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충성
    2026-08-06
    검색기록 지우기
  • 회의
    2026-08-06
    검색기록 지우기
  • 구원
    2026-08-06
    검색기록 지우기
  • CNN 기자
    2026-08-06
    검색기록 지우기
  • 지평
    2026-08-06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6,154
  • 與 지도부 첫날부터 신경전

    “준표형, 지금 우리 모두가 형의 눈치를 보고 있어요. 앞으로 형이 어떻게 하느냐가 제일 중요해요.” 15일 오전 정두언 최고위원이 홍준표 최고위원을 향해 농담을 던졌다. 한나라당 새 지도부의 첫번째 회의가 열린 여의도당사에서다. 전날 선출된 새 지도부는 공식 회의에 앞서 ‘티타임’을 가졌다. 이 자리에는 임태희 신임 대통령실장 내정자와 정진석 정무수석 내정자도 함께했다. 안상수 대표는 “앞으로 당·청 관계가 소통이 잘 돼서 매우 원만할 것 같다.”며 뿌듯해했다. 잠시 후 홍 최고위원이 뒤늦게 참석하자 안 대표 옆에 앉았던 정 내정자가 얼른 일어나서 자리를 비켜줬다. 다른 최고위원들도 일어나서 자리를 안내했다. 그러나 홍 최고위원은 맨 끝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홍 최고위원은 회의에서 “저는 그동안 제가 주류인 줄 알았는데 전대를 하고 보니까 주류라는 건 착각이었다.”면서 “야당 때의 비주류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또 “민심은 계파를 타파하고 한마음이 되기를 원했으나 민심과 역행하는 철저한 계파투표를 했다.”면서 “불과 2%포인트 차이로 졌으나 대의원의 뜻을 받들어 변화와 혁신의 한나라당을 만들겠다.”고 쓴소리를 했다. 지도부 안에서 할 말은 하는 ‘까칠모드’를 유지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회의에서는 홍 최고위원뿐 아니라 각자가 목소리를 내며 신경전을 펼쳤다. 정 최고위원은 첫날부터 정부와 각을 세웠다. 그는 “정권재창출은 당이 국정을 주도해야 가능하다.”면서 “정부의 잘못된 일에 대해서는 눈을 부릅뜨고 감시, 견제해야 하고 대통령 주변에서 충성을 빙자해 호가호위해서 국정을 농단하는 일들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경원 최고위원은 전대 여론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 것과 관련, “지인이 저보고 ‘국민대표’라고 하더라.”면서 “이는 국민소통에 앞장서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나 최고위원은 “이번 선거에서 친이 의원들께서 많이 도와주셨지만 친박도 드러내지 않고 조금씩 도와줬다.”면서 “계파 가운데에서 합리적 조정자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유일한 친박으로 지도부에 입성한 서병수 최고위원은 “비주류가 저 혼자여서 어떻게 비주류의 목소리를 반영시킬 수 있을까 했는데 회의하다 보니까 비주류가 한 두 사람 더 늘어가고 있다.”며 뼈있는 농담을 건넸다. 한 차례 신경전을 거친 뒤 정 최고위원이 “최고위원회가 합리적으로 잘 운영되도록 제가 윤활유와 소금 역할을 하겠다. 전혀 걱정하지 마시라.”고 정리했다. 그러자 곧바로 홍 최고위원이 “걱정이 좀 된다.”고 맞받아쳤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단체장들 ‘톡톡’ 튀는 행정 스타일

    단체장들 ‘톡톡’ 튀는 행정 스타일

    “격식 차리지 맙시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지난 1일 취임식 날 도청 구내식당을 찾았다. 직접 식판을 들고 점심을 먹으려고 줄을 섰다. 총무과 직원은 당황해 했고 지사의 발길을 돌리려 했다. 하지만 안 지사는 이를 뿌리치곤 직원들과 함께 식사했다. 안 지사는 “그래야 직원들에게 더 다가갈 수 있고, 소통도 잘될 것 아니냐.”고 말했다. 민선5기 출범 10일을 넘기면서 신임 단체장들의 스타일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대화와 소통을 강조하는 단체장이 있는가 하면 호통과 경고성 발언으로 공직기강 다잡기에 나선 단체장도 있다. 재선에 성공한 단체장들도 마찬가지다. <대화·소통형> 충남도에 따르면 안 지사는 매주 화요일 간부회의도 보고 중심에서 대화와 토론 형태로 바꿨다. 집중 토론이 필요하면 토·일요일에 토론회를 열기로 했다. 그는 내부 통신망으로 직원들과 ‘온라인 대화’를 즐기기도 한다. “시민들의 얘기를 지겹도록 듣겠다.”고 밝힌 오세훈 서울시장도 소통형이다. 오 시장은 지난 1일 취임식에 이어 오후엔 취업준비생 100여명과 만나 청년실업 해소방안에 대해 대화했다. 오는 15일에는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과도 직접 만난다. 서울시는 앞으로도 매주 1회 이상 ‘시장과의 현장대화’를 가질 방침이다. <군기잡기형> 지난 2일 광주시 첫 간부회의에서 강운태 시장이 쓴쏘리를 했다. 한 직원이 의자에 등을 기댄 채 편안한 자세로 자신의 훈시를 듣자 “시민들 눈 높이에 맞추려면 밤잠을 설쳐도 시원치 않은 데 그렇게 느슨하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호통쳤다. 이어 “금남지하상가 침수는 인재다. 앞으로 이유같지 않은 핑계나 변명을 늘어놓으면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직원들은 강 시장이 취임하자마자 남광주시장 등 현장을 찾아 즉석에서 대책을 주문하는 등 매일 지시사항을 쏟아내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실정이라고 볼멘소리다. 강 시장은 ‘한 번 지시한 일이나 입 밖에 내놓은 사항에 대해서는 대충 지나가는 법이 없는’ 성격으로 알려졌다. 염홍철 대전시장은 지난 6일 열린 첫 확대간부회의에서 “실국장이 권한과 책임을 갖고 일하고 홍보와 언론 대응도 앞장서라.” “직원들이 부당하게 시간외근무 수당을 받는 일이 없어야 한다.” 는 등 공직기강을 다잡는 말을 쏟아냈다. 그는 “부인들에게까지 계급이 형성될 수 있다.”면서 시청 간부부인 모임인 ‘백목련회’ 해체를 제안했다. ‘퇴직 공무원의 공로연수제 폐지’ ‘시장 참석행사 제한’ 등 개혁도 주문했다. <현장중시형> 김문수 경기지사는 지난 1일 도지사 취임식을 도 본청 소재지인 수원이 아닌 제2청이 있는 의정부의 가능역 교각 아래에서 가졌다. 취임식에 이은 첫 일정은 무료급식 자원봉사였다. 현장 행정을 강화하고 저소득층, 소외계층 등에 대한 복지정책을 강화하겠다는 뜻이었다. 김 지사는 매월 한 차례 이상 핵심 간부들의 현장체험과 봉사를 의무화할 정도로 현장행정을 중시한다. 송영길 인천시장은 취임 이후 매일 지하철로 출근한다. 수행비서만 데리고 오전 8시쯤 집이 있는 계양구 임학역에서 지하철을 탄 뒤 인천시청역에 도착할 때까지 시민들과 대화한다. 지하철 출근은 임기가 끝날 때까지 계속할 방침이다. 교육청, 법원, 검찰청 등 각종 기관·단체도 방문해 협조를 구하고 있다. 역대 시장들은 시청으로 찾아온 지역 기관·단체장들로부터 취임 인사를 받는 게 보통이었다. <강온양면형> 이시종 충북지사는 남의 얘기를 경청하고, 장고를 거듭해 결정한다. 정무부지사 인선을 취임 7일이나 지나서야 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도 직원들은 말한다. 이 지사는 도 간부들과의 첫 만찬을 육거리시장에서 삼겹살을 먹으면서 할 만큼 소탈하다. 우근민 제주지사는 취임하자마자 직원들에게 ‘근무시간에 경조사에 가지 마라.’ ‘넥타이를 풀고 제주 상징 간편복을 입고 일하라.’ ‘휴일에는 근무하지 마라.’ 는 등 강온양면책을 썼다. “인사는 개인 업무능력과 충성도 등을 보고 8월에 하겠다.”면서 느긋하게 탐색전을 펴고 있다. 최진혁 충남대 자치행정학과 교수는 “단체장의 운영 스타일은 조직 장악이나 융화를 위한 것으로 정작 중요한 것은 주민과 지역발전을 위해 얼마나 좋은 정책과 활동을 하느냐에 있고, 그것으로 역량을 평가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전국종합·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씨줄날줄] 연꽃과 정치인/최광숙 논설위원

