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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반도에 드리운 일제 강점의 그림자… ‘암울한 대한제국’

    한반도에 드리운 일제 강점의 그림자… ‘암울한 대한제국’

    111년 전인 1904년 2월 10일 일본은 러시아에 전쟁을 선포했다. 일제 강점의 암울한 그림자가 한반도 주변을 감싸기 시작한 때였다. 대한제국은 서구 열강, 일제의 틈바구니에서 중립의 자리에 서고 싶었다. 한반도의 운명에 대한 희망과 절망의 전망이 교차하던 때였다. ‘꼬리가 개를 흔든다’는 말이 나오기 전이었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던 제국주의 질서의 복판이었으니 마음 같지 않았다. 영어로 된 신문이 필요했다. 일본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서였고, 대한제국의 입장을 열강들에 알리기 위해서였다. 1904년 7월 18일 대한매일신보(The Korea Daily News)의 창간은 시대의 필연이었다. 짙은 어둠 속 작은 불꽃이었고, 둔탁한 북소리 중간에 끼어든 까치 소리였다. 대한매일신보 111년 역사는 자랑스러운 언론구국운동의 역사이자 일제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로 이어진 굴종과 오욕의 역사이기도 했다. 숱하게 신문의 이름을 바꾸고 소유 주체를 달리하는 과정에서도 대한매일신보-매일신보(1910년)-서울신문(1945년)-대한매일(1998년)-서울신문(2004년)으로 이어지는 시간은 우직하게 앞 제호의 지령(紙齡)을 계승하며 영욕을 한몸에 떠안은 인고의 세월이었다. 현재 서울신문은 2001년 전 사원이 출자해서 만든 우리사주조합이 38.9% 지분을 가져 1대 주주인 신문사로 거듭났다. 소유 구조가 바뀐 것은 언론 독립의 완성이 아닌 첫걸음에 불과하다.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서울신문의 노력과 의지는 2015년 새해 벽두에도 현재진행형이다. 대한매일신보 창간호는 지금의 타블로이드판보다 약간 큰 26.5㎝×40㎝ 크기였다. 한글판 2면, 영문판 4면 등 모두 6면짜리 일간지였다. 창간호부터 15호까지는 분실됐다. 16호인 1904년 8월 4일자부터 영인본으로 서울신문 본사 서가에 보존되고 있다. 창간 111주년을 맞은 2015년 새해 벽두 먼지 덮인 영인본을 꺼내 대한매일신보에 비친 111년 전 ‘그때 여기’와 2015년 ‘지금 여기’를 비교해 보려 한다. 급변하는 세상, 원칙을 잃어버린 사회에서 온고지신(溫故知新)과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이 오히려 긴 호흡으로 멀리 볼 수 있게 해 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당시 대한매일신보의 사고와 논설, 잡보(정치사회면) 등을 간략히 훑어본다. 1904년 8월 4일자 신문 가격은 ‘두돈 오푼’이었다. 1892년 대한제국이 발행하고 1902년 중단된 ‘2전(錢)5분(分)’짜리 백동화 하나로 살 수 있는 가격이었다. ‘두돈 오푼’ 백동화는 당시 가장 값싼 제작비로 대량 제조할 수 있는 화폐였다. 실제 가치는 3푼 정도밖에 안 되는 금속으로 명목가치 두돈 오푼 백동화를 만드는 것은 7배 이상의 차익을 올릴 수 있는 수단이었다. 만드는 방법도 엽전보다 쉬웠다. 대한제국 정부는 1896년 총예산 중 26.6%인 128만원을 백동화 제조로 창출한 이익금으로 충당했을 정도였다. 인플레이션은 당연한 현상이었다. 더욱 야비하고 악랄하게 활용한 건 일본이었다. 두돈 오푼은 그 질에 따라 갑종, 을종, 병종으로 나뉘었다. 일본은 한일합방 이전부터 사주전(私鑄錢) 제조, 밀주(密鑄)된 두돈 오푼 수입, 화폐교환 정보를 사전에 입수한 뒤 악화를 양화로 바꿔 매점매석, 1905년 통화개혁을 앞두고 폐기 처분될 두돈 오푼으로 시골에서 땅을 매입해 농민 등쳐먹기 등의 악행을 서슴지 않았다. 2015년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 중국, 유럽연합(EU) 등이 앞다퉈 저금리 정책을 펴고 있는 때다. 엔-캐리, 달러-캐리 무역으로 차익을 보는 세력들을 경계하기 위한 조치지만 통화량 증가 및 인플레이션은 필연이다. 애꿎은 제3세계 국가들만 갈 곳 잃은 투기자본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할 위기에 놓이게 되는 셈이다. 한국 역시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일제는 대한제국 황무지 개간 사업 계획, 이른바 ‘나가모리 계획’을 추진해 왔다. 일본 대장성 관방장 나가모리(장삼·長森)가 앞장선 데 따른 명명이다. 개간 대상이 된 땅을 황무지라고 주장하고 개발 논리를 앞세웠지만 황무지가 아니었을 뿐 아니라 토지 수탈의 다른 이름이었음은 물론이다. 구국언론을 자처한 대한매일신보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황무지 개간 계획을 저지하기 위한 단체 보안회(輔安會·보국안민회의 약자)가 1904년 7월 13일 만들어졌고 대한매일신보는 보안회를 적극 지지했으며 창간 4일 뒤인 7월 22일자에 윤치호의 글을 게재했다. 당시 대한제국 외부협판(현 차관) 윤치호는 ‘일제의 요구대로라면 국토의 3분의2를 일본에 넘겨줘야 할 판’이라고 한탄했다. 또 8월 18일자 논설에서는 ‘장삼씨의 문제 갱론’으로 제목을 붙여 이를 통렬히 비판했다. 당시 일본 지지(時事)신보가 나가모리 계획을 밀어붙이는 데 대해 ‘어떤 일을 잘못하는 것은 물론 나쁜지만 그 잘못이 명백해진 뒤에도 이를 고집하는 것은 더욱 나쁘다’고 준엄히 꾸짖었다. 그리고 황무지 개간 계획을 전쟁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일본의 수작으로 규정짓는 등 일본과의 논리 싸움에서도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철도, 지하철, 도로, 터널, 다리 등 각종 사회간접자본(SOC) 마련에 외국 자본의 돈을 쓰는, BTL민간투자사업을 활용하는 것이 대세인 요즘 상황과도 맥이 닿는다. 이익이 없는 곳에 자본이 몰릴 리 없다. 토건사업에 골몰하는 지자체는 자본이 없고, 자본은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사업 초기 맺은 불합리한 계약을 둘러싸고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뒤 지자체와 민간자본 간의 소송 다툼이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일진회는 대표적인 친일단체다. 하지만 초기에는 국민계몽운동의 입장을 표방하고 남아 있는 동학 세력들의 보안회를 만들어 함께하는 등 정체를 구체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이는 대한매일신보의 기사 흐름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대한매일신보 8월 24일에만 해도 ‘유신회는 일진회로 개정하였는데 그 취지인즉’ 하면서 기사를 실었다. 당시 ‘병정 일개 소대와 순검(경찰) 30여명, 일본군 헌병 10여명이 나와 금지’하자 회원과 방청자 400~500명이 모여 종로 백목전 도가로 옮겨 행사를 치렀다는 내용으로 꽤 충실히 보도했다. 그러나 기사의 논조가 바뀌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1904년 11월 23일 잡보(요즘 정치사회면)에는 ‘일진회를 박멸하기 위해 비밀운동을 하던 리방협씨를 엊그제 경성 일본 헌병이 포착하여 일본군 사령부에서 심사한즉, 동지는 이런 일이 없었다고 발명(변명)하였다’고 보도했다. 다음달인 12월 19일에는 ‘일진회원이 서울에서 떠날 때 단발하는 가위를 사 가지고 가는데 백성들이 말하기를 일진회가 곧 삭발회라고들 하더라’고 항간의 일진회에 대한 조롱 섞인 정서를 전했다. 그 와중에 1904년 10월 30일 ‘본사 광고란’에는 ‘본사 신문 중에 왼쪽에 적은 호수 중 아무것이나 가지고 오시는대로 한 장에 백전 두푼씩 드리리다’고 했다. 신문 한 장에 두돈 오푼이었으니 거의 50배에 가까운 금액이다. 본사에 신문을 보관해야 했는데 어떤 사유로 해당 호수가 없어졌음이 분명하다. 12월 30일 세밑의 대한매일신보 2면 잡보에는 ‘동대문으로 가는 전차에 젊은 소년인데 술에 취해 한 여인을 계속 힐난하자 장거수(차장)가 발로 차서 내쫓자 모든 사람이 통쾌해하더라’(현대어 의역)는 기사가 실렸다. 술을 사랑하고 술에 관대한 민족성은 111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고, 부녀자를 희롱하는 행위를 용납하지 않던 정서 역시 비슷했던 것으로 보인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시민의 삶’ 과제 안은 한국사회 다시 시민권의 본질 고민하다

