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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동국제강-철인 3대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동국제강-철인 3대

    대궁(大弓)양행, 남선(南鮮)물산, 조선(朝鮮)선재, 동국(東國)제강…. 고 대원(大圓) 장경호 회장이 1929년 설립한 가마니 회사 대궁양행을 시초로 한 동국제강그룹의 사명 변천사에는 웅대한 포부가 담겨있다. 활을 숭상하는 민족사를 표방한 대궁이나 바다건너 남쪽으로 뻗어나가길 소망한 남선, 조선, 해뜨는 나라의 긍지를 담은 동국 등 장경호 회장이 강조한 민족사관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1974년 락희(현 LG), 삼성, 현대, 한국화약에 이어 5대 그룹까지 올라섰던 동국제강그룹은 잇단 계열분리로 인해 지난해 4월 현재 자산 5조 8000억원으로 재계 26위에 랭크돼 있다. 하지만 가마니와 못을 팔며 시작한 이 전통의 그룹은 3세인 장세주(53) 회장대에 이르러 범양상선(현 STX팬오션) 인수전에 뛰어들고 IT사업에 진출하는 등 의욕을 보이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지남철로 수집한 철사 토막에서 연산 860만t체제로 장경호 창업주는 1899년 동래군 사중면 초량동에서 부농인 부친 장윤식씨와 모친 문염이씨 사이의 4남 2녀 가운데 3남으로 태어났다. 지금의 부산 초량동 중앙시장 주변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창업주는 1913년 서울의 보성고등보통학교에 진학했다. 당시 보성학교에는 부산출신 유학생이 단 두명 있었는데 나머지 한명이 4·19직후 과도정부 수반이었던 허정씨다. 둘은 광복 이후 각각 정치인, 기업가로 재회했는데 허정씨가 정계 은퇴 후 어렵게 살 때 장 회장이 음으로 양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장 회장은 은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 맏형 장경택씨가 운영하던 목재소 일을 돕고 농사를 크게 짓고 있던 두 형에게 가마니를 공급하는 일로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30세 되던 해인 1929년 대궁양행을 설립, 본격적인 가마니 장사에 나서면서 사업인생을 시작했다.1935년에는 남선물산을 세워 수산물 도매업, 미곡사업, 창고업 등으로 발을 넓혔다. 장 회장과 철(鐵)과의 인연은 우연찮게 시작됐다. 남선물산 창고에서 신선기(伸線機)를 설치해 철사와 못을 생산하던 재일교포가 창고에 화재가 발행하자 장 회장에게 신선기를 넘긴 것이다. 동국제강의 모태가 된 조선선재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당시 장 회장은 검정 고무신을 신고 보퉁이를 맨 채 지남철을 들고 다니며 고철을 수집해 못을 만들었다고 한다. 현재 동국제강의 연간 철강 생산량은 유니온스틸을 합쳐 무려 860만t에 이르지만 그 출발은 길거리에 굴러 다니는 쇠붙이였던 것이다. 한국전쟁 후 재건사업으로 못 수요가 폭발하자 조선선재는 큰 돈을 벌게 됐고 1954년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에 동국제강을 설립하면서 본격적인 민간 제철소 시대를 개막했다. 당산동 공장으로는 늘어나는 철강 수요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장 회장은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분개 소금’으로 유명했던 부산시 남구 용호동 일대 갯벌을 매립해 20만평 규모의 부산제강소를 완공한다. 1965년에는 50t 규모의 국내 첫 ‘고로(高爐)’를 준공, 한국 철강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당시 동국제강의 위상은 박정희 대통령이 1964년 부산제강소를 방문, 종합제철소 건설을 맡아달라고 당부할 정도였다. 장경호 회장은 “종합제철소는 민간기업이 하기에는 역부족이므로 국책사업으로 추진돼야 한다.”며 완곡히 사양했다. 이후 정부는 대일청구권 자금으로 포항제철을 설립, 오늘날 포스코를 탄생시켰으니 장 회장이 박 대통령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한국 철강사가 새로 씌어질 뻔했다. ●아내 반지를 빼서라도 투자하겠다, 강철왕 송원 장상태 장경호 창업회장이 동국제강그룹의 기틀을 닦았지만 장 회장은 워낙 불심(佛心)이 깊어 수시로 절에 들어가 100일간의 수행정진에 들어가는 등 현대적 의미의 경영자로 보기 어려운 측면이 많다. 동국제강의 본격적인 역사는 1956년 미국 유학을 마치고 당시 부흥부(경제기획원)에서 일하던 고 장상태 회장이 전무로 입사하면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큰 형(고 장상준씨)과 공직에 있던 둘째 형(고 장상문씨)과 함께 동국제강을 키워 온 장상태 회장은 1964년 동국제강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2세경영’을 시작했다. 장 회장은 2000년 4월 지병으로 별세할 때까지 국내 첫 후판공장 설립, 부산신철(현 한국특수형강) 설립, 동일제강 인수, 한국철강·한국강업 인수, 연합철강·국제기계·국제통운 인수, 기업 상장, 직류전기로 도입, 포항 후판공장 준공, 국내 첫 항구적 무파업 선언, 부산제강소의 포항 이전, 일본 가와사키제철(현 JFE스틸)과의 포괄적 협력 체결 등 굵직굵직한 발자국을 남겼다. 64년 취임 당시 4만 8000t에 불과했던 동국제강의 철강 생산량은 2000년 705만t으로 147배 증가했다.5억 6000만원이던 매출은 1조 5442억원으로 불어났다. 장 회장은 약간의 여유만 생겨도 설비투자에 나섰는데 주변에서 자금 걱정을 하자 “내 아내의 반지를 빼서라도 투자금을 마련할 테니 설비만큼은 최고를 써라.”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장 회장의 존재감은 JFE홀딩스 스도 후미오 사장이 동국제강 사보 편찬팀과의 인터뷰에서 “장 회장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 때문에 지금도 동국제강 본사에 있는 장 회장 흉상 앞에 설 때면 자연스럽게 차렷자세로 ‘고맙습니다’하고 인사를 하게 된다.”고 털어놓았을 정도다. 스도 사장은 2005년 4월 방한했을 때도 경기도 광주에 있는 장 회장 납골탑을 참배하는 등 존경심을 감추지 않았다. ●디지털경영 시도하는 3대 장세주 회장 동국제강은 장상태 회장 별세 직후 포항제철 사장을 역임한 김종진씨를 부회장으로 영입,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했다. 하지만 김 부회장은 취임 1년여만인 2001년 7월 헬기를 타고 경남 거제의 대우조선소를 방문하다 추락사고로 사망했다. 졸지에 수장을 잃은 동국제강 계열사 사장단은 ‘회장 주청의 글’을 통해 당시 장세주 사장을 회장으로 추대키로 하지만 장 사장은 본인의 미흡한 점을 이유로 몇번을 사양했다. 장 사장은 선친과 교분이 두터웠던 박태준(현 포스코 명예회장) 전 국무총리와 해외 철강업계 수장, 모친인 김숙자(74)여사 등에게 차기 회장감을 상의했고 10여일의 고민끝에 “이젠 자네가 나서야 할 때가 아닌가?”라는 박태준 회장의 권고를 받아들였다. 장세주 회장은 중앙고와 연세대를 졸업하고 학사장교(ROTC)로 포병장교 근무를 마친 뒤 미국 타우슨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1978년 말단 사원으로 입사, 경리부·일본지사·인천제강소장·기획조정실장 등을 거쳐 98년부터 대표이사를 맡았다. 그가 사장으로 승진한 것은 입사 22년만인 2000년이다. 장 회장은 “동국제강에 입사해 부장때까지 다른 신입사원들과 똑같이 현장에서 일하면서 라면도 끓여먹고 술도 마시곤 했다. 아버지는 늘 현장에 있으라고 강조하셨는데 현장에서 쇳가루를 마시고 커야 나중에 본사에 오더라도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다.”고 회고했다. 귀공자풍의 장 회장은 골프, 스키 등 만능 스포츠맨이다. 쉰이 넘은 나이에도 젊은이들이 즐기는 스노보드도 수준급이다.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스키를 즐겼던 선친과 많이 닮았다. 골프실력도 남다르다.74년 한국아마추어선수권대회에서 정상에 오를 만큼 프로급인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널 회장과 ‘자웅’을 겨룰 정도다.2오버파 정도를 친다고 한다. 장 회장은 또 어린시절을 함께 보낸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과도 친분이 두텁다. 방 사장과 허광수 회장이 사돈이고, 장 회장 역시 범 LG가(家)와 사돈이어서 눈길을 끈다. 장 회장 취임 이후 동국제강은 매출이 2001년 1조 7852억원에서 2004년 3조 2674억원으로, 순이익은 149억원에서 4562억원으로 급성장했다. 장 회장은 2004년 7월 동국제강 창립 50주년을 맞아 새로운 CI(기업이미지)를 선포하면서 2008년 그룹 매출 7조원 달성 목표를 내걸었다.2005년 들어 휴대전화 부품 제조업체인 유일전자(현 DK유아이엘)와 시스템통합업체인 탑솔정보통신(현 DK유앤씨)을 인수하는 등 IT영역으로도 발을 뻗고 있다. 중앙기술연구소 설립,MBA급 인재 100명 육성, 경영혁신운동 가동 등 인재육성과 기술개발에 정성을 쏟고 있다. 장 회장이 2005년 7월 ‘그룹경영회의’에서 주문한 내용들을 보면 그가 얼마나 동국제강의 ‘체질’을 바꾸고 싶어 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경영의 개념을 바꿔야 한다. 철강업, 물류업 등 우리 사업의 개념에 대해 진지한 질문을 던져야 할 때이다. 선대 회장 시대의 경영패턴과 지금 시대에 해야 할 일이 바뀌었다는 점을 인식하자.” ●창업회장 시절의 수수한 혼맥 장경호 창업회장은 보성고보 2학년 때 같은 고향 출신의 추명순씨와 결혼, 슬하에 6남 5녀를 뒀다. 창업회장이 성사시킨 11번의 혼사 가운데 유력가문이라고는 동명목재뿐이다. 장남으로 동국제강 회장을 지낸 고 장상준씨는 부산에서 사업을 하던 박상선씨의 딸 명년씨와 결혼,4남 2녀를 낳았다. 장상준씨의 장녀 옥자씨는 부산세무서장을 지낸 송귀범씨와 결혼했고 장남인 세창씨는 타워호텔 회장이었던 고 남상옥씨의 딸 덕자씨와 결혼했다. 덕자씨는 남충우 타워호텔 회장의 누나로 남덕우 전 국무총리의 사촌동생이다. 차녀 옥빈씨는 태광그룹 이임룡 창업주의 둘째 아들인 고 이영진씨와 결혼했다. 