영광에 가득찼던 캔버스들이 물위에 떠내려 가며 색이 바래고 갈갈이 찢겨지는 것을 본다면 얼마나 즐겁겠는가』라는 미래파 선언을 했다.그는 더 나아가 『엔진의 뚜껑을 커다란 파이프로 장식한 경주용 자동차가 「사모트라체의 승리」라는 낡은 그림보다 아름답다』고까지 말했다. 1968년에는 학생들의 데모로 베니스 비엔날레의 수상제도가 바뀌기도 했다.베니스대학 학생들이 베니스 비엔날레의 그랑프리 제도가 상업주의에 이용된다며 데모를 벌여 대상제도가 사라지고 「올해의 화가상」과 가장 훌륭한 작품을 출품한 국가관에 주는 상이 새로 만들어졌다. 한편 베니스영화제는 세계 최초의 국제영화제로 19 32년 만들어 졌다.당시의 통치자 무솔리니는 이탈리아의 첨단과학기술을 과시하기 위해 영화제를 창설했다.독재자의 광기와 과욕이 이탈리아의 영화 산업발전에 큰 기여를 하게 되고 독재자가 역사의 인물로 사라진 뒤에도 전세계 영화인들의 최고 영예가 되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겠다.칸영화제가 생긴 것은 이보다 7년 뒤인 39년이며 베를린영화제는 50년에야 창설됐다. 베니스 영화제는 32년 제1회대회때부터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감독상 작품상을 수상하고 34년에는 국내영화·국제영화 두분야로 나누고 36년에는 최고상인 무솔리니배가 추가되고 47년부터는 베니스의 수호신인 날개 달린 황금사자상이 주어진다. 38년도 베니스 영화제의 무솔리니배는 36년 베를린 올림픽의 기록영화를 만든 독일의 여류감독 레니 레펜슈탈에게 돌아가고 51년도에는 영화 후진국인 일본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라생문」으로 작품상을 받아 세계를 놀라게 했다. 구로사와의 부친은 일본 육사를 나와 평생동안 학교의 체육선생을 지낸 사람으로 구로사와는 그의 영향을 받아 일본 사무라이의 비정한 생활을 영화한 것이 일본문화 수출의 첨병이 되었다.일본의 영화산업은 베니스영화제의 수상을 계기로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87년에는 우리나라의 강수연양이 「씨받이」라는 영화로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여우 주연상을 받았다. 베니스 영화제는 해마다 여름철에 리알토섬(베니스의 주요 섬)의 남쪽 방파제 구실을 하는 리도섬에서 열린다.리도 섬에는 11㎞에 이르는 아름다운 해변과 경마장 골프코스 비행장 축구경기장 등이 있는 곳으로 영화제가 시작되면 세계적인 축제가 벌어진다. 이기주 주이탈리아대사는 『우리나라의 상품을 팔기 위해서라도 우리 문화를 선전하고 알리는 기회가 많아져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일본의 상품은 비싼 것이라도 이탈리아 사람들이 신뢰를 하면서 물건을 사는데 비해 한국 상품은 1만달러가 넘는 것은 보증서가 있는가,잘못되었을때 환불을 받을 수 있는가를 질문받게 된다』고 밝혔다.이대사는 상품을 팔기 위해서라도 한국을 알리는 대규모 문화 행사가 선행되어야 한다며 문화행사와 관광진흥을 적극적으로 연결시키고 있는 베니스에서 배울 점이 많다고 말했다.
