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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故 김선일씨 조롱했던 美 CBS 진행자 아이머스 인종차별 망언으로 불명예 퇴출

    타임지 선정 ‘영향력 있는 미국인 25명’에 들 정도로 유명한 라디오쇼 진행자 단 아이머스(66)가 인종차별 발언 파문으로 끝내 30년 방송인생을 불명예로 마쳤다. CBS 레슬리 문즈 회장은 12일(현지시간) “아이머스가 한 언어들이 젊은이들, 특히 이 사회에서 자기 길을 개척하려는 유색의 여성들에게 끼친 영향을 논의한 끝에 아이머스의 해고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평소 도발적인 언급으로 유명한 아이머스는 지난 4일 뉴욕지역의 스포츠 라디오인 WFAN-AM에서 제작되는 자신의 아침 프로그램 ‘아이머스 인 더 모닝’에서 러트거스 대학 여자농구팀 선수들을 “곱슬곱슬한 머리의(흑인을 비하하는 표현) 창녀들”이라고 불러 흑인들과 여성계로부터 강한 비난을 받아왔다. 러트거스팀은 이 대학 수석 졸업생을 포함하고 있는 등 우수 여학생들로 구성됐다. 이같은 발언이 나간 뒤 흑인 민권지도자인 제시 잭슨 목사 등은 시카고 NBC 타워에서 “인종 폭력, 성차별 발언”이라며 아이머스 퇴진 시위를 벌였고, 방송을 송출한 MSNBC 텔레비전 네트워크의 소유주인 NBC와 WFAN을 소유하고 있는 CBS, 그리고 광고주들에게 아이머스의 해고를 요구해 왔다. 이같은 비난 여론으로 대형 광고주들은 광고중단 조치를 내렸다. 아이머스는 지난 2004년 김선일씨 납치사건 때도 이 방송에서 다른 출연자와 김씨 상황을 농담 소재로 삼아 비난을 받았었다. 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6월항쟁 20주년 ‘그날의 함성’ 그 이후]“자랑스런 역사 한획”

    [6월항쟁 20주년 ‘그날의 함성’ 그 이후]“자랑스런 역사 한획”

    민주적 헌법을 두고도 숨어서 민주주의를 그리워해야 했던 시절.20년 전 6월이었다. 유시춘 전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은 12일 참으로 오랜만에 서울시청앞 광장을 찾았다. 당시 항쟁 지도부의 상임집행위원에서 지금은 6·10항쟁 20주년사업 추진위원회 집행위원장이 되어 그 당시를 떠올렸다. 하루 뒤인 13일은 전두환 정권이 일체의 개헌논의를 금지하고 ‘체육관 선거’로 권력을 세습하겠다는 ‘4·13호헌조치’를 발표한 날이다. 고(故)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이후 “고문정권 물러가라.”는 분노의 외침이 정국을 뒤흔들자 군사정권이 ‘구국의 결단’을 시도한 것이다.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다. 들불처럼 일어난 국민들은 길고 어두운 군사독재의 밤을 뒤바꿔놓는 대장정을 시작했다. 유 집행위원장은 “4·13 호헌조치는 국민들에게 더 이상 군사정권과의 타협은 불가능하다는 결심을 갖게 했다.”고 말했다. 87년 5월18일, 광주항쟁 7주년을 맞아 희생자를 위한 추모미사가 열렸던 서울 명동성당. 당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김승훈 대표가 떨리는 목소리로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은 조작됐다.”는 한 장의 성명서를 낭독했다. 인천사태 배후조종 혐의로 구속된 민통련 이부영(전 열린우리당 의장) 사무처장이 화장지에 깨알같이 정황을 적어 사제단에 넘겨준 내용이다. 사제단의 폭로는 전국의 ‘호헌철폐 독재타도’ 함성에 불을 붙였다.6·10항쟁을 이끈 지도부인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국본)가 결성되는 계기가 됐다. 우리 역사를 뒤흔든 3대 항쟁은 4·19와 5·18,6·10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4·19와 5·18항쟁에는 지도부가 없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지도부를 먼저 구성한 것은 민주화운동의 ‘진화’였다. 유 집행위원장은 국본에서 기록의 임무를 맡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시 부산지역 국본 집행위원장이었다. 국본 결성식을 치르기로 한 87년 5월27일 아침. 장소도, 시간도 정할 수 없었다. 종로골목에 숨어 대기하고 있던 참석자들은 형사들의 감시를 따돌리고 ‘향린교회’라고만 적힌 쪽지를 서로에게 건네주며 이동했다. 무사히 결성식을 치른 지도부는 전두환 정권이 노태우씨를 민정당 대통령 후보로 세우기로 했던 6월10일 맞불을 놓기로 결정했다. 슬로건은 ‘호헌철폐 독재타도’였다. 유 집행위원장은 박종철 사건 이후 유인물을 나르기 위해 운전면허증을 따야 했고, 유치원에 다니던 두 아이들은 ‘운동권’ 엄마를 둔 덕에 셀 수 없이 많은 끼니를 마른 라면으로 떼워야 했다며 잠시 목이 멨다. 해직교사, 운동권 작가, 민가협 활동가 유시춘은 온갖 집회의 선언문을 쓰고, 교도소를 오가며 수많은 동지들을 면회하는 데 청춘을 바쳤다. 그는 거사 당일인 6월10일, 성공회 대문을 박차고 나오는 길에 곧바로 연행됐다. 남대문서와 구로서, 청량리서를 거쳐 시경 대공분실로 끌려가면서 밤이 깊도록 군부독재에 정면으로 맞서는 시위현장을 목격했다. 마치 “어두운 방을 가르고 들어오는 칼날 같은 빛을 본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눈앞 이익 급급한 정치권은 6월정신 배신 운전자는 경적으로, 여성들은 스카프로 항쟁의 물결에 동참했다. 그것은 군부독재체제의 파열음이었다. 그는 6월 항쟁과 결혼 10주년 기념일을 감옥에서 보냈지만 직선제 개헌 쟁취를 위해 뜨거운 열정을 바쳤던 국민들의 힘으로 긴 고통을 이겨냈다고 한다. 그가 당시 항쟁에 참여했던 40여명의 소회를 원고지 6000여장 분량으로 정리하는 기록사업에 몰두하는 까닭이다. 이제 성년을 맞은 6월항쟁. 남아 있는 마음의 빚이 있을 법도 하다. 그는 당시 범야권이 사실상의 승리를 거두고도 후보 분열로 지지율 36%짜리 여당 후보에게 결국 정권을 내줘, 군부독재의 합법적 연장을 가져왔다는 비극을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4·19와 5·18뒤에는 5·16과 신군부 출현이라는 즉각적 반동이 있었다.”면서 “6월항쟁 이후에는 그 누구도 역사를 되돌리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절차적 민주화의 길로 들어섰다는 자부심으로 들렸다. 그러면서 “당시 항쟁의 적자인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 등 승리의 기억을 갖고 있는 정치권이 정파적 이익에 갇혀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다. 국민을 보지 않고 눈앞의 이기심에 갇혀 난맥상을 초래하는 자체가 6월 정신을 배신한다는 것이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6월항쟁 20주년 ‘그날의 함성’ 그 이후] “시민운동 거듭나야”

    [6월항쟁 20주년 ‘그날의 함성’ 그 이후] “시민운동 거듭나야”

