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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광식의 문화유랑기] 퇴계가 사랑한 기생…그의 순애보

    [이광식의 문화유랑기] 퇴계가 사랑한 기생…그의 순애보

    두향의 남자, 퇴계의 여자 중국 개화기의 대표적인 사상가 양계초(梁啓超)가 “아득하셔라, 이부자(李夫子) 님이시여”라며 거리낌없이 성인이라 칭한 퇴계 이황. 이 근엄 무쌍한 도학자에게 실로 가슴 아픈 러브 스토리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그것도 이팔 청춘 한창때가 아니라, 불혹(不惑)을 훌쩍 넘긴 나이에 맞닥뜨렸던 가슴 아픈 사랑이었다. 그 상대 여성은 그럼 누구였던가? 되도록이면 팩트에만 근거하여 퇴계의 러브 스토리를 재구성해보도록 하자. 내가 더듬어본 자료에 의하면, 퇴계의 사랑과 그 상대 여성이 일반에게 알려진 계기는 정비석의 '명기열전'인 것으로 보인다. 그가 두향(杜香)이라는 단양 기생과 퇴계 사이에 있었던 러브 스토리를 소설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단양기 두향’편을 씀으로써 퇴계와 두향의 슬픈 사랑을 세상에 알린 것이다. 단양에 두향이라는 명기의 슬픈 사랑 인연이 있었다는 사실을 정비석이 안 것은 오래 전의 일이었지만, 그 상대 남자가 누구인지는 모르고 있었다. 작가가 단양에 내려갈 때마다 이 사람 저 사람 붙잡고 물어보고 자료를 뒤져봤지만, 종내 그들의 사연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고서를 뒤적이다가 우연찮게 두향의 무덤에 관한 한시 두 수를 발견하게 된다. 그중 한 수는 조선 후기에 우리나라에 고구마를 처음으로 전파시킨 이광려(李匡呂)라는 실학자의 작품으로, 그가 두향묘를 참배하고 지은 시라 한다. 孤墳臨官道 국도변에 외로운 무덤 하나 頹沙暎紅萼 물가 모래에 어리는 붉은 꽃 杜香名盡時 두향이란 이름 잊혀질 때야 仙臺石應落 강선대 바위도 사라지리라 이로써 ‘두향’이 ‘전설’이 아니라 ‘실화’임을 확신할 수 있었을 뿐더러, 시편에서 풍기는 가락으로 보아 두 사람의 사랑이 예사롭지 않은 거라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아니면, 한낱 기생의 무덤을 두고 대시인들이 이런 시를 남겼을 리 만무한 노릇 아닌가. 그뿐 아니다. 400년도 더된 무덤이 아직까지도 보존되고 있어, 한때 이 무덤을 찾은 노산 이은상이 다음과 같은 소회를 그의 기행문 속에 남겼던 것이다. '내 비록 풍류랑은 아닐망정, 그 무덤 앞에 꽃 한 송이 못 놓고 가는 것이 어떻게나 서운한지 모르겠다.' 이 무덤의 주인 두향의 남자는 누구일까? 작가는 우연찮은 기회에 마침내 ‘그 남자’를 알아내게 됐는데, 정말 이럴 수가? 입이 딱 벌어지는 사실이었다. 작가가 전하는 전말은 다음과 같다. 퇴계학 관련자들과 함께 기차를 타고 안동 도산서원으로 내려가던 중 기차가 단양을 지날 때, 작가가 단양 명기 두향의 남자를 몇 해째나 찾아봤지만 알아내지 못했노라고 푸념처럼 말하자, 동행하던 한문학자 이가원(李家源) 교수가 불쑥 이렇게 말하더라는 것이다. “두향의 상대 남자는 바로 퇴계 아니오.” 이 교수는 퇴계학의 권위일 뿐 아니라 퇴계 14대 후손이기도 하다. 어찌 믿지 못하리오. 알고 보니 이미 오래 전부터 퇴계 문중에서 두향묘를 관리해오고 있다고 한다. 이 교수 역시 몇 년 전에 두향묘를 찾아, 무덤 한가운데 소나무 한 그루가 나 있는 걸 보고는 마을 사람에게 베어달라고 하면서 돈까지 주고 왔다는 것이다. 이로써 퇴계와 두향과의 관계는 의심할 수 없는 사실로 확인된 셈이다. 정비석은 안동에서 올라오던 길에 우정 단양에서 내려 강선암 아래 쑥대밭 속에 누워 있는 두향의 묘를 주민의 도움으로 찾았다. 과연 무덤 한가운데는 이가원 교수가 말한 대로 소나무 그루터기 하나가 박혀 있었다. 의심할 바 없는 퇴계의 여자 두향의 묘였다. 작가는 한 길 넘는 쑥대밭 속에 누워 있는 두향에 대해 창연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어 주머니돈을 털어 촌민에게 건네며 표석 하나만이라도 세워달라는 부탁을 하고는 귀로에 올랐다고 한다. 매화, 시, 음률로 맺어지다 퇴계가 단양 군수로 온 것은 명종 3년(1548년) 정월, 그의 나이 48살 때였다. 그때 단양 관기인 두향의 나이는 18살, 30년이란 세월이 두 사람 사이를 흐르고 있었지만, 둘 사이에는 공유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세 가지였다. 첫째가 매화, 둘째가 시, 셋째가 음률이었다. 퇴계는 대철학자이지만, 동시에 빼어난 시인이기도 했다. 그는 특히 매화를 깊이 사랑하여 생전에 백 수가 넘는 매화시를 지었을 뿐만 아니라, 매화시만으로 ‘매화시첩’을 만들기도 한, 그야말로 매화 마니아였다. 아래의 시는 그가 얼마나 감각적인 시인인가를 한눈에 보여주는 가작이다. 步躡中庭月趁人 뜰을 거닐으니 달이 사람 좇아오네 梅邊行遼幾回巡 매화꽃 언저리를 몇 번이나 돌았던고 夜深坐久渾忘起 밤 깊도록 오래 앉아 일어나길 잊었더니 香滿衣巾影滿身 꽃내음 옷에 스미고 그림자 몸에 가득하네 또한 퇴계는 일종의 음악론인 ‘금보가(琴譜歌)’를 쓰기도 할 만큼 음률에도 밝았다. 그렇다면 두향이 사정은 어떤가? 일단 미모에 대해서는 별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미인급에는 못 미치는 듯하지만, 아주 귀한 재주를 가지고 있었는데, 다름아닌 양매(養梅)와 거문고의 고수였던 것이다. 게다가 시에도 밝았다. 그러니 퇴계와 두향은 유효 거리 내에서는 언제든지 화학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활성 원소와 다름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당시 퇴계는 두 번째 부인 권씨를 잃은 지 2년이 지난 홀아비 신세였음에랴. 퇴계가 두향을 만났을 때는 권씨가 세상을 떠난 지 이태가 지난 뒤였다. 이래저래 활성 기체 같았던 두 남녀의 첫 얽힘에 대해서는 상상으로나 그려볼 수 있을 뿐, 어차피 기록은 없다. 그러나 매화와 음률, 시 등으로 두 사람이 30년 세월과 신분을 훌쩍 뛰어넘어 서로에게 침잠했을 거라고 짐작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듯하다. 교양과 기예, 재능과 학문을 갖춘 젊은 여인의 향기 속에 퇴계는 속절없이 빠져들었을 것이다. 전하는 얘기에 의하면, 양매의 고수인 두향이 집에서 애지중지 키우던 30년 묵은 백매와 청매 두 분(盆)을 퇴계의 거처에 옮겨두었다고 한다. 퇴계가 특히 매화를 혹애한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백매와 청매는 참으로 기품 높은 나무로, 고수는 서로 한눈에 알아본다고, 퇴계는 한눈에 그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챘을 것이다. 그 무렵 매화를 읊은 퇴계의 시가 여러 편 전하는데, 다음의 시가 두향의 매화를 보고 지은 것으로 보인다. 獨倚山窓夜色寒 홀로 산창에 기대니 밤기운 차가운데 梅梢月上正團團 매화나무 가지 끝에 둥근 달이 걸렸구나 不須更喚微風至 구태여 소슬바람 다시 불러 무엇하리 自有淸香滿院間 맑은 향기 저절로 온 뜰에 가득한데 퇴계는 두향이 어린 나이임에도 깊은 인품과 내명(內明)한 자질을 지닌 여인임을 알고는 여러 번 감탄했다고 한다. 더욱이 퇴계는 남녀상열지사에 대해서는 상당히 열린 마음의 소유자였다. 청상이 된 며느리를 재혼하라면서 친정으로 돌려보내기까지 한 휴머니스트였다. 단양은 벽지이지만 산수가 빼어나기로 이름 높은 고장이다. 예로부터 단양에 부임해오는 원님들은 모두 울며 왔다가 울며 간다는 말이 전해진다. 올 때는 궁벽한 곳으로 간다고 눈물짓지만 갈 때는 아름다운 고장을 떠나기 못내 아쉬워 운다는 것이다. 명승으로 꼽히는 곳을 들자면, 먼저 정도전의 전설이 얽혀 있는 도담삼봉을 비롯해, 석문(石門), 사인암(舍人巖), 상·중·하선암(下仙岩), 구담봉(龜潭峰) 그리고 옥순봉(玉筍峰) 등 팔경을 앞세울 수 있고, 그밖에도 기암괴석, 옥류가 곳곳에 널려 있다. 퇴계와 두향은 이 절경들을 둘러보면서 꿈결 같은 생의 한때를 보냈을 것이다. 지금 흔히 말하는 ‘단양팔경’은 퇴계의 아이디어로, 그때 두향과 같이 다니면서 퇴계가 스스로 이름 붙이고 정한 것이다. 그렇다고 퇴계가 공무를 뒤로 하고 매양 놀기만 한 것은 물론 아니다. ‘성(誠)’이라면 둘째 가기 서러워할 퇴계 아니던가. 그는 단양이 물이 많은 고장임에도 자주 가뭄이 들어 백성들이 굶주린다는 사실을 직시하고는 최초로 물을 가두는 보를 쌓는 등, 뛰어난 치적을 올린 지방관이었다. 이 보가 생긴 이후로 단양에서는 굶는 사람이 없어졌다 한다. 지금 충주호를 보면 4백 년 전 퇴계의 선견지명을 능히 알 수 있다. 이 보의 이름은 복도소(複道沼)라고 한다. 이 보가 완공되었을 때 퇴계는 준공기념으로 ‘복도별업(複道別業)’이라는 네 글자를 크게 써서 부근의 바위에 새기게 했는데, 그 각자는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다. 또 남아 있는 퇴계의 글이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퇴계가 아침마다 세수를 한 곳에 새겨져 있는 ‘탁오대(濯吾臺)’ 세 글자다. 퇴계와 두향은 특히 남한강 가 강선대(降仙臺) 위에서 자주 거문고를 타고 시를 읊으며 노닐었다. 강선대는 백 명이 올라가 놀 수 있을 만큼 너른 너럭바위로, 지금은 충주호에 잠겨 있지만, 갈수기에는 가끔 그 모습을 물 위로 드러내기도 한다. 두 사람은 단양팔경 속을 거닐며 그렇게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맞았다. 그러나 퇴계와 두향의 단양 시절은 가을이 미처 다 가기도 전인 시월에 갑자기 막이 내린다. 불과 아홉 달 만에 두 사람이 헤어지게 된 것은 퇴계의 넷째 형 이해(李瀣)가 충청도 관찰사로 부임하게 된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형이 자기의 직속상사로 온 것이다. 공사가 엄격했던 퇴계는 이를 피하기 위해 인근 고을인 경상도 풍기 군수로 옮겨가게 되었다. 두향과의 이별은 피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짧은 인연 뒤에 찾아온 갑작스런 이별은 두 사람 모두에게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들의 감정이 얼마나 절절했을 것인가는 미루어 짐작할 수밖엔 없다. 단양을 떠날 때 퇴계의 짐은 책 두어 궤짝과 괴석(怪石) 두 개뿐이었다고 한다. 단양을 떠나 한 나절쯤 가면 풍기와의 경계인 죽령에 이른다. 두 사람은 아마 거기에서 작별한 듯하다. 그리고 그로부터 21년 후 퇴계가 70살로 눈을 감을 때까지 두 번 다시 서로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 편지 왕래는 있었던 모양이다. 두향에게 보낸 다음의 시를 보면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黃卷中間對聖賢 옛 책 속에서 성현을 만나보며 虛明一室坐超然 빈 방안에 초연히 앉았노라 梅窓又見春消息 매화 핀 창으로 봄소식 다시 보니 莫向瑤琴嘆絶絃 거문고 마주앉아 줄 끊겼다 한탄 마라 퇴계의 나이 52세 되는 해(1552년)의 작품이다. 그러니까 두향과 헤어진 지 4년째 봄을 맞아 쓴 시이다. 시문의 끝 구절에 "거문고 마주 앉아 줄 끊겼다 한탄 마라"는 두향의 마음을 위로하는 내용임이 분명해 보인다. 두향은 이 시 한 편을 받고 평생을 거문고 가락에 실어 노래로 불렀으리라. 퇴계와 헤어진 후 두향은 기적에서 몸을 빼내 이듬해 봄, 강선대가 눈 아래 굽어보이는 적성산 기슭에 움집을 짓고는 평생 홀로 살았다고 한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세월을 두 번씩이나 보낸 두향이 이 초당을 떠나게 된 것은 퇴계의 부음을 들었을 때였다. 두향은 바로 집을 나서 죽령을 넘어가는 험란한 200릿길을 단신으로 걸어 나흘 만에 안동 도산서당이 있는 도산면 토계리에 도착했다. 그러나 빈소에는 찾아가지 못하고 멀리 상가가 보이는 산기슭에서 소복한 차림으로 망곡하며 하룻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었다. 두향과 헤어진 후 퇴계는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풍기군수를 일년 남짓한 퇴계는 병을 이유로 사직했다. 하지만 그 뒤로도 조정에서는 계속 퇴계를 불러, 부제학, 공조판서, 예조판서 등을 역임했지만, 이미 벼슬에는 뜻이 없는데다 병약한 퇴계는 번번이 사직서를 내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가 평생 동안 사직서를 쓴 것만도 80여 회나 된다고 한다. 말년엔 안동에 서당을 지어 은거하며 제자들을 가르쳤다. 퇴계의 학문적 성취는 대개 두향과의 이별 이후인 50대~60대에 이루어진 것이다. 그는 자연과 학문 속에서 위안을 찾으며 살아갔던 것으로 보인다. 인근의 명산인 청량산을 특히 자주 찾았고, 때로는 며칠씩 산에 있다가 내려오기도 했다. 교과서에 실리기도 한 그의 명시조 '청량산 육륙봉'은 그래서 태어난 것이다. 청량산 육륙봉을 아는 이 나와 백구 백구야 헌사하랴 못 믿을손 도화로다 도화야 떠지지 마라 어주자 알까 하노라 퇴계에게 또 하나의 큰 위안은 매화였다. 죽을 때까지 매화를 가까이하며 뜰에도 심고 방안에서도 가꾸던 퇴계는 마치 매화 대하기를 사람 대하듯 했다고 한다. 매선(梅仙)이라 하기도 하고 매형(梅兄)이라 부르기도 했다. 병으로 몰골이 심히 초췌할 때엔 매화 보기가 부끄러우니 다른 방으로 옮기라고도 했다. 세상을 떠날 때 퇴계의 마지막 말은 자신이 사랑하던 매화를 보며 ‘저 매화분에 물을 주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저물녘이 되자 누워 있던 자리를 정리하게 한 후, 제자들이 일으켜 앉히자 앉은 채로 숨을 거두었다. 1570년 음력 12월, 향년 70세. 바깥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죽기 전 퇴계가 손수 지어놓은 묘비명 끝 구절은 다음과 같은 글이었다. 근심 속에 낙이 있었고, 즐거움 속에 근심이 있었네(憂中有樂 樂中有憂) 조화를 좇아 사라짐이여, 다시 무엇을 구하리오(乘化歸盡 復何求兮) 이보다 더 아름답고 완벽한 종결이 있을까. 강선대 위 초막으로 돌아온 두향은 이듬해 봄 거문고와 서책 등을 모두 태운 후 스스로 목숨을 끊어 퇴계의 뒤를 따랐다. 자료에 따라서는 강물에 뛰어들었다고도 하고 부자차를 끓여 마시고 죽었다고도 하는데, 증거는 없지만 아마도 후자가 아닐까 싶다. 깔끔한 성품의 두향이 강물에 빠진 시신을 수습하는 폐를 남에게 끼치고 싶진 않았으리라. 유언은 그녀가 생전 퇴계와 노닐었던 강선대 아래에 묻어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무덤은 전 충주호가 생겨나면서 수몰을 피해 200m쯤 위로 묘가 옮겨졌다. 두향이 죽은 뒤 퇴계의 제자인 이산해가 해마다 제사를 지내주었고 한다. 지금도 퇴계의 후손들과 유학자들은 퇴계의 제례를 지내고 나면 충북 단양의 강선대로 와 두향의 묘를 참배한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두향을 향한 퇴계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그의 시 한 편을 읽는 것으로 퇴계와 두향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끝내기로 하자. 前身應是明月 내 전생은 응당 밝은 달이었으리 幾生修到梅花 몇 생애나 더 닦아야 매화가 될까. 글·사진 이광식 통신원 joand999@naver.com
  • “現지지율 중요치 않아… ‘文선배’와 경쟁”