  • 동티모르인 이틀째 과격시위/인니군 87명 체포

    ◎시드니선 인니영사관 난입시도 【딜리 AP 연합 특약】 독립을 요구하는 동티모르 주민들의 시위가 이틀째 계속된 14일 인도네시아군은 시위주민 87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그러나 목격자들은 최소한 1백50명 이상이 체포됐다고 주장했다. 목격자들은 딜리시의 주요 공공기관 건물을 보안군들이 지키고 서있으며 딜리시내 거리에 13일 살해된 것으로 보이는 동티모르인의 시체 한구가 유혈이 낭자한 모습으로 그대로 방치돼 있다고 전했다. 딜리시의 상점들과 사무실,학교들은 문을 닫은 상태이며 경찰은 5백여명의 대학생들이 독립요구 시위를 벌이고 있는 대학을 포위,외부인들과의 연결을 차단하고 있다. 경찰은 이와 함께 동티모르 주민들의 정신적 지도자로 인도네시아 정부를 강력비판해온 카를로스 벨로 주교의 집도 포위하고 있다. 【시드니 AP 연합 특약】 50여명의 동티모르인들이 14일 시드니의 인도네시아 총영사관 앞에서 동티모르의 독립을 요구하며 총영사관에 난입하려다 이를 저지하는 경찰과 충돌을 빚었다. 이들은 경찰의 저지를 받자 곧 옆문 쪽으로 이동,철책을 넘어 총영사관 지붕위로 올랐으나 곧바로 경찰에 의해 끌어내려졌다.이 과정에서 체포된 사람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13일에도 일단의 동티모르인들이 멜버른의 인도네시아 총영사관에 난입하려다 6명이 체포되는 사건이 있었다. ◎동티모르 유혈사태 안팎/APEC총회 쟁점 부각/인니합병에 18년간 저항… 국제적 이목 집중/독립운동 탄압 받아… 희생자 15만명선 추정 수하르토 인도네시아 대통령에게 있어 동티모르는 항상 골치아픈 존재였다.선진국으로의 약진을 꿈꾸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총회를 유치한 이번에도 동티모르 문제는 미대사관 난입·점거 사건(12일)과 딜리에서의 유혈시위(13일)를 통해 셰계의 이목을 끌면서 APEC 총회의 본의제인 자유무역 구현 문제에 버금가는 관심거리로 부각됐다. 그러나 동티모르 소요사태는 이미 오래전부터 예고된 사건이었다.인도네시아의 「킬링 필드」라고 불릴 만큼 인도네시아의 대표적인 인권유린 사례였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비롯해 러시아·중국 등국제사회는 인구 1억9천만명을 가진 동남아의 강대국이자 자원부국인 인도네시아의 위상을 고려,동티모르 문제에 애써 눈을 돌렸었다. 이번 총회를 수개월 앞두고도 동티모르에서의 인권탄압을 중단하고 동티모르 지하독립운동가들과 대화를 가져야 한다는 촉구가 많이 있었으나 수하르토 대통령은 끝내 이를 거부했고 미국을 포함해 다른 아태지역 지도자들 역시 이번 회의의 의장국이자 비동맹운동의 지도국인 인도네시아의 입장을 고려,동티모르 문제를 외면했었다. 동티모르 문제의 핵심은 4백여년에 걸친 포르투갈의 식민통치로 주민들 대부분이 가톨릭 교도인 동티모르 주민들이 이슬람국가인 인도네시아의 통치를 받을 수 없다며 독립을 요구하고 있는 것.동티모르의 비극은 동티모르를 식민통치하던 포르투갈이 지난 74년 마카오를 제외한 모든 해외식민지를 포기한다고 선언하면서부터 시작됐다. 포르투갈의 식민통치 종식선언은 군사쿠데타로 좌파정부가 들어선데 따른 것.하지만 갑작스런 식민통치 포기는 동티모르에 즉각적 완전독립을 요구한 좌파성향의 프레틸린,인도네시아와 합병을 주장한 아포테리아,독립전까지 포르투갈과 연합을 주장한 UDT 등 3개의 정파가 생겨나게 했다. 이들 3당중 가장 많은 지지를 확보한 것은 프레틸린.정국을 주도한 프레틸린은 포르투갈 관리들의 철수가 끝난 75년11월 동티모르민주공화국의 선포를 선언했다.그러나 당시 수하르토 대통령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바로 군대를 보내 무력침공을 감행했다. 인도네시아군의 동티모르 주둔으로 76년 동티모르에는 수하르토 대통령이 조종하는 괴뢰정권이 탄생했고 수하르토는 이 괴뢰정권의 인도네시아와의 통합 요청을 받아들여 동티모르를 인도네시아의 27번째 주로 합병해 버렸다. 이후 프레틸린 민병대에 대한 인도네시정부군의 소탕작전이 본격화하고 이에 대한 동티모르주민들의 저항이 끊이지 않음으로써 91년11월12일 2백명 이상의 희생자를 낸 이른바 「딜리 학살사건」 등 많은 인권탄압 사례를 기록하게 됐다.세계 인권단체들 추계에 따르면 동티모르에서 희생된 사람들은 대략 10만∼20만명 선. 살아남은 프레틸린 민병대 2천여명은 대부분 산악지대로 흩어져 지금도 게릴라식 투쟁을 계속하고 있으나 역부족 상태이다.
