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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이·청소년 책꽂이]

    눈(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글·그림, 이지원 옮김, 창비 펴냄) 2011년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라가치 대상을 받은 폴란드 작가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의 신작 그림책. 작가는 볼 수 있다는 것은 크나큰 선물이지만 볼 수 없는 것 역시 삶의 축복에서 제외된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삶과 생명에 대한 긍정의 메시지를 전한다. 시각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볼 수 있도록 구성됐다. 1만 6000원. 남대문의 봄-숭례문 600년 이야기(이현숙 글, 유기훈 그림, 책과함께어린이 펴냄) 서울의 수문장인 남대문의 600년 역사 이야기를 조선의 개국부터 시간 순서대로 재미있는 이야기에 담았다. 동화 형식을 빌려 지식을 전달한다. 조선이 세워지고 남대문이 열리던 시기는 ‘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을 무렵은 ‘여름’, 조선의 태평성대는 ‘가을’, 한국전쟁 시기는 ‘겨울’로 각각 묘사했다. 2008년 화재 이후 복원까지의 시간은 다시 ‘봄’으로 그려진다. 1만 1000원. 만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유홍준 원작, 김형배·오승일 그림, 이보현 글, 녹색지팡이 펴냄) 유홍준 교수의 유명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7권의 만화로 완간됐다. 강원도(1권), 경상도(2~3권)로 이어지던 이야기는 전라도(6권), 충청도(7권)의 발간으로 끝을 맺는다. 문화재를 생생하게 표현해 실제 답사하는 듯한 즐거움을 준다. 만화가 김형배·오승일이 그리고, 박재동 화백이 감수했다. 각권 1만 1000원.
  • 1월의 오키나와, 눈 시린 쪽빛 풍경화

    1월의 오키나와, 눈 시린 쪽빛 풍경화

    노인들은 여전히 일본인이길 거부한다. 대신 이곳 사람임을 뜻하는 ‘우치난추’라는 말로 정체성을 세운다. 450년간 독립 왕국이었다가 일본의 침략을 받았고 또 30년 가까이 미 군정을 겪은 뒤 다시 일본에 반환된 곳. 원주민들과 무관한 미군과 일본군의 전투로 20만명이 죽은 서글픈 역사가 서려 있다. 그러나 비극은 역사라는 이름으로 희석되고 있다. 우치난추뿐 아니라 한국인 위안부와 징용자들의 슬픈 넋까지 에메랄드 바다 빛에 가려진 땅 ‘아시아의 하와이’ 오키나와다. 오키나와는 1976년 일본의 한 현(縣)으로 편입됐지만 거리상으로는 한국이나 중국에 더 가깝다. 인천공항에서 2시간 10분이면 겨울철 평균 최저기온이 섭씨 17.2도인 아열대 해양성 기후의 섬으로 피한(避寒) 여행을 떠날 수 있다. 한겨울에도 10도 이하로 떨어지는 경우가 없어 북방의 관광객들은 가벼운 차림에 카디건이나 바람막이 정도면 충분하다. 하지만 현지인들은 20도를 넘나드는 기온에도 오리털 파카를 입는다. 오키나와의 관문인 나하 공항에 내리면서부터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키 작은 소철나무와 파인애플을 닮은 아당나무다. 현지 가이드에 따르면 미 군정에서 일본으로 반환된 후 오키나와의 농업이 환금성 높은 사탕수수 경작으로 치우치면서 식량까지 바닥나자 현지인들은 ‘보릿고개’를 겪게 됐다. 그때 우치난추들의 배를 채워 준 것이 아무 맛도 나지 않는 아당 열매와 3일간 물에 담가 독을 뺀 뒤 삶은 소철나무 잎이었다. 독을 빼는 3일을 기다리지 못하고 먹었다가 목숨을 잃은 사람들도 부지기수라고 한다. 나하공항이 있는 나하섬은 오키나와의 본섬으로 제주도의 4분의3 크기다. 여기에 슈리성, 추라우미 수족관, 오키나와 월드, 국제거리 등 주요 관광지가 밀집해 있다. 하지만 자신만의 절경을 품은 나하섬 주변의 크고 작은 섬 160개(유인도 40여개)를 모두 합하면 제주도의 1.5배에 이른다. 그중 도카시키 섬은 오키나와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해변과 투명한 코발트 블루 물빛을 자랑한다. 특히 도카시키 섬 내 ‘아하렌 비치’는 세계적인 수준의 투명도를 갖고 있다. 배를 타면 수심 20m 아래까지도 훤히 보인다. 인근의 ‘도카시쿠 비치’도 투명한 물빛과 밀가루처럼 부드러운 모래로 유명하다. 도카시키 섬은 오키나와 해양스포츠의 메카다. 아하렌 비치와 도카시쿠 비치 모두 해변 가까이에 산호초가 넓게 자라고 있다. 산호초 사이로는 색색의 물고기들이 오가며 전 세계 스노클러들을 유혹하고 있다. 도카시키 섬 곳곳엔 전흔(戰痕)도 숨어 있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은 본섬에 상륙하려는 미군을 기습 공격하기 위해 도카시키 섬을 포함한 게라마제도에 함선을 주둔시켰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미군이 대규모 선단으로 게라마제도를 공격했고, 궁지에 몰린 일본군은 주민들과 함께 도카시키 섬 최북단으로 도망친다. 여기서 일본군은 민간인들에게 명예로운 자살을 종용한다. 이날의 아픈 기억은 도카시키 섬 북부 ‘집단자결지’에 새겨져 있다. 본섬에서 오키나와의 독특한 색채를 느낄 수 있는 곳은 과거 류쿠왕국의 고도(古都) 슈리성이다. 2000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슈리성은 1429년 쇼하시(尙巴志) 왕이 오키나와 본토를 통일하고 류쿠왕국을 세운 이후 450년간 역대 왕이 머물렀던 곳이다. 태평양전쟁 당시 대부분 파괴됐지만 성곽과 전각을 복원해 1992년 슈리성공원으로 재탄생했다. 중국과 류쿠의 문화가 융합된 독자적인 양식은 일본 본토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1975년 세워진 추라우미수족관도 오키나와 관광에서 건너뛸 수 없는 곳이다. 7500t의 수압을 기둥 하나 없이 견뎌내는 세계 최대 수준의 수족관이 자랑이다. 대형 고래상어와 쥐가오리, 특이한 모양의 산호, 열대어들이 몽환적인 풍경을 만들어 낸다. 오키짱극장에서는 돌고래 쇼를 감상할 수도 있다. 오키나와의 해양성 기후는 남다른 야생미가 물씬 풍기는 자연풍경을 소성해 냈다. 이를 즐기는 방법은 다양하다. ‘포레스트 어드벤처’(www.forest-adventure.jp)는 일종의 익스트림 스포츠다. 안전장치를 건 채 와이어를 타고 그물 다리를 건너 숲속을 탐험한다. 울창한 고사리 나무 숲을 걸으며 힐링을 하는 방법도 있다. 북부 ‘얌바루 이코이노 모리’ 휴양림에서는 ‘히카게헤고’라는 원시 고사리 나무 3000그루와 각종 식물을 감상할 수 있다. 오키나와의 상처가 더 궁금하다면 평화기념공원을 찾아보자. 태평양전쟁 때 희생된 한국인들을 기리는 위령탑이 서 있다. 대한민국 각지에서 가져온 돌을 위령탑 앞에 쌓아 뒀다. 탑 앞에 선 비석은 충청도에서 가져온 돌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글씨를 쓴 것이다. 한국, 한국인의 흔적도 여기저기 숨어 있다. 미야코지마에는 조선시대 홍길동 후손의 것으로 알려진 무덤이 있다. 슈리성 한켠에서는 고려대장경을 ‘모셔둔’ 장경각도 만날 수 있다. 고려시대 삼별초가 이곳까지 유입됐다는 얘기도 전한다. 국제거리와 마키시 공설시장에 가면 오키나와 사람들이 뭘 즐기고 먹는지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본토 일본인과 묘하게 외모가 다른 우치난추들의 생김생김을 슬쩍슬쩍 훔쳐보는 것도 재미다. 글 사진 오키나와(일본)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여행수첩 →진에어가 저비용 항공사로는 처음으로 지난달 24일 인천~오키나와 정기편을 취항했다. 좀 더 합리적인 가격으로 오키나와를 다녀올 수 있게 됐다. 주 7회 운항하며 매일 오전 10시 35분 인천을 출발한다. 홈페이지(www.jinair.com) 참조. 1600-6200. →자유여행이라면 렌터카를 빌리는 게 편하다. 12시간 기준 5000엔 수준. 오키나와 중심부는 나하공항에서 슈리성까지 설치된 모노레일로 돌아볼 수 있다. →쇼핑은 오모로마치에 있는 DFS갤러리아 오키나와점과 대형 아웃렛몰인 아시비나가 유명하다. 특산물은 자색고구마로 만든 ‘베니이모타르트’다. →전통요리는 오이과의 채소 ‘고야’를 두부, 계란과 함께 볶은 ‘고야찬푸르’다. 해초의 일종인 ‘모즈쿠’도 일본 전역에서 소비될 정도로 유명하다. ‘오키나와 소바’는 강한 양념에 익숙한 사람들의 입맛에는 잘 맞지 않는다. 오키나와 전통주인 아와모리와 오키나와에서만 맛볼 수 있다는 오리온 맥주, 오키나와 사탕수수 흑설탕을 이용한 도넛 ‘사타안다기’ 등도 맛있다. 일본 요리 뷔페인 ‘다이콘노 하나’ 등에 가면 다양한 오키나와 요리를 한자리에서 즐길 수 있다.
  • [데스크 시각] 5일장, 외국인이 감동하는 문화상품으로/이천열 메트로부 차장