    “저기 바다에 떠있는 게 연꽃 아니냐. 저렇게 큰 연꽃은 처음이다. 저 연꽃을 건져 와라.” 연꽃 속에서 인당수에 몸을 던졌던 심청이 고운 자태로 나타난다. 바닷속 용왕이 아버지 심봉사를 만나려는 심청을 연꽃에 태워 육지로 보낸 것이다. 우리 민족 심성에 살아 있는 고전 ‘심청전’의 한 장면이다. 연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폭넓게 사랑을 받아 왔다. ‘심청전’에서 연꽃은 아버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나중에 화려하게 부활한 심청의 화신(化身)이다. ‘춘향전’에서는 춘향의 청초한 모습을 물속에 핀 연꽃에 비유하는 부분이 나온다. 아침 이슬 머금고 함초롬히 핀 연꽃이 청순한 춘향의 이미지와 맞아떨어졌으리라. 또한 연꽃은 전통 건축, 조각, 공예, 회화 등에서 예술로 승화돼 우리의 생활을 풍요롭게 하고 있다. 그리스 신화를 비롯해 인도, 중국의 전설 등에서도 연꽃은 어김없이 등장한다. 고대 인도에서 연꽃은 다산(多産), 힘과 생명의 창조 등을 의미한다. 중국인들은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을 속세에 물들지 않는 ‘군자의 꽃’으로 여겼다. 서양인들의 연꽃 사랑도 이에 못지 않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관람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작품 중 하나가 바로 모네가 말년에 그린 대작 ‘수련’이다. 인상주의파의 거장 모네는 자신이 살던 집 연못에 수련을 심고 화폭에 담아내 ‘수련’ 연작(連作)을 완성했다. 86년 생애 중 마지막 30여년을 ‘수련’ 연작에만 온힘을 쏟아부은 것을 보면 모네의 연꽃 사랑은 대단했다. 최근 경남 함안에서 발견된 고려시대 연꽃 씨앗이 700여년 만에 싹을 틔우고 활짝 꽃을 피워 화제가 되었다. 그 오랜 시공을 뛰어넘는 강한 생명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연꽃은 불교에서 가장 대접받는 꽃이기도 하다. 진흙투성이 연못에서 자라지만 정작 자신은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것이 부처를 닮았다. 연꽃이 불교를 상징하다 보니 기독교 장로인 김영삼 대통령 시절 연꽃이 애꿎은 수난을 겪기도 했다. 아랫사람들의 빗나간 충성심 때문에 청와대와 독립기념관 연못에 있던 연꽃을 모두 뽑아 버리는 황당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총리실 민간사찰 의혹 사건을 보면서 대통령을 위한다고 큰소리치는 이들이 엉뚱하게 ‘세상의 연꽃’을 뽑아 내는 것은 아닌가 걱정스럽다. 특히 여권 내 혼탁한 권력 싸움으로 확대되는 것을 지켜보면 그야말로 이전투구 진흙탕이 따로 없다. 그들의 마음속에 한 송이 연꽃을 품으라고 한다면 지나친 기대일까?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KBS 블랙리스트?

    개그우먼 김미화(46)씨가 6일 자신의 트위터에 “KBS 내부의 출연금지 명단 때문에 출연이 안 된다.”는 내용의 글을 올려 파문이 일고 있다. 그는 소위 ‘연예인 블랙리스트’가 KBS 내부에 존재하고 자신이 그 리스트에 들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트위터에 “제가 많이 실망한 것은 KBS 안에 있는 PD들은 저와 함께 20년 넘게 동고동락했던 사람들이고 친구들입니다. 확인되지 않은 편향된 이야기를 듣고 윗사람 한마디에, 제가 보기에는 누군가의 과잉 충성이라 생각됩니다만 저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아는 동료들이 저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라고 적었다. 이어 “KBS에 근무하시는 분이 이 글을 보신다면 처음 그 말이 언론에 나왔을 때 제가 믿지 않았던, 정말 한심하다고 생각했던 ‘블랙리스트’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고 돌아다니고 있는 것인지 밝혀 주십시오. 참 슬픕니다.”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KBS는 김미화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KBS는 “유명 연예인으로서 사회적 공인인 김미화씨가 근거 없는 추측성 발언을 해 KBS의 명예를 훼손했다.”면서 “6일 오후 영등포경찰서에 김씨에 대한 고소장을 접수시켰다.”고 밝혔다. 조대현 KBS 방송 담당 부사장은 ‘KBS 내부에 출연금지 문건이 존재한다는 것은 전혀 있을 수 없는 황당한 주장”이라며 “이 같은 발언을 한 김씨의 진의가 의심스럽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익명을 요구한 KBS의 한 중견 PD는 “회사 내에 명문화된 문서(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전제하면서도 “다만 김미화씨가 다큐 더빙을 한 것을 놓고 윗선에서 굉장히 부정적인 이야기가 나온 것은 사실”이라며 “방송인 김제동씨의 경우처럼 정서적인 출연 배제로 이어졌을 수는 있다.”고 말했다. 한편 김미화씨는 파장이 커지자 “뉴스화되거나 상황이 커지기를 원한 것은 아니다.”면서 “내게는 친정과 같은 KBS의 명예를 훼손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고 밝혔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김미화, KBS 연예인 블랙리스트 트위터에 ‘폭로’

    김미화, KBS 연예인 블랙리스트 트위터에 ‘폭로’

    개그맨 겸 방송 진행자 김미화가 KBS에 연예인 블랙리스트가 존재하며 그 때문에 자신이 KBS에 출연하지 못한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려 파장이 예상된다. 김미화는 6일 오전 8시께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저는 코미디언으로 27년을 살아왔습니다. 사실 어제 KBS에서 들려온 이야기가 충격적이라 참담한 마음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고 글을 시작했다. 이어 김미화는 “KBS 내부에 출연금지 문건이 존재하고 돌고 있기 때문에 출연이 안된답니다. 제가 많이 실망한 것은 KBS 안에 있는 피디들이 20년 넘게 동고동락했던 사람들이고 친구들인데 확인되지 않은 편향된 이야기를 듣고 자신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며 누군가의 과잉충성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고 주장했다. 또 “KBS에 근무하는 분들이 ‘블랙리스트’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고 돌아다니고 있는 것인지? 밝혀 주십시요. 참 슬픕니다.”고 글을 마무리 했다. 김미화의 트위터는 글을 올린지 1시간이 되기도 전에 수많은 팔로워들이 방문 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한편 김미화는 지난 4월 방영된 KBS ‘다큐멘터리 3일’의 내레이션을 맡았다가 KBS 김인규 사장으로부터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내레이터가 잇따라 출연해 게이트키핑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의문이다.”라는 지적을 받은 바 있다. 하지만 이후 김미화는 “단지 해프닝일뿐”이라며 이 같은 사실을 부정했었다. 사진 = 서울신문NTN DB, 김미화 트위터 캡처 서울신문NTN 이효정 인턴기자 hyojung@seoulntn.com
  • 문성근, 김미화 관련 KBS블랙리스트에 ‘일침’

    문성근, 김미화 관련 KBS블랙리스트에 ‘일침’

    배우 문성근이 ‘KBS 블랙리스트’ 논란과 관련 김제동, 윤도현, 김미화를 출연시키면 논란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혀 눈길을 끈다. 문성근은 6일 오후께 자신의 트위터에 “김미화씨의 출연금지 블랙리스트존재 발언에 대해 KBS에서 ‘그런 거 없다’며 법적대응 운운하는 데, 그냥 김제동 윤도현 김미화를 출연시키면 논란을 잠재울 수 있지 않나요?”라고 반문했다. 앞서 김미화는 6일 오전께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KBS 내부에 출연금지 문건이 존재하고 돌고 있기 때문에 출연이 안된답니다. 제가 많이 실망한 것은 KBS 안에 있는 피디들이 20년 넘게 동고동락했던 사람들이고 친구들인데 확인되지 않은 편향된 이야기를 듣고 자신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며 누군가의 과잉충성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고 글을 올렸다. 이어 “KBS에 근무하는 분들이 ‘블랙리스트’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고 돌아다니고 있는 것인지 밝혀 주십시요. 참 슬픕니다.”고 자신의 심경을 토로한 바 있다. 이에 대해 KBS는 이날 오후 공식보도자료를 통해 “방송인 김미화 씨의 ‘KBS 블랙리스트 존재’ 발언과 관련, 전혀 사실이 아니며 사회적 공인인 김미화 씨의 근거 없는 추측성 발언에 대해서는 명예훼손 혐의로 소송을 제기할 방침”이라고 강경 대응 의사를 밝혔다. 사진 = 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이효정 인턴기자 hyojung@seoulntn.com
  • “北의 천안함공격 김정은 승계 일환”