    ‘시민의 삶’ 과제 안은 한국사회 다시 시민권의 본질 고민하다

    시민. 한없이 명쾌한 듯하지만 명확한 규정을 내리기에는 까다롭고 복잡한 개념이다. 국가와 시장의 개별 구성원이자 평등한 객체이면서 국가와 시민, 시장과 시민으로서 이항대립적 구성을 이루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 호칭 역시 시민사회가 정착하지 못한 한국사회에서는 공민, 시민, 국민의 틈바구니에서 정처를 잡지 못하고 있다. 서구 역시 초기에는 마찬가지였다. 맨(man), 시티즌(citizen), 퍼블릭(public), 피플(people), 내이션후드(nationhood) 언저리에서 헤매야 했다. 시민의 권리를 어떻게 정립하느냐에 따라 부르는 명칭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또한 그 다른 명칭 속에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기능할 수 있는 영역도 차이가 남을 보여준다. 영국의 사회학자인 토머스 험프리 마셜(1893~1981)의 ‘시민권과 사회계급’은 1949년 케임브리지대학 강연 당시 내용을 정리한 그리 길지 않은 소고였다. 시민의 형성 역사, 시민이 갖는 권리와 의무의 분화와 융합 과정, 자본주의와의 관계성 등의 정수를 쉬운 표현으로 정리했고, 복지사회에 대한 영감을 줬다. 시민권에 관한 가장 고전적인 연구로 평가받으며 이후 정치사회학적 논의의 주제로 떠나지 않았다. 60여년 동안 시민사회와 계급사회와 이론적 갈등, 현실적 대립, 각계의 이론적 보완 정립 등을 거치며 이 짧은 소고는 어느덧 고전의 반열에 올라섰다. 최근 출간된 ‘시민권’(나눔의집 펴냄, 조성은 옮김)은 마셜의 원문과 함께 이후 마셜의 이론에 대한 톰 보토모어(1920~1992)의 보론 및 반론적 성격의 글인 ‘그 후 40년’을 함께 실어 이후 전개 및 논의 과정을 엿볼 수 있도록 했다. 마셜은 시민권은 사회에서 일할 권리와 사회의 법적 보호를 받을 권리인 공민권과 참정권으로 상징되는 정치권, 교육받고 생존할 수 있는 사회권의 세 요소로 구성되는 것으로 분석했다. 이에 대해 보토모어는 ‘이제 공민권, 정치권, 사회권을 시민권의 틀보다는 보편적인 인권이라는 개념 틀 속에서 살펴봐야 하며 무엇보다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보토모어는 계급에 의한 불평등을 강조하면서 특히 복합될 경우 더 심각할 수 있는 인종과 젠더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실 시민권에 대한 담론은 보수학문의 담론이기도 하다. 자본주의의 불완전성과 계급의 불평등성 등 각종 모순을 보완할 수 있는 기제로 삼는 것이 바로 시민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이 탓에 마셜의 시민권 이론은 자본주의 불공정에 대한 해결책이라기보다 자본주의 모순의 일부로 간주되기도 했다. 실제 마셜은 인종, 젠더 등과 같은 시민권의 또 다른 차원을 간과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2015년 한국사회가 다시 시민권을 고찰해야 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시민과 복지의 관계를 중심으로 복지사회의 담론이 확장되는 시기이며, 고용과 해고, 비정규직 문제 등 시민과 노동의 관계의 문제가 개별 삶의 구체적인 과제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실패를 인정할 수 없고 혁명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주류 흐름이라면 자본주의를 보완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을 더 이상 외면할 수는 없을 듯하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데스크 시각] 기능화의 부작용/이지운 정치부 차장

