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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욕·식욕·성욕 감퇴 혹시 나도 우울증 ?

    의욕·식욕·성욕 감퇴 혹시 나도 우울증 ?

    영화배우 이은주씨의 자살을 계기로 새삼 우울증이 화제가 되고 있다. 우울증과 자살의 상관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자살자의 70%가 우울증을 가졌으며, 우울증 환자의 자살 가능성이 일반인에 비해 무려 41배나 높은 것으로 보고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연간 6000여명의 자살자 가운데 80%인 5000명 정도가 우울증 환자로 추정된다. ●누구나 가진 우울증 우울증은 성인의 11% 정도가 가질 정도로 흔하지만 이은주씨의 예에서 보듯 질환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정상적인 치료를 받는 경우는 드물다. 성인 6명 중 1명이 우울증을 가졌지만 우울증이라고 여기지 않거나 엉뚱한 치료를 받느라 치료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세브란스정신건강병원이 집계한 자료를 보면 지난 96년에 정신과 입원치료를 받은 환자의 50%를 차지한 정신분열증 환자가 2001년 이후 급감한 반면 우울·조울증 등 기분장애 환자는 40%나 증가하는 등 정신질환 발생추이가 크게 바뀌고 있다. 이런 변화는 일상적 스트레스와 관련이 많아 앞으로도 우울증 환자는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삼욕 감퇴라면 문제 우울증이 나타나면 의욕상실, 정서적 슬픔과 함께 삶에 흥미를 잃게 된다. 신체적으로는 만성 피로감과 가슴 답답함, 어지럼, 식욕부진과 두통, 근육통, 성욕감퇴, 불면증 등이 나타나는데, 특히 ‘의욕·식욕·성욕’의 3가지 기본욕구 감퇴가 우울증의 전형적인 증상이다. 증상은 하루중 아침 기상시에 가장 심하며 이 때의 충동이 자살의 계기가 되는 경우가 많다. 또 우울증 환자의 10%는 자살충동과 함께 피해의식과 망상, 환청 등 환각증상을 겪는 정신질환으로 발전하는 만큼 예방과 조기치료가 중요하다. 우울증은 여러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다. 생물학적으로는 뇌의 신경전달 물질인 세로토닌, 도파민 등이 부족해서 생기며, 자존감이 낮고, 자신에 대해 엄격하거나 의존적인 사람이 외향적인 사람보다 발병률이 높다. 이혼, 사별, 실직, 스트레스도 주요 원인이며 이밖에 뇌, 소화기, 심장 등에 심각한 질환을 가진 경우에도 우울증이 나타난다. 성별로는 여성이 남성보다 2배 이상 높은 발병률을 보이며, 가족력이 있는 사람의 발병률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3배 이상 높다. ●치료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은 기질에서 비롯된 어쩔 수 없는 질환이라거나 스스로 극복할 수 있다고 여기지만 정신질환인 우울증을 환자 자신이 감당할 수는 없으며, 치료 시기만 놓치지 않으면 완치가 가능한 질환이다. 지금까지는 획일적 약물치료(항우울제)에만 의존해 완치율이 낮았으나 최근에는 환자의 개인별 특성을 고려한 ‘맞춤치료’와 인간관계를 고려한 ‘대인관계 치료’가 선보여 재발을 막고 치료시기를 크게 단축한다. ●예방책 규칙적인 식사와 충분한 휴식, 적당한 신체활동 등이 우울증 예방에 도움이 된다. 또 적극적인 사고방식과 자신있는 생활태도,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스트레스는 즉시 해소하며, 주변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통해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도 중요하다. 환자에게서 자살 징후가 나타나면 충동적 행동을 못하도록 관찰하며 서둘러 의사를 찾아야 불행한 사태를 막을 수 있다. ■ 도움말 전우택 세브란스병원 정신과 교수, 윤세창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교수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기고] 지금이 벨 에포크인가/이균 홍익대 무역학과 교수·한국무역포럼회장

    경제란 용어는 다른 말로 표현하면 절약이다. 절약을 해야 할 이 시기에 정부는 마치 이 시기가 ‘벨 에포크’인 것처럼 생각하고 국민들에게 소비를 충동하고 있다. 현재 사람들의 호주머니는 텅텅 비어 있어 소비에 매몰될 그럴 시기가 아닌데도 말이다. 가계가 빠듯하여 살림을 꾸려가기가 너무나 힘든데, 설상가상으로 직장을 잃어 수입이 전혀 없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카드빚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인데도 불구하고, 일부 기업의 경영실적이 좋다고 해서 모든 국민이 그런 회사에 근무하는 것으로 정부는 착각하고 있는 것 아닌가. 가계나 기업이나 나라나 그 경제주체가 무엇이든 간에 흘러간 세월을 뒤돌아보면 ‘벨 에포크’는 있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런 시기가 아니다. 국민소득은 소비+투자+(수출-수입)이다. 소득은 물론 소비하거나, 저축하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저축은 투자로 이어져 미래의 소비가 된다. 미래의 소비를 위해 좀더 허리띠를 졸라매어 소비를 억제하여 저축을 해야 한다. 어려운 살림일수록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려 투자와 수출을 확대해야만 나라든 기업이든 가정이든 호주머니가 두둑해져 경제가 튼튼해질 것 아닌가. 1880년부터 1914년까지의 서구사회를 흔히 벨 에포크(belle epoque), 즉 ‘좋았던 시절’이라 부른다. 그만큼 사회·문화·경제 등 여러 방면에서 화려했던 시기라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발전할 대로 발전하여 제국주의를 거쳐 제1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치달았고, 다양한 문화와 과학기술이 일상에서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물론 좋았던 시절이란 당대인들보다 제1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미증유의 고통을 겪은 사람들의 말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전쟁의 참화 속에서 사람들은 “지금과 달리 그 좋았던 시절에는…했었는데.”라며 회고하기 일쑤였고, 그러다 보니 마치 ‘원래부터 좋은 시절’이 따로 있었던 것처럼 되어버렸다.‘벨 에포크’를 슈테펜 케른 교수는 그의 저서 ‘시간과 공간의 문화사’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생산의 증가는 국내소비와 수출의 증가로 이어진다. 우리의 경제는 국내소비보다 수출에 의존해야 할 것이다. 지난해 국내외 경제여건이 좋지 못하였지만 2542억달러의 수출이 바로 우리 경제의 버팀목이었다. 새해 들어 1월의 수출입 실적도 양호한 편이다. 전년 동월대비 수출은 18.7%, 수입은 19.2% 증가했고 무역수지는 32억 3100만달러 흑자로 좋은 출발을 보이고 있다. 수입은 원자재와 중간재(자본재)와 최종소비재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자원이 부족하여 원자재수입은 불가피하다. 수입을 줄여야 할 것은 중간재밖에 없다. 수입 가운데 자본재수입이 20.8% 증가했고, 특히 기계류와 전기전자제품수입의 증가율(40.5%)이 높다는 것은 국내투자가 뒷받침되면 좋은 현상이다. 왜냐하면 자원이 부족한 우리의 입장에서 수출을 늘리기 위해서는 원자재수입은 불가피하며, 소비재수입은 수출을 늘리면 늘릴수록 수출상대국으로부터 일정량 소비재를 수입하지 않으면 보복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무역은 기브 앤드 테이크이다. 수입을 줄여야 할 것은 중간재밖에 없다. 그런데도 아직도 자본재 수입비율이 20.8%인 것은 큰 문제이다. 이런 상황에서 설상가상으로 자동차판매나 백화점매출의 증가 등 국내소비의 증가를 경제의 수장(경제부총리)이 낙관적으로 보고 “경제는 호전될 것”이라고 미소짓는 표정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특히 고유가, 원화절상, 제조업공동화와 높은 실업률이 잠복되어 있는 상황에서. 지금의 경제상황을 먼 훗날 ‘벨 에포크’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균 홍익대 무역학과 교수·한국무역포럼회장
  • [우리동네 이야기] 장충동

    [우리동네 이야기] 장충동

    ‘낙엽송 고목을 말없이 끌어안고’라는 요절가수 배호(1942∼71)의 노랫말과도 같이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곳, 돼지족발로 이름난 곳…. 서울 중구 장충동은 장충단(奬忠壇)이 자리해 이름이 붙여졌다. 한때 통일주체국민회의가 동원돼 대통령을 뽑는 등 ‘체육관 정치’의 대명사로 꼽힌 장충체육관을 떠올리게도 한다. 장충단은 현재의 장충단공원에 자리했으나 6·25전쟁 때 파손되고 장충단비(서울시 유형문화재 1호)만 남아 있다.1900년 고종이 설치했으며, 봄과 가을에 한 차례씩 민비 시해사건 때 숨진 문무(文武) 관리들의 넋을 달래는 제사를 지냈다. 장충체육관 맞은편 족발골목에는 대형 업소만 20곳 있다. 이젠 워낙 유명해져 전국 어디서나 품질을 보증이라도 하듯 장충동 이름을 빌리고 있다. 장충동 족발이 유명해진 데에도 장충체육관과 깊은 사연이 숨었다. 중구문화원 김동주(46) 과장은 “60년대만 해도 건강식으로 꼽혔던 족발을 파는 업소가 한두 곳이었다.”면서 “1960년 국내1호 실내체육관으로 지어진 장충체육관이 들어서 프로레슬링, 복싱 등 스포츠 경기를 보러 온 시민들이 허기를 채우려고 몰려들어 성시를 이루자 계속 늘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50년대 초 중국 음식인 오향장육에서 힌트를 얻어 족발찜을 개발한 원조 전박숙(여·91년 작고)씨도 장충동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그 무렵 관중들이 족발집에서 소주잔을 곁들여 일삼던 선수들 얘기와 함께 전국적으로 퍼져나간 것이라는 분석이다. 장충동 주민자치센터에서는 매주 목요일 오후 7시 ‘관상학 교실’이 열린다. 매번 수용인원 40명보다 훨씬 많은 50∼60여명이 몰려든다. 우리나라에서 단 한 곳뿐인 종이미술박물관도 장충동에 있다. 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 쪽 ‘종이나라’ 건물에서는 종이접기 전문가들이 만든 그림, 꽃, 인형 등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종이에 얽힌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평일 오전 9시30분∼오후 5시30분 문을 연다. 장충동은 옛날 사소문(四小門) 가운데 하나인 남소문이 있었다는 빌미로 일제가 남소동이라고 낮춰 불렀다. 그러다가 광복 이듬해인 46년 장충동으로 명예를 되찾았다.2900여가구에 인구 6200여명이다. 중구 15개 동 가운데 면적이 1.36㎢로 가장 넓다. 글 사진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말말말˙˙˙

    이제 격정이나 충동에 의해 해커를 할 나이가 지났다.-최근 사이트를 자진 폐쇄한 중국 최대 해커조직 ‘중궈훙커롄멍(中國紅客聯盟)’의 창시자가 공개 서한을 통해 “지난 2000년 12월 31일 설립 이후 한때 회원 수가 8만명을 넘었던 조직을 해산하겠다.”고 선언하며-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성家 ①-CJ그룹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성家 ①-CJ그룹

