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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통령 취임식 의사당 광장서/인수위 잠정 결정

    김영삼차기대통령의 대통령직인수위(위원장 정원식)는 7일 제3차 전체회의를 갖고 취임식준비 문제를 논의,취임식장소를 여의도 국회의사당앞으로 잠정 결정했다. 그러나 우천에 대비,잠실 올림픽체육관등 실내행사장도 따로 준비해 두기로 의견을 모았다.
  • 차기대통령 취임식/일 총리 참석 불투명/오 주일대사

    오재희 주일대사는 6일 『오는 2월25일 대통령 취임식때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일본총리가 참석할 것인지 여부가 현재로서는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본국과의 업무협의차 5일 귀국한 오대사는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같이 말하고 『미야자와 총리의 방한은 아직 일본정부의 방침으로 정해지지 않은 상태』라고 밝혔다.
  • 가나대통령 취임식/안응모씨 특사파견

    정부는 7일 열리는 가나공화국의 제리 존 로링스대통령 취임식에 안응모 전내무장관을 경축특사로 파견했다고 외무부가 6일 밝혔다.
  • 정부인수·국정개혁 동시 추진/민자,인수위­당정책위 역할 교통정리

    ◎부처현황 파악·취임식 준비 총괄/인수위/경제·교육 등 세부 정책과제 개발/정책위 민자당은 대통령직인수위와 당정책위간의 역할분담문제가 일단락됨에 따라 본격적인 새정부출범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인수위는 6일 5개분과위간사를 임명하고 향후 자체운영일정을 확정짓는 등 부처별 업무현황파악 및 인수채비를 완료했다.당정책위는 이와 별도로 신한국건설을 위한 새정부의 개혁정책 및 공약실천우선순위 선정작업에 착수했다. ○…김영삼차기대통령을 비롯한 민자당지도부는 이날 당정책위와 인수위의 업무범위를 서로 중복되지 않도록 명확히 구분하는 「교통정리」를 마무리했다. 즉 인수위의 업무범위를 ▲정부현황 파악 ▲취임식준비총괄 ▲정부의 정책현안을 분석해 차기대통령에게 보고하는 것 등으로 설정하고 구체적인 정책개발은 당정책위가 맡기로 결론을 내린 것이다.이같은 결론은 김차기대통령의 당중심 개혁추진방침과 궤를 같이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다만 현재진행중인 정책현안의 경우 인수위가 현황을 파악해 차기대통령에게 보고하되구체적인 정책대안 개발은 정책팀에 일임키로 양해가 이뤄졌다.신경식인수위대변인은 이날 『당의 정책공약은 정책위가,정부업무 인수과정에서 제기되는 정책현안들은 안수위가 다루되 서로 긴밀하게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고 말해 이를 뒷받침했다. 이에 따라 당정책위에서 인수위로 파견된 전문위원들은 부처별 현황보고 등 인수작업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 정책위의 정책개발에도 동참하는 등 1인2역을 수행케 된다. 이같은 역할분담이 이뤄짐에 따라 정책위는 이날 황인성의장 주재로 정조실장단회의를 열고 경제·재정금융·교육개혁·부정부패방지·행정개혁·과학기술진흥·중소기업진흥·교통 및 환경개선·사회 문화분야별로 세부적인 개혁정책과제를 압축했다.정책위는 이날 회의에서 지난해 공약개발시스템을 재가동,내주초 김차기대통령에게 1차보고서를 제출하는데 이어 늦어도 이달말까지는 신한국건설을 위한 구체적인 정책과제 선정과 집행계획입안을 완료키로 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이날 전체회의와 5개분과위회의를 열고 앞으로의 운영일정을 확정했다. 인수위는 우선 취임준비와 관련,7일 상오 총무처로부터 대통령취임식 준비상황을 보고받고 다음달 25일 거행되는 취임식이 국민화합의 계기가 될수 있도록 가급적 참석인원을 광범위하게 선정하고 소외계층을 다수 참석시킨다는 방침을 정했다. 인수위는 또 정부기구개편과 관련,김차기대통령이 선거공약으로 제시한 정부조직개편안은 검토는 하되 법개정을 수반하는 문제인 만큼 구체적인 실행은 새정부가 다룬다는 계획하에 인수위는 청와대 기구개편만 담당키로 했다. 이에따라 인수위는 정무담당분과위가 이 문제의 실무를 맡아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개편의 전체적인 골격은 전체회의를 통해 확정짓기로 했다. 신경식인수위대변인은 『김차기대통령이 취임 즉시 일을 시작할 수 있도록 조정이 필요한 부분을 먼저 손질하는 것』이라고 청와대기구개편의 배경을 설명하고 『구체적인 윤곽은 이달 하순쯤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인수위는 이와함께 향후 세부일정도 수립, ▲6일부터 10일까지는 요원충원과 정부측의 취임식준비보고를 청취하고 ▲11일부터 17일까지는 각분과위별로 소관부처 현황보고 청취및 보고서준비 ▲18일부터 30일까지는 김차기대통령에게 부처별 업무현황을 보고한다는 계획을 확정했다. 이와관련,정무분과위는 이날 ▲11일 내무부와 경찰청 ▲12일 법무부 감사원 ▲13일 총무·공보·법제처 ▲14일 총리실 정무1·2· 대통령실 ▲15일 서울시로부터 보고를 받는다는 일정을 확정했다.또 경제2분과위는 ▲11일 농수산·건설부 ▲12일 교통·체신부 ▲13일 노동부 과기처로부터 현황보고를 들은뒤 14일 종합토의를 거쳐 15일부터 보고서 준비작업에 들어간다는 방침을 정했으며 사회·문화분과위는 ▲11일 교육·문화부 ▲12일 체육청소년·보사부 ▲13일 환경·보훈처로부터 보고를 청취키로 했다. 한편 인수위는 실무진요원 충원과 관련,이날자로 당전문위원을 인수위 전문위원으로 겸직 발령하는 한편 당사무처요원 15명과 취임준비실무를 담당할 총무처 직원 5명으로 행정실무진을 구성,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 대북 수교회담 재개/일,3월에 타진예정

