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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16)페미니즘 여성작가 버지니아 울프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16)페미니즘 여성작가 버지니아 울프

    1910년 영국 런던. 블룸즈버리 그룹의 일원이었던 로저 프라이가 기획한 프랑스 현대미술작가전이 그래프턴 갤러리에서 열렸다. 제목은 ‘마네와 후기 인상주의’. 세잔, 반 고흐, 고갱, 피카소 등 지금은 거장이라 추앙받는 이들의 작품을 두고 당시 영국인들은 ‘포르노’ ‘미친 사람들의 작품’이라며 경멸했다. 대상을 충실히 재현하는 고전주의 회화와 달리, 주체와 대상의 경계 없이 자신의 눈과 마음을 관통해 들어오는 세계를 표현해낸 이들의 작품은, 중심과 보편을 거부하는 ‘반(反) 전통적 선언’이었다. 버지니아 울프(1882~1941)에게 이 전시는 낯선 감각적 충격이었다. 버지니아 울프는 1882년 1월 25일 런던에서 태어났다. 원래 이름은 버지니아 스티븐. 정치 저널리스트였던 아버지 레슬리 스티븐은 19세기 영국 지성사의 중요한 인물이었고, 어머니 줄리아는 빅토리아 시대의 전형적인 현모양처였다. 울프는 어린 시절부터 가끔씩 우울증을 앓거나 정신 발작을 일으켰다고 한다. 많은 연구자들은 울프의 이런 병증을 개인적인 가정사나 의붓오빠들에게 당한 성추행의 충격 탓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녀의 기록을 보건대, 그녀의 병증은 개인적인 트라우마로 환원될 수 없는 것이었다.“이 일은 몸의 어떤 부분에 대한 감정이, 그 부분은 만져서는 안 된다는, 그 부분이 만져지게끔 허락해서는 안 된다는 감정이 본능적임을 보여준다. 이 일은 버지니아 스티븐이 1882년 1월 25일 태어난 것이 아니라 수천년 전에 태어났다는 점을, 그리고 과거의 수천명 선조에 의해 획득된 본능과 바로 처음부터 만났다는 점을 증명한다.” 그녀가 느낀 수치심과 두려움은 ‘과거의 수천명 선조’의 몸에서 몸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져온 것이다. 즉, 그녀의 병증은 개인적 경험이 아니라 역사로부터 온 것이다. 울프의 무의식에 내재된 수천의 조상들과 전통은 망령처럼 그녀의 삶을 통제했다. 그런 울프에게 돌파구가 된 것은 새로운 이들과의 만남이었다. ●문학으로 광기를 돌파하다 가족이 새롭게 거처를 마련한 블룸즈버리에서 울프는 지적 네트워크와 접속한다. 울프의 언니 바네사와 오빠 토비를 비롯해 E.M. 포스터, 로저 프라이, 클라이브 벨 등 케임브리지 대학 출신의 엘리트들이 참여한 블룸즈버리 그룹에서 울프는 모더니즘적 자양분을 섭취한다. 그들은 문학, 평론, 미술, 경제학 등을 가로지르며 19세기의 숨막히는 빅토리아적 관습에 저항했다. 울프는 세잔이 그림을 통해 한 일을 자신은 문학으로 하겠노라고 결심한다. 울프에게 문학은 낡은 세계와 결별하고, 과거의 자기로부터 떠나는 것을 의미했다. 1915년에 출간된 첫 장편소설의 제목 ‘출항’은 이런 울프의 열망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울프는 문학을 통해 자신의 시대를, 그 시대가 낳은 광기를 돌파해 나가고자 했다. 하지만 ‘출항’까지는 9년이라는 힘든 시간을 통과해야 했다. 기존의 영토를 떠나 새로운 흐름에 자신을 던지는 일은 그토록 지난(至難)한 일이었으리라. ●‘댈러웨이 부인’, 또 다른 탄생의 기록 1925년 버지니아 울프의 첫 출세작 ‘댈러웨이 부인’이 출간된다. 중산층 부인 클라리사의 하루를 담은 이야기, 특별한 인과도 없고, 정해진 인칭도 없으며, 성격 묘사나 교훈도 없이 기억과 의식, 감각만으로 이루어진 이 낯선 소설에 대해 많은 독자들은 부정적이거나 적대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 소설의 원제는 ‘시간들’이다. 울프에게 시간은 “빛이 발산되는 후광, 의식이 생기기 시작해서부터 사라질 때까지 우리를 감싸는 반투명의 봉투”이다. 균질하게 흐르는 객관적 시간은 없다. 모든 사람이 경험하는 시간이 다르고, 한 사람에게도 동시에 여러 겹의 시간이 작동한다. 울프에게 시간은 경험하는 사람의 의식과 무의식 속에서 구성되는 것이지 인간의 경험 이전에 미리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시간들’ 속에서 우리의 기억은 끊임없이 유동하고, 의식과 무의식은 서로에게 스며든다. 그렇게 우리는 ‘시간들’ 속에서 매번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다. 클라리사는 매순간 자신을 관통해 들어오는 자극을 “끔찍하도록 민감하게” 느끼면서 복수의 시간들을 통과한다. “그녀가 집에 있는 나무들의 일부”가 되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점은 클라리사와 셉티머스의 관계다. 셉티머스 역시 클라리사처럼 세계를 민감하게 느끼지만 그는 “한 세대가 다음 세대로 전하는 비밀의 암호는 혐오와 증오와 절망”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민감함이 세상 속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그의 자아가 세상 앞에서 빗장을 닫아거는 순간, 그의 탈출구는 죽음밖에 없었다. 반면 클라리사는 매순간 세상을 향해 자신을 열며 자아의 죽음과 탄생을 동시에 경험함으로써 죽음의 충동을 극복해 나갔다. 셉티머스와 클라리사, 그들은 생사의 문턱을 넘나들며 글을 써 나갔던 울프의 분신들이다. 문학은 광기의 기록이 아니라, 광기를 넘어서려는 분투의 기록이라는 것. 어렵게 ‘출항’한 울프는 그렇게 흐름 위에서 자신의 광기를 직시하며 나아갔다.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 여성작가로서 명성을 얻는 듯했던 울프. 그러나 모더니즘 문학의 영토 안에서 그녀는 새로운 벽에 부딪히게 된다. 모더니즘 역시 남성들의 영토였고 그들만의 리그였던 것. 그 안에서 여성은 여전히 성적 매력과 미모를 과시하며 남자를 유혹하는 존재에 불과했다. 페미나(Femina)상을 받은 ‘등대로’(1927)는 울프의 페미니즘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작품이다. 흔히 이 작품의 등장인물인 램지 부인은 대지의 어머니로서 여성성을, 램지는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남성성을, 릴리 브리스코는 이 둘을 조화하는 인물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남성-여성의 이분법에 기대고 있다는 점에서 공허하다. 울프는 ‘조화’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양성(兩性)을 구분하는 전제들 자체를 의문시한다. 소설에서 캔버스를 가로지르는 릴리의 선처럼, 울프는 양성을 가로지르는 제3의 선을 그리며 남성-여성의 영토에서 탈주한다. 그리고 “인생이란 양성 모두에게 힘들고, 어렵고, 영원한 투쟁”이라는 깨달음에 이른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자기만의 방’(1929)이다. ‘자기만의 방’은 울프가 쓴 ‘여성문학사’다. 영국 역사 속에서 여성 예술가는 죽거나 미칠 수밖에 없었다. 자기만의 방이 없었고, 잘난 여자들에 대한 적대감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울프는 여성이 작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여러분들에게 돈을 벌고 자기만의 방을 가지기를 권할 때, 나는 여러분이 리얼리티에 직면하여 활기 넘치는 삶을 영위하라고 조언하는 겁니다.” 울프의 두 발은 현실 위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고, 그녀는 어떤 경우에도 유머와 활력을 잃지 않았다. 그것만이 ‘여성 작가’가 아닌 ‘작가’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이라고 믿었다. 울프는 여성의 상황을 남성들이나 시대에 대한 증오로 돌리지 않고, 그 지반을 가볍게 활공한 선배 작가의 삶에서 새로운 비전을 발견했다. 그중에서도 울프가 주목한 것은 “미움 없이, 쓰라림 없이, 두려움 없이, 항의 없이, 설교 없이 글을 쓴” 제인 오스틴이었다. 남성에 대한 적대감이 여성을 구원해줄 수는 없다. 여성이 작가로 살아가려면 담담하게 세상의 적대감과 대면하면서 자신의 영토를 만드는 수밖에 없다. “순수한 가부장제 사회의 한가운데서 그 모든 비판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보는 대로의 사물을 움츠러들지 않고 굳건히 고수”한 제인 오스틴에게서, 울프는 남성-여성의 경계를 훌쩍 넘어선 “천재적 성실성”을 보았다. 역사 속의 여성작가들을 경유한 울프는 이제 “여성으로서, 그러나 자신이 여성이라는 것을 잊어 버린 여성으로서 글을 썼으며 그리하여 그녀가 쓴 페이지들은 성이 그 자체를 의식하지 않을 때에만 도래하는 진기한 성적 특성으로 가득차” 있게 된다. 여성의 눈도 남성의 눈도 아닌, 모든 ‘시간들’을 살아가는 모든 ‘성(性)들’의 눈을 갖고, 버지니아 울프는 세계를 감각하고, 기록한다. 더없이 성실하게. 그렇게 버지니아 울프는 페미니즘의 영토를 끊임없이 탈주하는, 모든 실험적 페미니즘들의 이름이 되었다. 최태람 수유+너머 남산 연구원
  • 가무악극 ‘화선 김홍도’ 배삼식 작가 인터뷰