장상준 회장의 자녀들은 동국제강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조선선재 경영을 맡았는데 선친에 이어 아들들도 일찌감치 유명을 달리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1978년 시집 ‘여(旅)’를 펴내는 등 문학에도 조예가 깊었던 장남 장세창 전 동일제강 사장은 2000년 지병으로 별세했고 차남인 장세명 전 조선선재 사장도 2005년 12월2일 59세로 사망했다. 조선선재는 곧바로 장세명 전 사장의 아들인 장원영씨를 대표이사로 추대해 새출발했다. 보스턴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원영씨는 불과 서른살이다. 3남인 장세승(57)씨는 조선선재 상무로 일하고 있다. ●불사를 이어받은 둘째 창업회장의 둘째 아들인 고 장상문씨는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고 공직자의 길을 걸었다. 장상문씨의 부인은 부산의 대표기업이었던 동명목재 창업주인 고 강석진 회장의 딸 강정자(76)씨다. 장경호 창업회장과 동향인 강 회장은 같은 불자로 친분이 두터웠다. 외무부 차관보, 스웨덴·멕시코 대사, 유엔대사 등을 역임한 장상문씨는 공직에서 물러난 뒤 선친의 뜻을 이어받아 1989년 사재 10억원을 출연해 전통문화 전문 출판사 ‘대원사’를 세웠다. 대원사는 현재 그의 아들인 장세우(57)대표가 맡고 있다. 장상문씨가 3대 이사장을 지낸 불교진흥원은 선친이 1975년 임종 직전 박정희 대통령에게 한국불교의 중흥을 염원하는 서한과 함께 헌납한 31억 6000만원(현재가 2000억원)으로 설립됐다. 불교진흥원 초대 이사장은 LG그룹 구인회 창업주의 동생인 구태회 당시 제2무임소장관이 맡았다. 동국제강과 LG그룹은 이후 사돈지간으로 발전하는 등 끈끈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2004년 동국제강 창사 50주년 기념식에 구본무 LG회장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었다. ●두 아들을 장교로 보낸 장상태 장남인 장상준씨가 일찍(1978년) 타계하고 차남은 회사 경영에 뜻이 없던 터라 동국제강은 3남인 고 장상태 회장 체제로 운영돼왔다. 부산 동래고와 서울대 농대를 졸업한 장 회장은 미국 미시간주립대 석사를 마치고 귀국, 잠시 부흥부(경제기획원)에서 일하다 1956년 동국제강 전무로 회사에 발을 내디뎠다. 장 회장은 부산에서 무역업을 하던 김영희씨의 외동딸인 김숙자씨와 결혼해 2남 3녀를 뒀다. 김숙자씨는 이화여대 영문과를 나온 미모의 재원이었다. 김숙자씨는 시부모, 시동생 등 대가족을 모시고 살았는데 워낙 검박한 시아버지가 생활비(당시돈 500원)를 매일 매일 나눠주는 바람에 살림에 애를 먹었다고 한다. 남편인 장상태 회장도 농림부 장학금으로 미국유학을 다녀오면서 부친이 용돈을 많이 주지 않아 고생을 했다.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도 미국 유학시절 부친이 차를 사주지 않아 걸어다녀야 했다고 한다. ROTC 출신인 장남 장세주 회장은 상명여대 교수를 지낸 남희정(44)씨와 결혼했다. 두 아들은 아직 학생이다. 막내인 장세욱(44) 동국제강 전무는 육사 41기생으로 육군 소령으로 예편한 뒤 96년에야 동국제강에 입사했다. 이후 남가주대 MBA를 졸업했다. 장 전무는 소위시절 친구 소개로 경제기획원 차관, 산업은행 총재, 금호석유화학 회장 등을 역임한 김흥기씨의 딸 남연(42)씨와 연애 결혼했다. 장 전무의 처남도 육사를 졸업했다. 장 전무는 “원래는 신문기자가 되고 싶었는데 국가를 위해 일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선친의 권유로 진로를 바꿨다.”고 말했다. 장상태 회장의 장녀인 영빈씨는 지병으로 이미 세상을 떴다. 차녀인 문경(48)씨는 울산대 의대 교수로 서울아산병원 정형외과 의사인 윤준오(52)씨와,3녀 윤희(45)씨는 부산지역 실업가이자 8대 국회의원을 지낸 고 이학만 화양실업 회장의 아들 철(47)씨와 결혼했다. 이철씨는 현재 철강유통회사인 세광스틸 사장이다. ●강철가문의 철 박물관 장상태 회장의 바로 아랫동생인 장상철씨는 부산제강소 공사 현장을 진두지휘하는 등 동국제강 경영에 활발히 참여하다 1991년 세상을 떴다. 장상철씨 사후 유족들은 세연문화재단을 설립해 고인의 뜻을 이어갔다. 세연문화재단은 2000년 충북 음성에 세연철박물관을 개관, 전통제철 복원실험, 대장간 조사 등 철강문화 발굴·보급에 힘쓰고 있다. 장녀 인경(47)씨가 관장을 맡고 있다. 장남인 세훈(44)씨는 동국제강 계열사인 국제기계 전무로 일하고 있고, 차남 세한(41)씨는 철강판매사인 ㈜동산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차녀 은주(45)씨의 남편인 송봉헌(49)씨는 주 인도 공사다. ●불사와 사업을 동시에 장경호 창업회장의 5남인 장상건(71) 동국산업 회장은 부산지역 사업가인 김대성씨의 큰딸 명자(64)씨와 결혼,1남 3녀를 뒀다. 장 회장은 부산상고와 동국대 임학과를 졸업하고 1960년 동국제강 감사로 입사했다. 이후 동국제강 부사장, 동국건설 사장을 지낸 뒤 1977년부터 동국산업 경영을 맡아왔다. 장경호 창업회장이 1967년 설립한 대원사가 전신인 동국산업은 2001년 동국제강에서 계열분리됐고 현재 동국S&C, 대원스틸, 한려에너지개발, 동국내화, 신안풍력발전, 고덕풍력발전 등을 계열사로 두고 있다. 장상건 회장의 형인 고 장상준 회장 자손들이 운영하고 있는 조선선재 지분도 16.6% 갖고 있다. 동국산업은 현재 장상건 회장의 외아들인 장세희(38) 전무(경영관리본부장)가 21.52% 지분으로 최대 주주다. 장 전무는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96년 동국산업에 입사했다. 장 전무의 부인은 동방그룹 창업주인 김용대 회장의 차녀 유경(36)씨다. 장 회장의 차녀 혜경(42)씨는 김장&리 법률사무소 설립자인 고 김흥한 변호사의 아들 유동씨와 결혼했다. 아직 미혼인 막내 혜원(36)씨는 국민대 시각디자인과에서 강의를 맡고 있다. ●화려한 혼맥, 눈부신 성장 장경호 창업회장의 여섯 아들 가운데 현재 가장 주목받는 이는 막내인 장상돈(69) 한국철강 회장이다. 경복고와 동국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62년 조선선재에 입사, 동국제강 상무·전무를 거쳐 82년 한국철강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했다. 이후 85년부터 98년까지 동국제강 대표이사 사장을 지냈고 2001년 한국철강을 갖고 독립했다. 한국철강은 계열분리 뒤 환영철강, 영흥철강, 대흥산업을 인수하며 한국특수형강, 세화통운, 마산항5부두운영과 함께 6개 계열사를 거느린 철강 전문그룹으로 도약했다. 한국철강 자체만으로도 지난해 매출 6861억원, 순이익 1120억원을 거둔 알짜기업이다. 환영철강 역시 매출이 4000억원이 넘고 한국특수형강도 지난해 매출이 2500억원에 달한다. 장 회장은 동국대 재학시절 이화여대 미대생이던 신금순(66)씨와 연애결혼했다. 장인인 신종식씨는 한때 동국제강 계열사인 부산신철(현 한국특수형강) 사장으로도 일했었다. 장 회장은 3남 2녀를 뒀는데 혼맥이 가장 화려한 편이다. 장남인 장세현(42) 한국특수형강 대표이사 부사장은 뉴욕대 경영학과를 마치고 한국철강에 입사했고 환영철강 부사장을 거쳤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화학과와 일본 와세다대학원을 나온 차남 장세홍(40) 한국철강 전무는 고 박정구 전 금호그룹 회장의 차녀인 박은경(34)씨와 결혼했다. 박 전 회장은 재계혼맥이 두텁기로 유명한데 맏사위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아들인 김선협씨, 셋째 사위는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의 차남인 허재명 일진소재산업 대표이사다. 3남 세일(35)씨는 영흥철강 기획이사를 맡고 있다. 차녀인 인영(38)씨는 구두회 극동도시가스 명예회장의 장남 구자은(42) LS전선 상무와 결혼했다. 구 명예회장은 구인회 LG 창업주의 동생이다.LG가와 동국제강의 남다른 인연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ukelvin@seoul.co.kr ■ 장씨일가 불교와 인연 동국제강 장씨 일가를 이야기하면서 불교와의 인연을 빼놓기 어렵다. 창업주인 고 장경호 회장의 묘비에는 ‘대원거사(大圓居士)’라고 새겨져 있다. 부인 고 추명순씨도 적선화라는 법명으로 통했다. 장 회장이 불교에 귀의한 계기는 17세 때 목격한 막내동생의 죽음이다. 사랑하는 동생의 죽음으로 인간의 존재에 대한 물음을 갖게 된 장 회장은 양산 통도사 주지 구하 스님을 통해 처음 불교에 눈을 뜨게 된다. 이후 1925년 통도사에서 첫 안거를 하면서 인생의 방향을 잡았고 수시로 금강산 마하연, 통도사, 청도 운문사, 부산 금정사, 금정산 무위암 등에서 안거와 정진을 거듭했다. 장 회장의 불사는 이후 불서보급사 설립, 대중포교당인 대원정사 설립 등으로 발전한다.1973년 대원불교대학까지 설립한 장 회장은 죽음을 예감한 1975년 스웨덴 대사로 있던 차남 장상문씨에게 불사를 부탁하고 사재 30억원을 불교사업에 희사, 대한불교진흥원을 탄생시킨 뒤 스스로 자리에 누워 입적했다. 그가 임종 직전 남긴 열반송은 ‘심즉시불(心卽是佛), 마음이 곧 부처이니 이를 믿고 깨달으라.’는 말로 끝난다. 창업 회장을 이어받은 장상태 회장도 부산제강소를 이전하면서 1996년 100억원을 출연해 대원복지재단(현 송원문화재단)을 설립, 장학사업·아동복지사업 등을 펼치며 선친의 유지를 이어갔다. 장 회장은 또 2000년 임종 직전 화장을 부탁해 장묘문화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는데 이 역시 그의 불심과 무관치 않다. 부인 김숙자씨, 아들인 장세주 회장, 장세욱 전무도 이미 화장을 약속했다. 창업회장이 생전에 불사를 부탁한 둘째 아들 장상문씨는 1981년 대원정사 이사장과 신행단체인 대원회 회장에 취임하면서 선친이 못다이룬 사업에 속도를 냈다. 장상문씨는 1989년 불교진흥원 이사장에 취임한 뒤 불교계의 숙원이었던 불교방송을 개국하는데 성공했다.UN방송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초대 불교방송 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장상건 동국산업 회장도 현재 대원정사 이사장직을 맡아 선친의 뜻을 받들고 있다. 동국산업은 1992년 재단법인 ‘불이원’을 설립, 소외된 이웃을 돕고 있다. 장 회장은 2004년 12월 부산에 대원정사 지원을 마련, 불교 포교에 힘을 쏟고 있다. 또 2005년에는 사재를 털어 부산 대원불교대학을 개교, 부산·경남지역 불교 인재 양성에 나섰다. 장상건 회장과 장상돈 한국철강 회장이 불교계열인 동국대를 졸업한 것도 이 집안과 불교와의 남다른 연을 짐작케 한다. ukelvin@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박건승 부장(반장) 정기홍·류찬희·최용규 차장 이기철·강충식·주현진·류길상·김경두·서재희 기자
  • “정부 KT지분 재매입 반대”

