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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택! 역사를 갈랐다] (30) 이재순 vs 이범진

    [선택! 역사를 갈랐다] (30) 이재순 vs 이범진

    현재 한국학계에서는 대한제국에서 추진한 광무개혁에 대한 평가가 학자에 따라 엇갈린다. 개혁의 실효성을 부정하는 쪽에서는 대한제국이 부정부패로 얼룩져 근대화 사업을 주도면밀하게 추진하지 못한 점을 지적한다. 반대로 광무개혁을 높게 평가하는 쪽에서는 외세에 의존하지 않고 자력으로 근대화하려 한 노력 자체가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대한제국의 다양한 평가에 앞서 한국학계에서 반드시 주목해야 할 대상이 있다. 바로 대한제국의 개혁을 추진한 정치세력이다. 개혁을 주도한 정치세력에 대한 천착이 없다면 대한제국의 다양한 해석도 그 의미를 상실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한제국 시기 고종은 군주 중심의 ‘전제정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궁내부에 자신의 정치세력을 결집시켰다. 아관파천 이후 이재순(李載純,1851~1904)과 이범진(李範晋, 1852~1911)으로 구성된 궁내부는 고종 권력의 핵심세력이었다. ●이범진, 제정러시아 대한제국 개입 유도 1896년 2월 9일 러시아 순양함 아드미랄 코르닐로프의 내부는 긴박했다. 당시 아드미랄 코르닐로프는 제물포에 포함 보브르와 함께 정박했다. 함장 몰라스는 해군대위 흐멜레프에게 러시아 수병을 이끌고 신속히 서울로 출발할 것을 지시했다. 2월 10일 새벽 중위 미하일로프는 서대문에 도착해서 대위 흐멜레프를 비롯한 해병부대를 맞이하여 러시아공사관으로 안내했다. 장교를 포함한 러시아 해병의 전체 인원은 135명이었다. 포함 보브르에서 대포 1문도 러시아공사관으로 이송되었다. 1896년 2월 11일 새벽 고종과 왕세자는 가마를 타고 경복궁 영추문(迎秋門)→금천교(禁川橋)→내수사전로(內需司前路)→새문고개→러시아공사관으로 신속히 피신했다. 우리나라 근대사에 왕이 안방을 내주고 셋방살이를 자처했다는 아관파천이었다. 2월 11일 저녁 러시아공사관과 영사관 사이의 광장에는 청색의 천막이 설치되었다. 1개 중대의 러시아 병력이 러시아공사관의 안팎에서 경계를 시작했다. 고종은 러시아공사관 내부 2개의 방을 침실과 접견실로 사용했다. 공사관 정문 앞에 있는 정원에는 대포가 설치되었고, 공사관 내부의 개조된 3개의 방에 33명의 해병이 거주했다. 영사관 내부의 개조된 2개의 방에는 62명의 해병이 거주했다. 그동안 청·일전쟁과 을미사변에도 불구하고 제정러시아는 조선에 대한 ‘현상유지’ 외교 정책을 고수하였다. 오랫동안 지속되던 러시아의 ‘현상유지’ 외교 정책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북극곰 제정러시아를 움직인 인물은 이범진이었다. 이범진은 2월 2일 러시아공사관으로 “생명의 위협을 피하여 왕세자와 같이 대궐을 떠나 러시아공사관에서 피신하려고 한다.”는 고종의 비밀 편지를 전달했다. 당시 주한 러시아공사 스페예르는 이범진에게 고종 피신의 위험성을 알렸다. 하지만 이범진은 “만약 스페예르가 고종의 피신을 승인하지 않는다면, 고종이 대궐에서 더욱 어려움에 처하게 될 것이다.”며 “고종이 아관파천을 결심했다.”고 답변했다. 아관파천 직전 고종은 자신의 신변안전 때문에 파천의 실행을 주저했다. 그러자 이범진은 러시아 공사의 지원을 확인하는 한편 ‘궁중(宮中)의 여화(餘禍)가 있을지 모른다.’는 일본의 ‘고종폐위설’까지 유포하여 고종의 결단을 유도했다. 1898년 9월 11일 경운궁이 발칵 뒤집혔다. 이날 저녁 식사 전에 고종과 순종은 커피를 마셨다. 그런데 커피의 절반을 마신 순종은 토하면서 혼절하였고, 고종은 구토했다. 남겨진 커피를 마신 내관들도 혼절하였다. ●이재순, 고종 커피에 아편 넣어 정적 제거 사건의 파장이 심각했기 때문에 신속한 수사가 진행되었다. 그날 고종의 수라상에 관련된 인물은 14명이었다. 심문과정에서 김종화(種和)라는 인물이 개입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김종화의 심문과정에서 전선사(典膳司) 주사(主事)를 지낸 공창덕(孔昌德)의 개입 사실이 드러났다. 공창덕에 따르면 그는 김종화에게 1000원의 사례금을 보장하면서 김종화가 고종과 순종의 커피에 ‘아편 1량’을 몰래 집어넣었다. 무엇보다도 공창덕의 심문과정에서 배후인물이 김홍륙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공창덕에 따르면 김홍륙은 공창덕에게 협판을 보장하면서 고종의 독살을 지시하였고, 김홍륙은 자신의 처인 김소사를 통해서 공창덕에게 ‘아편 1량’을 제공하였다. 사건에 참가한 인물 중 김종화는 이재순의 추천에 의해 각감청(閣監廳)에서 일하게 되었다. 보현당(寶賢堂)의 창고지기인 김종화는 홍릉 제사 때에 비용을 사적으로 유용해서 면직되었다. 그런데 면직된 김종화는 사건 당일 대궐에 몰래 잠입하여 고종의 독살을 실행했다. 공창덕은 고종의 아관파천 시절 러시아공사 베베르가 고용한 요리사였다. 아관파천 이후 공창덕은 김홍륙의 추천에 의해서 전선사 주사로 임명되어 왕의 주방에서 외국요리를 관장하였다. 그런데 이 사건의 의문을 살펴보면 첫째, 커피를 마신 사람 중 죽은 사람은 없다는 점이다. 독살의 의도가 있었다면 커피를 마신 사람이 치명적인 타격을 받아야 한다. 죽은 사람이 없다는 것은 암살의 계획보다는 정치적 음모라는 의혹이 제기된다. 둘째, 김종화라는 인물이 이 사건에 개입한 동기가 매우 부족하다. 또한 고종을 암살하려는 인물이 쉽게 체포된 점도 이해하기 어렵다. 더구나 면직된 인물이 대궐에 잠입할 수 있는가? 1898년 4월 부임한 러시아공사 마튜닌은 독차사건이 러시아통역관 출신 김홍륙을 파멸시키려는 음모로 파악했다. 당시 러시아의 후원 아래 김홍륙은 궁궐에 자유자재로 출입하면서 정치와 인사 문제까지 깊숙이 개입하였다. 마튜닌은 러시아정부에 보낸 보고서에서 고종 독차사건의 배후로 궁내부대신 이재순을 지목하였다. 이재순은 김홍륙이 러시아공사의 후원 아래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자, 이것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약화시키는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이재순은 자신이 김종화를 추천해 사건에 간접적으로 관련되었지만 사건의 처리과정에 개입했다. 이재순은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서 고종의 승인을 얻었고 경무청에 조사할 것을 직접 지시했다. 이후 1898년 10월 김홍륙·공홍식·김종화는 반역 음모를 기도했다는 혐의로 교수형에 처해졌다. 아관파천 이후 고종은 군주권을 강화하기 위해서 궁내부에 소속한 이재순과 이범진 계열을 적극 후원했다. 이범진은 갑신정변 당시 명성황후를 구해준 인연으로 황후의 총애를 받아 민비가문과 긴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아관파천 이후 법부대신에 임명된 이범진은 을미사변 관련자를 처벌하면서 정국을 주도했다. 이재순을 비롯한 권력집단은 이범진의 지나친 권력 집중에 반발하였다. 결국 이범진은 1896년 6월 주미공사, 1899년 3월 주러공사에 임명되었다. 대한제국은 1900년까지 도쿄, 워싱턴에만 자국 공사를 주재시켰다. 당시는 의화단 사건 이후 대한제국과 만주를 둘러싸고 러시아와 일본이 첨예하게 대립한 시기였다. 주러공사 이범진은 고종의 여전한 신임 아래 대한제국 외교 정책 수행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종친정시문과에 합격한 청안군(淸安君) 이재순은 종친 내부에 폭넓은 지지 기반을 갖고 있었다. 을미사변 이후 시종원경 이재순은 시위대 장교와 병사를 결집하여 고종 구출을 위한 춘생문사건을 주도했다. 그는 김홍륙의 암살시도 및 고종 독차사건의 배후였다. 궁내부대신을 여러 차례 역임한 이재순은 고종의 군주권 강화를 위해서 각종 정치적 사건에 깊숙이 개입하면서 대한제국 정치 분야의 업무를 수행하는 핵심인물이었다. 이재순의 인맥은 충청도 출신자, 반면에 이범진의 인맥은 함경도 출신자가 주축이었다. 궁내부를 중심으로 정치세력을 형성한 이범진과 이재순 계열은 군주권의 강화를 당연하게 생각하였고, 각각 러시아·프랑스와의 협력을 통해 일본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려고 노력했다. 이들은 지지기반이 달랐지만 독립협회, 만민공동회 등 중요한 정치적 사건에서는 상호 연대할 수 있었다. ●고종, 충성심 자극 위해 경쟁 유발… 갈등만 낳아 대한제국 시기 고종은 군주 중심의 ‘전제정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궁내부에 자신의 정치세력을 결집시켰다. 그런데 고종은 이들을 단일한 세력으로 통합시키지 않으면서 상호간 경쟁을 유발하여 자신에 대한 충성심을 자극했다. 이러한 상호 경쟁은 대한제국의 신속한 개혁이 필요한 시점에 권력 독점을 향한 지나친 대립만 초래했다. 처녀지를 개간하려면 겉으로 미끄러지는 쟁기를 쓸 것이 아니라, 땅속을 깊이 파고드는 플라우(쟁기)를 써야 한다. 김영수(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 강남·사당역 일대 또 ‘물바다’

    강남·사당역 일대 또 ‘물바다’