    가무악극 ‘화선 김홍도’ 배삼식 작가 인터뷰

    “아, 그래요? 이게 뭐냐며 다들 걱정인데…. 하하. 하여튼 고맙습니다.” 대본 보자마자 인터뷰하고 싶어졌다, 했더니 반색한다. 조선시대 화가 김홍도를 다루는데 정작 김홍도는 없다. 김홍도는 없는데 김홍도는 다 들어 있다. 손진책 연출의 표현을 빌리자면 “참 영리하게 썼다.” 오는 8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무대에 오르는 가무악극 ‘화선(畵仙) 김홍도’ 얘기다. 극본을 쓴 배삼식(41) 동덕여대 문 예창작과 교수를 서울 태평로 서울신문 사옥에서 만났다. →국립극장이 하는 ‘국가브랜드’ 공연인데 영웅적이지 않아 인상적이다. -그런 도식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국가브랜드 공연은 자칫 위인전이나 민족주의로 흐를 위험이 있다. 그래서 처음부터 김홍도는 비워두고 작품을 쓰겠다고 작정했다. 김홍도가 떡 하니 무대에 살아나오는 순간, 공연을 위한 작품(의 재미는) 망가진다고 생각했다. 작품 배경은 김홍도가 죽은 지 50년 뒤다. 주인공은 김홍도의 그림에 홀딱 반한 50대 영감 ‘김동지’와 ‘손수재’다. ‘동지’는 고어(古語)로 먹고살 만한 중늙은이를, ‘수재’는 노총각을 뜻한다. 두 늙은이가 아옹다옹하며 김홍도의 그림 속을 여행하는 것이 극의 중심 얼개다. →이색 접근법이라 말들이 많았겠다. -야단 많이 맞았다. 하하. 예술가 하면 고뇌와 갈등을 먼저 떠올리는데 내가 본 김홍도는 평생 보고 들은 것을 붓 안에 담아두고 싶었던 사람일 뿐이다. 그래서 작품에도 천진난만한 어린아이 모습으로만 잠깐 등장시켰다. 김홍도가 왜 없냐고들 하시지만, 그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은 김홍도의 직접 출연이 아니라, 김홍도를 사랑했던 사람들이 그를 기억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주인공들이 그림 속을 여행한다는 점에서, 영화 ‘전우치’가 떠올랐다. -그런가. 영화는 못봤다. 청나라 문인 포송령(蒲松龄)이 기이한 이야기들을 모아서 쓴 ‘요재지의’(聊斋志异)라는 책에 보면 그림 속에 들어갔다 나온 이야기가 있다. 거기서 힌트를 얻었다. →영화와 달리 무대 위에서 그림 속 여행을 표현해야 한다. 스태프들이 무척 힘들어 할 것 같다. (김홍도의 그림에 등장하는 새나 짐승들의 움직임을 영상으로 무대에 투사할 계획이다.) -하하. 맞다. 기본적으로 김홍도의 그림이 살아움직이는 무대를 구상했기 때문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국가브랜드 공연이란게 단발성이 아니라 몇년간 이어지면서 완성도를 차차 높여나가는 것이 아니겠나. 그렇게 발전해가길 바란다. →작품에도 잘 녹아들었지만, 김홍도에 대한 비판은 대개 두가지다. 문기(文氣)가 약하다는 것, 그가 그린 민속화 등장인물들이 모두 웃고 있는 것은 김홍도가 정조의 관제어용화가라서 그렇다는 점이다. -그런 부분에 대한 고민도 많았다. 내가 내린 결론은 현실세계의 결핍을 보상받고자 하는 인간의 보편적인 욕구에 초점을 맞추자는 것이었다. 김홍도도 그런 마음을 담아 그림을 그렸고, 그걸 보는 사람들도 그런 면에 반한게 아닐까. 그리고 김홍도는 어릴 적부터 이름난 화가였기 때문에 평생을 주문제작에 매달렸다. 오늘날까지 전하는 것은 300점이지만, 실제로는 1만 2000여점 이상 그렸을 것이란 연구결과가 있다. 지금 남아 있는 것만으로 김홍도의 세계는 이런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말년에 선화(仙畵)를 많이 그렸다는 점도 참고했다. →두 늙은이가 여행하는 그림으로 ‘서당’, ‘씨름’, ‘무동’처럼 대중적 작품을 골랐다.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인가. -모든 그림을 다 보여줄 수는 없고 좋은 그림은 많고 하니 어떻게 할까 고민했다. 처음엔 말년 선화 한폭을 정해서 착상에서 완성까지의 과정을 풀어내는 방식을 생각했다. 그런데 국가브랜드 공연이고 하니 널리 알려진 작품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대신 말년에 그린 추성부도를 작품의 시작과 끝에 배치했다. →공연계에서 독보적 작가로 꼽힌다. 그런 작가를 손진책 예술감독 때문에 국립극장이 너무 독점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지난 작품 ‘3월의 눈’도 국립극장과 함께 했다. -나로서는 고마운 분이다. 10여년간 연출과 작가로 인연을 맺으면서 나를 단 한번도 가르쳐야 할 후배로 대하지 않았다. 언제나 같은 일을 하는 동반자로 여겨줬다. 개인적으로 ‘열하일기만보’(2007년작) 때가 최대 위기였다. 그 전엔 내 작품이 서사적 힘이 딸린다는 자괴감 때문에 내 공연도 내가 부끄러워서 끝까지 못봤다. 이것마저 안되면 작가 생활 접겠다 생각하고, 마지막이니까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거 다 해보자 해서 쓴게 그 작품이었다. 그 때 손진책 연출이 이걸 어떻게 무대에 올리냐며 한달간 고민했다. 그게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작가 생활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은인이기도 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하하하. →올해 또 어떤 작품을 쓰나. -너무 많이 써서 고민이다. ‘3월의 눈’ 같은 경우 1주일만에 썼다고 바깥에다 대고 말하기는 했지만, 삼청동에서 6~7년 직접 살았던 경험과 언젠가 이런거 한번쯤은 써봐야지 하고 생각해왔던 오랜 구상이 함께 녹아들었기 때문에 1주일만에 쓸 수 있었던 거다. 빨리 괜찮은 작품을 써야 한다는 궁지에 몰리니까 그렇게 써지기도 하더라. 그렇게 오래 삭히고 묵혀야 좋은 놈이 하나 나오는 건데, 지금은 묵힐 시간이 없다. →그건 작가가 알아서 해결해야 할 고민이고(웃음). 잔인하겠지만 관객 입장에서는 하나라도 더 보고 싶다. -하하하. 안 그래도 하반기에 김동현 연출과 하기로 한 작품이 있다. 벌을 소재로 쓸 생각이다. 지난해 구제역으로 난리였는데, 그만큼 주목을 못받아서 그렇지 토종벌의 95%가 사라졌단다. 그걸 모티프로 이야기를 풀어가보고 싶다. 이번에 종강도 했으니 정말 정말 열심히 써야한다. →이러다 극본 청탁 피하려 절에라도 가는거 아니냐. -지난해 2학기 때부터 대학강의까지 맡았다. 강의하면서 쓰려니까 정말 힘들다. 진짜 그렇게라도 해볼까. 하하하. →극작가로서 10여년 살았다. 다 때려치우고 싶은 위기도 넘어섰고 위치도 단단하다. 궁극적으로 어떤 극작가가 되고 싶은가. -연극의 가장 큰 매력은 편견의 각축장이라는 점이다. 어느 누구도 단정적으로 옳거나 단정적으로 틀리지 않다. 작가 역시 매한가지다. 내가 세상을 안다, 그래서 무대를 통해 이런 세상을 보여주겠다 하는 순간 작가로서는 끝이라 생각한다. 세상 모든 주장을 하나의 편견으로, 동시에 나의 주장 역시 편견의 하나로 객관화시킬 수 있는 넓은 시야를 가지고 싶다. 거기에 걸맞는 적당한 표현 형식도 구축하고 싶다. 아, 그런데 말하고 나니 너무 낯부끄러운 얘기다. 이거 쓰지 말아달라.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하늘을 나는 오토바이? ‘하버바이크’ 등장

    하늘을 나는 오토바이? ‘하버바이크’ 등장

    차를 몰고 나왔다가 꽉 막힌 도심 한가운데 서 있을때면, 차를 버리거나 아니면 SF영화처럼 차에서 날개를 꺼내 날아가고 싶은 충동을 느낀 경험은 누구나 한번쯤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육중한 자동차 대신 더 가볍고 빠른 오토바이로 하늘을 날 수 있다면? 최근 해외의 한 괴짜 발명가가 세계 최초로 나는 오토바이를 개발해 눈길을 모으고 있다고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이 29일 보도했다. 호주 출신의 크리스토퍼 멜로이(32)는 자신의 일을 모두 그만두고 2년 반 동안 개발에 몰두한 결과, 고도 1만 피트(약 2050m), 최고 속도 160km/h에 달하는 ‘하버바이크’(Hoverbikes)를 만들어냈다고 주장했다. SF영화 ‘스타워즈’나 ‘백투더 퓨처’에 등장할법한 디자인의 이 오토바이는 BMW엔진과 그가 직접 제작한 탄소섬유 기체 등으로 만들어졌다. 무게는 270㎏, 연료 한 케이스 당 150km 또는 45분간 날 수 있다. 멜로이는 “현재 마무리 실험단계지만, 완성되면 하늘을 나는데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면서 “기술적으로 매우 안정돼 있지만,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낙하산을 휴대하고 탑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존의 헬리콥터나 비행기에 비해 작동이 훨씬 쉽고 움직임이 간편하다.”면서 “특별한 교육 없이도 오토바이를 조종할 수 있다면 누구나 탈 수 있는 교통수단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진=하늘을 나는 오토바이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직격 인터뷰] ‘차량절도 물의’ 곽한구 “자살생각 몇 번 했다”

    [직격 인터뷰] ‘차량절도 물의’ 곽한구 “자살생각 몇 번 했다”

