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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히말라야 도서관/이명혜 지음

    히말라야 도서관/이명혜 지음

    1998년 마이크로소프트의 중국지사 이사였던 존 우드는 엄청난 업무에 짓눌려있었다. 그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고자 휴가를 받아 히말라야가 있는 네팔로 트레킹을 떠났다. 그는 그곳에서 학교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나마 사정이 조금 나은 편이라는데도 그 학교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잘 나가던 직장 던지고 과감한 도전 교실 바닥은 그대로 흙이었고, 책상도 모자라 아이들은 무릎에 책을 올려놓고 공부하고 있었다. 도서관은 더욱 가관이었다. 책은 캐비닛에 잠가 보관하고 있었으나, 그것도 외국 등산객이 버린 것 같은 성인소설이 대부분이었다. 선생님들은 “책 좀 가져다 주세요.”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우드는 휴가에서 돌아오자마자 이메일로 친구들에게 이같은 사연을 알렸다. 결과는 놀라웠다. 그는 차고를 가득채운 3000권 남짓한 책을 가지고 이듬해 네팔을 찾았다. 그는 두 번째 히말라야 여행에서 자신의 인생을 어디에 걸어야 할지를 고민하게 된다. 바닥으로 떨어질 은행잔고, 스톡옵션과 회사가 제공하는 고급주택을 포기할 수 있을까 번민하던 그는 “일회용 반창고를 제거하는 두가지 방법이 있지. 천천히 고통스럽게, 또는 빠르고 고통스럽게. 너의 선택이야.”라는 친구의 조언을 듣고 결단을 내린다.2000년 마이크로소프트를 사직하고 비정부기구(NGO)인 ‘룸투리드(Room To Read)’를 설립한 것이다. 존 우드의 ‘히말라야 도서관’(이명혜 지음, 세종서적 펴냄)은 바로 룸투리드가 어떻게 개발도상국에 학교와 도서관을 지었는지를 보여준다. 네팔에서 시작된 룸투리드의 활동은 곧 인도와 베트남으로 이어졌고, 현재까지 라오스, 스리랑카, 아프리카에 이르는 많은 나라에서 학교 200곳, 도서관 3000곳을 짓고 책 150만권을 기증했다. 이 책의 원제목은 ‘세계를 변화시키려 마이크로소프트를 떠나다.’쯤으로 번역할 수 있을 ‘Leaving Microsoft to Change the World’. 룸투리드가 ‘자선사업계의 마이크로소프트’라는 별명을 얻은데서 짐작할 수 있듯이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얻은 경영방식과 인적 네트워크를 그대로 적용했기 때문이다. 우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전 직원과 델 컴퓨터의 창업자인 마이클 델, 골드만삭스, 실리콘밸리의 전설적인 투자가 돈 리스트윈, 심지어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최대 경쟁자인 넷스케이프의 마크 앤드리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업과 개인은 룸투리드의 후원자로 만들었다. ●자선사업에도 철저한 경영원리 도입 그는 마이크로소프트 시절 상사였던 스티브 볼머의 경영방식을 룸투리드에 적극적으로 녹여내고자 했다.‘결과에 집중하고, 토론을 권장하고, 숫자에 강하고, 서로에게 충성하는’ 이른바 볼머주의 경영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도서관과 학교를 지으며 지역사회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력을 요구하는 것도 룸투리드 사업의 특징이다. 자선단체가 마을에 들이닥쳐 시설을 지어주고는 방치하고 떠나는 식으로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룸투리드가 도서관 건축에 필요한 자금을 대면 지역사회는 노동력과 땅을 내도록 한다. 도서관이 문을 연 3년 뒤에는 지역사회가 도서관 운영기금을 스스로 마련할 수 있도록 자립기반을 만들어주는 데 힘을 기울인다. 지역사회의 참여는 도서관의 생존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드는 한국판의 서문에서도 “많은 한국계 기업들도 다양한 방법으로 자선사업을 펼치며, 소비자들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알고 있다.”면서 “세계적인 한국계 기업들이 언젠가 룸푸리드의 주요 후원자로 등장하는 날을 기대해 본다.”고 자선사업에 경영원리를 본격적으로 도입한 인물로서의 자질을 다시 한번 드러냈다.1만원.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전세계 1000마리 남은 희귀종 강아지 아세요?

    최근 영국에서 세계에서 가장 보기드문 견종이 언론을 통해 소개되었다. 지난 2007년 한해동안 영국에서 단 36마리만 태어난 ‘아이리쉬 글렌 오브 이말 테리어’(Glen of Imaal terriers) 종이 그 주인공. 각종 애견 클럽에서 ‘가치있는 강아지’(vulnerable dogs) 부분에서 늘 상위권을 차지해 온 명견 중의 명견이다. 현재 전세계에 있는 아이리쉬 글렌 오브 이말 테리어의 수는 약 1000마리로 영국에서만 단 25마리의 강아지들이 사육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전세계에 분포해 있는 멸종위기의 자이언트 판다(약1600마리)보다도 그 수가 적어 강아지 교배에 더 힘써야한다는 반응. 16세기 아일랜드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 견종의 역사는 어느 테리어 종보다도 총명하고 용감한 기질을 갖고있다고 평가된다. 이 종은 농장에서 가축을 돌보거나 쥐를 잡는데 재주가 있으며 충성심·인내심이 뛰어나 가정견으로도 알맞다. 또 주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빨리 이해해 이 견종을 선호하는 애견가들도 적지 않다. 뉴베리 그래너리 견종클럽(Newbury Granary Kennels)의 사육사 제인 위더스(Jane Withers)는 “최대 15년까지 살 수 있는 이 종은 주인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있다.”며 “멸종위기에 처해진 자이언트 판다보다도 더 적은 수여서 이 견종을 늘리는데 힘쓰고 싶다.”고 밝혔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주미옥 기자 toyobi@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글로벌 시대] 글로벌 인재의 조건/박현정 크레디트스위스 기업커뮤니케이션 이사

    글로벌 PR회사 호프만 에이전시의 싱가포르 지사에서 일하는 김지선씨는 글로벌 인재로 성장하고 있는 우리 젊은 세대의 전형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고 국내 대학 졸업 후 해외유학을 한 김씨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원칙에 충실한 젊은 프로페셔널이다. 뛰어난 업무능력 덕에 해외지사에서 일한다는 것은 그녀에게 결코 두려운 선택이 아니었다. 다민족 국가인 싱가포르에서 다양한 이들과 부딪히며 씩씩하게 일하고 있는 김씨는 ‘뚜렷한 주관을 가지되 타인의 다름을 존중하는 자세’가 바로 글로벌 마인드라고 명쾌하게 정의한다. 토마스 프리드만은 ‘지구는 평평하다.’는 도발적인 제목의 저서를 통해 시·공간적 제약이 없어진 지구촌이 얼마나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무한경쟁으로 치닫고 있는지를 박진감 있게 풀어냈다. 글로벌 기업에서 일하다 보면 프리드만의 ‘평평한 지구’가 한 눈에 들어오지 않을 뿐이지 글로벌화가 의미하는 변화의 속성을 하루에도 몇 번씩 실감하게 된다. ‘글로벌 시대는 요구하는 인재상도 변화시킨다. 국내 기업이든 외국 기업이든 글로벌 경쟁력의 확보라는 공통된 과제 앞에서 모두가 지향하는 인재상은 비슷하다. 국내외 기업들이 원하는 글로벌 인재란 어떤 사안을 글로벌 시각으로 볼 수 있고, 다양한 문화적 맥락을 이해할 수 있으며, 현지화의 중요성과 그 접근방법에 대한 경험과 노하우를 갖춘 재원을 말한다. 그렇다면 글로벌 인재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자질은 무엇일까. 우선 국제감각을 들 수 있다. 이는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개방적 태도와 문화적 맥락을 이해하는 능력을 뜻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가치관은 자신이 익숙한 환경과 경험치를 크게 벗어나기 쉽지 않은 법이다. 과연 자신이 어떠한 사안을 한국적 관점이 아닌 다양한 관점으로 사고할 수 있는 균형감각을 가지고 있는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그 다음은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다. 당연히 국제 공용어인 영어능력은 필수다. 갈수록 문화적, 그리고 언어적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소통의 묘가 절실해지는 비즈니스 환경에서 영어능력은 글로벌이라는 라벨을 붙이느냐 못 붙이느냐의 결정적 차이를 만든다. 하지만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영어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가 우리말에 대한 상대적 경시의 의미는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모국어는 개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일 뿐 아니라 문화적 다양성을 소화하기 위한 핵심자산이다. 세 번째로 중요한 것은 보다 확대된 차원의 전문성이다. 예를 들어, 자신이 유능한 마케팅 전문가로서 한국시장에서 훌륭한 성과를 냈다면 미국이나 말레이시아 시장에서도 훌륭한 마케터일 수 있어야 한다. 마케팅에 대한 이해와 경험, 그리고 문화적 특성을 고려한 현지화를 통해 응용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마케터가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창의성이다. 사실 우리는 스스로 주입식 교육으로 인한 창의성 부족을 많이 지적한다. 하지만 기업세계에서 목도하는 한국인의 문제 해결방식을 보면 한국인이 지닌 창의성의 잠재력은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한국기업 특유의 서열주의와 관료주의로 인해 창의성이 자유롭게 발휘될 수 있는 정서적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았을 뿐이다. 주한 외국기업의 CEO들은 한국인의 우수성을 얘기할 때 높은 교육수준, 충성심, 근면성을 주로 꼽는다. 세가지 모두 훌륭한 자질임은 분명하지만 글로벌 인재의 자질로는 미흡한 감이 없지 않다. 직업세계로의 진입을 준비하는 젊은이들뿐 아니라 이미 직업인인 기성세대 또한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인재로 거듭나기 위해선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박현정 크레디트스위스 기업커뮤니케이션 이사
  • 게임업계, 똑똑한 아우들이 몰려온다

