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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별기고/ ‘서해교전’ 이후 남북관계

    휴전 이후 남북한간 최대의 교전이었던 이른바 ‘연평해전’이후 잠잠했던 서해 바다에서 3년만에 남북 해군간에 교전이 다시 발생함으로써 또 다시 ‘폭풍주의보’가 발령됐다. 이번 교전으로 남북정상회담 이후 2년여 동안 불안정하게 지속해왔던 남북화해협력 노력은 중대한 위기에 봉착했다.남측에서 월드컵 열기가 무르익고,북·미대화와 남북대화가 재개될 시점에 찬물을 끼얹는 서해도발을 자행한 북한의 동기와 의도를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이번 교전은 ‘연평해전’의 연장선에서 예견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1999년 6월의 서해교전에서 참패한 북한 해군이 언젠가는 ‘보복을 통한 명예회복’을 할 것이란 예측이 많았다.그러나 북한 해군은 전투력 열세와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따른 남북화해의 진전 등으로 보복 시기를 늦춰오다가 이번에 보복차원에서 선제공격을 감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은 김정일시대의 기본통치방식으로 ‘선군정치(先軍政治)’를 표방하면서 ‘사상·군사우선의 강성대국 건설’이라는 통치구호를 제시하고 군사우선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군사국가’인 북한에서의 패전은 최고지도자의 ‘정당성 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심각한 사태다.따라서 북한당국은 서해교전 패배 이후 침몰된 선박과 승무원들을 바다에 수장시켜 놓고 역으로 그들이 승리하였다고 선전해 왔다.북한군은 ‘1년내 보복의지’를 거듭 다짐하면서훈련을 강화해 왔지만 남북간 전력격차에 따른 역부족을 절감하고 무력사용보다는 새로운 ‘해상분계선’(1999년 9월)과 ‘통행수로’(2000년 3월)를 선포하고 북방한계선(NLL) 무력화에 주력해 왔다.이번 교전도 남과 북이 서로 다른 해상경계선을 주장하는 과정에서 NLL 고수냐,무력화냐를 둘러싼 분쟁으로 볼 수 있다. 둘째,꽃게잡이철에 다시 서해교전이 벌어진 것은 서해 황금어장의 영유권을 노린 북한의 의도된 도발이라고 할 수 있다.북한은 관광객 감소에 따른 금강산 관광대가 지불유예,9·11 테러사태 이후 미국·일본의 이른바 ‘불량국가’에 대한 감시 강화로 무기수출,마약 밀거래 등을 통한 외화 획득의 어려움으로 외화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이번 서해교전도 결국 북한의 경제난에따른 사활을 건 꽃게잡이 과정에서 발생한 불미스러운 사건이다. 셋째,북한 해군의 서해도발은 북한 지도부의 ‘계획된 도발’이기보다는 북한 군부의 ‘의도된 도발’이 아닌가 생각된다.국내외 정세에 많은 정보를 가진 지도부 입장에서는 지금이 남북대화와 북·미 대화를 재개할 시점으로 판단하고 미국 특사를 수용하면서 금강산댐 수위조절,월드컵의 한국경기 중계,박근혜(朴槿惠) 의원을 통한 남북합의사항 이행의지 표명,민간교류 지속등 대화분위기를 조성해 왔다.그러나 정보가 통제된 군부입장에서는 안보에 우선순위를 두고 대남 강경기조를 유지하면서 서해교전에서의 패배 설욕과 지도자에 대한 충성심 차원에서 보복을 감행한 것으로 보인다.북한 지도부의 의도와 관계없이 도발이 이뤄졌다 하더라도 북한지도부는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다.따라서 북한의 ‘불량국가’이미지는 굳어지고 대외신인도는 더욱 떨어질 것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체상태에 빠진 남북관계가 경색국면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아졌다.그동안 김대중(金大中)정부는 햇볕정책의 결과로 남북사이에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그런데 이번 서해교전을 계기로 남북간 긴장이 고조됨으로써 햇볕정책의 수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게 됐다. 임기말 대선 정국으로 전환되고 있는 국내정치 역학상 여론을 무시하고 햇볕 일변도의 대북 포용정책을 추진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현재의 위기상황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남북 군사당국자회담 또는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조속히 개최,긴장완화와 평화정착과 관련한 근원적인 해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서해교전 1년 후에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졌다는 점을 상기할 때 남북한 당국은 위기를 기회로 활용해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가 정착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북한학
  • 서해교전/ 전문가 시각

    29일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발생한 북한 해군의 도발에 대해 북한 전문가들조차 엇갈린 분석을 내놓았다.그만큼 북한의 도발이 급작스럽고 이해하기 힘든 행동임을 반영하는 것이다.다만 전문가들은 “북한의 정확한 의도는 시간을 두고 파악해야겠지만 일단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것”이라고 전망하고 정부 당국의 능동적인 대책을 주문했다. -고유환(高有煥) 동국대 교수= 이번 사건은 지난 99년 6월 연평도 해전의 연장선상에 있다.북한이 당시 참패했고,이번 도발은 북한 군부의 보복 차원이다.북한 해군이 선군(先軍) 정통성차원에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에게 충성심을 과시한 사건인 것이다.우발성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북한 해군은 보복할 상황에 늘 대비해 왔다.김정일이 지시했다고는 보기 힘들다. 꽃게잡이는 북한이 사활을 걸고 있는 외화벌이 수단이다.북한은 현재 테러지원국으로 분류돼 무기를 판매하는 것이 금지돼 있다.북한 해군에 꽃게 조업 할당량이 떨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그래서 NLL을 침범하고서라도 조업을 한다. 월드컵 기간을 의도적으로 택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해군은 월드컵 경기일정을 모를 수가 있다.결국 군부가 일을 저지른 것으로,이는 북한 해군과 북측 지도부의 정세인식의 차이를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북한 지도부는 월드컵 경기,특히 한국·미국이 참가한 경기를 방송해 줄 정도로 향후 북·미대화 등 관계개선의 분위기를 잡아갔던 게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햇볕정책의 마무리 시점에 일어난 이번 사건은 남북관계에 결정적인 타격을 줬다.우리 정부는 햇볕정책 성과를 긴장완화로 꼽았다.정부는 어려워지고 대선 정국에서 대북강경책이 우위를 잡을 가능성이 높다.결국 남북은 군사당국자 회담 등 근원적 해결을 찾아야 한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허문영(許文寧) 통일연구원 책임연구원= 이번 사건은 크게 우발적 도발과 군부의 반발,북한 지도부의 준비된 도발 등 세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조심스럽지만 준비된 도발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우발적으로 보기엔 규모가 큰데다 북한체제의 특성상 군부의 반발 가능성도 높지 않다. 도발 의도는 일단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려는 것으로 보인다.즉 미국과의 대화가 여의치 않고 지원이 확실치 않자,남북문제를 국제적 이슈로 부각시켜 미국을 압박하려는 전술인 것이다.과거에도 저들은 98년 대포동 미사일 발사를 통해 미국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냈다. -지만원(池萬元) 군사평론가= 북한 경비정이 지난 27,28일 잇따라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온 것을 보면 의도된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다.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로 치밀한 계획 아래 침범한 것이다. 문제는 군 장비면에서 월등히 앞선 우리 군이 어떻게 이렇게 크게 당했는가이다.가장 큰 이유는 우리 해군에는 일선 지휘관에 부여하는 ‘유엔사 자동교전규칙’이 없다는 것이다.지난해 6월 북한 상선들이 제주해협을 통과했을 때에도 우리 군에 ‘유엔사자동교전규칙’이 없어 수십시간 동안 끌려 다니기만 하지 않았는가. 이번 NLL 침범의 배경으로는 최근 국제적으로 이슈화된 탈북자 문제를 들수 있다.미국이 탈북자를 난민으로 인정하는 등 국제적으로 북한을 압박하는 데 대한 무력시위로 볼 수 있다. 이번 교전을 계기로 남북관계는 다시 냉각기에 들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정부의 햇볕정책도 한동안 답보상태에 머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서동만(徐東晩) 상지대 교수= 우발적인지,실수인지,아니면 의도적인 것인지 아직은 분명치 않다.향후 북한의 공식 반응이 중요하다.이를테면 유감표명이라든가 하는 후속 움직임을 봐야 사건의 배경과 북한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향후 남북관계 역시 이같은 북한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해야만 전망이 가능하다. -박영호(朴英鎬) 통일연구원 정책실장= 이번 사태는 김정일이 내부를 분명하게 장악하고 있지 못한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아리랑 축전 등을 볼 때 김위원장은 남측과 관계개선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따라서 이번 사태는 김 위원장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고 생각한다.북한 해군이 3년전 서해교전의 패배를 만회하려고 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이번 사건으로 월드컵 열기가 고조된 남측 사회가 다소 냉각되는 측면이 있겠지만 큰 영향은 미치지 않을 것으로 본다.다만 햇볕정책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데다 두 아들 문제로 홍역을 앓고 있는 상황에서 얼마나 더 대북정책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겠나. -이종석(李鍾奭)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꽃게잡이 때문이라고 하지만 사실 이번 사태를 일으킨 북측의 의도를 잘 알 수 없다.앞으로 좀 더 북측의 반응등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의도야 어쨌든 이번 사태로 인해 남북관계가 대단히 부정적인 영향을 받으리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동안 남북 당국간 대화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지만 민간단체 교류는 꾸준히 지속돼 사실상 남북관계 자체는 진행형이었다.그러나 이번 사태는 이같은 남북관계 진행과정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유길재(柳吉在) 경남대 북한대학원 교수= 지난 99년 연평해전에 대한 북한군부의 보복성 공격으로 보인다.꽃게잡이 때문이라고 한다지만 사태가 발생한 정황으로 미뤄 계획적인 공격인 것 같다.NLL이 북측 입장에서 볼 때는 불리한 조건인 만큼 앞으로 이 지역에서 남북간의 군사대결이자주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 우려된다.남북한이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향후 남북관계는 우리측이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본다.최근 민간교류가 있었다고 하지만 남북 당국간 교류는 중지돼 왔던 만큼 남측의 대응 정도에 따라 더 나빠질 수도,현재 상태를 유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고하리 스스무(小針進) 일본 시즈오카(靜岡)현립대학 조교수= 한마디로 북한의 행동을 이해하기 어렵다.왜 하필이면 월드컵에서 한국팀이 3위를 하느냐 마느냐 하는 중요한 일전을 몇시간 앞둔 시점에서 이런 사건을 일으켰는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번 사건이 중앙의 지시가 있었다던가 하는 의도적인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우발적인 측면이 강하다.어떤 측면에서는 북한측이 그동안 이맘때가 되면 주장해 온 NLL 문제를 미국과의 회담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과시하고자 하는 면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예상 밖으로 사망 4명,실종 1명 등으로 사건이 확대되면서 분명 북한측도 난처한 입장에 빠졌을 것이다. 이번 사건이 단기적으로는 한반도 정세에 나쁜 영향을 줄 수는 있어도 김대중 정권이 펼쳐 온 포용정책이 실패했다고 단언할 수 있을 만큼의 그런 사건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미야즈카 도시오(宮塚利雄) 일본 야마나시가쿠인(山梨學院) 대학 교수= 사건의 핵심은 북한 상부의 지시가 있었느냐하는 점이다.그러나 현재 북한이 처한 상황으로 미뤄볼 때 상부의 지시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 다만 3년 전에도 똑같은 사건이 있었지만 지금 서해에서는 게잡이 철이기 때문에 북한 해군에는 나름대로 이 시기의 ‘매뉴얼’이 있다고 본다.이번 사건도 그 매뉴얼대로 하다가 한국 해상을 침범하고 급기야는 교전한 것이 아닌가 본다.그렇지만 하필이면 이 시기인가 하는 의문은 남는다.남한의 대구에서 월드컵 3위 결정전이 열리는 날 뭔가 찬물을 끼얹는 듯한 이번 사건은 그래서 아쉬움을 남긴다.이번 사건이 어떻게 파급될지는 쉽게 예측하기 어렵지만 분명히 북·일 관계에는 좋지 않다. 도쿄 황성기 특파원 김재천 홍원상기자 patrick@
  • 부시 행정부 강·온 내분 심각