    한 때 전도유망한 개그맨이었던 곽한구. 그의 이름 석 자만 들어도 차갑다 못해 싸늘한 시선을 보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어찌 보면 그럴 만도 하다. 곽한구는 2009년 6월 경기도 안산 중고차 매매센터에서 외제차를 훔쳐 집행유예를 받은 상태에서 9개월 만에 같은 장소에 전시된 크라이슬러 지프모델 허머 h3를 절도한 혐의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했다. ‘절도범’, ‘범죄자’로 낙인을 찍혔던 곽한구가 다시 세상에 나왔다. 죗값을 받은 곽한구는 하소연도 변명도 하진 않았다. 다만 “차를 좋아하는 진심만은 알아 달라.”며 중고차 매매사업가라는 의외의 모습으로 변신해 있었다. 세상의 조롱과 손가락질에도 포기할 수 없었던 게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도 들어주지 않았던 곽한구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14일 곽한구는 중고차 매매업을 하는 동료 2명과 함께 취재진을 찾았다. 검정색 안경을 쓰고 양복을 차려입은 모습이 개그콘서트 ‘독한 것들’에서의 험상궂은 인상보다 훨씬 부드러웠다. 차량 절도 파문을 일으킨 뒤 2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의 근황이 궁금했다. “지난해 법인을 설립하고 중고차 매매사업을 계속하고 있다. 자동차, 오토바이, 고가의 부품 등을 직접 수입하기도 하고 위탁해 판매하기도 한다. 많은 분들이 제가 중고차 매매업을 한다고 하면 의아하게 생각하지만 사실 22세 때부터 매매업소의 정식사원으로 취직해서 이 일을 했다. 차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내게는 이 일이 천직이다.” -절도로 사회적 파문을 일으킨 뒤 힘든 시간을 보냈을 거라고 짐작된다. “당시에는 ‘나란 놈은 끝났구나.’란 생각에 죽을 궁리만 했다. 어리석은 생각이었지만 인터넷으로 방법을 찾아보기도 했고 뛰어내리려고 건물 옥상에 올라간 적도 있다. 한 번 더 노력해보고 안되면 그 때 선택하자는 생각에 다시 이를 물고 이 일을 시작하게 됐다.” -두 차례 절도를 저질렀다. 특히 두 번째 사건은 집행유예 기간에 발생했기에 사회적 충격과 실망감은 더욱 컸다. 당시 당사자들 간의 오해에서 비롯된 사건이란 주장도 많았지만 어쨌든 법의 심판을 받고 마무리된 사건이긴 하다. 당시 의혹들을 풀 생각은 없는가. “법의 심판을 받고 처벌까지 받고 나온 상태에서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게 무슨 필요가 있나는 생각도 든다. 분명히 내가 잘못을 저지른 부분이 있고 많은 이들에게 지탄받을 행동도 했다. 하지만 의도적인 행위는 아니었고, 언론에서 보도된 것처럼 도벽이 있다거나 정신병이 있어서 저지른 건 더더욱 아니다.” -곽한구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참담한 심경을 밝혔다. 당시 사건에 대해서 최대한 객관적으로 입장을 정리해 달라고 말을 꺼냈다. 중간에, 옆에 있던 동료들이 그를 대신해 당시 상황을 설명해주기도 했다. “첫 번째 사건은 단골 카센타에서 수리 중이던 외제차 CL600을 무단으로 타고 집에 가면서 벌어졌다. 당시 내 차였던 닛산 큐브를 수리 맡기면서 CL600을 본 뒤 충동적으로 이 차를 몰고 집에 갔다. 이 차가 딜러인 친한 형이 위탁판매하고 있는 차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사건 얼마 전에 다른 딜러에게 넘긴 차였다. 아는 형 차라는 생각에 대수롭지 않게 차를 몰고 집에 간 것이 화근이었다.” -곽한구의 주장대로 아무리 그 차가 형이 위탁 판매하려던 차라도 무단으로 몬 건 절도에 해당한다. “그렇다. 워낙 친한 형이라 바로 알리지 않고 다음날 공연차 중국으로 출국해서 더욱 문제가 커졌다. 입국한 뒤 바로 영문도 모르고 체포됐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말을 하지 않고, 그것도 수리 중이던 차를 몬 건 법의 잣대에서는 분명 처벌을 받아야 마땅했다. 하지만 이 차를 남에게 속여 팔려고 했거나 친한 형 차를 가지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친한 형 차를 충동적으로 시운전 해보려고 생각했던 내가 어리석었다.” -당시 피해자의 차량은 CL600, 2억 원이 넘는 고가의 차량으로 알려졌다. 우발적으로 고급차를 타고 싶은 욕심에 절도했던 것이 아니었나. “중고차 매매업자들은 수십대의 차량을 수시로 사고파는데 그 과정에서 빚어진 내 큰 실수이자 잘못이었다. 친한 형이니까 한번 몰고 나중에 전화하면 꾸지람 좀 듣고 끝날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또 당시 그 차가 사용한 지 10년도 넘은 차량이었기 때문에 원 가격은 2억 원이 넘지만 매매센터에서의 거래가격은 2000만 원 대 미만이었다. 그 차를 훔쳐서 큰 돈을 벌 생각이나, 타고 다닐 생각은 맹세코 없었다.” -이 사건으로 곽한구는 불구속 기소돼 징역 4개월 집행유예 10개월을 받았다. 집행유예를 단 한 달 남긴 상태에서 두 번째 사건이 벌어졌다. 같은 장소에서 이번에는 또 다른 차량을 훔쳤다는 혐의를 받은 것. “두번째 사건에서도 분명 내 잘못은 있었다. 다만 당사자들끼리는 며칠 뒤 오해를 풀고 피해자가 오히려 신고를 취소해줬는데, 내가 집행유예 기간이었기 때문에 사건이 더욱 커졌다. 당시 별일 아니라고 생각해서 변호사도 선임하지 않았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무거운 형량을 받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오해를 풀었다는 건 어떤 부분이었나. “첫번째 사건 이후 개콘에서 퇴출된 뒤 생계를 위해 중고차매매 사업에 매진하고 있었다. 당시 절친했던 딜러가 단골손님의 크라이슬러 지프모델 허머 h3을 위탁해 판매하고 있었다. 사건 전날 그 딜러에게 그 차를 안산에 있는 고객에 보여주겠다고 허락을 맡은 상태였다. 차에 열쇠도 꽂혀 있어 별 의심 없이 차를 몰고 안산으로 가던 길에 도난신고가 됐고 한바탕 난리가 났다. 연락을 받고 그 차를 몰고 되돌아가자마자 체포됐다.” -친한 딜러가 차량을 빌려주기로 해놓고 착각을 해서 도난신고를 했다는 건 그렇다치더라도, 다른 사람이 위탁판매하는 차량을 왜 자신의 고객에게 직접 몰고가서 보여주나. “중고매매업자들 간에는 흔히 있는 일인데, 일반인들은 잘 이해하지 못할 테다. 위탁된 차량에는 딜러가 한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 붙기도 한다. 나도 그 중 한명이었다. 사건 접수가 돼서 조사는 받았지만 차주인도 오해를 풀고 직접 신고까지 취소해 줬지만 이미 사건이 검찰로 넘어가 재판을 받았고 처벌을 받았다. 사실 지금은 운전을 하진 않지만, 당시 첫 번째 사건으로 면허가 취소된 상태였는데 불법 운전을 했고, 집행유예 기간이었던 데다가 내가 얼굴이 알려진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일이 커진 것 같다. 애초에 법을 어기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었다. 다 내 불찰이고 잘못이다. 누구를 원망하진 않는다.” -늦었지만 용서를 빌고 싶은 생각이 있는가. “사실 부모님에게 큰 불효를 저질렀다. 개인적으로는 개그맨의 꿈도 사라졌다. 결혼을 약속했던 여자친구도 못 견디고 떠났다. 하지만 이제 와서 누굴 원망하겠나. 진실을 알아달라고 호소해서 뭘하겠나. 잘못을 저질러서 법적 처벌을 받았고, 이제는 의심의 여지가 생기지 않도록 더 열심히 일할 것이다. 그대로만 받아주시면 좋겠다. -개그의 꿈은 완전히 버린 것인가. “방송국이란 곳은 한 점 의혹도 없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는 곳이니까 저처럼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이 나오면 말이 안 될 거다. 지금은 개그맨의 꿈을 꾸지 않지만 죽기 전에는 기회가 오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가끔 개그맨 동료나 후배, 지망생들이 연락해 올 때면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솟구치지만, 잘못을 저질렀으니 포기해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는다.” -노이즈마케팅이라는 세간의 의혹에 대해서는? “돈을 벌고 싶어서, 인생을 걸고 이런 짓을 벌였다면 그건 쓰레기 중 쓰레기가 아니겠나. 난 사실 봉사활동을 하거나 방송에 나가려고 기웃대지 않는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누울 때까지 오로지 일만 한다. 열심히 하는 모습, 그건 그대로 봐달라.”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지금은 누굴 원망하거나 진실을 알아달라고 하소연 하고 싶진 않다. 다만 중고차 매매사업으로 제 2의 인생을 시작한 만큼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만은 곡해해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유모차부터 트랜스포머까지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해서 자동차 중개로 성공하겠다. 이제는 오해를 불러올 어떤 빌미도 만들지 않겠다.” 글=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사진·동영상=서울신문 나우뉴스 손진호기자 nasturu@seoul.co.kr
  • 김인숙 “낯선 공간·낯선 문화의 삶 써보고 싶었다”

    김인숙 “낯선 공간·낯선 문화의 삶 써보고 싶었다”

    건물은 무너졌고, 찢긴 시체들은 떨어진 꽃송이처럼 시멘트 덩어리 틈 사이에 널브러졌다. 임시로 차린 병원은 차라리 죽여 달라며 소리치고 신음하는 환자들로 넘쳐났다. 엄마를, 형제를 찾는 이들이 부르짖는 아우성은 환청인 듯 귓가에 박혔다. 엄청난 지진이 땅을 흔들었고 절벽처럼 일어선 바다가 섬을 뒤덮었다. 대재앙에서 비롯된 죽음과 붕괴, 공포와 불안이 불러온 것은 지우려야 지울 수 없는-또는 기억하려야 기억할 수 없는-과거의 한 장면이다. 새 희망은 거기에서부터 시작한다. 사랑도, 삶도. 김인숙(48)의 새 장편소설 ‘미칠 수 있겠니’(한겨레출판 펴냄)는 사랑의 진정성을 묻는 작품이면서 또한 한 편의 재난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공교롭게도 올해 초 발생한 일본 대지진의 끔찍함을 상기시키는 작품이기도 하다. 지난 7일 만난 김인숙은 아직도 흥분과 충격에서 채 빠져나오지 못한 듯 한껏 상기돼 있었다. 비록 자신이 만들어낸 소설 속 공간의 재앙이었고 죽음의 기억이었지만, 그만큼 강렬하게 소설에 사로잡혀 지낸 탓이리라. 김인숙은 “지난해 11월까지 문학웹진에 연재한 뒤 단행본을 내기 위해 올해 여섯 달 동안 끙끙거리며 고쳐 썼는데 그 사이 일본 대지진이 발생했다.”면서 “가능하면 TV도 보지 않고 신문 기사도 읽지 않으려 했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지진 이야기를 (작가로서) 얼마나 진정성 있게 쓰고 있는지 자문하면서도, TV 등을 보고서 지진을 더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인간으로서) 과연 옳은 자세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일본의 노부부가 쓰나미가 등 뒤에서 몰려오는 순간까지 손을 놓지 않았다는 기사를 봤어요. 대단히 인상적이었죠. 나는 이런 현실을 알고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문득 생각났다는 투로 쉼표를 찍듯, 천천히 말을 이어 간 김인숙의 볼이 살짝 붉어졌고 눈시울에 물기가 어렸다. 소설 속 공간은 ‘신들의 섬’이라고 하는 이국의 섬이다. 언어에 시제가 따로 없어 어제와 오늘, 내일이 모두 현재형인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관광객이 없으면 한시도 지탱할 수 없는 곳이면서, 돈 많은 외국인 여자 또는 남자와 사랑인지 매춘인지 알 수 없는 만남을 꿈꾸는 청춘 남녀들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소설은 여자 ‘진’과 섬의 관광 가이드 운전 기사 ‘이야나’의 시선으로 펼쳐진다. 진의 남편 유진은 7년 전 섬으로 함께 여행을 다녀온 뒤 아예 혼자 섬에 눌러앉는다. 그리고 진이 국내를 오가는 사이 유진은 자신의 아이를 가진 어린 하인 여자아이에게 살의(殺意)의 충동을 느끼게 되고, ‘기억이 모호한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진은 살인 사건과 함께 사라진 유진을 찾기 위해 다시 섬으로 왔고, 거기에서 끔찍한 대지진을 직접 겪는다. 진은 ‘세상이 무너지고 땅이 전부 갈라지지 않고서야 어떻게 사랑이 변할 수 있겠는가.’라고 읊조리며 7년 전 살인 사건 또한 결국 한 사람의 인생에는 어마어마한 대지진이었음을 깨닫는다. 끔찍한 죽음을 부를 수밖에 없는 지진이 형태를 달리해 7년의 간격을 두고 일어난 셈이다. 옛 사랑을 되찾고, 깨끗이 버리고, 또 새 사랑을 만나는 것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랑이 거쳐야 할 삶의 필연적 수순이다. 지진과 죽음이 휩쓸고 가 모든 것이 무너진 폐허 위에 섰다면 무엇이든 새로 일으켜 세우는 것이 삶의 수순, 사랑의 운명이다. 설령 그조차 시간이 흐르면 또다시 무너질 것임을 뻔히 알더라도 마찬가지다. 김인숙은 “소설에서 굳이 밝히지는 않았지만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5년 전부터 길게는 넉 달, 짧게는 1~2주일 수차례 머물며 쓴 얘기”라면서 “낯선 공간, 낯선 문화의 삶을 써 보고 싶었다. 한국 사람을 아예 등장시키지 않으려고도 했으나 힘이 달려 포기했다.”고 털어놓았다. 김인숙은 1983년 스무 살 나이에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며 문단에 나왔다. 벌써 등단 30년을 바라본다.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이수문학상, 대산문학상, 동인문학상 등 굵직한 상을 모두 섭렵한 세월이다. 그는 “30년 가까이 써 왔지만 계속 변화하고 싶은 마음뿐”이라면서 “판타지 소설, 로맨스 소설 등 장르소설도 제대로 써 보고 싶다.”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은사 故 차범석 선생 ‘산불’로 5년 만에 연극무대 돌아온 조민기

