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충성
    2026-08-05
    검색기록 지우기
  • 당선
    2026-08-05
    검색기록 지우기
  • 시황
    2026-08-05
    검색기록 지우기
  • 첫 방송
    2026-08-05
    검색기록 지우기
  • 63빌딩
    2026-08-0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6,152
  • [사설] 새정부, 이상득·정두언 사례서 교훈 찾아라

    새누리당 이상득 전 의원과 정두언 의원이 그제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나란히 실형을 선고받았다. 5년 전 이명박 정부 탄생에 기여하며 일등 공신으로 불린 이들도 역대 정권 실세들이 그러했듯이 정권 말 ‘예정된’ 권력의 길을 가고 있다. 교도소 담장 위를 걷다가 이내 그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비참한 길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 전 의원은 한때 ‘만사형통’(萬事兄通)으로까지 불렸으니 그가 행사한 무소불위 권력의 ‘폐해’는 가히 짐작할 만하다. 정 의원 또한 마찬가지다. 한때 이 대통령의 복심으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와 조각·공천을 좌우하는 실세”로 불린 인물 아닌가.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이들은 법정에서도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볼썽사나운 주장을 거두지 않았다. 하지만 1심 재판이 두 사람 모두에게 죄가 있음을 인정한 이상 자성해야 한다. 지난 역사에서 교훈을 찾지 못하면 똑같은 실패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이 시점에서 추악하기 짝이 없는 권력스캔들을 다시 들춰내는 것은 새 정부에서만큼은 똑같은 권력부패가 되풀이되지 말아야 한다는 바람에서다. 두 사람의 동반 추락은 이 전 의원에 대해 정 의원이 권력 사유화 논란을 제기하며 촉발됐다. 우리 정치사에서 여권 내부의 권력투쟁은 결국 이권 다툼과 부패로 이어지는 게 다반사가 되다시피 했다. 절대권력만 부패하는 것이 아니다. 한 움큼의 찝찔한 권력이라도 있는 곳엔 으레 다툼과 부패가 싹트게 마련이다. 박근혜 당선인 주변이라고 안전지대가 아닐 것이다. 지난 대통령선거 이전에 이미 친박 핵심 의원들 사이에서는 권력 사유화 논란이 일었다. 측근들의 잘못된 보좌 문제 등을 지적하면서 시작된 논란이 친박계 내부의 권력 전횡 문제로까지 이어졌다. 이명박 정부 들어 측근비리가 잦았던 것은 측근들이 대통령의 철학을 공유하며 공적인 책임을 지기보다는 집권을 도운 대가로 사리사욕을 챙기는 데 급급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박근혜 정부는 이런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할 것이다. 새 정부 출범에 공을 세웠다고 자부하는 실세들일수록 지난 정권 실력자들의 말로를 반면교사로 삼아 스스로 경계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권력은 잘못 쓰면 폭력이 됨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한다. 무엇보다 박 당선인이 주변을 철저히 단속해야 한다. 직언파보다는 충성파를 중용한다는 비판 아닌 비판의 소리도 더 이상 들어선 안 될 것이다.
  • 한반도 정세 급랭… 종교계 “남북 교류 사업 어떡해”

    한반도 정세 급랭… 종교계 “남북 교류 사업 어떡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속만 타는 종교계.’ 새 정부 출범과 맞물려 대북 교류 재개에 한껏 기대를 품었던 종교계가 속앓이를 하고 있다. 지난 23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와 그에 대한 북측의 한반도 비핵화 포기며 6자회담 및 9·19공동성명 사멸 운운 등의 강경 대응에 따른 것이다. 종교계는 종단별 혹은 연합 차원의 대북교류 재개를 위해 북측 종교계와 접촉을 계속해 온 상황에서 돌발 변수를 맞아 새 정부 반응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종교계는 이명박 정부 들어 경색된 남북관계 탓에 사실상 북측 종교계와의 실질적인 교류를 중단한 상태다. 그러면서도 개별 종단 차원에서 북측 종교 관계자들과의 직접적인 접촉과 우회적인 협의를 통해 교류 재개를 추진해 왔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구축’과 관련한 장밋빛 공약에 따라 최근 들어 대북 교류에 한층 박차를 가해 왔던 게 사실이다. 그런 상황에서 종교계가 올해 추진 중인 크고 작은 교류 사업이 적지 않다. 종교인평화회의(KCRP)의 3·1민족대회 10주년 남북 공동 행사, 개신교계의 세계교회협의회(WCC) 제10차 부산 총회(10월) 중 평화열차 운행, 불교계의 평양 불교회관 건립, 원불교의 평양 국수공장 가동, 천도교의 개성 남북 교도 공동 시일식 개최 등등. 이 가운데 불교, 개신교, 천주교 등 7대 종단 모임인 KCRP의 3·1민족대회 10주년 남북 공동 행사는 코앞에 닥친 종교계의 현안이다. 2003년 서울 광진구 워커힐호텔에서 KCRP와 북측 조선종교인협의회가 공동 주관하고 북측 대표 105명이 참석해 열린 3·1민족대회는 참석자 중 절반가량이 종교인이었던 만큼 사실상 남북 종교 교류의 첫 장을 연 행사로 평가된다. KCRP는 이 행사 10주년 행사를 남북이 공동으로 서울에서 치른다는 계획을 세워 북측 종교인들과의 1차 협의를 거친 뒤 정부 관계 부서와 행사 개최를 협의해 왔으나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 사태 이후 전망이 불투명해졌다. WCC 부산 총회 때 운행 예정인 평화열차도 종교계, 특히 개신교계의 각별한 관심을 모으고 있는 행사다. 부산 총회에 참가하는 세계 기독교 대표들이 평화열차를 타고 독일을 출발해 러시아 모스크바, 중국, 평양을 거쳐 부산에 도착한다는 야심 찬 프로젝트다. WCC 총회와 관련한 정부 예산이 책정된 데다 유럽, 러시아 교회들이 비상한 관심을 갖고 중국과 북한 측에 열차 통과 성사를 독려하고 있어 평화열차를 주관하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측이 한껏 고무된 상태지만 이 프로젝트도 남북관계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불교계 역시 지난해 북측 조선불교도연맹(조불련)과 실무회담을 해 중장기 공동 사업 추진에 합의한 상태다.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으로 중단된 내금강 불교 유적 공동 조사 재개와 북한 불교 문화재 공동 전수조사, 남북 사찰 간 결연을 통한 교류와 평양 지역 불교 유적 발굴·복원 후의 평양불교회관 건립은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할 사업으로 정했다. 그러나 남북관계 변화에 따라 막히고 풀렸던 과거 교류를 볼 때 이번 중장기 사업 추진도 장담할 수 없는 상태라고 조계종 관계자는 귀띔했다. 원불교는 10년 전 평양에 설립한 빵 공장을 5년 전 국수공장으로 전환했으나 남북관계가 경색돼 운영을 중단한 상태다. 지난 연말 북측 관계자들과 공장 재가동을 협의했으며 이와는 별도로 옛 개성 교당 복원을 추진 중이다. 이 밖에 천도교는 올해 하반기 중 개성에서 남북 교도들이 천도교 종교 행사를 함께 여는 것에 대해 북측 천도교 관계자들과 협의 중이며 개신교는 평양 장충성당과 봉수교회 건립 25주년을 맞는 올해 기념 행사를 성대하게 치를 계획이다. 종교계는 일단 새 정부의 대북관계 변화에 기대를 모으고 있는 눈치다. 특히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에 북측이 성명을 통해 밝힌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기 위한 대화는 있다”고 한 대목에 주목하고 있다. 변진흥 KCRP 회장은 “남북 종교 교류는 정치적 상황에 관계없이 민간 교류 차원에서 지속돼야 할 사안”이라며 특히 “새 정부의 대북관계 지표가 될 남북 종교 교류가 먼저 물꼬를 틀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오바마 집권 2기 개막] 경제통·전쟁 반대론자 전면 배치… 백인 남성 약진

    버락 오바마 행정부 2기 주요 각료들의 면면은 오바마 대통령이 후반 임기에 무엇을 추구할지를 분명히 암시한다. 전쟁을 피하고 재정적자를 줄여 경제를 회생시키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국무장관 내정자인 존 케리 상원 외교위원장과 국방장관 내정자인 척 헤이글 전 상원의원은 대표적인 전쟁 반대론자이자 국방비 삭감론자다. 중앙정보국(CIA) 신임 국장에 존 브레넌 백악관 대(對)테러·국토안전 보좌관을 발탁한 것은 안보정책의 기조를 전면전이 아닌 테러세력 정밀타격에 맞출 것임을 시사한다. 재무장관 내정자인 제이컵 루 백악관 비서실장은 흑자예산을 이룬 빌 클린턴 정부 때 예산관리국(OMB) 국장을 지냈던 ‘예산통’이다. 이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대통령의 측근들이라는 점이다. 일사불란하게 대통령의 치적 만들기에 ‘충성’할 인물들로 채운 셈이다. 차기 백악관 비서실장에 최측근 데니스 맥도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톰 도닐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제임스 클래퍼 국가안보국(DNI) 국장의 유임 관측이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1기 내각에 비해서 ‘백인 남성’의 약진도 두드러진다. 최초의 흑인 환경보호청(EPA) 수장인 리사 잭슨 청장과 히스패닉계인 힐다 솔리스 노동장관 등 여성 장관들이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에 이어 사퇴 의사를 표명했고, 히스패닉계인 케네스 살라자르 내무장관도 교체가 확정됐다. 다만 여성인 재닛 나폴리타노 국토안보장관과 흑인인 에릭 홀더 법무장관, 일본계인 에릭 신세키 보훈장관 등은 유임될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길섶에서] 상(賞)/최광숙 논설위원

