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충청도
    2026-06-09
    검색기록 지우기
  • 대국
    2026-06-09
    검색기록 지우기
  • 여가
    2026-06-09
    검색기록 지우기
  • 방화
    2026-06-09
    검색기록 지우기
  • 은하
    2026-06-0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868
  • 가교 2000년 정치/(상)말말말

    2000년 정치권에는 기대와 희망,혼돈과 실망을 담은 말의 행렬이 이어졌다.정가(政街)에서 회자된 말을 통해 한 해 정치권을 돌아본다. ■민심,프롤로그와 에필로그 1월 시민단체의 ‘엽서보내기’ 행사에서 참석자들은 “새 천년에는 여야가 화합하라”고 주문했다.그러나연말 민생 현장에서 서민들은 여야 지도부에 “국민 마음을 똑바로읽어라”고 호통쳤다. ■총선,변화와 구태 4·13 총선 내내 시민단체의 낙천·낙선운동으로‘바꿔’ 바람이 불었다. ‘유권자 혁명’과 후보자의 병역,납세,재산 공개는 “유리알 선거”“유권무병(有權無兵),무권유병(無權有兵)”“OOO후보는 3관왕” 등 유행어를 낳았다. 그러나 3,4월에는 “실패하면 영도다리에 빠져 죽어야 한다”(金光一 민국당 후보),“충청도민이 핫바지를 입느냐,명주바지를 입느냐는내일 결정된다”(邊雄田 자민련 대변인)는 등 지역감정의 망령이 되살아났다. 중진을 물갈이한 야당의 총선 공천파동으로 “배신의 정치”(李基澤민국당 최고위원)가 화제가 됐다. 일부 386 국회의원은 5·18전야제때술판을 벌인 뒤 네티즌에게 “술 마시는 것은 펜티엄급”이라며일침을 맞았다. ■국회,파행과 정쟁 이만섭(李萬燮)국회의장은 9월 정기국회 개회사에서 “사생결단식 당론정치와 정당이기주의의 청산”을 호소했다. 그러나 선거비용 실사 논란과 국회법 강행처리 등으로 비롯된 파행국회는 9월 “여당은 단독국회로,야당은 대구집회로 달려가는 모습”(한나라당 金德龍의원)을 연출했다.민주당은 야당에 “상살(相殺)의정치”(鄭大哲 최고위원)라고 꼬집었다. 각종 비리사건의 배후설을 둘러싼 공방전도 끊이지 않았다.일부 야당 의원의 ‘K·K·K단’식 폭로 정치는 ‘이니셜 정치’로 불렸다. ■남북 화해,남남 갈등 6월 남북정상회담과 8월 이산가족 상봉에서도말 보따리가 터졌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김정일(金正日)북한 국방위원장의 ‘용감한 방북’이란 찬사에 “나는 처음부터 겁이 없었다”고 화답했다.김위원장은 “이제 은둔에서 해방됐다”고 말해 폭소를 자아냈다. 남쪽 친척이 건넨 생일 케이크를 먹은 북쪽 가족은 “상봉의 맛”이라며 눈시울을 적셨고,개별상봉을 마친 남쪽 가족은 “2시간이 광속(光速)보다 빠르다”며 아쉬워했다. 남북관계의 진전으로 국가보안법과 이념 문제가 부각됐다.강만길(姜萬吉)고려대 교수 등 원로 15명은 지난 14일 “국가보안법의 시대를넘어서야 한다”고 호소했다. 우익 인사인 한나라당 김용갑(金容甲)의원은 11월 “민주당은 조선노동당 2중대”라고 내뱉았다.‘남남 갈등’의 틈바구니에서 망명설이 제기된 황장엽(黃長燁)씨는 “한국에서 살다 죽는 것이 나의 희망”이라고 밝혔다.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은 “김정일은 회장,김대통령은 전무도 안된다”고 독설을 퍼부었다. ■여야,내분과 공조 김대통령이 노벨상을 받은 지난 10일 동교동계는“초심으로 돌아가자”며 화합을 다졌다. ‘양갑(兩甲)갈등설(說)’로 사퇴한 권노갑(權魯甲)최고위원은 ‘순명(順命)’의 심정을 피력했다. 한나라당 비주류 중진들은 9월 이회창(李會昌)총재의 장외투쟁에 반대하며 “당을 사당화(私黨化)한다”고 비난했다. ‘DJP공조’도 요동쳤다.자민련 김종필(金鍾泌)명예총재는 3월 “한번 속지,두번 속지 않는다”며 내각제 약속을 부각시켰다.그러나 이한동(李漢東)총리는 5월 “점진적 공조가 순리”라며 관계 복원 의사를 표명했다. 박찬구기자 ckpark@
  • 詩帖 ‘조천증행록’ 가치는

    ‘조천증행록(朝天贈行錄)’의 가치가 높게 평가받는 까닭은 무엇보다도 한 시대를 대표하는 문인·학자들의 작품을 한데 모았으며 그것들이 대부분 처음 공개됐다는 사실에 있다.이처럼 여러 문인이 한 개인을 위해 작품을 내놓았고 그 작품이 각자의 개인문집 등에는 전하지 않는 것은,그 작품이 ‘전별시(餞別詩)’라는 독특한 성격을 가졌기에 가능했다. 시첩의 주인공인 우천(牛川)윤경립(尹敬立·1561∼1611)은 동지사(冬至使)로 임명돼 선조 37년(1604)음력 8월초 명나라로 사신 길을 떠난다.이에 교류가 깊은 당대 문인들이 석별을 아쉬워하는 동시에 무사귀환을 빌며 그에게 시를 한 수씩 써준 것이다.따라서 그 작품들은윤경립 집안에서 보유했을 뿐 지은이들에게는 남지 않았다. 윤경립은 당대의 명관(名官)이었고 인품도 뛰어난 것으로 전한다.1588년 병과에 급제,벼슬길에 들어선 뒤 임진왜란 때 공을 세워 동부승지·충청도관찰사·병조참의 등을 지냈으며 동지사로 떠날 때는 첨중추부사였다.어느 자리에 있건 백성을 사랑하며 공평하게 일을 처리했다.성품도 중후하고 소박했다고 한다.그렇기에 이처럼 당대 문인들과널리 교류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시첩에 실린 작품들은 조선시대 사대부들끼리 주고받은 ‘이별의 시’로 남녀간의 별리를 주제로 한 연시(戀詩)류와는 격조가 다르다.예컨대 윤경립보다 다섯살 아래인 상촌(象村)신흠(申欽·1566∼1628)은 “해마다 동지사를 익히 봐 왔건만/오늘따라 이 시가 갑절이나 슬프구나/오랜 벼슬살이 굴곡도 많았지만/그동안 우린 형제처럼 지냈구려/요동 변방에는 겨울바람도 찬데/…”라고 읊었다. 그런가 하면 ‘지봉유설’의 저자 이수광(1563∼1628)은 “가을바람소슬한데 이별하니 한스럽네/지루한 여행길이 천리가 넘어/근심걱정에는 술이 최고일세/강관(江關)매화꽃 지기 전에 부디 돌아오게”(‘윤첨지를 동지사로 보내면서’)라며 벗을 전송하였다. ‘조천증행록’은 또 친필 작품들을 남긴 점에서 큰 가치를 인정받는다.남창(南窓)김현성(金玄成·1542∼1621)의 시는 특히 글씨 덕에 더욱 빛난다.작고한 금석학의 대가 임창순(任昌淳)은 생전에 “같은 시대 한석봉(韓石峯)이 워낙 이름을 떨쳐 비갈(碑碣)을 쓴 숫자에서 따르지 못하나,그가 죽은 뒤에는 중요한 것을 도맡아 썼다”며 남창을한석봉에 버금가는 명필로 평가한 바 있다. 남창의 이 작품은 임창순이 감정하는 과정에서 그 존재를 알게 돼 지난 75년 편찬한 ‘한국미술전집’11권 ‘서예’편에 실렸다.‘조천증행록’에 수록된 작품 중에서 유일하게 이미 공개된 것이다. 시첩에 실린 작품이 모두 친필은 아니다.3편은 엮은이 윤필양(尹弼襄)이 스스로 베껴넣은 것이라고 서문에서 밝혔다.한음(漢陰)이덕형(李德馨)과 이판교(李判校)의 시는 타인이 이를 탐내 훔쳐가는 바람에,이춘영(李春英)의 시는 두편 가운데 한편을 후손이 나눠달라고 해서주고는 베껴서 채워넣었다는 것이다.이같은 일화는 결국 시첩에 실린친필시들을 후대에서 얼마나 귀히 여겼는가를 입증하는 사례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조천증행록’은 국문학·서예사 말고 역사 연구에서도 귀중한자료로 꼽힐 만하다.1600년대 초는 이미 조선조에 당파가 자리잡은시기여서 윤경립의 시첩에 실린 인물들의 상호관계가 주목을 끌었다. 서울대 규장각의 김문식(金文植)학예연구사는 “조선 중기의 인물교류사 연구에 큰 보탬이 된다”고 평가했다. 정운현기자 jwh59@ 한시 번역 김경숙 서울대강사
  • [먹거리 축제를 찾아서](18)남산골 한옥마을

    잘 담근 김치 하나면 산해진미도 부럽지 않다.덧붙여 윤기 자르르흐르는 따끈한 쌀밥까지 있다면 더 이상 무엇을 바라랴. 한국인의 주식인 쌀과 김치가 한자리에 모였다.서울 중구 필동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10일 개막된 ‘쌀과 김치,그 어울림의 한마당’이그것이다.일요일인 12일까지 계속된다. 한옥마을의 김치축제와 전업농중앙회의 쌀축제가 접목된 이번 행사에서는 우리 식단의 토대이자 최고 식품인 쌀과 김치의 모든 것을 볼수 있다. 행사의 백미는 한옥마을내 윤택영가옥에서 열리는 팔도김치 전시회. 서울의 석류김치,강원도 해물김치,충청도 가지김치,경상도 우엉김치,제주도 귤물김치,황해도 닭김치,평안도 겨자김치,함경도 가자미식해,경기도 순무김치 양강도 갓짠지 등 여간해서는 구경조차 하기 힘든팔도의 특미김치와 북한김치,사찰김치등 50여종이 선을 보이고 있다. 일부는 맛도 볼 수 있고,김장김치와 젓갈 등 각종 양념을 살 수도있다.김장김치의 경우 1㎏에 4,000원이며 주문량이 10㎏을 넘으면 택배도 해준다. 11·12일 매일 오후 1시부터2시간동안 김치담그기 시연회도 열려가족과 함께 직접 김치를 담가볼 수도 있다.오후 2시부터 공동마당에서는 배화여대 윤숙자 교수의 김치역사와 영양학에 대한 강좌,특미김치 및 김치를 소재로 한 각종 요리강습도 열린다. 쌀축제는 천우각 광장에서 열린다.하일라이트는 전국 80여개 시·군이 고장의 명예를 걸고 출품한 쌀을 전시하는 ‘전국쌀 브랜드전’. 어느 고장쌀이 더 좋은지 직접 비교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광장한켠에 마련된 시식코너에서는 경기 이천쌀 등 유명쌀로 지은 밥을맛볼 수 있다.맛을 본 후 마음에 드는 쌀을 구입할 수도 있다. 또 행사기간중 매일 오후 국악공연 및 민속놀이 한마당이 펼쳐진다.마들농요·경기민요·밀양백중놀이·남도민요 등이 축제의 흥을 한껏 돋운다. 다만 남산골 한옥마을 안에 관람객을 위한 주차공간이 따로 마련돼있지 않다.따라서 대중교통 이용이 필수다.지하철 3,4호선 충무로역에서 내려 3·4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한옥마을 입구와 마주친다.문의 남산골 한옥마을관리소 (02)2266-6937∼8임창용기자 sdragon@
  • 아늑한 원시림…묵고싶은 숲의 집 ‘금강 휴양림’