    게임업계, 똑똑한 아우들이 몰려온다

    ‘전작을 능가하는 속편은 없다.’ 영화 등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오랜 정설이다. 하지만 게임업계에선 형만한 아우, 아니 형보다 나은 아우들이 여럿 존재한다. ●전작 인기 바탕… 온라인 버전 개발 게임업체들이 속편을 만드는 것은 전작의 인기를 이용해 쉽게 인지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충성도 높은 기존 이용자들을 고스란히 넘겨받을 수 있다는 점도 업체로선 큰 매력이다. 이를 노려 PC 패키지나 비디오 게임으로 인기를 끌었던 원작을 온라인 버전으로 개발하기도 한다. 예당온라인은 국내 최초의 풀 3차원(3D) 게임 ‘프리스톤테일’의 후속작 ‘프리스톤테일2’를 내놓는다. 프리스톤테일이 출시된 지 5년 만이다.4년간 100억원의 개발비를 투입한 대작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이다. 프리스톤테일2의 강점은 아케이드 게임이나 콘솔 게임에서 경험할 수 있었던 뛰어난 액션성이다. 타격감이 좋다는 ‘언리얼 엔진’을 사용했다. 다음달 공개서비스에 들어갈 예정이다. ‘카운터 스트라이크 온라인’은 미국 밸브사의 원작을 넥슨이 온라인으로 개발한 1인칭슈팅(FPS)게임이다. 카운터스트라이크는 전 세계에서 지금까지 900만장이 넘게 팔리면서 ‘FPS의 교과서’로 불린다. 온라인으로 옷을 갈아입은 ‘카스’에 대한 반응도 뜨겁다. 네오위즈게임즈도 미국 EA와 함께 개발한 ‘배틀필드 온라인’을 내놓는다.‘배틀필드’는 2차 세계대전 및 소말리아 내전 등을 배경으로 탱크, 비행기 등 여러 가지 탈 것을 이용한 액션이 압권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배틀필드는 EA가 최근 국내에 설립한 개발 스튜디오의 첫 작품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도 관심을 끌고 있다. 형보다 높은 기대를 받고 있는 게임으로 미국 블리자드의 전략시뮬레이션 게임 ‘스타크래프트2’도 빼놓을 수 없다. 스타크래프트2가 출시 10년이 넘도록 높은 인기를 누리며 e스포츠의 대명사로 불리는 전작 스타크래프트의 명성을 이어갈 수 있을지 관심이다. 이외에도 후속작 출시가 줄을 잇고 있다. 윈디소프트는 국내에서 1000만명 이상의 회원을 확보한 인기 온라인 대전게임 ‘겟엠프드’의 속편 ‘겟앰프드2’개발에 착수했다. 액션과 그래픽, 격투 시스템 등을 전작에 비해 강화한다. 엠게임도 인기만화 ‘열혈강호’의 원작자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열혈강호2’를 개발하고 있다. ●‘후속작´ 이유로 평가절하 되기도 한 게임업체 관계자는 “성공한 전작의 게임성은 이어받으면서 그래픽이나 게임성 등을 더 업그레이드한 후속작은 쉽게 인기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작의 성공이 언제나 약이 되는 것만은 아니다. 게임 자체로는 괜찮지만 후속작이라는 이유로 전작과 비교되고 전작의 성공으로 인해 평가절하되기도 한다. 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전작이 있는 게임들은 이미 이용자의 기대치가 높다. 전작의 이용자들에게 익숙하면서도 새로움을 주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일”이라고 고민을 토로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해동 육룡이 날으샤’ ‘정조대왕 이산’/로크미디어 펴냄

    팩션(faction)은 역사적 사실이나 실존 인물의 이야기에 소설가의 상상력을 가미한 새로운 문학예술 갈래다. 작가의 상상력이 보태지는 만큼 자칫 그릇된 역사관을 심어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최근 출간된 추리작가 이상우(70)씨의 ‘해동 육룡이 날으샤’와 ‘정조대왕 이산’(로크미디어 펴냄)은 ‘조선왕조실록’을 토대로 한 팩션 작품. 추리작가 특유의 상상력으로 다양한 복선을 깔아 마치 퍼즐을 짜맞추는 것처럼 짜릿한 전율감을 안겨준다. 세밀한 심리 묘사와 속도감 있는 전개, 그리고 뒤통수를 강타하는 복선이 곳곳에 숨어 있어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 듯 생동감과 긴박감이 넘친다. ‘해동육룡이 날으샤’는 조선 개국 후 일어난 골육상쟁의 참극인 이방원과 방석간의 ‘왕자의 난’이 배경이다. 비취 불상이라는 천축국 보물에 얽힌 미스터리와 태평방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추적하는 지관의 뜨거운 사랑과 모험이 박진감 있게 펼쳐진다. 여기에다 지관 김용세와 여진족 출신 상궁 신홍아 사이에 얽힌 러브 로망이 당대 주요 사건들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재미를 극대화시키는 팩션이다. ‘정조대왕 이산’은 조선을 개혁하기 위해 수원에 화성을 쌓고 ‘정치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신념을 천명한 정조가 개혁을 펼치는 시대에 정조를 위해 목숨을 건 친위대 하급군관 장용영의 이야기가 씨줄날줄로 촘촘하게 짜여졌다. 주인공 장용영의 정조에 대한 충성과 천주교도 여성과의 사랑은 보는 이의 마음에 울림을 준다. 특히 정조 암살이 진행되던 당대의 시대상과 막 들어온 천주교의 움직임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각권 9500원.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대박 난 여성 겨냥 제품들의 트렌드

    대박 난 여성 겨냥 제품들의 트렌드

    여성들을 겨냥한 제품에서 대박 행진이 이어진다. 탄탄한 직장과 재력을 갖춘 골드미스가 늘어나면서 화장품 매출은 커지고, 간식, 음료, 가전, 여가생활까지 여성 소비자가 주인공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여심(女心)을 훔친 히트 제품들을 통해 유행 트렌드를 점검했다. ●화장품…기초는 고가·색조는 알뜰 화장품은 고가형이든 실속형이든 품질이 매출을 좌우했다. 국내 화장품 판매 1위 업체인 아모레퍼시픽은 설화수 브랜드에서 나오는 윤조에센스가 지난해 총 152만개,725억원어치가 팔렸다고 25일 밝혔다. 화장품 시장 2위 업체인 LG생활건강에서 지난해 가장 많이 판 이자녹스 썬밤(총 20만개,30g 3만원)보다 7배 넘게 팔렸다. 윤조에센스는 60㎖ 한 병이 소비자가격 8만원.1997년 출시 이래 1000만개 판매를 돌파했다. 피부 노화가 건조한 기운에서 온다는 전제 아래 피부를 윤택하게 해준다는 뜻을 담아 윤조라고 이름붙었다. 반면 루나는 실속형 색조 화장품으로 꼽힌다. 조성아 원장이라는 유명 미용 전문가의 손길을 거친데다 색조 물광 등 시즌마다 새로운 주제로 변신하고 있다. 낱개로 사면 총 20만원 이상의 제품을 묶음으로 9만 9000원에 주는 점도 변덕스럽고 따지기 좋아하는 여심을 잡은 인기 비결.GS홈쇼핑에서 여성(93%)이 가장 많이 구매한 제품 1위로 지난해 총 30만개 250억원 어치가 팔렸다. 제조사인 애경은 이에 힘입어 4년 만에 화장품 사업 흑자전환이란 경사를 맞기도 했다. ●‘날씬한´ 간식·음료 인기 과자 업계가 트랜스 지방 파동과 웰빙 열풍으로 매출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가운데 카카오 초콜릿은 대박을 내면서 전체 초콜릿 시장을 키우고 있다. 지난해 전체 초콜릿 시장은 전년보다 10% 커진 3500억원으로 업계는 추정한다. 카카오 초콜릿이 일반 초콜릿보다 카카오 함량이 30% 이상 높아 항산화로 인한 노화예방은 물론 다이어트에도 효과적이라고 강조되면서 20∼30대 여성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는 설명이다. 피자도 다이어트족을 겨냥한 해산물이 인기다. 미스터피자의 쉬림프골드피자는 3년 연속 이 회사 판매 1위를 기록하며 1000만판 판매를 돌파했다. 여성 피자를 테마로 하는 미스터피자는 지난해 전년보다 33% 많은 3200억원의 매출을 올려 1위인 피자헛을 턱밑까지 추격하고 있다. 음료는 남양유업의 17차가 지난해 총 1200억원어치를 팔아 전년에 이어 판매 1위 자리를 고수했다.L-카르니틴과 카테킨이 들어 있어 체중조절에 도움을 준다는 점을 내세워 여심을 잡은 대표 제품으로 꼽힌다. ●여심 좇는 호텔 패키지도 불티 호텔에서도 젊은 여성이 주요 마케팅 대상이다.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의 유좌린 예약과장은 “패키지 예약을 문의하는 사람은 대부분 여성으로 패키지 혜택에 들어가는 화장품 용량까지 꼼꼼히 확인할 정도로 많이 따져 보고 선택도 까다롭다.”면서 “그러나 이용 후 만족도가 높으면 호텔에 대한 충성도가 높아 여성 고객의 중요성이 계속 강조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최근 1∼2년 사이 이 호텔에서 여성 겨냥 상품이 많이 나온다. 여성 친구끼리 함께하는 파자마 패키지, 여성들이 꿈꾸는 첫날 밤을 겨냥한 허니문 패키지, 결혼 전 친구들과 파티하는 신부 샤워 패키지, 임산부를 위한 베이비 샤워 패키지, 로맨틱한 하루를 위한 로맨틱 패키지 등이다. 로맨틱 패키지의 경우 1박에 40만∼50만원대의 고가이지만 지난해 판매율이 전년 대비 20% 성장했다는 설명이다. ●가전도 여성을 고려해야 대박 루펜은 음식쓰레기처리기의 대중화를 주도했다는 평을 받는다. 지난해 7월 한 달간 GS홈쇼핑을 통해 40회 방송에서 2만대(40억원어치) 판매를 시작으로 24일 현재 판매고가 40만대(수출분 포함)에 달하고 있다고 밝혔다. 맞벌이나 독신 여성들은 물론 국물이 뚝뚝 떨어지는 음식물쓰레기를 들고 밖으로 나가야 하는 수고를 덜어준 대표적인 아이디어 가전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밖에 고급 속옷 브랜드 비비안에서 지난해 출시한 스킨 핏 브라(5만 9000원)는 지난 한 해 총 9만매 이상 팔렸다. 지난해 연예인과 디자이너를 내세운 홈쇼핑 속옷 브랜드가 봇물을 이룬 점을 감안하면 의미있는 기록이다. 딱붙는 옷을 입어도 군살이 두드러지지 않도록 봉제선을 처리한 게 인기 비결로 보인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불패신화 이순신 장군에 깊은 감명”