    연초부터 생각지도 못한 큰 상을 받아 기분이 좋다. 방학을 맞아 집에 놀러온 초등학교 1학년 조카 녀석이 어느 날 느닷없이 A4 용지에 쓴 상장을 내밀었다. ‘이모 최우수상장’이다. 내용인즉 ‘이모는 너무 맛있는 것을 많이 사줘 이 상을 줍니다’라고 쓰여 있다. 조카로부터 받은 이 작은 격려는 요즘 삶의 활력소로 이어지고 있는 듯하다. 나만 상을 받은 게 아니다. 평소 조카들을 데리고 영화관을 들락거린 남편은 영화를 많이 보여준 공로로 상을 받았다. 최우수상보다 한 단계 위인 ‘이모부 대상’을 거머쥐었다. 상장에 하트까지 그려져 있는 유일한 상이어서 남편은 더욱 신났다. 자기 엄마한테는 맛있는 요리를 해줬다며 ‘엄마 최우수상’을 수여했다. 글씨가 삐뚤빼뚤 그림처럼 그려져 있지만 수상 선정 이유는 나름대로 정확한 자신의 판단이 담겨 있는 것 같다. 조카의 상장 남발로 집안에 한바탕 웃음꽃이 피었다. 종이 한 장으로 가족들을 우쭐하게 만든 조카의 놀라운 능력. 이제 수상자들은 저마다 녀석한테 각자의 장기로 더욱더 ‘충성’을 다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오바마 새 비서실장 ‘최측근’ 맥도너 유력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차기 비서실장으로 40대 초반의 ‘젊은 피’ 데니스 맥도너(43) 백악관 안보 담당 부보좌관이 유력하다고 미 언론이 일제히 보도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12일(현지시간) 백악관 인사에 정통한 두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오바마 대통령이 고위 참모들에게 재무장관으로 지명된 잭 루 비서실장의 후임으로 맥도너가 선두 후보라고 보도했다. 의회전문지 더힐도 오바마 대통령이 차기 비서실장 임명에서 맥도너 쪽으로 기울고 있다고 전했다. 맥도너가 오바마의 다섯 번째 비서실장이 되면 루 재무장관 내정자와 중앙정보국(CIA) 국장에 내정된 존 브레넌 백악관 대테러·국토안보 보좌관에 이어 또 한 번의 ‘백악관 측근’ 발탁이 된다. 빌 버턴 전 백악관 부대변인은 “맥도너는 대통령이 가장 신뢰하고 의지하는 사람 중 한 명”이라며 “그는 매우 유능하고 똑똑하며, 충성심의 대가가 없는 곳에서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충직하다”고 평했다. 맥도너는 1992년 세인트존스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1996년 조지타운대학에서 석사학위(외교학)를 받았다. 하원 국제관계위원회(중남미 분야)와 톰 대슐(민주) 전 상원의원의 보좌관 등을 지낸 데 이어 2007년 당시 상원의원이었던 오바마의 수석 외교정책 보좌관으로 인연을 맺었다. 그는 2008년 오바마 대선 캠프에서 외교정책을 담당하다 2009년 백악관에 들어가 국가안보위원회(NSC) 비서실장 등을 지냈으며, 2010년 10월부터 국가안보 부보좌관으로 재직해 왔다. 키 192㎝의 맥도너는 농구광인 오바마와 종종 농구도 함께하는 사이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마키아벨리의 ‘권모술수’를 배워라 그리고 가진 자들에게 맞대응 하라

    마키아벨리의 ‘권모술수’를 배워라 그리고 가진 자들에게 맞대응 하라

    속칭 진보의 멘붕이 거세다. ‘나치 치하’ 운운이 나오더니, 곧이어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삼은 빅토르 위고 원작의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이 인기를 끌고, 근대 영국인들의 밑바닥 삶을 가장 잘 묘사해 냈다는 찰스 디킨스 소설을 한국적으로 변주한 단편소설집 ‘헬로 미스터 디킨스’가 출간됐다. 그게 얼마나 실체와 가까운지의 문제는 일단 밀쳐두고, 많은 이들의 속이 헛헛하단 얘기다. 그러면 이 책은 어떨까. ‘군주론’으로 유명한 니콜로 마키아벨리(1469~1527)의 일생을 다룬 ‘마키아벨리’(김상근 지음, 21세기북스 펴냄). 이 책은 아예 표지에다 마키아벨리의 한마디를 써놨다. “울지 마라. 인생은 울보를 기억하지 않는다.” 억울하고 분하고 못참겠다고 우르르 몰려다니며 술 마시며 이민가자고 푸념을 해댄다고 뭐가 달라지느냐는 얘기다. 연세대 신과대학 교수인 저자가 마키아벨리를 읽는 관점을 한마디로 압축하자면 이것이다. ‘권모술수는 약자의 미덕이다.’ 마키아벨리에게서 배워야 할 점은 가진 자들이 쓰는 권모술수가 무엇인지 꿰뚫어보고 그에 정확히 대응해 이겨내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권모술수를 가까이해서는 안 되는, 비도덕적이고 더러운 그 무엇이라고 깎아내리면서, 울며 어깨를 겯고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라고 노래해 봐야 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니체가 말하는 ‘노예의 도덕’이 얼핏 머리에 스친다. 그 노예의 도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권모술수가 가진 자의 악덕이 아니라 약자의 미덕임을 깨달아야 한다는 얘기다. 저자가 마키아벨리를 두고 “힘과 권력을 가진 강자에게 권모술수를 가르친 음흉한 참모”가 아니라 “약자들의 수호성자”라고 평가하는 이유다. ‘군주론’에 드러난 마키아벨리식 사고방식이 당대에도 놀라운 것이긴 했다. 사후 40여년쯤 지난 1569년에 발행된 영어사전에 이미 ‘Machiavellian’이란 형용사가 등장하는데, 그 뜻은 ‘통치술에 있어서 권모술수를 부리는’이다. 그런데 이는 양 날의 칼이다. 교활한 수법을 공개해 버림으로써 대응할 수 있는 방법도 생긴다. 가령 셰익스피어와 동시대 사람인 영국 작가 크리스토퍼 말로의 희곡 ‘몰타의 유대인’에는 마키아벨리가 등장하는데 그의 대사는 이렇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 앞에서 내 책에 대한 비난을 퍼붓지. 그러나 혼자 있을 때는 몰래 내 책을 읽는다네. 내 책을 몰래 읽은 자는 교황의 자리까지 차지하고, 내 책을 던져버린 자는 경쟁자들이 몰래 탄 독약을 성배처럼 들게 되지.” 어떻게 이런 해석을 하게 됐던가. 저자는 마키아벨리의 관심이 오직 조국 피렌체의 부국강병뿐이었다고 본다. 다른 건 부차적인 문제다. 왜. 저자는 마키아벨리 일생에 가장 충격적인 사건으로 세 가지를 든다. 1479년 나폴리 왕국군의 침공, 1494년 프랑스 샤를 8세의 침공, 로마를 쑥대밭으로 만든 1527년 스페인군의 진군. 그의 조국 피렌체는 주변 강국들에 늘 시달렸다. 고통받는 피렌체 시민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마키아벨리를 권모술수의 화신, 현대 정치공학의 선두주자로 간주하는 연구자들이 당혹스러워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군주론’과 그 뒤에 나온 ‘로마사 논고’ 간의 불일치다. ‘군주론’에서 군주의 냉혹한 통치술을 설명하던 마키아벨리가 ‘로마사 논고’에서는 돌연 군주제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공화정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가 보기엔 별로 이상하지 않다. 피렌체가 부국강병의 길로만 나간다면, 군주제든 공화정이든 별 의미가 없어서다. ‘군주론’은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를 다시 장악했을 때 쓴 글이다. 힘내라고 ‘군주론’을 썼건만 별 효과가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피렌체의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걸기로 했다. 너희들이 나서서 뭔가를 바꿔보라고 주문한 것이, 그래서 자기로서도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간다”고 밝히면서 쓴 책이 바로 ‘로마사 논고’다. 남들이 보기엔 여기에 붙었다 저기에 붙었다 이상한 행동이었을지 몰라도, 마키아벨리에게는 오직 피렌체의 부국강병 한 길이었다는 해석이다. “조국에 대한 나의 충성심과 공직자로서의 정직함은 내가 가진 가난으로 충분히 증명되고도 남는다”는 게 마키아벨리의 자부심이다. 저자는 ‘군주론’이 냉혹한 체사레 보르자를 열심히 띄웠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고 본다. 저자는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마키아벨리즘은 사실은 ‘체사레주의’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까지 해뒀다. 왜 그랬을까.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를 다시 장악하기 위해 내세운 인물이 체사레 보르자였다. 거기다 체사레 보르자는 교황 알렉산데르 6세의 아들이었다. 당시 메디치 가문은 교황 레오 10세를 처음 배출해 냈다. 체사레 보르자는 비록 실패했지만, 같은 교황의 일족인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의 부국강병을 단호하게 추진해 달라고 기원한 것이다. 물론 자기를 참모로 써서. 마지막으로 마키아벨리 하면 시오노 나나미의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과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로마인 이야기’에 대한 로마사 전공자들의 반응처럼, 르네상스 연구자인 저자의 평가도 냉혹하다. 시오노 나나미의 책을 두고 “기초적인 사료 분석의 미숙함”, “역사가 아니라 일종의 수필”이라고 평하더니 마침내 “기존 사료를 모아다가 대충 얼버무리고 개인적 감상과 소회를 뒤섞는 것은 그녀가 자주 사용하는 표현처럼 ‘글 쓰는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라고까지 해뒀다. 시오노 나나미의 책을 봤다면 비교해 보는 것도 좋겠다. 1만 8000원.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권혁 변호사의 행정법 판례 강의](10) 다른 구제수단 있어도 별도 ‘무효확인訴’ 가능