    남중수 KT 사장은 일각에서 제기되는 정부의 KT 지분 재매입 논란과 관련,“(이렇게 되면) 정부 신뢰도에 타격”이라며 반대 입장을 강하게 표시했다. 또 내년에는 차세대성장동력 사업에 민영화 이후 최대 규모인 3조원을 투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남 사장은 13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있은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KT의 공익성을 확보하기 위해) 정부가 지분 참여 형태를 취한다면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고 정부 신뢰도도 부정적 평가를 받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발언은 일각에서 제기하는 정부의 KT 지분 재매입과 연·기금의 주식 매입을 통한 ‘간섭’ 가능성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정보통신부 관계자는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진행 중인 KT의 민영화 관련 용역은 지분 재매입을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민영화 3년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 작업”이라면서 “평가는 국가기간통신사업자인 KT의 향후 과제 등을 제시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정기홍기자 hong@seoul.co.kr
  • [우리는 맞수 CEO] 새 선박 개발 앞장 VS 유전등 신사업 진출

    [우리는 맞수 CEO] 새 선박 개발 앞장 VS 유전등 신사업 진출

    김징완(59) 삼성중공업 사장은 2001년 취임 직후 ‘2006년 세계 1등 조선사’를 외쳤고, 정성립(55) 대우조선해양 사장은 올초 ‘2015년 매출 20조원 달성’이라는 어마어마한 목표를 내걸었다. 삼성중공업은 연 50척 건조체제, 고부가선 비중 70% 이상 등 1등의 조건을 갖추는데는 성공했지만 아직 세계 1등인 현대중공업을 추월하지 못했다. 신사업 진출과 글로벌 생산체제 구축 등으로 매출 20조원을 달성한다는 대우조선의 목표 달성도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두 CEO가 걸어온 길을 따라가보면 이들의 목표가 ‘꿈’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재무통에서 현장 경영자로 김징완 사장은 1년 중 130여일을 해외 출장으로 소화하고 나머지 시간은 대부분 거제조선소에서 보낸다. 모든 문제와 해답은 현장에 있다는 지론으로 직원들과 즉석에서 허심탄회한 대화를 즐긴다고 한다. 김 사장은 조선업계 출신이 아니다. 경북 달성의 현풍고를 졸업한 김 사장은 고려대 사학과 4학년이던 1973년 제일모직에 입사했다. 이학수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장(부회장), 김인주 구조본 사장, 최도석 삼성전자 사장(CFO) 등 쟁쟁한 재무통을 배출한 제일모직 경리과 출신이다. 회장 비서실 재무팀, 운영팀장, 삼성물산 금융팀장 등 그의 화려한 이력은 대부분 재무계통이었다. 하지만 93년 삼성중공업 기획관리담당 임원으로 재직할 때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가장 큰 640m짜리 제3도크 건설을 마무리지어 삼성중공업의 경쟁력을 다져놓는 등 조선과의 인연도 만만찮다. 또 재무통답게 환율관리에 초점을 맞춰 환 리스크를 100% 헤지하는데 성공했다. 김 사장은 “제조업이 환율등락에 따라 희비를 겪는 것은 말이 안된다.”면서 “선박 수주 시점부터 환헤지를 통해 이익률을 확정짓고 제조업답게 원가절감, 생산성 향상 등 본질로 승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 사장은 디지털 시대에서는 기존의 사고방식, 일하는 방법, 시스템 등을 180도 바꾸고 임직원들의 의식도 최첨단으로 무장돼야만 살아 남을 수 있다며 끊임없는 변화를 강조한다. 실제 삼성중공업은 신 선형 개발 등에서 앞서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신뢰, 열정, 감성의 정통 조선맨 정성립 사장은 “CEO는 회사 일에 일일이 간섭할 게 아니라 비전을 만들고, 혁신을 주도하고,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정 사장은 루마니아 망갈리아조선소, 오만 수리조선소, 중국 옌타이 선박용 블록 공장 등 글로벌 체제를 기반으로 2015년 매출 20조원으로 세계 조선시장의 20%를 점유한다는 웅대한 비전을 발표했다. 조선업뿐만 아니라 나이지리아 유전개발에 참여했고 JR건설을 인수, 토건사업에도 뛰어드는 등 신사업 진출로 새로운 비전을 만들고 있다. 해양연구 장비·시스템 업체인 씨스캔을 계열로 편입하는 등 해저광물 탐사에도 적극적이다. 정 사장 역시 현장경영으로 유명한데 11월 말 현재 해외출장이 100일을 넘겼고 1년중 5개월은 옥포조선소에서 보낸다. 협력업체를 포함한 전 직원과 가족들에게 회사의 경영환경과 비전을 설명하는 편지를 13차례나 보낼 정도로 ‘소통’도 중시한다. 정 사장은 취임 당시 “조직내에서 권위주의를 없애자.”는 다소 ‘엉뚱한’ 목표를 내걸었다. 직원들간 벽이 없어져야 성장과 혁신이 가능하다는 취지였다. 정 사장의 혁신은 직급 관련 호칭(부장, 과장 등) 폐지, 조선업계 최초의 임금피크제 도입, 즐거운 직장을 만들어 주는 ‘펀 리더(Fun Leader)’ 도입 등으로 이어졌다. 금요일 무조건 일찍 퇴근하기, 호프데이, 월 1회 영화·연극 관람, 책 선물 등 대우조선의 ‘펀 경영’은 단순히 유행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데스크시각] 서울 행정2부시장 유고 너무 길다/ 강동형 지방자치뉴스부 차장

    이명박 서울시장은 “행정 2부시장이 없는데.”라는 질문에 “행정 2부시장이 없다는 것은 틀린 말이고,‘유고’라고 해야지….”라고 대답했다. 맞는 말이다. 서울시 행정 2부시장은 유고(有故) 상태다. 양윤재 부시장은 영어의 몸이어서 100일 동안 출근하지 못하고 있을 뿐 부시장직은 유지하고 있다. 지난 5월6일 구속된 뒤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문제는 양 부시장의 유무죄 여부와 관계없이 시의 기술관련 행정을 사실상 책임지는 중요한 자리를 장기간 비워두고 있다는 점이다. 자연 양 부시장을 둘러싼 뒷말도 무성하다.‘왜 이명박 시장은 후임자를 임명하지 않을까.’‘왜 양 부시장은 사의표명을 하지 않을까.’로 압축된다. “무죄를 주장하는 사람을 어찌 내칠 수 있느냐.”는 게 서울시의 기본 입장이다. 이 시장도 “본인이 무죄를 주장하고 있는데 (1심)재판 결과도 나오기 전에 야박하게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견해를 보였다. 양 부시장을 잘 아는 서울시 간부들도 그의 무죄를 확신하는 분위기다. 자치단체장이 범죄 사실이 확정될 때까지 사표를 제출하지 않고 직무를 수행하는 경우는 더러 있었지만 고위공직자, 그것도 부시장이 비리혐의로 구속된 뒤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는 것은 아주 이례적이다. 이유야 어떻든 물의를 일으킨 장본인이 먼저 사의를 표명하는 것이 도리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그러나 양 부시장은 그렇게 생각지 않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서울시 고위관계자는 “양 부시장이 구속 초기에는 (구두로)사퇴의사를 밝히기도 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청계천 복원공사를 마무리하고 싶다는 의사를 강하게 내비치고 있다.”고 전했다. 이는 양 부시장이 당초 8월까지만 있기로 했다는 얘기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다. 혹자는 양 부시장의 이같은 태도를 그가 학자 출신인 점을 꼽기도 한다. 공무원들은 구속되면 결백여부를 떠나 조직에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사직서부터 내지만 학자들은 자신의 명예 때문에 섣불리 사표를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행정 2부시장의 장기유고 사태를 설명하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시장과 양 부시장 사이에 ‘특별한 뭔가’가 있을 것”이라는 근거없는 의혹도 시 주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이러한 의혹은 점점 부풀려질 것이다. 이 시장의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 시장은 취임사에서 “부정부패 없는 깨끗한 서울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행정2부시장 장기유고를 보면서 이 시장이 ‘깨끗한 서울만들기 공약’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도 든다. 야당출신 서울시장으로서 분한 마음도 읽혀진다. 이성적인 판단을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행정 2부시장은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서울시에만 있는 직책이다. 서울시보다 인구가 많은 경기도에도 행정 2부지사는 없다. 서울시 행정 2부시장은 기술직을 총괄하며, 청계천 복원공사, 도시계획위원회 등 서울시의 핵심 정책들을 다룬다. 시 공직협의회에서는 양 부시장이 구속되자마자 후임을 즉각 임명할 것을 촉구했다. 이들은 나아가 “행정 2부시장이 이렇게 불필요한 자리라면 없애야 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현재 도시계획국장과 뉴타운 보좌관이 행정 2부시장의 빈 자리를 어렵사리 메우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명박 시장은 행정 2부시장 인사 시기를 놓쳤다. 그렇다고 재판이 끝날 때까지 이 상태로 갈 수는 없는 일이다. 누구나 그릇된 판단을 할 수 있다. 잘못을 알고 이를 바로잡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용기이다. 몇달전 이 시장은 복원된 청계천의 시작부에 위치한 모전교의 재시공을 지시한 적이 있다. 이를 두고 이 시장의 한 측근은 “용기있는 결단”이라고 치켜세웠다. 실기했지만 이를 바로 세운다면 늦지 않은 게 세상 이치다. 야당 시장으로서 ‘분함’은 개인적인 것이며 서울시민을 위한 시장의 태도는 아니다. 시민을 위한 ‘용기있는 결단’을 기대한다. 개인적인 억울함이야 있다 하더라도 양 부시장이 먼저 사의를 밝히는 것도 해법이 될 수 있다. 강동형 지방자치뉴스부 차장 yunbin@seoul.co.kr
  • 연정→개헌→중대선거구→野총리 ‘럭비공’?

    연정→개헌→중대선거구→野총리 ‘럭비공’?

    노무현 대통령의 ‘야당과의 연합정부(연정) 구상’ 발언이 보도된 지 11일로 일주일이 지났지만 그 구상의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지에 여당인 열린우리당조차도 제대로 ‘감(感)’을 잡고 있는 것 같지가 않다는 평가다. 계파간 이해도 엇갈린다. ●손발 안맞는 黨·靑 노 대통령과 청와대가 ‘연정 정국’초반에 “공론화하겠다.”고 연일 기염을 뿜어댔지만, 여당 대표 등 지도부들은 “큰 의미 아니다.”면서 찬물을 끼얹었다. 당·청간에 손발이 안맞은 것이다. 청와대 조기숙 홍보수석은 “권력구조 개편”이라며 내각제 개헌의 가능성마저도 열어놓았지만,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장은 “논의는 시기 상조”라며 뒤엎었다. 그러나 문 의장은 10일 ‘취임 100일 기념 기자회견’에서 “중·대선거구제에 합의하면 총리 지명권과 내각제 수준의 권력을 이양하는 방안을 대통령에게 제의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박병석 기획위원장도 사견을 전제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총리를 맡는 대연정”을 제안했다. 이는 지난 7일 노 대통령이 이미 중앙언론사 편집·보도국장 간담회에서 “우리 정치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한다면 내각제 수준으로 대통령 권한을 이양할 용의가 있다.”고 언급한 데 대해 간신히 화답한 것이라는 평가다. ●연합정부는 대체 누구와? 문 의장은 처음에 ‘연정 구상’이 보도되자 “교과서에서도 나오는 것”으로 폄하하면서 “내각을 통해 장관 몇 사람을 주는 것을 당당히 합의해오면 소연정, 야당과 정부가 합쳐서 하면 중연정, 제일 큰 야당과 여당이 하면 대연정”이라고 설명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민주노동당뿐만 아니라 민주당·한나라당도 연정 대상인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한나라당과 민주당에서 즉각적인 반발이 나왔다. 민노당은 노회찬 의원을 비롯해 일각에서 “비정규직법안 등 정책에서 양보하면 가능하다.”는 등 호의적으로 반응했다. 열린우리당과 민노당의 지지도가 연동하는 상황에서 ‘개혁 연대’를 꿈꿨음직하다. 그러나 10일 ‘박근혜 대표 총리’발언이 나온 뒤로 민노당 지도부는 재차 “연정 불가”를 강력히 선언했다. ●야당에 총리지명권까지? 여당 내부에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재야파에서는 “노 대통령이 성사 가능성이 없는 연정을 들고 나오는 이유를 모르겠다.”면서 “민노당이나 민주당이라면 몰라도 정체성이 다른 한나라당과 연정을 하면 당내 반발이 만만찮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여권의 ‘차기 주자’ 중 하나인 정동영 통일부 장관측은 “노 대통령이 대연정과 내각제라는 개념으로 차기 대권구도를 흔들어 놓음으로써 레임덕을 최소화하는 효과를 얻은 것은 확실하다.”고 평가했다. 반면 ‘친노 직계’인 이광재 의원은 “남북관계와 북핵문제가 중요해진 시점에서 정치권이 한 목소리를 내는 게 중요한 만큼 연정 논의를 의미있게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문소영 박지연기자 symun@seoul.co.kr
  • 문의장 “선거구 개편 전제 野에 총리지명권”