    장애인, 이주노동자, 성적 소수자, 양심수, 구속 수감자, 복지시설 수용자, 비정규직 노동자…. 박래군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가 살아가는 이유인 사람이다. 달리 말해 권력과 독재와 불의와의 싸움에 평생을 건 사람이라고 하겠다. 시커먼 얼굴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말하는 박씨의 인생 밑바닥에도 6·10항쟁의 도도한 물줄기가 흐르고 있었다. 87년 6월은 평생 노동현장을 지키고 싶었던 ‘촌놈’을 인권운동가로 다시 태어나게 했다. 박씨는 연세대 국문과에 입학하자마자 학생운동권이 됐고 강제징집을 당했으며 감옥을 갔다온 전형적인 투사였다. 그에게 87년 6월은 어떤 의미일까. 박씨는 86년 5월30일 해고 노동자 16명과 함께 한미은행 서울 영등포 지점을 점거농성한 죄로 2년을 선고받고 대전교도소에 수감됐다. 항소심 선고를 받고 지프차로 대전교도소에 이감될 때 4·13호헌조치를 듣게 됐다고 한다. ‘이제 죽었구나.’하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고 털어놨다.6·10항쟁도 고스란히 감옥에서 보냈다. 안 그래도 감옥은 정치상황에 예민한 공간인데,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이후에는 더더욱 바깥의 정황을 전혀 확인할 수 없었다고 한다. 거기다 양심수의 희망까지 섞여 있던 때라 상황의 실체도 분명하지 않았던 시기였다. 박씨는 “박종철 사건 때문인지 교도관들이 군복을 입고 총을 메고 근무하기에 뭐가 있긴 있나 보다라고만 여겼다.”고 말했다. 좀 지나니 교도소 안으로 최루가스가 날아오는 걸 보고 박씨는 비로소 ‘4·19’때 보다 더 큰 시위가 있었다는 것을 체감했다.6·10항쟁에 굴복한 군부독재정권이 6·29선언을 내놓으며 백기를 든 덕에 박씨는 가석방됐다. 박씨는 6·10항쟁을 아프게 기억하고 있었다. 물론 시민운동가의 입장에서는 항쟁 이후 시민사회의 영역이 확장됐다는 낙관적인 평가도 해봄직하다. 그러나 항쟁의 성과가 고스란히 자유주의 정권으로 넘겨지면서 시민운동의 밑바닥부터 다져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박씨는 “군사독재를 깼다는 승리감은 곧바로 대선분열로 이어져 노태우정권의 집권으로 드러났다.”며 몇달 사이에 승리와 좌절을 동시에 겪었던 경험을 들려줬다.88년 4월 치러진 총선결과도 여소야대였다. 박씨는 환멸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88년 6월 숭실대 인문대 학생회장이었던 동생 고 박래전씨가 “광주는 살아 있다. 군사파쇼 타도하자.”며 분신하는 아픔도 겪어야 했다. 박씨는 노동운동 대신 유가협을 택했다. 특히 의문사 진상규명 투쟁에 몰두했다. 책임자 처벌과 배상 중심이던 의문사를 인권문제로 고민하던 시점이었다고 한다.93년 빈에서 열린 세계인권대회에 국내 인권단체로서는 처음으로 참석해 국내 의문사를 알리는 성과도 이뤄냈다. 박씨는 “이 대회를 다녀온 뒤 인권운동이 반독재 민주화투쟁에만 매몰돼 독자적인 운동으로 존재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내렸다.”고 한다. 박씨에게는 인권운동이 87년 6월정신이 남긴 민주화의 성과물이었다는 확신을 갖게 한 셈이다. ●6월정신 살려 ‘네트워크형´ 운동 필요 그는 6월 정신이 많은 의미를 던져주고서도 대선을 앞두고 국본이 분열했던 불철저함과, 군사독재정권을 결국 막지 못한 점은 후회로 남아 있다고 평가했다. 항쟁의 기세를 몰아 우리 사회가 청산해야 할 과제를 뿌리뽑지 못했다는 반성이기도 하다. 그는 “집시법, 국보법, 노동악법이 여전히 살아 있지 않나.”고 반문했다. 6월 정신이 시대와 사회의 변화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항변은 특히 정치권에 대한 통렬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그는 “6·10항쟁을 통해 제시했던 국민들의 꿈을 배신하고 민주화운동의 훈장을 단 채 개인적 출세만 다졌던 사람들을 용서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6월 정신의 함의처럼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네트워크형’ 운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박씨는 한때 80년의 달력을 90년대로 바꿔 걸 수 있을지조차 의심했었다. 그때마다 89년 모교 ‘연세지’에 기고했던 “산 사람과의 약속은 바꿀 수 있지만 죽은 사람과의 약속은 바꿀 수 없다.”는 글을 보며 며 87년 6월과 열사들 앞에서 했던 다짐을 떠올린다고 했다. 그때만큼 벅차게 신뢰하며 그때만큼 승리의 기억을 가졌던 때가 없다는 말과 함께.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6월항쟁 20주년 ‘그날의 함성’ 그 이후] (1) 제도권 안팎에서 본 ‘그날’

    [6월항쟁 20주년 ‘그날의 함성’ 그 이후] (1) 제도권 안팎에서 본 ‘그날’

    20년 전 오늘은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된 날입니다.1987년 4월13일 전두환 대통령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에 대한 국민의 간절한 열망을 무시하고 간선제를 유지하겠다는 ‘4·13 호헌 조치’를 선언했습니다. 민심은 끓어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5월18일에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그해 1월 숨진 서울대생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이 은폐·조작됐다고 발표했습니다. 6월9일에는 연세대생 이한열군이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중태에 빠졌습니다. 군부독재 종식 운동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습니다. 넥타이를 맨 회사원들까지 가세했습니다.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표이자 대선 후보는 결국 6월29일 대통령 직선제 개헌 등을 포함하는 6·29선언을 발표합니다. 6월 항쟁은 대중의 힘으로 군부독재를 물리치고 민주화 투쟁을 승리로 이끈 소중한 역사적 경험입니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오늘 그 한계에 대해서도 활발하게 논의가 전개되고 있습니다. 사회·경제적 민주화에는 미흡했다는 지적이 그 예입니다. 서울신문은 20년이 지난 현시점에서 ‘6월 혁명’의 성과와 과제를 분석·평가하고 미래지향적으로 ‘미완의 혁명’을 완성해 나가고자 하는 시리즈를 주 1회씩 10여회에 걸쳐 싣습니다.
  • [사회플러스] “코 골지마” 깨우자 상해치사

    서울 중부경찰서는 10일 사우나에서 코를 골지 말라며 잠을 깨운 40대 남자를 때려 장파열로 숨지게 한 김모(47·자영업자)씨를 상해치사 혐의로 구속했다. 김씨는 지난달 22일 오전 4시쯤 서울 중구 신당동 한 사우나 수면실에서 잠을 자고 있던 중 “왜 공중장소에서 코를 고느냐.”며 자신을 때려서 깨운 박모(46)씨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리고 배를 발로 마구 차, 병원으로 옮겨진 박씨가 결국 장파열로 숨지게한 혐의를 받고 있다.
  • 가정용 김치시장 잡아라