    [데스크 시각] 5일장, 외국인이 감동하는 문화상품으로/이천열 메트로부 차장

    초등학교 4학년 때 충남 당진의 초등학교들이 참가하는 수영대회에 학교 대표로 나갔다. 인솔 선생님이 점심으로 짜장면을 사줬다. 그때 난 짜장면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인 줄 알았다. 6학년 때는 육상대회에 학교 대표로 출전했다. 선생님이 장터에서 국밥을 사줬다. 그제야 짜장면보다 더 맛있는 음식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그렇다고 내가 만능스포츠맨이거나 팔방미인이라고 오해는 하지 마시라. 여러 대회에 나갔지만 단 한번도 등수에 든 적이 없었으니까. 갯마을에 살아서 헤엄을 칠 줄 알았고, 뜀박질을 조금만 잘해도 눈에 띄는 작은 시골 학교를 다닌 덕에 선수로 뽑혔을 뿐이다. 그 유년시절, 국밥 맛보다 뿌연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은 정작 장터 분위기다. 가마솥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서민들의 왁자지껄한 풍경이 정겨웠다. 악다구니조차 살풍경하지 않던 시절이다. 감칠맛 나는 느린 충청도 사투리로 사람들이 나누는 풍성한 대화가 정겨움을 한껏 보탰다. 장터는 병아리 솜털처럼 포근했다. 그 기억 때문인지 어른이 된 뒤 외국에 나가 전통시장을 들르면 마음이 들뜬다. 사람들이 북적대고, 얼마 되지 않는 값을 놓고 다정한 말투로 흥정을 하고, 짐을 이고 지고 다니는 모습에서 그 나라를 오롯이 느낄 수 있어서다. 우리나라 5일장처럼 서민들의 희로애락이 장터에 짙게 배어 있고, 사람 냄새도 물씬 풍긴다. 장터 물건 또한 그 나라 사람 땀이 밴 것이 많아 묘한 향수에 젖고는 한다. 손수 만든 오밀조밀한 공예품부터 그 나라에서 생산되는 푸성귀까지 신기한 것들이 많다. 눈요기하기도 좋다. 그 나라 문화와 생활을 온전히 엿볼 수 있고, 민족성과 역사까지도 가늠해 볼 수 있는 곳이 전통시장이다. 백화점이야 갖가지 명품이 진열된 한국의 백화점들과 뭐가 다르겠는가. 한국을 찾는 외국인 중에도 이런 이들이 꽤 있을 것이다. 전통시장인 5일장에서 옛 풍정을 들여다보고 어떤 국민인지 피부로 느껴야 한국 관광의 의미를 제대로 찾을 수 있다는 부류들 말이다. 그들 또한 우리나라 5일장을 보고 나면 가슴이 푸근해지고 돌아가서도 먼 훗날까지 잊히지 않을 게 분명하다. 얼마 전 오랜 만에 5일장터를 찾았다. 충남 공주 산성5일장이다. 1970년 1000개에 이르던 전국의 5일장이 2010년 328개로 대폭 줄었다고 한다. 2년이 지난 지금은 300개 밑으로 뚝 떨어졌을 것이다. 그마저 5일장의 옛 모습을 유지하는 곳은 강원 정선, 전남 장흥 등 몇 곳이 안 된다. 산성5일장도 사람 냄새는 남아 있지만 장터 모습은 딴판이었다. 대형 할인점 등의 침입에 맞서 부랴부랴 현대화만 추진한 탓이다. 차가운 콘크리트 건물 옆으로 늘어선 좌판에 잇속만 노리는 노점상이 활개를 치는 장터에서 외국인들이 과연 얼마나 감동할지 의문이다. 옛 모습을 간직한 5일장은 분명 문화·관광상품으로서 가치가 크다. 한국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생활문화가 어디 5일장뿐이겠냐만 이처럼 다양한 재미와 볼거리까지 제공하는 게 그리 흔한가. 요즘 ‘강남스타일’ 등 K팝을 중심으로 한류 열풍이 거센데,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 관광객들까지 이걸 보려고 한국을 계속 찾을 것이라는 생각은 오판이다. 비틀스, 레드제플린, 핑크플로이드, 도어스 등 록 음악의 최고 미학을 일궈냈고 간단없이 실험 음악을 시도하며 세계 대중음악 시장을 쥐락펴락해 온 자부심 강한 팝의 본고장 사람들 아닌가. 일본 오이타 중앙도리시장 등 외국 전통시장은 현대화된 시설을 헐어내고 옛 모습을 복원해 관광객이 들끓는다고 한다. 한데 우리 5일장은 대선을 앞둔 정치인과 선거꾼들로 붐볐다. 확성기를 매단 차량이 장터를 휘저으며 고막을 찢고, 운동원은 살갑게 굴며 장터 사람들을 홀렸다. 자기 말만 쏟아내고 얼른 다른 사람한테 달려간다. 이들에게 ‘5일장을 되살려 한국의 본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 문화·관광상품으로 키우자.’는 얘기는 생뚱맞다. 하지만 방심하지 마라. “선거 때만, 저 잡것들이. 장터가 뭐, 표나 줍는 덴 줄 알아….”라는 소리 듣지 않으려면. sky@seoul.co.kr
  • 조선후기 남녀차별 상속문 공개

    조선후기 남녀차별 상속문 공개

    고려시대에 이어 조선 초·중기까지만 해도 양반 가문에서는 남녀 차별 없이 균등하게 재산을 분배했다. 제사도 남녀와 장차남을 가리지 않고 돌아가면서 지냈다. 하지만 사림이 전면에 나선 16세기를 지나 통치 철학으로 성리학이 굳건히 자리 잡게 되는 17세기 중엽이 되면 남녀 균등 상속 관습은 크게 흔들린다. ‘주자가례’(朱子家禮)를 신봉한 성리학은 예학으로 발달하면서 이른바 ‘상속제의 개혁’을 일으킨다. 재산 분배의 남녀 차별을 보여주는 분재기(分財記·재산상속문서)가 4일 공개됐다. 한국학중앙연구원(한중연) 장서각은 이날 한국학기초자료사업 워크숍에서 조선 후기 소론의 영수이자 대학자였던 명재(明齋) 윤증(尹拯·1629~1714)의 아버지 윤선거(尹宣擧·1610~1669) 남매의 분재기인 ‘윤선거 남매 화회문기’(尹宣擧 男妹 和會文記)를 공개했다. 가로 길이가 무려 6m가 넘는 이 분재기(가로 6m 15.6㎝, 세로 34㎝)는 1652년 윤선거 등 12남매가 재산을 분배한 내용을 담고 있다. 파평윤씨 윤증 가문은 호서 지방(충청도) 예학을 대표하는 명문가로 윤선거, 윤증 등 당대를 대표하는 뛰어난 학자를 배출했다. 이번에 공개된 분재기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자녀들이 돌아가면서 모시던 조상의 제사를 종손이 독점하고, 제사를 지내는 데 쓰기 위해 별도로 떼어두는 재산을 종손이 관리하도록 명시한 부분이다. 분재기에는 “가산(家産)의 20분의1을 봉사조(奉祀條·제사를 지내는 데 쓰기 위해 따로 떼어둔 재산 항목)로 제출(除出·따로 떼어놓는 것)한다. 제사와 봉사조 재산은 봉사 자손(종손)이 주관한다. 제사의 남녀 간, 장차자(장남과 차남) 간 윤회(輪回·돌아가면서 제사를 모시는 것)를 금지하고 종가에서 주관한다.”는 내용이 기재돼 있다. 안승준 한중연 장서각 책임연구원은 “여성이 제사에서 제외되면서 여성에게 나눠 주던 재산이 제사용 재산으로 설정됐다.”면서 “윤증 가문이 호서 지방의 예학 명문가였던 만큼 윤증 가문의 분재기는 다른 문중에서 참고하는 모델이 됐다.”고 말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저자와 차 한 잔] ‘이야기를 따라가는 한옥여행’ 펴낸 이상현 한옥연구가

    [저자와 차 한 잔] ‘이야기를 따라가는 한옥여행’ 펴낸 이상현 한옥연구가

    한류 열풍 속에 한옥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치유와 위로, 복고가 유행어로 떠오르면서 전국의 고택을 찾아 떠나는 가족들이 늘고 있다.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스럽던 차에 이야기와 함께 떠나는 한옥여행 안내서 ‘이야기를 따라가는 한옥여행’(시공사 펴냄)이 나왔다. 개량 한복 차림으로 지난 29일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만난 한옥 연구가 이상현(47)씨는 “한옥은 쉽게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자신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에게만 아름다움을 보여준다.”는 말로 운을 뗐다. 이어 “한옥은 용도에 따라 다양하게 모습을 바꿀 수 있어 어느 시대, 어느 환경에서나 뛰어난 적응력을 보인다.”며 한옥 예찬론을 폈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이 한옥을 과거에 가두는 것 아닌가 싶어 안타까울 때가 많다며, 이번 책이 한옥에 대한 일반의 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한옥 일상공간 비대칭… 단조롭지 않아 행정학을 전공한 이씨가 한옥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첫 직장에서 ‘용평리조트 30년사’ 집필에 참여하면서부터다. 소설가의 꿈을 좇아 5년 만에 회사에 사표를 냈다. 하지만 소설보다 한옥에 더 끌려 전국의 한옥을 찾아다니는 것도 모자라 아예 한옥 목수 일까지 익혔다. 그렇게 시작한 한옥 사랑이 10년을 넘었다. 중앙과 지방정부가 관리하는 전국의 한옥은 200채 정도 된다고 한다. 이씨는 이 중에서 개성이 강한 한옥 24채를 골랐다. 꽃담이 아름다운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여경구가옥, 안채로 들어가는 길이 미로 같은 경북 경주 양동마을의 향단, 한옥으로 지어진 성공회 강화성당, 근대사를 품고 있는 서울 종로구의 운현궁, 충청도에 있는 추사 고택 등. 개인 집 이외에 동헌과 서원, 향교, 제주도의 성읍민속마을도 숨어 있는 이야기와 함께 풀어놓는다. 저자는 “이 책은 24가지 눈으로 보는 한옥 이야기다.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한옥 이야기를 통해 단조롭다는 한옥에 대한 편견이 깨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씨는 “전통 한옥이라고 하면 보통 조선 후기에 지어진 것으로 마당과 구들이 있어야 하고, 나무와 흙으로 지어진 것이어야 한다.”고 요건을 설명했다. 이씨는 특히 한옥을 논할 때 마당을 빼놓을 수 없다고 했다. “마당은 한옥과 한국 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코드”라면서 “한옥의 마당처럼 실생활 공간을 나눠 외부로 내놓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강조했다. 한옥은 건축 디자인의 기본인 대칭에서 벗어나 비대칭을 추구한단다. 물론 궁궐이나 사찰의 대웅전같이 의식을 행하기 위한 건물은 대칭으로 짓지만 사람이 머무는 일상 공간이라면 과감하게 대칭을 벗어 버린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이런 비대칭의 묘미를 전면으로 내세운 것이 바로 전남 보성군 강골마을 이용욱 가옥이다. “곳간의 흰 벽에 나무기둥이 가로 세로로 붙어 있어 마치 몬드리안의 그림을 보는 것 같다. 장식을 위해 이렇게 한 것이 아니라 벽을 쌓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북 정읍에 있는 김동수가옥도 “생활미와 건축미를 체험해볼 수 있다.”며 가볼 것을 권했다. ●이용욱·김동수 가옥 등서 묘미 느껴 한옥을 100%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알려 달라고 했더니 “마당을 안고 한옥을 볼 것, 대청마루에 반드시 앉아볼 것, 마지막으로 누마루(다락처럼 높은 마루방)가 있으면 꼭 올라가 볼 것”을 권했다. “마당을 안고 집을 봐야 산세와 어우려진 한옥의 참맛을 느낄 수 있고, 마루에 앉아 주위를 보면 너그러워지고 자연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고 했다. 초등학교 때 강원도 춘천에서 서울로 올라와 한옥들이 몰려 있는 보문동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여행하다 산세가 마음에 들어 충남 홍성 오소산 밑에 터를 잡았다. 60년 전에 지어진 방 세 칸짜리 한옥을 빌려 살고 있다. 2007년 한옥 개론서인 ‘즐거운 한옥읽기 즐거운 한옥짓기’를 펴낸 뒤 이번에 세번째 한옥 관련 책이다. 기회가 된다면 한옥을 보급하는 데도 기여하고 싶단다. 소설가 ‘지망생’의 글답게 읽는 맛도 있다. 사진이 좋아 보는 재미도 솔솔하다. 한옥을 테마로 주변의 볼거리 등 1박2일 주말여행을 다녀올 수 있는 곳도 친절하게 알려준다. 김균미 문화에디터 kmkim@seoul.co.kr
  • 朴 세종시 vs 文 부산

    朴 세종시 vs 文 부산

    대선 공식 선거운동이 개시되는 오는 27일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각각 충청과 부산에서 첫 유세를 시작할 예정이다. 박 후보는 27일 오전 세종시를 찾기로 했다. 세종시는 박 후보가 정치적 신념으로 강조해 온 원칙과 신뢰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지역으로 꼽힌다. 2010년 세종시 수정안 논란으로 박 후보는 이명박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면서 원안을 고수했고 수정안 처리를 막기 위해 직접 본회의 반대토론에까지 나선 바 있다. 박 후보 스스로도 “정치생명을 걸고 지켜냈다.”며 세종시에 남다른 애착을 보여왔다. 이러한 이유로 당초 수도권과 세종시 등 첫 유세일정을 놓고 여러 안이 올라왔지만 세종시로 최종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26일 밤 진행되는 TV토론 ‘국민면접 박근혜’를 마친 뒤 시장 등 새벽 시간에 인파가 많이 몰리는 곳에서 새벽 유세를 시작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문 후보는 27일 부산에서 첫 유세를 시작한다. 부산은 문 후보의 연고지일 뿐 아니라 지난 4·11 총선에서 국회의원에 당선시켜준 정치적 고향이기도 하다. 새누리당의 전통적 텃밭이었지만 현 정부 들어 가덕도 신공항 무산 등으로 반감이 확산되는 만큼 민주당이 최대 승부처로 내다보고 있다. 문 후보는 앞서 26일 충북과 광주를 방문한다. 단일후보로서 첫 일정이다. 역대 대선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했던 충청과 민주당의 텃밭을 동시에 겨냥한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우상호 공보단장은 “대선에서는 외연확장이 중요한 만큼 충청도 표심이 중요하고, 부산은 다른 지역에 비해 인구층이 밀집돼 있어 최대한 높은 득표를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문 후보는 오후에는 광주 5·18 국립묘지를 참배하고 전통적 지지층 결집에도 공을 들일 예정이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무주 적상산 단풍절경