    [워싱턴 백문일특파원] “내분은 없다.다양한 의견 제시만 있을 뿐이다.” 대외정책을 둘러싸고 부시 행정부내 강경파와 온건파의 마찰이 불거질 때마다 미 행정부의 고위 관리들은 이렇게 말했다.그러나 갈등은 의견 대립의 차원을 넘어 현재 정책수립에 혼란을 야기하는 위험 수준에 다다르고 있다. 특히 9·11 공격으로 ‘테러와의 전쟁’이 선언되면서 부시 행정부의 ‘무게 추’가 군사적 대응에 쏠리자 외교적 노력을 앞세운 실용적 온건파의 노선은 설 땅을 잃고 있다.전시내각을 앞세운 백악관 역시 모든 정책결정 과정에 직접 개입,행정부의 분란을 부채질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영국의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15일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중동정책 등과 관련한 백악관의 음해에 실망,11월 이후 사임할지도 모른다고 보도했다.국무부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추측성 보도라고 일축했지만 부시 행정부의 내분이 어느 정도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중동정책= 부시 행정부는 외견상 아랍국가와 이스라엘의 관계에 균형감각을 유지하려 한다는 점을과시한다.미 역대 정권들이 그랬듯이 부시 행정부도 유대인의 정치·경제적 영향권에 있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한다.지난주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를 만나기 앞서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과 회동,아랍권의 견해를 들은 것도 이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최종적인 의사결정 단계에서는 언제나 친 이스라엘 성향을 띤다.외교정책의 수장인 파월 장관은 늘 백악관의 뒷전에 있다.그는 중동평화 정착의 유일한 해법이 요르단강 서안 및 가자지구에서의 팔레스타인 국가 창설이라는 아랍권의 주장을 공식적으로 지지했다.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이를 반대한다고 밝힌 샤론 총리의 편에 섰다.당초 알려진 팔레스타인 국가 창설을 위한 일정을 제시하기보다 갑자기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백악관은 브리핑을 통해 샤론 총리의 대(對) 팔레스타인 강경책을 테러와의 전쟁으로 간주하고 지지한 반면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을 무능력한 사람으로 폄하,아랍권의 반발을 샀다.이스라엘과 아랍권 등의 각료회담을 통해 문제를 풀려던 파월 장관의 노력에 백악관이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대테러 전쟁= 강경파들은 이라크에 대한 선제공격론을 거침없이 말한다.폴 윌포위츠 국방부 부장관과 존 볼턴 국무부 국제안보담당 차관이 대표적인 매파들이다.이들은 ‘부시 독트린’의 절대적 지지자들로서 테러세력과 연관됐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는 국가들에 군사적 행동의 필요성까지 강조한다.북한의 위협에도 단호한 대처를 요구한다. 그러나 파월 장관 등 온건파들은 “적을 늘리는 것은 상책이 못된다.”고 주장한다.이라크에 대한 군사공격에는 동맹국마저 반발하고 있어 자칫 국제적인 대테러연대에 균열을 가져올 수 있다는 시각이다.외교·정치적 노력에 앞서 군사적 대응으로 일관하는 것은 국익에도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다.그러나 지난 1월 부시 대통령의 ‘악의축’ 발언에 이은 최근 테러세력과 악의 축 국가의 연계성 주장은 온건파의 생각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대북정책= 온건파들은 대북정책 검증이 불가피하더라도 북한의 위협을 제거하는 최상책은 ‘협상’이라고 본다.미사일 개발이나 재래식 무기 등의 위협을 자주 거론,북한을 자극하기보다 테이블로 이끌기 위한 당근책 제시가 낫다는 주장이다.리처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 등은 김정일 정권의 실체를 받아들이고 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 이란이나 이라크와는 분명한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클린턴 행정부 시절로 되돌아갈 수는 없으나 최소한의 신뢰를 바탕으로 대화를 유지하는게 급선무라는 것이다. 그러나 강경파들은 기본적으로 북한을 믿지 않는다.핵사찰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미사일을 개발하고 수출한 돈으로 재래식 무기를 다시 증강하는 등 위협을 키우고 있다고 본다.따라서 북한과의 대화는 북·미 관계개선이 아니라 북한이 약속을 제대로 지킬 의향이 있는지 알아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한다.심지어 백악관과 국방부 내부에서는 김정일 정권의 교체 필요성까지 거론,국무부의 반발을 사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 내에서 북한이 대량살상무기(WMD)의 위협을 줄이지 않거나 테러와의 전쟁에 협력할 의사가 없다면 강경한 대응책을 구사해야 한다는 매파들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이 때문에 텔레그래프가 보도한 것처럼 파월 장관이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은 강하지만 미국의 외교정책을 성안하지 못한다면 장관직을 고수할지 의문이라는 국무부 관리들의 말은 전혀 신빙성이 없는 게 아니다. mip@
  • 월드컵/ “代이은 한국 알리기 가슴 뿌듯”

    “‘월드컵 외교’의 현장에서 일했다는 게 너무나 가슴 뿌듯합니다.아버지를 도와드렸다는 생각도 들고,나라를 위해 일했다는 거창한 기분도 들어요.” 월드컵 개막식을 전후해 한국을 찾은 VIP 대부분이 서울을 떠난 6일.한꺼번에 찾아온 외빈들 의전에 비상이 걸린 외교부의 손발 노릇을 해준 ‘의전 도우미’들이 세종로 중앙청사 외교부 한 회의실에 모였다.최흥식(崔興植) 주 알제리 대사의 딸인 최유진(崔有辰·24·이화여대 관광홍보학과4)양 등 7명이 주인공.재외공관에 나가 있는 외교관과 각 부처 소속 주재관 자녀들이다. 외교관 자녀들을 위한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들은 면접시험을 거쳐 지난달 24일부터 외교부의 ‘의전 태스크포스팀’에서 집중 의전교육을 받았다. 이들은 그동안 의전용 무전기를 사용하며 굳은 딱딱한 말투가 없어지지 않는다며 웃었다. 12월 군 입대를 앞두고 도우미로 나선 윤재우(尹在佑·20·호주 국립대3)군은 겉보기엔 우아해 보이는 외교 의전이 고생스럽기 짝이 없다는 것을 몸으로 체험했다. 개막식 전후 인천공항으로 입국하는 귀빈들의 짐을 찾아 들어주는 짐꾼 역할을 한것이다.입국 시간이 제각각이어서 인천공항 여객터미널에서 하루 2∼3시간 정도 새우잠을 자며 일주일을 보냈다. 윤군은 세계적인 문명비평가인 프랑스의 기 소르망 교수가 제일 멋있었다고 한다.이유는 간단하다.손에 든 가방 하나 외엔 짐이 없었기 때문이다.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지난달 20일 독립한 동티모르의 주제 라모스 오르타 외무장관을 수행한 임지수(林志修·23·이화여대 영문과 졸)양은 약간 실망했다.“노벨평화상 수상자와의 멋진 대화를 꿈꿨는데,3박4일 체류기간중 차속이든 어디든 틈만 나면 잠을 자더라고요.” 임양은 오르타 장관으로부터 들은 말은 ‘생큐’와 ‘굿나이트’ 두 마디라며 아쉬워했다. 스벤슨 라이트 케임브리지대 동아시아센터 소장을 수행한 주은혜(朱恩惠·19·고려대 경영1)양은 정반대로 한·일 관계 등 폭넓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며 뿌듯해했다.37세인 라이트 소장의 연인(?)으로 오해받기도 했다는 주양은 “한국문화에 흠뻑 빠진 것 같았어요.귀국길 선물로 진공 포장된 김치와 비빔밥 재료,호박엿 등을 잔뜩 사들고 갔거든요.”라고 귀띔했다. 이들은 외빈을 수행하면서 드러난 우리 문화 알리기의 문제점도 지적했다.피터게트 겐스 베를린대 총장을 호암 미술관 외빈전용 전시실로 안내한 손재선(孫載善·19·서강대 사회과학1)군은 “현장에 국보급 도자기 등에 대한 영문 설명이 없어 겐스 총장 등이 의아해했습니다.”라고 전했다. 왕족이나 귀족을 수행한 도우미들은 각기 독특한 체험을 했다고 자랑한다.최유진양은 개막식날 브루나이의 빌라 왕세자 측근들이 보여준 ‘충성심’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고 했다. 박지해(朴智諧·20·고려대 경영2)양은 이탈리아에서 온 핀토 백작부인을 수행했다.4박5일 체류에 대형 가방이 4개나 됐으며 보석도 무척 많았다고 한다.영화나 소설에서 본 백작부인의 ‘기품’을 직접 느낄 수 있었다고 전했다. 로드리게스 전 코스타리카 대통령을 수행한 전혜원(全惠元·21)양은 “로드리게스 전 대통령이 고양시에 있는 중남미박물관을 방문하고는 감격했다.”면서 작은박물관 등 사소하게 보이는 것이 외교의 힘이 되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지난 2주일이 힘들기도 했지만 너무나 멋진 경험이었습니다.” 눈앞에 닥친 기말고사 준비 등 자신의 생활로 돌아가는 7명의 도우미들이 힘차게 외쳤다.“월드컵 외교 파이팅.” 김수정기자 crystal@
  • [씨줄날줄] 종업원의 네가지 유형

    인사관리는 조직의 건강성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다.기업의 CEO는 인사관리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를 항상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그러나 그것이 그리쉽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인사관리가 잘 이뤄지고 있는 지를 판별하는 손쉬운 방법을 하나 소개한다. 세계유수의 인력개발 전문업체인 미국의 맨파워사 제프리 조르스 회장이 제시한‘종업원 구분법’이다.그는 ①종업원이 회사에 대해 충성심을 갖고 있는가와 ②회사가 종업원의 충성심을 인정하는가에 따라 종업원을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했다.여기서 ‘회사’는 ‘고용주’를 의미하며,자신이 어느 유형에 속하는지에 대한 판단은 종업원이 한다.이같은 룰에 따라 위의 두 조건을 모두 충족하면 ‘상호충성유형’,둘 다 충족하지 못하면 ‘파괴자 유형’으로 분류한다.①은 충족하지만 ②를 충족하지 못하면 ‘맹목적 지지자 유형’이다.종업원이 회사를 짝사랑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반대로 ②는 충족하는데 ①을 충족하지 못하면 ‘용병 유형’이다.회사가 종업원을 짝사랑하는 경우다.‘상호충성 유형’에 속하는 종업원의 비율이 50%를 넘으면 인사관리가 매우 양호한 것이다.반대로 ‘파괴자 유형’이 많은 기업은 곧 망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맨파워사는 조르스 회장의 ‘종업원 구분법’에 따라 종업원들의 실제 분포도를 아보기로 했다.이를 위해 미국과 영국의 근로자 1400명을 대상으로 면담조사를 시했다.그 결과 자신이 ‘상호충성 유형’에 속한다고 답한 응답자가 전체의 53%를 차지했다.‘파괴자 유형’에 속한다는 응답자도 22%나 나왔다.이어 ‘맹목적 지지자 유형’(19%),‘용병 유형’(6%)의 순으로 조사됐다.두 집단을 비교한 수치를 면 미국 근로자들은 영국 근로자들에 비해 ‘상호충성 유형’의 비율이 높은 반면,영국 근로자들은 ‘파괴자 유형’의 비율이 미국보다 높았다.영국의 여성 근로자들 가운데는 ‘맹목적 지지자 유형’이 많았다.‘용병 유형’의 종업원중 절반은 같은 회사에 3년 이상 재직할 의사가 없다고 답했다. ‘나는 어떤 유형에 속할까.’‘우리 기업의 종업원 분포도는 어떤 모습일까.’조르스 회장의 ‘종업원 구분법’에 따른 분포도 조사를 해볼 것을 우리 기업인들에게 권하고 싶다. 염주영 논설위원
  • [대한광장] ‘걔네들’ 용병 비하 유감

    용병(傭兵·mercenary)이란 ‘보수를 받고 복무하는 군인’을 가리킨다. 용병은 고대와 중세에 걸쳐 자국민의 보호나 부족한 병력의 보충을 위해 널리 활용됐으나 프랑스혁명 이후 실시된 징병제도에 의해 시민적 상비군이 생겨나면서 자취를 감췄다. 용병은 충성심이 부족하고 자질이 낮으며,물질적 보상이나 기타 계약조건에 따라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고 수시로 소속을 바꾸는 단점이 있다.또 대부분 외국인으로 자국 군인들과 공동생활을 하거나 협동작전을 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그래서 용병이라는 용어 속에는 비하적인 어감이 스며있다. 국내 언론은 프로 야구·농구·축구·사이클 등에서 활약하는 외국인 운동선수들을 용병이라 부른다.이러한 사정을 반영해 ‘야후! 국어사전’에서는 용병을 ‘고용한 군사’뿐 아니라 ‘스포츠에서 팀의 전력을 높이기 위해 외국에서 데려온 선수’까지 포괄해 정의한다. 운동선수를 지칭하는 용병이라는 말에는 그들을 단기간 사용하되,실력이 소진될경우 일회용품처럼 폐기할 것이라는 의미가 함축돼 있다.그들을 결코 우리사회의일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한국인들의 마음가짐이 용병이라는 말로 표출된 것이다. 그러나 역지사지(易地思之)로 바꿔 생각해보면 사정이 간단치 않다.국내 프로야구팀 두산 베어스의 타이론 우즈,프로축구팀 성남 일화의 샤샤 선수가 용병이라면 미국 프로야구팀 텍사스 레인저스의 박찬호,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김병현과 일본 프로야구팀 오릭스 블루웨이브의 구대성,벨기에 프로축구팀 안드레흐트의 설기현 선수도 용병이다.만약 미국 언론이 박찬호 선수를 ‘한국인 용병’이라고 부른다면 상당수 한국인들은 분개할 것이다. 용병타령은 선수들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국내 한 신문기사에 따르면 월드컵에참가한 32개팀 가운데 8개 팀에서 ‘용병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다고 한다.한국의 거스 히딩크(네덜란드),일본의 필리프 트루시에(프랑스),중국의 보라 밀루티노비치(유고),잉글랜드의 스벤 고란 에릭손(스웨덴) 등이 모두 용병감독이다.선수뿐 아니라 감독조차 용병으로 간주한다면 프랑스 바스티유오페라극장 음악감독을역임했던 정명훈도 용병이고,최근 국내 대학들이 앞다투어 모시기 경쟁을 하고 있는 외국인 교수들도 용병이어야 마땅하다. 그런 점에서 용병이라는 단어는 시대착오적이다.용병타령은 20세기 피압박민족으로서 한국인이 가졌던 열등감의 잔재라 할 수 있다.한국인들끼리 외국인을 낮추어말하거나 ‘걔네들’‘얘네들’이라는 식으로 비하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그러나그런 식의 태도로는 심리적 위안조차 찾을 수 없다. 지구화된 사회의 무한경쟁체제에서 살아남기 위해 각국은 우수인재를 확보하려고분투한다.거의 모든 나라는 외국인재유치(brain gain)를 통해 경제·사회발전의 원동력을 보강하려 몸부림치고 있다.한국축구는 거스 히딩크 감독을 영입함으로써 과거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급성장할 수 있었다. 세계적인 명문 프로축구팀들은 막대한 몸값을 치르고서라도 외국인 스타선수들을꾸준히 영입하려고 노력한다.이탈리아 유벤투스는 프랑스인 지단,이탈리아 인터 밀란은 브라질인 호나우두,스페인 레알 마드리드는 포르투갈인 피구를 스카우트했다.그 팀들은 소모품 용병이 아니라 스타 선수들을 길러 정상에 서려고 노력한다. 이번 FIFA 월드컵을 통해 한국인들은 40여년 사이에 이뤄낸 비약적인 경제성장과10여년 만에 달성한 정치적 민주화 성과,그리고 앞으로의 문화적 발전의 잠재력을전 세계에 자랑해야 한다.동시에 이 기회에 우리보다 좀 더 잘난 외국인에게 주눅들어 그들을 말로 학대하며 위안을 찾으려는 소아병적 자세는 확실히 버려야 한다. 설동훈/ 전북대 교수 사회학
  • [제정러시아 외교문서 새 발굴 대한제국 秘史] (3)러 거주 한인들의 수난과 투쟁사

