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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속 축제(외언내언)

    놀이는 인간의 역사와 함께 시작된 하나의 의식적 기능이다.원시인들이 모닥불 주위에 모여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것은 생존을 위한 온갖 어려움들,사냥의 고통이나 부족간의 투쟁,그리고 자연의 재해등에 시달린 심신을 재생시키기 위한 거룩한 의식이었다.그래서 놀이의 겉모습은 춤과 노래를 통한 흥겨움의 시간이었지만 그 밑바닥에는 삶을 위한 창조적인 감성이 짙게 깔려 있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놀이를 유난히 즐겨왔다.마을마다 놀이가 펼쳐지면 모두가 신바람이 났고 이 신바람은 농경생활의 반복에서 오는 권태와 스트레스를 씻어 주었다.설·추석·단오등 명절은 말할것도 없고 모내기나 추수때 마을은 온통 잔칫집인양 춤과 노래로 한바탕 놀이판을 벌이면서 공동체의식을 다져왔다. 한 나라 문화의 기층을 이루는 민속놀이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민중적 삶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우리 민족성의 근원인 「한」과 「멋」은 민속놀이속에 살아남아 지금도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해마다 가을이면 펼쳐지는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는이같은 우리 민족고유의 정서를 한껏 뽐내는 놀이 축제다.이 대회가 처음 열린 것은 1958년 10월.서울 중구 장충동 옛 육군체육회관에서 시작된 이후 전국을 누비면서 3백여종의 민속놀이를 발굴,재현하는등 사라져 가는 향토문화를 보존하는데 크게 기여해 왔다. 올해 제36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는 11일부터 13일까지 백제의 고도 공주에서 열린다.「한국의 얼,세계로」라는 주제를 내건 이번 대회에는 전국 19개 시·도 27개팀이 참가,민속예술의 향연을 벌인다.여기에서 서울의 「마포 나루굿」,부산의 「사하방아소리」,대구의 「달성다사농악」등 13개 종목이 첫선을 보인다고 한다. 특히 이번 대회는 같은 곳에서 열리는 백제문화제(9∼12일)와 맞물려 한층 흥겨운 한마당축제가 될것 같다.해맑은 가을하늘 아래 펼쳐지는 올해 대회도 풍성한 결실을 거두기 바란다.
  • 극작가 차범석(이세기의 인물탐구:83)

    ◎리얼리즘 바탕 「정통극 파수꾼」 40년/대표작 「산불」 전쟁의 인간파괴 신랄하게 묘파/부당한 것 거부하는 「연극계 면도칼」로 한평생/최승희 무용보고 「무대 인생」 예감… 이해랑·유치진 문하서 엄격한 수련 희곡작가 차범석은 연극계의 로맨티시스트다.동숭동 마롱카페에 나가보면 젊은 연극인들에게 둘러싸여 그는 맥주를 마시며 연극과 인생을 논하고 있다.「주역만 있고 조연 없는 연극은 있을 수 없다.우리의 삶은 큰 배역만 탐내는 한편의 연극 같이 보이지만 작은 배역 없이 큰연극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파우스트보다 메피스토 텔레스가 진짜 연기를 할 수 있는 배역이듯이 무대 구석구석에 세워둔 단역조역들의 몫에서 극중 희열과 비감,완미가 성취된다.무릇 물이 얕으면 큰배를 띄울 수 없는 것과 같이 깊고 다양한 여러 경험이 크고 광활한 연기력을 키운다」고 후배들을 가르친다. 한배우가 무대에 등장했다가 맡은바 임무를 다하고 퇴장하기까지 그것은 하나의 삶을 생생하게 되살리는 일이다.그런만큼 배우는 등장도 중요하지만 퇴장도 중요하다.막을 내리기가 무섭게 분장을 지우고 무대를 떠나는 사람을 보면 「자기포기와 무책임」이 느껴지지만 연기의 온기를 오래도록 가슴에 담는 배우의 모습에선 「비장미가 넘친다」고 찬양해 마지않는다. 그가 63년부터 20년이나 이끌던 극단산하를 해체한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다.「연극을 지상목표로 삼으려는 의지는 눈비비고도 찾아볼 수 없이 연기를 가르쳐 무대에 설만하면 그들은 철새처럼 돈을 따라 텔레비전으로 가버린다」고 했다.「연극은 집단예술인만큼 인간적인 결합 없이는 아무런 작업도 가능하지 않다.그럼에도 정신적인 반항이 없는 정지된 예술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껍질을 깨는 아픔을 모르는 젊은이들이 환멸스럽다」고 그는 한 글에서 개탄하고 있다.이어서 「기대할 수 없는 것에 얽매어 질척대는 것은 자기비하이자 존재를 흩트리는 추일 수 밖에 없으며」「부나비처럼 떠도는 인간불신풍조속에서 나만이 홀로 절개와 의리를 지키는 것은 명분 없다」고 절규했다. 적자를 면치못하는 극단의 영세한 상황속에서도 「산불」「밀주」「대리인」「손탁호텔」등 알찬 창작극으로 꾸준히 「좋은 무대」를 이끌던 산하는 「연기자의 연극정신부재」「저질공연우려」등을 내세워 83년 연극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미련과 아쉬움을 남긴채 이렇게 무대에서 사라져갔다. 칠순의 나이와는 상관 없이 언제나 만년청년 같은 그는 옛 예술가의 낭만과 니힐과 반항과 순수를 지금도 면면히 지니고 있다.그가 「한달이면 29일」을 술을 마시는 이유는 사람들과의 따사로운 온정에 굶주려 「정을 마시기 위해 술잔을 든다」는 것이며 인생의 어둡고 뒤틀린 것을 말하지 않는 것은 「긍정에의 동경이 너무 강한 때문」이라고 했다. 지난 40년간 「연극계의 면도칼」로 불리면서 그는 과연 부당한 것을 굳이 옳다고 양비론을 펼치거나 불가능한 것을 가능할 수 있다고 과장한 적이 없다.연극상을 심사하는 과정에서도 무의미한 공연기록과 긴 연륜을 앞세우기보다 작품의 질과 연기력을 따져 날카롭게 자격여부를 가려낸다.또한 스스로의 조로를 경멸하여 연극의 모든 일에 은근히 참여하고 옳바른 소리를 주저 없이 하면서도 「번뜩이는 재기나 교변」 사물에 대한 심정의 움직임에서 세말적인 기미대신 싱그러운 미소로 만사를 감싸기 때문에,각층의 폭넓은 호감을 사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극단산하를 잃은후 그는 한국연극협회 이사장,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사,대한민국예술원회원과 청주대 예술대학장등 여러 역할을 전전했다.86년에는 88올림픽을 앞둔 88서울예술단 초대단장에 임명되었으나 이번에는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창단기념 시연회에서 공연을 관람하던 관련장관이 코를 골고 잔 것에 자존심을 심하게 상한 나머지 사표를 내던진 씁쓸한 에피소드를 남기고 있다. 시간과 함께 그의 까다로운 일면은 전보다 많이 부드러워졌고 반항과 증오와 충동에서 시작한 초기의 경험을 버리고 「삶이란 양파를 벗겨내듯 아무리 벗겨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그는 서서히 깨닫게 되었나보다.그 때부터 톡쏘는 옳은 소리를 줄이고 자신을 스스로 경계하는 계신공구의 자세로 전환했다. 그의 지나온 인생은 평온한 중에 끝 없는 파고가 잔물결처럼 파동치는 것이 남과 다르다. 목포의 개화되고 풍족한 집안에서 일본 메이지대(명치대) 법학과를 나온 차남진씨의 3남3녀중 차남. 남부러울 것 없는 유년기와 소년기를 보내면서 집안의 서고에 파묻혀 아리시마 다케오(유도무낭) 무샤노코지 사네아쓰(무자소로 실독)의 소설에 탐닉하고 일본 히메지(희로)고교에 시험을 보러갔다가 낙방하고 돌아오는 길에도 후지자와 다케오(등택)의 「신설」을 가슴에 품을 만큼 열렬한 문학지망생의 시기를 보냈다.어릴 때의 아명은 평균.광주고보시절 목포 평화극장에서 열린 최승희무용공연을 보고 「정중동의 미세한 움직임과 끊어질듯 이어지고 멈춘듯 움직이는 유현미와 고담미」에 반해 그는 훗날 「무대」와 관련을 갖게 되리라는 예감을 굳혔다. 그는 철저한 리얼리스트이기도 하다. 뒤늦게 23세에 대학에 진학해서 문자그대로 「경마장의 말처럼 정해진 코스를 필사적으로 달리면서」 엄격한 스승인 이해랑 유치진문하에서 「리얼리즘에 바탕을 둔 정통극」을 추구하기 시작했고 연극계는 언제부턴가 「리얼리즘의 희곡작가」 또는 「리얼리즘의 파수꾼」으로 그를 부르게 되었다. 「나름대로 나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치열하게 몸부림쳐왔다.나라는 인간은 일관성도 없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살아온 모순덩어리라는 생각 때문이다.그 증거로 나의 인생행로에는 투쟁이나 저항의 흔적이 없다.적극적인 동참이나 협력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그렇다면 나는 뭐란 말인가」.그러나 평론가 유민영은 「그의 작품은 투철한 역사의식으로 구시대의 붕괴와 전후의 사회변화,변천하는 사회속에 갈등하는 개인의 삶을 끈질기게 묘파」하고 있고 특히 대표작 「산불」은 「전쟁이 얼마나 철저하게 인간을 파멸시키는 가를 미사여구나 기교 없이 신랄하게 파고든 리얼리즘 희곡의 최고봉」으로 손꼽고 있다. 지난해 출판한 고희기념문집 「목포행 완행열차의 추억」에서 그는 「지금까지 나는 대과 없이 살았고 욕심부리지 않았고 하고싶은 일과 가고싶은 길을 지칠줄 모르고 살았으니 행복하다」고 고백하고 있다.영원한 동반자인 박옥순여사와의 사이엔 3남2녀.자녀는 모두 출가하고 송파구 가락극동아파트에서 부부가 노후를 함께 하고 있다. 언제나 「일상적인 삶을 영위하는 소시민」을 자처하고 있지만 실은 서릿발 같은 차가운 이성을 정으로 융해시킨 처절한 삶의 애가와 뜨거운 인간애의 정수를 이룩했다는 점에서 그의 존재는 참으로 「큰배우」의 역할이 아닐 수 없다.이제 그의 퇴장은 「한편의 좋은 작품」을 남기는 일이며 연극계가 그를 두고 「이시대 마지막 휴머니스트」라고 한 말대로 그는 지금도 동숭동 마롱카페에 앉아 「배우가 되기전 먼저 인간이 될 것」을 젊은 연극인들에게 당부하며 그의 「정」을 높이 치켜들고 있다. □연보 ▲1924년 전남 목포 출생 ▲1942년 광주고보 졸업후 도일 ▲1946년 연희전문 문과 입학 ▲1949년 제1회 전국대학연극경연대회 희랍극 「오이디푸스왕」연 출 수상 ▲1951년 처녀작 「별은 밤마다」 공연(목포문화협회 주최) ▲195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희곡 「밀주」당선,제작극회 창단 ▲1961∼71년 문화방송 제작부장·편성부국장 역임 ▲1962년 「산불」 초연(국립극단) ▲1963∼83년 극단 「산하」대표 ▲1965년 이대·연대 출강 ▲1966년 연세대 영문과졸업,국제PEN대회 뉴욕회의 참가 ▲1968∼74년 한국연극협회이사장 ▲1969년 신연극 60주년기념 「그래도 막은 오른다」 공연 ▲1972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사 ▲1973년 예총부회장 ▲1975년 ITI베를린회의 참가 ▲1978년 ITI한국본부 부위원장,대한민국연극제 심사위원 ▲1981년 대한민국예술원 정회원 ▲1983년 서울극작가그룹 발족,회장 ▲1984∼86년 청주예술대학장 ▲1986년 서울88예술단장 ▲1988년 청주대 교수협의회회장 ▲1991년 「연극의 해」집행위원장 대한민국 예술원회원·한국연극협회이사·공연윤리위 심의이원 희곡집 「껍질이 째지는 아픔없이는」「대리인」「산불」「학이여 사랑일레라」「식민지의 아침」,수필집 「거부하는 몸짓으로 사랑했노라」,고희기념문집 「목포행 완행열차의 추억」,차범석문학전집(12권·융성출판)등 대한민국 문화예술상(70)·대한민국 예술원상(82)·동랑연극상(83)·대한민국 문학상(91)·이해랑연극상(93)
  • 심슨 재판은 「세기의 서커스」/조지윌(해외논단)