    CJ그룹에는 삼성그룹의 모태인 제일제당의 오랜 ‘역사와 전통’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1953년 설탕회사로 출범, 제일모직·삼성전자·삼성생명 등 현재 삼성그룹의 기업적 ‘젖줄’이 된 곳이 바로 CJ(옛 제일제당)다. 또 삼성의 인재를 길러낸 ‘인재사관 학교’ 역할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90년대 중반까지 CJ하면 떠오르는 것은 설탕·밀가루 등을 만드는 식품회사 정도였다. 그 이후 점차 생명공학, 홈쇼핑, 엔터테인먼트 등 신세대 사업으로 외연을 확장하면서 식품회사의 틀과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던졌다.1995년 그룹 분리 당시 1조 5000억원이었던 그룹 매출은 지난해 8조원, 영업이익은 97억원에서 5000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자산 기준 재계 서열 23위의 기업으로 도약했다. 끊임없이 모험과 변신을 꿈꾸는 벤처기업처럼 역동적으로 사업을 발굴, 추진해 온 덕분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삼성가(家)의 장손이 우뚝 서있다. ●부친 ‘공백’ 메우는 직계 장손 CJ는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장손인 이재현(46) 회장이 이끌고 있다. 그의 부친은 고 이 회장의 장남인 이맹희(76) 전 제일비료 회장. 부친이 할아버지 눈밖에 나는 바람에 이 회장은 일찌감치 부친을 대신,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며 삼성과 제일제당에서 경영 수업을 쌓았다. 한솔그룹(창업주의 장녀 이인희 고문), 신세계(4녀 이명희 회장), 새한미디어(차남 고 이창희 회장)에 이어 가장 늦게 삼성에서 떨어져 나왔다.1993년 시작된 CJ의 계열 분리 작업은 지난 97년 법적으로 완전히 정리됐다. 이 회장이 36세때의 일이다. 그룹을 혼자 경영하기에는 나이나 경험이 모두 부족했다. 그러다 보니 CJ는 자연히 이 회장과 외삼촌인 손경식(66) 회장이 함께 경영하는 ‘쌍두마차’ 체제로 유지됐다. 손 회장은 대외업무, 이 회장은 내부경영 등으로 역할 분담을 했다는 것이 CJ측의 공식적 설명이지만 이들의 역할을 뚜렷하게 구분짓기 어려웠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만큼 이 회장의 비중이 컸다는 얘기가 된다. 이 회장의 ‘등극’은 삼성가의 3세 경영이 본격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장남인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의 3남 조동길 한솔그룹 회장 등 사촌들과 함께 삼성가의 3세 경영시대를 여는 주역으로 떠올랐다. 서울 남대문로 본관 사옥에 있는 그의 할아버지 흉상은 그가 삼성가의 직계 장손임을 상징해 주고 있다. ●평범한 혼인, 드러나지 않은 내조 고 이 회장의 장남 맹희씨는 부인 손복남(71)씨와의 사이에서 2남1녀를 뒀다. 자녀 모두 평범한 집안과 혼인해 이렇다 할 화려한 혼맥이 눈에 띄지 않는다. 맹희씨가 코흘리개인 네살 때 이미 “아이들이 자라면 혼인을 시키자.”는 양가 어른의 언약이 인연이 돼 손씨와 결혼했다. 이화여대 교육학과 출신인 손씨는 부친이 경기도 지사와 농림부 양정국장을 지낸 손영기씨다. 손복남씨가 부친을 모시고 병원에 가는 것을 먼 발치에서 지켜보고 난 뒤 맹희씨는 결혼을 결심했다고 한다. 손씨는 삼성가의 맏며느리로서 겉으로는 화려해도 남편이 풍상을 겪자 말 못할 마음의 고통을 삭이며 살아왔다. 서울 장충동 집에서 시부모를 모시며 3남매를 키웠다.CJ가(家)의 명실상부한 ‘안주인’ 역할을 묵묵히 해오고 있는 것이다. 경영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았으나 제일제당의 최대주주로 있다가 주식 증여를 통해 경영권을 장남 재현씨에게 넘겼다. 재현씨는 어릴 때 할아버지로부터 각별한 사랑과 함께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 체격 등 외모, 사고나 행동방식까지 조부와 비슷해 ‘리틀 이병철’이라고도 불린다. 결혼 후 “나가서 신혼살림을 하라.”는 부모님의 얘기에도 “할머니를 모시고 살겠다.”며 고집을 피워 2001년 1월 할머니 박두을씨가 별세할 때까지 서울 장충동 집에서 모셨다. 지금도 모친 손여사와 함께 장충동 집에서 산다. 경복고, 고려대 법대 출신인 재현씨는 “누구 덕을 본다는 이야기를 듣기 싫다.”며 1983년 씨티은행에 취직,‘탈 삼성행’을 시도했다. 하지만 조부인 고 이병철 회장이 “재현이에게 왜 남의 집살이를 시키냐.”는 불호령을 내려 결국 85년 삼성의 주력 계열사였던 제일제당 경리부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이후 88년 경리부 차장,89년 기획관리부장으로 승진했다.92년부터 1년 정도 삼성전자 전략기획실 이사대우로 일하기도 했다.93년 제일제당 이사로 친정에 복귀해 97년 부사장,99년 부회장을 거쳐 2002년 회장에 올랐다. 부산 출신으로 이화여대 미대 장식미술학과를 졸업한 부인 김희재(46)씨와는 대학시절 미팅을 통해 결혼, 딸 경후(21)씨와 아들 선호(16)군을 뒀다. 두 자녀는 현재 해외 유학 중이다. 90년대 중반 이 회장은 회식을 끝내고 밤늦게 직원들을 집으로 데려와 2차 술자리를 갖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도 부인 희재씨는 한번도 짜증을 내지 않고 뒷바라지해 직원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기도 했다. 또 이 회장과 함께 노인무료급식소 등에서 김장을 하고 노인들의 가정에 도배도 하는 등 사회봉사활동에도 열심이다. 이 회장의 장모인 김만조씨는 ‘김치박사’로 유명하다.CJ의 김치개발에도 참여했다. 영국과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김씨는 연세대, 서울여대 등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홈쇼핑·영화등 사업다각화… 재계 23위 ‘껑충’ 이 회장의 누나 미경(48)씨는 부친이 유학 중이던 미국에서 동생 재현씨와 함께 태어났다. 어릴 때 ‘미키’라고 불린 것을 계기로 지금도 ‘미키 리’라는 이름으로 해외 활동을 한다. 중학교때 대통령배 영어 웅변대회에서 1등을 하기도 했다. 영어외에 불어, 중국어에도 능통하다. 경기여고, 서울대 가정학과, 미국 하버드대에서 동아시아연구로 석사학위를, 상하이 푸단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았다. 1995년 제일제당 멀티미디어 사업부 이사 시절 스필버그 등이 설립한 세계 최대의 영상소프트회사인 ‘드림웍스’와 제일제당의 합작을 성공시킨 주역이기도 하다. 당시 이건희 회장과 이재현 회장은 직접 미국으로 건너가 스필버그와 협상을 벌일 만큼 드림웍스 설립에 남다른 애착을 보였으나 결국 그는 삼촌 대신 동생 재현씨의 손을 들어주었다는 후문이다. 지난해 말 CJ엔터테인먼트 사업의 글로벌 부문을 맡아 사업의 본격적인 해외진출을 진두지휘하게 됐다. ■ ‘비운의 황태자’ 이맹희씨-삼성 경영서 물러난 뒤 유랑생활 고 이병철 회장의 장남이자 이재현 회장의 부친인 맹희(76)씨는 요즘 몽골에 머물고 있다. 과거 유목민의 후예들이 사는 그 곳이 그에게는 오히려 편안함을 준다고 했다. ‘비운의 황태자’‘양녕대군’은 맹희씨에게 따라 다니는 수식어다. 그는 삼성을 이끌 ‘운명’을 타고 났지만 오히려 바람처럼 떠도는 처지가 그의 ‘운명’이 된 ‘풍운아’다. 동생 이건희 회장으로 후계구도가 정해진 후 그는 형제들은 물론 자신의 가족들과도 떨어져 세속을 등진 채 살아왔다. 그의 ‘유랑생활’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부친이 기업을 일구는 것을 보며 컸다.1938년 삼성의 설립으로 기록되는 삼성상회 간판 아래 부친이 대구에서 국수공장을 운영할 당시 공장 귀퉁이 방안에서 부친이 새우잠을 자며 일하는 것을 보며 자라난 삼성 성장사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경북고 32회 출신으로, 노태우 전 대통령, 고 김윤환 의원, 정호용 전 의원 등 TK출신 정치인들과는 친구사이다. 그는 일본, 미국 유학을 거쳐 안국화재 업무부장을 시작으로 중앙일보, 삼성전자 부사장 등 직함이 무려 17개에 이를 정도로 강도 높은 경영 수업을 받았다. 이 때만 해도 그의 호칭은 삼성의 ‘젊은 부총수’였고, 아무도 그가 삼성의 경영 대권 주자로 낙점될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세계 최대의 비료공장을 만들려 했던 선친이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1966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자 그는 실질적으로 그룹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선친의 눈밖에 나면서 그룹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야 했다. 그때가 1971년이었다. 그는 회고록 ‘묻어둔 이야기’에서 “자신이 삼성에서 일한 기간은 7년이고, 물러난 것은 기업이 혼란에 빠져서가 아니라 몇마디로 간단하게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사정이 있어서다.”라며 부친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부친이 동생 이건희 회장으로의 대권이양 선언시를 회고할 때는 “아버지와의 사이에 상당한 틈새가 있었지만 언젠가는 나에게 삼성의 대권이 주어질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며 당시의 ‘충격’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bori@seoul.co.kr ■ 차세대 사업의 양날개 ‘左-미경, 右-재환’ 차남 재환(44)씨는 배재고, 타이완대 정치학과 출신으로 현재 경영기획실 중국담당 상무로 베이징에서 근무하고 있다. 한때 제일제당 일본지사 부장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재환씨는 일본과 중국쪽 사업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7·8·9대 국회의원을 지낸 민기식 전 의원의 딸 재원(38)씨와 결혼, 딸 소혜(15)양과 아들 호준(7)군을 뒀다. 재원씨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나왔다. ●“오너보다 CEO로 평가받겠다.” CJ맨들이 보는 이 회장은 ‘꿈과 비전·열정이 큰 사람’으로 요약된다. 회사의 실적을 보고 받으면 “최소한 얼마는 돼야 하는데, 회사가 좀 더 커야 한다.”며 항상 아쉬움을 토로한다. 사원들과의 대화를 ‘정말’ 즐긴다. 좀처럼 격식을 따지지 않는다. 책상에 걸터 앉아 얘기를 하고, 직원들과 남산에 올라 자유토론도 한다. 회사의 경영 방침과 경영 철학을 직접 설파, 공감대를 넓혀나가는 식이다. CJ 관계자는 그런 그의 행보를 두고 “오너라기보다는 유능한 최고경영자(CEO)로 평가받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최태원 SK 회장이 사석에서 “이 회장은 정말 공부를 열심히 한다.”면서 “10년 뒤 살아 남을 사람(오너)은 이 회장밖에 없다.”고 말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만큼 오너 2,3세들 중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안착한 경영인이란 방증이다. 재벌가의 후손들이면 보통 가는 해외유학 코스도 밟지 않은 ‘토종파’인데도 그의 기업 문화론은 어느 기업보다 앞서간다. 오래된 보수적인 회사로 짧은 시간에 젊고 활기찬 기업으로 변모시킨 것은 바로 ‘이재현 식’ 기업 문화에서 비롯됐다. 국내 최초로 복장 자율화,‘∼님’으로 호칭 통일, 플렉서블 타임제(자율 출퇴근시간), 층마다 비치된 간이 도서관 등은 다 그의 작품이다. CJ의 역사가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삼성과의 결별을 앞둔 94년 10월 삼성측이 제일제당에 이학수 당시 삼성화재 부사장(현 삼성 구조조정본부장)을 파견, 삼촌 이건희 회장과 조카 이 회장의 신경전은 제일제당이 삼성본관에서 95년 4월 현재의 사옥으로 이사오기까지 6개월간 계속됐다. 제일제당이 보유한 부동산, 삼성생명주식 평가방법을 놓고 양측은 치열한 공방을 벌인 끝에야 제일제당은 ‘독립’을 선언할 수 있었다. 삼성그룹에서 분리될 당시의 제일제당은 삼성의 전자 및 중공업 위주의 우선 투자전략에서 밀려 성장한계를 보인 상황이었다. 식품회사라는 고정된 이미지도 그룹 성장의 걸림돌로 작용했다. 그러나 1995년 독자경영을 시작한 이후 이 회장 주도로 식품 등 기존의 사업을 다지면서 미디어·영상·물류·유선방송·홈쇼핑 사업 등 다각화된 사업으로 포트폴리오를 짰다. 식품·정보통신·화장품, 음료사업 등 매년 수십억에서 수천억원의 적자를 내는 비주력 사업은 과감히 매각했다. 이 가운데 인터넷사업인 드림라인은 이 회장이 주도한 사업 중의 하나였으나 그다지 빛을 보지 못했다. 그렇지만 ‘미련’을 갖지 않고 구조조정을 무난하게 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의 식품, 식품서비스, 바이오,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신유통 등 4개 분야를 CJ의 핵심 사업으로 확정했다.“설탕이나 파는 식의 마인드로 살아 남을 수 없다.”면서 이 회장은 당시 직원들의 신발끈을 조였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내실있는 임원 김주형(58) ㈜CJ 대표이사 사장은 1972년 제일제당에 들어온 이후 최고 경영자자리에까지 오른 입지적인 인물. 곡물구매 전문가로 자기 색깔을 내지 않으며 두루 회사를 아우르는 ‘덕장’형이다. 각양 각색의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자칫 불협화음이 나올 수 있는 갈등 사안들을 절묘하게 중재·조정하는 ‘조율사’로서 탁월한 역할을 해낸다는 평이다. 특유의 친화력과 유연성 덕분이다. 그는 아랫사람에게도 존대하며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해 권위의식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포근한 느낌을 준다. CJ개발 문성기(56)사장은 1974년 제일제당에 입사, 신사업 본부장 등을 거쳐 99년부터 CJ개발 대표를 맡았다. 우리나라 골프장 최초로 미국 LPGA 대회를 유치해 2002년 부터 3년 연속 성공적으로 개최,CJ의 골프장 ‘클럽 나인브릿지’를 세계 100대 회원제 골프장으로 만드는 것은 물론 CJ그룹을 해외에 알린 주역이다. 조용하면서도 강한 리더십이 강점이다. 이태호(57) CJ푸드시스템 대표(부사장)는 1973년 삼성그룹으로 입사, 사료본부장 등을 거쳐 2003년 말부터 CJ푸드시스템을 맡았다. 사료본부장 시절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으로 일찌감치 사업을 확장한 주역이다. 부하직원들로부터 냉철한 판단력과 따뜻한 마음을 가진 리더로 평가받는다. 의사결정이 빠르고 사업의 비전 제시력이 강하다는 평이다. 소탈한 성격으로 격식에 얽매이지 않아 평이 좋다. 박동호(49) CJ엔터테인먼트 대표(부사장)는 ‘비즈니스맨의 모범’으로 불린다. 국내 최초로 멀티플렉스(복합상영관) 극장체인인 CGV를 도입, 업계 1위로 성장시켜 사업역량을 인정 받으면서 한국 영화판을 좌지우지하는 ‘충무로 파워맨’으로 입지를 굳히고 있다. 지난해 게임업체인 플래너스를 전격 인수하는 수완도 발휘했다.‘튀는’ 사람들과 일하는 분야에서 내부를 꼼꼼하게 추스르고 챙기는 관리자의 역할에 꼭 맞는 인물이다. 김진수(54) CJ홈쇼핑 대표(부사장)는 제일제당 마케팅 실장 등을 거쳐 다국적기업 한국 존슨의 사장으로 잠시 외도했다가 친정으로 복귀한 케이스. 마케팅실장때 대상(옛 미원)과의 조미료 전쟁에서 ‘다시다’로 역전을 이뤘고, 식품본부장 시절에는 ‘햇반’ 등 신상품을 시장에 안착시켰다. 중국 홈쇼핑시장에 진출하는 개가를 올리기도 했다. 해외통이자 마케팅 전문가로 평가 받는 그는 분단위로 스케줄을 관리할 정도로 자기관리에 철저하다. 박대용(53) CJ GLS 대표(부사장)는 업계에서 손꼽히는 물류 전문가다.1977년 제일제당에 입사,89년 물류개선팀장으로 발탁된 이후 16년간 물류관련 업무에만 종사해 왔다. 지난 99년 택배사업에 진출,3년만에 매출 1000억원을 돌파하며 CJ GLS를 택배업게 ‘빅 4’에 합류시켰다. 권위보다는 따뜻한 가슴으로 부하직원들을 대하는 ‘온화한 리더십’의 소유자다. 정진구(60) CJ푸드빌 대표(부사장)는 패밀리 레스토랑인 스카이락·빕스·한쿡과 베이커리 뚜레쥬르 등 외식사업을 총괄한다. 아이스크림전문점 배스킨 라빈스, 커피전문점 스타벅스 등이 그의 손을 거쳐 최고 브랜드로 성장했다. 국내 외식 업계의 ‘미다스의 손’으로 불린다. 직관력과 현장 감각이 뛰어나 한국에 진출하려는 외국기업들의 영입대상 1순위로 알려져 있다.2003년 말 CJ그룹에 부사장으로 영입됐다. 김홍창(51) CJ투자증권 대표(부사장)는 1981년 당시 제일제당에 입사, 제일투자증권 상무, 제일선물 대표 등을 거친 대표적인 관리·금융통. 제일선물 대표 당시 업계 8∼9위에 불과했던 회사를 1년여 만에 업계 2위로 끌어올려 놓기도 했다. 이재현 회장의 입사 초기 수년간 경리·관리 부서에서 함께 근무하기도 했다. 직원들과 스스럼 없이 이메일을 주고받는 등 격의없는 성격이며 조직 밀착 경영에 강하다는 평이다. 지난 1월 정기인사에서 전격 발탁된 CJ미디어 강석희 대표(상무)는 자타가 인정하는 제약마케팅의 귀재다. 마케팅에서 보여준 실력이 미디어라는 복합다기한 사업분야에서 어떻게 적용될지 관심사다. bori@seoul.co.kr ■ 손경식 회장은 누구 손경식(66) 회장은 이재현 회장의 외삼촌이면서 CJ그룹을 이끄는 또 다른 한 축이다. 이 회장에게 할아버지 고 이병철 회장이 정신적 지주라면 외삼촌 손 회장은 ‘경영 스승’인 셈이다. 이 회장이 회사 중대 사안을 놓고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누는 상대다. 경기고 2학년때 검정고시로 서울대 법대에 입학할 정도여서 ‘천재’라는 얘기를 들었다. 손 회장은 누나이자 이재현 회장의 모친인 손복남 고문이 삼성가로 시집가면서 삼성과 인연을 맺었다. 1968년 미국 오클라호마주립대 경영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공부를 하려던 그를 고 이병철 회장이 비서실로 불러들였던 것. 아무리 가까운 혈연이라도 능력이 없으면 발탁하지 않는 삼성가에서 그는 77년 38세의 나이에 안국화재(현 삼성화재)사장으로 발탁돼 삼성을 이끌 리더로 자리잡았다. 안국화재는 자신의 부친인 손영기 전 경기도지사가 사장을 맡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1993년 6월 제일제당이 삼성그룹에서 계열 분리되면서 조카 이 회장의 ‘후견인’ 역할이 요구됐다. 당시 경영 수업을 받던 재현씨를 어떻게든지 잘 보호해 제일제당의 ‘주인’으로 ‘옹립’해야 하는 임무가 주어진 것. 그는 주저하지 않고 삼성전자에서 일하던 조카 재현씨와 함께 제일제당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후 삼성과의 분리과정에서 갈등을 겪는 등 제일제당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구원 투수’로 활약했다. 96년 5월 “삼성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제일제당 그룹으로 새롭게 출발한다.”며 삼성그룹과의 결별을 공식 선언한 것도 그였다. 거대 그룹의 우산 아래서 떨어져 나온 제일제당이 큰 위기를 겪지 않고 오늘의 CJ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손 회장의 역할이 컸다는 것이 안팎의 평가다. 화려한 학맥으로 그는 정·관·재계의 인맥 네트워크가 강하다. 재작년에는 경기고 명예 졸업장을 받았다. 부인 김교숙(59)씨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bori@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이진의 섹스&시티]너무合니다