    문의장 “선거구 개편 전제 野에 총리지명권”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장이 선거구제 개편을 전제로 야당에 총리지명권을 이양하는 방안을 제안했으나 야당은 이를 일축하는 등 여야간 연정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문 의장은 10일 노무현 대통령의 연정 구상과 관련,“국회가 지역구도를 해소할 수 있는 선거제도를 합의해 만들면 야당에 총리지명권과 내각제 수준의 권력을 이양하는 방안을 대통령에게 제안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문 의장은 이날 취임 100일을 맞아 서울 영등포 중앙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고질적인 지역주의 타파와 그 구도 위에 성립된 현재의 낡아빠진 지역정치 구조를 바꿀 수 있다면 누구든지 논의하고 얼마든지 협의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언제 어느 때나 모든 정파와의 연대가 가능하며, 한나라당도 여기에 포함된다.”고 덧붙였다. 문 의장은 특정 정당이 특정 지역을 싹쓸이해 지역정당화를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현행 소선거구제의 대안으로 중대선거구제와 권역별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제시했다. 그는 “지역구도 해소를 위해 제일 중요한 것은 선거구제 개편”이라고 말했다. 문 의장은 이를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제3기 정치개혁협의회’를 17대 국회 임기 내에 구성, 운영할 것을 야당에 제안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민생과 동떨어진 얘기’,‘헌법 파괴적 발상’이라며 즉각 반대하고 나섰다. 박근혜 대표는 문 의장의 회견 직후 “지금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와 전혀 관계가 없는 얘기를 계속 해야 하느냐.”며 거부 의사를 밝혔다고 전여옥 대변인이 전했다. 민주노동당과 민주당도 “선거구제와 연정은 무관하다.”는 이유를 들어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한편 문 의장은 이날 회견에서 “오는 8월15일 광복 60주년을 맞아 국민대통합의 전기를 마련하기 위한 대사면을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고 강조했다. 사면 대상으로는 서민생계형 전과사범, 가벼운 경제사범은 물론 불법대선자금 관련 정치인도 포함시켰다. 문 의장은 북한의 6자회담 복귀와 관련, 남북 국회회담 개최와 이를 위한 실무접촉을 우리 국회와 북한 최고인민회의에 제안했다. 그는 “필요하면 적절한 시기에 당 의장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최근 입시안을 둘러싼 정부·여당과 서울대의 마찰에 대해 문 의장은 “3불 정책은 기본원칙”이라고 전제한 뒤 “본고사의 부활이 아니면서 서울대가 자율권을 갖는 안이 타결되기를 바란다.”고 언급했다. 또 부동산 문제에 대해 문 의장은 “부동산 투기는 공공의 적”이라면서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투기 이익을 철저히 환수하겠다.”고 밝혔다. 박찬구 이종수기자 ckpark@seoul.co.kr ▶관련기사 4면
  • “중대선거구제땐 지역구도 깬다”

    “중대선거구제땐 지역구도 깬다”

    10일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장의 취임 100일 기자회견은 고질적인 지역구도를 타파하기 위해 선거구제를 개편하자는 제안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특정 지역에 기반을 둔 현재의 고질적인 정당구조를 고칠 수 있다면 ‘국정의 절반’을 야당에 과감하게 넘기겠다는 뜻이다. 이는 노무현 대통령이 최근 언론사 편집·보도국장단 간담회에서 “내각제 수준으로 대통령의 권력을 이양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것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문 의장이 10일 회견에서 “중대선거구제만 도입되면 지역구도는 반드시 깨진다고 본다.”고 호언장담한 부분이다. 총리지명권의 이양을 전제로 선거구제를 개편해 ‘영남당’과 ‘호남당’으로 나뉜 정치판의 폐해를 뜯어고치는 데 ‘올인’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전병헌 대변인은 “지역구도를 깨려면 선거구제를 개편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라면 기득권도 포기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정논란 선거구제로 압축 문 의장의 언급은 그동안 뚜렷한 방향성 없이 중언부언 흘러갔던 여권의 연정론을 선거구제 개편으로 압축해 ‘설익은’ 개헌론을 톤다운시키는 효과도 낼 것으로 관측된다. 여권내 기류도 비슷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분위기다. 유시민 상임중앙위원이 지난 8일 KBS 심야토론에서 “현 시점에서 연정론과 선거구제 개편은 따로 떼내어 논의하기 어렵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만 문 의장은 “중대선거구제는 한나라당이 반대하고 있어 권역별 비례대표제나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포함하는 쪽으로 가야 어느 정도 해결이 되겠는데, 그러려면 현재 지역구 기득권과 맞물려 의석 수를 늘리는 문제가 생긴다.”면서 “그러니 정개협에서 논의해 보자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8·15대사면 건의도 밝혀 문 의장은 이날 8·15 광복절 대사면 건의와 여야정 정책협의회 가동 등도 함께 제안했다.‘정략적 제안’으로만 비쳐지는 것을 경계하는 듯 민생에도 방향을 잡은 것으로 여겨진다. 당 안팎에서는 문 의장의 제안이 선거구제 개편을 통해 연정 구상의 나락을 펴보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다는 해석도 제기되고 있다. 문 의장은 “(선거제도 합의가)제1야당을 염두에 두고 한 말임에 틀림없지만, 다른 당과도 가능하다.”면서 “민주 정당이 제 정파와 연대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다.”며 여지를 남겼다. 문 의장의 회견 내용은 향후 정치일정이나 파급력으로 볼 때 여권내 조율을 거친 결과물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야당이 일제히 반발한 데서 보듯 ‘게임의 룰’을 정하는 일이 카운터파트의 불참으로 현실화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서울대 논술시험은 강남 특권층만 혜택

    서울대 논술시험은 강남 특권층만 혜택

    김창호 국정홍보처장이 서울대의 2008학년도 논술시험 도입 방침에 대해 정면비판하고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 김 처장은 취임 100일을 맞아 6일 저녁 기자들과 가진 만찬에서 “국가지원을 받는 서울대가 국가시책에 부응하지 않는 것은 당위성이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처장의 서울대 비난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그는 “1994년 대학입시에 논술시험이 처음 도입됐을 당시 서울대는 논술시험에 52점을 배정해 놓고도 편차가 크면 수능성적이 낮은 학생이 합격하게 되고, 이럴 경우 합격생 전체의 수능성적이 낮아질 것을 우려해 편차를 5점까지만 뒀다.”면서 “이제 와서 논술로 평가하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이어 “서울대는 지금 대학원 지원자가 갈수록 줄어드는 등 연구기능 상실의 위기를 맞고 있다.”며 “이를 보완할 생각은 않고 입시선발에만 매달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김 처장은 특히 “논술시험으로 혜택을 보는 사람은 결국 부동산투기로 이익을 보는 사람들과 같은 일부계층일 것”이라며 “한마디로 서울대의 행태는 강남 일부 특권층에 기대 뭘 해보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같은 발언은 정부와 열린우리당의 당정회의 직후 나온 것으로, 서울대의 입시안을 본고사 부활 의도로 보고 이를 적극 저지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진경호기자 jade@seoul.co.kr
  • 與 “이젠 민생 매진” 野 “票지고 민심 얻어”

    與 “이젠 민생 매진” 野 “票지고 민심 얻어”

    ● “이젠 민생 구할것” 열린우리당은 7,8월을 민생정책 활동기간으로 삼아 현장 실천 운동에 매진한다는 계획이다. 지도부는 이 기간 소속 의원에게 외유 자제를 촉구했다. 한 핵심 당직자는 1일 “해임건의안 부결로 정국 운영의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면서 “민생정책활동 추진단을 구성, 국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실질적 성과를 마련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소속 의원을 분야별 10개팀으로 나누기로 했다. 자영업자 지원대책, 사회적 일자리 창출 대책, 청년 실업 대책, 농어촌 삶의 질 향상, 신빈곤층 지원, 기초 생활 보장 대책, 저출산 극복 대책, 고령사회 대책, 대기업과 중소기업 양극화 해소 대책, 비정규직 노동자 대책 등이다. 민생활동이 ‘반짝 이벤트’에 그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각 팀별로 현장 방문과 간담회, 정책토론회, 제도·입법화 과제 선정 등을 거쳐 8월 말 의원 워크숍에서 보고토록 할 예정이다. 또 오는 11일 문희상 의장의 취임 100일을 맞아 1박2일간 금강산을 방문, 화합을 다지고 정국 운영 방안을 논의키로 했다. 문 의장을 비롯, 상임중앙위원과 시·도당 위원장, 소속 의원 등 100여명이 참가한다. 한편 윤광웅 국방장관은 이날 국방부 차관보급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병영문화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국방개혁을 차질없이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票지고 민심 얻어” 한나라당 지도부는 ‘표결’엔 졌지만 ‘민심’은 얻었다고 투표 결과에 애써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당의 전반적 분위기는 약간 가라앉아 있어 보인다. 비주류 일각에서는 지도부의 느슨한 대응 전략을 비판하면서 책임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강재섭 원내대표는 주요 당직자 회의에서 “노 대통령이 오기 정치로 윤 국방장관을 구하는 데 성공했지만 엄청난 민심을 잃었다.”며 “정치는 지는게 곧 이기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또 이기는 것이 사실은 지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맹형규 정책위 의장은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의 야합에 의해 통과된 정부조직법 수정안, 윤 장관 해임건의안 부결은 원천적으로 무효”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지도부의 전략 부재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전재희 의원은 “여권의 부당한 정책 방향을 알린 의미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잘못한 것을 견제하는 야당의 책무에 충실하지는 못했다.”며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경우 막으려면 확실하게 막았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이상배 의원도 “대응 자세가 조금 부족했다.”면서 “인사를 다루는 해임건의안을 제일 먼저 의결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반면 불가피론도 있다. 박형준 의원은 “강경 주장을 했던 분들은 불만이겠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지도부의 리더십이 흔들릴 만한 상황은 아니다.”고 지도부를 지원 사격했다. 박찬구 이종수기자 ckpark@seoul.co.kr
  • [긴급점검 부동산정책 전면손질] (하)정책총괄시스템 구축

    “한마디로 ‘각개전투’였지요. 총괄기능을 말하지만 그런 것 없었어요. 청와대나 당에만 다녀오면 수시로 바뀌는데 누가 총대를 메려고 하겠습니까.” 1년 넘게 부동산 대책을 마련해 온 한 관료의 고백이다. 문제가 생기면 그때마다 대책을 급조했을 뿐, 관계부처간 머리를 맞댄 적은 거의 없었다는 것. 노젓는 사람은 있었지만 어디로 가는지를 몰라 따로 놀았다는 얘기다. ●정책총괄 시스템 복원돼야 경제부처의 총사령관이 분명치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덕수 경제부총리가 22일 취임 100일을 맞았지만 부총리에 걸맞은 위상과 권한을 줬는지는 불투명하다. 부동산 정책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영세 자영업자 대책은 중기특위가 관계부처 의견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밀어붙이다 탈이 난 대표적인 사례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예산과 금융감독 기능을 기획예산처와 금융감독위원회에 넘겨준 재경부는 ‘이빨 빠진 호랑이’라고 말한다. 청와대 산하 각종 위원회는 ‘옥상옥’ 기능을 하면서 다른 부처 장관들마저 부총리를 ‘같은 항렬’의 장관으로 인식한다는 것. 그러다 보니 정책수립과 집행과정에서 구심점이 엷어지고 당·정·청이 자기 목소리만 내면서 혼선이 빚어졌다. 경제정책조정회의나 차관회의, 당정회의도 협의와 통제가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나 당의 ‘코드’에 휘둘리지 않고 정책을 소신있게 추진할 ‘정책 포스트’가 요구된다. 당정이 공동기획단을 뒤늦게 만든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정책 일관성·투명성 유지해야 오는 8월말 부동산 종합대책을 내놓겠다는 청와대 발표는 그간의 대책이 산발적이었음을 시인한 꼴이다.30여차례의 세제개혁, 신도시 건설을 포함한 주택공급 계획, 재건축 규제, 분양원가 공개 등을 검증없이 쏟아내면서 문제점만 드러냈다.“쾌적한 환경을 갖춘 신도시를 건설하겠다.”는 건설교통부 장관의 발언은 이틀도 안돼 ‘빈말’이 됐다. 판교 신도시를 공영개발 방식으로 건설하겠다는 발상이 시장의 수요를 정확히 반영한 것인지는 의심스럽다. 단기적으로 집값안정 효과가 있을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중대형 아파트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해 2차 집값파동이 올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시장에 대한 조기경보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선진국의 경우 집값 대비 임대료 비율 등 각종 통계치를 수시로 모니터링, 시장의 과열 여부를 객관적으로 살핀다. 특정 언론의 보도에 화들짝 놀라 미봉책을 내놓는 구태는 버려야 한다. 실거래가 과세와 보유세 강화라는 당초의 세제개혁 방안을 흔들림없이 추진할 필요가 있다. ●정치논리보다 경제논리로 해결해야 여당 등 정치권은 인기영합적이고 즉흥적인 대안 제시를 자제해야 한다. 정부가 정책을 입안하고 최종 확정되기 이전에는 입조심을 해야 한다. 분양가 원가공개를 둘러싼 논란은 확정되지 않은 정책을 놓고 시장에 혼란만 가중시킨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재건축을 둘러싼 서울시와 건교부 등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갈등도 해소해야 한다. 정부가 수용키로 방침을 정한 대기업 수도권 공장증설은 대권을 향한 일부 정치인들의 힘겨루기로 한달 넘게 표류하고 있다. 민간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민간의 부동산개발업자를 특채해 활용하는 게 오히려 나을 수도 있다.”면서 “정부가 급조된 여러가지 대책으로 마치 시장을 임상 실험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박·강 투톱 ‘이상기류’