    미국에서 심슨 무죄평결에 대한 법적 타당성 시비와 공박이 만만찮은 가운데 워싱턴 포스트의 유명한 칼럼니스트 조지 윌은 4일 「세기의 서커스」란 제목의 글을 통해 무죄평결을 내린 배심원단을 맹비난했다.흑인만이 아닌 배심원들 개개인이 독립적인 결론을 내린 끝에 단시간에 만장일치를 끌어냈다는 옹호론에 비춰볼 때 다소 극단적이고 편향적인 면이 없지 않으나 강한 자기주장을 펼치고 있는 이 칼럼을 소개한다. 제 생각을 논리정연하게 나타내지 못하는 사회일수록 과장법이 심하게 마련인데,한낱 서커스에 지나지 않는걸 백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세기의 재판」인냥 야단법석을 떨어온 심슨재판이 거기에 똑 떨어지는 예다.심슨재판에서 처음부터 심판대에 선 것은 심슨이라기보다는 다름아닌 배심원단 자신들이었다.재판이 다 끝난 지금 배심원단 자신들은 시원한 무죄평결을 받지 못했다. 뛰어난 변호사지만 시민으로선 썩 좋다고 할 수 없는 피고측 핵심 변호사 자니 코크란으로부터 재판정을 정치집회장으로 변질하도록 사주받은 배심원들은 극악한 이중살인에 대해 공정한 평결을 내리는,진부하다면 진부한 본연의 임무를 저버리고 정치적으로 부화뇌동하고 말았다.이 배심원단은 인종차별,경찰의 부패 등에 대해 강한 메시지를 남겼는데 배심원으로서는 자신의 지위를 남용한 잘못된 행동이다. 이 배심원단은 인종문제만 내내 읊어대는 피고측 변호사 손에 놀아날 것이라느니,증거를 둘러싼 논쟁을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할 것이라느니,심지어 시민적 양심이 부족한 사람들이라는 등 말이 많았지만 이는 물론 인종차별의 색깔이 엿보이는 잘난 척하는 부류의 으스대는 소리로 치부할 수 있다.그런데 배심원단은 막판에 숙고하기를 거부하고 벼락평결을 내버리는 바람에 이같은 의심과 악평을 얼마간 정당화시키고 말았다. 살다 보면 이것인지 저것인지 긴가민가해서 도대체 똑 부러지게 판단을 내릴 수 없는 경우가 숱하지만 심슨의 유죄추정적 측면은 결코 그런 경우에 해당되지 않는다.그에게 불리한 유죄적 증거의 9할이 뭔가 미심쩍어서 배척해 버린다 해도 1할은 남고 그걸로써 족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단 1할의 증거라도 빈틈없이 서로 잘 맞물린다면 충분할텐데 재판이 갑자기 증거조작 혐의의 백인형사나 사회전반의 결점에 관한 학술토론장으로 변하는 통에 1할 증거들간의 함축적 연관성이 돋보일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이번 변호인단은 안하무인으로 배심원들에게 『내 말을 믿을래,네 눈을 믿을래』하고 을러댔다고 말해도 무방하다.여기서 어떤 결과가 나왔는가.죄가 있고 없음만을 엄정히 따져야할 형사재판마저 조그만 꼬투리만 생겨도 정치적으로 문제화하려는 극성스러운 풍조에 오염된 결과 배심원들,우리들은 살인을 우습게 여기고 만 것이다. 본래 심슨재판의 의미는 『흑인이 미국에서 과연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을까』라는 해묵은 질문이 다시금 새롭게 던져졌다는 데 있었다.그러나 재판이 끝난 지금 누구라도 쏟아부을 돈만 있다면,마치 소인국의 촘촘한 밧줄들이 거인 걸리버를 꼼짝달싹을 못하게 묶어버리듯이 미국의 형사재판 시스템을 칭칭 동여매 움직일 수 없게 만들 수 있다는 변호인단의 증명이 눈에 띌 따름이다. 이것 못잖게 섬뜩한 사실은 미국의 제도·기구 등 소위 문명적 틀치고 인종중심 사고의 해악에 골병이 들지않는 데가 전무하다는 점이다.민권과 자기정체성 강조의 세대라고 할 수 있는 지난 30여년 동안 소수계 보호 법안,인종별 배분에 의한 특채,「다양성」 숭배물결 등은 「동일집단·같은 패」의 「끼리끼리」 사고를 타기하기는 커녕 시대적 덕목으로 권장해왔다.국가의 많은 정책들마저 개인은 종족이나 인종의 한 부분적 존재에 지나지 않으며 따라서 종족·인종 한계를 넘어선 의무는 별로 중요할 게 없다는 정체성 정치학을 가르치는 데 열심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배심원들은 피고인 심슨을 같은 그룹의 일원으로 바라보는 데 눈이 멀어 피해자측은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으며,그렇다고 해서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았다. 한편 이번 기회에 법정 안에 텔레비전 카메라가 설치되는 것을 심각하게 재고해 봐야 된다.형사재판 제도를 오락의 한 방편으로 삼는 것이 사회에 이로운 것인지를 따져야 볼 때다.「국민의 알 권리」라는 주문만을 맹목적으로 복창해서는 안된다.가끔 권리 운운의 점잔뺀 목소리 뒤에 엿보기 충동이 도사리고 있다. 구경꾼들이 보고 있다는 그 사실 때문에 보여지는 내용물인 재판 자체가 변했다는 지적을 심슨 재판은 받고 있는데,이 지적이 억지가 아니라면 법정 카메라설치 반대론을 반박할 아무런 타당한 논거가 없다.신성한 형사법정에 카메라 따위가 없게 될 때 전례가 없었던 심슨 서커스는 이와 비슷한 서커스의 향도가 되지 않을 것이다.< 미 WP지 칼럼니스트>
  • 휴일 6만명 입장 조직위 “희색”/광주 비엔날레 이모저모

    ◎태풍 비껴가자 조형물 재배치 분주/인터넷 이용 지구촌에 출품작 소개 ○…광주 비엔날레가 개막된 이후 첫 일요일인 24일 각 전시장에는 관람객의 발길이 줄을 이었다.낮 12시 현재 1만9천여명이 입장하는 등 이날 하룻동안 6만여명이 몰려들어 평일의 평균입장객 3만명을 크게 웃돌았다. 특히 중외공원 야외공연장에서는 조상현씨의 판소리를 비롯 서울시립 가무단의 「못말리는 남편」(문예회관 소극장)·유진교향악단의 음악회(야외 공연장)·고미술품전시회·개미장터 개설(궁동 예술의 거리) 등 각종 볼거리가 펼쳐져 가족 단위 관람객로 부터 인기를 모았다. ○…광주 비엔날레 조직위는 이 날 제14호 태풍 라이언이 일본으로 빠져 나가자 안도의 한숨.조직위 관계자들은 휴일인 이 날 아침부터 햇볕이 비치고 전형적인 가을 날씨를 보이자 전날 치웠던 조형물을 제자리에 옮기고 2㎜ 안팎의 비로 침수된 중외공원 일부 주차장 시설물을 점검하는 등 관람객 맞이를 위해 분주한 움직임. ○…조직위는 광주를 직접 방문하지 못하는 세계인을 위해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공동으로 컴퓨터 통신망인 인터넷을 통해 한글과 영어 2개 국어로 문자·화상·음성 등으로 비엔날레에 관한 모든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컴퓨터통신 서비스에는 국제현대미술전과 특별전·기념전·후원전 등 13개 전시회에 출품된 작품의 사진과 설명은 물론 부대행사·광주권의 교통·관광·풍물·역사 등을 상세히 소개,세계인의 참여와 관심을 유도. 그러나 조직위가 관람객의 편의를 위해 비엔날레 전시관과 역·공항 등 11곳에 설치해 놓은 「광주 비엔날레」 안내정보서비스는 컴퓨터 단말기가 영문으로만 작동되는 등 운영미숙으로 이용실적이 저조한 형편. ○…서울 중구 장충동 박세정씨는 23일 비엔날레 사무처를 찾아 기금으로 써달라며 1백만원을 기탁했다. 박씨는 『예향인 광주에서 세계적인 미술축제가 열린데 대해 자부심을 느껴 성금을 냈다』고 말했다. ○…본전시 작가로 참여중인 한국의 임옥상씨가 작품에 등장하는 6종의 포스터를 제작,전시장 바로 옆 공간에서 판매해 외국인 관람객과 해외 교포들로 부터 큰 인기. 이들포스터는 작가 자신의 누드 그림에 80년 5월 「광주민중항쟁」·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등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여섯가지 문제를 삽입해 제작한 것.
  • 무용가 육완순(이세기의 인물탐구:82)