    무주 적상산 단풍절경

    적상(赤裳)이라 했지요. 붉은 치마란 뜻입니다. 사면이 층암절벽으로 둘러싸인 산에 가을이 깃들면 기암과 단풍이 멋들어지게 어우러지는데, 이 모습이 여인의 치마와 꼭 닮았다 해서 지어진 이름입니다. 전북 무주의 적상산 이야기입니다. 산 이름치고 참 낭만적입니다. 필경 단풍 곱게 든 적상산의 풍경을 묘사한 것일 테지만, 작명 당시 여성적인 매력이 물씬 풍기는 점까지 염두에 두었던 게 분명합니다. 부드러운 산세를 더없이 잘 표현했으니 말입니다. 강원도 설악에서 시작된 단풍의 불길이 아랫녘까지 번졌습니다. 단풍의 시효라야 수일에 불과할 터. 서둘러야 나무들이 벌이는 가을 축제에 동참할 수 있겠습니다. ●아랫녘까지 번진 단풍 불길 붉은 치마 두른 산이란다. 참 로맨틱한 이름이다. ‘치마만 둘렀다 하면 껄떡대는’ 마초들에겐 더없이 에로틱한 산이겠다. 누가, 왜 이처럼 대담한 은유로 이름을 지었을까. 적상산엔 최영 장군의 일화가 깃든 곳이 많다. 산 이름부터 그렇다. 주민들 사이에선 고려 말 왜구 토벌에 나선 최영이 무주를 지나가는 길에 지었다는 옛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전투를 눈앞에 둔 야전 사령관이 한가하게 산 이름이나 짓고 있었을까. 게다가 황금 보기를 돌같이 했던 무장이 단풍 물든 산에서 여인의 치맛자락을 연상했다는 설정은 아무래도 무리인 듯싶다. 산에 부분적으로 남아 있는 적상산성도 고려 충민왕 때 최영의 건의로 축조됐다고 한다. 적상산 등산로의 장도(長刀)바위에 담긴 전설은 다소 황당하다. 최영의 칼질 한번에 절벽이 두 조각 났단다. 아무래도 최영의 영험함을 믿는 무속 신앙에 기댄 이야기이지 싶다. 적상산은 덕유산 국립공원에 속해 있다. 하지만 능선과 능선이 맞닿아 있지는 않고, 적상산 홀로 서 있는 모양새다. 명성에서도 마찬가지. 같은 국립공원이긴 하나 칭찬은 늘 덕유의 몫이었다. 겨울엔 설경에, 봄엔 철쭉에 밀렸다. 여름엔 인근의 구천동 계곡에 명소 지위를 내줬다. 그런데 가을엔 달랐다. 적상의 주름 접힌 능선들이 붉은 빛을 띠기 시작할 때면 덕유도, 구천동도 선선히 상석을 내줬다. 적상에게 가을은 반전의 계절이었던 셈이다. 적상산을 즐기는 방법은 두 가지다. 발로 걷거나 차를 타고 오른다. 대부분의 산들이 걷기 중심인 것에 견줘 적상산은 차를 타고 오르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정상 근처의 안국사까지 도로가 잘 뚫려 있기 때문이다. 단풍나무들이 도로변에 즐비하게 늘어선 것도 드라이브를 부추기는 요인 중 하나다. 다만 겨울철 눈이 내리면 도로가 통제되는 경우가 잦다. 미리 확인하고 출발하는 게 좋다. ●드라이브를 부르는 시오 리 단풍 치마길 단풍길은 구불구불하다. 꼭 주름 잡힌 치맛단을 보는 듯하다. 재봉선(線)처럼 가지런하다가도, 이내 마름질 선처럼 급경사를 이룬다. 정상에 이르는 6㎞ 구간 내내 그런 굽이가 31개쯤 이어진다. 이를 일러 ‘북창 드라이브 코스’라고 한다. 길의 들머리인 지명(북창)과 길의 기능을 섞은 단순명료한 이름이긴 하나, 길이 여행자에게 선사하는 아름다운 풍경에 견주자면 무미건조하다는 느낌도 없지 않다. 산길 좌우로는 단풍들이 빼곡하다. 붉은색 단풍이 많고, 샛노란 빛의 단풍나무와 신갈나무 등의 주황색 단풍들도 어우러져 있다. 딱 천자만홍(千紫萬紅)이다. 차로 적상산을 올라야 하는 이유가 이 시오 리 산길에 고스란히 펼쳐져 있는 셈이다. 적상산은 예부터 전라도와 충청도, 경상도를 잇는 군사 요충지였다. 신라와 백제가 이 산을 차지하기 위해 수차례 전투를 치렀고, 왜구가 달려들었으며, 빨치산들이 은신처로 삼았다. 수차례 전쟁을 겪는 와중에 산골짜기마다 붉디붉은 피도 흘렀을 터. 적상산 단풍이 유난히 붉게 느껴지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게다. 이리 휘고 저리 굽은 산길을 오르다 보면 산 중턱(850m)에서 뜻밖에 아담한 호수를 만난다. 적상호다. 1995년 양수발전을 위해 조성됐다. 호수 둘레엔 다양한 색상의 단풍나무들이 식재돼 볼거리를 더하고 있다. 호수 옆엔 원형의 수조가 서 있다. 발전을 위해 물을 가둬 두는 곳이다. 외형은 공장 건물처럼 불퉁스럽지만 적상산의 가장 빼어난 전망대 가운데 하나다. 철제 계단을 오르면 ‘북창 드라이브 코스’와 무주읍내, 그리고 무주 인근의 산들이 한눈에 들어 온다. ●차로 쉽게 올라 마주하기엔 미안한 풍경들 호수 갈림길에서 안국사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적상산 사고지 유구와 만난다. 조선왕조실록 등 나라의 귀중한 책들을 보관하던 장소다. 예서 다시 구불구불 산길을 5분 정도 오르면 안국사다. 절집 아래쪽 등산로는 적상산성터로 연결된다. 안국사와 철제 구조물로 차단돼 그냥 지나치기 쉬운데, 꼭 둘러보길 권한다. 복원된 산성에서 맞는 풍경이 참 빼어나다. 내친김에 안렴대(安廉臺)까지는 발품 팔아 다녀오는 게 좋겠다. 고려 말 거란 침입 때 안렴사(지방 장관)가 진을 치고 피란했다는 바위 절벽으로, 적상산 최고의 전망대로 꼽히는 곳이다. 적상산 최고봉인 기봉(1034m)이 출입불가 지역인 탓에 실질적인 최고봉 노릇도 겸하고 있다. 안국사에서는 500m 떨어져 있다. 일부 등산객은 안국사에서 안렴대, 향로봉(1024m)으로 이어지는 등산 코스만 다녀오기도 한다. 왕복 3㎞가 조금 넘는 거리로, 설렁설렁 걸어도 두 시간 남짓이면 충분하다. 안렴대에 오르면 덕유산 등 인근의 산군(山群)들은 물론 멀리 지리산까지 한눈에 담긴다. 글 사진 무주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63) 가는 길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경부고속도로 비룡분기점에서 대전남부순환고속도로, 다시 산내분기점에서 통영대전 중부고속도로로 갈아탄 뒤 무주 나들목으로 나온다. 19번 국도를 타고 무주 방향으로 가다 무주 1교차로에서 우회전해 곧장 가면 된다. 맛집 무주의 으뜸 먹거리는 금강에서 잡은 물고기로 끓여낸 어죽이다. 읍내의 금강식당(322-0979)과 내도리 뒷섬마을의 큰손식당(322-3605) 등이 이름났다. 어부의집(322-0503)은 민물고기를 삶은 육수에 국수를 끓여 낸 어탕국수가 맛있다. 잘 곳 가족 등 여럿이 함께라면 무주리조트가 좋다. 무주리조트에서 곤돌라를 타고 덕유산 설천봉에 오르면 불타는 듯한 단풍을 즐길 수 있다. 무주읍 당산리의 무주이리스호텔(324-3400), 설천면 삼공리의 제일산장(322-3100) 등도 깔끔하다.
  • [단독] 로또 1등 26억원 당첨자 직접 만나보니…

    [단독] 로또 1등 26억원 당첨자 직접 만나보니…

    경제가 긴 불황의 늪에 허덕이면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우리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는 서민들이다. 이들의 돌파구 아닌 돌파구는 바로 일확천금을 위해 로또같은 기적의 꿈을 찾아 몰리는 것. 이같은 ‘불편한 현실’속에서도 매주 ‘814만 분 1’로 통하는 그들은 매주 탄생한다. 지난주 517회차 1등에 당첨된 행운의 남자를 당첨금 수령 직후 어렵게 만났다. 그는 자신을 충청도에 사는 40대 가장이라고 소개했다. 지난주 로또 1등 당첨금은 총 132억원으로 5명의 당첨자가 약 18억원(세금 제외 실수령액) 씩을 나눠가졌다. - 사람들이 가장 부러워 하는 행운을 얻었다. 당첨되는 순간 기분은 어땠나? 말로 표현하지 못할 만큼 기뻤다. 상기된 얼굴로 옆방에 있던 아내에게 이 사실을 알리자 막 소리를 질러 손으로 입을 틀어 막았다.(웃음) 베란다에 나와 둥근 달을 보며 담배 한대를 피워 물고 나에게도 이런 행운이 오는구나 싶어 혼자 웃었다. - 당첨금은 언제 어떻게 수령했나? 지난주 토요일 저녁 당첨된 사실을 안 이후 잠이 안오더라. 주말 밤새 뒤척이다 월요일 아침 당첨금 수령을 위해 서울행 기차에 올랐다. 마음이 급해서인지 서울역에 내려 차도 안타고 바로 서대문에 있는 농협 본사로 걸어서 찾아갔다. 마침 도착시간이 점심시간으로 담당 직원들이 없어 안내데스크에서 밥도 못먹고 초초하게 ‘길고 긴’ 1시간을 기다리다 겨우 당첨금을 수령했다.        - 당첨금을 수령한 순간 기분이 어떻던가? 사실 당첨금을 받으러 오기 전 걱정이 많았다. 항간의 소문으로 농협본사 앞에 깡패들이 진을 치고 기다린다는 이야기도 있었고...(웃음) 은행에서 받은 거래내역확인서에 당첨금이 정확히 ‘2,659,057,725원’이 찍혀 있었다. 세금을 제외하고 내 통장에 18억원이 꽂히자 그제야 실감이 났고 마음이 홀가분 해 졌다. - 소위 ‘인생역전’이 됐는데 과거 생활은 어땠나?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다가 교통사고를 크게 당한 후 제대로 밥벌이를 하지 못해 어렵게 살아왔다. 현재는 계약직(일용직) 직원으로 이제 가슴 펴고 살수 있게 됐다. - 당첨되기 전 좋은 꿈이라도 꿨나? 한 1주일 전부터 과거 교통사고를 당하는 순간의 악몽을 자주꿨다. 꿈은 반대라고 하더니 정말 그런 것 같다. - 당첨된 사실을 주위 사람들도 아는가? 다른 사람들이 알면 큰일나게?(웃음) 아내 이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 평소 로또는 얼마씩 어떻게 구매했나? 실제 로또를 꾸준히 산 것은 1년 밖에 안됐다. 1주일에 2만원씩 모두 수동으로 구매했으며 나름대로 인터넷을 통해 로또 번호도 연구했다.(웃음) 1년간 4등에 1번, 5등에 3-4번 정도 당첨됐으며 이번 1등 로또는 추첨 당일 오후 평소 잘 안찾던 편의점에서 구매한 것이 덜컥 당첨됐다. - 당첨금 18억원 어떻게 사용할 계획인가? 앞으로의 계획은? 일단 빚부터 갚고 평생 편안하게 보낼 집 한채 살 예정이다. 아직 당첨된지 이틀 밖에 지나지 않아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용할지는 생각해 보지 못했다.아무일 없었다는 듯 평소처럼 생활할 것이다. 이 기회를 통해 꼭 밝히고 싶은 것은 오랜시간 병상에 누워있는 동안에도 묵묵히 곁을 지켜준 아내를 위해 남은 인생을 살 것이다. 글=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사진=손진호 기자 nasturu@seoul.co.kr 
  • 세종시 입주 40여일… 총리실 찾아가 보니