    15일 서울·경기권과 강원 철원에 한때 시간당 50㎜ 안팎의 비가 내려 호우경보가 발령되는 등 전국 곳곳에 폭우가 쏟아졌다. 서울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강남·사당역 일대 도로와 주택가가 물바다로 변해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이러한 국지성 집중호우는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이번 주말까지 계속될 전망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전날부터 이날 오후 6시까지 강화 251㎜, 문산 234㎜, 철원 194㎜ 등 중·북부 지방에 200㎜ 안팎의 비가 내렸다. 서울 152㎜, 인천 137㎜, 양평 122㎜ 등 수도권 대부분 지방에서 100㎜가 넘는 강수량을 보였다. 경기 연천군 백학면의 자동기상관측장비(AWS)에 366㎜의 강수량이 기록되는 등 경기 북부 지방에 특히 많은 비가 쏟아졌다. ●강남, 해발고도 낮아 상습 침수 서울을 비롯한 중·북부 지방에 내려졌던 호우특보는 이날 오후 대부분 해제됐으나 충청도를 중심으로 호우특보가 확대됐다. 하지만 이번 호우로 강남역 등 서울의 상습 침수구역에서는 2010년과 2011년에 이어 또다시 물바다가 재연됐다. 강남역 일대가 쉽게 물에 잠기는 이유는 이 지역의 해발고도가 인근 지역보다 현저히 낮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강남역 일대는 가까운 논현동이나 역삼동보다 17m 이상 낮고 반포동 고속터미널 일대도 인근 지역보다 16m 이상 낮다. 그 결과 집중호우 때마다 인근 고지대의 빗물이 강남역으로 밀려와 침수된다는 것이다. 또 반포천의 빗물 수용량은 초당 210t인데 시간당 100㎜의 비가 오면 초당 257t의 빗물이 유입돼 역류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강남 일대의 녹지 비율이 적은 것도 침수 원인으로 꼽힌다. 소방 당국에 따르면 이날 오후 10시 현재 서울에서는 모두 133건의 침수 피해 신고가 들어왔다. 낮 12시 30분쯤에는 서울지하철 1호선 금천구청역 수원 방향 선로가 폭우로 침수되면서 열차 운행이 지연돼 시민들이 불편을 겪었다. 서울 종로구 등 9개 구에 산사태 경보가 내려지는 등 20개 구에 산사태 예측경보도 발령됐다. ●중부 이번 주말까지 집중호우 중부지방 곳곳에서도 주택과 도로 침수 등 폭우 피해가 잇따랐다. 인천에서만 도로 5건, 주택 27건, 공장·상가 10건, 농경지 6건 등 모두 71건의 침수 피해가 발생했다. 경원선 소요산~초성리 등 연천 지역 선로 3곳이 침수됐다. 인명 피해도 발생했다. 이날 낮 12시 20분쯤 충북 옥천군 청성면 장수리 보청천에서 물놀이를 하던 김모(17·고1)군이 물에 빠져 숨졌다. 대전에서는 급류에 휩쓸려 실종됐던 20대 남성이 이틀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기상청은 다음 달 초순까지 이런 국지성 집중호우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3주간 폭염과 열대야를 불러온 북태평양 고기압이 수축기에 접어들면서 그 가장자리를 따라 상층 기압골이 주기적으로 한반도를 통과하기 때문이다. 기상청 관계자는 “덥고 습한 북태평양 고기압의 세력이 유지되는 9월 초까지 이런 현상이 반복되면서 국지성 집중호우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16일에도 점차 남하하는 기압골의 영향을 받아 전국이 흐리고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돌풍과 함께 천둥, 번개를 동반한 시간당 30㎜ 이상의 강한 비가 내리는 곳이 많겠다. 기상청은 주말인 18~19일에도 다시 북쪽으로 상층 기압골이 지나면서 중부지방에 많은 양의 비가 내릴 것으로 내다봤다. 신진호기자 sayho@seoul.co.kr
  • “친일 할아버지 ‘무사유의 죄’… 15일 또 그 죄 짓고 있지 않나”

    “친일 할아버지 ‘무사유의 죄’… 15일 또 그 죄 짓고 있지 않나”

    밝은 미래 찾기는 어두운 과거를 직시하고 이를 극복하는 데서 가능하다. 일제시대 지방 군수를 지낸 친일파의 손자가 광복 67주년을 맞아 서울신문 독자와 국민들에게 조부의 친일 행위에 대해 반성하는 글을 보내 왔다. 친일인명사전 발간에 반발하는 후손들이 적지 않은 가운데 이 같은 고백은 진정한 광복 정신의 표현과 다름없어 보인다. 다음은 1년 전 친일인명사전에서 할아버지 이름을 발견한 윤석윤(55)씨가 14일 보내온 편지다. 윤씨는 현재 경기도 군포시에 거주하며 독서토론 강사 및 기업체 근로자 교육강사 등으로 일하고 있다. 8월 15일이 왔습니다. 광복절입니다. 올해는 저도 이날에 대한 감회가 새롭습니다. 1년 전, 행적을 몰랐던 할아버지를 찾았기 때문입니다. 할아버지는 대한제국에서 개혁과 개방정책을 담당할 인재를 키우고자 1895년 제1회 관비 유학생으로 선발된 양반 자제 200명 중 한 명이었습니다. 일본 도쿄의 게이오의숙에서 3년 동안 공부하고 귀국하여 1900년에 농상공부에서 관리로 공직을 시작했고, 1910년 한일병합 이후 충청도와 전라도에서 군수로 일하다 1926년 50세에 퇴직하였고, 1953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할아버지를 찾게 된 것은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친일인명사전 덕분입니다. 일제강점기 군수를 했다고 하기에 ‘혹시’ 하고 찾아봤는데 그곳에 있었습니다. 할아버지의 삶을 알게 된 기쁨과 내가 미워했던 친일파 중 한 명이었다는 사실이 교차해서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시대를 앞서 간 선각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일제의 앞잡이였다니. 할아버지는 일제가 대한제국을 병합할 때 왜 관리를 그만두지 못했을까 궁금했습니다. 저는 그 답을 유대인 여성 철학자 해나 아렌트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찾았습니다. 그녀는 유대인에 대한 ‘인종청소’를 담당했던 아이히만의 죄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을 ‘철저한 무사유(無思惟)’에서 찾고 있습니다. 아이히만은 조직이 요구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근면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대다수의 친일파들도 역시 조직에 순응한 평범한 사람들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민족과 역사 앞에 ‘무사유의 죄’를 지었습니다. 할아버지의 죄도 바로 그것입니다. 할아버지는 평범한 관리였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하지만 나라를 빼앗은 일본의 식민지 관리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이 ‘무사유의 죄’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습니다. 저는 해방 후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 우리 역사에서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방해하고 무력화시켰습니다. 오히려 많은 친일 인사들을 관료로 등용하였습니다. 친일파와 그의 후손들은 잘 먹고 잘 살며, 좋은 교육을 받고, 좋은 자리에서 생활하는데, 나라의 독립을 위해 일했던 분들의 후손들은 못 배우고 어렵게 살고 있습니다. 이런 가슴 아픈 사실 앞에 누가 나라를 믿고 목숨을 바칠 수 있겠습니까. 우리에게 역사 청산의 문제는 나라 안팎으로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며칠 전,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한 것이 한·일 간의 외교적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일본은 여전히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독도 문제는 단순히 영토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의 문제입니다. 안에서는 일부 친일파 후손들이 조상의 땅을 찾기 위해 국가와 소송을 벌이고, 조상의 잘못을 덮고 공적비나 동상을 세우는 일에 앞장서는 등 후안무치한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것들에 대해 제대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역사 앞에 죄를 짓게 되는 것이 아닐는지요. 조선의 대학자인 정약용 선생은 큰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사리 판단 기준을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세상을 판단하는 두 가지 기준이 있는데, 하나는 ‘옳고 그름’, 즉 시비(是非)를 따지는 기준이고, 또 하나는 이로움과 해로움, 즉 이해(利害)를 따지는 기준이라 말합니다. 여기에서 시비가 이해보다 우선이라고 말합니다. 특히 역사에 대해서는 더욱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후손들에게 잘못된 역사관을 심어 주는 죄를 짓게 됩니다. 역사가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섭니다. 8·15를 맞이하여 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독립유공자들과 순국선열,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에게 친일파의 손자가 다시 한 번 가슴 깊이 사죄의 말씀을 올립니다. 내내 평안하십시오. 경기 군포시 거주 윤석윤 씀
  • [선택! 역사를 갈랐다] (21)조선 천주교 개척 이벽&황사영

