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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S의 미소… 사랑… 투쟁… 고초…

    YS의 미소… 사랑… 투쟁… 고초…

    한국 현대 정치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우리 시대 ‘큰 별’이 졌다.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은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도 평생을 반독재와 민주화 투쟁을 위해 헌신한 민주화운동의 거목이었다. 서울대 재학 시절에는 65년 평생의 반려자였던 손명순 여사를 아내로 맞았지만 그의 앞날에는 기나긴 반독재 투쟁이 기다리고 있었다. 1954년 5월 3대 민의원에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면서 그가 걸어온 길은 민주화운동 그 자체였다. 전두환 정권 시절에는 민주화를 요구하며 23일 동안 단식 투쟁을 하는 등 신념의 정치인으로 한국 정치사에 굵은 획을 그었다. 화보를 통해 현대 정치사의 산증인이었던 김 전 대통령의 과거 발자취를 돌아본다.
  • “통치 있을 뿐 정치가 없다” DJ납치사건 때 성토

    “통치 있을 뿐 정치가 없다” DJ납치사건 때 성토

    “이번 해운공사 문제는 지난 금융계 부정 사건과 마찬가지로 전 국민이 주의 깊게 우리 국회의 처리와 우리 정부의 처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3대 민의원 선거에서 만 26세의 나이로 최연소 국회의원이 된 고(故)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첫 당선 후 1954년 10월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 첫 발언이다. 20대 정치 신인 김영삼은 교통부 장관을 상대로 해운공사와 조선공사, 조선운수 등 ‘3공사 부정사건’을 추궁하며 “책임을 지라”고 일갈했다. 고향인 경남 거제의 영향 때문인지 국회 회의록을 통해 본 김 전 대통령의 과거 국회 회의 발언 중에는 해운이나 어업과 관련된 것들이 눈에 띈다. 더불어 정권의 정치 테러를 준엄하게 비판하는 야당 투사의 모습과 3당 합당으로 여당의 길을 택한 것에 대한 자기 합리화의 모습 등이 그의 국회 회의 발언에 함께 투영된다. 박정희 전 대통령 3선개헌 반대투쟁이 한창이던 1969년 김 전 대통령은 국회에서 열린 국정 전반에 관한 질문에서 “4·19보다 더 무서운 사태가 올 것”이라고 3선개헌을 반대했다. 그는 “박정희씨가 정권을 잡은 후에 경제발전을 했다, 나는 이렇게 생각 안 한다”면서 “다만 잘사는 사람이 있다면 박정희씨 주위에 몇 사람의 부자를 만들어 놓은 것 이상에는 발전한 것이 없다, 나는 이렇게 단정한다”고 일갈했다. 그는 미래의 자신의 모습을 확신한 듯 “여기 서 있는 김영삼이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발언 이후 며칠 뒤 ‘초산 테러’를 당했다. 1973년 김대중 납치사건 관련 국회 질의에서는 당시 김종필 총리를 상대로 “통치가 있을 뿐 정치가 없다”면서 “수출 100억불, 국민소득 1000불도 중요하지만 국가의 체통과 귄위가 상실되었을 때 아무 소용도 없다”고 성토하기도 했다. 3당 합당 직전인 1989년 10월 12일 교섭단체 연설은 2개월여 뒤 있을 정치적 대사건을 예고하는 듯하다. 김 전 대통령은 “내년부터 전개될 90년대는 금세기를 마감하는 마지막 10년이자 대망의 2000년대를 준비하는 시기”라며 “90년대를 대비하기 위해 구정치의 낡은 유산을 모두 청산해야 한다. 남루한 옷을 벗어던지고 새 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3당 합당을 끝낸 1990년 연설에서는 야당을 달래고 자신의 결정이 옳았음을 수차례 반복하며 정치적 당위성을 강조했다. 그해 2월 26일 뒤숭숭한 분위기의 본회의장 연단에 선 그는 “민주자유당 창당에 대한 평가는 가까이는 92년 선거를 통해 나타날 것이요, 길게는 후일의 역사가 평가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야당을 의식한 듯 “오랫동안 야당에 몸담았던 경험에 비추어 결코 소수 의견을 무시하거나 묵살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면서 “특히 평민당의 김대중 총재와는 오랫동안 정치를 함께해 온 사이”라고 강조했다. 1992년 10월 13일 김 전 대통령이 대선 출마 전 국회의원으로서 한 마지막 교섭단체 연설은 의회주의자의 면모를 느끼게 한다. “저는 지금 새로운 책임으로 인해 스스로 의사당을 떠나지만 마음은 이곳에 영원히 여러분과 함께 남을 것입니다. 이제는 성숙해질 의회정치에 대한 소망을 간직하면서 떠납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화성처럼 초강력 태양폭풍이 덮치면…