    가정용 김치시장에 한바탕 시장쟁탈의 회오리가 몰아칠 것 같다. 무엇보다도 올해는 식품업계의 양대산맥인 대상과 CJ가 김치사업을 본격화하는 첫 해다. 대상과 CJ는 지난해 말 각각 두산 식품사업부문(종가집 김치)과 하선정종합식품(하선정 김치)을 인수했다. 김치 사업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태세다. 풀무원·농협·동원 등 다른 업체들도 이에 맞춰 치열한 시장확대 전략에 동참할 것으로 보인다. CJ는 하선정 김치를 ‘CJ하선정 김치’로 새롭게 단장하고 포기김치, 남도식포기김치, 맛김치, 총각김치, 열무김치, 백김치, 깍두기 등 7개 제품군을 내놓았다. CJ는 “전통의 브랜드 하선정 김치에 지난 7년간 햇김치 사업을 해오면서 쌓은 원료구매, 절임, 염도관리, 발효숙성 등 노하우를 결합시켜 질 좋고 값 싼 김치를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CJ는 발효숙성 기술을 적용한 ‘햇김치’ 제품을 만들어 왔으나 백화점 등 프리미엄 시장에서만 판매해 시장 점유율이 1∼2%선에 그쳤다. 이번에 CJ하선정 김치로 대중적인 시장에 뛰어든 것이다. 연간 2000억원 규모인 국내 김치시장은 대상 ‘종가집’이 60∼70%대(시장조사에 따라 차이)로 압도적인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반면 CJ는 ‘햇김치’와 ‘하선정’을 합하더라도 3∼5%대에 불과하다. 하지만 김치를 향후 주력 신선식품 사업으로 정한 CJ가 기존 유통·배송망과 마케팅 노하우, 브랜드 파워, 연구개발(R&D) 능력 등의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할 경우 상당한 세력확대가 예상된다. 자금력을 앞세워 매장 수와 판매면적을 대폭 늘리고 다양한 할인 및 끼워주기 판촉에도 나설 것으로 보인다.CJ는 올해 매출 150억원으로 가정용 김치시장에서 3위에 오르고 2009년에는 2위를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대상 “당장은 판도변화 있을 수 없다.” 대상은 아직은 느긋하다는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시장 점유율 차이가 20배 수준에 이르는 데다 종가집 김치의 맛과 안전성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가 워낙 높아 당장 CJ가 판도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시장 2위는 풀무원으로 11∼12%를 차지하고 있다.2005년부터 지역 단위농협의 김치를 ‘아름찬’이라는 브랜드로 통합운영해 온 농협과 1995년부터 김치사업을 해 온 동원F&B는 각각 4∼5%대의 시장점유율을 나타내고 있다. ●업계간 경쟁 얼마나 가열될까 현재 김치시장은 발전요소와 한계요소를 동시에 갖고 있다. 소비자 요구에 맞춰 국산 농산물을 써야 돼 원가부담이 높고 철마다 가격 변동도 크다. 또 가정에서의 김치 소비가 점차 줄어들고 있는 데다 값싼 중국산이 밀려들고 있다. 김치 수입량은 2003년 2만 8915t에서 2005년 10만 9317t으로 폭증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국내 김치시장(2005년 말 2조 2400억원 추정)의 절반 이상인 1조 2730억원이 집에서 직접 담가먹는 시장이어서 향후 상품김치로 전환할 잠재 수요층이 두껍다. 된장·고추장 등 장류가 그랬듯 빠르게 사먹는 추세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 또 중국산 김치는 소비자들의 거부감이 커서 가정용으로 유통될 가능성이 낮다. 업계는 전통적인 포기김치, 맛김치, 총각김치, 열무김치, 깍두기 등 외에 보쌈김치, 백김치, 갓김치, 파김치, 고들빼기, 나박김치, 깻잎김치, 볶음김치, 양파장김치 등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업체들간 가격할인, 무료증정, 신제품 출시경쟁 등이 가열되면 소비자들로서야 선택과 혜택의 폭이 넓어지니 반길 일이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파워농촌으로 디자인하라/이상무 지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후 우리 농촌, 농업의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제 수천년간 이어져 온 우리 농업의 막을 내려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게 우려의 한 극단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우리 농업에서 희망의 싹을 틔우는 것은 그토록 어려워진 것인가. 눈을 세계로 돌려 보자. 눈 앞의 현실만 목도하지 말자는 얘기다. 우리보다 어려운 세계 각국의 농업 현실도 보고, 농업 강국들의 집적화된 농촌도 살펴 보면서 현안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힘을 키워 나가야 한다.‘파워 농촌으로 디자인하라’(이상무 지음, 도솔 펴냄)는 외국의 사례를 토대로 우리 농촌의 살 길을 모색한 책이다. 30년 가까이 농업 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한 핵심 관료 출신인 저자는 이 책에서 세계 각국의 농업과 농업개혁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 ●멕시코 반면교사·덴마크 벤치마킹 대상 세계 여러나라가 농업 문제를 어떻게 접근했고,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를 실증적으로 모색한다. 이는 철저하게 자신이 직접 찾아 보고, 확인한 내용만을 담보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책에는 세계 40여개국의 농촌 사례가 실려 있다. 우리와 비슷하거나, 못하거나, 월등한 농업과 농촌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았다. 책은 남아시아부터 유럽, 중앙아시아, 라틴아메리카, 동남아시아, 오세아니아, 미국, 일본, 중국 등 모두 9부로 구성돼 있다. 농업을 보호 대상으로만 여겨서는 제대로 된 대처 능력을 키우기 어렵다는 게 저자가 던지는 화두이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이후 영세농의 몰락을 가져온 멕시코의 사례는 반드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고, 생산부터 소비까지 완벽한 조합시스템으로 국가경쟁력을 구축한 덴마크는 벤치마킹의 대상이다. ●‘웰빙농촌´이 ‘파워농업´의 전제 우리와 비슷하게 ‘농촌황폐화’ 위기까지 치달았다가 친환경 유기농업으로 재도약한 영국 농업은 또 어떤가. 저자는 세계 각국의 농촌을 둘러본 것을 토대로 농촌 정책의 다양성을 구체적으로 요청하고 있다. 정책들은 궁극적으로 ‘웰빙 농촌’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고, 그것이 결국 ‘파워 농업’의 전제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농림부 고급관료를 지낸 농경제학자가 쓴 책이니 딱딱한 통계수치만 나열했으리라는 선입견은 첫 장부터 깨져 버린다. 한 나라의 역사와, 정치사를 거론한 뒤 농업의 현실을 거침없이 조망한다. 통계는 보조 수단에 불과하다. ●세계시장 통합·지방특색 전문화가 살 길 저자의 경북중 한 해 후배인 소설가 이윤기씨가 쓴 발문에는 딱딱하리라고 예상했던 이 책이 술술 읽히는 이유가 고스란히 들어 있다. 중학교 시절부터 저자는 이씨의 ‘우상’이었다. 발군의 인문학적 소양이 저자를 우상으로 삼게 만들었다고 이씨는 밝히고 있다. 농업 관료의 세계 각국 농촌 기행의 결론은 무엇일까. 저자는 세계화와 지방화를 합쳐 ‘세방화(glocalization)’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세계시장의 통합과 지방의 특색을 살리는 전문화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현실을 직시하고, 창의력을 갖추지 않으면 국경없는 무한경쟁에서 낙오될 수밖에 없다는 게 저자의 결론이다. 또 단순히 농업만을 주장해서는 웰빙 농촌의 길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어차피 개방이 불가피하다면 전문성을 갖춘 농업으로 즐기면서 진검승부를 가려볼 수 있지 않을까.332쪽,1만 2500원.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Local] 춘천 38층 컨벤션센터 백지화

    강원도 춘천시 삼천동에 38층 규모의 복합다기능 국제컨벤션센터를 지으려던 강원도의 민·외자유치사업이 사실상 폐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3일 강원도 등에 따르면 도는 최근 컨벤션센터 건립사업을 공식 폐기하자는 내용의 합의서를 추진업체인 WTC에너지그룹측에 전달했다. 도는 사업폐기 이유로 사업부지의 양도 및 인·허가 등 관련 대외기관들의 정상적인 협조를 얻기 어렵다는 것을 들었다. 이에 따라 강원도는 양해각서(MOU) 체결 효력을 정지시켰다. 또 WTC에너지그룹측이 그동안 사용한 비용에 대한 배상 청구에도 응하지 않기로 했다. 강원도 투자유치단 관계자는 “아직 양측이 합의서에 사인을 하지 않은 이상 최종적으로 결정된 것은 아니다.”면서도 “MOU 체결 이후 세부 계획 과정에서 서로 어긋나는 측면이 많았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 [사회플러스] ‘골프장 납치’ 3명 구속 기소

    경기도 H골프장 사장 납치사건을 수사중인 인천지검 특수부는 3일 이 사건을 주도한 김모(41) 변호사, 윤모(66)씨, 정모(39)씨 등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공동감금)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 “시민 안전 지키려 할 일 했을 뿐인데”

    한 교정공무원이 지하철 안에서 난동을 부리는 승객을 제압해 다른 승객의 안전을 지킨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화제다. 주인공은 서울 영등포구치소 수용기록과에 근무하는 김석주(40) 교사(교정직 8급 공무원). 지난 20일 오전 11시30분쯤, 김씨는 서울지하철 3호선을 이용해 서울중앙지법으로 향하고 있었다. 지하철이 고속터미널역에 다다를 무렵, 키 173cm가량 되는 남자가 욕설을 해가며 걸어오고 있었다. 그 남자는 다른 칸으로 이동하는 통로 문이 열리지 않자 발로 유리 창을 깨고 “죽여버리겠다.”고 했다. 유리 파편이 튀고 다른 승객까지 위험할 것 같아 붙잡은 뒤 교대역에서 공익근무요원에게 인계했다. 자칫 끔직한 사태로 번질 수도 있었지만 김씨의 용기 덕분에 모면할 수 있었다.김씨는 “순간 대구지하철 방화 사건이 떠올라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면서 “공연히 공치사를 하는 것 같다.”고 쑥스러워했다.홍성규 김민희기자 cool@seoul.co.kr
  • [한종태 정치전문기자의 정가 In&Out] 대선과 역술

