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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배 끊었더니, 이번엔 보조제 니코틴 껌 중독…

    담배 끊었더니, 이번엔 보조제 니코틴 껌 중독…

    하루에 담배를 두 갑 가까이 피우던 직장인 최모(36)씨는 3년 전 독하게 마음먹고 담배를 끊었다. 의지만으로는 흡연 욕구를 참기 어려워 약국에서 금연보조제인 니코틴 껌을 구입해 담배 생각이 날 때마다 씹었다. 턱이 아프도록 니코틴 껌을 씹은 덕에 최씨는 일단 금연에 성공했다. 하지만 니코틴 껌은 끊지 못했다. 이번엔 껌 속 니코틴에 중독된 것이다. 최씨는 3년째 니코틴 껌을 씹고 있다. 최씨는 “니코틴 껌이 1만원에서 1만 5000원 정도로 비싸다 보니 니코틴 껌을 사는 데 한 해 150만~200만원을 썼다”고 말했다. 3년간 500만~600만원이 그야말로 ‘껌값’으로 나갔다. 담배를 피울 때보다는 몸이 많이 좋아졌지만, 하루에 15알 이상 씹다 보니 가슴 두근거림 증상이 심했다. 스트레스를 받아 껌을 빨리 씹으면 두통과 현기증도 나타났다. 담배는 니코틴 껌으로 끊었지만, 니코틴 껌은 뭐로 끊어야 할지 고민이다. 니코틴 껌 중독도 어차피 니코틴 중독이니 의지로 끊지 못한다면 금연 약을 쓸 수밖에 없다. 니코틴 껌 중독 가능성을 줄이려면 되도록 껌을 천천히 씹어야 한다. 명승권 국립암센터 가정의학과 교수는 “니코틴이 체내로 빨리 들어올수록 그 맛에 중독된다”며 “니코틴이 뇌에 작용해 도파민이 분비되면서 기분이 좋아지는 ‘보상’이 빨리 이뤄지면 자꾸 껌을 찾게 된다”고 말했다. 니코틴 껌을 처음 씹을 땐 대개 빨리 씹게 되는데, 담배 생각이 가실 때까지 껌 하나를 30분 정도 오래 씹어야 한다. 씹던 중 턱이 아프면 한쪽 볼에 껌을 붙여 보관한다. 한국금연운동협의회장인 서홍관 국립암센터 교수는 “껌을 씹다 니코틴 물이 나오면 입에 머금고 쉬면서 니코틴이 구강 점막으로 충분히 흡수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니코틴 껌 적정량은 제조사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개 하루 15알 미만이다. 명 교수는 “금단현상이 1시간마다 일어나니 잠을 자는 시간을 빼고선 10알 정도가 적당하다”며 “그 이상을 씹으면 두통, 속 울렁거림 등의 증상이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니코틴은 어차피 몸 밖으로 배출되기 때문에 증상이 나타나더라도 일시적”이라고 덧붙였다. 가슴 두근거림, 두통 등의 증상은 니코틴 껌을 씹지 않으면 몇 시간 후 사라진다. 니코틴 과다 흡수로 인한 증상 자체는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서 교수는 “니코틴 자체는 권할 게 아니지만, 니코틴 껌에는 순수 니코틴 성분만 들었기 때문에 담배와 비교하면 전혀 해롭지 않다”고 말했다. 또 “니코틴 껌은 모든 나라가 일반의약품으로 분류해 팔고 있는데, 이는 의사 처방 없이도 살 수 있다는 뜻으로 그만큼 안전성에 자신이 있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니코틴 껌은 니코틴 함유량에 따라 4㎎과 2㎎짜리가 있다. 담배를 하루에 한 갑 이상 피우던 사람은 4㎎, 이보다 적게 피우던 사람은 2㎎짜리를 선택하는 게 좋다. 4㎎ 니코틴 껌을 씹는 사람은 어느 정도 금연에 자신이 붙고서 2㎎짜리로 바꾼다. 니코틴 껌을 씹을 때는 절대 담배를 피워선 안 된다. 담배를 줄이면서 껌을 씹는 경우도 있는데, 이러면 니코틴이 체내에 과다하게 흡수될 수 있다. 확실한 금연을 원한다면 의료기관의 금연치료와 지역별 금연캠프의 도움을 받는 게 좋다. 금연치료 전문 의료기관의 금연 프로그램은 8주 혹은 12주간 평균 6회에 걸쳐 상담을 받고 금연치료의약품, 금연보조제를 투약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프로그램 3회 방문 때부터 본인 부담금을 전액 지원하고, 1~2회 치료비는 프로그램 이수 시 모두 돌려준다. 합숙형인 금연캠프는 스스로의 의지만으로는 금연하기 어려운 중증 흡연자에게 도움이 된다. 전국 17개 시·도(경기 2곳)에 설치된 지역금연지원센터는 4박5일간의 전문치료형 금연캠프와 1박2일의 일반지원형 금연캠프를 열고 있다. 세종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동반자 티샷에 부상… 골프장 60% 책임”

    50대 여성 골퍼가 동반자의 티샷에 머리를 맞아 다친 데 대해 법원이 “골프장 측에 60%의 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8단독 임태혁 부장판사는 A보험사에 대해 이모(55·여)씨에게 3088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고 10일 밝혔다. 이씨는 2013년 경기 용인시의 한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다 사고를 당해 쓰러졌다. 일행 중 한 명이 남성용 티박스에서 친 공에 머리를 맞았다. 당시 이씨는 여성용 티박스 부근에서 티샷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씨는 뇌 일부 혈관이 파열돼 출혈이 발생하는 급성 경막하출혈과 두개내출혈 등의 상해를 입었다. 한달 가까이 입원 치료를 받은 이씨는 “당시 캐디가 남성용 티박스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도 일행의 티샷을 중지시키지 않았다”며 골프장 측 A보험사를 상대로 치료비와 간병비 등 8500만원을 배상하라는 내용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임 판사는 “골프장은 캐디의 사용자로서 배상 책임이 있다”며 골프장과 계약한 A보험사가 이씨에게 배상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이씨도 일행이 티샷하기 전 앞으로 나아가 사고의 주원인을 제공했다며 배상 책임을 60%로 제한했다. 또 당초 이씨가 청구했던 금액 가운데 간병비 등은 배상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
  • [세상을 밝히는 사람들] ‘새 눈’ 얻은 그녀, 10년 폐지 주워 세상의 빛 되다

    [세상을 밝히는 사람들] ‘새 눈’ 얻은 그녀, 10년 폐지 주워 세상의 빛 되다

    눈과 귀가 먼 채 홀로 아이를 키우는 모습이 2005년 1월 방송에 소개된 후 새 각막을 기증받아 세상을 울렸던 박진숙(54·여)씨. 지난 6일 만난 그는 11년이 지난 지금 아들 원종건(23)씨와 10평 남짓한 서울 동작구의 다세대 주택에서 살고 있었다. 수입은 기초생활수급비 및 장애인연금 등 월 100만원 정도. 월세와 식비, 관리비, 휴대전화 요금 등을 내고 나면 남는 돈은 없다. 하지만 박씨는 키 150㎝, 몸무게 38㎏의 왜소한 몸으로 거의 매일 새벽과 늦은 밤 소형 운반카트를 끌고 집을 나선다. 폐지, 빈 병, 고철 등을 주워 ‘꽃동네’와 해외 어린이들의 양육을 돕는 ‘한국컴패션’ 등에 기부하기 위해서다. 적을 때는 하루 800원, 많으면 3000원 정도를 번다. 박씨는 “다른 분의 도움으로 세상을 보게 됐으니 나는 평생 어려운 사람을 도우며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아들 원씨는 “낮 시간을 피해 새벽과 밤에만 일을 하는 것도 폐지를 수집하는 동네 노인들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그러는 것”이라면서 “중상은 아니었지만 5년 전 전조등을 끈 채 골목길을 지나는 차에 치인 적도 있었다”고 전했다. 박씨는 각막을 기증받은 2005년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에서 장기기증 서약을 했다. 아들도 “은혜에 보답하라”는 어머니의 뜻을 실천하고 있다. 2010년 장기기증 서약을 했고, 2013년에는 네팔 카트만두의 마을을 방문해 학생들의 사진을 찍어 주는 해외 봉사에 참여했다. 원씨는 “네팔 아이들은 너무 가난해서 돌잔치 이후에는 사진 찍을 기회가 거의 없다고 해 그들에게 추억을 남겨 주고 싶었다”면서 “하지만 당시에 찍은 사진들이 지난해 4월 네팔 대지진 때 아이들의 생사 여부를 확인하는 데 쓰일 때는 가슴이 미어졌다”고 말했다. 박씨의 꿈은 화가였다. 하지만 고등학교 졸업 후 갑작스레 시각·청각 장애가 찾아왔다. 다른 사람들을 바로 코앞에서도 알아보지 못하게 되면서 화가의 꿈을 포기해야 했다. 남편을 만나 1993년 아들을 낳았지만 가난은 지속됐다. 1994년 태어난 딸은 다른 나라로 입양을 보내야만 했다. 남편은 1995년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다. “막 태어난 딸아이는 심장이 안 좋아서 병원에서 인큐베이팅 치료를 받았어요. 치료비가 없어 도저히 키울 수가 없었어요.” 박씨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10평 남짓한 박씨의 집에는 분침이 10분 빠른 시계가 걸려 있었다. 아들 원씨가 그 뜻을 설명했다. “조금이라도 삶을 앞당겨 살아보라는 어머니의 뜻이죠. 좀더 신중하고 소중하게 삶의 진정한 알맹이를 찾아내라는 뜻입니다.” 글 사진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더민주당 영입’ 김선현, 위안부 할머니 그림 논란 해명 “구두허락 받았다”

    ‘더민주당 영입’ 김선현, 위안부 할머니 그림 논란 해명 “구두허락 받았다”

