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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가 이렇게 어려운데…/김영만 경제부장(데스크 시각)

    ○여론 눈총 견딜수 있을까 한나라당이 김종필 총리서리 임명동의안에 대해 비밀을 보장하는 재투표를 하는 것은 꼭 손해 보는 장사인가. 재투표를 해서 동의안이 가결되면 거야의 구심력은 순간에 와해되고,정계개편이 뒤따르며,결국 소야가 되리란 것이 한나라당이 상정하는기분 나쁜 시나리오다.좁게는 김총리서리 동의안의 가결이 현 지도부의 책임을 묻게 돼 당지도부의 교체를 가져온다는 우려도 있다.이래저래 고양이가 되는 위험을 감수하느니 종이호랑이처럼 비치긴하지만 지금의 대치상태를 그냥 가져가자는 것이 한나라당 의원들과 지도부의 계산이다. 얼마나 힘이 있는 호랑인지 시험되지 않고,이 상태를 유지할 길만 있다면 한나라당의 계산은 맞다.불행한 것은 IMF(국제통화기금)사태로 인해 국민과 여권이 현재의 어정쩡한 모습을 오래 참지 못할 것이란 데 있다.결국 한나라당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재투표도 않고,서리도 중도하차하지 않는 이상정국은 정계개편을 통해 깨어질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적극적인 사고전환 필요 우선은 국난 앞에서 변칙투표로 정부의 정상출범을 막는 것에 대한 여론의 손가락질을 견디기 어렵게 될 것이다.한나라당으로서는 임진란이나 6·25때도 정쟁은 있었고,기표소에까지 들른 지난번 투표행위도 예전 야당과 비교하면 크게 발전된 것이라고 억울해 할지 모른다.실제 그런 측면이 없지않다.그러나 실직자가 2백만명을 넘고 국민모두가 짜증스러운 지금은 전쟁보다 어렵다.여권은 경제상태가 호전되지 않은 이유를 야당의 비협조에서 찾을 것이다.예전의 야당이 변칙투표가 가능했던 것은 소수가 갖는 메리트였을 뿐이다.다수당인 한나라당에게는 해당되지 않음을 이해해야 한다. 두번째는 칼자루를 쥔 여권이 여소야대를 여대의 형태로 바꿀 능력을 가졌다는 점이다.오랫동안 집권 해 온 한나라당 사람들은 많은 약점을 가졌다.더 나아가 5·16을 기획하고,사선을 몇차례씩 넘어 공동집권한 현재의 여권세력은 의지와 정치력에 있어 한나라당보다 한 수 위에 있을 수 밖에 없다.여대로 바꾸는 것은 집권세력의 마음에 달린 일이다. 상황이 이럴진대 한나라당은 재투표를통해 정국을 정면돌파하는 발상의 전환을 해봄직하다.거기서 더 좋은 길이 나올 수도 있다.사고의 적극성에 따라서는 한나라당 입장에서 재투표를 해볼만한 다섯가지 이상의 가치나 이유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총리인준을 놓고 무기명비밀투표에 응하는 자체가 국정경험을 가진 새로운 야당상을 심는 결과를 얻을 것이란 점이다.야당의 유일한 재산은 여론이다.예전 야당과의 차별화,즉 완전한 무기명 비밀투표에 응하는 것은 여론을 업는 지름길이 된다. 두번째는 재투표에서 이길 경우다.종이호랑이가 산 호랑이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고,정국주도권을 잡아 여당과 동등한 입장에서 정국을 운영하는 결과를 얻게 된다.다수이되 자신의 실력을 가늠하지 못해 북풍같은 사활이 걸린 사건에도 효과적인 대응을 못하는 현재의 상황과 비교해 봄직하다. ○검토해볼 5가지 문제 세번째는 설령 투표에서 지더라도 체제를 정비할 적절한 시간을 얻는 이익이 있다.자신의 실력을 확실하게 파악하게 돼 ‘동군’위주의 새 진용을 짜든,보수당의 기치를 내걸든 현재의 어정쩡한 상태보다 나아 보인다.종이호랑이보다는 단단한 고양이의 모습이 6월 지방선거에서 유리할 것이란 점도 염두에 둘만하다.앉아서 정계개편을 당하는 것보다 진검승부를 건뒤 정계개편에 임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도 유리해 보인다. 네번째는 소속의원들이 사정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통과되면 통과돼서 좋고,지면 체제를 정비해 야무진 대항체제를 갖추게 된다.어떤 결과든 현재보다는 사정당국의 사정욕구를 제어하기가 쉬울 것이다. 다섯번째는 총리인준 문제로 인한 ‘경제부진 책임공유’에서 벗어나라는 것이다.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누구나 희생양을 찾는다.한나라당의 정국운용방식은 새정권 출범후의 경제부진까지 함께 책임지게 만들고 있음을 생각해야한다. 새정권의 출범인 만큼 총리지명자가 마음에 덜 들어도 인준에 협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그러나 한나라당이 나름의 이유를 들어 도저히 어떤 사람과는 같이 못가겠다면 그것까지 비난하긴 어렵다.그러나 그 방법은 무기명비밀투표로서만 정당성을 얻을 수 있다.또한 이를 통한 의사표현이 새대통령에 대한 최소한의 정치도의가 아닌가 싶다.
  •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 고진광 총장 한양대 특강

    ◎자원봉사활동 조직화 필요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 고진광 사무총장은 지난 5일 하오 한양대 세미나실에서 신입생과 재학생 5백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IMF시대 사회봉사의 자세’를 주제로 특강을 실시했다. 고사무총장이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당시 자원봉사 활동과 무의탁노인 주거환경 개선사업 등을 예로 들며 IMF시대를 맞아 올바른 사회봉사활동에 대한 방향을 제시했다.강연내용을 간추린다. ○삼풍백화점 참사때 맹활약 ‘국민의 정부’를 표방하는 새정부가 출범되고 한국 대학 사회봉사단의 기수라 할 수 있는 한양대에서 강연하게 되어 기쁘게 생각한다. 자원봉사란 개인의 선의에 의해 자발적으로 이웃을 돕는 인간에 대한 작은 관심에서 출발하는 것이다.자원봉사라는 말은 라틴어의 ‘볼런타스’에서 유래하였으며 이것은 의무감이 아닌 인간의 자유 의지,마음속 깊이 우러나오는 의사라는 뜻이다. 지금까지의 자원봉사 활동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 대해 아무런 대가없이 직접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활동’에 머물렀다.오늘날은 ‘지역사회의 발전과 변화를 가져오기 위한 계획적이고 조직적인 사회행동’으로까지 그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실례로 지난 95년 삼풍백화점이 붕괴되던 날,거대한 재난 앞에서 아픔을 겪는 이웃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처지에서도 모든 일을 마다하고 참사현장으로 달려갔다.이를 통해 우리들은 인간애에 대한 열정으로 하나가 될 수 있었다. 당시 자원봉사자들은 부상자와 사망자명단,병원 배치상황,전화번호 등을 프린터에서 뽑아 사고가족에게 알려주는 등 헌신적이고 자발적인 봉사활동을 펼쳤다. 덕분에 공동선의식으로 하나가 됐던 당시 봉사자들은 그해 7월29일 한국민간자원구조단을 창립했으며 올해 한국민간구조봉사단(한민봉)으로 명칭을 바꿔 3년째 꾸준한 활동을 계속해 오고 있다. ○‘나홀로 노인’ 주거환경 개선 하지만 최근 ‘경제발전과 맞바꾼 도덕성’이라는 말처럼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도덕성 상실의 시대’라는 커다란 함정에 빠지게 됐다.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믿기지 않는 사건들과 도덕적 무관심의 시대를 보며 우리는 이제 모든것을 ‘내탓이요’하고 돌릴 것이 아니라 실천적인 노력을 더욱 확대해 적극적인 사회운동으로 승화해 나가야 한다. 이에 대해 한민봉은 도덕성 회복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목표로 삼아 ‘무의탁 독거노인 주거환경 개선사업’을 시작했다. 이는 사회에 방치되거나 무의탁 노인으로 전락한 분들을 도우면서 웃어른에 대한 공경심과 도덕성을 복원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매주 토·일요일마다 한민봉 회원들은 무의탁 노인들을 찾아 도배와 보일러 수리 등 각자의 솜씨를 발휘하여 봉사활동을 했다.특히 한민봉은 각지에서 보내오는 성금을 거절해 왔다.이는 넉넉한 형편은 못되지만 회원들의 회비로 자원봉사를 해왔는 데 성금을 받게 되면 욕심과 의타심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동안 무의탁 노인과 장애인,소년소녀가장,생활보호대상자 등의 주거환경개선 봉사활동 실적이 2천5백여가구를 넘었다. ○중요한 개혁운동 자리매김 결국 직장인과 학생,공무원 등 사회 각계각층의 봉사활동은 이웃돕기 실천을 통해 중요한 개혁운동으로 자리매김해 나가고 있다.지금 우리사회는 IMF의 어려운 한파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하나가 되어 뭉쳐야 할 어려운 시점이다. 격변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이제 개인주의적 이해와 타산에서 벗어나 모두가 함께 손잡고 잘살기 위한 정신적 가치를 설정하고 실천해 나가야 한다.
  • 기지개 켜는 거야 명예총재