    고도(古都) 공주에 유적만 묻혀 있던 건 아니었다. 공주시에서 금강변을 따라 대전으로 이어지는 32번 국도.갑사 오르는 길을 애써 버리고 직진한 다음,강 건너편을 바라본다.석장리.기억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역사 교과서에 자주 등장하곤 했던 구석기 시대 유적지.석장리를 바라보며 계속 강변을 달리면 대전에 사는 이들이 몰려와 매운탕을 즐긴다는 청벽유원지.이곳 대교 밑에서 흙먼지일으키는 비포장 도로를 3㎞가량 오른다.이내 햇살을 등에 업은 금강휴양림이 모습을 드러낸다.80만8,000평. “누구나 여기오면 그러세유.‘아니 충청도,그것도 대전 가까운 곳에 이런 데가 다 있었네’ 그러세유.”이곳 산림박물관 전병인 계장(42)은 감칠맛 나는 사투리로 구수한 설명을 늘어놓는다.그도 그럴 것이 휴양림에 곧바로 연결되는 다리가완성되면 다리 건너 대전까지 40분,한달음이다.공주에서도 승용차로15분 거리니 정말 가깝다.그런데도 발길은 뜸하다. 고요하다.단풍이 벌써 제 색깔을 잊고 겨우살이 채비에 들어간 이즈음 휴양림은 무엇보다 조용해서 좋았다.8채가 들어서 있는 통나무집‘숲속의 집’에는 주말마다 별바라기를 위한 가족 여행객들이 몰려들지만 티 하나 나지 않는다.별다른 유흥시설도 없어 북적거림을 피하는 이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아이들이 딱 좋아할만 하다.휴양림에 들어서자 우선,백제 궁남지 형태의 중도식과 신라 안압지 형태의 곡지형을 이어 만든 연못이 눈에띈다.비단잉어가 분수에 맞춰 오락가락 춤을 추는데 무지개가 뒤에서 뜬다. 13억원을 들였다는 유리온실에는 야자수나 망고스턴 등 열대·아열대 식물 221종이 아이들을 반긴다.규모는 작지만 알뜰한 맛이 넉넉하다.조류 29종과 반달무늬곰 등 들짐승 9종이 있는 동물원 또한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을만하다. 5개 전시실로 이루어진 산림박물관은 다 돌아보는 데 1시간 정도가걸릴 만큼 알찬 내용들로 꽉 찼다.백제 특유의 건축양식인 배흘림기둥을 채용한 박물관 외벽도 자랑거리다.특히 2층 입구에 서있는 십이지신상의 정교함에 관람객들은 혀를 내두르게 된다.목아박물관장인인간문화재 박천수씨가 정성들여 나무를 깎아 만들었다. 나무뿐만 아니라 돌과 각종 화석,새 박제 등 다양한 내용들은 아이들에게 산림은 물론 자연보전의 중요성을 아로 새기기에 충분하다. 박물관 안마당에 화강암으로 만든 한반도 지도와 숲터널도 눈에 띈다.신경준의 산경표를 토대로 만든 한반도 지도는 국토사랑을,새 소리도 들리고 수풀의 냄새를 풍기는 숲터널은 자연사랑을 관람객의 가슴에 새긴다.이런 시설물 외에도 산림욕장과 산책로를 즐기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약간 가파르긴 하지만,아이들에게 포장 안된 길을 걸으며 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톤치드 등을 호흡하게 하는 일은 분명보람있는 일일 것이다. “원래 침엽수와 활엽수 비중이 40대 60이 가장 적절하다고 얘기하지요.그런데 이곳 수풀은 침엽수 비중이 너무 엷어요.하지만 수풀에 들어가면 피부를 될 수 있으면 많이 드러내도록 하세요.”전계장의 이처럼 친절한 산림지식 설명은 덤으로 주어진다. 서울에서 공주까지는 2시간밖에 걸리지 않아 공주의 풍부한 역사유적과 이곳 휴양림을 패키지로 묶어 돌아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그러려면숲의 집에서 하룻밤 ‘유’하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041)850-2661∼6글·사진 공주 임병선기자 bsnim@. [가는 길] 호남고속도로 유성 나들목을 이용해 마티터널을 빠져나와충남과학고 앞에서 우회전하면 청벽유원지.아니면 천안 나들목을 나와 23번 국도를 이용해 공주에 이른 다음 금강변을 드라이브하는 것도 괜찮다.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오전6시부터 40분 간격으로 고속버스가 운행된다.단 공주시에서 휴양림까지는 버스 노선이 없어 택시를 이용해야한다.1만원 정도. [들러볼 곳] 공주시 중동에 있는 국립공주박물관과 공산성,무령왕릉등은 기본.민속연구가 심우성이 지난 96년 마련한 민속극박물관과 판소리 명창 박동진(朴東鎭)옹이 지난해 무릉동에 세운 판소리전수관또한 들를만 하다.오는 2002년에는 석장리에서 출토된 유물 3,000점을 전시하는 박물관이 이곳에 들어선다. 동학사와 갑사는 물론,사곡면 운암리 태화산의 마곡사도 많이 알려져있다. 계룡면 일대에서 나오는 계룡 백일주는 독특한 제조비법을 자랑한다.청벽유원지 일대는 빠가사리와 참게 매운탕을 잘 끓이는 것으로 유명하다.청벽가든(041-854-7383)
  • 맛깔스런 옛 한글서한 읽는다

    “전일에 오천냥을 보내라 하였는데 삼백냥만 보내니 괘씸한 마음 어디다 말하랴.이번에도 명령을 듣지 않으면 사정 두지 않으렷다”한글날을 기념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겨레의 글,한글’특별전에 출품된 ‘활빈당 발령장(活貧黨 發令狀)’은 이렇게 서슬 퍼렇게 시작한다.이 편지는 삼남지방에 큰 세력을 가지고 있던 활빈당이 1902년 12월 하순부터 다음해 1월 하순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충청도 회인 정부자에게 보낸 협박장이다. 발령장은 이어 “우리는 세가지 잘하는 것이 있으니,집에 불놓기와유부녀 겁탈하기,그리고 파묘(破墓)”라고 겁을 준다.당한 정부자는치가 떨리는 노릇이었음이 분명하지만,오늘 이 협박장은 슬그머니 관람객들을 미소짓게 한다.한글이 아니라 한문으로 씌어졌다면 이런 ‘재미’를 느낄 수 있을까. 지난 3일 막을 연 ‘겨레의 글…’특별전은 한글이 우리 문화에 어떤 영향을 끼치면서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체계적으로 살피고 있다.전시는 주제별로 옛 전적을 나열하는 방식이어서,전시실에 들어설 때는부담감도 없지는않다.그러나 “더도말고 30분만 투자하겠다”는 마음으로 차근차근 둘러보노라면 곳곳에서 느껴지는 쏠쏠한 재미와 함께 ‘한문의 시대’를 헤치고 온 ‘한글의 힘’을 실감할 수 있다. 전시실에서 들어서면 국보 제70호 ‘훈민정음 해례본’이 관람객을맞는다.간송미술관이 소장한 ‘훈민정음…’은 일반에는 처음 공개됐다.전시회에는 ‘훈민정음…’을 비롯한 국보 3건 8점과 ‘월인석보’ 등 보물 10건 16점이 대거 선을 보이고 있다.그러나 관람객들의머리를 끄덕이게 하는 것은 몇몇 문화재 때문이 아니라 ‘한글이 성장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득력있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불교와 한글’이나 ‘한글과 동학’‘한글과 천주교’에서는 한글이 서민대중을 교화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수단으로 활용됐음을 보여준다.마찬가지로 ‘여성과 한글’에서는 한글이 한문을배울 기회가 봉쇄된 여성층에 파고들어,고소설 등 문학발전에도 크게 기여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무엇보다 현종(1641∼1674)이 셋째딸 명안공주를 시집보내고 쓴 “시집에 가서 밤에 잠이나 잘 잤느냐.그리 덧없이 내어 보내 섭섭무료하기가 가이없어 하노라.너도 우리 생각하느냐”는 애틋한 편지는 한글이 뿌리내림에 있어 왕실의 역할을 실감케한다. 이번 전시회는 특히 감정이 무덤덤해진 연인들이라면 한번쯤 찾아볼것을 강력히 권하고 싶다.이응태(1556∼1586)의 부인이 먼저 죽은 남편의 무덤에 함께 묻은 한장의 편지 때문이다.“당신이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왔고,또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왔었나요”로 시작되는 이 편지를 함께 읽는 것 만으로도 서로의 마음을 다잡게하는데 충분할 것 같다.특별전은 오는 11월5일까지 열린다. 서동철기자
  • 金대통령 충남·대전 순시 안팎

    27일 충북을 시작으로 28일 충남·대전으로 이어진 올 첫 지자체 업무보고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국정현황을 지방에 알리는 자리이기도 했다.국정운용의 무게중심을 다시 경제개혁 등 내치(內治)로 이동하는 징후로 해석됐다. 김 대통령은 무엇보다 정부가 추진중인 5대 국정지표를 소상하게 설명했다.물론 가장 중점을 두고 설명한 분야는 4대 개혁 등 경제구조조정과 지식정보화,남북간 평화와 교류협력 상황이었다.이날 대전·충남지역 주요인사 초청 오찬때는 연설의 대부분을 이 3개 분야에 할애했다. ◆업무보고 안팎=오찬에는 시드니 올림픽 사격 은메달리스트인 강초현양이 김 대통령에게 직접 꽃다발을 선물해 눈길을 끌었다.김 대통령은 강양과 볼을 맞대며 기쁨을 표시했다.“TV에서 보고 참 예쁘다고 생각했는데,직접 보니 훨씬 더 예쁘다”며 “어려운 환경도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저렇게 명랑한 아가씨는 처음 본다”고 칭찬했다. 이어 홍선기(洪善基) 대전시장이 ‘이번 시드니 올림픽에서 충청도사람들이 메달은 다 딴다’고 하자 독립운동가등을 예로 들며 “충청도 사람들이 겉으로는 순해도 속은 독종인 것 같다”고 극찬했다. ◆남북관계 감회=김 대통령은 남북관계 진전을 설명하며,김일철(金鎰喆) 북한 인민무력부장의 청와대 접견때의 소회를 털어놨다. “5명의 군인이 청와대로 들어와 인민복을 입고 거수경례를 해 꿈인가 생시인가 했다”며 “불과 3개월만에 희한한 변화가 일어났다”고 놀라움을 표시했다.이어 “좋은 출발”이라고 평가한 뒤 “한반도에서 절대 무력도발이 없어야 한다는 의미를 가지며,싸우는 군인들끼리 합의를 했다는 게 중요하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김 대통령은 “이는 군인들이 6·15 선언을 지지하고 나온 것”이라면서 “경의선 복원을 위해 DMZ를 공동으로 관할하면서 앞으로 지뢰도 제거해 나가고,남북 긴장완화 해소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전 양승현기자 yangbak@
  • 김영호 일문일답

    “꿈인지 생시인지 전혀 실감이 안났다.시상식장에서 두번이나 꼬집었다.현실이었다.홀어머니와 아내,아들의 얼굴이 제일 보고 싶었다. ” 김영호(29)는 세계를 정복한 그의 칼끝처럼 거침없이 소감을 풀어냈다.한국 펜싱 사상 첫 올림픽 금을 따냈다는 흥분이 채 가라앉지 않은 탓인지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공식 기자회견장에 들어선 김영호는 충청도 사투리를 섞어가면서 국내외 기자들과의 회견을 재미있게 풀어나갔다. ◆한국펜싱의 새역사를 만들었는데. 한국펜싱 사상 첫 금이어서 무척 감격스럽다.그동안 색깔이 문제였지 메달을 딸 자신이 있었다.결승전에서도 진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특히 결승전에서 제일 잘하는 공격기술로 이겨 기분이 좋다. ◆결승전 14―14에서 어렵게 이겼는데. 세계랭킹 1위인 독일의 비스도르프는 워낙 신장이 커 바짝 긴장하지않으면 진다고 봤다.비스도르프와 결승전에서 맞붙을 것을 예상했고그에 맞설 기술을 하루에도 200번씩 꾸준히 연습해왔다. ◆제일 잘 하는 기술은 무엇인가. 수비보다는 공격에 능하다.특히 쿠페를잘 한다.나의 저돌적인 공격을 상대선수들이 잘 받아줘 이겼다. ◆펜싱에 입문한 계기가 있다면. 중학교시절 남들이 펜싱하는 모습이 무척 멋있어 보였다.어렸을때 동네에서 칼싸움을 잘해 자신있다고 생각했다.중 3년때 돌아가신 아버지는 “잘 해보라”고 적극 밀어주셨지만 어머니는 처음에 반대했다가 나중에는 허락했었다.어머니는 충남 연산군 연산면에서 농사를 짓고 계시다. ◆펜싱커플로 유명한데. 아내 김영아는 지난해까지 선수생활을 하다가 육아로 그만두었다. ◆국민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펜싱을 비인기종목이라고 그냥 지나치지 말고 각별히 신경을 써주었으면 좋겠다.훌륭한 기량을 지닌 후배들이 많다.나도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또다시 이자리에 서고 싶다. 시드니 최문열기자 cmy@
  • [황석영의 맛따라 추억따라](15)낯선 땅에서

