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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장도영이오’… 5·16 그날의 육참총장은 눈빛으로 말했다

    ‘내가 장도영이오’… 5·16 그날의 육참총장은 눈빛으로 말했다

    31일 아침(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 올랜도 공항에서 서북쪽으로 40여분 떨어진 소도시 윈더미어에 들어서자 쾌적하고 고급스러운 주택가가 펼쳐졌다. 택시 기사는 “이 지역에서 가장 부유한 동네”라면서 “프로골퍼 타이거 우즈, 프로농구(NBA) 선수 샤킬 오닐 등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스타들이 사는 곳”이라고 했다. 영화배우 존 트래볼타도 한때 이곳에 살았다고 한다. 집값이 적게는 수백만 달러, 많게는 수천만 달러를 호가할 것이라고 했다. 50년 전 이 땅을 뒤흔든 5·16의 주도 세력도, 그렇다고 그들과 맞선 저항 세력도 아니지만 그를 빼놓고는 5·16을 얘기할 수 없는 인물. 전 육군 참모총장 장도영. 그가 그곳에 있었다. 한국 현대사 그 격동의 세월을 뒤로한 채 그는 이역만리 미국 동남부의 어느 한적한 동네에서 생의 마지막 페이지를 써 가고 있었다. 그는 비록 ‘얼굴마담’ 격이기는 했으나 한때 ‘혁명세력’에 의해 내각 수반으로까지 추대됐었다. 잠시나마 대한민국 권력의 정점에 머물렀던 인물이 이국 땅에서 말년을 보낸 경우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 말고 예를 찾기가 어렵다. 장씨는 1962년 미국에 건너온 뒤 10년 전인 2001년 조용히 회고록을 낸 것 말고는 한국과의 연락을 거의 끊다시피 하며 지냈다.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마저 얼마 전 한 언론 인터뷰에서 “죽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으니 미국 어딘가에 살고 있을 것”이라고 했을 만큼 그는 철저히 우리의 기억에서 지워졌던 인물이다. 타이거 우즈의 저택에서 5㎞ 정도 떨어진 동네에 자리한 장씨의 집은 고급 골프장 건너편의 단층 저택이었다. 초인종을 누르자 부인 백형숙씨가 문을 열어 줬다. 그녀는 남편 장씨가 3년 전부터 파킨슨병을 앓아 의사소통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치매·마비 증세… 거동 힘들어 장씨는 파킨슨병을 진단받기 전에 세 차례 가벼운 뇌출혈이 있었는데 그것을 모르고 지나친 데다 크게 한번 넘어지면서 큰 병을 얻었다는 것이다. 남편이 사실상 치매 증상을 앓고 있다고 백씨는 말했다. 몸 이곳저곳이 마비되면서 장씨는 휠체어가 없으면 거동을 할 수 없는 처지다. 화장실을 가는 것도, 목욕하는 것도 간병인과 부인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식탁에서 수저를 드는 정도만 겨우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상태라고 백씨는 말했다. 장씨는 거실에 있었다. 창문 틈으로 들어온 바람에조차 날아갈 것처럼 야윈 노인의 모습이었다. 두툼한 얼굴에 건장한 체격의 39세 육군 참모총장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나마 그 옛날 부리부리했던 눈매가 아직 살아 있어 ‘내가 장도영이오.’라고 외치는 듯했다. “서울신문 특파원입니다.”라고 인사를 건넨 뒤 “올해가 5·16 50주년인데 소감이 어떠십니까.”라고 물었다. 눈으로 기자의 인사를 받은 장씨가 입을 열었다. 가녀린 목소리. 들릴 듯 말 듯했다. “다 넘어갔어. 어쩔 수가 없었어.” 온전히 답변할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지켜보던 부인 백씨가 눈빛을 반짝이며 거들었다. “다 넘어갔대. 어쩔 수가 없었대.” 투병 중에 어렵게 말문을 연 남편이 ‘대견한 듯’ 입에는 환한 웃음을 머금었다. “박정희·김종필씨를 기억하십니까.”라고 묻자 장씨는 “그럼, 기억하지….”라고 답했다. “그분들한테 서운한 감정은 없으세요.”라고 물었다. 장씨는 “음…. 그렇지 않아요. 서운한 건 없어요.”라고 했다. 50년 세월은 그렇게 감정의 때마저 지워버린 듯했다. 뒤로 몇 가지 질문을 더 던졌다. 그러나 더는 말이 없었다. 멍한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한 채 다시 기억의 저편을 더듬기 시작했다. 백씨는 “남편이 전에는 사람들 앞에서 하도 말을 많이 해서 내가 그만하라고 말릴 정도였는데 지금은 저렇게 말을 못한다.”고 했다. 3년 전 병을 얻기 전까지만 해도 부부는 같이 교회에 다니고 골프도 즐겼지만 지금은 돌아갈 수 없는 추억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장씨는 부인이 카메라를 가리키면서 웃어 보라고 하자 살짝 미소를 지었다. 악수할 때 어렵게나마 손을 내밀기도 했다. 마비 증상이 극도로 심각한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장씨는 마비·치매 증상 말고 다른 질병은 없기 때문에 병원에 갈 일은 많지 않고 대신 부인이 타 온 약으로 투병 중이다. 백씨는 “(남편이) 병을 얻은 뒤로 잠자는 시간이 아주 많아졌다. 아기처럼 많이 잔다.”고 했다. 백씨는 남편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나 김종필씨 등에 대해 가족 앞에서도 울분을 토로하거나 비난한 적은 없다고 했다. 장씨가 “외국에 나와서 자기 나라를 욕하면 누워서 침뱉기”라며 일절 험담은 안 했다는 것이다. 백씨는 “우리가 박정희씨 욕을 안 하니까 생활비를 보태 줘서 그런가 보다는 얘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면서 “하지만 우리는 그쪽으로부터 땡전 한 푼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정착 초기엔 친정의 도움을 받았고, 백씨가 도서관 사서로 일하면서 생활비를 벌었다고 했다. 백씨의 친정은 당시 장안의 유명 병원이었던 ‘백내과’였다. 그녀는 “미시간에 살 때 정보요원 같은 사람들이 항시 우리를 감시했고, 우리와 알고 지내는 교민 중에서도 감시 요원이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7년간 자녀들과 생이별 백씨는 “우리 부부가 미시간 주에 정착하게 된 것은 당시 (박정희) 정권이 지정해준 것”이라고 했다. 군사정부가 처음엔 장씨를 하버드대로 보내려 했으나 거기서 자칫 똑똑한 한인 학생들을 부추겨 반정부 활동을 할 것을 우려했고, 나중엔 캘리포니아주립대(UCLA)로 보내려 했으나 그쪽에도 흥사단 등 교민들이 많이 산다는 이유로 교민이 거의 없는 미시간으로 보냈다는 것이다. 장씨 부부는 미국으로 사실상 쫓겨난 뒤 자녀들과 7년간 생이별하고 지냈다. 일단 미국에 정착하는 일이 급했기 때문에 친정어머니가 아이들을 맡아 키웠다. 나중에 모두 미국으로 데려온 4남 1녀의 자녀 중 둘이 하버드대를 졸업하는 등 말썽 피운 자식이 하나도 없이 잘 자라준 게 고맙다고 백씨는 말했다. 그중 장씨가 전처와의 사이에서 얻은 장남은 풍산금속 회장 딸과 결혼, 10년 정도 살았다고 백씨는 말했다. 그런데 백씨에 따르면 묘하게도 풍산금속 회장의 아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둘째딸 근영씨와 결혼생활을 했었다. 장씨와 박정희 가문의 인연이 자식 대에서 불쑥 얽힌 셈이다. 백씨는 원래 5·16 당일이 딸 생일이라 점심에 육군본부 장성 부인들을 초청해 식사할 계획이었는데, 새벽에 정변이 일어나 놀랐다고 했다. 백씨는 “5·16 이전에 남편이 집에서 쿠데타 조짐이 보인다는 얘기를 한 적은 없다.”고 했다. 두 시간가량의 인터뷰를 마친 뒤 백씨는 “오늘은 남편 이발하는 날”이라면서 외출에 나섰다. 자식들이 사 줬다는 승용차 조수석에 남편을 태우고 뒷자리에는 미국인 여성 간병인을 태운 뒤 백씨가 직접 운전대를 잡았다. 물끄러미 쳐다만 보는 장씨에게 차창 너머로 답례 없는 작별 인사를 건넸다. 글 사진 동영상 윈더미어(플로리다)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첫 전작 장편소설 ‘낯익은 세상’ 낸 황석영