    화성처럼 초강력 태양폭풍이 덮치면…

    이달 초 미국 항공우주국(NASA) 연구자들은 화성을 생명체가 살 수 없는 불모지로 만든 직접 원인이 태양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발표했다. NASA 연구진은 화성 대기 탐사선 ‘메이븐’이 보내온 자료를 분석한 결과 태양풍이 화성의 대기권을 사라지게 만들었다고 밝혔다. 물이 흐르고 산소가 풍부한 대기를 갖고 있던 화성에 어느 날 갑자기 강한 태양풍이 불어닥치면서 화성을 감싸고 있던 대기와 수분을 우주로 날려 보냈다는 설명이다. 화성은 태양풍으로부터 행성을 보호해 줄 수 있는 대기권이 사라지면서 대기의 이탈이 점점 심해져 지금은 지구의 0.6%에 불과하다. NASA는 이런 연구 결과를 세계적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4편의 논문으로 발표했다. 생명체의 무한한 에너지원으로 알려진 태양이 단숨에 행성 하나를 황폐화시키는 파괴자로 바뀌는 이유는 뭘까. ●폭발하며 엑스선·고에너지 하전 입자 등 방출 지름 139만 2000㎞(지구의 109배), 무게 2×1030㎏(지구의 약 33만배), 지구와의 거리 1억 4960만㎞(광속으로 8분 19초). 태양은 5억 4000만년 전 지구상 생명체가 처음 나타난 뒤부터 무한 에너지원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 질량의 4분의3은 수소, 나머지 4분의1은 헬륨으로 이뤄진 태양은 끊임없는 핵융합 반응을 하며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다. 1초 동안 수소 수백만t이 헬륨으로 바뀌는 핵융합 반응으로 만들어 내는 에너지는 500만t이 넘는다. 이는 인류가 탄생한 이후 사용한 에너지보다 많은 양이다. 이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태양 폭발’(태양 플레어)과 ‘태양풍’ 현상이다. 태양 폭발은 태양 표면에서 발생하는 거대한 폭발 현상으로 대량의 엑스선, 감마선, 고에너지 하전 입자 등을 방출한다. 고에너지 하전 입자가 지구에 도달할 경우 지구 자기장이 갑자기 불규칙하게 변하는 ‘자기폭풍’, 단파무선통신이 일시적으로 끊기는 ‘델린저’ 현상 등이 나타난다. 극지의 하늘을 아름답게 수놓는 오로라도 태양 폭발과 태양풍으로 인해 발생하는 현상이다. 태양풍은 태양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태양 폭발로 인해 발생하기도 하지만 태양 흑점 주변에 강한 자기장이 형성되면서 만들어지는 경우가 더 많다. 태양풍은 다양한 전자파와 자기장파, 미립자를 포함하고 있는데 초당 100만t 가까이 방출되며 초속 200~750㎞ 속도로 지구로 날아온다. 태양풍은 지구 자기장과 대기권의 영향으로 대부분 소멸하지만, 일부 플라스마 입자는 지구 전리층에 강한 영향을 미쳐 일시적인 지자기 변동을 일으키면서 발전소나 변전소 같은 전력시설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실제로 1859년에는 역대 최악의 태양풍이 발생해 전 세계에서 오로라 현상이 발생하고 유럽과 북미 도심 지역에서 전신 시스템이 마비되고 전신선이 폭발해 전신국에 화재가 발생하는 한편 나침반들이 오작동하기도 했다. 다양한 통신망과 전력망으로 이뤄진 요즘, 강력한 태양풍은 전력 공급망을 파괴하고 각종 통신망을 무력화할 뿐 아니라 위성의 GPS 시스템에도 영향을 미쳐 선박이나 비행기 운행을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지구는 대기권·지자기장이 보호막 태양 폭발이나 태양풍은 화성이나 달 등 우주 탐사를 계획할 때도 필수적으로 고려해야 할 대상이다. 우주에서는 지구의 대기권처럼 태양풍을 막아 줄 수 있는 보호막이 없기 때문에 자칫 치사량의 우주방사선과 전자파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주 과학자들은 태양 폭발 관측으로부터 대피호로 피할 때까지 우주인에게 주어진 시간은 15분 정도에 불과하다는 계산을 내놓기도 했다. 지구는 대기권과 지자기장의 보호 덕분에 화성처럼 대기나 물이 사라질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그러나 거대한 태양 폭발로 인한 전자기기 오작동 등 대규모 혼란이 발생할 가능성은 상존하고 있다. 그래서 세계 각국 과학자들은 태양 폭발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우리나라 국립전파연구원도 NASA와 협력해 태양흑점 폭발 등 태양 활동 감시와 이에 따른 예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 18일부터는 태양 활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우주방사선의 노출량을 확인할 수 있는 ‘항공 우주방사선 예측 시스템’을 개발해 홈페이지(www.spaceweather.go.kr)에서 제공하고 있다. 홈페이지에서 비행기 편명과 탑승 날짜 등을 입력하면 실시간으로 해당 항공기의 우주방사선 노출량을 확인할 수 있다. 국립전파연구원 우주전파센터 관계자는 “우주방사선은 태양 활동 등으로 인해 우주에서 유입되는 방사선”이라며 “95% 이상이 지표면에 도달하기 전에 지구 대기에 반사되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우주방사선 영향을 직접 받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말했다. 이어 “비행기를 자주 타는 승무원의 경우 우주방사선에 직접 노출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번 서비스를 통해 개인별 연간 누적 방사선량 관리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행기 승무원들의 경우 우리나라는 우주방사선 허용량을 5년 누적 100mSv(밀리시버트)로 규정하고 있다. 국내 항공승무원의 연간 평균 방사선량은 2.28~2.96mSv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김영삼 前대통령 서거] 취임 10여일 만에 ‘하나회’ 척결…관료화된 조직 청산 여전히 숙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생전 자신의 최대 업적으로 꼽는 것 가운데 하나가 ‘하나회’ 척결로 대표되는 군 개혁이다. 김 전 대통령은 30여년간 한국 정치사의 기득권 집단으로 자리잡던 군부에 과감히 칼을 들이댔고,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집권 계기가 된 12·12(1979년)를 ‘쿠데타적 사건’으로 규정해 문민통제의 초석을 쌓은 것으로 평가된다. 반면 개혁이 인적 청산에만 그쳐 2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군내 인사 잡음, 조직 이기주의, 방산비리 등은 청산할 적폐로 남아 있다. 전 전 대통령의 집권 기반이 된 군내 사조직 하나회는 단순한 친목 모임이 아니라 배타적 인맥을 형성해 요직을 독식하고 군이 공공연히 정치에 개입하는 통로로 뿌리내려 왔다. 김 전 대통령은 취임 10여일 만인 1993년 3월 8일 하나회 출신인 김진영(육사 17기) 당시 육군참모총장과 서완수(육사 19기) 국군기무사령관을 전격 경질했다. 이어 한 달도 되지 않은 4월 2일 군부의 실세였던 안병호(육사 20기) 수도방위사령관과 김형선(육사 19기) 특전사령관을 해임했다. 김영삼 정부는 박정희 정부 시절인 1974년부터 30조원 규모를 투자한 전력 증강 사업(율곡사업) 비리에도 칼을 들이댔다. 이를 통해 이종구, 이상훈 전 국방장관, 김철우 전 해군참모총장, 한주섭 전 공군참모총장 등 전직 군 최고위 간부들이 방산업체와 무기중개상 등으로부터 수억원에서 수천만원까지 뇌물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구속되기도 했다. 12·12와 하나회 연루인사, 율곡비리 등과 관련해 전역 조치되거나 해임·전보된 장성만도 50여명에 이른다. 취임 첫해에 군단장급 장성의 62%, 사단장급의 39%가 교체된 셈이다. 김 전 대통령의 군 개혁은 취임 직후부터 3개월 동안 파격을 거듭하며 전광석화처럼 진행했기에 성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는 후보 시절부터 12·12 사태의 피해자인 정승화 전 육군참모총장과 교분을 갖고 군내 문제를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다만 개혁이 인적 청산에 그쳐 본질적 적폐를 뿌리 뽑기에는 갈 길이 멀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리 군은 1993년 9조 2154억원이던 국방예산이 올해 37조 4560억원으로 늘어날 정도로 성장했다. 하지만 현재도 방산비리 문제가 지속되고 있을 뿐 아니라 인사를 둘러싼 논란이 지속되는 등 전투형 강군과는 거리가 멀다는 평가다. 박휘락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는 23일 “김영삼 정부 이후 우리 군 인사 관행이 정권 교체에 따른 한풀이, 유력자와의 친분에 따른 정실인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서 “보신주의와 관료화된 조직은 여전히 후임 대통령들이 풀어야 할 숙제”라고 지적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민주화 이끌어 온 ‘숙명의 맞수’… ‘兩金 시대’ 역사 속으로 지다

