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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韓 리튬이온전지 규제… 日 “WTO 제소”

    韓 리튬이온전지 규제… 日 “WTO 제소”

    │도쿄 박홍기특파원│한국 정부가 다음달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갈 ‘리튬이온전지 인증제’에 대해 일본 정부 및 업계가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리튬이온전지는 노트북 컴퓨터나 디지털 카메라, 전지자동차 등에 사용되는 핵심 소재. 각국 정부와 기업들이 안정적인 물량 확보에 나서는 차세대 정보기술(IT) 분야이기도 하다. 다만 휴대전화 등을 사용하는 도중에 파열이나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 국가별로 안전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인증제 역시 국내에서 리튬이온전지가 들어간 제품을 제조·판매하려면 한국의 공인된 안전인증기관으로부터 제품의 적합성을 확인받도록 한 제도다. 지식경제부 산하 기술표준원이 제정한 ‘안전기준’에 미달한 제품은 수거·파기 등의 행정처분을 받게 된다. 일본 정부 측은 이와 관련, “자국업체에 불리한 조항”이라면서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할 방침이라고 요미우리신문이 22일 보도했다. 일본 측은 “인증기준이 애매해 일본 제품이 한국 시장에서 내몰릴 우려가 있다.”며 규제 내용의 수정을 요구했다. 더욱이 모든 국가에 평등한 통상 조건을 부여토록 한 WTO 규정에 대한 위반이라고 주장, 공식적으로 문제를 삼을 태세다. 때문에 한·일 양국간에 원만한 해결방안을 찾지 못할 경우, 자칫 통상마찰로 불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본 측의 속내는 리튬이온전지 시장을 사실상 장악한 자국을 뒤쫓는 한국에 대한 견제로 관측되고 있다. 리튬이온전지의 세계 시장은 2007년 현재 산요전기 27%, 소니 19%, 파나소닉 10%, 히타치맥셀 3% 등 일본의 점유율이 무려 59%에 달하고 있다. 한국은 삼성 16%, LG 7% 등 23%다. 일본 측은 “한국에서 지정된 기관의 인증을 받을 경우, 시간이 걸려서 제품의 판매가 늦어질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더욱이 “한국은 미국 업체에 대해 10월부터 미국내 기관의 인증을 받으면 수입을 허가할 방침이지만 일본 측에는 별도의 양보 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면서 “사실상의 무역장벽”이라는 주장도 서슴지 않고 있다. 한국 정부 측은 “지난해 12월 고시를 통해 확정된 제도”라면서 “보호주의가 아닌 리튬이온전지의 안전성 확보와 표준화를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또 “미국과 일본의 차별 적용과 같은 일은 있을 수도 없다.”고 강조했다. hkpark@seoul.co.kr
  • 日 차세대 전지개발 ‘올인’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 정부를 비롯, 대학·기업·연구소가 하이브리드차·전기자동차에 쓰일 ‘차세대 전지개발’을 위해 뭉쳤다. 지구온난화 대책에 따라 수요가 한층 증가할 전지 분야에서 국제 경쟁력을 선점하기 위해서다. 11일 경제산업성의 신에너지·산업기술종합기구(NEDO)에 따르면 무려 22개 기관이 차세대 전지개발에 참여할 계획이다. 자동차 쪽에서는 도요타·닛산·미쓰비시 등 5곳, 전지업계에서는 산요전기·파나소닉·히타치맥셀·히타치제작소·신고베전기 등 7곳, 대학·연구소에서는 교토대·도호쿠대·도쿄공대·와세다대 등 10곳이 참여했다. NEDO측 스스로 ‘올인 체제’라고 부르고 있다. 정부는 1차적으로 2015년까지 기관별 연구의 결과를 토대로 최적의 전지재료를 찾아 소형전지를 제작할 예정이다. 2020년 이후에는 리튬이온전지와는 별도로 한번 충전으로 500㎞를 달릴 수 있는 신형 전지 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서기로 했다. hkpark@seoul.co.kr
  • 미얀마 자유위해 팝가수들 뭉쳤다

    |워싱턴 AFP 연합|U2와 펄 잼,콜드플레이,스팅,R.E.M,인디고 걸스 및 매치맥스 트웬티 등 그룹들과 폴 매카트니,에릭 클랩턴 등 유명 가수들이 미얀마의 야당 지도자 아웅산 수치를 위해 공동제작한 앨범이 오는 26일 출시된다. 이들의 공동앨범 출시는 미국 의회가 미얀마에 대한 유엔 안보리 제재를 강구하고 있는 것과 때를 같이한 것이라고 미얀마의 자유를 위해 싸우는 활동가들이 21일 밝혔다.앨범 제목은 ‘아웅산 수치와 버마의 용감한 이들의 석방을 위하여(For the Lady:Dedicated to freeing Aung San Suu Kyi and the courageous people of Burma)’로 리노 레코드가 제작했다. CD 2장으로 된 이 앨범에는 27곡이 수록됐으며 앨범 판매 수익은 ‘버마를 위한 미국 캠페인’이라는 이름의 비영리단체 지원에 사용된다. 수록된 노래 가운데는 수감 중인 미얀마의 반체제 학생운동가 민 코 나잉이 미얀마어로 가사를 쓰고 U2가 곡을 붙인 ‘워크 온(Walk On)’도 들어 있는데 미얀마 군사정부는 이 곡을 금지곡으로 만들었다.