    [데스크 시각] 기능화의 부작용/이지운 정치부 차장

    그들은 처음부터 영역이 분명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의원직을 시작해 그들과 함께한 이래로 일은 철저한 분업제였다. 예컨대 과거에 이재만 비서관은 경제, 정호성 비서관은 외교, 안봉근 비서관은 수행 등을 담당하는 식이었다. 물론 당 대표가 되고, 대통령 후보가 되고 신분과 상황이 변할 때마다 이들의 영역과 역할에도 변동이 생겼다. 그런 과정을 거쳐 총무, 제1부속실, 제2부속실 비서관으로 보임됐다. 이들 사이에 긴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이 별다른 충돌 없이 지금까지 지내 온 것은 이 분업제의 덕분이 아닌가 한다. 과문한 탓일 수 있겠으나 한 정치 세력의 ‘코어 그룹’이 이처럼 평화를 유지해 온 사례는 우리 정치사에서는 찾기 어렵다. 박 대통령은 이들만 그렇게 대한 것은 아니다. 국회의원들에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친박(親朴)에 좌장이 없다’ 하는 것이 2인자를 두지 않는 박 대통령의 원칙 때문이라고도 하지만, ‘관리’에 대한 박 대통령의 기본적인 태도에도 기인한다고 본다. 분업은 효율성을 담보하는 등 많은 장점이 있지만, 여기에도 단점은 있다. 일이 ‘기능’으로 흐르기 쉽다. 일을 맡은 각각은 당연하게 그 일을 누군가와 다시 나누어야 한다. 굳이 말하자면 하도급을 줘야 한다. 하도급은 일의 크기에 따라 2차, 3차 하도급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도 아닌데, 정치 집단에 하도급이라는 표현이 옳지 않은 걸 안다. 그러나 정치 결사체라 하더라도 일이 ‘기능’으로 흐르면 그 주체들 간의 관계는 원청과 하도급 간의 성격을 띠기 쉽다. 단계가 늘어날수록 더욱 그렇다. 이를 피하려면 동지애 같은 공동체로서의 유대감이 필수적이다. 과거 정파에서는 ‘동지’라는 말이 흔했다. 동교동계나 상도동계만 해도 쉽게 들을 수 있었다. 손님들의 신발을 정리하고, ‘선생님’의 신발을 덥히는 일을 하는 이들도 동지였다. 그것이 그들로 하여금 ‘하찮은’ 일에도 소명감을 갖게 했고 그들 상당수는 뒤에 각자의 정치적 성취도 이뤄 냈다. 그들은 기자들도 언론인 동지라고 부르며 어떻게든 생각들을 공유하려 애썼다. 나아가 ‘하나의 표’인 유권자들도 동지로 삼으려 노력했다. 친노 그룹은 굳이 따지자면 ‘파트너’ 개념이 강했다. 저마다 창업의 동지이거나 수성의 책임자였다. 시대가 변하긴 했다. 동지 의식이 뭔지 가물거리는 때다. 정당판에서도 계파란 말이 예전 같지 않다. 그럼에도 결사체는 유대감이 생명이다. 신발을 정리하는 누군가가 그 일을 ‘기능적 업무’로 인식하고, 그런 이들이 하나둘 늘어 간다면 그 조직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없다. 공동의 목표와 구호만으로는 부족하다. 일의 분업과 기능화가 어디 친박만의 현상이냐고 따질 수 있겠다. 맞다. 기업에서든, 정치집단에서든 일은 이런 구조를 띠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구조를 근간으로 삼아 조직을 최적화하고 일을 해 온 정치세력을 꼽는다면 단연 친박일 것이고, 적어도 청와대는 지금 이 기능화가 가져온 부작용이 쌓일 만큼 쌓여 있다. 어느 정권에서든 일을 추동해 나가야 할 ‘어공(정치인 출신 공무원)’들 사이에서 “나는 기능인일 뿐”이라는 인식이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 챙겨 보면 알 일이다. 이른바 ‘문건 파동’ 국면에서 청와대와 각을 세운 전직 국무위원이나 비서관 등도 ‘기능인’이라는 자조감에 젖어 있지는 않았을는지. 기능화의 부작용에는 ‘동지’의 회복만한 것이 없다. jj@seoul.co.kr
  • 미인가 대안학교 초등생 체벌 후 숨져

    전남지방경찰청은 26일 초등학생을 때려 숨지게 한 여수의 미인가 대안학교 교사 황모(41·여)씨를 폭행치사 등의 혐의로 긴급체포해 조사 중이다. 황씨는 지난 25일 저녁 자신이 운영하는 여수시 화양면 용주리 S학교에서 초등학교 6학년 한모(14)양을 수차례 때려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황씨는 경찰에 “‘딸의 잘못된 습관을 고쳐 달라’는 부모의 부탁을 받고 한양을 교육하면서 엉덩이 등을 몇 차례 때렸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황씨는 이날 새벽 4시 23분쯤 가건물 형태의 컨테이너 숙소에서 함께 잠을 자던 한양이 의식을 잃은 것을 발견하고 119에 신고해 병원으로 옮겼다. 숨진 한양은 전날 처음으로 이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엉덩이와 허벅지 등에서 멍자국이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한양이 넘어지면서 머리를 부딪혀 뇌 안에 피가 찬 것으로 추정된다’는 병원 의사의 검안 결과에 따라 황씨의 체벌이 사인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는지를 밝히기 위해 시신을 부검하기로 했다. 한양은 여수의 한 초등학교에 장기 결석 중이었으며 부모의 권유로 S학교로 옮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 초등학교 관계자는 “한양이 장기간 결석하자 담임교사가 한양의 집을 방문해 부모님을 만나 출석을 요청했었다”고 말했다. S학교는 황씨 부부가 자연, 악기, 미술, 놀이 체험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주말·휴일 체험형 학교로서 한달 전쯤 여수시 돌산읍에서 화양면 용주리로 이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학교는 교육청에 등록되지 않았으며 주말과 휴일에 초등학생과 학부모 등 10여명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다. 여수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도둑 뇌사 사건’ 도둑 끝내 사망…정당방위 논란 더욱 커질 듯

    ‘도둑 뇌사 사건’ 도둑 끝내 사망…정당방위 논란 더욱 커질 듯

    ‘도둑 뇌사 사건’ ‘도둑 뇌사 사건’의 50대 도둑이 결국 숨졌다. 이에 따라 검찰이 피의자에 대해 상해 혐의에서 상해치사 혐의로 공소장 변경을 검토하고 있어 ‘정당방위’ 논란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26일 원주경찰서에 따르면 ‘정당방위 또는 과잉방위’ 논란을 일으킨 일명 ‘식물인간 도둑’ 사건의 당사자인 도둑 김모(55)씨가 지난 25일 오전 4시 50분쯤 숨졌다. 김씨는 지난 3월 8일 오전 3시 15분쯤 원주시 남원로 최모(22)씨의 집에 물건을 훔치려고 침입했다가 때마침 귀가한 최씨에게 주먹과 발, 빨래건조대 등으로 수차례 폭행당해 의식을 잃었다. 이후 뇌사 상태에 빠진 김씨는 원주의 한 병원과 요양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사건으로 자신의 집에 침입한 도둑을 제압한 집주인에서 상해 사건의 피의자 신세가 된 최씨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집단·흉기 등 상해)으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년 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최씨는 ‘알루미늄 재질의 빨래건조대는 위험한 물건이 아니며, 자신의 집에 침입한 도둑을 제압한 행위는 정당방위 또는 과잉방위에 해당한다’며 항소를 제기, 내년 1월 14일 선고공판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도둑 김씨가 병원 치료 중 10개월여 만에 사망함에 따라 이 사건 재판에도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검찰은 도둑 김씨의 사망으로 최씨에 대한 공소장 변경을 검토하고 있다. 춘천지검 원주지청의 한 관계자는 “피해 당사자가 사망한 만큼 공소장 변경을 검토 중”이라며 “공소장 변경 시 죄명은 상해치사를 검토 중이나, 살인죄는 검토하고 있지 않다”라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인사]