    이번에는 무효확인소송의 ‘확인의 이익(보충성)’에 관한 대법원 2007두6342 전원합의체 판결을 소개하고자 한다. ☞<정책·고시·취업>최신 뉴스 보러가기 행정소송법 제35조에서는 무효 등 확인소송은 처분 등의 효력 유무 또는 존재 여부의 ‘확인을 구할 법률상 이익이 있는 자’가 제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무효 등 확인소송과 취소소송의 원고 적격에 관한 ‘법률상 이익’은 같은 것으로 보는 것이 통설과 판례의 태도이다. 나아가 소의 이익(협의의 소의 이익)에 관한 이론도 취소소송과 같이 그대로 적용되어, 무효인 환지처분(換地處分·토지 소유권 및 기타 권리 보유자에게 해당 토지에 상응하는 토지나 금전을 줘 청산하는 행정처분)이 있은 후 적법한 환지처분이 이루어지면 당초 환지처분은 무효확인을 구한 소의 이익이 없다고 보고 있다(대법원 2000두2495판결). 그런데, 위와 같은 법률상 이익 이외에 확인의 이익이 별도로 요구되는지에 관하여 견해가 나뉘었다. 종전 판례에서는 확인의 소가 원고의 법적 지위 불안 또는 위험을 제거하기 위하여 가장 유효적절한 수단일 경우에만 허용되고, 보다 더 발본색원적인 수단이 있는 경우에는 소의 이익이 부정된다고 보았다(대법원 2002두3699판결). 종전 판례에 대해 다수의 견해는 ①행정소송법은 취소소송의 기속력을 무효확인소송에도 준용하고 있는 점 ②민사소송과 행정소송의 성격상 차이점 ③행정소송법에서 무효확인소송을 항고소송의 일종으로 규정하고 있는 점 ④하자가 무효인지 취소인지는 구분이 용이하지 않은 점 ⑤비교법적으로 독일과 프랑스의 행정소송 역시 무효확인소송에 보충성을 요구하고 있지 않는 점 등을 이유로 이를 비판하고 있었다. 이번 판결에서는 행정소송에서 ‘무효확인을 구할 법률상 이익’이 있는지를 판단할 때 행정처분의 무효를 전제로 한 이행소송 등과 같은 직접적인 구제수단이 있는지를 따져 볼 필요가 없다는 점을 판시하여 종전 대법원의 입장을 변경하고, 다수의 견해를 받아들였다. 사안을 간략히 살펴 보면, 구 하수도법에 따라 사업시행자에게 원인자 부담금이 부과되었고, 원고가 그에 대해 무효확인을 구한 것이다. 종전에는 조세(준조세 포함)에 대해 이를 납부한 경우에는 민사소송으로 부당이득반환청구를 하면 되고, 행정소송으로 무효확인을 구할 이익이 없다고 보았다(대법원 87누533판결 등). 과세처분에 취소사유가 있는 경우 민사법원에서는 선결문제로 이를 판단할 수 없지만, 무효사유인 경우는 판단이 가능하다고 보았으므로 민사법원에서 부당이득반환청구를 하면 된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이번 판결에서는 조세(준조세)를 이미 납부하였다 할지라도 행정소송으로 무효확인을 구할 법률상 이익이 있다고 보면서, 행정소송의 취지와 기능상 민사소송에서 요구하는 확인의 이익(보충성)이 필요하지 않다고 판시하여, 종전 판례의 태도를 변경하였다. 대법원 판결에서 받아들인 논거는 다수의 견해가 주장하던 것으로, 특히 행정소송법에서 무효 확인소송을 항고소송의 일종으로 규정하고 있고, 무효 등 확인소송의 판결에도 기속력이 인정되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 밖에도 민사소송에 의할 경우 행정법원과 달리 과세처분의 위법 여부, 특히 무효나 취소 사유의 구별 등에 관하여 전문적인 판단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도 판결 이유로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 [금융CEO 2013을 말하다] (3)최기의 KB국민카드 사장

    [금융CEO 2013을 말하다] (3)최기의 KB국민카드 사장

    ‘슈퍼스타K4’에서 미션 우승자 로이킴에게 상금을 건네던 온화한 미소는 찾기 힘들었다. 지난 8일 만난 최기의(56) KB국민카드 사장은 경영철학과 올 한 해 업무계획 등에 대한 질문에 웃음기 없이 단호하고 시원시원한 소신을 밝혔다. 준비된 자료는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다. 그만큼 위기의식이 커 보였다. 인터뷰 직전에 가진 올해 첫 임원 연석회의에서 ‘따끔한 질책’을 날리고 왔다는 최 사장은 “물건값 얼마 싸게 해주고, 포인트 몇 점 더 주고 해서 고객을 빼앗고 또 뺏기는 그런 시대는 이제 저물어 간다”고 잘라말했다. “대신 대학생에겐 유학 정보를, 직장인에겐 취업 안내를, 3040에게는 결혼 준비나 해외여행 관련 혜택 등 생애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인별 라이프 사이클에 맞춘 ‘생활 서비스 솔루션’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얘기다. “영업비밀을 처음 공개한다”며 최 사장은 그제서야 소리내 웃었다. “해외의 경우 아멕스카드는 고객 한 명을 지속적으로 관리합니다. 한 카드를 선택하면 병원, 헬스케어 등 노년에 이르기까지 서비스케어를 맡아 해주지요. KB국민카드도 고객에게 필요한 모든 서비스를 평생에 걸쳐 종합적으로, 그리고 싸고 편리하게 제공할 작정입니다.” 성년이 돼 신용카드를 발급받는 시점부터 노년기까지 연령대에 맞는 서비스로 KB국민카드에 대한 충성도를 높여 가겠다는 복안이다. 최 사장은 “단순히 마일리지 더 주고 수수료 깎아주는 차원의 마케팅을 넘어 한번 선택하면 결코 벗어나기 힘든 최고의 생활서비스를 선보이겠다”고 자신했다. 이를 위해 KB국민카드는 자체 ‘빅데이터’를 활용, 고객의 소비패턴 분석에 들어갔다. 이를 토대로 평생 부가서비스를 개발, 이르면 내년에 첫선을 보일 예정이다. 논란이 일고 있는 무이자 할부 혜택 폐지와 관련해서도 할 말이 많은 듯했다. “비싼 냉장고를 산 고객은 싼 식료품을 구매한 고객보다 무이자 할부로 더 많은 금전적 혜택을 받습니다. 결국 ‘있는 사람’이 더 많은 혜택을 누리는 셈이지요.” 현금을 쓰는 사람이나 대학생, 소득이 없는 사람들은 그만큼 부가서비스를 못 받게 되는데도 그 비용은 결과적으로 가맹점 수수료나 물건값에 전가된다는 최 사장은 “고객들의 불편을 줄이는 방안을 찾고 있다”면서도 “이번 기회에 소비자들의 인식도 바뀌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2011년 3월 취임한 그는 가장 보람 있는 일로 “경기 부진 등의 악조건 속에서도 2년 연속 체크카드 시장 1위를 차지한 점을 들었다. 끊임없는 서비스 혁신 등으로 국가고객만족도지수(NCSI) 1위를 달성한 일도 빼놓지 않았다. 최 사장은 “힘든 시기이지만 위기에 더 강해질 수 있다”며 강한 의욕을 내보였다. 글 사진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北, 김정은 생일 앞두고 전국 어린이에 사탕 선물