    최근 들어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강재섭 원내대표간의 ‘투톱체제’에 이상기류가 흐르고 있다. 전여옥 대변인의 ‘대졸 대통령론’ 발언과 곽성문 의원의 ‘골프장 맥주병 투척 사건’ 등을 놓고 박 대표의 대처방식에 강 원내대표가 우회적으로 불만을 표출하고 나선 것이다.‘투톱’은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등 현안에 대해서도 이견을 노출, 당론 확정과정에서 적잖은 혼선을 예고하고 있다.●姜,‘전여옥 고사작전?’ 지난 17일 한나라당에선 박 대표의 사실상 유일한 핵심 측근인 전 대변인과 관련돼 이례적인 일들이 벌어졌다. 전 대변인은 이날 열린 ‘6월 국회 점검회의’에 불참했다. 회의 직전 의원국에서 참석 대상이 아니라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원내대표 산하에 있는 의원국에서는 ‘윗분 지시’라고만 밝힐 뿐이었다. 당 공식회의에서 대변인이 제외되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로 전 대변인에 대한 ‘고사작전’이 시작된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이어 열린 강 원내대표의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도 미묘한 상황이 펼쳐졌다. 간담회가 끝날 무렵, 김형렬 대변인 행정실장이 “전 대변인이 축하 케이크를 보냈다.”며 촛불 켠 케이크를 전달하려 하자 강 원내대표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이 자리에서 뭐 그런 걸 하느냐.”며 “다음에 하자.”고 거절했다. 그러나 케이크는 김 실장이 대변인에게 알리지 않고 ‘알아서’ 마련한 것이었다. 전 대변인은 “나 모르게 내 주변에 많은 일들이 벌어지는 것 같다.”며 허탈해했다.●“나비효과론은 지도부 겨냥” ‘투톱’은 위기 관리와 정책 현안에 대해서도 이견을 노출하고 있다. 강 원내대표는 전 대변인 및 곽 의원 파문 확산에 대해 “지도부의 미온적인 대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도 지도부인 점을 감안하면 박 대표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노출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 15일 기자간담회에서도 “‘나비효과’ 발언은 전·곽 두 의원을 겨냥한 발언이 아니라 지도부의 자성을 촉구하는 의미”라고 말했다. 분양원가 공개논란과 관련, 박 대표는 ‘반(反) 시장적 요소를 갖고 있다.’는 입장인 데 반해 강 원내대표는 ‘반 시장적이지 않다.’고 말해 정책 결정에 혼선을 초래하고 있다. 앞서 박 대표와 김덕룡 전 원내대표도 크고 작은 파열음을 내다가 결국 김 전 원내대표의 조기 사퇴로 이어졌다. 박 대표와 강 원내대표간의 이상기류도 ‘투톱체제’의 한계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차기 대권이라는 ‘공동 목표’는 그 틈을 더 벌리게 하는 촉매제가 될 공산이 크다.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혁신 공기업탐방] (10) 정종환 한국철도시설공단 이사장

    [혁신 공기업탐방] (10) 정종환 한국철도시설공단 이사장

    ‘서로 믿고 보람을 느끼는 신바람나는 일터’ ‘청렴도 최하위, 당신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대전에 본사를 둔 한국철도시설공단에 들어서자마자 맞닥뜨리는 문구다. 연간 5조원의 사업비를 쓰는 거대 공기업의 위험성을 적시한 경고이자 회사의 지향점을 명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정종환 이사장은 29일 “공단 설립 1년 만에 212개 기관을 대상으로 실시된 혁신경영진단에서 상위에 평가됐다.”는 말로 그간의 성과를 자랑(?)했다. 서울신문 오풍연 공공정책부장이 ‘전통 철도맨’이자 타고난 ‘경영꾼’으로 불리는 정 이사장을 만나 향후 개혁 방향 등을 들어봤다. 철도시설공단의 역할은 무엇인가. -철도구조 개혁에 따라 철도건설 전문조직으로 지난해 1월 출범한 공단은 12년의 고속철도 건설 경험과 노하우, 고속철도시스템의 핵심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는 철도 엔지니어링 전문기업이다.21세기 국가철도망 구축, 남북철도 연결사업, 북한철도 현대화작업에 나아가 유라시아 등 국제철도 연결사업에 이르기까지 철도 르네상스 시대를 선도하는 역할을 부여받았다. 역점 추진 분야를 소개해 달라. -공단은 동북아시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엔지니어링 전문기업’으로의 도약이 최종 목표이다. 이를 위해 14개의 전략과제를 선정했고 전 직원들이 일사분란하면서도 공격적으로 단계를 밟아가고 있다. 이중 공단을 일류기업으로 만들기 위한 전사적 경영혁신, 윤리경영, 고객만족경영, 통합정보시스템(ERP) 구축 등이 최우선 과제이다. 핵심 역량인 사업관리와 품질관리 능력을 강화하는데 무게를 두고 있다. 다른 두 조직의 결합에 따른 불협화음이 표출됐다. -공단은 고속철도공단과 철도청의 건설부문이 통합돼 출범했다. 경영혁신 성공과 일류기업 도약의 원천은 바람직한 조직문화에 있다. 이를 위해서는 조직·인사 혁신, 열린 조직문화 구축 및 학습 조직화가 이뤄져야 한다. 우리는 창립 멤버로서 막중한 책임을 안고 있다. 전 직원이 참여하는 4번의 워크숍을 통해 회사의 나아갈 방향을 밝히고 협력을 요청했다. 물꼬는 쉽게 터졌다. 우리 직원 모두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전사적 경영혁신은 무엇인가. -일류로 가기 위한 핵심 포인트는 경영혁신이다. 동북아 시대 경쟁력을 갖춘 전문엔지니어링 기업이라는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업무프로세스 개선, 윤리경영, 조직문화 변혁 등을 동시에 강력하게 빅뱅(Big-Bang)방식으로 추진하는 것이다. 지난해 공공기관 중 최대 규모인 70명으로 경영혁신단을 구성해 경영혁신 마스터플랜을 수립했다. 업무프로세스를 저비용 고효율 구조로 바꾸는 한편 경영혁신전문가 확보 등 인재양성에 주력하고 있다. 독자적 전략과제(6시그마) 수행 전문가 212명과 현장개선과제 수행 리더(부장급) 133명을 양성했고 2004년 말 기준으로 총 83건의 업무프로세스 개선을 통해 300억원에 이르는 재무성과를 올렸다. 혁신의 기본 틀은 6시그마인가. -100년 넘게 이뤄진 철도건설 방식을 근본적으로 뜯어 고치는 작업이 한창이다.80대 과제를 선정해 경험이 아닌 통계적이고 과학적 기법으로 개선시키고 있다. 이미 경험했고 정부가 드라이브를 걸어주고 있어 가속도가 붙었다. 여기에 ‘Work-Out’제와 ‘Town-Meeting’이라는 혁신 틀을 도입했다. 워크아웃제는 부장급 180명을 퀵윈리더로 임명해 주변에서 가벼우나 효과가 큰 과제를 선정, 개선하는 방식으로 “가랑비에 옷 젖듯” 대단한 성과를 올리고 있다. 윤리경영과 고객만족을 특히 강조하고 있다. -윤리경영은 공단의 최대 약점이나 양보가 불가능한 극복 과제이다. 지금도 건설분야에는 고약(?)한 관행이 남아 있다. 지난해 부패방지위원회의 청렴도 측정에서 최하위로 평가됐다. 마음은 아팠지만 오히려 잘됐다는 판단이 섰다. 우선 공단은 협력업체와 임직원간 부패행위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윤리경영실천협약’을 맺었다. 최근 암행감찰에 적발된 건에 대해서는 직원뿐 아니라 해당 회사에까지 책임을 물었다. 업무와 관련된 비리는 올해안에 확실히 졸업을 시키겠다는 각오로 ‘전쟁중’이다. 아무리 철도건설을 잘 해도 윤리에 문제가 생기면 기업 가치는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법이다. 우리의 최대 고객은 철도공사이고 2차 고객은 협력업체다. 업체들이 제대로 일을 해줘야 우리가 살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청렴도 부문 향상도에서는 올해 1위를 할 자신이 있다. 해외 사업 진출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중국의 ‘4종 4횡’ 철도 프로젝트 참여에 공을 들이고 있다. 차량은 경쟁력이 낮아 고속철 건설 노하우를 전면에 내세웠다. 고속철 건설당시 초기 5년간 15%에 머물던 진척률을 매년 15%씩 향상시킨 ‘사업관리시스템’의 필요성을 중국이 인정하고 있다. 지난해 북경지사를 설립하고 10명이 상주하면서 감리 부문과 시스템 개발 참여가 확정됐고,4개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접촉 중이다. 천성산 공사 상황도 궁금하다. -지난 4일 공단과 천성산대책위가 3개월간 환경영향공동조사를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공동조사는 6월 초 시작될 것으로 보이며 구조지질·암반공학·지하수·지구물리탐사·생태계 등 5개 분야로 나누어 시행될 예정이다. 조사가 시작되면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현재 밤을 세워가며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2010년 고속철 2단계 개통은 차질이 없겠는가. -경부고속철도의 완벽한 개통은 우리 철도산업에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교통혁명으로 21세기 교통문화의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의심치 않는다. 현 고속철은 절름발이로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2010년 개통이 반드시 필요하다. 일부 구간의 공사가 중단되면서 2010년 완공에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천성산 환경영향공동조사 실시로 의구심이 더해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조사가 끝나면 2010년 완전 개통을 준수할 수 있다고 본다.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장비와 인력 추가 투입 등 ‘비상대책’도 검토할 것이다. 정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핵심역량 사업관리에 집중 철도시설공단은 철도건설 전문기관임에도 설계에서 시공, 감리까지 전 과정을 100% 아웃소싱하고 있다. 결국 공단의 핵심 역량은 사업관리 능력으로 집약된다. 사업관리 능력은 책정된 예산으로 적기에 고품질의 철도공사를 마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업을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과 사람이 필요했다. 미국에서 도입해 고속철도 건설사업에만 적용하던 시스템을 업그레이드시켜 국산화한 뒤 이를 57개 전 사업에 적용하고 있다. 관건은 전문가 양성이다. 고심끝에 지난해 6월 사내대학으로 PM(프로젝트관리)아카데미를 개설했고,7월 미 국제사업관리협회(PMI)로부터 공식 교육기관으로 인정받았다.2006년까지 전 직원의 20%인 300명을 PMP(사업관리전문가)로 육성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1년도 안 돼 이 계획은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현재 318명이 자격을 취득했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 중 전 직원 대비 PMP 보유율(21.2%)이 가장 높다. PMP가 되기 위해서는 조건(3년 이상 실무경력,35시간 교육)을 갖추고 PMI시험에서 200점 만점에 137점 이상 취득해야 한다. 합격하려면 하루 2시간씩 100일은 꾸준히 공부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의무도 아니고 인센티브가 미미한 편인데도 비용(응시비 60만원)까지 부담하는 등 자발적인 참여가 잇따랐다. 사내 아카데미 입과 기회를 놓친 직원 가운데는 30만∼50만원의 자비를 들여가며 교육을 받고 시험에 응시하는 경우까지 있다. PMP는 직종별·직급간 벽을 깨는 긍정적인 효과도 유발시켰다. 나아가 현장 근무를 하기 위해서는 PMP 자격 보유가 필수가 될 전망이다. 공단은 향후 사업과 기술자그룹이 중심이 되는 매트릭스 조직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 중심이 되는 PMP에 대해서는 종합평가를 실시해 등급을 세분화하고 최상급 PMP에게는 단위 프로젝트도 맡길 계획이다. 기우일 PM 아카데미 원장은 “조직의 핵심 역량을 분명히 제시하고 동기를 부여하자 빠르게 확산됐다.”면서 “인재 육성이 국제 경쟁력 강화 등 회사의 역량을 강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전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정종환 이사장은 정종환 이사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혁신 전도사’다. 지난 2000년 철도청장 재직시 공공부문 최초로 6시그마를 도입했다. 이같은 준비를 위해 경영서적 500권을 독파했다고 한다. 국내 기관과 유수 기업 등의 러브콜을 받고, 지금까지 혁신을 주제로 한 강연만도 100여 차례를 넘는다. “경영혁신을 통한 존경받는 기업 실현” 한국철도시설공단 초대 이사장으로서의 취임 일성이다. 이를 입증하듯 수상경력 역시 화려하다. 한국능률협회선정 고객만족 최고경영자상과 고객만족경영대상, 대한민국마케팅 대상, 행정서비스헌장 대상 등을 거머쥐었다. 정 이사장은 행정고시 10회(1971년)로 공직에 입문, 건설교통부에서 교통과 건설분야 요직을 두루 거쳤다. 철도청장 재직 중 성공시대의 주인공으로 방송출연을 했다. ▲충남 청양(57)▲청양농고·고려대 정치외교학과▲건설교통부 국토계획국장·수송정책실장▲철도청장▲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이사장 대전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대담 = 오풍연부장 (11)회는 근로복지공단
  • [한국을 빛낼 중견기업] 유한양행 차중근 사장