    “現지지율 중요치 않아… ‘文선배’와 경쟁”

    “20세기 리더십 끝내야 할 때, 민주당 적자… 제3지대 관심없다” 안희정 충남지사가 22일 ‘친노’(친노무현) 출신 문재인 전 대표와의 더불어민주당 내 대선 경선 경쟁에 대해 “한집안의 오랜 선배”라면서도 “소신을 말씀드리고 당원과 국민 여러분의 판단을 기다리는 것이 정치인의 숙명”이라고 말했다. 현재 지지율이 문 전 대표에게 한참 뒤진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배구 여제’ 김연경을 거론하며 “(국민 다수가) 한국 배구계가 배출한 걸출한 선수인 김연경에 대해 잘 몰랐지만, (리우)올림픽에서 2~3경기를 보고서 국민적 스타가 됐다. 대선 등 모든 선거 공간은 그렇게 새로운 포부를 가진 정치인이 국민께 선보이는 자리”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안 지사는 이날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중견 언론인 모임 관훈클럽의 지방자치단체장 초청 토론회에서 ‘문재인의 페이스메이커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문 전 대표 등 선배들이 젊은 후배와 경쟁할 수 있어 영광이라고 치켜세웠으니 제가 용기를 내고 최선을 다해 임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그동안 김대중·노무현 정신을 구현할 적자(嫡子)임을 내세워 온 안 지사는 “민주당의 후손으로서 김대중, 노무현의 그 미완의 역사를 뛰어넘을 것이고 대한민국의 후손으로서 이승만, 박정희의 20세기 리더십을 극복해 새로운 21세기 대한민국을 열겠다”고 강조했다. 북핵 등 대북정책을 언급하는 대목에서는 “정권이 바뀌더라도 외교 정책은 일관적이어야 한다”며 “그동안 교류와 평화의 대북정책을 걸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현실정치는 ‘종북·좌빨’이라고 주장하는데 그 주장을 거둬주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안 지사는 친박(친박근혜)과 친문(친문재인)을 제외한 세력들이 연대해 단일 대선 후보를 만들자는 ‘제3지대론’이 언급되는 데 대해 “(제3지대에 들어갈) 그럴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충청 대망론’에 대해서는 “도지사 선거 당시 첫 공약이 김종필(JP) 총재의 비애와 좌절의 역사를 극복해 영호남 지역주의를 뛰어넘어 대한민국을 이끄는 지도자로 성장하겠다는 거였다”면서 “영남이 뭉치니 호남이 뭉친다. (그렇다고)충청도 뭉치자고 해선 안 된다. 그게 JP 평생의 비애”라며 부정적 인식을 드러냈다. 최근 JP가 여권 유력 주자로 거론되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게 “혼신을 다해 돕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데 대해서는 “김 전 총리는 모든 분들이 올 때마다 잘되라고 이야기해 주신다”며 의미를 축소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톡쏘는사이’ 남희석, 20대 초반엔 훈남? ‘박수홍보다 어려’

    ‘톡쏘는사이’ 남희석, 20대 초반엔 훈남? ‘박수홍보다 어려’

    ‘톡쏘는사이’ 남희석, 박수홍, 김수용의 과거 모습이 공개됐다. 16일 MBC ‘톡쏘는사이’에서는 남희석, 박수홍, 김수용의 25년 전 사진이 공개돼 눈길을 끌었다. 이날 전라도, 충청도, 경상도 3팀으로 나뉜 연예인들이 각자 네티즌과 소통하며 여행을 떠났다. 충청도 팀은 남희석과 박수홍, 김수용 3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1991년 대학개그제 동기 사이로, 남희석은 “내가 3사람 중 막내다. 다들 (박)수홍이형이 제일 어린 줄 안다”며 얼굴에 크림을 바르는 등 의욕을 드러냈다. 1971년생인 남희석은 66년생 김수용과 70년생 박수홍보다 어리다. 풋풋한 세 사람의 모습에 네티즌이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남부지방·제주에 천둥·번개 동반 강한 비… “호우특보 발효 중”

    남부지방·제주에 천둥·번개 동반 강한 비… “호우특보 발효 중”

    추석연휴 넷째날, 귀경 행렬이 이어지고 있는 17일 남부지방과 제주도 일부에서 천둥과 번개, 돌풍을 동반한 시간당 30㎜의 강한 비가 예상된다. 기상청에 따르면 17일 오전 9시 현재 충청 남부와 남부지방에 호우특보가 발효돼 있고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비가 내리고 있다. 기상청은 “제14호 태풍 므란티에서 약화된 많은 수증기를 품은 저기압이 서해상에서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어 비가 예상된다”면서 “제16호 태풍 말라카스의 진로와 속도에 따라 19일까지 날씨가 유동적이어서 기상정보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현재까지 전남 나주·담양·장성·해남·영광·목포·영암·함평, 광주, 충남 부여·서천, 전북 부안·군산, 흑산도·홍도 등지에 호우경보가 발효 중이다. 충북·경북·경남·부산·울산·세종·전북·전남·제주 일부에는 호우주의보가 발효됐다. 이날 전국이 흐리고 비가 오다가 중부지방과 제주도는 밤에 대부분 그칠 것으로 보인다. 예상 강수량은 남부지방과 제주도에서 80∼150㎜지만, 전남·경남·제주도 산간·경북 남부 등에서 많은 곳은 200㎜ 이상 오는 곳도 있겠다. 충청도, 강원영동, 울릉도, 독도는 30∼80㎜다. 서울, 경기도, 강원영서, 북한은 5∼40㎜가 예상된다. 낮 최고기온은 20도에서 27도로 전날보다 조금 낮을 것으로 보인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전국 대부분 비·남부지방 호우특보?태풍 말라카스 영향 언제부터?

    전국 대부분 비·남부지방 호우특보?태풍 말라카스 영향 언제부터?