    ◎의원 등 50여명 초청오찬… 새 역할 모색/12일 지구당 개편 참석 정치행보 재개 한나라당 이회창 명예총재가 동면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켤 조짐이다.6박7일동안의 방미 일정을 마치고 지난 1일 귀국한 이명예총재는 5일 여의도 한 음식점에서 당시 공항출영인사들을 중심으로 당내 가까운 인사들을 초청,점심식사를 대접했다.이날 오찬행사에는 현역의원 29명과 지구당 위원장 10명 등 50여명이 참석,‘예상밖의’ 성황을 이뤘다. 이명예총재가 국회의 파행사태에 따른 노고를 치하하자 일부 참석의원들은 “당 지도부가 흔들림없이 구심점을 갖춰야 원내 대책은 물론 지방선거에서도 승리를 거둘 수 있다”며 ‘이회창 역할론’을 개진했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특히 오랜만에 상견례를 가진 이명예총재에게 ‘정치적’ 덕담이 건네지고 황낙주 전국회의장이 건배를 제의하는 등 활기찬 분위기였다고 한다. 이명예총재는 오는 12일 대구달성 지구당(위원장 박근혜) 개편대회 등 재·보선 지역구의 선거운동에 참여함으로써 자연스레 정치 행보를 재개한다.특히3개 지역구의 재·보선을 앞둔 대구·경북에서는 벌써부터 이명예총재의 적극적인 역할을 요청하고 있다는 후문이다.내주부터는 언론사와의 공식 인터뷰도 다시 시작한다.정치 전면에 나서기에는 ‘때가 무르익지 않았다’는 것이 이명예총재측의 생각이지만 가변적인 정치상황에서 ‘때를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도 분명해 보인다.
  • 국태공의 보은(비록 남가몽:2)

    ◎대원군,정권잡사 신세진 쌀장수에 관직/이조판서 홍종응 집서 무참하게 냉대받고/서 강사는 쌀장수 이천일 찾아가 사정하니/쌀 20섬·돈 1천냥 꾸러미·정육 100근 선뜻/아들 보위 오를던날 궁중잔칫상 차려 대접 고종이 즉위하자 아버지 흥선군은 대원군이 되고 세상사람들은 그를 국태공이라 불렀다.운현궁도 초가 삼간에서 대궐같은 기와집으로 탈바꿈했다.당시의 돈으로 1만7천830냥이나 들여 신축하였으니 만일 그 때가 IMF시절이었다면 즉각 공사중지 명령이 내려졌을 것이다. 그러나 오랜만에,실로 오랜만에 권좌에 오른 대원군이었던 만큼 그까짓 1만이나 2만냥 같은 돈을 쓰는 것은 당연한 일로 여겼고 무엇보다 먼저 해야할 일이 나라 일이라 생각하지 않았다.그동안 자기를 도와준 사람에게 보답하고 자기를 능멸했던 사람에 대해서는 응분의 불이익을 주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앞섰다. 먼저 대원군이 손을 보려 했던 사람은 이조판서 홍종응이었다.이사람은 당대 유수의 대학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보는데 안목이 없었고 세상일에 너무 각박했다.○하인폭거로 왼손에 유혈 1863년 임술민란(일명 진주민란) 직후의 경제는 특히 어려웠다.요즘과 같은 경제난국이 닥쳐 모든 사람들이 하루 끼니를 잇기가 어려웠는데,흥선군도 예외가 아니었다.그래서 하루는 흥선군이 홍판서 댁을 찾아가 구걸하게 되었는데,홍판서는 문전박대를 했다.문전박대 뿐만 아니라 그 댁 하인이 대원군에게 폭행까지 하여 손가락에 유혈이 낭자하였다. “국태공이 흥선군 시절에 너무 가난하여 늘 꾸워 먹고 살았다.임술민란이후에 인심이 점점 각박하여 먹고 살 길이 막막하였다.이조판서 홍종응의 집에 가서 입을 열고 싶었으나 여러 번 은혜를 입은 처지라서 쉽게 말하기도 어려웠다.그러나 염치를 불고하고 부득이 찾아가니 하인들이 나와서 말하기를 ‘우리 대감께서는 근래에 건강이 좋지 못하여 잠시 산정의 사랑에 쉬러 갔습니다. 소인들에게 분부하시기를 아무라도 들이지 말라고 하셨으니 다른 날 다시 오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고 했다.그러나 세모에 날씨가 너무 추운데다 배도 고프고 목마름이 심하여 일이 성사되건 안되건간에 한번 만나 얘기나 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흥선군이 애걸하니 하인들이 차마 거절하지 못하여 협문을 열어 들어오게 하였다. 그러나 홍종응이 답하기를 ‘이왕에 몇번 청구하신 것은 즉시 봉행해 드렸습니다만 지금은 세모를 당하여 너무 많은 사람들이 날마다 구걸하니 이들을 다 구제해주기 어렵습니다.얼마 안되는 이조판서의 봉급으로는 그 사람들을 다 기쁘게 해주기 어려우니 대감께서 금번에 청하시는 것은 어찌할 수 없습니다.차차 형편을 보아 후일에 도와드리겠습니다’ 하고 흥선군의 청을 거절했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흥선군이 그 집 문밖을 나설 때에 불상사가 생겼다.뒤를 따라 나온 홍종응의 하인이 발길로 협문의 판자를 찼다.그 조각이 흥선군의 손을 내리치니 다섯 손가락에 유혈이 낭자하였다.” 그러나 서강에 사는 쌀장수 이천일의 경우는 전혀 달랐다.홍종응의 집에서 쫓겨나다시피 한 흥선군은 손에 붕대를 감은 채 그 길로 이천일의 집을 찾아갔는데 맞이하는 태도부터가 홍종응과는 크게 달랐다. ○“집권자 되면 은혜 갚겠다” “부득이 서강에 사는 쌀가게 주인 이천일을 찾아갔다.흥선군을 맞은 천일은 크게 놀랐다.문안을 드린 후에 보니 흥선군의 왼손 다섯 손거락에 피가 엉기어 얼었고 상처의 흔적이 매우 심하였다.천일이 ‘어찌해서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까’하고 물으니 대원군은 ‘나귀를 모는 아이가 실수하여 빙판에 떨어져서 그렇게 되었다’고 하였다.천일이 약수로 피를 씻어낸 후에 손을 헝겊으로 싸니 조금 통증이 가셨고 정신이 들었다. 그런 뒤 천일이 ‘대감은 어찌해서 누한 곳(누지)에 행차를 하셨습니까.’고 물으니 대원군은 ‘다른 이유가 없고 몇년 전부터 내가 그대의 은혜를 입어 왔으나 지금 세모를 당하니 추운 절기에 살아갈 길이 막연하여 염치불고하고 찾아왔네’ 하고 답했다.이에 천일이 아뢰기를 ‘형편이 그러시다면 물건 보내라는 패지(메모지) 한 장이면 족하실텐데 대감께서 예까지 친림하셨습니까.송구할 따름입니다.염려하지 마시고 돌아가십시요.내일 아침일찍 조처하여 보내 드리겠습니다’고 황송해했다. 대원군은 집에 돌아왔으나 저녁을굶은 터라 추위가 더욱 혹독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천일은 약속대로 이튿날 아침 일찍이 물자를 보냈다.흥선군이 조반 후에 서강의 이천일에게서 보내 온 목록을 보니 쌀 20섬,돈 1천꾸러미,장작나무 50바리,정육 100근,서초(평안도에서 나는 담배) 30근이나 되었다.흥선군은 ‘이 은혜를 어찌 갚을꼬’ 생각하면서 ‘만약에 하늘이 도와 내가 집권자가 된다면 제일 먼저 그 은혜를 갚겠다’고 맹세하였다.” ○경상감사와 비슷한 녹봉 세상 일은 알 수 없는 것.거지 흥선군이 국태공이 될 줄을 누가 알았으랴.1863년 12월8일 젊디 젊은 철종이 갑자기 승하하니 운현궁에 왕기가 서렸다. 아들이 임금이 되고 흥선군이 대원군으로 뜬 것이다. 즉위식 날 대원군이 서강의 쌀장수 이천일을 특별히 부르니 천일이 발이 땅에 닿지 않을 정도로 달려와 운현궁으로 들어섰다. 대원군이 친히 손을 잡고 인도해 가니 천일은 떨리고 황공하여 나아가지 못하고 약간 떨어진 거리에서 몸을 굽히고 있었다.그 두터운 은혜를 이루다 헤아리기 어려웠다. 이 때 대원군의부인 민씨가 이천일이 온 것을 알고 궁중의 잔치상을 내어오게하니 천일은 손이 떨려 진수성찬을 다 먹을 수가 없었다.이에 대원군이 친히 천일의 손을 잡아 상에 앉게 한뒤 큰 은반에 홍로주를 가득 부어주니 천일에게 그렇게 큰 영광은 처음이었다.” 대원군은 왕실의 체면을 많이 떨어 뜨렸으나 그 정분은 잃지 않았던 것이다.뿐만 아니었다. “드디어 이천일이 선혜청 고직에 임명되니 그 수입이 경상감사의 봉급보다 못하지 않았다.선을 쌓은 집에는 반드시 경사스런 일이 있다하더니 과연 헛말이 아니었다.” 지금도 홍종응 처럼 한치 앞을 못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천일같이 착한 사람이 없지 않을 것이니 이 일은 두고 두고 후세 사람들이 명심할 일이라 할 것이다.
  • 여야 극한대치 장기화될듯/총리인준 무산… 정국 전망