    ‘더민주당 영입’ 김선현 교수, “위안부 할머니 그림 사용 구두허락 받았다”김선현 더불어민주당에 ‘여성인재 1호’로 영입된 김선현 차의과대학교 교수가 8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그린 그림을 무단으로 사용했다는 의혹에 대해 적극 반박했다. 더민주당도 당 대변인이 직접 나서 김 교수에게 제기된 의혹들을 일일이 해명했다. 김 교수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미술치료 과정에서 할머니들이 그린 그림과 치료 장면 사진을 학술·연구 목적으로 가져가면서 위안부 피해자 지원시설인 ‘나눔의 집’의 사전 허락을 구했고 이후 반환 요청을 받고 서둘러 돌려줬다고 해명했다. 김 교수는 “구두로 허락받았다”면서 “나눔의 집에서 허락하지 않았다면 제 탓이다. 이 논란으로 할머니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가 2012년 10월 할머니들의 그림과 사진을 담은 ‘역사가 된 그림: 위안부 할머니들의 미술치료 사례집’을 출간하고 2014년 12월 이 책을 국가기록원에 등재한 과정에 대해서는 김성수 대변인이 “나눔의 집 안신권 소장이 당시에는 ‘책 내는 부분은 알아서 하라’고 구두로 오케이 했지만 이후 나눔의 집 운영위원들이 기록물을 돌려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문제제기를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또 김 교수가 입당 기자회견에서 할머니들의 미술치료를 한 시기를 7년이라고 밝혔는데 실제로는 1년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김 대변인은 “김 교수가 본격적인 치료에 앞서 할머니들과의 관계 형성을 위해 2006년부터 2008년까지 나눔의 집을 간헐적으로 방문해 할머니들과 대화하고 미술작업을 했다”면서 “이후 2012년까지는 매주 수요일에 치료팀을 구성해 본격적인 치료를 했다”고 밝혔다. 당시 작성한 임상미술치료 일지도 공개했다. 김 교수가 여성가족부에서 치료비 명목으로 800만원을 받았다는 데 대해서는 “자원봉사라고 했는데 나눔의 집에서 400만원을 줘서 일부는 자비로 운전한 봉사자에게 지원하고 나머지는 나눔의 집에 기부했다. 저에게 이야기를 안 하고 2009년 연말에 400만원을 더 계좌로 입금한 사실을 뒤늦게 확인했다”고 말했다. 한편 김 교수가 차의과대학원 원장으로 있을 당시 자신이 회장을 맡고 있던 대한임상미술치료학회의 미술치료사 자격증 프로그램 참여를 대학원 신입생들에게 강요했다는 논란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김 대변인은 “취업하려면 자격증이 필요한데 대부분 대한임상미술치료학회에서 딴다”면서 “이 학회에 꼭 가라고 강제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게 학교 측의 설명”이라고 전했다.또 김 교수가 스승의 날 학생들에게 100만원짜리 상품권을 요구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김 교수는 대학원장 재직 시절 오히려 스승의 날에 선물 가져오지 말라는 문자를 발송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도 “제가 부족한 면이 있겠지만 갑질 논란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심재억 기자의 헬스토리 29] 석화, 세한의 추억

    [심재억 기자의 헬스토리 29] 석화, 세한의 추억

    보낸 가을은 항상 짧았지요. 기실은 논이며 밭에 가을겆이할 일들이 널려 가을이 긴 지, 짧은 지를 가늠할 겨를도 없이 겨울을 맞는게 농가의 일상이지만, 그래서 가쁜 숨결 고르고 나서 뒤돌아 보면 우리가 거쳐온 가을은 항상 토끼 꼬랑지처럼 짧고, 그래서 늘 아쉬웠습니다. 짧은 가을을 보내고 나면 손끝에 닿는 물에 서슬이 배어 시리게 느껴졌고, 그러다가 곧장 아린 느낌으로 다가와 겨울임을 알곤 했지요. 갯마을의 겨울은 배를 띄워 주낙질을 하거나 살얼음 진 개펄에 맨살이 드러난 다리 뿡뿡 빠져가며 김과 파래를 뜯는 게 전부였는데, 배를 띄울 일도 없고, 맨 다리로 뻘을 디딜 일도 없는 게 썰물에 드러난 갯가에 나가 석화(石花)를 따는 일이었습니다. 요즘에야 양식 기술이 좋아 이 무렵이면 시장에 실한 양식굴이 넘치지만, 예전에는 종일 석화밭에 쪼그리고 앉아 시린 갯바람 맞으며 기껏 해야 완두콩만 한 굴을 따모아야 했습니다. 그래도 그렇게 따는 석화는 싱싱한 자연산이었습니다.   ●동서양이 함께 향유한 식도락의 정수 갯가 바위에 다닥다닥 붙어 자란 석화는 누가 따로 종패를 뿌리지도 않았고, 그러니 따로 돌보는 사람이 있을 리 없지만 바윗등에 빈 틈이 없을만큼 몸통을 비집고 빼곡하게 들러붙어 가히 ‘쩍의 산’이라고 할만 했지요.(굴을 까고 난 껍데기를 쩍이라고 했다) 굴을 딸 때 쓰는 조새와 바가지 하나 챙겨 석화밭인 쩍산에 다가가면 이미 알을 따내 빈 굴껍질이 속살을 드러낸 채 하얗게 층을 이뤄 돌꽃(석화)의 바다를 이루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등껍질 실한 놈을 골라 조새로 쪼아내면 싱그럽고 상큼한 어리굴이 맨살을 드러내곤 해 보기만 해도 마음이 오졌지요. 알이 굵고 실한 지금의 양식굴과 달리 씨알이 잔 석화는 갯바람 맞으며 한나절쯤 품을 팔아야 보시기로 하나쯤 딸 수 있었습니다. 굴의 영양학적 가치를 따지는 일이 새삼스럽습니다. 서양에서도 클레오파트라나 나폴레옹이 즐겼다고 전해질 만큼 글로벌한 마니아층을 가진 탓에 이미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영양 분석이 끝난지 오래인 식품이 또한 굴이니 말입니다. 그래도 큰 줄기만 추려보자면, 클레오파트라가 왜 굴을 즐겼을까를 되짚는 게 가장 그럴 듯 하겠지요. 보통의 여성도 그렇지만 클레오파트라 정도의 절대 권력자라면 당연히 맛과 함께 건강상의 득실을 따졌을 터이니까요. 굴에는 양질의 단백질이 풍부한데, 이 단백질이 근육의 수축에 따라 생기는 주름을 예방해 준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피하층 밑에서 건강한 근육이 받쳐주는 사람의 피부가 오래 탄력을 유지해 건강미를 돋보이게 할 것임은 자명한 사실이지요. 또 칼슘과 철분이 많아 골다공증이나 빈혈 예방 및 치료에 이만한 게 흔치 않고, 현대인에게 고갈되기 쉬운 비타민B군과 남성성의 핵심 성분인 게르마늄 등 미량 영양소도 생각보다 많습니다. 굴 많이 먹고 살 쪘다는 사람 못 봤지만, 굴에는 글리코겐 형태의 탄수화물도 많아 살 부담을 안 주면서도 활력의 원천을 제공합니다. 예전에 갯가 사람들이 딸내미들을 두고 ‘얼굴 검으면 고깃배 부리는 부잣집 딸이고, 얼굴 희면 가난한 집 굴어미 딸이다’고도 했다니 한번쯤 되겨볼만 한 말이지요. 이런 굴의 풍미를 가장 진하게 느끼려면 생굴을 먹는 게 으뜸입니다. 10여년 쯤 전에 터키의 이스탄불에 갔다가 재미있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 유명한 보스포러스 해협의 해안가 음식점에서 막 깐 생굴을 접시에 얹어 내놓는 게 아니겠습니까. 가만 보니 소스랄 것도 없더군요. 우리가 즐기는 초장을 기대할 수는 없었고, 그래서 내 입에 익숙한 그 맛을 아닐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올리브유에 라임오렌지 즙을 섞은 소스에다 찍어먹는 생굴의 맛은 기막힌 충격이었습니다. 라임오렌지의 시그러운 맛을 감싸는 올리브유와 상큼한 굴의 향기가 어우러져 외국 여행에서 오는 피로와 양식의 느끼함을 단번에 씻어주고도 남았던 일, 다시 생각납니다. 번거롭게 이런 조리, 저런 치장을 하지 않고도 이런 맛을 느낄 수 있다니 나폴레옹이 막 깐 굴을 즐겨 먹었다는 게 이해되고도 남는 일이지요.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굴은 생식이 기본이었습니다. 막 딴 굴을 무채에 버무리거나 아예 생굴을 초장 듬뿍 찍어 먹는 것인데, 그 때 느껴지는 찹찹한 금속성 풍미는 굴요리의 백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 갯가에서 조새로 굴을 딸 때도 실한 놈 하나 입에 까넣고 오물거리면 한 동안 입안에서 간간하면서도 상큼한 굴 향기가 맴돌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어리굴젓은 한국 사람만 먹는 음식이라고?” 어리굴젓은 굴음식의 또 다른 경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갯가에서 막 딴 어리굴(아마 씨알이 작은 새끼굴, 즉 어린굴이 어리굴로 변이하지 않았을까)을 짜지 않게 얼간해 잘 갈무리해 두면 살에 적당하게 간이 배면서 삭아드는데, 여기에 간단히 양념을 해서 더운 밥에 얹어 먹는 맛을 클레오파트라나 나폴레옹이 몰랐다는 게 아쉬울 뿐입니다. 2~3년쯤 전의 일입니다. 절친한 친구가 아들 녀석이 어학연수하는 동안 잘 돌봐줘 고맙다며 미국의 하숙집 주인을 한국으로 초청했었습니다. 아들놈이 미국에 있는 동안 “나는 너의 미국 엄마”라며 정말 자기 자식처럼 돌봐준 분이랍니다. 그 녀석이 미국에서 기흉을 심하게 앓았는데, 그 분이 손수 병원엘 데리고 다니며 깔끔하게 치료를 했고, 게다가 미국의 유학생 지원프로그램을 물색해 치료비까지 거의 안 내는 수준으로 감면받게 해 줘 꼭 그 분 내외를 한국으로 초청하고 싶었답니다. 하루는 그 ‘미국 엄마’를 서울 인사동의 한정식집으로 모셔 저녁식사를 대접하기로 했는데, 걱정이 앞서더랍니다. 한국의 전통음식을 선보이려고 한정식집으로 장소를 정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거기에서 나오는 음식이 그를 당혹스럽게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지요. 김치야 그렇다 쳐도 띄운 비지찌게나 청국장, 젓갈류는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일 것 같더랍니다. 그런데, 그런 우려를 이 어리굴젓이 말끔하게 씻어주었답니다. 그녀에게 소금에 절여 양념한 전통 밑반찬이라며 어리굴젓을 조심스레 권했는데, 저어한 표정으로 한 번 맛을 보더니 아예 어리굴젓 그릇을 앞으로 당겨놓고 먹으며 감탄을 연발하더라는 것이지요. 나중에는 굴젓을 따로 더 시키기까지 했다는데, 서툰 젓가락질로 곰삭은 굴젓을 찝어 밥에 얹어먹는 모습이 이채롭기까지 하더랍니다. 그 친구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는 말을 그날 실감했다고 하더군요. 석화를 넣고 끓인 말간 무국도 잊지 못합니다. 술 좋아한 아버지를 둔 덕분에 숱하게 새벽 갯가의 석화밭을 훑고 다닌 기억이 새로워서입니다. 아버지가 술을 드신 다음날이면 어머니는 깔축없이 새벽잠을 깨우셨습니다. 잠에 취해 징징대는 제게 어머니는 “얼른 가서 석화 조금만 따오너라”고 시키고는 “갔다 오면 고구마 달게 궈놓으마”라고 어르곤 했지요. 이른 아침 갯가에 나가 시린 바람 맞으며 굴을 따는 게 정말 싫었지만, 갯가에 다다르기도 전에 잠이 깨고 정신이 맑아지면 또한 그렇게 상큼한 일도 없었습니다. 석화야 갯가에 지천이니 그걸 찾아 헤맬 일도 없고, 그 석화밭에 쪼그리고 앉아 조새를 토닥이면 금새 무국에 넣을 석화를 한 줌 정도는 딸 수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따온 석화를 맑은 물에 헹군 뒤 채 썬 무와 함께 넣고 끓여낸 굴국을 후후 불어 한 사발 드신 아버지는 “어, 시원하다”며 그제서야 정신을 가다듬고는 일거리를 찾아 마당으로 나서곤 했습니다. 그 시절의 겨울 일이라는 게 짚을 추려 멍석이나 가마니를 짜거나 새끼를 꽈 농삿일 준비를 하는 거지요.   ●“밥 잘 먹는 게 보약입니다” 자라면서 줄곧 어른들로부터 “밥이 보약이다”는 말을 들었지만, 체감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말을 이해할 나이가 되었나 봅니다. 세상 일을 나이로만 이해하는 건 아니지만, 살다 보니 “아, 그 말이 이런 뜻이었구나” 할 일이 많으니 말입니다. 석화 얘기를 했지만, 큰 틀에서 보면 석화도 우리에게는 일상적인 먹거리, 찬거리일 뿐입니다. 그걸 별스럽게 포장한다고 석화가 달라질 건 없겠지요. 생각해 보면 석화는 ‘보약이 되는 밥’의 일부입니다. 석화든 시래기든 제 철에 살이 차올라 실해진 음식을 찾아 먹는 건 우리 식생활의 기본이었습니다. 바로 그 음식 안에 우리 몸이 필요로 하는 온갖 영양소가 꽉 차 있으니, 항용 듣고 자란 “사람이 누울 자리는 가려도 음식은 가리면 안 된다”거나 “밥을 잘 먹으면 산삼 녹용 찾을 일 없다”는 말의 의미를 이제서야 몸으로 깨우치며 삽니다. 자신의 입맛이나 기호, 가족의 식습관을 바꾸는 일이 번거롭고 불편할 수도 있지만, 틀림없는 사실은 그런 섭생에도 ‘도(道)’가 있고, 그런 도를 최소한이나마 지킬 수 있다면 따로 돈 들이고 고민을 더해 영양제 사먹을 일이 없을 것입니다. 석화나 굴이 식도락의 반열에 들만큼 맛있고, 또 몸에 좋은 음식인 건 틀림없으니 그걸 통해 먹는 즐거움도 느끼고, 건강도 챙길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지 않을까요. 요새야 씨알 굵은 양식 굴이 널렸고, 그런 굴을 양식이라고 굳이 자연산과 가르는 사람이 없지는 않겠지만, 양식이든 자연산이든 크게 다를 건 없을 듯 합니다. 굴이야 다른 어류처럼 인공 사료를 먹여서 키우지 않으니 그걸 양식이니 자연산이니 구별할 필요도 없고, 또 양식이라도 이미 우리 식성에 길들여져 거부감없이 친숙한 데다, 그 안에 온갖 영양소가 차고 넘치니 찬거리가 마땅찮은 겨울에 이만한 머거리가 어디 흔하겠습니까. 그 뿐이 아닙니다. 생굴을 한 알 입에 넣으면 어김없이 혀를 타고 전신으로 퍼지는 바다의 정취는 도시생활에 지쳐 군동내 나는 우리의 삶을 일순 청량하게 바꿔 놓으니 ‘푸드 테라피’라고 할 수도 있지요. 물론 요즘의 굴이 예전의 석화를 대체할 수는 없겠지만, 예전의 기억에는 당시의 일상이 짙게 배어있으니 이제는 죽었다 깨어나도 그런 풍미를 되살릴 수는 없는 일일 테고, 그러니 지금 주어진 것에서 오래된 기억을 되살릴 수 밖에 없습니다. 바로 석화가 그렇습니다. jeshim@seoul.co.kr
  • 금연치료 본인부담금 전액 지원