    은사 故 차범석 선생 ‘산불’로 5년 만에 연극무대 돌아온 조민기

    배우 조민기(46)가 5년 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왔다. 지난 5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 오른 ‘산불’을 통해서다. ‘산불’은 그의 대학(청주대) 은사인 고(故) 차범석 선생의 대표작으로 사실주의 연극의 백미로 꼽힌다. 배경은 6·25 전쟁. 탈영한 빨치산 규복(조민기)을 점례(서은경)가 대밭에 숨겨주는데 사월(장영남)이 규복을 공유하려 들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스승의 작품에 배우로 도전하는 조민기를 서울 남산 근처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5년 만에 연극 무대에 배우로 서는 건데, 새롭다기보단 늘 무대에서 받는 비슷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극의 하이라이트인) 산불이 나는 장면에서 크게 호응해 주는 관객들을 보면 절로 힘이 나요.” 지난 6일은 차범석 선생 5주기였다. “선생님 수업을 들을 때는 잘 몰랐는데 배우가 되고 나서 연기를 하다 보니 정말 선생님이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언젠가 인터뷰에서도 말했지만 선생님이 첫 수업 때 해 주셨던, ‘연극은 약속이다’라는 말씀을 지금도 종종 떠올려요. 연극은 정말 관객과의 약속이고 동료 배우와의 약속입니다.” 조민기는 우리에게 탤런트, 영화배우로 더 익숙한 배우다. 하지만 그는 고등학교 1학년 때인 1982년 극단 신협 단원으로 연극과 첫 인연을 맺었다. 연극 무대야말로 그의 연기 인생의 고향인 셈이다. “어릴 때부터 연극배우가 되고 싶었어요. 무대가 그렇게 좋더라고요. 올 초 국립극단의 ‘오이디푸스’, 재작년에 ‘연산’ 등을 관객 입장에서 봤는데, ‘아, 나도 저 무대에 서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연극 무대에 대한 갈증이 컸죠.” ‘산불’은 또 다른 의미에서 의미가 큰 작품이다. 1500석 대극장 무대에 올려지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만한 규모의 연극은 2000년대 들어 처음이다. “대극장이라 배우에겐 부담이 커요. 연극만의 발성이나 호흡을 좋아하는 분들은 다소 마뜩잖아할 요소(예컨대 마이크)들이 개입되지만 배우 처지에서는 편안하게 소리가 전달돼 감정 연기에 더 몰입할 수 있어 긍정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대극장 연극, 나름 매력 있습니다.” 동그란 안경 사이로 보이는 얼굴은 수척했다. 얼마 전 종영한 MBC 드라마 ‘욕망의 불꽃’에 출연했을 때보다 살이 더 빠진 듯했다. 그는 전쟁 통에 산으로 내려온 ‘규복’의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 체중 감량에 나섰다고 했다. 그가 분석한 규복의 캐릭터는 어떨까. “성적인 매력이 넘치는 캐릭터는 아니에요. 그랬다면 규복은 조민기가 아니라 독고진(배우 차승원이 맡은 MBC 드라마 ‘최고의 사랑’ 주인공 이름)이 했겠죠. 하하. 남자라곤 찾아볼 수 없는 한 마을에 남자 기능을 상실한 김 노인이 살아요. 그런 곳에 갑자기 규복이 나타나는 겁니다. 김 노인과 대칭되지만, 생식기능만 남자이지 이도저도 못하는 우유부단한 인물이에요. 오히려 큰소리치는 김 노인이 더 남자답죠. 규복은 전쟁 당시의 무기력한 남자들을 대변하는 것 같아요.” 대중에게 얼굴이 꽤 알려진 유명 배우이지만 강부자 등 선후배와 함께하는 ‘산불’에서는 동료 배우들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처지라며 너스레를 떠는 조민기. “극 중 성비가 압도적으로 여자들이 높아요. 저는 다섯 번 등장하는데 그나마 한 번은 죽는 장면이에요. 무대에서 만나는 사람이 점례 한 명뿐인데, 점례가 아낙들과 이야기 나누는 장면이 많아요. 점례 역의 서은경씨에게 나랑도 좀 맞춰 보자고 조심스레 눈치 보며 말하죠. 워낙 점례가 상대하는 배우들이 많아 줄 서서 기다린다니까요. 하하.” 1남 1녀를 둔 아버지로서의 조민기는 어떨까. 시쳇말로 ‘딸 바보’ 그 자체였다. 최근 그가 방송에서 공개해 화제가 된 고등학생 딸 사진 이야기를 꺼냈다. “얼마나 예쁜지 몰라요. 꿈이 아나운서인데 고등학교 1학년 때 찍은 사진이 잡지 화보처럼 아주 예쁘게 나와 방송에서 공개했다니까요.” 그는 스스로 “화면에 보이는 것과 다르게 참 재밌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정의했다. “지루한 걸 정말 싫어해요. 같이 다니는 매니저나 팀원들과도 늘 즐겁게 일하려고 합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매니저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코미디언이 따로 없다.”며 거들었다. 한때 트위터를 즐겨 했으나 몇 번의 마음고생을 겪은 뒤 지금은 거의 하지 않는다는 조민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문화와 관련해 할 말이 매우 많은 듯했으나 그는 극도로 말을 아꼈다. 때로는 열정적으로, 때로는 장난스럽게 말을 쏟아 내는 조민기는 “분장 안 하고 무대에서 노인 역할을 자연스럽게 해낼 때까지 오랫동안 무대에 서는 게 꿈”이라고 했다. 26일까지. 1만~7만원. (02)2280-4115~6.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김승연 한화 회장 통가 총리와 경제협력 논의