    “스미나르, 엘리 무신 알가.(충성! 앞으로 나아가 승리하자)” 18일 경남 진해 해군사관학교에서 열린 제66기 생도 가입교식에는 낯선 얼굴이 한 명 등장했다. 카자흐스탄 출신의 카파쇼프 아스카르 켄디르베쿨(19) 생도.2006년 5월 한국과 카자흐스탄 국방부가 체결한 군사교육 교류협력에 따라 카파쇼프가 해군사관학교에 첫 신입생으로 들어온 것이다. 이날 160명의 생도와 함께 해군사관학교에 가입교한 카파쇼프는 앞으로 5주간의 기본훈련에 마친 뒤 정식 입학해 4년간 사관학교 생활을 할 예정이다. 까만 머리에 뽀얀 피부를 가진 카파쇼프는 유럽인이라기보다는 한반도에서 이주해 간 고려인의 모습과 더 가까워 보였다. “카자흐스탄의 해군은 이제 막 창설됐기 때문에 많이 부족합니다. 한국 해군에서 배운 기술을 카자흐스탄에 돌아가 적용해 보고 싶습니다.” 카파쇼프는 카자흐스탄의 국방부 군사외국어대학교에서 지리학을 공부하면서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한국어는 지난해 9월 한국에 온 뒤로 배우기 시작했지만 통역 없이도 일상생활을 할 정도로 익숙해졌다. “처음엔 한국말이 익숙하지 않아 힘들었습니다. 이젠 불고기, 갈비탕 같은 한국 음식도 즐겨 먹을 만큼 한국사람이 다됐죠.” 그러면서 그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이순신 장군은 23전23승 불패신화를 가지고 있는 훌륭한 제독”이라면서 “기회가 되면 그에 대한 연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카파쇼프는 3개월 이상 군함을 타야 하는 해외순항훈련 등 일반 해사 생도와 똑같은 교육을 받는다. 당장 가입교 기간 5주 동안 정신교육은 물론 수영훈련,1주간의 극기훈련 등 빡빡한 훈련일정을 소화해 내야 한다. 그는 “사관학교에서 1등으로 졸업해서 모국에 돌아가면 꼭 훌륭한 해군 장교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54) 후금,조선에 배(船)를 요구하다

    [병자호란 다시 읽기] (54) 후금,조선에 배(船)를 요구하다

    정묘호란이 끝난 뒤부터 병자호란이 일어날 때까지 조선과 후금의 관계는 아슬아슬했다. 조선은 후금과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바로 명과 가도라는 바깥 변수 때문이었다. 유흥치가 피살된 뒤, 가도를 탈출하여 후금으로 귀순한 자들 가운데는 홍타이지에게 가도를 빼앗을 기회가 왔다고 부추기는 자들이 있었다. 홍타이지는 그럴듯하게 여겼고 그 파장은 곧바로 조선으로 밀려들었다. 1631년(인조 9) 6월8일, 평안병사 유림(柳琳)이 보낸 장계가 조정에 도착했다. 호차(胡差) 중남(仲男)과 아지호(阿之好) 등이 군사 1만명을 거느리고 압록강을 건너와 가산(嘉山)의 서쪽 지역을 차단했다는 소식이었다. 같은 날 도착한 장계에서 평안감사 민성휘(閔聖徽)는 ‘호인들이 조선에서 배를 빌려 가도를 습격하려 한다.’고 보고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주변 고을의 수령들과 장수들을 불러모아 방어 대책을 세우고 있다고 보고했다. 소식을 접한 비변사는 ‘부원수 정충신(鄭忠信)을 평안도로 보내고 금군(禁軍)과 포수(砲手)를 평양으로 파견하고 황해도의 병력도 동원하라.’고 건의했다. 정묘호란 이후, 이렇게 많은 수의 후금군이 압록강을 건너온 적은 없었다. 그것은 사실상 침략이었다. 다만 그들은 남쪽으로 내려오지 않고 배를 빌려 달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인조는 황급히 비변사 신료들을 불러모았다. 영의정 오윤겸(吳允謙)은, 후금군이 배를 빌려 가도를 습격하려는 목적에서 침략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명에 대한 의리를 고려할 때 배를 빌려줄 수는 없다며 속히 황해도를 비롯한 각도의 군사들을 동원하라고 촉구했다. 최명길의 분석은 좀 달랐다. 그는 후금군이 쳐들어 온 것은 조정을 협박하여 식량을 구하려는 수작이라고 보았다. 최명길은 후금군이 깊숙이 들어오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군사 징발 때문에 민심을 소란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6월10일 호차 중남이 홍타이지가 보낸 국서를 갖고 서울로 올라왔다. 홍타이지가 보낸 편지는 조선에 대한 불만과 비난으로 가득 차 있었다. 홍타이지는 먼저 ‘조선이 양곡을 주는 바람에 가도가 존속하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이어 조선이 용천, 철산 지역의 땅을 가도 주민들에게 경작지로 제공하고 있는 것을 비난했다. 그는 정묘호란 당시 서울 이북 지역을 차지할 수 있었음에도 반환했음을 상기시킨 뒤 조선은 그럼에도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질타했다. 홍타이지는 ‘잘못을 사과하는 차원에서 배를 빌려 달라.’고 요구했다. 배를 빌려주기 않으면 의주와 철산을 점령하겠다고 위협했다. 중남이 입경한 그날, 명에서 온 사절도 서울로 들어왔다. 등래순무 손원화(孫元化)가 보낸 도사(都司) 왕순신(王舜臣)과 이매(李梅) 두 사람이었다. 그들은 인조를 만났을 때 조총, 구리 냄비와 배 100척을 구입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공교롭게도 명 사절들도 배를 내놓으라고 요구한 것이다. 당시 손원화는 바람 잘날 없는 가도의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배가 필요했다. 그는 조선에서 배를 구입하여 섬 안에 있는 인원과 전마(戰馬), 군수 물자 등을 등래(登萊) 지역으로 수송하려고 했던 것이다. 손원화의 요구는 조선에게 무척 버거운 것이었다.100척이나 되는 배를 새로 건조하기도 어렵고, 각 지역의 화물선들을 갑자기 차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또 섣불리 배를 주겠다고 약속했다가 후금이 알게 될 경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조선 조정은 결국 배를 제공하라는 요구는 완곡히 거부했다. 대신 조총 500자루와 구리 냄비 100개를 보내겠다고 확약했다. 명에 대해서는 참으로 충성스런 조선이었다. 청북 지역에 후금군 1만명이 주둔해 있고, 호차가 서울에 들어와 있는 상황에서 명 사절들에게 조총 500자루를 주겠다고 약속한 것은 분명 아슬아슬한 모험이었다. 조정은 실제로 왕순신 등이 중남과 조우하는 것을 막기 위해 노심초사해야 했다. 중남 또한 배를 빌려줄지 여부를 빨리 밝히라고 닦달했다. 조정은 중남에게 ‘명은 우리의 부모 나라이므로 너희에게 배를 빌려주는 것은 천륜을 저버리는 것이다. 부자(父子) 사이에 차마 못할 짓을 할 경우 형제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잔인하게 명을 저버리면 뒷날 너의 나라로부터도 의심을 받을 것’이라며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의리와 천륜을 강조하여 중남의 ‘심금을 울려 보려는’ 의도였다. 그러면서 후금군의 침략을 비난하고,‘형제 사이의 의리를 생각해서 며칠분의 군량을 제공할 것이니 빨리 철수하라.’고 촉구했다. 배를 빌려줄 수 없다고 하자 중남 일행은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렸다. 조정은 접대하는 신료를 보내 그들을 달래서 다시 데리고 들어왔다. 그들에게 성대한 연회를 베풀어 회유했지만 중남 등은 배를 빌려 달라는 요구를 접지 않았다. 조선 측이 다시 거부하자 중남 일행은 다시 일어나 귀국하겠다고 나가버렸다. 조정은 다시 사람을 보내 이미 녹번동까지 가 있던 중남 일행을 달래야만 했다. 후금은 왜 배를 빌려달라고 요구했을까? 당시까지 후금은 바다에서 작전할 수 있는 수군 전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요하(遼河)와 같은 내륙 지역의 강에서 운항할 수 있는 작은 규모의 배들은 있었지만 그것을 갖고 바다로 나가기는 어려웠다. 무엇보다 바다에서 배를 조종하고 전투를 벌일 수 있는 수군 병력이 없었다. 후금에는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그들의 육군은 철기(鐵騎)라 불릴 정도로 막강했지만 바다나 수군과 관련해서는 이야기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철산의 바로 코앞에 있는 가도에서 모문룡이 ‘발호’를 해도 수군이 없는 상황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모문룡은 바로 그 같은 후금의 약점을 파고들어 8년 가까이 ‘해외 천자’로 군림할 수 있었던 것이다. 후금은 조선의 수군과 항해술에 대해 매우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홍타이지는 심지어 ‘조선 수군이 명 수군보다 강하다.’라고 인식했다. 따라서 조선에서 배와 수군을 빌리면 자신들의 전력은 배가될 수 있다고 보았다. 수군만 있으면 코앞에 있는 가도를 점령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뿐만 아니라 후금의 서쪽을 철옹성처럼 막아 버티고 있는 산해관도 해로로 공격할 수 있었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은 ‘수군이 강한 나라’로 인식되었다. 왜란 초반 조선 육군은 연전연패했지만 수군은 달랐다. 일본군의 서해 진출을 막아 그들의 수륙병진(水陸竝進) 전략을 좌절시킴으로써 궁극에는 명의 안보까지도 지켜낸 것이 조선 수군이었다. 이순신(李舜臣)의 탁월한 영도와 거북선 등 조선 전함들의 활약상은 명 관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1626년 조선에 왔던 명사 강왈광(姜曰廣)은 ‘조선 사람들이 배를 조종하는 것은 빠르기가 비바람이 몰아치는 것 같다. 만일 그들이 오랑캐에게 넘어가 오랑캐들이 조선 수군을 이끌고 쳐들어온다면 산동이나 강남 지방은 하루도 편할 날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명청 교체기 명 관인들이 조선의 향배와 관련하여 가장 크게 우려했던 대목이 바로 수군이었다. 조선 또한 명과 후금의 대결 상황에서 ‘수군 문제’가 갖는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후금의 강요대로 배나 수군을 제공할 경우, 가도가 곧바로 위험에 처하고 산해관을 비롯한 명의 내지까지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었다. 후금에 배를 넘겨주는 것은 ‘부모의 나라’에 비수를 꽂는 것이었다.1631년 6월, 배 때문에 명과 후금 모두로부터 ‘코너에 몰려야 했던’ 조선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日언론 “반기문은 냉정하고 관료적인 사람”