    [한종태 정치전문기자의 정가 In&Out] 대선과 역술

    “올해부터 8년간 대운(大運)이 드는데 대세가 워낙 좋다.”(이명박 전 서울시장) “무궁화꽃이 나라를 뒤덮는다.”(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천운(天運)과 인운(人運)이 모두 다 있다.”(손학규 전 경기지사) “정해년인 올해는 ‘해중갑목(亥中甲木)’의 해로, 현재 물속에 숨어 있는 큰 나무(甲木)가 하반기에 떠오르며 여권에서 나올 것이다.” 대선 때만 되면 역술 얘기가 참 많이 나온다. 올해도 예외가 아니다. 누가 대운을 타고났느냐, 누가 청와대의 주인이 되느냐를 놓고 점괘가 난무한다. 어지러울 정도다.1997년이나 2002년에 비해 강도는 다소 떨어지지만, 역술인들도 이때만큼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왜 그럴까. 무엇보다 앞일의 불투명성과 피 말리는 경쟁에 따른 불안심리 때문이다. 후보들보다는 그쪽에 줄을 선 정치인들이 더 그렇다. 잘 알다시피 우리의 대선은 철저하게 승자의 독식 구조다. 패자 쪽에 줄을 선 현역 의원은 다음 총선 공천도 보장받기 힘들다. 요즘 여의도 정가에선 누가 되든 18대 총선의 대폭적인 물갈이를 예상한다. 한나라당에서는 영남권이 주 타깃이 될 것이란 소문이 그럴듯한 분석과 함께 나돈다. 전직 의원이나 당료 출신, 대학 교수 등 나머지 인사들도 자기가 도운 후보의 당락에 따라 팔자가 달라진다. 그렇다 보니 각 캠프 인사들은 알게 모르게 ‘용하다’는 역술인들을 찾는다고 한다. 사실 우리 정치사를 보면 정치 또는 선거와 역술은 밀접한 관계에 있다. 역대 정치인 중에 한 번 이상 점괘를 보지 않은 정치인은 없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중에서도 지금은 고인이 된 황락주 전 국회의장을 첫손가락에 꼽아야 할 듯싶다. 황 전 의장은 평상시에도 와이셔츠나 넥타이 색깔까지 역술가에게 자문하고 그대로 실행한 것으로 유명하다. 선거 때는 유세지역 순서나 교통편 등과 관련해 하루에도 몇 차례 점을 봤다고 한다. 점괘를 철저하게 신봉한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정치인이었다. 손 전 지사가 한나라당 탈당을 결심하게 된 데는 김지하 시인과 소설가 황석영씨의 역할이 컸다는 것은 다 알려진 사실. 한데 황석영씨는 향후 진로를 놓고 고심하던 손 전 지사를 만나 프랑스 역술가가 점친 손 전 지사의 올해 점괘를 전하며 당을 뛰쳐나올 것을 강력히 권유했다고 한다.6월이면 대운이 펼쳐지니까 더 이상 한나라당의 울타리에 연연하지 말라는 게 골자. 이 얘기는 손 전 지사 지인들에게 꽤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점술은 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잘 나오면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면 되는 것이고, 좋지 않으면 조금 더 조심하면 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심심풀이 정도에 그쳐야 한다. 1997년이나 2002년 대선 때도 그랬지만 점괘가 제대로 맞는 경우는 거의 없다. 부동의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이 전 시장의 승리를 점치는 역술인들이 별로 없는 것도 이를 방증하는 게 아닐까. 역술인들도 불확실성이 좀 더 많은 쪽에 베팅한다고 할까. 무엇보다 이런 현상은 후보별 줄서기나 눈치보기의 파생물이라고 본다. 후보는 물론 후보를 위해서 일한다면, 소신껏 정책을 개발하고 좀 더 국민들의 폐부를 들여다보는 노력을 기울이는 게 우선이다. 올 대선은 국민들의 신뢰 속에 제대로 나라를 이끌 힘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승자가 결정돼야 한다. jthan@seoul.co.kr
  • [인사]

    ■재정경제부 ◇고위공무원단 전보△경제정책국장 任鍾龍△재정정책심의관 姜炯旭△경제자유구역기획단 지원국장 崔鍾球■ 통일부 △남북산업협력팀장 鄭東文△문화교류〃 金桂鎭△남북경협총괄〃 裵光福△이산가족〃 鄭巢云△정착지원〃 李正玉△정세분석〃 姜錫勝△정치사회분석〃 李秉元△개성공단사업지원단 지원총괄〃 鄭俊熙△〃 개발기획〃 朴炯一△통일교육원 사이버교육〃 蘇俸奭△〃 지원관리〃 鄭承薰△〃 연구개발〃 郭柄采△경제회담〃 徐東薰△회담지원〃 金錫圭△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 관리후생〃 姜棋燦■ 한국도로공사 △감사 이재영■ KBS △경영본부 안전관리팀장 宋元燮△보도본부 국제팀 모스크바지국장 李春求■보험개발원△보험연구소장 전무 柳炯均△생명보험본부장 金庸柱△손해보험본부장 權興球△자동차보험본부장 李得周△기획관리본부 경영기획실장 金成浩△자동차기술연구소 기획조사실장 趙秉坤■현대종합상사◇승진△전무(경영기획실장) 김종원△상무보(베이징지사장) 전성수◇전보△기계차량본부장 정의욱△정보통신본부장 이창범△선박플랜트본부장 직무대행 겸 플랜트팀장 김기홍△인사총무팀장 이승권■ 서울평화상문화재단 △사무총장 崔燉星■ 서울보증보험 ◇전보 △마케팅실장 尹勝煥△구미지점장 盧在赫△여수〃 李龍善■ 한국교직원공제회 △상임감사 鄭樂鈞■ 평화문제연구소 △이사장 玄敬大△부이사장 申榮錫(총괄) 朴相贊(국내) 林官憲(해외)△소장 金明洙△부소장 孫賢守■ 고려대 △국제학부장 이재승△스페인라틴아메리카연구소장 민용태■ 동국대 (서울캠퍼스) △여성커리어개발센터장 이심열△학생상담〃 조상식△국제교육원 외국어교육센터 교육부장 윤현숙△〃 한국어교육센터 〃 박광현△동국포스트 부주간 김성중△문화학술원장 황종연△불교문화연구원장 강문선△생명과학〃 박정극△산학협력단 기술이전센터장 박형무△영상문화콘텐츠연구원장 이종대△황사·사막화방지연구소장 강호덕■ 한국야쿠르트 △대표이사 사장 양기락△부회장 김순무◇승진△상무 황치건 정종기■ 휠라코리아 △사장 이기호△부사장 정성식△상무이사보 양하준■ GLBH Holdings △사장 조영찬
  • [1일 TV 하이라이트]