    추석 연휴 넷째날인 17일 전국이 흐리고 대부분 지역에서 비가 내리고 있다. 충남 남부, 전북, 남해안 일부 등 남부지방 곳곳에 호우특보가 발령 중이다. 기상청은 이날 “제14호 태풍에서 약화된 많은 수증기를 포함한 저기압이 서해상에서 동진하고 있어 오늘과 내일 사이에 일부 남부지방과 제주도에는 돌풍과 천둥, 번개를 동반한 시간당 30㎜ 이상의 강한 비가 오는 곳이 있겠다”고 예보했다. 이날부터 18일까지 예상 강수량은 남부지방, 충남남부, 제주도 80~150㎜이다. 전남, 경남, 경북 남부, 제주도 산간 등은 200㎜ 이상 예상된다. 충청 남부를 제외한 충청도(17일), 강원영동은 30∼80㎜가, 서울, 경기도(17일), 강원영서(17일)에는 5∼40㎜의 비가 올 것으로 관측된다. 비의 영향으로 기온도 전날보다 다소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날 오전 6시 현재 서울의 기온은 20.5도, 인천 20도, 강릉 19.5도, 대전 20도, 광주 19.2도, 대구 18.3도 등을 가리켰다. 낮 최고기온은 서울 27도, 인천 27도, 강릉 24도, 대전 23도, 광주 25도, 대구 22도 등으로 전망된다. 기상청은 “당분간 제주도 해상과 남해상, 동해남부, 서해남부해상에 강한 바람과 함께 매우 높은 물결이 예상되니 귀경길 해상교통 이용객은 앞으로 발표되는 최신 기상정보를 참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제16호 태풍 말라카스는 이날 오전 3시 현재 타이완 타이베이 남동쪽 약 290km 부근 해상에 있으며 18일 늦은 오후부터 19일 제주도와 남해상에 약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기상청은 설명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17일 오후 비…태풍 ´말라카스´ 영향은?

    17일 오후 비…태풍 ´말라카스´ 영향은?

    추석 연휴 사흘째인 16일 오후 서울 등 중북부 지역은 덥지만, 충청 이남 지역엔 비가 내리고 있다. 서울과 강원 등은 동해안 고기압의 영향을 받아 서울의 경우 오후 2시 현재 기온이 29도까지 오르는 등 더운 날씨를 보이고 있다. 반면에 광주, 대전, 포항 등 남부지역은 비가 오며 기온이 다소 낮아져 선선하다. 이날 오전 5시부터 자정까지 예상 강수량은 5∼40㎜다. 제16호 태풍 말라카스의 영향으로 추석 연휴 후반부에는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비가 많이 올 것으로 보인다. 17일에는 충청도와 남부지방에 비가 오다가 낮에 전국으로 확산해 서울·경기는 늦은 오후에, 강원 영서는 밤에 그칠 것으로 기상청은 예보했다. 이 지역 예상 강수량은 5∼40㎜다. 말라카스는 16일 오전 9시 현재 타이완 타이베이 남남동쪽 640㎞ 해상을 지났다. 이후 타이완 동쪽 해상을 지나며 북동으로 방향을 바꿔 19일 오전 9시에는 서귀포 남남서쪽 530㎞ 해상으로 다가올 것으로 전망된다. 남부지방과 제주도는 19일까지, 동해안은 18∼19일에 많은 비가 예상된다. 특히 제주도 산간과 남해안, 지리산 부근에는 시간당 30㎜ 이상 폭우가 쏟아질 것으로 보인다. 17일은 아침 최저기온이 16∼21도, 낮 최고 기온은 21∼26도로 전국이 다소 선선할 것으로 보인다. 바다의 물결은 제주도 남쪽 먼바다에서 2.0∼4.0m로 매우 높게 일고 그 밖의 해상에서도 0.5∼3.0m에 달한다. 서해상과 남해상에는 돌풍과 함께 천둥 번개가 치는 곳이 있어 항해나 조업하려는 선박은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20일까지 천문조로 제주도와 남해안에서 너울에 의해 높은 파도가 방파제나 해안도로를 넘어올 수 있다고 기상청은 주의를 당부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오늘날씨] 태풍 ‘말라카스’ 간접 영향…남부지방부터 비 소식

    [오늘날씨] 태풍 ‘말라카스’ 간접 영향…남부지방부터 비 소식

    금요일이자 추석 연휴 셋째 날인 16일은 북상 중인 제16호 태풍 ‘말라카스’의 간접 영향으로 남부지방부터 비 소식이 있을 전망이다. 비는 남부지방에서 시작돼 오후에 충청도와 제주도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강수확률은 60∼80%, 예상 강수량은 5∼40㎜다. 다만 서울·경기도와 강원도는 동해 상 고기압 가장자리에 들어 구름이 많을 것으로 예상한다. 아침까지 서해안과 남해안, 일부 내륙을 중심으로 안개가 짙게 끼어 교통안전에 유의해야 한다. 이날 오전 6시 현재 전국 주요 지역의 수은주는 서울 20.7도, 인천 21.6도, 수원 19.5도, 춘천 19.3도, 강릉 20.8도, 청주 20.4도, 대전 20.8도, 전주 21.5도, 광주 21.8도, 제주 23.3도, 대구 21.4도, 부산 22.5도, 울산 20.8도, 창원 22.1도 등을 가리키고 있다. 낮 최고기온은 23∼29도로 전날보다 낮으리라고 기상청은 내다봤다. 이날 미세먼지 농도는 전국 모든 권역이 ‘좋음’ 또는 ‘보통’ 수준, 오존 농도도 전국이 ‘보통’ 수준일 것으로 국립환경과학원은 예보했다. 다만 전북은 아침까지 대기 정체 때문에 미세먼지 농도가 일시적으로 ‘나쁨’ 수준을 보일 수도 있다. 바다의 물결은 모든 해상에서 0.5∼2.5m로 일겠다. 서해 상과 동해 상은 안개가 끼는 곳이 있어 항해·조업하는 선박은 조심해야 한다. 기상청은 이번 추석 연휴 기간이 바닷물의 높이가 높은 기간이므로 저지대에서는 밀물 때 침수 피해를 보지 않도록 유의하라고 당부했다. 이날 오전 5시 31분쯤 경북 경주시 남남서쪽 7㎞ 지점에 리히터 규모 2.2 지진이 발생했다. 이 지진은 이달 12일 경주시 남남서쪽 8㎞ 지점에서 일어난 규모 5.8 지진의 329번째 여진으로, 별다른 피해를 주지는 않으리라고 기상청은 판단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순재 “조건 없는 순수한 첫사랑 같은 작품… 느껴 보세요”

    이순재 “조건 없는 순수한 첫사랑 같은 작품… 느껴 보세요”

    친한 사이인 손숙과 처음 부부로 호흡 강화도 사투리 배우기 위해 현지 찾기도 구태환 연출 “작품·대중성 함께 보여줄 것” “어제의 저와 오늘의 제가 다르듯 2년 전의 저와 지금의 저는 당연히 달라졌겠죠. 달라진 만큼 같은 배역을 하더라도 다른 면모가 나오지 않을까요. 지난 공연에서 아쉬웠던 점이나 부족했던 부분들도 더 잘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니 색다른 모습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배우 이순재(81)가 연극 ‘사랑별곡’의 박씨 역으로 다시 관객들을 찾아온다. 2014년 공연에서 한편의 수필 같은 잔잔한 감동을 전한 지 2년 만이다. 그는 박씨 역에 대해 “젊은 시절 내내 아내 속을 무던히도 썩인 전형적인 한국 남자로, 사랑을 표현할 줄 모르는 무뚝뚝한 남편”이라고 소개했다. ‘사랑별곡’은 강화도의 한 시골 장터를 배경으로 우리네 삶의 진솔한 면을 애틋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장터 골목에 검은 우산 하나를 세워 놓고 나물을 파는 순자와 그의 남편 박씨, 순자가 한평생 가슴에 묻고 살아 온 김씨 이야기를 통해 미처 다하지 못한 말과 마음 등을 아름다운 언어로 완성도 높게 빚어 냈다. 2010년 ‘마누래 꽃동산’이라는 제목으로 초연됐고 2014년 지금의 제목으로 바뀌어 무대에 올랐다. “‘사랑별곡’은 연극의 순수성을 간직한 작품입니다. 조건 없는 순수한 첫사랑 같은 느낌이랄까요. 가장 소소하고 평범할 수 있는 이야기를 시적 정서와 문학적 언어로 아름답게 펼쳐 냅니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라 관객들의 공감을 많이 얻을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순재는 박씨를 좀더 심도 있게 표현하기 위해 공을 들였다. 외형적인 면이 강조됐던 지난 공연과 달리 이번엔 심리적인 부분을 깊이 있게 파고들었다. 그는 “박씨가 한 사건으로 인해 심리적 변화를 크게 겪게 되는데 그 감정을 오롯이 전해드릴 수 있도록 주력했다”고 했다. 구태환 연출을 비롯해 배우들은 작품 배경인 강화도 사투리를 배우기 위해 직접 현지를 찾기도 했다. 독특한 사투리가 자아내는 감동을 생생하게 관객들에게 전하기 위해서다. “강화도 사투리가 다소 생소해 공연을 준비하면서 자연스럽게 강화도를 찾게 됐습니다. 강화도 사투리는 자세히 들어보면 이북, 경상도, 충청도 등 다양한 지역의 말이 섞여 있어요. 연기할 땐 내가 원래 이 말을 쓰는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에 평소 내 말투라고 여기고 익숙해지려 했고, 억양이나 단어를 최대한 자연스럽게 구사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한평생 남편과 자식을 위해 희생한 어머니인 동시에 죽는 순간까지도 첫사랑 김씨를 잊지 못하는 순자 역엔 손숙이 캐스팅됐다. “아주 친한 사이인데 배우로서 부부는 이번에 처음 호흡을 맞춥니다. 실제 부부 같은 모습을 보여 드리기 위해 표현 방법 하나하나를 서로 상의했고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이번엔 지난 공연에서 볼 수 없었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장면도 추가됐다. “작품을 더욱 아련하게 만들고 관객들이 여운을 깊이 간직할 수 있게 하기 위해 구 연출이 신경을 많이 썼어요. 자녀들이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꼭 보셨으면 합니다. 조금은 투박하지만 진심으로 자식들을 애지중지 키워 온 부모의 깊은 속내를 깨달을 수 있을 겁니다.” 구 연출은 “아름다운 언어와 가공되지 않은 삶 자체가 날것으로 무대에 오른다”며 “작품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작품이 어떤 것인지 보여 줄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달 4일부터 10월 1일까지, 서울 중구 이해랑예술극장, 전석 6만원. (02)744-4331.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폭염특보 대부분 해제…25일만에 반가운 소식 “곳곳 비”

    폭염특보 대부분 해제…25일만에 반가운 소식 “곳곳 비”

    연일 계속됐던 ‘찜통더위’가 드디어 누그러진다. 기상청은 25일 오후 6시를 기해 전남 남부와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 폭염특보를 모두 해제한다고 밝혔다. 대구,광주,대전,경남,충북 등에 내려졌던 폭염경보와 세종,부산,인천,서울,경기도 등에 내려져 있던 폭염주의보가 해제된다. 서울의 경우 지난 7월 31일에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이후 25일만의 해제다. 전남 장흥,진도,영암,완도 등은 폭염경보에서 폭염주의보로 대치된다. 기상청은 “상층의 찬 공기가 남하하고 당분간 구름이 많은 날씨를 보이면서 26일부터 전국 대부분 지역의 낮 기온이 30도 내외로 평년과 비슷한 분포를 보이겠다”고 설명했다. 곳곳에 비소식도 예고됐다. 서울과 경기도,강원도 등 중부지방은 이날 오후 부터 26일까지,남부내륙은 26일 비가 올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오후부터 26일까지 예상 강수량은 강원 영동 20∼70mm,강원영서 10∼40mm,서울,경기도 5∼20mm다.26일에는 충청도에 5∼20mm,남부내륙,경상동해안에 5∼40mm의 비가 내릴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번엔 맞을까···기상청 “26일 내일부터 폭염 완화”

    이번엔 맞을까···기상청 “26일 내일부터 폭염 완화”

