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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용훈 대법원장 후보 청문회 이틀째

    이용훈 대법원장 후보 청문회 이틀째

    9일 이용훈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이틀째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도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사법부의 과거사 정리문제와 사법개혁 의지에, 한나라당 의원들은 ‘코드 인사’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무난한 인사라는 평가가 작용한 탓인지 12명의 의원들이 질문 시간을 연장하는 등 집중적인 공세를 폈지만 사상 첫 대법원장 인사청문회에 걸맞은 ‘날 선’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열린우리당 정성호 의원은 “사회 소수자들을 위한 과감한 의지가 부족한 것 같다.”고 지적한 뒤 “법원이 정권의 외압을 받았던 사건의 실체를 규명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같은 당 문병호 의원은 “평판사들이 정년 때까지 일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이 후보자는 “사법부 수장이 되면 약자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법원을 만들고 싶다.”고 답변한 뒤 “평검사들의 정년 보장 문제는 시기상조”라고 덧붙였다. 한나라당 이명규 의원은 “탄핵 당시 노 대통령의 대리인단으로 활동했던 12명 가운데 7명이 고위 공직에 취임한 것을 보면 이 후보자 지명은 전형적인 코드인사”라고 이의를 제기했다. 특히 같은 당 주성영 의원은 참여정부의 인사 유형을 ‘무임 승차’‘호가호위’‘초근목피’‘토사구팽’‘자승자박’ 등 다섯 가지로 분류해 눈길을 끌었다. 이 후보자가 탄핵심판 변호는 노 대통령과 아무 관계가 없다고 강조한 것을 두고 주 의원은 “정권 탄생에 공도 없으면서 요직을 받은 홍석현 전 주미 대사와 진대제 정통부장관처럼 전형적인 무임승차형”이라고 비유했다. 이어 “이해찬 국무총리와 정동영 통일부장관, 유시민 열린우리당 의원은 대통령의 위세를 마음껏 구가하는 ‘호가호위형’, 정대철·안희정씨는 정권 탄생의 일등공신이지만 뒷전으로 밀려난 토사구팽형”이라고 분석했다. 또 “양정철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처럼 미관말직이지만 충성을 다하는 행동대원과 돈 안되는 386은 ‘초근목피형’, 신기남·김희선 의원처럼 온갖 폼을 잡아도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은 자승자박형”이라고 분류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여야 의원연찬회 뒤풀이에선…] 홍천 ‘여흥의 밤’

    [여야 의원연찬회 뒤풀이에선…] 홍천 ‘여흥의 밤’

    한나라당 의원연찬회가 열린 30일 밤 강원도 홍천의 대명비발디파크. 무려 8시간의 ‘마라톤 토론회’에 지친 심신을 달래려는 의원들이 삼삼오오 술자리로 모여들었다. 못다한 얘기와 웃음, 노래소리가 새벽까지 이어졌다. 토론회가 끝나자 대구·경북·인천·강원 의원들은 객실에 술자리를 마련했고, 부산·서울 의원들은 일찌감치 콘도 지하 1층의 가요주점을 점령했다. 숙소 지하층에 마련된 술자리에서는 맹형규·한선교·전여옥 의원 등 방송 출신 의원들이 유감없이 ‘끼’를 발휘했다. 한 의원은 나훈아의 ‘고향역’, 전 의원은 혜은이의 ‘열정’을 불러 분위기를 띄웠고, 맹 의원은 ‘대니 보이’를 멋드러지게 불러 박수를 받았다. 다른 의원들도 이에 질세라 ‘트로트’를 부르며 노래솜씨를 자랑했다. 공성진 의원이 김수희의 ‘멍에’로 기선을 잡자 이군현 의원이 고운봉의 ‘선창’으로 응수했고, 박계동 의원도 ‘장밋빛 스카프’로 화답했다. 농담과 재담에서는 송영선 의원이 단연 으뜸. 송 의원이 경북 의원들이 모인 술자리에 합석하자 권오을 경북도당위원장이 폭탄주를 건네며 “오늘 따라 송 의원이 왜 이렇게 이쁘게 보이는지 모르겠다.”며 농담을 건네자 정종복 의원이 “그거 잘못하면 성희롱”이라고 주의를 줬다. 그러자 송 의원은 “성희롱은 받아들이는 사람이 기분이 나쁠 때 얘기고, 기분 좋게 받아들이면 성재롱”이라고 말해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대구 의원들이 모인 방에선 안택수 시당위원장이 노 대통령의 연정론에 대한 비판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안 의원은 “노 대통령이 연정이라는 꼼수를 꺼내든 것도 한나라당에 정권을 내주겠다는 게 아니라 DJ를 압박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연찬회 무대 밖 주연은 회갑을 맞은 정형근 의원과 결혼 발표를 한 안명옥 의원. 안 의원이 중앙일보 통일문제연구소의 길모 대기자와 조만간 결혼하기로 한 소식과 관련, 박근혜 대표는 연찬회 시작 전 “내가 시집가는 것 같다.”며 축하 인사를 건넸다. 한편 일부 사무처 직원들과 보좌진들 사이에서는 “이렇게 재미없는 연찬회는 처음”이라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혁신안 등 주요 쟁점과 관련해 딱부러지게 결정되는 것도 없고, 일부 의원들은 자기 과시와 박 대표에 대한 충성 경쟁에 몰입하고 있다는 비판도 쏟아졌다. 홍천 전광삼 구혜영기자 hisam@seoul.co.kr
  • 儒林(422)-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47)

    儒林(422)-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47)

    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47) 하루는 경춘(景春)이 맹자에게 물었다. 경춘은 종횡가에 속했던 세객. 따라서 경춘은 왕도정치만을 부르짖고 있는 맹자에 대해서 은근히 반감을 갖고 있었다. “공손연(公孫衍)과 장의(張儀)야말로 진실로 대장부가 아니겠습니까. 그들이 한번 화를 내면 제후들이 두려워하고, 편안히 조용해지면 천하가 잠잠해집니다.” 경춘의 말은 이상주의를 부르짖는 맹자보다 뛰어난 말솜씨와 계책으로 제후들을 설득하여 서로 공격하여 정벌하게 함으로써 막강한 실권을 가지고 있었던 종횡가들을 대장부라고 평함으로써 은근히 맹자를 마음속으로 비웃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속셈을 모르고 있을 맹자가 아니었다. 맹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아니다. 이를 어찌 대장부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대는 예를 배우지 않았는가. 장부가 관례(冠禮)를 행할 때 아버지가 훈계를 하고, 여자가 시집을 갈 때에는 어머니가 훈계를 하는데, 갈 적에 문 앞에서 전송하면서 말하기를 ‘너희 시댁에 가거든 반드시 공경하고 반드시 조심하여 남편을 어기지 말라.’고 하니 순종함을 정도(正道)로 삼는 것은 첩부(妾婦)의 도리인 것이다.…” 관례란 ‘남자가 20살이 되었을 때 갓을 쓰게 하는 성인식’으로 20살이 넘어 성인이 되면 시집가는 딸에게 어미가 훈계를 하듯 예로써 남을 공경하고 나라에는 충성해야함이 마땅한 정도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맹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천하의 넓은 집에 거처하며, 천하의 바른 자리에 서며, 천하의 바른 도리를 행하며, 뜻을 얻으면 백성과 함께 도를 행하고, 뜻을 얻지 못하면 홀로 그것을 행하여 부귀가 방탕하지 못하고 빈천(貧賤)이 뜻을 바꾸지 못하게 하며, 위무(威武)가 절개를 굽히게 할 수 없는 것. 이를 대장부라고 하는 것이다.” 맹자가 장의를 비롯한 당대 최고의 실권자들이었던 종횡가들을 부국강병을 추구하는 제후들의 야심을 충족시키는 책략을 제시함으로써 이 세상을 전쟁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악인이자 변절자라고 질타하는 이 명백한 대답은 맹자가 얼마나 ‘호연지기의 대장부’를 지향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산증거인 것이다. 육체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람은 부귀를 얻으면 그보다 더 큰 기쁨이 없으므로 그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방탕하게 되며, 빈천하게 되면 그보다 더 큰 고통이 없으므로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하며,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이 없으므로 위협이 있을 때에는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서 갖은 비굴한 짓이라도 하게 되는데, 종횡가들은 오로지 부귀와 권력에만 집착함으로써 절의를 헌신짝처럼 버리는 소인배이지 절대로 대장부일 수는 없다는 것이 맹자의 답변이었던 것이다. 이미 순우곤과의 설전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맹자는 세치의 혓바닥으로 천하를 농락하고 있는 세객들과 종횡가들을 얼마나 혐오하고 있었던가를 알 수 있는 장면인 것이다. 이는 맹자의 스승인 공자도 마찬가지였다. 공자는 일찍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었다. “…이래서 나는 말만 번지르르한 자는 싫어한다.(是故惡夫者)”
  • [길섶에서] 진짜 프로/신연숙 논설실장

    같은 일을 해도 프로는 역시 다른 데가 있다.A씨의 회사차를 운전하는 기사 B씨는 처음 채용이 안 될 뻔했다. 회사에서 제시한 급여 액수가 자신의 기대에 못 미치자 뒤도 안 돌아보고 돌아선 것이었다.A씨는 다소 부담은 됐지만 B씨를 다시 불러 쓰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그 이전 직장에서 10년이 넘게 근속한 경력에 주목했다. 보스를 만족시킨 성실성과 충성도를 믿어보기로 한 것이다. 과연 B씨는 달랐다. 운전, 차량관리는 물론 의전에까지 빈틈이 없었다. 몇 개월 동안 차량에 오일교체도 안 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고는 실소했다. 이전 기사는 사업을 크게 벌였다 실패해 기사로 전직한 사람이었다. 애를 쓴다고 썼지만 아마추어였던 것이다. B씨는 A씨 자택에서 대기하는 동안에도 가만히 있지를 않는다. 토막시간을 이용해 A씨 부인의 차량까지 관리한다. 고장체크는 물론이고 주차된 차가 나가기 좋도록 정방향으로 돌려놓고 가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가 지나간 곳엔 어디나 노력과 근면의 흔적이 남아 있다. 시키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데도.A씨는 모든 일엔 진짜 프로가 있으며 진짜 프로는 ‘몸값’을 요구할 자격이 있다고 믿게 됐다고 한다. 신연숙 논설실장 yshin@seoul.co.kr
  • [서울광장] 대통령의 귀/이목희 논설위원