    【도쿄=이창순특파원】 일본정부는 5일 김일성 북한주석의 「신년사」를 분석한 결과 북한측이 작년 11월 이후 중단된 일·북한 국교정상화회담의 재개에 대해 전향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판단을 굳혔다고 일본 도쿄(동경)신문이 6일 보도했다. 이에 따라 일본정부는 오는 2월하순 새로운 한국대통령의 취임식이 끝나는 것을 기다려 3월께 북한측에 회담재개를 타진할 예정이다.
  • 청와대비서실 기능중심 확대/김 차기대통령 구상

    ◎부처업무 총괄권 부여 검토/국가관리·국정순위 직접통제/비서실장은 총리급인사 기용/취임식전 개편완료 방침/인수위 김영삼차기대통령은 집권기간동안 「일하는 청와대」로 운영한다는 방침아래 기구중심의 현 청와대비서실을 기능중심 체제로 전면 개편을 구상중인 것으로 6일 전해졌다. 김차기대통령의 이같은 구상에 따라 차기정부 출범준비를 위한 대통령직인수위(위원장 정원식)는 이날부터 구체적인 청와대기구 개편안 마련에 착수했다. 김차기대통령은 자신의 개혁자문팀이 보고한 건의안을 토대로 한 청와대비서실 체제개편 윤곽을 인수위에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차기대통령이 구상중인 청와대개편방안은 현재와 같은 정부 사정 행정 경제 민정 등 기구 중심의 체제가 아닌 교통 교육 대외전략 문화복지 통일등 국가현안문제 해결을 위한 기능체제로의 전환이라고 한 측근은 전했다. 김차기대통령은 또 현 청와대비서실이 외교부문을 제외하곤 정부부처와의 연락중심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고 판단 지시·통제·평가·연락 등 총괄적 기능을 부여하는 방안도 추진중이다. 이를 위해 청와대가 예산편성기능을 갖는 방안도 신중히 검토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차기대통령은 문민시대를 맞아 대통령의 권한및 역할이 크게 바뀌어야 한다고 인식,청와대가 국가관리및 운영전략,국정우선 순위결정 등에 직접 간여해야 한다고 보고 청와대비서실의 규모를 대폭 확대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관련,김차기대통령의 한 핵심측근은 『현 청와대비서실은 약간 확대되긴 했으나 과거 3공시절의 골격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면서 『김차기대통령의 청와대비서실은 기구및 인원,권한 등이 크게 확대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따라 김차기대통령은 청와대비서실장의 인선을 서두를 방침이며,인선도 총리급에 버금가는 인사를 기용할 구상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차기대통령은 최근 『청와대비서실장의 역할이 어느때보다 중요하다』면서 주요권한을 부여할 뜻임을 시시한바 있다. 또 다른 측근은 『현 청와대기구를 모두 없애기보다는 정무·사정 등을 통폐합하고 행정을 분야별로 나누는 방안등을 구상중』이라며 『그러나 부여될 임무는 과거와 판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측근은 『예컨대 대국회기능을 맞고 있는 정무비서실의 경우 내각및 지방정부 당과의 관계등의 업무를 맡게되는 방안』이라고 덧붙였다.
  • 운영일정 등 합의/인수위 전체회의

    대통령직 인수위는 6일 정원식위원장 주재로 전체회의와 5개 분과위원회를 열고 법적 절차가 필요한 정부기구 개편은 김영삼차기대통령의 취임 이후로 미루되 비서실·경호실 등 청와대 직제개편은 취임식 이전에 완료키로 방침을 확정했다. 인수위는 이날 여의도 뉴서울빌딩 사무실에서 열린 회의에서 정부기구개편과 관련,김차기대통령이 선거공약으로 제시한 정부조직개편안을 검토는 하되 법개정을 수반하는 문제인 만큼 새정부출범후 정식 거론키로 의견을 모았다. 신경식 인수위대변인은 그러나 청와대기구개편에 관해서는 『새대통령 취임전에 조정이 필요한 부분은 조정해야 할 것』이라며 『인수위가 법개정이 필요치 않는 범위내에서 개편안을 만들어 김차기대통령에게 보고하는 방안을 마련중』이라고 말했다. 인수위는 이날 향후 운영일정도 협의,▲6∼10일 세부운영계획 확정및 요원충원과 정부측의 취임식 준비보고 청취 ▲11∼15일 각분과위별로 소관부처 장차관으로부터 주요 현황보고 청취 ▲18∼30일 김차기대통령에게 부처별 업무현황보고 등 세부일정을 잠정 확정했다. 인수위는 또 김차기대통령이 총리와 청와대 비서실장등 주요 정부요직에 대한 기초자료제공을 지시할 경우에 대비한 내부자료준비작업도 2월초까지 마무리지을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위는 이와관련,정위원장이 김차기대통령으로부터 받는 지침을 토대로 업무범위를 ▲정부현황 파악 ▲취임식준비 ▲차기 대통령에게 기실시중인 정부의 정책현안 보고 등으로 정하되 인사문제에 대해서는 차기대통령이 구체적 인선자료를 요구할 경우 이에 응하기로 했다. 이날 회의에서 분과별 간사에는 박관용(통일·외교·안보) 최병렬(정무) 이민섭(경제Ⅰ) 양창식(경제Ⅱ) 남재희위원(사회·문화)이 각각 선임됐다. 한편 이날 확정된 분과별 업무보고 세부일정은 다음과 같다. ▲11일=내무·경찰청(정무) 농림수산·건설부(경제Ⅱ) 교육·문화부(사회·문화) ▲12일=법무부·감사원(정무) 교통·체신부(경제Ⅱ) 체육청소년·보사부(사회·문화) ▲13일=총무처·공보처·법제처(정무)노동부·과기처(경제Ⅱ) 환경처·보훈처(사회·문화)▲14일=총리실,정무1·2실,대통령실(정무) ▲15일=서울시(정무)
  • 클린턴 취임 축하사절/국회대표단 10명 파견

    국회는 4일 미 클린턴당선자의 대통령취임 축하를 위해 정재문 국회 외무통일위원장을 단장으로 10명의 외무통일위 소속 의원을 국회대표단으로 파견키로했다. 대표단은 정위원장을 비롯,강신조 박정수 이만섭 이세기(민자)조순승 박실 정대철(민주)조순환(국민)이종찬의원(무소속)등이다. 외무통일위는 5일 정위원장 주재로 3당 간사회의를 열어 구체적인 방문일정을 협의할 예정인데 이들 대표단은 취임식 참석외에 오는 18일부터 30일까지 미국·캐나다·멕시코등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체결 3개국을 순방하며 한반도 통일방안에 관한 국제워크숍도 개최할 계획이다.
  • 소말리아 미군 작전권/클린턴 취임식전 이양