    한인들의 러시아 이주문제가 표면화된 것은 1860년 러시아와 청국이 북경조약을 체결,광활한 우수리지역이 러시아영토로 편입되면서부터였다.이때 비로소 조선과 러시아는두만강유역을 경계로 국경선을 맞댔기 때문이다. 이번에 새롭게 발굴된 러측 극비문서에 따르면 1884년에러시아 거주 한인은 대략 1845가구 9000여명에 달했으며남우수리지방의 포시에트에 15개 마을을 형성하고 있었다.독신으로 넘어와 품팔이를 하던 것이 점차 가족을 동반한집단이주로 본격화됐다는 것이다.물론 러측 문서에 나타난 이같은 한인이주는 이전부터 이곳에 거주하던 발해유민등 한인 원주민은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한인이주문제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1863년 조선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포시에트지역에 가족단위 이주민이옮겨온 이후 이주민 숫자는 매년 증가추세를 보였다.당시상황은 이와 같은 한인 이주민이 크게 도움이 됐다.(1908년 3월8일 아무르 동부지역 총독 운테르베르게르가 내무부장관에게 보낸 보고서) 한인이주문제는 아무르동부지역 총독부에서 내무부장관에게 보낸 보고서에 주로 등장한다.이주의 원인으로 대한제국 북부의 토질이 나쁘고 흉년이 계속된 데다 관헌의 파렴치한 착취에 따른 탈출로 분석했다.또 대한제국 국경에서 가까운 남우수리 지방은 습기가 많고 해양성 안개가 자주 끼어 러시아 농민들은 농지로 적합치 않다며 떠나 버렸지만 한인들은 이곳의 기후와 토질이 한반도와 유사해 벼농사에 적합하다고 여겼다는 것이다. 러시아 행정당국에서도 한인 이민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였으며 이들은 러시아군대와 도시민들에게 농산물을 재배,공급하는 한편 도로개설과 보수 및 짐마차 부역노동 등에 동원했다.한인 이주가 급증한 것은 1870년 초 조선에 흉년이 겹쳤기 때문이다.많은 국민이 빠져나가자 조선정부에서자주 항의를 해왔다.1884년 한·러수호통상조약체결이전에이주해 온 한인은 러시아국민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이민온 조선인은 러시아국적을 소지하고 있으며 정교회를믿었지만 이들이 러시아인화할 것이라는 믿음은 근거없는추측이다.남우수리에 거주하는한 한인가족은 40년을 살았지만 조선식으로 살고 있다.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한인들이 그렇다.러시아가 청국이나 일본과 전쟁을 하게될경우 한인의 충성심을 믿어서는 안된다.이곳은 적의 소굴이 될 것이다.이때문에 일본은 한인의 러시아 이민을 장려하고 있다.(상기 문서와 출처동일) 러시아 중앙정부나 지방당국은 한인들의 습관이나 생활풍속이 러시아인에 동화되지 않으며 황인종이 극동지방에 많을 경우 해롭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하지만 우선 노동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이를 차단하는 정책의 시행을 차일피일 연기했을 뿐이었다.1891년 두홉스키 아무르 총독은 오히려 적극 정책을 폈다.한인의 러시아 동화를 독려하는 한편 2년간 러시아잔류허가를 받은 한인이 만기를 넘겨도 추방하지 않았고 새로 오는 이민자도 거부하지 않았다.그 결과 1904∼1905년 러·일전 기간중 한인수는 ▲남우수리 2500명▲하바로프스크와 우드스크에 7500명▲아무르에 3만 3500명에 달했다. 카자흐부대가 관리하는 지역에 살고 있는 한인 18명의 가옥 8채를 철거하지 말고 한인이 경작하는 농토를 몰수하지 말 것.15년간 병역의무를 면제해주고 고국의 가족을 초청,러시아국적을 취득하게 해 줄 것.(1897년 8월16일 타반트 마을 촌장 이성삼외 18명이 카자흐부대 사령관에게 보낸진정서).가족을 초청,농업에 종사한다면 러시아국적취득에 동의하며 국적취득후에는 이들을 카자크관할 마을로 편입시킨다(카자흐 사령관의 회답) 카자흐란 15∼17세기 과중한 세금과 압제를 피해 러시아의 중앙부에서 남방변경지방으로 도망친 농노 및 그 자손들을 총칭하지만 주로 카자흐인들로 구성된 비정규군 둔병(屯兵)을 지칭한다.이들은 정부로부터 토지를 지급받는 대신 유사시에 징집될 의무를 갖고 있었다.한인 이주자들도카자흐인과 마찬가지 취급을 받았던 것이다. 러시아는 한인들에게 미개간지를 개척하게 한 뒤 또 다른 미개척지로 밀어내고 개척지에는 러시아인들을 이주·안착시켰다.1937년에는 이민족을 국경지역에서 소개(疏開)시킨다는 명목아래 중앙아시아의 오지(奧地)로 강제이주시켰다.러시아가 추진한 한인 이주정책의 정체를 알 수 있게하는 대목이다. 이범윤을 중심으로 대한제국의 정치 이민자들이 노보 키예프스크(두만강 넘어 남우수리지방에 있던 소도시)를 활동거점으로 삼고 있다. 일본이 우리의 우방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조치를 취해야할지 유보하고 있다.(1908년 4월5일 남우수리지방 국경행정관 스미르노프가 연해주 주지사 플루그에게 보낸 통신문).한인 의병조직에 관심도 갖지 말고 처벌도 하지 말 것.그러나 격려하지는 말 것.(같은해 4월19일 플루크가 스미르노프에게 보낸 답신전문). 러시아 극동지역은 을사늑약이 체결된 1905년부터 러시아혁명이 일어난 1917년까지 항일민족운동의 중심지였다.이후 러시아혁명정부가 빨치산부대를 해체하는 1922년까지는 공산주의운동의 본거지가 되었다.이곳이 항일운동의 근거지가 된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다.우선 만주와 간도,연해주 등 국경을 맞대고 있어 한·러·청 3국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지리적 이점 때문이었다.이와 함께 간도와 연해주지역에 살고 있는 한인 이주민들의 풍부한 인적·경제적 자원을 활용할 수 있었다. 러시아내 한인들을 한인의용군으로 편성해 러시아에 공헌케 하는 방법으로는 산악지방에서 빨치산활동으로 일본군을 교란하게 하는 등의 방법이 있다.…함경남북도에서 6000명의 모병이 가능하며 소총 2300정이 확보가능하다.…부대는 3개 연대로 구성하며 소대장이상 지휘관은 러시아인으로 한다.(1904년 11월3일 코르프 남작이 제안한 러·일전쟁시 한인의용군 편성계획). 일본 외무성이 다음과 같이 전해왔다.조선정부로부터 간도관리사(間島管理使)라는 직책을 부여받은 이범윤은 200명의 동지를 모아 통감부하의 현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이들은 불라디보스토크에서 다량의 무기를구입하고 대한제국으로 침투하기 위해 노보 키예프스크에집결해 있다. 이들중 일부는 육로를 통해 경성(서울)으로 갔으며 또 다른 일부는 선박편으로 대한제국 북부로 떠났다.(1908년 7월9일 도쿄주재 러시아대사 말레비치가 외무부에 보낸 비밀전문). 만주에서는 상인들이 빨치산 대원을 도와 무기와 돈을 지원해 주었다.총대장은 이범윤이며 그는 4000명의 빨치산을 지휘하고 있다.그중 1000명은 총으로 무장하고 있으며 나머지 3000명은 길림과 봉천지방 주민들의 지원을 받아 무장을 획책하고 있다.빨치산의 거점지역은 러시아와 청국국경지대에 일부 있으며 또 다른 일부는 간도에 있다.(1911년 11월11일 하바로프스크 아무르군관구 참보부가 총참모부 관리본부에 보낸 비밀첩보보고서) 1905년 러·일전쟁의 패배로 타의에 의해 대한제국에서손을 떼게 된 이후 한일합병을 전후한 시기까지 러시아의비밀문서에는 이범윤과 관련된 항일투쟁활동이 유독 많이거론되고 있다.유인석·홍범도 등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이 없다.러시아는 항일의병을 겉으로는 ‘강도단’‘폭도단’‘빨치산’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한반도 북부에 대한 영향력 유지를 위해 활용하거나 일본군의 두만강쪽 국경침범을 저지하는 데 이용하려는 속셈을 갖고 있었다. 노주석기자 joo@ ■이범진·이범윤·이위종 3인의 항일 역정 러시아 문서보관국에서 발굴된 극비문서에는 이범진(李範晋·1852∼1910),이범윤(李範允·1856∼1940),이위종(李瑋鍾·1887∼?) 3인의 이름이 유독 많이 등장한다. 이들이 구한말 한·러관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요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하지만 세사람의 관계와 비극적인 인생유전에 대해서는 국내에 거의 알려진 바 없다. 세사람은 피로 맺어진 혈연관계였다.페테르부르크주재 대한제국 공사였던 이범진과 헤이그밀사로 파견된 3인중 한명이었던 이위종은 부자지간이었다.만주와 연해주땅을 오가며 평생 항일의병활동을 한 간도관리사 이범윤은 이범진의 6촌 동생이었다.이같은 사실은 이범진의 손자 이원갑(李元甲·65)씨에 의해 확인됐다. 또 고종이 같은 전주이씨인 이범진을 ‘조카’라고 호칭한 점으로 미뤄 이들은 이씨 왕가의 먼 일족이었던 것 같다.이범윤은 일제의 핍박에 시달리던 고종을 연해주로 망명시키려는 시도를 한 사실도 문서 곳곳에서 드러난다. 고종의 측근이었던 이범진은 아관파천의 주역이었다.친러내각이 무너진 뒤 주미공사를 거쳐 주러공사로 부임했다. 고종은 “짐은궁중에서 일본의 포로로 잡혀있지만 북쪽러시아를 바라보며 짐과 백성을 자유롭게 해주리라는 희망을 걸고 있다.짐의 사랑하는 조카,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겠지만 그곳에 남아 니콜라이2세 황제에게 도움을 청하라.짐이 운명한 뒤에도 그곳에 남아있으라.일본이 수입과 지출을 통제하고 있으니 송금할 수가 없다.”(1908년 1월31일)는 서신을 보냈다. 조국으로부터의 재정지원이 끊긴 뒤 이범진은 러시아측이 제공하는 월 100루블의 정치성 생활보조금을 지원받고 연명하면서도 조선정부와 일본의 귀국종용을 거부했다.러시아 외무부차관이 소모프 서울 총영사에게 보낸 1910년 5월의 전문에는 “이범진은 귀국할 경우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으며 러시아를 떠나지 말라는 고종황제의 어명을 지키느라 귀국을 거부하고 있다.”라고 기술했다. 한일합병이후 ‘친러파’로 낙인찍힌 이범진이 일본에 복수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살이었다.그는 1911년 1월16일 “우리의 조국은 이미 죽었습니다.전하께서는 모든 권리를 빼앗겼습니다.소인은 적에게 복수할 수도,적을 응징할 수도 없는 무력한 처지에 처했습니다.자살이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라는 내용의 유서를 고종에게남기고 목을 매달았다.그의 시신은 페테르부르크 교외 우즈펜스키 묘지에 안장됐으나 지금은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다. 이범진의 둘째 아들 이위종의 일생은 더욱 기구하다.그는 7살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영국,프랑스,러시아를 전전하면서 3개 외국어를 익혔다.프랑스 샹생 육군사관학교를 중퇴,러시아로 들어가 주러공사관 참사관으로 일했으며 러시아의 귀족 놀켄 남작의 딸과 결혼할 정도로 엘리트 외교관이었다.1907년 고종의 밀서를 지니고 이준,이상설과 함께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하지만 그가 만국기자협회에서 행한 일본규탄 연설은 세계에 일본의 잔학상을 최초로 알린 쾌거였다. 그는 생활고와 울분 등으로 러시아인 부인과 이혼한 뒤여기저기를 떠돌았다.1908년에는 군자금 1만루블을 관리하던 최재형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났으며 이범윤과 함께독립운동을 꾀했지만 러 당국에붙잡혀 추방당했다.1차대전때 러시아군 장교로 참전한 사실과 1917년 러시아 혁명이후 이름을 바꾸고 시베리아일대에서 살았다는 기록이 조선인국제공산당원의 한 보고서에 나와있다.이후의 행적은묘연하다. 이범윤은 1903년 조선정부로부터 간도관리사라는 직책을부여받은 뒤 한때 5개 대대의 무장병력을 거느렸다. 대한제국으로의 진격계획을 세우기도 했다.그는 니콜라예스크에서 검거돼 이르쿠츠쿠로 추방됐지만 이곳에서도 1925년까지 항일운동을 폈다.연해주와 만주를 오가며 평생을 조국을 위해 투쟁했던 그는 노년에 거의 폐인이 돼 비밀리에입국,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 노주석기자
  • [제정러시아 외교문서 새 발굴 대한제국 秘史] (2)오락가락하는 대 한반도 정책