  • 동이사아 민속 현악기 자웅 겨룬다

    ◎19∼20일 서초동 국립국악원서 학술·연주회/거문고·가야금­몽골 야트가­일 고토­중 친등/유래과정·상호영향·연주기법의 차이 등 비교 동아시아의 민족음악 학자들과 연주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각국의 현악기를 비교·연구하고 연주회도 여는 국제행사가 마련된다. 국립국악원(원장 이성천)과 서울대 부설 동양음악연구소(소장 강사준)는 오는 19·20일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에서 「동아시아의 현악기」를 주제로 제1회 동양음악학 국제학술회의및 연주회를 개최한다. 한국을 비롯,중국 일본 몽고 베트남 대만 등 동아시아 6개국 음악학자및 연주자 20여명이 참가한다.다룰 현악기는 한국의 거문고,가야금과 몽고의 야트가,일본의 고토(쟁),중국의 친(금),대만의 쩡(쟁),베트남의 단트란 등. 매일 상오9시30분부터 하오6시까지 개최될 학술회의에서는 서로 유사성과 독자성을 지닌 동아시아 현악기들이 어디서 어떻게 유래하였고 어떤 영향을 주고 받았으며 어떤 음악문화를 형성하였는지,또 연주기법과 음악적인 미학은 어떻게 다른지를 알아본다. 첫날인 19일에는 한국의 김영운교수를 비롯,세계적인 민족음악학자인 우원꽝(중국·북경음악학원 교수),엘던치맥(몽고·몽고 국가예술연구소 연구원),황하오인(대만·대만 문화대 강사)),야마구치 오사무(일본·오사카대 교수),퐁위엔(베트남·미 켄트대 교수)) 등이 참석,현악기에 대한 연구논문을 발표한다. 둘째날인 20일에는 왕산악이 만든 거문고를 집중 조명하는 학술회의가 열린다.9월의 문화인물로 왕산악이 선정된 것을 기념해 마련한 자리.강릉대 신대철 교수가 「거문고 관련 연구현황」,서울대 황준연교수가 「거문고의 역사적 고찰,구조에 관한 연구」,전남대 김우진교수가 「거문고 연주기법의 변천」,중앙대 전인평 교수가 「거문고와 동아시아 현악기와의 관계」,전정신문화연구원 최종민 교수가 「거문고 음악미학」에 대해 발표한다. 학술회의에 이어 매일 하오7시30분에는 서원숙·이세환(한국)과 잠발수렌(몽고) 요네카와히로에(일본) 등 각국 연주자가 출연,야트가·고토·거문고·친·가야금·쩡·단트란 등 현악기의 독특한 음색을 선보이는 연주회를 갖는다. 국제규모의 민족음악 학술교류는 세계전통민족음악협회(ICTM)와 지난 93년 설립된 아·태 민족음악학회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우리나라가 주축이 돼 동아시아 민족음악 교류를 시도하기는 이번이 처음.국립국악원측은 『일본이 60년대부터 각국 민족음악에 대한 연구를 해오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인접 국가의 음악과 문화에 대한 인식도 및 연구수준이 낮다』면서 이번 학술회의가 동아시아의 문화교류에 우리나라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국립국악원은 이 행사를 정례화해 매년 한차례 열 계획이다.