    민주화 이끌어 온 ‘숙명의 맞수’… ‘兩金 시대’ 역사 속으로 지다

    현대사의 격랑 속에 때로는 동지로, 때론 맞수로 ‘숙명적 관계’를 이어 온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 민주화 시대를 연 두 전직 대통령은 정치사에서 양김(兩金)으로 일컬어진다. 여기에 산업화의 주역이었던 김종필 전 국무총리를 합치면 3김(三金)이 된다. 한국 현대 정치사는 세 사람의 협력과 갈등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2일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로 양김 시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3김 가운데는 김 전 총리만 남아 3김 시대의 명맥을 유지하게 됐다. “(DJ는) 나하고 가장 오랜 경쟁 관계이자 협력 관계다.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특수 관계다.”(2009년 8월 김영삼 전 대통령,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병문안하면서) 22일 타계한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일생을 되돌아볼 때 함께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숙명의 맞수’이자 ‘동지’인 김대중(DJ) 전 대통령이다. 둘은 박정희·전두환 군사정권과 맞선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는 든든한 ‘동지’였지만 권력 앞에선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경쟁자’였다. ‘양김’은 1970년대 유신체제하에서 야당의 차세대 주자로 자리매김하며 고비마다 협력과 경쟁을 이어 갔다. 1968년 신민당 원내총무 경선을 시작으로 70년 대선 후보 경선, 87년 대선, 92년 대선까지 정치적 명운을 건 승부를 벌였다. 나이는 한 살 어리지만 국회 등원은 훨씬 빨랐던 YS가 첫 승부였던 신민당 원내총무 경선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40대 기수론’을 내세워 맞붙었던 1970년 대선 경선에서는 1차 투표에서 승리하고도 결선투표에서 DJ에게 역전패했다. YS는 1971년 대선에서 DJ를 도와 “김대중의 승리는 우리들의 승리이며 곧 나의 승리”라면서 지원 유세에 나섰지만 95만표 차로 패배했다. YS의 상도동계와 DJ의 동교동계는 1984년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를 결성했고 1985년 2월 총선에서 신민당의 극적 승리를 일궈 냈다. 양김은 대통령 직선제를 주장하며 6월 민주항쟁을 이끌고 직선제 개헌을 쟁취해 냈다. 하지만 협력은 여기까지였다. YS와 DJ는 1987년 13대 대선을 앞두고 통일민주당을 창당했다. 하지만 대선 후보 단일화 협상에서 실패한 뒤 DJ는 탈당해 평화민주당을 창당했다. 양김은 국민적 여망을 저버리고 대선에 뛰어들었고, 결국 정권 창출에 실패했다. 훗날 DJ는 “나라도 양보를 했어야 했다”, “너무도 후회스럽다”고 자책했다. YS도 DJ 서거 이후 언론 인터뷰에서 “천추의 한이 됐지. 국민한테도 미안하고…”라고 회고했다. 이후 대립 구도는 가속화했다. YS는 1990년 1월 당시 여당인 민정당 및 김종필(JP) 총재가 이끌던 신민주공화당과 3당 합당을 결행했다. YS는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 굴에 들어갔다”고 했다. 집권당인 민주자유당의 후보로 1992년 대선에서 DJ와 마지막 대결을 벌인 끝에 먼저 청와대에 입성했다.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영국으로 떠났던 DJ는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고 제1야당 대표로 정계에 복귀했다. 1997년 4수 끝에 대통령에 당선돼 YS에게 권좌를 넘겨받았다. 양김은 1987년 단일화 실패 이후 2009년 DJ가 서거할 때까지 22년간 반목을 이어 갔다. DJ는 3당 합당 이후 문민정부에 이르기까지 YS를 비난했고 YS도 퇴임 후 DJ의 노벨상 수상까지 깎아내렸다. 두 사람은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서 ‘조우’했지만 서로 외면한 채 다른 곳을 응시했다. DJ가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독재’라는 표현을 써 가며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자 YS는 “이제 그 입을 닫아야 한다”고 일갈했다. 하지만 같은 해 8월 YS가 사경을 헤매던 DJ를 문병한 뒤 취재진에게 “이제 화해한 것으로 봐도 좋다. 그럴 때가 됐다”고 밝히면서 한국 현대사의 두 거목은 극적으로 화해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그는 떠났지만 말은 남아 있네

    그는 떠났지만 말은 남아 있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오고야 만다.” (1979년 국회의원에서 제명되자) “민주화 산행에 있어 최종 고지의 200m 전방에 왔다.” (1987년 언론 인터뷰) “나는 박정희 정권을 타도한 사람이다. 기필코 전두환·노태우 정권을 타도할 것이다.” (1987년 대통령 선거 직후 기자회견) “나는 대통령인 나 자신이 솔선해야 한다는 각오 아래 오늘 나의 재산을 공개한다.” (1993년 첫 국무회의) “새 정부 국가 기강 확립의 대도(大道)는 첫째도 윗물 맑기요, 둘째도 윗물 맑기다.” (1993년 국가기강확립 보고회의) “우째 이런 일이….” (1993년 최형우 민자당 사무총장 아들의 대입 부정에 대해) “너무 급히 달려도 위험하지만 달리다가 멈추면 쓰러진다.” (1993년 모범 수출업체 대표들과의 오찬) “분노와 저항의 시대는 갔다. 투쟁이 영웅시되던 시대도 갔다.” (1993년 서울대 졸업식 치사) “지지율이 90%를 넘을 때는 너무 높아서 어지럽고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이제야 정상으로 돌아왔다.” (1994년 대통령 취임 1주년 기자회견) “로마제국은 외침이 아니라 내부 부패로 망했다.” (1994년 인천 북구청 세무 비리 사건에 대해) “이번 기회에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겠다.” (1995년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 “정상에 오르면 반드시 내려갈 때도 생각해야 한다.” (1997년 LA다저스 박찬호 선수 가족 초청 오찬) “나도 23일간 단식해 봤지만 굶으면 죽는 것은 확실하다.” (2003년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의 단식투쟁 현장) 김영삼 전 대통령은 수많은 ‘어록’을 남겼다. 정치 거목이 자신의 ‘직설 화법’을 통해 단단한 ‘저항 의식’을 담은 말들을 쏟아 내니 무시 못 할 파괴력이 더해졌다. 김 전 대통령은 1979년 헌정 사상 첫 제명 국회의원이 된 직후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오고야 만다”는 말을 남겼다. 이 말은 ‘저항’을 뜻하는 상징적 표현으로 여겨지며 정치권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널리 회자됐다. 김 전 대통령은 1990년 ‘3당 합당’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자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로 들어간다”며 화살을 피했다. ‘큰길로 나가면 거칠 것이 없다’는 의미의 ‘대도무문’(大道無門)을 좌우명으로 삼은 김 전 대통령은 같은 해 국가기강확립 보고회의에서 “새 정부의 국가 기강 확립의 대도(大道)는 첫째도 윗물 맑기요, 둘째도 윗물 맑기다”라며 공직자들의 청렴성을 강조했다. 김 전 대통령은 “우째 이런 일이…”라는 말도 유행시켰다. 최형우 민주자유당 사무총장 아들의 대입 부정 사건이 벌어진 데 대한 김 전 대통령의 반응이었다. 진한 경상도 사투리 발음 탓에 ‘학실히(확실히)’, ‘씰데(쓸데)없는 소리’, ‘이대한(위대한) 국민 여러분’ 같은 유행어도 만들어졌다. 또 김 전 대통령은 1995년 일본 정치인의 거듭된 망언에 대해 “이번 기회에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겠다”고 비판하며 국민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 주기도 했으나 한·일 관계에서는 오랜 기간 그늘이 됐다. 2008년 당시 김무성 의원이 한나라당의 공천 학살로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을 때에도 김 전 대통령은 “공천 심사가 엉망이다. 버르장머리를 고쳐 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1997년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당시 LA다저스 소속 박찬호 선수에게 “정상에 오르면 반드시 내려갈 때도 생각해야 한다”는 조언을 했다. 이는 정치인들에게 주는 메시지이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이 2003년 단식 농성을 벌이던 최병렬 당시 한나라당 대표를 찾아가 “나도 23일간 단식을 해 봤지만 굶으면 죽는 것은 확실하다”며 단식을 중단할 것을 종용한 일화도 유명하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노무현·이명박·김무성·손학규… ‘정치적 자손’ 숱하게 발탁