    [한국을 빛낼 중견기업] 유한양행 차중근 사장

    ‘사회 환원, 윤리 경영, 노사 공동체….’ 요즘 들어 기업마다 부르짖는 ‘모토’지만 국내 기업 가운데 이를 충족시켜 주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기업의 양심과 경영 이념은 곧잘 눈앞의 이익에 밀려 뒷전인 탓이다. 그러나 유한양행은 80년간 이를 고지식하게 실천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매출이 3000억원대에 불과한데도 수십조원 매출의 거대 재벌 못지않게 많은 관심과 부러움을 받고 있다. 또 대(代)를 이어가며 경영권을 세습하는 국내 기업 문화 현실에서 36년째 전문경영인 체제를 고수해 소유구조 측면에서도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남들은 더디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큰(Big) 회사보다 좋은(Good) 회사를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전 임직원과 손잡고 한발 한발 전진하는 것이 기업 발전의 지름길입니다.” 유한양행만의 독특한 전통을 이어가는 차중근(59) 사장의 경영 철학이다. 그는 지난해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가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가’ 부문에서 43위를 차지했다. 차 사장은 1974년 영업사원으로 출발해 2003년 최고경영자(CEO)에 올랐다. ●집안의 ‘복덩이’ 차 사장은 1945년 8월20일 강원도 횡성에서 태어났다. 그의 출생 덕분에 가족은 친가인 평양에 돌아가지 않고 그 곳에서 터전을 잡았다. 이후 38선이 그어지고 한국전쟁이 터졌다. 그가 집안의 ‘복덩이’로 불린 연유다. “부모님이 갓난이인 저 때문에 객지인 횡성을 떠나지 못했어요. 당시 친가인 평양으로 돌아갔더라면 아마도 북에서 평범한 삶을 살고 있겠지요.” 그는 대학 졸업 후 대학교수가 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군입대 문제로 학업을 중단했다. 당시 군 보직은 항공 통제 업무. “근무가 4교대로 이뤄지다 보니 점점 안일함과 나약함에 빠지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계속 이대로 시간을 보내다가는 아무것도 안 되겠다는 생각마저 들었죠. 그래서 돌파구로 선택한 것이 베트남전 지원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패기가 어디에서 나왔는지….” 그가 베트남에서 경험한 것은 순수한 인간의 마음이었다. 교수의 꿈을 접고 유한양행에 입사한 계기가 됐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전쟁터에서 부대원들은 지휘관의 통제를 철저히 따라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티 한 점 없이 순진무구해 보이는 베트남 아이들의 눈동자를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지금은 아무 힘이 없지만 훗날에는 반드시 남을 돕는 일과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습니다.” ●회사의 ‘기둥’으로 평사원으로 입사한 그는 CEO에 오르기까지 주변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1974년 영업 사원으로 입사해 경남 마산에 배치를 받았다. 그의 성실과 정직함이 통했는지 당시에 생소했던 인센티브를 받고, 지점장의 소개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또 그를 눈여겨본 연만희 전 사장은 1988년 그를 본사 공장으로 발령냈다. 공장 업무는 특성상 물품을 제조하고, 납기일에 맞춰 물건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근무시간 외에도 잔업이 적지 않았다. 특히 늘 납기일에 쫓기고, 직원들을 설득해 잔업을 진행하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1989년 유한양행은 당시 소련에 의약품을 수출할 수 있는 기회를 맞았다. 컨테이너 10대 분량으로 금액으로는 30억원대 규모. 다만 4개월이라는 납기일을 맞추지 못하면 유한양행의 신용에 오점을 남길 수도 있는 프로젝트였다. 시간이 촉박한 데다 공장설비가 자동화되지 않은 탓에 이론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루 8시간 근무에 익숙한 직원들을 설득하는 데 많은 노력을 쏟았습니다. 기일을 못 맞추면 돈을 받지 못하는 것은 기본이고,‘신용의 상징’인 유한양행 이미지에 큰 손상을 입을 수 있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었죠. 덕분에 납기일을 겨우 맞출 수 있었습니다.” ●CEO로서의 첫 발 그가 사장 취임 직후 가진 첫 행보는 현장속으로였다. 이를 위해 종업원 중시, 현장 중시, 실천 중시를 강조하는 ‘100일 작전’을 진행했다. “현장을 모르고는 전략을 세울 수 없으며, 경영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신념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또 실천 경영을 위해 ‘균형성과 관리제’를 도입, 객관적이고 정량화된 수치로 사원들을 평가토록 했다. 이와 함께 분기마다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며 1100여명 직원의 ‘고민 해결사’로 나섰다. “‘유한’이라는 울타리에서 신뢰를 바탕으로 조직을 하나로 만들어 내는 것이 사장으로서 가장 큰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급변하는 경영환경에서 도태되기 쉬울 뿐 아니라 생존조차 보장 받을 수 없습니다.” 그는 회사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CEO 혼자만 잘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전 직원이 일치단결해 각자 세운 목표를 달성하려는 의지를 불태워야 합니다.CEO는 직원들에게 개인과 기업의 입장, 앞으로 함께 나아가야 할 비전을 제시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유한양행은 노노(勞勞) 기업” 차 사장은 1주일에 한차례씩 노조위원장과 격의없이 대화를 나눈다. 각종 경영 현황과 목표에 대한 정보 등을 보고회에서 투명하게 공개한다. 또 직원들의 의사를 가감없이 전달하는 ‘사원운영위원회’를 가동, 공동운명체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특히 ‘노사합동연수회’와 성과급 분배 등은 유한양행이 ‘노사 기업’이 아닌 ‘노노 기업’임을 보여주고 있다. “정직한 기업활동, 건전한 기업 윤리, 기업 이윤의 사회환원 등 유한양행만의 전통은 노사 화합에서 출발합니다. 모든 사안이 ‘나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라는 인식이 기업 문화에 깔려 있다고 봅니다.” 차 사장이 올해 힘을 쏟는 사업은 신약개발과 R&D(연구개발) 부문이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이미 국내 시장을 상당 부문 잠식하는 상황에서 토종 기업이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해외시장 개척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유한은 현재 궤양 치료제인 신약의 개발을 눈앞에 두고 있다. 소화성궤양 치료제의 국내 시장 규모는 4000억원 규모로 신약인 ‘레바넥스’가 출시되면 연간 200억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매출액 대비 5∼6% 수준인 연구개발비를 앞으로는 10%까지 늘릴 방침입니다. 이를 통해 신약 개발과 해외시장 진출에 더욱 속도를 낼 생각입니다. 내부적으로는 2010년 매출액 1조원을 달성하고자 합니다.” 기업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위해 80년간 외길을 달려온 유한양행. 그 전통을 계승, 발전시켜 나가는 차 사장은 “기업 규모가 크다고 해서 존경받는 기업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사원과 주주, 소비자, 언론 등 모든 관계자들의 신뢰를 구축하고, 공동 운명체 관계로 ‘윈-윈’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좋은 기업, 존경받는 기업’으로 지속성장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유한양행은 어떤 회사 유한양행은 고 유일한 박사가 ‘건강한 국민만이 잃어버린 주권을 되찾을 수 있다.’는 신념으로 1926년 설립한 국내 대표적인 제약회사다. 전통에 걸맞게 ‘삐콤씨’,‘안티푸라민’ 등 국내 대표 의약품을 생산해 지금은 국민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설립자인 고 유 박사는 기업 경영권을 자식이 아닌 사내 직원에게 넘겨 국내 전문경영인 체제를 선도했다. 전 재산을 공익법인(유한재단)에 넘겨 기업이윤의 사회 환원에도 앞장섰다. 내년에 창사 80돌을 맞는 유한양행은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올해 완공 예정인 충북 오창산업단지의 신공장은 모든 공정이 국제적 품질기준인 ‘CGMP(의약품 제조 관리기준)’에 적합한 시설로 건설되고 있다. 경기도 기흥에는 국내 제약업계 최대 규모인 연구소가 올 하반기에 문을 연다. 또 자체개발 신약인 소화성 궤양치료제 ‘레바넥스’는 이르면 올해 출시될 예정이다. 에이즈 치료제 원료인 ‘FTC(항바이러스제)’의 수출도 호조를 보이고 있다. 유한양행은 앞선 기술력과 견실한 경영,80년간 지켜온 설립자의 기업이념을 기반으로 향후 생활용품과 건강기능식품, 원료의약품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해 ‘삶의 질을 높여주는 종합보건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올해 매출액은 지난해보다 12.6% 늘어난 3831억원, 영업이익은 1.2% 증가한 490억원으로 잡았다. ■ 차중근 사장은 ▲1946년 8월20일 출생 ▲64년 2월 숭문고등학교 졸업 ▲68년 2월 동국대 상학과 졸업 ▲74년 10월 유한양행 입사 ▲93년 1월 기획실 부장 ▲95년 1월 기획관리실 이사 ▲95년 3월 기획관리실장 겸 재정담당 이사 ▲96년 1월 총무담당 상무 ▲97년 3월 전무(기획관리본부장) ▲2002년 7월 부사장 ▲2003년 3월 유한양행 사장
  • 강정원 국민은행장 ‘숨가빴던 100일’

    강정원 국민은행장 ‘숨가빴던 100일’

    ‘희망퇴직을 통한 구조조정과 조직개편, 한 달간의 전국순회 워크숍과 5500억원대의 흑자전환 성공 등….’ 지난해 11월 국내 최대은행인 국민은행의 수장을 맡은 강정원 행장의 지난 100일간 행적이다. 리딩뱅크의 지휘봉을 잡으며 화려하게 복귀한 강 행장 앞에는 국민은행을 덩치에 걸맞은 최고 은행으로 키워야 한다는 막중한 임무가 놓여 있었다. 취임 이후 아침 6시 출근, 밤 11시 퇴근을 일삼으며 현장을 누빈 결과, 지난해 적자에서 벗어나 5500억원 이상의 당기순이익을 올리는 등 안정감을 찾았다. 강 행장은 우선 조직 슬림화를 통한 효율성 증대에 초점을 뒀다. 국민·주택은행이 합병된 뒤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해 생산성이 떨어지는 등 합병 시너지를 높이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 그는 취임사에서 “조직 효율성을 높이겠다.”고 공언한 뒤 2차례의 조직개편과 함께 노조와의 협상을 통해 대규모 명예퇴직을 이끌어냈다. 서울은행장 시절, 구조조정을 통해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데 성공한 경험이 큰 도움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취임 이후 강 행장은 상품 및 서비스 관련 행사장마다 나타나 고객들을 직접 맞이했다. 지난해 11월 국내 최초로 전자통장을 출시했으며, 부동산중개업소와의 대출서비스 1만번째 회원 현판식에 참석, 서비스 확대 의지를 피력했다. 지난해 12월 월례조회에서 ‘은행들의 전쟁’을 선포한 뒤 한달 동안 전국을 순회하며 6500여 직원들을 만나 ‘필승’을 다짐하기도 했다. 강 행장은 사석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국민은행의 부족한 점을 꼬치꼬치 물으며 메모하는 습관이 있다. 지난달 은행권 최초로 시작한 ‘투신상품 종합시스템’도 최대 판매사로서 서비스 제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수렴, 전격 도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강 행장이 노사 협력을 통한 모범적인 구조조정 모델을 제시했으며 흑자 달성 및 대규모 쇄신인사를 통해 새바람을 일으킨 만큼 임직원이 하나가 돼 리딩뱅크의 입지를 굳힐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국내 자동차 4社 CEO ‘경영능력 시험대’에