    1884년 조·러 수호통상조약 체결 이후 1910년 한일합병전후까지 러시아의 대(對)한반도정책은 현상 유지(독립국가 유지)와 무력점령,38선을 중심으로 일본과의 남북 분할점령 등 3개안을 기본으로 변화해 왔다. 그런가하면 국내외의 정치 상황과 역학관계에 따라 중립국안,완충지대안,만주 및 몽고와의 거래에 의한 양보안까지 오락가락하기도 했다.특히 일본이 1896년 처음 제기한뒤 러시아도 솔깃해진 일본과의 남북 분할점령안은 광복및 6·25전쟁과 함께 남북 분단으로 현실화됨으로써 한국현대사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서울에서 체결한 조·러 수호통상조약문을 동봉한다.외무성은 조선과의 수교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하고 있으나 정치적 상황이 여의치 못해 이를 실현시키지 못하고 있었다.그러나 독일과 영국이 조선과 통상조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을 접한 후 황제 폐하(니콜라이2세)의 윤허를 얻어 서울에베베르(전권위원,초대 대리공사)를 보내 조약을 체결했다.이 조약은 독일과 영국이 체결하지 못한 영사관 설치문제가 제2조에 명문화돼 있으며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청국 영사관의 불만을 피하기 위해 그곳에 조선영사관을 허용하지 않은 특징이 있다.(1884년 10월8일 기르스 외무상이 톨스토이 내무상에게 보낸 조·러 수호통상조약 13조 전문 등23쪽에 달하는 극비문서) 이 문서는 제정러시아 문서보관국에서 찾아낸 방대한 분량의 한국 관련 문서 가운데 시기적으로 가장 앞서는 문서 중 하나로 한국과 러시아의 최초 공식 외교협정인 조·러 수호통상조약의 체결배경에 대한 러시아측의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이 문서를 통해 러시아의 1차적인 관심은 조선의 종주국이었던 청나라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데 있다는 사실을알 수 있다.물론 수교불가피론의 근저에는 영국과 독일 등 열강에 뒤지지 않으려는 몸부림과 함께 남하정책을 실현하기 위한 부동항의 획득에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조선을 점령하는 것이 러시아에 바람직한가.점령하게 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가(1888년 4월26일 아무르 총독과 외무부 아시아국장의 특별회의록).러·일간 우호확립에 유일한 방해요인은 대한제국 문제이다.일본 천왕의 총애를 받는 야마가타(山縣有朋) 원수는 대한제국 분할에 관한 러·일간의 협정체결이 양국간의 우호증진을 위한 바람직한 해결책이라는 견해를 제시했다.그는 일본이 대한제국의 수도를 포함한 남부를 차지하고 동해안과 서해안의 항구와 대부분의 대한제국 영토를 러시아에 양보할 준비가돼 있다고 한다.그러나 이는 대한제국의 완전독립과 모순되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1899년 2월9일 외상이 황제에 상주한 문서). 이들 문서로 미루어 볼 때 러시아는 1896년 로바노프 외무상과 야마가타 특사 사이에 체결된 모스크바의정서는 물론,1898년 로젠-니시협정으로도 대한제국의 독립을 일본측으로부터 완전히 담보받지 못했다고 여기고 있으며,남북분할점령안을 거부했지만 여전히 매력을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당시 일본이 주도한 명성황후 시해사건(1895년)과 이로 인해 촉발된 고종의 러시아공사관 피신(아관파천·1896년)으로 곤경에 빠진 일본 대신 러시아가 대한제국의 조야를 주무르던 때였다. 하지만 이후 러시아의 대한제국 독립국가 유지정책은 조금씩 후퇴하는 조짐을 보인다.여기에는 100만명에 달하는러시아군의 대부분이 유럽지역에 주둔하고 있어 극동지역에서의 군사력 약세를 인정하는 측면도 있었다.병력을 신속히 이동시킬 수 있는 시베리아철도가 완성되기 전까지외교적으로만 대한제국의 독립을 지원,현상유지시키겠다는 속셈도 작용했다. 만주와 극동에서 러시아가 굳건한 기반을 확립하고 만주를 러시아 영토로 편입시키는데 25∼30년이 걸릴 것이다.만주문제의 평화적인 해결을 위해 러시아가 일본의 민족적 자존심에 손상을 주지 않고 대한제국을 일본에 양보하는것이 불가피하다고 본다(1902년 12월 뷔테 재무상이 람즈돌프 외무상에게 보낸 러·일 협상관련 비밀문서). 대한제국을 보호국으로 삼아 철도 및 은행 등을 장악하는것은 무의미하다.문제는 대한제국을 무력으로 장악해야 하는데 대한제국 남부의 점령은 우리의 힘이 미치지 못하므로 대한제국 전역을 지배할 수 있는 기회를 엿봐야 한다.그런 의미에서 먼저 만주를 지배하지않으면 안된다(1902년 10월8일 도쿄(東京)주재 러시아 공사인 로젠 남작이 니콜라이2세에게 상주한 보고서).황제(니콜라이2세)는 일본이 대한제국을 북쪽으로는 두만강,서쪽으로는 압록강까지점령해도 좋다는 결심을 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황제는대한제국을 일본에 양보하면 군사충돌을 피할 수 있다고생각한다.(1903년 6월11일 해군제독 아바자가 베조브라조프에게 보낸 전문). 로젠 공사의 보고서에 대해 파블로프 공사도 의견서를 통해 “러시아는 실제적으로 국익에 손상을 입지 않고 대한제국 문제 해결을 명분삼아 일본정부에 대한제국의 행정감독은 물론 철도,우편,전신 등에 유리한 권한을 인정하면서 재정과 군사부문까지 참여를 허용해야 하며 러시아는 만주문제에 대한 일본의 불간섭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맞장구쳤다.니콜라이2세는 문서 상단에 ‘파블로프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의견을 친필로 남겼다. 니콜라이2세는 1904년 1월26일 알렉세예프 극동총독에게친필서명이 든 전문을 보내 “러시아가 전쟁을 시작하는것보다는 일본이 먼저 시작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일본이 먼저 개전하지 않으면 일본군이 대한제국의 남해안 혹은 동해안으로 상륙하는 것을 방해하지 말라.만약 38선 이북 서해안으로 상륙병과 함대가 북진해오면 적군의 첫발포를 기다리지 말고 공격하라.”고 긴급지시했다. 러시아의 정책이 대한제국의 양보쪽으로 서서히 방향을틀고 있는 가운데 일본군이 38선 이북 서해안으로 상륙하면 전쟁이 불가피하다는 ‘마지노선’을 암시하고 있다.1902년 1월 런던에서 체결된 영·일동맹은 러시아를 움츠러들게 만들었다.이 시기를 전후해 대한제국의 중립화안이고개를 든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러시아 군부는 대한제국 전역 혹은 북부지역의 무력 점령안을 적극 지지하고 있었다. 대한제국에서 러시아는 일본뿐 아니라 어떤 국가에게도영향력을 허용해서는 안된다.러시아가 대한제국을 점령해러시아에 합병시켜야 한다(1900년 두바소프 태평양함대사령관이 니콜라이2세에게 상주한 극동의 정치상황).일본은전 병력을 만주전선에 투입했다.러시아는 대한제국으로 진격해야 한다.현재의 16개 부대로는 병력이 부족하다.진격계획은 8월로 연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1904년 6월 아무르 군관구 참모부에서 알렉세예프 극동총독에게 보낸 전문). 일본군이 만주전선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틈을 이용해대한제국 영토에서 군사적인 승리를 거두겠다는 국지전(局地戰) 계획이긴 하지만 점령안을 지지하는 군부의 의사를엿볼 수 있다.무력점령안에 따른 진격계획은 보다 구체성을 띠고 있었다.이들 부대는 러·일전쟁 당시 한반도로 진출했으며 평양 일대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다. ‘전쟁불사’를 외치는 군부 및 일부 외교라인의 강경론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1903년 6월 여순에서 베조그라조프 등 극동정책수립에 전권을 위임받은 수뇌부가 참석한가운데 특별회의를 갖고 한반도정책의 기조를 다음과 같이 정했다. 회의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러시아가 대한제국의 전역혹은 북부 일부지역을 점령하는 것은 이익이 되지 못한다.▲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며 점령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일본이 점령하면항의는 할 수 있으나 자국군대를 투입해서는 안된다.▲일본의 점령을 사전에 봉쇄하기 위해만주와 대한제국은 별개의 문제임을 선언하고 독립을 지원해야 한다(1903년 7월4일 알렉세예프 극동총독이 로젠 주일공사에게 보낸 비밀전문). 대한제국 러·일 분할점령안에 따른 중립지대(완충지대)설정에 대한 극비메모도 흥미롭다. 중립지대 설정에 대한 자료는 외무성에 없으며,알렉산드르 미하일로비치(니콜라이 1세의 손자) 대공의 1899년 3월6일자 극비메모에는 아무르강 하구에서 원산만까지,그리고 서울과 제물포를 포함하고 있다(1903년 3월11일 외무상이황제에게 보낸 상주서). 다소 오락가락하긴 하지만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이 일본으로 넘어간 뒤 러시아는 대한제국의 독립국 유지를사실상 포기한 채 이권 챙기기에 주력했음을 다음의 외무성 훈령은 보여준다. 러시아의 이해관계나 대한제국의 심각한 하소연이 없는한 일본 통감부의 지시에 가급적 관여하지 말 것.일본 당국에 대한 한인의 불만에 개입하지 말고 열강의 최혜국 국민으로서 법적인 권리를 사수하라.열강이 영사관을 개설하는 지역에 러시아영사관 개설의 필요성 여부의 의견을 상신하라.특히 러시아제국 정부에 전폭적인 충성심과 믿음을 보인 고종이 실현불가능한 기대를 갖고 러시아에 요구를해올 때 일본과의 사이가 악화되지 않도록 어떠한 약속도자중하라(1906년 외무상이 대한제국에 부임하는 플란손 총영사에게 내린 훈령). 러·일전쟁에서 패배,일본과 굴욕적인 조약을 맺음으로써 대한제국에 대한 영향력을 완전히 상실한 러시아의 비탄과 몸조심은 더욱 두드러졌다.플란손은 1905년 12월 작성한 비망록에서 “러시아는 지난 10년간 대한제국에서 이룩한 외교적 성공을 잃어버렸다.”고 자탄했다.니콜라이2세는 같은해 11월 고종의 계속되는 독립유지 지원 호소에 대해 “고종 황제에게 ‘패전 이후 혁명세력의 확장으로 더이상 도와줄 수 없다.’는 전문을 보내라.”는 칙령을 외무성에 내렸다. 제정 러시아는 신흥 일본제국주의에 패배해 눈물을 흘리며 물러갔지만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훗날을 기약하고 있었다.로젠 당시 미국대사는 1906년 외무성에 보낸 문서에서 “러시아가 남으로는 우크라이나에서 동으로는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국토를 확장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그 영향이 이제 대한제국에까지 미쳤으나 러·일전쟁의 패배로 30∼40년 후퇴했을 뿐이다.”라고 기록했다. 이같은 지적은 40년 뒤 소비에트사회주의연방공화국(러시아)의 38선 이북 점령으로 현실화됐다. 노주석기자 joo@ ■러 당시 외교라인 대한제국 말 러시아의 한반도정책이 오락가락한 이유는무엇일까? 가능하면 일본이나 청과의 전쟁을 피하되 대한제국에서의 정치적·경제적 이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실리 위주의 외교정책에 1차적인 원인이 있지만 당시 매파와 온건파로 양분됐던 외교라인의 분열도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당시 한반도정책의 최고 결정자는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2세였다.이번에 발굴된 러시아 극비문서에 따르면 그는 1901년 파블로프 대리공사가 “서울에서 개에 물려 광견병 예방주사를 맞으러 도쿄에 왔다.”고 보고하자 “휴가를 줘 충분한 치료를 받게 하라.”는 시시콜콜한 것부터 “일본군이 서해 38선을 월선해 상륙하면 즉각 발포하라.”는 구체적인 지시를 내릴 정도로 모든 사안을 직접 챙겼다. 니콜라이2세가 극동관련 문제에 대해 보고를 받는 공식외교라인은 외무상의 직접 보고,극동총독의 상주서,일본·청·조선주재 공사들이 황제 또는 외무상에게 올리는 보고서 등 크게 세 가지 경로였다.이밖에 황실근위연대 기병장교출신으로 상서(명예 무임소장관)의 직위를 가지고 있던측근 베조브라조프 극동특별위원장,황족인 알렉산드르 미하일로비치 대공,뷔테 재무상 등 비선(秘線)보고도 영향을 끼쳤다. 니콜라이2세는 모든 보고서를 빼놓지 않고 탐독한 뒤 자신의 의견을 보고서에 남겨 정책에 반영토록 했다.하지만대한제국의 독립국가 유지,일본과의 분할점령안,전역 점령안 등 상황에 따라 바뀌는 외교정책의 큰 틀에 대해서는개인적인 판단은 갔다. 다음으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훈령을 통해 각국주재 공사를 통제하고 황제에게 의견을 올린 외무상이었다.기르스,로바노프,람즈돌프 등 역대 외무상들이 대체로 온건파여서 일본과의 전쟁을 피하자는 주장이 득세한 것으로 드러났다.여기에 뷔테 재무상과 쿠르파트킨 육군상 등이가세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과의 일전불사,한반도 무력점령을 주장한 매파로는베조그라조프 극동특별위원장과 아바자 극동특별위원회 사무총장,플라베 내무상,알렉세이예프 극동총독,두바소프 태평양함대 사령관 등이 대표적이다. 알렉세예프 극동총독은 극동정책 결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1903년 여순에 설치된 극동총독부는 외교권을포함,극동관련 사무의 1차적인 처리권을 보유하고 있었으며,러·일전쟁 발발 직전까지 러시아의 극동정책은 외무성과 극동총독부가 공동으로 관여하는 2중구조로 돼 있었다.극동총독부의 설치와 권한부여는 당시 러시아의 신(新)극동정책을 주도한 베조브라조프 극동특별위원장의 작품이었다. 로젠 주일공사도 일본에서 한반도정책을 원격 조정하는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로젠 남작은 세 차례에 걸쳐 일본주재 공사를 역임했으며 1904년 러·일전쟁 당시에도 일본공사였다.이후 미국대사로 승진,1905년 포츠머스 러·일강화조약 당시 러측 협상부대표를 맡았다. 노주석기자
  • [씨줄날줄] 보수에도 색깔?