    ◎여­정계조기개편 본격 작업/야­“서리체제 위헌” 파상공세 2일 국회 본회의가 김종필 국무총리 인준동의안을 처리하지 못하고 파행으로 끝남에 따라 여야간 극한 대치상황이 심화되고 있다.신여권은 김총리서리 체제를 출범시키고 여소야대 정국 타파를 위한 정계개편에 본격 나설 조짐이다.한나라당도 거야의 힘을 과시했다는 판단아래 만만히 물러서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총리서리체제에 대한 여야간 위헌논쟁도 가열되고 있다.여권은 국정공백 사태를 막기위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헌법소원까지 거론하면서 여권을 압박하고 있다.3일중 조각이 단행되면 새로운 내각을 향해 총공세를 벌일 것이다. 정치권과 국회의 파행을 둘러싼 여야간 소모적 공방은 장기화가 예상된다.극적인 돌파구가 열리지않는 한 김총리서리 체제의 국회 동의는 가까운 시일안에 힘들 것 같다.정국경색이 길어지면서 선거법 개정 등 다른 현안도 표류하리라는 전망이다. 김총리 인준안의 국회동의가 불발된 것은 정계개편을 앞당기는 신호탄으로도 여겨진다.2일 상오 여의도 당사에서 조세형 총재권한대행주재로 열린 국민회의 간부회의에서 이종찬 부총재는 ‘조기 정계개편론’을 제기했다.이부총재는 “6월 지방선거가 끝난 뒤 생각해보려던 정계개편을 빨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오는 10일로 예정되었으나 이달말로 미뤄질 한나라당 전당대회 직후부터 정계개편 수순에 본격 돌입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지금까지 여권내부의 대세는 6월 지방선거 결과에 따른 자연스런 정계개편이었다.새정부 출범 초기부터 여소야대타파를 무리하게 시도할 경우 야당의 극한 반발로 정국운영이 도리어 꼬일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김대중 대통령도 조순 한나라당총재와의 영수회담에서 인위적 정계개편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그러나 ‘JP인준 처리’과정을 계기로 여권 핵심의 생각이 바뀌고 있음이 감지되고 있다.드디어 이종찬부총재가 공식회의석상에서 ‘조기 정계개편론’을 제기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한나라당은 내부역학 구조상 뚜렷한 구심점이 없었다.그렇다고 신여권의 희망처럼 ‘만만한’것은 아니라고 한나라당측은 반박한다.총리동의안 인준처리과정에서 보여주었듯 당내 결속력이나 지도부의 리더십이 결코 약한게 아니라는 주장이다.제대로 힘만 합치면 얼마든지 정국주도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때문에 한나라당의 강공드라이브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아야 한다.
  • 총리 서리체제 불가피하다(사설)

    김종필 총리 임명동의안 처리를 두고 국회의 신여권과 한나라당이 격돌,총리의 국회인준 표결이 또 다시 무산됨으로써 새정부의 정상적인 출범은 어렵게 됐다.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이제 김대중 대통령은 예상대로 김종필 총리서리 체제로 정부를 운영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다만 3일 조각에는 고건 현총리의 제청 형식을 밟을지도 모른다고 한다.국회의 인준을 받지못한 서리총리의 각료 제청이 위헌소지가 있어 이를 피하기 위해서다.제청권의 정당성 여부와 관계없이 새정부가 정정당당히 정부 구성을 못하는 일은 불행한 사태가 아닐수 없다. 그러나 이제 국정공백 상태를 더이상 방치할수 없다는 것이 국민일반의 인식이므로 새정부는 서리체제로 갈 수밖에 다른 선택이 없을것 같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이 결코 정상적인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법률적으로 옳고 그르고가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일단 서리체제로 가더라도 하루빨리 비정상적 정치상황은 시정돼야 할것이다.정부를 출범시켜 행정공백을 막되 여야는 곧 재협상을 시도해야 한다.지금은 국회가 새정부에 힘을 보태줘도 IMF사태를 어떻게 극복해 낼지 모르는위기 상황이다. 이런 판국에 정치권이 파쟁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은 국민들을 참으로 곤혹스럽게 한다.집권 여당시절 IMF사태를 야기한 중대한 책임이 있고 다수 야당으로서 국정의 한부분을 책임져야 할 한나라당의 이런 정치행위는 비판받아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일이 여기까지 왔으면 여권도 다른 대안을 생각해 두어야 할 때다.국민회의와 자민련의 공동정부를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게 됐다.일단은 공동정부 운영에 심혈을 기울이고 국정에 차질이 없도록 세심한 배려가 있어야 할것이다. 공동정부가 출발부터 이런 시련에 직면해 있다는 것은 여권이 원하든 원치 않든 조기정계개편도 고려해야 할 상황임일 동시에 알려주고 있다.
  • 취임뒤 하루 8시간 릴레이 접견/목 잠긴 김 대통령

    ◎“면담 줄이고 듣기 위주로” 비서실 조언/“나 보러온 사람들인데…” 난감한 표정 27일 여야 영수회담에 나선 김대중 대통령은 다소 목이 잠겨 있었다고 한다. 평소보다 낮은 톤으로 회담에 임했지만 다소 감도가 떨어진,쉰 목소리가 역력했다는 것이 배석자들의 전언이었다. 김대통령의 목소리가 이처럼 악화된 것은 무엇보다 취임식과 그 이후의 계속된 ‘강행군’ 때문일 것이다.25일 30분에 가까운 취임연설에 이어 26일 하루만도 18개 팀과 8시간 가까운 ‘릴레이 접견’을 계속해야 했다. “면담 횟수를 줄여야 한다”는 의전실의 조언도 있었지만 “나를 보러 온 사람들인데 누군 만나고 누구는 뺄수 있느냐”는 김대통령의 의지가 워낙 완강했다는 후문이다.대선에 4차례나 도전하면서 ‘목소리 보호’에 일가견이 있다는 김대통령이지만 취임직전까지 수많은 인사들을 만나 협조를 구하는 과정에서의 누적된 피로도 한몫했다는 추측이다. 이에따라 청와대 관계자들은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취임초기라서 앞으로 면담해야 할 국내외 인사들이 줄을서 있는 상황이다.‘목소리 악화’가 가속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짙다.이 때문에 한 관계자는 “앞으로 말하는 것보다는 듣는 쪽에 치중할 것을 권하고 있지만 과연 어느 정도나 수용할지 모르겠다”며 난감해 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정치상황은 김대통령의 ‘목소리’를 더욱 필요로 하는 분위기다.이날 여야 영수회담 이후에도 막바지 설득을 위해 김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이후에도 IMF 국난극복을 위해 국내외적으로 김대통령 1인에게 너무 많은 ‘짐’이 몰리는,‘비상정국’이 될 공산이 큰 탓이다.
  • 영수회담에서 꼭 풀어야(사설)

    27일 여야 영수회담이 열리게 됐다.한나라당이 25일 국무총리 인준국회를 무산시킴에 따라 꼬인 정국을 풀기 위해 김대중 대통령이 26일 전격적으로 제의를 했고 이를 한나라당과 국민신당이 받아들여 성사된 연쇄 영수회담이다. 한나라당은 여야 영수회담을 받아들일까 말까를 망설이다 26일 당직자 회의까지 열어 참석키로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따라서 영수회담이 열린다고 곧 총리인준 문제가 풀린다고 볼 수도 없는 상황이다.영수회담에서 엉뚱한 제의나 해놓고 돌아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도대체 한나라당이 어느나라 정당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 하나둘이 아니다.지금 국난이라는 IMF 사태를 누가 만들어 놓았는가.바로 한나라당이 집권하면서 만든 것이다.나라를 이렇게 망쳐 놓고 그 뒤치다꺼리에 동분서주하는 새정부의 발목을 출발부터 잡고 늘어지는 일을 국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실로 곤혹스럽기 그지없다. 수없이 말해왔지만 선거에서 패배한 정당이 다수당임을 기화로 첫 정부구성부터 못하게 하는 일이 어느 나라에있는가.정치상식으로도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이는 명백한 선거불복 행위가 아닌가. 일언이폐지하고 이왕에 영수회담을 열기로 했다니 영수회담을 통해 이 어처구니 없는 사태를 풀어야 한다.비록 며칠이라고는 하지만 새대통령에 구내각이란 세상에 둘도없는 정부가 기형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사태를 하루빨리 종결시켜야 한다. 지금 공직사회가 혼란에 빠져 있다.비록 고건 내각이 자리를 지키는데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는 하나 현 내각이 무슨 결정을 할 수 있으며 무슨 예산집행을 할 수 있겠는가.이런 또하나의 국난사태는 전적으로 한나라당에 책임이 있다.한나라당은 행정공백뿐 아니라 자칫하면 정치공황까지도 예상되는 이번 사태를 끝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정상회담 결과를 지켜보려 한다.
  • 아랍권 이라크 지지 본격화