    日언론 “반기문은 냉정하고 관료적인 사람”

    일본 산케이신문이 지난 1년동안 반기문 UN 사무총장의 직무 성과 등을 평가한 전문가 인터뷰를 실어 눈길을 끌고있다. 신문은 인터뷰 대상자로 제7대 사무총장 코피 아난에 관한 책을 저술하고 뉴욕타임스 등 주요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는 제임스 트라우프를 선정, 반 사무 총장에 대한 평가를 전했다. 먼저 트라우프는 “지난 1년간 수단의 다르푸르 분쟁도 있었지만 (국제사회가 분열할 정도의) 심각한 위기는 없었다.”며 “사무총장으로서의 자질을 평가할 수 있는 사건이 없었기에 (성과보다는) 반 총장의 자세와 스타일이 자질 기준이 될 것”이라고 서두를 열었다. 트라우프는 “아난 전 총장을 신사적이고 도덕적인 사람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많다.”며 “그러나 반 총장은 아난과 달리 냉정하고 관료적인 인상이 풍기며 발언도 매우 신중하게 하는 사람”이라고 지적했다. 또 “반 총장이 수단의 다르푸르 분쟁과 기후변동문제 등 여러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그만의 스타일인) 조화를 중요시하는 방식이 한계에 부딪힌 것 같다.”며 “수단 정부와의 비공식적인 교섭에도 힘쓰고 있지만 언젠가는 수단 정부에 공공연히 비판하는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친미(親美)색깔이 강한 것같다는 질문에는 “반 총장은 아난 총장 이상으로 친미 색깔을 갖고있지 않다.”며 “그러나 앞으로 얼마든지 문제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다음으로 한국인 직원이 급증한다는 산케이의 지적에 대해 트라우프는 “반 총장이 과거 35~40년을 한국 관료사회에서 지낸 인물이고 (그가) 신뢰하는 사람이 같은 조직에서 일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이해할 수 있는 문제”라며 “그러나 UN사무국에는 지금도 아난에게 강한 충성심을 가진 사람들이 있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고 피력했다. 또 “UN 사무총장은 (가능보다) 불가능에 가까운, 정말로 어려운 직무를 맡은 사람”이라며 “국제사회에 대한 그의 지식과 현명함이 과소평가되는 부분도 있다.”고 주장했다. 사진=산케이신문 인터넷판 캡처 서울신문 나우뉴스 주미옥 기자 toyobi@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사설] 인수위 ‘언론조사’ 파문 서둘러 덮었지만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언론사 주요 간부와 광고주의 성향을 조사해 물의를 빚고 있다. 인수위는 파문이 일자 곧바로 사과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도 어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철저한 규명을 지시했다고 한다. 그러나 발상 자체가 독재시절에나 나올 법한 것이어서 충격을 금할 수 없다. 더구나 언론사 살림과 밀접한 민간 광고주들의 인적사항 및 성향까지 살펴본 점은 과거의 음습한 언론통제의 망령을 떠올리게 한다. 인수위는 이번 파문이 “문화관광부에서 파견한 국장급 전문위원 개인의 돌출행위”라고 했다. 또 주요 인사들의 성향조사는 언론계 외에 출판·관광·영화계 등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관련부처에 말썽을 일으킨 전문위원에 대해 엄중 징계를 요청하고, 취합자료는 즉각 폐기토록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문제는 언론자유와 관련해 매우 중대한 사안이다. 단순한 해프닝이나 파문쯤으로 여겨 서둘러 덮을 일이 아니란 뜻이다. 인수위는 성향조사 내용을 조사 대상자에게 알리고 용서를 구하는 게 도리다. 우리는 인수위가 조직적 개입은 없었다고 한 해명을 믿고 싶다. 그러나 만에 하나, 이런 자료를 언론탄압이나 길들이기에 활용하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거듭 밝히지만 권력은 언론을 통제해서도, 통제하려 해서도 안 된다. 새 정권은 참여정부가 취재 선진화 명목으로 벌인 취재제한으로 인해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한 전례를 밟지 말아야 할 것이다. 언론과 권력이 제역할과 기능을 손상했을 때 국가적 폐해가 어떠했는지를 충분히 목도하지 않았는가. 이번 일은 인수위 내 충성경쟁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내부 단속을 철저히 해서 분위기를 다시 잡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 [내고장 이야기속 인물] ‘해남의 논개’ 官妓 어란