  • “합리적 선택이「자율정치」 키운다”/이용필 서울대교수(서울시론)

    ◎시민·정당·정부의 「민주준칙」 지켜야 민주주의라는 제도는 모든 시민이 이성적 존재라는 가정위에 서있다. 정치경제학자 다운스는 이러한 가정에 의거해서 민주적 시민의 투표행태,정당의 동기와 정부의 기능을 설명하는 모델을 제시했다. 그에 의하면 개개의 시민은 그의 이익을 극대화 시켜주는 정당이나 정부에 대해서는 지지한다. 정당은 합법적 수단에 의해서 통치장치를 장악하려고 기도하는 사람들의 연합이며 이러한 연합으로서의 정당은 통치장치를 장악하기 위해 총선에서 승리하려고 노력한다. 또한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선호를 극대적으로 충족시킬 수 있는 정강정책을 제시하지 않으면 안된다. 다운스에 의하면 정부의 사회적 기능은 선거시에 시민의 표를 극대화하거나 또는 사회복지를 극대화하는데 있으며 정부(또는 여당)는 통치장치를 장악하기 위해서 다른 정당들과 경쟁하는 하나의 정당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다운스의 민주주의에 대한 합리적 모델은 민주주의의 정상적 작동양식을 설명해 주고 있지만 민주주의의 제도화가 정착되지 않은 체제에서는 그러한 모델의 적실성이 상실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태와 지자제 선거를 둘러싼 여야의 정치적 갈등현상은 다운스의 합리적 모델에 의해서 설명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우리의 정치현실에서 시민·정당,그리고 정부에 대한 합리적 가정들이 전제될 수 없다면 여야의 극한적 대립은 피할 수 없으며 그것은 한걸음 더 나아가서 의회민주정치 또는 정당정치의 준칙들이 파괴되고 제도권 밖의 정치에로 변질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수서택지 특혜사건 등을 포함한 일련의 정치사태로 말미암아 여야의 대립이 극한상황으로 번질 듯이 보였으나 다소 냉각기를 거치면서 지자제선거의 열기속에서 정치적 공방을 지속하고 있다. 이러한 여야의 정치적 공방상황은 지자제선거·총선,그리고 대통령선거에 이르는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표출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우리의 정치권은 불확실성의 상황에서 헤어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자칫하면 체제 자체의 정상적 작동이 매우 어려운 위기에 직면하게 되지 않겠느냐 하는 우려를 자아내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의 전도에도 이미 서구에서 대두되었던 민주주의 비관론의 잔영이 드리워지지나 않을까 하고 염려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과연 우리나라가 민주주의 제도화를 정착시키지 않고서 발전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물음은 다음의 세가지 문제와도 직접 또는 간접으로 연결된다. 그 첫째는 우리나라가 놓여있는 국제정치상의 위치맥락에서 연유된 도전으로서 이것은 우리 체제가 작동하고 있는 외적 환경에서 내재적으로 파생된다. 특히 남북이 극한적 대립관계에 놓여 있는 특수상황과 주변 강대국들 간의 역학관계의 작용이 심한 기복현상을 초래할 때,체제가 적응적으로 반응을 지속시키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둘째로 이러한 도전은 어떤 상황에서 체제의 개혁과 쇄신의 문제를 제기하게 된다. 우리의 민주주의 제도화는 사회구조와 사회세력들의 추세와 밀접하게 연결되고 있다. 사회계층간의 빈부격차와 상대적 박탈감의 만연은 민주주의의 발전을 가로막는다. 셋째로 민주주의 제도는 내재적 도전을 받게 된다. 물론 민주주의가 자체존속적 또는 자체시정적 균형상태에서 작동한다고 가정되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상황이 변화된다면 어떤 외부의 힘에 의해서 견제되든 또는 견제되지 않든간에 민주주의 제도의 와해에로 이끌어갈 사회세력들의 등장을 자극할 수도 있다. 이상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 체제에 대한 잠재적 및 현재적 도전은 기본적으로 통치력에 대한 대내외적 요인들에 의해서 제약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체제는 정치발전과 경제성장의 결과로 말미암아 체제의 구조적 및 기능적 복잡성을 극복하기에 매우 벅찬 국면에 놓여 있다. 