    ●진실(YTN 오후 11시5분) 1970∼80년대 언론의 민주화 운동사를 되짚어 본다. 정부의 거스를 수 없는 명령과 강력한 통제만이 존재했던 유신시대에는 획일화된 보도만 있었다.74년 10월, 동아일보 기자들이 모여 자유언론 실천선언을 채택했다. 이런 움직임이 빠르게 확산돼 80년대까지 이어지는 언론 민주화 역사의 거대한 흐름을 이루게 된다. ●사랑의 공부방(EBS 오후 6시) 대전 신안동의 꿈동산 공부방을 찾아가 본다. 공부방 아이들의 기초학력 증진을 위한 대기만성 프로젝트에서는 다양한 기초학력진단을 통해 상황에 맞는 맞춤 학습법을 알려주고, 공부방 아이들의 고민을 들어 본다. 또한 고진감래 프로젝트에서는 가난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는 희승이의 소원을 들어준다. ●SBS스페셜(SBS 오후 11시5분) 다양하고 미묘한 맛의 차이를 짚어내는 인간의 미각 능력은 건강의 척도가 되지만 현대인들의 미각 능력은 나날이 퇴화되고 있다. 패스트푸드와 가공식품의 섭취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폭발적인 가공식품 섭취로 인한 아연 결핍과 그로 인한 고충을 알아보고, 우리 옛 밥상의 지혜를 알아본다. ●문희(MBC 오후 7시55분) 방숙희는 문희를 내쫓을 생각으로 냉장고·화장대 등 문희의 물건들을 내다 버리고, 문희네 집에 청혼하러 온 유진은 이 광경을 보게 된다. 유진이 인사를 온다는 말을 듣고 문희네 집에서 대기하고 있던 유진의 엄마는 문희에게 양심에 호소하며 과거가 있냐고 묻는다.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문희는 대답을 망설인다. ●최강! 울엄마(KBS2 오전 8시55분) 작문 과제인 유서쓰기에 열중하던 최강은 그동안 공부도 못하는 못난 아들 노릇만 해온 17년이 후회스럽고 죄송스럽다. 이제부터라도 부모님께 든든한 큰아들이 돼보겠다고 굳은 다짐을 한다. 같은 시각, 식당에서 불판을 닦느라 비지땀을 흘리고 있는 최강부는 오늘도 식당주인의 잔소리에 귀가 따갑다. ●역사기행(KBS1 오후 11시) 인구의 약 90%가 힌두교를 믿는 네팔은 2000년이 넘는 역사에도 불구하고 외부세계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은둔의 왕국이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네팔의 ‘구르카 용병’과 네팔속 힌두와 불교의 역사, 그리고 히말라야를 지나갔던 고승들의 천축국 직행로, 최근 불안을 겪고 있는 네팔의 정치사를 들여다본다.
  • [신연숙 대기자의 금요 초대석] Mr. 쓴소리 조순형 민주당 상임고문

    [신연숙 대기자의 금요 초대석] Mr. 쓴소리 조순형 민주당 상임고문

    재선거를 통해 국회에 재입성한 조순형(72·서울성북을) 민주당 상임고문의 ‘쓴소리’가 식을 줄 모른다. 작년에 ‘전효숙 파동’을 주도한 데 이어 올들어서는 전남 무안-신안 재·보선 후보자리를 꿰찬 DJ아들의 처신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인터뷰를 하자하니 국회도서관에서 보자고 했다. 지난해 국회도서관을 가장 많이 찾아 국회의장상을 탄 의원답다 싶었다. 부인과 두 자녀가 모두 연극계에서 일해서일까. 첨단 패션인 굵은 줄무늬 양복을 자연스럽게 소화해 칠순나이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원칙주의자답게 정계개편 등 예민한 질문에 답변도 거침없었다. ▶김홍업씨 공천을 뒤집는다는 건 비현실적인 얘기 아닐까요.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도리고, 그게 안되면 4·3전당대회에서 선출될 새 지도부가 재검토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DJ영향력 등 현실적 상황이 있다지만, 공당이라면 원칙을 지켜야죠. 당원, 민주당 지지계층, 언론 등 여론도 부정적이에요.” 동교동 측은 말려봤지만 잘 안됐다며 선거에서 심판을 받아 지역과 국가를 위해 좋은 봉사하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내놨었다. 조의원은 “국가와 지역을 위해 봉사하는 길이 국회의원밖에 없느냐.”며 “사면복권이라는 국민의 은혜를 입었다면 일정기간 속죄하고 사회공감대를 형성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여권 대통합 논의가 어지럽습니다. 정계개편은 어떻게 추진돼야 한다고 보는지요. “민주당은 2년 전 전당대회에서 열린우리당과 당대당 통합은 안 된다, 민주당의 정통성을 승계해야 한다, 통합은 민주당이 주도해야 한다는 것을 당론으로 정했습니다. 새 지도부가 선출되면 구체적 논의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이 세 원칙은 옳다고 봅니다. 추가한다면, 민주당 분당과 우리당 창당 주역은 국민 앞에 정식으로 사과하고, 통합신당 추진 목표는 정권 승계가 아니라 정권교체라는 데에 합의가 있어야 할 겁니다. 또한 통합신당이나 교섭단체를 구성할 땐 주요이념과 노선, 주요 국가정책에 대한 합의서가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최근 논의를 보면 통합 대상과 대선후보를 영입하는 문제에만 치중하고 있지 이런 문제의식은 전혀 없는 것 같아요.” ▶민주당 주도라면 민주당 정강으로 돌아가면 되는 것 아닌가요. “나는 여섯가지 이념, 노선을 확실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대한민국 건국의 정통성과 역사적 정체성 확인, 둘째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 확인, 셋째 반시장적, 반기업적 경제정책 기조 포기, 넷째 전시작전통제권 단독행사 유보 및 한미연합사 유지를 통한 한·미동맹 복원, 위헌적 4대입법 재검토, 법치 실천을 통한 국가기강 확립이 그것입니다.” 그는 2002년에 입수한 자료라며 독일 사민당과 녹색당의 연정합의문을 보여 주었다. 노선부터 시작해 국가정책 전반, 연립내각 구성, 권력 분배 등에 대해 120쪽에 걸쳐 세세히 기록하고 있었다. 연정이 이 정도니까 통합신당이라면 더 구체적인 것을 규정해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그런 내용이라면, 한나라당과 뭐가 다릅니까. “사실 이 정도 원칙이라면 대한민국의 합법적 정당이라면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것들이죠. 이것은 DJ시절 민주당도 벗어난 적이 없어요.” ▶전시작전권 문제는 이전 정부 때부터 논의되기 시작했고, 국보법 개정은 DJ도 언급하지 않았습니까. “평시 전작권에 대한 논의는 있었지만 전시에 대해서는 구체적 논의가 없었어요.2012년 등 시한을 정해서 논의한 적도 없죠. 국보법도 대체입법 공약은 갖고 있었지만 실제 추진은 안했었어요.” ▶탈당한 손학규 전 지사와 여권이 제휴할 수 있을까요. “좀 어렵다고 봅니다. 명분이 워낙 없고 여론도 부정적이잖아요.14년 동안 한나라당에서 3선의원, 장관 등 중요한 역할을 해 왔고, 며칠 전까지 탈당은 절대 있을 수 없다고 했다가 갑자기 뒤집은 입장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겠어요. 정계개편 움직임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정운찬 전 서울대총장의 여권후보 가능성은 어떻게 보는지. “지금 상황에선 대선 후보로서 어느정도 가능성을 갖고 있는지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본인이 입장을 확고히 한 다음 어떤 활동을 하느냐에 달려 있겠죠. 지금으로선 지명도도 낮고 서울대 총장, 학자로서의 업적이야 국민이 알 수도 없으니까.” ▶그런데도 정 전총장에게 공을 들이는 이유는 뭐라고 봅니까. “아무리 둘러봐도 여권후보 지지도가 5%도 안되잖습니까. 그러니까 정치 신인한테 눈을 돌릴 수밖에 없겠죠. 그동안은 고건 전총리였는데 중도낙마하니까 정 전총장이 그 대상이 된 거죠. 시민사회 제3의 인물들이야 국민들한텐 더 생소하죠.” ▶민주당은 다시 정권 창출할 뜻이 없는 겁니까. “국회의원 11명인 소수정당이지만 대선을 그냥 포기할 순 없죠. 대선에서 별 역할을 못한 정당은 총선에서도 성공할 수 없다는 게 우리 정치사의 교훈입니다. 통합신당 추진 움직임이 있지만, 우리의 세 가지 원칙이 지켜질지는 미지수예요. 그게 실패한다면 독자적인 후보를 내서, 승리는 못하더라도 연합 노선을 구축해보자는 분위기도 강한 편입니다.” ▶직접 대선에 출마해 볼 의향은 없는지요. “어쩌다 그런 얘기 듣기도 하는데, 저는 전혀 그런 생각해본 적 없어요. 우선 역량이 있는지 모르겠고요. 대선주자들이 예비단계에서 겪는 일 지켜보면서 저걸 어떻게 겪나, 소신껏 말하고 실천하며 살아왔는데 대선후보로 나서면 그게 가능할까, 안될 것 같거든요. 입법부에서 좋은 국회의원으로 최선을 다하고 제 인생을 마감하고 싶습니다.” ▶전효숙 전 헌재소장 내정자를 중도하차시키고 개인적으로 혹시 미안하다는 생각은 안해봤는지. “훌륭한 재판관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던 분인데, 그렇게 돼서 미안하게 생각해요. 그러나 이건 가장 중요한 헌법적 절차의 문제였기때문에 감내해야 했지요.” ▶국회의원들도 해마다 예산처리 법정기한을 넘기잖아요. 그게 낙마시킬 정도로 큰 문제였나요. “적격성 문제도 컸습니다. 코드인사였지요. 노 대통령과 사시 동기가 사무처장까지 합해 헌재 안에 4명이 될 판이었어요. 동급인 대법원장에 비해 사시기수가 18기나 뒤져 연륜에서 맞지 않는 것도 문제였지요. 처음부터 무리가 많은 인사였습니다.“ ▶탄핵 후 민주당 참패에 책임을 느끼셨는지요. “물론 그래서 당대표도 즉시 물러났지요.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그때 판단이 옳았다는 확신이 커집니다.” ‘쓴소리‘때문에 불이익도 많지만 그게 국회의원의 우선적인 역할이라고 믿는다는 ‘미스터 쓴소리’. 정계개편 국면에서 어떤 쓴소리들이 또 이어질지 궁금해진다. yshin@seoul.co.kr 사진 최해국기자 seaworld@seoul.co.kr ■ 그는 누구 1935년 유석 조병옥 선생(전 민주당 대표 최고위원)의 3남으로 충남 천안에서 출생(만2세). 서울고,서울대 법대 졸업.1981년 전두환 군부정권에서 정치활동이 금지된 형(고 조윤형 전 국회부의장)을 대신하여 서울 성북에서 11대 총선에 출마, 무소속으로 당선.이후 6선을 거듭하며 독자적 노선과 거침없는 언행으로 ‘미스터 쓴소리’란 별명을 얻었다.1985년 다른 무소속 의원 2명과 함께 현역의원으론 처음으로 민추협에 가입했고 1987년에는 후보단일화가 안되자 한겨레민주당을 창당, 낙선하기도 했다.1990년엔 3당합당에 반대,‘꼬마민주당’에 참여.2003년 민주당 대표로 선출돼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다 역풍을 맞기도 했다. 그러나 2006년 7·26재보선에서 재기.그해 말 전효숙 헌재소장 내정자 인사청문회에서 ‘헌재소장은 헌법재판관 중에서 임명한다’는 헌법 조항에 어긋난다고 지적, 결국 지명 철회를 끌어내기도 했다.
  • [눈에 띄네] KBS쿨FM ‘가요광장’ 새 DJ 홍진경