    ■한국조폐공사 ◇하부기관장 임용△화폐본부장 김기동△제지본부장 이도건△ID본부장 서태원△기술연구원장 윤준희◇1급 <승진>△ID사업단장 한귀욱△노사협력실장 이건철△화폐본부 인쇄처장 이춘구<전보>△감사실장 이종일△기술연구원 위조방지센터장 채정수 ■헤럴드 ◇임원 승진△부사장 김관선◇승격 및 직책조정△CS 본부장 신성진△헤경 AD1부장 이정훈△헤경 AD2부장 송태광 ■헤럴드경제 ◇승격 및 직책조정 <편집장>△온라인뉴스룸 박승윤△디자인데이터룸 이미선<에디터>△라이프스타일섹션 김필수△인터내셔널섹션 윤재섭△슈퍼리치섹션 권남근△엔터테인먼트섹션 김성진△소셜미디어섹션 조용직△모바일서비스섹션 조범자<부장>△산업 이수곤△정치 김형곤△소비자경제 김영상△금융투자 전창협△사회 강주남 ■코리아헤럴드 ◇승격 및 직책조정 <부장>△경제 신용배△디지털콘텐츠 양승진△라이프스타일 이선영△정치사회 이주희 ■올가니카 ◇승격 및 직책조정△경영지원실장 김은수
  • ‘도둑 뇌사 사건’ 도둑 끝내 숨져…정당방위 논란 더욱 커질 듯

    ‘도둑 뇌사 사건’ 도둑 끝내 숨져…정당방위 논란 더욱 커질 듯

    ‘도둑 뇌사 사건’ ‘도둑 뇌사 사건’의 50대 도둑이 결국 사망했다. 이에 따라 검찰이 공소장 변경을 검토하고 있어 ‘정당방위’ 논란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26일 원주경찰서에 따르면 ‘정당방위 또는 과잉방위’ 논란을 일으킨 일명 ‘식물인간 도둑’ 사건의 당사자인 도둑 김모(55)씨가 지난 25일 오전 4시 50분쯤 숨졌다. 김씨는 지난 3월 8일 오전 3시 15분쯤 원주시 남원로 최모(22)씨의 집에 물건을 훔치려고 침입했다가 때마침 귀가한 최씨에게 주먹과 발, 빨래건조대 등으로 수차례 폭행당해 의식을 잃었다. 이후 뇌사 상태에 빠진 김씨는 원주의 한 병원과 요양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사건으로 자신의 집에 침입한 도둑을 제압한 집주인에서 상해 사건의 피의자 신세가 된 최씨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집단·흉기 등 상해)으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년 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최씨는 ‘알루미늄 재질의 빨래건조대는 위험한 물건이 아니며, 자신의 집에 침입한 도둑을 제압한 행위는 정당방위 또는 과잉방위에 해당한다’며 항소를 제기, 내년 1월 14일 선고공판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도둑 김씨가 병원 치료 중 10개월여 만에 사망함에 따라 이 사건 재판에도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검찰은 도둑 김씨의 사망으로 최씨에 대한 공소장 변경을 검토하고 있다. 춘천지검 원주지청의 한 관계자는 “피해 당사자가 사망한 만큼 공소장 변경을 검토 중”이라며 “공소장 변경 시 죄명은 상해치사를 검토 중이나, 살인죄는 검토하고 있지 않다”라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체벌당한 초등생, 미인가 교육시설서 숨진 채 발견

    체벌당한 초등생, 미인가 교육시설서 숨진 채 발견

    ‘체벌당한 초등생’ 체벌당한 초등생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전남 여수의 미인가 교육시설에서 체벌을 당한 초등학생이 숨져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26일 전남 여수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전 4시 23분쯤 여수시 화양면 모 시설의 컨테이너 형태 숙소에서 A(12·초6)양이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것을 학교 관계자 B(41·여)씨가 발견, 119에 신고했다. A양은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자고 있던 A양이 창백해 보여 몸을 흔들어도 반응이 없었다고 B씨는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A양의 허벅지 등에는 멍 자국이 발견됐으며 B씨는 지난 25일 A양을 체벌했다고도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체벌 과정에서 A양의 몸이 밀쳐지면서 벽이나 바닥 등에 부딪히지 않았는지 등을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B씨를 아동학대 치사 혐의로 긴급체포해 체벌 경위, 시설 운영 실태 등을 파악하고 있다. 경찰은 부검을 통해 체벌과 사망의 연관성 등 정확한 사망원인을 규명할 방침이다. 이 시설은 학교라는 명칭을 내걸고 자연·악기·미술·놀이 체험 등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대안 배움터’를 표방하며 주말마다 초등생과 학부모 10여명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곳에서 운영되다가 한달 전쯤 카페 건물을 보수해 이 곳으로 옮겨왔으며 대안학교 등으로 등록되지는 않았다고 경찰은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배우 정호근, 신내림 받고 무속인 “1월에 여는 신방은…” 충격

    배우 정호근, 신내림 받고 무속인 “1월에 여는 신방은…” 충격

    배우 정호근 배우 정호근, 신내림 받고 무속인 된 이유 “한 때 죽고 싶었지만…” 신내림을 받고 무속인이 된 중견 배우 정호근의 가슴 아픈 가족사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정호근은 지난 9월 30일 KBS2 ‘여유만만’에 출연해 자신의 가족사를 고백했다. 정호근은 딸이 네 살 때 폐동맥 고혈압으로 사망하는 가슴 아픈 일을 겪었다고 고백했다. 이날 정호근은 “딸을 잃고 한동안 촬영을 못했다. 대사를 암기해야 하는데 갑자기 먼저 떠난 딸이 생각나 대사를 모두 잊어버렸다. 촬영팀 전체에 피해를 줄 수 있어서 제가 촬영을 못하겠다고 했다”고 당시 심경을 전했다. 이어 “딸을 잃고 나서 세상을 살고 싶지가 않았다”면서 “난 그 당시 정신병을 앓았던 것 같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또 “당시 죽고 싶었지만 자살은 너무 치사하단 생각이 들었다. 배우이다 보니 자살했다는 기사가 나는 것도 싫었다”면서 “그래서 사고사로 위장해 죽어야 겠다고 생각해 늘 술을 먹고 산에 올라갔다. 발이라도 헛디디면 실족사 처리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라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후 “그런데 산에 올라만 가면 사람들을 만났다”며 “사람들이 나만 보면 깜짝 놀라서 주저앉고 소리지르는 모습을 보면서 웃기기도 하고 타이밍도 놓치고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자살해야겠다는 생각을 버리게 됐다”라고 자살을 극복한 계기에 대해 털어놨다. 정호근은 22일 공개된 ‘스타일러 주부생활’ 2015년 1월호 인터뷰에서 “지난 9월 한달여 동안 무병을 심하게 앓은 뒤 신내림을 받고 무속인이 됐다”고 밝혔다. 정호근은 배우와 무속인의 삶을 함께 살아갈 계획이다. 그는 “배우로서 혹 불이익이 생길 수 있지만 개의치 않는다”며 “난 떳떳하고 솔직한 사람이다. 무당은 사람들의 가십거리가 될 수도 있지만 내 변화를 굳이 감출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호근은 “정릉 자택에 신당을 차렸고 내년 1월 1일부터는 무속인으로서 사람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배우 정호근, 신내림 받고 무속인 “신방 차렸다” 충격