    [서울광장] 대통령의 귀/이목희 논설위원

    대한민국에서 정보가 가장 많은 사람은 현직 대통령이다.‘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렸다.’는 말은 현실에 맞지 않는다. 충언하는 신하는 정보전달 경로가 한정된 왕조시대나 권위주의 정권에서 필요했다. 지금은 다르다. 언론보도만 유심히 살펴도 “그런 비판이 있구나.”라는 사실을 간단히 알 수 있다. 공식·비선 라인에서 많은 보고가 대통령에게 올라간다. 취사선택이 어려울 정도로 온갖 내용이 있을 것이다. 임기 반환점을 맞은 대통령의 적(敵)은 언로(言路)의 차단이 아니다. 너무 많은 정보를 가짐으로써 오히려 귀를 닫고, 자기 주장이 강해지는 게 문제다. 대통령이 선호하는 정보창구가 특정인에게 쏠린다면 상황은 더욱 나빠진다. 100의 정보를 머릿속에 담은 대통령이 10에 못 미치는 정보를 가진 언론인, 기업인, 학자의 ‘훈수’를 가당찮게 여길 수 있다. 청와대 참모도 정보량에서 대통령에게 밀리긴 마찬가지다.1990년대 청와대 수석을 지낸 인사의 회고담.“대통령이 집권 후 한동안 참모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대통령직에 익숙해지고, 정보가 쌓이니까 조금씩 고집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임기 중반을 넘어서는 ‘내가 모르는 게 있나.’라는 식으로 변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기 주장이 강한 편이다. 수준 높고 다양한 정보가 뒷받침되면 주장의 강도는 당연히 세진다. 최근 청와대에서 열린 관·민 연석회의에 참석했던 민간인의 전언.“상당히 전문적 내용을 다루는 회의였는데 노 대통령이 80∼90% 혼자 얘기하더라. 대통령이 퇴장한 뒤 참석자들이 대통령 발언의 의미를 놓고 새로 토론을 시작해서 놀랐다.” 대통령은 폼날지 모르나 토론문화·시스템운영은 살아나지 않는다. 대통령 혼자 전 국민을 설복시키기 어렵다. 시스템을 작동시키려면 우선 듣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언론사 편집국장, 정치부장단과의 간담회가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당초 자유롭게 대화·토론하자는 취지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연정 등 새롭지 않은 현안을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얘기하고 끝났다. 노 대통령이 한정된 인재풀로 돌려막기 인사를 하고 있지만 특정인의 정보에 경도되는 현상은 심해 보이지 않는다. 노태우 정권의 박철언, 김영삼 정권의 김현철, 김대중 정권의 박지원. 개인능력과 충성심을 떠나 대통령이 특정인의 정보를 편애하면 국정은 왜곡된다. 정보기관의 도청파문은 그에서 파생됐다. 집권자의 관심을 붙들어두려면 누구도 모르는 비밀정보가 있어야 했다. 과거 정권에서 대통령이 특정 정보채널에 몰입하는 것을 바로 곁에서 막아보려 한 인사들이 있다. 노태우 정권의 이병기, 김영삼 정권의 박진, 김대중 정권의 박선숙. 그들은 성공하지 못했다. 대통령 신임이 돈독했으되 정권내 위치는 미약했다. 제도적으로 대통령 귀를 움직여보려는 생각이 약했다. 노 대통령 스스로 과묵해지고, 귀를 넓히는 게 바람직스럽다. 그러나 지금 분위기로는 그것을 기대할 수 없을 듯싶다. 참모들이 도와야 한다. 참여정부에서 이병기, 박진과 비슷한 위치에 있는 이는 윤태영 부속실장이다. 과거 사례를 연구해보기 바란다. 그렇다고 대통령의 생각을 참모가 좌지우지하려 든다면 제2의 김현철·박철언이 된다. 대통령의 귀가 방향성을 갖거나, 닫히지 않도록 하는 것으로 역할은 충분하다. 재미없고, 따분할지라도 공조직 보고를 중시한다면 중간은 간다. 대통령이 정보도 없는 인사가 아는 척해도 참고 들으며 도움이 될 부분을 찾는 모습을 보이도록 해보자. 말을 안 해도 마음으로 국민에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신입사원’ 신드롬?

    ‘신입사원’ 신드롬?

    ‘학벌과 영어 능력, 자격증에만 기대는 수험생, 또 전공 능력만을 믿고 종합적 판단 능력을 갖추지 못한 수험생’. 이런 부류의 수험생은 올 하반기 취업시장에서 ‘재수’를 고려해야 할 전망이다. 기업환경이 최근 1∼2년 사이에 ‘컨버전스(융합)’로 바뀌면서 기업들의 채용 패러다임이 종합 실무능력과 다양한 경험 등 종합적 점검으로 변하고 있다. 깊이 없이 폭만 넓은 ‘나열식 지식형’ 인재가 설 자리는 점차 없어진다. 따라서 9∼11월 취업 시즌을 맞는 준비생들은 이같은 트렌드에 맞춰 입사 전략을 짜야 할 것으로 분석된다. 올해는 예년과 달리 어학 성적과 학력을 배제하는 기업들이 많아져 서류심사와 면접시험의 비중이 높아진 게 큰 특징이다. ●취직하려면 “튀세요” GS칼텍스는 ‘특이 경력’을 가진 응시생들을 우대한다. 대학가요제 수상자나 슈퍼 모델, 오지탐험 여행을 했던 지원자 등은 서류심사에서 1차 면접으로 ‘직행’하는 혜택을 누린다. 면접에서도 유연한 사고를 지닌 사람을 눈여겨 본다.1차 면접은 ▲6명이 한 조로 약 50분간 토론하는 ‘집단토론’▲제시된 과제 중 하나를 골라 10∼15분 동안 발표하는 ‘개별 프레젠테이션’▲혼자 들어가서 20∼30분간 면접관의 질문을 받는 형식으로 이뤄진다.2차 면접은 ▲3∼5명이 함께 들어가서 부사장급 이상 고위 임원들로부터 질문을 받는다. CR기획팀 주창면 팀장은 “경력이 튀는 사람들이 확실히 적극적인 면이 있다.”며 이 점을 최대의 채점 포인트로 삼고 있다고 소개했다. SK㈜도 재치와 순발력이 뛰어난 응시생이 높은 점수를 받는다. 특히 케이스 면접에서는 ‘전 세계의 신용카드의 개수는?’,‘비행기안에 탁구공이 몇 개나 들어갈까?’와 같이 엉뚱한 내용을 지원자에게 물어 당황하게 한 뒤 반응을 본다. 천편일률적인 논리적 사고를 보이기보다 튀면서도 나름대로 근거 있는 답변을 제시하는 응시생이 유리하다. 삼성토탈은 영업부문의 경우 아르바이트나 과외 활동을 ‘찐하게’ 경험한 응시생들을 우대한다.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운 영업 직무는 호기심이 많은 직원이 대체로 근무 평점이 좋기 때문에 발명대회 입상자나 다양한 사회 봉사활동을 이끈 리더십을 겸비한 인재들을 선호한다. ●면접 ‘길어지고 어려워지고’ 올 하반기 공채는 면접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칠 것 같지 않다. 시간은 길어지며,2종류 이상의 면접 테스트를 보는 ‘복합면접’이 대세로 자리잡았다. 또 외국 기업 가운데 일부는 지원자와 면접관을 화상으로 연결시켜 테스트하는 국제 화상면접도 등장했다. 취업정보업체 잡링크에 따르면 대기업 319개사 가운데 48%(134개사)가 복합면접을 진행하며, 지원자 평균 면접시간은 43분으로 지난해 9월 조사(35분) 때보다 10분 가까이 늘었다. 또 열린 채용도 눈에 띈다. 학벌 등의 배경보다 실력, 보편 지식보다 실무 능력 등이 뛰어난 지원자를 찾기 위해 채용 방식의 파격도 적지 않다. 외환은행은 최근 은행업계 최초로 실시한 나이와 학력을 파괴한 ‘개방형’ 공채에서 전업주부와 군인 등 이색 경력자들을 뽑았다. 두산은 채용담당 임직원의 복장을 짙은 색깔 양복에 넥타이 차림의 ‘교복’에서 청바지 등의 캐주얼한 옷으로 바꿨다. 대기업 한 인사 담당자는 “입사 준비생이면 누구나 아는 기본지식을 테스트하는 기업은 이제 없다.”면서 “전공 분야와 연관된 전문지식, 충성도, 상황 판단 등을 골고루 확인하는 면접이 대세”라고 설명했다. ●‘페이퍼 영어’는 가라 어학 성적도 점차 ‘박물관’으로 직행하고 있다. 두산과 국민은행 등 일부 기업들은 지원자의 토익성적 기준을 대폭 낮췄지만, 상당수는 영어 성적 제출을 아예 폐지했다.GS리테일과 한국주택금융공사, 한국은행, 중소기업은행, 제일화재, 외환은행 등이 대표적이다. 또 영어 성적을 제출하는 곳도 영어 면접을 통해 확실히 우열을 나눈다. 토익 900점 이상만 입사 지원이 가능한 삼성물산은 ‘빅 마우스’가 유리하다. 문법이나 어법 등에 높은 점수를 지닌 응시생보다 온갖 수단을 동원해 상대방의 시선을 끄는 면접생이 높은 점수를 받는다. 어떤 해외 바이어라도 설득할 수 있는 활동적인 세일즈맨이 될 수 있는 자질을 지녔는지를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일본을 다시본다] (17)심화되는 우경화