    리언 파네타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27일(현지시간) 북한의 천안함 공격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로 유력한 3남 김정은(27)의 군부 신뢰를 얻으려는 승계 과정의 일환으로 분석했다. 파네타 국장은 이날 미 ABC방송의 시사 프로그램 ‘디스 위크’에 출연, “우리 정보로는 북한에는 현재 승계절차가 진행되고 있다.”면서 “김 위원장의 아들은 매우 어리고 검증되지 않은 데다 아버지와 북한에 대한 충성심을 갖고 있지만 군부에서는 누구도 그가 어떤 스타일인지 모르기 때문에 군부의 신뢰를 받지 못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현재 진행되는 도발, 소규모 충돌들은 김 위원장의 아들에 대한 신뢰를 쌓아올리려는 시도와 연관이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 김균미특파원 kmkim@seoul.co.kr
  • 4강 더이상 신화 아냐… 亞 축구의 ★이 되다

    4강 더이상 신화 아냐… 亞 축구의 ★이 되다

    1954년 첫 월드컵 출전 뒤 56년 동안 이어졌던 한국 축구 월드컵 도전사에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이란 새역사를 쓴 남아공월드컵. 8강의 문턱에서 아쉽게 돌아섰지만 한국의 눈부신 발전에 한국도, 세계도 놀랐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는 16강을 넘어 8강, 4강에 도전하기 위한 과제와 희망이 무엇인지 5회에 걸쳐 짚어 본다.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에 성공한 허정무 감독과 태극전사들은 변방에서 맴돌던 한국 축구를 세계 축구의 중심에 올려놓았다. 이는 하루아침에 우연으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 2002년 ‘4강신화’ 이후 8년 동안 끊임없는 도전과 좌절을 겪으며 쟁취한 성과물이라 더욱 값지다. 2002년 홈에서 벌어진 한·일월드컵에서 4강신화를 써 내려간 한국은 2006년 독일에서 토고에 2-1로 역전승, ‘원정 월드컵 첫 승’이란 소중한 성과를 거뒀다. 또 이 대회 준우승팀인 프랑스와의 2차전에서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극적인 동점골로 무승부를 거뒀다. 스위스에 0-2로 패하며 16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딕 아드보카트 감독 부임 이후 9개월의 짧은 준비기간에 비하면 괄목할 만한 성과였다. 그리고 남아공월드컵에서는 유로 2004 챔피언 그리스를 2-0으로 꺾고, 아프리카의 강호 나이지리아와 2-2로 비기며 당당히 16강에 진출했다. 전술적으로도 세계 축구를 완전히 따라잡았다. 2002년 당시 거스 히딩크 감독은 세계 축구의 대세로 자리잡은 포백 수비를 이식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했고, 결국 스리백 수비로 본선에 나섰다. 2006년에는 포백과 스리백 시스템을 번갈아가며 사용했다. 그리고 이번 남아공월드컵에서는 포백 시스템의 공격적 성향을 완벽히 구현했다. 비록 선수 개인의 실수로 수비에서 약점이 노출되는 모습도 보였지만 전체적 전술 운용 면에서 흠잡을 곳은 많지 않았다. 월드컵 본선 4경기를 통해 보여준 공격수들의 적극적인 수비가담, 공·수를 넘나드는 미드필더들의 폭넓은 움직임, 수비수들의 효과적인 공격가담은 ‘한국형 토털사커’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높은 전술 이해도를 바탕으로 협력을 통해 공격의 결정력과 수비의 견고함을 높였고, 전·후반 90분 내내 맹렬히 뛸 수 있는 체력까지 과시했다. 아시아 축구의 리더로서 체격과 개인기가 뛰어난 유럽, 남미, 아프리카의 강호들과 싸워 이길 방법을 보여준 것이다. 조별리그에서 한국과 맞붙었던 그리스,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의 각 나라 축구협회 등록선수는 각각 35만 9221명, 33만 1811명, 5만 8710명이다. 이에 비해 한국의 등록선수는 3만 1127명. 얕은 뿌리로 큰 열매를 맺었다. 이는 국가대표를 향한 선수 개개인의 열망과 팀에 대한 충성심 등 ‘아시아적 가치’로 대변되는 열정과 집중력이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축구 전반의 수준향상을 이끄는 원동력임을 새삼 확인시켜 준 것이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한국전쟁 60주년’ 세계 속 행사로

    ‘한국전쟁 60주년’ 세계 속 행사로

    6·25전쟁 60주년 행사가 노병들의 전역식부터 해외 참전국 용사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까지 세계 속의 행사로 진행됐다. “충성! 6·25 참전용사 소령 전인식(82) 등 26명은 2010년 6월25일부로 전역을 명 받았습니다.” 1951년 한국군 최초의 유격대로 창설된 ‘백골병단’의 생존 용사들 중 26명이 59년만에 전역 신고를 했다. 6·25 60주년을 맞아 육군이 계룡대 육군본부에서 마련한 전역식에서다. 당시 이들은 임시계급을 부여받고 전투에 참전했지만 급박한 전황과 부대 사정으로 전역행사를 치르지 못했다. 20대의 청년에서 80대의 노병으로 돌아왔지만, 꿈에도 그리던 전역신고에서 노 병사들의 목소리는 우렁찼다.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는 ‘주먹밥’을 통해 6·25를 기억하는 행사가 진행됐다. 전쟁 당시 먹을거리가 부족하던 우리 군과 유엔군은 주먹밥을 만들어 지게에 지고 운반해 배고픈 병사들에게 나눠줬다. 행사에는 김태영 국방부 장관과 이상의 합참의장, 월터 샤프 주한미군사령관, 조지 필 미 8군사령관 등 한·미 군 지휘부가 함께했다. 특히 유엔군으로 참전한 21개국의 주한 무관들도 주먹밥 먹기 행사에 참가했다. 전쟁기념관 중앙로비에 마련된 행사장에는 6·25전쟁 당시 노무부대(일명 A부대)가 전투 장소까지 운반했던 주먹밥과 고구마, 감자, 쑥떡 등 전쟁 때의 음식을 함께 준비했다. 군수물자도 모자라던 당시 그릇 대신 탄약통에 주먹밥을 담아 지게로 산 위로 날랐던 상황도 함께 설명했다. 또 전쟁 때 사용된 105㎜ 포탄 탄피에 된장국을 담아 행사 참가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6·25전쟁 60주년 행사는 해외에서도 잇따라 열렸다. 공군은 미국 공군박물관의 ‘6·25전쟁 특별전’ 개관식에 참석하고 미 참전용사들의 헌신적인 희생에 감사를 표시했다. 미 오하이오주 데이턴에서 개관하는 이 박물관에 전쟁 당시의 작전일지와 F-51 비행수료증 등 유물 13점과 미 공군 참전사진 400여점 등을 기증했다. 개관식에 참석한 박종헌 공군 교육사령관은 데이턴 시내의 6·25전쟁 기념공원에서 7000여명의 시민들에게 “낯선 나라 대한민국에서 자유민주주의와 평화의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장렬하게 산화한 공군 장병 7084명과 368명의 부상자, 53명의 실종자, 220명의 포로를 우리는 분명히 기억한다.”면서 미 공군 참전용사들의 희생에 감사를 전했다. 영국에서도 행사가 마련됐다. 주영 한국대사관은 런던 세인트폴 성당과 템스강변의 런던시청 앞에 정박돼 있는 군함 ‘벨파스트함’에서 6·25전쟁 60주년 행사를 개최했다. 기념식에는 추규호 주영 한국대사와 한국전에 참전했던 함명수 전 해군참모총장, 영국의 한국전 참전용사회(BKVA) 고문 피터 다운로드 등이 참석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韓·日 퓨전축구 포효… 월드컵 80년史 ‘변방의 반란’

    韓·日 퓨전축구 포효… 월드컵 80년史 ‘변방의 반란’