  • 중국 여성의 튼튼한 하체(최두삼 귀국리포트:12)

    ◎자전거 타기로 단련… 30㎞쯤 “거뜬”/쭉뻗은 「롱다리」가 대부분… 빈약한 상체와 대조 북경에서 근무한지 얼마되지않아 3명의 30대 중국여인을 한꺼번에 초대해서 저녁식사를 대접한 적이 있었다.식당은 북경시 서쪽에 자리잡은 한국식당이었고,이들은 모두 여기에서 15㎞나 멀리 떨어진 서부 대학가에 살고 있었기에 귀가할때는 집에까지 승용차로 데려다줄 생각이었다.식사가 끝나고 이같은 의향을 그들에게 얘기하자 여기까지 타고온 자전거를 놔두고 갈수는 없지 않느냐며 아쉽다는듯 모두가 그들이 타고온 자전거에 오른후 유유히 사라졌다. 놀란 것은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왕복 30㎞나 되는 머나먼 길을 아무렇지도 않게 자전거로 다닌다는 사실이었다.요즘의 한국여성들에겐 꿈도 꿀수없는 일이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여성들도 자전거 타기가 생활화 되어있다.「자전거의 나라」여서인지 여름철 장마비가 내릴때도 모두들 특별히 고안된 자전거용 우의를 걸친채 페달을 밟고 눈보라치는 한겨울에도 자전거 출퇴근에는 변함이 없다.특이한 점은 자전거에도 자동차 마냥 모두 등록번호판이 달려있고 잠시라도 자전거를 세워두려면 가는 곳마다 주차(거)비를 받는다는 점을 들수있다.또 여름철이면 여인들이 미니스커트를 입은채 그대로 자전거를 타는가하면 긴 치마를 입었을때는 치마가 발에 걸려선지 대부분 치마자락 맨끝을 양손으로 잡아올린채 핸들을 잡고 있어서 속옷이 훤히 들여다 보이지만 신경쓰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그래서 한 중국인에게 『저렇게 자전거를 타도 되는거냐』고 묻자 무슨 뜻인지 잘 알아듣지 못한듯『글쎄 무슨 문제가 있겠어요.시원해서 좋을텐데…』하는 것이었다. 어쨌든 이같은 자전거타기의 생활화 때문에 한가지 분명한 것은 중국여인들의 하체가 튼튼하다는 사실이었다. 하체가 튼튼할뿐아니라 대부분 여성들의 다리가 곧게 쭉쭉 뻗어 있었다.요즘 젊은 여인들중에는 서양여인같은 키다리들이 많은데다 이들의 두다리가 착 달라붙어 있어서 백인들도 호텔 식당등에서 치마 양쪽이 거의 허리부분까지 찢어올라간 이른바 치파오차림을 넋을 잃고 쳐다보는 일이 많다. 북경에서 식당을 경영하는 한 조선족부인은 중국에서는 여자애를 낳을 경우 3개월쯤후부터 약 1년동안 아이의 두다리를 길다란 천으로 둘둘 감아서 잠을 재운다고 전했다.그래서 중국 여인들은 두 다리가 착 달라붙고 곧지만 한국애들은 업어서 키우기 때문인지 차렷자세를 해도 두다리 사이가 벌어진다는 것이다. 중국 여인들이 하체가 건강하고 아름다운건 사실이지만 상체의 경우는 비교적 빈약한 편인 것 같다.우선 젖가슴의 경우 대체로 한국 여인들보다 작으며 거의 밋밋해보이는 여인들도 많다. 왜 이렇게 가슴이 작은지 궁금해 조선족 동포에게 그 연유를 물어봤으나 잘 모르는듯 『애를 하나만 낳도록해서 그렇지 않겠어요』하고 반문했다.그러나 중국사정에 정통한 한 한국업체의 북경지사장 견해는 달랐다.