    [일본을 다시본다] (17)심화되는 우경화

    |도쿄 특별취재팀|“김정일과 타협하는 고이즈미는 물러가라. 자민당 숙정하라.”지난 5월24일 오후 1시40분, 도쿄 자민당 당사 앞에서 파란 제복을 입은 20여명의 사내들이 깃발과 피켓을 휘두르며 뭔가를 요구하고 있었다. 시민들은 조심스럽게 이들을 피해 지나가고 있었지만 현장에 출동한 경찰들은 시민들의 통행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라며 당부할 뿐 특별하게 이들을 제지하지는 않았다. ●극우단체 도쿄도심 정기시위 일장기를 붙인데다 확성기까지 단 차량을 동원해 시위에 나선 이들은 정심동지사(正心同志社)라는 극우단체의 회원들. 자민당 당사 앞과 도쿄 번화가 등지에서 정기적으로 시위를 하고 있는 이 단체는 과거 일본의 침략전쟁을 정당화하자는 내용의 ‘교육 정상화’와 유사시의 방어만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평화헌법을 개정하자는 ‘자주헌법 제정’을 주장하고 있다. 이 단체 회원들은 이날 시위에서 “극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독재자 김정일을 타도하라. 김정일과 대화하는 자민당을 숙정하라.”고 외쳤다. 고이즈미 총리에 대해서도 “타도 대상인 김정일 정권과 협상을 시도하며 2차례나 평양을 방문했다.”고 거칠게 몰아붙였다. 이같은 극우단체의 비판을 받고 있는 자민당의 속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데 일본 사회 우경화의 심각성이 자리한다. 지난 4월 마치무라 노부타카 일본 외상이 참의원 외교방위위원회에서 한 발언은 자민당 정부의 우경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당시 마치무라 외상은 ‘일본도 독일처럼 철저하게 과거사를 반성해야 한다.’는 야당 의원의 비판에 대해 “독일은 나치에 유대인 학살 책임을 뒤집어 씌우는 게 가능했지만 일본은 그것이 불가능했다.”며 정면 반박했다.‘독일이나 일본이나 마찬가지인데 다만 일본에는 희생양을 삼아 책임을 떠넘길 나치와 같은 존재가 없었다는 점이 다를 뿐’이라는 인식이다.‘일본만 욕을 먹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궤변인 셈이다. 일본 사회의 우경화에 대한 인식에서는 기득권 세력인 자민당 등과 진보세력간에 이미 메워질 수 없을 만치 깊은 골이 형성돼 있었다. ●자민당 “법·제도를 현실화하자는 것일 뿐, 우경화는 아니다.” 현재 자민당 내 실세인 모리 요시로 전 총리 계파 중에서 40대 ‘젊은 피’로 손꼽히는 고바야시 유타카 참의원 의원은 자민당뿐 아니라 일본 사회에 “우경화는 없다.”고 단언했다. 그가 속한 모리파에는 고이즈미 총리를 비롯해 차기 총리 후보 1순위인 대표적 우익 인사 아베 신조 간사장 대리 등이 포함돼 있다. 고바야시 의원은 ‘현재 일본이 우경화하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 “패전 이후 일본은 국가나 국왕에 대한 충성심이라든가 도덕 교육을 버렸다.”면서 “지금의 현상은 단지 헌법을 포함, 국가의 존재와 어떤 교육 제도를 만들어가야 하는지에 대해 논의하는 것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일본이 패전 이후 하지 못했던 일을 60년이 지난 지금 다시 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평화헌법을 개정하고 자위대를 정식 군대로 만들려는 움직임과 관련해선 한국 사례를 들기도 했다. 그는 “한국도 이라크에 파병했는데 이처럼 국제사회 공헌을 위해 부대를 보낼 수 있도록 헌법을 개정한다든지, 자위대를 군대가 아니라고 규정한 현실을 좀 더 유연하게 바꾸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자위’에만 한정하고 있는 무력행사의 요건을 완화하는 문제도 포함시켰다. 이런 움직임이 결코 군국주의로 연결되지 않을 것이란 말도 잊지 않았다. 평화헌법 개정을 우경화와 동일시하지 말라는 이같은 주장은 그러나 자민당 등이 추진하는 평화헌법 개정의 핵심 조항 2개를 들여다보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문제의 헌법 조항들은 ‘일본 국민은 국제 분쟁의 해결 수단으로서 국권 발동에 의한 전쟁과 무력에 의한 파괴, 또는 무력의 행사를 영구히 포기한다.’는 9조 1항과 ‘1항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육·해·공군과 그 외의 전력(戰力)은 보유하지 않으며, 교전권 역시 허용하지 않는다.’는 같은 조 2항의 완전 비무장법이다. ●진보세력 “쇼비니즘이 자민당을 장악했다.” 지난 4월 마치무라 외상에게 ‘일본의 과거사 반성’을 주문했던 야당 의원은 공산당 소속 오가타 야스오 참의원 의원이었다. 도쿄 참의원 회관에서 만난 오가타 의원은 광신적인 애국주의를 일컫는 ‘쇼비니즘(chauvinism)’이 자민당을 장악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자민당은 ‘침략 전쟁은 당연한 것이다.’는 입장으로 이웃 나라들이야 어찌되건 관여치 않는다.”면서 “과거에는 극우세력들이나 하던 쇼비니즘 같은 주장이 지금은 자민당 내에서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군사 대국화의 길이 일본 외교의 최우선이기에 주변국과의 관계가 무너져도 상관없다는 쪽으로 질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가타 의원은 올해 초 노무현 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했을 때 “독일은 일본과 다르다.”며 과거사에 대한 독일의 반성 노력을 높이 평가한 사실을 상기했다. 그는 “나치보다 먼저 침략에 나선 것이 일본인데도 전혀 반성의 기미가 없다. 이것이 고이즈미와 자민당의 인식”이라고 매섭게 비판했다. 그는 고이즈미 정부의 대북 강경정책이 우경화와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일본이 군사력 강화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논거로 들고 있는 것은 북한과 타이완, 특히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다. 오가타 의원은 유사시 자위대가 적극적인 공격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는 유사법제 제정시 한 자민당 의원이 “북한이 대포동(미사일) 한 발 쏘면 쉽게 통과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는 일화도 소개했다. 그는 “북한이 사정거리로 볼 때 일본까지 도달할 수 없는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해도 우익 성향 언론들은 ‘이것이 바로 일본이 미국과 미사일방어체제(MD)를 구축해야 하는 이유’라며 법석을 떤다.”면서 “언론도 우경화를 부추기고 있다.”고 말했다. 우익세력이 이미 정치·언론계를 장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surono@seoul.co.kr ■ 日NGO ‘피스보트’ 노히라 신사쿠 대표|도쿄 특별취재팀| ‘왜곡된 역사교육을 바로잡자.’는 취지로 출범한 일본의 대표적인 시민단체 피스보트. 도쿄 시내 사무실에서 만난 노히라 신사쿠 공동대표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정책을 ‘친미 민족주의와 경제적 신자유주의’로 특징짓고 “일본은 아시아에서 점점 더 외톨이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1982년 제1차 역사교과서 분쟁이 일어났을 때 언론인과 대학생, 학자 등 200여명이 배를 타고 이웃 아시아를 체험해보자며 의기투합, 이듬해 정식 출범한 것이 피스보트다. 피스보트는 1990년 이후 ‘평화·인권·환경’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주제로 세계일주 크루즈를 기획,80개국 이상을 방문하며 네트워크를 형성해 가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의 환경재단 등과 공동으로 13일 도쿄를 출발해 부산, 인천, 단둥, 오키나와를 거쳐 나가사키에 도착하는 ‘아시아의 화합 기원’ 크루즈를 시작했다. ▶일본 사회가 우경화로 가고 있다는 비판이 많다. 고이즈미 내각의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현 정부의 특징은 민족주의와 경제적 신자유화다. 교육으로 애국심을 높이려는 것이 민족주의적 측면이라면 경제적 민영화는 신자유주의 정책이다. 경제적 신자유주의로 인해 빈부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는데, 이는 ‘가치구미(勝ち組み·이긴 팀)’와 ‘마치구미(町組み·진 팀)’를 분리하는 엘리트주의이다. ▶민족주의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일본 민족주의는 친미와 반미로 나뉘는데 고이즈미는 친미 민족주의다. 미국만 중요할 뿐 한국과 중국은 냉대한다. 미국은 무조건 추종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한국과 중국에 고자세를 취해야 한다. 자존심 때문이다.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만화가 고바야시 요시노리와 평론가 니시베 스스무 등은 원래 반미였는데 후소샤판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과정에서 입장을 바꿨다. 고이즈미가 미국을 따르는 이유는 주위에 친구가 없기 때문이다. 미국이 없으면 고립되기 때문에 더욱 더 심해지고 있다. ▶일본의 이라크 파병에 대해. -독일과 프랑스 등이 이라크전쟁에 반대할 수 있었던 것은 유럽연합(EU)이라는 하나의 공동체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일본과 한국이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군대를 보낸 것은 아시아가 하나로 결속되지 못해 미국의 영향력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시민운동의 방편으로 크루즈를 기획한 이유는. -60·70년대 학생운동이 활발했지만 내부의 노선투쟁이 많아 주위의 인식이 좋지 않았다. 크루즈는 가볍게 다가가는 ‘소프트 터치(soft touch)’다. 즐겁게 참가하는 새로운 개념의 시민운동이다. 일본이 다른 국가들과 친구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 정부는 아시아를 신뢰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과의 관계를 더욱 밀접하게 하는 것이다. 나는 한국과 중국에도 친구가 있다. 일본 정부의 역사 왜곡에 항의하는 사람들은 한국과 중국(정부의 잘못된 행위)에도 항의한다. surono@seoul.co.kr ● 특별취재팀 한종태 국제부장(팀장), 황성기 사회부장, 이춘규 도쿄특파원, 주병철(경제부)·손원천 이언탁(사진부)차장, 안미현(산업부)·김상연 황장석(정치부)·유지혜(사회부)·정연호(사진부)기자
  • ‘살아있는 神’ 일왕의 베일 벗긴다