    【모가디슈 AFP 연합】 소말리아 「희망회복작전」에 참가중인 미국은 작전권을 오는 20일까지 이양할 것이라고 프랑스군의 한 소식통이 4일 밝혔다. 프랑스군 연락장교인 다니엘 르느와르 대령은 희망회복 작전권자인 로버트 존스톤장군이 빌 클린턴 미차기 대통령의 취임일인 오는 20일까지 유엔이 임명하는 회교국가 장교에게 작전권을 이양할 것이라고 말했다.
  • 분과위 구성 계기로 본 인수위 활동범위

    ◎정권인수­출범준비 두갈래 임무/“취임식 참석 대상 확대”… 실무 강조/조각과련 인선영향력엔 양론도 김영삼차기대통령 정부의 출범 준비를 위한 대통령직인수위가 4일 상오 현판식에 이어 첫회의를 갖고 본격적인 정권인수 작업에 착수했다.인수위는 이날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그동안 논란을 빚었던 역할과 향후 활동범위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날 첫회의는 분과위구성과 운영방법을 정한 기초회의였던 만큼 뚜렷한 실체를 드러냈다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김차기대통령의 임무부여와 앞으로의 활동여하에 따라 그 본래모습이 달라질수 밖에 없다. 현 상황에서 가늠할수 있는 주 임무는 크게 볼때 「정권인수」와 「출범준비」라는 두가닥으로 압축된다.인수위는 이를 위해 첫회의에서 ▲전문8조로 되어있는 운영규칙을 통과시키고 ▲인수위를 5개 분과로 나눠 3명의 위원을 각각 배정했으며 ▲각 분과위에 자문위원을 둘수 있도록 했고 ▲전체회의는 상오9시,분과위회의는 하오에 개최키로 하는등 4개항을 결정했다. 5개 분과위는 국회의 대정부질문에 맞춰 통일·외교·안보,정무,경제1,경제2,사회·문화분과위 등이다.인수작업해당 부처와 위원은 ▲정원식·박관용·이환의(통일·외교·안보)=통일원 외무부 국방부 안기부▲이해구·최병렬·최창윤(정무)=청와대 국무총리실 내무 법무 총무처 공보처 정무 제1·2 법제처 감사원 ▲유경현·이민섭·장영철(경제1)=경제기획원 재무 상공 동자 ▲서정화·신경식·양창식(경제2)=농림수산 건설 노동 교통 체신 과기처 ▲김한규·남재희·이재환(사회·문화)=교육 문화 체육청소년 보사 환경처 국가보훈처 등으로 나누었다. 인수위는 그러나 김차기대통령이 첫회의 참석,취임식준비 작업을 강조하자 「필요할 경우 특별분과를 둘수 있도록」한 운영규칙을 통과시킴으로써 분과위를 더 늘릴수 있는 길을 터 놓았다. 김차기대통령은 『취임식 행사는 소외계층의 대표를 포함,가급적 각계각층의 인사가 모두 참여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지시한 것이다.그만큼 취임식준비작업을 인수위의 주요 임무로 부각시킨 셈이다. 이같은 정황들은 인수위가 명실공히 정권인수준비를 위한 실무차원의 기구로 파악하게 하는 대목이다.5일은 자료수집및 회의운영일정등을 위해 활동을 중단하고 6일부터 본격 집무에 들어가기로 한 것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는 반증중 하나다. 인수위는 또 이번주부터 각 부처별 업무현황보고를 받은뒤 자문·전문위원과 정부 파견 실무자 등의 도움아래 부처업무의 인수와 인계작업을 벌일 예정이다. 신경식인수위대변인은 『부처의 업무현황을 파악하면서 인수위는 김영삼정부가 계속해서 이어가야할 6공정책사업과 여론을 바탕으로 새롭게 고쳐야 할 부분을 추려내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차기정부 조각과 관련,인선자료마련과 더불어 추천권이 인수위에 있느냐는 점이다.정원식위원장을 비롯,인수위원들은 이 부분에 대해 상당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정위원장은 『조각관련 인사는 아직 예측 불가』라며 『다만 인수위는 차기대통령의 지시에 의거,자료를 만들어 보고할 수도 있을 것이며 여기에는 각료에 대한 검토도 포함될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다.이렇게 될 경우 차기대통령의 조각인사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이 대목에 대해 당쪽의 의견은 사뭇 다르다.김영구사무총장은 『인수위는 말그대로 원만하게 인수작업을 끝내는게 주된 임무가 아닌가 생각된다』고 색다른 견해를 조심스럽게 비치고 있다.구체적인 언급은 회피하고 있으나 『지역성을 강조한 구성으로 볼때 인수위에서 심도있는 인선논의가 진행되기는 어렵지 않느냐』는게 당내의 지배적 분위기이다. 이와관련,김차기대통령은 『당내외 어느 누구도 앞으로 새로운 정부 구성인사에 대해 추천의 권한과 책임이 있다』고 전제하고 『그러나 이 문제는 나와 깊은 의논이 있기를 바란다』고 당부,다소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인수위측은 김차기대통령이 『인사문제에 혼선과 잡음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 점을 들어 이를 인사철학인 「철저한 보안유지」의 재천명으로 해석하고 있는 반면 당내인사들은 「분명한 한계」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인수위 위상제고의 핵심인 인선관련자료 수집및 제출이라는 기본업무에 대해서는 인수위가 맡을것이 확실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다만 주도적인 역할을 하느냐,그렇지 못하느냐는 김차기대통령의 의중에 달려있다.또 인수위의 향후 활동역량 여하가 이를 가늠하는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 국정공백 없는 인계·인수에 역점/정부­인수위 활동 방향