    첫 전작 장편소설 ‘낯익은 세상’ 낸 황석영

    최근 2년간 그만큼 구설(口舌)에 오른 작가도 없다. 2009년 5월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중앙아시아에 동행하면서 현 정부를 ‘중도 실용’으로 언급한 게 발단이었다. 1989년 방북과 망명생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7년간 옥살이를 했던 그였기에 논란이 뒤따랐다. 지난해 발표한 장편소설 ‘강남몽’은 표절 시비에 휘말렸다. 1962년 서울 경복고 재학 시절 ‘입석부근’으로 문단에 나왔으니 햇수로 올해 등단 50년을 맞은 소설가 황석영(68) 얘기다. 지난해 9월부터 황석영은 미얀마·베트남·라오스와 국경을 맞댄 중국 윈난성 리장(麗江)에 칩거했다. “시간의 흐름이 멈춘 듯한 곳을 찾아 달라.”는 그의 부탁에 강태형 문학동네(출판사) 사장이 수소문 끝에 찾은 곳이다. 해발 2400m에 있는 소수민족 나시족의 고대 도시에서 구상과 집필을 한 황석영은 제주도로 옮겨 소설을 마무리 지었다. 연재 방식이 아닌 생애 첫 전작 장편 ‘낯익은 세상’이다. 소설은 1980년대 초 ‘꽃섬’(난지도의 옛 이름)으로 흘러들어온 ‘딱부리’의 눈에 비친 자본주의 문명의 이면과 쓰레기장 빈민의 삶, 폐허에서 싹트는 희망을 말한다. 리장의 한 호텔에서 1일 취재진과 만난 황석영은 “내 나이 대에 걸맞은 ‘만년문학’을 시작해야 한다는 의욕에 불타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의 ‘구설’들과 관련, “지난 2~3년간 정말 욕을 많이 먹었다.”면서 특유의 입담을 늘어놓았다. 이제는 짐을 내려놓은 듯 편해 보였다. →‘낯익은 세상’은 어떻게 구상하게 됐나. -내 작품 중 ‘한씨연대기’ ‘삼포 가는 길’ ‘장길산’ 등을 전반기라고 한다면, 방북과 망명, 옥살이 이후 10년여 동안 쓴 작품은 후반기 문학이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으로 이어지면서 매너리즘에 빠진 건 아닐까란 본능적인 위기감이 들었다. 변신하지 않으면 글을 쓰지 못할 것 같다는 초조함도 있었다. 이 무렵 술자리에서 전에 추구했던 세계나 가치관, 현실에 밀착한 소설이 아니라 훨씬 더 보편적인 것을 그리고 싶다는 얘기를 문인들과 나눴다. 당시 누군가가 쓰레기장에 가면 지난 세월을 보낸 욕망의 존재들이 나올 것 같다고 했다. 농담처럼 카프카가 난지도를 쓴다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얘기를 하다가 시대나 인물을 추상화해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배경이 난지도인데. -상황을 빌려 왔지만 세계 어느 도시에나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이다. 생산과 소비를 극대화한 인간 욕망에 대한 반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곳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이 집약된 공간이기도 하다. →소설 마지막에 ‘땜통’(주인공 ‘딱부리’의 동생으로 도깨비들과도 소통하는 신비로운 존재)이 죽는데. -처음에는 안 죽었는데 출판사 쪽에서 땜통은 저 세상(정령들의 세계)이 어울리니 보내자고 하더라. 예전에는 발끈했을 텐데 요즘에는 편집자의 생각을 존중하는 아량이 생겼다(웃음). →등단 50년이다. 감회가 남다를 텐데. -얼마 전 마흔 살 먹은 아들과 술 한잔하는데 ‘더는 사나운 형님 말고, 할아버지가 되라.’고 하더라. 후배들도 ‘잘난 척 그만하고, 술자리에서 혼자 말하지 말고, 당신만 옳다 하지 말라.’고 하더라. (나처럼) 어릴 때부터 칭찬받은 이들의 약점은 남을 배려하지 못한다는 거다. 후배 문인들과 얘기하다가 내 또래의 ‘만년 문학’ 얘기가 나왔다. 치매에 걸린 노파가 딸을 몰라보면서도 어린 딸의 사진을 보여 주면 알아보는 것과 비슷하다는 얘기다. 현재에서 가까운 기억들은 지워 버리고 자기가 남겨야 할 기억을 간추리고 재정리하듯 만년 문학은 출발점으로 돌아가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작품이 좋다. 여태 썼던 작품과 달리 가야 할 길이 보이니까 다행스럽다. →다음 작품은. -정확히 따지면 내년이 ‘입석부근’으로 등단한 지 50년이다. 처음에는 평론가 몇 명과 대담집을 낼까 했는데 좀 섭섭할 것 같아서 소설을 쓰기로 했다. 제목도 정했다. ‘이야기꾼’이다. 황석영의 아바타 같은 인물을 만들어서 19세기 조선을 배경으로 온갖 풍랑을 겪는 이야기꾼의 얘기를 쓸 생각이다. →표절 시비 이후 공식적으로 입장을 밝힐 기회가 없었는데. -한국 문단에서 실제 자료를 다루면서 출처를 밝히는 전례가 없었다. 시대물이나 역사소설에서 창작품이 아닌 자료들은 다 활용을 하지 않나. 팩트(사실)를 소설로 전환시키는 것은 작가적인 권리다. 하지만 결국에는 내가 놓치고 실수한 거다. 그래도 ‘강남몽’은 후대에 자본주의 근대화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기억될 만한 작품이라고 본다. →2009년 대통령과 중앙아시아에 갔을 때도 말이 많았다. -나는 남북관계에 한이 맺힌 사람이다. 현 정부의 구성이나 콘텐츠가 내가 살아온 세월과는 많이 다르다. 하지만 남북관계 변화에 기여하고 싶은 생각은 분명하고 여전하다. 다만 공통된 문화적 배경을 지닌 지역 차원에서 풀자는 것이다. 그게 알타이 문화경제연대라는 건데 노무현 정부 때부터 나온 얘기다. 다음 정권이 오면 다시 시도해 볼까 하는 생각도 있지만, 주변에서는 소설만 열심히 쓰라고 한다(웃음). 글 사진 리장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軍 동료·후배가 본 장도영

    軍 동료·후배가 본 장도영

    장도영 전 육군 참모총장은 우리 군 창설과 6·25 때 많은 공훈을 세웠던 ‘군영’(군사영어학교) 출신이다. 장 전 총장과 절친했던 군대 동기 가운데 강영훈(90) 전 국무총리를 1일 오후 서울 용산에 있는 전쟁기념관 ‘만남의 장소’(원로 군인 사랑방)에서 만났다. 강 전 총리가 5·16 때 육사교장으로 있으면서 주저하는 장 전 총장에게 똑바로 행동할 것을 주문했던 일화는 여전히 회자된다. 만남의 장소에는 마침 같은 군영 출신인 황헌친(90) 예비역 준장도 함께 있었다. 이들에게 장 전 총장이 치매 증상을 앓고 있다고 하자 강 전 총리는 “일제 때 학병(學兵)으로 같이 갔고 매우 똑똑한 친구인데 그거 참 안됐다.”며 안타까운 반응을 보였다. 강 전 총리 역시 고령인지라 과거에 대한 기억이 또렷하지 않았다. 장 전 총장이 미국으로 가게 된 진짜 이유에 대해 그는 “한국보다 널찍한 데서 살고 싶었나 보지 뭐.”라면서 웃어넘겼다. 강 전 총리는 황 장군에게 “미국 왜 갔지?”라고 물었다. 황 장군은 “5·16 정부가 들어서면서 서로(박정희와 장도영) 환영할 인물이 아니었고 미국에서도 장도영을 아까운 사람으로 평가한 것이 아니냐.”면서 분명한 것은 5·16 정부에서 재정적으로 도움을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편 5·16 당시 6관구사령부 상황실장을 맡았던 김재춘(육사 5기) 전 중앙정보부장은 “군에서 자주 모셨고 두 집안이 서로 오고 갈 만큼 친하게 지냈다.”면서 동생도 미국에서 외롭게 살고 있다고 말했다. 장 전 총장의 미국행이 자의 반 타의 반이냐고 묻자 “타의였다.”고 짤막하게 답했다. 김문 편집위원 km@seoul.co.kr
  • 건망증과 치매 중간단계 ‘경도인지장애’ 아시나요