    ‘살아있는 神’ 일왕의 베일 벗긴다

    개명한 21세기에 ‘신(神)’을, 그것도 ‘현인’으로 존재하는 신을 믿는 사람들이 있을까. 그런데 있다. 국가의 구심점,‘현인신’(顯人神·아라히토카미) ‘천황´을 떠받드는 일본인들이다. MBC가 광복 60주년을 맞아 ‘천황´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고든 5부작 다큐멘터리 ‘‘천황´의 나라 일본’을 준비했다.7일 1부 ‘텐노, 살아있는 신화’,8일에는 2·3부 ‘사쿠라로 지다’와 ‘신을 만든 사람들’,14일에는 4부 ‘충성과 반역’,21일에는 5부 ‘제국의 유산’이 전파를 탄다. 방영시간이 밤 11시∼12시대여서 아쉽다. 사실 ‘‘천황´’이라는 존재 자체가 대단한 것은 아니다. 아키히토 ‘천황´이 실토했듯 일본 ‘천황´가가 백제 무령왕의 방계 일족이라는 점은 이런 저런 자료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이를 근거로 일본을 사실상 백제 계열의 국가로 보는 학자들도 많다. 게다가 장군들이 통치하는 막부시대가 시작되면서 일본 ‘천황´은 아무런 권력없이 은거하고 있는 상태가 됐다.MBC가 조명하는 대목은 메이지유신 전까지만 해도 이름조차 없던 ‘천황´이 어떻게 만세일계의 절대권력자이자 일본의 상징으로 떠올랐는가이다. 1부에서는 많은 일본 전문가들이 토로하는,“‘천황´과 황실 얘기만 나오면 일본인들과의 대화는 더 이상 진전이 안된다.”는 현상을 다룬다.‘천황´과 황실에 대한 믿음은 그야말로 무모함 그 자체다.2부는 2차대전 당시 ‘인간폭탄 부대’였던 카이텐, 오오카 부대원들을 다루면서 어떻게 꽃다운 젊은이들이 ‘텐노헤이카 반자이’를 외치며 죽어가야 했는지를 묻는다.3부는 근대화 과정에서 ‘천황´이 부각되는 과정을 다뤘고,4부는 ‘천황´제를 둘러싼 극우세력들의 테러와 협박,5부는 미·일동맹 아래 대국화를 꿈꾸는 일본이 ‘천황´을 어떻게 다시 이용하려 드는가를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쏠쏠하게 건진 것들도 많다.‘천황´과 황실에 대한 보도지침을 뜻하는 기쿠 터부,2차대전 당시 일본 본토에서 미국에 결사항전하기 위해 지은 마쓰시로 대본영의 모습, 얼마전 논란이 일었던 ‘천황´의 사이판 방문 이모저모, 일본국 헌법개정을 둘러싼 논란 등이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겼다. 그러나 이런 사실관계를 다룬다 해도 일본인이 변할까. 제작발표회장에 참석한 한 일본 기자는 “일본인들도 잘 모르는 얘기”라고 했다지만 ‘믿음’은 사실관계와 다른 차원의 문제기 때문이다.‘천황´제에 이의를 제기하던 메이지 당시 민권운동,20세기 초 공산주의,60∼70년대 적군파, 이들 모두가 실패한 이유기도 하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30)서산대사와 ‘정감록’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30)서산대사와 ‘정감록’