특히 우리 체제도 다른 민주적 국가들의 경우에서와 같이 참여의 확대와 요구의 급증으로 말미암아 과중한 부담을 지게 된 것이다. 민주주의 우월성은 근본적으로 체제의 개방성에서 연유된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개방체제도 특정한 조건 아래서만 훨씬 더 능률적으로 작동하게 된다. 만일 그러한 개방체제가 적절한 규제능력을 유지할수 없거나 또는 발전시킬 수 없다면 사회적 혼란과 정치적 불안정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사회경제적 발전,정보홍수 그리고 민주주의에의 성급한 열망 등이 자체규제능력의 미성숙 또는 결여로 말미암아 체제내적 동요사태를 유발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이 어떤 위험수준을 넘게 되는 경우 누구도 체제의 작동에 미치는 결과들을 제어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민주주의 제도화를 정착시키려면 첫째로 시민은 민주주의가 국민에 의한 자율정치이며 그 자율정치는 국민의 자제와 합리적 판단에 의거한 선거(즉 대표자들 또는 지도자들의 선택)가 전제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둘째로 정당은 공정한 선거를 통해서 국민의 지지를 획득하게 될때,집권이 가능하며 그렇지 않는 경우에 패배하게 되므로 국민의 지지를 극대화하기 위한 정강정책을 내세우고 심판을 받아야 한다. 셋째로 정부는 특정한 개인들이나 집단들 또는 정당의 이익보다는 국민 전체의 이익 즉,사회복지를 극대화시키는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해야 한다. 이상과 같이 시민,정당 그리고 정부가 민주주의의 준칙을 합리적으로 또한 지혜롭게 지켜 나간다면 민주주의 제도화는 이룩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로마가 하루 아침에 이룩될 수 없었던 것과 같이 민주주의도 점진적인 학습과정을 통해서 이룩된다는 것을 명심해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결코 비약될 수 없다는 명제를 모든 정치인이나 국민은 함께 인식해야 한다. 이러한 인식의 바탕 위에서 민주주의 제도화는 정착될 수 있다. 특히 30년만에 다시 지자제를 실시하기 위한 선거에 임해서 여야를 포함한 정치권과 모든 국민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정착화를 위해서 합리적 선택과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는데 모든 역량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 소「민주사회주의 새 깃발」 올리다/고르바초프「도박」의 의미와 전망

    ◎정치개혁과 경제발전 연계 포석/재야흡수,온건진보정당 결성 가능성도/서유럽서 극동까지 대폭 군비축소 시도 1백40년 전에 카를 마르크스가 근로대중의 자기임금 되찾기 운동으로 제시한 공산주의 이념은 그로부터 70년후 소련땅에 현실로 적용됐다. 그런데 누구나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의해 분배받는 공산주의 이념이 소련땅에 적용된지 정확히 73년이 지난 1990년,올해의 벽두에 그만 공산주의의 깃발을 내리게 됐다. 소련은 소수 민족자치령을 국가체제로 연합하면서 유럽국가중 후발대 국가로 형성된 제정러시아를 붕괴시키면서 시작됐다. 국민의 9할 이상이 저소득계층으로 구성된 농경사회였던 제정 러시아를 1917년 소수파인 볼셰비키가 과격 공산혁명으로 무너뜨렸다. 그후 토지 자본국가공영제,중앙계획경제와 통제배급제를 실시하고 서방세계와는 중공업위주의 군수산업으로 군비경쟁을 하면서 냉전구도를 이룩해 왔다. 레닌이 심장ㆍ뇌졸질환으로 조기에 사망하자 오히려 극단적 소수파로서 민주사회주의를 건국하려던 도덕성에서 정반대의 궤를그린 사회주의 파시즘을 만들었다. 마르크스가 역사발전의 맥락에서 가설적으로 제시한 근로자의 기대임금과 실질임금의 차액을 소수 자본가가 착취함으로써 빈부격차가 극대화된 자본주의가 성숙된 사회에 공산혁명이 필연적이라고 주장한 논리는 소련에서는 해당될수 없는 그 당시 상황이었다. 즉,극소수 상업가ㆍ지주 외에는 성숙된 자본주의사회의 지표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으며 중산계층이나 활발한 상업활동이 소련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스탈린은 정체된 후진사회를 성장시키기 위한 신축적인 경제활성화와 생필품위주의 산업발전 대신에 군수산업 위주의 중공업 육성에 정책선택의 최우선권을 부여했다. 