    [선택! 역사를 갈랐다] (21)조선 천주교 개척 이벽&황사영

    1779년(정조 3) 겨울. 남인의 젊은 학자들이 천진암에서 강학한다는 소식을 들은 이벽(李蘗)은 눈발이 날리고 호랑이가 출몰하는 100여리의 밤길을 내달려 강학회에 참여했다. 이벽의 등장으로 유학을 강마하던 모임은 대번에 서학과 천주교에 대한 토론장이 되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1784년. 이벽의 권유를 받은 이승훈이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귀국하자 조선에서 본격적으로 천주교(가톨릭)가 싹텄다. 천주교는 지식인을 비롯한 중인, 평민과 천민, 여성 등 각양각색 인물들에게 퍼져갔다. 정조가 승하하고 반 년 정도가 지난 1801년 1월. 대대적인 박해가 시작되었다. 정약용의 조카사위 황사영(黃嗣永)은 서울을 빠져나와 충청도 제천의 산골짜기 배론(舟論)에 숨어들었다. 배론의 토굴에 숨어지내며 그는 장문의 편지를 썼다. 편지는 북경 교구장 구베아(Gouvea) 주교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편지 말미에서 황사영은 조선 교회의 재건을 위해 전대미문의 요청을 했다. 편지는 그가 잡히면서 공개되었고 조선 조정은 뒤집어졌다. 이른바 ‘황사영 백서(帛書) 사건’이었다. 한국 천주교는 진리를 찾던 이들이 자발적으로 택했지만 그 선택은 박해가 예고된 고난의 여정이었다. 가시밭길을 마다하지 않았던 그들은 진정 하늘에 오르는 사다리를 발견했던 것일까. ●18세기 중국 통해 서학·천주교 유입 17세기 초 조선 사람들은 ‘유럽’이란 또 하나의 세계를 알게 되었다. 18세기에 접어들자 서양의 천문, 역법, 수리, 의학에 관한 서적과 기물에 더욱 익숙해졌고, 북경에 간 사신들은 으레 선교사가 거주하는 천주당을 방문하였다. 그 결과 저들도 나름의 진리가 있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당시 서양과 그들의 학문에 대해 가장 해박했던 인물은 이익(李瀷)이었다. 그로 인해 서학(西學)이 일세에 풍미하게 되었고, 그의 문하에서 이른바 ‘친서파’(親西派)로 일컬어지는 이가환, 권철신, 정약전·정약용 형제, 이승훈 등이 배출되었다. 이익 문하의 학자들은 여전히 ‘서학 수용’에 머물러 있었다. 서학은 새로운 지식일 따름이지, 유교의 가르침에 상응하는 새 가르침이 아니었다. 그런데 홀연 학문에서 신앙, 신념으로 건너뛴 인물이 나왔다. 이벽이었다. 이벽은 어려서부터 ‘하늘의 도리’에 뜻을 두었다. 20세쯤 서학서에 충격받았고, 25세 전후에 서학 서적을 망라해 읽고는 드디어 마음을 바꾸고 천주교를 신봉하였다. 이 시기 전후에 그는 조선 최초의 호교서로 평가받는 ‘성교요지’(聖敎要旨)를 집필한다. 그것은 천지를 주관하는 천주(天主)에 대한 선언이었다. 그의 선언은 성리학의 근본 원리인 천리(天理)에 대한 도전이었다. 성리학에서 하늘은 천리이다. 천리는 우주 질서의 원리, 사물의 물리, 사회의 윤리이다. 천리는, 우리가 ‘하늘’을 들을 때 떠올리는 ‘하느님’, ‘푸른 하늘’ 같은 인격성과 자연성이 약하고, ‘질서·조화·바름’과 같은 추상성과 윤리성이 강한 개념이다. 천리는 유교 왕국 조선에서는 모든 질서의 원천이자 가치의 근원이었다. 이벽은 ‘천리는 현실에서 공허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다. 천리에 비해 천주는 인격적 존재로 현실감이 있고 내세관마저 채워주는 존재였다. 그는 양 개념이 대립적이라고 여기지 않고 서로 보완되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그의 바람과 달리, 대다수 조선인들은 천주 선언을 유교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으로 보았다. ●관대하던 정조 사후, 1801년 대대적 박해 시작 천주교를 찬성하건 반대하건, 지식인들은 ‘천리’와 ‘천주’의 대결이 가져올 파장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서로 대결한다면 그것은 문명 사이의 가치관 전쟁이자, 그에 동반한 사유와 많은 개념들을 재조정하는 일이 될 터였다. 16세기 천주교를 동양에 전파했던 예수회 선교사들은 이 점을 알고 있었고, 두 문명 사이의 대화와 상호 이해를 도모하였다. 선교사들은 ‘Deus’(God의 라틴어)를 유교 경전에 등장한 상제(上帝)와 유사한 천주로 번역했고, 또 천주를 천지의 대부(大父)·대군(大君)이라고 소개하였다. 천주교 설명에 유교의 텍스트와 개념을 빌린 것이다. 이 같은 설명 방식은 중국에서보다 조선에서 더 큰 반향을 일으켰다. 유교적 이상 사회를 가장 진지하게 고민했던 조선의 지식인들은 천주교에서 유학과 일치하거나 때론 유학을 뛰어넘는 가능성을 보았다. 예컨대 한때 천주교 신자였던 정약용은 인격적 상제관에 기초한 새로운 유학 틀을 구상하였다. 정약용에게 영향을 미쳤던 이벽 또한 천주교를 축으로 유학의 미비점을 보완하려 하였다. 그러나 사회, 윤리 측면에서 문제는 매우 복잡하였다. 천주교인들은 천주 공경이 대효(大孝), 대충(大忠)이므로 유교 윤리는 천주교에서 완성되고, 유학자들이 오히려 천지의 군주와 부모를 모른 체한다고 역공했다. 물론 그 논리는 유교 윤리의 소멸로도 해석될 수 있었다. 더 위험한 것은 천주 앞에서 군(君)·신(臣), 부(父)·자(子)의 수직적 위계가 사라지는 일이었다. 천주교인들이 자신들은 충성과 효도를 어긴 적 없다고 아무리 강변해도, 대다수 지배층은 ‘천주 앞에서 만인이 평등하다.’는 논리 속에 잠재한 현실적 파괴력을 알고 있었다. 백성 하나하나가 박해를 감내하면서 자신이 신앙을 결단했다고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유교적 명분 질서가 사라진 무부, 무군의 미래였다. ●“서양군 통해 유교 압박”… 황사영 백서 큰 파장 1785년(정조 9) 형조의 적발로 최초의 천주교 모임이 발각되었다. 신부도 없이, 지식인들이 서로 성직을 맡아 진행한 모임이었는데, 정조의 관대한 처분으로 그럭저럭 무마되었다. 모임의 주동자였던 이벽은 사건 이후 얼마 안 되어 30대 초반의 나이로 요절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도 전해진다. 본격적 박해를 경험하지 않은 이벽은 차라리 행복했다. 1801년에 터진 대대적 박해는 일부 신자들을 극단적 선택으로 몰고 있었다. 그 와중에 황사영의 백서 사건이 터졌다. 백서의 내용 대부분은 순교자들의 전기이다. 당대는 물론 지금까지 논란을 부르는 부분은 후반부이다. 황사영은 교회 재건을 위해 몇 가지 방책을 제시했는데, 그중 ‘조선을 청에 내복(內服)시킴, 서양 군함과 병사를 통해 압박함’이 들어 있었다. 그 방책은 반국가, 반민족적 구상이라고 줄곧 비판받았다. 교회 재건이라는 동기와 박해라는 정황을 인정하더라도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이 비판의 골자였다. 백서의 청원은 너무나 대담하고 몽상적이어서 교인들 사이에도 논란이 있었고, 당시 북경 교회가 그대로 감행하기도 어려웠다. 황사영 역시 실제 그렇게 되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정부를 압박하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그 방책들을 제시하였다. 그가 반정부, 반국가 의지가 강했다면 가장 쉬운 길은 교인들의 무력 봉기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반란에는 분명히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그렇다면 다시 질문해 보자. 황사영은 왜 그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종교의 보편 진리를 꿈꾼 그는 서양의 도리를 신뢰했던 듯하다. 예수회가 전한 서양은 안정된 생활, 인정이 넘치는 풍속, 약한 자에 대한 배려와 형제애가 실현된 ‘이상적 사회’였다. 현실의 고통이 강할수록 이상적인 바깥 세계에 대한 동경과 기대는 증폭되기 마련이다. 기독교적 형제애에 대한 갈망이 커질수록 전통적인 유교 윤리, 혈통 의식, 국제 관계 등은 무력하거나 부정적으로 보였을 법하다. 선교사가 청 황제, 기독교 국가의 군대를 움직일 수 있다고 믿고 싶었던 지나친 기대감은 그의 판단력을 가려버렸다. ●지금도 유교문화 속 기독교 신자 수 동아시아 1위 천주교와 유교의 보완을 꿈꾸었던 이벽의 노력은 정약종, 정하상 등으로 맥을 이어갔다. 일부 교인들은 동서양의 이상적 인간상을 투영하여 그를 되살렸다. 19세기 후반 천주교 공동체의 염원이 담긴 예언서 ‘니벽전’에서 그는 학문에 능통한 선비, 득도한 신선, 승천하는 예언자로 그려졌다. 황사영은 대역부도죄로 체포되어 능지처사되었다. 비극은 그의 개인과 가족, 당대 교인들에게만 끝나지 않았다. 지배층과 일반 백성은 백서 사건을 계기로 천주교인들을 정말로 무부무군의 무리, 나라를 팔아먹는 무리로 여기게 되었다. 두 사람의 선택은 현재의 우리에겐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한국은 유교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으면서도 기독교(가톨릭과 개신교) 신자 수가 1위인 동아시아의 특이한 국가이다. 전근대의 보편 가치와 근대의 보편 가치를 상징하는 두 종교 사이에 현재의 우리가 놓여 있다. 예수회 이벽의 선택은 ‘내 안의 가치’와 ‘타인 안의 가치’를 동등하게 존중하고 서로 대화하는 자세와 통한다. 그리고 종교, 문명,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 사이의 조화에 힘쓰는 이들을 통해 계승되고 있다. 그러나 인정과 대화는 아슬아슬한 줄타기이다. 서로의 부족함을 고백하는 겸손에서 대화는 출발하지만, 나·우리 혹은 타자를 절대적인 기준으로 고정해 버리면 성찰과 다양한 해석이 설 자리는 사라져 버린다. 그 점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황사영은, 박해라는 정황을 감안하더라도, 외재(外在)하는 기준을 절대화해 버렸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다원을 긍정하고 독선에 빠지지 않는 자세야말로 언제나 곰곰이 생각해 볼 덕목이었다. 세계화, 다문화, 정보화가 가속하는 지금에서는 두 말 할 나위가 없다. 이경구 (한림대 한림과학원 HK교수)
  • 충남, 노인 9만명 우울증 선별검사

    충남도가 2년 연속 전국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것으로 드러나자 노인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우울증 검사에 나섰다. 통상 노인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농어촌이 도시보다 자살률이 다소 높기는 하지만 농어촌 중에서도 충남이 특히 높은 비율을 보이자 자살예방 정책과 사업에 활용하기 위해 서둘러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이다. 도는 올해 말까지 일선 시·군과 함께 1억 9200만원을 들여 만 75세(1937년생) 노인과 65세 이상 독거·저소득 노인 9만 3151명을 대상으로 ‘우울증 선별검사’를 실시한다고 18일 발표했다. 이는 충남의 65세 이상 노인 30만 7000여명의 30%가 넘는 수치다. 장동화 도 주무관은 “자치단체 단독으로 이처럼 대규모로 노인 우울증을 검사하기는 국내 처음인 것으로 안다.”면서 “만 75세를 선택한 것은 이 나이가 넘어가면 삶의 의욕이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도가 우울증 검사에 대대적으로 나선 것은 높은 자살률 때문이다. 충남은 2010년 인구 10만명당 44.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2009년에 이어 전국 최고의 자살률을 기록했다. 같은 농어촌이지만 32~35명에 그치고 있는 영호남 지역과 비교해도 유난히 높다. 2010년 충남 예산군과 청양군의 자살률은 각각 74.9명과 70.9명으로 전국 평균 31.2명의 두 배를 훌쩍 넘어서고 있다. 장 주무관은 “참으면서 속앓이를 잘하고, 자식에게 신세지기 싫어하는 충청도 사람의 기질이 자살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충북지역도 자살률이 높다.”고 분석했다. 도는 먼저 보건지소·보건진료소 직원을 동원, 대상 노인들의 거주지를 일일이 방문해 생활만족도, 활동 및 흥미, 미래 전망, 정신상태, 행복지수, 우울감 여부 등 15개 우울증 항목을 면접 조사한다. 방문간호사가 마을 경로당을 순회하며 검사하기도 한다. 항목당 1점씩으로 10점이 넘으면 우울증 고위험군에 해당한다. 또 도내 15개 시·군별로 전문 조사원을 선발, 노인 9600명을 골라 우울증 검사도 실시한다. 이 검사는 연령·성별·종교 등 일반사항, 자녀·동거인 등 가족사항, 질병·음주 등 건강사항, 모임·여가·사회활동, 교류 및 친분관계·경험 등 심리사항 등 총 5개 분야 24개 항목으로 자살률이 높은 이유와 우울증 원인 분석자료로 쓰인다. 도는 고위험군 노인에 대해 ‘정신건강 실태조사’를 병행하고, 우울증으로 확진되면 치료약을 복용할 수 있도록 매달 1인당 3만원씩을 지원한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길을 품은 우리 동네] (9) 정읍·고창·부안 동학로