    *제주도 '톨냉국'은 차디찬 바다 마시는 느낌. 고등학교 적에 무전여행 길로 제주도를 처음 갔는데,목포에서 연락선을 타고 밤새껏 멀미에 시달리면서 제주해협을 건너 새벽녘에야 먼바다 저편에 섬이 나타나던 것이 생각난다.물 위에 떠 있는 삿갓 같은 땅이라던 말을 들은 게 틀리지 않아 보였다.섬 전체가 한라산이라 하여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수평선을 기준으로 바라보면 세모꼴의산만 보인다.정상에서부터 비탈을 따라 바닷가에 이르기까지 목초지와 중산간 마을과 경작지와 읍내와 맨 아랫쪽에 해변 어촌이 있는 셈이다.섬 전체가 화산이라 바위와 돌과 흙과 나무며 풀이며 꽃이며가육지와 전혀 달라서 다른 나라에 온 것만 같다. 나는 그 뒤로 아마도 전라도로 내려가 있던 칠십년대 무렵부터 그곳젊은이들과 인연이 생겨서 한 해에 한 두차례씩은 드나들었다.어느해에는 몸이 좋지 않아서 겨울 한철을 요양하며 보낸 적도 있었고,팔십년에 광주에서 참사가 벌어진 뒤에는 일년 반쯤을 제주도에서 ‘귀양살이’를 했다.가족과 떨어져 나 혼자 장 보고 취사하고 아니면 이곳 저곳 먹을 만한 것들을 찾아서 골목과 시장 어귀를 드나들었으니이 고장의 맛에 대하여는 고향처럼 잘 아는 사람이 되었다.그뿐만 아니라 여기서 문화패와 소극장을 만들고 민란을 중심으로한 향토사나무속이나 민요를 조사하는 연구소를 구성하고 하는 동안에 가까운 후배들이 많이 생겼다.그래서는 관광객들이 다니지 않는 작은 본바닥술집이나 기이한 음식점들을 알게 되고 명절 때면 그들의 집에 놀러가서 낯선 음식도 먹어보게 되었다.그들은 이제 제주 사회의 중추가되어 있다. 술꾼들에게는 아침 속풀이 음식이 우선이니 먼저 국 이야기를 해야겠다.여기서는 해물이며 푸성귀며가 모두 집 주위에서 얻은 싱싱한 것들이라 양념이 귀하기도 했겠지만 별다른 맛을 내려고 애달캐달 하지 않아도 원초적인 맛을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육지에서처럼 고기나멸치로 다시를 내어 국을 끓이는 법이 없고 싱싱한 해물을 무나 채소와 함께 끓여서 소금이나 간장으로 간을 할 뿐이다.처음에 갈치로 끓인 미역국을 보고 속으로 조금 놀란적이 있었지만 나중에는 맛을 들이게 되었다.갈치와 단호박을 넣어 국을 끓이기도 하고 무를 넣기도한다. 제주도를 다녀간 신혼부부들이 거의 다 아침거리로 먹게 되는 ‘해물 뚝배기’는 사실은 해물을 넣고 된장에 끓이는 제주도의 몇가지 아침 속풀이가 합쳐진 것이다.보말(고동의 일종),구쟁기(소라),오분재기(작은 전복의 일종),조개,성게알 등속의 어패류로 각기 시원한 된장국을 끓이는데 이를 종합하여 개발해낸 것이 해물 뚝배기라고 할수 있다. 내가 맛을 들인 속풀이로는 ‘몸’ 국이 있다.몸은 파래,톳,감태 따위처럼 해초인데 비교하자면 전라도 남해안의 매생이처럼 가늘고 여린 해초다.제주에서는 예로부터 형편상 쌀 대신에 잡곡이 주식이었다.보리나 조팝을 주로 먹었고 이밥은 일년에 한 두 번 명절이나 제사때에 먹어서 지금도 쌀밥을 고운 밥이라 하여 ‘곤밥’이라고 부를정도다.고기도 쇠고기는 드물고 돼지고기를 위주로 경조사에 쓴다.돼지고기 음식이 많기도 하지만 먼저 몸국은 돼지의 ‘족잡뼈’라고 하는 갈비 옆의 가느다란 뼈를 오랫동안 푹 끓여서 국물을낸다. 흔히 여기 식의 순대를 만들 때에 몸국도 끓이게 되는데 순대도 육지와는 달라서 속에 돼지 피와 보릿가루를 넣는다.몸국은 돼지의 작은창자와 막장을 썰어 넣고 돼지뼈 우려낸 국물에 해초인 몸을 넣고 끓이는데 술국으로 그만이다. 옥돔으로 끓이는 ‘오토미 국’이 있다.몸이 붉으스레 하고 머리가둥글게 혹이 튀어나온 듯한 옥도미를 귀하게 여겨 제주 사람들은 이것만을 생선이라고 부르고 다른 것들은 제 이름을 부른다.따라서 오토미국은 그저 생선국으로 불려지기도 한다.옥돔을 간하여 말린 것이 관광객들에게 팔려 나가기 시작하면서 육지에서는 영광굴비에 버금가는 비싼 생선이 되어 있다.옥도미를 굽고 지지고 튀겨 먹기도 하지만,미역국에 넣거나 무를 넣어 담백하게 끓이기도 한다.심지어는 싱싱한 고등어를 토막 쳐서 어린 배추를 넣어 국도 끓인다. 여름철 ‘톨냉국’은 맑고 차디찬 바다 그 자체를 마시는 듯한 느낌이 든다.톨은 육지에서 톳이라고 부르는 해초를 말한다.톳을 물에 담가 불려서 풋고추며 부추와 가늘게 썬 오징어를 갖은 양념하여 버무린 뒤에 찬 생수를 부어 낸다. 제주 사람들이 즐겨 먹는 것으로 돼지고기와 함께 ‘자리’를 빼놓을 수가 없다.자리는 오분재기처럼 이 고장 특산의 이름이라 타관 사람들이 알아듣기 쉽게 도미 새끼의 일종이라고 설명을 하지만,자리나오분재기는 도미와 전복과는 생김새가 비슷할 뿐 전혀 다른 종족이다. 그렇기는 하여도 어른 손바닥 반 만한 크기의 자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영락없는 도미의 생김새다.그래서 육지 사람들을 위해서도 ‘자리돔’이라는 다른 이름이 있을 정도다.자리는 비늘을 긁어내고 어슷어슷 썰어서 된장과 깻잎에 싸서 먹고 초장에 찍어 강회로 먹기도 하지만,머리와 꼬리를 자르고 칼로 다져서 부추,미나리,깻잎,풋고추,오이,등속에 된장 고추장과 갖은 양념을 하여 생수를 부어 얼음을 띄운 ‘자리 물회’를 만들어 먹는다.토속대로 하자면 머리와 꼬리도 자르지 않고 간간히 뼈가 씹힐 정도로 칼로 난도질을 쳐서 산초 잎을넣어야 한다.제주에서는 모든 어패류가 싱싱한 횟감이라서 일일이 거들 수가 없지만 전라도나 충청도 지방의 홍어 무침이나 찜처럼 가오리를 양념에 버무려 경조사에 낸다. 덥고 습한 지방이라 요새처럼 냉동이 안되던 시절부터 제주의 음식은 끓이고 조리지 않으면 소금으로 짜게 절여 두었다.바람이 거세지고추워져서 바다에 나갈 수 없는 겨울철에는 ‘촐레’가 맞춤한 밑반찬이 되었다.보리밥과 조밥이 꺽꺽해서 잘 넘어가지 않을 적에 비리고간간한 반찬으로 ‘촐레’를 해먹는다.소금에 절인 자리젓을 뚝배기에 오랫동안 졸여서 국물이 된 것이 촐레인데 채소와 곁들여서 먹는다.고등어를 소금에 진하게 간하여 독에 두었다가 겨울철에 꺼내어물에 담가 소금기를 빼고 나서 뚝배기에다 무를 넣고 오래 조려서 먹기도 한다.이런 건건이들이 모두 거친 잡곡을 먹는데 입맛을 돋우기때문이란다. 제주의 돼지를 말하자면 꼭 떠오르는 일이 있다.칠십년대 말인가 민속조사를 하던 학생들 몇 사람과 아직은 민속촌이 되기 전이던 성읍마을에서 민박을 한 적이 있었다.지금은 관광객들의 볼거리로 변하여 모두 사라져버렸지만 그때만 하여도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받아 물을모으는 독이며 뒷간이 예전 그대로였다.아침에 뒷간이 어디냐고물으니 주인 아줌마는 빙그레 웃을 듯 말 듯 묘한 표정을 지으면서집 뒤꼍으로 돌아가 보라고 손짓해 준다.그래서 집 모퉁이를 돌아가보니 앞에 판자를 얼기설기 가로지른 돼지우리가 보인다.그때 내가무엇과 마주쳤겠는가.울타리 사이로 하얀 털이 숭숭한 주둥이와 함께 영리하게 반짝이는 돼지의 눈과 마주쳤다.어쩐지 이건 돼지가 아니라 무슨 유인원이나 개처럼 영리하게 보이는 귀염성 있는 돼지의 눈이었다.제주도 토종 돼지는 그 지방 특산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육지에서 우리의 토종돼지가 수입종 때문에 거의 멸종하는 동안에 그나마 벽지라서 종을 보존한 그것이다.몸집이 다른 돼지들 보다 조금 자그마하고 멧돼지 같이 검은 털이 부스스하며 주둥이가 조금 흰 편이다. 제주에서는 이것을 ‘돋통시’(똥돼지)라고 부른다.그것 참 인상이영리한 돼지도 있다고만 여기고 아무 생각없이 울타리 옆에 붙은 변소로 들어갔다. 황석영.
  • 소‘뒷다리 마비’전염병 아니다

    올봄 구제역이 휩쓸고 지나갔던 충청도 등지에서 제 힘으로 일어서지 못하는 ‘앉은뱅이 소’가 늘어나고 있어 축산농가에 비상이 걸렸다.구제역이나 광우병 등의 전염병이 다시 도는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 때문이다. 이 소들은 뒷다리 통증으로 걷지 못하다가 결국에는 전혀 일어나지못하고 있다. 5일 전국 시·도에 따르면 충남의 경우 젖소 152마리와 한우 14마리 등 83 농가에서 166마리가 감염됐고,충북 44마리,전북 19마리,경기남부지역 16마리,강원도 40마리 등 전국적으로 285마리가 일어서지못하는 증세를 보여 괴질이 확산 추세를 보이고 있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은 이들 소의 혈청과 가검물을 통해 1차 조사를한 결과,구제역이나 광우병·광견병 등의 전염병은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고 밝혔다.검역원 김기석(金基錫)병리진단과장은 “혈청검사 결과,구제역 말고도 소 유행열 등 15가지 전염병에 모두 음성반응이 나타났다”면서 “신경계통에 염증을 일으키는 ‘산발성 뇌척수염’이나 대사성 질환이 의심된다”고 말했다. 김과장은 “구제역 발생 지역에서 신고가 많은 것은 농가들이 그만큼 불안했기 때문일 것”이라면서 “매년 비슷한 일이 있는데 올 여름은 유난히 고온다습해 스트레스에 약했던 소들이 많이 주저앉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를 전염병으로 볼 수 없는 것은 발생농가당 ‘앉은뱅이 소’의 비율이 1∼3마리에 불과하고 계속적으로 증가하지 않는 점,열스트레스에 약한 젖소에 이 병이 집중적으로 발생한 점을 들 수 있다. 농림부 이주호(李周浩) 가축위생과장은 “전염병이 아닌 만큼 일선농가는 동요할 필요가 없다”면서 “‘앉은뱅이 소’가 발견되면 즉시 격리 사육하고,방역과 소독을 철저히 해야한다”고 당부했다. 김성수·대전 이천열기자 sskim@
  • 金대통령, 청와대 최고위원회의 주재