    ◎「슈퍼스타…」 22년간 180회 공연한 “슈퍼스타”/미 유학중 마사 그레이엄 만나 「정신의 춤」 눈떠/낡은 것으로 부터의 탈출… 이땅에 현대 춤 심어/어린시절 성탄절 교회에서 「그 어리신 예수」 춤추며 무용가 꿈키워 「육체속의 모든 격정 모든 애환이 못견디는/울음과 탄원의 전류에 휘감겨/헤일수 없는 선회로 돌아가는것,/참으로 어쩔도리 없는 충격,/춤이며 예술이라기엔 너무나 연소이며 기도인 것」 이는 73년9월 「한장면 한장면이 피와 땀과 눈물의 얼룩으로 수인」현대무용 「수퍼스타 예수그리스도」를 보고 시인 김남조씨가 무용가 육완순을 위해 쓴 축시다.막달라 마리아의 신을 향한 절대적인 사랑을 비창미로 그려낸 이 공연은 지난 22년동안 1백80회의 공연기록을 세우면서 「낡은 것으로부터의 탈출」과 이 땅에 현대춤을 정착시키는데 기여했다. 그의 출발은 처음부터 활기찬 기대로 장안의 시선을 집중시켰다.63년 미국에서 돌아와 국립극장 무대에서 토슈스와 쭈쭈대신 타이츠와 맨발,또는 하이힐에 스커트 차림으로 분주한 「미국인의일상」과 베이직 무브먼트를 춤추었을 때 그의 스타카토와 레가토는 감정의 노도와 간조,속도의 탄성을 눈부시게 구사하며 무대를 누벼나갔다.그의 퍼포먼스는 「모든 위대한 예술가는 낡은 파괴와 더불어 새로운 것의 기초를 기른다」는 하이네시론의 실천이기도 했다.이른바 콘라드 랭그의 「신체들의 유희에 의해서만 환희의 미를 발견한다」는 이 무용미학은 조택원과 최승희 등 신무용에 익숙해 있던 사람들에게 경이의 충격을 안겨주었으나 「승무」의 인간문화재 한영숙씨 같은 이는 「미친 짓」으로까지 통박해 마지않았다.다만 새로운 물결흡수에 거침이 없던 예술평론가 박용구씨는 「육완순 파격예술은 우리나라 무용사에 한 획을 그을만한 신세대출현」으로 크게 환영했었다. ○거침없는 “파격예술” 사람이 무엇인가를 성취하기 위해서 어렵지 않은 일이란 없을 것이다.어느 땐 늦추고 어느 땐 감행해야 한다.그러나 몸이 예술이어야 하는 춤이란 한순간의 해이함도 용납하지 않는다.그래서 그의 평생은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본적이 없다.더구나 안무에 들어가기 시작하면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고행같은 진통을 혼자서 감내한다. 그대신 로이 풀러의 개방적 동작,머스 커닝햄의 불균형과 비대칭,생활의 불확실성과 다양성을 은유적으로 부합시켜 민첩하고 날카로운 다이내믹스로 「자유는 개성」이라는 독특한 동작을 탄생시킨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그는 아직 어릴 때 교회 크리스마스 행사에서 「그 어리신 예수」를 춤추면서 스스로에게 「세계적인 무용가」가 될 것을 명령했다고 말한다.아마도 발로 서는 걸 배우는 순간부터 「춤을 향한 집념」에 불타고 있었을 것이다.가난과 부모의 완강한 반대로 어쩌면 무용을 포기할뻔도 했으나 그는 자연과의 하모니로 춤추던 이사도라 던컨을 동경하여 미국유학을 꿈꾸게 되었고 문교부시험에 번번이 실패하자 미국의 70여개 대학에 일일이 편지를 보낸 일화를 지니고 있다.드디어 일리노이주립대와 코네티컷 대학원과정에서 그의 영원한 스승이며 무용의 혁신자인 마사 그레이엄을 만나 「자유와 삶의 기쁨과 독립정신」을 키우면서 그는 이탈리아 출신의시몬 포르티와 저드슨 댄스디어터의 이본 레이너와 함께 마사 그레이엄의 위대한 애제자의 한 사람이 되었다. 그때 스승으로부터 「무용은 유기적인 삶의 이데올로기속에서 또하나의 도구」인 것과 「우리안에 갇혀 있는 동물의 걸음걸이는 초원을 걸어다니는 동물의 걸음걸이와는 다르다.아니,다르지 않다」는 이론에 공감하면서 춤을 만들어내는 마음의 동기와 원인,춤추지 않고는 배길수 없는 내심의 충동속에서 그는 「정신의 춤」에 눈떠갔다.그리고 「감정의 마임이 자연스러운 움직임속에서 제거되거나 축소·치환되는 춤의 분방한 구현을 위해서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배웠다. ○미 70개 대학에 편지 마사 그레이엄이 미국의 개척정신을 즐겨 소재로 다룬 것처럼 그는 「살푸리」「무녀도」「논개」「단군기원」과 「유관순」같은 한국적 정서가 깃든 테마에 집착하여 「바람같은 흔들림」을 춤속에 구축해 내었고 인간의 희비애락을 표현한 예술정신에 대해 「춤」지의 조동화씨는 「이 시대 문화운동」으로 평가하고 있다. 우리 무용사의흐름을 정리하는데 있어 육완순을 빼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그는 60년대 미국현대무용을 도입한이래 이대 무용과교수로 재직하면서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고 오늘날 전국 20여개 대학에 포진한 현대무용교수는 김복희(한양대) 박명숙(경희대) 이정희(중앙대) 하정애(부산여대) 김옥규 김기인(서울예전) 황문숙 박인숙(이대)등 그의 제자들이다.또 70년대 이후 「춤의 소극장운동」을 통해 「무용의 대중화」에 앞장서면서 그의 공연들은 「수없이 많은 현대무용가를 배출한 보고」라는 공로를 남기고 있다. 아무리 좋은 땅이 있어도 대목수가 재목을 골라 집을 짓지 않으면 모든 것은 무가치할 수 밖에 없다.공연이 있을 때마다 제자들을 무대에 세워 「무용계의 주목」을 받게 했다는 점에서 그는 간혹 「목수」로 불리기도 한다. ○무용계의 「대목수」로 한사람의 예술가가 탄생하기까지 그에 얽힌 노력과 투자와 정열은 정해진 분량으로 잴수는 없다.그러나 그의 묵고적 기질은 어떤 고통과 시련도 「육체의 아름다움과 풍부한 표정, 깃털같은 가벼움과 역동적강인함, 도약과 비상을 그의 내부에서 끊임없이 분출」시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그가 온몸으로 무대에서 춤을 추기엔 무리일 수도 있다.그러나 책을 읽을 때의 호기심과 탐구정신으로 그는 자신의 나날들을 지켜보면서「무용은 나에게 가장 굳센 감옥이요 온정신을 잡고 있는 질긴 굴레이긴 하지만 무용속에 있을 때만 무한한 자유를 느낀다」고 감연히 다짐한다. 요즘은 신촌 창전동자택에 있는 한국현대무용진흥회에서 외국강사를 초빙하여 일반과 학생에게 춤을 지도하고 밤에는 한국인의 5천년 역사를 학의 일생에 비유한 「학」의 장편 작업에 시간가는줄 모른다.「천년이 되면 푸른빛이 되고 또다시 천년이 지나면 검은학(현학)이 되는,짓밟혀도 짓밟혀도 영원히 죽지 않는 학」이 그의 앞으로의 생존의 테마가 될 것이다.가족은 그를 감싸주는 부군 이상만(전서울대 지질학 교수·시인)씨와 연구소 위층에 살고 있다. 「말하는 것은 말하는 것,춤추는 것은 춤추는 것/춤추지 않는 것은 춤추지 않는 것,말하지 않는 것은 말하지 않는 것」 더글러스 던의 시가 아니더라도 이제 그의 춤은 우주의 한 끝을 장식하는 손짓, 「정지」조차도 「환희의 미」가 되는 것을 그는 기도의 연소로 이룩해 내고 있다. □연보 ▲1933년 전주 출생 ▲56년 이화여대및 대학원졸업 ▲61∼63년 일리노이주립대­코네티컷대학원­마사 그레이엄무용학교 수학.호세리몬,엘빈에일리 사사 ▲64∼91년 이대무용과교수 ▲73∼95년 4월까지 「수퍼스타 예수그리스도」 1백80회공연 ▲75년부터 해마다 AAHPERD(미국무용총연합회 전국대회)및 국제여성체육학회 참가 ▲85년 사단법인 한국현대무용 진흥회발족,한국현대무용단 창단 ▲86년 한양대 대학원서 이학박사(무용),86아시안게임 무용분과위원장 ▲93년 한국현대무용 30년기념 육완순작품전(문예회관 대극장),「슈퍼스타」 20주년 기념공연(국립극장 대극장),대전EXPO 93 개회식 축하공연 「문명의 사계」총괄안무 ▲95년 광복50주년기념축전 「통일환타지」총괄안무,해외공연 40여회 한국현대무용진흥회 이사장,ADF(아메리칸 댄스페스티벌)서울대표 「흑인영가」(63년)를 비롯 「살푸리」「가락의 슬픔」「만남」「실크로드」등 1백 50여편 서울시문화상(81년) 대한민국 사회교육 문화상(82년)대한민국 문화예술상(89년) 「현대무용」「현대무용 실기」「서양무용 인물사」「이사도라와 에세에닌」(번역)등 13권
  • 세계경제 블록·요새화 막아야 한다/폴존슨 영 저명언론인(해외논단)

    ◎대외관세 인상경쟁이 관세전쟁·경제전쟁 유발/EU·NAFTA·아시아권 동시가입국 늘려야 유럽연합,북미자유무역지대 등 거대 무역권역은 세계가 단일무역 시장으로 가는 길목에 놓인 휼륭한 징검다리일 수 있지만 일면 블록·요새로 변해버릴 가능성도 있다.이를 방지하는 방안의 하나로 「오버랩」국가론을 펴고있는 영국의 저명한 언론인이자 역사가인 폴 존슨이 미국월간지 「코멘터리」에 쓴 글을 소개한다. 다가오는 21세기 세계무역에 관한 시나리오는 낙관적인 것과 비관적인 것 두가지가 있다.생각할 것도 없이 우리들은 모두 낙관적인 시나리오 편이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전개된다.경기 사이클의 어느 국면에 놓여있는가에 따라 속도가 다르긴 하겠지만 아무튼 세계무역은 확대일로를 달린다.지금의 미·일 통상마찰같은 일로 들쭉날쭉하면서도 결국 무역장벽은 지난 반세기 때처럼 계속 낮아진다.세계는 3대 무역대권으로 궁극적 틀을 갖추게 된다. 북미자유무역지대(NAFTA)는 라틴아메리카 전역을 포용하고 유럽연합(EU)은 러시아를 포함한 동구권을끌어안는다.동아시아 교역대권은 일본,중국,동남아에 이어 인도를 포괄한다.차근차근 권역내의 관세를 철폐해간 3대권은 권역 외부에 대한 관세감축 협상을 서로서로 벌인 끝에 21세기 후반 드디어 통합된 세계무역 체제를 구축한다. 세계의 모든 상식있는 사람은 이렇게 되기를 원하고 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것으로 믿고 있다.그러나 이런 믿음아래 이를 운명에 맡겨버린다면 이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왜냐하면 한마디로 자유롭게 교역한다는 것이 인간의 본디 성향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당한 규모로 국가간에 교역이 이뤄진 것은 7천년의 긴 역사를 자랑하지만 실제적인 의미의 자유무역은 18세기말에 고안됐고 그후에도 자연스럽게 발달한 게 아니라 일부 인사들이 굳은 의지로 이를 강력히 추진한 덕분에 19세기의 발전이 이뤄졌다.21세기라 할지라도 우리가 방심하면 어느새 이 틀은 안타까워서 발을 동동 굴릴 정도로 우그러지고 만다. 그래서 비관적 시나리오가 대신 현실화할 수 있다는 말인데 그것은 다음과 같이 전개된다.21세기 초반 유럽연합은 보다 긴밀한 통합을 지향하는 연방주의자의 힘이 더 세 단일통화와 단일 경제정책 아래 움직이는 슈퍼국가화 한 다음 복지국가 이데올로기에 집착,각국 갹출예산 뿐아니라 기업등 민간부문에 대한 강제성 부담을 늘려 생산비용을 높이고 결과적으로 상품의 경쟁력을 저하시킨다.이같은 현상은 벌써 기미를 보이고 있다. 권역내의 재산증대와 이에따른 흑자교역을 무조건 우선시하는 중상주의자들의 손에 장악된 유럽연합의 경제정책은 외부 권역에 대한 관세를 높이고 권역내의 제조업에 대한 보조금지급을 강행한다.이런 새로운 반자유무역 정책은 우선 단기적인 이득 때문에 정당화되고 거기에 자유무역은 유럽 고래의 농업사회와 공예산업,허약하나 다른 어떤 것도 대신할 수 없는 문화적 전통,그리고 환경 등을 파괴한다는 강론에 큰 힘을 얻는다.이론적으로나 심정적으로 사람들의 귀와 마음을 사로잡는 이 녹색(환경) 덧칠의 21세기 중상주의는 권역내 산업및 노조와 연대해 보호주의를 제창한다. 북미지역도 결코 안전하지 못하다.거슬러 올라가면 미국등 3개 구성국 모두 남못지 않은 보호주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미국은 근래에 들어서야 자유무역으로 개종했을 따름이다.현재의 유럽이 펴고있는 논조와 똑같은 내용으로 1791년 알렉산더 해밀턴 첫 재무장관이 국내산업 육성을 위한 조직적인 보호관세를 역설한 이래 미국은 경제가 조금 안 풀린다 싶으면 보호주의 방책에 의지하고자 하는 본능적 충동을 보여왔다.2차세계대전 때까지 고율관세 국가였음을 알 수 있다. 유럽연합이 관세를 높이면 북미자유무역지대 역시 고율관세로 맞받아치는 것은 충분히 상상이 가는 사태전개인데 이로써 무역및 관세에 관한 일반협정(GATT)의 정신은 산산조각난다.그러면 아시아는 어떤가. 예전에 서방 식민지였던 싱가포르,홍콩,마카오는 차치하고 이 지역에서 진정한 자유무역 국가를 찾아보기 어렵다.일본과 중국,인도의 많은 지식인들은 서방이 아시아의 토착민족 산업을 파괴할 셈으로 이곳에 자유무역을 강요한다고 믿고 있고 이런 견해를 대학등에 강력 전파하고 있다.모두가 「백인」인 유럽연합과 북미자유무역지대가 고율의 대외관세를 매기면 아시아인도 즉각 적대적으로 대응,바깥에 높다란 장벽을 둘러치고 권역내 국가끼리 어깨를 튼튼하게 결은 무역연방으로 치닫는다. 비관적 시나리오의 마지막 장면은 유럽 요새,아메리카 요새,아시아 요새의 굳건한 구축이다. 높은 대외관세가 꼭 관세 전쟁으로 이어진다는 법은 없다.그러나 이론은 비록 그렇지만 역사적 경험은 그런 경우가 많았다고 일러준다.마찬가지로 관세 전쟁이 필연코 경제 냉전,열전으로 이어진다고 할 수는 없다.그렇지만 이 역시 그럴 수 있다고 역사는 말한다.대공황과 싸우기 위해 미국이 지난 1930년 관세인상법을 제정하자 다른 나라도 같은 길을 택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 결과 1939년 세계무역고는 1914년보다도 적었다. 어떤 수를 쓰면 이같은 관세 경쟁이 재발되지 않을 것인가.여러 가지 방안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 3개 거대 무역블록들 안에 두 블록에다 양다리를 걸치는 오버랩·중첩 국가들을 양성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예컨대 유럽연합의 슈퍼국가화 움직임을 마땅치 않게 여기고 있는 영국을 비롯,유럽연합 멤버인 포르투갈,비멤버인 노르웨이등 지리적으로 아메리카에 보다 가까운 나라들을 북미자유무역지대에 편입시켜 NAFTA를 문자 그대로 북대서양자유무역지대로 키울 수도 있는 것이다.
  • 한강 인도교 폭파(새로 쓰는 한국현대사:33)