    기상청이 이번에는 목요일인 25일을 마지막으로 내일인 26일 금요일부터 불볕더위가 한풀 꺾일 것으로 전망했다. 이날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 현재 기온은 서울 26.6도, 인천 27.4도, 수원 26.8도, 춘천 24.0도, 강릉 26.2도, 청주 27.3도, 대전 25.9도, 전주 26.7도, 광주 26.5도, 제주 27.6도, 대구 24.1도, 부산 27.8도, 울산 25.6도, 창원 25.3도 등이다. 낮 최고기온은 30도에서 35도로 어제와 비슷할 것으로 예보됐지만 밤부터 전국이 상층 찬 공기의 영향에 들겠다. 기상청은 “오늘 밤부터 상층의 찬 공기가 남하하고 구름이 많은 날씨를 보이는 가운데 내일(26일)부터는 낮 최고기온이 30도 내외의 분포를 보이면서 전국 대부분 지역에 발효 중인 폭염특보가 완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예보했다. 이날은 경기 북부와 강원 영서북부, 경남 동해안, 제주 산간에 대기 불안정으로 인해 오후에 소나기(강수확률 60%)가 오는 곳이 있겠다고 기상청은 내다봤다. 경기북부와 강원 영서북부에는 차차 흐려져 밤부터 비(강수확률 60~70%)가 오는 곳이 있겠고, 서울·경기도와 강원 영서에도 빗방울이 떨어지는 곳이 있을 전망이다. 소나기가 오는 곳에서는 돌풍과 함께 천둥·번개가 치는 곳도 있겠으니 시설물 관리와 안전사고에 신경 써야 한다. 예상 강수량은 강원영동 10∼50㎜,서울·경기도·강원 영서·충청도·경남동해안·제주산간·서해5도 5∼20㎜다. 바다의 물결은 남해서부 먼바다와 제주도 전해상에서 1.5∼3.0m로 높게 일겠고,그 밖의 해상에서는 0.5∼2.5m로 일 것으로 예보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김원길 바이네르 사장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김원길 바이네르 사장

    그의 웃음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언제부턴가 그 자리에 있었던 듯했다. 좌절과 시련을 이겨내면서 더 커지고 짙어진 것일까. 소박하게 꾸며진 사장실 문을 열면 ‘힘들어도 괜찮아’라고 적힌 액자가 첫눈에 들어온다. 사무실과 공장을 겸하고 있는 경기 일산 본사에서 지난 17일 만난 김원길(55) 바이네르 사장에게서 “힘들어도 괜찮다”고 스스로 되뇌며 넘어지고 일어나 달려온 40년을 들어봤다. -옷가지 몇 벌이 든 작은 가방 하나를 들고 나는 영등포역에 내렸다. 처음 밟은 서울 땅. 또래들처럼 학교에 다녔더라면 고2 새 학기의 시작에 들떠 있었을 1978년의 봄이었다. 당시 영등포는 사람과 상점, 공장, 유흥가로 지금보다 훨씬 더 번잡했다.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의 무표정한 얼굴들. 겁이 났다. ‘내가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목이 탔다. 화장실에서 벌컥벌컥 수돗물을 마시고 세수를 했다. 시간은 오후 4시. 자, 이제부터 한 집 한 집 내가 있을 곳을 찾아나서 보자. “제가 구두 만드는 기술이 있는데요, 저 좀 써 주시면 안 될까요.” 하지만 땅거미가 내리고 전등에 하나둘 불이 들어와도 나를 받아주는 곳은 나오지 않았다. 퇴짜를 맞은 집이 스무 곳 가까이 되어갈 즈음, 문래동 쪽 허름한 구둣방에서 나를 받아주었다. 월급은 없이 하숙집에서 먹여 주고 재워 주기만 하는 조건이었지만 마다할 수가 없었다. -내 솜씨를 본 구둣방 주인은 좀 놀라는 눈치였다. 열일곱 살 먹은 ‘충청도 촌놈’치고는 실력이 꽤 괜찮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곳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여름이 되자 주인이 불렀다. “장마철이라 물건이 너무 안 팔린다. 더이상 널 먹이고 재워 줄 능력이 안 된다.” 말하자면 정리해고였다. -“구둣방에서 잘렸어요.” 몇 달 동안 하숙하며 친해진 룸메이트 형에게 사정 얘기를 했다. “내가 강원도 양양 출신이어서 잘 아는데, 설악산에 가면 일자리가 있을 거야.” 귀가 번쩍 뜨인 나는 다음날 새벽같이 마장동 시외버스 터미널로 달려갔다. 그날 늦은 오후가 돼서야 도착한 설악산. 몇 달 전 영등포 역전에서처럼 상점과 산장의 문을 한 집 한 집 두드렸다. 하지만 하숙집 형의 말과 현실은 달랐다. 서울로 돌아갈 차비는커녕 김밥 하나 사먹을 돈도 없는데 서늘한 밤이 찾아왔다. 그런데 그냥 죽으란 법은 없었다. 하룻밤만 재워달라고 말할 요량으로 찾아간 산장에서 “방 청소하고 손님들 가방 들어 주면 한 달에 5만원을 주겠다”고 제안을 했다. -당시 설악산은 신혼여행이 피크였다.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짐을 들어 주자 팁이란 걸 주는데, 한 번에 2000~3000원은 기본이었다. 새로운 삶의 희망에 들뜬 신혼부부들은 일반 등산객들보다 손이 컸다. 지배인이 보는 데서 받은 팁은 도로 토해내야 했지만, 그렇지 않은 팁은 고스란히 내 주머니에 들어왔다. 팁에 맛을 들인 나는 강아지처럼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가 밖에서 발소리가 나면 누구보다 먼저 뛰어나갔다.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말을 해야 더 많은 팁을, 그리고 지배인이 안 보는 데서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노하우가 쌓여갔다. 한 달이 지나자 다락방에 몰래 감추고 벽돌로 눌러놓았던 팁이 50만원으로 불어났다. 월급의 10배였다. 그 돈을 들고 나는 미련 없이 설악산을 떠났다. -어려서부터 우리 집은 정말로 찢어지게 가난했다. 1961년 충남 당진에서 5남 2녀의 셋째로 태어났는데, 가족이 의지할 거라곤 손바닥만 한 논 몇 마지기가 전부였다. 나는 초등학교 들어갈 때부터 허약한 형을 대신해 풀 베고, 땔감 구하고, 논에서 피 뽑는 노동의 무게를 다 짊어져야 했다. 그 보상일까. 초등학교까지만 보낸 형, 누나와 달리 아버지는 나를 중학교에 넣어주셨다. 하지만 중학교 3년 동안 수시로 학업 중단의 위기가 찾아왔다. “엄마, 저…학교에서…100원만 가져오래요.” 집안 사정 뻔한데 차마 말 못하고 있다가 어렵게 입을 열면 어머니는 새벽부터 이집 저집 문을 두드리며 돈을 꾸러 다녀야 했다. “진작에 얘기했으면 좀 더 일찍 알아봤을 것 아니니.”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래 봐야 어머니의 긴긴밤 잠 못 드는 괴로움만 더 깊어졌을 거란 사실을. 풀이 죽은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물을 애써 외면하며 집을 나서곤 했는데, 나는 울지 않았다. -학교생활은 1977년 2월 중학교 졸업과 함께 마침표를 찍었다. 중학교 3년이 나에게 보장된 최후의 학업이란 걸 이미 다 알고 있었던 터라 고등학교 진학 얘기는 아버지도 나도 꺼내지 않았다. “원길이는 내 밑에서 구두 기술 배워라.” 서산 읍내에서 작은 구둣방을 하시던 작은아버지가 같이 일을 하자고 하셨다. 초등학교 때 지게를 직접 만들기도 했던 조카의 손재주를 익히 알고 있던 작은아버지였다. 하지만 ‘좁은 곳’에서 평생을 ‘족(足)쟁이’로 썩고 싶지는 않았던 나는 그 손을 뿌리치고 ‘넓은 곳’을 찾아 경기 고양군 지축면(현재의 지축동)의 분재농장에 취직을 했다. 하지만, 한 달 1만원을 받아서는 내 한 몸 먹고 자기에도 빠듯했다. 슬슬 염증이 났다. -“돈 번다고 올라가더니 사는 게 그리 만만하더냐.” 그해 9월 추석에 집에 와서 작은아버지를 다시 만났다. “욕심 부리지 말고 우리 가게로 와라. 이 기술 하나면 먹고사는 데 문제없다.” -서산 구둣방에서 처음 배운 것은 가죽과 밑창이 단단히 붙도록 망치질을 하고, 접착면에 ‘뻬빠질’(사포질)을 하는 일이었다. “역시, 원길이 손재주는 대단하구나.” 남들이 1년을 해도 떼지 못한다는 남성용 구두 제작 전 공정을 나는 5개월 만에 마쳤다. “그 재주로 시골에 있긴 아깝다. 서울 가서 서울 기술 배우거라.” 동료 아저씨들의 말이 몇 번 반복되자 마음이 흔들렸다. 작은아버지는 나의 고민을 이해해 주셨다. 그래서 작은아버지가 쥐여주신 차비를 들고 나는 1978년 그 봄에 영등포역 가는 기차를 탔던 것이다. -설악산에서 번 55만원으로 경기 성남 상대원동에 월셋집을 얻고 서울 중곡동 어린이대공원 근처 구두 공장에 취직했다. 당시 제화업계의 판도는 금강제화, 에스콰이아, 엘칸토, 케리부룩의 순이었다. 내가 들어간 곳은 케리부룩에 납품하던 참스제화였다. 본격적으로 여성용 구두 만들기를 익혔는데, 얼마 후 나는 참스제화 안에서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최고의 기술을 갖게 됐다. 그렇게 5년이 지났을 즈음 케리부룩에서 나에게 오라고 손짓을 했다. 1983년 9월 스물두 살 때였다. -‘생산라인에 있으면 신발을 20켤레 만들 수 있지만 관리자가 되면 2000켤레, 2만 켤레의 생산을 직접 관장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늘 ‘더 큰 것’, ‘더 높은 곳’에 목말라 했다. 그래서 나를 믿고 부른 케리부룩 김정현 사장님에게 ‘생산직’이 아닌 ‘관리직’에 배치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사장님은 원했지만 주변에서 말들이 나왔다. ‘생산관리를 고작 중졸 출신에게 맡기다니’와 같은 것들이었다. -그래도 나는 계속 관리직의 문들 두드렸고, 얼마 후 포장반에 배치됐다. 구두에 상표를 붙여 사각 박스에 담는 단순노동을 하는 곳이었지만, 그나마 관리직이라는 이름표를 갖고 있는 부서였다. 생산라인에 있을 때 100만원이던 월급이 포장반으로 오니 20만원으로 깎였다. 나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했는데, 그 계산은 적중했다. 몇 달 후 완제품을 최종 검사하는 검수반으로 옮겼다. ‘완벽한 제품’을 강조하며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깐깐하게 검사를 했다. 어느 날 공장 기술자 100여명이 “우리를 괴롭히는 김원길을 자르라”고 대놓고 사장님에게 요구하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 하지만 사장님은 나를 지지했다. 제품의 완성도가 높아지는데 그걸 마다할 사장이 어디 있겠나. 나는 ‘시키지 않은 짓’도 자발적으로 나서서 했다. 시장 조사였는데 금강제화, 에스콰이아, 엘칸토 등 경쟁제품 중에 잘 팔리는 건 어떤 게 있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를 분석해 리포트를 작성했다. -1989년 인천백화점에서 우리 케리부룩 매장을 퇴출시키겠다고 통보해 왔다. 내가 영업관리를 하며 어렵게 입점을 성사시킨 지 한 달여 만이었다. 월 매출이 600만원으로 다른 업체의 5분의1밖에 안 된다는 이유였다. 백화점에 시간을 한 달만 더 달라고 했다. ‘저 많은 걸 나 혼자선 절대로 못 판다. 고객의 입소문을 통해 팔리도록 만들어야 한다.’ 반값 특가 세일과 동시에 내가 백화점 매장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자, 여러분, 케리부룩 CM송 부르시면 구두를 그냥 드립니다.” 당시 ‘허리를 미끈하게 펴고~ 무릎을 쭉 뻗으면~ 케리부룩 케리부룩 예쁘게 걸어요~’라는 우리 TV CM송은 꽤나 인기가 있었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한 달 매출이 1억 1000만원으로 거의 20배가 됐다. 그걸 계기로 뉴코아, 롯데, 신세계 등 서울 시내 백화점에 속속 입점을 했고 나는 ‘영업의 달인’으로 통하게 됐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에 대한 시기와 모함도 커져 갔다. ‘사장이 되려고 한다’, ‘회삿돈을 제 맘대로 쓴다’ 악성 루머가 사내에 돌았다. 사람들에게 실망을 하고 분노를 하니 더이상은 회사에 다닐 수가 없었다. -1990년 사표를 던졌다. 언젠가는 예정됐던 일, 그게 조금 앞당겨졌다고 생각했다. 이듬해 케리부룩 퇴직금 280만원과 사장님이 별도로 챙겨주신 200만원을 밑천으로 서울 용산에 선심(구두의 앞코에 들어가는 부속) 제조회사를 차렸다. 간판은 ‘원길’로 내걸었다. 장사는 그럭저럭 됐는데 돈이 안 들어왔다. 못 받은 외상값이 2000만원이 넘어갔고, 빚이 쌓여 갔다. 답답한 마음에 전에 거래했던 롯데백화점 명동 본점의 바이어를 만났다. “아이고, 김 대리 회사 관두고 나서 케리부룩 엉망 됐어요.” 케리부룩 김 사장님에게 전화를 드렸다. “롯데백화점에 물건 한 트럭 보내주세요. 제가 팔아볼게요.” 매출의 10%가 내 몫이었다. -“사장님, 제가 직접 구두 만들어서 케리부룩 상표 붙여 팔겠습니다.” 다시 기세가 오른 나는 케리부룩에 로열티를 주고 하청공장을 통해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호사다마는 이번에도 비껴가지 않았다. 1993년 케리부룩 대표가 된 전문경영인이 케리부룩 상품권을 헐값에 불법 발행해 구속이 됐고 회사는 부도가 나고 말았다. 상품권들은 휴지조각이 됐고 나는 산더미처럼 쌓인 구두와 빚더미에 거리로 나앉을 판이 됐다. 불면의 날이 이어졌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싶은 충동이 하루에도 몇 번씩 밀려왔다. 하지만, 20대 때 연탄가스를 마시고도 씩씩하게 출근을 했던 나였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때마침 어떤 고마운 분이 급전을 융통해 줘서 최종 도산에는 이르지 않을 수 있었다. -회사 이름을 ‘안토니’로 바꾸고 그럭저럭 구두회사를 꾸려가고 있던 1994년 뜻하지 않은 전기가 찾아왔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세계 최대 구두 박람회 ‘미캄’에 갔는데 바이네르의 컴포트화가 눈에 들어왔다. 그들에게 “나와 한국 독점판매 계약을 맺자”고 했다. 당시 바이네르는 하루 1만 2000켤레를 생산하는 대형 업체였다. 한국 수출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그들을 나는 어렵사리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예상대로 국내에서 바이네르는 중년 이상의 여성들을 중심으로 날개 돋친 듯 팔렸다. 하지만, 이탈리아 현지에 주문을 넣고 제품을 받기까지 무려 석 달이나 소요되는 문제가 나타났다. 직접 생산이 절실해졌다. -“내가 한국에서 알아주는 구두 기술자다. 바이네르 상표를 붙여서 우리가 직접 만들어 팔면 안 되겠나. 바이네르의 명성에 먹칠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그들을 꼬박 6개월을 설득했다. 나의 한결같은 노력은 바이네르 회장을 감동시켰고, 결국 나는 일산의 아파트형 공장에서 하루 50켤레씩 컴포트화 생산을 시작했다. -바이네르로 가파른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는데 뜻하지 않은 악재가 터졌다. 나를 아껴주었던 이탈리아 본사 회장이 돌아가시고 그 분의 아들이 가업을 물려받았는데, 회계사 출신인 그는 우리에게 무리한 요구를 해왔다. ‘한국에서 그렇게 잘 팔리는데, 로얄티를 이 정도 밖에 안 내나.’, ‘이탈리아 본사에서 수입해 가는 물량을 더 늘려라.’ 아들의 횡포가 갈수록 심해지면서 나는 서서히 바이네르와의 결별을 준비했다. 광고도 바이네르의 비중을 줄이고 우리 자체 브랜드인 안토니에 집중했다. 그런데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로 대표되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다. 이탈리아를 비롯한 남부 유럽은 특히 충격이 컸다. 거기에서 바이네르라고 예외가 될 수 없었다. 게다가 바이네르는 당시 유럽과 홍콩 증시에 상장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투자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극심한 자금난을 겪게 됐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11년, 나는 이탈리아로 가서 아들을 만났다. “너희들 자금난이 심각하다는데, 내가 지원을 해줄 테니 바이네르 브랜드를 나에게 팔아라.” 그들은 나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현재 이탈리아에 바이네르 공장이 10군데 정도 있는데 그들이 쓰는 브랜드 상표권은 내가 갖고 있다. -바이네르 신발이 편안한 비결이 뭐냐고 많은 사람이 묻는다. 그러면 나는 “고객의 마음은 당신이 그 질문을 하는 이 순간에도 변하고 있다는 걸 명심하라”고 일러준다. 고객은 항상 더 예쁘고, 더 편안한 구두를 찾는다. 그걸 떠올리면 절대로 연구개발(R&D)을 게을리하거나, 맘 놓고 쉴 수가 없다. 고객은 혹시 한 번은 몰라도 절대로 두 번은 봐주지 않는다는 걸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김태균 경제정책부장 windsea@seoul.co.kr ■ 김원길 바이네르 사장 발이 편안한 신발을 뜻하는 ‘컴포트화’를 통해 연간 500억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업계 3위 바이네르의 최고경영자(CEO)다.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구두 분야의 장인(匠人)으로, 특히 ‘중졸 신화’의 주인공으로 유명하다. 바이네르는 백화점을 중심으로 전국 60여곳에 매장을 두고 있다. 가난으로 배움을 다하지 못했던 그는 다양한 봉사활동을 통해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안토니 장학회’를 운영하고 있으며 골프 꿈나무에게 연간 2억원 이상을 지원하고 있다. 해마다 5월이면 수도권의 독거노인을 초청해 효도잔치를 열고 있다. 박애원, 벧엘의집 등 수많은 복지시설에 물품을 보내고 있다. 1억원 이상 고액기부자 클럽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기도 하다. 직원들에게 업계 최고의 급여를 보장하고 이탈리아 밀라노, 미국 라스베이거스 등 다양한 해외 연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1961년 충남 당진 출생 ▲당진 도성초등학교, 미호중학교 ▲1984년 전국기능경기대회 제화부문 동상 수상 ▲1994년 안토니 설립 ▲2008년 국무총리 표창, 2012년 자랑스러운 중소기업인상, 2012년 철탑산업훈장, 2013년 아름다운 납세자상 수상
  • “군수가 청년시절 창 들고 사냥했던…” 수감 중인 군수 찬양 ‘용비어천가’ 안내판