스탈린의 명령없이는 전 사회가 움직이지 않았으며 하부구조 구성원의 창의성은 본질적으로 봉쇄됐다. 이와같은 자기모순의 공포사회가 스탈린 이후 흐루시초프 브레즈네프 안드로포프 체르넨코 공산당 서기장에 의해 면면히 이어져 왔다. 말하자면 성숙된 자본주의 사회도 아니었던 후진국 러시아의 풍토속에서 다원적 공산주의 이상은 스탈린 이후의전체주의 지배자들에 의해 침묵과 복종만을 강조하는 관료적 동원체제를 구사해온 것이 핸재의 소련사회이다. 현재의 소련사회는 순발력없는 저능 거인이며 실질적 파산선고를 내린 회사와 같다. 중지한 부실기업이며 저능거인은 기초운동과 기초이론 학습부터 시작하여 거듭 태어나야 하고,부실파산회사는 처음부터 새로운 경영진에 의해 구조적으로 재조직ㆍ관리돼야 한다. 바로 여기서 개혁,재조직(Perestroika)과 만인에게의 공개성(Glasnost)을 강조하면서 정규교육을 받은 스탈린 후기세대의 대표주자로 새로운 사고를 가진 고르바초프가 통치권의 핵심으로 등장한다. 고르바초프에 의해 주도되는 소련사회의 변혁은 미시적으로 볼때 원초적으로 빈곤했던 소련이 군사대국 유지로 인해 더욱 피폐된 생필품 절대빈곤의 경제위기 상황에서 시장경제원리 도입,사유재산의 인정으로 민중봉기 일보직전의 긴박한 경제빈곤의 고리를 풀자는데 있다. 그런데 그같은 경제빈곤 해결은 주민의 불만을 해소하고 국민전체가 새로운 생산기풍을 진작하는 자발적 노력의지가보여야 하는데 국민은 두려움과 의심의 눈초리로,그리고 지성인을 비롯한 여론주도계층에서는 공산당 통치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는 현상황에서 그같은 노력은 아무리 신사고를 가진 개혁의지에 불타는 개혁주의자가 있다고 해도 개혁은 무위로 끝날수 있다. 인구증가와 같이 서서히 로가리즘적으로 누적되어온 소련의 사회경제침체는 아무리 자유와 개방ㆍ개혁이 뒷받침돼도 하루 이틀에 성취될 일이 아니다. 여기에 고르바초프는 정치 개혁을 통해 국민의 자발적 총의를 민생문제 해결 위주의 경제발전에 연계하려는 전략포석으로 이미 동구에서 시행돼 오고 있으며 고르바초프가 원거리에서 보호해준 바 있는 다당제 도입ㆍ자유경선ㆍ시장경제 원리도입,그리고 국가원수의 직선제 등을 도입하려는 것이다. 고르바초프로서는 그의 정치적 주사위인 대통령 직선제에 출마하여 국민의 직접 신임을 얻음으로써 지속적 정치경제사회 개혁을 수행하겠다는 의지를 90년 초인 이 시점부터 본격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지난 85년에 공산당 서기장으로 취임한 이래 현재까지가 개혁의 신호탄을 올린 시기라면 90년대는 개혁의 실적을 경제사회적으로 보이는 행동단계라고 보겠다. 고르바초프는 미국이 응하든 않든 서유럽에서 이제는 극동아시아에 이르기까지 군비축소를 국내정치맥락에서 자의적으로 실시할 것이다. 또한 조만간 28차 당대회를 치르고 난후 그는 공산당을 해체하거나 구조적으로 당의 체질을 개선하여 이에 걸맞은 당명 또한 새로이 변경하면서 어쩌면 수면위에 부상하는 재야조직을 흡수하여 의외의 인물로 충원하는 새로운 온건진보정당을 조직할지도 모른다. 볼셰비키 소수 급진공산당이 해체된다고 해서 공산당 통치의 러시아 역사가 소멸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러시아 사회가 소수민족의 자치도 인정하면서 제국주의적 영토팽창에 눈돌릴 수 없는 내치의 민주화ㆍ경제활성화에 당분간,적어도 2000년 이후까지 정책집행에 우선권을 유지하는 역사의 긍정적 경각심을 늦추지 않는 노력의 새로운 시작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고르바초프의 측근인 정치국원이나 참모들은 과거 공산당의 보수적 당관료가 아닌데 그들의 전직은 해외근무 특파원,대외경제 전문가,기타 국내 각분야에서 개혁에 불타던 깨끗한 도덕정치를 표방하는 인물들로 채워져 있다. 그들은 당면문제를 다룰때 소련 역사의 방향을 다원화된 민주사회주의 국가로 그 키를 돌리는 역사의 견인차 역할을 하여야 한다고 믿고있다. 혹한기를 피할수 있으며 대서양과 발트해를 접하고 있는 정치ㆍ상업ㆍ관광도시인 레닌그라드의 옛 이름은 성 페테르스부르크시였다. 이 아름다운 도시는 공산혁명의 진원지가 된 이후로 레닌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레닌그라드(레닌시)라고 명명하였는데 이제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치가 90년에 정착돼 2000년이 되면 레닌그라드도 고르바초프의 이름을 본따 고르비그라드(고르비시)로 부를 날도 그리 멀지 않았다. 또 이렇게 예상하는 서방인에게 소련인은 처음으로 빙그레 웃음을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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