    ◎애·예멘 등 대표단 바그다드서 연대 과시/터키·이란 외교해결 촉구 【워싱턴·바그다드·카이로 외신 종합】 미국이 이라크에 대한 공격의지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는 가운데 아랍국 의회대표단이 바그다드를 방문하는 등 미국의 군사행동에 대한 반대 움직임이 적극화되고 있다. 이집트,요르단,예멘,팔레스타인 자치지역 출신 아랍국 의원대표단 11명을 이끌고 15일 바그다드에 도착한 누레딘 부시쿠게 아랍의원연맹 회장(모로코)은 “이라크 국민에 대한 아랍국의 연대감을 표명하기 위한 방문했다”고 강조했다. 터키도 이날 이란과 함께 공동성명을 발표,미국이 이라크 공습을 강행하면 이라크국민들을 해칠 뿐 아니라 주변국들까지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고 경고하고 현재의 대치상태는 외교적으로 해결돼야 하며 이라크는 유엔결의를 전면이행해야 한다는고 말했다. 한편 클린턴 정부 관리들은 현재의 이라크 사태를 외교적으로 풀기위한 난관이 타개되지 않고 있다면서 왜 무력 공격이 불가피한 가를 곧 국민들에게 설명하게 될 것이라고 밝혀 무력공격의 가능성을 더욱 높였다. 윌리엄 코언 국방장관은 15일 이라크가 유엔의 무기사찰을 제한하도록 허용하면서 이라크와 타협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 해외건설 좋은시절 끝났다/동남아 환란영향

    ◎1월수주 1억불… 전년동기의 10%선/사우디·리비아 등 12개국 미수금 10억달러/인니 30억달러 규모 공사도 대부분 중단 중동의 오일달러,동남아 시장의 개발자금을 알토란캐듯 벌어들이던 해외건설의 호시절은 끝났나.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효자노릇을 해 오던 해외건설이 ‘국제통화기금(IMF) 한파’앞에서 돈을 벌어들이기는 고사하고 국민경제에 부담이 될 정도로 어려움을 겪고있다. 당장 눈에 띄는 것이 지난 1월의 수주액.1억1백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10%선에 그쳤다.여느때 같으면 문제도 안되는 10억달러에 이르는 해외건설공사 미수금도 지금은 큰 부담이다.특히 주력시장이던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국가들이 환란에 휩싸여 신규 발주공사가 없어지면서 우리 업체에게 치명타를 입히고 있다. 건설업종은 60년대 후반부터 해외에 진출,70∼80년대 개발경제시대의 선봉이었다.그동안 외국에서 벌어들인 돈만도 1천4백억달러.이 가운데 1천억달러를 수금했고 4백억달러 규모는 현재 공사가 진행중이다.미수금이 총 수금액의 1%에불과하지만 1달러가 아쉬운 상황이라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공사 미수금은 현재 사우디아라비아 3억9백만달러(25건),리비아 5억3백만달러(26건) 등 12개국에서 9억8천1백만달러(총 75건)로 집계되고 있다.그러나 문제는 1년 이상 못받고 있는 ‘장기 악성 미수금’ 8억6천5백만달러나 된다는 점이다.특히 전후(전후)에 경제사정이 극도로 나빠진 이란의 4천만달러,이라크의 6천만달러 등 미수금 1억달러 중에는 10년이 넘도록 못받은 돈도 있고 언제 받을 지 기약도 없다. 인도네시아와 태국의 외환위기도 갈길 바쁜 우리 업체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이들 나라에서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신규 발주공사가 거의 중단되다시피 했다.물가 폭등에 따른 시민폭동과 정치상황이 불안해 실질적 모라토리엄(채무지불유예) 사태에 빠진 인도네시아의 경우 공사대금 회수마저 불투명해지고 있다.인도네시아에는 현재 H·D·S사 등 7∼8개 업체가 총 30억달러 규모의 공사를 진행하고 있으나 대부분이 일시 중단된 상태이다. 지난해 1백40억달러 규모를 수주,연간 최대의 해외수주액을 기록했던 건설업체들은 현대가 45억달러를 올해 수주목표액으로 선정하는 것을 시발로 중남미 아프리카 유럽 등으로의 시장다변화를 새 전략으로 내세웠다.업계에서는 그러나 지금같은 상황이면 시장다변화 등의 전략수정도 별로 효과가 없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한편 정부는 12일 해외건설 수주 활성화를 위해 대외 신인도가 유지되고 있는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수출보험공사 등 국책은행에 대해 건설사들이 공사수주 때 필요한 입찰 및 계약이행보증을 발급하도록 조치하는 등 지원 가능한 모든 대책을 강구하고 나섰다.
  • 이라크,대통령궁 8곳 사찰 허용/사하프 외무

    ◎21국 출신 유엔 전문가단에 1∼2개월간 【카이로 AFP DPA 연합】 모하마드 사이드 알­사하프 이라크 외무장관은 11일 이라크는 유엔 무기 전문가단에 의한 문제의 대통령궁 8개소 사찰을 허용할 준비가 돼있다고 밝혔다. 유엔의 무기사찰을 둘러싼 미국과의 대치상태에서 이라크에 대한 외교지원을 규합하기 위해 중동 각국 순방에 나선 사하프 장관은 이날 카이로에서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대통령을 예방한 후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위기의 외교적 해결을 찾기 위한 프랑스와 러시아의 제안이 이라크가 “대통령궁 8개소 전부를 개방키로 결정하는데 촉진제 역할을 했다”고 밝히고 “프랑스의 안에 따라 이라크는 새로 구성되는 전문가단에 대통령궁 8개소를 공개할 준비가 돼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전문가단은 단장을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이 임명하고 유엔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과 유엔특별위원회(UNSCOM) 소속 21개국들의 전문가들이 포함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하프 장관은 “ 대통령궁 8개소란,단 하나의 건물이나 창고도 배제하지 않는 모든 대통령궁을 포괄함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전문가단이 사찰에 필요한 “모든 기술적 수단을 이용할 수 있다”면서 “이들은 한달이나 두달 동안 충분히 사찰을 할 수 있을 것이며 이후 유엔 안보리에 상세한 보고서를 제출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주 에스마트 압델 메기드 아랍연맹 사무총장이 바그다드에서 회담을 가진 후 이와 유사한 이라크측의 제안을 공개한 바 있으나 미국은 “무조건적” 접근 요구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라며 거부한 바 있다.
  • 김 당선자·야 총재 연쇄 회동/빠르면 오늘

    ◎조순 총재와 국회운영 논의 김대중 대통령당선자는 경제개혁입법 및 정부조직개편안 처리 등 2월 임시국회의 원만한 운영을 위해 빠르면 10일 한나라당 조순 총재를 만나는 것을 시발로 야당 수뇌부와 연쇄 회동,초당적인 협력을 요청할 계획이다. 국민회의 총재인 김당선자는 8일 한나라당 수뇌부에 회동을 제의했으며 조총재와 이한동 대표는 이를 수락,양측이 구체적인 일시를 절충줄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따라 빠르면 10일중 김당선자와 조총재가 만나 개혁입법 전반의 처리문제와 임시국회 여야 대치상황 해소방안을 협의할 것으로 보이다. 김당선자는 조총재와 만난뒤 국민신당 이만섭 총재와 연쇄 회동을 갖고 전교조 합법화문제를 포함,정국운영을 위한 초당적 협조를 당부할 예정이다.
  • 금 모으기 상류층 동참 아쉽다/이문재(공직자의 소리)