    [내고장 이야기속 인물] ‘해남의 논개’ 官妓 어란

    1592년 임진왜란 때 경남 진주에 논개가 있었다면 1597년 정유재란 때 전남 해남에는 어란(於蘭·?∼1597)이 있었다. 충절의 여인 논개는 잘 알려져 있지만 어란은 모른다. 두 여인 다 신분이 천한 관기(官妓)였다. 논개가 왜군 장수와 함께 투신해 조선 여인의 기개를 알렸다면 어란은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놓았다. 어란이 세계 해전사에 전무후무한 명량대첩의 일등공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란은 400여년간 철저하게 묻혀버렸다. 뒤늦게 해남 출신 원로 교육자인 박승룡(81)옹에 의해 이 전설 같은 이야기가 최근 문헌으로 확인돼 빛을 보게 됐다. (편집자주) 새해 1일 새벽, 땅끝인 해남군 송지면 어란리. 전형적인 바닷가 마을답게 해마다 풍어와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를 올렸다.400여년 전통이다.‘당주신위(堂主神位)’라고 돌에 쓰인 신주는 정유재란 때 나라를 구한 할머니로 보인다. 이 마을 옆 동산에는 17세기 초쯤 조선시대에 세워졌다는 석등이 있다. 마을사람들이 할머니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고 전해진다. 박승룡옹은 “일제 강점기 때 25년 동안 해남에서 순사를 한 일본인 사와무라 하지만다로(澤村八幡太朗)의 유고집에서 ‘어란’이란 여인의 행적을 찾아냈다.”고 말했다. 유고집인 ‘문록경장(임진·정유년)의 역(전쟁)’에서는 명량대첩의 패배를 어란의 간첩행위로 보고 있다. 그는 “마을 주민들이 알고 있는 마을의 수호신인 할머니 이야기와 책의 내용이 한치의 오차 없이 그대로 들어맞았다.”고 흥분했다. 마을주민들은 신주로 모신 주인공의 실체를 이제야 어란 할머니라고 알게 됐다. 박옹은 “정유재란 때 어란과 관계를 맺은 왜장 스가 마사가게(管正陰)는 실존인물”이라고 강조했다. 스가 마사가게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조선에 파견한 스가 히라에몬(管平右衛門)의 서자라고 일본 히로시마대학의 히구마 교수가 확인해줬다. ●명량대첩 일등공신 어란 명량해전은 충무공이 남은 12척의 배로 왜군 133척을 울돌목(명량)에 수장한 정유재란 최대의 승리다. 난중일기 등으로 당시 해전을 되짚어보자.1597년 8월26일 충무공은 우수영인 어란진에서 울돌목 앞인 진도군 벽란진으로 옮겨간다.9월7일에는 왜장 스가 마사가게가 군선 13척으로 정탐차 어란마을에 들어온다. 이어 14일쯤 왜군 총대장인 구루시마 미치후사(來島通總)가 어란마을로 들어온다. 이렇게 보면 어란이 왜장 마사가게를 만난 기간은 일주일 남짓이다. 마사가게는 첫눈에 어란의 미모에 넋이 나갔을 것이다. 결국 그는 잠자리에서 명량해전 출전일을 누설하고 만다. 때마침 조선인 김중걸이 왜군에게 붙잡혀 마사가게 앞으로 끌려온다. 그러나 누군가의 구명으로 김중걸이 풀려난다. 이 누군가는 김중걸이 떠나기 전 “나는 김해인”이라고 안심시킨 뒤 “‘왜놈들이 배들을 모아 조선 수군을 모두 몰살한 뒤 바로 경강으로 올라가겠다고 말하더라.’는 말을 우수영에 전하라.”고 귀띔했다. 왜군 장수의 총애를 받는 어란이 아니고는 포로가 풀려날리 만무하다. 김해인이란 본관이 김해 김씨일 듯하다.100만부가 넘게 팔린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에서는 ‘왜군이 어란항에서 출항할 때 적장(구루시마 미치후사)의 몸시중을 들던 조선인 여자 1명이 물에 뛰어들어 죽은 것으로 묘사된다. 소설이지만 음미할 만한 대목이다. 충무공은 김중걸로부터 적진 동향을 안 뒤 명량해전 이틀 전인 14일 본진을 벽파진에서 해남군 문내면 우수영으로 옮긴다. 이로써 충무공의 전술이 명량해협을 뒤에 둔 배수지진에서 앞에 둔 전법으로 급선회한다. 이 전술변경이 명량대첩의 승리를 가져온다. 명량해전 일인 9월16일 충무공은 전투 2시간여만에 불리한 전세를 뒤짚고 왜군 133척을 울돌목에 격침한다. 왜군은 좁고 물살이 센 울돌목에 놀라 큰 배들은 뒤에 남기고 작은 배들로만 울돌목을 건너 전투에 나섰다가 격침됐다. 퇴각하던 스가 마사가게는 이날 벽파진에서 익사한다. 일본 전사(戰史) 기록도 똑같다. 충무공은 9월14일자 난중일기에서 “(김중걸의)말이 모두 믿기는 어려우나 그럴 수도 없지 않을 듯해 전령선을 우수영으로 보내어 피란민들을 육지로 피하라고 타이르도록 했다.”고 적었다. 우수영으로 진을 옮긴 대목이다. ●어란은 이순신의 간첩 사와무라는 유고집의 48,49쪽에서 명량해전 대패의 원인을 어란진의 간첩사건으로 규정했다.‘어란진에 주둔한 스가 마사가게는 이순신군의 간첩인 미기(美妓) 어란과 애인관계로 사랑에 빠져 명량해 출전기일을 발설한다. 어란은 이를 이순신군에 연락한다. 결국 명량해전에서 애인 스가 마사가게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라에는 충성했지만 인간적인 양심의 가책으로 다음날 달 밝은 밤에 명량해가 보이는 서쪽바다에 투신한다.’고 적었다. 그러나 어란이 투신한 이유는 불분명하다. 또 87쪽 그가 지은 한시에는 ‘무희 요염에 유혹돼 어란진의 여심(旅心)에서 정을 맺은 것이 간첩의 그물에 걸리다.’ ‘정유재란 때 논개와 같은 업적을 남긴 여인이 있었다.’고 기록했다. 지금 마을주민 가운데 누구도 모르던 ‘어란’이란 이름도 이 유고집에서 처음으로 나온다.‘어란’이라는 마을 이름은 고려 공민왕 때부터 나온다. 사와무라의 유고집에 신뢰성을 더한 문장이 있다.‘대흥사 앞쪽인 해남군 삼산면 평활리에 임진란과 정유재란 때 붙잡힌 일본인 포로수용소(2000여명)가 존재한다.’고 적었다. 실제 현장확인에서 이는 사실로 밝혀졌다. 처음으로 서울신문(1983년 3월 13일자)에 보도돼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마을사람들의 증언 어란마을 주민들이 알고 제사 지내는 할머니 이야기는 이렇다. “명량해전 이튿날인 9월17일, 마을 앞 바닷가로 한 여인의 시체가 떠오른다. 이를 마을 어부가 발견, 시신을 수습해 근처 소나무 밑에 묻는다. 묘 앞에 석등을 세우고 불을 밝혀 이 할머니의 충절을 기리고 있다.” 할머니가 투신했을 것으로 보이는 매봉산 절벽에서 가까운 산에는 사당의 주춧돌이 나뒹군다. 지금 마을 뒤편 사당은 두번째 옮긴 것이다. 주민 김학채(73·향토연구사)씨는 “70살 넘은 마을 사람들은 할머니 석등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어릴 때 마을에서 날마다 저녁에 불을 켜고 새벽에 불을 끄던 일을 한 것을 잘 안다.”고 말했다. 그는 중요한 말을 했다.“사당의 할머니 신주를 일본의 장군 가문(스가 마사가게)에서 가져가려는 것을 주민들이 지켜냈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주민 최사홍(90)옹은 “한학자이신 조부께서 ‘이 등대가 있는 곳은 유서깊은 신성한 곳이고 영을 기리기 위해 석등을 세우고 불을 켰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고 기억했다. 이처럼 석등에 불을 밝히는 어란마을의 관습은 일제 강점기에도 이어졌다. 그러나 일본인들이 불을 켜도록 허용한 점은 의혹이 있다. 이에 대해 히구마 교수는 “사료를 연구해봐야 할 일이지만 불을 켠 것은 일본인들도 등대로만 알았지 정확한 내용은 몰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무튼 어란항은 남다른 민족혼이 살아 숨쉬는 곳임에 틀림없다. 뭍에서 툭 튀어나온 천혜의 군사 요충지이다. 마을회관 앞마당에는 조선시대 수군 무관인 만호 5분의 비석과 해방기념비 1개가 세워져 있다. 해남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구국의 여인’ 찾아낸 박승룡옹 구국의 여인 ‘어란’을 처음으로 찾아낸 박승룡옹은 지난해 8월10일 세기 준이치(瀨木俊一) 일본 해남회 회장으로부터 부탁했던 책을 받았다. 그가 펴낸 사와무라 하지만다로의 유고집이다. 유고는 사와무라의 큰딸인 시마구라 이구고(75·島倉郁子)가 보관하다 해남회에 전달해 인쇄됐다. 해남회는 일제 때 해남에서 살았던 일본인들의 친목 단체이다. 해남회 회장은 “임진·정유재란 때 조선과 일본에서 첩자를 서로 활용했다. 어란도 진주의 논개와 같은 사례”라고 평가했다. 박옹은 친분이 있는 히구마 다게요시 히로시마대학 교수로부터 “경장 2년(정유재란)에 스파이(간첩)로 활동한 어란 할머니를 아십니까.”라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한국인인 김학래(85·서울 광진구 광장동)씨는 “일년에 10번 이상 해남을 왕래하는 해남회 초대 회장인 다니구지 노보루(谷口登)에게서 어란 이야기를 들었다. 어란진에서 경찰관을 한 기무라 세이지(木村精一)의 차남인 기무라 오사무(木村修·81)에게서도 이 이야기를 들었다. 오사무는 나의 순천농업학교 동기”라고 말했다. 박옹은 “영암 왕인박사 유적지도 우리 기록에는 없지만 일본 기록을 참고로 해 오늘날의 유적지가 복원됐다.”며 “어란 할머니의 얼이 깃든 곳을 성역화하면 한·일 우호 교류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남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자유신당行 현역 40명선”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추진하는 자유신당(가칭)을 둘러싸고 정치권의 총선 기싸움이 서서히 가열되고 있다. 자유신당의 보수논객 3인방 중 좌장격인 전원책 변호사는 8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직접 우리에게 오겠다고 한 현역 의원만 40여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처음엔 정치일선에 계신 분들을 창당 발기인으로 모시려고 했지만 부작용이 있을 것 같아 창당 때까지 이름을 공표하지 않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자유신당에 합류 의사를 밝힌 현역 의원 가운데에는 대통합민주신당 의원들도 있으며 특히 경기·충청권 의원이 많다.”고 말했다. 그의 주장에 부합하듯 통합신당 오제세(충북 청주 흥덕갑) 의원은 9일 “충청권 신당 의원 중 절반 정도가 (자유신당행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 의원은 “충북 지역의 민심이 통합신당보다는 이 전 총재의 ‘자유신당’ 쪽에 가 있는 것 같다.”며 “민심에 따라 저도 당을 옮기는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자유신당측 정인봉 전 의원도 자유신당발 정계개편 논의에 뛰어들었다. 정 전 의원은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충청권 신당 의원들뿐만 아니라 수도권 출신의 한나라당 의원들도 (자유신당행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면서 “이분들 중에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측 의원들뿐만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을 도운 분들까지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선거 막판에 이 당선인 캠프에 합류했던 의원들은 당선인 측으로부터 충성심을 의심받고 있으며 (공천에서) 큰 위협을 느끼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한편 강삼재 창당준비단장은 지난해 12월18일 ‘BBK 동영상’ 공개 후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이 15∼20% 폭락했다.”고 발언한 것과 관련, 한나라당 이방호 사무총장 명의로 고발된 데 이어 이날 검찰에게 출석 요구서를 받았으며, 신당측은 강력히 반발했다. 구동회기자 kugija@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53) 끝없는 가도의 風雲