    건망증과 치매 중간단계 ‘경도인지장애’ 아시나요

    누구나 나이가 들면 기억력이 감퇴한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치매 역시 초기에는 증상이 경미하지만 점차 상태가 악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다만 초기에는 증상이 가볍고, 진행이 느려 알아채기 어려울 뿐이다. 따라서 기억의 문제가 생기면 주의해서 관찰해야 한다. 이런 증상이 ‘치매로 가고 있다’는 마지막 경고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경도인지장애에 주목 이런 관점에서 최근 의료계에서는 ‘경도인지장애’에 주목하고 있다. 경도인지장애(MCI)란 건망증과 치매의 중간 단계, 즉 알츠하이머 치매로의 이행 단계라고 볼 수 있다. 단순한 건망증이라도 무언가를 자주 기억하지 못할 때는 경도인지장애를 의심할 수 있다. 이 상태에서는 최근의 일을 잊어버리는 단기기억력 저하가 오고 이전에는 잘하던 일을 갑자기 못하게 되거나 계산 실수가 잦아진다. 물론 판단력과 지각·추리능력 등은 정상이어서 건망증과 경도인지장애를 구별하기는 어렵다. 최근 미국의 메이요 클리닉에서 경도인지장애 환자 270명을 10년 동안 추적 관찰한 결과, 매년 10∼15%가 치매로 발전했으며 6년간 80%가량이 치매로 이행됐다. 따라서 건망증이나 기억력 이상이 잦다면 검진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 ●조기 검진이 최선의 예방 최근 들어 다양한 치매 진단·치료법이 속속 제시돼 조기에 발견하면 효과적으로 진행을 막을 수 있게 됐다. 세란병원 신경과 채승희 과장은 “치매가 의심되면 먼저, 간단한 문답형 검사인 치매 선별검사(MMSE)로 1차 파악이 가능하며, 신경인지기능검사(SNSB)를 통해 더 정확한 식별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보다 전 단계에서 치매 가능성을 알고 싶다면 양전자방사단층(PET) 촬영으로 뇌에서 치매를 유발하는 독소 단백질인 아밀로이드를 찾아내거나 혈액검사를 받아보면 된다. ●이런 증상 지나치지 않아야 -우울증세를 보인다=증상이 치매와 비슷한 노인성 우울증을 방치해 치매로 발전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채승희 과장은 “노년기 우울증은 치매로 혼동되거나 동반 악화될 수 있어 치매의 예방·치료에는 우울증 치료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치매 환자의 30∼40%에서 보이는 우울 증세는 활동 및 지적 장애를 더 심하게 한다. 흔히 치매는 인지장애여서 기분장애인 우울증과는 다르다고 여기지만 치매와 노인성 우울증이 불가분의 관계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갑자기 몸무게가 준다=미국 시카고대학 러시메디컬센터 연구팀이 평균 75세의 가톨릭 성직자 820명을 대상으로 최대 10년간 연구한 결과, 체질량지수가 계속 떨어진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알츠하이머에 걸릴 위험이 35%나 높았다. 연구팀은 “알츠하이머 발병이 뇌뿐 아니라 음식물 섭취나 신진대사와 관련된 뇌부위의 손상과도 연관돼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익숙한 냄새를 못 맡는다=일상적으로 맡아 온 냄새를 구분하지 못할 때 알츠하이머가 진행 중일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도 있다. 미국 시카고러시대학 로버트 윌슨 박사는 “후각 기능이 떨어진 사람이 일반인보다 알츠하이머의 예고 신호인 인지 기능 장애가 나타날 위험이 50%나 높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54∼100세 노인 600명을 대상으로 후각 기능과 인지 기능을 비교 분석했는데, 인지장애 상태에서는 양파·레몬·계피·후추 등 익숙한 냄새를 구분하지 못했다. 심재억 전문기자 jeshim@seoul.co.kr ■도움말 세란병원 신경과 채승희 과장.
  • [생명의 窓] 뇌와 비타민/이광수 가톨릭의대 신경과 교수

    [생명의 窓] 뇌와 비타민/이광수 가톨릭의대 신경과 교수

    많은 사람들이 건강에 관심이 많다. 많은 환자들은 비타민을 포함한 수많은 건강 보조식품에 대한 질문을 한다. 이 약 먹어도 돼요? 이 약은 내 병에 도움이 되나요? 미국에서 아들이 보내준 약인데 좋은 건가요? 이 약은 내 몸 혈액순환에 도움이 되겠죠? 등등, 내가 가지고 있는 약은 나름대로 건강에 도움이 되지만 그래도 혹시 내 질병에는 어떨까? 궁금증을 가지고 질문을 한다. 오랫동안 건강하게 살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한 바람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건강보조식품 비용이 상상을 초월하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렇다면 뇌 질환에서 비타민의 가치는 어느 정도일까? 실제 비타민과 관련된 뇌 질환과 그간의 연구결과를 통해 세 가지 비타민의 의학적인 상식을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 비타민 B1(티아민). 42세 남자가 최근 수일간 혼돈 상태와 전신의 떨림증상 그리고 전신 발작으로 응급실에 왔다. 그는 10년 이상 폭음해 온 잘못된 알코올 습관과 함께 이미 간경화 진단을 받은 상태였다. 평소 식사를 거르면서 술만 마시고 안주도 거의 먹지 않는다 한다. 뇌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에서 일부 특수 부위에 음영변화가 관찰되어 비타민 결핍에 의한 것이라 판단할 수 있었다. 비타민 B1을 주사하면서 다른 치료를 병용한 지 3일째, 환자는 훨씬 안정상태를 보이며 정상적인 대화가 가능해졌다. 비타민 B1 결핍에 의한 베르니케 뇌증이다. 평소 본인 스스로 저장되어 있던 비타민 B1이 고갈되고 영양 공급이 더 이상 되지 않아 발생하는 뇌 질환이다. 술 마시는 모든 사람들이 이런 뇌 질환을 예방하기 위해서 비타민 B1 복용이 별도로 필요한가? 아니다. 평소 보통 식사와 술 마실 때 곁들인 안주에서 충분한 비타민 섭취가 이루어진다. 둘째, 비타민 B12(코발라민). 수녀님이 다리가 저리다며 진료실을 방문했다. 동료 수녀님들의 이야기는 최근 기억력이 많이 감소하여 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약속 시간을 자주 지키지 못하는 등 이상해진 것 같다 한다. 몇 가지 검사를 하니 인지기능 감퇴로 경도 치매 수준에 해당되었다. 비타민 농도검사에서 비타민 B12 농도가 현저히 감소되어 있었다. 일반적으로 비타민 B12 결핍증은 위 절제술을 한 경우 많이 나타나는 질환이나 수녀님은 그런 사실이 없어 위 내시경을 시행하였고, 아주 심한 위축성 위염이 있었다. 현재 비타민 B12 근육주사를 매월 한 차례씩 맞으면서 기억력과 다리 신경증상이 서서히 회복 중에 있다. 원인에 상관없이 위 절제술을 받은 경우 정기적인 비타민 B12 농도 검사가 필요하다. 셋째, 비타민 C(아스코르브산)과 비타민 E(토코페롤). 일반적으로 비타민 C는 인간에게 매우 중요하다고 알려져 있다. 비타민 C는 항산화 효과를 지녀 항 노화와 함께 다른 많은 좋은 효과를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실험실에서 세포와 동물실험을 통해 그 효과는 더욱 뚜렷함이 밝혀져 왔다. 따라서 많은 의사와 환자들의 비타민 C에 대한 기대 또한 크며 실제 많이 권유하기도 하고 복용도 하고 있다. 실제 환자에게도 이런 실험실 결과가 똑같이 적용될 것인가? 아직은 아닌 것 같다. 몇년 전 파킨슨병 환자를 대상으로 5년간 비타민 C와 비타민 E를 복용하면 파킨슨병의 진행을 얼마나 막을 수 있는지에 대한 관심 높은 연구가 있었다. 그 결과는 아주 의외였다. 비타민 C와 비타민 E는 파킨슨병의 진행 예방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거였다. 이제껏 전문가로서 파킨슨병 환자들에게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권유했던 비타민 C와 E는 이제 과학적인 근거가 없어 권유하지 않는다. 이렇듯, 비타민은 우리 사람의 뇌에서는 아주 중요한 영양소임에 틀림없다. 특히 결핍 시 나타나는 각종 신경 증상은 비타민이 뇌에서는 평소 건강할 때 못 느끼던 숨겨진 진주임을 증명해 준다. 하지만 반대로 건강할 때나 평소에 비타민을 복용한다고 해서 건강에 더욱 뚜렷하게 도움이 되는 경우도 없다. 아마도 비타민은 “평범한 게 좋은 것이다.”라는 진리를 보여주는 영양소인 것 같다.
  • “디자인이 낭비 아니라는 공감대 만들었죠”