    우리는 오랜 기간 금을 중요한 재산보존과 증식수단으로 삼아왔다.이러한 원인 중 하나는 과거 화폐의 안정성이 자주 문제가 되는 상황을 겪어왔기 때문이다.즉,현재 우리의 50대 중장년층은 해방이후 혼란과 6·25로 인해 화폐가치가 급격히 떨어지는 초인플레이션과 화폐의 가치상실을 경험해 왔다. 지금 우리 사회의 중심축인 이들 중장년층은 남북이 분단된 상황하에서 심리적 불안감으로 금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키는 한편으로 과거의 관습 탓으로 혼인·돌잔치 등에 금을 선물해 금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어났다. ○국제 신인도 제고에 기여 이 때문에 최근까지 한국은 전세계 주요 금수입국 중 하나가 됐다.개인의 과다한 금 보유는 역설적으로 IMF 관리체제를 맞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수단이 되고 있다.장롱속에 사장된 다량의 금 매각은 경제적으로 국가에 도움이 될 것이며,사회적으로는 돌잔치 등에서 다른 선물로 바뀜에 따라 지나친 금에 대한 선호가 그만큼 감소할 것이다. 또한 국민의 적극적인 금 매각은 기업의 방만한 차입운영,원화폭락,외환보유고 바닥,정책 실기 그리고 정치적 리더십 실종 등 총체적 위기상황하에서 한국민에 대한 국제적 신인도 향상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다수 국민들의 금매각 호응에도 불구하고 많은 금을 갖고 있는 부유 계층이 이러한 위기상황에서 자발적인 참여를 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이들 계층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금모으기를 주도하고 있는 각 기관들이 여러가지 방법을 고안하고 있으나 현재까지 두드러진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나라 없으면 개인 부 무의미 무엇보다 금 모으기를 주도하고 있는 각 기관들은 남의 일처럼 생각하고 있는 이들 부유층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국가의 부재하에서 개인의 부는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야 한다.더불어 국민의 열화와 같은 후원에 호응해 우리 사회 상부계층의 청렴성과 신뢰성 있는 리더십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건전한 국가 발전과 국민의 선진화를 위해서는 우리 사회 상부계층의 노력이 가일층 필요한 때이며,이러한 기반하에서 전체 국민의 절대적 지지와 협력이 배가 될 것으로 믿는다. 현 국가위기 상황을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삼아 우리 사회 각계 각층의 의식이 전환된다면 지금의 IMF 한파를 극복하고 진정한 선진국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미 우방국은 이라크 공습 반대말라(해외사설)

    프랑스,러시아,중국,터키 등을 포함한 많은 나라들은 미국 만큼이나 대량파괴 무기가 불안정한 걸프지역에서 함부로 나도는 것을 원치 않으며 자국 안보 측면에서도 미국의 이라크에 대한 태도를 지지할 이유가 충분하다. 그럼에도 이라크 위기가 악화된 가운데 오로지 프랑스만 방관 자세를 버리는 부분적이나마 전향적 태도를 보일 따름이다.무력사용을 배제했던 프랑스는 외교적 노력이 실패하면 무력사용도 고려하겠다고 올브라이트 장관에게 말했다.미국은 필요하다면 단독으로라도 무력을 사용하겠다는 의지를 우방국에게 천명했는데 여기에는 외교주의의 프랑스와 러시아를 무기사찰단 대치상황의 진정한 해결책으로 끌어들이려는 의도도 포함되어 있다.무력사용 배제는 결국 이라크의 후세인에게 생화학무기 개발을 권유하는 것과 다름없다. 지난 11월 프랑스와 러시아가 미적거린 대치상황 때 후세인은 이들을 농락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미국인 사찰팀을 허용하겠다고 약속해놓고는 곧 유엔 사찰정책에 더 한층 노골적으로 도전한 것이다.프랑스는 이런창피를 알아차린 기색이지만 러시아는 아직도 후세인을 달래 옛 소련 시절의 외교 역할을 회복하려는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는 물론 프랑스도 군사적 해결에 회의적인데 공습만 할 경우에 대해 특히 그러하다.미국이라고 공습의 한계를 모르겠는가.문제의 무기는 숨기기가 아주 용이하고 공습을 당한 이라크는 오히려 동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그럼에도 후세인은 외교란 것을 본질적으로 경멸하고 있으며 그저 책략으로 이용할 따름이다. 용의주도한 공습은 후세인 정권을 붕괴시키지는 못하더라도 몇몇 군사시설을 파괴하고 그의 정권에 상당한 정치적 불안정을 가할 수 있다.이라크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할 때 이는 결코 가벼운 업적이 아니다.이론의 여지가 없는 침략자가 계속 국제사회의 비난을 무시하도록 하고 위험한 무기를 휘두르도록 방관하는 것은 중대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이런 결과를 생각하면 법을 존중하는 나라들은 당연히 합심해 후세인에 대항해야 할 것이다.
  • 참가국 모두 “한국 경제 위기 넘겼다”

    ◎다보스 포럼 한국 개혁 의지 긍정 평가/일 소극 대응 성토·중­인니에 관심 집중/러·브라질로 위기 확산 가능성에 우려 【파리=김병헌 특파원】 다보스 경제포럼에 참석한 세계 경제계 인사들은 아시아 금융위기와 관련,한국은 위기의 고비를 넘겼으며 향후 2∼3년이면 현재의 상황을 충분히 극복할 것으로 분석했다.이들은 일본·중국·인도네시아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으며 특히 브라질과 러시아가 아시아의 금융위기에 따른 또하나의 위기에 봉착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30일 열린 한국분과위원회나 이른바 ‘브레인 스토밍’ 등 지난달 29일부터 31일 까지 계속된 주요 분과위원회에서는 한국상황과 관련,‘위기는 넘겼으며 앞으로의 전망도 무난할 것’이라는 낙관적인 의견이 대부분이었다.이는 국내외 상황이 호전된 점도 있지만 정부가 이번 포럼을 통해 차기정부의 경제개혁 의지를 세계 경제의 주요 지도급 인사들에게 설득력 있게 알리고 차기정부의 위기극복 능력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회의기간중 뉴욕의 외채협상이 원만하게 타결된 것도 크게 작용했다. 다보스 포럼에서는 오히려 일본과 중국 그리고 인도네시아가 주관심 대상이 됐으며 러시아와 브라질은 금융위기 가능성이 대두,참석자들의 우려와 걱정을 자아냈다. 일부 전문가들은 러시아와 브라질의 금융위기 시기는 6∼9개월 뒤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이들은 러시아와 브라질의 위기는 아시아 국가들의 화폐가치 절하에 따른 가격 경쟁력 약화와 이들 국가의 주요 수출품목의 국제가격 인하,그리고 아시아 위기여파로 인한 세계 금융기관의 대출기준 강화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일본에 대해서는 비판론이 제기됐다.참석자들 거의 모두가 일본은 현재 내부 정치상황으로 인해 기대한 만큼 경제부양 조치가 이뤄지지 못할 것으로 전망,아시아는 물론 세계 경제성장에 대한 일본의 기여도에 회의적 반응을 보였다.대장성 고위관계자가 예산의 국회통과문제 때문에 경기부양책이 시행되려면 6개월 정도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설명했으나 그 기간이면 부양책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믿지 않는 분위기였다.중국은 주변국들의 통화하락에 대응하기 위해 자국통화를 평가절하할 것인가가 주요 관심사로 등장했다.중국은 국내수요 잠재력이 충분한 만큼 수출에 지나치게 의존할 필요가 없으며 평가절하를 단행할 경우 주변국들과 마찰을 빚게 되고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니 만큼 평가절하에는 신중을 기할 것으로 참석자들은 진단했다.중국은 지난달 31일 평가절하를 단행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 국민 77% “의무병제 유지해야”/미디어리서치 1천명 조사

    ◎91% “군필자 사회적으로 우대 필요” 국민 대다수는 남북 대치상황을 고려할 때 기존의 의무병제를 유지해야 하며 군복무를 마친 사람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우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병무청이 지난 연말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미디어 리서치’에 의뢰,전국의 성인 남녀 1천명을 상대로 ‘병무행정에 관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조사대상자의 76.7%가 현재 시행되고 있는 ‘군복무’를 국민의 정당한 의무로 받아들였다. 또 군복무자에 대한 우대 조치와 관련,조사대상자의 91.0%가 일반기업체도 공무원과 마찬가지로 호봉승급과 퇴직금 계산시 군복무기간을 근무연수로 인정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 리보금리+α 막판 이견 조율/마무리 단계 온 외환 협상