    서산대사(西山大師 1520∼1604)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대사에 관한 조선시대 일반 민중의 기억은 그런 것이다. 대사는 절간에 몸을 매어두고 있었지만 국란을 당하자 창칼을 들고 일어나 왜적을 무찔렀다. 그래서 국왕의 총애를 받아 벼슬이 당상관(堂上官 정3품 이상의 고관)에 이르렀다. 민중이 기억하는 서산대사는 무엇보다도 도술에 능했다. 그는 바람과 비를 마음대로 몰고 다니는, 그야말로 신출귀몰한 신승(神僧)이었다. 이런 역사적 기억은 사실에 토대를 둔다. 하지만 기억이 사실 그 자체는 아니다. 기억은 무척이나 선택적이며 주관적인 것이다. 특히 민중 사이에서 구전으로 전승돼 온 기억은 더욱 그렇다. 거기에는 많은 사람들의 염원이 숨쉬고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 민중의 기억은 역사에 대한 민중의 바람이라고 해야 옳다.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 민중이 기억하는 서산대사는 모르는 것, 못 할 일이 단 하나도 없는 완벽한 존재였다. 그러므로 그는 당연히 앞날을 정확히 꿰뚫어볼 수 있어야 했다. 서산대사에 대한 민중의 기대는 ‘서산대사비결’이란 책자를 낳았다. 비슷한 이유에서 민중은 신라 고승 원효가 지었다는 ‘원효비결’이란 예언서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원효비결’은 20세기 후반에야 등장했다. 그와 달리 ‘서산대사비결’은 조선 후기에 출현해 정감록의 일부가 되었다. 서산대사는 왜 서산대사로 불리는가? 그는 오랫동안 관서지방의 묘향산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대사의 법명은 휴정(休靜), 속성은 최씨다. 대사는 묘향산에서 멀지 않은 평안도 안주(安州) 출신이었다. ●서산대사는 호국불교의 상징 타고난 운명이 기구했던지 대사는 어린나이에 부모를 잃었다. 사춘기엔 방랑을 떠나 멀리 남부지방까지 떠돌았다. 그는 지리산에 매료돼 숭인장로(崇仁長老)란 고승의 문하에 들어갔고, 선승(禪僧)으로 이름을 떨치게 된다. 그러던 중 선조 22년(1589) 정여립(鄭汝立) 모반사건이 일어났다. 서산대사는 이 사건에 연루돼 갖은 고초를 당했다. 그러나 결백이 입증돼 국왕의 특명으로 석방된다. 평소 대사는 즐겨 시문을 지었다. 옥사 사건 때 조정 대신들은 그 글들을 세밀히 검토하게 되었다. 대신들은 서산대사의 글이 단아한데다 그 대부분이 국왕을 위한 기도로 가득하다는 점을 발견하고 무척 놀랐다. 국왕 선조 역시 대사의 충성심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선조는 서산대사에게 친필로 시를 써주었다. 아울러 손수 그린 묵죽(墨竹) 한 점을 주어 대사의 마음을 위로했다(실록, 선수 23년4월1일 임신). 얼마 후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왜군은 파죽지세로 조선팔도를 유린했고 선조는 의주까지 밀려났다. 국운이 위태롭기 그지없었다. 수년 전 서산대사를 깊이 신뢰하게 된 국왕은 대사에게 도움을 부탁한다. 서산대사는 전국 각지의 사찰에 연락해 의승군(義僧軍) 5000명을 조직한다. 서산대사가 이끈 승군은 명나라 군대와 함께 평양성 탈환에 참여한다. 작전은 성공했고 덕분에 국왕은 서울로 환도한다. 서산대사는 제자 유정(惟政)과 처영(處英)에게 승군의 지휘를 맡기고 묘향산으로 돌아간다. 서산대사는 사명당이란 이름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유정을 왜군 진영에 보내 정전회담을 모색하게 했다. 그런데 공식적인 역사기록에 따르면, 서산대사의 승군은 전쟁터에서 직접적인 공적을 별로 쌓지 못했다 한다. 살생을 금기로 삼고 있는 승려들인 만큼 접전(接戰)엔 약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승군은 성실해서 요새의 경비에 뛰어났다. 성을 보수하거나 새로 축성하는 데도 그만이었다. 승군의 이런 장점은 널리 인정을 받게 돼,“각 도가 모두 승군에 의지하였다”(선수 25년7월1일 무오). 왜란 중 서산대사의 처신에 대해서 비판적인 견해도 있다.“그는 자신의 공을 믿고 교만 방자하여 행궁(行宮) 어문(御門) 밖에서까지 말을 타고 횡행(橫行)하였다. 심지어는 대궐 출입까지 허락받기도 했다.”(선조26년7월19일 신미) 평소 불교계를 배척해온 유학자들로서는 서산대사가 궁궐출입을 하는 것이 무척이나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서산대사가 방자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는 이미 나이가 80에 가까워 도보로 먼 거리를 출입하기란 불가능했다. 왕은 이런 사정을 고려해 대사에게 말을 타고 궁궐을 드나들게 허락했다고 봐야 옳다. 선조가 자신에게 특별한 호의를 보이자 서산대사는 그 기회에 불교를 중흥할 꿈을 키웠다. 대사는 선종(禪宗)을 중심으로 삼아 분열된 교단을 통합하려 했고, 이를 위해 몇 권의 책자를 저술했다. ‘선가귀감’(禪家龜鑑)은 선종의 입장에서 모범이 될 만한 가르침을 모은 것이다.‘선교석’(禪敎釋)과 ‘선교결’(禪敎訣)은 선종과 교종을 비교 설명한 것이다. 이밖에 참선수도에 필요한 주문을 모아 ‘운수단’(雲水壇)을 짓기도 했다.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서산대사의 뜻대로 불교가 중흥되지는 못했다. 대사는 결국 금강산에서 입적했는데, 자신의 의발(衣鉢 승려의 유품)을 전라남도 해남 대흥사에 두라고 유언했다. 제자들은 그 말을 따랐다. 그들은 대흥사 경내에 표충사(表忠祠)를 세워 대사의 은덕을 추모했다. 뒷날 정조는 표충사라는 현판을 사액했다(정조12년7월5일 을축). 대사가 오래 주석했던 묘향산(妙香山)에도 수충사(酬忠祠)라는 사당이 봉헌됐다(정조 18년3월16일 계묘). 정리하면, 서산대사는 고대부터 이어진 호국불교의 전통을 따른 고승이었다. ●서산대사는 만능의 도사 국가가 편찬한 역사기록은 믿을 만한가? 역사상 있었던 구체적인 사실에 관한 기록은 신빙성이 높다고 본다. 그러나 모든 역사적 사실이 다 기록되지는 못한다. 그럴 필요도 없다. 역사책에 기록될 사실은 어차피 선택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사실의 선택은 이미 역사적 사건에 관한 주관적 해석이다. 심지어는 왜곡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서산대사가 호국불교의 화신이었는가를 확인하는 작업은 간단하지 않다. 그걸 확인하는 방편으로 조선시대 민중이 서산대사를 어떻게 인식했는가를 알아볼 수도 있다. 민중의 견해는 민간설화로 남아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설화에서 보이는 서산대사의 모습은 도술의 대가였다. 물론 대사가 정말 도술에 능했을 리는 없다. 다만 민중은 임진왜란이라는 국가적 위기를 맞아 여러 방면에서 활약한 대사의 모습에서 참된 영웅의 모습을 발견했던 것이다. 대사는 그런 영웅이기 때문에, 그에 걸맞게 마음대로 도술을 부릴 수 있었을 거라고 상상했던 것이다. 서산대사의 도술 이야기는 임진왜란에 관한 것이 많다. 한 번은 서산대사가 제자 사명당을 일본에 사신으로 보내면서 부적(符籍) 하나를 건네줬다고 한다. 이 부적 덕택으로 사명당은 일본의 왕성에 있던 병풍에 적힌 시구를 모두 알아 맞힌다. 일본인들은 사명당을 무쇠 방에 집어넣고 불을 때 태워 죽이려 했지만 사명당은 방안에 고드름이 맺히게 해 그들을 놀라게 한다. 그런가 하면 임진왜란 때 명나라의 원병이 오게 된 것도 서산대사 덕분이라 한다. 일찍이 서산대사는 중국의 큰 부자에게 살아 움직이는 금강산도(金剛山圖)를 그려 주었다. 그림 값으로 수표 한 장을 받았는데 어떤 가난한 사람에게 주어버린다. 나중에 그 집 딸이 큰 부잣집에 시집가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선에 원병을 보내게 한다. 명나라 장수로 조선에 파견돼 온 이여송이 생떼를 부리자 이를 무마했다는 전설도 있다. 이여송은 용의 간과 소상강 반죽을 내놓으라며 억지를 부렸는데 대사가 개입해 백마의 간과 백두산의 대나무로 대신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진주성에서 기생 논개가 왜장을 안고 남강(南江)에 투신하게 된 것도 실은 서산대사의 지도로 된 일이었다고 한다. 물론 이런 설화들은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 사명당의 외교적 수완이 뛰어났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서산대사의 부적 때문에 공을 세웠다곤 볼 수 없다. 명나라가 조선에 이여송을 파견한 것, 이여송이 방자하게 굴었던 점도 사실이다. 하지만 서산대사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었다. 논개의 죽음을 서산대사와 연결시키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서산대사와 사명당의 도술시합 민중은 영웅인 서산대사와 그 제자 사명당의 도술 시합도 창안해 냈다. 사제관계였던 두 명의 고승이 도술시합을 벌인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를 점쳤던 것이다. 어느 날 사명당이 서산대사를 찾아 금강산 장안사로 갔다. 절 마당에 들어서는 순간 법당문이 열리며 서산대사가 밖으로 나오려는 것이었다. 사명당은 대사에게 말싸움을 건다. 사명당은 마침 공중을 나는 참새 한 마리를 손으로 움켜쥐고 대사에게 묻는다. “지금 제 손아귀에 들어 있는 이 참새가 죽을까요, 살까요?” 사명대사는 이렇게 응수한다.“내 한 쪽 발이 법당 안에 있고, 또 한 발은 법당 밖에 나가 있다. 내가 밖으로 나가겠느냐, 안으로 들어가겠느냐?” “그야 밖으로 나오시겠지요. 애초 나오실 생각이 없으셨다면 문은 왜 열며, 벌써 한 발은 왜 밖으로 딛으셨겠습니까?” “맞다. 네가 손에 쥔 참새도 마찬가지다. 불승이 어찌 살생을 하겠느냐?” 얼핏 막상막하로 뵈지만 서산대사의 판정승이다. 사명당은 고작해야 발의 동작에 주목했다. 하지만 서산대사는 일시적인 몸동작이 아닌 승려 본연의 자세를 논했기 때문이다. 사명당은 등에 졌던 봇짐을 내려 놓는다. 그 안엔 바늘이 가득 담긴 그릇이 있다. 사명당은 잠시 그 바늘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그러자 바늘이 먹음직한 국수로 변한다. 사명당은 국수를 맛있게 먹으면서 서산대사에게도 함께 먹기를 청한다. 두 사람은 맛있게 바늘국수를 먹는다. 잠시 후 서산대사의 입에선 바늘이 줄줄 흘러나온다. 사명당은 얼른 패배를 인정하기가 싫다. 이 번엔 백 개의 계란을 꺼내어 땅바닥에서부터 한 줄로 차근차근 쌓아 올린다. 신기에 가깝다. 서산대사는 그 모양을 보고 빙긋 웃더니 계란을 공중에서부터 거꾸로 쌓아 내려온다. 마지막 용기를 내어 사명당은 푸른 하늘을 바라본다. 그러자 여태 구름 한 점 없이 맑던 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모인다. 금방 천지를 뒤흔드는 천둥번개가 친다. 밧줄처럼 굵은 빗줄기가 한참동안 쏟아져 내린다. 서산대사는 한바탕 껄껄 웃고 나서 소낙비를 멎게 한다. 뿐만 아니라 땅바닥을 적신 빗방울까지 몽땅 하늘로 거둬 버린다. 사명당은 패배를 깨끗이 인정한다. 그 순간부터 사명당은 서산대사를 깍듯이 스승으로 모신다. 조선시대 민중은 스승과 제자의 서열을 뒤집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사명당도 서산대사 못지않게 뛰어난 고승이었건만 민중의 공론은 명백했다. 감히 제자가 스승을 앞지를 수는 없었다. ●예언가 서산대사의 비결(訣) 절세의 영웅 서산대사는 과거 현재 미래를 투시하는 능력을 가졌다. 어떤 여인이 광주리에 달걀을 가득 담은 채 손을 팔팔 휘저으며 걸어갔다. 그러자 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 본 대사는 광주리 안의 달걀이 64개임을 대번에 알아 맞혔다.“팔팔(八八)” 걸었기 때문이란다. 물론 이것은 민중이 지어낸 익살이다. 그러나 장난끼어린 익살 속에도 서산대사의 투시력에 대한 민중의 기대가 숨어 있다. 실제로 서산대사는 한두 가지 예언을 남겼고 그대로 적중했다고 한다. 그는 임종시 유품(遺品)을 해남 대흥사에 두게 했다. 제자들은 왜 하필 그렇게 멀고 구석진 곳이냐고 물었다. 대사는 그곳이 “천년 병화(兵火)가 미치지 않아 영원히 허물어지지 않을 땅”이며 “불교의 법통이 돌아갈 곳”이라 말했다. 과연 서산대사의 유품을 보관하게 되자 이 절은 크게 융성했다. 이 절엔 서산대사의 금란가, 옥발, 수저, 신발, 염주, 교지 등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음은 물론, 초의대사(草衣大師)를 비롯해 많은 고승들이 배출됐다. 조선 후기가 되어 세상이 어수선해지자 많은 사람들은 예언서를 찾게 되었다. 만일 서산대사 같은 분이 살아 계신다면 앞일을 무어라 말씀하실까, 하는 생각들도 적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서산대사비결’이란 신종 예언서가 탄생했다. 실상 서산대사와는 무관한 예언서였다. 생전에 조선왕실의 안녕을 위해 충성을 다 바친 대사의 이름을 빌려 그 왕실의 패망을 아무렇지도 않게 예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사의 이름을 빌린 이 예언서의 내용은 대개 이렇다.1. 조선 말년에 당목 넷이 지나면 지혜 있는 선비는 반드시 떠나갈 것이다.2. 만일 성스러운 해를 만나면 천척의 배가 갑자기 인천, 부평의 넓은 들에 정박하리라.3.10년 동안 들에서 밥을 먹으니 집 생각하는 마음이 무궁하고, 천리에 곡식을 운반하니 편안하고 한가할 날이 기약이 없다.4. 코가 검은 장군이 여진에서 나와서 오얏나무를 보호하기 위해서 가시덤불을 벤다고 큰소리치지만 그는 실상 오얏나무를 베는 도끼다. 첫째는 난을 피해 길지로 숨을 시기를 예언한 것이고, 둘째는 진인이 이끄는 천척의 배가 쳐들어올 시기를 말한 것이다. 셋째는 혼란기에 벌어질 전쟁이 10년 동안이나 지속된다고 본 것, 넷째는 이씨 왕조(‘오얏나무’)를 뒤엎을 세력이 북쪽에서 나온다는 예언이다. 이런 내용은 ‘정감록’에 실린 다른 예언서들과 별로 큰 차이가 없다. 특히 첫째부터 셋째까지는 ‘감결’에 나와 있는 내용을 그대로 되풀이한 것이다. 넷째 번은 좀 색다른 내용을 담고 있다. 이전에 살핀 대로 ‘토정비결’에선 요동에서 곽 장군이 나와 진인왕을 돕는다고 했다.‘서산대사비결’에선 바로 그 곽 장군을 ‘코가 검은 장군’으로 바꿔 썼다. 게다가 그 곽 장군이 진인왕을 직접 돕는 것이 아니라 조선왕실의 편을 드는 척하다 결국 왕조를 뒤엎어 버린다고 예언한 점에서 약간 차이가 있다. 여기서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비슷비슷한 내용의 예언서들이 자꾸 만들어진 이유는 뭘까?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곧 조선왕조는 망한다. 그 다음엔 진인왕이 새 나라를 세운다. 그러나 왕조교체의 과도기엔 오래 혼란이 지속된다. 그 때 사람들은 길지로 피란가는 것이 상책이다.” 이것이 ‘정감록’의 핵심이다. 조선 후기의 술사들은 민중이 기억하는 역사상의 대 예언가들의 이름을 빌려 이런 메시지를 기정사실로 만들려고 했다. 이를테면 부조(浮彫) 수법이었다. 때론 다른 이유도 작용했다.‘정감록’에 담긴 메시지를 수정하거나 보충할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예언은 미래를 겨냥한 것이고 따라서 불확실할 수밖에 없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향해 던지는 점괘는 늘 달리 풀이될 수 있어야한다. 그런 점에서 대안이 늘 필요했다. 엄밀한 의미로 ‘서산대사비결’은 ‘정감록’의 개정판이었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사설] 스타교수도 연구비 떼먹는 풍토