    [병자호란 다시 읽기] (53) 끝없는 가도의 風雲

    인조가 원종 추숭을 위해 골몰하고 있을 때 가도의 상황은 심상치 않게 돌아갔다. 반란을 일으켜 조선의 정벌 대상이 되었던 유흥치(劉興治)는 조선에 대한 물자 징색(徵色)을 멈추지 않았다. 유흥치를 토벌하려 했던 ‘원죄’ 때문에 조선은 그의 보복을 받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1630년(인조 8) 8월, 비변사는 총융사 휘하의 경포수와 어영군을 평안병사 유림(柳琳)에게 배속시키고 도내의 정예병을 안주, 정주, 구성 등지에 배치하여 유흥치 일당의 노략질에 대비할 것을 청했다. ●가도 정벌 시도의 후유증 1630년 8월 유흥치는 차관 이매(李梅)를 서울로 보내, 조선이 자신을 공격하려 했던 까닭을 힐문하려 했다. 인조는 처음에는 그와의 면담을 회피했다. 하지만 결국 그를 만나 토벌 시도에 대해 유감을 표시했다. 유흥치는 9월에도 차관 이현(李見)을 보내왔다. 그는 먼저 ‘정충신이 가도 사람들이 배 만들고 숯 굽는 것을 방해했다.’고 비난했다. 정충신이 토벌에 나섰을 때 유흥치의 정탐꾼들을 체포하고 한인들을 살해한 것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유흥치는 이어, 굶주리는 사람이 많다는 이유로 양곡을 보내달라고 요구했다. 뻔뻔함의 극치였다. 인조는 이현에게 요구를 대체로 수용하겠다고 했다. 같은 해 10월, 인조는 문안관 정유성(鄭維城)을 가도로 보냈다. 유흥치는 ‘기공대첩(奇功大捷)’이란 글자를 쓴 깃발을 세워놓고 정유성을 만났다. 그는 정유성에게 자신이 섬 안의 훼방꾼들을 제거했는데 조선이 자신을 왜 공격하느냐고 힐문했다. 그러면서 ‘조선이 천조(天朝)를 범하는 오랑캐는 토벌하지 않으면서 명나라 장수를 향해 군사를 들이대는 까닭이 무엇이냐?”고 다그쳤다. 정유성은 대꾸할 말이 없었다. 머쓱해진 정유성에게 유흥치는 본색을 드러냈다. 섬 안에 군량이 부족하니 조선이 그것을 공급하라고 다시 요구했다. 조선은 군사를 일으켜 아무런 성과도 얻어내지 못하고 힘만 낭비한 꼴이 되고 말았다. 유흥치에게 약점을 잡혀 코가 꿰인 셈이었다. 유흥치는 정유성을 만난 직후, 평안도 일대에 부하들을 보내 곡물을 운반해 오도록 했다. 그들은 조선 관민들에게 수천 석의 군량을 빨리 운반하라고 독촉했다. 유흥치는, 압록강이 얼기 전에 군량을 보내주지 않으면 군사들을 평안도에 풀어놓겠다고 협박했다. 유흥치가 가도로 돌아온 뒤 조선에 보낸 게첩(揭帖)에는 모욕적인 언사가 많았다. 김상헌이 회답서를 썼는데, 유흥치의 무례함을 질책하고 비판하는 내용이 있었다. 인조는 유흥치가 노여워할까 우려하여 내용을 고치라고 지시했다. 김상헌은 인조의 지시에 고분고분하지 않았다. 인조는 김상헌에게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고, 김상헌은 홍문관 부제학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맞섰다. 도무지 일관성이 없는 인조의 태도도 유흥치의 작폐를 조장하고 있었다. ●유흥치의 수탈이 격화되다 유흥치가 반란을 일으킨 뒤 명 조정은 가도에 대한 군량 공급을 중단했다. 굶주림을 이기지 못한 가도의 한인들은 조선에서 토색질을 벌였다. 조선의 관민들 가운데는 한인들의 작폐에 시달리다 못해 그들을 습격하는 경우도 있었다.1630년 12월, 중화의 대장(代將) 양덕위(梁德渭)는 노략질을 일삼는 한인들을 공격하여 17명을 살상했다. 조정 일각에서는 유흥치가 알게 되면 문제가 될 것을 우려하여 양덕위를 처벌하자는 주장이 대두되었다. 평안감사 민성휘의 의견은 달랐다. 양덕위를 살인죄로 처벌한다면 한인들이 더욱 거리낌 없이 난동을 피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조선 관민들의 ‘자구책’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역시 같은 해 12월에는 황주의 백성들이, 배를 수리하기 위해 왔던 한인들을 습격하여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화가 난 한인들은 황주 관아로 몰려가 주동자 색출을 요구했다. 자신들의 작폐에 대한 조선 관인들의 태도가 과거와 달라진 것을 절감한 유흥치는 대책을 마련했다. 그는 우선 서울 등지에 정탐꾼을 들여보냈다. 정탐꾼들은 사대부가와 여염을 돌아다니며 조선 사정을 파악하려고 골몰했다. 그들이 무엇보다 관심을 가졌던 것은 조선과 후금의 왕래 상황이었다. 정탐꾼들을 통해 파악된 정보를 바탕으로 유흥치는 잔꾀를 부리기 시작했다.1630년 11월, 전국해(錢國海)라는 자가 등래순무(登萊巡撫) 손원화(孫元化)의 차관이라 칭하며 조선으로 출발했다. 그는 ‘조선에서 군량 2만석과 전마 3000필을 얻어 유흥치에게 공급한다.’고 떠벌렸다. 가도에서 그를 만났던 조선 접반사 이경헌(李景憲)은 ‘조선에서는 전마를 키우지 않고 평안도는 이미 황폐화되어 군량을 더 이상 마련할 수 없다.’고 조선행을 만류했다. 전국해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서울로 올라왔다. 전국해는 본래 유흥치의 부하였다. 유흥치는 그에게 위조한 자문(咨文)을 주었다. 자문의 내용은 가관이었다.‘명 조정은 이제 유흥치를 용서했다. 감격한 유흥치는 공을 세우고 싶지만 식량과 전마가 부족하여 이웃에 의지해야만 한다. 듣건대 조선이 후금을 돕고 한인들을 많이 죽였다는 소문이 있다. 부득이하게 후금에게 머리를 숙인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조선이 명에 대한 충성심을 버리지 않았는지의 여부는 곡식과 전마를 제공하는가에 달려 있다. 즉시 전마 2000필을 가도로 보내고 한인들을 핍박하지 말라’. 조선이 후금과 우호적으로 지내는 것을 빌미로 군량과 전마를 뜯어내려는 수작이었다. 조선 조정은 전국해의 정체를 금세 알아차렸다. 과거부터 등래 군문(軍門)이 바다 건너 조선으로 사람을 보내 군량과 전마를 청했던 전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전국해는 인조를 만났을 때, 자신이 손원화가 보내서 온 차관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인조는 양곡과 전마를 보내달라는 그의 요구를 거부했다. 비변사는 서울에 있는 한인들을 모두 색출하여 가도로 돌려보내자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조선 상인과 역관들이 가도에 들어가 무역하는 것을 엄격히 제재하자고 했다. 그들을 통해 조선 사정이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처였다. 바야흐로 조선과 유흥치 사이의 긴장이 높아가고 있었다. ●계속되는 가도의 변란 1631년(인조 9) 1월, 가도로 들어간 조선 문안관을 만났을 때 유흥치는 다시 길길이 뛰었다. 그는 한인들을 살해한 범인을 체포하여 자신에게 묶어 보내라고 요구했다. 그러지 않으면 병력을 풀어 자신이 직접 살인자를 찾아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시 유흥치는 위기에 처해 있었다. 명 본토로부터 군량 공급이 여의치 않은 데다 조선 또한 과거처럼 고분고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흥치는 결국 1631년 3월, 부하 장도(張濤)와 심세괴(沈世魁) 등에게 피살되었다. 유흥치는 가도를 통제하는 것이 여의치 않자 후금으로 투항을 시도하다가 심세괴 등의 반발을 사서 죽은 것이다. 모문룡과 원숭환이 죽은 뒤, 사실상 방치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가도의 난맥상이 여지없이 드러난 사건이었다. 가도에서 다시 일어난 변란의 불똥은 조선으로 튀었다. 인조는 유흥치가 후금으로 투항을 시도하다가 피살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직후,‘가도 정벌’을 다시 운운했다. 그런데 당시는 ‘가도 정벌’을 운운할 상황이 아니었다.1631년 5월, 후금의 홍타이지는 조선 사신을 만난 자리에서 협박을 늘어놓았다. 그는 우선 조선이 보낸 방물(方物)의 양이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어 ‘굶주린 유흥치가 자신에게 귀순하려고 했는데 조선이 식량을 공급해 주는 바람에 귀순을 거부했다.’고 따졌다. 그는 조선이 이후에도 가도에 식량을 대주면 병력을 의주로 보내 차단하겠다고 협박했다. 조선의 원조가 없으면 가도는 쉽사리 자신의 수중에 떨어질 것이라는 계산에서 나온 협박이었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다. 조선이 가도와의 관계를 정리하지 않는 한, 후금과의 관계는 안정될 수 없었다. 하지만 오락가락했던 인조의 태도에서 드러나듯이 조선의 가도 정책은 일관성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그것은 결국 후금과의 원한을 쌓아 가는 과정이었다. 파국이 다가올 것을 뻔히 알면서도 가도와의 관계를 정리할 수 없었던 것, 바로 거기에 조선의 비극이 자리잡고 있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오바마 돌풍’ 뉴햄프셔로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 아이오와에서 시작된 ‘오바마 돌풍’이 뉴햄프셔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난 3일 아이오와 주에서 실시된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압승을 거둔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은 5일(현지시간) 오전 뉴햄프셔 주의 작은 도시 나슈아를 방문했다. 뉴햄프셔에서는 오는 8일 두번째 경선이 치러진다. 오바마 캠프는 이날 1500명이 들어갈 수 있는 체육관을 행사장으로 예약했다. 그러나 행사가 시작되기 훨씬 전에 2000명이 넘는 지지자들이 몰려들었다. 오바마 캠프는 서둘러 체육관 옆의 다른 공간에 행사 중계용 TV를 설치해 체육관에 들어가지 못한 지지자들을 수용했다. 6일 발표된 매클래치-MSNBC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오바마 의원이 뉴햄프셔주 유권자들 사이에서 33%의 지지율을 기록,31%의 지지율에 그친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을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라스무센이 뉴햄프셔 주의 민주당 및 무소속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해 5일 발표한 결과에선 오바마 의원이 클린턴 상원의원에게 37% 대 27%, 무려 10%포인트나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직전에 실시된 같은 조사에서는 클린턴 의원이 오바마 의원에게 3%포인트 앞선 것으로 나타났었다. 이번 조사에서 오바마는 당선 가능성이 가장 높고, 지지자들의 충성도도 가장 강력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오바마는 무소속 유권자들로부터 클린턴보다 훨씬 많은 지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당원 위주로 실시된 아이오와 주의 코커스(당원대회)와 달리 뉴햄프셔의 프라이머리(예비선거)는 무소속 유권자들도 자유롭게 경선에 참여할 수 있다. CNN과 뉴햄프셔 주 지역방송인 WMUR가 발표한 조사에선 오바마와 클린턴이 33%의 지지율로 동률을 기록했다. 존 에드워즈 전 상원의원은 20%로 3위를 기록했다.CNN이 뉴햄프셔의 공화당 및 무소속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33%를 차지해 1위를 기록했다. 뉴햄프셔의 공화당원들은 매케인 의원이 안보 현안들에 대해 일관된 입장을 유지해온 것을 높이 평가했다.2위는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로 27%를 기록했으며,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14%)이 3위였다. 줄리아니 전 시장은 아이오와와 마찬가지로 뉴햄프셔에서도 선거운동을 많이 하지 않았다. 아이오와 주 경선에서 1위를 차지했던 마이크 허커비 전 아칸소 주지사는 11%로 4위로 처졌다. 뉴햄프셔 주는 아이오와 주와는 달리 기독교 복음주의자들의 세력이 강하지 않다. 민주당 및 공화당 후보들은 이날 저녁 각각 뉴햄프셔 주의 맨체스터 시에서 ABC방송과 인터넷 인맥 사이트 ‘페이스북’이 공동 주최한 토론회를 가졌다. 민주당 토론회에서 뉴햄프셔에서의 승리가 절실한 클린턴 의원은 오바마 의원을 집중 공격했다. 클린턴은 오바마가 상원의원이 되기 전과 후에 애국법 및 이라크 전쟁 비용에 대한 입장을 바꿨다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오바마는 “현재 미국인들이 원하는 지도자는 국가를 통합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반격했다. 클린턴 의원의 경우 미국인들의 호·불호가 너무 확실해 통합보다는 분열을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을 상기시킨 것이다. 공화당 토론회에서는 1위를 다투는 매케인 의원과 롬니 전 지사가 이민법 등을 둘러싸고 치열한 설전을 벌였다. 한편,5일 실시된 와이오밍 주의 공화당 경선에서는 롬니 주지사가 승리했다. 그러나 와이오밍 주의 선거인단 규모가 매우 작기 때문에 현지에서 선거운동을 벌인 후보는 지난 4주간 아무도 없었다. 와이오밍에서 민주당 경선은 실시되지 않았다.dawn@seoul.co.kr
  • [기고] NLL은 하늘에서도 군사분계선/최명상 전 공군대학 총장·국제정치학 박사