    노무현·이명박·김무성·손학규… ‘정치적 자손’ 숱하게 발탁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인맥은 상도동계가 핵심이다. YS는 특유의 ‘인물 발탁’으로 한국 정치사에 수많은 ‘정치적 자손’을 남겼다. 이 중엔 YS보다 먼저 세상을 등진 사람도 있고, 아직까지 여의도를 호령하는 인물들도 있다. ●‘정치인 양성 사관학교’ 상도동계 1세대인 ‘좌(左)동영 우(右)형우’를 비롯해 서석재·김덕룡 전 의원, 김수한·박관용 전 국회의장,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서청원 최고위원, 4선 정병국·이병석 의원 등은 모두 YS와 민주화 운동을 함께했거나 YS가 발탁한 인사들이다. 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도 그가 발탁했다. 진보 진영의 야권 인사들도 YS가 제도권 정치로 흡수했다. ●김무성 1987년 막내로 입문 김 대표는 민주화추진협의회를 거쳐 1987년 상도동계 막내로 입문한 뒤 김영삼 정권 초대 민정수석비서관, 최연소 내무부 차관을 지냈다. 서 최고위원은 YS의 야당 총재 시절 비서실장, 문민정부 정무장관을 역임했다. 최형우 전 의원은 고 김동영 의원과 함께 민주화 운동 시절 YS를 최측근에서 보좌했던 정치적 동지다. 문민정부 2인자로 내무부 장관을 지냈지만 1997년 이회창 당시 신한국당 고문과 여당 대선 후보 자리를 놓고 힘겨루기를 하다 중풍으로 쓰러진 뒤 정계에서 물러났다. 민주당 원내총무를 역임한 4선 김동영 전 의원은 1991년 55세로 일찍 세상을 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경북고 동기로 민정당 출신인 ‘허주’(虛舟) 김윤환 전 의원은 당시 대구·경북 의원들을 결집시켜 김영삼 정권 탄생에 공을 세운 한국 정치사의 대표적 킹메이커다. 2009년 별세한 서석재 전 의원은 김동영·최형우·김덕룡과 함께 민주계 ‘실세 4인방’으로 불렸다. 164㎝ 단신으로 별명이 ‘작은 거인’이었던 그는 조직의 귀재로, 1995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설을 제기한 뒤 총무처 장관직에서 8개월여 만에 물러났다. YS는 이를 두고두고 안타까워했다. ●2012년 대선후보 놓고 갈려 상도동계는 2012년 대선 때 지지 후보를 놓고 갈렸다. 전북 익산 출신으로 상도동계의 드문 호남 인맥인 김덕룡 전 의원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를 지지하며 다른 길을 걸었다. 부산에서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1988년 13대 총선 당시 YS에게 영입돼 부산 동구에서 금배지를 달았다. 그러나 1990년 3당 합당에 반발하며 YS와 갈라서게 된다. 이 전 대통령은 1992년 14대 총선에서 민자당 전국구(비례대표) 의원으로 깜짝 발탁됐다. 세 차례 대권에 도전했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YS 정부 최연소 노동부 장관 출신인 이인제 최고위원도 YS가 발굴했다. 특히 이 전 총재는 김영삼 정권에서 감사원장·총리로 중용되는 등 YS가 직접 대권 가도를 놓아줬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는 서강대 교수 시절 광명 보궐선거를 통해 국회에 입성, 1996년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다. 민중당 소속 운동권 정치가였던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이재오 의원은 1996년 15대 총선 때 신한국당 총재였던 YS가 영입했다. 15대 총선 때는 ‘YS 키즈’가 대거 배출됐다. 정의화 국회의장, ‘모래시계 검사’ 홍준표 경남도지사, ‘박종철 검사’ 안상수 창원시장, 이완구 전 국무총리 모두 신한국당 초선 동기다. ‘YS의 영원한 입’ 박종웅 전 의원, 홍인길 전 총무수석도 YS 직계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속보] 김영삼 前대통령 서거… ‘양김 시대’ 역사의 뒤안길로

    [속보] 김영삼 前대통령 서거… ‘양김 시대’ 역사의 뒤안길로

    제14대 대통령을 지낸 김영삼(金永三) 전 대통령이 22일 새벽 서거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0시 22분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혈액감염 의심 증세로 치료를 받던 중 숨을 거뒀다고 서울대병원 관계자가 전했다. 김 전 대통령은 올해 88세로 고령에다 체력이 많이 떨어져 종종 서울대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아왔으며 그 때마다 며칠씩 입원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9일 몸에서 열이 나 서울대병원에서 입원했고 21일 오후 상태가 악화돼 중환자실로 옮겼다. 지난 10일 검진차 병원을 찾았다가 17일까지 입원했다 퇴원하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로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민주화 세력의 양대 산맥이었던 ‘김대중·김영삼’의 ‘양김 시대’가 막을 내리게 됐다. 김 전 대통령은 1927년 12월 20일 경남 거제군 장목면 외포리에서 아버지 김홍조(金洪祚)와 어머니 박부연(朴富蓮)의 외아들로 태어난 김 전 대통령은 장목소학교, 통영중학교, 경남고등학교와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1954년 3대 민의원 선거에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뒤 5·6·7·8·9·10·13·14대까지 9선 의원을 지냈다. 한국 헌정사에서도 최연소(만 26세) 국회의원과 최다선(9선) 국회의원이라는 기록도 함께 갖고 있다. 야당 당수 세 차례, 야당 원내총무를 다섯 차례나 지냈다. 1970년대 후반에는 ‘40대 기수론’을 내세운 야당 당수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 체제에 정면으로 맞섰다가 1979년 총재 직무를 강제로 정지당하고 의원직에서도 제명됐다. 신군부 정권 시절이던 1980년대에는 23일간의 단식 투쟁, 장기간의 가택연금 등의 정치적 박해와 고난을 겪으면서도 민주화추진협의회를 결성하고 1987년 ‘6월 항쟁’을 주도하는 등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는 평생의 민주화 동지이자 라이벌 관계를 이어갔다. ‘상도동’과 ‘동교동’으로 상징됐던 양김의 민주화 세력은 민주화 운동의 양대 산맥을 이루며 역사를 이끌었다.김 전 대통령은 1987년 12월 야권 후보단일화에 실패한 뒤 통일민주당 후보로 독자출마한 대통령 선거에서 당시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에게 패해 2위로 낙선한 바 있다.그러나 이후 민정당과 신민주공화당과의 3당 합당을 통해 만들어진 민주자유당에 합류하면서 박철언 전 의원과의 대결 끝에 대선 후보가 되었다. 1992년 대선에서 당시 김대중 후보를 물리치고 당선됐다. 그는 ‘군정 종식’을 선언했고 ‘문민시대’를 열었다. 특히 ‘칼국수’를 즐겨먹는 것으로 검소함과 청렴함을 표방하면서 하나회 청산과 금융·부동산 실명제 도입, 지방자치제 실시, 전방위적 부패 척결 등을 통해 군사정권 시절에 비해 사회 전반적인 시스템을 개선하는 데 주력했다. 그러나 외환 위기에 따른 국가 부도 사태를 초래했고 친인척 비리가 불거지는 등 임기 초반에 누렸던 절대적인 지지를 대부분 상실하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퇴임 이후에도 ‘상도동계’의 영원한 리더이자 새누리당의 전신 한나라당의 ‘대부’로 자리하며 오랫동안 현실 정치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손명순 여사와 아들 현철 씨가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상도동 가신그룹] ‘킹메이커’ 김윤환에 좌는 김동영 우는 최형우