    ◎「임진강교 폭파 실패」뒤 서둘러 준비 지시/미 참전으로 예정보다 하루 늦춰 결행 19 50년 6월25일 일요일에 발발한 한국전쟁은 다음날 26일 월요일에 벌써 수도 서울을 혼란에 몰아넣었다.대한민국 정부와 국회는 26일 밤 각각 긴급 국무회의와 긴급국회를 열어 27일 새벽 수원으로의 천도를 결정할 만큼 전선은 긴박하게 돌아갔다.그리고나서 28일 상오2시30분쯤 한강 인도교와 철교를 폭파해버렸다.한강다리를 폭파한 시간에 T33 소련제 탱크를 앞세운 북한 공산군은 아직 수도 서울의 중심부 밖에 있었다. ○개전 다음날 검토 착수 한강 다리 폭파계획은 전쟁 다음날 26일 상오부터 이미 검토되었다.전황이 매우 불리해지면서 육군참모총장 채병덕은 공병감 최창식 대령을 불러들여 한강다리 폭파에 대한 여러 질문을 던졌다.이는 적의 진로를 차단하기 위해 임진강 다리 폭파를 시도했다 실패한 과오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공병감은 공병학교 폭파교관 황원회 이창복 중위에게 폭파준비를 서둘러 지시했다.당초 폭파시각은 27일 하오4시로 결정되었다. 이같은 결정은 육군본부가 시흥으로의 철수를 전제로 한 것이었다.그러나 이날 하오2시 맥아더 장군으로부터 미군개입 가능성과 극동미군의 전방지휘소(ADCOM)가 한국에 설치될 것이라는 전문이 날아들었다.육군참모총장 채병덕은 이 소식을 미군사고문단(KAMAG)단장대리 W H 라이트로부터 전해들었다.그래서 시흥으로 나앉았던 육군본부를 다시 용산으로 복귀시켰다.이에따라 한강다리는 결국 하루늦게 폭파되었다.이시영 부통령 일행은 폭파직전 한강을 마지막으로 건넜다. 이승만 대통령은 27일 상오2시 특별열차편으로 한강를 건너 대전으로 내려갔다.그런데 이날 한강다리가 폭파되기 30분전에 이승만 대통령의 방송이 전파를 탔다.그 내용은 『미국의 적극적인 군사원조가 있을 것이니 국민은 총궐기해 반란분자들을 퇴치하자』는 것이었는데,사실은 사전에 준비한 녹음방송이었다.한강다리의 폭파는 결국 수도 서울을 사수하던 국군장병 4만4천명을 낙오병으로 만들었다. ○국군 4만4천명 낙오 북한 공산군이 서울시내 중심부에 들어온 시각이 28일 하오3시쯤이었으니까 다리 폭파를 6∼8시간 정도 늦추어도 큰 무리가 없었을 것이라는 비판이 뒷날 나왔다.이런 이유로 해서 공병감 최창식 대령은 군사재판을 통해 처형되었다.그러나 폭파를 명령한 육국 참모총장 채병덕은 7월27일 하동전선의 180고지에서 북한군의 기습을 받고 전사했다.한강 다리가 끊겨나간 이후 육군 5개 혼성사단이 노량진 본동을 중심으로 모여 한강 방어선을 구축했다.서울에서 퇴각한 이들 부대는 명목상 사단편제였지 사실은 연대규모에 지나지 않았다. 한국전쟁이 개전한 시각에 한국의 우방 미국의 대통령 트루먼 대통령은 미조리주 인디펜던스 자기 사저에 머물고 있었다.그는 당장 워싱턴으로 돌아오고 싶은 충동을 느꼈으나 국무장관의 충고를 받아들여 다음날 백악관에 도착했다.미국은 국제연합(UN)이 「평화에 대한 침략적 행위」로 규정지어 주기를 바라면서 경거망동한 행동을 하지않는 전략을 취했다.그리고 미국무성은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한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즉각개최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무렵 소련은 중화인민공화국(중공)대신대만의 자유중국이 중국을 대표하는 회원국으로 총회 안보이사회 의석을 차지하도록 결정한데 항의하여 유엔을 보이콧하고 있는 중이었다.소련이 불참한 안보이사회는 즉각적인 전투중지와 38선 이북 원위치로의 철수를 요구하는데 결의했다.이와 더불어 유엔 회원국은 이 결의의 집행을 위해 한국에 원조를 제공하고 북한에 대한 원조 자제를 요청하는 안도 결의안에 포함시켰다. 미 트루먼 대통령은 북한 공산군이 서울 근교에 접근하던 6월27일(워싱턴 시간) 미공군과 해군에 한국정부를 엄호지원하는 명령을 내렸다.이날 유엔 안보이사회는 소련이 여전히 불참한 가운데 「무력침략을 격퇴시키고 평화와 안전을 회복시키는데 필요한 원조를 한국에 제공」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다음날 28일 서울은 침략자의 손에 들어갔다.트루먼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미국은 한국에서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유엔의 경찰행위를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 개전 5일째가 되고 서울이 공산권 수중에 완전히 넘어간 다음날인 6월29일에는 맥아더장군이 자신의 전용기 바타안호를타고 동경에서 수원으로 비행해왔다.바타안호가 착륙하는동안 간이 활주로 한쪽 끝을 북한의 소련제 야크기가 공격했다.맥아더는 사태의 심각성을 피부로 느꼈다.한편 임시수도 대전에서는 이승만 대통령이 적의 항공기로부터 요격을 피하기 위해 계곡을 따라 저공비행으로 수원에 와 닿았다.이들이 서울대 농과대학 캠퍼스에서 만나는 동안에 적의 전투기는 계속 기총소사를 해댔다. ○“미 해군 해안선 봉쇄” 맥아더는 모든 준비가 갖추어지는대로 한국을 지원하겠다고 이승만 대통령에게 약속했다.트루먼은 6월30일 일본에 기지를 둔 미공군이 북한의 군사시설에 대한 폭격을 승인했다.이와함께 한반도의 전 해안선을 해군이 봉쇄하도록 명령하고 맥아더 장군으로 하여금 한국에서 상당한 지상군 지원부대를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이에따라 찰스 스미드 중령이 이끄는 미 지상군 선발대가 일본 사세보를 떠나 부산을 거쳐 7월5일 평택에 도착했다.그러나 이 미군부대는 한국군의 한강 방위선을 무너뜨리고 계속 남하하는 북한군 탱크앞에 속수무책이었다.이런 상황속에 UN안보이사회는 7월7일 한국을 지원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하는 회원국은 그 군대를 미국이 지명하는 사령관 휘하에 둘 것을 권고했다. 그 다음날 트루먼 대통령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을 주한유엔군 총사령관으로 임명하기에 이른다.개전후 뼈아픈 11일간이 지나가는 동안 유엔과 미국은 한국전쟁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그리고 16개국에 이르는 회원국이 한국을 지원하기로 한 결의를 행동으로 옮겼다.특히 미국은 역사상 처음으로 아시아의 지상전에 주동적 참전국이 된 것이다. 미국의 참전은 전선 주변에 위험한 그림자를 깔기 시작했다.그 위험은 한국군과 미군을 포함한 유엔군이 공산군 점령지역의 허리인 인천을 상륙한데 이어 낙동강 전선을 뚫고 북한 깊숙이 들어갔을 때 현실로 다가왔다.1950년 가을이 저문 10월19일 저녁 중공군이 압록강을 건넜던 것이다.중공군의 한국전쟁 개입은 전쟁양상을 또 한번 바꾸어 놓았다. ◎미 「국가정보평가서」/“소,「한국전 중 개입땐 대전 확산」 예측”/“유엔군 내분 조장… 전력약화 기대/필요땐 중에 소 의용군 지원 태세” 1950년 한국전쟁에 중공군이 개입했을때 소련은 한국전쟁의 세계대전 비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그와같은 사태발전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당시 미국은 평가한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이 미국립공문서보존관리국에서 입수한 「국가정보평가서­11」(NIE­11)에 따르면 소련의 통치자들이 중공의 한국전 개입을 지시 혹은 재가하면서 세계대전으로 확산될 위험성을 인지했다고 미국은 평가하고 있었다.NIE­11은 그러나 소련이 중공군 개입과 동시에 세계대전에 돌입할 것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NIE­11은 또 소련이 세계대전 발발여부와 상관없이 미국과 중공간의 전면전에 거는 기대가 크다고 적고 있다.▲우선 미국과 연합군대를 다른 전장으로 유인해 병력을 소멸시킬 수 있고 ▲미국과 그 동맹국간 알력을 조성할 뿐만 아니라 ▲한국에의 침공으로 유엔의 단결력을 좌절시킬 수 있다는 것이 소련의 판단으로 추정했다. 이에따라 소련은 중공에 대해 적절한 물자와 기술인력,심지어는 의용군까지 제공해 한국에서의 중공군 작전을 지원할 것으로 판단했다.특히 유엔군의 공중공격으로부터 피하기 위해 중국내 거점 방위가 필요하다면 비행기와 대공포를 훈련된 요원도 함께 제공할 것으로 내다보았다.또 중국영토에 대한 미군(유엔)의 대규모 작전이 있을 경우 중·소조약에 근거해 중공에 대한 소련의 공개적 군사지원이 따를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NIE­11은 이어 사태추이를 볼때 중국 공산당의 개입목적은 유엔이 한국에서 발붙일 수 없도록 하는데 있다고 덧붙였다.NIE­11은 미 중앙정보부가 1950년 12월5일 국무성 및 육·해·공군의 정보관계자들을 참여시켜 작성한 1급 비밀문서다.
  • 미국인은 부끄러움을 모르는가?/제임스 윌슨(해외논단)