    금연치료 본인부담금 전액 지원

    내년 1월부터 금연치료 프로그램 참여자의 본인부담금을 정부가 전액 지원한다. 지금은 본인부담금의 80%만 지원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금연치료 참여율을 높이고자 참여자 인센티브를 개선한다고 30일 밝혔다. 8주 또는 12주짜리 금연치료 프로그램을 모두 이수해야 본인부담금의 80%를 돌려주던 것을 3회 이상 치료받으면 전액 지원하는 방식으로 변경한다. 2회 방문까지는 치료비를 내야 하지만 3회 방문부터는 본인부담금이 면제되며 금연치료 프로그램을 모두 마치면 2회분 본인부담금을 돌려받고 가정용 혈압계 등 10만원 상당의 축하선물도 받을 수 있다. 단, 금연에 성공했을 때 1년에 한 번 10만원을 주는 성공 인센티브는 폐지된다. 금연약 처방과 상담이 함께 이뤄지는 12주짜리 금연치료 프로그램(평균 7회)의 본인부담금은 8만 9000원 정도다. 정부는 내년도 예산에 금연치료 본인부담금 지원에 필요한 160억원을 편성했다. 복지부가 인센티브 방식을 바꾸기로 한 것은 금연치료 프로그램 중도 탈락률이 높아서다. 지난 9월 말까지 참여자의 68% 정도가 중도에 치료를 포기했고, 중도 포기자의 76%는 2회 진료상담에 그쳤다. 복지부 관계자는 “금연 치료를 신청할 정도면 금연 의지가 충만했다는 건데, 도중에 그만두는 분들이 많아 끝까지 치료를 받아보시라는 의미에서 인센티브 방식을 개선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복지부는 내년 1월부터 금연치료 참여자에게 금단증상과 대처 방법 등이 담긴 금연성공 가이드북을 제공하기로 했다. 3월부터는 흡연자의 금연치료 기관 선택을 돕고자 금연치료 우수기관을 선정한다. 세종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세월호 참사’ 민간 잠수사 8개월 만에 치료비 재지원

    세월호 침몰 참사 때 실종자 수색에 나섰다가 다친 민간 잠수사들이 내년 1월부터 다시 치료비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올해 3월 29일 치료비 지원이 중단된 지 8개월여 만이다. 국민안전처 해양경비안전본부는 최근 국민건강보험공단과 협업해 세월호 참사 때 수난구호법에 따라 정부 구호명령을 이행한 민간 잠수사들의 치료비 지원체계를 구축하고 예산 5억원을 확보했다고 30일 밝혔다. 해경본부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돈을 지원하고, 공단은 지불보증 방식으로 민간 잠수사들에게 치료비를 지원한다. 보건당국 기록에 따르면 당시 수색에 나섰던 민간 잠수사 143명 중 33명이 수색임무 중에 생긴 각종 질환으로 숨지거나 다쳤다. 일부 민간 잠수사는 골괴사 등으로 여전히 고통을 받고 있으며 수술비가 수천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간 잠수사들은 내년부터는 의료기관에서 본인 부담 없이 진료를 받게 된다. 치료비 지원이 중단된 3월 말부터 이달 31일까지 본인이 부담한 진료비도 소급해서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앞서 지난 3월 28일까지 수난구호법에 따라 치료비 지원을 받았던 민간 잠수사들은 세월호 피해자 지원을 규정한 ‘4·16 세월호 참사 피해 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의 지원 대상에 열거되지 않아 치료비 지원을 못 받고 있었다. 세월호 수색에 동원된 민간 잠수사들은 수난구호법에 따른 보상금을 신청했으나, 부상자는 보상금 대상이 아니라는 법제처의 해석에 따라 수용되지 않았으며, 보건복지부의 의상자 요건에도 해당되지 않아 의사상자법령으로 치료비를 지원하는 방안도 무산된 바 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
  • 이대은 “소연아, 사랑의 화살을 받아라”… 축제가 된 홍명보 자선축구경기

    이대은 “소연아, 사랑의 화살을 받아라”… 축제가 된 홍명보 자선축구경기

    야구선수 이대은(오른쪽 두 번째·지바 롯데)이 27일 중국프로축구 황저우의 사령탑으로 확정된 홍명보 전 축구대표팀 감독이 ‘청년들에게 희망을, 소아암 환우들에게 사랑을’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펼친 자선축구경기(SHARE THE DREAM FOOTBALL MATCH 2015) 도중 희망팀이 득점하자 익살맞게 지소연에게 사랑의 화살을 쏘는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희망팀과 사랑팀으로 나눠 펼친 이날 경기에는 이승우와 구자철, 지동원, 김병지, 이천수, 정대세 등이 참가했다. 수익금은 청년 실업 해소와 소아암 환우 치료비로 쓰인다. 연합뉴스
  • [‘이웃 사랑’ 은근하거나 화끈하거나] ‘몸짱’ 산타

    [‘이웃 사랑’ 은근하거나 화끈하거나] ‘몸짱’ 산타

    화상 환자의 치료비를 지원하기 위해 달력 모델로 나선 서울시 ‘몸짱 소방관’들이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 산타로 변신했다. 열탕화상(뜨거운 물에 의한 피부 손상)을 입은 두 살배기 이하윤양이 재활치료를 받는 서울 한강성심병원도 찾아갔다. 장인덕(중부소방서), 이우근(구로소방서)씨는 하윤이를 만나 성탄절 선물과 함께 기부금 1000만원을 전달했다. 하윤이는 지난 2월 갓 끓인 국에 화상을 입어 이 병원 중환자실에서 2개월간 집중 치료를 받은 뒤 두 차례 피부이식 수술을 했고, 두피 부위 재건 수술을 앞두고 있다. 아버지가 시각장애 1급으로 가족이 기초생활수급비로 생활해 치료비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사정인 딱한 하윤이 가족은 한림화상재단의 지원 절차를 거쳐 지원금을 받게 됐다. 시 소방재난본부는 지난달부터 판매한 몸짱 소방관 달력의 수익금 6700만원(1만 3411부)과 GS숍·단우실업 등 기업 후원금 4000만원을 더해 기금 1억 700만원(세전)을 마련했다. 권순경 서울소방재난본부장은 이날 전달식에서 “하윤양 가족에게 작은 보탬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형편이 어려운 화상 환자에게 기부하려면 한림화상재단(02-2639-5768)으로 연락하면 된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사설] 군 복무 중 공상(公傷)국가가 무한 책임져야