    정신적인 질환을 앓는 환자들이 병원을 찾는 것은 스스로변화를 원해서다.아이로니컬한 것은 환자들은 치료시간의대부분을 그 변화에 저항하느라 보낸다는 사실이다.한 심리학자는 이 모순을 “환자들은 일생동안 자신에 대해 갖고있는 꿈을 포기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경영자나 컨설턴트가 걸핏하면 ‘변화’란 주제를 들고 나오는 것도 변화에 대한 인간 심리와 관계가 있다.‘종전대로는 안된다.’,‘기존 조직으로는 발전이 없다’고 역설해야 주목을 받을 수 있다.사람들은 대부분 지금까지의 삶을지탱해온 습관,전통과 제도에 집착한다.그러면서도 늘 ‘어제와 같은 오늘’에 지루해 하며 변화를 꿈꾸는 등의 갈등을 겪고 있다. 보수주의(conservatism)는 사상보다는 삶의 연속성과 안정성에 집착하는 인간 본성에 더 뿌리를 두고 있다.‘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는’안전제일주의,전통과 관습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변화에 대한 공포감 등이 보수주의를 떠받치는 기둥이다.말로는 ‘확 뒤엎어 버리고 싶다’고 해도자신의 생활이 정말 뒤엎어지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별로없다.급격한 변화와 새 환경적응에 따른 스트레스는 고통일경우가 많다. 한마디로 보수주의의 토양은 구체적인 정책보다 인간의 심리적인 성향이라고 할 수 있다. 보수주의는 프랑스대혁명후 1815년 왕정복고주의자들이 처음 사용했다고 한다.그후 여러 분파가 생겨 보수주의의 색깔도 다양화됐다.심지어 좌파적인 정치와 경제노선을 띤 보수주의도 있다고 한다.시장주의와 경제성장을 중시하되 그자체를 목표로 하지 않는 미국의 ‘신(新)보수주의’는 원래 구(舊)좌파의 한 분파에서 비롯됐다. 딱히 이념을 끌어내기 어려운 보수주의도 있다.일본의 ‘자유민주당’은 이름과 달리 보수주의 정당이다.그러나 자민당을 결집시키는 바탕은 정책공약이 아니라 당내 파벌지도자에 대한 충성심이다. 개인의 성향을 규정짓기는 쉽지 않다.경제학자이며 사상가였던 하이에크는 자신이 ‘보수주의자’임을 단호히 거부했지만 추종자들은 그를 ‘보수주의적 자유주의자’라고 불렀다.밖에서는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진보적’인 인사가 집에서는 전통적인 남녀 역할을 구분하는 보수주의자일 수 있다.최근 야당후보들이 경선을 앞두고 각자 자신을 ‘따뜻한보수’‘개혁적 보수’ 또는 ‘신중도노선’등으로 불렀다. 정말 어느 정도 색깔이 다른지 두고 볼 일이다. [이상일 논설위원 bruce@
  • [지방자치 새 패러다임] (2)불공정인사의 폐해

    ■'내 사람 심기'차단 제도화 절실. 지방선거(6월13일)를 앞두고 공무원들의 줄서기·눈치보기 등이 심화되고 있다.누가 다음 자치단체장으로 선출될것인가를 저울질하고 당선 가능성이 높은 진영에 줄서기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새로 당선된 단체장쪽에 서야 중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측근 중용 등 단체장들의 인사권 남용과 공무원의 줄서기·눈치보기·정치화 등은 여러가지 부작용을 낳고 있다.그러나 자치단체의 인사권은사실 단체장의 고유 권한이라 할 수 있다.단체장이 자신과 연고가 있는 사람을 특정 직위에 임명하더라도 법적 하자가 없는 한 이를 문제삼거나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렇지만 일부 단체장의 인사권 남용을 그대로 방치해서는 안된다.중앙정부와 정치권에서는 자치단체의 부단체장이 지방직으로 전환된 이후 단체장의 인사권 남용과 비리등을 이유로 부단체장의 국가직화를 주장해 왔다.그러나이 방안은 지방자치단체의 운영에 중앙권력이 개입함으로써 지방자치의 본질적 가치를 훼손하는 것은 물론,자치단체내에 민선단체장과 중앙정부에 의해 임명된 부단체장간의 갈등을 야기할 소지가 많고 이에 따라 조직이 이분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방안이다. 단체장의 인사 전횡문제는 지방자치의 틀 속에서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한다.해결방안으로 고려할 수 있는 첫번째는 자치단체 주요 직위에 대해 지방의회의 동의권을 부여하는 것이다.이는 중앙정부에서 대통령이 정부의 주요 직위 임명을 위해서는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것과 동일한 논리이다.즉,지방의회의 중요한 기능 중의 하나가 단체장에 대한 견제에 있으므로 단체장이 자치단체의 주요 직위에 임명하고자 하는 자의 자격과 직무수행능력에 대해지방의회가 동의권을 행사하도록 함으로써 단체장의 인사상의 전횡을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두번째 방안은 현재 형식적으로 운용되고 있는 자치단체인사위원회의 운영을 실질화하는 것이다.인사위원회는 지방공무원의 충원·승진·전보·징계 등에 관한 기준을 의결하고 집행부가 지방의회에 제출할 공무원의 인사와 관련된 조례 및 규칙을 사전 심의하기 위해 설치되어 있다. 인사위원회는 5인 이상 7인 이하로 구성되는데 위원의 자격은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법관과 검사 또는 변호사,대학의 부교수 이상,초·중·고 교장,20년 경력 이상의 퇴직공무원 등이다.그러나 현재의 인사위원회는 능동적으로 기능을 수행하기보다는 집행부,특히 단체장에 의해 내려진결정을 단순히 추인하는 수동적인 기능을 하는데 그치고있는 것이 사실이다.따라서 인사위원회의 기능을 활성화한다면 단체장의 인사상의 비합리적 조치나 전횡을 방지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이를 위해서는 인사위원회에 지방의회의원 1∼2명을 포함시키도록 하고,지역의 NGO 등 시민대표 1명도 포함하도록 함으로써 인사위원회가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기능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세번째 방안은 공무원의 근무평정에 다면평가제를 도입하고 그 결과를 인사조치에 반영하도록 하는 것이다.다면평가제는 공무원 개인을 평가할 때 상급자에 의한 평가뿐만아니라 동료와 하급자에 의한 평가도 포함하여 조직 내에서의 개인의 능력과 태도를 다각적으로 평가하는 제도이다. 다면평가제의 도입을 제도화하면 공무원은 상급자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하급자와 동료들로부터 능력을 인정받아야하므로 단체장에의 줄서기를 상당부분 방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그리고 다면평가제는 지방의회에서의 입법을 통해 제도화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지방자치는 주민들의 참여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따라서 주민들이 자치단체와 단체장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할때 단체장의 전횡도 방지할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최창수 고려대 교수. ■임영호 대전동구청장. 자치단체장들은 불공정 인사에 대한 비판에도 일부 문제가 있다고 본다.임영호 대전 동구청장은 단체장의 행정 효율 추구와 연공서열 중심의 공무원 문화의 충돌 가능성을지적했다.임 청장은 지난 2월 ‘리더십의 유형과 행정상의 상관관계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단체장들의 불공정인사가 비판받고 있는데. 솔직히 어느 정도 인정은 하지만 혈연·지연·학연·선거 공헌도 등이 인사에 미치는 영향은 그렇게 심각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그보다 더욱 큰 문제는 인사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전체 인사를 매도하는 것과,능력이라는 미명하에이루어지는 단체장의 측근인사인 것 같다.단체장들은 자신이 얼마나 객관적인 판단으로 직원들의 능력을 가늠하여인사하는가를 스스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공무원들도 ‘공정한 인사’라는 미명하에 진부한 ‘연공서열’의 인사를고집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불공정 인사라는 비판을 적게 받고 인사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은. 행정도 하나의 경영이다.조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단체장과 호흡을 같이할 수 있는 사람으로 팀워크를 이루려는 단체장의 입장도 이해해 줘야 한다.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이런 인사가 측근인사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CEO라는 입장에서 보면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인사 재량이 필요하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공무원의 능력을 보다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입증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들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하나의 예로 현재 ‘성과주의’ 등 새로운 제도들이 도입되고있는데 아직정착되지 못하고 있다.공정하고 투명한 인사를 위해 모두노력해야 한다.지금 시점에서 바람직한 인사방안은 ‘다면평가’라는 과도기적 수단을 적절히 사용함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즉 직원사기를 고려하는 ‘연공서열’,그리고일에 대한 ‘열정’과 ‘능력있는 사람’을 복수로 추천받아 실시하는 다면평가 방식의 인사가 바람직하다고 본다. 이창순 공공정책연구소 연구위원. ■불공정인사 사례. 지방 공무원 정씨에게 95년 8월은 잔인한 달이었다.날벼락처럼 날아든 인사발령 통지는 8월의 무더위에 지쳐있던그를 분노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렸다.정들었던 연고지에서 멀리 떨어진 낯선 곳으로 좌천됐기 때문이었다.공무원들의 다른 지역 발령은 늘 있는 일이다.그럼에도 그가분노했던 것은 새로 선출된 자치단체장의 불공정한 인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고향과 새 단체장의 고향은 첨예한 갈등을 보이고있는 지역이다.그는 호남 출신이고 단체장은 영남 출신이었다.단체장들이 새로 바뀌면 일부는 지연·학연·혈연·친소관계·충성심·선거 기여도 등을 배경으로 불공정 인사를 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는데 열심히 일하던 그도 그런인사의 희생물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그러나 그의 ‘불행’은 시간적으로 그렇게 길지는 않았다.98년 선거에서 같은 고향의 새단체장이 당선된 후 다시 연고지로 돌아왔다.지금은 고위직까지 올랐다.그는 고향이 같다는 이유가 아니라 제대로능력을 평가받았기 때문에 돌아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그러나 지역 갈등적 관계에 있는 전 단체장이 재선에 성공했더라면 돌아올 수 없었을 것이라고 고백했다. 그는 ‘좌천 인사’가 공무원 사기에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가를 실감했다.공무원 생활에 회의를 느끼며하루에도 몇번씩 그만둘까 생각했다.아침에 출근할 때는그만두어야지 생각하다가도 퇴근할 때는 비록 힘들지만 참고 견뎌야지 하며 마음을 고쳐 먹곤했다.자녀들 학교 때문에 이사가기도 어려워 버스로 2∼3시간 걸리는 먼거리를통근했다.그는 매일 첫차를 타고 출근했다.겨울의 새벽 출근은 큰 고통이었다.뼛속까지 파고 드는 새벽추위를 참으며 버스를 기다리는 일은 너무나 힘들었다.고통의 시간을견뎌내고 사무실에 들어오면 몸이 지쳐 일의 능률이 오르지 않을 때도 있었다.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싫어 초기에는 소극적으로 일하기도 했다.잘못된 인사가 이처럼 ‘불성실한 공무원’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체험했다. 그러나 그는 감정의 늪에만 빠져 있다가는 실패한 공무원이 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꼈다.마음을 가다듬고 맡은일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다.분노와 고통의 날들을 세월의 여울로 흘려버리고 다시 돌아왔을 때 조금은 성숙했음을 실감했다.‘좌천인사’는 그를 화나게 만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어 새로운 발전의 동인이 되기도 했다.‘불이익’을 당한 공무원 가운데 자기 능력의 부족함은 탓하지 않고 불공정 인사라고 매도하는 일이 많다는 단체장들의 말에 그도 어느 정도 공감한다고 말했다.그러나 단체장들이 측근만을 주요 자리에 앉히려는 일은 자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능력도 갖춘 측근이라면 몰라도 능력보다는 측근이라는이유만으로 중용하는 일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공무원들이 일보다는 단체장에게 잘 보이려는데 더 많은 신경을 쓰게 만들기 때문이다.한번 눈밖에 나면 그 단체장이있는 한 늘 찬밥신세라는 것이 지방자치시대 공무원들의일반적인 정서다.능력보다 측근이라는 이유로 중용하는 불공정인사는 공무원의 사기저하·편가르기·내부불화·줄서기·정치화 등 심각한 부작용을 불러온다. 이창순 공공정책연구소 연구위원 cslee@
  • 탈북자 北京농성/ 집단 탈북 파장·의미