    북한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생일(1월 8일)을 앞두고 전국의 어린이에게 사탕, 과자 선물을 보내고 김 제1위원장이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 쪽잠을 자고 줴기밥(주먹밥)을 먹으며 인민들과 고생을 함께 했다고 강조하는 등 우상화 작업에 나섰다. 북한 당국은 김일성, 김정일 생일 때마다 어린이들에게 사탕, 과자를 선물해 왔으며 ‘쪽잠’과 ‘줴기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우상화를 위해 자주 사용했던 용어다. 북한 조선중앙방송은 7일 “전국의 소학교 학생들과 유치원, 탁아소 어린이들이 사랑의 선물을 한가득 받아 안았다”면서 “(김 제1위원장은) 어버이의 정으로 좋은 것이 생기면 후대들에게 먼저 안겨주시고 못다 주신 사랑이 있으신 듯 전국의 어린이들에게 당과류들을 보냈다”고 보도했다. 노동신문은 “우리는 그이(김정은)께서 쪽잠과 줴기밥으로 이어 가신 전선길을 미처 다 모르고 최후 승리를 위해 끝없이 넓혀 가시는 웅대한 구상을 다 모른다”며 김 제1위원장이 주민들과 고생을 함께 했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1980년대부터 매년 김일성 주석의 생일(4월 15일)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생일(2월 16일)을 맞아 전국의 만 10세 이하 어린이들에게 사탕과 과자를 선물해 왔다. 북한이 김 제1위원장의 생일을 맞아 ‘인민애’를 강조하며 우상화를 유도하는 것은 장거리 로켓 발사 성공 등에 따른 자신감을 이어 가고 청년이나 어린이 등 차세대 북한 주민들의 충성을 유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8일을 휴일로 지정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으나 특이 동향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비정치인 국정원장 가능성…검찰총장 차기정부서 인선할 듯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새 정부 출범 준비에 본격 착수하면서 국가정보원장, 검찰총장, 국세청장 등 이른바 ‘빅3’ 권력기관 수장 인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들 자리는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되는 데다 일부는 임기제가 맞물려 있어 박 당선인이 복잡한 방정식을 어떻게 풀지 주목된다. 역대 정권에서 빅3 인사의 가장 큰 문제는 지역편중 인사였다. 이명박 정권에서는 대구·경북(TK), 군사정권과 김영삼 정권에서도 TK와 부산·경남(PK) 출신들로 인사가 편중되면서 정치적 중립성 논란이 일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영남 출신의 송광수 검찰총장을 임명하면서 강원 정선 출신의 고영구 국정원장을 임명해 균형을 맞추려고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과 내각에서는 지역 안배를 무척 신경 쓰면서 전남 장흥 출신의 김태정 검찰총장을 기용했고 안기부장에만 서울 출신의 이종찬 당시 인수위원장을 임명했다. 역대 정권 교체기에 빅3 기관장들은 대부분 스스로 사의를 표시하는 형식으로 해당 정권과 임기를 같이하는 게 관행이었다. 2009년 2월 취임해 4년 가까이 재직한 원세훈 국정원장과 2년 이상 자리를 지킨 이현동 국세청장(2010년 8월) 등은 법정 임기도 없으므로 자연스레 교체될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장은 비정치권 인사의 기용 가능성이 관심사다. 역대 정권의 첫 국정원장은 대부분 과도한 정치 개입 우려를 낳았다는 점에서 차기 국정원장에는 우선 박 당선인이 신뢰할 수 있는 외부 인사가 기용될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역대 정권들은 정권에 충성심이 높은 인사를 국세청장으로 임명했다. 이 때문에 정권에 따라 지연과 학연이 판을 쳤다. 현재 검란(檢亂) 사태 이후 공석인 검찰총장에 대한 정식 인선은 박 당선인의 차기 정부에서 할 가능성이 높다. 박 당선인은 검찰총장 인선과 관련해 “검찰청법에 따라 검찰총장 후보추천위원회에서 추천한 인물을 임명하겠다”는 원칙을 강조했다. 김효섭 기자 newworld@seoul.co.kr
  • ‘고문 기술자’ 이근안 마지막 언론 인터뷰

    ‘고문 기술자’ 이근안 마지막 언론 인터뷰

    “그 시절로 돌아가지도 못하지만 돌아간다면 절대 고문 안 합니다. 나로 인해 손가락질받은 가족들과 내 손을 거쳐 간 사람들에게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입니다. 공연한 짓을 했구나 하는 생각뿐이에요. 아무 보람도 없는데….” 평생을 달고 다닌 ‘고문기술자’라는 꼬리표. 거동이 불편한 이근안(75)씨가 6일 서울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지난날을 돌이키며 눈시울을 붉혔다. 서울 종로의 한 식당에서 만난 그는 ‘죄지은 자’로서의 참회와 그동안 말 못한 심경들을 털어놨다. 이씨는 이번이 마지막 언론 인터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는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여생을 은둔하며 기도하고 참회하며 살 것”이라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맨 처음 대공 수사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6·25 당시 인민군들에게 온 가족이 살해당할 뻔했다. 당시 형이 육군 장교여서 가족이 처형자 명단 1순위에 올라 있었다. 다행히 도망쳐 목숨은 부지했지만 당시 기억이 남아 간첩 잡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군사정권 시절 여러 간첩들을 검거하면서 이름을 날리기도 했지만 그 영광은 모래성과 같은 것이었다. 도망자 신세가 된 이후 가난은 말할 것도 없고 무엇보다도 가정이 엉망이 됐다. 봉사활동을 하며 덕망을 쌓던 아내는 동네 청소부로 전락했고 큰아들은 살기가 어려운지 거의 연락이 안 된다. 둘째 아들은 심장마비로 죽은 지 올해로 꼭 10년째다. 막내도 고생만 하다 재작년 교통사고로 죽었고 며느리는 손자들을 데리고 나가 버렸다. 지금은 월 20만원짜리 쪽방에 살고 있다. 난 지난해 6월 쓰러졌다가 간신히 일어났지만 콩팥과 심장에 혹이 다섯 개라 손도 못 대고 죽기만 기다리고 있다. →지난달 30일이 김근태 전 의원의 1주기였다. -아직도 김 전 의원을 처음 만났을 때와 신문 과정 등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가슴이 먹먹했다. 장례식에 가고 싶었지만 교회 지인들이 ‘가 봤자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이라며 다들 말렸다. 그래서 빈소에는 가지 못하고 누나 산소가 있는 김해 은하사 뒷산에 올라 조용히 기도드리고 왔다. 그날 많이 울었다. →“이근안한테 고문당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이 아닌 것들도 많다. 그동안 일일이 바로잡을 길이 없어 속앓이만 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내게 고문당했다고 해야 사람들이 공감하고 민주화 투사로 알아주는 건지…. 대표적으로 이태복 전 복지부 장관은 내가 고문 안 했다. 이 전 장관은 전국민주학생연맹 사건의 주모자로 잡혀 왔는데 당시 난 검거만 했고 신문은 김모 선배가 했다. →진심으로 뉘우치지 않는다는 얘기들도 있는데. -잘못을 깨닫기까지 시간이 걸린 것은 사실이다. 간첩을 소탕하며 공적을 쌓고 국가에서 애국자라고 치켜세우다 한순간에 도망자 신세에 ‘씹다 버린 껌’이 되니 처음에는 분한 마음도 들었다. 나라를 위해서만 일했는데 시대가 바뀌었다고 이런 취급을 받나 싶어 억울하기도 했다. 하지만 성경 공부를 하며 그런 마음들을 내려놓았고 내 죄를 깨닫게 됐다. 내가 고문한 사람들뿐 아니라 그 가족들에게도 죄인이라 생각한다. 일일이 찾아가 사죄할 용기가 없었을 뿐이다. 교인으로서 참회, 회개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했는데 사과라는 의미다. 그런데 일반인들은 몰라주더라. →얼마 전 책을 출간했는데. -인생을 마감하는 청산서로 썼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내가 죄인임을 자복하는 심경으로 있는 실상 그대로를 양심껏 담았다. 돈을 벌려고 한 것도, 용서받기 위해 쓴 것도 아니다. →출간 후 반응은. -인터넷은 보지 않는다. 지인들을 통해 사람들이 ‘반성이 없다’, ‘뻔뻔하다’ 등 좋지 않은 반응을 보인다는 얘길 들었다. 그런 뜻으로 출간한 게 아닌데 뭘 해도 오해를 받으니 답답했다. ‘고문기술자 이근안’. 얼마나 거북스러운 꼬리표인가. 입에 담기도 싫었지만 내 처지와 후세의 평가를 담담히 받아들이는 차원에서 제목도 그렇게 붙였다. →세상에 나오지 않고 은둔하겠다는 까닭은. -진정으로 회개하는 삶을 살다 가고 싶다. 또 나도 사람인지라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가 컸다. 공직에서 손 놓은 지 수십년이 지났고 여러 가지로 죗값을 치르며 달라졌지만 여전히 믿어 주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한때는 내게도 새 삶의 기회를 줘야 하지 않느냐는 울컥한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저 기도원에서 조용히 지난날을 회개하며 살다 가고 싶다. 언론 인터뷰도 이번을 끝으로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말에 가장 상처를 받았나. -고문할 때 마치 돼지 잡듯 아무 느낌도 감정도 없었다고 하는데 나도 사람이다. 그저 그때는 상부의 명령을 목숨처럼 알았다. 고문이 애국이라 말한 것이 아닌데 그 점도 왜곡됐다. 국가에 충성을 바쳤던 수사관으로서의 전반적인 활동들을 애국인 줄 알았다고 말한 것이었는데 앞뒤가 잘려 왜곡이 됐더라. 고문한 것을 애국이라 생각할 리가 있겠나. 시대가 만든 죄인이라 해도 지금은 내 업보가 크다고 느낀다. →앞으로 소망이 있다면. -소망이랄 것도 없다. 죄지은 자가 뭘 더 바라겠나. 다만 그동안 나 때문에 고생한 아내가 하루라도 건강히 살다 가길 바랄 뿐이다. 아내가 74세인데 골병이 들어 오래 못 산다. 얼마 전 사고로 요추가 함몰됐는데 돈이 없어 치료도 못 받고 집에만 누워 있다. 인터뷰를 마치고 그는 눈물을 훔쳤다. 이씨는 1970년 경찰에 입문, 1980년대에 경기 경찰에서 대공·방첩 전문 수사관을 맡았다. 국가안보 기여 등으로 많은 표창과 훈장을 받았으나 야당 인사와 학생 운동가들을 고문해 ‘고문기술자’로 악명을 떨쳤다. 김근태 전 의원을 고문한 사실이 밝혀지며 수배자가 돼 도피하다 1999년 검찰에 자수, 7년형을 살았다.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 “종교가 건강해야 사회와의 소통역할 당당해져”