    국방부는 오는 28일 공무 수행 중 부상한 군인의 민간병원 진료비 지원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공청회를 연다. 지난해 비무장지대(DMZ) 지뢰 제거 작전 중 다친 곽모 중사와 올해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로 중상을 입은 하모 하사의 민간병원 진료비가 논란이 된 데 따른 여론 수렴 차원이다. 만시지탄이지만 반길 일이다. 군 의료체계의 부실로 민간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터에 규정이 미비해 정부가 전액 부담하지 않는다면 어불성설이다. 지난 8월 북한 목함지뢰를 밟아 두 다리를 잃은 하모 하사 등 두 부사관의 수술과 재활 비용 문제는 정리된 모양이다. 민간병원분을 포함한 치료비 전액을 군 당국이 부담하기로 결론이 나면서다. 그러나 아군이 매설한 지뢰 제거 작업 중 다친 곽모 중사나 신모 하사의 민간병원 치료비를 둘러싼 잡음은 아직 진행형이다. 얼마 전 곽모 중사의 소속 부대에서 하사관 이상 간부를 대상으로 자율모금 형식으로 치료비를 갹출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나라를 지키다가 부상을 입은 장병의 치료를 정부가 책임지지 않는다면 누가 국가적 위기 때 몸을 던지려 하겠는가. 군·경이나 소방관 등 공동체의 안녕을 위해 제복을 입고 일하다 불상사를 당하는 이들에 대한 보상에 우리 사회가 너무 무심한 게 진짜 문제일 수 있다. 정치권에서 나오는 대책이라곤 기껏해야 포퓰리즘성 공약 정도니 말이다. 국민회의 창당을 추진 중인 천정배 의원이 전역 장병마다 1000만원을 지급한다는 정책을 발표한 게 단적인 사례다. 연간 전역 사병이 25만명이라는데 줄잡아 2조 5000억원의 예산이 든다면 그 비현실성은 삼척동자도 알 만한 일이 아닌가. 그나마 천 의원은 군 복무를 마쳤으니 장병 복지에 인기영합적 관심을 기울이는 시늉이라도 하는 건지 정치권 전체 분위기는 장병 처우 개선에 아예 무관심한 편이다. 여야 의원 중에 이러저런 사유로 병역 의무 미이행자가 많은 탓인지 공무 수행 중 부상이나 질환을 얻은 장병들이 진료비 부담이라는 날벼락을 맞고 있는데도 관심을 기울이는 이는 드물다. 현행 군인사법이 문제라면 당장 고쳐야 한다. 북한 지뢰로 인해 다치면 전상(戰傷)자가 되고, 아군 지뢰를 밟아 부상을 입으면 공상(公傷)자가 되는 분류 기준도 모호하지만, 전상자와 공상자의 처우가 천양지차로 다른 건 더 큰 문제다. 공상이든 전상이든 나라를 지키려다 다친 것은 매한가지라면 어느 경우든 국가가 무한 책임을 지는 게 당연하다.
  • ‘야생동물 인명 피해 보험’ 경북 전국 최초 가입 추진

    경북도가 전국 최초로 도민을 위해 야생동물 인명 피해 보험에 가입한다. 최근 들어 멧돼지 등 야생동물에 의한 인명 피해가 증가하는 가운데 향후 다른 자치단체로의 파급 효과에도 관심이 쏠린다. 도는 도민들이 각종 야생동물 습격으로 인명 피해를 입게 될 것에 대비, ‘야생동물 인명피해 보상보험’에 가입하기로 했다고 24일 밝혔다. 이를 위해 도는 내년 예산에서 2억원을 확보했으며, 관련 조례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뱀과 벌 등 각종 야생동물사고 보장을 담보로 한 야생동물 보상보험은 경북에 주민등록이 있는 시민이면 모두 자동 가입된다. 1인당 보상 한도는 치료비 최고 100만원, 사망 시 위로금 500만원 등이다. 이는 다른 보험 가입과 관계없이 별도 지급될 예정이다. 다만, 입산금지구역 무단출입과 야생 동식물을 불법 포획하거나 채취하다 피해를 입었을 경우에는 대상에서 제외된다. 김준근 도 환경정책과장은 “2013년 기준 도민 1800여명이 야생동물 피해를 입는 등 갈수록 사례가 늘고 있으나 보상책은 사실상 없는 실정”이라며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고 도민들이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보험 가입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15일 낮 12시 15분쯤 강원 삼척시 가곡면 한 야산에서 겨우살이 채취 중이던 심모(36)씨가 멧돼지 습격을 받아 숨졌고, 지난달 21일 오후 1시 35분쯤엔 경북 군위군 소보면 내의리에서 남편과 함께 산행하던 이모(57·여)씨가 멧돼지에 물려 숨졌지만 국가 또는 지방정부 차원 보상은 없었다. 한편 환경부가 지난해 ‘야생동물 피해 예방시설 설치비용 지원 및 피해 보상 기준·방법 등에 관한 세부 규정’을 개정, 야생동물로 발생한 인명 피해에 대해 1인당 최대 1000만원까지 보상하도록 했으나 자치단체들이 예산확보 문제로 이를 외면해 유명무실한 상태다. 대구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현장 행정] “내년 ‘여성친화도시’ 원년” 새해 계획 밝힌 정원오 성동구청장

    [현장 행정] “내년 ‘여성친화도시’ 원년” 새해 계획 밝힌 정원오 성동구청장

    “평등, 안전, 보육, 일자리 모든 분야에서 여성이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겠습니다.”(정원오·성동구청장) 성동구가 내년 1월부터 본격적인 ‘여성 친화도시’ 조성에 나선다고 22일 밝혔다. 여성 친화도시 조성은 정원오 구청장의 민선 6기 공약 사업이기도 하다. 정 구청장은 “지난해 말 추진계획을 수립한 뒤 여성 주민들로 이뤄진 ‘여성친화도시 서포터스’를 구성하고 관련 조례를 제정하는 등 정책적 기반 마련에 힘써 왔다”면서 “여성뿐 아니라 주민 전체의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목표로 2020년까지 연차별 계획을 세워 여성친화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성동의 내년도 여성친화 대표사업은 크게 ▲경제·사회적 평등 실현 ▲안전과 편의 증진 ▲건강한 환경 조성 ▲여성참여 활성화 등 네 가지로 나뉜다. 정 구청장은 “여성들이 경력 단절 없이 일하려면 보육문제 해결이 관건”이라면서 “현재 51곳인 국공립 어린이집을 2018년까지 100곳으로 늘려 공공 보육률을 50% 이상 달성하려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내년부터 새롭게 여성협동조합에 어린이집을 위탁 운영하는 방안도 추진할 예정이다. 정 구청장은 “구립 어린이집을 여성협동조합에 위탁 운영시키면 학부모들은 믿고 맡길 수 있고, 여성들에겐 적합한 일자리가 생겨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여성 안전과 관련해선 특히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에 노력을 기울일 전망이다. 정 구청장은 “내년부터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 안심주택’을 신규 설치하고 관계기관과 협력체계를 구축할 것”이라면서 “지역의 빈집을 리모델링해 공간을 마련하고, 구청과 경찰서가 가정폭력 피해 여성과 자녀를 함께 보호하려 한다”고 전했다. 의료기관과의 업무협약으로 치료비도 원스톱으로 지원할 방침이다. 여성 일자리 정책 중에는 한양여대 내에 들어설 ‘성동 의류패션기술 지원센터’가 눈길을 끈다. 정 구청장은 “동대문 패션타운과의 지리적 인접성 등을 바탕으로 봉제산업을 활성화해 경력단절 여성의 재취업을 도울 계획”이라고 말했다. 엄마가 일하는 동안 혼자 있어야 하는 취약계층 아동에게는 일대일 가정방문 지도사업 ‘꿈아 날자’를 실시한다. 0세부터 만 12세 이하의 아동을 대상으로 가정방문 강사를 파견해 기초학습과 생활지도가 이뤄지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정 구청장은 “이 밖에 여성이 편한 화장실 조성, 성동 생명안전배움터 설립, 서울숲~남산길 가족친화공간 조성 등 할 일이 많다”면서 “행정 전반에 걸쳐 여성에 대한 배려와 소통을 이행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글 사진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 [심재억 기자의 헬스토리 27] 낯설지만 무서운 신경근육질환 주의보