    “군수가 청년시절 창 들고 사냥했던…” 수감 중인 군수 찬양 ‘용비어천가’ 안내판

    충남 괴산군청이 ‘군수가 청년 시절 창을 들고 사냥하러 다녔던 곳’이라는 황당한 내용의 관광 안내판을 설치해 지자체장 미화 논란에 휩싸였다. 임각수 괴산군수는 억대 뇌물을 받은 혐의로 수감 중이다. 김모(52)씨는 며칠전 모처럼 가족들과 충북 괴산군의 산막이 옛길 나들이에 나섰다가 황당한 안내판을 목격하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2015 관광 100선’으로 꼽힌 지역답게 산허리를 따라 걷는 길과 낭떠러지 옆으로 펼쳐지는 괴산호는 장관이었다. 힐링을 위한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 그는 그러나 30여분 가량 걷다가 만난 ‘호랑이 굴’ 관광 안내판을 보고 말문이 막혔다. ‘겨울이면 눈 속에 호랑이 발자국이 남겨져 있어 1968년까지 호랑이가 드나들며 살았던 굴’이라고 소개하더니 느닷 없이 ‘산막이 옛길을 만든 임각수 군수가 청년 시절 창을 들고 사냥하러 다녔던 곳’이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국민의 혈세로 조성한 관광지를 군수가 만들었다고 표현한 것 자체가 몰상식한 발상”이라며 “이런 논리라면 전국의 도로와 시설물 모두 시장, 군수들이 만든 게 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또 “임 군수가 이곳에서 호랑이 사냥을 했다는 것인지, 다른 동물을 사냥했다는 의미인지도 불분명하다”며 “설령 임 군수가 이곳에서 사냥을 했더라도 많은 사람이 찾는 곳에 군수의 사적인 사연을 소개한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 안내판을 읽다 보면 용비어천가 수준을 넘어 군수를 우상화한 느낌마저 들어 불쾌하다”고 덧붙였다. 한 괴산 주민도 “산막이 옛길 조성이 임 군수의 치적이긴 하지만, 임 군수가 이곳을 만들었다거나 호랑이 굴에서 사냥했다는 안내판까지 세운 것은 도를 넘은 것”이라며 “이런 안내판은 관광객 유치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괴산군은 이 안내판을 올해 초 제작해 설치했다. 당시 한 직원이 임 군수의 자서전에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문구를 만들었고, 임 군수의 결재까지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괴산군 관계자는 “산막이 옛길을 추진한 임 군수와 관련된 사연을 소개한 것뿐”이라며 “군수를 미화하거나 공적을 알리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말했다. 칠성면 사은리 사오랑 마을에서 산막이 마을로 이어진 산막이 옛길은 2008년부터 권역별 농촌 마을종합개발사업의 하나로 추진됐으나 당시에는 논란을 빚기도 했다. 이곳이 임 군수의 고향이란 점에서 일부에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그러나 산막이 옛길은 둘레길 열풍에 힘입어 2011년 개장과 함께 대박을 터트리면서 잡음이 수그러들었다. 개장 첫해에 88만1천명이 몰린 데 이어 이듬해에는 방문객이 130만2천명을 기록했으며 최근에는 연간 150만명 이상이 찾는 충북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발전했다. 괴산군은 산막이 옛길 관광 활성화를 위해 인근 충청도 양반길를 잇는 연하협 구름다리(167m)가 준공할 예정이다. 이 다리가 개통되면 산막이 옛길을 따라 충청도 양반길을 거쳐 속리산국립공원 내 갈은구곡까지 갈 수 있다. 임 군수는 행정자치부 등에서 공직생활을 하다 2006년 괴산군수에 당선된 이래 무소속으로 내리 3선을 하면서 전국 첫 무소속 3선 군수라는 진기록을 세웠으나 현재는 수감중이다. 2014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외식업체로부터 1억원의 뇌물을 받는 혐의로 지난 5월 항소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 받고 법정 구속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인구로 보면 이제 영충호로 불러야…지방분권 땐 제왕적 대통령 사라져”

    “인구로 보면 이제 영충호로 불러야…지방분권 땐 제왕적 대통령 사라져”