    정부 인계·인수작업이 새해 벽두부터 본격화된다. 정원식전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15인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4일 서울 여의도 뉴서울빌딩에서 현판식을 갖고 정부인수활동에 착수한다. 청와대를 정점으로 한 정부측의 인계작업도 인수위측의 요청이 있게되면 적극 협조한다는 기본원칙 아래 준비를 갖추고 대기하고 있는 상태이다. 따라서 인수위가 출범하는 4일이후부터 국정의 원활한 인계·인수를 위한 양측간 채널이 일제히 가동될 전망이며 정·관계의 관심도 여의도 뉴서울빌딩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인수위원회는 앞으로 새정부의 각료등 요직을 대상으로 한 인선작업과 더불어 실무적 차원의 정부인수,취임준비작업을 병행한다. 새정부의 국정지표설정과 정책입안등은 당의 정책기구를 통해 구체화시키겠다는 것이 김영삼당선자의 복안이다.이는 당을 중심으로 한 정치를 펴나가겠다는 것을 의미하며 인수위원회의 활동범위도 정부인수와 취임준비에 국한시키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정위원장은 지난 31일 인수위원들과의 상견례를 갖고인수위를 정치,외교·안보·통일,경제1,경제2,사회·문화등 5개 분과위로 나눠 작업을 벌여나가겠다는 구상을 밝혔다.이에따라 각 분과위별로 3명씩의 위원이 배치될 것으로 보인다.또 당과 정부에서 상당수 인원이 차출돼 인수위 업무를 지원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관심의 초점은 과연 어떤 인물이 요직에 발탁될 것이냐는데 있다.인선대상은 대략 5백여 자리가 될 것이라는 것이 정가의 관측이다.김당선자가 「인사가 만사」라며 인사에 비중을 두고 있는만큼 경질폭도 6공출범 당시에 비해 훨씬 광범위할 것이라는 추정아래 나온 개략적 계산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인선기준과 대상은 현재로선 김당선자외에는 알길이 없다.특히 김당선자의 인사에 대해서는 예단을 불허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인수위의 인선작업도 각계의 여론을 바탕으로 적정수의 인사를 추천하는 수준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의 인계작업은 심대평청와대행정수석이 지휘·조정하고 실무작업은 윤성태국무총리행정조정실장이 통괄하고 있다.이·취임식은 총무처에서 준비중이다.각부처별로는 기획관리실장이 인계업무를 전담하도록 지침을 내려 둔 상태다. 인계의 핵심은 사람과 문서로 요약할 수 있다.기본흐름은 국정의 공백을 막고 영속성을 기하겠다는 데 있다. 문서인계와 관련,정부는 보존해야할 문서는 이미 정부기록보존소로 넘겼으며 시효가 지난 문서에 대한 정리작업도 대체로 마무리지었다. 인사문제에 있어서는 경질폭을 최소화했으면 하는 것이 정부측의 당연한 희망이다.또 경질된 고위관리에 대한 적절한 배려를 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별정직공무원은 물론 신분보장이 안되는 1급이상 고급 공무원 누구나가 향후 거취에 대해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정부측은 앞으로 인수위와의 접촉과정에서 이같은 희망과 기대를 전할 것으로 보인다. 정권 인계·인수에 따른 명암이 서서히 엇갈리기 시작한 것이다.
  • 대통령직 인수위 15인 첫 회의/오늘부터 본격 정권인수

    ◎정치·제주 등 6개분과위 설치/새달초 총리 등 인선 마무리/당정책위산하 「신경제단」 신설도 검토 김영삼정부의 출범 준비를 위한 대통령직인수위가 4일 상오 여의도 뉴서울 빌딩에서 현판식을 갖고 공식 출범,본격적인 정부인수작업에 들어간다. 정원식위원장을 비롯 15인 인수위는 이날 첫회의를 열고 정부업무 인수인계에 따른 업무분담을 위해 위원 2∼3명을 한 팀으로 5∼6개분과위를 산하에 설치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분과위는 정치,경제,외교·안보,사회,문화,행정·총무등 6개 부로 구성될 전망이며 이·취임식 준비는 행정·총무분과위에서 맡게 된다. 인수위는 또 차기정부의 조각을 위해 각종 인사관련 자료및 정보 수집에 착수,이를 세분화해 이달 말까지 김당선자에게 제출할 방침이다. 김당선자는 이를 토대로 새내각의 국무총리와 청와대비서실장등 핵심인사들에 대한 인선을 빠르면 이달말,늦어도 2월초까지는 마무리 지을 구상인 것으로 전해졌다. 인수위는 개혁을 위한 산하 자문기구의 구성이 백지화되는 대신 당 정책팀이 주도하게 됨에 따라 당과의 긴밀한 협조체제 유지가 필요하다고 판단,당 3역과의 정례회의및 연락기구의 설치문제등도 신중히 검토키로 했다. 이와관련,김당선자는 차기정부의 주요한 국정운영 과제가 경제문제임을 감안,당정책위 산하에 「신경제단」 설치를 구상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경제단은 당내 경제통과 이를 지원할 전문가들로 구성되며 새로운 정책 개발보다 대선에서 제시한 77개공약과 김당선자의 유세공약,지역개발공약등에 대한 중·장·단기별 세부 실천수립이 주요 업무가 될 것이라고 당의 한 고위 정책관계자는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실천해야할 공약이 방대해 신경제단과 별도로 정치 사회 교육 행정등에 대한 전담팀도 설치될 가능성도 있다』면서 『그렇게 될 경우 당의 현 정책팀이 세분화해 전담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위해 민자당은 금명간 당3역회의와 정책위 실장단회의를 열어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 대한매일신보에서 서울신문까지(겨레의 맥박으로 89년:1)