    [심재억 기자의 헬스토리 27] 낯설지만 무서운 신경근육질환 주의보

    아주 낯설지만 그래서 더 무서운 병이 있습니다. ‘근디스트로피’ ‘샤르코 마리 투스병’ ‘폼페병’ ‘파브리병’ 등이 그런 병입니다. “그런 병도 있어?” 하고 묻는 사람도 있겠지요. 비교적 익숙한 루게릭병을 떠올리면 이해가 빠를까요. 이 병의 한 유형인 근위축성 측삭경화증을 흔히 루게릭병이라고 부르니까요. ‘근육질환’이라면, 대부분 피로나 무리한 활동으로 근육이 뭉치거나 결리는 증상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의학적으로 말하는 근육질환은 이런 일반의 생각과는 크게 다릅니다. 근육이 지속적으로 약해지다가 마침내 소실되면서 환자들이 근육을 이용하는 모든 활동을 못하게 되는 중증 질환이니까요. 여기에 ‘신경’이라는 용어를 하나만 더 붙이면 ‘신경근육질환’이 됩니다. 말초신경과 근육에 문제가 생기는 질병을 뜻하지요. 말초신경이란 두개골이나 척추 속에 들어 있는 중추신경계에서 갈라져 나와 근육이나 피부 등 멀리 떨어진 말단 장기를 중추신경계와 연결 시켜주는 신경, 즉 우리 몸을 감싸고 있는 신경을 ‘그물망’이라고 말할 때 그 그물망에 해당되는 최전선의 신경을 뜻합니다. 이 말초신경은 중추신경계가 결정한 명령을 근육 등 모든 장기에 전달하고, 통각(통증) 등 곳곳의 장기가 감지한 감각 정보를 중추신경계에 전달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런 신경과 근육에 문제가 있는 것을 신경근육질환이라고 합니다. 유소년부터 성인까지 다양한 연령대에서 나타날 수 있고, 유병률도 세부 질환에 따라 많게는 2500명에 1명, 적게는 4만 명에 1명까지 다양합니다. 신경근육질환은 거의 모든 다른 병과 마찬가지로 병의 진행될수록 장애의 범위와 정도가 악화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처음에는 감각이 무뎌지거나 사소하다고 여길 수도 있는 통증이 발생하다가 점차 팔과 다리의 근육 소실로 이어져 움직이기가 어렵게 되지요. 의사들은 환자들에게 희망을 줘야 하니까 가능하면 좋은 방향으로 말을 하지만, 근육 소실만 하더라도 얼마든지 심각성을 부여할 수 있는 증상입니다. 호흡을 담당하는 근육이 소실되면 자기 능력으로는 숨을 쉬지 못하게 되고, 소화기 근육이 소실되면 음식을 먹거나 소화시키지 못하게 됩니다. 그로인한 결과는 따로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전문의들은 이런 신경근육질환의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조기진단’을 꼽습니다. 일단 병증이 진행 단계에 접어들면 환자의 신체 기능이 빠르게 떨어져 노동력을 상실하게 되고, 이에 따라 개인의 삶의 질은 형언하기 어려운 나락으로 빠져들게 되지요. 사회적으로도 노동력 상실에 따른 부담에다 출산 및 장애인 문제 등으로 복지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됩니다. 게다가 대부분의 신경근육질환은 완치를 기대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의사들은 조기진단을 통해 적극적으로 치료하고, 관리하면 증상의 진행 속도를 늦추거나 합병증과 장애를 어느 정도는 제어 또는 관리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물론 조기에 진단을 받아 적극적으로 치료할 경우 국가나 사회단체 등에서 의료 비용 등을 상당 부분 지원·보조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자기 부담이 적은 것은 아닙니다. 될대로 되라고 방치하지 않을 바에야 환자의 치료와 관리에 장기적으로 엄청난 부담이 따르는 건 불문가지의 사실이지요.  영양 때문이 아니라 유전자 이상이 원인 증상을 육안으로 살피는 것 말고는 다른 진단 방법이 없었던 19세기에는 근육이 위축되는 신경근육질환을 영양상태가 나빠서 생기는 문제(dystrophy)라고 생각했습니다. 근육질환에 근디스트로피(muscular dystrophy)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이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대부분의 신경근육질환은 영양의 문제가 아니라 근육 단백질을 합성하는 유전자의 이상으로 발생한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현재 근디스트로피로 불리는 질환도 신경근육질환의 한 종류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사실, 한 가지로 묶어서 신경근육질환이지 세부적으로는 많은 병들이 있습니다. 그 종류를 먼저 말하는 게 좋겠습니다. 왜냐 하면 개별 질환에 따라 다른 원인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신경근육질환은 근육 소실을 유발하는 원인에 따라 다양한 하위질환으로 나눠지며, 개별 원인을 찾아 최종 진단에 이르는 것이 치료의 첫 걸음이기 때문입니다.  신경근육질환의 종류 대표적인 신경근육질환으로는 국내 신경근육질환 중 환자가 가장 많은 근디스트로피를 들 수 있습니다. 또 최근 10년간 가장 높은 유병률 증가를 보인 샤르코 마리 투스병, 최근 특이적인 치료제가 개발되어 치료를 통한 증상 개선이 가능하게 된 폼페병과 파브리병, 그리고 척수성 근육위축, 루게릭병, 중증근무력증 등이 모두 신경근육질환에 포함됩니다.  -근디스트로피: 모든 연령대에서 발병할 수 있으며, 오랜 시간 진행되면서 사지 몸통을 움직이는 근육뿐 아니라 호흡근육까지 단계적으로 약화·소실되는 병. 국내에서 진행된 실태조사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는 약 3500명의 환자가 근디스트로피로 진료를 받은 것으로 나타남. 진료를 받지 않은 사람은 통계에 잡혀있지 않음. -샤르코 마리 투스병: 운동신경과 감각신경이 특정 유전자 돌연변이에 의해 손상되는 병. 손발의 근육들이 점점 위축돼 힘이 약해지고 발 또는 손 모양이 변하는 것이 특징임. 유병률은 2,500명당 1명 꼴로, 유전되는 희귀질환 중에서는 비교적 높은 편이며, 국내에서도 최근 10년간 환자수가 3.3배 가량 증가했음. -폼페병: 당을 분해하는 효소인 ‘α-글루코시타아제(GAA)’의 결핍으로 발생함. GAA의 결핍 상태에서는 섬유조직에 당이 쌓이게 되는데, 이 병이 어려서 발병하면 심근육에, 성인이 된 뒤에 발병하면 사지 근육에 당이 쌓이면서 근력을 약화시킴. 특히 영아기에 발병할 경우 보통 1년 이내에 심부전으로 사망할 가능성이 높음. 최근에는 치료제가 개발되어 GAA를 대신하는 효소를 대체함으로써 근력 개선이 가능하게 됨. -파브리병: 폼페병과 마찬가지로 GAA의 결핍으로 ‘GL-3’이라는 인지질이 신장·심장·혈관·신경계에 축적되면서 발생함. 사지 통증과 발열이 초기 증상의 특징이며, 이 밖에 한쪽에 치우친 마비 또는 운동실조, 팔다리의 심한 급성 통증이 주기적으로 나타나는데 전문의들은 이를 ‘파브리 위기’ 증상이라고 지적함. 나이가 들면서 GAA의 활성도가 더 떨어지면서 신장과 심장, 뇌혈관에 영향을 미치는 모계 유전병으로, 보인자의 경우에도 증상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 특징임. -척수성 근육위축: 운동신경세포가 점차 퇴화하는 유전성 신경근육병으로, 팔다리의 근육이 점차 위축되면서 근력 저하가 나타남. 대부분 어릴 때 발병해서 매우 느리게 진행됨. 주로 어깨와 엉덩이를 중심으로 양쪽 근력이 대칭적으로 약화되고, 삼킴장애와 혀가 경련이 일어나듯 떨리는 부분 수축이 나타남. -근위축성 측삭경화증(루게릭병): 운동신경이 점차 퇴행한다는 점에서 척수성 근육위축과 비슷하지만, 성인에게서 발생하고, 진행이 매우 빠르며, 환자 중 10%만 유전에 의해 발생한다는 점이 척수성 근육위축과 다름. 일반적으로 팔다리 움직임이 어눌해지는 비교적 가벼운 증상으로 시작되지만, 말기에는 거동을 못하게 되면서 호흡근육까지 마비되어 사망에 이름. 이 병의 가장 특징적인 증상은 환자의 절반 가량에서 인지기능 저하가 동반된다는 점임. -중증근무력증: 신경의 명령이 근육으로 전달되는 접합 부위에 생긴 장애. 근력 약화와 근육 피로가 나타나는 병으로, 다른 신경근육병과는 달리 피곤하면 증상이 심해지고, 쉬면 호전되는 특징을 보임. 초기에는 눈꺼풀 처짐과 사물이 겹쳐 보이는 복시현상, 발음이나 목넘김에 문제가 생기는 입주변의 마비 현상이 주요 증상임. 증상이 심해지면 기계를 통해 인공호흡을 해줘야 하는데, 이 때문에 과거에는 많은 환자들이 호흡부전으로 사망했으나 최근에는 적극적인 치료를 통해 정상 생활도 가능함. 국내에서도 최근 10년 새 환자 70%나 늘어 문제는 최근 들어 환자수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으며, 덩달아 전체 의료비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대한신경근육질환학회가 분석한 국민건강보험공단의 2005~2014년 신경근육질환 환자수 및 진료비 변화 추이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주요 신경근육질환의 국내 환자수는 2005년 8059명이던 것이 2014년에는 1만 3609명으로 약 70% 증가했습니다. 이에 따른 진료비는 2005년 약 149억원에서 2014년에는 4배 이상 증가한 642억원으로 집계됐더군요. 환자 수가 늘어난 것은 예전과 달리 증상이 나타나면 적극적으로 진료를 받으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뜻이기도 하고, 진료 수준이 발전하면서 보다 정밀하게 환자를 가려내기 낼 수 있어서일 것이기도 할 겁니다. 여기에 환경 요인 등 후천적인 발병 원인이 작용할 것이라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아쉽게도 아직 국내에 이를 입증할만 한 근거 자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진료비가 10년 사이에 4배 이상 증가했다는 것은 그만큼 환자들의 치료 의지가 적극적이라는 뜻인데, 이는 아직 만족할 수준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지만 분명히 치료 효과에 대한 믿음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기에다 새로운 치료 방법과 치료제가 개발되고 있는 것도 진료비 증가에 한 몫을 하겠지요.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실제로 국내에는 더 많은 환자들이 있지만, 이들은 병원 치료를 받지 않아서 통계에 잡히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신경근육질환에 대한 낮은 인지도, 다른 병으로의 오해, 그리고 정확한 진단이 이뤄지기 전에 병원을 전전하며 증상의 원인을 찾는 과정이 길고 어렵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폼페병의 경우 예상 발생률은 인구 4만명당 1명이어서 국내에는 최소한 1250명의 환자가 존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이 병으로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는 30여명에 불과합니다. 폼페병 환자의 진단 시점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환자들이 평균적으로 확진을 받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약 8년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고요.  진단이 늦어서 생길 수 있는 문제들 대부분의 신경근육질환은 완치보다 병증의 진행을 최대한 억제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치료 목적으로 삼습니다. 그래서 조기진단을 매우 중요시하는데, 진단이 늦어져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칠 경우 근육의 기능 저하 및 괴사가 팔다리와 몸통 근육은 물론 호흡근까지 침범, 결국 휠체어와 호흡 보조기구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자발적으로는 일상 생활을 영위할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씀 드렸지만, 대부분의 신경근육질환은 희귀질환인 탓에 질환에 대한 연구자료가 많지 않습니다만, 분명한 사실은 진단이 늦을수록 환자의 삶에서 잃어버리는 것이 많다는 점입니다. 신경근육질환자의 연령과 유병 기간에 따른 문제를 분석한 한 연구에 따르면, 유병 기간이 5년 미만인 환자의 휠체어 및 호흡 보조기구 사용률은 30% 이하인 데 비해 유병 기간이 15년 이상인 환자의 휠체어 사용률은 70%, 호흡 보조기구 사용률은 약 60%로 나타나 경과에 따른 장애 정도가 생각보다 커지는 것으로 확인되기도 합니다. 이는 진단 시점이 1년 지연될수록 환자의 휠체어 사용률은 연 13%씩, 호흡 보조기구 사용률은 연 8%씩 증가한다는 뜻입니다. 신경근육질환의 또 다른 문제는 후유증입니다. 대부분의 후유증은 신체의 변형이나 행동 및 지각능력의 결손으로 나타납니다. 병증이 나타난 뒤 적절한 치료가 이뤄지지 않으면 보조기구 의존도가 높아지며, 이는 환자 개인의 자발적 활동의 제약을 뜻합니다. 이로 인해 환자는 신체적 고통은 물론 노동력 상실로 인한 경제력 어려움, 심리적 위축을 함께 감당해야 합니다. 환자의 가족 또한 자발적으로 일상 생활을 할 수 없는 환자를 돌보느라 시간적, 경제적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을 쉽게 삶의 질 저하라고 말하지만 속속들이 들여다 보면 후유증이 생각보다 훨씬 심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장애 상태에 빠져 갈수록 상태가 심각해진다면 어느 누가 이런 상황을 쉽게 받아들이겠습니까. 국내 신경근육질환 실태조사에 따르면, 신경근육질환 환자 중 94.7%가 장애인으로 등록되어 있답니다. 이런 장애인 등록 비율은 신경근육질환의 조기진단과 치료가 간병·치료비 및 보조기구 지원 등의 장애인 복지 문제와 직결되는 사안임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충분하지는 않지만 환자를 위해 다양한 지원제도가 가동되고 있기는 합니다. 의료비의 경우, 입원 및 외래 본임부담금은 등록일로부터 5년간 10%만 내면 됩니다. 보조기대여비 및 간병비 등 환자와 가족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경제적 지원 규모도 매월 120만원 가량 됩니다. 그러나 이런 지원이 필요없는 상황이 가장 이상적이겠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조기에 진단을 받아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의사들이 ‘조기진단’ ‘조기치료’를 강조하면 더러는 “의사들이 제 배 불리려고 저런다”며 삐죽거리기도 합니다만, 그렇게 생각한다면 잘못입니다. 신경근육병이라도 조기에 진단해 적절하게 치료하면 장애와 합병증을 줄여 환자 스스로 일상 생활과 사회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연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이 병을 가진 환자라도 보다 오랜 시간 자신의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고, 가족들의 부담도 줄일 수 있다는 것이지요. 신경근육병이 오로지 절망 뿐인 것은 아닙니다. 정확한 진단만 이뤄지면 치료가 가능한 신경근육병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폼페병이나 파브리병은 비교적 간단한 혈액검사를 통해 유전 여부와 진단이 가능할 뿐 아니라 효소 대체치료라는 방법으로 손상된 근육을 회복시켜 생명 연장이 가능합니다. 이런 유형의 신경근육병이라면 진단이 곧 치료와 직결된다고도 할 수 있지요. 그러니 이상하면 의심하고, 의심되면 전문의를 찾으시기 바랍니다.  모든 병은 징후와 조짐을 보인다 낯설고 막막한 신경근육질환이지만, 치료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치료의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조기진단인데, 조기진단은 ‘뭔가 이상하다’는 의구심에서 비롯됩니다. 아무리 중증이라도 ‘그럴 수 있다’고 여기면 진단으로 이어질 턱이 없으니까요. 조기진단을 위해서는 징후와 조짐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약 당신이나 또는 당신의 소중한 누군가가 이런 증상을 보인다면 신경근육병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가우어(Gower’s sign) 및 트렌델렌버그(Trendelenburg’s sign) 징후라는 게 있습니다.  이 증상은 팔다리에 힘이 빠지고, 부자연스러운 걸음걸이를 보이는 게 특징입니다. 계단을 오르내리기가 불편하고, 걷기나 달리기가 어려운 현상은 거의 모든 신경근육질환 환자들에게서 가장 흔히 나타나는 초기 증상이지요. 여기에서 더 심해지면 제자리에서 일어서기가 어렵고, 그 과정에서 자주 넘어지게 됩니다. 이는 하지 근육이 없어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인데, 걸음을 걸을 때 이상이 생겨 엉덩이를 좌우로 뒤뚱거리는 트렌델렌버그 징후를 보이거나 앉은 자세에서 일어설 때 손으로 바닥과 무릎을 짚으며 힘겹게 일어나는 가우어 징후를 보이게 됩니다. 숨이 가쁘고, 이로 인해 수면장애를 겪는 것도 중요한 증상입니다. 이런 증상은 신경근육병을 의심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증상 중 하나로, 호흡근육이 약해지면서 숨쉬기가 어려워지는 것인데, 특히 누워있을 때 호흡이 더 어렵기 때문에 자는 동안 숨가쁨이 심하게 나타나는 것이지요. 이런 호흡 장애는 밤 시간에 숙면을 어렵게 해 낮에 유난히 졸립고, 두통·불면증 등이 나타나게 됩니다. 원인 없이 혈액 수치가 높아지는 것도 경계해야 하는 증상입니다. 신경근육질환 환자는 간기능 관련 효소 수치가 올라가는데, 만약 혈액검사에서 특별한 원인 없이 간수치가 상승하고 근력 약화가 동반되는 경우라면 혈액검사를 통해 신경근육질환 여부를 가릴 필요가 있습니다. 또 퇴행된 근육에서 혈액 안으로 근육효소가 빠져 나오기 때문에, 혈액검사에서 크레아틴 키나아제의 농도가 높은 경우에도 추가 검사를 해볼 것을 권합니다.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얼굴 근육에 부조화가 나타나거나 음식을 삼키기 어려운 장애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얼굴 부위에서 신경근육질환이 발현되는 경우 눈을 뜬 채로 잠을 자거나 휘파람이 잘 불어지지 않게 됩니다. 또 혀의 근육이 위축돼 음식을 삼키기 어려운 이른바 연하장애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필자가 거론한 이런 신경근육질환은 많은 사람들에게 아주 낯선 질환들입니다. 낯설다는 건 흔하게 생기지 않기 때문이지만, 그래서 관심을 가지기 어렵고, 조기에 병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비록 희귀하고 낯선 질환이지만 한번 발병하면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지기 쉽고, 후유증도 어떤 징환보다 심각합니다. 만약, 당신에게 소중한 누군가가 이런 질환을 앓고 있다면, 더구나 증상을 겪고 있으면서도 아직 정확한 진단을 못 하고 있다면 이 글을 통해서 뭔가를 얻었기를 진심으로 희망합니다.  jeshim@seoul.co.kr
  • 의료산업 변화 기대·폐해 우려 ‘교차’