    배우 정호근, 신내림 받고 무속인 “신방 차렸다” 충격

    배우 정호근 배우 정호근, 신내림 받고 무속인 된 이유 “한 때 죽고 싶었지만…” 신내림을 받고 무속인이 된 중견 배우 정호근의 가슴 아픈 가족사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정호근은 지난 9월 30일 KBS2 ‘여유만만’에 출연해 자신의 가족사를 고백했다. 정호근은 딸이 네 살 때 폐동맥 고혈압으로 사망하는 가슴 아픈 일을 겪었다고 고백했다. 이날 정호근은 “딸을 잃고 한동안 촬영을 못했다. 대사를 암기해야 하는데 갑자기 먼저 떠난 딸이 생각나 대사를 모두 잊어버렸다. 촬영팀 전체에 피해를 줄 수 있어서 제가 촬영을 못하겠다고 했다”고 당시 심경을 전했다. 이어 “딸을 잃고 나서 세상을 살고 싶지가 않았다”면서 “난 그 당시 정신병을 앓았던 것 같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또 “당시 죽고 싶었지만 자살은 너무 치사하단 생각이 들었다. 배우이다 보니 자살했다는 기사가 나는 것도 싫었다”면서 “그래서 사고사로 위장해 죽어야 겠다고 생각해 늘 술을 먹고 산에 올라갔다. 발이라도 헛디디면 실족사 처리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라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후 “그런데 산에 올라만 가면 사람들을 만났다”며 “사람들이 나만 보면 깜짝 놀라서 주저앉고 소리지르는 모습을 보면서 웃기기도 하고 타이밍도 놓치고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자살해야겠다는 생각을 버리게 됐다”라고 자살을 극복한 계기에 대해 털어놨다. 정호근은 22일 공개된 ‘스타일러 주부생활’ 2015년 1월호 인터뷰에서 “지난 9월 한달여 동안 무병을 심하게 앓은 뒤 신내림을 받고 무속인이 됐다”고 밝혔다. 정호근은 배우와 무속인의 삶을 함께 살아갈 계획이다. 그는 “배우로서 혹 불이익이 생길 수 있지만 개의치 않는다”며 “난 떳떳하고 솔직한 사람이다. 무당은 사람들의 가십거리가 될 수도 있지만 내 변화를 굳이 감출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호근은 “정릉 자택에 신당을 차렸고 내년 1월 1일부터는 무속인으로서 사람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배우 정호근, 신내림 받고 무속인 “사람들 나만 보면…” 충격적 상황

    배우 정호근, 신내림 받고 무속인 “사람들 나만 보면…” 충격적 상황

    배우 정호근 배우 정호근, 신내림 받고 무속인 된 이유 “한 때 죽고 싶었지만…” 신내림을 받고 무속인이 된 중견 배우 정호근의 가슴 아픈 가족사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정호근은 지난 9월 30일 KBS2 ‘여유만만’에 출연해 자신의 가족사를 고백했다. 정호근은 딸이 네 살 때 폐동맥 고혈압으로 사망하는 가슴 아픈 일을 겪었다고 고백했다. 이날 정호근은 “딸을 잃고 한동안 촬영을 못했다. 대사를 암기해야 하는데 갑자기 먼저 떠난 딸이 생각나 대사를 모두 잊어버렸다. 촬영팀 전체에 피해를 줄 수 있어서 제가 촬영을 못하겠다고 했다”고 당시 심경을 전했다. 이어 “딸을 잃고 나서 세상을 살고 싶지가 않았다”면서 “난 그 당시 정신병을 앓았던 것 같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또 “당시 죽고 싶었지만 자살은 너무 치사하단 생각이 들었다. 배우이다 보니 자살했다는 기사가 나는 것도 싫었다”면서 “그래서 사고사로 위장해 죽어야 겠다고 생각해 늘 술을 먹고 산에 올라갔다. 발이라도 헛디디면 실족사 처리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라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후 “그런데 산에 올라만 가면 사람들을 만났다”며 “사람들이 나만 보면 깜짝 놀라서 주저앉고 소리지르는 모습을 보면서 웃기기도 하고 타이밍도 놓치고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자살해야겠다는 생각을 버리게 됐다”라고 자살을 극복한 계기에 대해 털어놨다. 정호근은 22일 공개된 ‘스타일러 주부생활’ 2015년 1월호 인터뷰에서 “지난 9월 한달여 동안 무병을 심하게 앓은 뒤 신내림을 받고 무속인이 됐다”고 밝혔다. 정호근은 배우와 무속인의 삶을 함께 살아갈 계획이다. 그는 “배우로서 혹 불이익이 생길 수 있지만 개의치 않는다”며 “난 떳떳하고 솔직한 사람이다. 무당은 사람들의 가십거리가 될 수도 있지만 내 변화를 굳이 감출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호근은 “정릉 자택에 신당을 차렸고 내년 1월 1일부터는 무속인으로서 사람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배우 정호근, 신내림 받고 무속인 “신방 있는 곳은…” 고백

    배우 정호근, 신내림 받고 무속인 “신방 있는 곳은…” 고백

    배우 정호근 배우 정호근, 신내림 받고 무속인 된 이유 “한 때 죽고 싶었지만…” 신내림을 받고 무속인이 된 중견 배우 정호근의 가슴 아픈 가족사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정호근은 지난 9월 30일 KBS2 ‘여유만만’에 출연해 자신의 가족사를 고백했다. 정호근은 딸이 네 살 때 폐동맥 고혈압으로 사망하는 가슴 아픈 일을 겪었다고 고백했다. 이날 정호근은 “딸을 잃고 한동안 촬영을 못했다. 대사를 암기해야 하는데 갑자기 먼저 떠난 딸이 생각나 대사를 모두 잊어버렸다. 촬영팀 전체에 피해를 줄 수 있어서 제가 촬영을 못하겠다고 했다”고 당시 심경을 전했다. 이어 “딸을 잃고 나서 세상을 살고 싶지가 않았다”면서 “난 그 당시 정신병을 앓았던 것 같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또 “당시 죽고 싶었지만 자살은 너무 치사하단 생각이 들었다. 배우이다 보니 자살했다는 기사가 나는 것도 싫었다”면서 “그래서 사고사로 위장해 죽어야 겠다고 생각해 늘 술을 먹고 산에 올라갔다. 발이라도 헛디디면 실족사 처리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라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후 “그런데 산에 올라만 가면 사람들을 만났다”며 “사람들이 나만 보면 깜짝 놀라서 주저앉고 소리지르는 모습을 보면서 웃기기도 하고 타이밍도 놓치고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자살해야겠다는 생각을 버리게 됐다”라고 자살을 극복한 계기에 대해 털어놨다. 정호근은 22일 공개된 ‘스타일러 주부생활’ 2015년 1월호 인터뷰에서 “지난 9월 한달여 동안 무병을 심하게 앓은 뒤 신내림을 받고 무속인이 됐다”고 밝혔다. 정호근은 배우와 무속인의 삶을 함께 살아갈 계획이다. 그는 “배우로서 혹 불이익이 생길 수 있지만 개의치 않는다”며 “난 떳떳하고 솔직한 사람이다. 무당은 사람들의 가십거리가 될 수도 있지만 내 변화를 굳이 감출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호근은 “정릉 자택에 신당을 차렸고 내년 1월 1일부터는 무속인으로서 사람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배우 정호근, 신내림 받고 무속인 “사람들 나만 보면 깜짝…”