    [길을 품은 우리 동네] (9) 정읍·고창·부안 동학로

    갑오년(1894년) 음력 1월 고부(지금의 전북 정읍시) 봉기로 발발해 같은 해 12월 전봉준 등 주요 지도부가 체포되면서 막을 내린 미완의 혁명. 그 정신이나 사상에 대해서는 11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학자마다 이견이 있지만,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는 곡조에는 누구나 가슴이 먹먹해진다. 민초들에게 두고두고 양각으로 아로새겨진 이 기억은 그러나 권세가들에게도 특별했긴 매한가지다. 무수한 세도가들이 정치적 목적으로 그 정신을 계승하겠다고 선언했고 머리를 조아렸던 혁명이다. 그 정신을 오롯이 기리고 있는 전북 정읍·고창·부안의 동학로를 찾았다. 정읍시 덕천면 ‘동학로’ 끝자락에 있는 황토현 전적비. 국가사적으로 지정된 곳이다. 화강암으로 된 비석 위에는 ‘제폭구민 보국안민’ 즉, ‘폭정을 없애고 나라를 보존하여 인민을 안정하게 한다’라고 쓰여 있다. 동학농민군은 갑오년 음력 4월 7일 이곳에서 정규 정부군인 전라 감영군과의 전투에서 최초·최대 승리한 것을 이렇게 기념했다. ●과거 권력자들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 1963년 10월 3일 제막식 당시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박정희 최고회의의장이 참석했다. 여기서 박 의장은 “동학혁명은 부패·당파싸움·사대주의에 물든 탐관오리들에게 항거한 최초의 대규모 서민혁명으로 그 정신은 길이 계승돼야 한다.”면서 “5·16혁명도 이념면에서는 동학혁명과 일맥상통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진윤식(69) 고창동학농민혁명연구소장은 “5·16군사쿠데타를 동학농민혁명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으려는 꼼수였다.”고 비판했다. 또 같은 목적으로 전두환대통령은 재임 기간 동학농민혁명 유적지 정화사업으로 황토현 기념관·전봉준 장군의 동상 등을 세우도록 했다. 하지만 1980년 5월 당시 야당 정치인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읍농고에서 열린 13회 동학문화제에 참석한 이후 이를 막지 못한 책임으로 기념사업회장을 구속하고, 정읍군수·경찰서장을 직위해제했다. 박대길 정읍시 동학농민혁명선양팀장은 “군부정권이 행한 ‘정화사업’은 정치적 의도가 다분하다. 그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적비 뒷산인 두승산에 오르면 동쪽으로 배들평야, 서쪽으로는 부안군 백산이 어렴풋이 눈에 들어온다. 동학로 끝에서 황토현로, 말목장터로를 따라오면 배들평야 끝으로 만석보터가 있다. 고부군수 조병갑은 정읍천과 동진강이 만나는 곳에 새로 만석보를 만들어 군민들에게 물세를 물렸고, 이에 전봉준 등이 주동자가 드러나지 않도록 하고자 사발통문을 쓰고 농민들과 함께 관아를 습격했다. 동학농민혁명의 시발점이었다. ●“농민도 성실히 일하면 잘사는 사회” “정읍이 동학농민혁명의 시발점이라면, 고창은 동학농민군의 조직·사상이 잉태된 곳”이라고 고창군 관계자들은 말한다. 고부농민봉기를 일으킨 전봉준이, 갑오년 음력 3월 20일 고창지역에 있던 손화중과 손을 잡고 무장현에서 봉기를 했다. 이 때문에 동학농민혁명이 충청도는 물론 경상·강원·황해도 등 전국으로 번졌다는 것이다. 손화중은 당시 최시형과 함께 양대 동학접주 중 하나였다. 이런 점에 주목한 고창지역 동학농민혁명 관련 길은 전봉준로, 녹두로와 함께 동학농민군로, 손화중로 등으로 그 의미를 담고 있다. ‘인민은 나라의 근본이요, 그 근본이 깎이면 나라가 잔약해진다. 보국안민의 방책은 생각지 않고 바깥으로는 고향집만 꾸미고 오직 제 혼자 온전할 방법에만 힘쓰면서 녹봉과 벼슬자리만 도둑질하니 어찌 다스려지리오’ 동학농민군로가 끝나는 지점인 전남 영광과 접한 무장현 봉기 장소에 있는 기념비에는 당시 만들어진 이 포고문이 새겨져 있다. 오늘날 정부관료들에게 훈계해도 될 법한 글귀다. 농민이기도 한 진 소장은 “무장포고문은 동학농민혁명의 사상을 압축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저임금은 서푼어치라도 매년 오르지만, 쌀값만은 십수년째 16만원 내외로 같은 값이다. 정부는 전 국민을 먹여 살리는 국가기간산업인 농업을 경시하고 있다.”면서 “농민도 성실히 일하면 국민평균소득 정도는 벌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118년전 동학농민군이 이루고자 했지만 아직 완성되지 못한 사회모습”이라고 강조했다. ●민란 아닌 혁명인 이유는 ‘인권중시사상’ 과거 고부군에 속했고 지금은 부안군에 속한 백산(白山). 이곳에서 열린 백산대회는 동학농민혁명사에서 가장 신나는 장면 중 하나다. 해발고도 47m에 불과한 낮은 산인 백산은 사방이 평야지대에 홀로 솟아 시야 확보가 쉽고, 호남 서부지역 교통의 요지였다. 정읍 배들평야 쪽에서 이곳 백산까지가 동학로라 이름 붙여졌다. ‘앉으면 죽산 서면 백산’ 갑오년 음력 3월 25~26일 1만명 가까운 농민군이 모였다. 전봉준 장군을 총대장으로 조직이 재편됐고 호남·호서 일대에 격문이 나붙었다. 백산에서 농민군 군율인 4대 명의·12조 기율도 제정된다. 왜 동학농민혁명이 ‘민란’이 아닌 ‘혁명’이었는지, 이 군율에 나타난다. 4대 명의에는 ‘사람을 죽이지 않고 물건을 함부로 없애지 않는다.’는 내용이, 12조 기율에는 ▲항복한 사람은 따뜻하게 대한다 ▲곤궁한 사람은 구제한다 ▲굶주린 사람은 먹여준다 ▲도주하는 사람은 쫓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은 진휼한다 ▲병든 사람은 약을 준다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때 집결한 농민군은 한 달 뒤 조선왕조의 본향이자 전라도 수도인 전주성 점령까지 승승장구했다. 이런 백산에서의 기억은 이 지역 사람들에게 “부안이야말로 동학농민혁명 정신을 직접 계승한 곳”이라는 자부심으로 남았다. 정재철 백산고 국사교사는 “동학농민혁명 정신은 부안에 저항정신·애향심으로 남아 있다.”면서 “그 힘으로 2003~2005년 2년 2개월여 전 군민의 방폐장 반대 시위를 벌인 것”이라고 말했다. 세 지역 중 동학을 계승한 천도교가 가장 활발한 곳도 역시 부안이다. 상서면 호암수도원에는 천도교 교구가 설치돼 있고, 주기적으로 집회가 열린다. 민관이 함께 통치하는 집강소를 세우는 등 새 시대를 열어가던 동학농민혁명군은 갑오년 음력 11월 충청도 공주 우금치에서 일본군에 크게 패하면서 급격히 쇠퇴한다. 한 달 뒤 전봉준은 옛 친구의 밀고로 전라도 순창 피노리에서 체포되고, 이듬해 을미년 음력 3월 교수형을 당한다. 이런 안타까운 결말에 민초들은 이런 노래를 남겼다. ‘가보(甲午·1894년)세. 가보세. 을미(乙未·1895년)적 을미적 병신(丙申·1896년)되면 못 가보리’ 혁명이 성공했다면 달랐을까. ‘동학로’라 이름붙여진 서로 다른 길들은 한결같이 가난한 농촌길이었다. 토지가 비옥하고 기후가 좋아 이 지역 쌀 생산은 전국 최고지만, 농민들의 소득은 여전히 밑바닥이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10회는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방동 약수로를 소개합니다.
  • 민주몫 부의장 후보들 득실계산 분주… 4일 경선

    국회의장으로 충청도 출신 친박근혜계 강창희 새누리당 의원이 당선됨에 따라 국회 부의장 자리를 놓고 민주통합당 후보들의 경쟁이 본격화됐다. 후보로 나선 이석현 의원과 박병석 의원은 오는 4일 국회의원 워크숍에서 치러질 부의장 선출을 놓고 자신의 승리를 자신했다. 이 후보는 의원들에게 전화를 돌리며 한표를 호소했고, 박 후보는 초선들에게 ‘의정 노하우’가 담긴 세 차례 편지를 보내는 등 정성을 기울였다. 이 후보는 1일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국회 내 여야 대치가 심각할 때는 국회 부의장이 조정력을 발휘해 대화의 물꼬를 터야 한다.”면서 “그러려면 아무래도 다선 의원이 부의장을 하는 게 낫다.”고 강조했다. 이 후보는 5선이고 박 후보는 4선이다. 특히 충청 출신 강 의원(대전)이 국회의장이 된 만큼 지역구 분배 차원에서 수도권(경기 안양 동안갑)이 지역구인 이 후보가 부의장 당선에 유리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이에 대해 박 후보는 “4선 이상이면 크게 다선 의미가 없다.”고 일축한 뒤 “부의장은 여야 간 협상력이 중요한데 2008년 한·미 소고기 협상 당시 정책부의장이었던 나는 협상창구인 임태희 전 의장과 합의안을 만들어 3개월간 표류하던 국회를 정상화시켰다.”며 자신이 적임자임을 부각시켰다. 충청 대선 표심을 겨냥한 새누리당에 맞서 대전이 지역구인 박 후보를 오히려 최소한의 맞대응 카드로 써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17~18대 국회에서 열린 세 차례 부의장 선거에서는 모두 차수 낮은 후보가 당선됐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김한길 ‘이해찬 텃밭’서 1위 대이변… ‘대안론’ 탄력