    ◎‘국가 보증’담보 한자리 금리 의견 접근/국채발행은 단기외채 해결뒤 논의키로 외환협상단을 이끌고 미국을 방문했던 김용환 대표는 25일 상당히 고무된 표정으로 귀국했다. 21,23일 두차례에 걸친 뉴욕 협상에서 우리측 입장을 상당히 관철시켰다는 자신감이 엿보였다.그는 다소 완곡하게 “실무적으로 의견을 좁히는 문제만 남았다”며 남은 협상에 대해 순항을 예고했다. 그러나 이번 외환협상의 마지막 고비는 26일 뉴욕에서 재개되는 3차 실무협상이다.두차례 협상을 통해 도출된 기본원칙을 바탕으로 최대 쟁점인 추가 금리수준이 최종 확정되기 때문이다. 이번 실무회담은 김대표 말대로 낙관도 비관도 금물인 상황이다.이번 기회에 한몫 잡으려는 국제금융계의 상혼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채권단은 연장 년수로 차별화,리보금리에 최소 3∼4%포인트의 추가금리를 요구하고 있으나 한국측은 최고 2%의 추가 금리로 맞서 막바지 힘겨루기가 한창이다.. 하지만 협상의 성과도 적지 않은 듯 하다.대표단은 2백50억달러의 단기외채를 1∼3년의 중장기 채권으로 전환하는 문제에 총력을 기울였다.협조융자(신디케이트론) 등 신규차입 문제도 차후 과제로 넘길 정도였다. 중장기 전환시 조기 상환이 가능토록 하는 ‘콜옵션’에도 상당한 무게를 뒀다.고금리에 대한 최대 예방책이란 판단에서다.김대표는 “두차례 협상에서 집중적으로 논의해 (뉴욕 금융계의) 이해 폭을 넓혔다”고 회담 분위기를 전했다. 이번 협상에서 우리측은 ‘한자리 금리’라는 원칙을 상당부분 관철시킨 것으로 알려졌다.당초 미 금융권은 국제적 통용금리인 리보(런던은행간 금리)에 5∼8%를 추가하는 두자리 금리를 요구했으나 대표단은 “그러한 고금리로는 한국경제가 감당할 수 없다”며 배수진으로 맞섰다.결국 막전 막후 협상을 통해 ‘국가보증의 최소화 원칙’를 양보하는 대신 “국회 동의 범위에서 중장기 전환외채를 국가가 보증한다”는 절충안으로 한자리 금리를 끌어냈다는 후문이다. 이번 협상에서 국내의 정치상황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판단이다.김대표는 “노사정 등 국민 모두의 국난 극복 노력과 김대중 당선자의 지속적 개혁의지에 대해 뉴욕협상을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했다”는 밝혔다.김당선자의 유종근 경제고문도 “앞으로 있을 금리협상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반면 국채발행 문제는 단기외채가 해결된 후 논의키로 했으며 종금사 문제는 개별 처리한다는 원칙에 따라 추후로 연기했다.
  • ‘경제 틀’ 다지기 전력투구를/김병국 고려대 교수·정치학(시론)

    ○고개 든 정치판 기싸움 “권력처럼 솔직한 것이 없다. 잃는 순간 자식마저 내게서 떠나가고 손에쥐는 순간 온 세상이 구름처럼 몰려든다” 선거에 잔뼈가 굵은 어느 정치인이 지난 가을에 들려준 말이다. 참담한 그한마디가 지금은 평범한 삶의 이치처럼 느껴진다. 신문을 읽고 방송을 듣다보면 정권교체는 이미 끝난 상태이다. ‘비대위’가 통화위기에 대한 대응책을 강구하고 ‘인수위’가 사정까지 논하는 실정이다. 김대중 당선자가 대통령을 대신하여 국정을 살피고 대권을 행사하는 직무대행체제가 이미 한달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오랜만에 조순 총재가 차기 총리의 자질에 대해 던진 한마디로 정치권 전체가 시끌시끌하다. 김종필 명예총재가 ‘책임총리’로서 국정 전반에 화려하게 복귀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생각에서 던진 말인 만큼 온 동네가 시끌시끌한 것은 당연하다. 김종필 명예총재한테 발을 거는 것은 ‘시한폭탄’의 뇌관을 건드리는 것일 수 있다. 만년 2인자로서 ‘팽’만 당한 그가 자신을 총리직에서 아예배제하려는 움직임에 반발한다면 정국은 차기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방향을 잃고 정치는 갈등만이 확대되는 악순환에 놓일 수 있다. 신여권과 신야권이 총리에 대한 인선 문제로 대치상황에 내던져진다면 언젠가는 그 책임을놓고 신여권 내부에까지 갈등이 확산되고 공방이 벌어질 위험성을 배제할 수없다. 게다가 그러한 ‘다툼’이 수면 밑에 잠복해 있는 내각제 갈등에 불을 당긴다면 정국은 헤어날 수 없는 사태로 치달을 지도 모른다. 조순 총재가 이렇게 민감한 사안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하지만 핵심은 역시 차기 정부가 살얼음판을 걷고 있음을 경고하는 것이다. 사실 신여권은 서로에 대한 호감보다 김영삼 대통령에 대한 반감에서 모인 느슨하고 이질적인 세력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 끈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지분을 챙기고 ‘공신’의 반열에 서기 위한 경쟁이 신여권 내부에 잠복해 있다. 조순 총재가 던진 한마디는 바로 그러한 신여권 내부의 상황을 꿰뚫어보고 차기 정부를 마비시킬 ‘힘’이 거대 야당에게 있음을보여 주려는 경고성의 발언이다. 역시 권력은 ‘솔직한 것’인가 보다. 국민이 금반지까지 긁어모아 경제를 구하려는 위기상황에서 조차 권력은 수면 밑에서 꿈틀거리며 국민을 볼모로 삼는 기싸움을 정파 사이에 부추긴다. 국민은 그러한 기싸움을 반대한다. 차기 정부 하에서 총리직을 맡을 인사가 누구인가에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다. 하물며 정권교체의 신화를 창조한 신여권 내부에 포진해 있는 서로 전혀 어울리지 않는 수많은 얼굴에 더 이상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지 않을 만큼 주어진 총리에 대한 선택의 폭에 만족하고 뒤죽박죽인 신여권 내부의 상황을 인정하기 때문은 더더욱 아니다. ○커진는 정국불안 우려 국민이 우려하는 것은 경제가 파탄지경에 이른 오늘날 새로운 ‘사건’이 터져 정국을 더 한층 불안한 사태로 끌고갈 지 모를 위험성이다. 지금은 경제에 전념할 때이다.차기 정부에게 발을 거는 일체의 행동을 삼가는 ‘위선적밀월’의 기간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정치권이 그러한 국민의 걱에 귀를 기울일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무조건 정치권의 ‘선처’를 기다릴 수는 없다. 오히려 언젠가는 한바탕 큰 소동이 일 것을 두려워하면서 미리 준비하는 편이 낫다. 신여권이 논공행상과 안배원칙을 놓고 갈등하고 신야권이 거기에 끼어들어 ‘훈수’를두려고 할 정부출범기 이전에 경제재건을 방해 해온 장애물을 치워버리고 공평한 고통분담의 사회계약을 체결해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권 인수기를 찬스로 김영삼 대통령이 임기를 끝내고 내려올 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 김대중 당선자는 그 날이 오기 전에 미리 국제통화기금 한파를 자신의 후원자로 삼아 부실은행에 손을 대고 노동시장에 유연성을 불어넣는 동시에 투명한 재벌경영을 보장할 ‘틀’을 임시국회에서 마련하여야 한다. 시간이 없다. 정권인수기인 지금이 오혀려 큰 일을 벌이고 끝내야 하는 황금같은 기회이다.
  • 민주주의 전도사 에이브러햄 링컨:하(미국의 대통령 문화:7)