    뭐든지 도가 지나치면 모자라는 것만 못하다고 하죠. 섹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몸과 마음이 섹스를 원한다고 바로 밀어붙이는 스타일은 환영 받지 못하죠. 그러나 한편으론 아무리 상대방의 상태에 대한 일말의 배려심도 없는 무리한 섹스 요구에도 ‘싫다.’라고 이야기하지 못하고 혼자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단지 애인이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이유에서죠. 하루에도 몇 번씩 성충동이 일고 그것 때문에 일상생활이 불편하다면 ‘섹스중독’이라는 판정을 내린다고 합니다. 자기 안의 성적 욕구를 통제할 수가 없어서 괴롭고, 혹시나 다른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될까 전전긍긍하면서도 제어할 수 없는 상태인 거죠. 섹스중독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개 자신의 불안한 심리상태와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합니다. 섹스중독자인 남자친구를 사귄 경험이 있는 수현이는 그와 섹스를 할 때마다 고통스러웠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같이 섹스를 하면서 포르노 배우가 연출할 듯한 이상한 포즈를 요구하는 등 변태적인 요구를 해오자 참을 수가 없었죠. 싫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지만 찝찝한 느낌은 어쩔 수가 없었고…. 처음에는 그녀의 남자친구도 취미 생활(?)로 포르노 사이트에 들어가는 줄 알았다고 해요. 동영상이나 사진을 모으는 것도 애교로 눈감아주고요. 하지만 그러다 그녀는 우연히 조작해본 그의 디카에서 그가 짧은치마를 입은 여자들을 대상으로 몰래카메라를 찍고 다닌다는 증거를 포착하게 됐습니다. 나중에는 그가 인터넷의 몰래 카메라 사진 동호회의 운영자라는 사실까지 알게 됐죠. 그때서야 남자친구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수현이는 결별을 선언했습니다. 남자친구는 마지막으로 ‘성병’이라는 선물을 주고 달아났고요. 예전에 수현이는 그가 성욕이 남보다 왕성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려는 모험심이 강하다고만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섹스에 대한 일그러진 집착과 그 집착의 결정체인 몰래 카메라 사진을 보더니 그에게 문제가 있고 상담이 꼭 필요한 것 같다고 이야기하더군요. 자신의 성욕을 주체하지 못해서 자신의 일상과 다른 사람의 정신건강에도 피해를 주는 것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죠. 할리우드에서 성공한 배우중에 찰리 쉰이나 마이클 더글러스는 섹스 중독으로 유명하죠. 그들은 자신의 유명세 뒤에 저절로 따라오는 스트레스를 섹스로 해소하려 들었다고 합니다. 보통 사람들도 일상에서 받는 스트레스 수치는 유명인 못지않아서 해소수단을 섹스로 찾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아이디어가 안 떠오를 때, 자신의 의사가 무시됐을 때. 사람들 사이에서 방황할 때 섹스에서 위안을 찾으려고 하죠. 그런 보상심리도 어느 정도 이해하지만 섹스로 자신이 일궈놓은 삶과 친구, 애인을 위협한다면 다른 해소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현명할 듯합니다. 상담도 함께요.
  • [인사]