    ◎여명기의 민족지/“항일구국” 염원안고 대한매일신보 탄생/국운 기울어 암울했던 1904년 창간/주권수호 앞장서며 숱한 고난/해방직후 서울신문으로 속간/초대사장에 오세창 취임… 권동진·홍명희 고문에 영입 「대한매일신보」에서 「서울신문」까지,그 시대는 고난으로 점철되었다.1904년 국운이 기울어가는 암담한 나라 운명속에서 한가닥 빛으로 창강된 대한매일신보.그 항일구국지가 1945년 서울신문으로 거듭 태어나기까지는 파란만장한 우리 근·현대사를 함께 살았다.당시 민족의 생존이 그렇듯 일제의 모질고 간교한 탄압에 쓰러진 대한매일신보의 맥락은 서울신문이 잇고있다.일제 강점기 사이에 변화도 없지 않았으나 서울신문의 뿌리는 분명히 대한매일신보에 두었다.그 위대한 항일구국지 창간 1세기를 불과 1년 앞둔 오늘,그 역사를 조명하여 서울신문의 연륜을 다시 헤아리고자 한다. 「대한매일신보」는 대한제국 말기 6년동안 항일언론의 최선봉에서 민족주권 수호의 기치를 높이 들었던 가히 전설적인 신문이었다.근대 언론사에서 「다시 없는민족의 대변기관」으로 평가 받는 이 신문은 나라 안팎이 매우 복잡한 시기에 발행됐다. 국제적으로는 동아시아의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한 일본이 한국의 지배권을 열강으로부터 승인받아 한국을 실질적으로 장악하던 때이기도 했다.그리고 국내정세는 일본의 한국지배를 반대하는 민족운동이 불길처럼 치솟던 시기였다. 특히 나라안에서는 일본의 한국 황무지 개간권을 막으려는 민중운동과 함께 의병 무장투쟁,국채보상운동,애국계몽운동등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대한매일신보는 이러한 격동의 시기에 창간되어 항일구국의 가시밭길을 걸었다.창간한 사람은 영국인 배설(Ernest Thomas Bethell·1702∼1909년)이다. 러·일전쟁때 취재차 한국에 왔던 런던의 데일리 크로니클 특별통신원인 그가 한글전용인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날짜는 89년전인 1904년7월18일로 돼있다.영문판 「코리아 데일리 뉴스」도 동시에 창간했다. 창간에 참여한 인사들의 면모를 보아도 쟁쟁하다.당대의 언론을 주도했던 논객이자 우국지사였던 양기탁을 비롯,박은식·신채호·옥관빈등이 그 주역들. 나중에는 안창호·이갑등 구국운동조직인 서북학회의 인사들도 뛰어들었다. 창간호(타블로이드판)는 한호의 지면이 6면으로 4면은 영문,2면은 한글전용의 2개국어 신문체제였다.그러나 이듬해 8월에는 국한문 혼용판과 영문판 「코리아 데일리 뉴스」(The Korea Daily News)를 분리,2종을 발행했다.1907년5월에는 한글전용 「대한매일신보」를 새로 창간,3종의 신문을 한꺼번에 펴 냈다.국한문·영문·한글등 3종의 신문이 발행되기는 한국 언론사상 초유의 일이다. 황실(고종)의 은밀한 재정적 뒷받침과 민족진영의 도움을 받았다.이러한 정황으로 미루어 대한매일신보의 논조는 처음부터 반일구국일수밖에 없었다.그 첫 지탄공격은 황무지 개간권 요구의 부당성을 지적하면서 시작됐다.이를 시발로 황성신문의 「시일야방성대곡」전재,샌프란시스코의 친일 미국인 스티븐스 저격사건보도,영국의 트리뷴지에 실린 고종밀서사진 전재등 기사와 논설로 항일언론의 횃불을 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의 입장에서는 이 신문의 강력한 반일논조야말로침략정책을 수행하는데 있어 가장 큰 저해요인이었다. 일본은 이에 대응,「경성일보」(일어)「Seoul Press」(영어)등 통감부의 기관지를 직접 발행하여 언론대응공세를 취하기 시작했다.또 한편으로는 「대한매일신보」에 대한 외교적 압력과 사법적인 탄압을 가했다.외교적 압력은 영국측에 대해 배설의 추방요구로,사법적 탄압은 통감부의 신문압수 형식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대한매일신보」의 항일언론 자세는 좀체 꺾이지 않아 국한문판 24차례,한글판 21차례의 압수를 당하면서도 여전히 지속됐다.민족진영의 언론보루로서 이처럼 항일언론을 펼칠수 있었던 것은 이 신문이 영국인 소유여서 치외법권을 누릴수 있었기 때문이었다.이 신문에 몸담고 있던 항일언론투사들의 민족사상과 구국정신이 그같은 논조를 주도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대한매일신보」가 남긴 족적중 또한 특기할만한 것은 이 신문이 주동이 되어 벌인 국채보상운동이었다.이는 을사보호조약이후 일본으로부터 얻은 나라의 빚 1천3백만원을 국민의 성금으로 갚아 일본의예속에서 벗어나려는 일대 구국운동이라 할 수 있다. ○우국지사 대거 참여 대한매일신보는 이 운동의 중심기관이 되던 시기에 사세를 크게 신장,발행부수가 1만부를 넘어섰다(1907년 9월3일 기준 국한문 8천,한글3천부).이같은 발행부수는 그때까지 한국언론사상 최고의 기록이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강경한 논조를 터뜨리던 이 신문은 일본 통감부의 집요한 탄압끝에 배설의 상해옥살이와 양기탁의 구속으로 물이 꺾이기 시작했다.그후 배설이 숨지면서 이 신문은 더욱 기울어졌으며 영국인 만성(Alfred Marnham)이 사장직을 인수받았다.그러나 영·일간의 외교문제를 꺼리던 주한 영국총영사 보나르(Bonar)와 통감부의 회유및 압력을 받아 1910년 5월21일 결국 통감부에 팔리고 만다.국권수호의 상징적 존재였던 「대한매일신보」가 마침내 비극적인 종언을 고한것이다.그때의 지령은 제1461호(국한문판)였다. 그리하여 「대한매일신보」는 한일합병 이튿날인 1910년 8월30일부터 제호가운데 국가를 상징했던 두글자 「대한」을 빼앗겨 버린다.