    미국 연예오락산업이 과도한 폭력과 성 표현으로 범죄를 조장하고 있다는 비난이 거세게 제기되는 가운데 제임스 윌슨 캘리포니아주립대(로스앤젤레스분교·경영학)교수는 일본과 미국를 비교할 때 미국의 연예산업은 여러 면에서 청교도적이지만 「부끄러움」을 경시하는 기층 문화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미국 기업연구소(AEI) 간행물에 게재된 「미국인,수치심 대신 후안무치심을 가지고 있는가」란 글을 소개한다. ◎개인주의 팽배속에 폭력·마약복용 범람/「수치심 유발문화」 가진 일본과는 대조적 포르노 잡지를 아무 문제없이 구할 수 있고,예술과 미디어에 폭력이 난무하고,추잡한 쇼에 성인들의 출입이 잦으며,아이들을 응석받이로 키우는 이 사회는 장차 어떻게 될 것인가. 문제의 이 사회는 물론 일본이다. ○「공적인 외설」은 묵인 현저히 낮은 범죄율,더욱 드문 강력범죄,마약 확산을 차단시킨 전설적 능력 등으로 이름높은 일본이다.일본에도 청소년 갱이 존재하고 그들중 몇몇은 범죄와 부패에 깊숙하게 연루되어 있지만 야쿠자들은 결코 차를 몰고가면서 총을 난사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이 일본에서 영화·잡지·텔레비전·음반 등에 노골적인 성과 폭력을 축소·규제하자는 열띤 공론이 인다면 이는 매우 희한한 일일 것이며 설사 그런 쟁론이 벌어진다 해도 미국처럼 문화적 부패 및 범죄율 증가와 연관되어 말이 오고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면 왜 미국에서는 이런 논쟁이 생기는가.미국 미디어의 과도함에 대한 비난과 공격이 초당파적,초인종적으로 가해져 왔다.영화와 음반산업 관계자들은 자신들의 과도함은 큰 문제가 될 정도가 아니라고 부인하거나 검열제 조짐 운운하는 식으로 대응한다.누가 옳고 그른가에 앞서,연예오락산업을 비판하는 측은 「부끄러움」을,방어하는 측은 「검열」을 각각의 잣대이자 최대무기로 드는 점이 흥미롭게 관측된다. 부끄러움, 수치심이 미국 딜레마의 알맹이다.폭력적이고 음탕한 표현이 사방에 흔하고 응석받이로 키워졌음에도 불구,일본인들이 그토록 단정하게 행동할 수 있는 이유는 사회구성원들에게 수치심을 강하게 유발시키는 문화를 가진 때문이다.법이 훨씬 강력하게 집행되고 범죄에 대한 제재가 더 엄한데도 미국인이 덜 단정하게 행동하는 까닭은 부끄러움이 없어진 탓이다. 서양에서도 자기가 존경하는 사람이나 또는 점잖은 사람들의 눈에 불명예스럽게 비치거나 망신스럽게 여겨지는 것을 아주 두려워하는 문화가 기원전부터 있었지만 이후 크게 퇴색되는 변화를 겪어왔다. ○아주인들 집단 중시 부끄러움을 알거나 느끼려면 옆사람과 부끄러움을 서로 주고받아야 한다.다른 사람에게서 쇼크를 받을 수 없다면 자신의 행동을 부끄럽게 느낄 하등의 소지가 없는 것이다.부끄러움이란 일련의 상호이해 과정으로서 사회화의 한 측면이다. 그러나 서양은 근세 이후 개인을 집단보다 더 높이고 또 그 개인을 성적인 것을 비롯한 사적 사안에 불건강하도록 신경쓰는 관행으로부터 해방시키고자 했다.딴 사람의 시선,공중의 견해 그리고 스스로 얌전빼는 행동으로부터 해방되고자 모두 열심이었다.그래서 직접적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아무도 무엇을 하라고 남에게 말할 이유가 없어졌다.요컨대 누구도 남보다 더 잘났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부끄러움이나 수치심이 발붙일 터전을 잃어갔다. 반면 아시아인들은 개인이 집단으로부터 해방되고 더 중시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대부분 이상스럽게 여긴다.사람은 집단과 위계질서의 일원으로서만 의미있다는 생각이다.이처럼 집단이 개인의 삶에 중심적 역할을 맡고 있는 곳에선 집단의 힘,부끄러움을 느끼도록 하는 힘은 결코 약해질 수 없는 것이다.일본에서는 어린 아이의 뜻과 응석을 대부분 받아주고 키운 육아 관습이 훗날 개인주의 성인을 양산하지 않고 있으며 폭력영화가 폭력적 행동을 유발하지 않으며 공적인 외설스러움이 사회적 해체를 야기하지 않는다.집단 소속감 그리고 부끄러움의 상호적 힘이 너무 강한 까닭이다. ○문화적 제재 불가능 이와는 대조적으로 미국에서는 국가적 취약함이 사회적 질서의 힘에 의해 벌충되지 못한다.미국은 미국인들이 원한 것보다 범죄,폭력,방탕,마약상용이 심하지만 이같은 사회병리 현상을 완화시킬 두가지 방안인 집단중심의 사회질서와 억압적 정치체제 모두를 처음부터 배제당했다. 인간성이 강력한 문화에 의해 형성되거나 강력한 국가체제에 의해 체크당하는 곳에선 천하고 비속한 것에 대한 일반의 관심은 그러려니하고 묵인된다.정부의 족쇄나 문화적 제재 등 이 두 의지처가 결여된 미국은 따라서 당연히 「상업이 성격에 끼칠 영향」에 대해 다른 곳보다 더 예민하게 걱정하게 되는 것이다. 미국은 정부검열이 아닌 자기검열을 통해 나쁜 것이 걸러지기를 기대하지만 자기검열이란 것도 궁극적으론 수치감에 의존할 터인데 미국이 일궈온 개인주의적이며 자기해방적인 문화는 역으로 이를 불가능케 하는 것이다. ○성적 얌전빼기는 여전 그런데 미국은 같은 개인주의적 전통을 가진 다른 서양에 비해 옆사람의 나쁜 행실·품행에 쉽게 쇼크받는다.유럽인들은 미국인들의 성적 얌전빼기나 정치인의 혼외정사에 대한 관심을 비웃고 있다.미국 텔레비전에 사납디 사나운 폭력이 횡행하긴 하나 이에 비해 성은 아직도 억제되는 측면이 상당하다.어떤 면에서 미국은 서양 여러나라중 가장 구식이고 성적으로 얌전떠는 나라일 수있다. 미국 연예오락산업이 비속하고 불건전하고 사람을 나쁜 쪽으로 충동질시킨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은 미국인의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회생가능한 것으로 기대한 데서 나온 전략적 자극일지도 모르겠다.
  • 회갑 신경림 시인 문학업적 정리/평론집 「신경림 문학의 세계」출간

    『적어도 문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사회주의에 너무 얽매이지 말았으면 해요.시각이 고정되어 있는한 살아있는 문학은 불가능하니까요』 올해 회갑을 맞은 신경림시인의 문학적 업적을 총체적으로 조망한 평론집 「신경림 문학의 세계」(창작과 비평사)가 나왔다.지난 56년 「갈대」로 문단에 나왔으니까 올해로 꼭 40년이 되는 시력을 중간점검하는 셈인 이 책에서 시인은 평론가 최원식·시인 정희성씨와의 대담을 통해 이같이 털어놓고 있다. 결코 짧지 않은 40년간 신경림시인은 누구 못잖게 굴곡진 문학적 삶을 살아온 듯이 보일지도 모른다.등단한뒤 10년간 절필했던 그는 첫시집 「농무」와 장시 「남한강」3부작 등을 통해 민중시인으로 되돌아왔다.그러다 90년 발표한 시집 「길」에서는 「민중을 노래한다면서 민중의 참 삶의 깊은 곳은 보지 못하는」 민중시인들의 편협함을 꼬집으며 이념을 추종하는 문학을 비판·반성하기도 했다. 이 책은 참여시인으로 알려진 신경림시인이 실은 처음부터 서정시인이었음을 드러내는 글을 싣고 있다.「서사 충동의 서정적 탐구」를 통해 평론가 유종호씨는 신경림 시를 청록파시인의 순수성이 가난한 사람들의 세계로 장소만 옮긴 것이라고 규정한다. 시뿐만 아니라 산문,평론에 이르는 신경림의 광범위한 문학세계를 해부하는 염무웅,김주연,황현산,이문구씨 등의 글도 실려있다.
  • “피해어민 최대 보상”/호유해운 사장 회견

    좌초된 「씨 프린스」호 소속사인 호유해운의 정해철(58)사장은 27일 상오 11시 여수시 덕충동 호유해운 후생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국가적 재난이 발생한 데 대해 지역 주민과 국민에게 사과드린다』면서 『사고선박이 영국의 P&I 보험에 최고로 5억달러(4천5백억원)를 받을 수 있는 유류오염보험에 가입되어 있는 만큼 피해어민에 대해 최대한 보상하겠다』고 말했다. 정사장은 그러나 『무허가 양식업자에 대한 피해보상은 관행을 따르겠다』고 말해 피해어민 대부분이 무허가 양식업자인 점을 감안할 때,지난 93년 광양만 기름유출사고 때와 마찬가지로 충돌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정사장은 「씨 프린스」호의 인양작업과 관련,『일본 구난전문회사인 일본 셀비지사의 고요마루호 안전진단팀의 정밀 진단결과에 따라 원유를 그대로 싣고 인양하든지,아니면 다른 배에 옮기고 예인하든지를 최종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정사장은 『원유를 다른 곳으로 옮기고 난 뒤 인양하라는 결과가 나올 것에 대비,현재 사고해역에 12만t급 호남다이아몬드호와 2천t급바지선 4척을 대기시켜 놓았다』고 말했다. 정사장은 그러나 『현재로서는 원유 일부를 다른 배에 옮겨 실어 씨 프린스호의 하중을 가볍게 한 뒤 예인하는 방법이 가장 유력하다』고 밝혔다.
  • 원로 연극인 장민호(이세기의 인물탐구:78)