    “디자인이 낭비 아니라는 공감대 만들었죠”

    “서울을 세계적 디자인 도시로 만드는 데 참여했던 것을 대단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27일 임기 2년을 다 채우고 퇴임하는 정경원(61·부시장급) 서울시 문화관광디자인본부장은 제2기 디자인 총책임자로서 공공디자인 발전은 물론 디자인산업 경쟁력까지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임시 조직이던 디자인총괄본부는 정 본부장 재임 중 문화관광디자인본부로 확대됐다. 그는 다시 한국과학기술원(KAIST) 산업디자인과 교수로 돌아가 후진 양성에 매진한다. 정 본부장은 26일 “학교로 돌아가 학생들에게 종합적인 디자인 역량을 심어 줘 미래의 디자인 경영자로 태어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모두 편히 이용하는 디자인 도입 뿌듯” 정 본부장은 재임 중 ‘시민을 배려하는 디자인’을 강조했다. 이런 비전 아래 장애의 유무, 연령 등과 상관없이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유니버설 디자인’을 시정에 도입해 여러 가지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그는 “유니버설 디자인을 공무원들 마음속에 뿌리내리도록 한 것에 자부심을 갖는다.”며 “장애 없는 보도, 치매 노인과 장애인을 위한 복지시설의 디자인 가이드라인은 완성 단계에 있다. 재래시장이나 어린이 환자복에 대한 가이드라인도 모두가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디자인 분야 최고 전문가인 그가 공직생활 중 성과로 꼽는 것은 소박하게도 “디자인 서울의 진정성에 대한 공감대 확산”이다. ●“서울을 매력적 도시로 바꾼 점 공감” 정 본부장은 “‘디자인은 낭비, 겉멋 부리기’라는 일부 부정적 목소리도 있었지만 디자인이 단지 보여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생활속 불편과 어려움을 해소하고, 서울을 매력 있는 도시로 변화시키는 수단이라는 데 많은 사람들이 공감해 주었다.”면서 “재임 중 86차례에 걸쳐 대학생, 최고경영자, 고등학생, 공무원 등 다양한 계층의 시민들을 상대로 ‘찾아가는 디자인 서울 특강’을 펼쳤다. 이렇게 해서 공감대가 형성돼 갔다.”고 회고했다. 공감대 형성으로 이제 디자인은 시정의 한 시스템으로 정착됐고, 사람이 바뀌더라도 일관되게 추진할 수 있게 됐다는 게 그의 자평이다. 또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마포 홍대지구, 구로 디지털산업단지, 강남 신사동지구를 디자인산업 4대 거점 지구로 특화 육성한 것과 중소기업의 디자인 경쟁력을 높여 줄 서울디자인지원센터 건립 등은 디자인노믹스의 구현을 위한 기반 조성으로 평가할 만하다. “디자인이 밥 먹여 준다.”는 것을 보여 준 것이다. 하지만 전임 본부장이던 권영걸 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가 서울신문과의 인터뷰<2011년 4월 6일자 17면>에서 “(내가 퇴임 후) 거리에 다시 현수막이 걸리고, 가이드라인에 맞지 않는 간판이 나타나고 있다.”며 불만을 드러낸 것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레저블 서울’ 시행해 보고 싶어 정 본부장은 “시기에 따라 적절한 방법론은 따로 있다. 초창기에는 무에서 창출하다 보니 시민을 계몽해야 하기도 했고, 주어진 기준을 행정력을 동원해 강력하게 밀어붙이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문제점과 불만도 노출됐다. 이제는 시에서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에 한계가 있다. 민간에서 자생적으로 하고 있고, 간판의 경우도 가이드라인은 만들어 놓고 현장에서 더 유연성을 가지고 하는 것이다. 또 디자인 심의위원회를 통해 시민들의 의견을 상당 부분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수막에 대해서는 “지난해 지방선거로 인해 현수막이 증가했다. 기동타격대를 구성해 관리하고 있고 단속권이 있는 구청에 협조를 요청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가 꼭 해보고 싶었던 사업이 하나 있다. 시의회의 긴축예산으로 추진하지 못한 ‘레저블(legible) 서울’이다. 이 사업은 서울을 찾는 누구나 도로표지판, 안내판을 보고 쉽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런던이나 뉴욕 등 선진 도시는 이미 시행하고 있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식물과 교감하니 심신이 맑아져요

    “남편이 퇴직 후에 우울증을 앓더니 꽃 키우기에 푹 빠졌어요.” 서울 이촌동에 사는 이모(58)씨는 남편뿐 아니라 아이들을 모두 출가시킨 후 본인에게 온 우울증도 꽃을 키우면서 이겨냈다고 말했다. 그는 10여개 난 잎을 하나하나를 닦아내면서 아이들을 키우던 시절을 기억한다. 퇴직 전에는 할 일도 참 없다고 핀잔을 주던 남편도 3년 전 은퇴를 한 후에 함께 난을 돌보게 되었다. 이후 남편은 집을 비울 때면 난 걱정을 먼저 할 정도로 꽃의 매력에 푹 빠졌다. 그는 “꽃이 피어 은은한 향이 집안에 퍼질 때면 꽃만큼 관심과 노력의 대가를 정직하게 돌려주는 것도 없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원예치료의 효과’라고 부른다. 원예치료는 통상 ‘사람들의 몸과 마음 그리고 영적인 상태의 향상을 위해 식물과 정원가꾸기 활동을 하는 일련의 과정’이라고 정의된다. 이미 선진국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원예치료를 병원, 재활시설, 직업훈련원, 교도소, 요양시설 등에서 치료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원예치료의 특징은 ‘생명’이다. 사람들은 식물을 키우면서 책임감, 희망, 모성애나 부성애 등을 경험하게 된다. 스트레스와 긴장을 완화시키며 분노를 누그러뜨린다. 원예치료는 미국과 유럽에서 1940~1950년대 상이군인들의 재활을 위해 처음 이용됐다. 이후 정신질환자, 죄수, 마약중독자 등 사회적으로 적응이 힘든 이들의 정신상태를 치료하는 효과가 있다는 이론들이 정립됐다. 우리나라에는 1997년 처음 공식 조직이 설립됐고, 1999년부터 고려대·건국대·단국대·호남대·배재대 등 10여개 대학의 평생교육원에 원예치료과정이 개설됐다. 장애인 관련기관, 병원, 교육기관 등 100여곳에서 원예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원예치료협회와 한국원예치료연구센터는 대학원 석사과정이나 각 대학의 평생교육원 수료자 중 시험을 거쳐 자격증을 발급한다. 최근에는 원예치료의 영역이 더욱 넓어지는 추세다. 노인들은 꽃을 키우면서 옛 기억을 떠올리는 회상치료를 통해 치매나 기억력 감퇴 현상을 완화시키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근육 회복과 협응력 향상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학습장애가 있는 어린이에게 책임감과 자제력, 집중력 등을 키워 주는 효과도 있다. 미국에서 원예치료를 목적별로 분류한 결과 치료목적이 35%로 가장 많았다. 훈련과 사회적응이 각각 18%, 교육 10%, 기타 19% 등이다. 농촌진흥청 관계자는 “원예치료는 다른 치료에 비해 결과를 내는 데 비교적 간단하고 기술 투입이 적은 처치법”이라면서 “우리가 생명을 존중하고 식물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을 배운다면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의 큰 보답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복지시설 자투리땅 소외 이웃 텃밭으로