    “종교가 건강해야 사회와의 소통역할 당당해져”

    “종교계가 사회 소통을 위해 노력한다는 건 당연한 일이지요. 사회 소통을 위해 발벗고 나서는 이들을 종교계가 먼저 존중하고 기려야 하는데 거꾸로 종교계가 상을 받아 송구합니다.” 지난 연말 특임장관실이 제정한 제1회 대한민국 소통대상 특별부문상을 수상한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의 실무총책인 변진흥(63) 사무총장. 3일 이른 아침 서울신문 편집국에서 만난 변 총장은 “종교계가 할 일이 부쩍 많아진 것 같다”며 종교계의 연합활동을 거듭 강조했다. KCRP는 1986년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종교인평화회의(ACRP) 3차 총회를 계기로 불교, 개신교, 천주교, 원불교, 유교, 천도교 등 6대 종단이 창립한 종교 연합단체. 2001년 민족종교협의회가 추가로 가입해 현재는 모두 7대 종단이 국제 세미나와 평화캠프, 예비성직자 프로그램을 통해 종교 간 대화와 이해, 소통의 문화확산에 앞장서고 있다. 특히 지난해엔 유엔이 정한 ‘종교화합주간’을 기념해 광화문광장에서 7대 종단 5000여명의 시민이 참여하는 ‘이웃종교 화합주간’행사에 이어 전국 순회 종교인평화대회를 열어 눈길을 끌었다. 변 총장은 지난 1996∼2008년 제2대 사무총장을 맡은 데 이어 2011년 11월부터 제6대 총장으로 활약 중이다. “예전에 비해 종교계가 해야 할 역할이 훨씬 많아졌다”는 그는 특히 새 대통령 취임에 즈음해 우리 사회의 갈등 해소에 종교계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종교 대화없이 종교 평화가 없고, 종교 평화 없는 세계 평화란 기대할 수 없다는 한스 큉의 말을 굳이 들먹이지 않아도 종교 간 평화는 사회평화에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갈수록 지역·세대 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간의 갈등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종교 자체가 문제를 갖고 있다면 종교의 가치를 잃어버린 꼴이라는 변 총장은 그래서 “종교가 먼저 건강해야 사회와 종교의 소통 역할을 당당하게 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위상이 높아진 모습을 지키고 보여주려면 경제적인 힘뿐만 아니라 도덕적인 힘이 필요한데 그 도덕적인 역할을 종교가 맡는 게 당연하지요.” 한국은 전 세계에서 유례없이 많은 종교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종교 천국’으로 통한다. 그러나 변 총장은 조금 생각이 다르다. “우리 사회에서 종교 간 갈등은 이미 위험 수준에 이르렀다고 봅니다. 종교가 사회 갈등을 치유하는 역할은커녕, 오히려 사회적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것처럼 비쳐질 때 쥐구멍을 찾고 싶은 심정이지요.” 그래서 새해엔 ‘종교화합 지원법’ 제정에 공을 들이기로 했단다. 그 법은 특정 종교 입장에서 문제를 제기하기보다는 공동번영을 위한 상생의 노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종교화합 지원법 제정은 정부 관심 여부에 달려 있는 만큼 정부와 종교계의 상시적인 소통을 법제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올해는 남북 종교계의 교류 재개도 큰 관심거리이다. 북한의 장충성당과 봉수교회가 건립 25주년을 맞는 데다 조선천주교인협회 창립 25주년인 만큼 기독교계가 이런저런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특히 한국 종교계는 지난 2003년 KCRP와 북 측 조선종교인협의회 공동주관으로 서울에서 열렸던 ‘3·1 민족대회’ 10주년 행사에 큰 기대를 걸고있다. 당시 서울에 온 북 측 대표 105명 중 절반이 종교계 인사들이었고 이들은 명동성당과 소망교회, 봉은사, 천도교 수운회관을 찾아 공동 종교행사를 가져 사실상 남북 종교 교류의 시초로 여겨진다. 지난해 12월 개성에서 북 측 종교인들과 실무접촉을 가질 예정이었지만 정부가 ‘미묘한 시점’이란 이유로 난색을 표명해 무산됐다. “공교롭게도 3·1민족대회가 열린 시점과 지금은 정권 이양기라는 공통점을 가져요. 그래서 더욱 기대가 큽니다.” 글 사진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사설] 친박, 당선인에게 대탕평의 길 터줘라

    5년 전 17대 대선이 끝나고 벌어진 신 권력실세들의 군무(群舞)를 우리는 기억한다. 대통령 당선인의 최측근이라는 인사들은 핵심 권력을 쥐기 위해 치열한 내부 암투를 벌였다. 그들 주변엔 새 정부에서 한 자리 차지해 보려는 자들로 차고 넘쳤다. 10년 전 16대 대선 직후엔 어떠했던가. ‘친노’(친노무현) 세력은 그야말로 점령군을 연상하게 했다. 민주계를 비롯해 집권당 내에서조차 ‘친노’가 아니면 설 자리가 없었다. ‘비노’ ‘반노’ 세력은 철저히 외면당했다. 그리고 이런 권력 암투와 배척은 집권 기간 내내 인사 잡음과 국정 난맥으로 이어졌고, 그 피해는 결국 국민은 물론 그들 자신에게 되돌아갔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곁엔 충성도나 결집력에 있어서 과거 ‘친노’나 ‘친이’ 세력을 능가할 만한 ‘친박’ 세력이 있다. 5년 전 18대 총선을 앞두고 벌어진 한나라당 공천 파동으로 상당수가 풍찬노숙을 방불케 하는 정치적 시련을 겪었으나, 이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박 당선인을 중심으로 똘똘 뭉쳤고 끝내 오늘의 그를 만들어냈다. 지난 시절 특정 계파가 수장의 금력과 공천권에 의해 좌우됐던 것과 달리 이들은 박 당선인의 정치 철학과 국정 이념을 충성의 디딤돌로 삼았다는 점에서 과거 계파와는 분명 차원을 달리한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이들의 시험무대는 지금부터다. 박 당선인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구성과 차기 정부 인선 작업을 벌이게 될 향후 두 달간 친박 인사들의 거취와 행동거지가 어떠한가에 차기 정부의 성패가 갈린다. 박 당선인은 그제 대국민 인사를 통해 “지역과 세대를 아우르는 대탕평 인사를 펴나가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마땅한 일이다. 박 당선인은 더 이상 특정 계파의 수장이 아니라 5000만 대한민국의 리더다. 나라의 인재를 모아 쓰는 데 네 편과 내 편, 지역과 세대가 따로 있을 수 없다. 김무성 전 총괄선거대책본부장에 이어 이학재 후보 비서실장이 차기 정부에서 어떤 임명직도 맡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친박은 아니지만 “역할이 끝났다.”며 짐을 싼 김성주 공동선대위원장과 안대희 정치쇄신특위위원장도 있다. 이 대열이 늘어나기 바란다. 박 당선인이 마음 놓고 대탕평의 장정에 나설 수 있도록 활짝 길을 터줘야 한다. 실세들의 암투는 물론 ‘실세’라는 말 자체가 이젠 사라져야 한다.
  • 비운의 ‘흉탄 고아’… 22세에 퍼스트레이디 역할