    껑충껑충 뛰고 있는 전·월세값, 한 번 놓치면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대중교통, 기약 없는 인프라 공사. 세종시 시대 개막 40여일을 맞은 25일 세종시의 현주소다. 1만여명인 이주 대상 공무원들의 불안과 걱정은 낙엽처럼 쌓여만 간다. 지난 9월 14일 120여명의 총리실 선발대 이전을 비롯해 올해 말까지 6개 정부 부처 4100여명의 이전이 예정돼 있지만 세종시는 여전히 거대한 토목 공사장이다. 건축자재를 실은 대형 트럭과 굴삭기, 레미콘 등 공사 차량이 분주하게 오가고 있었다. 청사 곳곳에 서 있는 97기의 타워크레인과 하루 1만여명의 인부들이 바쁜 하루를 재촉하고 있었다. 청사 사무실에선 공사장 굉음과 먼지로 사무실 문을 열어 놓기도 어렵다. ●“공사 현장에서 근무 하는 셈” 기획재정부, 국토해양부 등 올해 말까지 6개 부처가 입주하는 1단계 공사의 공정률은 95%. 교육과학기술부 등 내년에 입주할 6개 기관의 2단계 공사 현장에선 골조 공사가 한창이다. 2014년 4개 기관이 입주하는 3단계 공사 현장은 기초공사를 막 시작했다. 점검을 위해 이날 세종시에 내려온 임종룡 총리실장은 “이주 공무원들은 건설 현장에서 근무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5년은 지나야 주요 시설 건설이 완료돼 사무·주거 여건이 안정된다. 도시 건설은 2030년까지 진행된다. 당장 이주할 공무원들을 괴롭히는 가장 큰 문제는 자고 나면 뛰는 전·월세값이다. 오송과 조치원 등 세종시에서 20~30분 거리의 지역에서 한 사람 들어가 살기 빠듯한 원룸을 얻으려면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45만~50만원을 줘야 한다. ●아파트 전세금 한달새 20~30%↑ 세종시 지원단 관계자는 “몇 달 전만 해도 원룸의 월세가 30만원대였는데 가수요와 투기가 낀 것 같다.”며 분개했다. 아파트 전세금도 한 달여 전에 비해 20~30%가 뛰었다. 집값도 함께 올라 세종시 첫마을 59㎡ 아파트 가격은 지난해 12월 8000만∼9000만원대에서 지금은 1억 2000만∼1억 3000만원이다. 1억 6000만원 하던 대전 노은 지구 59㎡ 아파트는 1억 9000만∼2억원으로 올라섰다. 세종시가 명품 교육문화도시가 될 거라는 기대에 대전과 충청도 일대에서 이곳으로 들어오려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이능호 행정복합도시건설청 지원팀장은 “오송·조치원 등 주변 부동산 상황을 조사해 보니 투기적 요소가 많다.”면서 “이주 공무원들에게 급하게 주거 지역을 계약하지 말 것을 조언하고 있다.”고 말했다. 행복청은 내년쯤 전·월세 가격이 안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청사 주변의 상가 건물들은 내년 8월 말 완공돼 연말쯤 입주가 이뤄진다. 내년 말까지가 첫해 이전한 공무원들이 견뎌야 할 가장 어려운 ‘겨울’인 셈이다. 김정민 지원단장은 “이주 대상 공무원의 70%가 청약 등으로 거주지를 확보해 중장기적으로 주거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대중교통 체계 미비와 수도권 연계 교통의 불편 등은 중앙정부는 물론 지자체도 해결 의지를 갖고 노력해 나가야 할 현안이라고 지적했다. ●“스마트워크 활성화 등 대책 구상” 임 실장은 “이주 공무원들의 불안과 불편을 줄이기 위해 한시적으로 이주 지원비 지급과 셔틀버스 운행 등의 방법을 시행하고 있다.”면서 “이전에 따른 행정효율성 저하를 막고, 행정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스마트워크 활성화 등 각종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말했다. 세종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대선후보 3인 ‘유머 스타일’

    대선후보 3인 ‘유머 스타일’

    정치에서 유머는 단순한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백 마디의 심각한 연설보다 한마디의 번뜩이는 재담이 유권자들을 매료시키고 감성을 움직인다. 때로는 자신에게 불리한 논쟁을 잠재우는 강력한 무기가 되기도 한다.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자신의 약점인 고령의 나이가 논쟁거리가 되자 70회 생일파티에서 “오늘은 내 39회 생일의 31번째 기념일”이란 재치 있는 위트로 나이 문제를 거론하는 반대파를 머쓱하게 했다. 정치인의 이미지 개선에도 유머는 필수적이다. 린든 존슨 미국 대통령은 고집세고 투박한 기질을 감추기 위해 유머로 친숙한 이미지를 연출했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흑인이란 이유로 자신을 외면한 백인 유권자들을 유머 넘치는 연설로 사로잡았다. 긴장감이 감도는 살벌한 정치판에 인간미를 불어넣고, 무형의 정치를 생물로 만들어 그 안의 정치인을 돋보이게 하는 게 바로 유머의 힘이다. 진중한 뉴스보다 정치풍자코미디가 흥미를 끄는 것처럼, 정색하고 화만 내는 정치보다는 웃음을 주는 정치가 대중의 사랑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한국에서도 이미지 정치와 감성 정치의 비중이 커지면서 대선 후보들이 유머를 사용하는 빈도가 늘고 있다. 김대중·노무현·이명박 대통령이 ‘눈물의 정치’를 활용했다면 이번 대선부터는 ‘웃음의 정치’가 뜨고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유머는 ‘감성의 유머’다. 지난 8월 ‘반값등록금 실현 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에서 대학생들에게 “심장의 무게가 얼마인지 아나. 정답은 ‘두근두근’ 네 근이다. 여러분을 만나러 오면서 제 마음이 바로 그랬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만나러 왔는데 어떻게 두근두근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라고 말해 갈채를 받았다. ‘박근혜식 썰렁개그’로 의도된 허점을 보여 친근감을 유도하기도 한다. “충청도 말로 ‘개고기 먹을 줄 아세요.’는 ‘개 혀’인가요.”, 가천대 특강에서 사회자가 물병째 물을 마실 것을 권하자 “이건 나발을 부는 거예요.”라고 농담하는 식이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늘 진지한 표정으로 유머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가끔씩 촌철 유머를 던진다. 지난 5일 시민캠프 회의에서는 ‘호남의 아들이냐, 경남의 아들이냐.’는 질문에 “호남의 정치적 아들, 경남의 생물학적 아들”이라고 뼈 있는 위트를 구사했고 15일 전국상공인과의 대화에선 “오랫동안 등산을 못했다. 내년부터 북악산(청와대 뒷산)으로 등산을 다닐 수 있게 도와 달라.”며 재치 있게 지지를 호소했다. 또 “안철수 후보가 ‘정당후보론’에 대해 ‘어처구니없다’고 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여기서 저와 같이 있으면서 취재하셨는데 (안 후보가 청주교대 강연에서 한 말을) 어떻게 들으셨나요.”라며 농담으로 받아치기도 했다. 안 후보는 유머도 장고 끝에 내놓는 스타일이다. 지난 7월 SBS예능프로그램 ‘힐링캠프’에서 구사한 “복수혈전이 의학영화인 줄 알았다.”, “학창시절 성적표에 ‘수’가 별로 없었는데 ‘수’가 하나 있기에 보니 내 이름 철수의 ‘수’더라.”라는 유머는 안 후보가 고심해 준비해 온 유머였다. IT업계 출신이다 보니 관련 분야의 유머도 잘 구사하는데, 지난 9월 21일 청년창업사관학교 청년 CEO간담회에선 사회자가 무선마이크의 아래를 잡으면 작동이 잘 안 된다고 말해주자 “아이폰과 똑같네요.”라고 농을 던지기도 했다. 아이폰4 제품 아랫부분을 잡으면 수신율이 떨어져 애플사를 곤혹스럽게 했던 이른바 ‘안테나 게이트’에 착안한 유머였다. 이현정기자 hjlee@seoul.co.kr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송수연기자 songsy@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30) 이재순 vs 이범진