    월드컵 역사 80년 동안 변방에 있던 아시아 축구가 포효하고 있다. 지난 23일 한국이 나이지리아와 무승부로 B조 2위(1승1무1패, 승점 4)로 16강에 진출한 데 이어 25일 한국의 영원한 라이벌 일본이 덴마크를 3-1로 누르고 G조 2위(2승1패, 승점 6)로 16강 진출을 확정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제외하고 한국은 7번째, 일본은 3번째 도전 만에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수십년 동안 서로 자신이 ‘아시아의 맹주’라며 으르렁거렸던 한국과 일본. 하지만 두 나라는 월드컵 본선에 나설 때마다 ‘승점 자판기’였다. 늘 세계축구의 높은 벽을 느끼고 돌아오기 바빴다. 머나먼 이국땅의 낯선 그라운드에 들어서는 순간 약속한 듯 얼어붙었고 끌려가는 경기만 했다. 유럽팀을 만날 때는 체격과 전술이 약해서 졌고, 아프리카나 남미팀을 만날 때는 개인기가 약해서 졌다고 변명하기 바빴다. 오로지 투지로 싸우는 모습까지 비슷했다. 그런데 이번 남아공월드컵에서 두 나라는 사이좋게 ‘닮은꼴’로 16강에 진출했다. 최강팀인 네덜란드와 아르헨티나에는 졌지만, 유럽의 복병 그리스와 덴마크를 완벽히 제압했다. 또 아프리카의 강호 나이지리아와 카메룬을 상대로 박빙의 승부를 펼쳤다. 세계는 깜짝 놀랐지만 지난 10년 동안 두 나라의 축구 발전을 돌아보면 결코 놀랄일이 아니다. 2002년 월드컵을 기점으로 두 나라의 선수들은 유럽무대에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과 혼다 게이스케(CSKA모스크바)로 대표되는 유럽파는 대표팀의 중심으로 자리잡았다. 또 K-리그와 J-리그가 뜨거워지면서 두 나라의 선수층도 두꺼워졌다. 자국리그와 유럽 빅리그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이 대표팀에서 각자의 경험을 공유했다. 정신력과 조직력에 스피드와 기술이 더해진 것. 결국 두 팀의 플레이 스타일은 아시아에 유럽의 장점을 보탠 이른바 ‘퓨전축구’가 됐다. 체격과 기술 부족은 협력플레이로 채웠다. 상대팀 선수들은 중원에서 공을 잡는 순간 몰려드는 2~3명의 선수들에 당황할 수밖에 없다. ‘압박’이다. 1대1로는 상대하기 힘들지만 2명이 달려들면 드리블이 불가능하고, 3명이 달려들면 패스를 못한다. 협력플레이는 넓은 활동폭을 전제로 하고, 결국 체력소모가 심해진다. 그래서 두 팀은 선수들의 체력증강을 제1의 과제로 삼았다. 자신감도 동시에 올라갔다. 고유의 희생정신과 높은 충성심은 전술 수행능력을 높였다. 오로지 팀의 승리를 위해 비록 자신이 드러나지 않더라도 감독의 지시를 충실히 따른다. 지고 나면 서로 싸우기 바쁜 유럽, 아프리카팀과 정반대다. 한국, 일본 두 팀은 지금껏 볼 수 없었던 축구로 세계축구의 중심으로 향하고 있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월드컵 新풍속도] 老兵들도 길거리 응원

    우리나라와 아르헨티나가 맞붙은 지난 17일. 젊은이들로 가득찬 서울 반포시민공원 한쪽에 백발의 노병(兵)들이 자리했다. 붉은색의 응원복 대신 얼룩덜룩한 군복을 입었다. 이들은 다리가 불편한 옛 전우의 느린 보폭에 맞춰 천천히 걸어가 자리를 잡았다. 우렁차지는 않아도, 강단 있는 목소리로 “대~한민국”구호를 목놓아 외쳤다. 정확한 박자는 아니어도, 손바닥이 벌게지도록 짝짝~ 박수도 쳤다. 젊은이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뜨거운 응원과 대한민국의 선전이 누구보다 즐거웠던 이들, 바로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이다. 1950년 6·25때 수병으로 참전했던 김승봉 옹(80)은 전쟁 때 다친 다리가 덧나 절뚝이는 옛 전우 손경우(80)옹을 부축하고 회원 8명과 함께 거리로 나왔다. 나이리지아전은 손옹이 입원한 서대문 적십자병원에서 함께했다. 그는 “2002년과 2006년엔 집에서 경기를 지켜봤다.”면서 “천안함에, 정치에, 분열된 남과 북의 요즘 현실이 가슴 아파 젊은이들에게 화합의 메시지를 주고 싶어 전우들과 함께 응원을 나왔다.”고 말했다. 월드컵이 ‘노병’들을 일깨우고 있다. 2002년과 2006년, 무심히 축구경기를 지켜봤던 6·25와 베트남 전쟁 등 참전용사들이 이번 월드컵에는 ‘특별한 사명감’을 갖고 거리로 나오고 있다. 고령의 나이도, 이른 새벽시간도 개의치 않은 채 응원전에 ‘충성’중이다. 전문가들은 천안함 사태와 6·25를 통해 촉발된 사회적 관심이 국가대항 성격을 띤 스포츠 행사로까지 확산됐다고 분석했다. 또 이들이 월드컵을 계기로 분열된 사회분위기를 하나로 모으고, ‘소통과 화합, 통일’을 희망하는 메시지를 사회 안팎에 전하려는 것으로 평가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참전용사의 경우 경기 자체를 즐기는 젊은 층과 달리 국제적 스포츠 행사에서의 승리를 더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해석할 수 있다.”면서 “천안함과 6·25 등으로 동기를 부여받아 사회안팎에 ‘통일’과 ‘화합’의 뜻을 전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맹호부대 소속으로 1969년 월남전에 참전했던 월남전 참전용사 전우회원들도 23일 모여 응원전에 나섰다. 13명의 강서지구 회원들은 강원 고성 통일전망대 등 전적지 순례를 마치고 강서구 일대에 모여 새벽 응원전을 펼쳤다. 이상호(63) 월남참전용사 전우회 강서지부장은 “거리응원에 나선 젊은이들과 소통하고, 단합된 대한민국의 모습을 보고 싶어 나왔다.”고 말했다. 해외 참전용사도 가세했다. 6·25전쟁 60주년을 맞아 한국을 방문한 파란 눈의 노신사 등 300여명의 해외 참전용사들도 거리 곳곳에서 “대~한민국”을 외치며 힘을 북돋웠다. 응원에 참가한 미국인 멀리 제이 피터슨(79)은 “한국전에 참전한 지 벌써 60년이 흘렀는데 아직 분단된 한국을 보니 마음이 아프다.”면서 “다음 월드컵엔 꼭 두 팀이 같이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병상에서 참전용사 전우들과 월드컵을 응원한 손경우옹은 “빨리 통일이 되어 남과 북이 하나로 뛰는 모습을 보고 죽으면 여한이 없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實錄, 한국전쟁] 이승만 휴전반대·북진통일 주장… 美 친위쿠데타 검토