    김한길 ‘이해찬 텃밭’서 1위 대이변… ‘대안론’ 탄력

    이변이 일어났다. 민주통합당 당 대표 경선이 29일 충북 청주 명암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가운데 세종·충북지역 당대표 경선 투표에서 김한길 후보가 226표(28.5%)를 획득, 지역구 의원인 이해찬(세종) 후보를 누르고 1위를 차지했다. 158표(19.9%)로 2위에 머문 이 후보는 누적합계(1755표)에서도 13표 차로 김 후보에게 쫓기는 상황이 됐다. 3위는 조정식 후보(116표)가 차지했다. 김 후보는 396명(투표율 84.4%, 1인 2표)이 참여한 충북·세종지역 대의원 투표에서 예상을 뒤집고 68표 차로 이 후보를 제압했다. 그의 누적합계는 1742표다. 김 후보는 투표 발표 직후 “나 자신도 생각지 못한 지역연고와 계파를 뛰어넘은 승리다. 공정한 대선경선 관리와 정권교체로 보답하겠다.”고 밝게 웃었다. 김 후보의 승리는 잇단 친노 등 특정 계파 주도의 총선 패배론과 이 후보와 박지원 원내대표의 담합론, 경선 도중 정책 대의원 증원 논란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 것으로 분석된다. 김 후보는 연설에서 “잘못된 각본 때문에 정권교체의 기회가 사라졌다. 이번 총선에서 충북 의석이 반토막이 나는 참패를 당했다.”면서 “책임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이 당 대표로 나섰다.”며 이 후보와 계파정치를 비판했다. 그는 비전 제시 없이 ‘이해찬·박지원 연대’ 공방만 벌인다는 지적에 대해 “4·11 총선 패배 등 위기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해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반면 지난 총선에서 세종시에 출마해 초대 국회의원이 된 이 후보로서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이 후보는 가족의 고향이 충청도임을 언급하며 “정권교체로 일자리가 넘쳐나는 세종시를 이해찬이 반드시 해내겠다.”며 지역구 의원임을 거듭 피력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이 후보 측 캠프는 트위터에 새누리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김 후보가 더 많은 표를 받은 여론조사를 링크해 놓는 등 이 후보의 영향력을 에둘러 설명하기도 했다. 후보들은 다음 달 9일 전대에서 치러지는 전체 대의원 표의 절반(48.9%, 1만 2130표)에 육박하는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 후보 측 오종식 대변인은 “모바일이 관건이다. 2030세대의 젊은 표가 승부를 가를 것이며 연령 보정이 들어가기 때문에 70%를 차지하는 모바일 투표는 대의원 1표의 가치를 가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편 전당대회준비위원회는 이날 정책대의원 추가 증원을 놓고 논쟁이 일었던 것과 관련해 회의를 열고 2600명 외 추가 증원 없이 다른 진보단체들을 6·9 전대 대의원으로 배정하기로 결정했다. 다른 후보들과 공동으로 반대 성명을 냈던 김 후보는 “경선 중간에 유권자의 범위와 대상이 변경되는 건 크게 우려스럽고 대원칙에 어긋난다.“고 밝혔다. 강주리·청주 이범수기자 jurik@seoul.co.kr
  • 태백 이어 이번엔 경남에서… 1361명 연루 초대형 보험사기

    경남 창원시에서 2007년부터 5년간 무려 1361명이 총 95억여원의 보험금을 부당하게 타낸 조직형 보험사기가 적발됐다. 지역의 유명병원 3곳이 연루됐으며 주로 40·50대의 주부들이 허위 입원 등을 통해 보험금을 받아간 것으로 나타났다. 보험사기 혐의자 1361명 중 24%는 소문을 듣고 전국 각지에서 몰려들었다. 금융당국은 경찰에 수사의뢰했으며 경찰 조사결과에 따라 400여명이 연루된 ‘태백사기사건’을 뛰어넘어 역대 최대 사기사건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창원시 일대 병원 3곳을 무대로 활동한 총 1361명의 보험사기 혐의자를 적발했다고 17일 밝혔다. 이들의 보험사기 규모는 95억 1500만원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창원 인근 3개 병원이 환자 1명당 10만~20만원을 브로커에게 지급하고, 환자는 브로커에게 보험금의 10%를 떼 준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지난 3월부터 조사를 벌여왔다.”고 말했다. 이들 3개 병원은 건물이 6~8층이고 5개 이상의 진료과를 보유하고 있어 창원에서는 유명 병원들이다. 이들은 3개월간 평균 6.7개의 보험에 가입한 후 3개 병원에 돌아가며 입원해 일인당 평균 700만원의 보험금을 챙겼다. 생명보험이나 장기손해보험의 경우 입원할 경우 보험계약에 따라 하루 5만~10만원의 입원 일당을 중복해 지급한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총 33개 보험사가 이들에게 보험금을 지급했고, 생명보험 ‘빅3’와 우체국보험 가입자가 상대적으로 많았다. ●병원·병명 바꿔가며 입원 수법 특히 1361명 가운데 40·50대가 909명(66.8%)으로 가장 많았고, 여성이 893명(65.6%)이었다. 금감원 관계자는 “보험사기 수법 중 허위 입원보험금을 받은 경우가 91.2%(86억 7600만원)에 달했는데 아무래도 중·고등학교 자녀를 둔 40·50대 주부들이 입원을 편하게 할수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가장 많은 보험금을 타낸 주부 손모(53)씨는 당뇨나 고혈압 등으로 3년간 18번에 걸쳐 564일간이나 과장 입원해 9500만원의 보험금을 받았다. 최다 건수의 보험사기를 기록한 것도 53세 주부였다. 그는 3년간 109건에 걸쳐 입원을 하면서 9133만원의 보험금을 타냈다. 이외 최모(63)씨 부부는 고혈압 등으로 6차례나 같은 병원에 동반입원해 2400만원의 보험금을 지급받았다. 보험설계사는 노모(45·여)씨는 2년간 9차례나 입원했지만 입원기간에 45건의 보험계약을 모집한 성과가 있었다. ●50대 주부 3년간 109번 입원 금감원에 따르면 처음에는 창원시 및 부산·경상도 지역에서 보험사기에 많이 가담했지만 소문이 퍼지면서 서울·경기뿐 아니라 전라도, 강원도, 충청도, 제주도 등에서도 326명이 몰려들었다. 금감원은 보험사기 혐의자 1361명을 비롯해 관련 병원 3곳(보험사기 방조혐의)의 자료를 경찰에 넘기고 수사를 의뢰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감원은 환자와 병원이 공모했다고 보기에는 사안이 너무 커 다수의 브로커가 개입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만약 보험관계업무 종사자의 위법사실이 드러나면 즉시 현장검사를 실시해 엄중 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금감원은 이번 사건이 지난해 11월 발생한 태백사기사건보다 피해가 클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경찰은 150억원대 보험금과 요양급여비를 가로챈 태백지역 병원장과 보험설계사, 가짜 환자 등 410명을 적발한 바 있다. 이경주·이성원기자 kdlrudwn@seoul.co.kr
  • [씨줄날줄] 여수 밤바다/이도운 논설위원

    뉴욕의 양키 스타디움을 처음 갔을 때 ‘빰빰빠라밤~’하고 울려퍼지던 멜로디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 1979년 프랭크 시내트라가 발표한 ‘뉴욕, 뉴욕’. 이 도시의 축제 분위기를 상징하는 노래가 됐다. 뉴욕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노래는 음유시인 빌리 조엘이 1977년 만들어 부른 ‘뉴욕 스테이트 오브 마인드’. 좀 더 사색적인 분위기 때문에 뉴욕시민들은 이 노래를 더 좋아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바 있다. 또 양키스의 지역 라이벌 메츠는 ‘뉴욕, 뉴욕’ 대신 이 노래를 경기장에서 틀곤 한다. 미국에는 도시나 지역의 이름을 소재로 한 대중가요가 많다. ‘샌프란시스코(에 오려면 머리에 꽃을 꽂으세요)’ ‘LA 국제공항’ ‘(콜로라도) 로키 마운틴 하이’ ‘스위트 홈 앨라배마’ 등 셀 수 없을 정도다. ‘보스턴’이나 ‘애틀랜타 리듬 섹션’처럼 고향을 그룹 이름으로 붙인 뮤지션도 많다. 미국뿐이 아니다. 프랑스에도 ‘파리의 하늘 밑’이나 ‘베르사유에서의 자전거 타기’처럼 지역을 소재로 한 노래가 있고, 일본에서는 ‘블루나이트 요코하마’라는 노래가 큰 히트를 기록한 바 있다. 우리나라에도 지역을 상징하는 노래들이 있다. 롯데 자이언츠의 본거지 사직구장에서 늘 울려퍼지는 ‘부산 갈매기’나 ‘돌아와요 부산항에’, 호남 사람들의 애환을 대변하기도 했던 ‘목포의 눈물’ 등이 대표적이다. 또 끈적끈적한 ‘대전 블루스’는 왠지 충청도 사람들의 은근과 끈기를 표현해주는 듯하고, 울산 간절곶에는 1969년 서울 가수 김상희가 경상도 여인처럼 화끈하게 불렀던 ‘울산 큰애기’의 노래비가 서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도시 서울도 수십명에 이르는 가수들의 창작 소재가 됐다. 그 가운데 배호의 ‘서울야곡’, 이미자의 ‘서울이여 안녕’, 패티 김이 부른 ‘서울의 찬가’, 조용필의 ‘서울, 서울, 서울’, 김건모의 ‘서울의 달’ 등이 많이 알려진 노래다. 최근에는 여수가 가요시장에서 부각되고 있다. 신예 밴드 ‘버스커 버스커’가 발표한 ‘여수 밤바다’가 큰 인기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이 노래는 공교롭게도 여수 엑스포 개막을 앞둔 시기에 발표돼 더욱 큰 관심을 끌었다. 11일 개장한 여수 엑스포에 예상보다 국내외 관람객 숫자가 적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맹위를 떨치는 한류 뮤지션들이 여수를 소재로 한 노래를 만들어 세계 시장에 발표했다면 더욱 많은 관람객들이 올 수도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이도운 논설위원 dawn@seoul.co.kr
  • [2012 여수세계박람회] “두 바퀴로 전국 누비며 친환경 엑스포 알렸죠”

    [2012 여수세계박람회] “두 바퀴로 전국 누비며 친환경 엑스포 알렸죠”