    비운의 ‘흉탄 고아’… 22세에 퍼스트레이디 역할

    박근혜 당선자의 당선은 우리나라 최초의 부녀(父女) 대통령 탄생이라는 기록도 만들었다. 청와대에서 영애(令愛)로 유년기를 보낸 퍼스트레이디 대리는 34년 만에 다시 청와대에 들어가게 됐다. 박 당선자의 삶과 정치 여정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를 빼놓을 수 없다. 박 당선자도 자신의 인생에 가장 영향을 끼친 사람으로 부모님을 꼽는다. 그는 1990년 일기에서 “비범하셨던 부모님을 모셨던 것부터가 험난한 내 인생 길을 예고해 주었던 것”이라고 기록했다. 20대에 부모님을 모두 흉탄에 잃은 비운의 삶을 표현한 것이다. ●전차 타고 등교한 대통령의 딸 박 당선자는 1952년 2월 2일 대구시 삼덕동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맏딸로 태어났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대구 주재 육군본부 작전·교육국 작전차장이었고 육 여사는 중등학교 교사 출신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경북 선산군 구미면 상모리(현 구미시 상모동)에서 소작농 박성빈과 부인 백남의의 5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구미보통학교, 대구 사범학교(현 경북대 사범대학)를 거쳐 만주군관학교 예과와 일본육군사관학교 본과를 졸업하고 만주군 소위로 임관하여 중위 때 해방을 맞아 귀국, 국방경비사관학교(현 육군사관학교) 제2기로 임관해 재직 중이었다. 육 여사는 충북 옥천군의 대지주인 육종관과 부인 이경령의 차녀로 태어나 배화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옥천공립여자전수학교(현 옥천여중)에서 가정과 교사로 1년 반 동안 일했다. 박 당선자의 외조부인 육종관은 육 여사가 과거 혼인 경력이 있고 가난한 군인에 불과한 박 전 대통령과 결혼하는 것을 반대했으나 육 여사는 어머니 이경령, 동생 육예수와 함께 대구로 가서 결혼식을 강행했다. 박 당선자는 자서전에서 박 전 대통령에 대해 “딱딱한 군인 이미지와 달리 가족에게 더할 수 없이 다정한 분”, “젊은 시절 아버지는 로맨티스트”라고 회상했다. 육 여사에 대해서는 “고등학생이 될 무렵부터 내 안에 가장 이상적인 여성의 모습으로 어머니가 자리 잡았다.”고 할 만큼 신뢰와 애정을 가졌다. 특히 육 여사에 대해서는 단아한 외모와 검소하고 겸손한 성품을 떠올린다. 육 여사는 박 당선자의 어린시절 의장 또는 대통령의 자녀라고 해서 특권의식을 갖지 않도록 평범한 생활을 강조했다고 한다. 박 당선자는 자서전에서 “대통령의 자식이기 때문에 혜택을 누린 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 내게 청와대 생활이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청와대 생활에서 하지 말아야 할 금기사항이 빼곡한 날이었다.”고 적었다. 박 당선자는 서울 장충초등학교에 입학해 1964년 졸업했다.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초등학교 동창이다. 이어 성심여자중학교와 성심여자고등학교를 거쳐 1974년 서강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수석 졸업했다. 학점은 4.0 만점에 3.82였다. 육 여사는 박 당선자가 사학을 전공하길 바랐으나 박 당선자는 산업 역군이 되겠다는 포부를 갖고 전자공학을 택했다. 졸업 직후에는 프랑스 그르노블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유학을 마친 뒤 강단에 서는 것이 꿈이었지만 순식간에 운명이 바뀌었다. ●육 여사 장례 6일 만에 퍼스트레이디역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에 참석한 육 여사가 조총련계 재일교포 문세광에 의해 저격당해 서거했다. 프랑스에서 유학 중이던 박 당선자는 급히 서울로 돌아왔다. 영문도 모른 채 귀국길에 올랐다가 가판대에 놓여진 신문 1면에 육 여사의 사진과 ‘암살’이라는 글자를 보고 “온 몸에 수만 볼트의 전기가 흐르는 것처럼 쇼크를 받았다. 날카로운 칼이 심장 깊숙이 꽂힌 듯한 통증이 몰려 왔다.”고 회상했다. 박 당선자는 육 여사의 장례식을 치른 지 엿새 만에 영부인배 쟁탈 어머니 배구대회에 참석하면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맡았다. 청와대에 들어온 민원을 점검하고 영세 기업, 소외 계층을 찾아다니며 봉사활동을 했다. 박 전 대통령의 국토시찰이나 산업현장을 수행했고 아침마다 신문을 읽어 주며 주요 현안에 대한 입장을 주고받기도 했다. 1974년부터 걸스카우트 명예총재를 맡고 새마을운동의 일환인 새마음운동을 전개하며 퍼스트레이디로서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박 당선자는 “퍼스트레이디로서의 삶은 누에고치에서 깨어나 나비가 되어 가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외국 귀빈들을 접대하며 외교적 식견도 넓어졌다. 1979년 지미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 내외가 방한했을 당시 주한 미군 철수 문제로 팽팽하게 맞섰으나 박 당선자가 로절린 여사와 대화를 나누며 상황을 원활하게 풀어가 ‘근혜·카터 회담’이라는 별칭도 얻었다. 육 여사를 잃은 박 전 대통령은 맏딸인 박 당선자에게 많은 의지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어느 날 아침 식사를 마친 박 전 대통령이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며 “근혜가 없으면 못 살 것 같아. 네 어머니가 그렇게 일찍 돌아가려고 너를 두었는가 봐.”라고 말하기도 했다. 박 당선자는 1974년 11월 일기에서 “지금 나의 가장 큰 의무는 아버지로 하여금, 그리고 국민으로 하여금 아버지는 외롭지 않으시다는 것을 보여드리는 것”이라고 적었다. 그러나 1979년 10월 26일 박 전 대통령마저 갑작스럽게 서거하면서 또다시 비극을 맞았다. 27일 새벽 박 전 대통령의 소식을 접한 박 당선자는 가장 먼저 “전방에는 이상이 없습니까?”라고 물었지만 ‘그날 밤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다’고 기록할 만큼 충격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의 피 묻은 넥타이와 와이셔츠를 직접 빨면서 평생 흘릴 눈물을 다 흘렸다고 한다. ●평범한 일상을 꿈꾸며 박 당선자는 장례를 치른 뒤 청와대를 떠나 신당동 자택으로 돌아갔다. 공개되지 않은 생활을 하면서 여행을 다니기도 하고 1980년대 후반에는 박 전 대통령 기념사업에 매진했다. 박 당선자는 이 기간을 “외롭고 긴 항해”라고 표현했다. 박 당선자는 육 여사가 청와대 시절 자신들에게 겸손을 강조한 이유도 신당동에 돌아와서야 절실하게 느꼈다고 회고했다. “권력의 중심부인 청와대라는 공간에서 자식들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는 것이다. 당시 박 당선자가 적은 일기들에는 특히 사람들의 배신에 대한 언급이 많다. 청와대에 있을 때에는 가깝게 지냈던 사람들이 한순간에 돌아서는 모습을 보며 느낀 감정들이다. 신뢰를 가장 중시하고 배신에 대해서는 체질적인 반감을 갖게 된 것도 그 당시의 상황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신뢰할 수 없다는 사실이 모든 것을 슬프고 우울하게 만든다. 아예 처음부터 마음을 달리 먹고 배신을 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처음에는 진정으로 충성을 맹세했지만 어차피 약한 인간이기에 차츰 권세와 명예와 돈을 따라 마음을 바꾸는 사람도 있다.”(1981년 8월), “계속해서 인간에 대해 실망을 하게 되는 일들이 생긴다. 충성을 얘기하고 뭐가 어떻고 말이 많았던 그도 결국 마음에 있는 것은 자리 하나였다.”(1989년 1월 17일) 등 박 당선자가 주변 사람들에 대한 실망을 느끼게 된 기간도 오래 지속됐다. 박 당선자는 1980년대 후반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역사를 바로잡는 등 기념사업회 활동에 주력했다. 특히 1989년 박 전 대통령의 10주기를 맞아 적극적으로 언론 인터뷰를 하고 추도식을 준비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냈다. 청와대를 떠난 18년의 세월이 은둔, 칩거로 표현되는 것에 대해 박 당선자는 “쓴웃음이 나온다.”면서 “그때도 나는 대한민국의 하늘 아래 살고 있었고,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국민의 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박 당선자는 ‘평범함’을 갈구했다. ‘평범한 가정에 태어났더라면’이라는 제목으로 1980~1990년 사이 일기를 묶어서 책으로 냈다. 박 당선자는 “인간이 추구하는 행복이란 결국 평범함 속에 있다고 느껴진다.”면서 “마음의 평화,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배로 여기는 것이며 가장 누리고 싶은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IMF) 금융위기를 계기로 박 당선자는 1997년 정치에 입문한다. 퍼스트레이디 시절, 뿌리 깊은 가난을 극복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라고 강조한 박 전 대통령을 따라 경제 안정에 주력했고 가까스로 일으켰는데 무너져 내렸다는 허탈함과 위기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국회의원으로 정치를 시작해 야당 대표를 지내면서 대통령이 되기까지 박 당선자의 정치 여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李 지지 1%… “부동층으로 남을 것” vs “朴 반감 커 文 지지”