    서울대 공대 오모 교수가 어제 연구비 등 16억여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됐다. 서울공대 교수로는 지난 7일 조모 교수가 같은 혐의로 구속된 데 이어 두번째이다. 이번에 구속된 오 교수는 지난 4월 미국의 관련 학회가 제정한 ‘올해의 논문상’을 받는 등 해당 학계의 소위 스타교수였고, 지난번 구속된 조 교수도 승승장구하던 소장 엘리트 학자였다고 한다. 그런데도 돈에 눈이 멀어 학자적 양심을 포기한 것을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검찰이 서울공대 교수들을 상대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고 하니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오히려 두려워지는 심정이다. 횡령 혐의로 구속된 두 교수의 사례를 보면 그 수법이 참으로 유사하다. 연구 과제를 맡아 연구비를 타낸 뒤 실험자재 구입비용을 거짓으로 꾸미거나 과다하게 책정했으며 연구를 돕는 제자들의 급여를 떼어먹어 제 뱃속을 채웠다. 그리고는 제자와 제자의 부모 등을 동원해 허위 세금계산서를 만들어 이를 숨기려고 했다. 이같은 행태는, 연구과제 유치는 개인의 치부 수단이요 제자들은 어떻게 부려먹어도 탈이 없다는 식의 교수사회 특유의 타락한 풍토를 여실히 보여준다. 최근의 교수 구속 사태와 관련, 서울대는 연구비를 투명하게 지출하는 종합대책을 세우느라 고심하고 있다. 물론 제도를 정비해 부정이 발생하지 않도록 원천봉쇄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는 교수사회의 의식 자체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 지금처럼 연구성과보다는 개인적인 인맥·충성도를 기준으로 교수 자리가 대물림되는 현실에서 부정부패의 고리가 끊어지기를 바라는 일은 연목구어(緣木求魚)에 불과할 것이다.
  • [사설] 불법도청, 政·經·言 유착 모두 밝혀야

    국가정보원의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가 김영삼(YS) 대통령 시절 불법도청팀을 운용했고, 그 팀이 했다는 녹취 내용이 흘러나오고 있다. 불법도청이 있었는지 과거사 규명 차원에서 밝혀야 한다. 군사독재정권에서 그렇게 해도 용서받지 못할 일인데, 문민통치를 내세웠던 YS정부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더욱 충격적이다. 이와 함께 도청 내용의 진실여부가 가려져야 한다. 정치권과 특정 대기업·언론사 고위층이 유착해 불법자금을 주고받고 대통령선거에 영향을 미쳤다면 실상을 국민에게 알리고 책임을 따져야 할 것이다. 일부 언론은 당시 안기부가 ‘미림’이라는 특수도청팀을 가동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통신도청은 물론 술집, 밥집에서의 은밀한 대화를 현장도청했다고 한다. 도청팀 운용이 일부 안기부 간부들의 충성심에서 비롯된 일탈행동일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용납되고, 정권 내내 이어졌다면 구조적 문제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국정원은 어제 긴급대책회의를 가진 뒤 “잘못된 과거를 씻어버린다는 자세로 철저하게 진상을 규명해 국민에게 밝힐 것”을 다짐했다. 통신기밀보호법, 국가정보원법 등의 공소시효가 만료되었다는 지적이 있지만, 정치적·도덕적 책임이라도 반드시 물어야 한다. MBC가 확보했다는 ‘X파일’ 도청테이프 내용은 법원 결정으로 육성 방송되지 못했다. 그러나 1997년 대선자금 지원을 놓고 모 대기업 고위인사와 모 언론사 고위층이 나눈 대화를 담고 있다고 한다. 정계와 재계, 언론계가 불법을 도모하는 양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국정원 등 관계기관의 진상규명 노력과 더불어 거론되는 기업이나 인사들 스스로 해명할 필요가 있다. 이번 도청 파문은 과거 일로만 치부할 수 없다. 현 정부는 정보기관의 정치사찰이 지금은 사라졌는지 면밀히 살펴야 한다. 어느 구석에라도 예전의 잘못된 관행이 남아있다면 바로잡아야 한다. 정부와 여야 정당, 언론사들은 자신들의 유·불리, 경쟁자 흠집내기 차원을 넘어 국가를 바로 세운다는 자세로 이번 사안에 임해야 한다.
  • 정책영향평가제 ‘봇물’

    정부의 각종 정책 추진으로 파생되는 부정적 영향을 미리 파악, 정책 입안에 반영하는 정책영향평가제도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환경영향평가나 교통영향평가, 인구영향평가, 재해영향평가 등은 이미 ‘고전’이 됐고 성별영향분석평가, 인권영향평가, 프라이버시영향평가, 과학기술영향평가 등 새로운 ‘신상품’이 각 부처에서 쏟아져 나올 태세다. 당장 국무조정실과 국가청렴위원회는 21일 잇따라 규제 및 부패와 관련한 영향평가제도를 입안, 시행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기상청도 개발사업이 기후에 미치는 영향을 점검하기 위한 기후영향평가제 신설을 추진 중이다. 문화관광부와 환경부는 문화공간 및 지역문화와 해당 지역 주민들의 건강의 상관성을 파악하기 위한 문화영향평가, 건강영향평가 등을 검토하고 있다. 국무조정실이 지난 18일 입법예고한 행정규제기본법 개정안은 정부 각 부처가 규제를 신설하거나 강화하는 내용의 정책을 입안할 경우 반드시 입법예고 단계에서 규제영향분석서를 마련, 이해당사자 등의 여론을 수렴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매년 6월 말까지 규제사무목록을 국회에 제출토록 하고, 일몰규제 시한을 연장하려면 시한만료 6개월 전에 관련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토록 해야 한다. 국가청렴위도 부패영향평가제도를 하반기부터 점진적으로 시행한다. 각종 법령에 담긴 부패유발요인을 찾아 이를 개선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이와 별도로 정책입안단계에서의 부패비리 소지를 차단하기 위한 투명성평가제도도 검토하고 있다. 특정 이해당사자의 요청으로 정책이 입안되지 않는지, 여론수렴이 요식적으로 이뤄지지 않는지 등을 점검하는 것으로, 청렴위는 연말까지 평가모형을 개발해 이르면 내년 상반기부터 시행할 방침이다. 각 부처의 경쟁적인 영향평가제 도입은 신중한 정책입안을 통해 정책추진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취지라는 점에서 일면 긍정 평가된다. 그러나 각종 영향평가제도가 중복되는 경우가 많아 ‘행정과잉’이라는 지적과 함께 자칫 공무원들의 정책입안을 소극적으로 만들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청렴위의 투명성평가제도는 국무조정실이 하반기부터 시행에 들어간 정책품질관리제도와 상당부분 상충된다.청렴위 고위관계자는 그러나 “일단 투명성평가방안을 하반기 중 마련한 뒤 정책품질관리제도와의 상충성 여부를 따지겠다.”고 말했다.진경호기자 jade@seoul.co.kr
  • ‘특별 여름 마케팅’ 치열

    신문 지면에도 여름 냄새가 물씬 풍긴다. 업체들이 장마, 바캉스 등 여름을 주제로 하는 이른바 ‘여름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신규 고객을 겨냥하기보다 기존 고객의 만족도를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추는 이들 광고는 전자, 금융, 통신, 자동차 등 전 분야에 걸쳐 이뤄지고 있다. LG전자는 최근 장마철을 겨냥해 건조 기능이 있는 세탁기인 ‘스팀 트롬’ 프로모션 광고를 게재 중이다. 모델 이나영과 세탁기 사진을 배경으로 장마철 빨래 때문에 걱정이 많은 주부들을 겨냥,‘장마철, 찜찜한 기분까지 100% 뽀송 뽀송! 이제, 스팀 트롬으로 살균하세요.’가 제목이다. 하단에는 ‘No.1 트롬의 No.1 페스티벌’ 행사도 함께 알리고 있다. 이밖에 장마철 가전제품으로 꼽히는 제습 에어컨, 제습기, 살균 효과가 있는 식기세척기 등 광고도 눈에 띈다. SK텔레콤은 여름 휴가를 저렴하게 즐기는 자사 프로모션 행사들을 광고로 내보낸다.‘시원하게 빠진다.SK텔레콤 고객만의 Water-World!’를 제목으로 내세운 광고에는 1만명에게 에버랜드가 운영하는 물놀이 시설인 캐리비안 베이 입장권을 무료로 준다는 내용을 알리고 있다. 또 ‘서머홀릭 페스티벌’편에서는 ‘사랑에 빠진 러브홀릭보다, 일에 빠진 워커홀릭보다, 발리와 싱가포르에서의 특별한 휴가에 빠지고 싶다면 지금 SK텔레콤을 시작하세요.’라며 신규 고객들을 겨냥해 자사 서비스를 쓸 것을 권하고 있다. 기아차는 휴가철 RV(레크리에이션 차량) 수요가 많아지는 것을 겨냥해 미니 밴인 ‘그랜드 카니발’을 최근 출시하면서 이 제품 광고 하단에 ‘제21회 기아고객 오토캠프(RV 해변 모토쇼)’ 행사도 함께 알리고 있다. 오는 23일 기아차가 자사 고객을 대상으로 동해안에서 개최하는 이번 캠프에서는 이 차와 관련된 각종 전시와 이벤트가 열릴 예정이다. KT는 최근 ‘내 이름은 김삼순’으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 자사 초고속인터넷인 ‘메가패스’의 모델 현빈의 수영복 사진을 게재한 프로모션 광고를 집행 중이다. 캐리비안 베이 무료 입장권 증정 등 행사를 알리고 있다. KB카드, 비씨카드 등 금융권의 여름 마케팅도 뜨겁다.KB카드는 ‘KB카드와 함께 하는 아!夏∼Festival’ 광고를 통해 자사의 휴가철 차량 무상점검, 전국 수영장 및 렌터카 할인 등 혜택을 소개하고 있다. 비씨카드는 ‘비씨카드가 시원하게 쏩니다. 차갑게 팡팡팡!’이란 제목으로 캐리비안 베이 30% 할인 혜택을 강조하고 있다. 이밖에 GM대우차, 하이트맥주 등도 여름 행사를 마련, 광고를 통해 알리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여름 시즌을 겨냥한 프로모션 광고는 소비자들에게 친숙한 브랜드 이미지를 활용해 자연스럽게 소비자 참여를 유도하는 한편 브랜드 충성도도 높일 수 있어 유용하다.”고 설명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씨줄날줄] 종친회/이용원 논설위원