    “여수엑스포가 바다와 환경을 생각해보는 것이 주제인 만큼 가장 친환경적인 교통수단인 자전거를 통해 엑스포의 성공을 빌었습니다.” 지난 11일 오후 5시쯤 50~70대 남녀 100명으로 이뤄진 녹색자전거봉사단연합이 여수엑스포장에 도착했다. 녹색자전거봉사단연합 대표인 한만정(62)씨는 “여수까지 자전거로 오느라 힘들었지만 멋지게 꾸며진 엑스포장을 보니 기쁘기 그지없다.”며 환하게 웃었다. 녹색자전거봉사단연합은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출발했다. 50명씩 각각 동쪽팀과 서쪽팀으로 나뉘어 동쪽팀은 강원도를 거쳐 여수로 오는 코스를 밟았고 서쪽팀은 충청도를 거쳐 여수로 오는 코스를 달렸다. 동쪽팀은 700㎞, 서쪽팀은 600㎞를 각각 페달을 밟았다. 자전거로 전국을 누비면서 여수엑스포 성공을 비는 것은 물론 홍보도 했다. 바람개비를 돌리며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여수 엑스포에 대해 알렸다. 경비는 어느 누구의 지원도 받지 않고 자비로 했다. 최대한 절약하기 위해 5일 동안 잠은 찜질방에서 잤고 끼니는 5000원 안에서 해결했다. 이들이 힘들게 여수에 도착한 것도 잠시, 3만원을 넘는 엑스포장 입장비가 없어 정작 엑스포장 안에 들어가보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마음은 아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대신 이들은 12일 오전 11시쯤 여수시청 앞에서 자체 홍보전을 치르는 것으로 아쉬운 마음을 대신했다. 한씨는 “전국을 돌아다녀보니 사람들이 여수 엑스포에 대해 아예 모르거나 관심이 부족하다는 것을 직접 느꼈다.”면서 “아무래도 정부의 홍보가 부족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걱정되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우리가 직접 전국을 돌아다니며 홍보했으니 많은 사람들이 엑스포장을 방문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여수 김진아기자 jin@seoul.co.kr
  • 경청 李… 당내 상황엔 말 아끼며 충청도 찾아 민심 청취

    경청 李… 당내 상황엔 말 아끼며 충청도 찾아 민심 청취

    ‘당 안에서는 비판, 당 바깥에선 조용한 민생 탐방’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의 최근 대권 행보는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1일도 충청도에서 민심을 청취했다. 이날 이 의원은 충남 당진의 자동차 부품회사인 하나로모터스를 방문해 중소기업 근로자들의 고충을 들은 뒤 서산시 율곡리 마을, 예산 수덕사 방문 등의 일정을 소화하며 대선 구상을 가다듬었다. 앞서 지난달 25일 부산을 시작으로 26일 경북 의성, 27일 충북 충주, 28일 전남 구례·전북 익산, 30일 경남 함안·사천 등 전국을 순회하는 강행군을 하고 있다. 2010년 국민권익위원장 시절 지방을 돌며 이동신문고를 열고 주민들의 민원을 수렴한 뒤 즉석에서 해결 방안을 제시했던 콘셉트를 연상케 한다. 그는 민생 탐방 현장에선 당내 상황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다만 언론을 향해서는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과 틈틈이 각을 세우고 있다. “대선이라는 것에 매달려 1인독재 지배체제를 강화하고 심화시켜 놨다.”고 비판하고 있다. 대선 출마를 위한 대내외적인 명분을 착착 쌓아 나가고 있는 모습이다. 무엇보다 ‘현장의 목소리’가 강한 무기가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 의원 측은 “7일까지 전국 탐방을 끝내고 10일쯤 출마 선언을 한 이후 캠프 조직 및 인원 구성, 선거 사무실 개소 등도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2일엔 강원 동해시 묵호항 어시장 및 동해시청을 방문한 뒤 평창 알펜시아 리조트에서 동계올림픽 준비 상황을 챙길 예정이다. 이어 춘천 현지 마을회관에 묵는 등 서민 행보도 강조할 계획이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대형교회-작은교회 상생법은

    한국 개신교계의 양극화 현상은 심각한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특히 교세가 확연히 줄면서 존폐의 기로에 선 소형 교회들이 부쩍 늘고 있다. 교계는 5만여개의 한국교회 가운데 해마다 1000여개가 문을 닫거나 이전 위기에 처한 것으로 관측한다. 그런 가운데 미래목회포럼(대표 정성진 목사)이 실질적인 대안 찾기에 나서 주목된다. 오는 27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연지동 한국기독교연합회관에서 여는 ‘한국교회 양극화, 그 대안을 찾다’라는 주제의 포럼이 화제의 행사다. 미래목회포럼은 한국교회의 미래를 걱정하며 기도하는 15개 교단의 중견 담임 목회자 300여명이 의기투합해 2003년 창립한 단체. 초대 교회의 성경적 모습을 회복하자는 큰 뜻에 맞춰 한국교회의 미래비전과 방향 설정에 앞장서며 개신교계의 눈길을 끌어왔다. 미래목회포럼이 이번 포럼에서 악센트를 둔 부분은 작은 교회와 대형교회의 실천가능한 공존과 상생법이다. 미래목회포럼이 그동안 펼쳐 온 교회의 공존과 상생 노력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킬 구체적 방안을 짜자는 것이다. 실제로 대형교회와 작은 교회의 교류·지원은 많지 않지만 점차 늘고 있는 추세. 서울 산정현교회가 전북 진안의 금양교회와 자매결연을 맺어 이 교회 신자들이 정기적으로 방문해 예배를 드리고 직거래 장터를 열고 있는 게 대표적 사례다. 산정현 교회의 시도는 강원, 충청도 등 전국으로 확산되는 추세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분당우리교회의 지역사회 섬기기 행사인 ‘요셉의 창고 열기’ 운동은 중대형 교회들이 앞다퉈 벤치마킹하는 프로젝트로 꼽힌다. 이번 포럼은 이 같은 작은 움직임들을 규합해 교계 전체로 확산시킬 방안을 마련하자는 자리. 남재영(대전 빈들교회) 목사가 양극화 현상의 문제점, 김경호(들꽃 향린교회) 목사가 분립개척을 통한 대안, 김관선(산정현교회) 목사가 도농교회 상생방안, 서길원(상계감리교회) 목사가 작은교회 살리기를 통한 부흥, 해비탯 이창식 부이사장이 사랑의 집짓기를 통한 지역교회 지원 방안을 꼼꼼히 짚는다. 미래목회포럼 이사장 최이우(종교교회) 목사는 “작은 교회 목회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목회자로서의 소명감과 자부심인 만큼 이들이 직접 프로젝트를 만들고 실행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동역하는 게 상생목회의 좋은 방법”이라고 밝혔다.(02)762-1004.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사설] 새누리는 더 겸손하고 민주는 더 자성하라

    유권자들이 4·11 국회의원 총선을 통해 여야 정치권에 전달한 메시지는 분명하다. 새누리당은 더 겸손하고, 민주통합당은 더 자성하라는 것이다. 올해 초만 해도 이명박 정부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만이 고조되면서 여당인 한나라당이 4·11 총선에서 크게 패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을 당의 얼굴로 내세워 정강·정책을 바꾸는 등 쇄신 작업에 들어가면서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한나라당은 새누리당으로 이름까지 바꾸고 과거의 병폐들을 해소하려는 작업에 들어갔다. 야당 측에서는 ‘쇼’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지만, 어쨌든 새누리당은 20대 비대위원까지 영입하며 쇄신의 몸부림을 보였다. 유권자들은 그런 새누리당의 모습을 보면서 여당이 겸손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이 이번 총선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수도권에서 패배했고, 20~30대 유권자의 마음을 얻는 데도 또다시 실패했다. 아직 해결해야 할 큰 과제가 남겨진 것이다. 그 과제 가운데 많은 부분은 이명박 정부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박근혜 위원장이 기자회견을 통해 “불법사찰방지법을 제정하겠다.”고 밝힌 것은 새누리당에 남겨진 과제를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때 단독 과반도 가능하다고 기치를 올렸던 민주당은 실망스러운 성적표를 받았다. 18대 총선 때보다는 의석을 크게 늘렸지만, 강원도와 충청도 지역에서 뼈아픈 패배를 당했다. 민주당의 패배는 새누리당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자초한 측면이 크다. 명분과 원칙도 없이 선거구도만 고려한 야권 연대, 유권자의 눈높이에 훨씬 못 미친 안이하고 구태의연한 공천 과정, 노무현 정부에서 추진했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뒤집는 오만함 등이 민주당을 자멸로 이끈 요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민주당에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총선 당시 대패했던 수도권에서 승리한 것은 커다란 성과다. 민주당 스스로 얼마나 반성하고, 달라진 모습을 보일 수 있는가에 따라 연말 대통령 선거에서 정권을 차지할 수 있는 기회가 남아 있다. 이번 총선에서 유권자들은 새누리당(42.8%)과 자유선진당(3.2%)에 46%의 지지를, 민주당(36.5%)과 진보당(10.3%)에 46.8%의 지지를 나눠줬다. 마치 계산된 듯한, 절묘한 조화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새누리당을 중심으로 한 보수 진영과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진보 세력이 똑같은 조건의 스타트 라인에 서 있다. 이제부터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진지하고 치열한 경쟁을 새롭게 시작하기 바란다.
  • 세종시 첫 의원 이해찬 “워싱턴DC 버금가는 행정도시로”

    세종시 첫 의원 이해찬 “워싱턴DC 버금가는 행정도시로”