    [선택! 역사를 갈랐다] (30) 이재순 vs 이범진

    현재 한국학계에서는 대한제국에서 추진한 광무개혁에 대한 평가가 학자에 따라 엇갈린다. 개혁의 실효성을 부정하는 쪽에서는 대한제국이 부정부패로 얼룩져 근대화 사업을 주도면밀하게 추진하지 못한 점을 지적한다. 반대로 광무개혁을 높게 평가하는 쪽에서는 외세에 의존하지 않고 자력으로 근대화하려 한 노력 자체가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대한제국의 다양한 평가에 앞서 한국학계에서 반드시 주목해야 할 대상이 있다. 바로 대한제국의 개혁을 추진한 정치세력이다. 개혁을 주도한 정치세력에 대한 천착이 없다면 대한제국의 다양한 해석도 그 의미를 상실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한제국 시기 고종은 군주 중심의 ‘전제정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궁내부에 자신의 정치세력을 결집시켰다. 아관파천 이후 이재순(李載純,1851~1904)과 이범진(李範晋, 1852~1911)으로 구성된 궁내부는 고종 권력의 핵심세력이었다. ●이범진, 제정러시아 대한제국 개입 유도 1896년 2월 9일 러시아 순양함 아드미랄 코르닐로프의 내부는 긴박했다. 당시 아드미랄 코르닐로프는 제물포에 포함 보브르와 함께 정박했다. 함장 몰라스는 해군대위 흐멜레프에게 러시아 수병을 이끌고 신속히 서울로 출발할 것을 지시했다. 2월 10일 새벽 중위 미하일로프는 서대문에 도착해서 대위 흐멜레프를 비롯한 해병부대를 맞이하여 러시아공사관으로 안내했다. 장교를 포함한 러시아 해병의 전체 인원은 135명이었다. 포함 보브르에서 대포 1문도 러시아공사관으로 이송되었다. 1896년 2월 11일 새벽 고종과 왕세자는 가마를 타고 경복궁 영추문(迎秋門)→금천교(禁川橋)→내수사전로(內需司前路)→새문고개→러시아공사관으로 신속히 피신했다. 우리나라 근대사에 왕이 안방을 내주고 셋방살이를 자처했다는 아관파천이었다. 2월 11일 저녁 러시아공사관과 영사관 사이의 광장에는 청색의 천막이 설치되었다. 1개 중대의 러시아 병력이 러시아공사관의 안팎에서 경계를 시작했다. 고종은 러시아공사관 내부 2개의 방을 침실과 접견실로 사용했다. 공사관 정문 앞에 있는 정원에는 대포가 설치되었고, 공사관 내부의 개조된 3개의 방에 33명의 해병이 거주했다. 영사관 내부의 개조된 2개의 방에는 62명의 해병이 거주했다. 그동안 청·일전쟁과 을미사변에도 불구하고 제정러시아는 조선에 대한 ‘현상유지’ 외교 정책을 고수하였다. 오랫동안 지속되던 러시아의 ‘현상유지’ 외교 정책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북극곰 제정러시아를 움직인 인물은 이범진이었다. 이범진은 2월 2일 러시아공사관으로 “생명의 위협을 피하여 왕세자와 같이 대궐을 떠나 러시아공사관에서 피신하려고 한다.”는 고종의 비밀 편지를 전달했다. 당시 주한 러시아공사 스페예르는 이범진에게 고종 피신의 위험성을 알렸다. 하지만 이범진은 “만약 스페예르가 고종의 피신을 승인하지 않는다면, 고종이 대궐에서 더욱 어려움에 처하게 될 것이다.”며 “고종이 아관파천을 결심했다.”고 답변했다. 아관파천 직전 고종은 자신의 신변안전 때문에 파천의 실행을 주저했다. 그러자 이범진은 러시아 공사의 지원을 확인하는 한편 ‘궁중(宮中)의 여화(餘禍)가 있을지 모른다.’는 일본의 ‘고종폐위설’까지 유포하여 고종의 결단을 유도했다. 1898년 9월 11일 경운궁이 발칵 뒤집혔다. 이날 저녁 식사 전에 고종과 순종은 커피를 마셨다. 그런데 커피의 절반을 마신 순종은 토하면서 혼절하였고, 고종은 구토했다. 남겨진 커피를 마신 내관들도 혼절하였다. ●이재순, 고종 커피에 아편 넣어 정적 제거 사건의 파장이 심각했기 때문에 신속한 수사가 진행되었다. 그날 고종의 수라상에 관련된 인물은 14명이었다. 심문과정에서 김종화(種和)라는 인물이 개입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김종화의 심문과정에서 전선사(典膳司) 주사(主事)를 지낸 공창덕(孔昌德)의 개입 사실이 드러났다. 공창덕에 따르면 그는 김종화에게 1000원의 사례금을 보장하면서 김종화가 고종과 순종의 커피에 ‘아편 1량’을 몰래 집어넣었다. 무엇보다도 공창덕의 심문과정에서 배후인물이 김홍륙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공창덕에 따르면 김홍륙은 공창덕에게 협판을 보장하면서 고종의 독살을 지시하였고, 김홍륙은 자신의 처인 김소사를 통해서 공창덕에게 ‘아편 1량’을 제공하였다. 사건에 참가한 인물 중 김종화는 이재순의 추천에 의해 각감청(閣監廳)에서 일하게 되었다. 보현당(寶賢堂)의 창고지기인 김종화는 홍릉 제사 때에 비용을 사적으로 유용해서 면직되었다. 그런데 면직된 김종화는 사건 당일 대궐에 몰래 잠입하여 고종의 독살을 실행했다. 공창덕은 고종의 아관파천 시절 러시아공사 베베르가 고용한 요리사였다. 아관파천 이후 공창덕은 김홍륙의 추천에 의해서 전선사 주사로 임명되어 왕의 주방에서 외국요리를 관장하였다. 그런데 이 사건의 의문을 살펴보면 첫째, 커피를 마신 사람 중 죽은 사람은 없다는 점이다. 독살의 의도가 있었다면 커피를 마신 사람이 치명적인 타격을 받아야 한다. 죽은 사람이 없다는 것은 암살의 계획보다는 정치적 음모라는 의혹이 제기된다. 둘째, 김종화라는 인물이 이 사건에 개입한 동기가 매우 부족하다. 또한 고종을 암살하려는 인물이 쉽게 체포된 점도 이해하기 어렵다. 더구나 면직된 인물이 대궐에 잠입할 수 있는가? 1898년 4월 부임한 러시아공사 마튜닌은 독차사건이 러시아통역관 출신 김홍륙을 파멸시키려는 음모로 파악했다. 당시 러시아의 후원 아래 김홍륙은 궁궐에 자유자재로 출입하면서 정치와 인사 문제까지 깊숙이 개입하였다. 마튜닌은 러시아정부에 보낸 보고서에서 고종 독차사건의 배후로 궁내부대신 이재순을 지목하였다. 이재순은 김홍륙이 러시아공사의 후원 아래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자, 이것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약화시키는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이재순은 자신이 김종화를 추천해 사건에 간접적으로 관련되었지만 사건의 처리과정에 개입했다. 이재순은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서 고종의 승인을 얻었고 경무청에 조사할 것을 직접 지시했다. 이후 1898년 10월 김홍륙·공홍식·김종화는 반역 음모를 기도했다는 혐의로 교수형에 처해졌다. 아관파천 이후 고종은 군주권을 강화하기 위해서 궁내부에 소속한 이재순과 이범진 계열을 적극 후원했다. 이범진은 갑신정변 당시 명성황후를 구해준 인연으로 황후의 총애를 받아 민비가문과 긴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아관파천 이후 법부대신에 임명된 이범진은 을미사변 관련자를 처벌하면서 정국을 주도했다. 이재순을 비롯한 권력집단은 이범진의 지나친 권력 집중에 반발하였다. 결국 이범진은 1896년 6월 주미공사, 1899년 3월 주러공사에 임명되었다. 대한제국은 1900년까지 도쿄, 워싱턴에만 자국 공사를 주재시켰다. 당시는 의화단 사건 이후 대한제국과 만주를 둘러싸고 러시아와 일본이 첨예하게 대립한 시기였다. 주러공사 이범진은 고종의 여전한 신임 아래 대한제국 외교 정책 수행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종친정시문과에 합격한 청안군(淸安君) 이재순은 종친 내부에 폭넓은 지지 기반을 갖고 있었다. 을미사변 이후 시종원경 이재순은 시위대 장교와 병사를 결집하여 고종 구출을 위한 춘생문사건을 주도했다. 그는 김홍륙의 암살시도 및 고종 독차사건의 배후였다. 궁내부대신을 여러 차례 역임한 이재순은 고종의 군주권 강화를 위해서 각종 정치적 사건에 깊숙이 개입하면서 대한제국 정치 분야의 업무를 수행하는 핵심인물이었다. 이재순의 인맥은 충청도 출신자, 반면에 이범진의 인맥은 함경도 출신자가 주축이었다. 궁내부를 중심으로 정치세력을 형성한 이범진과 이재순 계열은 군주권의 강화를 당연하게 생각하였고, 각각 러시아·프랑스와의 협력을 통해 일본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려고 노력했다. 이들은 지지기반이 달랐지만 독립협회, 만민공동회 등 중요한 정치적 사건에서는 상호 연대할 수 있었다. ●고종, 충성심 자극 위해 경쟁 유발… 갈등만 낳아 대한제국 시기 고종은 군주 중심의 ‘전제정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궁내부에 자신의 정치세력을 결집시켰다. 그런데 고종은 이들을 단일한 세력으로 통합시키지 않으면서 상호간 경쟁을 유발하여 자신에 대한 충성심을 자극했다. 이러한 상호 경쟁은 대한제국의 신속한 개혁이 필요한 시점에 권력 독점을 향한 지나친 대립만 초래했다. 처녀지를 개간하려면 겉으로 미끄러지는 쟁기를 쓸 것이 아니라, 땅속을 깊이 파고드는 플라우(쟁기)를 써야 한다. 김영수(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 강남·사당역 일대 또 ‘물바다’

    강남·사당역 일대 또 ‘물바다’

    15일 서울·경기권과 강원 철원에 한때 시간당 50㎜ 안팎의 비가 내려 호우경보가 발령되는 등 전국 곳곳에 폭우가 쏟아졌다. 서울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강남·사당역 일대 도로와 주택가가 물바다로 변해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이러한 국지성 집중호우는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이번 주말까지 계속될 전망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전날부터 이날 오후 6시까지 강화 251㎜, 문산 234㎜, 철원 194㎜ 등 중·북부 지방에 200㎜ 안팎의 비가 내렸다. 서울 152㎜, 인천 137㎜, 양평 122㎜ 등 수도권 대부분 지방에서 100㎜가 넘는 강수량을 보였다. 경기 연천군 백학면의 자동기상관측장비(AWS)에 366㎜의 강수량이 기록되는 등 경기 북부 지방에 특히 많은 비가 쏟아졌다. ●강남, 해발고도 낮아 상습 침수 서울을 비롯한 중·북부 지방에 내려졌던 호우특보는 이날 오후 대부분 해제됐으나 충청도를 중심으로 호우특보가 확대됐다. 하지만 이번 호우로 강남역 등 서울의 상습 침수구역에서는 2010년과 2011년에 이어 또다시 물바다가 재연됐다. 강남역 일대가 쉽게 물에 잠기는 이유는 이 지역의 해발고도가 인근 지역보다 현저히 낮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강남역 일대는 가까운 논현동이나 역삼동보다 17m 이상 낮고 반포동 고속터미널 일대도 인근 지역보다 16m 이상 낮다. 그 결과 집중호우 때마다 인근 고지대의 빗물이 강남역으로 밀려와 침수된다는 것이다. 또 반포천의 빗물 수용량은 초당 210t인데 시간당 100㎜의 비가 오면 초당 257t의 빗물이 유입돼 역류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강남 일대의 녹지 비율이 적은 것도 침수 원인으로 꼽힌다. 소방 당국에 따르면 이날 오후 10시 현재 서울에서는 모두 133건의 침수 피해 신고가 들어왔다. 낮 12시 30분쯤에는 서울지하철 1호선 금천구청역 수원 방향 선로가 폭우로 침수되면서 열차 운행이 지연돼 시민들이 불편을 겪었다. 서울 종로구 등 9개 구에 산사태 경보가 내려지는 등 20개 구에 산사태 예측경보도 발령됐다. ●중부 이번 주말까지 집중호우 중부지방 곳곳에서도 주택과 도로 침수 등 폭우 피해가 잇따랐다. 인천에서만 도로 5건, 주택 27건, 공장·상가 10건, 농경지 6건 등 모두 71건의 침수 피해가 발생했다. 경원선 소요산~초성리 등 연천 지역 선로 3곳이 침수됐다. 인명 피해도 발생했다. 이날 낮 12시 20분쯤 충북 옥천군 청성면 장수리 보청천에서 물놀이를 하던 김모(17·고1)군이 물에 빠져 숨졌다. 대전에서는 급류에 휩쓸려 실종됐던 20대 남성이 이틀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기상청은 다음 달 초순까지 이런 국지성 집중호우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3주간 폭염과 열대야를 불러온 북태평양 고기압이 수축기에 접어들면서 그 가장자리를 따라 상층 기압골이 주기적으로 한반도를 통과하기 때문이다. 기상청 관계자는 “덥고 습한 북태평양 고기압의 세력이 유지되는 9월 초까지 이런 현상이 반복되면서 국지성 집중호우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16일에도 점차 남하하는 기압골의 영향을 받아 전국이 흐리고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돌풍과 함께 천둥, 번개를 동반한 시간당 30㎜ 이상의 강한 비가 내리는 곳이 많겠다. 기상청은 주말인 18~19일에도 다시 북쪽으로 상층 기압골이 지나면서 중부지방에 많은 양의 비가 내릴 것으로 내다봤다. 신진호기자 sayho@seoul.co.kr
  • “친일 할아버지 ‘무사유의 죄’… 15일 또 그 죄 짓고 있지 않나”

    “친일 할아버지 ‘무사유의 죄’… 15일 또 그 죄 짓고 있지 않나”