    [實錄, 한국전쟁] 이승만 휴전반대·북진통일 주장… 美 친위쿠데타 검토

    한국전쟁의 발발과 전개과정에서 이승만 대통령과 남한정부는 어떤 역할을 했으며, 어떻게 평가받을까. 북진통일을 외친 이승만은 한국전쟁 발발을 논하는 장에서 반짝 등장하지만, 한국전쟁 과정에서는 언급이 미미하다. 존재감이 없다. 러시아나 중국, 심지어 미국 자료들도 한국전쟁의 주역으로 이승만을 취급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반도의 남쪽을 지배하고 있던 남한 정부와 이승만은 단지 전쟁을 획책한 북한 김일성과의 비교 대상으로 등장할 뿐이다. 그러나 휴전협정 국면에 접어들면서 상황은 반전된다. 이승만의 극렬한 휴전반대가 주요 변수로 급부상했다. 이 시기 평양과 모스크바, 베이징 그리고 서울과 워싱턴 사이에 오간 각종 자료를 분석해 보면 ‘이승만’이라는 이름 석 자의 등장 빈도가 갑자기 높아졌다. 특히 1953년 6월18일 반공포로 2만 7000명의 전격적인 석방이 준 충격파는 컸다. 휴전협정 당사자인 미국과 중국은 물론 평양이 발칵 뒤집혔다. 영국의 처칠 총리는 아침에 면도하다 이 소식을 보고받고 얼굴을 벨 정도였다. ●‘미국의 남자’ 이승만 美와 애증 미국은 진퇴양난이었다. 미국 국내의 들끓는 휴전여론과 달리 중국과의 휴전협상은 평행선을 긋고 있었다. 한국정부와의 관계는 이승만의 휴전반대로 말미암아 담벼락 위를 걷는 아찔한 상태였다. 미국 합동참모본부가 간행한 ‘한국전쟁’에 따르면 “예측할 수 없고, 변덕스러운 이승만 정부의 자세와 행동이 특별히 어려웠다. 이러한 것들은 회담에 역기능적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협상을 불필요하게, 복잡하게 만들기도 했다. 어떤 점에서 이 대통령의 조치는 유엔군사령부의 군사적 입장을 위태롭게 하기도 했다.”고 기록돼 있다. 이승만은 어떤 종류의 휴전협정도 반대했다. 협상 자체를 거부했다. 오로지 남한에 의한 한반도 통일을 원했다. 그는 ‘중국군의 완전한 철수, 북한 공산당 해체, 인민군 무장해제’ 등을 협상조건으로 내걸었다. 이승만은 1951년 7월 “유엔군이 한국의 분할에 동의하지 않는 것을 보장해 달라.”라는 서한을 트루먼 대통령에게 보냈다. 트루먼은 이 대통령을 비난하면서도 협조를 요청하는 답신을 보냈다. 요구 사항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하지 않았다. 심지어 미국 합참보고서는 1952년 초 뉴욕 출신의 저명한 천주교 인사인 스펠만이 한국을 방문, 무초 미 대사와 벤플리트 8군 사령관이 함께한 자리에서 이승만이 “미국의 모든 천주교인이 한국에 휴전이 없도록 기도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정보를 싣기도 했다. 미국입장에서는 수용 불가능한 무리한 요구였다. 미국이 한국의 지도자로 선택한 ‘가장 미국적인 한국인’인 이승만은 그를 키워준 미국을 거역하고 있었다. 소련이 김일성을 북한지도자로 지목한 것처럼 이승만도 미국에 의해 선택되고 키워졌다. 이 시기 이승만을 묘사한 미국 측 자료는 온통 노회, 변덕, 아집, 독선 같은 단어로 도배돼 있었다. 전쟁발발 이전 이승만을 접촉한 한국주둔군 사령관 하지는 “솔직하지 않고, 정서적으로 불안하며, 야비하고, 부패하고, 예측할 수 없는 인물”이라고 악평했다. 이승만을 바라보는 미국의 우려가 오래됐음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이승만은 ‘미국의 남자’였다. 1905년 영어를 잘한다는 이유로 선발돼 백악관으로 루스벨트 대통령을 방문해 인연을 맺었다. 미국이 일본의 식민지 정책을 중단할 수 있게 도와주길 바랐지만, 그때 이미 미국은 일본과 ‘가쓰라-태프트 조약’을 맺으려고 작업 중이었다. 서로 필리핀과 대한제국에 대한 재량권을 인정하는 조약이었다. 이승만은 하버드대학에서 수학하고 나서 프린스턴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훗날 대통령이 된 윌슨의 제자가 됐다. 윌슨은 이승만을 ‘미래 한국의 독립을 위한 구세주’라고 부추겼다. 이승만은 윌슨이 민족자결주의를 주창한 파리평화회의에 참석하려 했으나 미 국무부로부터 여권을 발급받지 못했다. 이승만과 미국은 애증의 관계였다. 미국 지도부는 민족주의자인 동시에 기독교인인 이승만이 미국식 종교와 정치 기조를 따를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이승만의 마음속에는 미국에 대한 배신과 위선, 불신의 불씨가 자라고 있었다. ●이승만 ‘북진통일’ 정치적 구호 이승만의 또 다른 트레이드 마크인 ‘북진통일’은 남한주민들로부터 열광적인 지지와 호응을 받았지만 득보다 실이 컸다. 김일성의 남한공격 본능을 자극하는 구실로 작용한 측면이 있다. 스탈린으로부터 원조받은 무기와 군수물자로 완전무장한 북한 인민군과 비교하면 남한의 군사력은 턱없이 부족했다. 전쟁발발 당시 한국군은 자신을 지키기에도 역부족인 상태였다. 전쟁 열흘 전인 1950년 6월15일 미 국방부에 보고된 군사고문단 보고서에는 ‘한국군은 가까스로 군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장비와 무기 대부분은 쓸모가 없었고, 방어능력도 기껏 보름 정도’라고 기술돼 있다. 실제 인민군이 보유한 소련제 T34전차의 위력 앞에 한국군은 맥없이 무너졌다. 구형 바주카포는 무용지물이었다. 치밀하게 계산하고 준비한 김일성의 남침에 비해 이승만의 북진통일은 정치적 구호에 불과했다. 한국전쟁은 이승만의 의도와는 달리 종결을 향해 달려갔다. 미국 공화당이 1952년 7월 아이젠하워를 대통령후보자로 지명하면서 대세는 군사적 종결이 아닌 정치적 종결, 즉 휴전 쪽으로 기울었다. 대통령 후보자 아이젠하워는 같은 해 10월 디트로이트 연설에서 “명성을 걸고 한국전쟁을 조기에 명예롭게 종결짓겠다.”고 천명했다. 그는 “새로운 행정부의 정책은 한국전쟁을 끝내는 일에 집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젠하워가 당선됐다. 그는 12월2일 극비 한국방문길에 올랐다. 미 행정부 수뇌부는 남한의 정치적 위기는 전적으로 이승만으로 말미암아 일어났다고 여겼다. 이 같은 위기가 휴전협상뿐만 아니라 38도 상에 진행되고 있는 군사작전마저도 위협한다고 보았다. 실제 이승만은 1952년 국회 간선을 통한 재선이 어렵게 보이자 국민이 대통령을 직접 선출하는 이른바 ‘발췌개헌’을 꾀했다. 임시수도인 부산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반대파를 제거했다. 한국군 전투부대를 철수시켜 계엄군으로 사용하려 했다. 이종찬 육군참모총장이 나서 “정치적 목적을 위해 개인의 군대로 사용하는 것”을 반대했으나 이승만은 막무가내였다. 전쟁을 끝내고 싶은 미국에 이승만은 골칫거리였다. 1953년 미국과 중국의 협상은 막바지를 향해 달려갔지만, 미국과 이승만 정부와의 사이는 또 다른 고비를 향해 뒤틀려 갔다. 이승만은 4월5일 “판문점에서 무엇이 일어나든 관계없이 우리의 목표는 똑같다. 우리의 변함없는 목표는 한국을 남으로부터 압록강까지 통일시키는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이승만은 아이젠하워에게 “유엔군사령부가 중국군이 압록강 이남에 잔류하는 것을 허용하는 데 동의한다면, 우리는 한국군을 유엔군사령부에서 철수시킬 것이며 단독으로 싸울 것”이라는 내용의 최후 통첩장을 보냈다. ●아이젠하워 한때 李 제거 계획 워싱턴은 이승만을 휴전협상의 훼방꾼이자 위협세력으로 간주했다. 특유의 허세라고 판단하면서도 극단적인 조치로까지 몰고 갈 것으로 예측했다. 달래기에 나섰지만 이승만은 클라크 사령관과의 회담에서 “당신들은 모든 유엔군, 모든 경제원조를 철수시킬 수가 있다. 우리는 우리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것이다. 처음부터 민주주의가 우리를 도울 것이라고 의존한 것이 우리의 실수였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협력하겠다는 보장을 할 수 없다.”면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승만은 6월6일 ‘선(先) 한미방어조약 체결, 후(後) 유엔군과 공산군의 상호철군’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면서 “우리는 반쪽 휴전이나 평화보다는 싸움을 택한다.”라는 예의 벼랑 끝 외교전을 펼쳤다. 클라크 사령관은 “이 대통령은 송환 불원 한국인 포로를 경고 없이 석방할 수 있다.”는 예언에 가까운 메시지를 워싱턴에 보냈다. 포로경비부대 대부분이 한국군으로 구성됐기 때문에 유엔군은 이를 막을 수단이 없었다. 클라크 사령관의 예언대로 이승만이 반공포로를 석방하자 아이젠하워는 이승만 제거를 검토했다. 미국 수뇌부는 당시 한국에 임시군사정부를 수립하는 극비의 군사계획을 준비하고 있었다. 반공포로 석방 다음날인 6월19일 자 미국 국가안보회의 비망록에 따르면 아이젠하워는 “위험을 없애는 가장 빠르고 유일한 길은 쿠데타”라면서 “이는 확실히 고려해볼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군사자문 기구인 합참은 1952년부터 쿠데타 계획을 세워 놓았다. 합참으로부터 지시를 받은 클라크 유엔군사령관은 6월27일 벤플리트 장군에게 이 계획을 통보했다. 한국육군과 참모총장은 유엔군사령부에 충성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비밀해제된 미국 합참보고서에 따르면 “이 대통령을 어떤 구실을 붙여 서울로 초대한다. 유엔군사령부가 부산으로 이동하여 주요 지지자들을 체포하고, 주요시설을 방호하며 한국육참총장을 통하여 기존 계엄령을 장악한다. 이 대통령에게 계엄령을 종결토록 요구한다. 만일 거부하면 외부와의 통신을 차단한 채 연금하고, 요망되는 포고령은 협조적인 것으로 예상하는 국무총리가 발표하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李 재선 이후 美와 화해모드 다행히 워싱턴의 친위 쿠데타계획은 불발됐다. 현실론을 내세운 참모들의 설득으로 강력한 경고수준에서 그쳤다. 한국 국회도 대통령 직선제 헌법개정을 승인했다. 계엄령은 해제됐고 이승만은 제2대 대통령으로 재선에 성공하면서 화해모드로 전환됐다. 미국은 손을 들었다. 미국은 휴전동의를 얻고, 이승만은 그 대가로 한·미상호방위조약이라는 보호우산을 제공받는 선에서 양국의 갈등은 마무리됐다. 아이젠하워는 “한국의 통일을 정치적인 수단으로 계속 추구한다. 휴전협정 수락 직후에 상호방위조약을 협상한다. 전후 경제원조를 계속한다.”라는 세 가지 조치를 약속했다. 이승만은 극단적인 휴전반대와 반공포로 석방이라는 초강수를 통해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을 이끌어냈다. 허물도 컸지만, 오늘의 한국이 있게 한 주춧돌을 놓았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한국전쟁의 산물인 한·미동맹은 단순한 양자동맹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안전판 역할을 하는 지역동맹”이라고 평가했다. 러시아를 저지하고, 중국을 봉쇄하면서, 일본을 견제하는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동맹이라는 것이다. 노주석 논설위원·윤샘이나기자 joo@seoul.co.kr
  • 이민 떠난 주인 찾아간 ‘충성심 고양이’