    민주당 총재인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1일 청와대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8·30 전당대회는 공정하고 질서있게 치러져 당내 민주주의와 나라의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했다”고 평가한 뒤“최고위원 선출이 당을 한층 활기차게 하고 국민의 신망을 높이는계기가 돼야 한다”면서 “월 1회 이상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고 필요하면 더 하겠다”고 밝혀 최고위원회를 중심으로 당을 이끌어나갈것임을 분명히 했다. 김 대통령은 최근의 국회파행에 대해서도 언급했다.화두는 원칙을지키고 국회법대로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윤철상(尹鐵相) 의원 발언과 관련한 야당측의 특검제 도입과 국정조사 요구는 이런 점에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서영훈(徐英勳) 대표가 전한 청와대 최고위원회의 대화록. ◆김중권 최고위원 원외위원장들의 당무 참여기회를 확대해야 한다. 사무부총장·정책부의장 등을 늘려 원외위원장을 참여시키면 좋겠다. ◆박상천 촤고위원 당운영의 총력체제를 위해 그동안 당3역,당6역선에서 주요 안건을 전결하는 관행을 바꿀 필요가 있다.최고위원회와협의토록 해주시는 것이 좋겠다. ◆김 대통령 앞으로 주요 안건을 최고위원회에 보고,협의토록 하고주요 안건은 의총을 거치도록 하겠다.정책위의장을 통해 지시하겠다. ◆김근태 최고위원 최고위원회를 대통령께서 정기적으로 주재해주면좋겠다. ◆김 대통령 월 1회 이상 정례회를 주재하고,필요하면 더 하겠다. ◆김근태 최고위원 원외위원장과 당의 활력을 위해 당에 고충처리위를 설치하고 이를 위한 공간과 담당자를 배치하면 좋겠다. ◆한화갑 최고위원 충청도의 소외감이 크다.임명직 때 고려해야한다. 지구당 보조도 원외를 더 지원하는 것이 좋겠다.특히 최고위원이 없는 부산·경남지역과 당원들의 소외감에 잘 대처해야 한다. ◆정대철 최고위원 지방의원 유급제를 실시해야 한다.지구당 당직자를 유급직으로 해야한다. ◆신낙균 최고위원 여성 소외대책이 필요하다.지명직(임명직)에 배려해주면 좋겠다. ◆김 대통령 원외위원장 고충처리위 제안은 최고위원회에서 협의해만들면 좋겠다.최고위원들이 원외위원장과 대화도하고,원외지구당을순회도 하라. ◆정동영 최고위원 특히 영남지역 65개 원외위원장에 대한 통로를 만들어야 한다.민원·정책·예산·법률 등의 문제를 야당이 독점하고있다.영남지역 위원장들에게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부산·경남,대구·경북지역 지구당위원장단 회의를 격주로 최고위원들이 같이 참여하는 것이 좋겠다.네티즌,사이버 홍보대책,방송토론 지원,미디어 대책기구 설치 등 당 시스템의 현대화가 필요하다. ◆장태완 최고위원 대북정책에 대한 여론이 긍정적으로 많이 바뀌었다. ◆김 대통령 내일 이뤄지는 비전향 장기수 송환은 당당한 인권국가의이미지를 세계에 심어주게 될 것이다. 강동형 주현진기자 jhj@. *청와대 최고위원회의 좌석 배치. 1일 청와대 최고위원회의 좌석 배치는 앞으로 당에서 열리는 최고위원회의 좌석 배치에 준용될 것 같다. 청와대는 직사각형 테이블이고,당은 원탁과 ‘ㄷ’자형 테이블이어서 다소 차이는 있지만,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김 대통령 맞은 편의 서영훈(徐英勳) 대표를 중심으로 경선 득표순위와연령,선수(選數) 등을 감안해 좌석을 배치한 흔적이 역력했기 때문이다. 청와대 의전 배치 서열을 감안하면 12명의 최고위원 서열은 서 대표를 선두로 한화갑(韓和甲)·이인제(李仁濟)·권노갑(權魯甲)·김중권(金重權)·박상천(朴相千)·장태완(張泰玩)·신낙균(申樂均)·장을병(張乙炳)·정동영(鄭東泳)·김근태(金槿泰)·정대철(鄭大哲) 최고위원 순으로 점쳐볼 수 있다.김 대통령이 월 1회 이상 청와대에서 주재하는 최고위원회의는 계속 이같은 좌석배치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경우 동교동계 맏형인 권 최고위원이 다소 밀리는 형국인게 부담스런 대목이다. 당에서 이를 어떤 식으로 고려해 최고위원 좌석을 배치할 지 주목된다. 강동형기자 yunbin@
  • [황석영의 맛따라 추억따라](14)낯선 땅에서

    *고소하고 쫀득한 영암 '어란' 술안주로 그만. 동섭이는 그 무렵에 생업에는 뜻을 잃고 서화를 모은다 수석을 주으러 다닌다 분재를 가꾼다 하면서 유신시대를 보내고 있었는데 나중에는 농민회 일도 뒷바라지를 하게 되었다.하여튼 그가 연말에 내게 작은 단지 두 개를 보내왔는데 이것이 기가막힌 전라도 특산품들이었다. 그 훈제 소시지처럼 생긴 것은 바로 그 유명한 영암 ‘어란’이었다. 영암은 예로부터 영산강이 내륙 깊숙히 들어오는 영산포를 끼고 있고 서쪽에는 너른 갯벌을 지니고 있었다.바다에서 잡히는 숭어가 아니라 갯벌에서 잡히는 숭어를 참숭어라고 따로 부르는데 영양이 풍부한 갯벌에서 잡힌 숭어는 특히 아랫배가 축 처질 정도로 큼직한 알집을 배고 있기 때문이다.거의 엄지와 가운데 손가락의 한 뼘만한 크기의 알이다.보통 숭어는 바다에서 그물로 잡지만 참숭어는 물이 들면서갯벌의 생물을 먹으러 들어오기 때문에 물때를 맞춰 미리 나가 기다리다가 낚시를 띄워 잡는다. 숭어의 알을 내어 우선 맛 좋은 간장에 하루 이틀 담가 둔다.장이배면 건져내어 한식경쯤 찬물에 담가 두었다가 다시 건져서 보름쯤 그늘에서 말린다.그것을 무거운 돌로 눌러 두었다가 다시 말린다.말리는 동안에 틈틈히 참기름을 바른다.바르고 말리고 하기를 다시 한 스무날쯤 하고나면 전라도 말로 ‘짠닥짠닥’한 진갈색의 어란이 완성된다.어란은 예전부터 궁중 진상품이었을 정도로 귀한 식품이었다.어란을 칼로 얇게 저며서 술상에 안주로 내는데 고소하고 감칠맛 있고쫀득거리는 것이 소주에도 좀처럼 속이 패이지 않는다. 그리고 다른 항아리에 들었던 것이 ‘토하젓’이었다.토하젓은 장성것이 옛적부터 으뜸이라 하는데 민물새우로 담근 젓이다.산에서 흘러내린 맑은 물을 모아둔 저수지에서 채로 떠내는데 내장이 비칠 정도로 말가서 가뭇가뭇 눈의 검은 점들로만 분간을 할 수가 있을 정도다.이것들을 소금 넣고 저리면 익힌 것처럼 이내 붉은 색으로 변한다. 요즘은 도시 사람들에게도 알려져서 토하젓이라고 유리병에 조금씩넣어 판매하고 있는데 새우의 몸집이 모조리 분해되어 뭉그러져 있다.진짜배기 토하젓은 새우의 몸체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어야 싱싱한 향내가 난다.젓갈이 콤콤하겠지 같잖게 향내라니 무슨 소리냐고 하겠지만 토하젓을 집어 씹어보면 몸이 탁탁 터지면서 향긋한 흙냄새가 난다.그래서 토하젓이다. 흙냄새가 나지않는 토하젓은 일반 새우젓이나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이 토하젓을 한 젓가락씩 집어다 밥에 살살 비벼 먹으면 기가 막힌데 얼른 먹어야지 비벼서 잠깐 놓아두면 이내 밥알이 삭아 버린다. 그래서 소화제라고도 부른다. 그리고 당시의 모 기관 지부에서 내게 말썽부리지 말라고 설에 보내온 것이 있었다.멸치 한 상자였다.한 포대도 아니고 라면 박스 반만한 크기의 종이함에 들어있던 것이다.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그냥볶아 먹고 국에 넣어 먹고 했는데 식구가 하는 말이 ‘내장 따내기가 어쩐지 아깝다’는 것이었다.뭐가 아까우냐,했더니 좀 보라고 하며멸치를 내밀길래 들여다보니 모두가 똑같이 알을 배고 있었다.그것도 그냥 통통한 게 아니라 미어져 터질 듯이 알을 배고 있었다. 나중에 여기 사람들에게서 들으니 이게 바로 ‘칠산멸치’라는 것이다.목포 건어물 시장에 가서 이것을 찾으면 주인이 아주 특별한 단골이나 기관장들에게만 겨우 한 상자씩 내어다 준다고 하였다.이것을통째로 몇 마리만 넣으면 국이나 찌개 맛이 감칠맛 있게 깊어진다고하였다.대개 잡는 철이 보통 멸치와는 다른데 언제가 적기인지는 오래전 일이라 잊었다.다만 알을 낳으러 조기처럼 칠산 앞바다에 몰려올 제 잡는데 거의 모두 알을 배었지만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 나중에 다시 선별을 한다는 것이다. 광주 같은 도회지에서도 한 두 집 볼 수가 있지만 읍내 장터 모퉁이의 ‘짱뚱이 탕’도 강원도와 충청도의 곰치 또는 물텀벵이 탕처럼해변에서 흔한 허드레 물고기로 끓이는 아침 해장국이다.짱뚱이는 경기도 해안 지방에서 ‘망둥이’라고 부르는 그 놈이다.망둥이는 주로 갯벌에 사는데 바닷물이 빠지면 구멍을 파고 들어가 밀물이 들어올때까지 은신한다.어떤 때에는 갯가의 부들이나 왕골 줄기에 으젓하게 올라가 바람을 쐬기도 한다.두 눈이 퉁방울처럼 솟아올라 뒤룩거리고 생명력이 강해서 내장을 다 빼고물에 담가 두어도 한나절을 아가미를 펄덕거리며 살아 있다.숭어가 뛰니까 무엇도 뛴다는 그 망둥이요 짱뚱이다.나는 고등학생 때에 어느 여름방학에 대부도에 외가가있는 친구와 함께 놀러가서 일주일 동안 질리지 않고 망둥이 낚시질을 한 적이 있었다.망둥이 낚시는 찌고 뭐고 아무 필요가 없다.그냥낚시에 갯지렁이를 아무렇게나 꿰어 무릎에 찰랑찰랑한 바닷물에 담그면 정신없이 물어댄다.낚아 올리고 떼어내어 옆구리에 찬 바구니에 넣고 또 던지고를 되풀이 한다.잠깐 오후에 나가서 사오십마리씩을낚을 수가 있었다.이 짱뚱이를 추어탕 끓이듯이 푹 고아서 거의 가루가 된 것을 체에 걸러 씰가리(우거지) 넣고 얼큰하고 구수하게 끓인게 짱뚱이 탕이다. 어디 한 두 가지 뿐이겠는가.이 고장의 웬만한 한정식 집에 가서 얼른 상 위를 한바퀴 둘러보노라면 맛깔스런 음식이 좌악 깔렸다.그중에 다른 지방에는 없는 고기 요리가 있으니 바로 ‘떡갈비’다.창평엿으로 유명한 담양 떡갈비가 맛이 좋다고 하는데 아마도 우시장이커진 뒤의 일일 것이다.떡갈비는 효도 음식이라고도 하며 그 이유는노인들도 자시기가 좋아서라고 한다.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갈비살을 말끔하게 발라내어 칼로 존다.다진 것은 아니지만 조아 놓은 갈비살을 배며 갖은 양념에 재었다가 뭉쳐서 굽는데 뼈나 힘줄이 붙어있지 않아서 이가 좋지 않은 이들도 안심하고 먹을 수가 있다. ‘죽순 백숙’은 담백하고 느끼하지 않은 영계백숙이다.삶아서 쓴맛을 우려낸 죽순을 닭의 뱃속에 찹쌀 마늘과 더불어 넣고 푹 곤 것인데 닭살과 죽순이 어우러져 구수하고 맵고 짜지 않아서 아이들 보양식으로도 좋다. 이제 젓갈 얘기나 하고 그쳐야지 이러다가는 온통 전라도 음식 자랑만 거들다가 말겠다.젓갈을 주 반찬으로한 한정식 집도 읍내마다 많을 정도니까 전라도가 가히 젓갈의 고장임을 알겠다.멸치 황새기 젓은 어디나 있는 것이고 갈치 속젓이나 돔베젓은 전라도 특유의 것이다.토하젓은 이미 나왔고 전어 밤젓은 그 고장 사람들뿐만 아니라 타관 사람들도 한 젓가락 맛을 보면 우리나라 이밥 반찬의 진수를 깨닫게 된다.또한 참게장은 앞에서도 나왔지만논이나 방죽에서 잡아다가 항아리에 다진 쇠고기를 넣어 며칠간 먹인 다음에 그대로 장을 부어 담근다.참게 뚜껑 하나로 고봉 밥을 먹어 치운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밥 도둑놈’이다.대구아가미젓은 무와 같이 담가서 아삭이는 맛이 좋고 갈치젓은 담가서 무쳐 먹기도 하지만 전라도에서는 멸치 젓국과 함께 김장에도 넣는다.서산 어리굴젓이 신선하게 속성으로 발효 시켜서 먹는다면 전라도 굴젓은 보다 맵고 짜게 담가서 오랫동안 발효 시킨다. 설록이니 작설이니 하는 차로부터 모과차니 유자차니 하는 것들이며,항아리에 닭고기 뼈를 넣어 두어 지네를 모은 다음에 그대로 담그는지리산 오공주며,쌀로 내린 소주에 진달래를 담가 오래 묵힌 진도 홍주며,독하지만 얼른 깬다는 영광 토주며,하는 마실 것들도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황석영
  • [황석영의 맛따라 추억따라](13)낯선 땅에서