    배우 정호근, 신내림 받고 무속인 “사람들 나만 보면 깜짝…”

    배우 정호근 배우 정호근, 신내림 받고 무속인 된 이유 “한 때 죽고 싶었지만…” 신내림을 받고 무속인이 된 중견 배우 정호근의 가슴 아픈 가족사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정호근은 지난 9월 30일 KBS2 ‘여유만만’에 출연해 자신의 가족사를 고백했다. 정호근은 딸이 네 살 때 폐동맥 고혈압으로 사망하는 가슴 아픈 일을 겪었다고 고백했다. 이날 정호근은 “딸을 잃고 한동안 촬영을 못했다. 대사를 암기해야 하는데 갑자기 먼저 떠난 딸이 생각나 대사를 모두 잊어버렸다. 촬영팀 전체에 피해를 줄 수 있어서 제가 촬영을 못하겠다고 했다”고 당시 심경을 전했다. 이어 “딸을 잃고 나서 세상을 살고 싶지가 않았다”면서 “난 그 당시 정신병을 앓았던 것 같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또 “당시 죽고 싶었지만 자살은 너무 치사하단 생각이 들었다. 배우이다 보니 자살했다는 기사가 나는 것도 싫었다”면서 “그래서 사고사로 위장해 죽어야 겠다고 생각해 늘 술을 먹고 산에 올라갔다. 발이라도 헛디디면 실족사 처리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라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후 “그런데 산에 올라만 가면 사람들을 만났다”며 “사람들이 나만 보면 깜짝 놀라서 주저앉고 소리지르는 모습을 보면서 웃기기도 하고 타이밍도 놓치고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자살해야겠다는 생각을 버리게 됐다”라고 자살을 극복한 계기에 대해 털어놨다. 정호근은 22일 공개된 ‘스타일러 주부생활’ 2015년 1월호 인터뷰에서 “지난 9월 한달여 동안 무병을 심하게 앓은 뒤 신내림을 받고 무속인이 됐다”고 밝혔다. 정호근은 배우와 무속인의 삶을 함께 살아갈 계획이다. 그는 “배우로서 혹 불이익이 생길 수 있지만 개의치 않는다”며 “난 떳떳하고 솔직한 사람이다. 무당은 사람들의 가십거리가 될 수도 있지만 내 변화를 굳이 감출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호근은 “정릉 자택에 신당을 차렸고 내년 1월 1일부터는 무속인으로서 사람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배우 정호근, 신내림 받고 무속인 “죽고 싶었지만…” 충격 고백

    배우 정호근, 신내림 받고 무속인 “죽고 싶었지만…” 충격 고백

    배우 정호근 배우 정호근, 신내림 받고 무속인 된 이유 “한 때 죽고 싶었지만…” 신내림을 받고 무속인이 된 중견 배우 정호근의 가슴 아픈 가족사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정호근은 지난 9월 30일 KBS2 ‘여유만만’에 출연해 자신의 가족사를 고백했다. 정호근은 딸이 네 살 때 폐동맥 고혈압으로 사망하는 가슴 아픈 일을 겪었다고 고백했다. 이날 정호근은 “딸을 잃고 한동안 촬영을 못했다. 대사를 암기해야 하는데 갑자기 먼저 떠난 딸이 생각나 대사를 모두 잊어버렸다. 촬영팀 전체에 피해를 줄 수 있어서 제가 촬영을 못하겠다고 했다”고 당시 심경을 전했다. 이어 “딸을 잃고 나서 세상을 살고 싶지가 않았다”면서 “난 그 당시 정신병을 앓았던 것 같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또 “당시 죽고 싶었지만 자살은 너무 치사하단 생각이 들었다. 배우이다 보니 자살했다는 기사가 나는 것도 싫었다”면서 “그래서 사고사로 위장해 죽어야 겠다고 생각해 늘 술을 먹고 산에 올라갔다. 발이라도 헛디디면 실족사 처리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라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후 “그런데 산에 올라만 가면 사람들을 만났다”며 “사람들이 나만 보면 깜짝 놀라서 주저앉고 소리지르는 모습을 보면서 웃기기도 하고 타이밍도 놓치고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자살해야겠다는 생각을 버리게 됐다”라고 자살을 극복한 계기에 대해 털어놨다. 정호근은 22일 공개된 ‘스타일러 주부생활’ 2015년 1월호 인터뷰에서 “지난 9월 한달여 동안 무병을 심하게 앓은 뒤 신내림을 받고 무속인이 됐다”고 밝혔다. 정호근은 배우와 무속인의 삶을 함께 살아갈 계획이다. 그는 “배우로서 혹 불이익이 생길 수 있지만 개의치 않는다”며 “난 떳떳하고 솔직한 사람이다. 무당은 사람들의 가십거리가 될 수도 있지만 내 변화를 굳이 감출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호근은 “정릉 자택에 신당을 차렸고 내년 1월 1일부터는 무속인으로서 사람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배우 정호근, 신내림 받고 무속인됐다 ‘신방까지 차린 상태’ 대체 왜?

    배우 정호근, 신내림 받고 무속인됐다 ‘신방까지 차린 상태’ 대체 왜?