    녹지국제병원 승인 소식을 접한 국내 병원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100% 외국 자본에 의한 투자 개방형 병원 건립으로 의료산업 전체에 긍정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나왔다. 18일 한 국립대병원 관계자는 “지금까지 의료산업 활성화에 대한 논의가 많이 있었다”면서 “이번 사례와 같이 해외로부터 투자가 활성화되는 것은 국내 의료의 국제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투자 개방형 병원의 등장으로 의료 분야에 대한 규제가 점차 완화되고 활발한 투자가 이뤄져 의료서비스 질이 향상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또 다른 서울의 한 대형 병원 관계자는 “당장은 큰 영향이 없다고 해도 앞으로 건강보험 체계 변화에 영향을 미칠 것 같다”고 내다봤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진료비 수준이 높고 제주로 오는 중국인 환자가 주요 타깃이라는 점에서 국내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제기됐다. 경기도의 한 사립대병원 관계자는 “내국인 환자가 비싼 돈을 주고 제주까지 가서 치료를 받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적극적으로 환자를 유치한다고 해도 국내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제주 지역 의료계는 긴장감을 드러내고 있다. 제주의사회와 치과의사회, 약사회, 간호사회 등 의약단체협의회는 최근 기자회견 등을 통해 “국내 의료인은 물론 국내 자본이 외국인 영리 병원의 투자 대열에 합류하는 폐해가 본격화될 것”이라며 “현재 마련된 법, 제도로는 외국인 영리 병원이 어떤 환자를 대상으로 어떤 시술을 하며 얼마의 치료비를 받고 의료행위를 하는지 병원 밖에서 알 수 없고 규제할 근거도 없다”고 지적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위안부 할머니 특별 묘역·추모비 천안 국립 ‘망향의 동산’에 생긴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를 위한 특별 묘역과 추모비가 국립 ‘망향의 동산’에 조성된다. 여성가족부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 39분의 묘소가 있는 충남 천안 망향의 동산에 위안부 할머니를 위한 약 1652㎡(500평) 규모의 특별 묘역을 조성하기로 보건복지부와 협의를 마쳤다고 16일 밝혔다. 망향의 동산에는 납골당에 봉안된 22위와 매장 묘역에 안장된 17위 등 모두 39위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잠들어 있다. 현재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38명 중 생존자는 46명만 남은 상태다. 여가부는 이 묘역에 숨진 위안부 할머니를 기리는 추모비(조형물)도 세울 계획이다. 이미 이곳에 안장된 39분에 대해선 유가족 동의를 얻어 이장하고, 생존자는 희망 시 이곳에 묘를 조성하기로 했다. 여가부 관계자는 “내년 3~4월쯤 위안부 할머니들을 모시고 제막식을 하려 한다”고 밝혔다. 망향의 동산은 일제 침략으로 고국을 떠난 뒤 숨진 재일동포 등 해외 한인들의 안식을 위해 1976년 세워졌다. 일본·중국·대만·홍콩·러시아 등 세계 각국의 동포 영령을 위로하는 위령탑과 묘역·봉안당 등이 있다. 한편 여가부는 내년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지급되는 지원금을 대폭 늘리기로 했다. 현재 1인당 월 104만 3000원인 생활지원금을 126만원으로 26% 인상하고, 간병비는 75만 7000원에서 39% 인상된 105만 5000원으로 늘린다. 건강치료비는 35만 6000원에서 37만 9000원으로 늘어난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암에 걸린 딸, 도와주세요” 알고 보니 사기극

    “암에 걸린 딸, 도와주세요” 알고 보니 사기극

    "딸이 암에 걸렸어요." 이런 말로 사기를 친 여자가 쇠고랑을 찼다. 미국 텍사스 경찰이 후아니타 가르시아(여.46)를 사기와 아동착취 혐의로 체포했다. 가르시아에겐 7살 된 딸이 있다. 이제 한창 예쁘게 머리를 묶고 학교에 다닐 나이지만 아이는 왠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아이에겐 머리털이 없다. 엄마가 밀어버린 탓이다. 머리 군데군데에는 반창고를 붙이고 있다. 쓰고 있는 모자도 예쁜 모자가 아니라 실로 짠 모자다. 외모만 본다면 아이는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 같다. 이런 모습을 연출한 건 바로 엄마 가르시아였다. 가르시아는 딸을 암환자로 둔갑시켰다. 돈벌이를 위해서다. 가르시아는 암을 앓고 있는 딸을 치료해야 하지만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다며 페이스북에서 도움을 요청했다. 페이스북에 오른 어린 딸의 사진은 안타까움을 자극했다. 사연을 접한 사람들이 주저하지 않고 지갑을 연 이유다. 사기극은 그러나 경찰의 수사 끝에 막을 내렸다. 경찰이 진행한 검사 결과 가르시아의 딸은 아무런 병도 갖고 있지 않았다. 건강한 딸이 영문도 모른 채 암환자 행세를 해야했던 셈이다. 텍사스 히달고 카운티 경찰은 "(이번 사건처럼) 사기로 경제적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도움을 줄 때는 반드시 (질병 등 사유의) 진위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사진=페이스북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소방서에서도… 후임병 성추행·가혹행위

    소방서에서도… 후임병 성추행·가혹행위

    병역의 의무를 소방대원 활동으로 대신하는 ‘의무소방원’ 사이에서도 후임병에 대한 가혹행위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가인권위원회는 후임병 이모(21)씨를 2개월 동안 괴롭힌 의무소방원 2명에 대한 수사를 검찰에 의뢰했다고 15일 밝혔다. 인권위에 따르면 선임병 A(23)씨와 B(22)씨는 이씨의 성기를 밟고, 발로 목을 누르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폭력을 행사했다. 의무소방원 간 가혹 행위가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이씨는 지난해 6월 강원도의 한 소방서로 발령받았다. 그때부터 악몽이 시작됐다. A씨와 B씨는 별다른 이유도 없이 이씨를 생활관 사물함에 들어가게 한 뒤에 밖에서 문을 잠갔다. 밤에는 이씨가 코를 곤다며 깨워 서 있게 하기도 했다. 이씨는 같은 해 9월 특별외박을 나가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 이후 소방서에 복귀하지 않고 2015년 3월까지 병원에서 지냈다. 치료 과정에서 심한 적응장애, 우울증 증세를 보이며 6차례 자해를 하기도 했다. 결국 이씨는 올 3월 의병 제대했다. A씨는 지난해 9월, B씨는 올해 5월 만기 제대했다. 이들은 인권위 조사에서 “그때는 장난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 생각해 보니 미안하다”며 “이씨의 진술이 사실”이라고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소방서 측은 가혹행위가 있음을 알고도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씨에 대한 공·사상 심의 때는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 이씨를 사상으로 처리했다. 때문에 이씨는 치료비 지원을 받지 못했다. 이에 이씨의 아버지가 지난 3월 인권위에 진정서를 넣으면서 사건의 실체가 알려졌다. 의무소방원 제도는 시·도 소방서 또는 119안전센터에서 23개월간 근무하며 군 복무를 대체하는 제도다. 군인이나 의경에 비해 상대적으로 편하다는 인식이 강한 데다 전역 후 소방공무원 특별채용시험 응시자격이 주어진다는 점 때문에 인기가 높다. 올 하반기 경쟁률은 7.7대1이었다. 육성철 인권위 조사관은 “의무소방원의 수가 적다 보니, 문제가 생겨도 일반 병사들에 비해 주목을 끌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인권위는 A씨와 B씨의 가혹행위 내용을 의무소방원이 근무하는 모든 소방서에 알리라고 국민안전처에 권고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단독] 20대 ‘욱 고소’ 30%만 형사재판 간다