    ■ 대법원 ◇전보(지법 부장판사) △재판연구관 金仁謙 李圭鎭 李東信 李祥敏 李鎭萬 洪承勉△사법연수원 裵珖局 邊賢哲 李琳 池永哲 蔡東憲 黃迪和 洪碩範△서울중앙지법 姜玹 高毅永 金慶培 金東旿 金得煥 金相哲 金仁旭 金在馥 金在協 金昶寶 金忠燮 金翰用 朴正鎬 朴炯明 成箕汶 安承國 安英吉 李起宅 李聖勳 林治龍 張誠元 鄭永珍 鄭源台 趙英哲 趙仁鎬 崔相烈 韓明秀 韓昌昊 黃玄周△서울가정법원 金益鉉 孫旺錫△서울행정법원 閔中基 申東昇 安哲相 李太鍾△서울동부지법 金紋奭 金容奭 白春基 宋雨哲 任秀植△서울남부지법 수석부장 金滿五△서울남부지법 高榮錫 朴東英 朴泰東 愼明重 李景喆 李太燮△서울북부지법 郭宗勳 李均龍 李炳魯 黃漢式△서울서부지법 金潤權 成百玹 李光萬 李炫昇 周京振△의정부지법 金柄住 金成坤 裵峻鉉△〃 고양지원 張鎭勳 鄭鎭京△인천지법 文鍾植 徐昌沅 成志鎬 李明揆 李垠厓 崔正烈△〃 부천지원장 崔東軾△수원지법 邊五淵 梁宰榮 呂相源 李性哲 鄭亨植 崔鍾甲 洪任錫△〃 여주지원장 趙庸準△〃 안산지원장 元裕錫△〃 안산지원 李珉榮 鄭鎬建△춘천지법 수석부장 洪承徹△춘천지법 黃允九△〃 강릉지원 金洪道△〃 원주지원장 李潤植△〃 속초지원장 吳碩峻△〃 영월지원장 宋平根△대전지법 申光烈 尹炳九 李承勳 鄭甲生△〃 홍성지원장 金時徹△〃 공주지원장 金昭英△〃 논산지원장 李昌炯△〃 천안지원장 申東閏△청주지법 수석부장 朴大泳△〃 方承晩 魚秀龍 韓周翰△〃 충주지원장 姜永壽△〃 제천지원장 柳海鏞△〃 영동지원장 全元烈△대구지법 金大成 金埰海 吳世律 李永和 李贊雨 鄭容達 秦成哲△〃 안동지원장 金聖洙△〃 김천지원장 金正道△〃 의성지원장 朴昇烈△〃 가정지원장 趙昌鶴△부산지법 金眞洙 朴敏秀 尹根洙 李學洙 張在閏 崔允誠 洪光植△〃 동부지원 朴鍾薰△〃 가정지원장 權五鳳△울산지법 수석부장 高宗柱△울산지법 黃宗國△창원지법 수석부장 黃容瓊△창원지법 朴龍杓 尹章源 尹泰碩△〃 진주지원장 李洙哲△〃 통영지원장 崔寅奭△〃 밀양지원장 徐福鉉△〃 거창지원장 許洪萬△광주지법 金奎章 金大雄 金禹辰 盧貞姬 朴炳七 李斗炯 張秉佑△〃 목포지원장 金丙夏△〃 순천지원장 具吉善△〃 순천지원 尹奭相△〃 해남지원장 吳然正△전주지법 鄭忠謨△〃 군산지원장 孫周煥△〃 군산지원 李相勳△〃 남원지원장 崔鍾漢△제주지법 수석부장 趙漢暢△제주지법 高忠正△법원행정처 송무국장 金尙遵△〃 건설국장 李炅春△〃 기획조정심의관 韓勝△〃 사법정책연구심의관 金炯枓(재판연구관)△姜潤求 權純翼 金秀鎰 金容寬 朴晟秀 朴二奎 朴宰完 朴坪均 裵豪根 吳俊根 이범균 李柱元 鄭進受 趙鏞賢 趙一榮 崔英憲(고법판사)△사법연수원 李相元△서울고법 姜京兌 姜東郁 姜仁喆 姜泰勳 金炅蘭 金官重 金武謙 金云淏 金鼎郁 金鍾浩 金晋亨 金煥洙 金賢龍 金賢美 魯坰泌 文珖燮 朴根秀 朴淵昱 裵玄太 徐慶桓 徐敏錫 沈揆弘 安承浩 安正鎬 安浩鳳 梁仕淵 嚴相弼 呂運國 延雲熙 吳善姬 吳忠鎭 兪相在 유승관 尹昇恩 尹仁聖 李政浩 李俊相 全炫柾 鄭成太 鄭仁淑 趙貴章 池泳暖 崔誠倍 崔恩培 崔在爀 韓榮煥△대전고법 金度亨 金成守 宋寅赫 鄭貞美 黃進九△대구고법 權純卓 金敬哲 金起賢 金淵佑 孫鳳基 吳文基 崔月榮 黃泳樹△부산고법 權寧文 金東珍 文相培 朴春基△광주고법 宋基錫 梁炯權 張容基 崔永男△특허법원 沈俊輔 曺永善 韓東洙△법원행정처 기획담당관 郭炳勳△〃 기획조정심의관 姜翰承△〃 법무담당관 朴炯俊△〃 정보화담당관 白康鎭△〃 사법정책연구심의관 裵亨元 李承蓮 李在權△〃 사법정책담당관 李榮眞△〃 국제담당관 반정우△〃 인사제1담당관 朴英在△〃 인사관리심의관 馬鏞周△〃 인사제3담당관 尹綱悅△〃 송무심의관 李容九 鄭晙永△〃 공보관 李廷錫△법원도서관 조사심의관 李賢鍾 洪東基△국회 파견 李齊浩△헌법재판소 〃 金又洙 李泰秀 崔周永(지방법원 판사)△서울중앙지법 姜志賢 高範碩 權熙 權德晋 權純民 金東亞 김래니 金鳳元 金聖源 金成桓 金承貞 金昇柱 金承杓 金容河 金佑燦 金政珉 金正運 金志映 金知徹 金鎭東 金泰均 김태병 金炫淳 南成民 閔鐵基 박미리 朴柄三 朴炳泰 朴相九 朴璨浩 房二燁 白雄喆 宋昇龍 愼鏞碩 辛仁壽 廉元燮 魏寅奎 柳志源 劉昌勳 李相虎 李商熏 李聖鎔 李承徹 李榮光 李榮煥 李有炯 李銀姬 李鍾民 李準哲 李哲圭 李孝濟 鄭道成 鄭彰鎬 曺美玉 曺聖弼 陳相勳 崔鳳姬 崔皓植 許盛旭 玄容先 洪利杓△서울가정법원 申韓美 全甫晟 鄭丞媛 韓淑熙 洪昌佑△서울행정법원 金明燮 金貞淑 馬沃賢 朴聖寅 朴昌烈 吳太煥 李誠浩 李鍾采 田宗旻 洪龍健△서울동부지법 朴大準 朴淳官 朴贊益 徐英哲 宋開東 李城求 李鍾雨 曺羊希 朱珽大 咸鍾植△서울남부지법 金善一 金泳奎 文銖生 沈載南 尹兌鎬 李璟勳 李根壽 李彦學 林海志 陳尙範 崔珠榮△서울북부지법 閔聖喆 朴載永 손병준 李承衡 李沃衡 李鎭奎 鄭孝采△서울서부지법 權昌榮 金容培 金載昊 金鍾佑 金春蝴 文準燮 李賢雨△의정부지법 金敬 金容斗 金鎭哲 金昌鉉 金炯培 朴思朗 朴熙槿 邊珉宣 徐重錫 李相潤 李仁碩 林光鎬 林大虎 鄭暎勳△〃 고양지원 朴亮俊 徐榮孝 鄭桂先 黃淳敎△인천지법 權泰亨 金明洙 金榮鎭 金正坤 金知慧 南同熙 南善美 朴康濬 朴相吉 朴鍾學 徐湳澈 申校植 辛容武 魏光河 劉煥牛 尹道根 李珣衡 李正熙 鄭成均 崔承祿 洪起燦 許湘眞△〃 부천지원 金善日 金周石 宣宜宗 沈延洙 李政桓 崔柄律△수원지법 姜吉淵 姜旻成 姜泰旭 姜赫聲 高銀設 金剛大 金東奎 金亮希 金裕津 金重南 金珍成 文丁一 朴佑宗 朴宰賢 朴昌濟 申永澈 李美善 李雨龍 李憲淑 李炫雨 任成實 崔南植 崔有晶 崔喜竣 洪淳郁 黃琪善△〃 성남지원 蘇秉錫 元從燦 尹誠植 李相周 李一鹽△〃 여주〃 吳京錄 吳海鎭 柳成根△〃 평택〃 李光偶 李鍾業 許明山△〃 안산〃 姜熙錫 金江山 金南亨 金性洙 金泳植 魯幸南 閔智絃 石埈協 吳炳禧 全相根△춘천지법 申東勳 任銀河△〃 강릉지원 金俊模 洪起萬△〃 원주〃 黃勝泰△〃 속초〃 許景皓△〃 영월〃 金眞旿 李泰雨△대전지법 姜敬鎬 金佑鉉 南良祐 朴惠仙 李文雨 李賢洙 崔廷基 崔鎭永△〃 홍성지원 張榮達 趙鏞起△〃 공주〃 李秀烈 河泰興△〃 논산〃 張容範 全祐辰 鄭然宅△〃 서산〃 李尙佑 陳光哲 咸允植△〃 천안〃 姜淙善 姜和錫 金成律 金熙中 崔智壽△청주지법 羅瓊善 孫丞瑥 宋寅宇 李宗燁 張健 崔揆然 崔瑩洛 黃順鉉△〃 충주지원 徐在國△〃 제천〃 辛宇鎭△대구지법 姜東明 金奎一 金美京 金世鍾 金淵鶴 金一淵 金鍾赫 金芝淑 金鉉煥 金亨泰 南槿郁 朴萬鎬 朴連珠 朴致奉 成彦周 孫大植 孫鉉讚 申安載 李東遠 李亮樹 李允稙 林相奇 鄭在琇 崔漢洵△〃 안동지원 柳奭東 李元臣 李振錫 韓栽捧△〃 경주〃 吳勇圭 張性珍△〃 포항〃 金相日 金相泰 李茂尙 李相武△〃 김천〃 朴賢玟 宋景鎬 崔禎仁 洪承賢△〃 상주〃 金泰均△〃 영덕〃 權在七△〃 가정〃 金敬大 徐英愛△부산지법 姜敬淑 姜柄勳 姜城洙 金遠守 金栽亨 金政中 金鴻起 朴雲三 朴泂淳 徐輔民 李相根 李承起 李潤鎬 林栽勳 張成勳 鄭又榮 鄭允瀅 曺榮國 蔡貞善 千宗湖 崔恩禎 崔鍾玗△〃 동부지원 金度均 朴亨濬 李碩載 李宰旭 李興九 韓景根△〃 가정〃 朴原根 崔鍾宣△울산지법 權亮希 金眞伶 金春昊 朴相炫 白昇燁 申宗旿 이다우△창원지법 金海鵬 吳相辰△〃 진주지원 高齊成 金倞秀 李松昊 全在赫△〃 통영〃 蔡時昊△〃 거창〃 盧泰憲△광주지법 奇世運 金甲錫 金聖欽 朴康會 朴德熙 朴正勳 蘇洪哲 李官珍 李明哲 李承燁 이진화 曺基烈 崔秀煥 韓京煥△〃 목포지원 孫周哲 李世昌 李昌烈 鄭鏡根△〃 장흥〃 梁煥承△〃 순천〃 具廣炫 權奇萬 朴賢洙 孫今柱 孫炳元 李炳柱 李鍾潤 鄭文秀 鄭鉉錫△〃 해남〃 金敬熙△〃 가정〃 崔彰勳△전주지법 鄭載圭△〃 군산〃 沈奎皇△〃 정읍〃 金相延 南遵熙△제주지법 金昌權 柳英善(예비판사)△서울고법 金頃愛 金度均 金旻貞 金貞錫 金貞勳 盧泰弘 文鉉皓 朴之姸 吳揆姬 魏智鉉 柳孝英 李永男 李垠姃 李政炫 李仲杓 李知珉 李知玹 林泳澈 張賢珍 鄭恩英 陳炫志 崔雄永 河泰漢 河兌憲 韓基洙△대전고법 高椿淳 孫元洛 李惠鎭△대구고법 盧賢美 朴贊祐 李晙榮△부산고법 沈在完 李恩政 林相珉 鄭玄植 鄭惠垣 黃映喜△광주고법 姜完樹 高永錫 郭亨燮◇임명 (지법판사)△서울중앙지법 姜秀貞 高承一 權泰官 金京虎 金秀映 金暎賢 金允貞 金智善 盧柔慶 盧堤卨 柳然重 朴源鐵 朴恩永 朴宰徹 朴貞雨 朴玄廷 辛泳稀 吳明熙 吳娟受 元容一 李圭永 이기리 李旼映 李相悳 李世羅 李昇胤 李俊奎 李珍官 李春洙 林炯台 張洙榮 張承爀 趙璘英 崔寶元 崔瑞恩 黃仁京△서울가정법원 金亨作 柴振國 任惠媛△서울동부지법 羅眞伊 鄭洙眞△서울남부지법 金駿迎 卞芝英 李洙旻 李宜瑛 李廷源 任孝美△서울북부지법 김유경 朴玉熙 李尙禹△서울서부지법 金在玲 申基銑 李景顥 진세리 崔桂暎△인천지법 林秀姬△춘천지법 金辰玉 安復烈△〃 강릉지원 朴廷晧△대전지법 朴相賢 李尙容 鄭容信 崔成旭 崔眞淑△〃 천안지원 전서영△청주지법 金潤善 宋東眞 李善熙△대구지법 金玧宗 金志玹 朴根正 嚴撤 尹貞仁 李美貞 李春根 趙光國 崔瑛恩△부산지법 金鍾雲 柳鍾鳴 朴宰瑩 沈瑩眞 梁洵周 全騎興 丁文卿 趙政來 皇甫昇赫△〃 동부지원 金賢錫 韓岱均△울산지법 具賢模 梁祥倫 鄭榮泰△창원지법 金秀娟 李昶憲 李炫坰 張昌國△〃 진주지원 李智賢△광주지법 郭敬坪 김부한 金瑨煥 朴貞基 徐三熙 李羊姬 鄭善美△〃 순천지원 權五千△전주지법 金周玉 朴平洙 鄭夏廷 조은아△〃 군산지원 李義珍△제주지법 金琪洪(예비판사)△서울중앙지법 高炅男 金泳昱 金銀晶 金智香 文善珠 安孝昇 李京恩 李美仙 李惠林 張潤美 鄭世英 崔熒哲 許正龍 洪得貫△서울동부지법 徐汝廷 宋五燮 이지영 △서울남부지법 金湖錫 柳祥鉉 車智媛 黃載皓△서울북부지법 白淑種 李秀眞 林秀燕△서울서부지법 朴宰淳 李智英△의정부지법 朴勝民 朴鍾烈 李宗勳 張斗鳳△〃 고양지원 田顔娜△인천지법 權相杓 金源穆 朴宰佑 李善美 玄洛姬△〃 부천지원 宋方兒 河相翊△수원지법 文鍾喆 宋仁慶 윤나리 李晟恩 鄭知宣 洪恩杓△〃 성남지원 徐敬源 李永凡△〃 안산지원 李受娟△춘천지법 金仙雅 민규남△〃 강릉지원 南玄△대전지법 金成祐 羅相勳 閔庚和 朴允貞 吳智苑△〃 천안지원 鄭智媛△청주지법 梁相翊 윤이나 韓邵姬△대구지법 權埈範 金容台 金柱完 金淸美 朴進淑 尹賢貞 崔羲貞△부산지법 金惠眞 朴成萬 裵祥元 李銀明 李忠杓 丁東鎭 鄭英石 丁貞豪 崔有那△〃 동부지원 愼重權 鄭賢淑△울산지법 金芝娟 趙秉大△창원지법 金楨雨 金泰桓 朴晉永 李智善△〃 진주지원 權賢英△광주지법 金龍 金成俊 金振煥 金兌俊 金泰昊 柳和珍 李虎山△〃 순천지원 宋民和△전주지법 金珉我 金炫辰 兪賢英△〃 군산지원 安承勳△제주지법 尙鍾佑(연구법관)△金燦敦 朴徹 徐泰煥 孫志皓 申泰吉 楊泰卿 鄭震皓 池相睦 韓凡洙 ■ 정보통신부 ◇과장급 전보 △기획관리실 정보전략담당관 朴潤賢△정보화기획실 인터넷정책과장 羅奉河△정보통신정책국 정책총괄과장 閔元基△〃 소프트웨어진흥팀장 金炳洙△전파방송정책국 전파이용제도과장 李定求△〃 방송위성과장 金俊尙△정보통신협력국 협력기획과장 李相珍△중앙전파관리소 嚴燦旺 ■ 금융감독위원회 (국장전보)△기획행정실장 昔一鉉(교육파견)△중앙공무원교육원 鄭埰雄 ■ 금융감독원 △전문심의위원 林石植 ■ 공정거래위원회 △세종연구소 파견 池澈湖 ■ 대한주택공사 ◇처·실장급(1급)승진 △전략개발실장 이봉형△주거복지처장 김성균△임대계획처장 윤태희△택지계획처장 권 상△신도시개발처장 정병희△택지보상처장 최진두△PF 사업단장 최수호△주거환경처장 손덕길△고객지원처장 배철재△재무처장 조승면△비서실장 이광희△파주신도시사업단장 김재현△경기건설부본부장 손종철△오산신도시사업단장 이희관△광명역세권사업단장 최기환△수원호매실사업단장 안명선△부산정관사업단장 이임노△대전서남부사업단장 천전상△울산경남지역본부장 고태영△제주지역본부장 최종주◇처·실장급 전보△경영관리실장 신두철△임대공급처장 황태철△임대관리처장 배연창△건축설계처장 이해진△설계견적처장 심재걸△인력개발처장 안재선△연구개발실장 김병준△감사실장 성주현△경기지역본부장 김영도△판교신도시사업단장 민병헌△부산지역본부장 권성호△인천지역본부장 방만수△인천논현사업단장 서동직△대전충남지역본부장 송달영△아산신도시사업단장 정승용△전북지역본부장 박 석△광주전남지역본부장 이상규△대구경북지역본부장 이종덕△서울대 파견 백선희 조광수 ■ 국민은행 (본부본부장) △신용카드사업 金惠榮△자금 鄭星洙(지역본부장)△강서 金昌鎬△경수 吳炳乾△강남 余元植△강동 呂東壽△동부산 李慶鎬△서부산 李增浩△중부 李光石△서부 姜東淑△경인 金泰坤△남부 安炳斗△성남 申大玉△북부 權赫寬△호남 崔孝男△충청 丁奎亨△남서기업금융 李滿熙(본부팀장)△연구소 金璋熙△연수원 孫光春△재무관리팀 尹雄源△회계팀 金永錫△고객만족팀 田英姬△중소기업팀 李相權△투자금융팀 朴忠先△부동산금융팀 姜文鎬△카드마케팅팀 崔幸賢△카드특수영업팀 孫漢一△카드고객서비스팀 宋慶一△부동산사업팀 金載煥△복권사업팀 李在和△자금팀 梁東晧△기업여신심사팀 李景學△기업경영개선팀 李致漢△총무팀 金鐵弘△통합구매팀 池光源△콜센터관리팀 崔圭德△인력개발팀 崔棋義△노사협력팀 崔仁奎△경영검사팀 金益基△준법감시팀 李鎔昇△비서팀 李三鎬△감찰반 金德洙(지점장)△명동법인영업부 徐祺烈△명동영업부 李京九△서여의도영업부 沈富煥△가경동 安東學△가능동 李淳根△가양2동 金知德△가양동 金惠京△가좌공단 崔昌鎭△간석동 朴光一△갈산 任寬彬△강남 徐炅台△강남대로 金正旭△강남역 柳明欣△강남중앙 朴喜秀△강동구청역 金光得△강릉중앙 申東燁△강변역 李賢卿△강서 文俊煥△개봉동 金讚洙△거제 琴在允△경산 李度國△경안 金宰均△경안북 李濟京△계산동 李德煥△계산역 金熙珍△고강동 李成泰△고덕역 李明珪△고양동 咸泳卓△공릉동 鄭一溶△공평동 韓相達△공항동 金榮植△과천북 陸鎭悳△광교 辛瑛基△광명 成漢奎△광명역 金永喆△광양 崔柱倫△광주 奇宇三△괴정동 韓永佑△괴정역 張正杓△교대역 裵鍾洙△구로동 趙信根△구리 金相道△구리역 林石基△구의남 金祥在△군산 曺榮基△군자역 孔暎昌△금암동 金昌中△금정동 金學喆△금촌 安淳弼△기장 安致煥△길음뉴타운 嚴澤燮△김제 金楠永△김포서 허원△김해 朴鍾浩△나운동 李起馹△나주 吳茂根△난곡 盧善姬△남성역 金活洙△남양주 張承德△남역삼 朴順玉△남천중앙 朴江順△노량진 秋昌鎬△노원 李東植△노유동 鄭址德△논산 李在薰△논현남 宋連淑△논현사거리 金敬文△능동 咸奭鎬△다대동 朴洪對△당감동 朴瑢珍△당리동 姜永虎△당산남 李秉佑△당진 李宗鉉△대곡동 鄭九洛△대구본동 申亨錫△대덕밸리 趙成翼△대방동 金炳玉△대신동 張春龍△대전가양동 李萬熙△대전은행동 金珽珍△대치동 崔石元△대학로 劉永晏△덕소 具滋源△덕천동 孔泳杓△도곡동 金敬槿△도농 金容辰△도동 康鴻晩△도봉 洪東杓△도화동 趙忠元△독립문 李容浩△동교동 金鍾澤△동대구 韓成烈△동대문역 柳成烈△동대신동 崔賢模△동두천 韓相勛△동부이촌동 朴鍾哲△동수원 林佚洙△동아미디어 金榮允△동암역 崔宰燮△동해 高榮在△두정동 金麗中△둔산선사 張甲洙△마들역 裵海玉△마산 朴枝浩△마산역 金定友△마장동 손교균△마천동 金明昊△만수동 姜泰淳△망우동 韓明熙△매탄동 玄聖龍△면목동 梁昌錫△명륜동 金同根△명일역 李振鎬△모라 金澄△모란역 張英煥△목동2단지 任德均△목동6단지 宋花子△무교 金湘榮△문경 金駱鎬△문정동 李鍾洙△미금역 鞠珍杓△미아동 崔慶煥△밀양 趙在佑△방배남 宣相準△방배서 李仁傑방이동 金鎭億 △백궁 宋鳳錫△백마 石明國△범어동 朴憲鐘△범어사역 金龍祚△범일동역 文壽永△봉덕동 金東植△봉은사로 李慶洛△봉천역 鄭秉文△부개동 金惠連△부곡동 朴永祚△부산진 鄭林時△부송동 崔日洙△부안 金成潤△부여 林帝相△부전2동 金光明△부천남 權發容△부천중동 洪性珞△부천중앙로 金喆煥△북아현동 宋明漢△북악 白承東△분당구미동 金鍾元△분당아름 金重錫△분당중앙 申廷珍△분평동 張俊午△불광동 李亨魯△사당역 羅元柱△사직동 吳東象△삼성역 朴鎭台△삼양동 崔星福△삼척 池慶浩△상계동 金相薰△상계역 金勝勇△상인역 崔圻烈△서강 崔聳培△서광주 崔一新△서대전 陸完洙△서래 元京旭△서린동 李光圭△서부 李愚珍△서산 鄭東根△서소문 申昌浩△서신동 朴鍾泰△서염창 白永煥△서인천 徐禹錫△서초2동 金長榮△서초남 朴泰圭△서초북 石相根△서초역 張錫潤△서현동 李光林△석남동 姜周元△성남 李明圭△성남중앙로 許盛植△성동 曺秉福△성산 金吉洙△성수1가 郭在淳△성정동 李性康△세검정 殷奉周△세종로 張光淳△소공동 金暉根△소사 朴基榮△송강 金聖洙△송림동 成元華△송정 李重崎△수성동 曺喜泰△수안동 金勇根△수영 崔相敎△수원 李亨榮△수원남문 趙鏞國△수유동 金容圭△수지 田公植△수지남 鄭錫均△순천 高炯國△숭례문 金正天△시청역 金在煜△시흥신천동 李尙元△신갈 全昌載△신대방동 吳英姬△신림남부 朴星澈△신림서 姜元奎△신마산 李允福△신부동 李在春△신사역 韓泳祿△신정네거리역 李璜熙△신평화 李錦魯△신현동 金仁基△신호계 權行培△신흥동 兪奉根△쌍문북 鄭元卨△쌍문역 彭眞善△안동 尹相憲△안락동 金奉花△안산서 崔永福△안양 朴可淳△안양비산동 朴炅敦△압구정 鄭敦基△압구정서 張相洛△양산 禹原植△엄궁동 許宗勳△엄사 安相德△여서동 蘇忠永△여천 池斗煥△여천남 羅琮紈△역삼남 林榮信△역삼동 鄭燮義△역삼중앙 白海鉉△역촌동 李辰永△연동 金漢佰△연향 金澤中△영도 金性旭△영동교 河聖秀△영등포 魯官塾△영주 朴根用△영천 鄭在柱△예산 沈載旭△오광장 許相均△오류동 李晶豪△오류역 崔海奎△오목교 鄭河景△오장동 韓洪錫△오정동 盧柄煥△오클랜드 鄭淳日△옥교동 金參童△옥련동 金在壽△옥수동 金榮萬△옥천 金丙文△용산 李壽勇△용암 金正基△용인 全德洙△용인구성 吳賢哲△용현남 朴根基△우만동 鄭珍燮△운암2동 金江河水△울산남 千相規△울산신정 鄭千圭△울진 蔡元模△웅상 金鍍植△원당 金泰龍△원미동 尹哲重△원주단구 金永浩△월성동 金鎭熙△월평동 朱王植△유천동 金華中△은행동 韓大洙△을지로입구 趙辰顯△이곡동 崔倫燾△이대입구 朴廷勳△이문동 李善洙△이천 朴進△익산 李漢錦△일곡 邊笹淵△일도 高智先△일산동 郭暎熙△일산북 李敦永△작전동 朱信玉△잠실 羅春二△장산역 金相夾△장위1동 曺在錫△장충동 姜熙寬△전농동 朴世元△전주 金裕澤△전주중앙 洪圭植△정릉동 金相基△정왕동 郭壽石△정읍 蘇仁鎬△제주 洪明錫△제천 崔振秀△조치원 朴熙慶△종로 朴旺燮△종로중앙 尹明漢△좌동 鄭美香△주안8동 李德洙△주안중앙 鄭盛來△주엽역 朴潤煥△중계동 申承浩△중계역 高洪培△중곡서 金憲義△중앙동역 高英聲△중촌동 金杏美△중흥동 李昌柱△증권타운 沈星兌△증평 朴魯春△지산동 金在完△진월동 丁幸子△진주대안동 蔣榮勳△진천 金豊子△진해 金勍勳△창동 魏大復△창신동 崔容碩△천호역 金鶴晩△철산 金興滿△철산북 洪喆基△청계4가 石鍾淳△청담2동 鄭万鎔△청담역 朴亥順△청운동 權五綱△탄방동 洪九杓△태안 李愚龍△태평로2가 楊柱烈△통영 申尙浩△통영중앙 李璟燮△파장동 金漢玉△평택중앙 李汶秀△평화동 李瓚烈△포일 卞東洙△포천 全國鉉 포항 權五勳△포항남 琴秉夏△풍암 金權錫△하남 崔雲虎△하단동 崔承昌△하당 吳秉泰△하안동 趙良紀△하양 崔龍鎭△학익동 李桂然△한남동 洪珍澤△항동 李鶴武△해운대역 姜鍾道△형곡동 金基哲△호계남 郭信根△홍릉 金容範△홍성 張仁哲△홍제동 黃舜燦△화곡동 趙容根△화서동 李在允△화순 金仲坤△화원 朴淳福△화정동 曺塡鎬△화정역 金光燮△회원동 申光鉉△회천 任鎬英△효창동 趙俊九△후곡마을 丁善鎬△흑석동 鄭夏益(기업금융지점장)△가락동 金禹鉉△강북 姜永秀△광명 鄭鎬珪△광진 郭熙東△구로동 李相元△남동공단 李庚柱△내방역 孫成鉉△녹산공단 李昌根△달서 金聖元△대구 金漢玉△대전 鄭奇春△동래 金成經△목동 姜大昇△보라매 金敏植△부산 金昶坤△부전동 李錫鎬△분당 金朱洙△비산동 兪寅濬△사상 林壯萬△서인천 趙相翼△서초남 朴魯還△선릉역 李胤台△성서 裵成贊△수원 羅炳善△신암동 南啓潼△압구정서 文鉉宗△양주 金永東△유성 安在銖△의정부 金龍浩△일산 金洪男△정자동 白晩煜△종로중앙 孫榮煥△주안남 趙成日△청담동 卞相泰△청량리 李亨魯△충무로 金弘植△평택 安寅燦△포항 李源菉△해운대 金興洙△홍성 朴允榮△화곡본동 咸 植(기업금융팀장)△강릉 韓允基△거제 吳京錄△금촌 金鎬南△김포 尹泳春△양산 方仁錫△왜관 康吉性(센터장)△강남PB 金亨泰△도곡PB 尹重在△서초PB 尹雪姬△중부심사 朴晃默△여신관리지원 金泰宇△신용여신관리 閔明植△담보〃 朴鍾燮△기업〃 李鍾麟△인천〃 裵孝源△수원〃 李玄紀△부산〃 崔成軒△울산〃 朴大根△창원〃 金承在△대구〃 崔順植△포항〃 金相洙△광주〃 金榮鉉△전주〃 姜湧遠△순천〃 趙性默△대전〃 南宮鉉△청주〃 李昌均△천안〃 崔基福△원주〃 朴炳一△강릉〃 洪泰善△제주〃 李東月△대전콜센터 金演錫△대구업무지원 金亨根△창원〃 金鎭聖△광주〃 高在旭△전주〃 金禹森△대전〃 金順泰(개설준비위원장) 평내동지점 申暉源△죽전남지점 鄭薰模△북부심사센터 전용원△동부심사센터 金正魯(기업여신심사팀 수석심사역)△朴尙煥 李明奎 李喜永 ■ 서울증권 △컴플라이언스팀장(겸 준법감시인) 宋基哲 △재경팀장 崔明洙 ■ 하나로텔레콤 ◇상무보 △사업개발실 사업개발1팀장 金淵浩
  • [우리구 올해는] 성낙함 중구청장