그는 『중국에서는 아직도 성생활이 보수적이어서 그곳이 성생활의 대상으로 인식되는 일이 많지 않은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여인들은 얼굴도 비교적 예쁜 편이라할수 있지만 치아의 경우만은 어디에다 내놓고 자랑할만한 정도가 못된다.서양여인들이대부분 희고 고운 이를 자랑하는데 반해 중국여인들은 치아가 고르지 못하고 불규칙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여기에다 약 20년전에 무슨 병을 예방한다며 정부가 전국 어린이들에게 일률적으로 약을 나눠줘 먹인게 부작용이 심해서 아직도 시커멓게 썩은 듯한 이를 지닌 사람들이 많다. 어쨌든 중국 여인들은 요즘 시장경제 도입과 더불어 크게 달라지고 있다.그들의 의식이 개방되고 남자를 보는 눈도 과거 혁명성 유무에서 이제는 경제력을 중시하기 시작했다.그래서 일부에서는 중국여인들이 결혼 상대로 꼽는 우선 순위는 첫째가 미군(미국인),둘째가 황군(일본인),셋째가 국부군(대만),넷째가 외국군(중국진출 외자기업인),그리고 마지막 다섯째가 공산군(중국공산당원)이라는 농담을 주고 받기까지 한다.물론 이같은 성향은 극히 일부 여성들에게서나 있을수 있는 일이고 대부분의 여성들에겐 아직도 외국인이란 단지 호기심의 대상일 뿐이다.
  • “유익한 세번째 만남” 한비정상 환담(김대통령 순방여로)

    ◎서울서 마닐라까지/비의 6·25참전 한국발전 큰 기여/김 대통령/한·비 평화와 자유위해 함께 가자/라모스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정상회의 참석및 아·태지역 3개국 공식방문길에 오른 김영삼 대통령은 10일 하오 첫 방문지인 필리핀의 마닐라에 도착,말라카냥궁에서 열린 공식환영식과 환영만찬에 참석했다. ▷만찬◁ ○…피델 라모스대통령 주최로 이날 저녁 말라카냥궁에서 열린 공식만찬은 부대행사를 포함,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3시간동안 진행. 이날 저녁 말라카냥궁에 도착한 김대통령 내외는 라모스 대통령내외와 기념촬영을 한 뒤 참석인사들을 접견한 데 이어 라모스 대통령으로부터 필리핀 최고훈장인 라자(RAJA)훈장을 수여받고 서로 선물을 교환. 김대통령은 청자와 칠보세트를,라모스 대통령은 필리핀 고유의 식탁보와 내프킨세트,차탁자를 선물로 전달. 라모스 대통령은 만찬사에서 『두나라는 자유를 위해 싸운 2차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을 통해 가까워지기 시작했다』면서 『앞으로도 평화와 자유를 위해 함께 나가자』고 인사. 김대통령은 답사에서 『한국이 북한의 침략으로 위기에 처했을 때 청년장교로 참전하신 라모스 대통령과 7천여 필리핀 장병들이 흘린 피와 땀은 오늘 한국의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다』고 감사를 표시. 김대통령은 이어 필리핀 민속공연을 관람. ▷정상환담및 접견◁ ○…김대통령 내외와 라모스대통령 내외는 이날 마닐라의 말라카냥궁 주회의실에서 경제협력문제등을 화제로 환담. 라모스대통령은 자리를 잡자 『지난해 5월 방한 때 극진한 환대를 받은 것이 기억난다』고 인사를 건넸고 김대통령은 『각하가 취임한 뒤 특히 인상적인 것은 필리핀의 정치가 안정되고 부정부패가 척결되고 있으며 「필리핀 2000」 계획이 착실하게 진행되고 있는 점』이라고 화답. 