「대한」이 없어진 「매일신보」는 결국 통감부의 기관지로 전락하는 것이다.그러면서도 「매일신보」는 그러나 「대한매일신보」의 국한문판 종간호인 제1461호(1910년 8월28일)의 지령을 계승,제1462호부터 국한문판을 발간했다.(한글판은 제939호부터) 이 날짜의 사설제목은 「동화의 주의」로 나온다.제국주의 36년간의 일본 전위역할을 이렇게 상징하고 일제 선전기관으로 얼굴을 바꾼 매일신보는 이틀만인 9월1일 대한제국의 기관지 성격이던 한양신문(전대한신문)까지 합병한다.국한문판과 한글판의 두가지 신문을 발행하는 유일한 한국어 신문이었지만 한국인이 만드는 한국의 소리는 담기지 않았다.이는 「일선융화와 세도인심의 감화유도」를 내건 일제의 어용언론활동의 전주곡이었다. 경영의 측면에서 경성일보사에 흡수통합,경일편집국의 한부서로서 철저하게 총독부기관지 역할을 수행한 매신은 그후 3·1운동의 결과로 일제의 무단정치가 표면상 문화정치로 바뀌면서 1920년 독립된 편집국으로 확대 승격됐다.그리고 1929년에는 한국인 편집국장이 임명된데 이어 1930년 한국인 부사장이 처음 기용되어 다소 편집제작의 재량권이 이루어지는듯 했다. 그러나 매신은 철저하게 일제의 입장에서 만들어져 편집방향은 「내선일체」를 고수했다.이러한 목적을 위해 총독정치의 선전과 홍보를 위주로 했으나 민족민간지들의 논조를 반박하거나 민족진영을 비난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일제의 비호속에 이같은 논조로 일관하던 매신은 기구를 확대,경성일보사에서 분리하게 됐다.1938년 4월16일 독립된 언론기관으로서 제호를 매일 「신」보로 고쳐 새로 출발한 것이다. 매신이 경일과 맞붙은 지금의 프레스센터 자리에 4층 콘크리트 사옥을 짓고 들어선 것은 바로 이때였다.하지만 경일은 매신의 주식 45%를 소유한 대주주로 남았고 여기에 총독부 소유의 주를 포함한다면 매신의 경일예속은 이전과 조금도 다를바 없는 셈이었다.매신의 일제옹호논조 또한 해방직전까지 변함없이 이어졌다. 그러나 일제는 패망했다.1945년 8월15일 마침내 조국광복을 맞았다.매신은 이러한 오욕의 역사를 청산하고 「해방조선의 대변기관」으로서의「서울신문」으로 거듭나기위해 대대적인 개편수술을 받게됐다.한반도에 진주한 미군정청이 그해 10월2일 매신을 접수,매신 한인주주총회를 열어 새중역진을 구성토록 종용했다.이에따라 10월25일 주총이 열려 「서울신문」이라는 새로운 제호와 오세창을 사장으로하는 간부진용이 결정됐다.이 무렵은 사장 이성근이 지난날의 과오를 전사원에게 사과하고 자퇴한뒤 사원자치위원회에 의해 신문이 발행되던 때였다. 경영간부가 없는 상태에서 신문을 만들어오던 6백명의 자치위는 그러나 주총의 간부진용결정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주총결정은 자치위와 사전협의를 거치지 않은 것이라는게 그 표면적 이유였으나 실상은 간부진용에 우익인사가 너무 많은데 불만을 품은 때문이었다. 그동안 비교적 관망상태에 있던 미군정당국은 11월10일 재산조사를 이유로 매신에 정간명령을 내렸다.매신이 정간되던날 자치위는 「3천만 민중의 정당한 공기」로서 신문이 새롭게 출현해야 한다는 종래의 입장을 재확인 한뒤 일단 한발 물러섰고 이를 계기로 개편실무진과 자취위 사이에 얽혔던 매듭이 풀리기 시작했다. ○한때 총독부 기관지로 미군정당국으로부터 매신개편의 대업을 새로 위임받은 이관구와 하경덕은 재원확보문제와 함께 내외에서 모두 수긍할수 있는 권위있는 인사들로 경영·편집진을 구성하는 작업을 신속하게 추진했다. 초대사장에 위창 오세창이 추대됐다.근대 신문계의 선구자이자 지조높은 민족대표 33인중 한 사람으로서 그가 지닌 사회적·정치적 덕망은 새롭게 등장하는 서울신문의 이미지에 걸맞는 것이었다.위창과 함께 역시 민족대표 33인중 한 사람인 권동진과 당시 문단의 원로격인 홍명희가 고문에 영입됐다. 서울신문 탄생의 산파역을 맡은 저명교육자 하경덕이 부사장에,그리고 사려 깊은 논조를 감당할 주필에는 항일언론의 선봉에 섰던 이관구가 선임됐다. 이러한 일사천리의 준비작업은 21일 5층 옥상에서 가진 오세창사장의 취임식으로 그 결실을 보게됐다.해방의 감격과 함께 독립한 이 민족의 진실된 언론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자임하면서 서울신문이 마침내 그 첫 지면을 이 땅에 선보인 것이다. 이날이 1945년11월22일이었는데 신문은 11월23일자로 발행됐다. 이때의 서울신문 지령은 대한매일신보→매일신보→매일신보를 그대로 계승,제13738호를 기록하기에 이른다.그 고난의 역사를 마감하고 또 다른 시련의 역사를 향해 서울신문으로 거듭 태어난 것이었다. □연보 ◇대한매일신보(1904·7·18∼1910·8·28) ▲1904년 7월18일 창간 ▲편집겸 발행인 배설,총무 양기탁취임 ▲1910년 5월21일 통감부가 매수 ▲1910년 8월28일 국한문판 1461호,한글판 938호로 종간 ◇매일신보(1910·8·30∼1938·4·28) ▲경성일보에 흡수 통합,1910년 8월30일 매일신보로 개제발행(지령은 대한매신을 계승) ▲경성일보사장 길야태좌위문 취임(매일신보사장 겸임) ▲1912년 3월1일 국한문판과 한글판을 한글전용으로 합간 ▲1938년 4월28일 매신의 제호로 최종발행(지령11 012호) ◇매일신보(1938·4·29∼1945·11·10) ▲경일에서 분리독립,제호를 매일신보로 개제발행(지령은 매신을 계승) ▲사장 최린,부사장 이상협취임 ▲1945년 11월10일미군정에 의해 정간 ◇서울신문(1945·11·23∼현재) ▲1945년 11월23일 매신을 서울신문으로 개제발행(지령은 매신을 계승) ▲초대사장 오세창,고문 권동진 홍명희,부사장 하경덕,전무 김동준,주필 이관구취임
  • 한국 대통령 취임식/일 총리 불참가능성