    이민 떠난 주인 찾아간 ‘충성심 고양이’

    개 못지않은 충성심을 가진 고양이의 영화 같은 이야기가 러시아 전역을 감동케 했다. 오스트리안 타임스에 따르면 생후 9년 된 고양이 카림(Karim)은 2년 동안 무려 3200km 넘게 걸어 우즈베키스탄에서 러시아로 이민을 떠난 주인의 품에 다시 안겼다. 고양이 주인 라빌라 해어로바(52)는 “집 앞에 쓰레기를 버리러 나왔는데 더럽고 바짝 마른 회색 고양이 한 마리가 나에게 뛰어들어 애교를 부렸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길고양이라고 생각했지만 얼굴을 자세히 본 그녀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2년 전 러시아로 이민 올 당시 헤어진 고양이와 모든 생김새가 똑같았던 것. 많이 마르긴 했지만 꼬리에 있는 상처며 배에 있는 점박이 등은 새끼 때부터 7년 넘게 키운 고양이와 똑같았다. 무엇보다 이 고양이는 이름을 알아듣고 주인 가족의 품에서 떠나지 않았고 주인은 이 고양이가 카림이 맞다고 확신했다. 그녀는 “2년 전 이민 올 당시 옆집 사람이 카림을 길러주기로 약속해 밥그릇, 쿠션, 의자까지 모두 주고 떠났다. 며칠 뒤 옆집 사람에게 ‘고양이가 집을 나갔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 듣고 정말 슬펐고 지켜주지 못해 미안했다.”고 말했다. 만약 주인의 말대로 이 고양이가 카림이 맞다면 고양이는 2년 간 약 3200km를 걸은 셈이다. 어떻게 가족이 이사한 곳의 주소를 알았는지 또 러시아 국경을 어떻게 넘었는지는 미스터리로 남았다. 고양이를 다시 만나 행복하다는 가족들은 “어떻게 다시 우리에게 왔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카림은 매우 똑똑했기 때문에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든다.”면서 “다시 카림과 함께 살수 있어 행복하다.”고 기쁨을 드러냈다. 사진=카림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신기혁의 스포츠 스토리] FIFA 월드컵과 마케팅

    [신기혁의 스포츠 스토리] FIFA 월드컵과 마케팅

    262억 9천만 명.이 숫자가 과연 어느 정도의 규모일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이는 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 FIFA 월드컵을 시청했던 누적 시청자수이다. 이 정도의 시청인원이라면 가히 “전 세계 최고의 스포츠 축제”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전혀 아깝지 않은, 명실공히 전 세계인이 가장 열광하는 최대의 스포츠 이벤트라고 할 수 있겠다.겨우 4년에 딱 한 번만 열리는 월드컵이 세계 메이저 기업들의 홍보 전쟁터가 된 이유도 이와 맥락을 같이 한다. 올림픽 역시 전세계적인 스포츠 이벤트이지만, 월드컵만큼의 규모와 인기를 갖고 있지는 못하다. 이는 전적으로 축구라는 종목이 가지는 단순함의 매력(공 하나로 68억 인구가 하나가 되는)과 FIFA의 마케팅 능력이 그 뒤에 있기 때문이다.우리나라 축구 대표팀의 월드컵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온 나라를 붉게 물들이며 환호하는 인파들을 볼 수 있다. 과연 어떤 권력이나 조직, 혹은 기업이 이처럼 통일성 있는 거대한 유행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오늘은 바로 이 FIFA 월드컵과 마케팅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마케팅의 귀재, FIFA 주식회사FIFA(Federation of International Football Association, 국제축구연맹)는 1904년에 축구경기의 발전과 회원간 친목 도모를 목적으로 축구 종주국인 영국을 제외한 유럽 7개국(프랑스, 스위스, 스페인, 벨기에, 스웨덴, 덴마크, 네덜란드)의 주도아래 설립되었으며, 2010년 현재 가입국 수는 208개국에 이른다.1930년에 우루과이에서 첫 번째 대회가 개최된 이후로, 월드컵은 1942년과 1946년을 제외하고 매4년마다 18번 열렸고, 2002년 한일 월드컵을 포함하여 현재 19번째 대회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개최되고 있다.월드컵에 본격적으로 마케팅 개념이 도입되기 시작한 것은 1974년 이후로, 그때까지 각 개최국 월드컵조직위원회가 가지고 있었던 마케팅 권한을 FIFA가 직접 소유하고 관리하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이후로 FIFA는 월드컵을 스포츠 마케팅의 거대시장으로 발전시켰다. FIFA는 그들의 강력한 마케팅 자산인 ‘개최지결정권’과 ‘TV중계권’, 그리고 ‘공식후원권’을 활용하여 전세계의 권력, 미디어, 다국적 기업들을 상대로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려왔다.그들은 개최국의 정부에게서 자신들의 수익에 대한 면세혜택을 얻어낼 정도로 정치적으로 막강한 힘을 가지게 되었고, 매회마다 ‘TV중계권’ 판매금액을 엄청난 비율로 인상시켜 이번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무려 27억 달러의 중계권 수입을 올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이제, FIFA는 현금 자산만 15억 달러 이상을 보유한 ‘초우량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하였다. 1974년 이후 흑자행진을 지속해온 그들의 마케팅 능력, 혹은 장사수완은 전세계의 그 어떤 기업보다도 탁월하다고 할 수 있겠다.월드컵 공식후원의 역사는 1930년 제1회 월드컵대회에 코카콜라가 음료를 지원한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본격적으로 월드컵 후원마케팅이 시작된 것은 1986년 멕시코 월드컵부터이다. 이미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45개의 공식후원사들이 4억 5천만달러 이상의 후원금을 지불했고, 이후 후원금 규모는 가파르게 상승하였다.이처럼, 천문학적인 후원금을 지불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다국적기업들이 앞다투어 월드컵을 후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그것은 바로 월드컵만이 가지는 극단적인 상품성에 있다고 할 수 있다.단적으로 지구촌 최대 스포츠축제라고 하는 올림픽과 월드컵을 비교해 보면, 월드컵은 올림픽에 비해 마케팅적인 활용 가능성과 후원사의 마케팅권리가 훨씬 강력하다. 그 이유는 단일종목이라서 팬들의 집중력이 강하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고 올림픽과 달리 월드컵 마케팅의 최대권리인 경기장 내부에 보드광고 설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또한, 월드컵은 TV중계 시청자 수에 있어서도 올림픽의 2배 이상이고, 후원비용이 올림픽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함에도 불구하고 올림픽보다 2배 이상 긴 대회기간 덕분에 더 많은 관중과 시청자들이 경기를 관람하고 시청하므로 브랜드 노출에 있어서도 탁월하다.일례로, 현대자동차의 2006 독일 월드컵 후원에 따른 광고효과는 9조원에 육박한다고 한다.전세계를 대상으로 기업의 이미지를 높이고 상품을 광고해야 하는 다국적기업에게 있어서 이처럼 월드컵 후원은 기업 및 상품브랜드에 대한 충성도를 높이고, 새로운 고객 창출을 통한 이윤을 극대화 할 수 있는 최적의 마케팅 수단이라고 할 수 있겠다.월드컵이 열리는 기간 동안 이를 지켜보는 전 세계인들의 머리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 비단 경기 결과만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월드컵이라는 마케팅 수단을 적극 활용하는 다국적 기업들의 브랜드 또한 우리의 머리 속에 더욱 깊이 각인되고 있는지도 모른다.다음 시간에는 월드컵 시즌만 되면 자주 등장하는 앰부시마케팅(Ambush Marketing, 매복마케팅)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다. ㈜케이티 신기혁 스포츠에디터@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현대차 광고 美서 큰 파문…무슨 사연?

    현대차 광고 美서 큰 파문…무슨 사연?