    “세계적으로 ‘나눔의 시대’에 빠르게 접어들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에 발맞추지 못하면 경제성장을 이뤄도 사회불안만 커질 수밖에 없어요.” 성낙합 서울 중구청장은 ‘도심재생 프로그램’에 운명을 걸었다며 그 일환으로 사회안전망 구축 사업을 최우선으로 매듭짓겠다는 꿈을 밝혔다. 대한민국의 수도, 그 가운데서도 얼굴인 중구를 되살려놓음으로써 서울을 나라 안팎에서 누가 보기에도 번듯한 곳으로 만들겠다는 뜻이 숨어 있다. “가진 게 없다고 해서 떠나는 일이 없고, 반면 가진 이들이 들어와 살고 싶어하는 지역으로 가꿀 텝니다.” ●‘1직원 1가정 보살피기’ 운동 성 구청장은 실제 어렵게 살면서도 복지지원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여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틈새계층 1570여가구를 대상으로 ‘1직원 1가정 보살피기’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직원들이 처음엔 반신반의했으나 차츰 가시화하자 늘어난 업무 속에서도 자부심에 생겨 뛰어준 덕택이라고 뽐낸다. 기업체, 주민 등 불우이웃과 결연을 주선하기도 한다. 결연자들은 1대1로 계좌당 매월 5만원을 돕는다. 현재 812구가구와 정기결연이 맺어졌다. “빈부격차가 심하면 돈 있는 사람은 대우를 못 받고, 가난한 이들은 처지를 비관하기 쉬워집니다. 돈의 흐름과도 뗄 수 없기 때문에 골고루 잘 살도록 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지요. 사회안전망 사업은 그들이 국가경제 회복 등 계기만 주어지면 얼른 자활하도록 기틀을 마련하는 기초작업이죠.” 정부의 손길이 닿지 않고, 자치단체로서는 더 버거울 사회안전망 사업에 뛰어든 중구는 금전적 지원이 아니라 정신적인 괴리감을 없애는 데 초점을 뒀다. 그래서 더 뜻깊게 여겨진다. ●‘도심재생 프로그램’ 풀가동 이를 바탕으로 13만 6000여 주민들이 중구민이라는 자부심을 가지도록 도심재생 사업을 펼친다. 때마침 청계천 복원으로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동대문·남대문시장과 맞물려 오장동 냉면골목, 신당동 떡볶이골목, 장충동 족발골목 등 관광코스를 걸어서 돌아볼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일 참이다. 중구를 번듯한 ‘서울의 중심’으로 되돌려 놓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사례는 청소차량을 세차하지 않은 채 돌아다니지 못하도록 한 데서 엿보인다. 도로 보수에서 흔한 ‘땜질식’ 공사도 관내에서만큼은 없도록 조치했다. 지역개발은 말할 필요도 없다. 성 구청장은 이같은 결심을 되새기기 위해 집무실에 걸렸던 고층건물 사진을 신당동 일대 등 개발욕구가 강한 지역을 담은 것으로 바꾸기도 했다. 사업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 미국 보스턴의 세계적인 도시설계 전문가에게 용역을 맡겨 오는 4월이면 중구의 지도를 바꿔놓을 밑그림이 나온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전국노래자랑’ MC 송해

    한도 많고 팔자도 어지간히 드세다.‘굳세어라 금순아’의 주인공처럼 모질게도 살아왔다. 풍각쟁이면 어떻고 딴따라면 어떤가. 늘 구수하고 마음씨 넉넉한 이웃집 아저씨, 다들 ‘젊은 오빠’라고 부른다. 맞다. 이게 행복이요, 큰 부자가 아닌가.‘국민과 함께 딩동댕 25년’, 최고령 현역 방송 MC, 그뿐이랴. 지역갈등, 고부갈등, 남북갈등을 해결하는 전도사로 전국을 쉼없이 누비고 있다. ●현역 최고령 방송 MC ‘국민 MC’ 송해(78). 본명은 송복희(宋福熙)다. 그러나 6·25때 피란 도중 바닷물로 밥을 지어먹어 이름을 ‘바다 해(海)’로 바꿨다. 그는 25년째 KBS ‘전국노래자랑’ 프로그램을 이끌어오면서 전국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방송 스케줄 때문에 일주일에 사흘 이상은 집을 떠나 객지 생활을 한다. 녹화 일정이 없을 땐 한국원로연예인 상록회(서울 종로3가)에서 동료들과 못다한 얘기를 나눈다. 상록회는 원로연예인의 사랑방격으로 12년 전 송씨가 사재를 털어 설립했다. 늙어가는 처지끼리 따뜻한 동료애를 나누자는 취지에서다. 지난주 상록회 인근의 한 카페에서 송씨를 만났다. 자리에 앉자마자 “그러니까 말예요,25년이 후딱 넘어갔어요. 아마 공개방송 사상 처음일 거요.”라는 특유의 구수한 말투로 ‘전국노래자랑 MC 25년’의 소감을 피력했다. 팔순을 앞둔 나이에도 불구하고 방송을 매끄럽게 이끌어가는 저력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궁금했다.“일이 아니고 유람이지. 녹화 전날 현지에 내려가 명소도 찾아보고, 주지스님도 만나 얘기도 나누고, 그게 다 보약이지 뭐.”라며 웃는다. 이어 “전국 구석구석 안 가본 데가 없어. 세월이 지나면서 기존의 작은 시(市)가 광역시에 편입되고, 그러다보면 새로운 행정구역이 자꾸 생겨나요. 무진장(무주·진안·장수)은 무진장 다녔지.”라고 하면서 “춘향제가 열리는 남원에도 가장 많이 갔어요. 이래저래 전국 군단위까지 아마 열두바퀴 정도는 돌았을 거요.”라고 부연했다. 송씨는 방송녹화 하루 전에는 반드시 주변 취재를 꼼꼼히 하는 버릇이 있다. 대상은 주로 시장바닥과 대중목욕탕. 그는 “시장에 가면, 많은 재산이 있거든. 그 고장의 분위기, 유행, 또 알리고 싶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풍물 얘기를 귀담아듣고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또 목욕탕에 가면 별의별 얘기가 다 나와. 발가벗고 뒤지는데 아무려면 재미없을라고.”라며 또한번 웃는다. ●예심에 2000여명 몰려 15명만 본선에 뿐만 아니다. 전국노래자랑 예심에는 대개 1500∼2000명이 몰린다. 이중 15명 가량 본선에 오른다. 사법시험 경쟁률과 엇비슷하다. 송씨는 예심부터 이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본다. 또 본선에 오른 사람들과는 일대일로 만나 무대 위에서 무슨 얘기를 주고받을지 미리 상의한다. 송씨는 요즘들어 더욱 젊어진 기분이다. 호칭이 많이 달라졌기 때문. 처음에는 ‘송해 선생님’ ‘송해 아저씨’라고 했다. 그러나 이제는 한결같이 ‘젊은 오빠’나 ‘송해 오빠’로 통한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이렇게 부른다. 소위 ‘만년먹기 오빠’인 셈이다. 그러다보니 에피소드도 다양하다.20대 아가씨에서부터 60∼70대 할머니한테 기습 뽀뽀를 당하는 것은 예사. 얼굴에 스타킹을 씌워 뱅뱅 돌리는 사람, 행진시키는 사람 등등. 하지만 송씨는 아무리 짓궂은 상황도 부드럽고 재치있게 받아넘겨야 한다. 눈물겨운 사연도 많다.3대째 대장장이가 출연해 직업에 대한 경시풍조를 타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경우, 지역감정을 없애기 위해 경상도 출신 며느리가 전라도 시어미니와 함께 출연해 많은 박수를 받은 일, 앞을 못보는 장애인이 ‘노래가 곧 눈’이라며 관객들을 울린 일 등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고 한다. 문득 궁금해지는 것 하나. 김인영 악단장과의 관계였다. 송씨는 이에 대해 김 단장과는 TBC라디오 시절부터 알고 지내는 친숙한 사이로 녹화가 끝나면 소주를 마시며 뒤풀이를 한다.”고 귀띔했다. 이때 출연자에게 선물받은 특산물이 안주로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송씨는 지금도 소주 2병 정도는 거뜬히 마신다.) 송씨는 또 노래자랑에 출연했던 사람끼리 만나 결혼하는 커플도 많아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아울러 동호회를 만들어 불우이웃을 위한 공연활동도 펼치고 있다고 덧붙였다. ●출연자 최연소 3세·최고령 103세 “25년 전 화면을 보면 트로트풍 등 추억의 노래였지만 요새는 매우 다양해졌어요. 최연소 출연자가 세살, 최고령 출연자가 103세, 연령폭이 무려 한 세기에 달해요.” 송씨는 연백평야가 있는 황해도 재령에서 3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당시 부친은 상업에 종사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51년 1·4후퇴 때 혈혈단신 월남했다. 송씨는 이 대목에서 ‘굳세어라 금순아’는 자신을 위해 만든 노래라며 잠시 회상에 빠진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해주항에서 그는 해군 상륙정(LST)을 탔다. 포성을 뚫고 피란길에 나섰다. 바닷물로 밥을 지어먹으며 가까스로 인천항에 도착했다. 이때 나이 스물넷. 인천항에 내리자마자 곧바로 군에 입대한다. 전쟁을 피해 월남했지만 결국 전쟁 깊숙이 뛰어들게 된 것. 그는 야전부대가 아닌 통신학교에서 훈련을 받은 뒤 통신부대에 배치됐다. 근무지는 대구 육군본부. 여기에서 3년8개월 동안 근무하게 된다. 군 얘기가 나오자 “내가 말예요, 전쟁종식을 가장 먼저 타전한 사람이오. 또스똔똔 하는 모스부호로 말예요.”라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휴전협정 당시 육본 암호실에서 근무했다. 때문에 휴전협정 사실을 암호화한 뒤 전 육군에 타전했고, 곧 이어 전언통신문을 통해 역사적인 ‘전쟁종식’을 알린 것. 그는 군복무 시절에 1급비밀을 취급하는 통신사(하사)여서 영외거주가 가능했다. 대구 민박집에서 출퇴근할 때 선배의 여동생을 우연히 알게 됐고, 결혼에 이른다. ●55년 창공악극단서 가수로 데뷔 55년 제대를 하자마자 ‘창공악극단’에서 가수로 데뷔했다. 이후 전국 각지를 돌아다녔다. 야간열차를 타고 새벽 4시에 부산역에 도착하면 석달 동안은 집을 비우는 등 유랑극단처럼 떠도는 생활이 계속됐다. “40대초반이었지요. 몸이 몹시 안 좋았어요. 일가친척도 없지, 기둥뿌리 하나 없지, 술이라는 힘으로 달랬던 시절이었어요.3개월 동안 병원에 버려지다시피 지냈지.” 그는 “차마 얘기하고 싶지 않았던 것인데….”라며 잠시 창 밖을 응시한다. 이어 “젊은 마누라도 있고 내가 왜 장애인처럼 지내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자 병원을 뛰쳐나왔지.”라고 회상했다. 당시 송씨는 장충동에 살고 있었다. 집에서 남산 팔각정까지 30분 정도 걸렸다. 하루에도 몇번씩 팔각정까지 산책을 하며 마음을 다져먹고자 했다. 하지만 밀려오는 고독, 절망감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그러던 하루는 산책로 낭떠러지 아래로 몸을 내던지고 말았다. 천만다행으로 소나무 가지숲에 걸려 목숨을 구했다. 이후 그는 새삶의 길로 들어선다. 송씨는 요즘들어 생사를 알 수 없는 부모형제의 얼굴을 떠올리는 경우가 부쩍 잦아졌다. 또 대학 2학년때 사고사를 당한 아들의 얼굴도 눈앞에 자주 아른거린단다.(원래 송씨 슬하에는 두딸과 외동아들이 있었다.) 건강비결은 음식을 안 가리고, 아무와도 격의없이 만나 웃는 것이란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면서 송씨는 지나는 행인들과 악수를 나눴다. 사람들은 “아이고, 우리 송해 오빠.”하면서 반갑게 손을 내밀었다. “이 세상에 송해만큼 부자가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요. 사람 많이 아는 것이 최고의 부자 아니겠습니까.”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27년 황해도 재령 출생 ▲6·25 직전까지 북한 해주예술학교에서 성악공부 ▲51년 1월 월남 ▲55년 육군통신부대 만기제대 ▲55년 ‘창공악극단’가수 데뷔 ▲74년 KBS라디오 DJ ▲76년 MBC라디오 코미디쇼DJ ▲80년 전국노래자랑 MC ▲99년 제6회 대한민국연예예술상 특별공로상 ▲2001년 제8회 대한민국연예예술상 대상 문화훈장 ▲2002년 MBC 명예의 전당 ▲2003년 제15회 한국방송프로듀서상, 보관문화훈장 ■ 작품 송해 옛노래집,KBS고전유머 극장,KBS코미디 하이웨이
  • 자연의 선택, 지나 사피엔스/레너드 쉴레인 지음

    ●가부장제 근원찾아 문자문명시대 이전으로 가부장제적 누습의 전형으로 비판받아온 호주제가 폐지된다고 한다. 가부장제는 우리뿐만 아니라 인류역사적으로도 뿌리깊게 자리잡아온 성차별적 사회제도이다. 더 나아가 ‘여성혐오’라는 성차별적 사회통념도 마찬가지다. 태어나 처음으로 어머니의 젖을 빨면서 어머니에 대한 사랑으로 일생을 시작하고,‘어머니’란 단어로 말문을 열기 시작하는 동물이 인간인데도 대부분의 인간사회에서 가부장제와 여성혐오가 팽배해 있다는 것은 하나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자연의 선택, 지나 사피엔스’(레너드 쉴레인 지음, 강수아 옮김, 들녘 펴냄)는 이같은 아이러니의 비밀을 풀어줄 열쇠를 찾고자 하는 동기에서 쓰여졌다. 외과의사이면서 인류학·고고학자인 지은이는 이미 전작 ‘알파벳과 여신’에서 가부장제와 여성혐오가 지구촌에 자리잡는 데 문자의 발명과 종교의 탄생이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논증을 폄으로써 독자들의 공감을 얻었다. 하지만 그는 애초 제기한 물음에 대한 답을 완결하지 못했다는 느낌과 함께, 여성에 대한 남성의 심술궂은 태도는 훨씬 뿌리깊은 것이라는 일부 학자들의 비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후 여성혐오와 가부장제의 근원을 찾아 문자문명의 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기로 했다. 그 연구의 결실이 바로 이번 책이다. ●‘임신·출산의 주체’ 여성이 원시문화 이끌어 ‘지나 사피엔스’(Gyna Sapiens)는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에 속한 선조 여성들을 의미한다. 인류진화에서 남성보다 여성의 적응이 결정적이었다고 보고, 책 전반에 ‘현명한 남자’란 뜻의 호모 사피엔스에 대비되는 지나 사피엔스란 용어를 사용했다. 지은이는 논지를 풀어나가기에 앞서 4만년 전 최초의 태음력이 탄생하면서 호모 사피엔스가 꽃피운 원시문화의 주역이 여성, 즉 지나 사피엔스였음을 밝힌다. 여성은 번식, 즉 임신과 출산의 주체로서 진화를 이끌어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 인류는 점차 가부장제와 여성혐오적 성격을 띠게 된다. 이 과정을 설명하는 데 핵심 키워드로 ‘철’(Iron)과 여성의 ‘월경’이 등장한다. 신체적으로 강하지 못한 인간은 생존의 방편으로 지능이 높아지고, 이를 위해 뇌(머리)가 점점 커지는 진화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이때부터 여성은 거대한 태아의 머리로 인해 출산 중 죽음의 위협에 직면한다. ●여성통해 호모사피엔스 시간·죽음개념 터득 이같은 위험은 자연스럽게 여성들이 성 충동을 멀리하고 섹스에 대한 거부권을 갖게 하지만, 거부권 행사는 여성에게 절대 필요한 철분을 얻는 길까지 막아버렸다. 월경과 출산, 수유의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철분을 몸 밖으로 내보내는 여성으로선 건강 유지를 위해 철분 섭취는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철분은 식물보다 동물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성분으로, 출산과 양육을 도맡았던 지나 사피엔스는 사냥을 주업무로 하던 호모 사피엔스에게 부족한 철분을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한데 여기서 생기는 의문은 ‘왜 여성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월경이 진화과정에서 사라지거나 축소되지 않았을까?’하는 점이다. 그리고 무언가 이같은 불리함을 상쇄할 만한 ‘선물’을 여성에게 제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이 나오는데, 지은이는 결국 그것은 달마다 피흘리기를 반복하면서 발견하게 되는 ‘시간’이란 결론을 내린다. 시간의 개념을 파악한 지나 사피엔스 덕분에 호모 사피엔스도 미래를 예측할 수 있게 되고, 이같은 능력은 결국 지구상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포식자가 되게 한다. 그러나 시간의 자각과 함께 남성은 언젠가 죽어야 하는 유한한 운명임을 깨닫게 된다. 죽음의 공포와 더불어 여자들의 임신에 자신들이 기여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부성(父性)과 부권의 개념이 싹트고, 이는 자연스럽게 가부장제 문화의 동력이 됐다는 게 이 책의 핵심 뼈대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저자의 전작 ‘알파벳과 여신’ 저자는 책 끝머리에 ‘…지나 사피엔스’를 쓰게 된 동기가 전작인 ‘알파벳과 여신’ 출판 후, 애초 제기한 물음(가부장제와 여성혐오의 원인)에 대해 답을 완결하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즉, 이번 책이 전작의 완결편인 셈이다. 따라서 그의 전작인 ‘알파벳과 여신’의 내용을 파악하고 있어야 ‘…지나 사피엔스’를 이해하기가 한결 쉬워진다. ‘알파벳과 여신’은 가부장제와 여성혐오가 문자의 발명과 종교의 탄생과 더불어 본격화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역사 기록이 시작되었던 5000년 전까지만 해도, 아니 그 이후의 로마·이집트·일본·중국·인도·그리스·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시기만 해도 그 중심엔 여신이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여성 신격의 시대였다는 점을 밝힌다. 그리고 이는 여성의 문화적 권리와 특권을 의미하는 것이었음을 설명한다. 그러나 갑자기 모든 것이 뒤틀리는 변화가 일어나는데, 그 변화의 동력으로 서양에서 발생한 3대 유일신 종교, 즉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가 강력하게 작용한다. 이 각각의 종교는 세상에 오직 단 하나의 신격만 존재한다는 유일신 개념을 핵심 전제로 삼는 한편 그 신은 명백히 남성이었고, 여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지은이는 특히 문자는 여성성인 아니마를 희생하고 남성성인 아니무스를 강화시켰다는 가설을 세우는데, 도그마(교의, 정론)로 고착된 구약성서나 신약성서·코란 등을 대표적 예로 든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빚탈출 희망찾기-김관기 채무상담실] 과소비로 빚지고 못갚아도 직장있으면 개인회생 가능