    【도쿄=이창순특파원】 미야자와 기이치(궁택 희일) 일본총리의 한국대통령 취임식 참석여부가 미묘한 상황에 놓여 있다고 일본 마이니치(매일)신문이 30일 보도했다.
  • 민주당 이기택대표/2월 전당대회 시사

    민주당의 이기택대표는 30일 『전당대회는 대통령취임식 이전인 내년 2월 중순쯤 소집하고 지도체제는 현재대로 대표 1명과 최고위원 8명의 단일성 집단지도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대표는 이날 상오 기자간담회에서 『내년 1월4일 시무식직후 전당대회준비위와 당헌개정소위를 구성하고 조직강화특위를 가동,전당대회 준비에 착수할 것』이라면서 지도부선출방식에 대해 『대표와 최고위원을 별도로 선출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고 밝혔다.
  • 뜻밖의 발탁…화합·균형 중시/인수위 인선에 담긴 김 당선자의 의지

    ◎계파초월·지역안배… 대화합에 가중치/외부인사·특보 배제… 당중심 개혁 예고 김영삼대통령당선자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선은 한마디로 「화합」과 「균형」을 중시한 인사라고 평가 할 수 있다. 특히 이번 인선은 김당선자의 「첫 인사」이며 앞으로 이뤄질 많은 인사의 기준이 될 것이라는 사실때문에 당 안팎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인선은 몇가지 뚜렷한 특징을 내포하고 있다. 우선 실무형위주로 인선될 것이라는 당초 예상과는 달리 의외의 인물이 대거 발탁됐다는 점이다. 이번에 뽑힌 인수위원 대부분은 강한 추진능력을 갖춘 재선 이상의 중진급 의원등으로 구성돼 김당선자의 희망대로 정권의 원활한 인수인계 업무를 충실히 수행할 것으로 평가된다. 둘째 호남배려를 포함한 철저한 지역안배를 들수 있다.정원식위원장과 최병렬의원,최창윤총재비서실장을 제외하고는 남재희(서울)박관용(부산·경남)김한규(대구)서정화(인천)이환의(광주)이재환(대전·충남)이해구(경기)이민섭(강원)신경식(충북)양창식(전북)유경현(전남)장영철(경북)위원등 12명의 위원들이 모두 지역대표성을 띠고 기용됐다. ○순수 민주계는 1명 특히 정위원장은 대선기간동안 선대위원장을 맡아 당내화합과 대선승리에 큰 역할을 해내 일찌감치 인수위원장으로 내정됐는데 그도 이북출신 대표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볼수 있다. 이같은 김당선자의 지역안배 인사는 전국 각지역의 세세한 여론까지 모두 수렴,대화합의 정치를 펼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투영으로 해석된다.대통령후보경선과정에서 반금노선에 섰던 양창식의원과 유경현위원장을 기용한 것도 이처럼 화합적 시각에서 바라볼수 있다. 셋째 외부인사를 단 한사람도 영입치 않고 전부 당내인사로 채웠다는 점이다. 이는 풍부한 내부인적자원 활용을 통해 급격한 변화보다는 「안정속의 개혁」구상을 차곡차곡 실천에 옮기겠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이와함께 이같은 당내인사 중용이 정부에 대한 당의 위상제고에도 중요역할을 할 것임은 자명하다.김당선자가 최근 공사석에서 『민자당은 과거의 집권여당과는 달리 주체적으로 정권창출을 해냈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또 위원들 면면을 보더라도 「계파초월」을 쉽게 읽어낼수 있다. 인수위원 중에서 순수민주계는 박관용의원 뿐이고 대부분은 민정계이기 때문이다. ○잡음방지에도 신경 김당선자는 이와관련,애초부터 이번 인선에서 민주계를 가급적 배제시킨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의 관행인 계파간 「나눠먹기」식 인사를 지양,더 이상 계파가 인사의 기준이 될수 없음을 명백히 한 것이다. 그리고 위원들 각자에게 맡겨진 숨은 역할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예를들어 남재희·유경현위원은 원외위원장들의 의견수렴을 맡고 있으며 이해구위원은 당공조직의 제반건의사항 창구로,6공취임준비위에서도 활약한 유일한 인물인 최병렬위원은 「노하우」제공의 역할을 맡는다는 것등이다. 넷째 무엇보다도 최실장을 빼고는 특보나 보좌역 중에서 어느 누구도 기용되지 않았다는 것이 눈에 띈다. 당초 정권인수업무의 효율성을 위해 특보진 중에서 2∼3명쯤 기용하는 문제를 검토했으나 여러가지 잡음을 우려,막판 이를 백지화한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최실장은 김당선자의 공식 의사전달창구로 기용이 불가피했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이러한 측근 배제원칙은 김당선자가 주변의 고언을 받아들인 결과로 보이며 앞으로도 인사의 기본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또한 이것은 측근의 정치적 영향력 행사를 가급적 막아 「당중심의 정치」를 해나가겠다는 김당선자의 확고한 의지로도 해석된다. 다섯째 인수위와 함께 「동반출범」될 것으로 확실시됐던 「신한국위」의 설치를 전면 백지화하고 신한국건설에 필요한 정책개발등 모든 조치를 정책위를 중심으로 한 당공식기구에 일임한 것이다. ○공조직 주도적 역할 박희태대변인은 『신한국위같은 자문기구는 절대 설치되지 않을 것』이라면서 『대선때 공약한 신한국건설의 정책기조마련은 당이 중심이 돼 하게 될 것』이라고 분명한 방향을 제시했다.당정책위의장 책임아래 당의 공조직을 풀가동,당이 주도적으로 역할을 수행해나간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차기정부의 국정방향과 관련된 추측보도를 삼가달라는 대언론협조도 포함돼있다는게 김당선자측의 설명이다.이같이 여러 의미속에 닻을 올린 인수위는 내년 1월4일 상견례를 겸한 첫 전체위원회의를 열고 운영방향을 확정한다는 계획이다.현재 당실무진에서 운영방향과 관련,초안작업을 벌이고 있지만 위원들이 각자 세분화된 업무를 맡는 방식보다는 3∼4명의 위원들이 함께 광역별로 업무를 관장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그리고 광역별로 분류할 경우 그방식은 국회 대정부질문형식을 원용,정치·통일외교안보·경제Ⅰ·경제Ⅱ·사회문화등 5개분야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게 당내 소식통들의 중론이다. 나아가 인수위는 차기정부의 국정운영방향을 설정하고 6공정부의 공과를 전반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다. 또한 내각및 청와대비서진 인선방향설정및 이취임식 준비는 물론 정부조직개편문제도 충분히 논의한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인수위는 이번에 정부의 예산지원과 함께 정확한 현황을 보고받는 확실한 전통을 세워 새로운 관례를 만들 것이라는게 일반적인 진단이다.
  • 브라질 대통령 전격 사임/“콜로르 부패” 상원탄핵에 굴복