    최병섭씨 일가를 비롯한 6가족 등 25명의 집단 탈북을 놓고 대량 탈북 사태로 이어지는 신호탄이 될지 모른다는 분석이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1994년 이후 탈북자들이 급증하고 있는 데다 이번 탈북 사태가 규모 면에서 가장 크다는 점이 이런 분석을 뒷받침하고 있다.지금까지는 1996년 12월 김경호씨 일가족 17명과 97년 5월 안선국씨 일가 14명 등이 대량 탈북의 대표적 사례였다. 북한 주민들을 대량 탈북으로 몰아내는 가장 큰 요인은 점차 심각해지는 북한의 식량난과 강압 정치에 따른 북한 주민들의 좌절감이다.이들은 스페인 대사관에서 배포한 성명을통해 식량과 자유를 찾아 탈북했다가 중국 공안당국에 체포돼 북한으로 송환돼 수개월간 구금된 적이 있다고 밝혔다. 북한의 식량사정은 최근 1∼2년 동안 국제사회의 지원과 큰 자연재해가 없어 나아졌다고는 하나,여전히 연 160만t 정도가 부족한 형편이다.북한 당국이 최근 식량배급량을 평소의절반 수준인 하루 300g으로 줄인 데 이어 본격 춘궁기에 접어들면 식량배급이 중단될 것이라는 게 베이징 주변을 떠도는 탈북자들의 전언이다. 따라서 북한 주민들은 암시장이 없으면 하루도 살아갈 수없는 한계상황에 이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이 때문에 이른바 ‘한계 인민’들의 집단 탈북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겨울철 북한과 중국 국경의 압록강과 두만강이 얼어 탈출이 쉬운 점도 대량 탈북 가능성을 높여준다.이들중 일부가 두번째 탈북을 한 점은 북한이 그동안 탈북자가 생길 때마다강화해온 국경경비와 주민들에 대한 사상교육이 실패했다는방증이다. 북한체제의 위기도 한몫하고 있다.북한 당국은 군과 사회안전부 등을 동원,주민들을 감시하는 철저한 사회통제를 통해체제를 유지해 왔다.하지만 식량난이 심화돼 통제요원들의체제수호에 대한 사명감이 퇴색하고,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충성심마저 약해지고 있다. 집단 탈북은 통제요원들의 묵인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국가체제가 위기를 맞고 있는 셈이다. 김 위원장의 체제에 대한 주민 반발이 가족단위지만 집단화 추세를 보이는 것도 체제위기의 한 단면이다.주민들의 자율성이인정되지 않고 북한 사회의 전분야가 제대로 돌아가지않아 북한 주민들의 삶이 최악의 상황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한 구호단체의 활동이 점차 다양화·조직화되는 것도 탈북자 증가에 일조하고 있다.북한내 경제적·정치적 사정이 시급히 개선되지 않는 한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거는 탈북 행렬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베이징 김규환특파원 khkim@
  • “청장님 개 찾습니다”형사들이 탐문수사

    경기지방경찰청 형사들이 청장의 생후 2개월된 진돗개를찾기 위해 전단을 만들어 집집마다 방문하는 등 탐문수사를 벌여 주민들의 빈축을 사고 있다. 12일 수원시 장안구 조원동 주민들에 따르면 이달 초 가정집에 배달되는 신문에 ‘강아지를 찾습니다’라는 전단이 끼워져 배포됐으며 지난주 초부터는 형사들이 2명씩 조를 지어 주택가 등을 돌며 개를 찾고 있다. A4용지 크기의 전단에는 ‘생후 2개월된 흰색 진돗개로 눈에 쌍꺼풀이있다.’는 개의 특징과 그림,지난달 22일 오전 10시쯤 조원동 기동수사대 앞길에서 잃어버렸다는 내용,기동수사대사무실 전화와 형사의 휴대폰번호가 인쇄돼 있다. 기동수사대 관계자는 “누가 시켜서 그런 것은 아니며 충성심이 지나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해명했다.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
  • 공무원·국민 행정인식 조사

    한국행정연구원이 조사·분석한 ‘행정에 관한 공무원과 국민의 인식’ 자료는 공직사회는 물론 공직자의 실태를 제대로 보여준다. [공무원의 공직관] 공직선택의 이유로는 ‘신분 보장’(39.7%)이 가장 높았다.다음은 ‘공무수행의 역할과 사명’(15.8%),‘부모·친지 권유’(15.1%)였다.자녀의 공직 진출에 대해서는 39.6%가 찬성했고,17.6%는 반대했다. 그러나 ‘공직 만족도’는 26.3%가 만족,51.7% 중립,21.6%는 불만을 표시해 공직생활에 크게 만족하지 못함을 보여준다.만족도는 ▲특별·광역시 거주자 ▲특채보다는 공채가 많았다.가장 큰 고민거리는 생계비 부족(41.6%),승진문제(39%)라고 응답했다. [공직사회에 대한 인식] 국민의 경우 공직을 부정적 시각으로 보았다.공직의 종합평가를 지역별로 보면 호남이 긍정적으로 평가했고,영남은 부정적으로 평가했다.특히 대구의 평가점수는 ‘낮다’가 41%,‘높다’가 3%로 조사됐다. 공직자가 갖춰야 할 자질은 공무원과 국민 모두가 청렴성·전문성·책임성을 꼽았으며,정치적 중립성이나 충성심은 중요하게생각하지 않았다. 공무원은 전문성을,국민은 청렴성을 수위로 들어 행정 전문화와 부정부패 척결이 현안임을 인식하고 있다. 국민 지탄의 단골메뉴인 ‘무사안일’의 원인으로는 공무원은 ‘열심히 일해도 적절한 보상이 뒤따르지 않는다’(33.8%),‘공연히 일을 만들어 잘못되면 책임지게 되므로’(21.8)등을 우선시해 성과에 대한 적절한 보상방안 마련이 시급함을 보여준다.반면 국민은 ‘공직자로서의 사명감이 부족해서’(24.4%)를 첫째로 보았다. [제도·정책에 대한 인식] 공무원 당사자는 ‘인사정책의 일관성’(53%)과 ‘근무평점제 공정성’(45.9%),‘승진의 공정성’(45.8%)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특히 ‘인사의 일관성’은 지난 98년 조사 때(50.2%)보다 불만이 컸다. 보수 인상이 필요한 이유에 대한 질문에서는 공무원은 ‘기본생계비 보장’(45.9%)을,국민은 ‘부정부패 척결’(50.1%)을 들어 상반된 견해를 보였다.공무원은 최근의 공무원 부정부패의 원인을 보수가 적기 때문으로 보고 있었다. 정책에 영향을 주는 집단은공무원·국민 모두가 정당 및정치인,언론,재벌 및 기업인,시민·사회단체,공무원 순으로꼽았다. 또 정부정책(15개 분야)에 대한 평가에서 공무원·국민 모두가 교육분야(공무원 74.6%,국민 74.2%) 경제분야(61.2%,70.5%)를 부정적으로 보았다.교육정책은 공교육 붕괴,대학입시,고교 평준화 등 일련의 정책 문제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그러나 공무원 국민 모두가 정보통신 및 통일정책을 높게 평가했다. [행정 개혁] 공무원은 개혁 방안으로 ‘인사제도 및 관리 재정비’(21.2%)와 ‘정부산하기관의 정리 및 합리화’(20.3%)를 든 반면,국민은 ‘정부산하기관의 정리 및 합리화’(19.6%),‘공무원 인사제도 및 관리 재정비’(15.8%)를 우선시했다. [정부 역할] ‘확대해야 할 정부기능’은 1,2문항 복수로 질문한 결과,공무원·국민 모두가 경제를 비롯,복지·교육·환경을 꼽았다. 수년간 경험했던 경제불황이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축소해야 할 기능은 모두 국방을 들었다.이는 현 정부가추진하는 통일정책의 영향에 기인하고 있다. [행정 서비스 등 기타] 공무원·국민 모두가 일관성(공무원49.1%,국민 50.2%)에 가장 불만을 나타냈고 친절성(25%,40.1%)에 가장 만족했다.특히 전문성은 공무원·국민 모두가 30% 이하로 부정적인 견해를 보여 전문성 확보가 시급함을 보여준다. 정기홍기자 hong@ ■현안행정 인식차 뚜렷. 개방형직위제와 교원성과금제의 확대에 대해 국민은 지지를,공무원은 반대의견을 제시했다.특히 남성 공무원 사이에 부정적 시각이 많았다.두 항목 모두 근무경력 11∼20년과 21∼30년에서 많이 반대했고,40대와 30대에서도 반대가 많았다. 공직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적절한 방안이지만 공무원들은시행과정에서의 문제점에 불만을 표시했다. 일반공무원의 노조 허용문제는 공무원 74.4%가 긍정적으로보고 있는 반면 국민은 반대가 동의보다 조금 많았다.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고교평준화에 대해서는 공무원은 동의와 반대가 비슷했다.그러나 국민은 43.9%가 동의,반대율(22.5%)보다 두배 정도 높았다. 정부의 4대 부문 개혁 평가는 금융·기업·공공·노동부문모두 공무원과 국민이 미흡함을 표시했다.금융은 다른 부문에 비해 만족도가 상대적으로 컸고,대도시 거주자가 소도시보다 더 만족했다.기업부문은 4개 부문 중 불만이 가장 높았다. ■설문조사 응답내용 변화. 공직자가 갖춰야 할 자질로는 설문을 처음 시작한 92년과 95년에는 책임성,98년(IMF사태 때)엔 근무능력,지난해에는 전문성이 우선 꼽혔다. 공무원의 무사안일 원인에 대해서는 92년에는 ‘자율성 부여 부족’을 들었고,95·98년은 ‘업무 잘못에 대한 책임 문제’가 가장 많았다.지난해에는 ‘적절한 보상이 없어서’를 지적했다. 정부정책 중 외교통상정책은 92년 이후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고,경제·교육정책도 95년을 정점으로 긍정적인 측면이 줄어들고 있다.복지·환경정책은 95년을 정점으로 IMF사태 때인 98년에 바닥을 치다가 다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통일정책은 95년을 바닥으로 정부의 햇볕정책에 이르기까지꾸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확대돼야 할 정부기능은 ▲92년 통일정책 ▲95년 환경정책▲98년과 지난해에는 경제정책을 들어 시대상을 잘 반영한다.축소 분야는 지난해 조사에서 국방정책이 지적됐다.
  • [실패 대탐구] 제3부 실패자산을 공유하자 (7)검찰의 정치적 중립