    ‘대한민국 세종시대’를 이끌어 갈 세종특별자치시의 국회의원과 단체장, 그리고 교육감이 확정됐다. 세종시 선거구는 이번 총선에서 전국에서 유일하게 국회의원 선거와 함께 시장과 교육감 선거가 동시에 실시된 곳이다. 유권자들은 국회의원, 시장, 시교육감, 비례대표 등 4번이나 찍어야 해 다른 곳보다 두배나 번거로운 선거였지만 열기는 뜨거웠다. 투표율이 59.2%로 전국 최고를 기록한 것이 이를 반영했다. 천안을 제치고 ‘충남의 정치1번지’로 떠올랐을 정도로 관심지역이었다. 개표결과,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이해찬(59·민주통합당·전 총리) 후보가 당선됐다. ‘충청권 맹주’를 자처했던 자유선진당의 심대평 대표와의 맞대결에서 이겼다. 정치생명까지 내걸고 지역구를 옮겨 출마했던 당 대표가 낙선함으로써 자유선진당은 와해될 위기에 처했지만 민주통합당은 이 후보 당선으로 충청권 교두보 확보 이상의 정치적 성과를 거두었다는 평이다. 이 후보는 당선 소감으로 “내가 세종시를 만들었고, 세종시 완성도 내가 이루겠다.”면서 “세종시를 미국 워싱턴DC에 버금가는 세계 최고의 행정도시로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세종시 총선은 ‘노무현·이명박 전·현직 대통령 재임기간 내내 국정을 뒤흔들었던 곳의 첫 선거’ ‘세종시를 설계한 이해찬 전 총리와 충청도 정치세력을 대변하는 자유선진당 심대평 대표와의 대결’ ‘연말 대선에서 충청 민심을 어느 당이 선점하느냐를 가늠할 수 있는 방향타’ 등 여러 의미로 선거기간 내내 전국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초대 시장에는 유한식(62·자유선진당·전 연기군수), 초대 시교육감에 신정균(62·전 연기교육지원청 교육장)이 각각 당선됐다. 유 시장 당선자는 연기군 농업기술센터 소장에서 6년 만에 군수를 거쳐 일약 광역자치단체장으로 등극했다. 아직 중앙부처가 이전하기 전이고, 유권자 대부분이 연기군 토박이 주민이어서 예상된 일이다. 국내 17번째 광역단체장이다. 유 시장 당선자는 “내가 세종시 원안 수성과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유치의 중심에 있었음을 주민들이 알아줬다.”면서 “세종시 완성에 모든 열정을 쏟아붓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전 경력 때문에 전국시도지사협의회에서의 위상이나 세종시 중앙부처와의 소통 문제를 일부 의심스러워하기도 한다. 그는 “김두관 경남지사는 이장 출신이 아니었느냐. 그래도 잘해오지 않느냐.”면서 “필요한 예산이나 사업은 정부에서 지원한다. 중앙부처 및 공무원과의 관계도 열정을 보이면 문제 없다.”고 잘라 말했다. ‘보수’로 알려진 신 교육감 당선자는 “시민들과 소통하면서 아이들이 안전하고 행복한 전국 최고의 명품 교육도시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세종시장과 시교육감 임기는 모두 민선 6기 출범 직전인 2014년 6월 30일까지다. 시의원은 연기군 출신 현역 충남도의원과 군의원들이 계승, 같은 기간까지 재임해 이번 총선에서 따로 뽑지 않았다. 또 시·군·구를 두지 않고 도시 지역엔 동, 농촌 지역엔 읍·면을 두기 때문에 세종시 내 기초단체장 선거는 없었다. 안팎에서는 유 시장 및 이 국회의원 당선자의 소속 정당이 달라 세종시 건설과정에서 제대로 협력이 이뤄지겠느냐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유 시장 당선자는 “조치원읍 등 잔여지역을 5대 권역으로 나눠 개발, 행정타운이 들어서는 예정지와의 균형발전에 힘쓰고, 세종시의 하드웨어 못지않게 시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소프트웨어에 신경쓰겠다.”면서 “명품도시 건설을 위해 누구와도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연기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세종특별자치시 세종시는 오는 7월 1일 출범한다. 대전광역시와 청주시로부터 10㎞ 거리에 인접해 있다. 이름은 조선 4대 왕인 ‘세종’에서 따왔다. 주민수는 3월 말 현재 10만여명이다. 오는 9월 총리실을 시작으로 2부 2처 2청의 중앙부처가 2014년까지 이전한다. 50만명의 최첨단 도시가 목표다. 세종시 구상은 원래 행정수도 지위로 출발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행정수도 이전 공약을 내세우며 충청권 표심을 사로잡았었다. 노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는 국토 균형발전을 도모하고 수도권 과밀화를 억제하기 위해 혁신도시 사업과 연계해 이 사업을 추진했다.
  • [선택 2012 총선 D-6] 韓 “朴, 세종시에 숟가락 얹나”

    [선택 2012 총선 D-6] 韓 “朴, 세종시에 숟가락 얹나”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는 4일 박근혜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장을 향해 “다 차려 놓은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는 ‘숟가락 정치’를 하면 안 된다.”고 비판했다. 한 대표는 충남 천안시 서북구 천안시청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전날 박 위원장이 충청지역 유세에서 “새누리당이 세종시 건설 약속을 지켰다.”고 한 데 대해 “지금이 어느 때인데 거짓말을 하나. 세종시를 지킨 건 충청도민과 민주당”이라며 박 위원장을 공격했다. ●과학벨트·오송의료단지 공약 약속 한 대표는 “이명박 새누리당 정권이 세종시를 백지화하려 했는데도 박 위원장은 어제 공주에서 ‘세종시를 지켜낸 것도 새누리당’이라고 국민을 속였다.”면서 “양승조 민주당 국회의원이 목숨을 건 삭발 단식 투쟁을 해서 충청도민들과 함께 세종시를 지켜냈다.”고 반박했다. 이어 “세종시를 지켜냈다고 거짓말을 하는 이명박 새누리당 정권을 반드시 심판하고 충청도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대표는 이날 세종시에 출마한 이해찬 민주당 상임고문과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와 함께 충남·대전 일대를 돌며 ‘세종시 사수론’ ‘민간인 불법사찰 심판론’ 등을 내세워 합동 유세를 벌이는 등 총공세를 펼쳤다. 충남·대전 지역의 양승조(천안갑), 박수현(공주) 등 민주당 후보들과 김창근(대전 대덕) 통합진보당 후보 등을 지원 유세했다. 한 대표는 세종시 정부청사의 조속한 이전, 충청권 과학비즈니스벨트 지원, 오송첨단의료복합단지·청주공항의 확고한 추진 등 지역 공약을 약속하기도 했다. 충남 연기군 조치원역 앞에서는 이 고문과 세종시장 후보로 나선 이춘희 전 건설교통부 차관이 합류했다. 한 대표는 거리 유세에서 “세종시를 최초로 설계, 기획한 이 전 국무총리와 참여정부 초대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을 맡은 이 시장 후보를 모셨다. 두 후보를 초대 세종시 국회의원과 시장으로 만들어 주면 정권교체의 교두보가 될 것”이라며 민주당이 ‘세종시 설계의 원조’임을 부각시켰다. 충청권을 전방위 지원사격하고 있는 이 고문은 “세종시를 완성시키겠다.”고 역설했다. ●한 대표 오늘 부산·경남 유세 민간인 불법 사찰에 대한 새누리당의 특검 제안에 대해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임명하는 특검에 이명박 비리 조사를 맡길 수 없다. 박 위원장의 제안은 이 대통령 비리 ‘덮어주기용’, ‘시간끌기용’ 특검”이라고 평가절하했다. 한 대표는 “민생대란, 국민 사찰 4년의 정치를 마감해야 한다. 꼭 심판해 달라.”고 강조했다. 한 대표는 대전을 끝으로 충남지역 유세를 마친 뒤 이날 밤 경남 진주로 이동, 5일까지 부산·경남 유세를 벌인다. 강주리·대전 이범수기자 jurik@seoul.co.kr
  • 북아메리카 인디언은 왜 국가 안 만들었을까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것은 과연 신대륙이었을까. 이미 그 대륙에는 원주민이 살고 있었다. 콜럼버스는 그 땅을 인도로 착각했고 원주민을 인도 사람이라는 뜻으로 ‘인디오’라고 했다. 하여 새로운 대륙이라는 말은 틀리다. 미국에는 현재 연방 주권, 주 주권, 부족 주권 등 세 가지가 공존한다. 이 가운데 부족 주권은 북아메리카 인디언이 보호구역 내에서 행사하는 주권으로 이곳에는 주와는 별개의 의회, 행정부, 사법부 조직이 갖춰져 있다. 미국 전역에 흩어져 있는 인디언 보호구역은 약 310개에 이른다. 그중 애리조나, 유타, 뉴멕시코 주에 걸쳐 있는 나바호 보호구역은 그 넓이가 우리나라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를 합한 것과 맞먹는다. 만약 인디언 부족들이 서로 연합해서 미국 정부에 대항했더라면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인디언들은 강탈당한 땅을 왜 찾지 않았을까. 또한 왜 국가를 만들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안 만든 것일까. 신간 ‘인디언 마을 공화국’(여치헌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은 ‘북아메리카 인디언은 왜 국가를 만들지 않았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북아메리카 인디언이 이론상 연방 주권과 대등한 영향력을 지닌 부족 주권을 얻기까지의 역사를 흥미롭게 들려주고 있다. 이 책은 인디언이 멸망하지 않았다는 점에 방점을 찍고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섬세한 시선으로 미국 정부가 인디언 부족의 땅을 빼앗은 이론적 배경과 논리를 살폈으며 강제 이주 이후의 역사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저자는 이들 인디언이 국가를 만들지 않은 것은 사회로부터 분리된 권력의 탄생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국가가 아닌 사회이면서 국가에 버금가는 주권을 가진 ‘인디언 마을 공화국’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주목해야 할 정치 사회라고 강조한다. 1만 6000원 김문기자 km@seoul.co.kr
  • LG U+ LTE, 벽지·섬에서도 ‘빵빵’

    LG U+ LTE, 벽지·섬에서도 ‘빵빵’

    # LG유플러스 광고 ‘불편한 진실’편 롱텀에볼루션(LTE) 스마트폰이 통하지 않아 답답해하는 전라도 남자가 등장한다. 이어 충청도 아줌마, 강원도 연인들, 제주도 해녀, 경상도 대표 개그맨 양상국이 나온다. 양상국은 답답한 나머지 ‘LTE폰의 궁디를 주 차삘’ 뻔한다. 이어 개그맨 황현희가 등장해 개그콘서트 코너인 ‘불편한 진실’에 빗대어 ‘LTE가 안 터진다.’는 사실을 꼬집는다. LG유플러스의 전국 커버리지를 강조한 장면이다. LG유플러스가 LTE의 전국망을 완성했다. LG유플러스는 29일 전국 84개 자치단체 및 889개 군·읍·면, 전국 고속도로 등 어디서나 LTE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전국망을 구축했다. 지난해 7월 LTE 상용서비스를 시작한 지 9개월 만이다. 통신업계 후발주자인 LG유플러스가 설움을 딛고 꿈꾸던 통신 인프라를 본격 가동한 것이다. LG유플러스는 전국망 완성을 통해 지방 국도와 KTX 전 구간은 물론 20개 국립공원 및 75개 섬 지역에까지 같은 품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게 됐다. LG유플러스는 이날 서울 중구 남대문로 본사에서 이상철 부회장 등 임직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LTE 전국망 구축 완료를 선포하는 개통식을 열었다. 이 부회장은 행사에서 “세계에서 가장 짧은 기간에, 가장 먼저 LTE 전국망을 구축해 전국 어디서나 고품질의 LTE 서비스를 즐길 수 있게 된 3월 29일은 5000만 국민이 LTE로 통(通)한 날”이라며 “고객과 함께 숨쉬고 고객의 마음까지 들여다보는 ‘고객의 반려자’가 돼 LTE 1등을 달성하고 탈(脫)통신 1등 기업으로 도약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LG유플러스는 LTE 사업을 선점해 ‘만년 3위’ 이미지를 씻겠다는 복안이다. LG유플러스는 하반기 2.1㎓ 주파수 대역에 LTE망을 구축해 데이터 트래픽을 해결할 방침이다. 내년에는 800㎒와 2.1㎓를 묶어 하나의 대역처럼 쓰는 기술을 적용해 현재 75Mbps인 LTE 속도를 2배 더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또 오는 10월에는 세계 최초로 음성과 데이터를 모두 인터넷으로 제공하는 LTE 기반 음성서비스(VoLTE)를 지원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LG유플러스 LTE 가입자는 통화 중에 지도 및 미디어 파일을 공유하고 HD 영상, 게임 등 콘텐츠를 운영체계나 단말기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즐길 수 있게 된다. 한편 LG유플러스는 자사 LTE 가입자가 146만명을 돌파했으며, 연말까지 400만명 이상이 LTE 서비스를 이용할 것으로 전망했다. 홍혜정기자 jukebox@seoul.co.kr
  • 세종시 찾은 한명숙 “朴은 MB 아바타”