    ◎남북 대화합 이룬 ‘정직의 대명사’/“연방통일이 헌법보다 우선” 주독립 불가 역설/국민에 전쟁 수행 독려… 당대엔 인기 못 얻어/최악의 상황 유일한 탈출구는 일상화된 유머감각 【스프링필드(미 일리노이주)〓나윤도 특파원】 1861년 2월11일 일리노이주 주도 스프링필드의 중앙역인 그레이트 웨스턴역.취임식 참석차 워싱턴으로 떠나기 전,플래트홈에 마련된 연단에 오른 링컨 대통령 당선자는 군중들의 환호에도 불구하고 자못 침통한 표정으로 무겁게 입을 열었다. “친구 여러분,내 입장에 있지 않은 여러분 어느 누구도 이 이별의 순간에 솟구쳐 오르는 나의 슬픈 감정을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나는 4반세기를 이곳에서 살면서 모든 것을 빚진 채 지금 고향을 떠납니다.이제 가면 언제 돌아올 것인지 혹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 지도 모릅니다.나에게는 워싱턴에 부여된 일보다도 더욱 무거운 일들이 앞에 놓여 있습니다” 과거 역사자리에 선 ‘링컨 디폿 뮤지엄’에서 상영하는 링컨의 24년동안 스프링필드에서의 생애를 담은 30분짜리 비디오는그가 비장한 연설을 남긴 후 그의 일행을 태운 기차가 이곳을 빠져나가는 장면에서 클라이맥스를 이룬다. ○죽음으로 국가 구해 이미 6개주가 연방을 탈퇴해서 독자 정부를 수립한 최악의 상황에서 연방대통령직 수행은 그 자체가 엄청난 형극의 길임을 링컨은 예견하고 있었던 것이다.그는 자신의 우려대로 살아서 다시 고향땅을 밟지 못했다.그러나 자신의 죽음으로 국가를 구했다.주검으로 고향에 돌아온 그는 시가지 북부 오크리지 묘지 중앙에 우뚝 서 스프링필드 시가지를 내려다보고 있다. 스프링필드는 링컨이 변호사로,주의원,연방하원의원 등 공직생활을 하며 정치적 입지를 키운 곳이다.시 중심지 연방청사에서 5블럭 떨어진 곳에 위치한 그의 사저일대가 국립역사공원으로 지정돼 있으며,그의 변호사 사무실인 링컨­헌돈 로 오피스(law office),그가 출석하던 제일장로교회에는 그의 가족들이 즐겨 앉던 자리가 보존돼 있는 등 미 전역 10여개 도시에 흩어져 있는 링컨 사적지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잘 보존돼 있다. 특히 링컨이 연방분열을 경고한 ‘분열된 집안’이라는 연설로 유명한 옛 주의사당인 올드 스테이트 캐피틀에는 오늘날 미국내 최대의 링컨자료실이있는 일리노이 주립박물관이 들어서 있다.헨리­호너 링컨 콜렉션이라 이름지어진 이 박물관 내의 링컨 자료실은 소장하고 있는 관련 자료의 방대함은 물론 희귀자료를 가장 많이 보관하고 있어 미국내 링컨니아나(링컨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센터 역할을 하고 있다. ○취임 37일만에 전쟁 발발 대통령 취임후 불과 37일만에 남북전쟁이 발발함으로써 링컨은 임기 내내 전쟁을 이끌어야 했다.이 기간중 링컨은 줄곧 참모들로부터 또는 많은 북부의 국민들로부터도 전쟁종식의 압력을 받았다.그러나 링컨의 신념은 확실했다.전쟁의 종식은 연방의 분열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며 그것은 미합중국의 존립 이유를 뿌리채 흔드는 것이었다.링컨은 기회있을 때마다 미 건국역사에서 ‘연방’은 ‘헌법’보다도 앞선 것임을 주장했다.그리고 몇몇 주의 영원한 분리는 불가능함을 강조하며 남부측에 타협을 호소했다. 그러나 미시시피 상원의원 출신의 남부대통령 제퍼슨 데이비스 역시 물러설 수 없었다.특히 그는 웨스트포인트 출신으로 멕시코전쟁에서 지휘관을 역임한 바 있는 전략가였다. 당초에는 남부의 여러가지 수치상 열세로 전쟁이 수개월내 끝날 것으로 예측됐다.그러나 초기 ‘불 런’전투에서 북부군의 대패는 전쟁의 장기화를 예고했다.전쟁 내내 링컨은 남북 양측 군대의 주전선이 메릴랜드주와 버지니아주 경계의 포토맥강을 중심으로 형성됨에 따라 야전군 지휘소처럼 변해 버린 워싱턴에서 북부군의 전략수립과 지휘관 찾기에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전쟁관련 도서 탐독 미시시피강을 서쪽 경계로 해 동쪽으로 애팔래치아산맥 사이에 광범위하게 형성된 전선에서 서부에는 율리시즈 그랜트 장군과 티컴셰 셔만 장군 등이 있었지만 동부전선에는 남부군의 용장,로버트 리 장군과 스톤월 잭슨 장군에 맞설만한 지휘관이 없었던 것이다.그는 또 군사전략 수립을 위해 의회도서관에서 전쟁의 기술에 관련된 책들을 빌려다 닥치는 대로 읽었다. 전쟁이 진행되면서 링컨은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에 부닥치게 됐다.전쟁의 시작은 노예문제에서 비롯됐지만 그 목표설정에 관한 것이었다.일부 공화당 의원들은 궁극적으로 노예해방까지 가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민주당을 비롯한 대부분의 분위기는 연방회복으로 제한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노예제도가 남부의 경제적 부의 원천이라고 생각했으며 따라서 남부를 패배시키기 위해서는 노예제 폐지를 선결과제로 간주했다.62년 여름,그가 내각에서 노예해방 선언의사를 밝혔을 때 많은 각료들이 반대했다.그러나 링컨은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그해 9월 앤티담 전투에서 북부군이 승기를 잡자 바로 이튿날 준비했던 노예해방선언을 감행했다. ○노예해방 북부도 반대 노예해방선언은 그러나 남부는 물론 북부의 반대도 불러 일으켰다.북부 공업지대의 많은 근로자들이 노예들의 해방으로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길 것을 두려워 했기 때문이다.또한 북부의 승리가 확실시 되면서 남부주들을 포용하기 위해 내놓은 링컨의 온건한 화합정책들은 응징과 처벌을 요구하는 북부 과격파들의 건센 반발 가져왔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가정의 연이은 비극은 링컨에게 더 큰 시련을 안겨주었다.부인 메리 토드 여사와의 사이에 둔 네아들중 한 아들은 일찍 죽었고 백악관에서만 두 아들이 병으로 죽게 되자 메리 여사는 심한 정신적 충격으로 한때 정신과 치료를 받기까지 할 정도였다.오직 한 아들 로버트만이 성장하여 후에 가필드 행정부에서 전쟁장관을 지냈다. 링컨이 이같은 암담한 안팎의 불행을 이기고 남북전쟁과 노예해방에 정열적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탈출구는 일상화된 그의 유머감각 이었다고 역사가들은 지적한다.그는 아무리 심각한 회의도 조크와 유머로 시작했으며 순간적인 재치로 스트레스를 풀곤 했다.그가 엄숙하게 노예해방선언의 의사를 물었던 각료회의도 유머 한토막을 읽는 것으로 시작했다는 것은 유명하다. 링컨은 당대에는 국민들에게 그리 인기있는 대통령은 아니었다.전쟁 수행을 위해 끊임없이 국민을 독려하고 재촉해야 했기 때문이었다.그러나 ‘정직한 에이브’라고 그의 이름이 정직의 대명사가 될 정도로 그는 국민에게 솔직했으며 결국 그는 192㎝의키에서 뿐 아니라 미 역대 대통령중 가장 우뚝 선 대통령으로 남게 된 것이다. ◎킴 바우어 미 일리노이 주립박물관 헨리­호너 링컨자료 실장/링컨의 인간평등 정신 역사에 우뚝/학자 800명·기관 50개 링컨학회 결성/“대통령학 가장 흥미있고 미래 지향적” 【스프링필드(미 일리노이주)=나윤도 특파원】 미국내 최대 링컨 관련자료 소장 도서관으로 알려진 일리노이 주립박물관의 링컨자료실장 킴 바우어 박사는 “링컨 대통령은 많은 학자들의 새로운 연구를 통해 해가 갈수록 그 업적이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되고 있다며 대통령학이야말로 가장 흥미진진하고 미래지향적 학문”이라고 강조했다. ­모든 조사에서 링컨 대통령이 미국 역대 대통령중 가장 훌륭한 대통령으로 부동의 자리를 점하고 있는 이유는. ▲우선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끝내 연방을 지켜낸 그의 소신과 노예해방을 가져온 그의 투철한 인간평등 정신 때문으로 볼 수 있다.더우기 그의 어려운 성장환경과 정직한 성품은 누구에게든 자신감과 신뢰감을 안겨 준다. ­미국내 링컨 연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링컨은 켄터키의 통나무집 시절서부터 인디애나를 거쳐 일리노이 스프링필드에 이르기까지 많은 곳에서 성장했다.그리고 백악관 생활과 남북전쟁 당시 여러차례의 전장 방문 등 많은 자료들이 광범위하게 흩어져 있기 때문에 학자들의 상호보완 연구가 중요하다.현재 800여명의 학자와 50개 소장기관으로 에이브러햄 링컨 학회가 결성돼 있고 매년 심포지움과 학회지 등을 통해 200편 이상의 논문과 책들이 나오고 있다. ­헨리­호너 링컨자료실은 어떤 곳인가. ▲모든 분야의 링컨 자료를 소장하고 있지만 링컨의 대통령 이전 자료는 최대의 소장처로 알려져 있다.현재도 개인적인 링컨 자료 소장자들이 많이 있으며 그들로부터의 기증이나 구매 등을 활발히 하고 있다.지난해만 해도 일리노이의 기업가 클레망 스톤씨로부터 200여점,미니애폴리스 공공도서관으로부터 200여점,최대 여성 수장가인 제인 하만드 여사로부터 링컨의 어린시절유품 수십점을 기증받는 등 계속 소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대통령학은 과거지향적 학문이 아닌가. ▲과거 대통령에 대한 철저하고 정확한 연구는 현재와 미래의 국민과 대통령에게 과거의 경험을 부여해 준다는 측면에서 미래지향적 학문으로 볼 수 있다.
  • 새 발굴 자료와 증언으로 다시쓰는 현대사(대한민국 50년:1)