    축구열기를 종교와 결부시킨 현대의 미국 내 월드컵 광고가 카톨릭 신자들의 뭇매를 맞고 결국 방송과 모든 동영상 사이트에서 내려지며 논란이 일고있다. 월드컵 시작과 함께 미국 방송에 공개된 현대의 월드컵 광고는 미국의 월드컵 첫 경기인 잉글랜드와의 경기가 중계되는 동안에 정점을 이뤘다. ’웨딩’(Wedding)이란 이 현대의 이미지 광고는 라틴음악이 나오고 남미의 한 성당을 배경으로 한다. 성당에는 예수대신에 축구공이 면류관을 쓰며, 신자들은 성체를 받는 대신 무릎을 꿇고 피자를 받아든다. 흰색 유니폼을 입은 축구 신도들은 축구공이 그려진 스테인 글라스를 향해 성스러운 의식을 진행한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내레이션 “팬들은 모든 방식으로 그들의 충성도를 보여준다, 우리들은 단지 현대차를 사는 것이다”(Fans show their loyalty in all kinds of ways; ours just buy another Hyundai) 남미의 축구열기를 종교와 결부시킨 이 광고가 방송된 후 카톨릭 신자들을 중심으로 신성모독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각종 카톨릭관련 포럼에는 ‘안티카톨릭 현대 광고’란 이름으로 동영상과 관련 글이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로드아일랜드 교구 사제는 “현대의 광고는 예수의 신성을 모독하고 우리들의 종교적 믿음을 조롱하는 것이다”라고 발표했다. 카톨릭 신자들은 미국 현대에 광고를 중단할 것을 종용하는 이메일을 보내기 시작했다. 14일 오후(현지시간) 부터 현대 모터스 아메리카로부터 일제히 정중한 사과 이메일이 발송됐다. 이메일에는 “ 현대 광고에 대한 피드백을 보내 주어 고맙다. 축구의 열기를 종교의 열정과 연결시킨 잘못을 인정하며 광고로 인한 불편을 드려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적었다. 또한 메일에는 “모든 방송에서의 광고와 현대 커뮤니티에서의 노출을 중단할 것”을 약속했다. 현재 해당 광고는 미국 현대사의 공식 홈페이지에서도 사라진 상태이며, 동영상 공유사이트에서도 저작권을 이유로 내려진 상태다. 카톨릭 관련 포럼에는 “현대의 신속한 대응이 인상적이다” 란 반응이 올라오고 있지만 비카톨릭 시청자들에서는 “카톨릭의 지나친 반응”이라는 의견도 올라오고 있다. 사진=해당 광고 캡쳐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통신원 김형태 tvbodaga@hanmail.net@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이대통령 깜짝등장에 부사관 부부들 환호

    이대통령 깜짝등장에 부사관 부부들 환호

    서울신문사·국방부가 주최한 ‘국군모범용사 초대행사’에 초청된 모범부사관 60명과 배우자들은 14일 오전 청와대를 방문했다. 이들은 녹지원 등 청와대 경내를 둘러본 뒤 오전 11시50분쯤 청와대 본관앞을 지나다가 이명박 대통령의 ‘깜짝방문’을 받았다. 모범부사관 부부들은 수석비서관회의를 마치고 본관 앞 계단으로 내려오던 이 대통령을 보고 일제히 박수를 보냈다. 대통령이 모범용사 행사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01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참석한 이후 9년 만이다. 이 대통령은 부사관 부부, 서울신문 이동화 사장 등과 함께 사진을 찍으면서 “오늘 날씨가 좋아서 참 다행이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사진기자에게는) “얼굴 다 나오게 찍어요.”라고 웃으면서 말한 뒤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했다. 기념사진 촬영을 마치고는 계단 밑에 있던 부사관 부부들에게 다가가 일일이 악수를 하며 말을 건넸다. 이 대통령은 한 여군 부사관과 함께 온 남성에게 “여군이니까 남편이냐?”고 물었고 이 남성은 “부부군인입니다.”라고 답했다. 이어 모범부사관과 배우자 120명과 한 사람, 한 사람 악수를 하며 “이렇게 짝인가? 이렇게 부부인가?”라고 물으며 관심을 보인 뒤 “다닐 때는 꼭 손을 붙잡고 다녀라.”라고 조크를 던졌다. 일부 모범용사들은 대통령과 악수를 나눌 때 관등성명을 대면서 “충성을 다하겠습니다.”라고 큰 목소리로 외치기도 했다. 오찬은 정정길 대통령실장 주재로 충정관 식당에서 진행됐다. 정 실장은 “대한민국이 산업화 민주화를 이루고 국제 사회에 우뚝 서는 기적을 이룬 대표적 나라로 자리매김한 것은 여러분들이 묵묵히 안보를 위해 고생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으며, 대통령께서도 (이런 뜻을) 꼭 전달해 달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천안함 사태로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고 있지만 경제위기를 기회로 선진국으로 올라섰듯이 이번 일을 안보태세를 업그레이드하는 계기로 삼자.”고 강조했다. 이 사장은 “이번 행사는 47회를 맞는데 6·25 60주년을 맞아 올해는 특히 대통령께서 직접 격려를 해줘서 더욱 뜻깊은 행사가 됐으며, 대통령께 감사드린다.”면서 “애국심과 자긍심을 갖고 국가안보를 위해 묵묵히 일해 오신 부사관 여러분들께도 정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육군 대표로 소감을 밝힌 이명직 원사는 “저를 포함한 모든 군인들이 대통령께 진정으로 감사드리는 것은 ‘군복 입은 것을 자랑스럽고 영광스럽게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고 하셨던 말씀으로 어떤 선물보다 값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천안함 침몰사건으로 온 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북한의 만행을 결코 잊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 어떠한 위협과 도발에도 단호히 응징할 수 있도록 더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35년간 군에서 근무한 육군 장승호 원사의 부인 선명숙씨는 “남편을 잘 둔 덕분에 대통령도 만나 보게 됐다.”면서 “대통령과 직접 악수를 해서 떨리기도 했지만 너무 기뻤다.”고 말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사설] 부사관 사기 높여 軍 교량역 더 키워라

    국방부와 서울신문사가 공동 주최하는 ‘국군 모범용사 초대행사’가 올해로 47회째를 맞았다. 올해는 특히 6·25전쟁 60주년을 맞아 육·해·공·해병대 등 전군에서 선발된 모범 부사관 60명과 배우자들이 행사에 초청됐다. 이들은 4박5일간 국립현충원·청와대·국회 등 국가 기관과 산업현장을 둘러보며 국토방위의 의지를 다질 예정이다. 모범 부사관들이 행사를 마치고 귀대한 뒤 복무에 더욱 힘쓰고 사기가 충천하길 기대한다. 나아가 장교와 사병 사이를 잇는 교량 역할을 강화해 국가안보 및 국토방위의 소임을 다해주길 바란다. 군에서 중견간부이자 중추인 부사관들은 그 역할에 비해 예우가 크게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전군의 모범 부사관들을 해마다 선발해서 초청하는 이유도 이들의 노고와 사기가 군에 미치는 영향이 작지 않기 때문이다. 천안함 폭침사건에서 보았듯 희생사병 46명 가운데 30명이 부사관이었다. 이는 부사관들이 전투력의 중심에 있다는 뜻일 것이다. 전군에 걸쳐 11만명(17%)에 이르는 부사관들은 그러나 어려운 집안 환경에서 학업을 마친 경우가 대다수다. 군복무 중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경우가 많고, 의무복무 사병이나 명예가 뒷받침되는 장교와 달리 직업군인으로서 자부심을 갖기도 쉽지 않다. 부사관들이 군복무에 전념하고 국가에 충성을 다하게 하려면 예우와 복지, 전역 후 취업 등에 획기적인 지원이 절실하다. 때마침 천안함 사건에 따른 군 지휘부 및 보고계통의 문책 수위가 논의되고 있다. 군 일각에서는 관련자들을 지나치게 징계할 경우 군 전체의 사기 저하가 우려된다는 시각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지휘·보고·경계의 책임을 엄중히 묻는 것과 사기는 별개의 사안이다. 군의 사기는 평시에 예우와 복지로 앙양해 주면 된다. 군인들도 임무소홀에 대해선 당당하게 책임을 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처벌에 사기를 연계하면 안 된다.
  • 日 디자이너 신지카토 캐릭터의류 국내 런칭

    日 디자이너 신지카토 캐릭터의류 국내 런칭

    주광명어패럴은 14일 일본 유명 일러스트 디자이너 신지카토(Shinzi Katoh) 캐릭터 의류와 공식 라이센스 계약을 체결하고 국내에 런칭한다고 밝혔다.신지카토 캐릭터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러스트 디자이너인 신지카토가 직접 디자인하는 상품라인으로 그동안 온라인상에서 꾸준히 거래되어 오다가 이번에 정식 판매되기 시작한 것이다.신지카토 캐릭터 상품은 이미 문구, 팬시용품, 패션, 인테리어, 생활용품, 가정용품, 식품에 이르기까지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아이템이다.신지카토 캐릭터의류의 생산, 유통을 총괄하는 주광명어패럴 마케팅 성권능 과장은 “캐릭터 상품은 학생들의 학용품이나 스티커, 장난감 등 완구류뿐아니라 성인들도 인테리어 소품, 의류 등을 통해 캐릭터 상품을 즐기고 있다. 성인들이 캐릭터에 관심을 갖는 것은 귀엽고 깜찍한 캐릭터 상품들을 사용함으로써 잠시나마 스트레스와 각박한 현실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현대인들의 마음을 정서적으로 반영한 것”이라고 브랜드 런칭 배경을 설명했다.이어 성 과장은 “ 런칭준비단계에서 팬시용품이나 생활용품으로 익숙한 신지카토 캐릭터 매니아들이 의류에 어떤 종류가 있는지, 구매는 어디서 하는지 문의가 끊이지 않아 신지카토 캐릭터의 두터운 매니아층에 놀랐고, 브랜드 충성도에 놀라웠다.’”고 말했다.고양이는 일본에서 부와 재물을 상징하는 동물로 귀하게 여기고 있다. 이런 고양이를 모티브로 한 다양한 일러스트 캐릭터로 10대후반에서 30대까지 패션를 주도하는 감각적이고 트렌디한 여성층을 주요 타깃으로 마케팅을 전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한편 신지카토 캐릭터티셔츠는 귀엽고 깜찍한 디자인으로 이태란, 박신혜, 유민, 현영, 시크릿 등 톱스타들에 의해 각종 TV프로그램과 매체에 소개되며 적극적인 스타마케팅을 전개하고 있다.사진 = 신지카토서울신문NTN 채현주 기자 chj@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기고] 세계적 기업들도 활용하는 유연근무제/이선우 한국방송통신대학 행정학 교수