    李 지지 1%… “부동층으로 남을 것” vs “朴 반감 커 文 지지”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가 16일 정권교체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실현하겠다며 후보직에서 전격 사퇴하면서 대선 판세가 좀 더 박빙으로 흐를 가능성이 커졌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바짝 추격하고 있어 1~2% 포인트 차로 승부가 날 가능성이 커졌다.”며 “이런 상황에서 이 후보의 사퇴는 아주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이 후보의 지지율은 1% 안팎이지만 박·문 두 후보가 초접전 양상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는 1% 포인트가 당락을 좌우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관심은 이 후보 지지율 1%가 고스란히 문 후보 쪽으로 향할지에 쏠리고 있다. 불과 8개월 전만 해도 민주당은 4·11 총선 승리를 위해 통합진보당과 손을 잡았지만 분당 사태 이후 양당 간 공조는 깨진 지 오래다. 민주당은 통합진보당에 각인된 ‘종북 이미지’가 문 후보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을 우려해 통합진보당과의 연대에 소극적인 모습으로 일관해 왔다. 문 후보도 지난달 5일 한국기독교총연합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국기나 애국가를 부정하는 정신에 대해서는 전혀 찬동하지 않는다. 그런 정치 세력과 정치적 연대 같은 것을 할 생각이 없다.”며 이 후보를 야권 연대의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었다. 일부에서는 민주당의 이런 태도에 실망한 이 후보 지지자들이 부동층으로 남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현재 통합진보당을 구성하고 있는 세력은 분당 과정에서 친노(친노무현) 세력인 유시민이 이끄는 옛 참여당계와 극심한 갈등을 겪었다. 따라서 친노의 지원을 받고 있는 문 후보를 전폭적으로 지지하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문 후보 측 관계자도 “1%가 온전히 문 후보를 선택할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움직인다면 0.6% 정도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여론조사기관 엠브레인의 이병일 이사는 “박 후보에 대한 통합진보당 지지자들의 반감이 워낙 커 민주당에 대한 서운함이 있더라도 이탈표 없이 문 후보를 지지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 후보가 사퇴했다고 박 후보 지지나 부동층으로 가기에는 지지자들의 성향이 매우 뚜렷하다는 것이다. 이 후보는 대선 후보 초청 TV토론에서 두 차례에 걸쳐 “나는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나왔다.”며 사퇴를 예고했었다. 따라서 ‘충성도’와 ‘결집력’이 강한 이 후보 지지자들이 이런 후보의 뜻을 존중해 문 후보 지원에 나설 것이란 분석이다. 민주당은 이 후보의 사퇴가 문 후보 득표에 일단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기대하면서도 통합진보당과 손을 잡는 것으로 비춰지는 것을 경계하는 모습이다. 캠프 관계자는 “이 후보의 사퇴는 우리 입장에서 계륵과 같다. 긍정적이면서도 부정적”이라고 말했다. 문 후보가 이 후보와 연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 오히려 선거 막판 부동층 흡수에 전력을 쏟겠다는 문 후보의 전략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오히려 이 후보의 ‘종북’ 이미지 때문에 보수층이 결집, ‘역풍’을 몰고 올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현정기자 hjlee@seoul.co.kr
  • 北 유훈통치로 겉으론 안정… 경제개혁 지지부진 앞날은 불안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해 12월 17일 사망한 후 1년이 지났다. 후계자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은 지난 1년간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권위에 의존하는 ‘유훈 통치’ 아래 1년을 보낸 것으로 평가된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지난 1년간 김 제1위원장이 김정일과는 다른 파격적 통치 방식을 보여줬고 김정일 사후 4개월 만에 공식적 권력 승계를 이뤄 군부에 대한 당의 지배를 강화하는 등 외형적 권력 승계와 안정은 이뤘다고 본다. 하지만 이는 개인의 능력보다는 김정일이 생전에 구축해 놓은 시스템에 의한 것으로, 앞으로 김정은의 리더십이 본격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본다. 특히 북한이 강조한 인민 생활의 향상 등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는 점은 여전히 불안 요인이자 난제로 지적된다. 북한은 주민들에게 김일성 주석은 건국의 아버지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선군 정치를 통해 외세의 위협으로부터 국가를 지킨 영웅으로,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은 주민 생활의 향상이라는 비전을 제시한 지도자로 각인시키려 한다. 김 제1위원장은 특히 할아버지인 김일성을 흉내 낸 짧은 헤어스타일과 복장으로 주민들의 향수를 불러일으켰고 스스럼없이 스킨십을 과시했다. 김 주석 100회 생일인 지난 4월 15일 군 열병식에서 육성 연설을 하면서 은둔 통치를 즐기던 아버지 김 위원장과의 차별화를 시도했다. 이러한 차별화와 파격 행보는 북한에서 지난 7월 이례적으로 ‘퍼스트 레이디’ 리설주를 공개하면서 절정에 이르렀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16일 “대중 친화적인 면모, 통치 행위와 관련된 공개성, 투명성을 보여주는 것이 김정일 시대와 다른 가장 큰 변화”라면서 “새 세대 산업혁명을 강조하며 인민 생활 향상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도 특징”이라고 평가했다. 김 제1위원장은 김정일이 급사한 지 13일 만인 지난해 30일 인민군 최고사령관에 추대되면서 군권을 장악했다. 그는 지난 4월 11일 제4차 노동당 대표자회에서 당 제1비서가 됐고 13일 최고인민회의 제12기 5차회의에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 추대됐다. 이는 김정일이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3년이 지난 1997년에 당 총비서가 된 전례에 비춰 발 빠른 승계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1970년대 초 후계자 내정 후 후계 수업 기간이 길었던 김정일과 달리 김 제1위원장은 후계 기간이 짧고 빠르게 권력을 장악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고 교수는 “지난 1년간의 권력 공고화 과정은 개인의 능력보다는 수령적 시스템이 작동한 것”이라면서 “핵과 미사일 능력을 보여줬으니 이를 협상의 수단으로 사용해 어떻게 미국 및 우리의 차기 정부와 대외관계를 풀고 성과를 내는가가 안정적 리더십 구축의 잣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류길재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도 “권력 안정은 측근 중 어느 누구에게도 힘을 실어주지 않고 충성하게 만들어 놓은 김정일이 생전에 용의주도하게 만든 시스템에 의한 것”이라면서 “올해 북한은 김정일 정권의 연장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권력 안정화 과정에서 군부에 대한 통제도 강화됐다. 북한군 총정치국장과 총참모장, 인민무력부장 등 군 수뇌부의 핵심 요직이 새로운 인물로 교체되면서 군에 대한 당의 통제가 대폭 강화된 특징을 보인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과거의 김정일, 김정은의 군대가 ‘김정은의 군대’로 바뀐 셈”이라고 평가했다. 경제 부문에서는 개혁과 개방에 대한 김정일 시대의 부정적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고 여겨졌으나 공안통치가 강화되고 경제 개혁이 지지부진한 사실은 김정은 체제의 민생 안정이 순탄치 않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북한은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조치를 주도한 박봉주를 지난 4월 당 경공업부장에 임명하는 등 실무 경험이 많은 경제 전문가를 중용하고 군부가 운영하던 경제 사업 중 상당수를 내각에 이관하는 등 변화를 꾀했다. 하지만 북한은 중국과 위화도황금평 및 나선특구 개발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채 대중(對中) 경제 의존도가 심해지고 있다. 강동완 동아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외부 정보가 조금씩 유입되고 주민의 지도자에 대한 기대심리가 커지는 현 상황에서 경제적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이는 체제 균열 요인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애플 ‘TV야심’… 종합가전 노리나

    애플 ‘TV야심’… 종합가전 노리나

    애플이 한국 가전업체들의 독무대인 TV 시장 진출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3~4년 내에 애플이 종합 가전 메이커로 발돋움하기 위해 준비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이제 애플과 TV를 비롯한 가전 시장에서도 한판 승부를 벌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애플, 새 TV 디자인 작업 중” 12일(현지시간)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아시아 납품업체 임원들의 발언을 인용해 “애플이 대형 고화질(HD) TV를 위한 디자인 검토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몇 달간 애플이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조립 생산하는 타이완 혼하이정밀, 일본 샤프와 함께 TV 디자인 작업을 진행했다는 게 WSJ의 설명이다. 애플은 보통 내부적으로 시제품을 개발해 시험한 뒤 외부 납품업체들과 협력해 해당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이 때문에 이미 애플 TV가 상당 부분 개발돼 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외부 납품업체들과 협업을 시작했다고 해서 반드시 최종 제품을 내놓는 것은 아니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현재 애플은 다른 제품들과 마찬가지로 TV에 대해서도 신비주의 전략을 고수하며 정보 제공을 거부하고 있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애플은 TV 사업 분야에 큰 관심을 두고 있지만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다.”라고 선을 긋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의 유명 벤처투자가 마크 안데레센은 “애플이 TV를 출시하는 것은 확실하며, 2014년이 유력하지만 내년 출시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국내 한 가전업계 관계자는 “애플이 스마트 기기의 성공을 기반으로 TV 등 가전 분야까지 장악하려 들 것이라는 예상을 업계에선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흔히 정보기술(IT) 업계에서는 디스플레이를 탑재한 ‘3개의 창’(TV, PC, 휴대전화를 의미)을 장악한 업체가 최후의 승자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곤 한다. 이 제품들은 클라우드 서비스를 통해 다른 가전 제품들을 제어할 수 있다. 소비자가 한 번 이들 제품을 구입하면 다른 가전 기기들도 같은 브랜드 제품으로 구입할 가능성이 크다. 삼성 스마트TV를 구입한 소비자가 무선랜으로 연계해 쓸 수 있는 삼성의 냉장고나 로봇 청소기도 사려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 때문에 애플의 TV 출시는 그간 PC와 스마트 기기 분야만 생산하던 애플이 본격적으로 가전 사업에 진출해 ‘삼성·LG의 영역’인 가전 시장을 차지하려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진다. ●삼성 특허 저렴하게 활용 모색도 특히 애플은 그간 프리미엄 전략으로 충성도 높은 고객을 많이 확보해 놓았다. IT 전문매체인 애플인사이더는 시장조사기관인 모건스탠리리서치 등의 조사 자료를 인용, 미국인의 47%가 애플 TV가 출시되면 구매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여기에 현재 애플은 삼성전자와 전 세계 곳곳에서 특허소송도 벌이고 있다. 추후 양사 간 크로스 라이선스(특허 공유 계약)가 체결되면 애플은 더 이상 특허 제약 없이 가전 분야에 진출할 수 있게 된다. 삼성의 고위 임원은 “애플이 세계적인 비난을 감수하며 삼성과 특허전쟁을 치르는 속내는 크로스 라이선스를 통해 삼성이 종합 가전 분야에서 쌓아 온 수많은 특허를 저렴한 가격으로 쓰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측근 비리로 쫓겨난 ‘개혁군주’ 광해의 삶