    *우연히 맛 본 '홍탁' 오감 뒤흔든 맛의 혁명. ‘만만한 게 홍어 거시기’라는 속담이 퍼지게 된 데에는 다 그럴만한 유래가 있다.생물학적으로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되,현지 사람들 말에 의하면 홍어는 ‘되다만 물고기’라고 한다.즉 물고기와 파충류의 중간치기라는 것이다.오래 전에 홍도에 갔을 때 섬 주위를 배를 타고 돌아보다가 물 밑 저 아래로 지나가는 거대한 물고기를 본 적이 있었다.그것은 거의 돗자리 한 장만한 크기였는데 유유히 물 밑으로 헤엄쳐 지나갔다.아마도 가오리일 거라고 뱃사람이 말했다.하여튼 가오리와 홍어는 얼핏 보아 구분이 잘 안간다.아마도 바닷 속 생물중에서는 한통속일 거라고 생각한다.홍어는 대개 방석 한 장만한 크기가 제일 맛있다.다시 ‘홍어 거시기’ 이야기로 돌아가서 홍어를잡으면 암놈과 수놈은 가격에서 큰 차이가 난다. 수놈 홍어는 암놈에 비하면 헐값이고 쳐주지도 않는다.실제로 찜해 놓은 것을 먹어보면 암놈은 지느러미 부근이나 속뼈가 흐물거리고오돌오돌 씹히건만 수놈의 것은 뻣뻣하고 딱딱해서 발라내야만 한다. 그리고 살 맛도 부드럽고 쫄깃하지 못하고 어딘가 퍽퍽한 느낌이다. 사가는 사람이야 겉모양만 보아서는 어느게 암놈이고 수놈인지 분간하기가 어렵다.이 때에는 생선을 뒤집어 배 아래쪽을 보면 된다.물론암수의 성기가 다르기 때문이다.아니,물고기에 성기라니.홍어는 다른물고기들처럼 난생이 아니라 태생이다.따라서 다른 물고기들처럼 암놈이 알을 낳으면 그 주위에 정액을 뿌려서 수정 시키는 게 아니라직접 교미를 통하여 수태하고 새끼를 낳는다.어부들이야 그러지 않겠지만 중간상인들은 홍어가 들어오면 배를 뒤집어 살피고나서 수놈 홍어의 ‘거시기’부터 얼른 떼어낸다.암놈과 같은 가격을 받아내려는속셈에서다.그래서‘만만한 게 홍어 거시기’가 되어 버렸다. 전라도 사람들은 홍어의 맛 중에 ‘목포 홍탁’을 제일로 친다.칠십년대 초반엔가 우연히 ‘홍탁’을 맛보고 진저리를 쳤던 적이 있었다.무슨 날고깃점 같은 것을 두툼하게 썰어 내오고,그와 크기가 비슷하게 돼지고기 삶은 것 몇점이 곁들여졌는데,묵은 김치가 찢어 먹기 좋도록 썰지도 않은 채로 한접시 따라 나왔다. 술은 주전자에 넘칠 듯 가득 들어있는 탁주 막걸리였다.상대방의 하는 짓을 보고 그대로 따라 하는데 우선 날고기 비스무레한 것에 돼지 삼겹살을 겹쳐서 손으로 찢은 김치에 둥글게 싸서는 입 안에 넣었다.한 입 씹자마자 그야말로 오래된 뒷간에서 풍겨 올라오는 듯한 개스가 입 안에 폭발할 것처럼 가득찼다가 코를 역류하여 푹 터져 나온다.눈물이 찔끔 솟고 숨이 막힐 것같다.그러고는 단숨에 막사발에 넘치도록 따른 막걸리를 쭈욱 들이켠다.잠깐 숨을 돌리고나면 어쩐지 속이 후련해진다.참으로 이것은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혀와 입과 코와 눈과 모든 오감을 일깨워 흔들어버리는 맛의 혁명이다.말 그대로 어리떨떨하다가 정신이 번쩍 나는 것이다.이들 홍어,돼지 삼겹살,묵은김치를 전라도 사람들은 ‘삼합’이라고 부른다.‘홍탁 삼합’을 처음 먹는 사람들은 어찌나 독한지 입천정이 홀라당 벗겨져 버리기도한다. 이 지독한 별미는 홍어를 발효 시켰기 때문이란다.싱싱한 홍어를 사다가 그대로 뒤란 두엄더미속에 던져 둔다.다른 생선이나 육류 같으면 대번에 썩어 문드러질텐데 두엄 더미 속에서 사나흘 삭으면 홍어는 적당히 발효가 된다.살은 아직도 먹음직한 선홍색이다.이것을 두툼하게 썰어서 자연 그대로 먹기도 하고 얇게 저며서 고춧가루 섞은소금에 찍어 먹기도 한다.그뿐 아니라 찜을 하여도 맛이 독특하다.발효시킨 홍어찜은 날 것 보다는 덜해도 개스는 여전해서 코를 탁 쏘는 맛은 여전하다.삭힌 홍어를 갖은 양념하여 다른 물고기 찜을 하듯이 뭉근하게 쪄서 내는데 살과 뼈를 모두 함께 먹을 수가 있다.잔뼈가많이 들어있는 지느러미께는 마치 중국요리의 샥스핀처럼 부드럽고아작거리는 맛이 그만이다. 그냥 가자미처럼 잘게 썰어서 갖은 양념과 채썬 무에 미나리 등속과 버무린 홍어무침은 흔히 경조사의 주요 음식으로 나온다.충청도에서도 홍어찜을 쳐주는데 발효 시킨 것은 아니다.도회지 사람들, 특히서울 사람들은 거의가 삭힌 홍어를 처음 먹을 때에는 ‘다시는 먹지않겠노라’고 혼자서 속으로 은근히 결심을 하지만,십중 팔구는 나중에 기회가 생기면 슬슬 조심하면서 먹게되고 한번 맛을 들이면 아예요즈음 말로 ‘마니아’가 되어 버린다.제법 맛을 아는 고참이 되면홍어찜을 먹다가 더욱 냄새가 고약한 홍어애를 서로 먹겠다고 다투게된다. 옛날에도 홍어는 가짜가 많았다.흔히 조기를 말린 굴비가 그렇듯,칠산 앞바다에서 잡은 굴비를 영광 법성포에서 말린 것이 영광 굴비이듯이 홍어도 흑산도에서 잡은 것이 진짜 노릇을 하는 셈이다.흑산 홍어는 지느러미에 부드러운 가시가 있고 몸빛이 조금 더 진하고 검붉은 기가 도는데 살이 단단하고 차지다고 한다.뾰족하게 솟아난 코를둥글게 구부려 보면 다른 홍어는 쉽게 부러지지만 흑산 홍어는 유연하게 구부러질뿐 부러지지 않는다. 요즈음에는 흑산도는 물론이고 인근 서해에서 홍어가 잘 잡히지 않으니 진짜배기 흑산 홍어는 부르는게 값이라고 한다.그래서인지 저 남반구의 반대편쪽에서 잡힌 칠레산 홍어가 흑산 홍어로 둔갑을 하게끔 되었다.외국산 홍어는 날개살의 뼈를 씹어보면 딱딱하고 거세어 대번에 알아차릴 수가 있다.그래서 부드럽게 하려고 온갖 조리법에 신경을 쓰는 모양이다.회는 살만 저며내니 그렇다치고 통째 찜으로 낼때에도 잘 삭히고 오래 쪄내면 구별이 안되기도 한다. 요즈음 진짜 홍어 먹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말해주는 시정의 뒷말이 있다.모모 당의 원로 되시는 이가 진짜 흑산 홍어를 전문으로 취급한다는 어느 음식점에서 홍어를 먹어 보고는 자신있게 ‘이건 진짜’라고 점수를 매겼다.그는 한 고장 출신으로 홍어를 좋아하는 대통령에게 자랑하려고 포장해달라며 다시 한 접시를 주문했더라고 한다.사정을 알게된 주방장이 급해졌는지 달려나와 속내를 털어놓는데 진실을 밝히자면 ‘이건 가짜’라는 것이다.즉 아무리 높은 어른도 구해먹기가 어려워졌다는 농담일 것이다. 내가 해남 가서 처음으로 후배를 사귀어 선물을 받은 것 두 가지가있으니 그중 첫 번째가 ‘어란’이다.작은 항아리에 무슨 훈제 소시지 같은 것이 채곡채곡 들어 있었다.큰 아이가 아직도 해남 토박이인 그를 부를 때면 동섭이 삼촌이라고 부르지 않고 ‘살구 아저씨’라고 부르는 연유가 있다.해남 내려가서 자리를 잡았던 집 안에 수백년묵은 느티나무와 동백나무가 있었다는 얘기는 나왔는데 백 오십여평남짓한 마당 안에 또한 살구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해마다 가지가휘도록 살구가 열려서 초여름만 되면 내 아이들이바구니 가득 따고는 했다.동섭이는 병원 집 장남인데 도시에 나가 직장 생활을 하다가 뜻을 잃고 낙향해서 집안 일을 거들던 청년이었다. 그가 집에 올 때마다 아이들에게 ‘내 살구 내놓으라고’ 엄포를 놓아서 농담 치고는 좀 괴이쩍게 생각했더니 한참 뒤에 내가 물으니 그는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성님이야 유명한 사람이고 나는 촌 구석 사람인디 금방이사가뿔면 저놈들이 내를 알것소.내가 이렇게 해둬야 낭중에 날 기억하지 않것소,하는 것이 그럴듯한 그의 대답이었다. 황석영. @
  • 민주 최고위원 경선…중진‘엎치락 뒤치락’

    민주당 8·30 전당대회를 일주일 앞두고 최고위원 경선 후보들의 우열이 드러나고 있다.절반을 넘긴 합동연설회가 변수가 되고 있다.일부 소장파들이 강세를 보이면서 중진들과 긴장관계가 조성되고 있다. [선두다툼과 연대논쟁] 한화갑(韓和甲)후보와 이인제(李仁濟)후보가대의원 지지율 60%대에서 불을 뿜는 1위 경쟁을 하고 있다는 관측이다.당초 한후보의 낙승이 기대됐으나 이후보의 추격세가 맹렬하다. 한후보측은 아직도 이후보를 안정적으로 앞서고 있다고 주장한다.지금까지 각종 여론조사에서 한번도 1위를 빼앗긴 적이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후보측에서는 한후보와 오차범위내에서 추격전을 펼치고 있으며역전도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양진영의 신경전도 치열하다.한후보측은 “당 핵심인사(權魯甲상임고문)의 이후보지원이 지나치다”며 불만을 나타냈다.이후보측에서는 “영남지역에서 김중권(金重權)·김기재(金杞載)후보와 한화갑 3자연대는 불행한 사태를 가져 올 수 있다”고 비난했다. [중상위권 다툼과 연설효과] 김중권 김근태(金槿泰) 박상천(朴相千)후보의 3자 구도에 40대 기수론을 주창하고 있는 정동영(鄭東泳)후보가 가세,4파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당안팎에서는 이들이 30∼40%대의지지를 얻고 있는 것으로 보고있다. 김중권 후보는 설득력있는 연설로 대의원들의 호감을 얻고 있다.영남권을 대표하는 후보라는 점도 강점이어서 상대후보의 견제를 받고있다. 정동영후보는 합동연설회의 덕을 가장 많이 본 후보로 꼽힌다.지지율이 거품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정후보측은 선거혁명을 기대하고 있다.최근 한 여론조사에서는 3위에 올랐다. 김근태후보는 후보연설회에서 득보다는 실이 많은 것으로 보고있다. 그러나 솔직하고,연설 내용이 좋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개혁성향의 원내외 위원장 등 조직력이 발판이 되고 있다. [7위 혼전] 당선권 마지막 턱걸이 한자리를 놓고 혼전양상을 보이고있는 느낌이다.김민석(金民錫)·추미애(秋美愛)후보와 김기재 정대철(鄭大哲)이협(李協)후보가 대의원 지지율이 15∼25%대에서 경쟁하고있는 것으로 관측된다.경쟁이 치열해 우세를 점치기가 어렵다.‘소장파 강세’에 역점을 두는 측에서는 김민석·추미애후보의 당선 가능성을 높게보고 있다.그러나 영남권후보인 김기재후보의 선전을 꼽는인사들도 많다. 당 중진들은 그러나 “정대철후보를 눈여겨 보라”고 주문한다.합동연설회에서 목소리는 크지 않지만 가장 인상에 남는 연설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이협후보도 마찬가지다.이밖에 조순형(趙舜衡)김태식(金台植)안동선(安東善)김희선(金希宣)후보 도 7위 안착을 나름대로자신하고 있다. 강동형기자 yunbin@. * 민주 경선 충청 합동연설회. 23일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 경선 충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상위권후보들은 ‘강한 여당’과 ‘정권재창출’을 거듭 강조한 반면,중하위권 후보들은 ‘경륜’‘동지’ 등을 내세운 구애 전략을 펼쳤다.특히 일부 후보들은 이번 전당대회를 자민련과 결별하는 계기로 삼자고목청을 높이기도 했다. 김중권(金重權)한화갑(韓和甲)후보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의 대화록과 인연을 소개하며 자신이 진정한 ‘대통령의 적자(嫡子)’임을강조했다. 이인제(李仁濟)후보는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와 일대일로 붙으면 압도적으로 승리하는 것으로 나온다”면서 “충청도에서도 탁월한 지도자가 나오면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충청도 대통령론’을 역설했다. 정대철(鄭大哲) 후보는 “DJP연합에 너무 의존해 당이 정체성을 잃었다”며 “JP와의 작별 의식을 예비하는 전당대회가 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의원들의 표심(票心)을 잡기 위한 눈물겨운 호소도 이어졌다.“대권을 겨냥한 사람들은 대선후보전에 나가지 왜 여기 나와서 중도 약세 후보들을 울리느냐”(李協 후보),“전북출신 세 후보 가운데 가장고생 많이 하고 빨리 죽을 맏아들인 내가 먼저 당선되는 게 도리”(金台植 후보),“개혁파니 여성파니 하며 별 사람이 다 나오는데 여당은 뿌리가 튼튼해야 한다”(安東善 후보),“나처럼 항상 지도부에 직언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趙舜衡 후보)는 등 다양했다. 추미애(秋美愛) 후보는 “한나라당 부총재 경선에서 2등을 한 박근혜(朴槿惠)의원은 엄밀히 말해 1.5선”이라고 전제,여성의원 가운데여야 통틀어 재선의원은 자신뿐이라며 민주당의 대표적 여성 기수로뽑아달라고 호소했다. 청주 주현진기자 jhj@. *민주 정당사상 첫 전자투표. 민주당 8·30 전당대회 최고위원 경선에서 정당 사상 처음 도입되는전자투표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될까. 민주당은 23일 많은 이들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여의도 당사에서 공개시연회를 열었다. 이에 따르면 전국 대의원 9,484명은 신원 확인절차를 거쳐 전자투표권을 지급받는다.이어 대의원들은 기표소에 들어가 전자투표 단말기에서 자기가 선택한 후보 4명의 사진에 터치버튼 형식으로 투표를 하게 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전자투표권을 단말기에 넣는다→후보자15명의 이름과 사진이 나타난다→후보 4명을 선택하고 이를 확인한다→전자투표권 회수 및 투표 완료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자연히 기존의 수기형 투표방식보다 투표시간이 크게 단축된다. 투표와 동시에 개표가 진행된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투표 종료 즉시개표결과가 집계됨으로써 투·개표시간의 대폭 단축과 함께 선거비용및 선거 관리인력의 감축 효과도 기대된다. 또 종전처럼 투표를 위한 대기행렬을 크게 줄일 수 있어 대의원들의투표참여 분위기가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개표화면은 최고위원 당선자,순위별 득표현황,막대그래프를 이용한 후보자별 득표현황 등 3가지로 구성된다. 이처럼 전자투표는 공개적이고 투명한 투·개표현황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디지털 선거문화의 커다란 전기가 될 전망이다. 디지털 선거문화는 궁극적으로 전자국민투표와 연결된다. 한종태기자 jthan@
  • ‘쉬움의 미덕’위에 둥지튼 본격소설 2편 출간