라모스대통령은 『필리핀은 이제 확실한 발전의 길로 접어들고 있으며 한국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도움을 요청. 이에 김대통령은 『한국과 필리핀은 상호 협력을 통해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원을 약속. 김대통령이 이어 『사람은 세번째 만남이 아주 유익하다는 말이 있는데 이번이 세번째』라고 말하자 라모스대통령 부인은 『지난해 5월 세번째로 한국을 방문하니 아주 유익하고 인상깊었다』고 동감을 표시하는등 화기애애한 분위기. ○…라모스대통령과 환담을 마친 김대통령은 숙소인 마닐라호텔에서 안가라 상원의장과 베네치아 하원의장등 상·하 양원 간부들을 잇따라 접견하고 환담. 김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투쟁연합」 당수인 안가라 상원의장등 상원간부들의 예방을 받고 『한국에서의 야당생활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고 회고하고 『어디서나 독재체제 아래서 야당하기는 어렵지만 현재의 필리핀은 절대 그런 상황이 아닌 것으로 안다』면서 필리핀 정치발전을 평가. ▷마닐라공항도착◁ ○…김대통령내외는 서울출발 3시간50분만인 이날 하오 1시20분 마닐라 국제공항에 도착,2박3일간의 필리핀 공식방문 일정에 돌입. 김대통령은 이어 교민 화동으로부터 꽃다발을 증정받은뒤 환영나온 교민 1백여명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격려하고 숙소인 마닐라호텔로 직행. ▷특별기 기내◁ ○…이에 앞서 김대통령은 이날 상오서울공항을 출발한지 45분쯤 지나 특별기 기내를 한바퀴 돌며 공식수행원,비공식수행원,수행기자단,승무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격려. 김대통령은 기내를 돌다 수행중인 기업인들을 만나자 『수고하겠다』고 인사를 했고 기업인들은 『기업을 도와주어 고맙다』고 답례. 김대통령은 기내순회를 마치고 조종실로 들어가 김상록 기장에게 『지금 어디쯤 비행하고 있는가』라고 물었고 김기장은 항공지도와 전자계기판을 보여주며 『제주도상공을 지나고 있다』고 답변. 김대통령은 조종석내의 첨단장치에 관심을 표시하면서 김기장등 조종사들에게도 『수고한다』고 말했고 김기장은 『기상이 전반적으로 좋은 상태』라고 설명. ▷출국환송식◁ ○…김대통령은 이날 상오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환송식에서 『국가이익을 위해서라면 지구의 끝까지 달려가겠다는 각오로 이번 방문에 임하고 있다』고 출국인사. 김대통령은 그러나 당초 인사문에 있던 『오늘의 국제사회에선 적도 없고 친구도 없고 오직 경쟁자만이 있을 뿐』이라는 대목은 삭제. 옥내에서 치러진 환송행사에는 황낙주 국회의장,윤관 대법원장등 3부요인 내외와 김종필 민자당대표 내외를 비롯한 행정 사법 입법부 정당및 주한외교단 주요인사 60여명이 참석했으며 민주당에선 신기하 원내총무와 김병오 정책위의장이 환송.