    국내 자동차 4社 CEO ‘경영능력 시험대’에

    국내 자동차업계를 이끄는 최고경영자(CEO)가 ‘나홀로 뚝배기’ 대(對) ‘외국인 트로이카’ 체제로 재편됐다. 그야말로 국적없는 무한경쟁 시대를 맞아 CEO들의 경영능력이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쌍용차, 대표이사에 중국인 중국 상하이기차집단고분유한공사는 27일 쌍용자동차 인수를 공식 발표했다. 인수대금 5900억원(지분율 48.9%)을 채권단에 지불해 쌍용차의 최대주주가 됐다. 이로써 쌍용차는 5년여만에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졸업하고 상하이기차집단의 계열사로 새 출발하게 됐다. 경영진도 새로 꾸렸다. 이날 임시주주총회를 열어 장쯔웨이(蔣志偉·58) 상하이기차집단 부총재를 새 대표이사로 추가 선임했다. 소진관 현 대표이사 사장은 유임됐다.‘장-소’ 2인 대표이사 체제이지만 소 대표는 대외행사 등에 주력하고, 주주 대표로서의 중요한 의사결정은 장 대표 몫이어서 실질적인 대표는 후자인 셈이다. ●MK “어차피 경쟁상대는 세계” 쌍용차가 중국인 대표를 추가 영입함에 따라 국내 완성차업계의 CEO는 현대·기아차 정몽구(MK·67) 회장을 제외하고 사실상 모두 외국인이 석권했다.GM대우차(미국 GM그룹 계열)는 닉 라일리 사장(56)이, 르노삼성차(프랑스 르노그룹 계열)는 제롬 스톨 사장(51)이 포진해 있다. 외국인 트로이카에 둘러싸인 정 회장측은 “어차피 현대·기아차의 경쟁상대는 세계인 만큼 크게 개의치 않는다.”면서 “그러나 토종 기업으로서 뚝배기의 저력을 보여주겠다.”고 장담했다. 품질경영을 통해 이미 저만치 앞서가고 있는 만큼 확실하게 다지기에 나선다는 전략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차를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나라 고유의 문화와 사람들의 성향을 본능적으로 읽어내는 것도 중요하다.”면서 “외국인 CEO들이 이같은 흐름을 얼마나 세심하게 읽어낼지는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한국 속으로 파고드는 외국인 CEO들의 ‘내공’도 만만찮다. 라일리 GM대우 사장은 TV광고에 직접 출연, 푸근한 인상을 소비자들에게 확실하게 심어주었다. 폭탄주도 마다하지 않는다. 다소 딱딱해 보이는 인상과 달리 스톨 르노삼성 사장도 불쑥 터지는 유머감각을 앞세워 고객층을 파고들고 있다. 장쯔웨이 쌍용 대표도 취임하기가 무섭게 “통합 100일 프로그램 가동”을 선언했다. 상하이기차집단과 쌍용차의 생산·판매 및 연구개발(R&D) 능력과 두 나라의 문화를 통합해 국내외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설명이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고궁관람료 최고 3배 오른다

    고궁 관람료가 내년 1월1일부터 최고 3배까지 오른다. 또 국내 고구려 유적들이 집중적으로 보전 관리되며, 문화재 지정과 보전 등 관리제도도 대폭 개선된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13일 취임 100일을 맞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은 내용의 문화재 정책방향을 밝혔다. 궁궐 관람료는 경복궁이 현행 1000원에서 3000원으로 3배 오르며, 창덕궁은 2300원에서 3000원으로인상된다. 창경궁·덕수궁·종묘는 현재와 같이 1000원만 받지만 창경궁·덕수궁의 점심시간대(정오∼오후 1시) 무료 관람제는 없앤다.7∼18세 청소년은 그동안 무료로 입장했으나 앞으로는 성인요금의 50%를 내야 한다. 중국의 ‘동북공정’ 등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고구려 유적의 보존관리도 집중적으로 이루어진다. 특히 지금까지 단위 문화재로서 관리해오던 중원고구려비, 장미산성 등 충북 지역의 고구려 유적과 경기도 연천·파주·포천 등에 있는 고구려성 보전을 위해 예산을 집중 지원하기로 했다. 또 지금까지는 신청된 문화재에 한정해 심의지정하던 방식을 문화재청이 직권 상정해 심의하는 방식으로 바꿔 문화재 등급과 실제 문화재적 가치가 배치되는 모순을 시정키로 했다. 이에 따라 우선 전국 박물관과 개인들이 소장한 백자달항아리 20여점 및 조선시대 계회도를 한꺼번에 출품받아 문화재 지정을 위한 심의에 들어가기로 했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숭산 스님 발자취 ‘세계일화’… 해외포교 한평생

    “언제나 이 순간 밖에 없다. 아무 것에도 집착하지 마라. 우리는 오직 모를 뿐이다! 공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인생과 같이 있는 것이다. 우리 생활과 떨어진, 지식적인 것이 아니라 현실 생활의 영향을 그대로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숭산 스님의 가르침은 명명백백하다.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니, 본래 있는 그대로에서 깨달음을 구하라는 것이다. 스님의 삶은 그 자체가 그대로 커다란 가르침이자 귀감이었다. “다 걱정하지 마라! 만고광명(萬古光明)이 청산유수(靑山流水)니라.”라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열반에 든 숭산 대종사. 스님은 철저한 묵언수행을 원칙으로 했지만 일주일에 한번씩 법회를 열고 제자들과 선에 관해 편지글도 주고 받았다. 숭산 스님과 제자들 사이에 오간 질문과 대답이 ‘공안 인터뷰’다. 수행의 정도가 제각각인 제자들의 질문에 상황에 맞게 답을 들려주는 숭산 스님의 가르침은 부처님의 대기설법과도 통했다. 숭산 스님은 무엇보다 한국 선을 세계에 알린 해외포교의 선구자로 이름을 남겼다. 열반 직전까지 스님이 조실로 주석한 화계사는 한국불교 세계화의 전초기지였다. 스님의 열성적인 포교 덕에 홍콩, 미국, 캐나다, 폴란드, 영국, 스페인 , 브라질, 프랑스 등 세계 곳곳에는 어김없이 한국식 선원이 들어섰다.1989년에는 한국 선지식으로는 처음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포교 활동을 시작했고,1994년에는 베트남을 방문해 지도자급 승려들과 법거량(法擧揚, 불가의 스승이 제자의 수행 정도를 문답으로 점검하는 것)을 나누기도 했다. 숭산 스님은 1964년에는 한국 불교 최초로 승려대학교육과 종단이 학비를 제공하는 종비생 제도를 실시하는 업적을 남겼다. 한국불교 전파에 남다른 애정을 보였던 숭산 스님의 마음 속에는 한국 근대불교 중흥의 선지식인 만공 스님의 가르침이 자리잡고 있었다. 만공은 수덕사에서 주석할 때 ‘세계일화(世界一花, 세계는 한 꽃)’라는 말을 남겼고, 숭산 스님은 이 가르침을 실천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숭산 스님의 독특한 수행지도를 통해 배출된 서양인 제자는 5만여명. 외국인 승려 가운데 직계 제자만 해도 50명이 넘는다.‘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화계사 국제선원장 현각 스님, 미국 캘리포니아 모하비 사막에서 한국식 절 ‘태고사’를 짓고 있는 무량 스님 등도 숭산의 제자다. 현각 스님은 2001년 경북 영주 현정사 주지로 취임하면서 세인들의 큰 관심을 모았다. 숭산 스님으로부터 “오직 할 뿐(Only Do)”이라는 가르침을 받은 무량 스님은 “숭산 스님은 대단히 융통성있는 스승이다. 미국과 미국인의 현실에 맞게 다양한 가르침의 방편을 쓰시는 분이었다.”고 회고한다. 숭산 스님은 일제 때 독립운동을 하다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감옥에서 풀려난 뒤 친구들과 함께 부모님으로부터 500원을 훔쳐내 만주 국경을 넘어 독립군과 합세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자신의 정치적 운동이나 학문으로는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없음을 깨달은 스님은 결국 출가의 길을 걷게 된다. 수행승으로서의 숭산의 구도행각은 일반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편이다. 스님은 계를 받고 10일이 지나 원각산 부용암에서 백일기도에 들었다. 식사로는 솔잎을 말려 빻은 가루로 벽곡( 穀)을 하면서 매일 20시간 동안 신묘장구대다라니 기도를 했다. 그런가 하면 하루에도 몇번씩 얼음을 깨서 목욕을 하기도 했다. 마침내 100일이 되는 날, 스님은 갑자기 자신의 몸이 떠나 무한한 공간에 있음을 느꼈다. 다시 자신의 몸으로 돌아왔을 때 스님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었으며, 모든 것이 참다운 자성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숭산 스님은 “선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스님의 가르침으로부터 큰 의심 덩어리 하나 챙길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족하다. ●숭산 스님 행장 ▲1927년 평안남도 순천군 순천읍 출생 ▲1947년 공주 마곡사 출가 득도 ▲1949년 수덕사에서 고봉 선사를 법사로 비구계 수지 ▲1958년 화계사 주지로 취임 ▲1960년 대한불교 신문사 설립, 초대사장 취임 ▲1966년 일본 홍법원 개설, 초대원장 취임 1992년 홍콩 국제선원 개설 ▲1997년 대한불교 조계종 원로스님 ▲2000년 계룡산 국제선원 무상사 개원 ▲2001년 대한불교 조계종 법계스님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강한 금감위’ 유도 총력전

    ‘강한 금감위’ 유도 총력전

    “복잡하게 얽힌 문제를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 퍼즐 풀듯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 우리 감독 당국자들이 참고할 만한 대목이 많은 것 같습니다.”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 겸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주변사람들에게 미국 작가 댄 브라운의 추리소설 ‘다 빈치 코드’를 선물했다.‘시장자율 확대’와 ‘금융의 공공성 확보’라는, 양립하기 힘든 두개의 코드를 한 틀에 담아내겠다는 자신의 포부를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사람들은 해석한다. 금감위와 금감원이 ‘선 굵은 감독’,‘힘 있는 감독’을 위해 다양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그 중심에 지난 8월4일 취임 이후 ‘법과 원칙’을 강조하며 내부혁신 노력을 해온 두 기관의 최고경영자(CEO) 윤증현 위원장이 있다. 윤 위원장은 “시장자율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금융기관의 공공성을 회복하겠다.”고 여러차례 강조해 왔다. 기업활동을 도와야 할 은행들이 오히려 위축시킨다고 몇차례에 걸쳐 원색적으로 비난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윤 위원장은 법과 원칙을 지킴으로써 ‘인위적인 관치(官治)’의 경계는 절대로 넘어서지 말라고 주문하고 있다. 특히 이를 위해 ‘감독당국의 위상 강화’를 강조한다. 금감위 관계자는 “감독당국의 위상이 높아져야 책임감도 확실히 부여되고 전문성이 높아진다는 게 위원장의 생각”이라면서 “반면에 오랫동안 외부의 불만을 사온 고압적 자세를 버리라는 말도 자주 한다.”고 전했다. 윤 위원장은 취임 후 첫 행보로 은행, 보험, 증권 등 각 금융권역 기관장들을 만나 애로사항을 들었다. 시장의 소리에 귀 기울이겠다는 메시지였다. 또 금감위 인터넷 홈페이지에 위원장과 금융소비자를 잇는 ‘핫라인’도 개설했다. 직원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취임 한달여만에 사무관급 이상 금감위 직원과 국실장급 이상 금감원 직원 100여명 전원과 점심·저녁을 갖는 강행군을 했다. 윤 위원장 취임 이후 크게 달라진 것 한 가지. 주요 회의에 금감위와 금감원 담당자들이 동시에 참석한다. 이전에는 따로따로 위원장실에 들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두 기관이 업무를 이중으로 처리해 비생산적이고, 의사결정도 늦어진다.”며 윤 위원장이 오자마자 취한 조치다. 11일로 취임 100일을 맞는 윤 위원장이 방카슈랑스 2단계 확대, 집단소송제 도입, 경기침체 속 금융기관 건전성 확보 등 산적한 난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시장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비즈&피플] 워크아웃, 우린 이렇게 졸업했다