    밝은 미래 찾기는 어두운 과거를 직시하고 이를 극복하는 데서 가능하다. 일제시대 지방 군수를 지낸 친일파의 손자가 광복 67주년을 맞아 서울신문 독자와 국민들에게 조부의 친일 행위에 대해 반성하는 글을 보내 왔다. 친일인명사전 발간에 반발하는 후손들이 적지 않은 가운데 이 같은 고백은 진정한 광복 정신의 표현과 다름없어 보인다. 다음은 1년 전 친일인명사전에서 할아버지 이름을 발견한 윤석윤(55)씨가 14일 보내온 편지다. 윤씨는 현재 경기도 군포시에 거주하며 독서토론 강사 및 기업체 근로자 교육강사 등으로 일하고 있다. 8월 15일이 왔습니다. 광복절입니다. 올해는 저도 이날에 대한 감회가 새롭습니다. 1년 전, 행적을 몰랐던 할아버지를 찾았기 때문입니다. 할아버지는 대한제국에서 개혁과 개방정책을 담당할 인재를 키우고자 1895년 제1회 관비 유학생으로 선발된 양반 자제 200명 중 한 명이었습니다. 일본 도쿄의 게이오의숙에서 3년 동안 공부하고 귀국하여 1900년에 농상공부에서 관리로 공직을 시작했고, 1910년 한일병합 이후 충청도와 전라도에서 군수로 일하다 1926년 50세에 퇴직하였고, 1953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할아버지를 찾게 된 것은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친일인명사전 덕분입니다. 일제강점기 군수를 했다고 하기에 ‘혹시’ 하고 찾아봤는데 그곳에 있었습니다. 할아버지의 삶을 알게 된 기쁨과 내가 미워했던 친일파 중 한 명이었다는 사실이 교차해서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시대를 앞서 간 선각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일제의 앞잡이였다니. 할아버지는 일제가 대한제국을 병합할 때 왜 관리를 그만두지 못했을까 궁금했습니다. 저는 그 답을 유대인 여성 철학자 해나 아렌트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찾았습니다. 그녀는 유대인에 대한 ‘인종청소’를 담당했던 아이히만의 죄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을 ‘철저한 무사유(無思惟)’에서 찾고 있습니다. 아이히만은 조직이 요구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근면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대다수의 친일파들도 역시 조직에 순응한 평범한 사람들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민족과 역사 앞에 ‘무사유의 죄’를 지었습니다. 할아버지의 죄도 바로 그것입니다. 할아버지는 평범한 관리였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하지만 나라를 빼앗은 일본의 식민지 관리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이 ‘무사유의 죄’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습니다. 저는 해방 후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 우리 역사에서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방해하고 무력화시켰습니다. 오히려 많은 친일 인사들을 관료로 등용하였습니다. 친일파와 그의 후손들은 잘 먹고 잘 살며, 좋은 교육을 받고, 좋은 자리에서 생활하는데, 나라의 독립을 위해 일했던 분들의 후손들은 못 배우고 어렵게 살고 있습니다. 이런 가슴 아픈 사실 앞에 누가 나라를 믿고 목숨을 바칠 수 있겠습니까. 우리에게 역사 청산의 문제는 나라 안팎으로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며칠 전,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한 것이 한·일 간의 외교적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일본은 여전히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독도 문제는 단순히 영토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의 문제입니다. 안에서는 일부 친일파 후손들이 조상의 땅을 찾기 위해 국가와 소송을 벌이고, 조상의 잘못을 덮고 공적비나 동상을 세우는 일에 앞장서는 등 후안무치한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것들에 대해 제대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역사 앞에 죄를 짓게 되는 것이 아닐는지요. 조선의 대학자인 정약용 선생은 큰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사리 판단 기준을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세상을 판단하는 두 가지 기준이 있는데, 하나는 ‘옳고 그름’, 즉 시비(是非)를 따지는 기준이고, 또 하나는 이로움과 해로움, 즉 이해(利害)를 따지는 기준이라 말합니다. 여기에서 시비가 이해보다 우선이라고 말합니다. 특히 역사에 대해서는 더욱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후손들에게 잘못된 역사관을 심어 주는 죄를 짓게 됩니다. 역사가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섭니다. 8·15를 맞이하여 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독립유공자들과 순국선열,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에게 친일파의 손자가 다시 한 번 가슴 깊이 사죄의 말씀을 올립니다. 내내 평안하십시오. 경기 군포시 거주 윤석윤 씀
  • [선택! 역사를 갈랐다] (21)조선 천주교 개척 이벽&황사영

    [선택! 역사를 갈랐다] (21)조선 천주교 개척 이벽&황사영

    1779년(정조 3) 겨울. 남인의 젊은 학자들이 천진암에서 강학한다는 소식을 들은 이벽(李蘗)은 눈발이 날리고 호랑이가 출몰하는 100여리의 밤길을 내달려 강학회에 참여했다. 이벽의 등장으로 유학을 강마하던 모임은 대번에 서학과 천주교에 대한 토론장이 되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1784년. 이벽의 권유를 받은 이승훈이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귀국하자 조선에서 본격적으로 천주교(가톨릭)가 싹텄다. 천주교는 지식인을 비롯한 중인, 평민과 천민, 여성 등 각양각색 인물들에게 퍼져갔다. 정조가 승하하고 반 년 정도가 지난 1801년 1월. 대대적인 박해가 시작되었다. 정약용의 조카사위 황사영(黃嗣永)은 서울을 빠져나와 충청도 제천의 산골짜기 배론(舟論)에 숨어들었다. 배론의 토굴에 숨어지내며 그는 장문의 편지를 썼다. 편지는 북경 교구장 구베아(Gouvea) 주교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편지 말미에서 황사영은 조선 교회의 재건을 위해 전대미문의 요청을 했다. 편지는 그가 잡히면서 공개되었고 조선 조정은 뒤집어졌다. 이른바 ‘황사영 백서(帛書) 사건’이었다. 한국 천주교는 진리를 찾던 이들이 자발적으로 택했지만 그 선택은 박해가 예고된 고난의 여정이었다. 가시밭길을 마다하지 않았던 그들은 진정 하늘에 오르는 사다리를 발견했던 것일까. ●18세기 중국 통해 서학·천주교 유입 17세기 초 조선 사람들은 ‘유럽’이란 또 하나의 세계를 알게 되었다. 18세기에 접어들자 서양의 천문, 역법, 수리, 의학에 관한 서적과 기물에 더욱 익숙해졌고, 북경에 간 사신들은 으레 선교사가 거주하는 천주당을 방문하였다. 그 결과 저들도 나름의 진리가 있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당시 서양과 그들의 학문에 대해 가장 해박했던 인물은 이익(李瀷)이었다. 그로 인해 서학(西學)이 일세에 풍미하게 되었고, 그의 문하에서 이른바 ‘친서파’(親西派)로 일컬어지는 이가환, 권철신, 정약전·정약용 형제, 이승훈 등이 배출되었다. 이익 문하의 학자들은 여전히 ‘서학 수용’에 머물러 있었다. 서학은 새로운 지식일 따름이지, 유교의 가르침에 상응하는 새 가르침이 아니었다. 그런데 홀연 학문에서 신앙, 신념으로 건너뛴 인물이 나왔다. 이벽이었다. 이벽은 어려서부터 ‘하늘의 도리’에 뜻을 두었다. 20세쯤 서학서에 충격받았고, 25세 전후에 서학 서적을 망라해 읽고는 드디어 마음을 바꾸고 천주교를 신봉하였다. 이 시기 전후에 그는 조선 최초의 호교서로 평가받는 ‘성교요지’(聖敎要旨)를 집필한다. 그것은 천지를 주관하는 천주(天主)에 대한 선언이었다. 그의 선언은 성리학의 근본 원리인 천리(天理)에 대한 도전이었다. 성리학에서 하늘은 천리이다. 천리는 우주 질서의 원리, 사물의 물리, 사회의 윤리이다. 천리는, 우리가 ‘하늘’을 들을 때 떠올리는 ‘하느님’, ‘푸른 하늘’ 같은 인격성과 자연성이 약하고, ‘질서·조화·바름’과 같은 추상성과 윤리성이 강한 개념이다. 천리는 유교 왕국 조선에서는 모든 질서의 원천이자 가치의 근원이었다. 이벽은 ‘천리는 현실에서 공허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다. 천리에 비해 천주는 인격적 존재로 현실감이 있고 내세관마저 채워주는 존재였다. 그는 양 개념이 대립적이라고 여기지 않고 서로 보완되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그의 바람과 달리, 대다수 조선인들은 천주 선언을 유교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으로 보았다. ●관대하던 정조 사후, 1801년 대대적 박해 시작 천주교를 찬성하건 반대하건, 지식인들은 ‘천리’와 ‘천주’의 대결이 가져올 파장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서로 대결한다면 그것은 문명 사이의 가치관 전쟁이자, 그에 동반한 사유와 많은 개념들을 재조정하는 일이 될 터였다. 16세기 천주교를 동양에 전파했던 예수회 선교사들은 이 점을 알고 있었고, 두 문명 사이의 대화와 상호 이해를 도모하였다. 선교사들은 ‘Deus’(God의 라틴어)를 유교 경전에 등장한 상제(上帝)와 유사한 천주로 번역했고, 또 천주를 천지의 대부(大父)·대군(大君)이라고 소개하였다. 천주교 설명에 유교의 텍스트와 개념을 빌린 것이다. 이 같은 설명 방식은 중국에서보다 조선에서 더 큰 반향을 일으켰다. 유교적 이상 사회를 가장 진지하게 고민했던 조선의 지식인들은 천주교에서 유학과 일치하거나 때론 유학을 뛰어넘는 가능성을 보았다. 예컨대 한때 천주교 신자였던 정약용은 인격적 상제관에 기초한 새로운 유학 틀을 구상하였다. 정약용에게 영향을 미쳤던 이벽 또한 천주교를 축으로 유학의 미비점을 보완하려 하였다. 그러나 사회, 윤리 측면에서 문제는 매우 복잡하였다. 천주교인들은 천주 공경이 대효(大孝), 대충(大忠)이므로 유교 윤리는 천주교에서 완성되고, 유학자들이 오히려 천지의 군주와 부모를 모른 체한다고 역공했다. 물론 그 논리는 유교 윤리의 소멸로도 해석될 수 있었다. 더 위험한 것은 천주 앞에서 군(君)·신(臣), 부(父)·자(子)의 수직적 위계가 사라지는 일이었다. 천주교인들이 자신들은 충성과 효도를 어긴 적 없다고 아무리 강변해도, 대다수 지배층은 ‘천주 앞에서 만인이 평등하다.’는 논리 속에 잠재한 현실적 파괴력을 알고 있었다. 백성 하나하나가 박해를 감내하면서 자신이 신앙을 결단했다고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유교적 명분 질서가 사라진 무부, 무군의 미래였다. ●“서양군 통해 유교 압박”… 황사영 백서 큰 파장 1785년(정조 9) 형조의 적발로 최초의 천주교 모임이 발각되었다. 신부도 없이, 지식인들이 서로 성직을 맡아 진행한 모임이었는데, 정조의 관대한 처분으로 그럭저럭 무마되었다. 모임의 주동자였던 이벽은 사건 이후 얼마 안 되어 30대 초반의 나이로 요절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도 전해진다. 본격적 박해를 경험하지 않은 이벽은 차라리 행복했다. 1801년에 터진 대대적 박해는 일부 신자들을 극단적 선택으로 몰고 있었다. 그 와중에 황사영의 백서 사건이 터졌다. 백서의 내용 대부분은 순교자들의 전기이다. 당대는 물론 지금까지 논란을 부르는 부분은 후반부이다. 황사영은 교회 재건을 위해 몇 가지 방책을 제시했는데, 그중 ‘조선을 청에 내복(內服)시킴, 서양 군함과 병사를 통해 압박함’이 들어 있었다. 그 방책은 반국가, 반민족적 구상이라고 줄곧 비판받았다. 교회 재건이라는 동기와 박해라는 정황을 인정하더라도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이 비판의 골자였다. 백서의 청원은 너무나 대담하고 몽상적이어서 교인들 사이에도 논란이 있었고, 당시 북경 교회가 그대로 감행하기도 어려웠다. 황사영 역시 실제 그렇게 되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정부를 압박하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그 방책들을 제시하였다. 그가 반정부, 반국가 의지가 강했다면 가장 쉬운 길은 교인들의 무력 봉기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반란에는 분명히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그렇다면 다시 질문해 보자. 황사영은 왜 그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종교의 보편 진리를 꿈꾼 그는 서양의 도리를 신뢰했던 듯하다. 예수회가 전한 서양은 안정된 생활, 인정이 넘치는 풍속, 약한 자에 대한 배려와 형제애가 실현된 ‘이상적 사회’였다. 현실의 고통이 강할수록 이상적인 바깥 세계에 대한 동경과 기대는 증폭되기 마련이다. 기독교적 형제애에 대한 갈망이 커질수록 전통적인 유교 윤리, 혈통 의식, 국제 관계 등은 무력하거나 부정적으로 보였을 법하다. 선교사가 청 황제, 기독교 국가의 군대를 움직일 수 있다고 믿고 싶었던 지나친 기대감은 그의 판단력을 가려버렸다. ●지금도 유교문화 속 기독교 신자 수 동아시아 1위 천주교와 유교의 보완을 꿈꾸었던 이벽의 노력은 정약종, 정하상 등으로 맥을 이어갔다. 일부 교인들은 동서양의 이상적 인간상을 투영하여 그를 되살렸다. 19세기 후반 천주교 공동체의 염원이 담긴 예언서 ‘니벽전’에서 그는 학문에 능통한 선비, 득도한 신선, 승천하는 예언자로 그려졌다. 황사영은 대역부도죄로 체포되어 능지처사되었다. 비극은 그의 개인과 가족, 당대 교인들에게만 끝나지 않았다. 지배층과 일반 백성은 백서 사건을 계기로 천주교인들을 정말로 무부무군의 무리, 나라를 팔아먹는 무리로 여기게 되었다. 두 사람의 선택은 현재의 우리에겐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한국은 유교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으면서도 기독교(가톨릭과 개신교) 신자 수가 1위인 동아시아의 특이한 국가이다. 전근대의 보편 가치와 근대의 보편 가치를 상징하는 두 종교 사이에 현재의 우리가 놓여 있다. 예수회 이벽의 선택은 ‘내 안의 가치’와 ‘타인 안의 가치’를 동등하게 존중하고 서로 대화하는 자세와 통한다. 그리고 종교, 문명,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 사이의 조화에 힘쓰는 이들을 통해 계승되고 있다. 그러나 인정과 대화는 아슬아슬한 줄타기이다. 서로의 부족함을 고백하는 겸손에서 대화는 출발하지만, 나·우리 혹은 타자를 절대적인 기준으로 고정해 버리면 성찰과 다양한 해석이 설 자리는 사라져 버린다. 그 점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황사영은, 박해라는 정황을 감안하더라도, 외재(外在)하는 기준을 절대화해 버렸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다원을 긍정하고 독선에 빠지지 않는 자세야말로 언제나 곰곰이 생각해 볼 덕목이었다. 세계화, 다문화, 정보화가 가속하는 지금에서는 두 말 할 나위가 없다. 이경구 (한림대 한림과학원 HK교수)
  • 충남, 노인 9만명 우울증 선별검사