    Q.1999년 은행 직원의 권유로 신용카드를 만들었습니다. 만들기는 했지만 지갑에 넣고만 다니는 정도였습니다.2001년 친구를 사귀면서 용돈이 많이 들자 통장 잔고만으로 사용대금 결제가 안돼 현금서비스로 막았습니다. 현금서비스 한도도 500만원까지 늘었기에 매달 30만원 이상 초과 지출했습니다. 이 때문에 이자와 수수료가 누적돼 2002년 말 채무가 1000만원이 넘었습니다. 여러 신용카드를 발급받아 돌려막고, 사채까지 쓰다 보니 2004년 말에는 빚이 5000만원이 넘었습니다. 저의 월급 100만원으로는 이자도 감당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빚 독촉에 회사조차 다니기 힘들고, 남자친구의 결혼제의조차 받아들일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파산으로 새 출발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저처럼 과소비한 경우에는 면책받기 어려운 것 아닌가요. -한수지(29) A. 신용카드에는 중독성이 있습니다. 흔히 감자칩증후군(potato chip syndrome)이라고 하는데, 감자칩의 맛이 ‘딱 하나만 더’ 먹겠다는 마음이 들게 해서 결국 사람을 비만에 빠지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말입니다. 신용카드도 당장 결제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만 더 쓰고….”하는 마음을 들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카드회사의 공격적인 영업과 결합되면 전문적 식견이 없는 사람은 중독되기 쉽고 상황을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변제능력을 상실한 뒤입니다. 물론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데도 감당하지 못할 소비를 선택한 데 대한 책임은 1차적으로 카드를 쓴 사람에게 있습니다. 마치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많이 마셔 폐나 간이 병드는 것 같은 불이익을 소비자가 입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술·담배의 판매자가 중독자를 만들 듯이, 신용카드를 비롯한 소비자신용의 확대가 채무의 노예를 만들어내는 현실을 똑바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파산법상으로는 낭비로 재산을 감소시킨 경우 면책을 하지 않을 수 있지만, 단순히 소득의 규모를 초과하는 소비지출이라는 것만으로 낭비했다고 단정하지 않습니다. 돈을 빌려 카지노나 경마장 출입, 해외관광을 상습적으로 한 경우에는 일벌백계 차원에서 면책을 부인합니다. 하지만 충동적 미용성형수술, 간헐적 명품 구입, 신혼여행 정도는 상관이 없습니다. 새출발을 허용해도 갈 길이 먼 가난한 젊은이를 풀어주는 것이 저출산 시대의 바람직한 정책일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낭비로 채무가 늘어났더라도 직장이 있는 사람이라면 개인회생을 할 수 있습니다. (파산·개인회생 전문 변호사) ●김관기 변호사의 ‘채무상담실’ 상담신청은 인터넷 서울신문(www.seoul.co.kr)에서 받습니다.
  • [신통방통 운세볼까] 재미로 보세요 닭해 운세 “꼭이요”

    쥐띠주변사람과 대인관계 원만하게 유지하면 어려울 때 도움 받아서 의외의 수확을 얻을 수 있겠다. 사업의 무리한 확장이나 개업은 자제하는 게 좋을 듯. 전체적인 건강운은 양호한 편. 신경질환에 주의만 한다면 큰 걱정은 안해도 되겠다. 36년생:남의 재테크 성공에 영향 받아 무작정 따라하다가는 낭패 볼 수 있다. 욕심을 버리고 안정된 투자처를 찾는 것이 현명. 48년생:자기 분야에 최선을 다해야만 좋은 성과 기대할 수 있다. 순간적인 감정 참지 못하면 일을 망칠 수 있으니 유의. 60년생:굳은 의지와 끈질긴 승부욕으로 정진한다면 새 사업도 추진할 만하다. 가까운 사람과의 금전거래는 삼가는 게 좋다. 72년생:숨은 실력을 윗사람에게서 인정 받게 된다. 어렵고 힘들었던 과거는 다 지나가게 되고 활기찬 미래가 펼쳐지겠다.84년생:줏대를 갖지 못하면 갈등 많이 생기겠다. 타인에 대한 배려 태만히 하지 않도록 신경 써라. 맡은 일에는 최선 다하도록. 소띠 근심이 사라지고 땀 흘린 노력에는 반드시 알찬 결실이 있겠다. 매사 소극적인 자세보다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매매는 때를 잘 맞춰야 이루어지나 대체로 만족스러운 결과 나오겠다. 순간적인 감정 참지 못하여 일을 망칠 수도 있으니 유의하라. 25년생 뚜렷한 목적 없이 새 사업에 손대거나 변동 꿈꾸다가는 손실 따르겠으니 주의하라. 아랫사람 실수에는 관대하라. 37년생 : 심신을 편하게 하고 매사 흔들리지 않는 계획을 세워야 일의 해결이 쉽다. 급한 성미로 인한 실수 없도록 항상 조심.49년생 : 인정에 끌려 바른 판단을 하지 못할 우려 있다. 공과 사를 분명히 해야 뒤탈 없겠다. 건강 관리도 게을리 하지마라. 61년생 : 보다 넓은 시각으로 사물을 보아야 하겠다. 독선적이 되지 말고 가까운 사람과 마음을 열고 협력하면 성과가 크겠다. 73년생 : 작은 것이 쌓여 큰 결실을 얻겠다. 경솔한 말과 행동으로 오해를 사게 돼 가까운 친구와 멀어질 수 있으니 주의. 호랑이띠 대체로 금전운이 열려 있어 주머니 사정 좋아지겠다. 신중하지 못하면 새 사업 추진하는데 어려움에 부닥치겠다. 신경성이 속병으로 전이되어 고생할 우려 있으니 건강에 주의. 항상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일에 대처한다면 큰 염려는 없겠다. 26년생:지나치게 독선적으로 밀어붙이다 타인과 의견 충돌로 일을 망치게 될 수 있으니 자기절제를 생활화하는 것이 좋겠구나. 38년생:마음을 활짝 열고 가까운 사람과 협력하면 성과가 크겠다. 실리보다 체면치레에 지나치게 치중하면 곤란해진다. 50년생: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예의 지키는 것을 잊지 않도록. 사사로운 일이나 대인관계에 많은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62년생:돈과 명예에만 연연해하지 말고 건강부터 추스르는 것이 좋겠다. 믿을 만한 사람과 협력하고 원리원칙을 추구하라. 74년생:패기만으로 성공하기 어려우니 윗사람의 조언 구하라. 재테크 정보를 얻게 되고 투자에 관심을 갖게 되지만 결정은 신중히 하라. 토끼띠 금전운과 사업운이 대체로 양호하다. 간혹 불쑥 튀어나오는 경솔한 언행으로 공든 탑을 허물어 뜨리지 않을까 우려 된다. 언제든 맡은 분야에서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실력을 갖춰놔야겠다. 특히 건축업과 경영학 분야는 뛰어난 활약이 기대된다. 27년생:매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 타인에 대한 따뜻한 배려도 아끼지 마라. 건강 관리에 많은 신경을 쓰도록. 39년생:금전운과 명예운이 모두 왕성. 항상 검소하게 생활하라. 남을 위해 봉사하는 것도 큰 복을 쌓는 일임을 명심하라. 51년생:사업은 순조롭고 승진의 행운도 따르겠다. 자존심을 너무 내세우면 대인관계에 어려움 생기고 고립 부르니 주의. 63년생:계획했던 일마다 어렵지 않게 성취하겠다. 횡재운이 넘쳐나고 가정 또한 화목하다. 자녀에게도 좋은 일이 있겠다. 75년생:한 눈 팔지 말고 정진해야 만족할 만한 성과 얻을 수 있다. 허영에 취해 연초의 각오가 흐지부지하게 될 수도 있으니 주의. 용띠 대길한 운세가 찾아드니 승진, 합격 등으로 희망 찬 일년을 보낼 수 있겠다. 윗사람에게는 칭찬을, 아랫사람에게는 존경을 한 몸에 받는다. 눈앞의 즐거움에만 빠져 더 큰 행운을 보지 못한다면 뒤늦게 후회할 일 생긴다. 새로운 분야에는 함부로 뛰어들지 마라. 28년생:집안이 화기애애하고 자녀에게 뜻밖의 경사가 생기겠다. 이웃에게 베푼 작은 온정이 크나큰 기쁨이 되어 돌아오겠다. 40년생:자기중심적인 생활방식은 마이너스가 된다. 심신이 허약해지기 쉬우니 철에 맞는 보신 필요. 고혈압 환자는 특히 주의. 52년생:주위 사람들이 부당한 비난을 하여도 개의치 말고 올바르게 행동하라. 과민 반응을 보인다면 커다란 낭패가 있겠다. 64년생:하는 일마다 결실 크다. 작은 투자로 짭짤한 수익 볼 수도 있을 듯. 사소한 일에 얽매이지 말고 시야를 넓혀 행동하라 .76년생: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를 가져야 내 몫 확실히 지키는 한해가 된다. 매사 지나친 욕심 버리고 언행을 조심하라. 뱀띠 혼자만 안고 있는 남모르는 번민이 생길 수 있겠으나 상반기가 지나고 중반기에는 근심거리를 말끔하게 덜어 버리게 된다. 동업을 추진하는 경우는 주위 사람들과 화합해야 유익한 합의점을 찾을 수 있겠다. 부동산 매각은 이익이나 매입은 불리할 듯. 29년생:변화보다 안정을 취하는 게 좋고 대인관계에 신경 써라. 매사 정면 승부보다 우회적인 대응이 효과적일 수도 있다. 41년생:지나치게 소심하면 오히려 심신만 피곤해진다. 상황에 따라 자신감 갖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삶에 활력이 넘치겠다. 53년생:가까운 사람의 도움으로 정신적인 압박과 금전적인 어려움도 풀리겠다. 중간에 서서 선후배간의 화합에 힘써라. 65년생:지난 일은 잊고 재충전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새롭게 출발하라. 대립은 피하는 것이 무난. 계약은 신중히 해야 실수 없겠다. 77년생:맺고 끊는 게 분명하지 않으면 주위사람에게 불신 받고 구설수에 오르기 쉽다. 건강진단은 미루지 말고 받아보도록. 말띠 모든 일이 순조롭게 시작되어 마무리되는 해. 하지만 의욕이 너무 넘치면 오히려 일을 망칠 수 있도 있으니 주의. 매사에 경솔하기 쉽기 때문에 항상 자신을 점검하는 신중한 태도가 필요. 중반기에 여행운도 있으니 심신의 피로를 풀 기회로 삼도록 하라. 30년생:신변에 변화가 생겨 인생의 전환점 맞는다. 원칙 고수가 난관 극복하는 길. 신중한 판단으로 후회 없는 선택을 하라. 42년생:무리하다 금전적인 어려움 발생할 수 있으니 분수에 맞게 생활하라. 친구를 함부로 대하다가는 낭패 있으니 주의하라. 54년생:항상 공정하고 꼼꼼하게 일을 처리할 때 성과를 얻을 수 있음을 깨달아라. 동료와 승진 놓고 선의의 경쟁 예상된다. 66년생:사업운이 상승하고 가정에는 화목이 가득. 돈을 충동적으로 쓰게 되면 후일 후회하게 된다. 또한 오기로 투자하면 손해 보기 십상.78년생:계획했던 일들 순조롭게 진행돼 결과도 만족할 만한 수준 되겠다. 남의 일에는 간섭하지 말고 공직자는 금전 유혹 조심. 양띠신변에 변화가 끊이지 않고 심신을 건강하게 하는 호재가 만발하니 유익하기만 하다. 생활이 안정되면서 의욕도 넘쳐난다. 일과 교제가 활발해지며 그에 따른 이익도 커지겠다. 단 생활이 사치스러워질 수 있으니 수입과 지출에 균형을 맞춰라. 31년생:결정한 일은 망설임 없이 실행에 옮겨야 효과 보겠다. 무심코 지나친 작은 일 때문에 오해 있겠으니 세심한 주의 필요. 43년생:독불장군에게 미래는 없다. 주위 사람 의견에 귀기울이는 자세가 중요. 겉치레보다 내실 다지기에 신경 많이 쓰도록. 55년생:신상의 변화가 오더라도 오히려 득이 될 수 있으니 당황하지 말고 순리에 따르는 것이 상책. 하반기에 길운이 오겠다. 67년생:허황한 일에 열성 쏟는 모험은 피하라. 과욕 부리면 가지고 있던 것마저 뺏길 수 있다. 명분에 벗어나는 일은 삼가도록. 79년생:과감하게 새로운 변화를 꾀하면 삶의 질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겠다. 실력 배양에 힘쓰도록 하라. 원숭이띠 금전운이 들어오니 부동산에 투자하면 이익 많이 볼 듯. 불우이웃에게 선심 베풀도록 하라. 간혹 신경성 두통이나 위장질환이 올 수 있으니 주의하라. 중반기에 사업에 굴곡은 있겠지만 전체적인 운과는 거리가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 32년생:열심히 노력해도 헛수고인 때도 있겠으나 인내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 있겠다. 가급적 해외여행은 삼가는 편이 좋다. 44년생:공덕 쌓으면 뒤늦게라도 빛을 보게된다 . 자신의 부귀영달에만 급급하다가는 마지막 남는 것은 껍데기뿐임을 깨달아라. 56년생:섣불리 성과 내려다가는 낭패보기 쉽다. 대외 활동에 주력하는 것도 좋지만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도록 노력하라. 68년생:장애물과 부닥치게 되면 조금은 손해본다는 마음으로 한 걸음 물러 서도록. 사고나 질병 등에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80년생:지나친 겸손은 자만으로 비춰질 수도 있음을 명심. 매사 분명하게 자신의 의견을 밝혀 시비에 휘말리지 않도록 조심하라. 닭띠 의욕이 넘쳐 목표 이상의 성과를 기대해도 좋을 정도로 운기가 왕성한 한해. 작은 일에 연연해하지 말고 큰 일을 계획하여 추진해도 좋다. 손해를 보게 되고 친구도 잃게 되는 아픔이 생길 수 있으니 어떤 경우라도 주위 사람을 너무 믿지 않도록 하라. 33년생:자신의 몫은 절대로 양보하지 말고 철저하게 챙기도록 하라. 사소한 실수로 인해 구설수가 우려되니 주의. 45년생:자신의 지위가 높아질수록 겸손하게 처신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베풀어라. 과거에 얽매이면 얻을 것도 잃게 되겠으니 조심. 57년생:본업과 부업을 겸하면 수입이 좋아지겠지만 대신 건강에 무리가 따른다는 것을 명심. 책임질 일 생기면 회피하지 마라. 69년생:새로운 분야로 진출을 고려하고 있다면 신중하게 계획을 세운 뒤 추진하라. 이상과 현실 분별 못하면 후회하게 된다 .81년생:작은 이익에 만족하고 주저앉는다면 더 이상 발전은 없다. 능력의 한계에 도전해 보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개띠 자기분야에 정열을 가지고 임하면 명예와 더불어 금전운도 높아진다. 토지 매매는 가능하나 주택 매매에는 다소 어려움이 따르므로 가능한 한 피하는 것이 좋겠다. 직장인은 승진의 기회가, 미혼자들에게는 좋은 인연을 만날 수 있는 한 해가 되겠다. 34년생:나의 마음을 몰라준다고 탓하기 전에 상대방을 신뢰하는 것이 우선. 속전 속결하려는 급한 성격은 될 수 있으면 고치도록 노력하라. 46년생:스스로 만족하며 살아가는 자세도 생활의 지혜. 상대방에게 의심받을 행동은 삼가라. 친인척들과 유대관계 다지도록. 58년생:현실을 직시하고 분수를 지키도록. 남의 사정 봐주다 난처한 지경에 이를 수 있으니 매사 잘 살펴야 손해 보는 일 적겠다. 70년생:대인관계는 대립이나 경쟁을 지양하고 상생의 길을 모색토록 하라. 능력외 일은 무리하게 맡지 말고 과감하게 거절하라. 82년생:실패하더라도 낙담하지 마라. 젊은 패기로 무슨 일이든 의욕적으로 나서서 개성을 마음껏 발휘하면 소기의 성과 거두겠다. 돼지띠 운영하는 사업에 활기가 있겠고 직장인은 동료와 상사에게 실력을 인정 받겠다. 주변사람 말만 따르지 말고 나름대로 신중하게 판단해야 실수 적다. 대가 없이 베푸는 사람은 드문 법. 과도한 친절을 보이는 사람은 조심하고 불로소득은 꿈꾸지 않는 게 좋다. 35년생:여러 가지 일 벌여만 놓고 뒷짐지고 물러나 있으면 주위 사람에게 원망 듣기 쉽다. 무책임한 약속 남발하지 않도록 절제. 47년생:내 것이 아니면 무엇이든 탐내지 마라. 자신의 일은 힘들더라도 스스로 처리하는 습관 기르도록. 59년생:선배나 주변 사람 조언 귀담아 듣지 않으면 좋은 기회 흘려 버릴 수 있겠다. 수동적이기보다 능동적 자세가 필요. 71년생:젊다고 건강을 과신하지 말고 체력 증진에 힘써라. 순간적인 감정에 휘말리지 말고 이성적인 판단 내려야 실수 적다. 83년생:뚜렷한 소신 없이 주위 사람의 말에 솔깃해 부화뇌동한다면 낭패 볼 수도. 이성 문제로 오랜 우정에 금이 가지않도록 주의하라.
  • ‘프루프’ 캐서린역 추상미