    ◎바람속에 밝힌 등불/1948년 8월15일 감격의 새아침 열리다/유엔 총선감시단 평양행 좌절되고/좌·우 이념대립속 ‘5·10선거’ 실시/해방 3년만에 반공정권 탄생/미 군정 정책 혼선으로 우익진영은 분열되고 북은 빨치산까지 양성/정부 권력구조 싸고 이승만·한민당 또 갈등/끝내 ‘대통령중심제’로 올해 1998년은 대한민국 정부를 선포한지 50주년이 되는 매우 뜻 깊은 해다.그 반세기는 우리가 현실적으로 살아오면서 겪은 파란만장한 당대사다.그럼에도 비민주적 요소가 다분했던 여러 공화국의 정치상황 때문에 가려진 부분을 다 들추어내지는 못했다.또 전통주의의 수정주의에 입각한 학계의 양극화 현상은 현대사가 더러 왜곡 기술되는 오류도 드러냈다.그래서 서울신문은 새로 발굴한 자료와 생존자의 증언으로 엮은 주간기획물 ‘대한민국 50년’을 연재키로 했다.이 시리즈는 우선 대한민국 50년 역사속의 진실을 객관적으로 밝히는데 초점을 맞추었다.이는 지나간 역사를 통해 다가오는 21세기 미래사를 발전적으로 이끄는 작업의 하나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1948년 새해가 밝았다.세밑 그믐날 잔뜩 찌푸렸던 하늘도 활짝 개었다.수은주는 영하 11도7분까지 내려가 기온은 쌀쌀했지만,날씨만큼은 쾌청했다. 우리 민족에게 새해 원단은 늘 각별한 것이었다.해방을 맞고나서 세번째 돌아온 새해는 더욱 그러했다. 전해인 1947년 11월14일 유엔 총회가 한국독립을 위한 계획안을 채택해 두었던 터라 고무적일 수 밖에 없었다.유엔총회의 한국독립 계획안은 1948년 3월31일까지 남북한 전역에서 총선거를 실시,국회 및 정부를 조직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은 1947년 봄부터 한국문제의 유엔 이관을 구상했다.미국의 대외정책문서(FRUS)에 나타난 이같은 구상은 남한의 단독정부수립을 추진할 수도 있다는 각오를 시사하는 것이었다.미·소의 이해가 엇갈리는 상황에서 한반도문제를 합의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기도 했다.소련은 한반도문제의 유엔 이관을 처음부터 반대하고 나섰다.그 대신 1948년초까지 남북한 주둔 미·소병력을 동시에 철수,한국인들 스스로가 외부개입 없이 정부를 수립하자는 제의를 내놓았다. 소련의 제의는 명분상 설득력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그러나 당시 남북한 현실을 비교하면 남한쪽에는 위험한 것이었다.북한에는 이미 소련의 지원에 따라 사실상의 정부로 보아도 무방할 인민위원회가 구성되어 있었다.이와는 달리 남한에는 권한과 지지기반이 취약한 남조선 과도정부가 있기는 했다.그러나 미군정의 일관된 정책이 없었기 때문에 우익 민족진영은 분열된 상태였고,북한의 조정을 받는 강한 공산세력이 여전히 존재했다. 그래서 1948년 새해 첫날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큰 사건 하나를 딛고 넘어갔다.이날 경무부장 조병옥은 이른바 ‘인민해방군’사건을 서둘러 발표했다.그런 어수선한 판에 1월4일에는 38선을 경비하는 북한 보안대원들로부터 황해도 연백경찰서 장곡지서가 습격되었다.그리고 15일에는 개성경찰서 여현지서가 피습되는 가운데 남로당 출신으로 이루어진 야산대라는 이름의 빨치산이 전국에서 설쳤다.이들 야산대는 소규모 빨치산에 불과했다.그러나 북한은 대규모 게릴라전을 위해 이 해에 평남 강동학원을 차렸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어떻든 유엔 감시아래 한반도 전역에서 총선거를 실시키로 한 유엔의 계획은 착착 진행되었다.이에따라 총선을 감시할 유엔한국임시위원단(유엔한위·UNTCOK)이 1월8일 김포비행장을 거쳐 서울로 들어왔다.서울에서는 영등포공업지대 근로자들이 임금인상과 고용직 근로자들의 복직을 요구하는 파업에 들어간 날이었지만,시민들의 환영은 대단했다.이날 KPS메논 인도 대표와 오스트레일리아·시리아 등 3개국 대표가 먼저 도착한데 이어 캐나다·프랑스·필리핀·엘살바도르 대표가 29일까지 서울에 왔다.유엔한위 1진이 서울에 도착한 다음날 유엔한위가 북한에 한 발도 못 들여놓을 것이라는 김일성 발언이 나왔다.그 때만해도 의례히 해보는 상투어 정도로 여겼다.그런데 미군정연락장교편에 평양으로 보낸 유엔한위의 입북신청은 소련군사령 참모장에 의해 거절되었던 것이다. 소련의 거부로 남북한 동시 총선거를 재검토할 수 밖에 없었다.유엔한위는 남한에서만이라도 단독선거를 실시하는 문제를 놓고 미군정과남한 정치지도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연속회담을 열었다.우파에서는 남한 단독선거를 환영했으나 우익중에서 김구의 한국독립당은 반대했다.그리고 김규식을 주축으로 한 중도파도 통일을 가로막을 수도 있다는 이유로 반대입장에 섰다.좌익도 물론 반대했다. 유엔한위는 남한 단독선거가 유엔 결의와 부합되는지를 놓고 고심했다.그러다 이 문제를 유엔 소총회에 넘겼다.소총회는 2월19일 유엔한위의 접촉이 가능한 지역(남한)에서만이라 우선 총선을 실시하자는 미국의 안을 받아들였다.투표결과는 미국 입장에 대한 찬성 31,반대 2,기권 11로 나타났다.유엔 소총회가 남한 단독선거쪽으로 손을 들어주자 유엔한위는 곧 바로선거준비에 들어갔다.그리고 정치권에서도 이승만 중심의 우익진영이 발빠른 움직임을 보였다. 미군정은 우익진영과 협조하여 선거준비에 들어가는 한편 3월17일에는 국회의원 선거법을 제정발표했다.전통적인 민주선거원리에 입각한 이 선거법은 21살 이상의 남녀 모두를 유권자로 규정했다.이 선거법에 나타난 특이한 점은 일제에 빌붙어살았던 부일협력자의 선거권 및 피선거권 박탈이다.새 정부의 민족정통성 확립을 위한 것이었는데,일제 청산은 뒷날 이승만정권에 의해 퇴색되었다.선거일은 처음 5월9일로 정했으나 일요일 투표를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다음날인 10일로 바꾸었다. 단독선거를 반대하면서 남북협상에 운명을 걸고 평양으로 떠났던 김구와 김규식이 5월5일 서울로 돌아왔다.5·10선거를 방해하려는 북한 의도에 말려들었을 뿐 남북협상에서 얻은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5·10선거 역시 예상했던 대로 평온하지 못한 분위기속에 진행되었다. 총선거에는 대한독립촉성회,한민당,대동청년단 말고도 45개 군소정당이 나왔다.특히 무소속이 많아 전체 당선자 198명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85명이 무소속이었다.이어 대한독립촉성회가 55명,한민당이 29명,대동청년단이 12명,다른 군소정당과 사회단체가 19명의 국회의원을 냈다.이들이 바로 제헌의원인데,국회는 5월31일에 개원되었다.이날 국회는 이승만을 의장에,신익희와 김동원을 부의장에 선출했다. 제헌국회는 7월17일에 열렸다.이날 국회는 이승만의 주장대로 대통령중심제를 권력구조로한 헌법을 통과시켰다.그리고 7월20일에는 헌법에 따라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이시영을 부통령으로 선출했다.7월24일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승만은 헌법 골격을 가지고 갈등을 빚었던 한민당과 또 격돌을 벌였다.이승만은 귀국 이후부터 자신을 추종하면서 대통령으로까지 밀어준 한민당을 각료 선임에서 소외시켰던 것이다.그래서 민국당에 이어 민주당으로 개편한 한민당의 뿌리는 1960년 4·19혁명기까지 이승만과 영원한 정적이 되었다. 대한민국정부 수립 선포식은 8월15일 상오10시쯤 중앙청 광장에서 베풀었다.미군사령관 J R 하지 중장은 미군정 폐지를 공식 선언했다.해방을 맞은지 꼭 3년만에 독립정부가 출범한 것이다. 극심한 혼란속에 이상주의적 민족주의자들과 군정의 갈등,공산주의 세력들과의 이데올로기 대립을 극복하고 어렵사리 태어났다.그러나 제1공화국이라고도 말하는 내정체제하의 반공정권은 그 장래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그로부터 50년,꼭 반세기를 맞은오늘 험란한 민주화의 길을 걸어온 야당지도자가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새 정부가 막 돛을 올릴 참이다.돌이켜 보면 대한민국이 걸어온 반세기의 역사는 파란만장했다.그 역사속에는 비민주적 요소가 다분한 여러 단계의 공화국이 기록되었다. □특별취재반 황규호 문화부 부국장급 이용원 문화부 차장 최병열 문화부 차장급 김종면 문화부 기자 박정현 정치부 기자 서창아 정치부 기자 강선임 DB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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