    ◎평생을 연극으로 살아온 연기자의 대명사/파우스트 간판배우… 별명은 “파우스트 장”/이순신서 햄릿까지 어떤 배역도 무난히 소화/칠순이 눈앞에… 식을줄 모르는 열정으로 연기생활 『배우가 해야 할 최대 문제는 관객을 계속 끌고 나가는데 있다』고 뉴욕 메트로폴리탄 가수로 활약한 샬리아핀은 말한다.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연기에 대한 끝없는 욕심과 집념어린 정열을 불태우는 이가 있다면 국립극단의 원로배우 장민호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그는 평생을 연극으로 일관한 연기자의 대명사다.양심적이고 본질적인 그의 연기가 우리에게 주는 감동은 일시적인 경이감이나 전율만은 아니다.연기를 통한 인간정신의 승화를 그는 무대 곳곳에서 증명해 내고 있다.예의 「배우가 해야 할 최대 문제인 관객을 이끌어 나가는데」 한번의 실수나 실책이 있을 수 없다는 주의다. ○솔직하고 직선적 성격 그는 언제나 의욕적이다.성격은 명쾌하고 성급하며 솔직하고 직선적이다.항상 모범생과도 같은 이런 유의 성격이란 한가지 일에 몰두하면 끝장을 봐야만직성이 풀리게 마련이다.또한 철두철미하고 다혈질적인 기질로 인해 곧잘 흥분하거나 저항하거나 마찰을 빚기 십상일 것이다.그러나 「칼날처럼 날카롭고 정의감에 넘치건만」 막상 결단을 내려야할 순간에는 흑백을 가리거나 정면으로 대결하기보다 우회적인 유연성을 지니는 것이 남과 색다르다.이는 아마도 오랜 세월 어지러운 세파에 시달린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터득한 「삶의 지혜」일지도 모른다.또는 이북에서 혼자 월남해온 그로서는 사방의 적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해야 한다는 당연한 견제일 수도 있다.그래선지 국립극단에서 40년이 넘게 한 솥밥을 먹은 동료들도 『그의 속마음을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다만 무대에 서면 「온몸의 연기로 관객을 압도」하기 때문에 「배우가 연기를 잘한다면 모든 것은 침묵」일수밖에 없다. 그는 해방직후 황해도 신천에서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서울에 왔다가 연극배우가 된 케이스다.20세되던 해 원예술좌가 공연한 성극 「모세」에서 타이틀 롤을 맡으면서 연극에 입문,그로부터 10년후 하유상의 「딸들자유연애를 구가하다」로 「노역」을 완성시키면서 「성공적인 연기자」의 반열에 올라섰다.이후 「대수양」「세종대왕」「성웅 이순신」에서 완곡하며 기질이 장대한 성군,「오델로」「맥베스」「줄리어스 시저」의 다이내믹한 개성,「밤으로의 긴 여로」「안네 프랑크의 일기」「햄릿」에서의 차분하고 섬세한 내면 연기 등 그에게 돌아오는 모든 배역을 「생생한 극중 인물」로 부각시키는데 한치의 허술함을 보이지 않았다.그중에서도 「역을 최후로 완성시키는 것은 디테일이 아니라 전체적인 진실성」이라고 믿는 그가 평자들에게 어필된 것은 단연 괴테의 「파우스트」를 들수 있다. ○66년에 파우스트 초연 66년 서항석 역 이해랑 연출로 초연된 「파우스트」에서 그는 학문과 지식에 실망한 노박사 파우스트가 현세적 향락에 침몰되는 과정을 고뇌에 찬 연기로 그려내었고 두번째는 8년후인 74년,순결한 헬렌과의 사랑에서 미마저 구하지 못한채 이상향을 꾀하는 허탈한 파우스트,또다시 84년 한독 1백주년 기념공연에서 독일의 저명한 기싱이 연출한 세번째「파우스트」에서는 지금까지 축적된 파우스트의 진면목을 함축하여 관객은 감전된 듯 박수갈채를 멈추지 않았었다.그때 이 연극을 연출한 기싱은 『그는 인물을 스스로 움직이되 얼굴 표정이 아닌 눈빛만으로 이미 단숙을 성립하고 있다』고 했다.즉 「고정된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것을 붙들지 않으면 안된다는 긴박감에서 그는 감정을 절제하거나 적절히 노출하여 역이 가리고 있던 사상의 베일을 한장 한장 벗겨내고야만 것」이다. ­이것이 수많은 배를 띄우고 그리고 끝없이 높은 탑들을 불태운 얼굴이었던가.사랑하는 헬렌이여 단 한번의 키스로 불멸케 해다오.오! 그대는 무수한 별들의 아름다움으로 치장한 밤하늘보다 더 아름답구나­ 가슴속에 박힌 사랑을 고백하는 이 장면은 「드라마틱한 다이너미즘과 명쾌한 표현적 리듬,응축된 긴장감과 생명의 맥박이 충만」하여 이를 앞서 연출했던 이해랑씨는 『중진 장민호의 연기가 폭풍같은 성공을 거둔 근본 요인은 이러한 관념을 최후까지 지킨 지치지 않은 탐구의 결과』라고 못밖았다.이는 50년대 후반국산 영화붐으로 연극계가 부진하자 전 연극인이 분발하여 만든 「대수양」(김동인 작 박진 연출)을 보고 『그곳에 군계일학이 있었다』고 한 이진순씨의 지적과 맥을 함께하는 찬사이기도 하다.이로써 그는 「파우스트」간판 배우로서 평생동안 영광스러운 「파우스트 장」의 별명을 갖게 되었다. 배우는 무대위에서 기왕에 정해진 다양한 운명을 우리에게 보여준다.따라서 짙은 분장속에 감추어진 배우의 모습은 다시 그 자체가 그의 얼굴일수도 있다. 더구나 그의 묵직한 바리톤의 음색은 푸짐한 볼륨과 풍부한 음조의 변화,감정의 뉘앙스가 격하게 풍겨나와 어느 대목에서도 무기미를 느낄수 없는 것이 특징이다.마음속 깊이 스며드는 중후한 음의 압력은 라디오 드라마에서도 특출난 개성을 돋보여 67년부터 그가 해설자로 등장한 대하드라마 「광복20년」은 10년 장기 연속방송으로 장안의 성가를 높인바 있다. ○연출가로도 한때 활동 그는 배우일 뿐만 아니라 유치진의 「소」,체호프의 「봐냐 아저씨」를 무대에 올린 창조적 상상력이 풍부한 연출가이며연극적 감각과 지성을 겸비한 영화배우·TV탤런트이기도 하다.한때는 경화 프러덕션을 설립,그가 제작한 영화 「저 하늘에도 슬픔이」는 60년대 초반 전례없는 흥행을 기록하기도 했으나 「인생만사 만능은 없다」는 교훈과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진리를 절감하고 그는 고향에 돌아오듯 무대로 돌아왔다. 그후 그는 하고싶지 않은 일에 참여한 적이 없다.간혹 주변에서 자서전을 내라거나 대학에서 강의를 부탁해 오거나 방송 대담프로그램등에서 초청하면 일언에 외면한다.「배우는 무대에서 말할 뿐」,연기와 무관한 일은 그에게 모든 것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가족은 산행 동반자인 부인 이영애(63)씨와 출가한 남매가 있다. 지금도 젊은 후배 연극인들 사이에서 대사를 가장 잘 빨리 외우고 「내가 만약 저 역할을 맡으면 어떻게 소화할 것인가」를 간파하여 선명하고 강렬한 생명체를 그때마다 새롭게 탄생시킨다.또 주역에서 차츰 비켜나고 있지만 역이 크든 작든 「연기자는 계급이 없는 무관의 제왕」이라는 자부심과 열의로 자신의 위상과 예성을 의식하는 도도함으로 일관하고 있다. 다양한 인생편력을 체험하면서 자기의 가능성을 무한히 확대하려는 생의 충동은 그가 맡았던 파우스트의 일면이며 결국 「연극은 눈과 귀를 통해서 영혼까지 도달해야 된다」는 연극예술과 미와 환희를 이 세상에 가져다준,우리 연극사상 그는 투철한 한 존재에 틀림없다. 그리고 더이상 열띤 대사를 읊조리지 않아도 「오델로」의 이야고나 브루터스의 배반의 이미지를 물흐르듯 되살리는 경지에서 오늘도 그는 그만의 적광의 광채를 어두운 객석에 뿌리고 있다. 기 자 입 력 □연보 ▲1927년 황해도 신천 출생 ▲45년 월남,조선배우학교 졸업 ▲46년 서울중앙방송국 제1기 성우 ▲47년 원예술좌 입단,성극「모세」의 타이틀 롤로 데뷔 ▲50년 국립극장산하「신협」입단,유치진 작 연출「원술랑」 조우 작「뇌우」출연 ▲53년 국립극단 입단,오상원 작 「녹슬은 파편」이후 해마다 출연 ▲62년 드라마센터 개관 기념 셰익스피어 작 「햄릿」출연 ▲66년 괴테 원작 서항석 역 이해랑 연출 「파우스트」초연서주역,일본 일생극장 개관기념공연 참가 ▲67∼71년 국립극단 단장 ▲68∼89년 한국 연극협회 이사 ▲78년 세종문화회관 개관 기념 김의경 작 이진순 연출「북벌」 ▲79∼90년 국립극단 단장 ▲88년 조우 작 이해랑 연출「뇌우」 38년만의 재공연 주역 ▲현재∼예술원 회원,국립극단 원로배우,연극협회 자문위원 제1회 방송문화상(58년) 서울시문화상(63년) 한국연극영화예술상(68·73·78년) 연극평론가 협회상(79년) 대한민국예술상(81년) 목련장(82년) 대한민국 예술원상(88년) 예총예술문화상(89년) 연극­유치진 작 「자명고」(54년)를 비롯,「박쥐」「오델로」「느릅나무 그늘의 욕망」「딸들 자유연애를 구가하다」「인생차압」「시라노드 벨주락」「붉은 장갑」「세자매」「안네프랑크의 일기」「나의 고백은 끝나지 않았다」「뜨거운 양철지붕의 고양이」「빌헤름 텔」「죄와 벌」「결혼중매」「베니스의 상인」「이순신」(신명순 작 66년)「갈매기」「북간도」「수전노」「인종자의 손」「남한산성」「전쟁과 평화」「성웅 이순신」(이재현 작 73년)「세종대왕」「허생전」등 1백70여편과 영화 TV드라마 다수 출연.8월2일부터 「눈꽃」(11일까지 우봉규 작 김석만 연출 국립극장 대극장공연 예정).
  • 구조와 취재(외언내언)

    『…조금 있으면 생존자를 즐거운 마음으로 만나보게 될 것입니다…』백화점 붕괴현장에서 TV기자가 24명의 매몰자 구조장면을 예고하며 그렇게 외쳤다.마라톤 중계라도 하는 듯한 말투였다.생환소식이 큰 기쁨이긴 하지만 「즐거운」 어쩌구는 망발이다. 이는 성급하고 창황하고 무분별한 보도태도가 낳은 실수다.사고현장을 정신없이 뒤집고 다니면서 정보의 파편도 못되는 것까지 여과없이 다퉈 보도하다 보니 이런 실수가 부지기수다.출입금지 금줄은 아예 묵살하고 구출작업을 위해 간신히 뚫린 통로까지 보도진이 꽉꽉 메워 구출에 방해가 됐다. 언론사들이 경쟁적으로 띄운 항공기의 소음은 실낱같을 매몰자의 신음소리를 파묻기에 충분했고,필사의 구조활동을 하는 구조대원을 마이크 앞에 붙들어놓아 구조를 지체시키는데 일조도 했다.그러고는 자신들의 정보가 구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느니,미군이 공수해온 생존자의 소리 측정기를 소음때문에 사용하지 못한다는 말을 항공기소리만큼 크게도 보도했다.누구도 책임질 수 없는 「붕괴원인」을 단정하고근거없는 소문을 정설로 만들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부상자와 주검의 얼굴 모습을 마구 클로즈업 시키는 그 잔인한 선정주의는 언론에 종사하는 모두가 사죄해야 할 인권유린의 극치였다.지진이 났을 때 일본의 보도에서 1구의 시신이나 발굴되는 희생자의 모습도 직접 비치지 않던 「위성방송」을 기억하는 우리로서는 아주 낭패감이 드는 대비다.이 대책없이 무분별한 보도꾼들을 정리하고 통로를 확보하기 위해 군인력이 스크럼을 짜야했다. 마침내 「바른 언론을 위한 시민연합」이라는 기구는 『언론의 속보주의 선정주의 때문에 파생되는 피해사항을 시정할 것』을 요구해 오기에 이르렀다.열심히 잘 해놓고도,군중을 우중으로 충동이고 인권을 유린하고 갈등을 증폭시킨다는 혐의를 받게 만든 미성숙한 보도태도가 부끄럽다.
  • 5대 핵보유국은 핵실험 자제하라(해외사설)

    최근 핵비보유국들이 핵확산 금지 다짐을 새롭게 하는 과정에서 5개 핵보유국의 핵실험 재개는 의제로 언급되지 않았다.핵실험 재개 압력은 예상보다 강력하며 우리를 혼돈스럽게 한다. 프랑스 신정부는 전임 정부의 3년간 핵실험 유예방침을 포기하고 오는 9월 남태평양에서 지하핵실험을 8차례 재개할 예정이다.핵탄두 재고량의 신뢰도를 확보하고,컴퓨터 시뮬레이션에 의한 신뢰도를 검증할 능력을 개선하며,신형무기에 필요한 작업을 위한 것이라고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이유를 든다.남태평양과 프랑스내 반대론자들을 설득하기 위해 그는 내년말까지 포괄적 핵실험 금지조약에 서명하기에 앞서 이번 핵실험이 국가안보에 필수조건이라고 주장한다.미국정부관리들은 시라크 대통령의 결정에 실망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들의 반응은 비교적 조용하다.펜타곤내에서는 클린턴 대통령이 약속한 「포괄적」 핵실험 금지조약에 대해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보통 의미와는 다른 것으로 바꾸기를 지지하는 의견도 있다.이 개정은 TNT 수백t에 해당하는 실험폭발은 허용하는 것이다. 미국은 초강대국으로서의 책임과 위험을 감수하는 마당에 핵무기 보유에 대해 사과할 필요는 없다.그리고 무기를 갖고 있다면 그 무기는 신뢰할만 해야 한다.핵무기의 신뢰도 제공에 핵실험이 필수적인지 여부는 아직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오래된 기술적인 논쟁거리다.실질적인 문제는 정치적인 것이다.핵보유국의 실험으로 인해 비보유국들로 하여금 핵무장하려는 충동을 갖도록 하면서까지 핵실험을 통한 신뢰도 증진을 추구할 가치가 있는 것일까. 프랑스의 핵실험 재개 결정은 핵비보유국들이 핵확산 금지를 보장한 대가로 보유국들이 약속한 실험자제와는 상충된다.일부 실험 가능성은 남겨놓으려는 미국의 결정은 모든 핵실험 금지를 변질시켜 일부실험에 대한 보증으로 바뀔 수 있다.어떤 경우라도 그 결과는 비보유국들에 핵무장을 추구하도록 하는데 기여하게 된다.그것은 미국이 다른 나라를 설득해 핵확산을 포기하도록 하는데 성공했다고 자축한 해에 일어나는 일치고는 이상한 방향선회다.
  • 오늘 「6·25」45돌/전국서 기념행사

    한국전 발발 제45주년인 25일 국민안보의식 고취를 위한 범국민궐기대회가 서울 장충동 자유센터 운동장에서 열리는 것을 비롯,전국에서 6·25에 따른 각종 기념행사가 펼쳐진다. 대한민국재향군인회(회장 장태완)와 한국자유총연맹(이사장 최호중)이 공동주최하는 범국민궐기대회에는 경제·문화·체육·종교·안보관련 1백여 단체 회원 1만2천여명이 참가한다.
  • 법집행과 종교계 반발에 대해(사설)