    김승연 한화 회장 통가 총리와 경제협력 논의

    한화그룹은 지난 2일 김승연 회장이 서울 여의도 한화63빌딩에서 시알레 아통고 투이바카노 통가 총리와 오찬을 함께 하며 환담을 나눴다고 3일 밝혔다. 이 자리에서는 한·통가 양국 간 경제우호협력 및 유대관계 강화 등에 대한 방안이 논의됐다고 한화 측은 전했다. 또 최근 한화그룹이 신성장 동력으로 추진하고 있는 태양광 등 신재생 에너지사업 전반에 대해서도 의견이 오갔다고 한화 측은 덧붙였다. 남태평양에 위치한 통가의 외교장관을 겸하고 있는 투이바카노 총리는 지난달 31일 서울 장충동 2가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1회 한·태평양 도서국 외교장관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WHO&WHAT] 미켈란젤로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WHO&WHAT] 미켈란젤로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고교생 야가미 라이토는 어느 날 한 권의 노트를 집어든다. 라이토는 이 노트에 이름과 방법을 적으면 그 사람이 그대로의 운명을 맞게 되고 결국엔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바로 사신 류크가 인간계로 떨어뜨린 ‘데스노트’였던 것이다. 다양한 규칙을 숙지한 라이토는 노트를 활용해 범죄자가 없는 이상적인 세계를 만들겠다고 결심하고 실천에 옮기기 시작한다. 라이토가 활동하기 시작한 뒤 전 세계의 범죄율은 70% 이상 줄고, 인터넷과 사회 구성원들은 그를 ‘키라’라 부르며 신(神)으로 추앙하기 시작한다. 2003년 일본의 주간 소년점프에 연재되기 시작한 오바타 다케시와 오바 쓰구미의 만화 ‘데스노트’는 인간의 본성에 도전한 공전의 히트작이다. 영화와 드라마로도 제작된 이 작품의 독자들은 막강한 힘을 가진 데스노트를 한 번쯤 소지해 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마련이다. 악행을 한 사람이 응징을 당하도록 조종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1475~1564), 안토니오 살리에리(1750~1825), 토머스 앨바 에디슨(1847~1931), 로버트 스콧(1868~1912). 가상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의 이번 주 주인공들은 능력과 업적 면에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천재들이다. 타고난 재능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용기를 지니고 있었지만 이들은 ‘라이벌’로 인해 마음껏 행복을 누리지 못한 비운의 주인공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본인의 노력이 또 다른 사람에 의해 한순간에 무너지는 고통, 패배자라는 주변의 시선,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히는 갈등과 콤플렉스. 이들에게 가상의 데스노트를 쥐어주면 어떤 내용을 적을까. 위대한 천재들을 열등감에 사로잡히게 한 라이벌들을 살펴봤다. “흉내쟁이에 촌뜨기 라파엘로” - 미켈란젤로 “라파엘로(1483~1520)가 미술에서 이룬 모든 것은 바로 나한테서 얻은 것이다.”(미켈란젤로의 회고문 중에서) ●주요 내용 정말 괘씸하기 짝이 없다. 라파엘로가 바티칸 교황 집무실 벽에 그린 ‘아테네 학당’에 날 그려 넣었단다. 그것도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같이 더럽게 못생긴 인물로 말이다. 겉만 번드르르하게 아테네 학당이라는 이름을 붙였지, 가죽장화나 옷이나 전부 지금 시대 복장인데 눈 가리고 아웅도 유분수지. 얼굴까지 똑같이 그려 놨으니 아예 대놓고 욕 먹이는 짓이 아닌가. 내가 얼마나 자기를 싫어하는 줄 뻔히 알고 있을 텐데 옆에서 내가 시스티나 천장화에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이런 일을 벌이다니. 무엇보다 기분 나쁜 건 벽화의 주인공인 플라톤으로 내 필생의 라이벌인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그려 놓았다는 거다. 우르비노(이탈리아의 시골) 출신의 촌뜨기가 처음 볼 때부터 기본이 안 됐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예술가라면 무릇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야 하는 것 아닌가. 라파엘로 저놈은 어릴 때부터 나랑 다빈치 작품 중에서 좋은 것들을 골라 베끼는 데만 혈안이 돼 있더니 이젠 그걸 조금씩 바꿔서 새로운 인물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건 그냥 모방이자 습작 화가지. 후세 사람들이 저놈 그림이랑 내 그림을 같은 높이에 걸어 놓으면 어떡하나 심히 걱정된다. 라파엘로는 분명히 자기 고향 선배이자 후견인인 브라만테(1444~1514·성베드로 성당 설계자)와 짜고 날 파멸시키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시스티나 예배당 프로젝트만 해도 그렇다. 나보고는 20m나 되는 높이의 천장에 그림을 그려 넣으라고 하고, 라파엘로한테는 편하게 집무실 벽화를 맡기다니. 난 조각가이지 화가가 아닌데도 말이다. ●해설 괴팍하고 추남이었던 미켈란젤로는 잘생기고 원만한 대인관계를 가진 라파엘로를 평생의 원수로 생각했다. 특히 라파엘로와 브라만테가 서로 짜고 자신을 고난에 빠뜨린다고 믿었다. 자기보다 8세 어렸던 라파엘로가 37세에 요절한 후에도 각종 기록에서 증오심을 나타냈다. “가증스런 교류전기 찾은 테슬라” - 에디슨 “니콜라 테슬라(1856~1943)가 만든 가증스러운 교류(交流)의 위험을 알려 주려면 사람들에게 직접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1885년 에디슨이 직원들에게) ●주요 내용 큰일났다. 결국엔 교류가 이기고 마는 것인가. 세르비아 출신 과학자 한 명을 단지 똑똑하다는 소문만 듣고 고용했다가 내 평생의 성과가 날아가게 생겼구나. 난 전기를 싼값에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고안해 주겠다는 테슬라의 말에 잠깐 마음이 흔들렸을 뿐이다. 테슬라가 내 발명인 직류(直流)와는 전혀 다른 교류를 발견한 걸 인정할 수 없어서 돈을 주지 않은 것인데, 그놈이 웨스팅하우스와 손을 잡았다. 난 한 방향으로 흐르는 직류가 무엇보다 안전하다고 믿었다. 그렇지 않은가. 예측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으니. JP 모건이 자신의 대저택에 내 설비를 깔았을 때만 해도 영광은 내 것이라 믿었는데 일개 직원 나부랭이가 이 모든 걸 망쳐 버렸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지난 수십 년간 벌어진 세 차례의 싸움에서 난 모두 졌다. 솔직히 잔머리를 좀 굴렸다는 점은 인정해야겠지. 교류를 이용해 개와 고양이를 죽이는 공개실험도 해 봤고, 사형을 집행하는 전기의자도 만들었다. 제길. 도끼 살인마 케믈러가 즉사하지 않고 구워지는 바람에 언론의 뭇매를 맞았고, 내 업적의 집대성인 제너럴일렉트릭(GE)이 만국박람회장의 조명설비 입찰에서 테슬라와 웨스팅하우스에 패하기도 했지. 마지막 승부처로 삼았던 나이아가라폭포 조명 설비에서도 웨스팅하우스가 GE를 눌렀고, 모든 이들은 교류를 전기로 인식하게 되겠지. 남은 건 하나뿐이다. 머리는 좋지만 사회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테슬라가 더 이상 인구에 회자되지 못하도록 하는 것. 뭐 큰 노력이 필요할 것 같지는 않다. 날씨를 변화시키는 장비, 순간이동 장치 등이나 만들겠다고 연구실에 틀어박혀 있으니. 1700만 달러나 되는 교류 로열티를 포기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난 이미 테슬라를 사업적인 부분에서는 경쟁상대로 여기지 않았다. 그는 곧 잊혀지고 난 영원한 발명왕으로 남을테니까. ●해설 1915년 테슬라와 에디슨은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로 결정됐지만, 테슬라는 이를 거부했고 시상은 이뤄지지 않았다. 테슬라는 무선통신, 유도전동기, 교류발전기, 변압기, 전동기 등을 개발했고 미국 전기전자학회는 테슬라에 대해 “그의 작업 결과를 없앤다면 자동차들이 멈출 것이며, 도시들이 깜깜해지고 공장들이 쓸모가 없어질 것이다.”라고 칭송했다. “소문만 무성한 탕아 모차르트” - 살리에리 “당신도 알고 있죠. 모차르트(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를 내가 독살했다는 얘기.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임종 직전의 살리에리가 피아니스트인 이그나츠 모셰레스에게) ●주요 내용 내가 풋내기 모차르트를 죽였다고? 모차르트를 죽여서 내가 그 영광을 가로채기라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미 나는 황제의 음악가이자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위치에 있는데, 자기 능력을 주체조차 못하는 애송이를 죽여 무슨 이득이 있다는 건가. 이게 다 모차르트가 천재라고 떠드는 소문이 과장돼 벌어진 일이란 말이다. 솔직히 모차르트가 훌륭한 음악가인 건 맞다. 나처럼 정규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하나 밟아 가는 성장 과정을 순식간에 뛰어넘었으니까. 5세에 작곡을 하고 10세도 안 돼 연주회를 다녔다는 얘기 때문에 내가 직접 연주회장에 찾아간 적도 있었다. 하지만 신은 그에게 능력에 걸맞은 인품을 주지는 않았다. 작곡을 아무리 잘하면 뭘 하나. 궁정생활을 영위할 최소한의 자제심도 없는데. 그 낭비벽과 문란한 사생활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의 아름다운 음악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물론 음악가로서 나 역시 그의 재능이 부럽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 역시 하이든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오라토리오를 지휘했고, ‘악성’으로 불리는 베토벤이 나를 위해 세 곡의 소나타를 바칠 정도로 인정받은 사람이란 말이다. 천재와 노력파 같은 과장된 소문으로, 내 영광스러운 일생을 모욕해서는 안 된다. ●해설 영화 ‘아마데우스’는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독살했다는 러시아 시인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희극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당시 유럽 전역에 이 같은 소문이 퍼졌지만, 역사적으로 독살설은 근거 없는 소문이었고 모차르트는 그 스스로 신장병과 요독증을 앓고 있었다. 소문에 상처받은 살리에리는 죽는 날까지 이를 괴로워했다. “날 속이고 남극점 먼저 간 아문센” - 스콧 “영국인으로 최선을 다했으나 불운은 이기지 못했다.” (스콧이 자국민에게 보낸 편지) ●주요 내용 로알 아문센(1872~1928·노르웨이), 나쁜 거짓말쟁이 같으니라고. 북극을 탐험한다고 나를 속이더니 결국 상대를 안심시켜 놓고 남극점에 먼저 도착하기 위해 헛소문을 낸 것이었나. 북극 탐험과 관련된 자료를 넘겨주겠다는 내 호의를 거절하고, 전화도 안 받을 때 이미 알아챘어야 하는 건데. 어쩐지 로버트 피어리가 이미 북극점을 정복한 상태인데 왜 또 거길 가겠다고 한 건지 이상하긴 했다. 남극점을 정복하겠다는 내 기자회견과 신문기사를 보며 아문센은 얼마나 코웃음을 쳤을까. 이런 곳에서라도 대영제국을 이겨보겠다는 그 얄팍한 수를 읽지 못하고 신사답게 정정당당히 승부하려던 내가 멍청했지.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불과 35일이다. 난 아무도 정복하지 못한 그곳에 영국 국기를 꽂는 것을 평생 꿈꿔 왔는데, 그곳에는 노르웨이 국기가 나부끼고 있었다. 인류가 남극점을 정복하는 데 수천 년이 걸렸는데 그 최초의 영광은 고작 한 달 남짓에 영원히 북유럽의 바이킹에게 넘어가는구나. 돌이켜보면 모든 것이 내 실수였다. 말을 끌고 남극에 오다니. 사람의 동반자인 개한테 무거운 짐을 지우지 않겠다는 내 발상이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동료들이 하나둘 사라지는 와중에 나 역시 마지막이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인류 최초’라는 이름이 결코 신사다운 행동으로만 얻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죽기 전에야 깨달았다는 것이 아쉽다. ●해설 군인이었던 스콧은 1904년 남극에서 660㎞ 지점까지 접근한 기록을 세우며 국가적 영웅이 됐다. 그러나 7년 뒤 첫 남극 도달의 영예를 아문센에게 빼앗기고 죽음을 맞았다. 현재 남극점에는 연인원 1000명 이상이 상주하는 ‘아문센·스콧 기지’가 자리잡고 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참고서적] ▲서양미술의 걸작(양정무/네이버 오늘의 미술) ▲미술시간에 가르쳐주지 않는 예술가들의 사생활(엘리자베스 런데이·최재경/에버리치홀딩스) ▲빛의 제국(질 존스·이충환/양문) ▲모차르트 컨스피러시(스코트 마리아니·이정임/노블마인) ▲발트슈타인 소나타(이재규/21세기북스) ▲정재승의 도전 무한지식(정재승/달) ▲아문센과 스콧(피에르 마르크·배정희/비룡소) ▲남극의 대결 아문센과 스콧(라이너 K 랑너·배진아/생각의 나무)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Watson)을 만나다” [WHO&WHAT] 무덤에서 불러낸 독재자 4인의 가상만찬 ‘재스민 혁명’을 논하다 [WHO&WHAT] 천재소년 송유근, ‘우주비행 성공 50주년’ 맞아 유리 가가린을 만나다 [WHO&WHAT] ‘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 정신과 전문의 김상준 원장과 상담하다 [WHO&WHAT] 지구수비대 지원한 인간형 로봇 ‘마루’ “아톰·태권V처럼 지구 지켜서…” [WHO&WHAT] ‘최악’ 통념 B형 男기자, 혈액형의 아버지 ‘란트슈타이너’에 따지다 [WHO&WHAT] ‘전 세계 여성의 로망’ 버킨백을 만나다 [WHO&WHAT] 선택 따라 전혀 다른 결과…”이렇게 검색하면 진리가 밝혀질까?” [WHO&WHAT] “남느냐, 떠나느냐” 희곡으로 본 어느 서재 도서들의 열띤 논쟁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 그리고 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 그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WHO&WHAT] ‘美우주왕복선은 초대형 폭탄이나 마찬가지’ 물리학자 파인먼의 폭로 [WHO&WHAT] 외규장각 도서 귀환으로 본 약탈문화재의 ‘수구초심(首丘初心)’ [WHO&WHAT] “재능만 주고 사랑은 주지 않던 나쁜 부모들” 유명 인사들의 회상기 [WHO&WHAT] 인류역사를 바꾼 ‘억세게 운 좋은 사내들’ 서바이벌 현장…과연 승자는? [WHO&WHAT] 소설 속 영국인 주인공 폴 웨스트 “파리서 1년 살아보니” [WHO&WHAT] 인류 첫 셀레브러티 ‘클레오파트라’… 베일 속의 그녀의 얘기 들어보니 [WHO&WHAT] 유전학의 창시자 수도사 멘델의 고백… “저, 유전학의 아버지 아니에요”
  • 국악계 새 얼굴이 선사하는 젊은 가락

    국악계 새 얼굴이 선사하는 젊은 가락

    국악계의 젊은 피를 만나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젊은 연주자들에게 협연 기회를 주는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젊은 예인을 위한 협주곡의 밤’이 새달 2~3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열린다. 지난 4월 열린 오디션에는 모두 87명이 지원, 그 가운데 10개 팀이 뽑혔다. ‘18~35세 국악 연주자’라는 것 외엔 오디션을 보는 데 아무런 제한 조건을 두지 않은 덕분에 응시자가 많았다. 첫날에는 차다슬이 해금 협주곡 ‘활의 노래’를 선보인다. 중앙대 국악과 재학생인 임정호가 대피리로 연주하는 ‘대화’, 타악기 연주에 일가견이 있는 윤은화가 ‘바람의 노래’, 거문고 연주가 박민지가 ‘강상유월’, 추계예술대 재학생인 윤소희가 아쟁협주곡 ‘김일구류 아쟁산조’를 각각 선보인다. 둘째 날에는 똑같은 해금 연주곡 ‘활의 노래’가 박유진의 연주로 공연된다. 차다슬의 ‘활의 노래’가 협주곡 형식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색깔을 선보이는 것이라면 박유진은 해금곡 그 자체로 곡을 해석해 연주하기 때문에 비교해볼 만하다. 25현 가야금으로 ‘궁타령의 멋’을 연주하는 장여훈의 무대, 김한솔·김희영 두 연주자가 짝을 맞춘 거문고 연주곡 ‘궁남지-백제의 사랑’, 서울시청소년국악관현악단 수석인 오지현의 소금 협주곡 ‘파미르고원의 수상곡’ 등이 이어진다. 마지막 무대에서는 ‘수궁가’ 가운데 ‘토끼 이야기’를 창과 관현악으로 들려준다. 1만 5000~2만원. (02)2280-4115~6.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나는 왜 SNS와 열애하고 이별했나