    배우 정호근, 신내림 받고 무속인됐다 ‘대체 왜?’ 이유보니.. ‘배우 정호근’ 배우 정호근이 신내림을 받고 무속인이 됐다는 소식이 알려져 화제다. 중견 탤런트 정호근이 지난 11월 신내림을 받고 무속인이 됐다. 정호근은 스타일러 주부생활과 인터뷰를 통해 “지난 9월 한 달여 동안 무병을 심하게 앓은 뒤 신내림을 받고 무속인이 됐다”고 밝혔다. 정호근은 “무속인이 되기 위해 계룡산, 태백산, 일월산, 인왕산 등 산 6곳과 백마강, 한 곳의 물을 밟았다”며 “이는 신의 제자가 되겠다고 신고하는 의식으로, 인왕산 국사당에 가서 문고(무당의 증서)를 받았고 3일 후 11월 14일, 음력 윤달 9월 22일에 내림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평소에도 직감과 예지력이 뛰어나 동료들에게서 신기 있다는 소릴 많이 들었던 정호근은 “할머니께서 무속인이셨는데 그 영향인지 어려서부터 정신세계에 대해 관심이 많아 관련 서적을 많이 읽었고 그간 무속에 대해 편견이 없이 살았고 왔다”며 “힘들 때면 마음수련을 해와 이를 거부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고 전했다. 실제로 세 자녀의 아버지인 그는 과거 두 아이를 잃은 아픔을 겪은 이후 정신세계에 예전보다 더 깊이 관심을 갖게 됐고, 마음이 어지럽거나 편치 않을 때면 절이나 암자를 찾아 마음을 다스려왔다. 정호근은 배우와 무속인의 삶을 함께 살아갈 계획이다. 그는 “배우로서 혹 불이익이 생길 수 있지만 개의치 않는다”며 “난 떳떳하고 솔직한 사람이다. 무당은 사람들의 가십거리가 될 수도 있지만 내 변화를 굳이 감출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솔직한 심경을 전했다. 정호근은 “정릉 자택에 신당을 차렸고 내년 1월 1일부터는 무속인으로서 사람들도 받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정호근은 지난 9월 30일 KBS2 ‘여유만만’에 출연해 자신의 가족사를 고백한 바 있다. 당시 방송에서 정호근은 딸이 네 살 때 폐동맥 고혈압으로 사망하는 가슴 아픈 일을 겪었다고 전했다. 정호근은 “딸을 잃고 나서 세상을 살고 싶지가 않았다”면서 “난 그 당시 정신병을 앓았던 것 같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당시 죽고 싶었지만 자살은 너무 치사하단 생각이 들었다. 배우이다 보니 자살했다는 기사가 나는 것도 싫었다”면서 “그래서 사고사로 위장해 죽어야 겠다고 생각해 늘 술을 먹고 산에 올라갔다. 발이라도 헛디디면 실족사 처리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라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정호근은 “그런데 산에 올라만 가면 사람들을 만났다”며 “사람들이 나만 보면 깜짝 놀라서 주저앉고 소리지르는 모습을 보면서 웃기기도 하고 타이밍도 놓치고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자살해야겠다는 생각을 버리게 됐다”고 자살을 극복한 계기를 솔직하게 털어놨다. 사진=방송캡쳐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배우 정호근, 신내림 받고 무속인 “죽으려고 했었다” 충격적 상황

    배우 정호근, 신내림 받고 무속인 “죽으려고 했었다” 충격적 상황

    배우 정호근 배우 정호근, 신내림 받고 무속인 된 이유 “한 때 죽고 싶었지만…” 신내림을 받고 무속인이 된 중견 배우 정호근의 가슴 아픈 가족사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정호근은 지난 9월 30일 KBS2 ‘여유만만’에 출연해 자신의 가족사를 고백했다. 정호근은 딸이 네 살 때 폐동맥 고혈압으로 사망하는 가슴 아픈 일을 겪었다고 고백했다. 이날 정호근은 “딸을 잃고 한동안 촬영을 못했다. 대사를 암기해야 하는데 갑자기 먼저 떠난 딸이 생각나 대사를 모두 잊어버렸다. 촬영팀 전체에 피해를 줄 수 있어서 제가 촬영을 못하겠다고 했다”고 당시 심경을 전했다. 이어 “딸을 잃고 나서 세상을 살고 싶지가 않았다”면서 “난 그 당시 정신병을 앓았던 것 같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또 “당시 죽고 싶었지만 자살은 너무 치사하단 생각이 들었다. 배우이다 보니 자살했다는 기사가 나는 것도 싫었다”면서 “그래서 사고사로 위장해 죽어야 겠다고 생각해 늘 술을 먹고 산에 올라갔다. 발이라도 헛디디면 실족사 처리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라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후 “그런데 산에 올라만 가면 사람들을 만났다”며 “사람들이 나만 보면 깜짝 놀라서 주저앉고 소리지르는 모습을 보면서 웃기기도 하고 타이밍도 놓치고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자살해야겠다는 생각을 버리게 됐다”라고 자살을 극복한 계기에 대해 털어놨다. 정호근은 22일 공개된 ‘스타일러 주부생활’ 2015년 1월호 인터뷰에서 “지난 9월 한달여 동안 무병을 심하게 앓은 뒤 신내림을 받고 무속인이 됐다”고 밝혔다. 정호근은 배우와 무속인의 삶을 함께 살아갈 계획이다. 그는 “배우로서 혹 불이익이 생길 수 있지만 개의치 않는다”며 “난 떳떳하고 솔직한 사람이다. 무당은 사람들의 가십거리가 될 수도 있지만 내 변화를 굳이 감출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호근은 “정릉 자택에 신당을 차렸고 내년 1월 1일부터는 무속인으로서 사람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배우 정호근, 신내림 받고 무속인 “사람들 나만 보면…” 충격 고백

    배우 정호근, 신내림 받고 무속인 “사람들 나만 보면…” 충격 고백

    배우 정호근 배우 정호근, 신내림 받고 무속인 된 이유 “한 때 죽고 싶었지만…” 신내림을 받고 무속인이 된 중견 배우 정호근의 가슴 아픈 가족사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정호근은 지난 9월 30일 KBS2 ‘여유만만’에 출연해 자신의 가족사를 고백했다. 정호근은 딸이 네 살 때 폐동맥 고혈압으로 사망하는 가슴 아픈 일을 겪었다고 고백했다. 이날 정호근은 “딸을 잃고 한동안 촬영을 못했다. 대사를 암기해야 하는데 갑자기 먼저 떠난 딸이 생각나 대사를 모두 잊어버렸다. 촬영팀 전체에 피해를 줄 수 있어서 제가 촬영을 못하겠다고 했다”고 당시 심경을 전했다. 이어 “딸을 잃고 나서 세상을 살고 싶지가 않았다”면서 “난 그 당시 정신병을 앓았던 것 같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또 “당시 죽고 싶었지만 자살은 너무 치사하단 생각이 들었다. 배우이다 보니 자살했다는 기사가 나는 것도 싫었다”면서 “그래서 사고사로 위장해 죽어야 겠다고 생각해 늘 술을 먹고 산에 올라갔다. 발이라도 헛디디면 실족사 처리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라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후 “그런데 산에 올라만 가면 사람들을 만났다”며 “사람들이 나만 보면 깜짝 놀라서 주저앉고 소리지르는 모습을 보면서 웃기기도 하고 타이밍도 놓치고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자살해야겠다는 생각을 버리게 됐다”라고 자살을 극복한 계기에 대해 털어놨다. 정호근은 22일 공개된 ‘스타일러 주부생활’ 2015년 1월호 인터뷰에서 “지난 9월 한달여 동안 무병을 심하게 앓은 뒤 신내림을 받고 무속인이 됐다”고 밝혔다. 정호근은 배우와 무속인의 삶을 함께 살아갈 계획이다. 그는 “배우로서 혹 불이익이 생길 수 있지만 개의치 않는다”며 “난 떳떳하고 솔직한 사람이다. 무당은 사람들의 가십거리가 될 수도 있지만 내 변화를 굳이 감출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호근은 “정릉 자택에 신당을 차렸고 내년 1월 1일부터는 무속인으로서 사람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배우 정호근, 신내림 받고 무속인 “사람들 나만 보면…” 충격