     고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인맥 계보는 상도동 가신 그룹이 핵심이다.  상도동계 핵심은 최형우·서석재·김덕룡·김윤환 전 의원, 김동영 전 장관, 서청원·김무성 의원 등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김 전 대통령의 ‘발탁’으로 정치인생을 시작했다. YS 집권을 전후한 1980년대 후반~90년대 초·중반 사이 정치 인생의 황금기를 구가했던 이들은 대부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이미 고인이 된 사람들도 있다.  한국 정치사의 대표적 킹메이커인 김윤환 전 의원은 ‘김영삼 대통령’을 만든 일등공신이다. 전두환 정권 시절 청와대 비서실장, 정무수석을 역임한 그는 문민정부 출범 때 대구·경북 의원들을 결집시켜 김영삼 정권 탄생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아호 허주(虛舟)로 더 유명한 그는 1997년 신한국당 대선 경선에서 대권을 노렸으나 이회창 후보에게 투항하면서 꿈을 접었다. 이 후보의 대선 패배 뒤에는 “권력은 자신이 가져야 한다”는 발언을 남겼고, 2000년 한나라당 공천 탈락 후 민주국민당을 창당했지만 낙선, 2003년 말 신장암으로 별세했다.  상도동의 ‘좌동영 우형우’ 가운데 한 명인 최형우 전 의원은 일찍 세상을 뜬 김동영 전 장관과 함께 YS의 최측근으로 분류된다. 1971년 야당 신민당 소속으로 8대 국회 첫 배지를 달며 YS와 인연을 맺은 그는 YS 당선 이후 민자당 사무총장으로서 공직자 재산공개를 주도하는 등 변화와 개혁의 선봉에 섰지만 1994년 부천세무서 탈세 사건으로 경질됐다. 1996년 15대 총선에 당선돼 차기 대선 후보로도 거론됐으나 1997년 갑작스럽게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정계를 은퇴했다.  2009년 별세한 서석재 전 의원은 김동영·최형우·김덕룡과 함께 민주계 실세 4인방이었다. 164㎝의 단신인 탓에 ‘작은 거인’이란 별명으로 불린 그는 조직의 귀재였다. 1992년 대선 당시 나라사랑실천본부란 사조직을 이끌며 YS 당선에 일조했다. 김 전 대통령은 그를 총무처 장관에 발탁했으나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4000억원 비자금설을 주장해 8개월 여만에 물러났다. YS는 이를 두고두고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김덕룡 전 의원은 지난해 대선에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지지를 선택하며 상도동계와 다른 길을 걸었다. 그는 앞서 2007년 대선 경선 때 이명박 후보 지지 핵심멤버인 6인회 멤버로 박근혜 당시 후보와 대립각을 세웠다. 1970년 신민당 총재 비서실장으로 정계 입문해 5선을 지낸 관록의 정치인이다.  반면 서청원 새누리당 의원은 이명박 정부에서 낙천, 총선 공천헌금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는 등 정치적 암흑기를 겪다 최근 복권돼 새누리당 상임고문으로 부활했고, 10·30 재보선을 통해 원내 복귀에도 성공했다. 기자 출신으로 민한당 국회의원 시절이던 1981년 YS와 처음 만난 그는 1989년 민주당 총재 비서실장, 1996년 신한국당 원내총무 등 탄탄대로를 걸었지만 2002년 한나라당 불법대선자금 사건을 책임지고 탈당, 실형 선고를 받는 등 부침을 겪었다. 이후 박근혜 대통령과 연을 맺고 친박(친박근혜)계 원조 좌장 역할을 해 왔다. 김수한 전 국회의장은 현재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을 맡고 있다.  4·24 재보선으로 복귀한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은 상도동계의 막내다. 1992년 대선에서 정책보좌역을 맡으며 YS와 첫 인연을 맺었다. ‘무대(김무성 대장)’라는 별명도 보스 정치의 한복판이었던 상도동에서 정치 역정을 겪으며 얻게 됐다.  YS의 가신이자 대변인격으로 불렸던 박종웅 전 의원은 현재 대한석유협회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와는 YS 퇴임 이후에도 대립했다. 2007년 대선에서 민주연대21이라는 조직을 주도하면서 이명박 전 대통령을 지원했지만 18대 총선 때 부산 사하구에 공천을 신청했다가 낙천했다.  부인 손명순 여사는 한때 건강이 악화됐지만 최근에는 기력을 많이 회복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대선 때도 고인과 함께 투표소에 나와 한 표를 행사했다. ‘YS 황태자’로 불렸던 차남 현철씨(전 여의도연구소장)는 지난해 총선 공천 때 경남 거제에서 낙천한 뒤 탈당해 정치적 재기를 노리고 있다. 김 전 대통령 집권 시절 ‘소통령’으로 불릴 정도로 권부의 핵심에 있었지만 집권 말기 조세포탈 혐의로 실형을 살기도 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화보] 김영삼 前대통령 서거…한국 현대사의 ‘거목’

    [화보] 김영삼 前대통령 서거…한국 현대사의 ‘거목’

    제14대 대통령을 지낸 김영삼(金永三) 전 대통령이 22일 새벽 서거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0시 22분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혈액감염 의심 증세로 치료를 받던 중 숨을 거뒀다고 서울대병원 관계자가 전했다. 김 전 대통령은 올해 88세로 고령에다 체력이 많이 떨어져 종종 서울대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아왔으며 그 때마다 며칠씩 입원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9일 몸에서 열이 나 서울대병원에서 입원했고 21일 오후 상태가 악화돼 중환자실로 옮겼다. 지난 10일 검진차 병원을 찾았다가 17일까지 입원했다 퇴원하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로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민주화 세력의 양대 산맥이었던 ‘김대중·김영삼’의 ‘양김 시대’가 막을 내리게 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책꽂이]

    [책꽂이]