    세종시 찾은 한명숙 “朴은 MB 아바타”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가 26일 국가균형발전의 상징이자 충청권의 정치 1번지로 부상한 세종시 공략에 시동을 걸었다. 한 대표는 오후 이해찬 후보와 함께 세종시에 편입되는 충남 연기군의 밀마루 전망대와 조치원 중앙시장, 공주 산성재래시장을 누비며 지지를 호소했다. 또 참여정부가 세종시의 ‘산파’임을 강조하며 세종시 수정안을 추진했던 이명박 정부와의 차별성을 부각시켰다. 한 대표는 세종시 방문 직전 대전을 찾아 기자간담회를 갖고 “MB정부가 세종시를 백지화시키려던 것을 충청도민들이 지켜냈다. MB정부는 세종시 백지화 시도는 물론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를 분산시키고 충남도청 건물의 근현대사박물관 활용 약속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고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또 ‘세종시 원안+알파’를 주장했던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에 대한 이 지역 주민들의 우호적 감정을 의식한 듯 “박 비대위원장은 이명박 대통령(MB)의 아바타이자 대리인으로 MB와 같다.”고 주장했다. 한 대표는 “간판을 바꾸고 파란색에서 빨간 옷으로 갈아입은 새누리당에 다시 속으면 안 된다.”고 했다.  이어 연기군으로 이동, 이해찬 후보와 만나 세종시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밀마루 전망대에 오른 한 대표는 “여기가 이 후보의 운명”이라며 “이 후보라면 정권을 잡든 못 잡든 비전을 갖고 할 것”이라고 격려했다. 아울러 “세종시에서 국회의 9개 부처 상임위원회가 활동할 수 있도록 하고, 프레스센터와 대통령 집무실도 만들어 기능이 원활히 돌아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비전을 제시했다. 조치원 중앙시장에선 지역민들의 열렬한 환대도 받았다. 주민들은 ‘이해찬’을 연호하며 한 대표와 이 후보에게 경쟁적으로 악수를 청했고, 이 후보는 “반드시 당선되겠다.”고 화답했다. 그는 “지역민들이 (나를)외지인으로 규정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다녀보면 결단해 줘서 고맙다고 한다.”고 말했다. 한 대표는 호떡과 옥수수 등을 사서 상인들과 나눠 먹으며 이 후보에 대한 지지를 부탁했다. 세종시는 지난 2010년 정부부처 이전을 백지화하는 수정안과 원안을 놓고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했던 곳으로, 민주당에는 충청권 공략의 교두보이자 정책 진검 승부를 펼칠 수 있는 핵심 승부처로 꼽힌다. 이현정·최지숙기자 hjlee@seoul.co.kr
  • [저자와 차 한 잔] 민중 구술집 ‘당신을 사랑합니다’ 펴낸 시인 김해자

    [저자와 차 한 잔] 민중 구술집 ‘당신을 사랑합니다’ 펴낸 시인 김해자

    해방감이었다. 이들을 만날 때마다 얼마나 엄살을 떨고 살았는지, 통절하게 느끼고 돌아왔다. 멋진 이야기도 아닌데, 오히려 비루하고 어렵고 고단한 이야기인데도, 이들이 만든 삶의 무늬와 정서를 온몸으로 받아들인 뒤에는 마음속에 있던 작은 고민이 소멸해 버리는 홀가분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글쓰기를 이어갈 수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 푸줏간 주인부터 해녀까지 만나 듣고 또 듣고 최근 민중 구술집 ‘당신을 사랑합니다’(삶이보이는창 펴냄)을 낸 시인 김해자(51)는 책 속에 담긴 많은 사람에게서 받은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다. 지난 20일 서울 태평로 서울신문 본사에서 만난 시인은 머리에 초록색 두건을 두르고, 자잘한 꽃무늬가 그려진 연두색 셔츠를 입은, 자그마한 여인이다. 그런데 등에 멘 가방이 영 묵직해 보인다. “(전북)전주에 있다 보니까 서울에 한 번 오면 만나야 할 사람들이 많아요. 이번에는 그분들께 이 책을 전해드리려고요.” 시인이 말한 ‘그분’은 서울 마장동 우시장에서 고기를 파는 일흔다섯 윤주심씨이고, 34년째 서울에서 택시를 운전하는 김인수씨이자 한국에서 새로운 꿈을 만들어 가는 외국인 노동자 레자·몰라·부따·나랜드라 등이다. 예전엔 스러진 해녀 고 김석봉씨이기도, 시인의 친구이자 노동운동가 고 최명아씨이기도 할 터다. 시인에게 민중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해 준 그 사람들이다. “첫 시집 ‘무화과는 없다’를 내기 직전인 2001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늘 곁에 계실 줄 알았는데, 천지 어디에서도 그 목소리조차 들을 수 없는 거예요. 이게 낫 놓고 기역자 정도 아는 우리 어르신들 모습이더라고요. 자식들은 동영상으로 남기고, 지나치는 꽃들을 사진으로 찍어도,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영원히 사실 것처럼 남기지 않는….” 시인은 그때부터 녹음기를 들고 다녔다. 사람들과 만나고, 때론 술 한 잔 기울이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했다. 다소 비린내 나고 씁쓰름하면서 텁텁하기도 한 대화를 날것 그대로 책에 풀어냈다. ‘피들피들 바닷바람에 말려 구워 먹는 오징어 피데기는 참 맛이 좋다게. 남편이 한참 뱃일할 때난 그물에 걸린 대게를 떼어내는 일도 했다게.(중략) 돌문어 다리 볶아서 아이들 도시락 반찬 해주곡, 생선 말려서 하르방 밥상에 올리곡, 식구들 아프면 전복죽 끓여 먹이고, 바당은 반찬거리 천지주.’(김석봉傳) ‘나가 고향서부텀 소문난 효자요. 자식 줄줄이 달고 청상이 되어부렀으니 내 맘으로다 엄니가 얼마나 안쓰러웠겄소?(중략) 한복 저고리에다 여름엔 모시 적삼에다가 그렇게 늘 깨깟허니 꼿꼿허니 앉어계신디, 그 뒤치다꺼리를 누가 했겄소?(중략) 이 자리서 나가 처음 하는 말인디, 이 사람한테 정말 미안허요.’(김인수傳) # 사사로운 육성에서 위로 받고 희망 찾아 애써 윤색하지 않았고, 전라도·충청도·제주도 사투리도 다 살렸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어눌한 한국말도 그대로 담았다. “말은 그 사람의 정서거든요. 우리가 하는 말은 어머니의 말이고, 자연의 말이잖아요. 설령 엄마가 ‘미친 년, 너나 아프지 마라’고 한들, 이걸 욕으로 듣지는 않죠. 자식 걱정하는 짠한 마음을 느낄 뿐이죠. 그것을 살리고 싶었습니다.” 고된 삶을 계속 접하다 보면 정신적으로 피로해질 법도 할 텐데, 시인은 전혀 그런 것이 없었다고 했다. “못 배우고 못 살고, 그렇게만 아는 민중의 온몸에는 실다운 삶이 관통하고 있어요. 요즘 우리는 사랑이니, 민중이니 하는 말을 얼마나 오염시키고, 학자적·정치적 개념으로만 쓰고 있습니까. 나와 타자의 경계가 무너진 삶을 산 사람, 이들 자체가 구원인 거죠. 그래서 전 이분들께 거룩함마저 느꼈습니다.” 그가 민중에게 느끼는 경외감이 묻어난다. 그의 인생 역정 또한 그랬던 탓일 것이다. 전남 목포에서 태어난 시인은 동네에 현수막이 걸릴 만한 명문대에 진학했다. 운동을 하다가 졸업을 못한 채 인천으로 흘러갔고, 공장에서 일하면서 10여년을 보냈다. 노동자문학회에서 활동하면서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나눈 일상을 글로 풀어냈다. 공장에서 함께 일하다가 과로로 쓰러져 유명을 달리한 친구 최명아씨를 그린 소설 ‘최명아’로 1998년 전태일문학상을 받았고, 두 번째 시집 ‘축제’로 백석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인은 앞으로도 죽 민중에 집중할 계획이다. 아마 두 번째 ‘민중열전’은 전주 남부시장 사람들이 될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몇 년 전 뇌출혈로 쓰러져 대수술을 받았고, 머리에 철심은 박은 상태라 오래 글을 쓰기 어려워 당장은 아니란다. “집중해서 무엇인가를 하고 있으면 머리가 지릿지릿 저려요. 수술 후에는 과거 몇 년 치 기억이 없어진 듯 기억이 잘 나질 않아요. 그런데 참 이상한 거는요, 몸은 기억하고 있다는 거예요. 글 한 자 쓸 줄 모르는 어르신들이 옛일을 날짜, 시간까지 정확히 말해 주는 게 이런 게 아닐까 싶어요.” 글 속 윤주심씨의 말을 빌리자면 “우찌게 돈을 맹글어 죽어라고 달려가서 이문동 은행에 갖다 냈어. 11시드라. 기억력이 좋다고? 그라냐? (중략)자식들이 나한테 ‘되새김의 여왕’이라고 부르잖여.”라고나 할까. 시인이 전하는 것은 사사로운 민중의 모습이지만, 독자가 받는 것은 위로이고 희망이다. ‘지금 지가 아파도유, 보글보글 된장찌개도 끓이고 고실고실 밥도 하고 하늘도 보고, 오늘 하루도 삶의 수리차를 돌리겠유. 휘청휘청 걷다 보면 저기 어디선가 소금 빛이 반짝반짝할 것이니께.’(이영철傳) 이렇게 말이다. 1만 3000원.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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