    나는 왜 SNS와 열애하고 이별했나

    김효정(35)씨는 영화사 ‘꿈꾸는 오아시스’의 대표다. 영화 ‘행복한 장의사’의 스태프로 이쪽에 발을 들인 뒤 ‘무사’, ‘결혼은 미친 짓이다’, ‘역도산’, ‘싱글즈’ 등 다양한 작품에서 프로듀서로 일했다. 언뜻 가냘파 보이지만 실은 사하라, 고비, 아타카마 등 세계 5대 사막을 누비며 총 1287㎞를 횡단한 최초의 아시아 여성이다. 영화하는 철녀라는 독특한 배경을 가진 그녀는 한때 SNS예찬론자였다. 하지만 현재 김 대표는 ‘트위터’와 ‘미투데이’를 끊은 상태다. 그녀의 스마트폰에 SNS를 위한 프로그램은 하나도 깔려 있지 않다. 국내 1000만 이용자를 넘어섰다는 ‘카카오톡’조차도. SNS를 처음 소개받아 열애하고 결별하기까지의 스토리를 들어 봤다. 저는 새로운 기술에 빨리 적응하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과거 ‘싸이월드’도 친구들이 모두 다 하니까 마지못해 시작했었죠. 그래도 시작하고 난 이후에는 열심히 했어요. 여행을 즐겨서 사진도 많았고, 소식을 주고받는 것도 좋아하거든요. 지난해 초 트위터를 만났습니다. 제 얘기를 담은 책 ‘나는 오늘도 사막을 꿈꾼다’를 출간하던 무렵으로 기억합니다. 지인들이 블로그나 카페, 싸이월드에서 트위터라는 새로운 세계로 옮겨가고 있었고, 저 역시 그 대열에 본격적으로 동참하기 시작했습니다. 트위터는 놀라웠습니다. 배울 필요조차 없이 간단했고, 사람들을 팔로잉하거나 팔로어를 받아들이는 것도 순식간에 이루어졌습니다. 팔로어의 일상을 지켜보는 일, 내가 추천한 영화와 식당에 돌아오는 반응도 흥미로웠습니다. 얼마 후엔 미투데이를 만났습니다. 전파 속도가 빠르고 공식적인 의견을 올리는 데 적합한 트위터와 비교해 미투데이는 제 취향에 맞는 감성적인 글들에 어울린다는 것도 파악하게 되었죠. ‘푹 빠져 있었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습니다. 2세대(G) 휴대전화의 무선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글을 올렸고,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트위터를 사용하는 방법도 배웠으니까요. 영화계 친구들에게도 적극적으로 SNS 사용을 권했습니다. 저와 SNS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말부터였습니다. 12월 아프리카로 ‘여성할례’ 관련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러 갔습니다. 방콕을 거쳐 나이로비에 도착하는 고단한 여정에서조차 저는 쉬지 않고 SNS에 글을 올리려 애썼습니다. 하지만 3개월간 인터넷 사정이 열악한 아프리카에서 현지 부족들과 생활하는 동안 저는 SNS와 차츰 멀어져 갔습니다. 가끔 현지 인터넷카페에서 접속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올 3월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한참을 쉰 덕에 저는 그렇게 푹 빠져 있던 SNS를 밖에서 바라보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당시엔 일본 지진과 원전이 큰 화제를 모았는데 시간이 더 지나자 서태지·이지아 소송사건이 SNS를 점령하더군요. 섣불리 뛰어들기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SNS 안에 있을 때는 어떤 사건이 터지면 거기에 대해 뭔가 주체적으로 얘기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되지요. 또 뭔가를 알게 되면 빨리 전파하는 것이 유능한 SNS 사용자의 의무라 여겼습니다. 그러나 밖에서 지켜보는 동안 그게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얼마 전 송지선 아나운서 자살 사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시시각각 올라오는 글들 대부분이 송 아나운서에게 날카로운 비수가 될 내용들이었습니다. 말보다 강한 ‘글의 힘’이 무차별적으로 퍼져 가는 모습을 SNS 사용자들이 밖에서 잠깐만 지켜본다면 제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SNS와 예전의 관계로 다시 돌아갈 생각이 없습니다. 아. 제가 영원히 SNS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지금 같은 모습이 아니었으면 합니다. 전 아직도 SNS를 통해 사람들과 무언가를 주고받던 ‘즐거움’을 기억합니다. 다시 SNS를 시작할 때는 이 즐거움만 남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석유협회장 박종웅 전 의원

    대한석유협회는 25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제31회 정기총회를 열고 제19대 회장으로 박종웅(58) 전 한나라당 의원을 선임했다고 밝혔다. 오강현 전임 회장은 협회 고문으로 위촉됐다.
  • 꽃 키우기 정말 쉬워졌네! 봉투·캔에 물만 주면 ‘활짝’

    꽃 키우기 정말 쉬워졌네! 봉투·캔에 물만 주면 ‘활짝’

    “봉투에 물만 넣으면 꽃이 피고 콩이 자라면서 내 이름이 새겨져 나온대요.” 지난 15일 경기 고양시 호수공원에서 막을 내린 한국고양꽃전시회에서 만난 김모(46·여)씨는 귀찮게만 여겼던 꽃 키우기가 아주 쉬워졌다고 감탄했다. 평소 꽃을 키울 때 물을 주다가 넘쳐 바닥에 흐르는 경우가 많아 불편했다는 그가 가장 신기해한 것은 ‘플라워백’이다. 종이 봉투를 열고 물을 주면 식물들이 자란다. 썩지 않는 배양토를 넣어 물을 다소 많이 주어도 흘러내릴 염려가 없다. ‘플라워캔’은 캔 안에 미모사, 허브, 방울토마토, 해바라기 등의 씨가 각각 담겨 있다. 원할 때 캔을 따고 물을 주면 새싹과 함께 콩이 자라면서 자신이 주문할 때 원했던 글씨가 드러나고, 이후에는 해당 식물이 크게 된다. 역시 썩지 않는 배양토를 사용한다. 올해로 16회를 맞은 고양꽃전시회의 특징적인 부분은 실용적인 관점에서 꽃을 접근한 것. 단지 꽃의 아름다움을 강조하기보다 일반인들이 좀 더 쉽게 꽃이나 분재를 구매하고, 편하게 기를 수 있도록 하려는 노력이 돋보였다. ‘에코분’은 화분의 구멍에 물을 주면 관을 통해 물이 화분 밑으로 내려가게 된다. 이후 흙에 달아 놓은 심지가 토양으로 물을 흡수하는 구조를 적용했다. 화분 밑에 물 배출 구멍이 없으니 물이 흘러나갈 이유가 없다. 더 나아가 물을 주는 시기까지 알려주는 수분 측정기도 등장했다. 화분에 꽂아놓으면 수분량을 체크하고 물을 주는 시기를 점멸 램프를 통해 알려준다. 김씨는 “꽃을 편리하게 키우는 방법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면서 “꽃을 좋아하면 서도 불편해서 꽃 키우기를 단념했었는데 오늘은 주위에 나누어 줄 것까지 플라워백 몇 개를 구입했다.”고 말했다. 유통 부문에서 눈에 띈 것은 ‘꽃 자판기’다.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부러 꽃집에 가야만 꽃을 구매할 수 있었지만 마트나 길거리 등에서도 쉽게 살 수 있도록 자판기를 설치했다. 꽃이 기호품이어서 충동구매를 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 착안했다. 꽃봉오리가 생겼거나 활짝 핀 꽃이 담긴 화분은 개당 1만원 정도로 플라스틱 용기에 손잡이까지 달려 있어 자판기에서 구매한 후 그대로 들고 갈 수 있도록 했다. 식물재배용 발광다이오드(LED)를 이용해 채소를 수경재배하는 가정용 식물공장은 이제 10만원대면 구입할 수 있게 됐다. 청경채, 고추, 겨자채, 방울토마토, 케일, 상추, 허브 등을 재배할 수 있다. 꽃으로 만든 아로마 역시 그 범위가 넓어졌다. 소나무 향은 집중력과 냄새제거에, 유칼립투스 향은 알레르기 비염과 천식에, 만다린 향은 불면증과 소화불량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외에 민트, 라벤더, 로즈메리, 바이올렛, 티트리, 샌들우드 등 ‘향기 치료’가 가능한 식물은 계속 늘고 있다. 화훼업계 관계자는 “최근 일본 원전 사고로 방사성물질에 대한 불안감이 커진 가운데 체르노빌 원전사고 때 해바라기로 오염을 정화했던 사례가 알려지면서 꽃의 효능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꽃은 예술로 발전하고 있다. 꽃을 말려 붙여 그림으로 만드는 ‘압화’는 단순 그림에서 병풍, 가구 그림, 액세서리 등으로 변신하고 있다. 고양꽃전시회장 내에서 함께 열린 고양세계압화공예대전에는 전 세계에서 400여점이 출품됐고 종합대상은 김영란 작가의 병풍인 ‘한국호랑이 이야기’가 선정됐다. 2008년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씨와 함께 소유스 호를 타고 우주를 다녀온 멸종 위기의 토종란 ‘진도석곡’은 유전자 이상이 생기면서 돌연변이 현상을 일으켜 희귀란이 되었다. ‘소연란’이라고 이름을 붙인 이 난은 잎 가운데가 황금색을 띠는데 많은 관람객의 이목을 끌었다. 정부 관계자는 “꽃의 미래는 아름다움도 중요하지만 결국 소비자들이 꽃을 일상에서 쉽게 접하고 편리하게 키울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정부도 여러 방면에서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한 여자의 OOO 하소연이 부른 비극

    한 여자의 OOO 하소연이 부른 비극

    5월 7일-“이러다 송지선 자살하는 거 아냐?” 5월 23일-“헉, 진짜 자살했네.” 사실상 자살이 예고됐던 송지선 아나운서가 결국 투신 자살하자 사회가 충격에 빠졌다. 전문가들은 인터넷, 특히 트위터, 미니홈피 등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가 송씨를 자살로 몰아간 주범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개인의 사생활이 트위터와 미니홈피에 낱낱이 공개된 점과 이를 퍼나른 누리꾼들, 또 이를 생중계한 언론 모두가 송씨를 자살로 몰아간 조력자들이라는 것이다. 이제 누리꾼들은 송 아나운서와의 열애설이 났던 임태훈 선수에게 화살을 돌리고 있다. 누리꾼의 ‘데스노트’에 오르면 무조건 자살한다는 말까지 떠돈다. 이처럼 SNS의 폐해가 심각한 수준임에도 재발 방지를 위한 사회적 장치는 전무한 실정이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SNS가 사람을 죽인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SNS를 통해 개인의 사생활이 확대 재생산되고, 또 옛 남자 친구까지 연루되면서 서로에 대한 비방이 이어졌고 이로 인한 상처들이 인터넷을 통해 끊임없이 회자된 것이 송씨의 자살 충동을 가속화한 촉매제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송씨가 소속된 언론사에 사원의 정신건강에 대해 관리·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날 MBC 스포츠플러스는 최근 물의를 일으킨 송씨를 퇴출시키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져 비판이 일고 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온라인상의 악성 댓글로 받는 충격은 오프라인 상황보다 훨씬 심하고 충격적이라고 지적했다. 인터넷에서는 익명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상대방과 얼굴을 맞댔을 때보다 훨씬 더 과격해지고 잔인한 폭력성을 띄게 된다는 것이다. 곽 교수는 “무심코 길을 가다가도 저 사람이 날 비난할 것이라는 심리 때문에 송씨의 대인공포증은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 사회 분위기가 들춰내기에만 열중돼 있는 것 같아 문제가 심각하다.”면서 “성숙한 누리꾼 의식을 갖자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SNS의 악성 댓글은 마치 롤러코스터와 같다.”고 지적했다. 개인 사생활이 한번 유포되기 시작하면 인터넷을 통해 ‘폭주기관차’처럼 아무런 제약 없이 급속도로 전파되기 때문이다. 신 교수는 “누리꾼들의 지나친 호기심이 사회적 간접 살인을 저지른 것”이라면서 “인터넷상에서 공론화할 문제인지, 보호해야 할 사적인 영역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송씨의 자살이 예고된 것이었음에도 막지 못한 것과 관련, 사회나 주변인들이 선제적 조치를 하지 못한 데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하상훈 생명의전화 원장은 “가족, 친구, 동료 등 주변인들이나 누리꾼들은 송씨가 위험하다는 것을 인지했다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도록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 보호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김동현·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독거노인 사랑잇기] 노인 자살 위기서 구하는 ‘전화 한 통의 힘’