    응답하라 독수리다방(정이숙 지음, 동아시아 펴냄) 독다방으로 상징되는 신촌이라는 공간과 1980년대 중·후반이라는 시간의 창을 통해 한국사회의 한 시절을 회억한다. 대학생으로서 지낸 청춘의 지극히 사적인 기억은 당대의 문화와 정치의 시대상과 맞물려 있다. 304쪽. 1만 4000원. 소셜미디어와 SNS마케팅(서구원 지음, 커뮤니케이션스북스 펴냄) 소셜미디어는 물이나 공기처럼 현대인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상의 도구가 됐다. 산업의 측면에서도 소셜미디어는 미래 산업변화의 핵심이 됐다. 마케팅의 측면에서 소셜미디어의 미래를 살핀다. 110쪽. 9800원. 좋은 교대제는 없다(곽경민 등 지음,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펴냄) 직업환경의학전문의, 사회학자, 노동운동가 등 전문가들이 쓴 노동현장의 교대제에 대한 심층 보고서다. ‘저녁이 있는 삶’과 건강하고 안전한 노동환경에 대한 필요성을 담았다. 264쪽. 1만 3000원. 죽다 살아났습니다요(무라카미 다케오 글·그림, 네오카툰 펴냄) 일본의 웹툰 작가가 뇌부종, 치사성 부정맥 등의 질환으로 인해 실제 심장이 정지됐을 정도로 죽음을 넘나들었던 투병생활 얘기다. 불규칙한 프리랜서로서 자신의 삶과 내면, 인생에 대한 새로운 느낌을 만화로 그려냈다. 166쪽. 1만 2500원. 문제는 타이밍이야!(정해윤 지음, 실천문학사 펴냄) 이제 막 사랑에 눈뜬 청소년들이 사랑이 시작되고 끝나가는 과정에서 생겨난 생채기를 가족, 친구 등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치유해 나가는 모습을 담백하게 그렸다. 180쪽. 9500원. 세상에 없는 나의 집(금희 지음, 창비 펴냄) 조선족 사회에서 바라보는 탈북자 문제 등을 그린 일곱 편의 단편소설이 실렸다. 지난해 탈북여성 이야기를 다룬 단편 ‘옥화’를 발표하며 한국 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던진 조선족 작가의 첫 소설집이다. 292쪽. 1만 2000원. 굴러라 슈퍼바퀴(고정욱 지음, 손지희 그림, 뜨인돌어린이 펴냄) 속마음도 쏙쏙 읽고 어려운 일도 척척 해결해주는 휠체어 ‘힐링이’. 놀라운 능력을 가진 힐링이를 통해 장애인들이 겪는 어려움을 해결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72쪽. 9000원.
  • 朴대통령, 아태무역지대 실현 재확인

    박근혜 대통령이 19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제안한 ‘중소기업의 국제화’는, 역내 경제통합을 가속화시키고 다 함께 발전할 수 있는 ‘포용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의 하나이다. 박 대통령은 “역내 기업의 97%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의 국제화에 힘을 모아야 한다”며 중소기업의 ‘글로벌가치사슬’(GVC)을 강조했다. 이는 기업 활동의 전 과정이 글로벌 차원에서 이뤄져 다른 나라의 기업들과도 함께 이익을 나누게 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박 대통령은 “내년부터 전자상거래를 통해서 역내 중소기업들이 손쉽게 글로벌 가치사슬에 참여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전자상거래 활성화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 ‘성실 무역업체 공인제도’의 활성화도 강조했다. 역내 중소기업이 ‘성실업체’로 공인받으면 역내 통관절차가 간소화된다. 또한 박 대통령은 “역내 성장의 저변 확대를 위해 서비스산업의 경쟁력 제고와 교역 확대가 필수적”이라며 이를 위해 역내 서비스산업의 규제환경을 분석, 평가하는 사업을 제안했다. 정부는 앞서 지난 9월 ‘역내 소상공인 및 중소기업의 국제화를 위한 전자상거래 촉진 사업’과 ‘중소기업 지식재산 사업화 매뉴얼 개발 사업’ 등을 제안해 APEC 제3차 고위관리회의에서 이를 승인받았다. 한편 박 대통령은 이번 방문에서 달라진 국가 위상을 재확인했다. 1966년 10월 박정희 전 대통령은 베트남전 참전 7개국 정상이 참여하는 ‘마닐라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마닐라를 찾았다가 푸대접을 받았다. 앞서 필리핀에 초청 의사를 타진했으나 답이 오지 않았고, 정상회의 때는 의도적으로 다른 정상들 방보다 작은 방을 배정받았다. 사료에 따르면 의도적인 외교 결례에 수행원들이 화를 냈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재임 중 더이상 필리핀을 찾지 않았다. 당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은 아시아에서 일본에 이어 부강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고, 베트남전 파병으로 미국의 원조를 끌어낸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견제가 심했다고 한다. 마닐라(필리핀)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 朴대통령 “中企, 수출기업으로 국제화” 제안

    朴대통령 “中企, 수출기업으로 국제화” 제안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필리핀을 방문 중인 박근혜 대통령은 19일 역내 경제통합 과정에서 포용성을 높이기 위한 정책 대안 중 하나로 ‘중소기업의 국제화’를 제안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지역경제통합을 통한 포용적 성장’을 주제로 열린 APEC 정상회의 본회의에서 중소기업의 ‘글로벌 가치사슬’(GVC) 참여 지원, 대기업과의 협력 파트너십 구축, 통관 원활화를 위한 성실 무역업체 활용 필요성 등을 구체적 방안으로 제시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또한 박 대통령은 “역내 다양한 형태의 경제통합 과정에서 개방적 지역주의와 포용적 경제성장이 함께 확보되길 기대한다”면서 다자무역체제 강화를 위한 APEC의 기여 필요성을 강조하고 정보기술협정(ITA) 협상의 조속한 타결을 위한 노력을 촉구했다. 또한 박 대통령은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에 대응해 아·태 지역의 새 성장을 위한 혁신 전략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면서 경제혁신 3개년 계획 및 4대 구조개혁 성과 등을 포함한 우리의 정책적 노력을 소개했다. 이날 폐회한 APEC 정상회의는 선언문에서 소상공인·중소기업이 지역 및 세계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무역환경을 조성하는 내용 등을 담았다. 한편 APEC 정상들은 선언문에서 “테러리즘의 모든 행위, 방식 및 관행을 강력히 규탄한다”면서 테러와 싸워나가는 데 있어 국제협력 및 연대를 강화할 긴급한 필요성을 강조한다”고 천명했다. 그러면서 “테러리즘이 자유롭고 개방된 경제의 근저에 있는 기본가치를 위협하는 것을 허용치 않겠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이번 회의에서 2025년 APEC 정상회의 개최국으로 확정됐다. 마닐라(필리핀)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 [부고] ‘1세대 인권변호사’ 조준희

    [부고] ‘1세대 인권변호사’ 조준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초대 대표를 맡았던 ‘1세대 인권변호사’ 조준희 전 사법개혁위원장이 18일 오후 6시 지병으로 별세했다. 77세. 경북 상주 출신으로 1963년 서울지법 판사에 임용된 그는 1971년 법복을 벗고 변호사의 길을 택했다. 이후 3·1 민주구국선언사건, 리영희·백낙청 교수 반공법 위반 사건, 동일방직·원풍모방시위 사건 등 굵직한 시국사건을 맡으며 부당한 공권력과 인권 침해에 맞섰다. 1980년대 이후에도 부천서 성고문 사건, 김근태 고문 사건,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등의 변론을 담당했고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특별조사단, 수서개발비리사건 진상조사단에서 활동했다. 그는 1986년 조영래 변호사 등과 함께 정의실천법조인회를 결성했다. 이는 1988년 창립된 민변의 모태가 됐다. 민변 초대 대표를 맡은 그는 1994년 인권변호사로는 최초로 국민훈장 모란상을 받았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1일 오전 7시. 장지는 경북 상주시 헌신동 선영이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박문각 종로고시학원과 함께하는 실전강좌] 영어