    한국 사람처럼 자신의 성씨(姓氏)에 대한 관심과 충성도가 높은 민족은 따로 없을 듯하다. 통성명을 마치면 상대의 본관과 항렬(行列)을 확인한 뒤 그 집안의 내력을 줄줄이 읊어주는 보학(譜學)의 대가가 적지 않고,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일단 본관을 들은 뒤에는 “아, 양반 집안이군요.”라고 찬사를 던지는 건 기본예의라 할 정도이다. 거기에 상대방 집안에서 배출한 역사적 인물을 기억해 내 한마디 거들면 둘의 관계는 급속히 친밀해진다. 혈통은 아직도 우리사회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지금의 중국식 성씨가 일반화한 시기는 나말여초(羅末麗初)이다. 물론 그전에도 성씨는 있었다. 고구려에는 고(高)·을지(乙支), 백제에는 부여(夫餘)·흑치(黑齒), 신라에는 박(朴)·석(昔)·김(金)씨 등 3국의 성씨가 한국·중국 등의 사서에 10여가지씩 등장한다. 하지만 7세기 신라가 당나라를 본떠 제도를 정비하고서야 한자로 된 성이 확산되기 시작했고 이후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 태조가 개국공신과 지방 호족들에게 성을 널리 내림으로써 제도로 정착됐다. 2000년 인구 센서스에 따르면 국내에는 286개 성(귀화인 제외)에 4179개 본관이 있는데 그 대부분이 고려 시대에 자리잡은 것이다. 이는 ‘세종실록’지리지에 이미 250여 성씨가 등장하는 것으로도 입증된다. 유학이 성한 조선시대에 들어 각 가문은 정체성을 확보, 유지하고자 종친회를 만들고 족보를 간행했다. 종친회로서 처음 기록에 나타나는 것이 1580년의 ‘안동 김씨 종약소’임을 감안하면 종친회의 역사도 400년이 넘었다. 종친회를 빙자해 값싼 족자를 10만원대에 팔아온 일당이 엊그제 검찰에 붙잡혔다고 한다. 이들은 대성(大姓)이 아니라서 도리어 문중에 대한 귀속의식이 강하리라 짐작되는 성씨 가운데 시골에 사는 사람들을 전화번호부에서 골라 범행해온 것으로 드러났다.5년동안 7900여명에게 7억여원어치를 팔았는데도 피해신고가 한건도 없었다고 하니 종친회를 믿고 의지하는 마음이 어느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듯 요즘 각 종친회는 문중 일을 맡아 하려는 젊은이들이 없어 크게 고민이라고 한다.400년 넘게 이어온 우리의 전통 하나가 사라지는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을 느낀다. 이용원 논설위원 ywyi@seoul.co.kr
  • 저우언라이 평전/리핑 지음

    ‘만년 2인자’란 말에 담긴 이미지는 그렇게 긍정적이지 않다.1인자가 누구이건 그 비위를 맞추며 권력의 단물을 탐하는 사람이란 부정적 이미지가 강하다. 그래선지 1인자가 아닌 2인자로서 역사적으로 크게 주목받는 인물을 찾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30년 가깝게 중국 총리를 지내면서 ‘영원한 2인자’란 수식어를 달고 다닌 저우언라이(周恩來)는 사후에도 긍정적 평가를 훨씬 많이 받는 대표적 인물이다. 중국에 대한 평가에 극도로 인색했던 작가 헤밍웨이조차 그를 만나고 후일 “저우언라이는 내가 중국에서 만난 사람중 유일하게 좋은 사람이다. 중국 공산당원들이 모두 그와 같다면 중국의 미래는 분명히 그들의 것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저우언라이 평전’(리핑 지음, 허유영 옮김, 한얼미디어 펴냄)은 사후에도 ‘영원한 인민의 벗’으로서 중국 인민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저우언라이의 일대기를 충실하게 담아낸 저작이다. 저자 리핑은 중국 중앙문헌연구실 저우언라이 연구팀장을 역임한 이력에 걸맞게 풍부한 문헌자료와 당대 저우언라이와 교류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기록물들을 통해 저우언라이의 일생을 밀도있게 재구성했다. 저우언라이는 철저한 마르크스주의자이자 애국자였다. 국공내전 시기 충칭에서 미국 ‘뉴욕타임스’ 기자가 그에게 “중국인과 공산당원이라는 신분 가운데 어떤 게 더 중요합니까?”라고 질문하자, 저우언라이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그야 물론 중국인의 신분이지요.”라고 답한다. 이념이나 권력에 앞서 인민과 애국을 앞세운 그의 자세는 공산혁명 시기부터 1976년 사망할 때까지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지속된다. 그의 혁명 이력은 청년 시절 5·4운동 참여, 광저우 코뮌 조직, 대장정 참가, 국민당과의 항일연합전선 구축 등으로 이어진다.1949년 중국 정권 수립 경제의 근대화, 자주적인 외교, 지식인들과 문화에 대한 각별한 애정, 소수민족 문제 등 그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분야는 없었다. 문화대혁명 기간중 그는 홍위병들을 대상으로 한 연설에서 “건국 이래 17년 간, 당과 정부의 업무는 과오보다 성과가 많았다. 설령 방향과 노선을 잘못 제시한 과오가 있다고 해도 그것이 혁명을 하지 않았다거나 반혁명이라고 몰아붙일 수는 없다.”고 비판했다. 그럼에도 저우언라이는 당시 혁명 지도자들중 유일하게 실각하지 않고 살아남아 중국 현대화를 이끈다. 덩샤오핑이 주도적으로 진행한 ‘4대 현대화’노선은 이미 저우언라이에 의해 주창된 것들로, 저우언라이는 실용주의 노선에 입각해 중국 현대화의 초석을 깔았으며, 마오쩌둥 이후를 준비했다. 결국 1976년 저우언라이와 마오쩌둥의 죽음 이후 중국은 실용과 개방으로 나아가며 오늘의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중국의 경제성장 하면 덩샤오핑 이후 모든 게 이루어진 것처럼 이야기되지만, 사실 저우언라이가 총리로 재직했던 1949년부터 1975년까지 덩 이후의 경제성장에 필요한 물질적 기초가 이루어졌다. 이 기간 식량 생산량이 두 배 이상 증가했으며, 철강재와 전력 생산량은 각각 50배,45배 넘게 증가했다. 핵무기 개발과 인공위성 발사 등을 통해 군사적, 과학적 강대국으로 자리매김한 것도 이때였다. 하지만 저우언라이를 향한 중국인들의 존경심은 이같은 외양보다는 그의 절대적 청렴·봉사·희생정신 때문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그는 평생 자신의 옷을 수선해 입었으며, 홍수 등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가장 먼저 현장으로 달려가 인부들과 함께했다. 군용기를 타고 가다가 위급상황이 닥쳤을 때 자신이 메고 있던 낙하산을 벗어 울고 있는 아이에게 건네주기도 했다. 임종시엔 자신을 화장해 고향에 뿌려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남으로써 단 한 뼘의 땅도 자신을 위해 쓰이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다른 지도자들이 권력이 바뀌면 1인자인 마오쩌둥, 덩샤오핑 등의 휘장으로 바꾸어 달 때 ‘인민을 위해 봉사한다’라고 적힌 휘장만을 평생 가슴에 달고 다닌 이가 바로 저우언라이였다. 영원한 2인자였던 그가 진정으로 충성을 바친 대상은 1인자가 아닌 인민과 국가였던 것이다.2만 5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취재원 보호되는 사회가 바람직”

    “신뢰할 만한 취재원이 평생 보호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을 하야시킨 워터게이트 사건을 특종 보도한 워싱턴포스트의 밥 우드워드 기자는 이달 초 발간된 ‘비밀스러운 남자-워터게이트 딥 스로트 이야기’의 마지막을 이렇게 마무리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자사의 주디스 밀러 기자가 중앙정보국(CIA) 비밀요원의 신분 누설사건의 제보자 신원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법원으로부터 수감 명령을 받은 6일(현지시간) 장문의 서평을 싣고 우드워드의 당시 심경과 취재원 보호에 대한 신념을 조명했다. 우드워드는 “위축된 상황에서도 사람들이 앞으로 걸어 나와 이야기할 수 있으며 보호받을 수 있다고 믿는 사회가 바람직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같은 신념에 따라 우드워드는 지난달 마크 펠트 전 연방수사국(FBI) 부국장이 딥 스로트임을 고백했음에도 불구하고 책에선 진짜 딥 스로트가 누구인지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그리고 펠트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독자들의 궁금증을 완전히 풀어주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우드워드 기자는 누군가 대통령 집무실의 녹취 기록을 삭제했다는 엄청난 특종을 하게 된 것은 펠트의 제보 덕분이었다고 털어놓았다. 또 1976년 다른 사건 재판 중 펠트 전 부국장이 한 배심원으로부터 “당신이 딥 스로트냐.”는 질문을 받고 경악스러울 정도로 당황한 반응을 보여 법무부 직원 스탠리 포팅어가 펠트의 정체를 파악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펠트가 비밀 정보를 제공하게 된 것은 FBI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과 백악관에 대한 혐오, 에드가 후버 전 국장에 대한 충성심,‘게임’을 즐기는 취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했다. 우드워드는 또 딥 스로트의 신원을 신문사 내부에서 백악관에 흘리는 ‘첩자’가 있다는 심증을 가졌으며 이로 인해 백악관도 펠트의 정체를 거의 다 파악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우드워드는 올해 91세의 펠트를 2년 전 만났을 때 치매 증세로 과거 일을 제대로 기억하지도 못했다고 전했다.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은행, 대표스타 키우기 ‘바람’