    [눈에 띄네] KBS쿨FM ‘가요광장’ 새 DJ 홍진경

    사업가로 할동하던 모델 출신 방송인 홍진경이 4년 만에 라디오 DJ로 돌아온다. 홍진경은 다음달 16일부터 낮 12시 KBS 쿨FM ‘가요광장’을 진행한다. 전통적으로 낮 12시에는 주부 등 여성 청취자를 기반으로 점심식사를 마친 직장인들이 가세해 ‘청취율 전쟁’이 벌어진다. 같은 시간대 MBC FM4U에서는 정선희가 ‘정오의 희망곡’을,KBS2 라디오에선 이영자·장동혁이 ‘싱싱한 12시’를,SBS 파워FM에선 최화정이 ‘파워타임’을 맡아 쟁쟁한 입담을 과시하고 있다. 방송을 떠났던 이유를 묻자 자신의 본래 모습이 아닌 작가나 PD의 의도에 의해 만들어진 모습만을 보여줘야 하는 데 큰 부담을 느껴서였다고. 소속사에 위약금까지 물어주며 방송을 떠난 뒤 결혼도 하고 김치사업에 뛰어들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녀는 “(방송을 떠난 뒤) 화장 안 해도 되고 다이어트도 신경 쓸 필요 없어 행복했다.”며 “어느 정도 자신감을 회복했다고 느낄 무렵 KBS에서 라디오 방송 진행 제의가 들어왔고 내 영혼을 편집 없이 보여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 출연을 결정했다.”고 복귀이유를 밝혔다. 홍진경은 “얼마 전까지 김치사업으로 배추 밭을 뛰어다니다 보니 방송 감각이 떨어졌을 수도 있지만 청취율 부담 없이 깊이 있는 방송으로 내 색깔을 찾아가고 싶다.”며 “앞으로 좋은 프로그램이 들어온다면 TV에도 출연해 볼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삼성 SDI, 보색설계 W패널 돌풍

    삼성SDI가 PDP의 특성에 ‘보색 설계’ 기술을 더해 만든 W시리즈 패널이 PDP TV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삼성SDI는 27일 “시장조사기관 NPD에 따르면 북미시장에서 지난해 11월 경쟁사인 M사의 PDP TV에 약 40%차로 뒤지고 있던 삼성전자의 PDP TV가 삼성SDI의 W패널을 사용한 이후 이달 들어 점유율이 경쟁사보다 6% 이상 올라 2주간 1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W패널은 기존 제품과 비교해 4000배 늘어난 281조의 색을 표현할 수 있으면서도 화면의 밝기를 의미하는 휘도(輝度)를 대폭 개선시켜 보다 선명한 화면을 구현할 수 있다고 삼성SDI는 덧붙였다. 시장조사기관인 디스플레이서치사가 발표한 ‘2007년 1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PDP 패널 수요는 2010년까지 연평균 18%씩 성장해 2010년에는 1937만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한편 SDI는 풀HD 수요 증가에 대처하기 위해 지난 2월 63인치 풀HD 패널 양산을 시작했다. 연내 50인치와 58인치에서도 풀HD 패널 양산을 본격화해 고품격 프리미엄 PDP 제조사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한다는 계획이다.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인사]

    ■ 국무조정실 ◇고위공무원단 임명 △제주특별자치도지원위원회사무처 산업진흥관 閔 基■ 교육인적자원부 △제주대 사무국장 김익수△금오공대 총무과장 이대열■ 국정홍보처 ◇고위공무원 임용 △해외홍보원 해외홍보정책관 金巨泰■ 우정사업본부 ◇부이사관△총무팀장 김영수 ◇서기관△우편사업단 우편정책팀장 남준현△〃우편정보기술팀장 이진영■ 헤럴드미디어 ◇승진 (부국장대우)△독자서비스국 이승섭(부장대우)△헤럴드경제 문화생활부(H104팀장) 이영란△코리아헤럴드 뉴미디어팀장 신용배 ◇전보 (헤럴드경제)△정치사회에디터 겸 정치부장 정재욱△산업〃 겸 산업1〃 권충원△문화〃 겸 문화생활〃 이경희△논설위원 이윤미 강근주(시대정신준비팀장 겸임)△편집부장 이범록△경제〃 조진래△증권〃 김영무△사회〃 직대 정덕상△산업2〃 〃 김화균△국제〃 〃 유근석(M&B국)△신매체준비팀장 김봉천■ 일요경제 △편집국장 金敬勳 △광고부장대우 朴東華 ■ 외환은행 ◇본부장△카드신용관리본부장 변동희 ◇지점장△구로디지털단지지점 신현세△길음뉴타운〃 김중업△삼성역〃 신현승 ◇본점부서장△글로벌상품개발부 고연욱△신용기획부 김용완 ◇본점팀장△인력개발부 한정덕■ 신영증권 (임원급)△APEX본부장 李長圭△영업1〃 申鉉都△영업2〃 全潤吉 (지점장)△부천 李相洙△분당 黃赫△안양 南奉鉉△송파 全益秀△신촌 車秉玟△APEX CLUB 잠실 金民淑 (부서장)△준법감시팀장 趙化俊△인사〃 柳必相△재무관리〃 李時福△Research Center 기업분석〃 韓承昊△감사실장 李仁守△금융상품부장 盧瀅植■ GM대우자동차 ◇전무 승진△ 기업홍보담당 김종도 ■ 두산중공업 ◇영입△전무 정준경△상무 임양규■ 미래에셋생명 ◇부장승진△재무컨설팅본부장 曺聖歡△금융프라자 본점장 楊宗錫△금융프라자 분당점장 金德洙△금융프라자 도곡〃 宋性彦△금융프라자 대구〃 金鍾基△명동복합지점장 金昌會△SKTFC〃 李明範△ 경인AM〃 成鍾允△대구AM〃 金炫玉△강남AM〃 金基泰△법인영업2팀장 金昌在△마케팅기획〃 黃光熙△일반보험U/W〃 李性德△일반계정운용2〃 姜恩圭△컨설팅2〃 洪淳昊△고객서비스〃 姜明鎭△퇴직연금운용〃 金鍾鎬△퇴직연금지원〃 李鐘一△인사〃 車相澤△총무〃 林銀澈△회계〃 徐柱錫△노사협력〃 李相都△퇴직연금연구소 수석연구원 孫盛東 ◇이동△마케팅기획부문장 文聖秀△AM영업〃 金鐘元△AM영업1본부장 李忠源△SFC영업〃 金柱鎰△AM영업4〃 金應相△강남지역본부 부본부장 金平規△FC영업팀장 金鍾欽△마케팅지원〃 趙輝九△법인영업1부문 2본부 4〃 朴昌秀△법인영업1부문 3본부 1〃 金秉錫△방카슈랑스1본부 1〃 韓炳錫△방카슈랑스1본부 5〃 金大遇△서초AM 지점장 姜奉秀△직할AM 〃 李鉉△금융프라자 수원〃 金貞道△금융프라자 신사〃 白承祐△금융프라자 광화문〃 曺大鎬△금융프라자 역삼중앙〃 吉裁完■ 엠파스 △리스팅사업본부장(상무) 박동욱
  • [신연숙 대기자의 금요 초대석] ‘세번 구속 세번 무죄’ 박주선 前의원