    지난달 3일 정부는 ‘검사의 청와대 파견제도’를 폐지한다고 발표했다.이에 법조계는 일제히 환영의 목소리를 냈다.이 제도가 그동안 검찰과 권력 핵심부를 연결하는 통로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그러나 이번 조치로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 정착될 수 있을까.대다수 국민들은 여기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이전에도 숱한 검찰개혁 방안들이 발표되고 관련 법과 제도들이 도입됐지만 검찰은 아직도 ‘권력의 시녀’와 ‘정치 검찰’이라는 지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검사들이 ‘홀로 서기’를 하지 못하고 검찰이 ‘정치적 오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검찰권은 여당의 전리품이 아니다. 검찰이 ‘홀로 서기’를 하려면 정치권이 ‘과욕(過慾)’을 버려야 한다.여당은 아직도 검찰권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해 쟁취한 전리품으로 인식하고 있다.이 점은 야당도 마찬가지여서 정권교체가 이뤄져본들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경험이다.. 검사 청와대 파견제도만 해도 법적으로 금지돼 있는 제도를 편법으로 운영해왔다.현직 검사를 임명할 수 없게 되자 사표를 받고,청와대에 파견시킨 뒤 재임용 형식을 빌려 복귀시켰다.파견 검사들이 검찰에 복귀할 때는 대부분 주요 보직을 차지했다.편법으로라도 검찰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권부의그릇된 욕심이 빚어낸 결과다. 실제로 정권만 잡으면 검찰권을 정권유지에 이용하다가 정권 교체 이후에는 부메랑 효과처럼 정치보복을 당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지난해초 정치권을 달군 ‘안기부 예산전용 사건’ 수사때 일이다.당시 여권이나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먼저 옛 여권 인사들의 연루 사실을 언급하고,검찰지휘부가 이에 대해 화답하는 이상한 광경이 연출됐다.급기야 검찰이 청와대에 보고한 것으로 추정되는 ‘연루 정치인명단’까지 공개됐다. ◆연줄 인사가 중립성 훼손의 시발점. 검찰 인사만큼 권력의 부침이 심한 조직도 드물다.그만큼‘줄서기’나 ‘선대기’가 다반사라는 얘기다.인사 때마다‘누가 밀어줬다.’ ‘누구와 무슨 인연이 된다더라.’하는잡음이 끊이질 않는다. 검찰 수뇌부의 인사는 개인의 능력이나 조직 내부의 평가보다 정치권 실세와의 친분이나 지연·학연 등의 연줄에 의해좌우되는 경우가 많았다.요직에 등용될 때부터 검찰 수뇌부가 외부에 신세를 지게 되고 이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의 수사에서 외부의 영향에 취약한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능력과 무관한 인사가 성행하다 보니 ‘사고’가 터지기 마련이다.‘이용호 게이트’의 단초는 지난 2000년 서울지검이 처음 수사할 당시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당시 담당 부장은 특수수사 경험이 적은 호남 출신이었다. ◆제도적 장치는 마련돼 있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은 현행 법규상으로도 이미 상당 부분 보장돼 있다.80년대 이후 검찰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요구가 거세지면서 제도 보완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지난 97년에는 검찰청법을 개정, 검찰의 정치적중립을 명문화했다. 그러나 검찰이 정치중립적인 조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드물다.정치적으로 민감한 각종 사건에서 여전히 검찰은 친(親)권부쪽으로 편향하고 있다는 의식이 팽배하다.그런 점에서 10여년 이상된 검찰의정치적 중립 노력은 ‘실패’라고 할 만하다. ◆검찰 스스로의 의지가 관건. 정치적 중립성 확보 등 검찰의 거듭나기는 검찰 스스로의 의지와 실천, 정치권의 뒷받침이있어야 한다는 것이 법조계 인사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특히 국가정보원이나 정치권 인사 등 권력기관 인사들이 개입된 사건의 경우,검찰의 ‘몸사리기’로 중립성 논란을 자초한 사례가 잦았다. 지난 2000년에 있었던 ‘정현준 게이트’와 ‘진승현 게이트’ 수사 당시 검찰은 국정원 고위간부와 여당 국회의원이연루됐다는 관련자의 진술을 확보했다.그러나 제대로 수사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가 뒤늦게 언론의 지적을 받고서야 재수사에 나섰다.서울지검의 한 소장 검사는 “사실 검찰이 욕을 먹는 사건은 전체 사건의 1%도 채 안된다.”면서 “수뇌부의 의지만 있으면 충분히 정치중립을 정착시키고,국민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반 yeomjs@ ■검찰 내부 자성론 고조. 지난 2000년 이후 계속된 각종 게이트에 대한 수사는 검찰에 대한 불신을 최고치로 올려놓았다.‘정현준 게이트’ ‘진승현 게이트’에 이어 ‘이용호 게이트’까지 검찰이 손을 댄 사건마다 죽을 쑤고 있다. 수사권을 쥐고,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는 검찰 내부에서 일고있는 자성론을 소개한다. “울화가 치밀어 못살겠다는 사람도 있고,자포자기하는 분위기도 있다.정치적 중립 문제 뿐 아니라 수사능력까지 의심받고 있는 상태에서는 일할 맛이 나지 않는다.”[지방의 모부장검사]. “도대체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다.” [서울의 한 소장 검사]. “검찰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았어야 할 일을 구분하지 못하고 권력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심을 보인 것이 오늘의 사태를 빚었다.”[수도권의 또 다른 부장 검사]. “검찰 조직의 총수가 연달아 불명예 퇴진하는 상황에서 더 이상 임용될 당시의 ‘초심’을 유지할 수 없어 검사의 길을 떠나기로 했습니다.”[최근 명예퇴직한 한 중견 검사]. 특별취재반
  • [민주 예비주자에 듣는다] 한화갑

    민주당 한화갑(韓和甲) 상임고문은 20일 대한매일과의 인터뷰에서 “어떠한 상황변화가 생기더라도 반드시 대권에도전할 것”이라며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대권 포기설을 일축했다. 한 고문은 전에 비해 훨씬 강하고 분명한 어조로 대권 도전 의사를 밝혀 이미 ‘대권이냐,당권이냐’의 고민을 끝낸 것 같다는 느낌을 줬다.다만 대권 뿐 아니라 당권에도도전할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정치철학을 계승하겠다는 입장인데,현 정권에서 비리가 끊이지 않는 현상을 어떻게 보나. 최근의 비리사건은 전 정권의 비리유형과는 차이가 있다. 전에는 권력 주변 인물이 연루됐지만,지금은 권력과 아무상관 없는 사업가와 공무원끼리 저지른 비리다.그동안 권력핵심에 대한 의혹은 많이 제기됐지만,한번도 사실로 밝혀진 적이 없다. ◆최근 서울 강남의 집값 급등현상과 같은 지역별·계층별 빈부격차 심화 문제는 어떻게 해소해야 할까. 집값이 오르는 것은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따라서 경제행위는 경제법칙에 따라 해결해야지 무조건 처벌하는 게 능사가 아니다. 근본 원인은 교육문제이므로,자녀가 어디가서 교육받든지문제가 없도록 하는 방향으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전당대회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대중 지지도가 별로 오르지 않는 것 같다. 일반 국민이 나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내가 그동안 국민을 상대로 한 정치를 한 적이 없어서다. 앞으로 TV토론 등을 통해 많이 알려지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다.나를 잘 알고 있는 우리 당원들 사이에서는 내 지지도가 높지 않은가. ◆일각에서는 한 고문이 결국 대권 도전을 포기하고 당권도전으로 선회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데. 왜 자꾸 그런얘기가 나오는지 모르겠다.나는 대권에 도전한다. ◆확실히 대권에 도전한다고 믿으면 되나. 분명히 그 길을 갈 것이다. ◆앞으로 어떤 상황변화가 생겨도 지금 한 말씀엔 변함이없는 것인가. 그렇다. ◆당권에도 도전하나. 그 얘기는 아직 할 때가 아니다. ◆대권과 당권에 모두 출마할 것이란 얘기도 나오는데. 성급하다.때가 되면 다 알게 된다. ◆항간에는 한 고문이 대권 대신 당권에 도전하는 식으로이인제(李仁濟)고문과의 연대설이 나오는데. 생각해 본 적 없다. ◆경선 승리를 위해선 권노갑(權魯甲) 전 고문과의 화해가 절실하다는 지적도 있다. 과거에 같이 일했던 진영이 이제 단합된 모습을 보일 때가 됐다.화합과 단결을 위해 나는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 ◆권 전 고문을 찾아가 만날 계획은. 아직 모르겠다.정치상황을 보고 나서…. ◆지난해 “나는 더이상 동교동계가 아니다.”라고 말한적이 있는데. 그런 얘기 한번도 해본 적 없다.나는 단지내가 김대중 대통령을 계승하겠다는 데 대해 의견차이가있다면 각자 생각대로 하자는 것이었다. ◆당내 경선과정에서 동교동계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나. 대통령의 뜻에 따라 중립을 지켜야 한다.그러면서도 우리 자체내의 정치력이 김 대통령 퇴임 이후에도 연장될 수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한 고문이 김 대통령과 고향이 같다는 이유로,당선 가능성에 회의를 제기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다 같은 대한민국 사람이다.미국의 부시가(家)는 한 집안에서 대통령을 2명이나 배출했다. ◆세간에는 앞날을 잘 예측하는 것으로 알려진 현불사 설송 스님의 말(한 고문이 차기 대통령 감이란 취지)을 듣고 대권 도전 의지를 굽히지 않는다는 소문도 있는데. 내 일은 내가 결정한다.누가 하라고 해서 하는 것 아니다. ◆(김대중 대통령의)비서 출신으로,행정경험이 거의 없어대통령 후보로 신뢰가 가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YS(金泳三 전 대통령)도 비서 출신이고,고이즈미 일본 총리도후쿠다 총리의 수행비서였다.대통령은 판단력이 중요하다. 실천은 밑에서 하는 것이다. ◆병역미필 경위를 해명해 달라. 서울대학교 졸업 후 ‘새물결’이란 잡지를 지용택씨와 같이 발행키로 했는데,지씨가 진보당 사건에 연루된 사상범이란 것을 뒤늦게 알았다. 이 때문에 나까지 요시찰 인물이 됐고,병역문제가 ‘스톱’됐다. 74년 중앙정보부에 잡혀갔을 때 내가 군대 안간 게 확인됐고,나중에 고향 본적지로 입영영장이 나왔다고 한다.그런데 나는 그때 집에 일체 연락을 끊고 다니던 상황이라영장 전달을 못받았다.하지만 법적인 문제가 있었다면,서슬퍼런 군사정권이 나를 가만히 놔뒀겠나. ◆대한민국 남자로서 나이가 찼는데 영장이 안나오면 경위를 알아보는 게 상식 아닌가. 당시 나는 김대중이란 분을대통령 만드는 게 일생의 과업이었고,온통 그 생각밖에는없었다.그리고 나는 그후 민주화투쟁을 하다가 감옥도 3번이나 갔는데,국민이 이 점을 대신 감안해줄 것으로 믿는다. ◆일각에서는 이번 경선에서 후보들이 엄청난 돈을 뿌릴것으로 우려하는데. 돈이 있어야 쓰지….돈을 못쓰게 하려고 국민경선제를 도입한 것 아닌가. ◆6월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패하면,4월에 뽑힌 대선후보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보나. 지금은 그런 얘기 할 때가아니다.당이 힘을 한 데 모아야 한다. ◆한광옥(韓光玉) 대표가 경선에 출마하려면 대표직을 미리 내놓아야 한다는 지적이 있는데. 민주정당에서 리더십을 갖고 있는 사람의 프리미엄은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 김상연기자 carlos@ ■다른 주자들이 보는 한화갑. “당내 기반은 탄탄하지만 대중적 지지도가 낮다.” 한화갑 고문의 장·단점에 대해 다른 대선주자들은 하나같이 ‘장점이 곧 단점이고 단점이 곧 장점’이라는 식의평가를 내놨다. 김대중(金大中·DJ)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이 높은 것으로 각인돼 있는 게 장점이라면 정치적 안목이 DJ의 철학 속에 갇혀 있는 것으로 비쳐지는 것은 단점이다.당내 지지도에서는 선두권이지만 대중 지지도에서는 하위권이란 지적도 마찬가지다. 한 고문으로서는 그동안 차곡차곡 쌓인 캐릭터가 어느덧자신만의 독특한 ‘정치적 자산’이 됐지만 그것이 또 고스란히 만만치 않은 ‘정치적 부채’가 되고 있는 셈이다. ‘영남 후보론’을 주장하고 있는 김중권(金重權) 고문측은 “오랜 민주화투쟁으로 개혁이미지가 강하고,DJ의 정치적 적자(嫡子)란 점이 한 고문의 장점이지만 호남 출신으로 지역적 열세에 있는 점은 단점”이라고 지적했다. 한 고문과의 연대를 기대하고 있는 노무현(盧武鉉) 고문측은 “부드럽고 합리적이며 친화력이 있다.”고 칭찬했다.반면 단점으로는 “대중의 지지도가 낮다.”고 짧게 평했다. 한 고문의 대권 포기를 전제로 연대를 기대하고 있는 이인제(李仁濟) 고문측은 “친화력과 DJ에 대한 충성심을 높이 사고 싶다.”면서도 “한 고문이 당권과 대권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는 것은 신뢰감을 주지 못하는 요인”이라고지적했다.특히 “너무 의도적으로 DJ를 흉내내려는 것 같아 거부감을 준다.”고 덧붙였다. 정동영(鄭東泳) 고문측은 “당 대의원들의 두터운 지지를 받고 있지만 비서출신으로서 대중 지지도는 열세에 있다. ”고 말했다.김근태(金槿泰) 고문측은 “친화력이 좋고 DJ에 대한 충성심이 높다.”면서도 “정치적 시야가 DJ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고 평가했다. 홍원상기자 wshong@
  • 北 ‘큰 행사의 해’

    북한에는 올해 유난히 큰 행사가 많다. 특히 이들 행사는상반기에 집중돼 있다. 오는 4월29일부터 두 달간 10만명이 동원되는 집단체조 ‘아리랑’공연 외에도 김정일 국방위원장 환갑(2월16일),김일성 주석 출생 90돌(4월15일),인민군 창건 70주년 기념일(4월25일)이 이어진다. 북한은 이들 기념일을 대규모로 치른다는 계획아래 다채로운 행사들을 준비해 왔다.이미 지난해 초부터 해외 각국에서 김 주석과 김 위원장의 생일행사를 위한 ‘준비위원회’가 결성됐으며,북한 내부적으로도 행사준비위원회가 조직됐다. 북한은 특히 김 주석 출생 90돌 행사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는 ‘수령=영생’을 내세워 주민들의 절대적 충성심을 이끌어내 김 위원장의 통치기반을 강화하려는 데 목적이 있는것으로 보인다. 올해 신년 공동사설 제목이 아예 ‘위대한수령님 탄생 90돌을 맞는 올해를 강성대국 건설의 새로운비약의 해로 빛내이자’였다. 이에 따라 김 주석 생일을 전후해 제20차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제4차 ‘김일성화 전시회’,‘국가도서전람회’,‘평양미술축전’ 등의 행사가 계획돼 있다.김 주석 관련서적과 기념우표도 발행된다. 김 위원장의 60회 생일을 맞아서는 김 위원장이 태어난 백두산 밀영에서 ‘21세기 태양맞이 모임’,‘주체사상에 관한 세계대회’,‘국제 문예작품 현상 모집’ 등 국제적인행사가 예정돼 있다.밀영지구에 기념탑도 세울 방침이다.앞서 제6차 김정일화 전시회가 다음달 13일부터 평양 인민대학습당에서 열린다.이밖에 중앙보고대회,예술공연과 체육대회,답사행군,영화상영,토론회,기관·단체별 충성모임 등이잇따라 개최된다. 인민군 창건 70주년 기념일에는 ‘선군(先軍)정치’가 크게 강조되고 있는 만큼 중앙보고대회,경축야회,예술공연 등의 기념행사뿐 아니라 대규모 군사퍼레이드가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북한은 오는 2월부터 6월까지 상반기내내 축제분위기로 떠들썩할 전망이다. 이에 대해 북한문제 전문가들은 “이같은 행사비용을 어떻게 충당하느냐가 관건”이라며 “이에 따라 북한이 조만간남북,북·미대화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전영우기자
  • 청와대 표정 “연이은 악재 어디까지”