    ‘프루프’ 캐서린역 추상미

    2005년을 ‘여배우의 해’로 만들기 위해 추상미도 동참한다. 그가 선택한 작품은 2003년 처음 소개됐던 ‘프루프’.2월4일부터 3월13일까지 서울 동숭아트센터 동숭홀 무대에 오른다.2000년 초연돼 이듬해 토니상 여우주연상과 최우수 감독상, 퓰리처 드라마상까지 거머쥔 미국 작가 데이비드 어번의 작품이다. 다시 만난 추상미와 연출 김광보가 초연 때의 흥행과 감동을 재현할지 주목된다. 주인공 캐서린(추상미)이 등장하지 않는 시간은 고작 7∼8분. 추상미는 모든 에너지를 무대 위에 쏟아낼 작정이다. 연극은 천재 수학자 로버트의 노트에서 발견된 엄청난 수학 증명이 딸 캐서린이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에서 시작된다. 캐서린이 아버지의 제자 핼, 언니 클레어와 벌이는 팽팽한 삼각구도는 추리소설 같은 긴장감을 준다. 동시에 속도감 있고 유머러스하게 관객을 감싸는 것도 연극의 장점. 천재 수학자 로버트 역은 연극과 드라마를 넘나들며 활동하는 최용민이, 언니 클레어 역은 초연 때 함께 했던 추귀정, 핼 역은 ‘남자충동’으로 입지를 굳힌 최광일이 맡았다.(02)764-8760.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열린세상] 흡연자를 고문해선 안 된다/서홍관 국립암센터 금연클리닉 책임의사

    흡연자에게 금연을 강요하는 것은 때로 명백한 고문 행위에 해당한다. 흡연자들은 니코틴에 중독되었기 때문에 한 시간 이상 담배를 피우지 못하면 금단증상에 시달린다. 짜증 나고, 불안 초조하고, 머리가 멍하고, 우울해지고 정신집중이 되지 않는다. 잠도 오지 않고 오로지 담배 생각만 난다. 니코틴 중독이 심한 흡연자들에게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하는 것은 마치 배고픈 사람에게 냉장고에서 밥 꺼내 먹지 말라고 윽박지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비흡연자들은 가끔 흡연 문제를 너무 가볍게 생각한다. 해롭다고 다 알려진 것을 왜 못 끊느냐고 압박을 가한다. 물론 옳은 말씀이다. 그러나 그들이 왜 금연을 성공하지 못하는지 이해를 하지 않는다. 의지만으로 금연을 시도할 경우 1년 후까지 금연할 확률이 불과 2∼5%에 불과하다. 맨주먹 붉은 피만으로 금연을 시도한다는 것은 95∼98%가 실패하고 마는 너무나 처절한 싸움이다. 이들은 또한 심리적으로 깊이 의존되어 있어서, 술을 마신다든지, 스트레스를 받는다든지, 식사를 했다든지, 운전할 때 길이 막힌다든지 하는 특정한 상황이 오면 견디기 어려운 흡연 충동을 느낀다. 흡연하던 사람이 담배를 끊는 것은 수십 년간 가장 친하게 지낸 친구가 영원히 이민을 떠나는 것과 같은 깊은 상실감을 안겨 준다. 그렇다면 고문을 하지 않으면서 금연을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있다. 이 글을 쓰는 이유가 바로 그 방법을 알려드리기 위해서이다. 흡연은 다 알다시피 니코틴 중독이다. 금연을 하면 니코틴 농도가 줄어들면서 금단증상이 나타난다. 따라서 니코틴을 외부에서 공급하면, 금단증상을 줄일 수 있고, 금연 성공률을 높일 수 있다. 니코틴을 외부에서 공급하는 방법으로 몸에 붙이는 패치와 껌이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먹는 약으로 담배를 끊을 수도 있다. 먹는 약으로 담배를 끊는다고 말하면 다들 이상하게 생각하고, 설마 그럴 수 있을까 의심한다. 그러나 명백한 효과가 있다. 원리는 간단하다. 담배를 피우면 니코틴이 뇌에 있는 니코틴 수용체를 자극하여,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 물질을 분비한다. 도파민은 우리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 약물은 니코틴과 아무 관계도 없고, 독성발암 물질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도파민의 농도를 높여준다. 따라서 이 약을 먹게 되면 담배를 끊어도 예전에 느끼던 괴로움이 줄어들고, 조금 편안해진다. 그리고 혹시 담배를 한 두 대 피우더라도, 예전 같은 짜릿함은 없어지고, 풀맛처럼 맹맹하게 느껴진다. 마치 밥을 많이 먹은 사람은 떡을 먹었을 때 만족감이 적은 것과 마찬가지다. 금연운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이러한 약물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혼자서 담배를 끊다가 실패할 뿐 효과적인 약물의 사용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있으니 답답할 뿐이다. 내가 주장하는 표준요법은 이것이다. 먹는 약 부프로피온을 먹으면서, 니코틴 패치를 붙이고, 니코틴 껌은 그래도 담배를 피우고 싶은 위기의 순간에 담배 대신 껌을 씹으면서 금연을 시도해야 한다. 물론 이 세 가지 방법을 다 써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중 자기 맘에 맞는 것을 골라서 한두 가지만 사용할 수도 있다. 이것이 세계에서 가장 좋은 금연방법이다. 물론 금연에 대한 의지 없이는 이 모든 험한 길의 첫 발자국도 뗄 수 없다는 것이야 두말해 무엇하리요. 흡연자들은 갈 곳이 점점 없어진다. 들어가면 금연빌딩이고, 버스, 기차, 전철, 비행기 등 타야 하는 모든 곳이 다 금연이다. 집에서 베란다로 쫓겨 간 것은 또 얼마나 오래되었던가. 사실 우리나라 국민 4700만명 중 무려 1000만명에 달하는 흡연자들은 결국 금연 실패자라고 할 수 있다. 많은 흡연자들이 금연을 원하지만 혼자 끊다가 실패하고 아내나 아이들, 또는 직장 동료들에게 체면을 구기고, 자신감을 상실해 본 경험이 있다. 그러나 효과없는 방법을 붙들고, 버틸 시간이 없다. 이제 약물요법을 과감하게 도입하여 금연하도록 생각을 전환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담배를 약으로 끊는 것에 자존심이 상한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할 것은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를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서홍관 국립암센터 금연클리닉 책임의사
  • 청년실업 ‘맨손 창업’으로 뚫는다

    청년실업 ‘맨손 창업’으로 뚫는다

    청년실업이 사회문제화되면서 청년창업이 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바늘 구멍보다 좁은 취업문을 두드리기보다는 창업을 통해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것이 현실적이란 판단에서다. 그러나 경험과 자금 조달력에서 기성세대에게 밀리는 이들에게 창업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패기만을 믿고 충동적으로 창업했다가는 낭패를 보기 쉽다. 성공한 이들은 대부분 치밀한 사전 계획과 준비로 창업함으로써 새로운 인생의 첫발을 내디뎠다. ●발로 뛰는 ‘맨손 창업’ 2002년 대학 졸업 후 수십 번의 입사 원서를 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던 한용배(28)씨. 결국 그는 취업을 포기하고 지난해 6월 향기관리업‘에코미스트’사업을 시작했다.1000만원 정도의 소자본으로 창업이 가능하고, 리필 사업이기 때문에 영업력에 따라 고수익도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이 사업은 점포나 사무실 및 관공서, 전문매장, 사우나, 병원, 유치원 등에 자동향기분사기를 설치하고 이 자동향기분사기 속에 각 장소에 적합한 천연향을 내장해 매월 리필해주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한씨는 “한번 거래처를 뚫으면 최소 6개월은 리필을 해주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수익이 증가하는 것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첫 달은 거래처가 10군데도 안 되던 것이 점차 늘어 6개월째인 현재 70여 군데로 불어났다. 사업 초반에는 어려움도 많았다. 경험이 전무했던 그로서는 영업처마다 문전박대를 받기 일쑤였고, 무료 샘플 설치마저도 거절당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이로 인해 극심한 자괴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여기서 무너지면 끝이라는 절박함이 마음을 다잡게 하더군요.”. 그는 거래처를 뚫기 위해 죽기 살기로 뛰어 다녔다. 향이 너무 진하거나 취향에 맞지 않는 등 문제가 생기면 즉시 고객의 요구에 맞게 제품을 바꿔줬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영업에 나서자 서서히 매출이 오르기 시작, 지금은 70여 거래처에 200여개 자동향기분사기를 관리하고 있다. 그 동안 천연향 제품에 고객의 관심을 끌어내는 나름대로의 영업 노하우도 터득했다. 한씨가 주로 추천하는 상품은 전나무, 측백나무, 소나무 등의 침엽수에서 나오는 피톤치드를 원료로 한 삼림욕 향이다. 창업 비용 1000만원은 부모님에게서 빌렸다. 현재 월 평균 매출은 400만원 정도에 순이익은 200만원 정도다. 버는 돈 대부분은 저축한다. 그는 “향기관리 사업을 통해 2년내 5000만원을 모으는 것이 목표”라며 “이 돈을 종자돈으로 더 큰 사업으로 확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아이디어로 승부거는 온라인 창업 2002년 대학을 졸업한 여운창(26)씨. 온라인 쇼핑몰 창업 2년 만에 월 순익 2000만원을 올리는 ‘신보부상 디지털 상인’이 되었다. 컴퓨터와 인터넷 도사였던 그는 취업은 아예 포기하고, 대학시절 가구 판매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을 밑천삼아 온라인에서 가구 판매를 하기로 했다. 당시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가구 판매를 하는 곳이 한군데도 없어 틈새시장이라고 판단했다. “우선 대형 가구점의 배달사원으로 6개월 근무, 가구의 유통과정, 업계현황 등을 배우며 가구공장 직원들과도 친분을 쌓았어요. 몇몇 업체로부터는 독립하면 물건을 대주겠다는 약속도 받아냈어요”. 자신감이 붙은 그는 2002년 12월 창업 실행 단계에 들어갔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 화물트럭터미널에다 보증금 없이 월세 25만원 하는 5평 창고를 얻었다. 가구 600만원 어치와 배달용 봉고트럭, 사무실 집기 등을 구비했다. 이어 인터넷 경매사이트 ‘옥션’에 등록을 하고, 판매를 시작했다. 여씨는 다른 쇼핑몰 창업자와는 달리 배달을 택배에 맡기지 않고 직접 했다. 배송비를 줄여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직접 배송함으로써 파손을 막아 반송품도 줄였다. 택배를 통한 가구배달이 보통 5∼7일 정도 걸리는데 직접 배송할 경우 이틀안에 배송이 가능해 고객 만족도를 높일 수 있었다. “직접 배달을 하면서 신뢰관계가 쌓이면서 단골 고객들이 생겼지요. 나중에 이 단골고객들이 직접 창고로 찾아와 오프라인 매출도 늘어났지요.” 오프라인 매출은 대부분 회사를 상대로 하는 것이어서 거래 규모가 커 도움이 됐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매출 비율이 50대 50으로 되면서 지난해 10월 창고를 210평으로 늘려 파주로 이사했다. 그가 말하는 성공 포인트는 싸고 좋은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다.2년 전과는 달리 지금은 경쟁 쇼핑몰들이 많아졌다. 그래서 여씨는 거래처와 철저한 현금거래를 통해 보다 싸고 좋은 물건을 들여 오는 데 신경쓰고 있다. 창업비용은 1600만원 들었다. 반면 월 매출은 창업 1년이 지난 시점부터 1억원을 넘어섰고,2년이 다 된 지금은 월 평균 매출이 1억 5000만원선이다. 이중 물품 구입비는 1억원 정도.9명의 직원 임금, 사무질 유지비용 등을 제하면 2000만원이 순수익으로 남는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성공하려면…탄탄한 장기로드맵 필요 청년들이 가장 손쉽게 뛰어들 수 있는 ‘맨손창업’과 ‘온라인창업’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맨손창업은 2000만원 이하의 소액자본으로도 시작할 수 있는 무점포형 사업이다. 위험부담이 적어 자금이 부족한 청년들의 좋은 사업 아이템이다. 하지만 성공보다 실패하는 경우가 더 많다. 창업 초기부터 일정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검증된 아이템을 선택하는 것이 유리하다. 무점포 사업이라 할지라도 일정한 수익을 올리면서 사업 경험을 쌓을 수 있어야 한다. 무점포 사업 다음에는 무엇을 할 것인지 장기적인 로드맵도 그려야 한다. 온라인 창업의 성공전략은 무엇보다 값싸고 품질좋은 제품을 판매한다는 신뢰를 심어줘야 한다. 제품 설명은 상세하면 상세할수록 좋다. 음식의 경우에는 산지는 물론이고 중량, 재료, 생산일, 유통기한까지 정확하게 표시한다. 중요한 것은 장단점을 가리지 않고 고객에게 모두 알려야 한다는 점이다. 많은 판매자가 경쟁하므로 친절한 서비스는 생명과도 같다. 특히 게시판이나 이메일 등을 통해 고객을 상대하기 때문에 오프라인보다 두 세배 더 친절해야 한다. 온라인 판매 전 아르바이트 등으로 현장 경험을 쌓는 것이 좋고, 사전에 컴퓨터 및 인터넷 지식을 충분히 습득한 뒤 창업해야 기술적으로 보다 능숙하게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 인건비 절감을 위해 사진촬영 기술도 습득하는 것이 유리하다. (조언 강병오 FC창업코리아 대표)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자살 SOS” 40대 최다