    ◎그것을 「힘의 논리」라고 말할 것인가 이른바 성역문제를 둘러싼 종교계의 민감한 반응이 새로운 긴장을 만들고 있다.걱정스런 일이다.특히 지난 11일 천주교 명동성당 특전미사에서 행한 김수환 추기경의 강론은 우리를 유감스럽게 한다.이 강론이 정부를 강도높게 비난했다고해서만이 아니다.일부 종교의 정서가 국가에 대해 권한의 지분을 요구하는 듯한 인상이 우리를 곤혹스럽게 하는 것이다. ○사제입장 이해하지만 당혹 사제로서 성당안에 경찰력이 투입되는 일을 겪은 당황함과 그것이 교계내부에 일으킨 당혹의 파장이 한국 카톨릭을 이끄는 추기경의 입장과 명분에 입힌 상처는 이해할 부분이 없지않다.그러나 그렇더라도 추기경의 강론 논조에는 회의가 들지 않을 수 없다.『그때…우리가 정부당국자들에게 굴복했다면 오늘의 문민정부가 태어났겠느냐』라든가 『…명동성당은 이 정부의 모태』와 같은데 그 도덕성을 짓밟았다는 대목은 새삼스럽게 정권 탄생의 논공을 주장하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우리의 민주화는 그 자체의 역사적 정당성이지닌 힘으로 이룩된 것이다.그 과정에서 부분적인 힘이 되었다는 것을 가지고 카톨릭이 세속적 공치사를 하는 것같은 이런 모습은 종교적 도덕성의 순도를 의심하게 만든다.따라서 『종교의 뜰에서 정권이 태어났다』는 뜻의 「모태론」도 종교에대해 또 다른 부담을 안겨줄 수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겠다. ○불법노조에 법집행 불가피 추기경의 강론이 정부가 법집행을 위해 취한 처사를 「힘의 논리」라고 비난하는 것의 모순성도 짚지 않을 수 없다.대저 「힘의 논리」란 무법한 물리력이 정의를 유린하는 것을 말한다.정부가 국법을 집행하는 것을 모두 「정의로운 약자」를 괴롭히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종교의 태도라면 그것은 문제다.불법 활동을 하다가 피신하여 법의 영장이 발부된 한국통신 불법노조 간부들의 성당안 피신이 「정의로운 약자의 피난」이 아님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그게 누구이건 성당권역에 들어간 세력을 구인하는 것은 『정치탄압이고 인권 억압이라』고 모는 논리야말로 「힘의 논리」에 접근하는 위험함이 있음을 알아야 할것이다. 이번 사안은 순전히 노사갈등에 지나지 않는다.그것도 노측의 무리에서 빚어진 성격이 짙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과거 YH사건같이 노동운동이 정치적 억압을 받던 때의 연장선상에서 보는 것은 민선대통령정부의 민주화 시대에는 전혀 설득력이 없다. ○절제와 겸허의 미덕 보여야 더구나 당면한 노사정국의 심각성은 모든 사회적 역량이 일체가 되어 풀어야 할 과제다.이런 때 강도높은 공세로 정부를 「위협」하고 주눅들게하는 것은 너무 실망스런 일이다. 거듭 말하지만 법대로 집행하는 일 외에 민주정부를 뒷받침할 수 있는 「힘」이란 없다.「독재시절에도 없었던」일을 당했노라고 노여워만 할 일이 아니다.정당성에 하자가 있었던 정부가 종교의 비위를 건드릴 수 없어 참았던 일을,법치만을 능력으로 삼는 정당한 정부의 법집행논리와 견준다는 것은 이성적인 처사가 아니다. 정부와 교회의 갈등관계가 오래 지속되는 일의 불행함을 국민은 원치 않는다.더구나 국가의 법위에 치외법권처럼 군림하는 제3의 권위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민주국가의 국민은 인정하지 않는다.정부에게 잘못을「빌고」「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하기를 요구하며 그걸 지켜보았다가 『앞으로의 행동방침을 결정할 것』이라는 말로 신도들을 충동하는 듯한 태도에 많은 국민은 실망하고 있다. ○종교와 정부 대치 빨리 끝내라 그런 실망은 종교가 거둔 이른바 민주화의 공로에 새로운 흠결을 입힐 수도 있다.더욱이 불교 등 다른 종교지도자들까지 나서 「범교단연대회의」라는 것을 만들면서 이를 정치적으로 몰고 가려는 것은 국민들로부터 스스로의 권위를 외면 당할 수 있다.바라건대 아무 쪽에도 도움이 안되는 종교와 정부의 이런 대치국면이 한시라도 빨리 끝나야만 할 것이다.
  • 명동국립극장 살릴수 없나/반영환 논설고문(시론)

    옛 명동국립극장이 철거위기를 일단 모면했다.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것이다. 건물소유주인 대한투자금융이 이 건물을 헐고 그 자리에 10층 사옥을 신축하려던 계획을 유보한 덕분이다.연극인을 비롯한 문화예술단체들의 보존요청 여론을 수용한 결과다.그러나 이 결정은 잠정적인 것일 뿐,장기적으로는 정부에 매각하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일단 발등의 불은 껐지만 철거문제가 언제 또 튀어나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옛 명동국립극장은 우리 공연문화의 산실이자 메카.일제 때인 1934년에 건립돼 57년이후 16년동안 우리나라의 유일한 국립극장으로 연극과 무용공연의 요람구실을 해왔다.그러나 73년 현재의 장충동국립극장이 문을 열면서 퇴역,76년 민간에 불하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명동국립극장은 공연의 산실이었을 뿐만 아니라 건축사적으로도 평가되고 있는 건물이다. 유서깊은 국립극장건물을 아무 생각없이 팔아버린 정부의 결정은 반문화적인 단견이었다.국립극장은 하나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전통극장과 현대극장이 별도로 존립해야 한다는 인식을 왜 못했을까.지나간 일이지만 안타깝다.비원앞 운니동 삼환기업자리에 있던 국악사 양성소도 72년 문화재관리국에 의해 처분되었다.고풍스런 이 기와집은 구한말 금위영 건물로 일제 때 이왕직 아악부가 사용했으나 「재원확충」이란 구실로 팔려 하루아침에 헐려버린 것이다. 그동안 개발과 도시계획의 위세에 밀려 유서깊은 건물이나 사적이 얼마나 많이 헐려나갔는가.일제가 경복궁·경희궁등의 옛 건축물과 서대문·동소문등을 철거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해방후 우리 손으로도 「문화의 파괴」는 계속됐다.그 결과 6백년 고도인 서울은 이제 5대고궁을 제외하면 고도다운 면모를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게 돼버렸다.파리는 가로수수종을 바꾸는데 수년이 걸렸다.시민들이 새 수종이 문화도시 파리에 맞지 않는다고 반대했기 때문이다.그 신중성과 여유를 우리 사회는 갖고 있지 못한 것이다. 우리는 옛 것은 무조건 낡고 고루하며 무가치한 것이란 편견을 갖고 있는 것 같다.그런 편견이 우리의 전통문화를 훼손하는데 큰 몫을 담당했다.70년대초 새마을운동이 전국적으로 기세를 떨칠 때 부락공동체의 구심체인 당집과 민속의 상징인 성황당이 미신타파의 이름으로 마구 헐렸다.같은 이유로 마을어귀에 세워진 장승들도 뽑혀 불태워졌다.민중들의 기층문화인 민간신앙의 유산들이 미신으로 단죄된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시행착오였다. 서울 인사동의 태화기독교 사회관이 헐린 것은 유서깊은 건물의 철거에 우리 사회가 얼마나 무신경한가를 잘 보여준 사례다.1938년에 세워진 태화관은 한·양식을 절충한 독보적인 건물로 건축가 강연의 작품이다.우리의 전통미를 살린,독특한 개성을 지닌 건물이었다.더구나 태화관이 있던 자리는 3·1운동 때 민족지도자 33인이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던 역사의 현장이 아닌가.그러나 80년 이렇다 할 반대나 제지없이 태화관은 헐리고 그자리에 12층 빌딩이 신축되었다. 명동국립극장을 살리기 위해 「문화를 생각하는 모임」에서는 모금운동 사적지정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하지만 공시가격 6백억∼7백억원을 무슨수로 모금한단 말인가.사적으로 지정된다해도재산권침해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결국 아직은 묘책을 못찾고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이같은 보존과 개발의 갈등을 성공적으로 조화시킨 사례를 그리스 아테네에서 찾아볼수 있다.아테네시내에는 보존해야할 유적위로 그리스정교의 성당이 덧지어진 건물이 있다.마치 암탉이 병아리를 품고 있는 듯한 형상이다.건축물의 중첩으로 과거와 현재를 접목시킨 새로운 발상이다.궁여지책이긴 하지만 이 방법을 명동국립극장에 적용시킬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전통과 유서를 헐값에 팔아넘기고 허물고 나서 우리 문화는 지금 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보존과 개발의 사이,그 어려운 과제를 우리는 「밀어붙이기」로 간단히 해결해 버렸다.다시 되풀이해서는 안될 반문화적 악몽이다.
  • 여성전환 남성 성폭행 20대 둘 강간죄 쇠고랑(조약돌)

    ○…서울지검 형사3부 박종환 검사는 22일 법적으로는 남자이지만 성전환수술을 받은 길모씨(36·유흥업소 종업원)를 성폭행한 최종원(27·회사원)씨 등 2명을 강간치상혐의로 구속기소했다. 현행법상 강간죄는 「부녀」를 상대로 한 범죄에만 적용돼왔으나 성전환수술을 받은 사람을 여자로 보아 성폭행범에게 강간죄를 적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법원의 판결이 주목된다. 최씨 등은 지난달 24일 상오 서울 중구 장충동 주택가골목길에 있던 길씨를 꾀어 승용차로 끌고가 번갈아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 소득 1만불시대의 신과소비(최택만 경제평론)