    “앞으로 지방을 말할 때 ‘영충호’(영남·충청·호남의 줄임말)’라고 불러 주세요.” 이시종(69) 충북도지사는 지난 7월 21일 오후 충북도청 집무실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2013년 5월 이후 충청도의 인구가 호남 인구를 추월한 만큼 충청도의 위상과 목소리가 커질 때가 됐다”면서 ‘영충호’란 신조어까지 내놓으며 이렇게 강조했다. 영호남 패권주의를 청산해 사회적 통합을 이루는 데 충청도가 기여하겠다는 이야기다. 충주 출신이지만 청주고를 나온 이 도지사는 고등학교를 4년 다녔다. 15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탄광 등에서 학비를 벌어서 다녀야 했던 탓이다.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부농이 되겠다는 꿈을 키우던 차에 대학생 친구에게 자극받아 겨우 8개월인가 공부해 서울대 정치학과에 입학했다. 행정고시 10기로 관료가 된 그는 3선 충주시장 시절에 총선에 나와 재선 국회의원, 2010년에 충북도지사가 됐다. 7번 선거에서 전승했다. 해외 출장 시 일반석만 고집해 ‘서민 지사’로 불린다. 밤 10시에도 충북도 국장들을 불러내는 ‘일중독자’이기도 하다. 이 도지사는 “태양광과 바이오, 화장품산업 등으로 2020년까지 국내총생산(GDP) 대비 충북의 경제 비중을 4%대로 끌어올리겠다”고 장담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행시 10회 동기인 김관용 경북도지사 등 대부분 광역단체장이 ‘자치분권형 개헌’을 요구하고 있다. -당연히 해야 한다. 2014년 제가 시·도지사협의회장을 할 때 협의회 사무국에서 지방분권형 개헌안을 만들었다. ‘중앙의 아저씨’들은 대통령이 권한을 더 갖느냐, 내각으로 가느냐, 국회로 가느냐를 개헌이라고 한다. 중앙부처 권력 배분을 떠든다. 그러나 중앙의 권력을 지방으로 대폭 이양하면 대통령제든 내각제든 큰 의미가 없다.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말이 사라진다는 건가. -제왕적 대통령 같은 우려는 안 나온다. 우리는 대통령제가 많이 익숙한 나라다. 괜히 내각제를 만들어 혼란을 자초할 이유가 없다. 대통령에게 권한이 집중되니 사건이 터지면 모두 대통령을 욕하고 국회를 욕하고 혼란이 온다. 대통령의 권한을 지방에 넘겨주면 도지사나 시장·군수, 읍·면·동장이 책임지면서 가면 된다. →청와대나 국회 등은 ‘지자체와 지방의회가 수준이 떨어져서 나라가 잘 안된다’고도 한다. -지방정부와 지방의회를 비하하는 목소리는 중앙집권적 사고방식 탓이다. 자치단체장의 권한을 중앙이 재정으로 계속 제약하고 통제하기 때문이다. 가끔 내가 충북도지사가 아니라 ‘충북행정청장’ 같다. 경찰청의 충북경찰청장처럼. →‘충북행정청장’ 같은 느낌이라니. -1995년 지방자치를 시작하고 20년간 지방에 엄청난 변화가 왔다. 단체장과 지방의원은 나를 임명해 준 국민을 바라보며 노력할 수밖에 없다. 중앙부처 공무원보다 사명 의식이 더 강하다. 우리는 늘 인근 지자체와 비교가 된다. 행정부의 선거직은 대통령 하나뿐 아닌가. 장차관은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에게만 책임지면 된다. 대통령에게 책임지는 게 뭔가. 의전 잘하고 눈치 잘 보고 그러는 거 아니냐. →행정자치부의 ‘지방재정 개편안’에 대해 쓴소리를 하셨더라. -더불어민주당이 이재명 경기 성남시장 등 수도권 편을 들고 있어 제가 제동을 걸었다. 더민주는 개편안이 통과되도록 지원해야 한다. 정부 개편안이 통과되면 지방교부세 2500억원이 비수도권으로 간다. 아니면 이 돈이 경기도로 간다. 정부의 교부세는 일정한데, 경기도가 그 교부세를 가져가는 것은 맞지 않는다. 경기도 국회의원·자치단체장들은 이번 개편안이 일방적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시·도지사들의 오랜 건의 사항이다. →행시 후배인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이 “민중은 개돼지”라고 말했다. -그런 시각을 가진 공무원은 그 사람 말고는 없을 것이다. 또 그렇게 표현을 하는 공무원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해찬 세종시 국회의원이 KTX 세종역 건설을 계속 주장하고 있다. -오송역은 충북 청주에 있지만 세종시를 위해 만든 역이다. 세종시의 관문역이 바로 오송역이다. 세종역은 오송역 건립 취지에 맞지 않는다. 오송역을 활성화해 세종시 주민들이 불편하지 않게 하는 게 가장 좋다. →친한 사이로 알려진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가 최근 정계 복귀를 선언했다. -훌륭한 분들이 나라를 위해 잘 좀 해야 한다. 가능한 빨리 복귀하는 것이 좋겠다. →손 전 도지사가 이번 총선에서 역할을 안 했다. -그래도 기회가 그 양반에게 한 번쯤 더 오지 않을까. →손 전 도지사가 ‘저녁이 있는 삶’을 공약했는데, 일요일에도 국장, 과장들을 도청으로 호출하는 일이 많다고 들었다. -하위직 공무원은 저녁이 있는 삶을 살아야겠지만, 책임이 있는 국장과 과장들은 일요일에도 일해야 한다. 누군가는 어느 정도 희생을 해야 한다. 도청 직원 모두가 놀면 누가 충북도를 이끌어 가겠나. →충주시장을 하다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고, 국회의원을 하다가 도지사 선거에 출마했다. -충주시장 3선을 하면서 힘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 국회의원은 전적으로 내 의지로 나갔다. 당시 행시 동기이자 3선 구미시장이던 김관용에게 함께 출마하자고 했더니 안 하더라. 총선 출마 공약이 서울에서 충주를 거쳐 문경까지 가는 전철을 만들자는 것과 충주와 청주 사이의 충청내륙고속도로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2010년 도지사 출마는 그때 우리 당에 선거에 나갈 사람이 마땅하지 않았는데 내가 도당위원장이었다. 지방행정 경험이 있어 떠밀려서 나왔다. →그 공약은 어떻게 됐나. -충청내륙고속도로는 올해 하반기에 착공한다. 서울~충주~문경 전철은 서울~광주~이천~장호원~감곡~충주~연풍~문경이 연결되는 기차인데 2015년에 착공했다. →국회의원 공약을 도지사가 돼서 해결한 건가. -국회의원 시절부터 계속해서 절차를 밟아 온 덕분이다. 시작을 했으니 힘을 더 보태 최대한 빨리하려고 한다. 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가 공식석상에서 오제세 의원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계수조정소위에 넣겠다고 했다. 청주가 지역구인 4선 의원이다. 예산 확보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6년째 도지사로 일하면서 이룬 성과는 무엇인가. -바이오, 화장품·뷰티, 유기농, 태양광, 항공산업, 정보통신기술(ICT) 등 미래산업들을 6대 신성장동력으로 정해 성과를 거두고 있다. 지난해 개최한 유기농엑스포로 농산물 수출이 지난해 5억 5000만 달러에서 올해 6억 5000만 달러로 늘어날 것이다. 또 국내 생산 태양광모듈의 60%를 충북 진천 한화공장에서 만들고 있다. 2013년 화장품·뷰티세계박람회로 한국의 화장품 수출이 50% 넘게 증가했다. 지역내총생산(GRDP) 증가율, 수출 증가율, 제조업체 수 증가율 등 각 분야의 경제지표 증가율이 17개 시·도 중에서 1·2위를 기록하고 있다. →한화가 왜 천안이 아닌 진천에 태양광모듈 공장을 세웠나. -충남 당진과 경기 평택, 말레이시아 등과 우리가 경합했는데, 세계 최대 규모의 모듈 공장을 유치했다. 250만명 대구시민이 1년 내내 쓸 전기 생산에 필요한 모듈을 생산한다. 덕분에 일자리가 3000개가 늘었다. →차기 유력 대통령 후보로 손꼽히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이원종 청와대 비서실장, 정진석 여당 원내대표 등 ‘충청인 전성시대’ 같다. -요즘 ‘영충호’라는 용어를 쓰고 그렇게 불러 달라고 한다. 영남과 호남만 있고 충청이 빠져 있어서 우리가 조정자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다. 2013년 5월부터 충청 인구가 호남 인구보다 408명이 많아져 이젠 15만명 이상 많다. →제1회 세계무예마스터십대회가 9월에 청주에서 열린다. -이 대회는 충주에서 열리는 무술축제와 완전히 다른 행사다. 충주무술축제는 전통무예단체가 시연한다. 무예마스터십은 금·은·동메달을 놓고 무예 지존을 가리는 대회다. 75개 국가에서 태권도, 삼보, 쿠라시, 킥복싱, 무에타이, 우슈 등 17개 종목에 2000명 이상이 참여한다. 올림픽이 서양 스포츠 중심이라면, 무예마스터십은 올림픽에 빠져 있는 비서양권 전통무예 가운데 국제연맹이 결성된 무예들을 모두 모아 치러지는 행사다. →2000명 숙소 등은 완비됐나. -연수원 시설 등을 활용하기로 했다. →국제무예마스터십은 앞으로 계속 개최되나. -올해 청주에서 1회를 개최하고 2~3년 있다가 충주에서 2회 대회를 열고서 3회부터는 다른 나라가 유치하게 할 예정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처럼 앞으로 세계무예마스터십을 2~3년마다 정기적으로 개최할 ‘세계마스터십위원회’(WMC)를 이번 무예마스터십 기간에 설립할 계획이다. 아테네가 올림픽 1회 개최지인 것처럼 청주가 세계무예의 성지로 기록될 것이다. →요즘 ‘흙수저’, ‘헬조선’ 같은 신조어가 생겼다. 젊은이들에게 조언을 해 달라. -고등학교 시절 힘들다는 생각을 많이 했고 좌절도 많이 느꼈는데, 내가 살길은 더 열심히 하는 것뿐이라는 생각을 했다. 상황이 어려워도 잘 살아 보겠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대담 문소영 사회2부장 정리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현대판 서울’ 충주… 고구려·백제·신라 삶이 공존했다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현대판 서울’ 충주… 고구려·백제·신라 삶이 공존했다