    평생 국가안보를 생각하며 살아온 사람에게 이명박 대통령의 선택은 천만다행이며 국민의 승리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NLL은 영토선이 아니다.’라는 망언으로 무척 걱정했다.30여년 전투조종사 생활 중 1975년 2월 서해공중작전의 비화(秘話)를 공개함으로써 북방한계선(NLL)은 해상뿐 아니라 공중에서도 군사분계선임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나는 그때 팬텀기의 조종사였다. 갑자기 참모총장이 작전명령을 직접 하달했다. 요지는 이랬다. 김일성이 NLL의 무효화를 선언한 이래 인천∼백령도를 항해하던 황진호의 운항이 중단됐다. 이에 국군 최고통수권자인 박정희 대통령이 특단의 조치를 내린 것이다.“이것은 대통령 극비명령이다. 내일 아침 08시를 기해 황진호가 백령도로 출항한다. 북한이 공중공격시 즉각 응징하라. 적함정이 NLL 월경시 공격하라. 적기가 NLL 월경시 격추하라.”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전 항공기가 비상대기에 돌입했다. 낮 동안 적의 공중활동은 없었다. 황진호는 항해를 계속했다. 숨막히는 비상대기도 계속되었다. 밤 11시경 야식을 시작하려는 순간 비상출동 벨이 울렸다. 이륙하자마자 최대속도로 북서쪽으로 향하라는 지시다. 서산 앞바다 상공에 도착하니 눈발이 내리고 있었다. 비행 착각을 일으키기 쉬운 악기상에서 탐색에 집중했다.50마일 전방에 수상한 항체를 포착했다. 적기임이 확인됐다. 최대속도로 추격해 40마일-30마일-25마일 접근하면서 나는 모든 무기를 장전했다.20마일로 가까워지는 순간 AIM-7레이더 미사일 방아쇠(Trigger)를 당겼다. 이제 곧 유효사거리가 되면 자동으로 발사되어 적기를 명중시킬 것이다.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전투기조종사가 되어 드디어 조국을 위해 충성할 기회가 왔구나. 일격에 격추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극한 상황에서 어린 딸과 아내, 늙으신 어머님의 모습이 순간 스쳐갔다. 그런데 발사 직전 적기가 북쪽으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나에게도 즉각 선회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NLL을 넘지 말고 내려오라는 명령이었다. 초계비행을 계속했지만 적기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귀환 착륙하니 지휘관이 마중을 나왔다.“최 대위 수고했네. 을지무공훈장 감이야.” “적기를 격추하지 못했습니다.” “아니야 자네는 격추보다 더 큰 일을 했다네. 자네가 적기를 격퇴함으로써 우리 임무는 성공했고 황진호는 백령도에 무사히 도착했네. 우리가 이긴 것이야.” 임무 결과보고서 작성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새벽 3시가 넘었다. 만삭이던 아내는 영문도 모른 채 다시 잠이 들었다. 나는 잠이 오질 않았다. 돌이켜보면 NLL 상공에서 공중전이 벌어졌다면 적기를 격추했겠지만 나도 고인이 됐을지도 모른다. 국가최고지도자의 결단이 북한의 서해5개 도서에 대한 지배 야욕을 굴복시킨 것이다. 이와 같이 NLL은 휴전 이래 남북한 사이 실질적 군사분계선이자 영토선으로 대한민국의 안보와 평화를 지켜온 최후 방어선이다. 따라서 NLL을 결코 무력화시켜서는 안 된다. 우리 안보에 큰 허점이 생기기 때문이다. 첫째 해상방위뿐만 아니라 영공방위 특히 수도권방위가 무척 어려워진다. 공중위협시 인천국제공항에 항공기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도 없다. 둘째, 유사시 서해 5개 도서에 주둔한 장병들과 주민의 안전과 주권 그리고 생업을 보호할 수 없다. 셋째,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이나 한국방공제한구역(KLIZ) 재설정에 커다란 불이익과 위험을 준다. 이명박 정부에서도 NLL을 양보해서는 안 된다. 이 순간에도 목숨 걸고 국방에 전념하는 장병들에게 새해인사를 보낸다. 최명상 전 공군대학 총장·국제정치학 박사
  • [새 정부에 바란다] 공공부문 개혁도 관심사

    “차기 정부가 우선 개혁해야 할 분야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정부 공공부문’이 28.4%로 가장 높게 나왔다. 비슷한 수준으로 ‘교육’이 25.9%로 나타났다. 그 다음으로 ‘노동’(16.3%),‘기업’(12.7%),‘언론’(5.9%),‘금융’(5.8%) 순이었다. 참여정부가 공무원 수를 늘려 큰 정부를 만들었고, 능력보다는 코드 인사로 공기업을 방만하게 운영한 것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보여 준다. 다시 말해 차기 정부는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지향해야 하고, 자신에 대한 충성심보다는 전문성을 바탕으로 공공 부문을 개혁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역대 어느 정부도 약속만 하고 성공하지 못한 정부 공공부문 개혁을 반드시 개혁하라는 명령이기도 하다. 차기 정부의 성공 여부는 경제 회생 못지않게 공공부문 개혁이라는 함의도 갖고 있다. 또 차기 정부는 모든 국민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는 사교육비 문제 해결에도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요구가 분출되고 있다. 이명박 당선자와 한나라당은 ‘사교육비를 반으로 줄이겠다.’고 공약한 만큼 이를 실현하기 위한 합리적 대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반면 사교육비 절감 이외에 공교육을 정상화시킬 수 있는 각종 방안에 대한 구체적 로드맵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전투적 강성 노조가 존재하는 한 기업이 투자를 꺼리고 외자 유치도 힘들어 경제 살리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국민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동계의 일방적 양보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도 함께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설문 결과 차기 정부의 개혁 중 노동(16.3%)과 기업(12.7%)에 대한 응답이 비슷하게 나온 점이 이를 입증한다. 따라서 차기 정부는 ‘친기업적’ 자세도 중요하지만 노조를 설득하고 동시에 기업에 강도 높은 투명성과 책임성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 더욱이 과거와 같은 정경 유착의 어둠 속으로 들어가서는 결코 안 된다는 것이 이번 여론조사에서 확인됐다. 김형준 교수·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새 정부에 바란다] “現지지정당 총선서도…” 62.7%

    [새 정부에 바란다] “現지지정당 총선서도…” 62.7%

    이번 여론조사에서 “현재 지지하는 정당 후보를 4월 총선에서도 계속 지지하겠습니까.”라는 질문에 ‘계속 지지하겠다.’는 응답은 62.7%로 나타났다. 반면 ‘상황에 따라 변경하겠다.’는 응답도 33.1%나 됐다. 국민 3명 가운데 1명 정도가 향후 정치권에서 전개될 상황에 따라 마음을 정하겠다는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20대(53.2%), 전문직(44.7%), 학생(56.1%)층에서 ‘상황에 따라 변경하겠다.’는 비율이 높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1월 중순 시작될 BBK 특검 수사, 한나라당내 공천 갈등, 대통합민주신당의 재편, 이회창 보수 신당의 창당 여부와 규모 등의 정치적 변수가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민심이 요동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충청(52.0%)과 호남(53.5%)에서 ‘상황에 따라 변경하겠다.’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온 점은 현재의 대통합민주신당, 민주당, 국민중심당이 자신들의 지역을 대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대선을 얼마 지나지 않아 총선을 치를 경우 대통령을 선출한 정당은 ‘대통령 후광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번처럼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531만표라는 압도적인 차이로 승리했고, 지역적으로 수도권과 영남권에서 대승한 경우 후광 효과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대선과 지방선거를 통해 중앙권력과 지방권력을 석권한 한나라당이 총선마저 승리해 의회권력까지 독식하는 상황을 막아야 한다는 ‘견제론’이 대두될 가능성은 있다. 문제는 이를 추진해야 할 대통합민주신당 등 야권 세력이 지지부진하기 때문에 ‘견제론’보다는 ‘안정론’이 힘을 받을 개연성이 높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고, 현재 한나라당을 지지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4월 총선에서도 한나라당 후보를 ‘계속 지지하겠다.’는 사람이 72.4%나 된다. 반면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를 지지했고, 현재 대통합민주신당을 지지하는 사람 가운데 총선에서도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를 지지하겠다는 사람은 43.9%에 불과하다. 다만 주목할 만한 사실은 이회창 보수 신당과 창조한국당에 대한 충성도는 상당히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대선에서 이회창·문국현 후보를 지지했고, 현재 이회창 보수 신당·창조한국당을 지지하고 있는 사람 가운데 총선에서도 같은 당 후보를 계속 지지하겠다는 사람은 85.7%나 됐다. 이회창 보수 신당과 창조한국당의 지지기반이 상당히 취약한 것은 사실이지만 정치권이 요동을 치게 되면 ‘이삭줍기’를 통해 세를 불려 뉴스 메이커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김형준 교수·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靑 가는 길 ‘한 방’의 유혹 버려야”

    “靑 가는 길 ‘한 방’의 유혹 버려야”

    역대 대선은 ‘적대적 프레임’의 역사라고 단정지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다. 물론 큰 틀에서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의 대결, 세대와 지역의 대결이 관통했다. 하지만 당락을 정하는 결정적인 한 방은 적대적 프레임이었다. 개혁진영에만 국한시켰을 때 지난 1987년 후보 단일화와 비판적 지지,1992년 반수구대연합,1997년 DJP연합으로 대표되는 정권교체론,2002년의 반 이회창 연대를 들 수 있다. 이번 17대 대선은 적대적 프레임의 결정판이었다.1년여 동안 ‘반 노무현 VS 반 이명박’ 구도로 치러졌다.‘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손우정 연구원은 ‘최악회피 효과’라고 규정했다. 상대방의 부정적 이미지를 극대화해 자신의 부족한 점을 상쇄한다는 논리다. 손 연구원은 “확실한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모호한 차선책을 선택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제´는 李당선자의 구호이자 굴레 적대적 프레임은 정책·비전 중심의 선거를 방해한다. 가장 큰 후과라는 데 이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사실상 BBK 대혈투로 치러진 이번 대선이 이를 극명하게 보여 준다. 한나라당만 해도 초창기 제기했던 7·4·7 경제정책이나 대운하 프로젝트를 손놓아 버렸다. 대통합민주신당은 처음 양극화 문제를 제기하다 나중에는 평화론, 급기야 반부패에 거의 올인했다. 양측 모두 경제살리기라는 합의쟁점이 있었지만 적대적 프레임의 그늘에 갇혀 진보·보수적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시사평론가 김종배씨는 “대선이 통합적인 시각을 던져 줘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국민들에게 단선적인 가치를 강요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단순한 선악 싸움으로 정리되면 승자와 패자 모두 오히려 자신이 내건 구호가 굴레가 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이명박 당선자가 내건 ‘반 노무현’ 구도는 무능과 민생파탄을 막는 것에 가치를 두기 때문에 경제 회생이 되지 않을 경우 부메랑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정치컨설팅업체 폴컴의 이경헌 이사는 “정권심판론과 최악의 후보를 피하자는 싸움은 차기 정부의 정책과 노선을 간과하게 만든다.”면서 “이 당선자가 어떤 국정시책을 내놓더라도 제대로 된 검증없이 치러졌기 때문에 국민이 일관된 지지를 보낼지 미지수”라고 진단했다. ●인물 물갈이보다 정책 기조가 중요 더 이상 적대적 프레임으로 대선이 치러져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높아지고 있다. 정당 구조가 안정화돼야 한다는 것이 선결조건으로 제시된다. 한 정치평론가는 “미국의 경우 공화·민주당 양당 구조에서 유권자는 지지 정당에 대한 충성도가 매우 높다.”면서 “각 당은 안정된 상태에서 정책적 일관성을 갖고 이슈를 제기하며 유권자에게 통합적인 판단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정당이 급조되는 등 뿌리가 없는 상황이 반복되기 때문에 바람직한 대선구도가 성립되기 어렵다는 충고로 들린다. 인물 물갈이가 아닌 비전과 세력혁신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대안도 제시된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대립하는 정치세력이 적어도 합의하는 쟁점에 대해서는 비전 중심으로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선 이후 정국의 쟁점이 되고 있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응책의 경우, 김 교수는 “한나라당은 이미 경쟁력 중심으로 방향을 잡았는데 진보개혁 진영은 아직 기조를 세우지 못했다.”며 비전 중심의 세력 혁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구혜영 박창규기자 koohy@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 언론은 누구에게 충성해야 하는가