    쉽게 읽히는 본격소설은 아무튼 후한 점수를 받아야 한다. 최근에 나온 김향숙의 장편소설 ‘서서 잠드는 아이들’(창작과비평사)과그보다 앞서 출간된 김종광의 소설집 ‘경찰서여,안녕’(문학동네)은 작가는 나름대로 치열하게 쓰고,독자는 편하게 세상과 삶에 대한 문학적인 탐사의맛을 즐길 수 있는 좋은 예를 제공한다. 우리 세계의 진실을 문학적으로 들춰내고자 애쓰는 본격 소설은 많은 경우바윗돌을 들어올리는 거인인 양 끙끙대는 작가의 원초적인 노력이 그대로 독자에게 감지돼 읽기가 편치 않다.세상의 바윗돌을 다 움켜쥐려고 하지 말고한 귀퉁이만 살짝 들어올리면 쓰기도 쉽고 읽기도 편하지 않을까.김향숙은틴에이저의 방황을 이야기하고 김종광은 충청도 농촌·읍내의 풍속을 샅샅이 꿰뚫는다. 이 시대 십대 청소년의 일탈적인 삶은 다룬 ‘서서 잠드는 아이들’은 제목이 좀 가벼워 보이는데 ‘어른의 욕망과 부조리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입고 평안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틴에이저를 가리킨다고 한다. 등장인물 중 아버지를 일찍 여읜 지선이는 돈많은 중년남자와 원조 교제 비슷한 걸 하다 자궁을 들어내는 수술까지 하게 되며 주인공인 셈인 혜진이는가난으로 대학을 포기한 데다 암이 두 개씩이나 걸린 어머니 대신 생활비를벌어야 한다는 걸 참을 수 없어하며 집에서 도망치려 한다.중산층 남학생인남영이는 공금횡령으로 구속된 아버지 때문에 모범생에서 가출,본드흡입까지 내몰린다.통속성이 없지 않은,저널리스틱한 이야기거리들을 속도감있게 펼쳐 매우 쉽게 읽힌다.가끔 십대가 아닌 명석한 어른의 시각이 튀어나오고,중산층 이상에 한정된 풍속이 필요 이상으로 돌출되곤 한다. 그보다는 기존 세대와는 판이한 이들의 교제를 비판적이든 긍정적이든 더 깊게 들여다 보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풀어진 꽃잎처럼 절제가 없는 이들 틴에이저의 생은 병태가 아니라 새로운 변종일 수도 있는 것이다.그런 면에서 이들의 문제를 성장의 내부가 이닌 어른이란 외부에서 출발시킨 것이근본적인 약점으로 잡혀지긴 한다. 11편의 단편을 묶은 김종광의 소설집은 71년생인 젊은 작가에 대한 기대를한껏높여준다. 작가는 드물게 보는 이야기꾼인데 중소도시나 농촌의 좁은 주변에서 이야기를 건져내는 화학적 막대기같은 그의 코믹한 시선은 삶 자체에 대한 연민,사회구조에 대한 비판까지 포용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김유정의 반어,채만식의 풍자,이문구의 능청스러운 입담이 함께 심어져 있다”는 평론가 김만수의 책 말미 해설도 수긍되는 일면이 있다.평론가 김사인 또한 작가의 ‘가벼움’을 ‘거창한 이념과 명분,정도 이상의 과장된 자의식적 태도를 다같이 경계하면서’ 나온 의미있는 전략으로 높이 사고 있다. 김재영기자 kjykjy@
  • 하얀 백사장·거대한 모래산…태안반도 피서지 3選

    스러져가는 것들은 얼마나 아름다운가.우리는 서해 일몰에서 그 운치를 읽거니와 백제 사람들의 한숨과 소박한 아름다움이 몽실몽실 살아있는 충남 태안과 서산 땅에서 그 절정을 맛본다. 태안군의 해안선 길이를 합하면 530㎞.들쭉날쭉 길다란 해안선 만큼이나 다채로운 볼거리와 감동을 준비하지만 산과 들,바다가 숨바꼭질하듯 비경을 연출하는 이곳을 지나칠라치면 왠지 모를 서글픔 같은 것이 밀려온다. 바람 찬 삽교호를 건너 한참을 달리자 안면도.이곳의 가장 큰 해수욕장인 ‘꽃지’는 2002년 꽃박람회를 열기 위한 준비와 인파들로 북적대는 바람에 태안읍으로 다시 나와 603번 지방도로를 타고 북쪽을 향했다. 안면도에 비해 덜 알려졌지만 결코 빠지지 않고 동해 어느 바다 못지않게 청정한 수질이 길손을 반긴다. [학암포 해수욕장] 태안여상앞에서 40분 정도 여유있게 북행길을 밟으면 원북면 방갈리 2구.학처럼 생긴 바위가 양쪽에 버티고 있다 해서 학암포란 이름을 얻었다. 선창을 중심으로 1.6㎞ 백사장과 1㎞쯤 되는 백사장이 나란히 있는 쌍둥이해수욕장이다.조선시대부터 질그릇을 중국 상인들에게 많이 수출하던 곳이어서 분점포라고 불렸다. 군부대가 있던 선창 뒷동산에 오르면 학암포와 만리포,선갑도,울도가 병풍처럼 펼쳐지고 멀리 덕적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선창에 서면 50m정도 떨어진 곳의 바닥까지 보일 정도로 깨끗한 수질을 자랑한다. 조영광씨(37)의 어머니는 제주 비바리 출신.칠순을 넘긴 어머니는 요즘도 물질을 나가 하루 8∼9만원은 벌어온다.“어쩌겄시유.안 나가면 몸이 아프고…”선창의 배들은 이날 잡아올린 광어와 우럭,놀래미 회치는 칼질로 바쁘다. 조씨는 “지난해 좀 뜸하더니 요즘은 5㎏이 넘는 광어를 잡아올리는 모습도심심찮게 본다”며 바다를 쳐다본다.평생 보아왔을 그곳을. 봄이면 해당화가 해수욕장을 뒤덮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차량들이 마구 훼손하고 있었고 태안해안 국립공원도 아니어서 무분별한 개발에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 못내 안타깝다. [신두리 모래사막] 학암포 아래,원북읍 삼거리(반계)에서 왼쪽으로 치달으면신두리. 인천시 옹진군의 대청도와 함께 우리나라에 둘밖에 없는 해안 사구(沙丘). 물경 5㎞.마침 해무가 낀 25일 도대체 이 드넓은 백사장의 끝을 가늠할 수조차 없을 지경이다. 물이 빠지면 폭 300m에 이르는 거대한 모래밭이 드러나고 비포장 해안도로너머에는 사막같은 풍경이 몸을 감추고 있다. 모래산 위를 어지러이수놓은 발자욱과 차바퀴 자국들. 하지만 몇년전까지 ‘사방 십리가 온통 모래땅’이라던 이곳 풍경은 최근 많이 변하고 있다.들풀의 씨앗들이 어디에선가 날아와 초지로 변하고 있는 것. 여기저기 한가로이 우공들이 거닐고 있다.한 방송사 다큐팀이 이곳의 생태계 변화에 담긴 뜻을 풀기 위해 넉달째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었다. 광활하다는 표현이 딱떨어지는 백사장을 지프로 달려보자. 갈매기는 차창밖으로 길동무하고 끝없이 이어진 모래언덕 사이로 가끔씩 타조떼가 푸드덕댄다.두군데 타조 사육장이 있다.백사장을 달릴 때 유의할 점은 하얀 모래위에는 올라서지 말아야 한다는 것. 해수욕장 끝쪽엔 미국식 별장이 초지위에 버티고 서 있는데 초지와 사막,백사장을 한데 안은 오만한 자태가 도드라진다. 남쪽 끝은 굴양식장.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10월,경운기 등을 몰고 나가는마을 주민들과 함께 아리한 굴맛을 즐길 수 있다. 해수욕장을 관리하는 이 마을 번영회 총무 최평화씨(49)는 “굴이 나는 넉달동안 줄잡아 3억원 정도는 벌어들이쥬”라며 “물이 빠지면 낙지나 게가 지천이고 20㎝가 넘는 맛도 쉽게 캐낼 수 있시유”라고 말한다. [독살] 태안에서 40번 국도를 타고 20분쯤 남하한 뒤 소목골로 들어서면 원형이 남아있는 거의 유일한 원시어구(漁具)인 독살(石防簾)이 눈에 들어온다.몽산포에서 2㎞ 위쪽. 수심이 얕고 조수간만의 차가 심한 황해도 강령만과 해주만,충청도 천수만에집중 분포된 어구였으나 지금은 이곳김의배씨의 독살만이 본래 기능을 다하고 있다. 150m 길이에 지름 30∼70 돌멩이로 V자 모양으로 쌓았다.밀물을 따라 들어온물고기들이 모일 만큼 구멍을 내고 그 앞에 대발을 쳐놓고 뜰채로 건져내면그만이다. 우럭,놀래미,전어는 물론 고등어,멸치,낙지까지 잡힌다니 그 재미가 솔찮다고 김씨는 말한다. [가는 길] 완공을 서두르고 있긴 하지만 서해안고속도로가 완전개통되지 않는 등 가는 길이 불편한 편.포승I.C에서 38,34,32번 국도를 차례로 탄 뒤 태안에서 40번 국도와 649번 지방도를 이용해 태안에 이른다.천안에서 예산,덕산,갈산을 거친 뒤 서산방조제를 지나 태안으로 들어오는 길도 있으나 서울에서 갈 경우 전자가 수월하다.그러나 학암포에서 밤 9시30분에 출발할 경우12시면 서울에 도착할 정도로 사정은 나아지고 있다. 서울 남부터미널(02-521-8550)에선 학암포까지 직행버스가 여름 성수기만 7차례 운행된다.요금 1만2,600원. [들를 곳] 백제인의 황홀한 미소를 담은 서산과 태안의 마애삼존불을 비교감상하는 것은 필수.개심사와 아픈 역사를 지닌 해미읍성을 들러보는 건 선택. 원산도,삽시도,장고도 등과 연결되는 영목항에서 어리굴젓,까나리액젓 등을구입한다.배편 문의 영목슈퍼 673-7151안면도 휴양림 673-5017학암포에는 조영광씨 민박집(041-674-7103) 등. 학암포(충남 태안) 임병선기자 bsnim@
  • [황석영의 맛따라 추억따라](8)낯선 땅에서