    지역 복지시설 한쪽에 덩그러니 방치됐던 자투리땅 ‘한 뼘’이 소외된 이웃을 위한 훌륭한 텃밭으로 변신해 눈길을 끈다.강남구는 기업체 직원, ‘좋은 이웃 봉사단’, ‘대학생 자원 봉사단’ 등 자원봉사자 340명과 함께 지역 복지시설 옥상과 주차장 공터 등에 무료로 텃밭을 만들어 나눠 주고 있다고 23일 밝혔다.구는 오는 26일 서울시여성보호센터와 청음회관 옥상, 27일 성모자애장애인복지관 옥상 등에 덧밭을 조성할 계획이다. 이에 앞서 이미 삼성동 선릉 옆에 자리한 강남치매지원센터 옥상과 수서동 강남장애인직업재활센터 옥상, 개포동 건강가정지원센터 주차장 공터 등에 텃밭을 만들었다.텃밭은 자원봉사자들이 관리를 맡으며 이곳에서 재배한 상추와 오이, 방울토마토, 가지 등 유기농 채소를 지역 저소득 가구에 나눠 줄 계획이다. 특히 이번에 조성된 텃밭은 중증 청각장애인과 지적·자폐성 장애 학생들의 원예 치료를 위한 자연학습장으로도 활용될 예정이다. 신연희 구청장은 “삭막한 도시의 자투리땅에 마련된 조그만 텃밭을 통해 어려운 이웃과 사랑을 나누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여 흐뭇하다.”고 말했다.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
  • 토지보상금 45억 때문에…

    토지보상금 45억 때문에…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토지보상금 45억원. 이 때문에 여섯 식구는 뿔뿔이 갈라섰고, 갈등의 끝은 법원이었다. 부인은 남편이 재산을 처분하지 못하도록 한정치산자로 선고해 달라고 청구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가정법원 가사1부(수석부장 손왕석)는 19일 남편 최모(79)씨를 한정치산자로 선고해 달라며 부인 김모(77)씨가 낸 청구 소송을 기각했다고 밝혔다. 최씨는 2007년 치매 초기 진단을 받고 2010년 5월부터 입원 치료를 받다가 그해 12월 퇴원했다. 그러나 치매가 불행의 시작은 아니었다. 2010년 초, 최씨 명의의 수도권 토지가 신도시에 수용되면서 약 45억원의 보상금이 나왔다. 최씨와 장남, 부인 김씨와 나머지 삼 남매가 편을 나눠 대립하기 시작했다. 부인 김씨는 법원에 남편을 한정치산자로 선고해 달라고 청구했다. 한정치산자는 법정대리인의 동의 없이는 법률행위를 할 수 없다. 현행법상 남편이 한정치산자로 선고되면 부인이 법정대리인을 맡아 재산을 관리한다. 김씨는 ‘남편의 치매 증상이 악화돼 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장남이 재산을 독차지하려는 욕심으로 남편을 퇴원시켜 다른 가족들과의 접촉을 차단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남편은 정상적인 판단 능력이 결여된 심신박약 상태에 있고, 장남이 이를 악용해 재산을 처분함으로써 가족들의 생활을 궁박하게 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1심 법원은 청구를 받아들여 최씨를 한정치산자로 선고했지만, 항소심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심문기일에 출석한 최씨를 심문한 결과 재판장의 질문을 정확히 파악해 답변을 하고, 자신의 재산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는 등 판단 능력에 별다른 문제는 없어 보였으며, 거동도 크게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치매 증상이 있긴 하지만 그리 심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어 “토지 보상금의 관리·사용에 대해 가족들 사이에 분쟁이 발생했고, 이러한 과정에서 이번 사건이 표면화된 것을 보면 최씨가 심신이 박약하다거나 재산 낭비로 생활을 궁박하게 할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중구 치매초기환자 돌봄서비스

    정윤희(가명·32·신당동)씨는 최근 시어머니가 치매 증상을 보이기 시작해 눈앞이 깜깜해졌다. 함께 사는 시어머니가 아이들을 돌봐주는 덕에 맞벌이를 하고 있는데 주간보호시설로 보내고 싶지만 대상이 아니고, 다른 시설로 보내자니 비용이 만만찮아서다. 그러나 이젠 시름하지 않아도 좋다. 중구는 오는 23일 치매 초기 환자들을 반나절 돌봐주는 ‘돌봄 보호서비스’를 시작한다고 19일 밝혔다. 초기 치매 환자들을 일정 시간 돌봐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는 서울 자치구로는 처음이다. 신당 6동 중구치매지원센터에서 무료 운영한다. 1~3급 장기요양등급 외 판정을 받은 환자이거나 지난해 센터에 등록된 초기 치매 추정자를 대상으로 한다. 서비스는 오전 9시~낮 12시, 오후 2~5시로 하루 두차례 나눠 진행되며, 미리 전화를 해서 필요한 시간을 정할 수 있다. 또 센터에는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실버누리센터가 설치돼 의사와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 10여명의 전문인력이 치매 초기 환자들을 돌본다. 치매가 악화되지 않도록 여러 가지 치매 예방 프로그램도 함께 시행한다. 예약 및 이용 상담은 센터(2238-3400)로 문의하면 된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장도영 美플로리다서 치매 투병… 군부가 정착지 정해줘”

    “장도영 美플로리다서 치매 투병… 군부가 정착지 정해줘”

    5·16 당시 육군 참모총장이었던 장도영(88)씨가 현재 미국 플로리다에 생존해 있으며, 치매로 투병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장씨는 5·16 당시 모호한 처신으로 혁명세력과 반혁명세력 양쪽으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5·16 성공 후 혁명세력에 의해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국방장관, 내각수반에까지 추대됐으나 결국 반혁명 모의 혐의로 숙청돼 미국으로 쫓겨났고, 근래 5·16 관련 주요 인물 중 유일하게 생사와 근황이 알려지지 않았다. 5·16 당시 육군 6군단장이었던 김웅수(88)씨는 15일(현지시간) 미국 버지니아주 자택에서 기자와 만나 “얼마 전 버지니아에 사는 장도영씨의 친척으로부터 들었다.”면서 장씨가 투병 중이라고 근황을 전했다. 김씨는 “5년 전 내가 플로리다 올랜도 근교의 장씨 집을 찾았을 때는 장씨가 건강했는데, 몇년 사이 건강이 안 좋아진 것 같다.”고 했다. 김씨는 5·16 당시 반혁명분자로 몰려 1년간 수감생활을 하고 풀려난 뒤 군사정권의 간접적 압력으로 미국으로 떠났다. 김씨는 “장씨와 나는 1962년, 같은 해에 미국으로 왔다.”면서 “나는 건강이 안 좋아 공기가 좋은 워싱턴 주 시애틀로 갔고, 장씨는 한국 사람이 적은 미시간 주로 갔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의 미국 내 정착지는 사실상 혁명정부가 정해준 것”이라며 “혁명정부는 장씨가 한국 사람 많은 곳에 가서 무슨 사단을 일으키는 것을 경계한 것 같다.”고 했다. 김씨에 따르면 장도영씨는 미시간주립대를 졸업하고 미국에 정착했으며 부인과 단 둘이 지금껏 생활하고 있다. 김씨는 “장씨의 부인은 과거 서울의 유명 병원인 ‘백내과’의 딸”이라면서 “장씨 가족의 생계는 주로 유학생 출신이었던 장씨의 부인이 꾸린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장씨가 전 부인과 낳은 아들은 한국 재벌가 딸과 결혼했다.”고 했다. 김씨는 “6년 전인가 장씨가 버지니아주 친척 집을 방문한다는 얘기를 듣고 미국에 온 뒤 처음으로 그를 봤다.”면서 “당시 버지니아에 사는 교민 몇 명과 장씨를 만났는데, 시종 5·16 때 자신의 처신에 대한 변명만 늘어놓더라.”라고 했다. 김씨는 “장씨가 5·16 때 취한 처신 때문에 그를 안 좋아해서 미국 생활 중 적극적으로 그를 찾지는 않았다.”고 했다. 장씨는 김씨와의 대화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나 혁명세력에 대한 원망을 나타내지는 않았다고 한다. 장씨는 1968년 일시 귀국해 박정희 당시 대통령을 만났으며, 박 전 대통령의 권유로 월남전에 참전하고 있던 현지 한국부대를 시찰한 적도 있다고 김씨에게 밝혔다고 한다. 장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남로당 전력으로 위기에 처했을 때 구명운동을 해준 인연이 있으나, 5·16 때 혁명세력에게 자진해산을 종용했다. 그러면서도 적극적으로 진압은 하지 않았다. 그는 ‘참모총장’이란 간판이 필요했던 혁명세력에 의해 떠받들어졌으나, 결국 2개월 뒤 김종필씨 등 소장파에 의해 투옥된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고향 베트남에 계신 할머니 생각에…”