    장래 미국 대통령감이라 추앙을 받았지만 끝내 본인은 “나는 언론인(newspaperman)”이고 말하곤 했던 미국의 진정한 언론인 월터 리프먼이 언젠가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언론은 누구에게 충성해야 하는가. 이 질문은 요즘 언론은 도대체 누구에게 충성하고 있는가라는 반성과 질책이 된다. 요즘 대한민국 신문들은 충성할 곳이 너무 많다. 우선 독자에 충성해야 하고, 신문사주와 광고주의 눈치도 봐야 하고, 때로는 대통령이나 정부, 정파에 충성하기도 한다. 리프먼의 대답은 명쾌했다. 다름 아닌 진실, 또 진실이라는 것이다. 대통령 선거를 하루 앞둔 대한민국의 정국은 심난하기 그지없다. 이명박 후보가 지난 2000년 10월 BBK를 설립했다는 발언을 하고 있는 동영상이 공개된 데 이어 이 후보 스스로 국회 특검 법안을 수용했다. 사상 처음으로 유력한 대통령 후보의 비리 의혹을 특별검사가 조사하게 되고, 만약 이 후보가 당선될 경우 대통령 당선자에 대한 수사는 물론, 또 경우에 따라서는 재선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사태가 이 지경에까지 이른 이유는 비교적 간단하다. 정작 진실을 추구해야 할 사람들이 진실을 외면하거나 오히려 회피, 호도, 왜곡했기 때문이다. 우선은 선거 막판까지 혼탁한 상황, 또 선거 이후에 있을지도 모를 불미한 사태 등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은 의혹을 명쾌하게 해명하지 못한 이명박 후보에게 있다. 이 문제는 단순한 정략적 공격이라고 보기 어렵다. 유권자들은 BBK 문제와 관련한 이 후보의 도덕성 문제를 알고 싶어하고, 알 권리가 있다. 이 후보측은 경쟁 후보들과 일부 언론들이 제기한 문제 제기에 대해 ‘네거티브’라고 치부하면서도 정작 유권자들을 설득시킬 만한 진실한 해명을 내놓지 못했다. 사실 이 문제는 지난여름 한나라당 후보 선출 과정에서 해결하고 넘어 왔어야 했다. 한나라당은 후보검증위원회까지 열었지만 내부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진실을 의혹으로 남겨둔 채 후보 경선을 치러 이 문제를 선거 막판의 대한민국의 문제로 떠넘기고 있다. 검찰의 BBK 수사는 나름대로 치열한 사실 확인 노력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대다수 국민들을 설득하고 믿음을 심어주는 데 실패했다. 수사를 담당했던 최재경 특수1부장검사는 ”우리도 의심스럽지 않다는 게 아니라 할 만큼 온갖 걸 다했는데 증거가 안 나온다.”고 말했다고 한다(서울신문 12월6일자 4면 보도). 그러나 많은 시민들은 검찰이 의심스럽다는 것을 제대로 수사했는지, 즉 진정 진실을 밝히려 했는지에 여전히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BBK에 관한 언론보도는 수준 미달이다. 일부 탐사보도를 추구한 언론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언론들은 정치권이나 검찰을 중계보도하는 데 그쳤다. 심지어 일부 언론은 진실 보도 대신 특정 후보나 정파에 충성하는 정치적 편향 보도를 일삼았다. 많은 정당한 문제제기를 외면한 채 ‘이것이 BBK의 진실이다.’라고 선언하고 주장해 버리는 언론 아닌 언론들이 한국 언론시장을 상당 부분 지배하고 있다. 서울신문은 이 문제에 있어서 정파적 편향을 자제하고 중립적인 자세를 견지한 경우이다. 하지만 중계식 보도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진실추구의 고단함보다는 적당한 타협을 시도한 흔적도 보인다. 검찰의 BBK 수사결과 발표가 있던 날,‘BBK 논란 이제 유권자에 맡기자’라는 제목의 12월6일자 사설은 “우리도 검찰 발표가 100% 진실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다.”면서도 “BBK 문제를 둘러싼 소모적 논쟁을 이쯤에서 끝내고 최종 판단은 유권자들에게 맡기는 게 현명한 처사다.”라고 쓰고 있다. 민주주의 언론은 대선에서 누가 되든 크게 상관하지 않는 무심하고 공정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 언론이 진실에 충성하기는커녕 진실추구 노력의 훼방자로 나서면 민주주의는 위험하고 불행해진다.
  • 스릴러는 망한다? 편견을 버려!

    ‘스릴러는 망한다.’는 흥행 공식이 깨지고 있다. 올봄 ‘그 놈 목소리’와 ‘극락도 살인사건’의 흥행에 이어 김윤진 주연의 ‘세븐데이즈’는 지난달 25일까지 박스 오피스 1위를 달렸다. 관객이 드니 작품 편수도 많아졌다. 멜로과 코미디만 통한다던 국내 영화시장에 스릴러가 치받고 올라오는 이유는 뭘까. ● 올겨울 개봉·예정작 20여편 영화진흥위원회 통계조사에 따르면 올해 10월까지 국내 흥행영화 4위와 6위는 스릴러물 ‘그 놈 목소리’와 ‘극락도 살인사건’이다. 뒤이어 ‘검은집’‘리턴’‘궁녀’등 주목받는 스릴러도 잇따라 개봉했다. 크리스마스용 로맨틱코미디와 신년 가족영화가 두드러져야 할 연말시즌에도 스릴러의 질주는 계속된다. 내년 1월까지 개봉하거나 개봉 예정인 스럴러 관련 장르는 20여편에 이른다. 한국영화로는 ‘세븐데이즈’‘우리동네’‘웨스트32번가’,27일 개봉하는 ‘가면’에 이어 내년 1월 ‘더 게임’과 ‘무방비도시’가 잇따라 스크린을 공략한다. 외화로는 ‘마이클 클라이튼’‘쏘우4’‘히트맨’‘데스센텐스’등이 있다. 내년 1월에는 팀버튼 감독과 배우 조니뎁의 결합으로 주목받는 ‘스위니토드’와 ‘더 재킷’등도 소개될 예정이다. ● 왜 스릴러인가 관객은 왜 스릴러를 찾을까. 우선 탄탄한 시나리오와 세련된 영상미를 갖춘 웰메이드 영화가 많이 나오고 있다는 게 평단의 공통된 목소리다. 관객몰이에는 치밀한 구성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미드열풍’도 한몫했다. 영화평론가 김봉석씨는 “젊은 관객들이 ‘CSI’나 ‘프리즌 브레이크’와 같은 미드를 선호하는 경향이 반영됐다.”고 말했다. 국내 영화시장을 10여년간 풍미했던 조폭 코미디나 휴먼드라마 장르에 관객들이 식상한 것도 한 요인이다. 1990년대 후반 이후의 스릴러들이 한국사회의 문제점을 짚는다는 데서도 관객들은 공감대를 형성한다. 표창원 경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살인의 추억’처럼 우리주변에서 늘 일어날 수 있는 일이 허구인 영화에서 실감나게 표현되면서 관객은 공포를 느끼면서도 한편으로 안도감도 느끼며 짜릿한 쾌감을 맛보게 된다.”고 설명했다. 유영철이나 정남규 등을 연상시키는 여러 유형의 연쇄살인범이 등장하는 것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스릴러의 인기는 사회적 분위기와도 맞닿아 있다.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유지나 교수는 “개인의 생활이 힘들어지면 음울하고 허구적인 현실인식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스릴러는 대리만족과 카타르시스를 준다.”고 풀이했다. 소재 고갈에 봉착한 제작현장에서도 스릴러는 새로운 대안 장르로 부상했다.‘세븐데이즈’를 제작한 프라임엔터테인먼트의 임충근 프로듀서는 “스릴러는 폭발적인 반응은 아지니만 일정 정도 충성도 높은 관객층이 형성되어 있다.”며 “이는 할리우드 스릴러를 선호하는 관객들이 국내작품의 내용과 형식을 인정하면서 생긴 효과”라고 설명했다. 톱스타 대신 짜임새 있는 시나리오만으로 시장에 맞설 수 있는 스릴러는 제작비 절감에도 도움이 된다. 한 작품이 성공하면 연이어 비슷한 작품이 기획되는 충무로의 시스템도 제작 이유 중 하나다. ● 한국형 스릴러의 진화 최근 ‘우리동네’와 ‘가면’은 한국형 스릴러를 표방하고 나섰다. 굳이 이런 마케팅 용어가 아니라도 1999년 ‘텔미썸씽’으로 시위가 당겨진 국내 스릴러는 2003년 ‘살인의 추억´,2004년 ‘범죄의 재구성´ 등을 거치며 형식과 내용 면에서 점차 진화하고 있다. 아직 부족한 점도 있다. 영화평론가 강유정씨는 “국내 스릴러는 현대사회의 실체를 보여주는 표현 수위는 높이고 있지만 윤리에 대한 강박 때문에 무리한 설정을 하거나 사건 해결인 결론 부분이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심영섭 영화평론가는 “장르적 노하우의 축적과 창의적인 반전·인물 제시 등으로 작품 자체의 역량을 보여주는 게 스릴러의 숙제”라고 말했다. 영화 ‘우리동네’의 정길영 감독은 “아직 시작”이라고 했다. 그는 “국내에는 아직 톱스타 중심의 대작 스릴러가 많지만 관객의 눈이 높아지면서 할리우드처럼 작고 신선한 스릴러들이 다양하게 나오면서 장르 영화가 활성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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