    [단독] 20대 ‘욱 고소’ 30%만 형사재판 간다

    지난해 5월 충남 논산의 한 애완견 카페에서 손님 A(28·여)씨와 주인 B(39)씨 사이에 고성이 오갔다. 자신의 애완견이 다른 손님의 애완견에게 물려 다치자 A씨가 치료비를 요구했지만, B씨가 이를 거절했기 때문이다. A씨는 이후 집에 돌아와 “카페가 생각보다 작더라. 중국산 간식을 갖다 놨다”는 글을 인터넷 애완견 커뮤니티에 올렸다. B씨 역시 “A씨가 사납더라. 아이(애완견) 치료는 안 하고 자꾸 배상만 요구한다”는 글로 맞대응했다. 결국 이들의 다툼은 올 2월 맞고소에 따른 형사사건(정보통신망법 위반)으로 비화했다. 검찰 조사결과 이들의 게시글은 모두 허위로 밝혀졌다. 자칫 둘 다 ‘전과자’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형사조정을 통해 ‘공소권 없음’으로 끝났다. 60대의 경험 많은 형사조정위원이 “애완견에 대한 사랑은 똑같지 않으냐”는 설득으로 양쪽의 갈등을 풀어준 덕분이었다.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스마트폰으로 게시글을 지우고, B씨가 A씨의 애완견을 치료해 주기로 하면서 조정이 성립됐다. 2010년 본격 도입(2006년부터 시범실시)된 형사조정 제도는 형사조정위원들이 가해자와 피해자를 만나 재판 전에 합의로 사건을 해결하는 제도다. 14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형사조정으로 처리된 사건은 2010년 1만 5395건에서 올해(1~11월) 6만 4969건으로 5년 새 4배 이상으로 늘었다. 조정 성립률 역시 2010년 50.1%(7713건)에서 올해에는 역대 최고치인 58.2%(3만 7839건)로 뛰었다. 형사조정 사건이 늘고 있는 것은 피해회복의 속도가 빠르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다. 서울신문이 입수한 대검의 ‘형사조정의 실효성 연구’ 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년간 58개 지검·지청에서 이뤄진 형사조정 사건 1160건을 분석한 결과, 조정이 성립됐을 때 조정에서 검찰 처분까지 평균 29.9일이 걸렸다. 하지만 조정이 이뤄지지 않아 재판까지 간 사건의 경우 조정 성립 때의 4배가 넘는 132.6일이 소요됐다. 재산범죄의 경우 이 차이가 5.9배, 신체피해 범죄에서는 9.8배로 벌어졌다. 연령에 따른 조정 성립률 차이도 컸다. 성립률이 가장 높은 피해자 연령층은 20대 이하로 73.2%에 달했다. 60대 이상은 61.0%로 낮았다. 보고서 작성을 주도한 이동원 원광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20대가 피해자인 경우 양측의 갈등의 골이 깊지 않고, 조정위원들의 설득이 잘 먹히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가 ‘이전부터 알던 사이’일 경우 조정 성립률은 56.5%였지만 ‘아예 모르는 사이’였을 경우엔 75.7%로 높아졌다. 성별로는 남성 간의 성립률은 64.6%인데 비해, 여성 간의 성립률은 57.0%에 머물렀다. 한 조정위원은 “여성간 사건의 경우 심리적인 상처가 회복이 안 돼 조정이 실패하는 사례가 상당했다”고 귀띔했다. 검찰은 이 보고서를 토대로 현행 형사조정위원회를 상설기구인 ‘형사조정센터’로 격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조균석 이화여대 로스쿨 교수는 “형사조정 제도가 형사사건 처리의 정식 절차로 인정되도록 관련 법 규정을 보완하고, 경찰이나 법원 단계에서도 형사조정 활성화를 위한 상설기구 마련 등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 [누가 김노인을 죽였나] 심리 부검을 통해 본 노인 빈곤

    [누가 김노인을 죽였나] 심리 부검을 통해 본 노인 빈곤

    변사사건처리부 한 장에 정리된 노인의 죽음은 냉정하리만큼 간단명료하다. 한 해 노인 350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현실에서 오늘도 또 다른 노인의 죽음은 늘 하던 방식대로 기록되고 정리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인 노인 자살률과 빈곤율이 부끄럽다고 외치지만, 정작 무엇이 노인들을 벼랑 끝에 서게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찾아보기 어렵다. 한 해 벼랑 끝에 서게 되는 노인이 3500명이나 되는 현실을 그리고자 서울신문 특별기획팀은 심리·정신분석 전문가들과 함께 자살자에 대한 ‘심리적 부검’을 시도했다. 심리부검이란 자살자의 유서나 가족·동료와의 면담 자료 등을 수집해 자살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작업이다. 극단적인 선택에 이르기 전까지 노인이 거쳐 온 삶의 궤적을 좇아 ‘마음속 지도’를 그리기 위함이다. 높은 자살률로 고민이 많던 핀란드는 1980년대에 행했던 한 해 동안의 자살자 전원에 대한 심리부검을 통해 10년 새 자살률을 20% 포인트 넘게 떨어뜨리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걸음마 단계다. 보건복지부가 운영하는 중앙심리부검센터가 전국 자살자 가족을 상대로 심리부검을 진행 중이다. 지금까지의 실적은 121건으로 많지 않다. 여기에는 죽음 앞에 침묵하는 문화 탓이 크다. 지난 두 달여 동안 서울신문 특별기획팀은 100여명의 노인 자살자 유가족 등을 만났지만 실제 심리부검을 허락한 것은 7가족뿐이었다. 이번 심리부검은 서울신문이 중앙심리부검센터에 의뢰해 한국형 심리부검 체크리스트인 ‘K-PAC 2.0’으로 진행됐으며, 유가족 면접은 임상심리 전문가가 진행하되 서울신문 취재진이 사례를 발굴하고 면접 과정에 모두 참관했다. 국내 언론이 다수의 노인 자살자를 대상으로 전문가 집단과 함께 심리부검을 진행한 것은 처음이다. 이번 조사 결과는 복지부가 구축하고 있는 국가 심리부검 데이터베이스(DB)에 등록된다. “모든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다.”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1858~1917) 사연 없는 주검이 있을까. 하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사례는 노인을 자살로 이끄는 공통된 키워드를 찾기 위해 중앙심리부검센터와 진행한 총 7건의 심리부검 중 대표적 사례다. 사생활 보호를 위해 이름이나 주소지 등은 익명으로 처리했다. 두 노인을 자살로 내몬 상황과 심리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키워드별로 부산, 충남 등에서 진행한 노인 심리부검 98건에 대한 통계(숫자 표시)와 전문가의 해석(알파벳 표시)을 덧붙였다. ■스스로 세상 버린 두 노인… 그들의 심리를 읽다 [주검1] “안방에서 죽었어. 그라목손(ⓐ) 먹고. 여서 꼬꾸라졌는디…거긴 보기도 싫여.” 2개뿐인 앞니에 박유순(69·가명) 할머니의 발음은 샜지만 악몽 같았던 그날 하루의 기억은 방금 전 일처럼 생생하다. 시부모 봉양으로 시작해 남편과 50년 이상을 함께한 흙담집(①)에서 남편 김희준(81·가명)씨는 지난 4월 중순 제초제(②)를 마시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사달이 난 건 7개월 전이다. 그날 아침 달라진 남편의 행동은 할머니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남의 농사일을 돕다 갈비뼈 골절(③)로 한 달여간 누워만 있던 할아버지(④)는 작심한 듯 성질을 부렸다. 밑도 끝도 없었다. 머리맡에 놓인 과도를 들고는 “문 닫고 나가라”며 불같이 화를 냈다. “우리 아저씨는 원래 나한테 군소리 안 하고 다정한디 그날은 이상혔어. 과일 깎아 먹으려고 놔둔 과도를 들고 눈에 불을 싸지르면서 갑자기 나한테 문 닫고 나가라고 하는 거여. 겁이 나 문 닫고 나와 마당서 나물 두 바가지를 씻고 문 열어 보니 제초제를 마시고 쓰러져 있더라구.” 빗속을 뚫고 시속 100㎞ 이상을 달리는 구급차가 마치 경운기처럼 더디게 느껴졌다. 청주 병원을 거쳐 다시 천안의 대학병원으로 갔지만, 할아버지의 몸은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불행이 다가온 건 지난 4월이다. 할아버지가 집 뒤 대나무 밭에 갔다 넘어져 갈비뼈 2대가 나갔다. 병원에 갔지만 계속 누워 있을 수만은 없었다. 퇴원하고 며칠 후에 남의 삼밭 일을 도와준다며 경운기를 몰고 언덕배기를 오르는데 경운기가 넘어졌다. 다시 갈비뼈 3대가 나갔다. 의사는 “뼈가 다 붙은 뒤 퇴원하라”고 권했지만 그럴 순 없었다. 보름치 입원비로 내야 하는 90만원도 이미 노부부에겐 감당하기 어려운 돈이었기 때문이다. 퇴원 후 할아버지는 끼니는 물론 화장실 가는 일조차 혼자 해결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할머니가 늘 곁에 있을 수는 없었다. 당장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면 할머니는 가끔 나오는 남의 밭일이나 공공근로를 하러갈 수밖에 없었다. 돈이 원수였다. 주변에서는 병간호하는 사람을 붙이든 당분간 요양원에 보내든 하라고 권했지만, 매달 40만원이 드는 게 문제였다. 그렇게 할머니는 미안한 마음으로 할아버지에게 기저귀를 채우고 일을 나갔다. “먹고살려면 계속 일을 나가야 하니까. 찌개 끓여놓고 조기새끼 가시 다 발라놓고 남의 밭에 쑥 뜯으러 갔어. 그러고는 일 다하고 집에 갔더니 온종일 우리 아저씨가 밥(ⓑ)도 못 먹고 누워 있는 거여. 지 혼자 일어나지를 못하니까 밥도 못 먹고 있더라구. 그렇게 밥 좋아하는 양반이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할아버지 밥 떠먹여 주면서 그날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몰라. 그리고 하루 있다가 그렇게 됐어.” 지긋지긋한 가난은 대물림을 받았다. 그나마 젊을 때는 몸뚱이가 재산이었다. 머슴 일부터 남의 농사까지 안 해본 게 없었다. 다들 가난한 때라는 위안을 하며 평생 농사일을 했지만 살림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한때는 희망도 있었다. 한 해 농사를 지으면 쌀 7가마니 정도가 나오는 작은 땅도 생겼다. 하지만 그런 꿈도 잠시. 몇 년 전 아들의 빚을 갚느라 전답을 모두 날렸다. 할아버지는 몇 년간 ‘그 땅은 쳐다보기도 싫다’며 애먼 산을 돌아 빙 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할머니는 그 고단한 삶 속에서 3남매를 키워 출가시킨 것만도 대견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노년의 삶은 더 곤궁했다. 몇십만원이 전부인 통장 잔고는 늘 한 달을 못 버텼다. 할아버지가 팔순이 넘으면서 바깥 일은 거의 할머니의 몫이었다. 남의 밭에 일을 나가거나 공공근로를 해서 버는 돈은 20만~30만원 정도, 노령연금 등을 합쳐도 손에 쥐는 돈은 늘 50만~60만원(⑤)을 넘지 않았다. 땅 빌리는 데 드는 돈에 전기요금, 난방비, 약값, 식비, 부조금 등을 내면 남는 돈이라곤 몇만원 정도였다. “한 2년 전에 아저씨가 나한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어. ‘내가 아파서 드러누우면 스스로 죽어야지, 남한테 피해가 가기 전에… 치료비(⑥) 때문에 산 사람도 못 살게 할 순 없잖아’라고…. 그때는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고 타박했는데 그때부터 그런 생각을 좀 했었나 봐.” 어려서부터 가난한 삶이었지만 할아버지는 점잖고 다정한 남편이었다. 시골 투전판에 낀다든지 바람을 피우는 일도, 그 흔한 주사 한번 부리는 일이 없었다. 덕분에 살아생전 집안에서는 큰소리 한번 나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할머니는 유품을 확인하다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수십년을 써 다 낡고 눅눅해진 남편의 지갑 속에 3만원이 찰싹 들러붙어 좀체 나올 줄을 몰랐다. 시어머니가 읽었던 성경책 등에선 몇 년을 모았는지조차 종잡을 수 없는 꼬깃꼬깃한 지폐 109만원이 담겨 있었다. 그렇게 뒤늦게 발견한 할아버지의 쌈짓돈은 농협에 빌린 200만원을 스스로 갚아 보려는 마음인 듯했다. 가난한 부모는 3남매(ⓒ) 중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못 배우고 없는 부모 밑에서 자라 남들처럼 좋은 것 못 먹이고 부족하게 가르친 것이 항상 미안했다. “생활비 대주는 애들은 없지만, 명절 때는 와요. 자기들 애들 키우고 밥 먹고 살려면 부모까지 챙길 여유가 있나. 자기 쓸 돈도 없을 거야.” 할머니는 못내 후회되는 것이 있다고 했다. “죽으려고 했나. 하도 이불을 걷어차서 3~4개월 전부터 이불을 따로따로 덮었거든. 근데 언젠가 ‘임자, 내 곁에 와서 자’(ⓓ) 이러는 거야. 그래서 ‘더운데 뭘 같이 자’라며 홱 돌아서서 잤지. 그리고는 사흘 뒤에 그렇게 됐어. 그런데 우리 아저씨 돌아가시고 3일장도 못 치렀어. 며칠 지나지도 않아 공공근로 시작했지. 눈물도 안 말랐지만 목구녕이 포도청이니 그래도 나가야지. 일 안 하면 돈 못 받잖우.” [주검2] “아버지는 평생 가난했어요. 그렇지만 한번도 열심히 일하시지 않은 적은 없었죠.” 이명자(44·여·가명)씨는 아버지 이영재(가명)씨의 정확한 기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아니, ‘기억하지 않는다’고 하는 편이 더 진실에 가깝다. 매번 외워 보려 하지만 좀처럼 기억에 남지 않는다. 부친의 죽음은 그만큼 잊고 싶은 사건이었다. 아버지는 일흔일곱 되던 2011년 3월(⑦) 고향인 전남 XX군 시골집에서 숨졌다. 사인은 병사(病死). 하지만 가족들은 아버지가 스스로 곡기를 끊어 사망했다는 점에서 명백한 자살이라고 여긴다. 마흔살 때 한번 자살하려고 했던 전력이 있었고 사촌형(ⓔ) 2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가족사에 아픔도 겪었던 아버지였다. 딸 이씨는 “아버지가 자살을 시도했을 때 ‘그렇게 돌아가시면 남은 자식들이 평생 손가락질 당한다’고 했더니 이번에는 병사로 위장하려고 굶는 방법을 택하신 것 같다”고 했다. 이씨가 남긴 전 재산은 현금 200만원. 갚지 못한 농협 대출금 수백만원을 생각하면 실제 유산은 빚밖에 없다. 가난은 촌로의 게으름 탓이었을까. 하지만 딸 이씨의 기억 속에 아버지는 ‘늘 부지런한 소작농(⑧)’이었다. 거둬들인 농작물의 절반은 땅주인에게 주고 남은 것의 절반은 자녀 5명에게 골고루 나눠 줬다. 그리고 남은 곡식을 팔아 푼돈을 벌었고 알뜰히 모았다. 선천성 난치병을 앓던 막내아들(ⓕ)이 있었기에 ‘아이가 먹고살 돈은 남기고 가야 한다’는 부채 의식에 더 악착같이 일했고, 또 모았다. 하지만 그 노력은 전 재산 1800만원을 친척에게 사기당해 모두 잃고 막내는 20살의 나이로 세상을 등지면서 허사가 됐다. 아버지 이씨의 황혼녘에 남은 것이라고는 ‘자식을 앞세웠다’는 허망함, 그리고 가난뿐이었다. 노인성 우울증(⑨)이 찾아왔고 76세 되던 해에는 후두암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늙은 부정(父情)은 딸들에게 이 사실을 알릴 수 없었다. 아비마저 기대기에는 딸들의 삶이 이미 퍽퍽했다. 빈곤의 대물림(ⓖ)은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아내와 사는 고향집에서 외롭게 앓았다. 뒤늦게 아버지의 투병 사실을 알아챈 딸은 지역 대학병원에 아버지를 모시고 갔지만 의사는 “어차피 돌아가실 분(ⓗ)인데 뭐하러 데려왔느냐”고 말했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 아버지는 음식과 물을 전혀 먹지 않았다. 어머니의 애타는 부탁과 만류에도 곡기를 끊었고 굶은 지 15일 만에 숨을 거뒀다. 빈곤한 노년은 늘 벼랑 끝에 서 있지만 내색할 수 없다. 가족들은 늙은 부모의 자살을 갑작스럽게 받아들이며 그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노인은 오히려 충동적으로 자살하는 사례가 드물며, 모든 연령대 중 자살을 가장 치밀하게 준비하는 세대”라고 말한다. 심리부검에 응했던 딸 이씨도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며 먹먹하게 말했다. “유품 중 아버지 수첩이 있었는데 가족 생일과 제사만 적혀 있었어요.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가을걷이(ⓘ)를 해 보내주실 만큼 가족만 위하다가 즐기지도 못하고 사셨는데 도대체 왜….” 특별기획팀 tamsa@seoul.co.kr 유영규 팀장 whoami@seoul.co.kr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누가 김노인을 죽였나] 유서 110건 가득 채운 마지막 읊조림… 없다… 당신… 미안…