    “고향 베트남에 계신 할머니 생각에…”

    “봉사활동을 하는 동안 고향 할머니 생각으로 눈물이 멈출 줄 몰랐어요.” 지난 15일 오전 10시 성동구 홍익동 시립동부노인전문요양센터. 낯선 이국 땅에서 힘겹게 생활하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 17명이 치매·중풍 어르신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느라 분주히 움직였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에게 안마를 해드리거나 휠체어를 밀며 산책을 시켜드리는 등 정성스레 보살폈다. 뇌졸중(중풍)을 앓는 분들에게는 서툰 한국어로 동화책을 읽어드리기도 했다. 인근 성동구 외국인근로자센터 청년회인 ‘아시안프렌드십’ 회원들은 지난달부터 이곳을 찾아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아시안프렌드십은 베트남과 파키스탄 등 10개국 30여명이 참여한 소모임으로 매월 첫째·셋째 일요일마다 센터에 모여 외국인근로자 인권과 처우문제 등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인다. 사회적 약자로 도움을 받던 이들이 봉사에 나선 것은 자신들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랑을 나누자는 마음에서 시작됐다. 특히 한 베트남 출신이 인터넷 카페에 ‘모국에 둔 할머니 생각’이라는 봉사활동 소감을 올리면서 불이 붙었다. 이날 봉사활동에 참여한 마호메드(31·파키스탄)는 “제가 받은 사랑을 더 버겁게 살아간 분들과 함께 나누며 보낸 하루여서 무척 보람 있었다.”며 “언제까지 한국에서 일할지 모르지만 봉사활동엔 빠지지 않고 참석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성동구는 2001년 전국 최초로 외국인근로자센터 설치 및 관련 조례를 제정했으며, 이주아동을 위한 ‘지구촌학교’와 한국어·컴퓨터 교실, 이주여성을 위한 직업 상담소 등을 운영하고 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당신의 예상 수명은?…유전자 검사로 잔여 수명 예측

    당신의 예상 수명은?…유전자 검사로 잔여 수명 예측

    피 한 방울로 자신의 남은 수명을 알 수 있는 유전자(DNA) 검사가 이르면 올 연말부터 영국에서 시행될 전망이다. 16일 데일리 메일 등 외신에 따르면 이 유전자 검사는 혈액 속에서 DNA를 추출해 염색체 끝 부분에 있는 텔로미어(telomereㆍ말단소립) 길이로 수명을 예측하게 된다. 텔로미어는 신체의 노화 진행 상태 등을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로 알려졌다. 검사법을 개발한 스페인 ‘라이프 렝스’(Life Length)사에 따르면 검사 비용은 435파운드(한화 약 77만원)가 될 것으로 보이며, 연말 영국 출시 뒤 앞으로 5~10년 내 다른 나라에도 확대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일부 비평가들은 “이 새로운 신기술은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과 같다.”면서 “증명되지 않은 노화방지 치료를 판매하는데 잘못 이용될 수 있으며, 보험회사들이 검사 결과를 요구할지도 모를 노릇”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문제점들에도 이 검사는 심장병, 치매, 암 등 노화와 관련된 질병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공할 수 있다. 스페인 국립암연구소의 마리아 블라스코 박사는 “짧은 텔로미어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일반인보다 수명이 짧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이번 검사법은 텔로미어 길이의 아주 작은 차이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고, 한꺼번에 많은 양을 검사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사진=데일리 메일 서울신문 나우뉴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光州, 노인 대상 가창법 특강

    대중음악 작곡가 이호섭(52)씨가 가정의 달을 맞아 효도 잔치와 함께 노래를 잘 부를 수 있는 가창법에 대해 특강을 한다. 이씨는 17일 오후 1시부터 2시간 동안 광주 남구 노대동 빛고을노인건강타운 문화관 2층에서 열리는 ‘이호섭과 가요를 사랑하는 사람들 효잔치’에서 가창법을 소개할 예정이다. 공연에는 가수 강신을 비롯해 이정자, 현주, 유성민, 강력장 등이 출연한다. 한국가창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이씨는 “노래를 잘 부를 수 있다는 것은 곧 당당한 자신감을 갖는 일로 정신과 신체 건강, 치매 예방과 치료에 효과가 있다.”면서 “노래는 노년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법원도 감동한 ‘양자의 孝’… “유산 절반 상속”

    법원도 감동한 ‘양자의 孝’… “유산 절반 상속”

    50년 가까이 부모를 모신 양자에게 기여분을 인정해 절반 이상의 유산을 넘겨주라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법원이 재산 상속에서 기여분을 절반까지 인정한 건 이례적이다. 15일 서울가정법원에 따르면 A(남)씨는 마흔 무렵이던 1974년 딸만 7명을 뒀던 삼촌 부부(이하 양부모)에게 양자로 입양됐다. A씨 부부는 양부모가 모두 사망한 2002년까지 농사와 어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이들을 모셨는데, 정식 입양 전부터 따지면 50년 가까이 양부모를 봉양한 셈이었다. 특히 100세의 나이로 사망한 양아버지는 19년 동안 지병을 앓으며 입·퇴원을 반복했고 95세로 사망한 양어머니는 사망 직전 3년 동안이나 치매에 시달렸으나 A씨 부부는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이들을 지극히 모셨다. 그러다 2009년 A씨가 사망한 뒤 그 유족과 양부모의 친딸 간 재산 분배로 의견이 갈리게 됐다. 양부모는 선산과 자신들이 살던 주택, 논밭을 유산으로 남겼는데, A씨 부인이 “남편이 양부모를 극진히 모셨으니 기여분 100%를 인정해 달라.”고 주장한 것이다. 하지만 양부모 친딸 측이 이에 동의하지 않아 결국 법정으로 오게 됐다. 이에 대해 서울가정법원 가사2부(부장 최재혁)는 A씨 기여분을 50%로 인정했다. 기여분은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경우 전체 상속 재산에서 당사자에게 우선 나눠 주는 상속 재산 비율로, 그 나머지를 전체 상속인들이 다시 나눠 가지게 되므로 결과적으로 A씨의 몫은 절반이 넘게 된다. 재판부는 “A씨가 약 40∼50년간 양부모를 모셨고 병시중 비용도 모두 부담했으며 양부모가 기대 수명이 훨씬 넘는 100세, 95세까지 각각 산 점 등을 고려해 기여분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법원 관계자는 “기여분을 인정하는 사례가 많지 않고, 인정하더라도 통상 20% 이상인 경우는 거의 없다.”며 “입양과 노부모 봉양, 효도의 의미 등을 되새겨볼 수 있는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병수발 힘들까봐…” 어버이날 60대 노부부 동반자살