    충남도가 2년 연속 전국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것으로 드러나자 노인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우울증 검사에 나섰다. 통상 노인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농어촌이 도시보다 자살률이 다소 높기는 하지만 농어촌 중에서도 충남이 특히 높은 비율을 보이자 자살예방 정책과 사업에 활용하기 위해 서둘러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이다. 도는 올해 말까지 일선 시·군과 함께 1억 9200만원을 들여 만 75세(1937년생) 노인과 65세 이상 독거·저소득 노인 9만 3151명을 대상으로 ‘우울증 선별검사’를 실시한다고 18일 발표했다. 이는 충남의 65세 이상 노인 30만 7000여명의 30%가 넘는 수치다. 장동화 도 주무관은 “자치단체 단독으로 이처럼 대규모로 노인 우울증을 검사하기는 국내 처음인 것으로 안다.”면서 “만 75세를 선택한 것은 이 나이가 넘어가면 삶의 의욕이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도가 우울증 검사에 대대적으로 나선 것은 높은 자살률 때문이다. 충남은 2010년 인구 10만명당 44.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2009년에 이어 전국 최고의 자살률을 기록했다. 같은 농어촌이지만 32~35명에 그치고 있는 영호남 지역과 비교해도 유난히 높다. 2010년 충남 예산군과 청양군의 자살률은 각각 74.9명과 70.9명으로 전국 평균 31.2명의 두 배를 훌쩍 넘어서고 있다. 장 주무관은 “참으면서 속앓이를 잘하고, 자식에게 신세지기 싫어하는 충청도 사람의 기질이 자살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충북지역도 자살률이 높다.”고 분석했다. 도는 먼저 보건지소·보건진료소 직원을 동원, 대상 노인들의 거주지를 일일이 방문해 생활만족도, 활동 및 흥미, 미래 전망, 정신상태, 행복지수, 우울감 여부 등 15개 우울증 항목을 면접 조사한다. 방문간호사가 마을 경로당을 순회하며 검사하기도 한다. 항목당 1점씩으로 10점이 넘으면 우울증 고위험군에 해당한다. 또 도내 15개 시·군별로 전문 조사원을 선발, 노인 9600명을 골라 우울증 검사도 실시한다. 이 검사는 연령·성별·종교 등 일반사항, 자녀·동거인 등 가족사항, 질병·음주 등 건강사항, 모임·여가·사회활동, 교류 및 친분관계·경험 등 심리사항 등 총 5개 분야 24개 항목으로 자살률이 높은 이유와 우울증 원인 분석자료로 쓰인다. 도는 고위험군 노인에 대해 ‘정신건강 실태조사’를 병행하고, 우울증으로 확진되면 치료약을 복용할 수 있도록 매달 1인당 3만원씩을 지원한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길을 품은 우리 동네] (9) 정읍·고창·부안 동학로

    [길을 품은 우리 동네] (9) 정읍·고창·부안 동학로

    갑오년(1894년) 음력 1월 고부(지금의 전북 정읍시) 봉기로 발발해 같은 해 12월 전봉준 등 주요 지도부가 체포되면서 막을 내린 미완의 혁명. 그 정신이나 사상에 대해서는 11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학자마다 이견이 있지만,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는 곡조에는 누구나 가슴이 먹먹해진다. 민초들에게 두고두고 양각으로 아로새겨진 이 기억은 그러나 권세가들에게도 특별했긴 매한가지다. 무수한 세도가들이 정치적 목적으로 그 정신을 계승하겠다고 선언했고 머리를 조아렸던 혁명이다. 그 정신을 오롯이 기리고 있는 전북 정읍·고창·부안의 동학로를 찾았다. 정읍시 덕천면 ‘동학로’ 끝자락에 있는 황토현 전적비. 국가사적으로 지정된 곳이다. 화강암으로 된 비석 위에는 ‘제폭구민 보국안민’ 즉, ‘폭정을 없애고 나라를 보존하여 인민을 안정하게 한다’라고 쓰여 있다. 동학농민군은 갑오년 음력 4월 7일 이곳에서 정규 정부군인 전라 감영군과의 전투에서 최초·최대 승리한 것을 이렇게 기념했다. ●과거 권력자들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 1963년 10월 3일 제막식 당시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박정희 최고회의의장이 참석했다. 여기서 박 의장은 “동학혁명은 부패·당파싸움·사대주의에 물든 탐관오리들에게 항거한 최초의 대규모 서민혁명으로 그 정신은 길이 계승돼야 한다.”면서 “5·16혁명도 이념면에서는 동학혁명과 일맥상통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진윤식(69) 고창동학농민혁명연구소장은 “5·16군사쿠데타를 동학농민혁명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으려는 꼼수였다.”고 비판했다. 또 같은 목적으로 전두환대통령은 재임 기간 동학농민혁명 유적지 정화사업으로 황토현 기념관·전봉준 장군의 동상 등을 세우도록 했다. 하지만 1980년 5월 당시 야당 정치인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읍농고에서 열린 13회 동학문화제에 참석한 이후 이를 막지 못한 책임으로 기념사업회장을 구속하고, 정읍군수·경찰서장을 직위해제했다. 박대길 정읍시 동학농민혁명선양팀장은 “군부정권이 행한 ‘정화사업’은 정치적 의도가 다분하다. 그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적비 뒷산인 두승산에 오르면 동쪽으로 배들평야, 서쪽으로는 부안군 백산이 어렴풋이 눈에 들어온다. 동학로 끝에서 황토현로, 말목장터로를 따라오면 배들평야 끝으로 만석보터가 있다. 고부군수 조병갑은 정읍천과 동진강이 만나는 곳에 새로 만석보를 만들어 군민들에게 물세를 물렸고, 이에 전봉준 등이 주동자가 드러나지 않도록 하고자 사발통문을 쓰고 농민들과 함께 관아를 습격했다. 동학농민혁명의 시발점이었다. ●“농민도 성실히 일하면 잘사는 사회” “정읍이 동학농민혁명의 시발점이라면, 고창은 동학농민군의 조직·사상이 잉태된 곳”이라고 고창군 관계자들은 말한다. 고부농민봉기를 일으킨 전봉준이, 갑오년 음력 3월 20일 고창지역에 있던 손화중과 손을 잡고 무장현에서 봉기를 했다. 이 때문에 동학농민혁명이 충청도는 물론 경상·강원·황해도 등 전국으로 번졌다는 것이다. 손화중은 당시 최시형과 함께 양대 동학접주 중 하나였다. 이런 점에 주목한 고창지역 동학농민혁명 관련 길은 전봉준로, 녹두로와 함께 동학농민군로, 손화중로 등으로 그 의미를 담고 있다. ‘인민은 나라의 근본이요, 그 근본이 깎이면 나라가 잔약해진다. 보국안민의 방책은 생각지 않고 바깥으로는 고향집만 꾸미고 오직 제 혼자 온전할 방법에만 힘쓰면서 녹봉과 벼슬자리만 도둑질하니 어찌 다스려지리오’ 동학농민군로가 끝나는 지점인 전남 영광과 접한 무장현 봉기 장소에 있는 기념비에는 당시 만들어진 이 포고문이 새겨져 있다. 오늘날 정부관료들에게 훈계해도 될 법한 글귀다. 농민이기도 한 진 소장은 “무장포고문은 동학농민혁명의 사상을 압축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저임금은 서푼어치라도 매년 오르지만, 쌀값만은 십수년째 16만원 내외로 같은 값이다. 정부는 전 국민을 먹여 살리는 국가기간산업인 농업을 경시하고 있다.”면서 “농민도 성실히 일하면 국민평균소득 정도는 벌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118년전 동학농민군이 이루고자 했지만 아직 완성되지 못한 사회모습”이라고 강조했다. ●민란 아닌 혁명인 이유는 ‘인권중시사상’ 과거 고부군에 속했고 지금은 부안군에 속한 백산(白山). 이곳에서 열린 백산대회는 동학농민혁명사에서 가장 신나는 장면 중 하나다. 해발고도 47m에 불과한 낮은 산인 백산은 사방이 평야지대에 홀로 솟아 시야 확보가 쉽고, 호남 서부지역 교통의 요지였다. 정읍 배들평야 쪽에서 이곳 백산까지가 동학로라 이름 붙여졌다. ‘앉으면 죽산 서면 백산’ 갑오년 음력 3월 25~26일 1만명 가까운 농민군이 모였다. 전봉준 장군을 총대장으로 조직이 재편됐고 호남·호서 일대에 격문이 나붙었다. 백산에서 농민군 군율인 4대 명의·12조 기율도 제정된다. 왜 동학농민혁명이 ‘민란’이 아닌 ‘혁명’이었는지, 이 군율에 나타난다. 4대 명의에는 ‘사람을 죽이지 않고 물건을 함부로 없애지 않는다.’는 내용이, 12조 기율에는 ▲항복한 사람은 따뜻하게 대한다 ▲곤궁한 사람은 구제한다 ▲굶주린 사람은 먹여준다 ▲도주하는 사람은 쫓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은 진휼한다 ▲병든 사람은 약을 준다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때 집결한 농민군은 한 달 뒤 조선왕조의 본향이자 전라도 수도인 전주성 점령까지 승승장구했다. 이런 백산에서의 기억은 이 지역 사람들에게 “부안이야말로 동학농민혁명 정신을 직접 계승한 곳”이라는 자부심으로 남았다. 정재철 백산고 국사교사는 “동학농민혁명 정신은 부안에 저항정신·애향심으로 남아 있다.”면서 “그 힘으로 2003~2005년 2년 2개월여 전 군민의 방폐장 반대 시위를 벌인 것”이라고 말했다. 세 지역 중 동학을 계승한 천도교가 가장 활발한 곳도 역시 부안이다. 상서면 호암수도원에는 천도교 교구가 설치돼 있고, 주기적으로 집회가 열린다. 민관이 함께 통치하는 집강소를 세우는 등 새 시대를 열어가던 동학농민혁명군은 갑오년 음력 11월 충청도 공주 우금치에서 일본군에 크게 패하면서 급격히 쇠퇴한다. 한 달 뒤 전봉준은 옛 친구의 밀고로 전라도 순창 피노리에서 체포되고, 이듬해 을미년 음력 3월 교수형을 당한다. 이런 안타까운 결말에 민초들은 이런 노래를 남겼다. ‘가보(甲午·1894년)세. 가보세. 을미(乙未·1895년)적 을미적 병신(丙申·1896년)되면 못 가보리’ 혁명이 성공했다면 달랐을까. ‘동학로’라 이름붙여진 서로 다른 길들은 한결같이 가난한 농촌길이었다. 토지가 비옥하고 기후가 좋아 이 지역 쌀 생산은 전국 최고지만, 농민들의 소득은 여전히 밑바닥이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10회는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방동 약수로를 소개합니다.
  • 민주몫 부의장 후보들 득실계산 분주… 4일 경선