    [박문각 종로고시학원과 함께하는 실전강좌] 영어

    서울신문은 많은 수험생들이 응시하는 7, 9급 공무원 시험에 대비해 국어·한국사·영어 등 필수과목에 대한 실전강좌를 마련했다. 박문각 종로고시학원 강사들의 도움을 받아 과목별 주요 문제와 해설을 싣는다. (문제)어법상 옳은 것은? ①China’s imports of Russian oil skyrocketed by 36 percent in 2014. ②Sleeping has long been tied to improve memory among humans. ③Last night, she nearly escaped from running over by a car. ④The failure is reminiscent of the problems surrounded the causes of the fatal space shuttle disasters. (해석)①중국의 러시아산 석유 수입은 2014년에 36% 급등했다. ②잠은 오랫동안 인간의 기억력 향상과 관련돼 왔다. ③지난밤에, 그녀는 자동차에 거의 치일 뻔했다. ④실패는 치명적인 우주왕복선 재난의 원인을 둘러싼 문제들을 연상시켰다. (해설)②전치사 to (~에, ~에게)로 쓰일 때는 뒤에 명사나 동명사가 온다. 따라서 improve가 아닌 improving이 맞는 표현이다. ③그녀는 차에 치이는 것으로부터 피했다는 뜻으로 from running over가 아닌 from being run over가 맞는 표현이다. ④surrounded의 목적어가 the cause를 취하고 있으므로 surrounding을 써야 한다. (정답)① (문제)다음 글에서 옳지 않은 것을 고르시오. Many people have ①heard of the 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 ②but not until today ③has the origins of this document been ④so widely understood. (해석)많은 사람들이 세계인권 선언에 대해 들어 왔지만, 오늘날에야 이 문서의 기원이 널리 이해됐다. (해설)②③문장의 주어 자리에 ‘not until’ 구문이 나오면 도치로 접근해야 한다, but 이하에서는 주어 the origins of this document와 동사 has가 도치돼야 한다. 하지만 문제에서 요구하는 것은 도치가 아니라 수일치 부분이다. 이 경우 주어 origins가 복수이기 때문에 has를 have로 바꿔야 한다. (정답)③ (문제)다음 우리말을 영어로 옮긴 것 중 문법적으로 올바른 것은? ①그는 부주의한 운전으로 운전면허가 정지됐다.→He had his license to suspend for reckless driving. ②그 호텔은 매우 인기가 있으니 미리 예약을 해라.→Do book ahead as the hotel is very popular. ③나라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There is no man but does not love his country. ④그녀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She could not understand what that means. (해설)①운전면허는 정지된 상태이기 때문에 to suspend를 suspended로 바꿔야 한다. ③but은 유사관계대명사로서 but 속에 이미 부정의 의미인 not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does not을 없애야 한다. ④주절의 동사인 could가 이미 과거로 나왔기 때문에 종속절의 시제는 현재가 될 수 없다. means는 meant로 바꿔야 한다. (정답)②
  • 민변 설립한 ‘1세대 인권변호사’ 조준희 前사법개혁위원장 별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초대 대표를 맡았던 ‘1세대 인권변호사’ 조준희 전 사법개혁위원장이 18일 오후 6시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7세.  19일 민변 등에 따르면 경북 상주 출신으로 1963년 서울지법 판사에 임용된 그는 1971년 법복을 벗고 변호사의 길로 뛰어들었다. 그는 3·1 민주구국선언사건, 리영희·백낙청 교수 반공법 위반 사건, 동일방직·원풍모방시위 사건 등 굵직한 시국사건을 맡으며 부당한 공권력과 인권 침해에 맞섰다.  1980년대 이후에도 부천서 성고문 사건, 김근태 고문 사건,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등의 변론과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특별조사단, 수서개발비리사건 진상조사단 활동도 했다. 이돈명, 홍성우, 황인철 변호사와 함께 ‘인권 변호사 4인’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는 1986년 조영래 변호사 등과 함께 정의실천법조인회(정법회)를 결성했고, 이는 1988년 민변의 모태가 됐다. 민변 초대 대표를 맡은 그는 1994년 인권변호사로서는 최초로 국민훈장 모란상을 수상했다.  2003∼2004년에는 사법개혁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법학전문대학원 도입과 국선변호 범위 확대, 국민참여재판 도입 등 법조개혁의 밑그림을 그렸다. 2005∼2008년엔 언론중재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대법관과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감사원장 후보 등으로 여러 차례 물망에 올랐다.  부인 함옥경씨와 사이에 용석(법무법인 천우 변호사)·용욱(영국 런던 닛산자동차)·혜진(미국 조지아주 순례자의신학대학 교수)씨를 뒀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9호다. 발인은 21일 오전 7시이며 장지는 경북 상주시 헌신동 선영이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남은 4명의 딸 키우며 속죄하세요”

    서울고법 형사6부(부장 김상환)는 6세 딸을 체벌하다 숨지게 한 혐의(폭행치사)로 기소된 정모(41·여)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고 15일 밝혔다. 다섯 딸을 둔 정씨는 몇 년 전 남편과 별거하면서 혼자 살았다. 무직 상태에서 술만 마시던 남편이 간경화로 사망하자 정씨가 아이들을 맡아 키우게 됐다. 이 가정에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이 닥친 건 지난해 8월이었다. 넷째 딸의 도벽을 알게 된 정씨는 아이를 벌주려고 벽을 보고 앉아 있게 했다. 그러나 딸은 졸기 시작했고 이를 보자 화가 난 정씨는 아이의 얼굴과 팔 등을 여러 차례 때렸고 이 과정에서 장식장 모서리와 벽에 아이의 머리가 부딪쳤다. 놀란 정씨가 급히 병원으로 옮겼지만 딸은 결국 다발성 외상 등으로 숨졌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이뤄진 1심에서 배심원 7명은 모두 정씨에게 징역 2년이 적당하다는 의견을 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딸의 죽음을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아갈 피고인이 남은 딸들의 곁에서 속죄할 수 있도록 한 번의 기회를 부여할 필요성 또한 가벼이 볼 수 없다”며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뉴스 플러스-사회]