    [신연숙 대기자의 금요 초대석] ‘세번 구속 세번 무죄’ 박주선 前의원

    전 청와대 사정비서관의 제이유 사건 무혐의 처분 사례를 계기로 사법개혁의 필요성이 또한번 관심사로 떠올랐다. 노무현 대통령과 유시민 보건복지부장관, 문재인 청와대 비서실장은 국무회의에서 이 사건을 언급, 검찰권 남용을 견제하기 위한 형사소송법 개정 추진에 다시 한번 불을 지폈다. 박주선 전 의원은 검찰권 남용의 대표적 피해자.‘세번 구속, 세번 무죄’로 모든 것을 빼앗겼다 작년 서울시장 선거 후보자로 대중 앞에 다시 나섰던 전직 검사. 그를 만나 검찰권의 문제점과 제도적 개혁방안에 대해 들어보았다. ●검사 소영웅주의·수사평점제도 문제 ▶제이유 사건 연루 의혹을 받았던 이재순 전 청와대 사정비서관이 무혐의처분을 받은 데 이어 검찰이 이 전 비서관을 엮어 넣기 위해 허위진술을 강요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이른바 ‘검찰 살인’의 피해자로서 이 사건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요. “검찰 수사에 성역이 없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처럼 억울하게 기소가 됐다 무죄가 된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지 못하고, 아직도 검찰 조직 내에 소영웅주의와 매명(賣名)의식이 팽배해 있다는 사실에 아쉽고 안타까웠습니다. 누구를 표적으로 삼아, 고위공직자나 사회저명인사를 구속시켜 ‘한 건’ 하기 위해 참고인 등에게 나를 한 번 봐달라고 애걸복걸하는 검사란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왜 이런 식의 수사가 계속될까요. “검사의 소영웅주의, 공명심과 함께 수사평점제도도 원인이 됩니다. 중요사건을 수사하여 ‘한 건’하면 평가가 올라가거든요. 이번 사건에는 해당이 안되지만 정치권에 아부하려는 일부 검사들도 문제입니다. ▶전관예우란 말도 있는데, 거꾸로 ‘친정’이라 할 검찰에서 더 지독한 핍박을 당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2005년 5월 최종 판결이 났을 때 회견에서 기자들에게 취재좀 해 알려달라고 했던데요. “수사검찰 입장에서 죄가 있다면 검찰 출신 피의자라고 봐줘서는 안되겠지요. 그러나 제 경우 검찰의 독자적 판단이라기보다 정치적 압력이 있었다고 봅니다. 제 사건 수사 책임자들이 영전하거나 승진하고 있잖아요. 검사가 기소한 사건이 무죄판결이 났다면 그 검사는 오히려 책임을 져야지요. 옷로비 의혹 때는 정치권과 여론의 광풍을 잠재우기 위한 희생양이 됐고, 나라종금, 현대그룹 뇌물의혹 때는 민주당 고사작전에 피해를 본 것이지요. 검찰 쪽으로부터 외압얘기를 분명히 들었습니다.” 박 전 의원은 나라종금 사건 당시 현역 국회의원 체포동의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키지 않는다고 시민단체들까지 국회앞에서 체포조를 구성해 시위를 벌였던 일을 회상하며,“피의자의 명예와 인권을 이토록 짓밟을 수가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무죄판결은 났지만 검찰과 법원의 판단이 다른 것일 뿐이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당시 수사책임자였던 안대희씨는 대법관 청문회에서 ‘법원에서 무죄를 받았다고 역사적으로 그 일을 안했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검찰은 할 일을 다했는데 법원이 잘못했다는 듯, 정당성을 호도하고 견강부회하고 있는 거예요. 최소한 법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되지요. 민주 법치사회는 죄형법정주의를 원칙으로 합니다. 법원에서 죄가 아니라고 하면 검사가 아무리 죄라고 말할지라도 죄가 돼서는 안됩니다. 거꾸로 아무리 개인이 무죄라고 하더라도 유죄 확정판결을 받으면 죄가 되는 겁니다.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어놓고 역사적으로 그일을 안했다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말을 대법관이라는 분이 할 수 있는 겁니까.” 너무 기능주의적 언급이라고 생각돼서 추가질문을 해보았다. ▶법원이 꼭 옳은 판결만 하는 것은 아니지요. 긴급조치위반사건 판결 판사 명단도 그래서 공개된 것 아닙니까. “물론 재심을 통해 판결이 번복되는 수도 있지요. 민청학련 사건은 재심을 통해 수사과정부터 모든 사람들이 잘못을 한 것으로 드러났지요. 이건 당연한 귀결입니다. 그러나 긴급조치 건은 국민 96%가 찬성해 만든 긴급조치권에 의한 판결로써 경우가 다릅니다. 물론 수사와 법 적용을 잘못한 사례가 있다면 문제가 될 수 있지만, 포괄적으로 판결자체를 문제시해 명단을 공개한 것은 사실상의 보복, 면박주기입니다.” ●배심원제도 도입해야 ▶무죄판결을 받고 그동안 피해에 민사·형사상의 모든 책임을 묻겠다고 했는데 진행상황은. “개인적인 원망, 금전적인 피해 같은 것은 다 용서하고 잊기로 했습니다. 대신 다시는 나같은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진상규명과 제도적 장치를 요구하고 있는데 이게 잘 안되고 있어요.” 제도적 장치란 첫째, 불구속 수사 대폭 확대, 둘째 무죄 선고시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책 수립, 셋째 외부인사 참여에 의한 투명한 검사 평점제도와 무죄 선고시 이를 평점에 반영하는 것 등이다. 넷째는 검사 동일체원칙에 따라 상사가 철저하게 수사 결재를 함으로써 법률적 통제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박 전의원은 “법무장관의 수사통제권이 엉뚱한 곳에 행사됐다.”며 구속 자체로 모든 명예와 사회적 기회를 날려버린 자신의 경험을 상기시켰다. 특히 “옥중출마한 17대 총선 때는 선거기간 중엔 구속시켜 놓더니 선거가 끝나자마자 보석시켜 주더라.”고 허탈해 했다. 박 전의원은 죄없이 336일 동안 구속된 보상금으로 국가로부터 2399만원을 받았다. 이 돈은 좋은 일에 쓰기 위해 따로 보관 중이라고 했다. ▶사법개혁이 지지부진한데요. “공판중심주의는 공감하지만 법정에서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기가 쉽지는 않을 겁니다. 대법원장은 검찰조서는 휴지통에 던져버리라고 했다지만, 검찰 조서의 증명력과 증거능력은 구별돼야 한다고 봅니다. 증명력을 갖기 위해 수사능력을 개발해야겠지요. 불법 수사는 철저히 배격해야 합니다. 배심원 제도도 하루빨리 들여와야 한다고 봅니다. 한 사람의 운명을 사회경험 일천한 법관이 결정하는 것보다는 일반 시민이 판단해 주는 게 의미가 있어요.” ▶서울시장 선거에서 낙선했는데 앞으로의 계획은. “그동안의 고난은 하늘의 뜻으로 보고 과거보다는 미래를 보고 나가려고 해요. 아내는 그렇게 뜨거운 물을 뒤집어쓰고 또 정치를 하려느냐고 하지만, 우리에겐 분열과 갈등을 청산하고 미래를 건설할 수 있는 총합의 정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민주·반민주, 좌·우, 세대차이를 넘어서 융합하는 총합세력이 만들어지면 성원해 주시기 바랍니다.”전형적인 우등생 이미지. 검찰 때문에 역경을 겪어 ‘암벽을 뚫고 솟아나는 소나무’가 되겠다면서도,‘검찰 조직’에 대한 애정만은 숨기지 않는 게 신기해 보였다. ‘조직´은 그래서 힘이 센가 보다. yshin@seoul.co.kr ■ 그는 누구 1949년 전남 보성 출생(만57세). 가난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행상으로 가족을 부양했던 어머니는 아들의 중학교 입학금 마련을 위해 피를 팔기도 했다. 남동생은 형의 대학진학을 위해 학업을 포기하는 희생을 했다.1974년 서울대 법대 4학년 때 16회 사법시험에 수석합격, 검사로서 탄탄대로를 걷기 시작했다. 초임부터 서울지검 특수부에서 화려하게 출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부장검사, 서울지검 특수부 부장검사, 대검찰청 수사기획관 등 요직을 모두 거쳤다. 장래 검찰총장 감이 확실하다는 평이었다. 1998년 청와대 법무비서관으로 발탁되면서 인생행로가 꼬이기 시작했다.‘세 번 구속, 세 번 무죄’라는 사법사상 초유의 기구한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김대중 정부시절, 옷로비 의혹 사건에 휘말려 1차 구속됐다. 무죄 판결이 난 후 국회의원에 당선돼 명예가 회복되는 듯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나라종금퇴출저지 로비,2004년 현대그룹 뇌물수수 혐의로 또다시 구속됐다 무죄로 풀려나는 불운이 계속됐다.17대 때는 피의자 신분으로 옥중출마해 낙선. 작년에는 서울시장 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나서기도 했다. 시장 선거 때 시정원칙으로 내세운 것이 ‘억울함이 없는 시정’‘약자를 보듬는 시정’. 이른바 ‘검찰살인’의 피해자로서 7년간 겪은 고통을 엿볼 수 있게 한다. 현재 민주당 평당원으로 정치적 재기를 준비 중이다.
  • 물가연동 국고채 국내 첫 발행