    우리나라 국민의 1인당 소득이 올해말 1만달러에 이를 전망이다.국민소득 1만달러를 경제발전단계에 비쳐보면 성장기와 성숙기의 분기점에 해당된다.경제성장을 투자보다는 소비가 주도하는 경제로 이행되는 단계이다.이른바 「소비주도형경제」가 되면 현재는 불로소득계층과 고소득층 중심으로 행해지고 있는 과소비가 중산층이하로 확대된다.또 대형 내구소비재를 선호하고 사치품과 일반상품의 개념이 불분명해지며 국산품과 외국산 제품 구별이 희박해 진다.한마디로 과소비가 일반화된다. 그런 현상은 지난 1·4분기 경제동향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다.대형자동차 출고는 92.3%나 증가한 반면에 소형차는 오히려 16.4%가 감소했다.귀금속과 보석류수입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6배가 증가 했다.서울 강남의 한 백화점에서는 외국산 대형 전자제품이 2대 팔려나가면 국산제품은 한대 팔린다고 한다.이 백화점은 가전제품매장 전시품의 70%가 외제이다. 불로소득계층과 고소득층은 외국산 대형 내구소비재를 들여다 놓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주택개조에도열을 올리고 있다.50평형이상 중대형 아파트 내부를 외국산 자재로 꾸미고 가구도 외제만 들여다놓고 있다는 것이다.여기에다 옷치장과 귀금속사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들린다.강남 의류상품가에는 값비싼 외국옷들이 즐비하다.손수건 한장에 7만원,스타킹한개에 14만원,잠옷 한벌에 1백50만원하는 것이 있다고 한다. 「입는 사치」는 어린이에 까지 확대되고 있다.현재 국내에는 이시코시(일본),베베(미국),베네통(이탈리아),오조나(프랑스)등 세계각국의 유명상표 아동복이 속속 수입되고 있다.외산제품은 순모 원피스가 한벌에 15만∼17만원으로 국산보다 4∼5배가 비싼데도 인기가 대단하다. 이같은 신과소비를 조장하고 있는 고소득층과 불로소득계층은 『내돈을 내가 쓴다』고 말할지도 모른다.그러나 그 말에는 두가지의 기본적인 모순이 함유되어 있다.이들의 과소비는 저소득층에게 상대적인 빈곤감을 높여준다.그리고 인간의 존엄성과 정신적 가치를 경시하는 대신 배금주의나 물질주의를 확산시킨다.낭비는 그들 2세의 정신적 가치나 심성까지 황폐화시키고 있다. 또 하나 고소득층의 과소비는 중산층으로 확산되고 심한 경우는 저소득층에 까지 충동적인 구매를 이식시킨다.신 과소비는 무역수지 적자 확대 등 전체 국민경제에도 위해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우리가 고소득층 또는 불로소득계층의 낭비적인 과소비를 경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를 앞둔 우리는 낭비와 과소비를 제거하는 동시에 물질적 풍요보다는 정신적 풍요가 중시되는 진정한 소비문화를 창출해 나가야 한다.새로운 소비문화를 건설하는 데는 누구보다도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솔선하여 과소비를 극력 억제해야 할 것이다.그리고 고소득층은 스스로 성찰을 통해 소비욕구를 자제하거나 당분간 유보하기를 제의하고 싶다. 신과소비를 억제하는 데 가장 문제가 되는 계층은 다름아닌 불로소득계층이다.이들의 경우 자력에 의해 소비를 줄일 수 없을 정도로 생활자세가 빗나가 있는 경우가 많다.더구나 이들 불로소득 계층 자녀들의 낭비적인 소비는 지탄의 대상이 되기보다는 측은 한 생각이 든다.이들은 자동차가 없으면한발짝도 못가는 것으로 알고 유명상표가 붙은 옷이 아니면 입지 않으려 한다고 한다. 이들 2세는 「절약」이라는 단어를 모른다.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불로소득계층의 부모들은 그들 2세를 위해서 과소비의 위해를 심도 있게 반성하고 지금부터 자제하는 생활로 돌아가기를 당부한다. 그들이 자체적으로 과소비와 낭비의 습성을 버리지 않는 다면 타력(세무조사·추계과세)에 의해서라도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일부 불로소득계층이 뿌리고 있는 물질만능의 천민자본주의적 작태를 2세들에 까지 물려 주어서는 안된다. 정책당국도 1만달러시대의 소비생활을 건전하게 이끄는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지금까지 소비억제 차원이 아닌 저축증대와 신과소비억제를 조화시킨 정책의 발굴이 있어야 하겠다.
  • 옛 국립극장/“문화재로 지정 보존을”

    ◎문화예술계,대한투금 매각추진에 다양한 의견 제시/공연문화 산실… 정부차원서 매입해야/한전 부지와의 맞교환 주선도 바람직 대한투자금융이 15일 서울 명동의 옛국립극장(현 대한투자금융 사옥)의 철거를 1∼2년 유보하고,장기적으로 이 건물의 매각을 추진한다고 밝힌 것에 대해 문화예술계는 대체로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국연극협회 정진수 이사장은 『현재까지 확인된 대한투금측의 신사옥 건설계획 유보나 건물매각 추진 등의 방침은 일단 여론의 관심권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것이라는 인상이 짙다』면서 『대한투금이 이 문제를 적당히 넘기지 말고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 보다 진지하게 대응해주기 바란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또 『서울시 차원에서 대토형식을 통해 해결하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을것』이라고 말했다. 또 연극계의 한 관계자는 『문화체육부,서울시 등 관련부처에 옛 명동 국립극장의 문화재 지정을 의뢰하는 등 보다 적극적인 보존방안이 강구돼야 할 것』이라며 문화유적지로서의 보존 자체에 무게를 두기도 했다. 광복이후 우리 공연문화의 요람이 되어왓던 옛명동 국립극장을 문화재로 정하는 것은 이와 비슷한 시기에 건축된 동숭동의 옛 서울 문리대 건물이나 고려대 본관,중앙고의 동·서관 드어이 이미 지난 81년 사적으로 지정돼 원형이 보족되고 있는 전례에 비춰볼때 오히려 늦은 감마저 있다는 것이다. 한편 문화계 일각에서는 옛 국립극장의 건물과 부지를 문화계의 모금활동을 통해 되사들여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대한투금측이 현 사옥을 매각한다하더라도 그 건물과 부지가 내무부 고시가로 6백억∼7백억이라는 엄청난 금액에 이르고 있음을 감안할때 그 현실성은 희박하다는 지적이 높다. 이와관련,옛 국립극장의 보존과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활동방안에 대해 처음으로 문제를 제기한 「문화를 생각하는 모임」(대표 박용구)은 지난달 25일 첫 모임을 가진데 이어 10여명의 문화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추진위(위원장 유재천)를 구성,이를 실현시킬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예정이다. 고려대 국문과 서연호 교수(연극평론가)는 『민간기업이 소유하고 있는 고가의 건물을 문화계 인사들의 힘만으로 매입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옛 국립극장의 문화재적 가치가 충분한만큼 정부가 긴 눈으로 보아 과감한 투자를 하는 것도 검토할 만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밖에 옛 국립극장의 보존과 활용을 위해서는 대한투금 사옥과 인근 한국전력 부속건물 부지와의 맞교환을 주선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대한투금은 지난 2월 이곳에 10층짜리 건물을 신축키로 결정,이미 설계작업까지 끝냈으나 문화단체와 시민들의 반발여론에 부딪쳐 당초 계획을 수정하게 됐다. 1934년에 건립된 옛 명동 국립극장은 57년이후 16년동안 우리나라의 유일한 국립극장으로 연극 무용 등 문화예술의 산실 역할을 해왔으며 73년 현재의 장충동 국립극장이 문을 연 다음부터 76년 9월까지는 예술극장으로 쓰여져 왔다. 대한투금은 지난 76년 총무처로부터 이 건물을 매입,지금까지 본점 사옥으로 사용해 오고 있다.
  • 「미·북 평화협정 대응방안」 평통정책 포럼

    민주평통자문회의는 15일 서울 장충동 사무처 회의실에서 「미·북관계 평화협정 제기,그 대처방안」에 관한 전문가 정책포럼을 갖는다.북한에 대한 한국형경수로 공급문제가 북한의 거부로 교착국면을 맞고 있는 가운데 열리는 이 포럼은 최근 북한이 펼치고 있는 평화협정체결 공세에 담긴 뜻을 집중해부하고 정책 대응방안을 모색하게 된다.포럼에서 발표될 최대권 서울대교수의 「평화협정의 법적 성격과 대응」이라는 논문과 김구섭 한국국방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의 「한반도 평화체제,체결가능성과 한계」라는 논문 내용을 간추려 본다.. ◎최대권 교수 서울대법대/“남북기본합의서 UN에 등록을”/유엔 결의로 남북당사자가 체결해야 한반도의 평화상태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언뜻 볼때 평화협정이 필요한 것 같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서는 첫째 6·25전쟁이 법적으로 과연 전쟁이냐,둘째 비록 전쟁이라 하더라도 평화협정이 없으면 평화상태는 수립되지 아니하는 것이냐,셋째 전쟁상태를 종결시키는 평화협정의 당사자는 누가 되는 것이냐,넷째 6·25전쟁을 마무리짓고 평화상태를 수립하는 데 필요한 평화협정의 내용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등의 의문점이 규명돼야 한다. 6·25전쟁은 실질적으로는 전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법적으로 이해하자면 북한이 일으킨 「평화에 대한 위협 또는 침략행위」에 대하여 국제연합이 UN의 기치하에 UN사령관의 지휘에 따라 「국제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고 회복」하기 위해 취한 조치로서의 싸움이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따라서 휴전협정을 대체하는,평화협정에 상당하는 어떠한 조치가 필요하다면 UN이 취할 수 있는 조치의 차원에서 이뤄져야 할 것이며 만약 평화협정이 요구된다면 오히려 UN과 북한 및 중국 사이에서 맺어져야 한다.그러므로 미국이 개별국가의 자격에서 북한과 평화협정의 이름으로 휴전협정을 대체하는 협정이나 합의를 행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백보를 양보해 6·25때 실제로 군대를 파견해 공산군과 싸운 실질적인 전쟁당사자로 말한다면 UN군 기치하에 군대를 파견해 싸운 미국을 비롯한 한국등 16개 참전국을 거론해야 한다. 남북간 진정한의미의 평화협정이란 남북 양측이 각각의 실체를 받아들이는 공존체제의 승인이며 이것을 담보하고 증명하는 장치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헌법적으로 지금 남북이 모두 상대방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도록 되어 있다.경우에 따라 결국엔 남북이 서로 국가로까지 인정하지 않으면 안될는지 모르나 설령 서로를 국가로서 받아들이지는 못하더라도 상대방의 실체를 인정하고 들어가면서 평화체제의 구축을 합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상정할 수 있는 통일달성의 최선의 시나리오는 남북 사이에서 진정한 의미의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미국등 참전 16국 및 중국과 주변국가인 러시아와 일본이 국제보장적 차원에서 이에 참여하며 이렇게 해서 형성된 평화체제를 유엔차원에서 담보하는 유엔 결의를 얻어내는 길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남북기본합의서가 현상태에서 이룩할 수 있는 평화협정이라해도 무방하다고 생각된다.평화협정 이행 의사와 진전노력을 담보하기 위해 평화협정은 더 큰 국제법체제(UN체제 포함)에 연계시키는 것이 보통이며 이같은 관점에서 남북합의서도 UN과 연계시키면 좋을 것이다.즉 UN헌장 102조에 따라 남북합의서도 UN에 등록하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제안이다. ◎김구섭 실장 국방연구원/“정전협정 폐기는 교전관계 의미”/한반도 전쟁때 미 개입 차단이 북 속셈 북한은 50년대와 60년대에 한국에,70년대에는 미국에 평화협정을 체결할 것을 주장한 바 있다.또 80년대에는 한국을 옵서버로 참석시킨 3자회담을 주장하기도 했다.이후 90년대에 들어서는 한국과는 불가침선언을 체결하고 미국과는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했다. 물론 현재 북한이 주장하고 있는 평화협정은 한국을 배제한 채 미국과 북한간에 체결돼야 한다는 내용이다.한국은 휴전협정에 서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러나 휴전협정 체결 후 40여년간 정전상태가 지속돼 왔는데 오늘날 새삼스럽게 한국전쟁이 지속되고 있다고 보는 것은 현실성이 없는 주장이다.또 휴전협정은 군사적 성질의 조약으로서 교전자가 협정의 당사자가 되며 교전 쌍방의 군사령관이 교전자를 대표해 체결하는 것이 통례이며 이 휴전협정은 모든 교전당사국들에게 적용된다. 한국 휴전협정의 체결 「서명자」는 중국 인민지원군 사령관인 팽덕회,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일성,유엔군 총사령관 클라크였고 휴전협정의 「당사자」는 당연히 한국전쟁의 교전당사자들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당사자는 한국과 참전 16개국이 일방이 되고 북한과 중국이 타방이 된다.북한은 조약당사자와 조약서명자를 혼동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정전협정 폐지,대미 평화협정체결」이라는 북한의 주장이 현재의 남북간 대치상황 속에서 관철된다면 남북관계를 규율하는 큰 틀이 사라져 우리 안보는 심각한 우려상태에 빠져들 수도 있다.정전협정이 폐지되면 유엔사령부가 해체되어야 하고 미북 관계의 정상화로 주한미군의 주둔명분이 약화될 수 밖에 없는 까닭이다. 북한의 주장대로라면 평화협정에서 한국이 배제될 경우 남북관계는 정전협정의 파기로 전쟁상태가 회복되어 결과적으로 교전관계가 되고,미북 관계는 평화협정으로 관계정상화를 이루게 된다.그러므로 북한의 속셈은 한반도내 내전상태를 유도하고 미국의 개입을 차단시키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는 북한의 이같은 문제제기에 대해 유엔 총회나 안보리에 해결을 요청하는 한편 정전협정 체결 당시 유엔측 참여국들이 북한에 외교적·경제적 압력을 행사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또 주한미군 주둔에 대한 우리측 입장을 선명하게 정립해야 하고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지속하되 한국군의 위상증대와 독자능력증대에 힘써야 한다. 현단계에서는 군사정전협정을 대체할 수 없기 때문에 대미평화협정 반대 및 군사정전위 기능회복에 노력하면서 북한의 의도를 사전에 봉쇄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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