    *'옹심이 수제비'맛보았던 가슴아린 강릉길. 이미 청소년기에 집을 나가 한 해 가까이 남도 곳곳을 싸돌아 다녔고, 장성해서도 남한의 이 구석 저 구석을 헤집고 다녔으니 비록 먹는 이야기라 하여도 한정된 지면에 모두 기억하여 쓸 수는 없을 것 같다. 음식이나 풍속과 말씨에 오래 전부터 동한 서한의 구분이 있어 강원 경상도와 충청 전라도가 한데 묶인다.같은 생선탕도 서해의 조기매운탕과 동해의생태매운탕은 그 맛이 전혀 다르다. 내가 강원도 출입을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일학년부터였는데 첫 학기에 등산반에 들어갔던 탓이었다.당시의 고등학교 등산반은 그냥 산에만 오르고 내리는 게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선배들이 암벽타기 훈련부터 시켰다. 기초는 대개 인왕산에서 슬로프 코스와 침니를 익히고 북한산으로 가서 인수봉의 두코오스를 마치고 틈틈이 오봉과 우이암에서 세밀한 기술을 익힌다.그래서 바위에 자신이 붙으면 도봉산의 선인봉 남측 측면 십자로와 전면을 타고 주봉의 그 유명한 티자 침니를 기어 오른다.그리고는 여름방학이면 벌써설악산으로 가던 것이다.겨울에는 다시 빙벽 훈련을 하러 내설악을 찾아가고 지경을 넓혀 오대산까지 찾아갔다.고등학교 때에 알고 지내던 어린 록크라이머들은 조난으로 죽은 친구들도 있었지만 나중에 유명한 산악인이나 등산지도자로 성장했다. 내가 고교를 자퇴하고 집을 나가서 방랑했던 얘기는 뒤에 하겠지만,하여튼산에 다니면서 나는 당시 일제에서 해방 되었어도 전체주의 교육의 잔재였던규율과 획일화라는 학교감옥에서 놓여나는 기분이 들었다.감수성이 예민하던시절에 벌써 나는 학교와 집과 동네의 울타리를 벗어나는 체험을 원격지 등반을 통하여 익혔던 셈이다. 훨씬 뒤에 아직은 이십대 초반이었지만 아직도 수염이 뻣뻣하지는 못했을 적인데 나는 러시아 문학을 전공 한다는 어느 친구와 함께 강원도를 돌아다녔다.나도 가난했지만 그 친구도 겨우 남의 가정교사로 용돈벌이를 하던 중이었다.그에게는 사랑하던 여자가 있었건만 심중을 털어 놓지는 못했던 모양이었다. 그의 집이 왕십리에 있었는데 우리는 막걸리 한 주전자를 놓고 어느 선술집에앉아 있었다.그는 술이 거나하게 오르자 점점 우울해지는 얼굴로 변해 갔다.이해가 되는 것이 그는 영장을 받아 놓고 있던 터였다.연기를 할 수도 있었건만 집안 형편도 좋지 않으니 얼른 나가서 때우고 와야 할텐데 그네가 마음에 걸린다는 얘기였다.그는 도스또에프스키의 죄와 벌에 나오는 라스꼴리니꼬프처럼 창백하고 마른 인상은 아니었지만 러시아 소설에나 나옴직한 깃넓고 치렁치렁한 검게 물들인 군용 오버코트를 겨우내 걸치고 다녔다. 때는 마침 늦은 봄이라 불행하게도 분위기 있던 외투를 벗어버리고 역시 검게 물들인 미군 쫄쫄이 작업복 차림이어서 볼품은 없었다.그가 갑자기 강릉엘 가자는 것이었다.거리는 이미 어두워져 있었고 봄비가 제법 세차게 내리고 있는 중이었다.청량리 역은 선술집에 앉아서도 기적 소리가 들려올 만큼가까운 거리에 있었다.우리는 비를 맞으면서 역까지 걸었다.거의 통금시간이다 되어 출발하는 강릉 가는 완행열차가 있었다.처음에는 소주에 마른 오징어를 씹다가 서로 기대어 자다가 날이 밝으면서 영주 태백을 지나서삼척에당도하면 거기서부터 철도는 바닷가를 향해 달린다. 바로 철로 아래 흰 포말이 이는 파도와 짧은 백사장이 보이고 저 근사한 해변묘지가 천천히 지나간다.해송이 구부리고 섰는 숲 위로 백로 떼가 날아 앉는다.벌써 상큼한 바다 비린내가 풍겨 온다. 우리는 항구에 도착했다.정박해 있는 배는 마치 잠시 후에는 모든 것을 훌훌털고 먼 바다로 떠나버릴 자유의 상징처럼 보이기도 했다.그가 전화를 건다. 그네는 주문진에서 소학교 선생님으로 있다고 한다. 사범학교를 나와 부임했다니 겨우 우리네와 동갑내기이거나 아래일 것이 분명했다.소녀였지만 그네는 하여튼 선생님인 것이다. 퇴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니까 우리는 강릉으로 되돌아 나가서 하루 종일서성거렸다.그때에는 해수욕장이라곤 경포대 정도 밖에 없었고 요즈음처럼시도 때도 없이 바다를 보러오는 사람도 드물어서 봄철의 바닷가는 거의 인적이 없었다. 그가 주문진으로 그네를 만나러 가기 전에 우리는 선창가 언저리를 돌아다니다가 뱃사람들이나 가끔씩 들를 것같은 구석진 모퉁이의 작은선술집을 발견하고 들어가 앉았다. 거기서 술국과 끼니 대신 먹어본 것이 ‘옹심이 수제비’였다.팟죽에 넣는찹쌀경단이나 조랑떡국의 동그랗게 뭉친 떡 보다는 약간 크고 투박하게 뭉친알심이 들어 있었다.감자 전 지질 때처럼 감자를 강판에 갈아 녹말을 내려서건더기와 함께 반죽하여 수제비 끓일 때처럼 멸치 다시에 호박이며 양파며 풋고추 등속을 넣고 그저 설설 끓여낸 것인데 시원하고 얼큰하고 든든하다. 그때 처음 본 오징어 순대도 신기했지만 나중에는 흔한 음식이 되어 버렸다. 그냥 시장 모퉁이 아무데서나 해장으로 끓여 주는‘곰치국’은 충청도 서해안 지방의‘물텀벵이탕’과 비슷했다.해안가에서 사는 메기 비슷하게 생긴놈인데 살과 뼈가 흐물거리고 무를 함께 넣고 오래 우려낸 국물 맛이 비리거나 기름지지 않고 맑았다. 나는 선창이 멀리 내다보이는 일본식 이층의 여인숙에 방을 정하고 주문진에그네를 만나러 간 친구를 기다렸다. 그는 통금이 되어서도 돌아오지 않더니한 시가 넘어서야 술이 만취해서 방문을 벌컥 열었다.그는 아무 말없이 그무렵에 젊은 여자들 사이에 대유행이던 흰색 하이힐을 비좁은 방 가운데로 던졌다.나는 이불 위에 떨어진 여자 구두를 내려다 보았다.잠이 번쩍 깨는 느낌이었다. 엽기적인 생각과 함께 그가 성공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부러움이 동시에 지나갔던 것이다.그렇지만 그는 사건의 전말을 절대로 얘기하지 않고 취해서 시뻘건 눈으로 자기 청춘의 시대가 이것으로 막을 내렸노라고 중얼거렸다.그는한 달 뒤에 군대에 나갔고 몇 년 후에야 제대한 그에게서 그날 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가 여선생을 만나서 다방에 앉아 청혼을 했다고,그네는 어리둥절하고 놀라서 말을 못하더라는 것,마침 휘영청 달이 밝은데 그가 여선생을 하숙집까지바래다 주겠다고 했고,걷다가 이제는 마지막이니 표적이라도 남기겠다며 그가 입을 맞추려고 덤볐다는 것,바로 길 옆에는 바람에 휘청대는 보리밭이 있었고,장소는 맞춤했지만 술 취한 그 보다 그네가 힘이 더 세었다고,그쪽에서떠미는 바람에 넘어지고, 넘어져서도 두 다리를 잡았다는 것,그래서 그네는콩쥐처럼 신만 남겼다고 한다. 어쩌다가 동해안에 가게 되면 음식들은 모두 관광 일색이 되어 온통 생선회천지가 되었지만 ‘옹심이 수제비’나 ‘곰치 해장국’을 찾으려면 선창을이곳 저곳 기웃거리며 헤매다녀야 한다. 황석영
  • 7월의 독립운동가 김한종 선생

    국가보훈처는 30일 항일의병으로 활약하고 비밀결사조직인 대한광복회에서의열독립투쟁을 전개한 일우(一宇) 김한종(金漢鍾·1883∼1921) 선생을 광복회 등 유관기관과 공동으로 ‘7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1883년 충남예산 사대부 집안에서 태어난 선생은 충남 홍주성을 탈환하기 위해 의병으로참여했고 경술국치이후 충청지역 동지들을 모아 부여를 방문하는 조선총독암살계획을 모의했다. 선생은 1917년 일제의 폭압적인 무단정치로 의열투쟁이 여의치 않자 비밀결사체인 대한광복회에 가입,충청도지부장을 맡아 조직 확대,군자금 모금,악덕지주 및 친일부호배 처단 등 ‘독립전쟁 준비전략’을 실행에 옮겼다. 그러나 이듬해 1월 대한광복회 조직이 적발되면서 충청도지부 동지들과 함께 일경에 체포돼 1919년 대구복심법원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르다1921년 7월28일 38세의 젊은 나이로 대구형무소에서 순국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노주석기자 joo@
  • [황석영의 맛따라 추억따라](5)잃어버린 먹거리