    “자식들 키워 놓으면 뭐해. 고생해서 키워도 결혼하면 그만인데. 혼자 사는 아버지 한번 돌아보기만 해도 그런 생각은 하지 않을 거야.” 경남의 한 농촌에서 생활하는 70대 노인 A씨는 최근 ‘조용한 죽음’을 생각해봤다며 이같이 털어놨다. 당뇨병과 뇌졸중으로 거동이 불편한 데다 자식들이 돌보지 않아 외로움을 견디기 어려워서였다. 그는 “병든 몸으로 밥도 하고, 옷도 빨아 입으며 근근이 살고 있지만 사는 게 사는 것 같지가 않다.”고 호소했다. 의학계에 따르면 자살을 시도하는 노인의 상당수는 어떤 방식으로든 사전에 ‘자살 징후’를 드러내 보인다. 여전히 암울한 상황임에도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말한다든가 “나 없으면 재산을 이렇게 처리해 달라.”고 부탁하는 사례 등이 한 예다. 따라서 노인의 자살을 미리 막으려면 주변에서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것이 중요하다. 남궁기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정신과 교수는 “‘범인은 반드시 증거를 남긴다’는 말처럼 ‘자살하는 사람은 반드시 자살 징후를 남긴다’는 말도 정신과에서는 불변의 진리로 통한다.”면서 “그만큼 독거노인은 더 세밀하게 관찰하고 보살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번 자살을 시도해 본 사람은 다시 자살을 시도할 확률이 높다. 따라서 자살 시도를 막지 못하면 다시 자살을 시도할 위험이 높아지기 때문에 처음부터 자살을 시도하지 못하도록 따뜻하게 감싸 안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자살을 시도하다 처음 실패하면 다시 시도할 확률이 50%, 두 번째 실패하면 재시도 확률이 70%, 세 번째는 90%로 높아진다. 문제는 자살을 시도한 노인을 따뜻하게 감싸주기는커녕 오히려 차가운 눈길로 외면하는 사회 분위기다. 자살을 시도하면 병원에 입원해야 하는데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 바로 퇴원하는 사례도 많다. 남궁 교수는 “자살을 시도한 뒤에도 병원에 입원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고, 대부분 곧바로 퇴원한다.”면서 “자살을 막으려고 하지 않고 사안을 덮어두려 하거나 문제를 회피하려는 태도는 비극을 만드는 원인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살을 이미 시도했거나 자살을 시도하기 직전에 제3자가 개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노인이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면 타인이 개입할 여지가 크게 줄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살 위험을 낮추려는 예방적 노력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자살 충동을 느끼거나 심한 우울감에 빠져 있을 때 ‘전화 한 통’은 큰 힘을 발휘한다. 통화 내용도 중요하지만 전문가들은 단순한 대화만 하더라도 자살 충동이 급격히 줄어든다고 조언한다. 남궁 교수는 “알코올 중독자가 매시간 술을 마시고 싶어 하지는 않는 것처럼 자살도 순간적인 충동을 억제하면 일정 기간 다시 시도하지 않는 특징을 보인다.”면서 “노인의 환경을 개선하는 적극적인 자살 예방법도 좋지만 여건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한 번의 전화 통화로도 노인을 자살 위기에서 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독거노인 사랑잇기] (1부) 벼랑 끝에 선 노인들 (11) 노인이 자살하는 사회

    [독거노인 사랑잇기] (1부) 벼랑 끝에 선 노인들 (11) 노인이 자살하는 사회

    사람마다 자살을 선택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외로움과 질병, 빈곤이 핵심 원인으로 꼽힌다. 특히 노인은 이런 문제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사례가 무수히 많다. 세계 자살률 1위라는 부끄러운 자화상 뒤에는 이런 노인 자살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노인 자살에 대한 문제의식은 여전히 수면 아래 잠복해 있다. 노인의 자살 문제를 공론화하는 논의 자체를 금기시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이다. 23일 통계청의 2009년 사망 통계 자료에 따르면 80세 이상 노인 10만명당 자살자 수는 127.7명으로 1999년(47.3명)과 비교해 3배 가까이 증가했다. 같은 기간 60대는 28.9명에서 51.8명으로, 70대는 38.8명에서 79명으로 급증했다. 10대(5.1→6.5명), 20대(13.1→25.4명), 30대(17.3→31.4명), 40대(21.3→32.8명), 50대(23.2→ 41.1명)보다 훨씬 큰 폭의 증가세를 보였다. 특히 10대 자살률과 80대 자살률을 비교하면 20배의 차이를 보인다. 전체 자살자 가운데 65세 이상 노인 자살자 비중은 해마다 25~30%를 차지하고 그 수가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성별로는 남성이 여성보다 압도적으로 자살자 수가 많았다. 실제로 80세 이상 남성 노인 10만명당 자살자 수는 무려 213.8명에 달했다. 80세 이상 여성 자살자 수는 92.7명으로 남성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노인 자살자가 많은 것은 노인의 자살 성공률이 높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질병관리본부가 2006~2007년 6개 병원 응급실을 방문한 자살 시도자를 분석한 결과 65세 이상 노인의 자살 성공률은 31.8%로 다른 연령층의 자살 성공률보다 약 4배 높았다. 청년층은 주로 술을 마시고 우울감을 이기지 못해 자살하는 사례가 많지만 비교적 자살 충동성이 낮고 계획적인 자살을 하는 사례가 많다. 질병관리본부 조사에서 65세 이상 노인이 음주 상태에서 자살하는 비율은 24.7%로 20대(48.1%), 30대(53.9%), 40대(52.6%), 50대(47.4%)에 비해 크게 낮았다. 따라서 자살 시도 전에 징후를 확인하면 비극적인 상황을 막을 여지가 많다. 최근 황혼 이혼이 증가하고 독거노인이 급증하면서 외로움을 이기지 못해 자살하는 노인이 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 조사에서도 자살 시도자들은 자살 시도의 주요 이유로 질병(35%)과 우울증(19.6%), 자녀와의 갈등(9.8%) 등을 꼽았다. 노인은 주로 자녀와 친척의 지원에 의존하기 때문에 홀로 사는 노인은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할 가능성도 높다. 외환위기 직후 노인 자살이 늘어난 것도 경제적인 문제와 연관돼 있다. 현재 노후 대비가 없는 65세 이상 노인이 60% 수준이어서 노인 자살 문제를 더욱 심화시킬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도시보다 농촌 노인들의 자살 위험이 높은 것으로 분석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전북 익산 노인종합복지관이 2009년 독거노인 114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뒤 42%(482명)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고 응답하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농촌 노인의 자살 위험은 통계 자료에서도 확인된다. 자살예방협회는 행정안전부의 인구 통계를 기초로 2008년 고령화 비율이 가장 높은 농촌 지역과 가장 낮은 도시 지역의 자살률을 비교했다. 고령화 비율이 30.4%로 전국에서 가장 높은 전남 고흥군의 경우 자살률은 10만명당 20.4명, 고령화 비율이 30.2%인 경북 군위군은 자살률이 29.5명, 같은 고령화 비율을 보인 경북 의성군은 39.3명이었다. 반면 고령화 비율이 3.6%로 전국에서 가장 낮은 울산 동구는 자살자 수가 13.6명에 불과했다. 고령화 비율이 4%인 울산 북구는 17.9명으로 역시 20명을 넘지 않는 수준이었다. 결국 농촌 노인에 대한 접촉을 늘리고 의료 서비스를 강화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상담방법을 개발하고 효과적인 자살 예방을 위해 의료기관, 경찰 등이 정보를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또 노인복지관 등 노인관련 기관에서 자살 위험이 높은 노인에게 직접 개입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윤기 서울 북부노인병원 정신과 과장은 “실질적인 자살 예방 홍보와 교육은 물론 노인 전문가의 개입이 가능하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잔혹한 현실 10대들을 집어삼키다

    잔혹한 현실 10대들을 집어삼키다

    아주 많이, 무척이나 뚱뚱한 여고생이 왕따를 당한다. 별명은 ‘슈퍼 울트라 개량 돼지’(유미라는 이름이 있지만 친구들은 결코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학년 짱 일진들에게 정기적으로 ‘삥’을 뜯기는 등 교내 폭력에 시달린다. 혹시나 왕따를 당하지 않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 살을 빼보기로 결심하고 거식증 카페에 가입한다. 그리고 눈물겨운 폭식과 거식을 반복한다. 효과는 없다. 주변의 냉소와 조롱은 여전하다. 이쯤 되면 가출은 필수다. 끊임없이 자신을 공격하는 친구, 가족들 틈바구니에서 불안과 절망, 소외, 일탈 충동을 겪는 왕따 비만 여고생의 희망은 유일하다. 자신의 생일과 방송 데뷔날이 똑같은, ‘외계인이 틀림없는’ 서태지를 따라 절망도, 고통도, 상처도 없는 낙원과 같은 달의 뒤편으로 떠나는 것이다. 여기까지 보면 그저 낯설지 않은 10대 성장소설류의 화법이다. 소설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이 지점에서 새로 시작한다. 10대가 등장한다고 다 청소년 성장소설은 아니다. 앞장서서 가학하면서도 유일한 친구 지은이는 미혼모가 되고, 유미는 지은의 애인이었던 녀석에게 강간을 당한다. 그리고 미혼모 시설에 들어가 있는 지은을 찾아간다. 얼핏 또 다른 낙원처럼 보였던 그곳 역시 공격과 갈등이 물밑에 잠복해 있을 뿐 사실상 신생아 매매를 일삼고, 틀에 박힌 규율만을 강제하는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다. 200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황시운(35)의 첫 장편이자 최근 제4회 창비장편소설상을 받은 ‘컴백홈’(창비 펴냄)이다. 1990년대 문화 대통령이라 일컬어졌던 서태지는 소설 얼개를 풀어가는 주요 매개로 등장한다. 이와 더불어 식욕, 물욕, 성욕 등 욕망의 첨병과도 같은 거식증이 소설 속에서 마찬가지 역할을 맡는다. 황시운은 섣불리 절망의 주체와 상황들을 전형화하지도 않으며, 결국 허망해질 희망을 내세워 적당히 봉합하려 하지도 않는다. 대신 유미의 불안과 절망의 내면을 섬세한 결까지 놓치지 않고 풀어낸다. 덧난 상처를 손가락으로 마구 헤집어대듯 세상의 감춰진 속살에 돋보기도 부족해 아예 현미경까지 들이댄다. 물욕주의에 무방비로 노출된 10대들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 존재들인지, 절망과 일탈의 경계에서 힘겹게 비틀거리고 있는지를 고스란히 보여 준다. 시선을 달리하면 이는 10대들의 모습으로만 국한되지 않는다. 비만 소녀는 왕따와 폭력에 거식증과 가출로 대응한다. 10대들이 처한 환경과 시행착오는 모양을 조금 달리할 뿐, 기성 세대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반복되고 있다. 다이어트를 멈추는 순간 요요현상으로 더욱 살이 찌듯 불안정한 채 급속히 변화하는 세상에서 변화하는 환경을 따라가지 않는 것 자체가 퇴화를 의미한다. 황시운의 첫 장편소설이 청소년 소설이 아닌 이유다. 다만 아쉬움은 남는다. 소설은 독특한 소재, 탱탱거리면서 맛깔난 언어를 앞세워 10대의 눈으로 ‘지금, 여기’의 진실을 찾고자 하는 생동감 넘치는 이야기를 품고 있음에도 소설에 흠뻑 빠져들려 할 때마다 ‘우연성’(遇然性)이라는 녀석이 스윽 모습을 드러낸다. 비만 여고생과 한때 함께 왕따였던 친구 지은이가 말더듬을 고친 뒤 고등학교에서 일진회 짱으로 거듭나게 된 과정이나 열일곱 미혼모가 된 뒤 급격히 모성이 발휘되며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는 상황, 미혼모 시설에서 만난 노처녀 미혼모가 알고 보니 지은의 아빠와 한때 바람난 여자였다라는 설정, 비만 여고생의 엄마가 갑자기 거식증 증세를 보이는 점 등은 군더더기이거나 좀 더 세밀한 설명을 요구하는 대목들이다. 하지만 어쩌랴. 우리가 발 딛고 사는 현실은 ‘십자가 사망 사건’이니 ‘서태지 비밀 결혼·이혼’이니 하는 사건 등이 빈발하는 공간이다. 문학보다, 어떤 막장 드라마보다 더욱 어이없는 우연성이 판치는 것이 현실임을 감안하면 이것조차 리얼리티라고 봐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日정부 주도… 영토야욕 노골화 위안부 삭제등 교과서 서술 후퇴”