  • 이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기공

    ◎아시아선 일이어 두번째…내년 4월 준공/동양문화의 정수표현… 베니스 명물될 듯 베니스 비엔날레의 한국관 기공식이 8일 하오 5시30분(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니스 자르디니공원에서 열렸다. 한국의 현대미술사에 한 획을 긋는 이 자리에는 이민섭 문화체육부장관과 이기주 주이탈리아대사,도미니코 훼시첼라 이탈리아 문화성장관,마시모 카치아리 베니스시장,한국관설계자 김석철씨등이 참석해 기공식 테이프를 끊고 첫삽을 떴다. 이장관은 이어 올리베티전시장에 마련된 한국관의 설계도와 조감도건립모형을 돌아보고 『한국관의 개괄적인 형태와 예술적 의미를 이탈리아를 포함한 국제미술계에 홍보할 것』을 관계관들에게 지시했다. 이민섭 장관은 이보다 앞서 베니스 시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베니스의 한국관이 양국간의 문화교류와 변함없는 우호 증진의 상징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관의 건축양식은 기존의 24개 선진국 전시관들이 서양건축 일변도의 고전적인 건축임에 비해 동양문화의 정수를 표현한 순수한 현대건축이어서 전시관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관광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 기존의 전시관들이 비엔날레 전시기간 이외에는 거의 활용을 하지못하고 있으나 한국관은 냉난방시설과 3개의 상설 전시실을 갖추고 있어 연중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설계자 김석철씨는 『현대 건축의 특징은 민주적 공간이기 때문에 한국관의 전시공간에 되도록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열린 공간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파리의 퐁피두센터처럼 한국관이 베니스의 명물이 되도록 설계에 심혈을 기울였다는 것. 베니스 비엔날레는 1895년 제1회 개최이후 내년이면 1백년이 되는 역사와 전통을 가진 권위있는 국제전람회로 지난 1백년간의 현대미술의 흐름을 주도해온 최초의 국제미술전이다. 한국관은 내년 4월 준공될 예정이다.한국관의 건립으로 내년 베니스 비엔날레에는 한국작가들이 셋방살이 신세에서 벗어나 당당히 세계 선진국화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그동안 한국은 이탈리아 전시관의 일부를 빌려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가해 왔다.베니스 비엔날레에 국가관을 운영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대부분이며 아시아에서는 일본만 이 대열에 끼어 있었다. ◎기공식 참석 이민섭 장관/“한국의 예술혼 세계에 알릴 전당될것/남북한 참여 통일조국의 전시장 기대”(인터뷰) 『내년도 베니스 비엔날레의 주제는 「동과 서의 만남입니다.한국관의 특징은 동양과 서양의 정신과 현재와 미래를 상징하는 독특한 건물이어서 내년 행사의 중심관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이민섭문화체육부장관은 9일 상오(한국시간) 베니스시청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장관은 이어 『마시모 카치아리 베니스시장은 한국관준공을 계기로 한국의 기업들이 베니스에 투자를 해서 유럽시장을 목표로 한 상품을 생산하기를 권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관은 2층으로 된 배 모양으로 바다를 향해 진수하는 모습이다. 이장관은 한국관의 공간이 베니스를 찾는 연 3백여만명의 관광객들에게 국력을 홍보할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에 2년뒤에는 남북문화교류에 따라 북한의 작품도 전시될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앞으로는 남북한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통일조국의 미술전시장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장관은 마지막으로 『한국관에 전시될 우리의 예술작품들은 이곳을 통해서 유럽대륙은 물론 남·북아메리카와 아시아까지 우리의 혼과 예술을 전해줄 것』이라며 『더욱이 내년 「미술의 해」를 맞아 우리미술의 수준을 한단계 앞당기는 계기가 되기를 빈다』 고 말했다.