    측근 비리로 쫓겨난 ‘개혁군주’ 광해의 삶

    KBS 1TV ‘역사 스페셜’은 13일 밤 10시 ‘왕의 꿈, 왕의 조건’ 편에서 조선 제15대 군주 광해군을 조명한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속의 광해군의 모습과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하다. 제작진은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고 싶어했지만, 결국 쫓겨나 묘호조차 얻지 못한 왕”이라고 광해군의 삶을 규정한다. 특히, 광해군의 즉위와 폐위 과정에 깊게 관여한 김개시라는 상궁의 존재에 주목한다. ‘개시’는 끼일 개(介)에 똥시(屎), 풀이하자면 개똥이쯤 된다. 천민 출신에 미색도 아닌 상궁이 어떻게 광해군의 마음을 사로잡고, 15년 동안 권력 핵심으로 남았는지를 파헤친다. 장자도, 적자도 아닌 광해군은 대북파의 도움으로 1608년 왕위에 오른다. 임진왜란의 경험을 통해 전쟁이 백성에게 남긴 상처와 밑바닥 민심을 체험한 광해군은 개혁 드라이브를 강행한다. 대동법을 시행하고, 명과 후금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펼친 것. 그러나 매관매직을 일삼는 김개시 등 측근 비리가 하늘을 찌르면서 왕권이 서서히 흔들렸고, 이에 대한 불안감 탓에 병적으로 궁궐 공사에 집착하면서 민심을 잃는다. 1623년 3월 12일 인조반정이 일어나던 밤, 광해군은 역모 움직임을 고발하는 상소를 받았다. 그러나 김개시가 “성지(成之·인조반정 주역인 김자점의 자: 김개시는 김자점에게 매수된 것으로 알려짐)는 지극히 충성스러운 사람이니… 다른 모의를 하겠습니까.”라고 아뢰니 빙긋 웃으며 역모의 고변을 물리쳤다는 게 ‘연려실기술’의 기록이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NATE 검색어로 본 e세상 톡톡] 궁금해, 대선 후보 TV 토론…무서워, 중부 폭설 폭풍 추위

    [NATE 검색어로 본 e세상 톡톡] 궁금해, 대선 후보 TV 토론…무서워, 중부 폭설 폭풍 추위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심하다 해도 대선 같은 큰 이벤트는 어쩔 수 없나 보다. 대선 관련 소식이 줄줄이 검색어 상위권을 점령했다. 1위는 ‘대선 후보 TV토론’이 올랐다. 지난 4일 처음 열린 TV토론회에서 이정희가 박근혜를 정면으로 비판한 사실이 큰 화제였다. 아주 작정하고 나온 듯 실컷 비판해 줘 속이 다 시원하다는 반응이 나오는 반면 거꾸로 ‘피해자 박근혜’ 이미지가 부각돼 오히려 보수층이 결집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2위는 ‘안철수 캠프 해단식’이다. 문재인에게 야권 단일 후보 자리를 양보한 안철수는 지난 3일 캠프 해단식을 열었다. 10위는 ‘안철수 문재인 회동’이었다. 문재인에게 야권 단일 후보 자리를 양보한 뒤에도 문재인 지지에는 미적지근한 행보를 보이던 안철수가 지난 6일 양자 회동을 갖고 마침내 적극적인 지원을 선언했다. 5위는 ‘이춘상 보좌관 영결식’이었다. 박근혜의 정치활동 전부를 따라다닌 이춘상 보좌관이 강원 유세를 수행하다 교통사고로 숨졌다. 박근혜에 대한 충성심은 물론 남다른 인간적인 면모에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운 뜻을 나타냈다. 박근혜도 유세 일정을 중단하고 영결식에 참석, 깊은 애도의 뜻을 보냈다. 연말 강추위도 화제다. 8위는 ‘중부 폭설’이다. 12월 초임에도 눈이 자주 휘날리는 데다 섭씨 영하 10도를 넘나들 정도로 강추위가 이어지는 날씨에 많은 네티즌들이 촉각을 곤두세웠다. 아무리 춥다한들 솔로들의 마음속 시베리아에는 못 미친다. 7위엔 ‘솔로대첩 3만 5000명’이 올랐다. 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 솔로들끼리의 대규모 미팅을 벌이자는 아이디어에 3만 5000명이 참가 의사를 밝혔다. 원래 서울 여의도에서 열릴 예정이었지만, 행사 소식이 알려지면서 전국 13개 도시로 확대됐다. 3위는 ‘뉴욕 지하철 한인 사망’이다. 뉴욕포스트가 흑인에게 떠밀리는 바람에 지하철 선로에 떨어져 숨진 한인의 사고 직전 사진을 실어 죽음마저 상업적으로 이용했다고 비판받았다. 4위는 ‘검찰 성추문 피해자 사진 유출’이다. 성추문 검사 사건의 피해 여성 사진을 검찰 측 수사 관계자들이 유출한 게 아니냐는 경찰 수사 내용이 알려지면서 파문이 확산됐다. 6위는 화성 탐사 로봇 큐리오시티가 보내온 정보를 공개한 ‘나사 중대 발표’, 9위는 경기도 화성 해병대사령부에서 군생활을 마친 ‘현빈 제대’였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대선 첫 TV토론] “朴 떨어뜨리기 위해 나왔다” 이정희 독설 원맨쇼

    4·11 총선 부정 경선과 종북 논란으로 정치적으로 몰락의 길을 걸었던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선 후보가 ‘박근혜 저격수’로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이 후보는 4일 서울 여의도 MBC에서 열린 첫 대선 후보 TV토론에서 시종일관 맹공을 가하며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코너로 몰았다. 정치 공방에서는 사실상 이 후보의 ‘독무대’나 다름없었다. ‘독설’도 마다하지 않았다. 작심한 듯 토론 초반부터 박 후보를 향해 “유신 독재 퍼스트레이디가 청와대로 가면 여성 대통령이 아니라 여왕이 된다. 불통과 오만, 독설의 여왕은 안 된다.”고 강하게 선공을 가했다. “전태일 열사에게 헌화하겠다고 쌍용차 노동자의 멱살을 잡아끄는 게 불통이자 오만과 독선이다. 구시대 제왕적 리더십의 전형”이라고 쉴 새 없이 몰아붙였다. 박 후보가 반격하기 위해 통진당의 ‘애국가 논란’ 카드를 꺼내 들며 국가관을 문제 삼았지만 이석기, 김재연 통진당 의원의 이름을 “김석기, 이재연”이라고 잘못 말해 되레 이 후보로부터 “토론의 기본 예의와 준비를 갖춰 달라.”는 핀잔을 들었다. ●공격 당한 朴, 얼굴 붉혀 대형마트의 영업 시간 제한을 골자로 하는 유통산업진흥법을 두고도 ‘혈전’이 벌어졌다. “새누리당은 왜 골목시장을 지킨다는 약속을 안 지키나.”라는 이 후보의 공격에 박 후보가 “여야가 합의하면 이번 회기 내에 통과된다. 이런 사정을 알고 질문하는 건가.”라고 맞받아치자 이 후보는 “네, 됐습니다.”라고 말을 끊어버렸다. 이 후보는 또 “여성 차별 개선 의지는 없고 말로만 민중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면 되지.’ 하는 마리 앙투아네트(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와 다를 게 없다.”고 박 후보의 ‘여성 대통령론’을 일축했다. 권력 비리 근절 방안 토론에서도 어김없이 각을 세웠다. 박 후보가 고위 공직자 비리 엄벌 등의 대책을 설명하자 “솔직히 말해 장물로 월급받고 지위를 유지하며 살아온 분이 권력형 비리를 말하니 잘 믿기지 않는다. 정수장학회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지태씨를 협박해 뜯어낸 장물 아닌가.”라고 속사포 공격을 폈다. 이 후보는 “전두환 정권이 박정희 대통령이 쓰던 돈이라면서 박 후보에게 6억원을 주지 않았느냐. 6억원은 당시 은마아파트 30채에 해당하는 돈”이라고 공격했다. 이에 박 후보는 “당시 아버지가 흉탄에 돌아가시고 어린 동생들과 살 길이 막막한 상황에서 경황이 없어 받았다.”고 해명한 뒤 “6억원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혔다. 공격이 자신에게만 쏟아지자 박 후보는 얼굴을 붉히고 떨떠름한 표정을 짓다가 급기야 “이정희 후보는 아주 작정하고 네거티브를 해서 박근혜라는 사람을 내려앉히려고 온 사람 같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그러자 이 후보는 “박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토론회에)나왔다. 박 후보를 반드시 떨어뜨릴 것이다.”라고 정면으로 맞받았다. ●“민주 의원은 기자에게 촌지” 박 후보가 꺼내 든 북방한계선(NLL) 공세에 대해 이 후보는 “유신 대결에 얽매인 사람이 한반도를 책임지겠다고 나설 수 없다.”고 일축했다. 또 “충성 혈서를 써서 일본군 장교가 된 다카키 마사오, 한국 이름 박정희다. 뿌리는 속일 수 없다. 애국가 부를 자격도 없다.”며 박 후보의 ‘아킬레스건’을 매섭게 파고들었다. 문 후보도 ‘독설’을 피해 가진 못했다. 이 후보는 “4대강 예산안에 반대하며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이 점거 농성할 때 민주당의 한 의원이 우연히 보수 언론 기자를 만나 촌지 10만원이 든 책을 건네는 걸 봤다. 역겨웠다.”고 비난했다. 이 후보가 야성을 강하게 드러내면서 야권의 문 후보도 존재감이 작아졌고 박 후보는 토론회 내내 굳은 얼굴을 풀지 못했다. 이현정기자 hjlee@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