    “병수발 힘들까봐…” 어버이날 60대 노부부 동반자살

    지병을 앓던 60대 부부가 어버이날에 자식들에게 짐이 되기 싫다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9일 경기 용인서부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8일 오후 5시 30분쯤 경기 용인시 신봉동의 한 아파트에서 전모(69)씨와 부인 노모(62)씨가 숨져 있는 것을 경비원이 발견했다. 남편 전씨는 침실에서 누워 숨진 채 발견됐는데, 목에는 졸린 흔적이 남아 있었고 부인 노씨는 베란다에서 목을 맨 채 질식사했다. 목격자 경비원은 “함께 살고 있는 큰아들로부터 ‘집에 계신 부모님들이 전화를 받지 않고 있으니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확인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집안에 들어가 보니 두 사람이 숨져 있었다.”고 말했다. 전씨 부부는 함께 사는 아들 부부에게 “그동안 우리를 돌보느라 고생이 많았다.”는 말과 함께 지난 7일 제주도로 3박 4일 동안 여행을 권한 뒤 둘이서 집을 지키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인다. 회사원인 큰아들(40), 맞벌이하는 며느리(38), 초등학교에 다니는 손자 2명과 함께 노년의 삶을 살던 이들에게 불행은 젊은시절부터 암울하게 드리워져 있었다. 전씨는 서울의 명문 고교와 명문대 법대 출신으로 엘리트 코스를 밟아 왔다. 그러나 그 무렵부터 극심한 스트레스 등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았고, 하나둘씩 법조인이 돼 활동하는 학교 친구들과 달리 법조인의 길을 걷지 못하고 정상적인 사회생활도 어려웠다. 못난 자신의 처지를 괴로워한 전씨의 스트레스는 더욱 심해졌고, 급기야 지난해부터는 중증 노인성 치매까지 앓았다. 이 때문에 큰아들 내외와 손자들이 직장과 학교에 가 있는 동안 거동이 불편해 대·소변조차 가리지 못하는 남편에 대한 간호는 함께 늙어 가는 부인 노씨의 몫이었다. 노씨는 꿈도 많았겠지만 특별히 싫은 내색도 하지 않고 반평생 남편의 병수발을 도맡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힘겹게 남편을 간호하던 노씨도 세월의 무게는 견디지 못했다. 암세포가 몸으로 스며든 노씨는 7개월 전 암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에도 노씨는 통원 치료를 받아야 했고 우울 증세까지 보여 점점 남편의 병수발을 하기 힘들 만큼 건강이 악화됐다. 결국 노씨는 함께 살던 아들 식구들을 모두 여행 보내고, 비극적인 종말을 선택하고 말았다. 이들 부부는 아들과 며느리, 손자들, 형제들에게 유서 5장을 남겼다. 아들에게는 ‘고맙다. 미안하다. 아버지와 엄마가 함께 죽어야지 어느 하나만 죽으면 너희에게 짐이 될 것이다.’, 며느리에게는 ‘고맙고 미안하다. 아이들 잘 키워라.’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손자들에게는 ‘엄마, 아빠와 행복해라. 그리고 사랑한다.’, 형제들에게는 ‘우리 큰아들 내외가 많은 고생을 했는데 잘 도와줘라.’라는 글로 마지막 인사를 했다. 전씨의 큰아들은 경찰에서 “여행을 안 갔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괜히 가서…”라고 흐느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경찰은 유족들의 진술과 유서 내용을 토대로 부인 노씨가 남편 전씨의 목을 졸라 살해한 뒤 자신도 자살한 것으로 추정했다. 장충식기자·연합뉴스 jjang@seoul.co.kr
  • [저자와 차 한잔] ‘잊혀진 것들’ 펴낸 한국학연구원 김 원 교수

    [저자와 차 한잔] ‘잊혀진 것들’ 펴낸 한국학연구원 김 원 교수

    장기집권을 비극으로 마무리한 통치자, 그가 남기고 간 혼돈을 빚처럼 안고 출발한 1980년대는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남아 있을까. 꽃 한 송이 피워 내지 못한 ‘서울의 봄’, 군부의 등장과 광주항쟁, 넥타이부대까지 불러낸 민주화운동…. 대학에는 절망과 분노가 타올랐고 시위와 분신이 이어졌다. 그 격랑 속을 살았던 사람들은 그 시절을 박제시켜 벽장 속에 감춰두고 싶어 한다. 그렇게 화석화된 ‘80년대’를 꺼내들고 씻김굿을 한판 펼치자는 이가 있다. ‘잊혀진 것들에 대한 기억’(이매진 펴냄)을 낸 김원 한국학중앙연구원 사회과학부 교수. 그는 이 책을 세상에 던짐으로써 자발적 치매라는 고치 안에 들어가 웅크리고 있는 사람들을 불러내겠다는 의도를 숨기지 않는다. ‘잊혀진 것들에 대한 기억’은 1980년대 대학생들의 궤적을 기록한 ‘학생운동에 대한 보고서’다. 그 시대를 몸으로 부딪쳤던 구술자들의 입을 통해 당시 대학생의 일상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1999년에 출간했다가 12년 만에 방대한 보론(補論)을 덧붙여 새로 출간했다. 김 교수가 책을 새로 내놓으면서 화두로 삼은 것은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다. “초판은 역사적 리얼리티의 복원에 초점을 뒀습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는 80년대가 왜 상처로 남았고 다시 떠올리고 싶어하지 않는 트라우마가 되었는지 되새김질 해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이런 현상의 원인을 ‘80년대는 비도덕적이고 반국가적인 패륜아의 역사’라는 오명이 덧씌워졌다는 데서 찾는다. 바로 대한민국 건국, 산업화를 이끌어 온 아비를 부정했던 불경스러운 아들·형제들로 기억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80년대를 증언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물음에도 분명한 답을 내놓는다. “증언하지 않으면 망각되거나 왜곡된 상태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를 역사의 한 페이지 정도로밖에 받아들이지 못하는 세대들도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끊임없이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습니다. ‘기억듣기’는 단순한 과거의 재현이 아니라 사회의 지향점을 성찰하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는 스스로가 ‘운동권’이었지만 학생운동이 갖고 있었던 문제점에 대해서도 뼈아픈 지적을 한다. “학생운동이 소멸하게 된 외부적 요인은 군부정권의 퇴장이나 노골적인 폭력의 약화 등이겠지요. 더 큰 원인은 학생조직의 내부적 문제였습니다. 조직의 비대화, 대중을 소외시킨 엘리트주의, 분파와 갈등이 균열을 불렀습니다.” 유행처럼 정치권으로 몰려들었던 소위 ‘386세대’에 대해서도 “목적을 위해서 분명히 존재했던 것들마저 부정한 사람들”이라며 곱지 않은 시선을 던진다. 1980년대를 천착해 온 그에게 2010년대 대학생은 어떤 모습으로 비쳐질까. “80년대에는 광주항쟁 같은 사회적 현실에 대해 죄의식을 갖고 있었고 스스로 풀어나가야 할 과제로 인식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사실들을 현대사의 비극 정도로 인식할 뿐 ‘자기화’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습니다. 대학이 취업을 향한 경쟁의 장으로 재편되면서 자신의 존재근거에 대해 질문을 던질 여지가 약해진 것이지요.” 그의 바람은 자신의 텍스트들이 80년대의 트라우마를 읽는 창 구실을 하는 것이다. “지금의 세대들이 이 책이나 비슷한 연구서를 보면서 끝없이 질문을 던지다 보면 언젠가 트라우마는 깨질 수 있을 겁니다.” 많은 이들이 잊고싶어 하는 ‘과거’를 낱낱이 전함으로써, 새로운 길을 찾는 단초를 제공하고 싶다는 그의 마음이 엿보인다. 이호준 편집위원 sagang@seoul.co.kr
  • 민규동 감독 “이번 영화엔 동성애 안 나옵니다”

    민규동 감독 “이번 영화엔 동성애 안 나옵니다”