    중원문화권이란 충주를 중심으로 한 충청북도 일대를 가리킨다. 한반도 중심부의 내륙인 이 지역은 고구려·신라·백제가 각축을 벌인 전략적 요충지였다. 그러니 삼국의 문화유산이 두루 남아 있는 것은 당연하다. 삼국의 문화가 남아 있다는 것은 이주한 삼국의 주민들이 자신들이 가져온 문화를 유지한 채 정주(定住)하며 삶을 이어 갔다는 뜻이기도 하다. ●칠금동에서 4세기 백제 철 생산 유적 확인 충주 칠금동에서는 최근 4세기 백제의 철 생산 유적이 확인됐다. 악성(樂聖) 우륵의 전설이 담긴 탄금대 남쪽에서 전형적인 백제의 원형 제련로를 비롯해 불순물을 제거하는 정련로, 철광석 파쇄장 같은 체계적인 철 생산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유구를 찾아낸 것이다. 충주는 진천과 더불어 백제의 철 생산 기지였다. 하지만 백제는 이후 중원에서 지배력을 잃는다. 한성백제를 지금의 공주인 웅진으로 천도하게 만든 고구려는 한강 상류의 충주 일대까지 점령한다. 고구려는 한동안 이 지역의 지배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때 적지 않은 고구려 사람들이 충주 지역으로 이주한 듯하다. 고구려 조각 양식을 가진 봉황리 햇골산 마애불상군(群)의 존재는 고구려계 주민들이 신라 지배 이후에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살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고구려 양식 봉황리 마애불… 주민들 거주 보여줘 봉황리 마애불은 1978년 정영호 교수가 단국대 조사단을 이끌고 처음 조사해 학계에 보고할 때부터 ‘600년 무렵 삼국시대 것’으로 추정했다. 그는 ‘각 보살상의 갸름한 상호(相好)는 고구려 불상의 상호와 유사한 양식이며, 위가 넓고 아래가 좁은 형태의 대좌는 고구려 금동불 대화의 형태를 그대로 옮긴 것’이라고 했다. 충주에서 발견된 ‘고구려 양식 마애불’은 학계의 비상한 관심의 대상이 됐다. 간다라 미술의 탄생 과정을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은 인도 서북부까지 진군하고 곧 물러났지만, 따라왔던 그리스계 주민들이 남아 살면서 그리스 문화를 이식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햇골산 마애불의 존재도 장수왕의 군대는 ‘충주 고구려비’를 남기고 물러갔지만, 고구려 이주민은 마애불을 조성해 신앙생활을 하면서 그대로 눌러살았음을 짐작하게 한다. 고구려계 주민은 충주는 물론 소백산맥의 죽령 남쪽 오늘날의 영주 일대까지 넓게 퍼져 살았던 것 같다. 부석사 창건 설화에는 의상대사를 방해하는 ‘500명 남짓한 도둑의 무리’가 등장하는데, 학계는 이들을 고구려 유민으로 본다. 정확히는 이 지역에 눌러살던 고구려계 주민들이었을 것이다. 부석사 창건은 676년이다. 6세기 말 조성된 고구려계 벽화고분이 풍기에서 부석사로 가는 중간인 순흥 읍내리에서 발견된 것도 같은 이유다. ●신라 ‘제2의 수도’ 국원소경 설치·가야 주민도 이주 신라가 충주 일대의 지배를 공고히 한 것은 진흥왕 시절이다. 진흥왕은 557년 이곳에 국원소경(國原小京)을 설치한다. 훗날 전국에 모두 5개의 소경을 설치한다지만 국원소경은 경주에 이은 사실상의 제2수도였다. 진흥왕은 국원소경에 경주의 귀족과 부호의 자제를 옮겨 살게 했다. 귀족과 부호가 옮겨 살려면 이들에 예속된 적지 않은 사람들도 따라가야 했다. 이주민의 숫자는 적지 않았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신라가 당시 복속한 가야의 주민들도 충주로 옮겨 살게 했다는 것이다. 가야금으로 대가야연맹의 통합을 이룬 우륵도 이주민 대열에 끼어 있었다. 충주에서 우륵의 존재는 지금도 절대적이다. 탄금대(彈琴臺)는 글자 그대로 우륵이 가야금을 타던 곳이다. 호암동에는 우륵당이 지어져 충주 시립 우륵국악단이 그의 예술 정신을 기리고 있다. 충주에선 해마다 9월 우륵문화제도 열린다. 이렇게 보면 삼국시대 충주는 고구려·백제·신라는 물론 가야 주민들까지 한데 모여 살던 독특한 분위기의 도시였을 것이다. 한반도 전체에서 사람들이 대거 한 도시로 몰려든 것은 20세기 서울 이전에는 충주가 유일하지 않았을까 싶다. 충주는 지금 충청도 땅이지만 충주 사람의 조상은 고구려 출신일 수도, 백제 출신일 수도, 신라 출신일 수도, 가야 출신일 수도 있다니 재미있는 일이다. dcsuh@seoul.co.kr
  • 미드에서나 보던 ‘타운하우스’, 국내서도 인기 몰이

    국내에서 아파트를 대체할 주거형태로 타운하우스가 주목을 끌고 있다. 실제로 자연환경과 도심접근성이 모두 뛰어난 경기도, 충청도 등 수도권 인근에 타운하우스가 속속 들어서고 있다. 1~2층 단독주택으로 구성되는 ‘타운하우스(Town House)’는 땅이 넓어 굳이 고층 아파트를 지을 필요가 없는 미국이나 캐나다 등지에서 발달한 주거형태다. 우리가 흔히 미국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접하는 개별 차고와 정원, 테라스를 갖춘 단독주택이 바로 타운하우스인 것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타운하우스가 새로운 주거 형태로 각광 받고 있는 데는 아파트를 비롯한 공동주거공간이라면 피하기 어려운 층간소음이나 사생활 보호 문제, 답답한 주거환경 등을 해소하고 가족들을 위한 맞춤형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특히 타운하우스는 아파트와 단독주택의 장점만을 결합한 주거 형태로, 개별적인 주거공간과 프라이버시를 확보하면서도 전기, 수도, 가스 등의 인프라를 공동으로 관리하고 소규모의 커뮤니티 공간을 제공하는 등의 편의도 함께 누릴 수 있어 더욱 인기를 끌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이점을 앞세워 타운하우스의 인기가 높아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쾌적한 자연환경, 교통, 생활인프라가 잘 갖추어진 지역에는 어김없이 타운하우스 단지가 들어서는 모습이다. 유럽형 타운하우스를 표방하는 캐슬카운티 2차가 조성되는 천안 아산 배방지구 역시 교통, 편의시설, 교육, 자연 등 외부환경을 고루 갖춘 최적의 타운하우스 입지로 평가 받는 지역이다. 천안 아산 캐슬카운티 2차 분양 관계자는 “캐슬카운티가 위치한 천안아산의 경우 KTX, 장항선, 수도권 전철 환승체계를 갖추었고 북천안 IC개통으로 인해 서울에 1시간대로 진입할 수 있는 우수한 교통 환경을 갖추고 있다. 또한 신도시 내 다양한 생활문화 인프라와 5분 거리에 위치한 초중고 등 교육환경 또한 우수하다. 여기에 근린공원, 호수 등이 위치해 청정자연을 누릴 수 있다는 것도 특징”이라고 전했다. 천안 아산 캐슬카운티 2차는 가든형, 필로티형 2가지 구조로 구성해 입주자의 거주 패턴에 따라 원하는 형태를 선택할 수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新전원일기] 하늘과의 동업 농사는 기다림…바보처럼 지킨 못난이 토마토

    [新전원일기] 하늘과의 동업 농사는 기다림…바보처럼 지킨 못난이 토마토

    소 한 마리로 시작한 낙농업 10년… 우유 판로 막히면서 하우스 농사로… 병충해 시달리면서도 유기농법 25년 안전 먹거리·윤리적 농법 의식 확산… 못난이 토마토 이젠 없어서 못 팔아… 착즙 개발해 年 수익 1억 5000만원 남편은 뒤늦게 방송대서 농학 공부… 아내는 최근 식품가공기능사 합격… 변화 꿈꾸는 부부는 또 새로운 ‘시작’ 어린 시절 더운 여름날, 학교 갔다 돌아오면 엄마가 미리 설탕에 재워 차갑게 식혀 둔 토마토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달콤하고 시원한 과육을 포크로 찍어 흘릴세라 접시에 대고 허겁지겁 먹어치우고, 남은 과즙을 서로 들이마시겠다고 동생과 머리를 맞대고 실랑이하던 기억. 거꾸로 읽어도 토마토, 바로 읽어도 토마토. 껍질도 과육도, 안팎이 똑같이 빨간 토마토는 추억이다. # 꿈이 농부였던 남자 충남 아산시에서 유기농 토마토와 아로니아를 재배하는 ‘달기 농장’의 조재호(59)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꿈이 농업인이었다. 면 단위 중학교를 나와 평택까지 통학했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예비고사를 보러 가는 길에 결국 옆길로 샜다. 어차피 농사를 지을 건데 대학에는 가서 무엇하느냐는 그의 고집을 누구도 꺾을 수 없었다. 그의 나이 스물여섯에 예산 산다는 박응서(58)씨를 중매로 만났다. 당시 그녀는 그보다 한 살 어린 스물다섯. 그 시절 생면부지의 나이 어린 청춘들이 마주 앉아 나눌 법한 이야기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자신의 꿈은 농사를 계속 짓는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그의 모습이 박씨는 그렇게나 좋았더란다. 그러나 박씨는 농사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시집와 처음으로 남편과 시아버지를 따라 들로 나갔다. 농약 치는 기계를 보고만 있으면 된다 해서 따라나섰던 길인데, 아버님이 둘둘 말린 호스를 계속 풀고 감으라 하신다. 논은 저 멀리 들판 너머에 있고, 논두렁으로 들어갈 수 없으니 기계를 실은 경운기는 길가에 서 있다. 그 길이 까마득히 멀어 무거운 호스를 풀고 당기고 또 풀고 당겨주어야 하는데, 한 뼘 그늘도 없는 뙤약볕 아래에서 그 일이 너무나도 힘에 부치더란다. “제발 그것만은 좀 안 시켰음 싶은데, 농사 짓는 집에 시집와서 못 한다고 할 수도 없고, 나중에는 약 치러 가자 하시면 정말 경기를 일으키겠더라고요. 그때부터 약 치는 일은 힘든 일, 안 좋은 일이라는 인식이 생긴 것 같아요.” 그날의 들판 위로 부는 바람과 햇살, 땀방울이 다시금 생각나는지, 부부는 서로 시선을 맞추고 웃음을 터뜨린다. 오래 한 곳을 바라보며 살아온 부부의 마주치는 눈빛이 깊다. 들판 너머로 힘들어하는 어린 신부를 바라만 봐야 했던 어린 신랑의 마음은 또 어떤 것이었을까. #패물과 돌 반지 팔아 시작한 낙농업 10년 두 아이가 태어나고 어린 신랑은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다. 좀더 수익을 낼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했다. 아내의 패물과 아이들 돌 반지를 팔아 소 세 마리를 들였다. 시골에서 몇 마리의 소만 먹여도 부자 행세를 하던 시절이었다. 바람대로 소는 금방 네 마리가 되고 다섯 마리가 되었다. 젖을 짜기 시작하며 돈도 돌기 시작했다. 스물대여섯 마리까지 늘어나며 해마다 주변의 땅도 조금씩 사들였다. 하지만 워낙 낙후된 지역이었다. 땅이 질척거려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는 동네였다. 목장 앞까지 집유차가 들어올 수 없어서 우유 통을 경운기에 실어 큰 길까지 내가곤 했는데, 이제 더이상 그렇게는 가져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신선도 유지를 위해서였다. 한때 육우로 돌려보기도 했지만 결국 시작한 지 10년 만에 목장을 접어야 했다. 그래도 마침 따로 지었던 애호박 농사로 재미를 보았던 터라, 소를 판 돈으로 목장을 밀고 다져 하우스를 세웠다. “그런데 그게 또 사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더란 말이지요. 애호박으로 시작해서 부추, 깻잎 등 하우스 작물들을 심었는데….” 처음에는 바람에 하우스가 파이프째 날아가 버렸다. 낙하산처럼 날아올랐다가 이리저리 나부끼는 것을 붙들면 사람까지 딸려 날아갈 지경이라 속수무책 바라만 봐야 했다. 바람이 잦아진 뒤에야 들판에 널려 있는 파이프를 주워 와 다시 펴고 땜질해 설치하면 또 날아가고, 다시 설치하면 또 날아갔다. 하우스 시설에 대한 이해와 경험 부족 탓이었다. “나중에는 그냥 같이 날아가 버리고 싶더라고요.” 충청도 특유의 구수한 억양을 담아 그가 농담처럼 말하고, 아내가 또 그 말을 웃음으로 받는다. #어찌 됐든 농업은 하나님과의 동업 본격적으로 유기농법을 시작한 지는 25년, 토마토로는 19년째다. 당시 한 산림조합 관계자의 설득으로 시작하게 됐는데, 조 대표도 돈이 덜 되더라도 꼭 가야 할 길이라 여겼다. 그러나 이 역시 해마다 실패하고 말았다. 병충해가 돌고 벌레가 생겨 작황이 매우 좋지 않았다. 어쩌다 작황이 좋아도 판로가 마땅치 않았다. 유기농이라는 말 자체가 없을 때였다. ‘무공해’라는 이름으로 협동조합을 통해 판매되기도 했지만 제대로 알고 찾는 소비자가 많지 않았다. 돈이 덜 되는 정도가 아니라 소 판 돈을 모두 잃고 농사짓던 땅마저 야금야금 팔아야 했다. “후원을 받아 단체로 일본이나 유럽 쪽으로 벤치마킹을 다니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쪽에서는 벌레 먹고 못생긴 것들을 안전하다고 아주 자연스럽게 잘 사먹는데, 우리는 여전히 번드르르한 것만 찾는 현실이 답답하더라고요.” 차츰 미생물을 배양해 농약 대신 뿌리고 천적을 이용해 방제할 수 있는 경험과 기술이 축적되었다. 작황이 좋아지고 가격이 안정적으로 형성되며 소비자들에게도 안전한 먹을거리와 자연을 윤리적으로 이용하는 농법에 대한 의식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우리도 한 10년 전부터는 ‘못난이 토마토’가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생김새나 크기 때문에 등급을 받지 못했을 뿐 맛이나 효능 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거든요. 그런 것들을 ‘못난이’라고 이름 붙여 싸게 팔았더니, 정품보다 더 잘 팔리더라고요.” 그래도 여전히 농사는 하나님과 동업하는 일, 작황은 기후에 따라 유동적이고 토마토는 저장성이 좋지 않다. 때로는 트럭에 싣고 서울로 올라가 지인들의 사무실을 돌며 팔기도 하고, 길가에 차를 세워 놓고 직접 목청껏 소리쳐 팔기도 했다. #차별화된 착즙 개발과 기다림의 시간 그래도 고향이다 보니 이웃은 물론이고 시청 등에도 지인이 많았다. 관련 공무원들과 농업 현실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의논할 수 있었다. 짧은 유통 기간에 대한 타개책의 하나로 2009년 지원금 3500만원을 받아 조립식으로 가공 공장을 짓고 중탕기와 포장 기계를 들였다. 따로 벤치마킹을 할 곳을 찾지 못해 주변의 건강원 등을 찾아다녔다. 토마토는 익혀 먹으면 그 맛과 효능이 배가 된다. 특히나 항산화 물질인 라이코펜 성분은 가열 때 4배 이상의 효과를 낸다. 무수한 실험과 연구 끝에 맛과 영양을 모두 잡은 제품을 만들어내고 홈페이지(www.dargi.co.kr)도 개설했다. “하지만 누가 어떻게 알고 오겠어요. 처음에는 주위에 다 나눠줬죠. 아는 고깃집이나 미용실에 맡겨두기도 하고, 어쩌다 전자상거래 유통업체에서 연락이 오면 어떤 조건이든 그냥 다 줬어요. 어디서든 하나라도 팔면 광고가 되고, 누구든 먹어보면 그 맛과 효능을 인정할 것이라는 자신이 있었거든요.” 그렇게 입소문으로 전해지며 차츰 판매량이 늘어갔다. 단골도 늘어 2014년 2월에는 급기야 만들어 놓은 제품이 다음 시즌이 되기도 전에 완판됐다. 계속 드시던 고객들의 요구로 어쩔 수 없이 귀한 생물로 제품을 만들어 공지를 띄우면 몇 시간 만에 품절되기 일쑤였다. 가공 시설을 갖추고 홈페이지를 개설한 지 5년 만의 일이었다. “농사는 기다림이거든요. 봄이 오길 기다리고, 싹이 나길 기다리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길 기다리고, 그 열매가 익어가기를 기다리고. 장사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을 다시 한번 실감했죠.” 부부는 현재 2800평 규모의 토마토 하우스와 50평 남짓의 가공 공장, 노지 1500평의 아로니아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융복합 산업 농장으로 선정돼 가공 시설과 체험 시설 등의 증축과 확장 계획도 갖고 있다. 지금은 연간 1억 5000만원가량의 수익을 내고 있지만, 그동안의 투자액을 생각하면 다른 산업에 비해 수익률이 높은 편이라고 할 수만은 없다고 한다. 조 대표는 자신을 자꾸만 바보라고 표현한다. 일반 농사도, 낙농도, 하우스도, 유기농도, 토마토도 그 실상을 알고 숫자에 밝아 셈을 할 줄 알았으면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런데 농사는 돈의 논리로만 생각하면 안 되는 거거든요. 나도 그렇고 우리 다음 세대, 그 다음 세대도 그렇고, 인간은 자연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존재잖아요. 공적 산업이랄까, 뭐 그런 사명감을 갖고 어느 정도는 자신을 내려놓고 비워야 해요.” 조 대표는 뒤늦게 방송통신대에서 농학을 공부했다. 여러 단체에서 벤치마킹을 오기도 하고, 귀농인들의 멘토가 돼 농장은 종종 교육장으로 변신한다. 대형 물류 창고를 닮은 선별장은 프로젝트와 스크린까지 갖춘 교실이 된다. 오랜 세월 속에서 터득한 자신만의 노하우는 적당히 감출 법도 한데, 조 대표는 절대 그러는 법이 없단다. “시골 사람들은 자랑할 게 별로 없거든요. 그래서 뭐 좀 가르쳐 달라고 하면 신이 나서는 그냥 다 알려주는 거죠.” 조 대표가 또 충청도 특유의 억양을 담아 여유롭게 농담을 하고, 아내가 밉지 않게 눈을 흘기면서도 같은 생각이라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도 지난달 국가고시인 식품가공기능사 시험을 봤단다. 엊그제 합격 통보를 받았다며 기뻐 어쩔 줄 몰라 한다. “얼마나 힘들게 공부했는지 몰라요. 내후년이면 예순인데, 하루 종일 일하고 들어가서는 글자가 어디 눈에 들어와야지요. 그래도 자꾸 찾아서 배우려 해요. 전자상거래도 그렇고, 자격증도 그렇고. 사실 평생 농사만 지으며 살아온 사람들이 관공서 양식에 맞춰 사업계획서를 쓰고, 서류 준비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그래도 사는 날까지는 조금씩이나마 이렇게 앞으로 나아가는 삶이었으면 해요. 세상이 변하는데, 농민도 농사도 옛 방식 그대로일 수는 없지요.” 그녀가 운영하는 블러그(http://blog.naver.com/pes6538)에서 읽은 마크 트웨인의 ‘앞서 가는 방법의 비밀은 시작하는 것’이라는 글귀가 생각난다. 오랜 세월 한길을 걸어오면서도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해 온 이 부부의 ‘시작’은 현재진행형이다. 글쓴이- 소설가 서진연 2007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2013년 제2회 EBS 문학상 우수상 수상. 소설 ‘붉은 나무젓가락’, 그림동화 ‘옥상에 텃밭이 생겼어요’, 옴니버스 에세이집 ‘가족이 힘이다’, ‘수업’, ‘가족, 당신이 고맙습니다’ 등.
  • [2016 상반기 히트상품] 다원투어그룹 멤버십