    투자 원금을 물가에 연동시켜 금리를 계산해 주는 국고채가 23일 국내에서 처음 판매된다. 정부는 21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인수단이 참가한 가운데 물가연동 국고채 투자설명회를 갖고 3월분 규모 6250억원의 발행금리를 2.82%로 결정했다. 올해 예정된 물가연동 국고채 규모는 2조 5000억원으로 분기별로 발행된다. 이번 발행은 국민은행, 삼성증권, 현대증권 등 10개 금융기관의 총액인수 방식으로 이뤄졌으나 6월부터는 다른 국고채와 마찬가지로 전문딜러(PD)의 입찰 방식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만기 10년물로 금리는 인수단 선정 하루 전날 10년물 국고채 최종호가에서 2.11%포인트를 빼고 결정했다.표면금리는 2.75%로 대금 납입일인 매출일은 23일이다. 이자는 채권 액면금액과 표면금리에 물가연동계수를 곱해서 산출,3월10일과 6월10일에 지급한다. 다만 물가가 오른 만큼 원리금에 반영되기 때문에 표면금리를 낮게 책정하는 게 보통이다. 권오규 경제부총리는 이날 치사에서 “물가연동국채는 물가의 변동위험으로부터 헤지수단을 제공하는 상품으로 자산운용기관의 장기투자 수요에 부응할 수 있다.”면서 “우리 금융시장의 폭과 깊이를 한층 강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강계두 재경부 국고국장은 “외국인들의 채권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 이자소득에 대한 소득세 원천징수를 면제하는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말 국고채 발행 잔액은 258조원으로 전체 채권 발행액의 33%, 국고채 거래량은 지난해 978조원으로 전체 채권 거래량의 60%를 각각 차지하고 있다.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靑 “손학규를 오해? 원칙 문제제기 한것” ‘명분없는 탈당’ 재공격

    대통령 비서실 정무팀은 21일 ‘대통령이 손학규 전 지사를 오해했는가’라는 제목의 청와대브리핑을 통해 손 전 경기지사의 탈당에 부정적 시각을 거듭 표명했다. 청와대브리핑은 “대통령은 손 전 지사의 탈당 자체를 문제삼는 게 아니다.”면서도 “탈당이라는 행위보다 그 행위가 원칙에 부합하고 가치있는 것인지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날 손 전 지사의 탈당을 ‘보따리 정치’라고 비판하자 손 전 지사가 청와대를 겨냥,“무능한 진보”라고 반격한 데 대한 재반격 차원뿐만 아니라 정치권이나 언론이 ‘손 전 지사 때리기’,‘대통령의 대선 개입’이라는 해석에 대한 반론 성격도 짙어 보인다. 청와대는 글에서 “만약 손 전 지사의 탈당의 변이 진심이라면 대통령의 비판은 손 전 지사를 오해한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한나라당 내부 경선구도가 자신에게 불리하자 대권을 위해 다른 길을 찾아 나선 것이라면 그의 탈당은 민주주의 근본원칙을 뒤흔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의 정치사에서 선거를 앞두고 탈당했던 사례 가운데 탈당의 명분과 성공여부에 따라 4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고 제시했다. 명분도 있고 성공한 사례(85년 신민당,87년 통일민주당,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 ▲명분은 있지만 성공하지 못한 사례(90년 3당 합당에 반대해 노무현·김정길의원의 통일민주당 탈당) ▲명분은 적었지만 성공한 사례(95년 새정치국민회의 창당) ▲명분도 없고 성공하지 못한 유형(97년 이인제 의원 신한국당 탈당,2002년 김민석 의원 민주당 탈당)이었다. 정무팀은 “선거를 앞두고 탈당해 신당을 창당한 경우 원칙과 대의명분 없이 성공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면서 “오히려 명분과 실리를 모두 놓치고 정치인으로서 신뢰성에 타격을 입으며 몰락하기 십상이다.”고 경고했다. 마지막으로 “대통령이 손 전 지사의 뜻을 오해한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라면서 “대선후보가 되기 위해 명분을 버리고 탈당한 건지 새로운 정치질서 창출을 위해 탈당한 건지는 곧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손 전 지사의 탈당을 ‘명분도 없고 성공하지도 못할 사례’로 규정하려는 의중인 셈이다. 이번 ‘2라운드 공방’은 노 대통령의 직언은 아니지만 대통령의 의중이 실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손 전 지사 개인에 대한 공격이라기보다 손 전 지사의 탈당이 대선구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주목할 것이라는 메시지로도 들린다. 물론 이 구도짜기에서 손 전 지사의 역할을 전제하고 있을 뿐 아니라 나아가 손 전 지사가 이에 부응할 경우 그의 결단을 높이 평가할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손 전 지사는 이에 대해 “미래를 향한 새로운 길을 열겠다는 충정을 갖고 창업의 길에 나섰다.”며 “대통령께서도 진정성을 갖고 저의 진정성을 봐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관련기사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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