    ‘대표 스타를 키워라.’ ‘영업대전’을 치르고 있는 은행들이 재테크 전문가를 집중 육성하고 있다. 각종 은행상품은 물론 부동산과 세무 등 다양한 재테크 분야에서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전문가를 발굴, 언론 노출을 최대화해 영업력 극대화는 물론 은행 이미지 제고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것이다. ‘간판스타’들은 대부분 국제공인재무설계사(CFP), 세무관리사, 부동산경매분석사, 투자상담사, 신용분석사 등의 자격증으로 중무장한데다 글솜씨도 빼어나고, 얼굴까지 받쳐줘 은행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다. 시중은행 고위관계자는 “고객의 입장에서 보면 이들의 대표성이 행장을 능가한다.”면서 “잘 키운 재테크 전문가 1명이 웬만한 지점 10개를 늘리는 것보다 더 가치있다.”고 말했다.●언론 창구 단일화? 하나은행은 지난달 29일 프라이빗뱅킹(PB) 재테크 관련 인터뷰나 기고를 전담할 전문가 2명을 선발했다. 압구정 중앙골드클럽 최준호 부장과 대치역 골드클럽 강원경 팀장이 주인공. 하나은행 관계자는 “그동안은 15명 안팎의 전문가들이 돌아가며 칼럼을 집필하거나 인터뷰에 응했지만 대외적인 재테크 전담 인력을 키운다는 전략으로 이들을 선발하게 됐다.”고 말했다. 우리은행도 최근 들어 박재현 강남교보타워센터 PB팀장을 전략적으로 키우고 있다. 우리은행 홍보실은 다양한 재테크 관련 문의를,5년간 PB영업 일선에서 뛰며 능력을 인정받은 박 팀장에게 집중시키고 있다. 향후 박 팀장과 손발을 맞출 2∼3명의 전문가도 물색중이다. 외환은행은 환테크, 세무, 주부 및 여성재테크, 실버재테크 등 영역별로 대표 전문가를 선발해 운영하고 있다. 이중 홍일점인 압구정지점 오정선 팀장은 재테크에 관심이 많은 주부층을 집중적으로 파고들고 있다. 국민은행도 무려 6개의 투자관련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는 김재욱 재테크 팀장을 기업체나 학교의 강사로 파견, 은행의 이미지 제고를 노리고 있다.●충성도가 관건 ‘재테크 스타’를 통해 가장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는 은행은 역시 조흥은행이다. 조흥은행은 재테크라는 용어조차 생소했던 1998년부터 서춘수 재테크 팀장을 내세워 이 분야를 리드해 왔다. 조흥은행 관계자는 “은행 부실, 신한금융지주로의 편입이 이어지면서 달갑지 않은 뉴스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서 팀장이 그나마 조흥은행의 자존심을 지켰다.”고 말했다. 조흥은행은 최근 서 팀장을 강북PB센터 지점장으로 발령내고 후임으로 김은정 차장을 발탁해 2세대 재테크 스타 키우기에 돌입했다. 신한은행이 내세우는 스타는 개인영업추진부 한상언 팀장이다. 한 팀장은 영업 일선에서는 뛰지 않고 은행의 재테크 컨설팅 전반을 아우르며 PB교육, 대언론 집필 및 인터뷰 등을 전담하고 있다. 은행들은 간판 스타의 최고 덕목으로 조직에 대한 충성도를 꼽는다. 스타들이 ‘뜨기’ 시작하면 다른 은행에서 앞다퉈 스카우트 제의를 해오기 때문이다. 더구나 보수적인 은행 연봉 체계상 이들에게만 특별 인센티브를 제공할 수 없어 웬만한 ‘돈’에는 흔들리지 않는 사람을 적임자로 꼽고 있다.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美 연방대법관 임명 보수-진보 갈등

    미국 최초의 여성 연방대법관 샌드라 데이 오코너(75)가 지난 1일 은퇴를 선언함으로써 후임 대법관 임명을 둘러싼 보수와 진보간 갈등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최고 헌법기관인 연방 대법원의 판결이 대법관들의 성향에 달려 있다는 이유에서다. 오코너는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면서도 낙태 문제 등에서 진보적인 입장을 개진하는 등 9명의 대법관 사이에서 ‘힘의 균형자’ 역할을 해온 것으로 평가받았다. 전립선암 투병으로 역시 은퇴 압력을 받아온 보수파의 좌장격인 윌리엄 렌퀴스트 대법원장은 오코너의 은퇴 발표로 더욱 압박감을 느낄 것으로 관측된다. 오코너의 은퇴 선언으로 대법원에 11년 만에 빈 자리가 생겨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처음으로 지명권을 행사하게 됐다. 보수 진영은 오코너의 후임으로 충성심이 뛰어난 보수 인사를 지명해야 한다고 벼르고 있다. 부시 대통령이 “국민은 공정한 투표와 절차가 특징인 상원의 위엄있는 인준 과정을 지켜볼 자격이 있다.”고 밝힌 것은 공화당의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인준을 밀어붙이겠다는 뜻이라고 뉴욕 타임스(NYT)는 전했다. 반면 민주당측은 ‘사법적 독립성’을 강조하며 부시 대통령이 보수에도 진보에도 치우치지 않는 인사를 중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의치 않을 경우 의사진행 방해(필리버스터) 방식을 동원해서라도 뜻을 관철시킬 태세다. 진보 성향인 워싱턴 포스트(WP)와 NYT 모두 사설을 통해 오코너와 같은 성향의 인사를 지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 진영의 종교·시민단체들은 TV광고 등을 통한 홍보전에 돌입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오코너 후임자로는 앨버토 곤잘러스 법무장관과 여성 후보인 제5회 순회항소법원 에디스 존스 판사 등 10여명이 거론되고 있는데 특히 곤잘러스 장관에 대해 보수진영 안에서도 격렬한 반대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고 WP와 NYT 모두 1면 머리로 보도했다. 부시 대통령의 오랜 친구이자 첫 히스패닉 출신 대법관이란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그가 낙태 문제 등에서 자유주의적 판결을 내릴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라고 두 신문은 덧붙였다. 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대선조작 의혹’ 아로요 남편 출국

    ‘사임의 수순인가, 아니면 민심 수습 차원인가.’ 대선 결과 조작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글로리아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의 남편 호세 미구엘 아로요 변호사가 전격적으로 필리핀을 떠나게 된 가운데 대통령에 대한 탄핵 움직임도 구체화되고 있다. 아로요 대통령은 29일 마닐라에서 열린 한 경제포럼에서 “남편이 자진해서 필리핀을 떠나 제3국으로 갈 것”이라며 “대통령직에 부정적인 영향과 의구심을 미칠 어떤 상황에서도 자유로워지기를 원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 정국 타개 방안으로 측근인 레안드로 멘도자 교통장관 등 4명의 각료를 해임할 예정이라고 필리핀 현지 ABS-CBN방송이 보도했다. 아로요는 남편이 어느 나라에 얼마나 오래 머물지에 대해선 전혀 언급하지 않아 또 다른 의구심을 낳았다. 로단테 마르콜레타 필리핀 의원은 29일 아로요 대통령에게 탄핵 요건 중 하나인 ‘배임’ 혐의가 있다며 올리버 로자노 변호사가 접수한 탄핵안에 지지서명을 했다고 밝혔다. 아로요 대통령의 측근인 로일로 골레스 하원의원은 이날 선거부정 의혹 관련 의회 조사를 맡고 있는 국방위원장직을 사퇴, 아로요 대통령과 선거관리 위원이 대선 결과 조작을 용인하는 듯한 대화를 나눈 문제의 도청 테이프도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아로요 대통령의 남편은 아들 후안과 함께 불법 유사 복권게임 운영자로부터 뇌물을 받아 챙겼다는 의혹을 받았다. 아들도 최근 비리 의혹속에 국회의원직을 사임한 뒤 휴가를 떠나 의혹은 더욱 커지고 있다. 경제부진, 하층민의 불만고조 등으로 아로요에 대한 사임 압력은 높아지고 있으나 대통령 탄핵안이 상원까지 갈지는 의문이다. 여당이 상·하 양원을 모두 장악하고 있고 군부가 여전히 아로요에 대한 충성을 다짐하고 있기 때문이다.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청렴·검소 ‘이란 로빈후드’

    오는 8월 취임할 마무드 아마디네자드(48) 이란 대통령 당선자는 ‘평등과 계율’을 앞세우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다. 이슬람 가치에 기반을 둔 서민지향적인 경제정책과 종교적 색채의 정책들을 주장해 왔다. 이란의 핵 개발을 지지하고 미국을 “이슬람의 적”이라고 비판해 왔다. 지난 1979년 테헤란 미국대사관을 점령했던 학생동맹 지도자 출신으로 대사관 점거 계획에도 가담했다. 이란 혁명수비대 특수부대 사령관, 바시지 민병대 지도자 등을 지낸 이란 최고 종교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신임을 받는 ‘충성파 정치인’이다. 서민적 풍모에 검소하고 청렴한 면모로 인기를 얻었다. 선거 승리도 서민성이 큰 역할을 했다. 자신의 웹사이트 명칭이 ‘마르도미야르’(국민의 친구)이기도 하다. 한편 물가상승률 16%, 실업률 30%에 허덕이는 이란의 서민들에게 석유 생산으로 인한 부를 돌려주겠다고 약속하며 꿈을 주는 ‘이란의 로빈후드’로 불린다. 1956년 수도 테헤란 남동쪽으로 100㎞ 떨어진 아라단에서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테헤란대학에서 토목공학 박사학위를 받고 교편을 잡기도 한 수재다.1990년대 아르데빌 시장으로 일했고 2003년 테헤란 시장으로 당선, 교통문제를 해결했다. 하지만 문화센터를 기도하는 곳으로 바꾸고, 시영 승강기의 성별 분리 이용, 테헤란시 남성 직원들이 긴 셔츠를 입을 것 등을 강요, 개혁파의 비판을 받았다. “대통령이 되면 궁궐에 살 것이냐.”는 질문에 “모든 이란 사람들이 궁궐을 갖게 될 때 나도 궁궐에 살 것”이라고 답할 정도의 대중주의자로 유명하다.“나의 가장 큰 자산은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것을 사랑한다는 점”이라며 투표장에서 “이란의 하인이자 청소부가 되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1981년 이후 최초의 비성직자 출신 대통령이란 기록을 세웠다.윤창수기자 ge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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