    ◎후임에 프랑코 취임 【브라질리아·상파울루 로이터 연합】 지난 9월 부정부패 혐의로 대통령직 권한이 정지됐던 페르난두 콜로르 데 멜루 브라질 대통령(43)이 29일 전격 사임했다.대통령직은 그동안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있던 이타마르 프랑코씨가 승계,이날중으로 공식 취임식을 가졌다.프랑코 대통령은 이날 낮12시30분(한국시간 하오11시30분) 상원에서 취임식을 거행했으며 이어 국민들을 상대로 신임 대통령의 주요 정책 연설도 했다. 사임을 완강히 거부해왔던 콜로르 대통령이 끝내 이를 받아들인 것은 탄핵동의안이 가결돼 공직 취임기회 박탈과 경호원의 신변보호,외교관 여권 사용금지등 각종 불이익을 당할 위험성을 피하기 위한 궁여지책인 것으로 보인다. 콜로르 대통령은 지난 90년3월 부패추방을 다짐하며 남미 최대의 국가인 브라질을 이끌어왔지만 이같은 취임당시의 약속을 무색케 하는 개인 비리로 인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불명예스럽게 물러나게 됐다.
  • 미 클린턴 취임식/국회사절단 파견

    국회는 28일 미 클린턴대통령취임식(내년 1월20일)축하사절로 외무·통일위의 정재문위원장,이세기·박정수·강신조(이상 민자) 조순승·박실(이상 민주) 조순환의원(국민)을 파견키로 했다.
  • 일제징용 한인 13만명 확인/명단 일서 인수

    ◎군인·군속 20만명분 곧 인수/자료정리 거쳐 일반공개 방침 정부는 일본 노동성이 보관중이던 일제시대 한국인 피징용자 명부 1만7천1백7명분을 지난 25일 추가로 넘겨받아 일반에 공개하기에 앞서 자료를 정리중이라고 김석우 외무부 아주국장이 28일 밝혔다. 김국장은 『이에따라 일본정부로부터 넘겨받은 피징용자명부는 모두 12만9천여명으로 늘어났으며 이와 별도로 일본 후생성이 보관중인 20여만명의 군인·군속명부도 일본측의 정리가 끝나는대로 넘겨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국장은 내년 2월25일 김영삼대통령의 취임식에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 일본총리가 참석할 것인지 여부에 대해 『일본측은 미야자와총리의 참석문제에 관심을 표명한 바 있다』면서 『취임식에 외국경축사절을 받아들이는 문제에 관한 정부의 결정이 나는대로 즉시 일본측에 통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국장은 또 『내년 1월말이나 2월초에 구엔 만 캄 베트남외무장관을 초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집권당의 조직은 하나뿐(사설)

    김영삼대통령당선자가 민자당선거대책위 해단식에서 언급한 「민주산악회」등 사조직 해체 지시는 가히 충격적이라고 할만큼 의외성을 띤 것이었다.어려웠던 선거전중에 자신의 승리를 위해 헌신적으로 기여했던 사조직에 대해 논공행상은 커녕 「사약」을 내린 그에게서 우리는 새 정부의 결연한 개혁의지를 읽는다. 과거에 우리는 정치권내 사조직의 폐해를 많이 보아 왔다.공조직과의 마찰에서부터 탈법선거,폭력사주,이권개입,정실 인사에 이르기까지 각종 부조리를 유발하고 그 온상으로까지 지목됐던 사조직의 존재를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김당선자의 사조직 해체 지시는 새정부 출범을 앞두고 이러한 비리 재발소지를 사전에 봉쇄하겠다는 것이다.그의 투철한 개혁의지와 신속한 결단에 신뢰를 보낸다. 보도에 따르면 김당선자의 사조직 가운데 「나라사랑 실천본부」가 지난 22일 해체된데 이어 「중앙청년위」도 29일 해단식을 가질 예정이라고 한다.「민주산악회」의 경우 일부 구성원들이 해체에 반발하고 있고 또한 선거때 비대해진 기구를 갑작스레 해체하면 부작용을 빚을 우려가 있어 일단 대선이전의 상태로 조직을 축소키로 했다고 한다.늦어도 오는 2월25일의 새 대통령 취임식때까진 민주산악회도 자신에 대한 정리를 끝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각 당의 사조직은 이번 선거에서 공조직,즉 당조직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을 중점 담당했다.그 과정에서 탈법·불법선거운동,공조직과의 마찰등 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우리가 지향해야 할 선거운동의 새 패턴을 보여 준 것도 사실이다. 사조직은 거의가 자원봉사체제로 운영된다.정당처럼 중앙에서 하달되는 운영비도 없고 일당도 없다.그저 이념과 취지에 동조해서 기꺼이 무료봉사하거나 자기 주머니들을 털어서 활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그런데 당선사례 인사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조직을 해체하라니,섭섭하기 그지 없을 것이다.특히 민주산악회의 허탈감은 어느 조직보다 컸으리라고 짐작된다. 지난 81년 조직된 민주산악회는 민추협결성과 85년 2·12총선에서 신민당 돌풍을 일으키는데 큰 역할을 담당한 민주계 사조직의뿌리로서 현재의 회원은 무려 1백50만명에 달한다고 한다.이처럼 뿌리 깊고 큰 나무를 베는데 어찌 고통과 진통이 없을 수 있겠는가.그러나 사사로운 정의보다는 공리를 중시하여 자기 살을 베어 내는데 주저하지 않은 김당선자의 결의를 헤아린다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문제일 것이다.집권당의 조직은 하나뿐인것이다. 민주산악회의 결성목적은 이 나라의 민주화와 김영삼고문의 대통령 당선에 있었다.이제 그 목적이 달성된 만큼 아무런 미련없이 간판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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