    배우 정호근, 신내림 받고 무속인 “사람들 나만 보면…” 충격

    배우 정호근 배우 정호근, 신내림 받고 무속인 된 이유 “한 때 죽고 싶었지만…” 신내림을 받고 무속인이 된 중견 배우 정호근의 가슴 아픈 가족사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정호근은 지난 9월 30일 KBS2 ‘여유만만’에 출연해 자신의 가족사를 고백했다. 정호근은 딸이 네 살 때 폐동맥 고혈압으로 사망하는 가슴 아픈 일을 겪었다고 고백했다. 이날 정호근은 “딸을 잃고 한동안 촬영을 못했다. 대사를 암기해야 하는데 갑자기 먼저 떠난 딸이 생각나 대사를 모두 잊어버렸다. 촬영팀 전체에 피해를 줄 수 있어서 제가 촬영을 못하겠다고 했다”고 당시 심경을 전했다. 이어 “딸을 잃고 나서 세상을 살고 싶지가 않았다”면서 “난 그 당시 정신병을 앓았던 것 같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또 “당시 죽고 싶었지만 자살은 너무 치사하단 생각이 들었다. 배우이다 보니 자살했다는 기사가 나는 것도 싫었다”면서 “그래서 사고사로 위장해 죽어야 겠다고 생각해 늘 술을 먹고 산에 올라갔다. 발이라도 헛디디면 실족사 처리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라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후 “그런데 산에 올라만 가면 사람들을 만났다”며 “사람들이 나만 보면 깜짝 놀라서 주저앉고 소리지르는 모습을 보면서 웃기기도 하고 타이밍도 놓치고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자살해야겠다는 생각을 버리게 됐다”라고 자살을 극복한 계기에 대해 털어놨다. 정호근은 22일 공개된 ‘스타일러 주부생활’ 2015년 1월호 인터뷰에서 “지난 9월 한달여 동안 무병을 심하게 앓은 뒤 신내림을 받고 무속인이 됐다”고 밝혔다. 정호근은 배우와 무속인의 삶을 함께 살아갈 계획이다. 그는 “배우로서 혹 불이익이 생길 수 있지만 개의치 않는다”며 “난 떳떳하고 솔직한 사람이다. 무당은 사람들의 가십거리가 될 수도 있지만 내 변화를 굳이 감출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호근은 “정릉 자택에 신당을 차렸고 내년 1월 1일부터는 무속인으로서 사람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배우 정호근, 신내림 받고 무속인 됐다 “정릉에 자택에 신방…”

    배우 정호근, 신내림 받고 무속인 됐다 “정릉에 자택에 신방…”

    배우 정호근 배우 정호근, 신내림 받고 무속인 된 이유 “한 때 죽고 싶었지만…” 신내림을 받고 무속인이 된 중견 배우 정호근의 가슴 아픈 가족사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정호근은 지난 9월 30일 KBS2 ‘여유만만’에 출연해 자신의 가족사를 고백했다. 정호근은 딸이 네 살 때 폐동맥 고혈압으로 사망하는 가슴 아픈 일을 겪었다고 고백했다. 이날 정호근은 “딸을 잃고 한동안 촬영을 못했다. 대사를 암기해야 하는데 갑자기 먼저 떠난 딸이 생각나 대사를 모두 잊어버렸다. 촬영팀 전체에 피해를 줄 수 있어서 제가 촬영을 못하겠다고 했다”고 당시 심경을 전했다. 이어 “딸을 잃고 나서 세상을 살고 싶지가 않았다”면서 “난 그 당시 정신병을 앓았던 것 같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또 “당시 죽고 싶었지만 자살은 너무 치사하단 생각이 들었다. 배우이다 보니 자살했다는 기사가 나는 것도 싫었다”면서 “그래서 사고사로 위장해 죽어야 겠다고 생각해 늘 술을 먹고 산에 올라갔다. 발이라도 헛디디면 실족사 처리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라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후 “그런데 산에 올라만 가면 사람들을 만났다”며 “사람들이 나만 보면 깜짝 놀라서 주저앉고 소리지르는 모습을 보면서 웃기기도 하고 타이밍도 놓치고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자살해야겠다는 생각을 버리게 됐다”라고 자살을 극복한 계기에 대해 털어놨다. 정호근은 22일 공개된 ‘스타일러 주부생활’ 2015년 1월호 인터뷰에서 “지난 9월 한달여 동안 무병을 심하게 앓은 뒤 신내림을 받고 무속인이 됐다”고 밝혔다. 정호근은 배우와 무속인의 삶을 함께 살아갈 계획이다. 그는 “배우로서 혹 불이익이 생길 수 있지만 개의치 않는다”며 “난 떳떳하고 솔직한 사람이다. 무당은 사람들의 가십거리가 될 수도 있지만 내 변화를 굳이 감출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호근은 “정릉 자택에 신당을 차렸고 내년 1월 1일부터는 무속인으로서 사람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배우 정호근, 신내림 받고 무속인 됐다 “사람들 나만 보면 깜짝…”

    배우 정호근, 신내림 받고 무속인 됐다 “사람들 나만 보면 깜짝…”

    배우 정호근 배우 정호근, 신내림 받고 무속인 된 이유 “한 때 죽고 싶었지만…” 신내림을 받고 무속인이 된 중견 배우 정호근의 가슴 아픈 가족사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정호근은 지난 9월 30일 KBS2 ‘여유만만’에 출연해 자신의 가족사를 고백했다. 정호근은 딸이 네 살 때 폐동맥 고혈압으로 사망하는 가슴 아픈 일을 겪었다고 고백했다. 이날 정호근은 “딸을 잃고 한동안 촬영을 못했다. 대사를 암기해야 하는데 갑자기 먼저 떠난 딸이 생각나 대사를 모두 잊어버렸다. 촬영팀 전체에 피해를 줄 수 있어서 제가 촬영을 못하겠다고 했다”고 당시 심경을 전했다. 이어 “딸을 잃고 나서 세상을 살고 싶지가 않았다”면서 “난 그 당시 정신병을 앓았던 것 같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또 “당시 죽고 싶었지만 자살은 너무 치사하단 생각이 들었다. 배우이다 보니 자살했다는 기사가 나는 것도 싫었다”면서 “그래서 사고사로 위장해 죽어야 겠다고 생각해 늘 술을 먹고 산에 올라갔다. 발이라도 헛디디면 실족사 처리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라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후 “그런데 산에 올라만 가면 사람들을 만났다”며 “사람들이 나만 보면 깜짝 놀라서 주저앉고 소리지르는 모습을 보면서 웃기기도 하고 타이밍도 놓치고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자살해야겠다는 생각을 버리게 됐다”라고 자살을 극복한 계기에 대해 털어놨다. 정호근은 22일 공개된 ‘스타일러 주부생활’ 2015년 1월호 인터뷰에서 “지난 9월 한달여 동안 무병을 심하게 앓은 뒤 신내림을 받고 무속인이 됐다”고 밝혔다. 정호근은 배우와 무속인의 삶을 함께 살아갈 계획이다. 그는 “배우로서 혹 불이익이 생길 수 있지만 개의치 않는다”며 “난 떳떳하고 솔직한 사람이다. 무당은 사람들의 가십거리가 될 수도 있지만 내 변화를 굳이 감출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호근은 “정릉 자택에 신당을 차렸고 내년 1월 1일부터는 무속인으로서 사람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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