    “日정부 주도… 영토야욕 노골화 위안부 삭제등 교과서 서술 후퇴”

    지난 3월 30일 일본 문부과학성의 일본 중학교 역사교과서 검정 결과 발표 이후, 일본 측의 일방적인 역사왜곡에 국내 여론은 들끓었다. 이후 두 달여 만에 일본 역사교과서 검정 결과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과 일본의 역사인식에 대한 학술적 분석 및 그 실체를 규명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역사문제연구소·한국역사연구회 등은 20일 오후 2시 서울 장충동 만해NGO교육센터에서 ‘2011년 일본 중학교 역사·공민교과서 분석심포지엄’을 갖고 역사 왜곡으로 문제시되는 일본 역사교과서와 역사인식에 대한 학술적 분석을 시도했다.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등은 “분석을 바탕으로 향후 일본 정부에 교과서 수정을 요구하고, 나아가 동아시아 공동의 역사 인식 토대를 마련하는 데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첫 번째 발표를 맡은 이신철 성균관대 교수는 “2011년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는 정부 주도의 역사왜곡이 심화됐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역사적 사실과 전혀 다른 기술을 한 지유샤·이쿠호샤판 교과서가 통과되는 등 애국심이 강조되고, 영토야욕이 노골화됐다.”면서 “아시아태평양전쟁을 ‘아시아해방전쟁’, ‘대동아전쟁’ 등으로 미화하거나 전체 교과서에 위안부에 대한 내용이 삭제되는 등 내용 면에서 심각한 후퇴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2001년부터 일본 내에서 ‘극좌교과서’로 공격받았던 일본서적신사의 교과서는 도산으로 아예 검정신청도 하지 못했다.”면서 “이는 일본 전반의 교과서 서술이 얼마나 후퇴했는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라고 짚었다. 은정태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은 ‘일본의 한국 강제병합 관련 서술 분석’을 통해 한국 강제합병에 대한 지유샤·이쿠호샤 등 두 우익교과서의 왜곡된 서술을 중점적으로 지적했다. 은 연구원은 “2001~2009년 ‘일본정부는 일본의 안전과 만주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한국의 병합이 필요하다’고 서술한 것을 2011년도 교과서에서 ‘일본정부는 일본의 안전과 만주의 권익을 방위하기 위해 한국의 안정이 필요하다’고 바꿨다.”고 지적했다. 은 연구원은 이어 “안중근에 대한 기술도 독립운동가·민족운동가가 일반적이지만, 두 우익 교과서에서는 각각 운동가와 청년이라고 지칭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했다. 심포지엄에서는 일제강점기 서술에 대한 문제점도 드러났다. 신주백 연세대 교수는 발표에서 “지유샤·동경서적 등 출판사에서는 일제강점기를 ‘근대화’로 표현해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서울 성곽 ‘육교식·형상화 방식’ 연결

    서울 성곽 ‘육교식·형상화 방식’ 연결

    조선 태조 이성계가 축조한 뒤 일제강점기 등을 거치며 파손된 서울성곽이 복원을 통해 2014년 하나로 연결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도 추진된다.<서울신문 STV 4월 22일 방송·서울신문 4월 25일자 11면> 서울시는 서울성곽 18.627㎞ 중 도로나 주택으로 끊긴 5.127㎞ 구간에 대해 육교식 성곽이나 방향표시 지형물 등을 설치하는 ‘형상화 방식’으로 연결하기로 했다고 18일 밝혔다. 광희문과 장충체육관 일대 등 36곳은 도로 바닥에 옛 성곽 터를 따라 화강석을 깔고 감속 구간으로 지정해 자동차들이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서소문~사직단, 혜화동, 흥인지문~장충동 등 주택가가 조성돼 성곽 흔적을 찾을 수 없는 곳은 성곽 터를 따라 바닥에 2m 간격으로 ‘서울 성곽 탐방로’라고 새겨진 성곽 모형의 주물 바닥 표지판을 만들어 보행자들이 다음 성곽으로 쉽게 찾아갈 수 있도록 했다. 서울시는 성곽이 복원되면 인왕산과 백악산이 있는 창의문~숙정문~성북동 구간은 ‘생태전망코스’로 운영하고, 덕수궁과 구 러시아공사관 등이 있는 숭례문(조감도)~소의문~돈의문 구간은 ‘근대역사코스’로 운영할 예정이다. 또 숭례문~남산 N타워~장충동은 ‘남산 가족코스’로 운영하고 서울성곽 8경을 지정해 ‘서울8경코스’도 만들 방침이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문화마당] 밴드음악의 부활을 기대한다/강태규 대중문화평론가

    [문화마당] 밴드음악의 부활을 기대한다/강태규 대중문화평론가

    가수의 노래를 TV에서 보는 것과 공연장에서 대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축구 경기를 TV 중계로 보는 것과 경기장에 가서 보는 것과의 차이로 설명한다면 좀 이해가 쉬울 것이다. TV 중계는 공을 드리블하는 선수 중심으로 화면을 잡는다. 선수들의 전체적인 움직임을 TV를 통해서는 결코 볼 수 없다. 구석구석에서 벌어지는 역동적인 부딪침을 볼 수 없으니 오밀조밀한 경기의 흐름을 완전히 간파하기는 어렵다. 결국 그 열광적인 분위기를 체험하기 힘들다. 라이브 공연도 마찬가지다. TV를 통한 가요 프로그램 시청은 어쩔 수 없이 가창자 중심으로 클로즈업된다. 가수의 표정과 가창력 이외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연주자들의 격정적인 연주도 필요 없게 된다. 가요 순위 프로그램을 유심히 보면 무대 위의 연주자들이 보이지 않는다. 반주 음악으로 노래를 부르기 때문이다. 그나마 몇개 남지 않은 라이브 프로그램에서 라이브로 연주하는 사운드를 고집하는 시청자들은 음악을 듣는 귀가 그만큼 상향되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부터 ‘나는 가수다’를 현장에서 볼 수 없느냐는 부탁을 많이 받는다. TV에서 느껴지는 감동을 현장에서 느껴보고 싶은 충동이 생기게 된 것이다. 그 감동은 가창자를 빛나게 하는 편곡과 연주력이 뒷받침하고 있어서다. ‘나는 가수다’ 진행 방식에 대한 지적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수다’를 애청하는 시청자들의 생각은 내로라하는 가창자들이 그간 자신들이 애창해 왔던 히트곡을 또 다른 방식의 편곡으로 절창하는 모습에서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어우러짐에서 오는 감동은 형언하기 어렵다. 가창과 연주가 어우러졌을 때의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아이돌 그룹이 시장을 잠식하던 때가 엊그제였다. 장르의 다양성이 토착되었다고 단언할 수 없는 과도기지만 이러한 기성 가수들의 음악 향연이 시장의 또 다른 돌파구를 뚫을 수 있는 초석이 되어야 한다. 아이돌 그룹 시장이 득세하던 음악 시장은 신인 발굴 프로그램과 기성 가수들이 주축이 된 음악 프로그램으로 그 기류가 바뀌어가고 있다. 그래도 못내 아쉬운 건 록 중심의 밴드 음악이 여전히 뒷전이라는 점이었다. 1980~90년대 융성했던 밴드 음악이 2000년대 이후 사랑을 받지 못한 것에는 여러 요인이 있었지만 비주얼 중심의 장르 편향을 조성한 미디어의 상업성도 한몫 했다. 밴드 음악이 사랑을 받지 못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출중한 연주자들의 배출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밴드 음악이 활황이었을 때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연주자들이 배출되었다. 그것은 음악산업적으로 큰 힘이 되었던, 부정할 수 없는 역사다. 그러한 밴드 음악에 대한 아쉬움들이 일말의 희망을 갖게 되었다. 다음 달 초 한 공중파 TV에서 아마추어 밴드들의 대축제가 벌어진다. 그간 우리 대중음악사에 유례가 없었던 대규모 밴드 오디션 프로그램 ‘서바이벌 TOP 밴드’가 가세함으로써 장르 간의 균형을 더욱 갖추게 되었다. 밴드의 음악적 열정과 진정성을 기치로 내건 이 프로그램은 보컬 위주의 음악 트렌드를 바꾸겠다는 야심찬 기획으로 음악팬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음악 코치제를 채택한 ‘서바이벌 TOP 밴드’는 백두산, 신대철, 정원영, 체리필터 등이 가세하고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전태관 등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해 음악의 열정을 담은 리얼리티 음악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 자부했다. 이제 음악시장은 새로운 전환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외형적으로는 장르 간의 다양성이 담보되는 추세다. 자리를 잡았다고 단언하기는 힘들지만 음악을 듣는 대중의 입장에서는 더욱 풍요로운 선택권을 가지게 된 셈이다. 이를 통해 우리 대중음악 수용자의 음악듣기도 새로운 기회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간 만끽하지 못했던 새로운 음악을 통해 음악을 듣는 즐거움의 나래를 마음껏 펼친다면 우리 음악 시장의 미래도 새로운 출구가 열릴 것이다. 그것이 기대가 아니라 현실이 되기를 바란다.
  • ‘심청전’ 300년 역사가 한눈에

    ‘심청전’ 300년 역사가 한눈에

    효녀 심청 이야기를 레퍼토리 공연화한 국립창극단의 ‘청’(淸) 공연장에 들어서면 특이한 전시를 만날 수 있다. 17~20세기에 이르는 ‘심청전’ 책이 함께 전시되어 있는 것. 공연도 보고 300년에 걸친 ‘심청전’에서 ‘청’에 이르는 과정까지 함께 감상해 보라는 취지다. 전시는 박순호(69) 원광대 국어교육과 명예교수의 도움으로 이뤄졌다. 민속학자인 박 교수는 1만권의 도서를 소장한 고전소설 수집가. 심청전의 경우 시대별 판본 형식으로 150여종의 도서를 수집해뒀다. 특히 2009년에는 박 명예교수가 보유하고 있는 심청전 책을 바탕으로 조선시대에 인쇄할 때 쓰던 목판을 복원해 내기도 했다. 때문에 손으로 일일이 베껴써야 했던 필사본, 목판인쇄를 통해 대량으로 찍어냈던 방각본(坊刻本), 근대에 접어들면서 수입된 활판인쇄술로 찍어낸 딱지본 등 다양한 판본으로 심청전을 만날 수 있다. 국립극장 관계자는 “심청전은 조선 후기에 여염집에서도 널리 읽혔던 대표적인 소설”이라면서 “그런 소설을 시대별로 한데 모아둔 것이어서 한글 서체의 시대적 변화도 한눈에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방각본의 경우 당대 목판까지 갖춰 놓았다. 덕분에 2000원을 내면 옛 표지를 한장 찍어 기념품으로 받을 수 있다. 극단 미추의 마당극 ‘심청’을 비롯해 국립창극단의 ‘심청’, 유니버설발레단의 ‘심청’ 영상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또 1965년 국립국극단의 ‘심청’에서부터 시작되는 공연 포스터도 갖춰 뒀다. 공연은 28일까지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전시는 공연 기간 동안 이뤄진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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