  • 김 대통령 「개혁고삐」 다시 죈다/「한일은행장 사퇴」를 반추해보면

    ◎내사 오래전부터… 잇단 사고로 실행못해/비리온상 건설부조리에 메스 집중 예상 김영삼 대통령이 다시 시작하고 있다.취임초기 신한국의 창조를 위해 내걸었던 개혁과 변화의 불씨를 되살리고 있다.중단 없는 개혁의 약속을 지키려는 것이다. 잇따른 대형사고와 정쟁으로 무뎌졌던 개혁의 날을 다시 갈고 있음이 여러군데서 발견되고 있다. 윤순정한일은행장의 돌연한 사퇴는 취임초기 대통령이 추구했던 깨끗한 한국을 위한 사정이 재개되고 있음을 시사한다.청와대에서 사정기획을 맡고 있는 김무성 사정1비서관은 『윤행장의 사퇴와 같은 흐름이 폭넓게 진행될 것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그러나 문제 있는 사람은 견디지 못할 것』이라고 예고하고 있다.그 뜻을 되새겨 볼만한 이야기다. 김비서관보다 더 높은 한 고위관계자는 『훨씬 오래전에 시작된 내사작업들이 성수대교 붕괴사고등으로 실천에 옮겨지지 못하다가 이제사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했다.이 관계자는 『어떤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부정부패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통치철학을 실천하는 것』이라면서 부정부패의 총체적 집합체인 건설부조리에 집중적으로 메스가 가해질 것으로 내다봤다.건설관련 업무가 많은 건설부나 서울시등이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고 봐도 좋다는 이야기다. 김대통령은 공식·비공식 자리에서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을 쉽게 잊어버린다고 개탄해왔다.자신이 이룩한 개혁성과들이 엄청남에도 국민들이 이미 이를 잊어버렸다는 아쉬움이다.김대통령은 자신이 이룩한 개혁성과를 퇴임후까지 가져가기 위해서는 임기동안 개혁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 길밖에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김대통령은 최근들어 특히 말을 아끼고 있다.무서운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되살리기 위한 작업이다.성수대교 붕괴사고후 한때 거듭됐던 공식행사까지의 비보도 원칙은 사라졌다.그러나 여전히 많은 행사들이 기자단에게 공개되지 않는다.참모들은 대통령의 권위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김대통령정부는 출범이후 국정전반에 걸친 개혁바람을 통해 많은 부분에서 성취를 이루었다.그러나 금융실명제와 같은 충격을 동반하는 개혁수단들이 소진되면서 기득권세력의 저항이 고개를 들었고,상황은 청와대의 생각과는 달리 움직이는 형편이다. 새로이 시작되는 개혁은 일부에서 「깜짝 쇼」나 「법치아닌 인치」로 비판받았던 초기의 양태와는 다르게 진행될 것이다.취임초기에 범했던 잘못은 솔직이 인정하고 이를 개선한다는게 청와대 참모들의 생각이다. 때문에 김대통령의 새로운 시작은 제도와 상식선에서,엄격히 법을 적용하는 개혁이 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여론의 힘을 빌린 초기의 혁명적 방식의 개혁과는 구별된다. 개혁과 반개혁,신여권과 구여권의 편가르기도 지양될 것이다.소수에 불과한 개혁세력이나 신여권만으로는 나라 전체를 움직이기 어렵다는 반성이 있었기때문이다.이같은 반성은 「6공화국」 핵심인물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최병렬 서울시장의 기용에서 이미 가시화됐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참석과 아·태지역 3개국 순방후에 나타날 민자당과 정부의 개편은 국정운영 능력 있는 인재가 대거 발탁되는 형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김영삼개혁」의 보편성과 지속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청와대가 풀지 못하는 숙제는 남아 있다.움직이지 않는 공무원 조직을 깨울 비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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