    영화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등에서 감각적이고 섬세한 연출력을 인정받았던 민규동(41) 감독이 이번에는 눈물 나는 가족 이야기를 들고 돌아왔다. 민 감독은 자신의 연출작 중 처음으로 동성애가 등장하지 않는 영화지만, 새 이정표 같은 작품이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영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21일 개봉)의 각본과 연출을 맡은 그를 지난 15일 서울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다소 진부해 보일 수도 있는 가족 이야기를 다시 꺼낸 이유는 뭔가. 전작들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데. -평생 희생과 절제의 삶을 살아오신 부모님께 민폐만 끼치고, 받기만 한 자식으로서 언젠가 한번쯤은 이런 영화를 해야 한다는 마음의 빚이 있었다. 또 일상적이고 익숙하다는 이유로 멀리했지만, 자꾸만 자극적이고 도발적인 이야기만 찾는 나를 멈추고 호흡을 가다듬고 싶었다. 낡은 앨범을 보자마자 새로운 느낌이 들지 않나. 소재의 새로움이 아니라 정서의 새로움으로 승부하고 싶었다. 내게도 상당히 실험적인 작품이다. →어떤 점이 그렇게 실험적이었나. -내 작품 중에 처음으로 동생애자가 등장하지 않는 영화다(웃음). 스타일에 대한 욕구를 완전히 제거하고, 감독의 자의식을 전혀 드러내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동안 추구해 온 방향과 관성이 있는데, 확 꺾어서 나를 없애는 작업이 무척 힘들었다. 마치 도를 닦는 기분이었다. 내 필모그래피(작품 목록)에서 이정표 같은 작품이 될 것이다. →그토록 절제하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이었나. -두달 전에 20년 지기 대학 동창이 시한부 선고를 받고 끝내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외할머니와 이모를 떠나보낼 때도 그랬지만, 막상 죽음이 닥치니 믿겨지지 않았다. 죽음은 일상화된 일이지만 제대로 보내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또 나는 어떻게 떠날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됐다. “정말 고마웠다.”는 마지막 인사를 끝까지 유예하다가 삼키는 경우도 있다. 관객들도 친구나 가족의 모습뿐만 아니라 결국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를 원한다. →가족들이 엄마 인희(배종옥)가 자궁암 말기라는 사실을 알게 된 뒤 어쩔 수 없이 신파로 흐르긴 했지만, 감정을 절제하려는 연출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노골적인 ‘크리넥스 무비’(눈물을 짜내는 영화)가 되지 않도록 많이 절제하고 노력했다. 감정이 깊어지거나 눈물을 강요할 것 같은 느낌이 들면 밝은 일상의 모습을 교차시켰다. 밝은 모습을 연출할 때도 절제미를 살리려고 했다. 가족은 힘든 것이기도 하고, 소중한 것이기도 하며 죽음은 일상적이면서 충격적이다. 이중적인 느낌을 살리고자 했다. →일에만 신경쓰는 가장 정철(김갑수), 툭하면 사고치는 동생 근덕(유준상), 언제나 바쁜 큰딸(박하선) 등 가족 구성원들이 엄마의 죽음을 계기로 변화하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처음부터 가족을 예찬하거나 모성애를 강요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가족이 형벌이거나 지옥같이 느껴지는 사람에게 가족애를 아무리 외쳐도 귀에 잘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그냥 가족이 어떤 것인지를 사실적이고 섬세하게 보여준다면 받아들이는 사람이 자신의 입장에서 나름대로 해석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노희경 작가의 동명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만큼 차별화에도 신경을 썼을 것 같은데. -특별히 차별화에 대한 강박은 없었다. 다만 글에 담긴 솔직한 정서를 놓치지 않고 현대적으로 바꾸려고 애썼다. 인희의 아들과 딸이 현대적인 욕구와 갈등을 갖춘 캐릭터로 그려진 것도 그 때문이다. 원작과 달리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김지영) 부분을 가장 두껍게 표현했다. 가장 큰 짐이지만, 엄마의 아픔과 외로움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연출 면에서도 전작과의 차별화가 많이 느껴졌는데. -그동안 감각적인 빠른 호흡을 선호했다면, 이번에는 관객들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도록 롱테이크(길게 찍기)를 많이 썼다. 한 장면을 여러번 찍기보다는 배우들이 뻔한 연기가 되지 않게 한번에 감정을 폭발시키도록 했다. 주목받지 못해도 자신을 희생하는 어머니의 느낌을 야생화에 비유해 영화 전반에 꽃 컴퓨터그래픽(CG)을 많이 사용했다. 영화 마지막에 인용한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라는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라는 시구도 어머니를 비유한 것이다. →인희 역에 배종옥씨를 캐스팅했는데, 어떤 엄마로 그리고자 했나. -겉으로는 명랑하고 주체적이지만, 속으로는 희생적이고 많은 사람을 포용하는 엄마로 그리고자 했다. 잔소리도 하지만, 자식들과 친하게 지내는 전통과 현재가 혼합된 이미지로 표현했다. 원작과 달리 죽음을 앞두고 모든 갈등을 직접 해결하고 화해하려는 한 인간의 모습을 강조하려고 했다. →이번 작품을 포함해 유독 공동 주연을 내세운 영화가 많았는데. -절대로 의도한 것은 아니다(웃음). 공동 주연작은 다양한 인물이 주는 재미가 있지만, 캐릭터를 따라가기가 복잡해 관객들에게 감정 이입을 시키기가 어렵다. 등장과 퇴장의 리듬과 부재하는 자의 존재감까지 치밀하게 계산해야 하기 때문에 영화 3~4편을 만드는 것처럼 힘이 든다. 영화는 자본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많지 않나. 나도 다음엔 원톱(주인공이 한 사람)이나 투톱 영화를 해 보고 싶다.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의 아들이 15년 전 영화를 한다고 했을 때 묵묵히 지지해 준 어머니가 모처럼 불편해하지 않고 볼 만한 영화가 나왔다며 환하게 웃는 민 감독. 다음 영화 제목은 무조건 10자 이내로 줄여 보겠다는 ‘각오’도 덧붙인다. 차기작은 액션 스릴러란다. 자신의 본격적인 장르 영화가 될 것이라고도 했다. 새롭지 않으면 좀처럼 동인(動因)이 생기지 않는다는 그의 도전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글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사진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 관악구, ADHD학생·치매노인 전수조사

    관악구가 초등학교 저학년을 중심으로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를 드러낸 학생을 치료하고, 만 65세 이상 노인을 중심으로 치매와 우울증을 관리하기 위해 전수조사를 시작했다고 18일 밝혔다. ADHD는 그동안 어린이 정신건강문제의 하나로 학교에서 부적응 문제를 심화시키고, 치매 노인 문제는 심각한 가족 간 갈등요인이라는 점을 고려해 구는 적극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이를 위해 구는 지난 1월 정신보건센터와 치매지원센터를 전국에서 처음으로 직영체제로 전환하고, 서울시립 보라매병원 및 시립 어린이병원과 협약을 체결하여 전문의가 주 1회 이상 파견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공동의료 협력체계를 구축했다. 구 정신보건센터는 교육특구 사업의 일환으로서 동작교육지원청 및 관내 22개 초등학교와 협력체계를 구축하여 초등학교 1~4학년 7840명 중 ADHD 주의 에 해당하는 학생들에게는 학부모와 상담한 뒤 심층면접 및 상담·치료 등을 직접 맡고 있다. 구 치매지원센터는 고령화 사회의 노인치매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고자 65세 이상 4만 6478명을 대상으로 지난 4일부터 1차 전수조사를 하고 있다. 1차로 각 동의 지역 리더(626명)가 다음 달 13일까지 경로당이나 가정 등을 직접 방문, 치매 및 노인우울증 선별 설문을 벌이고, 필요하면 치매지원센터에서 6월 말까지 2차 정밀검진을 할 예정이다. 이후 치료가 필요한 노인에겐 보라매병원 등과 연계하여 치매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치매에 대한 정신과적 접근과 함께 기질학적 질환과 치매를 구분해 치료하고, 치매 노인의 가족까지 보호할 계획이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서초, 구립요양센터 개관 200병상·기계욕실 등 갖춰

    서초, 구립요양센터 개관 200병상·기계욕실 등 갖춰

    서초구는 14일 서초동 380-4 서울시 인재개발원 입구에 지하 2층, 지상 4층, 연면적 5700㎡ 규모의 구립요양센터 문을 열고 운영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175억원을 들여 건립한 센터는 200병상의 요양실과 운동·물리·작업치료실, 기계욕실, 식당, 이·미용실 등 노인들을 위한 최첨단 시설을 갖췄다. 옥상에는 하늘정원 등 4개의 정원도 들어섰다. 지하철 3호선 양재·남부터미널역과 가까워 가족들이 언제든지 들러 노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건강을 확인할 수 있다. 만 65세 이상 치매·중풍 등 노인성 질환을 앓는 주민이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지원자가 많으면 구민에게 우선권을 준다. 개인 부담은 한달 40만~50만원이다. 진익철 구청장은 “고령화 시대에 노인성 질환을 겪는 어르신과 가족들의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 센터를 지었다.”면서 “어르신들이 편안하고 건강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다른 방안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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