    ‘명예 훼손’ 서울시향 직원 영장기각 박현정(53·여) 전 서울시향 대표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해 박 전 대표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서울시향 직원 곽모(39)씨에 대해 청구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서울중앙지법 이승규 영장전담판사는 지난 12일 “관련자들의 진술이 엇갈리거나 명확하지 않다”고 사유를 밝혔다. 곽씨는 회식자리에서 성추행을 당했다며 지난해 박 전 대표를 고소했으나 경찰은 올 8월 무혐의로 처분하고 곽씨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향군 비리’ 조남풍 회장 檢 출석 뒷돈 비리 혐의를 받고 있는 조남풍(77·육사 18기) 재향군인회 회장이 13일 검찰에 출석했다. 서울중앙지검 조사1부(부장 조종태)는 이날 조 회장을 피고발인 신분으로 불러 회장 선거 당시 금품 살포 의혹과 산하 기관장 매관매직 혐의 등에 대해 조사했다. 조 회장은 취재진에 “모든 혐의를 부인한다”고 말했다.중앙지검은 이날 사건과 관련해 ‘이용호 게이트’의 핵심인물인 이용호씨를 참고인으로 소환해 조사했다. ‘캣맘 사건’ 11세 1명만 소년부 송치 용인서부경찰서는 촉법소년(만 10세 이상~14세 미만)에 해당하는 가해 학생 B(11)군을 과실치사상 혐의로 법원 소년부로 송치할 계획이라고 13일 밝혔다. 실제 벽돌을 던져 사고를 낸 학생은 만 10세 미만의 ‘형사책임 완전 제외자’로 분류돼 형사처벌은 물론 보호처분 대상에서도 제외된다. 이들은 지난달 8일 수지구의 아파트 옥상에서 벽돌을 아래로 던져 길고양이 집을 만들고 있던 박모(55·여)씨를 숨지게 했다. 공공기관 ‘스펙 알박기’ 사라진다 공공기관이 유착된 특정 회사의 제품을 콕 찍어서 규격을 정하고 납품받는 이른바 ‘스펙 알박기’ 비리가 사라진다. 기획재정부는 1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주재로 재정전략협의회를 열고 ‘공공부문 입찰·계약 비리 방지 및 계약 효율성 향상 방안’을 발표했다. 일부 기관만 실시하는 ‘구매 규격 사전 공개 제도’가 모든 공공기관으로 확대된다. 5000만원 이상 경쟁 입찰은 반드시 구매 규격을 미리 공개해야 한다. 서울 김장값 4인가족 18만 7230원 올해 서울시 평균 김장비용이 4인 가족 기준 18만 7230원으로 집계됐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는 13일 새우추젓과 깐마늘의 값이 전년보다 각각 81%, 30% 올라 김장비용도 지난해보다 5.8%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배추값은 재배면적과 생산량 증가로 약세이며, 무도 신품종 재배 면적이 늘어 전년보다 시세가 떨어졌다. 하지만 새우추젓은 가뭄으로 생산량이 전년의 3분의1밖에 되지 않고 품질도 떨어져 김장비용 상승의 주된 요인이 됐다.
  • 이야기로 배우는 한국사

    이야기로 배우는 한국사

    제대로 한국사(전 10권)/전국역사교사모임 지음/휴먼어린이/각 권 150쪽 안팎/각 권 9800원 역사 공부는 지루하다. 무슨 무슨 사건, 전쟁이 터진 수많은 연도와 숫자가 즐비하고, 어려운 한자어로 된 제도와 정책이 늘어져 있고, 왕과 위인들의 이름을 기억해야 한다. 늘 헷갈리고 알쏭달쏭하다. 처음부터 잘못 배운 탓이다. 역사는 머리 아픈 시험 공부 과목이 아니라 숱한 사람들의 삶과 그들이 이뤄 놓은 성공 혹은 실패의 과정과 결과를 담은 흥미진진한 이야기임을 알지 못했기에 역사는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다. 현직에 있는 역사 교사 2000여명의 모임인 전국역사교사모임에서 만든 이 시리즈는 구석기 시대부터 시작해 한국전쟁, 외환위기 등 현대사까지 모두 아우르는 통사 형식을 취했다. 각종 숫자와 표, 왕조 등으로 박제화한 역사에 살아 있는 이야기를 불어넣었다. 이 땅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생활이 어떻게 변화 발전했고, 국가와 사회의 형태 변화와 그 속에서 개인 삶의 관계는 어떻게 바뀌어 갔는지 옛 이야기 풀어 가듯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풀어냈다. 내년부터 5학년 초등학생이 배울 국정 역사 교과서에 일제강점기 쌀 수탈을 ‘수출’로 쓰거나 ‘을사조약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는 등 식민사관이 의심되는 표현들이 수록돼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개정 교과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할 수 있도록 정치사, 생활사, 문화사까지 꼼꼼히 담았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대법 “승객 적극적으로 익사시킨 행위”

    대법 “승객 적극적으로 익사시킨 행위”

    이준석(70) 세월호 선장에 대해 ‘유기치사’가 아닌 ‘살인’을 적용해야 한다는 검찰 측 주장에 대법관 13명 모두가 동의했다. 대법원은 이씨에게 살인죄를 적용해 무기징역을 선고한 원심 확정에서 더 나아가 승객 구조 없이 배에서 떠난 이씨의 행동을 “승객 등을 적극적으로 물에 빠뜨려 익사시키는 행위”라며 한층 강도 높게 비판했다. 대법원은 이날 이씨 등 세월호 승무원 15명에 대한 상고 기각 사유를 설명하면서 특히 이씨에 대해서는 “승객 등의 구조를 위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할 선장으로서, 퇴선 명령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선내 대기 상태에 있는 승객 등의 사망을 방지해야 할 의무가 있고 인명구조를 위한 조치를 지휘·통제할 수 있는 법률상·사실상 유일한 권한을 가진 지위에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승객들이 익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충분히 예견했음에도 내버려둔 채 먼저 퇴선한 것은 선장의 역할을 의식적이고 전면적으로 포기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이씨의 부작위는 작위에 의한 살인의 실행행위와 동등한 법적 가치가 있다”고 판시했다. 부작위란 특정한 행위를 해야 할 법률적 의무를 진 사람이 이를 이행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이씨에게 적용된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는 물론 살인미수와 업무상 과실 선박매몰,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선박, 선원법, 해양관리법 위반 혐의를 모두 유죄로 확정했다. 이 선장을 제외한 승무원 14명은 각각 징역 1년 6개월~7년형이 확정됐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에 대해 “구조조치 또는 구조의무 위반이 문제 된 사안에서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를 인정한 최초의 판결로 선장 등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에게 높은 수준의 책임감을 요구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대법원의 재판 현장이 생중계된 수원지법 안산지원의 재판 중계 법정에서는 적막 속에 일부 유족의 오열이 터져 나왔다. 한 유족은 “내 아이가 없는데 대법원 판결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며 눈물을 훔쳤다. 판결 직후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유족들은 “대법원이 선장과 선원들의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를 인정하면서 1년 7개월 동안의 인고와 고통의 시간을 조금이나마 위로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201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열린 이날 살아 있었다면 시험을 치렀을 자식 생각에 부모들은 가슴을 쳤다. 전명선 피해자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우리 아이들이 있었다면 자기의 꿈과 미래를 위해 수능을 봤을 시간이다. 가족들도 이 자리에서 이런 얘기를 하지 않고 자식들과 함께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욱 어머니’라고 밝힌 다른 유족은 “대한민국의 미래였던 250명의 아이가 오늘 시험을 못 보고 있지만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등, 정의가 실현될 수 있도록 친구들에게 힘을 주고 있을 것”이라며 흐느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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