    [누가 김노인을 죽였나] 유서 110건 가득 채운 마지막 읊조림… 없다… 당신… 미안…

    “밤새 통증에 시달린다. 의지할 건 전기 찜질기뿐인데 이젠 이놈마저도 효력이 없다. 더 견디기 어려울 것 같다. 슬퍼하지 말고 조용히 처리해 주길 바란다. 죽어도 돈이 문제다. 통장 잔액과 월세 보증금 200만원으로 간소히 장례는 치를 수 있을 거다. 거듭 생각해도 내 결단이 옳은 듯하다. 아비를 원망 마라.” (2013년 숨진 채 발견된 독거노인 A씨의 유서 중) 유서는 자살 직전 고인의 심리를 파악하는 몇 안 되는 실마리다. 하지만 자살자 가운데 유서를 남기는 이는 10명 중 3~4명 정도에 불과하다. 상대적으로 문맹률이 높고 글 쓰는 일이 익숙지 않은 노인들은 이런 평균치를 밑돈다. 서울신문이 7일 언론사 최초로 박형민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서종한 사이먼 프레이저대학교 심리학과 연구원과 함께 1997년부터 지난해까지 국내 노인 자살자가 남긴 유서 110건을 모아 형태소(의미가 있는 언어의 최소 단위) 분석을 진행했다. 노인 유서에 반복해 쓰인 어휘의 빈도를 살펴, 사회적 함의를 파악하기 위한 시도다. 분석 결과 노인 유서 110건 속에 숨겨진 언어의 퍼즐은 ‘결핍과 상실’, ‘배려’, ´가족’ 등의 키워드로 귀결됐다. ‘나’(164회)라는 주어를 제외하고 가장 많이 쓰인 단어는 ‘없다’(130회)였다. 유서에서 ‘없다’는 주로 자신이 삶을 지탱해 줄 주된 요소가 사라지거나 더 나아질 희망조차 없다고 느낄 때 쓰였다. ‘돈이 없다’, ‘갈 데가 없다’, ‘생활을 할 수가 없다’, ‘가치조차 없다’, ‘이 길을 택할 수 밖에 없다’, ‘내 주위에 아무도 없다’ 등으로 절망의 순간을 기록했다. 특히 ‘없다’는 ‘사람’(56회), ‘자식’(36회), ‘돈(32회)’ 등의 단어 등과 주로 연결되며 고립된 노인의 삶을 대변했다. 저서 ‘자살론’에서 “자살은 개인이 삶에서 의미와 정체성을 상실했을 때 발생한다”고 한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의 주장을 떠올리게 한다. 노인 유서의 행간에선 남은 이들을 위한 배려도 읽을 수 있다. 자신을 괴롭히는 신체적·경제적 고통이 다른 가족이나 친지에게 전이될 바엔 스스로 사라지는 길을 택하겠다는 생각이 녹아 있다. 반복해서 쓰인 ‘미안’(죄송하다 포함 163회), ‘용서’(60회) ‘생각’(43회), ‘부탁’ (40회), ‘바란다’(39회), ‘고생’(32회) 등의 단어가 이를 뒷받침했다. 70세 노인 B씨 C씨의 유서에서도 이런 대목은 잘 녹아 있다. 젊은 세대와 달리 노인들은 유서에 장례 절차나 가족에 대한 당부 등을 구체적으로 쓴다는 것 역시 특징이다. 실제 형태소 분석 결과 ‘화장’(36회)이라는 단어는 자식(36회), 아들(36회) 등과 같은 빈도로 쓰인 것으로 조사됐다. 절망의 끝자락에선 노인들이 마지막으로 읊조린 이름은 결국 가족이었다. 당신(80회), 엄마(66회), 자식(36회), 여보(38회), 아들(36회), 형(26회) 등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 단어를 합친 숫자는 모두 380회에 달했다.박형민 연구위원은 “노인은 젊은 사람보다 상대적으로 죽음에 가까이 있다 보니 죽음에 대한 고민이 상당히 현실적이고 구체적”이라면서 “몸이 병들어 심신이 지치고 치료비는 점점 늘어만 가는 상황에서 가족에게 짐이 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노인 자살을 부추기는 요인”이라고 해석했다. 서종한 연구원은 “유독 우리나라 노인은 자신을 스스로 ‘가족의 짐’이라 여겨 일종의 부채의식을 마음속에 품고 사는 경향이 짙다”라면서 “여기에 경제적 어려움, 심리적 무망감, 우울증 등이 보태져 스트레스가 증폭되면 자살 생각을 하거나 치명적 자해 행동을 벌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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