    *북서 먹어본 단고기 별미...겨자로 무쳐 새콤달콤 북에서 먹은 음식 가운데 매우 독특한 찌개가 생각난다.언젠가 전주에 갔다가 ‘오모가리’라는 민물고기로 끓인 일종의 고추장 찌개가 별나다고 생각했던 것과도 같았다. 북에서는 여러 초대소를 다녀 보았는데 그중에 오래 있던 곳이 서재골 초대소와 철봉리 초대소였다.서재골은 외국 사절들이 묵는 곳이어서인지 주방의조리 방식이 다분히 중국 요리나 서양식으로 뒤섞여서 나왔다.장기간 머무는이에게는 일종의 연회 음식이 이내 질리기 마련이다. 철봉리에서는 삼십대의 주방장과 연회가 있을 적에는 노인 한 분이 지원차오곤 했다.주방장의 이름은 잊었지만 황해도 안악이 고향이라는데 나중에 그의 집도 방문했다.그의 어린 두 딸이 고사리 손을 조물거리면서 무용을 하고노래를 하던 모양이 잊혀지지 않는다. 나는 정성스럽게 차려주는 연회 음식 먹기가 지겨워서 나중에는 스스로 외환상점에 나가 일제 카레를 사오거나 라면을 사다가 점심을 직접 해먹기도 하였다. 이런 얘기가 밝혀져도 괜찮을까는 모르지만 북쪽 초대소의 남녀 접대원에서요리사와 운전수에 이르기까지가 모두 호위총국 소속의 군인들이었다.나중에그들과 한 식구처럼 친해진 뒤에야 그들의 계급도 알 수가 있었다. 여성 접대원들은 대개는 소위 중위들이고 때로는 사격 훈련도 한다고 하였다.따라서우리 주방장이 소좌라는 사실도 나중에야 알았다. 선생님,토속으로 자시고 싶다 그거지요?그는 돼지고기 김치 찌개도 만들고 된장 뚝배기도 내왔다.북의 통조림으로나오던 볶은 고추장이 해외동포들에게 인기였는데 나는 아무래도 된장이 더먹고 싶었다.그렇지만 가정식 장독대가 거의 사라져버린 고장에서 맛깔스러운 된장을 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었다.역시 우리가 예전에 진짜 일본의 미소 된장하고는 다르면서도 왜된장이라고 부르던 공장에서 대량으로 속성되어나오는 된장이었다. 북한 문인들 말을 들어보면 전후 복구에 힘을 쏟던 ‘천리마 운동’ 기간에 가정음식들이 많이 사라졌다고 한다.구역마다 밥 공장과반찬 공장을 두어 단체로 식사를 하거나 타다가 먹었다고 하는데, 경제복구가 끝나고도 직장이나 기업소마다 단체급식을 하는 생활은 남아있는 셈이었다.즉 손님 접대는 연회 음식이 될 수 밖에 없었다. 하루는 주방장이 고심을 했던지 김치도 보다 맵게 담그고 간고등어도 굽고저 유명한 서해안 곤쟁이젓도 내왔는데 못보던 음식이 나왔다.구수하고 짭짤한 것이 입맛이 확 살아났다.이게 뭐냐고 했더니 ‘호박짠지 지지개’라고한다.열무와 호박이 섞여 있는데 애호박이 보통 호박찌개처럼 물컹하지 않고설익은 것처럼 설컹거렸다. 그는 평양에서 한 시간 반쯤 거리인 안악의 고향 집에 다녀왔다고 한다.역시북에서도 장이나 밑반찬 같은 먹거리는 고향 부모님들이 보내준다고 하였다. 이제 노인님들이 다 돌아가시면 젊은 아낙들은 음식을 못해서 큰일이라고사내들마다 걱정인 것은 우리와 같다.그가 안악에 가서 가져온 것은 된장과바로 이 ‘호박짠지’였다. 열무나 배추로 짠지를 담글 적에 호박을 쑹덩쑹덩 썰어서 김치 담그듯이 한켜씩 소금을 뿌려가며 항아리에 담는다.소금에 충분히 절인 다음 풀물이나뜨물을 부어 사나흘이 지나면 대충 익게 된다.호박짠지를 꺼내어 물에 헹구고 된장과 까나리 또는 조개를 넣고 찌개를 끓여내는데 파와 마늘과 풋고추를 썰어 넣으면 된다. 내가 이 음식을 기억하게 된 것은 실로 십 년 만의 일이었다.충청도 덕산으로 이사와서 한 마을에 혼자 사시는 할머니 한 분이 집안 일을 도와 주러 오게 되었는데,곁에서 며칠 동안 나의 식성을 지켜 보고나서 무슨 음식을 냄비에 담아 왔다. 좋아하실까 모르겄지만 한번 잡숴봐유. 그래서 뭐냐니까 충청도 ‘호박김치’란다.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이랬다. 호박짐치는 원래가 찌개 끓여 먹을라구 당그는기유. 어허,가만 있어 봐.어디선가 먹은 기억이 나는데.그제서야 이북에서 먹었던생각이 났다.충청도 호박김치는 늙은호박을 속을 긁어내고 쓰는데 무청이며배추를 섞어서 김치를 담그듯이 갖은 양념하여 새우젓까지 쓴다.그냥 먹기에는 호박이 입 안에서 뱅뱅 맴도는 것이 어쩐지 김치 맛이 나질 않고 찌개를끓여 먹으면 담백하고 구수하다.얼핏 제주도의 갈치 찌개 생각이 나서 이 호박김치에 잔 갈치를 토막 쳐서 넣고 끓였다.역시 호박김치 찌개의 훌륭한 완성이 아닌가. 같은 서해안에 지형과 풍토가 비슷해서 그런가 충청도와 황해도의 음식은 여러 가지로 비슷한 점이 많이 있다. 북에서 먹은 음식 가운데 여러 가지 기억이 나지만 그중에서도 ‘단고기’는아주 특별하다. 개장국은 각 지방마다 서로 다르지만 특히 서울식은 사라져버렸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옛날 개장국은 지금 보다는 맑고 오히려 육개장 비슷했던것 같은데 남도식과 섞여 버렸다.들깨나 깻잎을 많이 쓰는 것이 그렇다. 남도 식은 오리탕도 그렇지만 들깨를 거의 죽처럼 갈아서 넣고 고구마순도 함께 넣는다. 북쪽의 개장국도 평안도쪽과 함경도 식이 서로 다른데 평안도 식이 서울의예전 개장국 비슷하다면 함경도 식은 요즈음 서울의 두루치기와 비슷하다. 하여튼 단고기를 먹은 중에서 대단히 맛이 있었던 것은 가장 부드러운 목둘레의 살을 얇게 저며서 해파리 냉채 무치듯 겨자를 넣고 새콤달콤하게 무친것이었다. 백두산 지방을 돌아다녔을 때 삼수에서 먹은 산천어 구이는 특별했다.두만강상류라고 하지만 폭이 오륙미터 밖에 안되는 개천인데 이쪽은 조선이고 저쪽은 중국이라 하였다.개천에 그물을 쳐두고 기다렸다가 건지면 팔뚝만한 산천어가 걸려서 퍼덕였다.산천어는 송어가 강을 따라서 올라왔다가 붙박이 고기가 된 것인데 백두산 천지에 방류하여 양식에 성공하였다고 한다. 안내인은여러번 해왔던지 부근의 반질거리는 반석 아래 장작불을 때어서 달군 다음에참기름을 두르고 소금을 뿌려 살아있는 산천어를 던졌다.그리고 그 사이사이로 백두산 송이버섯을 얇게 저며 함께 굽는다.꼬리와 머리에 은박지를 감아쥐고 옥수수 먹듯이 산천어를 뜯으며 송이로 입가심을 한다.고기의 살이 솜처럼 부드럽고 향긋한 물비린내가 입맛을 돋구었다. 이런 식의 자연식은 이를테면 해금강에서 먹었던 대합 구이에 비길만 했다. 해금강은 군사분계선 구역이라 무인지경이었는데 주먹만한 자갈이 깔린 바닷속이 온통 대합의 밭이었다.삽시간에 군인들이 두 양동이나 건져 나왔다.해변 자갈 위에 늘어놓고 알콜 한 병을 들이붓고 불을 붙이니 파란 불이 좌악퍼져 나가면서 조개들이차례로 입을 벌렸다.사실은 익히려고 불을 놓는 게아니라 대합의 굳은 입을 벌리기 위해서란다.그대로 초장을 조개 안에 한숫갈 치고는 후루룩,하는데 입안이 가득찬다.그리곤 소주 한 잔 캬아! 하면서넘기고. 황석영
  • 오랜만에 만나는 중진작가의 힘

    중진 소설가들의 작품들이 잇달아 출간되고 있다. 작가 이문구는 91년 이후 발표한 8편의 ‘나무’ 연작 단편들을 묶어 7년만의 신작 소설집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문학동네)를냈다.작가가 밝히고 있듯이 90년대 이후 변화된 농촌의 모습과 농민들의 의식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날카로운 풍자와 풍성한 해학이 특징이다. 충청도 사투리로 이루어진 그의 독특한 입담은 이번에도 예외없이 빛을 발하고 있다.각 작품에서 “수더분하면서도 고집스럽고,학식은 짧지만 제반 일상사에서 경우 하나는 깍듯하게 바른” 농촌의 갑남을녀들이 벌이는 어깃장과대거리의 입씨름판은 농촌의 토속적 분위기를 현장감있게 담아낸다. 작가 서정인의 신작 중편소설 ‘말뚝’(작가정신)은 ‘사팔뜨기’ ‘거푸집’ ‘용병대장’ 등으로 이어진 작가의 ‘르네상스 탐문 시리즈’ 완결편이다.이 작품은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넘나들며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성,권력,예술의 타락상을 풍자적이고 구어적인 문체로 파헤친다. 십사오세기 이탈리아를 무대로 사보나롤라라는 양심적 성직자의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지만 순교자의 출현을 강요하는 오늘날의 왜곡된 현실을 꼬집고있다.이러한 작가의 문제의식은 타락한 현실 속에 안주하고 있는 소설,문학,예술의 진정한 존재 방식이 과연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어진다. 작가 김주영은 ‘아라리 난장’(문이당·전3권)을 출간했는데 신문에 장기연재된 작품이다.좌절과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현대판 장돌뱅이들의 삶을 그리고 있으며 작가가 오랜 기간 직접 전국 장터를 돌며 현장 취재했던 생동감이팔도 사투리와 풍경 등에 잘 살아 있다. 서울 경상도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등 다양한 출신 지역과 신분을 가진 등장인물들은 진한 의리를 과시하기도하고 때론 배신감으로 상처를 입기도 하지만 결국 우여곡절 끝에 다시 화합한다. 작가 이윤기는 지난 3년간 발표한 13편의 중·단편을 모아 소설집 ‘두물머리’(민음사)를 냈다.작가는 이 세번째 소설집에서도 이전의 ‘인간과 삶의본질 탐색’이라는 주제의식을 잃지 않았다고 말한다.고단한 세상살이에 욕망와아집으로 꼬여 있기 십상인 사람들에게 삶의 지혜와 또다른 시야를 열어보인다는 것이다. 세계를 어떻게 보고 세상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끊임없이 질문하고 그 답을열린 자세로 보여주고 있으며 특히 그 답들은 전반부에서 독자들이 믿고 있던 것을 뒤집는 방식으로 제시되곤 한다. 김재영기자 kjykjy@
  • [데스크 시각] ‘기분파’면 어때!

    ‘폐쇄적이며 오만하고 충동적인 은둔자’,‘변덕스럽고 충동적이며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만성신부전증 확인’,‘당뇨병’,‘결석증’,‘심장병’ 등 ‘건강에 이상’. 이상은 지난 시절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 대해 우리 언론이 보도한 내용의 일부이다.그러나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지켜본 국민들은 그동안 우리 언론의 보도가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알게 되었을 것이다.김대통령을 맞기 위해평양 순안공항에 모습을 드러낸 김위원장은 그 동안의 궁금증을 한꺼번에 풀어주기라도 하려는 듯 당당하면서도 자신감에 넘쳤으며 또 건강해 보였다. 이번 2박3일의 남북정상회담 기간동안 옆에서 김위원장을 지켜본 사람들은김위원장에 대해 ▲형식보다는 실리를 중시하고 ▲풍부한 유머감각과 격의없는 대화로 좌중을 압도했으며 ▲동양적 예의가 몸에 배어 있고 ▲빠른 판단력과 다방면에 걸친 식견을 갖춘 지도자로 평가하고 있다. “우리 조직비서(김정일)는 통이 크고 사나이답거든” 김일성 주석이 생전에 재미언론인 문명자여사와 ‘김정일화’를 화제로 얘기를 나누던중 했다는 말답게 TV에 비친 김정일 위원장의 사나이다운 호방한 모습은 독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그리고 그것으로 그에 대한 우리의 편견을 일거에 씻어주었다. 그런데 이제 정상회담이 끝나고 시간이 좀 흐르자 김위원장의 그같은 모습에 대해 부정적 시각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정상회담에 대해 어떻게든흠집을 내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이다,그러니까 그동안 북한과 김위원장에대해 국민들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기 위해 분주했던,정권안보를 위해 북한을 이용했던 사람들이다. 대표적인 것이 “평양사람들은 즉흥적인 ‘기분파'가 많다”는 것이다.들뜨거나 너무 감정에 치우치지 말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얘기다.말인즉슨 옳다.그러나 그 말에는 속내가 담겨 있다.“너무 믿어서는 안된다”는 말이겠다.그도 옳다.그러나 그동안 우리는 그들을 믿게만 했던가.국가간에 있어상호신뢰는 결코 일방적인 것이 아니다.우리가 그들을 믿지 못하였듯 그들역시 우리를 믿을 수 없는 부분들이 많았을 것이다.우리에게는아무 잘못이없는데…라고 생각하는 것은 순전히 우리 식의 생각일 뿐이다. 다시 ‘기분파’로 돌아가보자.‘기분파’가 어디 평양사람들 뿐인가.기분파는 전라도 경상도 경기도 충청도 어디에든 많이 있다.기분파란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성정 탓이다.기분이란 낼만 하니 내는 것이다.그럴 형편도 못되는데 기분만 낸다면 그건 허풍이고 사기이다.‘평양사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기분파’ 기질을 생각해보자.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본 김위원장은 북한을 완벽하게 장악한 통치자로서의 모습이었다.당당하고 호방한 모습이 ‘기분파’로 비쳐질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난 15일 오찬에서 김대통령을 환영하기 위해 공항에 나온 것과 관련,“내가 공항환영 나가는 것을 용순비서가 말렸는데 나갔다.내가 하고자하는 일은 주변에서 빨간불을 켠다.내가 새총으로 빨간불을 모두 깨뜨리며나가겠다”고 말한 것이나 “국방위원회를 소집해 6·25가 10일 남았는데 휴전선에서 절대 비방하지 말라고 했다.군 수뇌부가 남쪽에서 안하면 안하겠다고 하길래 내가 화를내며 그런 식으로 하지 말라고 했다.서로 상대가 하면나도 하겠다는 자세를 갖게 되면 적대감을 갖게 되고 결국 비방하게 된다.그러니 아예 하지 말라고 했다.그러니 남측에서도 이렇게 해달라”고 했다는말 등 정상회담에서 보여준 그의 말이나 행동을 단지 ‘기분파’ 기질로만볼 것인가. 꼭 그렇게 보겠다면 그것은 보는 사람의 자유이다.다만 김위원장의 ‘기분파’는 충분히 부릴 만한 ‘기분파’이고 그에 대해서도 책임질 수 있는 위치에 있다.그의 뜻을 순수하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신중’도 도가 지나치면 옹졸해지는 법이다.‘신중’을 빙자해 제발 ‘딴지’거는 일은 없으면 좋겠다. 박 찬 특집기획팀장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