    [기고] 세계적 기업들도 활용하는 유연근무제/이선우 한국방송통신대학 행정학 교수

    20여년 전 미 연방 정부 인사관리처는 ‘오후 3시 증후군(3 O‘Clock Syndrome)’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했다. ‘오후 3시 증후군’이란 오후 3시만 되면 자녀들이 하교하는 시간에 맞춰 아이들의 부모인 공무원들이 자신의 아이들이 제대로 집에 들어갔는지, 그리고 아이를 돌봐 줄 사람이 와 있는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 전화하느라 통화하기 어려운 현상을 말한다. 휴대전화가 요즘처럼 일반화돼 있던 시절이 아니었기 때문에 정부 측에서는 조직생산성 차원에서 심각히 이 현상을 다뤘고, 그 결과 가족친화적 제도를 보다 확대해 실용적으로 만들도록 했다. 이때 나온 개념이 재택근무제, 하루 8시간씩 매일 일하지 않더라도 주 40시간을 하루 10시간씩 나흘만 근무하는 방식 등으로 근무하는 탄력근무제, 하루 중 반드시 일정 시간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핵심근무시간제 등이다. 당시 이렇게 확대도입된 가족친화제도는 우리나라에서도 상당히 발전적 모습으로, 직원들의 복지차원에서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이와 유사한 제도들을 민간에서는 일찍이 도입해 활용하고 있고, 공공부문에서도 출산휴가제를 확대하고 육아휴직제 등을 도입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유연근무제도라 하여 보다 발전적 모습으로 행정안전부에서 기획제안하고 여성가족부에서 확대적용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유연근무제는 앞서 언급한 재택근무, 탄력적 근무, 핵심근무시간제 이외에도 정규직으로서 시간제 공무원제도, 정규직 공무원이 개인 사정으로 일시적으로 시간제직으로 전환할 수 있는 제도 등을 포함하고 있다. 다양한 형태의 유연근무제가 개발 중에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유연근무제가 일과 삶의 균형적 관리란 차원에서 논의돼야 하고, 조직 구성원들의 자긍심을 키우고 조직과 구성원들 간 신뢰를 형성함으로써 업무 몰입도를 높이고, 궁극적으로는 조직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주요 목적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사회적 진출을 저해하는 요소들을 최소화시키고 직원들의 복지차원 등 협의적 의미에서만 논의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유연근무제가 가족친화적 제도의 연장선이고, 여성들의 직장 내 활동을 원활히 하자는,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는 차원에서 충분히 논의될 수 있고 또 논의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제 젊은 층에서는 여성과 남성의 구분보다는 가족의 가치를 높게 보면서 동시에 개인의 삶을 중요시하고 스스로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자 하는 의식이 매우 강해졌다. 나아가 조직에 대한 일방적 충성보다는 쌍방향의 이해관계를 원한다. 과거 직원 복지 측면에서 다루었던 유연근무제 개념은 이제는 직원 존중과 신뢰, 이를 통해 자신의 업무를 포함한 자기세계에 몰입하는 개념에서 논의되어야 하는 시점에 도달했다. 이는 더 나아가 조직문화를 변동시키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으며, 구글·삼성전자와 같은 세계적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일하기 좋은 직장 만들기(Great Work Place: GWP)’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유연근무제는 세계적 기업들이 운용하고 있는 GWP의 극히 일부분에 해당하는 제도다. 우리 정부에서도 직원 복지와 존중을 통해 조직생산성 향상을 높이기 위해서도 늦었지만 당연히 도입해야 할 제도이다.
  • [객원칼럼]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김동률 KDI 언론학 연구위원

    [객원칼럼]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김동률 KDI 언론학 연구위원

    일본 관료사회를 묘사하는 표현 중에 ‘아침 귀가’란 말이 있다. 아침 귀가란 첫째 철야근무한 뒤 아침 일찍 옷을 갈아 입고 다시 출근하기 위해 잠시 귀가하는 것, 둘째 정말 바쁠 때는 택시를 타고 집에 와서 택시를 대기시킨 채 샤워한 뒤 옷을 갈아 입고 사무실로 곧바로 출근하는 것, 셋째 금요일 밤 밤샘 근무한 뒤 토요일 새벽 첫 지하철을 타고 귀가하는 것 등을 말한다. 일본 관료들이 일을 열심히 한다는 것을 극명하게 나타내는 말이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일본 관료사회의 가족을 묘사하는 대목이다. 가족이란 ‘같이 사는데도 불구하고 심야 연장근무가 많아 일주일에 겨우 한 번 얼굴을 볼 수 있는 존재, 그러나 휴대전화로 꼬박꼬박 연락하거나 특별한 날에 선물 챙기는 것은 잊지 않고, 또 사무실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조그만 액자 안에 있는 사람’ 정도로 그려진다. 인용문은 가족까지 희생해 가며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일본의 공직사회를 그린 말들로, 하야시 유스케의 책 ‘가스미가세키의 규칙, 관료의 이면’에 나오는 대목이다. 가스미가세키는 도쿄의 중심지로 일본의 중앙부처가 몰려 있는 동네, 우리로 치면 광화문이나 과천청사쯤 된다. 일본의 관료사회는 메이지 유신으로 하루아침에 낭인이 된 사무라이 계급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주군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심이 고스란히 국가에 대한 충성으로 그 대상이 옮아 간 것으로 보면 된다. 그러나 오늘날 일본을 탄생시킨 그 관료사회는 이제 개혁의 대상으로 비난 받고 있다. 고이즈미, 하토야마에 이어 그제 취임한 간 나오토 총리 역시 ‘가스미가세키의 개혁’을 가장 큰 과제로 들고 나올 정도로 일본 관료사회는 비대해지고 부패해졌다. 가장 큰 이유는 국가에 대한 충성심, 관료의 긍지에 비해 정작 자신들의 삶은 존재조차 희미해진 데 따른 극단적인 보상심리라고 한다. 일본 관료사회의 부정적인 면을 고스란히 빼다 박은 나라가 한국이다. 한국인들은 지난 수십년간 국가경제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해 온, 세계 챔피언 일벌레들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인들의 연간 근로시간은 지난 수년간 일등이다. 물론 정부가 일벌레 사회의 부정적인 면을 인식해 분위기를 바꾸려 하고 있지만 효과는 미미하다. 실제 정부는 100만 공무원들에게 연가 사용계획서 제출을 의무화하는 등 휴가 보내기 운동에 적극적이다. 하지만 공직사회는 물론 일반 회사에서까지 상급자 눈치를 봐야 하는 한국 사회에서 먹혀들지 않는다. 공무원 휴가가 23일이지만 실제 사용일은 평균 6일에 불과하단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 자료를 들고 국무회의에서 닦달했지만 전혀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하기야 2008년 2월 취임 이래 이 대통령 스스로 사용한 휴가는 달랑 4일에 불과했고, 모 장관은 장관 취임 후 단 하루도 가지 못했다고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밝혀 세계인들을 놀라게 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이 분석한, 한국인들이 휴가를 꺼리는 또 다른 이유는 부끄럽다. 많은 한국의 공무원과 회사원들은 직장 상사가 휴가를 가면 같은 기간 급히 가는 관례로 인해 자신과 가족만의 계획을 독자적으로 세우기 힘들다는 것. 그러다 보니 정작 휴식과 충전보다는 급히 가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 탓에 좋은 추억을 갖기보다는 피로를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고백한다. 실제로 공무원의 휴가를 책임지고 있는 담당과장조차도 지난해 휴가를 하루도 쓰지 못했다고 외신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는 주말까지 합해 사나흘 고향에 다녀올 계획을 했으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가지 못했고, 고향의 가족들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해 더 이상 놀라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한때 ‘stop work, smell rose’를 살짝 원용한 광고 카피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가 유행했다. 그러나 컴퓨터를 끈 채 맘놓고 장미 향기를 맡을 수 있는 날들이 한국사회에서는 여전히 아득하기만 해 보인다. 모두가 휴가를 꿈꾸는 계절, 여름이 왔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