    [비즈&피플] 워크아웃, 우린 이렇게 졸업했다

    벼랑끝에 몰린 9회말 투아웃. 다들 자리를 뜨며 ‘결국 이렇게 끝나는구나.’하는 순간,“경기는 끝나지 않았다.”며 모래알처럼 흩어진 정신력을 하나로 모아 역전에 성공, 우리 곁에 돌아온 기업들이 있다. 몰락한 ‘명가(名家)’로, 환란의 ‘주범(主犯)’으로 세간의 손가락을 받았던 크라운제과, 대우인터내셔널, 쌍용건설 등이 차례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꼬리표를 떼고 ‘명가 부활’을 선언했다. 그러나 지금의 모습이 있기까지 이들이 받은 수모와 서러움, 눈물 등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더욱이 한때는 재계를 호령했던 ‘명가의 자손’들이었으니….‘이대로 무너질 수 없다.’며 이들을 지탱시킨 힘은 ‘주먹 불끈’이었다. 실추된 명예와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달라진 세상의 인심을 속으로 삭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들이 부활의 불씨를 지필 수 있었던 것은 막판 위기에서 승부의 흐름을 바꾼 ‘구원투수(CEO)’와 한몸처럼 믿고 따라온 ‘야수(임직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퇴직금 턴 ‘사원의 힘’-김석준 쌍용건설 회장 19일 서울 송파구 향군회관에서 열린 쌍용건설 창립 27주년 행사장에 선 김석준 회장의 얼굴에는 만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김 회장은 “그동안 허리띠를 졸라매고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거치면서도 동요하지 않고 회사를 살린 직원들의 노고에 감사드린다.”며 5년 8개월에 걸친 워크아웃 졸업을 자축했다. 생일과 동시에 워크아웃을 끝낸 쌍용건설 임직원들도 “고등학교 3년의 입시전쟁과 군복무를 한꺼번에 마친 기분”이라며 기뻐했다. 다른 기업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쌍용건설의 워크아웃 ‘졸업기’도 피눈물로 얼룩졌다. 1997년만 해도 2400명에 달했던 직원은 2000년 700명선으로 줄었다. 당장 이익 내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사업부가 무더기로 없어졌고 회사 돈으로 해외유학가서 박사학위까지 받아 온 ‘우수인재’들마저 내보내야 했다. 자고 일어나면 없어지는 동료 때문에 타 부서에 전화하기가 두려울 정도로 살벌한 구조조정을 단행했지만 직원들의 살림살이는 갈수록 쪼그라들었다. 한때 업계 최고수준인 상여금 800%를 받던 직원들이 98∼2000년 단 한푼의 상여금도 집에 가져가지 못했다. 대리 5년차의 세전 연봉이 1400만원에 불과했다. 당시 사내게시판에는 “오늘이 아들 생일이었는데 버스정류장에 마중나온 아들에게 뭐라도 쥐어주려고 주머니를 뒤졌더니 1200원밖에 없었다. 초코파이와 풍선으로 생일상을 대신했다.”는 가장의 사연이 올라와 사무실이 울음바다에 빠지기도 했다. 김 회장이라고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쌍용그룹 회장으로 있다 98년 채권단의 요청으로 5년만에 회사로 돌아온 김 회장은 “앞으로 나를 회장이라 부르지 말라. 나는 CEO일 뿐이다.”라며 몸을 낮췄다. 추석, 설 명절때는 한번도 빠짐없이 베트남, 인도, 중동 등 해외건설현장을 찾아 고향에 가지 못한 직원들과 함께했다. 회생의 디딤돌이 된 서울 내수동 ‘경희궁의 아침’ 분양때는 스스로 태스크포스팀 팀장이 돼 미국 LA로 건너가 교민들을 상대로 200여 가구를 분양하기도 했다. 지난해 유상증자가 필요할 때 직원들이 퇴직금을 털어 당시 2500원이던 주식을 5000원에 매입하자 김 회장도 유일한 재산인 서울 이태원동 자택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주식을 샀다. 대신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채권단 지분 25%에 대한 ‘우선매수청수권’은 직원들에게 양보했다. 김 회장의 솔선수범은 직원들의 자신감을 일깨워줬다. 전 직원이 출퇴근시간 지하철역에 어깨띠를 두르고 나가 분양전단지를 나눠주며 광고비를 아꼈고 경쟁사가 분양을 포기한 아파트도 인근 주민들을 파고드는 집념으로 100%분양에 성공했다. 김 회장이 회사로 돌아온 98년 자본잠식 상태로 7704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던 쌍용건설은 올해 1조 2050억원의 매출에 626억원의 이익을 바라보고 있다. 부채비율은 160%에 불과하다. 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인적 네트워크’ 승리-이태용 대우인터내셔널 사장 “어제의 수출역군이 하루아침에 죄인 취급을 받을 때는 말할 수 없이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 더욱 비참한 것은 ‘종합상사의 생명줄’인 거래선의 이탈과 젊은 직원들의 이직이었습니다.” 이태용 대우인터내셔널 사장이 워크아웃 기간을 회고하다 내뱉은 첫 마디였다. 그가 사장에 취임한 뒤 며칠간 했던 업무는 떠나는 직원들의 사표 수리였다. 회사의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이들을 잡을 명분이 없었던 것. 이 사장은 “이대로 쓰러질 수밖에 없나.”하고 밤잠을 설치기가 일쑤였다고 했다. 당시 대우인터내셔널이 ㈜대우로부터 분리될 때만 해도 부채비율이 940%, 채무액은 1조 3000억원을 웃돌아 회생이 불가능해 보였다. 그는 우선 월례조회를 부활하고, 조직 안정을 위해 사보를 재창간해 회사 소식을 임직원 가족들이 알 수 있도록 했다. 이어 주말마다 직원들과 북한산을 등반,CEO와 직원들간의 신뢰 회복에 나섰다. 이 사장은 또 채권단을 일일이 찾아가 “대우의 해외 네트워크는 대우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재산이다. 이를 포기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수출 기반을 잘라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설득했다. 그 결과 해외 네트워크 유지에 부정적인 채권단이 돌아서게 됐으며, 대우인터내셔널 회생에 결정적인 기반이 됐다. 그러나 워크아웃 기업이라는 점 때문에 문전박대도 다반사였다. 이 사장은 인도 국영석유공사의 회장을 만나기 위해 수차례 ‘노크’를 했지만 결국 무위로 끝났다. 국내에서도 거래 포기가 잇따른 가운데 유상부 포스코 당시 회장이 대우와의 거래를 유지하라는 ‘특명’이 소문나면서 다른 거래선들이 확보됐을 정도. 이 사장은 “돈줄이 보여도 투자자 모집이 안 되거나 투자를 할 수 없을 때가 가장 큰 고통이었다.”고 밝혔다. 직원들의 어려움도 이에 못지 않았다. 상여금 동결은 기본이고 사소한 경비 지출도 일일이 채권단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관계자는 “필요한 사무실 집기 교체에도 쓸데없는 곳에 돈 쓴다는 채권단의 쓴소리를 들을 때는 참담할 지경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이런 가운데 이 사장은 그야말로 ‘단비’ 같은 소식을 접했다.2000년 대우그룹의 몰락으로 다들 몸을 사릴 때 미얀마 정부가 대우의 적극적인 법인활동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성공 가능성이 큰 미얀마 ‘A-1’광구의 개발권을 준 것. 이 사장은 지난해 말부터 미얀마 가스전의 성공과 행운을 기원하는 마음에서 ‘황금색 넥타이’만을 매고 다녔다. 그의 바람이 통한 것일까. 지난 1월 미얀마 가스전 발견은 대우인터내셔널의 도약에 결정적인 발판이 될 것으로 보인다.2010년부터 매년 1000억∼1500억원의 배당수익을 안겨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대우인터내셔널은 현재 부채비율 168%, 상반기 매출은 2조 4612억원, 순이익 904억원을 기록할 정도로 내실있는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크로스 마케팅’ 결실-윤영달 크라운제과 사장 크라운제과 윤영달(59) 사장이 회사를 부도상태에서 구해낼 수 있었던 무기는 ‘크로스 마케팅’과 ‘등산경영’이었다. 1998년 부도가 난 크라운제과는 오로지 외형확장만을 좇은 우리 기업들의 전형적 실패담이었다. 윤 사장은 “외환위기가 오기 전에 몸집 부풀리기에만 치중하는 경영을 했다. 이익규모내에서의 투자가 아니라 빚을 늘려가며 껍데기만 키우는 바보짓을 했다.”고 후회했다. 윤 사장은 창업주인 고 윤태현 회장의 장남으로 연세대 물리학과 석사과정을 졸업한 이공계 출신 최고경영자(CEO).1967년 처음 경영에 참여한 이후에는 72년 ‘조리퐁’이란 대히트작을 내기도 했다.77년부터는 한국자동기라는 공장자동시설 생산업체를 운영하고, 풍력발전을 연구하는 등 개인사업을 하다 95년 다시 회사경영에 복귀했다. 그리고 외환위기를 만난 것이다. 채권단회의에서 화의결정이 확정되자 윤 사장은 골프에서 손을 뗐다. 명동에 골프연습장을 지을 정도로 골프광이었다. 담배도 끊고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100㎏대의 몸무게를 가진 그에게 등산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5분을 가면 15분을 쉬어도 숨이 가라앉지 않았다. 이제는 아침 8시에 나가 저녁 9시까지 하루종일 직원들과 북한산을 탈 정도로 체력을 길렀다. 등산을 마치면 직원들과 같이 목욕탕에서 등을 밀었다. 직원의 신발이 떨어지면 사장이 직접 뛰어가서 새로 사왔다. 점심때 산 중턱에서 직원들과 함께 걸치는 막걸리는 단단한 응집력으로 연결됐다. 물론 극도의 구조조정 과정속에서 1200여명의 직원은 800여명으로 줄었고,20여명의 임원은 단 한명만 남았다. 직원들의 사기를 일으키고 단결을 일궈낸 것이 ‘등산경영’이었다면 ‘크로스 마케팅’은 매출을 일으키는 발판이 됐다. 크로스 마케팅도 땀흘리는 등산 중에 나온 아이디어였다. 크로스 마케팅이란 국적을 뛰어넘어 동종의 경쟁 업체들끼리 생산, 판매 등을 분담하는 전략적 제휴를 뜻한다.2000년부터 타이완 2위의 제과업체 왕왕의 쌀과자를 들여와 팔았다. 지금까지 누적 판매량은 800억원어치에 달한다. 타이완 1위의 제과업체인 이메이와의 크로스 마케팅을 통해 ‘美인블랙’이란 제품을 지난해 11월 내놓았다. 출시 100일 만에 매출 100억원이란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크라운제과의 제품도 이들 업체를 통해 타이완으로 수출 중이다. 결국 회사는 2002년말 5년여만에 화의에서 졸업하지만 아버지인 윤 회장은 회사의 재기를 보지 못하고 99년 노환으로 별세한다. 윤 사장은 크로스 마케팅을 타이완에 이어 중국, 일본, 홍콩, 호주, 스페인으로 확대 중이다. 국내에서는 해태제과를 인수하기 위한 자금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해태제과 인수에 성공하면 크라운제과는 다시 국내 2위의 제과업체로 복귀하게 된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사설] ‘대북 특사’ 취지는 좋지만

    현재 남북관계가 미국의 대통령 선거와 핵 문제 등 국제적 요인으로 인해 소강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최근 남북간 군사 실무회담이 열렸으나 이렇다 할 결과를 내놓지 못했다.남북대화가 전적으로 주변상황에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국제관계가 꼬이면서 남북대화가 지지부진해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현재 정치권 핵심 인사들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도 국제질서 속에서의 남북관계 진전이다.열린우리당 이부영 의장이 취임 당시 남북정상회담을 거론한 것이나,지난 12일 관훈토론회에서 대북특사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도 남북관계 진전을 위한 제안이라고 볼 수 있다.이 의장은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 김대중 전 대통령이 특사 역할을 맡아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지난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킨 김 전 대통령이 경색된 남북관계의 물꼬를 터준다면 더이상 바랄 나위 없을 것이다.하지만 남북관계는 정치적 수사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우리가 경험으로 알고 있다. 정동영 통일부장관도 지난 8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대북특사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그러나 정부 통일 주무장관의 희망과 요구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이렇다 할 답변을 내놓고 있지 않다.북한측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현재 상황에서 말로 대북특사나 정상회담의 기대만 부풀리는 것은 다분히 정치적인 제스처로 보인다.설사 물밑 접촉에서 정상회담이나 특사교환에 대한 진전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더욱 차분하고 신중해야 하는 것이 남북관계다.아무 때나 생색내고 떠들 일은 아닌 것이다.정치인이라면 남북관계가 중요할수록,국제관계가 복잡할수록 말보다 실천이라는 점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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