    청와대가 ‘윤태식 게이트’의 후폭풍(後暴風)에 초긴장하고 있다.야당이 전날 사의를 표명한 박준영(朴晙瑩) 전국정홍보처장 이외에 그 윗선이 있다고 주장을 펴고 있는데다 검찰 수사가 진행중인 상황이어서 단정할 수도 없기때문이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10일 오전 아무런 말없이 박 전 처장의 사표를 수리한 것으로 알려졌다.이어 열린 올해첫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도 김 대통령은 충격 탓인지 표정이 매우 굳어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김 대통령은 박 전 처장의 충성심과 성실성을 높이 사왔다.박 전 처장은 청와대 공보수석으로 있을 때나처장으로 있을 때 가장 먼저 출근하고 제일 늦게 퇴근한사람이었다. 박 전 처장도 이에 부담을 느껴 이름이 거론되자마자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고위 사정관계자는 “아직까지 박 전 처장의 범죄 혐의점은 없는 것으로 보고받고 있다”면서 “그럼에도 그가 김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부담을 주기 싫어 바로 사의를 표명했다”고 전했다. 청와대도 최근까지 박 전 처장의 연루사실을 몰랐던 것같다.다른 관계자는 “(박 전 처장이 윤씨를 만난 것은)전혀 예상치 않은 일”이라며 “사전에 정보도 없었다”고실토했다. 더 이상 정권 핵심으로 불똥이 튀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는 게 청와대의 지금 형국이다.“박 전 처장 윗선이 또 있다”는 야당의 주장에 대해서는 “언제 야당의 주장이 맞은 게 있느냐”라고 무게를 두지 않았다.오는 14일 연두기자회견을 앞두고 이같은 악재가 터져 김 대통령과 청와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아울러 개각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오풍연기자 poongynn@
  • 새 국면 ‘패스21’수사/ 드러나는 벤처·靑 커넥션

    박준영 전 청와대 공보수석(현 국정홍보처장)과 김정길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 청와대 고위층 인사들이 윤태식씨를 만난 사실이 잇따라 드러나 ‘윤태식 게이트’ 수사가새 국면을 맞고 있다. 이날 사의를 표명한 박 처장은 청와대 공보수석으로 일하던 2000년초 윤씨를 처음 만나 패스21의 기술에 관한 설명을 들은 뒤 수차례에 걸쳐 윤씨를 만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박 처장은 정보통신부와 행정자치부 등 부처에 패스21을 추천해준 것으로 전해졌으며 주변 사람의 취업을 부탁한 윤씨에게 부탁하기도 했다. 김 전 수석은 행정자치부 장관 시절과 청와대 정무수석시절 패스21 감사인 김현규 전 의원의 소개로 2차례에 걸쳐 윤씨를 만났으며,패스21을 한번 방문한 것으로 밝혀졌다.윤씨는 지난해 4월 행정자치부에서 패스21의 제품설명회를 갖기도 했다.김 전 수석은 99년 12월 윤씨를 당시 남궁석 정통부 장관에게 소개시켜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윤씨가 2000년 1∼5월 세차례에 걸쳐 대통령이참석하는 행사에 참여하고, 정부 부처를 상대로 기업설명회를 하는 과정에도 박 처장과 김 전 수석 등 청와대 고위공직자들이 도움을 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검찰은 10일 김 전 의원에 대한 소환을 시작으로 정·관계 핵심 인사들에 대한 로비 의혹을 풀어나갈 방침이다.김전 의원은 99년 12월 패스 바이오폰 기술설명회에 10여명의 정치인을 초청하고 김 전 수석과 윤씨를 연결시켜주는등 윤씨의 정치권 접촉에 연결고리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검찰 관계자는 “필요할 경우 두세차례 김 전 의원을소환해서라도 윤씨의 정치권 로비 의혹을 밝혀낼 방침”이라고 밝혔다. 다음주 소환 예정인 모 경제신문 사장 김모씨는 98년 10월 국정원에서 열린 패스21의 기술시연회에 이종찬 전 국정원장을 초청했고,99년 12월 윤씨가 남궁 전 장관을 만날때에도 동석해 “청와대 비서실에 패스21 기술을 잘 이야기해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일단 이 두사람에 대한 조사를 통해 윤씨의 정·관계 로비의 윤곽을 밝혀낸 뒤 필요할 경우 박 처장과 김전 수석을 소환한다는 방침이다. 장택동기자 taecks@ ■'벤처불똥' 정·관가 표정. ‘벤처불똥’이 결국 청와대를 비롯한 관가로 튀나. 청와대는 패스21 대표 윤태식씨를 서너 차례 만난 것으로알려진 박준영(朴晙瑩)국정홍보처장이 9일 오후 사의를 표명하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불똥이 어디까지 튈지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었다. 정보통신부 역시 패스21 주식 보유로 노희도 국제협력관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되자 관가가 술렁대고 있다. [청와대] 전 공보수석인 박 처장 관련 사실이 몰고올 파장을 우려했다. 특히 사정 관계자들은 매우 곤혹스러워했다.‘진승현 게이트’와 관련,신광옥(辛光玉)전 민정수석이 사법처리된데 이어 굳게 믿었던 박 처장마저 도중 하차했기 때문이다. 한 관계자는 “박 처장은 누구보다도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이 강해 윤씨로부터 패스21 주식을 받거나 돈을받은 적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검찰로부터도다른 보고를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한 고위 관계자는 “내가 알기로 박 처장이 윤씨에게 남궁석 전 장관을 소개했거나김 대통령의 시연회 참석과 같은 편의를 봐주지는 않았다”며 “남궁 장관을 윤씨에게 소개한 사람은 김현규 전 의원의 부탁을 받은 K 전장관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정통부 등 관가] 정통부가 실무진의 반대를 묵살하고 패스21 기술을 호의적으로 홍보해 주겠다는 약정서를 맺은것이 확인되면서 벤처관련 정부부처 공무원들도 긴장에 휩싸여 있다. 검찰도 벤처주식을 갖고 있는 관련부처 공무원들로 수사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검찰 관계자가 “벤처기업들이 관련부처 공무원들을 상대로 주식을 뿌린 흔적이 있다”고 말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김 대통령이 전날 ‘벤처비리 발본색원’을 지시한 것과맞물려 주목되는 대목이다.이에 맞춰 최경원(崔慶元)법무부장관도 9일 벤처비리 단속을 특별 지시했다. 이미 드러난 벤처비리는 ‘정현준게이트’‘진승현게이트’‘이용호게이트’‘윤태식게이트’ 등 이른바 4대 게이트.그러나 이 사안들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게이트’로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정부부처 가운데 벤처와관련된 곳은 재정경제부·산업자원부·정보통신부·중소기업청 등이다.이 부처들 공무원들은 벤처주식을 갖고 있거나,보유한 적이 있다면 긴장하지않을 수 없다.합법적으로 주식을 갖고 있어도 최근 분위기에 자칫 휩쓸려 희생당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특히 약정서 문제가 드러난 정통부는 비상이 걸렸다.조직적 비호의혹 여부를 수사하게 될 검찰의 ‘직격탄’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지난 98년 정홍식(鄭弘植)전 차관 등 4명이 구속된 개인휴대통신(PCS) 사건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분위기다. 다른 부처 공무원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벤처붐 당시 벤처업계의 최고경영자(CEO) 가운데 상당수는 이른바‘영업지분’을 갖고 로비 등 대외활동을 벌였다. 통상 전체 주식의 3%,크게는 10%까지 영업지분을 갖고 ‘전방위 활동’을 벌인 게 당연시되던 상황이어서 파문이확대될 전망이다. 오풍연 박대출기자 poongynn@
  • 정성홍씨 ‘빗나간 충성심’

    ‘진승현 게이트’로 구속된 전 국정원 경제과장 정성홍(丁聖弘)씨가 검찰 조사에서 김은성(金銀星)전 국정원 2차장을적극 보호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5공 정권 핵심 인사들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주장했던 장세동(張世東)씨를 연상시킨다. 장씨는 89년 일해재단 비리사건 등 모두 세 차례 구속됐다. 장씨는 이 때마다 ‘내가 다 알아서 처리했다’고 주장해 ‘의리의 사나이’라는 오도된 평가를 받기도 했다. 정씨도 책임을 혼자 뒤집어쓰려 하고 있다.검찰은 “5,000만원을 준비해 김씨,정씨와 함께 만났고 김씨가 먼저 자리를 뜨자 정씨가 쫓아가서 돈을 건네고 왔다”는 진씨의 진술을 근거로 정씨를 추궁했으나 정씨는 “진씨가 건넨 돈은 모두 내가 썼다”며 김씨로 가는 뇌물 상납 고리를 차단하고 있다는 것. 또 자신의 행위가 어떤 의미에서든 정당하다고 믿는 자신감도 똑같다.장씨는 석방 뒤 집에도 들르지 않고 전두환(全斗煥)전 대통령에게 곧장 인사하러 가는가 하면 세차례 구속을 ‘학사’,‘석사’,‘박사’에비유해 반성의빛이 없다는 빈축을 사기도 했다. 정씨 역시 ‘당신 주장이 맞다면 받은 돈의 사용처를 말해보라’는 검찰의 압박에 ‘국가를 위해 썼다’거나 ‘공적인 목적으로 썼다’며 구체적인 언급을 피하고 있다. 정씨는 김씨가 수사 도중 자신이 정씨에게 이용당했다고 검찰에 호소하고 있음에도 김씨에 대한 변함없는 ‘충성’을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태성기자 cho1904@
  • 임직원 통장내역 조사·법인통장 제출 요구 재계 부정척결 후유증

    재계가 구조조정과 부정·비리 척결의 후유증으로 홍역을앓고 있다. 일부 대기업들은 부정·비리 색출 과정에서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계좌추적을 하거나 통장거래 내역의 제출을 요구하는 등 강압적인 행위를 일삼는다.해당 임직원들은 “인격모독과 사생활 침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나선다.연말인사를 앞두고 이래저래 재계가 어수선하다. [책상 서랍까지 뒤져] A사는 최근 3개월간 부정 혐의가 짙거나 비리 일부가 드러난 부서를 대상으로 강도높은 감사를벌였다. 영업 담당자들의 급여통장을 보여 달라거나 책상서랍을 뒤졌다.회사측은 “계좌를 추적한 것이 아니라 본인입회 아래 급여통장에 대한 입출금 내역을 확인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하청업체까지 감사를 확대한 B사는 단지 공사 단가가 높으면 비리 소지가 있다고 보고 하청업체 법인통장을 제출토록하거나 현장사무소를 덮쳐 장부를 수거해 갔다. 하청업체관계자는 “새벽에만 공사를 해야하는 명동지역의 공사단가는 높기 마련”이라면서 “공사의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고공사비가 비싸다고 획일적으로 감사를 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목청을 높였다. [주말 저녁 카드사용 ‘유죄’] C사는 법인카드를 쓴 영업사원들로부터 카드 사용일이 토요일 저녁 또는 일요일인 경우,사용장소가 자택 근처 등일 땐 소명자료를 건네 받은 뒤일부 직원들에게 사표를 종용하기도 했다. [회사기밀 누출 초비상] 최근 회사기밀 유출사례가 잇따르자 대기업들은 이를 회사에 불만을 품고 퇴직한 임직원의소행으로 단정,기업주와 피고용자간에 불신의 골이 심화되고 있다.지난달 D사가 회사 내부문건이 외부에 공개되자 비리척결 과정에서 회사를 떠난 직원의 소행이라며 즉각 단정하고 나선 것이 대표적인 사례.D사는 기밀을 유출한 임직원은 끝까지 추적해 ‘응징’한다는 방침이지만 퇴직자수가워낙 많은 탓에 비슷한 일이 생기더라도 속수무책인 처지다. E사의 한 임원은 “인사를 앞두고 강제퇴직의 위험에 시달리는 직원들이 공공연히 ‘잘리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말할 정도로 분위기가 좋지 않다”고 전했다. [‘신(新) 모럴해저드’ 우려] 경영주의 무리한 비리척결작업과 퇴직사원들의 회사 흠집내기가 새로운 모럴해저드(도덕 불감증)의 전형이란 비판이 만만찮다.재계 관계자는“상시 구조조정체제의 정착으로 고용 불안심리가 확산되면서 조직에 대한 구성원들의 ‘충성심’이 눈에 띄게 떨어지고 있다”면서 “기업주와 고용주간의 흠집내기 풍토가 확산되는 것을 막으려면 비리척결에 대한 적법하고도 합리적인 기준부터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재계 일각에서는 “비리척결이 특정인의 경영권 조기장악을 위한 입지강화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불만도 터져 나온다. 박건승·강충식기자 k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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