    “자살 SOS” 40대 최다

    19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서울광역정신보건센터. 위기상담팀 강정선(28) 전문요원의 수화기 너머로 50대 실직 가장의 한숨소리가 새어 나온다. “용기내서 전화했어요. 직장을 그만두고 힘드네요. 집에서 밥을 먹어도 눈치가 보이고 애들도 건성으로 인사하는 것 같고…. 이 나이에 감당하기 어려울 게 뭐 있겠느냐고 생각했는데 자꾸만 약해지네요.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들까요.”그는 순간순간 자살 충동을 억누르려고 “속으로 운다.”고 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10일부터 운영을 시작한 ‘자살 등 위기상담 전화’에 막다른 길로 내몰린 우리 이웃의 지친 목소리가 줄을 잇고 있다. 서울 지역을 총괄하는 서울광역정신보건센터에 접수된 상담만 140여건. 성별에 상관없이 40대의 상담이 전체의 절반을 차지한다. 자살을 기도한 적이 있다는 20대부터 40대 주부,50대 실직 가장, 노숙자, 황혼 이혼을 고민하는 60대 여성까지 사연도 제각각이다. ●서울만 140여건… 경제비관 늘어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상담이 전체의 20% 정도. 실직은 급작스럽게 삶의 의미를 상실케 하는 주범이 되고 있다. 특히, 재취업이 어려운 40∼50대는 위기관리 능력에 취약하다. 전준희(34) 팀장은 “카드빚과 금융문제, 실직으로 충동적 자살을 상담하는 사람이 많다.”면서 “경제적 문제로 우울증과 심리적 위축 증상을 보이는 사례가 대부분”이라고 털어놓았다. 전체의 60%는 우울증이나 피해망상 같은 정신과적 상담이다. 지난해 말 이혼했다는 50대 여성은 “남편의 허물을 덮어주며 살았는데도 경제권을 빼앗아가고 위자료마저 한푼도 받지 못해 억울하다.”고 호소했다.40대 남성은 “아내와 매일 싸운다. 수면제도 효과가 없고 2∼3일씩 뜬눈으로 보낸다. 이젠 가정을 버리고 싶다.”고 괴로워했다.“죽고 싶어 칼을 몇 번이나 손에 쥐었다.”(40대 여성),“지하철 철로만 보면 뛰어 내리고 싶다.”(20대 남성),“애들이 울고 화가 나면 감당이 안돼 죽고 싶다.”(30대 여성)는 등 실제로 강렬한 자살 충동을 호소하는 전화도 많았다. ●전문요원 24시간 상담 치료로 연결 위기상담 전화는 고통을 겪는 사람들의 하소연을 그저 들어주는 수준에 머무르던 기존의 상담전화와 달리 상담에서 진단, 치료로 연결시키는 것이 특징이다. 사회복지사 또는 간호사 자격증을 갖고 1년 이상 체계적으로 교육을 받은 전문요원이 24시간 전화상담에 나서고 있다. 서울지역은 11개 지역정신보건센터와 연계해 가정방문, 전문가 진단과 치료요법 등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지난 12일 전화를 걸어온 40대 남자는 알코올중독으로 전문요원이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케이스. 곧바로 이 남자가 살고 있는 강북지역 정신보건센터에 의뢰, 가정방문 상담에 이어 정신사회재활프로그램에 등록시켜 약물치료교육을 받도록 했다. 13일 상담한 남자 대학생은 우울증을 앓고 있다. 이 학생이 살고 있는 곳은 정신보건센터가 없는 구로구. 서울광역정신보건센터는 구로보건소에 요청해 이 대학생이 사회성 및 대인관계 능력을 향상시키는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센터장 이명수(37) 정신과 전문의는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사람에게는 위기상담 전화처럼 상담과 치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시스템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서 “주위에서도 이들을 나약한 사람으로 취급하기보다 고통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이시대의 어머니상 탤런트 고두심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이시대의 어머니상 탤런트 고두심

    누가 18세를 낭랑(朗朗)이라고 했나. 한 여인이 그때 시집갔다. 꽃다운 나이였다. 결혼은 지독한 외로움에서 시작했다. 태평양의 작은 섬에서 살았다. 산고의 울부짖음 속에 직접 탯줄을 끊고 목욕시키며 첫 아이를 출산했다. 그렇게 자식 열둘을 낳았다. 그중 다섯은 어머니보다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어찌하랴. 나머지 자식들이 있으니 견딜 수밖에. 모진 세월, 그렇게 온몸으로 아픔을 이겨냈다. 일자무식이었지만 자식을 억척스럽게 꼭꼭 보듬었다. 어머니는 그렇게 살다가 떠났다. 하지만 지금은 거울이 되어 늘 곁에 있다. “엄마, 지금도 TV에 나오는 걸 보나? 나, 상 탔거든. 엄마가 그랬지, 편지가 따로 있냐,TV가 편지지라고. 난 엄마를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어. 엄마의 마지막 모습은 세상을 한꺼풀 벗긴 해탈의 모습이었거든. 어머니…,50년 동안 묻어두고 못한 말을 이제야 합니다. 어머니는 이 세상에서 가장 닮고 싶은 거울이지요.” 인기 탤런트 고두심(54). 올해를 이렇게 시작했다.4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가 남겨준 거울을 부둥켜안고 50년 동안 가슴에 묻어둔 고백을 했다. 또한 스스로 ‘이 시대의 어머니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졌다. 어머니처럼 살겠노라고 다짐했다. 그는 2004년 KBS·MBC 양 방송사에서 연기대상을 받았다.TV 시청자들은 고두심에게 어떤 이미지를 느낄까. 한 여론조사가 눈길을 끈다. 청와대 안주인 1순위,2002월드컵 때 히딩크 감독과 가장 잘 어울리는 여인…. ●질곡의 어머니·한많은 어머니 그는 연기생활 33년 동안 처녀 역할은 한번도 안해봤다. 천의 얼굴을 가진 탤런트라고 하지만 대부분 어머니 역이었다. 질곡의 어머니, 바보같은 어머니, 한많은 어머니. 목욕탕의 때밀이 등을 맡느라 뒤도 돌아보지 못했다. 그래서 ‘고두심’ 하면 두개의 이미지, 즉 ‘어머니’와 ‘제주도’로 귀결된다. 지난 주 서울 여의도 MBC방송국 녹화장과 서울 중구 태평로 1가 서울갤러리에서 연달아 만났다. 방송국에서는 밤을 샌 초췌한 얼굴이었고, 갤러리에선 자신에 찬 모습이었다. 방송국에서 만날 때였다. 전남 남원에서 올라왔다는 주부 김모(45)씨. 그는 고씨를 보자마자 달려오면서 “일부러 (사인받으려고)올라왔어요. 정말, 요즘의 어머니인 것 같아요.”라고 했다. 시청자 김씨가 보는 눈에는 많은 함축이 담겨 있었다. 순간, 속으로 ‘아, 이 정도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치를 챘는지 고씨가 이렇게 얘기한다.“나 있잖아, 지나가다 보면 아기 업은 엄마들이 손을 덥석 잡으며 고맙다는 얘기를 자주해. 어떻게 그렇게 잘 (어려운 어머니 역할을)대신해 주냐고.”. 수줍게 피식 웃는다. 더 이상 질문하지 말라는 표정이기도 했고, 요즘 ‘나 이렇게 살아.’하는 속내를 드러내는 것이었다.TV 속의 어머니가 아니라 요즘을 살아가는 어머니의 ‘표준’이 생각났다. 고씨 또한 각박한 시대에 20대 아들과 딸을 둔 그런 어머니였다. 고씨는 지난 9일 제주 출향 인사들이 베푼 만찬에 참석했다. 장소는 서울 장충동 서울클럽. 고교 때 은사였던 김원치 전 검사장을 비롯,50여명이 고씨를 위한 축하의 자리를 열었다. 그가 그저 인기 탤런트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제주를 무척 사랑하는, 인간적으로 친근함을 주는 사람임을 입증해 주는 상징적 자리이기도 했다. 고씨는 평소 자주 ‘제주는 어머니’라고 표현한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어머니는 무엇일까. 불쑥 질문을 던지자 거침없이 말문을 연다.“어머니를 사랑합니다. 우리 어머니가 사랑했던 사람들을 사랑하고 우리 어머니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욱 사랑합니다. 또 어머니가 사랑하는 제주, 어머니같은 제주를 사랑합니다. 지금까지는 언제나 나에 대해서만 말해왔지요. 하지만 이제는 어머니 얘기를 하면서 남은 인생을 살아가려고 합니다.” ●50대중반에 찾은 해답도 어머니 그는 불혹의 나이 때부터 심각하게 고민을 해왔다. 의혹투성이의 삶을 풀기 위해 자신의 뿌리, 태어나기 이전, 어머니와 아버지의 시대, 그때를 알아야 실체를 그나마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지금 50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비로소 해답을 찾았단다. 바로 ‘어머니’였다. 지난 연말 연기대상을 받았을 때 수상 소감으로 ‘어머니’라는 외침을 여섯번이나 했다. 식당에서 돈가스로 점심 식사를 하면서, 어머니 얘기가 나오자 그는 “IMF 이전에는 아버지였으나 이제는 어머니가 희망이 아니냐.’고 했다. 어머니는 무수한 세월이 흘러도, 또 변해도 ‘삶의 본질’ 자체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제주의 어머니들은 바다에 옥죄어 살아야 했지요. 한뙈기의 논도 없는 제주에서 가난으로 인한 박대도 많았지만 어머니들은 자식을 온몸으로 감싸안았습니다.” 고씨의 집은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있다. 앞마당에 어머니(홍정의·84살에 작고)는 앉아 있고 자신은 선 채로 대화하는 모습의 그런 동상이 있다. 그래서인지 그는 “결코 어머니를 보내지 않았다. 안방에 없으면 마당에 계시고 마당에 안 계시면 제주 오빠네 집에 가 계시다.”며 웃는다. 또 야외촬영을 갈 때 흐트러진 모습을 고치기 위해 어김없이 생전의 어머니가 남겨준 거울을 꺼내본다고 했다. ●다섯째로 태어나 23살때 연기자의 길 1938년 결혼 직후 아버지와 어머니는 남태평양 사이판 서남쪽 부근 ‘얍’이라는 미개척섬에서 인생의 보따리를 풀었다.10년의 세월 동안 일본과 얍을 오가며 장사를 했다. 어머니는 해녀는 아니지만 제주 여인들이 누구나 그랬듯이 바다에서 자맥질을 자주했다. 해방후 삶의 무대를 제주로 옮겼다.1948년 4·3사태가 생기면서 삶이 어지러웠다. 그래도 어머니는 늘 온화하고 인자한 모습이었다. 고씨는 3년후 다섯째로, 어머니의 외모를 빼닮으면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고씨는 여객선 3등선에 의지해 육지로 나왔다. 서울에 사는 오빠에게 밥을 해줘야 한다는 ‘명분’으로 어머니를 설득했다. 서울에서 처음 한 일은 무역회사의 사무원.1년이 조금 안돼 MBC공채 5기에 뽑혀 탤런트가 됐다. 스물셋에 연기자가 됐지만 불행(?)하게도 처녀 역할은 한번도 오지 않았다. 처음부터 아줌마나 어머니, 아니면 할머니역이었다. 결혼 적령기에 무뚝뚝하지만 매력있는 부산 남자를 만나 뜨겁게 사랑했다. 부산으로 내려가는 밤열차를 타고 그의 품에 안기는 낭만은 ‘그만’이었다. 꿈같은 신혼시절은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20년 결혼생활, 그는 어머니한테 ‘이혼’이라는 선물을 안겼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를 보듬어 안았다. 이유도 묻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제가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지요. 어머니는 촬영장에 따라가시려고 주머니 속에 항상 양말을 숨겨 놓으셨지요. 전원일기 촬영장인 경기도 양수리를 가시는 것을 무척 좋아했어요.” 그는 어머니란, 설명이 많을수록 감동이 없다고 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시대는 어머니가 희망’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고씨는 현재 평창동에서 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 아들과 딸 두 자녀는 미국에서 지낸다. 일요일이면 여섯시간이나 걸려 북한산을 종주할 만큼 체력을 관리한다.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51년 5월 제주 출생 ▲70년 제주여고 졸업 ▲72년 MBC 공채 5기 탤런트 ▲72년 드라마 ‘갈대’로 데뷔 ▲95년 극단 로뎀 단원, 서울가정법원 가사조정위원 위촉 ▲99년 축산을 사랑하는 시민의 모임 공동대표. ▲2002년 제4회 광주비엔날레 명예홍보대사 ▲수상경력=1990년 KBS·MBC연기대상,91년 백상예술대상·MBC연기대상.97년 제주도문화상.2000년 SBS연기대상.2004년 KBS·MBC연기대상 ▲연극 ‘투우사의 왈츠’ 등 6편, 영화 ‘질투’ 등 8편, 드라마 ‘한강수타령’외 50여편 출연.
  • “집 보러왔다” 속여 상습 성폭행 전직 공무원 20년형 중형 선고

    아파트를 임대하러온 것처럼 속여 젊은 주부들이 사는 집만 골라 들어가 성폭행과 강도를 일삼은 공무원 출신 20대 남성에게 법원이 이례적으로 중형을 선고했다. 서울 동부지법 형사11부(이기택 부장판사)는 16일 특수강도강간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공모(28)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2000년 8월부터 경기 구리시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던 공씨는 지난해 2월 청소년의 성을 구매한 혐의로 벌금형을 받는 바람에 직장을 그만 뒀다. 이후 불안정한 생활을 하던 그는 TV에서 본 강도·강간 범행을 모방, 돈과 성적 충동을 채우겠다고 마음먹었다. 공씨는 지난해 7월29일 경기 성남의 한 아파트에 “집을 보러왔다.”며 들어간 뒤 주부 문모(32)씨를 미리 준비한 흉기로 위협해 청색 테이프로 몸을 묶고 성폭행했다. 그는 “반항하면 아이를 가만 두지 않겠다.”고 협박해 신용카드의 비밀번호를 알아낸 뒤 현금을 인출해 가로채고 문씨의 나체를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기도 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이럴수가!] 멀쩡한 식도 ‘싹둑’

    의료 선진국 영국에서 의사의 오진으로 멀쩡한 환자의 식도가 절제된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환자는 병원으로부터 3억 7600만원의 보상금을 받았지만 음식을 먹을 때마다 위산이 넘어오는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음식을 삼키는 데 불편함을 느낀 알란 브란트(54)가 서리주(州) 처트시에 있는 ‘세인트 피터 병원’을 찾은 것은 지난 2000년 말. 그는 뜻밖의 식도암 판정을 받았고 “수술받지 않으면 1년밖에 못산다.”는 의사의 말에 식도 절제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합병증으로 비장까지 들어냈다. 그런데 수술 뒤 알게 된 실상은 식도는 멀쩡했지만 오염된 핀셋 때문에 진단이 잘못됐다는 것. 그는 병원으로부터 보상금을 받았지만 자살 충동을 느꼈을 만큼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 브란트는 “몸을 구부리면 입으로 위산이 넘어와서 외식도 못하고 식사 때 와인 한잔 마실 수 없다.”고 말했다고 일간 가디언은 12일 전했다. 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종교플러스]

    ●밀교의식 다룬 화보집 출간 세계의 밀교의식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화보집 ‘밀교의 호마(護摩)와 관정(灌頂)’(불교진각종 펴냄)이 나왔다. 지난 2002년 10월 종조인 회당(悔堂) 손규상 대종사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서울 하월곡동 총인원에서 봉행된 세계밀교의식 시연법회의 생생한 장면들을 상세한 설명과 함께 실었다. 진각종 교육원장 혜정 정사가 감수하고, 진각대학 허일범 교수가 해설을 덧붙였다.‘호마’와 ‘관정’은 밀교의 의식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호마’는 화염 속에 공양물을 던져 넣는 행위를 통해 모든 신들과 불보살을 공양하는 화사의식(火事儀式)을 말한다.‘관정’은 정수리에 물을 뿌리는 의식. 관정의식을 통해 밀교 수행자는 아사리(스승)에게서 밀교의 교리와 행법을 전수받고, 수행해도 좋다는 인가를 얻는다. 책은 그동안 일반에 공개된 적이 없던 한국과 티베트, 몽골, 일본 등지의 호마와 관정의식을 한데 모아 소개한다.3만원. ●‘종교 수구화 막기’ 네트워크 조직 불교와 기독교, 천주교의 진보단체들이 종교의 수구화 흐름에 대응하기 위한 상설 네크워크를 만든다. 천주교계 우리신학연구소와 불교계 참여불교재가연대, 개신교계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는 13일 서울 장충동 우리함께회관에서 ‘사회와 종교 개혁을 위한 네트워크(가칭)’ 구성을 위한 모임을 갖고 초종교적인 진보연대모임 창립 방안을 논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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