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살인 부르는 ‘실업의 고통’
‘참으로 괘씸한 고품질 블랙코미디로세.’ 1960∼80년대 제3세계 군부독재의 잔혹함(계엄령, 의문의 실종)을 고발하고, 이후에는 종교(아멘), 미디어(매드시티) 등의 광폭함을 영화에 녹여온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이 이번에는 자본주의를 꼬집었다.10일 개봉한 ‘액스-취업에 관한 위험한 안내서’(Le Couperet)에는 자본주의 속에서 취업난, 구조조정, 실업 등의 고통을 겪는 약자들의 왜곡된 생존법칙에 대한 풍자가 가득하다.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미스터리 소설 ‘액스(The Ax)’가 원작. 기본 줄거리 위에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 대신 자본주의에서의 빗나간 자아실현을 담았다. 평범한 가장, 성실한데다 한때 잘 나가던 직장인 브뤼노(호세 가르시아)는 구조조정으로 직장을 잃는다. 화려한 경력이 있기에 재취업이 쉬울 줄 알았는데,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 게다가 사방이 온통 경쟁자투성이다. 그러면 더욱 열심히 노력해야죠? 천만에. 브뤼노는 ‘경쟁자 제거’라는 황당한 수단을 선택한다. 경쟁자들은 모두 실업의 아픔을 안고 있다. 열심히 노력해도 여전히 무직이다. 가족은 고통을 받고 심지어 흩어져버린다. 거리에는 고급 스포츠카, 멋진 몸매의 여인, 커다란 보석이 박힌 반지 등의 화려한 광고판이 걸려 있다. 노동자들이야 피 터지게 싸우든 말든 관심없다는 듯. 얄밉도록 무심한 자본주의의 모습이다. 경쟁자를 없애야 실현되는 취직, 그 뒤에는 여전히 또 그 자리를 노리는 사람이 있다. 치열한 현실이다. 잇따른 실업자의 죽음으로 사회는 연쇄살인사건의 공포에 휩싸인다. 하지만 주인공을 향한 시선은 잔혹한 연쇄살인마를 향한 분노보다는 ‘오죽하면 그랬을까.’하는 동정이 더 크다. 어리숙하고 황당한, 용의주도하지도 않고,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하며, 형사 앞에서 주눅 들어 있으면서도 애써 당당한 척하는 모습에서 묘한 동질감도 느껴진다. 2시간이라는 다소 긴 상영시간이 지루하지 않는 것은 기발하지만 당황스럽고, 씁쓸하지만 우스꽝스러운, 나름의 스릴과 긴장감을 주다가 맥을 놓게 하는 노장 감독의 완성도 높은 기교 덕일 듯.18세 이상 관람가.최여경기자 kid@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