    [2016 상반기 히트상품] 다원투어그룹 멤버십

    골프투어 및 해외여행 전문기업 다원투어그룹이 제2 창업을 선포하고 파격적인 조건으로 특별회원을 모집한다. 1100만원 상당의 ‘다이아몬드 멤버십’을 30만원에 분양하고 있으며 10년간 회원 자격을 부여한다. 3년 회원권인 ‘골드 멤버십’은 10만원에 분양한다. 다원투어그룹의 멤버십이 되면 국내외 골프장 및 콘도·리조트·호텔 등을 회원이나 준회원에 준하는 혜택을 받으며 이용할 수 있다. 해외 골프의 경우 중국·필리핀·태국·베트남·말레이시아 등 주요 5개국의 골프투어를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 필리핀 골프투어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80만선에서 항공·숙박·식사를 비롯해 무제한 라운딩을 할 수 있다. 국내 70여개 주요 골프장도 주 중에 준회원 대우로 이용할 수 있다. 국내 콘도·리조트의 경우 강원도, 제주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등지의 유명 콘도나 리조트를 최대 70%까지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 이밖에 국내 제휴 병원 및 문화·공연·레포츠 시설을 우대받으며 이용할 수 있다. 잔여 회원 기간은 양도양수가 가능하다.
  • ‘품위있는 그녀’ 김희선-김선아 캐스팅 성사될까 ‘주목’

    ‘품위있는 그녀’ 김희선-김선아 캐스팅 성사될까 ‘주목’

    드라마 ‘품위있는 그녀’에 김희선 김선아가 물망에 올랐다. 23일 한 매체는 드라마국 관계자의 말을 빌려 “김희선이 드라마 ‘품위있는 그녀’에 출연한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김희선이 ‘품위있는 그녀’에서 맡게 될 역할은 ‘품위있는’ 우아진 역이다. 탁월한 미모와 몸매, 옷을 입어도 벗어도 거부할 수 없는 미모 종결자. 전직 스튜어디스로 항공사 간판 모델로 활동할 만큼 뛰어난 미모를 자랑한다. 스물여덟의 나이에 남편과 결혼해 전업 주부로 살았다. 집안이 몰락하고 남편마저 떠나자 그녀의 품위가 손상되기 시작한다. 또한 김선아는 박복자 역을 고민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박복자는 충청도 사투리와 표준어 구사가 완벽하고 상류사회 진출을 위한 준비로 박식하며 한 가지 성격으로 딱 정의 할 수 없는 입체적 캐릭터. 그러나 김희선, 김선아 양측은 “검토 중인 작품 중 하나다. 확정된 것은 아니다”고 말을 아꼈다. ‘품위있는 그녀’는 프라이빗 메이드까지 두면서 호화로운 삶을 즐기던 여자가 준재벌 시아버지의 몰락 그리고 남편의 배신으로 졸지에 바닥을 내리찍는 인생 역경 스토리. 바닥에서 올라오는 그 여자의 성장과정을 통해 이 시대 여자의 인생과 아줌마의 사회적 포지션, 전업주부를 대하는 법의 냉정한 잣대를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2005년 방송된 ‘내 이름은 김삼순’ 김윤철 PD가 메가폰을 든다. 사전 제작으로 진행돼 내년 초 방송 예정이며 촬영은 오는 8월부터 시작된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장마영향으로 오늘 전국 비 소식···강풍, 천둥 등 조심

    장마영향으로 오늘 전국 비 소식···강풍, 천둥 등 조심

    지난 주말부터 한반도에 영향을 미친 장마전선의 영향으로 22일은 전국이 흐리고 비가 오다가 저녁에 대부분 그칠 전망이다. 강수 확률은 60~90%다. 이날 기상청에 따르면 예상 강수량은 서울, 경기, 강원도, 충청도, 경북 북부는 5~30㎜다. 전남도와 경남도, 제주도 산간은 30~80㎜(많은 곳 120㎜ 예상), 제주도(산간 제외)와 전북도, 경북 남부는 20~60㎜로 예상된다. 수요일인 22일은 전국이 장마전선의 영향을 받아 비가 올 전망이다. 중부지방은 아침부터 늦은 오후 사이에 가끔 비(강수확률 60∼70%)가 오겠고 남부지방은 비(강수확률 60∼90%)가 온 후 밤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비와 함께 돌풍과 함께 천둥·번개가 치는 곳이 많겠고 제주도와 남해안을 중심으로 시간당 20㎜ 내외의 강한 비가 오는 곳이 있겠다. 기상청은 비 피해가 없도록 시설물 관리와 안전사고에 유의해 달라고 당부했다. 미세먼지 농도는 전 권역이 ‘좋음’∼‘보통’으로 예상되지만 수도권과 세종, 충남은 아침까지 ‘나쁨’ 수준의 농도가 일시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바다의 물결은 제주도 남쪽 먼바다에서 2.0∼4.0m로 매우 높게 일어 풍랑특보가 발효될 가능성도 있어 이곳에서 항해하거나 조업하는 선박은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 그 밖의 해상에서는 바다의 물결이 0.5∼2.5m로 일 것으로 보인다. 전 해상에 안개가 짙게 끼는 곳이 많겠고 돌풍과 함께 천둥·번개가 치는 곳도 있어 선박들은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고 기상청은 당부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포토] 손 맞잡은 정진석-이원종

    [서울포토] 손 맞잡은 정진석-이원종

    청와대 이원종 대통령비서실장과 김재원 정무수석비서관은 14일 국회를 방문했다. 이 실장과 정 수석이 이날 국민의당 방문에 이어 오전 11시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만나 인사나눈 뒤 이야기눴다. 정 원대내표는 이날 대화 도중 이 실장과 손을 잡고 “실장님도 충청도,저도 동향인데 우린 한쪽 쏠림현상이 없죠”라며 웃기도했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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