    국회의장으로 충청도 출신 친박근혜계 강창희 새누리당 의원이 당선됨에 따라 국회 부의장 자리를 놓고 민주통합당 후보들의 경쟁이 본격화됐다. 후보로 나선 이석현 의원과 박병석 의원은 오는 4일 국회의원 워크숍에서 치러질 부의장 선출을 놓고 자신의 승리를 자신했다. 이 후보는 의원들에게 전화를 돌리며 한표를 호소했고, 박 후보는 초선들에게 ‘의정 노하우’가 담긴 세 차례 편지를 보내는 등 정성을 기울였다. 이 후보는 1일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국회 내 여야 대치가 심각할 때는 국회 부의장이 조정력을 발휘해 대화의 물꼬를 터야 한다.”면서 “그러려면 아무래도 다선 의원이 부의장을 하는 게 낫다.”고 강조했다. 이 후보는 5선이고 박 후보는 4선이다. 특히 충청 출신 강 의원(대전)이 국회의장이 된 만큼 지역구 분배 차원에서 수도권(경기 안양 동안갑)이 지역구인 이 후보가 부의장 당선에 유리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이에 대해 박 후보는 “4선 이상이면 크게 다선 의미가 없다.”고 일축한 뒤 “부의장은 여야 간 협상력이 중요한데 2008년 한·미 소고기 협상 당시 정책부의장이었던 나는 협상창구인 임태희 전 의장과 합의안을 만들어 3개월간 표류하던 국회를 정상화시켰다.”며 자신이 적임자임을 부각시켰다. 충청 대선 표심을 겨냥한 새누리당에 맞서 대전이 지역구인 박 후보를 오히려 최소한의 맞대응 카드로 써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17~18대 국회에서 열린 세 차례 부의장 선거에서는 모두 차수 낮은 후보가 당선됐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김한길 ‘이해찬 텃밭’서 1위 대이변… ‘대안론’ 탄력

    김한길 ‘이해찬 텃밭’서 1위 대이변… ‘대안론’ 탄력

    이변이 일어났다. 민주통합당 당 대표 경선이 29일 충북 청주 명암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가운데 세종·충북지역 당대표 경선 투표에서 김한길 후보가 226표(28.5%)를 획득, 지역구 의원인 이해찬(세종) 후보를 누르고 1위를 차지했다. 158표(19.9%)로 2위에 머문 이 후보는 누적합계(1755표)에서도 13표 차로 김 후보에게 쫓기는 상황이 됐다. 3위는 조정식 후보(116표)가 차지했다. 김 후보는 396명(투표율 84.4%, 1인 2표)이 참여한 충북·세종지역 대의원 투표에서 예상을 뒤집고 68표 차로 이 후보를 제압했다. 그의 누적합계는 1742표다. 김 후보는 투표 발표 직후 “나 자신도 생각지 못한 지역연고와 계파를 뛰어넘은 승리다. 공정한 대선경선 관리와 정권교체로 보답하겠다.”고 밝게 웃었다. 김 후보의 승리는 잇단 친노 등 특정 계파 주도의 총선 패배론과 이 후보와 박지원 원내대표의 담합론, 경선 도중 정책 대의원 증원 논란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 것으로 분석된다. 김 후보는 연설에서 “잘못된 각본 때문에 정권교체의 기회가 사라졌다. 이번 총선에서 충북 의석이 반토막이 나는 참패를 당했다.”면서 “책임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이 당 대표로 나섰다.”며 이 후보와 계파정치를 비판했다. 그는 비전 제시 없이 ‘이해찬·박지원 연대’ 공방만 벌인다는 지적에 대해 “4·11 총선 패배 등 위기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해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반면 지난 총선에서 세종시에 출마해 초대 국회의원이 된 이 후보로서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이 후보는 가족의 고향이 충청도임을 언급하며 “정권교체로 일자리가 넘쳐나는 세종시를 이해찬이 반드시 해내겠다.”며 지역구 의원임을 거듭 피력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이 후보 측 캠프는 트위터에 새누리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김 후보가 더 많은 표를 받은 여론조사를 링크해 놓는 등 이 후보의 영향력을 에둘러 설명하기도 했다. 후보들은 다음 달 9일 전대에서 치러지는 전체 대의원 표의 절반(48.9%, 1만 2130표)에 육박하는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 후보 측 오종식 대변인은 “모바일이 관건이다. 2030세대의 젊은 표가 승부를 가를 것이며 연령 보정이 들어가기 때문에 70%를 차지하는 모바일 투표는 대의원 1표의 가치를 가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편 전당대회준비위원회는 이날 정책대의원 추가 증원을 놓고 논쟁이 일었던 것과 관련해 회의를 열고 2600명 외 추가 증원 없이 다른 진보단체들을 6·9 전대 대의원으로 배정하기로 결정했다. 다른 후보들과 공동으로 반대 성명을 냈던 김 후보는 “경선 중간에 유권자의 범위와 대상이 변경되는 건 크게 우려스럽고 대원칙에 어긋난다.“고 밝혔다. 강주리·청주 이범수기자 jurik@seoul.co.kr
  • 태백 이어 이번엔 경남에서… 1361명 연루 초대형 보험사기

    경남 창원시에서 2007년부터 5년간 무려 1361명이 총 95억여원의 보험금을 부당하게 타낸 조직형 보험사기가 적발됐다. 지역의 유명병원 3곳이 연루됐으며 주로 40·50대의 주부들이 허위 입원 등을 통해 보험금을 받아간 것으로 나타났다. 보험사기 혐의자 1361명 중 24%는 소문을 듣고 전국 각지에서 몰려들었다. 금융당국은 경찰에 수사의뢰했으며 경찰 조사결과에 따라 400여명이 연루된 ‘태백사기사건’을 뛰어넘어 역대 최대 사기사건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창원시 일대 병원 3곳을 무대로 활동한 총 1361명의 보험사기 혐의자를 적발했다고 17일 밝혔다. 이들의 보험사기 규모는 95억 1500만원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창원 인근 3개 병원이 환자 1명당 10만~20만원을 브로커에게 지급하고, 환자는 브로커에게 보험금의 10%를 떼 준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지난 3월부터 조사를 벌여왔다.”고 말했다. 이들 3개 병원은 건물이 6~8층이고 5개 이상의 진료과를 보유하고 있어 창원에서는 유명 병원들이다. 이들은 3개월간 평균 6.7개의 보험에 가입한 후 3개 병원에 돌아가며 입원해 일인당 평균 700만원의 보험금을 챙겼다. 생명보험이나 장기손해보험의 경우 입원할 경우 보험계약에 따라 하루 5만~10만원의 입원 일당을 중복해 지급한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총 33개 보험사가 이들에게 보험금을 지급했고, 생명보험 ‘빅3’와 우체국보험 가입자가 상대적으로 많았다. ●병원·병명 바꿔가며 입원 수법 특히 1361명 가운데 40·50대가 909명(66.8%)으로 가장 많았고, 여성이 893명(65.6%)이었다. 금감원 관계자는 “보험사기 수법 중 허위 입원보험금을 받은 경우가 91.2%(86억 7600만원)에 달했는데 아무래도 중·고등학교 자녀를 둔 40·50대 주부들이 입원을 편하게 할수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가장 많은 보험금을 타낸 주부 손모(53)씨는 당뇨나 고혈압 등으로 3년간 18번에 걸쳐 564일간이나 과장 입원해 9500만원의 보험금을 받았다. 최다 건수의 보험사기를 기록한 것도 53세 주부였다. 그는 3년간 109건에 걸쳐 입원을 하면서 9133만원의 보험금을 타냈다. 이외 최모(63)씨 부부는 고혈압 등으로 6차례나 같은 병원에 동반입원해 2400만원의 보험금을 지급받았다. 보험설계사는 노모(45·여)씨는 2년간 9차례나 입원했지만 입원기간에 45건의 보험계약을 모집한 성과가 있었다. ●50대 주부 3년간 109번 입원 금감원에 따르면 처음에는 창원시 및 부산·경상도 지역에서 보험사기에 많이 가담했지만 소문이 퍼지면서 서울·경기뿐 아니라 전라도, 강원도, 충청도, 제주도 등에서도 326명이 몰려들었다. 금감원은 보험사기 혐의자 1361명을 비롯해 관련 병원 3곳(보험사기 방조혐의)의 자료를 경찰에 넘기고 수사를 의뢰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감원은 환자와 병원이 공모했다고 보기에는 사안이 너무 커 다수의 브로커가 개입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만약 보험관계업무 종사자의 위법사실이 드러나면 즉시 현장검사를 실시해 엄중 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금감원은 이번 사건이 지난해 11월 발생한 태백사기사건보다 피해가 클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경찰은 150억원대 보험금과 요양급여비를 가로챈 태백지역 병원장과 보험설계사, 가짜 환자 등 410명을 적발한 바 있다. 이경주·이성원기자 kdlrudwn@seoul.co.kr
  • [씨줄날줄] 여수 밤바다/이도운 논설위원

    뉴욕의 양키 스타디움을 처음 갔을 때 ‘빰빰빠라밤~’하고 울려퍼지던 멜로디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 1979년 프랭크 시내트라가 발표한 ‘뉴욕, 뉴욕’. 이 도시의 축제 분위기를 상징하는 노래가 됐다. 뉴욕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노래는 음유시인 빌리 조엘이 1977년 만들어 부른 ‘뉴욕 스테이트 오브 마인드’. 좀 더 사색적인 분위기 때문에 뉴욕시민들은 이 노래를 더 좋아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바 있다. 또 양키스의 지역 라이벌 메츠는 ‘뉴욕, 뉴욕’ 대신 이 노래를 경기장에서 틀곤 한다. 미국에는 도시나 지역의 이름을 소재로 한 대중가요가 많다. ‘샌프란시스코(에 오려면 머리에 꽃을 꽂으세요)’ ‘LA 국제공항’ ‘(콜로라도) 로키 마운틴 하이’ ‘스위트 홈 앨라배마’ 등 셀 수 없을 정도다. ‘보스턴’이나 ‘애틀랜타 리듬 섹션’처럼 고향을 그룹 이름으로 붙인 뮤지션도 많다. 미국뿐이 아니다. 프랑스에도 ‘파리의 하늘 밑’이나 ‘베르사유에서의 자전거 타기’처럼 지역을 소재로 한 노래가 있고, 일본에서는 ‘블루나이트 요코하마’라는 노래가 큰 히트를 기록한 바 있다. 우리나라에도 지역을 상징하는 노래들이 있다. 롯데 자이언츠의 본거지 사직구장에서 늘 울려퍼지는 ‘부산 갈매기’나 ‘돌아와요 부산항에’, 호남 사람들의 애환을 대변하기도 했던 ‘목포의 눈물’ 등이 대표적이다. 또 끈적끈적한 ‘대전 블루스’는 왠지 충청도 사람들의 은근과 끈기를 표현해주는 듯하고, 울산 간절곶에는 1969년 서울 가수 김상희가 경상도 여인처럼 화끈하게 불렀던 ‘울산 큰애기’의 노래비가 서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도시 서울도 수십명에 이르는 가수들의 창작 소재가 됐다. 그 가운데 배호의 ‘서울야곡’, 이미자의 ‘서울이여 안녕’, 패티 김이 부른 ‘서울의 찬가’, 조용필의 ‘서울, 서울, 서울’, 김건모의 ‘서울의 달’ 등이 많이 알려진 노래다. 최근에는 여수가 가요시장에서 부각되고 있다. 신예 밴드 ‘버스커 버스커’가 발표한 ‘여수 밤바다’가 큰 인기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이 노래는 공교롭게도 여수 엑스포 개막을 앞둔 시기에 발표돼 더욱 큰 관심을 끌었다. 11일 개장한 여수 엑스포에 예상보다 국내외 관람객 숫자가 적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맹위를 떨치는 한류 뮤지션들이 여수를 소재로 한 노래를 만들어 세계 시장에 발표했다면 더욱 많은 관람객들이 올 수도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이도운 논설위원 daw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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